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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요 에세이] 경제의 심리적 분위기를 중시하라/장태평 더푸른미래재단 이사장·전 농림식품부 장관

    [수요 에세이] 경제의 심리적 분위기를 중시하라/장태평 더푸른미래재단 이사장·전 농림식품부 장관

    아마존에 있는 나비 한 마리의 작은 날갯짓이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몰고 온다는 말이 있다. 소위 나비효과다. 일반적으로는 미세한 사건 하나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쳐 커다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의미다. 아침 식사 중 부부간의 일상적인 대화에서 상대의 마음을 조금 거슬리게 하는 표현이 있었다고 하자. 이 때 슬쩍 참고 지나가면 곧 잊히고 다른 일들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언짢은 반응을 보여 한마디 하게 되면 말다툼이 되고, 말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큰 싸움으로 진전될 수도 있다. 그리고 출근한 사람은 하루 종일 일을 지속적으로 그르칠 수 있다. 인간관계는 서로 얽혀 있어 모든 일에 이런 심리적 나비효과가 상존한다. 인간의 행동은 생각에 따라 변하므로 생각의 흐름에 따라 사태의 흐름이 변하게 된다. 이 생각을 부채질하는 것이 감정이다. 물건값이 오르리라고 생각하면 수요가 는다. 가격이 떨어지리라 생각하면 공급이 는다. 경제학에서의 가격은 합리적인 수요와 공급의 만남에서 이루어진다. 현실 시장에서의 가격은 감성적인 수요와 공급의 싸움에서 이루어진다. 여기에 감성이 더해질수록 싸움은 증폭된다. 감성은 이성보다 폭발력이 크다. 건실한 은행이라도 부실 악소문이 퍼지면 인출을 요구하는 예금자들이 몰려 도산될 수 있다. 두 나라 간의 전쟁도 사소한 충돌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정부와 공직자는 말과 행동을 늘 조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금리정책 책임자의 말 한마디가 금융시장에 바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직자들은 말과 행동을 신중히 해야 한다. 경제는 기초 여건이 중요하지만, 현실에서는 시장의 심리적 분위기가 경제활동의 흐름을 좌지우지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시장 분위기에 유난히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사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정책들은 시장에 충격적인 경우가 많았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원전건설 중단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의견도 내고 우려도 표시했다. 대부분 과격성을 완화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귀담아듣지 않는 것 같다. 이제 부작용들이 여기저기 나타나고 있는데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비정규직의 100% 정규직화는 현실적으로 문제가 많아 지연되었는데, 대통령의 재강조로 조정 가능성이 어렵게 되었다.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이 자영업과 중소기업에 커다란 멍에가 되고 취업에 장애를 주는데도 장하성 정책실장은 고용 감소 효과는 없다고 주장한다. 얼마 전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현 경제상황이 ‘경기 침체의 초입’이라고 우려하자,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월별 통계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성급하다’며, ‘신경 쓸 것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김 부의장이 ‘내각과 청와대 경제팀이 보고 싶은 것만 보면 안 된다’고 충고했다. 현 정부는 우리 사회의 기울어진 판을 바로 세워야 한다며 그런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다. 많은 정책들에서 친노동 반기업 색채가 강하다. 기업은 기가 죽어 열심히 사업할 의지가 약해지고, 공무원도 소극적이고 더욱 보신적이 되었다. 시장 분위기가 완전히 얼어붙었다.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 기업들은 동남아나 인도 등으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 이제 세계는 실시간 정보교환으로 제품과 재료의 가격이 동일해지고 있다. 따라서 결국 인건비와 물류비 차이로 경쟁한다.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물류비를 줄일 수 있는 시장 가까운 곳이나 인건비가 싼 곳으로 갈 수밖에 없다. 지금 베트남 제조의 50% 정도를 한국 기업이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생산성을 감안할 경우 미국이나 일본의 인건비보다 우리가 비싸다고 한다. 기업들은 나갈 수밖에 없다. 우리 산업의 공동화와 노쇠화가 우려된다. 정부와 공직자들은 기업에 힘을 실어 주고 시장분위기를 살리는 일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경제는 심리다. 더불어 잘못된 정책들은 절망의 토네이도가 되기 전에 조정되어야 한다
  • 내가 버린 섬에서, 나는 다시 태어났다

    내가 버린 섬에서, 나는 다시 태어났다

    런던에 간 스코틀랜드 외딴섬 소녀 술·마약에 절어 연인·직장도 잃다 고향에 돌아오니 여전한 건 자연뿐 그 품에서 오롯한 자신을 만나다 아웃런/에이미 립트롯 지음/홍한별 옮김/클/408쪽/1만 6000원외진 섬에 살던 10대 소녀는 고향을 벗어나고 싶었다. 화려한 도시로 터전을 옮긴 소녀는 고삐 풀린 말처럼 자신을 낭비했다. 결국 삶은 벼랑 끝에 내몰렸고, 파도에 떠밀리듯 다시 섬으로 돌아왔다. 떠나기 전엔 미처 몰랐다. 죽을 만큼 머물기 싫었던 곳에 새로운 삶의 씨앗이 숨어 있을 줄은.지독한 삶의 아이러니를 몸소 경험한 주인공은 스코틀랜드에서도 외진 오크니제도에서 성장한 에이미 립트롯(32)이다. 그녀는 70여개의 섬들로 이뤄진 오크니제도에서도 가장 큰 본섬의 서쪽 한 농장에서 자랐다. 나무 한 그루 없이 탁 트인 들판, 바람과 파도에 깎인 고층 건물만 한 해식 기둥, 벼랑 꼭대기에 아슬아슬하게 자리잡은 잿빛 바위, 벼랑 아래서 쉼 없이 밀려왔다 부서지는 파도. 무한한 하늘 아래 광막한 평원에서 자유롭게 자랐지만 섬과 농장은 그녀에게 ‘닫힌 세상’이었다. 그녀가 활기와 사건이 끊이지 않을 것 같은 런던으로 떠난 이유다.원대한 꿈을 안고 런던에 간 ‘농장 소녀’는 순식간에 ‘파티 걸’로 변신했다. 출근하듯 클럽을 드나들었고 파티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어울리며 술과 마약을 즐겼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취하는 삶에 익숙해지자 자살 충동도 자주 닥쳤다. 10여년간 공허함과 불안을 술로 채우던 그녀는 알코올중독에 빠졌고 결국 서른 즈음 친구, 연인, 직장을 잃었다. 서른에 알코올중독 치료소에서 12주간 치료를 받는 동안 더이상 술을 입에 대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했다. 운 좋게 치료소를 ‘졸업’한 그녀는 문득 고향의 품이 그리워졌다. 누구나 자기 눈에 익숙한 풍경 앞에 서면 마음이 편해지지 않던가. 하지만 돌아온 고향은 예전 같지 않았다. 조울증에 걸린 아빠와 종교에 심취한 엄마는 이혼했고 동생 역시 섬을 떠났다. 여전한 것은 거친 자연뿐. 우연히 바닷새 연구자들을 따라 오크니제도의 섬들을 탐험하기 시작한 그녀는 30년간 몰랐던 섬의 보석 같은 모습에 눈을 뜬다. 사람들이 모두 잠든 새벽 시간 멸종위기종인 메추라기뜸부기의 소리를 찾아 나서는가 하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북극광과 야광 구름을 마주한다. 물보라를 맞으며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얼어붙을 만큼 차가운 바닷물에서 수영을 하며 강력한 흥분도 맛본다. 물때, 바람의 방향, 일몰과 일출 시간에 민감해질 만큼 자연에 푹 빠진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온 감각에 몰두한다. 안에서 파도처럼 요동치는 에너지를 느끼는 순간이야말로 자신의 삶을 단단하게 지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덕분이다. 결국 그녀는 자신이 버리고 떠난 섬에서 살아남았다. 고향에서 보낸 치유의 시간을 담은 이 에세이는 저자의 첫 책이다. 표현이 유려하지 않아도 저자의 글이 돋보이는 건 자신의 과거와 힘겨운 회복의 시간을 가감 없이 고백한 덕분이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동정을 구하지도, 자신의 극적인 삶을 포장하지도 않는다. 그저 눈앞에 그려지듯 생생한 자연의 풍경과 그 앞에서 자신이 느낀 감정을 담담히 써 내려갈 뿐이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와 삶의 해답을 찾게 된 여정을 보고 있자면 삶의 진리는 멀리 있지 않다는 말을 또 한 번 실감하게 된다. 당신의 ‘섬’도 어쩌면 가까운 데 있을지 모른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나’ ‘너’ ‘우리’가 베스트셀러

    ‘나’ ‘너’ ‘우리’가 베스트셀러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에 끌려 무언가 가르치려는 책은 ‘외면’ 혼밥, 혼술처럼 책 제목에도 개인주의가 반영되는 것일까. 서점가에 1인칭 ‘나’부터 2인칭 ‘너’까지 인칭대명사가 들어간 제목의 에세이가 베스트셀러에 대거 포진해 눈길을 끈다.지난해부터 100만부 넘게 팔리며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된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말글터)나 혜민스님의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수오서재) 등 기존 에세이와는 확연히 달라진 작명법이다. 17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달 종합 베스트셀러 20권 중 상위권에 오른 ‘모든 순간이 너였다’(위즈덤하우스) 등 책 제목에 인칭대명사가 포함된 서적은 6권이나 됐다. 대세는 에세이 분야다. 에세이 분야 베스트셀러 20권 가운데 8권이 해당됐다.‘모든 순간이 너였다’를 비롯해 ‘워너원 포토 에세이: 우리 기억 잃어버리지 않게’(아르테팝),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마음의숲), ‘나, 있는 그대로 참 좋다’(허밍버드), ‘단 하루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날이 없다’(쌤앤파커스), ‘참 소중한 너라서’(알에이치코리아) 등이다. 이 가운데 ‘모든 순간이 너였다’, ‘나, 있는 그대로 참 좋다’, ‘단 하루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날이 없다’, ‘참 소중한 너라서’, ‘당신의 마음을 안아줄게요’의 저자들은 모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팔로워가 10만명 이상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서적 구매 연령층은 20대 여성이 29.75%, 30대 여성이 23.35%로 가장 많았다. 김현정 교보문고 베스트셀러담당은 “SNS 시대에 ‘나’와 나를 둘러싼 얘기에 관심이 많다는 걸 방증하는 것으로 SNS 채널을 통해 ‘내 얘기’를 들려주는 저자들이 독자들과 눈높이를 맞춘 책으로 베스트셀러 시장을 이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출판계에서는 이제 독자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려고 드는 식의 책이 외면받는다는 말도 나온다. 대개 인생 경험이 풍부한 멘토가 삶의 지혜와 교훈을 주는 내용의 에세이가 전통적으로 관심을 모았다면, 이젠 자신과 주변에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더 중시하는 취향의 변화도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반면 짧은 시간에 쉽게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에 대한 선호도라는 의견도 나온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미래를 뚜렷하게 그려내기 어려운 20대, 30대는 현재의 어려움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뚜렷이 보인다. 미래를 이겨내는 구체적인 방법보다는 1시간 전후로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조언이 담긴 소소한 이야기에 집중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명한 저자가 쓴 드라마틱한 이야기나 무언가를 성취한 저자가 쓴 자기계발서보다는 그저 짧은 문장으로 가볍게 엮어내 소비하는 일종의 ‘스낵컬처’가 앞으도 더 유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승객 여러분, 버스기사도 사람입니다

    승객 여러분, 버스기사도 사람입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시내버스는 세상의 축소판이다. 성별도 나이도 직업도 취향도 다른 사람들이 올라타니 버스를 채운 삶의 향기도 다양할 수밖에. 사람 냄새 그득한 그곳에서 바라본 세상의 풍경을 그린 책이 나왔다. 전주에서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현직 기사 허혁(54)씨가 펴낸 에세이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수오서재)다.올해 5년차인 허씨는 격일로 하루 18시간씩 버스를 몬다. 육체 노동에 감정 노동까지 더해진 고된 삶 속에서 글을 쓰게 된 이유는 ‘괴로워서’였다. 운전하랴 신호 보랴 승객 비위 맞추랴 신경 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 ‘악마적인 노동’을 하다 보면 웃을 일보다는 찡그릴 일이 더 많은 탓이다. “착하고 좋은 기사로 살고 싶은데 매번 좌절당했어요. 평소에 유머러스하고 다정한 성격인데 무작정 시비를 걸거나 트집 잡는 승객들을 만나면 화를 참기 어려웠죠. 그때마다 그게 모두 제 잘못인지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엔 저 자신을 변명하듯 글을 썼어요. 쓰다 보니 버스라는 공간이 지닌 한계와 인간 본성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글로 나아가더라고요.”특별한 기교는 없지만 그의 글이 가슴에 와닿는 이유는 문장 곳곳에 노동 현장의 땀내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종점에 내리자마자 정신없이 용변을 보고, 승객들에게 화난 표정을 숨기기 위해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장시간 앉아서 근무하는 탓에 심혈관 질환을 앓는 등 버스 기사들만의 애환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사실 제가 약간의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어서 일을 시작했을 때 손님들이 도발하면 화를 못 참아서 애를 먹었어요. 그런데 장시간 운전을 하다 보니 제 자신을 더 깊게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차근차근 저의 결함을 들여다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인격 수양을 하게 된 거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돈도 주는데 내면 수양까지 할 수 있는 이런 곳이 또 어디 있을까요.” ‘글 쓰는 재미에 버스 기사라는 직업을 대통령하고도 안 바꾸고’ 싶을 만큼 버스에 애정이 깊은 그는 버스 기사에 대한 편견을 지닌 사람들에게 책을 통해 건네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어떤 승객들은 버스 기사를 투명 인간처럼 대해요. ‘당신들은 원래 그렇게 먹고사는 사람이잖아’라는 식으로 바라볼 땐 분노하게 되죠. 최근 사회적으로도 갑질 논란이 많은데 을의 입장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사회에 말하고 싶었어요. 열악한 노동 조건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도 마련하고 싶었고요. 운전석에도 사람이 앉아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연해주 등 北 접경 유적지 탐방…경기, 대학생 참여자 30명 모집

    경기도가 올해 여름방학 기간중 중국, 러시아 등 북한 접경지에서 진행할 ‘2018 북·중·러 대학생 통일 탐방단’에 참여할 학생을 모집한다. 16일 경기도에 따르면 탐방단은 7월 23일부터 6박 7일간 북한과 접하고 있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 등 연해주 일대, 중국 연변 조선족 자치주와 백두산·두만강 일대 항일 및 고구려·발해 역사유적지 등을 둘러본다. 코스에는 최재형 선생 생가, 이상설 의사 기념비,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비, 윤동주 시인 생가, 여순감옥 등이 포함돼 있다. 참가 대상은 경기 북부에 거주하거나 경기북부에 소재한 3년 이상 대학 재학생으로, 모두 30명을 선발할 방침이다. 참가를 원하는 대학생은 오는 31일까지 신청서, 참가 동기서, 통일 에세이 등을 작성해 행사를 주관하는 대진대 홍보협력팀( 031-539-1085)에 제출하면 된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수요 에세이] 인재 통일시대/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

    [수요 에세이] 인재 통일시대/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

    지난달 남과 북 지도자들의 만남이 있었다. 다음달 북ㆍ미 만남이 예고돼 여전히 뜨거운 관심을 받는다. 남북 정상회담 뒤 들린 소식은 국민들에게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기대감을 안겼다. 희망을 저버리지 않도록 진중하게 살펴볼 때다. 곧 북한의 인적·물적 자원과 남한의 경제가 시너지를 일으켜 서로 윈윈하는 시대를 열 수도 있겠구나 싶다. 북한 인적 자원도 단순한 노동력이 아닌 ‘인재’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비하고 잠재력을 높이면 인재 통일시대도 보게 될 터다. 통일시대엔 특히 공공부문 인재가 많이 필요할 것이다. 북한에서 일할 공무원을 손꼽을 수 있다. 가장 먼저 내부 인재통일을 이뤄야 한다. 지금도 국내에선 인사 관련 논란이 끊기지 않는다. 적임자냐, 전문가냐 등 논란을 빚다 인사 실패란 낙인까지 받으며 정치적 공방으로 번진다. ‘누구도 이해시키지 못하는 인사’라는 결과로 남는다. 무엇보다 고스란히 국민 피해로 돌아간다. 국가적 업무의 성패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인사가 만사라고 하나 망사라는 말까지 나돈다. 지난 정부도 그랬다. 특정 사람이나 정권의 문제가 아닌 전반적인 시스템의 문제라고 볼 수밖에 없다. 더 좋은 대한민국을 위해 곰곰이 생각할 시점이다. 대한민국에 인재는 없는지, 인사를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나아가 과연 양성되고 있는지, 인재 발굴·선발은 올바르게 진행되는지를 다각도로 짚어봐야 한다. 인재는 있다. 70년에 걸친 성장이 증명한다. 우리는 여전히 충분한 인재를 가졌고 북한의 인재 활용까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더 좋은 대한민국을 꿈꿀 인재를 관리ㆍ양성하는 국가적 시스템이 미비하다. 공공 영역에 주어져야 할 사전적 기준과 도덕적 가치, 직무적 능력을 바로 세워야 한다. 근로소득자의 10%가 공무원이고, 공무원이 100만명을 웃도는 시대다. 공직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특수한 신분이다. 그렇기에 직업(공직)교육은 당연히 필요하다. 인재 통일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인사의 문제점을 생각해 보자. 첫째 편 가르기다. 우리는 북한과의 평화를 꿈꾸며 동포애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 같은 영토 내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인재등용에 편을 가르는 게 올바른 자세인지 의문이다. 내 편이라도 정치 세력으로 사람(인재)을 유지ㆍ관리하기는 매우 어렵다. 기업에서는 적합한 임원을 배출하기 위해 10~15년 이상 꾸준히 인재를 관리하는데 정부는 왜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인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않는가. 인재관리는 정권을 쥐었다고 단기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재에 대한 오랜 기록과 평가 등을 통해 국가적으로 축적된 객관적 데이터가 필요하다. 둘째 국가 전체를 하나의 인재 풀로 봐야 한다. 유사시 언제든 활용할 수 있도록 분야별 인재를 관리하고 장기적으로 인재를 유지, 관리, 심사, 평가하는 기능과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정부에 누가 대통령이 돼도 지금처럼 인재를 관리·임용한다면 ‘인사=망사’일 수밖에 없다. 과학적인 시스템이 따른다면 주요 기관장과 정무직 인재 찾기로 인한 소모전도 줄어들 것이다. 셋째 다양성이 존중되는 시대에 단순히 공공직역이나 공직 경력만을 가진 인재를 활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프로야구에서도 국적을 불문하고 뛰어난 기량을 가진 선수라면 누구든 받아들여 팀을 실적 위주로 다양하게 구성한다. 어느 지역 출신, 어느 학교 출신, 어느 인연인지로 안배하거나 편을 나누어 인재를 발굴한다면 공직등용 폭은 좁아지기 마련이다. 팀 실적 또한 기대하기 어려워지며 국가 미래의 경쟁력과 직결되는 국제사회 속에선 국민의 ‘삶’과 직결된 문제가 된다. 국가 인사의 큰 그림을 이젠 포용적으로 그려 보자. 다른 환경에서 익히고 배운 능력을 잘 배합해 국가를 위해 활용하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
  • 슬퍼지기 일보 직전

    슬퍼지기 일보 직전

    퇴근 시간 삼십여분을 앞두고 그 어르신은 문을 밀고 들어오면서 큰소리로 말했다. 다리를 심하게 절룩거리는 어르신이었다. 퇴행성 관절염인 듯했다. 맨발에 앞코가 막힌 낡은 고무슬리퍼를 신고 다리를 끌다시피 하며 들어왔는데, 슬리퍼가 끌리는 소리가 심하게 났다. 어르신의 발뒤꿈치는 거칠었고 머리카락은 부스스했다.“아가씨야, 동에 가믄 그 무슨 카드인가 맹글어 준다카든데, 나도 그거 하나 맹글어 도.” 뭔지는 모르지만 자신도 모를 그 무엇을 받으러 동 주민센터에 들르는 어르신이 하루에 대여섯 명은 되었다. 동 주민센터에서 만들어 주는 카드는 한두 개가 아니었다. 복지카드, 다자녀 카드, 문화누리카드, 바우처 카드 등등. 어찌나 많은지 나도 다 몰랐다. 카드를 만들어 달라는 주민들이 오면 우선, 나이와 동태를 살핀 후 핵심 단어를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질문을 유도했다. 가령 “자녀가 몇 명입니까?”라든가, “어디가 불편하세요?” 등등. “어떻게 오셨습니까?” 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질문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내가…”로 시작하는, 그들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딱한 사연을 처음부터 들어줘야 했다. 자기연민이 가득한 이야기의 첫 운을 떼지 못하도록 요령껏 질문해야만 그들이 왜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이야기를 중간에 끊으면 대단히 언짢아했다. 그건 누구라도 그럴 일이었다. 그들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지 않으면 심지어 불친절 공무원으로 신고당하기 일쑤라, 아예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도록 하는 게 최선이었다. 내가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당사자들로서는 결코 ‘그렇고 그런’ 사연이 될 수 없는 그런 류의 이야기를 하루에 두어 번, 한 달에 열 번쯤, 일 년에 백 번쯤 듣다 보면 나로서는 그 이야기들이 죄다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26년째 근무하고 있으니. “옆집 할매가 동에 가믄 뭐를 해 준다 카든데, 나도 신청하믄 된다 케서 왔다. 카드(card)라던가?” 어르신은 비슷한 얘기를 반복했다. 목소리가 자신의 발뒤꿈치 같았다. “내가 시집올 때만 해도 목소리가 안 이랬는데 느그 시아버지하고 살면서 이래 됐다이가.” 시어머니가 자주 하시던 말씀이었다. 고생을 하면 발뒤꿈치처럼 보이는 곳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목울대, 말하자면 목소리까지도 쩍쩍 갈라진다는 건 사실 같기도 했다. 나를 찾아오는 어르신들의 목소리는 거의 비슷했으니까. “카드를 만들어 놓으면 그쪽으로 매달 7만원이 들어온다 카든데.” 문화누리카드(국민기초수급자에게 문화향유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발급해 주는 1년에 7만원이 충전되어 있는 카드)를 말하는 게 틀림없었다. “할머니, 1년에 7만원이 충전되는 카드예요. 올 11월까지는 다 쓰셔야 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아이고 7만원이나? 고맙습니데이, 돈 준다 카는데 얼마든지 기다려야지. 이모, 이모는 얼굴도 뽀얗고 참 예쁘데이.“ “할머니, 한 달에 7만원이 아니고 1년에 7만원입니더.” “알긋소. 아이고 고마버래이.” 할머니의 표정이 금방 화색이 돌며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졌다. 나는 카드를 발급하기 위해 할머니의 인적사항을 PC에 입력했다. “근데, 보소. 내가 이모라 카고 예쁘다 는데 와 대답이 없능교. 나는 이런데 오믄 절대로 싫은 소리 하거나 고함 안 지른데이... 그래서 아가씨아가씨 안하고 이모 이모 한다이가. 근데 와 대답이 없소?” 나는 순간 ‘아가씨가 어때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할머니에게 “아가씨”란 성매매여성을 두고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어쨌거나 나는, “아예...할머니 고맙습니다.” 했다. 80세가 넘은 분이 나에게 이모라 부르는 것이 마치 시트콤의 한 장면 같아 웃음이 났다. 나는 웃음을 참고 발급한 카드를 할머니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할머니, 이 카드는 시내 버스나 지하철 말고예, 고속버스나 기차 탈 때 쓰면 됩니더. 비행기도 되고예.” “뭐라꼬?” “기차 타거나 고속버스 탈 때 사용하시면 된다고예.” “기차라나? 나는 영세민이라서 기차 탈 때는 돈 안낸다. 그것도 안즉 몰랐나?” “할머니, 지하철 탈 때는 돈 안내지만 기차 탈 때는 영세민도 돈을 내야 되는데예.” “뭔 소리 하노. 나는 이때까지 기차 탈 때 한 번도 돈 내고 탄 적 없다.” 할머니는 “한 번도”를 말할 때 목젖을 꾸욱 눌러 강하게 말했다. 기차를 타본 적이 없는 게 분명했다. 똑같은 대화가 서너 번 오갔다. 할머니와 나의 대화를 지켜보던 동 주민센터 방문객 한분이 나를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나긋해졌던 할머니 목소리가 다시 쇳소리로 변했다. “그라모 기차 탈 때 말고 또 어디에 쓸 수 있노?” 내가 어르신들에게 이 카드를 발급해 주면서 가장 난처할 때가 바로 이런 순간이다. 이 카드는 기차나 고속버스 탈 때 외에는 하루하루 살기 팍팍한 어르신들에게는 거의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머뭇거리자 할머니가 다시 한번 다그쳤다. “할머니, 이 카드는 책 살 때, 영화 볼 때, 연극 볼 때 쓰는 거라예.” “뭐라카노.” “책요 책, 책 살 때 이 카드 쓰시라고요. 아니면 영화를 보러 갈 때, 연극 보러 갈 때. 그리고 놀이공원 알아요? 놀이공원 갈 때요.” “크게 쫌 말해라. 안 듣긴다.” “책요 책, 그라고 영화 보러 갈 때요, 놀이공원 갈 때나.” 나는 슬리퍼를 신은 할머니가 영화관으로 들어가는 장면이나 롤러코스터를 타는 장면이 떠올랐다. 옆에 서 있던 방문객도 똑같은 장면을 떠올렸는지 웃음을 삼키고 있었다. 할머니는 쌩하는 표정이었다. “아이고, 다리 아파 죽겠구만 괜히 왔네.”영화나 연극을 보시라, 놀이 공원에 가시라고 안내할 때 이것이 웃을 일은 아니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짧고 씁쓸한 웃음 뒤엔 곧 슬퍼지리라는 것까지. 하지만 웃음이 났다. 할머니는 앞코가 막힌 고무 슬리퍼를 질질 끌고 절름거리며 동 주민센터 유리문을 밀고 나가면서 밖을 향해 냅다 욕을 쏟아냈다. 쇳소리가 났다. 슬퍼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노진숙씨(부산 부진진구 개금3동 주민센터)
  • ‘슬퍼지기 일보 직전’ 등 나의 공직 생활 에세이 공모 우수작 6편 선정

    서울신문이 공무원과 공공기관 근무자들을 대상으로 지난달 실시한 ‘나의 공직 생활’ 에세이 공모 결과 수많은 작품 가운데 엄격한 심사를 거쳐 6편이 우수 작품으로 선정됐습니다. 1등에는 노진숙(부산 부진진구 개금3동 주민센터)씨의 ‘슬퍼지기 일보 직전’이 선정됐습니다. 부상으로 상금 100만원이 지급됩니다. 2등에는 김혜림(경북 영주시 보건소 방문관리팀)씨의 ‘보건소 관리팀 에세이’와 김영(경기 양평군 보건행정과)씨의 ‘산음골에는 시인들이 산다’가 뽑혔습니다. 부상으로 두 분에게 각각 50만원의 상금을 드립니다. 3등에는 김귀옥(부산시 좋은기업유치과)씨의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와 손병순(부산 서구보건소)씨의 ‘사람이 그립다’, 박태향(울산 학성고, 명예 퇴임)씨의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선정됐습니다. 이들 세 분에게는 각각 30만원이 부상으로 지급됩니다. 이번에 선정되지 않았지만 작품을 보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선정 작품들은 서울신문 정책뉴스 홈페이지에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

    우리 반에서 항상 꼴찌를 하는 녀석, 아버지는 중국집을 하셨고 당시에 부자나 탄다는 그랜저를 몰고 학교에 오기도 했다. 비싼 과외를 시켜도 성적은 꼴찌, 집중력과 이해력이 낮았고 항상 웃는 얼굴에 선한 티가 흐르는 녀석이었다. 또 한 녀석은 우리 반에서 오른 손목 아래가 없는 녀석, 부모님이 정육점을 하시다 어릴 때 정육점에서 사고로 손목을 잃은 녀석은 아이들에게 그것이 무기였다. 그리고 중국집하는 꼴찌 녀석의 옷이나 비싼 문구류 등을 빌려가고선 주지 않아 담임이었던 내게 발각이 되고 그 녀석은 징계, 근신을 받게 되었다. 그때 빼앗긴 녀석 아버지에게 참 어렵게 정말 진심을 담아 오해하지 않도록 말씀드렸다. 아이가 공부 쪽으로는 재능이 떨어지는 것 같으니 과외시키는 돈은 적금이나 더 넣어서 가게 차리는 데 보태는 게 나을 수 있다고, 착하고 성실하니 가게를 해도 신뢰를 받을 거라고 굉장히 조심스레 말씀을 드렸는데 받아들이셨다. 그 녀석은 아버지가 하시던 중국집을 물려 받았을까? 다른 가게를 차렸을까? 가끔씩 궁금해진다. 오래 전 일이다. 요즘 같으면 속으로 천번 만번을 되뇌어도 겉으로 그런 조언을 하지 않는다. 못하는 세상이다. 아이가 지각이거나 무단 조퇴인 경우 집으로 전화를 하면 뻔히 보이는 거짓말로 자신의 아이를 감싸기에 급급하고, 담배를 소지했다가 들켜서 징계를 받은 다음 날 교무실로 와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부모도 있었다. 고등학생인 아들 성적이 낮다고 아버지가 골프채로 때리기도 하고, 집에서 엄마가 성적으로 너무 아이를 윽박질러 집에서 쌓인 화를 학교에 와서 친구와 사소한 마찰 뒤 유리창을 깨기도 하고 급우를 때리기도 하며 터뜨리는 아이들이 더러 있다. 무슨 과목 성적이 낮다고 엄마가 담임을 찾아 상담하고, 조퇴하겠다는 말도 엄마가 대신 전화를 하기도 한다. 아이가 학교에서 다소 소심하고 조용하니 교내외 캠프 활동으로 적응력, 사회성 키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될거라고 하니 모기 떼가 무서워서 못 시키고 엄마인 자신과 안 놀아줄까봐 못 보내겠다는 너무나 황당한 답변을 들은 적도 있다. 어머니는 어머니 친구랑 놀아야죠. 얘는 또래들과 활동을 많이 하는 게 좋습니다라고 마무리짓고 말았지만. 이렇듯 세상은 너무 바뀌었다. 교육열 높기로 유명한 우리나라. 오직 좋은 대학교에 보내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엄마들, 옆집 아이랑 비교하며 아이의 미래를 위해 네가 다 잘되라고 하는 거야라며 초등학교때부터 학원을 열 몇 개나 돌리는 엄마들이 얼마나 많은가? 엄마도 행복하지 않고 아이도 행복하지 않다. 서울 강남 같이 도시마다 부모의 수준이 높은 곳으로는 교사가 근무하기 힘든 학교로 소문이 나 있다. 학교에 대한 부모의 간섭이 심하기 때문이다. 학교는 무엇을 가르치는 곳인가? 교실에는 교사와 학생 간 예의가 있어야 하고, 급우 간에는 서로 도우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우정이 있어야 하며, 자신들이 지내는 교실 환경을 깨끗이 청소하는 책임감 등을 배우는 곳이다. 단지 지식만 익히는 곳이 아니다. 체육대회 때는 혼자 빈 교실에서 수능 대비 문제집의 문제를 더 푸는 곳이 아니라 우리 반 친구들을 응원할 줄 알고 격려할 줄 알아야 한다. 힘 센 몇몇이 약하거나 장애를 입은 아이를 놀리고 괴롭히는 것을 본다면 못 본 체 침묵, 방관할 것이 아니라 제지하고 약자에 대한 괴롭힘에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세월호 사건 후 1주기, 교내 추모음악제가 열렸다. 너무 오버하는 것 같다는 소수 학생의 부정적 반응도 있었다. 같은 또래의 죽음에 추모할 줄 아는 것도, 슬픔을 나눌 줄 아는 것도 교육이 아닐까?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학교에서 배운다. 단지 성적 석차를 높이기 위함이 아니라. 그래서 학교의 교사는 할 일이 너무나 많다. 매일 물을 주는 콩나물이 어느 새 성큼 자라있듯이 매일 칭찬하고 꾸짖고 응원하는 교사의 잔소리에 아이들은 어느 새 1년 뒤엔 체격과 지식 뿐 아니라 마음도 자랐음을 보게 된다. 그 때의 기쁨과 보람은 그 어떤 돈으로도 살 수 없다. 대기업의 연봉에 비해 공무원 교사의 수입이 적어도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열정 없이는 이 나라의 교원으로 오랫동안 근무하기 어렵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손에서 잘 떼지 않고 책읽기를 워낙 좋아해서, 친척들로부터 ‘책을 저렇게 좋아하니 다음에 선생하면 되겠네,’ 그런 말을 무수히 많이 듣고 자연히 교사로 진로를 잡고 24세 때 교사로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학생들과 동료교사들과 함께 지내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겪었다. 교직 생활에서 부당한 관리자의 횡포, 몰상식한 학부모의 행동, 동료교사로 뜻이 안 맞아 때로 스트레스받고 분노했던 일 따위는 모두 바람결에 날려 버리고 추억의 서랍에는 기쁨, 열정, 사랑, 그리움 등만 담아 둘 것이다. 8살 때부터 학교를 다녔고 대학 졸업 후 약 30년간 교직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학생들이 1년 전보다 성장한 순간을 발견했을 때, 내적으로 더욱 여물고 깊어졌음을 발견했을 때 교사의 기쁨은 헤아릴 수 없다. 시화그리기, 시낭송테이프만들기 같은 활동을 거쳐 요즘은 고전소설UCC만들기, 독서PPT대회 같은 활동을 하고 시상하기도 한다. 학원 때문에 시간이 없다며 소극적이거나, 조별 활동이 싫다며 툴툴거리던 아이들이 결과물을 급우들 앞에 시연할 때면 이런 활동이 얼마나 값진 경험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부모님께 직접 편지를 쓰고 답장을 받아오라는 활동 후 부모님들의 편지를 읽어줄 때 눈시울이 뜨거워진 적도 많았고 부모님도 이런 숙제가 정말 고맙다고 끝을 맺기도 한다. 수많은 직업 들이 모두 가치있겠지만, 죽기 전 내 인생을 돌아본다면 아이들을 가르치며 행복했던 날들, 반짝이는 눈망울과 미소들을 생각하며 함께 기뻐하고 함께 성장한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눈감을 것 같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대한항공 일가의 갑질 들. 상사가 욕설과 폭언 고성 등을 그렇게 퍼붓는 수준이라면 견디지 못하고 사표를 냈을 것이다. 교장이 내게 월급을 주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녹을 받으며 국가가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준 날들. 모든 선택, 결정의 기준은 교장의 업적이 아니라 학부모에게 보여주기가 아니라 학생들의 성장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이다. 학생들과 함께 한 시절. 내 청춘은 지나갔으나 황혼녘 하늘 또한 아름다울지니 교단에서 백묵 든 시절이 내 생애 빛나고 소중했음을 항상 생각하고, 학교에서 올바르게 살아가는 길을 가르치고 배운 것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 사람이 그립다

    살아오면서 이 말이 이렇게 절실하게 다가 온 적은 없었다. 공무원생활을 시작한지 벌써 25년째다 그동안 즐거웠던 일, 어려웠던 일, 뿌듯했던 일, 그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몇가지 일도 있었다. 예전에 사회복지과에 있을때 사회공동모금회업무를 본적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빨간열매를 생각하면 쉽다. 겨울이 다가오면 구청마다 각 동에 성금모금을 한다. 십시일반으로 그렇게 모은 돈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 지금은 맞춤형 복지라고 그런대로 분야 분야마다 선정을 해서 주택이면 주택, 의료면 의료 , 생활이면 생활 등으로 나눠서 어려운 분들을 선정해서 도와준다. 그런데 그때는 한 가지 기준으로 선정을 하다보니 정말 딱한분들이 많았다. 동에서 어려운분들을 선정해서 올라오면 그것을 모아서 공동모금회에 보낸다. 담당자 의견도 붙이고 서류도 붙여서 보내면 공동모금회에서 심사해서 등급별로 도와줬다. 그러나 그런 도움이 어떤 분에게는 전혀 혜택이 되지 않은 사각지대에 계신분들도 있었다. 자기동생이라면서 다른구에 사는데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도와주는데 의료비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좀 도와줄수 없느냐 고 담당자가 한 번 더 공동모금회에 도움을 요청해달라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딱해서 그럼 우리가 행정을 하는데 법을 벗어날수도 없지만 그러나 또 정말 어려운 분들이 있다면 도움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내가 공동모금회 담당자에게 한번 도와달라고 이야기해보겠다고 했다. 그분은 너무 고맙다면서 설령 안되더라도 괜찮다고 오히려 나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그래서 내가 그분을 위해서 담당자가 본 그분의 입장과 처지 그리고 형제들이 힘을 합해 동생을 도우려는 우애(友愛)를 나름 담담하게 글을 써서 담당자의 의견으로 글을 하나 썼다. 그 서류를 보고 공동모금회에서 전화가 왔다. 우리가 서류만 보고 가부(可否)를 정할 수 없다. 윗분들에게 이야기하고 여기에 적힌 담당자의 의견도 같이 첨부해서 도와 줄 수 있으면 도와주겠다고 고마운 말을 했다. 나도 마찬가지로 고맙다고 되는 방향으로 도와달라고 이야기했다. 지금은 그 분야에서 규정이 많이 완화되었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런데 결과가 내려왔는데 그분이 선정이 되어서 의료비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게 아닌가? 나도 너무 기뻐서 담당자에게 고맙다고 그리고 그 형제분에게도 정말 축하한다고 진심의 말을 전했다. 그분은 나중에 와서 고맙다고 인사를 몇 번이나 했고 내가 다른과에 갔는데도 그분이 와서 인사를 했다. 공무원생활을 하면서 내가 정말 좋은 일을 하고 있구나! 그런 진한 감동을 느꼈다. 그리고 일을 함에 있어 작은일이라도 한 번 더 챙겨보는, 민원인들이나 주민들 입장에서 무엇이든 잘해야 되겠다고 다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내가 하고자하는 이야기는 색다른 이야기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공무원생활을 그 정도 했으면 산전수전을 겪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사회생활은 초년병이다. 이제 갓 개인회사에 입사한 신입사원, 아니면 장사를 시작했으면 수습사원이다. 일찍 명예퇴직이나 조기퇴직을 한것이 아니라 수습사원 보조다. 왜냐하면 돈은 내가 융통을 하였으니 총괄책임 사원이나 마찬가지다. 남편과 나의 수습사원 이야기이다. 남편은 회사를 조기퇴직하고 조그만 가게를 차렸다. 쉽게 말해서 통닭가게, 피자가게, 분식가게 사장이지만 남편은 소주와 맥주 그리고 간단한 안주를 파는 술집사장이다. 말이 사장이지 주방을 겸해서 일인다역이다. 가게는 다행히 우리집이었다. 그것만 믿고 하다가 지금은 계속 고전을 하고 있지만 이런 글도 월급쟁이들에게 자그마한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부족한 글이라도 한번 써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나는 여성이고 그래도 연금이 있어서 나중에 아껴서 놀자주의이지만 남자들은 또 그렇지 않다. 60세에 정년퇴직을 하지만 요즘 100세 시대라고 하지 않는가. 더 할 수 있으면 간부직에 있었던 분들은 나름대로 욕심이 있을것이고 하위직에 있더라도 경비원으로 용돈이라도 벌고, 연금이 있지만 또 돈은 벌수록 좋지 않는가? 능력껏, 그냥 놀고 있다는것이 부담이라고 생각하는 월급쟁이들도 실제로 많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들 한다. 내가 알기로 지금도 공인중개사나 주택관리사 등 공부를 해서 자격증을 따신분들도 많다. 그리고 공인중개사 가게를 하고 계신 실장도 있다. 잘하시는지는 모르겠다. 전에 한번 오셨길래 “잘 되십니까 ?” 하고 물으니 “ 가게가 있어서 심심하지 않다”면서 웃기만 하셨다. 그래도 기본은 하실것이다. 그분은 직장에 계실때도 아주 일을 잘하셨다. 그만큼만 하신다면 노후는 든든하게 챙길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괜히 기분이 좋았다. 왜냐하면 내가 그분을 모셨고 그때 그분이 공인중개사 공부를 할 때가 생각이 나서 나도 모르게 흐뭇했다. 지금 술집가게를 9월에 시작했으니 4월에 접어들고 12월이다. 찬바람이 쌩쌩부는 엄동설한 , 장사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우리과에 직원들이 모두 와서 기뻐해줬다. 나름 술도 많이 팔아주고 내가 그동안 알았던 직원들, 아이들 아빠도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알았던 분들이 와서 술을 좀 팔아주었다. 축하한다면서 처음은 정말 잘되었다. 고맙다면서 이정도만 되면 내가 본업을 때려치워도 안되겠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런 시간이 2주가 채 가질 않았다. 그렇게 인사차 오신분들도 그 다음부터는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예전에 장사를 시작할 때 절대로 아는 사람을 상대로 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가 새사람을 잡아야된다고 새로운 단골을 만들어야 된다고 그럴려면 1개월, 3개월, 6개월, 1년, 3년, 5년 그렇게 지나야 단골이 생기고 그 단골에서 씨앗이 나서 꽃이 피고 열매맺고 그래야 그 장사가 번창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먼 남의 일로만 생각했는데 막상 나의 일로 다가오니 정말 힘이 들었다. 나는 낮에 직장을 다니고 저녁에는 걱정이 되어서 가게에 들리면 사실은 1인 3역을 해야 하는데 아무리 대충한다고 해도 직장일도 만만찮고 집안일도 힘들고 그래서 가게일은 그냥 가서 옆에만 있는다. 저녁 9시까지만 옆에 있는데도 힘이 들었다. 그것도 나한테는 벅찼다. 사실은 5월쯤 몸이 하도 피곤해서 종합병원에 진단을 하니 “갑상선항진증”이라고 내 몸무게가 10kg이나 빠졌다. 42kg 꿈의 몸무게인데 그게 두려웠다. 너무 피곤하고 힘이 들어서 3주 동안 쉬었다. 그동안 마당쇠같이 일만하다보니 쉬는것도 부담스러웠다. 직원들에게 미안하고 더 쉬고 싶었지만 그래도 3주라도 쉬었으니 다행이다. 옆에 직원이 내일을 대신 한다고 고생을 많이 해서 맛있는것 사준다고 했는데 아직도 못 사줬다. 덕분에 잘 쉬었는데 하면서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했다. 직장일은 아주 중요하다 어쩌면 집안일보다 더 중요하다는게 기본생각이다. 일을 하면 끝장을 보는것도 내 성격인데 하나하나 챙기자니 내게는 너무 벅찼다. 그런데다가 장사까지 시작해 신경을 안 쓰려고 했지만 저절로 신경이 쓰이는게 사람이 아닌가! 내 몸이 자꾸 처지고 힘이 들어서 몇일을 쉬면서 병원에 갔다. 그런데 의사선생이 몸이 제일 중요하다면서 이런식으로 가면 월급쟁이생활 끝까지 못한다면서 선택을 하라고 하는게 아닌가? 아이들도 아직 대학생이고 고등학생이면 학비도 많이 들어갈텐데 정년까지는 해야 하지 않느냐면서 자꾸 쉬기를 채근 하는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그렇게 채근해줘서 고맙다. 그래서 나 자신과 미래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보다 일을 끝까지 하고 노후도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쉴려면 지금이 적기다. 몸을 챙기는데 이 순간이 지나면 몸은 회복 될 수 없다고 이야기를 했다. 며칠동안 그 말을 생각하고 생각했다. 사실은 나는 행정 6급이다. 예전 같으면 벌써 사무장이 되어서 동에 내려가서 중간관리자로서 이일저일, 하긴 요즘 동에 사무장도 일이 만만찮다고 이야기는 해도 잡일은 안하니까 조금은 낫지만 나는 아직도 막일을 2년 넘게 하고 있다. 이제는 정말 동에 내려가서 조금 그런일에서 벗어나고 싶은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래서 좀 더 버티고 싶었는데 또 가만 생각해보니 일단 몸을 만들어야 한다. 아픈 몸을 가지고 동에 내려가면 동단체원들 , 주민들, 직원들에게 민폐다. 그런 생각을 하니, 그리고 한번 아픈 몸은 때를 놓치면 다시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생각들이 나를 휴직을 생각하게 했다. 과장과 잘 아는 지인들에게 이야기하니 조금만 더 참으면 안되겠느냐고 하면서 나를 위로하였다. 그러나 몸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면서 어쨌던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서 다시보자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그리고 미안하다면서 그 말도 했다. 내가 없음으로 누군가는 더 힘들어할것이다. 물론 충원은 되겠지만 또 시간은 그만큼 걸릴것이다. 이 색다른 경험은 나를 한층 성숙하게 만들었다. 일단 직장을 쉬니까 낮에는 쉬고 밤에는 잠깐이라도 가게에 나가서 옆에라도 있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아저씨 입장은 더 낳겠지 있어주니까 월급은 좀 적어도 덕분에 가게가 잘되면 더 좋지 않겠는가? 나름 나도 거창한 ? 생각을 가지고 저녁에는 가게 할 때 옆에 있어주었다. 가게가 변두리다 보니 지나가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게 큰 흠이었다. 그것을 우리가게라는 메리트라로 대체를 했는데 그것이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그리고 처음에 이 가게를 할 때 술집은 부업이고 본업은 기타였다. 남편은 기타를 참 좋아한다. 사람들마다 좋아하는게 다르지 않는가? 옆에서 보면 기타를 치면 밥먹는것도 잊어버리고 칠때도 있다. 동아리모임이 여러개 있어 그 사람들과 만날때는 화색이 돈다. 그것을 볼때 작은 사무실이라도 하나 마련해줘야 되겠다고 늘 생각을 했었다. 나이 들어서 자기가 좋아하는것 하는게 모든 직장인들의 로망(roman)이 아닌가? 남편은 좋아하는 기타를 치고 나는 글쓰는것을 좋아하니 잘된셈이다 그 꿈을 이루기위해서 밤잠을 설치면서 설레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사이에 괴리가 얼마나 큰 지 가게를 열어 한달 가까이 오면서 절실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나를 알아서 뒤늦게 소식을 듣고 와주신분들도 있었다. 고마웠다. 사람이 그립다는게 이처럼 뼛속같이 다가 온 적은 없었다. 단골이 생기려면 그만큼 시간이 걸려야 하는데 그동안 가게를 꾸리는것이 정말 말처럼 쉬운게 아니었다. 요즘은 사람도 별로 오지 않는다. 손님이 한명도 오지 않을때도 일주일에 몇 번이나 있었다. 그럴때는 정말 힘이 쭉 빠진다. 남편은 좋아하는 기타도 치기 싫고 가게도 하기 싫다고 말하곤 했다. 한번은 손님이 없어서 그럼 내가 마수걸이를 할까 하면서 오뎅탕을 시켰다. 제일 잘하는 음식이고 싸다. 만원을 내고 오늘 마수다 나에게 맛있는 오뎅탕을 해줘요. 오뎅탕을 했는데 맛이 일품이다 이 맛있는 오뎅탕을 안 먹어 본 사람은 정말 손해라고 먹으면서 나중에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먼훗날 이것도 웃으면서 할 수 있을 것이다고, 문득 고등학교책에 나오는 김소운의 글『가난한 날의 행복』이 생각났다. “왕후(王候)의 밥, 걸인(乞人)의 찬···.” 쌀이 떨어져서 아침을 굶고 출근한 아내를 위해 남편이 마련한 점심 밥상에 놓인 글. 간신히 쌀은 구했지만 반찬까지는 마련하지 못해 따뜻한 밥에 간장 한 종지만 곁들인 밥상을 과장하여 표현했다. 자칫 슬프거나 화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배우자에 대한 믿음과 사랑, 그리고 재치 있는 웃음으로 이겨나가는 부부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래도 우리는 그만큼은 아니지 않는가? 그래도 번듯한 가게이고 지금은 단지 처음이라 손님이 없을뿐이다. 내일이라도 손님이 많이 올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장사를 해보니까 사람이 그립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내가 가게를 직접은 아니지만 이렇게 근거리에서 해보니 가게에 와서 싼 것 하나라도 팔아 주는것도 참 고마웠다. 내가 아는 직원들도 많지만 그 직원들이 물론 다 오지도 않았다. 10분의 1도 오지 않았다. 그 많은 기간 동안에 웃고 웃어도 정작 내가 가게를 하니 와주는 사람은 너무 적었다. 나도 나름대로 직원들에게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겠지 바쁘거나 아니면 더 중요한 일도 있겠지만 내가 밥을 안먹을 수는 없지 않는가? 물론 술을 안 먹는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것은 핑계일뿐이다. 『생각이 없으면 행동이 없고, 생각이 있다해도 그만큼 행동이 어렵다』. 사실은 남 욕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나도 그랬으니까 입장이 나도 마찬가지다. 주변에 경조사나 아니면 개업을 했다고 해도 바쁘다는 핑계로 가지도 않고 그랬으니까 누굴 탓할 필요는 없다. 그분들이 참 섭섭했겠다는 생각을 하니 나도 이제는 좀 더 주변을 살피게 되었다. 새롭게 가게를 하는 사람은 남의 일 같지 않다. 어려운 살림에 이리저리 돈을 융통을 했을것이고 장사를 해서 아이들 공부라도 제대로 시켜야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들 할것이다. 우리도 그랬으니까 그래서 새로 생긴 가게가 주변에 있으면 먹을 일이 있으면 일부로 한 번 더 가본다. 처음이라 얼마나 긴장 되겠는가 또 얼마나 잘할려고 하겠는가? 새로 생긴 분식가게에 가서 아니면 체인점이라도 “잘 먹었다고”, “열심히 하시라고 ” 속담에 말한디에 천냥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말 한디에 얼마나 힘을 받을까 내가 그래도 이렇게나마 해보니 뒤늦게 철이 든다고 할까 나는 어떻게 보면 우리 직원들 보다 좀 일찍 시작한것이다. 사업선배다. 이 분야의 선배다. 내가 잘되어야 우리후배들이 잘 따라온다는 생각을 늘 한다. 내가 잘 아는 선배계장이 얼마 전에 가게에 놀러왔다. 놀러와줘서 고맙다면서. 그래도 “내가 선배라고 내가 잘되어야 후배님이 잘 따라오지요..맞지 않습니까 후배님” 하고 웃으니 맞다면서 “우리 선배님이 잘되어야 우리가 잘 따라가지요”...하고 크게 박장대소를 하였다. 혹시나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선배공무원이나 월급쟁이들이 있다면 또 이런 가게를 생각한다면 이 글이 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 후배님들도 좀 봤으면 좋겠다. 서로가 도와주는것 그것이 같이 사는길이라고 “도와주는것이 무엇이냐 한번 찾아주는것, 자주 찾아주면 더좋고 ”...꼭 그 말을 해주고 싶다. 그래도 장사가 돈을 제일 잘 번다. 자영업자가 월급쟁이의 무덤, 사업하지 말라는 열사람 중에 대부분의 사람이 실패한다는 인터넷뉴스가 도배를 하지만 그래도 돈은 장사를 해서 버는것이다. 얼마나 멋진 인생인가? 매일 매상을 걱정하지만 오늘도 희망을 건다. 새로 장사를 할려고 생각하는 월급쟁이와 모든 정년퇴직 준비중인 공무원들에게 내일은 더 많은 손님들이 올 것이다. 파이팅^^
  •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게 엊그제 같던 딸 아이는 교내방송국 기자로 활동하느라 나보다 더 바빴고, 아들 녀석은 고3이라 자정 가까이 되어서야 귀가했다. 그 날은 아들 녀석 중간고사가 끝난 뒤였다. 아들은 친구들이랑 영화를 본 뒤 해가 저물 무렵, 오전에 외출했던 즈이 누나와 함께 들어왔다. 집 앞에서 만났다고 했다. 우리는 얼굴을 마주하고 식탁에 앉았다. 딸 아이는 대학 3학년이 되자 방송국 일을 후배에게 물려주고 서서히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들 동우는 대학진학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지 조금은 막막했다. 헬조선이라며 스스로를 자조하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문제를 나 혼자 해결할 수도 없거니와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떠넘기고 모른 척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가 입사할 때만 해도 공무원 시험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많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요사이는 아무리 좋은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의 문턱 앞에서는 좌절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보는 건 어때?” 내가 딸아이에게 묻자 딸아이는 머뭇거렸다. “왜? 공무원은 별로야?” “아뇨, 꼭 그렇지는 않아요. 워낙 친구들이나 선배들이 공무원 준비를 많이 하고 있기는 한데, 아직은 큰 매력이 없어요.” “동우는 어때? 공무원이? 요사이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시험 쳐서 들어오는 사람도 있어.” 아들이 내게 물었다. “엄마는 왜 공무원이 됐어요? 지겹지 않아요? 한군데서 그렇게 오래 일하다 보면.” 베란다에서는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내가 근무했던 25년의 시간.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다 어디로 흘러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지루하기도 했다. 힘들기도 했다. 때론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다. 밤새 잠을 설칠 만큼 내 역량이 부족한 게 한스러운 때도 있었다. 25년이라는 시간 안에 새겨진 내 삶의 무늬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아들이 무심코 던진 질문에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민원인들에게,, 다른 직원들에게 비친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너무 숨가쁘게 살아온 탓에 뒤돌아볼 틈이 없었다고 치부하기에는 무책임한 건 아닐까 싶었다. 스물다섯, 내가 입사한 그 해부터 지금까지를 서서히 돌아보았다. 요령 없던 나는 때때로 민원인에게 법조문 문구만을 강조하며 그들이 원하는 것을 단칼에 거절하기도 했고, 어이없는 실수로 민원인을 불편하게 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선배 공무원들이 나서서 나를 대신하고 대변해 주었다. 첫 발령지를 떠날 때 눈물을 글썽이던 내게 오래 근무하다 보면 서너 번은 만나니 서운해 하지 말라며 어깨를 토닥여주던 분도 있었다. 동기들보다 승진이 늦어 맘이 상할 때 책 한권을 손에 쥐어주던 분도 있었고, 나를 호되게 나무라며 일을 가르쳐 주던 분도 있었다. 수습기간동안 나를 챙겨주었던 선배 공무원은 어느새 퇴직을 했고, 함께 울고 웃으며 희노애락을 같이 했던 분들 중 몇 분의 상가를 내가 지키기도 했다. 이제는 어느덧 내가 선배공무원이 되어 후배들을 챙기고 보듬어야 할 나이가 훌쩍 지났다. 켜켜이 세월이 지난 흔적은 있어도 내가 후배들에게 물려주거나 남긴 것이 없어 부끄러웠다. 하지만 지난 시간을 후회하는 것보다 남은 시간에 대해 희망을 품는 것이 더 나을 듯 했다. 나는 아들에게 말했다. “지겹지 않냐고? 똑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 하지만 그건 어떤 일을 하든 매한가지야. 일상적인 것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해. 지루함은 공무원들만의 특수상황이라기 보다는 살다보면 익숙해지는 것들이 있어, 그걸 지루하다고 여기면 곤란할 것 같아. 엄마가 집에서 하는 일만 봐도 그렇잖아. 엄마는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를 하지만 그런 것들을 하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는 게 일상이야. 그 자리에 그것이 있다는 건 미처 내가 알지 못한 누군가의 반복적인 수고 덕분일거야. 공무원이 하는 일도 그와 비슷한 거야. 앞으로 엄마가 해야 할 일들은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 크게 다르진 않을 테지만, 그 시간을 얼마나 역동적으로 움직여 나가냐는 엄마의 몫이 될 것 같아.“ 베란다 창문에 걸려있던 해가 점점 더 기울어가고 있었다. 앞으로 남은 시간들이 나에 대하여 더 많은 것들을 말해주기를 바라며, 부끄러웠던 시간들을 기울어져가는 해와 함께 보내고 싶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기에 남은 시간도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 산음골에는 시인들이 산다

    산음골에는 시인들이 산다

    보건진료소에 근무한지가 30년이 넘은 이 시점에서 어느 날 갑자기 지나온 나의 발자국을 조용히 되돌아 보았다. 대학 갓 졸업하고 20대에 첫발을 들여 놓았는데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나 많이 흘러 버렸는지 실감이 안 난다. 햇살 좋은 어느 날 툇마루에서 낮잠 한번 자고 일어난듯 한데 어느새 희끗희끗 변한 머리칼과 훈장 같은 주름살이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래서 인생 일장춘몽이란 말이 나왔나 보다 한바탕 꿈을 꾸고 난 듯한 이 기분........ 그러나 울고 웃으며 내 인생 전부가 되어버린 진료소의 직장 생활은 내 삶의 보석이 되어 빛나고 있었다. “다시 태어나도 나는 이 길을 걸어가리라” 다짐하며 최근에 출렁이던 작은 감동의 물결을 소중한 추억의 서랍장에서 조심히 꺼내어 본다.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 그래서일까 낮에는 맑고 상큼한 공기와 밝은 햇살이 하늘만 바라보이는 이 산골의 한가운데서 에너지를 뿜어 내주고 밤에는 지나던 달빛조차 잠시 쉬어 가고 반짝거리던 별도 숨죽여 산음골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다. 산길을 굽이굽이 돌고 돌아가면 세상 시름 모두 던져 버리고 자연 속에서 푹 파묻히고 싶은 산음휴양림을 간직한 아담하고 예쁜 동네 이곳, 산음 골에는 세월의 훈장을 이마에 가득 달고 있는 멋진 시인들이 살고 있다. 농한기에는 구부러진 허리를 지팡이와 유모차에 의지해 노인정으로 삼삼오오 모여들어 화투를 치고 간간이 산음휴양림으로 올라가던 차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70~80대의 어르신들이셨다. 문맹인 분도 계시고 더러는 한글을 배우지는 못하셨어도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분도 계셨다. 주로 어촌이나 농촌 등 산간 벽오지에 있는 보건진료소는 진료외에도 농번기에도 건강을 위한 많은 프로그램이 있지만 농한기인 11월은 이듬해 3월까지 통합건강증진사업의 하나로 경로당 중심의 각 지역에 맞는 특수사업을 집중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그동안에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로 체조나 운동, 보건교육, 그리기, 만들기, 노래교실, 등산, 걷기, EM 교육 등 매년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었다. 좀 더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는 계속적인 사업을 연구하던 중 이제는 좀더 특별한 사업을 하고 싶었고 농한기뿐 아니라 일 년 내내 개인적으로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2016년 겨울부터 우울증 및 치매 예방사업으로 ‘나만의 시 짓기’ 교실을 열었다. 글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데 무슨 시를 짓느냐고 도리질 치는 어르신들께 92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98세 때 시집을 낸 일본의 최고령 시인 시바타 도요를 소개해 주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 드렸다. 관할구역인 산음리 석산리 4개리 노인정을 직접 다니면서 심폐소생술 교육을 시키고 인형으로 직접 실습도 하게 했다. 즐거운 분위기를 조성한 후 시 공부를 그 자리에서 시작했는데 일단 시란 무엇인가 알려 준 뒤 행과 연 나누는 법등 가장 기초부터 알려드렸다. 어르신들의 숨겨진 감성을 톡톡 건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어요 시라는 게 특정인이 쓰는 게 아니랍니다 본인의 생각을 함축해서 쓰시면 됩니다. 과거 내가 살아온 이야기도 좋고 현재의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내 주변 분들의 이야기도 좋고 꽃이나 새, 또는 자연을 보고 느끼는 점도 모두 시의 소재가 될 수 있답니다 창밖을 보세요. 지나는 바람의 이야기, 오후의 느린 햇살 이야기 지나는 자동차들의 이야기가 들려오지 않나요? 저 이야기를 가슴에 담아 보세요 나만의 소중한 것으로 만들어 보세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삶이 풍요로워집니다. 생각을 많이 하게 되니까 치매도 예방됩니다. 공통점이 생겨서 이웃 간의 대화도 풍부해질거예요 일단 생각해 보시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로 직접 써보세요. 시작은 어렵지만 시라는 강물에 푹 빠지면 아마 깃털같이 가벼운 날들이 행복으로 다가올 겁니다. 그동안 걸어 보지 못했던 신기한 세상으로 한발씩 걸어 보세요. 한 달간 교육을 마친 후 처음 접해보는 “시”라는 것에 호기심 반 두려움 반인 어르신들께 A4용지를 나누어 드리고 시도 좋고 아무 글이나 한편씩 써서 진료소로 갖고 오시라고 숙제를 내드렸다. 그렇게 열변을 토하던 내 모습과는 다르게 어쩌면 빈 들판의 바람소리처럼 아무도 모르게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염려되어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던 어느 날, 내 앞에서 강한 부정을 하며 시를 어찌 쓰냐고 말씀하시던 할머니께서 수줍은 표정으로 진료소에 오셨다 쭈빗거리시며 주머니에서 구겨진 종이를 보여주셨다 시가 무엇인지도 모르게 난생처음 써 보는 거라 창피하기만 한데 숙제를 내서 일단 써왔다며 부끄러워하셨다 참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아! 이렇게 첩첩산골 산음리에서 시인 한 분이 탄생하겠구나 기대를 걸고 종이를 펼쳐서 읽어보니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글자가 많았다. “할머니 이게 무슨 글자예요?” 하나하나 일일이 여쭙다 보니 후반부에 가서는 대충 읽을 수가 있었다. 대부분 소리 나는 대로 쓰셨고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히 배어 나와 눈물까지 흘릴뻔했다. 한 행 한 행 어르신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여쭈어 가며 둘이 머리를 맞대고 탄생시킨 시가 바로 /중매쟁이 말만 믿고/ 산음리로 시집 보내놓고/ 화병에 일찍 돌아가신 어머님/ 중략 / 딸네 집도 못 와보고 따스한 밥 한 끼 못해드리고 보내드려서 가슴 아파하며 그리워하는 마음을 시로 지은 ‘그리운 어머니’였다. 며칠 뒤에는 A4용지 잃어버렸다며 달력 뒷장을 찢어서 숙제를 해오신 분이 계셨는데 그대로 하나의 시가 되었다 감성이 풍부하신 분이셨고 평상시에 책을 좋아하시는 분답게 퇴고를 굳이 하지 않고도 연을 나누는 것만 도와 주었는데 봄의 느낌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봄이 오는 소리”시가 탄생하였다. 또 한 분은 그동안 써오셨다며 20여 편 정도를 갖고 오셨는데 초보라고 하기엔 참 잘 쓴 글이었다. 서울에서 살다가 몸이 안 좋아 시골에서 요양하면서 쓰신 터라 고뇌를 많이 한 흔적이 있는 깊이 있는 글이었다. 그러나 거의 수필인지 시인지 모를 정도의 길고 긴 시였다 너무 잘 쓰셨다고 칭찬해 드리고 조금씩 퇴고하는 것을 알려드렸다. 그리고 시간 날 때 개인적으로 공부 좀 하자고 권유하고 한 달 정도 진료소에 오셔서 시에 대하여 공부를 하였다. 그뒤로 지은시는 시집 한 권 내셔도 좋을 정도로 이쁜시를 많이 지으셨다. 이렇게 여러편이 모이자 시화로 제작해서 2017년도에는 진료소 출입구에 전시해 두었더니 오가시던 분들이 시에 대해서 관심을 더 많이 갖기 시작하고 한두 분씩 시를 화두로 삼기 시작하였다. 나비효과란 말이 있듯이 어느 날인가 이 작은 물결이 산음리 석산리에 시로 물들어 주기를 더 절실하게 기다리며 2018년 1월 나 혼자서는 너무 벅차서 전문가 선생님을 모시고 한 달 동안 시 공부를 다시 한 번 더 하게 했다. 그 노력의 결과로 2018년 3월 17-18일 제19회 단월 고로쇠 축제 때는 44편의 시를 축제장에 전시할 수 있게 되었다. 축제장을 찾은 많은 분들이 차별화된 축제장에서 인생을 한편의 시로 표현한 진솔한 시에 공감하며 눈물 흘리고 감동을 많이 받으셨다. 이어서 가정의 달인 5월에는 어버이날 전후해서 양평역에 전시할 예정이다 비록 세련되거나 완전하진 못해도 삶의 진솔함이 묻어나 있어 각박해져 가는 세상에 우리가 걸어가야 할 그 길을 먼저 걸으신 어르신들의 시를 읽음으로써 그분들이 힘들게 살아온 삶을 응원해 드리고 孝사상을 고취시키며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함이다. 산음골에는 멋진 시인들이 산다 삶 자체가 시다 그래서 우리는 더 건강하고 더욱더 행복하다. 이제부터 우리 시인 어르신들은 꽃길만 걷게 될것이다.
  • ‘보건소 관리팀 에세이’

    매일 아이를 서둘러 등교시키고 이른 아침공기를 선물삼아 보건소로 향한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새로운 하루를 준비하는 동안, 허전했던 방문관리실은 하나 둘 팀원들의 인사로 채워지고 어느새 방문약속 전화로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어머님, 저 순영이가 아니고 보건소 간호사에요!” 큰소리로 말해도 수화기너머에선 일방통행이다. “뭐라고? 순영이가 아니면 그럼 순자라고?” “아뇨, 어르신, 간호사요, 방문간호사!” 목이 터져라 외치지만, 갑자기 전화를 뚝 끊으신다. “저, 어머님... 어머님?” 귀가 어두우신 어른들과 매일 오가는 일상이지만, 사무실은 다시 웃음바다다. 오늘은 밥솥을 고치는 날이라 오지 말라는 분, 이른 아침이나 저녁 늦게 방문해달라는 분, 개인전화번호를 달라고 떼쓰시는 분 등등 다소 당황스러운 일들이 있지만 방문관리실의 아침은 늘 씩씩하게 시작한다. 오랫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던 댁에 들른 적이 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팔순 노부부는 부부싸움을 크게 하시고 각각 다른 방에 몸져누우셨다. 평소 정상혈압인 할아버지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우셨고 응급상황에 가깝게 혈압이 올라가셨다. 할아버지를 욕하시던 할머니도 그제야 옆방에서 건너오셨고, 근처에 사는 아들에게 상황을 알려서 즉시 병원에 가도록 권유하였다. 팔순이 넘으면 부부싸움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어도 싸울 일은 시들지 않고, 새록새록 생기나 보다. 그래도 부부가 함께 계신 분들은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질병보다 더 무서운 게 외로움이라는 말이 있듯이 홀로 노년을 보내는 노인들의 일상은 더욱 힘겹다. 방문건강관리 대상자는 독거노인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만성질환과 암, 그리고 장애를 가지신 분들도 많다. 무엇보다 노년에 생활고에 시달리는 분들의 안타까운 사연은 돌아서는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경로당을 방문하여 고혈압, 당뇨 및 영양과 관절 관련 건강교육을 실시하기도 한다. 낯익은 어르신들이 반갑다고 손을 흔들고 안아주시면 천군만마를 얻은 듯하다. 단 10분도 교육에 집중하기 힘들어 곧장 졸음을 영접하시는 어르신들을 깨워 주시기도 하고, 분위기를 띄우는데도 일조하셔서 교육효과를 극대화 시켜 주신다. 이런 역할을 하는 어르신들은 방문간호사에겐 정말 중요한 ‘건강요원’인 동시에 연락이 두절된 분들의 근황을 파악할 수 있는 ‘건강정보원’이 된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방문간호에서도 ‘라포 형성’이 가장 우선시 되는 것 같다. 어느덧 보건소 방문관리팀에서 1년 4개월이란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과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 병원을 포기하고 보건소로 향했던 그날이 떠오른다. 금연관리실을 희망했는데, 방문관리팀으로 오게 되어 운전과 가정방문이 부담스러웠지만, 많은 어르신들을 만나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 자신이 조금씩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 인생의 황혼기를 맞으신 어머님, 아버님들은 곧 미래의 나의 모습임을 알기에 만나는 한 분 한 분 모두가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여름엔 덥다고 얼음수건으로 땀을 닦아주시고, 겨울엔 춥다고 미리 보일러를 틀고 기다리며 아랫목을 양보하시는 고마운 손길들. 너무나 감사하다. 많은 대상자를 만나다보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한발 늦게 듣게 된다. 반겨주시던 얼굴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하고 아프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하고 싶은 거 하고, 먹고 싶은 거 먹고, 가고 싶은 데 가고 그래.” 라며 잡아주시던 그 손길이 따스했었다. 짜게 드시지 말고, 규칙적으로 운동과 식사, 투약을 해야 한다고 잔소리 하는 나에게 늘 복 있고 재수있으라며 안아주시던 어르신의 토닥임이 그립다. 방문간호사로 일하면서 인생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남은 시간과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어머님, 전화국이 아니에요. 보건소, 보건소 간호사요!” 전화기 너머엔 오늘도 귀가 어두운 어르신의 추측이 난무한다. “전화국 아니고, 동사무소라고?” 어김없이 방문약속 전화가 시작되었고 방문관리팀은 소중한 만남을 준비한다. 계약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남은 기간 즐겁게 보람으로 일할 수 있기를... 어르신들이 노년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보낼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 슬퍼지기 일보 직전

    퇴근 시간 삼십여 분을 앞두고 그 어르신은 문을 밀고 들어오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다리를 심하게 절룩거리는 어르신이었다. 퇴행성 관절염인 듯 했다. 맨 발에 앞코가 막힌 낡은 고무슬리퍼를 신고 다리를 끌다시피 하며 들어왔는데, 슬리퍼가 끌리는 소리가 심하게 났다. 어르신의 발뒤꿈치는 거칠었고 머리카락은 부스스했다. “아가씨야, 동에 가믄 그 무슨 카드인가 맹글어 준다카든데, 나도 그거 하나 맹글어 도.” 뭔지는 모르지만 자신도 모를 그 무엇을 받으러 동 주민센터에 들르는 어르신이 하루에 대여섯 명은 되었다. 동 주민센터에서 만들어 주는 카드는 한두 개가 아니었다. 복지카드, 다자녀 카드, 문화누리카드, 바우처 카드 등등. 어찌나 많은지 나도 다 몰랐다. 카드를 만들어 달라는 주민들이 오면 우선, 나이와 동태를 살핀 후 핵심 단어를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질문을 유도했다. 가령, “자녀가 몇 명입니까?” 라던가, “어디가 불편하세요?” 등등. “어떻게 오셨습니까?” 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질문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내가....”로 시작하는, 그들이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딱한 사연을 처음부터 들어줘야 했다. 자기연민이 가득한 이야기의 첫 운을 떼지 못하도록 요령껏 질문해야만 그들이 왜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이야기를 중간에 끊으면 대단히 언짢아했다. 그건 누구라도 그럴 일이었다. 그들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지 않으면 심지어 불친절 공무원으로 신고 당하기 일쑤라, 아예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도록 하는 게 최선이었다. 내가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당사자들로서는 결코 ‘그렇고 그런’ 사연이 될 수 없는 그런 류의 이야기를 하루에 두어 번, 한 달에 열 번쯤, 일 년에 백 번쯤 듣다보면 나로서는 그 이야기들이 죄다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26년째 근무하고 있으니. “옆집 할매가 동에 가믄 뭐를 해 준다 카든데, 나도 신청하믄 된다 케서 왔다. 카드(card)라던가?” 어르신은 비슷한 얘기를 반복했다. 목소리가 자신의 발뒤꿈치 같았다. “내가 시집 올 때만 해도 목소리가 안 이랬는데 느그 시아버지하고 살면서 이래 됐다이� � 시어머니가 자주 하시던 말씀이었다. 고생을 하면 발뒤꿈치처럼 보이는 곳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목울대, 말하자면 목소리까지도 쩍쩍 갈라진다는 건 사실 같기도 했다. 나를 찾아오는 어르신들의 목소리는 거의 비슷했으니까. “카드를 만들어 놓으면 그쪽으로 매달 7만원이 들어 온다 카든데...” 문화누리카드(국민기초수급자에게 문화향유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발급해주는 1년에 7만원이 충전되어 있는 카드)를 말하는 게 틀림없었다. “할머니, 1년에 7만원이 충전되는 카드예요. 올 11월까지는 다 쓰셔야 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아이고 7만원이나? 고맙습니데이, 돈 준다 카는데 얼마든지 기다려야지. 이모, 이모는 얼굴도 뽀얗고 참 예쁘데이.“ “할머니, 한 달에 7만원이 아니고 1년에 7만원입니더.” “알긋소. 아이고 고마버래이.” 할머니의 표정이 금방 화색이 돌며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졌다. 나는 카드를 발급하기 위해 할머니의 인적사항을 PC에 입력했다. “근데, 보소. 내가 이모라 카고 예쁘다 ?는데 와 대답이 없능교. 나는 이런데 오믄 절대로 싫은 소리 하거나 고함 안 지른데이... 그래서 아가씨아가씨 안하고 이모이모 한다이가. 근데 와 대답이 없소?” 나는 순간 ‘아가씨가 어때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할머니에게 “아가씨”란 성매매여성을 두고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어쨌거나 나는, “아예...할머니 고맙습니다.” 했다. 80세가 넘은 분이 나에게 이모라 부르는 것이 마치 시트콤의 한 장면 같아 웃음이 났다. 나는 웃음을 참고 발급한 카드를 할머니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할머니, 이 카드는 시내 버스나 지하철 말고예, 고속버스나 기차 탈 때 쓰면 됩니더. 비행기도 되고예.” “뭐라꼬?” “기차 타거나 고속버스 탈 때 사용하시면 된다고예” “기차라?나? 나는 영세민이라서 기차 탈 때는 돈 안낸다. 그것도 안즉 몰랐나?” “할머니, 지하철 탈 때는 돈 안내지만 기차 탈 때는 영세민도 돈을 내야 되는데예....” “뭔 소리 하노..나는 이 때까지 기차 탈 때 한 번도 돈 내고 탄 적 없다.” 할머니는 “한 번도”를 말할 때 목젖을 꾸욱 눌러 강하게 말했다. 기차를 타본 적이 없는 게 분명했다. 똑같은 대화가 서너 번 오갔다. 할머니와 나의 대화를 지켜보던 동 주민센터 방문객 한분이 나를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나긋해졌던 할머니 목소리가 다시 쇳소리로 변했다. “그라모 기차 탈 때 말고 또 어디에 쓸 수 있노?” 내가 어르신들에게 이 카드를 발급해주면서 가장 난처할 때가 바로 이런 순간이다. 이 카드는 기차나 고속버스 탈 때 외에는 하루하루 살기 팍팍한 어르신들에게는 거의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머뭇거리자 할머니가 다시 한 번 다그쳤다. “할머니, 이 카드는 책 살 때, 영화 볼 때, 연극 볼 때 쓰는 거라예.” “뭐라카노.” “책요 책, 책 살 때 이 카드 쓰시라고요. 아니면 영화를 보러갈 때, 연극 보러 갈 때. 그리고 놀이공원 알아요? 놀이공원 갈 때요.” “크게 쫌 말해라. 안 듣긴다.” “책요 책, 그라고 영화 보러 갈 때요, 놀이공원 갈 때나....” 나는 슬리퍼를 신은 할머니가 영화관으로 들어가는 장면이나 롤러코스터를 타는 장면이 떠올랐다. 옆에 서 있던 방문객도 똑같은 장면을 떠올렸는지 웃음을 삼키고 있었다. 할머니는 쌩하는 표정이었다. “아이고, 다리 아파 죽겠구만 괜히 왔네.” 영화나 연극을 보시라, 놀이 공원에 가시라고 안내할 때 이것이 웃을 일은 아니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짧고 씁쓸한 웃음 뒤엔 곧 슬퍼지리라는 것까지. 하지만 웃음이 났다. 할머니는 앞코가 막힌 고무 슬리퍼를 질질 끌고 절름거리며 동 주민센터 유리문을 밀고 나가면서 밖을 향해 냅다 욕을 쏟아냈다. 쇳소리가 났다. 슬퍼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 [수요 에세이] 어느 여성 공무원의 정치 도전기/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수요 에세이] 어느 여성 공무원의 정치 도전기/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최근 지인이 지방선거에 도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정년퇴직한 여성공무원이다. 현직에 있을 때도 열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쳤던 그는 퇴직 후 고향을 위해 살리라 마음먹고 정치에 도전했다. “고향을 누구나 살고 싶은 아름답고 풍요로운 지역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에게 저런 용기가 있었구나 하는 감탄은 잠깐이었다. 평소 여성의 정치참여가 사회발전을 위해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도전을 해야 결실도 있다고 믿었지만, 정치판의 현실을 어느 정도 들어 보았기에 걱정이 앞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당연히 내 첫 질문은 공천 가능성이었다. 그는 고개를 흔든다. “어찌 될지 몰라요. 하지만 끝까지 해 봐야지요.” 정치 신인인 그에게 첫 관문은 정당의 공천이다. 지난 선거를 통해서도 입증된 경험론적 사실이다. 그러나 그 지역은 경선지역이 됐고 그는 경선에서 실패했다. 소회를 물었더니 여성들에게 정치에 참여하라고 권하고 싶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여자가 무슨 지자체장을 하냐고 의문을 던지는 유권자들 시선도 읽을 수 있었고 보이지 않는 남성들만의 리그에 낄 수 없는 한계도 느꼈다. 대의명분만 가지고 정치판에 뛰어드는 것이 무의미하지는 않겠지만 실현가능성은 없다. 더이상 계속할 여력이 없다는 말에는 표현하기 어려운 현실 정치의 어려움이 담겨 있다. 아마 지금쯤 그의 집에는 경선에서 쓴 비용 청구서만 잔뜩 날아오고 있을 것이다. 청구서를 받을 때마다 내가 왜 시작을 했지 하는 후회와 자괴감만 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구서 뒷면에는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경험이라는 자산이 숨어 있을 것이다. 최근 주변에서 정치에 입문하려다가 선거에 나가보지도 못하고 경선에서 떨어진 여성들을 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하향식 공천을 위한 경선은 민주주의 기본으로 보이지만 내면을 보면 정치 신인에게는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한다. 신인에게 주는 10% 가산점도 별 효과가 없다고 하니 해결방법은 더 복잡해진다. 정치권에서는 여성 몫을 늘려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여성계 요구는 선거철마다 나오는 상습 반복적 일로 치부하고, 한두 명의 대표 여성을 얼굴마담 격으로 발굴하는 것으로 할 일은 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많다. “여성들이 비례대표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적극적으로 선거에 나갔으면 좋겠어요.”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이야기이다. 외국은 여성의 정치참여를 어떻게 확대했을까? 이미 북유럽이나 독일, 프랑스는 선거제도와 정치관계법에 여성 공천을 보장하고 있다. 프랑스는 2010년 각급 선거의 후보에 여성을 50% 공천토록 하는 남녀동수공천법을 통과시켰다. 스웨덴은 정당에서 전략적으로 여성의 정치참여를 우대하고 있다. 우리도 법과 제도는 그럴듯하게 돼 있다. 공직선거법 제47조에 ‘후보자를 추천하는 때에는 각각 전국 지역구 총수의 100분의3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돼 있지만 지키는 정당은 사실 없다. 임의규정이라 구속력도 없다. 그나마 긍정적인 것은 2002년 도입된 할당제에 의해 의회 의원들은 숫자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최근 여성계에서는 정치적 결정에 사회구성원 모두가 고르게 참여하고 의견을 개진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할당이 아니라 남녀동수권을 주장하며 이를 헌법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제 지방선거가 한 달 남짓 남았다. 각 당의 공천도 마무리되었다. 험난한 현실정치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여성 후보자들이 늘고 있지만, 도전의 길을 택한 여성들의 용기와 열정이 하나의 씨앗이 되어 앞으로 더 많은 여성 후배들이 문지방을 넘을 수 있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리라 기대해 본다. 지난 지방선거의 경우, 광역자치단체장은 하나도 없지만 기초자치단체장에 9명의 여성이 당선되었다. 올해 선거에도 모두들 깨끗하고 공정하게 경쟁해 당당하게 승리하는 선거가 되기를 응원하고 싶다.
  • [책꽂이]

    [책꽂이]

    오리지널 마인드(엘리너 와크텔 지음, 허진 옮김, 엑스북스 펴냄) 작가들 사이에서 인터뷰를 가장 잘하는 사람으로 손꼽히는 라디오 진행자 엘리너 와크텔이 제인 구달, 수전 손택, 올리버 색스, 움베르토 에코, 놈 촘스키 등 세계적인 지성 16명을 인터뷰했다. 이들은 과감하고 독창적인 정신(오리지널 마인드)이야말로 다른 삶을 이끌게 한다고 입을 모은다. 720쪽. 2만 8000원.이 밤과 서쪽으로(베릴 마크햄 지음, 한유주 옮김, 예문아카이브 펴냄) 대서양을 서쪽으로 단독 횡단한 최초의 여성 비행사 베릴 마크햄의 자전적 에세이이자 그의 유일한 저작. 1902년 영국에서 태어난 그가 1906년 아버지와 단둘이 케냐로 이주해 살았던 30여년간의 삶이 담겼다. 456쪽. 1만 4000원.프랑스 남자의 사랑(에리크 오르세나 지음, 양영란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 프랑스 공쿠르상 수상 작가 에리크 오르세나의 최신 장편소설로 동시에 이혼한 아버지와 아들이 각자 사랑에 실패한 이유를 찾아 끊임없이 대화하고 티격대다가 서로의 진심을 이해하는 과정을 그렸다. 316쪽. 1만 4000원.인류세의 모험(가이아 빈스 지음, 김명주 옮김, 곰출판 펴냄) 인류가 지구의 기후와 생태계를 변화시켜 만들어진 새로운 지질시대를 가리키는 ‘인류세’라는 개념이 주목받는 가운데 저자는 대기, 산, 강, 농경지, 바다 등 10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생하게 그렸다. 536쪽. 2만 5000원.학교에 페미니즘을(초등성평등연구회 지음, 마티 펴냄) 2016년 발족한 초등성평등연구회 소속 초등학교 교사 9명이 혐오 표현과 성 고정관념이 깊게 뿌리내린 교실 풍경을 묘사하고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한 이유를 역설한다. 184쪽. 1만 3000원.도시의 36가지 표정(양쯔바오 지음, 이영주 옮김, 스노우폭스북스 펴냄) 대만 문화부 정무차관인 저자가 파리, 로마, 베를린, 타이베이 등 세계 곳곳의 도시를 여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도시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36가지 방법을 소개한 도시 감상 안내서. 288쪽. 1만 5800원.
  • 마르크스가 지구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

    마르크스가 지구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

    철학·경제·역사학자 마르크스 200돌 에세이·소설·전기 등 출간 열기 활발 경제적 불평등·빈곤·실업 폐해 심각 신자유주의에 대한 성찰·관점 재조명카를 마르크스/개러스 스테드먼 존스 지음/홍기빈 옮김/아르테/1112쪽/8만원마르크스에 관한 모든 것/토머스 스타인펠트 지음/김해생 옮김/살림/424쪽/2만 2000원마르크스 2020/로날도 뭉크 지음/김한슬기 옮김/팬덤북스/372쪽/1만 6000원마르크스의 철학/에티엔 발리바르 지음/배세진 옮김/진태원 해제/오월의봄/476쪽/2만 3000원디어 맑스/손석춘 지음/시대의창/440쪽/1만 6800원마르크스 전기1·2/마르크스 레닌주의연구소 지음/김대웅·임경민 옮김/노마드/각 496·528쪽/각 2만 5000원공산당 선언/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심철민 옮김/도서출판b/142쪽/9000원유럽 전역에 혁명의 기운이 넘치던 1848년 나온 ‘공산당 선언’의 유명한 첫 문장 “유럽에는 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그것은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다”는 “지구에는 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그것은 마르크스라는 유령이다”로 바꿔 읽어도 무방할 듯하다. 세상을 떠난 지 135년이나 된 독일의 철학자·경제학자·역사학자 카를 마르크스(1818~1883)의 생명력은 여전히 생생하다. 마르크스의 이름이 오늘날까지 호명되는 건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성찰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일 터다. 수많은 추종자와 그에 못지않은 반대파를 거느린 이 논쟁적인 인물의 삶과 사상을 되짚어 보는 책들이 5일 그의 탄생 200돌에 맞춰 나왔다. 전문가들은 경제적 불평등, 실업, 빈곤 등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마주한 오늘날 그 한계를 해결하는 열쇠 중 하나로 마르크스의 철학과 사상에 주목한다. 특히 노동계급의 해방과 인류의 진보에 앞장선 혁명가로서 그려진 마르크스에 대한 환상을 걷어내고, 정치사상사 속 마르크스의 실제 업적과 한계에 주목한 저서들이 눈에 띈다. 런던대 퀸메리칼리지의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 교수가 2016년에 쓴 ‘카를 마르크스’는 19세기 유럽의 역사와 지성사적 맥락에서 마르크스의 사상과 삶을 재구성한 책이다. 해제를 쓴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은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라는 달팽이 껍질 속에 숨어 있는 ‘마르크스’라는 민달팽이의 모습을 꼬리에서 두 개의 뿔까지 총체적으로 그려 낸다”고 설명했다. 저자는 마르크스주의를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마르크스 사상을 ‘대중화’한 결과물이라고 지적하며 오히려 만년의 마르크스는 한때 자신이 경멸하고 거부했던 러시아의 ‘미르’와 같은 촌락 공동체에 희망을 걸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책에는 마르크스가 평생의 동반자인 예니와 함께 유럽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는 동안 그의 사상이 어떻게 발전하고 어떤 방향으로 전환됐는지, 기독교와 국가 비판에 집중하던 마르크스가 왜 사회 문제와 프롤레타리아트에 주목하게 되는지 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담겼다. 토머스 스타인펠트 스위스 루체른대 명예교수가 쓴 ‘마르크스에 관한 모든 것’은 마르크스의 난해한 사상을 에세이 형태로 풀어냈다. 명성, 선언, 음모, 돈, 자본, 소유, 언어, 학문 등 16개 키워드를 중심으로 마르크스의 이론을 정리했다. 한 인물을 영웅·신화적으로 기술하는 전기로 쓰면 역사적 진실이 매몰될 수 있는 탓에 에세이 형식을 빌렸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정세적 변화를 분석한 ‘마르크스의 철학’은 2014년 프랑스에서 나온 증보판을 저본으로 삼아 국내에서 재출간됐다. 마르크스의 철학·역사·경제학적 저작을 서로 구분하지 말고 ‘열린 전체’로 볼 것을 강조하는 저자는 마르크스의 저작인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테제’를 독창적으로 독해하는 법, 이데올로기와 물신숭배 개념, 자본주의의 역사성에 대해 논의한다. 마르크스의 사상을 오늘날의 관점에서 조망한 책도 눈길을 끈다. 정치사회학자 로날도 뭉크가 쓴 ‘마르크스 2020’은 역사, 자연, 발전, 노동자, 여성, 문화, 국가, 종교, 미래 등 다양한 영역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오늘날 어떻게 발전하고 쇠락했는지 보여 준다. 저자는 “마르크스는 혁명이라는 급진적 방법을 통해 경제적, 정치적 자유주의의 발전에 맞서지는 않지만, 심화되는 갈등과 새롭게 등장하는 이론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도구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마르크스의 일대기를 소설로 재구성한 작품도 있다. 언론인 손석춘씨가 쓴 장편소설 ‘디어맑스’는 마르크스의 후원자이자 절친인 엥겔스가 ‘라인신문’에서 일하던 청년 마르크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마르크스의 삶을 그렸다. 마르크스의 실제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면 ‘마르크스 전기’(전 2권)를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부설기관인 마르크스·레닌주의연구소가 1973년 방대한 문헌을 참고해 완성한 책으로, 국내에서는 1980년대 초판이 나왔고 이번에 재출간됐다. 마르크스의 유년 시절 이후 중요한 사건을 시간순으로 요약했다. 또한 올해로 출간 170주년을 맞은 마르크스의 대표 저작 ‘공산당 선언’도 새로운 번역으로 나왔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국제패션디자인직업전문학교, 이론부터 실무까지 전문화된 교육 시스템 구축

    국제패션디자인직업전문학교, 이론부터 실무까지 전문화된 교육 시스템 구축

    K-컬쳐가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면서, K-패션 또한 세계 시장에서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게 되었다. 패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패션을 공부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패션에 대해 이론부터 실무까지 탄탄하게 배우고 싶다면 국제패션디자인직업전문학교에 주목해 보자. 1938년 국내 최초로 설립된 패션전문교육기관인 국제패션디자인직업전문학교는 대한민국 패션 역사의 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앙드레김, 이상봉, 이신우, 박윤수, 명유석, 한승수, 박춘무, 루비나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를 배출한 명문 패션 스쿨로 유명하다. 국제패션디자인직업전문학교는 80년 전통을 바탕으로 패션 분야 최고의 교수진과 전문화된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단일 전공의 전문화된 교육 시스템으로 최적화된 패션 교육 커리큘럼을 자랑한다. 실제로 전공 수업의 약 70~80%를 실무 수업으로 진행하고 있어 실무중심의 패션전문교육기관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전공별 다양한 현장 실습을 통하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취업 전 다양한 활동 경험을 제공해 실무에서만 쌓을 수 있는 노하우도 축적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전공별 1인 3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방학을 이용한 특강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 높은 자격증 취득률을 자랑한다. 또한 공모전 준비 수업을 통해 수상 및 다양한 공모전 참가 경험으로 학생들의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고 있다. 이같은 활동은 취업 시 가장 중요한 포트폴리오 작성에도 큰 이점으로 작용한다. 무엇보다 청년실업률이 매년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국제패션디자인직업전문학교는 학생이 졸업 후 취업할 때까지 책임진다는 각오로 취업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취업을 위한 인턴십 프로그램과 개인별 특별 카운슬링을 바탕으로 국내 우수 패션 업체를 비롯해 해외 우수 업체와 연계하여 취업과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편입에서도 4년제 대학교 편입 및 대학원 진학 등의 우수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는 편입 전형에 맞는 실기시험을 준비할 수 있도록 대학별 경쟁률 및 전형 방법 등의 편입 자료와 출제 유형 분석 자료를 제공해 편입 준비를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기 때문이다. 편입을 계획하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 1:1 개인 맞춤형 학사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해외 패션스쿨과의 협력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어 해외에서도 패션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놨다. 국내패션스쿨 최초 미국 F.I.T.와 이태리 마랑고니, 도무스, 나바 및 일본 문화 복장 학원에서의 연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원어민 교수 영어수업과 어학, 포트폴리오, 에세이 준비 등을 지원한다. 국제패션디자인직업전문학교 관계자는 “학생들의 역량과 열정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학점은행제 평가인정교육훈련기관으로 패션디자인과 패션비즈니스 전공을 운영하고 있으며 편입, 유학, 취업까지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수요 에세이] 조직과 신화/정재근 유엔거버넌스센터 원장, 시인, 전 행정자치부 차관

    [수요 에세이] 조직과 신화/정재근 유엔거버넌스센터 원장, 시인, 전 행정자치부 차관

    현직에 있을 때 현장을 방문하면 꼭 지역 일선 소방관, 경찰관들을 만났다. 격려 후엔 다음 말을 덧붙였다. “누가 내게 수고했다고 칭찬하면 그 순간엔 좋지만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스스로를 칭찬하고 격려해야 오래 간다. 나는 이렇게 고생하는데 높은 사람들은 관심도 없다고 서운해하기 전에 내 일에 스스로 가치와 긍지를 갖고 일한다면 공직생활 내내 행복할 것이다.” 스스로를 칭찬하는 것은 내가 한 일 중 대견하다고 여기는 일들을 마음속에 기록하고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는 과정이다. 역경을 맞을 때마다 그런 기록은 자부심과 긍지로 되살아나 나를 강하게 하고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고 또 하나의 대견한 기록을 남긴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많이 먹는다는 말처럼 성공한 사람이 또 성공한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노벨상 수상자 제자나 노벨상을 수상한 연구소에서 노벨상을 또 받는다. 보람, 열정, 역경극복 등 성공의 기록을 잘 보존하고 끊임없이 되살려 후배들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 주는 일은 얼마나 강한 조직인지를 결정한다. 유발 하라리는 저서 ‘사피엔스’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호모 에렉투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등 다른 인류들을 물리치고 지구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사피엔스만이 인지혁명을 통해 신화를 창조하고 이를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신화는 특정 집단에서 믿고 공유하는 상징이다. 가장 대표적인 상징은 신, 이념, 제도 등이다. 현실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런 상징들을 만들고 동일한 상징들을 공유하는 집단들이 서로 협력하여 외부환경에 공동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사피엔스의 능력이 육체적으로는 약한 그들을 먹이사슬의 정점에 올려놓았다고 주장한다. 신화는 상징을 이야기로 잘 엮어 대를 이어 전달하는 것이다. 강한 조직은 신화를 가진 조직이다. 조직이 해냈던 성취와 보람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엮고 긍지와 자부심으로 포장하여 후배들에게 되새겨 주는 조직, 스스로를 칭찬하는 조직은 강하다. 소통하는 조직이 강하다고 할 때 신화를 가진 조직은 세세년년 소통할 수 있어 강하다. 필자가 근무했던 행정안전부의 어느 과엔 과장, 계장, 서무직원 족보가 있다. 필자는 그 조직의 몇 대 과장이고 몇 대 계장인지 지금도 기억한다. 가끔 모임에 가면 자기를 몇 대 계장이라고 이야기하는 후배들이 여전히 있다. 그 과에선 선배들이 해냈던 보람과 성취의 이야기를 신화처럼 전달한다. 그때 그 선배는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여건에서도 해냈는데 우리가 이것을 못하면 되겠느냐며 주먹을 불끈 쥔다. 행정을 하며 몸담은 조직에서 후배들에게 용기를 줄 만한 이야기 한 토막 남기는 것은 참 보람찬 일이다. 몇 년 만에 만난 후배가 필자와 일할 때 인상 깊었던 점을 이렇게 귀띔했다. 급한 일이 있어 종종걸음으로 서두르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난 윗사람이 급히 찾는다고 뛰지 않는다. 높이 오르고도 여전히 안절부절못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후배들이 저게 기껏 노력해 성취한 20년 후의 자기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슬프겠니?” 이처럼 신화는 개인과 조직을 영원히 살게 하는 불멸의 인자이다. 미국 출장 중 남북 정상회담 소식을 접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과연 지금 이 역사의 순간이 대한민국을 강하게 하는 신화가 되어 위기 때마다 이를 극복하게 하는 칭찬의 이야기로 기록되고 되새김질될 것인가? 또 만일 그래야 한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오늘의 긍지가 추억으로 기록되어 신화처럼 되살아나는 그런 강한 조직들, 그런 강한 대한민국을 꿈꾸며 시 ‘환생’ 한 편을 남긴다. ‘나는 나의 기억 한편을 소중히 추억하며 /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은 그 추억들을 / 두 손 안에 살포시 가두어 / 죽음까지 함께할 가슴에 묻으리라 // 나 죽은 후 나를 추억하는 이 있어 / 내 다시 살아나거든 / 가슴에 묻은 그 추억도 다시 일어나 // 나 / 영겁으로/ 환생하리라.’
  • 11개국 212일… ‘덕후’가 말하는 진짜 아프리카

    11개국 212일… ‘덕후’가 말하는 진짜 아프리카

    “아이 엠 탠저니언(I am Tanzanian).”건국대 지리학과 4학년 손휘주(28)씨가 탄자니아의 한 호스텔에서 만난 청년에게 “어느 부족 출신이냐”고 묻자 돌아온 답이다. 탄자니아 청년은 “출신 부족이 아니라 탄자니아인으로 불리고 싶다”고 말했다. 탄자니아에 120개 부족이 있어 ‘수쿠마’, ‘니암웨지’, ‘차가’와 같은 부족명을 예상했던 선입견을 그 청년이 깬 것이다. 손씨가 지금껏 여행한 나라는 유럽과 중국 등 모두 35개국이지만, 그는 아프리카를 세 차례에 걸쳐 11개국을 탐구한 ‘아프리카 덕후’다. 11개국에 머물렀던 날만 212일에 이른다. 손씨는 세 번째 아프리카를 다녀온 85일간의 여행을 담아 ‘동남부 아프리카-손휘주의 지리 포토 에세이’(푸른길)라는 책을 최근 냈다. 30일 만난 손씨는 “대학교 1학년 때 읽었던 지리학자 하름 데 블레이의 책 ‘분노의 지리학’의 한 구절에 감명을 받아 아프리카로 향했다”고 말했다. ‘수십만년 동안 아프리카는 인류를 기르고 단련시켰으며 전 세계로 내보내어 이 행성을 영구히 바꿔 놓았다. 우리의 지리학적 여정을 아프리카에서 끝맺는 것이 적절하리라’라는 구절이었다. 손씨는 2013년 9월 케냐로 향했다. 한 국제단체를 통해 케냐에서 40여일 정도 봉사활동을 하고 20여일 정도 홀로 케냐를 누볐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두 번째 아프리카 여행을 준비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지리적인 기록을 남기겠다는 목표로 41일 동안 남부 아프리카를 다녔다. 자신감이 생긴 손씨는 2016년 8월 세 번째 아프리카행에 올랐다. “자연지리와 인문지리학을 모두 반영한 진짜 아프리카의 모습을 보여 주는 책을 내겠다”며 ‘텀블벅’이라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를 통해 300여만원의 지원금도 모았다. 그러나 5개월 일정으로 여행에 올랐던 손씨는 3개월 만에 돌아와야했다. “두 번째 여행은 너무 안일했어요. 공부가 부족했는데 ‘진짜 아프리카를 알려주겠다’고 했던 거죠.” 여기에 아프리카와 관련한 지리학 서적을 탐독하며 남아프리카공화국,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 등 동남부 7개국을 집중적으로 연구해 책을 완성했다. 손씨의 여행기는 기존의 인상 비평이나 포토 에세이식 여행기와 차별화된 지리 정보가 풍성하게 담겼다. 지리학도로서 자신의 학문적 관심사와 현장 답사를 엮어 풀어낸 셈이다.예컨대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노던케이프주 비울스드리프 지역에 관해서는 ‘연 강수량 250㎜가 안 되는 사막지대인데 사람들이 농사를 짓는다. 드라켄즈버그산맥에서 발원해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레소토의 고산지역에서 물을 보충하는 오렌지강 덕분’이라는 식이다. ‘지리학 에세이’라는 독특한 책을 펴낸 손씨는 “특정 지역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히도록 돕는 게 지리학의 역할 가운데 하나”라며 “아프리카에 관한 편견을 줄이도록 지리학도로서 꾸미지 않고 과장하지 않은 여행 이야기를 계속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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