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 너머 누군가 날 노린다 / 13일개봉 ‘폰 부스’
하루에도 1억통의 전화가 오간다는 거대도시 뉴욕.그 한복판에 천연기념물처럼 남아 있는 공중전화 부스 하나.
‘폰 부스’(Phone Booth·13일 개봉)는 그런 ‘장소성’으로 심상찮은 상징을 던지는 스릴러 영화다.수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열린 공간’이자,어느 누구도 그 속의 타인에게는 관심이 없는 ‘닫힌 공간’.공중전화 박스는 영화를 돋보이게 하는 참신한 공간적 소재가 됐다.실제로 몇 장면을 빼면 처음부터 끝까지 공중전화 부스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초점을 맞춘 상황극이다.감독은 ‘의뢰인’‘타임 투 킬’ 등을 통해,액션 스릴러 잘 찍기로 정평이 난 조엘 슈마허.
‘마이너리티 리포트’‘리크루트’‘데어데블’ 등을 거치며 한창 주가상승 중인 할리우드 신예 콜린 파렐이 주인공이다.
파렐의 일인극이나 다름없는 영화에서 그의 역할은 잘 나가는 스타 에이전트 세퍼드.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은밀한 대화를 나누려고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간 게 화근이다.갑자기 벨이 울리고 전화를 받은 죄로 그는 꼼짝없이 죽음의 게임에 들어간다.정체모를 괴한은 전화를 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하며 세퍼드의 비리와 비밀들을 낱낱이 들춰낸다.
주인공의 불가항력적 상황에 관객들은 점점 숨이 막힌다.전화선 너머 무형의 목소리를 상대로 불안과 흥분,극도의 공포를 형상화해내는 파렐의 연기력은 흠잡을 데가 없다.
괴한은 관객에게 두뇌싸움을 걸진 않는다.범인의 정체를 밝혀내 응징하는 건 이 영화에서 별 의미가 없다.전화부스 근처 어딘가에 숨은 범인은 오히려 현대인들의 온갖 속물근성을 단죄하는 심판자같다.왜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는지 황당해하는 세퍼드에게 범인은 그동안 그의 ‘죄상’을 조목조목 까발린다.남을 깔본 것,아내 몰래 바람을 피운 것,음란한 섹스를 상상한 것,비싼 양복에 가짜 명품시계를 차고 뻐긴 것,이용가치가 있는 사람만 골라 만난 것….
굵직한 액션보다는 곱씹을 메시지가 더 많은 심리스릴러다.피 튀는 총격전 없이 감춰진 범인의 성토만으로도 영화는 관객의 가슴을 충분히 썰렁하게 만든다.
세퍼드의 잘못들이 죽음의 벌을 받아 마땅한 위선이라면,온전할 현대인은 과연 몇이나 될까.폭력의 무작위성과 맹목성,진실의 잣대 앞에 앙상하게 뼈만 남는 인격 등 현대사회의 병리를 적나라하게 해부한다.
단조로운 설정에 자칫 지루할 수도 있다.각성제 역할을 하는 건 흑인배우 포레스트 휘태커.현장에 출동한 수사반장 역의 그는, 유머감각을 섞어가며 세퍼드와 범인 사이의 은폐된 갈등을 자연스럽게 화면 위로 돌출시킨다.상영시간 1시간 21분.
황수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