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에세이
    2026-03-0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046
  • 고통 앞의 언어: 첼란, 허수경, 존 오브 인터레스트[폐허에서 무한으로]

    고통 앞의 언어: 첼란, 허수경, 존 오브 인터레스트[폐허에서 무한으로]

    편집자 주 망각忘却은 모든 문장의 운명입니다. 오래된 책은 잊힌 문장으로 가득한 폐허廢墟이지요. 책을 읽는다는 건 무엇일까요. 폐허에서 무한無限을 찾는 것 아닐까요. 먼 옛날에 쓰인 문장을 가지고 와 이어 써보려고 합니다. 저의 심폐소생으로 책이 부활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의 글 역시 결국 무로 돌아갈 것이기에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입니다. 온라인으로 연재하는 이 시리즈는 기사도 소설도 아니고 시는 더더욱 아닙니다. 옛날과 오늘날을, 필자의 짧은 상상력으로 접붙이는 에세이 정도로 가볍게 읽고 넘어가 주시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신 독자에게 문운文運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5. 고통과 언어: 첼란, 허수경, 존 오브 인터레스트시는 타자에게 가려고 합니다. 시에는 이 타자가 필요합니다. 마주 선 자가 필요합니다. 시는 그것을 찾아내어 말을 건넵니다.파울 첼란, ‘자오선’ 절대적인 고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우리가 서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언어만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것입니다. 우리의 언어는 저 고통과 맞설 수 있을까요. 그것을 ‘충분히’ 담아낼 수 있을까요. ‘고통스럽다’는 말 안에 다 담기는 고통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요. 도처에 널린 고통을 생각해 봅니다. 아무래도 불가능한 일 같습니다. ‘고통스럽다’는 말의 외연은 너무나도 작습니다. 고통은 그 안에 다 담기지 않습니다. ‘고통’이라는 말 너머에 있는 저 고통을 어찌해야 할까요. 말을 멈추고 모든 이해와 공감을 포기해야 할까요. 루마니아 출신 유대인으로 독일어로 시를 썼던, 파울 첼란의 말을 가지고 와 봤습니다. 저의 질문에 첼란은 ‘아니’라고 대답하는 것 같습니다. 독일 문학 세기의 명연설로 꼽히는 1960년 뷔히너상 수상 연설문 ‘자오선’의 일부입니다.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다.” 어디선가 한 번은 들어봤을 말입니다. 첼란과 마찬가지로 유대인이었던 독일의 철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아도르노의 좌절에 공감해 봅니다. ‘홀로코스트’의 상징과도 같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그저 단순한 장소가 아닙니다. 계몽과 이성을 향한 신뢰를 철저하게 무너뜨리는 사건이었습니다. 문명의 귀결이 ‘효율적인 학살’이었다니. 여기서 과연 시를 짓고 문학을 창작하고 문화를 이루는 게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헛되고 허무할 뿐입니다. 아도르노의 문장이 던지고 있는 의문을 안은 채 영화 한 편을 같이 보겠습니다. 지난해 6월 개봉한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입니다. 이 영화도 아우슈비츠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다만 영화의 주인공이 유대인이 아닙니다. 아돌프 회스입니다. 누구냐고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소장입니다. ‘너무나도’ 충실하게,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다했던 군인이죠. 영화는 수용소와 담장을 맞대고 있는 회스의 집을 무대로 합니다. 실제로 회스는 수용소 바로 옆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앞서 다른 ‘아우슈비츠 영화들’이 수용소 내부의 모습을 그렸던 것과 달리 영화는 수용소 안은 단 한 번도 비추지 않습니다. 단란하고 행복한 회스의 집만 보여줄 뿐입니다. 회스의 아내는 정성 들여 집을 관리합니다. 커다란 개도 키우고 텃밭도 가꾸죠. 국내 개봉 포스터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이토록 완벽한 집이 또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안정적인’ 직장이 바로 옆에 있으며 매일 저녁 온 가족이 모여 오붓하게 식사합니다. 밤이 되면 회스는 딸들의 침대맡에서 동화를 읽어줍니다. 그 어떤 가족도 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을 겁니다. 어쩌면 천국이란 지옥의 바로 옆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누구를 위한 천국입니까. 담장 넘어 수용소의 상황은 ‘소리’를 통해 전해져 옵니다. 영화 중간중간 알 수 없는 소리가 쏟아져 나옵니다. 여성의 울부짖음 같기도, 아이들의 비명 같기도 합니다. 강압적인 명령처럼 들리기도 하고요. 총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기차가 오가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습니다. 이 모든 소리가 하나로 꽉 뭉쳐져 있죠. 기괴합니다. 이 소리의 ‘덩어리’를 우리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앞에 했던 이야기와 연결하자면, 이 덩어리는 언어입니까, 아닙니까. 다시 첼란에게로. 한국에서 첼란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허수경 시인입니다. 첼란의 전집이 허수경의 언어로 번역돼 있기 때문입니다. 허수경은 첼란의 삶을 명징한 시어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허수경의 대표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에 실린 ‘루마니아어로 욕 얻어먹는 날에’를 잠깐 보겠습니다.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나치에게 부모를 잃고/오스트리아를 거쳐 파리로 갔다가/마침내 파리에서 자살한 시인”(‘루마니아어로 욕 얻어먹는 날에’ 부분) 2018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허수경은 어느 날 한국을 훌쩍 떠나 독일에서 살았습니다. 허수경의 이 시는 독일에서 쓰인 것으로 보입니다. 화자는 루마니아에서 온 거지에게 동전을 주려다가 멈칫하지요. 그랬더니 그 여자는 루마니아어로 된 욕설을 퍼붓습니다. 루마니아어는 시인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입니다. 독일에서 한국어로 시를 쓰는 일은 무엇일까요. 독일에서 루마니아 시인이 독일어로 쓴 시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독일에서 루마니아어로 욕을 듣는 일은 무엇일까요. 그 모든 알 수 없는 언어가 뭉치고 뭉쳐서 허수경에게는 무엇으로 다가갔을까요. “우리는 서로서로에게 낯선 역사적인 존재들” 허수경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 모든 ‘낯섦’ 앞에서 우리는 다만 역사를 생각합니다. 여담이지만, 요즘 문인들을 만나면 아직도 허수경을 그리워하는 이가 많습니다. 한 시인은 허수경더러 “너무나도 사랑이 많았던 시인, 세상 모든 걸 사랑했던 시인”이라고 슬쩍 말하기도 했습니다. 허수경의 첼란을 잠시 가져오겠습니다. 자기의 부모를 죽인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시를 쓴다는 것의 무게를 가늠해 보면서 말이지요. 한국에는 첼란의 대표작으로 ‘죽음의 푸가’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일부를 가지고 오겠습니다. 문학동네에서 나온 허수경 번역 ‘파울 첼란 전집’ 1권에 실려 있습니다. ‘푸가’의 대가였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음악을 틀어놔도 좋겠네요. “그는 휘파람으로 자신의 유대인들을 불러내 땅속에 무덤을 파게 하네/그는 우리에게 명령하네 이제 춤을 위한 음악을 연주하라”(첼란, ‘죽음의 푸가’ 부분, 허수경 역)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중요하게 언급하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영화에서 갑자기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된 영상이 끼어드는 지점입니다. 굉장히 낯설고 어색합니다. 그래서 더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이 열화상 카메라 영상은 어느 소녀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소녀는 유대인들이 강제로 노역하고 있는 곳에 몰래 과일 등 먹을 것을 숨겨 놓습니다. 이는 감독이 취재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왜 열화상 카메라였을까요. 그 기법에 주목해야 합니다. 소녀의 행동은 ‘밤’에 일어납니다. 밤은 ‘빛’이 없는 시간입니다. 지금이야 밤이 휘황찬란하지만, 그때만 해도 밤은 완전한 어둠이었습니다. 빛이 없는 곳에서 인간의 눈은 하등 쓸모없습니다. 우리의 눈은 소녀의 선행을 포착할 수 없지요. 그러나 꼭 빛이 있어야만 선이 이뤄지는가요. 우리가 보지 않는다고 해서 거기에 아름다움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시지각이 멈춘 곳에서도 ‘인간적인 것’은 나름대로 발휘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열’로만 감지할 수 있습니다. 빛은 흔히 ‘계몽’의 상징으로 이해됩니다. 계몽을 뜻하는 영어 단어 ‘인라이튼먼트’(enlightenment)를 보면 가운데 빛을 의미하는 ‘라이트’(light)가 보일 겁니다. 계몽이나 이성과 같은 단어만으로 인간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얼마나 순진한가요. 소녀가 간직한 열, 그 따스함은 계몽의 바깥, 이성의 바깥, 합리의 바깥에 있습니다. ‘자오선’에서 첼란은 시가 ‘침묵’(Verstummen)으로 향하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합니다. 하지만 첼란은 또 이렇게 덧붙이기도 합니다. “시는 살아있음을 외치면서, ‘사라진 것’에서 ‘여전한 것’으로 끊임없이 되돌아갑니다.” 이 번역은 첼란의 ‘자오선’을 분석한 정명순 전남대 독문과 교수의 논문을 참조했습니다. ‘독일어문학’(2017)에 실린 해당 논문을 정 교수는 “불의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도는 이들 … 고독한 영혼들을 이어주는 ‘자오선’ 같은 첼란의 시문학은 이제 만남의 큰 원을 그리며 독자를 향해 다가온다”고 마무리합니다. 다시, 절대적 고통 앞에 선 우리를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진 언어는 여전히 무기력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것이자 ‘마지막’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말을 해야 하고 글을 써야 합니다. 고통스럽다고, 아프다고 울부짖어야 합니다. 그러면 언젠간 들릴 겁니다. 영화 속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진 저 고통의 소리들이 낱낱이 풀어 헤쳐질 때가 올 겁니다. 시라는 예술은 그 덩어리를 풀어 헤치는, 아주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시는 타자를 찾아내는 것이니까요. 찾아낼 뿐만 아니라 그에게 다가서서 기어이 말을 거는 것이니까요. 유대인으로서 독일어로 시를 썼던 첼란은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절대적인 고통이 꼭 아우슈비츠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고통은 편재(遍在)합니다. 아우슈비츠만을 보고 좌절하고 포기하는 것은 섣부릅니다. 끔찍한 폭력은 역사를 통해 무한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고통받는 존재는 언제나 있었고요. 지난 4월 통영국제음악제의 대미를 장식했던 벤저민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을 들어봅니다. 전능한 신을 찬미하는 가톨릭 전례문과 세계는 어째서 이토록 고통스러운지 질문하는 윌프레드 오언의 시가 뒤섞이는 이 묵직한 음악. 오늘날에도 끊이지 않는 전쟁과 고통 속에서 언어와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훗날 아도르노는 ‘부정변증법’에서 자신이 했던 말을 수정합니다.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쓰는 게 야만적이라고 했던, 그 강력한 선언을요. 자기가 했던 말과 신념을 끝끝내 지켜내고 방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틀렸다는 느낌이 들 때 수정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결단이고 용기 아닐까요. 그는 책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고문당한 자들이 비명을 지를 권리가 있듯 영원한 고통 역시 표현될 권리가 있다. 따라서 아우슈비츠 이후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다고 한 것은 잘못된 것이었을지 모른다.”
  • [훔치고 싶은 문장]

    [훔치고 싶은 문장]

    젠더 프리즘, 그 이후(김미현, 허윤 외 12명 지음, 민음사) “지금까지의 여성문학은 너무나 비문학적으로, 너무 비슷하게 이야기된 감이 있다. 여성 문제에 대한 비판이나 해결에 성급하게 목말라하면서 자주 스스로를 모방하는 자가당착에 빠진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스승의 글 위에 제자들이 글을 더한 팔림프세스(이미 기록된 내용 위에 새롭게 쓰는 것) 형식의 책. 고 김미현 이화여대 국문학과 교수가 남긴 글 위에 이 대학 대학원를 졸업한 ‘포스트 김미현들’의 글이 덧쓰였다. 김 교수는 생전 ‘젠더 프리즘’이란 책을 통해 포스트페미니즘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이 개념은 현대문학에서도 여전히 유효할까. 제자들의 책은 이를 묻고 있다. 336쪽, 2만원. 일본에서 국문학을 가르칩니다(고영란 지음, 정은문고) (일본 최대 입시 학원인) “가와이주쿠 홈페이지를 보면 일본 문학은 ‘일본인이 일본어로 쓴 고유의 문학 작품’이라고 쓰여 있다. 여전히 단일 민족, 단일 언어라는 의식과 혈통, 국적, 국어가 일대일로 대응한다는 생각이 강해서다.” 일본 니혼대 국문학과 고영란 교수의 32년 도쿄살이를 정리한 에세이. 저자가 일본에서 일본 문학 연구자로 거듭나는 과정, 보수적인 일본 ‘국문학 업계’의 두꺼운 장벽을 뚫고 일본 문학 교수로 채용되는 과정 등이 담겼다.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 등 언어의 여러 모습과 타국에서 ‘평범한 다수’와 더불어 사는 과정도 함께 기록했다. 264쪽, 1만 7000원. 덕분에 발견!(클라이브 기퍼드 지음·고시아 헤르바 그림·박규리 옮김, 책읽는곰) “나는 이산화탄소나 아황산가스 같은 해로운 기체와 미세먼지를 흡수할 수 있어요. 어떤 도시에서는 내 ‘오염 제거 능력’에 영감을 받아 건물 벽을 이끼로 덮었어요. 벽 자체가 대형 공기 청정기 노릇을 하는 거죠. 영국의 어떤 학생은 이끼와 발포제를 섞어 실내 공기를 정화하는 특별한 타일을 만들기도 했고요. 가끔 분무기로 물만 뿌려 주면 된다나요.” 인간의 과학 기술 발전에 직접 도움을 주거나 영감을 준 식물을 소개하는 지식 그림책. 아스피린으로 수백만 명의 두통을 고쳐 준 버드나무, 자동차 배기가스를 흡수하는 개야광나무 등 꽃과 나무, 해조류 등을 담았다. 80쪽, 2만원.
  • [훔치고 싶은 문장]

    [훔치고 싶은 문장]

    비평포럼(소영현 등 17명 지음, 문학과지성사) “살아 있고자 하는 이들이 손을 잡고, 이마를 짚으면서 서로를 알아보고자 하는 몸짓을 시가 소중히 기록해 나갈 때, 변혁을 위한 연대와 공감이 불가능하다는 우리 시대의 소문은 거짓으로 판명할 것이다. 살림의 문법으로 쓰이므로, 녹색 계급의 시는 언제까지나 멸종의 맞은편에 있다. 사랑함으로써 살아 있음을 다시 쓰는 편에, 생존을 포함한 생존 너머에.”(양경언 문학평론가) 소수자와 타자의 미래를 위해 쉬지 않고 달려온 한국문학의 현재를 조망할 수 있는 동시대 비평가들의 앤솔러지다. 지난해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한국문학을 향한 세계적 관심이 고조된 가운데 비평적 시선을 통과한 한국문학은 또 어떻게 세계의 독자와 만날까.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아카데미가 기획하고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했다. 412쪽, 2만 6000원. 의미들(수잰 스캔런 지음, 정지인 옮김, 엘리) “한 권의 책은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누군가에게 말하는 한 방식이다. 이 책은 나에게 살아가는 방식에 관한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살아감의 다른 방식들을.” 여성, 정신의학, 자기돌봄, 글쓰기에 대한 깊은 성찰을 탁월하게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작가의 신간이다. 저자가 자신의 정신병동 장기 입원과 낙인의 기억을 문학 읽기 경험에 겹쳐 내며 다시 써 내려간 기록이다. 회고록과 문학비평을 아우르는 에세이라고 보면 되겠다. 실비아 플라스, 마르그리트 뒤라스, 버지니아 울프 등 마음의 고통에 천착했던 여성 작가들의 문장이 저자의 아픔과 포개진다. 512쪽, 2만 2000원. 나는 3학년 2반 전설의 애벌레(김원아 글, 이주희 그림, 창비어린이) “우리는 먹다 먹다 자라서 무엇이 될까?” 2016년 출간 후 30만부 이상 판매되며 화제를 모았던 ‘나는 3학년 2반 7번 애벌레’가 새로운 이야기로 돌아왔다. 이 책은 3학년 2반 교실에서 가장 먼저 깨어난 ‘1번 애벌레’의 흥미진진한 모험을 그린 이야기다. 잎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허물은 언제 벗어야 하는지 알려 줄 ‘선배 애벌레’가 없는 상황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스스로 깨우치는 1번 애벌레. 뒤이어 태어난 애벌레들의 든든한 뒷배인 ‘형님 애벌레’를 자처한다.
  • 변신과 언어: 암소가 된 이오와 한강 ‘희랍어 시간’[폐허에서 무한으로]

    변신과 언어: 암소가 된 이오와 한강 ‘희랍어 시간’[폐허에서 무한으로]

    편집자 주 망각忘却은 모든 문장의 운명입니다. 오래된 책은 잊힌 문장으로 가득한 폐허廢墟이지요. 책을 읽는다는 건 무엇일까요. 폐허에서 무한無限을 찾는 것 아닐까요. 먼 옛날에 쓰인 문장을 가지고 와 이어 써보려고 합니다. 저의 심폐소생으로 책이 부활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의 글 역시 결국 무로 돌아갈 것이기에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입니다. 온라인으로 연재하는 이 시리즈는 기사도 소설도 아니고 시는 더더욱 아닙니다. 옛날과 오늘날을, 필자의 짧은 상상력으로 접붙이는 에세이 정도로 가볍게 읽고 넘어가 주시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신 독자에게 문운文運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4. 변신과 언어: ‘변신 이야기’ 이오와 한강의 ‘희랍어 시간’ 이오의 먹이는 나뭇잎과 쓴맛이 도는 풀이었다. 이오는 침상 대신에, 건초도 깔리지 않은 땅바닥에서 잠을 잤다. 가엾은 이오가 마실 것은 강의 흙탕물뿐이었다. … 불만을 말하고자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이오의 입에서 나온 것은 말이 아니라 나지막한 소 울음소리였다. 이오는 제 목소리에 몹시 놀라 다시는 입을 열지 않았다.오비디우스, ‘변신이야기’ 어떤 ‘변신’은 지극한 슬픔의 기록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존재라서 그렇습니다. 변신하기 전의 모습을 간직하며, 추억하는. 무한한 변신 속에서 우리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회복(回復)은 가능할까요. 온갖 변신이 난무하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이야기 한편을 가지고 와 보겠습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암소로 변해야 했던 가엾은 존재, 이오의 사연입니다. 이오는 강의 신 이나코스의 딸입니다. 빼어난 이오의 미모가 최고신 유피테르(제우스)의 눈에 들고 맙니다. 그가 신들 가운데서도 유명한 ‘바람둥이’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죠. 유피테르가 이오를 탐하고자 합니다. 이오는 원치 않았지만, 절대적인 권능을 지닌 유피테르에게서 영원히 도망칠 순 없었습니다. 결국 유피테르와 이오는 정사를 나누는데요. 그 모습을 아내인 유노(헤라)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하늘을 구름으로 뒤덮었죠. 이걸 이상하게 여긴 유노가 지상으로 내려옵니다. 그곳엔 유피테르와 함께 새하얗고 아름다운 암소 한 마리가 덩그러니 있었지요. 유노는 남편에게 이 암소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추궁합니다. 눈치를 채셨겠지만, 이 암소는 이오입니다. 유피테르가 만약에 대비해 변신시켜놓은 거죠. 끝까지 잡아뗐지만, 유노의 촉은 날카로웠습니다. 그 암소를 자기에게 달라고 하죠. 유피테르는 비겁했습니다.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고 아내에게 암소를 줘버립니다. 유노의 수중에 들어간 이오는 백 개의 눈을 가진 괴물 아르고스의 감시를 받습니다. 그렇게 영원히 소로 살아갈 운명에 처하고 말았죠. 가엾은 이오의 입에서는 언어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소의 울음만이 튀어나왔을 뿐입니다. 이오는 여기에 깜짝 놀라는데요. 이게 핵심입니다. 이오가 ‘여전히’ 놀란다는 것이죠. 소의 모습을 하게 됐지만, 이오는 여전히 이오였습니다. 이오의 변신이 슬픈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오 자신은 물론, 이오의 이야기를 읽는 우리도 이오가 원래 누구였는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변신하기 전의 모습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때 이오는 행복하면 ‘행복하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이오에게는 언어가 있었지요. 언어를 상실한 자의 슬픔. 언어를 가진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저는 여기서 한강의 소설 ‘희랍어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이오 이야기 옆에 한강의 책을 잠시 펼쳐놓아 보겠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이 입을 열어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의 말이 소름끼칠 만큼 분명하게 들린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하찮은 하나의 문장도 완전함과 불완전함, 진실과 거짓, 아름다움과 추함을 얼음처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혀와 손에서 하얗게 뽑아져나오는 거미줄 같은 문장들이 수치스러웠다. 토하고 싶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한강, ‘희랍어 시간’ ‘희랍어 시간’은 실어증에 걸린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 사이의 교감을 그린 소설입니다. 언어를 잃어버린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지금 당장 내게서 언어가 사라진다고 생각해 봅시다. 아니, ‘생각’이 과연 가능한가요. 생각조차 언어인데 말이죠. 어쩌면 언어의 상실은 존재의 근본적인 부정입니다. 어느 철학자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도 했는데, 집이 사라진 존재는 어떻겠습니까. 불안하겠죠. 여자는 심리치료사에게 상담 치료를 받습니다. 심리치료사는 그녀에게 “당신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이해”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심리치료사에게 여자는 펜을 집어 이렇게 씁니다.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그렇습니다. 이해는 언어로 이뤄지는 행위입니다. 모종의 이유로 언어를 잃어버린 존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오의 슬픔도 그렇습니다. 이오가 왜 슬픈지, 소가 돼 보지 못한 우리가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저 곁에서 슬퍼하는 것이 전부일지도요. 언어를 잃어본 적 없는 이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의 슬픔은 그리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답답하고 슬픈 마음을 꽤 자주 경험하고 있습니다. 바로 외국어를 마주할 때입니다. 요즘은 영어를 포함해 외국어 한두 개쯤은 편하게 구사하는 사람이 많다지만, 그래도 문제는 바뀌지 않습니다. 외국어는 외국어입니다. 모국어처럼 편해질 순 있어도 모국어 그 자체가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작가로서 기쁨과 슬픔을 문학적으로 탁월하게 형상화한 작가로 저는 다와다 요코가 떠오릅니다. 다와다의 강연을 묶은 책 ‘변신’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낯선 나라에서 말하면 목소리가 이상하게 고립되고 벌거벗은 채로 공중에 떠다니게 됩니다. 마치 단어가 아니라 새를 내뱉는 듯한 느낌이 들지요.” 입에서 새가 튀어나오는 느낌. 나지막이 소의 울음을 토해내고 그 모습에 너무나도 놀랐던 이오의 슬픔이 포개어집니다. 낯선 언어로 말해야 한다는 것. 무언가를 끊임없이 내 안에서 ‘번역’해야 한다는 것은 이토록 슬픈 일입니다. 다시 한강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희랍어 시간’에서 언어를 잃어버린다는 것의 의미는 굉장히 다채롭게 해석됩니다. 문학평론가 전기화는 실어를 “세계와 불화하는 과정이자 불화의 결과 그 자체”(‘겹쳐지고 얽혀드는 사랑의 이야기’)로 분석합니다. 우리는 언어로 세계 안에 위치합니다. 더 정확하게는 세계 안에서 우리의 자리를 주장하는 수단이 바로 언어죠. 우리의 세계에, 언어를 잃어버린 자를 위한 자리는 없습니다. 있어도 주장할 방도가 없죠. “이따금 그녀는 자신이 사람이기보다 어떤 물질이라고, 움직이는 고체이거나 액체라고 느낀다. 따뜻한 밥을 먹을 때 그녀는 자신이 밥이라고 느낀다.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할 때 그녀는 자신이 물이라고 느낀다. 동시에 자신이 결코 밥도 물도 아니라고, 그 어떤 존재와도 끝끝내 섞이지 않는 가혹하고 단단한 물질이라고 느낀다.” 그녀가 느끼는 이물감, 고립감은 아마도 여기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불쌍한 이오에게로. 이오의 아버지 이나코스는 딸을 눈앞에 두고도 애타게 그녀를 찾습니다. 이오는 아버지의 손을 핥기도, 아버지의 뺨에 입을 갖다 대기도 하지만 아버지는 그 암소가 이오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결국 마지막 방법을 생각해 냅니다. 발굽으로 땅바닥에다가 이름을 쓰지요. 물론 그리스어로 썼겠지만, 알파벳으로 상상한다면 이오의 이름은 쓰기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IO’. 만약 이오의 이름이 ‘아낙시만드로스’, ‘파르메니데스’ 이랬다면 어땠을까요. 이오와 이나코스는 영영 해후하지 못했을 것 같네요. 언어와 망각에 관한 에세이 ‘에코랄리아스’(조효원 역, 문학과지성사)의 저자 대니얼 헬러 로즌은 이오의 이야기에서 기발한 통찰을 건져 올립니다. 변신 이후에도 ‘남는 것’으로서의 글쓰기. 그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요컨대 글쓰기는 소의 창조물이다. 즉 글쓰기는 목소리가 완전히 소멸됨으로써 만들어진 잔여인 것이다.” 그렇습니다. 소가 되면서 이오의 목소리는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무언가’가 그녀의 안에 남아있었습니다. 그리고 발굽으로 땅에 이름을 새기는 행위, 즉 글쓰기는 그것을 성공적으로 증명했습니다. 헬러 로즌은 이렇게 정리합니다. “화자가 있든 없든 언어는 남는다. 그러나 그 자신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언어는 지속할 수 있다. 그러나 오직 다르게만. … 그것은 변신이 궁극적으로 모든 언어, 모든 말 하나하나의 매체라는 사실, 그리고 그것은 더 이상 님프가 아니게 된 님프가 발굽으로 모래 위에 남긴 글자들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희랍어 시간’의 한 에피소드. 여자는 수업 시간에 그리스어로 무언가를 적었습니다. 같이 수업을 듣던 대학원생은 장난스럽게 “이분이 희랍어로 시를 썼어요”라며 강사에게 말했지요. 이 강사가 바로 시력을 점점 잃어가는 그 남성입니다. 강사는 그녀에게 그 시를 잠깐 봐도 되냐고 물었지만, 여자는 짐을 챙겨 강의실을 나가버립니다. 그녀는 공책에 무엇을 적은 것일까요. 이제 소설의 마지막입니다. 시력을 잃기 직전인 남자는 그나마 의지하고 있던 안경을 떨어뜨리고, 극한의 어둠에 휩싸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 그를 구출한 건 말을 잃어버린 그녀였습니다. 여자는 그를 부축하고 남자의 집까지 동행합니다. 어두운 남자의 집에서 둘은 대화합니다. 아니, 대화라고 할 수 없겠네요. 남자 혼자 일방적으로 말하고 있었으니까요. 남자는 계속해서 묻습니다. “내 말이 들리나요?” “거기서, 듣고 있나요?” 말할 수 없었지만, 여자는 똑똑히 듣고 있었습니다. 이제 안정을 찾은 남자가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를 부르겠느냐고 묻습니다. 말할 수 없는, 말하지 않는 여자는 그의 손바닥에 이렇게 적습니다. “아니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죠. “첫 버스를 / 타고 갈게요.” 말이 멈춘 곳, 말이 멈출 수밖에 없는 곳에서 우리는 글을 씁니다. 헬러 로즌의 말마따나 화자가 있든 없든 언어는 남으니까요. 글은 글쓴이보다 오래 남아서 생명을 이어갑니다. 이오가 발굽으로 흙 위에 이름을 쓴 것. 여자가 남자의 손바닥에 ‘집에 가지 않겠다’고 적은 것. 이것은 글쓰기의 예술, 문학의 강력한 은유입니다. 한강이 ‘희랍어 시간’(2011) 이후 ‘소년이 온다’(2014)를 펴냈다는 사실은 퍽 의미심장합니다. ‘오월의 광주’라는 절대적인 고통으로 나아가기 전, 언어에 관해 깊은 묵상을 한 것처럼 보이거든요. 변신은 또한 상실이기도 합니다. 변신은 문학에서만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것이지요. 바로 ‘늙음’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늙습니다. 태어난 순간부터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워지죠. 변신은 매분, 매초 이뤄집니다. 단 1분도, 단 1초도 우리는 젊어질 수 없습니다. 회복할 수 없습니다. 오직 늙어갈 수만 있습니다. 일상의 변신, 늙음. 이 ‘늙어감’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독일의 철학자 오도 마르크바르트가 프란츠 요제프 베츠와 나눈 대화의 일부를 옮깁니다. 이 내용은 국내에 번역된 유일한 마르크바르트의 책 ‘늙어감에 대하여’(조창오 옮김, 그린비)에 실려있습니다. “저의 생은 하나의 단편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는 차안에서도 피안에서도 완성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완성도 아니고 목표점도 아니고 단순히 곧 끝에 있을 것입니다!”
  • 詩 혹은 ‘죽음의 르포르타주’: 단테와 김혜순[폐허에서 무한으로]

    詩 혹은 ‘죽음의 르포르타주’: 단테와 김혜순[폐허에서 무한으로]

    편집자 주 망각忘却은 모든 문장의 운명입니다. 오래된 책은 잊힌 문장으로 가득한 폐허廢墟이지요. 책을 읽는다는 건 무엇일까요. 폐허에서 무한無限을 찾는 것 아닐까요. 먼 옛날에 쓰인 문장을 가지고 와 이어 써보려고 합니다. 저의 심폐소생으로 책이 부활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의 글 역시 결국 무로 돌아갈 것이기에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입니다. 온라인으로 연재하는 이 시리즈는 기사도 소설도 아니고 시는 더더욱 아닙니다. 옛날과 오늘날을, 필자의 짧은 상상력으로 접붙이는 에세이 정도로 가볍게 읽고 넘어가 주시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신 독자에게 문운文運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3. 詩 혹은 죽음의 르포르타주: 단테의 ‘신곡 지옥편’과 김혜순의 ‘우울의 머나먼 끝’ 나 이전에 창조된 것은 영원한 것뿐이니나도 영원히 남으리라.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단테 알리기에리, ‘신곡 – 지옥편’ 3곡 ‘영원한 절망’을 암시하는 서늘한 문장입니다. 절망을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요. 나아가 그것이 영원하다면요. 우리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훈련소에 입소한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만약 훈련소 입구에 저런 문장이 있다고 해봅시다. 어떨까요. 누구라도 한 발 물러나고 싶어질 겁니다. 비유의 차원을 높여서 어느 전쟁포로 수용소라고 해볼까요. 인간은 희망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모든 희망을 버리라니요. 입구를 지나친 순간, 그곳에 발을 디딘 순간, 인간은 인간이 아니게 됩니다. 다소곳이 죽음만을 기다리는 무언가가 되죠. 그곳에서 살고자 하려는 희망은 그 존재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 뿐입니다. 다행히 현실의 세계에서는 어떤 훈련소에도, 어떤 수용소에도 이런 문장이 쓰여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죽으면 가게 될 곳,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 꼭대기에 쓰인 글이죠. 르네상스를 열어젖힌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어쩌면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도 평가될 수 있는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 지옥편 3곡 첫 부분에서 글을 가지고 왔습니다. 번역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0번 ‘신곡’(박상진 역)을 참조했습니다. 18세기 영국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삽화가 신화적 상상력을 더해주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신곡’을 펼친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 시단의 대모이자 국내를 넘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시인 김혜순의 신작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에 실린 시 한 편을 읽고 무척 감명받았거든요. 제목은 ‘우울의 머나먼 끝’입니다. 시 전문을 가지고 와 보겠습니다. 조금 긴 편이지만, 찬찬히 음미해 보시죠. 오늘은 인류의 마지막날마지막을 지켜보자 같이 있자저 하늘이 어떻게 되는지 보자영하 삼십 도의 어느 겨울날처럼공원에는 우리 둘밖에 없네우리는 드러누웠다이제 여행은 없겠다이제 나만의 미슐랭 식당은 없겠다우리가 없으면 비행기들은 뭘 할까지진이 난 미얀마에서 보았지?잡초들과 생쥐들과 참새들의 집이 되겠지하늘을 계속 보고 있자니땅이 폭풍 속 뗏목처럼일어서기 시작했어우리는 저절로 여행을 떠났어오늘도 빠짐없이 챙겨먹은벤조다이아제핀 때문일까한없이 아래로 아래로미끄러지는 여행이것은 마지막 인류를 위한 거대한 묘비인가거대한 비석의 어깨에서끝나는 여행손에 손잡고 미끄러지는 여행뼈무더기에서 단체로 떨어지는해골들의 여행팽팽하게 일어선 지구에서의 마지막 여행우리의 끝은 어디일까왜 나에게 시작은 없고 늘 끝만 있을까나는 당신의 손을 놓치고도끝없이 미끄러졌어여기 들어오는 당신들 모든 희망을버릴지니(『신곡』 지옥편)팔십억 인류의 하얀 손톱을 다 잘라라지옥에 가득 팔백억 개의초승달이 떠오르게 하고빌어라김혜순, ‘우울의 머나먼 끝’ 시인은 종말을 사유하고 있습니다. ‘지진이 난 미얀마’에서 ‘잡초’와 ‘생쥐’와 ‘참새’의 집이 된 ‘비행기’의 이미지를 떠올려 볼까요. 어느 아포칼립스 영화의 한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지지요. 실제 올해 초 미얀마에서 규모 7.7의 강진이 발생했죠. 어떻습니까. 재앙은 가차가 없습니다. 인간 세계의 귀(貴)와 천(賤), 선(善)과 악(惡) 같은 건 지진과 같은 재앙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저런 게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예측하고 대비하기 위해 인간은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아직 완전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완전해질 날이 오지 않을지도요. 그렇다면 인간의 문명은 얼마나 위태로운 것 위에 서 있는가요. 세계 곳곳에서 저런 재난 몇 개만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고 해보죠. 감당할 수 있을까요. 회복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신(神)이란 존재는 무엇입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해 보고 싶으신 분은 독일 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칠레의 지진’을 펼쳐보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시인이 ‘우리의 끝은 어디일까/왜 나에게 시작은 없고 늘 끝만 있을까’ 하고 적은 부분에서 잠시 눈이 멈춥니다. 우리도 태어난 날과 순간이 있습니다. 거기가 우리의 시작일진대, 왜 시인은 ‘나에게 시작이 없다’고 말했을까요. 이 구절에서 말하는 ‘나’가 단순히 개별적인 인간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나’를 살짝 바꿔서 ‘우리’로 봐 보죠.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시작했습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신이 창조한 아담과 이브의 후손입니까. 아니면 어떤 유기물로부터 차근차근 진화해 온 존재입니까. 저는 지금 둘 중 무엇이 맞거나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시작’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존재이며, 그것이 여전히 뚜렷이 내려지지 않았음을 말하고자 합니다. 어쩌면 인간의 지식 체계가 일정 부분 ‘믿음’에 기초하는 이상, 여기에 대한 대답은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뚜렷하게 나오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시작’은 없죠. 늘 끝만, 종말만 있을 뿐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의 강연을 엮은 ‘창조와 타락’이라는 책을 읽다가, 이 부분과 아주 긴밀하게 공명하는 말을 찾았습니다. “인간은 더이상 처음 안에서 살고 있지 않다. 그는 처음을 잃어버렸다.” 종말 혹은 종말이 가까워진 세계에서 시의 화자는 ‘한없이 아래로 아래로/미끄러지는 여행’을 떠납니다. 지옥으로 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지옥은 왜 ‘아래’에 있는 것일까요. 이건 ‘신곡’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안내자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지옥으로 여행을 떠나는 단테는 끊임없이 아래로 내려갑니다. 서구의 세계관에서 천상의 세계는 저 위 하늘에, 반대로 지옥은 땅 밑 깊숙한 곳에 있다고 보며 ‘상승’과 ‘하강’의 구도를 체계적으로 정립한 이는 고대 로마 시대에 활동했던 철학자 플로티누스입니다. 물론 플로티누스는 플라톤에게서 영향을 받았고요. 또 플로티누스는 후대 아우구스티누스에게도 영향을 줬습니다. 더 복잡한 철학적, 신학적 맥락에 있습니다만 일단 여기까지. 어쨌든 신적인 것은 저 하늘에 있고, 인간은 그 아래에 있습니다. 그리고 지옥은 인간이 딛고 있는 땅보다도 더 밑에 있죠. 이 도식을 기억하면서 단테에게로 가겠습니다. “이들에겐 죽음의 희망조차 없다. 앞을 볼 수 없는 생활이 너무나 절망스러워 언제나 다른 운명만을 부러워하지. 그들이 지녔던 명성은 세상에서 사라졌고 자비와 법은 그들을 비웃지. 할 얘기가 없구나. 다만 보고 지나치자.” 지옥의 영혼들을 보며, 얼마나 고통스럽기에 이토록 처절하게 울부짖는지, 단테가 묻자 베르길리우스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죽음의 희망조차 없다’는 말이 뼈저리게 다가옵니다. ‘죽음’이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 그것은 인간이 고통을 겪을 때입니다. 하지만 지옥의 영혼들에는 그런 위안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미 ‘죽은’ 존재들이잖아요.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은 인간에게 무한한 공포를 선사합니다. 살아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사후세계’라는 개념은 그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인간이 발명한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이 공포가 아니라 안식이거나 위안일 순 없을까요. 단테의 작품을 단순히 ‘권선징악’의 우화로만 읽기에는 아쉽습니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어떻게 불멸과 무한의 개념을 간취할 수 있는지, 어떻게 그래왔는지 그걸 보여주는 텍스트로 읽어보면 조금 더 새롭고 흥미로울 듯합니다. 다시 김혜순의 시로 가겠습니다. 화자는 결국 지옥에 도착한 듯합니다. ‘모든 희망을 버리라’는 지옥의 문에 쓰인 텍스트를 확인하죠. 그다음 구절이 제가 생각하는 하이라이트입니다. ‘팔십억 인류의 하얀 손톱을 다 잘라라/지옥에 가득 팔백억 개의/초승달이 떠오르게 하고//빌어라’ 저는 특히 마지막 ‘빌어라’에서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희망이 없는 곳에서 빌라니요. 빈다고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하지만 현실의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아무리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무언가를 붙잡고 살아갑니다. 그 무언가를 우리는 ‘희망’이라고 부릅니다. 절망 속에서도 끝끝내 ‘희망’을 붙잡는 행위, 그것이 바로 ‘비는 것’이 아닐까요. 인간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비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후세계나 신에 관한 믿음 체계는 저마다 다릅니다. 한국인은 더욱 그렇죠. 하지만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존재인 인간은 그래서 ‘종교적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김혜순 시인의 시에서 비는 행위의 대상이 ‘팔십억 인류의 하얀 손톱’이라는 점은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손톱’을 생각해 봅시다. 물론 동물도 손톱이 있지만, ‘팔십억 인류’라고 했으니, 우리의 손톱만 볼까요. 끊임없이 ‘자라나는’ 그것을 우리는 또 끊임없이 잘라냅니다. 잘라낸 저것은 우리의 몸인가요, 아닌가요. 한때는 우리의 몸이었지만, 이제는 몸이 아닌 저것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어쩌면 ‘죽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였던 것,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아닌 것. 몸을 가진 우리는 모두 이런 운명에 처해있습니다. 시인은 그것을 하늘에 띄우라고 명합니다. 꼭 작년 이맘때쯤 같은데요. 가수 황가람이 불러서 유명해진 노래가 있죠. 원곡자는 중식이로, 제목은 ‘나는 반딧불’입니다. 조금은 슬픈 노래인데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한참 동안 찾았던 내 손톱/하늘로 올라가 초승달 돼 버렸지” 이 노래도 불현듯 떠오릅니다. 나의 몸이자, 나의 죽음인 손톱. 그것을 초승달로 띄워서 거기에 대고 빌라고 말하는 시인. 지옥은 땅 밑에 있는 무한한 하강의 공간입니다. 그곳에 ‘하늘’이 있을까요? 게다가 거기에 떠오른 것이 인간인 나의 몸이라고요? 김혜순의 시는 도식적으로 이해됐던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를 단번에 부정하고 뒤틀어 버립니다. 그래서 매력적으로 읽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빌어야 할 대상이 나의 몸인 이 아이러니. 종교를 강력하게 비판했던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권력에의 의지’에서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우리에 대한 믿음은 가장 강력한 속박이고 최고의 채찍질이다. 그리고 가장 강한 날개이다.” 단테와 김혜순을 종합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죽음은 인간이 ‘경험’할 수 없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조금 풀어서 설명하겠습니다. 경험은 인간이 무언가를 통과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책을 읽는 행위가 경험이 될 수 있는 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둘은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같다는 생각으로 묶여있죠. 하지만 죽음은 어떻습니까. 죽음을 맞이하기 전과 죽음을 맞이한 뒤의 그 존재가 같은 존재인가요? 아니, 죽은 뒤에는 존재가 사라지지 않습니까. 죽은 존재에 관해, 살아남은 우리의 ‘기억’만 있을 뿐입니다. 물론 ‘임사체험’ 같은 것이 있다고 주장하는 분도 있겠습니다만, 그것이 과연 ‘죽음을 경험’하는 것인지는 아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예외가 있습니다. 바로 문학입니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서 죽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합니다. 물론 죽음 그 자체는 아닐 겁니다. 하지만 죽음이 무엇인지, 나름대로 생각하게끔 하지요. ‘신곡’에서 단테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충실히 들여다보고 기록합니다. 단테의 모습이 마치 현장에서 발로 취재하며 꼼꼼히 기록하는 기자처럼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시는 어쩌면 죽음에 관한, 충실한 ‘르포르타주’일지도요. 르포르타주는 기자의 예술이지만, ‘죽음의 르포르타주’는 기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직 시인만이, 문학만이 할 수 있는 일이죠. 독일어로 번역돼 지난 7월 한국문학 최초로 독일 HKW 국제문학상을 받은 김혜순 시인의 ‘죽음의 자서전’ 시인에 말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그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나는 죽기 전에 죽고 싶었다.김혜순, ‘죽음의 자서전’ 시인의 말 부분
  •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백세희 작가, 5명에 새 생명 나누고 하늘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백세희 작가, 5명에 새 생명 나누고 하늘로

    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집필한 백세희 작가가 별세했다. 35세.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백 작가가 지난 16일 뇌사 장기 기증으로 5명의 생명을 살리고 세상을 떠났다고 17일 밝혔다. 백 작가는 심장, 폐장, 간장, 신장(양측)을 기증했다. 백 작가는 기분부전장애(가벼운 우울감이 2년 이상 지속되는 상태)를 진단받고 담당의와 상담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로 주목받았다. 이후에도 다른 작가들과 함께 ‘나만큼 널 사랑할 인간은 없을 것 같아’,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등의 책을 펴냈다. 토크콘서트, 강연회 등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해왔다. 경기 고양시에서 3녀 중 둘째로 태어난 백 작가는 어릴 적부터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대학에서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그는 출판사에서 5년 동안 근무했고, 이 시기에 개인적인 상처와 아픔을 극복하고자 상담 센터와 정신과에서 치료받기 시작했다. 백 작가는 사랑이 많은 성격으로 어려운 사람을 보면 먼저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고 도움을 전하는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백 작가의 동생은 “언니는 글을 쓰고, 글을 통해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희망의 꿈을 키우길 희망했다”며 “아무도 미워하지 못하는 착한 그 마음을 알기에 이제는 하늘에서 편히 잘 쉬길 바란다”고 말했다.
  • 종교도 피습도 꺾지 못한 루슈디의 일생… “모두 의심하라, 어떤 것도 당연하지 않다”

    종교도 피습도 꺾지 못한 루슈디의 일생… “모두 의심하라, 어떤 것도 당연하지 않다”

    자유도 무너진 무차별적 시대거짓이 거짓을 왜곡하는 사회문학과 작가의 역할과 의미를면도날처럼 신랄하게 그려내 그가 작가였던가? 살만 루슈디란 이름을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다. 1988년 펴낸 ‘악마의 시’가 워낙 강렬했던 탓이다. 서구에선 문학성을 인정받았지만, 아랍권 맹주인 이란의 종교 지도자가 신성모독을 이유로 ‘파트와’(처형 명령)를 내리면서 그는 중동을 넘어 세계 무슬림의 현상범, 정치범이 됐다. 문학 축제 준비 중 습격당해 오른쪽 눈을 실명하면서는 그에 관한 모든 관념이 딱 그쯤에서 고정됐다. 인도 출신 영국인인 그는 명확히 작가다. 노벨문학상 후보 명단에 끊임없이 오르내리며, 우리에게도 익숙한 부커상을 하나의 작품으로 세 번이나 거머쥔 ‘넘사벽’의 경력도 갖고 있다. 새 책 ‘진실의 언어’는 그가 펴낸 산문집이다. 2003년부터 2020년까지 발표한 에세이, 비평, 연설 등을 한데 모았다. 책은 43편의 글을 주제에 따라 4부로 나누어 담았다. 그의 폭넓은 삶의 범주만큼이나 날카롭고 밀도 깊은 통찰이 인상적이다. 1부는 뜻밖에 ‘작가 루슈디’의 창작론이다. 인간의 근원적 욕망이라 할 스토리텔링에 관한 분석이 주를 이룬다. 2부에서는 윌리엄 셰익스피어부터 미겔 데 세르반테스, 필립 로스, 커트 보니것, 사뮈엘 베케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에 이르기까지 문학사의 계보를 이루는 거장들의 작품과 삶을 비평한다. 3부에선 자유를 포함한 모든 관념들이 무차별적으로 공격받는 이 시대에 예술과 문학의 의미와 더불어 작가의 역할은 무엇인지 묻는다. 4부에서는 수많은 작가들이 회화나 사진 등 문학 바깥의 예술 영역에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해 온 사례를 담았다. 루슈디 하면 떠오르는 글의 이미지, 그러니까 “모든 것을 의심하고, 어떤 것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며, 모든 통상적 관념과 논쟁”하는 그의 글과 신념을 먼저 만나고 싶다면 3부부터 읽으면 된다. “누군가의 영웅(우고 차베스나 피델 카스트로)이 다른 사람에겐 악당”인 세계와 “거짓말의 가면을 벗기려는 사람들을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이는 비난 속에서 의도적인 거짓말이 오히려 보호받는 시대”의 면면을 면도칼처럼 날카롭고 신랄하게 그려낸다. 이 세계에선 오사마 빈라덴의 죽음 역시 “태생이 더럽게 부유했”던 “마녀의 대왕이 격렬한 싸움 끝에 빗자루에서 떨어져 죽기 좋은 시간에” 죽은 것일 뿐이다.
  • “골목이 책장이 되는 10일” - 서촌 전역, 하나의 서재로 변신

    “골목이 책장이 되는 10일” - 서촌 전역, 하나의 서재로 변신

    책을 읽듯 골목을 걷고, 브랜드를 만나듯 이야기를 펼치는 축제가 10일간 서촌을 물들인다. 종로구는 오는 17일부터 26일까지 서촌 일대에서 ‘2025 서촌 브랜드 위크’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올해로 2회째를 맞는 이 축제는 지난해 방문객 만족도 90% 이상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첫해를 보낸 데 이어, 올해는 60여 개 로컬 브랜드가 참여해 더욱 풍성한 경험을 선사한다. 특히 이번 축제는 서촌 전역을 ‘열린 책장(Local Library)’으로 조성, 골목은 책이 되고 브랜드는 페이지가 되며 방문객의 하루는 한 편의 이야기로 완성되는 독특한 콘셉트로 주목받고 있다. 축제의 중심에는 ‘열린 책장, 독서촌’이 자리한다. 상촌재, 홍건익 가옥, 수성동 계곡 등 서촌의 한옥과 공공공간 5곳, 그리고 로컬 카페 10곳이 독서 공간으로 탈바꿈해 누구나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다. 책 속에 남긴 한 줄이, 누군가의 다음 장을 여는 구성인 ‘고스트 마니또’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내가 읽은 책의 추천사를 적어 다음 독자에게 전하고, 만년필과 필사 문장지로 구성된 ‘서촌펜클럽 키트’(선착순 1,000명)를 받을 수 있다. 이름 모를 독서 친구와 책으로 연결되는 특별한 경험이다 로컬 브랜드들도 축제 기간 동안 자신들의 공간을 특별한 무대로 개방한다. 공간 서로는 22~26일 ‘시네마 에세이’ 영화제를 열어 도서 원작 영화 5편과 독립영화 7편을 상영하며, 25일에는 포크 아티스트들의 무비콘서트 ‘노래하는 장면들’도 함께 펼쳐진다. 세네동 커피에서는 서촌 주민 10명과 로컬 브랜드 10팀의 이야기를 담은 ‘머무름과 이어짐’ 전시가, 상촌재에서는 인스타 8.7만 팔로워 포토그래퍼 홍중규의 사진전이 열린다. 정주민도 여행자도 함께하는 마을 축제 프로그램으로, 17~18일 통인시장 정자에서는 ‘통인가맥’이 열린다. 통인시장에서 1만 원 이상 장을 본 영수증을 제시하면 수제맥주 1잔을 받을 수 있으며, 정자에 조성된 책장에서 색다른 ‘음주독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25~26일에는 ‘버디 리딩 마켓’ 플리마켓도 진행된다. ‘취향패스’는 서촌 전역에서 당일 1만원 이상 소비 후 영수증을 리셉션에서 인증하면, 플린(PLIN) 앱을 통해 참여 브랜드 28곳 중 원하는 쿠폰 3종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DIY 쿠폰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참여자의 89.6%가 “새로운 브랜드를 발견했다”고 답한 이 프로그램은 대로변부터 골목 안쪽까지 서촌을 탐험하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인왕산 자락 수성동 계곡은 대형 파빌리온이 조성되어 독서 공간으로 활용되며, 주말에는 ‘서촌 풍류회’ 사생대회와 백일장(1일 150명)이 진행된다. 완성된 작품은 계곡 길을 따라 전시돼 ‘짓지 않는 박물관’을 완성한다. 25~26일에는 컨템포러리 서커스와 크로키 퍼포먼스 등 ‘서촌 연희회’ 공연도 펼쳐진다. 자연 속에서 짓고, 그리고, 춤추는 문화 융합의 장면이 연출될 예정이다. 종로구 관계자는 “서촌 브랜드 위크는 단순한 축제를 넘어 지역 상권과 브랜드가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실험”이라며 “상인 주도 워크숍을 통해 프로그램을 기획해 지속가능성을 높였다”고 밝혔다. 이번 축제에는 웰니스 프로그램, 쿠킹 클래스, 공예 클래스, 북토크 등 브랜드가 직접 기획한 13개 프로그램과 폴라로이드 대여 ‘캡처로그’, 로컬 투어, 영수증 인증 리워드 등 다채로운 참여 프로그램이 준비됐다.
  • “얘들아, 언제든 오렴”… 제주도 일반·휴게음식점 ‘예스키즈존’ 64곳 신청

    “얘들아, 언제든 오렴”… 제주도 일반·휴게음식점 ‘예스키즈존’ 64곳 신청

    # 동생 생일에 가족과 함께 스테이크를 먹으러 1시간 차를 타고 식당에 갔는데 노키즈존 식당이어서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저희도 밥을 먹으러 온 거예요”라고 했더니 “여기는 노키즈존이야, 애들은 여기 못 들어온다는 뜻이야. 얼른 나가” 콧노래를 부르던 동생은 결국 울음을 터뜨렸고 어른들이 이해도 되지만 한껏 들떠있던 가족 모두 몹시 슬펐다. “어른들이 편히 있고 싶어하는 그 권리보다 아이들이 가게에 들어올 수 있는 그 권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어른들은 잊고 있나보다. 어른들도 한때 어린아이였다는 것을.” 이 이야기는 전이수 동화작가가 동생 ‘우태의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쓴 일기의 일부이며 첫 에세이집에 나온 내용이다. 제주도는 아동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예스키즈존 운영지원 사업을 처음으로 추진한다고 15일 밝혔다. 현실적으로 아동인권침해 논란 소지가 있는 노키즈존을 제제할 방법이 없어 차라리 예스키즈존을 육성하자는 발상의 전환으로 시도하는 사업인 셈이다. 도는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예스키즈존 운영업체 공개모집에 나섰고 도내 64개 일반·휴게 음식점이 신청했다. 예스키즈존 운영지원 사업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발굴하고 아동에 대한 차별해소와 인식개선을 도모하는 제주도의 신규 정책이다. 아동용 식품을 판매하거나 유아용 의자, 식기 등 필요 용품을 갖춘 일반·휴게 음식점이 대상이며 1차 심사에서 신청한 64개 업소 모두가 선정 조건을 충족한 것으로 확인됐다. 도는 이달중 지방보조금관리위원회 심사를 통해 최종 선정업소를 확정할 예정이다. 선정된 업소에는 어린이 식사도움 용품이나 안전용품 구매를 위한 30만원의 지원금이 제공된다. 노키즈존·키즈존 지도 공유 웹사이트(https://sites.google.com/view/yesnokids)를 보면 2023년 기준 국내에는 500개 이상의 노키즈존 사업장이 있고, 이 중 20.4%가 제주에 있다. 경기도에 이어 제주가 전국에서 두 번째(150여곳)로 노키즈존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제주도가 152개소 노키즈존을 대상으로 표본 조사한 결과 폐·휴업으로 인해 실제 80개소가 노키즈존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혜란 제주도 복지가족국장은 “지난 7월 유니셰프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은 제주도는 인증 기준에 부합하는 아동친화적 정책을 통해 아이들이 안전하고 존중받으며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도시환경 조성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제주도의회는 2023년 노키즈존을 금지하는 조례안을 발의했으나 “아동에 대한 차별과 인권침해를 막는 조례”란 입장과 “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조례”라는 입장이 팽팽이 맞서면서 우여곡절 끝에 예민한 노키즈존 명칭을 빼고 ‘제주도아동출입제한업소 확산 방지 및 인식개선을 위한 조례’로 바꿔 가결됐다. 한편 도는 부산, 대구, 광주, 세종에 이은 다섯 번째 광역지방자치단체이자, 도 단위 광역 지자체로는 전국 최초로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로부터 아동친화도시(Child Friendly Cities) 인증을 획득했다. 아동친화도시는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담긴 아동의 권리를 실현하고, 아동에게 친화적인 환경을 가진 도시를 의미한다. 현재 전 세계 40개 국가에서 인증받고 있다.
  • 죽음과 진리, 죽음의 윤리…소크라테스와 렌고쿠 쿄쥬로[폐허에서 무한으로]

    죽음과 진리, 죽음의 윤리…소크라테스와 렌고쿠 쿄쥬로[폐허에서 무한으로]

    편집자 주 망각忘却은 모든 문장의 운명입니다. 오래된 책은 잊힌 문장으로 가득한 폐허廢墟이지요. 책을 읽는다는 건 무엇일까요. 폐허에서 무한無限을 찾는 것 아닐까요. 먼 옛날에 쓰인 문장을 가지고 와 이어 써보려고 합니다. 저의 심폐소생으로 책이 부활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의 글 역시 결국 무로 돌아갈 것이기에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입니다. 온라인으로 연재하는 이 시리즈는 기사도 소설도 아니고 시는 더더욱 아닙니다. 옛날과 오늘날을, 필자의 짧은 상상력으로 접붙이는 에세이 정도로 가볍게 읽고 넘어가 주시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신 독자에게 문운文運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2. 죽음과 진리, 죽음의 윤리…‘소크라테스의 변론’과 ‘귀멸의 칼날’ 여러분, 죽음을 피하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비열함을 피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죽음보다 비열함이 더 발이 빠르기 때문입니다.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론’ 죽음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공포입니다. 그 앞에서 인간은 구차해지고 비열해집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의연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존재를 우리는 ‘영웅’이라 부르죠. 영웅은 일상보다는 문학이나 역사에 있죠. 모르긴 몰라도, 수많은 영웅의 원형은 아마도 소크라테스일 겁니다. 이번에는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음미해 보려고 합니다. 모종의 죄로 고발돼 법정에 선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최후의 연설입니다. 대단히 비장하면서도 논리적이고 무엇보다 아름답습니다. 그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법정에 세운 이들의 주장이 초라하고 옹색해지죠. 만약 죽음을 앞둔 우리에게 연설의 기회가 주어진다면요? 소크라테스처럼 멋진 연설을 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쓴 저자가 그의 제자 플라톤이라는 점도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고대 그리스에 녹음기는 없었을 테니, 우리는 플라톤이 윤문하고 각색한 소크라테스의 말만 읽을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는 플라톤이 지어내기도 했을 테죠. 그러면 어디까지가 소크라테스고, 어디서부터 플라톤일까요? 우선 이 질문을 안고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참고로 많은 책에서 ‘변론’ 대신 ‘변명’으로도 번역하고 있습니다만, 이 글은 출판사 ‘숲’에서 나온 천병희 선생님의 역본(2017년)을 따랐습니다. 이후 나오는 문장들도 전부 이 책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올해 하반기 국내 극장가를 ‘접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 애니메이션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인데요. 17일 기준 국내 관객 수 542만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앞서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내용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요즘 사람들이 영화관을 잘 가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실로 대단한 숫자입니다. TV판 애니메이션 2기까지만 본 저는 아직 ‘무한성편’을 보지 못했습니다. 오랜만에 밀린 시리즈를 ‘정주행’하자고 결심하고 넷플릭스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극장판 ‘무한열차편’을 틀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아주 매력적인 사나이, 렌고쿠 쿄쥬로를 만났습니다. “흥미로운 제안을 하마. 너도 혈귀가 되지 않겠나. 보면 안다. 네가 얼마나 강한지.” 작품에서 렌고쿠는 혈귀(오니, 도깨비)를 퇴치하는 집단인 ‘귀살대’의 9명의 주(柱) 중 하나로 ‘화염의 호흡’을 사용합니다. 작품 안에서 엄청난 강자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갈 즈음 강력한 적이 등장합니다. 아카자라는 혈귀입니다. ‘상현 3’에 해당하는 아카자는 세계관 내 ‘끝판왕’인 키부즈치 무잔에 무척 가까운 존재입니다. 앞서 다른 혈귀를 해치우며 임무를 끝마쳤다고 생각했던 렌고쿠는 갑자기 아카자와 맞붙게 됐죠. 그런데 아카자는 렌고쿠에게 위와 같이 말합니다. 작중 혈귀는 늙거나 죽지 않습니다. 몸의 어느 곳을 잘라도 금방 재생됩니다. 그들을 소멸시킬 유일한 방법은 목을 자르는 것입니다. 반대로, 목만 잘 지키면 영생을 누린다는 뜻입니다. 아카자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쿄쥬로, 네가 왜 최고의 영역에 들어갈 수 없는지 알려주겠다. 늙기 때문이다. 죽기 때문이다.” 아카자는 혈귀의 장점을 강조하며 렌고쿠에게 끊임없이 영업(?)합니다. 혈귀가 되어 100년이든, 200년이든 단련해서 자기와 영원히 대결하며 강해지자고 말합니다. 영원한 시간 속에서 무한히 성장할 수 있다는 아카자의 믿음은 너무나도 순진하고도 ‘인간적’입니다. 신을 향한 오랜 믿음에서 벗어나 인간은 마침내 자기 안의 ‘이성’을 찾았습니다. 이성의 힘으로, 과학의 힘으로 ‘종말’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종말론적 시간에는 끝이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벗어났으니, 인간은 앞으로 영원히 ‘상승’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죠. 물론 이렇게만 설명할 순 없겠지만, 이것이 서구 계몽주의의 핵심적인 믿음입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믿음’에 불과했습니다. 그토록 ‘이성적인’ 인간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그 과신의 처참한 말로를 우리는 지난 세기 내내 그리고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보고 있습니다. 최근 ‘계몽’이라는 단어를 가지고도 여러 정치적인 말들이 오가고 있는 듯한데, 이런 맥락도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네요. 당연하게도 렌고쿠는 단호히 거절합니다. 렌고쿠가 아카자의 설득에 넘어갔다면, 그래서 혈귀가 되었다면 그리 매력적인 캐릭터는 아니었겠죠. 렌고쿠는 말합니다. “나는 내 의무를 다할 거다. 내가 있는 한, 그 누구도 죽게 놔두지 않는다.” 소년만화 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기 충분한, 벅찬 대사입니다. 그 의무란 무엇일까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렌고쿠는 과거 어머니가 했던 말을 떠올립니다. ‘강함’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선천적으로 남들보다 많은 재능을 타고난 자는 그 힘을 세상을 위해, 남들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 약한 사람을 돕는 일은 강하게 태어난 사람의 의무입니다. 책임을 갖고 평생 이루어야 하는 사명입니다.” 당연하다 못해 뻔하게 들리기까지 합니다. 마블 히어로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의 삼촌 벤 파커도 이런 말을 했는데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요. 이렇듯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는 강한 힘을 지닌 영웅에게서 모종의 책임을 기대합니다. 유치하죠. 하지만 유치한 대사가 울림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현실에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이런 책임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요. 책임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자기(들)만의 단단한 성을 쌓아 올리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리하여 약자들의 비참함은 영원히 대물림되고, 우리는 현실이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접게 됩니다. 이 대사가 유치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만화에서나 가능한 대사라서. 체념한 것이죠. 이런 사람더러 우리는 ‘어른’이라고 합니다. 철이 든 거죠. 소크라테스로 돌아가 보죠. 익히 알고 있듯 소크라테스에게는 결국 사형이 선고되고 그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그에게 도망칠 기회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죽마고우인 크리톤은 감옥에 갇힌 소크라테스를 찾아와 구출해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을 위한 충분한 돈이 있다고도 하죠.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친구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일장 연설을 늘어놓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보게. 우리가 이곳에서 도주할 —우리의 행위를 뭐라고 불러도 좋네—채비를 하고 있을 때 법률과 공동체가 다가와 우리를 막아서며 다음과 같이 묻는다고 가정해보세. ‘소크라테스, 말해보게. 그대는 무엇을 하려 하는가? 이런 일을 기도함으로써 그대는 있는 힘을 다해 우리 둘을, 즉 법률과 나라 전체를 파괴할 작정인가? 아니면 그대는 나라의 법정에서 선고된 판결이 아무 효력도 갖지 못하고 개인들에 의해 무효화되고 훼손된다면, 그런 나라가 전복되지 않고 존속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크리톤, 우리는 이런 질문이나 그와 같은 다른 질문들에 뭐라 답할 것인가?” 고집이 대단합니다. 이미 죽음을 결심했기 때문일지도요.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 남긴 유언으로 알려진 ‘악법도 법이다’는 말은 실제로 소크라테스가 한 적이 없다고 하는데, 아마 여기서 와전된 것으로 보이네요. 소크라테스는 죽음으로써 자기가 신봉했던 진리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 진리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소크라테스는 진리가 무엇인지 시원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저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고만 말합니다. 지독한 아이러니인데요. 이 아이러니는 후대에 많은 영감을 줬습니다. 독일 낭만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슐레겔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죠. 만약 소크라테스가 크리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요. 감옥에서 탈출해 멀리 도망쳐 목숨을 부지했다면 어땠을까요. 오래오래 살아서 좋은 생각과 글을 많이 남겼다고 가정해 봅시다. ‘멋’(!)은 조금 없지만,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 그런 게 중요할 리 없습니다. 오히려 소크라테스라는 사람의 면모가 더 풍성하게 기록되어 우리에게 더 많은 통찰과 영감을 줬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단순히 멋이 없어서, 영웅적이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자기가 했던 말을 진리로 만들었습니다. 그가 죽지 않고 살았다면, 그가 재판정에서 했던 변론이 지금 우리에게까지 남아서 읽힐 이유가 없습니다. 세상에 억울한 죄수는 소크라테스가 아니더라도 수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진리 그 자체’가 됐습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변론을 뒤로하고 소크라테스는 죽음으로 뚜벅뚜벅 걸어갔습니다. 그 비장한 연설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습니다.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죽으러 가고, 여러분은 살러 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나은 운명을 향해 가는지는 신 말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렌고쿠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 직전의 순간, 아카자의 제안을 받아들여 혈귀가 됐다면, 아마 원작자인 고토게 코요하루 작가는 독자들로부터 비난과 원성을 들어야 했을지도요. 하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렌고쿠는 꼭 그 자리에서 죽어야 했던 거죠. 아카자와 혈투를 벌이며 죽어가면서도 윤리적 신념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습니다. 그래야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주인공 카마도 탄지로와 친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삶은, 죽음으로만 의미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영웅은 역사에나, 문학에나 있는 것입니다.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우리가 인류의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처럼, 만화 등장인물일 뿐인 렌고쿠처럼 숭고한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기간을 최대한 연장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선(善)입니다. 인간이 이성으로 이룩한 과학의 문명은 오늘도 그것을 위해 열심히 분투하고 있죠. 또, 중요한 건 대부분의 우리 곁에는 플라톤처럼 나의 죽음을 멋지고 아름답게 기록해 줄 사람도 드뭅니다. 나의 죽음을 가슴 깊은 곳에 새기고 그 의지를 이어 나갈 탄지로 같은 사람은 더더욱 없겠죠. 하지만 삶보다도 숭고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 우리에게는 죽음으로만이 도달할 수 있는 어떤 경지가 있으며, 그것이 우리를 ‘인간’이게끔 한다는 것. 어쩌면 이걸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따라서 읽다 보니 이런 구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제발 야유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소크라테스는 변론 중 이런 말을 합니다. 재판정이 무척 시끄러웠나 보죠. 소크라테스가 하는 말의 논지와는 그리 상관없는 말처럼 보입니다. 플라톤은 왜 이런 말까지 적었을까요? 플라톤의 의중을 파고드는 건 제 영역 밖의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말보다 더욱 시끄러웠을 재판정의 야유는 결코 소크라테스의 말을 집어삼키지 못했다는 것. 결국 살아남아 우리에게 유구히 읽히는 글은 (플라톤이 기록한) 소크라테스의 말이라는 것. 당시 그 재판장의 야유와 웅성거림은 지금 우리에게 들리지 않습니다. 무슨 소리로, 어떻게 야유했는지도 알 수 없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생각합니다. 아마 당시의 아테네보다 몇천 배, 몇만 배는 더 시끄러울 겁니다. 그 모든 소음 속에서도 끝끝내 살아남는 건 누구의 말과 글일까요.
  • 로맨스 스캠의 덫 걸린 대학생, ‘연인의 구원자’ 자처하며 사채까지 손 뻗어 [파멸의 기획자들 #20~24]

    로맨스 스캠의 덫 걸린 대학생, ‘연인의 구원자’ 자처하며 사채까지 손 뻗어 [파멸의 기획자들 #20~24]

    서울신문 나우뉴스는 ‘사기공화국’ 대한민국에 경종을 울리고자 르포 소설 ‘파멸의 기획자들’을 연재합니다. 우리 사회를 강타한 실제 가상화폐 사기 사건을 나한류 작가가 6개월 가까이 취재·분석해 소개합니다. 독자 여러분께 ‘사기를 피하는 바이블’이자 정부가 범죄에 더 엄하게 대응하도록 촉구하는 ‘여론 환기’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제보자와 피해자 보호를 위해 사건 속 인물과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 등은 모두 가명 처리했습니다. 대전에 사는 ‘만년 졸업반’ 성진은 더 이상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가리지 않고 면접장을 전전하는 다른 친구들처럼 살지 않아도 된다고 확신했다. 길고 지루했던 취업 스트레스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됐다. 그간 해오던 모든 아르바이트도 단칼에 끊었다. 그는 지금 가상화폐 선물 거래와 이성조 교수의 ‘기적의 리딩’에 푹 빠져 있었다. 알바 일로 모은 1000만원의 종잣돈으로 매일 저녁 이 교수의 신호를 착실하게 따라갔고, 놀랍게도 일주일 만에 200만원이라는 수익을 거뒀다. 그의 가슴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벅차올랐다. ‘겨우 1000만원으로 한 달 800만원 수익이면…’ 성진의 머릿속은 이미 계산기 소리로 가득 찼다. 어지간한 회사의 임원도 부럽지 않은 액수였다. 임원은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감에 새벽같이 출근하고 밤늦게까지 일하지만, 자신은 가끔씩 30분도 안 되는 시간만 스마트폰에 투자하면 됐다. 출근길에 마주치는 사람들의 잿빛 얼굴을 보며 묘한 우월감을 느낄 수 있었다. 쥐꼬리만한 월급을 벌기 위해 죽은 사람처럼 무표정하게 걸어가는 이들을 보며 성진은 그 속에서 홀로 살아있는 듯한 기분을 만끽했다. 그날 오후 손가락을 튕겨서 IEKAF 거래소 앱에서 200만원 넘는 수익금을 출금 신청했다. 다음 날 아침 10시쯤 휴대폰에 ‘입금 완료’ 알림이 떴다. 그런데 통장에 찍힌 금액은 예상했던 것보다 5만원 정도 더 많았다. 그 사이에 달러화 환율이 올라간 덕분이란다. 성진은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렸다. 집 근처 은행 ATM으로 달려가 한 달 생활비를 뺀 나머지를 모두 5만원권으로 인출했다. 지폐 뭉치가 손에 쥐어지자, 지갑이 퉁퉁하게 부풀어 올랐다. 살면서 지갑이 접히지 않을 정도로 많은 돈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빳빳한 신권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세상을 다 가진 듯 황홀한 기분이었다. 그는 설명할 수 없는 충동에 이끌려 얼마 전까지 아르바이트했던 시내 중식당을 찾아갔다. “어서 와, 성진아! 잘 지내고 있지?” 사장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진은 가볍게 인사한 뒤 자신을 대신해 들어온 새 알바생에게 해삼동파육과 백주 한 병을 주문했다. 그는 혼자 테이블에 앉아 한 번도 시켜본 적 없던 고급 메뉴를 즐겼다. 땀을 뻘뻘 흘리며 서빙하는 신참 알바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몇 달 전 자신을 보는 듯해 묘한 기분에 젖었다. ‘저 친구도 학비 벌려고 고생이 많구나. 조만간 이성조 교수를 소개해줘야겠네.’ 성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그의 머릿속에는 ‘슈퍼리치’가 돼 대학생 선물 리딩을 이끌며 그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자신의 모습이 펼쳐졌다. 하지만 그날 저녁, 성진의 가슴은 순식간에 차가운 돌덩이처럼 식었다. 이 교수가 텔레그램 채팅방을 4개의 팀으로 나눈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한 것이다. 성진의 투자금으로는 가장 낮은 등급인 ‘예비클럽’(최소 5만 달러·약 7000만원)에도 들어갈 수 없었다. 희망으로 가득 찼던 가슴은 좌절감에 짓눌렸다. 그는 곧바로 김가영 비서에게 절박한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다. “비서님, 안녕하세요. 교수님께서 투자금액으로 팀을 나누신다고 하셨는데, 저는 겨우 1000만원밖에 없어서 어느 클럽에도 갈 수 없어요. 게다가 아직 학생이라서 다른 곳에서 돈을 구하기도 힘듭니다. 이제 저 같은 사람은 교수님과 함께할 수 없는 건가요?” 그의 메시지에는 이 교수에게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가득했다. 곧이어 김가영 비서에게 답장이 왔다. “학우님, 안녕하세요. 성진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저도 잘 알아요. 교수님과 제가 팀을 나눈 건 각 팀별로 투자금의 10배를 빠르게 확보할 맞춤형 전략을 짜기 위해서예요. 학우님들마다 경제적 사정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하나의 전략으로 다같이 경제적 자유에 도달하려면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거든요.” 그녀가 교묘하게 이 교수의 행동을 합리화하며 성진의 마음을 달랬다. “일단 학우님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분들이 얼마나 더 있는지 확인해보고 교수님과 상의해서 대안을 마련할게요.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고 기다려주시겠어요?” 성진은 답답한 마음에 밖으로 나섰다. 어두운 골목길을 정처 없이 걸으며 복잡한 생각에 잠겼다. 편의점에서 습관처럼 생수 묶음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에 넣는 순간, 스마트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김가영 비서였다. “학우님,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지금 당장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조만간 방법을 찾아주시기로 하셨어요. 교수님은 학우님 한 분 한 분을 소중히 여기시기 때문에 절대 성진님을 외면하지 않으실 거예요.” 이어지는 메시지는 꺼져가던 성진의 희망을 다시 불타오르게 했다. “이와 별도로 몇 달 전 한 학우님의 제안으로 대학생들만을 위한 별도의 채팅방이 개설돼 있다는 건 알고 계셨나요? 함께 공부하고 정보도 교환하는 곳이죠. 교수님과 저도 그 채팅방에 들어가 있어요. 가끔 교수님께서 학생들을 위해 눈높이 투자 교육도 해주신답니다. 일단 학우님을 그 채팅방에 초대해 드릴게요.” ‘교수님이 나를 외면하지 않으셨구나!’ 성진은 그제야 몸에서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꺼져가던 희망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그는 이제 사기꾼들이 파놓은 ‘대학생 전용방’이라는 더 깊고 은밀한 덫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성진은 김가영 비서가 보내준 텔레그램 링크를 타고 단체 체팅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15명 남짓한 대학생 회원들이 활발하게 지식을 나누는 ‘MZ들의 세상’이었다. 처음 며칠간 성진은 투명 인간처럼 조용히 상황을 지켜봤다. 이들의 전문적이고 수준 높은 대화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특히 이성조 교수의 강의 시간에는 각자 수업 내용에 대한 날카로운 평가와 함께 현 정부 경제 정책에 대한 찬반 의견을 끊임없이 쏟아냈다. 성진에게 이 공간은 ‘미래의 슈퍼리치’를 위한 인재 양성소처럼 느껴졌다. 국내 증시가 마감한 오후 3시 30분부터 이 교수의 저녁 강의가 시작되는 7시 30분까지 이곳 채팅방은 후끈 달아오르곤 했다. 몇몇 회원은 그 시간을 활용해 개인적으로 선물 거래 투자 종목과 수익률을 공유했다. 성진은 점점 이 공간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여기서 열심히 배우면 언젠가 교수님 없이도 전업 투자자로 성공할 수 있겠어.’ 돈 걱정 없는 신나는 삶이 눈앞에 그려졌다. 이 채팅방이야말로 ‘만년 졸업반’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자유인’이 되기 위한 최적의 길이라고 믿었다. 그는 용기를 내 대화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가끔 엉뚱한 의견을 내 지적을 받으면 얼굴이 벌개졌다. 하지만 가끔 설득력 있는 경제 예측 논리를 제시해 “오빠, 정말 대단하다!”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이 ‘인정’은 취업 전선에서 거듭된 실패로 무너졌던 그의 자존심을 조금씩 회복시켜 주었다. 대학생 채팅방에 가입한 지 일주일쯤 지난 토요일 오후, 성진은 침대에서 넷플릭스를 보며 무료함을 달래고 있었다. 그때 낯선 이름의 텔레그램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성진… 오빠?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서 그냥 오빠라고 할게요. 저는 같은 대학생 채팅방에 있는 주다인이라고 해요.” 성진의 심장이 망치로 얻어맞은 듯 두근거렸다. 넷플릭스를 끄고 채팅방 목록을 확인해보니, 정말로 동명의 회원이 있었다. 프로필 사진 속 그녀는 눈부신 미인이었다. 서울 J대 앞에서 찍은 듯한 사진 속에서 그녀는 긴 생머리에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성진은 무의식적으로 자세를 고쳐 앉고 상대를 직접 보고 있는 듯한 긴장감을 품고 답장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다인님. 주말 잘 지내고 계시죠. 무슨 일이신가요?” 지체없이 그녀의 답장이 돌아왔다. “실은… 어제 오빠가 이야기한 금리 변화 예측 가설에 크게 감명받았어요. 안 그래도 그 주제로 레포트를 써야 했는데, 그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애를 먹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오빠가 이야기한 내용을 듣고 논리의 퍼즐이 완벽하게 맞춰졌고 덕분에 오늘 아침 레포트를 제출할 수 있었어요.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연락했어요. 쉬고 계시는데 제가 방해가 됐나요?” 성진은 자신의 지식이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됐다는 사실에 큰 기쁨을 느꼈다. “아뇨, 방해가 되긴요. 제가 도움을 드렸다니 다행이네요. 오히려 이렇게 연락을 주셔서 제가 더 고마운데요.” 그녀는 성진을 ‘매너 좋은 오빠’라고 칭찬하며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두 사람은 늦은 밤까지 SNS로 대화를 이어갔다. 성진은 자신이 고등학교 시절 J대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실패했고 지금은 대전에서 자취 생활을 하고 있어 외롭다는 이야기를 털어놨다. 충남 천안 출신으로 올해 스물 두 살이라는 다인도 금융 투자에 관심이 많아 대학을 졸업하고 여의도에서 일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날 무엇보다 성진의 마음을 강하게 흔든 건, 현재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얼마 전 전 남친과 군 입대를 계기로 헤어졌는데, 다인은 그간 교제에서 갈등이 많아 꽤나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상형은 ‘지적인 남자’라고 강조했다. 그날 이후, 성진과 다인은 매일 저녁 이성조 교수의 강의가 시작될 때 서로 연락해서 참석 여부를 확인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강의가 끝난 뒤에도 1~2시간가량 SNS로 쉬지않고 소통했다. 성진은 밤새 그녀와 대화하고 싶었지만, 다인은 그때마다 “아침 일찍 강의가 있다”며 남은 이야기를 다음으로 미루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인에게서 성진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는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오빠는 제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 제일 똑똑한 것 같아요.” 성진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취업 스트레스로 고립돼 있던 그에게, 다인의 ‘인정’과 ‘관심’은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유혹이었다. 이제 그는 슈퍼리치가 돼 ‘지적인 남자’가 이상형이라는 다인과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날 밤 성진은 심장 안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천둥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오빠는 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 제일 똑똑한 사람”이라는 다인의 메시지가 그의 머릿속을 수백 번 맴돌았다. ‘그녀가 나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돌려서 한 것일까?’ 밤새도록 온갖 가능성을 고민했지만, 섣불리 고백했다가 어색한 사이가 될까 두려웠다. 취업 전선에서 실패를 거듭하며 그의 자존심이 바닥으로 떨어진 터라 다인과의 관계만큼은 반드시 지켜내고 싶었다. 그래서 성진은 서점으로 향했다. 채팅방에서 투자와 경제 이야기만 나누다 보니 다인에게 다소 지루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고 우려해서다. 그녀의 이상형이라는 ‘지적인 남자’로 이미지 메이킹하고자 감성적인 에세이와 시집, 명언집을 닥치는 대로 샀다. 집에 돌아와 다인을 생각하며 여러 책들을 읽어 내려갔다. 그녀에게 들려주고 싶은 구절에 밑줄을 긋고 노트를 마련해 따로 적어놓았다. 그날 밤이었다. 10시를 훌쩍 넘겼지만 다인에게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다. ‘어제 그 메시지에 내가 너무 시큰둥하게 반응해서 기분이 상했나…’ 성진은 살짝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몰라 한참을 고민하다가, 스마트폰을 뒤져 친구 집에서 찍은 고양이 사진을 하나 골라서 보냈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동물 사진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끌어낼 요량이었다. 하지만 밤이 새도록 다인은 아무 반응도 없었다. 성진은 전화기를 손에 쥔 채 그녀를 기다리다 지쳐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늦잠을 잔 성진은 눈을 뜨자마자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전화기를 확인했다. 다행히도 다인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텔레그램을 열었지만, 곧바로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사진 속 고양이가 오빠처럼 귀여워요. 혹시 직접 키우는 냥이인가요? 나중에 꼭 직접 보고 싶어요… 그런데 당장은 어려울 것 같아요. 어제 학교에서 조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교통사고를 당했거든요. 지금 병원에 있어요.” ‘병원’이라는 두 글자가 그의 머릿속을 강타했다. 성진은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옷을 챙겨 입으며 다급하게 메시지를 보냈다. “다인아, 어느 병원이야? 몸은 괜찮아? 내가 지금 갈게.” 성진에게 그녀를 돌봐야 한다는 구원자 콤플렉스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아니예요, 오빠. 사고를 당했을 땐 너무 아파서 경황이 없었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경찰이 오토바이 뺑소니였다고 말해줬어요.” ‘뺑소니’라는 말에 성진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자신이 대신 다쳤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녀가 아프다는 사실보다, 혼자서 그 고통을 삼키고 있다는 게 그를 더 힘들게 했다. 이때 다인이 결정적인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근데 실은 지금 병원비가 모자라요. 교통사고 당했다고 하면 천안에 계신 부모님이 너무 걱정하실 것 같아서 연락 드릴수도 없고…” 다인도 성진과 함께 이성조 교수의 리딩방에 함께 있었다. 그녀 역시 이 교수의 리딩만 잘 따라갔으면 수백만원은 족히 벌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병원비가 필요하다는 다인의 말을 한 번쯤 의심해볼 법도 하지만 이미 그녀에게 푹 빠져 있던 성진은 이상한 점을 굳이 찾고싶지 않았다. 성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인에게 답장했다. “병원비는 내가 마련할게.” 그러자 다인은 교묘하게 이를 거절했다. “아니예요. 제가 있는 대학 동아리에 돈을 빌릴 수 있는 오빠가 있어요.” 다인이 ‘돈 많은 오빠’를 언급하자 성진은 죽기보다 싫은 굴욕을 느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경제적인 무능함을 보여선 안 된다는 허세와 질투심이 폭발했다. 그는 다인에게 병원비와 은행 계좌번호를 다그치듯 물었다. 몇 번을 거절하던 그녀는 결국 성진을 못 이기겠다는 듯 계좌번호를 알려줬다. “다인아, 그런데 예금주가 네 이름이 아니네?” “아, 이건 병원 사무장님 계좌예요. 그쪽으로 돈을 보내면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요.” 성진은 ‘사무장 계좌’, ‘할인 혜택’ 등 다소 터무니없는 이야기에도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이번 사고를 계기로 ‘돈 많은 오빠’와 더 가까워지는 걸 막고 싶었다. 성진은 병원 사무장이라는 남성의 계좌로 100만원을 송금했다. ‘만년 졸업생’인 성진에게 작은 금액이 아니었지만, 이 교수의 리딩 거래 한 번이면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그날 오후 다인에게서 퇴원했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말미에 ‘고마워요, 오빠가 최고예요’라는 글과 함께 키스 이모티콘이 붙어 있었다. 성진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이 작은 이모티콘 하나를 얻어내기 위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에게 100만원을 투척했다는 ‘불편한 진실’은 깨닫지 못한 채. 한술 더 떠 성진은 ‘고백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다가오는 토요일을 ‘디데이’로 정하고 준비에 나섰다. ‘일단 다인이에게 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서울로 찾아가서 직접 만나자. 반지와 명품 가방을 선물하면 그녀도 나에게 마음을 열거야.’ 그의 머릿속은 코인 거래로 벌어들일 천문학적 수익과, 그 돈으로 산 선물을 받고 기뻐할 다인의 얼굴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지금 다인의 병원비 100만원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위험한 도박을 이어가고 있었다. 마침내 고백을 준비해온 토요일 오후가 왔다. 성진은 다인에게 보낼 문자 메시지를 한 글자 한 글자, 시를 쓰듯 정성스럽게 다듬었다. ‘반지와 명품 가방을 사줄 다정한 남자친구’로서의 완벽한 모습을 상상하자 그의 심장이 벅차올랐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빠, 방금 이성조 교수님이 대학생 단체방 방장 오빠한테 선물 거래 따라오겠냐고 제안하셨대요. 방장 오빠가 저도 동참하겠냐고 물어보네요. 오빠, 우리 같이 할까요?” ‘우리 같이’라는 다인의 말에 성진은 이성적인 판단이 마비됐다. 두말할 것 없이 함께 하겠다고 답했다. 이번에 번 돈으로 그녀에게 줄 선물을 구입하기로 마음 먹었다. 10분쯤 뒤 이 교수가 직접 보낸 듯한 매수 신호가 다인을 통해 전달됐다. “대상: PALQ, 배율: 100X, 비중: 20%.” 성진은 흥분감에 취해서 망설임 없이 매수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PALQ 가격은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수직 낙하하기 시작했다. 손쓸 틈도 없이 그의 선물 계좌는 마이너스로 바뀌었다. “오빠! 큰일 났어요. 저 망한 것 같아요.” 성진은 다인의 메시지에 아무 답도 하지 못하고 스마트폰 화면만 바라봤다. 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다인에게 온 다음 메시지가 충격적인 진실을 전했다. “오빠, 우리 방금 강제 청산 당했대요. 알고 보니까 이번 신호는 교수님 지시가 아니라 방장 오빠가 직접 리딩을 해보고 싶어서 거짓으로 낸 것이었대요. 조금 전 방장 오빠는 계정을 폐쇄하고 사라졌대요. 대학생 방에 있던 다른 언니도 청산당했다고 연락이 왔어요.” 성진은 자신이 아르바이트로 모아둔 1000만원을 순식간에 날렸다는 사실보다 다인에게 로맨틱하게 고백할 기회를 놓쳤다는 현실에 더 크게 낙담했다. ‘강제 청산’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봤기에, 이게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다인아, 잠깐만. 내가 다시 연락할게.” 성진은 다인에게 짧은 메시지를 남기고 김가영 비서에게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다. 대학생방 방장이 이 교수 지시를 사칭해서 회원 몇 명과 함께 선물 거래를 하다가 모두 강제 청산당했다고 설명했다. 김 비서의 답장은 이미 준비된 각본처럼 유려했다. “큰일이네요. 작년에도 어떤 대학생이 그런 식으로 교수님 행세를 하다가 몇몇 학우에게 피해를 준 적이 있었는데, 올해도 같은 일이 벌어졌어요. 실력이 영글지 않은 친구가 교수님의 명성을 빌려서 자신의 권능을 과시하려다가 결국 사달이 났네요.” 그녀는 이번 사태의 책임이 ‘사칭범’에게 있음을 강조한 뒤 다음의 메시지를 전했다. “일단 교수님께 바로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심장 질환이 있는 교수님께서 올해도 똑같은 일이 또 벌어졌다는 걸 알게 되면 큰 충격을 받고 쓰러지실 수도 있어서요. 제가 상황을 봐서 천천히 말씀드릴게요.” 이제 성진은 ‘스승’의 건강까지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일단 IEKAF 거래소 앱을 켰다. 그동안 모아둔 돈이 모두 사라지고 ‘-300 USDT’(약 –42만원)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강제 청산’이 무엇인지, 선물 계좌가 어떻게 마이너스가 되는지를 알아보려고 스마트폰을 검색하려는 순간, 다인에게 텔레그램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빠… 저 어떻게 해요… 방금 아빠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대요. 지금 급하게 천안으로 가는 중이예요.” 그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다인과의 연락이 완전히 끊겼다. 이후 며칠 동안 텔레그램 메시지를 수도 없이 보냈지만, 그녀는 하나도 읽지 않았다. 성진은 어두운 방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전화기만 바라보는 폐인이 되어갔다. 그녀가 잠적한 지 4일째 되던 날, 마침내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오빠… 많이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아빠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셔서 급하게 수술을 받았어요. 수술 후에도 의식이 없으셔서 계속 울면서 기다렸는데, 다행히 오늘 아침에 눈을 뜨셨어요. 큰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하니 오빠 생각이 밀려왔어요. 그 사이에 저한테 이렇게나 많이 연락을 주셨네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요 며칠 제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정말 미안해요.” 성진은 다인이 자신에게 연락했다는 안도감과, 자신이 그녀의 ‘유일한 구원자’가 되겠다는 환상 속에 빠져 있었다. 투자금이 녹아 없어진 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유일한 꿈은 어려움에 처한 다인을 도와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는 것 뿐이었다. 다인의 연락을 받은 성진의 몸은 배터리에 전기가 100% 충전된 것처럼 활기로 넘쳤다.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어둠 속에서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는 자신이 다인의 사랑 덕분에 새로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코인 선물 거래로 잃어버린 1000만원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유일한 임무는 다인을 행복하게 지켜주는 것이었다. 성진은 자신감을 갖고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빠는 네가 돌아와서 너무 기뻐. 아버님이 깨어나셔서 정말 다행이야. 혹시 내가 도와줄 일은 없을까? 꼭 알려줘. 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고 싶어.” 그의 문장에는 다인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이 듬뿍 담겨 있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성진에게 뭔가 바라는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아니에요, 오빠. 대부분 문제가 순조롭게 풀렸어요. 이제 아빠 수술비만 해결하면 돼요.” 성진은 ‘수술비’라는 한 단어를 놓치지 않았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느꼈다. “수술비? 얼마나 들어가는데?” 다인은 깊은 한숨을 쉬는 듯한 이모티콘을 보내며 답했다. “아빠가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셔서 1000만원 정도는 들어갈 것 같아요. 며칠 전 코인 거래에서 강제 청산만 당하지 않았어도 바로 해결할 수 있었는데… 고모들이 다들 아빠 일을 모른 척해서 저도 무척 답답해요.” 아빠에게 보험이 없고 고모들까지 병원비 문제를 외면한다는 다인의 절망적 이야기는 성진의 ‘구원자 콤플렉스’를 극한으로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 그는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해졌다. “다인아, 걱정 마. 오빠가 해결해 줄게.” 성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오빠, 무슨 말이에요. 그러지 말아요. 저번에 제 병원비도 대신 내줬잖아요. 오빠도 투자금을 모두 잃어서 형편이 여의치 않을텐데요.” 다인의 걱정 어린 우려가 성진의 허세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다인 앞에서 결코 무능력한 남자로 보여선 안 됐다. “다인아, 오빠를 믿는다면 하루만 기다려줘. 내가 다 해결할 수 있어. 아버님 수술비도 네 투자금도 모두 해결한 테니 딱 하루만 기다려.” 성진은 다인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보내고 원룸의 불을 켰다. 며칠간 어둠 속에 갇혀 있던 공간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다인의 사랑을 얻을 수만 있다면 당장 수천만원의 돈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욕실로 들어가 찬물로 샤워를 하고 거울 앞에 섰다. 옷장에서 가장 좋은 옷을 꺼내 입었다. 다인을 만날 때 입으려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미리 사둔 가장 비싸고 세련된 옷이었다. 거울 속 성진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는 굳게 닫혔던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휴대폰을 검색해서 오래 전 저장해 둔 ‘김관조(우성캐피탈)’를 찾았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다인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이 미치자 마법처럼 두려움이 사라졌다. “사장님, 전에 만났던 연수 친구 성진이라고 합니다. 연수가 대출 받으려고 사무실 찾아갔을 때 같이 만났던…” “아, 네…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관조는 어렴풋하게나마 성진을 기억하는 듯했다. 성진이 말을 이어갔다. “그때 사장님께서 저한테도 ‘돈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전화 드렸어요. 지금 돈이 필요해서요.” “예, 긴급 대출은 이자가 좀 쎈데 괜찮으시겠어요?” 성진은 이자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아, 괜찮습니다. 금방 해결할 수 있어요. 당장 3000만원이 필요한데 가능할까요?” “그럼요. 사무실에 오셔서 몇 가지 정보만 제공해 주시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지금 바로 출발할게요. 택시로 20분 정도면 갈 수 있습니다.” 성진은 대출을 받아 다인이 부친의 수술비(1000만원)와 그녀가 청산당한 투자금(1000만원), 그리고 자신이 선물 거래로 날린 돈(1000만원)까지 한꺼번에 해결할 생각이었다. 캐피탈 업체에서 빌린 3000만원이 적은 액수는 아니지만 이성조 교수의 리딩만 잘 따라가면 오래지않아 갚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가 몰랐던 충격적인 사실이 하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목숨과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소중한 여인 주다인이 실제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성진은 스스로를 ‘다인의 위대한 구원자’라고 믿으며, 사채의 세계에도 발을 담그고 있었다.
  • 긴 추석 연휴, 새해 트렌드 공부에 나섰네 [금주의 베스트셀러]

    긴 추석 연휴, 새해 트렌드 공부에 나섰네 [금주의 베스트셀러]

    오랜만에 만난 긴 추석 연휴에 독자들은 다가올 2026년 새해 트렌드와 각종 투자 공부를 위한 ‘경제경영서’를 찾았다. 교보문고가 10일 발표한 ‘2025년 10월 1주간 베스트셀러 동향’에 따르면 매년 이맘때쯤 발간되는 ‘트렌드 코리아 2026’이 2주 연속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추석 연휴 기간, 경제와 트렌드 전망서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이어지면서 ‘머니 트렌드 2026’도 종합 5위를 유지했고, 송길영 작가의 ‘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은 1계단 상승한 종합 6위에 올랐다. ‘박곰희 연금 부자 수업’이 3계단 상승한 종합 베스트셀러 15위, ‘ETF 투자의 모든 것’이 20계단 상승한 종합 23위에 오르면서 재테크 관련 지식을 쌓으려는 움직임도 눈에 띄었다.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에 경제·경영과 재테크 분야 책이 4권이나 이름을 올렸다. 구병모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절창’과 어린이 만화 ‘흔한남매 20’,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 대행의 에세이 ‘호의에 대하여’ 등 추석 연휴 전부터 주목받았던 베스트셀러 상위권 책들에 관한 관심은 계속 이어졌다. 지난해 10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줄곳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절반 이상을 소설이 차지했지만, 1년이 지나면서 다소 힘이 빠져 10위권 내에 소설책은 3권만 남았다. 한편, 긴 연휴를 맞아 어린이 분야 베스트셀러들의 상승이 두드러졌다. ‘흔한남매’ 캐릭터 콘텐츠뿐만 아니라 ‘에그박사 16’, ‘타키 포오 코믹 어드벤처 9’ 등 유튜브 콘텐츠 시리즈에 인기가 이어졌다. ‘이탈리안 브레인롯 슈퍼도감’은 20계단 상승한 종합 26위에 올랐다. 청소년 독자들은 청소년 소설에 관한 관심을 보였다. 종합 38위, 청소년 분야 1위를 차지한 이꽃님 작가의 ‘내가 없던 어느 밤에’, 분야 10위권 내 ‘죽이고 싶은 아이’,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등 5종이 올라 청소년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고 있다. 또 백은별 작가의 ‘시한부’, ‘윤슬의 바다’도 전주 대비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가 크게 상승했다.
  • ‘구원자 콤플렉스’ 폭발한 취준생, ‘로맨스 스캠’에 빠져 더 깊은 늪으로 [파멸의 기획자들 #22]

    ‘구원자 콤플렉스’ 폭발한 취준생, ‘로맨스 스캠’에 빠져 더 깊은 늪으로 [파멸의 기획자들 #22]

    서울신문 나우뉴스는 ‘사기공화국’ 대한민국에 경종을 울리고자 르포 소설 ‘파멸의 기획자들’을 연재합니다. 우리 사회를 강타한 실제 가상화폐 사기 사건을 나한류 작가가 6개월 가까이 취재·분석해 소개합니다. 독자 여러분께 ‘사기를 피하는 바이블’이자 정부가 범죄에 더 엄하게 대응하도록 촉구하는 ‘여론 환기’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제보자와 피해자 보호를 위해 사건 속 인물과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 등은 모두 가명 처리했습니다. 그날 밤 성진은 심장 안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천둥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오빠는 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 제일 똑똑한 사람”이라는 다인의 메시지가 그의 머릿속을 수백 번 맴돌았다. ‘그녀가 나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돌려서 한 것일까?’ 밤새도록 온갖 가능성을 고민했지만, 섣불리 고백했다가 어색한 사이가 될까 두려웠다. 취업 전선에서 실패를 거듭하며 그의 자존심이 바닥으로 떨어진 터라 다인과의 관계만큼은 반드시 지켜내고 싶었다. 그래서 성진은 서점으로 향했다. 채팅방에서 투자와 경제 이야기만 나누다 보니 다인에게 다소 지루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고 우려해서다. 그녀의 이상형이라는 ‘지적인 남자’로 이미지 메이킹하고자 감성적인 에세이와 시집, 명언집을 닥치는 대로 샀다. 집에 돌아와 다인을 생각하며 여러 책들을 읽어 내려갔다. 그녀에게 들려주고 싶은 구절에 밑줄을 긋고 노트를 마련해 따로 적어놓았다. 그날 밤이었다. 10시를 훌쩍 넘겼지만 다인에게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다. ‘어제 그 메시지에 내가 너무 시큰둥하게 반응해서 기분이 상했나…’ 성진은 살짝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몰라 한참을 고민하다가, 스마트폰을 뒤져 친구 집에서 찍은 고양이 사진을 하나 골라서 보냈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동물 사진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끌어낼 요량이었다. 하지만 밤이 새도록 다인은 아무 반응도 없었다. 성진은 전화기를 손에 쥔 채 그녀를 기다리다 지쳐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늦잠을 잔 성진은 눈을 뜨자마자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전화기를 확인했다. 다행히도 다인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텔레그램을 열었지만, 곧바로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사진 속 고양이가 오빠처럼 귀여워요. 혹시 직접 키우는 냥이인가요? 나중에 꼭 직접 보고 싶어요… 그런데 당장은 어려울 것 같아요. 어제 학교에서 조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교통사고를 당했거든요. 지금 병원에 있어요.” ‘병원’이라는 두 글자가 그의 머릿속을 강타했다. 성진은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옷을 챙겨 입으며 다급하게 메시지를 보냈다. “다인아, 어느 병원이야? 몸은 괜찮아? 내가 지금 갈게.” 성진에게 그녀를 돌봐야 한다는 구원자 콤플렉스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아니예요, 오빠. 사고를 당했을 땐 너무 아파서 경황이 없었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경찰이 오토바이 뺑소니였다고 말해줬어요.” ‘뺑소니’라는 말에 성진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자신이 대신 다쳤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녀가 아프다는 사실보다, 혼자서 그 고통을 삼키고 있다는 게 그를 더 힘들게 했다. 이때 다인이 결정적인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근데 실은 지금 병원비가 모자라요. 교통사고 당했다고 하면 천안에 계신 부모님이 너무 걱정하실 것 같아서 연락 드릴수도 없고…” 다인도 성진과 함께 이성조 교수의 리딩방에 함께 있었다. 그녀 역시 이 교수의 리딩만 잘 따라갔으면 수백만원은 족히 벌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병원비가 필요하다는 다인의 말을 한 번쯤 의심해볼 법도 하지만 이미 그녀에게 푹 빠져 있던 성진은 이상한 점을 굳이 찾고싶지 않았다. 성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인에게 답장했다. “병원비는 내가 마련할게.” 그러자 다인은 교묘하게 이를 거절했다. “아니예요. 제가 있는 대학 동아리에 돈을 빌릴 수 있는 오빠가 있어요.” 다인이 ‘돈 많은 오빠’를 언급하자 성진은 죽기보다 싫은 굴욕을 느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경제적인 무능함을 보여선 안 된다는 허세와 질투심이 폭발했다. 그는 다인에게 병원비와 은행 계좌번호를 다그치듯 물었다. 몇 번을 거절하던 그녀는 결국 성진을 못 이기겠다는 듯 계좌번호를 알려줬다. “다인아, 그런데 예금주가 네 이름이 아니네?” “아, 이건 병원 사무장님 계좌예요. 그쪽으로 돈을 보내면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요.” 성진은 ‘사무장 계좌’, ‘할인 혜택’ 등 다소 터무니없는 이야기에도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이번 사고를 계기로 ‘돈 많은 오빠’와 더 가까워지는 걸 막고 싶었다. 성진은 병원 사무장이라는 남성의 계좌로 100만원을 송금했다. ‘만년 졸업생’인 성진에게 작은 금액이 아니었지만, 이 교수의 리딩 거래 한 번이면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그날 오후 다인에게서 퇴원했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말미에 ‘고마워요, 오빠가 최고예요’라는 글과 함께 키스 이모티콘이 붙어 있었다. 성진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이 작은 이모티콘 하나를 얻어내기 위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에게 100만원을 투척했다는 ‘불편한 진실’은 깨닫지 못한 채. 한술 더 떠 성진은 ‘고백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다가오는 토요일을 ‘디데이’로 정하고 준비에 나섰다. ‘일단 다인이에게 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서울로 찾아가서 직접 만나자. 반지와 명품 가방을 선물하면 그녀도 나에게 마음을 열거야.’ 그의 머릿속은 코인 거래로 벌어들일 천문학적 수익과, 그 돈으로 산 선물을 받고 기뻐할 다인의 얼굴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지금 다인의 병원비 100만원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위험한 도박을 이어가고 있었다. (23회로 이어집니다. 사기 피해 예방과 범인 검거를 위해 많은 이들과 기사를 공유해 주세요.)
  • 내년 지방선거 앞두고…서울 구청장들 ‘출판기념회’ 러시

    내년 지방선거 앞두고…서울 구청장들 ‘출판기념회’ 러시

    종로·양천·서초 등 신간 출간“출판기념회서 구청장 인기도 가늠” 서울 구청장들이 최근 잇따라 신간 출간과 함께 출판기념회를 열고 있다. 대부분 초선 구청장들이 책을 출간하고 있어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사실상의 정치행보로 풀이된다. 7일 서울 자치구들에 따르면 전성수 서초구청장이 지난 8월 29일 양재aT센터에서 ‘전성수의 화답’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는 등 구청장들이 책을 출간하고 있다. 전 구청장의 자전 에세이인 신간은 그의 구정 경험과 철학을 담고 있다. 출판사 측은 책 제목인 ‘전성수의 화답’은 ‘행정은 경청하고 잘 응답하는 것’이라는 전 구청장의 지향점을 의미한다고 소개했다. 정문헌 종로구청장은 지난달 17일 광화문 교보문고빌딩에서 북콘서트 형식의 출판기념회를 열고 ‘인간은 노동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신간을 소개했다. 자치구청장이 쓴 책으로는 드물게 인공지능(AI) 시대라는 거대한 전환기를 둘러싼 철학적 난제들을 책의 소재로 삼았다. 이기재 양천구청장은 같은달 23일 양천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도시를 달린다, 도시가 말한다’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그의 신간은 마라톤 풀코스를 21회 완주한 러너이자 도시공학 전문가로서 정체성을 담았다는 게 지역 정가의 평가다. 아울러 지난 7월에는 이성헌 서대문구청장이 ‘서대문의 새벽을 여는 일꾼’ 출판기념회를, 김길성 중구청장은 ‘서울의 심장을 움직이다’ 출판기념회를 각각 열고 그동안 구정의 성과를 공유했다. 이들 구청장들은 초선으로 민선 8기에 입성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다시 주민들의 선택을 받기 위한 ‘바닥다지기’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출판기념회에 얼마나 많은 주민이 찾아왔는지 등 현장 분위기를 보면 해당 구청장에 대한 실제 민심이 어느 정도인지도 가늠할 수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다른 초선 단체장들도 조만간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지역정가의 한 관계자는 “올해가 지나면 곧바로 지방선거 시즌이나 다름없다”며 “다소 이른 감은 있지만 출판기념회는 사실상의 비공식 출정식인 셈”이라고 귀띔했다.
  • [책꽂이]

    [책꽂이]

    사소한 인류(이상희 지음, 김영사) 한국 최초의 고인류학자이자 미국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대 인류학과 종신교수, 고인류학계 거장 등의 수식어를 단 저자의 에세이. 1980년대 유학 간 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며 인종, 성, 계급을 곱씹었다. 아시아인 혐오 행동을 하는 이웃, 청바지를 입으면 교내 청소부로 오해하는 교직원 등에게서 낯선 시선을 느꼈다. 소수인종 여성들이 닦아 놓은 길을 따라가며 후배들에게는 새로운 길을 터주었다. 고인류의 흔적으로 삶을 추적하던 저자는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며 인간다움, 존재의 의미를 유쾌하고 날카롭게 풀어놓는다. 260쪽, 1만 7800원. 횡단 한국사(장석봉 지음, 궁리) 5년간 기획하고 3년간 집필해 1901년부터 한반도의 121년 역사를 살폈다. 대한제국 시기(1901~1910), 일제강점기(1910~1945), 미 군정기(1945~1948), 대한민국(1948~2021)까지 네 시기로 나눠 한국사와 세계사를 직관적이고 간결하게 담았다. 주요 사건, 소소한 일상 등을 보여 주는 사진 500여장을 배치하고 대통령과 산업 재해, 한국 영화 등 14개 인포그래픽을 만들어 넣었다. 사진으로 보는 역사 다큐멘터리로 볼 만하다. 372쪽, 5만 5000원. 인구절벽 너머의 미래(이현출 지음, IMK) 한국은 가장 빠르게 늙고, 가장 적게 아이를 낳는 나라가 됐다. 합계출산율 0.7, 고령화율 20% 돌파라는 인구 격변은 단지 출산과 고령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노동시장, 복지 제도, 안보 시스템, 지역 공동체까지 모든 분야의 구조 전환에 영향을 미친다. 책은 인구 구조 변화와 파장을 냉철하게 진단하고, 인구 문제를 넘어서서 정의로운 전환, 세대 간 연대, 새로운 사회계약이라는 키워드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설계할 방향을 제시한다. 264쪽, 1만 6000원. 클래식을 읽는 시간(김지현 지음, 더퀘스트) KBS 클래식FM의 프로그램 ‘출발 FM과 함께’의 한 코너에 소개된 내용들을 추렸다. “곡의 작품 번호는 누가 어떻게 붙이나요”, “같은 곡에 카덴차가 두 가지라는데 누가 만들어서 연주하나요”, “박수는 언제 치죠” 같은 클래식 음악의 기본 교양을 폭넓게 알려 준다. 각 꼭지에 주제와 관련된 음악을 QR 코드로 넣어 음악을 들으며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끔 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해 궁금한 점이 생길 때마다 꺼내 읽기 좋다. 328쪽, 2만 1000원.
  • 너구리 라면 표지, 알고보니 이 ‘연예인’ 작품…“사진 찍다 가수 데뷔했다”

    너구리 라면 표지, 알고보니 이 ‘연예인’ 작품…“사진 찍다 가수 데뷔했다”

    혼성그룹 ‘코요태’ 빽가가 방송에서 사진 실력을 공개한 가운데, 그가 농심의 대표 라면 제품 ‘너구리’의 포장지 사진을 촬영한 작가라는 사실이 재조명됐다. 지난 1일 방송된 채널A 예능 ‘요즘 남자 라이프-신랑수업’에는 배우 김일우와 박선영이 만남 300일을 기념해 야외 촬영에 나서는 모습이 담겼다. 이날 김일우와 박선영은 서울 근교 야외 결혼식장을 둘러봤다. 김일우는 “선영이를 만난 지 300일이 다가오더라. 기념사진을 찍으러 왔다”고 말했다. 이에 사진 작가로 빽가가 초대됐고, 촬영 보조로 김종민이 대동했다. 최근 결혼 소식을 전한 김종민은 “최근에 야외 촬영을 해서 뭘 해야 하는지 안다”고 했고, 빽가 역시 “잘 찍겠다”고 말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박선영은 “프로필 쪽에서 빽가 씨 사진이 유명하다. 느낌 있게 찍어주신다”고 했다. 빽가는 “원래 전공이 사진이다. 사진을 찍다가 코요태가 됐다”고 밝혔다. 빽가는 ‘바이 100’(by 100)이라는 이름으로 사진 작가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코요태 정규 9집 앨범 재킷 촬영을 비롯해 가수 김종국, 강원래, 비 등 유명 연예인의 화보 촬영을 맡은 바 있다. 특히 농심의 대표 라면인 ‘너구리’의 포장지 사진을 촬영했다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냈다. VCR로 이를 보던 개그맨 문세윤은 “저걸 촬영했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가수 천명훈도 “빽가 씨가 내 싱글 앨범 재킷도 찍어줬다”며 “2012년 첫 솔로 앨범 사진도 빽가 작품”이라고 밝혔다. 빽가는 고등학교 시절 사진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요태 활동 외에 사진 작가로도 꾸준하게 활동을 이어왔다. 그는 2012년에 라이카 카메라의 첫 아시아 모델이자 작가로 발탁됐고, 2016년에 개인 사진전을 개최했다. 또 2008년 ‘당신에게 말을 걸다’, 2015년 ‘고마워요’ 등 여러 포토 에세이를 출간하기도 했다.
  • 참수 그리고 키스…세례자 요한과 에렌 예거의 운명[폐허에서 무한으로]

    참수 그리고 키스…세례자 요한과 에렌 예거의 운명[폐허에서 무한으로]

    편집자 주 망각忘却은 모든 문장의 운명입니다. 오래된 책은 잊힌 문장으로 가득한 폐허廢墟이지요. 책을 읽는다는 건 무엇일까요. 폐허에서 무한無限을 찾는 것 아닐까요. 먼 옛날에 쓰인 문장을 가지고 와 이어 써보려고 합니다. 저의 심폐소생으로 책이 부활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의 글 역시 결국 무로 돌아갈 것이기에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입니다. 온라인으로 연재하는 이 시리즈는 기사도 소설도 아니고 시는 더더욱 아닙니다. 옛날과 오늘날을, 필자의 짧은 상상력으로 접붙이는 에세이 정도로 가볍게 읽고 넘어가 주시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신 독자에게 문운文運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1. 참수와 키스: 세례자 요한과 에렌 예거, ‘진격의 거인’과 ‘살로메’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마르코복음서 6장 14절 살로메의 춤은 매혹적이었습니다. 그 춤에 매료된 헤롯왕은 무엇이든 들어주리라 약속했죠. 그런데 살로메가 이렇게 말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잘라달라고. 그 잘린 머리를 쟁반에 내어 가져다 달라고. 세상에 그런 부탁이 어딨습니까. 아무리 의붓딸이라지만, 부모가 되어서 그런 부탁을 들어주는 게 가당키나 합니까. 하지만 헤롯왕은 크게 실수했습니다.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했으니까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감옥에 갇혀있던 세례자 요한의 목은 그렇게 잘리었습니다. 그리고 작은 쟁반 위에 놓였습니다. 신약성경 마르코복음서에 나오는 이 일화를 그린 카라바조의 그림을 본 적 있나요. 끔찍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건 한 사람의 머리가 ‘쟁반’에 담겼다는 사실입니다. 머리는 ‘인간적인 것’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몸에서 떨어져 나간 뒤에는 한낱 ‘물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성경은 몸과 머리가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는 걸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몸이야말로 머리의 진정한 자리라는 것을요. 갑자기 성경을 소환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최근 한 애니메이션에서 본 장면에서 불현듯 저 문장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조금 잠잠해진 것 같은데요. 올해 상반기를 뜨겁게 달궜던 만화가 이사야마 하지메 원작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진격거)입니다. 이 글은 ‘진격거’ 정주행에 성공한 독자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아직 다 보지 못한 독자께서는 뒤로 돌아가 주시길 바랍니다. 충분히 감상하고 난 뒤에 다시 찾아주십시오. 그때도 이 글을 기억하실 수 있다면요. 각설하고 애니메이션의 마지막으로 향하겠습니다. 파라디 섬에 갇힌 에르디아인의 자유를 갈망했던 주인공 에렌 예거는 결국 ‘땅울림’을 실행합니다. 땅울림은 ‘진격거’ 안에서 가장 극단적인, 궁극의 폭력입니다. 파라디 섬 안의 인류를 해방하기 위해 나머지 인간을 모두 없애겠다는, 아주 충격적인 프로젝트입니다. 수십만, 어쩌면 수백만에 이르는 거인의 발아래, 인간과 인간이 세운 문명이 파괴됩니다. 오로지 에르디아인을 위한, 그것도 파라디 섬 안에 갇힌 에르디아인만을 위한 계획이죠. 정당할까요? 물론 앞선 내용을 모두 생략한 제 글만 보면 정당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진격거’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독자라면, 애니메이션을 정주행한 시청자라면 여기에 대답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 것입니다. 이것이 폭력의 속성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폭력은 필연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을 상정합니다. 맞은 사람이 있으면 때린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요. 단순하게 보면 그 구분은 뚜렷하고 명확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특히 역사에서는 둘을 나누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인간이 오롯이 홀로 선 존재가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인간은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갑니다. 역사를 계승하고 저마다 민족의식을 지니고 있죠. 가까운 이의 죽음은 멀리 있는 이의 죽음보다 슬픕니다. 만약 그 죽음이 다른 누군가에 의한 것이라면, 죽음은 죽음 그 자체로 끝나지 않습니다. 슬픔은 분노가 되고 복수로 이어지죠. ‘적’이 탄생합니다. 독일의 법철학자 칼 슈미트는 “적과 동지의 구분”이야말로 정치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요즘 정치에서 대화와 타협이 사라졌다고들 하는데, 오히려 이렇게 반문하고 싶습니다. 과연 진정한 의미의 협치가 이뤄진 적 있었는지. 영원히 불가능한 것은 아닌지. 작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에렌도 알았습니다. 땅울림을 실행하면 죄 없는 많은 이가 끔찍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요. 에렌은 무거운 죄책감을 안고서 ‘결단’합니다. 땅울림이 없다면 파라디 섬에 갇힌 에르디아인의 자유는 영영 성취될 수 없을 것이기에. 그러나 땅울림은 도중에 멈춥니다. 오랜 친구이자 가족과도 같은, 아니 가족보다도 서로를 아주 깊이 사랑했던 존재 미카사 아커만의 칼날은 단호하게 에렌의 목을 잘라냅니다. 거인을 향한 에렌의 분노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초대형 거인’과 ‘갑옷 거인’이 침공했을 당시 벽 안으로 들어온 무지성 거인에게 어머니가 잡아먹혔죠. 그 앞에서 무엇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은 에렌을 조사병단 단원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이었습니다. 에렌이 ‘시조의 거인’, ‘진격의 거인’ 등의 힘을 얻은 뒤 땅울림을 실행한 것은 그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그 결단은 결국 미카사의 손으로 멈춰져야 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에렌이 이 결말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설명하기 조금 복잡하지만, 작품 속 ‘진격의 거인’이 지닌 능력은 아주 독특합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조망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단순히 시간여행과는 다른 듯합니다. 어쨌든 작품 속 결말이 에렌의 선택이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에렌이 보기에 땅울림은 실행되어야 했고, 그것을 결단한 자신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칼날에 목이 잘려야 했던 거죠. 미카사는 에렌의 목을 자른 뒤 그에게 키스합니다. 미카사의 품에 안긴 에렌(의 잘린 목)이 어느 때보다도 평온해 보이는 것은 저만의 느낌은 아닐 겁니다. 다시 살로메에게로 가보겠습니다. 성경을 펼치니 원문에 ‘살로메’는 없습니다. 물론 성경에 살로메라는 이름 자체는 등장하지만, 다른 부분의 동명이인입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저는 왜 세례자 요한의 목을 요구한 저 요부의 이름을 당연하게 살로메라고 알고 있는 것일까요. 이 오해에는 거대한 문학사적 맥락이 끼어있었습니다. 아일랜드가 낳은 세기의 천재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1854~1900)를 아실 겁니다. 그가 쓴 희곡 ‘살로메’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와일드는 신약성경의 이야기를 아주 매혹적으로 재창조했습니다. 원전에는 없는 저 무명의 여인에게 살로메라는 이름을 부여했습니다. 한 유대 역사학자 기록에 헤롯왕의 의붓딸 이름이 살로메로 나온다고 하는데, 아마 여기서 따온 것으로 보입니다. 와일드는 이름뿐만 아니라 살로메가 세례자 요한을 지독히도 ‘사랑했었다’는 설정을 덧붙입니다. 와일드의 문장을 조금 살펴보겠습니다. 참고로, 와일드는 1893년 프랑스어로 ‘살로메’를 썼고, 이듬해 영역본을 출간했다고 합니다. 한국어 번역은 민음사에서 나온 ‘오스카 와일드 작품선’(정영목 역)을 참조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몸을 사랑해요, 요카난! 당신의 몸은 한 번도 풀을 베지 않은 들판의 백합처럼 희어요. 당신의 몸은 유대의 산 위에 머물다 골짜기로 흘러 내려오는 눈처럼 희어요. … 세상에 당신의 몸만큼 흰 것은 없어요. 당신의 몸을 만지게 해 주세요. 여기서 ‘요카난’은 세례자 요한의 히브리식 표현이라고 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몸을 향한 강한 탐닉이 엿보입니다. 아니, 엿보인다고 할 수 없겠네요. 아주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니까요. 공개적인 자리에서 대놓고 말하기에는 조금 쑥스럽습니다만, 타인의 몸을 향한 욕망은 누구나 느껴봤을 법한 보편의 본능입니다. 하지만 이런 살로메의 고백에 세례자 요한의 답은 차갑기만 합니다. “소돔의 딸이여,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마라! … 너에게 저주가 있을 것이다! 근친상간을 한 어미의 딸이여, 너에게 저주가 있을 것이다!” 시쳇말로 ‘말넘심’(말이 너무 심하다)입니다. 적당히 좋은 말로 둘러댔다면 어땠을까요…. “당신과 입을 맞추겠어요”라고 다짐했던 살로메는 결국 자신의 목표를 이루고 맙니다. 춤으로 헤롯왕을 유혹한 뒤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잘라서 쟁반에 달라고 하고, 거기에 키스합니다. 아! 나는 당신에게 입을 맞추었어, 요카난, 당신 입에 내 입을 맞추었어. 당신 입술에서는 쓴 맛이 나네. 피의 맛인가? 아니 어쩌면 사랑의 맛일지도 몰라…… 미카사도 살로메도 사랑하는 이의 목을 잘랐습니다. 물론 동기는 대단히 다르지만요. 미카사는 에렌의 죽음을 원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에렌의 폭력적 결단을 멈추기 위해서 미카사 역시 결단해야 했죠. 세례자 요한의 생사는 살로메에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저 그의 몸, 희디흰 살결만이 살로메가 바랐던 것이었습니다. 살로메의 대사는 대단히 그로테스크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피를 맛보며 “사랑의 맛일지도 몰라”라고 하는데요. 미카사도 에렌을 사랑했고 살로메도 세례자 요한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둘의 사랑은 같은 것입니까? 사랑이라는 단어는 도대체 어디까지, 무엇까지 포괄할 수 있는 것일까요. 아니 어쩌면 너무나도 넓어서 허황하다고도 느껴집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게 왜 불가능한 것인지. 인간의 언어가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지. 사랑하는 사람에 의해 목이 잘렸다는 점에서 에렌과 세례자 요한은 닮았습니다. 에렌도 ‘진격의 거인’ 능력으로 미래를 볼 수 있었고, 세례자 요한도 예언자였으니 그런 점에서도 둘이 비슷한 구석이 있네요. 여기서 미래를 본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미래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희망을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절망을 보고 있습니까. 내가 언제 어떻게 죽을 것인지 알게 된다면 그때부터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까요. 에렌이나 세례자 요한처럼 미래를 볼 수 없는 우리에게 현재는 오직 선택의 문제입니다. 혹자는 미래나 운명 같은 것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바뀌는 게 있나요. 우리는 미래를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최대한의 자유의지를 발휘하여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지요. ‘진격거’ 애니메이션 마지막 화에서 에렌의 죽음 이후에도 전쟁은 끝나지 않습니다. 파라디 섬의 에르디아인들은 땅울림 이후 살아남은 인류의 보복이 두려워 군비를 증강하며 힘을 기르죠. 에렌을 죽인 미카사와 친구들은 파라디 섬에 평화 사절단으로 파견됩니다. 하지만 그 성과는 장담할 수 없죠. “이기면 살고 지면 죽는다.” 애니메이션의 대사이기도 한 이 원칙은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다소 허무합니다. 하지만 인정해야 합니다. 폭력 역시 세계의 근본이고 본질이라는 것을요. 인류는 지난 세기 1·2차 세계대전을 겪었습니다. 인간 스스로 벌인 끔찍한 폭력을 반성하고 다시는 그러지 말자고 힘을 모으기도 했는데요. 불과 10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그 다짐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분명 폭력적인 존재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죠. 후자를 향하려고 애쓰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일지도요. 이러고 보니 지난해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수상 연설이 떠오릅니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한강
  • 정상성에 저항하는 ‘몸’을 탐구하다

    정상성에 저항하는 ‘몸’을 탐구하다

    ‘몸’은 전쟁터다. 그곳에서는 ‘나’와 나 아닌 것 사이의 싸움이 벌어진다. 그 싸움이 끝난 뒤에는 세계와 맞서야 한다. ‘정상적인 몸’과 그렇지 않은 몸을 구분하려는 보이지 않는 권력과의 대결이다. 요즘 몸을 화두로 한 비평서나 에세이가 쏟아지고 있는 이유다. 이 책들을 따라 읽은 뒤에 당신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의문이 남을 것이다. 내 몸과 나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그 관계는 과연 앞으로도 지속될 것인가. “당신과 내가 만들어 낸 몸과 숨결의 거품을 얼마나 자주 상상했는지 모른다. 이제는 당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고, 당신의 얼굴도 눈앞에 떠오르지 않는데.”(‘블루엣’ 부분) 미국의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인 매기 넬슨의 ‘블루엣’(문학동네)은 저자가 느낀 사랑과 상실을 파란색이라는 소재로 아름답게 풀어내고 있는 에세이다. 240편의 짧고 파편적인, 그러면서도 대단히 과감하고 솔직한 문장이 독자를 파고든다. 넬슨은 성 정체성을 남성이나 여성 어느 한쪽에 두지 않는 ‘젠더플루이드’ 파트너와 함께 가족을 꾸려 가는 이야기를 담은 책 ‘아르고호의 선원들’로도 잘 알려져 있다. 새 책에서 넬슨은 펄떡이는 몸의 맥동과 그것으로 표현되는 진실한 사랑의 가능성을 노래한다. “젠더가 작동하는 영역은 생명과 몸이다.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은 정념과 두려움, 굶주림과 질병, 취약성, 침입 가능성, 관계성, 섹슈얼리티, 폭력과 얽혀 있다. …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성적·사회적 투쟁이 바로 몸에 위치하며 몸에서 유인을 찾을 수도 있다.”(‘누가 젠더를 두려워하랴’ 부분) 주디스 버틀러는 동시대 가장 치열하고 선구적인 페미니즘 석학이다. 얼마 전 출간된 버틀러의 ‘누가 젠더를 두려워하랴’(문학동네)는 점점 극우화하는 세계에서 젠더를 노골적으로 혐오하는 방식으로 득세하는 정치 세력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는 기성 권력이 젠더의 여러 층위를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싸잡은 뒤 그것을 향한 두려움을 조직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듣기의 상실을 보완함으로써 얻게 되는 가장 큰 만족이 완전히 듣지 않을 수 있을 때 찾아온다는 것. 이 모순적인 문장의 구조를 거칠게 밀고 나가 보면 정상의 몸(이라고 여겨져 온 몸)은 중요한 한계를 지적당한다.”(‘형언하는 몸’ 중 ‘침묵 안팎의 집’ 부분) ‘형언하는 몸’(아침달)은 국내에서 활동하는 인문학 연구자 김호경, 이하림, 한송희가 쓴 비평적 에세이집이다. 다채로운 문화의 이면에 숨은 ‘정상성의 폭력’을 감지한다. 23세에 자폐 진단을 받은 조디 헤어가 우리 세계의 신화로 자리잡은 ‘신경정상성’을 허물고 ‘신경다양성’으로 나아가자고 주장한 의료사회학적 에세이 ‘바깥의 존재들’(이상북스)도 주목할 만하다. 자폐 스펙트럼, 난독증 등의 진단이 늘어 가는 가운데 ‘정상 뇌’의 개념이 차츰 허물어지고 있다. 하지만 사회는 여전히 이것을 전제로 운영된다. 우리 사회는 ‘정상 뇌’ 바깥에 있는 존재까지 아우를 수 있을까. 연구자이자 활동가인 네 사람(김순남·김현경·나영정·이유나)이 쓴 ‘퀴어한 장례와 애도’(산지니)는 죽음과 장례, 애도의 과정에서도 작동하고 있는 배제와 차별에 주목한다. 일상뿐만 아니라 장례에서도 정상성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애도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퀴어의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 로리처럼 그랜드슬램!…“골프요? 정~말 몰라요”[스포츠 라운지]

    로리처럼 그랜드슬램!…“골프요? 정~말 몰라요”[스포츠 라운지]

    꼬박 이틀을 제대로 잠도 못 잔 채 한국으로 날아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에 나선 세계 3위 이민지(29·호주)는 그토록 원했던 메인 후원사 주최 대회 우승을 이루지 못했다. 그것도 2년 전 3차 연장 끝에 트로피를 내줬던 이다연에게 이번엔 2차 연장 패배의 쓴맛을 봤다. 진한 아쉬움을 남긴 이민지에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대회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17일 틈틈이 이뤄졌다. ●커리어그랜드슬램까지 ‘한 걸음’ 한국에 오는 길은 험난했다. 지난 14일 LPGA 투어 크로거 퀸 시티 챔피언십을 마무리하고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3시간을 날아 저녁 늦게 텍사스주 댈러스의 자택에 도착했다. 자는 둥 마는 둥 이튿날 비행기를 탄 그녀는 15시간의 비행 끝에 16일 오전 한국에 착륙했다. 강행군을 한 건 11년째 변함없이 지원해주는 후원사를 위해 우승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이민지는 아마추어 세계 1위였던 2014년 12월 하나금융그룹 후원을 계기로 LPGA 투어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이민지는 “진짜 핑계는 아니고 좀 덜 피곤한 상태에서 이 대회에서 꼭 우승하고 싶다”고 말을 꺼냈다. 평소 한국 드라마와 영화 등을 즐긴다는 그에게 비행기 안에서 본 것이 있느냐고 묻자 “최근 한 달간 너무 바빠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며 “이번엔 인생에 대한 에세이를 읽었는데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며 웃었다. 어려서 수영 선수로 활동하다 10살 때 골프로 전향한 이민지는 2021년 7월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첫 메이저 타이틀을 따냈고, 2022년 6월 US여자오픈, 올해 6월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커리어그랜드슬램까지 한 걸음을 남겼다. 그는 롤모델인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올해 대기록을 이룬 것처럼 자신도 커리어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싶다며 눈을 빛냈다. “올해는 메이저 대회가 다 끝나 내년에 집중해보겠다”고 각오를 다진 이민지는 큰 대회라고 압박감을 더 느끼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투어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까 그런 느낌이 익숙하다”면서 “메이저이든 아니든 내가 제어할 수 있는 내 감정, 스윙에만 집중한다. 다른 선수 플레이도 배제하고 그냥 나한테만 신경 쓴다”고 강조했다. 이민지는 “골프는 항상 잘할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라 예측불가능하다”며 “조금씩 뭔가 변한다. 그래서 골프를 그냥 긍정적으로 바라보려 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골프 못 쳤다고 내 일상까지 망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경험이고 결국에는 좋아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LPGA 한국 선수들 너무 압박감” 올해 LPGA 투어는 아직 다승자가 나오지 않는 등 군웅할거 양상이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3월 블루베이 LPGA에서 우승한 다케다 리오부터 8월 포틀랜드 클래식 정상을 밟은 이와이 아키에까지 5승을 거두며 두드러진 활약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민지는 “일본 선수들은 모두 또박또박 잘 치는 것 같다”며 “트러블샷이 거의 없다. 그런 것이 강점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고 짚었다. 지난해 KLPGA 투어에서 대상 등 4관왕에 오른 윤이나가 미국에서 고전하는 것을 놓고는 “그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한국 선수 대부분 굉장한 압박감을 느끼는 것 같다”며 “(LPGA가) 그냥 살짝 다른 무대이지 않나? 스스로에게 너무 압박감을 주지 말고 6개월 정도는 적응 기간이 필요하니까 연연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조언했다. ●투어 갈때마다 꼭! 맛집 방문 평소 골프 외에 무엇을 즐기냐는 질문에 이민지는 “투어에 나가면 그곳에 일주일을 머무는데 한 번은 꼭 맛집을 간다든지, 하이킹하던지 좋아하는 일을 한다. 뉴욕이면 타임스퀘어를 둘러본다”고 소개했다. 최근에는 FM 챔피언십 뒤 친구들과 즐겼던 보스턴 시티투어가 인상 깊었다고 했다. 같은 교포 선수인 리디아 고(뉴질랜드)가 결혼과 함께 안정적인 생활을 한다고 하자 이민지는 “남자친구보다는 그냥 맛있는 거 먹는 게 좋다. 그런데 요리하는 건 싫다. 그냥 음식 먹는 것만 좋아한다”며 웃었다. 김치찌개와 콩나물국밥 등 한국 음식은 다 즐기는 데 특히 얼큰한 걸 좋아한다고. 그는 이번 대회 1라운드 휴식 시간에 캐디와 함께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기도 했다. 투어에서 쌓인 스트레스는 해나 그린(호주)과 수다로 푼다는 이민지는 “투어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데이트 생각은 아예 안 한다”며 “해나랑 친하게 지내는 데 (같은 한국계인) 그레이스 킴과는 나이 차(5살)가 있어서 조금 그렇다”고 소개했다. 한국 선수 중에서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알고 지낸 (김)효주 언니랑 (이)미향 언니하고 친하게 지낸다”고.
  • 가을에 찾아온 ‘노원 몽땅 야외도서관 : 낭만보장’

    가을에 찾아온 ‘노원 몽땅 야외도서관 : 낭만보장’

    서울 노원구가 다음달 17일부터 오는 11월 2일까지 매주 금·토·일 경춘선 숲길에서 ‘노원 몽땅 야외도서관:낭만보장’을 연다고 24일 밝혔다. ‘즐겨보장’에서는 작가와의 만남과 공연이, ‘골라보장’에서는 플리마켓과 푸드트럭이 함께하는 북쉼터와 취식존 공간이, ‘놀아보장’에서는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그 외에도 행사장 곳곳에는 철길을 따라 가을 정취를 느끼며 불빛을 바라보는 불멍존 ‘읽어보길’, 숲길에서 돗자리를 펼치고 앉아 책을 읽는 북크닉존 ‘쉬어보길’ 등이 준비돼 있다. 18일 오후 3시,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잘 알려진 박상영 작가는 에세이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을 중심으로 일상의 낭만을 찾는 법을 공유하며 강연과 사인회를 갖는다. 같은 날 오후 5시 30분에는 뮤지컬 팀 어쏘티드의 갈라 공연이 펼쳐진다. ‘케이팝데몬헌터스’를 비롯해 맘마미아, 알라딘, 겨울왕국의 OST가 울려 퍼질 예정이다. 행사 기간 중 노원구민 추천 도서 100권 전시, 365일 생일서가,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 읽어주기와 큐레이션, 버스킹 공연, 주말 야외극장 등이 운영된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몽:땅 야외도서관은 바쁜 일상에서 잠시 쉬어가며 책과 예술을 통해 삶을 재충전할 기회”라며 “가을 정취가 물드는 경춘선 숲길에서 책과 문화가 일상이 되는 경험을 함께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