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원작 영화 ‘드래곤볼 에볼루션’ 진화는 없었다
일본 만화잡지 ‘주간 소년 점프’에서 1984년부터 연재를 시작, 1995년 519화로 마침표를 찍었다. 단행본이 모두 42권이다. 일본에서는 1억 5000만부 이상 팔려 나갔다, 해외까지 합치면 3억 5000만부 이상 판매됐다. 세 차례나 TV용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만들어졌고, 극장판 애니메이션도 18개나 나왔다. 게임으로도 수 십 차례 제작됐다. 일본 만화가 토리야마 아키라가 그린 만화 ‘드래곤볼’은 이처럼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작품이다. 드래곤볼 열풍 앞에서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할리우드보다 앞서 한국을 비롯한 일본, 홍콩 등 아시아 지역에서 12일 먼저 개봉한 영화 ‘드래곤볼 에볼루션’은 만화를 실사로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드래곤볼 마니아라면 이번 영화를 한껏 기대했을 터이다. ‘데스티네이션’ 시리즈로 이름을 알렸고, 이번 작품의 메가폰을 잡은 홍콩 출신 제임스 왕 감독은 “제목의 에볼루션은 만화에서 영화로의 진화를 뜻한다.”고 자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작의 엄청난 무게감에 짓눌린 탓인지 ‘진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7개의 드래곤볼을 모으면 소원 한가지를 이룰 수 있다는 설정과, 손오공을 비롯해 피콜로 대마왕, 무천도사, 부르마, 치치, 야무치 등 주요 캐릭터를 가져 오고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는 조연급 캐릭터들도 새로 만들어 배치했지만 그것뿐이다.
각 배역들은 개성이 없다. 저우룬파는 무천도사를 연기하며 토리야마식 유머를 담아 내려고 하나 흡족한 수준은 아니다. 특히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무시무시한 ‘악의 축’이어야 하는 피콜로 대마왕은 자신의 부하인 암살자 마이보다도 존재감이 떨어진다.
원작과 완전히 따로 떼어 놓고 보더라도 후한 점수를 주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이야기 진행이 빈약하다. 85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손에 땀을 쥐는 대결도 없고, 긴장감도 없다. 흔하디 흔한 소년 영웅담의 재판이다. 뼈대는 가져 왔지만 살을 제대로 붙이지 못한 셈이다. 드래곤볼 마니아라면 일찌감치 눈치 챌 수 있는 반전을 막판에 걸쳐 놓지만 이마저도 싱겁게 해결된다. 컴퓨터그래픽과 세트, 액션 장면들도 블록버스터라고 하기에는 영화 관객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키기에 부족하다.
지난 10일 드래곤볼의 고향인 일본에서도 시사회가 열렸다. 야후 재팬 영화 리뷰 코너 등에선 긍정적인 평가를 찾아 보기 힘들다. “보통의 SF 액션 영화에 드래곤볼 캐릭터의 이름을 사용했을 뿐”이라는 평에서부터 “드래곤볼을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봐서는 안 되는 작품” 등의 글이 올라 오고 있다.
인기 아이돌 그룹인 god의 멤버였던 박준형이 주요 캐릭터 가운데 하나인 야무치 역을 맡았다. 이밖에도 치치 역의 제이미 정, 손오공의 할아버지 오반 역의 랜달 덕 킴 등 한국계 배우들이 다수 포진한 점은 눈에 띈다.
원작자인 토리야마 아키라도 프로듀서로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처음으로 실사로 만든 이 영화를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