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여경
    2025-12-29
    검색기록 지우기
  • 살처분
    2025-12-29
    검색기록 지우기
  • 친인척
    2025-12-29
    검색기록 지우기
  • 산케이
    2025-12-29
    검색기록 지우기
  • 잠수
    2025-12-2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024
  • ‘암 억제’ 차가버섯… 신이 내린 선물을 캐는 사람들

    ‘암 억제’ 차가버섯… 신이 내린 선물을 캐는 사람들

    차가버섯은 16세기 러시아에서 불치병을 치료하는 약재로 여겨졌고, 20세기 들어 구소련에서는 본격적인 약효 연구의 대상으로 주목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암 발병을 억제하고 면역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약초꾼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26일 오후 10시 45분 방송되는 EBS ‘극한직업’은 차가버섯을 찾아나선 약초꾼들의 고된 여정을 쫓는다. 겨울에서 봄으로 옮겨 가는 시기, 산속에는 예상하지 못한 위험 요소들이 도사리고 있다. 날씨는 급변하고, 얼었던 땅이 조금씩 녹으면서 발 디디는 곳마다 무너져 내리기 일쑤다.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을 찾아다니는 이들이 바로 약초꾼이다. 그들의 목표는 캐기 어려운 차가버섯. 해발 1000m 이상 고지대에서 자라는 자작나무에서 채취한 것이라야 효험이 있다니, 차가버섯 채취 작업은 험난할 수밖에 없다. 차가버섯 채취는 자작나무 군락을 찾는 것에서 시작한다. 한 발 한 발 힘겨운 발걸음을 이어 가고 산 두 개를 넘어서야 가까스로 자작나무 군락에 다다랐다. 주변을 샅샅이 살핀 뒤 자작나무 밑동에서 차가버섯 포자를 찾아냈고, 3m 높이에 착상한 차가버섯까지 발견했다. 당장 손에 넣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그 정도면 향후 채취 가능성은 충분하다. 다음을 기약하고 하산하려는 이들의 발목을 잡는 것은 변덕스러운 날씨. 하늘이 금세 싸라기눈을 쏟아부어 가뜩이나 반나절 산행에 지친 이들의 체력은 급격히 떨어진다. 산은 과연 ‘신이 내린 마지막 선물’ 차가버섯을 찾아 나선 이들에게 품을 내줄까.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美복판서 흐드러지게 우리 춤·노래 알리렵니다”

    “美복판서 흐드러지게 우리 춤·노래 알리렵니다”

    “4월 중순이면 미국에도 한창 꽃이 필 때입니다. 우리 춤을 추는 선생들이 미국 한복판에서 흐드러지게, 꽃과 벌처럼 노는 것을 상상하며 행복하게 기다리고 있죠. 여한 없이 노래 부르고, 어울려 눈물도 흘려 보렵니다.” 25일 서울 중구 필동 한국의집에서 만난 소리꾼 장사익(65)씨는 다음 달 열리는 해외 공연에 대한 기대감에 한껏 들떠 있었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기획한 ‘소리가 춤을 부른다-장사익과 한국의 명인들’은 4월 16일 캐나다 토론토의 예술극장(1200석)에서 공연한 뒤 19일 미국 뉴욕 뉴욕시티센터(2400석) 무대에 오른다. 5월 23일에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국내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장사익의 이름이 전면에 나왔지만 출연자 면면은 예사롭지 않다. 11대 무업을 계승한 정영만(남해안 별신굿 보유자)이 징과 구음으로 춤음악을 맡고, 밀양 춤 가문의 종손 하용부(밀양백중놀이 보유자), 채상소고춤 명인 김운태, 6박 도살풀이장단의 원형을 지키는 이정희, 영남 교방춤의 박경랑 등이다. “몸짓 하나하나가 수백 마디 말보다 깊고 넓어 춤을 참 좋아한다”는 장씨는 “가끔 선생들을 만나면 흥에 겨워 판을 벌이기도 했지만 공식적인 합동무대를 마련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2009년과 2012년에 뉴욕과 토론토에서 공연했던 기억을 떠올린 그는 “한번 가면 (너무 힘들어)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게 해외 공연인데, 때가 되면 굼실굼실 또 가게 되더라”면서 “이렇게 좋아하는 선생들과 가니 이번에는 한번 멋지게 보낼까 한다”고 덧붙였다. 밀양북춤과 교방춤, 채상소고춤, 도살풀이춤에 이어 장사익은 ‘찔레꽃’, ‘동백아가씨’, ‘봄날은 간다’ 등을 부른다. 이날 함께 자리한 하용부(59)는 “이번 공연은 교포를 위문하는 장치로 하는 게 아니라 경쟁력 있는 전통을 해외에 갖고 나가 보여 준다는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 우리 문화와 소리를 보존하면서 더 발전시키는 방식을 보여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화전 만들고 풀피리 불어보고… 삼삼한 ‘삼짇날’

    삼월 삼짇날, 3월 상사일(上巳日)로도 불리는 삼월 초사흗날(음력 3월 3일)은 삼국시대부터 특별한 날로 기록돼 왔다. 고려 때에는 ‘9대 속절’(제삿날 이외에 의례를 지키는 날)로도 분류된 명절이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와 추녀 밑에 집을 짓고, 산과 들에 꽃이 피면서 완연한 봄으로 들어서는 시기다. 가정에서는 여러 봄철 음식을 장만하고, 아이들은 풀피리를 불거나 각시놀음을 하면서 봄을 만끽한다. 서울 중구 필동 남산골한옥마을에서도 오는 30일 ‘삼짇날’ 행사가 열린다. 삼짇날의 대표 풍속인 ‘화전 만들기 체험’을 전통가옥마당에서 펼치고, 천우각 광장에서 봄을 알리는 다양한 꽃과 화분 등을 전시하는 ‘열린 예술 봄꽃시장’을 진행한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고 바른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 ‘풀피리 만들기’, ‘손인형 만들기’, ‘버나놀이’ 등 전통놀이도 준비했다. 본행사에 앞서 29일 오후 2시에는 한옥마을 국악당 앞마당에서 김경주, 강지혜, 김근 등 시인과 최민석 소설가, 음악인 등이 참여하는 ‘시회’를 연다.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시를 짓고 술을 나누던 시회는 조선 선비문화의 백미로 꼽힌다. 3000~5000원. 시회는 무료. (02)2261-0502.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교수채용 심사위원 금품비리 한예종 비상쇄신위원회 설치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최근 잇따라 불거진 문제점과 관련해 ‘학교비상쇄신위원회’를 설치하고 근본적인 쇄신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김봉렬 한예종 총장은 25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예종 캠퍼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1년도 무용원 교수채용과정에서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해당 교수가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 발생한 데 대해 깊은 사과를 드린다”며 “단호한 쇄신만이 비리를 근절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비상쇄신위원회는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 이건용 전 한예종 총장, 강준혁 전 성공회대 문화대학원장, 정재숙 중앙일보 논설위원, 홍성태 참여연대집행위 부위원장 등 외부 전문가 5명과 한예종 교수 4명으로 꾸려졌다. 오는 5월까지 쇄신안과 발전방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한예종은 또 교수 채용에 관여하는 내외부 심사위원들이 사전에 접촉할 수 없도록 장치를 강화했다. 지금까지 채용심사를 하는 해당 분야의 원장이 총장에게 제안하는 ‘원장 추천’ 과정을 없애고 인력풀을 기존 2배수에서 4배수로 확대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한국 ‘위키드’ 공연 브로드웨이와 똑같아”

    “한국 ‘위키드’ 공연 브로드웨이와 똑같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를 하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가장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것, 진실로 사랑하는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그것이 작업으로 이어진다면 다른 사람들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24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롯데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난 뮤지컬 ‘위키드’의 작곡·작사가 스티븐 슈워츠(66)는 뮤지컬 창작자들을 위한 조언을 요청하자 “내 경우 작업할 때 ‘교감’이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이것은 비단 뮤지컬 종사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는 잠실 샤롯데씨어터에 오른 ‘위키드’의 라이선스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2박 3일 동안 캐스팅별 공연을 모두 관람하고 배우 및 제작진과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한국 공연에 대해 그는 “브로드웨이의 공연과 정말 같았다. 앙상블의 화합, 발음, 안무 등은 굉장한 수준이었다”고 놀라움을 표했다. “다만 ‘위키드’의 원작이 된 소설 ‘오즈의 마법사’가 한국에는 덜 친숙하기 때문에 필요한 보완 장치를 추가했다”고 덧붙였다. 2막에 글린다가 누군가를 배웅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미국 관객들은 대번에 누군가가 도로시라는 것을 알지만 한국 관객은 모를 수도 있기에 “안녕, 도로시”라는 대사를 넣기로 했다. 그는 매사에 친절하게 대답했지만 배우들에 대한 평가나 가장 좋아하는 곡에 대해서는 “모든 배우가 뛰어나고 각자 개성이 있어 어떤 평을 할 수 없다”거나 “절대로 대답하지 않는다”고 말을 아꼈다. 대신 “기분과 상황에 따라 음악에 대한 느낌이 다르다. 음악을 듣는 관객들이 자유롭게 본인이 듣고 느끼는 것들을 간직할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1971년 선보인 뮤지컬 ‘가스펠’로 그해 그래미상에서 프로듀서상과 작곡상을 받으면서 뮤지컬계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피핀’(1972)과 ‘매직쇼’(1974)부터 애니매이션 ‘포카혼타스’(1995)와 ‘위키드’(2003)까지 그래미상, 드라마 데스크상, 아카데미상, 골든글로브상 등에서 작곡상을 여러 차례 수상했다. ‘위키드’는 ‘포카혼타스’, ‘노틀담의 꼽추’ 등 영화로 시선을 돌렸던 그의 브로드웨이 복귀작이기도 하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주둥이가 연꽃같은 모기, 꼬리를 자른 고양이, 왕을 알아본 코끼리…조선 사람의 동물이야기

    주둥이가 연꽃같은 모기, 꼬리를 자른 고양이, 왕을 알아본 코끼리…조선 사람의 동물이야기

    조선동물기/김흥식 엮음/정종우 해설/서해문집/544쪽/1만 5000원 “모기의 생김새를 보면 날개와 다리는 가늘고 약하며 주둥이는 코끼리 코처럼 길어서 앉아 있을 때는 주둥이로 버티고 날개는 들고… (중략) 벽에 앉아 있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니 하나하나의 주둥이 끝이 더부룩한 것이 마치 연꽃 같았다.” 벽에 붙은 모기를 이리 세세하게 들여다보다니 관찰력이 뛰어나달까, 참 한가하달까. “중국에 갔을 때 사람들이 집에서 고양이 기르는 걸 보았는데, 모두 꼬리를 잘랐고, 성질이 매우 온순했다. … 그곳 사람들에게 들으니, 정월 첫 인일(寅日), 즉 호랑이날 꼬리를 자르면 이처럼 순해진다고 한다.”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모기 얘기는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의 시문집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서 발췌한 것이다. 남송 시인 범성대가 모기를 소재로 지은 시에 ‘화훼’(花喙)라는 말이 있기에 벽에 붙은 모기를 보니 과연 주둥이가 연꽃 같더라는 것이다. 이덕무는 “옛사람들이 물건을 살필 때 사소한 것도 빠뜨리지 않아서 이처럼 정교하고도 미세한 부분까지 찾아냈다”고 감탄했다. 작은 모기를 뚫어져라 바라본 이덕무의 집중력도 범성대에 버금간다. 뒤에 나온 고양이에 관한 것은 조선 중기 학자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담긴 내용이다. 고양이는 다른 동물을 해치는 짐승인데 중국에서는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기에 궁금해 물어봤더니 ‘고양이를 순하게 하는 방법’을 알려줬다는 것이다. 이수광은 물론 “반드시 그렇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 듯하다”면서 반신반의한 심정을 덧붙였다. ‘동물기’를 쓴 어니스트 시턴이나 ‘곤충기’로 유명한 장 앙리 파브르처럼, 조선 학자들도 자연에 눈을 돌리고 그들의 생태를 꼼꼼히 기록했다. ‘지봉유설’ 같은 최초의 백과전서나, 실학자 이익이 지은 ‘성호사설’, 풍속과 일화를 실은 어숙권의 ‘패관잡기’ 등에서 다양한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조선동물기’는 그 서적들 곳곳에 숨은 생물에 대한 이야기를 뽑아 엮었다. 놀랍도록 상세한 생물학적 이치부터 경험과 고증, 현상, 소문 등을 바탕으로 한 기술과 사색까지 다양하다. 저자인 김흥식은 “그것이 옳으냐, 틀리냐를 이야기하는 것은 호사가적 취미”라고 과학적 분석과는 선을 그었다. 고서에서 동물 이야기를 뽑아낸 것은 동물학적 지식을 얻고자 한 것이 아니라 “선조들의 삶을 바라보는 태도,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 동물을 바라보는 태도를 느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책에 등장한 동물 중에는 말이나 호랑이처럼 한반도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코끼리, 기린, 맥, 용 등 보기 어려웠을 것들도 끼어 있다. 효종의 즉위를 명나라 코끼리가 알아봤다는 얘기나 상서로운 동물 기린과 포악한 기린의 차이, 머리가 없는 용의 비밀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즐비하다. 도둑고양이의 습성을 보고 환경에 대해 성찰하고, 키우다가 풀어준 촉새가 계속 찾아오는 것을 보고 인간의 도리를 떠올리기도 한다. 간간이 조금 어려운 해석이 보이고 덧붙인 해설이 본문 내용과 다른 부분도 보인다. 저자가 쏟은 정성만큼 흥미롭고 독특하며 의미 있는 책인 것은 분명하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여유로운 시골? 그 환상을 깨주마

    여유로운 시골? 그 환상을 깨주마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마루야마 겐지 지음/고재운 옮김/바다출판사/208쪽/1만 3000원 일본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의 충고는 늘 독하다. 2012년에 낸 산문집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2013년 국내 출간)에서는 힐링과 위로 따위에 안주하지 말고 자신을 구속하는 것과 과감하게 작별하라고 했다. 고통과 고독을 감내할 용기가 있어야 진짜 자유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에서는 “은퇴를 하고 여유롭게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사람들을 향해 ‘시골이라고 엄마 품처럼 포근하고, 맑은 공기 속에서 유유자적하면서 살 수 있을 줄 아느냐’면서 환상을 확 깬다. 작가는 1966년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상을 역대 최연소로 수상한 뒤 1968년 문단과 선을 긋고 나가노 현 아즈미노로 이주했다. 책은 한마디로 “내가 40년 이상 살아봐서 아는데”라면서 내놓은 작가적 경험의 압축판이다. 여행자가 아닌 이상 시골의 삶은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 자연의 위협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일 수밖에 없다. ‘고지대에 있는 전망 좋은 집’은 암벽 붕괴나 산사태의 위험에 놓여 있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웃 노인을 한두 번 도왔다가는 허드레꾼이나 머슴이 되기 십상이고, 시골 사람들은 공간의 경계가 없어 홀로 여유를 갖기도 어렵다. 시골이라고 소음이 없나. 고요한 가운데 나오는 경운기 소리는 충분히 귀에 거슬린다. ‘농부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라거나 ‘외로움을 피하려다가 골병든다’, ‘침실을 요새화해야 한다’는 등 재치 있는 말 속에 시골 생활의 혹독함을 고스란히 녹였다. 작가의 말은 “그러니 시골로 가지 마라”가 아니라 불편함을 버틸 만한 분명한 목적이 있다면 가라는 거다. 책은 단순히 은퇴자나 귀농을 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 책 후반에 드러나는 “자기 자신을 강력한 조력자로 삼고 인생을 개척하라”는 마루야마의 인생론은 전 세대에 걸쳐 가치 있게 적용될 법하다. 2008년 일본에서 출간된 산문집 ‘전원생활에 죽지 않는 법’의 번역본이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괴물 ‘프랑켄슈타인’ 베일 벗은 ‘셜록홈즈2’ 봄바람 난 창작뮤지컬

    괴물 ‘프랑켄슈타인’ 베일 벗은 ‘셜록홈즈2’ 봄바람 난 창작뮤지컬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는 말에 창작뮤지컬과 라이선스 작품을 대입하면 요즘 뮤지컬계의 한 흐름이 잡힌다. 그 중심에는 창작뮤지컬 ‘셜록홈즈2:블러디게임’과 ‘프랑켄슈타인’이 있다. ‘셜록홈즈2’는 전편 ‘셜록홈즈1’(2011)의 흥행에 힘입어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전편이 지난 1월 일본에서 흥행하자 일본 뮤지컬 제작사 도호예능은 ‘셜록홈즈2’에 대한 계약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역시 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국내에서는 프리뷰만으로 ‘뮤지컬 괴물의 탄생’이라는 평가를 받고, 일본·중국에서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 현상이 거품이 아니라는 것은 작품이 증명한다. ●빅터와 괴물, 뮤지컬의 괴물로 다시 태어나다 지난 18일 본공연에 돌입한 ‘프랑켄슈타인’은 3시간 내내 강렬한 장면과 음악으로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막판으로 치달으면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다가 끝내 가슴은 먹먹하게 하고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창조주가 되려 했던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욕망과 교만, 버림받은 괴물의 분노와 복수가 얽힌 이야기는 ‘인간은 얼마나 이기적인가’ 하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틀거리는 영국 작가 메리 셸리가 1818년에 내놓은 동명소설이다. 워털루 전쟁을 배경 삼아 빅터의 생명창조 연구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빅터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누나 엘렌의 회상으로 처리하면서 연구를 향한 집착을 유연하게 설명한다. 왕용범 연출이 내세운 ‘1인 2역’도 매우 정교한 장치로 활용됐다. 빅터의 얼굴을 한 자크가 앙리의 얼굴을 가진 괴물에게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라고 말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모든 역할이 불교의 윤회나 평행이론을 연상시킨다. 물론 작품을 완벽하게 만든 것은 배우들이다. 특히 박은태와 한지상이 연기하는 괴물은 흉측하기보다 매력적이고, 잔인하기보다는 서정적이고 애잔하다. ‘너의 꿈 속에서’(1막)와 ‘난 괴물’(2막)을 부를 때면 호소력 있는 목소리와 고음에 소름이 돋는다. 류정한과 유준상, 이건명이 나눠 맡은 빅터는 모두 다른 느낌이다. 류정한이 진지한 빅터와 간사한 자크라면, 이건명은 차분한 빅터와 다소 아둔한 자크다. 유준상의 빅터는 유쾌하고, 자크는 웃음을 유발한다. 안정적인 가창력으로 엘렌을 연기하는 서지영과 안유진도 상당히 돋보인다. 서울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홀에서 오는 5월 11일까지 이어진다. 6만~13만원. 1666-8662. ●유쾌한 셜록, 빛나는 왓슨 ‘셜록홈즈2’(연출 노우성, 극작 김은정)는 추리소설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궁금할 만한 셜록과 살인마 잭의 대결을 흥미롭게 펼쳤다. 전편은 범인을 파헤치는 추리물이었지만, 이번에는 스릴러의 성격을 덧댔다. 괜한 긴장감을 유도하지 않으면서 셜록과 왓슨이 추리를 빠른 속도로 진행하는 구성은 극을 긴박하고 명쾌하게 흐르도록 한다. 전편에 이어 셜록을 연기한 송용진과 김도현은 첫 등장에서 미국 TV시리즈의 주인공 ‘콜롬보 형사’나 영국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셜록’과 비슷하다. 이런 약간의 이질감은 극이 진행될수록 자연스럽게 합일되면서 자신만의 온전한 셜록이 된다. 진짜 빛나는 것은 왓슨을 한 이영미다. 명확한 발음과 시원한 목소리로 객석을 압도한다. 극 초반에 잭이 벌인 잔혹한 살인행각 5건을 속사포처럼 노래하면서도 매우 정확하게 의미를 전달해 눈앞에 장면이 그려지는 듯하다. 전편이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터라 시즌1을 본 관객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시즌2로 ‘셜록홈즈’를 처음 만났다면 꽤 기억에 남을 작품이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BBC아트센터에서 30일까지 공연한다. 5만 5000~9만 9000원. 1577-3363.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원더걸스 예은, 야생동물 구하러 아프리카로 가다

    원더걸스 예은, 야생동물 구하러 아프리카로 가다

    아프리카 남부에 있는 보츠와나는 광활한 초원이 펼쳐진 야생동물의 왕국이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 비해 종족 갈등이 적고 민주주의 제도가 잘 정착돼 있다. 미국의 한 비정부기구(NGO)는 최근 세계 25위의 ‘사법정의 국가’로 꼽기도 했다. 그러나 체계화한 법제도로도 막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야생동물 밀렵 행위다. 19일 밤 10시 50분 KBS 1TV에서 방송하는 ‘리얼체험 세상을 품다’에서는 걸그룹 원더걸스의 멤버 예은과 함께 보츠와나의 야생동물이 직면한 현실을 들여다본다. 보츠와나의 야생동물들은 밀렵 위험에 24시간 노출돼 있다. 밀렵 횡포로 아프리카 코뿔소는 멸종 위기에 놓여 앞으로 10년 내에 20%가 사라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지난 2월 예은은 이런 어려움이 닥친 보츠와나에서 야생동물 보호대원의 삶을 체험했다. 보호대원의 하루는 캄캄한 새벽부터 시작된다. 예은이 합류한 응급의료팀은 위험에 처했거나 아픈 야생동물을 찾아 나선다. 초원 끝에서 떠오른 붉은 태양과 함께 마주친 아프리카 코끼리의 육중한 몸집은 감탄을 자아낸다. 아프리카 초원에서도 보기 힘들다는 자칼을 만나고, 순발력이 뛰어난 임팔라를 쫓아 혈액 채취도 시도한다. 거대한 물웅덩이 한가운데에 차가 멈춰 버리는 긴급 상황도 맞닥뜨렸다. 과연 응급의료팀은 무사히 임무를 마칠 수 있을까. 한편 프로그램에서는 야영을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예은의 야전 경험과 특별한 현지 음식 요리법도 공개된다. 칠흑처럼 어두운 아프리카 초원의 밤에 예은이 풀어 놓은 구미호 전설과 한국 귀신 이야기는 남자대원들까지 두려움에 떨게 하며 흥미를 더한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무사의 복수 결투 보듬는 민중 한국 관객 공감하고 좋아하길”

    “무사의 복수 결투 보듬는 민중 한국 관객 공감하고 좋아하길”

    일본의 거장 연출가 니나가와 유키오(79)의 작품을 일컬어 ‘눈의 연극’ 또는 ‘3분 안에 관객들을 사로잡는 연극’이라고 한다. 연극 ‘무사시’의 내한 공연을 앞둔 18일 서울 세종로 코리아나호텔에서 만난 니나가와는 이런 평가의 바탕이 된 자신의 연극관부터 명쾌하게 풀었다. “관객이 어떤 마음으로 극장을 오는지 생각해 봤죠. 고된 일을 끝낸 사람, 슬픈 연애를 하는 사람, 여유를 즐기고 싶은 사람 등 객석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요. 이 사람들을 극의 세계로 빨리 끌고 와 극을 즐기도록 해야 했던 겁니다.” 2009년에 초연한 이노우에 히사시 원작의 ‘무사시’는 17세기 일본의 전설적 무사인 미야모토 무사시와 숙명의 라이벌 사사키 고지로가 벌이는 진검승부를 다룬다. 일본의 전통으로 가득한 무대가 과연 한국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그는 “보이는 것은 복수를 꿈꾸는 무사의 치열한 결투이지만 큰 가치는 그것을 보듬는 민중의 역할”이라면서 “한국 관객들도 그 점을 공감하고 좋아해 주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무사시’에서는 붉게 타오르는 거대한 보름달과 출렁거리는 푸른 파도의 대비가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긴장감이 휘감도는 간류섬 결투의 배경이다. 그가 “주의 깊게 봐주길 바란다”고 한 것은 무대를 장식하는 대나무들이다. “극작가 이노우에의 집에 있던 대나무 정원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대나무가 소리 없이 이동하면서 장면 전환이 되고, 반사되는 빛까지 섬세하게 연출했죠.” 그 대나무는 마루와 마당으로도 연결되면서 작품 속에서 중요한 배경으로 활용됐다. “1분은 몰라도 2분은 지각하면 안 된다”는 말에서 극 초반의 이 장면에 대한 그의 애정이 스쳤다. ‘무사시’가 관심을 끄는 것은 일본 연예계의 젊은 스타들과 베테랑 배우들이 출연한다는 점이다. 영화 ‘데스노트’로 잘 알려진 배우 후지와라 다쓰야, 차세대 스타 미조바타 준페이가 각각 무사시와 고지로 역을 맡았다. 스즈키 안, 가무사카 나오마사, 요시다 고타로 등이 무대에 오른다. 이노우에 작가는 다쓰야를 염두에 두고 ‘무사시’를 쓰기도 했다. 니나가와 연출은 “다쓰야는 연극병에 걸린 배우이고, 준페이는 그 병이 전염된 친구”라고 극찬하며 “그런 젊은 배우를 중견 배우들이 서로 도우면서 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 여왕이 CBE(대영제국 커맨더 훈장)을 수여하고 일본에서 문화훈장을 받은 거장인 그는 “3년 안에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10편 정도 연극화하고 싶다. 늘 조금 더 좋은 연출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겸손의 덕을 보였다. ‘무사시’는 오는 21~23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02)2005-0114.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부고]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작곡가 미치 리

    [부고]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작곡가 미치 리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작곡가로 유명한 미치 리가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별세했다고 AP통신 등 외신이 18일 보도했다. 86세. 추도식은 지난 17일 오후 맨해튼에서 열렸으며, 브로드웨이 극장가는 19일 오전 7시 45분 그를 기리기 위해 1분간 조명을 어둡게 하기로 했다. 미국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리는 예일대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재즈 음악가와 라디오·TV 극작가로 경력을 쌓았다. 1965년 초연한 ‘맨 오브 라만차’는 1971년까지 미국 뉴욕에서만 2300여 차례 공연됐고,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여전히 공연을 이어 가고 있다. 리는 이 작품으로 1966년 토니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 작곡상 등 5개 부문을 휩쓸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무엇을 고르리까, 그것이 문제로다

    무엇을 고르리까, 그것이 문제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세계 문학 사상 가장 유명한 독백이다. 숙부의 패륜, 어머니의 변절을 알게 된 덴마크 왕자 햄릿의 혼란과 분노, 갈등을 압축한 말이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가운데 ‘햄릿’을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것은 단순한 복수를 넘어서 인간 심리를 깊이 통찰하고 삶과 죽음의 본질을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연극평론 1세대로 오랫동안 ‘햄릿’을 강의해 온 여석기 고려대 명예교수는 ‘나의 햄릿 강의’(2008)에서 “‘햄릿’은 온통 수수께끼투성이”라고 했다. 햄릿이 복수를 망설이는 것, 오필리어가 자살한 이유, 거트루드(햄릿의 어머니)가 독이 든 잔을 알고 마셨을까 하는 것 등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작품 해석의 관점에서도 다양하고 흥미로운 화제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늘어나고 있다”는 여 교수의 평가대로, 여기에 올해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이라는 계기가 얹어져 ‘햄릿’에 대한 변주가 공연계를 휘감고 있다. 국악뮤지컬집단 타루의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연출 박선희)는 ‘햄릿’에 대한 기발한 접근이다. 똑같은 복장과 분장을 한 여성 소리꾼 4명이 햄릿이자 오필리어, 거트루드, 클로디어스가 돼 갈등을 빚고 이야기를 풀어 간다. 전라도 사투리로 판소리의 말맛을 살리고 칼싸움으로 긴장감을 끌어낸다. 타루의 정체성인 판소리와 우리 가락뿐만 아니라 스윙, 왈츠, 탱고 등 다양한 음악이 녹아 있다. ‘햄릿’의 역사·시대상을 재치 있게 우리 사회상과 접목해 이 시대의 자화상을 투영시킨다.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다음 달 13일까지 공연한다. 2만 5000원. (02)6481-1213. 연극, 무용, 음악, 영상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활용한 ‘햄릿’이 다음 달 3~6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현대적인 감각과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바라본 ‘햄릿, 여자의 아들’(연출 송현옥)이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라고 한탄한 햄릿의 여성관은 다소 비관적이다. 극단 물결은 이런 햄릿의 사고에서 벗어나 거트루드의 처지와 욕망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한다. 2만~5만원. (02)3668-0007. 햄릿을 사랑한 여인 오필리어에 초점을 맞춘 창작뮤지컬 ‘오필리어’가 5월 16~25일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다. 이 작품에서 오필리어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아 목숨을 끊는 유약한 존재가 아니다. 대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김명곤 전 문화부 장관은 “연극을 시작하던 스무 살 시절부터 세계인의 가슴에 영원히 남을 ‘불후의 명작’을 남기고 싶다는 꿈을 간직해 왔다. 초심으로 돌아와 ‘햄릿’을 읽다 보니 청순가련하고 순종적인 여성의 상징 ‘오필리어’의 모습에 의문이 갔다”고 했다. 이 작품에서 오필리어를 사랑에 적극적이고 당찬 매력을 지닌 여성으로 표현한 이유다. ‘오필리어’의 음악과 안무를 각각 최우정 TIMF앙상블 예술감독과 주목받는 현대무용가 차진엽이 담당해 관심을 끈다. (02)515-0405.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자발적 죽음을 보는 유럽인들의 시각은

    자발적 죽음을 보는 유럽인들의 시각은

    자살의 역사/조르주 미누아 지음/이세진 옮김/그린비/516쪽/2만 9000원 세계적인 자살률, 처지를 비관한 자살, 나약한 의지의 발로…. 연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소식이 들려오고 그 원인을 분석하려는 시도도 꾸준히 이어진다. 생활고, 실연, 치욕, 폭력, 이런저런 이유에 우울증까지 갖다 붙이면서 자살을 선택한 이유를 꼽아낸다. 그러나 자살이라는 것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햄릿의 말처럼 이유를 단순화할 수 없다. 오히려 알베르 카뮈의 말대로 자살은 “심각하고 유일한 철학적 문제”다. 과연 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철학의 근본적인 문제로 소급되기 때문이다. 프랑스 역사학자 조르주 미누아가 쓴 ‘자살의 역사’는 자발적 죽음에 대한 오랜 논쟁 중에서도 16~18세기 유럽의 자살에 초점을 맞췄다. 저자는 이 시기를 ‘자발적 죽음에 대한 성찰이 각별했던’ 때로 봤다. 중세 말인 16세기까지 자살은 신의 섭리에 대한 불복종이자 살인으로 여겨졌다. 때문에 자살자의 시신은 가혹행위를 당하고 재산은 몰수됐다. 감춰야 할 일이었던 탓에 당연히 기록도 파편적으로 남아 있다. 시인 루크레티우스, 정치가 브루투스나 세네카 같은 유명한 자살 사례가 중세에 드러나지 않았던 것도 같은 이유다. 그렇다고 자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귀족에게는 간접 자살이라는 대체행위가 있었다. 유희적 자살이라고 불리는 마상시합이나 자발적 순교로 포장한 전쟁이다. 르네상스 시기에도 자살은 대체로 비난을 받았지만 문학과 연극판에서는 그에 대해 다른 시선을 보였다. 인쇄기술의 발달로 루크레티우스, 브루투스, 세네카 등의 전기물이 읽히면서 존경할 만한 인물들이 ‘왜 자살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햄릿’과 같은 연극무대를 통해 생과 사를 고민하는 인간의 모습이 거듭 투영되면서 자살이 하나의 개인행동이라는 의식이 싹텄다. 계몽주의로 넘어가는 18세기 초 영국에서 처음으로 ‘자기 살해’를 ‘자살’(suicide)로 불렀다. 영국에서 매주 ‘사망 내역’을 실은 신문이 발간됐고 유서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실연, 가정불화, 수치, 회한 등 일반적인 인생사가 자살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자살에 대한 평가는 다른 양상이었지만 시대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 자살의 ‘계급 차별’이다. 귀족이나 지성인의 자살은 명예 회복의 길이요, 지적 성찰과 회한의 결과로 봤다. 그러나 평민의 자살은 비참하고 지난한 현실의 결과나 책임 회피로 치부됐다. 책은 19~20세기 자살의 원인과 평가도 언급하면서 차근차근 핵심으로 다가간다. 자살 논쟁이 치열했던 16~18세기에는 인간의 자유라는 문제에 대해 깊은 성찰을 했지만, 19~20세기에는 자살에 사회·심리학적 잣대를 들이대면서 개인의 죄의식을 부추기고 집권층의 권력 유지 수단으로 자살을 은폐해 오히려 논쟁과 고민이 퇴행됐다고 분석한다. 죽음보다는 삶이 낫다는 전제로 고통을 견디고서라도 살아야만 한다고 강요하지는 않는지, 자살의 과거사를 탐구하면서 ‘죽음 윤리’를 환기시킨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서점 10년 새 3분의1 문 닫았다

    출판시장 불황과 온라인 서점 활성화가 겹치면서 오프라인 서점이 빠르게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에 전국 3589개였던 서점은 지난해 말까지 3분의1 가량 사라졌고, 2년 사이 10% 가까이 줄어들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12일 공개한 ‘2014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2013년 말 국내 서점 수는 2331개로, 2011년 말에 비해 246개(9.5%)가 감소했다. 사라진 서점의 96.7%(238개)가 전용면적 165㎡ 미만 소형서점이었다. 문구류 판매 등을 겸업하지 않고 책만 판매하는 순수 서점은 1625곳으로, 2년 전보다 7.2% 이상 줄었다. 서울과 6대 광역시에 절반 이상인 1300개 서점이 들어선 반면 인천 옹진군과 경북 영양·울릉·청송군 등 4개 군에는 등록된 서점이 한 곳도 없었다. 경기 의왕시, 경북 문경시 등 36곳은 서점이 단 1곳밖에 없었다. 서점 1곳당 평균 인구는 2만 1939명, 학생은 3083명으로 집계됐다. 연합회는 지난해 10~12월까지 전국 서점을 전수 조사했고, 헌책방과 할인매장, 기독교서점 등은 제외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높은 곳에서 ‘아슬아슬’… 건물 뼈대 엮는 철골작업반

    높은 곳에서 ‘아슬아슬’… 건물 뼈대 엮는 철골작업반

    지상에서 20m가량 높이 솟아오른 좁디좁은 철골 위에서 아슬아슬한 작업을 하는 이들이 있다. 의지할 것이라고는 고리에 건 안전 밧줄 하나. 하루 일과를 이 높다란 곳에서 시작하고 끝내는 이들은 철골 구조물 작업반이다. 건물의 기초가 되는 철골 구조물을 세우고, 철근을 연결하고 페인트칠을 한다. 철근을 연결하는 볼트를 조일 때에도 작은 볼트가 하나라도 떨어질세라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쇠를 벗겨 내다가 튀는 날카로운 쇳조각은 보호안경도 금세 흠집을 낼 정도로 강력하다. 크고 작은 위험들이 포진해 있지만 이들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으로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EBS는 12일 밤 10시 45분에 방송되는 ‘극한 직업’에서 이들의 하루를 조명한다. 강원도 원주에 있는 건축 증축 현장. 건물의 뼈대를 세우는 철골 구조물 설치 작업이 한창이다. 철골 빔 한 개의 무게는 평균 1t. 이 철골들이 만여개가 모여야 한 건물의 버팀목이 된다. 철골의 폭은 작업자들의 발 폭보다도 좁다. 그래도 발 디딜 곳만 있으면 능수능란하게 오르내리고, 철골 위에 엎드려 볼트를 조이는 작업까지 해낸다. 공중에서 떨어지는 작은 볼트 하나조차 대형사고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작업반 사람들은 몸과 마음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한편 철골을 일차적으로 가공하는 공장에서도 작업 소리가 요란하다. 철골에 녹슨 쇠를 벗겨 내는 작업 중이다. 7.5㎏의 압력으로 분사되는 거친 알맹이는 철골과 닿으면 불꽃이 튈 정도로 위협적이다. 어느 한 공정도 편안하고 쉬운 것이 없는, 이들의 긴장감 넘치는 현장을 생생하게 전한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극장, 시대를 말한다

    남산예술센터는 극장 자체를 주인공으로 삼은 ‘남산 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편’(연출 이경성)으로 올 시즌의 문을 연다. 서울 중구 예장동 남산예술센터의 전신은 1962년 극작가이자 연출가였던 동랑 유치진 선생이 세운 ‘드라마센터’다. ‘햄릿’을 공연하면서 최초의 현대식 극장은 힘차게 개관했지만 재정난으로 1년여 만에 문을 닫고 결혼식장이나 미군연주단의 공연장으로 활용됐다. 1970년대 들어 유덕형 연출의 ‘초분’, 오태석의 ‘태’ 등 화제작이 연이어 무대를 장식하면서 드라마센터는 한국 연극사에서 의미 있는 공간으로 부활했다. 작품은 이런 극장의 역사와 의미를 되새기면서 극장 밖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이경성 연출은 “드라마센터의 역사는 한국 현대사의 흐름과 맞물리는 지점에 있다”며 “연극보다 더 연극적인 일들이 극장 밖에서 벌어지고 있었음”에 주목했다. 남산 자락 한쪽에서 공연과 리허설이 진행되는 동안 다른 한쪽(1970년대 안기부 본관)에서는 연극보다 더 연극적인 조작과 고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남산 도큐멘타’는 연극에 인터뷰, 다큐멘터리, 토론 등을 결합해 극장을 통해 시대를 조명하는 시도로 확장된다. 공연 전 프로그램으로 극장 주변 장소들을 살펴보는 ‘유령산책’이라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15~30일. 2만 5000원. (02)758-2106.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공연과 만난 인문학

    두산아트센터가 오는 24일부터 7월 5일까지 ‘불신시대’라는 주제로 연극, 인문학 강연, 미술 전시 등을 펼치는 ‘두산인문극장 2014’를 연다. ‘믿음이 가능하지 않은 시대’에 필요한 신뢰 회복이나 해결책 모색이 아니라 회의, 의심, 반목 등의 불신 자체에 대한 탐구다. ‘우리는 사랑할 수 있는가’ ‘우리는 지속할 수 있는가’ ‘우리는 함께 할 수 있는가’ 등의 세 가지 큰 틀 속에 연극과 영화 각각 3편, 9개 강연으로 구성했다. ‘사랑’ 분야에서는 극단 골목길의 연극 ‘베키 쇼’(연출 박근형, 4월 1~26일)를 공연한다. 미국 TV시리즈 ‘콜드 케이스’의 작가인 지나 지온프리도의 작품으로, 화합이 어려워 보이는 가족을 통해 인간 군상을 흥미롭게 조명한다. 4월 7일에는 현역 최고령 영화감독인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106)의 ‘게보와 그림자’를 상영한다. 강연으로는 ‘오, 나의 친구들이여 친구란 없다’(3월 31일), ‘사랑에 관한 질문들’(4월 14일)을 준비했다. 5월과 6월에는 각각 ‘지속’과 ‘함께’ 분야가 이어진다. 연극 ‘엔론’(연출 이수인, 5월 7~31일)과 ‘배수의 고도’(연출 김재엽, 6월 10일~7일 5일), 영화 ‘지젝의 기묘한 이데올로기 강의’(5월 19일)와 ‘이웃의 소리들’(6월 9일), 강연 ‘민주주의와 그 불만’(5월 19일), ‘대화의 예술, 예술의 대화’(6월 2일) 등을 진행한다. 아울러 3월 24일에는 재독 철학자 한병철이 ‘피로사회-투명사회-불신사회’를 주제로 강연하고 두산갤러리에서는 4월 23일부터 5월 31일까지 기획전시 ‘숨을 참는 법’을 연다. 강연에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민승기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서동진 계원예대 교수,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등이 나선다. 강연과 영화를 기획한 유운성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부장은 “강연에서는 동시대의 문제에 집중한 소장학자들의 담론을 듣고, 영화로써 사회를 이해하는 폭을 넓힐 수 있도록 했다”면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영화도 만나는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찾는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찾는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 들어서면 ‘3단 표정 포스터’가 눈에 확 들어온다. 하얗게 분칠한 얼굴에 쪽 찢어진 눈, 그중 오른쪽 눈은 오묘한 주황색이다. 빨간 입술을 닦으며 활짝 웃고 있는 표정에 이르면 괴기함에 소름이 쫙 돋는다. 진짜 전율은 분장 속에 있다. 가발을 벗고 분장을 지운 배우의 맨 얼굴은,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순수하고 사랑스러운’이라는 수식어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그다. 뮤지컬 ‘베르테르’에서는 상큼하면서도 우아한 롯데였고, ‘해를 품은 달’에서는 애절한 사랑을 하는 연우였다. 뽀얀 피부와 작은 얼굴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귀여운 전미도(32)는 ‘멜로물’이 잘 어울리는 배우다. 그런데 다음 작품은 악마다. 그냥 사악한 게 아니라 남자인 듯 여자이고, 사람인 듯 짐승인, 무척 이상한 존재다. 연극 ‘메피스토’(연출 서재형)의 연습이 한창인 예술의전당 연습실에서 만난 전미도는 “이 작품 부제가 ‘내 안의 또 다른 나’인데, 나 자신이 그 개념을 따라가고 있다”고 얌전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뮤지컬 배우로 더 알려진 전미도는 “아무래도 대중에게 더 많이 노출된 게 뮤지컬이다 보니 그렇게 된 듯하다”면서 “갓 졸업했을 때 작업(공연)하는 게 목표였고 벌이도 무시할 수 없으니까 연극, 뮤지컬을 따지지 않고 오디션이 있는 대로 보고 무대에 섰다”고 떠올렸다. 빛나는 연기로 대형 신인 탄생의 기대감을 심은 ‘신의 아그네스’(2008), ‘갈매기’(2009), ‘14인 체홉’(2012), ‘벚꽃동산’(2013) 등 꾸준히 연극 무대에도 섰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원작으로 한 ‘메피스토’에서 전미도는 파우스트의 영혼을 손에 넣기 위해 계약을 하는 메피스토펠레스를 맡았다. 대부분 이 역할은 남자 배우의 몫이었지만 이번엔 여배우다. “남자에게 가장 유혹적인 존재, 욕망을 끌어내고 흔들리게 하는 존재는 여자이니까. 그런 이유로 제안이 들어왔고, 매우 강렬하게 변할 수 있는 기대감에 이끌려 선택했어요.” 그런데 연습을 하면 할수록 고민이 쌓인다. “악한 걸 표현하는 게 생각보다 굉장히 어렵다”고 했다. “침묵하고 있을 때도 악한 기운을 뿜어내야 하는 게 어떤 건지 혼란스러워요. 친절하게, 동년배 친구처럼, 여성스럽게 유혹할 때도 악마의 본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거든요. 해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고통스럽고 무섭고 두렵고…. 하지만 하나씩 깨우치는 즐거움도 있죠.” 조곤조곤 말하는 것이나 수줍게 웃는 모습에서 메피스토펠레스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라 어떻게 표현할지 묻자 그는 “뚜껑을 열고 관객을 만나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며 명확한 대답을 피했다. 대신 “어떻게든 굉장히 강렬하게 변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연기로는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은 전미도가 180도 다른 모습을 끌어낸다는 것만으로도 ‘메피스토’에 대한 기대감을 키운다. 공연은 다음 달 4~19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무대에 오른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화장실… 보부상… 한국의 민낯을 보여주다

    화장실… 보부상… 한국의 민낯을 보여주다

    우리도 몰랐던 우리 문화/강준만 외/인물과사상사 320쪽/1만 4000원 “문화는 드러내는 것보다 감추는 것이 훨씬 더 많으며, 더구나 묘한 것은 그 문화에 속한 사람들이 감춰진 바를 가장 모른다는 점이다. 나는 여러해 동안 문화를 연구하면서 정말로 중요한 일은 외국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게 됐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의 말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 말을 자주 인용한다고 했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학의 불모지는 역설적으로 한국일지도 모른다”는 강 교수는 그런 이유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것에서 한국의 민낯을 찾아내 책으로 엮었다. 화장실, 행운의 편지, 자기계발서, 보부상과 행상, 크리스마스 등을 다룬 ‘우리도 몰랐던 우리 문화’다. 지난해 내놓은 ‘우리가 몰랐던 세계 문화’의 후속작으로, 이번 책도 전북대 재학생들과 공동 작업했다. 책의 시작은 ‘한국 화장실의 역사’다. 처음부터 ‘똥’ 얘기가 매우 자세하게 나온다. 풍자문학의 소재인 똥과 동서양 변기사(史)를 짚노라면, 그 ‘형태’부터 떠올라 머쓱하다. 하지만 그 순간을 넘기면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똥의 의미를 깨닫기에 이른다. 1920년대 일제는 조선 개혁대상의 하나로 화장실을 꼽아 변소 개량과 요강 폐지를 강요했다. 한국전쟁 와중에도 서울시 경찰국은 악취 제거를 위한 변소 개량 독려를 이어갔다. 1952년 양변기라고는 본 적도 없는 37세 건설업자가 미군의 찬사를 받는 일도 있었다. 미 대통령 당선자 아이젠하워의 방한을 코앞에 둔 미군은 숙소인 운현궁의 난방과 화장실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이 건설업자는 전쟁통에 고물상을 뒤지고 물품을 주워모아 12일 만에 공사를 끝냈다. 미군은 “현다이(현대) 넘버원”을 외치면서 이후 공사를 모두 이 업자에게 맡겼다. 그가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다. 화장실 이야기는 시설과 문화의 변화, 변의 재활용 등을 거쳐 평등과 겸손의 미학으로까지 확장되면서 ‘개똥철학’이 아니라 심도있는 사유를 풀어낸다. 1895년 12월 내려진 단발령부터 2000년대 두발규제 반대운동까지 읽어내려오면서 머리카락을 핵심으로 한 전통과 개화, 통제와 자율이 충돌하는 투쟁의 역사를 읽는다. 또 밸런타인 데이부터 핼러윈 데이까지 ‘1년 365일 사이클의 물신화(物神化)’를 진단하고, 남한산성에서 만든 효종갱(해장국)을 이불에 말아 서울 사대문 안의 양반들에게 전해주던 일에서 배달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강 교수는 서문에서 “필자가 20대 학부생이라는 점을 행여 낮춰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말은 엄살이거나 자신감의 우회적 표현이 아닌가 싶다.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책은 꽤 촘촘하고 의미있는 생활문화사로 완성됐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공연리뷰] 음악극 ‘홀스또메르’

    ‘배우 유인촌’은 매우 소탈하고 섬세했으며 명쾌하면서 열정적이었다. 정부 부처 장관으로 대접받던 사회적 옷 대신 그는 누런 바탕에 때가 타고 커다란 얼룩이 스민 옷을 입었다. 이전에는 분장을 했어야 할 머리칼과 얼굴은 자연스러운 은발이 됐고 주름이 졌다. 음악극 ‘홀스또메르’를 분신처럼 아끼던 그는 세월을 고스란히 품은 채 그 자체로 노쇠한 말 홀스또메르가 됐다. 음악극 ‘톨스토이의 홀스또메르’는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의 중편소설 ‘홀스토메르-어느 말 이야기’를 극작가 마르크 로조프스키가 각색한 것이다. 명마(馬)의 새끼이지만 몸이 얼룩졌다는 이유로 따돌림당하고, 촉망받는 경주마로서 전성기도 누리지만 주인의 변심으로 버림받는다. 도축당할 일만 남은 늙고 병든 말이 젊은 명마들에게 풀어내 주는 신산한 삶은, 인생의 희로애락이자 인간의 모순이다. 유인촌이 대표로 있던 극단 유(현 광대무변)에서 1997년에 초연한 뒤 1~2년마다 한번씩 작품을 올렸다. 유인촌이 서울문화재단 대표를 지내던 2005년에도 공연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시절에는 내려놓고 있다가 9년 만에 다시 ‘홀스또메르’를 올린 그는 “거울처럼 인생을 비추는 훌륭한 작품”이라고 했다. 단순히 작품에 대한 애정이나 극찬이 아니었다. 그 자신이 홀스또메르와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감정을 발화하면서 그 설명을 증명했다. 혀를 낼름거리고 얼굴을 양옆으로 흔들며 입을 털거나, 손목과 발목을 탄력 있게 움직이면서 세세하게 말을 표현했다. 무엇보다도 시선을 잡은 건 풍부한 표정이다. 천진, 기쁨, 행복, 희열, 두려움, 고통, 절망, 슬픔에 이어 모든 것을 달관하게 되는 인생사를 그대로 털어놨다. 그 표정이 감탄스러워 ‘그는 홀스또메르의 인생을 산 것인가’라는 질문이 내내 교차된다. 김명수(세르홉스끼 공작), 김선경(암말 바조쁘리하·마찌에), 김기분(페오판) 등 배우들의 연기도 잘 녹아들어 갔다. 다만 홀스또메르의 상황을 일일이 설명하고 줄거리를 낭독하는 형식은 공연을 늘어지게 했다. 라이브 밴드의 음악은 적절하고 흥겨웠지만 무대 위에 놓여 시선을 분산시켜 버렸다. 홀스또메르의 통찰과 성찰을 도드라지게 보여줄 수 있는 압축과 절제가 다소 아쉽다. 공연은 오는 30일까지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타임스퀘어 CGV신한카드아트홀에서 이어진다. 4만 5000~6만 5000원. 1588-0688.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