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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와 차 한 잔] ‘범죄소설 그 기원과 매혹’ 펴낸 김용언

    [저자와 차 한 잔] ‘범죄소설 그 기원과 매혹’ 펴낸 김용언

    나주 성폭행 피해 어린이가 ‘당한’ 정황이 지나치게 상세히 묘사된 신문 기사를 읽는 당신, 현장 검증에 나선 범인에게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내뱉는 이웃들의 사진과 동영상을 확인하는 당신, 전자발찌나 화학적 거세-심지어 물리적 거세까지 주장하는 목소리들을 듣는 당신. 열흘 사이 나타난 이 뜨거운 관심과 우려, 지탄과 자조, 법률과 제도의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들이 한데 뒤섞인 현실은 어느 정도 ‘인간의 등 뒤에서 일어나는 어두운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동공이 확대되는 우리네 자화상이 아닐까. 이 모습들은 아르센 뤼팽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에 시선을 파묻던 우리의 어린 시절과 닮지 않았는가.‘범죄소설 그 기원과 매혹’(도서출판 강 펴냄)을 쓴 김용언(36)도 그랬다.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온 셜록 홈스를 밤새 읽고 동네 책방에 선 채로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을 다 읽어낸 소녀. 부모는 ‘너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느냐.’고 뜯어말렸지만 그럴수록 추리나 미스터리, 탐정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연세대 영어영문학과와 10여년 이름있는 영화잡지사에 다닐 때에도, 같은 학교 대학원을 다닐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가을볕이 좋았던 6일 낮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용언은 “어릴 적부터 그렇게 좋아했던 것들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탐정처럼 찾아보고 싶었다.”고 했다. 홈스로 대표되는 19세기 부르주아지 탐정, 점잖고 범죄와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수집가이자 산책자, 과학적인 기계로서의 탐정이 20년도 안 되는 사이 미국으로 건너가 하드보일드 형사(또는 탐정)로 변신하는 과정과 이유를 탐구하고 싶었다. 그런데 책을 들춰보니 깊이가 간단치 않다. 범죄소설의 이데올로기를 파헤친 에르네스트 만델과 프랑코 모레티, 기호학으로 뜯어본 움베르토 에코, 독자들이 이들 장르에 빠져드는 과정을 펄프픽션과 다임노블(‘소설공장’에서 만들어진 값싼 엔터테인먼트 소설)을 통해 톺아본 애런 스미스와 마이클 데닝, 법의학과의 연관성을 짚은 로널드 토머스 등이 등장해 ‘누가 살인을 저질렀는가’(추리소설)에서 ‘왜 살인이 벌어졌는가’(하드보일드소설)로 독자들의 궁금증이 전이되는 과정, 사회가, 도시가, 나아가 자본주의가 변화하는 과정을 돌아본다. “6년 전 그 일을 처음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우리 글로 번역된 것들이 전혀 없어 외국 문헌을 뒤졌다. 엄청난 양의 자료가 쏟아졌다. 3~4개월 정도 웹을 뒤지고 도서관을 찾아가 아무도 빌려 보지 않은 것이 분명한 책장을 들춰 가닥을 잡았다.” 2년 전에야 책을 내보겠다는 생각을 했고 “원래 양의 두 배로 늘리고 부록(연표와 국내에 많이 소개됐으면 하고 바라마지 않는, 대실 해밋과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 소개) 등을 보완해 지금 내놓았다.” 김용언은 ‘터프가이’로 통하는 하드보일드 탐정들이 홈스와 달리, 부패된 사회구조 속에서 허우적대고 몸부림치는 것을 엔트로피(열역학 제2법칙)로 해석하는 뜻밖의 시도를 했다. 그는 “19세기의 비관적인 엔트로피 법칙이 20세기에 들어와 변증법적으로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이론적 토대를 닦았던 것처럼, 그들도 자본주의 대도시에서의 범죄가 빚어내는 혼돈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찾아내고 형상화하기 위해 분투하는 존재”라고 대변했다. 인터뷰 말미에 우리 사회의 범죄 관련 논의들을 꺼내 보았다. “사람들은 인과관계를 찾으려고 한다. 너무 당연한 일인데 어느 한 요소만 갖고 전체의 그림을 그려선 안 된다.”며 무라카미 하루키를 예로 들었다. “무라카미는 옴진리교 가스테러 피해자들을 인터뷰해 ‘언더그라운드’를 낸 1년 뒤, 가해자들과 만나 속편을 낸 적이 있다. 마땅히 지탄받아야 할 범죄의 뒤안에도 인간이란 존재가 있다. 그렇기에 전체의 얘기를 들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영화잡지에서 일했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영화에 대한 해설과 배경 같은 걸 설명해주는 글 찾아보고 읽는 걸 워낙 좋아했다. 당연히 추리물도 좋아했고. 이런 것들을 읽다보면 여기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해주는 글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국문으로 된 논문과 단행본을 찾아봤는데 전혀 없었다. 그나마 번역된 세 권 정도가 있었는데 전권이 이런 분석에 바쳐진 책은 아니었고 어떤 주제를 갖고 여러 학자가 쓴 것 중에 한 챕터 정도 들어간 것밖에 없었다. 답답해서 영어권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더니, 검색을 하자마자 몇 백 권이 뜨고 논문은 말도 못하게 많았고요. 깜짝 놀라서 일단 유명한 학자들 것 위주로 읽기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더라. 그래서 이런 걸 나만 알기는 아깝고, 추리소설 팬들도 많고 하니까 나누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혹시 주변이나 추리소설 동호인으로부터의 반응 같은 건 있었나. -아직 책이 나온 지 얼마 안돼 이렇다할 반응은 없다. 인터넷 서점 같은 데 가봐도 리뷰는 없고. 추리소설 동호회 중 유명한 ‘하우 미스터리’가 개인이 운영하는 곳인데도 자료가 잘 정리돼 있고 게시판을 많이들 이용하는데 거기 운영자가 이런 책이 나온다며 기대된다고 써놓았더라. 다음 주나 돼야 후기가 올라올 것 같다. →국내 애호가들은 어느 정도로 추산되는가. -정말 잘 모르겠다. 이 장르는 그 안에서도 굉장히 호, 불호가 강하게 나뉘고 많이 갈린다. 추리소설만 읽는 쪽이 있고 하드보일드 쪽만 읽는 친구들이 있고 또 셜록티언이라고, 셜록 홈즈 골수팬들이 있다. 요즘은 판매량이 좀 떨어졌다고 하는데, 한때는 일본 책들이 엄청 많이 팔릴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 쪽이 다 한 묶음으로 묶이지도 않는 편이고. →책을 읽어보니 에드먼드 윌슨 얘기가 곧잘 나온다. 주석에 ‘와, 세상에’란 표현이 나오는데 그건 본인이 쓴 것인지. -굉장히 고급예술에 관심 있는, 고급지성계 독자들을 대상으로 글을 쓰는 평론가다. 그 글을 읽어보니 굉장히 심하게 욕을 했더라. ‘당신들이 추천해 이것도 읽었고 저것도 읽었는데 정말 시간 낭비고,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당신들은 나한테 편지를 쓰면서 항의하겠지만. 그것도 너희들이 속물이고 내용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내미는 방어기제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현실을 직시하라.’고 노골적으로 얘기하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내 책의 추천사를 ‘7년의 밤’을 쓴 정유정 작가가 써줬는데 그 책을 처음 읽었을 때 굉장히 좋았다. 미스터리 스릴러란 장르를 가져온 한국 소설 가운데 이만큼 재미있게 읽은 책이 있었던가 생각하면서 읽을 정도로 굉장히 재미있게, 몰입해서 읽었다. 그런데 문단에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하거나, 제대로 된 평가를 저어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는 했다. 그 옛날에 썼던 (윌슨의) 글이 아직도 되풀이된다는 생각에 속 상했다. →2006년에 쓰기 시작해 3~4개월 만에 가닥을 잡았다고 했는데 출간에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사실 초고를 썼는데 생각밖으로 반응이 좋았다. 전혀 그 쪽에 관심없던 영문과 교수님들이 읽어보고 재미있다고 했다. 출판사를 알아본다, 어쩐다 했는데 취직도 하고 정신이 없어 그냥 넘어갔다. 2년 뒤 완성했는데 대학원을 휴학하고 다시 취업하고 하면서 또 정신없이 보냈다. (책을 낸) 강 출판사의 전 편집장과 출간에 합의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고만 있었다. 그러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본격적으로 수정을 시작한 것이 작년 가을이었다. 양이 너무 적어 2배로 늘리고, 내용도 다시 읽어보니 엉성하게 쓴 부분들이 많아서 보충하고 내용 늘리느라 작년 말에야 정리가 다 됐다. →그런데도 8개월이 더 소요됐다. -출판사에서도 출간 일정이 있었으니까. 2년 동안 아무 말 안 하다가 갑자기 하겠다고 해서 많은 걸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풍부한 레퍼런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가. -이 책을 보고 관심있는 분들이 그 문헌을 직접 찾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국 비평가가 쓴 책 ‘블러디 머더’가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됐다. 굉장히 쉽게 쓰고 백과사전처럼 연대기를 서술한 책인데, 이 책은 감춰두고 내가 써먹어야지 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번역돼 나왔다. →독자들이 이런 점을 즐겼으면 좋겠다, 뭐 그런 내용들이 있을 것 같은데. -처음 쓰기 시작할 때부터 해외에서 나온 이론서들을 살펴보면 한 시점에 한 주제에 대해 다룬 것들은 조금씩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분석한 글들은 찾기 쉽지 않았다. 예를 들어 셜록 홈즈 시절에 대해서만 집중 분석을 하거나 미국의 하드보일드만 다루거나 했다. 그래서 난 이 둘의 갈라진 지점과 모이는 지점을 분석해보려 했던 것이다. 그 둘의 결합 지점을 관심있게 보시고 이런 생각을 갖고 볼 수도 있구나 하고 생각해주었으면 한다. →책 제목을 보면서 많은 고심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실 책을 쓴 이유 중에 하나로 이 장르가 소멸되지 않고 계속 만들어지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밝혀보자는 취지로 엔트로피 이론을, 문학계에서 과학 이론을 가져다 적용해보는 시도가 있는데 엔트로피 이론을 여기에 적용시키면 좀 말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부분을 검증받거나 하지는 않았는지. -정유정 작가와는 두 번밖에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얘기를 나눌 만한 처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초고를 쓸 때도 이런 쪽에 관심을 갖는 친구들이 없었다. 동호회 활동을 열심히 한 편도 아니었고, 가입만 해놓고 안 가는 식이어서, 그 쪽 친구들도 없고. 순전히 혼자서 그 생각을 했고 사실 걱정을 했다. 나 혼자서 이런 거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재미나 있을까’ 그런 의구심이 있었는데 전혀 이런 거에 관심 없는 영문과 교수님들이 읽어봐주시고, 재미있다 해서 용기가 생겼던 것 같다. 팬들에게도 정보가 되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겠다 싶어서, 리뷰가 올라오면 그런 확인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혹시 국내 추리소설이 어떻게 도입돼 지금에 이르게 됐는지를 연구할 필요는 있지 않은지. 예를 들어 책 제목을 보면서도 많이 고심했고 우리 추리문학이 처한 위치와 지위 때문에 많이 두려워하면서 붙인 제목을 알 수 있었다. -책이 인쇄돼 나오기 3~4일 전에야 겨우 출판사와 책 제목을 합의할 정도로 많이 싸웠다. 난 조금 추상적인 제목을 원했다. 예를 들어 서구에서는 워낙 장르가 탄탄하다보니까 추상적이거나 은유적인 표현이 들어간 제목을 붙여도 독자들이 딱 알아듣는다. 예를 들어 ‘Figure on the Carpet’이란 표현이 있다. 카펫 위의 형상, 다시 말해 시신을 가리키는데 서구에서나 그 제목만 써도 아 시신에 관한 얘기구나 아는데 한국에서야 그런 걸 해봐야 누가 알겠나. 굉장히 설명적인 제목이 필요했고, 그런데 또 난처한 것이 19세기 셜록 홈즈랑 하드보일드 두 개를 다 다루다 보니까 둘을 아우르는 제목을 놓고 계속 출판사와 실랑이를 했다. 출판사 쪽에서는 범죄소설이란 말이 잘 안 쓰이는 말이니까, 그냥 추리소설이다, 하드보일드다 이렇게 쓰니까 이 용어 자체도 낯설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많았는데 이것만은 지켰으면 좋겠다고 읍소를 해서 겨우 이런 제목이 나왔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향후 포부가 있다면. -말씀하신 대로, 제가 전혀 한국 쪽 얘기를 안 다뤘다. 그런데 최근 국문학 쪽에서 그런 얘기들을 다루기 시작했으니까. 그런 것을 읽어보면서 만약 그것들과는 다른 얘기를 다루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한번 해보고 싶다. 한국의 작가 층이 매우 얇기 때문에 문제는 있지만 80년대 들어와서 김성종 등 이름 있는 작가들이 많이 배출되지 못했다. 이상우 도 김성종을 뛰어넘지는 못하는 것 같고. 정유정 작가는 ‘이건 추리소설이야’라고 표방하고 나온 건 아니지만 장르에 익숙한 작가가 이런 식으로 쓰면 되겠다고 생각해 좋았다. 얇은 층 내에서도 한번 엮어볼 수 있다면 해보고 싶다. 그 다음으로 관심있는 건 북유럽 쪽 도서들이 요즘 번역이 많이 되고 있다. 이들의 문학은 영국이나 미국의 것과 또 다르다. 60년대부터 형성된 그들만의 고유한 전통이 있는데 그들의 콘텍스트, 예를 들어 심각한 인종차별 문제를 인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쪽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 자료가 없어서 해외 자료를 공부하고 역사도 배워야 한다. 사실 그들의 언어로 읽는 것이 가장 좋을 텐데, 차마 그런 능력은 안돼서 영어로 번역된 자료를 찾고 공부하는 중이다. 북유럽 소설의 영문 번역판은 물론이고, 그들의 소설의 특성에 대해 서술한 자료들도 방대하다. →하필 아동 성폭행범이 잡힌 다음날 책이 출간됐다. -때가 안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의미인지. -조심스러운 얘기인데, 그 범인도 게임 중독이다, 술을 마셨다, 음란물을 즐겨 봤다, 이런 이유들로 그가 악마였다는 해석을 늘어놓더라. 나주 성폭행범 이전도 그랬고, 무슨 흉악범죄가 나타날 때마다 사람들은 범죄자를 그렇게 만든 원인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게임 중독, 알코올 중독 등의 원인이 있다. 세상이 이렇게 흉흉한데 이렇게 배부른 소리를 하느냐, 이런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범죄자가 추리소설을 많이 읽고 범죄에 대한 환상이 생겼다는 인과관계를 도출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부터도 어렸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질책을 받고 자랐다.. 왜 그런 책들만 읽느냐고, 범죄자가 되고 싶은 것이냐고 야단을 치셨거든요. 그런 인과관계를 생각하는 게 사실 쉽고 간편하니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중에 옴진리교 가스테러 피해자들과 가해자들을 인터뷰한 것을 담은 책이 있다. 특히 옴진리교에 몸 담은 이들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대단히 평범한 사람이 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에 빨려 들어가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그들이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를 알게 된다. 사람들은 결과만 따져 ‘쳐죽일 놈들’ 하고 만다. 그 앞의 얘기를 들어보지 않으면 전체적으로 쉽게 결론내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무라카미 같은 대단한 작가가 자신을 ‘죽이고’(가치 재단을 최대한 자제) 인터뷰만으로 책을 썼다는 것은 그 당시 선정적인 언론 보도보다 훨씬 더 가치있는 작업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옴진리교 사건이 95년 일어났는데 1년이 조금 안됐을 무렵, 1권이 나왔고 그로부터 딱 1년 뒤 옴진리교쪽 사람들 만나 들은 얘기를 쓴 것인데 2권은 작년에야 국내 번역돼 나왔다. 상당히 유의미한 책이라고 본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1924년 에베레스트 등정은 성공했을까?

    1924년 에베레스트 등정은 성공했을까?

    1953년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1919~2008)와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가 최초로 등정한 이후 많은 산악인들이 세계의 꼭대기에 올라가려고 도전하고 있다. 초모룽마(티베트), 주무랑마(중국), 사가르마타(네팔) 등으로도 불리는 8848m의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얘기다. 하지만 9차 원정대였던 힐러리의 최초 등정보다 29년 앞선 1924년 6월 8일 영국 등반가 조지 맬러리(1886~1924)의 등반대(3차 원정대)가 에베레스트에 도전해 ‘고지’를 눈앞에 뒀었다. 맬러리는 6월 8일 새벽 해발 8100m의 최종 베이스캠프를 떠났다. 당시 맬러리는 옥스퍼드대 학생이던 22세의 앤드루 어빈(1902~1924)을 등정 파트너로 선택했다. 두 사람은 그후 돌아오지 못했다. 어빈의 피켈만 1933년에 발견됐다. 1999년 영국 BBC 다큐멘터리 팀이 미국, 영국, 독일의 산악인을 모아 맬러리, 어빈 수색 원정대를 꾸렸다. 이 원정대에서 자료 수집과 연구를 맡은 산악 역사가 요한 헴렙은 1933년 피켈이 발견된 장소와 주변 인물의 증언을 토대로 두 사람이 추락했을 만한 경로를 추측했고, 그곳에서 엎드려 있는 미라 상태의 맬러리를 발견했다. 그 후 여러 차례에 걸쳐 어빈의 시신과 그가 갖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카메라를 찾기 위한 시도가 있었다. 그 카메라는 맬러리와 어빈이 정상을 밟고 조난당했는지를 확인해 줄 증거다. 22일 밤 11시 10분에 EBS에서 방송되는 ‘다큐 10+: 1924년 에베레스트 등정기’는 2010년 헴렙이 참여한 어빈 수색 원정대의 활동을 담았다. 헴렙은 1960년 에베레스트에서 어빈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목격했다는 중국 산악인 쉬징의 증언을 토대로 어빈의 위치를 추적해 나간다. 또한 맬러리와 어빈이 1924년 당시 지나간 루트를 되짚어 보며 두 사람이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는지, 어떻게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됐는지 추리한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두 철학자의 논쟁 비하인드 스토리는?

    지난달 말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세기의 토론이 있었다. 무신론의 대가로 불리는 리처드 도킨스 옥스퍼드대 명예교수와 영국 성공회의 최고 성직자 로완 윌리엄스 대주교가 ‘신은 있는가’를 주제로 벌인 설전이다. 도킨스는 “왜 당신은 창세기를 21세기 과학에 맞춰 재해석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가.”라고 공격했고, 윌리엄스 대주교는 “과학 잣대만으로 종교를 논할 수는 없다.”고 응수했다. 이 논쟁을 지켜본 외신들은 대부분 ‘오후의 다과회’처럼 차분했다고 평가했다. 자신의 신념이 무려 1시간 30분 동안 공격당했는데도 시종 정중했던 것이다. 이 모습을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과 칼 포퍼가 봤다면 “밋밋한 논쟁 따위는 집어치워라.”고 할까, “우리도 그럴 수 있었는데.”라고 하려나. 비트겐슈타인과 포퍼는 20세기 최고의 철학자로 꼽힌다. 둘 다 오스트리아 빈 출신 유대인이고, 기독교로 개종했다. 논리실증주의(빈 학파)를 중심으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지만, 두 사람이 평생 얼굴을 마주한 시간은 1946년 10월 25일 오후 8시 30분부터 단 10분뿐이다. 이 ‘10분’은 동석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10분’ 동안 일어난 일은 이렇다. ‘그날’ 런던경제대학 과학방법론 강사인 포퍼는 케임브리지대에 초청 연사로 방문했다. 킹스칼리지 H3호실에서 강연을 시작하자 논쟁이 격렬해졌고 비트겐슈타인은 부지깽이를 흔들다가 회의실을 나가버렸다. 이 일은 ‘부지깽이 스캔들’로 불리며 이후 철학계를 뒤흔들었지만, 사건에 대한 기억은 제각각이다. 비트겐슈타인이 부지깽이를 흔들며 고성을 질렀는지, 고성을 지르다가 부지깽이를 들었는지, 부지깽이로 포퍼를 위협했는지, 포퍼가 한 말에 옴짝달싹 못한 채 부지깽이를 내던지고 밖으로 나가버렸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공통된 것은 부지깽이일 뿐,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옥스퍼드대에서 철학을 전공한 데이비드 에드먼즈와 케임브리지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존 에이디노는 2001년 이 사건을 추적한 ‘비트켄슈타인의 부지깽이(Wittgenstein’s Poker)’를 내놓았다. 같은 해 말 한국에도 번역본이 나왔다. 최근 나온 ‘비트겐슈타인과 포퍼의 기막힌 10분’(김태환 옮김, 옥당 펴냄)은 2012년 버전으로, 영국 출판사 요청에 따라 내용을 조금 첨가했다. ‘기막힌 10분’은 이 짧은 해프닝으로 두 거장 철학자의 성격과 사상, 문화, 사회 분위기 전반을 두루 살핀다. 단순히 ‘대단히 천재적인 사상적 삶’을 어렵고 지루하게 나열한 것이 아니라, 마치 추리소설을 읽은 듯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그려냈다. 저명한 철학자 스티븐 툴민 교수나 논리학 권위지 피터 기치 교수, 비트겐슈타인의 스승 버트런드 러셀 교수 등의 증언을 듣는 것은 마치 철학모임에 자리한 듯 생생하다. 1만 79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에드먼드 탄생 140주년 심포지엄

    1903년 서울 중구 정동 보구여관에 최초의 간호교육기관을 설립해 한국 간호교육의 효시가 된 캐나다인 마거릿 J 에드먼드 탄생 14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식과 학술 심포지엄이 24일 이화여대 건강과학대(학장 신경림 대한간호협회 회장) 주관으로 이화여대 이화 역사관과 이화·삼성교육문화관에서 각각 열린다. 기념식에서는 김선욱 이대 총장이 가족대표에게 감사패를 수여하며, ‘마거릿 J 에드먼드 선생님의 소명과 한국 간호교육의 미래 비전’을 주제로 학술 심포지엄이 이어진다.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33) 윌리엄 셰익스피어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33) 윌리엄 셰익스피어

    세상에 그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지만, 그의 정체는 미스터리다. ‘추정상’ 37편의 희곡과 154편의 소네트(소곡·小曲)를 남겼지만 어떤 계기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우정과 연애, 사제지간은 어떠했는지 알 길이 없다. 후대에 길이길이 인용될 명문들을 남겨 놓았지만, 사료가 될 만한 개인적인 기록은 단 한 쪽도 남아 있지 않다. 그 때문인지 그의 연구자들은 어느새 편집증, 망상증 환자로 돌변하기 십상이다. 그는 실은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었어! 아냐, 그는 그저 평범한 상인이었어! 다 틀렸어, 여러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작품을 쓴 뒤 하나의 이름으로 발표했던 거야! 연구자들은 이 위대한 작가의 문학적 비전, 사생활, 콤플렉스 등등을 알 수만 있다면 자기 영혼이라도 팔았으리라. ●16세기 영국을 해면처럼 빨아들이다 영국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예술가. 연극을 위한 희곡을 쓰고, 배우로서 연극에 출연하고, 연극 전용극장의 경영을 맡았던 연극인.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이라는 말을 수많은 남자배우들로 하여금 읊조리게 한 작가. 그의 이름은 일단,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다. 정확한 출생일은 알 수 없지만, 세례를 받은 날은 1564년 4월 26일로 기록되어 있다. 1564년 영국 출생이라는 사실, 이것만으로도 소중한 정보다. 해외 식민지 개척, 엘리자베스 여왕과 메리 간의 정치적 갈등, 신교와 구교의 충돌, 상업의 발달 등으로 당시 영국은 눈이 어질할 정도로 변화해 갔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 발밑이 시도 때도 없이 쿨렁거린다고 느꼈을 테다. 셰익스피어는 16세기 영국의 다층적이고도 역동적인 현실을 해면처럼 빨아들여 희곡으로 둔갑시켰다. 예컨대 ‘리어 왕’에서는, 중앙집권적 절대왕정의 은폐된 근간인 폭력성을 스스로 폭로해 버린 리어, 근대적 합리주의로 무장한 채 자본주의 시대를 예고하는 서자 에드먼드, 이 모든 것을 안다는 듯 시종 지껄여대는 광대를 같은 평면에 둠으로써 당대의 정치적 상황과 민중 내의 분위기, 자본주의적 움직임 등등을 치밀하게 그려 보였다. 그의 작품을 일종의 ‘사회사’로 읽으려는 일각의 시도는 여기에 기인한다. 셰익스피어가 활동한 시대는 연극의 황금기였다. 오랜 내란이 종식되고 식민지 개척이 진행되면서 문화적 자부심이 넘쳐났고, 이에 따라 ‘영국적인 것’을 확립하려는 의지가 작동했는데, 이런 분위기를 타고 연극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극장은 치외법권 지대였으며, 또 다른 삶들이 펼쳐지는 세계였다. 독서와 거리가 먼 문맹의 서민들에게 무대 위 사랑과 배신만큼 즐거운 향유거리는 없었을 터, 16세기 런던의 노동자들이야말로 셰익스피어의 진정한 후원자라 불릴 만하다. 그래서일까. 왕위 찬탈을 다룰 때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민중의 호흡이 짙게 배어 있다. 그가 창조한 왕은 노동계급이 할 법한 상소리를 찍찍 내뱉고, 숙녀들은 저속한 농담을 거침없이 주고받는다. 가장 고상하고 전통적인 주제가 가장 비속하고 현대적인 언어와 공존하는 세계, 비극 속에 희극이, 희극 속에 비극이 교차·중첩되는 세계. 셰익스피어의 세계는 16세기 르네상스 그 자체였다. ●우리는 햄릿이고, 샤일록이고, 로미오다 “Who’s there?” 쨍 소리가 날 법한 춥고 까만 밤을 가르는 병사의 외침으로 ‘햄릿’은 시작된다. 거기 누구인가? 아직 이 작품의 결말을 모르는 1600년의 관객들은 침을 삼키며 무대를 응시했다. 곧 이어 유령이 된 선왕(先王)이 등장했다 사라지고, 부친의 죽음과 모친의 배반으로 침울해진 왕자 햄릿이 걸어 나온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은 시종일관 이런 식의 태도로 무대 위를 오간다. 선왕의 유령과 대면하고서도 그 존재를 의심하고, 현왕이 살인자가 확실한지 알기 전까지 복수를 미루고, 그를 죽이면 그가 죄를 씻고 천국에 갈까봐 또 미루고, 모친에 대한 태도에 있어 갈팡질팡하고, 그러면서도 우유부단한 자신을 책망하느라 시간을 보낸다. 이쯤 되면 복수는 이미 잊히고 만다. 셰익스피어는 기실 서스펜스의 대가다. 그는 햄릿의 복수를 한정 없이 미루면서 작품 전체를 서서히 광기로 물들여 간다. 햄릿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조직되고,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선택들로 채워진다. 이면의 진실을 봐 버린 이상 모든 게 의문투성이고, 햄릿은 그런 의문들에 시달리며 실제로 미쳐가는 듯하다. 이렇게 하여 ‘햄릿’은 훗날 예술작품들의 영원한 주제가 되었다. 회의하고 번민하는 인간의 탄생. 햄릿은 끊임없이 되묻는다. 거기, 누구냐? 그러나 한편으로 셰익스피어의 연극은 지극히 통속적이고 생동감 넘쳤다. 기독교도들에게 개 취급을 받고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샤일록을 보라. 달아난 딸보다도 사라진 다이아몬드 때문에 애통해하는 수전노의 면모라든지,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받아내려다 실패하는 과정은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하다. 그러나 이야기는 수전노가 벌을 받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셰익스피어는 샤일록을 무시하는 안토니오를 통해, 유대인을 향한 당시 기독교도들의 증오심을 함께 그려냈다. 셰익스피어가 치밀하게 깔아놓은 이런 장치들 덕에 ‘베니스의 상인’은 박해받는 유대인 샤일록 세계의 비극이자, 선악이 분명치 않은 이 세계에 대한 증언이 되었다. 가엾은 악인 샤일록, 맴도는 인간 햄릿, 눈 먼 사랑 로미오와 줄리엣. 그가 만든 인물들은 16세기 영국의 생생한 인간들인 동시에, 모든 세기를 가로질러 재해석되고 새롭게 변주되는 ‘보편형’으로 남아 있다. 셰익스피어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우리 안에 꿈틀거리는 햄릿을, 로미오와 줄리엣을, 리어와 샤일록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표절과 신조어에 능했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순수 창작이 거의 없다는 게 정설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가슴 아픈 이야기는 ‘로메우스와 줄리엣의 비극적인 이야기’라는 시에서, 이성의 붕괴로 지옥을 맛보는 맥베스의 이야기는 ‘맥베스의 전기’에서, 눈 먼 왕 리어의 비극적 말로를 그린 ‘리어왕’은 ‘리어왕과 그의 세 딸들의 실록’에서 가져왔다. 지금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렵지만, 창작물과 비창작물의 구분이 엄격하지 않았던 당시로서는 빈번한 일이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필요에 따라 자기 ‘검색엔진’을 사용해 파편을 모으고 그것을 제 것으로 흡수한 뒤 이를 ‘보편적 이야기’로 업그레이드시키는 셰익스피어의 능력이다. 인간과 시대에 대한 통찰력 없이 파편들을 직조하기란 불가능하다. 셰익스피어는 햄릿 식의 고뇌와 절망, 오셀로 식의 애욕과 질투, 맥베스 식의 야망과 불안을 꿰뚫는 직관력을 지녔다. 그리고 이 직관을 생생한 인물과 사건들로 풀어냈다. 그가 어떻게 이런 직관력을 연마했는지, 글쓰기 테크닉을 누구에게서 사사(師事)했는지, 우리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그는, 비평가 존 드라이든의 말처럼 “지식을 타고난” 천재였을 수도 있고, 어쩌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신적인” 호기심과 관찰력을 지닌 초인(超人)이었을지도 모른다. 셰익스피어는 남의 이름으로 발표된 글도 죄책감 없이 가져오고, 필요하다면 스토리의 내적 논리도 무시했다. 그런가 하면 리듬을 통한 긴장감을 위해 말장난을 일삼고, 심지어 전에 없던 말들까지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예컨대, 단어들 앞에 ‘un’이라는 접두사를 붙여 순식간에 발랄한 느낌의 단어들로 조립하는가 하면, countless나 lonely 같은 귀여운 조어들도 거침없이 만들어냈다. 라틴어에 밀려 천대당하던 영어가 저만의 생기와 뉘앙스를 부여받게 된 건 순전히 셰익스피어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록에 의하면, 셰익스피어는 2305개의 영어 단어를 만들었다고 한다. 흡사 오늘날 네티즌들이 웹사이트를 오가며 빠르게 신조어를 탄생시키듯이, 그는 역사서와 민간동화 사이를 기민하게 오가며 수많은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낯선 언어, 무수한 빛의 뉘앙스로 반짝이는 언어,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계를 미세하게 포착하는 언어. 그가 보고 들은 모든 것이 작품 속의 인물로 되살아났고, 그가 수집하고 조립한 모든 언어가 그 인물들을 통해 발화되었다. 셰익스피어를 통해 언어는 그렇게 또 하나의 새로운 용법을 지니게 되었다. 세상에는 머리말 말고는 볼 게 없는 소설책과 시집을 내는 작가들도 많지만, 작품 이외에는 어떤 말도 남기지 않았으나 그 작품으로 모든 것을 말한 작가도 있다. 셰익스피어는 후자다. 셰익스피어, 이는 16세기 영국을 수놓는 모든 삶의 이름이고, 시공을 가로질러 여기에 와 닿은 모든 눈물과 웃음의 이름이다. 과거의 문학, 현재의 문학, 미래의 문학, 그 모든 문학들의 이름이다. 수경 남산강학원 연구원
  • [씨줄날줄] 등로주의(登路主義) /임태순 논설위원

    길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지점과 지점을 이어주고 사람들이 서로 왕래하는 교통과 소통의 길이 일반적이다. ‘나침반 없이 여행하라.’는 말처럼 길은 때로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여정, 모험, 도전을 상징하기도 한다. 길은 또 철학적 사유, 깨달음의 길이기도 하다. 공자는 논어에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를 여러 가지 단어 중에서 길 ‘도’(道)로 표현한 것은 생각하면 할수록 공감이 간다.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영국의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산에 왜 가느냐는 물음에 거기 산이 있으니 간다고 했다. 말없이 서 있는 산은 사람들에게 깨달음과 함께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킨다. 가이드를 앞세워 쉬운 코스를 택해 산에 오르는 것이 전통적인 등산이었다.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이 지상의 목표여서 ‘등정주의’(登頂主義)라고 불린다. 이에 반해 절벽이나 암벽 등 난이도가 어려운 곳을 택해 험로를 개척해 가며 등산하는 것을 ‘등로주의’(登路主義)라고 한다. 영국의 등반가 앨버트 프레드릭 머머리(Albert Frederick Mummery·1855~1895)가 1880년 주창해 그의 이름을 따 ‘머머리즘’(Mummerism)이라고도 부른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하는데 ‘길이 끝나는 곳에서 비로소 등산이 시작된다.’고 했으니 그가 ‘등반계의 이단아’ ‘근대 등산의 비조’라고 불리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의 등로주의는 20세기 후반을 거쳐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더욱 힘을 받고 있다. 히말라야 8000m 이상 14좌 완등은 1980년대 후반 이탈리아의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에 의해 처음 허용된 뒤 지난해에는 우리나라의 여성 산악인 오은선씨에 의해 개방됐을 정도로 더 이상 범접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성이 아니다. 등산장비가 속속 개발되면서 지구상 전인미답의 길이 점점 없어졌으니 모험정신으로 무장한 산악인들이 새로운 등정루트를 찾아 도전하고 성취감을 맛보려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봉 도전에 나섰다 실종된 박영석 대장도 등로주의 산악인이다.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남극, 북극을 정복한 그는 2009년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한국인의 길’을 냈다. 이번에 안나푸르나와 로체에 ‘코리안 루트’를 새로 내려다 끝내 산사나이가 되고 말았다. “누구나 걸음마를 하잖아요. 그게 아마 최초의 도전 아닐까요?” 그가 안나푸르나로 가기 전 후원사 홈페이지에 남긴 말이다. 새 길을 찾으려다 먼 길을 간 그가 편히 쉬기를 빈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서울지하철 승차권 변천사 한눈에

    서울지하철 승차권 변천사 한눈에

    1974년 개통된 서울지하철은 30여년 동안 시민들의 생활과 함께했다. 승차권도 시대의 변화,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변신을 거듭했다. 서울지하철 1~4호선 운영을 맡아 온 서울메트로는 지난 1일 창립 30주년을 맞아 지하철 승차권의 변천사를 4일 공개했다. ●1986년 역무원 개표 사라져 지하철 승차권의 시작은 발매·개표·회수가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에드먼슨식 승차권’, 즉 종이 승차권이었다. 발매역, 목적지 또는 이동 구간, 운임 등이 표기된 형태였고 역무원들이 게이트에 서서 일일이 개표를 하고 회수를 했다. 그러다 노선이 늘어나고 승객이 증가하자 물리적 한계에 부딪혔고 결국 1986년 모습을 감추게 된다. 그 뒤를 이은 것은 ‘마그네틱 승차권’. 땀이나 자석에 훼손돼 직원들이 따로 판독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쨌든 이때부터 지하철 승차권은 자동 발매·개표·회수가 가능해졌다. 자동으로 개집표기가 수거한 승차권은 역무원들이 포대에 담아 폐지로 처리했는데, 교통카드에 밀려 2009년 5월 끝내 역사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나온 폐지가 총 152억장, 8t 트럭 1560대 분량이었다. ●152억장·8t트럭 1560대 분량 그 사이 틈틈이 ‘기념승차권’이 나오기도 했다. 보통 국가적 행사를 홍보하고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발행됐는데 1974년 8월 15일 지하철 개통 기념 승차권이 최초였다. 이후 새로운 노선 개통이나 88올림픽, 2002한·일월드컵 등을 기념해 승차권이 나왔다. 1999년 도입된 교통카드는 매표업무를 획기적으로 감소시켜 실질적인 역무자동화를 실현하는 계기가 됐다. 게다가 이제는 지하철뿐 아니라 버스, 택시, 편의점, 자판기, 공중전화에서도 사용이 가능하고 범죄 추적의 단서로 활용되는 등 ‘만능카드’로 탈바꿈했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창립 30주년을 맞아 새로운 기술과 함께 시민의 발로서 더욱 굳건히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2011 대구세계육상] ‘들러리’ 한국 육상

    [2011 대구세계육상] ‘들러리’ 한국 육상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결국 ‘남의 잔치’였다. ‘텐텐’(10개 종목 톱10 진입)을 외치며 이번 대회를 준비했던 한국 육상은 높은 세계의 벽만 실감했다. 1995년 예테보리 대회를 개최한 스웨덴, 2001년 에드먼턴 대회의 캐나다에 이어 역대 세 번째의 ‘노메달 개최국’이란 오명을 안게 됐다. 사실 메달에 대한 희망은 말 그대로 희망일 뿐이었다. “운 좋게 얻어걸리면 가능하다.”는 말을 공공연히 할 정도였다. 하지만 공식 목표인 텐텐의 절반조차 이루지 못한 것은 곱씹어 볼 대목이다. 남자 경보 20㎞의 김현섭(26)이 6위에 올랐고, 남자 경보 50㎞의 박칠성(29)이 한국 신기록을 작성하며 7위를 차지했다. 남자 멀리뛰기에서는 김덕현(26)이 시즌 최고 기록과 함께 예선을 통과했으나 이튿날 세단뛰기 예선에서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결승 무대는 밟지도 못했다. 나머지 선수들은 실력의 한계와 부담감을 극복하지 못한 채 줄줄이 무너졌다. 굳이 결과를 정리하자면 ‘투텐’이다. 잔치의 주인공이 아니라 들러리였다. 한국 육상은 2007년 대구가 개최지로 선정된 뒤 2년이 지난 2009년에야 오동진 회장이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외국인 코치를 데려오고, 해외 전지훈련을 보내는 등 본격적인 대회 준비와 체질 개선에 나섰다. 그 결과 31년 묵은 남자 100m 한국 기록도 깨졌고,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4개를 따는 등 성과가 있었다. 그래도 2년은 세계 육상의 중심에 접근하기에는 짧디짧았다. 그러나 세계선수권대회에 처음 출전한 선수들이 세계 정상급 스타들과 기량을 겨루며 수준의 차이를 느끼고, 자신감을 얻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수확이다. 김현섭과 최윤희(25·여자장대높이뛰기), 박봉고(20·남자 400m), 남자 400m 계주팀 등은 세계대회에서 얻은 패기를 앞세워 내년 런던올림픽 무대를 꼭 밟겠다는 각오다. 애초에 목표를 높게 잡는 건 당연하다. 목표대로 안 됐다고 무조건 나무랄 일은 아니다. 육상은 기초체육이다. 하루아침에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여전히 질책보다는 격려와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오 회장은 “이번 대회에서 심판으로 활동한 국내 400여명의 지도자들과 대표 선수들이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시각 자체가 많이 달라졌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 육상의 일대 전환점이 될 것”이라면서 “2007년 오사카 대회가 끝난 뒤 일본 육상의 등록 선수가 1만명 이상 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도 그런 붐으로 이어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대구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대구세계육상 D-3] 鐵女 페이토 “달구벌 경쟁·우정 즐기겠다”

    [대구세계육상 D-3] 鐵女 페이토 “달구벌 경쟁·우정 즐기겠다”

    스포츠 스타가 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스포츠판에서 끈질기게 살아남는 것이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출전하면서 사상 최다 출전 기록을 세우는 포르투갈의 경보선수 수산나 페이토(36)의 얘기는 그래서 특별하다. 페이토는 1991년 도쿄 세계대회를 시작으로 11회 연속 세계대회 출전이라는 대기록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국제육상연맹(IAAF)은 23일 페이토와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페이토는 2009년 베를린 대회까지만 해도 독일의 여자 원반던지기 선수인 프랑카 디치와 함께 최다 출전기록(10회)을 나눠 가졌지만 이번에도 국가대표로 선발되면서 신기록 수립 초읽기에 들어갔다. 31일 오전 9시 열리는 여자 경보 20㎞ 레이스에서 페이토가 첫발을 내디디면 새 역사가 쓰이는 셈이다. 무려 20년간이나 세계대회를 즐긴 페이토는 “은퇴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세계대회에서 경쟁할 때의 희열과 다른 나라 선수들과 나눈 우정이 발목을 잡았다.”면서 “대구에서도 그런 경험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대구는 올림픽처럼 선수촌을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다.”면서 “훈련하기 좋은 장소를 찾아 컨디션을 끌어올리겠다.”고 다짐했다. 2005년 헬싱키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한 게 최고 성적인 페이토는 전 세계가 놀랄 만한 톱클래스는 아니다. 1990년대 꾸준히 기량을 끌어올리며 1999년 헬싱키 대회에서 4위를 차지했지만 2000년대 들어서 성적은 점점 내려갔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14위,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는 20위에 그쳤다. 헬싱키에서의 깜짝 선전은 그때였을 뿐,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도 부진했다. “베이징에서 모든 역량을 집중했고 컨디션도 최상이었지만 생각보다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은퇴했더라면 좌절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시 시작하는 것을 택했다.” 지난해 유럽선수권 대회에서 순위 밖으로 밀려났지만 페이토는 계속 노력한 끝에 올 시즌 IAAF 세계경보대회에서 6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올 시즌 최고기록은 지난 4월 세운 1시간 30분 44초. 세계 정상권(세계기록 1시간 25분 8초)과는 거리가 멀지만 2008년 이후 가장 빠른 기록이다. 그의 가장 큰 미덕은 성실함. 2001년 에드먼턴 대회에서 실격한 것을 제외하면 역대 10차례 세계대회 중 9번을 완주한 ‘철인’이다. 이번 대회에서 페이토의 목표는 2009년 베를린 대회(10위)에서보다 더 나은 성적을 내는 것. “나의 가장 큰 목표는 조국을 위해 최고의 성적을 내는 것”이라면서 페이토는 싱긋 웃었다. 그러나 그녀의 목표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개최도시의 문화를 즐기고 다른 선수들과 교류하고 싶다. 지금껏 참가한 10개의 세계대회에 대해 모두 특별한 기억을 갖고 있다. 가장 좋은 기록을 낸 곳이 특별하지는 않다.” 대구가 페이토에게 특별한 곳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벌써부터 31일이 기다려진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英과학자 “괴물 네시는 진짜” 충격주장

    괴물 네시가 진짜 존재할까. 영국의 한 과학자가 스코틀랜드 인버네스에 있는 네스호수에서 종종 목격된 이른바 ‘괴물 네시’가 실제로 존재하는 동물이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영국 포츠머스 대학 대런 네이시 동물학 박사는 지난 12일(현지시간) 런던에서 열린 ‘런던 사회동물학’ 연례회의에서 “괴물 네시를 비롯해 과학적으로 아직 증명되지 않은 거대 생명체들이 지구상에 다수 존재할 것”이라고 주장, 괴물 존재논란을 점화했다. 괴물 네시는 목이 길고 몸길이가 수m에 달하는 정체불명의 생명체로, 수년 째 목격담이 끊이지 않는 전설의 동물이다. 2003년 영국 BBC방송 탐사팀이 600차례에 걸쳐 음파탐지 실험과 위성추적장치를 이용해 호수를 샅샅이 뒤졌지만 네시의 존재는 밝혀지지 않았다. 네이시 박사는 이번 회의에서 “괴물 네시는 공룡시대에 살던 파충류 수장룡(플레시오사우루스 ·Plesiosaurs)과 유사한 생김새를 가졌다.”면서 “오늘날의 선사시대 동물이거나 선사시대에서부터 진화한 종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괴물 네시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해양생명체들은 다수 존재한다. 1905년 동물학자 에드먼드 미드-왈도와 마이클 니콜은 브라질 해안에서 매우 특이한 ‘바다괴물’을 목격한 바 있으며 1848년 8월 남대서양에서 약 180m의 거대 괴물이 선원들에 동시 목격된 미스터리한 일도 있었다. 네이시 박사는 “고래와 상어 등을 비롯한 다양한 해양 동물종들이 새롭게 발견돼 학계에 보고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확인한 동물들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그릇된 생각”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20년간 전 세계적으로 약 8종의 거대 생물종이 새롭게 보고된 바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현대기아차 美관심브랜드 2위

    현대기아차가 미국 국민이 관심을 갖는 자동차 브랜드 2위에 올랐다. 11일 미국의 자동차 정보 제공업체인 에드먼드닷컴(edmonds.com)이 발표한 지난 6월 기준 ‘소비자 자동차 관심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대차 11.1%, 기아차 6.8%로 현대기아차의 합산 관심도가 17.9%를 기록, 포드(18.2%)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이어 도요타(17.8%), GM(17.7%), 혼다(15.4%), 닛산(12.5%), 크라이슬러(11.3%)가 뒤를 이었다. 에드먼드닷컴이 매달 발표하는 소비자 자동차 관심도는 한달간 사이트 전체 방문객 수 대비 브랜드별 차량 정보 조회 수를 말한다. 보통 신차 구매자들은 가장 먼저 인터넷으로 차량 정보를 검색하는 점을 고려하면 소비자 자동차 관심도는 잠재 고객들이 구입을 고려하는 브랜드의 순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현대기아차에 대한 관심도는 최근 급상승하고 있다. 1년 전인 지난해 6월 현대차(8.5%)와 기아차(4.7%)를 합쳐 13.2%를 기록, GM(19.3%), 도요타(17.3%), 포드(15.8%), 혼다(14.5%)에 이어 5위에 그쳤었다. 하지만 지난 5월 현대차(10.8%), 기아차(6.9%)는 17.7%로 도요타(17.5%)를 제치고 포드(19.0%), GM(17.8%)에 이어 3위를 기록하더니 지난달 포드에 간발의 차이로 뒤지며 2위로 올라섰다. 이처럼 미국 소비자들의 현대기아차에 대한 높아진 관심은 판매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5월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같은 달 대비 33% 증가한 10만 7426대를 판매, 역대 최고 시장 점유율인 10.1%를 기록했으며 지난달에는 전달보다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10만 4253대를 팔아 점유율 9.9%를 기록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지구 역사상 최강의 ‘바다 포식자’ 화석 공개

    약 1억 5500만년 전의 지구 바닷속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포식자로 군림했던 해양 공룡의 새로운 화석이 공개됐다. 7일 영국 방송 BBC에 따르면 최근 도싯 카운티 박물관에서 플리오사우루스의 한 종으로 여겨지는 공룡의 두개골 화석이 일반인들에 공개되고 있다. 이 두개골 화석은 ‘쥐라기 해안’으로 잘 알려진 도싯과 동부 데번 해안에서 최초로 발견됐으며, 지난 1년 6개월간의 복원 작업을 거쳐 완성됐다. 과학자들은 이 화석을 플리오사우루스와 같은 종이거나 새로운 생물로 보고 있다. 카운티 위원회의 지구과학 매니저 리처드 에드먼즈는 “처음에 단순한 뼈 더미로 생각했다. 지금은 95%가량 완성됐으며,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완벽하고 가장 큰 플리오사우루스의 화석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화석은 약 1억 5500만 년 전의 것으로, 지역 수집가인 케반 시핸이 지난 2003년부터 6년간 조금씩 뼛조각을 모았다. 당시 화석은 점점 웨이머스만 인근의 한 절벽 밖으로 떨어지고 있었다고. 시핸은 “해변에 앉아 있다가 (절벽에서 화석 파편) 세 조각을 목격했는데 정말 운이 좋았다. 처음에는 무엇인지 모른 채 발굴을 진행했고 몇 년간 새로운 조각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처음 그 화석은 ‘바다 괴물’보다는 거대한 바위 덩어리를 더 닮았지만, 화석 전문가 스콧 무어- 페이는 그 뼛조각을 오랜 과정을 거쳐 정교한 화석으로 바꿨다. 다소 스테로이드를 맞은 악어처럼 보이는 이 ‘바다 괴물’ 화석은 쥐라기와 백악기 기간동안 산 플리오사우루스로 그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였다. 특히 이 바다 괴물은 육상공룡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보다 무는 힘이 무려 10배 이상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4개의 물갈퀴를 갖고 있었던 것을 예상하면 거대한 몸집에 매우 빠른 동력까지 갖춘 말그대로 바다의 제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두개골 외에는 어떠한 몸통 화석도 발굴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2.4m에 달하는 두개골을 통해 과학자들은 이 포식자가 머리부터 꼬리까지 약 15~18m의 몸길이로 추정했다. 고생물학자 리처드 포레스트는 “이 두개골 화석은 지난 몇 년간 발굴된 가장 흥미로운 화석 중 하나이며 상징적인 표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그 ‘바다 괴물’의 완전한 화석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에 ‘세계 최대의 바다 괴물’이라는 타이틀의 주인으로 확인되기는 힘들다. 잠재적으로 더 큰 표본 조각은 옥스퍼드셔의 벽돌 원토 채취장에서도 발견됐으며, 호주에서 크로노사우루스로 불리는 플리오사우루스 한 종의 두개골 길이는 최대 3m로 나타났다. 또 최근 스발바르에서 발견된 ‘괴물’이나 ‘프레데터 X’로 명명된 화석뿐 아니라 멕시코에서 발견된 ‘아람베리의 괴물’ 또한 이 ‘바다 괴물’의 경쟁 상대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역대 지구 최강 ‘바다 괴물’ 화석 공개

    약 1억 5500만년 전의 지구 바닷속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포식자로 군림했던 해양 공룡의 새로운 화석이 공개됐다. 7일 영국 방송 BBC에 따르면 최근 도싯 카운티 박물관에서 플리오사우루스의 한 종으로 여겨지는 공룡의 두개골 화석이 일반인들에 공개되고 있다. 이 두개골 화석은 ‘쥐라기 해안’으로 잘 알려진 도싯과 동부 데번 해안에서 최초로 발견됐으며, 지난 1년 6개월간의 복원 작업을 거쳐 완성됐다. 과학자들은 이 화석을 플리오사우루스와 같은 종이거나 새로운 생물로 보고 있다. 카운티 위원회의 지구과학 매니저 리처드 에드먼즈는 “처음에 단순한 뼈 더미로 생각했다. 지금은 95%가량 완성됐으며,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완벽하고 가장 큰 플리오사우루스의 화석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화석은 약 1억 5500만 년 전의 것으로, 지역 수집가인 케반 시핸이 지난 2003년부터 6년간 조금씩 뼛조각을 모았다. 당시 화석은 점점 웨이머스만 인근의 한 절벽 밖으로 떨어지고 있었다고. 시핸은 “해변에 앉아 있다가 (절벽에서 화석 파편) 세 조각을 목격했는데 정말 운이 좋았다. 처음에는 무엇인지 모른 채 발굴을 진행했고 몇 년간 새로운 조각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처음 그 화석은 ‘바다 괴물’보다는 거대한 바위 덩어리를 더 닮았지만, 화석 전문가 스콧 무어- 페이는 그 뼛조각을 오랜 과정을 거쳐 정교한 화석으로 바꿨다. 다소 스테로이드를 맞은 악어처럼 보이는 이 ‘바다 괴물’ 화석은 쥐라기와 백악기 기간동안 산 플리오사우루스로 그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였다. 특히 이 바다 괴물은 육상공룡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보다 무는 힘이 무려 10배 이상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4개의 물갈퀴를 갖고 있었던 것을 예상하면 거대한 몸집에 매우 빠른 동력까지 갖춘 말그대로 바다의 제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두개골 외에는 어떠한 몸통 화석도 발굴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2.4m에 달하는 두개골을 통해 과학자들은 이 포식자가 머리부터 꼬리까지 약 15~18m의 몸길이로 추정했다. 고생물학자 리처드 포레스트는 “이 두개골 화석은 지난 몇 년간 발굴된 가장 흥미로운 화석 중 하나이며 상징적인 표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그 ‘바다 괴물’의 완전한 화석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에 ‘세계 최대의 바다 괴물’이라는 타이틀의 주인으로 확인되기는 힘들다. 잠재적으로 더 큰 표본 조각은 옥스퍼드셔의 벽돌 원토 채취장에서도 발견됐으며, 호주에서 크로노사우루스로 불리는 플리오사우루스 한 종의 두개골 길이는 최대 3m로 나타났다. 또 최근 스발바르에서 발견된 ‘괴물’이나 ‘프레데터 X’로 명명된 화석뿐 아니라 멕시코에서 발견된 ‘아람베리의 괴물’ 또한 이 ‘바다 괴물’의 경쟁 상대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김동건·강병수를 기억하시나요 “야구인생 2막 시작”

    그라운드에 선 건 1년 반 만이었다. 더 이상 야구장에서 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야구라면 지긋지긋했으니까요. 다시는 돌아보지 않으려 했는데….” 그럴 만했다. 전직 프로야구 선수 김동건. 2001년부터 9년 동안 프로선수 생활을 했다. 김동건에게 그 9년은 지겹고도 긴 기다림이었다. “언젠가는 나도 주인공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버텼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가다 보니 어느새 9년이 흘렀더군요.” 김동건의 프로 통산 기록은 68경기 출장에 82타수 14안타 타율 .171이었다. 그리고 홈런 하나와 타점 16개가 전부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시작부터 나빴던 건 아니었다. 김동건은 2000년 캐나다 에드먼턴 청소년야구선수권 대회 우승의 주역 가운데 하나였다. 1번 타자에 주전 유격수. 추신수-이대호-정근우가 당시 팀 동료들이었다. 이듬해 SK에 2차 1지명으로 입단했다. “그때만 해도 모든 게 다 잘될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자신도 있었고요.” 그런데 프로는 쉽지 않았다. 출장 기회 자체가 잘 안 왔다. 입단 뒤 3년 동안 딱 19번 1군 경기에 나섰다. 스스로는 왜 그런지 이유를 잘 몰랐다. “경기에 못 나서니 마음이 조급했고, 마음이 급하니 더 야구가 안 됐던 것 같아요.” 상무에 2년 다녀온 뒤에는 팀 사정이 달라져 있었다. 유격수 자리엔 나주환이, 3루엔 최정이 버텼다.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었다. 2009시즌이 끝난 뒤 방출됐다. SK 관계자는 “재능이 있지만 모든 면에서 조금씩 모자란 선수였다.”고 평가했다. 그렇게 김동건의 프로 인생은 끝났다. 다시는 야구를 안 하려고 했었다. 야구가 너무 싫었다. 그런데 할 줄 아는 게 또 야구밖에 없었다. 이달 초 신생팀 엔씨소프트가 공개 트라이아웃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시 도전해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제게서 야구를 빼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김동건은 이를 악물었다. 28일 마산구장 모습이었다. 또 다른 내야수 강병수는 아무 말 없이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재일교포 2세. 고향은 오사카다. 지난 2002년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에 5순위로 입단했다. 실력이 괜찮았다. 입단 당시 제2의 이케야마 다카히로(통산 304홈런을 기록한 일본 강타자)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역시 2군에 주로 머물렀다. 기회가 올 때마다 조금씩 일이 꼬였다. 2004년엔 2군 경기 도중 다른 내야수와 충돌해 턱뼈가 부서지기도 했다. 실력은 크게 늘지 않았고 젊은 선수들은 치고 올라왔다. 2008년 방출됐다. “야구를 버릴 순 없었습니다.” 일본에서 새 팀을 찾았지만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그해 12월 한국으로 건너와 한화에 입단했다. 그러나 일이 안 풀렸다. 당시 한화 2군엔 젊은 내야수들이 넘쳤다. 1군은 고사하고 2군 경기에 나서기도 힘들었다. 한화 관계자는 “비슷비슷한 선수들이 많아서 되도록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줬다. 실력은 나쁘지 않았지만 운이 없었다.”고 했다. 시즌이 끝난 뒤 다시 방출됐다. 강병수는 일본에서 신생팀 트라이아웃 소식을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포기할 만도 한데 또 도전한 이유가 무얼까. “제주도에 할아버지가 계십니다. 그분께 제가 한국에서 야구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강병수 눈이 살짝 붉어졌다. 이날부터 3일 동안 열리는 엔씨소프트 1차 트라이아웃엔 54명이 모였다. 230명이 참가 신청을 했고 그 가운데 서류심사로 이만큼을 걸러냈다. 54인의 사연은 김동건-강병수처럼 각자 구구절절하다. 이 가운데 몇 명이 테스트를 통과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정해진 숫자는 없지만 소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창원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美판매 준중형차 품질·안전성 현대 아반떼 1위

    美판매 준중형차 품질·안전성 현대 아반떼 1위

    현대차 아반떼가 5개월여 만에 미국 준중형차 시장을 평정했다. 현대차는 아반떼가 마국 시장에서 품질과 안전성을 인정받으면서 각종 비교평가에서 도요타 코롤라, 혼다 시빅 등 유력 경쟁차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고 26일 밝혔다. 최근 모터트렌드가 발표한 ‘준중형차 비교평가’에서 아반떼가 준중형급 8개 차종 중 1위를 차지했다. 모터트렌드의 이번 평가는 미국 내 베스트셀링 준중형차로 자리잡은 총 8개 차종에 대해 가치, 연비, 성능, 스타일링, 주행 안전성, 주행 즐거움 등 6개 항목에 대해 평가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번 품질 평가에서 현대차 아반떼는 도요타 코롤라, 혼다 시빅, 포드 포커스 등 대표적인 베스트셀링 준중형 차종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또 아반떼는 미국 유력 자동차전문 매체인 에드먼드지 인사이드라인닷컴에서 발표한 소형차 비교 품질평가에서도 혼다 시빅과 쉐보레 크루즈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85세 독거 할아버지 ‘80억 복권당첨’ 횡재

    85세 독거 할아버지 ‘80억 복권당첨’ 횡재

    배우자도 자녀도 없이 홀로 사는 캐나다의 80대 독거 할아버지가 거액의 복권에 당첨됐다. 캐나다 에드먼튼에 사는 월터 아시니우크(85)는 지난 4월 2일(현지시간) 편의점에서 산 12달러(1만 3000원)짜리 복권이 당첨돼 710만 캐나다 달러(약 80억 원)를 거머쥐게 됐다. 이 사실을 알자마자 복권협회로 향한 할아버지는 여느 당첨자들처럼 전혀 들뜬 기색 없이 차분하게 돈을 찾았다. 서부 캐나다 복권협회의 직원 안드레아 마란츠는 “당첨 당일 이렇게 침착했던 사람은 없었다.”며 할아버지의 모습에 놀라워 하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정중하게 인터뷰를 거절한 뒤 “큰 돈을 따긴 했지만 남은 인생이 크게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원래 큰 계획을 세우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나중에 원하는 게 생기면 그 때 돈을 쓰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에드먼튼의 작은 주택에 홀로 사는 할아버지는 지금껏 쉬지 않고 일만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가까운 친척이지만 그나마도 5년 전 연락이 끊겼다는 조카 에밀리 아세니우크는 “삼촌은 결혼도 하지 않고 묵묵히 일만 하는 스타일”이라면서 “이제와서 연락은 못하겠지만 멀리서나마 삼촌의 당첨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82세 전 네팔 외무부장관 에베레스트 오르다 숨져

    노인의 과욕이었을까, 비범한 용기였을까. 82세의 전 네팔 외무부 장관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산을 오른 최고령 기록을 깨기 위해 산을 올랐다 사망했다고 AFP통신이 10일 밝혔다. 네팔 외무부 장관과 유엔 상임대표 등을 지낸 샤일렌드라 쿠마 우파디야야는 9일 오후 에베레스트산 베이스캠프에 도착하고 나서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갑작스럽게 숨을 거뒀다. 네팔 정부 대변인 틸락 판디는 “전 네팔 정부 관료가 에베레스트산을 오르려다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사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우파디야야는 평소 “에베레스트산에 올라감으로써 노인들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싶다.”고 말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우파디야야가 등반에 성공했다면 최고령 기록을 경신할 수 있었다. 현재 기록 보유자는 2008년 5월 25일 76세로 에베레스트산을 오른 네팔인 민 바하두르 세르찬이다. 8848m인 에베레스트산은 1953년 뉴질랜드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와 네팔인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가 처음 오른 이래 3000여 명이 정복했다. 수백 명이 에베레스트산에 오르다 목숨을 잃었다. 5월은 에베레스트산을 오르는 데 최적의 날씨라 많은 사람이 등반에 도전하는 때이다. 올해 들어 단 6명만 에베레스트산 완등에 성공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기고] 선(善)의 침묵./지상욱 자유선진당 전 대변인

    [기고] 선(善)의 침묵./지상욱 자유선진당 전 대변인

    서민과 중산층의 생활고가 무겁다. 불어나는 가계 빚더미 앞에 과거는 죽어가고 미래는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고 있다. 중산층이 점점 더 무너져 가고 사회계층이 양극단으로 쏠렸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가난’ ‘빈곤’ ‘소외’ ‘포기’ ‘자살’이라는 말들이 일상적 사회용어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이런 양극화 해결이야말로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는 이 시대의 정신이고 화두다. 심각한 것은 이 상황이 개선될 기미도 없고, 개선할 의지도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탐욕에 눈이 먼 기득권층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게 된 지 오래다. 이기주의와 자기 보신에 사로잡힌 거대자본과 지식인, 그리고 고위공직자는 ‘내려놓음’과 ‘나눔’, ‘긍휼’의 정신을 상실했다. 있다 해도 면피용 생색내기요, 이름 알리기요, 전시적이어서 사랑과 감동이 없다. 올바른 문제해결과 상생의 방안을 제시해야 할 정치인은 자기 성찰의 노력이 없다. 공천과 대권, 지역구의 이익에만 매달려 있다. 정론을 이끌어야 할 언론도 자신의 성향과 구미에 맞는 것에 보도와 편집이 편향돼 보인다. 지금 시민들은 꿈틀거리는 그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 정체가 뭔지 아직은 잘 모를 수 있다. 거대자본과 권력에 줄을 서서 아부하는 지식인들은 우리 사회를 짓누르며 다가오는 그 무엇의 실체와 파괴력을 안다. 그 누구도 해결을 위해 선뜻 나서지 않는다. 하지만, 기득권층의 무능과 탐욕, 인내의 한계를 넘는 시민들의 불만, 그리고 용기 있는 선비들의 등장과 호소가 일치하는 순간 임계점을 넘어 그 무엇은 빅뱅을 일으키고 말 것이다. 이와 함께 시민들은 이 사회와 역사의 진정한 주인으로 소용돌이를 이끌어 갈 것이다. 과연 보수는 다가올 변혁의 시대를 맞아 눈부신 성공만을 추구하는 세력으로 생존할 수 있을까? 보수는 진보와 정면으로 싸우기에는 비겁하고 도망치기에는 너무 뚱뚱하지 않은가? 서민과 중산층에게 포식자(eater)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통합하고 나누는 온전한 미래의 창조자(maker)로 거듭날지를 결단해야 한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실종된 정의, 감금된 자유, 그리고 껍데기 평화가 우리 사회에 나뒹굴도록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때를 아끼며 온전한 미래를 위해 맞설 용기를 가져야 한다. 말만 앞세우기보다는 자기부정과 무욕의 결단을 내리는 도덕적 엘리트가 공론과 실천의 최전선으로 나와야 한다. 감세정책으로 회사 청소부들의 과세율이 자신보다 높아짐을 수치스러워한 워런 버핏과 같은 기업가가 감동을 전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무엇보다도 가족, 공동체, 종교와 같은 전통적 지혜에 의존하여 정의와 자유를 고취시킨 에드먼드 버크와 같은 지혜와 덕의 신중함이 새롭게 싹터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한 갈망을 우리는 직시하고 역사를 밀고 갈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것을 게을리한다면 역사는 오늘을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이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었다.”라고. 마틴 루서 킹의 이 말이 오싹하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 MLB 강타자 에드먼즈, 빅리그 17년 만에 은퇴

     미국 프로야구에서 8차례나 외야수 골든글러브를 받았던 강타자 짐 에드먼즈(41·세인트루이스)가 은퇴를 선언했다.  에드먼즈는 19일 구단을 통해 발표한 자료에서 “내가 뛸 수 있고 팀에 공헌할 수 있더라도 영원한 부상을 안고 있어야 할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면서 “아쉽지만 이게 최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오른쪽 아킬레스건 부상 여파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지난 해 신시내티 레즈에서 뛰고 나서 재계약에 실패해 2주 전 세인트루이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했었다.  지난 1993년 에인절스 유니폼을 입고 빅리그에 데뷔한 그는 17년 동안 활약하며 통산 홈런 393개 등 타율 0.284,1199타점을 올렸다.  그는 8차례나 외야수 황금장갑을 끼었고 4차례 올스타로 선발됐다. 2006년에는 시즌 19홈런 등 타율 0.257,70타점을 기록하며 세인트루이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큰 역할을 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영화리뷰] ‘나니아 연대기:새벽 출정호의 항해’

    [영화리뷰] ‘나니아 연대기:새벽 출정호의 항해’

    ‘나니아 연대기’는 7권으로 구성된 C S 루이스의 판타지 아동문학 시리즈다. 1950년 출판된 이래 41개 언어로 번역, 세계적으로 9500만부가 팔렸다. 어슐러 르 귄의 ‘어스시 시리즈’, 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더불어 세계 3대 판타지 소설로 꼽힌다. 시리즈는 라디오극과 연극 등으로 각색됐고, 2005년에는 영화로 만들어져 주목을 받았다. 8일 개봉하는 ‘나니아 연대기:새벽 출정호의 항해’는 2008년 2편에 이은 시리즈 3편째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영국. 남매인 루시(조지 헨리)와 에드먼드(스캔다 케이니스)는 독일의 공습을 피해 사촌 유스터스(윌 폴터)의 집에 머문다. 이들 3명은 집에 걸려 있는 그림을 보다가 그림 속에서 쏟아져 나온 물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그러기를 얼마간. 물 위로 고개를 내민 이들은 자신들을 구해주기 위해 온 나니아 세계의 캐스피언왕(벤 반스)을 보고 반가운 미소를 짓는다. 이들은 왕이 된 캐스피언이 나니아 세계를 구하기 위해 사라진 영주들을 찾으러 나섰다는 말을 듣고 그의 여정에 동참한다. 영화는 원작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유혹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너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메시지도 변함이 없다. 다만 원작은 캐스피언왕이 7명의 영주를 찾아 위기를 극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영화는 7개의 검을 찾는다는 설정을 보탰다. 또 스토리 라인의 중심이 캐스피언왕보다 어린 루시와 에드먼드에 가 있어 더 동화적이기도 하다. 영화의 장점은 역시 판타지 영화답게 눈이 즐겁다는 거다. 외다리 난쟁이들, 연기 괴물, 바다뱀, 파도가 갈라지는 장면 등은 역시 대작답다. 순제작비만 2억 달러(약 2300억원)가 넘게 들었다. 다만 평이하게 흘러가는 스토리 라인은 한계다. 긴장감이 다소 부족하다. 영웅을 도드라지게 만드는 진지함이나 극적인 요소가 결여돼 있다 보니 112분의 러닝타임이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의 캐릭터도 밋밋하다. 유스터스가 다소 돋보일 뿐 다른 인물들은 과도할 정도로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정직한 모습을 보인다. 이런 아쉬움은 2000년대 초반 영화계를 후끈 달궜던 대작 판타지 ‘반지의 제왕’을 상기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선과 악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골룸과 원숙한 카리스마로 영화를 이끄는 간달프, 신비로움으로 몽환적 느낌을 자아냈던 레골라스나 아르웬 같은 개성 강한 캐릭터를 나니아 연대기에서는 찾기 어렵다. 또 사상 최강이라고 자랑하는 액션에 비해 3차원(3D) 영상 수준도 아쉽다. 입체감이 도드라지지 않는다. 영화는 애초부터 3D를 염두에 두고 찍었다지만, 2D로 촬영된 영상을 3D로 컨버팅(전환)한 것처럼 보일 정도로 심도가 깊지 않아 다소 생동감이 떨어진다. 시리즈의 전편을 보지 않아도 영화를 보는 데 무리는 없다. 연말 아이들과 함께 즐기면 좋겠다. 전체 관람가.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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