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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규관의 고동소리] 문학의 민주주의

    [황규관의 고동소리] 문학의 민주주의

    소설가 김남일의 문학 산문집 ‘염치와 수치’(낮은산)를 읽다가 문득 김수영의 시 ‘이 한국문학사‘가 떠올랐다. 1965년에 쓴 이 시는 김수영의 시세계에서 그렇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다만 5·16 쿠데타 이후 침잠과 모색을 거쳐 의식하게 된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편린 정도가 표현돼 있다. 2연에서 김수영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여지껏 희생하지 않는 오늘의 문학자들에 관해서/너무나 많이 고민해 왔다.” 그러면서 김동인, 박승희, 김유정을 불러들인다. 김남일은 이 책의 서문에 이렇게 적어 놨다. “내 아무리 젠체해도, 내 아무리 고통스럽다 한들, 그렇다, 내 싸움이 육사나 단재만 하랴. 내 가난이 서해만 하랴. 내 결핵이 유정만 하랴. 죽음을 희롱했기로서니 이상만 하랴. 그들은 봉건과 식민의 이중 굴레에서 벗어나려 고투했고, 그와 동시에 제 이름을 걸고 글을 썼다.”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며 가슴에서 뭔가가 ‘쿵’ 하고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김수영은 이미 ‘거대한 뿌리’에서 “역사는 아무리/더러운 역사라도 좋다”고 했지만, 사실 우리 세대는 ‘더러운 역사’를 부정하며 싸워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친일과 독재 그리고 억압과 착취의 현실에서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그래서 또 그 언어들을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지. 정치적으로 올바른 언어를 쓰면서 도그마에 갇히기도 했으니 말이다. 김남일은 작품을 먼저 읽지 않고 작가들의 에세이와 삶의 이야기를 먼저 읽어 나갔다고 고백한 적이 있는데, 먼저 그들의 솔직한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김남일이 이 책에서 친일 작가들의 행태를 용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시대적 환경 속에서 그 작가들의 내면을 헤아려 볼 뿐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어설픈 독후감이 아니다. 오늘날 문학은 철저하게 시장에 맡겨진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상품이 되지 않는 작품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사실 의미란 것은 사회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회화 과정을 우리의 현실인 자본주의가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게는 언제부터인가 독자와 소비자를 구분해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따라서 일부에서 이른바 문단이나 평론가들의 승인은 이제 필요치 않고 독자들의 판단에 문학을 맡겨야 한다는 주장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김수영은 시인의 역할은 시인을 발견하는 데에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을 시에는 특별한 권위가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작가에게는 독자와 소비자를 판별하는 역량이 필요하다. 물론 독자와 소비자는 별도의 주체들이 아니다. 문학 작품을 선택하는 순간에 작용하는 한 개인의 의지와 내면 상태가 아마도 독자와 소비자를 구분하는 분할선일 것이다. 동시에 독자와 소비자는 한 주체 안에 버무려져 있기도 하다. 만일 작품을 소비자의 선택에 전적으로 맡긴다면 우리는 문학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민주주의일 텐데, 소수의 권위자가 갖고 있는 것을 다수에게 돌려주자는 논리는 제법 민주주의적 원칙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가장한 ‘소비자 파시즘’에 가까울 것이다. 작가는 사회적, 문화적 제도 속에서 평등해야 하지만 작품은 치열한 경합(agon)이라는 용광로에 던져지는 게 옳기 때문이다. 소설가 김남일의 책을 읽으면서 ‘과연 정치적 올바름만으로 작품을 평가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떠나지 않았다. 비루한 삶을 산 작가가 의외의 작품을 내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물론 대체적으로 비루한 삶을 산 작가들의 작품에는 어디엔가 비루한 면이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미당의 적지 않은 작품들을 나는 읽기 힘들다. 그의 삶 때문이 아니다. 그의 삶을 지탱해 준 현실에 대한 비루한 입장이 어쩔 수 없이 작품에 깊이 내장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작가들의 작품은 그 자체로 뛰어난가? 이 난센스 때문에 우리는 문학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문학은 우리를 하염없이 ‘모름의 상태’로 밀어 넣는다. 문학이 민주주의를 사유하는 일은 명료한 답 대신 우리를 지옥에 서게 하는 일을 포함시킨다. 무엇보다 이 지옥을 기뻐할 수 있는 자를 나는 작가ㆍ시인이라 부르고 싶다.
  • 무관중·비공개… 방송·공연이 ‘신종 코로나’를 피하는 법

    무관중·비공개… 방송·공연이 ‘신종 코로나’를 피하는 법

    음악방송, 증상 보이면 입장 제한 슈주·김수현 등 팬미팅도 차질 軍연예인 뮤지컬 ‘귀환’ 일부 취소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공연가와 방송가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공개방송으로 진행되는 음악방송은 관중 없는 방송을 고려 중이며, 공연이나 팬미팅 등 행사를 취소하거나 속속 연기하고 있다.방송가는 매주 관객 수백명이 한꺼번에 모이는 음악방송을 중심으로 대응에 나섰다. 밀폐된 공간에 다국적 관객이 몰리는 만큼 취약한 현장이라고 판단해서다. KBS ‘생방송 뮤직뱅크’와 엠넷의 ‘엠카운트다운’, ‘너의 목소리가 보여’ 등은 이번 주 손 소독제와 마스크, 발열 감지기를 준비하기로 했다. 엠넷 관계자는 “마스크를 가져오지 않을 경우 현장에서 제공할 예정”이라며 “발열 감지기를 통해 증상이 나타나는 관객은 결과에 따라 귀가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MBC 음악 공개방송 ‘쇼! 음악중심’은 제작진과 관객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소독제를 필수로 사용하도록 사전 고지했다. MBC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드라마나 예능보다 관객이 많은 공개방송 중심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상황을 지켜본 뒤 정부 지침이 있을 경우 따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SBS ‘인기가요’도 “2월 2일부터 마스크가 없으면 입장이 제한되며 입장 전 열 측정에서 37.5도 이상의 고열로 나올 시 입장을 제한한다”고 공지했다. 각 방송사는 추이를 지켜본 뒤 상황이 심각해지면 무관중으로 녹화 및 생방송을 진행할 예정이다.팬미팅 행사들도 잇따라 변경되고 있다. 그룹 슈퍼주니어는 지난 28일 컴백쇼에 팬 800명을 초청할 예정이었지만 비공개 녹화로 바꿨다. 젝스키스 출신 강성훈은 2월 14~15일로 예정됐던 미니콘서트와 팬미팅을 미루면서 “대다수가 외국에서 오신 분들로 파악돼 긴급하게 일정을 연기했다”고 밝혔다. 그룹 NRG 멤버 이성진, 배우 전소민도 다음달 초에 예정했던 팬미팅과 에세이 출판 기념사인회를 열지 않기로 했다. 배우 김수현의 팬미팅도 연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샤이니 온유(본명 이진기)와 엑소 시우민(본명 김민석) 등 군 복무 중인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육군본부 창작 뮤지컬 ‘귀환’ 측은 다음달 7∼9일 열리는 고양 공연과 21∼23일 열리는 안산 공연을 취소했다. 다음달 1일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민중가요 콘서트 ‘더(the) 청춘’도 일정이 미뤄졌다. 콘서트를 앞둔 가수들도 현장 방역 작업을 진행하고 마스크 지급 등 대책을 마련한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미스터리 제왕의 과학 에세이?… 히가시노 게이고 ‘사이언스?’

    미스터리 제왕의 과학 에세이?… 히가시노 게이고 ‘사이언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해외 작가의 자리에서 10년 넘게 이름을 올리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 ‘용의자 X의 헌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을 낸 일본 미스테리의 제왕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국에 출간된 에세이집만 3권인 에세이스트이기도 하다. 최근 출간된 에세이집 ‘사이언스?’(현대문학)은 그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잡지 ‘다이아몬드 LOOP’와 ‘책의 여행자’에 연재했던 짧은 글들을 한 권으로 엮은 책이다. 추리소설 작가이자 이공계 출신 전직 엔지니어인 히가시노 게이고가 들려주는 생활 밀착형 과학 이야기를 표방한다. 제목에 붙은 물음표처럼 본격 과학 이야기는 아니다. 환경 오염, 기술을 악용하는 지능 범죄의 출현, 저출산 문제 등 현대사회가 직면한 과학적 이슈들에 대한 가벼운 에세이라고 보는 게 맞다. 특히나 히가시고 게이고의 팬이라면 궁금해할 법한 집필 뒷이야기들이 재밌다. 예를 들면 동료 문인들 사이에서 이과 출신 작가로서 느끼는 이질감(‘이공계는 장점인가′), 이른바 ‘커트앤드페이스트’(데이터의 일부를 잘라내어 다른 위치에 붙이는 일’) 방식으로 원고를 썼던 작가가 별 거부감 없이 육필에서 워드프로세서로 갈아탄 일화(‘도구의 변천과 창작 스타일’) 등이다. ‘과학기술은 추리소설을 변화시켰는가′라는 대목에서는 과학기술의 진보로 달라진 추리소설을 조망한다. 그 대표 주자는 바로 휴대전화의 보급이다. 작가는 ‘중요 인물과 아깝게 엇갈리거나 연락할 수 없는 상황에 몰아넣는 것’이 ‘휴대전화가 등장해 몹시 까다로워졌다’(25쪽)고 말한다. 이같은 전개는 독자들에게 ‘있을 수 있는 일’로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과학기술의 진보가 추리소설을 쓰기 힘든 환경을 만든 건 아니라고 작가는 말한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지능 범죄들이 숱하게 탄생한 탓이다. 15~17년 전에 쓰여진 에세이들이라 다루는 소재들이 지금과의 시차가 느껴지는 건 좀 아쉽다. 그러나 세상 만사로 뻗어가는 추리소설 작가의 논리회로, 스키 등 스포츠를 향한 그의 남다른 열정 등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면면을 보는 재미가 있다. 232쪽. 1만 3000원.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문화마당] 시민 출판의 시대로/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문화마당] 시민 출판의 시대로/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오늘날 우리는 누구나 자기 삶을 스스로 기록하고,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사람과 공유하며, 아카이브해서 후대에 남길 수 있다. 아카이브 방법은 점점 간단해져 블로그 등 디지털 콘텐츠만이 아니라 종이책이나 전자책 같은 형태로 출판하는 것도 이제는 별로 어렵지 않다. 도서관 등에서 이용자들을 상대로 책 쓰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전문 저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 출판하려 할 때 독자들이 후원 등을 할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소셜 펀딩 시스템이 이러한 흐름을 거세게 하는 중이다. 2018년 텀블벅 한 군데에서만 700여권의 신간이 탄생했다. 작년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으나 꽤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가 쓴 책 콘텐츠를 소비만 하는 출판 객체에 일반 시민들이 머무르지 않고, 자신이 가치 있다 생각하는 일상의 어떤 것이든 기록해서 책으로 펴내는 출판 주체가 되는 것을 ‘출판의 민주화’라 한다. 최근 출판계에서는 어르신들의 진솔한 자기 기록이 책으로 나와 화제가 되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다. ‘출판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점에서, 또 고령 사회를 맞이해 미래 가치가 높은 ‘시니어 출판’ 영역의 확산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를 쓴 전남 순천 할머니들은 순천 그림책 도서관에서 글과 그림을 배운 후 쓰고 그린 인생 기록을 한데 모아 책을 펴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이 압축적으로 담긴 이 감동적인 책은 출간 직후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요리는 감이여’를 함께 쓴 충청도 할매들 역시 충남 지역 도서관과 평생학습관에서 한글 문해 교육을 받고는, 평생 처음 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됐다. 사서와 편집자 등의 도움을 받아 기록한 이들의 인생 요리 책은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흔일곱 살 이옥남 할머니의 30년 일기에서 가려 뽑은 글을 엮은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은 소박한 어조로 인생을 긍정하는 내용이 독자들 마음을 파고들었다.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는 70대에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된 박막례 할머니의 인생 역정을 유쾌한 필치로 그려내 많은 호응을 받았다. 이 밖에 전국 한글학교에서 뒤늦게 한글을 배운 어르신들의 시와 산문을 모은 ‘보고 시픈 당신에게’ 등 시니어 출판의 한 갈래가 자리잡아 가는 느낌이다. 일기, 회고, 에세이, 자서전 등으로 표출되는, 특히 여성 어르신의 자기 기록은 여러 의미가 있다. 평생 자기표현이 억눌렸던 이들의 인생 기록은 남성 중심의 기울어진 역사를 바로잡고, 공공 기록이 빠뜨리곤 하는 시민들의 일상을 복원하며, 다채로운 지역 문화를 원형 그대로 보존한다. 또한 자기 삶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은 동시에 한 평범한 시민이 자기 삶의 의미를 깊게 성찰하고, 인생에서 받은 온갖 상처를 치유하며,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몽테뉴에 따르면 세상 사람은 ‘눈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는 사람’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사람’으로 나뉜다.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은 독단의 돌부리에 걸려 언젠가는 돌이킬 수 없는 후회 속으로 넘어진다. 눈을 안으로 돌려 자기 경험을 객관화하는 과정 없이 인간은 성숙할 수 없고, 더 나은 삶에 도달하지 못한다. 몽테뉴가 ‘에세’를 쓰면서 더 나은 인간이 되기를 한없이 시도했듯, 자기 기록은 한 시민이 지나온 인생의 의미를 따져 보고 앞으로의 삶을 새롭게 만드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의 알을 품은 시민들이 많아지면 자신을 배려하고 타인을 관용하는 이들도 늘어나면서 공동체도 함께 부화한다. 좋은 사례들이 생겨난 만큼 도서관에서 시민들의 자기 기록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보존함으로써 미래의 자산으로 삼았으면 한다.
  • 나 자신을 찾는 투쟁, 배움

    나 자신을 찾는 투쟁, 배움

    배움의 발견/타라 웨스트오버 지음/김희정 옮김/열린책들/520쪽/1만 8000원 한 작은 소녀가 벅스 피크 봉우리 아래 서서 산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벅스 피크는 미국 북서부의 두메산골인 아이다호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는 오지에 있는 산봉우리다. 생김새가 여성의 모습과 비슷해 소녀의 가족은 ‘인디언 프린세스’라는 별명으로 곧잘 불렀다. 마침 산 아래 국도에는 스쿨버스가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스쿨버스는 여태껏 단 한 차례도 소녀의 집 근처에서 선 적이 없다. 소녀가 학교를 다닌 적이 없기 때문이다. 소녀의 아버지는 연방정부가 강제로 자신의 아이들을 학교에 가도록 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럴 일은 애초부터 없었다. 소녀와 몇몇 형제들은 출생증명서가 없다. 당연히 정부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를 수밖에 없다.●모르몬교父가 가린 세상… 17살에 첫 교실로 물론 소녀는 존재했다. 서류상 없었을 뿐. 그때까지 그에 대한 교육은 산의 리듬 속에서 이뤄졌다. 소녀는 “곧 닥칠 심판의 날을 준비하면서 해가 빛을 잃고 달이 피로 물드는지 살피면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인디언 프린세스’가 보이지 않는 곳에 소녀가 섰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단 한 번도 말해 주지 않았다. 그랬던 소녀가 바다를 건너고 대륙을 지나 낯선 곳의 최고 명문대학에서 박사가 됐다. ‘배움의 발견’은 열여섯 살까지 학교에 가 본 적이 없던 소녀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따기까지 파란만장한 배움의 여정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다. 저자는 1986년 미국 아이다호의 한 산골마을에서 7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종말이 임박했다고 믿는 모르몬교 근본주의자였다. 성경 이사야서의 ‘그가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다’라는 문구를 읽고는 냉장고에 있던 우유 등 음식물을 죄다 버린 뒤 꿀 190ℓ로 채울 만큼 광적이었다.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채찍으로 가르칠 만큼 폭력적인 성향도 보였다. 저자가 처음 교실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열일곱 살 때였다. 대학에 들어간 셋째 오빠가 ‘인디언 프린세스’ 너머의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해 준 것이 계기가 됐다. 저자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대입자격시험(ACT)에 필요한 과목들을 독학했고, 기적처럼 브리검영대학(모르몬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대학으로 홈스쿨링 학생들을 뽑는다)에 합격했다. ●정신이 자라고 책임을 질 줄 아는 힘, 교육 케임브리지를 향해 낯선 대륙으로 떠나기 전 어느 날 밤, 저자는 거울 속에서 열여섯 살 소녀를 본다. 저자는 소녀를 불렀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를 떠나 버린 것이다. 그날 이후 그가 내린 결정들은 소녀가 내렸던 이전의 결정과는 다른 것들이었다. 거울 밖에 선 이 역시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였다. 이 자아를 뭐라 부를까. 변신, 탈바꿈, 반란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터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고 부른다.” 책은 한 여성의 입지전적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의 자아를 찾기 위해 주변 환경과 싸우는 투쟁의 이야기이다. 저자에게 배움이란 단지 좋은 대학에서 학위를 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깊고 더 넓게 보는 눈을 뜨고 자신을 재발견하는 일이었다. 저자가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와 나눈 대화 중에 그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나온다. “배움은 발견하는 과정입니다. 우리의 정신이 성장하고, 책임을 받아들이고, 놓을 것은 놓아 보내고, 품을 것은 더 힘껏 품을 줄 알게 되는 과정 모두가 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X세대의 우울 대변한 엘리자베스 워첼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X세대의 우울 대변한 엘리자베스 워첼

    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스물일곱 살이던 1994년 우울증과 약물중독으로 힘겨웠던 나날을 돌아본 ‘프로잭 네이션(Prozac Nation’)’을 발표해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발돋움한 미국 작가 엘리자베스 워첼이 쉰셋으로 짧은 삶을 마쳤다. 남편 짐 프리드는 유방암과 오랫동안 싸워온 부인이 7일(현지시간) 뉴욕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고 영국 BBC가 미국 매체들을 인용해 전했다. 고인의 대표작 ‘프로잭 네이션’은 극단의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일부에서는 그를 투사로 존중한 반면, 다른 쪽에서는 자기 탐닉이 심했다고 비판했다. 자해 장면이 자주 등장하고 마약이나 난잡한 성생활 등이 곧잘 묘사됐다. 하지만 그녀를 X세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만들어준 것도 사실이었다, 고인은 2012년 BBC 인터뷰를 통해 이 책이 “성장”을 다뤘을 뿐이라고 밝혔다.고인은 이 밖에 ‘Bitch: In Praise of Difficult Women)’와 ‘More, Now, Again: A Memoir of Addiction)’ 등을 내놓았다. 또 일간 뉴욕 타임스(NYT)에 에세이를 곧잘 실었던 것으로도 유명한데 2015년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유방암에 걸렸으며 항암 치료를 받고 두 쪽 모두 절제했다고 고백했다. 하버드 대학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했고 NYT 매거진과 ‘뉴요커’ 편집자로 일해 남부럽지 않은 삶을 누렸을 것 같은 워첼은 유대인 결손 가정 출신이었다. 두 살 때 이혼한 부모는 양육비를 갖고 죽을 듯이 싸우는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는 집에서 잠이나 청하는 부류였고, 유대인 혈통의 어머니는 소리를 질러대는 쪽이었다. 그녀는 잠만 자는 아버지 옆에서 혼자 노는 아이였다. 백화점에서 일하며 홀로 키우던 어머니는 딸을 캠프에 보내려고 아둥바둥했고, 딸은 수면제 프로작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녀는 비정형성 우울증, 다시 말해 어떤 약도 처방할 수 없는 우울증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걸핏하면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했고 서른한 살에 요절한 시인 실비아 플라스(1932~1963년)를 흠모해 자살 소동을 벌였다. 소셜미디어에서 추모의 글이 잇따르고있다. 에린 블랙모어 기자는 “엘리자베스 워첼의 90년대에 끼친 영향을 제대로 옮기기란 불가능하다. 그녀의 글은 사과 따위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날것에다 정직했다. 그녀는 X세대의 여성성, 공감, 분노를 아주 특별한 형태로 보여줬다”고 적었다. 여배우 미아 패로는 고인을 “똑똑하고 복잡하며 매력 넘치고 재미있으면서 친절했던 인물”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홍준표 “‘발정 준표’ 개의치 않아…거짓 프레임에 불과”

    홍준표 “‘발정 준표’ 개의치 않아…거짓 프레임에 불과”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막말 홍준표’도, ‘발정 홍준표’도 나는 개의치 않는다. 그것은 좌파들과 당내 일부 반대파들이 덮어씌운 거짓 프레임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면서 “그럴 때마다 나는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라고 한다”고 했다. 홍준표 전 대표는 7일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에 대한 여러 부정적인 별명에 대해 이렇게 밝히며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떠올렸다. 홍준표 전 대표는 “평생을 ‘빨갱이’라는 상대방이 덮어씌운 프레임을 안고 편견 속에서 한 많은 정치 인생을 살다 간 DJ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요즘”이라고 했다. 그는 “보수는 점잖아야 한다는 것은 아직도 배부른 자들이 한가한 투정에 불과하다”며 “점잖음만으로 잘못된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때로는 사나운 맹수가 되고 때로는 거친 무법자가 되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새해 들어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총선을 앞두고 국민 통합이라는 화두에 몰입하는 것은 그것만이 대한민국이 살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라며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세계질서에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민 통합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 전 단계로 보수우파 대통합부터 이뤄야 한다. ‘나’를 버리고 대한민국을 생각하자. 시간 끌기가 아닌 진정성 있는 보수우파 대통합을 추진해 주시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전날 보수대통합을 위해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 전 대표는 황교안 대표의 ‘수도권 험지 출마 선언’에 대해 “시간 끌기”라고 비판한 바 있다. 한편 홍준표 전 대표가 언급한 ‘발정’은 그가 자서전에서 밝힌 대학 시절 일화에서 비롯됐다. 그는 2005년 펴낸 자전적 에세이 ‘나 돌아가고 싶다’에서 ‘대학교 하숙 시절 룸메이트가 여학생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돼지 흥분제를 구해 달라고 했고, 하숙집 동료들이 궁리 끝에 흥분제를 구해다 줬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지난 2017년 19대 대선에서 이와 관련한 논란이 불거졌고, 3차 대선 토론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성폭력 범죄를 공모한 후보와 토론할 수 없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홍준표 전 대표는 당시 “잘못했던 일에 대한 반성문으로 썼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내려놓으니 꿈 이뤄지네요” 50대 케이팝 스타의 행복

    “내려놓으니 꿈 이뤄지네요” 50대 케이팝 스타의 행복

    유튜브 ‘탑골GD’ ‘슈가맨3’로 신드롬 기자간담회 취재진 몰리고 팬미팅 매진 “한국 떠나야 했던 아픔, 행복으로 변해” 예전 앨범 LP 재발매·에세이 책도 준비“50대가 된 지금은 ‘케이팝 스타’가 되길 원하지 않아요. 그런데 내려놓으니까, 원하지 않으니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게 신기해요. 다 반대로 되고 있어요.” 31일 데뷔 28년 만의 첫 팬미팅을 앞둔 양준일(50)은 대중의 기억에서 잊혀진 시간 동안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보였다. 엄청난 관심에 얼떨떨해하면서도 설렌 표정이었지만, 시종일관 인기나 주변 상황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초연한 태도였다. 양준일은 이날 서울 광진구 세종대 대양홀에서 기자들과 만나자 “나를 보러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다니 충격적이다. 일주일 전만 해도 그냥 식당 서버였는데, 믿기지 않는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이날 기자간담회에는 취재진 120여명이 몰렸다. 1800석 규모 공연장에서 두 차례 예정된 팬미팅도 티켓 오픈 직후 매진됐다. 유튜브에서 ‘탑골GD’로 소환돼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3’를 거쳐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기까지, 그는 “계획대로 된 게 없다”고 했다. 그저 10대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마주한 현실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과거에 내려놓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에 다시 이런 인기를 원하는 게 옳은지 헷갈리기도 한다”면서도 “나중에 사람들이 나를 원하지 않더라도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자신의 인기 비결에 대해 묻자 “왜 인기를 얻고 있는지 내가 감히 파악할 수 없다. 기자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다. 날 왜 보러 왔나”라며 오히려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30년 가까이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힘든 적도 많았다. 그러나 쓰레기 속에도 보석은 늘 있었다. 그는 “지난 과거에서 한순간도 버리고 싶은 것은 없다”면서 “비자 연장이 거부되거나 한국을 떠나야 했던 아픔이 있지만, 늘 순간순간 나를 환대해 준 사람들 덕분에 과거의 아픔이 녹아 행복으로 변했다”고 떠올렸다. 그런 따뜻한 기억 때문에 연예계 생활을 하지 않더라도 한국에 정착할 계획이다. 미국에 있을 때나 한국에서 영어 공부방을 할 때도 마음으로 한국을 사랑했고 다가가고 싶었다는 그는 “조건만 된다면 한국에 살면서 대중이 원하는 한 활동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20대 때 자신의 음악을 LP 등으로 다시 발매할 계획이다. 자신의 삶과 생각을 담은 책도 준비 중이다. 그는 “지금은 신곡보다 기존 곡들을 충분히 표현할 생각”이라며 “음악의 90%를 몸으로 표현하는 만큼 무대에도 많이 오르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펭’므파탈에 홀리고 ‘조국태풍’에 혼났다

    ‘펭’므파탈에 홀리고 ‘조국태풍’에 혼났다

    하노이 북미 회담 결렬 이후 북핵 위기는 다시 고조됐고, ‘조국 사태’로 극심한 사회 분열을 앓았으며, 미궁에 빠진 화성 연쇄살인의 진범이 드러났다. 암담한 시간 속에 봉준호 감독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이 한 알 청량제가 돼 주기도 했다. ‘다사다난’이 아니고는 표현할 길이 없는 2019년 국내 10대 뉴스를 인물로 되짚어 봤다.●펭수 BTS급 인기 연습생… 정식 데뷔는 언제쯤? 초등학생부터 30~40대 직장인들까지 올해 대한민국은 키 2m 10㎝의 거대한 펭귄, ‘펭수’에게 빠졌다. 지난 4월 EBS TV와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공식 지위는 ‘EBS 연습생’이라지만 8개월 만에 유튜브 구독자 100만명을 돌파한 최고 스타다. 랩, 댄스 등 아이돌급 재능은 물론 할 말은 하면서도 팬들에게는 무한 애정을 표현하는 성격이 순식간에 팬들을 사로잡았다. 한 취업 사이트가 진행한 ‘올해의 인물’ 설문조사에서는 방탄소년단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펭수 모시기’에 방송가뿐 아니라 정부부처, 산업계 등 전 분야가 공을 들인다. 한 의류업체가 진행한 펭수 협업 제품은 3시간 만에 완판됐고, 펭수의 에세이 다이어리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뛰어넘는 판매 기록을 세웠다. 정식 데뷔가 아쉽지 않을 펭수의 인기는 2020년에도 주욱.●조국 ‘36일 재임’ 법무장관…공정·檢개혁 화두로 2019년은 ‘조국 정국’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좋든 싫든 ‘공정사회’와 ‘검찰개혁’ 화두를 우리 사회에 풀어야 할 숙제로 던졌다. 조국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 초기 민정수석으로 검찰을 비롯한 권력기관 개혁 작업을 진두지휘하다 8월 9일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그러나 가족의 사모펀드 투자 논란 및 의학 논문 제1저자 등재·표창장 위조 의혹 등이 잇따르며 여론이 급격히 악화했다. 결국 9월 9일 장관 임명 뒤 약 한 달 만인 10월 14일 장관직을 사퇴했다. 이후 검찰 조사를 받으며 유무죄를 법정에서 가려야 하는 신세가 됐다. 특히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과 ‘청와대 하명수사’ 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어 당분간 조 전 장관을 둘러싼 논란은 새해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손흥민 전설 된 ‘손’… 발롱도르 22위 아시아 최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손흥민(27·토트넘)은 한국 축구 불세출의 스타다. 11월 7일 유럽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유럽 무대 개인 통산 122호, 123호 골을 거푸 터뜨리며 ‘레전드’ 차범근(66) 전 대표팀 감독이 보유하던 한국인 유럽 역대 최다 골(121골) 기록을 갈아 치웠다. 12월 8일 번리전에서는 75m 질주 끝에 그림 같은 원더골로 세계를 열광시켰다. 세계 최고 축구 선수를 선정하는 발롱도르 투표 결과 22위에 오르며 아시아 선수 역대 최고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성탄절 직전 레드카드 퇴장 이슈로 2019년을 일찍 마무리한 것은 옥에 티.●윤석열 살아 있는 권력 향한 칼날의 끝은… ‘조국 사태’와 ‘검찰 개혁’, ‘권력형 비리 수사’의 중심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있다. 검찰총장에 오른 지 33일 만에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 가족을 상대로 대대적 수사를 벌였다. 윤 총장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린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 총장의 소신에 박수를 치는 이도 있지만 ‘검찰개혁을 막으려는 쿠데타’, ‘검찰주의자’라는 비난도 적지 않다. ‘유재수 전 금융위 국장 감찰 무마 의혹’, ‘김기현 전 울산시장 하명수사 의혹’ 등 권력을 향한 칼날은 현재진행형이다.●양승태 ‘헌정 초유’ 사법부 수장 피고인석 서다 그야말로 ‘헌정사상’ 최초로 역대 대법원장 가운데 처음 구속 기소된 인물이다. 전직 대법원장이지만 엄연한 사법부의 최고 수장을 구속하는 것은 법원의 판단이기 때문에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2011년 9월부터 6년간 대법원장을 지내며 법원행정처를 통해 ‘재판거래’ 등 반헌법적 구상을 보고받고 승인하거나 직접 지시를 내린 혐의를 받고 있다. 7월 재판부의 직권 보석 결정에 따라 석방된 이후 불구속 재판을 받고 있다. 최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병원에서 폐암 의심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기로 했다.●김정은 대화 판 깰 듯 말 듯… 응답하라, 로켓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한 해를 보냈다. 신년사에서 “언제든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앉을 준비가 됐다”고 자신만만해했던 그는 2월 하노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로 협상 시한을 설정하고 대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궁지에 몰렸다. 이후 6·30 판문점 남북미 정상 회동, 10월 스톡홀름 북미 비핵화 실무 협상에서도 북미 간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새해 김 위원장이 선택할 ‘새로운 길’의 무게 역시 만만치 않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따른 부담은 쌓여 가고 대선 레이스를 치러야 하는 미국의 북한에 대한 관심은 낮아질 전망이다.●봉준호 ‘기생충’ 황금종려상… 세계 영화제 휩쓸다 그야말로 ‘봉준호의 해’였다. 영화 ‘기생충’이 지난 5월 프랑스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움켜쥔 이후 각종 영화제의 굵직한 상을 휩쓸었다. 영화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외국 영화들이 세운 기록을 갈아 치우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기생충’의 선전은 올해로 100년을 맞은 한국 영화계에도 큰 선물이었다. 봉 감독은 내년 초에도 숨 쉴 틈 없는 일정을 이어 간다. 1월 5일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시작으로다음달 시상식만 10곳에 이른다. 봉 감독의 수상 행보가 2월 9일 미국 최고의 영화제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정점을 찍을지 관심이 쏠린다.●이춘재 30년 만에 밝혀진 ‘살인의 추억’ 그놈 ‘살인의 추억’ 그놈의 30년 베일이 벗겨졌다. 1980년대 중반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 당시 과학수사의 한계로 미궁에 빠졌다가 DNA 분석 기술 발달로 33년 만에 밝혀졌다. 1994년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복역하던 이춘재(56)가 사건 유류품에서 DNA가 나오고 가석방 희망이 사라지자 입을 열었다. 14건의 살인과 30여건의 성폭행 등 범행을 털어놨다. 모방 범죄로 알려져 범인이 검거돼 복역까지 마친 8차(1988년) 사건도 자신의 소행이라 실토, 충격을 더했다.●승리 버닝썬 게이트… ‘승츠비’의 몰락 지난해 11월 ‘클럽 버닝썬 폭행 사건’을 계기로 올해 연예계 사건·사고의 중심에 섰다. 일명 ‘승리 게이트’라 불리기도 했다. 승리는 또 불법 촬영 영상물 공유, 경찰 수뇌부 유착, 연예계 성접대 알선, 마약 유통 등 다양한 의혹에 휘말렸다. 특히 성접대 의혹으로 연예계 은퇴 선언을 했다. 결국 승리는 지난 6월 성매매 알선, 성매매, 변호사비 횡령, 버닝썬 자금 횡령, 증거인멸교사, 성폭력특별법(카메라 등 이용 촬영) 위반, 식품위생법 위반 등의 혐의로도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고유정 시신 없는 잔혹 살해극에 온 국민 공포 전남편(36)과 의붓아들(5)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고유정(36)의 범행은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렸다. 제주에서 살해한 전남편의 시신을 차에 싣고 육지까지 이동하며 훼손·유기하는 등 대담하고 침착한 범행이었다. 고유정은 10여 차례 열린 재판에서 전남편이 성폭행하려 해 벌어진 우발적인 사건이라며 범행을 사전 계획했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검찰 측 증거는 정황증거일 뿐 전남편 시신 등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또 검찰은 고유정이 지난 3월 새벽 충북 청주시 자택에서 의붓아들 등 위에 올라타 압박해 사망하게 한 것으로 보고 있다.
  • ‘펭’므파탈에 홀리고 ‘조국태풍’에 혼났다

    ‘펭’므파탈에 홀리고 ‘조국태풍’에 혼났다

    하노이 북미 회담 결렬 이후 북핵 위기는 다시 고조됐고, ‘조국 사태’로 극심한 사회 분열을 앓았으며, 미궁에 빠진 화성 연쇄살인의 진범이 드러났다. 암담한 시간 속에 봉준호 감독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이 한 알 청량제가 돼 주기도 했다. ‘다사다난’이 아니고는 표현할 길이 없는 2019년 국내 10대 뉴스를 인물로 되짚어 봤다.●펭수 BTS급 인기 연습생… 정식 데뷔는 언제쯤? 초등학생부터 30~40대 직장인들까지 올해 대한민국은 키 2m 10㎝의 거대한 펭귄, ‘펭수’에게 빠졌다. 지난 4월 EBS TV와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공식 지위는 ‘EBS 연습생’이라지만 8개월 만에 유튜브 구독자 100만명을 돌파한 최고 스타다. 랩, 댄스 등 아이돌급 재능은 물론 할 말은 하면서도 팬들에게는 무한 애정을 표현하는 성격이 순식간에 팬들을 사로잡았다. 한 취업 사이트가 진행한 ‘올해의 인물’ 설문조사에서는 방탄소년단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펭수 모시기’에 방송가뿐 아니라 정부부처, 산업계 등 전 분야가 공을 들인다. 한 의류업체가 진행한 펭수 협업 제품은 3시간 만에 완판됐고, 펭수의 에세이 다이어리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뛰어넘는 판매 기록을 세웠다. 정식 데뷔가 아쉽지 않을 펭수의 인기는 2020년에도 주욱.●조국 ‘36일 재임’ 법무장관…공정·檢개혁 화두로 2019년은 ‘조국 정국’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좋든 싫든 ‘공정사회’와 ‘검찰개혁’ 화두를 우리 사회에 풀어야 할 숙제로 던졌다. 조국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 초기 민정수석으로 검찰을 비롯한 권력기관 개혁 작업을 진두지휘하다 8월 9일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그러나 가족의 사모펀드 투자 논란 및 의학 논문 제1저자 등재·표창장 위조 의혹 등이 잇따르며 여론이 급격히 악화했다. 결국 9월 9일 장관 임명 뒤 약 한 달 만인 10월 14일 장관직을 사퇴했다. 이후 검찰 조사를 받으며 유무죄를 법정에서 가려야 하는 신세가 됐다. 특히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과 ‘청와대 하명수사’ 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어 당분간 조 전 장관을 둘러싼 논란은 새해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손흥민 전설 된 ‘손’… 발롱도르 22위 아시아 최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손흥민(27·토트넘)은 한국 축구 불세출의 스타다. 11월 7일 유럽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유럽 무대 개인 통산 122호, 123호 골을 거푸 터뜨리며 ‘레전드’ 차범근(66) 전 대표팀 감독이 보유하던 한국인 유럽 역대 최다 골(121골) 기록을 갈아 치웠다. 12월 8일 번리전에서는 75m 질주 끝에 그림 같은 원더골로 세계를 열광시켰다. 세계 최고 축구 선수를 선정하는 발롱도르 투표 결과 22위에 오르며 아시아 선수 역대 최고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성탄절 직전 레드카드 퇴장 이슈로 2019년을 일찍 마무리한 것은 옥에 티.●윤석열 살아 있는 권력 향한 칼날의 끝은… ‘조국 사태’와 ‘검찰 개혁’, ‘권력형 비리 수사’의 중심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있다. 검찰총장에 오른 지 33일 만에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 가족을 상대로 대대적 수사를 벌였다. 윤 총장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린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 총장의 소신에 박수를 치는 이도 있지만 ‘검찰개혁을 막으려는 쿠데타’, ‘검찰주의자’라는 비난도 적지 않다. ‘유재수 전 금융위 국장 감찰 무마 의혹’, ‘김기현 전 울산시장 하명수사 의혹’ 등 권력을 향한 칼날은 현재진행형이다.●양승태 ‘헌정 초유’ 사법부 수장 피고인석 서다 그야말로 ‘헌정사상’ 최초로 역대 대법원장 가운데 처음 구속 기소된 인물이다. 전직 대법원장이지만 엄연한 사법부의 최고 수장을 구속하는 것은 법원의 판단이기 때문에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2011년 9월부터 6년간 대법원장을 지내며 법원행정처를 통해 ‘재판거래’ 등 반헌법적 구상을 보고받고 승인하거나 직접 지시를 내린 혐의를 받고 있다. 7월 재판부의 직권 보석 결정에 따라 석방된 이후 불구속 재판을 받고 있다. 최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병원에서 폐암 의심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기로 했다.●김정은 대화 판 깰 듯 말 듯… 응답하라, 로켓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한 해를 보냈다. 신년사에서 “언제든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앉을 준비가 됐다”고 자신만만해했던 그는 2월 하노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로 협상 시한을 설정하고 대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궁지에 몰렸다. 이후 6·30 판문점 남북미 정상 회동, 10월 스톡홀름 북미 비핵화 실무 협상에서도 북미 간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새해 김 위원장이 선택할 ‘새로운 길’의 무게 역시 만만치 않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따른 부담은 쌓여 가고 대선 레이스를 치러야 하는 미국의 북한에 대한 관심은 낮아질 전망이다.●봉준호 ‘기생충’ 황금종려상… 세계 영화제 휩쓸다 그야말로 ‘봉준호의 해’였다. 영화 ‘기생충’이 지난 5월 프랑스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움켜쥔 이후 각종 영화제의 굵직한 상을 휩쓸었다. 영화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외국 영화들이 세운 기록을 갈아 치우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기생충’의 선전은 올해로 100년을 맞은 한국 영화계에도 큰 선물이었다. 봉 감독은 내년 초에도 숨 쉴 틈 없는 일정을 이어 간다. 1월 5일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시작으로다음달 시상식만 10곳에 이른다. 봉 감독의 수상 행보가 2월 9일 미국 최고의 영화제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정점을 찍을지 관심이 쏠린다.●이춘재 30년 만에 밝혀진 ‘살인의 추억’ 그놈 ‘살인의 추억’ 그놈의 30년 베일이 벗겨졌다. 1980년대 중반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 당시 과학수사의 한계로 미궁에 빠졌다가 DNA 분석 기술 발달로 33년 만에 밝혀졌다. 1994년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복역하던 이춘재(56)가 사건 유류품에서 DNA가 나오고 가석방 희망이 사라지자 입을 열었다. 14건의 살인과 30여건의 성폭행 등 범행을 털어놨다. 모방 범죄로 알려져 범인이 검거돼 복역까지 마친 8차(1988년) 사건도 자신의 소행이라 실토, 충격을 더했다.●승리 버닝썬 게이트… ‘승츠비’의 몰락 지난해 11월 ‘클럽 버닝썬 폭행 사건’을 계기로 올해 연예계 사건·사고의 중심에 섰다. 일명 ‘승리 게이트’라 불리기도 했다. 승리는 또 불법 촬영 영상물 공유, 경찰 수뇌부 유착, 연예계 성접대 알선, 마약 유통 등 다양한 의혹에 휘말렸다. 특히 성접대 의혹으로 연예계 은퇴 선언을 했다. 결국 승리는 지난 6월 성매매 알선, 성매매, 변호사비 횡령, 버닝썬 자금 횡령, 증거인멸교사, 성폭력특별법(카메라 등 이용 촬영) 위반, 식품위생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현재 승리는 환치기수법으로 도박 자금을 조달한 혐의로도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고유정 시신 없는 잔혹 살해극에 온 국민 공포 전남편(36)과 의붓아들(5)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고유정(36)의 범행은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렸다. 제주에서 살해한 전남편의 시신을 차에 싣고 육지까지 이동하며 훼손·유기하는 등 대담하고 침착한 범행이었다. 고유정은 10여 차례 열린 재판에서 전남편이 성폭행하려 해 벌어진 우발적인 사건이라며 범행을 사전 계획했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검찰 측 증거는 정황증거일 뿐 전남편 시신 등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또 검찰은 고유정이 지난 3월 새벽 충북 청주시 자택에서 의붓아들 등 위에 올라타 압박해 사망하게 한 것으로 보고 있다.
  • [김초엽 작가의 과학을 펼치다] 꽃가루는 범죄 사건 진실을 말해 준다

    [김초엽 작가의 과학을 펼치다] 꽃가루는 범죄 사건 진실을 말해 준다

    꽃은 알고 있다/퍼트리샤 윌트셔 지음/김아림 옮김/웅진지식하우스/364쪽/1만 6500원‘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프랑스의 법의학자 에드몽 로카르가 남긴 격언은 현대 법의학의 절대 명제가 됐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서든 법의학을 접할 수 있다. 신문 기사, 범죄 수사를 다룬 르포뿐만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 같은 대중매체의 수사 과정에서도 현장에 남은 DNA, 지문, 머리카락은 범죄 사실을 증명하는 중요한 증거로 활용된다. 그런데 여기에 전혀 다른 종류의 증거를 모으는 과학자가 있다. 그는 용의자의 지문을 찾는 대신 신발, 옷, 차 시트에 남은 꽃가루와 포자를 모은다. 그리고 현미경으로 수집한 표본을 들여다보며 꽃가루가 그려 내는 특정한 장소의 그림을 구체적으로 그려 나간다. 그 장소는 시체가 묻혀 있던 곳일 수도 있고 용의자가 걸었던 길일 수도 있다. 그는 자신 있게 말한다. 신발에 묻은 꽃가루를 보면 당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어느 길을 따라 집으로 왔는지 알아맞힐 수 있다고. ‘꽃은 알고 있다’는 영국의 식물학자, 화분학자 그리고 법의생태학자로 활약해 온 퍼트리샤 윌트셔의 에세이다. 의학, 식물학, 미생물과 일반생태학, 환경고고학이라는 여러 분야를 거쳐 법의생태학의 세계로 진입하기까지, 그리고 수많은 범죄 사건에서 수수께끼를 풀어내기까지 흥미진진한 인생 여정이 펼쳐진다. 미세한 꽃가루 입자들이 어떻게 사건의 진실을 알려줄 수 있을까. 윌트셔는 조그만 꽃가루의 시점에서는 아무리 작은 정원도 다양한 생태학적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정원 한 귀퉁이와 맞은편 귀퉁이는 다른 생태를 가진다. 식물들은 특정한 조건, 특정한 환경에서 군락을 이루며 자란다. 동시에 발견되는 여러 꽃가루 지문들은 장소에 따라 고유한 ‘화분학적 프로파일’을 이룬다. 때로는 시체에 퍼진 균류, 곰팡이가 범죄가 행해진 시간과 장소를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꽃가루와 포자들은 놀랄 만큼 튼튼해서 오랫동안 보존되고 머리카락이나 직물에 잘 들러붙어 법적 증거로 쓰이기에 유리하다. 윌트셔는 법의생태학의 기반을 확립한 선구자로서 화분학이 범죄 수사에 활용될 수 있도록 수많은 프로토콜을 만들어 발표했다. 그는 사건을 다루는 과정에서 고민했던 법의학자의 책임과 진실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이야기한다. 가장 불편한 장소에서 끈질기게 진실을 추적해 나가는 그의 이야기는 독자에게 삶과 죽음, 자연에 관한 새로운 질문들을 남긴다.
  • 파주 출판업체 화재 한 달… “정부 나서서 유통 구조 손봐야”

    파주 출판업체 화재 한 달… “정부 나서서 유통 구조 손봐야”

    피해 책 목록 확산·출협 다음달까지 모금지난달 29일 경기도 파주 배본사에서 화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가까워지지만 화재 복구와 피해 보상은 난망이다. 피해를 본 영세 출판 사업자들이 모임을 구성해 방법을 찾고 있지만 쉽지 않다. 피해를 입은 책 목록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출판사 돕기 운동이 확산하고 있고,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도 최근 회원 출판사를 대상으로 모금 운동에 나섰다. 파주 출판 배본사 화재 피해 업체 36곳의 모임 대표인 안소정 퍼블리싱 대표는 “배본사에서 화재 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출판사에 관한 보상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출협이 문화체육관광부 공공기관인 출판산업진흥원에 사정을 이야기했지만, 이마저 보상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25일 밝혔다. 앞서 지난달 29일 오전 5시쯤 경기 파주시 월롱면에 있는 배본사 ‘북스로드’ 물류창고에서 일어난 화재로 495.8㎡(150평)짜리 창고 2동이 전소했다. 배본사는 출판사의 책을 보관하다 서점으로 보내는 중간유통업체다. 이 화재로 출판사 60여곳이 맡긴 책 50만권이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도서출판 이음 측은 이를 목록으로 만들어 최근 온라인에 배포했다. 문학·에세이가 35종, 인문이 6종, 어린이 책이 3종, 실용·예술이 12종, 자기계발·경제경영이 3종, 학습·외국어가 19종에 이른다. 경찰 조사가 끝나지 않았지만, 소규모 업체들의 피해액이 30억원에 이를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출판사 보상은 난망이다. 배본사가 화재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탓이다. 그러나 출판 유통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목소리도 높다. 업계에 따르면 배본사 대부분이 ‘월 보관 3000부에 배본 1000부’를 조건으로 출판사에서 50만원 이상을 받는다. 북스로드는 500부까지도 받아 주고 보관료도 10만원 미만으로 낮춰 소규모 출판사들과 주로 거래하는 업체다. 게다가 배본사들이 드는 화재보험 보상 범위가 건물이나 집기를 우선하는 사례가 대부분이고, 책에 관한 보상은 일부에 그친다. 출판사가 화재 시 책에 관한 보상을 온전히 받으려면 물류업체에 매달 보관료를 내면서 별도로 책에 관한 보험을 따로 들어야 하는데, 출판사로선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 이번에 1500권 이상 화재 피해를 당한 남해산책 출판사는 블로그를 통해 “기사가 나가자 ‘보험을 왜 안 들어 놨느냐’고 지적하는 댓글이 많다. 배본사가 화재보험을 들지 못했던 이유는 보상액이 전체 피해액의 10~30%뿐이지만 보험료는 감당할 수 없다는 데 원인이 있고, 책 유통 구조에도 문제가 있다”고 토로했다. “사정을 잘 모르는 누리꾼들의 댓글이 출판사를 더 가슴 아프게 한다”고도 했다. 안 대표는 이 문제와 관련해 “다음에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면 출판 사업자들은 속절없이 피해를 당한다. 보상도 보상이지만, 정부가 법을 통해 대본사가 화재보험을 강제로라도 들게 해야 하고, 전반적인 유통 구조도 손봐야 한다는 문제를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출판문화협회는 24일부터 다음달 10일까지 회원사와 출판 관련 단체 1700곳을 대상으로 모금 운동을 펼치기로 했다. 출협 관계자는 “경찰 측에서 정확한 피해 규모가 나오면 모금액 전액을 모임 측에 전달해 배분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오늘도 펭수 내일도 펭수, 서점 발매 지연될 듯..왜?

    오늘도 펭수 내일도 펭수, 서점 발매 지연될 듯..왜?

    EBS 캐릭터 펭수의 에세이 다이어리 ‘오늘도 펭수, 내일도 펭수’의 오프라인 서점 발매 일정이 늦춰질 전망이다. 18일 출판업계에 따르면 ‘오늘도 펭수, 내일도 펭수’는 19일 정식 발매될 예정이었으나 출판사와 유통업계 사정으로 빨라도 오는 23일 이후나 오프라인 서점에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출간을 맡은 다산북스는 인터넷 예약분에 대해서는 당초 약속대로 19일부터 출하해 20일 중으로는 배송까지 완료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지만 개별 유통업체와 물류업체 사정에 따라 이 일정도 다소 늦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보문고와 예스24 등 주요 인터넷 서점들은 지난 16일 이후 예약분에 대해서는 24일 이후 출고될 것이라고 이미 공지했다. 출판업계에서는 인쇄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해 ‘오늘도 펭수, 내일도 펭수’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는 설이 제기됐으나 김선식 다산북스 발행인은 “인쇄는 차질없이 진행됐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달 28일 예스24에 따르면 펭수의 에세이 다이어리 ‘오늘도 펭수, 내일도 펭수’는 예약판매 3시간 만에 1만부가 팔렸다. 교보문고에서는 6500부가 팔렸고, 알라딘에서는 판매 개시 10분 만에 1000부를 돌파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심현희 기자의 맛있는 술 이야기] #위스키+굴, #로제와인+방어, 외워두세요.

    [심현희 기자의 맛있는 술 이야기] #위스키+굴, #로제와인+방어, 외워두세요.

    창밖에는 눈이 내립니다. 환기를 위해 살짝 열어 둔 문틈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솔솔 들어옵니다.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와 열기로 가득 찬 실내는 후끈 달아올라 소매를 걷어붙여 봅니다. 테이블 위엔 기름기 좔좔 흐르는 선홍빛 방어와 씨알이 주먹만 한 석화가 쌓여 있네요. 유난히 ‘술맛’이 좋은 겨울, 송년회 시즌이 찾아왔습니다. 어떤 술을 선택해야 오늘의 이 자리가 더욱 특별해질까요? ●아이라 위스키, 말랑한 굴의 식감 살려 먼저 굴을 집었다면 굴 알맹이 위에 위스키를 한두 방울 떨어뜨려 보세요. 에세이 ‘위스키 성지여행’을 쓴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 중 스코틀랜드의 한 레스토랑에서 석화 한 접시와 싱글몰트 위스키를 주문해 함께 맛보고는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는 먼저 레몬을 뿌린 굴 위에 위스키를 적셔 알맹이를 쏙 빼 먹고, 껍질에 남아 있는 굴즙과 위스키가 섞인 국물을 쪽쪽 빨아마셨습니다. 책이 발간된 이후 스코틀랜드의 식문화이기도 한 하루키식 굴 먹는 방법은 대중적으로도 알려져 ‘위스키+굴’ 조합의 정석이 됐죠. 물론 술과 음식의 페어링 세계에 정답은 없습니다. 맥주 가운데선 흑맥주 ‘스타우트’(혹은 포터)가, 와인 중에서는 프랑스의 화이트와인 샤블리가 겨울철 석화의 짝꿍처럼 등장하지만, ‘피트향 위스키’의 대표주자인 스코틀랜드 아이라 위스키도 훌륭한 선택이랍니다.특히 특유의 이탄(Peat)을 때워 몰트를 말리는 과정을 거친 아이라 지역 위스키들이 석화와 찰떡궁합을 보여 주는데요. 강한 훈제향, 병원 소독약 냄새, 해초향(갯내음) 등의 독특한 아로마를 내뿜는 것이 이 위스키의 특징입니다. 지역별 위스키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다면 초보자도 아이라 위스키를 금세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개성을 가졌죠. 캐러멜, 과일향이 어우러진 부드러운 오크향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이 위스키를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굴과 함께 먹는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아이라 위스키는 굴의 비릿함은 적절하게 잡아 주고, 바다 내음은 증폭시키며 탱글하고 말랑한 굴의 식감을 깔끔하게 살려내는 데 제격입니다. 음식의 본질을 해치지 않으면서 장점은 확 드러내 주는 페어링의 모범 사례라 할 만하죠.●로제와인, 기름기 오른 방어와 찰떡궁합 굴로 애피타이저를 즐겼다면, 이제 방어로 시선을 돌려 봅니다. 지방이 많은 겨울철 대방어는 의외로 우아한 로제와인과 잘 어울린답니다. 로제와인은 일반적으로 레드와인의 재료인 적포도 품종의 포도를 화이트와인을 만드는 방식으로 양조해 연한 분홍색을 띱니다. 맛과 향은 화사하면서도 가볍고 경쾌해 화이트와인은 아쉽고, 레드와인은 부담스러운 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술이죠. 와인과 음식을 매칭할 때 가장 쉬운 방법이 서로의 색깔을 맞히는 것인데요. 방어+로제와인의 조합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해산물은 화이트와인과 먹어야 한다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참치, 방어 등 붉은 생선은 단맛이 없어 깔끔하게 떨어지는 로제와인이나 가벼운 레드와인과 잘 어울립니다. 특히 로제와인은 흰살 생선에 비해 풍미가 짙고 기름기가 잘 오른 겨울 방어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는데요. 풍성한 과일향과 짜릿한 산미가 방어의 기름진 맛을 완화해 줘 자칫 물리기 쉬운 방어를 ‘폭풍 흡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답니다. 이 가운데서도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역에서 나는 로제와인이 드라이한 편이라 음식과 먹기 편하니 여러 산지의 로제와인 중에서 무엇을 고를지 난감할 때는 “프로방스에서 나는 로제와인을 달라”고 하면 됩니다. 자, 아이라 위스키와 프로방스 로제와인, 준비되셨나요? 이제 겨울의 ‘술맛’을 제대로 느끼러 갈 차례입니다. macduck@seoul.co.kr
  • 소통하며 연결된 다수, 세상을 바꾸는 힘이다

    소통하며 연결된 다수, 세상을 바꾸는 힘이다

    얼음은 딱딱하다. 하지만 얼음을 이루는 물 분자는 딱딱하지 않다. 물 분자 사이의 연결 구조가 얼음의 딱딱함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처럼 하나의 존재로는 의미를 읽을 수 없어도 많은 구성 요소들이 연결돼 영향을 주고받을 때 전체는 완전히 새로운 특성을 만들어 낸다. 이런 현상을 만들어 내는 시스템을 ‘복잡계’라 부른다. 우리 인간 사회야말로 대표적인 복잡계다. 복잡계는 시스템의 내부 구성 요소들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구성 요소 사이의 강한 연결로 인해 하나의 구성 요소에서 발생한 작은 사건이 엄청난 규모의 격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한 사람의 패셔니스타가 유행을 만든다거나, 작은 돌멩이 하나의 움직임이 지진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러니 무엇이, 어떻게, 어떤 강도로 연결됐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은 사실상 전체를 보는 것과 다름없다. 이는 복잡계 과학이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신간 ‘관계의 과학’은 이 같은 방식을 충실하게 구현한 과학 에세이다. ‘과학으로 풀어낸 세상살이의 이치’랄까. 복잡계 물리학자인 저자가 통계물리학을 활용해 해석한 인간 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다.저자는 질문을 던지고, 과학적으로 해석한 뒤 이를 현실 세계에 대입하는 방식으로 논지를 이어 간다. 이런 식이다. 우공이산이란 말이 있다.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파는 사람이 큰 성과를 거둔다는 고사성어다. 우공이 오랜 시간 조금씩 흙을 나르다 보면 실제 산을 옮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데 바위도 그럴 수 있을까. 거대한 바위는 혼자 힘으로는 단 1㎝도 옮기기 어렵다. 여럿이 연결되면 다르다. 바위는 연결의 힘으로 옮길 수 있다. 연결은 전체를 부분의 단순한 합보다 훨씬 크게 만들기 때문이다. 단, 조건이 있다. 문턱값을 넘어야 한다. 문턱값은 상(phase)이 전이되는 순간을 뜻하는 과학 용어다. 안방과 마루를 가르는 문턱, 얼음이 녹아 물이 되는 순간이 바로 문턱값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저항운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한 사람 숫자가 인구의 3.5%를 넘어선 ‘모든’ 저항운동은 성공했다고 한다. 이는 연구로 밝혀진 사실이다. 이를 인구 5000만명 정도인 우리에 대입하면 약 200만명이 지속적으로 저항운동에 참여할 경우 성공한다는 뜻이다. 이때 필요한 약 200만명이 바로 ‘거대한 바위를 옮기기 위한 문턱값’이다.이처럼 소통하며 연결된 다수는 세상을 바꾼다. 우리의 경우 퍽 많이 바꿨다. 저자는 이를 통해 민주주의의 동력은 ‘관계의 연결’이란 것을 확신한다. 책을 읽다 보면 실망스런 이야기도 종종 듣게 된다. 예컨대 누적확률분포로 보면 부의 불평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1만년 이상 이어져 온 부의 편중 현상을 막을 과학적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완벽한 정의’를 꿈꿨던 이상주의자나 ‘계층의 사다리’ 아래 있는 장삼이사들에겐 실망스런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정도를 줄일 방법은 있다. 소득세와 재산세를 적절히 부과하고 기본소득을 주는 거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상식과 과학적 사실은 엄연히 다르다. 저자는 하나의 현상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바꾸는 마법을 부린다. 책은 이 외에도 과학의 중요한 개념들을 현실에 대입해 소개하고 있다. 논란이 됐던 광화문 집회 참가 인원을 ‘암흑물질’이란 개념을 도입해 설명하고, 우정을 수치로 측정하는 방법, 연예인 차은우와 저자의 합성사진을 이용한 ‘중력파’ 검출 방법 등을 소개하기도 한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김기중 기자의 책 골라주는 남자] 다시 권하고픈 책 ‘베스트 10’… 연말 마무리는 책과 함께 ^^

    연말입니다. 여기저기서 많이 팔린 책, 꼭 읽어야 할 책 목록을 내놓습니다. 책골남도 질 수 없죠. 1년 동안 지면으로 소개해 드렸던 책 가운데 다시 한번 권해 드리고픈 10권을 추려 봤습니다. 민주주의는 만능인가(가갸날)는 민주주의는 무조건 옳고 좋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합니다. 민주주의의 순항을 위해 유념해야 할 점도 잘 짚었습니다. 중국의 정치 체계를 제대로 알고 싶은 독자에겐 중국의 엘리트 정치(민음사)를 들춰 보라고 하고 싶네요. 시진핑 독주 체제의 미래까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육식을 논할 때 더 깊이 있는 철학으로 대화하고 싶다면 동물윤리 대논쟁(사월의책)을 읽어 보세요. 개고기는 나쁘다는 식의 얄팍한 내용이 아닙니다. 진짜 동물 윤리를 말합니다. 이 문제를 철학으로 풀어냈다는 사실에 놀라실 겁니다. 목공, DIY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에 관한 책도 많이 나오는데요. 이 중 수리수리 집수리(문학동네)는 집 고치는 일, 집 고치는 사람들에 관한 에세이입니다. 재밌고 깊이도 있습니다. 우리 집도 고치고 싶네요. IB를 말한다(창비교육)는 문제 많은 우리 교육, 대안이 뭘까 잘 모르겠다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를 대안으로 내놨는데, 도입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타이탄(리더스북)은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와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두 천재의 흥미진진한 우주전쟁을 다룹니다. 둘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를 쭉 따라가는데, 천재는 역시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역사서도 빼놓으면 안 되겠죠. 백범의 길-임시정부의 중국 노정을 밟다(상·하, 아르테)는 백범의 머나먼 여정이 생생합니다. 상하이에 가면 저도 한 번 따라가 보고 싶습니다. 제국대학의 조센징(휴머니스트)은 재벌, 검찰을 비롯한 우리나라 엘리트의 기원을 치밀하게 쫓아갑니다. 근현대사 이해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아르테)에선 다빈치의 메모를 통해 그의 삶을 생생하게 재현합니다. 메모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겁니다.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오월의봄)는 그저 신문으로만 접하던 중공업 위기를 생업에서 일하던 이가 생생하게 알려 줍니다. 중공업 특유의 문화를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렇게 10권을 꼽아 보니 책을 읽을 때 느낌이 새록새록 납니다. 더불어 내년에도 좋은 책을 골라 소개하고 싶은 생각 간절합니다. gjkim@seoul.co.kr
  • [이은형의 밀레니얼] 펭수, 밀레니얼의 마음을 훔치다

    [이은형의 밀레니얼] 펭수, 밀레니얼의 마음을 훔치다

    ‘남극 펭씨, 빼어날 수’. EBS 연습생 펭귄 펭수가 대세다. 펭수는 송가인, BTS를 누르고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는가 하면 펭수의 명언과 자작곡 등이 담긴 에세이 ‘펭수 다이어리’가 판매 시작 3시간 만에 1만부를 넘어서며 ‘설민석 한국사’를 누르고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 선보이자마자 판매순위 1위에 올랐고 펭수를 광고모델로 섭외하려는 대기업이 줄을 섰다. 펭수의 팬들은 ‘굿즈’를 출시하라고 아우성이다. 유아기 어린이의 대통령 ‘뽀로로’를 잇는 초등학교 어린이 대상 캐릭터로 시작됐지만 정작 2030세대의 열광적인 인기를 얻고 있어 ‘직통령’(밀레니얼 직장인의 대통령)이라 불린다. 펭수가 밀레니얼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밀레니얼 직장인의 속마음을 대변할 뿐만 아니라 토닥토닥 위로까지 해 주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인기요인은 밑바닥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단계를 밟고 올라가면서 성장해 온 펭수의 스토리 그 자체다. 올해 나이 열 살, 남극 유치원을 졸업하고 ‘우주대스타’가 되기 위해 ‘뽀로로 선배(펭귄)’가 있는 한국으로 헤엄쳐 온 펭수. 최고의 크리에이터가 되겠다는 꿈을 위해 EBS 소품실에서 쪽잠을 잔다. 유난히 큰 덩치 때문에 남극에서도 친구가 없었고, 한국에 와서도 ‘비인간’으로서 ‘소수자의 외로움’을 겪어야 하는 펭수의 스토리는 보는 사람을 짠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2019년 4월 구독자 37명으로 시작한 ‘자이언트펭TV’는 100명, 1000명으로 힘들게 구독자를 늘려간다. 도티 등 잘나가는 크리에이터들에게 끊임없이 조언을 구하고, 비결을 물으면서 노력한 결과 1만명을 지나 이제 120만명의 구독자를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외롭고 힘든 상황을 딛고 자신의 노력으로 한 단계씩 올라서는 펭수의 성장기는 많은 공감을 얻었다. 펭수의 인기가 크게 올라간 것도 불공정에 대해 항의하면서부터였다. 이육대(EBS 아이돌 육상대회)에서 ‘인간팀’대 ‘비인간팀’ 경기를 하던 중 ‘규칙이 비인간에게 불리하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항의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펭수의 매력 포인트는 경계를 넘나드는 무경계의 캐릭터란 점이다. 갑을의 경계가 없고 나이 및 성별의 경계가 없으며 기존 관행이 만든 각종 경계를 모두 허문다. 자신의 프로그램 피디를 ‘매니저’로 부리는가 하면 김명중 EBS 사장의 이름을 친구 부르듯 편하게 외친다. 특히 돈이 필요할 때 ‘김명중’이라고 외침으로써 밀레니얼 직장인들의 환호를 불러일으킨다. 덕분에 김명중 사장은 신세대가 가장 잘 아는 ‘사장님’이 됐다. 성별 구분이 모호하다는 펭귄의 특징을 그대로 살려 성을 구별하지 않는다. 전통적 성 정체성 개념을 넘나든다는 면에서 ‘젠더 프리’, ‘젠더 뉴트럴’이라는 신세대의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연습생 신분으로 KBS, MBC, SBS 등 다른 방송사의 인기프로그램에 자유롭게 진출해 ‘방송통합’을 이루었다는 평도 듣는다. 마지막으로 펭수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에 대한 사랑, 믿음을 당당하게 표출한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에 ‘나 자신’이라고 쓰고, 가장 강력한 경쟁자도 ‘나 자신’이라고 밝힌다. 뭐든지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 자신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이 100만 구독자를 달성했을 때의 소감에서도 “팬들과 제 덕분”이라고 밝혔다. 팬들에게도 ‘남들 눈치 보지 말고 자신 있게 살라’는 의미의 ‘눈치챙겨’라는 말로 등을 토닥여 준다. 큰꿈을 꾸며 성장하고 있지만 동시에 고향을 떠나온 외톨이, 펭수의 위로는 다른 스타의 말보다 더 큰 공감과 위로의 힘을 가진다. 선배 세대가 볼 때 당돌하고 개인적으로 보이는 ‘밀레니얼 세대’지만 그들 스스로는 ‘할 말 다 못 하고 눈치 본다’고 느낀다. 그래서 열 살 펭귄의 거침없는 표현에 대리만족을 느끼고 감정이입까지 하는 모양새다. 밀레니얼의 속마음이 궁금하신 조직의 리더들은 마음을 열고 펭수의 매력에 빠져 보시기 바란다. ‘나이는 몇 살이니’, ‘남자니 여자니’, ‘실제로 인형 속에 있는 사람은 누구니’ 이런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냥 보이는 그대로의 펭수 캐릭터를 즐기고 이해할 수 있다면 아마 조직의 밀레니얼 구성원에게 한발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 에세이 열풍… 올해 베스트셀러 ‘톱3’ 독차지

    에세이 열풍… 올해 베스트셀러 ‘톱3’ 독차지

    교보문고는 올 한 해 도서 판매를 집계한 결과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문학동네)가 올해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고 9일 밝혔다. 혜민 스님의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수오서재)과 김수현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마음의숲)가 2~3위에 오르면서 에세이가 톱3에 뽑혔다. 김수현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는 2017년 종합 5위, 지난해 종합 5위에 이어 올해는 3위를 차지하며 3년 연속 10위권 내에 드는 진기록을 수립했다. 지난해 1위였던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알에이치코리아)는 종합 11위, 2017년 1위였던 ‘언어의 온도’(말글터) 역시 종합 15위에 남았다. 교보문고는 이런 에세이 열풍에 관해 “나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사회현상이 독서시장에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7년 11월 출간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추천하면서 베스트셀러에 다시 진입한 ‘90년생이 온다’(웨일북),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베스트셀러에 들어온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은 각각 4위, 13위다. 어린이 책 가운데에는 유튜브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흔한남매 1’(아이세움)이 10위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와 이에 따른 일본 불매 운동이 출판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일본 여행 도서 판매량이 절반 가까이 줄었으며, 일본 소설은 30% 이상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일제 지배를 정당화하는 내용으로 논란을 부른 ‘반일 종족주의’(미래사)는 이른바 ‘노이즈 마케팅’으로 21위에 올랐다. 지난해 30위권에 3종이나 이름을 올렸던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은 올해 단 1종도 30위권에 들지 못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대우 신화’ 1세대 기업인 김우중 전 대우 회장 별세

    ‘대우 신화’ 1세대 기업인 김우중 전 대우 회장 별세

    만 30세에 창립… 해외시장 개척 주력 외환위기 때 부도 직전 국내 2위 기업 말년엔 동남아 4개국 청년사업가 배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오후 11시 50분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김 전 회장은 지난해부터 급격히 건강이 악화돼 귀국한 뒤 아주대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았으나 올 하반기에 입원 치료를 받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은 알츠하이머를 앓았으며,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었다고 전해졌다. 김 회장은 만 30세인 1967년 대우를 설립한 후 1999년 그룹이 부도를 맞아 해체되기 직전까지 자산규모 기준으로 현대에 이어 국내 2위의 기업을 일군 대표적인 1세대 기업인이다. 1963년 한성실업에 근무하면서 국내 최초로 섬유제품 직수출을 성사시켰으며, 창업후 수출만으로 회사를 초고속으로 성장시켜 ‘대우신화’라는 신조어와 함께 샐러리맨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1990년대 ‘세계경영’을 기치로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해 신흥국 출신의 최대 다국적 기업으로 대우를 성장시킨 저력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당시 대우의 수출 규모는 국내 총 수출액의 10%에 이를 정도였다. 1989년 자전적 에세이집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펴내 6개월 만에 100만부를 돌파하며 최단기 밀리언셀러 기네스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자문위원 중 유일한 아시아인이었던 그는 외환위기 과정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아 경상수지 연 500억달러 흑자 달성, 금 모으기 운동 등 경제회생을 위해 노력했다. 삶의 마지막 여정에서는 청년 사업가 양성에 힘을 쏟았다. 지난 2010년부터는 마지막 봉사라 여기며 GYBM(Global Young Business Manager) 양성사업에 매진해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4개국에 1000여명의 청년 사업가를 배출하기도 했다. 생전에 김 회장은 “청년들의 해외진출을 돕는 GYBM 교육사업의 발전적 계승과 함께 연수생들이 현지 취업을 넘어 창업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체계화하라”고 당부했던 것으로도 전한다. 김 전 회장은 2017년 3월 서울에서 열린 ‘대우 창업 50주년’ 기념행사를 통해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공개된 행보는 없었다. 대우그룹 임직원들은 1999년 그룹 해체 이후에도 해마다 창업기념일에 기념행사를 진행했으며, 그때마다 그를 포함한 300여명의 임직원이 자리를 함께 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르며 빈소는 아주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 조문은 10일 오전 10시부터 가능하다. 영결식은 12일 오전 8시 아주대병원 별관 대강당에서 거행될 예정이다. 장지는 충남 태안군 소재 선영. 유족으로는 미망인 정희자 전 힐튼호텔 회장, 장남 김선협 ㈜아도니스 부회장, 차남 김선용 ㈜벤티지홀딩스 대표, 장녀 김선정 (재)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사위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등이 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봄날 지음, 반비 펴냄) 20여년간 성매매를 경험한 여성이 써내려간 삶의 기록. 열여덟 살에 성매매 업소에 유입돼 업소에서 빠져나오기까지 기나긴 여정을 증언한다. 개인 생애사를 통해 성매매가 결코 특수하고 개별적인 문제가 아니며 빈곤, 성차별, 노동 문제,등이 성매매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지 말한다. 428쪽. 1만 8000원.여론전쟁(현경보 지음, 상상 펴냄)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권력의 부침을 여론조사의 관점에서 조명한 책. 언론인이었던 저자가 방송사들의 선거 예측 노하우와 실패의 원인들을 기록했다. 그는 “총선에서 특정 정당의 과반 의석 확보는 전국 지역구 선거에서 42% 이상의 득표율을 얻을 때 가능했”던 사례를 들어 더불어민주당의 내년 총선을 예상한다. 376쪽. 1만 8000원.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김영민 지음, 사회평론 펴냄)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의 논어 에세이. ‘김 교수답게 고전 ‘논어’를 논하면서도 위트가 넘친다. 결코 폭력을 배제하지 않았던 공자는 ‘논어’에서 딱 한 번 물리적 폭력을 행사했단다. 다리를 쩍 벌리고 앉은 이의 정강이를 지팡이로 후려친 것. 공자는 ‘지하철 쩍벌남’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했을 것이라고 김 교수는 말한다. 276쪽. 1만 5000원.뉴스와 수사학(박주영·이범수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커뮤니케이션 연구자와 일간지 기자가 제시하는 수사학을 활용한 기사작성 모델. 뉴스의 생산·소비·해석과 고전 수사학 이론의 5대 규범인 착상·배열·표현·기억·발표를 접목해 만들었다. 저자들은 이 모델에 따라 기사의 가치 판단부터 수정과 팩트체크에 이르는 단계별 필요한 원칙과 사례를 소개한다. 120쪽. 9800원.야간 경비원의 일기(정지돈 지음, 현대문학 펴냄) 실재하는 것들에서 일부분을 차용, 새로운 모습으로 비트는 작가의 경장편 소설.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의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는 ‘나’는 건물의 메인컨트롤러를 장악해 다국적 기업과 건물주의 소유에서 건축을 해방시키려는 꿈을 가진 국제야간경비원연맹의 아시아 지부장 조지훈을 만나 일을 꾸민다. 140쪽. 1만 1200원.조지 길더 구글의 종말(조지 길더 지음, 이경식 옮김, 청림출판 펴냄) 네트워크 시대의 개막을 예언했던 미국의 미래학자 조지 길더의 저작. 그의 주장에 따르면 빅데이터의 시대는 끝나고 블록체인으로 대표되는 탈중앙화 인터넷에 의해 대체돼 구글과 같은 검색의 제왕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504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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