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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세월호 참사 1년, 여전히 불안한 대한민국

    16일은 세월호 사고가 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막 피어난 어린 생명들을 저세상으로 보내고 슬픔에 젖어서 지낸 지 벌써 한 해가 흘러간 것이다. 필설로 다 하지 못할 유가족들의 고통은 여전하고 국민들의 아린 가슴 또한 치유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길다면 길다고 할 1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지만 사실 별반 달라진 것도 없다. 크고 작은 안전사고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도리어 더 많이 발생했다. 최근 실시한 서울신문의 여론 조사에서도 ‘국가의 안전의식이 변화했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60.1%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언제 어디서 사고가 또 터질지 모를 정도로 여전히 우리 사회는 불안하다. 세월호 사고의 근인(近因)으로 지목된 불법 과적 행위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한 보도에 따르면 어느 지방 소도시 항구에서 섬을 오가는 여객선은 레미콘과 사료를 가득 실은 대형트럭 등 화물을 과적한 채 운항하고 있다. 그런데도 화물을 만재한 트럭들을 서류상으로는 빈 차로 처리해 선적 중량을 속이는 일이 많다고 한다. 세월호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불법 행위들이 근절되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대로라면 세월호 사고의 재판(再版)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6일 운항 관리자 증원, 벌칙 강화, 승객 신분 철저 확인 등을 담은 ‘여객선 안전관리 개선 현황’을 발표했다. 많이 달라졌다는 정부의 자화자찬식 자평이다. 규정이 없다면 새로 만들고 느슨하다면 강화해야 하지만 지키지 않으면 헛일이다. 사고는 안전 규정이 없어서라기보다 있는데도 지키지 않아서 일어난다. 영종대교 106중 추돌 사고는 안개 속 서행 의무를 어긴 관광버스 때문에 일어났다. 16명이 목숨을 잃은 판교 환풍구 추락 사고는 설계도와 다르게 환풍구를 시공했기 때문이었다. 정부의 대응은 역시나 미덥지 못하다. 대책이라고 내놓았지만 재탕·잡탕식의 보여 주기식 전시형 대책뿐이었다. 해경을 해체하고 국민안전처를 신설했지만 자리조차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있으니 안전 컨트롤타워 역할을 어떻게 하겠는가. 조삼모사식 조직 개편이나 이름 변경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음이 증명된 셈이다. 온갖 안전 법안들이 국회에서 발의됐어도 극히 일부만 처리된 것은 사고 직후 현장에서도 그랬듯이 세월호 사고를 이용하려 한 정치인들의 속셈을 다시 한번 확인해 준 꼴이 됐다. 허울 좋은 제도와 못 믿을 정부를 탓하기에 앞서 우리 국민 개개인의 안전 의식부터 변화시켜야 한다. 사실은 그것이 첫째다. 있는 규정만 따르더라도 안전사고는 훨씬 줄어든다. 녹색 신호와 규정 속도를 철저히 지킨다면 자동차 사고가 큰 폭으로 줄어들 수 있다. 자동차 운전자가 같은 사람인 보행자를 치는 것처럼 우리는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도 있고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건설 현장, 화학 공장, 교통수단 등 안전사고 우려가 큰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제각기 규정을 지켜서 안전 여부를 확인·점검하면 사고는 예방된다. 세월호 사고의 아픔과 교훈은 시간이 지나더라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한순간의 호들갑으로 끝내다가는 더 큰 시련을 맞을 수도 있다.
  • 제주~여수 뱃길 9년 만에 재개

    제주~전남 여수 간 뱃길이 빠르면 오는 7월 다시 열릴 전망이다. 2006년 뱃길이 끊긴 뒤 9년 만의 재취항이다. 13일 제주관광협회 등에 따르면 여객선사인 한일고속은 최근 여수지방해양수산청에 ‘제주~여수 간 여객선 조건부 면허’를 신청했다. 앞서 한일고속은 지난해 4월 제주~여수 여객선 사업자 공모에서 여객운송사업 수행 능력, 신용도(경영상태), 선박 확보 계획 등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 이 노선의 운항선사로 선정됐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 사고 등으로 선박 안전기준이 강화되면서 신규 여객선 도입에 어려움을 겪어 취항이 계속 연기돼 왔다. 한일고속은 1만 5000t급 선박을 구매, 이 항로에 투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예정대로 면허 절차가 이뤄지면 7월 중 취항이 가능할 전망이다. 한일고속은 매일 한 차례 제주~여수 간 항로를 운항할 계획이며 소요 시간은 편도 3시 30분~4시간 정도다. 여수~제주 간 뱃길은 2012년 5월 여수박람회 때 임시로 ‘부정기 여객선’이 취항했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세월호 참사 1년] 1년째 끊긴 인천~제주 뱃길

    [세월호 참사 1년] 1년째 끊긴 인천~제주 뱃길

    ‘세월호 트라우마’가 진행형인 것 중 하나가 인천∼제주 간 여객선 문제다. 세월호 참사 직후 끊긴 여객선은 아직 운항이 재개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여객선이 다시 뜬다 해도 과연 누가 탈까 하는 의구심과 닿아 있다. 12일 인천지방해양수산청에 따르면 세월호 사고 여파로 청해진해운의 운송면허가 취소된 지 1년이 다 돼 가지만 인천∼제주 항로에 대체 여객선이 투입되고 않고 있다. 사고 전에는 청해진해운 소속 카페리 세월호(6822t급)와 오하마나호(6322t급)가 번갈아 가며 여객·화물을 운송해 왔으나 오하마나호는 세월호 사고 이후 경매에 부쳐져 네 차례 유찰 끝에 지난 1월 서동마리타임에 28억 4000만원에 낙찰됐다. 인천∼제주 카페리 운항이 전면 중단되면서 여객 수송은 항공편이 유일한 수단이 됐다. 수도권과 제주를 잇는 뱃길 관광이 차단됨에 따라 관광업계는 타격을 입었다. 또 한동안 인천∼제주 간 물류 운송도 끊겨 제주산 생수를 비롯한 특산품, 생필품, 농수산물, 건축자재 등을 조달하는 데 차질이 빚어졌다. 신규 여객선 투입이 늦어지자 일단 화물 운송을 위해 지난해 9월 화물선 케이에스헤르메스호(5900t·주 3회 운항)가 인천~제주 항로에 투입돼 급한 불은 껐다. 또 지난 3일에는 대형 화물차까지 실을 수 있는 썬라이즈호(9500t·주 2회 운항)가 추가 투입됐다. 썬라이즈호는 컨테이너 200개, 화물차량 40대, 승용차 60대를 수송할 수 있어 화물 적체 현상은 거의 해소됐다. 그러나 여전히 여객 수요는 전혀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인천∼제주 항로가 세월호 참사에 따른 ‘사고항로’라는 이미지로 덧칠된 데다 화물보다는 여객 수익이 떨어지는 탓에 선뜻 나서는 사업자가 없는 상태다. 지난날 청해진해운은 이 항로의 화물 수요가 전체의 70∼80%에 달해 짭짤한 재미를 보자 세월호 외에 화물을 보다 많이 실을 수 있는 오하마나호를 추가 투입했다. 여객 면허 허가권을 가진 인천해양청은 인천∼제주 항로에 여객선 사업을 한번 해보겠다고 운을 떼는 사람마저 없자 답답한 심정을 토로한다. 인천해양청 관계자는 “여객 수요가 불확실한 데다 지금은 화물선이 2대나 투입돼 여객·화물 동시 수요는 기대할 수 없어 사업자들의 고민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사고 후 선박 관련 규제가 대폭 강화된 것도 민간 사업자들이 여객사업에 쉽게 뛰어들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참사에 놀란 정부는 신규 여객사업을 신청할 사업자에게 선령이 낮은 배를 투입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새로 건조한 여객선은 아니더라도 선령이 낮은 중고 여객선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규정은 아니지만 내부 방침으로 정한 신규 사업 적정 선령은 10년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여객선 사업자들은 선령 10년 이하 선박으로는 타산을 맞추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한 관계자는 “선령을 10년 이하로 하면 배값이 엄청나게 뛴다”면서 “그런 배는 구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사정이 나쁘다고 해서 해양정책상 인천~제주 여객 항로를 포기할 수는 없다. 인천해양청 관계자는 “사업자가 나타나면 바로 여객선을 투입할 방침이지만, 현재로서는 언제 운항이 재개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글 사진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세월호 참사 1년] 세월호 2013년 여객 수입 54억 ‘노른자 항로’

    인천∼제주 항로 여객 수익은 화물보다는 떨어지지만 이용객이 연간 11만명에 달해 세월호 참사 전까지는 비교적 ‘노른자 항로’로 통했다. 비행기보다 배로 가는 것은 본격적인 제주 관광에 앞서 뱃길 관광이라는 색다른 묘미가 있어 인천뿐 아니라 수도권에서 발길이 밀려들었다. 인천∼제주 여객 수송은 2009년 10만 1290명, 2010년 11만 5272명, 2011년 10만 415명, 2012년 9만 8104명, 2013년 11만 8717명으로 꾸준히 10만∼11만명을 유지했다. 세월호 여객 운임은 객실 등급에 따라 7만 1000∼28만원이었다. 여객과 화물을 함께 실어 나르던 세월호의 2013년 전체 수입은 213억 8536만원으로 화물이 159억 5783만원, 여객은 54억 2753만원이었다. 여객이 화물 수입보다 적지만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입출입 관리, 고박·안전장치 등이 필요한 화물과 달리 여객은 객실만 확보하면 돼 상대적으로 쉬운 돈벌이다. 세월호의 차량 운임은 대당 10만~14만원이었다. 그런데도 세월호 사고 1년이 되도록 여객선 사업자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세월호에 대한 국민적 충격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요즘 인천에서 배를 타고 제주로 갈 방법이 없어도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항만업계 관계자는 “대형 사고가 나도 대개 수개월이 지나면 국민들의 기억에서 지워지지만, 세월호는 학생들이 대거 희생된 초유의 사고인 데다 특별조사위원회가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해 여파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세월호 참사 1년] 승선 전 신분증 2번 확인… 차량도 이중 삼중 ‘결박’

    [세월호 참사 1년] 승선 전 신분증 2번 확인… 차량도 이중 삼중 ‘결박’

    지난 1일 오전 7시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은 사람들로 붐볐다. 우리나라 최북단 백령도로 가는 여객선이 짙은 안개로 3일간 묶여 있었기에 서둘러 온 기색들이 역력하다. 이날도 배를 타지 못하면 백령 주민들은 친척집이나 숙박시설에서 묵어야 한다. 최모(61)씨는 “배가 뜬다는 얘기를 듣고 나왔지만 기상이 나아지지 않으면 몇 시간씩 대기하는 일이 허다해서 배를 타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여객선 결항이 잦아졌다. 기상 여건이 맞지 않으면 여간해선 운항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인천항∼백령도 노선 결항일 수는 65일. 세월호 사고 전에는 11일이었지만, 이후에는 54일에 달했다. 올 들어서는 28일이다. 개찰이 시작됐지만 타는 절차가 전보다 까다로웠다. 개찰구에서 신분증을 요구하더니 배 입구에서 선사 직원이 다시 표와 신분증을 확인한다. 발매 창구까지 더하면 세 번이나 신분증을 내밀어야 했다. 세월호 사고 전인 지난해 3월 타 봤을 때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배에 싣는 화물과 자동차를 다루는 절차도 강화됐다. 차량 바퀴 4개 앞뒤를 굄목으로 고정시킨 뒤 다시 차체와 바퀴를 6개의 나이싱(결박장치)으로 단단히 조여 맸다. 차를 부두에서 배로 옮길 때 운전도 선사 직원들이 했다. 전에는 차량 소유자가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날 하모니플라워호(2071t급)는 승객 426명과 차 11대를 실었다. 객실에서는 비상 시 구명동의 사용법 등 대처 요령을 설명하는 방송이 장황하게 흘러나왔다. 하지만 승객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세월호 사고도 있었는데 무섭지 않으냐”고 묻자 백령 주민 장모(56)씨는 “늘 다니는 길인데 무서우면 어떻게 배를 타느냐. 세월호 사고 직후 배를 타면 좀 불안했는데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모(48)씨는 “전에는 여객선 중 아무거나 시간 편한 대로 탔는데 세월호 사고 후에는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카페리를 이용하는 주민들이 늘어났다”고 귀띔했다. 경기 화성 농협조합원들과 단체관광을 간다는 신모(67·여)씨는 “큰 배는 무섭다. 아까 짐을 싣고 그러는 것을 보니 세월호 생각이 났다. 애들이 수없이 죽은 그 사고가 안 잊힌다”고 말했다. 백령도 학교 교사인 박모(52·여)씨는 “가족과 떨어져 있어 2주일마다 육지를 드나드는데 파도가 높거나 안개가 낄 때는 신경이 쓰인다”면서 “아무래도 세월호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글 사진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1912년 비극의 타이타닉호 의자 1억 3000만원 경매 나와

    1912년 비극의 타이타닉호 의자 1억 3000만원 경매 나와

    지난 1912년 4월 15일 영국 사우샘프턴에서 미국 뉴욕으로 처음 항해하던 초호화 여객선이 빙산에 부딪혀 침몰해 1500여명이 수장됐다. 바로 20세기 최악의 해양 재난사고로 기록된 타이타닉호의 침몰 사고다. 최근 영국의 경매회사 헨리 앨드리지 앤드 손 측은 "사고 당시 타이타닉호에 실려 사용됐던 '덱 체어'(deck chair·주로 해변에 사용되는 접의식 의자)가 오는 18일(현지시간) 경매에 나온다"고 밝혔다. 당시 타이타닉호의 1등석 산책 갑판에 놓여있었던 이 의자는 역사적 가치 및 희귀성 덕에 무려 8만 파운드(약 1억 2800만원)의 예상 낙찰가가 책정됐다. 이 의자는 타이타닉호 침몰 이후 바다 위를 떠돌다가 당시 희생자 시신 인양에 나섰던 맥케이 베넷호의 승무원에 의해 건져 올려졌다. 이후 선장을 거쳐 지난 2001년 익명의 영국인 수집가에게 넘어간 의자는 이번에 경매에 나와 새 주인을 기다리게 됐다. 옥션 회사 대표는 "이 의자는 침몰한 타이타닉호를 기리는 중요 물품 중 하나" 라면서 "수집가가 손상을 우려해 앉지않고 전시용으로만 간직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고 밝혔다.이어 "의자 상단에는 타이타닉호의 소유 회사인 영국 화이트스타라인을 상징하는 별이 새겨져 있다"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뉴스 플러스 - 사회]

    원세훈 상고 주심에 민일영 대법관 대법원이 10일 대선 개입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이 선고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건 상고심의 주심으로 민일영 대법관이 결정됐다고 밝혔다. 민 대법관은 2009년 9월 대법관에 임명됐다. 원 전 원장의 구속 만기 최장 시점이 오는 10월 8일인 점을 고려하면 선고는 10월 이전에 나올 가능성이 있다. 부산 여객선 고래와 충돌 12명 부상 10일 오전 10시 10분쯤 부산에서 일본 후쿠오카로 향하던 국제여객선 코비 3호(160t)가 영도구 태종대 남동쪽 25km(14마일) 해상에서 고래로 추정되는 물체와 부딪쳤다. 이 사고로 탑승객 168명(승무원 7명, 승객 161명) 가운데 전모(54)씨 등 12명이 타박상을 입었다. 해경은 승무원 등을 대상으로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김주하 ‘각서 약정금’ 2심도 승소 서울고법 민사12부는 10일 MBC 전 앵커 김주하(42)씨가 전 남편 강모(45)씨를 상대로 낸 약정금 청구 소송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원고 승소 판결했다. 2004년 김씨와 결혼한 강씨는 2009년 외도를 사과하는 뜻에서 3억 2700만원을 주겠다는 각서를 썼지만 이행하지 않았다. 김씨는 결혼 생활을 이어 가다가 2013년 이혼 소송을 시작했다. 日고교생 22명 동대문서 단체 절도 서울 중부경찰서가 지난달 27일 동대문 밀리오레에서 액세서리 등을 훔친 일본 고교 축구부 3학년생 22명을 절도 혐의로 입건했다고 10일 밝혔다. 친선 경기를 위해 입국했던 이들은 매장 9곳에서 1시간 동안 벨트와 지갑 등 70여점(252만원 상당)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에서 이들의 유니폼을 확인한 뒤 재입국을 요청해 검거했다.
  • 타이타닉호 100년 전 의자 1억 3000만원 경매

    타이타닉호 100년 전 의자 1억 3000만원 경매

    지난 1912년 4월 15일 영국 사우샘프턴에서 미국 뉴욕으로 처음 항해하던 초호화 여객선이 빙산에 부딪혀 침몰해 1500여명이 수장됐다. 바로 20세기 최악의 해양 재난사고로 기록된 타이타닉호의 침몰 사고다. 최근 영국의 경매회사 헨리 앨드리지 앤드 손 측은 "사고 당시 타이타닉호에 실려 사용됐던 '덱 체어'(deck chair·주로 해변에 사용되는 접의식 의자)가 오는 18일(현지시간) 경매에 나온다"고 밝혔다. 당시 타이타닉호의 1등석 산책 갑판에 놓여있었던 이 의자는 역사적 가치 및 희귀성 덕에 무려 8만 파운드(약 1억 2800만원)의 예상 낙찰가가 책정됐다. 이 의자는 타이타닉호 침몰 이후 바다 위를 떠돌다가 당시 희생자 시신 인양에 나섰던 맥케이 베넷호의 승무원에 의해 건져 올려졌다. 이후 선장을 거쳐 지난 2001년 익명의 영국인 수집가에게 넘어간 의자는 이번에 경매에 나와 새 주인을 기다리게 됐다. 옥션 회사 대표는 "이 의자는 침몰한 타이타닉호를 기리는 중요 물품 중 하나" 라면서 "수집가가 손상을 우려해 앉지않고 전시용으로만 간직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고 밝혔다.이어 "의자 상단에는 타이타닉호의 소유 회사인 영국 화이트스타라인을 상징하는 별이 새겨져 있다"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해사안전감독관 배치·화물 전산발권제 도입했지만 블랙박스 의무화·과징금 10억 상향조정 입법 미완

    해사안전감독관 배치·화물 전산발권제 도입했지만 블랙박스 의무화·과징금 10억 상향조정 입법 미완

    어린 학생들의 피해가 컸던 세월호 참사는 연안 여객선을 비롯한 모든 배의 안전기준을 확 바꿔 놓았다. 지난해 연안여객선 이용객은 1427만명에 달했다. 정부는 총체적 안전불감증의 전형인 세월호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지난해 9월 연안여객선 안전관리 혁신대책을 발표하고 착착 실행에 옮기고 있다. 선령 단축과 선박용 블랙박스 장착 등 선박 자체와 안전설비에 대한 규정을 국제 여객선 수준으로 대폭 강화했다. 이달부터는 선박과 선사에 대한 안전관리를 지도·감독하는 해사안전감독관(전문 임기제 공무원)이 배치됐다. 하위법령이 개정되는 7월부터는 고의적인 안전 규정 위반과 인명피해 발생 시 과징금이 3000만원에서 최대 10억원으로 상향 조정된다. 해양수산부는 세월호 사고 이후 선령 20년 이상의 연안여객선을 전수조사한 데 이어 올해 어선, 화물선 등 모든 선박을 점검할 계획이다. 해수부는 노후화 문제가 불거진 여객선(카페리)의 선령을 30년에서 최대 25년으로 줄이고 20년부터 해마다 엄격한 선령연장검사 심사를 받도록 했다. 여객선의 복원성을 떨어뜨리는 개조도 일절 금지시켰다. 유기준 해수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일정 선령 이상의 선박을 전수조사해 문제가 있으면 운항 정지하도록 하는 등 선박안전관리체계를 획기적으로 개편하겠다”고 강조했다. 현재 해수부가 추진하는 안전 정책의 대부분은 오는 7월 법개정이 이뤄지면 하반기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우선 배의 사고상황을 그대로 재연해 줄 선박용 블랙박스인 항해자료기록장치(VDR)는 500t 이상 현존 여객선에 의무적으로 설치된다. 블랙박스에는 선박의 위치, 속력, 선교 대화내용 등 운항정보가 실시간으로 기록된다. 새 선박이나 도입 중고선은 300t부터 즉시 적용된다. 비상 시 배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1000t 이상 여객선(새 선박·중고선 500t 이상)은 객실, 공용실 등의 천장과 바닥에 비상탈출용 사다리를 설치하도록 했다. 전복에 따른 2차 충돌 사고를 줄이기 위해 냉장고 등 여객 편의용품도 고정을 의무화했다. 화물량에 대한 신속·정확한 파악을 위해 차량과 화물 전산발권 시스템이 지난해 10월 전면 시행됐다. 적재한도가 초과되면 발권이 자동 중단돼 화물 과적이 원천 차단된다. 해수부는 화물적재·고박 완료시간을 출항 10분 전에서 30분 전으로 강화하고 고박 상태도 정기적으로 점검하기로 규정을 개선했다. 세월호는 과적 화물이 제대로 고박되지 않으면서 쏠림 현상이 발생, 전복 사고로 이어졌다. 선원의 자질과 책임성도 한층 강화됐다. 선원법을 개정해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위험·취약 해역은 선장이 직접 지휘하도록 구역을 지정했다. 선원들의 소명의식을 높이기 위해 제복 착용도 의무화했다. 선내 비상대응훈련은 동영상으로 기록해 운항관리자에게 보고하도록 강제했다. 해수부는 또 7월부터 운항관리자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이익단체인 해운조합에서 공공기관인 선박안전기술공단으로 운항관리를 이관할 계획이다. 연안 여객선 현대화 5개년 계획을 세워 노후선박 현대화도 추진한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요우커들이 찾을 기벌포를 아시나요?/ 백낙흥(충남 서천 부군수)

    요우커들이 찾을 기벌포를 아시나요?/ 백낙흥(충남 서천 부군수)

    요우커들이 찾을 기벌포를 아시나요?/ 백낙흥(충남 서천 부군수) 작년 말 기준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가 1420만 명에 이른다. 그중 중국인 관광객 즉 요우커의 수가 613만 명으로 약 43.2%를 차지하니 대단한 비율이다. 그 비율도 비율이거니와 요우커의 숫자가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이 폭발성에 대하여 관련업계와 자치단체는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그들이 찾는 곳이 주로 서울과 제주 중심으로 쇼핑과 성형 목적이 대부분이라고 하나 중국인들이 외국을 관광할 때 자기 나라와 역사적으로 관련된 인물과 장소를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좋은 예가 중국 인민해방가를 작곡하여 중국의 3대 음악가로 불리는 정율성의 광주시에 있는 생가 터에 2013년도에만 2만 5000여 명의 요우커들이 다녀갔다. 역사적으로 충남지역은 숨겨진 마지막 관광 보물 지역이다. 나당 연합군의 주 무대였으며 서해를 사이에 두고 수많은 교류를 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기벌포(伎伐浦, 우리말 ‘질구지’, 진땅이라는 의미)는 금강하구에 위치하면서 서해와 금강을 한눈에 조망이 가능하여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역이었다. 이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우리가 잘 아는 장항제련소 바로 뒤쪽에는 장암진 성터와 망루 터가 남아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백제의 패망기에 동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이곳에서 벌어진 최초의 국제 해전이 세 번에 걸쳐 일어났는데 모두 당나라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당나라는 중국인들이 그렇게도 자부심을 갖고 있는 中華라는 정체성을 확립한 나라다. 그 주역은 당태종 이세민이다. 이세민과 김춘추가 맺은 나당 동맹에 따라 660년에 기벌포에서 첫 번째 백제군과 해전을 치른다. 이때 당나라의 총대장이 되어 온 이가 바로 소정방이다. 소정방은 중국을 측면에서 끊임없이 괴롭히던 변방족 동․서돌궐을 평정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백제는 이 기벌포에서 당나라 군대를 막지 못하고 뚫리면서 그대로 사비로 진격한 나당 연합군에 의하여 패망하고 만다. 두 번째 전투는 663년, 백제 부흥군과의 전투로 일본으로 가있던 의자왕의 아들 풍이 중심이 되어 나당 연합군과 싸운 소위 백강구 전투다. 일본을 비롯한 네 나라가 참여하였다. 당에서는 당시 웅진도둑으로 와있던 유인궤가 총대장이었다. 그렇게도 고구려를 물리치고 싶었지만 뜻을 펴지 못한 당태종이 키운 유인궤가 나당 연합군이라는 형식을 빌러 고구려를 멸망시켰으니 어떻든 중국인들의 소원을 이룬 인물로 평가받는다. 세 번째 전투는 670년부터 시작된 신라와 당의 7년 전쟁이다. 평양 이남은 신라가 지배한다는 나당 동맹을 파기하고 당나라는 노골적으로 백제와 신라마저 점령하기 위해 676년, 기벌포에서 설인귀(薛仁貴)가 함대로 신라의 측면을 공격하였다. 결국 신라에 의하여 삼국통일이 되는 마지막 전투였지만 설인귀(薛仁貴)는 중국인들에게 영웅(英雄)으로 숭배를 받고 있다. 당태종이 고구려 원정에 실패해 귀환한 뒤 설인귀에 대해 “용맹한 장수를 얻어 기쁘도다.”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신당서(新唐書)>에 나와 있다. 이렇듯 기벌포는 중국인들에게서 추앙받는 당시를 풍미했던 소정방, 유인궤, 설인귀가 싸웠던 장소이다. 거기에다 내년 상반기에 서산 대산항과 중국 산둥성 롱앤항간 여객선 페리가 운행하게 되면 중국인 관광객 ‘요우커’들이 몰려올 것이다. 물론 산둥성 위해시가 장보고 기념관과 동상 설립을 허용한 것처럼 우리로서는 불편한 진실이지만 그 세 사람을 위한 기념관은 아니더라도 안내 표지판 설치와 중국어 문화해설사 정도는 배치해서 역사에 당당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1350년 전의 사건을 교훈삼아 미래를 대응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 서천군은 이러한 중국과의 역사성과 군내에 흩어져 있는 천방산 설화 등을 발굴하고 체계화하여 요우커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적극 준비할 계획이다. ======================================= ※‘자정고 발언대’는 필자들이 보내 온 내용을 그대로 전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따라서 글의 내용은 서울신문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글의 내용에 대한 권한 및 책임은 서울신문이 아닌, 필자 개인에게 있습니다. 필자의 직업, 학력 등은 서울신문에서 별도의 검증을 거치지 않고 보내온 그대로 싣습니다.
  • 행정기관위원회 ‘수술’ 5곳 중 1곳 문 닫는다

    행정기관위원회 5곳 가운데 1곳이 문을 닫는다. 운영 실적이 저조하거나 존재 의미가 사라진 위원회를 정비하고 통폐합하는 데 따른 것이다. 행정자치부는 7일 27개 중앙행정기관 소관 109개 위원회를 정비하거나 통합하는 내용을 담은 ‘행정기관위원회 정비계획’을 국무회의에 보고하고 입법조치에 본격 착수한다고 밝혔다. 109개 위원회를 정비하는 작업을 마무리하면 전체 위원회는 현재 537곳에서 95곳이 줄어 442곳이 남게 된다. 부처별로는 보건복지부 소관 위원회가 13곳으로 가장 많고 국토교통부와 환경부가 각각 10곳이다. 기획재정부·외교부·여성가족부 소관 위원회는 정비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정비계획에 따르면 특수작전 공로자인정 심의위원회(국방부)와 도시농업위원회(농림축산식품부) 등 48곳은 폐지한다. 배출량인증위원회(환경부)와 할당결정심의위원회(환경부)처럼 연관성이 높은 45곳은 두세 곳씩 통합, 개편한다. 중앙민방위협의회(국민안전처)를 포함한 16곳은 법령에 근거를 둘 필요가 없어 관계기관협의체 등으로 운영을 간소화할 예정이다. 정비 대상 중 96곳은 2013년 하반기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1년간 회의 개최 실적이 2회 미만인 곳이다. 국방개혁위원회(국방부), 연안여객선고객만족도평가위원회(해양수산부), 황사대책위원회(환경부), 농업재해대책심의위원회(농식품부) 등 13곳은 회의 실적이 2회 이상이었지만 설치 목적을 달성했거나 법령 근거 없이도 전문가협의체를 운영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정비 대상에 들어갔다. 박병호 조직정책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회의 개최 실적뿐 아니라 설치 목적을 완료해 유지 필요성이 줄어든 곳, 성격이 비슷해 통합이 가능한 곳, 민간위원 참여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위원회 운영 내실화와 투명성 강화를 위해 회의록을 공개하도록 하자는 시민단체의 요구에 대해서는 “공개할 수 있는 것은 공개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정부의 인양 딜레마…‘부식·날씨·예산’

    정부의 인양 딜레마…‘부식·날씨·예산’

    9명의 실종자를 찾지 못한 세월호의 인양 작업이 딜레마에 빠져들고 있다. 세월호 인양과 관련해 기술적 검토 작업이 5개월째 진행되고 있지만 실제 인양까지 어려움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세월호 참사 1주년을 앞두고 정부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세월호 선체처리 기술검토 태스크포스(TF)팀을 운영하고 있는 해양수산부 등에 따르면 1년가량 바다에 잠겨 있던 세월호의 부식 상태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선체 부식이 심해 쇠사슬을 감아올리기 쉽지 않은 데다 부이를 부착해 배를 인양하는 방식은 대형 여객선인 세월호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수부 관계자는 “배를 인양하려면 누워 있는 배를 세워야 하는데 배에 쇠사슬을 걸기가 쉽지 않고 이때 남아 있을지 모를 실종자들의 시신이 화물들의 이동에 따라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천안함과 같은 전함은 날렵하고 튼튼한 데다 두 동강이 난 상태여서 들어 올리기 쉬운 상태였지만, 세월호는 넓고 선체 재질이 약한 데다 조류마저 거세 인양을 결정한다고 하더라도 올해 인양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해수부는 파고 2m 이상, 풍속 10m/s면 작업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 관계자는 “선체 인양을 위해 쇠사슬을 거는 데 4~6개월이 걸린다”면서 “문제는 태풍 등 기후적 요건이 악화되면 설치를 못하거나 해 놓은 것도 철수해야 돼 인양 작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취재 결과 인양 확정 시 기간은 1년, 비용은 1000억~1500억원이 들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세월호를 들어 올리는 과정에서 쇠사슬이 끊어지는 등 비상 상황이 발생할 경우 원인 분석에 따른 기간 장기화는 물론 재설치에 따른 예산이 추가로 투입돼야 한다는 점이다. 인양업체 선정과 관련해서도 국내 인양업체는 경험이 없고 해외 굴지의 인양업체들은 해역 여건상 쉽지 않다고 판단해 나서길 꺼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TF팀은 국내외 인양업체 컨소시엄 형태를 모색하고 있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세월호’ 겪고도… 선박관리 허술 여전

    세월호 참사 후에도 선박 안전점검이 여전히 허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국회 요구에 따라 지난해 12월 해양수산부 등 29개 정부 기관과 위탁 기관에 대해 ‘안전규제 관리 실태’를 감사한 결과 안전점검 소홀 사례 등을 적발하고 30건의 감사 결과를 시행했다고 25일 밝혔다. 해수부로부터 선박 점검 업무를 위탁받은 선박안전기술공단은 2012~2014년 선박 정기 점검 과정에서 불법 개조된 선박 2척을 5차례 검사했으나 도면조차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채 합격 처리했다. 5차례 검사 중 마지막 검사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이후인 지난해 7월 실시됐다. 연안여객선과 달리 근거리를 운항하는 도선과 유선(유람선)에 대해서는 선령 제한 규정이 없는 탓에 건조된 지 30년이 지난 낡은 유선 20척이 아무런 규제 없이 그대로 운항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보건복지부는 2011년 어린이집 설치 가능 층수를 3층에서 5층으로 완화하면서 소방·대피시설 설치 등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는 구청에 점검 책임을 맡김으로써 부실 점검 우려를 초래했다. 감사원이 실제로 건물 4~5층에 입주해 있는 서울 지역 어린이집 43곳을 점검한 결과 23곳에서 조리실에 방화문 등이 설치되지 않은 사실을 발견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에어바운스 등 비검사 대상 놀이기구에 대한 안전 기준, 점검 절차 등을 마련하지 않은 채 관련 협회에 점검 업무를 위탁했으나 협회는 자체 점검한 기구 4126대 가운데 3432대(83.2%)를 서류 점검만 한 채 확인검사서를 발급하도록 방치했다.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 뭍에서 온 야속한 그대 섬에서 난 유별난 그대

    뭍에서 온 야속한 그대 섬에서 난 유별난 그대

    ‘제주로 제주로’ 제주이주민이 줄을 이으면서 제주에는 요즘 ‘원주민 따로, 이주민 따로’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주민이 넘쳐나는 제주의 시골 마을에서는 전통의 마을 공동체 문화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며 원주민들은 볼멘소리다. 하지만 이주민들은 제주 원주민들의 텃세에 쉽게 마을 공동체에 다가설 수 없다며 “정착하기 힘들다”고 투덜거린다. 지난해 전국에서 1만여명이 제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거센 제주 이주 바람의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원주민 따로 이주민 따로 서귀포 칠십리 바닷가의 한 마을, 바다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이 마을에는 3~4년 전부터 “제주에 살겠다”며 찾아든 이주민들이 넘쳐 난다. 마을 주민 500여명 가운데 30% 정도가 타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 이주민들이 찾아들면서 마늘밭과 감귤 과수원이 전부였던 시골마을의 풍경은 싹 바뀌어 버렸다. 이주민들이 만든 카페며 피자집, 게스트하우스, 민박집, 식당 등이 곳곳에 즐비하게 들어서면서 마치 관광단지처럼 변했다. 관광객의 발길이라곤 별로 찾아볼 수 없었던 이 마을에 올레길이 지나면서 ‘마을이 아주 아름답다’는 소문이 퍼져 도시 이주민들이 하나둘 찾아들기 시작했다. 시골 동네의 가옥이며 마늘밭, 감귤 과수원 등 부동산 가격도 덩달아 치솟았다. 이주민들에게 높은 가격을 받고 땅을 판 마을 주민들은 두둑하게 한몫을 챙겼다. 하지만 이주민이 늘어나면서 마을에는 낯선 풍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 이주민은 수십년간 마을 사람들이 다녔던 동네길을 자신의 사유지라며 막아버렸다. 주민들은 갑작스레 길을 막고 나선 이주민의 처사가 야속했다. 60대 원주민은 “제주의 시골 마을에는 비록 사유지이지만 오래전부터 마을 사람들의 길이나 다른 용도로 이용하는 곳이 많다”며 “이주하자마자 말뚝부터 박고 내 것부터 먼저 챙기는 모습이 무척 섭섭했다”고 말했다. 50대 원주민은 “이주민들이 늘면서 마을길에서 부딪히더라도 누가 누군지도 잘 모른다”며 “일부 이주민들은 인사를 해도 받는 둥 마는 둥 해 기분이 나쁘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 마을 이장은 “이주민이 늘면서 원주민들이 이주민의 눈치를 살펴야 할 정도”라며 “원주민과 이주민 간에 불화가 없도록 하는 게 이장이 가장 신경 써야 할 일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역시 이주민이 늘어난 서귀포의 또 다른 마을에서는 지난해 이주민과 원주민 간에 폭력사건이 벌어져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원주민들은 이웃 간에 큰소리 한 번 나지 않을 정도로 인심 좋은 마을이었는데 이주민이 늘면서 마을 분위기를 망쳤다며 이주민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등 마을 분위기가 냉랭하다. 이주민에게 집을 빌려준 원주민은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이 마을 60대 원주민은 “폭력사건으로 주민들이 경찰에 출두하는 등 마을이 소란스러워졌다”며 “아예 이주민을 피하는 원주민도 많다”고 말했다. 이주민 간에 서로 민박 영업을 놓고 갈등을 빚어 원주민들이 불편해하기도 했다. 한 면사무소 관계자는 “다양한 이주민이 이사 오면서 조용했던 마을 분위기가 엉망이 됐다”며 “그렇다고 딴 곳으로 이사 가라고 할 수도 없고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주민들이 마을 안까지 깊숙이 들어와 게스트하우스나 민박, 펜션 등을 짓고 영업을 하는 것도 원주민들은 불만거리다. 좁은 마을 안길에 관광차량이 수시로 드나들고 주차를 아무 곳에나 마구 하는 바람에 경운기가 제대로 다니지 못하는 등 불만을 호소하고 있다. 한 원주민은 “해가 지면 동네 개소리만 간간이 들릴 정도로 조용한 마을이었는데 외지인이 영업하는 게스트하우스 등이 마을 안 깊숙이 들어서면서 동네가 시끄러워졌다”며 “좀 조용히 해 달라면 원주민이 텃세 부린다며 도리어 큰소리를 치는 경우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제주 마을 공동체 문화 위기 제주 동부 중산간의 마을. 이곳도 아름다운 자연환경으로 2~3년 전부터 이주민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같은 마을이지만 위쪽은 이주민이, 아래쪽은 원주민이 주로 산다. 이들은 서로 소 닭 쳐다보듯 한다. 마을 이장조차 이제는 어느 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정도다. 제주의 시골마을에는 아직 제주만의 마을공동체 문화가 남아 있다.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제, 마을 경로잔치, 어버이날 마을 행사, 마을체육대회, 마을 축제 등에 주민들은 다들 흔쾌히 참여한다. 유별난 경조사 문화 탓에 이를 외면했다가는 같은 마을에서 살아가기가 힘들 정도다. 경조사 때면 주민들은 만사 제쳐 놓고 얼굴을 내밀고 품앗이를 한다. 마을회관에 주민들이 모여 마을 대소사를 의논하는 모습은 제주 시골마을의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마을마다 공동체를 꾸려 가기 위해 주민 간 약속이라고 할 수 있는 향약이 아직 전해지는 마을도 있다. 시골 마을에서는 마을 공동 행사 등을 위해 가구당 연간 3만원 정도의 리세(마을회비)를 걷기도 한다. 하지만 도시에서 이사 온 이주민들에게 리세는 남의 일이다. 이 마을 이장은 “이주민들에게 설명해도 리세는 나 몰라라 하고 마을 행사에 얼굴을 보이는 이주민들도 거의 없다”며 “한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원주민과 이주민이 완전히 따로 사는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왔다는 70대 이주민은 “복잡한 도시를 떠나 노년을 제주에서 조용히 살고 싶어 이주했는데 원주민들의 지나친 관심이 스트레스이자 부담”이라며 “그동안 서로 살아온 방식이 다른데 갑자기 제주 원주민처럼 살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10여년 전에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 이제는 마을 이장을 맡고 있는 애월읍 소길리 한홍수씨는 “서로 다른 생활방식으로 살아왔던 이주민과 원주민 간 소통에는 시간이 걸린다”며 “이주민 스스로 적응 시기를 지나 자연스럽게 마을 공동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숙하는 이주민도 덩달아 늘어나 골치 거지, 도둑, 대문이 없다는 삼무의 섬 제주는 예전에는 노숙인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한 다리 건너면 서로 다 안다는 좁은 사회인 탓에 아무리 형편이 어렵더라도 집안 망신시킨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제주 사람에게 노숙생활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주민이 늘면서 이주 노숙인도 계속 늘어나 제주 사회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2년 전 수도권에서 이주, 숙박업소 등에서 일했던 김모(53)씨는 요즘 노숙생활을 한다.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술로 달래고 도박에 손을 댔다가 빚만 늘어났고 직장도 그만둬야만 했다. 김씨는 요즘 제주시내 무료 급식소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재래시장 등지에서 노숙을 한다. 제주에서는 지난해 100여명의 노숙인이, 올 들어서는 20여명이 귀향 여비(여객선 요금)를 지원받아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시 관계자는 “뱃삯을 지원받아 고향에 돌아갔다가 다시 제주로 들어와 노숙 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다”며 “외국인이 많이 찾는 거리에서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소란을 피우는 등 제주 관광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나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주민으로 활기 찾는 시골마을 학교 이주민 따로 원주민 따로가 아니라 원주민이 이주민과 힘을 합쳐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는 곳도 있다. 제주시 구좌읍 송당마을은 제주 이주민들이 폐교 위기에 처한 마을학교를 되살려 냈다. 시골마을에서 학교는 단순히 공부를 하는 학교 이상의 의미가 있다. 원주민들의 어릴 적 추억이 고스란히 배어 있고 오순도순 서로 정을 나누는 마을 공동 행사도 학교가 중심이었다. 원주민들이 시내로 하나둘 떠나면서 마을 학교가 폐교 위기에 처하자 원주민들은 십시일반 성금을 내놓고 공동주택을 짓고 마을 이주자를 유치했다. 지난해 초등학생 자녀를 둔 이주민 12가구가 한꺼번에 마을로 전입했다. 폐교 위기였던 학교는 학생수가 종전 45명에서 62명으로 늘어났다. 서울과 경기, 전북 등 전국에서 이사 온 이주민들은 주민들이 제공하는 공동주택에서 집 걱정 없이 거주하며 원주민들과 어울려 산다. 송당초교 고희리 교감은 “전입생들이 원주민 자녀와 잘 어울리는 등 학교가 활기를 되찾았다”며 “원주민들도 자녀를 데리고 이주한 이들 이주민이 오랫동안 송당마을에서 함께 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제주 이주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에서 여유롭게 노년을 보내겠다는 은퇴형 이주자와 제주 관광 경기와 개발바람 등에 기댄 생계형 이주자, 귀농자 등으로 나뉜다. 이들은 자신들의 처지에 따라 원주민 마을공동체 속으로 들어가거나 아예 나홀로 또는 이주민끼리 따로 사는 방식을 택한다. 제주 이주민정착주민지원위원회 위원인 안은주 제주올레 사무국장은 “이주자들이 혈연, 지연, 학연 등 제주 특유의 괸당 문화 속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제주 사람들의 삶에 동화되기는 어렵다”며 “대도시에서 밀려나 새로운 기회를 찾아 제주로 온 생계형 이주자들에게 제주사회가 관심과 함께 정착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미얀마 여객선 전복 中 CCTV “최대 100명 숨져”

    미얀마 여객선 전복 中 CCTV “최대 100명 숨져”

    미얀마 여객선 전복 中 CCTV “최대 100명 숨져” ‘미얀마 여객선 전복’ 미얀마 서부해역에서 13일 오후 8시쯤(현지시간) 여객선이 전복돼 100명가량이 숨졌다. 14일 중국중앙TV(CCTV)는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침몰한 여객선에는 승객 300명가량이 타고 있었으며 사고 직후 171명은 긴급 구조됐으나 100명가량은 숨지거나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앞서 미얀마 정보부는 성명을 통해 “승객 200명을 넘게 태운 여객선 ‘아웅 타콘 3’호가 13일 오후 8시쯤 미에본 지역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미얀마 정보부는 이 사고로 최소 21명이 사망하고 47명이 실종된 것으로 파악했지만 CCTV는 이보다 많은 100명 정도가 사망했다고 전했다. CCTV는 “해상에서 심하게 인 풍랑으로 배가 측면으로 넘어진 뒤 전복됐다”고 사고 원인을 짚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 바다가 예술을 낳았다

    이 바다가 예술을 낳았다

    1972년 뮌헨올림픽 개막 축전곡인 ‘오페라 심청’을 작곡했다. 1983년엔 콧대 높기로 소문난 ‘베를린 필하모닉’의 탄생 100주년 기념곡인 ‘교향곡 1번’을 작곡했다. 40세 이후, 그러니까 스스로 음악적 성숙도를 가르는 기준으로 삼았던 시기에 작곡한 오페라, 교향곡 등만 해도 무려 154편에 달한다. 이 같은 음악적 성과를 낸 그를 독일의 한 방송은 ‘20세기 가장 중요한 작곡가 30인의 한 사람’으로 선정했고, 일본의 아사히신문은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작곡가”라고 상찬했다. 이 모두가 한 사람을 가리키는 수식어다. 경남 통영 출신의 음악가 윤이상(1917~1995)이 바로 그다. 해외에선 거장으로 칭송받지만 정작 자신을 낳아준 모국과는 오랜 시간 불화했던 그를 기리는 국제음악제가 오는 27일~4월 5일 통영국제음악당 등에서 열린다.<서울신문 2월 26일자 22면> 먼먼 통영까지 내려가서 음악제만 보고 올 수는 없는 노릇. 윤이상의 발자취를 따라 자박자박 통영을 돌아보고, 제철 맞은 도다리쑥국으로 겨우내 지친 몸도 추스르는 건 어떨까. 통영은 예향이다. 예술인을 많이 배출했다. 시인 유치환은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중앙동 우체국에서 여류 시인 이영도에게 연서를 썼고, 그 우체국 앞길은 현재 ‘청마거리’로 명명돼 있다. 시인 김춘수, 화가 이중섭과 전혁림, 시조시인 김상옥 등 당대를 풍미했던 예술인들도 펜으로, 또 붓으로 통영에 대한 사랑을 읊고 그려냈다. 이맘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가 윤이상이다. 한데 그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다. 1967년에 터진 ‘동백림 사건’으로 북한 간첩으로 몰려 끝내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눈을 감은 비운의 음악가 정도가 전부이지 싶다. 사실 윤이상은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정치적 논란과 그가 세계 음악사에 남긴 업적은 엄격히 구분돼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윤이상기념공원의 이중도 팀장은 “클래식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윤이상은 일반적인 인식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음악가라는 걸 발견하게 된다”며 “서양 음악에 동양의 혼을 불어넣어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했고, 비틀거리던 현대음악의 중심을 잡아 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재조명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윤이상이 통영에 산 건 생애 전반부의 30년 정도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낸 곳이지만 뜻밖에 통영에 남은 그의 흔적은 많지 않다. 생가터, 그의 이름을 딴 기념공원과 거리, 그가 교편을 잡았던 통영여고 정도가 그를 추억할 수 있는 공간의 전부다. 생가터는 통영 시내에서 해저터널로 가기 전, 통영냉장 쪽 맞은편 골목에 있다. 주소는 도천동 157번지다. 윤이상이 1956년 고국을 떠난 후 주인이 몇 차례 바뀌면서 생가 건물은 사라졌고 터만 남았다. 생가터 맞은편은 ‘윤이상기념공원’이다. 기념관 건물과 윤이상의 베를린 집, 그가 타던 벤츠 승용차 등이 전시돼 있다. 건물 주변엔 분수시설을 조성해 공원처럼 꾸몄다. ‘윤이상거리’는 그의 생가를 중심으로 유년 시절 노닐던 해방교에서 해저터널까지의 790m 구간에 조성됐다. 거리 입구에 윤이상의 부조상이 세워져 있다. 윤이상은 평소 “내 음악의 모태는 통영의 숲과 바다, 갈매기, 고기 잡는 소리”라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생가터에 서면 이 같은 사실을 단박에 알 수 있다. 현재 그의 생가터는 사방이 건물이다. 한데 그가 살았을 때는 달랐다. 게 등딱지만 한 집 수m 앞이 바다였다. 그게 일제강점기인 1932년께부터 간척돼 오늘의 모습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 팀장의 말에 따르면 통영 시절의 윤이상은 청마 유치환(1908~1967), ‘꽃의 시인’ 김춘수(1922~2004) 등과 나이를 격하고 자주 어울렸다고 한다. 이들은 윤이상이 생전에 입버릇처럼 되뇌었던 미륵산, 용화사 등을 주유하며 교분을 쌓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미륵산은 통영 여정의 가장 앞줄에 두는 게 좋다. 통영 시가지와 한려수도를 한눈에 굽어보며 대략의 위치를 알아 두는 게 장소에 대한 현실감을 한결 높여준다. 전혁림미술관, 김춘수 유품 전시장, 달아공원, 미래사 등 통영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들도 죄다 미륵산 자락에 매달려 있다. 미륵산 정상에 서면 한려수도의 빼어난 풍경이 주르르 펼쳐진다. 거미줄을 뽑아내듯 바닷물을 헤치며 나아가는 어선들이 한산도 등 다도해의 섬들을 종횡으로 엮어 그림 같은 풍경을 그려낸다. 관광엽서에서 흔히 보는 한려수도 사진은 십중팔구 이곳에서 찍는다 하더니, 과연 명불허전의 풍광이다. 발품 팔아 오를 수도 있지만 케이블카로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다만 케이블카 전망대에서는 통영 시내가 보이지 않는다. 다소 발품을 팔더라도 미륵산 정상까지는 올라야 360도 막힘 없는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케이블카 전망대에서 미륵산 정상까지는 15분 정도 걸린다. 케이블카 요금은 왕복 1만원이다. 통영에서 요즘 ‘잘나가는’ 여행지는 동피랑 마을이다. 통영항의 강구안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들어선 달동네다. ‘동쪽의 피랑(벼랑)’에 들어선 마을이라 해서 이름지어졌다. 50여 가구가 비탈면에 지붕을 맞대고 모여 사는데, 집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가 멋들어지다. 동피랑을 내려오면서 통영의 명소들을 차례로 짚을 수 있다. ‘은하수를 가져와 피 묻은 병기를 닦는다’는 뜻의 수군통제영 건물인 세병관과 일제가 물자 운반을 위해 만든 해저터널 등 역사 유적들이 즐비하다. 고 박경리 선생 생가와 소설의 배경이 됐던 뚝지먼당 등도 이웃해 있다. 남망산 조각공원, 통영의 전경이 발 아래 깔리는 북포루 등도 묶어 돌아보길 권한다. 글 사진 통영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지역번호 055 →가는 길:수도권에서 가자면 중부고속도로로 대전까지 가서 대전~통영선 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곧장 가면 된다. 통영을 효율적으로 돌아보려면 통영항을 경계로 북통영과 산양읍으로 나눠 일정을 짜는 게 좋다. 지리적으로도 북통영에서 산양읍 방향으로 훑으며 내려가는 게 맞다. 북통영 쪽에는 박경리 선생 생가가 있는 뚝지먼당, 벽화마을로 이름난 동피랑, 세병관, 충렬사, 청마 유치환을 기념하는 청마거리, 윤이상기념관 등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작지와 쓰레기장 등이 뒤엉켜 어수선했던 뚝지먼당 지역은 최근 대대적인 정비 작업을 거쳐 말끔한 공원으로 변했다. 하지만 박경리 선생이 쓴 여러 소설들의 배경이 됐던 달동네 풍경은 여전하니 꼭 찾아보길 권한다. 산양읍 지역에서는 해저터널, 전혁림미술관, 김춘수기념관, 통영국제음악당, 한려수도관광케이블카, 달아공원 등의 명소와 만날 수 있다. 특히 전혁림미술관 주변과 미륵산 중턱의 미래사 가는 길 등은 봄철 아름드리 벚꽃이 화사한 자태를 선사하는 곳이다. 꼭 메모해 두시길. 통영이 끼고 있는 해안선의 총길이는 무려 617㎞에 달한다. 서울~부산 거리의 1.5배에 달한다. 그 덕에 바다를 끼고 드라이브할 수 있는 도로들이 많은데, 그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는 곳이 산양일주도로다. 통영 시내에서 충무교를 건너 미륵도에 닿으면 곧 산양일주도로가 시작된다. 여기서 우회전해 통영대교를 지나 바닷길을 따라 달리면 당개, 당포, 달아전망대로 이어진다. 산양읍 쪽은 오후에 찾는 게 좋다. 저물녘 풍경이 빼어나기 때문이다. 달아전망대가 특히 소문난 일몰 명소다. 통행량이 많은 산양일주도로를 피해 호젓한 해안도로를 달리고 싶다면 풍화일주도로가 낫다. 산양읍 풍화리를 한 바퀴 도는 17㎞의 해안도로다. 길은 좁지만 쪽빛 바다와 정감 넘치는 어촌 마을을 차례로 지난다. →먹거리:이즈음 통영에서 꼭 맛봐야 할 게 도다리쑥국이다. 봄철 포실해진 도다리에 쑥과 된장을 넣고 묽게 끓여낸 도다리쑥국은 개운한 맛이 일품이다. 통영여객선터미널 앞의 통영회식당(634-3500), 서호시장 내 분소식당(644-0495), 수정식당(644-0396) 등이 비교적 널리 알려진 곳이다. 하지만 인근 다른 식당들의 음식 솜씨도 이에 못지않다. 서호시장만 해도 십여개 식당에서 도다리쑥국을 낸다. 어느 집이나 재료는 신선할 터. 맛의 차이라야 습자지 한 장 정도지 싶다. 중앙시장 내 한산식당(644-5828)의 칼칼하게 끓여낸 복매운탕과 복국도 좋다. 보통명사화된 ‘충무김밥’의 경우 현지인들은 여객선터미널 앞 풍화김밥(644-1990)을 추천했다. 유명짜한 집들은 중앙동 문화마당 앞에 많다. 저마다 원조를 자처하며 ‘할매’ 또는 ‘3대’를 상호에 내건 집들이 늘어서 있다. 하지만 유명세와 불친절 오명은 비례할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는 게 좋겠다. 애주가라면 ‘다찌집’에 관심이 많겠다. 술과 안주를 ‘일체형’으로 내는 집이다. 예컨대 3만원짜리 기본상을 비운 뒤 술을 추가하면 ‘주인장 마음대로’ 술에 맞는 안주를 제공하는 식이다. 울산다찌(645-1350), 통영사랑 다찌집(644-7548) 등이 알려졌다. →잘 곳:국내 내로라하는 여행지답게 통영엔 다양한 규모의 숙소들이 즐비하다. ‘오션뷰’는 아니지만 충무관광호텔(645-2091), 비치호텔(642-8181) 등은 깔끔한 시설이 자랑이다. 충무마리나콘도(646-7001)는 가족 등 단체 여행객에게 적합하다. 오션뷰가 빼어난 모텔들도 발에 밟힐 만큼 많다. 통영항 쪽엔 한 집 건너 모텔인데, 강구안을 바라보고 있는 나폴리모텔(646-0202)이 추천할 만하다.
  • 방글라데시 여객선 침몰 “사고 전 여객선 탑승 모습” 충격

    방글라데시 여객선 침몰 “사고 전 여객선 탑승 모습” 충격

    방글라데시 여객선 침몰 방글라데시 여객선 침몰 “사고 전 여객선 탑승 모습” 충격 방글라데시 파드마 강에서 22일 오전 11시 50분(현지시간) 여객선이 전복돼 침몰하면서 최소 48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실종됐다. 사고는 방글라데시 중부 파투리아와 다울라트디아를 잇는 항로에서 여객선 ‘MV 모스토파’가 화물선과 충돌하면서 일어났다고 현지 일간 다카트리뷴 인터넷판이 보도했다. 희생자 가운데에는 8세, 11세 어린이도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탑승자 가운데 50여 명은 스스로 헤엄쳐 나오거나 주민이 구조했다고 현지 경찰 간부 라키부즈 자만은 AFP 통신에 말했다. 아직 여객선 탑승 인원이 몇 명이었는지 파악되지 않아 정확한 실종자 수는 집계되지 않았다. 방글라데시의 강을 운항하는 여객선들은 보통 승선 명단을 작성하지 않는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방글라데시 내수면운항국(BIWTA) 간부 제웰 미아는 탑승자 수가 140명 이하일 것이라고 AP 통신에 말했지만 다카트리뷴은 200여명이 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230개 이상의 크고 작은 강이 있는 방글라데시에서는 느슨한 안전기준과 정원 초과 탑승이 빈번한 탓에 여객선 사고가 잦다. 지난해 8월에도 파드마 강에서 정원을 초과해 250여 명이 탄 여객선이 전복돼 승객 100여 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고 AP는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방글라데시 여객선 침몰 “8세 어린이도 희생…사망자 최소 48명”

    방글라데시 여객선 침몰 “8세 어린이도 희생…사망자 최소 4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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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글라데시 여객선 침몰, 8세 어린이도 희생 “얼마나 많이 타길래…” 경악

    방글라데시 여객선 침몰, 8세 어린이도 희생 “얼마나 많이 타길래…” 경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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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글라데시 여객선 침몰 최소 48명 사망 “얼마나 많이 타길래…” 충격

    방글라데시 여객선 침몰 최소 48명 사망 “얼마나 많이 타길래…”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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