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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스크바 「물박물관」(G7으로 가는 길:34)

    ◎“자연의 순리체험” 초·중학생 필수견학코스/물 생성 원리서 가정공급 과정까지 일목요연/복제품·모형 등 직접 만지고 실험도 할수있어/“쉽게 지나치는 것을 자주 돌아보는 습관이 창의력” 모스크바시내 사린스키거리 물박물관 2층 현대상수도시스템모형관.박물관장 리디아 반데르구유트(82·여)는 20여명의 견학아동을 상대로 「물이란 무엇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박물관장이 「물은 무엇인가」를 묻자 대답은 다양하게 쏟아진다.『마시는 것이다』 『없으면 안되는 것이다』라는 비교적 단순한 대답부터 『물은 우리 몸과 생활에 필수적인 것이다』라는 좀 구체적인 대답도 나온다. 그녀는 『물은 자연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혜택』이라면서 그러나 『먹고 마시고 그냥 버리면 재앙이 온다』고 여러 예를 들며 자세히 설명한다. ○저택같은 2층건물 생활하면서 그냥 지나치기 쉬운 물.물에 대한 여러가지 흥미롭고 진귀한 사실을 일깨워주기 위한 것­이것이 물박물관이 들어선 이유이다.모스크바거리에 이 박물관이 들어선 것은 93년10월.모스크바시 수도사업소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도 불구,시장의 허가를 얻어 「물박물관」을 설립했다.『일반인들은 물에 대한 지식이 의외로 없다.이상한 주장이긴 하지만 물박물관을 하나 만드어야 한다』는 로 반데르구유트 박물관장이 처음 제안해 설립됐다.당시 시 자체가 재정적으로 곤란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반대자도 많았다고 한다.하지만 『주민들이 물을 잘 알면 환경에 도움은 물론 각종 비용마저 절약할 수 있다』는 박물관장의 주장이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졌다.반데르구유트여사는 정년퇴직후 연금생활자였으나 자신이 설립하고 싶어하던 박물관이 설립되자 주위의 권유로 박물관장이 됐다. 사실 물박물관은 상트페테르부르그의 에르미타주박물관이나 파리의 루블박물관처럼 화려하지도 웅장하지도 않다.빨간 색의 저택같은 2층건물에 몇개의 전시관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이러한 박물관이 설립 2년만에 초등학생부터 중학생정도에 이르기까지 필수방문코스가 돼버렸다.「물박물관」이란 생소한 이름때문이 아니라 「창의력의 산실」이 될 수 있다는 학교교사들의 일치된 여론때문이었다.취재허락을 받은뒤 박물관을 찾았을때 반데르구유트관장은 기자가 어떤 의도로 이 곳을 방문하게 됐는지 오히려 궁금해 했다.『모스크바에서 그렇게 취재할게 없느냐』며 씨익 웃는다.『생활하면서 그냥 지나치기 쉬운 물.그 박물관이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며 방문취지를 둘러대자 박물관장은 『바로 그거』라며 맞장구를 쳤다.그녀는 『사람들은 물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면서 『물의 작용,원리를 잘 알면 그만큼 혜택은 인간에게 돌아간다』며 물박물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창의력과 관련,박물관장은 생활주변,남들이 쉽게 지나치는 것을 자주 돌아보는 습관이 창의력이며 이것은 어릴 적부터 가정에서 훈련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물관의 전시실은 역사적인 내용과 옛 모형들이 주류를 이뤘다.박물관은 크게 두 파트로 나눠볼 수 있도록 했다.1층에는 모스크바에 물이 처음 공급된 시기와 방법,과정 등 역사적인 사실에 충실했다.1767년 모스크바 교외 북동쪽 미티시치마을에 중앙통제식 상수관의 건설을 처음 명령한 카테린대제의 명령서가 시선을 끌었다.명령을 받은 수군들은 당시 클라즈마강에서부터 벽돌로 개방된 관을 만들어 모스크바 중앙까지 물을 공급했으며 바로 이 모형이 잘 전시돼 있었다. ○우물·채수장 모형 즐비 처음으로 땅속에 현대식 금속관을 묻어 모스크바에 물을 공급한 것은 1853년 카테린2세때의 일이라는 사실도 자세히 기록돼 있었다.카테린2세는 당시 바론 델빅 수군대령에게 특별명령을 내려 물이 다른 곳으로 새지 않도록 금속관의 설계·설치를 요구했다는 것이다.어린이들의 흥미를 끈 것은 우물·채수장등 각종 모형이었다. 전시품들은 외부인이 만질 수 없는 것과 만질 수 있는 것으로 구분돼 있어 이채로웠다.세계 어느 박물관을 가보아도 전시물을 만지도록 허락하는 박물관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자유로운 사고를 키우기 위해 박물관장의 「특별명령」으로 복제품에 한해서는 방문객들이 직접 만지고 실험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이에 대해 반데르구유트박물관장은 『성인이든 학생이든 손으로 만져보는 것은 사물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면서『복사품이나 얼마든지 다시 구할 수 있는 것은 만져볼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박물관의 1층이 주로 역사적인 장소라면 2층은 현대식 수도·정화·정수시설의 모형들로 꽉찬 곳이다.특히 이 곳은 폴라로이드로 된 다이아그램들이 많아 물의 생성,취·정수,정화과정을 특별한 지식이 없이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정수과정에서 염소와 암모니아,황산알루미늄이 어느 시점에 들어가는가가 재미있게 만화로도 설명되고 있었다.2층의 다른 방에는 수자원보호관,수자원절약관이 따로 설치돼 있었다.「욕실물을 1분간 틀고 쓰면 16ℓ」「5분간 샤워를 하면 1백20ℓ」「모스크바시 4개취수장의 하루용량은 7백만㎥」라는 계도적인 포스터가 눈길을 끌었다. ○물절약 포스터 눈길 사실 러시아는 「박물관의 나라」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진귀한 박물관이 많다.모스크바시에 등록된 통계만 보더라도 94년말 현재 시내에 3백개의 박물관이 있다고 한다.물박물관외에도 돌박물관·소방박물관·고양이박물관·시네마박물관·책박물관·악기박물관·옛건축물박물관·패션박물관등 수십여종에 이른다.「박물관이라고 해서 반드시 규모가 큰 것도 아니다.개인주택 크기의 아담한 시계박물관에서부터 호화롭고 어마어마한 규모의 전쟁박물관까지 다양하다」70년 「철의장막」문화에서도 러시아인들은 다양성과 창의성을 존중해온 느낌이다.방문객들이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는 전시실을 묻자 박물관장은 「정답」을 내놓았다.그것은 방문객 각자의 생각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전문가 인터뷰/물박물관장 리디아 반데르구유트/“주변 모든환경이 창의력 계발의 도구” 리디아 반데르구유트 물박물관장은 『창의력이란 생활하면서 그냥 지나치기 쉬운 것을 돌이켜보는 힘』이라고 정의한다.30년이상을 교사와 수도사업소 간부로 일해온 그녀는 『창의력은 기질처럼 타고난 것이 아니다』 『창의력의 개발은 주변환경과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녀는 『창의력의 증진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고 강조한다.인간이 경험을 통해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도모하고 축적시켜나가듯 창조적인 활동 역시 이러한 과정속에서 쉼없이 계속 된다고 보는 것이다.이러한 이유때문에 반데르구유트는 일반인은 물론 특수분야의 연구원에게도 문호를 개방해놓았다.당초 초·중등학생에 한해 개방하는 것이 어떠냐는 수도본부도 그녀의 의견을 따라야만 했다.이제는 모스크바 유수대학의 연구원들도 「물에 대한 자료」라면 이 곳을 찾는다. 『어린 새싹들의 창의력개발을 위해 무얼 해야하느냐』고 물었다.박물관장은 『어려운 질문』이라며 고개를 저은뒤 잠시후 운을 뗀다.『특별히 생각나는 것은 없지만 좋은 책을 가까이 하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박물관같은 현장시설을 자주 방문하는 것도 중요하다.어떻게 보면 가정교육이 틀에 짜여진 학교교육이상으로 개인의 창의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박물관장은 부모의 역할을 특히 강조한다.그녀는 『자녀에게 어떤 분야라도 역사적 사실 혹은 경험을 충분히 일깨워주는 자상함이 창의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팔순을 넘긴 그녀는 지금도 일주일이면 3일을 어린 방문객들과 질문·대답을 주고 받는다.반복되는 질문에 짜증 한번 내지 않는다.언젠가 그녀는 「자상한 것이 또 다른 창의성」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 모네서 피카소까지/불 인상파 명작전 모스크바서 성황

    ◎1백20점 한자리에… 연일 대만원/러시아 부호가 수집… 26년간 창고서 썩다 “햇빛” 피카소,모네,세잔,고갱,고흐,앙리 마티스 등 프랑스 초기인상파 화가 20여명의 작품 1백20점이 한자리에 모여 전시되고 있다.전시장인 모스크바시내 중심가의 푸시킨 미술관은 러시아전역과 유럽각지에서 몰려온 미술애호가들로 연일 대만원을 이루고 있다. 지난해 12월1일 시작돼 오는 2월1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회는 여러면에서 단순한 인상파전이 아니다.전시작품들은 모두 러시아국내에 소장돼 있는 작품들인데 초기인상파의 명작 대부분이 러시아에 소장돼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이 작품들의 원소장자가 러시아제국말기 2명의 러시아 부호였다는 점도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거부로 미술에 뛰어난 안목을 가졌던 이반 모로조프,세르게이 슈힌 두 사람은 20세기초 틈만나면 프랑스를 드나들며 작품들을 사모았는데 이번 전시회는 바로 작품의 원소장자인 이들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전시회 이름도 「러시아의 수집가,모로조프와 슈힌­모네부터 피카소까지」. 1871년생인 모로조프는 벨벳과 실크무역을 해 섬유왕국을 건설한 조부의 부를 물려받은 당대 러시아의 거부.예술에 뛰어난 안목을 가졌던 그는 1921년 사망할때까지 초기인상파 화가들의 예술실험을 높이 사 친구이기도 한 슈힌과 함께 파리를 오가며 이 작품들을 사모았다.두 사람은 이렇게 모은 그림들을 집에다 전시했는데 방마다 「모네홀」 「고갱홀」하는 식으로 꾸며져 당시 이들의 집은 미술관을 방불케했다.볼셰비키혁명 직후인 1918년 레닌은 모로조프의 집을 몰수해 「새서구미술관」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두사람이 수집한 그림들을 함께 소장케 했다. 그뒤 이 그림들은 48년 스탈린이 「부르주아적」이라는 이유로 전시를 영구 금지시키면서 에르미타주박물관과 푸슈킨미술관의 지하창고에 처박히는 신세가 된다.이 그림들이 다시 지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74년에 가서이다. 푸슈킨미술관 관장인 마리나 베소노바여사는 『이 두사람이 아니었다면 20세기 미술계는 완전히 달라져 있을것』이라고 말한다.마티스는 인상파실험을하던 무명일때 슈힌이 사준 그림값으로 화실을 열고 작업을 계속할수 있었다.슈힌은 당시 미친사람 취급받던 고갱의 재능을 인정해준 사람으로도 유명하다.고갱의 그림을 산뒤 그가 『미친 화가의 그림을 미친 수집가가 샀다』고 한 일화는 유명하다. 모로조프는 피카소가 큐비즘이라는 생소한 실험을 할때 1905년작 「공위의 소녀」등 유화 수점을 사주어 큐비즘운동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러시아 미술비평가들은 또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당시 러시아미술계는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접하지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카지미르 말레비치,바실리 칸딘스키로 대표되는 러시아 전위미술 「아방가르드운동」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이 모은 작품들은 러시아에 남아있지만 두사람은 혁명뒤 모두 유럽으로 망명,고국땅을 다시 밟지 못했다.슈힌은 1936년 프랑스에서 사망직전 소련을 상대로 작품반환소송을 내라는 주위의 권고에 대해 『나는 러시아국민 모두를 위해 작품들을 모았다.내가 어디에 있건 그 작품들은 러시아땅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 러에 「문화재 반환」 제기/“구한말 수천점 반출… 동기 규명을”

    ◎한·러 문화위 회의 【모스크바 연합】 한·러문화공동위원회 한국측 수석대표인 이원영 외무부 문화협력국장은 27일 구한말 제정 러시아가 가져간 문화재 반환문제를 러시아측에 제기했다. 이대표는 제정 러시아가 상당수의 희귀 문화재를 가져간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하고 이의 반환을 위해 반출 동기등이 우선 규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에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박물관을 비롯,곳곳에 수천점의 한국문화재가 소장돼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앞서 두 나라는 26,27일 이틀간 문화공동위원회를 열고 오는 95년까지의 문화교류에 관한 세부 계획을 확정했다.
  • 독일/러시아/터키/트로이 보물 소유권 타툼

    ◎소군 2차대전중 베를린서 약탈/독 반환요구… 터키 “우리가 주인” 독일과 러시아 및 터키 3국은 요즘 세계적으로 희귀한 약탈 문화재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이 소련에서 약탈해간 앰버룸(호박 방)과 소련군이 독일에서 뺏어간 고대 트로이 보물의 맞교환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그런가하면 트로이 보물의 진짜 주인인 터키 당국이 유물 반환을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어 「현대판 트로이」분쟁이 재연될 조짐이다.고대 트로이는 기원전 2300년쯤 존재한 것으로 믿어지는 신비의 왕국으로 트로이의 황금 유물은 호머의 유명한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의 배경이 됐었다. 한편 궁전의 방 하나를 완전히 호박(보석)으로만 장식된 앰버룸은 2차대전중 상트 페테르부르크 외곽까지 점령했던 히틀러군대에 해체되어 독일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졌을뿐 아직도 그 소재가 명확치 않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그동안 수많은 전문가들이 러시아·독일 등지에서 잃어버린 이 앰버룸을 찾기위해 수색작업을 폈으나 모두뜻을 이루지 못했다. 재정러시아의 호사스런 모습을 보여주는 앰버룸은 사방 14m,높이 5m의 방 전체를 22개의 거대한 보석세공품으로 단장,현재 약 2억6천만 마르크(1천3백억원)를 호가하는 보물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소련군은 2차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베를린의 박물관·미술관·도서관·문서보관소등에서 트로이 보물 8천여점과 5천여점의 회화,1천5백여점의 드로잉,5백만권의 서적을 약탈해간 것으로 알려졌다.그 대부분은 에르미타주 박물관과 푸슈킨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특히 이 가운데 19세기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이 발굴,베를린 박물관에 보관해 놓았던 트로이 보물은 최근 양국간의 전리품반환 협상과정에서 모스크바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러시아 정부는 지난 90년 체결된 독소친선조약에 따라 이 예술품과 독일군이 옛소련에서 약탈해간 20여만점의 문화재를 교환한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그러나 독일군이 소련에서 뺏어온 예술품 대부분은 전쟁와중에 파괴되거나 개인에게 팔려나간 상태라서 독일정부는러시아가 요구하는 맞교환협상에 응할수 없는 곤경에 처해있다. 통독후 독일정부는 앰버룸을 찾기위해 옛동독의 지하요새가 있는 트리머버그 지역을 비롯,바이마르의 2백여 곳을 수색했지만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 에르미타주박물관 재정난/러 정부 지원 삭감… 보수작업·경비 어려워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프랑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박물관의 하나로 꼽히는 러시아 상트 페테르스부르크(구레닌그라드)의 에르미타주박물관이 극심한 재정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가경제개혁의 여파로 내핍을 강요받기는 다른 문화·예술계도 매일반이지만 에르미타주박물관의 재정난은 내부에 소장된 엄청난 문화재의 안전을 직접 위협할 정도여서 심각하기 이를데없다. 한때 정부예산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편안한 세월을 구가하던 박물관측은 이제는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스스로 짜맞춰 자생해나가야만 한다.정부의 지원금이 끊긴 것은 아니지만 전에 비해 규모가 대폭 삭감된데다 루블화의 가치하락으로 별반 도움이 못된다.올해의 경우 1월에 미화 1달러에 5백루블이던 환율이 7월 1천루블로 급락,정부가 배정해준 연간예산액의 절반이 이미 사라져버렸다. 박물관 고위관리자들이 직원들의 봉급마련을 위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비롯해 재정난의 징후는 여러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박물관측은 얼마전 임시전시실을 마련하지못해 사전계획된 행사를 치르지 못하다가 유네스코의 무상원조로 가까스로 행사를 치렀다.지은 지 오래된 건물의 보수가 시급하지만 손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전부터 진행돼온 18세기때의 동궁건물 보수작업도 추가자금이 마련되지 않으면 중단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최근에는 궁핍을 조금이나마 모면해볼 요량으로 특별우편엽서의 제작·판매를 시도했지만 단돈 수천달러의 제작비가 없어 이마저도 포기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같은 재정난이 문화재보존의 위기로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박물관측은 최근 5천루블씩 받고 아마추어사진사들을 입장시키기로 결정했다.지금까지는 소장품은 물론이려니와 그 사진의 복사도 금지해왔다. 근 4백개나 되는 전시실내 소장품들의 감시는 전시실 구석에 앉은 중년부인들이 맡고 있다.무장경비원을 고용할 돈이 없어 세계적인 진품들의 안전을 중년부인들의 시력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이러다보니 최근에는 약 10만점의 작품이 사라졌다는 보도가 나와 박물관측이 서둘러 부인하는 심상치 않은 일도 있었다.10만점이면 웬만한 박물관 하나를 채울 수 있는 규모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박물관측은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기껏해야 미국의 코카콜라,프랑스의 샴페인제조회사 등 외국의 후원자들에게 손을 내밀거나 입장료를 인상하는 조치만을 취하고 있을 뿐이다.박물관측은 최근 외국인의 경우 입장료를 무려 7천루블로 인상하고 내국인은 4백루블로 현상유지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 조치가 하루 3만명에 이르는 방문객의 숫자를 감소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1천개의 방,2백개의 계단,수㎞의 회랑길이등 단순한 박물관이라기보다 하나의 거대한 도시같은 에르미타주박물관.많은 서구 거장들의 걸작품을 포함,약 3백만여점의 세계적 보물을 소장한 인류문화의 보고가 이처럼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지만 러시아 국내는 물론 외국으로부터도 박물관 관계자들의 근심을 덜어줄 어떤 움직임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 러시아 에르미타주미술관/새 모습 단장 안간힘

    ◎세계3대미술관… 200년역사 자랑/비새고 보안장치 허술… 서방자본유치 계획 2백여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러시아의 에르미타주미술관이 현대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파리의 루브르,런던의 대영박물관과 더불어 세계3대 미술관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는 에르미타주는 낡은 건물과 보안·전시시설등을 현대적으로 보수할 계획아래 미국등 서방의 자본을 끌어들이는 등의 자구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해마다 정부에서 보조해주는 지원금의 액수가 전반적인 경제침체로 절반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는 올해 87만달러의 운영예산을 책정한데 이어 보수비로 37만달러를 더 배정했으나 실제로 보수에 필요한 3억달러에는 턱도없는 수준이라고 미술관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미술관측은 미국의 한 기업을 참여시켜 전시시설은 물론 상점 고급카페 출판시설등을 갖춘 현대식 미술관으로 고칠계획이다. 에르미타주는 그동안 정부지원금과 입장수입,해외순회전시회등으로 재정을 충당해 왔으나 지난91년 소련의 붕괴로문화부가 해체된 뒤 심각한 운영난을 겪고 있다. 미술관측은 외국자본의 도입과 함께 소장미술품의 일부를 팔아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으나 정부에서는 법률로 예술품의 해외판매를 금지,재정난 타개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에르미타주는 1764년 카테리나여제가 설립,황후의 소장미술품을 보관,전시하는 궁정박물관으로 출발했다.그뒤 1852년 니콜라스1세때 다시 건축,일반에 공개됐으며 1917년 10월혁명이후 황제일가의 소장품들은 정부의 소유가 됐다. 4백개의 전시실에 3백여만점의 방대한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해 방문객만도 3백50만명을 넘는다. 요즘은 원시문화 고전시대문화 동양문화 러시아문화 유럽미술 화폐등 6개 부문으로 분류되어 있고 특히 유럽의 미술품들이 충실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빛의 화가 렘브란트를 비롯,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색채의 마술사 티티안,바로크양식의 대가 루벤스,이밖에 프랑스 자연주의 작가 코로등 화집에서나 찾아볼수 있는 빛나는 작품들이 즐비하게 전시돼 있다. 그러나 천장과 벽에 금이 가 비가 새는데다 보안장치도 오래된 것이어서 미술품 전문도둑들이 겨냥하는 목표물이 되어왔다.지난해에도 독일의 18세기 도기가 도난당했다. 러시아의 경제침체속에도 에르미타주가 그 화려한 명성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미술애호가들은 바라고 있다.
  • 김기창/김흥수/동서양화단의 거장 대규모 회고전 개최

    ◎일생 그린 1,000점 전시… 화업 60년 기념/김기창전,10월 예술의전당/푸슈킨전서 2백호이상 대작 27점 소개/김흥수전,4∼7월 러시아서 동서양화단의 두 거장 운보 김기창화백(80)과 김흥수(74)화백이 각기 노익장을 과시하는 대규모 회고전을 갖는다. 올해 팔순을 맞은 한국화단의 거봉 김기창화백은 오는10월9일부터 29일까지 예술의 전당 미술관 전관을 털어 일생일대 최대의 개인전을 펼친다. 서양화단의 김흥수화백의 개인전은 4월부터 7월까지 러시아의 권위있는 두 미술관에서 대작전으로 꾸민다. 두 작가는 지난 수십년의 화업을 통해 국내 미술사에 뚜렷한 획을 근 거장일뿐 아니라 70을 넘긴 노령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지치지 않는 예술열정을 불살라온 힘의 작가들.예술혼 그리고 정력을 아낌없이 발휘해온 두 노장이 올해 보여줄 이 행사들은 자신들의 예술인생가운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수있는 자리가 될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청각장애를 딛고 한국화의 정상에 올라선 김기창화백의 회고전은 화업60년을 기념하기위해 1천여평의 전시공간에 일생동안 그려온 1천점을 전시하게된다. 이 전시는 평소 그의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가 운보의 열정을 아끼는 주변 문화계 인사들로 구성된 한 모임에 의해 기획됐다.지난해 5월 출범한 「운보 김기창 전작도록 발간위원회」(위원장 구상)가 그의 평생의 작품을 집대성하는 도록을 발간키위해 전국의 소장자는 물론 국외에 나가있는 운보의 작품을 수배하기 시작했다.이같은 도록제작과 함께 모든 작품이 파악될 것으로 예상되는 오는10월에 이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한 개인의 1천점 작품전을 열기로 한것이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지난해말까지 국내외는 물론 북한에 있는 운보의 작품소장 여부까지 확인하는 성과를 올렸다. 해방전 운보의 30년대말 제작 작품 32점이 평양의 조선미술박물관에 별도로 꾸며진 「운보실」에 상설전시되고 있음을 확인했는데 위원회는 교포관광객의 손을 빌려 전시작들을 사진으로 찍어오는데 성공했다.이 과정에서 위원회는 또 운보의 막내동생인 김기만(66·만수대창작사 조선화가)이 북한에서 중진화가로 활약하는 사실도 밝혀냈다.위원회는 지금까지 이들 북한작품과 일본 프랑스등 외국에 있는 2백60여점을 포함 2천4백점의 작품소재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한편 지난해 수년간 함께 살아온 42세 연하의 제자 장수현씨와 결혼식을 올려 화제를 모았던 김흥수화백은 올해는 쉽게 접근하기 힘든 러시아의 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가져 또한번 화제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4월28일부터 5월30일까지 레닌그라드에 있는 푸슈킨미술관에서 전시를 갖고,6월15일부터 7월14일까지 세계3대박물관의 하나인 모스크바의 에르미타주미술관에서 작품을 발표한다. 푸슈킨전람회는 생존작가로는 샤갈이후 두번째로 2백호이상의 대작 27점을 전시하는 자리.또 에르미타주전시에서는 41점을 소개하는데 동양권화가로는 이곳에서 최초로 개인전을 갖는 인물이 됐다.그의 이번 러시아전시회는 지난90년 파리 뤽상브르미술관초대전을 계기로 당시 현지 소련대사가 김화백의 작품을 높이 평가,본국의 미술관에 추천하면서 성사된 것이다. 김화백은 동양의 음양사상을 바탕으로한 화면에 구상과 추상을 조화시키는 하모니즘회화로 90년 파리전 이후 더욱 주가가 올랐고,뉴욕 크리스티경매에서도 국내작가 최초로 작품이 팔린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이번 러시아전시회가 한국예술의 해외소개에 큰 역을 하게된다는 평가에 따라 문예진흥기금 1억원을 지원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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