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여대생
    2026-03-06
    검색기록 지우기
  • 스시
    2026-03-06
    검색기록 지우기
  • 강원FC
    2026-03-06
    검색기록 지우기
  • 원수
    2026-03-06
    검색기록 지우기
  • 세조
    2026-03-0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467
  • [여기는 인도] 인도서 또 13세 소녀 잔혹 강간살해…사형 집행에도 성범죄 반복

    [여기는 인도] 인도서 또 13세 소녀 잔혹 강간살해…사형 집행에도 성범죄 반복

    인도에서 또 끔찍한 강간 사건이 발생했다. 16일(현지시간) 인도 NDTV는 우프라데시주에서 13살 소녀를 성폭행한 후 살해한 혐의로 남성 2명이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현지 경찰은 14일 밤 실종됐던 소녀가 용의자 중 한 명의 사탕수수밭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으며, 부검 결과 성폭행 후 살해당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소녀의 아버지는 “딸이 집에 돌아오지 않아 실종신고를 내고 온 마을을 뒤졌다. 딸은 결국 훼손된 시신으로 돌아왔다”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아버지는 용의자들이 시신을 훼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눈 근처에 긁힌 자국은 소녀의 시신이 발견된 들판의 날카로운 사탕수수 잎 때문에 생긴 것으로 결론 내렸다. 경찰 대변인은 “절단 등 시신 훼손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은 마디아 프라데시 주에서 6살 소녀가 납치 후 성폭행을 당한 지 넉 달 여만이다. 당시 친구들과 놀다 납치된 소녀는 다음 날 마을 폐가에서 발견됐다. 만신창이가 된 소녀는 특히 눈이 심하게 훼손돼 있었는데, 현지언론은 범인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일부러 그런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인도에서는 2012년 이른바 ‘뉴델리 여대생 버스 강간살해 사건’ 후 성범죄 형량이 강화됐다. 지난 3월 뉴델리 사건의 범인 4명에 대한 사형도 집행됐다. 그러나 관련 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텔랑가나주에서는 남성 4명이 20대 여성 수의사를 집단 성폭행, 살해한 뒤 시신을 불태워 수천 명이 항의 시위를 벌였다. 특히 아동 대상 성범죄가 심각하다. 지난 2월에는 수도 뉴델리 미국대사관 구내에서 25세 운전사가 5살짜리 여아를 성폭행해 현지가 발칵 뒤집혔다. 인도 범죄기록국(NCRB)에 따르면 2018년 인도에서 발생한 강간 사건은 3만3977건으로, 15분당 1건의 발생률을 기록했다. 피해자 중 25%는 어린아이로 나타났다. 인도에 성범죄가 만연하고 일부 범행 수법은 다른 나라에서 비슷한 예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잔인한 것은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아직도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실제로 사형수 중 한 명은 한 다큐멘터리에서 “제대로 된 여성은 밤에 외출하지 않으며 단정하게 옷을 입는다”며 “처신이 단정하지 않은 여성이 성폭행당하면 그 책임은 남자가 아닌 여성에게 있다”는 왜곡된 여성관을 가감 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틱톡에 춤 영상 올려 2년형 복역 중인 이집트 여대생 오늘 항소심

    틱톡에 춤 영상 올려 2년형 복역 중인 이집트 여대생 오늘 항소심

    “동생이 대체 뭘 잘못했나요? 그애는 범죄자가 아니에요.” 이집트의 여대생 마와다 알아드함(22)이 지난 5월 체포돼 지난달 2년 징역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다. 벌써 이 나라에서 실형을 살거나 벌금형에 처해진 소셜미디어 스타로는 그녀가 다섯 번째다. 언니 라흐마는 17일 영국 BBC 카이로 지부와의 인터뷰를 통해 “여동생은 유명해지고 인기를 끌고 싶어했을 뿐이었다.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야심이 대단했다. 왜 그애가 문제인가? 일부 여배우들은 훨씬 더 야한데 그들은 건드리지도 않더라”고 억울해 했다. 마와다는 10대들의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틱톡과 인스타그램에 불경한 가사로 바꾼 립싱크 동영상과 화려한 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동영상을 올려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를 부정했다는 것이 재판부의 실형 선고 이유였다. 틱톡 팔로어만 300만명을 넘었고,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160만명이었다. 마와다에게는 2만 달러의 벌금형도 주어졌다. 다섯 여성이 법의 심판대에 섰는데 다른 여성은 하닌 호삼만 이름이 공개됐고, 나머지 셋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검찰이 마와다를 기소하며 사용한 증거는 17장의 사진이었는데 지난해 도둑맞은 휴대전화에서 유출된 사진들이라고 마와다는 항변했다. 미국 등에서는 오염된 증거라고 해서 재판부가 채택하지 않을 증거였다. 항소심이 17일 열리는데 라흐마는 무죄로 판결이 번복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여동생이 감형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른바 ‘틱톡 여성들’을 석방해야 한다는 온라인 청원에 전날까지 13만 8000여명이 서명했다고 Meaww 닷컴이 전했다. 변호인 아메드 바키리는 기소 내용이 모호하기 짝이 없는데도 유죄가 선고되자 큰 충격을 받아 실신할 지경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마와다의 동영상이 설사 규범과 전통을 어겼더라도 감옥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감옥은 범죄자를 양산한다. 당국은 대신 재활에 기대를 걸 수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당국이 무자비하게 사안을 처리하자 젊은이들은 온라인 활동을 꺼려 하는 경향도 나타난다고 인권단체들은 전했다. 반면 이슬람교를 굳게 믿고 보수적인 이들은 마와다의 행동이 불경하다고 찬동한다. 조금 개방적인 이들은 어린 소녀들이 재미로 한 행동이며 교도소에 보낼 일은 아니라고 옹호한다. 인권단체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 못잖게 자유주의자, 이슬람 신도, 기자, 인권변호사를 비롯해 수많은 이들이 정치범으로 수감돼 있음을 지적한다. 물론 압둘 파타 알시시 대통령은 이 나라에 정치범이나 양심수는 한 명도 없다고 반박하며 인권 보고서의 신빙성에 의문을 표시한다. 최근 공공검찰청은 성명을 발표해 “어떤 종류의 감독도 받지 않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우리 젊은이들을 망칠 잠재적인 위험”에 직면해 있다며 부모들이 “젊은이들이 가치 없는 명성과 성공을 찾는다며 무자비하고 방종을 일삼는 라이프스타일에로 잘못 이끌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돈을 벌거나 표현의 자유란 잘못된 믿음으로 호도하는 일도 있다”고 덧붙였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소녀상 승합차 돌진” 우파삼촌 만행…보수 유투버들 성희롱도

    “소녀상 승합차 돌진” 우파삼촌 만행…보수 유투버들 성희롱도

    보수 유튜버, 승합차 돌진 급정거 위협“여자는 하루에 한 번 닦아야 하는데” 성희롱도 극우 유튜버로 불리는 우파삼촌의 만행이 재조명됐다. 지난 7월, 서울 광화문 인근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승합차 한 대가 소녀를 향해 돌진했다. 14일 방송된 SBS ‘궁금한이야기Y’에서 그때의 사건을 재구성했다. 승합차의 주인은 소녀를 향해 돌진하는 상황을 개인방송으로 실시간 중계 중이었다. 묻지마폭행 사건과 차량 돌진 사건. 그들은 정신 질환에 의해, 그리고 우연히 실수로 일어난 일일 뿐이라 주장했지만 최근 세 달간 소녀에게 일어난 사건은 30건이 넘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만들어져 지난 2011년부터 거리에 설치된 소녀상. 소녀상이 만들어진 직후부터 이를 훼손하는 일들이 종종 있었지만, 지난 5월부터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소녀상이 있는 곳으로 돌진하던 차가 방향을 바꾸고 멈춰섰다. 운전자는 이 장면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고 있었다. 주로 옛 일본 대사관을 무대로 극우 성향의 개인방송을 하는 남자 유투버 우파삼촌이었다. 우파삼촌은 “거기서 제가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공교롭게 그날따라 소녀상 앞에 차를 대게 됐다. 손가락으로 휴대전화에 화면을 돌리려고 잠시 섰다가 출발한 것”이라고 했다. 우파삼촌은 이른바 소녀상 차량 돌진 사건은 공교롭게 일어난 해프닝이라고 했다. 우파삼촌은 돌진 상황 이후 웃은 것에 대해 “경찰들이 웃겨서 웃은 것”라고 해명했다. 우파삼촌은 평소에도 소녀상에 대한 적대심을 드러내고 소녀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분들의 고통을 이용해서 자기 돈벌이에 이용했던 윤미향은 처벌받아야 된다는 입장”이라고 말을 남겼다.“차량 돌진 위협과 성추행” 대학생들, 경찰에 고소 당시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는 대학생들은 보수 유튜버들로부터 차량 돌진 위협과 성추행을 당했다며 이들을 경찰에 고소했다. 반아베반일청년학생공동행동(공동행동)은 지난 7월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친일극우 유튜버의 만행이 도를 넘고 있다”며 유튜브 채널 ‘우파삼촌tv’ 운영진을 살인미수 혐의로, 김상진 자유연대 사무총장과 ‘상상은 자유tv’ 운영진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다. 이들은 ‘우파삼촌tv’ 유튜버 A씨가 지난 7월14일 오후 7시40분쯤 자신의 승합차를 몰아 소녀상 앞을 지키던 학생들을 향해 돌진해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주장했다. 당시 차량이 소녀상 앞에서 급정거를 하면서 소녀상 옆을 지키던 여대생이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 그러나 해당 대학생은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전했다. 이들은 보수 유투버들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도 호소했다. 공동행동은 “‘상상은자유’ 유튜버가 소녀상을 지키는 학생들에게 ‘위안부 할머니들이 오줌을 참았다는데 그런 것까지 배웠냐’, ‘여자는 하루에 한 번 닦아야 하는데’ 등 도를 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5월 말부터 소녀상에 정치적 테러를 일삼고, 이에 항의하는 지킴이 학생들의 신체를 불법 촬영하고 위협하는 발언을 했다”며 “이들의 범죄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기에 그동안 수집한 확실한 증거자료를 첨부해 고소한다”고 밝혔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감자 석달 방치하니 이렇게 됐다…佛여대생이 공개한 사진 화제

    감자 석달 방치하니 이렇게 됐다…佛여대생이 공개한 사진 화제

    석 달 간 상온에 봉지째 방치한 감자에서 많은 싹이 길게 자라나 있는 모습이 인터넷상에 사진으로 공개돼 화제다. 프랑스 칸에 사는 여대생 도나 포레(22)는 지난달 12일 트위터에 주방 선반에 봉지째 놔둔 감자에서 싹이 이렇게 많이 자랐다면서 관련 사진 3장을 공개했다. 이는 곧 많은 네티즌의 관심을 끌었고 지금까지 현지 매체는 물론 영국과 호주 등 외신에도 소개되고 있다. 포레에 따르면, 사진 속 감자는 그녀가 지난 3월 2.25유로(약 3000원)를 주고 구매한 뒤 주방 선반에 놔둔 것이다. 그 후 그녀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정부에서 봉쇄 조치를 내리면서 혼자 집에서 지내기가 무서워 생필품만을 챙겨 연인의 집에서 지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녀는 그동안 연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느라 주방 선반에 놔둔 감자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후문. 그러던 3개월이 지나 마침내 봉쇄 조치가 해제돼 집에 돌아왔다는 그녀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주방 안쪽에서 뭔가 이상한 물체가 보여 깜짝 놀랐었다고 회상했다. 아직 불을 켜지 않은 데다가 블라인드 커튼까지 쳐놔서 그 물체가 감자인지 몰랐기 때문이다.그러고 나서 그녀가 불을 켜자 거기에는 선홍색 싹들이 무수히 뻗어나와 마치 외계생명체처럼 보이는 감자 봉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내 자신이 선반에 놔둔 채 깜빡 잊고 있던 감자에서 3개월 동안에 걸쳐 싹이 자라서 벽과 선반 틈새를 메우고 있는 실링재까지 뚫으며 성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벽을 타고 자라는 감자 싹을 실루엣으로 봤을 때는 정말 무서웠다. 하지만 그것이 감자라는 것을 알게 되자 헛웃음이 나왔다”고 말했다. 그녀는 문제의 감자를 선반에서 치우기 위해 가위로 싹을 자른 뒤 구멍이 생긴 실링재를 다시 메우는 데만 몇 시간을 쏟아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렇게까지 생존력이 강한 감자를 버리기보다는 땅에 묻어 다시 키우기로 했다. 또 그녀는 해당 감자를 처음 발견했을 때 찍어둔 사진 몇 장을 트위터에 올렸는 데 지금까지 19만 개가 넘는 추천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는 “조금 무섭다”는 한 네티즌의 댓글에 “조금? 난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는 대댓글도 남겼다. 해당 게시글에는 예전에 같은 경험을 했다는 또 다른 네티즌의 감자 사진도 댓글창에 공유됐다. 그러자 많은 사람은 감자의 이런 생존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사진=도나 포레/트위터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인도 판사, 성폭행 피해 여성에게 훈계하는 내용 보니

    인도 판사, 성폭행 피해 여성에게 훈계하는 내용 보니

    인도의 한 판사가 성폭행 용의자를 보석시킬지 여부를 심리하다 피해 여성의 품행을 문제삼는 질문으로 일관해 법정 기록의 문제된 부분들을 삭제하라는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파문을 일으킨 법관은 카르나타카 최고법원의 크리슈나 S 디싯으로 심리 내내 피해 여성의 진술을 “믿기 어려운 구석이 많다”고 털어놓았다고 영국 BBC가 2일(현지시간) 전했다. 그는 나아가 피해자가 한밤 중, 밤 11시에 사무실로 왜 돌아갔으며, 가해 남성과 함께 술을 마시는 데 반대하지 않았으며, 왜 아침이 올 때까지 함께 있었느냐고 캐물었다. 그러곤 “그녀의 설명을 통해서나 피곤해 잠에 빠져들었다는 행동 같은 것은 우리 인도 여성의 예법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며 “(남자가) 즐길 때 여성들이 이렇게 반응하면 안되는 일”이라고 훈계한 것으로 법정 기록에 나온다. 이런 내용이 알려지자 항의 시위가 연이었다. 분노한 이들은 법관들이 성폭행 피해 여성을 심문할 때 규정집이나 지침 같은 것이 있긴 하냐고 의심했다. 온라인에는 이미 최근 몇년 동안 인도 법관들이 성폭행 피해 여성들에게 했던 발언들과 디싯 판사의 발언까지 엮어 비꼬는 제목 “슬기로운 강간 생존자들이 되는 방법에 관한 인도 법관들의 지침”이 여기저기 퍼날려지고 있다.수도 델리의 변호사 아파르나 밧은 인도 대법원장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 이 사례에 개입해줄 것을 요구했고, 대법원에 근무하는 세 명의 여성 법관이 벌써 반응을 내놓았다. 물론 해당 법관의 심문에 어이없어 하고 충격을 받았다는 내용들이다. 방갈로르의 여성 인권 활동가인 마두 뷰샨은 판사가 쓴 표현들은 놀랍고 충격적이라며 “그가 언급한 ‘우리 여성들’이나 ‘즐긴다’는 표현 말이다. 빅토리아 왕조 시대 때나 가능했던 표현이다. 사안의 심각성에서 한참 떨어진 얘기”라고 개탄했다. 뷰샨은 또 이 피해 여성이 “보석 명령 자체에 대한 심문을 받지 않고, 가해 남성이 그녀의 행실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왜 듣고만 있었느냐고 추궁하기에 바빴다고 어이없어 했다. 지난 2012년 12월 하이데라바드의 한 버스 안에서 27세 수의과 여대생을 집단 성폭행한 뒤 살해한 사건에 분노한 시위가 전국으로 번졌지만 그 뒤 상황은 나아진 게 없다. 전국적인 범죄 통계에 따르면 2018년에 3만 3977건의 성폭행 사건이 등록돼 평균 15분에 한 번 꼴로 사건이 발생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여기는 호주] 시드니 ‘일출 셀카 명소’에서 여대생 실족사

    [여기는 호주] 시드니 ‘일출 셀카 명소’에서 여대생 실족사

    호주 시드니의 일출 셀카 성지로 유명한 노스 헤드에서 한 여대생이 실족해서 그만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호주 채널7 뉴스등 호주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이번 여학생의 사망은 지난 24일 (현지시간) 오전 6시경에 발생했다. 시드니 명문 대학중 하나인 뉴사우스웨일스 대학교(UNSW)에서 신재생 에너지 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애니카 페리(21)는 동갑내기 여자 친구와 함께 '일출 사진' 성지로 알려진 노스 헤드의 사고 현장에 새벽 5시 30분 정도에 도착했다. 노스 헤드는 태평양에서 시드니항으로 들어오는 입구의 북쪽 절벽지역이다. 북쪽으로는 맨리 해변이, 남쪽으로는 바다 건너 사우스 헤드를 마주하고 있고, 서쪽으로는 시드니 전경을 동쪽으로는 바다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바라볼 수 있는 절경을 갖춘 지역으로 시드니 동쪽 해안에 위치한 '일출 사진 성지'중 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아름다운 산책로가 형성되어 있지만 곳곳이 절벽으로 이어져 안전 사고의 위험이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심지어 이곳의 깍아지른 절벽 때문에 영화 '빠삐용'의 마지막 탈출 장면이 이곳 노스 헤드에서 촬영되었다는 잘못된 정보가 알려질 정도이다. 페리는 노스 헤드 끝자락에 위치한 블루 피쉬 포인트에 있는 2차대전 당시 지어진 벙커 주변에서 실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구가 응급 구조대에 연락하고 구조대가 도착 전까지 응급소생술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현장에서 사망했다. 가파른 절벽 지형 때문에 사체는 경찰 헬리콥터를 이용해 이송되었다. 심한 충격에 빠진 친구는 현재 병원으로 이송되어 정신적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스튜어트 번스 노던 비치 지역 경찰서장은 "매우 안타까운 사고이며 사망자의 가족에 위로를 들인다"며 "현재는 사고사로 보고 있지만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라고 발표했다. 한편, 노스 헤드에서 남쪽에 위치한 사우스 헤드의 또다른 일출 셀카 명소로 잘 알려진 '다이아몬드 베이'에서는 지난해 8월, 올해 1월, 4월에 3명의 여성이 실족사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김경태 시드니(호주)통신원 tvbodaga@gmail.com
  • 코로나19 국민 평가에서 30점도 못받은 아베…전체 70%가 “0~30점”

    코로나19 국민 평가에서 30점도 못받은 아베…전체 70%가 “0~30점”

    아베 신조 정권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해 일본 국민들이 매긴 점수가 100점 만점에 30점이 채 안됐다고 아사히신문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인용해 18일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13~14일 메신저 ‘라인’의 자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실시한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당신의 점수와 그 이유는?’ 설문조사에서 전체 1031명의 응답자들이 준 점수는 평균 29.5점으로 나타났다. 0점부터 100점까지 10점 단위로 점수를 매기도록 한 결과, ‘30점‘이 약 20%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전체의 70% 가까이가 0~30점 사이에 몰려 있었다. ‘70점 이상’은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정부 대응에 10점을 준 사이타마현의 남성(35)은 “모든 게 늑장대응이었다. 해외에서의 국내 입국 제한은 물론이고 마스크나 소독액의 매점매석 재판매 부정행위 규제도 너무 늦었다”고 비판했다. 도쿄도 세타가야구의 여고생(17)도 “전국적인 휴교 요청 이후 등교 재개가 몇 번이나 연기되는 등 불안이 이어졌다. 2차, 3차 확산에 대한 대책도 명확하지 않다”라며 10점을 줬다. 지바현의 여대생(20)은 “천 마스크의 배포 등으로 국가부채가 크게 늘어나는 것은 아닐까. 앞날을 짊어질 세대의 부담을 생각해야 한다”며 60점을 매겼다. 아사히신문은 “높은 점수를 준 사람들 중 상당수는 코로나19 사망자가 (서구 등에 비해) 적었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전했다. 야마구치현의 남성(41)은 “감염자 수, 사망자 수가 억제되고 있다는 사실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며 90점을 줬다. 후쿠오카시의 여성(50)은 100점을 주면서 “처음 겪는 일인데 이 정도 대응 밖에 안되는 것은 당연하다. 모두들 (정부에) 너무 불평만 늘어놓는다”고 아베 정권을 옹호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선 넘는 일요일] ‘단군 이래 최고의 미인’ 정윤희의 ‘선데이서울’ 속 과거 모습은?

    [선 넘는 일요일] ‘단군 이래 최고의 미인’ 정윤희의 ‘선데이서울’ 속 과거 모습은?

    ‘선데이서울’에 실린 전설적인 스타들의 그때 그 모습.장미희·유지인과 더불어 ‘2세대 여배우 트로이카’로 불렸던 정윤희의 ‘선데이서울’ 속 과거 모습은 어땠을까?정윤희는 1975년 영화 <욕망>을 통해 연예계에 데뷔했다.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이후 당대 최고의 배우 김지미·윤정희가 거쳐 간 <청춘극장>의 주연을 맡게 된다. 이 작품으로 인해 제과 광고도 찍게 됐으며 본격적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1977년 장미희와 함께 출연한 드라마 <청실홍실>에서 주인공 장미희와 삼각관계를 이루는 부잣집 여대생 역할을 맡았다.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정윤희는 스타덤에 올랐고, 특히 세련된 외모와 스타일로 주목받으면서 그해 가장 예쁜 연예인으로 선정됐다.정윤희는 드라마뿐만 아니라 영화계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1978년 영화 <나는 77번 아가씨>로 흥행에 성공한 후 1979년 <죽음보다 깊은 잠>, <도시의 사냥꾼>, <가을비 우산 속에>, <꽃순이를 아시나요> 등에 출연했으며 1년 만에 4편의 영화를 흥행시키는 저력을 보여줬다. 1980년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와 1981년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를 통해 대종상 여우주연상과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최우수연기상을 2회 연속 수상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정윤희는 인기뿐만 아니라 연기력도 인정받으며 독보적인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정윤희는 1984년 결혼과 동시에 연예계를 은퇴했으며, ‘단군 이래 최고의 미인’이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글 장민주 인턴 goodgood@seoul.co.kr영상 임승범 인턴 장민주 인턴 seungbeom@seoul.co.kr
  • 경찰이 무혐의 처분한 성폭행범 2명, DNA 재감정서 덜미

    경찰이 무혐의 처분한 성폭행범 2명, DNA 재감정서 덜미

    술 취한 여대생 여인숙서 잇따라 성폭행경찰 수사서 무혐의…검찰이 혐의 입증 술에 취한 여대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20대 3명이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 중 2명은 경찰 수사단계에서 무혐의 처분됐지만, 검찰이 DNA 등을 재감정해 혐의를 입증했다. 의정부지검 여성·강력범죄전담부(부장 송지용)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특수준강간) 등의 혐의로 A(20·무직)씨와 B(23·회사원)씨, C(20·무직)씨 등 3명을 구속기소 했다고 1일 밝혔다. 동네 선후배 사이인 이들은 지난 1월 5일 경기 의정부시 한 여인숙에서 만취해 저항하지 못하는 상태인 대학생 D(18)양을 잇따라 성폭행한 혐의를 받았다. 조사 결과 A씨는 함께 술을 마신 뒤 만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D양을 여인숙에 데리고 가 성폭행한 뒤 밖으로 나오면서 B·C씨에게 연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A씨로부터 “엄청나게 취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을 들은 B·C씨는 여인숙에 가 D양을 잇따라 성폭행했다.애초 A씨가 먼저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은 D양이 술에 취해 기억이 제대로 없는 데다 A씨가 “합의해 성관계 했다”고 주장하자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B·C씨는 경찰에서 혐의를 완강히 부인, 무혐의로 처분됐다. 그러나 검찰은 B·C씨가 수상하다고 판단해 D양의 속옷에 대한 DNA 재감정을 의뢰, C씨의 유전자를 발견했다. C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B씨와 함께 성폭행했고 A씨가 이들에게 전화한 것을 확인했으며, 결국 3명 모두 범행을 자백했다. 검찰은 이들 3명을 모두 구속한 뒤 A씨에게는 특수준강간 교사 혐의를 추가해 기소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교회서 성폭행당한 후 살해된 나이지리아 여대생

    교회서 성폭행당한 후 살해된 나이지리아 여대생

    나이지리아 남부의 한 교회에서 22살 여대생이 성폭행당한 후 살해됐다. 영국 BBC 방송은 31일(현지시간) 우와베라 오모주와라는 22살의 여대생이 공부하던 중 성폭행을 당한 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고인의 여동생은 지난달 27일 저녁 집 근처에 있는 RCCG 교회의 한 여성으로부터 언니 우와베라가 치마가 찢어지고 셔츠가 피투성이인 채 보안요원에 의해 발견해 병원으로 이송됐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에도주 경찰 대변인은 이 사건을 성폭행이 아닌 살인 사건으로 취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우와베라가 교회에서 싸움 후 숨졌다고 말했지만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우와베라는 미생물학을 공부하기 위해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로, 집 근처 교회가 조용해서 종종 교회에서 공부하곤 했다고 전해졌다. 현지 언론들은 한 무리의 남성들이 교회에 들어가 우와베라를 성폭행하고 소화기로 그녀를 때렸다고 보도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부친상에도 난 경기를 뛰어야만 했다… 수많은 시련에도 배구는 못 놓겠더라

    부친상에도 난 경기를 뛰어야만 했다… 수많은 시련에도 배구는 못 놓겠더라

    프로배구 여자부 현대건설 이도희(52) 감독은 1990년대를 풍미했던 여자배구의 전설이다. 현역 시절 자로 잰 듯 공격수 손아귀에 빠르게 안착시키는 볼 배급력으로 인해 ‘컴퓨터 세터’로 불렸다.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배구계의 오랜 격언대로 이도희를 보유한 팀은 긴 연승과 연속 우승을 만끽했다. 일신여상은 그가 고3이던 1985년까지 119연승을 했다. 실업팀 호남정유(현 GS칼텍스)는 92연승 금자탑을 세웠다. 그가 주장을 맡은 국가대표팀은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국제 대회 사상 첫 금메달을 안았다. 2006년부터 흥국생명 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어온 그는 2017년 4월 현대건설 지휘봉을 잡고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3시즌 만인 2019~20시즌 팀을 정상에 올려놨다. 서울신문은 26일 경기 용인 현대건설 배구단 체육관에서 이 감독을 만나 그의 배구 인생을 들었다.-현대건설을 9년 만에 정규 1위로 이끈 비결은. “제가 팀을 이끌었다기보다 팀 분위기가 좋아서 1위를 한 것 같다. 평소 훈련 중에도 대화를 많이 한다. 배구는 조직력이 중요한데 서로 맞춰 가면서 끈끈해졌다.” -감독 두 번째 시즌 때 11연패를 당하며 부진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분석해 보니 포지션 간 조직력이 안 맞았다. 보통 공격은 레프트와 라이트가 하는데 우리는 레프트 공격이 많이 약했다. 우리 팀에는 공격에 능한 양효진 센터가 있으니 공격을 센터와 라이트 외국인 선수 중심으로 하고 나머지는 어중간한 공격보다 수비에 집중하며 범실을 줄이기로 했다. 그게 양효진의 최우수선수(MVP), 정지윤의 신인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지도자로서의 철학이나 좌우명이 있다면. “제 스타일을 보여 주고 거기에 맞추라고 하기보다는 선수들의 장점들을 발굴해 조합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감독 자리에 있지만 그걸 누린다기보다는 감독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서 선수들에게 도움을 줄 것인가를 고민한다.” -고교 시절부터 은사로 꾸준히 인연을 이어 온 김철용 감독과 스타일을 비교한다면. “김 감독님은 훈련의 종류와 양이 많은 것으로 이름 높은데 저도 훈련은 충실히 해야 한다고 본다. 김 감독님의 좋은 점들을 코칭스태프와 의논해서 요즘에 맞게 적용해 보려는 부분들이 있다.” -화려한 커리어에도 은퇴를 여러 번 결심했다 번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 은퇴를 결심한 건 언제인가. “실업 4년차였을 때 왼손잡이에 점프력도 좋고 몸도 빠른 고교 랭킹 1위 후배가 들어왔다. 1, 2년차 때 선배 언니들이 위에 있을 때는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후배가 뛰고 내가 밖에서 기다릴 때는 마음이 힘들더라. 세터는 팀에서 포지션이 한 자리라 주전 세터와 호흡을 많이 맞추다 보면 나머지 세터는 자연스레 훈련장 바깥으로 빠지게 된다. 안 되겠다 싶어 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고 김철용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1년만 노력해 보자고 했다. 그때부터 똑같이 훈련을 시켜 주셨다. 그런데 선생님이 원하는 플레이에 후배보다 제가 더 맞았던 거 같다.” -1991년 3월부터 1995년 1월 선경에 패하기 전까지 4년 2개월 동안 92연승을 했다. “1991년 슈퍼리그 첫 우승 때 제가 6년차였고 장윤희, 김호정, 홍지연, 이정선 등 고교 4총사가 3년차였다. 박수정이 1년차로 엄청 어렸다. 뒤로 갈수록 더 전성기가 온 것 같다. 제가 나간 뒤에도 주전 공격수들이 그대로 남았고 1999년까지 9연패를 했다.”-선수 시절 겪은 후보의 설움이 이제 선수를 지도하며 도움이 되는지. “사실 옛날 얘기를 안 하려고 한다. 자꾸 하면 ‘꼰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대신 선수 말을 듣는 편이다. 후보는 몸이 안 풀린 상황에서 들어가서 주전보다 잘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잘해야겠다는 욕심보다 팀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독려한다.” -1992년 MVP를 받고 세 번째 우승을 거둔 1993년 다시 은퇴를 고민한 것으로 아는데. “아버지가 아프셨다. 그리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소원이 죽기 전에 삼남매 가운데 누군가 결혼하는 걸 보는 거였다. 얼른 은퇴하고 선 봐서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만두지 못했다.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김철용 선생님이 국가대표팀 감독이 됐고 주변에서 “네가 도와줘야 한다”고 얘기했다. 아시안게임 있는 그 시즌까지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994년 8월 국제 그랑프리 경기가 열릴 때 부친상을 당한 슬픔에도 경기에 나섰는데. “그랑프리는 한국, 필리핀, 태국에서 일주일씩 돌아가며 경기를 한 뒤 4위 안에 들면 중국 상하이 결승에 가는 방식이었는데 아버지는 제가 한국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 선수들이 검은색 리본을 달고 경기를 뛰었다. 출국을 앞두고 있어 임종은 지켰지만 장지는 따라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도와주셔서 그런진 몰라도 그때 성적이 좋았다. 필리핀에서는 미국, 네덜란드, 독일을 다 이겨서 1등을 했다. 저는 대회 MVP도 받았다.” -가족들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제가 주장이었고 이틀 뒤 경기가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엄마랑 오빠가 가서 경기하라고, 아버지도 그걸 원하실 거라고 얘기했다. 또 “너 하나 때문에 다른 선수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하지 말라”고 얘기를 해 줘서 출전했다. 제가 몰입을 잘하는 편이라 경기할 때는 잊어버렸다가 경기가 끝나고 아버지 생각이 나서 잠을 잘 못 잤다. 한국에 돌아와서 김철용 선생님이 아버지 산소에 같이 가주셨다. -두 달 뒤 열린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금메달을 따고 바로 브라질로 가서 세계선수권대회 4위를 했다. 돌아와서 시즌을 치렀다.” -1991년 태릉선수촌에서 당한 무릎 연골 부상도 은퇴를 앞당겼다. “그때 무릎 연골이 몇㎝ 찢어져서 굉장히 많이 붓고 물도 찼다.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참고 치료를 받으면서 경기에 나갔다. 그 다음해 소속팀에서 일본에서 수술을 안 하고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서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갔더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수술하면 시즌을 못 치르니까 그냥 돌아오기도 했다.” -1994년 한국체대에 입학했다. 늦깎이 대학생이 된 이유는. “자기 만족이 컸다. 어렸을 때 여대생으로 캠퍼스를 누비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그래서 운동을 그만두면 대학 가서 공부도 하고, 은퇴쯤에는 공부 많이 해서 교수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막상 공부를 해보니까 쉽지 않아서 석사까지만 했다.” -1995년 3월 슈퍼리그를 끝으로 은퇴했다가 6개월 만에 복귀하고 1996년 슈퍼리그 6연패 달성 후 다시 은퇴했다. “당시 엄청 울었다. 1996년에는 애틀랜타올림픽이 있었다. 대표팀에 12명을 뽑는데 김철용 선생님이 나까지 일단 13명을 뽑아 놓으셨다. 끝내 안 들어갔다. 대학 생활을 했고 1997년에 결혼을 했다.” -그런데 1999년 11월 한시적으로 복귀하고 2000년 3월 또 은퇴를 했다. “감독, 코치님들과 선수들이 팀 10연패를 위해서 좀 도와 달라고 했다. 그때 큰애가 3살이었다. 주전 세터가 아니었는데도 운동을 안 하다가 하니까 힘들었다. 결국 10연패는 하지 못했다. 그땐 스물여섯, 스물일곱이어도 노장 소리를 들었는데 저는 서른한 살이라 후배들을 위해서 얼른 자리를 비켜 주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요즘 여자배구 인기가 상한가다. “이전에도 여자배구는 인기가 많았다. 고교 시절엔 남학생들에게 선물과 팬레터도 많이 받았다. 물론 선생님들이 점검하고 건네 주시긴 했지만. 그때는 운동을 잘하는 운동선수로서 인기가 많았다면 지금은 운동도 잘하면서 외모도 예쁜 셀럽으로서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여자프로배구 사상 최초 여성 코치이면서 또 조혜정 전 GS칼텍스 감독,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과 함께 여성 지도자 시대를 열었다. “과거에는 감독과 코치 두 명이 모든 훈련을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남자 지도자가 남자 파워로 때려 줘야 제대로 훈련이 된다고 여기는 측면이 있었다. 프로화가 되면서 파트별로 코치, 트레이너 등이 세분화, 전문화되면서 여성 지도자가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지상파 3사 해설위원을 거쳤는데. “김철용 감독님이 2006년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고 저를 (코치로) 불렀다. 1년 정도 하고 그만뒀다가 2년 뒤 다시 코치가 됐는데 그사이 방송 해설을 하면서 팀을 객관적으로 보고 전체적인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을 키운 것 같다.” -앞으로 꿈은. “거창한 꿈은 없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다. 새 시즌에도 선수들과 재미있게 좋은 경기를 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부친상에도 난 경기를 뛰어야만 했다…수많은 시련에도 배구는 못 놓겠더라

    부친상에도 난 경기를 뛰어야만 했다…수많은 시련에도 배구는 못 놓겠더라

    프로배구 여자부 현대건설 이도희(52) 감독은 1990년대를 풍미했던 여자배구의 전설이다. 현역 시절 자로 잰 듯 공격수 손아귀에 빠르게 안착시키는 볼 배급력으로 인해 ‘컴퓨터 세터’로 불렸다.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배구계의 오랜 격언대로 이도희를 보유한 팀은 긴 연승과 연속 우승을 만끽했다. 일신여상은 그가 고3이던 1985년까지 119연승을 했다. 실업팀 호남정유(현 GS칼텍스)는 92연승 금자탑을 세웠다. 그가 주장을 맡은 국가대표팀은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국제 대회 사상 첫 금메달을 안았다. 2006년부터 흥국생명 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어온 그는 2017년 4월 현대건설 지휘봉을 잡고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3시즌 만인 2019~20시즌 팀을 정상에 올려놨다. 서울신문은 26일 경기 용인 현대건설 배구단 체육관에서 이 감독을 만나 그의 배구 인생을 들었다.-현대건설을 9년 만에 정규 1위로 이끈 비결은. “제가 팀을 이끌었다기보다 팀 분위기가 좋아서 1위를 한 것 같다. 평소 훈련 중에도 대화를 많이 한다. 배구는 조직력이 중요한데 서로 맞춰 가면서 끈끈해졌다.” -감독 두 번째 시즌 때 11연패를 당하며 부진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분석해 보니 포지션 간 조직력이 안 맞았다. 보통 공격은 레프트와 라이트가 하는데 우리는 레프트 공격이 많이 약했다. 우리 팀에는 공격에 능한 양효진 센터가 있으니 공격을 센터와 라이트 외국인 선수 중심으로 하고 나머지는 어중간한 공격보다 수비에 집중하며 범실을 줄이기로 했다. 그게 양효진의 최우수선수(MVP), 정지윤의 신인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지도자로서의 철학이나 좌우명이 있다면. “제 스타일을 보여 주고 거기에 맞추라고 하기보다는 선수들의 장점들을 발굴해 조합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감독 자리에 있지만 그걸 누린다기보다는 감독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서 선수들에게 도움을 줄 것인가를 고민한다.” -고교 시절부터 은사로 꾸준히 인연을 이어 온 김철용 감독과 스타일을 비교한다면. “김 감독님은 훈련의 종류와 양이 많은 것으로 이름 높은데 저도 훈련은 충실히 해야 한다고 본다. 김 감독님의 좋은 점들을 코칭스태프와 의논해서 요즘에 맞게 적용해 보려는 부분들이 있다.” -화려한 커리어에도 은퇴를 여러 번 결심했다 번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 은퇴를 결심한 건 언제인가. “실업 4년차였을 때 왼손잡이에 점프력도 좋고 몸도 빠른 고교 랭킹 1위 후배가 들어왔다. 1, 2년차 때 선배 언니들이 위에 있을 때는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후배가 뛰고 내가 밖에서 기다릴 때는 마음이 힘들더라. 세터는 팀에서 포지션이 한 자리라 주전 세터와 호흡을 많이 맞추다 보면 나머지 세터는 자연스레 훈련장 바깥으로 빠지게 된다. 안 되겠다 싶어 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고 김철용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1년만 노력해 보자고 했다. 그때부터 똑같이 훈련을 시켜 주셨다. 그런데 선생님이 원하는 플레이에 후배보다 제가 더 맞았던 거 같다.” -1991년 3월부터 1995년 1월 선경에 패하기 전까지 4년 2개월 동안 92연승을 했다.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1991년 슈퍼리그 첫 우승 때 제가 6년차였고 장윤희, 김호정, 홍지연, 이정선 등 고교 4총사가 3년차였다. 박수정이 1년차로 엄청 어렸다. 뒤로 갈수록 더 전성기가 온 것 같다. 제가 나간 뒤에도 주전 공격수들이 그대로 남았고 1999년까지 9연패를 했다.” -선수 시절 겪은 후보의 설움이 이제 선수를 지도하며 도움이 되는지. “사실 옛날 얘기를 안 하려고 한다. 자꾸 하면 ‘꼰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대신 선수 말을 듣는 편이다. 후보는 몸이 안 풀린 상황에서 들어가서 주전보다 잘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잘해야겠다는 욕심보다 팀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독려한다.” -1992년 MVP를 받고 세 번째 우승을 거둔 1993년 다시 은퇴를 고민한 것으로 아는데. “아버지가 아프셨다. 그리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소원이 죽기 전에 삼남매 가운데 누군가 결혼하는 걸 보는 거였다. 얼른 은퇴하고 선 봐서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만두지 못했다.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김철용 선생님이 국가대표팀 감독이 됐고 주변에서 “네가 도와줘야 한다”고 얘기했다. 아시안게임 있는 그 시즌까지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994년 8월 국제 그랑프리 경기가 열릴 때 부친상을 당한 슬픔에도 경기에 나섰는데. “그랑프리는 한국, 필리핀, 태국에서 일주일씩 돌아가며 경기를 한 뒤 4위 안에 들면 중국 상하이 결승에 가는 방식이었는데 아버지는 제가 한국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 선수들이 검은색 리본을 달고 경기를 뛰었다. 출국을 앞두고 있어 임종은 지켰지만 장지는 따라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도와주셔서 그런진 몰라도 그때 성적이 좋았다. 필리핀에서는 미국, 네덜란드, 독일을 다 이겨서 1등을 했다. 저는 대회 MVP도 받았다.” -가족들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제가 주장이었고 이틀 뒤 경기가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엄마랑 오빠가 가서 경기하라고, 아버지도 그걸 원하실 거라고 얘기했다. 또 “너 하나 때문에 다른 선수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하지 말라”고 얘기를 해 줘서 출전했다. 제가 몰입을 잘하는 편이라 경기할 때는 잊어버렸다가 경기가 끝나고 아버지 생각이 나서 잠을 잘 못 잤다. 한국에 돌아와서 김철용 선생님이 아버지 산소에 같이 가주셨다. -두 달 뒤 열린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금메달을 따고 바로 브라질로 가서 세계선수권대회 4위를 했다. 돌아와서 시즌을 치렀다.” -1991년 태릉선수촌에서 당한 무릎 연골 부상도 은퇴를 앞당겼다. “그때 무릎 연골이 몇㎝ 찢어져서 굉장히 많이 붓고 물도 찼다.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참고 치료를 받으면서 경기에 나갔다. 그 다음해 소속팀에서 일본에서 수술을 안 하고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서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갔더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수술하면 시즌을 못 치르니까 그냥 돌아오기도 했다.” -1994년 한국체대에 입학했다. 늦깎이 대학생이 된 이유는. “자기 만족이 컸다. 어렸을 때 여대생으로 캠퍼스를 누비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그래서 운동을 그만두면 대학 가서 공부도 하고, 은퇴쯤에는 공부 많이 해서 교수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막상 공부를 해보니까 쉽지 않아서 석사까지만 했다.” -1995년 3월 슈퍼리그를 끝으로 은퇴했다가 6개월 만에 복귀하고 1996년 슈퍼리그 6연패 달성 후 다시 은퇴했다. “당시 엄청 울었다. 1996년에는 애틀랜타올림픽이 있었다. 대표팀에 12명을 뽑는데 김철용 선생님이 나까지 일단 13명을 뽑아 놓으셨다. 끝내 안 들어갔다. 대학 생활을 했고 1997년에 결혼을 했다.” -그런데 1999년 11월 한시적으로 복귀하고 2000년 3월 또 은퇴를 했다. “감독, 코치님들과 선수들이 팀 10연패를 위해서 좀 도와 달라고 했다. 그때 큰애가 3살이었다. 주전 세터가 아니었는데도 운동을 안 하다가 하니까 힘들었다. 결국 10연패는 하지 못했다. 그땐 스물여섯, 스물일곱이어도 노장 소리를 들었는데 저는 서른한 살이라 후배들을 위해서 얼른 자리를 비켜 주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요즘 여자배구 인기가 상한가다. “이전에도 여자배구는 인기가 많았다. 고교 시절엔 남학생들에게 선물과 팬레터도 많이 받았다. 물론 선생님들이 점검하고 건네 주시긴 했지만. 그때는 운동을 잘하는 운동선수로서 인기가 많았다면 지금은 운동도 잘하면서 외모도 예쁜 셀럽으로서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여자프로배구 사상 최초 여성 코치이면서 또 조혜정 전 GS칼텍스 감독,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과 함께 여성 지도자 시대를 열었다. “과거에는 감독과 코치 두 명이 모든 훈련을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남자 지도자가 남자 파워로 때려 줘야 제대로 훈련이 된다고 여기는 측면이 있었다. 프로화가 되면서 파트별로 코치, 트레이너 등이 세분화, 전문화되면서 여성 지도자가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지상파 3사 해설위원을 거쳤는데. “김철용 감독님이 2006년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고 저를 (코치로) 불렀다. 1년 정도 하고 그만뒀다가 2년 뒤 다시 코치가 됐는데 그사이 방송 해설을 하면서 팀을 객관적으로 보고 전체적인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을 키운 것 같다.” -앞으로 꿈은. “거창한 꿈은 없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다. 새 시즌에도 선수들과 재미있게 좋은 경기를 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단독인터뷰] 정규리그 1위 이끈 여자배구 레전드 이도희의 배구인생

    [단독인터뷰] 정규리그 1위 이끈 여자배구 레전드 이도희의 배구인생

    프로배구 여자부 현대건설 이도희(52) 감독은 1990년대를 풍미했던 여자배구의 전설이다. 현역 시절 자로 잰 듯 공격수 손아귀에 빠르게 안착시키는 볼 배급력으로 인해 ‘컴퓨터 세터’로 불렸다.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배구계의 오랜 격언대로 이도희를 보유한 팀은 긴 연승과 연속 우승을 만끽했다. 일신여상은 그가 고3이던 1985년까지 119연승을 했다. 실업팀 호남정유(현 GS칼텍스)는 92연승 금자탑을 세웠다. 그가 주장을 맡은 국가대표팀은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국제 대회 사상 첫 금메달을 안았다. 2006년부터 흥국생명 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어온 그는 2017년 4월 현대건설 지휘봉을 잡고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3시즌 만인 2019~20시즌 팀을 정상에 올려놨다. 서울신문은 26일 경기 용인 현대건설 배구단 체육관에서 이 감독을 만나 그의 배구 인생을 들었다. ― 현대건설을 9년 만에 정규 1위로 이끈 비결은. “제가 팀을 이끌었다기보다 팀 분위기가 좋아서 1위를 한 것 같다. 평소 훈련 중에도 대화를 많이 한다. 배구는 조직력이 중요한데 서로 맞춰 가면서 끈끈해졌다.” ― 감독님만의 선수 지도 철학이 있는가. “감독인 나의 스타일을 강요하기보다는 선수들 각자의 장점을 발굴하려고 노력한다. 선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은 한다. 선수들이 배구를 하면 스트레스에 굉장히 많이 노출되는데 선수들 얘기를 경청하면서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하려고 도와준다. 배구가 재밌다는 느낌을 주려고 노력한다. 선수 시절에 내가 싫었던 건 웬만하면 강요하지 않으려고 한다. 반대로 하기 싫었지만 도움이 됐던 것들은 이해를 시키려고 하는 편이다.” ― 올시즌 유일한 이적생인 고예림 선수가 ‘새 직장’ 현대건설이 다른 점으로 소통을 많이 하는 점을 꼽더라. “선수들이 저하고도 얘기를 많이 하지만 훈련 시간에 선수들끼리 대화하는 시간을 준다. 수비와 세터 간 호흡은 어떤 식으로 맞출 건지, 어느 위치에서 수비할 건지 등을 얘기한다.” ― 감독 두 번째 시즌 때 11연패를 당하며 부진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분석해 보니 포지션 간 조직력이 안 맞았다. 보통 공격은 레프트와 라이트가 하는데 우리는 레프트 공격이 많이 약했다. 우리 팀에는 공격에 능한 양효진 센터가 있으니 공격을 센터와 라이트 외국인 선수 중심으로 하고 나머지는 어중간한 공격보다 수비에 집중하며 범실을 줄이기로 했다. 그게 양효진의 최우수선수(MVP), 정지윤의 신인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 하루 일과를 설명해주시면. “주중에는 오전 8시 30분 스태프 미팅을 마치고 오전 훈련을 하고, 점심먹고 오후 훈련을 한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 내 자신을 돌아본다. 혹시나 실수를 하지는 않았는지 선수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선수들이 다치지 않게 해달라고,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 운동 외에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 있나. “훈련 시간 중간에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면 책을 많이 보는 편이다. 고전도 많이 읽는다. 최근에는 패스트와 한중록을 읽었다. ― 마음 속에 간직하는 격언이 있나. “항상 겸손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또 어느 위치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 감독님을 두고 주변 사람들이 차가워보인다는 얘기를 하더라. “저는 정적인 사람이다. 여행보다는 책 읽기, 돌아다니기보다는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굉장히 단호하다. 과거 일에 끙끙 앓고 미련 두기보다는 앞으로 계속 가는 스타일이다. 정에 이끌리지는 않는다. 꽤 오랫동안 나름대로 주변 사람들 말도 들어보면서 묵묵히 숙고(熟考)한 뒤에 단호하게 결정을 내리고 그 뒤로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 만약에 잘못되면 그건 내가 책임져야하는 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차가워 보인다는 얘기를 듣지 않나 싶다.”― 고교시절부터 함께한 김철용 감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두 분의 첫 만남이 궁금하다. “제가 일신여중으로 스카우트 됐는데 김철용 선생님도 제가 고등학교 갈 때 일신여상에 부임하셨다. 고3 언니들이 전국체전이 끝나고 실업팀으로 간 뒤인 중학교 3학년 2학기 중반부터 고등학교 체육관에 올라가서 연습을 했는데 그때 선생님을 처음 뵀다.” ― 김철용 감독은 당시 A속공을 가장 잘하는 1학년 이도희를 공격수에서 세터로 전향시켰다고 하던데. “사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세터를 시키려고 했는데 제가 하기 싫다고 했다. 세터들이 워낙 욕을 많이 먹으니까 하기 싫었다. 중학교 때는 신장이 큰 편이라 항의가 받아들여졌는데 고등학교 올라가니 배구 선수 치고는 신장이 170cm로 작은 편이라 안 먹혔던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때도 공격수였는데 당시 주전 세터였던 임혜숙 언니가 1학년 중반쯤 국가대표팀에 차출돼서 나가는 바람에 세터 자리가 비었고 그때 김철용 감독님이 세터를 시켰던 것 같다. 어릴 때는 선생님이 시키면 하는 거였다. 제가 1학년때 고3 언니들이 좋은 경기력을 갖고 있었다. 토스를 초보자가 하는데도 언니들이 받아주고 잘 때려주니까 계속 이겼던 것 같다.” ― 초등학교 1학년때 육상 선수를 하다가 10살 때 배구를 시작하셨다. 배구를 시작한 배경은. “키가 커서? 어렸을 때는 잘 뛰고 그랬나보더라. 몸이 약한 편이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말랐는데 부모님이 몸이 약하니까 운동을 하면 건강해지지 않겠냐고 해서 하게 됐다. 제가 막내라 아버지가 저를 되게 예뻐하셨다. 아버지가 처음에는 운동하는 걸 별로 안좋아하셨는데 학교 선생님이 설득했다. 그뒤 부모님이 뒷바라지를 잘 해주셨다.” ― 김철용 감독과 이도희 감독 본인의 스타일을 비교한다면. “김 감독님은 훈련의 종류와 양이 많은 것으로 이름 높은데 저도 훈련은 충실히 해야 한다고 본다. 김 감독님의 좋은 점들을 코칭스태프와 의논해서 요즘에 맞게 적용해 보려는 부분들이 있다.”― 화려한 커리어에도 은퇴를 여러 번 결심했다 번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 은퇴를 결심한 건 언제인가. “실업 4년차였을 때 고교랭킹 1위로 왼손잡이에 점프력도 좋고 몸도 빠른 후배가 들어왔다. 1, 2년차 때 선배 언니가 위에 있을 때는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후배가 뛰고 내가 밖에서 기다릴 때는 마음이 힘들더라. 세터는 팀에서 포지션이 한 자리라 주전 세터와 호흡을 많이 맞추다 보면 나머지 세터는 자연스레 훈련장 바깥으로 빠지게 된다. 안 되겠다 싶어 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고 김철용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1년만 노력해 보자고 했다. 그때부터 똑같이 훈련을 시켜 주셨다. 그런데 선생님이 원하는 플레이에 후배보다 제가 더 맞았던 거 같다.” ― 1991년 3월부터 1995년 1월 선경에 패하기 전까지 4년 2개월 동안 92연승을 했다. “1991년 슈퍼리그 첫 우승 때 제가 6년차였고 장윤희, 김호정, 홍지연, 이정선 등 고교 4총사가 3년차였다. 박수정이 1년차로 엄청 어렸다. 뒤로 갈수록 더 전성기가 온 것 같다. 제가 나간 뒤에도 주전 공격수들이 그대로 남았고 1999년까지 9연패를 했다.” ― 선수 시절 겪은 후보의 설움이 이제 선수를 지도하며 도움이 되는지. “사실 옛날 얘기를 안 하려고 한다. 자꾸 하면 ‘꼰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대신 선수 말을 듣는 편이다. 후보는 몸이 안 풀린 상황에서 들어가서 주전보다 잘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잘해야겠다는 욕심보다 팀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독려한다.” ― 1992년 MVP를 받고 세 번째 우승을 거둔 1993년 다시 은퇴를 고민한 것으로 아는데. “아버지가 아프셨다. 그리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소원이 죽기 전에 삼남매 가운데 누군가 결혼하는 걸 보는 거였다. 얼른 은퇴하고 선 봐서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만두지 못했다.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김철용 선생님이 국가대표팀 감독이 됐고 주변에서 “네가 도와줘야 한다”고 얘기했다. 아시안게임 있는 그 시즌까지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1994년 8월 국제 그랑프리 경기가 열릴 때 부친상을 당한 슬픔에도 경기에 나섰는데. “그랑프리는 한국, 필리핀, 태국에서 일주일씩 돌아가며 경기를 한 뒤 4위 안에 들면 중국 상하이 결승에 가는 방식이었는데 아버지는 제가 한국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 선수들이 검은색 리본을 달고 경기를 뛰었다. 출국을 앞두고 있어 임종은 지켰지만 장지는 따라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도와주셔서 그런진 몰라도 그때 성적이 좋았다. 필리핀에서는 미국, 네덜란드, 독일을 다 이겨서 1등을 했다. 저는 대회 MVP도 받았다.” ― 가족들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제가 주장이었고 이틀 뒤 경기가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엄마랑 오빠가 가서 경기하라고, 아버지도 그걸 원하실 거라고 얘기했다. 또 “너 하나 때문에 다른 선수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하지 말라”고 얘기를 해 줘서 출전했다. 제가 몰입을 잘하는 편이라 경기할 때는 잊어버렸다가 경기가 끝나고 아버지 생각이 나서 잠을 잘 못 잤다. 한국에 돌아와서 김철용 선생님이 아버지 산소에 같이 가주셨다. ― 두 달 뒤 열린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금메달을 따고 바로 브라질로 가서 세계선수권대회 4위를 했다. 돌아와서 시즌을 치렀다.” ― 1991년 태릉선수촌에서 당한 무릎 연골 부상도 은퇴를 앞당겼다. “그때 무릎 연골이 몇㎝ 찢어져서 굉장히 많이 붓고 물도 찼다.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참고 치료를 받으면서 경기에 나갔다. 그 다음해 소속팀에서 일본에서 수술을 안 하고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서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갔더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수술하면 시즌을 못 치르니까 그냥 돌아오기도 했다.” ― 1994년 한국체대에 입학했다. 늦깎이 대학생이 된 이유는. “자기 만족이 컸다. 어렸을 때 여대생으로 캠퍼스를 누비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그래서 운동을 그만두면 대학 가서 공부도 하고, 은퇴쯤에는 공부 많이 해서 교수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막상 공부를 해보니까 쉽지 않아서 석사까지만 했다.” ― 1995년 3월 슈퍼리그를 끝으로 은퇴했다가 6개월 만에 복귀하고 1996년 슈퍼리그 6연패 달성 후 다시 은퇴했다. “당시 엄청 울었다. 1996년에는 애틀랜타올림픽이 있었다. 대표팀에 12명을 뽑는데 김철용 선생님이 나까지 일단 13명을 뽑아 놓으셨다. 끝내 안 들어갔다. 대학 생활을 했고 1997년에 결혼을 했다.” ― 그런데 1999년 11월 한시적으로 복귀하고 2000년 3월 또 은퇴를 했다. “감독, 코치님들과 선수들이 팀 10연패를 위해서 좀 도와 달라고 했다. 그때 큰애가 3살이었다. 주전 세터가 아니었는데도 운동을 안 하다가 하니까 힘들었다. 결국 10연패는 하지 못했다. 그땐 스물여섯, 스물일곱이어도 노장 소리를 들었는데 저는 서른한 살이라 후배들을 위해서 얼른 자리를 비켜 주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 요즘 여자배구 인기가 상한가다. “이전에도 여자배구는 인기가 많았다. 고교 시절엔 남학생들에게 선물과 팬레터도 많이 받았다. 물론 선생님들이 점검하고 건네 주시긴 했지만. 그때는 운동을 잘하는 운동선수로서 인기가 많았다면 지금은 운동도 잘하면서 외모도 예쁜 셀럽으로서 인기가 많은 것 같다.” ― 여자프로배구 사상 최초 여성 코치이면서 또 조혜정 전 GS칼텍스 감독,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과 함께 여성 지도자 시대를 열었다. “과거에는 감독과 코치 두 명이 모든 훈련을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남자 지도자가 남자 파워로 때려 줘야 제대로 훈련이 된다고 여기는 측면이 있었다. 프로화가 되면서 파트별로 코치, 트레이너 등이 세분화, 전문화되면서 여성 지도자가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지상파 3사 해설위원을 거쳤는데. “김철용 감독님이 2006년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고 저를 (코치로) 불렀다. 1년 정도 하고 그만뒀다가 2년 뒤 다시 코치가 됐는데 그사이 방송 해설을 하면서 팀을 객관적으로 보고 전체적인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을 키운 것 같다.” ― 흥국생명이 이다영을 데려갔다. 이다영이 부진할 때 믿고 기용해 리그 최고 세터 수준으로 키운 걸로 아는데. 현대건설 팬들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큰 것 같다. “아쉽지 않다고 얘기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FA는 전적으로 선수 본인의 선택이고 그 선택을 존중한다. 거기 가서도 잘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애정을 갖고 그 선수를 키웠기 때문에 그 선수가 좋은 선수가 성장하길 바란다. 팬들의 그런 비판은 2018~2019 시즌에 이다영 선수가 힘들어할때 나왔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 최근 이다영의 대체자인 세터 이나연 영입도 화제였다. “아직까지 평가를 내릴 수는 없는 단계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건 좀 있다. 이 선수가 얼마나 따라올지, 이 선수가 내가 얼만큼 발전 시킬 수 있을지가 문제다. 이 선수랑 같이 훈련해보면서 이 선수가 갖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보이게 하는 게 제 역할이다. 단점은 안 보이게 하면서 장점 부각되게 하는게 제 역할인 거 같아서. 이나연 선수는 자신감이 필요하지 않을까”. ― 이다영 선수는 당연히 포함 될테니 이다영 선수를 빼고 코치 시절부터 통틀어서 감독님 밑을 거쳐간 세터 중에 기억에 남는 세터를 말해달라. “염혜선 선수는 굉장히 열심히 하는 선수여서 좀 더 잘 성장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효희 도로공사 코치는 선택이 굉장히 좋은 선수여서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 사실 흥국생명 이영주 선수가 기억에 남는다. 공격수 였다가 세터로 전향한 선수였다. 프로팀에서 제일 처음 가르쳤던 선수라서 구질도 좋고 그래서. 운동을 좀 더 오래 하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은 김다인 선수가 제 밑에서 올해 3년째 훈련을 하고 있는데 이 선수가 잘 성장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 수원시청에서 뛰던 김주하는 결혼 뒤 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온 감독님과 닮았다. 감독님도 수원시청에서 뛰셨다. “코로나19로 포스트시즌을 치르지 못하면서 리베로 김주하 선수를 선보이지 못하고 끝난게 아쉬웠다. 김연견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대체자가 필요했는데 이영주는 너무 어렸고, 고유민은 리베로 자리를 부담스러워해서 레프트 백업으로 원위치했다. 그래서 김주하 선수에게 부탁을 했고 흔쾌히 허락을 해줬다. 김주하는 우리 팀의 주전 리베로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훌륭한 자원이다. 수원시청에서 선수생활을 했는데 이번 시즌 개인사로 작년에 그만둔 것 같더라. 몸이 좀 많이 아팠는데 몇개월 쉬고나니까 괜찮아졌다고 하더라. 김주하 선수는 체력이라든지 고질적인 부상이 있다. 충분히 체력 보강을 해야 시즌때 아프지 않고 시즌을 마칠 수 있다고 많이 얘기를 했다.” ― 앞으로 꿈은. “거창한 꿈은 없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다. 새 시즌에도 선수들과 재미있게 좋은 경기를 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홍대 주점, 제2 이태원 클럽 되나…일행 6명 중 5명 확진

    홍대 주점, 제2 이태원 클럽 되나…일행 6명 중 5명 확진

    홍대 주점발 감염 확산 우려1명은 아직 검사 결과 안 나와 서울 홍대 주점을 다녀왔던 일행 6명 중 5명이 잇따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홍대 주점 발 감염 확산이 우려되고 있다. 지난 12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인천 지역 20대 남성과 함께 홍대 주점을 다녀왔던 경기 수원시, 고양시, 김포시, 서울 강서구 거주자 등 4명이 13일 잇따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들 4명은 집단감염이 발생한 서울 이태원 클럽에는 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방역당국은 이들 확진자의 동선을 파악하는 등 역학조사를 진행 중이다. 수원시는 이날 장안구 영화동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10대 남성 대학생 A씨가 관내 코로나19 54번 확진자가 됐다고 밝혔다. 이날 고양시에서는 덕양구 토당동 능곡시장 인근에 사는 20대 여대생 B씨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어 김포시 풍무동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C(21·여)씨와 서울 강서구 등촌2동에 거주하는 20대 남성 D씨(서울 강서구 31번 환자)도 이날 양성판정을 받았다. 각 환자의 거주지를 관할하는 기초자치단체들에 따르면 A·B·C·D씨는 지난 7일 밤 인천 서구 14번 환자인 사회복무요원 E(22)씨와 함께 서울 홍대 주점을 방문했다.이날 홍대 주점을 찾은 일행은 A·B·C·D·E씨와 경기 김포 거주자를 합해 6명으로 친구 사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가운데 A씨는 지난 11일 가래와 인후통 증상이 발현돼 다음날 수원시 장안구보건소 선별진료소를 찾아가 검체 채취를 한 뒤 확진됐다. B씨도 지난 10일부터 미열 증상을 보였으며, 12일 E씨 접촉자로 통보받아 일산동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C씨는 홍대 주점을 다녀온 뒤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감염을 우려해 검체 검사를 받은 뒤 이날 확진됐다. D씨는 지난 8일부터 증상이 나타났으며 12일 서울 강서구보건소에서 검사를 받고 13일 오후 확진됐다. 앞서 E씨는 지난 10일 인후통 증상을 느끼고 11일 인천서구 모 병원 안심진료소에서 검체 검사를 한 결과 12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들 일행 6명 가운데 아직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김포 거주자는 보건당국이 검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임신한 인도 여대생 시위 주도했다며 교도소에 한달째 수감

    임신한 인도 여대생 시위 주도했다며 교도소에 한달째 수감

    인도 수도 뉴델리의 남동쪽에 있는 여대생 사푸라 자르가르(27)의 집에 경찰이 들이닥친 것은 오후 2시 30분이었다.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여자 대학인 자미아 밀리아 이슬라미아 대학 사회학과에 재학 중인 자르가르는 지난달 10일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고 이름을 밝히길 원치 않는 남편이 11일(현지시간) 영국 BBC에 털어놓았다. 19개월 전 결혼한 부부는 일주일 전에야 임신한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남편은 “아내에게 멀미 증세도 있었고 늘 무기력해지곤 했다”고 말했다. 경찰관들은 델리 경찰서의 테러 사범들을 가두는 특별 감방에서 왔다며 델리 중심가에 있는 자신들의 사무실에 임의 동행할 것을 요구했다. 무슬림들을 차별한다는 이유로 많은 반발을 샀던 영주권 개정 법(CAA) 반대 시위에 얼마나 깊숙이 연루돼 있는지 심문하겠다고 했다. 몇 시간 동안 심문한 뒤 경찰은 자르가르를 밤 10시 30분쯤 체포했다. 그렇게 한달 동안 그녀는 델리의 과밀한 티하르 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온 나라가 봉쇄되고 정부에 자문한 이들조차 임신 여성은 특히 감염에 취약하다고 조언했는데도 여전히 풀려나지 않았다. 그녀에게 주어진 혐의는 불법 행동 예비법(UAPA) 위반인데 보석 석방이 거의 불가능하게 규정돼 있다. 체포된 뒤 딱 두 차례, 남편과 변호인과 5분 정도 전화 통화했을 뿐이었다. 면회도 서신도 코로나19를 전염시킨다는 이유로 금지됐다. 자르가르는 지난 3월 25일 인도가 국가 봉쇄에 들어간 뒤 수감된 무슬림 학생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인데 정부가 언론 자유와 체제 반대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악용한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학생 조직인 자미아 협력 위원회(JCC)를 이끌어 델리 북동부의 대학생 시위를 조직했다. 여동생 사미야는 “아주 배짱 있고, 솔직하고, 주관이 뚜렷한” 여성이라고 말했다. 반면 경찰은 무슬림들이 위주인 53명의 시위 참가자들이 목숨을 잃은 2월 시위를 주모한 인물로 보고 있다. 현지 언론은 2월 항거와 관련해 체포된 사람만 800명에 이르는데 수십 명은 봉쇄령을 틈타 구금됐다고 보도했다. 미국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의 12일 오전 9시(한국시간) 집계에 따르면 인도의 코로나19 감염자는 7만 768명으로 세계에서 13번째로 많다. 사망자는 2294명으로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고소득 보장”… 日 코로나 실직자 유혹하는 범죄 집단

    “고소득 보장”… 日 코로나 실직자 유혹하는 범죄 집단

    보이스피싱 가담자·성매매 여성 모집 인터넷 부업 미끼로 고가 상품 판매도 전문가 “범죄 집단의 그물망 유의해야”일본 도쿄에 사는 남성 A(42)씨는 민박집 청소일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 왔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민박집에 더이상 손님이 들지 않게 되면서 지난달 일자리를 잃었다. 20만엔(약 230만원) 정도의 월수입이 통째로 날아간 그는 이달 초 트위터에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글을 올렸다. 곧바로 낯선 사람으로부터 “일을 찾고 계신가요?”라는 답신이 왔다. A씨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가 트위터에 게시한 다른 글들을 찾아봤다. 그러자 “전화업무 경험자 찾습니다”, “은밀한 아르바이트 제공” 같은 글들이 주르륵 떴다. 금융기관이나 검찰·경찰 등을 사칭해 사기전화를 걸어 줄 사람을 찾고 있던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범죄집단이었다. A씨는 “그쪽과 연락을 끊고 난 후에도 다른 곳에서 ‘불로소득 보장’ 같은 의심스러운 메시지들이 수십통 들어왔다”며 “지금 트위터 등 SNS에는 수상한 유혹이 넘쳐나고 있다”고 말했다. 26일 요미우리신문 등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사람들의 불안 심리를 노린 범죄 유혹이나 악덕 상술 등 어둠의 손길이 일본 인터넷상에서 전방위로 뻗치고 있다. 특히 전국적으로 휴교 조치가 이어지면서 어린 학생들이 범죄에 휘말릴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도쿄에 사는 남자 고교생(16)은 “이달 중순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더니 불과 10분 만에 ‘하루 10만엔 소득 가능’, ‘고객의 집에 가서 돈을 받아 오는 일’ 등 보이스피싱 집단으로 추정되는 메시지들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주간지 슈칸분은 ‘코로나19로 돈을 못 벌게 됐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분들은 연락 주세요’라는 식의 성매매 여성 모집 문구들이 최근 트위터에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알선업자들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일할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에 더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식으로 유혹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집에서 쉽게 돈벌기’ 등 인터넷 부업 안내를 미끼로 비싼 값에 상품을 팔아 폭리를 취하는 악덕 상술도 급증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일감이 줄어 부업을 찾던 도카이 지방의 30대 여성은 ‘상품을 사서 인터넷 중고시장에 내다 파는 것만으로도 월 10만~20만엔 소득 보장’이라는 광고에 혹해 중고시장 재판매의 노하우와 비법이 들어 있다는 동영상 등 정보 패키지 상품을 한 업체로부터 24만엔에 구입했다. 그러나 막상 받고 보니 해당 자료들은 모두 상식적인 내용으로,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범죄 유혹이나 악덕 상혼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등을 중심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극심해졌기 때문이다. 학생단체인 ‘고등교육 무상화 프로젝트 FREE’는 지난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학생 51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0% 이상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아르바이트 수입이 줄거나 없어졌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히로시마시에 사는 3학년 여대생(20)은 연간 54만엔의 학비와 4만엔의 월세 및 생활비 등 모든 비용을 그동안 제힘으로 조달해 왔지만, 이달 중순 아르바이트를 하던 술집이 문을 닫으면서 수입이 완전 제로(0)가 돼 앞날이 막막한 상태다. 니시다 기미아키 릿쇼대 교수(사회심리학)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불안한 심리 상태를 노린 범죄와 악질 상술이 판을 치고 있다”면서 “범죄집단이 일자리를 찾아 나선 사람들을 겨냥해 그물망을 치고 기다리고 있음을 명심해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스페인서 이태리까지…택시기사가 왕복 3700km 달린 사연

    스페인서 이태리까지…택시기사가 왕복 3700km 달린 사연

    코로나19 사태로 스페인 공항에 발이 묶인 이탈리아 여대생이 택시를 타고 귀국에 성공했다. 여대생이 극적으로 귀국할 수 있었던 건 일면식도 없는 그를 요금도 받지 않고 이탈리아까지 태워다준 스페인의 청년 택시기사 케파 아만테히(22) 덕분이었다. 택시기사가 여대생의 사연을 알게 된 건 지난 15일(이하 현지시간) 한 친구를 통해서다. 친구는 "스페인에 왔다가 이탈리아로 돌아가지 못하고 공항에 노숙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며 혹시 도움을 줄 택시기사가 있겠느냐고 물었다. 스페인 빌바오에서 2개월을 지낸 여대생은 모국 이탈리아로 돌아가려고 마드리드 국제공항에 나갔다 항공기 연결이 안 돼 발이 묶여 있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택시기사는 주저하지 않고 자신이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기사는 마드리드 국제공항으로 달려가 여대생을 빌바오에 머물 때 이용했던 숙소로 데려갔다. 하지만 숙소는 계약이 끝났다는 이유로 여대생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기사는 여대생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숙식을 제공하면서 항공편을 문의했다. 하지만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이탈리아로 들어가는 항공편은 6월에나 이용할 수 있다는 게 여행사들의 설명이었다. 택시기사는 이왕 도움을 주기로 한 김에 자신이 직접 여대생을 집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 스페인에서 프랑스를 경유해 이탈리아로 들어간 뒤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오는 왕복 3700km 대장정이었다. 택시기사는 여대생과 함께 이탈리아행을 준비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당국으로부터는 통행허가를 받을 수 있었지만 연고가 없는 프랑스에선 통행허가를 얻지 못했다. 잠깐 망설였지만 택시기사는 결단을 내렸다. 기사와 여대생 두 사람은 17일 이탈리아를 향해 출발했다. 긴 여정이었지만 다행히 택시를 멈춰 세우는 사람은 없었다. 기사는 "프랑스를 통과할 때 특히 긴장했지만 경찰의 검문은 없었다"고 말했다. 스페인에서 출발한 두 사람은 무사히 프랑스를 통과해 국경을 넘어 이탈리아로 들어갔다. 꿈같은 귀국작전의 성공이었다. 극적인 귀국을 가능하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준 기사에게 여대생은 사례를 하겠다고 했지만 기사는 손사래를 쳤다. 여대생의 부모도 사례를 하겠다고 했지만 택시기사는 끝내 거절했다. 기사는 인터뷰에서 "마음에서 우러나 한 일이기에 돈을 받을 이유는 없었다"며 "평생 친구(여대생)를 얻은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울산 28세 영국 유학생 코로나19 확진

    울산 28세 영국 유학생 코로나19 확진

    울산에서 42번째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울산시는 13일 울산 남구에 사는 영국 유학생 A(28)씨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로써 울산에서는 해외 입국자 관련 확진자가 모두 14명으로 늘었다. 울산시에 따르면 A씨는 지난 12일 오후 7시 50분 KTX울산역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받았다. 현재 별다른 증상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은 부모가 있다. 울산에서는 지난 10일에도 영국에 어학연수를 갔던 22세 여대생이 41번째 확진 판정을 받았다. 41번째 확진자가 생긴 이후 사흘 만에 또다시 같은 나라에서 온 해외 입국자 확진자가 나온 것이다. 울산에서는 지난 2월 22일 첫 확진자 발생 이후 현재까지 42명이 확진자로 나타났다. 지난 3월 15일 이후 29번부터 42번까지 14명 확진자는 모두 해외 입국자 또는 입국자의 가족 등 접촉자였고, 지역사회에서 감염된 사례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울산 전체 확진자 42명 중에는 1명 사망을 포함해 34명이 퇴원한 것으로 집계됐다. 다른 지역에서 옮겨온 환자 3명을 포함해 11명이 울산대병원과 시립노인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영국 어학연수 다녀온 울산 22세 여대생 확진

    영국 어학연수 다녀온 울산 22세 여대생 확진

    영국 어학연수를 다녀온 울산 여대생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 여대생은 울산 41번째 코로나19 확진자다. 울산시는 10일 울주군에 사는 휴학생 A(22·여)씨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울산에서는 9일 만에 환자가 다시 발생했다. 이 여대생은 지난 2월 25일부터 이달 7일까지 영국에 어학연수를 갔던 것으로 조사됐다. 여대생은 9일 KTX울산역에 도착해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았고 다음 날 곧바로 확진 판정을 받았다. 현재 별다른 증상은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은 부모와 남동생이 함께 살고 있다. 울산시는 여대생의 감염원과 이동 경로 등을 역학조사 하고 있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강남서 6명 확진자 추가…미국 유학생 “무증상에도 자진 검사”

    강남서 6명 확진자 추가…미국 유학생 “무증상에도 자진 검사”

    서울 강남구에서 미국과 영국 유학생 등 총6명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왔다. 28일 강남구에 따르면 미국 뉴욕에서 유학 중인 24세 여대생은 학교 휴교로 25일 오후 입국한 뒤 도곡동 집에서만 지냈다. 특이한 증세가 없었지만 유학생이라 걱정되어 27일 검체 결과를 받은 결과 이날 양성 판정을 받았다. 미국 중부 캔자스주 소재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16세 고교생 역시 학교 휴학으로 24일 오후 입국했다. 대치동 집에거 지내던 중 26일부터 기침과 근육통, 설사 증세가 나타나고 머리가 아파 검체검사를 받고 이날 확진 판정을 받았다. 영국 런던의 대학교에서 수학중인 19세 대학생도 휴교령으로 27일 오전 입국했으며, 특별한 증상 없이 검체결과를 받은 결과 확진 판정을 받았다. 또 43세 여성은 영국 런던에서 유학중인 초등학생 딸과 함께 18일 오후 입국한 후 26일까지 자가격리를 해 오던 중 37.8도의 고열이 나고, 오한과 근육통이 생겨 검체결과를 받고 이날 확진 판정을 받았다. 개인사업을 하던 56세 남성은 지난 4일부터 2주 동안 사업차 미국 시애틀을 방문하고 26일 입국했다. 별다른 증상이 없이 검체 검사를 받은 결과 이날 오후 양성 판정을 받았다. 역삼동에 거주하는 25세 회사원은 관악구 소재 직장에서 발생한 확진자와 접촉해 지난 12일부터 격리생활을 해 오다 이날 확진 판정을 받았다. 앞서 강남구에서는 미국 유학생 김모(19)양이 귀국 후 어머니 박모씨(52)와 지난 20일부터 24일까지 제주도 여행을 갔다가, 서울로 돌아온 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물의를 빚었다. 한편 이날 구로구와 관악구, 양천구에서도 미국 입국자로부터 각각 확진자 1명이 추가됐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