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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홍길씨, 국산 등산화로 히말라야 도전

    산악인 엄홍길씨(41)가 국산 등산화 ‘트렉스타’를 신고히말라야에 오른다.부산의 특수화 전문업체 ㈜성호실업은 14일 “최근 엄홍길씨와 1년간 등산화 모델계약을 맺었으며로체사르 등 해발 8,000m이상 2개 독립위성봉 등정을 위해지난 12일 네팔로 떠난 등반대에 4종류 80켤레의 신발을 제공했다”고 밝혔다.또 엄씨의 원정비용 절반을 지원했다고덧붙였다. 88년 9월 에베레스트봉(8,848m)을 시작으로 지난해 7월 K-2봉(8,611m)까지 ‘히말라야산맥의 8,000m이상 봉우리 14개(14좌)를 등정하는데 성공한 엄씨는 이번에 2개 독립위성봉에 오르면 히말라야산맥의 8,000m급 봉우리 16개를 모두 등정하는 기록을 세계 최초로 세우게 된다. 부산 이기철기자 chuli@
  • [여성 선언] 모악산과 그 남자

    때로는 영화나 책을 통해서 세상을,인간을 배우게 될 때가있다.그러나 아무래도 여행을 통한 생체험보단 강렬하지 않다.여행지에서 만나게 되는 건 눈쌓인 겨울산이나 붉게 물든단풍들, 청렬한 물소리를 내며 흐르는 계곡이나 백파를 품어내며 위용을 자랑하는 바다만은 아니다.그 풍경들 한가운데미처 발견하지 못한 또 하나의 존재가 있다. 누가 여행은 돌아오지 않기 위해서 떠나는 것이라는 말을했다.나는 종종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곤 한다.떠나기 이전의,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고 황폐하고 나약한 모습의 내가 아니라. 지난 주말 즈음에, 잡념이 들끓어 더는 일을 할 수 없다는핑계를 대면서 서둘러 짐을 꾸려 무작정 전주로 떠났다.숙소로 예약해둔 곳이 모악산 구이 등산로 쪽에 있다는 걸 알지못하고 김제 쪽 방향에서 잘못 내렸다.숙소로 가려면 모악산을 넘거나 아니면 다시 버스를 타고나가 구이로 가야 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나가기엔 여행의 기대와 각오가 허락치 않았고 산을 넘자니 벌써 오후 세시 반,시간이 촉박했다. 결국산을 넘기로 했다.나로서는 생의 첫번째 등반이었으므로 기대와 흥분보다는 불안감과 약간의 공포를 느낄 수밖에없었다.얼마쯤 지나지 않아서 심장이 찢어질 것만 같은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더욱이 해는 급속도로 기울고 있었다. 나는 하산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곧 도리머리질을 치고 말았다.아마도 여기서 하산을하게 된다면,에베레스트를 등반하다 실패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러했듯 ‘그냥 계속 올라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하는 의문을 떨쳐버릴 수 없을 것 같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건 정말이지 ‘하나의 크나큰 의문부호가 찍힌 미래로 내려간다’는 걸 뜻하는 것일 테니까. 어쨌거나 정상에 오르긴 했다.그러나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과 환희도 잠시,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해가 지는 서쪽 방향의 구이쪽 등산로에는 쌓인 눈이 녹지 않아 빙판을 이루고있었다. 우리의 하산길을 도와준 사람은 작은 지리산이라고불린다는 그 험한 산을 마치 다람쥐처럼 가볍고도 재빠른 몸놀림으로 뛰어다니던 한 남자였다. 그는 우리보다 한발 앞서가며 하산길을 안내해 주었다.중요한 것은 산을 오르는 것,정상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내려가는 마지막 한 걸음이라는 걸 가르쳐준 사람도 그였다. 그리고 산을 내려갈 때는 긴장을 풀지말고 마치 남의 집 문지방을 넘듯 넘어야 한다는 사실도.모악산에서 만난 한 산사나이의 도움으로 우리는 마침내 예측할 수 없는 굴곡의 험한산을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다. 산을 내려오면서 나는 언젠가 읽었던 에베레스트를 오르는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그 산을 올랐던 사람들,그들에게는 위대한 판단력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그리고 인내심이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깨닫게 되었다.수행이란 건 잡념을 물리치는 게 아니라 낙엽처럼 켜켜이 쌓이는 생각들을 지그시바라보는 것이라고.그건 아마 내가 이 겨울산을 통해 얻은소중한 체험이 아닐까.그리고 나는 본다. 그 겨울산에 있던 또 다른 아름다운 풍경 하나,산사람의 모습을.그 풍경 속의 풍경을. 조경란 소설가
  • 2000년 슈퍼스타/ 엄홍길씨

    새 천년 한국 산악계는 77년 고 고상돈(79년 작고)의 에베레스트(8,848m) 첫 등정에 못지 않은 낭보를 접했다. 한국에서도 히말라야 8,000m 이상 고봉 14개를 완등한 산악인이 탄생한 것이다.주인공은 엄홍길씨(40). 엄씨는 지난 7월 31일 K2(8,611m) 정상 등정에 성공,아시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히말라야 8,000m이상 고봉 14개를 모두 정복했다.지난 88년 에베레스트 정복을 시작으로 12년만에 14개봉을 완등한 것이다. 8,000m급 고봉 하나를 정복하는 것이 올림픽 금메달 못지 않은 쾌거로 인정받는 세계 산악계의 풍토로 볼때 그의 쾌거는 엄청난 일이었다.특히 최근 들어 8,000m급 고봉 등정 레이스 자체가 국력 과시의상징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세계 산악계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엄씨 이전에 히말라야 8,000m 고봉을 완등한 사람은 단 7명뿐.산악강국인 이탈리아와 폴란드에 2명씩,스위스 스페인 멕시코에 1명씩이있다. 한편 엄씨에 이어 한국은 내년쯤 또 한명의 14개봉 완등자를 갖게될 전망이다.그와 함께 14개봉 완등 경쟁을 펼쳐온 박영석씨(37)가이미 12개봉을 정복했기 때문이다. 곽영완기자 kwyoung@
  • 中 신화통신 “에베레스트 녹고있다”

    [베이징 AFP 연합] 해발 8,850m의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산이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낮아지고 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22일 보도했다.중국 과학자들은 히말라야와 티베트 고원의 기온이 1950년 이래 지구 평균기온보다 높은 0.8도 상승해 에베레스트산 정상을 덮고 있는 두꺼운 얼음이 지난 30여년간 감소해왔다고 밝혔으나 이로 인해높이가 얼마나 낮아졌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또 지구위치측정시스템(GPS)을 이용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에베레스트 산은 매년 북동쪽으로 6∼7cm정도 이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런 현상은 인도 대륙이 중국과 네팔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지각구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히말라야 14개 고봉 아시아 첫 완전 정복

    산악인 엄홍길씨(40)가 아시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히말라야 8,000m이상 고봉 14개를 모두 정복했다. 엄씨는 31일 마지막 14번째 봉인 K2(8,611m) 정상등정에 성공했다.지난 88년 에베레스트(8,848m) 정복을 시작으로 12년만에 14개봉을 완등했다.지금까지 히말라야 8,000m 고봉을 완등한 사람은 엄씨를 포함,7명에 불과하다. 14개 고봉은 에베레스트 K2 마나슬루(8,163m) 브로드피크(8,047m) 칸첸중가(8,586m) 마칼루(8,463m) 로체(8,516m) 다울라기리(8,167m) 안나푸르나(8,091m) 초오유(8,201m) 시샤팡마(8,027m) 가셔브럼Ⅰ(8,035m) 가셔브럼Ⅱ(8,068m) 낭가파르바트(8,125m)등이다. 박준석기자 pjs@
  • 충북도 탐사대 오늘 발대식

    충북도가 새천년맞이 기념행사로 기획한 ‘실크로드 자전거 횡단’ 탐사대(대장 崔鍾烈·42)가 18일 제천에서 발대식을 갖고 4개월간의 대장정에 오른다. 17일 충북도와 제천시에 따르면 최 대장 등 4명의 탐사대원들은 오는 21일항공기편으로 이탈리아 로마로 날아가 오는 24일 1만6,560㎞의 실크로드를세계 최초로 자전거로 횡단하는 대장정에 들어간다. 탐사대는 오는 9월17일까지 4개월동안 고대 동서양의 문화·교역통로였던실크로드가 지나는 오스트리아,헝가리,루마니아,불가리아,터키,이란,파키스탄,중국 등 9개국을 거쳐 인천항으로 귀국한다. 대원들은 탐사 기간 동안 하루 160∼200㎞씩 자전거만으로 이동하며 30여개주요 도시를 경유할 예정이다.탐사대는 사하라사막 도보 횡단과 에베레스트산 등정에 성공한 이 지역 출신 최 대장을 비롯,심상현(沈相賢·35·제천시청 8급),이경완(32),오세견(27)씨 등 전문 산악인 4명과 3명의 방송요원으로짜여졌다. 충북도와 제천시가 이번 대장정에 드는 전체 경비 2억9,000만원 가운데 5,000만원씩을 부담했으며나머지는 서울에 있는 한 기업체에서 후원한 것으로알려졌다. 제천 김동진기자 KDJ@
  • ‘소년 산악인’ 김영식군 후원회 결성

    자금 부족으로 등정계획이 무산돼 실의에 빠졌던 세계 최연소 산악인 김영식(金永植·14·대구 복현중 2년)군의 후원회가 결성됐다. 김군은 8살때인 지난 94년 최연소 마테호른 등정으로 고교 1학년 영어교과서에 소개되는가 하면 이듬해에는 9살의 나이로 아프리카 최고봉인 해발 5,895m의 킬리만자로에 올라 기네스북에도 등재된 세계적 소년산악인. 세계 최연소로 7개 대륙 최고봉 정복 기록에 도전하고 있는 김군은 이미 북미 최고봉인 매킨리(98년)와 유럽 최고봉인 엘부르즈(99년)등 3개 대륙 최고봉을 차례로 올랐으며,현재 에베레스트 등 4개 대륙 정상을 남겨놓고 있다. 김군은 그러나 지난해 8월 초오유봉 등정계획을 세웠으나 경비를 마련치 못하고 후원자마저 없어 결국 등정을 포기하는 등 몇번이나 자금 부족으로 좌절감을 맛보았다.이같은 김군의 안타까운 사정을 접한 대구문화방송(MBC·대표 申大根)은 김군을 돕기로 하고 각계인사 50여명으로 초오유봉 등정 후원회를 구성했다. 후원회에는 대구문화방송이 500만원을 기탁하는 등 금성전기를 비롯한 지역기업인, 이재용 남구청장 등 각 기관단체장,교수 등이 십시일반으로 참여해2,500여만원의 기금을 모았다. 후원회는 28일 오전 11시30분 대구 뉴영남호텔에서 김군의 히말라야 초오유봉(8,201m)등정 출정식을 갖는다. 김군의 아버지 김태웅(金太雄·46·산악인)씨는 “몇번이나 경비 부족으로등정을 포기했는데 이같이 후원을 해줘 매우 고맙다”면서 “이번 등반을 꼭성공해 한국소년이 세계 7대륙 최연소 등정 기록을 세우는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기뻐했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 [눈앞에 다가온 미래세계] 인터넷 혁명…생활 패턴 바꾼다

    인터넷이 세계와 인간의 삶을 뒤바꿔 놓고 있다.지난 세기말에 시작된 이변화의 흐름은 금세기에 들어 더욱 급류를 탈 전망이다.국가나 개인이나 이흐름에 잘 적응하면 발전할 수 있지만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인터넷 혁명’을 다각도로 조망해본다. 오늘은 평소 눈여겨 봐두었던 Z전자회사의 디지털카메라를 사기로 한 날.회사원 A씨는 집에 오자마자 서둘러 인터넷에 접속한뒤,한 전자상거래 포털사이트를 찾았다.상품 검색창에 ‘Z전자 디지털 카메라’를 입력하자 이 제품을 파는 20여개 인터넷상점의 판매가가 차례로 떴다. ‘B상점 57만원,C상점 56만원,D상점 60만원,…’ 하지만 50만원 가량에 이 제품을 사기로 했던 A씨로서는 당장 구입하기 힘든 액수들이다.좀더 기다려보기로 한 A씨는 희망 구입가 ‘45만∼50만원’과자신의 전자우편 주소만 등록해두고 접속을 해제했다. 사흘 뒤,“D상점이 20% 바겐세일로 52만원에 팔고 있다”는 내용의 전자우편이 도착했다.그러나 2시간뒤 “경매전문인 E상점에서 귀하가 제시한가격을놓고 Z전자 대리점간의 ‘역(逆)경매’가 벌어져 46만원까지 값이 내려갔다”는 전자우편이 날아왔다.A씨의 선택은 분명해졌다.미국 마이크로소프트가곧 실용화를 목표로 지난해 여름 발표한 가정용 전자상거래 모델이다.그만큼 ‘국경과 화폐 없는 전자경제’는 우리 코앞에 다가와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앞으로 백화점과 양판점 등 대형 매장을 갖춘 유통회사는사라질 것으로 전망한다.생산자와 소비자가 인터넷으로 직거래하고 그 사이에 물품운반과 신용결제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만이 존재할 것이란 예상이다. 때문에 좋은 물건을 싼 값에 사기위해 ‘다리품’을 판다는 말은 머지않아‘인터넷품’을 판다는 말로 대체될지도 모른다.공산품과 같은 2차 산업은물론이고,은행·보험·증권 등 금융서비스업도 빠르게 인터넷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국내에 없는 물건을 바로 살 수 있다는 것 또한 인터넷이 가져온 혁명적 변화다.이미 한국은 세계 최대 인터넷서점인 ‘아마존’의 주요 고객으로 부상했다.연초에 시작될 ‘뉴 라운드’에서는 전자상거래의 관세 부과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국가간 전자상거래 활성화의 기틀을 닦을 예정이다. 최근 원가절감과 과학적인 재고관리를 노리는 기업들의 화두는 단연 ‘B투B’(Business to Business)다.국내에서는 일반 소비자들을 상대로 하는 ‘B투C’(〃 Customer)가 전자상거래의 전부인 양 인식되고 있지만 이미 미국에서는 ‘B투B’가 전체 전자상거래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일부 기업을 중심으로 거래알선 사이트가 ‘사이버 종합상사’로서 무역창구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해외 영업망이 없는 중소기업들은 추가 경비부담 없이 바로 해외의 거래선과 연결할 수 있는데다 주문에서 대금결제까지 인터넷에서 모두 해결하기 때문에 부대비용 부담이 없는 것은 물론,부정행위도 발붙이지 못한다.이런 추세를 겨냥해 대형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저마다 전자(electronics)를 뜻하는 ‘e’나 네트워크(Network)의 머릿글자인 ‘n’을 새 천년의 기업 이미지로 내세우고 있다.미국 IBM은아예 ‘e-비즈니스’를 상표화했다. 전자상거래의 핵심은 동시성(同時性)이다.국경은 물론,대륙간 시차(時差)도 존재하지 않는다.사이버 경제를 ‘광속(光速)경제’라 부르는 것은 이때문이다.그 전제조건은 빠른 의사 결정이다.전하진(田夏鎭·41) 한글과컴퓨터사장은 “인터넷 시대에 의사결정 과정이 느린 회사는 축구선수가 공을 몰고 가다가 ‘감독님,어디로 찰까요?’하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로 절대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동전화를 통한 전자상거래를 뜻하는 ‘m-커머스’(Mobile Commerce)도 폭발적으로 활성화될 전망이다.이를 통해 비로소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사이버 경제가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02년부터 지금의 종합정보통신망(ISDN)보다 8배나 빠른 2Mbps급 차세대 동영상이동전화(IMT-2000)가 상용화되면 휴대폰을 통해 직접 물건을 찬찬히 뜯어본뒤 살 수 있게 된다.“에베레스트 정상에서 피자를 시킨다”는 말이 단순한 우스갯소리만은 아닌 셈이다. 김태균기자 windsea@ ** 사이버 공간 “새희망의 대륙” ‘21세기의 새해 첫 아침,아직 새천년을 기다리고 있는 유럽의 20세기인들에게 축하 메일을 띄우다’ 영국의 허버트 조지 웰즈가 1895년 소설 ‘타임머신’을 통해 시간의 초월을 꿈꾼지 1세기.새천년에 진입한 인류는 다시 웰즈로 돌아가려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그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은 인터넷이라는 ‘무한(無限)공간’.인류의 활동영역이 좁디 좁은 지구의 물리적 제약을 떠나 광활한 우주보다도더 너른 사이버 가상공간으로 끝없이 뻗어나가며 개인-조직-국가-세계를 하나의 마당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윌리엄 미첼(미 MIT대 건축·도시계획 대학원장)은 저서 ‘비트의 도시’에서 “미래도시에서는 경제·사회·정치·문화 행위의 상당수가 사이버스페이스 속으로 옮겨가고,인간의 삶의 방식은 전자·정보·지식 중심으로 바뀔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비행기 한번 타보지 않은 10살짜리 꼬마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전세계 수천명의 또래들과 만날 수 있고,학교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 화상을 통해 선생님과 얼굴을 맞대고 수업을 받을 수도 있게 됐다.이동하면서 지구 저편의 바이어와 영상으로 수출상담을 할 수 있고,프랑스 파리의루부르박물관이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고호미술관에도 아무때나 들어가볼 수 있다.민족과 국가의 구분이 희박해지는 것은 물론,이른바 ‘사이버크라시’로 불리는 참여 민주정치가 가능해져 나이,성별,지역,빈부,학력 등 모든 사회적 장벽이 사라진 평등한 사회도 이론적으로 가능해진다. 인터넷이 가져다준 ‘생활혁명’과 ‘경제혁명’‘문화혁명’이 본격화하면 인류는 지금으로서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새로운 희망의 대륙에 닻을 내리게 될 전망이다.‘인터넷의 전도사’로 불리는 존 챔버스 미 시스코시스템즈 사장은 “인터넷의 수명은 앞으로 길어야 30년이고,그 이후에는 무엇이나올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지금 인류는 인터넷을 타고 인터넷 저편의 세계로 가고 있다. 김태균기자
  • 백건우 ‘베토벤 최고봉’ 오른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가운데 작품번호 109부터 111까지의 세곡은 피아니스트들에게는 에베레스트 산 같은 존재다.웬만한 사람은 오르겠다고 마음먹는 것 조차 어렵고,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오르기 시작했다해도 정상에 성공적으로 등정하는 사람은 많지않다.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드디어 그 거대한 봉우리에 오른다.세계적 피아니스트의 반열에 드는 그지만 53살에서야 비로소 도전하는 것이다.10일부터 23일까지 전국 6개 도시에서 열리는 그의 독주회는 이 세곡만으로 짜여졌다.그것도연속성을 감안하여 쉬는 시간 없이 내리닫이로 연주한다. 백건우가 베토벤의 후기 소나타를 연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고국의 팬들에게 자신의 음악적 성숙을 먼저 ‘신고’한다는 의미도 있는 셈이다.백건우도 긴장속에 연주회를 준비하고 있는 만큼 드물게 순도 높은 연주회가 될것으로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백건우는 “젊었을 때 치던 베토벤과 나이들어 치는 베토벤은 차이가 많다”면서 “특히 후기 소나타에는 깊은 인간적 애정이 담겨있는 데다,음악적 언어가 겹쳐있어 표현이 쉽지 않은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이들 소나타는 흔히 고전주의자로 일컬어지는 베토벤이 낭만주의 시대를 연작품으로 평가받기도 한다.백건우는 “형식에서 초월했거나,혹은 형식을 파괴한 작품이지만 고전적 형태에서 완전히 탈피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면서 “연주하다 보면 즉흥적 요소가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백건우는 작품별 특징을 이렇게 설명한다.소나타 30번 마장조 작품 109는 천진난만한 젊은 시절의 우수가 드리워져있다.소나타 31번 내림가장조 작품 110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과 삶에 대한 발악(백건우는 좀 과격하지만 이단어가 어울린다고 했다)이다.생명이 떠나가다 용기내어 일어서는 모습,특히 푸가는 승리를 나타낸다.소나타 다단조 작품 111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 듯심플하게 처리되어 있어 음악에 대한 베토벤의 마음을 읽게 해주는 작품이라는 해석이다. 백건우는 “베토벤 당시의 피아노로 이렇게 스케일이 큰 작품을 만들었다는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면서 “베토벤이 완전히 귀가 들리지 않는상태로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백건우는 나이가 들면서 음악을 보는 눈과 함께 삶의 자세도 조금은 달라졌다고 털어놓았다.그는 “요즘은 스트레스가 쌓이면 음악으로 푼다”면서 “슬럼프에 빠졌을 때도 악보를 보고 있으면 막혔던 곡 해석이 떠오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연주일정은 10일 오후 7시 순천문화예술회관,13일 오후 8시 대구문화예술회관,15일 오후 7시30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18일 오후 7시30분 부산문화회관,21일 오후 7시30분 춘천문화예술회관,23일 오후 7시30분 대전 우송문화예술회관이다.(02)598-8277서동철기자 dcsuh@
  • [21세기 여성시대](8)우주비행사·탐험가

    “왜 에베레스트에 가는가(왜 도전하는가)?”“에베레스트가 거기 있기 때문에(미지 세계가 존재하니까).” 탐험가 조지 맬러리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않더라도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은 인류발전사에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해왔다. 그러나 여성이 절반의 제몫을 차지하게 된 것은 20세기 후반의 일.특히 인류에게 마지막까지 처녀지로 남아있는 우주에 대한 여성들의 도전은 남성 전유물이었던 미지의 세계에 대한 정복사를 새로 쓰게 만들었다. 지난 6월27일 밤 11시20분(한국시간 28일 낮 12시20분).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5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센터로 귀환했다.사상 첫 여성 우주선장의 비행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고 세계의 이목은 여기에 집중됐다. 여선장 에일린 콜린스 미 공군대령(42)은 이날 고도 9,000m 상공부터 직접조종간을 잡았다. 그녀는 이렇게 소련의 유리 가가린 소령이 61년 4월 첫 우주비행에 성공한이래 사실상 남성의 역사로 점철된 38년간의 세계 우주비행역사에 한획을 그었다.우주에 대한 여성 도전사의20세기 완결편이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순간이었다. 그러나 보다 큰 의미는 여성들의 도전사는 그 기간이 남성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단기간에 성공적인 진전을 보았다는 대목이다.특히 다른 분야와는 달리 체력적인 뒷받침이 필수적인 이분야의 괄목한만한 성장은 남성들로하여금 주눅이 들게 했다. 다른 탐험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우주조종사는 무중력 공간에서 근육이 무기력해지고 체력소모가 지상보다 훨씬 커 강인한 체력이 필수. 우주선 탑승이 결정되면 무중력 상태에 대한 적응훈련과 함께 발사될 때 겪는 중력 가속도의 3배에 이르는 힘을 견디는 훈련을 받는다.이밖에 각종 장치를 완벽히 조작할 수 있도록 수천시간 가까운 교육을 이수해야 우주로 향할 수 있다. 남성이 유리할 수 밖에 없는 신체적 조건도 조건이지만 사회적 통념의 벽을 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우주비행에서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부조종사나제3조종사를 여성으로 한 것도 극히 최근의 일이라는 점에서도 잘나타난다. NASA는 78년에야 비로소 여성에게 우주비행자격을 부여하기 시작했으며 83년 첫 여성 우주비행사를 탄생시켰다.여성 우주항공기 조종사가 탄생한 것은95년에서 와서야 실현된다. 우주선장까지 배출한 지금도 NASA 소속 우주비행사 119명중 여성은 29명이며 미국의 우주비행 경험자 278명 가운데 여성은 31명에 불과하다. 쌍발기 시절부터 하늘에 대해 끊임없는 도전을 시도해왔던 초기 여성비행사들의 노력과 희생은 탄탄한 밑거름이 되어 우주비행 분야에서 여성을 수적인열세에도 불구하고 남성과 같은 수준까지 올려놓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1911년 세계최초로 여성비행사가 되어 이듬해 영불해협을 건넜던 해리엇 큄비.빨간색 록히드 엘렉트라를 타고 대서양 논스톱횡단 첫 여류비행사로 하와이∼미국본토 간을 최초로 비행했고,1936년 세계일주 시도하다 실종된 아멜리아 에어하트 등을 거쳐 83년에야 첫 여성 우주비행사 샐리 라이드를 배출한다.그녀는 그해 6월18일 우주를 난 첫여성이 되었다. 그후 94년 7월8일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에 탑승,14일간 우주생활을 체험한 동양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 무카이 지아키 박사(46),프랑스 최초의 여성우주인 안드르 데세이(42)등도 일조를 했다.여성들은 하늘과 우주만 바라보지 않았다.높은 산,넓은 바다,깊은 해저 등에 대한 정복사를 들춰봐도 여성들은 남성들과 대등하게 혹은 앞서서 역사의 장을 넘겨나갔다. 인류사상 최초로 해저 381m에서 2시간30여분간 거닌 실비아 얼,3만2,000㎞를 걸어 지구를 일주한 피요나 캠벨,에베레스트에 두번 오른 인도 경찰관 산토시 야다브,산소통 없이 에베레스트에 혼자 오른 주부 앨리슨 하그리브스,도버해협 횡단 수영 최다(32회)기록을 세운 앨리슨 스트리더,혼자 짐썰매를끌고 남극점에 간 리브 아르네 센….그녀들도 20세기 신세계개척에 새장을열어온 여성 선구자들 이었다./김병헌기자 bh123@**舊蘇 테레슈코바 최초 여성우주인 인류 역사상 맨처음 우주를 여행한 최초의 여성은 누구였을까? 남성으로는 1961년 옛 소련이 쏘아올린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를 탔던 유린 가가린이 바로 최초의 우주인이다.최초의 여성 우주인 역시 옛 소련의 발렌티나 블라디미로브나 니콜라예바 테레슈코바로 기록돼 있다. 1963년 옛 소련 보스토크호에서 여성으로 우주선에 첫 승선한 그녀는 당시 26세로 몇몇 선택된 남성우주인과 함께 맨처음 지구밖 우주공간을 날아본 여성주인공이 됐다.1961년 소련 우주비행사 훈련 프로그램에 참가하기전까지테레슈코바는 취미로 낙하산을 즐기던 직물공장의 한 여성 노동자에 지나지않았다.그러나 2년간의 짧지만 혹독한 우주비행훈련을 마친 그녀는 마침내 1963년 6월16∼19일,보스토크6호의 정식 승무원으로 승선해 지구를 48바퀴도는 역사적인 임무에 동행하게 됐다.화려한 여성 우주인 경력을 바탕으로 이후 테레슈코바는 친선대사를 거쳐 정계에까지 진출하는 등 옛 소련의 대표적인 여류명사가 됐다. 그렇다면 우주공간 이전 하늘을 맨처음 날아본 여성은 누구였을까. 답은 미국의 50센트짜리 우표속에 들어있다.창공을 가르는 단엽비행기를 배경으로 우표속 인물로 아로새겨져 있는 해리엇 큄비(1875∼1912).그녀는 미역사상 최초로 비행면허증을 딴 여성이었으며 영국해협을 단독비행한 첫 여성으로 기록돼 있다. 어릴때 배우가 되고 싶어했던 큄비는 다재다능한 여성이었다.작가로 사진작가로 세계여행가로 활동했으며 후에 무대공연평으로 명성을 얻어 언론계에까지 진출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폈다.그러나 36세가 되던 1911년 그녀는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새롭게 눈뜬 비행에 대한 열정은 그녀로 하여금 주저함없이 비행과정을 이수토록해 마침내 비행면허증을 가진 최초의 여성이되도록 했다.그녀는 이후 자신이 디자인한 독창적인 비행복을 입고는 미국전역을 비롯해 멕시코까지 비행쇼가 열리는 곳이면 어디든 쫓아다니는 맹렬 비행사가 됐다.그리고 1912년 자신의 생애 최대의 모험인 영국해협 단독비행에성공,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그러나 큄비의 비행경력도 고작 7개월만에 끝나 버리고 만다.매사추세츠 퀸시 근방에서 개최된 비행쇼에서 곡예비행을 선보이다 결국 계곡아래로 추락,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던 것. 이경옥기자 ok@
  • [氣차게 삽시다](끝)-눈으로 볼수없는 세계 생각을 바꾸면 열려

    우리가 기차게 살아가려면 기가 막힌 곳이 없어야 한다.그런데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기가 막힌 곳이 너무나도 많다.그래서 인생살이도 힘이 든다.많은부분들이 개선되고 고쳐지고 있으나 아직도 미흡하다. 엊그제 속리산에서 한국 정신과학학회 잠재능력개발 분과위에서 주재하는세미나에 참석했다.2박3일간의 일정속에 주제발표를 했는데 전국에서 기에관해 관심이 많다는 것을 보고 여러가지로 고무를 받았다.참여한 분들을 보면 각분야의 박사 기업체 사장 특수능력소지자 가정주부 학교 교사 등 다양한 계층의 분들이었다.이들과 밤가는 줄 모르고 새로운 21세기를 맞이하는우리의 자세 등에 관하여 토론을 하였는데 모든 분들이 하나같이 한반도가세계의 중심이 된다는 데 대해 이의를 다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이는 기의 이동중심이 그렇게 되기 때문라는 것인데 모두들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이 필자의 입장에서도 대단히 마음 든든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우리가 눈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미생물의 차원으로 들어가면 마주앉은 이군과 김군 사이는 우리의차원에서는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 같지만 그들의 세계,즉 그들의 차원으로 들어가보면 엄청난 무한세계가 열려있다.그래서 그들의 눈에는 공기중의 수증기 한방울이 큰 호수와 같을 것이며 담배재가 에베레스트 산보다 더 높고 크게 보일 것이다.이와같이 정신세계는 차원을 달리하면 새로운 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현상의 세계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마음 한번 바꾸고 생각 한번 바꾸어서 새로은 인생을 살아가보자. 수맥을 알면서 수맥의 화를 피하고 막아줌으로써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고,집의 위치나 구조가 잘못되어 있을 때 이를 찾아 바로 잡아주고,가구배치나잠자리가 잘못되어 있을 때 이의 이치를 찾아 바르게 하였을 때 우리의 생각과 마음은 우주와 공명이 되어 지혜의 문이 열릴 것이다. 지금 모 방송국에서 촬영중인 프로그램인’초능력 누구에게나 다 있다’에서 모대학 학장을 지낸 박사 국제변화사 탤런트와 외국인 대학생이 한달간필자와 함께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고 있다.이중 외국인의 사고는 매우 개방적인 데 반하여 우리의 사고는 폐쇄적이라고할까.외국인은 현상에 대하여 매우 긍정적이다.그래서 지도가 훨씬 용이하다. 필자가 33년동안 은행원 생활을 마감하고 기의 세계에 들어와 많은 경험을했다.은행원 생활의 눈에 보이는 경험은 어느 의미에서 단순하고 소박하다. 그러나 기의 세계는 인생의 직관력과 통찰력을 배우도록 하는 것이어서 놀라운 체험을 하고 있다.이 때문에 오늘도 내일도 필자는 이 길을 묵묵히 걸어갈 것이다. 李載奭 한국정신과학학회 이사
  • [氣차게 삽시다](17회)세계 유명건물 육각형 많아…

    우리 주변에서 기가 좋은 것들을 살펴보자.영국은 두번째 천년을 마감하면서 의미있는 건축물을 하나 남겨놓게 되는데 이름하여 밀레니엄 돔이다.이는 1999년 12월 31일 자정에 개관된다.돔은 높이 60미터에 기둥이 전혀 없고전세계에 분포되어있는 희귀식물들을 한곳에 모은 현대판 에덴동산으로 연간 1200만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이라고 한다.이집트의 피라미드와 파리의 에펠탑 실물모형도 여기에 들어간다고 한다.가히 세계의 최대 건축물이 되는 셈이다. 특이한 것은 그 건물 구성이 모두 벌집처럼 정육각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에베레스트산 5050미터에 세워진 네팔 국립연구소의 구조본부 건물이 피라미드이고 전세계 120개국에 수출하는 볼보 자동차의 공장과 사무실이 육각이다.전세계의 경제를 주름잡는 미국 뉴욕의 건물이나 지붕들이 거의 육각형이나 미라미드로 구성되어있다.우리에게 컴퓨터로 친숙한 IBM 건물 지붕 역시 피라미드다. 여성들이 선호하는 크리스찬디오르 화장품 케이스가 육각형이다.골프의 최장타 기록보유자인 잭 햄이 개발한 일명 에어 해머에도 육각형 문양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골프채는 정식 경기에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왜냐하면 한번 제대로 맞으면 육백만불의 사나이가 때린 것처럼 정신없이 나가기 때문이다. 종교에서도 육각형 문양을 많이 사용하는 것은 육각형 문양이 좋은 기를 모으고 배출하기 때문이다.이탈리아의 라벤나에 있는 성당의 대주교좌 모자이크,미술관 천장이 육각형이다.교회나 성당을 가보면 육각형 문양이 많이 눈에 띄며 절에 가보아도 서까래끝이 육각형 문양이다.석등을 보아도 사각 육각 팔각형으로 되어있다. 세종대왕의 옥좌의 천장에도 육각형 문양이 있다.알다시피 세종은 조선 5백년사에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왕으로 평가받고 있는데,이는 육각형 문양천장을 통해 옥좌로 우주의 좋은 기를 받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집현전 학사들이 올린 여러 의견들도 깨끗한 기를 받아 결정해준 결과로 볼 수 있다. 거리를 질주하는 차들의 바퀴 휠이 육각형인 것은 대체로 개끗하며 사고율도 적다고 한다.시골의 원두막도 대체로 피라미드다.마루에서 떨어져서 다친 사람은 보았어도 이런 원두막에서 떨어져 다쳤다는 이야기를 별로 듣지 못했다. 벌집이 육각형이라 100퍼센트 부화하고,최장수하는 거북등이 육각형이다.모든 보석 역시 육각형구조라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적지 않다.왜 이런 육각문양이나 육각형 틀이 기에 좋은지는 상세하게 규명되지 않았다.그래서 필생의 과제로 연구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李載奭 한국정신과학학회 이사
  •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원래 높이는 1만5,000m”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위에는 거대한 지층이 덮고 있었으며 이지층이 남아 있었으면 지금 높이의 갑절 가까운 1만5,000m 가량이었다는 학술보고가 나왔다. 4일 아사히(朝日)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일본과 중국의 공동학술조사대는 지각변동으로 인한 커다란 단층을 발견했다. 단층은 정상 부근 표고 8,500m에서 발견됐으며 세밀히 조사한 결과 윗쪽은수천만년전 아시아 대륙과 소대륙이었던 인도 사이 ‘테치스 바다’의 퇴적물로 조성된 퇴적암이었고 아래쪽은 광역변성암이었다. 이 단층에 접한 암석은 산산히 깨어져 있었는데 연구팀은 오래전에 이 단층에 강력한 힘이 가해졌을 것으로 추정했다.또 현재의 산맥 북쪽에 파상으로구부러진 지층이 있는 점 등으로 미뤄 2,000만년 전쯤 퇴적암 지층이 북쪽으로 300만년간 흘러내려 이번에 발견된 단층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게연구팀의 주장. 조사팀에 참가했던 일본 큐슈(九州)대학 사카이 하루타카(酒井治孝)교수는“퇴적암의 두께가 1만m 정도로 추정되는 만큼 히말라야산맥 전체가 솟아올랐다는 종래의 학설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에베레스트는 원래 1만5,000m 정도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황성기기자
  • 안나푸르나봉 등정길 추락사 池賢玉씨

    “산을 오를 때는 당당하고 강했지만 누구보다 정이 많고 부드러운 여자였지요”지난달 29일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봉(해발 8,091m) 등정에 올랐다가 실종된 뒤,2일 추락사한 것으로 알려진 여성산악인 지현옥(池賢玉·39)씨 가족과 동료들은 “항상 남을 생각하며 오직 산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살던 사람인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지씨 7남매의 큰 언니 현숙(賢淑·48)씨는 “동생들이 나보다도 셋째인 현옥이에게 더 의지할만큼 자상하고 정감있었다”면서 “마음의 기둥을 잃은 느낌”이라면서 흐느꼈다.지씨는 79년 청주사대(현 서원대) 미술교육학과에 입학하면서 산과 ‘인연’을 맺었다.93년에는 한국여성 최초로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에 올라 체육훈장 기린장을 수상했다.이어 97년 히말라야 가셔브룸 제1봉(8,068m)을 등정했다. 이상록기자
  • 에베레스트 정복史 다시 쓰여 지나

    에베레스트 산의 등정 역사,즉 지난 53년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최초로 정복했다는 기록이 다시 씌어질지도 모른다. BBC 등 영국 언론들은 2일 힐리러 경의 등반보다 무려 29년 앞선 1924년 에베레스트를 정복했다 하산 도중 실종된 것으로 알려진 영국의 등반가 조지멀로리와 앤드루 어빈 가운데 멀로리의 시신을 정상(8848m)에서 600m아래에있는 지점에서 찾아냈다며 흥분하고 있다. 이 대발견의 주역은 지난 3월29일 발족된 ‘멀로리와 어빈 탐사반’.등반가 에릭 시몬슨을 단장으로 지리학자 역사학자 필름현상가 등 다국적 전문가 13명으로 구성됐다.지난 1일 멀로리를 최초로 발견한 시몬슨은 75년간 잠든채 누워있는 멀리니의 옷에 박음질 된 명찰로 확인할 수 있었다며 발견 당시 ‘날아갈 것’같은 흥분에 휩싸였으며 곧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산악인에게 경의를 표하는 숙연함에 휩싸였다고 말했다.그러나 멀로리가 정상을밟았음을 증명해주는 카메라는 발견되지 않아 숙제로 남아있다.전문가들은냉동된 필름이 빛에만 노출되지 않았으면온전한 상태일 것이라고 말한다. 김수정기자 crystal@
  • [기고]지역감정 극복을 위한 제언

    요즘 반가운 소식 두가지가 있다.하나는 자연현상과 더불어 찾아온 정치권의 봄이다.언뜻 보면 정치인은 아무 일도 안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 사회의 사계(四季)를 이끌고 있다. 다른 하나는 국산영화 ‘쉬리’가 뜨고 있는 현상이다.이미 93년 ‘서편제’의 흥행기록을 넘어섰다.이처럼 완연한 봄소식은 우리의 잠재력에 기인하며 모두가 노력한 결과일 것이다. 한때 우리 국민의 관심을 이끌었던 ‘서편제’는 섬진강을 가운데로 하여서쪽에서 발달한 판소리의 유형이다.섬진강은 지리산과 함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영호남을 말없이 아우르고 있다. 사실 영호남이라는 이름은 지리적 접근도가 낮은 시절에 행정관리적 측면의 지명을 대표하는 것이지만 해방 이후 정치적 격변기를 거치고 산업화 과정을 지나오면서 크게 변질돼 지역주의 행태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또한 숱한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자신에게 득이 되는 쪽으로 해석하고 활용하면서 마치 두 지역사이에 민족의 영산 지리산이 있는것이 아니라 에베레스트산이 놓여 있는것처럼 보이게 하는 마술까지 부리는 부류마저 나타났다. 이처럼 말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크게 세 부류가 있다는 설이 있다. 첫째는 선거를 앞둔 정치인,둘째는 소위 지역 유지로 행세하면서 주로 다방에서 외상 차를 마시는 사람,셋째는 막연히 요행을 기다리는 사람이라는데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상대방 말에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할 경우가 있다.그것은 하도 어처구니 없어 말문이 막히기 때문이다.한때 떠돌았던 ‘호남 호황설’도 그런 경우다.70년대에는 호남지방에서 ‘롯데껌’이 진열·판매되지 않는다고 하면 그대로 믿었던 사람도 있었을 정도였다. 지난 2월 하순 許京萬전남지사는 부산,대구,울산,진주,마산,포항,안동 등영남권 중진 언론인들을 초청했다.초대에 응한 분은 28개사(방송 17,신문 11)에 총 30여명.1박2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만나 얘기를 나누고 전남지역 삶의 현장을 둘러보면서 일행은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됐다. 이중 광주를 처음 방문한 분이 50%를 넘었다.평소 사회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닌다는 언론인이지만 호남체험의 빈도는예상외였다.목포에 처음 발을 디딘 사람은 100%에 가까웠다.‘목포의 눈물’로 이름난 항구도시 목포를 전남도의 초청으로 난생 처음 둘러보게 됐다는 것이다. 또 한번 비교되는 것은 이분들이 대부분 동남아 등 해외는 2∼3회 이상 다녀왔다는 사실이다. 김포국제공항.IMF 그늘에 잠깐 어두워진 듯싶더니 어느새 북적거린다.제주도 가기보다는 하와이나 태국이 더 가깝다는 것이다.눈에 보이는 자기 집 뒷산은 고이 두고 말로만 듣던 알프스산을 먼저 찾아나서는 여행패턴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과소비를 지적하기 전에 남북간(서울행) 도로보다 동서간 도로는 왜 이렇게 멀리 느껴지는지부터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세계지도를 펼쳐들고 있는 우리의 아들딸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세계 해전사상 가장 위대한 제독이 누구냐고.‘이순신 장군’이라고 답하면 또 물어야 한다.역사의 현장을 찾아보았느냐고.이순신의 넋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리지 않는 남해안에 있다.어른 자신들도 깨달아야 한다.천리길 서울보다 가까운 지방끼리 제대로 된 왕래 한번없었다는 것을. 그러나 끈끈한 유대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음을 상기시켜 드리고자 한다.경북 안동의 서애 유성룡 집안과 전남 해남의 고산 윤선도 집안끼리 400년교류관계를 연면히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 가서 보면 안동의 하회탈은 경상도민의 순수한 인간성을 보여주고있다.전남에 가서 보면 진미(眞味)를 느낄수 있다.푸짐한 상을 차려놓고 모두가 한데 어울려 살아가는 정겨움을 맛볼수 있다.이처럼 동서문제는 영호남인이 자연스럽게 자주 만나면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 안동 한번 가봅시다.그리고 전라도 한번 오시지요. 조보훈 전라남도 정무부지사
  • 새 축구대표팀“시드니올림픽 본선 고지를 향하여”

    ‘강한 정신력으로 재무장해 올림픽 본선 고지를 향해 전진하자’-.올림픽축구대표팀이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향한 힘찬 시동을 걸었다. 지난해 12월말 방콕아시안게임 8강에서 탈락한 직후 귀국과 동시에 전면 재편된 올림픽대표팀은 4일 타워호텔에 모여 상견례를 갖고 곧바로 미사리 대표팀 전용 훈련장에서 첫 훈련을 시작했다. 오는 7일 호주로 전지훈련을 떠나 올림픽 예선에 대비한 본격적인 훈련을펼칠 대표팀은 이날 가벼운 러닝과 패싱훈련으로 몸을 풀며 4회 연속 본선진출과 함께 사상 최초의 본선 2라운드 진출을 다짐했다. 허정무 대표팀감독은 “본선까지 남은 21개월 동안 철저히 준비,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두자”고 당부하고 특히 강인한 정신력으로 무장할 것을 강조했다.허감독이 유난히 정신력을 강조한 것은 아시안게임 8강 탈락의 충격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허감독은 5일 오전 에베레스트와 남극대륙,백두산 천지탐험에 나섰던 산악인 허영호씨의 특강을 들으며 정신력을 가다듬을 계획이다. 대표팀의 전력을 실질적으로 다듬을 호주전훈에서는 시드니와 멜버른을 오가며 호주 올림픽대표팀 등과의 5차례의 평가전을 치르게 되며 이어 29일부터 2월7일까지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릴 제2회 던힐컵 국제대회에 출전,실전을 통해 조직력을 높인다.이 대회에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와 함께 세계 정상급인 러시아 국가대표팀이 출전,좋은 경험이 될 것으로 보인다.
  • 까레스키 식품의 확산(중앙아시아를 가다:12)

    ◎유목민족의 식탁 점령한 김치/“입맛을 산뜻하게 하는 별미”/양고기·양젖 위주 식사에 적합/신강성­카즈흐­티베트까지 ‘침투’/우루무치 교포 절반이 김치장수 그 끝 없이 멀고 먼 서역에도,어디를 가나 우리 교포들이 살고 있다.그들은 한국의 음식을 먹고 전통식생활에서도 전통을 지킨다.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유학온 카자흐스탄 학생이 밥을 물말아 먹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던 기억이 생생하다.그 학생은 고려인인 자기 할머니도 늘 그렇게 잡수신다고 했다.그들의 식생활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것은 물론 김치다.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의 도시 큰 바자에 가면 의례히 고려인 까레스키 여인들이 김치와 고사리를 비롯한 각종 나물과 샐러드를 판다.이들은 본래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로브스크 지역의 원동에 살던 사람들이다.그러다 1937년 스탈린이 강제로 이주시켜 중앙아시아 곳곳에 고루 퍼져 살게 되었다. 그래서 중앙아시아에서 김치는 까레스키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공산권에 여행이 가능해지던 80년대 말부터 이러한 소식을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터이다. ○88년 봉급자의 20배 수입 그런데 이번에 신강성의 수도인 우루무치에 가서 김치가 지닌 경제적 잠재력에 크게 놀랐다.1986년 중국에서 자영업을 허용하기 전까지 우루무치의 조선족은 불과 20호 정도밖에 없었다고 한다.우루무치의 조선족은 자영업을 허용한 이후 늘어났다.심양에서 처음으로 김치장사에 나섰던 한 아주머니가 하루아침에 큰 거부가 되었다는 소문이 나고 부터다.중국의 동북삼성에 사는 조선족들은 우리의 전통식생활을 잘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김치장사는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자영업이다.그런 점을 고려한 조선족들이 김치장수로 나서 옛날 서역이라 불렀던 신강성까지 왔다. 제일 먼저 우루무치에 온 사람들은 88년과 89년경에는 하루 중국돈으로 약 200원 이상을 벌었다.월수입도 6천원정도나 되었다. 월봉급이 많아야 500원이었던 시절 당시의 수익은 월급의 10내지 20배에 달하는 거금이었다.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90년에는 약 100세대의 김치장수가 우루무치로 몰려들어 조선족이 모두 120세대로 늘어났다.그러나 100여 세대 김치장수가 우루무치시에 있는 네개의 바자에 모여들었기 때문에 각 세대의 수입이 급속히 줄었다.그래서 그들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전업을 하든가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지금도 100세대 가운데 약 50여 세대가 김치장사를 하고 있다.월 1천여원 이상의 수익을 쉽게 올린다.이 정도면 중국에서 괜찮은 수입인데도 그들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는 모양이다.우루무치를 떠나 세계의 지붕 티베트 라사까지 진출했다.조선족 김치장수들의 생활태도는 참으로 놀랍도록 도전적이다.지금도 김치가 지닌 확실한 상품성을 딛고 일어서서 기적을 현실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신강성에 우리민족이 처음으로 들어간 때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19세기 중엽 이전에 중국에 이주한 한국인들은 거의 중국에 동화되었기 때문이다.오늘의 조선족들은 그 이후에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하거나 또는 일제의 수탈에 못 이겨 떠난 사람들의 후예다.그 가운데는 1959년 신강성 해방군 자격으로 현지에 주둔하다가 제대하고 주저앉은 사람도 있다.1960년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파견되어 의사와 병원장으로 근무하다가 몇년 전에 정년퇴직한 원로 의사 한분도 신강성에 자리잡았다. 조선족 의사는 처음으로 우루무치에 올 때,난주에서 트럭을 타고 왔는데,17일이나 걸렸다고 한다.그 때 나이 21세의 총각이었다.우루무치 초행길에서 어떤 생각을 했는가 물었더니 “다시는 못 돌아갈 것같았다”는 이야기를 했다.그 길에는 김치장사를 하기 위하여 멀리 만주에서 온 조선족 네명이 동행했다는 것이다.어떤 이는 이런 말을 되뇌었다.“집 떠난 사람들이니까 선생님의 그 말을 알지,집 떠나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모를 거야”라고…,모두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입에 밴 음식 기름기 제거 신강성에는 위글족 이외에 몽골과 카자흐족 등 많은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다.모두 양고기를 주식으로 하고 낭이라 불리우는 빵을 먹는 민족이다.이러한 식생활은 신강성을 포함한 전 스텝 지역,다시 말해서 투르크와 몽골의 모든 지역이 같다.스텝의 유목민족들은 말이나 양젖으로 치즈와 요구르트는 물론이고,술까지 빚어서 먹는다.이런 점은 곤륜산맥과 에베레스트 산맥으로 연결되는 고원 티베트에서도 마찬가지다.한마디로,유목민들은 양고기와 우유만을 먹고 마시며 살아간다. 유목민족들이 왜 김치를 사먹느냐고 물어보았다.우루무치의 조선족들은 “김치가 산뜻하기 때문”이라고 하나같이 자랑스럽게 말한다.고기와 우유,그리고 치즈만을 먹고 사는 유목민들이 순식물성 발효식품이기도 한 산뜻하고 시원한 김치맛을 한번 보고나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치즈나 마유주도 발효식품이다.하지만 이들 낙농식품은 우유기름 맛을 그대로 담아 입에 밴 육식의 기름끼를 가셔주지는 못한다.그러나 무배추와 파마늘과 고추가루와 생강 등 온갖 양념을 고루 삭혀 발효한 김치는 입맛을 산뜻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시원한 맛은 정신까지 맑게 해준다.김치에는 고추 매운 맛의 톡 쏘는 자극과 파마늘의 짜릿하고 알딸한 뒷맛,무배추의 살에 양념들이 배여서 숙성될 때 나오는 산뜻한 신맛이 모두 어울렸다. ○개방정책 타고 번져 김치는 어느 육류와도 잘 들어맞는다.미국 카우보이들이 즐기던티본 스테이크와 가장 갈 어울리는 식품은 뭐니 뭐니 해도 김치다.한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미국인들의 주장이 그러하다.다만 김치는 가벼운 음식에는 그 양념 맛이 너무 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그러나 육식만 하는 유목민족에게는 안성마춤의 별미인 것이다. 세계의 오지 타클라마칸 사막과 티베트 고원지대에까지 밀어닥친 개방정책은 시장경제를 열었다.김치도 그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한 것이다.김치는 오래지 않아 유목민들 식생활의 총아가 될 수 있다.김치 없이는 못사는 한국교포들이 도전적으로 김치를 팔고 있는 한은 그럴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 정부수립부터 오늘까지/연표로 본 대한민국 50년

    ◎36년만의 주권 회복… 6·25 상흔 딛고 산업화 대장정/시련속에 꽃피운 민주화운동… ‘문민시대’ 열며 개혁의 길로 ▷48년 정부수립 과정◁ ◇정치 ▲1월8일 유엔 한국임시위원단 방한 ▲5월10일 남한 총선거 실시 ▲5월31일 제헌국회 개원 ▲6월10일 국회의장에 이승만 박사 선출 ▲7월17일 제헌절 제정 ▲7월20일 초대 대통령 이승만,부통령 이시영 선출 ◇사회·문화 ▲1월7일 의무교육제 실시 ▲4월3일 제주도 무장폭동 ▷제1공화국◁ ◆정치 ▲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미군정폐지 ▲ 〃 9월13일 행정권의 한국 정부 완전이양 ▲ 〃 11월30일 국군조직법 공포 ▲ 〃 12월9일 유엔총회에서 한국 승인 ▲50년 6월25일 6·25동란 발발 ◇경제 ▲50년 12월10일 한·미 경제원조협정 조인 ▲55년 8월8월 증권시장 개장 ◇사회·문화 ▲48년 10월20일 여수·순천 반란사건 ▲50년 6월1일 6년제 의무교육 실시 ◇체육 ▲50년 4월12일 한국,보스톤 마라톤대회 제패 ▷제2공화국◁ ◇정치 ▲60년 3월15일 정·부통령 선거실시 ▲ 〃 4월26일 이승만 대통령 하야성명 ▲ 〃 4월28일 과도정부 구성 ▲ 〃 8월12일 제2공화국 대통령으로 윤보선 의원 선출 ▲ 〃 8월19일 초대 총리에 장면 의원 ▷제3공화국◁ ◇정치 ▲61년 5월16일 군사혁명위원회 설치 ▲ 〃 5월20일 장도영 중장을 내각수반으로 하는 혁명내각 출범 ▲62년 4월24일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대통령권한대행 ▲62년 12월26일 헌법개정(대통령책임제) ▲63년 12월7일 제3공화국 출범(박정희 대통령 취임) ▲70년 12월23일 정부종합청사 준공 ▲72년 10월17일 박대통령,국회해산 및 계엄선포 ▲ 〃 12월15일 통일주체국민회의 첫 대의원 선거 ▲ 〃 12월27일 유신헌법 공포 ▲74년 1월8일 긴급조치 1·2·3호 선포 ▲ 〃 1월15일 고위공직자 숙정 ▲ 〃 8월15일 육영수 여사 피격 사망 ◇경제 ▲62년 1월5일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발표 ▲66년 1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사회·문화 ▲68년 11월29일 서울시내 전차철거 ▲ 〃 12월5일 국민교육헌장 선포 ▲72년 4월10일 문교부,지명의 로마식 표기공표 ◇통일·외교 ▲65년 1월8일 월남파병 결정 ▲68년 1월23일 미 푸에블로호 북한에 피납 ▲68년 11월2일 울진·삼척 무장공비 출현 ▲70년 7월7일 경부고속도로 개통 ▲71년 3월27일 첫 미군 철수 ▲ 〃 9월20일 남북적십자사 이산가족찾기 첫 예비회담 개최(판문점) ▲ 〃 12월27일 국가보안법 국회 통과 ▲72년 7월4일 남북공동성명 발표 ▲ 〃 8월30일 남북적,본회담 평양서 개막 ▲74년 1월30일 한·일 대륙붕협정 체결 ▲ 〃 8월15일 서울지하철 개통 ▷제4공화국◁ ◇정치·행정 ▲75년 2월12일 유신헌법 찬반 국민투표 실시(찬성률 73.11%) ▲79년 10월26일 박정희대통령 시해 ▲ 〃 1월6일 최규하 대통령 취임 ◇사회·문화 ▲75년 6월30일 예비군 창설 ▲ 〃 9월2일 학도호국단 발단식 ▲ 〃 9월22일 민방위대 발대식 ▲76년 4월30일 매월 말일을 반상회로 지정 ▲ 〃 8월1일 양정모 몬트리올 올림픽 첫 금메달 획득 ▲77년 9월15일 한국등반대 에베레스트 정복 ▲78년 4월14일 세종문화회관 개관 ▲ 〃 4월21일 대한항공기 소련 무르만스크강제착륙 ▲ 〃 10월5일 자연보호헌장 선포 ◇경제 ▲76년 6월18일 제4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발표 ▲77년 6월19일 국내 최초 고리원자력1호 발전기 점화 ▲ 〃 7월1일 부가가치세 실시 ◇통일 외교 ▲75년 4월29일 주월 한국대사관 철수 ▲76년 8월18일 북한군 판문점에서 집단도끼만행 사건 ▲77년 11월7일 한미연합사 사령부 발족 ▷제5공화국◁ ◇정치·행정 ▲80년 5월17일 비상계엄 전국확대 ▲ 〃 7월9일 2급이상 고위공무원 232명 숙정 ▲ 〃 7월15일 3급이하 공무원 4천760명 숙정 ▲ 〃 8월16일 최규하 대통령 하야 ▲ 〃 8월27일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 대통령당선 ▲83년 1월1일 공직자 윤리법 발효 ▲ 〃 7월13일 입법예고제 첫 실시 ▲ 〃 10월8일 아웅산 테러 서석준 부총리 등 고위공직자 17명 사망 ▲87년 6월29일 노태우 민정당대표,대통령직선제 선언 ◇경제 ▲80년 11월8일 경제활성화대책 발표 ▲81년 8월21일 제5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발표 ▲85년 7월4일 제6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발표 ◇사회·문화 ▲80년 7월30일교육정상화 및 과열과외 해소방안 발표 ▲ 〃 8월2일 컬러TV 시판 ▲ 〃 11월1일 사회정화위원회 발족 ▲81년 9월30일 서울올림픽 개최확정 ▲82년 1월5일 야간통금 해제 ▲83년 3월2일 중고생 복장자율화 ▲ 〃 6월30일 KBS 이산가족찾기운동 ▲ 〃 9월1일 KAL기 격추 ▲86년 1월13일 대입논술고사 첫 실시 ▲88년 2월15일 예술의 전당 개관 ◇통일·외교 ▲84년 2월1일 팀스피리트 훈련개시 ▲85년 7월23일 남북 국회회담 첫 예비접촉 ▲ 〃 9월20일 남북고향방문단 서울·평양에 도착 ▲86년 1월20일 북한,남북회담 일방연기 ▲87년 11월29일 북한,KAL기 추락 ▷제6공화국◁ ◇정치·행정 ▲88년 9월17일 제24회 서울하계 올림픽 개최 ▲ 〃 11월23일 전두환 대통령 재산헌납 발표 ◇경제 ▲91년 11월12일 7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 발표 ◇사회·문화 ▲89년 1월1일 해외여행제한연령 완전철폐 ◇통일·외교 ▲90년 6월5일 한소 정상회담(샌프란시스코) ▲ 〃 9월4일 남북 첫 총리회담 개최(서울) ▲ 〃 10월16일 2차 남북총리회담(평양)▲ 〃 9월18일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91년 12월18일 노태우 대통령 한반도 비핵화선언 ▲ 〃 12월31일 남북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 ▲92년 한중 수교합의 발표 ▷문민정부◁ ◇정치·행정 ▲93년 2월27일 김영삼 대통령 재산공개,국무위원 등의 재산공개 당부 ▲ 〃 8월9일 정부 공직자윤리위 가동 ▲95년 12월3일 전두환 전 대통령 구속,5일 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97년 12월18일 15대 대통령선거,김대중 후보 당선 ◇경제 ▲93년 5월26일 신경제 5개년 계획발표 ▲ 〃 8월20일 경부고속도로 차종 TGV 확정 ▲ 〃 12월13일 쌀시장개방 합의 ▲94년 5월16일 금융실명제 실시 ▲96년 12월12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 ▲97년 12월3일 IMF자금 요청으로 ‘IMF시대’ 도래 ◇사회·문화 ▲93년 4월6일 종합유선방송 허가 발표 ▲ 〃 8월20일 제1차 대학수학 능력시험 실시 ▲94년 1월6일 대입 본고사 14년만에 부활 ▲ 〃 10월21일 성수대교 붕괴 ▲96년 5월31일 한·일 2002년 월드컵공동개최 결정 ◇통일·외교 ▲94년 7월2일 남북정상회담실무절차 합의 ▲95년 6월29일 대북 경수로지원 합의 ▲97년 8월19일 대북경수로 부지공사 착공
  • 플루트 연주자 김기순(이세기의 인물탐구:148)

    ◎무리속 섞인 진주… ‘미성 연출가’/“연주자는 무대서 악기로 기도” 음악철학 굳건히/국내외 수십회 독주·협연… 한국플루트의 개척자 천상의 피리를 부는 김기순.숱많은 단발머리에 화장기없는 외모는 시간을 멈춘듯 프레시한 분위기다.66년 이대 중강당에서 독주회를 가졌을 때나 중견교수인 지금도 행동과 말씨에서 싱그러운 향기가 뿜어져 나온다.의상도 마찬가지다.편안한 슬랙스와 터틀넥의 티셔츠를 즐겨입고 테가 둥근 선글라스를 목걸이처럼 걸고 다닌다.무대에서도 심플라인의 검은색 드레스,그때마다 난곡들을 정복해 나가면서 자신의 예술에 천착할줄아는 탐미주의자다.‘만약 내가 교수가 된다면 나이를 앞세워 거드름을 피우거나 권위의식으로 군림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대로 그는 제자들을 가르칠때 ‘나에겐 플루트밖에 없다’든가 ‘플루트에 목숨을 건다’라고 말하지 못하게 한다.‘자신과 싸우면서 자기의 심정을 이중적으로 분리하여 또하나의 나를 관조할 수 있을때까지 끈질기게 추구해 나가라’고 충고할 뿐이다.그 자신도 해마다 독주회와 수많은 국제·국내연주에 참가하면서 데뷔하는 신인처럼 ‘연주자는 무대에서 악기로 기도한다’는 자세를 지킨다. ○‘음반언어’로 감정총괄 지난 93년 호암아트홀에서 스위스의 저명한 알렉산더 메닌과 ‘투 풀루트 리사이틀’을 가졌을때도 청중들이 ‘작품이 가진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도록 노련한 유연성’과 ‘섬세하고 투명한 엘레지(비가)의 조화’로 김기순 신비의 절조를 이룩해 내었다.생전에 그의 연주를 빠지지 않고 감상했던 평론가 유신씨는 열의에 찬 그의 연주를 보고 ‘플루트의 색채로 악상을 정밀하게 표현하면서 자신만의 음악언어로 감정을 총괄하고 통제한다’고 호평해왔다.그리고 ‘우리 음악사에서 플루트가 독주악기로 우뚝 서기까지 그의 다양한 활동은 뚜렷한 업적을 주었다’고 부언한다. 지난 88년 스위스 빌라 쉔베르그공원에서 열린 ‘세레나데 88’에서도 그곳의 신문들은 ‘어느 누구도 논박할 여지없는 전문적인 노련함과 유려한 선율로 극장을 가득 메운 청중을 압도하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쓰고 있다.특히텔레만연주에서는 ‘치밀한 폴리포니(다성)와 이탈리아식으로 노래하는 칸타빌레,프랑스식 에스프리와 폴란드의 생기가 융합된 개성적 스타일’로 긴 박수갈채를 끌어냈다. 그의 음악에 대한 욕심은 난감의 기색이나 소진을 보이지 않는다.이미 85년에 바흐소나타 8개 전곡을 연주했고 텔레만 프랑크 모차르트소나타 전곡완주에 이어 힌데미트에 이르기까지 그의 음악적 도정은 ‘에베레스트를 정복하는 알피니스트’에 비유될 정도다.특히 바흐에 관한한 92·93년과 지난 6월에 재도전을 시도하여 오래 다듬고 숙고한 서사시적 풍모를 풍부하게 과시했다.이를 위해 독일의 베렌라이터 카셀과 브라이트코프·헤르텔판 악보를 사용했고 미처 캐내지못한 음의 보석을 공략하기 위해 새로운 탐험을 위한 준비를 끝내고 있다.이러한 김기순의 음악의 조형성은 원로평론가 박용구씨에 의하면 ‘아티스틱한 음악의 철학성이 모래위에 탑을 세우고야 말았다’는 말이 잘 대변해준다. ○음악가정서 태어나 김기순은 원로 작곡가 김성태씨와 윤선항여사의 2남4녀중 딸로 막내다. 위로 두 언니(기숙·기옥씨)들은 성악,바로 손위언니(기정씨)는 첼로를 하는 음악적 가정에서 태어나 음악과의 인연은 숙명적인 셈이다.어릴때는 노래를 부르고 피아노를 치다가 이화여중에 진학하면서 부친의 조언에 따라 플루트로 돌았고 61년,서울예고 재학중 부산일보가 초청한 ‘천재소년소녀 음악회’에 바이올리니스트 김민 등과 참가한 것이 본격적인 첫무대다.천성적으로 천진하고 순수하면서도 철저한 완벽주의를 동반하는 그의 성격은 하나의 일에 파고들면 ‘끝장을 내고야 마는 극기심’이 대단하다.음악을 살찌우기 위한 종교 철학 문학과 심리학서적 섭렵도 광범위하다.또 ‘인간의 영혼을 구하는 종교와도 같은 예술의 신비’앞에 그는 절대적으로 겸허를 지키면서 연주하기 전에는 반드시 기도에 들어간다.작곡가가 하나의 곡을 작곡할 때의 심경이 내부에 승화되기를 소망하면서 ‘자아도취란 결국 스스로를 파멸할 뿐이며 균형적인 사고와 독자적 예술영역을 소유하는 것만이 연주자 최상의 목표’라고 말한다. 부친 김성태씨가 서울대 음대교수인 덕분에 종로구 동숭동 서울대교수 사택의 쾌적한 환경에서 성장하면서 부친의 끊임없는 격려와 충고가 음악에서 최선을 다하는 정신력을 기를수 있었다.반드시 완성에 다다른다는 결심때문에 연주가 없을때도 하루 5∼6시간씩 연습,그러나 연주가 없는 때란 거의 없는 편이어서 일년 내내 연주와 연주를 위한 연습이 되풀이 될 뿐이다.가족은 그의 음악을 이해하는 부군 박기웅씨(전문경영인)와 두 아들이 있다. ○부친의 격려·충고 큰힘 그는 전형적인 도시기질로 지나친 자기과시는 절제하는 편이다.그래서 여가에는 혼자서 인사동 골동품가게를 기웃거리고 시공을 초월하는 앤틱들 사이에서 그옛날의 향취를 혼자서 즐긴다.그것은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생각하는 연습의 연장이기도 해서 남에게 이런 취미를 공개하거나 방해당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만사에 구구하게 매달리지 않고 똑바로 자신의 할일에만 정진하는 그를 보고 첼리스트 전봉초씨는 ‘무리속에 섞인 진주같은 예술가’‘세잔의 피리부는 소년같은 천진성’이 어릴때부터의 ‘미점’이라고 조언한다. 우주를 통과하는듯한 저 맑은 바람소리,특히 바흐 소나타 전악장에서 창조자로서의 작곡가의 모든 것을 찬란하게 펼쳐보인다.갈란테(우미)나 풍부한 칸틸레나(서정성),우주의 저편에서 울려오는 공기와 달빛과 녹색이 물든 자연 그대로가 그의 플루트 선율이다.지금 그의 음악은 마음껏 무르익어 남과 견줄수 없는 정점에 와있다.‘이노슨트’라는 특별한 훈장을 달고 세속의 허명에 흔들리지 않은채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유인으로서 바로 ‘미국 플루트의 비루투오소인 킨케이드의 분위기가 그의 음악에서도 번져 나온다’는 것에 누구도 부인할 사람은 없다. □연보 ▲1944년 서울 출생 ▲1961년 부산일보 초청 천재소년소녀음악회(부산시민회관) ▲1966년 이대 음대 관현악과 졸업,제1회 플루트독주회(이대 중강당) ▲1968년 이대 대학원 졸업 ▲1967년 제2회 플루트독주회,국립극장 ‘플루트음악의 밤’ 독주 ▲1969년 제1회 서울음악제 참가,‘대음악제’ 독주(서울시민회관) ▲1970년부터 이대·서울대 출강,제3회 독주회(국립극장) ▲1974년 제4회 독주회(예술극장) ▲1975년 바로크합주단 협연 ▲1978년 제5회 독주회(세종문화회관) ▲1979년 한국 플루트창립연주회 ▲1980∼93년 브라스앙상블 지휘 ▲1980·83·85년 ‘바흐소나타의 밤’(세종문화 소강당) ▲1987∼현재 이대 음대 교수 ▲1987·88년 ‘투 플루트 리사이틀’(호암아트홀),88세레나덴(스위스빌라 쉔베르그공원) ▲1988년 독주회(호암아트홀) ▲1990∼97년 독주회(예술의 전당,세종문화회관,예음홀,춘천종합예술문화회관,강릉·삼척문화예술회관) 등 20여회와 플루트대축제·청소년음악제·대음악회·서울국제현대음악제 출연 및 각 교향악단협연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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