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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대 불구속기소

    서울지검 서부지청 이건주검사는 30일 수술도중 수혈과정에서 에이즈 (후천성면역결핍증)에 감염된뒤 자신때문에 에이즈에 걸린 아내의 자살을 도와준 혐의로 불구속입건됐던 정모씨(61·무직)를 촉탁 살인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정씨는 수혈 잘못으로 자신이 에이즈에 걸린 사실을 알고 부인 이모씨(57)와 함께 팔목의 동맥을 절단,동반자살을 기도했으나 실패한 뒤 이로인해 이씨마저 에이즈에 감염되자 지난 6월25일 하오 10시쯤 온양시 온천동 M여관에서 침대 시트로 목을 매 자살하려 하는 이씨를 도와줬다는 것이다.
  • 망년회뒤 계단서 굴러/20대 뇌진탕으로 사망

    18일 상오11시30분쯤 서울 서초구 서초동 J여관 203호에 투숙했던 남석현씨(26·회사원·강동구 명일동 주공아파트 901동203호)가 반듯이 누운채 숨져있는 것을 여관종업원이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조사결과 남씨는 전날밤 서초동 S식당에서 회사동료 15명과 함께 망년회를 가진뒤 부근 지하주점에서 마신 술을 깨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가 계단에서 굴러 4m아래 바닥으로 떨어진 것을 회사동료들이 여관으로 옮겨온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남씨가 계단에서 넘어질때 머리에 타박상을 입은 점으로 미루어 뇌진탕으로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 이달의 독립운동가 나석주열사/다시 새기는 그 충절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착취앞장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 투척/백범 지도받아 상해에서 군자금모집 활동/민족혼 일깨우려 단신으로 서울잠입,장거/“2천만 민중이여 분투하라” 일경과 총격전끝 장렬히 자결 선열들의 애국·애족사상을 기리기 위해 서울신문사와 국가보훈처가 함께 마련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나석주열사가 선정됐다.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나열사는 일제 착취의 간성인 동양탁식회사에 폭탄을 투척,제국주의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인물.나열사의 당시 의거는 일제 식민통치가 경제수탈에 집중될 때 발생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따라서 선생의 의거는 의열투쟁이라는 단순한 사건 차원을 넘어,당시 민족운동으로 승화된 농민·노동운동 차원에서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정부는 지난 62년 3·1절에 열사의 공적을 기리어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2천만 민중아,분투하여 쉬지말라!』는 말을 남기고 숨져간 나열사의 생을 되새긴다. 1890년.황해도 재령군 북률면 진초리. 이곳은 당시 애국계몽운동단체인 신민회의 서북지방 책임자인 백범 김구가 설립한 양산학교가 있었다. 백범과 나열사의 운명적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아버지 나병헌과 어머니 김해금씨 사이의 외아들 석주가 이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서당에서 한문을 배운 소년 석주는 양산학교를 거치며,몸과 마음이 굳센 독립투사로 다져진다. ○황해도 재령 출생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이 지방까지 번지면서부터 청년이 된 석주는 「고기가 물을 만난」듯,우리의 독립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3월 하순,어느날.사리원 부호 최병항의 집에 6인조 권총강도단이 들었다.이들은 모두 복면을 하고 있었다. 강도들은 답지않게 모두 최부자에게 엎드려 절을 했다.최부자도 그제서야 좌정을 하고 냉정을 찾았다.그때 한 복면이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저희들은 일반강도가 아니라 조국의 독립을 꾀하기 위해 군자금을 마련하러 온 젊은이들입니다』 말뜻을 알아차린 최부자는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오히려 6인조 강도들이 불안한 눈치를 보였다. 『너,석주로구나! 그 복면을 쓰고 있을 필요가 없다.그래,춘부장 어른께서도 편안하신가?』 깜짝놀란 석주는 복면을 벗고 최부자 앞에 조아렸다.나머지 다섯명도 얼굴을 드러냈다.김덕영 최호준 최세욱 박정손 이시태등이 그들이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이 이것밖에 없으니 유용하게 쓰도록 하게나!』 최부자가 「강도들」에게 내놓은 돈은 무려 6백30원이었다.이것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거액이었다. 6인조는 크게 감동,엎드려 큰 절을 드린 다음,인사를 올렸다. 『저희들이 떠나고나면 즉시 위경에 연락하여 권총강도를 당했다고 신고하십시오.왜경이 눈치 채면 봉변을 당하십니다』 ○6인조 강도 사건 6인조 강도단은 4월에도 다시 안악부호들인 김응석 원형락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는등 그 활동이 신출귀몰하였다. 수사망이 좁혀들기 시작하자 나석주는 중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1920년 11월 22일이었다.「6인조 연쇄강도사건」은 영구미제로 남았다. 나석주는 상해에서 은사인 백범을 다시 만난다.당시 백범은 임시정부 경무국장. 이때부터 나석주는 스승의 지도를 받으며 독립운동을 계속하게 된다.임정 경무원·의정원 근무와 함께 한인애국단·의렬단 가입으로 폭파활동과 군자금 모집활동등이 전개되었다. 이동휘가 세운 무관학교등에선 전술전략을 연마했다. 1926년.나석주의 생애에 가장 중요한 일이 닥쳐오기 시작했다.그것은 저명한 독립운동가인 김창숙과의 만남이었다. 그해 5월 김창숙과 백범은 국내외 정세를 토론하며 독립운동의 방향을 함께 모색했다. 이들 두 거두는 「지금 무엇인가 횃불을 올리지 않으면 잠자고 있는 민족혼을 영원히 깨우쳐주지 못한다.이때에 위정기관과 친일부호를 박멸하여 국내동포의 잠자는 정신을 일깨워야한다」는 방략에 일치를 보았다. 이를 실행할 인물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일이었다.김구가 먼저 제의를 했다. 『나와 친한 결사대원으로 나석주 이화익과 같은 용감한 청년이 지금 천진에 있다.또 그곳에는 의열단원도 많으니 무기를 구입,천진으로 가서 기회를 보는 것이 좋겠다』김창숙은 두명의 조선청년을 만났다.그리고 계획을 설명했다.둘은 거침없이 나섰다. 『우리들은 일찍이 한번 죽기로 결심했는데, 어찌 사양하겠습니까』 나석주로 결정이 되었다.이화익은 섭섭한 눈치를 숨기지 않았다.김창숙이 말했다. 『백범도 그대의 장도를 학수고대하고 있소.민족의 고혈을 빨고 있는 식산은행과 동양탁식회사가 그대의 손에 폭파되는 날 일제의 간담이 서늘할 것이며,잠자고 있는 조선의 민족혼이 불길처럼 다시 타오를 것이오.대의를 위한 무운을 비는 바이오』 「중국 산동성 출신.나이 35세.이름 마중덕」 1926년 12월 26일.인천항에 상륙한 이 중국인은 다름아닌 나석주였다.「마중덕」은 열차를 이용,진남포로 향했다. 고향을 떠날 때 한마디 이별의 말을 하지못한 부모님과 부인,그리고 아들·딸을 보고싶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귀향길에서 그는 「일제의 삼엄한 경계가 고향등지에 펼쳐져 있다」는 정보를 듣게된다. 나석주는 바로 발길을 서울로 돌렸다.피눈물이 흘렀다. 중국인 전용여관 「동춘전」.1926년 12월 28일.날씨는투명했으나,조국의 겨울바람은 차가웠다. 나석주는 아침밥을 든든하게 들었다.그리고 낮이 될 때까지 거리를 배회했다.오가는 동포들의 표정이 어두웠고,슬프게 느껴졌다. ○들리지않는 폭음 하오 2시5분.나석주는 식산은행으로 들어가 폭탄을 던졌다.그러나 굉음은 들리지 않았다.이게 웬일인가! 뒷벽 기둥에 던져진 폭탄은 불발이었다.절망적인 생각이 찰나처럼 스쳐지나갔다.폭탄을 입수할 때 시험을 하지 못한 점,6개월간의 보관기간중 뇌관에 녹이 슬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 회한으로 남겨졌다. 그러나 다행히 일인들이 눈치를 채지 못했다.나석주는 태연하게 정문을 나섰다. 『그렇다면,이젠 동탁이다!』 동탁으로 들어서면서부터 나석주는 기민하게 움직였다.1층에서 왜인 1명을 권총으로 사격하고,2층으로 뛰어올라가 또다른 왜인에게 사격한뒤 놀라 도망가는 토지개량부 간부들을 거꾸러뜨렸다. 그리고 기술과장실에 나머지 폭탄 1개를 힘껏 던졌다.쏜살같이 1층으로 뛰어내려오며 2명의 왜인들에게 총격을 가하고 거리로 나와 폭음을 기다렸다.그러나이게 또 웬일인가! 하늘이 무너져 내리듯,시야가 노랗게 변해갔다.황금정(지금의 을지로1가)쪽에서 달려온 경찰을 쏘아 쓰러뜨릴 때까지도 폭발음은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황금정2정목에 이르렀을 때에는 왜경들의 포위망이 완전히 좁혀졌다.나석주는 운집한 군중들을 향해 외쳤다. 『나는 조국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2천만 민중아,분투하여 쉬지말라!』 나석주는 자신의 가슴에 나머지 3발을 쏘았다.그것은 해방의 날을 준비하기 위한 장렬한 불꽃이었다. ◎역사적 평가/일 경제수탈에 맞선 농민의 아들 「나는 고향을 떠난지 6년여에 공연히 동서로 분주하면서 아무런 성공없이 지내왔으니 제일은 민주에 대한 죄인이요,제이는 가주에 대한 죄인」이라고 고향 동지인 최호준에게 1925년5월의 편지로 몸부림치던 나석주의사,그는 끝내 민족과 가족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1926년 12월28일 백주에 을지로(당시 황금정)네거리에서 자결 순국하였다. 나석주의사는 황해도 재령군 북률면 진초리에서 태어났는데 북률면은 재령강이 흐르는 나무리들(여물평)로서 원래는 조선왕실의 궁방전이 많았으나 일제가 점유하여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불하하여 9할의 면적을 동척회사가 차지하고 있었다.따라서 북률면민은 거의 동척회사의 소작농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나석주의사도 동척농장의 소작인 나병헌의 외아들로 자라났다. 그가 1926년12월28일 서울의 동양척식주식회사(지금 을지로입구 외환은행 본점자리)와 식산은행(지금 롯데백화점자리)에 수류탄을 던지고 또 동척 관계자 6명을 살상하고 거리로 뛰쳐나와 일제 경찰간부를 처단하고 자결 순국했는데 그때 나석주의사가 동척이나 식산은행을 표적했다는 것이 자기 가정의 처지로 봐서 우연이 아님을 알수 있다.그렇다고 가정 보복으로 국한된 일은 아니었다. 1926년은 일제 식민통치가 경제수탈에 집중되어 민족운동이 사회경제운동을 고조시키고 있던 때였다.당시 전국에 걸쳐 노동쟁의와 소작쟁의가 확산되던 가운데 특히 북률면 동척농장의 소작쟁의가 용천 불이농장의 소작쟁의를 부추기면서 사회운동이 권익운동과 더불어 일제 수탈기구에 대항한 독립운동으로 발전하고 있었다.그럴때 조선민족의 눈에 동척회사나 식산은행이 수탈 본산으로 잡혔던 것이다.그러므로 나석주의사의 의거는 의열투쟁만의 논리를 넘어 농민운동·노동운동을 포괄한 민족운동 총체적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1926년의 의열단은 광주에 있는 황보군관학교에 입교하고 있었다.즉 1919년 창단 이래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의 내용처럼 개인의 작탄활동(의열투쟁)을 전개하다가 이제 막 군사편대활동으로 방법을 바꾸고 있었다.그러니까 나석주의사의 의거는 의열단으로서 의열투쟁의 마지막을 장식한 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같이 나석주의사는 의열단과 유림단의 소망을 안고 순국했으며 농민운동과 노동운동을 대변하면서 우리 민족의 기개를 만천하에 과시하였다.그럼으로써 일본제국주의에는 철퇴를,세계에는 경종을 울렸고 우리 민족에게는 용기를 불러 일으킨 정의의 화신으로 청사에 빛나고 있다.
  • 중국경제개방 시범지역(광동성을 찾다:2)

    ◎주강삼각주 중부지역/중산·순덕·번우도 공업도시 탈바꿈/10년전 한적한 농촌이 이젠 “밀집공단”/중산/외자여관 이어 향진기업 설립 바람/순덕/3월 시승격… 용성냉장고공장 유명/번우/합작기업 1천개… 올 30% 성장 예상 주강삼각주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중산·순덕·번우시는 옛부터 농토가 비옥하기로 유명했다.손중산(손문)선생과 같은 선각자들이 태어난곳일뿐 아니라 서구열강의 침범으로 외국문물에도 일찍이 눈을 뜬 지역이다. 그러나 10여년전까지만해도 이 일대는 한가한 농어촌지역에 불과했다.공장이라곤 찾아보기도 어렵고 그 비옥한 농토의 농산물도 인민공사가 운영한 때문에 흉작만 거듭됐다.의욕상실증에 허덕이던 농민들은 어떻게든 이웃 홍콩이나 마카오로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었다. 이처럼 후미진 지역이 최고지도자 등소평의 개혁개방정책에 힘입어 요즘은 중국에서도 가장 활기찬 경제발전지역으로 탈바꿈하고 있다.불과 10여년만에 수많은 공장이 세워져 시커먼 굴뚝연기를 뿜어대는가 하면 아직도 군데군데 어지럽게 파헤쳐져빌딩과 아파트,공장들이 세워지고 있었고 강변과 해안에는 큰 배가 접안할수 있는 항만시설을 짓느라 소란스럽기만 했다. 외곽도로를 꽉 메운 화물차량들은 이곳이 이미 농촌지대가 아닌 살아움직이는 공업지대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격일제 급수니 정전이니 하는 일들은 어느새 옛날얘기가 되었으며 농민들이라해도 일년내내 농사만 짓는게 아니었다.고작해야 한두달 농사일을 보고나면 공장에 들어가거나 운전사 혹은 장사등으로 돈벌이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이곳 한중합자회사에서 1년동안 근무한 한 한국인은 『지난날 당에서 시키는대로 일하는 흉내만 내던 시절은 다 지나갔다.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돈나올 구멍을 찾는것 같다』고 말했다. 이곳 주민들은 정부가 주해·심수을 경제특구로 지정,온갖 특혜와 지원을 통해 활기찬 신도시를 건설해가는것을 지켜본뒤 스스로 발전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지난 10월 14차 당대회를 통해 시장경제를 선언했지만 이곳에선 벌써 여러해전부터 시범케이스로 적용해오고 있다.그래서 사방에개인상점들이 어지럽게 들어서고 각종 서비스산업까지 발전해가고 있어서 이곳이 과연 사회주의 나라인지 자본주의 땅인지 겉으로 보아선 구별이 안될정도가 되었다. ○손문선생 태어난 곳 ▷중산◁ 이곳은 바로 남쪽에 주해경제특구가 있고 바다 건너편으로는 홍콩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중국건국의 아버지 손중산선생의 호을 따서 중산시가 됐다. 이곳에는 요즘 중산생가등을 구경하기위해 연간 1백만명의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그가운데 40%는 홍콩 마카오 대만등지에서 오고 나머지 60%는 내륙인들이다. 중산시의 발전은 이 관광산업을 활성화시키는 것부터 시작됐다.공장지을 자본이 없기때문에 우선 관광객을 더 유치하는데 노력하고 여기서 모아진 돈으로 공장을 짓고 도로를 닦으며 항만시설을 갖춰가는 방안을 채택했다.그래서 개혁 개방이 시작된 80년대초 외국자본을 끌여들여 합작으로 지은 중국 최대의 「외자여관」이 이곳에 생겨났다. 이곳의 지역발전을 살펴보면 마치 한국의 새마을 운동과 비슷한 측면을 발견할수 있다. 당국은 80년대초 인민공사를 해체하고 농토를 농민들에게 돌려줬다.이에따라 농민들의 적극성이 되살아나면서 쌀 생산량이 2배가까이 늘었다.그러자 절반 가까운 농토가 사탕수수등 갖가지 특용작물 재배지로 바뀌었다.점차 돈을 번다는 의미를 알게되고 그런쪽으로 머리를 굴릴수 있게 된 것이다. 이같은 상황변화에 대해 중산시당의 정금찬선전부장은 『농촌개방으로 80만 농민이 농업에서 해방됐다』고 자랑했다.『농업에서 해방됐다는게 무슨뜻이냐』고 묻자 그는 『농사는 1년에 한두달만 짓고 나머지 시간은 공업·운수업·서비스업등에 종사하므로 이들을 농민이라 부르기 어렵지 않느냐』고 설명했다. 이곳 농민들은 지방정부 주도아래 농촌형 공장을 짓고 운영하는데도 적극적이었다.이른바 향진기업을 육성해가는 것이다.그래서 양말공장이나 전자부품공장등 향진기업이 시전체공업생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가 됐다. 조그마한 향진기업이 국가1급기업으로 발전한 곳도 있다.연간 1백30만대의 세탁기를 생산하는 중산위력집단공사는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이 회사의 한 방계업체는 유리를 생산,마카오시장의 1백%,홍콩시장의 30%를 점유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집단공사가 12개나 되는 기업체를 거느리고 한국의 재벌처럼 성장해가고 있는데 대해 엽소주부사장은 『배가 크면 풍랑을 만나도 끄덕없이 전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곳은 홍콩까지 1∼2시간이면 배로 건너갈수 있어서인지 각종 호화주택이나 별장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요즘 홍콩신문들의 광고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호화주택을 많이 지어 홍콩갑부들이 살게되면 이곳 노동자들과 위화감이 생겨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한 시당간부는 『그것은 우리당의 정책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간단히 대답했다.이곳 주택가격은 홍콩집값의 30% 가량에 그치고 있으며 지난해 홍콩인들의 이곳 부동산 투자는 1억5천만달러에 이르렀다. ○네마리 작은 호랑이 ▷순덕◁ 지난 79년부터 91년까지 이곳의 GNP성장률은 무려 18·8%였다.이는 중국전체평균이 8·6%,광동성전체가 12·4%라는 사실에 비춰 엄청난 것이다. 지난 3월 현에서 시로 승격했으며 8백6㎦의면적에 인구는 93만명으로 중소도시에 속한다.아직도 농업인구가 70%나 되지만 이곳도 중산처럼 농민을 순수농민으로 부르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중산시와 함께 광동성의 4마리 작은 호랑이로 꼽히는 순덕시는 지난78년 중국의 전체 현중에서 맨 처음으로 국제자동전화(IDD)가 설치된 곳으로 유명하다.인구 8·4인앞에 1대의 전화가 보급되어 있으며 휴대용전화 2천대와 무선호출기(삐삐)2만5천대도 시내에 깔려 있다. 순덕부시장인 오수호씨도 『우리는 2000년까지 한국을 따라 잡으려 한다』고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다.가는 곳마다 한국을 따라 잡겠다는 소리에 한편 부화가 나면서도 그들의 강한 집념에 섬뜩한 느낌마저 들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용성냉장고 공장을 취재진에게 보여줬다.84년에 창립,지난해 65만대의 냉장고를 생산,전국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한다.이 회사 공장장인 왕국단씨는 『한국산 냉장고를 평가해 달라』는 주문에 『대부분 우수한건 사실이지만 소리나는게 중국국가표준치보다 큰것 같다』고 밝혔다. ○부동산투기 붐 일고 ▷번우◁ 올해 경제성장률이 30%가 예상될 정도로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곳이다.지난봄 광주시소속 현에서 독립,인구 78만명의 시로 승격했다. 이곳에는 1천여개의 외국합자기업이 들어서서 전체공업생산의 30%를 감당해 내고 있다.지난해 10억달러어치의 공산품을 생산,절반가량을 수출했다.이런점에 비추어 이곳 경제는 수출주도형이며 완전히 외향성경제로 변모된 상태다. 이곳에서도 부동산투자가 한창 붐을 이뤄 지난해 4억달러어치의 주택이 팔려나갔다.연말에는 순환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연간 1억달러가 넘는 도로분야 투자가 계속되지만 시내교통은 항시 혼잡스럽고 꽉 막혀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중국 어디를 가나 가라오케가 많지만 이곳에는 시정부청사내에도 가라오케를 설치하고 있다.황복배부시장은 가라오케가 많은 이유에 대해 『각 공장이나 기관단위로 가라오케를 설치하는 것은 문화생활을 즐기고 놀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과거 좌파세력이 집권할 때만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반동적인 일들이 스스럼 없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열심히 일하다보면 스트레스가 쌓이고,이 스트레스를 풀어줄 최소한의 문화공간이 필요해진 것으로 여겨졌다.
  • 입시철 대학가 “방구하기 전쟁”

    ◎주변 여관 등 “예약끝”… 수험생 발동동/정상요금 4∼5배 바가지 예사/“하숙방 3박4일 30만원” 얌체상혼도/서울시­교육청 등 민박알선 나서 22일 실시되는 전기대 입시를 앞두고 수험생들의 대학가 빈방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대학가 주변 여관은 정상요금보다 4∼5배이상 받고 있지만 이미 예약이 끝난 상태에서 극심한 교통난에 대비해 대학 근처에 숙소를 정하려는 수험생들을 애타게하고 있다. 이처럼 입시철 숙소잡기가 어려워지자 방학을 맞아 비어있는 하숙방을 하루 5만∼7만원씩 제공,한몫 보려는 하숙집들이 등장했는가 하면 숙소를 알선해주고 웃돈을 챙기는 전문브로커까지 등장했다. 연세대·서강대·이화여대·홍익대등 대학이 몰려있는 서울 신촌의 경우 지난 10월중순쯤부터 방을 잡기위한 「입도선매」식 예약이 시작돼 50여곳이나 되는 여관방의 예약이 지방 수험생들에 의해 거의 끝난 상태다. 연대를 지원,경북에서 올라왔다는 김모군(18·경주고3년)의 어머니 최순자씨(49)는 『하루에 7만원씩 주고 허름한 여관방하나를 잡았다』며 『입시철 한때라지만 바가지요금이 너무 심한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경희대와 외국어대를 끼고 있는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일대 20여 숙박업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처럼 해마다 시험전날의 방잡기가 더욱 치열해지자 「입시특수」를 노려 한몫보려는 얌체상혼마저 등장했다. 서울대 근처인 관악구 신림2동에서 10년째 하숙을 쳐온 김모씨(40·여)는 『몇년전까지만해도 지방수험생들에게 며칠씩 침식을 제공하고 인사치레로 3만∼5만원씩을 받았을뿐이지만 재작년부터는 하숙생들이 방학을 이용,고향에 내려간 사이 3∼4일에 수십만원씩을 받고 숙박시키는 하숙집들이 크게 늘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씨는 또 『지난해는 3박4일에 25만∼27만원선이었으나 올해는 최저 30만원씩을 받고 있다』며 『특히 지난해와 올해에는 지방학생들과 하숙집을 연결해주는 전문브로커들이 많아져 얼마전 이들을 통해 부산B고와 K고에 재학생인 두 수험생을 소개받아 3박4일에 각각 30만원씩 숙식을 제공키로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방잡기가 어려워지자 서울시에서는 각 대학 학생처에 민박희망가구명단과 홍보안내문을 보내놓고 신청이 들어오면 해당 구청및 동사무소와 연결,민박을 알선해 주고있다. 서울시교육청도 지방거주 대학생을 위해 시험전날인 21일부터 1박2일간 종로구 사직동 서울교원연수원을 무료(식사는 1끼당 3천원)로 제공키로하고 접수를 받고 있다(730­7662).
  • 불법체류 중국교포 1만9천명/탈주사건 계기로 알아본 실태

    ◎약재 판매·공사장 인부에서 매춘까지/적발돼도 강제출국 고작… 처리 골치 중국교포들의 탈출사건을 계기로 이들에 대한 처리여부와 국내에서의 실태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88년 서울올림픽이후 한국경제성장의 소식이 본격적으로 중국땅에까지 알려지면서 몰려들기 시작한 중국교포들은 지난해 6천9백여명에서 올해는 9월말 현재 1만9천4백여명이 국내에 들어와 있는 것으로 법무부는 파악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30일만기 관광비자로 국내에 들어와 서울역·시청역 지하도등 이른바 「중국교포 만남의 장」에 모여 한약재를 팔거나 서로 정보를 교환,음식점·여관·공사장등에 취업하고 있다. 이들은 질병·친척찾기등의 핑계로 30일씩 2차례에 걸쳐 체류기간연장이 가능하다는 점을 이용,대부분 최대 체류허용기간인 3개월까지 머물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 가져온 녹용이나 웅담·청심환등 한약재를 팔거나 공사장 잡역부·음식점종업원등으로 일하며 「돈맛」을 본 이들은 3개월이 지난뒤에도 불법체류를 감행하며 돈벌이에 나서고 있는 사람들도허다하다. 중국에서의 평균월급이 2만∼3만원에 불과한 이들에게는 3개월정도만 국내에서 일하면 중국에서 2∼3년 버는 것보다 많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심지어 중국에서 학교교장·은행원·의사·공장간부등으로 일하던 사람들도 공사장 인부나 유흥업소종업원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같은 사례는 한·중수교이후 더욱 늘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특히 젊은 여성교포들 가운데 다방이나 술집·여관종업원으로 일하며 윤락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어 교민정책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서울역·용산역·청량리역 주변의 값싼 여인숙에서 4∼5명씩 짝을 지어 살면서 직장을 자주 옮기거나 사고를 당해도 불법체류사실이 발각될 것을 우려해 신고조차 안하고 있어 단속의 손길이 거의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중국교포와 관련된 사건도 잇따르고 있는데 지난 7월에는 불법체류하며 식당에서 일하던 교포여인과 딸을 위협,강제폭행한 사건이 일어났는가 하면 지난달 17일에는 중국교포여성들을 여관에고용해 윤락행위를 시키다 적발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현행 규정상 불법체류를 하다 적발되더라도 강제출국시키는 것외에는 별다른 처벌조항이 없는데다 같은 핏줄인 교포들을 다른 외국인들처럼 냉정하게 다룰 수도 없어 당국으로서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법무부 출입국관리소나 경찰관계자들은 『늘어나는 불법체류자들로 인한 범죄를 막는다는 차원에서 단속을 하고있으나 중국교포들을 동남아등 불법체류 외국인들과 똑같이 취급하기도 어려워 곤란을 겪고있는 실정』이라면서 『중국교포들이 중국으로 돌아가면서 일제 전자제품등을 무더기로 사가는등 외화유출의 요인도 많아 이들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세워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 여직원 둘 성폭행/30대 학원장 구속

    서울경찰청 여자형사 기동대는 29일 이성국씨(39·학원원장·서울 중구 묵정동 11 묵정아파트 607호)에 대해 강간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씨는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3가에서 「연합냉난방기계학원」을 운영하면서 학원생 모집을 위한 지방대학 출장을 핑계삼아 지난 6월14일 이 학원 경리사원 김모양(19)을 강원도 춘천시 한림대 부근 여관으로 데리고 가 성폭행하는등 그동안 이 학원 경리사원과 여자 수습강사등 2명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 히로뽕 밀매·투약 18명 구속

    ◎건설사대표­백화점상무­교수아들 등 포함 서울경찰청특수대는 28일 일본에서 7억5천여만원상당의 히로뽕을 밀수해온뒤 이를 건설회사사장과 백화점상무등 부유층에 팔아온 조성락씨(37·경기도 부천시 송내동 102의216)등 히로뽕밀매조직 4명을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또 이들로부터 히로뽕을 구입해 상습적으로 투약해온 정규현씨(39·엄마손백화점상무·구로구 독산동 1006의150)등 14명을 같은 혐의로 구속했다. 조씨등은 지난4월 위조여권으로 일본에 건너가 도쿄신주쿠의 아카사카에서 일본의 폭력조직원으로부터 히로뽕20g을 5백만원에 구입해 구두창밑에 숨겨들여 오는등의 방법으로 15차례에 걸쳐 히로뽕2백75g 7억5천여만원상당을 국내에 밀반입해 팔아온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정씨등은 지난8월초부터 함께 구속된 형 규승씨(43·대진건설사장·구로동 179의28)의 권유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 가든파크장등 호텔과 여관을 전전하면서 8차례가량 정맥주사기를 이용,히로뽕을 투약해왔다는 것이다.이들 가운데 대전H대학 부총장 아들인 은철용씨(32·마포구 도화동 우성아파트6동 1506호)는 지난10월18일 하오9시쯤 서울 서초구 방배동 A의류상사옆 주차장에 세워진 자신의 차안에서 20만원에 구입한 히로뽕 0.33g을 증류수에 타 혈관에 투입하는등 지금까지 모두 7차례 히로뽕을 투약한 혐의이다. 경찰조사결과 조씨등은 비밀보장과 높은 가격을 받기위해 부유층사람들을 대상으로 히로뽕 1g당 1백만원에 팔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증거물로 히로뽕 20g과 주사기 1백30개,증류수용기 70개등을 압수했다.
  • 채무자 감금폭행/경찰관 면직조치

    【대구=남윤호기자】 대구경찰청은 26일 징계위원회를 열어 자신과 채무관계에 있는 기소중지자를 압송하는 도중에 여관에 감금해 폭행하고 지불각서를 받은뒤 풀어준 대구경찰청 경제계 오세출경사(43)를 면직시키고 남부경찰서 형사과 김상수경사(56)등 2명을 견책조치했다.
  • 채권 지불각서 받고 호송피의자 풀어줘/“도주”보고 경관조사

    【대구】 경찰관이 채무관계에 있는 피의자를 호송도중 석방해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대구경찰청 수사과 오세출경사(43)는 사기및 부정수표단속법 위반혐의로 기소중지됐다 서울동부경찰서에 붙잡힌 서정교씨(42·사기등 전과8범·대구시 남구 대명1동)를 넘겨받아 대구시내 모여관으로 데려와 자신의 돈 3억원을 갚을 것을 요구하며 감금폭행한뒤 4억원의 지불각서를 받아냈다. 오경사는 이어 서씨를 풀어준뒤 『추풍령 휴게소에서 서씨가 화장실에 간다고해 수갑을 풀어준 순간 달아났다』고 허위보고,경찰의 조사를 받고있다.
  • 목사가 여신도 6명 성폭행/통정현장 비디오 촬영… 변태행각

    서울 도봉경찰서는 22일 서울 강동구 천호동 M교회 목사 이혁용씨(32·서울 구로구 개봉동204)에 대해 강간및 미성년자 간음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씨는 지난 90년 2월25일 자신이 음악담당 목사로 있던 서울 강동구 소재 A교회 성가대원 김모양(23·회사원·서울 강남구 역삼동)을 여관으로 유인,성폭행한 후 같은해 12월까지 20여차례에 걸쳐 불륜관계를 맺는 등 지난 89년 7월부터 지금까지 A교회와 B교회의 미성년자,여대생,주부 등 여신도 6명을 꾀어 강제로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김양이 자신을 멀리하려 하자 김양에게 통정순간을 녹음한 테이프를 전화로 들려주며 『가족들에게 이같은 사실을 알리겠다』고 협박,자기집으로 불러들여 술을 마시게 한뒤 폭행장면을 비디오 카메라로 찍은 것을 비롯해 여신도들과의 통정순간을 녹음하거나 촬영하는 등 변태행각을 벌여온 것으로 밝혀졌다.
  • 여관 여주인 납치강도/3인조/“윤화” 거짓전화뒤 집도 털어

    ◎차트렁크 감금 7시간만에 구조 【춘천=조한종기자】 50대 여관 여주인이 30대 남자 3명에게 돈을 빼앗긴 뒤 승용차 트렁크에 7시간10분동안 갇혀있다 구조됐다. 12일 상오 2시40분쯤 강원도 춘천군 동래면 학곡리 잼버리도로에서 강원2가2590호 소나타승용차 트렁크에 갇힌채 신음중이던 모여관 주인 이종희씨(54·여·춘천시 요선동)가 독서실에서 공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김모군(17·K중3년)에게 발견됐다. 이씨는 11일 하오7시30분쯤 요선동 모식당에서 빌려준 돈 35만원을 받아가지고 나오던중 30대 남자 3명이 다가와 흉기로 머리를 때려 실신했다 깨어보니 돈이 없어지고 자신의 승용차 트렁크 속에 갇혀있었다는 것이다. 범인들은 범행 직후 이씨의 남편 김모씨(59)에게 『이씨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고 있다』고 전화를 걸어 김씨가 병원으로 간 사이 집안 장롱등을 뒤져 금품을 훔쳐 달아났다.
  • 여중생 등 유인 5차례 성폭행/20대 3명 영장

    서울경찰청은 8일 김기성씨(26·종로구 동숭동 시민아파트1동 101호)등 3명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동네 친구 사이인 김씨 등은 지난 6월3일 상오11시40분쯤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에서 놀러 나온 유모양(15·서울 S여중3년)등 2명을 『드라이브나 하자』며 꾀어 김씨의 승용차에 태워 경기도 부천 등지로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이들은 13시간만인 4일 새벽3시쯤 서울로 돌아온뒤 유양 등을 동대문구 창신동 D여관으로 끌고가 강제로 성폭행한 것을 비롯,지난 3월부터 지금까지 50여차례에 걸쳐 같은 수법으로 10대 소녀들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있다.
  • 신용대출 한도 2배로 확대/인수된 무역어음 할인허용

    ◎보험사 자금운용규제 완화/재무부/“호화사치업종은 계속 제한” 보험회사의 신용대출 한도가 확대된다. 또 보험사들도 무역어음을 할인할 수 있도록 허용됐다. 재무부는 5일 최근 마련된 금융규제완화 방안에 따라 이같이 보험회사의 자산운용 규제를 완화,이날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신용대출 한도는 현재 운용자산의 0.5% 또는 2억원 중 큰 금액으로 돼있는 것을 2억원의 제한을 없애고 운용자산의 0.5% 이내에서 신용대출을 해주도록 조정했다. 특히 건실한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대출의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 운용자산규모가 1조원 미만인 보험사의 경우 운용자산의 1.0%까지로 신용대출한도를 늘렸다. 이같이 금액한도가 없어짐에 따라 신설보험사의 신용대출규모가 지금보다 2배가량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또 현재 무역업 등 도산매업에 관광호텔 등에 대해 신용대출을 2억원 이내로 묶은 것을 폐지,회사가 자율적으로 신용대출한도를 운용하도록 했다. 그러나 일반호텔업 여관업 호화대중 음식점 등 대출금지 업종은 종전대로 대출을 금지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보험회사들의 경우 상업어음의 할인만 가능하도록 해왔으나 앞으로는 무역어음 인수기관이 인수한 무역어음에 대해서는 할인이 가능하도록 허용했다.
  • 사라이즘 파문/차정미 시인·가정법률상담소 출판부장(굄돌)

    89년 「가자 장미여관으로「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등의 시집과 수필집을 펴내 그무렵 상당기간 야한여자 신드롬을 앓게 했던 마광수교수가 지난해 간행한 바 있는 「즐거운사라」라는 소설집으로 이번에는 사라이즘의 바람을 몰고 왔다.그 바람의 골이 너무 깊었던지 아니면 떠도는 두어가지 정치적 루머때문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며칠전 음란도서제조혐의로 구속 수감되는 사태까지 벌어져 앞으로도 문학작품에 대한 외설비시로 적잖은 파문이 예상되고 있다. 『문학작품이 검찰의 수사상에 올라야 하는 문화의 후진성을 개탄한다』고 자신의 구속수감에 대해 마교수가 밝힌대로 모든 예술작품은 반드시 독자에 의해 판단되고 평가받아야 한다는데 필자 역시 마교수와 같은 입장이다.그런 의미에서 마교수의 구속은 불행한 사태임에 틀림없다.그러나 그의 작품경향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더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야한여자론에 대해 비판을 가해왔던 비평가들의 주장대로 그의 작품속에 나타나는 세계관은 성차별론·성결정론으로 판명된지 오래인 「프로이드성 심리학의 매저키즘과 새디즘」의 논리와 봉건사회를 굳건히 지켜왔던 유교에서 말하는 음양조화설이 주된 흐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즐거운 사라」는 그의 말처럼 젊은 세대의 자유분방한 성의식과 행복관을 그대로 그려낸 것이 아니라 「야한 여자」속의 성차별주의와 남성중심의 지배 이데올로기,무노동주의가 그 밑바탕에 깔린 또하나의 「야한여자」를 그려내는데 불과하다는 점이다. 또 한가지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복지지상주의는 결국 여성을 성적 노리개로 내몰고 대다수 건강한 남성들조차 성에 굶주린 동물로 왜곡시키고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다음으로 창작의 자유 역시 그 시대의 평균적인 윤리규범까지 뛰어 넘을 수 있는 무제한의 자유는 아니라는 사실이다.그런 의미에서 작품이 독자에게 끼칠 영향에 대해서 작가라는 공인의 입장에서 한번쯤 재고해 보았어야 옳다. 지난해 간행물 윤리위원회의 제재도 아랑곳하지 않고 출판사를 옮겨 다시 출판한 작가의 양식과 출판사의 「한탕주의」식 상혼은 비난의 화살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김주봉 대전시장(만나고 싶었습니다)

    ◎대전세박 내년 3월엔 준비 완료/도로·환경 정비… 국제도시 발돋움/박람회장·기념관 건립 등 현공정 62%/지역발전 10년 앞당겨 「중부권핵」으로/행사 끝난뒤 과기교류·산업협력공간으로 활용계획 건국이래 최초의 국제공인 세계박람회인 대전엑스포가 2백7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대전시는 「새로운 도약에의 길」을 열기위한 이번 엑스포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각 분야별로 준비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제교류의 장,과학기술의 축제,경제발전의 도약대가 될 대전엑스포는 국가적 대행사일 뿐아니라 대전시로서도 도시발전을 10년 앞당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러나 시민들은 과연 대전에서 이같이 큰 행사를 무난히 치를 수 있을 지,또 준비는 계획대로 잘 추진되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 많다.시민 강홍자씨(55·대전시 중구 선화동 현대아파트)와 정서경양(22·충남대 철학과 3년)이 엑스포준비로 바쁜 김주봉대전시장을 찾아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강홍자씨=엑스포가 2백70여일 남은 현재 전체 준비사업은 어느정도 진행되고 있는지요. ▲김주봉시장=엑스포조직위와 대전시를 비롯한 유관기관등의 총체적 노력으로 종합적으로 62%의 순조로운 진도를 보이고 있어 내년 5월쯤 이내에 모든 사업이 완료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참고로 대전시가 주관하는 77개 사업을 비롯한 각기관에서 분담 시행하고 있는 분야별 진도는 국토관리청의 둔산교가설및 시진입도로 확장사업이 76%의 높은 진척률을 보이고 있으며 도로공사의 5개 인터체인지 신설및 확장,철도청의 엑스포역 신설및 궤도부설사업도 68%라는 순조로운 진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교통·숙박대책 만전 ▲정서경양=대전엑스포가 과연 정치적 변화에 관계없이 당초 규모대로 개최될 것인가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김시장=대전엑스포는 국제박람회기구의 공인을 얻어 개최하는 세계적인 대행사로서 임의로 연기하거나 규모를 축소할 수 있는 행사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내년 8월7일 우리고장 유성 도룡동에서 성대한 개막 팡파레를 울릴 것입니다. ▲강홍자씨=엑스포기간중 1천만 인파가 몰려올 것이라는 예상인데 교통·숙박문제 해결책을 가지고 계신지요. ▲김시장=교통대책은 하루평균 11만명,승용차 2만5천대의 유입을 예상해 지역간 4개 진입도로 확장과 엑스포역 신설,헬기운행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숙박대책으로는 하루 3만5천명으로 예상되는 내·외국 관광객의 숙박편의를 위해 필요한 호텔·여관 1만5천8백실을 이미 확보했으며 엑스포 전까지는 2만여실이 확보가능해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기대이상으로 지원 ▲정서경양=대전엑스포는 서울올림픽과는 달리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지원이 없어 대전시만 애를 먹고 있다는 소리도 있는데요. ▲김시장=국가적 행사인 엑스포준비사업을 대전시에 무리하게 떠맡기고 있다는 일부의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정부에서는 대전엑스포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행정·재정적으로 기대이상의 지원을 해주고 있으며 특히 엑스포준비에드는 총투자비 1조6천여억원가운데 국가에서 89·2%에 달하는 1조4천3백여억원을 부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의 부담을 덜기 위해 주요 대형공사등은 국토관리청,토개공등 7개기관을 통해 직접 시행토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강홍자씨=전국적인 홍보가 부족한것 같다는 우려가 있는데. ▲김시장=엑스포분위기가 대전에서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피부로 느껴지는 폭넓은 홍보활동을 추진하고 있으며 내무부의 전국 시도에 대한 홍보참여 촉구와 엑스포조직위의 TV홍보,그리고 지난 1월 프레스센터 운영등으로 홍보활동이 점차 확산되고 있습니다. ▲정서경양=현재 참가신청국수는 얼마나 되며 당초 계획대로 될는지요. ▲김시장=대전엑스포에 참가하는 외국 국가및 국제기구수는 당초 예상한 60개국·20개국제기구를 크게 상회해 지난 10월말 현재 88개국에서 참가를 공식 통보해왔고 11개국에서 참가의사를 표명하고 있습니다.국제기구 가운데는 AFDB(아프리카 개발은행)OECD(경제협력개발기구)ADB(아시아개발은행)IOC(국제올림픽위원회)등이 참가를 공식통보 또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어 대전엑스포는 역대 국제박람회중 최다 국가가 참가하는 대규모 대회가 될것입니다. ▲강홍자씨=행사가 끝난후 각종시설물은 어떻게 되나요.▲김시장=대전엑스포의 성과를 계승·기념하고 엑스포대회장 전체지역을 과학기술교류·산업협력활동공간으로 조성하는 한편 정부관·국제관등 15개 상설전시관구역과 국제전시구역중 한빛탑·번영관등에는 대규모 과학공원을 조성·창조적 휴양공간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정서경양=엑스포를 통해 기대되는 지역발전효과는 무엇입니까. ▲김시장=한마디로 말해 엑스포는 대전발전을 10년정도 앞당기는 원동력이 될것입니다. 엑스포개최로 첨단기술개발·고용증대·수출신장·건설경기촉진및 관광산업진흥등을 꾀할수 있을 겁니다. ▲강홍자씨=그럼 엑스포가 끝난뒤 장기적으로 대전은 어떤 모습이 될까요. ▲김시장=대전은 여타 대도시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성장,2010년에는 인구 1백70만,인근생활권인구 2백30만정도로 성장하고 고속전철 청주신공항 등으로 중부권의 핵심도시로 변모할 것입니다. ▲정서경양=과거 엑스포개최시마다 새로운 과학기술이 선보였는데 대전엑스포때는 어떤 것이 등장합니까. ▲김시장=「새로운 도약에의 길」이라는 주제에 맞게개도국의 무한한 가능성과 지구의 미래를 실현하게될 자기부상열차,전기자동차,태양전지자동차,과학위성등이 선보이게됩니다.
  • 유흥비 노린 강도/고교생 3명 영장

    서울 성북경찰서는 3일 임모군(18·K고3년)등 10대 소년 3명에 대해 강도상해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같은 학교 동급생 이모군(18)등 4명을 수배했다. 이들은 지난달 24일 하오8시쯤 성북구 동선1동 S여관앞 골목길에서 집에 돌아가던 최모씨(40·부동산중개업)를 주먹과 발로 마구 때려 전치2주의 상처를 입힌뒤 24만원이 든 지갑을 빼앗아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조사에서 이들은 유흥비 마련을 위해 이같은 짓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 상업용건축 규제 대폭 완화/건설경기진정세 따라

    ◎숙박·위락시설은 제한 건설경기가 뚜렷하게 진정되는데 따라 내년부터 근린 생활시설과 업무시설등 상업용 건물에 대한 건축제한 조치가 대폭 풀릴 전망이다. 29일 경제기획원과 건설부에 따르면 올들어 상업용 건축허가 면적이 작년보다 크게 줄어드는등 그간의 규제조치로 과열됐던 건설경기가 가라앉았다고 보고,오랜 규제에 따른 민간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상업용 건축규제를 내년부터 과감히 풀어주기로 했다.정부는 지난 7월에도 일부 규제를 해제했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지속적인 경제안정화 시책으로 내수가 진정되는데다 시멘트와 철근등 건축자재 수급도 원활히 이루어지고 있다』며 『과열 방지를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을 제외한 대부분의 규제를 내년부터 모두 풀어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에 따라 수도권 및 인구 30만이상 도시에서 건평이 4백50평을 넘어 건축을 규제하는 근린 생활시설의 경우 내년부터 규제를 전면 해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업무시설,판매시설,관람집회시설,전시시설,관광휴식시설등의 건축도 내년부터대부분 허용할 계획이다. 그러나 상업용 건축규제를 전면 해제할 경우 주택과 도로등 사회간접자본 시설확충등과 맞물려 건설경기가 또다시 과열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호텔과 여관등 숙박시설과 위락시설에 대해서는 제한범위를 두어 규제조치를 연장키로 했다.
  • 한밤 여관에 불/손님 2명 숨져

    26일 하오10시20분쯤 서울시 강서구 염창동 263의9 한림장여관3층 310호에서 불이 나 장기투숙중이던 한우식씨(노동·24)등 2명이 불에 타 숨지고 옆방 308호에서 잠자던 신현삼씨(30·노동)등 2명이 연기에 질식,인근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은 여관근처 주택조합아파트공사현장에서 일하면서 투숙해오던 한씨등이 이날 술에 취해 들어왔다는 여관 종업원들의 진술에 따라 이들이 피우던 담뱃불이 이불에 옮겨붙어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인을 조사중이다. 이날 불로 이 여관 3층 310호등 방2개 내부10여평이 탔다.
  • 건전문화운동 활발한 신촌/이진희 사회1부 기자(현장)

    ◎요란한 구호보다 업주·고객 실천 따라야 『심야영업을 하지 맙시다』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지 맙시다』 23일 하오 4시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신촌시장안 어린이놀이터에는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어깨띠를 두른 3백여명이 선창자를 따라 「힘차게」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이들은 신촌지역내 록카페·노래방 등 유흥업소 업주들로 최근 연세대 홍익대 등 이 일대 대학가에서 불고있는 「건전한 신촌문화 살리기 운동」에 동참하겠다는 취지로 이날 자신들 나름대로 행사를 가졌다. 40개의 노래방과 53개의 록카페,70개의 여관 등이 모여 밤이면 불야성을 이루는 신촌지역은 젊음과 낭만,문화가 숨쉬는 대학가라기 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환락가」로 변질된지 오래이다. 이 때문에 이달초 이일대 5개대 총장들이 심각성을 인식하고 한자리에 모여 「건전한 대학가 문화를 만들자」는 모임을 갖기도 했다. 또 지난 17일에는 34개 「대학건전동아리협의회」 회원 1백50여명이 「신촌을 문화,낭만의 거리로」「우리것 우리문화 신촌에서 꽃피우자」라고 적힌 유인물과 전단을 나눠주며 신촌네거리에서 이대앞까지 가두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신촌지역에서 환락을 조장했던 업주들의 이날 행사는 이러한 대학가의 움직임에 뒤이어 나온 것이다. 한 대회참석자는 『밤 11시면 업소의 문을 닫는다.미성년자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고 혼숙도 받지 않고 있다』면서 『「신촌물장사」가 가장 좋다는 말은 이제는 옛말』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행사를 지켜보던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구청·경찰서 등 당국의 단속이 강화되자 눈가림으로 행사를 갖는 것이 아니냐」는 측과 「한계는 있겠지만 그래도 신촌을 건전한 문화지역으로 꾸미겠다는데 격려를 보낸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같은 시각 신촌에서는 요란한 화장과 이상한 머리모양,보기 민망할 정도로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들이 여전히 활보하고 있었다. 신촌이 문화·낭만의 거리로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업주,고객,당국의 철저한 단속과 함께 이곳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주민과 학생들의 자구노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구호만 요란한 단발성 캠페인행사만으로는 신촌에서 향락과 퇴폐가 추방되지 않는다는 것을 「신촌인」들은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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