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여고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 연령별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 이원종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 산악인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919
  • 공무원연금개혁 주역 김현숙 靑 고용복지수석

    김현숙(49) 청와대 신임 고용복지수석은 복지·경제·여성 정책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다. 김 수석은 2012년 4월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19대 국회에 입성했다.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여성·문화분과 전문위원, 당 원내대변인 등을 역임했으며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남편 이덕청(50)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와 2남. ▲충북 청주 ▲청주 일신여고 ▲서울대 경제학과 ▲일리노이대 경제학 박사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새누리당 간사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우리 애도 성추행 몇 번 당했다는데… 선생 어떻게 믿나”

    교장을 포함한 5명의 남자 교사가 동료 여교사와 여학생을 장기간 성추행·성희롱한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교육계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가뜩이나 땅에 떨어진 교권이 이번 일로 더욱 추락하게 됐다는 개탄이 이어지는 가운데, 특히 학부모들이 느끼는 충격과 분노는 하늘을 찌르는 수준이다. 고1, 고3 딸을 둔 서울 강남구 유모(42·여)씨는 언론 보도를 본 뒤 자녀에게 “이런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가 기절할 뻔했다. 그는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은 듯 ‘그런 일이 학교에서 몇 번 있었고 그냥 똥 밟았다 생각하고 넘어갔다’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중3 딸을 둔 송파구 김모(49)씨는 4일 “언론에 나온 이야기가 정말 사실인가 싶다”면서 “해당 학교에 변태 교사가 몰려 있는 것도 아닐 텐데 학교에 아이를 어떻게 보낼지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딸이 중1인 정모(45)씨는 “이번에 드러난 일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면서 “교육부가 해결 의지가 있다면 전체 학교 학생과 교직원을 상대로 전수조사를 하고 강력한 후속 조치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취학 아동을 둔 영등포구 이모(39·여)씨는 “학교에서 상식 이하의 일이 벌어졌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이런 일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방지해야 할 학교장마저 연루돼 있다는 것은 시스템이 취약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많은 학생들이 교사에 대한 불신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학생은 “학생들끼리 문제가 되는 교사 명단을 카톡 등으로 공유하기도 한다”면서 “학생이 문제를 제기하면 학교에서 해결해 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영등포구의 모 고교 3학년 이모(18)양은 “성추행이 일어날 것 같으면 정확하게 의사표현을 하고 주위에 도움을 청하라고 배우긴 하지만 쉽지 않다”며 “담임교사가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하더라도 학생부 등 입시에 영향을 줄 수 있어 마음먹은 대로 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했다. 중구의 여고 2학년 정모(17)양도 “다른 학교에서도 비슷한 일이 빈번하다고 들었다”며 “문제가 생겼을 때 주저함 없이 고발할 수 있는 제도나 기관을 마련하는 게 절실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사건은 가해 교사가 수업 시간에 “나랑 원조교제 할래”라는 이야기까지 했지만, 정작 조사 과정에서야 밝혀졌다. 교원들은 이번 일이 전체 교사들의 사기 저하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중랑구의 한 공립고 김모 교사는 “이번 일에 대해 교사들이 받은 충격도 상당하다”면서 “교사 사회에 잘 드러나지 않은 만연된 관행을 점검하고 문제가 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일이 점점 커지면서 마치 모든 교사들이 성추행범으로 몰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추락한 교권을 회복하는 일도 함께 추진돼야 그 충격이 덜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동현 한양대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는 “오랜 기간 성추행과 성희롱이 진행됐는데도 노출되지 않았다는 것은 현재의 성추행 예방 시스템에 큰 구멍이 있다는 것”이라며 “여교사와 여학생들이 입은 정신적인 상처에 대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 당국이 이번 일을 계기로 신고와 처벌 그리고 피해자 치유 등 전반적인 체계 마련의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골목마다 짙게 묻어나는 서민들의 애환

    [명인·명물을 찾아서] 골목마다 짙게 묻어나는 서민들의 애환

    꼬불꼬불하고 가파른 길이 많아 걸으면 제법 숨이 차 헐떡이게 하는 부산 동구 초량동 이바구(이야기의 경상도 사투리)길. 생긴 지 채 3년이 안 됐지만 입소문을 타고 부산을 찾는 외지인들이 꼭 한번쯤 들러보는 부산의 새 명소로 자리잡았다. 부산시와 동구는 2013년 3월 부산역 맞은편 옛 남선창고 터에서 산복도로 까꼬막(산비탈의 경상도 사투리)까지 1.5㎞ 구간을 초량 산복도로 ‘이바구길’로 조성했다. 이바구길 곳곳에는 일제강점기, 8·15 해방, 한국전쟁, 산업화 등 격동의 세월을 살아온 부산 사람들의 삶이 짙게 묻어난다. 볼거리와 이야깃거리도 풍성하다. 전쟁과 피란, 힘든 노동과 모진 세파를 이겨낸 삶의 이야기들이 스며 있는 골목길이다. 산복도로는 부산의 주요 간선도로 중 하나로 ‘산허리’(산복·山腹)를 따라서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2차로 도로를 말한다. 부산의 다른 산복도로와 마찬가지로 이바구길이 있는 산복마을도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만들어졌다. 부산시는 해방 후 귀환동포와 한국전쟁 피란민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자 산 중간에 부산 시내를 이어주는 산복도로를 건설했는데 이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살면서 마을을 이뤘다. 하지만 도심지가 외곽으로 뻗어나가면서 더 쾌적하고 나은 환경을 찾아 사람들이 떠나면서 마을 공동화 현상이 나타났다. 이 같은 산복도로 마을에 다시금 활기를 불어넣고자 부산시와 동구는 2011년 산복도로 르네상스라는 도시재생 사업을 시작했다. 골목골목 올라가는 길마다 다양한 시설물과 조형물 등을 설치해 산복도로 자체를 이야기가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 부산의 근현대사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산복마을의 특성을 되살리는 것에 초점을 뒀다. 총 68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돼 조성된 이바구길에는 2013년 3월 6일 개통 후 입소문을 타고 방문객들이 찾기 시작해 지난 6월까지 모두 23만여명이 다녀가는 등 매년 방문객이 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는 ‘이바구 자전거’도 운행하고 있다. 이바구 자전거는 정부와 동구가 노인 일자리 특화사업의 하나로 도입했다. 관광안내원으로 변신한 지역 노인 34명이 교대로 8대의 자전거를 몬다. 이들은 3인승 전동 세발자전거 뒷좌석에 손님을 태워 초량 이바구길 일대를 돌며 길에 얽힌 사연과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준다. 동구는 이바구 자전거의 안전을 위해 일부 구간에 전용차선을 마련하는 한편 자전거 앞뒤와 옆면에 형광으로 도색한 뒤 야광색 삼각 깃발을 설치했다. 운행 코스는 2곳. 1코스는 초량동 차이나타운 입구에서 출발, 옛 백제병원 건물과 남선창고 터, 초량시장을 거쳐 이바구길 입구까지다. 2코스는 168계단에서 시작해 이바구공작소와 금수사, 유치환 우체통을 지나 산복도로 체험시설인 까꼬막까지다. 이바구길을 가는 곳곳에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우리 근현대사의 한 부분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이바구길은 옛 남선창고터에서 시작된다. 남선창고는 1900년 3월에 지어진 부산 최초의 근대식 물류창고다. 이곳에는 현재 마트가 들어서 있어 옛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아쉬움을 준다. 남선창고는 부산항으로 들어온 물건들이 경부선을 타고 전국으로 흘러간 거점이었다. 함경도에서 온 명태를 보관했다고 해서 ‘명태고방’이라고도 불렸다. 도로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일제강점기 때인 1922년에 지어진 부산 최초의 근대식 의원이었던 옛 백제병원 건물이 나오는데 지금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백제건물은 부산 문화재로 지정돼 있으며 현재 사무실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때 중화민국(중국) 영사관과 치안대 사무소 등으로 사용됐었다. 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역시 한강 이남 최초의 교회인 초량교회가 나온다. 부산 임시수도 시절 이승만 전 대통령이 예배를 봤던 곳이다. 맞은편 초량초등학교 담벼락에는 이 학교 졸업생인 연예인과 부산의 대표적인 문인을 소개하는 사진과 글이 걸려 있다. 1937년 개교한 이 학교는 가수 나훈아, 개그맨 이경규, 뮤지컬 감독 박칼린, 연출가 이윤택 등이 다녔다. 담벼락 옆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한국전쟁 피란민들의 애환이 서린 168계단이 나온다. 계단 중간에 있는 샛길로 향하면 부산 동구 출신의 작사가이자 시인인 김민부(1941~1972) 시인을 기려 만든 김민부전망대가 있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로 시작하는 가곡 ‘기다리는 마음’의 노랫말을 지었다. 현재 모노레일 설치 공사가 한창이다. 동행한 구선희 동구 공보과 주무관은 “이곳에서 바라보는 부산항은 일제강점기 부산지역의 해안을 메워 만든 매축과 한국전쟁 때의 피란촌, 부산역전 대화재, 관부연락선 등 애환과 부산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말했다. 10여분 계단길을 더 올라가면 ‘망양로’라 부르는 산복도로가 가로로 죽 뻗어 있다. 이곳에서는 부산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경사지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계단식 집들이 이채롭다. 인근에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린 장기려(1911~1995) 박사를 기리는 ‘더 나눔 기념관’이 있다. 의료보험의 시초인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동구에 세우고 가난한 환자를 진료한 그의 정신을 새겨볼 수 있는 기념관이다. 망양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조금 더 가면 청마 유치환(1908~1967)을 기리는 ‘유치환 우체통’이 반긴다. 빨간 우체통이다. 편지를 부치면 1년 뒤 배달된다. 청마는 동구에 있는 경남여고 교장을 두 번이나 지내고 동구에서 생을 마감했다. 우체통은 그가 즐겨 보낸 편지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상징으로 청마의 예술과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설치했다. 이바구길 끝머리에는 ‘이바구공작소’가 있다. 이곳은 연면적 265㎡, 지상 2층 규모로 이바구길을 안내하는 것은 물론 영상, 사진, 기록 등으로 초량 산복도로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다. 이처럼 관광객들이 찾아오자 산복마을에는 활기가 돌고 있다.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주민들은 이바구정거장, 게스트하우스 까꼬막, 천지빼가리 카페, 168도시락국, 이바구충전소, 6·25막걸리 등 마을카페와 음식점, 쉼터를 열어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박삼석 동구청장은 “부산의 산복도로는 단순한 도로의 기능만이 아니라 부산사람 삶의 소통 장소로서 우리 근대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품은 기억 자산”이라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부고]

    ●장애종(전 홍천여고 교장)씨 별세 허문영(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순영(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씨 모친상 김승희(전 춘천여고 교사)박선영(전 KBS 아나운서)씨 시모상 29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31일 오전 9시 30분 (02)3010-2263 ●이기형(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연구원)씨 부친상 윤창호(금융위원회 중소서민금융정책관)이홍주(삼우종합건설 부소장)김수환(OCI 상무)씨 장인상 28일 전주 온고을장례식장, 발인 31일 오전 9시 (063)211-7675 ●백종원(전 서울디자인재단 대표)씨 별세 황규잠(질병관리본부 보건연구관)씨 남편상 29일 서울대병원, 발인 31일 오전 9시 (02)2072-2011 ●민경삼(프로야구 SK 와이번스 단장)경훈(서울한의원 한의사)경옥(자영업)씨 부친상 2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8월 1일 오전 7시 30분 (02)3410-6917 ●남성우(민주평통자문회의 상임위원)씨 별세 재현(한화 근무)씨 부친상 정우석(KCC 근무)문성훈(사업)씨 장인상 28일 서울대병원, 발인 31일 오전 7시 (02)2072-2018
  • [독박(讀博) 육아일기] (19) 연예인 만삭화보, 그것은 꿈일 뿐…

    [독박(讀博) 육아일기] (19) 연예인 만삭화보, 그것은 꿈일 뿐…

    만 서른, 어엿한 아기 엄마가 되었지만 내 마음은 아직 풋풋했던 여고생 시절을 기억한다. 꿈 많고 순수했던 시간이 또렷하다. 아직은 ‘많다’고 말하기 어색한 나이라는 얘기다. 친구들 중에도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그런 내가 길에서 어린 아이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아줌마”라는 말을 내뱉는다. 출퇴근길에 마주치는 20대 여성들은 왜 이렇게 예뻐보이는지. 심지어 나보다 나이가 많은 미혼의 후배들을 봐도 왠지 나보다 한참은 젊어 보인다. 나에게도 저런 때가 있었을까 벌써 가물가물하다. 마치 나는 처음부터 아줌마였던 것 같다.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하며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바로 몸이었다. ‘아줌마의 몸’이 되었다는 것에 매우 복합적인 감정이 따라왔다. 불과 2년 남짓 동안 체중계 앞자리 숫자가 5에서 7로, 다시 5로 움직였다. 자연스럽게 되는 일이 결코 아니었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늘었다 줄어든 체중계 숫자 만큼 내 몸도 확 늘었다 쪼그라들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한숨을 내쉰다. 사랑스러운 아기를 얻은 대가이자 영광의 상처라고 다독여보지만 아쉬움을 달랠 수 없다. 외모가 여성을 평가하는 하나의 잣대가 되어버린 데 대한 반감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지만, 막상 내 몸에 닥친 변화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 “출산한다고 바로 배가 들어가는 게 아니군요” 얼마 전 뉴질랜드의 한 영양사가 자신의 출산 이후 몸의 변화가 잘 드러난 사진을 공개했다. 출산한 지 24시간이 지났는데도 그의 배는 만삭일 때와 다름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배의 크기는 작아지지만 바람빠진 공 같은 모양은 남았다. 적잖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나 역시 흠칫 놀랐다. 꼭 거울 속 내 모습을 들킨 것 같아서였다. 이 사진을 보여준 후배들이 “아기가 태어났다고 해서 바로 배가 쏙 들어가는 게 아니군요”라며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해맑음에 한 번 더 놀랐다가, 나 역시 겨우 2년 전에 똑같은 질문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환상을 깨주어야겠다는 결심에 문득 나의 기록도 꺼내보기로 했다. 애초에 마르거나 좋은 몸매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키 162㎝에 50~52㎏ 안팎의 몸무게를 유지했다. 꾸준한 운동과 몸매 관리는 전혀 하지 않았다. 이렇게 먹는 것을 좋아하고 관리도 하지 않으면서 이 체중을 유지했던 것이 오히려 감사한 일이다. 살이 조금 찐 것 같으면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그걸로 끝이었고 조금 힘들게 일하거나 피곤하면 곧 빠졌다. 이렇게 몸에 무관심하던 나였으니 임신을 하면 살이 찌는 것도 당연하다 생각했다. 오랜만에 꺼낸 산모수첩에는 2013년 5월 25일 6주째 52㎏의 기록부터 시작된다. 12주 6일째인 7월 6일까지 52.4㎏로 거의 변화가 없다가 16주부터 거의 2주~1개월 단위로 2, 3㎏가 늘었다. 11월 9일(30주)에 64㎏가 됐다. 임신부의 이상적인 체중 증가량이 10~12㎏ 정도로 알려져 있다. 8개월에 접어들기도 전에 이 한계치를 채워버린 데 대해 좌절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미 ‘먹는 입덧’에 익숙해져 있던 몸은 열심히 맛있는 음식들을 가리지 않고 먹었다. 뱃 속의 아기가 딸이라고 하니 더 열심히 과일을 집어먹기도 했다. 퇴근 후 9시가 다 되어 밥을 해 먹을 여력이 없어 인스턴트나 배달음식도 많이 먹었다. 가까이 엄마가 살아서 반찬도 좀 얻어다 먹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었으면 좋겠다고 애꿎은 투정을 부렸다. 아무튼 그 결과 수첩 속의 산전 마지막 기록은 12월 27일(37주) 69.6㎏로 끝났다. 며칠 뒤인 지난해 1월 1일 분만을 하기 전 몸무게를 쟀을 때 70㎏가 넘었다. 5월 중순부터 12월 말까지 약 8개월 동안 20㎏이 늘어난 셈이다. ●임신으로 달라지는 몸…아직도 남아있는 흔적 14~15주쯤 임부복을 처음 구입한 것 같다. 이전에 입던 바지를 도저히 입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임부복으로 단정한 면바지를 몇 개 샀다가 한 두번 입고 말았고, 그 뒤로는 치마와 레깅스만 입었다. 바지는 다리가 껴서 답답하고 불편했다. 20주까지는 이전에 입던 티셔츠를 입을 수 있었다. 호르몬 영향에 따른 피부질환이었는지 원래도 예민한 편이었던 몸의 피부가 무척 가려워졌다. 임신소양증이라는 것 같았다. 좀 긁었더니 새까맣게 색소침착이 되어버렸다. 아직도 정강이에 거뭇하게 기다란 자국이 남아있어 외출할 때 치마를 거의 입지 않는다. 그나마 임신해서 가장 좋았던 일은 과일을 많이 먹은 덕분인지 호르몬 덕분인지 얼굴 피부가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 뽀얗고 윤기가 흐르는 얼굴에 대한 만족감이 몸의 비대해짐을 가려주었다. 임신을 하고나니 많은 사람들이 외모와 몸매의 잣대를 임신부에게도 갖다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됐다. 누군가 임신을 했다고 하면 몸이 어떻게 변했는지 먼저 이야기했다. 나도 몸무게에 대한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 아기를 낳고 복직한 사람들을 향해서도 살이 얼마나 빠져서 돌아왔는지가 주요 관심사였다. “누구는 얼마나 살이 쪘다가 얼마를 뺐다”를 수도 없이 들었다. 내 몸이 20㎏까지 불어나는 동안 걱정되는 점은 과체중이 아기의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줄까봐, 임신성 당뇨 등으로 출산에 지장이 생길까봐 등이었다. 하지만 체중 증가에 대해 이같은 걱정이나 조언은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그저 임신부의 몸무게가 10㎏ 이상 늘어난 것에 대해 무식하게 먹어댔다는 듯한 시선이 있었고 출산 후 이전의 몸매로 돌아가지 못한 것을 두고는 게으르고 자기 관리에 소홀한 것처럼 여겨지는 듯 했다. ●임신부에도 적용되는 몸매와 외모의 잣대 그런 시선들이 불편하다고 느끼면서 솔직히 나부터도 날씬한 임신부가 되고 싶었다. 딱히 노력한 것 없이 먹기만 했으니 할 말은 없다만 희망사항은 그랬다. 살이 쪘다고 해서 미련하다는 평가는 받고 싶지 않아서였다. 누군가 “살이 많이 안 찐 것 같다”고 인사치레를 해주면 좋아서 헤벌쭉 거렸다. 다들 나의 몸이 얼마나 찌고 부었는지만 이야기하니 최대한 적게 쪄 보인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게 사실이다. 32주 무렵 나도 만삭사진이라는 걸 찍었다. 원본 사진을 보고 뒷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사진의 다리 부분은 모두 자르고 팔뚝과 얼굴살, 그리고 배 주위의 튀어나온 살들을 모두 포토샵으로 다듬어 달라고 부탁했다. 아기를 낳으면 웬만큼 돌아올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는 출산 첫 날부터 무너졌다. 아기를 낳은 뒤 회복실에 누워 배를 만졌을 때의 놀라움은 출산했다고 “배가 바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을 미리 들었다고 해서 적지 않았다. 아기가 뱃 속에 있을 때 느껴지던 단단함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언덕 하나가 솟아 있었다. 언덕의 높이가 서서히 아주 조금씩 줄어들 뿐이지 18개월이 지난 지금도 나는 물컹한 ‘푸딩 덩어리’를 한아름 안고 지낸다. 출산 사흘 뒤 산후조리원에 들어가 몸무게를 재자 62㎏이 찍혔다. 워낙 많이 불었던 터라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금방 빠졌던 것 같다. 내가 회복력이 좋은 몸이구나, 나머지 몸무게도 금방 뺄 수 있겠다 자신했다. 조리원에 머문 열흘 동안 매일 한 시간씩 필라테스 동작을 따라하며 운동을 했고 거금을 들여 한 시간씩 추가 마사지도 받았다. 그런데 퇴소 전에 자신만만하게 체중계에 올랐더니 달랑 1㎏이 빠져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부터는 몸무게를 아예 잴 수 없었다. 나의 몸매 따위에 신경쓸 겨를조차 없었다. 그냥 아기가 울면 먹이고 졸려하면 재우는 일상을 반복했다. 손목과 허리, 골반까지 쑤시고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병원에 갈 수도 없었다. 거울을 보면 우울감이 더 커지는 듯해 세수할 때 말고는 거울에 비치는 얼굴을 자세히 살피지 않았다. 아기를 낳았지만 여전히 임신부 속옷을 입었고 임부복 치마와 레깅스를 입었다. 허리가 조금 넉넉한 것 외엔 딱 맞았고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웃픈’ 일이었다. ●몸무게가 돌아와도 몸은 예전 같지 않다 다행히 몸무게는 의외로 빨리 줄어들었다. 아기가 8개월이 되면서 임신하기 전보다 더 적게 내려간 기적 같은 시간도 있었다. 그만큼 육아가 너무 힘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밥을 제대로 차려 먹을 수도 없었고 우울함에 식욕이 줄기도 했다. 잠을 못자고 밤낮으로 수시로 모유수유를 했으니 살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한 유원지에 놀러갔다가 길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급성 장염에 걸리기까지 했다. 일주일 내내 물만 겨우 마셨더니 결혼할 때쯤 입었던 바지들이 다시 맞았다. 아프고 난 것이 고마울 정도였다. 그러나 몸은 예전 같지 않았다. 일단 탄력이 없었다. 누군가 내 몸 전체를 땅바닥으로 힘껏 끌어당기고 있는 듯 했다. 중력의 힘이 이토록 강했던가 싶었다. 바람빠진 풍선처럼 쳐진 뱃살과 가슴은 말할 것도 없었다. 결혼하기 전에 입었던 바지를 입게 돼 기뻤지만 앉을 때마다 뱃살이 툭 튀어나왔다. 어느 순간 사진 속 내 얼굴은 모두 ‘두 턱’을 하고 있었다. 이목구비가 모두 아래로 늘어진 느낌이었다. 하루종일 아기를 안고 다니니 이제 허리통증은 당연한 것이 되었고, 말캉말캉한 팔뚝은 더욱 더 두꺼워졌다. 이 때쯤부터 운동이 간절히 하고 싶었다. 누가 딱 한 시간만 아기를 봐주고 운동을 할 수 있다면 바랄 게 없었다. 운동삼아 유모차를 끌고 매일 동네를 다녔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제대로 운동을 배워서 살이 쳐지는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었다.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이보다는 어려보인다는 말을 줄곧 들어왔다. 요즘은 그런 이야기를 듣는 빈도가 확 줄었지만 가끔씩 “애기 엄마같지 않아요”라는 말 한 마디에 하루종일 기분이 좋다. 복직을 앞두고 머리를 정리하러 남편에게 아기를 맡기고 오랜만에 미용실에 갔다. 그런데 앉자마자 미용사가 “출산한 지 얼마나 되셨어요?”라고 물었다. 울고 싶었다. 동안 인생도 끝이 났구나 좌절했다. 출산 후 빠졌던 머리가 한참 새로 나면서 잔머리가 들쭉날쭉해 한 번에 티가 났다고 한다. 그나마 모유수유를 할 때가 좋았다. 무려 20㎏가 모두 빠졌다는 것을 나름대로 자랑거리로 생각하고 있던 나의 착각은 단유와 함께 현실로 돌아왔다. 이제 내가 먹는 그대로 내 살이 됐다. 곧바로 복직을 하니 한 달 만에 5㎏이 바로 쪘다. 그러고는 복직한 지 5개월째인 요즘까지 1~2㎏이 더 늘어 왔다갔다 한다. 아기를 갖지 않은 몸으로는 최대치의 무게다. 지난해 여름 자신있게 입었던 바지들은 무릎 위까지 올라오다 멈춰버린다. 배와 허리와 팔뚝이 너무 묵직해져 임신 초중반까지 입었던 티셔츠도 부담스럽다. 허벅지와 엉덩이가 퍼져버려서 상의는 무조건 엉덩이를 가리는 길이의 것만 고집하고 있다. 단추 있는 바지는 거의 입지 못하고 있다. 급기야 지난달부터 아예 점심식사를 포기하고 운동을 시작했다. 겨우 일주일 2~3차례지만 그토록 바라던 운동을 하게 돼 마냥 즐겁다. 한 시간 동안 땀을 한 바가지씩 흘리고 점심식사를 줄였는데도 여전히 몸무게는 제자리라는 것이 문제지만. 1년 반 동안 쌓아온 출산의 흔적들을 이제라도 줄여보려고 시도하는 자체가 나에겐 기쁨이다. ●연예인 만삭화보, 눈물나는 노력이 담겼을 것 연예인들의 임신·출산 소식을 접하게 되면 여전히 주요 관심사는 그들의 ‘변치 않는 미모’다. 매체들의 보도 주제는 거의 다 임신을 했는데도 변하지 않는 미모와 배만 볼록 튀어나온 가녀린 몸매, 출산 후 곧바로 제자리로 돌아온 몸매 등이 핵심이다. 연예인들이 공개한 만삭 화보에는 주먹만한 얼굴에 부러질 듯 얇은 팔 다리, 그리고 배만 동그랗게 봉긋 솟아있는 인형이 있다. 출산 후 한 두달 밖에 안 됐다면서, 탄력있는 완벽한 몸매를 선보인다. 애당초 내가 연예인의 얼굴과 몸매가 아니었으니 그걸 보며 스트레스를 받거나 비교하진 않는다. 그리고 아마 그렇게 가꾸기까지 정말 피눈물 나는 노력과 엄청난 돈과 시간이 투자됐을 거라 짐작해 본다. 꿈에서나 겨우 가져볼까 말까한 몸매다. 다만 그런 모습이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처럼 여겨질까 우려된다. 잔뜩 부은 임신부들의 몸에 대해 냉혹한 시선을 접했을 때 너무 당황스러웠다. 온라인상에서 아기를 품고 있는 몸을 두고 뚱뚱하다거나 미련하다거나 심지어 (도무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더럽다는 말까지 적힌 것을 봤을 때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가혹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거울 속 내 자신에 아직 완전히 쿨하지는 못하지만, 엄마들에게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설사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그것이 그렇게 비판받을 일인 것인지 의문이다. 한 생명을 잉태하고 기르는 소중한 몸으로 봐주는 시선은 왜 갖기 어려운 것인지 안타깝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이 기사의 관련기사 (1)나홀로 육아 1년…외로움을 말한다 (2)엄마들은 왜 ‘토토가’를 보고 울었나 (3)엄마가 될수록…엄마만 필요했다 (4)세월호 참사가 초보 엄마에게 가르쳐준 것들 (5)내 아기가 타고났기 바라는 한 가지 (6)CCTV 단다고 걱정 사라질까 (7)“아기 왜 없어?”묻지 못하는 이유 (8)모유, 엄마의 눈물을 아기는 먹고 자란다 (9)잘하는 것도 없이 모두에게 미안한 삶 (10)나는 아이를 키우고 아이는 나를 키운다 (11)’아빠 육아’ 예능을 끊은 이유는 (12)엄마들은 왜 찌라시를 퍼다 날랐나 (13)온종일 놀면서 왜 어린이집에 맡기냐구요? (14)수능 성적표보다 떨렸던 아이 검진표 (15)불어난 몸무게 만큼 고통과 행복이 함께 늘었다 (16)환상 속에’만’ 둘째가 있다 (17)엄마인 나의 육아를 존중받고 싶다 (18)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
  • [연예 포스토리] (7) ‘국민엄마’ 김혜자의 러브신, 상상이 되시나요?

    [연예 포스토리] (7) ‘국민엄마’ 김혜자의 러브신, 상상이 되시나요?

    ‘엄마’하면 떠오르는 대한민국의 중견 여배우 김혜자. ‘우리 엄마’의 처녀 시절을 상상할 수 없듯, 김혜자의 ‘엄마가 아닌 다른 모습’은 상상이 안 됩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엄마’였을 것만 같은 김혜자의 예전 모습을 살펴봅니다. ● 수더분해 보이던 그 여자, 알고 보니 뼛속까지 ‘서울여자’ 경기여고를 졸업한 김혜자는 이화여대 미술대학에 재학 중이던 1963년 KBS1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합니다. 약 20년 동안 출연한 ‘전원일기’의 잔상이 깊게 남아서인지 ‘김혜자는 지방출신 일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실제로 그녀는 뼛속까지 ‘서울여자’라고 합니다. ● “김혜자가 별 탈 없이 순산한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 방송국 공채 탤런트로 데뷔를 하긴 했지만, 김혜자는 연극무대에도 많이 섰습니다. 1969년 김혜자는 임신 7개월임에도 불구하고 출연 예정인 연극 리허설에 참석해 동료들의 찬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또 MBC ‘개구리 남편’ 촬영 당시에도 만삭의 몸을 이끌고 열연을 펼쳤습니다. 김혜자가 첫 딸을 낳자 방송가에서는 “몸이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항상 열연을 펼치던 김혜자가 별 탈 없이 순산한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연기에 대한 그녀의 열정이 느껴지는 대목이네요.   ● 떼려야 뗄 수 없는 남자, 최불암 ‘전원일기’에서 너무 오랜 시간 최불암과 호흡을 맞춘 탓에, 실제로 이 둘을 부부라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요. 김혜자, 최불암이 실제 부부는 아니지만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1974년 MBC 제1회 탤런트 연기상에서 김혜자와 최불암은 나란히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합니다. 이후에도 ‘아버지 역을 가장 잘하는 인기인’, ‘어머니 역을 가장 잘하는 인기인’ 설문조사에서도 함께 1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고요.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 ‘평생의 파트너’가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탤런트다운 게 뭔데?” “너답지 않게 왜 그래”, “나다운 게 뭔데?” 드라마의 단골 멘트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탤런트다운 탤런트’란 무엇일까요? 한 드라마 PD는 김혜자를 보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연기가 크지 않고 목소리와 표정까지도 꾸며내지 않은 가장 자연스러운 연기인인 그녀는 TV에 꼭 알맞은 가장 탤런트다운 탤런트다.”   ● ‘국민엄마’ 김혜자의 러브신 영화 ‘만추’하면 현빈과 탕웨이가 출연한 영화를 떠올리실 겁니다. 하지만 80년대에도 ‘만추’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이 영화에 출연한 김혜자는 처음으로 베드신을 찍었다고 하는데요. 함께 출연환 정동환 역시 이전까지는 의젓하고 정직한 청년 역을 주로 연기하다가 이 영화에서는 범죄자 역을 맡았습니다. 당시 두 사람은 “TV에서 못한 러브신을 해내자니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네요.   ● 고생 끝에 ‘여우주연상’이 온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하죠. 김혜자는 ‘만추’에서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이느라 고생을 했습니다만, 이 작품은 그녀에게 ‘제2회 마닐라 영화제-여우주연상’을 안깁니다. 첫 영화로 홈런을 친 셈이 되는 거죠. 수상 당시 그녀는 “외국에 나가보니 우리 영화가 너무 소외된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요즘에는 각종 영화제에 우리나라 감독, 배우들이 많이 초대받는 것 같아 참 자랑스럽습니다.   ● “내 일을 잘 해내는 것이 나를 이해해주는 가족들에 대한 보답” 지금은 맞벌이 부부가 많아졌지만 80~90년대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시 한 기자가 김혜자에게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고충을 묻자 그녀는 “아이들이 말은 안 해도 마음에 많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라면서 “내 일을 잘 해내는 것이 나를 이해해주는 가족들에 대한 보답”이라고 답했습니다.   ● 아버지의 꿈이 현실이 되다 김혜자의 아버지는 그녀가 태어나기 전 높은 연단에 서서 많은 군중들의 박수를 받는 꿈을 꿨다고 합니다. 아버지 옆에는 어항이 있었는데, 그 어항 속에는 새빨갛고 예쁜 붕어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사람들의 박수는 그 어항을 향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혜자의 아버지는 “우리 딸은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해 박수를 받는 사람이 될 것 이다”라고 얘기했다네요. 아버지의 태몽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김혜자가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민을 해왔을지 생각해 봅니다. 이미경 기자 btfseoul@seoul.co.kr
  • [TV 하이라이트]

    ■위대한 조강지처(MBC 밤 7시 15분) 한 아파트에서 우연히 만난 세 명의 여고 동창생 이야기. 금숙(이보희)은 공주(정윤혜)의 말을 토대로 수정(진예솔)이 만나고 있다는 유부남이 일현(안재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경순(김지영)에게 사실 확인을 하려고 하지만 경순은 아니라고만 한다. 기철(이종원)은 경순과 함께 안전당 간부들과 함께하는 부부 동반 모임을 가게 된다. ■수퍼 내추럴 7(AXN 밤 9시) 퇴마사 형제 이야기. 건장한 남성이 벽에 던져지고 사지가 절단된 채 살해되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한다. 기사를 확인하고 현장에 도착한 두 형제. 현장에서 피해자의 몸에 상징이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다른 피해자의 몸에도 역시 같은 상징이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바비 아저씨가 세상을 떠난 지금 그 상징의 의미를 찾을 길이 막막하기만 한데…. ■스콜피온(FOX 밤 12시) 아이큐 197의 실존 인물인 천재 해커 월터 오브라이언의 이야기를 각색한 드라마. 드루가 마이너리그팀 입단 시험을 받은 뒤 가족을 데리고 떠나고 싶다는 마음을 털어놓자 월터는 고민에 빠지고 갤로는 위험한 상황에 부닥친 전처 레베카를 돕기 위해 나선다. 레베카가 로비 회사에서 알아 낸 정보와 국회의원의 죽음과 관련된 음모가 밝혀지는 가운데 레베카가 납치되고 만다.
  • 로드FC 이예지, 데뷔전서 TKO패 ‘미녀여고생 파이터 가능성 보여..’

    로드FC 이예지, 데뷔전서 TKO패 ‘미녀여고생 파이터 가능성 보여..’

    ‘로드FC 이예지’ 이예지가 로드FC 데뷔전에서 패했다. ’여고생 파이터’ 이예지(16, 팀J)는 25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콜로세움에서 열린 ‘로드FC 24 인 재팬’ 대회 여성부 매치(45kg 계약체중)에서 시나시 사토코(38, 일본)에 2라운드 TKO패했다. 이예지는 종합격투기 데뷔전을 치르는 선수답지 않게 안정적인 기량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베테랑 파이터 시나시 사토코의 강력한 그라운드 공격에 무릎을 꿇었다. 1라운드 시작되자 마자 이예지는 테이크다운 당하며 마운트 포지션을 허용했다. 파운딩을 수 차례 맞았지만 암바를 방어하고 하프가드 포지션을 잡아내며 위기상황에서 탈출했다. 이예지는 그라운드 상황에서 또다시 히룩과 암바를 막아내며 1라운드를 무사히 마무리 지었다. 2라운드에서도 치열한 그라운드 공방이 이어졌다. 이예지는 불리한 포지션에 있으면서도 업킥을 날리며 대항했고, 상대의 하체관절기 기술과 암바를 방어했다. 하지만 라운드 종료 직전 마운트 포지션에서 파운딩을 수차례 허용했고, 심판은 경기 중단을 선언했다. ”한 달간 훈련했다”는 이예지는 경기 후 케이지 위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종합격투기를 시작한지) 1년밖에 안 됐는데 이렇게 큰 무대에 서게 해준 모든 사람과 상대 선수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시나시 사토코는 “이예지가 생각보다 체력이 좋고 기술이 좋아 놀랐다. 앞으로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한국에서 싸우고 싶다. 로드FC에 여성부 45kg급을 신설해 달라”고 요청했다. 로드FC 이예지, 로드FC 이예지, 로드FC 이예지, 로드FC 이예지, 로드FC 이예지, 로드FC 이예지 사진 = 서울신문DB (로드FC 이예지)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여고생 파이터’ 로드FC 이예지, 경기 결과는?

    ‘여고생 파이터’ 로드FC 이예지, 경기 결과는?

    ‘로드FC 이예지’ ‘여고생 파이터’ 이예지(16)가 로드 FC 데뷔전에서 일본 종합격투기(MMA) 여왕 시나시 사토코(38·본명 시나시 도모코)를 상대로 패배했으나, 기대 이상의 선전으로 박수 갈채를 받았다. 이예지는 25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콜리세움’에서 열린 ‘로드 FC 24’ 제2경기(계약 체중 45kg)에 임하여 시나시에게 2라운드 4분 53초, 경기 종료 7초를 남기고 그라운드 타격에 TKO패를 당했다. 일본 격투기 여성 간판스타로 알려진 시나시는 147cm의의 단신이지만 32승 2무 2패라는 전적을 가진 베테랑 선수. 전일본학생유도선수권대회 8강과 2001 세계삼보선수권대회 여자 48kg 동메달, 2001 전일본레슬링선수권대회 8강과 2002 전일본브라질유술선수권대회 금메달 등 화려한 아마추어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예지는 종합격투기 데뷔전을 치르는 선수답지 않게 시나시의 공격을 잇달아 벗어나며 안정적인 기량을 선보였다. 하지만 베테랑 파이터 시나시 사토코의 강력한 그라운드 공격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비록 패배했지만 이예지는 데뷔전이라고 하기엔 충분한 경기력을 선보여 박수를 받았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여고생 파이터’ 로드FC 이예지, TKO패 했지만..‘최홍만 복귀전은?’

    ‘여고생 파이터’ 로드FC 이예지, TKO패 했지만..‘최홍만 복귀전은?’

    ‘로드FC 이예지’ ‘여고생 파이터’ 이예지(16)가 로드 FC 데뷔전에서 일본 종합격투기(MMA) 여왕 시나시 사토코(38·본명 시나시 도모코)를 상대로 패배했으나, 기대 이상의 선전으로 박수 갈채를 받았다. 이예지는 25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콜리세움’에서 열린 ‘로드 FC 24’ 제2경기(계약 체중 45kg)에 임하여 시나시에게 2라운드 4분 53초, 경기 종료 7초를 남기고 그라운드 타격에 TKO패를 당했다. 일본 격투기 여성 간판스타로 알려진 시나시는 147cm의의 단신이지만 32승 2무 2패라는 전적을 가진 베테랑 선수. 전일본학생유도선수권대회 8강과 2001 세계삼보선수권대회 여자 48kg 동메달, 2001 전일본레슬링선수권대회 8강과 2002 전일본브라질유술선수권대회 금메달 등 화려한 아마추어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예지는 종합격투기 데뷔전을 치르는 선수답지 않게 시나시의 공격을 잇달아 벗어나며 안정적인 기량을 선보였다. 하지만 베테랑 파이터 시나시 사토코의 강력한 그라운드 공격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비록 패배했지만 이예지는 데뷔전이라고 하기엔 충분한 경기력을 선보여 박수를 받았다. 이예지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종합격투기를 시작한지) 1년밖에 안 됐는데 이렇게 큰 무대에 서게 해준 모든 사람과 상대 선수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시나시 사토코는“이예지가 생각보다 체력이 좋고 기술이 좋아 놀랐다. 앞으로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한국에서 싸우고 싶다. 로드FC에 여성부 45kg급을 신설해달라”고 요청해 눈길을 모았다. 한편 이날 최홍만(35)은 5년여만의 종합격투기(MMA) 복귀전에서 완패했다. 최홍만은 이날 로드FC 24 대회 무제한급 경기에서 일본계 브라질 선수인 카를로스 도요타(43)에 1라운드 KO패를 당했다. 이로써 최홍만은 2009년 10월 미노와 이쿠히사전(서브미션 패) 이후 5년 9개월 만의 복귀전에서 패배를 기록했다. MMA 통산 전적은 2승 4패가 됐다. 로드FC 이예지, 로드FC 이예지, 로드FC 이예지, 로드FC 이예지, 로드FC 이예지, 로드FC 이예지 사진 = 서울신문DB (로드FC 이예지)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여고생 파이터’ 로드FC 이예지, 경기 결과 봤더니..

    ‘여고생 파이터’ 로드FC 이예지, 경기 결과 봤더니..

    ‘로드FC 이예지’ ‘여고생 파이터’ 이예지(16)가 로드 FC 데뷔전에서 일본 종합격투기(MMA) 여왕 시나시 사토코(38·본명 시나시 도모코)를 상대로 패배했으나, 기대 이상의 선전으로 박수 갈채를 받았다. 이예지는 25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콜리세움’에서 열린 ‘로드 FC 24’ 제2경기(계약 체중 45kg)에 임하여 시나시에게 2라운드 4분 53초, 경기 종료 7초를 남기고 그라운드 타격에 TKO패를 당했다. 이예지는 종합격투기 데뷔전을 치르는 선수답지 않게 시나시의 공격을 잇달아 벗어나며 안정적인 기량을 선보였다. 하지만 베테랑 파이터 시나시 사토코의 강력한 그라운드 공격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비록 패배했지만 이예지는 데뷔전이라고 하기엔 충분한 경기력을 선보여 박수를 받았다. 이예지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종합격투기를 시작한지) 1년밖에 안 됐는데 이렇게 큰 무대에 서게 해준 모든 사람과 상대 선수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로드FC 이예지, ‘여고생 파이터’ 데뷔전서 TKO패

    로드FC 이예지, ‘여고생 파이터’ 데뷔전서 TKO패

    ‘로드FC 이예지’ 이예지가 로드FC 데뷔전에서 패했다. ’여고생 파이터’ 이예지(16, 팀J)는 25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콜로세움에서 열린 ‘로드FC 24 인 재팬’ 대회 여성부 매치(45kg 계약체중)에서 시나시 사토코(38, 일본)에 2라운드 TKO패했다. 이예지는 종합격투기 데뷔전을 치르는 선수답지 않게 안정적인 기량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베테랑 파이터 시나시 사토코의 강력한 그라운드 공격에 무릎을 꿇었다. 1라운드 시작되자 마자 이예지는 테이크다운 당하며 마운트 포지션을 허용했다. 파운딩을 수 차례 맞았지만 암바를 방어하고 하프가드 포지션을 잡아내며 위기상황에서 탈출했다. 이예지는 그라운드 상황에서 또다시 히룩과 암바를 막아내며 1라운드를 무사히 마무리 지었다. 2라운드에서도 치열한 그라운드 공방이 이어졌다. 이예지는 불리한 포지션에 있으면서도 업킥을 날리며 대항했고, 상대의 하체관절기 기술과 암바를 방어했다. 하지만 라운드 종료 직전 마운트 포지션에서 파운딩을 수차례 허용했고, 심판은 경기 중단을 선언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한국의 머더 테레사 박청수 원불교 교무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한국의 머더 테레사 박청수 원불교 교무

    ‘원불교는 몰라도 박청수 교무는 안다.’ 원불교 교직자인 교무들이 우스갯소리로 자주 입에 올리는 말이다. 한평생을 종교와 정치, 국경의 경계 없이 지구촌 그늘진 곳곳을 다니며 막힘없는 봉사로 삶을 불태웠던 ‘한국의 머더 테레사’ 박청수(78) 교무. 1981년 스스로 개척해 국내 최고의 교당으로 우뚝 세운 서울 강남교당을 후배에게 넘기고 2007년 은퇴한 뒤에도 그의 봉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얼마 전 출간된 자서전 ‘박청수-원불교 박청수 교무의 세상 받든 이야기’(열화당)에서 ‘한국의 머더 테레사’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쉼 없이 길쌈을 했던 여인이었다.” 원불교 창교 100년을 맞아 그의 아담한 보금자리 겸 박물관인 경기 용인의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을 찾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공교롭게 원불교 창교 100년 되는 해 자서전을 내셨습니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은데. -자서전 같은 것을 펴낼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 박물관을 둘러본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일을 했어요”라고 말하면서도 제 삶을 꿰뚫어 아는 이가 없다는 것을 느꼈어요. 원래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 소장품 도록을 준비하던 중 우연히 만난 열화당 이기웅 대표가 먼저 제의하셨어요. 제가 쓴 책 6권의 내용을 추린 데다 최근 일과 미처 적어 두지 못한 일들을 원고지 400매 분량으로 써서 보탰어요. 큰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자서전 서문 첫머리의 “나는 쉼없이 길쌈을 했던 여인 같다”는 감회가 인상적인데. -55개국을 다니며 사람들을 돕는 일이 간단한 건 아니잖아요. 남에게 도움을 주려면 돈을 모아야 하고 그 절차도 복잡해요. 지금 무비자로 한국인이 입국할 수 있는 나라가 무려 172개국이나 된다고 해요.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외국 들어가는 일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어요. 국교 단절이 됐던 캄보디아에 특별국가방문허가서를 받아 들어갔던 적도 있었어요. 50년간 앉으나 서나 늘 그 일에 매달려 고민하고 산 지난 인생이 밤낮 없이 길쌈하는 여인의 삶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직장에서 퇴근하면 가족들과 식사도 같이하고 이야기도 나누겠지만 저는 그렇지 않았잖아요. TV 드라마 한 편도 여유 있게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웃음). →봉사 인생을 시작하게 된 배경은요? -30대였던가요? 사직교당 교무 시절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책을 8년간 공들여 만든 적이 있었어요. 한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큰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뒤 한센병 환자 돕는 일을 시작으로 55개국을 다니며 많은 일을 하며 살았군요. 해외 봉사의 첫 시작은 1970년 12월 코스모스백화점에서 동파키스탄 이재민 돕기 자선바자회에 2만 4000원을 모금해 원불교 서울사무소에 낸 게 처음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오랜 세월 쉼없는 봉사를 가능하게 한 힘은 무엇인지요. -‘너른 세상으로 나가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일하라’는 어머니의 당부가 컸지요. 좌고우면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결단성도 적지 않은 요인이었고요. 회의를 해 본 적이 없어요. 혼자 생각하고 일단 좋은 일이라 생각하면 해내야 직성이 풀렸으니까요. 좋은 분들의 도움도 컸지요.“나는 이기적으로 살았으니 박 교무에게 돈을 줘야 상쇄가 된다”면서 매년 연말 돈을 보내주신 박완서씨는 정말 잊지 못해요. 저에게 돈을 주면 엉뚱한 데 안 간다면서 도와주시던 박완서씨의 기부금이 봉사의 종잣돈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머니의 당부를 되돌아볼 때 후회없는 삶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나요. -그렇습니다.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어요.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걷겠어요. →종교계 인사들과의 폭 넓은 교류가 유명합니다. 법정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과의 각별한 인연이 회자되는데. -제가 맨 처음 쓴 책 ‘기다렸던 사람들처럼’(1989년)을 보내 드렸더니 법정 스님이 ‘세상 구경 시켜 줘서 고맙다’는 글을 전해 오셨어요. 법정 스님에게 10년간 편지를 보냈습니다.그렇게 편지를 보내고 나면 근심 걱정이 줄어드는 것 같았어요. 제가 하는 일에 늘 격려해 주셨던 고마운 분이지요. 캄보디아에 갔을 때 배에서 떨어져 고생하던 무렵 홍화씨를 보내 위로하신 일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이번 자서전 제목의 글씨체도 법정 스님이 보내주신 편지 속에서 딴 것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라자로 마을 나환자 돕는 일을 하면서 만나 뵈었어요. 추기경 선종 때 각 종교 대표들이 추도사를 썼는데 원불교에선 제가 썼습니다. 그분들이 모두 떠나신 지금 문득문득 외딴집에 홀로 사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출가하신 지 59년이 됐습니다. 출가자로서 늘상 마음에 새긴 정신이라면. -청빈과 실력, 그리고 투명한 실천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원불교 교리에는 종교나 사상이 달라도 대중적으로 공인된 지도자를 공경하라는 ‘공도자 숭배’가 있어요. 온정의 저수지가 마르지 않게 하려면 자력의 인격이 필수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어요. 자신을 잘 다스려야 그 영혼이 다른 사람에게 드러나는 법이지요. 평생 제 발 뿌리를 눈 부릅뜨고 보면서 살아왔습니다. →한 달 용돈은 얼마나 쓰시나요? -원불교에서 공식적으로 받는 돈은 23만 6000원이 전부입니다. 개인적으로 돈 쓸 일이 뭐 있겠습니까. 먹고사는 데 전혀 부족하지 않아요. 차도 없고 비서도 없어요. 직접 밥도 짓고 빨래도 합니다.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종교를 걱정한다고 합니다. 요즘 세태에 한 말씀 하신다면. -철없는 사람, 불쌍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 뒤처진 사람 뒷바라지를 하는 게 종교인의 사명 아닐까요. 종교의 높은 가치인 청빈, 맑은 가난을 지켜야 스스로 청정하고 혼탁한 세상도 맑힐 수 있습니다. 설교나 설법 시간에 했던 좋은 말씀을 매양 스스로 실행하고 실천해야 비로소 사람들이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지 못한다면 좋은 말씀들이 공허할 뿐이겠지요. →종교인 못지않게 정치인들을 향한 세간의 불만이 적지 않습니다. 정치인들에게 당부하실 말씀이라면. -정치인이라면 모두 큰 뜻을 세우고 그 포부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에 입문했을 것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어떠한 경우에도 그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심만 없어도 나름대로 성공한 정치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인은 대중이 좋아하지 않는다 해도 국민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마련입니다. 도덕성이 허약해지지 않도록 어떠한 유혹도 뿌리치고 항상 자기 자신부터 다스려야 하지요. 욕심을 버린다면 제 역할에 더 충실할 것이란 생각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공도자라면 청문회 가서 혼쭐날 일도 없지 않을까요. →2010년 노벨평화상 최종 후보 10인에 오르셨습니다. 평화의 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람을 살육하던 전쟁의 총성이 멎는 것이지요. 누군가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 마음에 분노가 있으면 평화를 잃는 것입니다. 내면의 자성이 충만한 사람이 행동할 때 고통을 녹이는 평화의 빗방울이 될 수 있습니다. →경색된 남북관계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막힌 관계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요. -대립 국면을 푸는 데 이해와 아량은 절대적이지요. 지금 남북 관계를 보면 양쪽 모두 다른 쪽이 숙이고 들어오길 바라는 것 같아요. 우리가 북한보다 30배쯤 잘산다고 하지요. 강자가 너그러울 필요가 있습니다. →원불교 100년을 어떻게 보시나요. -신흥 민족종교 가운데 이렇게 교세가 확장된 교단이 없는 것 같아요. 교직자들이 모두 열심히 살았어요. 커다란 흠결 없이 맑은 종교란 평가를 받는 게 가장 흐뭇합니다. 나라의 발전이 원불교의 성장에 큰 요인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어요. 작은 나무가 올곧게 자라 거목이 됐으니 걸맞은 사회적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최근 원불교 교세의 정체를 우려하는 시각이 있는데. -원불교뿐 아니라 모든 종교가 비슷한 상황입니다. 현대사회에서 종교가 갖는 위상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고 종교 본연의 역할 축소도 이유일 수 있습니다. 원불교의 경우 이제 더 큰 도약을 위한 잠깐의 정체를 맞은 게 아닐까 합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슨 일을 하고 싶습니까. -다시 태어나도 원불교 교무로 지금까지 살았던 것처럼 다시 살 것입니다. 이렇게 너른 세상을 살았는데 한 가정의 어머니와 아내로 살 수 있을까요(웃음). 은퇴하고 이곳에 들어올 때 주변 사람들에게 느낌이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했어요. 한평생 너무 많은 돈 걱정을 하고 살았기 때문에 그 흔적이 내 얼굴에 남을까 걱정했어요. 지금 산 속에서 하늘도 올려다보고 새 소리도 들으면서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박청수 교무는 1937년 전북 남원시 수지면 홈실 마을 태생. 원불교 교도였던 어머니의 바람을 따라 출가, 평생 정녀로 살았던 원불교 스타 교무다. ‘한국의 머더 테레사’, ‘머더 박’이란 별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 집의 울타리에 머물지 말고 너른 세상으로 나아가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일하라.’ 아홉살 때부터 자장가처럼 귀에 박히도록 들어온 어머니의 말씀이 평생 맑은 종교인, 그리고 희생하는 삶을 살게 한 으뜸의 기준이었다고 한다. 전주여고를 졸업한 해인 1956년 출가해 사직교당·원평교당·우이동 수도원 교당·강남교당에서 교무로 봉직하고 2007년 퇴임했다. 특히 강남교당은 박 교무가 개척해 원불교 최고, 최대의 교당으로 세웠으며 그 시절 추진했던 숱한 지역사회 봉사와 헌신의 일화들이 지금까지 회자된다.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한센병환자촌 성라자로 마을에 쏟은 열정과 도움의 궤적은 한국 종교계에서 유명하다. 현직에서 31년간, 은퇴 후 9년간 40년간 성라자로 마을을 도왔다. 라자로 마을에 집을 짓고 한센병 환자를 돕기 위해 15년간 엿을 팔기도 했다. 북인도 히말라야 라다크, 캄보디아, 스리랑카, 아프가니스탄, 에티오피아를 비롯한 지구촌 곳곳에 박 교무의 손길과 봉사의 땀이 배어 있다. 55개국에 무지와 빈곤, 질병 퇴치의 흔적이 스며 있다. 나라 안팎에 9개의 학교를 설립했고 히말라야 라다크, 캄보디아 바탐방에 병원을 세웠다. 미얀마와 캄보디아의 270개 마을에 공동 우물을 파거나 식수 펌프를 묻었다. 2010년 노벨평화상 최종 후보 10인에 올랐다. 이웃 종교 교류와 북한 돕기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 국제연등불교, 프랑스 길상사, 성북동 길상사 지장전, 성공회 봉천동 나눔의 집, 기독교 사랑의 쌀 모으기 등에 힘을 보탰고 경기도 안성 하나원 옆에 북한 이탈 청소년들을 위한 한겨레 중·고등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2007년 26년간 봉직했던 강남 교당을 후배 교무에게 넘기고 은퇴한 뒤 청수나눔실천회 이사장직만 갖고 경기 용인 헌산중학교 경내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에서 기거하고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레슬링은 우리 운명… 누나랑 올림픽서 金 딸래요”

    “레슬링은 우리 운명… 누나랑 올림픽서 金 딸래요”

    1980년대 레슬링은 자유형과 그레코로만형 가릴 것 없이 한국의 메달밭이었다. 이후 그레코로만형은 정지현, 김현우 등 스타플레이어들이 연이어 탄생하며 ‘효자 종목’ 역할을 꾸준히 해 온 반면, 자유형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박장순 현 국가대표 감독이 금메달을 딴 뒤 20년 넘게 금맥이 끊긴 상태다. 가장 큰 이유는 ‘체형’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그레코로만형은 상체가 발달한 동양인, 자유형은 하체가 튼튼한 서양인에게 유리한데 세계적으로 레슬링 기술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타고난 체형이 경기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침체의 늪에 빠진 한국 레슬링 자유형에 기대를 모으는 유망주 남매가 등장했다. 지난해와 올해 전국레슬링대회 자유형 여고부에서 2년 연속 금메달을 차지한 변지원(19·서울체고)양과 올해 전국소년체전 레슬링 부문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동생 진성(16·서울체중)군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둘은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 국적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다문화 청소년이다. 방상안 서울체중 부장교사는 “필리핀 어머니를 둔 덕에 성징 이후 상체만 발달하는 선수들과 달리 자유형에 적합한 체형을 유지하고 있다”며 “오래지 않아 세계 정상급 선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필리핀에 살던 둘은 2012년 5월 가족과 함께 입국했다. 아버지는 국내 50여명에 불과한 격투기 브라질리안 주짓수의 블랙벨트 보유자로, 주짓수 무도관을 운영하고 있다. 남매는 아버지의 권유로 레슬링을 시작한 지 불과 3년 만에 국내 무대를 평정한 것이다. 방 교사는 “처음에는 의사소통이 어려워 기술을 가르칠 때 애를 먹기도 했다”며 “하지만 남매의 성격이 워낙 밝고 긍정적이라 친구들에게 한국어를 배우고 영어를 가르치면서 전혀 이질감 없이 지낸다”고 말했다. 남매의 목표는 함께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것이다. 진성군은 “누나와 동반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싶다”며 “영어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을 살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도 되고 싶다”고 밝혔다. 한편 서울시교육청은 서울상록과학학술재단과 함께 지원, 진성 남매를 포함한 47명의 다문화 학생 선수에게 각각 특별훈련비와 장학금을 전달한다고 22일 밝혔다.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유한킴벌리 최규복 사장, 2015 여고생 그린캠프 교장으로 참가…글로벌 인재로의 성장 돕는다

    유한킴벌리 최규복 사장, 2015 여고생 그린캠프 교장으로 참가…글로벌 인재로의 성장 돕는다

    “환경보전을 위해서는 여성과 청소년의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엔 의제 21’이 생활환경 보호에 있어 청소년과 여성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한 대목이다. 유한킴벌리는 1988년부터 매년 여름방학마다 전국의 여자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숲 체험 여름학교 – 그린캠프’를 진행해 오고 있다. 올해에도 전국 여고생 14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22일부터 경기도 양평의 국립산음자연휴양림에서 2015 여고생 그린캠프의 여정을 시작했다. 올해로 28년째를 맞는 그린캠프의 참가비는 유한킴벌리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공익기금에서 전액 지원한다. 환경부 ‘우수 환경교육 프로그램’으로 인증받은 그린캠프는 ‘숲 체험을 통한 건강한 청소년기의 디자인’을 기본 방향으로 창의, 도전, 치유, 감성, 학습을 테마로 WFUNA(유엔협회세계연맹)의 여성리더십 세션, 여고생들이 학교와 가정, 교우 관계 등에서 겪게 되는 스트레스를 살펴보고 갈등을 해소하는 치유 프로그램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며, 대학교수, 국립산림과학원 박사, 교사 등 각 분야 전문가 30여 명이 함께할 예정이다. 1988년 국내 최초로 필드 스터디 개념을 도입한 그린캠프는 현장교육의 대명사로 자리잡으며 지난해까지 4,000여 명의 환경 리더를 배출했으며, 서울, 인천, 부산 등 대도시 지역의 학생 비중이 80%를 넘어서 도시 학생들에게 숲 체험 기회가 더 필요함을 반영해주고 있다. 매년 여름마다 그린캠프의 학교장으로서 학생들을 맞이하는 유한킴벌리 최규복 사장은 “여고생들이 숲 체험 여름학교에 참여함으로써 스마트폰과 교실이란 작은 세상을 벗어나 자연이란 더 큰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환경의 소중함을 몸소 체험하고 학교나 가정에서 이를 적극 알리는 미래의 환경리더가 되어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유한킴벌리는 1984년부터 시작된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을 통해 국.공유지 나무심기, 숲 가꾸기, 자연친화적인 교육공간을 위한 학교 숲 만들기, 시민초청 나무심기, 청소년 자연체험 교육활동, 동북아 사막화 방지 및 숲 복원 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쳐왔으며,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 30주년을 맞는 지난해 국민 1인당 1그루에 해당하는 5,000만 그루 나무를 심고 가꾸기를 완성했으며, ‘숲과 사람의 공존’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지역 공존의 숲, 북한 산림 복구를 위한 양묘장 운영 등 새로운 30년에 대한 노력을 시작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미림여고 자사고 취소… 학생들 잇단 자퇴 우려

    미림여고 자사고 취소… 학생들 잇단 자퇴 우려

    서울시교육청은 20일 미림여고에 대해 자율형사립고 지정 취소를 결정했다. 경문·장훈·세화여고 등 3개교는 2년 후에 다시 평가하기로 했다. 올해 평가에서 기준점인 60점에 미달해 지정 취소 청문 대상에 올랐던 4개교 가운데 미림여고는 청문 참석을 대신해 제출한 의견서에서 “평가 결과를 수용하고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따라 서울시교육청은 교육부에 미림여고에 대한 자사고 지정 취소 동의 신청을 하기로 했다. 교육부가 동의하면 미림여고는 내년부터 일반고로 전환된다. 미림여고가 일반고로 전환하면 교육청의 자사고 평가에 의해 지정 취소돼 일반고로 전환하는 첫 사례가 된다. 2012년과 2013년 동양고와 용문고가 일반고로 전환했지만, 평가가 아닌 신입생 지원 정원을 채우지 못해 스스로 자사고를 포기했다. 다만 미림여고 학부모들이 자사고 지정 취소에 반대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학생들의 자퇴가 줄을 이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시교육청은 “미림여고가 정상 운영되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학부모의 반발로 출석을 포기했다가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지자 청문에 응한 경문·장훈·세화여고는 평가상 미흡 사항에 대해 해명하고 개선 의지를 밝혔다. 시교육청은 3개교에 대해 지정 취소를 유예하고 2년 뒤 재평가하기로 했다. 조희연 교육감은 이날 브리핑에서 ‘자사고 평가를 마치면서’라는 별도의 입장문을 통해 교육부에 “고교 체제 전반의 정상화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는 초중등교육법에 따른 교육청의 자사고 재지정 평가가 무용지물이 됐다는 판단에서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사전 협의’였던 교육청의 지정 취소 요건을 ‘사전 동의’로 강화, 사실상 교육부 장관의 승인 없이는 자사고 지정 취소를 할 수 없게 했다.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동상이몽 스킨십父 논란, 큰 딸이 직접 반박해명 내놓은 까닭은?

    동상이몽 스킨십父 논란, 큰 딸이 직접 반박해명 내놓은 까닭은?

    동상이몽 스킨십父 논란 동상이몽 스킨십父 논란, 큰 딸이 직접 반박해명 내놓은 까닭은? SBS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 스킨십 아빠 큰 딸이 악플에 시달리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가운데, 제작진이 사과의 글을 올렸다. 큰딸은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방송으로 저희 가족이 너무 이상한 가족으로 평가받는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올린다”며 자신의 심경을 고백했다. 그는 “’아빠가 성폭행범이 될 것이다’, ‘돈을 받고 뽀뽀를 했으니 동생은 창녀다’, ‘큰딸이나 부인에게는 스킨십을 하지 않으면서 막내에게만 스킨십을 강요하는 것을 보아 근친상간이다’, ‘딸을 여자로 보는 것 같다’, ‘고통받는 동생과 딸을 보면서 왜 엄마와 언니는 방관만 하고 있는가’ 등등 점점 더 심한 악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처음엔 키보드 워리어들의 한풀이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분의 댓글을 보니 ‘자신의 아버님을 이렇게까지 망가뜨리는데 해명글이 올라오지 않겠냐’라는 말이 있었다. 타인이 봤을 때도 이렇게 심각한 문제를 저희 가족이 봤을 때 상처받을 거라는 생각을 왜 못하나. 한가정의 가장을 이런 식으로 무너뜨려도 되는겁니까.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 이렇게 악플을 보고 저희 아빠가 상심하고 자신이 범죄자란 생각이 들었으면 하는가”라고 분노했다. 큰딸은 “저희가 신청한 것도 아니고 방송 작가가 동생을 섭외해 나가게 됐다. 집안에서 성폭행이 일어나고 엄마와 내가 그것을 방관하고 있는 집이라면 동생이 프로그램에 출연했겠나. 아빠도 ‘스킨십 하는게 지겹다, 어렵다, 너무 많이 한다’라는 말을 촬영 내내 달고 다녔을 만큼 방송이라 만들어진 장면이 많다. 방송 작가들이 촬영내내 메시지를 보내 ‘○○ 좀 해주세요’라고 요구했다”면서 “저희 가족은 그 어떤 가족보다 화목하고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악플말고 아빠가 과한 것에 대한 따끔한 충고는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동상이몽’ 제작진 측은 19일 보도자료를 통해 “커가면서 점점 멀어지고 스킨십이 적어지는 딸이 서운하다는 아빠와 어른이 되어가는 자신을 여전히 아이로 보는 아빠를 이해가 안된다는 딸이 서로의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기회가 필요하다는 가족들의 마음이 제작진 또한 그런 마음이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녹화를 했고 출연 가족 모두 처음으로 가슴 깊은 속 마음을 솔직히 얘기하며 훈훈히 녹화를 마쳤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제작진의 의도를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 분들도 있으신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 기획의도에 맞게 아빠와 딸 각각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자 하는 출연자와 제작진의 노력이 세심히 방송으로 전달되지 못해 아쉽습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마지막으로 “또한 MC진도 녹화를 진행하면서 한쪽으로 편향되거나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녹화 분위기를 밝게 이끌기 위해 했던 이야기들이 의도와는 다르게 시청자여러분께 불편하게 전달된 점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라면서 “더욱 더 신중하고 시청자 여러분께서 보시기에 편안한 방송이 될 수 있도록 이번 기회를 거울삼아 더욱더 노력하고 앞으로도 가족들의 소통과 갈등 해결의 창구가 되는 동상이몽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사과했다. 앞서 이날 방송된 ‘동상이몽’에서는 아빠의 적극적인 스킨십이 부담스럽다는 18세 여고생의 고민이 소개됐다. 사춘기 딸의 침대에 함께 눕고 어깨동무와 입술 뽀뽀를 하려는 아빠의 행동에 고민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동상이몽 스킨십父 논란, 큰딸 “작가들이 OO 좀 해달라 요구” 제작진 입장은 다르다? [전문]

    동상이몽 스킨십父 논란, 큰딸 “작가들이 OO 좀 해달라 요구” 제작진 입장은 다르다? [전문]

    동상이몽 스킨십父 논란, “제작진 의도 다르게 받아들인 분 있다” 입장 보니[전문포함] ‘동상이몽 스킨십父 논란’ SBS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 제작진이 논란이 되고 있는 스킨십 부녀 에피소드에 대해 공식 사과 했다. 19일 SBS 동상이몽 제작진은 홈페이지에 지난 18일 방송된 스킨십 부녀 에피소드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동상이몽 제작진은 해당 글에서 “이 가족은 처음 취재 단계부터 화목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건강한 가족이라는 것을 제작진 모두 느꼈습니다. 단지, 유일하게 스킨십문제로 의견차이가 있었습니다”고 전했다. 이어 “커가면서 점점 멀어지고 스킨십이 적어지는 딸이 서운하다는 아빠와 어른이 되어가는 자신을 여전히 아이로 보는 아빠를 이해가 안된다는 딸이 서로의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기회가 필요하다는 가족들의 마음이 제작진 또한 그런 마음이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녹화를 했고 출연 가족 모두 처음으로 가슴 깊은 속 마음을 솔직히 얘기하며 훈훈히 녹화를 마쳤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아빠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딸이 ‘자칫 아빠가 서운해할까를 가장 걱정하는 모습과 다시 태어나도 아빠의 딸로 태어나고 싶다는 말에서’ 아빠에 대한 속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녹화를 통해 아빠도 훌쩍 어른스러워진 딸의 속깊은 생각을 통해 딸에 대한 애정표현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의미있는 시간이 됐습니다”고 전했다. 이어 “그런데 제작진의 의도를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 분들도 있으신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 기획의도에 맞게 아빠와 딸 각각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자 하는 출연자와 제작진의 노력이 세심히 방송으로 전달되지 못해 아쉽습니다”라고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마지막으로 “또한 MC진도 녹화를 진행하면서 한쪽으로 편향되거나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녹화 분위기를 밝게 이끌기 위해 했던 이야기들이 의도와는 다르게 시청자여러분께 불편하게 전달된 점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라면서 “더욱 더 신중하고 시청자 여러분께서 보시기에 편안한 방송이 될 수 있도록 이번 기회를 거울삼아 더욱더 노력하고 앞으로도 가족들의 소통과 갈등 해결의 창구가 되는 동상이몽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고 사과했다. 앞서 18일 방송된 ‘동상이몽’에서는 아빠의 적극적인 스킨십이 부담스럽다는 18세 여고생의 고민이 소개됐다. 사춘기 딸의 침대에 함께 눕고 어깨동무와 입술 뽀뽀를 하려는 아빠의 행동에 고민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방송이 끝난 후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아빠가 성추행하는 거 아니냐’ 등의 비판이 나왔고 심각한 고민을 해결해줄 패널 중 전문가가 없다는 점이 지적됐다. 이후 스킨십 부녀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해당 가족의 큰 딸이 심경을 고백하기도 했다. 큰딸은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방송으로 저희 가족이 너무 이상한 가족으로 평가받는 것 같는다”라면서 “’아빠가 성폭행범이 될 것이다’, ‘돈을 받고 뽀뽀를 했으니 동생은 창녀다’, ‘큰딸이나 부인에게는 스킨십을 하지 않으면서 막내에게만 스킨십을 강요하는 것을 보아 근친상간이다’, ‘딸을 여자로 보는 것 같다’, ‘고통받는 동생과 딸을 보면서 왜 엄마와 언니는 방관만 하고 있는가’ 등등 점점 더 심한 악플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악플에 대한 괴로움을 토로했다. 이어 큰딸은 “저희가 신청한 것도 아니고 방송 작가가 동생을 섭외해 나가게 됐다. 집안에서 성폭행이 일어나고 엄마와 내가 그것을 방관하고 있는 집이라면 동생이 프로그램에 출연했겠나”라며넛 “아빠도 ‘스킨십 하는게 지겹다, 어렵다, 너무 많이 한다’라는 말을 촬영 내내 달고 다녔을 만큼 방송이라 만들어진 장면이 많다. 방송 작가들이 촬영내내 메시지를 보내 ‘○○ 좀 해주세요’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동상이몽’ 제작진의 공식입장 전문] 7월 18일 방송분에 대해 제작진의 입장을 말씀드립니다. 동상이몽은 매주, 부모가 말하는 자녀의 모습과 자녀가 말하는 부모의 모습을 통해 각자의 입장 차이를 보여줌으로서,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서로의 간극을 좁혀보고, 막혀있는 가족 간의 단절을 소통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저희 제작진은 직접 신청 혹은 섭외로 출연신청을 받고,출연여부 결정전에 그 가족을 직접 만나 미리 심층인터뷰를 한 후, 출연 여부를 결정합니다. 이 가족은 처음 취재 단계부터 화목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건강한 가족이라는 것을 제작진 모두 느꼈습니다. 단지, 유일하게 스킨십문제로 의견차이가 있었습니다. 커가면서 점점 멀어지고 스킨십이 적어지는 딸이 서운하다는 아빠와 어른이 되어가는 자신을 여전히 아이로 보는 아빠를 이해가 안된다는 딸이 서로의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기회가 필요하다는 가족들의 마음이 제작진 또한 그런 마음이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녹화를 했고 출연 가족 모두 처음으로 가슴 깊은 속 마음을 솔직히 얘기하며 훈훈히 녹화를 마쳤습니다. 아빠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딸이 ‘자칫 아빠가 서운해할까를 가장 걱정하는 모습과 다시 태어나도 아빠의 딸로 태어나고 싶다는 말에서’ 아빠에 대한 속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녹화를 통해 아빠도 훌쩍 어른스러워진 딸의 속깊은 생각을 통해 딸에 대한 애정표현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의미있는 시간이 됐습니다. 그런데 제작진의 의도를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 분들도 있으신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 기획의도에 맞게 아빠와 딸 각각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자 하는 출연자와 제작진의 노력이 세심히 방송으로 전달되지 못해 아쉽습니다. 또한 MC진도 녹화를 진행하면서 한쪽으로 편향되거나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녹화 분위기를 밝게 이끌기 위해 했던 이야기들이 의도와는 다르게 시청자여러분께 불편하게 전달된 점을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더불어 좋은 의도로 함께해주신 가족분들과 출연진들께도 죄송한 마음 전합니다. 더욱 더 신중하고 시청자 여러분께서 보시기에 편안한 방송이 될 수 있도록 이번 기회를 거울삼아 더욱더 노력하고 앞으로도 가족들의 소통과 갈등 해결의 창구가 되는 동상이몽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진=SBS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 방송캡처(동상이몽 스킨십父 논란)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동상이몽 스킨십父 논란, 제작진 입장 들어보니?

    동상이몽 스킨십父 논란, 제작진 입장 들어보니?

    ‘동상이몽 스킨십父 논란’ SBS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 제작진이 논란이 되고 있는 스킨십 부녀 에피소드에 대해 공식 사과 했다. 19일 SBS 동상이몽 제작진은 홈페이지에 지난 18일 방송된 스킨십 부녀 에피소드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동상이몽 제작진은 해당 글에서 “이 가족은 처음 취재 단계부터 화목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건강한 가족이라는 것을 제작진 모두 느꼈습니다. 단지, 유일하게 스킨십문제로 의견차이가 있었습니다”고 전했다. 이어 “커가면서 점점 멀어지고 스킨십이 적어지는 딸이 서운하다는 아빠와 어른이 되어가는 자신을 여전히 아이로 보는 아빠를 이해가 안된다는 딸이 서로의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기회가 필요하다는 가족들의 마음이 제작진 또한 그런 마음이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녹화를 했고 출연 가족 모두 처음으로 가슴 깊은 속 마음을 솔직히 얘기하며 훈훈히 녹화를 마쳤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아빠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딸이 ‘자칫 아빠가 서운해할까를 가장 걱정하는 모습과 다시 태어나도 아빠의 딸로 태어나고 싶다는 말에서’ 아빠에 대한 속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녹화를 통해 아빠도 훌쩍 어른스러워진 딸의 속깊은 생각을 통해 딸에 대한 애정표현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의미있는 시간이 됐습니다”고 전했다. 이어 “그런데 제작진의 의도를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 분들도 있으신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 기획의도에 맞게 아빠와 딸 각각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자 하는 출연자와 제작진의 노력이 세심히 방송으로 전달되지 못해 아쉽습니다”라고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마지막으로 “또한 MC진도 녹화를 진행하면서 한쪽으로 편향되거나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녹화 분위기를 밝게 이끌기 위해 했던 이야기들이 의도와는 다르게 시청자여러분께 불편하게 전달된 점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라면서 “더욱 더 신중하고 시청자 여러분께서 보시기에 편안한 방송이 될 수 있도록 이번 기회를 거울삼아 더욱더 노력하고 앞으로도 가족들의 소통과 갈등 해결의 창구가 되는 동상이몽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고 사과했다. 앞서 18일 방송된 ‘동상이몽’에서는 아빠의 적극적인 스킨십이 부담스럽다는 18세 여고생의 고민이 소개됐다. 사춘기 딸의 침대에 함께 눕고 어깨동무와 입술 뽀뽀를 하려는 아빠의 행동에 고민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방송이 끝난 후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아빠가 성추행하는 거 아니냐’ 등의 비판이 나왔고 심각한 고민을 해결해줄 패널 중 전문가가 없다는 점이 지적됐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동상이몽 스킨십父 논란 악플에 정면대응 “제작진 입장은?”

    동상이몽 스킨십父 논란 악플에 정면대응 “제작진 입장은?”

    동상이몽 스킨십父 동상이몽 스킨십父 큰 딸 악플에 정면대응 “제작진 입장은?” SBS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 스킨십 아빠 큰 딸이 악플에 시달리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가운데, 제작진이 사과의 글을 올렸다. 큰딸은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방송으로 저희 가족이 너무 이상한 가족으로 평가받는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올린다”며 자신의 심경을 고백했다. 그는 “’아빠가 성폭행범이 될 것이다’, ‘돈을 받고 뽀뽀를 했으니 동생은 창녀다’, ‘큰딸이나 부인에게는 스킨십을 하지 않으면서 막내에게만 스킨십을 강요하는 것을 보아 근친상간이다’, ‘딸을 여자로 보는 것 같다’, ‘고통받는 동생과 딸을 보면서 왜 엄마와 언니는 방관만 하고 있는가’ 등등 점점 더 심한 악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처음엔 키보드 워리어들의 한풀이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분의 댓글을 보니 ‘자신의 아버님을 이렇게까지 망가뜨리는데 해명글이 올라오지 않겠냐’라는 말이 있었다. 타인이 봤을 때도 이렇게 심각한 문제를 저희 가족이 봤을 때 상처받을 거라는 생각을 왜 못하나. 한가정의 가장을 이런 식으로 무너뜨려도 되는겁니까.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 이렇게 악플을 보고 저희 아빠가 상심하고 자신이 범죄자란 생각이 들었으면 하는가”라고 분노했다. 큰딸은 “저희가 신청한 것도 아니고 방송 작가가 동생을 섭외해 나가게 됐다. 집안에서 성폭행이 일어나고 엄마와 내가 그것을 방관하고 있는 집이라면 동생이 프로그램에 출연했겠나. 아빠도 ‘스킨십 하는게 지겹다, 어렵다, 너무 많이 한다’라는 말을 촬영 내내 달고 다녔을 만큼 방송이라 만들어진 장면이 많다. 방송 작가들이 촬영내내 메시지를 보내 ‘○○ 좀 해주세요’라고 요구했다”면서 “저희 가족은 그 어떤 가족보다 화목하고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악플말고 아빠가 과한 것에 대한 따끔한 충고는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동상이몽’ 제작진 측은 19일 보도자료를 통해 “커가면서 점점 멀어지고 스킨십이 적어지는 딸이 서운하다는 아빠와 어른이 되어가는 자신을 여전히 아이로 보는 아빠를 이해가 안된다는 딸이 서로의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기회가 필요하다는 가족들의 마음이 제작진 또한 그런 마음이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녹화를 했고 출연 가족 모두 처음으로 가슴 깊은 속 마음을 솔직히 얘기하며 훈훈히 녹화를 마쳤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제작진의 의도를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 분들도 있으신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 기획의도에 맞게 아빠와 딸 각각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자 하는 출연자와 제작진의 노력이 세심히 방송으로 전달되지 못해 아쉽습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마지막으로 “또한 MC진도 녹화를 진행하면서 한쪽으로 편향되거나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녹화 분위기를 밝게 이끌기 위해 했던 이야기들이 의도와는 다르게 시청자여러분께 불편하게 전달된 점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라면서 “더욱 더 신중하고 시청자 여러분께서 보시기에 편안한 방송이 될 수 있도록 이번 기회를 거울삼아 더욱더 노력하고 앞으로도 가족들의 소통과 갈등 해결의 창구가 되는 동상이몽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사과했다. 앞서 이날 방송된 ‘동상이몽’에서는 아빠의 적극적인 스킨십이 부담스럽다는 18세 여고생의 고민이 소개됐다. 사춘기 딸의 침대에 함께 눕고 어깨동무와 입술 뽀뽀를 하려는 아빠의 행동에 고민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