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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만혼/우득정 논설위원

    고교 동기회 총무가 보내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의 대부분은 부음 통보다. 그래서 그는 ‘저승사자’로 불린다. 그런데 며칠 전에는 결혼 통보 문자메시지가 왔다. 그것도 본인 결혼이다.50을 넘긴 신랑도 40대 중반인 신부도 초혼이란다. 30여년 전 대학시절 유난히 키가 작았던 그 친구의 모습이 떠오른다. 최루탄이 교정을 뒤덮던 날 그는 땀에 흠씬 젖은 채 캠퍼스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그리고 20여년 후 운동권 출신 선배는 그 친구가 아직도 노동운동 일선에서 맹활약 중이라고 소식을 전했다. 유신과 5공 초 경찰에 붙잡혔을 때 동료 대신 그 친구의 이름을 댔다며 미안해했다. 언젠가 그 친구가 장기 투숙 중인 여관에서 만났을 때 삶의 고단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결혼식에 앞서 미리 만나 축의금을 전했다는 고교 동기의 전언.“그 친구 요즘 몸이 자꾸 아픈가봐. 신부는 한때 현장에서 만났던 동료라나.” 부딪히고 깨어지면서도 부조리한 현실에 끊임없이 항거했던 그 친구가 이제라도 자그마한 행복을 맛봤으면 한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제주 숙박업소 공급 과잉

    제주도 펜션이 공급 과잉으로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23일 제주발전연구원의 ‘펜션업의 위기, 대응 방법은 없는가’라는 정책연구 자료에 따르면 제주도에는 펜션, 민박, 미등록 민박, 관광호텔 등 숙박업소의 객실수가 2만 6000∼2만 7000실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하루 관광객은 1만 4500명에 불과하고 평균 2인 이상 숙박형태와 수학여행이나 가족단위 관광객은 5∼10인 이상씩 객실을 동시에 사용하는 점에 미루어 이미 공급이 초과된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원은 숙박시설이 평균 70% 정도의 객실 판매율을 보이면 손익분기점을 넘긴다는 점에서 지금 당장 업체들이 한꺼번에 도산하지는 않겠지만 공급증가 추세를 감안하면 2∼3년내 숙박업체들이 잇따라 도산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세제나 규제 등 모든 면에서 사업이 수월한 민박의 지나친 공급을 막지 못한다면 숙박업으로 등록된 기존 관광호텔과 여관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민박들까지 ‘제살깎기’ 경쟁을 하게 돼 공멸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823개 업체(4029실)에 달하는 민박사업자는 농어촌정비법에 따라 사업자로 지정받아 영업을 하고 있으나 이들 중 상당수는 펜션이라는 간판을 사용하고 있다. 연구원은 민박을 주축으로 한 객실의 공급 과잉은 숙박업 전체의 경영압박 외에도 농촌지역의 환경훼손, 부당가격 및 부당행위에 따른 제주관광 이미지 실추 등의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난다고 밝혔다. 신동일 책임연구원은 “업체들이 성수기 때 높은 요금을 받아 비수기의 손실을 만회하고 있지만 펜션 등 숙박업소 공급이 계속 늘어나게 되면 이마저도 힘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돈 주고 몸도 준 자매의 살인 계획

    돈 주고 몸도 준 자매의 살인 계획

    가정 주부인 미모의 자매가 살인을 기도했다.『우릴 못살게 구는 저 빚장이 여자를 죽여 달라』고 자객을 샀다. 그러나 자객의 칼질이 빗나가 실패로 돌아가자 처음 약속했던 10만원 사례(?)에 웃전으로 몸까지 주어가며 두번째는 엽총으로 쏴죽이려 했으니…. 화장품 장사를 하던 어느「어글리·시스터즈」의 청부살인(미수) 사건의 끔찍한 행각기-. 지난 10월20일 밤8시30분쯤 대구시 봉덕동 734의 15 아담한 한식집 마루를 막 내려 서려던 이집 안주인 장윤자(張潤子·27)여인은 괴한으로 돌변한 방문객의「재크·나이프」에 가슴을 맞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괴한은 심장으로 짐작된 곳에 또 한번, 그리고 배를 또 한번 이렇게 연거푸 세번을 찌르고 대문밖에서 망보던 또 한명의 자객과 함께 후닥닥 도망쳤다. 눈깜작할 사이였다. 곧 이웃 사람들이 놀라 뛰어왔으나 남은 것이라고는 선혈이 낭자한 현장뿐…. 이로부터 2시간쯤 지났을까. 시내 동구 상동에 있는 신명자(申明子)여인집 안방에서는 저주받을 남녀 일당의 축배(?)가 벌어졌다. 장여인에게 1백10만원을 빚진 신명희(申明姬·27·대구시 대명동), 신명자(24) 자매와 살인을 청부맡았던 주국명(朱國明·23·하수인), 정훈재(鄭勳在·22·망보기)등 4명이었다. 10만원의 사례에서 일부 잔금은 이튿날 거사결과가 확인되고 나서 주고 받기로 하고 이들은 헤어졌다. 그런데 악인들에게는 불행하게도 장여인은 죽지 않았다. 한달 치료가량의 상처만 입은 것이다. 『!』-. 자매는 당황했다. 주·정 하수인을 곧 호출했다. 장담과는 달리 낭패가 된 결과에 주·정은 동성로일대의 D다방 S다방으로 사흘동안이나 신자매에게 불려다니면서 호된 꾸중을 들었다. 이미 공모자가 된 그들 처지로는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던 10월24일 밤8시쯤 N다방에서 신명희의 똑같은 성화를 또한번 당하고 있던 주는 문득『큰누부요, 이번엔 틀림 없을테니 총만 얻어주이소』하고 엉뚱한 제의를 했다. 뜻밖의 살인실패에 당황…이번엔 엽총 훔쳐줬으나 주의 속셈은 구하기 힘든 총을 핑계삼아 적당한 시기에 손을 뗄 심산이었다. 그러나 한동안 궁리에 잠겨만 있던 신은 주의 속셈과는 달리 새로운 조건을 선뜻 받아주었다. 그녀의 머리에는 시숙이 가지고 있는 엽총이 떠올랐던 것이다. 두자매가 장여인을 죽이기로 모의한 것은 하수인의 첫 범행이 있기 4일전인 10월16일의 일. D백화점에서 화장품상 2년만에 다털어먹고 빚만 1백10만원을 걸머지고 갚을 수 없게 되자 하수인을 사서 돈준 사람을 없애기로 합의한 것-. 이때 공동투자를 한 언니와 동생이 진 빚은 본전만해도 6백만원. 이 돈을 도저히 갚을 수 없게 된 언니 신명희는 그중 장여인의 돈을 떼어먹기 위한 수단으로 장여인의 남편 남모씨(31)에게『사랑한다』는 편지를 여러번 부치기도 하고 다방으로 불러내어 은근히 동침하기를 비쳐 유혹하곤 했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 오히려 남편에게 이 말을 전해들은 장여인의 빚독촉은 질투까지 곁들여 더욱 빗발치게 만든 결과만 냈다. 줄 돈은 없는데 유독 재촉이 불같은 장여인이 겁나 자매는 집에서 잠도 제대로 못자고 여인숙으로만 피해다닐만큼 궁지에 빠졌다. 그러다가 짜낸 것이 장여인만 없으면 친척들에게 진 빚 5백만원도 무난히 떼어먹고 배짱을 내밀 수 있다는 그녀들 나름의 살인하청 계산서-. 망설이는 하수인 못믿어 몸으로 마음잡아 두려고 하수인으로는 장사를 할 때 자연 얼굴을 익혔던 교동시장의 불량배 주와 정이 지목됐다. 그날(10월16일 하오2시)로 동생 신명자는 주등 2명을 대구역전 N다과「홀」에 불러 일금 10만원에 해치우기로 살인협상이 이뤄졌다. 국민학교도 제대로 못나온 주등은 일찍 소년원 신세를 지기도 했던 뜨내기 건달들. 감쪽같을 완전범죄의 기회만을 노렸다. 드디어 며칠 안가 장여인의 남편 남씨가 서울에 일보러간「찬스」가 왔다. D「데이」인 10월20일, 사건이 나기 바로 1시간전 두여인은 장여인집 근처 봉덕동 O약국 골목 어두운 길에서 선금3만원과 함께「재크·나이프」와 과도를 하수인에게 쥐어주었다. 그러나 일은 상처만내고 실패했다.악착같은 두자매는 그래도 집념을 못버렸다. N다방에서 주에게 약속한 엽총을 4일만인 10월28일 시내 서변동에 있는 그녀의 시숙집 어린애를 꾀어 빌어냈다. 그런데 엽총을 받아쥔 주의 표정은 어쩐지 굳어만 있었다. 『첫번째 일이 안되자 정(공범)이 장여인에게 귀뜀한 것같다』는 주의 말을 듣는 순간 그녀의 가슴은 덜컥 내려앉았다. 그의 말이 진짠지 가짠지를 가려내기 앞서 우선 주의 마음이라도 붙잡아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밤으로 그녀는 주를 수성유원지 뒷산까지 유인해 자기를「큰누나」로 불렀던 연하의 공범자에게 몸을 주면서 또하나의 살인까지 명령했다. 즉『정이 배신할 것같으니 일이 끝나는대로 그마저 없애면 돈을 더주겠다』고. 몸으로 하수인의 마음을 다짐하는 수차의 간통까지 해가며 끈질기게 기도해온 이 살인 음모가 약 50일만에 들통난 것은 문제의 엽총 때문이었다. 엽총 잡히던 하수인걸려 처음엔 입을 다물었으나 (장여인의 피해를 경찰은 엉뚱한 강도살인 미수로보고 수사를 폈기때문에 이 음모는 묻힐 수밖에 없었던 것-) 받았던 선금이 떨어져 용돈이 아쉬웠던 주·정은 지난 12월초 맡아둔 엽총을 시내 북성로1가 모총포사에 잡히고 1만1천원을 빈 것이 덜미를 잡히는 계기가 됐다. 주인은 엽총에 비해 어울리지 않는 두 젊은이를 경찰에 고발했다. 바로 주·정은 절도혐의로 구속됐으나 며칠동안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러던 어느날 정의 누님(모여관종업원)이 면회를 왔다. 이 자리에서 정은 신자매에게서 아무 연락이 없는가를 물었다. 뒷일은 보아줄 것으로 믿었던 정은 배신의 분노를 느끼자 모든 전말을 털어놓고 말았다. 그때까지 시내 태평로 일대의 여인숙을 전전해 숨어다니던 미모의 악녀 자매의 손목에 마침내 쇠고랑은 채워졌다. 『남편을 도와 살림을 꾸리려던 것이 이 꼴이 됐다』고 두여인은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있는대로 털어먹고 호사를 했는지 몰라도 6백만원의 빚을 진 가정치고는 두집 모두 해놓은게 아무것도 없었다』는 수사관들의 뒷이야기. 가정주부인 두자매가 꾸민 이 엄청난 음모를 뒤늦게나마 눈치챘던 남편들은 그들이 붙잡히기 얼마전 먼저 이혼을 해버렸다. [선데이서울 70년 12월 27일호 제3권 52호 통권 제 117호]
  • 백가흠 소설집 조대리의 트렁크

    백가흠(33)의 트렁크 속에는 비루한 인생들이 들어 있다. 그러나 그의 두번째 소설집 ‘조대리의 트렁크’(창비)는 전작 ‘귀뚜라미가 온다’의 위악적인 시선을 거둬들였다.“전작에서는 갈등에 대한 화해와 해소의 소통구를 막아놨지만 이번에는 화해의 제스처를 마련해뒀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광어’로 등단해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으로 인간 비극을 그려온 백가흠. 그의 이번 9편의 단편들은 충격적인 사건 기사를 떠올리게 한다. 웰컴 모텔에 기숙하는 어린 부부는 여관에 아이를 유기하고 달아난다.(‘웰컴, 베이비’) ‘웰컴, 마미’의 진숙씨는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고 인터넷에 광고를 낸다.‘백일 안 된 갓난아기 구함’. 미순은 어린 아이를 혼자 집에 방치하고 아이는 부패된 채 발견된다. 백가흠은 사회면 기사를 꼼꼼하게 읽는다. 그리고 사회문제에 바늘을 뚫어 개개인의 일상을 세심하게 꿰어낸다. 작가가 보는 사회는 이중적인 사회다. “제 소설은 위악적이지만 서정적인 부분을 고려합니다. 우리 사회는 도덕적·윤리적인 것을 앞에 내세우면서도 반이성적이고 반윤리적인 이면들이 많이 드러나 있어요. 그 병폐의 대표는 폭력이고 그 가해자와 피해자가 누구인가라는 게 저의 고민입니다.” 그래서 택한 게 노인과 아이다. 사회의 폭력에 노출되고 방임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매일 기다려’는 노숙자 노인과 소녀의 동거를 그렸다. 노숙자 노인은 비행으로 치닫는 소녀에게 조건없이 베푼다. 기묘한 가족이지만 아이가 있어 삶이 평온해짐에 감사한다. ‘조대리의 트렁크’의 조대리는 노모와 단 둘이 살며 그의 대소변을 받아낸다. 어느날 대리운전을 하다 만난 고교동창 장영수는 트렁크에 짐을 넣고 저수지로 가달라고 한다. 장영수가 떠난 뒤 다시 저수지로 향한 조대리는 장영수의 병든 노모를 발견한다. 그는 그녀를 업고 집으로 뛴다. 이들은 백가흠의 소설이 패악의 끝으로 떨어지지 않는 이유다. 소설 속 인물들은 어찌 보면 명백한 가해자이고 피해자이지만 작가는 누구를 감싸거나 밀어내지 않는다. 피사체에서 멀어지면 인물뿐 아니라 상황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백가흠의 소설은 속을 불편하게 한다. 그러나 사건의 표피에만 잠시 분노하는 현대인의 얄팍함을 간파한 그는 고통의 심부를 고집스럽게 파고들며 묻는다. 너무 쉽게 잊고 사는 거 아니냐고.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김남일 소설집 산을 내려가는 법

    김남일 소설집 산을 내려가는 법

    소설가 김남일(51)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 흩어지는 사북(강원도 정선군) 하늘이 투명했다. 탄재 날아 온통 새카맣던 탄광도시 사북에 더 이상 잿빛은 없었다. 사북은 카지노 강원랜드로 환했다. 러브호텔과 전당포, 안마시술소로 휘황했다.‘사북장 여관’ 낡은 간판은 러브호텔 네온사인 숲에 묻혔다. 사북을 배경으로 소설을 썼을 때, 김남일은 절망의 끝에 서 있었다.19일 사북에서 만난 김남일은 잠시 어지러운 듯했다.“사북 같지가 않네요.” 2004년 10월 동원탄좌가 폐광됐다. 한국 최대 민영탄광이, 사북항쟁의 현장이 역사 저편으로 사라졌다.3년이 흘렀다. 갑방(오전 8시∼오후 4시) 근무시간에도, 을방(오후 4시∼밤 12시)·병방(밤 12시∼오전 8시) 근무시간에도, 광부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입갱과 퇴갱을 알리던 타종 소리가 그쳤고, 인차 광차는 레일마저 걷혔다. 선탄장은 철거됐고, 화절령 운탄(運炭)길은 산악 레포츠 트레킹코스가 됐다.‘육오공’(해발 650고지) ‘수갱탑’(막장으로 내려가는 수직갱도)만 홀로 남아 외로웠고,‘칠이공’(720고지) 강원랜드는 밤마다 ‘형광등 괴물’처럼 발광(發光)했다. 사북 아이들이 물 색깔을 까맣게 칠했던 지장천이 맑아졌고, 광부의 ‘밥’이고 ‘삶의 끈’이던 ‘오염물질’ 탄재가 없어졌다. 쾌적해진 사북의 ‘안경다리’(사북항쟁 당시 경찰과 광부들의 대치선이던 쌍굴다리)를 오르내리는 건 ‘한 판 벌이러 온’ 외지인들의 고급 승용차뿐이다. 압축 자본주의의 영광을 떠받친 이면의 속살, 사북의 탄재 걷힌 맑은 하늘 햇빛 줄기가 칼날같이 아프다. ●르포형 ‘사북장 시리즈’ 김남일이 사북에 처음 발을 디딘 건 사북항쟁을 거친 1980년대 중반이었다. 청탁 받은 르포 원고를 쓰기 위해서였다. 최근 10년 만에 낸 소설집(‘산을 내려가는 법’, 실천문학사)에 실린 단편 ‘사북장 여관’에서, 그는 당시를 이렇게 적었다. “나이 들어 진폐가 드러난 갱부는 막장 안보다 나을 게 없는 판잣집 한쪽 골방에서 하루종일 밭은 기침을 토해냈고, 아직 병들지 않은 젊은 갱부는 밤마다 막소주에 삼겹살로 목에 낀 탄가루를 씻어냈다.(…) 그때도 사북에는 오직 생의 남루만이 있었다. 타지에서 들어온 활동가들은 그 생의 남루를 벗겨내려고 나름대로 애를 썼지만 결과는 늘 허망했다.” 사북의 남루함을 인식할 때마다 자신의 남루함까지 확인해야 했던 소설가.2003년 다시 밟은 사북에서 그의 마음은 이미 폐허였다. 동원탄좌 폐광을 목전에 두고 가쁜 숨을 몰아쉬던 사북처럼, 김남일도 헉헉대며 죽음 같은 글을 썼다. 그 자신 ‘사북장 시리즈’라 표현하는 ‘사북장 여관’,‘산을 내려가는 법’,‘노을을 위하여’ 세 편의 단편이다. ●사랑과 희망을 잃고 쓰다 그 무렵, 김남일은 사랑과 희망을 한꺼번에 잃었다. 마흔 넘어 찾아온 목숨 같은 사랑을 잃었고,80년대 이후 자신을 지탱해온 희망을 잃었다. 사랑의 고통이 너무 커 지리산에 틀어박혀 ‘산짐승’처럼 살았고,‘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고 길을 찾을 수 있었던 시대’가 지나자 과거 노동·민중문학의 기수는 시대의 무기였던 문학을 내려놓고 절망했다.“늘 자살을 생각하며 살았던 시절, 그때야말로 내 삶의 바닥을 본 것 같다.”고 김남일은 회고했다.‘사북장 시리즈’는 그의 이전 소설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절망, 환멸, 자기비판이 총체화된 작품이다.“나 자신을 ‘단기적 낙관주의자’이자 ‘장기적 비관주의자’라고 생각해왔는데, 희망을 갖게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배신감으로 죽을 것 같았다.”고 그는 말했다. 소설 속엔 작가 자신의 개인사가 꾸며지지 않은 채 섞여 들었다. 그는 “나는 작가와 작품이 너무 밀접한 사람”이라 했고,“그건 소설가로서 치명타”라고 자평했다.“네 소설은 너무 착하다.”는 선배 문인의 이야기가 치욕스러웠지만, 그는 가장 아팠을 때 자신의 이야기를 쓰며 울었고 스스로를 치유했다. 그래서다.‘사북장 여관’은 그가 이번 소설집에서 가장 애착을 갖는 단편이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 난 한 번도 즐겁게 글을 쓴 적이 없었어요. 시대와 대결하는 의무감으로 문학을 했으니까요. 반면 ‘사북장 여관’은 철저하게 나 자신에게 몰입한 글입니다. 내 문학의 일대 전환점이 됐습니다. 나 자신이 더 깊어진 것 같아요.” ●절망 속에서 읽는 역설적 희망 처절하게 절망하며 쓴 ‘사북장 시리즈’에서 역설적인 희망을 읽게 되는 것도 그가 가장 밑바닥의 고통, 더 떨어질 곳 없어 위를 쳐다볼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갔기 때문일 것이다. “아파트 신축단지 곁 도로를 따라가던 내 눈길은 마침내 주변의 어둠보다도 더 까만 터널 입구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게 길이었다. 유일한.”(‘사북장 여관’ 마지막 문장) 희망이나 희망인지 알 수 없을 만큼의 희망, 희망이어서가 아니라 다른 길이 없기에 희망이라고 믿고 싶은, 그런 희망이다. “앞이 안 보이고 깜깜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그래서 가지 않을 수 없는 길…. 인생이란 그런 것 아닐까요? 그게 최소한의 희망 아닐까요?” 표제작 ‘산을 내려가는 법’이 말하는 바도 동일하다. 희망을 찾으려 안간힘 쓰며 오른 산꼭대기에서조차 희망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 절망 같은 일상 속으로 내려가는 법을 소설은 상징한다.“힘들어도 잘 내려가자, 현실이 환멸스러워도 너무 좌절하지 말자.”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김남일은 설명했다. 연대가 사라진 시대, 팔레스타인 작가들과의 작은 연대를 그린 소설 ‘노을을 위하여’의 주제이기도 하다. 사북에서도 노을은 아름답다.‘산업전사’란 칭송이 사탕발림임을 알았을 때 가슴에 남은 유일한 훈장이 숨구멍 조이는 진폐증뿐이었던 ‘과거 광부들’.‘탄광도시 사북’의 주인이었으나 ‘카지노도시 사북’에선 강원랜드 진입로 청소를 하며 밥을 벌어야 하는 광부들.2억 년은 지나야 만들어지는 석탄을 캐다 불과 수 년의 카지노 불빛에 밀려난 광부들…. 오늘도 그들은 타박타박 노을 속을 걸어간다. 노을이 질 무렵 사북에서, 김남일은 말했다.“기억이 때론 징그러워요. 나이가 든 지금도 젊었을 때 본 사북을 잊지 못해요. 변해가는 나 자신과 변해가는 사북이 슬프지만, 그렇다고 부정할 수만은 없어요. 어쨌든 살아가야 하니까요.” 정선 글 사진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올림픽을 위해” 튜브로 43일간 양쯔강 여행

    최근 한 중국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2008 베이징 올림픽’ 이색 홍보에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중국 런민르바오(人民日報)와 충칭천바오(重庆晨报) 등 주요매체는 지난 14일 “튜브 하나에 의지한 채 43일간 양쯔강(揚子江, 중국의 중심부를 흐르는 아시아의 가장 큰 강)을 여행하는 사람이 있다.”고 전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올해 41세인 청옌화(程彦华)씨. 청씨는 직경 1m의 고무튜브와 두개의 대나무 노에 의지한 채 43일간 양쯔강을 여행하고 있다. 그가 이같은 무모한 도전을 나선 이유는 오직 하나 2008 베이징 올림픽을 홍보하기 위해서이다. 청씨는 지난달 1일 충칭(重庆)에서 시작해 양쯔강을 타고 지난 12일 상하이(上海)에 도착할때까지 총 7개의 성(省)과 40개의 도시를 거쳤다. 그 거리는 자그마치 2200Km. 청씨는 “강을 타고 흘러가다 밤이 되면 강변의 작은 여관에서 쉬거나 끼니를 해결했다.”며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강변에 묶여있는 빈 배에서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 “우려와는 달리 양쯔강의 물살이 그다지 세지 않아 안전에 큰 부담이 없었다. 심지어 낚시를 하며 낮시간을 보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올림픽 홍보를 위한 그의 이색 튜브여행은 중국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 스포츠학 전문가는 “일반 수영선수들도 그렇게 장기간 물 위에 떠 다니는 것은 체력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 한 시민도 “43일동안 쉬지않고 양쯔강을 여행했다는 증거가 없다.” 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이에 대해 청씨는 “43일동안 한결같이 응원해준 양쯔강 유역 시민들이 모두 증인”이라며 일축했다. 상하이 푸단(复旦)대학 위하이(于海)교수는 “올림픽 정신을 홍보하기 위한 그의 생각은 가상하지만 너무 과한 방법을 택했다.”며 “청소년들이 이 같은 행위를 모방하지 않도록 주의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노대통령 전용차로 평양 간다

    노대통령 전용차로 평양 간다

    남북은 오는 28일 평양에서 열리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과 관련,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남측 대표단이 승용차를 이용, 경의선 도로를 통해 방북하기로 합의했다. 남북은 14일 개성 자남산여관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첫 준비접촉에서 두 차례 회담을 갖고 이같이 합의했다. 우리측 수석대표인 이관세 통일부 차관은 최승철 통일전선부 부부장 등 북측 대표단과의 회의를 마친 뒤 “남측 대표단의 평양 방문과 회담 후 서울 귀환 때 경의선 도로를 이용하기로 했다.”면서 “경의선 도로로 개성까지 간 뒤 개성∼평양간 고속도로를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차관은 “노 대통령은 서울에서 전용차량을 이용, 방북하게 되며 행사기간 내내 이를 사용하게 된다.”면서 “경호차량 1대도 수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 내외와 함께 방북할 대표단 규모는 수행원 150명, 기자단 50명 등 모두 200명으로 정했다. 또 선발대 30명을 구성, 오는 21일 북한에 파견하기로 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재미보다 숨진 사흘과부

    재미보다 숨진 사흘과부

    남편 죽은지 3일만에 재미보려던 과부가 갑자기 죽어 변사체로 변했다. 최(崔)모여인 (40·정읍(井邑)군 소성면)은 7일밤 11시 30분께 전주(全州)시 고사(高士)동소재 모여관에서 같은 동네에 사는 조(趙)모씨(40·토건업)와 동침, 한참 기분을 내려는 판인데 갑자기 두통이 나 몸부림하다가 도립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도착하기 전에 숨졌다는 것. 조씨에 의하면 우연히 「버스」속에서 만나 얘기를 건네고 다방에서 극장으로, 극장에서 음식점으로 급속히 진전, 결국은 배짱이 맞아 여관으로 직행했다고. 사인규명에 나선 경찰 가로되, 『남자도 나쁘지만 남편 죽은지 3일만에 그짓을 하려고 들었으니 천벌을 받은 것』이라고 개탄. <전주> [선데이서울 70년 12월 20일호 제3권 52호 통권 제 116호]
  • 순경에 알몸공세

    순경에 알몸공세

    박(朴)모(31)라는 여인이 인천(仁川)시내 모 파출소에서 「팬티」까지 홀랑 벗고 「스트립·쇼」를 벌여 경찰관들을 즐겁게(?) 해주었것다. 박여인은 지난 2일 새벽 1시께, 인천시내 동구 화평동 73 골목길에서 길가는 행인 서(徐)모씨를 붙들고 여관에 가자고 통사정. 윤락행위인 것을 눈치챈 서씨가 못가겠다 옥신각신하는 사이 순찰경관에게 적발되어 파출소까지 연행되었는데. 파출소안에 끌려온 박여인은 갑자기 옷을 모조리 벗고, 마지막 「팬티」까지 끌어내려 야근으로 충혈된 경찰관들의 눈동자를 더욱 몽롱하게 만들었다는 것. 「쇼」 한번 좋았군. <인천> [선데이서울 70년 12월 13일호 제3권 51호 통권 제 115호]
  • 드러난 구직(求職) 아가씨 매매(賣買) 비밀조직(組織)

    드러난 구직(求職) 아가씨 매매(賣買) 비밀조직(組織)

    「여공모집」「타이피스트모집」등의 구인광고를 낸 뒤, 일자리를 구하려는 여대생, 또는 가출소녀 3백40여명을 「호텔」, 여관등에 팔아 매음행위를 시켜오던 3개 악질범죄단체가 검찰에 적발되었다. 검찰서 밝힌바로는 서울시내에 이런 범죄단체 30여개가 있어 일자리를 구하려는 소녀들을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다고. 서울시내에 30여개소나 감금해놓고 매음을 강요 서울지검 강력부 황공렬(黃公烈)부장검사는 지난달 30일, 구인광고를 내어 찾아온 처녀들을 창가에 팔아온 명재천(明在千·27·주거부정), 안경애(安京愛·38·서울 중구회현동1가 113), 차원복(車元福·29·주거부정)등 5명을 직업안정법위반, 매음행위단속법위반등 혐의로 구속했다. 이에 앞서 29일에는 역시 같은 방법으로 일자리를 찾아온 처녀들을 창가에 넘긴 조갑주(曺甲州·25·서울중구 충무로3가 131), 윤영운(尹英雲·33·서울중구 회현동1가 125), 또 모여관 지배인 장병곤(張炳坤·44·서울종로구 서린동114의1)등 3명을 같은 혐의로 구속했다. 한편 서울지검 강력부의 서동권(徐東權)검사도 70여명의 처녀를 같은 방법으로 꾀어 주로 미군기지촌에 팔아오던 주거부정의 정찬모(27), 김진자(36·경기도파주군), 김연자(29)등 3명을 영리유인, 매음행위단속법위반, 직업안정법위반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매일 신문광고난에 홍수처럼 쏟아져나오는 구인광고. 바람난 시골처녀,「아르바이트」일자리를 구하는 여대생들의 구미를 돋우기 위해『초봉7만원』『침식제공』등 달콤한 미끼를 아끼지 않는다. 이번 8명의 악질 인신매매업자를 적발한 황부장검사는 연말을 기해 신문 광고난을 이용한 처녀 매매업자에 대한 일제단속을 계속 벌이는 한편 순진한 구직아가씨들이 속아 넘어가지 않게 하기위해「매스콤」을 이용, 계몽에 나섰다. 검찰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신문 구인광고난을 이용하여 처녀를 모집한뒤 한집에 5~10여명씩 감금해 놓고「호텔」여관손님에게 매음행위를 시키거나 기지촌「바」등에 팔고 사는 조직이 서울 시내에 30여개 처나 있을 뿐 아니라 악의 소굴에 빠져 밤이면「호텔」문을 두드려야 하는 밤의 꽃이 무려 5백여명이나 된다고. 일본인 사장이라는 자가 여관에서 주민증 뺏더니 쇠고랑을 차고 황부장검사 앞에서 조사를 받던 안경애 여인과 윤영운 여인은『서울시내 각여관에서 아가씨를 보내달라는 전화가 밤새도록 걸려온다』고 성업(?)을 자랑했다. 피해자 진술을 하기 위해 검사실에 온 김현숙(金賢淑 가명·20)양은 D여대 2년을 중퇴한 평범한 얼굴의 아가씨. 바로 이 아가씨의 신고로 이들 범죄조직은 그 꼬리가 잡혔다. 박봉으로 생활을 이끌어오던 아버지가 폐결핵으로 자리에 눕게되자 지난 2학기 등록을 못하고 9월부터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타이프」학원엘 다녔다. 「좋은 일자리가 없을까」하는 막연한 기대로 매일 조석간 광고난을 빼놓지 않고 보던 어느날 아침-『「타이피스트」모집 월수6만원』이란 구인광고가 김양의 눈에 띄었다. 보던 신문을 든채 뛰어나간 김양은 집앞 약방에서 연락장소인 (23)XX34의「다이얼」을 돌렸다. 『여보세요, 거기서「타이피스트」구합니까?』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40대남자의 목소리가 친절하게 대답했다. 『아침 10시 XX극장 앞 공중전화에 와서 다시 전화해 주십시오』 약속된 시간에 지정된 극장앞 공중전화「복스」에서 연락처로 전화를 했다. 『곧 나가겠다. 손에 신문지를 말아들었다』고 먼저의 40대 남자가 말했다. 깨끗이 차려입은 그 신사를 따라 남산밑 어느 여관까지 갈 때 그가 독사의 이빨을 가진 인신매매업자란 사실을 알아차리기엔 김양의 나이와 세상경험이 너무 어렸다. 여관 2층방에 김양을 안내한 그 신사는 신원을 확인해볼 터이니 주민등록증을 맡기라고 요구, 김양이 내어주니까『기다리고 있으라』고 명령조로 말하며 방을 나갔다. 하오 3시쯤, 문을 두드리기에 열었더니 여관에서 일하는 16살쯤 돼 보이는 사내아이가『아가씨를 채용할 일본 사장님이 무척 바빠 만나 보려면 저녁 8시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글거리며 말하고 내려갔다. 저녁 7시40분쯤 40대의 한신사가 나타나 일본인 사장이 아가씨를 쓰기로 했다며 만나러 가자고 서둘렀다. 여관앞에는 까만「세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E「호텔」502호로 안내받은 김양은 얼굴에 기름기가 흐르는 50대 일본인과 처음 먹어보는 양식에 맥주 몇잔까지 억지로 마셨다. 20년간 고이 간직한 처녀를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에게 빼앗기기 직전 위기를 모면한 김양은 도망쳐나와 경찰파출소에 신고를 했다. 시골서 올라왔다 기지촌에 팔려가기도 악질 인신매매업자들은 신문광고 외에 서울역 부근 골목길이나 시외「버스」정류장에 구인벽보를 붙여 상품(?)을 낚기도 한다. 고향이 전남 보성인 성정숙(成貞淑 가명·18)양은 지난달 16일 서울에 있는 외삼촌 집을 찾아왔다가 집을 못찾고 다시 내려가기 위해 서울역앞 G고속「버스」정류장에 갔다가 전신주에 붙어있는『여공모집 침식제공』이란 구인광고를 보고 약도에 그려진 사무실을 찾아갔다. 사장님으로 불리는 중년부인과의 간단한 면접을 끝낸뒤 남자직원과 같이 낡은「지프」에 올랐다. 차가 번화한 시내를 벗어나 시골길에 다다랐을 때 남자직원이『아가씨는 시골공장에서 일하기로 결정되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순진한 시골처녀가 일선지구 미군기지촌이 어떤 곳이란 것을 알리 없었다. 성양이 팔려간 곳은 경기도파주군 미군기지촌에 있는 어느 미군「클럽」. 매음행위를 강요하는「클럽」여주인의 등쌀에 못이겨 팔려간 다음날 흑인 미군병사에게 처음으로 처녀의 몸을 더렵혔다. 울며 집에 보내달라는 성양에게 주인여자는『너를 3만원에 샀으니 3만원 벌어놓고 가라』고 말했다. 다행히 고향 오빠 친구를 만난 성양은 악의 소굴에서 구출되어 고향으로 내려 갔다. 이 오빠친구의 신고로 검찰에 덜미를 잡힌 것이 바로 정찬모, 김진자등 일당 3명. 서울시내 여관에서 공공연히 불러주는 밤의 여인들이 대부분 이런 경로를 밟아 몸을 짓밟힌 아가씨들. 검찰의 일제단속이 이들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내야겠지만 우선 아가씨들은 구인광고를 조심할일이다. <金 建 기자> [선데이서울 70년 12월 13일호 제3권 51호 통권 제 115호]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2) 조선의 운명을 바꾼 역관 홍순언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2) 조선의 운명을 바꾼 역관 홍순언

    문관인 정사(正使)는 공식적인 국서를 전달하고 답서를 받으면 그만이지만, 역관은 배후에서 절충하는 일을 맡았다. 절충하는 과정에는 유창한 외국어가 기본이었지만, 때로는 금품도 오가고, 여러 해 동안 오가며 맺어둔 인맥도 중요했다. 사신들은 일생에 한 두번 가기 때문에 인맥을 쌓을 기회가 없었지만, 역관들은 대여섯 번, 이상적이나 오경석 같은 역관들은 열 번이 넘게 파견되었으므로 각계에 인맥이 형성되었고, 제자들에게 그 인맥을 소개했다. 인맥을 통해 조선과 중국 사이의 외교 현안을 해결한 역관으로는 홍순언(洪純彦)이 가장 유명하다. ●공금 털어 구한 여인이 明 예부시랑의 후처로 홍순언은 젊었을 때에 뜻이 컸고 의기가 있었다. 한번은 북경으로 가는 길에 통주에 이르러, 밤에 청루에서 놀았다. 자태가 특별히 아름다운 한 여자를 보고 마음속으로 기뻐하여, 주인할미에게 부탁하여 한번 놀아보자고 청하였다. 순언이 그 여자의 옷이 흰 것을 보고 그 까닭을 묻자,“첩의 부모는 본래 절강 사람인데, 서울에서 벼슬하다 불행히 염병에 걸려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나그네 길이라 관(棺)이 여관집에 있지만 첩 한몸뿐이라 고향으로 옮겨 장사지낼 돈이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제 몸을 팔게 되었습니다.”라고 말을 마치고는 목메어 울며 눈물을 떨어뜨렸다. 순언이 불쌍히 여겨 장사지낼 비용을 물으니,“삼백금이면 됩니다.”라고 하였다. 곧 돈자루를 다 털어 주었지만, 끝내 그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여자가 순언의 이름을 물었는데도 이름을 말해주지 않자,“대인께서 성명을 말씀해 주지 않으신다면 첩도 또한 주시는 것을 감히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홍씨라는) 성만 말해 주고 나왔다. 동행 가운데 물정 모르는 짓이라고 비웃지 않는 자가 없었다. 여자는 나중에 예부시랑 석성(石星)의 후처가 되었다. 석성은 순언의 의로움을 높이 여겨, 우리나라 사신을 볼 적마다 반드시 홍역관이 왔는지 물었다. 순언은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공금의 빚을 갚지 못한 것 때문에 잡혀서, 여러 해 동안 옥에 갇혀 있었다. 이때 우리나라에서 종계변무(宗系辨誣) 때문에 전후 열댓 명의 사신이 중국에 다녀왔지만, 아무도 허락받지 못했다. 임금이 노하여 교지를 내렸다. “이것은 역관의 죄이다. 이번에 가서도 또 허락받지 못하고 돌아온다면, 수석 역관 한 사람을 반드시 목 베겠다.” 역관 가운데 감히 가기를 원하는 자가 없자, 역관들이 서로 의논했다.“홍순언은 살아서 옥문 밖으로 나올 희망이 없다. 그가 빚진 돈을 우리들이 갚아 주고 풀려나오게 하여 그를 중국으로 보내는 게 좋겠다. 그는 비록 죽는다 해도 한스러울 게 없겠지.” 모두들 가서 그 뜻을 알리자, 순언도 기꺼이 허락했다. 선조 갑신년(1584)에 순언이 황정욱을 따라서 북경에 이르러 바라보니, 조양문 밖에 비단 장막이 구름처럼 펼쳐 있었다. 한 기병이 쏜살같이 달려와서 홍판사가 누구시냐고 물었다.“예부의 석시랑이 공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부인과 함께 마중 나왔습니다.” 조금 뒤에 보니 계집종 열댓 명이 부인을 에워싸고 장막 안에서 나왔다. 순언이 몹시 놀라 물러서려고 하자, 석성이 말했다.“당신이 통주에서 은혜 베푼 것을 기억하십니까? 내 아내의 말을 들으니 당신은 참으로 천하에 의로운 선비입니다.” 부인이 무릎을 꿇고 절하기에 순언이 굳이 사양하자, 석성이 “이것은 보은(報恩)의 절이니, 당신이 받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였다. 그러고는 크게 잔치를 베풀었다. “조선 사신이 이번에 온 것은 무슨 일 때문입니까?” 하고 석성이 물었다. 순언이 사실대로 대답하자 “당신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했다. 객관에 머문 지 한 달 남짓한 동안에 과연 조선 정부가 청한 대로 허락되었다. 석성이 주선한 것이다. 순언이 돌아올 때에 부인이 자개상자 열 개에 각각 비단 열 필을 담아 주며,“이것을 첩의 손으로 짜 가지고 공께서 오시길 기다렸습니다.”라고 말했다. 순언이 사양하며 받지 않고 돌아왔지만, 깃대를 든 자가 압록강까지 와서 그 비단을 놓고 갔다. 비단 끝에는 모두 ‘보은(報恩)’ 두 글자가 수놓여 있었다. 순언이 돌아오자 나라에서는 광국공신(光國功臣) 2등에 기록하고 당릉군(唐陵君)에 봉하였다. 사람들은 그가 사는 동리를 보은단동(報恩緞洞)이라 하였다. 그의 손자 효손(孝孫)은 숙천부사가 되었다. ●조선 왕실의 계보를 바로잡다 정명기 교수의 조사에 의하면, 홍순언의 이야기는 39가지 책에 조금씩 다르게 전한다. 그 가운데 서사구조가 분명한 ‘국당배어’‘연려실기술’의 기록을 위에 소개했다. 홍순언의 이야기 가운데 왕조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종계변무를 해결했다는 점이다. 공민왕이 피살되자 이인임이 나이 어린 우왕을 세웠는데, 명나라 사신 채빈이 본국에 돌아가 공민왕 피살사건을 보고하면 재상인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올까 염려하여 중도에 살해하였다. 정도전·권근·이첨 등의 친명파를 몰아내고 권력을 누렸지만, 이성계가 최영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유배보냈다. 이성계의 정적인 윤이와 이초가 명나라로 망명해 ‘이성계가 친원파 권신 이인임의 후사(後嗣)’라고 모함했다. 명나라는 이 말을 그대로 믿고 ‘태조실록’과 ‘대명회전(大明會典)’에 기록했다. 이성계가 정적 이인임의 후사라고 기록된 것은 조선 왕실의 가장 큰 모욕이었으므로, 태조뿐만 아니라 대대로 사신을 보내 바로잡으려 했다. 그러나 명나라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수정해 주지 않았으므로 가장 큰 외교 현안으로 남아 있었다.1584년에 황정욱이 ‘대명회전’ 수정판의 조선관계 기록 등본을 가져오면서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종계변무’라는 용어는 ‘왕실의 계보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홍순언은 조선 왕실이 종계변무를 본격적으로 해결할 준비를 하면서 역사에 정면으로 등장했다. 선조실록 5년(1572) 9월11일 기사에 “주상이 중국 사신을 접견할 때에 종계(宗系)의 악명(惡名)을 바로잡는 일에 관해 먼저 대략 말하고, 이어 단자(單子)로써 자세히 기록해 주는 것이 합당하다고 했다. 통사 홍순언 등을 시켜 한어(漢語)로 번역해 단자를 만들어 예조에 주어 아뢰도록 했다.”고 했다. 국서는 한문으로 된 문어체라서 친근감이 없었지만, 단자는 구어체였으므로 간절한 마음이 전달될 수 있었다. 그러나 종계변무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12년 뒤인 선조 17년 11월1일 실록에서야 “종계 및 악명 변무주청사 황정욱과 서장관 한응인 등이 칙서를 받아가지고 돌아왔다.”고 했다. 선조는 그 사실을 종묘에 고한 뒤 죄수들을 사면했으며,“정욱과 응인 및 상통사 홍순언 등에게 가자(加資)하고, 노비와 전택(田宅), 잡물을 차등 있게 하사했다.” 종계변무에 공을 세운 신하들을 광국공신(光國功臣)에 봉했는데, 홍순언에게 2등 당릉부원군을 봉했다.19명 가운데 실무자급인 역관은 홍순언 한 사람만 포함되었다. ●39가지 야담과 소설로 전하는 홍순언 이야기 당릉군에 봉군된 홍순언은 왕궁을 지키는 종2품 우림위장(羽林衛將)까지 승진했는데, 사간원에서 두어 차례 탄핵하였다.“출신이 한미한 서얼이라서 남에게 천대받는다.”는게 이유였는데, 선조는 그가 공신으로 가선대부까지 받았으니 결격사유가 없다고 옹호했다. 역관 홍순언의 능력은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다시 발휘되었다. 명나라에 원군을 청하러 사신이 가며 그도 따라갔고, 선조와 고관들은 그에게서 반가운 소식이 오기만 기다렸다. 명나라 장수 이여송은 그를 믿고 조선 정세를 파악했으며, 선조가 이여송을 만날 때에도 그가 통역했다. 석성이 과연 홍순언이 구해준 여자와 혼인한 덕분에 조선에 원군을 보냈는지, 역사 자료만 가지고 확인할 수는 없다. 야담이나 야사에서는 여인이 몸을 팔게 된 이유도 달리 나오고, 석성의 벼슬도 달라지며, 그가 해결해 준 현안도 달라진다. ‘청구야담’에는 홍순언이 병술·정해년(1586∼1587) 사이에 북경에 갔다가 청루 문 위에 “은 천 냥이 없으면 들어오지 못한다.”고 쓴 것을 보고는 중국 탕아들도 값이 비싸서 들어갈 생각을 못하는데, 그는 “부르는 값이 그만큼 비싸다면 반드시 뛰어난 미인인 것”이라 생각하고 수천냥을 털어 그 여자를 샀다고 한다. 이미 종계변무가 해결된 뒤이니, 이 책에서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에 원군 요청의 임무를 띠고 홍순언이 파견되었으며, 병부상서 석성이 해결해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종계변무는 외교적 사안이니 예부에서 담당하고, 원군 파견은 군사적 사안이나 병부에서 담당한다. 석성의 벼슬은 그에 따라 달라진다. 홍순언은 공금을 횡령해 청루의 여자를 산 협객인데, 결과적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 그의 이야기에 살이 덧붙어 야담과 소설이 39종이나 되고, 박치복이라는 시인은 5언 264구의 장편서사시 ‘보은금(報恩錦)’을 지었다. ●곤담골에 천인 백정교회가 들어서다 그가 살던 동네에는 지금 롯데호텔이 서 있고, 그 앞에 ‘고운담골’ 표지석이 있다.‘보은(報恩)’ 두 글자가 수놓인 비단을 기념해 동네 이름이 보은단골인데, 고운담골, 곤담골로 바뀌었다. 고운담골을 한자로 쓰면 미장동(美牆洞)이다. 임진왜란이 300년 지난 1892년에 무어 선교사가 조선에 왔다가 조선어를 익히기도 전에 곤담골에 이사하여 교회를 시작했다. 그는 조선인을 야만시하던 권위적 선교사와 달라 인목(仁牧)으로 불렸는데, 백정까지도 교회에 나오게 하여 곤담골 ‘백정교회’라는 이름을 얻었다. 서얼 출신 역관이라 천대받던 홍순언의 동네에 백정교회가 세워진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 (4) 나주 영산포~청암역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 (4) 나주 영산포~청암역

    전남 해남 땅끝에서 시작한 호남대로는 강진∼영암을 거쳐 나주땅에 이른다. 영암의 신북과 나주의 반남·왕곡 들녘을 지나면 영산포가 눈앞에 펼쳐진다. 봇짐을 짊어진 상인과, 말을 타고 한양에 변방 소식을 전하는 관리들은 크나큰 장애물 하나를 만난다. 바로 영산강이다. ●수많은 배 오가던 영산포 76년부터 뱃길 끊겨 영산강은 담양군 용추골에서 광주∼나주∼함평∼영암을 거쳐 서해로 빠져 나가는 115.5㎞의 물줄기이다. 영산강은 고대 때부터 내륙 수송로나 왜구의 침략로, 호남평야의 세곡(稅穀)을 한양으로 실어나르는 통로로 사용됐다. 또 고대 문화를 꽃피웠던 반남 고분군 세력과 고려 건국의 기반이 된 나주 해상 세력의 ‘모태’이기도 하다. 영산포는 ‘19세기 나주 지도’ 등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수심이 10여m로 중선배(20∼40t)와 전함이 드나들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영산포는 고려말 왜구의 창궐로 흑산도 인근 영산현이 통째로 옮겨오면서 오늘날의 이름이 생겨났다. 그 이후 강변엔 자연스레 도시가 형성되고 내륙과 해상을 잇는 교통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고려때 세워진 영강동의 조창(漕倉)이 조선시대(1512년) 때 영광의 법성포로 옮겨지면서 한때 한적한 강변마을로 변했다. 그러나 1897년 목포항이 개항하고 일본 사람이 증기선을 타고 몰려든 1900년대 초부터는 또다시 내륙 포구로서 번창했다.1914년 호남선 철로가 개설되면서 정기 여객선이 끊겼지만 소금이나 젓갈 등을 실어나르는 포구로 여전히 큰 몫을 담당했다. 영산포가 쇠락의 길로 접어든 것은 1976년 영산강 하구둑 착공과 함께 뱃길이 끊기면서부터이다. 지금은 상류의 4개 댐과 하구언 건설로 바닷물 유입이 차단돼 유량이 거의 없다. 강바닥이 드러나고 둔치는 주민들의 체육시설 공간으로 변했다. 예전의 나루터 자리엔 영산대교와 영산교가 연결돼 차량들이 오간다. 영산강 뱃길연구소장’ 김창원(56)씨는 “어릴 적에 수많은 배들이 오가고 사람이 북적였다.”며 “강바닥의 퇴적토를 긁어내고 뱃길을 복원해 포구의 옛 영화를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왕건이 둘째부인 장화왕후 만났다는 ‘완사천´ 남쪽에서부터 한양을 향해 먼길을 재촉한 옛 사람들은 영산포에서 여장을 풀었다. 영산포 옛 선창 인근에 위치한 홍해원(洪海院)을 비롯해 주막과 여관촌은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으로 북적였다. 나주문화원 김준혁(47) 사무국장은 “옛 사람들은 홍수가 나 강물이 범람하거나 조수간만의 차로 강을 건너기 어려울 때 영산포에서 쉬어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영산포에서 나주읍성으로 들어가기 위해 이창동 ‘새끼내들’∼영강진(나루터)을 주로 이용했다. 왕건이 수군을 이끌고 후백제 견훤을 치기 위해 나주에 왔을 때 둥구나루에 정박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둥구나루는 직강화 공사 전엔 강이 둥글게 흐르는 만곡형으로 군선을 숨기기에 알맞은 천혜의 포구였다. ‘완사천(浣紗泉) 전설’도 이곳에서 생겨났다. 왕건이 영산강에 정박하던 중 무지개가 피어올라 와 그곳으로 따라가 보니 한 처녀가 샘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처녀로부터 물을 얻어 마신 왕건은 그를 둘째 부인으로 삼아 고려 2대 왕인 혜종을 낳았다. 장화왕후가 된 오씨부인 이야기이다. 이는 고대사회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격동기에 나주 호족 세력과 연합한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화이다. 둥구나루∼완사천은 현재 제방으로 막혀 있다.‘1989년 대홍수’때 영산강 둑이 무너지면서 이 일대 마을이 모두 침수되는 피해가 나기도 했다. ●다산 머물던 삼거리 주막집 흔적도 없이… 둥구나루는 1801년(순조 1년) 신유박해로 유배를 가던 다산 정약용과 그의 형 정약전이 헤어졌던 포구로 알려진다. 정약용은 이곳에서 영산강을 건너 강진으로 향했고, 정약전은 배로 흑산도로 떠났다. 남고문을 지나 옛 나주읍성으로 들어서니 향교·관아터·정자·목사 내아(牧使內衙) 등 목사골임을 알려주는 유적이 즐비하다. 옛 사람들은 고관 대작들이 몰려 있는 읍성을 피해 한적한 원촌(院村)에서 하룻밤을 묵거나 주변의 주막에서 여독을 풀었다. 나주읍성 동문을 빠져 나와 나주원협 공판장을 거쳐 북쪽으로 1㎞쯤 가다 보면 성북동 청동마을이 나온다. 현재 70여가구가 살고 있는 이 마을은 옛 ‘청암역’ 자리였다. 마을회관 앞에는 지금도 말 먹이통으로 사용됐던 폭 1m, 길이 2m 크기의 구유가 놓여 있다. 김정우(66)통장은 “마을 어른들로부터 이곳에 큰 역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며 “돌로 만든 말 구유가 2개 있었으나 1개는 유실됐다.”고 말했다. 관리들은 청암역에서 말을 갈아타고 광주나 장성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다산 정약용과 정약전이 ‘죄인’ 신분으로 귀양올 때는 청암역에서 서북쪽으로 2㎞쯤 떨어진 일반 주막을 이용했다. 다산은 읍성 외곽인 지금의 나주시 대호동 동신대 앞 삼거리 밤나무골(栗亭) 주막에서 하룻밤을 지새며 이별의 아쉬움을 담은 ‘율정별(栗亭別)’이란 시를 남겼다. ‘띠로 이은 주막집 새벽 등잔불 푸르르 꺼지려는데/일어나 샛별을 보노라니 헤어질 일 참담하네(중략)….’다산이 머물던 삼거리 주막집은 간데 없고 그 자리엔 미용실과 식당이 손님을 맞고 있다. 다산 형제가 헤어진 길목은 북쪽을 향해 영산강 홍수통제소∼노안∼광주 송정리로 이어진다. 나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향토사 전문가 윤여정씨가 본 나주 영산포를 비롯한 나주는 국도 1호선과 13호선이 교차하는 교통 중심지이다.20세기 초 지금의 신작로와 철로가 뚫리기 이전에는 주로 영산강을 이용한 뱃길이 주요 교통 수단이었다. 내륙을 통과하는 길은 걷거나 말을 타고 다니던 역원(驛院)체제로 운영됐다. 고려 현종 때 목(牧)으로 지정된 나주는 조선시대 때까지 호남의 정치·행정·문화의 중심지로 위상을 유지했다. 이 때문에 나주 이남 지역의 옛길이 ‘목사골’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뭍으로 나온 제주도 사람들과 남해안 거주민·주둔군·관리들은 나주의 청암역과 그 주변에 산재한 원(院)집에 머물렀다. 해남의 녹산·별진역과 강진 통로역은 영암 영보역·신안역을 거쳐 나주의 청암역으로 이어진다. 호남지방 역 중 찰방이 배치된 곳은 청암역(나주)·경양역(광주)·벽사역(장흥)·삼례역(전주)·오수역(임실) 등에 불과했다. 나주가 1000여년 동안 호남의 중심지로 자리한 것은 고려 건국과도 무관치 않다. 후삼국 때 견훤이 근거지를 무진주(광주)에서 완산주(전주)로 옮기자 나주지역 토호들은 소외감을 가졌다. 이 때 궁예의 수군 장수였던 왕건은 영산강 일대에서 견훤군에 크게 승리하고 나주 호족과 손을 잡는다. 그는 호족 오다련의 딸과 혼인하고 이 지역을 근거로 후백제를 멸망시켰다. 훗날 장화왕후가 된 오씨 부인은 왕건이 찾아 오기 며칠 전에 이미 황룡 한 마리가 구름을 타고 날아와 자신의 몸 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혼인 후 혜종이 태어났는데, 왕이 태어난 마을이라 해서 흥룡사(興龍祠·현재의 나주시청 터)란 사당을 지었다고 한다. 당시 오씨 부인이 빨래하던 샘인 완사천 옆에는 왕후의 비(碑)가 남아 있다. ●윤여정(나주시 신활력사업추진TF팀장·53)씨는 ‘한자에 빼앗긴 토박이 땅이름’이란 책을 펴낸 향토사 전문가.
  • [토요영화] 박쥐성의 무도회

    ●박쥐성의 무도회(EBS 세계의 명화 오후11시)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박쥐성의 무도회’(1967)의 원제목은 이렇다.‘The Fearless Vampire Killers’. 그에 덧붙여 작은 제목으로 ‘Or Pardon Me,But Your Teeth Are In My Neck’이 이어진다.‘용감한 흡혈귀 사냥꾼-혹은 실례합니다만, 당신의 치아가 내 목을 물고 있어요.’ 쯤으로 옮길 수 있겠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듯 ‘박쥐성의 무도회’는 흡혈귀가 나오는 이야기를 익살스럽게 그린 코믹 공포영화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직접 흡혈귀 퇴치 교수의 제자로 출연하고, 그의 아내 샤론 테이트가 여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페디 마인은 크로록 백작 역을 맡았는데, 전통적인 드라큘라의 카리스마에 전혀 뒤지지 않는 마력을 발산한다. 루마니아를 여행하던 아브론시우스 교수(잭 맥거번)와 그의 제자 알프레드(로만 폴란스키)는 마늘과 십자가가 잔뜩 쌓인 어느 이상한 마을에 도착한다. 여관에 머물던 알프레드는 이날 밤 여관집 딸 사라(샤론 테이트)가 흡혈귀에게 잡혀가는 것을 목격한다. 울부짖던 그녀의 아버지는 마늘을 들고 성으로 가지만 다음날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온다. 교수와 알프레드는 사라를 구하고 흡혈귀들을 없애버리기 위해 성으로 향한다. 성에서 크로록 백작(페디 마인)을 만난 두 사람은 무사히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백작과 함께 그의 가족의 관이 있는 지하실로 향한다. 알프레드는 박사의 지시대로 이들에게 말뚝을 꽂으려하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고 그냥 나온다. 이때 사라를 발견하는데, 그녀는 오늘 밤 무도회가 있다며 목욕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 성에서는 1년에 한 번씩 무도회가 열리는데, 이때 묘지에 있는 모든 시체들이 깨어나 이 무도회에 참석한다. 1933년 유대계 폴란드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어머니가 나치수용소에서 죽음을 맞는 등 평탄치 않은 성장과정을 겪었다. 그는 첫 장편영화 ‘물속의 칼’(1962)에서부터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피아니스트’(2003)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부조리, 동시대의 폭력과 악의 문제를 형상화해 왔다.108분.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쥔있는 몸끼리 무허가(無許可) 사랑 30년

    쥔있는 몸끼리 무허가(無許可) 사랑 30년

    30년전- 30고개의 유부남에게 순결을 주었던 18살의 처녀가 50고개에서 우연히 60대가 된 그 첫사랑을 다시 만났다. 이순간 이들 남녀가 다시 불태운, 맺어서는 안될 사랑은 결국 나이에 어울리지않는 죄명으로 쇠고랑을 나란히 차고 말았지만 긴 다홍치마의 멋이 「미니」세대로 변모한 세월에 이르기까지의 30년을 이어온 색다른 이 불의의 사랑 3막이 사연은-. 30년전 아내있는 사내와 이웃사는 처녀가 남몰래 [제1막] 해방이 되기 1년전인 44년봄 아내를 둔 차광희(車光熙)청년(가명·28)은 한마을에 사는 10년연하의 임복영(林福榮·가명) 처녀와 깊은 관계에 빠졌다. 대구시 칠성동 청년단장을 하면서 비교적 마을일에 밝았던 차(車)청년은 그때 지금은 없어졌지만 대구기예(技藝)중학교를 나오고 대구지방법원 교환양으로 일하던 방년18세의 임(林)양과 이웃에 살면서 청년단 일을 핑계로 잦은 접촉을 갖는동안 어느새 정이 들었고 그러다보니 어쩔수 없는 사이가 되고말았다. 그러나 10개월동안 지켜진 이 비밀은 별로 뜬소문없이 끝내 비밀로 묻혀진채 19살 되던해 임양이 대구시 삼덕동 김(金)모씨에게 시집을 가게되면서 「피날레」 간통 제1막은 이로써 무사히 끝났다. [제2막] 이런 내용을 알리없는 불행한 사나이 신랑 김씨는 6·25동란때 군에 입대했으나 교통사고로 숨지면서 결국 그는 아내의 비처녀성을 영원히 모르게 돼고, 임여인과 결혼생활 단3개월을 누렸을 뿐이었다. 「미스」아닌 19살의 「미시즈」임은 그럭저럭 짧은 결혼생활에서 얻은 아들과 단둘이 살다가 6·25 이듬해인 51년 10월 지금의 남편 김기호(金基鎬)씨(가명·46)와 재혼. 그러다 시집간 아가씨는 남편잃고 또 결혼했으니 그때 남편은 28살. 전실소생이 없고 오히려 전남편의 아들이 딸린 그녀 입장에서 재혼생활은 바로 서울로 이사해 옮기면서부터 남편에 대한 정성이 한결 더해졌고 알뜰한 주부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들딸을 낳으면서 날과 달이 흐르기 만10년…. 잔잔한 호수에 돌이 던져지는 운명의 61년 겨울이 왔다. 이해 12월 어느날 대구시 태평로3가 통운창고 옆에 있던 언니집에 다니러온 임여인은 그 옛날의 남자 차씨와 식당에서 딱 마주쳤다. 운명이란 참으로 우연한 사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16년만에 만난 그녀는 차씨가 이끄는대로 장소를 옮겨 다방엘 갔고 저녁을 같이든 다음 극장을 거쳐 밤11시30분이 되자 자석에 끌린 사람처럼 그를 따라 나란히 여관을 찾았다. 재회가 빚은 간통 제2막은 그이튿날 그녀가 서울로 올라가기까지 서로 시간을 아쉬워하면서 불을 뿜었다. [제3막] 8년이란 세월이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또 흘렀다. 사업을 하는 남편을 따라 대구로 옮긴지도 몇년이 지났다. 무더위가 「아스팔트」를 엿판처럼 녹이는 작년 8월의 어느 하오. 모「택시」회사에 볼일이 있어 좌석「버스」를 타고 영남대학교앞을 지나던 임여인은 누군가 뒤에서 탁치는 촉감을 느끼고 돌아본 순간 까무라치게 놀랐다. 빙긋이 웃으며 서있는 차광희씨는 이제 54살의 「로맨스·그레이」-. 두사람은 「버스」를 내려 그길로 「아카데미」극장옆 A다방에서 밀어를 나누게 됐다. 5년전 아내가 집안에서 계단을 내려오다가 굴러떨어져 숨진 얼마후 지금의 아내인 권(權)모여인(46)과 재혼했다고 차씨는 말했다. 그러면서 『재혼하기전에 당신을 만나지못한게 한스럽다』고 그는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이로부터 몇시간뒤의 일이지만 이들은 어렵지않게 간통 제3막째의 1장을 근처 어느 여관에서 갖고 말았다. 노년기의 마지막 남은 정염을 몽땅 불태울듯 본격화된 제3막째의 50대와 40대의 이 남녀는 얼마전까지 꼬박 1년을 대구근교인 파계사와 동화사며 성당곱창집과 수성못등 유원지를 번갈아가며 밀회를 즐겼다. 그런데 바로 전남편 소생인 임여인의 아들 김모씨(25)가 의붓 아버지에게 귀띔해줌으로써 어머니의 부정이 탄로되고 말았다. 말하자면 임여인으로선 기막힌 업보(業報)인 셈. 시내 향촌동 C다방을 연락「아지트」로 삼은 이들은 작년12월 차씨에게 보내는 편지를 임여인이 다방 「메모」판에 꽂아달라고 어쩌다 아들에게 부탁한 일이 있었다. 이때 슬쩍 편지를 호기심에 뜯어본 아들은 그로부터 이를 미끼로 2~3천원씩 수10차례나 어머니를 괴롭혀 돈을 타냈다. 연서(戀書)심부름 부탁받은 전처 소생 아들이 별 직업없이 따로 살림을 해오던 아들 김씨는 궁할때마다 어머니를 위협했다. 아무리 아들이지만 뜯기다못한 그녀는 지쳐 자연 짜증날때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거절당할때도 많아진 아들은 어머니가 미웠다. 지난 7월. 아들은 의붓아버지인 김씨에게 넌지시 『어머니에게 딴남자가 있다』는 정도로 일러주었다. 김씨는 머리에 선뜻 지피는게 있었다. 그때마다 외박은 단한번도 없었으나 밤늦게 돌아오는 아내의 잦은 외출이 수상쩍던 남편은 그럴싸한 구실로 또 통금시간이 되어서 들어오는 아내를 불러 따졌다. 지난 11월7일의 일이었다. 아내가 부정을 부인할수록 남편의 의심은 더욱 굳어만갔다. 『재혼이라 하지만 저만을 얼마나 사랑해왔는데…』이렇게 생각하자 온몸의 피가 일시에 거꾸로 흐르는것 같은 격한 감정에 빠진 남편은 빨갛게 불에 단 연탄짚게를 임여인의 얼굴에 들이대고 자백을 재촉. 다 듣고난 김씨는 4남매를 낳은 아내와의 이혼소송과 함께 간부 차씨의 처벌을 호소하는 간통고소를 동대구경찰서에 지난 21일 냈다. 남편 김씨(46)는 종업원 4명을 데리고 흑판등 교재도구를 만들어 월5만원 수입으로 착실하게 살아온 가장이었으며, 임여인과함께 구속된 차광희씨(54)는 건축업을 하다가 지금은 C은행본점 00부장대리로 있는 외아들의 수입으로 살아가는 처지. 그는 임여인을 『책임지겠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그러나 남편에게 미안하다고만 말할뿐 K검사앞에 머리를 조아린 그녀는 더할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대구(大邱)=임양은(林樑銀) 기자> [선데이서울 70년 12월 6일호 제3권 50호 통권 제 114호]
  • 건강보험은 ‘주인없는 곶감’

    병의원의 ‘의료급여비 빼돌리기’와 장기 입원환자의 ‘의료 쇼핑’ 행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드러났다. 의료기관이나 환자에 대한 관리가 소홀한 틈을 타 건강보험료가 줄줄 새고 있지만 형식적인 단속과 관리로 성실한 건강보험료 납부자만 봉(?)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의료기관이나 환자의 도덕적 해이는 정부의 허술한 의료보건정책이 낳은 결과라고 지적했다.●파렴치한 의료기관… 진료 않고 36억원 부당청구 2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262개 의료급여기관을 조사한 결과,186개 기관이 부정한 방법으로 35억 3925만원을 청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 안양시 A의원은 진료기록부를 허위로 부풀려 진료비를 청구하다 걸렸다. A의원은 환자 K(76)씨에게 하루만 진료하고도 4일간 진료한 것처럼 진료기록부를 허위로 기재했다. 이 의원은 1748건의 허위진료기록을 만들어 1650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경기 오산 O병원은 환자가 퇴원했는데도 입원기간을 늘리거나 입원기간을 중복해 청구하는 방법으로 4252만원을 타냈다. 강원 원주 소재 N한의원은 외래진료를 하지 않고도 진료받은 것처럼 끼워넣어 진찰료와 한방시술료로 5169만원을 부당 청구했다가 적발됐다. 경남 창녕 N요양병원은 물리치료를 한번 해주고 진료기록부에는 두 차례 치료한 것으로 속이는 등 부당하게 2004만원을 챙겼다. 강태언 의료소비자시민연대 사무총장은 “드러난 의료급여 부당청구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면서 “거의 모든 의료기관이 부당하게 급여를 청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강 총장은 “복지부·건강보험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제대로 된 진료통계 시스템을 갖추지 못해 생긴 문제”라면서 “부당청구 의료기관을 일벌백계 차원에서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소문만 듣고 의료쇼핑…연간 800회 외래진료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 등 빈곤층 가운데 상당수는 의료쇼핑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의숙 연세대 간호대학 교수가 복지부 의뢰로 2005년 연간 급여일수가 365일 이상인 장기의료이용 수급권자 25만 163명을 면접조사해 분석한 ‘의료급여 장기이용환자의 의료이용 실태 및 개선방안’ 보고서에 나온 결과다. 보고서에 따르면 장기의료이용자는 연평균 60일간 6.4개의 의료기관을 이용하고 투약일수가 424일,1인당 진료비는 355만 6000원이었다. 이들 가운데 3.6%는 이용 의료기관 수가 15개나 되고 47.4%는 5가지 이상의 약을 복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 34개 기관에 입원한 환자가 있는가 하면 800회가 넘는 외래진료를 받은 환자, 투약일수가 424일이나 되는 환자도 있다. 장기이용자 가운데는 65세 이상(58.1%), 사별·이혼·별거자(56.5%), 무학·초등학교 졸업 이하(73.1%), 장애인(31.7%)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장기이용자를 보험인구 가운데 55세 이상 그룹과 비교하면 입원일수는 5.3배, 내원·투약 일수는 2.2배, 입원비는 2.9배, 외래진료비는 2.6배, 투약비는 2.8배, 총진료비는 2.7배가 각각 높았다. 환자들은 여러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이유로 71.8%가 ‘여러 가지 질병 때문’이라고 답했다.45.3%는 ‘전문의료기관의 진료를 위해’,19.2%는 ‘주위의 호평에 의해’,15.8%는 ‘경제적 부담이 없어서’라고 답했다. 하지만 의료급여관리사는 환자의 50%가 의료쇼핑을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환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의료서비스는 불필요하더라도 모두 사용하려고 한다.”면서 “도덕적 해이 환자에 대해 탄력적으로 본인부담금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획일적인 의료급여정책을 위험그룹 특성별로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공무원 허위 출장비 수령 “꼼짝마”

    내년부터는 공직사회에서 실제보다 부풀리거나 허위로 신고해 출장비를 과다 수령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다. 숙박비와 운임 등은 신용카드로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앙인사위원회는 19일 공무원 여비제도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이 같은 내용의 ‘공무원 여비규정’ 개정안을 마련해 내년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지방공무원제도를 관장하는 행정자치부도 중앙인사위원회의 시행 내용을 검토한 뒤 큰 틀에서 문제가 없을 경우 준용할 예정이어서 모든 공무원에게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21일부터 입법 예고하며 하반기부터 일부 부처를 대상으로 시범실시한다. 현행 공무원 여비는 출장 전에 실제 소요액과는 관계없이 법령에 정해진 금액을 지급한다. 예를 들어, 중앙부처 사무관이 국내 출장을 가면 하루에 숙박비 3만원, 식비와 일비 각 2만원 및 해당 지역까지의 교통비를 사전에 지급한다. 사후에 별도의 정산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이러한 방식은 사전에 미리 여비를 지급함으로써 당사자들이 출장을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출장 일수와 출장 인원을 과장하거나 실제로는 출장을 가지 않았으면서도 여비를 청구하는 등의 문제가 있어 왔다. 특히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직원 출장비를 과다 계상해 비자금으로 활용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인사위는 이에 대해 국내출장은 숙박비와 운임 등을 사전에 지급하지 않고 신용카드를 사용해 지출토록 하고, 신용카드 매출전표 등을 확인한 후 사후에 정산하도록 했다. 카드사용 내역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전산 지원시스템도 연내에 구축한다. 이에 따라 국내출장자는 여행이 끝난 날로부터 1주일 이내에 세부사용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첨부해 정산해야 한다. 이와 함께 숙박비는 국내 여관비를 고려해 과장급 이하는 4만원을 지출상한으로 했다. 현재 정액으로 3만원 하던 것을 상한선을 1만원 올린 셈이다. 또 전보 또는 기관 이전 등으로 인해 이사를 하는 경우 지급하는 이전비도 현재 거리기준에서 이사 화물량 기준으로 개정된다. 기존에는 국내 이전비는 거리별로 8만 6300∼26만 8300원의 범위 내에서 실비를, 국외 이전비는 국가 및 계급별로 2180∼5080달러까지 정액으로 지급해 왔다. 개정안에선 국내 이전비는 2.5t 트럭분까지, 국외이전비는 10㎥까지 실제소요액 전액을 지급하되, 이를 초과하면 공무원이 초과액의 일부를 부담하도록 했다.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엿이 굳었냐 이가 약했냐

    엿이 굳었냐 이가 약했냐

    지난 10월 3일께 釜山(부산)시 光復(광복)동 노상에서 李(이)모씨(40)가 얼큰한 기분에 생엿을 사먹었는데 한참 신나게 씹다가 딱 이빨이 부러졌겠다. 어금니가 그만 엿속에 파묻혀 울상이 된 이씨는 약이 올라『엿이 너무 여물어서 이가 부러졌다』고 트집. 이에 맞선 엿장수 金(김)모씨는『당신의 이가 너무 약해서 그렇다』고 멋진(?)응수. 이씨는 도저히 안되겠던지 엉뚱하게 치료비를 요구하여 진기한 보상문제로 두사람은 10분동안 옥신각신 했는데 구경꾼들의 즉석 중재로 엿장수는 엿판 돈 10원을 되돌려 줌으로써 원만히 타협을 보았다나. <釜山(부산)> 석방된 소매치기가 담당형사에 선물 소매치기범으로 검거된 전과6범의 朴(박)판옥씨(27·주거부정)가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자 이상야릇한 선물공세를 해서 경찰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大田(대전)경찰서 형사계 洪(홍)모경사는 지난 3일 시내 중앙시장에서 소매치기 전과범 박씨를 검거했으나 뚜렷한 방증이 없어 즉결에 회부, 3백원을 물게 했는데…. 야근을 마치고 돌아온 8일 새벽, 홍경사는 백미1가마, 현금 1만원,「엑슬란」겨울내의 1벌 등의 선물과 정중한 사연의 편지를 받았다. 소매치기는 다른 범죄와 달라 현장에서 검거하지 않으면 안되는 어려움이 있어 경찰의 두통거리가 되는데, 박씨는 여봐란듯이 석방되어 나오자 푸짐한 선물을 하여 더욱 경찰의 약을 올린(?) 것. <大田(대전)> 情夫(정부) 처벌해주오 4일 淸州(청주)지점 忠州(충주)지청 1호 검사실에 색다른 호소가 날아들었다. 이날 公州(공주)에 산다는 박(朴)수자여인(33)은 陰城(음성)군 S중학교사 김모씨(31)를 처벌해 달라고 간청했는데 그 까닭이 걸작. 박여인은 유부녀로 남편이 교통사고를 저질러 1년6개월동안 복역하고 있는 사이, 지난 겨울 공주에 강습차 온 김교사와 눈이 맞아「카바레」등을 전전하며 즐겼다는 것. 그후 복역을 마친 남편이 출옥, 아내의 간통사실을 알고 지난 10월 13일 집에서 내쫓아버렸다. 박 여인은 당장 호구지책을 위해 공주시내 K여관에서 식모살이를 하고 있는데…. 그녀의 처벌호소인즉 김교사가 남편에게 발각되면 자신이 책임을 지는 것은 물론, 위자료까지 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는데 정작 공소시효 6개월이 지나 김교사는 朴(박)여인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 학생을 가르치는 신분에 남의 유부녀를 농락하는 교사도 한심하지만, 그런 난봉꾼과 놀아난 뒤 처벌을 호소하는 박여인의 심장도 어지간한 강심장. <충주(忠州)> “점잖지 못하기는 피장파장” 변소낙서범, 지켜선 순경에 잡히자 8일 광주(光州)경찰서는 김(金)모군(18)을 경범죄처벌법위반 혐의로 즉심에 넘겼는데 이유인즉 공중변소에 음란한 낙서를 했다는 것. 행상으로 살아가는 김군은 용변을 보러 갔다가 심심풀이로 장난을 했다고 진술했다. 「음란낙서」를 즐긴 김군도 김군이려니와 냄새 고약한 변소밖에서 기다리다가 뒷덜미를 잡은 경찰관도 어지간한 양반. 음란낙서를 하겠다고 공언하며 변소에 들어갈리는 없을테고, 결국 변소 창문으로 훔쳐본 뒤 덮쳤을 것인즉 점잖지 못하기론 피장파장 아니냐고 김군은 투덜투덜. <光州> 마을 연인들 밤마다 교실서 밀회즐겨 요즘 함안(咸安) 군내 H국민학교는 밤만 되면 20대 청소년들이 학교로 몰려들어 골치. 까닭인즉 아베크할 장소가 부락에는 적당한 곳이 없어 교실을 이용한다는 것. 「핑크·무드」물씬한「데이트」광경이 심심찮은 구경거리라는데 교실문을 모두 잠가놓으면 될 일을 가지고 골치앓는 학교당국의 고민은 괜한 엄살인듯. <咸安> “반찬없다” 칼부림 아내 숨지게 한 남편 살인에도 동기가 갖가지겠지만 부산 박(朴)창호씨(30)는『반찬이 엉망이다』라는 이유로 아내를 죽였다. 지난 4일밤, 평소 주벽이 심한 박씨는 이날도 만취되어 귀가, 밥상을 차려들여오는 아내에게『반찬이 왜 이모양이냐?』고 트집, 상을 엎고 식칼을 휘둘러 아내를 숨지게 했다고. 돈을 잘벌어다 주면 그런 밥상 받을 이유도 없을텐데, 못난 사내의 못난 주벽이 화근. <釜山> [선데이서울 70년 11월 22일호 제3권 47호 통권 제 112호]
  • 대전에 새 명소 생긴다

    대전에 새 명소 생긴다

    ‘길이 400m에서 분수가 치솟고, 하늘 곤돌라를 타고 도시와 갑천을 구경하며 사랑을 속삭이고’ 대전엑스포과학공원 앞 남문광장에 길이 400m의 바닥분수가 설치되고 과학공원 컨벤션센터∼유성온천 스파피아호텔 4.5㎞의 구간에 케이블을 이용한 공중 곤돌라가 들어서 운행된다. 대전시는 12일 “2009년 상반기까지 국·시비 170억원과 민자 300억원을 들여 이 같은 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용역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남문광장 남북을 가로질러 설치될 바닥분수는 밤낮으로 30분씩 하루 2차례 물을 뿜을 예정이다. 최고 30m의 물이 치솟으며 장관을 연출한다. 야간에는 한밭수목원 방향에서 스크린처럼 펼쳐진 국내 최대 규모의 분수 위에 레이저를 쏘며 영상쇼를 벌이고 과학공원 한빛탑에서 분수 위로 레이저를 비춰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곤돌라는 호텔과 여관 등 각종 숙박시설이 밀집된 유성온천에서 93년 엑스포 때 전시관이 있는 과학공원과 컨벤션센터를 오가는 교통은 물론 관광수단으로 활용된다. 왕복 운행에 30분이 걸려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좋다. 갑천에는 물 위의 캠프 파이어로 불리는 ‘워터 파이어’를 만들고 엑스포다리∼만년교 사이 하천에 이동 수상가든을 띄워놓고 관광객들을 유치한다. 시는 9월 말 이같은 갑천프로젝트를 확정하고 내년에 착공할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곤돌라는 민자를 유치해 설치할 것”이라며 “완공 후 갑천과 엑스포과학공원 주변은 전국 최고의 도심공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인사]

    ■ 법제처 ◇전보 △법제처 행정법제국 법제심의관 申相煥△대통령 비서실 선임행정관 李益鉉■ 보건복지부 △한방정책관 고경석■ 행정자치부 ◇팀장급 전보 및 파견 △지방혁신인력개발원 기획협력팀장 張誠郁△청사이전기획과장 呂吉秀△정부청사이전사업단 파견 徐龍錫△제주청사관리소장 金京泰■ 국민건강보험공단 ◇1급 승진 △강서지사장 임재룡△서대문〃 장명수△부산남부〃 박경순△마산〃 김성재△청주동부〃 송한종△화성〃 백낙렴△인천서부〃 이규천◇1급 전보△총무관리실장 이종성△급여관리〃 이충민△자격징수〃 강정선△정보관리〃 선만수△건강관리〃 임무종△감사〃 남시홍△서초북부지사장 이승호△강남서부〃 용왕식△노원〃 정해열△강동〃 한철규△성북〃 류광열△대구수성〃 오필근△경주〃 김일홍△김해〃 이귀현△광주서부〃 황영국△전주북부〃 박영춘△수원서부〃 이승호△성남북부〃 강병권△파주〃 이태형△남양주가평〃 함대규◇2급 승진(부장)△청주동부지사 성진영△성남북부〃 이종문△서초남부〃 정일만△용인〃 이정옥△인천부평〃 김훈택△송파〃 정동석△강서〃 오경환△성동〃 박승주△용산〃 서명철△금천〃 정윤균△마산〃 김두수△경주〃 정정교△광주서부〃 정봉순△천안〃 김재경△인천계양〃 홍현성△안산〃 강희대△수원동부〃 박병배△안산〃 전종국△인천남부〃 이용규△강남서부〃 이주식△총무관리실 시설관리팀장 이창표◇2급 지사장 전보△동해 김철환△강원동부 최일배△진해 최영태△울진영덕 김정한△대구남부 조희태△경주북부 석국원△영암장흥 박미옥△완도강진 박남철△무안신안 문상집△충북남부 성백길△연기 유호영△아산 장석진△서산태안 장연진△부여청양 김동익△예산 안휘원△홍성 전택수△동두천연천 박도희△양주 최옥희■ 보훈복지의료공단 ◇임용 △보훈교육연구원장 김경의◇전보△대구보훈병원 운영부장 이익주△유통사업단장 서재필△봉제사업〃 조용호■ 가스안전공사 △교육원장 李德炯■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승진 △안산연구센터 사업지원실장 吳世允◇전보△안산연구센터 사업지원실 연구지원팀장 金容寬△감사실 감사〃 禹長命△부산연구센터 기획운영〃 金甲洙△사업개발부 사업개발〃 朴一洙△행정부 시설관리〃 金漢龍△중소기업지원본부 천안창업보육센터장 李鍾範△〃 시화창업보육〃 丁奎永■ 기술보증기금 ◇이사대우 승진 △보증기획팀장 金容煥△인력관리〃 康熙珠◇1급 승진△감사팀장 裵圭雄△서울중앙기술평가원장 姜鎬用◇2급 승진△고객지원팀장 朴德洙△인력관리팀 파트매니저 黃漢珪△프로세스혁신팀 〃 李重昊△강남기술평가센터 RM지점장 柳寅澤△광주〃 〃 李永哲△대전〃 추심반장 金仁煥△사상지점 〃 徐海根◇전보△영업혁신팀장 黃喆護△리스크관리〃 柳春興△자금운용〃 孫壽龍△혁신기획〃 金元植△강남기술평가센터장 權宅壽△송파〃 李基源△안산〃 李亨根△순천지점장 洪景祚△수원기술평가센터장 金鍾南△천안〃 李炳鉉△창원〃 金三德△남동지점장 韓相大△부평〃 尹承起△의정부〃 洪英宰△안양〃 李龍薰△평택〃 李秉憲△시화〃 朴榮浩△충주〃 黃仁文△대전동〃 金明洙△아산〃 朴美洙△광주서〃 李仁基△대구서〃 朴鍾晩△대구북〃 정영규△사상〃 全協△수원기술평가센터 용인영업소장 金玉均△구로〃 추심반장 李昌圭△서초〃 〃 具永贊△광주〃 〃 李且均△대구〃 〃 全榮福△울산〃 〃 金斗喆△대전중앙기술평가원 개설준비위원장 朴駿相△부산기술평가센터 RM지점장 金榮泰 ■ 한국일보 (편집국)△출판국장 송태권△논설위원 이계성△미디어전략실장 김경철△국차장 이종재△부국장 전성훈 이영성△부국장 겸 문화부장 이충재△종합편집부장 채봉석△경제산업〃 이의춘△사회〃 황상진△국제〃 김승일△피플팀장 박광희■ 아이뉴스24 △편집국 스포츠팀장(조이뉴스24 스포츠담당) 박승현■ 신한은행 ◇지점장 전보 △원효4가 趙棟濟△천호동 鄭永植△수내역 任圭爀△포항남 金羽哲■ 서울자산운용 △PEF본부장 상무 이승희△PEF팀장 이사 정도현■ 우리투자증권 ◇전보 △방배동지점장 尹熙春△자금팀장 洪鍾明 ◇신규 선임 (지점장)△야탑 金琮皓△이수역 崔仲善△도곡렉슬 嚴永燮△삼산 孫秀澤
  • [씨줄날줄] 한강 조망권/함혜리 논설위원

    부유한 집안의 딸 루시 허니처치는 나이든 사촌 샬롯과 피렌체로 여행을 떠난다. 전망 좋은 방을 예약한 여관에 여장을 풀었으나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영 기대 밖이다. 이때 같은 여관에 투숙 중인 에머슨 부자가 자신들의 전망 좋은 방과 기꺼이 바꿔주겠다고 제안한다.“남자들은 전망에 매달리지 않는다.”면서…. 20세기 영국 문학을 대표하는 E M 포스터의 소설을 영화화한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전망 좋은 방(A Room with a View)’에서 주인공 남녀를 맺어준 인연의 끈은 바로 ‘뷰(view·전망)’다. 서양사람들이 생활환경에서 조망권의 가치를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영화였지만 크게 공감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 영화가 개봉된 20여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조망권에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지하철 역세권이나 신도시 건설과 같은 개발 호재가 집값, 특히 아파트 가격에 큰 영향을 미쳤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 속에 주택단지가 과밀화하고, 기존 아파트의 재개발로 고층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조망권의 가치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한강 조망권 프리미엄까지 등장했다. 같은 단지, 같은 평형의 아파트라도 한강이 보이는지 여부에 따라 가격이 5억∼7억원씩 차이가 난다. 한강 조망권이 아파트 가격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다 보니 법정 다툼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서울 이촌동 리바뷰아파트 조망권 침해소송이 대표적이다. 서울고법은 지난 2004년 이 아파트 주민들이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건설사 측에 아파트 가격 하락분과 위자료를 배상하라고 판결을 내렸다.‘한강 조망권’을 인정한 사례로 관심을 모았던 이 판결이 최근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조망권 자체는 주민들의 권리로 인정되지만 조망이익 침해 정도가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참을 수 없는 정도’를 넘는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삶의 질과 친환경적 주거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조망권의 비중은 날로 높아질 전망이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이 한강 조망권을 둘러싼 시비를 잠재울 수 있을지 관심거리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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