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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밀한 곳에 숨기다니…” 민망한 마약 반입 미수 사건

    마약의 운반방법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남미 베네수엘라에서 여자들이 은밀한 곳에 마약을 숨겨 로데오 교도소로 들어가다가 검문에 걸렸다. 여자경찰들이 확인한 결과 두 사람은 생각만 해도 민망한 방법으로 마약을 숨겨 검문을 통과하려 했다. 붙잡힌 여자들이 교도소에 몰래 갖고 들어가려 한 건 코카인이다. 두 사람은 이를 위해 성인용품으로 판매되는 남자의 성기 모형을 이용했다. 모형에 코카인을 집어넣은 뒤 은밀한 곳에 설치(?)하고 교도소에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엉기적 엉기적 불편하게 걷는 모습은 의심을 살만 했다. 교도관들은 여경을 통해 두 사람을 검색하게 했다. 두 여자의 은밀한 곳에서 발견된 남성 모형에는 코카인이 들어 있었다. 베네수엘라 경찰은 “여자 중 한 명은 별로로 포장한 3개의 코카인을, 또 다른 한 명은 205g 코카인을 숨겨 소지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현지 언론은 “매우 민망한 방법으로 코카인을 반입하려 한 시도가 적발되면서 날로 진화(?)하는 반입 수법에 경찰이 당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부고] 자기계발 전문가 ‘익숙한 것과의 결별’ 저자 구본형씨

    자기계발 전문가이자 베스트셀러 저자인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대표가 13일 폐암으로 별세했다. 59세. 변화경영전문가와 베스트셀러 작가, 직장인이 가장 만나고 싶은 강연가 1위 등 다양한 수식어를 가진 고인은 인문학과 경영학을 접목시켜 새로운 경영비전을 제시하는 ‘변화경영’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냈다. 1998년 낸 첫 저서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개인과 조직의 혁명적 변화를 통해 위기 극복의 길을 찾으라고 강조하면서 국내 서점가에 자기계발서 돌풍을 일으켰다. 충남 공주 출신으로 서강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역사학과 경영학을 전공한 고인은 한국IBM에서 20여년간 근무하고 IBM 아시아 태평양 지역 맬컴 볼드리지 평가관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윤희씨와 두딸이 있다. 빈소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6일 오전. (02)2258-5940.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싸우기 싫은 무사가 싸워야 하는 것처럼 우리 삶도 그 간극을 어떻게 좁혀나갈지…”

    “싸우기 싫은 무사가 싸워야 하는 것처럼 우리 삶도 그 간극을 어떻게 좁혀나갈지…”

    무사(武士)다. 손에 칼을 쥐었다. 복수를 숙명처럼 여기고, 목소리를 낮게 깐 채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고 해야 마땅한 처지다. 그런데 이 무사, 싸우는 게 싫다. 용맹함으로 이름 떨치던 아버지 ‘찬솔아비’는 살아있을 때 싸우라고 강요했고, 아비가 죽자 어머니 ‘아란부인’은 복수를 간청한다. 그를 만나는 무사마다 칼을 뽑아들고, 마을처녀 ‘초희’는 지상의 왕 ‘검은등’에게서 자신을 해방시켜달라고 요구한다. “내가 아닌 다른 것 때문에 변하고 싶지 않다”는 ‘갈매’에게 무사의 길은 운명이면서 짐이자 압박이다. 국립극단의 올해 첫 창작극 ‘칼집 속에 아버지’는 칼싸움하는 무사가 되고 싶지 않은 갈매의 여정을 따라가며 사회적 억압과 극복을 이야기한다. 갈매만 맘고생이 심한 줄 알았더니, 배우의 몸고생도 만만치 않다. 서울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 소극장판에서 만난 김영민(42)은 손가락마다 상처투성이다. “연습할 때는 몰랐는데 끝나고 보면 까져 있다. 어제는 어디에 부딪혔는지 가슴 쪽에 통증이 있다”면서 배시시 웃었다. 찬솔아비(김정호)와는 몸싸움을 하면서 바닥을 구르기 일쑤다. 흑룡강(윤상화), 백호(박완규)와 칼싸움을 하면서는 머리 위로, 발 아래로, 배를 향해 날아드는 칼을 날렵하게 막고 피한다. 배우들 호흡이 척척 맞아떨어져 관객들은 굉장히 흥미진진하겠지만, 배우는 한 장면이 끝날 때마다 지쳐 쓰러질 지경이다. ‘햄릿’, ‘에쿠우스’, ‘에이미’, ‘M버터플라이’…. 다양한 작품을 한 김영민은 별별 경험을 다했지만, 이렇게 과격한 칼싸움·몸싸움은 처음이다. ‘연극계 아이돌’이라는 수식어가 여전히 어울리는 잘생긴 얼굴로 그는 “이젠 40대라 몸 쓰는 게 힘들다”는 농을 던지면서도 꽤 즐겁다고 했다. “고연옥 작가가 쓴 극본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강량원 연출과는 처음 만난 건데, 작업 과정이 좀 달랐죠. 보통은 연습 전에 대본 리딩을 어느 정도 하는데 강 연출은 바로 연습에 들어가더라고요. 배우들과 연습을 하면서 인물과 상황을 함께 만들어가고, 느끼면서 체득하는 식이죠.” 싸우기 싫은 무사가 싸워야 하는 운명에 놓인, 갈매의 딜레마는 김영민에게도 고민을 던졌다. “저 역시 부딪히거나 싸우길 원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어쩔 수 없이 싫은 소리를 하게 되면 뒤돌아서 무척 후회하죠. 갈매처럼 당혹한 상황에 맞닥뜨린 것은 아니지만, 원래 우리가 사는 세상도 싸우고 투쟁하고, 때론 피비린내날 정도로 잔인하잖아요. 그런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싸워야 하나, 등져야 하나. 계속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그는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간극, 그 틈을 어떻게 좁혀갈 것인가가 갈매의 숙제이자 내가 풀어야할 숙제”라고 했다. 복수는 고통의 연속이다. 그래서 어쩌면 극이 하염없이 무거워지고, 갈매의 처지가 너무 처절하게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꽤 코믹한 설정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동작만큼 날쌔게 입을 나불대는 흑룡강과 제 입을 슉슉 소리를 내며 칼싸움을 하는 엉뚱한 백호는 진지한데 웃긴다. “배가 불렀다”고 꾸짖는 찬솔아비에게 “먹고는 살겠죠”라고 받아치거나, 연인에게 안긴 듯한 자세로 “날 좀 죽여주시오”라고 어울리지 않는 말을 내뱉는 갈매가 또 그렇다. 꽤 진중한 역할을 많이 했던 그에게서 엿보이는 장난기 어린 표정 변화가 색다른 느낌이다. 그는 “재미있고 쉽게 풀어내면서 관객에게 충분히 즐기고 판단할 여지를 준다는 게 공연의 장점”이라고 꼽았다. 판단의 시작점은 ‘칼’이다. 칼이란 무엇인가. 싸움이나 투쟁 그 자체가 될 수도 있고, 세상과 맞설 수 있는 무기라는 상징일 수도 있다. “나 이제야 돌아왔어요”라는 갈매의 마지막 대사 역시 판단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될 수도 있겠다. 아버지에게 하는 말인지, 갈매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이제 무사로서 살겠다는 것인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것인지. “공연이 끝나면 많은 관객은 이렇게 느낄지도 모르겠어요. 무사의 시대는 끝난 것이 아니라고.” 연극 ‘칼집 속에 아버지’는 26일부터 5월 12일까지 서울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 오른다. 26·27일 공연은 프리뷰. 글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사진 이언탁 기자 utl@seoul.co.kr
  • 비겁하고 썩었다, 도덕 교과서는 죽었다

    초등학생들이 욕을 입에 달고 다닌다. 청소년들은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고, 거리에 침을 뱉기 일쑤다. 부모는 식당에서 자녀가 다른 손님들이 조용히 밥 먹는 식탁 사이를 휘젓고 다녀도 제지하지 않는다. 권력자의 부정부패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도덕과 국민윤리를 배웠지만, 그와 동떨어진 채 살아가는 한국의 현실이다. ‘도덕 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김대용 지음, 살림터 펴냄)는 이런 ‘도덕적이지 않은’ 상황의 원인으로 도덕 교과서를 꼽고 문제점을 조목조목 꼬집는다. 저자는 “도덕 교육은 필요하다”면서도 도덕 교과서의 관점 때문에 비판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선과 악을 철저하게 구분하는 시각이 대표적이다. “좋은 그림은 옳은 그림이어야 하고, 또 그것은 바른 그림이어야 한다”(중학교 도덕 1)는 기술은 과연 ‘옳고 바른’ 것인가. 예술을 도덕이라는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느냐는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 그런데 예술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구분하려 든다. 중학교 도덕 3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시장 입구에서 휴지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뇌성마비 2급 장애인은 다른 장애인을 돕고 싶어한다. 늘 즐겁고 행복한 것은 바람직한 가치를 추구하면서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교과서 속 예화 대부분이 “보통 사람으로서는 실천이 어려운, 거의 불가능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개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개인의 행복추구를 위한 “국가의 적극적인 노력”을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니 “국가가 나에게 소중한 존재이고 많은 혜택을 주기 때문에 내가 국가에 대한 도리와 의무를 다해야 국가와 나의 관계가 온전해진다”(중학교 도덕 2)고 애국심을 강조해 가르치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한다. 이런 기술은 결국 국가를 비판하고 감시할 ‘시민’의 책임과 의무를 간과하고, 국가의 과도한 공권력 사용을 용인하는 ‘맹목적 국민의 육성’으로 환원될 수 있다. 책은 도덕 교과서의 어떤 부분이 사회적 강자의 편에 서고 약자에게 희생을 요구하는지, 어떻게 청소년 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부패 불감증을 키우는지 낱낱이 설명한다. “대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저자는 “그동안 학계에서 이루어낸 성과를 교과서에 담으면 된다”고 했다. 저자는 “아무리 좋은 대안을 제시해도 도덕과에서 수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지적하고 “현시점에서는 도덕 교과서의 문제를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도덕 교과서를 바꾸어야 한다는 인식을 확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학술지 등에 발표한 글들이라 형식은 다소 딱딱하지만 읽기 수월하고 내용을 명쾌하게 전달한다. 1만 4000원.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체호프 연극이 지루하다는 편견 깨고 싶다”

    “체호프 연극이 지루하다는 편견 깨고 싶다”

    “연극을 통해 무대에서 다른 사람들(배우)도 내(관객)가 지금 느끼는 감정과 고민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연극의 핵심이자 역할이다.” 러시아의 국보급 연출가 레프 도진(69)의 연극철학이다. 연극 ‘세 자매’ 공연을 위해 내한한 그는 “온갖 기술 속에서 사는 현대인에게 극장은 자신의 내면을 느낄 수 있는 마지막 남은 공간”이라면서 “관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치닫는 연극이 많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는 1983년 이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말리드라마극장의 예술감독을 맡으면서 극장을 세계적 수준으로 키웠고, 러시아 연극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황금마스크상(3회)과 세계 연극계가 인정하는 유럽연극상을 받았다. 그에게 세계 연극계의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것은 이런 자신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연극을 내놓으면서도 뇌리에 박히는 ‘무엇’을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 ‘세 자매’는 그 철학에 충실했다. 안톤 체호프(1860∼1904)가 1900년에 완성한 ‘세 자매’는 러시아의 소도시에 사는 세 자매의 사랑과 배신, 좌절을 그린다. 어릴 때 살던 모스크바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과 현실도피의 갈증을 뱉어내는 세 자매, 무능력한 오빠 안드레이와 불평을 늘어놓는 아내 나타샤, 불행한 결혼에 괴로워하는 베르쉬닌, 세상을 냉소적으로 보는 체부트킨 등 불만으로 가득한 사람들뿐이다. 도진은 “체호프의 연극에 나오는 인물들은 지루하고 나태하며 삶에 대한 의욕이 없다는 편견을 깨고 싶었다”면서 “작품 속 인물 하나하나가 인간은 왜 태어나고, 왜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한다”고 했다. 그래서 무대를 단순화해 인물에 집중했다. 무대 장치는 멀찍이 보이는 2층 집의 벽이 전부다. 1층 현관과 창 4개를 통해 관객은 남의 집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대부분의 상황이 집 밖에서 이루어진다. 이들에게 집은, 떠나고 싶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창틀에 앉아 또는 올라서서 자신의 현실을 한탄하고 미래는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이들에게 희망은 없다. 열여덟 살에 결혼한 마샤는 베르쉬닌 중령과 사랑에 빠졌지만, 중령의 소속부대가 도시에서 철수하면서 사랑은 종지부를 찍는다. 막내 이리나는 투젠바흐와 결혼해 모스크바에 가기로 했지만 그는 결투로 사망했다. 이들에게 설 자리는 없다는 듯, 집의 벽은 3막까지 점점 객석 가까이로 다가온다. 4막에 이르면 이들은 어느새 집밖으로 밀려나 있다. 그래도 자매들은 읊조린다.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중략)조금만 더 지나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것만 알 수 있다면. 그걸 알 수 있다면.” 그와 동시에 벽면은 빠르게 뒤로 물러나 처음 자리로 돌아간다. 숨통을 틔워 주는 것일까, 괴로운 인생의 반복일까. 해석은 관객의 몫이다. 무대 한가운데에 나무판을 놓고 자유자재로 활용하면서 7시간 30분(실제 공연은 5시간 30분)을 지루하지 않게 끌고간 ‘형제자매들’(2006년 공연)이나, 독특한 말투와 코믹한 연기로 큰 호응을 받은 ‘바냐 아저씨’(2010년 공연)에 비한다면 이번 ‘세 자매’는 그 ‘무엇’이 없어 다소 평범해 보인다. 연출은 정공법을 썼고,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조화로 3시간짜리 ‘세 자매’를 끌고 나간다. 러시아어 대사는 자막으로 처리됐다.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이번엔 아이·어른 따로 즐기세요

    이번엔 아이·어른 따로 즐기세요

    의정부예술의전당이 주최하는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가 새달 4~19일 의정부 시내 곳곳에서 열린다. 올해로 12회째를 맞는 이 축제는 수준 높은 국내외 공연을 선보이면서 경기북부·서울 시민들이 찾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 올해는 주빈국인 캐나다 퀘백과 독일, 호주, 프랑스 등 5개 국가가 참여한 초청작 7개와 자체 제작 3개 작품으로 구성했다. 홍승찬 예술감독은 “이전까지는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을 중심으로 선정했다면 올해는 연령층을 구분하고 명확한 콘셉트를 가진 작품을 선정했다”고 소개했다. 올해 주제는 뒤섞고(Remix) 바꾸고(Reverse) 재생(Refresh & Reborn)시킨다는 의미로, ‘알’(R)로 정했다. 홍 예술감독은 개막작 ‘칼리굴라_리믹스’(왼쪽·4~5일, 캐나다)를 “축제의 본질을 가장 충실하게 보여 주는 작품”이라며 자신 있게 추천했다. 로마제국의 폭군으로 불리는 칼리굴라가 가진 내면의 고통과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극 중 칼리굴라는 화자이자 연출자, 지휘자 등 1인 3역을 한다. 칼리굴라의 손짓에 따라 배우들이 연기를 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형식은 음악극의 본질에 가장 가깝다는 설명이다. 폭력적이고 변태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을 그리고 있어 대사와 묘사가 덩달아 다소 과격하다. 19세 이상 관람 등급을 받은 이유다. 폐막작인 ‘인코디드’(오른쪽·17~18일, 호주)에서는 미디어와 무용이 만났다.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애니메이션 영상과 배우들의 몸짓이 감탄을 자아낸다. 36개월~9세 아이들을 위한 ‘바이올린 할머니’(4~5일, 캐나다)는 바이올린이 가진 다양한 소리를 들려주면서 점점 바흐, 드보르작 등 완성된 클래식 음악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내용이다. 음악보다는 소리, 연기보다는 몸짓에 가까운 것들이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중력의 법칙을 깬 ‘레오’(11~12일, 독일·캐나다)는 매우 흥미롭다. 비디오 영상 프로젝션을 이용해 배우는 마치 위아래가 뒤바뀐 듯한 무대에서 다양한 움직임을 만들어 낸다. 외로운 남자 레오의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에 공감하는 사람이 꽤 많을 터. 실로폰 오케스트라를 도구로 일상의 스트레스를 노래와 춤으로 바꾸는 야외공연 ‘콩플레 만딩그’(11~12일, 프랑스), 라이브 콘서트를 표방한 ‘뮤지컬 오디션’(17~19일, 한국), 미디어 상상놀이극 ‘거인의 책상’(17~18일, 한국) 등도 볼 만하다. 주최 측은 제작공연으로 ‘이자람의 억척가’(10~11일)를 비롯해 지난해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에서 우수상을 받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8~9일), 오디션으로 선발한 시민배우 37명이 만드는 합창뮤지컬 ‘11마리 고양이’(12일)를 선보인다. 올해 명예위원장을 맡은 가수 패티김이 사전축하공연(4~5일)을 펼친다. 19일에는 소리꾼 장사익의 ‘소리판’과 홍보대사 팝핀현준·박애리의 콘서트가 나란히 열린다. 이 밖에 자유참가작, 심포지엄과 전시, 찾아가는 공연 등 다양한 부대행사를 준비했다. (031)828-5894~5.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서울연극제, 공식참가 작품 등 44편…사회 조명한 연극 많아

    제34회 서울연극제가 오는 15일부터 5월 12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예술극장, 아르코예술극장, 예술공간 서울,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펼쳐진다. 이번 연극제는 공식참가작, ‘미래야 솟아라’ 부문 참가작, 기획초청작 등 44편을 준비했다. 공식참가작에는 사회문제를 들여다볼 만한 작품이 즐비하다. 극단 연우무대의 ‘일곱집매’(24~28일)는 경기 평택 미군부대 근처에 살던 ‘양공주’를 다룬다. 과거 ‘양공주’로 손가락질받던 여성들의 삶이 과연 자신이 선택한 것인지 사회의 요구였는지를 묻는 한편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동남아에서 한국에 온 여성에게서 기지촌 문제가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임을 이야기한다. 극단 창의 ‘인간대포쇼’(25일~5월 5일)와 서울연극앙상블·극단 인어의 ‘불멸의 여자’(17~21일)는 약자에게 더욱 강하게 가해지는 폭력을 그렸다. 극단 지구의 ‘일지춘심을 두견이 알랴’(19~26일), 극단 유목민의 ‘끝나지 않은 연극’(5월 2~5일)은 각각 과거의 정치와 꿈을 통해 현실 정치를 돌아보게 한다. 아울러 로봇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조명한 극단 거미의 ‘알유알’(18~21일), 치유를 이야기하는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트라우마 수리공’(5월 9~12일), 자신을 부유하다고 착각하며 사는 사람들을 그린 극단 대학로극장의 ‘평상’(24~28일)이 무대에 오른다. 예술공간 서울에서 열리는 ‘미래야 솟아라’는 젊은 연극인들의 창작 역량을 엿보는 무대다. 극단 후암의 ‘미디어 콤플렉스’(20~21일)와 극단 종이로 만든 배의 ‘락앤롤 맥베스’(5월 4~5일)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서로 다른 형식으로 재조명했다. 극단 원형무대의 ‘삿포르에서의 윈드서핑’(23~25일), 정의로운천하극단 걸판의 ‘세상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널 지켜줄 거야 친구야’(27~28일), 아날로그 앤 디지털 씨어터의 ‘미래도둑’(30일~5월 2일), 극단 가변의 ‘끔찍한 메데이아의 시’(5월 7~9일), 극단 다의 ‘어른의 시간’(5월 11~12일) 등은 인간 내면과 관계를 되돌아보게 한다. 지난해 ‘미래야 솟아라’ 부문 작품상 수상작인 ‘살아남은 자들’(극단 창세), 전국연극제 대상 수상작인 ‘선녀씨 이야기’(극단 예도), 차세대 연출가 초청작인 ‘소외’(무브먼트 당당)도 공연한다. 40대 중견 배우 100명이 자신이 연기한 공연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주고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배우 100인의 독백’(5월 1~5일)과 바자회, 다문화 축제 등 부대행사도 열린다. (02)765-7500.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치유·기원의 굿, 다양하게 즐겨요

    치유·기원의 굿, 다양하게 즐겨요

    구시대적 풍습이나 미신이라고 치부하기도 하지만, 굿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치유법이다. 망자의 넋을 달래고, 마을과 개인의 행복을 기원하는 굿을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공연이 줄줄이 열린다. 서울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는 오는 26일 오후 7시 30분 ‘서도소리 불후의 명곡 배뱅이굿’을 공연한다. 서도소리 보유자인 이은관(96) 명창과 제자 박정욱(48)이 ‘배뱅이굿’을 완창하는 자리다. 평양식 판소리 ‘배뱅이굿’은 “왔구나, 왔소이다. 황천 갔던 배뱅이 혼신이 오늘에야 왔소이다”라는 구절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갑자기 죽은 무남독녀 배뱅이를 그리워한 최 정승 부부가 팔도무당을 불러 굿판을 벌인다는 내용의 ‘배뱅이굿’에는 사랑과 사회 비판, 풍자가 녹아 있다. 3만~5만원. (02)2232-5749. 오는 21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KB청소년하늘극장에서는 ‘서울 굿(Good) 놀이’ 한마당이 펼쳐진다. 경기민요 준보유자 김혜란(64) 명창을 중심으로 국악인 30여명이 출연해 소리극을 꾸민다. 공연에서는 서울굿의 열두 거리를 압축해 보여 주고, 경기민요와 각설이 타령, 재담 등을 섞어 신명난 공연을 만든다. 전석 초대. 010-6233-7948. 국립 남도국악원은 10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기획공연 ‘씻김굿’을 올린다. 생전의 원한을 깨끗이 씻는 ‘진도 씻김굿’과 출상 전날 밤샘하면서 슬픔과 고통을 웃음으로 승화하는 ‘다시래기’를 접목했다. 박병원(68) 진도씻김굿 보유자가 특별 출연한다. 5000원. (02)580-3300. 연희집단 ‘더(The) 광대’는 10~11일 오후 8시 서울 중구 필동 서울남산국악당에서 ‘굿모닝 광대굿’을 한판 벌인다. 부정풀이, 씻김, 축원 등 굿의 형식에 흥겨운 놀이를 결합했다. 2만원. (02)399-1111.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관객이 적극 참여해야 알 수 있는 공연”

    “관객이 적극 참여해야 알 수 있는 공연”

    “나는 과학자가 아니다. 무엇을 해결하거나 답을 주려고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주술사에 가깝다. 관객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공연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현대무용의 살아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윌리엄 포사이스(64)는 9일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자신의 안무 세계를 에둘러 표현했다. 처음 한국을 찾은 그는 플래시 세례가 쏟아지자 눈을 껌뻑이면서 “잠깨, 잠깨”라고 농을 던지는가 하면 기자들의 질문에 휴대전화로 참고 자료를 직접 찾아주는 등 여유와 친절함을 보였다. 하지만 그의 작품 ‘헤테로토피아’(2006)는 썩 친절하지 않다. 포사이스는 작품에 대해 “듣기는 쉽지만 보기는 힘들다”고 소개했다. 미셸 푸코의 논문 ‘다른 공간들’(1967)에서 개념을 차용한 이 작품은 우리가 대상을 볼 때 실체가 아닌 기존의 지식과 편견으로 인식한다는 것을 표현한다. 공연장은 무대와 객석의 구분 없이 공간 두 개로 나뉘어 있다. 한 공간에서는 비명과 소음이 난무하고 다른 한쪽은 조용하다. “한 공간에서 무용수가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콘서트나 연극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움직임의 의미는 다른 공간을 가야 비로소 이해된다. 공연 전반에 매우 많은 요소와 구조가 중첩되는데 두 공간을 적극적으로 오가야 그 ‘화음’을 알게 된다.” ‘해체와 조화’는 그가 꾸준히 추구해 온 무용철학이기도 하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발레단 예술감독(1984~2004년) 시절 토슈즈를 고집하면서도 발레 동작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시도로 현대발레의 발전을 이끌었다.영국 로열발레단,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 등 세계 유명 발레단이 그를 주요 레퍼토리 안무에 초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005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무용단을 만들어 더욱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현대무용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 대표작이 ‘헤테로토피아’다. “기존의 발레와는 다르게 어떻게 표현할 것이가를 고민하면서 발레의 변화와 확장을 시도한다”는 그는 “나와 무용수들은 작품에서 끊임없이 대화와 토의를 하면서 그것을 완성시켜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포사이스의 ‘헤테로토피아’는 오는 14일까지 경기 성남시 야탑동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소극장 “객석 70% 채워야 본전”… 정부지원은 별 따기

    소극장 “객석 70% 채워야 본전”… 정부지원은 별 따기

    최근 공연계를 식겁하게 한 일이 있었다. 서울 종로구 동숭동의 뮤지컬센터에서 공연 개막을 사흘 앞두고 공연장 출입이 전면 통제된 것이다. 시공사와 시행사의 갈등이 고조된 탓이다. 이 건물 시공사인 D기업은 건물주 A기업에서 받지 못한 공사비 미지급분 140억여원에 대해 1일부터 유치권을 행사하겠다고 고지했고, 배우와 스태프들의 공연장 출입을 전면 통제했다. 제작사 측이 서울중앙지법에 낸 공연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져 다행히 공연은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결정으로 공연장 사용이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재판부가 “사용방해의 금지를 명하는 기간은 뮤지컬 공연의 종료일까지로 한정한다”고 덧붙였기 때문이다. 지난달 대학로 학전그린소극장이 문을 닫았다. 연출가 김민기가 이끄는 극단 학전의 보금자리로, 17년 동안 5000회가 넘는 공연을 열어 온 대학로의 명소였다. ‘지하철 1호선’을 비롯해 ‘의형제’, ‘빨래’까지 다양한 뮤지컬을 올리면서 소극장 뮤지컬의 산실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래서 단순히 극장이 하나 사라진 것쯤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소극장을 중심으로 생성된 대학로에서 소극장 학전이 사라지는 것은 분명 대학로에 불어닥친 또 하나의 위기 신호로 보는 시각이 많다. 연극계에서는 “1920년대 신연극이 시작된 이후 계속 위기라는 말이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최근 다양한 형식으로 불거진 대학로 공연계를 향한 압박은 “새로운 생존 방안을 찾을 때”라는 것을 보여 준다. 현재 대학로에 있는 중·소극장은 130여개에 이른다. 거의 대부분이 150~200석 규모의 극장이다. 이곳에서 매일 공연이 올라가고 있다. 그런데 순수연극은 많지 않다. 순수연극을 하기에는 극장 대관료가 너무 비싸다. 한국공연예술센터가 운영하는 대학로예술극장이나 아르코예술극장은 하루 대관료가 공연과 연습이 각각 30만원 선이다. 서울연극협회가 지원하는 설치극장 정미소나 실험극장 예술공간서울의 경우는 20만원 안팎이다. 하지만 대부분 소극장은 대관료가 50만~60만원에 이른다. 이것도 150석 규모에, 객석이라고는 계단식 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는 수준의 극장이 이 정도다. 기본 3주 공연을 하려면 대관료만 1000만원을 훌쩍 넘긴다. 평균 티켓 가격을 2만원으로 봤을 때 하루 관객 30명만 들면 대관료를 뽑을 수 있지만, 소극장 작품이라도 공연 제작비가 상당 규모라 객석 점유율을 70%는 넘겨야 손익분기점을 겨우 맞출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들 수 있는 대중적인 작품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코미디나 로맨스, 성인물 비중이 커지는 이유다. “연극 한 편을 올리기 위해 다른 일을 하면서 1년 동안 종잣돈을 마련해야 한다”고 토로한 한 극단 대표는 “순수연극인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사회 의식을 녹여낸 연극을 올려도 관심을 갖는 사람이 드물다. 3주 정도 공연하면서 매일 절반 정도 객석을 채웠는데도 수익은커녕 대관료만 겨우 냈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배우 출연료, 무대비용, 진행비 등 나머지 제작비는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그렇다고 소극장 대관료를 낮추도록 강요할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건물주가 소극장을 자체 운영하는 경우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대부분 소극장은 임대해 들어간 경우다. 최근 10년 사이 대학로 일대 지가가 2배 가까이 상승하면서 임대료는 더 뛰었다. 2년 전만 해도 월 임대료 500만원 정도였던 한 소극장은 계약 갱신 시점을 앞두고 800만원으로 올랐다. 연간 운영비가 1억원을 육박하게 된다. 문 닫는 소극장이 속속 생기는 이유다. 배우 김갑수가 운영하던 배우세상소극장(2006년 개관)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지난해 5월 문을 닫았고, 새 주인을 맞았다. 배우 겸 연출가 고(故) 박광정이 꾸렸던 극단 파크의 거점이었던 정보소극장(1993년 개관)도 지난해 말 운영주가 바뀌었다. 각각 배우 중심의 연극을 내세우고, 순수연극의 전초기지라는 의미 있는 공간이어서 아쉬움이 컸다. 대관료와 임대료의 수직 상승과 맞물려 대학로 공연계는 늘 ‘위기’라는 꼬리표가 달리는 상황이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공연예술이 성장할 수 있도록 대학로 생태계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 정부와 공공단체의 지원은 필수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2009년부터 예술전용공간지원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의 지원을 받은 공연장이 공연단체에 대관료를 받지 않고 공연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간접지원 형식이다. 작품 선정에 공연장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지원 폭도 턱없이 좁다. 공연예술 분야의 창작을 활성화하기 위해 시작한 창작 팩토리 사업의 경우 지난해 연극, 무용, 오페라 등을 통틀어 43개 작품만 선정됐다. 서울연극협회에 소속된 극단이 250여개인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좁은 문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동준 서울연극협회 정책분과이사는 “정부가 2009년에 마련한 지원정책은 순수예술의 지원 여부를 시장논리에 맡기는 것이었다. 자생력이 약한 순수예술계에는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파이 자체를 키울 수 없다면 정부가 제대로 지원해야 한다”면서 “공연장의 의미와 성격, 역사성을 따져서 우선적으로 지원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삼일로예술극장(서울 중구 저동), 산울림소극장(서울 마포구 서교동)처럼 순수공연예술의 상징으로 여겨질 수 있는 곳을 먼저 지원해 꼭 가야 할 공연장으로 인식되도록 하는 식이다. 단체나 연극동인 등 협동조합 형태로 극장을 운영하는 방식도 대안으로 고려할 만하다. 공연예술계의 체질 개선도 필요하다. 김민섭 세실극장 대표는 “꾸준한 연구와 실험을 통해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연극계의 본질이 사라지고 자본과 상업주의에 휩쓸리는 게 현실”이라면서 “대형 뮤지컬이나 대극장 연극, 스타들에만 관심과 후원이 집중되는 현상은 순수예술계가 극복해야 할 가장 고질적인 문제”라고 꼬집었다. “새로운 시대정신과 연극 양식 추구를 기치로 내걸고 시작한 소극장 운동의 초심으로 돌아가 창작 인큐베이팅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와 공공단체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안데르센이 지금 살았다면?

    안데르센이 지금 살았다면?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린 주머니에 사람이 들어가 꾸물꾸물 움직인다.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오는 주머니 사이를 어두운 표정을 한 남자가 헤맨다. 주머니는 남자의 고뇌에서 나온 이야기들이다. 하얀색 드레스에 핏빛처럼 빨간 천을 두른 눈의 여왕이 나타나 하나하나 이야기를 꺼내 든다. 기괴하게 웃는 인형 같은 여인이 끊임없이 춤을 추는 남자의 다리에 빨간 페인트칠을 하는가 하면, 현란한 파티장에서 정신없이 즐기던 여성 무용수들이 꿀럭꿀럭 뿜어나오는 연기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마치 클럽에 온 듯 음악은 현란하고, 미디어 아트 전시장에 온 듯 은박으로 장식한 벽면에는 영상이 쏟아진다. 국립무용단(예술감독 윤성주)이 청소년 관객을 위해 준비한 무용극 ‘빨간구두 셔틀보이’는 어둡고 몽환적이고 강렬하다. 잔혹한 이야기인 ‘빨간구두’, 소녀와 소년의 우정을 그린 ‘눈의 여왕’, 안타까운 사랑을 담은 ‘인어공주’ 등 익숙한 안데르센 동화를 품고 있다. ‘장화 홍련’, ‘온달과 평강’ 등 동화와 설화를 모티브로 다양한 해석과 몸짓을 보여준 안무가 이경옥은 안데르센이 21세기에 살았다면 우리 청소년들을 보면서 어떤 동화를 썼을까라는 궁금증으로 ‘빨간구두 셔틀보이’를 구상했다. “안데르센의 이야기는 우리 학생들이 겪는 비극과 맞닿아 있다”는 이경옥 안무가는 허영과 욕심 때문에 발목을 잘라야 했던 ‘빨간구두’ 소녀 카렌, 물거품이 되면서 자신이 처한 비극을 외면하는 인어공주를 떠올렸다. 왕따와 셔틀(심부름)이라는 굴레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는 청소년의 모습이 투영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밝지만은 않다. 애초에 교훈을 주려는 의도도 없다. 이 안무가는 “동화를 이용해 무용극을 만드는 건 무용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작품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라면서 “작품의 메시지는 관객들이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찾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디제잉과 그림, 영상 등을 섞어 귀와 눈이 즐거운 공연으로 기획했다. 아이돌(Eye Doll)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낸 팝아티스트 마리킴과 미디어 아티스트 최종범이 영상작업에 합류했다. 김민경 음악감독과 디제이 수리가 클래식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섞어 기묘한 분위기를 더욱 상승시킨다. 9~13일 서울 중구 장충동 KB국민은행청소년하늘극장. 2만원. (02)2280-4114.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국립발레단이 18년 만에 무대 올리는 ‘라 바야데르’

    국립발레단이 18년 만에 무대 올리는 ‘라 바야데르’

    “왼쪽 두 번째, 플리에(두 무릎을 양옆으로 굽히는 동작)할 때 고개가 항상 올라가!” “두 다리가 너무 벌어지지 않게! 포엥트(발끝) 모양이 예쁘지 않아!” 최태지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러시아 안무의 거장 유리 그리고로비치(86)도 연습을 중단시키면서 대열을 정비하고, 등불을 켜고 끄는 순서와 물담배를 피우는 동작 하나하나 세세하게 다듬는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국립발레단 연습실은 장중한 음악과 무용수들이 내뿜는 열기, 거친 숨소리가 가득하다. 18년 만에 올리는 ‘라 바야데르’ 공연을 앞두고 발레단에는 긴장감이 짙게 깔려 있다. ‘라 바야데르’는 인도 회교 사원의 무희를 의미한다. 괴테의 시 ‘신과 인도의 무희’에서 영감을 얻어 태어난 오페라 발레(1830)를 1877년 러시아 황실발레단의 발레마스터로 있던 마리우스 프티파가 3막 5장의 발레로 완성했다. 프티파는 5세기 인도의 문호 칼리다사의 ‘샤쿤탈라’를 기초로 대본을 작성했다. 인도의 사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무희 니키아와 매혹적인 공주 감자티, 젊은 전사 솔로르의 삼각관계가 이야기의 큰 틀이다. 사랑을 상징하는 니키아와 권력을 뜻하는 감자티, 솔로르가 벌이는 사랑과 배신, 용서와 화해를 그렸다. 루트비히 밍쿠스의 웅장한 음악과 화려한 인도 왕족의 결혼식, 몽환적인 군무 등이 어우러진 작품은 초연부터 큰 성공을 거두면서 지금까지 전 세계 발레단의 레퍼토리로 사랑받고 있다. 이번에 국립발레단이 공연하는 버전은 발레 작품을 다양하게 재해석해 내놓은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버전이다. 주역 이외에 성직자 브라만, 감자티 아버지 라자, 황금신상 등 조연에게도 존재감을 불어넣었다. 다른 버전에서는 감자티와 솔로르의 결혼식 날 사원이 붕괴되면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하지만 그리고로비치 버전은 솔로르의 깊은 후회가 담긴 독백으로 마무리된다. 최 예술감독은 이번 ‘라 바야데르’ 공연이 국립발레단의 수준이 한 단계 더 도약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출연진의 규모와 능력이 그렇다. 1995년 국립극장에 작품을 올렸을 때는 외부 무용수들을 상당수 투입해야 했다. 그는 “출연진이 120여명에 이르고 인도의 왕족과 성직자, 무사, 무희 등이 입는 의상이 200여벌에 달하는 대작이라 충분한 역량이 없으면 불가능한 작품”이라면서 “발레단만으로도 작품을 소화할 수준이 됐다고 판단해 드디어 무대에 올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이 ‘블록버스터 발레’라고 불리는 배경이기도 하다. 작품의 백미는 ‘백조의 호수’ 호숫가 군무, ‘지젤’의 윌리 군무 못지않게 신비로운 ‘망령들의 왕국’(3막 셰이드)의 군무이다. 하얀색 튀튀를 입은 여성 무용수 32명이 아라베스크(한쪽 다리를 뒤로 올리는 자세)를 하면서 무대로 내려오는 장면이다. 제일 처음 무대에 나온 무용수는 아라베스크를 46번이나 해야 하는 고된 장면이지만, 무용수들이 무대를 채우면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멋지고 아름답다. 이것을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꼽는 유리 그리고로비치도 연습 때마다 열렬히 박수를 치며 만족감을 표시한다. 모두 새로 만든 무대와 의상도 ‘라 바야데르’의 볼거리로 꼽을 만하다. 고대 인도가 배경인 무대는 장대하고 화려하다. 특히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으면 더욱 환상적인 색감을 내는 의상이 기대감을 상승시킨다. 작품의 매력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 이탈리아의 유명 디자이너 루이자 스피나텔리(72)에게 의상과 무대 연출을 의뢰했다. 2011년 ‘지젤’ 의상을 디자인해 한국 관객을 황홀경에 빠뜨린 장본인이다. 이번 의상은 니키아의 빨강과 감자티의 파랑, 순수한 사랑을 의미하는 하양, 고풍스러운 금색 등이 어우러졌다. 섬세한 자수와 보석을 더해 화려하다. 이번 공연에서는 김지영·이동훈, 김리회·정영재, 이은원·김기완, 박슬기·이영철 등 4개 조가 니키아와 솔로르를 맡았다. 1995년 국립극장 공연 당시 솔로르 역할을 했던 김용걸은 13, 14일 공연에서 브라만으로 특별출연한다. 9~1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5000~10만원. (02)587-6181.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5집 낸 클래지콰이·블루스의 모든 것

    5집 낸 클래지콰이·블루스의 모든 것

    음악성으로 똘똘 뭉친 음악인들을 초대해 최고의 공연을 보여주는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는 오랜만에 음반을 낸 클래지콰이와 감성에 충실한 블루스를 선사하는 음악인들을 만난다. 4일 밤 12시 5분에 방송되는 ‘공감’에서 클래지콰이는 지난 2월 3년 6개월 만에 낸 5집 음반 ‘블레스드’에 수록된 다양한 음악을 선사할 예정이다. 섬세하고 감성적인 가사와 세련된 사운드로 한국 일렉트로닉팝의 새 장을 연 클래지콰이는 2002년에 데뷔해 정규 음반 4장과 기획 음반 4장을 냈다. 지난 10년간 하우스, 라운지, 애시드재즈에 이르는 다양한 음악을 선보인 그룹이다. 클래지콰이는 이번 음반에 밝고 경쾌한 하우스 비트와 달콤한 노랫말을 접목한 음악을 담고 잔잔한 어쿠스틱팝부터 강렬한 록 사운드까지 다채로운 장르의 리듬과 구성으로 무장했다. 타이틀곡 ‘스위트 네임’을 비롯해 3월의 신부가 된 보컬 호란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연상되는 ‘러브 레시피’, 알렉스의 시원한 보컬이 매력적인 ‘꽃잎 같은 먼지가’, 라틴 리듬과 팝의 멜로디를 가미한 ‘사랑도 간다’, 어쿠스틱 사운드가 매력적인 이별 노래 ‘여전히’까지 풍성한 만찬이다. 이번 음반을 두고 “사랑으로 충만한 앨범”이라고 소개한 클래지콰이는 5집에 수록된 달콤한 러브송을 비롯해 그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던 히트곡을 들려줄 예정이다. 새벽 1시에 이어지는 방송에서는 ‘그야말로 블루스, 더욱더 블루스’를 주제로 블루스의 모든 것을 선사한다. 깜악귀, 김대중, 박형곤, CR태규, 림지훈, 하헌진×김간지, 강산에, 강허달림, 로다운30, 김마스타, 김태춘, 조이엄 등 음악인 12팀은 지난해 블루스 컴필레이션 앨범 ‘블루스 더, 블루스’를 내기도 했다. 고전적인 1930년대 미국 컨트리 블루스부터 한국식 정서를 담은 포크 블루스, 독특한 카바레풍 블루스까지 각 팀의 다양한 해석이 담긴 음반에서는 블루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느낄 수 있다. “블루스는 언제나 새롭다. 블루스는 멀지 않고 언제나 아주 가까이에 있다”고 말하는 깜악귀는 블루스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무대를 선사한다. 깜악귀, 김대중, 박형곤, CR태규 등 일명 ‘블루스 사방신’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음악을 뒷받침하는 음악인들이 함께 무대에 오른다. 오르가니스트 림지훈만의 독특한 블루스와 하헌진×김간지의 특별 무대가 준비돼 있다. 그저 과거의 장르로 남거나 기성곡을 재해석하는 수준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활발하게 살아 숨 쉬는 하나의 음악 장르로서 블루스를 경험할 수 있도록 꾸몄다.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해외 고전극, 한국식으로 부활

    해외 고전극, 한국식으로 부활

    고양문화재단이 한국 연극계 명연출가의 작품으로 꾸민 ‘고양새라새 한국연출 3색’ 시리즈를 4월부터 진행한다. 한국 연극의 흐름을 주도해 온 대표 연출가들의 작품과 창작 경향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첫 무대를 장식하는 작품으로 오태석 연출이 이끄는 극단 목화의 ‘템페스트’(11~14일)를 준비했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한국적으로 변용했다. 밀라노공국을 빼앗긴 프로스페로가 주술을 터득해 자신을 권좌에서 밀어낸 알론조 일당에게 복수를 하는 큰 틀에 삼국유사 ‘가락국기’를 얹었다. 권력 암투와 복수, 용서와 화해가 얽힌 방대한 이야기를 절묘한 비유와 적절한 생략으로 풀어냈다. 여기에 백중놀이, 만담, 씻김굿 등 전통 풍습을 곁들여 볼거리가 풍부하다. 7월 10~14일에는 한태숙 연출이 대표로 있는 극단 물리의 ‘레이디 맥베스’를 올린다. 셰익스피어의 고전 ‘맥베스’를 모티브로 했다. 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빼앗도록 맥베스를 부추기고 죄의식에 빠지는 왕비에 초점을 맞췄다. 다양한 오브제(상징물)와 음악 등이 어우러진 무대미학을 선사한다. 12월 18~22일에는 손진책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극단 미추와 함께 선보이는 ‘벽 속의 요정’을 공연한다. 일본 작가 후쿠다 요시유키가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쓴 작품을, 극작가 배삼식이 우리 상황에 맞게 재구성했다. 손 감독의 부인이자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인 김성녀가 노래를 부르고 1인 다역을 하는 모노극이다. ‘고양새라새 한국연출 3색’은 경기 고양시 마두동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이어진다. 2만 5000~3만원. (031)960-0061.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공연리뷰] 연극 ‘러브… ’ 로맨틱 코미디에 담은 세대 갈등

    [공연리뷰] 연극 ‘러브… ’ 로맨틱 코미디에 담은 세대 갈등

    사랑이라는 말이 세 번이나 들어가 있다. 포스터도 달콤한 분홍빛이고, 두 주인공이 활짝 웃고 있으니 로맨틱 코미디 향기가 물씬 풍긴다. 그런데 대사에 귀를 기울이면 가슴 뜨끔하고 때론 고개가 끄덕여지는 사회적 담론이 담겨 있다. “우리 젊은 세대가 중심”이고 자신을 “조국의 미래”로 알았던 젊은이들이 이제는 은퇴세대가 됐다. “돌아보니 40년 간 중노동했”고 “뼈 빠지게 일했다.” 그런 노년을 바라보는 자식세대는 불만이 가득하다. “엄마가 하라는 대로 했어. …나는 진짜 그렇게 사는 게 옳다고 믿었어. 엄마가 그러라 그랬으니까.” 똑똑한 아빠 엄마에게 장래를 내맡기고 부모가 일러준 대로만 착실히 살아왔는데, 어느덧 주변을 돌아보니 아무것도 없다. 집도, 차도, 가정도, 내 힘으로 얻기 어렵게 만든 건 부모 탓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엄마 아빠는 싸구려 비행기, 비싼 차 타고 다니면서, 그게 환경에 어떤 해를 끼치는지, 절대 생각 안 하는 사람들이야. 노조 깨부수고, 부자 감세 시행한 마거릿 대처를 찍은 세대야. …이번에는 토니 블레어 찍었지? 또 보수당이야, 또.” 딸이 아빠·엄마를 향해 불만을 분출시키며 내뱉는 대사, 영국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나라 이야기라고 해도 고개가 끄덕여질 만하다. 젊은 세대가 보기에 부모 세대는 대학 졸업자도 별로 없었고, 취직도 쉬웠고, 조금만 노력하면 뭐든 이룰 수 있던 시절에 승승장구했다. 부모 세대 당사자들은 아무것도 없는 불모지에 길을 만들고 하나하나 쌓아가면서 경제성장을 이뤄냈다고 자부한다. 오히려 그 바탕 위에서 자식들은 편안하게 공부하고 일하는데 뭐가 불만인지 모르겠다고 탄식한다. 서울 중구 명동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른 연극 ‘러브, 러브, 러브’(마이크 바틀릿 작, 이상우 연출)는 세대에 따른 사고의 변화, 시각차와 갈등의 배경을 명쾌하게 그려냈다. 비틀스가 ‘올 유 니드 이즈 러브’를 부르던 1967년. 케네스(이선균)는 형 헨리(김훈만)의 집에 얹혀살지만 “국가가 내게 투자하고 있다”는 자신감에 넘친다. 산드라(전혜진)는 자유를 갈망하는 피끓는 청춘이다. 19살 동갑인 데다 옥스퍼드대 학생인 케네스와 산드라는 비틀스와 크림의 음악을 좋아하고 대마초를 피우면서 변화하는 세상을 외쳐댄다. 여러 방면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더니, 덜컥 결혼했다. 1990년. 비틀스에 광분하던 케네스는 아들 제이미(노기용)가 듣는 모던록그룹 블러의 ‘송2’에 기겁하는 중년이 됐다. 부부는 중산층 동네에 살며 딸 로지(노수산나)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경제적 여유를 누린다. 열정은 없고 구속이 지겨운 부부는 쉽게 이혼했다. 21년 뒤, 은퇴한 63살 케네스는 프랑스식 창문이 있는 넓은 집에서 제이미와 함께 지낸다. 연금, 임대수입을 합쳐 수입은 6만 파운드(약 1억원)에, 취미로 골프를 즐긴다. 세련된 노년이 된 산드라와 친구처럼 연락하며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이들에게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 됐다. 그런데 젊은 세대는 영 불편하다. 대학을 나와 일하다 보니 37살이 됐는데, 가진 거라곤 대출금 1만 파운드(1700만원)가 전부인 로지가 그렇다. 이 지경이 되도록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부모 세대는 “성공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고, 사다리를 부숴버”린 이기적인 사람들일 뿐이다. 케네스와 산드라도 할 말은 있다. “최소한 부모한테 빌붙지는 않았”고, “없는 사다리를 만들어서 올라갔”다. 부모와 자식의 처지는 모두 이해의 여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의 소통과 이해는 접점을 찾지 못한다. 작품에서도 부모 세대가 이기적인지 자식 세대가 나약한지, 누가 옳고 그른지 결론내지 않는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코믹한 대사와 상황을 양념 삼아 작품을 즐긴 관객들이, 공연장을 나서면서 세대의 간극을 이해하고 답을 찾으려고 시도할 때 작품이 품은 의미와 메시지가 완성될 듯하다. 1막과 2막, 3막을 거치면서 케네스와 산드라의 생활환경 변화를 명확하게 보여준 무대가 돋보였다. 배우 전혜진의 연기가 유난히 빛을 발한다. 전혜진은 10대와 40대, 60대를 연기하면서 각각 발랄하고, 세련되고, 우아한 모습으로 변신하면서 활력을 넣었다. 실제로 부부 사이인 이선균과 전혜진의 자연스러움과 적당한 긴장감이 유지된 연기도 볼만하다. 오는 21일까지. 2만~5만원. 1644-2003.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봄을 훔친 몸짓

    봄을 훔친 몸짓

    바야흐로 축제의 계절이다. 눈을 한시도 떼지 못할 강렬한 무용 축제가 나란히 개막을 앞두고 있다. 즉흥적인 발상과 즉각적인 몸짓으로 풀어내는 즉흥 춤으로 무장한 제13회 서울국제즉흥춤축제가 오는 7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아르코예술극장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IPAP)가 주최하는 즉흥춤축제에는 미국, 프랑스, 핀란드 등 10개국에서 온 예술가 150여명이 참가한다. 주요 공연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열리는 국제 협업 시리즈다. 9일 미국·프랑스·한국의 안무가, 무용수, 작곡가, 배우, 비디오 아티스트가 함께한 다국적 협업그룹 ING가 크로스오버 즉흥 작품 ‘조율’을 선보인다. 10일에는 핀란드의 피푸센터와 한국 트러스트 무용단, 양천장애인종합복지관 장애인이 모여 서커스와 결합한 즉흥공연을 올린다. 11일 마지막 협업무대는 프랑스와 한국 예술가들이 3개월간 준비한 공연이 장식한다. 동물의 움직임과 춤의 결합을 시도했다. 12일에는 아티스트 8명이 연이어 공연을 펼치는 100분 릴레이 즉흥을 펼친다. 클레어 필몬, 로레타 리빙스톤, 에마뉘엘 그리벳, 최문애, 댄스씨어터 까두 등이 참여한다. 이 밖에 관객과 함께하는 즉흥 공연, 해외 즉흥전문가들과 함께하는 워크숍 등도 준비돼 있다. 1만~2만원. (02)3674-2210. 9일부터는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한국현대춤작가12인전’이 시작된다. 1987년부터 이어진 이 축제는 한국무용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세대별 무용가 12명을 초청해 그들의 춤 세계를 감상하는 자리이다. 9~10일에는 2012 한국춤비평가상 베스트 작품상과 춤평론가상 춤연기상을 받은 차진엽의 ‘시팅 인 씨’를 비롯해 이주희의 ‘아이 엠 모어’, 예효승의 ‘카오스모스; 혼돈 속의 질서’, 이영일의 ‘샤콘느’를 올린다. 11~12일 공연에서는 차세대 무용인을 양성하는 무용 지도자들의 경합이 볼거리다. 두 남자의 기다림을 그린 ‘기다려요’(강경모 국민대 교수), 발레와 클래식을 조화한 ‘그랑 파 드 콰트르’(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아버지의 노래를 다룬 ‘몫’(김승일 중앙대 교수), 한 남자의 꿈을 담은 ‘거위와 나, 그리고 늙은 꿈’(김남식 서울종합예술학교 교수)으로 구성했다. 13~14일에는 김은희의 ‘반(半)’, 전미숙의 ‘사라집니다(Disappeared)’, 조윤라의 ‘왈츠 넘버 6(글루미 데이)’, 정혜진 ‘당신은 누구시길래’로 꾸민다. 3만원. (02)2220-1338.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저자와의 차 한잔] 추상화의 대가 김환기 일대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펴낸 이충렬

    [저자와의 차 한잔] 추상화의 대가 김환기 일대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펴낸 이충렬

    참 어렵사리 책을 낸다. 인물에 대한 연구·자료조사뿐만 아니라 주변인을 취재하고, 관련된 집안의 출판 동의와 도판 협조를 얻는다. 사실 여부에 대한 감수를 받은 뒤에야 책을 한 권 완성한다. ‘간송 전형필’의 시작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간송미술관 개관 25주년 기념전에서 만난 간송에게 매료돼 10년 이상 그에 대한 자료를 모았다. 이후 1년여 동안 자료 정리 등에 고스란히 쏟아붓고 2010년에야 간송 전기를 냈다. 문화재를 지킨 간송을 연구하면서 그 같은 사실을 세상에 알린 이가 혜곡 최순우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곧이어 혜곡을 파고들었다. 그렇게 2년 만인 2012년에 ‘혜곡 최순우’를 냈다. 혜곡이 남긴 문화재 해설 280편, 미술에세이 205편, 논문 41편, 사료해제 86편 등 모두 600여 편을 읽고 또 읽었다. “전기 작가는 악착같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충렬(59) 작가는 이번엔 1899년 황성신문부터 사소한 쪽지와 편지, 일본에서 발행된 기사까지 2000장에 달하는 자료를 모았다. 한국추상화의 대가로 불리는 수화(樹話) 김환기(1913∼1974)를 불러내기 위해서다. 수개월 동안 자료를 연도별로, 월별로, 일별로 정리하면서 그를 익혔다. 수화의 오랜 벗인 김병기(97) 화백과 이준(94) 화백 등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듣고, 가족들을 만나 살을 붙였다. 그렇게 1년 이상 매달려 또 한 권을 냈다. 김광섭 시 ‘저녁에’의 마지막 구절이자 , 제1회 한국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한 수화의 작품명이기도 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유리창 펴냄)다. 지난 27일 서울 중구 광화문에서 만난 이 작가는 “전기를 쓰려면 그 인물을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가 왜 이런 생각을 했고,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알아야 전기를 제대로 쓸 수 있다”고 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게 보통이라, 살아생전 교류했던 다른 사람들을 두루 만나 얘기를 듣고 편지나 쪽지를 복사해 수차례 검토했다. 그가 이처럼 ‘크로스체크’(교차검증)를 중시한 것은 전기의 덕목인 사실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러다보니 유족들도 “직접 대화를 하는 것 같다”고 할 정도로 생생하다. “어릴 때는 위인전을 많이 읽었지만 어느새 전기를 읽지 않게 됐어요. 평전은 쏟아지는데 전기는 거의 없죠. 돈 많은 사람들이 대필작가를 쓰고, 자기 이야기를 포장해서 내놓으니 너무나 뻔하고 식상해서 전기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는 겁니다. 스토리텔링(이야기 기법)이 중요하다고 봐요. 전기가 어렵지 않고 재미있는 장르라는 생각을 심어주기 위해서이기도 하고요.” 그의 말대로 ‘어디서 무엇이 되어’는 마치 근현대사 속 지식인들의 삶과 생각을 담은 소설 같은 느낌이 든다. 등장인물만 수십명이다. 결혼식 주례를 선 고희동부터 전시를 도와준 최순우, 신문에 작품을 발표해준 이헌구, 피란 시절 술친구였던 이중섭이나 인생의 동반자 김향안을 만나게 해준 일본 시인 노리타케 가츠오까지 당대의 내로라하는 예술문화인들이 거의 다 등장한다. 이전까지는 집필에 들어서기까지가 그렇게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출판에 이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유족들이 감수하는 과정에서 편집을 3번이나 바꿨다. 그런데 아직도 유족들에게는 불편한 이야기가 책에 있다. 지금까지 수화 탄생일이 2월 27일(양력)로 알려져 있지만 이 작가는 3월 26일이라고 주장한다. 음력 2월 19일이니 양력으로는 그게 맞다는 것이다. 수화와 김향안, 시인 이상이 얽힌 사연은 떨떠름하다. 이런 몇 가지 이유로 유족에게 도판 동의를 얻지 못한 탓에 이번 책은 컬러판으로 내지 못했다. 그는 “삼각관계로 잘못 알려진 이 이야기를 바로잡고 그가 얼마나 헌신적으로 수화를 내조했는지 설명하고자 했는데 이상이 등장하는 것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책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털어내기 위해 그는 새달 6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독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계획이다. 미국 피닉스에 사는 그가 한국에 온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예술과 문화를 위해 큰일을 한 사람들을 앞으로도 계속 탐구해 전기를 쓸 예정입니다. 다음은 여류 작가가 되지 않을까요. 간송, 혜곡, 수화처럼 어려운 삶 속에서도 예술혼과 창작열을 불태운 사람이겠죠.”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임신중 사체지문 채취 유명… 여성·청소년범죄 척결 대모

    임신중 사체지문 채취 유명… 여성·청소년범죄 척결 대모

    우리나라 경찰이 창설된 1945년 이래 사상 첫 여성 치안정감이 탄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정부는 29일 이금형 경찰청 경무인사기획관을 치안정감 보직인 경찰대학장에 임명하는 등 경찰 치안정감 인사를 했다. 치안정감은 치안총감(경찰청장·1명) 다음으로 경찰 계급 중 ‘넘버2’에 해당하며 전체 경찰관 10만명 가운데 5명뿐이다. 경찰대학장으로 부임하게 된 그는 “딸만 셋인데 이제 108명의 아들과 12명의 딸을 새로 얻게 됐다”면서 “학생들이 4대 사회악(성폭력·가정폭력·아동폭력·불량식품)을 척결하는 데 앞장설 수 있도록 이론과 현실을 겸비한 경찰 간부로 양성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나는 여성이자 고졸, 순경 공채 등 3대 약점을 극복했다. 마이너리티(소수파)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충북 청주 출신으로 만 19세인 1977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했다. 1985년 경찰청 감식과 소속 감식관이었던 그는 둘째 아이를 임신한 채 토막 난 사체의 썩은 손목을 씻으며 지문을 찍은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36년동안 경찰로서 정도로 앞만 보고 달렸다. 고시 출신이 4번의 승진으로 오르는 치안정감 계급을 순경 공채 출신인 그는 9번에 걸쳐 올랐다. 경찰서장급인 총경을 단 것은 여경 중 세 번째였고, ‘경찰의 별’로 통하는 경무관은 두 번째였다. 재직기간 동안 주로 여성·청소년 분야 등에서 활동했다. 2005년 성매매특별법 시행 당시 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으로서 ‘성매매와의 전쟁’을 주도했고, 영화 ‘도가니’로 촉발된 광주인화학교 성폭력 사건 당시 특별수사팀을 꾸려 성폭력 교사 14명을 형사입건했다. 이 경찰대학장은 치안정감 승진 예정자 신분으로,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이철규 전 경기청장 등 치안정감 보직 공석이 나오면 최우선으로 공식 치안정감에 오르게 된다. 서울경찰청장에는 김정석 경찰청 차장, 경기청장에 이만희 경찰청 기획조정관, 경찰청 차장에 안재경 광주경찰청장, 부산청장에는 신용선 강원청장을 각각 내정 발령됐다. 이에 따라 국가정보원 여직원의 댓글 의혹 사건 수사와 관련해 대선 개입 의혹을 받았던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은 경찰 조직을 떠나게 됐다. 이번 인사에서는 경찰대 1명, 간부후보 1명, 고시 2명, 순경공채 1명 등 입직 경로별로 고르게 배분됐다. 출신 지역별은 강원 1명, 충북 1명, 전남 1명, 경북 1명, 경남 1명 등이다. 김정은 기자 kimje@seoul.co.kr
  • 보고 싶던 그 연극 ‘만원이면 OK’

    보고 싶던 그 연극 ‘만원이면 OK’

    서울 대학로 등지에서 인기리에 공연된 연극을 경기 성남시 분당 성남아트센터에서 1만원에 볼 수 있도록 한 ‘연극만원(滿員)’ 시리즈가 4월부터 격월로 막을 올린다. 4월 6~7일에는 김명곤 연출의 ‘아버지’가 관객을 만난다. 미국 극작가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현재 한국 상황으로 치환했다. 88만원 세대, 노인 세대의 방황, 소시민과 사회의 관계 등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도 자본주의 사회를 견뎌 온 가장과 가족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배우 이순재가 이 시대의 아버지를 연기한다. 두 번째 작품은 황재헌이 연출한 ‘그와 그녀의 목요일’(6월 14~16일)이다. 결혼을 제외한 ‘가능한 모든 남녀의 일’을 다 해 본 저명한 역사학 교수 정민과 은퇴한 국제 분쟁 전문기자 연옥이 매주 목요일에 만나 과거부터 지금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던 감정의 실타래를 풀어낸다. 마리 카르디날의 소설 ‘샤를과 룰라의 목요일’이 원작이다. 애증과 오해, 화해로 이어지는 남녀의 심리 변화가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배우 배종옥, 조재현, 정재은, 정웅인 등이 열연한다. 8월에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바보빅터’(박승걸 연출, 4~5일)가 무대에 오른다. 주위가 산만하고 말을 더듬어 바보라고 놀림당하는 빅터가 친구 로라를 통해 잠재된 재능을 발견하는 이야기다. ‘가장 위대한 진실은 당신 자신’이라고 말한다. 민준호 연출의 ‘너와 함께라면’(10월 8~10일)과 문아영 연출의 ‘옥탑방 고양이’(12월 6~8일)도 준비돼 있다. ‘너와 함께라면’은 일본의 스타 극작가이자 연출가 미타니 고키의 작품이 원작이다. 평화롭던 가정에 큰딸과 40세 연상의 남자 친구가 등장하면서 벌어지는 포복절도 소동극이다. ‘옥탑방 고양이’는 이중 계약으로 한 집에 살게 된 남녀의 달콤한 로맨스를 그렸다. 지난해 인터넷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에서 관객 평점 9.6점을 받은 인기작이다. (031)783-8000.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최고의 자리? 욕심 없어요… 좌우로 연기폭 넓혀갈래요”

    “최고의 자리? 욕심 없어요… 좌우로 연기폭 넓혀갈래요”

    누비아 공주 아이다와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의 애절한 사랑,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의 큰 줄기다. 영국 팝스타 엘튼 존과 작사가 팀 라이스는 이 오페라에 ‘윤회’를 가미해 시공을 초월하는 사랑을 강조한 뮤지컬로 제작해 2000년 3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했다. 록과 가스펠, 발라드 등 다양한 음악 장르에 화려한 의상, 조화로운 색감의 조명, 역동적인 안무가 어우러져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죽음도 함께한 아이다와 라다메스의 사랑은,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로 인해 더욱 애절하고 위대해진다. 공주는 조연으로 느껴지기 십상이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다르다. 관객들은 치장하기 좋아하고, 결혼만을 꿈꾸는 철없는 공주의 성장기까지 경험하게 된다. 약혼자를 잃고 권력 암투를 겪으면서 파라오의 딸로 우뚝 서는 암네리스는, 그 어느 때보다 입체적이고 강렬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번 작품을 뮤지컬 ‘암네리스’라고 바꿔 부르기도 한다. 그 동력은 연기력과 가창력을 모두 갖춘 배우 정선아(29)의 힘이었다. “1막에서 화려한 관능미를 뽐내던 암네리스가 2막에서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 흐름이 매끄럽지 않으면 설득력을 얻기 힘들어요. 암네리스의 변화에 공감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정말 잘하고 있구나라고 느끼죠.” 뮤지컬 ‘아이다’ 공연이 한창인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디큐브아트센터에서 만난 정선아는 “아마도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성격이라 암네리스가 잘 맞는 듯하다”면서 “청순가련한 비련의 주인공도 해봤지만, 내게 잘 맞는 역할은 역시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샤방샤방’(화려하고 생기 넘치는)한 것”이라면서 생긋 웃었다. 그는 2010~2011년에도 암네리스로 뮤지컬 ‘아이다’ 공연을 했다. 원캐스트로 4개월 가까이 무대에 올랐다. 고음도 소화해야 하는 역할이라 다른 일정을 거의 배제하고 목과 체력을 관리하면서 버텼다. “이때 정말 열심히 했고, 또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은근히 상도 기대했었는데, 미끄러졌죠. 그런 실망감을 아니까, 주위 사람들이 이번 공연을 두고는 ‘뭘 또 해’, ‘지겹지 않으냐’고 물었어요. 그런데 포기할 수 없더라고요. 이 작품과 인물을 정말 사랑하거든요.” 거침없이 솔직하게 말을 쏟아낸 그는 이번 작품에서 다른 기대도 품고 있었다. 오리지널 협력연출가인 키스 배튼이 내한하기로 돼 있었던 터라 분명 뭔가 배울 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년 전 암네리스는 화려하고 밝은 사랑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는 그는 “그러나 이제 아이다와 라다메스의 사랑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암네리스의 쓰라린 심정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파라오를 배신한 라다메스와 아이다를 함께 지하 돌감방에 가두는 것으로 마지막 자비를 베푸는 암네리스야말로 이 작품을 마무리 짓는 역할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덧붙였다. 새치름히 입을 삐죽대기도 하고 자신은 ‘자뻑’(자신에게 홀딱 빠진) 캐릭터라면서 호탕하게 웃어 젖히는가 하면,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속내를 꺼내는 모습이 딱 암네리스다. 그런데 그가 이제 정반대의 역할에 도전한다. 새달 26일 개막하는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예수를 사랑하고 위로하는 마리아로 변신한다. 의미 있는 인물이지만 부르는 노래가 앙상블을 포함해 6곡 정도로, 비중은 크지 않다. “난 어디서든 빛나니까 괜찮다”는 농담을 던지며 깔깔댄 정선아는 “에너지가 가득하고 화려해 보이는 지금이야말로 어떤 역할이든 가장 멋있게 소화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주연인지 아닌지가 중요하지는 않아요. 무엇이든 내가 제일 멋있을 거라고 자기최면을 걸거든요.” 2002년 뮤지컬 ‘렌트’로 데뷔한 그는 뮤지컬 배우로서 10년을 꼬박 채우고, 이제 새로운 10년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동안 뮤지컬어워즈에서 여우조연상과 인기스타상을 탔고, 티켓파워를 입증하는 골든티켓 여자배우상도 받았다. 꾸준한 상승세에 있는 ‘잘나가는 배우’인데도 정작 그는 “최고가 돼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고 했다. “어디가 최고점일까요. 그럼 언젠가는 내려와야겠죠? 전 욕심 없어요. 그저 좌우로, 연기폭을 넓혀가는 게 바람입니다. 공연을 위해, 그 역할을 위해 사는 것, 그게 내 삶이니까요.” 글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사진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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