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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유독물 재해 속출/3년간 수백명 숨져… 방지대책 시급

    【방콕 AFP 로이터 연합】 아시아국가들은 각종 화학약품과 유독물질에 의한 산업재해방지대책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국제노동기구(ILO) 동아시아전문가기구가 12일 보고서에서 경고했다. 이날 발표된 보고서는 또 지난 2∼3년간 아시아에서 여러차례 유독물질사고로 수백명이 숨지거나 다쳤으며 이같은 대형참사는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시아에서 이같은 사고가 빈발하는 이유는 아시아가 다른 지역에 비해 경제개발이 활발한 반면 이에 따른 각종 사고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매우 미흡하기 때문인 것으로 지적됐다. 또 산업현장의 근로자나 고용주 및 일반국민들이 유독물질의 피해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해 사고가 일어나면 큰 피해를 입는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 일 업계 반도체 투자 급증/16·64메가D램 시장 선점 노려

    ◎올 7천4백억엔… 40% 늘어/한·미 업체와 한판 승부 별러 일본의 반도체 업체들이 시설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다. 세계적인 퍼스컴 붐과 휴대전화,음향기기등의 판매호조와 옛공산권지역의 시장확대등에 힘입어 반도체 시장은 「없어서 못파는」 초호황을 맞고 있다.이에 맞춰 일본의 5대 반도체 메이커들은 올해 회계연도에 7천4백억엔이나 시설투자를 하기로 했다.지난해보다 40% 늘어난 수치로 근래에 없던 최대규모다. 반도체 회사들은 80년대 중반과 90년초 수요감축으로 설비과잉의 어려움을 겪었다.이번에도 일본 업체들이 크게 시설투자를 늘리는데 대해 『오는 97년 한국과 대만의 새 반도체공장이 가동에 들어가게 되면 생산과잉을 빚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등 과잉투자가 아닌가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반도체 업체의 분위기는 다르다.「1개당 1천3백엔을 받는 4메가D램 반도체의 이익은 8백∼9백엔」이라는 것이 반도체업체의 분석이다. 「선수 필승」의 D램시장에서는 16메가D램과 64메가D램의 경쟁이 치열하다.이 부문생산라인의 투자가 올해 투자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후지쓰는 지난해보다 73% 늘어난 1천8백50억엔,NEC는 44% 늘어난 1천8백억엔등을 투자할 계획이다. 4메가D램시장이 아직 활황을 보이고 있지만 멀지않아 16메가와 64메가에서 혈전이 벌어질 것은 불을 보듯 환한 사실.반도체업체들은 매달 1천5백만개의 4메가D램을 생산하고 있다.이것만으로 연간 1천4백억엔 남짓 이익을 거둘 수 있다. 미국과 한국 반도체 업체들이 적극 공세를 펴고 있는 점도 일본 업체들로 하여금 시설투자에 적극 나서게 만들고 있다.「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자세다.일본 업체들과 D램시장에서 강력한 라이벌인 한국의 삼성전자와 현대전자가 올해 2천억엔,1천5백억엔이상 투자할 것이라고 일본 언론들이 여러차례 보도한 바 있다.
  • 쿤사 탈출 문충일씨/“아들 변사 쿤사조직 범행” 재주장

    ◎최근 적발된 국내조직 청부살해 가능성/입대 앞두고 가출·자살할 이유 전혀 없어 『철이는 결코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8월 일가족과 함께 미얀마의 마약왕 쿤사의 소굴에서 극적으로 탈출,귀순한 문충일(57·경기도 거주)씨는 이번 국내 쿤사조직의 검거를 계기로,지난 6월 아들의 죽음이 「자살」로 매듭지어진 것에 대해 다시금 의혹을 제기했다. 쿤사밑에 있을때 「조직을 배반한자는 땅끝까지라도 쫓아가서 보복을 한다」는 그들의 강령을 익히 알고 있었고 실제로 여러차례 목격을 했기때문이었다. 3살때 북한에서 중국으로 건너가 20년동안 수용소 생활을 했던 문씨는 지난 89년7월 미얀마로 탈출,마약왕 쿤사밑에서 생활하다가 조직을 「배반」하고 일가족 4명과 함께 한국으로 귀순했었다. 아들 철(21)군이 실종된 것은 지난 6월5일. 한국에 들어와 처음 살던 사글세 집에서 어엿한 전셋집으로 이사를 한 바로 그날이었다.전날밤 문씨가족은 드디어 우리집을 갖게 됐다는 생각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문씨는 한국에와서 가장 기쁜 날중의 하나였다고 회상했다. 아들이 집을 나간 것은 하오3시쯤 이사를 막 끝내고 나서 동생 미령(14)양과 짐을 옮기는 문제로 사소한 말다툼을 한뒤였다. 이후 소식이 없던 철군은 닷새만인 10일 하오5시쯤 서울 강동구 암사3동 암사취수장에서 숨져 떠오른 채 발견됐다. 『며칠뒤인 6월19일 군 입대를 하기로 돼있었지요.조국으로부터 너무도 많은 고마움을 느껴온 우리 가족들은 다른 집과는 달리 정말 기뻐했습니다.조국의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을수 있게 됐다는 생각도 있었고 이제는 어엿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리할수 있게 됐다는 생각때문이었지요』 문씨는 군대를 앞두고 두려움에 목숨을 끊었을 지도 모른다는 일부의 추측을 일축했다.한국에 와서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거나 동생과의 말다툼 때문에 홧김에 일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는 경찰의 말도 어린 나이에 많은 고생을 한 철이의 삶을 생각할때 납득할수 없다고 말했다. 외상이 없어 자살이라는 부검결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의혹을 제기했다. 『누가 죽였는지는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겠지만 우선은 쿤사조직의 보복일 가능성이 가장 많습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가족들은 그러나 더 이상의 불안함은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문씨는 그러나 군복을 입고 거리를 다니는 군인들을 보면 불현듯 아들생각에 눈물을 짓기도 하지만 밝고 명랑하게 자라주는 딸 미령이를 지켜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고 말했다. 문씨는 오는 11월부터 천안으로 이사해서 그곳에서 중국어 학원강사를 하면서 남은 여생을 보낼 생각이다.
  • 이강년 선생(이달의 독립운동가)

    ◎구한말 의병장… 「수도탈환 작전」 주도/제천·죽령서 일군 무더기 생포 “전과”/청풍전투서 잡혀 51세로 옥중 순국 「한평생 이 목숨 아껴본 바 없거늘 죽음 앞둔 지금에서 삶을 어찌 구하랴만 오랑캐 쳐부술 길 다시 찾기 어렵구나」 구한말 의병장으로 항일구국운동을 펼치다 옥중순국한 운강 이강년(1858년 12월30일∼1908년 10월13일)선생이 남긴 옥중시의 한 대목이다. 선생은 이 시처럼 일제의 국권침탈만행에 대항해 죽음을 가벼이 여기면서 싸운 애국자였다.선생은 22세 때인 1880년 무과에 급제,선전관등을 지내다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관직을 사퇴했다.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전개되자 동학군에 투신,심산유곡을 누볐으며 이 경험은 장차 의병활동에 큰 도움이 됐다. 1894년 청일전쟁과 1895년 명성황후시해등 일련의 사건으로 의암 유인석 등이 을미의병전쟁에 나서자 선생도 1896년2월 고향인 경북 문경에서 의병모집활동을 시작했다.유인석은 유학자로서 당시 영남유림의 정신적 지주였다.선생은 우선 가산을 털어 의병을 모으고는 왜적의 앞잡이로 지목된 안동관찰사 김석중 등 3명을 붙잡아 목을 베었다. 이어 선생은 안동의 창의대장 권세연과 함께 고성에서 일본군과 처음 전투를 벌인 뒤 제천으로 이동해 유인석 의병부대에 합류했다.유인석의병장의 유격장이 된 선생은 수안보 병참부대 공격등 많은 전투에서 뛰어난 전공을 세웠다.그러나 유인석선생이 일제와 관군에게 쫓겨 요동으로 건너가자 1897년 뒤따라 요동으로 갔다.요동에서 이주민 정착을 위해 힘을 쏟던 선생은 고국에서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일이 더욱 시급하다고 판단,다시 단양으로 되돌아왔다.한동안 단양에서 충주 유림과 함께 의병전술등을 연구하던 선생은 1905년 조선의 외교권등을 박탈하는 을사조약이 체결된 데 이어 1907년 조선군이 해산되자 다시 의병운동에 돌입했다. 원주에서 군사를 모으고 병장기를 갖춘 선생은 기세를 모아 제천으로 진군,민긍호·조동교·오경묵·정대무 등 다른 의병장과 합류해 크게 전투를 펼쳤다.광무황제는 선생의 활약상을 듣고는 선생을 도체찰사에 제수하면서 『의병을 일으키는 초모장으로 임명하니 인장과 병부를 새겨 쓰도록 하고 명을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관찰사와 수령을 먼저 베이고 파직해 내쫓으라』는 내용의 밀지를 내렸다. 제천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자 전국 곳곳의 의병이 몰려들어 선생은 도창의대장으로 추대됐다.선생은 이어 충주에 근거하고 있는 일본군을 공격하기로 다른 의병장과 약속하고 진격했으나 공격시기를 놓쳐 충주공격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선생의 의병부대는 그 뒤 단양·영월등지에서 일제 및 관군과 대치,다소 불리한 상황에서 전투를 펼쳤다.선생은 이 가운데 제천과 죽령에서 각각 적 2백여명씩을 생포하는등 큰 전과를 올려 일제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그러나 겨울에 들어서면서 선생이 병에 걸리는 바람에 풍기전투에서 대패,의병운동의 기세가 꺾이게 됐다.진열을 가다듬어 서울 진공작전을 준비하던 선생은 전국의 의병장과 함께 작전을 펼치기로 하고 서울로 행군,경기도경계에서 일제와 여러 차례 전투를 치렀다. 추운 날씨와 적의 거센 반격으로 서울진공에 실패한 선생은 의병부대를 강원도쪽으로 회군,1908년초부터 다시 치열한 항일전쟁을 벌였다.선생은 이해 3월12일 강원도 인제 백담사전투를 비롯,안동·봉화 등에서 일제 수백여명을 쳐부수거나 사로잡았다.선생은 그러나 같은 해 6월4일 청풍 까치봉전투에서 장마비로 화승총을 쏠 수 없게 된 탓에 적의 총에 발목을 맞고 사로잡히고 말았다. 「탄환의 무정함이여,발목을 다쳐 더이상 나아갈 수 없구나,차라리 심장에 맞았더라면 이런 수모를 받지 않을 것을」 선생은 옥중에서 당시 심정을 이렇게 시로 남겼다.선생은 여러차례 재판 끝에 교수형을 언도받고 51세로 의기에 찬 일생을 마쳤다.정부는 선생의 공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 멀고도 먼 남북 협력의 길/이석우 북경 특파원(오늘의 눈)

    이석채 재정경제원차관 등 북경 남북회담 우리대표단 7명은 1일 이번 회담이 결코 결렬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러차례 강조하면서 서울로 돌아갔다.남북 양측이 다음번 회담(4차회담)의 개최시기및 장소를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하는 등 타결 여지가 남아있다는 것이다.이차관도 『회담은 끝났지만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는 말로 이를 설명했다. 그러나 지난 6월중순부터 1백여일에 걸친 북경회담은 평양과 서울의 시각차를 좁히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오히려 남북협력을 위해 넘어갈 길이 어떠한지 확인하는 계기가 아니었나 싶다.북한대표 전금철은 대외경제협력추진위 고문이란 민간기구 대표로 회의에 참석했다.우성호 송환,안승운목사 원상회복 등 현안에 『노력은 하겠지만 직접 약속할 권한은 갖지 못했다』는 입장만을 고집했다. 결국 쌀회담을 계기로 이를 경제협력­현안문제 논의의 장으로 격상시키려는 우리의 시도는 또다시 원점에 서게 됐으며 남북관계는 새 정부들어 연이어 터진 핵위기,김일성사망 등으로 공식 남북 당국자만남을 한차례도 갖지 못하고 당국자 대화통로 부재 상태를 답보하게 됐다. 이번 회담에 임한 우리대표들의 가장 큰 부담도 사실 당국자회담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그러나 회담관계자의 말대로 『아직 북의 관심은 미국·일본과의 관계개선이고 우리에게는 급한대로 경제지원 유도 등 실리는 얻어가지만 정치적 접촉은 사절』이라는 원칙을 바꿀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이 점은 수해와 식량난 등에 경제지원이 아쉬운 북한이지만 남북당국자 회담이 쉽사리 성사될 것같지 않음을 보여준다. 핵위기가 완화된 지난해말부터 북경은 평양으로 통하는 마지막 비상구였다.그러나 남북협력 지원을 위한 회담은 한반도내에서 대표자 자격을 확실히 하는 조건에서 열 것이라는 30일 정부선언으로 북경은 이제 더이상 그 역할을 계속할 수 없게 된 것같다.또 남북교류도 당분간 주춤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이 선언으로 우리의 북한정책은 분명한 한 획을 그엇다고 할수 있다.한반도문제는 남북당사자들이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이 강조되고 이 원칙 아래 꾸준한 노력만이 북한의 변화를 진정으로 유도하는 길이란 점에서 서두르지 않고 멀리 바라보는 정부와 국민들의 대북정책에의 합의를 기대해 본다.
  • 제주 대형건물 안전에 “문제”/무리한 설계·용도변경… 증축

    ◎여미지 식물원/서귀포 KAL호텔/파라다이스호텔/프린스·로베로호텔 제주도내 유명 관광호텔및 관광시설들이 여러차례에 걸쳐 무리하게 설계및 용도를 변경하거나 증축해 안전 등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22일 제주도가 국회 내무위의 정균환(국민회의)의원에게 제출한 도내 연면적 1만평 이상의 대형건물 안전점검 실태조사 자료에서 밝혀졌다. 이 자료에 따르면 삼풍백화점 이준 회장이 소유하고 있는 여미지식물원을 비롯,서귀포 KAL호텔,파라다이스호텔,프린스호텔,로베로관광호텔 등이 문제 건축물로 지적됐다. 파라다이스호텔은 지난 93년 5월 지하1층 7백29㎡ 규모의 창고를 일반 목욕탕으로,2백56㎡ 규모의 대피소를 헬스클럽으로 변경한 것으로 드러났다. 파라다이스호텔은 또 같은 시기에 6백90㎡ 규모로 일반목욕탕과 사무실을 증축했으며 지난 89년 4월과 90년 1월 두차례에 걸쳐 2천9백31㎡ 가량 면적이 증가하도록 설계를 변경했다. 동양 최대의 실내 식물원인 여미지식물원은 지난 87년 7월 등 세차례에 걸쳐 설계를 변경한 뒤 지난 92년 4월과 94년 2월에 식물원 일부 1백24㎡를 휴게실로 용도변경했다는 것이다. KAL호텔은 지난 86년 4월 지하2층 가운데 1천4백40㎡를 식품공장 및 사무실로 용도변경한 뒤 90년 12월 지상1층 가운데 4백34㎡를 위락시설로 용도변경했다. 프린스호텔은 89년 12월 수영장 탈의실 일부를 투전기 업소로 바꾼 뒤 지상1층 한국관을 실내수영장으로,나이트클럽 일부를 청소년 유기장으로,로비일부를 로비라운지로,투전기 업소 일부를 창고로 변경했으며 세차례에 걸쳐 4천8백14㎡ 가량 규모가 늘어나도록 설계를 변경했다.
  • DMZ 생태계(외언내언)

    1966년 비무장지대(DMZ)에서 최초의 학술조사가 한국자연보존연구회에 의해 실시되었다.포연이 사라지고 인적이 완전히 끊긴지 13년 뒤 민통선안의 생태계는 엄청나게 달라져 있었다. 옛 마을은 아카시아숲으로 뒤덮여버렸고 흐르는 개울에는 팔뚝만한 메기가 물속을 지배하고 있었다.약육강식이 그대로 드러난 모습이었다. 그뒤로도 비무장지대의 학술조사는 여러차례 실시되었고 그결과 세계 「동식물 자원의 보고」로,「철새의 낙원」으로 널리 알려졌다.인위적으로 사람의 발길을 완전히 차단해놓고 40여년이 지난 「금단의 지역」.그런 땅이 지구상에 또 어디 있을까. 그래서 세계의 생태계연구단체들은 우리의 비무장지대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80년 국제자연보호연맹은 국제자연공원조성을 제의해왔고 91년 유엔환경계획(UNEP)은 국제환경공원안을 제시한 적이 있다.유네스코는 지난해 이 지역을 세계 생태계보호지역으로 지정하기 위해 조사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야생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비무장지대는 철새와 희귀동물의 낙원으로 바뀌어졌다.멸종위기에 처한 새들의 마지막 피난처가 된 것이다.세계적으로 희귀한 재두루미 두루미 독수리의 서식지가 비무장지대 안에 있다.전세계에 4천4백마리 남은 재두루미중 절반이 이곳에서 겨울을 난다.몇년째 종적을 감춘 광릉 크낙새도 이곳으로 서식처를 옮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환경부는 비무장지대인근의 생태계 보고중 3곳을 유네스코의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토록 요청하기로 했다고 한다.이와함께 민통선에 대한 남북공동조사를 실시하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는 보도다.그동안 비무장지대의 공동학술조사는 우리측에 의해 여러차례 제의되었으나 북한측은 묵묵부답이다.얼마전 광복50주년 기념사업으로 생태계 및 자원공동조사가 제의됐지만 역시 반응이 없는 상태. 유네스코의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돼 세계적 동식물보호지로 선포되는게 더 급한 일일것 같다.
  • 「유관순 숨진 감방」 보호지붕 “왜색 시비”

    ◎92년 서대문 형무소 공원 조성하며 건축/“일본 사찰양식 답습” “고증에 따른 것” 맞서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163의 1 사적지 324호 「독립공원」안에 있는 일제 당시 여성 독립투사의 지하감방을 보존하기 위해 새로 만든 지붕의 모양을 두고 「왜색시비」가 한창이다. 문제의 지붕은 서울시가 일제때 악명높던 서대문 형무소를 공원으로 조성하면서 지난 92년 11일 건축했다.한평이 채 안되는 네개의 독실 감방과 고문실로 구성된 50여평의 지하구조물위에 목재 움집형태를 하고 있다.사각뿔 모양의 검은색 지붕을 두겹으로 얹은 형식이다. 보호 지붕이 덮고 있는 지하감방은 3·1독립운동의 횃불이었던 유관순 열사가 옥사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향토사학자 및 일부 건축전문가들은 이 지붕이 일본풍의 건축양식을 답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건립직후부터 문제를 제기해온 향토사학자 홍헌일(54·서대문 향토사 연구회장)씨는 『처마의 흘림이나 전체적인 외형이 1400년대 일본 중세 사찰 건물 양식과 흡사하다』고 지적했다. 향토사학자들과 순국선열유가족 단체등은 여러차례 서울시등에 시정을 요청했고 독립투사 유가족단체의 탄원도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해마다 40만명이 넘는 관람객들이 찾는 역사의 교육장에 일본식 지붕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특히 어린학생들에게 일제의 만행을 되새기는 장소로 활용되고 일본관광객도 자주 찾는 독립투사의 감옥지붕이 일본풍인데 대해 수치심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공원조성때 역사학 교수들과 서울시 문화재 위원들의 고증에 따라 건물을 지은 만큼 왜색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서울시와 구청측은 『왜색시비가 일어난 뒤에 나름대로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했으나 별문제가 없었다』고 강조하고 또 설사 고친다 하더라도 예산문제 때문에 당장은 어렵다는 반응이다. 복원공사 당시 자문단에 참여한 서울대 신용하(사회학)교수는 『서울시측이 건축양식에 대해 자문을 구한 적은 없었다』고 전하고 『지하감방 건립당시의 자료나 사진등이 전혀 없어 완벽한 복원은 불가능한 상황이므로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쳐 지붕을 다시 지을지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규제완화 등 「개혁 보완」 계속 추진”

    ◎김 대통령,국무위원·비서진 간담 지시 내용/영세민·노인 등 그늘진 이웃 특별히 배려/공중시설 문닫는 일 있더라도 안전 우선 김영삼 대통령은 4일 상오 청와대에서 국무위원및 청와대 수석비서관 전원,조순 서울시장 등과 조찬을 함께 하며 집권후반기 국정운영구상을 밝혔다.다음은 윤여전 청와대 대변인이 전한 김대통령의 지시내용 요지. □총론=나는 새로 취임한다는 각오로 임기후반을 시작할 것이므로 국무위원 여러분도 같은 각오로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국정에 임해주기 바랍니다.총리를 중심으로 내각이 새 출발을 한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해주기 바랍니다. 세계화 내각이자 개혁내각인 현내각은 국민의 기대와 여망을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됩니다.국무위원들이 항상 국민앞에 나서서 개혁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개혁에의 동참을 적극 호소하는 노력을 기울여주기 바랍니다.이렇게 해서 국민이 참여하는 개혁,국민과 함께 하는 개혁으로 승화되도록 해야 합니다.개혁에 관해 내각에 큰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만큼 그 평가도 엄격히 해나가겠습니다.대통령을 돕는다는 생각보다는 국가과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변화와 개혁에 앞장서 주십시오.국무총리를 중심으로 내각이 전면에 나서 책임지고 정책을 입안하고 소신있게 추진하기 바랍니다. □국정운영방향=국정운영에 있어 변화와 개혁은 잠시도 중단돼서는 안됩니다.세계 여러나라들이 변화와 개혁의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변화와 개혁이 없는 곳에는 진전이 없기 때문입니다.개혁에 대한 우리 국민의 기대와 성원도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앞으로는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민생개혁·생활개혁에 힘쓰고 노인과 영세민 등 그늘진 이웃을 특별히 배려하는 복지개혁에 중점을 둬야 하겠습니다.각종 사고와 범죄로부터 국민생활의 안전을 확보하는데 각별히 신경을 쓰기 바랍니다.국민들이 가장 절실하게 피부로 느끼는 것은 범죄로부터의 해방입니다. 국민생활의 불편을 덜어주는 민원행정을 강화하는 문제도 매우 중요합니다.이 문제에 대해서는 과거와 별로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습니다.국민들이변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또한 여성의 사회참여를 높이기 위한 노력도 기울여야 합니다. □부정부패 근절 선거사범 엄단=나는 취임초부터 부정부패근절이 개혁의 뿌리라고 생각했습니다.부정부패를 근절하기 위한 노력은 성역없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입니다.더욱 문민정부 출범이후의 부정부패를 근절하는데 있어서는 결코 성역이 있을 수 없습니다.(이형구전노동장관과 대통령 사촌처남의 구속사건을 예로 든 뒤) 이것이 성역이 없다는 증거가 아닙니까.부정부패척결은 국민의 한결같은 바람이기도 합니다.국민은 절대로 부정부패를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도 부정부패를 반드시 척결해야 합니다. 특히 선거와 관련된 부정과 비리는 끝까지 추적해서 엄단하겠습니다.선거혁명을 과거 여러차례 강조한 바 있지만 선거부정의 척결은 부정부패 척결과 함께 문민정부의 도덕성에 관한 중요한 문제이자 책무입니다. □개혁후속조치=개혁의 후속조치와 보완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그 중에서도 각종 규제완는 계속 추진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금융실명제·부동산실명제가 성공적으로 정착되도록 최대한 노력하기 바랍니다.양대 실명제의 실시는 문민정부의 큰 업적인데 법을 개정해서 특수한 사람에게 특혜를 주는 것은 절대 안됩니다.실명제라는 제도의 틀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교육개혁 추진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주십시오.교육이 바로 서야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될수 있습니다. 군,검·경찰과 일반행정직 공무원 등 공직사회가 국가의 기둥인 만큼 공직자들이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도록 사기를 높여주는 문제가 매우 중요합니다.작은 일이지만 당직근무제도 같은 것도 개선,어려움을 덜어주도록 하십시오. □안전점검=안전제일주의가 우리사회에 정착되도록 적극 노력하기 바랍니다.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같은 사고가 재발해서는 안됩니다.그런 종류의 사고는 언제라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재산피해보다는 인명을 중시한다는 차원에서 아파트·백화점 등 집단거주시설이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의 안전문제는 시설의 문을 닫는 일이 있더라도 안전기준을지키는데 최우선적 목표를 두십시오. □기타=추석 물가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연휴기간중 교통소통과 안전에 각별히 신경 써 이번 추석이 사고가 가장 적은 명절이라는 기록을 세우기 바랍니다. 정기국회를 앞두고 내각은 성실하게 준비하되 국회가 열리면 당당한 자세로 임해주십시오.국회 답변을 통해 국민에게 국정을 알리고 무슨 문제이든 정부의 입장을 당당하게 설명한다는 자세를 갖추기 바랍니다. 수해복구와 관련,정부는 수해 피해액을 정밀하게 조사하고 효과적인 복구를 위해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포함한 지원 방안을 마련하십시오.겨울철을 앞두고 이재민들이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적극 강구하십시오.
  • 친정강화·세대교체 “조화”/민자 주요 당직개편 의미

    ◎신진파격 발탁 양김에 정면대응/중부·충청권 등 지역배려 흔적도 김영삼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은 항상 허를 찌르는 듯한 의외성을 지니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준다.22일 단행된 민자당 3역 등 주요당직 인선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당 주변에서는 『YS는 못 말려…』라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40대 초반의 강삼재 의원을 사무총장에 전격 발탁한 것은 집권당 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파격이다.또 지역적 연령적 계파적으로 조화가 잘 되지 않을 것 같은 대표위원과 당3역의 배열도 눈여겨 보면 무언가 강렬하게 느껴지는 메시지가 있다. 먼저 김대통령은 이번 당직인선을 통해 크게 두가지의 정국및 민자당 운영방향을 제시하고 있다.이러한 구상의 바탕에는 현실적으로 외면할 수 없는 지역적인 배려가 깔려있다.또 김대중,김종필 「두김씨」의 야당을 겨냥한 부분도 감지된다. 김대통령이 던진 두가지 메시지는 「가시적인 세대교체 실현」과 「당의 확고한 친정체제 확립」이다.김윤환대표위원체제 출범이 「대화합」으로 상징된다면 당3역 인선은당을 총재가 직접 이끌고 세대교체를 통해 「차세대 정당」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읽혀진다. 강사무총장의 기용은 세대교체를 가시화했다는 점에서 49세인 김기재 총무처장관의 발탁과도 맥을 같이 한다.서정화 원내총무,손학규 대변인,박범진총재비서실장 등도 50대 중반을 밑도는 신진그룹이다. 따라서 곧 있을 내각개편과 민자당 중·하위당직개편에서도 이같은 세대교체 의지는 더욱 강조될 것으로 보이며 내년에 치러질 총선에서의 대폭적인 물갈이도 예상되고 있다.또 최근 김대중·김종필씨를 중심으로 압박해오는 세대교체 거부움직임에 정면대응하겠다는 뜻을 가시화했다는 점에서 여야관계에 상당한 긴장감을 불러올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김대통령은 최근 거론되던 민정계 사무총장설을 측근 민주계인 강총장의 기용으로 잠재웠다.이는 무엇보다 김대통령이 『당을 직접 챙기겠다』고 여러차례 강조했듯이 친정체제를 강화하는 의미가 짙다.또 집권후 김윤환 총장의 2개월을 제외하고는 민주계가 독점했던 사무총장 자리를 다시 민주계가 차지토록 한 것은 대부분 2선으로 후퇴한 민주계에 대한 배려로도 해석된다. 김대통령은 이번 인선에서 총선에 대비,지역 안배에도 상당히 신경을 쓴 것으로 드러났다.이춘구 대표의 퇴진과 김종필 총재의 자민련 바람으로 동요하고 있는 충청권에 대한 배려로 김종호 의원을 정책위의장에 재기용했다.또 인천 출신인 서정화 원내총무의 발탁도 중부권 배려 차원의 성격이 짙다.대구·경북권의 김대표위원,경남권의 강총장,충청권의 김정책위의장,중부권의 서원내총무,수도권의 손대변인,박총재비서실장 등 호남지역을 제외하고는 지역안배 측면에서 일단 구색을 갖춘 셈이다. 결국 민자당 새 체제의 성패는 당의 친정체제 확립,지역주의 극복,세대교체 등 여러 마리의 토끼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쫓아 잡느냐에 따라 8개월후 총선의 결과로 드러날 것이다.
  • 고질화된 안전 불감증(사설)

    53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도 여자기술학원 방화 참사사건은 집단수용시설의 가혹행위 등 인권유린과 안전관리 미비라는 운영상의 불합리가 초래한 예상됐던 사고라는 점에서 큰 충격을 주고있다.다시 한번 고질화된 우리 사회 안전불감증을 보여 주는 것이며 집단수용시설의 안전 및 운영방법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필요성의 시급함을 일깨우고 있다. 윤락녀와 가출소녀들의 재활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이 학원은 「준교도소」라고 불릴만큼 기숙사의 출입구는 쇠사슬로 묶여있고 창문은 이중 삼중의 쇠창살이 드리워져 있어 화재시 대형참사로 이어질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원생들이 교사들의 심한 욕설과 구타·기합등에 반발,최근 3년동안 여러차례 집단탈출·방화사건을 일으켜 왔다. 감독기관과 학원측은 사고후 원생들이 기회만 있으면 탈출하려고 해 철저한 감시시설을 갖추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변명하고 있으나 비상시 안전책을 준비하지 않은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다.최소한도 화재경보 시설을 완비해 대피할 시간을 확보토록 하고 비상시는당직자가 철문을 재빨리 열수 있는 근무체계를 갖추고 있었어야 마땅했다. 「준교도소적」인 집단수용시설은 이번 참사가 발생한 부녀보호시설뿐만 아니라 비슷한 사고 발생의 소지가 있는 갱생원·소년원,행려자 수용소,정신병 치료소등 전국에 1백여군데나 된다.문제의 심각성은 이런 수용시설들의 운영방법이 거의가 강압적이고 수용자들이 이에 반발,집단 탈출을 시도하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어 이번과 같은 대형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집단수용시설의 강압적인 선도 방법도 시대변화에 걸맞게 인간적인 선도방법으로 바뀌어야 한다.또 감시체제도 첨단 장비를 이용한 간접방법으로 바꾸어 안전성을 높이고 수용자들의 반발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인간적인 신뢰뿐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 「폐지폐 유출」 드러나는 “은폐·공모”

    ◎범인 주식거래수첩 찾고도 여죄 조사안해/한꺼번에 5천만원 빼내… 공모없이는 불가능/설치된 5대 폐쇄회로TV테이프 사라져/파면한뒤 퇴직금 지급 절취액 짜맞춘 흔적 한국은행 부산지점에서 전 서무과 직원 김태영(40)씨가 빼돌린 폐기용 화폐액이 3억5천만원으로 경찰 수사에서 드러남에 따라 은행측이 이 사건을 고의로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한은측은 당초 부산지점 전 서무과 직원 김씨가 지난해 4월 26일 5만원을 훔치려다 발각됐으며 자체조사결과,3차례에 걸쳐 55만원을 훔쳐낸 것으로 발표했었다. 그러나 김씨가 경찰조사에서 모두 10차례에 걸쳐 3억5천만원을 빼돌렸다고 자백했고 5만원을 훔치려다 발각됐다는 날도 세단기의 조작으로 절단되지 않고 흘러나온 폐기용 화폐가 7천2백65만원이었던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또 한은측은 김씨의 주식거래 내용이 적힌 수첩을 은행 1층 화장실에서 찾아내고도 자체조사에서 이같은 사실을 조사하지 않았고 김씨의 자술서에만 의존한 형식적이었던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김씨는 범행이 발각된 직후 여죄가 탈로날 것을 우려해 자신의 책상 서랍속에 훔친 돈과 빌린 돈 등으로 주식을 거래한 내용을 적은 노트를 1층 화장실에 숨겼으나 당시 편봉규 정사과장(46)이 이를 즉시 발견,박덕문(현 본점 계리부장)지점장에게 보고했다는 것이다. 박지점장 등 은행 간부들은 이같은 내용을 알고도 여죄를 추궁하거나 수사기관에 고발하지도 않고 지난 해 5월17일 이 노트를 김씨의 부인을 통해 건네준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함께 김씨가 업무시간인 하오 3시나 하오 4시30분 정사실에 들어가 세단기에 걸러진 화폐를 훔쳐내는 장면이 정사실에 설치된 5대의 폐쇄회로 TV에 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녹화테이프가 모두 폐기되고 없어 당시 CCTV 담당직원들이 미리 짜고 묵인했거나 CCTV 감시를 소홀히 했다는 비난을 받고있다. 더욱이 김씨가 55만원을 훔치고 5만원을 더 훔치려다가 적발됐으며 파면한 뒤 1천8백만원의 퇴직금을 지금하는 등 은행측이 김씨의 절취액수를 55만원에 맞추려고 지나치게 애쓴 흔적이 적지 않다. 이에 따라 김씨가 단독 범행임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으나 훔친 액수가 수사과정에서 은행이 발표한 55만원보다 6백36배나 많은 3억5천여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고 한꺼번에 5천만원을 빼낸 대담성 등으로 미뤄 다른 직원과의 공모 및 상납여부에 대한 의문점도 제기되고 있다. ◎폐지폐 어떻게 처리되나/자동정사기 통해 폐기여부 결정/세단기로 분쇄·천공후 소각처리 한국은행 부산지점 화폐 불법유출사건은 경찰의 조사결과 손상된 돈을 분쇄,처리하는 화폐 자동정사기에 대한 관리상의 허점에서 비롯됐다. 돈의 생애는 조폐창에서 만든 신권을 한은으로 보내면 한은이 금융기관의 헌돈과 바꾸어 주는데서 시작한다.한은에 돌아온 헌돈은 한은 본점과 12개 지점에 설치된 30대의 화폐 자동정사기를 통해 재사용이 가능한 돈과 폐기할 돈으로 분류된다.자동정사기가 없는 지점이나 사무소로 돌아온 손권은 천공기계로 돈에 구멍을 뚫은 뒤 대구의 소각로에서 소각된다. 자동정사기에서 폐기할 돈으로 분류된 손권은 컨베이어를 통해 자동정사기에 붙은 세단기로 옮겨지면 톱니모양의 칼날에 1∼2㎜ 크기로 잘게 쪼개져 폐기처분 된다.이때 잘게 썰어진 지설물은 단열재 등 건축자재로 재활용된다.정사기에는 투입된 헌돈과 재사용할 돈,폐기처분한 돈의 숫자가 자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재사용할 돈과 폐기처분한 돈의 합계가 투입된 헌돈의 숫자와 대조할 수 있도록 장치돼 있다.만약 칼날의 간격을 임의로 조작할 경우에는 세단기의 작동이 중단된다. 또 1대의 자동정사기에는 2인 1조의 정사원과 1∼2명의 정사계장 또는 과장이 관리인으로 붙어 있다.특히 정사실은 일반인들의 접근이 금지된 「제한구역」으로 분류돼 있으며 24시간 폐쇄회로 TV를 통해 감시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범인인 부산지점 서무과 직원 김태영씨는 1∼2㎜인 칼날간 간격을 10㎝정도 떼놓아,손권이 세단기에 분쇄되지 않고 그대로 떨어지게 한 뒤 세단기를 수리하겠다며 퇴근 후에 남아 화폐정사기 속에 분쇄되지 않고 쌓인 돈을 꺼내 유출했다. ◎유출범인 김태영씨 일문일답/“모든 분들께 죄송… 공모자는 없어” 『모든 분들에게 누를 끼쳐 죄송합니다.죽고싶은 마음뿐입니다』 한국은행 부산지점에서 3억5천여만원을 몰래 훔쳐낸 혐의로 구속된 김태영씨가 21일 하오1시쯤 부산중부경찰서 형사계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일문일답을 나눴다. ­여러차례 돈을 훔친 걸로 봐서 공범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직원 상호간의 감시체계가 잘 이뤄져서 공모자체가 절대로 이뤄질 수 없다.공모한 사람은 결단코 없다. ­은행측은 지난해 면직될 당시 절취한 금액이 모두 3억5천여만원인 사실을 알고 있었나. ▲모르고 있었던 것같다.죄송할 따름입니다. ­단독범행이라고 믿기가 어려운 구석이 많은데 혹시 은행측으로부터 무슨 약속같은 것을 받았나. ▲약속받은 것이 없다.(침묵) ­은행측이 훔친돈으로 증권에 투자한 내역을 적은 비밀장부를 돌려줬다는데. ▲(한동안 침묵)다만 죄송할 따름입니다.
  • 잠결 매캐한 연기…현관문 잠겨“발동동”/기술학원 화재 생존자 증언

    ◎화장실서 소리지르다 정신잃었어요 『탈출하려고 유리창을 깼지만 쇠창살을 뜯어낼 수가 없어 비명만 지르다 정신을 잃었어요』 경기여자기술학원 기숙사 화재사고 현장에서 가까스로 구조된 윤모양(15·경기 성남시 수진2동)은 끔찍했던 순간을 이렇게 돌이켰다. 21일 상오 2시10분쯤 윤양은 『불이야』를 외치는 옆방 선배 원생의 다급한 목소리에 잠이 깼다.그러나 화재를 알리는 경보음은 들리지 않았다. 이불과 장판 등이 타면서 생긴 연기와 유독가스로 복도는 물론 방안까지 이미 자욱해진 상태였다.기숙사 2층 15호실에서 자고 있던 윤양은 필사적으로 탈출구를 찾았으나 창문은 굳게 잠겨있었다.하는 수 없이 수건으로 대강 입을 막고 1층 사감실 옆에 있는 현관문으로 달려갔으나 이 역시 언제나처럼 굳게 닫혀있었다.유리창을 깨뜨리려 여러차례 어깨로 부딪쳤으나 너무 두꺼워 끄떡도 하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물을 찾아 2층 화장실로 몸을 피했다.화장실에는 2층에서 자고 있던 50여명의 원생들이 몰려들어 어느새 아수라장으로 변해있었다.다급해진 원생들의 『살려달라』는 비명과 기침소리,몸부림으로 아비규환이었다.다시 화장실 밖으로 빠져나가려 했지만 화장실 안쪽으로 여는 구조인데다 워낙 사람이 많아 열 수가 없었다. 이때 다급해진 한 원생이 유리창을 깨는 모습이 연기사이로 희미하게 보였다.그러나 유리창 뒤에는 두꺼운 쇠창살이 버티고 있었다.여럿이 달려들어 뜯어내려 했지만 가냘픈 10대 소녀들로서는 무리였다.자포자기 상태가 된 윤양은 20여분동안 화장실에 갇혀 비명만 지르다가 끝내 실신하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동수원병원 응급실이었다.상오 2시50분쯤 소방대원들에게 극적으로 구조된 것이다.윤양은 그래도 부상이 가벼운 쪽에 속했다.어렵긴하지만 그나마 당시의 상황을 얘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일 이 학원에 들어온 윤양은 『그동안 너무 엄격한 생활통제와 벌칙 때문에 달아나고 싶은 생각이 여러번 들었다』며 『탈출을 막기 위한 쇠창살만 없었다면 이렇게 많은 동료들이 숨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원생 방화사건 왜 일어났나/또 다른 「여자 교도소」… 죄수 취급 불만/외출 등 금지… 원생들끼리 구타 빈번 경기여자기술학원 기숙사 방화 참사는 평소 학원측의 비인격적인 대우와 극히 통제된 생활에 불만을 품은 원생들이 치밀한 사전계획에 의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원생들은 10개월의 교육기간 동안 단하루의 졸업여행 말고는 한차례의 외출·외박도 허용되지 않는데다 날마다 하오 7시부터 다음날 상오 7시까지(동절기는 7시30분) 기숙사 출입문이 바깥에서 굳게 잠긴 가운데 「죄수」나 다름없는 생활을 해왔다.정해진 규율에 따라 밤마다 9시에 점호를 받았고 학원측이나 같은 원생들사이에도 구타가 공공연하게 횡행했다. 또 부모가 순수하게 교육을 위탁한 비교적 「건전한」 원생과 윤락녀 출신의 원생사이에 크고 작은 충돌이 잦았지만 학원측에서 이를 무시하고 통제에만 급급해 일부 원생들이 학원측에 대한 불만을 면회온 가족들에게 털어놓기도 해 이미 많은 문제점이 외부로 노출된 상태였다. 학원측은 특히 1백37명의 원생가운데 윤락녀 출신은 7명밖에되지 않는데도 다른 원생들까지 모두 윤락녀를 대하듯 비인격적으로 취급하며 통제의 고삐를 쥐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원생들이 작성한 일기장과 서로 주고 받은 편지에는 『모든게 싫다.차라리 죽어 버렸으면…』『그저 눈을 감아 버리고 싶다』『부모에게 버림받은 나』『달아나고 싶다』는 구절이 곳곳에 씌여져 있어 평소 강압적이고 융통성없는 학원생활을 짐작하게 했다. 지난해 1월 교육기간단축과 구타근절등을 주장하며 방화와 함께 2명이 달아나고 4명이 구속된 것을 비롯,해마다 「탈출」 행렬이 2∼3건씩 끊이지 않았던 것도 개성을 무시한 통제위주의 비인격적 교육이 주요 원인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번 참사 이틀전인 19일 담을 넘어 학원을 빠져나가려다 미수에 그친 6명의 원생들이 「1주일 유급」이라는 중징계를 받자 일부 원생들의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나와 이게 방화의 도화선이 된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 증권사 대리 살해범 2명 검거/「주가작전」 따돌림 받자 청부살인

    ◎전동료가 직장후배 꾀어 범행/“차명계좌 1억 예금 가로채려” 서울 동방페레그린증권 이형근(32)대리 피살사건은 역시 주식차액을 노려 시세조작을 하는 이른바 「작전」 과정에서 이대리가 거액을 챙기고 「작전」동료들을 따돌린데 대해 범인들이 앙심을 품고 이대리를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범인들은 또 이대리를 살해,그가 대리 관리해온 고객들의 차명계좌를 몰래 빼돌려 서로 나눠가지려 했던 것으로 경찰 수사결과 밝혀졌다.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기 고양경찰서는 20일 동방페레그린증권 대리 이씨를 살해한 오도일(29·일은증권 남대문지점 직원)씨와 살인을 청부한 이원석(30·일은증권 대리)씨등 2명을 붙잡아 범행 일체를 자백받고 이들을 강도 살인혐의로 긴급 구속했다. 살해를 청부한 일은증권 이씨는 경찰에서 『「작전」과정에서 숨진 이대리가 혼자서 거액을 챙기고 관련정보를 주지않는 등 「배신행위」를 일삼아 직장 후배인 오씨를 꾀어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이씨는 또 『숨진 이대리가 나와 안모씨(Y증권직원)에게 각각 6천여만원씩 모두 1억2천여만원을 맡겨 차명계좌를 이용,주식투자를 해왔다』면서 『그러나 최근 이대리가 나에게 맡긴 차명계좌의 돈을 여러차례 빼낸 뒤 안씨의 차명계좌에 넣어 불만이 생긴데다 이 차명계좌를 가로채려고 살해했다』고 범행동기를 밝혔다. 경찰조사결과,오씨도 평소 이대리가 자기에게 밀어주기로 한 차명계좌에 대한 지원약속을 어기고 안씨등 다른 직원에게 빼돌려 「작전」에 따른 원한이 쌓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이에 따라 안씨등을 불러 증권가의 「작전」과 가차명계좌 실태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범행모의◁ 범인 이씨는 지난 4일 회사 사무실에서 부하 직원 오씨에게 『형근이를 없애주면 1억원을 주겠다』고 꾀어 범행현장인 음식점을 미리 답사까지 하는등 치밀한 범행계획을 세웠다.이씨는 이어 11일 하오 2시쯤 고양시 행주외동 H음식점에서 숨진 이대리가 낀 포커모임이 있다는 사실을 오씨에게 알렸고 오씨는 갈아입을 옷과 길이 25㎝짜리 등산용 칼을 준비,하오 11시쯤 음식점 주변에 숨어있었다. 오씨는 이날 하오 11시30분쯤 잠시 밖으로 나온 이씨와 상의,모든 준비를 끝낸 뒤 다음날인 12일 새벽 3시10분쯤 이대리가 그랜저승용차를 몰고가려는 순간 재빨리 승용차 뒷좌석에 올라탔다. 오씨는 이대리에게 『작전종목에 들어갈 때 정보좀 달라』『혼자 욕심만 차린다』고 시비를 걸자 이대리가 오씨의 뺨을 때렸다.이때 오씨는 미리 준비한 흉기로 이대리의 목과 가슴등을 16차례 찔러 살해했다. 오씨는 준비한 옷으로 갈아 입고 이씨에게 피묻은 바지의 처리를 부탁한 뒤 귀가했고,살인을 청부한 이씨는 피묻은 바지와 칼을 비닐봉지에 넣어 한남대교 중간 부근 강물에 버렸다. 오씨는 범행과정에서 손에 난 상처를 숨기기 위해 집 현관유리창을 깨뜨리고 동네 병원에서 치료받았다. ▷검거◁ 경찰은 함께 포커판을 벌인 이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지금까지 모두 4차례에 걸쳐 소환조사했다.그러나 이씨가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는데다 가명계좌추적이 어려워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경찰은 그러나 증권가에 대한 탐문수사에서 평소 친하게 지내던 오씨의 왼쪽 손에 상처가있고 「작전」과 관련된 것 같다는 정보를 입수,지난 18일 처음으로 오씨를 불러 조사했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오씨의 손에 난 상처가 칼에 의한 것인지 여부와 숨진 이대리의 승용차에 묻은 혈흔과 오씨의 혈액을 채취,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검사를 의뢰한 결과 오씨의 혈액인 것으로 밝혀냈다. 경찰은 지난 19일 새벽 오씨와 이씨로부터 범행일체를 자백받았다.
  • 보스니아서 숨진 미특사 프레이저/6차례 발칸 방문…분쟁해결 노력

    ◎“탁월­솔직한 외교관” 명성 남겨 보스니아 평화협상차 사라예보로 가다가 19일 장갑차 전복사고로 숨진 로버트 프레이저(53) 미특사는 발칸전쟁 종식을 위한 미국외교노력의 핵심인물이었다. 워런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은 『발칸분쟁의 외교적 해결을 위한 그의 탁월한 역할은 클린턴 대통령,동료 외교관,유렵전역의 지도자들이 인정하고 존경하고 있다』며 애도했다. 미국무부 유럽 캐나다 담당 부차관보인 그는 지난 4월 전임 찰스 토머스로부터 이른바 「보스니아 사태 중재를 위한 국제 접촉그룹」의 특사직을 인수한 후 세르비아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공화국 인정에 노력을 집중하면서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세르비아 대통령과 여러차례 회담을 갖느라고 최소한 여섯차례나 발칸을 방문했다. 큰 키와 마른 체격에 대머리와 턱수염을 기른 그는 솔직한 성격의 외교관으로 명성이 나 있었다.그는 웨스트 버지니아 대학을 졸업하고 런던대학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74년 외무직에 발을 들여놓은 뒤 주로 유럽·아프리카지역을 담당했다.
  • 「작전」동료 보복살해 집중수사/Y증권 입사동기 L씨 소환조사/경찰

    ◎숨진 이씨 배신으로 손해 입은듯/전주 청부살해·재산노린 범행 가능성도/증권거래소 공성통신주 매매심리 나서 동방페레그린증권 대리 이형근(32)씨 피살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기도 고양경찰서는 18일 숨진 이씨가 지난 4월부터 공성통신 주식의 시세조작을 하는 이른바 「작전」을 벌이다 혼자서 주식을 먼저 팔아 단기차익을 챙기면서 「작전」에 함께 참여했다가 피해를 본 동료의 원한을 사 보복살해됐을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보고 이 부분을 집중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그러나 ▲이씨에게 주식투자를 일임했다가 큰 손해를 본 전주에 의한 청부살해 ▲이씨의 4억∼5억원 짜리 차명계좌에 이름을 빌려준 사람에 의한 범행 ▲10억원이 넘는 이씨의 재산을 노린 범행 등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병행하고 있다. 경찰은 우선 이씨의 첫 직장 Y증권 입사동기로서 공성통신의 주가조작 「작전」에 참여했으면서 사건 당일 고양시 한 식당에서 새벽까지 함께 포커를 했던 L씨(30·I증권 대리)의 승용차에 있던 장갑및 반바지·슬리퍼 등에서 혈흔이 발견됨에 따라 L씨를 여러차례 소환 조사했다. 그러나 L씨는 18일 조사에서도 범행사실을 완강히 부인했다. 경찰은 숨진 이씨와 L씨 등이 지난 4월25일부터 1만1천5백원까지 거래가가 내려간 공성통신 주식에 함께 「작전」을 벌인 결과 지난달 24일에는 3만4천4백원까지 상한가를 기록했으나 지난달 28일부터 주가가 매우 빠르게 하락,1만8천원대까지 다시 떨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지난달 28일부터 한쪽에서는 계속 팔려고 내놓고 다른 쪽에서는 주가를 반등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따라서 경찰은 숨진 이씨가 공동으로 「작전」을 벌이다가 혼자서 큰 몫을 챙기려고 배신하는 바람에 크게 손해를 본 「작전동료」들의 원한을 샀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이씨가 살해되기 얼마전부터 「이형근이 크게 다칠 것이다」라는 루머가 증권가에 나돌았다는 점을 중시,원한에 의한 범행부분에 무게를 싣고 있다. 경찰은 또 이씨가 거의 맨손에서 10억원 이상의 재산을 불리는 과정에서 꾸준하게 전주들을 동원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주가조작 「작전」에서 거액을 잃은 전주가 앙심을 품고 청부살해했을 가능성도 캐고 있다. 이밖에 경찰은 이씨가 주식거래를 위해 5억원짜리 차명계좌를 만들어 놓았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따라 이름을 빌려준 사람이 이를 탐내 범행을 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이 계좌와 차명인신원 파악에 나섰다. 이씨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50평짜리 아파트를 비롯,수억원의 차명계좌,증권투자동료와 공동명의로 된 충남 온양시 땅 1천5백평 등 젊은 나이에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L씨의 장갑 등에 남아있는 혈흔과 숨진 이씨의 왼쪽손에 쥐어져 있던 머리카락 30여개에 대해 검사하고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21일쯤 검사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서울지검 특수1부는 숨진 이씨와 식당에 함께 있었던 L씨는 지난 4월 증권감독원이 고발해온 주가조작 파동과 관련,이미 검찰에 나와 조사를 받았으며 계속 수사대상에 들어있었다고 밝혔다. L씨는 지난해 7월부터 J증권 K씨등 증권사 간부 6명과 함께 로케트전기 주식에 대한 「작전」에 뛰어들어 같은해 9월까지 로케트전기 주식 20억8천만원어치 6만2천주를 산 뒤 되팔아 2억∼3억여원의 매매차익을 남겼다는 것이다.이 때문에 L씨는 회사로부터 정직 3개월의 징계 처분을 받았다. ◎불공정여부 확인 동방페레그린증권 직원 피살사건과 관련,관심을 모으고 있는 공성통신 주식에 대해 증권거래소가 매매심리를 벌이고 있다.증권거래소는 18일 주가가 지난달에 두배 이상 급등하는 등 이상매매 의혹이 있는 공성통신 주식에 대해 불공정거래 여부를 확인하는 매매심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 101세 독립투사 김경하옹의 광복 50돌 기원

    ◎광복조국 밝은 모습 뿌듯/민족통일이 마지막 소원/“서대문 형무소 붉은 담장 아직도 눈에 선해”/김좌진 장군 딸등도 함께 감회 젖어 늙은 독립투사가 15년만에 다시 들러 바라다본 광복 50주년의 조국땅은 밝고 힘에 가득차 있었다.살아있는 최고령 독립투사인 김경하옹. 평북 강계가 고향인 김옹의 올해 나이는 1백1세. 그의 정확한 생년월일은 금세기가 아닌 19세기말인 1895년 3월 24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열혈청년의 정열이 남아있는 듯 김옹은 광복 50주년 기념식을 하루 앞둔 14일 상오 서울 독립공원에서 기자들에게 큰 소리로 소회를 피력했다.『70여년전 서대문형무소의 붉은 벽돌 담장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나라 잃은 청년의 비애같은 것이 느껴집니다.그러나 오늘 이 땅에 사는 청년학생들이 밝고 힘에 넘쳐 가슴 뿌듯합니다』 김옹은 조국이 자기를 잊지않고 광복 5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해 준 게 무척 흡족한 모습이었다. 김옹이 독립투사로 형극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3·1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번진 기미년 4월8일 강계 장날.당시강계 영실중 교사로 재직중이던 김옹은 동료 교사들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다 일본 기마헌병에 붙잡혀 징역 2년6월형을 받고 평양감옥에 수감된다.그러나 고문 후유증으로 병보석 되어 풀려나자 만주로 피신,선교활동을 통한 항일운동을 계속했다. 우연한 인연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40여년동안 목사로 활동을 해오고 있다.『조국사랑은 누구나 당연한 것이며 결코 자랑거리가 안되는데…』. 김옹의 곁에는 김옹처럼 국가보훈처의 초청으로 조국 땅을 밟은 김좌진 장군의 외동딸 김순옥(68·중국 연변)씨와 전명운 의사의 둘째딸 전경영(72·미국 로스앤젤레스)씨,그리고 외국인이면서 우리의 독립을 위해 고종황제의 밀사로 외교활동을 했던 호머 헐버트의 손자 리처드 헐버트(67·뉴욕 캐미컬뱅크 직원)씨가 자리를 함께 했다.그들의 표정도 김옹과 같이 감회에 젖어 있었다. 『우리의 아버지들이 이렇게 자랑스런 일을 한 줄은 몰랐어요.살면서 고생은 했지만 정말 자랑스러워요』 청산리전투의 영웅 김좌진장군의 딸 김순옥씨는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의얼굴조차 모른다.독립운동 뒷바라지에 고생만 하던 어머니는 그녀를 낳다 세상을 떠나 아버지의 부하였던 김기철에 의해 키워졌다고 했다. 『어떻게 소문을 듣고 일본경찰들이 찾아와 여러차례 매를 때리곤 했어요』.농사를 짓고 살면서 숱하게 죽을 고비를 넘기는 고생을 했다는 그녀는 이번에 장군의 외손녀인 위연홍(45)씨와 함께 처음으로 조국땅을 밟았다. 미국의 외교고문자격으로 친일 행각을 노골적으로 벌이던 스티븐스를 향해 총을 뽑았던 전명운의사의 딸 전경영씨는 『영원히 아버지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할 것』이라고 말했다.어릴적 부터 미국에서 자란 탓에 우리말은 서툴지만 사회사업을 하는 애국지사의 후손답게 힘차고 또렷또렷하게 얘기했다. 묵묵히 듣고있던 최고령 독립투사 김옹은 『이제 바라는 게 있다면 남이든 북이든 한자리에 모여 오래오래 사이좋게 번영하는 민족의 통일,통일을 이룩하는 것입니다』.이 말을 뒤로 김옹의 눈에는 「간절한 소망」의 이슬이 맺혔다.
  • 분단이후 북한인맥 총정리/본사 통일안보연 발간 「북한인명사전」

    ◎전·현직요인 등 1만5천명/주요사건은 원색화보로 북한을 움직이는 주요 인물들의 인적사항을 망라한 「북한 인명사전」95년 개정·증보판이 최근 간행됐다.서울신문사 통일안보연구소가 펴낸 이 책은 북한 인사들을 다룬 유일한 인명사전인데다 인물 정보가 신속·정확해 권위를 높게 인정받고 있다. 올 개정판은 95년 4월말을 기준으로 전·현직 요인과 새롭게 부상한 엘리트,당성이 투철한 열혈학생·청년 등 무려 1만5천여명을 수록했다.사망했거나 생사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라도 역사성을 가진 인물은 함께 실어 분단이후 북한의 인맥을 총정리했다. 각 인물마다 생몰 연대,경력들을 가능한 한 모두 실었으며 이름을 한자로 기록하는 우리 사회 관행에 맞춰 중국·일본의 자료를 통해 한자이름을 확인해 넣었다.요인사진 4백장을 실은 점도 돋보인다. 특히 올 개정판에는 김일성 사망이후 노동당·행정부·군의 핵심인물들이 벌인 주요 활동사항을 자세히 분석함으로써 북한정세를 판단,전망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다.예컨대 인민군 대장 이봉원(70)의경우 그가 95년부터 김정일의 군부대 시찰에 여러차례 동행한 사실을 한쪽에 걸쳐 설명,새로운 김정일체제에서 중용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또 김일성 장례식,단군릉 복원,평양축전 등 지난 1년동안 북한에서 있었던 주요 사건의 원색화보를 실어 뉴스성을 살렸다. 이밖에 ▲외국인투자법,자유경제무역지대 외국인체류 및 거주규정 등 개방관련 15개 법률 ▲노동당 22개 전문부서 및 정무원 산하 43개 부·위원회의 간부 명단 ▲노동당 외곽조직·사회단체의 기구표▲재일 조총련 중앙상임위원회와 지방본부·산하단체·산업체 임원 명단을 덧붙였다. 서울신문사는 지난 90년 「북한 인명사전」을 첫 출간한 이래 해마다 개정·증보판을 발간해 왔다. 올 개정판은 4×6배판 고급양장에 모두 1천1백82쪽 분량이며 값은 10만원이다.문의 (02)721­5641∼4.
  • 서울 강북구/육당 옛집 처리 고심

    ◎40여년간 관리 안해 “흉가”로 변해/“친일” 혐의에 문화재 지정도 난관 장정식 강북 구청장은 요즘 관내에 있는 육당 최남선 선생의 옛집 처리문제로 고민에 빠져있다. 강북구 우이동 5의1,4,5 4백63평의 대지에 3채의 목조 기와건물이 자리하고 있는 육당의 옛집은 문화재 지정문제로 전임 구청장들에게도 껄끄러운 골칫거리였다. 육당 기념사업회나 유족들은 그동안 여러차례 지방문화재 지정을 서울시에 요청했지만 육당의 친일혐의와 관련,역사적 검증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번번이 허가를 받지 못했었다. 그러나 첫 민선구청장인 장구청장은 어떤 형태로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입장에 놓였다. 지은지 80년이 넘은데다 40여년 동안 관리의 손길이 닿지 않아 기둥과 기와가 심하게 부식되는등 곧 무너져 내릴 듯한 흉가로 변해 주변 아파트 주민 1천여명으로부터 주거환경을 해친다는 원성이 높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장구청장은 특히 지난 6·27지방선거때 이 곳을 문화재로 지정받아 역사교육의 장으로 단장하겠다는 공약을 제시,지난달 11일서울시 문화재과에 처음 지방문화재 지정을 공식건의했다. 하지만 건의만 했다고 장구청장의 고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육당이 우리문학의 근대화를 선도한 기수였고 3·1독립선언서의 초안을 만든 역사적 인물이지만,생애 후반기에는 친일에 가담한 변절자라는 혐의가 일부에서 만만찮게 제기되고 있는데다 일부 학자들과 역사단체들이 구청측의 이번 조치에 크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 50여년만에 벗은 일 잔재 오명/「국민학교」 명칭 변경 의미

    ◎소학교­보통학교­심상소학교로 불러/일 제국주의 산물… 현학제와도 안맞아 정부가 11일 국민학교의 명칭을 「초등학교」로 바꾸기로 한 것은 광복 50주년을 맞아 늦게나마 일제의 잔재를 청산해야 하고 명칭 자체도 부적절하다는 여론을 적극 수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국민학교라는 이름은 1941년 2월28일 일왕 히로히토가 칙령 제148호 「국민학교령」을 내린데 서 비롯된 것으로 광복후에도 고치지 않은채 54년동안 그대로 사용돼 자주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일본이 국민학교라는 명칭을 쓰도록 한 목적은 민족말살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국민들을 태평양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것으로 한국말고도 일본·대만에서도 적용됐다. 이때 「국민」은 민족이나 백성이라는 뜻보다는 「황국신민」의 뜻으로 보아야한다.이런 이유 때문에 대만은 물론 일본조차도 광복직후인 46년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버리고 「소학교」로 바꾸었다. 41년 이전에도 국민학교 명칭은 여러차례 바뀌었다.1883년 원산학사에서 시작되는 우리의 근대교육은 초등과 중등의 구분없이학사나 학당이라는 이름을 학교의 의미로 썼다. 1894년 갑오경장 직후 비로소 신식 교육체제를 갖추게 되면서 학교등급도 구분되어 「소학교」가 생겨났고 이 명칭은 「보통학교」로 바뀐 1906년 8월까지 사용됐다. 「보통학교」는 「내선일체」의 구호를 내세운 민족말살정책에 따라 1938년 「조선교육령」이 공포됨으로써 「심상소학교」로 다시 개명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생겨난 「국민학교」는 정부수립이후 교육법에 그대로 명시됐고 50년이 훨씬 지나서야 일제의 잔재라는 오명을 벗게됐다. 정부가 이번에 개명을 하게된 데는 일제의 잔재라는 이유말고도 명칭자체가 전체·제국주의의 산물이고 현행 학제와 맞지않으며 「프라이머리 스쿨」이라고 부르는 국제적인 추세에도 어긋난다는 견해가 작용했다. 본래 국민학교의 어원은 나치 독일의 「폴크스 슐레」를 일제가 그대로 옮긴데서 유래하며 의무교육이 중학교까지 확대되는 현실에서 국민학교만 국민생활에 필요한 교육을 하는 학교로 볼 수 없고 초·중·고등교육의 학제에 비춰서도 부적합하다는논리였다. 이에 따라 한국외국어대 박창희 교수 등이 중심이 된 민간단체들의 연합체인 「국민학교 명칭 개정을 위한 협의회」에서 본격적인 개명운동을 벌이기에 이르렀으며 3만여명의 서명을 받아 4건의 개명청원이 국회에 제출됐다. 명칭의 대안으로는 「초등학교」 「기초학교」 「보통학교」 「어린이학교」 「새싹학교」 등이 제시됐으나 「초등학교」가 가장 적절한 명칭으로 받아들여졌고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45.6%,교육관계자의 69%가 찬성할 만큼 호응을 얻었다. 한편 명칭변경에 따라 전국 5천7백72개의 학교간판과 학교직인·교기 등을 새로 제작하는데 20억8천만원 가량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교육부는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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