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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임 헌법재판관에 문형배·이미선 판사 지명…‘헌재 여성 3인 이상’ 처음

    신임 헌법재판관에 문형배·이미선 판사 지명…‘헌재 여성 3인 이상’ 처음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신임 헌법재판관에 문형배(54·사법연수원 18기) 부산고법 수석부장판사와 이미선(49·연수원 26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지명했다. 이들 두 후보자는 다음 달 19일 퇴임하는 조용호·서기석 재판관의 후임이다. 이 두 재판관의 퇴임 한 달 전에 신임 재판관이 지명됨에 따라 후임 인선 지연으로 헌법재판관 공백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할 수 있게 됐다. 문 대통령이 헌법재판관을 지명한 것은 2017년 10월 유남석 현 헌법재판소장 이후 두 번째다. 이후 문 대통령은 작년 8월 유 재판관을 헌재소장으로 지명했다. 문형배·이미선 후보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쳐 결과 보고서가 채택되면 별도의 국회 동의 절차 없이 대통령이 임명하게 된다. 특히 이미선 후보자가 임명되면 이선애·이은애 재판관과 함께 헌정 사상 최초로 3명의 여성 재판관이 동시에 재직하게 되면서 헌법재판관 비율이 30%를 넘게 된다. 김의겸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헌법재판관 구성 다양화라는 시대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성별·연령·지역 등을 두루 고려해 두 분을 지명했다”며 “특히 이 후보자가 임명되면 헌법기관 여성 비율이 30%를 넘는 새로운 역사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여성 장관 30%를 공약한 바 있다. 다만, 현 내각 여성 장관 비율은 18명 중 4명인 22.2%에 그치고 있다. 문형배 후보자는 부산지법·부산고법 판사를 거쳐 창원지법·부산지법·부산고법 부장판사, 부산가정법원장 등을 역임했다. 진주 대아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이미선 후보자는 서울지법·청주지법·수원지법·대전고법 판사를 거쳐 대법원 재판연구관, 수원지법 부장판사 등을 지냈다. 부산 학산여고와 부산대 법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문형배 후보자는 법원 내에서 대표적인 진보 성향 법관으로 불린다. 2009년 진보 성향 판사들의 모임으로 알려진 ‘우리법연구회’ 회장에 선출됐다. 김명수 대법원장도 이 연구회 회장을 지냈다. 단순히 연구회 활동만 한 것에 그치지 않고 법원 내 다양한 논란과 관련해 진보 성향 판사들의 맏형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개인적 성향과 달리 재판에서는 엄격한 법치주의자라는 평가도 함께 받는다. 2010년 부산지법 부장판사 시절 낙동강 4대강 사업 취소소송에서 이 사업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는 재판 진행능력이 탁월하다는 평을 듣는다. 지난해 부산지방변호사회가 선정한 우수법관 10명에 들기도 했다. 지난해 퇴임한 김소영 대법관 후임으로도 추천된 적이 있다. 2007년 창원지법 부장판사 시절 자살을 시도하려다 여관방에 불을 지른 방화범에게 건넨 이야기는 지금도 회자한다. 당시 문형배 후보자는 피고인에게 ‘자살’을 열 번 외치라고 한 후 “거꾸로 말하면 ‘살자’로 변한다. 죽으려는 이유가 살려는 이유가 된다”고 말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김 대변인은 “문형배 후보자는 우수 법관으로 수회 선정되는 등 인품과 실력에 높은 평가를 받아 추천됐다”며 “평소 억울한 사람이 마지막으로 기댈 곳이 법원이라며, 뇌물 등 부정부패를 엄벌하고 노동사건, 아동학대, 가정폭력 등에서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존중했다”고 평가했다. 김 대변인은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재판을 하며 사법독립과 인권수호를 사명으로 삼아온 법관”이라며 “헌법 수호와 기본권 보장이라는 헌법재판관 임무를 잘 수행할 적임자”라고 말했다. 이미선 후보자는 2010년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있을 때 형사근로조에 속해 노동 사건을 중점으로 연구했다. 2017년 서울중앙지법에서 민사 단독 재판장을 맡을 때도 노동 사건을 전문으로 다뤘다. 그는 노동법 전문가인 만큼 노동자 권리에 관심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용하고, 개인적인 견해나 사건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는 ‘신중한 인물’이란 평이 많다. 김 대변인은 “이미선 후보자는 우수한 사건분석 능력 등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며 “유아 성폭력범에게 술로 인한 충동 범행이고 피해자 부모와 합의해도 형 감경 사유가 안 된다며 실형을 선고해 여성 인권보장 디딤돌상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또 “재판연구관 시절부터 노동법을 연구하며 노동자 보호 강화 등 사회적 약자 권리 보호에 노력했다”며 “뛰어난 실력과 온화하고 겸손한 성품으로 신망받는 40대 여성 법관”이라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저소득노인 집에서 의료급여로 돌봄서비스

    전담 의료기관 연계… 임대주택 제공도 저소득 노인이 요양병원에서 퇴원해 집에서 방문 의료서비스 등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재가(在家)의료급여 시범사업’이 오는 6월부터 2년간 시행된다. 대상은 65세 이상 의료급여 수급자 100명이다. 보건복지부는 6개월 이상 병원에 입원한 노인 중 집으로 돌아와 생활하길 원하는 이들을 선발할 계획이라고 12일 밝혔다. 대개 병원에 오래 입원한 노인은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돌봄 절벽’에 맞닥뜨리게 된다. 수시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으니 집에 있어도 불안하고, 홀로 사는 노인은 식사조차 해결하기 어렵다. 임은정 복지부 기초의료보장과장은 “노인을 돌볼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있어도 돌볼 여유가 없는 빈곤층은 원하지 않게 살던 곳을 떠나 병원이나 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2016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를 봐도 4개월 이상 장기 입원한 의료급여 수급자의 약 48%가 의료적 치료보다 돌봄·주거, 통원 치료와 식사 불편 문제 등을 해결하려고 입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는 시범사업에 참여한 의료급여 수급 노인에게 의료, 이동지원, 식사지원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전담 의료기관을 연계해 의사·간호사·의료사회복지사·영양사가 한 팀으로 움직이며 실시간으로 의료·영양·외래 이용 상담서비스를 제공한다. 돌봄서비스가 필요한 노인에게는 장기요양보험 재가서비스, 노인돌봄서비스, 일상생활지원서비스 등을 우선 연계해 준다. 부족한 부분은 의료급여를 활용해 많게는 월 36시간 추가 지원한다. 퇴원하길 원하나 돌아갈 집이 마땅치 않은 노인에게는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할 계획이다. 지방자치단체 의료급여관리사가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며 개인 맞춤형 돌봄 계획을 수립한다. 현행법상 의료급여는 의료 목적으로만 활용할 수 있어 복지부는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 시범사업은 노인, 정신질환자, 장애인 등이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의료·돌봄·주거 등 통합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역사회통합돌봄’(커뮤니티케어)의 일환이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월드피플+] 6명 고아 키우며 평생을 바친 100살 독신 할아버지의 삶

    [월드피플+] 6명 고아 키우며 평생을 바친 100살 독신 할아버지의 삶

    6명의 고아를 키우며 한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100살 할아버지의 사연이 큰 감동을 주고 있다. 하얼빈 TV는 지난 4일 100세 생일을 맞은 펑윈송(彭云松) 할아버지의 사연을 소개했다. 사연은 1954년 당시 35살의 펑 씨가 철길 위에서 굶주린 8살 남자아이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금세 쓰러질 듯 굶주린 아이에게 만두를 건넨 펑 씨는 차마 아이를 두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나랑 함께 가자꾸나”라고 말하며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15년간 그는 5명의 남자아이와 1명의 여자아이를 집에 들였다. 모두 버림을 받거나 부모를 여읜 채 오갈 데 없는 고아들이었다. 이렇게 각기 성이 다른 6명의 아이는 한집에 살면서 가족이 되었다. 펑 씨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하얼빈의 공사장에서 막노동하거나, 폐지를 주우며 돈을 벌었다. 1954년 당시 한 달 월급은 30위안(한화 약 5000원)에 불과했지만, 귀갓길에는 늘 아이들이 좋아하는 먹거리를 들고 왔다. 또 누가 맛있는 걸 주면 잘 간직했다가 집에 돌아와 아이들에게 먹였다. 아이들은 날마다 아빠가 돌아오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동네 어귀에 푸른 작업복을 입은 아빠의 모습이 보이면 6명의 아이는 한꺼번에 달려가 아빠를 맞았다.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나눔의 기쁨은 컸다. 한번은 중추절에 펑 씨가 받은 월병이 하나뿐이었다. 펑 씨는 월병 하나를 6조각 내어 아이들에게 한 조각씩 먹였다. 아이들은 평생 먹어본 음식 중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그 시절 나누어 먹었던 작은 월병 조각을 꼽는다. 펑 씨에게는 한가지 신념이 있었다. 아이들을 비단 먹고, 입히는 것뿐 아니라 제대로 교육을 받도록 키우겠다는 것이었다. 비록 가난했고, 아이들 학비를 벌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했지만, 아이들을 돈벌이에 동원하지 않았다. 한번은 아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폐지를 줍다가 펑 씨에게 들켰다. 그는 “또다시 폐지를 줍는다면 다시는 너희를 키우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돈을 벌려고 욕심을 내다보면 그릇된 길로 들어설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웃들은 펑 씨에게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내고, 어서 장가를 들라”며 여자를 소개해 주었다. 여성은 펑 씨를 마음에 들어 했지만, 6명의 고아를 키운다는 사실을 알고는 줄행랑을 쳤다. 아이들은 아빠가 결혼하면 버림받을까 두려워 “아빠, 제발 우리를 버리지 마세요”라고 울며불며 매달렸다. 펑 씨는 “누가 너희들을 버린다고 했느냐?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고, 절대 그럴 리도 없다”고 말했다. 이후 누가 선을 보여준다고 하면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펑 씨의 보살핌에 아이들은 모두 바르게 자라나 성인이 되어 제각각 가정을 꾸렸다. 자식들은 서로 아버지를 모시겠다고 했지만, 펑 씨는 홀로 고향인 산동성의 누추한 집에서 생활했다. 하지만 2013년 펑 씨가 94살 되던 해, 더는 참을 수 없던 자식들의 간곡한 설득에 비로소 하얼빈으로 돌아와 자식들과 살고 있다.한편 각기 성이 다른 6명의 자식의 평생소원은 성씨를 ‘펑’ 씨로 바꾸는 것이다. 하지만 펑 씨는 “너희들이 비록 고아일지라도 근본을 나타내는 성이 있는데 이를 바꿀 순 없다”고 고집했다. 하지만 2013년 그의 자식들은 눈물을 쏟으며 “다음 생에 태어나도 우리는 한 가족이다”라면서 ‘성’을 바꾸게 허락해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펑 씨는 자식과 함께 한 지 60여 년 만에 아이들에게 ‘펑’ 씨 성을 허락했다. 한때 세상에 버림받아 홀로 남겨져 어둠 속에서 살아갔을 아이들이 지금은 모두 반듯하게 자라 행복한 가정을 일구었다. 장성한 자식들은 펑 씨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이룰 수 없었던 ‘기적’이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받은 사랑을 더 큰 사랑으로 갚고 있다. 다섯째 아들은 17년 전부터 노인을 위한 무료 서비스 여관을 운영 중이다. 지금까지 130명이 넘는 과부, 빈곤 노인을 위해 무료 숙박, 음식을 제공하는데 100만 위안(1억7000만원)이 넘는 돈을 썼다. 그는 “아버지에게 배운 인애(仁爱) 정신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100살이 된 펑 씨는 “내가 아이들을 훌륭한 인재로 키우지는 못했을지라도 반듯하게는 키웠다”면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지금은 손주들이 할아버지에게 수시로 연락을 하고 찾아온다. 빈곤한 생활이었지만, 가슴으로 품은 고아들은 아들, 딸이 되어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한 사랑의 열매를 가져다주고 있다.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3·1운동 100년]폭파된 줄 알았던 광저우 임시정부청사 찾아내

    [3·1운동 100년]폭파된 줄 알았던 광저우 임시정부청사 찾아내

    현재 주택… 中과 협의 기념비 건립 추진 국경절 행사 등 광저우 활동 고스란히‘낮 하늘의 큰 별.’ 광저우 한국 총영사관에서 근무하며 10년을 주경야독으로 독립운동사를 연구한 재중 역사학자 강정애(61)씨는 1938년 7월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약 두 달간 머물렀던 동산백원의 위치를 재작년에 확인했다. 강씨는 이국 땅에서 희생한 독립운동가들이 중국 공산당과 함께 활동했다는 이유로 이름 없이 스러져 갔다는 뜻에서 낮에 뜬 별과 같다고 강조했다. 강씨는 27일 “황포군관학교에 묻힌 김근제, 안태 두 명의 한국 청년 이름이 자꾸 시선을 잡아끌어 10년간 독립운동 연구를 하게 됐다”며 “새벽에 대만에서 연락을 받고 동산백원으로 달려와 사진을 찍을 때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리고 흥분됐는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그를 독립운동 연구의 길로 이끈 것은 1924년 건립된 광저우 황포군관학교 묘지에서 발견한 이십대 꽃다운 나이의 한국 청년들 이름 때문이었다. 임시정부가 동산백원에 둥지를 틀 무렵의 광저우는 국제도시였다. 중국의 국부 쑨원이 설립한 중산대학이 광저우에 있으며, 1927년에는 중국 공산당의 해방구를 확보하기 위해 무장봉기를 일으켰다가 실패한 ‘광둥 코뮌’ 사건이 일어났다. 광둥 코뮌에서는 중산대학에 다니던 한국인 학생을 포함해 한국 청년 200명이 참여해 150명이 사망했다. 공산 혁명이 조국 해방의 지름길이 될까 하여 남의 나라에서 피를 흘린 이들은 이름조차 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국 국민은 이를 기념하는 정자 ‘중조인민혈의정’(中朝人民血宜亭)을 세워 조선 청년들을 기억하고 있다. 강씨가 대만 중앙역사언어연구소와의 협력을 통해 임시정부의 거처임을 밝혀낸 동산백원은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임시정부는 동산백원에 사무실을 두었고, 가족들은 맞은편의 아세아여관을 숙소로 썼다. 공산당과 국민당의 후원을 모두 받은 임시정부의 숙소는 야외수영장과 수세식 변기가 달린 현대적 건물이었다. 임시정부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외국 인사를 초청해 국경절 행사를 열고 경술국치일을 기억하는 사진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광저우에서 발자취를 남겼다. 동산백원은 중국공산당 제3차 전국대표대회가 열린 회의장과 불과 몇백 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그동안 전쟁 중에 폭파된 것으로만 알려졌지만 중앙역사언어연구소에서 증거 사진 등을 보내 줘 실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는 주택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소유권은 중국 개인과 기관이 보유하고 있다. 광저우 총영사관 측은 중국 정부와 협의를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이곳에 있었다는 것을 알리는 기념비 등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광저우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콩밥 먹는다고 눈물겨워 마십시오”… 의연했던 열아홉살 심훈

    “콩밥 먹는다고 눈물겨워 마십시오”… 의연했던 열아홉살 심훈

    “어머님! 날이 몹시도 더워서 풀 한 포기 없는 감옥 마당에 뙤약볕이 내리쪼이고 주황빛의 벽돌담은 화로 속처럼 달고 방 속에서는 똥통이 끓습니다. 밤이면 가뜩이나 다리도 뻗어 보지 못하는데 빈대, 벼룩이 다투어 가며 짓무른 살을 뜯습니다. (중략) 콩밥을 먹는다고 끼니 때마다 눈물겨워하지도 마십시오. 어머님이 마당에서 절구에 메주를 찧으실 때면 그 곁에서 한 주먹씩 주워 먹고 배탈이 나던, 그렇게도 삶은 콩을 좋아하던 제가 아닙니까?” 소설 ‘상록수’의 저자로 잘 알려진 소설가 심훈(1901~1936)이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뒤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됐을 때 어머니께 쓴 편지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린 글월’의 일부다. 좁은 감옥에서 목사, 시골 노인, 학생 등과 함께 지낸 것으로 알려진 심훈의 고단한 옥중 생활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투옥 당시 19살이었던 심훈이 오히려 자신을 걱정하고 있을 어머니를 위안하는 모습에서는 의젓함과 의연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해 박열, 박헌영, 윤극영 등과 동문 수학하던 심훈은 3학년 재학 중 3·1운동에 참여했다. 일제의 수탈에 대한 분노와 조국의 독립을 향한 열망을 울부짖은 그는 3월 5일 덕수궁 앞 해명여관 앞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그해 11월까지 옥살이를 한 심훈은 감옥에서 보낸 시간을 토대로 작품을 창작하기도 했다. 한 방에서 함께 지냈던 장기렴 천도교 서울대교구장의 옥사를 모티브로 1920년 집필한 단편소설 ‘찬미가(讚美歌)에 싸인 원혼’이다.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린 글월’에서도 많은 부분을 할애했듯 칠십을 넘긴 노구로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굳은 심지를 가졌던 한 영혼에 대해 이야기했다. 35년이라는 짧은 인생을 살았던 심훈은 출옥 후 작품 활동을 통해 독립에 대한 열망을 꾸준히 노래했다. 1932년 출판하려고 했지만 일제의 검열에 걸려 무산된 ‘심훈시가집’에 수록된 시 ‘그날이 오면’은 그 마음이 극적으로 표출된 작품이다.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날이,/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한다면,/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와 같은 구절은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한 한 청년의 단단한 의지를 대변한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이주열풍 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新 3多에 우는 제주

    이주열풍 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新 3多에 우는 제주

    최근 5년간 月 1000명 넘던 이주인구 지난해 12월에는 50명 이하로 줄어 내국인 개별 관광객도 8.1%나 감소 숙박업체 객실 수는 2배 이상 껑충 과잉개발로 환경파괴…미분양 최대 “관광 양적 성장 탈피… 내실 다져야”3년 전 제주로 이주했던 박모(45)씨는 최근 제주를 떠났다. 제주의 건설현장에서 목수로 일했던 박씨는 지역 건설 경기가 침체되면서 지난해부터 일할 곳을 찾지 못했다. 박씨는 13일 “개발 바람으로 3년 전만 해도 제주 건설현장에는 일자리가 수두룩했는데 지난해부터 일감이 뚝 떨어져 마트 배달부로 일하기도 했다”면서 “제주에서는 더는 먹고 살길이 막막해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일감 끊긴 제주… 살길 막막해 떠나요” 제주에서 소형 호텔을 임차해 중국인 대상 숙박업소를 운영 중인 이모(52)씨는 사업을 정리 중이다. 중국과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갈등 이후 중국인의 발길이 뚝 떨어져서다. 이씨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제주에서 사라진 데다 경쟁 숙박업소도 우후죽순 늘어나 직원 인건비도 감당하지 못해 임차기간이 남았지만 사업을 정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줄을 잇는 제주 이주민과 폭증하는 제주 관광객.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제주의 미래는 장밋빛이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이주민 행렬이 종적을 감췄고 폭증하던 관광객도 내리막이다. 잘 나가던 제주에 비상등이 켜졌다. 제주 이주 열풍은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매달 1000명씩 제주로 보금자리를 옮기던 이주인구가 지난해 12월 50명에도 못 미칠 정도로 급락했다. 제주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순유입 인구는 2014년 1만 1112명, 2015년 1만 4257명, 2016년 1만 4632명, 2017년 1만 4005명 등 해마다 1만명 넘는 사람들이 제주에 정착했으나 지난해에는 8853명을 기록하며 1만명 밑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월별 제주 순유입 인구를 보면 제주 이주 열풍의 확연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월간 순유입 인구는 1월 1038명으로 시작해 6월에는 766명, 9월 467명, 11월 259명으로 줄어들더니 12월에는 47명에 불과했다. 제주 이주 열풍은 2010년부터 시작됐다. 제주는 2009년까지 전입자보다 전출자가 많은 ‘전출초과’ 지역이었지만, 2010년부터 각박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삶의 여유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순유입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순유입 인구는 2010년 437명, 2011년 2343명, 2012년 4876명, 2013년 7823명, 2014년 1만 1112명 등 꾸준히 늘어났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는 1만 4000명 수준을 유지했지만 지난해 갑자기 곤두박질쳤다.이처럼 이주 열풍이 꺼진 이유에는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제주도의 ‘2018 제주사회조사 및 사회지표’에 따르면 10년 미만 제주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이주를 결심한 주된 이유는 ‘회사 이직 또는 파견’, ‘새로운 직업·사업 도전’, ‘새로운 주거환경’, ‘자연과 함께하는 전원생활’, ‘건강·힐링을 위한 환경’, ‘자녀의 교육환경’, ‘퇴직 후 새로운 정착지’ 등이었다. 하지만 한라산 중산간까지 리조트가 들어서는 등 과잉 개발로 인한 환경파괴 논란이 이어지면서 자연과 더불어 삶의 질을 찾아 제주에 오던 사람들이 더는 제주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또 농업과 서비스업 등 새로운 직업·사업을 찾아 많은 사람이 도전했지만, 실패하거나 과도한 경쟁으로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지 못해 다시 육지로 떠나는 사람들도 많다. 부동산 시장 과열로 인해 주거환경 역시 날이 갈수록 악화하고, 언어와 관습 등 지역 문화 또는 지역주민과의 관계 면에서 적응하지 못해 애를 먹는 것도 이주민 감소의 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인구 유입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제주 곳곳에 마구 지은 주택은 분양되지 않아 제주의 새로운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제주 미분양 주택은 역대 최대치를 기록 중이며 특히 악성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 주택도 최대치를 경신했다. 국토교통부의 ‘2018년 12월 전국 미분양 주택 현황’에 따르면 제주는 1295호로 전월 1265호보다 2.4% 증가했다. 역대 최대치다. 악성으로 분류되는 사실상 ‘빈집’인 준공 후 미분양 주택도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지난해 말 기준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750호로 전월보다 14호(1.9%) 늘었다. 한 주택건설업체 관계자는 “제주 이주 바람이 불자 육지의 소규모 업체까지 제주에 와 은행 빚을 내 토지를 구매해 주택을 마구 짓기 시작했고 지은 집이 제때 팔리지 않아 이미 도산한 업체도 수두록하다”고 말했다. 제주도관광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제주를 찾은 관광객은 1431만 3000여명으로 전년 1475만 3000여명보다 3.0% 줄었다. 2017년 중국과 사드 갈등이 터진 이후 2년 연속 줄었다. 2017년 이전까지 제주를 찾은 관광객은 2010년 757만명에서 2013년 1085만명, 2016년 1585만여명으로 해마다 급증했다. 제주의 관광객 감소는 내국인 개별 관광이 줄어든 탓이다. 지난해 제주를 찾은 개별 여행객은 1039만여명으로 전년 1130만여명보다 8.1% 줄었다. 제주도관광협회 관계자는 “저가항공사들이 돈이 되는 해외 노선을 잇달아 개설하면서 여행객들이 외국으로 발길을 돌렸고 이 같은 추세는 올해도 계속될 것으로 보여 내국인 관광객 증가는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 제주본부도 최근 ‘경제 브리프’에서 “제주 내국인 관광객은 해외여행 접근성 확대, 경기 둔화 우려에 따른 소비심리 약화 등으로 감소할 전망”이라고 진단했다. 내국인 관광객은 줄지만 숙박업소는 과잉 공급돼 앞으로 제주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한국은행 제주본부에 따르면 제주지역 숙박업체 객실수는 지난해 7만 1822실로 2012년 3만 5000실에 비해 2배 이상 급증했다. 하지만 지난해 하루 평균 체류 관광객수가 17만 6000명임을 감안할 때 필요한 객실수는 4만 6000실로 추정돼 나머지 2만 6000실은 남아돌아 경영 악화로 문 닫거나 휴업하는 업체들이 잇따랐다. 지난해 관광호텔 등 6개 관광숙박업소가 폐업했다. 여관 등 일반숙박업소는 사정이 더 심각해 지난해 30곳이 문을 닫았다. 한은 제주본부는 “제주지역 숙박 수요는 2015년 이후 관광객 증가세 둔화, 평균 체류일 감소 등의 영향으로 정체된 상황이지만 공급은 계속 늘고 있다”며 “지금도 대규모 신규 호텔 등이 건설되거나 계획 중에 있어 향후 작지 않은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제주지역 숙박업체(호텔 기준)의 객실 이용률은 2014년 78.0%로 정점을 찍은 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2015년 66.7%, 2016년 63.6%, 2017년 58.5%로 급락했다. ●道, 뱃길 관광 활성화·특화 콘텐츠 발굴 주력 제주도는 감소 추세로 돌아선 내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온라인 마케팅과 뱃길 관광 활성화, 제주 특화 콘텐츠 발굴 등 맞춤형 전략을 추진할 계획이다. 도는 이달부터 밀레니엄 세대(1982~2000년생)를 대상으로는 제주의 문화와 레저스포츠 등을 홍보하고, 베이비붐 세대(1958~1963년생)는 휴양과 치유를 테마로 한 마케팅을 집중하기로 했다. 도는 이 같은 세대별 맞춤형 관광을 통해 내국인 관광객의 제주 방문 만족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좌광일 제주주민자치연대 사무처장은 “제주는 단기간에 과잉 관광으로 인한 하수와 쓰레기, 교통난 등의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났고 이제는 양적 관광에서 벗어나 질적 성장으로 관광정책을 전환하는 등 새로운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일손 부족에 부업 장려하는 일본…현장은 혼란 투성이

    일손 부족에 부업 장려하는 일본…현장은 혼란 투성이

    일본의 ‘유효구인배율’은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1.63에 달했다. 일할 수 있는 사람 1명에 일자리는 1.63개라는 뜻이다. 쉽게 말해 비어있는 일자리는 163개나 되는데 일할 사람은 100명 밖에 안된다는 의미. 이렇게 사회 전반의 일손 부족이 심각하다 보니 인기 없는 중소기업은 쓸만한 사람 한 명 구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인 상황이 되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장려되고 있는 것이 본업 외에 또다른 직업을 갖는 ‘부업’이다. 민간에 부업을 허용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가운데, 공무원의 부업을 사실상 의무화하는 지방자치단체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부업으로 인한 개인과 기업의 혼란, 마찰 등 다양한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2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도쿄에서 일하는 30대 남성 엔지니어는 직접 출근하지 않고 원격근무를 하는 형태로 웹디자인 부업을 시작했다가 곤욕을 치른 뒤 결국 그만뒀다. 지인의 소개로 한 기업체와 계약한 뒤 원격근로를 원칙으로 웹디자인 일을 시작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요구사항 등이 많아 그때마다 부업 직장에 불려다녀야 했다. 그는 “줄기차게 들어오는 전화나 메일에 시달리고 진척상황도 매일 보고하라고 압박을 받다보니 본업에도 지장이 생겼다”고 말했다. 본업이 아닌 부업 직장의 경우 직접 출근보다는 가정 등에서 원격근로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특히 많은 문제들이 불거진다. 기업문화 차이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 중 하나다. 부업으로 이벤트 기획을 맡은 적이 있는 30대 여성은 “부업 회사의 직원들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에 대해 험담을 하고 있었다”며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그들과의 간극이 메워지지 않았다”고 니혼게이자이에 말했다. 본업처럼 급여 등 처우 체계가 갖춰져 있는 게 아니다 보니 근로계약을 어떻게 해야하는 지도 난감한 경우가 많다. 한 20대 여성은 “부업으로는 나의 시장가치를 산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보수 등 계약조건을 어느 정도로 책정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고 했다. “성과가 당초 요구했던 수준이 아니라며 보수를 주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프로젝트 중단을 통보받아 기껏 했던 일이 물거품이 됐다”는 실패사례도 있다.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하면서 초기에 반색을 했던 기업들도 부업에 대한 기대감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지난해 여름 경제산업성의 조사에서는 부업 근로자를 받아들일 계획이 없다는 기업이 전체의 80%를 차지했다. 기업들은 부업 근로자의 경우 근무시간이나 급여관리가 어렵고 외려 업무 흐름이 복잡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주된 반대의 이유로 든다. “사내 질서가 어지럽혀지기 때문” , “어떤 사람이 올지 불안해서” 등도 부업 근로자를 기피하는 주된 이유다. 자사 사원들의 부업을 허용하고 있는 기업들도 고민이 크다. 회사의 사전허가를 받는 것을 전제로 부업을 인정하고 있는 한 대기업의 인사 담당자는 “사원들의 부업 신청을 일일이 심사해 허용 여부를 판단하기는 극히 어렵다”며 “차라리 회사에 알리지 말고 각자 조용히 부업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글·사진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공부 못하면 밥도 사치”…자기 착취 빠진 ‘대한민국 고3’

    “공부 못하면 밥도 사치”…자기 착취 빠진 ‘대한민국 고3’

    극한 상황·고통 익숙…자기 혐오 하기도“‘스카이 캐슬’ 속 1% 보면 자괴감 들어”“입시 아닌 삶 챙기는 교육 도입됐으면”“나는 수능이 400일도 남지 않은 고2, 아니 사실상 고3이다. ‘넌 고3이야’라는 말을 365일 내내 듣고있다. 입시 탓에 건강을 잃었다. 주변 사람들은 매일 밤 (힘들어) 운다. 어쩌면 몇몇은 자살을 시도한다. 난 겉으로 늘 웃지만 사실 상처를 감추려는 것인지 모른다. 친구들과 밥 먹고 영화관에 가는 소소한 행복을 누리지만 이 행복이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미래가 두렵다. 초등학교 때는 7개에 달하는 학원에 다녔고 중학교 땐 특목고 준비를 위해, 지금은 좋은 대학에 가려고 공부에 파묻혀 있다. 내 삶이 과연 행복해 질 수 있을까.” (서울 거주 19살 A양) 전쟁을 방불케 하는 입시 경쟁 속에서 사는 대한민국 고3들의 평균적 삶은 A양과 크게 다르지 않다. 화제의 드라마 ‘SKY(스카이) 캐슬’이 보여주는 고교생들의 대입 경쟁과 스트레스는 다소 과장됐지만 본질을 꿰뚫었다는 평을 받는다. 고3들은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 버틸까. 청소년 4명이 또래들의 속내를 듣고 관찰한 결과를 내놨다. 26일 서울시청소년직업체험센터 ‘하자센터’에 따르면 ‘은별’(18), ‘나무’(20), ‘달’(18), ‘바에’(17, 이상 활동명) 등 청소년 4명은 또래들의 목소리를 직접 담아내는 연구를 진행했다. 하자센터 내 10대 연구소 소속인 이들은 지난해 3월부터 10개월 동안 청소년 25명을 인터뷰하고 참여관찰했다. 이들은 연구 전 “학생들이 입시 고통을 강하게 호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대답은 달랐다. “공부를 해야 밥 먹을 자격이 있다”, “끼니를 걸러가며 공부를 해도 매일 하니까 별 감각이 없다”, “밥은 사치” 라고 말했다. 예비 고3 B학생은 “밥 먹을 시간도 아껴 공부해야 하는 건 전날 공부를 못한 내 잘못”이라고 자책했다. 고통을 표출하기 보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상황을 연구진들은 ‘자기 착취’라고 이름 붙였다. 독하게 공부할수록 자기 착취는 더 심해졌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보면서도 ‘나는 왜 더 독하게 못할까’하는 마음이 든다고 했다. ‘은별’은 “스카이 캐슬이 정말 청소년들을 생각해서 만든건지 잘 모르겠다”면서 “상위 1% 이야기를 보면서 대다수 학생들은 남들은 저렇게 하는데 난 뭘까’하는 자괴감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자기혐오도 심각했다. 조금이라도 나태해진 것 같으면 스스로를 욕하고 방학 때는 공부를 제대로 못했다는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2인 D학생은 “스트레스를 가족한테 풀자니 ‘그 시간에 공부하라’고 할 것 같고 학교도 모든 걸 털어놓기에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 많은 학업량을 요구하는 사회의 요구를 쫓아가지 못하면 스스로 자책하는 것이다.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연구자들은 “외부의 강한 압박을 내면화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고3 E양은 “사람들이 하도 고3이 중요한 것처럼 말하니 ‘고3이 큰 일인가 보다’하고 살았다”고 말했다. 언론에서는 포크로 스스로 찌르거나 커피콩을 씹으며 잠을 깼다는 수험생들의 이야기가 무용담처럼 나온다. “영단어 때문에 죽고 싶다고 하니 엄마가 컨닝페이퍼를 만들어 줬다”고 한 고 3학생도 있었다. 연구자 ‘나무’는 “입시 스트레스의 구조보다는 다른 방법을 통해서라도 기준에 맞추도록 만들려는 사회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이라고 해석했다. 자기 착취와 혐오의 고리를 깰 방법은 없을까. ‘은별’은 “학교가 변한다고 해도 학생들의 내면화된 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어려울 것 같다”면서도 “교육기관 내에 학생들의 입시가 아니라 삶을 들여다 봐주는 대안교육이 도입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구를 도운 함세정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겸임교수는 “청소년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고통에 대해 돌아본 연구 자체가 흔하지 않다”며 “숫자로 보여줄 수 없는 학생들의 상황을 당사자의 관점에서 솔직하게 드러낸 작업”이라고 말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주무관·복지통장, 임시주거지 방문… 숨어있는 저소득층 발굴 나선 구로

    주무관·복지통장, 임시주거지 방문… 숨어있는 저소득층 발굴 나선 구로

    서울 구로구가 겨울철을 맞아 어려움을 겪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에 소매를 걷어붙였다. 구로구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찾아 복지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다음달 28일까지 취약계층 발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20일 밝혔다. 우리동네 주무관과 복지통장이 여관, 찜질방, 고시원 등 임시 주거시설 350여개를 방문해 거주자와 면담하고 위기상황 여부를 확인하는 ‘주거취약계층 조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조사 결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복지플래너와 종합상담을 통해 공적지원부터 민간자원 활용에 이르기까지 맞춤형 지원대책을 마련한다. 특히 일회성 지원에 그치지 않도록 통합사례관리, 일자리 연계 등을 병행할 방침이다. 구로구 관계자는 “겨울철은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에게는 더욱 힘든 계절”이라면서 “홀로 외롭게 고통받는 주민이 발생하지 않도록 복지안전망 강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세계 최고령 남성 113세 노나카 옹 별세

    세계 최고령 남성 113세 노나카 옹 별세

    세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남성으로 알려진 일본인 노나카 마사조 옹이 20일 별세했다고 교도통신과 NHK가 20일 보도했다. 만 113세의 노나카 옹은 이날 새벽 1시 30분 홋카이도 아쇼로의 자택에서 누운 채 숨진 것을 가족이 발견했다. 고인은 1905년 7월 25일 태어났다. 지난해 4월 세계 기네스협회로부터 세계 최고령 남성으로 인정받았다. 오랫동안 온천여관을 운영한 고인은 TV로 스모를 즐겨 보고 지난해 생일에는 좋아하는 케이크를 가족과 함께 먹었다. 고인과 함께 사는 손녀 유코씨는 “할아버지 덕분에 우리 가족도 행복하고 즐거운 매일을 보냈다”며 “할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자택에서 지내 존엄 있는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에서 슬프지만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노나카의 장수비결은 미네랄이 풍부한 온천에서 자주 목욕을 하고 단 음식을 즐겨 먹는 데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딸은 기네스 협회에 아버지가 스트레스 없는 삶을 살고 있기에 장수를 누리는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라디오스타’ 육중완, 장미여관 해체 첫 심경 고백 “이렇게 솔직한 건 처음”

    ‘라디오스타’ 육중완, 장미여관 해체 첫 심경 고백 “이렇게 솔직한 건 처음”

    육중완이 8년을 함께한 밴드 장미여관의 해체 심경을 고백했다. 16일 수요일 방송되는 MBC ‘라디오스타’에는 이름과 팀을 바꾸고 새롭게 리셋 한 네 사람 한다감, 육중완, 이태리, 피오가 출연한다. 육중완은 장미여관의 기타와 보컬을 맡아 이름을 알린 뒤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최근 장미여관이 팀 활동을 마무리한 뒤 멤버였던 강준우와 함께 ‘육중완 밴드’로 새 출발을 선언했다. 녹화 당시 육중완은 장미여관의 해체 심경을 묻자 밴드 활동의 시작과 해체까지의 과정을 설명했다. 이어 “정말 아쉬운 게 뭐냐면..”이라며 조심스럽게 자신의 심경과 생각을 밝혔다. 너무나도 솔직한 그의 심경 고백에 옆에서 듣고 있던 MC 김국진은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솔직하게) 얘기하는 거 처음 봐”라고 말했다고. 육중완은 육 씨 성이어서 ‘라디오스타’ 600회에 출연하게 된 것 같다는 얘기에 웃음을 참지 못하더니 애틋한 ‘육’ 사랑을 고백해 스튜디오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육중완은 희귀 성인 육 씨들을 만날 때 애틋하다면서 육 씨만이 가지고 있는 얼굴 느낌이 있다고 해 관심을 모았다. 이에 육성재가 언급되자 육중완은 ‘외탁설’을 주장해 웃음을 자아냈다. 또 육중완은 인생 최대 소원이 ‘탈모 탈출’임을 밝히면서 흑채를 뿌리고 출연한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모발 이식을 고민 중인데, 특별한 이유로 이를 미루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육중완은 꿈에 산신령이 나타난 뒤 20년째 복권을 사고 있다고 밝혀 궁금증을 자아냈다. 육중완은 항간에 알려진 ‘7일 3닭’, ‘7일 5닭’에 대한 진실도 알린다. 그는 실제로는 ‘7일 3닭’, ‘7일 5닭’이 아니라면서 그의 확고한 닭 스타일을 밝혔다. 오늘(16일) 오후 11시 10분 방송.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김봉렬과 함께하는 건축 시간여행] 고려 국왕 머물던 ‘왕립호텔’… 경사지에 지은 입체적 건축

    [김봉렬과 함께하는 건축 시간여행] 고려 국왕 머물던 ‘왕립호텔’… 경사지에 지은 입체적 건축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사학자인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 새해를 맞아 ‘김봉렬과 함께하는 건축 시간여행’을 시작합니다. 전통 건축의 과거를 통해 내일을 바라보는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 김 총장이 직접 ‘시간여행’의 가이드로 나섭니다. 첫 번째 주제는 고려 행궁(行宮)의 원형이 담긴 경기 파주 ‘혜음원’입니다.●도둑 소굴에서 행궁으로 지난해는 고려 건국 1100주년이었고 국립중앙박물관은 ‘대고려전’을 개최 중이다. 474년 동안이나 건재했으며, 활발한 대외 무역으로 ‘코리아’의 어원이 되었던 고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지식은 고려청자와 금속활자, 그리고 팔만대장경 정도다. 뒤이은 조선 왕조가 고려의 기록을 지워버렸던 탓도 있고, 주요 문화유산들이 북한 땅 개성에 밀집돼 깊은 연구가 불가능한 까닭도 컸다. 지난 천 년의 마지막 해, 1999년에 경기 파주의 후미진 경사지에서 낯익은 글자를 새긴 기와 한 조각을 발견했다. ‘惠陰院’이란 글자였는데, 바로 이곳이 학계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혜음원 터였다. 이후 10여차례의 발굴 정비작업을 거쳐 최근 웅장한 전모를 드러낸 이곳은 고려시대의 큰 사원터이며, 국왕이 행차해 머물던 행궁터였다. 고려는 국가적 도로망을 개척했고, 곳곳에 교통시설인 ‘역’과 숙박시설인 ‘원’을 운영했다. 종종 원과 함께 불교 사찰을 세워 운영을 맡겼는데, 이를 묶어 ‘사원’이라 불렀다. 혜음원을 때에 따라 혜음사라 부르는 까닭이다. 혜음원은 남경 개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고려는 태조 왕건의 고향인 개성에 수도를 두어 ‘개경’으로, 옛 고구려의 평양을 ‘서경’으로, 그리고 신라의 경주를 ‘동경’으로 삼아 ‘초기 삼경제’를 운영했다. 중기에 들어 동경 대신 지금의 서울을 ‘남경’으로 삼아 ‘중기 삼경제’를 시행했다. 1104년에 남경에 궁궐을 짓고 1129년에 서경에 대화궁을 새로 지었다. 국왕은 세 수도를 주기적으로 방문하고, 세 궁궐에 일정 기간 머무는 순주제를 시행할 수 있었다. 삼경제와 순주제는 황제국의 예법이었다. 개경과 남경 사이는 새벽에 출발해서 부지런히 걸어도 도중에 하룻밤을 묵어야 하는 거리이다. 혜음원은 개경에서 남쪽 50㎞, 남경에서 북쪽 20㎞ 지점이며 큰 고개인 혜음령 바로 아래 위치한다. 이곳에서 숙박하고 이튿날 혜음령을 넘으면 남경에 닿는 최적의 요지였다. 당시 이 일대는 “산이 깊고 수풀이 무성해 호랑이가 떼로 몰려다니고, 도적들이 숨었다 떼로 나타나 사람들을 해친다”고 할 만큼 험한 곳이었다. 이에 행인들은 동행자를 모으고 무기를 들고 고개를 넘었는데, 그래도 1년에 수백 명이 살해당한다는 과장(?) 보고도 있었다. 1120년, 묘향산의 승려 백여 명이 비용을 마련하고 공사를 시작하여 2년 만에 사찰과 여관의 복합체인 ‘사원’을 완성했다. 1차 완공 직후, 국왕의 남경 순행에 이용하려고 행궁 증축을 시작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혜음원신창기’에 자세하게 실려 있는데, 당대의 대 문장가 김부식이 쓴 글이다. 이 무렵 고려 조정은 묘청 등의 서경파와 김부식 등의 개경파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아마도 남경 개발은 서경천도론을 외치는 서경파에 대한 견제책이 아니었을까. 혜음원 건립은 신도시 남경을 발전시킬 필수적인 기간 사업이었다. 민생을 명분으로 창건했지만 결국 행궁을 건립해 국왕의 남경 순행을 도모하기 위한 다각적인 포석이었다. 그 결과 “개암나무 숲이 변하여 아늑한 절이 되었고, 무서운 길이 평탄한 길로 바뀌었다. (사원과 행궁은) 아름다워서 가히 볼만하다”고 자찬했다.●경사지 건축의 유기적 미학 혜음원과 더불어 남한에 남겨진 몇몇 고려시대 건축지들이 발굴돼 왔다. 팔만대장경을 제작 보관했던 강화의 선원사터, 삼별초 항쟁지였던 진도의 용장산성 궁궐터, 고려 법상종의 최대 사찰인 원주의 법천사터가 대표적이다. 또한 남북 공동 발굴조사가 진행 중인 개성의 고려 정궁, 만월대도 꼽아야 한다. 이들은 모두 경사지에 자리잡은 대규모 건물군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중국에서 발전한 동아시아의 건축 제도는 평지 입지를 전제로 만들어진 모델이었다. 남북 중심축을 설정하고 그 위에 주요 건물들을 세우고, 좌우 대칭으로 부속 공간들을 만든다. 중심과 대칭, 기하학적 구성 등은 정치적, 종교적 권력을 상징하는 디자인이며 평면 위에서 쉽게 완성할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의 궁궐이나 대형사찰, 심지어 신라의 궁궐과 사찰들도 평지 위에 세운 까닭이다. 그러나 확인된 고려 궁궐이나 대형사찰은 모두 경사지에 자리잡았다. 만월대뿐 아니라 평양 대화궁과 피난 궁궐인 강화 고려궁터도 급한 경사지다. 경사지에 건물을 세우려면 대지를 여러 개의 좁고 긴 수평 단들로 나누어야 한다. 만월대는 적어도 15단 이상, 용장산성 궁궐은 10개의 수평 단으로 조성했다. 혜음원 역시 9개의 좁고 옆으로 긴 단 위에 30여동의 건물을 세웠다. 평지의 건축과 달리 경사지 건축에서는 중심과 대칭 등 기하학적 질서를 구현하기 어렵다. 그 대신 높낮이가 다른 여러 건물들의 조화와 긴장감, 지형을 따라 전개되는 극적인 구성들이 돋보인다. 이러한 유기적 질서의 전통은 조선시대 창덕궁에도 전해졌다. 평지에 자리한 경복궁이 기하학적 질서를 따랐다면, 경사지에 조성한 창덕궁은 유기적 질서가 살아 있다. 자연 지형을 이용한 유기적 질서야말로 고려가 창조한 한국적 전통이고, 그래서 창덕궁을 가장 한국적인 현존 궁궐로 평가한다. 혜음원은 이 입체적인 건축에 더해 또 하나의 질서를 부여했다. 물을 강력한 조경 요소로 활용한 것이다. 경사지 건축에서 배수 체계는 매우 중요하다. 잘못하면 한쪽으로 물이 넘쳐 건물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혜음원은 건물과 건물 사이 곳곳에 크고 작은 연못을 만들었고, 이들을 길고 굽은 배수로로 연결하고 있다. 고여 있던 물이 배수로를 따라 흐르고, 곳곳에 만든 작은 폭포에서 떨어진다. 고인 물의 거울효과, 떨어지는 물의 음향효과가 대단했을 것이다. 넓고 큰 배수로 때문에 곳곳에 다리와 뜬 계단을 설치했다. 전성기 혜음원의 모습을 상상 속에서 재건해 본다. 수십 동의 크고 작은 건물들이 10여개의 마당을 중심으로 밀집해 있고, 높고 낮은 지붕들이 대조를 이루며 입체적인 실루엣을 이룬다. 객원과 사찰, 행궁이라는 복합 용도에 맞추어 담장이 곳곳에 경계를 이루고, 또 여러 개의 문들이 통로를 이룬다. 수직적으로 높고 낮음뿐 아니라 수평적으로도 막힘과 뚫림이 연속된다. 바닥의 연못과 수로에는 물이 흐르고, 여기저기서 물보라를 튀기는 작은 폭포 소리들이 들린다. 경사지의 건축은 이처럼 복합적이고 역동적이며 환상적이다.●처음의 정신으로 돌아가다 고려는 어떤 나라였나. 남북으로 분열된 중국 대륙의 국제적 상황을 이용해 그들과 대등한 외교를 벌이며, 황제의 나라를 자임했던 정치 조직체였다. 남경 건설과 순주제 실시는 그 자부심의 발로였다. 상업을 장려해 국내 유통은 물론 중국을 넘어선 지역과도 활발하게 교역했던 경제 공동체였다. 상업 활동을 위해 도로와 역원을 정비했고, 혜음원은 그 대표적인 시설이었다. 처음에는 객원과 사찰을, 그 뒤에 행궁을 지은 것은 고려 사회의 우선순위가 정치보다 경제였음을 보여 준다. 무엇보다 고려는 실질적 사고에 충만하고 전문 기술을 숭상했던 실용적 사회였다. 여러 분야의 연구 개발이 활발해, 원산지인 송의 청자보다 한 차원 높은 고려청자를 만들었고 목판 인쇄의 한계를 뛰어넘은 금속활자를 발명했다. 건축 분야 역시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경북 영주의 부석사 무량수전을 예로 들자. 깊은 소백산 오지에 있는 무량수전은 결코 고려의 대표작이 아니라 흔한 지방 건축물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그 정교한 아름다움을 넘어설 현존 건물은 없다. 역설적으로 지방 건축이 이러할진대, 대표작들이 즐비했을 개경의 건축은 어떤 수준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고려의 건축가들은 산지가 대부분인 이 땅의 잠재력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어려운 경사지에 입체적인 건축을 실현할 지식과 능력이 있었다. 비록 고려의 건물들은 다 사라지고 터만 남았지만, 남겨진 석단과 초석만으로도 충분하다. 혜음원 현장에 가 보시라. 크고 작은, 높고 낮은 석단들로 조합된 대지에서 이미 건축적 운율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곳곳의 연못과 배수로, 계단과 작은 다리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짜여 있는지, 고려 건축가들의 과학적 사고와 계획 능력을 실감할 수 있다. 고려의 건축은 거의 모든 지상 건물은 사라지고 기단과 초석의 흔적만 남은 폐허들이다. 완성된 건축물에서 최종의 생각을 읽는다면, 고려의 폐허에선 1000년 전 고려인들의 처음 생각으로 돌아갈 수 있다. 바로 이곳에서 그들의 자부심과 창조력과 실용정신을 만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건축학자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일상의 기쁨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일상의 기쁨

    수없이 언급됐지만, 또 불러내고 싶은 그림이 있다. ‘눈 속의 사냥꾼’은 겨울 그림 중 왕이라 할 만하다. 브뤼헐은 앤트워프의 한 은행가로부터 여섯 점의 계절 그림을 주문받았다. 계절 그림은 중세 기도서에 들어 있던 월별 그림에서 유래한 것이다. 기도서에는 밭 갈기, 씨뿌리기, 포도 수확 등 농경 사회에서 월별로 해야 할 일을 묘사한 삽화가 들어 있었다. 브뤼헐은 한 해를 길이가 각각 다른 여섯 개의 시기, 즉 초봄, 봄, 초여름, 늦여름, 가을, 겨울로 구분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봄에 해당하는 작품은 사라졌고 나머지 다섯 점은 세계 유명 미술관으로 흩어졌다. 빈 예술사박물관이 소장한 이 겨울 그림은 가장 유명하고 또 사랑받는 작품이다.언덕 아래 들판이 펼쳐져 있다. 눈앞에는 사냥 나갔던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다. 땅을 내려다보면서 걷는 사냥꾼과 풀 죽은 개들로 보건대 수확이 변변치 않은 것 같다. 앞선 사냥꾼의 등에 죽은 여우가 한 마리 매달려 있다. 언덕 아래에는 마을과 얼어붙은 평야가 펼쳐지고, 험준한 산봉우리가 이 정경을 에워싸고 있다. 잎이 떨어진 키 큰 나무들이 근경과 원경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방금 가지에서 날아오른 새가 공간감을 확대한다. 흰색과 청록색, 갈색의 대비가 차갑고 깨끗하다. 그림은 브뤼헐 시대의 플랑드르 가옥 형태와 놀이 풍속을 세세하게 보여 주지만 이런 장소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 화가는 플랑드르 지방에 흔한 평지와 알프스 산악 지대의 삐죽삐죽한 산을 합쳐 배경을 구성했다. 앙상한 나무, 꽝꽝 얼어붙은 물레방아,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터벅터벅 걷는 사냥꾼 일행은 쓸쓸하고 우울하다. 하지만 아기자기한 세부가 온기와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왼쪽 여관 앞에는 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솥을 거느라 부산하다. 돼지를 잡고 털을 그슬릴 준비를 하는 성싶다. 얼음판에는 썰매를 타고 팽이를 돌리는 아이들, 스케이트를 지치는 남녀, 컬링과 하키를 하는 무리가 보인다. 다리에는 땔감을 머리에 인 아낙네, 길에는 짐을 잔뜩 실은 수레가 지나간다. 들여다보고 있으면 꼬물꼬물 움직이는 사람들의 즐거운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 [금주의 베스트셀러] 혜민 스님 에세이 5주 연속 1위 독주

    [금주의 베스트셀러] 혜민 스님 에세이 5주 연속 1위 독주

    혜민 스님의 에세이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이 5주 연속 베스트셀러 종합 1위에 오르며 서점가를 휩쓸고 있다. 교보문고가 4일 발표한 2018년 12월 5주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은 ‘트렌드 코리아 2019’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연말연초 선물도서로 사랑받 방탄소년단, 워너원 등 아이돌의 영향력도 눈에 띈다. 어린이 만화 ‘Who? K-pop BTS’가 44계단 상승한 종합 29위에, 워너원의 포토에세이 ‘고마워, 우리가 함께했던 모든 순간들’도 종합 50위에 진입했다. 연초를 맞은 영어 공부에 대한 관심도 두드러진다. 토익시험 준비를 위해 해커스 토익 보카, 리딩 등 수험서의 판매가 상승했고, 새롭게 시작된 동명의 tvN 예능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나의 영어 사춘기 100시간’도 53위로 진입했다. 새해 자기계발과 성공을 다짐하며 ‘다산의 마지막 공부’, ‘심리학이 이렇게 쓸모 있을 줄이야’, ‘150년 하버드 글쓰기 비법’ 등 자기계발 분야의 상승세도 두드러진다. < 교보문고 주간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 1.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혜민 스님·수오서재) 2. 트렌드 코리아 2019(김난도·미래의창) 3. 아가씨와 밤(기욤 뮈소·밝은세상) 4. 추리 천재 엉덩이 탐정 7: 기이한 전망 여관 사건(트롤·아이세움) 5. 꽃을 보듯 너를 본다(양장본·나태주·지혜) 6. 12가지 인생의 법칙(조던 B. 피터슨·메이븐 펴냄) 7.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곰돌이 푸(원작)·알에이치코리아) 8.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100쇄 기념 스페셜 에디션·김수현·마음의숲) 9. 돌이킬 수 없는 약속(야쿠마루 가쿠·북플라자) 10. 언어의 온도(100쇄 기념 에디션·이기주·말글터)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청년 문재인의 시간은 - 해남 대흥사(大興寺)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청년 문재인의 시간은 - 해남 대흥사(大興寺)

    “아버지 49재를 치른 바로 다음 날, 전남 해남의 대흥사로 떠났습니다. 대흥사 내 대광명전이라는 고즈넉한 암자에서 참 열심히 고시공부를 했습니다.” <문재인이 드립니다. 리더스북, 2012> 전라남도 해남에 위치한 대흥사는 대통령의 절집으로 유명하다. 청년 시절 절망적인 시간 속에서도 암자 끝 귀퉁이 방에서 꿈을 놓치지 않던 젊은이는 지금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우뚝 서 있다. 그가 머물던 초라한 암자 귀퉁이 방에는 지금도 누군가 꿈을 찾아 삶의 한 조각을 담아두고 있다. 방의 숫자가 공교롭게도 7번이다. 7번방의 기적이 이루어진 해남 대흥사로 가 보자.해남 대흥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3명을 알아야 한다. 임진왜란 초기 의승군(義僧軍) 총대장 서산대사, 우리나라 차문화(茶文化)의 뿌리인 13 대종사 가운데 한 분인 초의선사 그리고 대한민국 제 19대 대통령 문재인. 대흥사(大興寺)는 우리 국토의 최남단에 위치한 두륜산(頭崙山. 지역명은 대둔산)의 빼어난 풍광을 배경으로 자리한 사찰로서, 대한불교 조계종 22교구의 본사인 큰 절이다. 현재 해남, 목포, 영암, 무안, 신안, 진도, 완도, 강진, 광주 등 9개 시군의 말사를 관할하며, 서·남해 지역 사찰을 주도할 정도의 절집이니 규모나 연혁이 그리 만만한 절이 아님은 증명된다.우선 대흥사가 본격적으로 중흥된 연유는 바로 서산대사에 기인한다. 1592년(선조 25) 7월 1일자 ‘선조수정실록’에 따르면 선조는 옛 승관(僧官)인 휴정(休靜, 서산대사)을 불러 승군을 만들도록 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후 서산대사가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三災不入之處)으로 만년동안 훼손되지 않는 땅(萬年不毁之地)”이라 하여 그의 의발(衣鉢)을 이곳에 두었고 이후 대흥사는 본격적인 중흥의 시기를 맞이한다.또한 초의선사(1786~1866)가 대흥사에 머물며 차(茶)와 선(禪)을 하나로 보아 「동다송」에서 ‘다선일미(茶禪一味)’를 주장하며 스스로도 차 한잔을 마시는 데서도 법희선열(法喜禪悅)을 맛본다고 하였다. 이후 호남 지역에서 우리나라 전통의 차문화가 발전하는 데 대흥사는 그 중심에 들어서 있었다. 마지막으로 청년 문재인이 1978년에 대흥사 대광명전 암자 끝방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하여 1차 시험에 합격한 사연이 대흥사에는 지금도 남아있다.대흥사는 이러한 인물들과 아울러 사찰 내 당우나 암자, 선방 등의 독특한 가람배치도 유명하다. 절을 가로지르는 개천을 기준으로 대웅전과 명부전 등이 있는 북원(北院), 천불전을 중심으로 가허루, 동국선원 등이 있는 남원(南院)으로 크게 구분된다. 이외에도 서산대사와 선조, 정조의 흔적이 남아 있는 표충사 구역, 스님들이 머무는 공간인 대광명전 구역 등이 있다. 이외에도 경내 당우들에 남아 있는 현판 글씨들은 조선 시대 서예의 진면목을 드러낸다. 표충사는 정조대왕, 대웅보전, 천불전, 침계루는 원교 이광사, 백설당 지붕밑 무량수각은 추사 김정희, 가허루는 전주에서 활약하던 호남의 명필가 창암 이삼만의 글씨가 현재도 남아 있다. <해남 대흥사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해남을 방문한다면 적극 추천. 대흥사는 6.25전쟁 중에서도 훼손되지 않아 사찰의 원형이 잘 남아 있다. 2. 누구와 함께? - 누구라도. 해남 대흥사를 둘러싸고 있는 두류산의 풍광은 빼어나다. 3. 가는 방법은? - 전남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구림리 799) 534-5502~3(061) - 해남터미널 (061-534-0881) → 대흥사(대둔사) - 군내버스 : 06:30 ~ 19:40 (30분 간격 / 25분 소요) 절 입구 매표소 아래 종점까지 운행 (종점에서 절까지 걸어서 30분 소요) 4. 감탄하는 점은? - 생각보다 원형이 잘 보조된 큰 절 집. 유서 깊은 호남 전통 사찰의 맥을 제대로 담고 있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명성에 비해 방문객들이 많지 않다. 교통편이 수월하지는 않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대웅보전, 가허루, 표충사, 절집 아래에 있는 여관인 유선관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100년 전통의 최초의 여관인 ‘유선관’의 식사, 떡갈비 ‘천일식당’, ‘소망식당’, 남도 한정식 ‘진일관’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daeheungsa.co.kr/home/main.asp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고산 윤선도 기념관, 다산초당, 해남우항리공룡화석지, 땅끝마을 10. 총평 및 당부사항 - 해남 대흥사는 절집 자체의 규모가 크고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굳이 대통령의 흔적을 찾으려 하지 말고 호국불교의 원형인 서산대사와 우리나라 차문화의 원류였던 초의선사의 시간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방문 가치가 있다. 적극 추천!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세고비아의 새끼 돼지 요리와 ‘호세 마리아’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세고비아의 새끼 돼지 요리와 ‘호세 마리아’

    여행을 하다 보면 언제 다시 가더라도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풍경과 마주칠 때가 있다. 내게는 체코의 체스키크룸로프, 스페인의 톨레도, 그리고 세고비아가 그런 곳이다. 사는 사람에게는 답답한 일이겠지만 낡고 오래된 것들을 새롭게 바꾸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계승하고 유지한다는 철학이 깔려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게 살아남은 유무형의 유산들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현재를 사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기 마련이다.마드리드에서 한 시간가량 떨어진 작은 도시인 세고비아를 찾을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동화 속에서나 봄직한 알카사르성이다. 디즈니 영화 백설공주에 나오는 성의 모티프가 된 곳으로 흔히 세고비아성으로 불린다. 다른 하나는 기원전 1세기 때 로마인들에 의해 지어진 수로교다. 만들어진 지 천년이 넘는 건축물이라는 생각을 하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근사하다. 마지막은 세고비아가 자랑하는 전통요리 ‘코치니요’다. 스페인을 찾는 식도락가들이 반드시 먹어 봐야 할 음식으로 꼽히는 코치니요는 생후 3주 미만의 젖먹이 돼지를 통째로 구워내는 요리다. 물을 담은 도기에 새끼 돼지를 눕혀서 90분 동안 한 번 굽고 엎어서 같은 시간 동안 한 번 더 구워내는데 이렇게 조리하면 껍질은 바삭하면서 살은 부드럽게 익는다. 바삭거리는 껍질과 사르르 녹아내리는 속살의 식감 대조가 재미있다. 북경오리를 먹어 본 이들이라면 익숙한 식감이다. 비빔밥이 전주를 너머 한국의 대표음식으로 자리잡은 것처럼 세고비아의 코치니요도 스페인 대표 요리 중 하나로 꼽힌다. 그렇다고 세고비아를 코치니요 ‘원조’로 보는 건 곤란하다. 돼지를 통째 굽는 방식은 원초적인 조리법이다. 인류가 돼지를 키우기 시작한 시점부터 돼지 통구이는 가장 보편적인 요리였다. 아마도 키우던 돼지가 너무 일찍 죽었거나, 돼지가 클 때까지 참지 못한 성질 급한 이에 의해 새끼 돼지요리가 탄생했을 것이다.카스티야 지방의 별미로 꼽히는 코치니요는 세고비아 말고도 인근의 마드리드, 아빌라 등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어째서 세고비아가 코치니요의 성지가 됐을까. 18세기와 19세기 사이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향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세고비아는 마드리드로 향하는 길목 중 하나였다. 세고비아는 늘 순례자와 여행객으로 붐볐다고 한다. 여관이나 주점에선 이들에게 식사를 팔았는데 카스티야 전통요리인 코치니요도 그중 하나였다. 세고비아 시내엔 저마다 최고라 자부하는 코치니요 식당이 있다. 수로교 인근에 1884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곳도 있지만 그중에서 ‘호세 마리아’를 빼놓고는 코치니요를 논할 수 없다. 이 식당의 오너이자 셰프인 호세 마리아 루이즈 베니토는 ‘코치니요의 아버지’로 통한다. 단순히 전통요리를 계승했다는 차원을 넘어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코치니요를 세고비아를 대표하는 산업이자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1972년 밀라노에서 열린 첫 번째 세계 소믈리에 대회 동메달 리스트이기도 한 호세 마리아는 1982년 고향인 세고비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식당을 열었다. 그는 세고비아의 음식 유산 중 코치니요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 그의 주된 관심사는 전통의 답습이 아니라 코치니요를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개선시킬까였다. 코치니요의 맛은 새끼 돼지의 상태에 따라 결정되는데 당시에는 종이나 크기를 구분하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생산됐다. 무엇보다 품질과 위생관리가 엉망이었다. 이렇다 보니 결과물의 품질도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호세 마리아는 코치니요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생산 단계부터 관여했다. 그는 생산자들과 협업해 코치니요 요리에 적합한 품종을 찾고, 최적의 상태로 고기를 출하하도록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힘을 썼다. 다른 식당의 셰프들과 코치니요 요리를 완벽하게 만드는 방법을 상의하는 한편 어울리는 와인을 찾기 위해 포도밭을 인수하는 등 열정을 보였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세고비아는 2002년 새끼 돼지에 대한 품질 인증 마크를 얻어냈고, 코치니요 요리에 대한 주도권을 완전히 거머쥘 수 있었다. 식당에서 코치니요를 썰어주는 호세 마리아를 보고 있자니 일흔셋 나이가 무색할 정도였다. 그의 눈과 표정에서는 아직도 현역임을 과시하는 충만한 열정이 엿보였다. 호세 마리아를 보며 생각해 본다. 전통유산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전통유산이 앞으로도 힘을 갖게 하려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먹음직스럽게 놓인 새끼 돼지요리 한 접시를 두고 많은 생각이 오갔다.
  • 월세 밀린 가구 지원… 중구 틈새 가정 발굴단 출동

    서울 중구는 새해 2월까지 극심한 생활고로 임대료나 관리비가 밀린 위기 가구를 찾아 이들이 안전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틈새 가정 발굴 사업에 나선다고 24일 밝혔다. 대상은 월 1만원 이하 소액 건강보험료 납부자 및 임대주택 거주자 중 임대료를 3개월 이상 또는 관리비를 6개월 이상 체납한 주민이다. 구는 전수 실태조사를 한 뒤 대상자를 지원한다. 구 관계자는 “겨울은 피복비, 난방비 등 생계에 필수적인 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어 사각지대에 놓인 주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기 마련”이라면서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들을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구는 고시원, 쪽방, 여관 등 주거취약지역 거주자도 전수조사해 지원 대상임에도 누락된 경우가 있는지 살필 예정이다. 단전, 단수, 건강보험료 체납, 국민연금 체납 등의 정보도 이용해 위기 상황을 파악한다. 앞서 구는 지난겨울 379곳의 위기 가구를 찾아내 각종 지원을 한 바 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2019 경제정책방향] 카카오페이·페이코 해외 이용 허용…부모가 준 창업자금 증여세 감면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에는 국민들이 실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는 생활밀착형 이색대책들도 담겼다. 정부가 17일 발표한 2019년도 경제정책방향에 따르면 카카오페이·페이코와 같은 비금융기관의 간편결제서비스를 해외에서도 쓸 수 있도록 했다. 알리페이 등 해외업체 서비스는 이미 국내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정부 관계자는 “신용카드로 해외에서 결제할 때 내던 수수료를 절감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까지 외국환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의 개정을 완료할 예정이다. ●해외 임상시험도 세액공제 대상 포함 바이오헬스를 지원하기 위해 해외 임상시험(3상)도 신성장 연구개발(R&D) 세액공제(중소기업 25∼40%, 대·중견 0∼30%) 대상에 포함한다. 현재는 소수 건강한 사람이나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1상과 2상만 세액공제 대상이다. 앞으로는 다수 환자를 대상으로 약효와 안정성을 종합 검증하다 보니 막대한 비용이 드는 3상까지 공제 대상이 포함된다. 글로벌 신약 개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추진된다. 부동산·주점·여관업 등을 제외한 모든 업종에서 창업할 때 부모가 준 자금에 대한 증여세를 깎아주는 방안도 추진된다. 현재 부모에게 받은 30억원 한도의 창업 자금(부동산·주식 제외)은 과세 특례를 적용해 5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 10% 저율로 과세하고 있다. 부모가 사망해 상속이 개시되면 증여했던 창업자금은 상속재산가액에 합산돼 과세된다. 즉 과세 시점을 부모 사망 이후로 연기해 창업기업의 자금 여력을 지원하게 된다. 이 특례는 제조업 등 31개 업종에서 창업할 때만 인정됐지만, 향후 일부를 제외한 도·소매업, 전문서비스업, 보건업 등 모든 업종으로 확대된다. 창업·자금사용 기한요건도 ‘증여일로부터 1년 이내 창업, 3년 이내 자금 사용’에서 ‘2년 이내 창업, 4년 이내 자금 사용’으로 완화된다. ●국내 유턴 이공계 박사 소득세 50% 깎아줘 국외 체류 중인 한국인 인력의 국내 복귀를 지원하는 방안도 담겼다. 이공계 박사학위를 소지한 한국인이 외국 연구기관 등에서 5년 이상 종사하다가 국내로 돌아와 연구개발 전담부서에 취업하면 5년간 소득세의 50%를 감면해줄 방침이다. 세종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TV는 사랑을 싣고’ 조성모 “큰형, 뺑소니 사고로 세상 떠나”

    ‘TV는 사랑을 싣고’ 조성모 “큰형, 뺑소니 사고로 세상 떠나”

    ‘2018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조성모가 가장 암울했던 시기에 자신의 곁을 지켜주었던 고등학교 동창 김현근을 찾아 나선다. 1998년 ‘To Heaven’ 활동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조성모. 하지만 ‘To Heaven’을 부를 때마다 카메라에 눈물짓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어, 그 당시에도 조성모의 눈물의 이유에 대해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조성모에게 1998년은 데뷔로 가수의 꿈을 이뤘던 해이자 행방불명되었던 자폐증 큰형이 뺑소니 사고로 세상을 떠났던 해였던 것. 조성모는 ‘To Heaven’의 슬픈 가사가 형을 잃은 자신의 마음과 일치했다며, ‘To Heaven’을 부를 때 마다 형이 떠올라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조성모는 그 당시 큰형의 죽음으로 마음고생 심했던 때, 자신의 곁을 지켜주었던 친구를 찾고 싶다며 ‘2018 TV는 사랑을 싣고’에 사연을 의뢰했다. 조성모가 찾는 김현근은 음악을 반대하는 부모님에 반항해 조성모가 가출했을 때, 여관을 잡아주고 끼니와 차비를 챙겨주었던 수호천사 같은 친구다. 데뷔 무산으로 서러운 연습생 시절을 겪을 때에도 가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게 도와주었던 김현근. 하지만 ‘To Heaven’으로 꿈에 그리던 가수 데뷔에 성공했던 해, 정작 김현근과는 함께하지 못했다고 밝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한편, KBS1 ‘2018 TV는 사랑을 싣고’는 14일 오후 7시 35분에 방송된다. 사진제공=KBS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엔터인, 중소유통업 최적화 ERP 프로그램 ‘엔터맨프로’

    ㈜엔터인, 중소유통업 최적화 ERP 프로그램 ‘엔터맨프로’

    유통사업에 있어서 통합관리 프로그램 ERP(전사적 자원관리)는 필수다. 유통업에 있어 기본이 되는 판매·재고관리에서부터 회계·급여관리 그리고 전자세금계산서, 연계되는 쇼핑몰 운영까지 모두 ERP 프로그램 안에서 관리된다. 이러한 ERP의 활용은 사업을 체계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며, 적은 비용으로 효율적인 관리를 가능하게 한다. ㈜엔터인(ENTIN, Enterprise Information)이 선보인 중소유통업을 위한 최적의 ERP 프로그램 ‘엔터맨프로(EntMan-Pro)’은 ASP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구매하지 않고 임대형식으로 제공하여 시공을 초월하여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서버(Server) 및 고객의 자료(Data base)는 IDC에 전문 위탁관리 되므로, 보안이 보장되며, 수정 및 삭제된 자료 추적이 가능하며, 사용자 별 권한 부여 및 개인별 환경설정이 가능하다. 또한 타사 코드 및 바코드도 관리가 가능해 손쉽게 상품을 등록할 수 있으며, 30여 만 가지의 상품코드를 제공한다. 중소형유통기업에서 엔터맨프로 도입 시 초기 도입비용을 줄일 수 있어 눈길을 끈다. 엔터맨프로는 소프트웨어 구매비용, 전산실 구축 및 H/W(서버) 구입비용이 없으며, 서버 OS 및 DB구매 비용이 필요 없다. 특히 관리비용의 절감과 지속적인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로 급속한 IT 환경변화에 따른 지속적인 업그레이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도 엔터맨프로의 장점이다. 또한 엔터맨프로는 스마트한 업무환경 구축으로 언제, 어디서든지 업무를 할 수 있으며, 추가비용 없이 B2B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다. (주)엔터인측은 “서울, 경기를 비롯하여 전국에 약 700여개의 업체가 엔터맨프로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으며, 일반공구, 절삭공구, 베어링, 배관자재 등 다양한 산업용품 업종이 엔터맨프로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검증된 ERP 프로그램이다”며 “중소유통업에 최적화된 ERP 프로그램인 만큼 직접 엔터맨프로의 장점을 경험해 보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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