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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송국 PD사칭/여대생 상습추행

    서울남대문경찰서는 10일 정정식씨(32·영등포구 신길5동)를 강제추행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정씨는 지난달 28일 하오8시쯤 마포구 대현동 한 여대앞의 모 음식점에서 모방송국 제작1부 프로듀서를 사칭,이 학교 무용과 졸업생 안모양(23)에게 『음료회사 광고모델로 출연시켜 주겠다』면서 여관으로 데려가 추행하는 등 지난 5월초부터 여고생 3명과 여대졸업생 등 모두 12명을 같은 수법으로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 바람날린 모자잡다/여대생 열차 추락사

    28일 하오 6시20분쯤 서울 노량진역 구내 서울기점 5㎞ 지점에서 서울발 동대구행 329호 통일호 열차(기관사 변형한·31)를 타고 가던 황은영양(19·중부산업전문대 원예과 1)이 바람에 날린 모자를 붙잡으려다 몸 중심을 잃고 열차에서 떨어져 그 자리에서 숨졌다.
  • 소 유학 한국여대생/교통사고로 숨져

    주소 한국대사관은 25일 연수를 위해 소련을 방문중인 김미선양(19·이화녀대무용과2년)이 지난 22일 모스크바에서 승용차에 치여 숨졌다고 발표했다.
  • 40대 강사,여대생 성폭행

    서울시경은 3일 영어교습을 받고 있는 여대생을 유인해 성폭행하는 등 2년동안 괴롭혀 온 E여대부설 언어교육원 영어강사 오이온씨(43)를 강간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오씨는 지난 87년12월 자신의 영어강의를 수강하던 이 대학 3년 유모양(당시 19세)을 『개인지도를 해 주겠다』며 자신의 집으로 유인,성폭행하고 알몸사진을 찍어 이같은 사실을 가족과 학교에 알려 퇴학시키겠다고 협박해 유양이 졸업할 때까지 상습적으로 욕보인 혐의를 받고 있다.
  • 장을병총장과 평화시위(사설)

    성균관대생 김귀정양의 장례식이 큰 충돌 없이 끝나 이만저만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무척 안도하고 있을 줄 여긴다. 그것은 이유야 어떻든 한 여대생의 시신을 놓고 그렇게나 오랫동안 학생과 당국간에 첨예하게 대립해온 문제의 해결이어서 그러하다. 더욱이 그 해결은 모든 사람들이 바라온 대화와 양보에 의한 것이어서 더없이 신선하고 그런 결과를 가져온 모든 관계자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최루탄과 화염병의 공방전이 또 벌어져도 될 만한 상황에서 이번에는 충돌을 피할 수 있었고 끝내는 평화적인 시위를 이뤄냈다는 사실이 훌륭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 동안 입버릇처럼 강조해온 대화와 양보가 가져온 결과여서 흐뭇하고 값진 것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는 이 학교 장을병 총장을 비롯한 대학 관계자들이 줄기차게 보여온 중재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특히 총장이 앞장선 설득력과 용기를 갖춘 행동이 그러하다. 최근에 없는 것이어서 보기에도 좋았다. 또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는 것을 해낸 적극성이보다 돋보였고 그것이 소신있는 행동으로 평가받게 됐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최근의 학원사태를 포함해서 이른바 시국을 둘러싸고 기성세대의 방관 또는 무관심적인 자세가 문제가 되고 있음을 너무나 자주 보고 있다. 그러한 때에 장 총장의 적극적인 개입은 현안 해결의 한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갖는다고 여긴다. 그는 김양의 부검실시 합의에 이어 학교에로의 시신운구 때와 또 이번의 장례식 등 3차례에 걸쳐 한결같이 대화로 문제를 풂으로써 평화시위를 실현시킨 장본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서도 당국의 협력이 있어 가능했다는 것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 장 총장의 중재개입을 받아들인 치안당국의 양보와 협조가 있어 충돌을 피할 수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대화와 양보를 가능케 하는 서로의 협조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번의 경우는 새삼 일깨워주었다. 그만큼 이번의 시위는 종전에 비해 새로운 것이었고 중재의 중요함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총장은 실천으로 평화시위를 학생들에게 가르쳤고 당국은 순발력있게 협조를 아끼지않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이런 것들이다. 방관자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함께 문제를 풀려고 하는 모두의 노력이 절실하다. 상대방의 주장이나 요구에 대해 여유를 갖고 대할 수 있을 때 이것이 가능해지고 주장은 합리성을 갖도록 해야 한다. 무턱대고 자기의 주장만을 관철시키려 할 때 이번과 같은 결과는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시위가 최루탄과 화염병의 공방전만으로 일관했다는 것에서 이것은 분명해진다. 따라서 앞으로의 어떤 시위도 이번의 사례가 좋은 본보기가 됐으면 하고 바란다. 평화적인 시위가 폭력적인 것 이상으로 호소력을 갖는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구호로,피켓으로,행진만으로도 자기의 의사가 충분히 전달되고 그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는 것을 모두가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평화적인 시위문화의 정착을 의미하는 것이다. 폭력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는 생각을 누구나 하고 그런 인식이 자리를 잡게 될 때 평화시위가 가능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 “폭력추방”…정치권 새명제로/「총리폭행」 시국에 어떤 영향 미칠까

    ◎운동권 투쟁명분 약화… 입지 좁아져/공권력 정면대응 태세… 야 「바람정치」엔 역풍 과격 외국어대생들의 정원식 국무총리서리 집단 폭행사건은 앞으로 시국향방과 광역선거정국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운동권에 대한 공권력 대처방법이 강화되고 재야 및 학생시위에 대한 시민들의 시각도 보다 비판적으로 변할 조짐이다. 우선 이번 사건은 강경대군 치사사건으로 시작된 시위정국의 종식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일련의 분신자살과 여대생 압사사건 등으로 일반시민들은 경찰의 과잉진압에 의한 공권력 남용과 학생들의 무분별한 행위를 함께 비난하는 양비론적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많은 시민들이 이번 사태로 과격 운동권 학생들의 반인륜성,폭력성,반민주성을 뚜렷이 확인함으로써 더 이상 폭력운동권을 치외법권적인 지대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이 때문에 강군 사건 등으로 새로이 결속,각종 시위를 주도해온 학생·재야운동권의 입지가 필연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고 이들이계획하고 있는 「국민대회」 등 이른바 「6월 투쟁」의 명분과 설득력도 크게 약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또한 여론이 운동권에 등을 돌린 것을 계기로 그 동안 최소한도의 공권력 행사까지 자제해왔던 정부 당국이 각종 불법 폭력시위에 단호히 대응하면서 핵심인물들에 대한 일대 검거작업을 펼 것으로 보인다. 광역선거정국에 미칠 영향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시위정국에 편승,정권퇴진 등의 정치공세를 펼쳐온 야당의 입지가 매우 위축될 것이라는 점이다. 야당은 운동권과 재야의 「노 정권 퇴진 운동」에 부분적으로 동참,정치공세를 강화하면서 정부의 물가·부동산 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는 표를 노리는 이중적인 태도를 견지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야당은 제도권 정당으로서 재야 및 운동권과의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유권자들의 압력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둘째는 광역선거를 겨냥,「바람작전」의 최대 수단으로 구사해오고 있는 장외 군중집회에 대한 일반국민의 거부감이 더욱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따라서 전시효과만을 노리는 득표전략보다는 건전한 시위문화의 정착,과격 폭력세력 배제,학원정상화 등에 대한 정당별 대안 제시가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 공산이 크다. 더욱이 젊은층이나 반정부적인 계층의 표를 의식하면서 또한 중산층도 동시에 노리는 양다리 선거전략을 폈던 야당측은 이번 사태로 『악재를 만났다』면서 당혹해 하는 것도 사실이다. 적당히 이곳저곳에서 인기를 끌어보려던 전략이 도리어 혹을 붙이는 결과가 되었고 이같은 최악의 사태를 빚게 된 상당부분의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유권자들의 따가운 시선을 감당해야만 되는 입장이다. 운동권의 경우는 이번 사태가 더욱 치명적인 오점으로 작용,여론의 비난과 공권력에 동시에 협공당하는 형국이 되었다는 분석이다. 아직도 운동권 일각에서는 이 사태를 『정부의 공안통치와 강성 국무총리의 기용으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였을 뿐』이라며 강변하고 있으나 국민 정서에 치명적인 손상을 줌으로써 그 동안 자신들이 구축했다고 주장했던 「도덕적인 순수성」이 백안시당할 위기에 처해있다. 따라서 이번 사태로 운동권 세력이 크게 위축되고 내부적으로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에서 분열·대립될 가능성도 없지 않으며 전대협측은 운동방향의 전환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 학원관계자들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 “달아나던 시위대,폭4m 골목서 뒤엉켜/여대생사망…현장목격자 증언

    ◎“경찰,양쪽서 최루탄으로 협공했다/넘어진 시위대에 전경들 폭행 안해” 성균관대학생 김귀정양(25)의 사망사건을 놓고 또다시 논란이 일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김양은 당초 가두시위를 벌이다 경찰의 최루탄을 피해 달아나던 길에 시위군중들에 떠밀려 넘어져 압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재야 쪽에서 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분신자살한 김기설씨의 「유서대필공방」에 이은 또 하나의 「사인공방사건」이 될 가능성까지 보이고 있다. 재야 쪽은 이번 사건이 일어나자 다시 「대책회의」를 구성하고 『김양은 경찰의 무자비한 시위진압과 폭력 또는 최루탄가스에 의해 숨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는 『시위대에 밀려 압사했거나 쇼크사한 것』이라는 경찰 쪽 견해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수사에 나선 검찰은 김양 아래 입술 가운데 부분에 1㎝정도의 상처와 왼쪽 무릎에 가로 세로 1㎝ 크기의 피멍말고는 외상이 없다는 점과 밀폐된 공간이 아니고서는 최루가스에 의한 질식사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경찰 쪽과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 「대책회의」측은 그러나 『최소한 경찰의 과잉진압에 의한 간접살인』이라고 경찰에 책임을 묻고 있다. 이같은 주장들은 김양의 사체가 부검되면 어느 쪽이든 진위가 가려지겠지만 「대책회의」측은 『부검에 앞서 경찰의 강경진압 진상조사 및 책임자의 처벌』이라는 선행조건을 내걸고 있어 한동안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경찰의 시위진압 상황일지와 검찰조사,목격자진술 등에 따르면 김양이 쓰러지기 30분 전쯤인 25일 하오 5시쯤 중구 퇴계로 대한극장 앞 일대에서는 1천여 명의 시위대가 명동성당이나 시내 중심가 쪽으로 진출하기 위해 화염병을 던지며 삼일고가도로 입구 로터리에 있는 경찰 6백여 명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이곳에서 진압경찰을 지휘하고 있던 성북경찰서 홍순원 경비과장은 시위대가 2천명 이상으로 늘고 바람이 경찰 쪽으로 불어 최루탄을 쏘아도 큰 효과가 없자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종로4가에서 구종태 서울 송파경찰서장이 지휘하던 6백여 명의 경찰이 5시10분쯤 퇴계로4가로 이동했고 종로3가에서 최인섭 서울시경 4기동대장의 지휘를 받던 6백여 명도 비슷한 시간에 스카라극장 앞으로 이동했다. 구 서장이 이끄는 경찰이 시위대를 밀어내기 시작하자 시위대는 5시30분쯤 김양이 사고를 당한 무랑루즈 스탠드바 앞 차도까지 밀려갔고 이곳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최 기동대장과 홍 경비과장이 지휘하는 경찰도 비슷한 시간 필동로터리 근처까지 전진해 시위대와 충돌했다. 쓰러진 김양을 차에 태워 병원에 보낸 김지훈군(20·공주대학 국민윤리학과 4년)은 당시 상황에 대해 무랑루즈스탠드바의 골목길 입구 차도에서 자신 등 1백50여 명이 경찰에 포위된 상태였으며 이때 경찰이 고개를 숙이라며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방패와 곤봉으로 머리 등을 때리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김군은 이어 『전경들이 무랑루즈 골목 쪽으로 길을 터주어 달아나다가 무랑루즈 맞은 편 미쉘경양식집 앞에 주차해 있는 승용차 옆에서 시위대 10여 명이 넘어지는 것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무랑루즈 앞 골목길은 입구의 너비가 4m 정도 되나 안쪽으로는 2.5m에 불과했다. 멈칫했던 김군은 다시 달아나려다가 한 남자 시위자가 얼굴을 땅으로 향해 엎어져 있는 김양을 등에 업으려는 모습을 보고 김양의 왼쪽 다리부분을 부축했으나 김양의 몸은 이곳에서 18m쯤 가다 축 늘어졌다고 말했다. 김군은 그러나 김양이 폭행당하는 모습을 목격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날 시위에서 경찰이 문제가 될 정도의 과잉진압은 하지 않았으며 김양은 단순히 달아나다 군중에 눌려 압사 또는 쇼크사한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아무튼 이번 사건을 놓고 서로 상반된 주장이 맞서고 있는만큼 김양의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서는 사체부검이 필수적이며 이번 사건이 사회에 미치는 긴장감을 고려할 때 그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 같다.
  • 또 투쟁빌미가 된 「사고사」(사설)

    시위하던 대학생이 또 한 사람 희생되었다. 이번에는 압사됐다. 여학생이다.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폭풍에 떼밀리듯 군중에 밀려 넘어지고 그 위를 짓눌러오는 집단의 압력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를 생각하면 안쓰럽고 가슴아프다. 쫓는 기술이나 쫓기는 요령이 이런 참변을 몰고오지 않을 만큼 조심스럽지 못했던 일이 한스럽다. 그러나 당황한 군중이 떼밀면서 일어나는 아수라장과 혼란의 극치는 사고로 연결되는 것이 필연이다. 경기장 인파나 귀경인파에 의한 서울역 압사사건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에서 목격된 것만도 숱하다. 이처럼 사고가 필연적으로 내포된 과격한 시위와 진압의 악순환이 대낮에 1천만 시민을 가진 도시 한복판에서 거듭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다. 이런 정황에 빚어진 젊은 생명의 죽음이 일어나자마자 즉각 점거하고 또다시 「투쟁선언」을 하고 나서는 세력이 있다는 것은 우리를 환멸스럽게 한다. 이같은 사태는 예측되던 일이기도 하다. 20여 일 동안 사례를 볼모삼아 시국을 최악의 긴장으로까지몰고갔다가 간신히 장례를 치른 뒤끝에 또다시 일어난 사태이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주검을 강압으로 차지하고 독자적인 「증거공개」와 「사인규명」을 통해 새로운 사인을 단정하고 「투쟁선언」까지 해버렸다. 일사불란하게 기능화한 이 「죽음의 투쟁굿」이 사회를 또 얼마나 진통겪게 하려는지 걱정스럽다. 시위 여대생의 죽음은 함께 시위한 학생들의 진술로만 미뤄보아도 깔려서 숨이 막힌 죽음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죽음의 상황과 원인은 법적으로 공정하게 조사되어야 한다. 그걸 강압으로 묶어놓고,독자적으로 「최루탄질식사」라는 단정을 내리고 그걸 투쟁의 빌미로 삼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다. 불법이고 속단이고 부도덕한 짓이다. 죽은 학생의 부모와 소속되어 있던 대학교에는 이 불의의 참변이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횡액이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소속대학의 총장이 「과격진압」에만 유감을 표시한 성명에는 문제가 있다. 학교에는 학생들이 불법이나 극단적인 위험행위를 취할 때 그것을 단속하고 다스릴 책임도 있다. 극악스럽도록 시위로만 치닫는 학생들에 대한 책임은 분담하지 않고 「과잉진압」 운운하며 공권력을 매도하는 방법으로 운동권 학생들만을 비호한다면 대학당국에 같은 방법의 투쟁을 가해올 때의 대응논리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공격적이고 투쟁적인 세력에게 주눅이 든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턴가 본말이 전도된 논리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횡행한다. 「불법시위」를 「진압하는 공권력」과 같은 무게로 정당화하는 논리다. 시민끼리의 분쟁에서도 원인제공과 대응의 문제는 객관적 분석이 앞서야 한다. 하물며 치안을 책임진 공권력은 어떤 방법으로든 소요는 진정시켜서 시민의 안전을 도모해야 하고 「불법」은 제거해야 한다. 불행한 죽음이 일어날 때마다 「투쟁」에 기름을 붓는 지도부가 있다. 그 세력이 자제되어야 한다. 여대생의 죽음을 「기다렸다는 듯」이 억류하고 또다시 한판 굿을 획책하는 그 세력이 있는 한 온갖 희생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 악순환은 국민만 괴롭힌다.
  • 시위여대생 사인 공방/검찰·대책회의/“압사”·“과잉진압 치사”맞서

    시위 도중 숨진 성균관대생 김귀정양의 사인과 사고위치,그리고 부검을 둘러싼 검찰·경찰과 재야 및 학생단체간의 마찰이 예상되고 있다. 재야측은 이 사건을 계기로 제4차 국민대회 등 대규모 집회를 계속해서 열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김양사건은 경찰의 과잉진압 등에 의한 치사라고 주장,이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이 먼저 이루어지지 않으면 부검을 거부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에 대해 경찰은 김양사건은 단순히 시위대에 의한 압사라고 말하고 있으며 검찰은 경찰의 과잉진압에 의한 사망인지 여부를 알려면 반드시 부검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이 김양 사망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표명으로 거의 진정기미를 보이던 「시위시국」을 또다시 고조시킬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범국민대책회의」는 27일 하오 2시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25일 시위 도중 숨진 성균관대생 김귀정양(25·불문과 3년)과 관련,「임시대책위」를 「고 김귀정 열사 대책위원회」로 개편해 「대책회의」 산하에 두고 위원장은문익환 목사가 맡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28일 하오 6시 서울 명동성당과 김양의 시신이 안치된 백병원 일대에서 김양 사망을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를 갖고 6월2일에는 제4차 「국민대회」를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주요도시에서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치안본부는 27일 김양 사망사건과 관련,『사고장소가 당초 알려졌던 퇴계로4가 진양상가 앞길이 아니라 이곳에서 퇴계로3가 쪽으로 3백여 m 떨어진 극장식당 무랑루즈 앞골목으로 최종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종국 치안본부장은 『이같은 정황으로 보아 김양 사망은 시위진압경찰이 시위대를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지 검거를 위해 추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학생들 제시사진 현장사진 아니다” 또 재야측이 사고 당시에 현장사진이라고 제시한 사진자료에 대해서도 이 본부장은 『사진들의 건물배경 등을 대조한 결과 사고장소인 무랑루즈 앞골목 상황이 아니라 퇴계로4가 대로의 장면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어제도 부검 못해 검찰은 김양의사망원인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검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날 하오 임채진 검사 등 2명을 다시 백병원으로 보내 「대책회의」측이 부검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학생들이 영안실을 막고 출입을 통제해 부검을 하지는 못했다.
  • 여대생 시위대에 깔려 숨져/퇴계로서 시위중

    ◎최루탄 피해 달아나다 넘어져/「국민대회」 무산… 도심 곳곳 격렬시위 25일 하오 3시 서울·부산·광주 등 전국 주요 대도시에서 가지려던 정권 퇴진 「제3차 국민대회」는 경찰의 봉쇄로 대부분 무산됐으나 시위 도중 달아나던 여학생 1명이 시위대에 깔려 숨졌다. 이날 하오 5시30분쯤 서울 중구 퇴계로4가 대한극장 건너편 진양상가 앞길에서 동료학생 1천여 명과 함께 시위를 벌이던 성균관대생 김귀정양(25·불문학과 3년)은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시위대로 접근해오자 이를 피해 달아나다 넘어지면서 시위대에 깔려 숨졌다. 이날 김양과 함께 시위현장에 있었던 하정림양(19·덕성여대 전산학과 1년)은 『김양 등 70여 명의 시위대가 경찰을 피해 골목길로 들어서려는 순간,백골단 10여 명이 지키고 있어 시위대의 앞쪽이 멈칫하는 바람에 20여 명이 겹쳐 넘어졌다』면서 『이때 나는 옆으로 넘어져 숨을 쉴 수 있었지만 내 위에 넘어졌던 김양은 숨쉴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최루가스 등으로 질식해 숨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양은 이어 동료학생 2명에 의해 사고현장에 있던 취재차량에 실려 이웃 백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송 도중에 숨졌다. 김양 시신을 1차 검안한 백병원측은 『김양이 응급실에 실려 왔을 때는 이미 숨진 상태였고 특별한 외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편 학생 5백여 명은 병원입구에 철제의자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시너통·프로판가스·대형 산소통 등을 놓아둔 채 출입을 통제했다. 이날 김양의 시신이 안치된 백병원 응급실에는 숨진 강경대군의 부모 민조씨(49)와 이덕순씨(43)가 하오 11시35분쯤 도착해 김양의 어머니 김종분씨(51)의 손을 잡고 위로하기도 했다. ◎대책회의,검시 거부 이날 하오 10시45분쯤 서울지검 형사3부 임채진 검사가 경찰관과 김양의 사체를 검시하기 위해 백병원으로 왔으나 「대책회의」측이 『공식적인 검안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검시를 할 수 없다』며 거부해 3시간 동안 병원입구에서 기다리다 돌아갔다. ◎오늘 규탄대회 갖기로/대책회의,명동성당서 「범국민대책회의」측은 이날 하오 성균관대 총학생회와 함께 김양 사건에 대한「대책회의」를 조직,26일 하오 7시 명동성당에서 「폭력살인 공권력 만행 규탄대회」를 갖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날 「국민대회」가 무산되자 재야인사와 운동권학생 등은 전국 주요도시에서 최루탄을 쏘며 시위를 저지하는 경찰에 맞서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밤늦게까지 산발적인 가두시위를 벌였다. ◎경찰 18명 부상/1백68명 연행 한편 이날 하오 8시50분쯤 서울 노량진경찰서 소속 황의동 수경(24) 등 경찰관 4명이 을지로 입구에서 페퍼포그차에 타고 다연발최루탄을 장전하는 순간 학생들이 던진 화염병에 최루탄이 폭발,얼굴과 손 등에 중화상을 입었다. 경찰은 이날 하룻동안 서울에서만 경찰관 18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시위자 1백68명을 연행했다고 밝혔다.
  • 분신한 여대생 박승희양 숨져/21일만에

    【광주=최치봉 기자】 지난달 29일 명지대생 강경대군 치사사건에 항의해 분신자살을 기도,전남대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아오던 전남대생 박승희양(20·식품영양 2)이 입원 21일 만인 19일 낮 12시35분쯤 숨졌다. 주치의 문석진씨(30)는 『임양이 지난 17일 하오 6시부터 배가 부어오르고 의식불명상태를 보이다가 장기부전증(폐·신장)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박양은 이 병원 3층 중환자실에서 아버지 박심배씨(45) 등 가족과 전남대교지인 「용봉」 편집 동료학생 등 1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 “건물 파손 말라” 말리는 행인에 뭇매

    ◎5·18 국민대회·강군 장례 이모저모/CNN 보도진,이 여인 분신 촬영하다 봉변/광주 상인들,“토요일은 장사 잘되는 날” 영업/연대에 박노해씨 명의 「옥중메시지」 나붙어 ○프락치 아니냐 시비 ○…이날 하오 7시40분쯤 노제가 치러지던 공덕동 네거리에서 김 모씨(42·광고업)가 교통초소의 대형 유리창 3장을 깨는 학생들을 나무라다 시위대들로부터 뭇매를 맞아 얼굴이 찢어지는 등 상처를 입었다. 시위대 40여 명은 이날 김씨가 『공공시설은 파손시키지 말라』고 말하자 『당신 안기부 프락치 아니냐. 신분증을 보자』며 멱살을 잡고 쓰러뜨린 뒤 온몸을 마구 때렸다. 시위대는 또 김씨에게 사건경위를 묻는 H일보 송 모 기자에게도 『당신이 뭔데 자꾸 묻느냐』면서 몸을 밀치고 취재수첩을 빼앗아가는 등 행패를 부렸다. 이를 말리던 한 시민은 『민주사회를 이루자는 사람들이 공공건물을 파손하고 신분을 밝히는 사람들에게 「프락치」라며 군중심리를 이용,폭행하는 것은 무언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고 한마디. ○…강군 치사사건이 발생한 지난달 26일부터 학생회관에 사무실을 차려놓은 「대책회의」의 주도로 비롯된 각종 대규모 집회 및 시위로 20여 일 이상 홍역을 치러온 연세대 교직원들은 강군 장례식이 끝난 18일 매우 홀가분해 하는 모습. 학생과의 한 직원은 『그 동안 강군사건과 관련된 외부인들의 집회 등으로 기본 학교업무마저 마비돼 학생증 및 복무단축확인서 발급업무 등 최소한의 민원만 처리해왔을 뿐』이라며 그간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운구 휘문고에 들러 ○…이날 하오 9시15분쯤 강군의 운구행렬이 강남구 대치동 휘문고에 도착하자 재학생 50여 명은 검은 리번을 달고 본관 앞에 임시로 마련된 빈소에서 운구행렬을 맞았다. 이곳에서 약 15분간의 추모식이 끝나자 강군의 아버지 강민조씨(49)는 추모시를 읽은 강군의 선배 배노준씨(24)에게 『추모시를 간직하고 싶다』고 요청,시를 적은 메모지를 건네받기도 했다. ○“정권과의 전쟁” 규정 ○…이날 연세대 백양로 게시판에는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인 「사노맹」 중앙위원 박기평씨(필명 박노해) 명의로 된 「박노해의 옥중메시지」라는 제목의 대자보 7장이 나붙었다. 박씨는 이 대자보에서 현시국을 「노 정권과 민중과의 전쟁상황」으로 규정하면서 『노 내각을 퇴진시키는 것이나 김대중에게 압력을 넣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노 정권을 쓰러뜨려 임시민주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곳곳에 화염병 파편 ○…이날 하오 10시쯤부터 전남도청 앞으로 진출하려는 시민·학생 등 1만여 명과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려는 경찰의 치열한 공방전으로 시내 금남로·중앙로 등 도심 곳곳이 화염병 파편과 최루탄,국민대회에서 뿌려진 3만여 장의 유인물 등으로 폐허가 된 도시의 모습으로 변하기도. ○…이날 국민대회가 열린 금남로·충장로 일대의 상가에는 「5월단체 회원」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힌 사람으로부터 『오늘은 시민 모두가 그날의 뜻을 기리는 경건한 날이므로 일찍 철시하라』는 요청의 전화가 쇄도하기도. 충장로1가 K의류상 주인 김 모씨(59)는 이날 상오부터 이같은 내용의 전화를 두 차례나 받았으나 토요일은 장사가 잘되는 날이므로 철시하지 않는 등 대부분의 상인들은 11주년을 맞는 5·18정신 계승과는 아랑곳하지 않고 생업에 열중하는 모습. ○분신자,여대생 오인 ○…이날 상오 11시50분쯤 이정순씨(39)가 투신한 현장에서 이 학교 영문과 2년 신 모양(20)의 가방이 발견되어 「대책회의」측과 학교측은 투신자를 신양으로 보고 가족에게 연락하는 등 한동안 법석. ○“쇠파이프 맞아 입원” ○…미국 CNN­TV 소속 카메라맨과 녹음기술자 등 2명이 이날 연세대 앞에서 한 여자의 분신장면을 촬영하려다 시위학생들로부터 쇠파이프와 곤봉으로 폭행당해 입원했다고 CNN의 한 관계자가 밝혔다. CNN의 통역인 조주희씨는 『한 여자가 분신 후 고가철도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찍으려던 카메라맨 김효성씨와 녹음담당 조남백씨 등 CNN 보도진이 그곳에 모여 있던 군중에게 붙잡혀 폭행당했다』고 말했다. ○고교생도 시위 참여 ○…이날 「한국고등학생기독교운동서울연맹」 소속 고등학생 5백여 명은 퇴계로2가 일대를 점거한 시위대 틈에 끼여 스크럼을 짜고 현정권 퇴진 등의 구호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벌여 눈길. 이들 학생들은 『전진하는 고등학교』 『새 나라의 고등학교』 등의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퇴계로2·3가를 왕복하며 2시간쯤 가두행진을 벌이다 시위양상이 점차 격렬해지자 하오 7시쯤 모두 해산. ○고교생 분신 초긴장 ○…광주시교육청과 전남도교육청은 지난 16일 강진 고교생들의 교외시위에 이어 이날 보성고교 김철수군의 분신사건이 일어나자 시위·분신의 불길이 고교생까지 확산될까 초긴장. 광주시교육청은 이미 고교생들의 추모집회 참가를 학교장 재량으로 허요하도록 하는 등 사실상 5·18추모집회를 용인했으나 이들이 과격시위나 분신 등 극렬행동에 참여할 것인가를 두고 예의주시. 한편 이날 전남도교육청 관내에서는 강진고교를 비롯,5개 고교가 5·18 추모행사를 교내에서 가졌다. ○민자 전북당사 피습 ○…이날 하오 8시20분쯤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1가 민자당 전북도지부 당사에 시위대 학생 1백여 명이 몰려와 50여 개의 화염병을 던졌으나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 분신 여대생 상태 답보

    【광주=최치봉 기자】 전남대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전남대 박승희양(20)은 분신 6일이 지난 4일까지 별다른 호전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 분신 여대생 상태 더 악화

    【광주=최치봉 기자】 지난 29일 하오 전남대 교내에서 분신자살을 기도하다 전남대병원으로 옮겨져 5일째 치료를 받고 있는 박승희양(19)은 갈수록 상태가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측은 3일 『박양이 인공호흡기를 이용,호흡을 계속하고 있으나 호흡기에 가래가 고이고 잦은 고통으로 온몸이 떨리는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병원측은 또 『박양은 현재 불에 탄 피부 겉부분의 부패현상이 진행되고 있고 호흡부전증을 막기 위해 신경안정제가 투여되고 있으나 소생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밝혔다.
  • “치사규탄” 밤늦도록 산발시위/연대·명동성당선 1천여명 철야농성

    ◎일부는 도심서 경찰과 투석전/경찰에 쫓기던 학생 3명 추락,중상 명지대생 강경대군 폭행치사사건을 규탄하는 시위가 29일 밤늦게까지 전국의 대학가와 도심지 곳곳에서 잇따랐다. 학생과 재야인사 등은 이날 일부가 학교에서 철야농성을 했으며 일부는 가두진출을 원천봉쇄한다는 경찰의 방침에도 불구,적게는 1백여 명에서 많게는 2천여 명씩 도심으로 진출,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숨바꼭질시위를 벌였다. 이날 하오 10시쯤 서울 서대문로터리 주변에 있던 학생 2천여 명은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일제히 도로로 나와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폭력살인 자행하는 폭력정권 퇴진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경찰과 맞섰다. 명동 종로 을지로 서울역 앞 등에서도 이날 자정을 넘어서까지 산발적인 기습시위가 계속됐다. 또 연세대에선 1천여 명이,명동성당에서는 5백여 명이 철야농성을 벌였다. 학생들의 도심시위가 예상되자 외출했던 시민들은 귀가길을 서둘렀으며 유흥가·상가 등은 대부분 일찍 문을 닫았다. 이에 앞서 재야·학생단체 등 44개 단체는 이날 하오 6시부터 연세대 대운동장에서 학생·시민 등 2만여 명(경찰 추산)이 모인 가운데 강군의 폭행치사사건을 규탄하는 「범국민결의대회」를 갖고 하오 8시30분쯤부터 교문 밖 진출을 시도했으나 경찰의 저지로 무산됐었다. 이날 대회는 이수호 「범국민 비상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의 사회로 문익환 목사의 추모사,강군의 아버지 등 유족의 증언 결의문 채택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유족대표로 나온 강군의 아버지 강민조씨(50)는 『백골단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무참하게 숨진 경대의 뜻을 이어받아 폭력살인을 자행하는 현정권을 타도하자』고 주장했다. 집회 참석자들은 『강군 사건은 현정권이 장기집권을 꾀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필연적 사건』이라고 주장하면서 민자당 해체,책임자 구속처벌,백골단 해체 등을 요구했다. 대회 사회를 맡은 이수호 「국민연합」 집행위원장이 하오 8시쯤 『날도 어두웠는데 그만 대회를 마치고 가두행진에 들어가자』고 제의하자 대회참가자들은 일제히 유인물과 신문지 등에 불을 붙여 들고 함성을 질렀다. 한편 이 집행위원장이 대회가 끝날 무렵 장내방송을 통해 『경찰이 부검을 위해 강군의 시신을 빼앗을 조짐이 보인다』고 말하자 서총련 북부지구 소속대학생 5천여 명은 대회장을 빠져 나와 각목과 쇠파이프 등으로 무장하고 영안실로 뛰어가기도 했다. 이날 하오 9시5분쯤에는 연대 세브란스병원 정문 앞에서 연좌농성을 벌이던 이화여대생 김수정양(20·국문과 3년)이 경찰이 쏘는 최루탄을 피해 달아나다 주차장 4m 아래 차도로 떨어져 왼쪽 팔이 부러지는 등 중상을 입기도 했다. 또 하오 9시30분쯤 경찰이 쏜 최루탄이 세브란스병원 유리창 2장을 깨고 안으로 날아드는 바람에 입원 환자들과 가족,의료진이 큰 곤욕을 치렀다. 한편 성균관대생 5백여 명은 이날 하오 9시쯤 신촌로터리 주변에 모여 있다가 연대에서 시위하고 있는 학생들과 합류하기 위해 연대 쪽으로 가려 했으나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자 골목으로 피해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한편 지방에서도 각 대학별로 집회를 갖고 가두로 진출,밤늦게까지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부산대 등 부산시내 8개 대학생 6백여 명은 학교에서 규탄집회를 마친 뒤 이날 하오 7시20분쯤 서면 태화쇼핑 앞에 집결해 8차선 간선도로 가운데 3개 차선을 점거,유인물 2천여 장을 뿌리며 20여 분 동안 도로점거시위를 벌이다 경찰이 진압에 나서자 동구 범일동 중앙시장과 서면로터리 사이를 오가며 20∼50명씩 간선도로변과 이면도로에서 산발적인 가두시위를 벌였다. 부산시경은 시위현장에서 모두 92명을 연행해 동부경찰서 및 영도경찰서에서 조사를 벌이고 있다. 또 29일 하오 8시50분쯤 「폭력살인」규탄시위를 벌이던 제주대 자연대 학생회장 고귀형군(23·화학과 4년)과 김평국군(21·전자학과 2년) 등 2명이 진압경찰에 쫓겨 제주시 삼도1동 M약국 옥상으로 달아나다 3층 옥상에서 떨어져 고군은 허리와 골반뼈가 부러지고 김군은 귀가 찢어지는 등 중상을 입고 이웃 영동병원과 한국병원에 각각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이밖에 경희대 수원캠퍼스 학생들도 이날 하오 4시쯤 학교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이 학교 박형희군(21·산업공학과 2년)이 경찰이 던진 돌에 맞아 오른쪽 눈을 크게 다치는 등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시위가 발생했다.
  • 「치사」 항의,여대생 분신/전남대서/전신에 3도화상… 중태

    【광주=최치봉 기자】 29일 하오 3시15분쯤 전남대 교내 5·18광장에서 50여 m 떨어진 연못 옆 잔디밭에서 이 학교 가정대 식품영양학과 2년 박승희양(20)이 온몸에 시너를 뿌리고 분신자살을 기도해 전신 3도화상을 입고 전남대병원에 입원,치료를 받고 있으나 중태다. 동료학생들에 따르면 이날 하오 2시부터 5·18광장에서 전남대생 1천여 명이 「강경대 학우 살인만행 규탄대회」를 갖던중 박양이 온몸에 불이 붙은 채 『살인만행 자행하는 노 정권 퇴진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제1학생회관 쪽에서 잔디밭으로 뛰어나왔다는 것이다. 박양이 불길에 휩싸이자 이 대학 교직원들과 동료학생 10여 명이 분말소화기로 불을 끄고 부근을 지나던 변동현 교수(45·전남대 신문방송학과)에 의해 전남대병원으로 옮겨졌다. 전남대·조선대생 등 「전남지역총학생회」 소속대학생 3천여 명은 박양의 분신 소식이 전해지자 이날 하오 7시30분부터 광주시 동구 학동 전남대 부속병원 앞 왕복 6차선 도로를 점거한 채 「박승희 학우 분신 경과보고 및 고 강경대 열사 살인만행 규탄대회」를 갖고 하오 9시까지 연좌농성을 벌였다. 박양은 전남 목포가 고향으로 한국자보 목포영업소 직원인 아버지 박심배씨(45·목포시 용당1동 967의435)의 1남2녀 중 둘째딸로 목포 정명여고를 졸업하고 지난해 전남대에 입학했었다. 분신한 박양은 교지 편집실에 있는 자신의 책상서랍 속에 남긴 「편집실 학우들에게」라는 유서를 남겼다. 한편 전남대 조선대 호남대 목포대 순천대 등 광주·전남지역 대학생들은 이날 하오 2시쯤부터 학교별로 강경대 학형 살인만행 규탄대회를 갖고 시위를 벌였다.
  • 여대생 난자 피살

    【대전=최용규 기자】 25일 상오 1시10분쯤 대전시 중구 목동 128의21 오학원씨(58) 집 마당에서 건넌방에 세들어 사는 조정희양(20·대전보건전문대 식품영양학과 1년·충남 서산군 음암면 신장2리)이 예리한 칼로 가슴을 난자당해 신음중인 것을 집주인 오씨가 발견,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발견 당시 조양은 상·하의가 모두 벗겨져 있었으며 얼굴에 심한 타박상과 양쪽 발바닥에 찰과상을 입은 채 양쪽 유두가 모두 잘려 나가는 등 참혹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다.
  • 쿠웨이트 여성의 「걸프전 비극」(세계의 사회면)

    ◎이라크군에 봉욕… 공식보고 숫자만 80명/회교율법은 낙태금지… 분신자살등 잇따라 이라크군에 의해 겁탈당한 쿠웨이트 여성들이 비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회교율법이 낙태를 금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는 원하지 않는 아기를 낳을 수밖에 없는데다가 주위 사람들의 눈초리마저 동정적이라기보다는 따갑기만 해 이들을 더욱 절망감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지난해 8월2일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침공 이래 공식보고된 성폭행 피해자수는 80명. 피해자의 연령도 13세에서부터 55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숫쳐녀가 아니면 시집을 갈 수 없는 성문제에 대한 회교사회의 폐쇄성을 감안할 때 드러나지 않은 실제 피해자수는 이보다 몇 배 이상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새달부터는 이들의 출산이 시작되는데도 아직까지 피해자들을 위한 상담 프로그램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아 상당수는 자살 직전상태에 와 있는 형편이다. 기혼여성인 한 피해자는 굴욕감을 견디다 못해 분신자살했고 한 여대생 피해자는 실어증에 걸렸다. 19,21살 난 자매피해자는 외국으로 떠났고 많은 피해자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철저한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의사들은 피해자들에게 이집트나 유럽으로 가서 낙태를 하고 오도록 은밀히 권유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쿠웨이트 사회가 낙태경험이 있는 여성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대부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알라신이 어떻게 해주기를 막연히 기다릴 뿐이다. 한 쿠웨이트인은 이웃집의 4자매가 이라크군에게 폭행당했는데 회교도 남성들이 결혼상대로 숫처녀를 원하기 때문에 그녀들은 영원히 혼자 살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신 8개월째인 라샤양(18)은 『아기를 갖기를 고대했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니었다』면서 『더 이상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눈물을 떨궜다. 라샤양의 운명은 지난해 8월말 어느날 새벽 집으로 들이닥친 10명의 이라크 병사들에 의해 갈갈이 찢기고 상처를 입었다. 그들은 돈과 보석 등을 약탈한 뒤 앓아 누워있는 아버지를 총으로 쏴 죽이고 딸이 보는 앞에서 어머니를 폭행한 뒤 『처녀예요. 제발살려주세요』라는 애원에도 불구하고 라샤양을 짓밟았다.쿠웨이트시내 무바라크 병원의 의약 부장인 할리드 샬리위 박사는 『이라크군의 점령은 7개월로 끝났지만 「죽음의 키스」인 성폭행의 그림자는 평생을 따라다닐 것』이라며 정부당국의 특별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현상태대로라면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아기를 낳은 뒤 몰래 내다버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그는 예상했다. 전쟁이 남긴 상흔은 여전히 쿠웨이트를 뒤덮고 있는 유정의 검은 연기처럼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짙은 음영을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 관광온 일 여대생 의문의 실종/경주서 13일째

    ◎숙박호텔엔 소지품 그대로/경찰,인신매매단 납치여부 수사 【경주=김동진 기자】 일본 나고야시 근교의 미에대(삼중대) 4학년인 오마사유미양(24·대정유미·진시상병정 1515)이 우리나라에 관광온 지 하룻만인 지난달 28일 상오 10시쯤 숙소인 경북 경주시 계림유스호스텔을 나간 뒤 13일째 소식이 없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상오 동서여행사 부산지사의 알선으로 입국한 오마사유미양이 이날 하오 10시쯤 호텔 214호실에 들어 하룻밤을 묵은 뒤 28일 상오 호텔 프런트에 키를 맡기고 나가 소식이 끊겼다는 것이다. 오마사유미양은 2박 예약인 숙소에 3천원이 든 돈지갑과 양말 8켤레,속옷 3벌 등이 든 여행용 가방을 남겨 놓았으며 숙소를 나설 때는 상의는 녹색 T셔츠에 하의는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에 청색 모자를 쓴 차림이었다. 그녀는 키가 1m50㎝이고 몸내는 다소 뚱뚱한 편이라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10일 경북도경 강력과 수사요원을 포함,50여 명을 동원해 토함산 일대를 수색했으나 별다른 행적을 찾지 못했다. 경찰은 오마사유미양이 여행사·숙소 등 연락처를 적은 수첩과 여권(번호 5014837)을 갖고 실종된 점으로 미뤄 인신매매단 등에 의해 납치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관광지 주변에 탐문수사를 벌이고 있다.
  • 사노맹 자금지원 혐의/서민학련 여대생 구속

    서울 성동경찰서는 23일 「서민학련」 한양대 건립추진위원회 중앙집행부장 강금희양(23·영문과 4년)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이적표현물 소지)로 구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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