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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지기로

    같은 처지 고시원 이웃들에 전달 서울 종로구는 숭인2동 고시원이나 여관에 거주하는 독거 남성들이 본인처럼 외로운 이웃을 돌보는 모임인 ‘우리마을 좋은지기’ 맴버 10여명이 최근 페트병을 활용해 화분을 만든 뒤 이를 다른 고시원 이웃에게 전하는 활동을 했다고 30일 밝혔다. 우리마을 좋은지기는 숭인2동주민센터가 2016년부터 지원해 온 주민 주도 나눔 공동체 문화 조성 사업이다. 지역 내 고시원에 거주하는 독거인들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만들었다. 서로 안부를 묻고, 며칠 보이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찾아가 보고, 함께 밥을 해 먹고, 김장을 나누는 활동을 한다. 그동안 돌봄을 받기만 하던 ‘나’에서 베풀 수 있는 ‘나’로 변하는 과정을 통해 삶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갖도록 한다는 목표로 사업을 지속 추진하고 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단독] 약 10박스 쟁여놔도…의료쇼핑 막을 기관이 없다

    [단독] 약 10박스 쟁여놔도…의료쇼핑 막을 기관이 없다

    복지부 산하 관리 직원 12명뿐 지자체별로 수급자 관리 ‘허점’ 처방 거부하면 민원·소송 제기현장에선 “수급자 계몽 역부족…의사 참여 책임관리조직 시급”의료급여 환자의 도덕적 해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과도한 의료이용 등을 통합해서 관리할 기관이 없다는 것이다. 이진용 서울대 보라매병원 공공의료사업단 교수는 24일 “간호사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이 아닌 의사가 참여하는 책임관리 조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의료급여 재원은 국고와 지방예산을 합해 마련한다. 서울은 국고와 지방비 비율이 5대5이지만 나머지 지역은 8대2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지방예산 누수를 막고자 의료급여관리사를 채용해 의료급여 수급자를 각자 알아서 관리한다. 보건복지부 산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의료급여사례관리사업지원단이 있지만 직원이 12명에 불과해 의료급여관리사 교육 등에 업무가 몰려 있다. ●3개월간 의료급여일수 2000일도 간호사 출신인 의료급여관리사가 일선 병·의원 진료와 처방 행태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쉽지 않다. 서울의 한 의료급여관리사는 “의료급여 수급자를 계몽하는 것도 역부족”이라며 “의료기관 관리는 복지부가 해주면 좋겠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환자들은 이런 시스템의 허점을 교묘히 파고든다. 40대 후반부터 50대 후반인 지금까지 10년을 요양병원에서 지내는 A씨는 “이렇게 아픈데 어떻게 퇴원하느냐”며 아직도 버티고 있다. 그는 강원과 인천 등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는 수법을 쓴다. 현재 그는 같은 수법을 쓰는 동료 7명과 함께 인천의 병실 2곳에 머물고 있다. A씨에게는 병실이 사실상 거주지다. 그는 “서울에서 외래진료를 받겠다”는 명목으로 외박증을 받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의료기관이 폐업하면 퇴원했다가 조금 있다가 다른 병원에 입원하길 반복한다. 2016년 1월 의료급여 수급자가 된 60대 희귀난치성 질환자 B씨는 바로 그해 의료 과다이용자 10위권에 올랐다. 본인부담금을 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안 뒤로 치과와 비뇨기과, 피부과, 정형외과 등 가까운 의료기관을 166곳이나 찾았다. 그는 1박스면 충분한 처방약을 10박스나 타내 집에 보관하고 있다. B씨는 “병원에 가면 앉아만 있어도 제대로 숨이 쉬어진다. 약이 없으면 불안하다”고 주장했다. 의료급여관리사가 복지부 등에 B씨의 과도한 의료 이용을 제한해 줄 것으로 요구했지만 “방법이 없다”는 얘기만 들었다. 의료급여 수급자를 지자체가 맡다 보니 ‘민원에 약하다’는 약점을 노리는 이들도 많다. 자신의 의료 남용을 지적하는 공무원을 ‘불친절 직원’으로 신고하는 식이다. 전직 언론인이라고 주장하는 60대 C씨는 단 3개월 만에 의료급여일수 2000일을 넘겨 사례관리 대상자로 분류됐다. 그는 지자체와 병원에 끊임없이 민원과 소송을 제기하고 의사들에게 처방약을 수시로 늘려 달라고 졸랐다. 의료급여관리사가 C씨에게 상담을 요청하자 “내 의료기록은 개인정보인데 어떻게 봤냐. 회칼로 찔러 죽이겠다”고 호통쳤다. 복지부 의료급여 담당자에게 전화해 욕설을 하기도 했다. ●의료급여 진료비 가파른 상승세 단순히 진료·입원·투약일수만으로 과도한 의료이용 여부를 판정하는 지금의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증도가 높으면서도 병·의원을 한 번도 방문하지 못한 인원은 전국에 2000명이 있다. 이 교수는 “의료급여일수 숫자만 늘리는 투약일수는 빼고 중증도를 더해 실제 의료서비스를 반드시 이용해야 하는 환자인지 보다 명확히 판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의료급여 진료비는 해마다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의료급여 수급자는 2012년 153만 9000명에서 2016년 152만 9000명으로 1만명가량 줄었지만 총진료비는 5조 1949억원에서 6조 7375억원으로 되레 늘어났다. 보장성 확대와 고령화 추세를 감안해도 진료비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복지부는 최근 의료기관 내부자 신고 포상금을 500만원에서 10억원으로 높이는 등 부정이용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하반기까지 의료급여 적정이용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뒤 종합대책도 추진할 계획이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단독] 하루치 약 240알까지 처방…의료급여 관리 ‘구멍’

    [단독] 하루치 약 240알까지 처방…의료급여 관리 ‘구멍’

    정부의 부실한 의료급여 환자 관리체계가 논란이 되고 있다. 환자 한 명이 하루치 약을 최대 240알씩 처방받아도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준다.24일 이진용 서울대 보라매병원 공공의료사업단 교수가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을지대 등과 진행한 의료급여 이용 현황 연구에 따르면 2016년 진료일수 상위 10위 환자가 하루 평균 68개의 약물을 복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은 약물을 복용한 환자는 하루에 240개를 처방받기도 했다. 이 교수는 “다량의 약물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과 복약순응도(의사 처방에 따라 약물을 정확히 복용하는 정도) 저하가 심각하게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의료급여 수급자는 국가가 의료비 대부분을 지원하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국가유공자, 북한이탈주민 등을 말한다. 1종과 2종 환자로 나뉘며 본인부담금의 최대 15%만 내면 모든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특히 의료급여 1종 환자는 입원비가 무료이며 외래진료비도 2000원 이하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하루에 10곳 이상 병원을 돌며 다량의 약을 타간다. 문제는 지금 제도에서는 이들을 제어할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의료진이 처방 정보를 등록하면 의약품처방조제지원시스템(DUR)에서 같이 처방하면 안 되는 약을 알려 준다. 그러나 상당수 병·의원은 업무를 마무리하는 오후 6시쯤이 돼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그날 급여를 일괄적으로 청구한다. 이 때문에 짧게는 20~30분 단위로 병원을 전전하는 환자들을 막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들의 ‘의료쇼핑’을 관리·감독해야 할 의료급여관리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다. 의료급여 수급자 약 153만명(2016년 기준) 가운데 집중관리 대상인 사례관리자는 2013년 15만 2000명에서 2016년 16만 4000명으로 갈수록 늘고 있다. 하지만 의료급여관리사는 지난해 9월 기준 524명에 불과하다. 의료급여관리사 1명이 사례관리자 300명을 포함해 평균 3000명의 의료급여 수급자를 맡아야 한다. 간호사 출신인 이들 의료급여관리사는 비정규직이다 보니 사례관리자를 장기간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 경기 지역의 한 의료급여관리사는 “혼자 사례관리자 7000~8000명도 담당해 봤다”며 “이들의 부정 이용을 관리하는 것이 주 업무이다 보니 정말 아픈 사람을 새로 발굴하는 것은 엄두도 못 낸다”고 하소연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검찰, ‘종로여관 참사’ 방화범에 사형 구형

    검찰, ‘종로여관 참사’ 방화범에 사형 구형

    성매매를 거절당했다는 이유로 서울 종로의 한 여관에 불을 질러 7명을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50대 남성에게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다.23일 검찰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성창호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유모(53)씨의 현주건조물방화치사 등 혐의 재판에서 사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 사건은 욕정을 채우지 못한 피고인이 분풀이를 위해서 치밀하게 방화 계획을 세우고 불특정 다수가 숙박하는 여관에 불을 지른 사건”이라며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생전에 느꼈을 공포와 고통, 가족들이 느낀 슬픔, 비통함을 고려한다면 죄책에 상응하는 선고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여관 출입구 바닥에 휘발유를 뿌려 불을 붙이고 발화 성공 사실을 확인 후 현장을 떠난 점에서 적어도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며 정상적 판단능력이 결여된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등의 유씨 주장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고인이 인간 존엄의 근간인 생명권을 침해한 점, 죄책 축소에 급급해 졸렬한 주장을 하며 반성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해달라”고 밝혔다. 유씨는 최후진술에서 “저로 인해 고통받고 계신 분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다. 모든 게 제 잘못이다”라고 말했다. 유씨의 변호인도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한 점, 모든 범죄사실을 인정하고 자백하고 반성하는 점 등을 고려해달라”며 선처를 주장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KBS2 토요일 오후 6시 5분) 이번 주 ‘불후의 명곡’은 조용필 데뷔 50주년을 맞아 3부작 조용필 특집으로 꾸며진다. ‘불후의 명곡’ 제작진은 2011년 첫 방송 이후 8년간 조용필을 전설로 모시기 위해 꾸준히 러브콜을 보냈고 조용필도 팬들에 감사하는 뜻으로 화답했다. 조용필이 방송에 출연한 것은 2011년 9월 MBC ‘나는 가수다’ 이후 약 7년 만이다. 이번 특집에는 김종서, 김경호, 박정현, 바다, 김태우, 린, 하동균, 환희, 다비치, 한동근 등 국내 가요계를 대표하는 보컬리스트와 ‘불후의 명곡’ 최다 우승자 정동하, 뮤지컬 스타 부부 김소현과 손준호, 독보적인 가창력의 알리, 개성 넘치는 인디밴드 장미여관, 최고점 449표를 받은 뮤지컬 배우 민우혁, 케이팝 아이돌 세븐틴까지 16팀이 총출동한다. 다음달 5일까지 3주에 걸쳐 방송되며, 조용필의 50년 가요 역사와 수많은 명곡들을 재조명하고 숨겨진 일화도 공개한다. ■SBS 스페셜(SBS 일요일 밤 11시 5분) ‘新한류 어벤저스’라는 주제로 중국에서 새로운 한류 바람을 이끌고 있는 주인공들을 만나 본다. 지난해 11월 중국 베이징경기장은 세계 최대의 게임 월드컵 ‘리그 오브 레전드’(LOL) 결승전으로 뜨거웠다. 4강전에서 중국 팀들을 꺾고 결승전에 올라온 두 팀은 모두 한국팀이었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4만명의 관중 역시 모두 한국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모인 팬들이었다. 지금 중국을 흔들고 있는 한국 게임, 중국의 PC방, 한국 프로게이머 등 게임산업의 한류를 들여다본다.
  • [인물 플러스] “남 속이지 않고 선하게 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깁니다”

    [인물 플러스] “남 속이지 않고 선하게 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깁니다”

    “인간은 반드시 뿌리가 있고, 뿌리에서 나무가 자라 마디가 생기고 열매가 열립니다. 운명은 뿌리에서 나무가 자라듯 바꿀 수는 없지만 ‘남을 속이지 않고 선하게 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 것’입니다.” 평생동안 외길을 걸어오며 당대를 대표하는 수경학(壽鏡學)의 대가(大家)인 백파카운셀러상담원(한국수경학연구원) 백파 원장의 이야기다. 수경학은 운명을 통찰하는 학문으로 동양철학의 정수가 담긴 학문이다. 수경학의 창시자이자 불세출의 명인인 윤대현 백파 원장은 남다른 ‘통찰력과 선견지명’으로 심오한 수경학의 경지를 터득, 국내의 유일무이한 수경학 대가로 평가된다. 관록(貫祿)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희망’을 쏘고 있는 백파 원장은 ‘상담활동’ 외에도 봉사, 나눔활동을 통해 사회 공공의 발전에 앞장서고 있는 인물이다. 본지는 ‘세종시’ 사랑에 빠진 수경학의 명인 백파 원장을 만나 지난 생애와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현재 백파 원장의 충북 청주 제1사무실과 서울 종로구 제2사무실에는 예약 없이는 상담이 어려울 정도로 상담자가 끊이지 않는다. 그의 통찰력이 신통하기 때문이다. 수경학은 풍수지리와 사업, 직업, 상호명, 가정문제, 작명, 운세 등 많은 분야의 상담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백파 원장을 찾고 있다. 백파 선생은 지난 1960년대 기업들이 태동하던 시기에는 기업인들과의 인맥을 이어오면서 우리나라 산업계의 발전은 물론, 지리학을 통한 도로, 도시개발 등 국가 기반시설 기획에도 많은 기여를 해 온 인물이다. 사주는 물론, 태어난 시에도 초시, 중시, 말시로 세분화하여 판단하고 상담자 집안의 본과 지역까지 감안해 운명을 통찰하는 백파 선생은 상담자가 모든 것을 허물없이 털어놓고 상담하며 운명과 새로운 희망을 얻을 수 있는 카운셀링으로 정평이 나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에 국운이 걸려 있다” 백파 선생의 통찰력과 예지력은 참으로 신기할 정도다. 해외에서도 백파 선생의 명성이 알려지면서 지난 2002년부터 미국의 한인방송과 CBS 방송 등에서 5년간 재미교포와 현지인을 대상으로 수경학 상담활동을 펼친 바 있다. 매일 진행된 ‘즉문즉답’을 통해 명쾌한 운세판단과 가이드를 제시해 인기를 누렸으며 이러한 영향으로 미국, 중국 등 세계 39개국으로 특별 초청되어 국운과 글로벌기업의 장래를 카운셀링하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백파 선생은 최근 세종시의 발전을 통한 국가 융성 전략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세종시를 가장 사랑한다고 말한다. 백 원장은 박정희 대통령 당시 책사를 역임하면서 세종시로 행정수도 이전을 최초설계했던 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행정수도 이전을 준비했던 풍수지리 및 명리학의 대가로 평가받고 있다. 백 원장은 이미 1973년도부터 국가 수뇌부에 현재의 세종시 자리인 당시 공주군 장기면, 의상면, 연기군 금남면, 남면 등 일대에 나라의 수도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한 바 있다. 당시 정부 차원에서도 백파 원장의 의견을 신뢰하여 큰 관심을 가지고 본격적인 수도 건설을 위한 실사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수도 이전은 미뤄졌지만 백파 원장의 제언에 힘입어 금남면 일대는 항상 수도 이전 최적지로 정치권의 관심을 받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권에 이르러 본격적인 세종시 건설로 이어지게 되었다. “1970년대 초 지금의 세종시 지역에 큰 사고가 있었고 그때 나는 국가 수뇌부의 요청으로 그 지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세종시 지역을 면밀히 살펴보고 지형이 너무나 좋아서 나라의 수도 자리로 국가 수뇌부에 건의했고 이를 계기로 정부에서도 큰 관심을 받는 곳이 되었습니다. 당시 일부 사람들은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오늘날 세종시의 탄생을 볼 때 제 예견이 맞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1973년부터 국가 수뇌부에 현재의 세종시 위치로 수도가 옮겨져야만 나라가 편안해진다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가보시면 세종시의 지형적 구조가 굉장히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풍수적으로 판단하면 계룡산, 갑하산과 대전 동학사, 마곡사 줄기를 볼 때에 현 세종시의 운기는 바람이 불어 내려와서 쉬었다 가는 형국입니다. 즉 하늘이 내린 땅이라는 뜻입니다. 이 땅은 일반인 중에서도 잠을 못 자거나 피로하거나 정신이 어지러울 때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면 몸이 회복되는 명당 중의 명당입니다. 그만큼 대단한 지형이고 그래서 이미 40여년 전부터 국가 수뇌부에서도 수도 이전자리로 기획해 왔던 곳입니다.” 백파 원장의 지론이다. 세종시의 현재 위치는 하늘이 내린 자연환경과 지리적 여건으로 과거에도 수차례 국가 융성을 이끌 도시 건설의 최적지로 꼽혀왔던 곳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세종시의 위치는 1500년 전 삼국시대 백제의 두 번째 수도였으며, 조선 건국기에는 서울보다 유력한 왕도의 후보지로 거론됐던 곳이기도 하다. 수경학의 창시자이자 불세출의 명인 수경학은 목숨 ‘수’, 거울 ‘경’자로 동양철학의 정수가 담긴 학문이며 백파 원장은 수경학의 창시자이자 불세출의 명인이다. 백파 원장이 태어난 고향은 옛날 경상남도 동래군 장안면 좌천리 187번지이고, 아버지 윤만갑과 어머니 조재현의 장남으로 1941년 12월 24일 태어났다. 그는 확실히는 모르나 주위 분들이 말하기로 그 당시 어려운 시대였지만, 나름대로 먹고사는 것은 별다른 문제 없이 살아왔다고 한다. 그는 당시 시절은 잘 모르고 주위 사람들 말로 들은 것뿐이다. 백파 아버지는 삼남매로, 누님 한 분과 남동생 한 분이 계셨는데, 누님은 일찍 세상을 떠나 남동생 한 분만 계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당시 제가 태어난 지 8개월만에 호열자라는 전염병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9일 만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셔서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삼촌댁에 가게 되어, 그곳에서 1년 정도 지냈다”고 한다. 당시 너무 어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삼촌은 건달로 삼촌과 함께 생활하던 부인은 정식 결혼도 하지 않고 술집에 종사하는 여자였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고 한다. 그 후 제 나이 돌이 막 지났을 때 도저히 삼촌댁에서 생활할 수가 없는 처지가 되었던 모양으로 먼 친척의 도움으로 자라던 동네 인근 옥정사라는 절의 비구니 스님이 저를 키워주었다고 한다. 백파 원장의 소회다. 어린 시절 백파 원장은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송파 큰스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당대 수경학의 대가(大家)로 성장했다. 그는 남다른 통찰력과 예지력을 가진 인물로 심오한 수경학의 경지를 터득하여 국내 유일무이한 수경학 대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이후 “해인사 송파 큰스님이 자식처럼 키워주셨고, 스님께서 수경학과 지리학을 집중적으로 공부시켜주셔서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던 중 큰스님이 타계하시고 큰스님과 인연이 있던 고마우신 동명목재 강석진 회장과 국제그룹 양정모 회장의 도움으로 거처를 마련하여 큰스님이 가르쳐주신 수경학을 통한 상담업을 부산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백 원장의 소회는 계속되었다. 그 당시 속칭 ‘총각도사’라는 소문이 부산지역은 물론 전국에 자자했고, 백 원장을 만나려면 3~4일은 걸려야 상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정도로 이름이 났다. 심지어 백 원장의 상담소 주위에 조그마한 여인숙과 여관이 있었는데 그에게 상담을 받기 위해 손님들이 기다리는 기간에는 주위 숙박업소들이 방이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국가 수뇌부의 높은 분들은 물론, 지금은 굴지의 재벌이 된 많은 기업의 창업 회장들의 운명을 상담해 주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도 저는 절에서만 자라서 돈의 개념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부모의 얼굴도 모르고 형제 하나 없는 단신으로 생활해왔기 때문에 사리사욕을 취하지 않으며 살아왔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나는 왜 돈과 세상 물정을 모르고 오로지 상담과 수경학 공부에만 집중했는지 아쉬울 때도 있습니다.” 그는 서민부터 국가 최고위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접해왔다. 특히 60년대 우리나라 기업들이 태동하던 시절 기업인들과 인맥을 이어오면서 우리나라 산업계 발전은 물론 지리학을 통한 도로, 도시개발 등 국가 기반시설 기획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그 당시는 산업발전의 태동기였기 때문에 지금처럼 기업집단을 ‘그룹’이라는 말로 부르지도 않았고, 지금은 누구나 아는 세계적인 기업들도 당시엔 이름조차 생소한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기업들이 사업상 새로운 성장을 시작할 때 또 사업전략을 수립할 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고,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이 형성되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꼈습니다.” 백파 원장은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으로서 정계 수뇌부와 국내 굴지의 그룹 총수들의 곁에서 도움을 주며, 국운은 물론 사업 방향과 인재 등용 등 중요한 결정에서 상담활동을 해왔다.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의 저서와 정태수 한보그룹 전 회장의 증언에서도 백파 선생이 언급된 바 있기도 하다. 백파 선생은 고 박정희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財界(재계)에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 양정모 국제그룹 회장, 강석진 동명목재 회장, 한보 정태수 회장, 럭키 구본은 회장, 두산 박용성 회장 등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많은 인사와 교류했다. 오해와 억울함으로 굴곡진 세월 호사다마(好事多魔)일까. 백파 원장은 어처구니없게 구설수에 휘말리고, 불필요한 고생까지 하게 되는 굴곡을 겪게 된 일도 있다. “지금도 제게 피해를 줬던 얌체 같은 정치인들을 생각하면 정말 치를 떨 정도입니다. 너무나 억울하게 많이 당하고 금전적인 손실도 많았어요. 백 원장은 말한다. 예를 들어볼까요? 제 상담객 중에는 사업적으로 어려운 일을 겪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은 납품, 사업 인허가 등 여러 가지 애로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돈만 밝히는 얌체 같은 정치인들은 저를 통해 접근해 애로사항을 해결하겠다고 장담하고 정치후원금을 원했고, 저는 순진하게 남을 도울 수 있다는 마음에 그 말을 믿고 상담객에게 정치후원금을 받아 정치인에게 전달하면 그 뒤로 정치인은 나 몰라라 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리고 일이 처리되지 않으니 상담객은 나를 사기로 고소합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정치인에게 경찰이 전화하면 정치인들은 그런 일 없다고 발뺌하여 나만 억울하게 당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검사, 경찰 등 사법기관에서 편파적으로 저를 처벌하여 억울했던 울분의 세월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습니까.” 백파 원장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기가 찰 노릇이지만 일개 개인이 힘을 가진 고위공직자를 당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현실에서 모든 누명을 백파 원장이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다. 당시 법조계에서는 무조건 전과가 있다 하여 전후 충분한 조사 없이 백 원장에게 벌을 주기도 했고, 심지어 조사관은 백 원장의 말은 듣지도 않고 고위직의 말만 믿고 사건을 처리하기도 했다. 백파 원장은 금전적인 이익만을 챙긴 고위직 대신 자신이 죄를 뒤집어쓰고, 이후 자신을 언제 보았냐는 듯 하는 그들을 보며 사회의 비정함과 비열함을 느꼈다고 한다. 배신과 모함으로 얼룩진 고난의 세월을 견디며 오늘을 버티어 왔다. 봉사와 나눔의 대부(代父) 그러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수경학의 대가인 백파 원장의 명성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여러 가지 기부활동 외에도 ‘희망과 용기를 주는 밥차’ 활동, 지역 봉사활동, 나눔활동을 통해 사회 공공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남을 속인 적이 없고, 단 십원도 남에게 손해를 끼친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정치인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범법자 취급을 받으며 재산까지 다 빼앗긴 것이 지금도 말할 수 없이 억울합니다. 정치인의 모략에 빠져 전과가 생겼고, 또 전과가 있다 하여 이후 사건에서도 일방적으로 누명을 쓴 것이 가슴에 사무칠 정도로 억울합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지만 남을 속이지 않고 선하게 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기기 때문에 앞으로 더 베풀고 나누며 살려고 합니다.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상담을 받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분들은, 망설이지 마시고 방문해 주시면 성심성의껏 상담해 드리겠습니다. 똑같은 상담을 정성껏 진행하더라도 형편이 어려우신 분들께는 절대 사례금도 받지 않고 언제든 무료로 상담해드리고 있습니다. 제 나이 팔십이 넘고 보니 언제 이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주위 여러분들을 최대한 도우며 살고 싶습니다.” 백파 원장의 ‘사랑과 정’이 담긴 뜻이다. 백파 원장의 선견지명의 카운셀링은 그의 관록(貫祿)과 통찰력이 더해져 상담자들에게 ‘희망’으로 전해지고 있다. 백파 원장은 지금도 상담이 맞지 않을 경우 일절 상담료를 받지 않는다. 백파 선생은 오직 누굴 도우면 도왔지 피해나 주고 신세 지지는 않고 오늘날까지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만일 제가 돈을 벌자는 마음을 먹었다면 재벌 회장쯤 되었을 것입니다만 그런 미련은 없고 그저 그동안 잘 먹고 잘 살고 ‘지금도 늘 누굴 무엇을 도와드릴까’만 생각한다는 원장. 그는 굴곡진 인생에서 배운 ‘지혜와 통찰력으로 사회에 봉사한다’는 신념으로 상담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세종을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 한다는 백파 원장. ‘봉사와 나눔의 대부(代父)’ 백파 원장의 향후가 기대된다. 홍의석 객원기자 hong5960@seoul.co.kr
  • [월드피플+] 세계 최고령된 112세 日할아버지…장수비결은?

    [월드피플+] 세계 최고령된 112세 日할아버지…장수비결은?

    올해 나이 112세의 일본 할아버지가 세계 최고령 남자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지난 10일 기네스 위원회 측은 일본 홋카이도 현 아쇼로에 사는 노나카 마사조 할아버지가 현존하는 세계 최장수 남성으로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고 밝혔다. 노나카 할아버지는 지난 1905년 7월 25일 생으로 10일 기준 112년 259일을 살았다. 기존 기록은 스페인 출신의 프란치스코 누네즈 올리베이라로 지난 1월 11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무려 112년의 세월을 살아왔지만 할아버지의 삶은 평탄했다. 총 8남매로 태어난 할아버지는 지난 1931년 결혼해 2남 3녀를 뒀다. 가업으로 100년 된 온천여관을 물려받아 경영해왔으며 현재는 장남 가족과 함께 살고있다. 이날 기네스측으로 부터 인증서를 받은 할아버지는 여러차례 미소를 짓고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감사함을 표시했다. 흥미로운 점은 장수비결이다. 할아버지는 평소 단 음식을 즐겨먹는 것을 장수의 비결이라고 밝혔으나 딸들은 근심걱정없는 삶을 꼽았다. 보도에 따르면 현재 노나카 할아버지는 휠체어를 타고 살고있으나 기본적인 생활은 스스로 해낸다. 매일 아침 신문을 읽고 텔레비전으로 스모와 오페라를 보는 것이 취미. 현지언론은 "스트레스 없는 유유자적한 삶이 장수의 비결로 보인다"면서 "이날 마을이 준비한 축하케이크를 스푼으로 떠먹고 '맛있다'를 연발했다"고 보도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로또 1등 20억 누가 낚아채 달아났다”는 신고에 경찰 ‘비상’···결과는 ‘허탈’

    “로또 1등 20억 누가 낚아채 달아났다”는 신고에 경찰 ‘비상’···결과는 ‘허탈’

    지난 1일 오후 2시 20분쯤 부산중부경찰서 112상황실로 걸려온 예사롭지 않은 전화 한 통. 한 남성이 “로또 1등 20억에 당첨됐는데 옆 사람이 복권을 들고 달아났다”고 다급히 신고했다. 경찰이 위치 등을 물어봤지만 이 남성은 급박한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경찰은 지구대와 형사 당직팀 등 가능한 인력을 총동원해 신고 전화가 걸려온 기지국 주변을 샅샅이 수색하며 발신번호로 계속 전화를 걸었다. 실제로 올해 1월 부산서 2등에 당첨된 친구의 로또 복권을 낚아채 달아난 20대가 경찰에 입건되는 일이 있었기에 경찰이 그냥 넘길 수 없었다. 비상이 걸린 것이다. 기지국은 부산 중구 초량동에 있는 한 교회 인근의 팔각정이었다. 경찰은 주변에서 1시간가량 수색을 펼쳤지만 신고 전화를 건 남성을 찾지 못했다. 이후 통신자료 등을 확보해 신고 전화를 건 남성이 A(52) 씨임을 확인한 경찰은 9일 오후 부산의 한 여관에서 A 씨를 붙잡았다. A씨는 경찰에서 “술에 취해 허위신고를 했다”며 “혼자 술 마실때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고 자백했다. 전화를 건 날은 만우절이었다. 경찰은 경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로 A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10일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자발찌 차고 베트남 도주한 성폭행범 붙잡혀

    전자발찌 차고 베트남 도주한 성폭행범 붙잡혀

    전자장치(전자발찌)를 차고 있던 성범죄자가 다시 성범죄를 저지르고 해외로 도주했다가 국제형사사법공조로 붙잡혔다.서울 노원경찰서는 지난 5일 베트남에서 국내로 송환된 신 모(38)씨를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전자장치부착법·보호관찰법 위반 혐의로 긴급체포해 최근 구속했다고 9일 밝혔다. 신씨는 지난달 4일 A(20) 씨에게 졸피뎀이 든 술을 마시게 해서 의식을 잃게 만든 뒤 여관으로 데려가 성폭행한 혐의(강간 및 마약류관리법 위반)로 구속영장이 신청됐으나 법원에서 한 차례 기각됐다. 신씨는 과거 성폭행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출소했으며 전자발찌 부착명령이 함께 선고돼 보호관찰 대상이었다. 그러나 신씨는 이달 4일 전자발찌를 찬 채로 베트남행 비행기를 탔고, 인천공항을 끝으로 그의 위치정보가 파악되지 않는 것을 파악한 관할 보호관찰소가 이 같은 사실을 경찰에 통보했다. 경찰은 베트남 현지 경찰과 공조해 베트남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던 신씨를 긴급체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오달수가 ‘썸’ 주장한 A씨 “애정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었다”

    오달수가 ‘썸’ 주장한 A씨 “애정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었다”

    1990년대 오달수로부터 여관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힌 A씨는 자신과 ‘썸’을 타는 관계였다는 오달수의 주장을 반박했다.A씨는 4일 OBS ‘독특한 연예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 학대에 가까운 성관계를 맺었다. 애정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었다”고 밝혔다. 앞서 ‘미투’에 침묵하던 오달수는 지난달 28일 사과문을 발표하고 출연중인 작품에서 하차했다. 그는 칩거 한 달만에 언론에 “여전히 스스로 ‘성폭행 했다’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달수는 사과문에서 A씨에 대해 “25년 전 잠시나마 연애 감정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시점이든 제가 상처를 드린 것을 진심으로 사과드리겠다”고 말했다. 인터뷰에서도 같은 입장을 나타냈다. 오달수는 “남녀가 성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그에 대한 의사가 서로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관계를 맺은 상대 여성이 그 기억을 고통으로 인식한다면, 거두절미하고 일단 사과를 드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여전히 스스로 ‘내가 성폭행을 했다’고는 인정할 수는 없다. 93년 5월 ‘쓰레기들’ 공연을 했다. 제가 연출이었고 A 씨는 이 연극의 연출부 보직을 맡아 둘이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굉장히 조심스러운 표현이지만, 저는 이 과정에서 A 씨와 소위 썸을 타는 정도의 관계였다고 기억하며, 젊은 남녀가 관계를 맺게된 것이라고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미투’ 오달수 “여전히 스스로 ‘성폭행 했다’ 인정할 수 없어”

    ‘미투’ 오달수 “여전히 스스로 ‘성폭행 했다’ 인정할 수 없어”

    지난달 A씨는 1990년대 오달수로부터 여관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연극배우 엄지영씨 또한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지난 2003년 오달수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연이은 ‘미투’에 침묵하던 오달수는 지난달 28일 사과문을 발표하고 출연중인 작품에서 하차해야 했다. 한 달간 칩거하던 그는 30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의 근황과 함께 “여전히 스스로 ‘성폭행 했다’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달수는 그간 노모가 살고 있는 부산 영도의 아파트에서 지냈다. 그는 “밥이 넘어가지 않아 거의 막걸리만 마셨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길다는 것을 요즘에서야 느낀다”면서 “갑자기 ‘미투’ 대상이 되니 난해했다. 말 한마디라도 섣부르게 보도될까 두려웠다”라고 말했다. 그는 “제 나이가 50세다. 두가지 일 모두 20년 전 일이다. 분명하고 명확한 입장 발표를 위해서는 어렴풋이 기억나는 수준이어서는 안 됐다. 머릿속 기억을 숟가락으로 긁어내듯 시간을 보낸 게 침묵이 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발표한 사과문에서 오달수는 엄지영씨와 달리 A씨에 대해서는 “25년 전 잠시나마 연애 감정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시점이든 제가 상처를 드린 것을 진심으로 사과드리겠다”고 말했다. 오달수는 “남녀가 성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그에 대한 의사가 서로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관계를 맺은 상대 여성이 그 기억을 고통으로 인식한다면, 거두절미하고 일단 사과를 드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여전히 스스로 ‘내가 성폭행을 했다’고는 인정할 수는 없다. 93년 5월 ‘쓰레기들’ 공연을 했다. 제가 연출이었고 A 씨는 이 연극의 연출부 보직을 맡아 둘이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굉장히 조심스러운 표현이지만, 저는 이 과정에서 A 씨와 소위 썸을 타는 정도의 관계였다고 기억하며, 젊은 남녀가 관계를 맺게된 것이라고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엄지영에 대해서는 “저는 2001년 이혼한 상황이었고, 2003년 당시 저는 35세, 엄지영 씨도 약 30세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엄지영씨가 방송에 출연하신 날, 저는 이미 성숙한 두 남녀 간에 모텔에서 벌어진 일들이 제가 아는 성추행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을 가졌다.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따져 묻고 싶은 부분도 있었고, 반박하고픈 마음도 들었던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후에는 그분이 방송에 출연하여 자신의 심정을 고백하는 모습을 떠올렸고, 지난 기억에 대한 깊은 사죄를 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오달수는 ‘미투’ 이후 출연이 취소된 작품들에 대해 “이번 일로 저 하나가 무너지는 것은 괜찮지만 죄 없는 스태프들, 제작사, 투자·배급사, 또한 다른 배우들까지 피해를 보는 것은 너무나 죄송스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선량한 그들에게까지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이응노와 수덕여관을 넘어서 만나는 예산 수덕사(修德寺)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이응노와 수덕여관을 넘어서 만나는 예산 수덕사(修德寺)

    “모두 같은 민족 아닙니까? 여러분들도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동백림에 간 것은 자식의 소식을 듣고, 거기서 만날 수 있다고 해서 간 것입니다...그 아들을 만나게 해 주겠으니 오라고 했을 때, 거절합니까, 만났다가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 그만둡니까.” 세계적인 추상화의 거장, 고암(顧庵) 이응노(李應魯·1904~1989) 화백이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법정 구속되기 전의 마지막 최후 진술이다. 동백림 사건은 1967년 7월 8일 중앙정보부에서 발표한 간첩단 사건으로 194명에 이르는 유학생들과 교민들이 동베를린에 위치한 북조선 대사관과 평양을 드나들고 간첩교육을 받아 대남적화활동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음악가 윤이상을 비롯하여 천상병 시인 등이 연루되었고, 결국 34명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졌으나 대법원 최종심에는 간첩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이가 한 명도 없는 ‘구름같은’ 간첩단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이응노는 2년 6개월의 옥고를 치르고 풀려난다. 이후 이응노는 수덕사 앞 수덕여관에서 삶의 한 부분을 내려 놓는다. 이응노의 삶과 수덕여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충청남도 예산 수덕사로 가 보자. 충청남도 덕숭산(德崇山)에 위치한 수덕사(修德寺)는 충청도의 절답다. 겉으로는 무심한 듯 소란스럽게 이름 내지는 않았으나, 내실은 진즉부터 으뜸인 불교 도량임에는 분명하다. 왜냐하면 수덕사는 백제계 사찰 가운데서는 유일하게 현존하는 유서 깊은 절집일 뿐만 아니라, 맞배지붕 양식으로 이름 알려진 고려시대(1308년)의 대웅전이 세월에 푹 곰삭은 나무 기둥들과 함께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한 때 ‘수덕사의 여승’이라는 노래로 불리어 알려질만큼 훌륭한 비구 스님들을 배출하는 명문 선원인 ‘견성암’도 수덕사에 위치한다. 여기에 더해 현재 수덕사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5대 총림 가운데 하나인 덕숭총림으로 많은 스님들이 강학과 참선정진하는 종합교육도량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충청남도 내포 일대의 36개 말사를 관장하는 제7교구본사이기도 하니 중부 지역에서는 단연 손꼽히는 사찰임에는 분명하다. 이런 수덕사를 더욱더 유명하게 만든 것이 바로 수덕사 일주문 옆에 위치한 수덕 여관이다. 수덕여관은 이응노 화백이 1945년 3월, 일본 패망을 앞두고 징용을 피해 수덕사 인근 비구니가 쓰던 절집을 손수 구입한 곳이다. 이후 이응노 화백의 처(妻) 박귀희 여사(1909~2001)가 이곳을 여관으로 운영하며 프랑스로 떠나버린 남편을 기다리면서 자식을 길러내었다. 지금도 수덕여관 주변에는 이응노 화백이 동백림 사건의 옥고를 치른 후 이곳에 머물면서 손으로 직접 새긴 문자 추상 암각화가 곳곳에 남아 있다. 만물의 흥망성쇠를 표현한 것으로 알려진 이 암각화는 지금도 50여년 전의 이야기를 생생히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수덕사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충청도 근역에는 단연 으뜸인 사찰이다. 수덕여관의 역사를 함께 2. 누구와 함께? - 나이드신 부모님과 천천히 3. 가는 방법은?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 안길 79 - 예산버스터미널 → 수덕사 (요금 1,760원/ 1시간 소요) 4. 감탄하는 점은? - 고려시대의 대웅전, 수덕여관 인근의 이응노 화백의 암각화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주말에는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수덕여관 인근의 암각화, 대웅전, 범종루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소머리국밥 ‘한일식당’, 곱창 ‘신창집’, 수제비 ‘대흥식당’, 국수 ‘쌍송국수’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sudeoksa.com/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추사고택, 한용운 생가터, 장영실 과학관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수덕사는 가파른 계단이 많은 사찰이어서 천천히 올라가도록. 이응노 화백의 삶을 이해한 뒤 수덕여관을 둘러 본다면 한 예술가의 파란만장한 삶을 예술로 이해할 수 있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푸들 극적 귀가…다른 개 매력에 이끌려 4000㎞ 여행

    푸들 극적 귀가…다른 개 매력에 이끌려 4000㎞ 여행

    푸들의 극적 귀가 스토리가 중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1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5살 된 푸들이 최근 왕복 4000㎞ 구간을 여행한 뒤 11일 만에 주인과 재회했다. 푸들의 기나긴 여행은 지난달 11일 중국 윈난성 고원도시 리장의 한 관광지에서 시작됐다. 이곳에서 여관을 운영하던 한 중국인 여성은 자신이 애지중지하며 기르던 푸들이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실종신고를 받은 경찰이 여관 주변 CCTV를 확인한 결과 그 푸들은 여관 주변을 지나가던 풍성한 털을 가진 매력적인 ‘포메라니안’ 개에 이끌려 그 개와 주인을 따라갔다. 포메라니안의 주인은 리장을 찾아온 관광객 커플이었다. 자신의 반려견을 따라온 푸들을 발견한 커플은 포메라니안과 푸들을 품에 안고 CCTV 시야각에서 사라졌다. 푸들 주인은 곧바로 CCTV의 해당 장면을 인쇄해 리장시 전역에 배포했다. 1주일이 조금 지난 3월 2일 그 지역의 한 호텔 직원으로부터 결정적인 제보를 전해들었다. 그 커플이 리장을 방문한 뒤 약 2000㎞ 떨어진 허난성 정저우로 돌아갔다는 것.푸들 주인은 경찰의 도움을 받아 해당 커플의 소재지를 파악해 푸들을 데리고 간 이유를 따져물었다. 처음엔 푸들을 데려온 사실을 부인하던 커플은 나중에서야 “길을 잃은 반려견으로 생각해 푸들에게 집을 마련해주고 싶어 데려왔다”고 말을 바꿨다. 그 커플은 푸들을 돌려보내겠다고 했고, 지난 6일 결국 비행기를 타고 윈난성의 쿤밍 공항을 통해 11일 만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中 시진핑 권력에 힘 더할 ‘국가기율위‘

    中 시진핑 권력에 힘 더할 ‘국가기율위‘

    새달 양회서 헌법 개정 통해 설립 추진 ‘역사의 퇴보’란 비판 속에 주석직의 임기 제한을 없애는 헌법 개정 작업에 착수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국가기율위’라는 조직을 통해 새로운 힘을 얻으려 하고 있다.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최근 광시좡족자치구의 충쭤시 다신현에 기율검사위원회가 설립되면서 중국의 모든 성과 시, 그리고 구·현에서 반푸패작업 제도화를 완료했다고 27일 보도했다. 뒤이어 다음달 양회에서는 헌법 개정을 통해 사법부, 행정부와 같은 반열로 국가기율위란 거대조직을 설립하게 된다. 공산당 사정기관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를 행정부용 버전으로 새롭게 출범시키는 것이다. 국가기율위는 국무원의 감찰 조직 등을 통합해, 반부패 작업의 중앙 집중화를 수행해 나갈 전망이다. 국가기율위는 당 기율위가 공산당원에 한정됐던 반부패 활동을 공적 영역에 속한 비당원으로까지 확대함으로써 시 주석의 권력 강화에 큰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집권과 함께 당 중앙기율위를 통한 반부패 작업을 통해 ‘호랑이’라 불린 고위 관료, ‘파리’라 이름 붙인 하위직 공무원을 제거하면서 권력을 다졌다. 문제는 인권 침해 논란을 어떻게 피해 가느냐 하는 것이다. 당 중앙기율위는 쌍규(雙規)와 쌍개(雙開)를 통해 공산당원들을 처단했다. 쌍규는 기율위가 비리 혐의 당원을 정식 형사 입건하기 전에 구금 상태로 조사하는 관행이다. 영장 심사나 조사 기간 제한 등이 보장되지 않아 인권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뜻의 쌍규 처분이 내려지면 가족들도 몰래 여관이나 군사시설 등 은폐된 장소로 끌려가 격리된다. 일년여의 쌍규 기간이 지나면 다시 일년 동안 사법기관의 조사를 받아야만 한다. 쌍규 이후에는 공직과 당직을 모두 박탈당하는 쌍개 처분이 기다리고 있다. 중국 당국은 국가기율위 설립으로 기율위와 사법기관의 조사가 통합돼 훨씬 효율적인 감찰시스템이 수립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기율위는 최대 2년간 조사할 수 있는 쌍규 대신 조사기간을 3개월로 제한한 ‘유치’(留置)를 도입해 인권침해 논란을 막을 예정이지만, 여전히 변호인 접견권 등이 보장되지 않아 ‘종교재판’에 가깝다는 비판이다. 더구나 공산당원이 아닌 공무원, 국영기업 간부, 판사, 검사, 의사, 교수 등 공적 영역에 있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해 대부분의 중국인이 당국의 엄격한 사정 가시권에 포함됐다. 중국 베이항대의 런젠밍 교수는 “어떤 나라도 감독기관을 행정부와 같은 반열로 승격시킨 사례는 없다”며 “과거 중국 정부는 국무원과 대법원·검찰원으로 구성된 일부양원 구조였다면 개헌 이후에는 국가기율위가 같은 급이 된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국회 격인 전인대에 개헌에 반대표를 던지라는 공개편지가 잇따르고 있지만 지금껏 전인대가 공산당의 결정을 거부한 사례는 없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오달수 측 “성폭행 사실무근…무고죄 고소 가능성 있다”

    오달수 측 “성폭행 사실무근…무고죄 고소 가능성 있다”

    배우 오달수 측이 성폭행 주장에 대해 재차 반박했다.오달수의 소속사 스타빌리지 측은 26일 JTBC ‘뉴스룸’ 보도와 관련해 “저희도 사실 확인을 다 하고 신중하게 보도 자료를 낸 것이다.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은 변함없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이를 무고죄로 고소할 계획도 있느냐는 질문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앞서 이날 방송된 ‘뉴스룸’에서는 오달수가 연희단거리패에서 연출한 연극 ‘쓰레기들’ 무대에 올랐다는 전직단원 A씨의 인터뷰가 보도됐다. 해당 인터뷰에서 A씨는 “오달수는 4기 선배였다. 높은 선배였다. 잠시 이야기하자고 해서 여관으로 따라갔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못했던 일이다. 반항하고 그럴 틈도 없었다. 소리를 질렀는데 눈도 깜짝 안 하더라. 그 차분한 표정 있지 않나”라며 “따라갔기 때문에 내 잘못이 아닌가, 자존감이 추락했다. 내 몸 속에 알맹이가 빠져나가고 껍데기만 남은 느낌이었다. 내 가치가 없는 것 같았다”고 눈물을 흘리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폭로 댓글을 게재하고, 삭제한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라도 하면 마음이 풀릴까 했다. 기사화되며 나에게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무서워서 지웠다”고 해명했다. 한편 오달수는 같은 날 자신을 둘러싼 성추문에 대해 “먼저 많은 분들께 불미스러운 일로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 지난 2월 15일, 19일 이틀에 걸쳐 하나의 익명 아이디로 포털 상에 피해를 주장하는 댓글이 올라오고, 다시 삭제되는 일련의 사안과 관련하여 저의 입장을 말씀 드리고자 한다”면서 “저를 둘러싸고 제기된 주장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오달수 ‘지각 해명’ㆍ최일화 ‘꼼수 사과’… 피해자들 “성폭행당했다”

    오달수 ‘지각 해명’ㆍ최일화 ‘꼼수 사과’… 피해자들 “성폭행당했다”

    오달수, 의혹 열흘 만에 답변… “그런 행동 한 적이 없어” 반박 최일화 “성추행했다” 선제 대응… 피해자 “가벼운 일처럼 말해 분노”성폭력 의혹에 침묵하던 배우 오달수가 뒤늦게 입을 열었지만 의혹의 불길은 쉬이 꺼지지 않고 있다. 오씨로부터 당초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여성이 JTBC 뉴스룸을 통해 성폭행을 폭로하면서 파문이 더 커지고 있다. 26일 JTBC에 따르면 연희단거리패 전 단원 A씨는 인터뷰를 통해 오씨가 자신을 여관으로 데려가 성폭행했다면서 “반항할 틈도 없었다. 소리를 질렀는데 눈도 깜짝 안 하더라”라고 폭로했다. 이에 대해 오씨는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앞서 오씨 측은 이날 오전 보도자료를 통해 “30년 전 20대 초반으로 돌아가 차분히 스스로를 돌이켜 보았지만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오씨의 성추행 의혹은 지난 15일 연출가 이윤택의 성폭력 기사에 댓글이 붙으면서 불거졌다. 언론사 보도를 통해 이후 실명까지 언급됐지만 오씨는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누리꾼들은 “성추행 의혹에 답변하는 데 10일이나 걸리는 게 이해가 가질 않는다”, “피해자들과 합의하느라 늦은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나타냈다.중견 배우 최일화에 대한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그가 이례적으로 성추행 사실을 스스로 밝히고 나섰지만 과거 성폭행 의혹을 축소하기 위한 꼼수라는 의심이 짙어지고 있다. 한국연극배우협회 이사장으로 활동 중인 최씨는 지난 25일 “과거에 성추행한 적이 있다”며 이사장직을 내려놓겠다는 ‘자진납세’ 식으로 사과했다. 그러나 피해자로 추정되는 여성이 이날 “최씨가 마치 가벼운 성추행이었던 것처럼 이야기해 분노를 참을 수 없다”며 “성추행이 아니라 명백한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이현우 한양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진정성 없이 위기만 벗어나려는 사과와 해명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오달수에게 성폭행 당했다” 피해 증언

    “오달수에게 성폭행 당했다” 피해 증언

    배우 오달수가 성추행 의혹에 대해 공식 부인했으나 그에게 성추행을 넘어 성폭행까지 당했다는 피해자 증언이 나왔다.전직 연희단거리패 단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A씨는 26일 JTBC와의 인터뷰에서 “연극 ‘쓰레기들’에서 오달수와 출연했다”면서 “오달수는 4기 선배로 상당히 높은 선배였고 잠시 이야기를 하자며 여관으로 데려가 성폭행했다”고 말했다. A씨는 “반항하고 그럴 틈도 없었다. 막 소리를 질렀다. (오달수는) 눈도 깜짝 안 했다. 침착한 표정이었다”고 말했다. A씨는 사건 이후 심하게 자책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오달수를) 따라간 제 잘못이 아닌지 생각했다”면서 “자존감이 떨어지고 몸 속 알맹이가 다 빠져나가고 껍데기만 남은 느낌이었다”며 괴로운 심정을 털어놨다. A씨는 오달수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연희단거리패에 더 있다고 말했다고 JTBC는 보도했다. 오달수는 이날 공식입장문을 내고 “나를 둘러싼 주장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30년 전, 20대 초반으로 돌아가 차분히 스스로를 돌이켜 보았지만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A씨는 “침묵하는 것까진 괜찮은데 ‘그런 일이 없었다’ 이렇게는 말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최일화 자진 고백에 “성추행만? 성폭행 저항하자 주먹으로 때려” 폭로글

    최일화 자진 고백에 “성추행만? 성폭행 저항하자 주먹으로 때려” 폭로글

    배우 최일화가 과거 성추행 전력을 스스로 고백한 가운데 더 심각한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또 다른 폭로글이 나왔다.최일화가 자신이 과거 저질렀던 성추행을 스스로 인정하고 사과한다고 처음 보도된 서울경제 기사에 ‘mjch****’라는 누리꾼이 “몇년전 성추행만 있었는가?”라는 제목으로 댓글을 달았다. 누리꾼은 이 댓글에서 “극단 신시에 있을 때 성폭행하고 얼마 후 강제로 여관에 끌고 가려해 소리 지르며 저항하자 얼굴을 주먹으로 폭행해 길에 쓰러지게 한 일”이 있었다면서 “그 이후 극단을 나와 은둔 생활하며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우울증에 시달리며 살았다”고 밝혔다. 이어 “연극배우의 꿈은 사라지고 25년 동안 한맺혀 살았다”면서 “내가 제일 화가 나는 건 너로 인해 연극배우의 꿈이 사라졌다는 것.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라고 했다. 또 “TV에서 널 볼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라면서 “지금이라도 내 앞에 나타나 진심으로 사죄하길 바란다, 최일화”라고 적었다.이 누리꾼은 자신을 격려하는 다른 네티즌에게 “인터넷 하단 제보하는 곳에 한번 더 해봐야겠어요. 제 글을 읽고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라도 알리게 되어 마음 한 구석이 후련합니다”라며 미투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임을 밝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밝히고 싶죠. 오래 전 일이라 증거 없으니 무고죄로 고소할까봐서요. 이건 추억이 아니라 폭행입니다. 이게 일상이라고요? 내 삶은 고통이었어요”라면서 그간 나서지 못한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한국연극배우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최일화는 자진 사과가 있기 4일 전 세종대학교 평생교육원 연극학 교수 임용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최근 MBC 드라마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에 캐스팅됐다. 세종대 측은 최일화의 교수 임용 철회 방침을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의성 들썩… 딸들 맞이 카퍼레이드 준비

    “‘팀 킴’ 덕분에 지구상에 이름도 없던 의성이 순식간에 글로벌 도시가 됐습니다. 단군 이래 최대 경사입니다.” ‘안경 선배’ 주장 김은정이 이끄는 평창동계올림픽 여자대표 ‘팀 킴’이 컬링에서 아시아 최초로 은메달을 딴 25일 경북 의성 전체가 잔치 분위기에 휩싸였다. 여자 컬링 국가대표팀 선수 5명 중 4명(김은정·김영미·김선영·김경애)이 인구 5만 4000명의 소도시 의성 출신이다. 이날 경북 의성실내체육관에는 의성 주민 10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대한민국 컬링 여자대표팀의 결승전을 응원했다. 주민들은 만세를 부르고 서로 얼싸안으며 한국 컬링 사상 첫 은메달 수확의 기쁨을 나눴다. 경기 중 실점이 나오면 “괜챦아, 괜챦아”를 연호하기도 했고, 무대 앞에서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는 주민도 보였다. 김관용 경북도지사 등 지역 기관·단체장들도 함께 자리했다. 정옥화(67) 의성여고 동문회장은 “후배들이 정말 장한 일을 해냈다. 자랑스럽다. 지금까지 너무 수고 많았다”고 격려했다. 의성여고 3학년인 이승연(18) 양은 “선배들이 너무 존경스럽다”며 활짝 웃었다. 주민과 출향인들도 선수들의 선전에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 경남 마산에서 직접 응원하러 온 김모(58)씨는 “도저히 집에서 고향 후배들의 결승전 경기를 TV로 볼 수 없었다”면서 “결승전에 오른 것만으로도 세계를 놀라게 한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주민 권혜숙(65·의성읍)씨는 “영미랑 경애랑 선수 모두가 우리 집(여관)에서 합숙해서 그들이 크는 과정을 지켜봤다. 이런 영광스러운 날이 올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의성군은 대표팀이 해단식을 마치고 귀향하는 시기에 맞춰 무개차에 이들을 태워 고향 마을(의성읍 철파리, 봉양면 분토리, 안평면 신월리)을 도는 퍼레이드 등 대규모 환영행사를 열기로 했다. 김주수 의성군수는 ”자랑스러운 의성 딸들이 한국 컬링의 새 역사를 만들었다“며 ”의성 컬링이 대한민국 대표 동계스포츠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의성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이승비 “이윤택, 사타구니로 손 집어넣어…마녀사냥까지”

    이승비 “이윤택, 사타구니로 손 집어넣어…마녀사냥까지”

    이승비(42) 극단 나비꿈 대표가 연출가 이윤택(66)으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는 글을 올렸다.이 대표는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metoo 해시태그와 함께 “묵인하고 있다는 게 죄스러워 간단히 있었던 사실만 올립니다”라고 글을 적었다. 이 대표는 “아주 오래 전 국립극장에 객원단원으로 뽑혀 실러의 ‘군도’를 각색한 ‘떼도적’이란 작품을 6개월 간 쟁쟁하신 선생님들과 연습을 하게 되었고, 전 메인팀인 A팀의 여자주인공 아말리아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총 10회 공연 중 7회, B팀의 여자주인공인 배우는 3회 계약을 하고 힘들게 공연을 올리던 도중 이슈가 되고 있는 그 연출가이자 그 당시 국립극장 극장장이던 그 분이 공연 중인데도 불구하고 낮 연습 도중 저보고 따로 남으라고 했고, 그 이유인 즉슨 워낙 큰 대극장이기에 발성연습을 조금만 하자는 거였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당시는 CCTV도 없고 그는 그곳에서도 왕 같은 교주 같은 존재이기에 남아서 따로 연습에 응했다. 대사를 치게 하면서 온몸을 만졌다”면서 “너무 무섭고 떨려서 제 몸은 굳어져가고 수치스러움에 몸이 벌벌 떨렸다. 결국 제 사타구니로 손을 쑥 집어넣고 만지기 시작하여 전 있는 힘을 다해 그를 밀쳐내고 도망쳐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대표는 “정신을 가다듬고 행정실로 찾아가 모든 얘기를 전했지만 그 일에 관련된 얘기는 듣지도 않고, 원래 7대3이었던 공연 횟수가 5대5로 바뀌었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고 충격에 휩싸여 집에 오는 길에 응급실로 실려갔다”면서 “그 날 공연을 못하고 전 마녀사냥을 당했다. 최초로 국립극장 공연을 빵꾸낸 이승비 배우라고…당시 모든 사람들이 날 몰아세웠고 심지어 당시 제 남자친구가 그 공연에 코러스였는데 그 친구 역시 연희단 거리패였기에 모든 것을 묵인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그 뒤로 신경안정제를 먹고 산다”며 “이 무시무시한 일들이 더이상 후배들에게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글을 남긴다”고 자신이 글을 쓴 이유에 대해 밝혔다.이윤택씨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공개사과했다. 그러나 그는 “성폭행은 인정할 수 없다. 이 문제는 법적 절차에 따라서 그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란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피해자 몇 명인지 파악하고 있냐는 질문에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게 극단 내에서 18년 가까이 진행된 생활에서, 관습적으로 일어난 아주 나쁜 행태라고 생각한다. 제가 어떨 때는 이게 나쁜 죄인지 모르고 저질렀을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죄의식을 가지면서도 제 더러운 욕망을 억제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그렇다”라고 답했다. 이씨는 “연극계 선후배 분들에게도 사죄드린다”며 “연극계 전체가 매도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덧붙였지만 연극계는 이윤택에 퇴출 조치를 내리고 있다. 서울연극협회는 “지난 17일 긴급이사회에서 이윤택 회원의 성폭력 사실을 묵과할 수 없는 심각한 범죄행위로 정의하고 정관에 따라 최고 징계조치인 제명을 결정했다”고 19일 밝혔다. 협회는 “이윤택 회원과 관련한 일련의 사태에 대해 이루 말할 수 없는 참담함을 느끼며 힘겨운 고통의 시간을 폭로한 동료 연극인들에게 도의적 책임을 통감하고 머리 숙여 사과한다”고 덧붙였다. 협회는 “예술이라는 미명 하에 권력의 그늘에서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윤리강령을 제정하고 모든 회원이 실천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겠다”면서 추후 드러나는 연극계 치부를 주시하고 범죄 사실이 드러나면 관련 협회와 공조해 영구 퇴출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과거 이윤택 연출이 여관방에서 안마를 요구하며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폭로했다. 이후 소셜미디어에서 이 연출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폭로가 잇따랐고 성폭행이 있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사실상 이 연출이 이끌던 연희단거리패는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극단을 해체했다.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는 그동안 이윤택 연출의 행동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시인하면서 “성폭력이라는 인식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극단을 해체하고 극단 관련 건물도 모두 처분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또 이후 피해자들을 만나는 등 자체 진상조사를 해서 그 결과를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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