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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비상사태’론까지 제기되는 선거구 획정

    어제 내년 총선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지만 정치권은 ‘시계 제로’의 혼돈 상태다. 여야가 민생을 돌보긴커녕 선거구조차 제 손으로 정하지 못하는 무기력증을 보이면서다. 야당은 내분으로 그나마 협상력마저 잃었고, 청와대와 여당은 애꿎은 국회의장만 탓하고 있다. 어제 정의화 의장의 중재로 여야 지도부가 담판을 벌였지만 선거구 협상 창구인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연장에도 합의하지 못했다. 이러다가 연말까지도 선거구 획정이 안 되면 헌정 사상 초유의 ‘전 선거구 무효’ 사태가 빚어질 판이다. 여야는 공직선거법 개정 하나만이라도 국회의장의 손에 맡기지 말고 스스로 절충해 최악이라는 19대 국회의 불명예를 씻기 바란다. 애초 우려했던 대로 12월 임시국회가 사실상 기능 마비 상태다. 야권은 당내 주도권 다툼, 여권은 공천 룰 갈등을 벌이느라 선거구 획정 협상은 뒷전인 모양새다. 이 바람에 어제 예비후보로 등록한 정치 신인들은 표밭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깜깜이 선거를 준비해야 한다. 여야 현역 의원들은 의정보고회 등을 통해 마음껏 몸을 풀고 있는 가운데 신인들은 유니폼만 걸친 채 운동장도 못 찾고 발만 동동 구르게 됐다. 이러니 선거철을 앞두고 늘 나오는 선거 개혁은 공염불로 끝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현재 선거구의 인구 편차를 올해 말까지 2대1로 맞추라는 결정을 내려 놓았다. 이에 따른 새로운 선거구획정안을 담은 공직선거법으로 총선을 치러야 위헌 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셈이다. 이달 말까지도 선거구를 획정하지 못하면 근거 법률이 없어 기존 선거구 전체가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법리적으로만 따질 경우 예비후보 등록 등 전 과정이 무효화되면서 선거를 못 치르게 되는 가공할 상황이 도래하는 것이다. 물론 여야가 그때 가서 뭔가 ‘정치적 편법’을 동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선거를 치르더라도 선거무효 소송 등 부작용은 불을 보듯 뻔하다. 현재 여야는 농어촌 대표성의 약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역구 의원을 소폭 늘리고 그만큼 비례대표를 축소하는 데 이미 공감대를 이뤘다. 취약한 지역구에 비해 정당 지지도가 높은 군소 정당에 유리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놓고 막바지 평행선 대치를 벌이는 형국이다. 여당은 이로 인해 과반 의석 붕괴를 우려하고, 야당은 소수당을 포함해 여소야대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헌재의 헌법 불합치 결정과는 관계없이 여야 지도부의 결단에 달린 사안으로, 대국적인 타협이 어렵다면 석패율제 등 다른 대안을 모색하면 된다고 본다. 19대 국회가 선진 정치를 싹 틔우기는커녕 20대 국회의 정상적 출산조차 가로막고 있는 꼴이다. 빛 좋은 개살구처럼 보이지만 기실은 독과인 국회선진화법을 매단 채 말이다. 어떻게 하든 여야가 선거구 획정을 합의해 내는 게 선진 정치일 게다. 하지만 여야가 끝내 결단을 못 내려 공직선거법 개정이 해를 넘길 조짐이라면 정 의장 말대로 그런 비상사태만은 미리 차단해야 한다. 선거구획정위에서 마련한 복수의 획정안을 직권상정하는 등 정 의장의 모종의 특단 조치가 불가피해 보이는 이유다.
  • [사설] 결국 분열된 제1야당, 수권정당 포기하는가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그동안 내분에 휩싸인 새정치민주연합이 결국 분열의 길을 걷게 됐다. 안철수 전 대표가 어제 새로운 정치 세력화를 표방하며 탈당을 공식 선언한 것이다. 지난해 3월 당시 김한길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과의 통합으로 새정치연합에 들어온 지 1년 9개월여 만이다. 안 전 대표가 문재인 대표에게 반기를 들고 탈당을 강행함으로써 야권은 내년 4·13 총선을 앞두고 절체절명의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안 전 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해 “당 안에서 변화와 혁신은 불가능했고 총선과 대선 승리를 위해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는 정치세력을 만들겠다”며 탈당의 변을 밝혔다. 그는 현재의 ‘문재인 체제’에 대한 비판을 통해 당을 떠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상황을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그 어떤 변명으로도 야권 분열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2012년 대선 당시 야권 후보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보여 준 무책임한 정치 행보를 3년여 만에 다시 재연했다는 비판도 이런 이유에서 나온다. 안 전 대표의 탈당으로 당장 문병호 의원 등 당내 비주류와 호남 연고의 당내 인사들의 연쇄 탈당을 예고했다. 안 전 대표도 어제 기자회견에서 신당 구상 등에 대해선 함구했지만 독자 세력화 의사를 분명히 밝힘으로써 사실상 제1야당의 분당(分黨)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된 것이다. 야당 60년 역사를 돌아보면 분열의 시기에 반드시 선거 패배가 뒤따랐다. 분열의 원인은 거창하게도 혁신과 개혁이었지만 속내는 늘 공천권을 둘러싼 기득권 싸움이거나 당내 주도권 쟁탈이 대부분이었다. 그 어떤 변명을 하더라도 국민들과 지지자들의 눈에는 ‘밥그릇 다툼’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단합하면서 표를 달라고 해도 모자랄 판에 밥그릇 싸움으로 지리멸렬한 야당에 선뜻 표를 던질 국민은 없다. 야권 분열로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안겨 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우리는 그동안 정부 여당의 독단과 일방적인 국정 운영을 견제하기 위해서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이 당 내분을 수습하고 단합된 야당으로 거듭나기를 주문했다. 건강하고 합리적인 수권야당으로서 경제 활성화와 노동개혁, 청년실업 문제 등 산적한 현안에 대한 해법 제시를 당부해 왔지만, 고질적인 계파싸움으로 국민의 목소리마저 외면한 채 공멸과 자멸의 길을 선택했다. 안 전 대표의 탈당으로 문 대표의 리더십은 큰 상처를 받았다. 지난 2·8 전당대회에서 당의 단합을 위해 살신성인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은 결국 공수표가 됐다. 이후에도 문 대표가 내건 혁신과 통합 어느 것 하나 실현되지 못했고 당내 비주류조차 포용하지 못하는 그의 리더십은 친노(친노무현)의 좌장에게나 걸맞은 처신에 불과했다. 야당의 분열로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을 상대로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가 불을 보듯 뻔하다. 문 대표나 안 전 대표 모두 야당 분열의 책임을 진 정치인으로서 뼈아픈 자성을 해야 한다. 자신들이 외쳤던 혁신정치가 정치공학적 수사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내년 총선에서 혹독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 [민생은 안중에도 없는 국회] ‘속수무책’ 새누리당

    새누리당이 10일부터 임시국회를 단독 소집했지만 여야가 의사일정을 합의하지 못해 첫날부터 ‘개점휴업’에 들어갔다. 경제활성화 법안과 노동 개혁 5대 법안 등 쟁점 법안이 산적해 있는데도 새누리당은 야당에 대한 비판만 쏟아 낼 뿐 속수무책이다. 여야가 정기국회 내에 ‘합의한 후 처리’하기로 했다가 못한 법안은 총 6개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서비스법),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 사회적경제기본법,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 테러방지법, 북한인권법 등이다. 서비스법과 사회적경제기본법은 소관 상임위원회인 기획재정위원회의 문턱도 넘지 못했다. 원샷법과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도 소관 상임위인 산업통상자원위에서 심의 일정조차 잡지 못했다. 노동 개혁 5대 법안의 경우 새누리당은 패키지로 통과시킬 것을, 새정치민주연합은 기간제법과 파견법을 제외하고 처리할 것을 주장한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합의한 후 처리’하기로 한 쟁점 법안들이 정기국회에서 하나도 통과되지 못한 것과 관련, 일제히 야당을 성토했다. 김무성 대표는 “(법안은) 인질도, 협상과 흥정의 대상도, 전리품도 아니다”라면서 “법안 처리의 기준은 오로지 국민과 국가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가 돼야 하는데, 현재 야당은 법안의 알맹이와는 무관하게 대통령의 관심 법안이라는 이유만으로 반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야당 탓을 하는 새누리당 지도부 역시 박근혜 대통령에게 기댈 뿐 집권여당으로서 주도적이고 능동적인 역할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이인제 최고위원이 “국회선진화법은 위헌”이라며 제도 탓을 했지만 정부·여당이 야당을 압박하기만 할 뿐 제대로 된 정치력과 협상력을 보여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야 의원들이 내년 총선을 겨냥한 지역구 챙기기에 매몰돼 있어 국회의원 본연의 임무를 등한시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계파 갈등·개각 물려 ‘쟁점 법안’처리 미지수

    정치권이 ‘혼돈의 12월’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12월 임시국회에서 여야의 ‘입법 전쟁’이 예고됐는데도, 싸워야 할 의원들의 마음은 이미 자신의 지역구에 가 있다. 여야 모두 계파 간 공천 주도권 싸움으로 내상이 심하다. 총선은 다가오는데 선거구 획정은 감감무소식이다. 거기에 조만간 개각이 있을 거란 얘기도 들려온다. 국회가 이런 ‘정치 과부하’ 상태를 어떻게 돌파해 낼지 관심이 쏠린다. 여권은 정기국회 마지막날인 9일 경제활성화법 처리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야당의 반대로 실패했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야당이 도대체 약속을 안 지킨다”며 불만을 터트렸고,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여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오더(지시)만 실행하려 한다”고 응수했다. 12월 임시국회가 10일 곧바로 시작된다. 하지만 야당이 세부 의사일정에 합의하지 않고 있어 국회는 당분간 ‘개점휴업’인 상태로 ‘공회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기국회에서 이월된 법안도 찬물이 끼얹어진 상태여서 논의에 불이 붙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 대통령과 정부가 연내 처리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노동 개혁 5법도 12월 임시국회의 ‘뜨거운 감자’다. 당·청은 5개 법안 가운데 야당의 반대가 극심한 기간제법과 파견법의 명칭이 근로자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는 지적에 따라 법안의 별칭을 바꾸고 대국민 여론전에 나섰다. 기간제법은 ‘비정규직 고용안정법’으로, 파견법은 ‘중장년 일자리 창출법’으로 고쳤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은 “서두를 것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여야는 합의문에 ‘임시국회 처리’라고 썼을 뿐 처리 시점을 못박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법안 처리를 강하게 요구하면 할수록 야당의 반대 강도는 더욱 세진다”는 얘기도 야권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내년 총선 선거구 획정 문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인데도 꼬인 실타래는 풀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서로 상대 탓만 하는 여야의 모습에 국민들의 피로감만 점점 높아 가는 형국이다. 현재로선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되는 오는 15일은커녕 헌법재판소가 정한 12월 31일 시한을 지키는 것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총선용 개각’이 이르면 이번 주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경환 부총리와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 등이 대상이다. 후임 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국회의 몫이다. 하지만 여야 모두 당내 계파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데다 의원들이 총선 출마 준비로 의정 활동에 소홀하다 보니 ‘졸속’ 인사청문회는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 됐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與 총선 키워드는 일자리·공정사회

    새누리당이 내년 4·13 총선 공약 및 프레임 선정을 위한 시동을 걸고 나섰다. 새누리당 정책위원회는 8일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과 함께 ‘2016년 총선 어젠다 및 대응 전략’ 비공개 워크숍을 열고 공약 밑그림 그리기에 착수했다. 이날 회의에는 김정훈 정책위의장을 비롯해 김광림 정책위부의장, 나성린 민생119본부장, 정책조정위원 등 당 소속 정책위 멤버들이 대거 참석해 김종석 여의도연구원장의 직접 발제를 청취했다. 김 위원장은 여연의 지난 10월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현재 한국 사회의 화두는 공정사회, 복지, 사회 격차 해소”라고 요약하면서 “여당의 내년 총선 공약도 이런 시대정신을 감안해야 한다”고 제안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국민들이 경제 성장보다 일자리 창출을 통한 복지 증대, 사회 공정성 강화를 더 중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를 바탕으로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선 세대별 맞춤 일자리 공약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여연 조사 결과 국민들이 우선시하는 시대정신은 ‘사회 격차 해소’가 52.7%, ‘경제 성장’이 43.1%로 성장보다 격차 해소를 중시해야 한다는 답변이 9.6% 포인트 우세했다. 사회 격차 해소 방안으로는 ‘일자리 창출’이 63%, ‘조세 및 복지 확대를 통한 소득 재분배’가 32.6%로 2배 가까이 차이 났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선 후보는 대선 공약을 놓고 이른바 ‘성장과 고용’ 논쟁을 벌인 바 있다. 당시 박 대통령은 고용률 주도 성장을 주장했고 문 후보는 소득 주도 성장론으로 맞붙었다. 한 회의 참석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 성장 대신 ‘고용률 70% 달성’을 공약해 당선됐고, 그 방편이 창조경제였다”면서 “결국 일자리 중심 경제가 대선에 이어 내년 총선 프레임으로 재등장한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장 일자리 창출을 현실화할 지렛대가 없다는 점이 정부·여당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원샷법) 등의 경제활성화법안들이 국회에 발이 묶여 있기 때문이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여론전 vs 대안 입법…노동개혁 5법 주도권 싸움

    노동 개혁 5대 법안의 연내 일괄 처리를 위해 새누리당은 여론전을 통해 야당을 압박한다는 계획이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대안 입법을 마련해 여당에 주도권을 내주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새누리당은 우선 국회 환경노동위에서 법안에 대한 협상 속도를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환노위 산하 법안심사소위에 노동 개혁 법안만 다룰 별도의 소소위를 구성하거나 여야 간사에게 협상권을 일임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대야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여론전도 병행할 방침이다. 당 정책위 산하 민생119본부는 7일 금형·주조·용접 등 이른바 ‘뿌리산업’ 비정규직 노동 현장을 찾아 파견 근로 허용 업종을 확대하는 내용의 파견법의 당위성을 알릴 예정이다. 환노위 소속 여당 관계자는 6일 “노동 개혁은 청년 일자리를 위한 것이며 이를 반대하는 야당은 반(反)개혁적”이라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은 파견법과 기간제법에 대해서는 ‘원안 불가’ 방침을 정하고 비정규직을 겨냥한 대안 입법으로 맞서고 있다. 새정치연합 유능한경제정당위원회가 이날 발표한 ‘비정규직제도 4대 개혁안’도 같은 맥락이다. 개혁안은 ▲비정규직 해고 시 총 임금의 10%에 해당하는 구직수당제 도입 ▲비정규직에 대한 모든 차별 철폐를 위한 특별법 제정 ▲파견·하청 과정에서 사용주·원청자의 공동책임제 ▲비정규직을 현행 기간 제한에서 사유 제한으로 변경하기 위한 사회적대타협기구 구성 등을 담고 있다. 문재인 대표는 “비정규직을 늘리는 법안을 용인한다면 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라면서 “포용적 노동정책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해외원정 도박설’ 카카오 대주주 적격성 논란

    ‘해외원정 도박설’ 카카오 대주주 적격성 논란

    인터넷 전문은행 선정이 마무리됐지만 이런저런 ‘잡음’이 불거지고 있다. 가장 논란이 큰 대목은 카카오은행의 ‘주주 적합성’이다. 이 은행의 대주주는 한국투자금융지주(지분 50%)다. 하지만 실질적인 주도 세력은 3800만명 가입자를 보유한 카카오(지분율 10%)다. 카카오은행 측은 30일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를 4%(의결권 없는 지분 포함 10%)로 제한한 은행법이 훗날 개정되면 한투보다 지분 1% 포인트를 더 가져와 대주주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의 ‘해외원정 도박설’이다. 도박 혐의와 관련해 검찰 내사가 진행 중이다. 검찰은 미국에 사법 공조를 신청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혐의가 사실로 확인되면 카카오뱅크는 대주주 적격성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소수 주주도 아니고 카카오가 카카오은행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간판 주주인데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전문은행 첫 사업자로 선정된 게 의아하다”고 말했다. 이를 효성과 연결시켜 보는 시각도 있다. 효성은 KT와 인터파크 컨소시엄 모두에 ‘양다리’를 걸쳤다가 막판에 모두 발을 뺐다. 일각에서는 금융 당국이 횡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효성 오너 일가의 대주주 적격성을 문제 삼아 결국 컨소시엄에서 모두 빠졌다는 얘기가 나돈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 측은 “효성이 (컨소시엄에서) 빠진 것은 금융 당국과 무관하다”며 펄쩍 뛰었다. 김 의장의 도박 의혹과 관련해서도 “개인(의 도덕성) 문제는 심사 대상이 아니다. 법인이 금융 법령과 관련해 처벌을 받지 않는 한 대주주 적격성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앞서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여당 의원들조차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금융을 운영하게 되면 부정적 파급효과가 큰 만큼 (카카오가) 금융 부문에 진출할 만한 자격이 되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주식시장에서는 희비가 엇갈렸다. 이날 코스닥시장에서 카카오는 전 거래일보다 4500원(3.88%) 오른 12만 6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코나아이(5.79%), 로엔(2.98%) 등 다른 카카오은행 참여 업체도 웃었다. 케이(K)뱅크를 이끄는 KT도 0.50% 오른 2만 9950원에 장을 마쳤다. 반면 혼자만 탈락한 아이(I)뱅크의 인터파크는 6.17% 급락한 2만 2800원을 기록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폭력시위 사전 차단” “집회 자유엔 복장도”

    “폭력시위 사전 차단” “집회 자유엔 복장도”

    집회·시위 현장에서 마스크 등 복면 착용을 금지하는 이른바 ‘복면 금지법’이 25일 여당에 의해 발의됐다. 폭력 시위의 사전 차단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날 국무회의에서 일부 과격 시위대를 최근 프랑스 파리 테러를 주도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비교하며 “복면 시위는 못 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 지 하루 만이다. 법조계에서는 ‘집회 참가자의 복장의 자유를 인정한 기존 헌법재판소 결정을 거스른다’는 지적과 ‘독일, 미국 등에서도 시행하는 조항으로 올바른 집회·시위 문화 정착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새누리당 소속 정갑윤 국회부의장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새누리당 의원 32명이 서명한 법 개정안은 폭행, 폭력 등으로 질서를 유지할 수 없는 집회나 시위에서는 참가자의 신원 확인을 어렵게 하는 복면 등의 착용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집회·시위에 사용할 목적으로 총이나 칼, 쇠파이프 등을 휴대, 사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조나 보관, 운반한 이도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새누리당의 복면 금지법 추진은 이번이 세 번째다. 2003년과 2009년에 각각 추진했지만 모두 폐기됐다. 기존 판례는 복면 금지법이 헌법에서 보장된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헌재는 2003년 집시법 헌법소원 사건을 판단하면서 ‘집회의 자유와 보장 내용’과 관련해 “참가자는 참가의 형태와 정도, 복장을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다”고 결론 냈다. 단순히 마스크를 썼다는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는 뜻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2009년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국회에 상정한 법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밝혔다. 당시 인권위는 “복면 등의 착용 금지 규정은 복면 등을 쓰고 집회 등에 참석하면 불법 폭력 집회를 하려 한다는 잘못된 전제를 기초로 하고 있어 집회·시위의 자유를 중대하게 위축시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학자들은 주요 선진국 사례를 들며 복면 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헌법학자인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는 “독일은 과격 시위 금지를 위해 비무장 집회만 허가하고 복면 시위도 처벌한다”면서 “미국이나 프랑스 등도 복면 시위를 금지하는데 우리나라만 이를 허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천일의 노영희 변호사는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되는 경우에는 처벌을 제외하는 예외 조항을 둔다는 것을 전제로, 복면 집회 참가자에 대한 처벌은 올바른 집회·시위 문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헌재 등의 기존 판례에 따라 복면 금지법은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박주민 변호사는 “복면 금지법은 복장 선택의 자유를 집회 자유의 중요 부분으로 판단하는 헌재 결정과 배치된다”면서 “경찰이 이유와 상관없이 마스크를 쓴 모든 집회 참가자를 입건할 수 있게 되면서 집회·시위의 자유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독일은 신나치, 프랑스는 이슬람 문화권의 히잡(전통의상) 착용, 미국은 백인 우월주의 범죄단체 KKK단 등을 규제하기 위해 복면 집회를 금지하는 특수성이 있다”면서 “이번 법안은 복면의 개념이나 처벌의 경우가 명확하지 않고 법안 자체의 완결성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이슈&논쟁] 청년 수당

    [이슈&논쟁] 청년 수당

    지난 5일 서울시가 내년부터 미취업 청년 3000명에게 최장 6개월간 교육비·교통비·식비 등 월 50만원을 청년활동지원비로 준다고 밝힌 후 이를 두고 포퓰리즘 논란이 한창이다. 중앙정부는 포퓰리즘적 복지정책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서울시는 취업현장에 가보고 말하라고 반박한다. 그간 중앙정부는 일자리 미스매치를 해결하고 일자리를 확대해 청년취업자를 늘리는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정규직 등 양질의 일자리는 크게 늘지 않은 게 사실이다. 특히 우리 경제가 저성장 기조를 유지하면서 주유소와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으로 내몰리는 등 청년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그렇다고 활동지원비를 주는 게 가장 현명한 해결책인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 현금 지원이 복지정책이 아니라면 자활 의지를 높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 청년수당이 시행되고 나서 알 수 있겠지만, 현금 지원 사업이 이런 효과를 거둔 경우는 거의 없다. 청년수당이 복지정책으로 전락할지 아니면 청년들의 아픈 곳을 치유하는 ‘핀 포인트 정책’이 될지 양측의 의견을 들어 봤다. [贊]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구직기간 생활안정 위해 필요” 중앙정부는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매년 2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쓴다. 그러면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필요로 하는 청년들을 ‘청년 인턴’과 같은 불확실한 단기 일자리로 무작정 내몰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기준을 적용하면 고용복지에 해당하는 중앙정부 대표 취업지원 사업인 ‘취업성공 패키지’가 대표적이다. ‘상담-훈련-취업’ 3단계 맞춤형 취업지원이라고 홍보하지만 실상은 취업률이라는 수치상의 성과를 내기 위해 취업알선, 조기취업에 열을 내는 일자리창출 사업이다. 취업 성공률이 70%라고 강조하지만, 1년 이상 고용 유지 비율은 8%(2014년 기준)에 그친다. 이 극적인 차이가 중앙정부 고용복지 사업의 명과 암이다. 열악한 노동시장으로 쫓기듯 내몰리는 청년들의 내상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그래서 청년들 사이에 ‘헬조선’, ‘흙수저’라는 자조 섞인 단어들이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취업하면 장땡’이라는 채찍질을 중단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무엇이 나의 삶과 미래를 고양시킬지 청년들 스스로 질문하고 탐구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청년 정책의 안전망을 세워야 한다. 지난 5일 서울시가 시범사업으로 내놓은 ‘청년 수당’은 정책의 당사자인 청년들과 서울시가 의지를 모은 결과로 설계됐다. 취업이 인생의 목표가 돼 버린 청년이 구직기간의 고단함에 무너지지 않도록, 활력을 갖고 더 나은 삶을 모색할 수 있도록 지방정부가 앞장서서 생활안정과 활동에 필요한 인프라를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청년 수당은 발표되자마자 뜨거운 논쟁에 휩싸였다.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새누리당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청년 수당을 포퓰리즘이라 평하며 ‘청년의 표를 돈으로 매수하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유체이탈이다. 그동안 정부와 여당은 청년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노동개혁과 공적연금 논란, 국정교과서 등 역점 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청년을 위한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국회연설에서 ‘청년’을 32번이나 언급하며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초당적 협력을 주문했다. 해고 요건을 완화하고 기업을 지원하는 노동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사회 진입에 곤란을 겪는 청년들을 직접 지원하겠다는 서울시의 노력은 포퓰리즘적 복지정책으로 규정하는 보수진영의 태도는 참으로 고약하다. 포퓰리즘 논란의 실체는 청년에 대한 편견이다.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은 청년 수당을 두고 청년의 정신을 파괴하는 아편이라고 주장했다. 청년들이 정부로부터 직접 지원을 받으면 근로 의욕이 떨어지고 향후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벌이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쉽게 말해 ‘돈 받으면 놀고 먹을 것이다’라는 얘기인데, 이것이 바로 젊은 세대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야박한 시선이다. 동등한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서가 아니라 여전히 ‘훈육’의 대상으로 청년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청년들은 쓸모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세상이 요구하는 것들을 갖추기 위해 고군분투하느라 바쁘다. 서울시의 지원금액이 청년들이 주저앉아도 될 정도의 넉넉한 수준도 아니거니와, 속칭 ‘요즘 젊은이’들은 그렇게 나약하지 않다. 힘껏 앞으로 나아갈 테니, 지금 이 자리에서 일어설 수만 있게 도와달라는 청년들에게 언제까지 나약하다는 오해의 손가락질을 지속할 것인가. 보수진영이 청년을 위한다고 말하고 싶다면 청년에 대한 편견부터 버려야 한다. 미래 세대가 갖고 있는 내면의 힘과 잠재력, 주도성을 있는 그대로 신뢰하는 것부터 학습해야 한다. 논쟁은 그다음이다. [反] 김영미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청년실업, 교육·고용 연계 해결을” 서울시의 청년 고용 해결은 접근방법이 잘못됐다. ‘현금지급’이 아니라 창업교육과 고용연계 서비스로 풀어야 한다. 더구나 청년수당을 찬성하는 것은 청년의 고통을 덜어 주는 일이고, 청년수당을 반대하는 것은 청년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라는 정치권의 흑백논리도 국민을 편 가르는 아주 위험한 일이다. 서울시는 국민 절반 이상인 54.4%가 청년들과의 협의를 통해 만든 청년수당을 왜 반대하는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서울시는 청년고용 문제를 현금수당이 아니라 고용과 연계되는 서비스로 풀어야 한다. 유럽 내에서 청년실업률이 낮은 독일은 체계적인 교육훈련과 취업연계 시스템을 그 비결로 꼽는다. 청년실업 문제가 다소 심각한 프랑스는 청년신서비스직종정책(NSEJ)이라는 공공일자리 창출에 집중했다. 우리 정부가 청년 일자리문제 해결을 위해 수조원의 예산을 썼음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하여 취업 연계 효과가 불분명한 ‘현금수당’을 도입하는 것이 해법일 수는 없다. 더욱이 서울시는 공공활동이나 사회활동 계획서를 제출받아 지원 대상자를 선정하겠다고 발표했다. 공공활동과 사회활동 참여는 취업을 위한 구직과 다른 차원이며, 이것이 취업으로 어떻게 이어질 것인지 의문이다. 청년고용문제는 지자체 단독이 아니라 중앙정부와 긴밀하게 연계해서 풀어야 한다. 이 문제는 교육정책과 노동시장정책, 복지정책 간의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자체 차원에서 지역 실정에 맞는 고용정책을 시행하고, 정부정책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중요하며 필요하다. 하지만 문제는 서울시가 지원하고자 하는 청년들이 정부정책의 손길 밖에 놓인 이들인지 의문스럽다는 것이다. 수당을 받기 위해 활동계획서를 제출할 청년들은 취업 의사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청년들은 정부에서 시행 중인 취업교육과 창업지원, 취업성공패키지와 같은 활동수당 지급을 포함한 고용연계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정작 지자체의 세심한 지원이 필요한 이들은 일할 의지를 잃은 청년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상을 잘못 택한 것이고, 대상자 중복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서울시의 청년수당은 사회활동계획서를 토대로 지원자를 선발해 지원하는 방식이긴 하나, 사실상 청년 대상 실업부조의 성격을 갖는 복지제도로 보면 된다. 서울시는 청년수당이 복지제도가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사회보장기본법상의 ‘협의·조정’ 규정이 지역의 실정에 맞는 정책수행의 자율성을 훼손할 수 있음을 문제 삼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청년수당은 시범적으로 시도하는 정책이고, 지원에 소요되는 예산이 1년에 90억원 정도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청년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단기적인 현금수당인지 의문이다. 체계적인 공공고용서비스를 갖추고, 좋은 일자리 환경과 구조를 만드는 데 시간이 많이 드니 당장은 약간의 현금수당으로 숨을 돌리라는 것인가. 서울시 내 대다수의 자치구가 내년도 기초연금과 무상보육 등 복지예산 부족과 재정난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90억원은 적은 돈이 아니다. 청년에 대한 지원과 투자는 중요하고 확대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학교교육 단계부터 자신의 적성과 진로를 탐색하여 직업을 준비하도록 하고, 졸업 후에는 취업연계시스템을 통해 취업으로 이어지도록 해 양질의 일자리 구조와 고용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자칫 근본적인 청년고용 해결책 논의는 뒤로한 채 청년수당 도입 찬반만을 두고 선거철 여야 간 소모적인 정쟁으로만 그치게 될까 우려스럽다.
  • ‘대도무문’의 반세기… 군부 통치 끝내고 문민 시대 열었다

    ‘대도무문’의 반세기… 군부 통치 끝내고 문민 시대 열었다

    88세로 생을 마감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 현대 정치의 산증인이다. YS라는 애칭으로 더 자주 불렸던 김 전 대통령은 김대중(DJ·1926~2009)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 투쟁을 주도한 ‘쌍두마차’였다. 바른길로만 가겠다며 ‘대도무문’(大道無門)을 정치 좌우명으로 삼았던 그는 정치적 고비마다 보여준 승부사 기질로 ‘정치 9단’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아호인 거산(巨山)은 자신의 고향인 거제의 ‘거’와 정치적 고향인 부산의 ‘산’을 따 지은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1927년 12월 20일(음력) 경남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에서 멸치잡이 어장을 소유한 부친 김홍조(2008년 작고)씨와 모친 박부연(1960년 작고)씨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통영중 재학 시절 한인 학생을 차별하는 일본인 교장의 이삿짐을 훼손해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이후 김 전 대통령 스스로 모교로 꼽는 경남중으로 전학했고 당시 부산 하숙방 책상머리에 붓글씨로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고 써붙였다. 이어 경남고를 거쳐 1947년 서울대 철학과에 진학했다. 정계 진출의 기회는 대학 2학년 때 찾아왔다. 정부 수립 기념 웅변대회에서 외무부 장관상(2등)을 수상, 당시 장택상 외무부 장관과 인연을 맺었다. 김 전 대통령은 1950년 총선에서 무소속 출마한 장택상 후보의 당선을 돕기도 했으나, 6·25전쟁이 발발하자 대한학도의용대에 가담했다. 1951년 2월 ‘할아버지 위독’이라는 전보를 받고 고향에 내려간 그가 만난 사람이 바로 동갑내기 손명순 여사였고, 선을 본 지 한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손 여사는 결혼 초기 시댁으로 내려가 멸치 말리는 법부터 배웠다. 당시 익힌 ‘시래깃국에 갈치 한 토막’은 이후 손 여사의 ‘대표 메뉴’가 됐다. 김 전 대통령과 손 여사는 장녀 혜영(63), 차녀 혜정(61), 장남 은철(59), 차남 현철(56), 삼녀 혜숙(54)씨 등 2남 3녀를 뒀다. 이 중 현철씨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의 활동상은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은 1952년 5월 장택상 당시 국회부의장이 국무총리에 발탁되면서 총리실 인사담당비서관에 기용됐다. 같은 해 9월 장 총리가 ‘고시진 사건’으로 물러나자 1954년 3대 총선에서 당시 여당이던 자유당의 공천을 받아 거제에서 출마해 최연소 의원(27세)이 됐다. 이후 최연소 원내총무(39세), 최다선 원내총무(5회), 최연소 총재(47세), 최다선 의원(9선) 등 숱한 기록을 쏟아냈다. 그의 정치 행보는 화려한 꼬리표와 달리 고난의 연속이었다. 1954년 ‘사사오입’ 개헌으로 유명한 이승만 전 대통령의 3선 개헌에 반대해 자유당 입당 7개월여 만에 탈당했고, 이는 야당 정치 인생의 출발점이 됐다. 1958년 4대 총선에서 거제를 떠나 부산에서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진 뒤 치러진 5대 총선에서 원내에 복귀했지만 같은 해 9월 어머니가 무장간첩에 의해 살해되고 이듬해에는 5·16 군사정변으로 정치 활동이 전면 금지됐다. 1963년 국가재건최고회의의 군정 연장 결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다 수감되는 등 굵직한 정치 현안에 저돌적으로 맞서며 영향력을 키워 나갔다. 1965년 통합 야당인 민중당의 최연소 원내총무에 올랐고, 196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3선 개헌에 반대하다 자택 앞에서 괴한에 의해 ‘초산 테러’도 당했다. 1974년 5월 신민당 총재로 선출된 후 유신 체제에 맞서다 결국 2년 뒤 ‘각목 전당대회’를 계기로 당권을 내줬다. 특히 1979년 5월 총재직에 재당선되고 2개월 만에 ‘YH무역 사건’이 터졌다. YH 여성 근로자들이 신민당사에서 폐업 반대 농성을 벌이면서 시작된 이 사건은 국내 정당 사상 처음으로 법원에 의해 총재 직무가 정지되고 헌정 사상 최초로 의원직마저 박탈당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때 남긴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은 지금까지 회자된다. 1979년 10·26 사태를 계기로 신군부가 등장하자 김 전 대통령은 가택연금 상태에서 23일 동안 목숨을 건 단식 투쟁으로 맞섰다. 1985년 2·12 총선 직전 신민당을 창당해 돌풍을 일으키는 등 전두환 정권에 대한 끈질긴 압박을 통해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냈다. 민주화 이후 처음 치러진 1987년 대선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야권 후보 단일화에 실패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김 전 대통령은 대권을 향한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1990년 여당인 민정당과 제2·제3 야당인 민주당과 공화당을 합쳐 민주자유당(민자당)을 출범시키는 ‘3당 합당’을 결행한 것이다. 35년 야당 생활을 접고 여당의 대선 후보로 탈바꿈했다. 결국 1992년 대선에서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되며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다. 퇴임 후에도 부산·경남(PK)을 기반으로 한 민주화 세력을 일컫는 ‘상도동계’의 리더로서 현실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독재정권 시절 민주화투쟁 주도 ‘정치9단’

     86세로 생을 마감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한국 현대 정치의 산증인이다. YS라는 애칭으로 더 자주 불렸던 김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DJ·1926~2009)과 함께 독재 정권 시절 민주화 투쟁을 주도했던 ‘쌍두마차’였다. 김 전 대통령이 정치적 고비마다 보여준 승부사 기질은 그가 ‘정치 9단’이라는 별칭을 얻은 이유이기도 했다.    ●유년기-거제도서 출생, 한인학생 차별 일본인 교장 골탕먹이다 정학 처분  김 전 대통령은 1927년 12월 20일(음력) 경남 거제도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에서 멸치잡이 어장을 소유한 부친 김홍조(2008년 작고)씨와 모친 박부연(1960년 작고)씨 사이에서 외동 아들로 태어났다.  장목초등학교를 나온 김 전 대통령은 당시 경남 지역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던 동래중에 응시했다가 낙방했으며, 1년 뒤 통영중에 진학했다. 통영중 재학 시절에는 한인 학생을 차별하는 일본인 교장의 이삿짐을 훼손하는 등 골탕을 먹인 일화가 유명하다. 이로 인해 경찰 조사를 받고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이후 김 전 대통령 스스로 모교로 꼽는 경남중으로 전학한 것은 해방을 맞은 1945년 11월이다. 대통령의 꿈은 이 때부터 비롯됐다. 당시 부산 하숙방 책상머리에 붓글씨로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고 써붙이고 뜻을 키운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경남고를 거쳐 만 20세인 1947년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정치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하고, 우익 학생단체인 ‘순학회’를 결성하는 등 정치 입문을 위한 사전 준비에도 힘을 쏟았다.    ●청년기-한국전때 학도의용대 가담, 동갑내기 손명순 여사와 맞선 한달만에 결혼  정계 진출의 기회는 대학 2학년 때 찾아왔다. 정부수립 기념 웅변대회에서 외무부 장관상(2등)을 수상, 당시 장택상 외무부 장관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1950년 5·30 총선에서 경북 칠곡에 무소속 출마한 장택상 후보의 당선을 돕기도 했으나, 6·25 전쟁이 발발하자 대한학도의용대에 가담했다.  김 전 대통령이 손명순 여사를 만난 것도 이 무렵이다. 1951년 2월 ‘할아버지 위독’이라는 전보를 받고 고향에 내려간 그가 만난 사람이 바로 동갑내기 손 여사였고, 선을 본 지 한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를 하기로 했던 목사가 날짜를 착각해 결혼식장에 오지 못하는 바람에 주례를 즉석에서 구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혼 당시 이화여대 약학과 3학년생이었던 손 여사는 당시 교칙에 따라 결혼하면 퇴학을 당할 처지였지만, 결혼 사실을 비밀에 부쳐 무사히 졸업했다. 손 여사는 결혼 초기 시댁이 있는 거제로 내려가 멸치 말리는 법부터 배웠다. 당시 익힌 ‘시래깃국에 갈치 한 토막’은 이후 손 여사의 ‘대표 메뉴’가 됐다.  김 전 대통령은 2011년 결혼 60주년을 기념하는 회혼식에서 “내 인생에서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민주화를 이뤄낸 일이고, 다른 하나는 손 여사를 아내로 맞이한 일”이라고 했고, 이에 손 여사는 “좋아서 살았지예”라고 화답하기도 했다.  ●정치적 성장기-26세때 최연소의원에, 최연소 원내총무 최다선 의원등 숱한 기록  김 전 대통령은 1952년 5월 장택상 당시 국회 부의장이 국무총리에 발탁되면서 총리실 인사담당비서관에 기용됐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장 총리가 ‘고시진 사건’으로 물러나자 1954년 3대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고향인 거제로 낙향했다.  그는 3대 총선에서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당 공천을 받아 최연소 의원(26세)이 됐다. 이후 최연소 원내총무(38세), 최다선 원내총무(5회), 최연소 총재(46세), 최다선 의원(9선) 등 숱한 기록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정치 행보는 이 같은 화려한 꼬리표와 달리 고난의 연속이었다.  1954년 이른바 ‘사사오입’ 개헌으로 유명한 이승만 대통령의 3선 개헌에 반대표를 던지고 자유당 입당 7개월여 만에 탈당했으며, 이는 야당 정치인으로서 30여년 동안 고난의 길을 걷는 출발점이 됐다.  1958년 4대 총선에서는 고향인 거제를 떠나 부산에서 출마했다 고배를 마셨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진 뒤 치러진 5대 총선에서 원내에 복귀했으나, 같은 해 9월 어머니가 무장간첩에 의해 살해된 데 이어 이듬해에는 5·16 쿠데타로 정치 활동이 전면 금지되는 등 시련이 잇따랐다.  1963년에는 국가재건최고회의의 군정 연장 결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다 수감되는 등 굵직굵직한 정치 현안에 저돌적으로 맞서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 나갔다.    ●민주화 투쟁기-3선개헌 반대하다 초산테러, 10·26 신군부시절 가택연금 단식투쟁  1965년 통합 야당인 민중당의 최연소 원내총무에 올랐으며, 1969년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에 반대하다 상도동 자택 앞 골목길에서 괴한에 의해 ‘초산 테러’를 당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김 전 대통령은 야당 지도자로서 입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1970년 ‘40대 기수론’을 내세워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지만, 당시 김대중 후보에 밀렸다.  김 전 대통령의 승부사적 기질은 유신 체제에 대한 정면 돌파로 이어졌다. 1974년 5월 신민당 총재로 선출된 후 유신 체제에 맞서다 결국 2년 뒤 ‘각목 전당대회’를 계기로 당권을 내주기도 했다.  특히 1979년 5월 총재직에 재당선되고 2개월 만에 ‘YH무역 사건’이 터졌다. YH 여성 근로자들이 신민당사에서 폐업 반대 농성을 벌이면서 시작된 이 사건은 국내 정당 사상 처음으로 법원에 의해 총재 직무가 정지되고 의원직마저 박탈당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때 김 전 대통령이 남긴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표현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1979년 10·26 사태를 계기로 신군부가 등장하자, 김 전 대통령은 가택연금 상태에서 23일 동안 목숨을 건 단식투쟁으로 맞섰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한발짝도 나가지 않겠다”고 한 그의 결단은 정치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1985년 2·12 총선 직전 신민당을 창당해 돌풍을 일으키는 등 전두환 정권에 대한 끈질긴 압박을 통해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냈다.    ●대권 도전과 성공-1990년 3당합당, 1992년 대선 당선 ‘문민정부’ 시대로  민주화 이후 처음 치러진 1987년 대선에 김 전 대통령 역시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나 이른바 ‘1노·3김(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 맞붙은 선거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며 뜻을 이루지 못했고, 이듬해 4월 13대 총선에서는 제1야당의 자리마저 DJ의 평민당에 내줬다.  이런 상황에서 김 전 대통령은 대권을 향한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1990년 여당인 민정당과 제2·제3 야당인 민주당과 공화당을 합쳐 민주자유당(민자당)을 출범시키는 ‘3당 합당’을 결행했다. 35년 야당 생활을 접고 여당의 대권 주자로 탈바꿈한 것이다.  결국 1992년 대선에서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되며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다. 재임 기간 중 금융실명제 도입, 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하나회 해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와 처벌 등 굵직굵직한 개혁 조치를 단행했다. 하지만 임기 말 불어닥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비판을 받았다.  김영삼 정부는 서민적인 청와대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칼국수가 대표적이다. 칼국수가 당시 청와대 대표 메뉴가 되면서 대통령의 영양 관리라는 뜻밖의 고민거리도 생겼다. 청와대 방문객들이 한번쯤 맛보는 별미지만, 대통령 입장에서는 임기 내내 칼국수로 점심을 때워야 했기 때문이다.    ●뚝심과 감의 정치인  김 전 대통령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관철시키는 ‘뚝심의 정치’를 보여줬다. 정치적 고비마다 국민 여론을 읽고 행동으로 옮기는 능력이 탁월해 ‘감(感)의 정치인’으로도 불렸다.  김 전 대통령의 화법은 단순 명료했다. 돌려가며 얘기하는 법이 없다. 직설적인 화법 탓에 ‘말실수의 달인’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공정한 인사를 해서 부패 인사를 척결하겠습니다”라고 해야 할 표현을 “공정한 인사를 척결하겠습니다”라고 하거나, ‘결식 아동’ 문제를 언급하려다 ‘걸식 아동’이라고 발음하는 식이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세스쿠’의 이름을 잊어버려 회의석상에서 ‘차씨’라고 발언한 사례도 유명하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말실수에 핑계나 변명을 하지 않았기에 친근감과 인간미를 느끼게 했다.  김 전 대통령과 DJ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민주화 동지에서 1987년 대권을 놓고 경쟁하기 시작하며 불편한 관계가 됐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2009년 DJ의 서거를 불과 일주일여 앞두고 병원을 전격 방문, 22년간의 반복과 갈등에 마침표를 찍었다. 김 전 대통령은 화해로 이해해도 되느냐는 기자 질문에 “이제 그럴 때가 됐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면서 “제6대 국회 때부터 동지적 관계이자, 경쟁 관계로 애증이 교차한다”고 애틋한 감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김영삼 전 대통령 오늘 새벽 서거

    김영삼 전 대통령 오늘 새벽 서거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새벽 서거했다. 88세.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0시 22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패혈증과 급성심부전으로 숨을 거뒀다고 오병희 서울대병원장이 긴급 브리핑에서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9일 정오쯤 고열과 호흡곤란 증상으로 입원했으며, 상태가 악화돼 21일 오후 중환자실로 옮겨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가 악화하면서 사망에 이르렀다고 오 원장은 설명했다. 서거 당시 김 전 대통령 옆에는 차남 현철씨 등 가족이 자리해 임종했으나 부인 손명순 여사는 곁에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김 전 대통령은 고령인 데다 체력이 많이 떨어져 종종 서울대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아왔으며, 그때마다 며칠씩 입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앞서 지난 10일 검진 차 병원을 찾아 17일까지 입원한 뒤 퇴원했다. 1927년 12월20일 경남 거제군 장목면 외포리에서 김홍조와 박부연의 외아들로 태어난 김 전 대통령은 장목소학교, 통영중, 경남고를 거쳐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1954년 3대 민의원 선거에 최연소로 당선된 이후 9선(5·6·7·8·9·10·13·14) 의원을 지냈다. 야권 후보단일화에 실패한 채 통일민주당 후보로 독자출마한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정당 노태우 후보에게 패해 2위로 낙선했다. 하지만 민정당·신민주공화당과 3당 합당을 통해 탄생한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에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고 합류했고, 박철언 전 의원과 사활을 건 대결 끝에 대선후보를 쟁취했다. 1992년 대선에서 필생의 라이벌 김대중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돼 문민시대를 열었다. 김 전 대통령은 야당 당수 세 차례, 야당 원내총무 다섯 차례를 역임하며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섰다. 양김의 ‘상도동·동교동’은 민주화 세력의 양대 산맥으로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둘은 1970년대 후반에는 40대 기수론을 내세운 야당 당수로서 유신 체제에 정면으로 맞서다 1979년 총재 직무를 강제로 정지당하고 의원직에서도 제명되는 고초를 겪었다. 신군부 정권 시절이던 1980년대 들어서는 23일간의 단식 투쟁, 장기간의 가택연금 등의 정치적 박해와 고난을 겪으면서도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해 87년 ‘6월 항쟁’ 등 민주화 운동을 이끌어 직선제 개헌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PK(부산·경남)를 지역 기반으로 삼은 민주화 세력을 일컫는 상도동계의 리더로서 오랫동안 현실 정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평생 거르지 않다시피한 새벽 조깅과 영문이니셜 애칭 ‘YS’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가장으로 거행하고 장지는 현충원으로 하기로 유족 측과 행정자치부가 합의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손명순 여사와 딸 혜영(63), 혜정(61), 혜숙(54)씨, 아들 은철(59), 현철(56) 씨 등 2남 3녀가 있다. 정부는 22일 낮 12시 30분 김 전 대통령의 장례 절차를 논의하는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이를 공식 결정할 예정이다. 임시 국무회의에서는 국가장 진행, 장례위원회 구성, 장지, 영결식과 안장식 등 장례 절차 전반을 심의한다. 국가장 절차는 정부와 유족의 협의 후 행정자치부 장관이 제청하면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현직 대통령이 결정한다. 5일간의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면 김 전 대통령은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파리 테러 계기로 테러방지법 적극 추진해야

    이슬람국가(IS)의 극악무도한 ‘파리 테러’를 계기로 대(對)테러 대책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 서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테러 청정국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세계 도시를 대상으로 한 무차별 테러 확산으로 더이상 안심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더욱이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전쟁의 동맹국으로 분류돼 테러단체의 표적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한국의 대외 이미지는 친미 국가, 기독교 선교, 그리고 한류문화 등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정보원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IS 동조자 5명을 적발했고 한국인 2명이 IS 가담을 시도하다 적발된 사실도 공개했다. 더이상 국제 테러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서방 각국은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테러를 예방할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과 영국에선 2001년 9·11테러 직후 애국법과 반테러법을 신속하게 통과시켜 영장 없이 테러 용의자를 구속하고 통화 내용을 감청할 수 있게 했다. 우리의 경우 당장 국회에 계류 중인 테러 방지 관련법 처리가 관건이다. 여당은 국가정보원을 테러 방지를 총괄할 컨트롤타워로 하는 관련 법안 통과를 다짐하고 있고, 야당은 강력한 저지 의지를 밝히고 있어 충돌이 불가피해졌다. 테러는 한 번 발생하면 대규모 인명 피해로 이어져 사전에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한다. 우리도 미국의 9·11테러 직후인 2001년 김대중 정부 시절 정보기관 주도로 첫 법안이 발의된 이래 14년간 테러 방지 관련 법안들이 당리당략에 막혀 국회에 계류 중이다. 19대 국회에도 테러 방지 관련 법안 5건이 제출된 상태다. 새누리당이 추진하는 테러 방지 관련법의 경우 감청·구금 등 테러 수사와 관련해 국정원의 기능과 권한을 대폭 강화해 ‘제2의 국가보안법’이 되는 것 아니냐는 야당과 일부 사회단체의 강한 의구심 때문이다. 국정원이 그동안 정치적 공작이나 개입 논란을 일으켜 스스로 의구심을 키운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이 테러방지법 자체를 막는 방패막이가 될 수는 없다. 야당이 주장하는 대로 독소 조항이 있다면 사전에 검토해 삭제하고 국정원의 작위적 개입이 우려된다면 이에 대한 견제 장치를 만들면 될 일이다. 국가 안위에 대해서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초당적 대처를 통해 국민적 불안을 덜어 주는 것이 수권 정당으로서 가야 할 길이다.
  • TK발 與물갈이론 ‘강남권·PK’로 확산

    TK발 與물갈이론 ‘강남권·PK’로 확산

    ‘TK(대구·경북)발’ 여권의 내년 총선 물갈이론이 PK(부산·경남)와 서울 강남벨트로까지 번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에서 시작된 물갈이 바람이 부산·서울행 경부선 라인을 타고 확산되는 양상이다. 청와대 전·현직 비서진과 장관들이 대구는 물론 부산과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에까지 도전장을 내밀면서 이런 분위기가 가시화됐다. 서울 서초갑 출마가 유력한 조윤선 전 정무수석을 필두로 관가의 대표적 친박근혜계인 김영호 전 감사위원의 경남 진주을, 안대희(오른쪽) 전 국무총리 지명자·윤상직(왼쪽)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부산 해운대·기장 출마론도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김선동 전 정무비서관(서울 도봉을), 최형두 전 홍보기획비서관(경기 의왕·과천), 임종훈 전 민원비서관(경기 수원 영통), 민경욱 전 대변인(인천 연수), 최상화 전 춘추관장(경남 사천·남해·하동) 등도 PK·수도권 물갈이론에 힘을 실었다. 여기에 2, 3차 순차 개각을 통한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인천 연수), 유기준 전 해양수산부 장관(부산 서구), 유일호 전 국토교통부 장관(서울 송파을),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부산 연제)의 여의도 복귀도 PK·수도권 물갈이론에 힘을 싣고 있다. ‘경부라인 물갈이론’은 청와대, 친박계가 20대 공천 및 박근혜 정부 후반기 국정 운영, 차기 대선 구도까지 염두에 둔 포석으로 풀이된다. 현재 새누리당 주도권을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비박계가 장악하고 있는 데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 앞서 2012년 19대 공천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에서 지역구는 물론 비례대표까지 사실상 ‘친박 공천’이 이뤄졌지만 3년여가 지난 현재 당내 핵심 친박계로 분류되는 의원은 10여명에 불과하다. 친박계 좌장인 7선 서청원 최고위원을 비롯해 4선 이주영, 3선 최경환·홍문종·유기준, 재선 이정현·윤상현·김재원·유일호, 초선 이장우·김태흠 의원 등이 현재 ‘핵심 친박’으로 분류되는 정도다. 여기에 ‘신박’으로 부상한 원유철 원내대표, 비박계로 분류됐던 이인제·김태호 최고위원 정도가 친박계로 구분된다. 청와대와 친박계는 20대 총선 직후 급격히 발생될 레임덕을 방지하고 집권 말기까지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놓지 않기 위해 “역전된 계파 구도를 돌려놔야 한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특히 청와대는 20대 국회와 1년 9개월 가까이 동거해야 하는 만큼 당내 의석의 과반수 이상을 친위부대로 채울 구상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20대 국회에서 친박계 원내대표단을 구성하고 당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는 TK는 물론 PK·강남벨트 등 여당 강세 지역을 친박계로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차기 대선 가도에서 친박계 주자를 발굴, 지원하기 위해서도 당내 친박계의 세 확보가 절실하다. 당 핵심 관계자는 “지난 6월 국회법 개정안 사태 때 여당 의원 95명이 찬성표를 던졌고, 이 중 영남권 친박들도 다수 포함돼 있었던 전례를 청와대는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물갈이 주자들이 대거 여권 강세 지역 혹은 비박계가 현역인 지역에 나선 데 대해 시선이 마냥 곱지만은 않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소속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은 11일 언론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가장 열심히 해야 할 사람이 장관과 청와대 수석들인데 총선 준비를 하고 있으면 안 된다”면서 “다 나가면 소는 누가 키우느냐”고 꼬집었다. 김 대표 측 관계자도 이날 “물갈이는 결국 국민의 뜻에 따라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700년간 귀족 증세 반대한 상원… 왜 저소득층 증세 막았나

    [글로벌 인사이트] 700년간 귀족 증세 반대한 상원… 왜 저소득층 증세 막았나

    ‘307대277.’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영국 상원이 부결시킨 보수당 정부의 저소득층 증세안은 끝없는 파문을 몰고 왔다. ‘하원 우위의 원칙’이 확고한 영국에서 상원은 법안을 수정하거나 입법을 지연하는 권한만 갖고 있어 관습법(헌법)에 대한 ‘이례적’ 도전이자 용기로 받아들여졌다. 증세안 부결로 굴욕을 당한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이튿날 상원에 대대적인 ‘칼 대기’를 단행하겠다며 정략적 선언을 했다. 조지 오즈번 재무장관도 “선거를 통해 선출된 하원이 입법한 세금 관련 재정 조치를 임명직에 불과한 상원의 야당(노동당·자유민주당) 의원들이 부결시켰다”면서 불만을 표출했다. 캐머런 내각은 주요 결정과 관련해 보수당이 장악한 하원의 영향력을 상원보다 앞세우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8일(현지시간) 전했다. 이는 장기적 청사진을 갖고 꾸준히 추진해온 기존 ‘상원 개혁’과는 다른 모습이다. 당파성을 앞세운 캐머런 총리의 목소리가 어느 정도 국민적 동의를 끌어낼지도 알 수 없다. 보수당 지도부가 공공연히 상원 개혁을 외치는 배경에는 과거 노동당 정권이 주도한 개혁으로 수백년간 기득권을 유지해온 상원을 송두리째 빼앗긴 쓰라린 경험이 자리한다. 상원은 이제 귀족들의 사교장이라기보다 국가의 중심을 잡는 비정파적 성격의 원로원 성격이 더 강하다. 내각 책임제인 영국에서 실질적 통치자인 총리와 총리를 배출한 집권당이 하원을 통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보루이기도 하다. 앞서 1911년과 1949년 잇따라 개정된 의회법은 모든 법률안이 원칙적으로 상하 양원을 거치도록 했다. 다만 조세와 재정 지출 관계 법안(Money Bill)은 예외가 인정된다. 상원의 동의를 얻지 못하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국왕의 재가를 받아 곧바로 시행할 수 있다. 하지만 상원은 정부의 세금 감면 철회안을 일반 법안이 아닌 위임안으로 해석해 부결시켰다. 상원의 정식 명칭은 ‘귀족원’이다. 이런 측면에서 세습 귀족들의 모임에서 유래한 상원이 저소득층의 세금 감면 혜택을 지키겠다고 나선 것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과거 의회가 왕과 갈등을 빚을 때 쟁점 역시 세금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특권층에 대한 ‘부자 증세’가 문제였다. 이번 세금 감면 철회안을 놓고 상원은 4시간 넘는 토론을 벌였다. 복지를 둘러싼 기득권층과 젊은층의 세대 간 전쟁으로 비화된 정부안을 놓고 원칙을 강조하며 약자의 편을 들었다. 보수당 내부에서조차 이견이 분분한 세제 개편안을 밀어붙인 캐머런 총리의 폭주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이는 앞선 노동당 정부(1997~2010년)의 상원에 대한 체질 개선 덕분이다. ‘영악한’ 토니 블레어 총리는 1330명에 이르던 세습 귀족 의원들을 단 92명만 남겨 놓고 퇴출시켰다. 이들은 대부분 보수당 지지자들이었다. 세습 귀족을 몰아낸 빈자리는 총리의 제청을 받아 여왕이 임명한 종신직 의원들로 야금야금 채워졌다. 이는 상원이 보수당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영국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는 “과거 보수당이 (정당한) 상원 개혁을 미뤄왔던 점에서 자업자득”이라고 평가했다. 미리 상원 개혁의 고삐를 잡았더라면 뒤통수를 맞는 일이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증세 문제 때마다 갈등 빚어 영국 정치권에서 상원 개혁이 화두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세기 들어 국민 여론은 세습과 특권을 인정받는 상원에 부정적으로 기울었다. 미국처럼 선거를 통해 상원을 구성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9일 현재 상원에 등록된 정식 의원은 819명에 이른다. 이 중 의원직이 세습되는 귀족이 88명, 성직자가 25명이며 나머지는 종신직(706명)이다. 성직자인 대주교·주교 등은 자리에서 물러날 때 의원직을 상실한다. 정치 성향별로는 여당인 보수당 당적을 지닌 의원은 249명에 불과하다. 오히려 야당인 노동당(212명)과 자유민주당(112명)이 우위를 점한다. 이 때문에 상원은 하원에 비해 정파성이 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세습 귀족이 대거 퇴장하면서 중도세력이 늘어난 덕분이다. 당적도 고정적이지 않다. 보수당에서 자유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겨 개혁을 추진한 처칠 전 수상이 대표적인 사례다. 게다가 1910년대까지도 영국 유권자들은 ‘비국교도=자유민주당’, ‘국교도=보수당’이란 등식 아래 종교적 성향에 따라 투표했다. 영국 의회 홈페이지(www.parliament.uk)는 상원이 의학, 법률, 예술, 경영, 과학, 스포츠, 교육 등 각 분야의 대표성을 갖는 존경받는 직업인들로 구성됐다고 기술했다. 또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등 영국 연합왕국에 속한 성인이면 누구가 상원 의원이 될 자격을 갖는다고 명기했다. 1295년 완전한 모습을 갖춘 과거의 상원은 귀족과 성직자, 법률가 등이 주축이었다. 17세기 청교도혁명을 이끈 크롬웰이 공화정을 선포해 잠시 폐지되기도 했으나 20세기 초까지 수백년간 예산 결정과 법률 제정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 백발의 가발을 뒤집어쓴 채 망토를 착용한 예전 의원들의 모습 그대로였다. ●의회법 개정 뒤 실질적 권한 빼앗겨 1900년대 초반부터 잇따라 이뤄진 의회법 개정은 실질적 권한을 대부분 하원에 넘겼다. 의원들의 구성도 귀족보다 전문 직업인에 초점을 맞춰 점차 바뀌었다. 현재 상원은 주요 법안에 대한 토의와 국가 중대사에 대한 위원회 구성 등의 역할을 맡고 있다. ‘드레스코드’도 변화했다. 의원들은 특별한 행사 때가 아니면 일반적인 정장 차림으로 등원한다. 홈페이지의 갤러리에는 평상복 차림으로 토론에 나선 의원들의 모습과 이를 지켜보는 방청객들이 모습이 담겨 있다. 이곳에는 또 신규 의원, 자격 정지 의원, 사망한 의원 등으로 세분화된 신상 정보가 매일 업데이트된다. 지난달에만 41명의 신규 의원들이 임명됐고, 각기 2명의 의원이 사망하거나 은퇴했다. 신규 의원의 당적을 살펴보면 과반이 넘는 21명이 보수당 소속이다. 야당인 노동당과 자유민주당은 각각 7명, 11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중립이거나 전문직 할당자다. 보수당 정권이 노골적으로 상원에서 세 불리기에 나섰다는 뜻이다. 과거 영국 언론은 노동당 정부의 상원 개혁도 정파적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당시 개혁은 장기적 로드맵을 갖고 이뤄졌다. 어느 정도 보수당과 정치적 합의도 이뤄냈다는 점에서 지금과 달랐다. 영국은 2007년 집대성한 ‘상원 개혁에 관한 백서’에 근거해 꾸준히 개혁을 이어오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2010년 합의안에 따라 상원의 의석 수를 300석까지 줄이고 80% 이상을 선출직으로 바꾸는 일이다. ●상원의 뿌리 깊은 반정부 정서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로드맵에는 세습 귀족 의원뿐 아니라 종신 의원 폐지까지 담겨 있다. 매번 선출되는 의원의 임기는 10~15년으로 5년마다 3분의1을 선거로 물갈이한다. 임명직도 총리의 제청이 아닌 상원 임명 위원회의 제청을 따르도록 했다. 또 무보수 명예직이었던 의원에게는 연간 약 6만 4000파운드(약 1억 1245만원)에 이르는 세비도 지급될 예정이다. 이를 추인할 마지막 선택은 국민 여론에 달렸다. 700년 전통의 귀족원이 ‘원로원’으로 개칭되는 순간이다. 일각에선 이 같은 변화가 자칫 총리·상원·하원을 단일 정당이 독식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 걱정한다. 견제와 상생이란 영국 정치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앵글로·색슨족의 왕국이던 영국은 8세기 말부터 노르만인에게 정복당하면서 차츰 서유럽화했다. 노르만왕조의 혈통이 섞인 프랑스 귀족이 왕위를 이어받았고 존 왕에 이르러선 과도한 세금 부과로 귀족 계층과 대립했다. 이때 존 왕은 귀족들이 강요한 ‘대헌장’(마그나카르타)에 서명하는 굴욕을 당했다. 이는 의회 정치의 효시이기도 하다. 최근 수년간 상원은 정부 정책을 견제하며 존재감을 과시해 왔다. 정부 정책의 균형을 잡아줬다는 평가도 듣는다. 2002년 정부의 인간배아 복제 법안, 2006년 안락사 허용 법안, 2008년 테러용의자 구금연장 법안에 각각 거부권을 행사했다. 지난 6월 하원이 압도적 표 차이로 승인한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 시행안도 상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민족문제연구소측 “황국신민 되겠다던 기사 있다” 김무성 대표측 “단군묘 주장해 고초 겪었다”

    민족문제연구소측 “황국신민 되겠다던 기사 있다” 김무성 대표측 “단군묘 주장해 고초 겪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이하 김용주)의 친일 논란이, 친일인명사전 편찬 작업을 주도해 온 민족문제연구소와의 공방전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로 격화된 김용주의 ‘애국·친일 논쟁’은 김 대표의 향후 대선 가도와도 맞물려 있다. 양측의 주장 및 논거 자료를 대조해 보고 반박을 들어본다. Q. 친일단체 간부로 활동했다? vs 애국활동 했다? A. 연구소가 지난 9월 17일 발표한 ‘김용주, 과연 애국자였나’란 자료에 따르면 김용주는 경북 도회의원, 국민총력경상북도수산연맹 이사,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 등을 지내며 신사 건립, 내선동조론 전파, 군용기 헌납운동 등을 주도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김 대표 측은 “1920년대부터 1940년대에 걸쳐 치안유지범으로 일제에 검거되기도 했고 신간회 활동, 조선인을 위한 학교 인수, 도회의원으로 총독부에 맞선 발언 등이 수십 건 근거로 남아 있다”고 반박했다. 지난달 27일 배포한 ‘고 김용주 선생의 친일 행적 논란에 대한 입장’ 자료에는 애국활동 사례 22건이 실렸다. Q. 징병제 실시를 찬양하고 전쟁 동원 선동했다? A. 1943년 10월 열린 전선공직자대회(매일신보 보도)에서 김용주는 “가장 급한 일은…정신적 내선일체화를 꾀하여 충실한 황국신민이 될 것”이라며 “징병을 보낼 반도의 부모로서…귀여운 자식이 호국의 신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받들어 모시어질 영광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 대표 측은 “1940년 경북도의회 재선 이후 ‘전국에 단군묘(檀君廟) 건립’ 주장을 내세우다 고초를 겪는 등 민족운동을 이어갔다”고 주장한다. Q. 일제 패망 시절 ‘살해 대상 1호’였다? A. 김 대표 측은 김용주가 반일 행적으로 인해 태평양전쟁 말기 일제의 포항 지역 총살 대상 1호였다고 주장한다. 조선 계엄령 발포 시 지역 내 주요 조선인 8명의 총살 지시가 일본국 사령부로부터 내려왔다는 것. 이런 내용은 지난 8월 출간된 김용주 평전 ‘강을 건너는 산’에도 등장한다. 그러나 연구소 측은 김용주가 전해 들은 얘기를 본인 회고록과 평전에 인용한, 객관적 근거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Q. 조선인을 위한 학교 인수 및 야학의 성과. A. 평전에 따르면 김용주는 29세이던 1933년 존폐 위기에 처한 포항 영흥학교를 인수, 교장직을 겸하고 훈육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동아일보 1936년 2월 8일자에는 ‘최경성 교장 등이 진력하였으나 (학교) 경영난은 최후 결정에 달하였다는데…’라고 나와 운영 시기가 엇갈린다는 게 연구소 측 주장이다. “일본어도 가르친 야학을 애국야학이라고 할 수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김 대표 측은 “조선어 금지, 신문폐간 등 민족말살정책이 극에 달했던 당시 상황을 전혀 무시한 초보적인 지적”이라고 반박했다. Q. 애국활동 사례 22개 중 2개는 동명이인? A. 김용주는 1931년 6월 동아일보에 ‘충무공 유적 보전을 위한 성금 일급 시전을 냈다’고 나와 있다. 또 같은 해 11월 재만피란동포 위호금품(만주 동포를 위한 성금모금)으로 일금 삼십전을 냈다고 한다. 그러나 기사에 충무공 성금을 낸 이는 ‘마산 거주 김용주’로 나온다. 포항에서 활동했던 김용주와 동명이인이라는 반론이다. 만주동포 성금 기부자도 ‘경성부 애우수소양소년회 김용주’로, 서울 소년단체에 김용주가 가입되었을 리 없어 서로 다른 이라는 주장이다. Q. 비행기 헌납운동의 진실. A. 1944년 7월 아사히신문은 ‘결전은 하늘이다. 보내자 비행기를!’ 광고주 명단에 김용주 이름을 올렸다. 또 1942년 2월 매일신보에 따르면 김용주는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에서 군용기 헌납에 27만원을 모금했다. 이에 대해 김 대표 측은 매우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일제 말기인 1940년대는 본인 의사와 관계없는 동원 기사·광고가 많이 나왔다”면서 “놋수저 하나까지 징발됐던 당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맞섰다. Q. 김용주는 변절했나. A. 연구소 측도 “김용주가 청년기엔 민족의식을 보였고 신간회·청년단체 독서회 활동 등은 인정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제 침략이 본격화되는 1930년대부터 완전히 돌아섰다”고 결론 냈다. 하지만 김 대표 측은 “1926년 3·1운동 정신을 이어받은 삼일상회 설립, 1938년 강제 면화재배 정책에 대한 국가 보상 요구 등 당시 상황에서 가능한 구국활동을 했다”고 부인했다. 1940년 1월 동아일보에 따르면, 김용주가 영흥 학교에 사재 2만원을 기부하는 등 민족운동을 유추할 만한 증거들도 나온다. Q. 매일신보는 기관지여서 신빙성이 없다? A. 연구소 측은 주요 증거로 활용한 매일신보에 대해 “총독부 기관지인 경성일보의 자매지였다고 해서 사료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가 친일인사 1006명의 명단을 발표했을 때도 매일신보를 주요 사료로 삼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김 대표 측은 “당시 당사자 동의 없는 강제 기고, 허위사실 수록에 대한 증언이 많아 전적으로 믿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Q. 김용주는 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나. A. 김 대표 측은 “연구소가 10년 동안 300만여건을 검토했다던 사전에 여태껏 등재하지 않다가 김 대표가 여당 대표가 되고 나니 태도를 바꿨다”고 공격했다. 연구소 측은 “2009년 첫 출간 당시 자료 부족으로 해외·지방 친일반민족행위를 전면조사할 수 없었다”며 “김용주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가 필요했기 때문에 보류했고 발간된 개정판에는 누락됐던 인사가 다수 등재될 것”이라고 답변했다. Q. 연좌제라는 주장. A. 김 대표 측은 “모든 일에는 공과가 있는데 애국적 활동은 편향되게 평가하고, 친일 행적만으로 후손에게 연좌제를 적용하려 한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연구소 측은 “평전 출간 등 김 대표가 부친의 친일 행적을 애국으로 미화하고 있다”고 맞받았다. 그러면서 “연좌제에 반대하지만 김 대표처럼 연고자의 친일 행적을 왜곡하는 경우에는 예외”라는 입장을 밝혔다. 연구소 측은 이런 이견에 대한 맞짱토론을 제안했지만 김 대표 쪽에선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다”며 거부했다. 1차 친일인명사전 대상자 발표 때 편향성 논란에 휘말리고, 임헌영 소장이 국보법 위반으로 복역하는 등 연구소 활동의 순수성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충돌] 野 “국정화 예비비 내역 공개” 압박… 최 부총리, 사실상 자료 제출 거부

    국회에서는 28일 하루 종일 여야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해 충돌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국정화 관련 예비비 자료 제출 여부 등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며 파행을 거듭했다. 운영위와 교육문화체육관광위에서도 교육부 교과서 태스크포스(TF)의 불법 여부를 놓고 날 선 공방만 오갔다. 본 업무인 예산안 심사는 교과서 ‘블랙홀’로 인해 뒷전으로 밀린 모양새다. 예결위의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위한 종합정책질의에서 여야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예비비 44억원’ 관련 자료 제출 여부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야당 의원들은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예산안에 포함되지 않는 예비비를 통한 국정화 강행은 꼼수”라며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세부 내역을 공개하라고 압박했다. 최 부총리는 “예비비 관련 자료는 헌법과 국가재정법에 따라 (국회의 결산 심사를 위해) 내년 5월 30일까지 국회에 제출하게 돼 있다”며 사실상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했다. 새누리당 김도읍 의원은 “(예비비는) 내년 총선을 치른 뒤 20대 국회에서 심사할 자료”라며 옹호했다. 회의 시작 1시간 동안 공방만 계속되자 김재경 예결위원장은 정회를 선언했다. 또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야당의 국정화 반대 움직임에 대해 “언젠가는 적화통일, 북한 체제로 통일이 될 것이고 그들의 세상이 올 것을 대비해 남한 어린이들에게 미리 교육을 시키겠다는 것”이라는 발언을 해 회의가 다시 파행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오해를 유발한 건 제 책임”이라고 유감을 표명했다. 운영위 전체회의에서는 교육부의 교과서 TF 운영과 관련해 새정치민주연합이 청와대가 관여했다며 TF 직원의 청와대 출입 기록을 요구했지만 청와대는 교육부가 주도한 사안이라고 맞섰다. 이병기 비서실장은 “역사 교과서가 쟁점화됐는데 상황 파악도 안 하면 직무유기 아닌가”라는 새누리당 김용남 의원의 질문에 “정쟁화되다시피 한 업무에 대해 TF를 안 만드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면서 “해당 비서관실이 수시로 보고받는 게 당연하다”고 답했다. 새정치연합 이춘석 의원은 “청와대가 주도하는 일일 점검회의는 없었다고 했는데 TF 단장의 청와대 출입 기록을 공개하라”면서 “행정자치부가 전국의 반상회에 국정 교과서를 홍보하라고 공문을 내려보내지 않았느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 비서실장은 청와대 출입 기록 제출에 대해서는 “확인해 보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교문위 전체회의에서는 교육부의 교과서 TF 운영 논란이 좀 더 집중적으로 부각됐다. 새누리당은 TF가 늘어난 업무량을 소화하기 위해 가동된 정상적인 조직임을 강조했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TF 운영에 청와대가 관여했다고 주장했다. 새정치연합 설훈 의원이 황우여 교육부 장관을 향해 “공천 위협 때문에 대통령의 잘못을 말하지 못하는 구조”라며 사퇴를 촉구하자 즉각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이 “여당 의원들을 공천 때문에 대통령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파렴치한으로 몰고 간다”고 반발해 설전이 벌어졌다. 한편 국회 교문위원장인 무소속 박주선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행정부의 독주가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에게 그 뜻을 묻자”며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국민투표를 제안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합의 불발 2년 만에 처음…당분간 정국 급랭 불가피

    합의 불발 2년 만에 처음…당분간 정국 급랭 불가피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의 22일 청와대 5자 회동이 사실상 ‘빈손’으로 마무리됐다. 청와대와 야당이 회동에 앞서 대변인 배석과 모두발언 공개 여부를 놓고 막판까지 신경전을 벌인 데다 회동 후에는 공동 합의문 발표 없이 여·야·청의 ‘개별 브리핑’으로 대체한 것이 꽉 막힌 관계를 여실히 증명한다. 지금까지 5차례 이뤄진 박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 간 회동에서 단 한 줄의 합의 내용도 도출하지 못한 것은 2013년 9월 1차 회동 이후 처음이다. 특히 박 대통령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초점을 맞춘 국정 현안의 우선순위가 다른 데다 민생 과제에 대한 처방 측면에서도 시각차를 드러냈다. 청와대와 여당이 추진하고 야당이 반발하는 노동 개혁과 역사 교과서 국정화 등의 문제에서는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여·야·청이 새해 예산안과 경제활성화 법안,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등에 대한 ‘조속한 처리’라는 총론에는 공감하면서도 각론에서는 여전히 견해차가 커 난항이 우려된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국 주도권을 뺏길 수 없다는 여·야·청의 상황 인식도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정국 급랭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국정 운영 리더십,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중재적 리더십, 문 대표는 국정 파트너십 측면에서 각각 위기를 어떻게 넘을지 주목된다. 대국민 여론전이 불붙을 가능성도 높다. 당장 박 대통령은 오는 27일 정부의 새해 예산안과 관련해 국회 시정연설을 앞두고 있다. ‘여야 협조’를 당부하는 것 못지않게 ‘대국민 이해’를 구하는 데도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야도 정기국회 주도권을 놓고 대립각을 키워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변수는 ‘총선 시계’가 이날 회동을 계기로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여야 모두 여론의 향배, 더 구체적으로는 표심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5자 회동에 이은 여야 후속 협상이 주목받는 이유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靑·野 5자회동 ‘대변인 배석’ 심야 신경전

    청와대와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의 5자 회동을 하루 앞둔 21일 밤까지 대변인 배석 문제를 놓고 기싸움을 벌였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회동의 중요성을 감안해 대변인 배석을 요구했지만, 청와대는 깊이 있는 대화가 어렵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등 진통을 겪었다. 새정치연합 김성수 대변인은 이날 저녁 긴급 기자간담회를 갖고 “청와대가 ‘대변인 배석은 곤란하다’는 뜻을 전해 왔고, 우리는 ‘최종 통보니까 다시 검토해 달라’고 요구했다. 거부되면 회담 성사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이다. 노동개혁 법안과 경제활성화 법안 등 민생 현안의 국회 처리를 논의하려면 허심탄회한 대화가 필요하지만, 대변인이 배석하면 낱낱이 공개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박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의 3자 회동 당시 대변인이 배석했지만, 양쪽에서 각자 브리핑을 하면서 혼란스러운 상황이 연출된 경험도 청와대가 대변인 배석에 부정적인 원인으로 거론된다. 이와 관련,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당시 새누리당은 러프하게 설명한 반면, 우리는 세세하게 설명했고 나중에 컴플레인(불만)이 있었던 건 사실”이라면서 “정확하게 어느 선까지 설명할지 가이드라인을 정하면 될 일이지 배석조차 못 하게 하는 건 납득이 안 된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여야 원내대표가 결과를 발표할 것을 제안했지만, 새정치연합은 “원내대표는 회담 당사자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새누리당 김 대표는 10·28 군수 재선거가 치러지는 경남 고성군에서 최평호 후보 지지 유세에 힘을 쏟고, 원유철 원내대표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 집중하는 등 예정된 일정을 소화했다. 별도 전략을 숙의하지는 않았지만, 야당의 화력이 집중될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2013년부터 당내 ‘근현대사 연구교실’을 주도했던 김 대표가 앞장서 방어할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일전’을 벼르는 새정치연합은 전략 마련에 부산했다. 특히 박 대통령에게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팀플레이’를 가다듬는 데 공을 들였다. 회동 시간이 ‘90분+α’로 길지 않고, 그동안 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가 엇박자를 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와 더불어 민생 문제를 최대한 부각한다는 전략을 마련했다. 여권에서 ‘민생(청와대·여당) 대 이념(야당)’ 구도로 몰아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황우여 “과거 역사전공자 시위로 공부안해 교육 부실” 발언 논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라는 메가톤급 이슈를 안고 있는 교육부가 리더십 부재의 위기에 휘청거리고 있다. 한편 ‘사퇴 임박’ 얘기가 나오고 있는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0일 “과거 대학의 역사 전공 학생들이 시위 때문에 학업을 잘하지 않아 지금 역사 교육이 잘되지 않는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 전망이다. 황 부총리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사퇴가 임박한 가운데 김재춘 차관이 지난 19일 부분 개각에서 돌연 경질됐다. 경제학을 전공한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가 차관으로 임명됐지만, 황 부총리가 제대로 지도력을 보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높아지고 있다. 황 부총리 후임으로 거론되던 김 차관이 불과 8개월 만에 경질된 배경을 놓고 교육계에서는 차관 경질을 통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분위기를 살리려는 의도라는 설명이 지배적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차관을 경질해 황 부총리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지나치게 여당이 주도하는 교과서 국정화 추진 분위기도 바꿔 보자는 청와대의 의도가 깔려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계에서는 황 부총리가 앞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 거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집필진 구성을 완료하는 11월 말을 전후로 사퇴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게 교육계의 중론이다. 황 부총리가 내년 4월 총선에 출마하려면 내년 1월 14일 전까지 장관직을 그만둬야 한다. 황 부총리는 한국대학교교육협의회 이사회에 앞서 열린 간담회에서 대학 총장들에게 “사학과 학생들이 과거 거리로 많이 나와 대학도 역사 과목을 많이 신경 쓰지 않았고 이 때문에 역사 교육이 잘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대학 총장은 “황 부총리가 대학교수들이 집필 거부 선언을 이어가는 것에 대해 ‘국정교과서 집필진 구성이 나오지 않았고, 교과서를 집필할 것이냐고 (교수들에게)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계속 얘기가 나오니 힘들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황 부총리는 지난 18일 방송에서는 “국정보다 자유발행제가 더 낫다”고 말해 보수 진영에서조차 ‘황 부총리가 오락가락한다’는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교육계는 황 부총리의 후임으로 ‘거물급’의 박근혜 대통령 측근이 올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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