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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 문학 속의 에로스

    디터 벨러스호프 지음 / 안인희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사회적으로 보잘 것 없는 여자하고만 육체적 관계가 가능했다는 독일의 문호 괴테.그는 다른 사람과 약혼한 여자를 사랑했다가 포기했던 자신의 쓰라린 체험,그리고 상관의 부인에게 접근했다가 거절당한 뒤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자살한 친구의 경험담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녹여냈다.괴테가 현실의 샤를로테를 사모하면서 겪은 내면의 갈등은 그의 소설에서 베르테르가 약혼자 있는 로테라는 여인을 사랑하면서 느끼는 고뇌와 일치한다.작품의 배경인 18세기에는 자유연애가 만발했지만,시민문화는 아직 인간의 성을 도덕과 사랑이라는 관념으로 포장하도록 했음을 소설은 여실히 보여준다. ●작품에 드러난 작가들의 성적 성향 분석 ‘문학 속의 에로스’(디터 벨러스호프 지음,안인희 옮김,을유문화사 펴냄)는 인류 역사의 흐름 속에서 때로는 금기시되고 때로는 그 존재를 인정받기도 했던 에로티시즘 혹은 에로스가 문학 속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변천돼 왔는가를 살핀 지적 에세이다. 책은 괴테의‘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부터 우엘벡의 ‘소립자’,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엘리스의 ‘아메리칸 사이코’ 등 최근작까지 근대 계몽주의 이후 200여년에 걸쳐 서양소설에 등장하는 에로티시즘의 변천사를 다룬다.독일의 권위 있는 하인리히 뵐 문학상을 수상한 저자(78)는 개인의 욕망이 당대의 시대 배경과 사회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좌절됐는가를 구체적인 작가와 작품을 통해 밝힌다.작가의 개인사와 시대적 배경과의 관련 또한 꼼꼼하게 들여다본다.귀족 집안 유부녀들의 도움을 받아 사회적 출세를 꿈꾼 발자크나 스탕달,기묘한 변덕 때문에 죽을 때까지 아내와 불화를 겪었던 톨스토이,성(性)이 돈처럼 시장의 법칙을 따르게 된 세상에서 일부 남자들이 모든 여자를 차지해 버렸다며 집안으로 숨어버린 우엘벡,프루스트와 토마스 만의 작품에 나타나는 동성애적 성향 등 작가의 개인사에 얽힌 성적인 문제들이 낱낱이 들춰진다. ●에로문학의 압권은 데이비드 로렌스·헨리 밀러 저자는 주인공의 심리를 꿰뚫어 보며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관능의 코드를 조율한다.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지금 나는 그녀가 일주일 안에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영원히 안녕’”이라는 장면이 나온다.이에 대해 저자는 “자신의 동기를 감추고 거리두기로 일관하는 사랑 싸움에 대한 묘사는 섀도-마조히즘의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형태를 적절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분석한다.‘그림자놀이’라고 부르는 이러한 행위를 일종의 섬세한 ‘권력놀이’의 하나로 보는 것이다. 에로문학의 압권은 단연 데이비드 로렌스와 헨리 밀러의 소설이다.이들의 작품에서 비로소 성행위에 대한 직접 묘사가 이뤄지며 19세기 에로톨로지의 금기가 깨졌다.나보코프의 ‘롤리타’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 이르면 직접적인 묘사를 뛰어넘어 성적 교류에 스며있는 슬픔과 절망까지 맛보게 된다.또한 스와핑 등 미국 중상류층의 일상을 전하는 업다이크의 소설 ‘커플스’의 장면장면은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극단적이고 병적인 성의 풍경과 그대로 겹친다. ●초자극적 사랑, 종종 죽음으로 치닫기도 작품 속에서나 현실에서나 ‘초자극적’인 사랑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철학자 칸트는 에로스를 “이성의 힘으로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당위의 문제”라고 일축했다.하지만 에로스는 유혹적인 만큼 치명적이다.그것은 종종 타나토스(죽음)와 손을 잡는다.그래서 ‘저주의 작가’ 조르주 바타유는 에로티시즘을 가리켜 악마적 충동이라 했는지도 모른다.이 책은 인간의 성이 싸구려 상품만도, 고귀한 정신만도 아님을 예술의 제1형식인 ‘문학’을 통해 생생히 보여준다.1만 8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책꽂이

    ●잠자는 숲속의 남자(신여현 지음,이가서 펴냄) 94년 등단한 뒤 젊은이의 일탈을 소재로 한 탐미적 작품을 써온 작가의 신작 장편.구직난에 시달리던 주인공이 남창(男娼)이 돼 겪는 삶을 중심으로 어두운 사회상을 그렸다.작가는 “조금 처량하고 슬프지만,유쾌하고 우스꽝스러운 사랑과 인생이야기”라고 자평.8800원. ●알레고리와 역사(김누리 지음,민음사 펴냄) 중앙대 영문과 교수인 저자가 낸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의 문학과 사상 연구서.작가의 대표작인 ‘양철북’과 ‘국부마취를 당하고’ 등을 분석한 뒤 ‘참여문학론’을 중심으로 작가의 세계관을 소개한다.또 현대문학에 실렸던 작가 인터뷰도 수록.1만 3000원. ●아름다운 소멸(김은숙 지음,천년의시작 펴냄) ‘그대에게 가는 길’‘창밖에 그가 있네’에 이은 세번째 시집.슬픔과 그리움을 주된 정조로 노래한 시 세계는 여전하다.하지만 그 이면의 긍정적 요소를 찾고 있는 게 특징.‘소멸’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여유를 보인 시인은 “침묵 속에 겨울을 건너는”사람이다.6000원. ●아내의 맨발(송수권 지음,고요아침 펴냄) 빼어난 서정시인이 백혈병에 걸린 아내에게 바치는 편지글과 산문,시를 묶었다.시골학교 교사시절 제자였던 아내가 똥장군을 지고 수박농사를 하면서 남편인 시인을 뒷바라지한 일에 대한 회한과 그 절절한 심정이 실린 연작시 ‘아내의 맨발’ 등을 실었다.8500원. ●내 인생의 밥상(원재훈 지음,바다출판사 펴냄) 시·소설·에세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글을 쓰는 저자의 먹거리를 소재로 한 에세이집.짬뽕·라면·담배·냉면·떡볶이 등을 징검다리 삼아 지난 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힘들었던 추억을 아련히 되돌아 보게 하는 따스한 이야기를 곁들인다.8800원. ●가난한 부자들(이반 안드레예비치 크릴로프 지음,이채윤 편역,신채숙 그림,열매출판사 펴냄) 19세기 러시아의 대표적 우화작가의 대표작.금화가 끝없이 나오는 지갑을 받은 가난뱅이가 금화의 노예가 되는 이야기를 다룬 표제작을 비롯,사회악이나 권력에 대한 조롱과 풍자를 담았다.8000원. ●시간의 안부를 묻다(이승은 지음,책만드는집 펴냄) 79년 등단한 시인의 네번째 작품집.시인 손진은은 시적 이미지와 구성 방식 등 내재적 비평을 통해 시인의 세계가 “‘그대’라는 인물을 차용하면서 자연과 생명 일반으로 변용되는 새로운 사랑의 존재방식을 일구었다.”고 말한다.6500원.
  • [맛 에세이] 요리를 위한 프로그램

    제가 어릴 적부터 만화 영화만큼이나 좋아했던 것은 요리 프로그램이었습니다.예쁜 앞치마를 두른 한정혜 선생님이 특유의 맛깔스런 목소리로 ‘고소한 깨소금 약간,매콤한 후춧가루도 약간’하면서 한 십여 분 브라운관 안에서 왔다갔다 하다보면 맛있는 음식 한 접시가 만들어지는,그것은 그야말로 매직이었지요. 또 하나의 이유는 재료 설명에 이어 차례차례 순서대로 과정을 밟아나가면 기대했던 바로 그것이 나온다는 정직함 때문이었습니다.만화 영화에서처럼 캔디를 괴롭히는 이라이자도 없고,마징가Z 혼자서 상대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수의 막강한 적들이 나와 손에 땀을 쥐게 하지도 않으니까요.그저 하나 둘 꼼꼼하게 풀어나가다 보면 정답이 나오는 수학 공식처럼 끝이 개운하기 때문이었죠. 밀가루,우유,설탕….그런 것들이 십 여분 만에 근사한 케이크가 되고,돼지고기,양파,당근….이런 것들이 푸짐한 탕수육이 되는 요리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50%를 넘지 않는다는 게 늘 궁금했죠.그런데 요즘 텔레비전에서 요리를 다루는 방법이 많이 변했더군요.요리선생님과 진행자가 나란히 서서 조리법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각 지방의 유명한 음식 명가를 찾아가 그 만드는 과정을 배우거나,예닐곱 명의 패널들이 나와 이맛은 어떠니 저맛은 어떠니 하면서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들이 정말 많아졌습니다.요리가 오락 프로그램의 단골 메뉴가 되어 버렸지요. 최근 2∼3년 사이에 전국 방방곡곡의 맛집이며,음식 종가들은 바닥이 났을 정도로 여러 아침 프로그램에서 요리를 다루더니,언제부턴가는 심야에 밤참을 먹지 않으면 잠이 안 오게 침 넘어가는 음식들을 클로즈업하고,세계의 건강식 등을 소개하기에 이제 요리를 갖고 할 수 있는 것들은 얼추 한 순배 돌았나보군 하고 있었죠. 그런데 엊그제,아직도 요리를 갖고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아이템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잡지와 신문 등에 음식 평론도 쓰고,스타일링 팀을 구성해 케이터링 서비스도 하는 탑테이블의 강지영씨가 파티를 연 경희대 호텔관광대학에 갔습니다.그곳에서는 ‘골든벨’ 형식으로 ‘요리 퀴즈쇼’가 열리고 있더군요.2만 5000원의 회비를 내고 온 음식 애호가들은 200여 명이 넘었습니다.탑테이블에서 마련한 ‘오감만족(五感滿足)’주제에 맞는 저녁을 먹고 참가한 이들 가운데 우승팀에게는 태국 맛기행의 기회가 주어지더군요.퀴즈쇼 1부와 2부 사이에 셰프를 꿈꾸는 학생들이 직접 수저와 칼,쉐이커 등을 들고 나와 ‘난타’공연을 해서 그런지 활기 넘치고 유머감각이 돋보였습니다.음식과 관련된 일이라면 입꼬리부터 올라가는 강지영씨이기에 이런 일을 했지요.‘프로그램을 위한 요리’가 아니라 ‘요리를 위한 프로그램’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그이기에 이런 즐거운 발상이 가능했겠지요. 신혜연 월간 favor 편집장
  • 美학생들 “加 메이플리그 가자”/등록금 싸고 문턱낮아 5년새 4200여명 늘어

    ‘너희는 아이비리그로 오니? 우린 ‘메이플(단풍)리그’로 간다.’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미국 대학들로 전세계 학생들이 몰려들고 있지만 정작 미국 학생들 사이에선 캐나다 유학 바람이 불고 있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1일 보도했다.가장 큰 이유는 저렴한 학비 때문이다. 신문에 따르면 캐나다 명문 대학들의 등록금은 동급 미국 대학의 3분의 1 수준.‘캐다나의 하버드’로 불리는 맥길 대학에 다니는 외국인 학생의 학비는 1년에 고작 8000달러.캐나다 학비가 싼 이유는 정부 보조금 지원이 풍족하기 때문.미 시카고 대학은 1년에 2만8000달러가 넘는다. 뉴욕,보스턴 등 미 동북부 지역 학생들이 주도하던 캐나다 유학은 최근 캘리포니아나 텍사스,플로리다 주까지 번져 최근 5년간 캐나다의 미 유학생 수는 두 배 증가해 올해 42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값싼 등록금 외에도 입학 문턱이 비교적 낮은 것도 미국 학생들의 발길을 돌리게 하는 이유.고교 평점 4.0이상에 미국대학입학시험(SAT)에서 1400점을 받은 수험생도 미국에선 탈락의쓴잔을 마시는 경우가 허다하다.미국 명문 사립대학들은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높은 탈락률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미국 학생들의 입장에선 에세이나 추천장,인터뷰 등도 필수사항이 아니며 조기 입학,동문자녀 우대,소수인종 특혜 등 입학을 어렵게 하는 절차가 없는 것도 캐나다 대학들의 장점이다. 현재 가장 인기가 높은 맥길대학의 경우,미국 학생 비율이 전체 학부생의 11%나 된다.이밖에 브리티시 콜롬비아대학,토론토대학,퀸즈대학 등도 ‘캐나다의 아이비리그’로 뜨고 있다. 박상숙기자 alex@
  • [김영두의 그린에세이] 물과 퍼팅

    텔레비전 방송의 골프 중계에서 캐스터들이 가끔 “모든 퍼팅은 물이 있는 쪽으로 휜다.”는 등의 엉뚱한 발언을 한다.근거도 없는 이 같은 실언이 수백만 골퍼의 귀에 들어가서 현명한 골퍼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물은 골을 따라 흐르고,퍼팅한 공 역시 내리막 경사를 타고 저지대로 구르기 때문에,퍼팅이 물을 찾아 간다는 말은 맞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자연적인 지형을 그대로 살려서 그린을 배치한 옛날 옛적에는 그 말이 그런대로 신빙성이 있었다. 요즘은 꼭 골퍼의 지능을 시험하고 골퍼를 약 올리려는 목적이라기보다는,굴착기의 성능과 배수 설비를 뽐내려는 의도가 더 분명한 듯한,플라멩코를 추는 무희의 치맛자락처럼 주름진 그린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아무리 항우장사라도 퍼터를 사용해서는 한쪽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공을 보낼 수 없을 만큼 축구장처럼 넓고도 넓은 그린도 있다.그런 그린 위에서 공을 굴려 보라.공은 중력의 영향을 받아 낮은 곳으로 임한다. 잔디가 물을 향하여 눕는다는 설도 터무니없다.식물의 잎과 줄기는 향일성을 가지고 있다.한점이라도 햇빛을 더 받으려고 해가 있는 방향으로 자란다.먼저 난 잎이 빛을 독차지하면 다음 차례로 돋은 잎은 방향을 달리하여 어긋나게 나온다. 물 쪽으로 휘는 것은 잔디의 뿌리다.역결이면 강하게,순결이면 약하게 퍼팅을 해야 하는 골퍼들은 대체로 잔디가 스스로 물을 향해 눕는다고 믿지만 잔디의 잎은 바람에 몸을 맡길 뿐이고,오직 뿌리만이 물을 찾아 어두운 땅속을 헤쳐 간다. 내 경험에 의하면,드라이버 샷이야말로 물을 좋아한다.아니 꼭 물만을 좋아하지는 않는다.음침하고 질척한 숲도 좋아한다.양명한 햇빛이 내리쬐는 페어웨이보다는 어둡고 습한 곳을 밝힌다.공은 클럽헤드에 맞는 순간부터 살아있는 생명체가 돼 골퍼의 제재를 받지 않고 고독한 여행을 떠난다.나는 맹세코 공을 물에 보내지 않았는데,공은 전생에 못 다한 인연을 풀려는 듯이 물의 품으로 뛰어든다. 결론을 내려 보건대,물을 좋아하는 것은 드라이버 샷과 잔디의 뿌리인 것 같다.음,아닌지도 모르겠다.식물의 뿌리말고도 음침하고 질척하며 물이 많은 곳을 탐하는것이 또 있지 않던가. 소설가·골프칼럼니스트 youngdoo@youngdoo.com
  • [맛 에세이] 오르가닉 푸드 열풍

    지금 세계는 오르가닉 푸드(Organic Food)의 열풍이다.1900년도 초반 독일에서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는 자연농법으로 재배한 자연식이 이미 주목받았다.요즘 새롭게 조명되면서 열풍을 모는 사람은 고소득 지식인이다. 세계의 트렌드 리더들은 ‘푸드 코치’의 조언에 따라 다투듯이 오르가닉 식단을 즐겼고,곧이어 일반인들 역시 오르가닉 푸드를 판매하는 ‘리폼 하우스’(혁명의 집이란 뜻)로 발길을 옮기게 되었다.오르가닉 푸드 열풍은 단순히 음식의 영양분이나 맛이 자연스럽다는 것 이상이다.오늘날 성공한 사람들의 생활 패턴중 하나가 헬스·다이어트에 이어 오르가닉이다.이로써 음식은 성공을 보장하는 전략적인 수단으로 그 몫을 톡톡히 다하고 있다. 사실상 21세기의 혁명이라는 ‘자연식’은 그리 새로운 사실은 아니다.한동안 유행했던 식이요법이나 생식이 종적을 감추었을 즈음,보릿고개에 대한 잔상을 지니고 있는 기성 세대들의 강력한 반발에 의해 조금 늦게 등장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건강한 음식을 표방하는 오르가닉 푸드의 강력함은 바로 생에 대한 인간의 욕구에 부합한 것으로 그 인기가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트렌드와 유행 특구 서울 청담동 일대에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가는 오르가닉 레스토랑이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인기를 반증하는 예라고 하겠다. 하지만 오르가닉 푸드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먼저 오르가닉 푸드는 소비자에게 전달되기 까지의 모든 재배,유통,관리 과정에서 많은 경비가 소요되기 때문에 고가(高價)의 상품이다.또한 ‘보다 적게 먹는다!’는 오르가닉 푸드의 특성상 예쁘고 신선해 보이지만 내용물은 지극히 빈약하기 때문에 많을수록 좋다고 여기는 샐러리맨의 관점에서 본다면 대단히 실망스러운 음식이 될 것이다. 패스트 푸드에서 슬로 푸드로 그리고 오르가닉 푸드에 이르기까지 모든 음식은 자연을 기초로 한다.깨끗한 자연에서 제공된 건강한 음식을 자신의 몸에 맞게 섭취할 때 비로소 ‘신선(神仙)의 밥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신토불이를 몸소 실천하며 살아온 우리의 먹거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오르가닉 푸드의 유행은우리가 잊고 지냈던 자연스러운 밥상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잘 먹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가장 먼저 돌보아야 할 것은 우리를 감싸고 있는 대자연의 고귀함이라는 것을 상기해 볼 일이다. 정신우 푸드스타일리스트
  • 이런 책 어때요/해뜨기 전 한 시간

    지미 카터 지음 / 김정신 옮김 미다스북스 펴냄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의 성장 에세이.카터는 1924년 조지아주 플레인스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아버지는 농장주였으며 어머니는 간호사였다.그는 일꾼들로부터 마실 물을 나르는 일부터 옥수수,땅콩,목화 등 각종 농작물을 재배하는 기술을 익혔다.카터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평생 독서하는 습관을 갖게 됐다.공공연히 인종차별이 행해지던 당시 어머니는 간호사로서 피부색에 상관없이 봉사를 베풀었다.카터는 그런 어머니를 보며 열린 마음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배웠다고 회고한다.‘세계평화의 전도사’ 카터는 백악관 이후가 더 성공적이다.1만원.
  • [맛 에세이] ‘한국産’ 와인을 기다리며

    지난 11일에는 가는 곳마다 빼빼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더군요.빼빼로는 롯데제과에서만 나오는 줄 알았는데 업체도 여러 곳이고,심지어 제과점에서도 빼빼로 모양의 초콜릿을 만들어 팔더군요.아이들은 친구들한테 준다고 한 봉투씩 사다 나르고….언젠부턴가 이름 붙은 날들이 다가오면 지갑을 열어보게 됩니다.근래들어 생긴 날들은 돈이 아니면 해결이 안 되네요.그래도 이런 날 덕분에 맘속에 간직하고 있던 감정들을 표현하고 하루를 재미있게 보낼 수 있으니 뭐 그리 나쁘게만 봐지진 않네요. 내일도 이름 붙은 날이지요? 11월 세 번째 목요일.바로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의 보졸레에서 갓 수확한 포도로 담근 올해의 와인을 세계가 동시에 여는 날입니다.대한항공에서는 전세기를 따로 준비해 우리나라와 일본에 판매할 보졸레누보를 실어날랐다지요? 보졸레누보가 맛으로 유명한 와인은 아니었거든요.그해 수확해 숙성 중인 포도주의 맛을 가늠해보기 위해 시식용으로 만들었는데,빨리 변질된다는 단점 때문에 보졸레 포도주 조합에서 ‘보졸레 방금 도착,빨리빨리…’라고 쓴 수 천장의 포스터를 파리 시내 카페 창문에 붙였고 새것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 먼저 마시기 경쟁이 붙은 것이 보졸레누보 마케팅의 시작이라네요.이게 프랑스에서 유럽으로,일본으로,다시 우리나라로… 아시겠죠? 최근 몇년 새에 보졸레누보가 신문·방송에 오르내리면서 유명세를 타자 친구들이 저에게 묻더군요.‘보졸레누보가 맛있니?’하고 물으면 ‘묵을수록 좋은 게 친구와 와인이라는데 담근 지 60일이 채 안된 와인에서 무슨 맛을 기대하겠느냐,그저 즐겨라.’가 저의 답입니다. 보졸레 누보 얘기를 하다보니 경기도 안성에서 한국의 와인을 만드느라 6년째 씨름하고 계시는 켄킴(Ken Kim)씨가 생각나네요.미국 캘리포니아에 자신의 와이너리를 두고 켄킴이란 브랜드로 소량의 와인을 만드는 분인데,안성 포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와인을 만들고자 홀로 안성에 와서 포도밭을 누비고 있죠.거기서 나온 켄킴 와인을 마셔봤는데,아직 맛이 익지는 않았더군요. 와인다운 맛이 나려면 앞으로도 4∼5년은 기다려야 한다는데,켄킴씨는 이 와인을 내놓을 만해지면 안성 바우덕이 축제와 연결시켜보겠다는 마케팅 플랜을 갖고 계셨습니다.괜히 미안스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같은 기후대에 있으니 우리나라에서도 좋은 와인이 나올 수 있는데 그런 생각조차 안 해보고 그저 프랑스·이탈리아·미국·호주 와인들만 좇아다닌 것 같아서요.그저 몇 년 후에 ‘켄킴’ 와인이 제 모습을 갖추고 나왔을 때 우리도 보졸레 사람들처럼 즐겁고 신나는 마케팅을 기획할 때 한수 거들겠다는 약속을 이렇게 해봅니다. 신 혜 연 월간 favor 편집장
  • [김영두의 그린에세이] 어드레스와 체중

    티샷을 위한 어드레스 자세를 취할 때,체중을 오른발에 6할,왼발에 4할의 비율로 나눠 실으라고 한다.교습서에도 그렇게 나와 있고,프로도 그렇게 가르친다. A씨는 그 반대의 어드레스 자세를 취한다.왼쪽에 6할,오른쪽에 4할의 비율로 체중을 나눈 것처럼 보인다.보기 플레이어는 누가 묻지 않아도 아는 척하며 나서고,싱글핸디캐퍼는 물어야만 한 수 가르쳐주고,프로는 교습비를 내야만 가르쳐준다고 한다.하지만 나는 오갈 데 없는 보기 플레이어다.티잉 그라운드에서 왼쪽으로 기울어진 듯이 서있는 A씨를 보면 입이 간지러워서 참을 수가 없다. “골프레슨 비디오도 한번 안 봤어요?체중을 오른발에 더 많이 실어야하는 것도 몰라요?” 나는 A씨의 삐딱한 모양을 흉내까지 내면서 지적을 했다.A씨는 아무 대꾸도 없이 나를 힐끗 일별하더니 약간 비웃는 듯한 웃음을 날리고 티샷을 했다. “남자를 상징하는 물건이며,남자의 몸통 좌우 중심에 있으며,붙들어 매놓지 않으면 걸을 때 흔들리는 물건이 무엇인지 아세요?” 스윙폼이나 어드레스 자세나,심지어는그립을 쥐는 방법도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다.누구나 고쳐보려고 피땀을 흘리지만 대체로 실패한다.나는 A씨도 자신의 잘못된 어드레스 자세를 치료해보고자 노력하다가 참담하게 실패를 했고,실패의 아픈 기억을 털어버리려고 엉뚱한 우스갯소리를 늘어놓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그 따위 고색창연한 우스갯소리에 휘둘릴 내가 아니다. “남자 몸통 윗부분에 달려있고,남의 눈에 잘 뜨이고,남자라면 적어도 한 개 이상 소유하고 있다면,정답은 넥타이겠죠.” “그렇다면 한 가지 더 묻겠습니다.남자는 중심을 잡고 걷는데,여자는 왜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면서 걷는지 아십니까?” “생물학적 지식에 의하면,여자는 본능적으로 엉덩이를 흔든답니다.당신의 머릿속에 있는 답은 다르겠지만요.” “제가 어드레스를 할 때,왼발에 6할 오른발에 4할의 비율로 체중을 싣는 것처럼 보이겠죠.하지만 전요 남자 몸통의 좌우 중심에 있지만 아랫부분에 달렸고,남자에게 하나밖에 없는 물건,그 무거운 물건이 오른 쪽으로 치우쳐 있어요.그래서 겉보기에는 왼발에 체중이더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오른 발에 무게가 더 실려 있단 말이에요.” 어처구니가 없어서 멍하니 서있는데,A씨는 정말로 좌우의 균형이 맞지 않는 듯 절름거리며 페어웨이로 나서고 있었다. 소설가·골프칼럼니스트 youngdoo@youngdoo.com
  • [데스크 시각] 웃음의 질이 다르다

    ‘충무로의 웃음 제조기’ 김상진 감독은 사석에서 “서울 안에서도 강남과 강북 관객은 웃음의 코드가 다르다.”고 얘기한다.관객들에 섞여 여러차례 제 영화를 보았는데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김 감독은 강남이 한수 위라고 본다.강북에선 단순하고 직선적인 대사도 통하지만 강남은 조금 더 비트는 듯한 대사와 짜임새가 필요하다는 것이다.시나리오를 읽으면 강남과 강북 관객이 웃을 장면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과장이 아니냐고 의문을 품을 수도 있지만 사실일 것이다.김 감독은 충무로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사람이다.유쾌한 코미디 영화 6편을 만들어 검증을 받았다.최근엔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광복절 특사’로 연속 흥행 대박을 터뜨렸다.‘광복절 특사’에선 강남과 강북의 웃음 코드를 다시 확인했다고 한다.김 감독뿐이 아니다.다른 코미디 영화 감독들도 김 감독의 주장에 동의한다. 얼마 전,신도시 K동의 아주머니들 사이에 이런 이야기가 나돌았다.신도시의 대형 아파트에 살며 젠체했던 한 아주머니가 강남 도곡동의 ‘꿈의 궁전’ 타워 팰리스로 이사를 했다.그런데 얼마 안 지나 우울증에 걸려 남편에게 병수발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K동 아주머니들은 그 아주머니가 열패감으로 정신병을 얻었을 것이라고 수군댔다.신도시에서는 으스대며 살았는데,타워 팰리스에 이사하고 보니 평형도 작은 데다 자기보다 부자인 사람이 많아 자존심이 훼손됐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60대 초반인 남자가 암에 걸려 1년이 채 안돼 별세했다.그는 강남의 중형 아파트에서 살다가 3년 전에 팔고 신도시의 큰 아파트를 사들여 이사한 사람이었다.그런데 강남의 아파트 값이 너무 올라 억울해하다 암에 걸려 화를 다스리지 못해 갑작스레 숨졌다는 것이다. 신도시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는 살을 붙여 과장한 것이거나 지어낸 것일 수 있다.그리고 그런 심리의 근저에는 미묘한 경쟁심,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그러나 누가 그 아주머니들의 입방아를 비난할 수 있을까.‘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는데,생판 남인 사람들이 강남 아파트에서 살면서 2∼3년만에 몇 억원의 불로소득을 얻는다면 누군들 마음이 편할 수 있을까.더욱이 강남은 교육 환경이 좋아 명문대학 합격률이 가장 높고 웃음의 코드와 질까지 다른 곳이 아닌가. 백담사에서 비승비속(非僧非俗)으로 10여년간 오현 스님을 시봉(侍奉)하다 하산한 이홍섭 시인은 지난 6월에 낸 에세이집에서,스님이 이따금 우스갯소리로 “난 ‘동물의 왕국’ 삼년 보고 해탈했어.거기에 모든 게 다 들어 있어.”하고 얘기했다고 전한다.인간 세상이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그럴진대,이 땅의 서민들에게 ‘강남 불패 신화’와 상대적 박탈감을 견디라고 하는 것이 가당한 소리인가.오현 스님은 (마음을)‘비웠다.’거나 (욕심을)‘버렸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대번에 “미친 놈”이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1997년, 의료보험제도를 취재하기 위해 독일에 갔다가 만난 교포의 말은 잊히지 않는다.그는 한국이 싫은 이유로 집값을 들었다.독일에서는 이를테면 10년 동안 열심히 저축을 하면 어떤 집을살 수 있는지 알 수 있는데,한국은 그런 예측이 불가능한 사회라는 것이다.부자가 되는 것에도 공정한 게임의 룰이 적용되어야 한다.갈수록 강남과 강북의 웃음의 질에 차이가 난다면 어떻게 민심을 달랠 수 있겠는가. 황 진 선 문화부장 jshwang@
  • 이런 책 어때요/ 유럽 클래식 산책

    이동활 지음 예담 펴냄 유럽의 클래식 음악을 주제로 한 에세이.바흐·멘델스존·슈만 등을 만날 수 있는 라이프치히,베버와 국립 오케스트라인 드레스덴 슈타트카펠레로 유명한 드레스덴,바그너의 성지 바이로이트와 퓌센,세계 최고의 오페라 도시 밀라노,악성들이 사랑한 꿈의 도시 빈,숱한 실험적 음악이 탄생한 파리,드보르자크와 스메타나 등 국민음악의 탄생지로 잘 알려진 낭만적인 보헤미안의 도시 프라하 등 음악도시 10곳을 여행하며 남긴 기록이다.20세기 최고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독특한 실험적 음악을 만든 올리비에 메시앙 등의 삶도 소개한다.1만 5000원.
  • [맛 에세이] 별난 직업

    “틈새 시장을 노려라!” 이제 직업 또한 보다 색다르고 전문화 된 직업이 유망 직종으로 떠오르고 있다.학창시절부터 음악 시간과는 담을 쌓고 지내던 김모(34살)씨,이젠 그가 만든 휴대전화 벨소리가 그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돈 벌리는 소리이다.이처럼 과거에는 없었지만 시간을 거듭할수록 더욱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음식관련 신종 직업들이 있으니 별난 세상을 살아가는 별난 직업의 이야기속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 롯데호텔 중식당에서 처음 등장한 ‘티 소믈리에'(Tea sommelier)는 국내 최초의 차 전문 소믈리에다.수천가지 차의 향과 맛 그리고 그 유래와 효능까지 손님에게 알려주니 차를 마시는 이의 행복이 더욱 배가 된다.이는 와인 소믈리에와 유사한 것으로 물건의 구매부터 관리와 서빙에 이르기까지 보다 전문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전문 직업으로 인정받고 있다.또한 ‘미스터리 쇼퍼'(mistery shopper)란 직업은 상대적으로 소믈리에의 가장 까다로운 적일 것이다.미스터리 쇼퍼는 손님을 가장하고 영업장에 들어가 매장의 효율성이나 친절도를 몰래 확인하고 평점을 매겨 보다 나은 업장으로 진일보 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신종 스파이 직업이다.요즘 음식은 단순히 만들고 먹는 것에서 벗어나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장의 요구와,보다 나은 곳을 찾아가고픈 손님의 기대치까지 만족 시켜주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푸드 코디네이터'(Food Coordinator)는 말 그대로 만들어진 요리를 보다 아름답고 먹음직스럽게 연출하는 사람을 말한다.미국과 일본의 경우에는 요리사와 푸드 코디네이터가 각각의 영역을 확보하고 활동하고 있다.우리가 흔히 접하는 광고나 잡지에서 만나는 멋스러운 음식의 대부분은 바로 “푸드 코디네이터”의 스타일링이 가미된 작품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와 관련해 여성 선호 유망직종으로 부각된 직업이 바로 ‘파티 플래너'(party planner)다.행사의 기획에서 연출 그리고 세세한 파티의 진행에 이르기까지 파티 전반에 걸친 흐름과 분위기를 조절하는 파티플래너야 말로 유행과 패션에 민감한 신세대 여성들에게 매력적인 직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이 모든 신종 직업들은 아직 성장하는 어린아이와 같다.식문화와 관련된 모든 직업은 보다 많은 행복을 점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망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요구가 클수록 더 많은 만족감을 주기 위해서는 이제 단순히 과거의 한 우물만 파면 된다는 일상적인 직업의식이 아닌 보다 다양하고 능동적인 지식과 경험을 요구한다.유학이나 학원 또는 학교를 통해 위의 직업에 대한 학업이나 교육을 받을수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얻어지는 경험과 직업에 대한 사명감이다. 정신우 푸드스타일리스트
  • [김영두의 그린에세이] 포어(Fore)

    골퍼라면 티샷한 공이 떨어질 지점이 티잉 그라운드에서는 보이지 않는 홀을 만나 보았을 것이다.이런 홀의 출발점에는 페어웨이를 조망하는 폐쇄회로 TV의 모니터가 설치돼 있거나,캐디나 진행요원이 척후병처럼 전방을 살펴서 수신호를 보내준다.하지만 원래 공이란 제멋대로 나는 존재가 아니던가. 나는 멀쩡하게 페어웨이를 걷다가 옆 홀에서 날아온 공에 맞을 뻔도 했고,티잉 그라운드에서 어드레스를 하다가 뒤 조의 공에 발목을 맞기도 했다. 언젠가 우리 조의 진행이 좀 느린 듯해서 헐레벌떡 뛰어 다음 홀로 이동했는데 페어웨이에도, 그린에도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앞 조가 홀아웃을 한 것 같아서 서둘러 티샷을 했다.탁,드라이버의 헤드에 공이 맞는 순간 오른쪽 산에서,왼쪽 숲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공은 심하게 슬라이스를 내며 오른쪽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을 향하여 날았다. 나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 발만 굴렀고,캐디가 뭐라고 큰소리를 쳐서 위험을 알렸다.다행히 공은 남자의 발밑에 떨어졌다가 숲으로 숨었다. 위험이 물러가고 나서야 ‘포어(Fore·공이 가는 쪽에 있는 사람에게 전방이 위험함을 알리는 소리)’라고 외쳐야 했음을 깨달았다. 나는 ‘포어’라는 영어 단어를 입 속에서 수없이 굴리면서 내 공이 누군가를 위해하려고 달려가는 순간에 적절하게 써먹고자 연습을 했다.그러나 내가 친 공이 페어웨이에서 잔디 보수작업을 하고 있는 인부의 뒤통수를 칠 기세로 나는 급박한 상황에 당면했을 때,나는 ‘포어’가 아니라 ‘옴마 옴마,으악…’같은 인간의 말이라기보다는 짐승의 울음 같은 비명을 질렀다. 200여년 전 세상에 나온 최초의 자동차에는 경적이 없었다.그 후 100년 동안도 달리는 자동차 앞에 사람이 나타나면 ‘비켜요.’라고 소리쳤다.1865년 최초의 자동차교통법이 영국에서 공포됐는데,모든 증기자동차들은 자동차 앞 50m에서 붉은 깃발을 든 신호수가 달려가면서 행인들에게 뒤에서 차가 온다는 경고를 해야 한다는 법이었다.현대식 경적은 자동차에 배터리가 부착되면서 생겨났다.1908년 전기의 파장을 이용한 나팔이 발명됐는데,‘비명’을 뜻하는 그리스어 ‘클랙소’를 영어식으로 바꾸어 ‘클랙슨’이라고 명했다고 한다.자동차 앞에 사람이 나타나면 운전자가 ‘비켜요.’하고 악을 쓴 시대는 100년 전이다.자동차에도 클랙슨이 달려 있는데,‘비명’을 지르는 골프채는 왜 발명되지 않는 것일까. 소설가·골프칼럼니스트 youngdoo@youngdoo.com
  • [맛 에세이] 인터넷으로 요리하기

    얼마 전에 결혼한 친구랑 점심을 먹는데 콩나물 무침을 집어 먹으며 콩나물 무침을 어떻게 해야 맛있는 지를 물어왔습니다.내식대로 대강 가르쳐주곤 인터넷에서 찾아보라고 덧붙였죠.그랬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오더군요.인터넷에서 ‘콩나물 무침’을 치면 너무나 많은 조리법이 뜨는데 어떤 게 제대로 된 건지 판단이 안 된다고요.그래도 다 비슷비슷하니 몇 개 읽어보면 순서가 잡힐 거라고 마무리하곤 끝냈죠. 그리곤 어제,‘라자냐’를 만들어 달라는 아이의 주문에 흔쾌히 ‘OK’를 하고 인터넷에 들어갔죠.라자냐 라고 치니 정말로 수십 개의 관련 글이 뜨더군요.레서피를 찾고 나니 전문가용은 재료가 너무 많이 필요하고,절차가 복잡해서 요리를 시작하기도 전에 지레 질리게 되고,그렇다고 아주 간략한 걸 클릭하고 나니 이게 라자냐가 되기나 할 지 의심스럽고….결국은 예전에 스크랩해놓은 잡지철을 뒤져서 결국 라자냐를 완성은 했습니다. 그런데,레서피를 찾으면서 놀란 것은 남의 글을 퍼다가 만든 사이트가 의외로 많더라는 겁니다.그중에는 이미조처를 당해서 열리지 않는 것들도 있지만 출처를 밝히지 않고 대강 정리한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인터넷에서는 저작권이 아직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더군요.몇 년 전에 보졸레 누보에 대한 글을 어디에 쓴 적이 있는데 얼마 후에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제 글이 저도 모르는 사이트에 출처도 없이 버젓이 올라가 있는 걸 보면서 분개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적재산권이란 게 남의 것을 가져다가 토씨 하나만 바꿔도 내 것으로 보호받는 경우가 있다고는 합니다.요리 레서피는 더욱 그렇습니다. 요리 선생님에게 가서 요리 한 가지를 배워와서는 다음날 설탕 한 숟갈을 설탕 두 숟갈로 바꿔서 ‘내 레서피’라고 하는 이들이 전에는 많았으니까요.외국 요리책의 요리 중에서 칠리 소스가 들어간 것을 고추장과 고춧가루로 대체하면 그건 바로 한국요리가 되기도 하죠.한동안 폭풍우를 일으켰던 퓨전요리 장르에서는 이 점이 더 혼란스럽습니다.하나의 정보가 이리저리 구르면서 모자라는 것은 채워지고,지나친 것은 깎아지는 단계를 거쳐 더 좋은 정보가될 수 있다는 걸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신뢰’입니다.누구나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은 것처럼 정보라는 것도 근원이 있다는 겁니다.그 근원을 밝히고,거기에 내 목소리를 보태서 더 좋은 정보를 만들어내는 게 바른 순서라는 생각입니다.예를 들어 ‘라자냐’를 치면 나오는 레서피들이 ‘마사 스튜어트 리빙 2001년 11월호에 나온 라자냐 레서피와 푸드스타일리스트 정효진씨의 김치 라자냐 레서피를 참고했음’이라는 주를 달고 있다면 정보를 찾는 이들이 이렇게 혼란스럽지는 않을 것입니다. 신혜연 월간 favor 편집장
  • [김영두의 그린에세이] 친구의 선글라스

    내 친구 경희는 선글라스를 수집한다.새 선글라스를 장만하면 먼저 필드에 쓰고 나타난다.자랑하고 싶어서일 것이다.몇 년 전에 린다 김 선글라스가 유행한 적이 있다.며칠 전 그것과 흡사한 선글라스를 끼고 골프장에 나타났다. “여우같다.린다 김보다 너에게 더 잘 어울린다.” 절친한 친구에게 예의를 지키느라고 새 선글라스에게 인사를 했다.“여우? 여배우? 멋있지? 근데 아직 도수를 못 넣었어.니가 내 공이 떨어지는 곳을 보고 알려줘.” “공이 안 보이면 앞길이 암울하지.” 옛날에 동화책에서 장님과 앉은뱅이의 이야기를 읽었다.장님이 앉은뱅이를 업고,앉은뱅이는 장님의 눈이 돼 산도 넘고 물도 건너며 세상을 여행한다는 내용이었다.서로 돕고 살라는 교훈적인 동화였다.암흑천지에서 헤매는 친구를 위해 나는 기꺼이 광명한 눈이 되고자 했다. 친구가 공을 친다.시력이 0.3인 사람이 연기에 그을린 듯한 시커먼 색유리를 통해서 200m 앞의 공을 찾기는 힘들다.나는 눈을 부릅뜨고 공의 궤적을 좇는다.“슬라이스가 난 것 같은데… 내 공 어디로갔니?” 장님도 헤드업은 한다는데,친구는 전혀 헤드업을 안 한다.친구는 공이 클럽헤드에 맞는 순간부터 제 의지를 갖고 세상구경을 떠난다는 사실은 모르는가보다.공을 찾는 일은 전적으로 내게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는 시커먼 속셈 같다. “참,내 정신 좀 봐라.니 공 봐주기로 했었지.공이 똑바로 나는 것을 본 기억은 나는데,어디 떨어졌는지는 잊었어.치매인가 봐.” “봐주기로 했잖아.공 못 찾으면 벌타 먹잖아.” 나는 장난으로 한 말인데,친구는 언성을 높이며 침까지 튀기며 삿대질까지 한다. “간신히 만든 막내 떨어지겠다.좀 조용히 말해라.나 아직 귀는 어둡지 않아.공 맞는 소리도 들었어.근데 넌 틀니 했니? 침까지 튀기게.” “넌 아직 젊구나.막내도 만들고.나도 아직 틀니를 낄 정도는 아니야.잇새가 좀 벌어진 것뿐이야.” 친구의 선글라스 뒤의 눈은 나를 흘기고 있을 것이다.“만약에 30년 뒤에도 걸을 수는 있어서 같이 골프를 친다면,한 사람은 눈이 어두워서 공이 나는 것이 안 보이고,한 사람은 공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그 자리가어딘지 잊고,한사람은 이가 빠져서 공 떨어진 장소를 알려 주려고 해도 잇새로 바람만 새겠지.그런 사태에 대비해서 예행연습을 해본거야.” 소설가·골프칼럼니스트 youngdoo@youngdoo.com
  • “일류대 다니는 놈이 엄마만도 못해?”/노덕임씨 가족에세이 ‘억대 연봉 엄마노릇’ 출간

    “공대 다니는 놈이 엄마만도 못해? 그것도 못하면 학교 망신이다.” ‘억대 연봉 엄마노릇’(에코 펴냄)의 저자 노덕임(46)씨는 공부 빼고 뭐든지 잘하는 딸이 잘못하면 야단을 치지 않지만 서울대에 다니는 오빠가 무엇을 어설프게 하면 이렇게 꾸중을 한다.서울가정법원 소년보호위원으로 활동하며 청소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그이지만 그 또한 ‘일류대 콤플렉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대학입시만 끝나면 엄마는 팔도유람이라도 다니겠다는 자조가 판을 치는 게 현실이고 보면 우리 사회는 일류대를 향해 모두 일렬 종대로 서 있는 ‘획일사회’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저자는 이미 ‘과외 절대로 시키지 마라’라는 선정적 제목의 에세이를 통해 과외를 시키지 않아도 일류대에 들어갈 수 있다는 ‘역설의 복음’을 전한 바 있다.그것은 경제적으로 어려울수록 엄마의 더 큰 정성과 노력으로 자녀들을 지도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가족에세이 형식의 이번 책에서 저자의 딸은 아침에 늦잠을 자면 뽕짝을 틀어놓아 아이들의 잠을 깨우던 엄마의지극정성을 “잔인한 엄마의 수법”이라고 표현한다.전방위 안테나를 켜놓고 자식의 일류대 입학을 위해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한국 엄마들에게 이번 책은 더욱 전투의욕을 불태우게 한다.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말은 우리 사회의 고질인 일류대병에 관한 한 상당부분 그 순수성을 잃는다.그 책임은 물론 ‘간판’에 휘둘리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취약성에 있다.진부한 이야기이지만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이다.9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책꽂이

    ●사춘기(김행숙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 99년 등단한 시인의 첫 작품집.사춘기와 귀신 등 경계에 머무는 소재를 통해 ‘떠도는 감성’을 노래.평론가 이장욱은 “구체적 개인으로서의 서정적 자아를 창조해 현대시의 새 징후를 보여준다.”고 평가.6000원. ●살아남은 자의 전설(장혜영 지음,실천문학사 펴냄)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조선족 작가의 장편.여성 4대의 삶을 소재로 중국에서 겪은 우리 민족의 억압된 역사와 남존여비 등 수난사를 비롯, 자본주의 도입 이후 변화된 사회상을 묘사.모두 2권,각 9000원. ●해방후 조선족 소설문학연구(이광일 지음,경인문화사 펴냄) 중국 옌볜대 교수인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조선족 문학에 대한 기존연구를 검토한 뒤 김학철,이근전 등의 작품세계를 조명.해방 후 조선족 소설이 중국문학의 단순한 번안이 아니라 자체의 발전법칙이 있음을 규명.2만 2000원. ●휴일의 에세이(이어령 편저,문학사상사 펴냄) 나도향,김동인,최인호와 생텍쥐페리,앙드레 지드,보르헤스 등 국내외 유명 문인들의 유려한 에세이 61편을 모은 것.생활·자연·사상·문명·기행 등 5개의 장으로 나눠 작가들의 내면 풍경과 철학을 섬세하게 담았다.8000원. ●열대어(요시다 슈이치 지음,김춘미 옮김,문학동네 펴냄)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작가의 소설집.일본문학의 전통을 바탕으로 대중문화적 감수성을 겸비한 작품세계로 젊은 세대를 가장 잘 그리는 작가로 평가받는다.심리묘사 없이 행동만을 묘사한 표제작 등 3편.7500원. ●나의 날개로 날고 싶다(이춘해 지음,열매출판사 펴냄) 교직생활,전업주부로 살면서 습작한 작가의 첫 장편.남편의 숱한 외도를 알면서도 가정을 위해 참아온 주인공이 이혼 뒤 옛 애인을 만나 참된 사랑을 찾아간다는 내용.8500원. ●아쉬움에 대하여(유자효 지음,책만드는집 펴냄) 언론인 시인의 8번째 작품집.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그리워한다.그러나 그 정조는 과거로의 퇴영이 아니라 현실의 삶을 긍정하기에 역동적이다.해서 노래한다.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고 살만하다고.물론 “당신이 떠난 뒤에도”.6500원.
  • [맛 에세이] 어머니의 김치

    김장철이 돌아왔다.우리네 밥상의 백미를 ‘밥’이라고 한다면 ‘김치’는 그야말로 진미(眞味)라고 할 수 있다.한해가 기울어 가는 늦가을,장독대에 가득 담겨진 김장김치를 바라보면 따끈한 흰밥에 손으로 쭉쭉 찢어 올린 김치를 얹고 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먹는 즐거움이 상상된다.김치는 우리에게 유독 많은 사연을 담고 있는 음식이다.어린시절 도시락 한편을 차지하고 신냄새를 풀풀 날리던 김치냄새에 얼굴 찌푸린 기억,막 버무린 김치를 연하게 삶아낸 돼지고기에 얹어 농주와 곁들여 먹던 기억. 해외 동포들은 3년쯤 삭힌 묵은 김치를 먹으며 어머니의 맛이라며 눈물을 흘린다고도 한다.그만큼 김치는 저마다의 사연과 추억을 안고 있는 음식이다. 오늘날 김치는 또 다른 문화의 코드로서 자리하고 있다.혼수 품목에서 빠지지 않는 것 중 하나가 ‘김치 냉장고’이고,맛있는 김치는 백화점과 대형 마트의 모시기 경쟁에,상품 코너의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김치 영양학’을 내세운 이론은 한때 사스 공포가 전 세계를 뒤흔들 무렵 우리를지켜주는 최고의 방패처럼 부풀려져 보도되기도 했다. 동시에 김치는 이제 우리의 손에서 사라지고 있다.핵가족 확산으로 김치를 담그는 주부보다 사먹는 주부들이 대다수이고,실제로 며느리에게 김치를 전수하는 어머님의 손맛보다 싸고 맛있는 김치를 찾아 나서는 주부들의 경제학이 더 귀한 시대가 되어버렸다. 과거 우리나라에는 200종이 넘는 김치가 있었다고 한다.그러나 국제 식품 규격에는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고춧가루로 양념한 후 발효시간을 거친 것’을 김치라고 하였기 때문에 그외의 맛깔스러운 지방김치들은 그 명맥을 잇기가 더욱 어려워졌다.김치에 관한 연구자료 서적이 300권이 넘고,맛있는 김치 담그는 방법이 담긴 책자가 서점에 즐비하고,김치에 관한 인터넷 사이트도 넘쳐나지만 이제 우리의 식탁을 채우고 있는 것은 공장에서 생산된 김치들이다.겨울철,동치미 국물에 국수를 말아 주시던 어머님의 별미는 이제 먼 옛날의 추억이 되어간다.뚝배기에 묵은 김치를 깔고 싱싱한 고등어를 조려 주시던 맛난 고등어조림,겨울 잔치에 주인공이었던 보쌈김치,코끝이 찡하게 그리웠던 고향집의 갓김치도 이제 모두 사서 먹어야 할 판이다. ‘어머니의 고등어’(02-501-3055)는 타지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어머니의 향수를 느낄수 있는 묵은 김치로 조려낸 김치 고등어 조림집이다.바쁜 일상에서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가을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고 어느새 겨울을 맞이하게 된다.김치를 담글 형편이 못되는 사람들에게는 맛있는 김치는 그리움의 맛이 된다.김치 고등어조림은 어머니, 그리고 아내가 손수 담근 김치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음식인지 깨닫게 해주는 맛이 될 것이다. 정신우 푸드스타일리스트
  • 책꽂이

    ●세계의 언론학 교육(원우현·유일상 지음,삼영서관 펴냄) 미국을 비롯, 영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프랑스·독일·일본·중국 등의 언론학 교육 실태를 분석.국내에는 현재 약 100여개 4년제 대학에 신문방송학과 또는 그 유사학과가 개설돼 있다.신문방송학은 양적 팽창을 거듭해 ‘공룡학문’이 되고 있다.유학을 꿈꾸는 이들 또한 많다.학부 및 대학원의 저널리즘 교육 과정과 대학별 평가 순위 등을 실어 유학준비생들에게 특히 도움이 되도록 했다.1만 8000원. ●행복의 발견(히로 사치야 지음,이미령 옮김,대숲바람 펴냄) 300자도 채 되지 않는 ‘반야심경’은 한국 불자들에게 가장 친숙한 경전이다.절에서는 예불 때마다 독송되고 수행의 하나로 이뤄지는 사경도 ‘반야심경’을 가장 많이 한다.이 책은 불교의 대표적 경전인 ‘반야심경’을 88가지 주제로 나눠 에세이식으로 풀어쓴 것.‘반야심경’의 핵심사상인 ‘공(空)’의 철학은 선입관을 갖고 세상을 고정화된 시각으로 보지 않고 집착하기 말자는 것이다.9500원. ●빠빠라기(투이아비 지음,유혜자 옮김,동서고금 펴냄) 남태평양 사모아 제도의 작은 섬에 사는 투이아비 추장이 유럽을 방문한 뒤 자기가 목격한 문명세계를 비판한 연설문 형식의 글.한 예로 추장은 빠빠라기들이 ‘육신은 죄악’이라고 말하면서 온갖 도롱이들을 두르고 다닌다고 전한다.문명의 폐해를 원주민들에게 경고하기 위한 이 글은 독일인 선교사 에리히 쇼이어만이 1920년 문명 세계의 언어로 번역한 것.‘빠빠라기’는 사모아 제도의 원주민들이 백인들을 부르는 말이다.7500원. ●기이한 직업들(낸시 리카 쉬프 지음,김정미 옮김,문학세계사 펴냄) 미국 신시내티의 50년된 힐탑 실험실에선 겨드랑이,숨결,발,기저귀 악취 등을 감식하는 일이 매일 진행된다.방취효과를 연구하기 위해 악취를 맡아 1부터 10까지 단위를 매기는 것이다.이 직업의 이름은 ‘악취감식가(odor judge)’.또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엔 ‘공룡 뼈 먼지청소부(dinosaur duster)’가 있다.부드러운 깃털로 공룡 뼈를 절대 건드리지 않으며 먼지를 털어내야 하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직업이다.이 책에는이처럼 별난 직업들이 망라돼 있다.7200원. ●가둘 수 없는 영혼(팔덴 갸초 지음,정희재 옮김,꿈꾸는 돌 펴냄)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한 후 티베트 사람들의 3분의 1이 죽었고,6000여개의 사원이 파괴당했다.15만명 이상의 승려들이 강제로 환속당하거나 감옥이나 노동수용소로 끌려갔다.한 때 숨어있는 이상향이라 불리던 티베트는 그렇게 파괴됐다.이 책은 중국치하의 티베트 참상을 30여년간 정치범으로 감옥에 갇혀 지낸 한 라마승의 입을 통해 낱낱이 고발한다.저자는 티베트 최장기수이자 고통받고 있는 티베트의 현실을 유엔에서 증언한 최초의 티베트인이다.9900원.
  • [김영두의 그린에세이] 번호판 시리즈

    라운드를 함께 한 A씨는 아내를 부를 때 ‘허니’니 ‘스위트 하트’니 이런 징그러운 호칭을 쓴다고 한다. “좀 지나치지 않아? 결혼한 지 20년도 넘은 부부가 아직도 그렇게 불러? 옆에서 듣는 데 소름이 돋잖아.” 친구들이 핀잔을 주었다. “실은 말이야.몇 년 전부터인가 마누라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아서…” A씨의 변명이다.너무 가까이 있어서 존재 자체를 잊어버린 것일까,아예 관심조차 없는 것일까,자주 쓰지 않아서 이름조차 망각에 묻혀 버렸을까,아니면 지독하게 멍청한 것일까. 골프장에서는,장갑을 벗을 즈음에 캐디가 안내방송을 한다. “골프채 확인하시고,소지품 챙기시고,차번호 말씀해 주세요.” 라운드를 끝내고 골프채를 찾을 때,차번호와 골프채 가방에 캐디가 매달아준 꼬리표에 적힌 숫자가 일치해야만 골프채를 찾을 수가 있기 때문에 차번호를 대라는 것이다.캐디가 챙기라는 소지품은 휴대전화나 담배,지갑 등이겠다.소지품이야 동반자가 챙기고 난 나머지를 다 주워오면 되겠지만,차번호가 문제다.마누라 이름도 잊은 사람이 자기가 타고 다니는 차 번호인들 기억하겠는가. “내 차번호가 뭐였더라?” 캐디에게인지 나에게인지 모르지만,A씨가 자기의 차번호를 물었다.A씨의 차번호는 내가 기억을 한다.누구나 어렸을 적에,‘에그그 계란 깨질라’ ‘어,그려,동의하지’ 따위로 Egg는 계란이고 Agree는 동의하다란 영어 단어를 암기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그렇게 영어 단어를 암기하던 식으로 외웠다. “차 팔고 돈 잃어.(차)8915 아니에요?” “어어? 맞네….나도 내 차 번호는 기억 못해도 당신 차번호는 기억하지.자 빨리 식스나인,(서울 자)8269 맞죠?” “어찌 알았죠? 식스나인이 급하다고 차 번호판에 써가지고 다녀도 쫓아오는 남자가 하나도 없어서,심오한 뜻을 아무도 모르는 줄 알았더니만…. “제 차는 칠이 삼삼(7233)한 크림색 중형차입니다.” 필드의 물 찬 제비라는 별명을 가진,그래서 늘 의상으로 한몫 보는 B씨가 명품 지갑을 챙기며 말했다. “전 공치러 오라는 뜻인 것 같은 0755 번호를 단 골프연습장 사장님 차도 봤어요.” 우리의 차번호 얘기를 들으면서 웃음을 참지 못하던 캐디가 혼잣말인 듯 중얼거렸다. 소설가·골프칼럼니스트 youngdoo@youngd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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