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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혼식 기념사진서 찍힌 정체불명의 소년

    결혼식 기념사진서 찍힌 정체불명의 소년

    외딴 지역의 친구 결혼식에 참석해 찍은 기념사진 속에 낯선 소년의 모습이 포착돼 유령에 대한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18일(현지시간) 영국 미러는 지난해 여름 스코틀랜드 아가일 앤드 뷰트 주의 친구 결혼식에 참석한 여성들이 찍힌 단체 사진 중 정체불명의 소년 모습이 담긴 사진을 기사와 함께 소개했다. 사진에는 10명의 친구들이 호수를 배경으로 손에 가면을 들고 손을 흔들며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담겨 있고 그 옆 나무 그루터기 뒤 웅크리고 있는 작은 소년의 모습이 보인다. 소년은 신기한 듯 여성들을 쳐다보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여성들이 몇 초 간격으로 찍은 사진에는 소년의 모습이 포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소년의 존재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던 여성들은, 이후 이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수소문 중 에크 호수(Loch Eck)에서 익사한 소년의 사연을 듣게 됐다. 이 사연은 1994년 BBC에 방영된 ‘블루 보이’(The Blue Boy) 이야기. 당시 4살짜리 소년이 에크 호수에서 빠져 죽은 이야기를 각색해 TV영화로 제작됐다. 오스카상 수상자인 엠마 톰슨(Emma Thompson)이 불안한 주부 마리(Marie) 역으로 출연했다. 영화는 에크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실화 속 장소인 17세기 건축물 코일트 여관(Coylet Inn)에서 직접 촬영됐다. ‘블루 보이’ 감독 폴 머톤(Paul Murton)은 1994년 당시 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 “여관 주인으로부터 ‘블루 보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며 “부모와 함께 휴가 차 여관을 찾은 어린아이가 호수에 빠져 죽었으며 당시 추위로 인해 소년은 온몸이 파랗게 굳은 채로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어 “여관 직원들에 따르면 식칼이나 접시 같은 물건들이 종종 이유 없이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고 때때로 복도에는 젖은 발자국들이 발견되곤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19일 사진을 트위터에 게재한 홀리(holly)는 “스코틀랜드의 호수에 있는 저택. 아무도 주위에 없었으며 셀프타이머로 3초 간격으로 찍었다. 무엇이 바뀌었는지 보세요. 절대로 이곳에서 다시는 자지 마세요”란 글을 남겼다. 사진= hollydca Twitter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만취 50대 성매매 거절에 홧김 방화…종로 여관 6명 사망

    만취 50대 성매매 거절에 홧김 방화…종로 여관 6명 사망

    만취한 50대 남성이 여관에서 성매매 여성을 불러달라고 요구했다가 숙박을 거절 당하자 홧김에 불을 내 여관에 투숙하던 무고한 4명이 숨지고 6명이 다치는 참사가 일어났다. 경찰은 방화 피의자 유모(53)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20일 오전 3시쯤 서울 종로구 종로5가의 한 2층짜리 여관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나 5명이 숨졌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1층에서 발생한 불은 1시간 뒤 진화됐으나 건물 1층에 있던 4명이 숨지고 2층에서 1명이 숨지는 등 5명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병원으로 후송된 부상자 4명 가운데 2명은 심폐소생술(CPR)을 받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가운데 1명이 21일 오후 끝내 숨져 사망자는 6명으로 늘었다. 화재 발생 직후 인근 업소 종업원 등이 함께 소화기로 진화에 나섰지만 빠른 속도로 번진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혜화경찰서는 이날 ‘종로 여관 방화사건’ 피의자 유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유씨는 이날 오전 3시쯤 서울 종로구 서울장여관에 불을 질러 투숙객 5명을 숨지게 하고 5명을 다치게 한 혐의(현존건조물방화치사)를 받는다. 불을 낸 유씨는 112에 신고해 “내가 불을 질렀다”고 자신의 범행임을 말했고 경찰은 중식당 배달 직원인 유씨를 사건 현장 인근에서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방화로 인한 참사의 원인은 성매매 거절에 따른 앙심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방화 피의자 유씨는 술을 마신 뒤 여관에 들어가 여관 업주에게 “여자를 불러달라”며 성매수를 요구했지만 거부당하자 말다툼을 벌였다. 그뒤 홧김에 인근 주유소에서 2만원 상당의 휘발유 10ℓ를 구입해 여관으로 돌아와 불을 질렀다. 유씨는 경찰에서 “술에 취해 성매매 생각이 났고, 그쪽 골목에 여관이 몰려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무작정 그곳으로 가 처음 보이는 여관으로 들어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유씨는 범행에 앞서 오전 2시 6분 경찰에 전화를 걸어 “투숙을 거부당했다”고 신고했다. 여관 업주도 2차례 신고해 경찰이 3분 뒤인 오전 2시 9분 현장에 도착했으나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해 사안을 종결했다. 경찰 관계자는 “유씨가 술에 취해 있었지만 말이 통하는 상태였고, 출동 당시 여관 앞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며 “이런 극단적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어 보여 자진 귀가조치로 종결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유씨는 인근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사온 뒤 여관 문을 열고 들어가 1층 바닥에 뿌리고, 주머니에 있던 비닐 종류 물품에 불을 붙여 던졌다. 유씨가 불을 지른 뒤 스스로 신고한 이유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경찰은 전했다. 유씨에게는 방화나 주취폭력 전과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불은 삽시간에 2층 여관의 10여개 방을 집어삼켰다. 주인이 ‘불이야’ 하고 외치는 소리에 인근 업소 종업원들까지 달려들어 소화기 12개를 사용해가며 함께 진화에 나섰으나 역부족이었다. 사건 발생 시각이 오전 3시로 투숙객이 깊이 잠든 한밤중이었고, 범행 도구로 적지 않은 양의 휘발유라는 인화물질이 사용된 데다 건물이 노후한 점 등 여러 요인이 겹쳐 피해가 커졌다. 해당 여관은 연면적 103.34㎡의 지상 2층 규모에 옥상 가건물을 얹은 형태로, 1964년에 사용이 승인돼 지은 지 50년이 훨씬 넘었을 만큼 낡은 것으로 전해졌다. 객실 출입문은 나무로 돼 있었고, 건물 안에는 이불 등 가연성 물질이 많았지만 불이 났을 때 자동으로 물을 뿌려줄 스프링클러는 건물 용도와 연면적상 설치 대상이 아니어서 구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옥상에 창고 용도의 가건물이 있어 투숙객들이 위쪽으로 대피할 수도 없었다. 경찰은 옥상 건물 설치에 위법성이 있는지도 추후 확인할 계획이다. 해당 건물에 후문이 있기는 했으나 평소 거의 쓰지 않아 투숙객이 찾기 어려웠고, 주변은 담으로 막힌 상태였다. 사실상 유일한 대피로인 입구가 불길에 휩싸인 상황에서 투숙객들의 피신이 한층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경찰 관계자는 “휘발유가 불이 잘 붙고, 유증기 형태로 순식간에 공중으로 번진다”며 “옛날 건물인 데다 좁고 새벽시간대여서 피해가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화재 현장을 둘러본 뒤 많은 인명피해가 난 데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표했다. 박 시장은 자신의 트위터에 “종로5가 방화로 인한 화재현장에 다녀왔다”며 “5명의 사망자가 생겼다. 투숙을 거부했다고 휘발유를 뿌려 화재가 나다 보니 투숙객이 피할 틈도 없이 변을 당한 것 같다.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라고 적었다. 이주민 서울지방경찰청장도 이날 현장을 찾아 경찰 관계자들로부터 상황을 보고받고 철저한 조사를 당부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인터뷰] 이옥선 할머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인터뷰] 이옥선 할머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저는 이옥선입니다.” 지난 15일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옥선(92) 할머니를 만났다. 이옥선. 한국인으로 태어나 인고의 세월을 견딘 이름이다. 할머니의 목소리는 작년과 달라졌다. 이제는 보행기 없이 거동도 쉽지 않다. 할머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하루빨리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했다. 2015년 12월 28일. 피해 할머니들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한·일 간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합의됐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다. 불가역적이라는 어려운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10억 엔을 내놨다. 이날에 대해 할머니는 “미칠 것 같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같은 여자이기에 더 잘 알아줄 거라 생각했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결과는 할머니의 믿음과 달랐다. 이 할머니는 “우리는 무식한 생각으로 정부가 돈이 없어서 일본에 돈을 받고 할머니들을 팔아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하고 억울했다. 당사자가 모르는 합의가 어디 있느냐”며 “완전히 잘못된 합의”라고 말했다. 지난 9일 문재인 정부는 2015 한·일 위안부 합의 처리 방향에 대해 발표했다. 일본이 내놓은 화해치유재단 기금 10억 엔은 별도조성하고, 일본 정부로부터 진정성 있는 사죄를 받아내겠다고 발표했다. 또 이전(2015년 12월 28일)에 발표된 합의는 잘못됐지만, 재협상은 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이 발표에 대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아쉬움을 드러냈지만, 전 정권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며 희망을 내비쳤다. 이 할머니는 “정권이 바뀌었다. 다시 협상해서 어떻게든 일본의 사죄를 받아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문 대통령에게는 “일본의 공식적인 사죄와 배상을 받아낼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 발표 후 일본은 “한·일간 위안부 합의를 1㎜도 움직이게 할 생각이 없다.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확인했다”며 펄쩍 뛰었다. 이에 할머니는 “11살, 12살, 13살, 14살 이런 아이들 데려다가 죽였다. 이래놓고 오늘날까지 안 그랬다고 한다. 사죄해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이옥선 할머니는 1927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언감생심 공부는 꿈도 못 꿨다. 1940년, 돈도 벌고 공부도 시켜준다는 말에 울산에 있는 한 여관에서 노동을 시작했다. 2년 후. 할머니는 1942년 7월 29일 중국으로 끌려가 일본군의 성 노예가 됐다. 당시 그녀의 나이 만 열다섯이었다. 3년간 끔찍한 생활이 이어졌다. 그 시간을, 살아냈다. 해방 후, 할머니는 위안소가 있던 연변에 가정을 꾸렸다. 그리고 2000년 6월이 되어서야 58년 만에 고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할머니는 그곳에 대해 “사람 잡는 사형장”이라고 설명했다. “하루에 군인 40~50명을 상대했다. 아프면 죽였고, 길 밖에 내버렸다. 짐승들이 (아이를) 먹게 했다”고 증언했다. 이 할머니가 물었다. (죽은) 아이를 낳은 부모가 그 사실을 알면 어떻겠냐고. 또 어느 부모가 자식을 낳아서 10년, 20년 길러서 일본에 바치겠느냐고 말이다. 이 할머니는 “오늘날 자기들이 안 했다고 하면 누가 곧이듣겠느냐. (일본은) 꼭 사죄를 해야 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5일 위안부 피해자 임모 할머니가 별세했다. 이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9명 중 생존자는 31명이다. 지난해 7월 23일 나눔의 집에서 지내던 김군자 할머니가 노환으로 별세했다. 이 할머니는 “우리는 안 죽고 살았기 때문에 말 한마디라도 해보지만, 먼저 간 사람은 그 원한을 얼마나 품고 갔겠는지 생각해보라”며 “그 몫까지 우리가 다 해야 한다”고 전했다. 끝으로 이 할머니는 위안부에 끌려갈 당시를 떠올리며 직접 쓴 노래를 들려줬다. 씩씩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할머니의 목소리가 금세 촉촉해졌다. 아픈 기억이 할머니의 목울대를 뜨거워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아직 이 곡을 완성하지 못했다. 미완의 이 곡이 완성되는 날, 할머니가 환하게 웃을 수 있기를. 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영상 문성호,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 돈 안준다고 고모살해 징역15년 선고

    초등학교 때부터 오갈 곳 없는 자신을 보호해준 고모를 무차별 폭행해 숨지게 한 20대에게 징역 15년이 선고됐다. 대구고법 형사1부(박준용 부장판사)는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20)군 항소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이같이 판결했다고 14일 밝혔다. 살인교사 혐의로 함께 기소된 B(20대)씨에게는 징역 20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A군 범행 경위와 수법, 피해자와 관계 등에 비추어 죄가 무겁다”며 “존엄한 가치인 사람 생명을 침해한 행위는 어떠한 변명으로도 절대 용인될 수 없는 범죄다”고 밝혔다. 지적장애 2급인 A군은 지난해 1월 15일 오전 9시쯤 대구 한 빌라에서 돈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고모 C(60대)씨 목을 조르고, 발로 머리와 가슴 등 부위를 20여 차례 짓밟거나 걷어차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피해자가 신음하고 있는 데도 아무런 구호조치 없이 현장에서 달아났다. A군은 부모가 이혼하고 조부모마저 잇따라 사망하자 초등학교 3학년 무렵부터 고모와 함께 살며 보살핌을 받아 왔다. A군 동네 선배인 B씨는 살인 범행을 지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항소심에서 A군이 “선처를 받기 위해 수사기관에서 B씨에게 살인을 지시받았다고 허위로 밝혔다”며 진술을 번복한 데다, 항소심 재판부도 검찰 공소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B씨는 사건 발생 2주 전부터 고모 집에서 가출한 A군과 여관 등을 전전하며 함께 생활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88서울 ‘손에 손잡고’ 2002월드컵 ‘오 필승 코리아’…평창은?

    88서울 ‘손에 손잡고’ 2002월드컵 ‘오 필승 코리아’…평창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및 동계패럴림픽대회에는 어떤 노래가 사랑받게 될까. 88서울올림픽에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 2002한일월드컵엔 ‘오! 필승 코리아’가 큰 사랑을 받았기에 평창에 울려퍼질 노래에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결론부터 말하면 평창에서는 하나의 공식 주제가를 정하지 않고 여러 가수들이 만든 음원이 골고루 쓰인다. 올림픽 홍보대사인 가수 인순이와 빅뱅 태양은 각각 ‘모두를 빛나게 하는 불꽃’(Let Everyone Shine)과 ‘라우더’(Louder)를 발표했다. 인순이의 노래는 ‘꿈과 열정이 가득한 우리의 이야기는 항상 새로운 도전과 내일의 희망 되리’라는 노랫말로 지난해 11월 1일 평창동계올림픽 성화가 도착했을 때도 흘러나왔다. 평창올림픽 음악감독을 밭은 양방언은 지난해 10월 강원도 정선아리랑을 주제로 국카스텐의 하현우·전인권 밴드·국악인 송소희·복고음악 걸그룹 바버렛츠·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가 참여한 음반 ‘에코우즈 포 평창’(Echoes for PyeongChang)을 냈다. 그 중에서도 국카스텐 하현우가 부른 ‘정선아리랑 록 버전’이 강렬한 사운드로 귀를 사로잡는다. 지난해 7월에는 ‘동사모2018’(동계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인순이와 김경호, 테너 김충희, 소프라노 박현자가 부른 응원가 7곡을 발표했다. 평창올림픽 조직위는 2016년 9월 SBS가 진행한 ‘대한민국 국민 응원가 공모 프로젝트’를 통해 가요 7곡을 선정했다. 장미여관 ‘챔피언은 바로 너야’, 울랄라세션 ‘어메이징 코리아’, 오마이걸 ‘기적을 만들어봐’, AOA ‘플라이 어웨이’(Fly Away), NCT127 ‘투나잇’(Tonight), 파이브스타 ‘Go!’, 케이윌·정기고·몬스타엑스 기현이 함께 부른 ‘소리쳐’ 등이 응원가로 선정됐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1915년 자유 찾아 하와이로… 일생이 녹록진 않았지

    1915년 자유 찾아 하와이로… 일생이 녹록진 않았지

    하와이 사진신부 천연희의 이야기/역주 및 해제 문옥표·이덕희·함한희·김점숙·김순주/일조각/888쪽/5만원하얀 한복에 단정히 올린 머리. 형형한 눈빛에 굳게 다문 입술. 다소곳이 모은 두 손에 꽃 서너 송이가 들렸다. 흑백사진 속 여성의 이름은 천연희. 열아홉 나이에 사진으로만 봤던 남자와 결혼하려 하와이로 간 ‘사진신부’다. 1900년대 초반 미주 지역으로 노동 이민한 남성과 한국에 있는 여성이 사진을 교환해 혼인하는 중매결혼이 성행했는데, 이를 ‘사진혼인’이라 했다. 사진신부는 여기서 유래했다. ‘하와이 사진신부 천연희의 이야기’는 천연희의 인생 기록이다. 75세 때인 1971년부터 88세가 된 1984년까지 그가 쓴 8권의 자필 노트와 24개 육성 테이프를 문옥표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와 이덕희 하와이 한인이민연구소장 등 6명의 연구자가 나눠 분석하고 정리했다.1896년 경남 진주에서 출생한 천연희는 19세이던 1915년 사진혼인을 결심한다. 다른 사진신부가 그랬듯, 가난과 남녀차별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공부하여 자유를 원했지만 일본 제국은 정치적 자유가 없이(중략) 미국 민주주의를 원해서 사진혼인으로 들어오고자 희망한 것이다.’(노트 2권)증기선을 타고 10일이나 걸려 하와이에 도착한 천연희를 기다리는 것은 스물일곱 연상의 남편 길찬록이었다. 당시 사진혼인에서는 남성들이 대개 자신의 젊을 때 사진을 보내거나 나이를 속이는 사례가 많았다. 천연희가 길찬록의 첫인상에 대해 구술한 부분은 사진신부의 삶이 순탄치 않음을 암시한다. ‘그래 시커매 가지고 옷 꼬라지하고 그래 오니께 더 숭허가. 아이고, 우리 집의 머슴도 저보다는 낫는데.’(구술 테이프 녹취록 10)천연희는 길찬록과 자녀 셋을 낳았다. 그러나 남편이 술을 좋아하고 게을러 가족을 보살피지 못하자 별거하고 혼자 아이들을 키운다. 그러던 중 자신과 아이들을 잘 돌봐주는 박대성을 만나 재혼했다. 박대성과의 사이에 자녀 셋을 두었지만, 결혼생활은 또다시 삐걱거렸다. 전 남편의 딸 메리의 대학 진학을 반대하자 천연희는 또 이혼한다. 당시 사회에서 이혼은 극히 드문 사례였지만, 가족의 생계와 자녀 교육을 위해 어쩔 수가 없었다. 천연희는 무능한 남편을 벗어나 빨래, 바느질, 여관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제 활동을 했다. 45세였던 1941년 미국인 로버트 기븐을 만나 재혼하고 카네이션 농장과 호텔을 경영하며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고 결혼도 시켰다. 책은 한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고향 진주에서 학교에 다니다 사진신부가 된 과정, 호놀룰루 지역의 한인 감리교회에서의 활동, 당시 하와이 한인들의 경제생활이 세밀하게 묘사됐다. 연구자들은 그의 노트를 분석하면서 “50여년 전의 일을 기억에 의존해 서술했지만, 구체적인 정황과 역사적 사실, 개인의 견해가 잘 묘사된 자서전적 생활문화기”라고 설명했다. 연도가 잘못되거나 사실 관계가 다른 부분은 연구자들이 보완했다. 1910~1924년 하와이로 이주한 사진신부는 108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자신의 이야기를 친필 기록으로 남긴 사진신부는 천연희와 이용옥 단 둘뿐이었고, 한글로 온전히 남아 있는 기록물은 천연희의 자료가 유일하다. 당시의 한글 연구자료로도 가치가 높다. 철저한 이승만 지지자였던 천연희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승만의 하와이 활동도 기록했다. 예컨대 이승만은 1924년부터 1년간 윌헬미나 라이즈 지역 럴라인 애비뉴 1521번지에 거주하며 태평양잡지를 발간했는데, 천연희의 기록에는 ‘하와이의 한 대학교수가 이승만에게 집을 내주었다’고 적혀 있다. 당시 이승만과 함께 민족운동을 이끌었던 경쟁자 박용만에 대한 기록도 귀중하다. 천연희의 삶은 한국 남성과 결혼해 사는 베트남 여성들 이야기와도 닮았다. 한국 남성이 베트남에 일주일 정도 체류하면서 신부를 고르고 결혼해 한국에 데려온다는 사실은 감추고 싶은 우리 모습이기도 하다.책 2부에는 그의 노트 원문과 번역을 나란히 실었다. 88세인 1984년 기록한 마지막 8권까지 읽다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말글을 배웠어도 글도 다 못 써먹고 마음과 육신이 다 늙었으니 눈도 어두워 잘 보지 못하니 용서하시오.’(노트 8권)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김근태 6주기 추모행사…매년 참석하던 안철수 대표는 불참

    김근태 6주기 추모행사…매년 참석하던 안철수 대표는 불참

    고(故)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상임고문의 6주기 추모행사가 29일 오전 서울 도봉구 창동성당에서 열렸다.이날 추모 미사에는 여당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한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불참했다. 안 대표는 매년 본인이나 부인 김미경 씨가 참석해왔다. 이날 추모행사는 더불어민주당이 9년 만의 정권교체로 집권 여당이 된 후 처음 열린 만큼 참석자들의 말과 표정에서 고인의 뜻을 이어받은 자부심과 뿌듯함이 가득 묻어났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문희상, 이석현, 박병석, 이종걸, 김부겸, 박영선, 설훈, 이인영, 박완주, 유은혜, 기동민 등 의원단이 참석했다.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 손학규 국민의당 상임고문,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도 모습을 드러냈다. 김 전 상임고문의 부인인 인재근 민주당 의원은 유족과 함께 성당 입구에 서서 추모객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인사했다. 추 대표는 추도사에서 “지난해 추모 미사 때는 참 막막했는데 올해는 마음이 따듯한 겨울이다”며 “촛불 정신을 받들어서 드디어 정권교체를 해내고 오늘 다시 김근태 정신을 기린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인간 존엄과 가치를 다시 세우고 국민의 삶에 희망을 불어넣는 일을 일생의 사명으로 아셨던 이 시대 진정한 지도자 김근태 의장님께서 항상 정신적 좌표가 돼 주시는 덕분에 우리도 이 길을 잘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추 대표는 “하늘나라에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님과 달라져 가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지켜봐 주시고, 이제는 마음 놓으시고 흐뭇하게 안식을 취하시면 좋겠다”며 “의장님의 정신이 민주당 이름으로 살아있도록 후배들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어진 추도사에서 “벌써 6년이 지났다. 형님을 떠나보낼 때는 참 막막했는데, 우리는 마침내 해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어제 마침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경찰청장과 ‘1987’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거기 그 울부짖던 박종철과 이한열의 고통 속에서 김근태가 떠올랐다”며 “웃음을 잃지 않았던 평화의 김근태가 거기 있었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시간이 지나고 보니 김근태의 뚝심과 정신이 마침내 국민에 퍼진 것 같다”며 “후배들이 잠시도 게으르거나 교만하지 않고 이 땅의 5000만, 남북의 8000만 민중과 함께 역사의 수레바퀴를 밀고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을 기도한다”고 덧붙였다. 김 전 상임고문을 정치적 스승으로 모시는 우원식 원내대표는 이날 추도사를 준비하고도 국회 본회의 개의를 위한 교섭단체 협상 때문에 미사에 참석하지 못해 아쉬워한 것으로 전해졌다. 추도 미사 후에도 김 전 상임고문 추모행사가 종일 이어진다. 이날 오후 1시 마석 모란공원에서 묘역을 참배하고, 오후 7시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제2회 민주주의자 김근태상 시상식과 추모문화제를 연다. 올해 문화제는 고인을 기억하는 시와 소설을 낭독하고 노래를 부르는 ‘낭독음악회’ 형식으로 진행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포토] ‘아버지…’ 고(故) 김근태 선생 6주기

    [포토] ‘아버지…’ 고(故) 김근태 선생 6주기

    여당 인사들 대거 참석…추미애 “마음 따듯한 겨울” 김부겸 “교만하지 않고 역사의 수레바퀴 밀겠다” 우원식, 고인이 준 녹색 넥타이 매고 묘역 참배행사 참석 고(故)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상임고문의 6주기 추모행사에 여당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올해 9년 만의 정권교체로 집권 여당이 된 후 처음 열린 고인의 추모행사인 만큼 참석자들의 말과 표정에서는 고인의 뜻을 이어받은 자부심과 뿌듯함이 가득 묻어났다. 이날 오전 서울 도봉구 창동성당에서 열린 추모 미사에는 민주당 추미애 대표를 비롯해 문희상, 이석현, 박병석, 이종걸, 김부겸, 박영선, 설훈, 이인영, 박완주, 유은혜, 기동민 의원 등이 참석했다. 아울러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과 국민의당 손학규 상임고문,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도 모습을 드러냈다. 매년 본인이나 부인 김미경 씨가 참석해오던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불참했다. 김 전 상임고문의 부인인 민주당 인재근 의원은 유족과 함께 성당 입구에 서서 추모객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인사했다. 추 대표는 추도사에서 “지난해 추모 미사 때는 참 막막했는데 올해는 마음이 따듯한 겨울이다”라며 “촛불 정신을 받들어서 드디어 정권교체를 해내고 오늘 다시 김근태 정신을 기린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인간 존엄과 가치를 다시 세우고 국민의 삶에 희망을 불어넣는 일을 일생의 사명으로 아셨던 이 시대 진정한 지도자 김근태 의장님께서 항상 정신적 좌표가 돼 주시는 덕분에 우리도 이 길을 잘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추 대표는 “하늘나라에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님과 달라져 가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지켜봐 주시고, 이제는 마음 놓으시고 흐뭇하게 안식을 취하시면 좋겠다”며 “의장님의 정신이 민주당 이름으로 살아있도록 후배들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어진 추도사에서 “벌써 6년이 지났다. 형님을 떠나보낼 때는 참 막막했는데, 우리는 마침내 해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어제 마침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경찰청장과 ‘1987’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거기 그 울부짖던 박종철과 이한열의 고통 속에서 김근태가 떠올랐다”며 “웃음을 잃지 않았던 평화의 김근태가 거기 있었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시간이 지나고 보니 김근태의 뚝심과 정신이 마침내 국민에 퍼진 것 같다”며 “후배들이 잠시도 게으르거나 교만하지 않고 이 땅의 5천만, 남북의 8천만 민중과 함께 역사의 수레바퀴를 밀고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을 기도한다”고 덧붙였다. 김 전 상임고문을 정치적 스승으로 모시는 우원식 원내대표는 이날 추도사를 준비하고도 국회 본회의 개의를 위한 교섭단체 협상 때문에 미사에 참석하지 못해 아쉬워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우 원내대표는 야당과 극적인 타결을 이룬 직후 경기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으로 달려가 묘역 참배에 참석했다. 중요한 날에만 맨다는, 김 전 상임고문이 생전 사용하던 녹색 넥타이를 맨 채로였다. 우 원내대표는 추도사에서 “제3기 민주정부의 첫해, 우리는 수많은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며 “힘없고 백이 없어도 억울한 꼴 당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인간의 가치는 그가 품고 있는 희망의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는 형님의 준엄한 말, 늘 가슴 속에 각인하고 있다”며 “반짝이는 별처럼 김근태의 유지를 이정표 삼아 뚜벅뚜벅 걷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오후 7시에는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제2회 민주주의자 김근태상 시상식과 추모문화제가 열린다. 올해 문화제는 고인을 기억하는 시와 소설을 낭독하고 노래를 부르는 ‘낭독음악회’ 형식으로 진행된다. 연합뉴스
  • 대학 친구 어머니 사망보험금 가로채 유흥비로 탕진한 20대들

    대학 친구 어머니의 사망보험금을 가로채 탕진한 20대 4명이 경찰에 검거됐다. 충남 천안서북경찰서는 15일 사망보험금을 가로챈 A(22·무직)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B(20·무직)씨 등 3명을 입건했다. A씨 등은 지난해 10월 19일 충남 홍성의 한 대학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던 C씨에게 “변호사를 선임하면 숨진 어머니의 사망보험금을 더 받을 수 있다”고 속여 같은 해 12월 5일까지 7차례에 걸쳐 모두 6100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경찰에서 “C씨 어머니가 2015년 10월 폐암으로 돌아가신 뒤 보험금 1억원을 받은 사실을 알고 욕심이 나 범행했다. 가로챈 돈은 생활비와 유흥비로 모두 썼다”고 진술했다. A씨 등은 범행이 들통날까봐 달아났다가 같은 대학출신 친구들이 ‘C씨가 사기 당한 사실을 알고 경찰에 신고하려고 한다’고 전하자 지난 10월 6일 C씨를 납치해 10일간 여관에 감금하고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고 협박하고 폭행하기도 했다. 이들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탈출한 C씨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천안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저도 언니처럼 기부하고 싶었어요”…충남대 5억 기부 성옥심 할머니

    “저도 언니처럼 기부하고 싶었어요”…충남대 5억 기부 성옥심 할머니

    “저도 복순(김밥 할머니) 언니처럼 하고 싶었어요”12일 충남대에 부동산과 현금 등 5억원 상당의 발전기금을 낸 성옥심(89) 할머니는 “죽기 전에 사회에 공헌하는 것을 꿈 꿔왔는데 이제서야 실천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충남대는 이날 대학 회의실에서 성 할머니가 참석한 가운데 발전기금 기탁식을 열었다. 성 할머니는 ‘김밥 할머니’로 유명한 고 이복순(법명 정심화) 여사와 대전 중앙시장에서 포목점을 운영하며 인연을 맺었다. 이씨는 1990년 현금 1억원과 시가 50여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충남대에 기부해 화제가 됐다. 성 할머니는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이씨가 스무 살 가까이 나이가 많았지만 늘 ‘언니’라고 부르며 애틋한 정을 쌓았다. 이씨는 장사 수완이 좋은 데다 음식 솜씨까지 뛰어나 포목점은 물론 여관과 식당 등까지 운영하면서도 성 할머니를 살뜰히 챙겼고, 성 할머니는 이런 이씨를 큰 언니처럼 따랐다. 성 할머니는 “1990년 당시 주변의 많은 반대에도 충남대에 통 크게 기부하는 복순 언니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역시 대단하다’고 느꼈다”며 “언니의 기부는 나도 언젠가는 힘들게 모은 내 재산을 좋은 일에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성 할머니가 마음속 다짐을 실천에 옮긴 것은 2015년 12월이다. 현재 자신이 사는 4억원대 아파트를 사후에 써 달라고 충남대에 기부한 것이다. 당시 충남대는 발전기금 기탁식을 열자고 권했으나 성 할머니가 ‘주변에 알려지는 것은 싫다’고 거절해 무산됐다. 성 할머니는 “기부는 남몰래 하는 것으로 생각해 왔는데 충남대가 매년 복순 언니를 추모하고 그 마음을 기리는 걸 보면서 이번에는 공개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함께 있지 않지만 언니에게 자랑하고 싶은 떳떳한 동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웃었다. 충남대는 성 할머니가 기부한 현금과 부동산으로 ‘성옥심 장학금’을 만들어 학생들을 지원할 계획이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장미여관X형돈이와 대준이가 뭉쳤다”...신곡 ‘산토끼’ 발매, 무슨 내용?

    “장미여관X형돈이와 대준이가 뭉쳤다”...신곡 ‘산토끼’ 발매, 무슨 내용?

    밴드 장미여관과 힙합 듀오 형돈이와 대준이가 다시 만났다.4일 밴드 장미여관 소속사 록스타뮤직앤라이브 측은 이날 장미여관X형돈이와 대준이 콜라보 디지털 싱글 음원 ‘산토끼’가 오는 5일 오후 12시 각종 온라인 음원사이트를 통해 공개된다고 밝혔다. 이번 싱글 음원 ‘산토끼’는 가수 장미여관 멤버들과 형돈이와 대준이까지 총 7명이 의기투합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모두는 작사, 작곡에 참여해 각자의 개성을 살리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이들은 지난 2013년 MBC 예능 ‘무한도전’을 통해 인연을 맺었다. 이를 계기로 지난해 홍보부터 연출까지 직접 맡은 공연 ‘형돈이에게 장미를 대준이’를 열고, 함께 무대에 섰다. 올해 인천 펜타포트 락페스티벌, 렛츠락페스티벌 등에도 초청돼 한 팀으로서 단합된 모습을 보였다. 또 오는 25일 오후 6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아이마켓 홀에서는 크리스마스 콘서트도 연다.한편 이번 싱글 음원 ‘산토끼’는 민요와 락, 그리고 힙합의 덥스텝 조화를 더해 세련된 느낌을 주는 곡으로, 장미여관과 형돈이와 대준이만의 재치 있고 엉뚱한 발상이 담겼다. 이 곡은 높은 산에 사는 산토끼와 바다 밑에 사는 물고기 도다리를 빗대어 높은 곳과 낮은 곳, 산과 바다, 위와 아래 등 서로 다른 환경, 위치나 계급에 연연하지 말고 모두 함께 재미있게 같이 살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진=MBC, 록스타뮤직앤라이브 김혜민 기자 khm@seoul.co.kr
  • 100세 시대… 당구장 ‘뜨고’ 호프집·간이주점 ‘지고’

    100세 시대… 당구장 ‘뜨고’ 호프집·간이주점 ‘지고’

    결혼 인구 감소 등으로 예식장과 산부인과는 줄어든 반면 반려동물의 인기와 맞물려 애완용품점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2차를 가는 회식 문화가 사라지면서 호프집과 간이주점은 줄어드는 대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당구장과 헬스클럽 등은 급증했다.국세청이 29일 공개한 ‘100대 생활업종 통계’에 따르면 탁구장·승마연습장·롤러스케이트장 등 스포츠시설 운영업은 지난 9월 기준 5123개로 3년 전 2132개에 비해 무려 140.3% 증가했다. 특히 스포츠 관련 업종이 증가율 상위 10개 중 3개를 차지했다. 실내스크린골프점은 2014년 2730개에서 올해 4059개로 48.7%(1329개), 헬스클럽도 같은 기간 4596개에서 6496개로 41.3%(1900개) 각각 늘어났다. 피부관리업(58.8%)과 의료용품점(20.0%)도 100대 업종 전체 평균 증가율(11.4%)에 비해 높은 증가세를 보여 건강 관련 업종 창업이 활성화된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결혼 인구가 줄면서 올해 예식장은 1057개로 2014년 1192개에 비해 11.3%(135개), 결혼상담소도 같은 기간 9.4%(168개) 감소했다. 저출산의 영향으로 산부인과는 1726개에서 1663개로 3.7%(63개) 줄었다. 산부인과는 13개 진료 과목별 병·의원 중 유일하게 감소세를 나타냈다. 반면 신경정신과는 17.2%, 피부·비뇨기과 의원은 11.4% 증가했다. 1인 가구의 증가로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2014년 3740개였던 애완용품점은 80.2% 증가한 6739개다. 동물병원도 같은 기간 13.8%(477개) 증가했다. 생활용품이나 음식을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는 편의점과 패스트푸드점도 각각 36.5%, 24.1% 늘어났다. 반대로 혼술·혼밥 현상이 늘고 과도한 음주를 지양하는 사회적 추세에 따라 호프 전문점과 간이주점은 각각 10.2%, 15.7% 감소한 대신 술 대신 2차로 함께 즐기는 오락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당구장이 24.8%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또 프라모델, 드론, 인형뽑기 등 장난감가게도 45.3% 늘었다. 트렌드의 변화로 펜션·게스트하우스는 3년 사이 89.1%가 늘어났지만 전통적 숙박업소인 여관과 모텔은 3년 전보다 4.8%가 줄어든 2만 2000개로 나타났다. 또 온라인 쇼핑이 증가하면서 온라인 통신판매업(46.3%)이 증가함에 따라 오프라인 매장이 있는 옷가게(-2.4%), 스포츠용품점(-1.9%), 건강보조식품 가게(-1.8%)가 감소했다. 세종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땅끝… 치유의 길 걷다

    땅끝… 치유의 길 걷다

    이 땅의 끝인 전남 해남. 그 끝자락에 산 하나가 불끈 솟았습니다. 달마산입니다. 산꼭대기에는 공룡의 등줄기를 닮은 수많은 암릉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습니다. 이 모습 덕에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립니다. 산의 높이라야 489m 정도에 불과하지만, 크기에 견줘 장엄하다는 인상을 갖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달마산 아래 달마고도가 최근 새로 조성됐습니다. 산자락 7~8부 능선을 따라가는 트레일입니다. 달마고도는 대체로 유순합니다. 일부 구간을 빼면 푹신한 흙을 밟으며 걷습니다. 그러니 산꼭대기의 암릉을 오르내리는 등산로가 ‘정복의 길’이라면 달마고도는 ‘치유의 길’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다.남도 금강산’ 달마산, 수많은 암릉들이 촘촘히 박혀 왜 달마산일까. 전해오는 옛이야기를 되짚어가면 불교의 남방도래설에 맥이 닿는다. 오래전 인도 우전국 왕자 금인(人)이 불교를 전하기 위해 땅끝을 찾았다. 사자포구에 내린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달마산이었다. 그는 이를 “1만명의 부처님이 앉아 있는 형상”이라며 상찬했다. 현재의 이름은 중국 선종의 초조인 달마대사의 법명에서 따왔다. 미황사 주지인 금강 스님은 “동국여지승람, 미황사 상량문 등에 달마산이 ‘달마대사의 법신이 상주하는 산’이라고 적혀 있다”고 했다. 중국 송나라 때 사자포를 찾은 상인들이 배에 싣고 온 달마대사의 법신을 달마산에 묻었다는 게 이야기의 요지다. 여기서 법신은 육신만 뜻하는 단어가 아니다. 달마대사가 입었던 가사, 썼던 발우, 몸에서 나온 사리 등을 뜻하기도 한다. 그 가운데 무엇이 달마산에 깃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트레킹에 앞서 달마고도의 제원부터 살핀다. 전체 길이는 약 18㎞다. 완주하려면 예닐곱 시간은 족히 걸린다. 미황사를 기준으로 절반은 동남쪽, 절반은 서북쪽 산사면을 따라 조성됐다. 미황사 왼쪽으로 도는 구간이 대부분 새 길이고 오른쪽은 천년숲길 등 기존의 길이 군데군데 섞여 있다. 코스는 모두 4개다.달마고도는 건설 장비의 도움 없이 온전히 사람의 힘으로만 조성됐다. 곡괭이와 삽으로 땅을 파고, 지게를 져 돌 등의 자재를 날랐다. 매일 40여명의 인부가 동원돼 꼬박 250일 동안 작업을 벌였다. 금강 스님은 이 같은 조성 과정에 대해 “사람이 산에 깃들기를 바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정복의 욕망으로 달마산을 찾지 말고, 치유를 위해 찾으라는 것이다. 그러니 “티베트 사람들이 수미산 꼬라(탑돌이)를 돌 듯 달마산을 한 바퀴 돌면 그 자체가 수행”일 터다. 달마고도는 좌우로 긴 타원형이다. 적당히 걷다 다른 경로로 돌아올 수 없는 구조다. 한 바퀴를 완주하거나 걸었던 길을 되짚어 돌아오는 방법밖에 없다. 시간에 쫓기는 외지인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불리한 여건이다. 달마산 양쪽의 산사면을 잇는 지선 공사가 끝나면 상황이 다소 나아질 듯하다. 달마고도 4개 코스, 미황사~관음암~노지랑골~도솔암달마고도의 들머리는 미황사다. 창건 연대가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오르는 고찰이다. 달마산의 암릉들을 병풍처럼 두르고 섰다. 대웅보전의 단청 빠진 공포와 배흘림의 늙은 기둥이 절집의 만만찮은 내력을 웅변하고 있다. 기둥을 떠받친 주춧돌엔 게와 거북이 새겨져 있다. 경상(불경과 불상)을 싣고 해남 사자포구(땅끝)에 닿은 인도 돌배 설화의 상징물이다. 설화의 내용은 이렇다. 돌배가 오던 날, 의조 스님은 꿈을 꾼다. 스스로를 인도의 왕자라 밝힌 금인이 나타나 “소에 경상을 싣고 가다 소가 누워 일어나지 않는 곳에 성상을 봉안하라”고 일렀다. 돌배에서 나온 검은 소는 달마산 어귀에 이르자 한바탕 울음을 운 뒤 쓰러졌다. 그 자리에 들어선 절집이 미황사다. 달마고도 1코스는 미황사 일주문 옆에서 시작된다. 숲길과 임도를 따라 1㎞쯤 가면 거대한 너덜지대가 나온다. 달마산의 기암들이 허물어져 내린 흔적이다. 너덜지대 주변엔 나무가 없다. 사방이 트였다. 자연이 안배한 풍경전망대다. 달마고도를 통틀어 이런 너덜지대가 20여곳이나 된다. 칼날 같은 암봉 사이에 뿌리를 내린 몇 그루 단풍들의 자태도 곱다. 회색 바위를 배경 삼은 덕에 빛깔이 한층 더 도드라진다. 2코스 중간의 관음암터에 이르면 작은 못이 나온다. 온통 바위투성이인 산에서 만나는 연못이 퍽 이채롭다. 달마고도를 설계한 권경익씨는 “달마고도 주변에 절터와 연못이 각각 십여곳에 이른다”며 “이는 달마산의 생명력에 대한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달마산 동남쪽 사면, 그러니까 타원형 코스의 왼쪽 끝자락까지는 완도 쪽 풍경이 펼쳐진다. 반면 달마산 서북쪽 사면으로 돌아서면 진도 일대의 풍경이 눈에 담긴다. 3코스는 노지랑골 사거리부터 편백나무숲을 지나 몰고리재까지 연결된다. 4코스는 몰고리재에서 다시 미황사로 이어진다. 내년 1월부터는 주말마다 트레킹 가이드가 배치된다고 한다. 이들의 해설을 들으며 걷는 재미가 쏠쏠할 듯하다. 이정표는 코스 곳곳에 잘 세워진 편이다. 다만 1코스 중간의 삼거리엔 이정표가 없다. 삼거리에서 왼쪽은 송촌마을, 위쪽은 달마산 등산로다. 잘못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 있다. 달마고도는 가운데 길로 가야 한다. 아울러 이정표의 붉은 화살표는 등산로, 파란 화살표는 진행 방향, 검은 화살표는 하산 방향을 각각 표시한다. 안내도에 적혀 있지 않으니 꼭 기억해 둬야 한다.땅끝마을, 힘차고 아름다운 해돋이 4코스에 도솔암으로 빠지는 샛길이 있다. 달마산 암릉 꼭대기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암자다. 달마고도 노선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풍경의 보고인 만큼 빼놓지 말고 돌아보길 권한다. 차로도 도솔암 근처까지 갈 수 있다. 달마고도를 내처 걸은 뒤에 느긋하게 찾아도 좋겠다. 도솔암에 올라서면 땅끝과 다도해가 주르륵 펼쳐진다. 달마산의 장대한 암릉들도 눈에 담을 수 있다. 땅끝마을은 당연히 찾아야 할 해남의 아이콘이다. 땅의 끝에서 맞는 해넘이 풍경도 곱지만, 그보다 해돋이 장면이 더 힘차고 아름답다. 땅끝마을 뒤는 사자봉이다. 정상에 세워진 전망대까지 모노레일을 타고 오를 수 있다. 전망대 주변에 땅끝탑과 산책로 등이 조성돼 있다. 송지면 엄남리 해안에서 땅끝마을을 거쳐 사구리 해안까지 가는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중 하나다. 드라이브 코스 주변에 송호해변, 땅끝관광지, 사구미해변, 땅끝조각공원 등 명소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한 곳만 더 덧붙이자. 최근 두륜산 대흥사를 찾는 이들이 부쩍 많아졌다. 현직 대통령이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공간이 있어서다. 하지만 해당 선원은 현재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됐다. 스님들의 동안거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내년 1월 중순쯤 동안거가 해제되면 다시 열린다. 글 사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도솔암 주차장은 송지면 마봉리에서 도솔암 이정표를 따라 3㎞ 정도 오르면 나온다. 주차장에서 도솔암까지는 800m 정도. 잰걸음으로 15분 정도 걸린다. 미황사(533-3521) 대웅전이 전면 보수 공사에 들어간다. 시작 시점은 조만간 정해질 예정이다. 해남까지 내려가서 고풍스러운 미황사 대웅전을 못 본다는 건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니다. 달마고도를 걸어 볼 계획이라면 서두르는 게 좋겠다. →맛집:해남 읍내 천일식당(536-4001)은 80년을 이어온 떡갈비로 소문난 집이다. 땅끝회관(536-3366) 진일관(532-9932) 등은 한정식으로 이름났다. 이학식당(532-0203)은 삼치회로 입소문 난 집이다. 송촌마을 입구의 매화식당(536-9595)은 소박한 백반집이다. →잘 곳:유선장여관(534-2959)은 고풍스러운 한옥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대흥사 들머리에 있다. 땅끝비치(534-1002)는 한국관광공사에서 지정한 굿스테이 업소다. 땅끝마을 언덕에 있다.
  • “여관서 사람 죽였다” 신고 후 도주 내연남, 숨진 채 발견

    “여관서 사람 죽였다” 신고 후 도주 내연남, 숨진 채 발견

    부산 중구에서 일어난 50대 여성 살인 사건의 용의자 A(57)씨가 야산에서 목을 매 숨졌다.부산 중부경찰서에 따르면 25일 오전 11시쯤 사하구 감천동의 한 야산에서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지난 21일 오전 3시쯤 부산 중구의 한 모텔에서 B(62·여)씨의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당시 A씨는 경찰에 전화해 “여관에서 사람을 죽였다”고 신고 한 뒤 달아났다. 경찰은 A씨와 내연 관계에 있던 B씨가 숨지기 직전 다툼이 있었던 것을 확인하고 A씨의 행방을 추적 중이었다. 경찰은 범행 현장 주변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인한 결과 A씨가 주거지 인근 야산으로 도망가는 모습을 포착했다. 야산을 수색하던 경찰은 이틀 만에 나무에 목을 매 숨진 A씨를 발견했다. 경찰은 A씨가 범행 직후 곧바로 산에 올라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주변인 등을 상대로 범행 동기 등을 수사할 계획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인제 서울시의원 “잠실야구장 신축, 최소 30년 미래 내다보고 추진”

    김인제 서울시의원 “잠실야구장 신축, 최소 30년 미래 내다보고 추진”

    서울시의회 김인제 의원은 23일 잠실운동장 내의 국제교류복합지구 시민참여관에서 열린 ‘잠실야구장 신축 관련 워크숍’에 토론자로 참석했다.‘잠실야구장 신축 관련 워크숍’은 작년 12월 2일에 열린 전문가 공개토론에서 지적되었던 기초데이터 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가 실시한 ‘잠실야구장 기초조사 결과 및 개발방향 용역 결과’를 토대로 토론이 진행됐다. 김인제 의원은 야구장 신축 민자사업에 대한 KDI공공투자관리센터(PIMAC : 피맥)의 적격성 조사가 아직 끝나지 않아 구체적인 데이터를 제시할 수 없는 현실과 함께 이야기하며, “잠실야구장 민자투입이 돔과 개방형, 개폐형이 맞느냐와 관련해 1년 동안 의견을 모았다. 아쉬운 점은 2025년 준공된다고 가정하면 최소 30년 뒤의 미래 가치를 보고 이야기를 진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김인제 의원은 “야구 저변이 어떻게 될지 미래 지향적 수요와 예측 조사가 더 필요하다. 건립 형태의 장단점보다 진보적 연구가 필요하다. 서울시민과 야구인이 문화사업을 함께할 수 있는 시설로 건축 형태를 다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인제 의원은 “오늘의 자리가 단순히 잠실야구장에 대한 방향성을 확정하기 위한 자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시민과 야구팬들의 의견을 계속 들어보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납득하고 동의할 수 있는 야구장 신축을 이야기하기 위한 단계일 것”이라고 이날 토론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얼굴·몸 고쳐야” 여성비하 발언 이화여대 교수, 공개사과

    “얼굴·몸 고쳐야” 여성비하 발언 이화여대 교수, 공개사과

    여대생들에게 “여자가 절반 이상인 직종은 하향길” “얼굴과 몸을 고쳐야 한다”는 비상식적인 여성 비하 발언을 한 의대 교수에 대해 이화여대가 유감을 표명하고 엄밀하게 진상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이대는 13일 “본 사안과 관련해 유감을 표명하며 심각성을 인지해 엄중하게 대응하고자 한다”며 “제보 접수 후 의과대학 재임교원 인사위원회를 소집해 조사했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교수의 공개 사과 및 재발방지 약속을 포함하는 조치사항을 결정했다”며 “학교 차원의 엄밀한 진상조사와 함께 필요한 모든 조치를 즉각적으로 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당 A교수는 이날 오전 수업에서 공개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다고 학교 측은 전했다.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은 지난 12일 이대 교내에 붙인 ‘○○○ 교수의 발언을 고발합니다’ 제목의 대자보에서 A교수가 여성 혐오적 발언으로 학우들에게 모멸감을 주고, 이화의료원의 전신인 보구여관과 이화학당을 설립한 메리 스크랜튼 여사를 비하했다고 주장했다. A교수는 “어느 직종이든지 여자가 (절)반 이상 하면 그 직종은 하향길이야. 제일 좋은 것은 물론 공부도 하지만 얼굴도 좀 가꿔서 빨리 남자를 좋은 사람을 만나. 일단은 얼굴을 고쳐야 해. 너희는. 몸을 고치든지”라고 언급했다고 학생들은 주장했다. 그는 일부 언론에 “중간중간 재미있게 하려고 단어를 넣었던 것이 과장되고 오해를 불러온 것 같다”고 해명한 바 있다. A교수의 부적절한 발언은 지난 1일 의대 대표 메일로도 관련 제보가 접수됐다. 학교는 지난 6일 A교수와 면담해 발언이 사실인 것을 확인하고 9일 인사위원회를 열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대 의대 교수, 여성비하 발언 논란 “얼굴·몸 고쳐 남자 만나라”

    이대 의대 교수, 여성비하 발언 논란 “얼굴·몸 고쳐 남자 만나라”

    이대 교수 “여자가 반 이상이면 그 직종은 하향길…얼굴, 몸 고쳐 좋은 남자 만나야” 이화여대의 한 의과대학 교수가 학생들에게 수업 시간에 이화학당 설립자를 모독하고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교수는 이대 학생들이 붙인 대자보와 관련해 “오해”라며 사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12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ECC에 붙은 ‘○○○ 교수의 발언을 고발합니다’ 제목의 대자보에 따르면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은 A교수가 여성 혐오적 발언으로 학우들에게 모멸감을 주고, 이화의료원의 전신인 보구여관과 이화학당을 설립한 메리 스크랜튼 여사를 비하했다고 주장했다. 학생들은 “A교수가 스크랜튼 여사를 가리키며 ‘이 아줌마는 그냥 아들 따라온 사람이야. 보구여관은 정말 이름도 없는 찌질한 여자애들을 교육했던 기관인데’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A교수가 “130년 전 미국에서 오려면 거의 한 달을 넘게 배를 타고 오는데 결혼도 안 한 여자애가 왔다는 거는 성격이 대단한 거지? 너희도 마찬가지야. 여자 의사들 무서워. 근데 무섭기만 하고, 전부 선배들이 너희 가족하고 이런 사람들만 챙겨서 이 학교는 발전을 못 했어”라고 말했다고 학생들은 전했다. 이어 A교수가 “어느 직종이든지 여자가 반 이상하면 그 직종은 하향길이야. 제일 좋은 것은 물론 공부도 하지만 얼굴도 좀 가꿔서 빨리 남자를 좋은 사람을 만나. 일단은 얼굴을 고쳐야 해. 너희는. 몸을 고치든지”라고 언급했다고 학생들은 주장했다. 학생들은 “A교수가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해야 한다”며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학교 차원의 여성혐오 방지 교육 등 재발방지 대책 수립도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A교수는 일부 언론과의 통화에서 “여성의 지위가 낮았던 130년 전에도 스크랜튼 여사가 이렇게 노력했으니 더 열심히 해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과 의사의 소명의식이 수업의 주제였다”고 해명했다. 이어 “중간중간 재미있게 하려고 단어를 넣었던 것이 과장되고 오해를 불러온 것 같다”며 “내일 학생들에게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문중 지킨 종갓집 며느리처럼… 종로, 그렇게 흘러왔구나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문중 지킨 종갓집 며느리처럼… 종로, 그렇게 흘러왔구나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2차 ‘서울의 문학2-근대문학거리 여행’ 편이 지난 4일 서울 중구 다동과 종로구 인사동, 운니동 일대에서 3시간 동안 진행됐다.답사단은 박태원의 ‘천변풍경’, 이상의 ‘건축무한육면각체’, 염상섭의 ‘삼대’, 심훈의 ‘그날이 오면’, 임화의 ‘네거리의 순이’,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 박완서의 ‘나목’ 속 서울을 걸었다. 청계천변을 지나 우미관과 한국기원이 자리했던 관철동을 거닐었고, 옛 조선극장과 승동교회, 통문관, 귀천에서 인사동을 느꼈다.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의 무대 운니동 운현궁에서 일정을 마무리했다. 너나없이 서울미래유산 로고가 새겨진 빨간색 스카프로 멋을 낸 답사단원들은 문학의 향기를 따라 거리를 누볐다. 황미선, 김은선 두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지난 9월 서울숲에 이어 또 한번 콤비를 이뤘다. 김은선 지도사는 무교동에서 관철동까지, 황미선 지도사는 관철동에서 운니동까지 해설을 나눠 맡았다.우리나라 문학과 예술작품 중 서울의 영향을 받고 창작된 것이 많다. 그만큼 문화예술계의 서울 의존도는 깊고 넓다. 서울은 600년 이상 한국인들의 의사 이상향이었다. 토크빌이 “파리는 프랑스 그 자체”라고 말했듯이 ‘서울이 곧 한국’이었다. 문화예술이 서울을 재창조했다. 작가와 작품이 서울의 결을 기름지게 하고 향기를 풍기게 했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염상섭의 ‘삼대’에는 황토마루 네거리, 황토현이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오늘의 광화문 네거리가 바로 황토마루 네거리다. 조선 500년 내내 네거리가 아니라 삼거리였다. 일제가 1912년 태평로를 뚫기 전까지 광화문과 숭례문을 잇는 남북도로는 없었다. 인왕산 지맥인 야트막한 고개가 정동과 청계광장을 거쳐 무교동 변에 자리했다. 진작 사라진 황토마루라는 지명을 30~40년대 소설가들이 애타게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박태원의 ‘천년풍경’에는 아낙들의 빨래하는 모습과 개천을 복개한다는 뜬소문이 묘사되고 있다. ‘간간이 부는 천변바람이 제법 쌀쌀하기도 하다. 그래도 이곳 빨래터에는 대낮에 볕도 잘 들어 물속에 잠근 빨래꾼들의 손도 과히들 시리지는 않은 모양이다.’, ‘청계천을 덮어버린단 말이 있지 않어?…그거 다 괜한 소리, 덮긴, 말이 그렇지, 이 넓은 개천을 그래 무슨 수로 덮는단 말이유?’ 등 거리에 떠돈 소문은 사실이 됐고, 일제가 조금씩 덮기 시작한 청계천을 결국 우리 손으로 지하에 가뒀다. 소설은 역사가 된다. 구보 박태원은 6·25전쟁 때 아내와 3남2녀를 서울에 남겨 둔 채 월북했고, 1988년 해금 때까지 잊힌 작가였다. 천재 시인 이상, 구보와의 관계는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문학 동지이자 ‘짝패’ 그 이상의 관계였다. 구보의 북녘 부인 권영희는 이상의 애인 권순옥이었다. 월북 소설가 정인택은 권순옥을 흠모해 음독자살을 기도한 끝에 결혼했고, 이상은 이 결혼식의 사회자로 나서 ‘조선팔도의 허리가 휠 희곡’이라는 대사를 남겼다. 구보가 남녘에 남긴 외손자가 영화 ‘괴물’의 감독 봉준호다. 건축가이자 화가였으며, 시인이자 소설가로 27살에 요절한 이상은 이상한 작품을 남긴 이상한 남자가 아니다. 그가 없었다면 서울은 심심하고, 피폐해졌을 것이다. 그는 청진동에 ‘제비’, 인사동에 ‘쓰루’, 광교에 ‘69’, 종로1가에 ‘무기’란 카페를 운영했다. 부인 김향안은 또 다른 절친 화가 구본웅의 이모이며, 화가 김환기의 부인 변동림이 된다. 이 시기 이상, 박태원과 엮이지 않은 문인 예술가는 거의 없었다.골동품과 고서화의 고향을 현대와 연결하는 인사동 쌈지길은 이상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연상시킨다. ‘사각형의 내부의 사각형의 내부의 사각형의 내부의 사각형의 내부의 사각형’으로 시작된 한 편의 시는 계단 없이 경사로를 사각으로 이어 붙인 특이한 건물, 형태는 사각형인데 길 따라 돌다 보면 원이고, 옥상 정원에 닿는 묘한 구조의 건물로 현대에 구현됐다.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는 1950~60년대 서울을 소설의 주요 무대로 삼은 전후 문학 작품이다. 원산 출신 실향 피란민 이호철은 종로 북촌을 지배하고 있던 서울 토박이, 해방촌에 무리 지어 사는 이북 피란민,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올라온 상경민 등 세 부류의 사람들이 ‘삶의 용광로’ 서울에 터 잡고 사는 세상을 그렸다. 식모살이를 하다가 몸을 파는 통영 출신 길녀는 상경민이다. 소설 속에서 종로는 서울 토박이 동네, 삼청동과 가회동은 부촌, 금호동은 해방촌, 회현동은 여관촌으로 각각 그려졌다. 박완서의 ‘나목’에서도 주인공 이경은 강점기 미스코시백화점이었다가 미군정기 미군PX가 있던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초상화부 점원으로 일한다. 이경의 퇴근길은 남대문 백화점에서 중앙우체국, 을지로입구, 화신백화점이 있던 종각을 지나 계동집까지의 행로다. 미군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박수근과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 자전소설이다. 심훈은 ‘그날이 오면’에서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중략)…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라고 노래했다. 나라를 찾기만 한다면 보신각 종을 치다 죽겠다는 격정을 표현했다. 임화도 ‘네거리의 순이’에서 ‘자 좋다, 바로 종로 네거리가 아니냐!’라면서 식민지 물질문명을 상징하는 종로에서 단말마를 토했다. 인사동과 관철동, 운니동을 품은 근대문학의 길 종로는 500년간 유일한 도심이었다가 지금은 여러 도심의 하나로 내려왔다. ‘마치 문중을 지키며 늙어 가는 종갓집 며느리 같다’는 어느 도시학자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서울의 놀거리 (대중문화 1번지, 홍대) ■일시: 11일(토) 오전 10시 홍대입구역 5번 출구 앞 ■신청(무료) : 서울시 서울미래유산 (futureheritage.seoul.go)
  • 부산형 복지모델 ‘다복동 사업’, 세계 유명 도시들이 본받는다

    부산형 복지모델 ‘다복동 사업’, 세계 유명 도시들이 본받는다

    부산시가 역점 시책으로 추진 중인 ‘다복동’ 사업이 부산형 복지모델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특히 다복동 복지사업은 지난 8월 응모한 두바이 국제도시정책 모범사례상 최종 본선에 진출하고 외국 도시에서도 사업 공유를 요청하는 등 국내외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부산시의 다복동 사업은 공공과 지역 주민, 민간 복지기관이 힘을 모아 ‘다 함께 살기 좋은 행복한 동네’를 만들어 가는 사업이다. 부산시는 마을 중심 복지와 함께 건강, 마을재생, 교육문화 등 모두 8개 분야 36개 세부 과제의 다복동 사업을 벌이고 있다고 2일 밝혔다.부산시는 다복동 사업에 ‘동(洞) 복지기능 강화 사업’이라는 이름을 붙여 2014년 7월 4개 동에서 시범 사업을 폈다. 지난해 5월 부산지역 52개 동을 선정하면서 본궤도에 올랐다. 이어 올해 5월 24일에는 다복동 사업 2차연도 발대식을 열고 참여 동도 192개 동으로 대폭 늘리는 등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내년에는 부산 207개 전 동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2014년 시범사업… 내년 207개 모든 洞에 2차 사업을 시작하면서 다복동 뜻도 수정했다. ‘주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는 복지 동’과 ‘다 함께 행복한 동네’(다복동)라는 2개의 의미를 담았다. 시는 다복동 사업을 부산시의 특화사업으로 추진한다는 전략에 따라 최근 특허청에 ‘다복동’ 브랜드의 업무표장(상표) 등록을 출원하는 한편 ‘다복동 브랜드 인증제’를 시행하고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다복동 업무표장 등록은 복지, 건강, 마을재생 등 다양한 복지서비스 정책을 단일 브랜드화해 다 함께 행복한 마을공동체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부산시 ‘다복동 ’ 특화… 상표등록 출원 부산시가 다복동 사업을 역점 시책으로 추진하는 것은 최근 공적 손길이 미치지 않아 사각지대에 처한 소외 및 취약계층이 대거 늘어나면서 사회복지 방향이 변하고 있어 이에 걸맞은 복지정책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다복동 사업의 성과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부산시가 자체 분석한 결과 다복동 사업 시행 이전에 비해 복지 사각지대 발굴 건수 4.5배, 방문상담 건수 4.4배, 통합사례 건수 2.8배, 서비스 연계 건수 2.4배가 증가하는 등 복지 효과가 크게 상승했다. 시는 찾아가는 방문상담이 활성화되면서 복지 사각지대가 줄어들고 맞춤형 통합서비스 제공으로 복지 체감도 및 만족도가 향상되는 등 지역과 주민이 사회복지와 돌봄의 주체가 되는 질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복지를 받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주민들이 이를 권리이자 의무로 인식하는 등 변화가 생긴 것도 긍정적인 효과로 꼽았다. 지역 주민과 다복동 사업 참여기구인 동지역 사회보장 협의체가 활성화되는 등 지역 주민 주도 공동체 기반이 조성되는 것도 고무적이다. 지역 주민과 민간 공공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동지역 사회보장 협의체 운영은 부산이 전국에서 유일해 부산시의 다복동 사업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필요가 있는 모범사례로 꼽히고 있다. 김경덕 사회복지국장은 “과거에는 사회복지의 주된 기능이 절대빈곤자에 대한 물질 지원이었으나 이제는 빈곤의 경계선에 있는 차상위계층과 노인, 장애인 독거생활자 등으로 확산하고 있다”며 “이의 해결 방안으로 다복동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시의 다복동 사업을 벤치마킹하고 공유를 요청하는 외국 도시도 등장하고 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시는 부산시의 다복동 사업에 대한 협력 및 경험 공유를 요청했다. 시는 지난달 19일 부산을 방문한 53개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표단에 다복동 사업을 소개하고, 양 도시가 함께 사업을 발굴하고 협력하기로 했다.●사업비는 복권기금 43억 지원받아 충당 시는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지난 7월 다복동추진단을 신설했다. 추진단은 다복동을 전담하는 5명으로 구성된 ‘다복동 기획팀’과 사회공헌 등 5명으로 이뤄진 ‘다복동 복지지원팀’ 2개 팀이 활동하고 있다. 다복동추진단은 내년에 다양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지역 복지관 53곳에 다복동 전담 직원 1명을 배치하도록 3000만원의 인건비를 지원한다. 행정과 민간 사이 중간지원조직인 ‘광역다복동 지원단’도 설치한다. 다복동 사업을 모니터링하고 더 나은 사업 방향을 연구해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구·군 다복동 플러스센터를 설치하고, ‘다복동학당’에서는 통반장 등 주민 500여명이 다복동 사업을 돕도록 ‘준사례관리사’로 양성된다. 사업비는 복권기금으로 지원받는 43억원으로 충당한다. 고재수 다복동추진단장은 “주민복지와 동네별로 추진 중인 도시재생과 건강사업 등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부산형 복지모델이 다복동 사업”이라고 말했다. 주민자치센터 직원과 사회복지사 등에게 의존했던 복지 사각지대 발굴체계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중구 대청동 주민센터는 지난달부터 다복동 맞춤형 사업으로 ‘찾아가는 이부자리 세탁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직접 가정을 방문해 세탁물을 수거 및 배달함으로써 대상자의 안부 확인 등 고독사 방지를 위한 인적 안전망 구축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수영구 수영동은 지역 부동산 중개업소와 연계하고, 연제구 연산9동은 통반장과 자생단체 등 586명이 참여하는 복지레이더단을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 서구 남부민1동은 복지통장과 전기·수도·가스 검침원, 구멍가게 주인, 여관·여인숙 운영자, 집배원, 요구르트 배달원 등을 활용해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있다. ●주민 제안 도로개설?지붕개량 등 성과 부산시는 다복동패키지사업, 행복마을사업, 마을공동체 역량 강화와 청년발전소 등을 통해 마을 주민의 건강한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도시재생사업이 원주민을 소외시키는 재건축·재개발 방식으로 이뤄진 것과 달리 주민 제안을 통한 도로 개설과 지붕 개량·주택 보수·범죄예방설계·복지 지원 등을 통합적으로 시행하는 신개념의 도시재생사업으로 성공적인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택 옥상 물탱크 무료 철거, 노후 상수관 교체, 옥내 수도관 교체 등 물 복지사업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시는 저소득계층이 수돗물을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자 각 가정으로 공급되는 급수시설에만 총 6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취약계층 소유의 무허가 주택 53가구를 발굴해 해비타트, 한국수력원자력(사업비 2억 5000만원 지원)의 도움으로 지붕을 교체하는 등 민간 지원 연계사업도 시행하고 있다. 다복동 사업은 두바이 국제도시정책 모범사례상 최종 본선에 올라 사업 추진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두바이 국제 모범사례상은 국제 공공행정 분야의 상 가운데 상금 규모(약 3600만원)가 가장 크고 유엔 공공행정상에 버금가는 권위를 가진 상이다. 올해는 72개국 정부기관과 공공기관에서 모두 102개 사업으로 응모해 전 세계 전문가로 구성된 기술심사위원회의 평가를 거쳐 최종 8개 사업만이 본선에 진출했다. 다음달 평가단 회의를 열어 국가 및 도시정책 모범사례를 보인 2개 사업을 최종 선정해 시상한다. 다복동 사업은 제1회 대한민국 지방자치 정책대상 최우수상, 2016년 보건복지부 지역 복지사업 평가 광역부문 1위, 2016년 부산 10대 히트상품, 올 3월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 명품정책에 선정된 바 있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두바이 국제 모범사례상 최종 본선 진출을 통해 다복동 사업의 우수성을 국외에 입증하게 돼 매우 기쁘다”며 “앞으로 다복동 사업을 더욱 알차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초등학생 성폭행한 테니스 코치, 16년 만에 단죄

    초등학생 성폭행한 테니스 코치, 16년 만에 단죄

    16년이 걸렸다. 초등학생 제자를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30대 남성 테니스 코치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춘천지법 원주지원 형사1부(부장 민지현)는 강간치상 혐의로 기소된 김모(39)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고 26일 밝혔다. 피해자 A(26)가 상당한 시간이 지나 김씨를 고소한 사건이지만,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이 매우 구체적이고 일관된 점 등을 볼 때 성폭행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의 발단은 A씨가 10살 때인 1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씨는 A씨가 다니는 강원 철원의 한 초등학교의 테니스 코치였다. 김씨는 2001년 7월 말~8월 초 학교 테니스부 합숙훈련 기간에 테니스장 라커룸에서 A씨를 성폭행했다. 또 같은 해 11월 5일 밤 9시 30분쯤 서울 중구 장충동의 한 여관 객실에서 테니스부 학생들과 생일 케이크를 나눠 먹은 뒤 A씨만 자신의 방으로 불러 성폭행했다. 김씨는 이듬해인 2002년 6월과 같은 해 7월 자신의 관사에서 A씨를 성폭행했다. 당시 A씨는 반항하거나 성폭행 피해 사실을 누군가에게 알릴 수도 없었다. 폭언과 구타가 난무했던 테니스부의 분위기, ‘코치와 선수’ 관계에서 오는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다. 또 ‘죽을 때까지 너랑 나만 아는 일이니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한 김씨의 말을 듣지 않으면 보복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피해 사실을 수사기관 등에 알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1년 간 4차례에 걸쳐 성폭행 피해를 본 A씨는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에 시달렸다. 그러나 성인이 된 이후 이른바 ‘나영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A씨는 용기를 냈다. 2012년 9월 성폭력상담소에서 상담한 후 경찰서까지 찾아가 피해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당시 피해 사실을 입증할 자료를 확보하지 못한 데다 공소시효 문제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고소장을 제출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5월 테니스 대회에서 15년 전 자신을 성폭행한 김씨를 우연히 만났다. 초등학교 때의 아픈 기억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A씨는 적극적으로 증거를 모아 경찰에 고소장을 냈고 김씨는 기소됐다. 김씨는 재판에서 ‘한 차례 강제 추행 사실은 있으나 성폭행하지는 않았다’면서 혐의를 부인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초등학교 졸업 이후에도 테니스 선수와 지도자로서 생활해왔던 점을 고려하면 자신을 지도했던 코치를 고소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면서 “오랜 시간이 흘러 갑작스럽게 피고인을 허위로 무고할 이유나 동기 역시 찾아보기 어려운 점 등으로 볼 때 범행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어린 피해자를 특별보호 영역인 학교에서 성폭행한 점 등으로 볼 때 사회적·도덕적 비난 가능성이 크다”면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피해 보상도 이뤄지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덧붙였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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