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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콩 산악인 창인훙, 에베레스트를 26시간도 안돼 등정하다

    홍콩 산악인 창인훙, 에베레스트를 26시간도 안돼 등정하다

    홍콩 여성 산악인이 에베레스트(해발 고도 8848.86m) 베이스캠프부터 정상까지 26시간도 안돼 도달해 세계 여성 최단 등정 기록을 경신했다. 보통 여러 캠프에서 잠을 자며 며칠을 오르는데 하루가 조금 넘는 시간에 해발 고도 5600m의 네팔 쪽 베이스캠프에서 정상까지 다다른 것이다. 창인훙(45)이 화제의 주인공. 그녀는 지난 22일(이하 현지시간) 오후 3시 20분 베이스캠프를 떠나 다음날 오후 1시 10분에 정상을 밟았다고 네팔 정부 관리 캬넨드라 슈레스타가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이 28일 전했다. 슈레스타는 베이스캠프에서 관문 격인 루클라 방향으로 하산하며 뒤늦게 소식을 전한 것으로 보인다. 종전 기록은 네팔 여성 푼조 장무 라마가 2017년 작성한 39시간 6분이었다. 슈레스타는 다만 창인훙이 세계 기록 인증서를 받으려면 기네스 월드레코드의 기록 관리자에게 따로 신청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네팔 당국은 별도 기록 인증서는 발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창인훙은 2017년 5월에는 홍콩 여성으로 처음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기도 했다. 남자 최단 기록은 어떨까? 네팔 세르파 펨바 도르지(26)가 지난 2004년 6월 20일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8시간 10분 만에 끝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하지만 이 기록이 지금도 유효한지 모르겠다. 지난 1953년 5월 29일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셰르파인 고(故) 텐징 노르게이와 함께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정복할 때 걸린 시간은 7주 이상이었다. 미국인 최고령 등정 기록도 고쳐 쓰게 됐다. 아서 무어(75)가 창인훙과 같은 날 정상을 발 아래 둬 2009년 빌 버크가 67세에 등정한 기록을 고쳐 쓰게 됐다. 매디슨 등반회사가 그의 등정을 도왔는데 개릿 매디슨은 무어의 쾌거를 베이스캠프에서 알렸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네팔 당국은 올해 408건의 에베레스트 등반 허가를 내줬으며 이 가운데 350명이 정상에 올랐다. 당국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지난해 3월 하순 입산 금지령을 내렸다가 같은 해 9월부터 에베레스트 등에 대한 등반 허가를 내주고 있다. 하지만 최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도 확진자가 속출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지난달 말 수도 카트만두로 이송된 노르웨이 등반가 엘렌드 네스가 확진 판정을 받은 후 약 100명의 감염자가 더 발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난 스마트폰, 넌 책” 아이 문해력만 떨어뜨린다 [달콤한 사이언스]

    “난 스마트폰, 넌 책” 아이 문해력만 떨어뜨린다 [달콤한 사이언스]

    최근 들어 ‘문해력’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문해력이 아이들의 학업성취도는 물론 성인들의 사회생활에도 지대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문해력은 글을 읽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으로 글자를 읽을 수 있는 능력과는 별개이다. 학생들이 학교 수업을 어려워하는 이유나 열심히 사교육을 받아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이유는 바로 문해력이 낮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들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가운데 아이들의 문해력 수준은 집안 분위기가 좌우한다는 재미있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캐나다 앨버타대, 중국 홍콩중문대, 호주 맥쿼리대 공동연구팀은 다양한 언어사용집단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집안의 분위기, 특히 언어사용 환경이 아이들의 문해력과 언어사용 능력을 좌우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연구결과는 심리학 분야 국제학술지 ‘아동 발달’ 5월 28일자에 실렸다. 최근 독서와 문해력, 학업성취도의 연관성을 조사한 연구들은 많이 나오고 있지만 아이들의 문해력 발달에 부모들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았다. 이에 연구팀은 독서습관과 가정환경, 아이들의 문해력 상관관계를 분석하기 위해 캐나다 에드먼턴에 있는 공립학교 6곳에 재학 중인 1학년 아이들 172명을 무작위로 선정했다. 연구팀은 아이들과 부모들의 독서에 대한 관심도, 가정 환경을 조사하는 한편 1학년 초, 2학년 말, 3학년 말에 아이들의 문해력을 측정했다. 조사에는 아이들이 공통으로 집에서 책을 얼마나 자주 읽는지, 책은 구하기 쉬운지, 책을 구입하는 정도, 주말에 독서를 하는 시간, 도서관이나 서점 방문 빈도, 읽는 책의 종류를 조사했고 문해력은 어휘능력, 읽기 정확성, 짧은 구절을 읽고 빈칸채우기 등으로 측정했다. 부모들을 대상으로는 아이와 책을 함께 읽거나 읽어주는지, 부모의 독서시간과 빈도, 집에 전자책이 아닌 인쇄본 책의 보유권수, 독서에 대한 부모의 관심 등을 조사했다. 연구팀은 독서에 대한 가정환경과 문해력을 각각 1등급, 2등급, 3등급으로 분류해 상관관계를 분석했다.그 결과, 앞선 연구들과 마찬가지로 독서 자원에 대한 접근과 할애시간이 문해력과 학업성적을 예측할 수 있는 변수라는 것이 재확인됐다. 이와 함께 가정에서 독서분위기와 언어사용환경이 아이들의 언어능력과 문해력에 정비례 관계라는 점도 확인됐다. 1학년이 시작될 때 부모-자녀의 독서활동과 관심이 2학년과 3학년 때까지 변하지 않고 이어진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독서에 대한 가정환경이 1등급이면 아이들의 문해력 점수도 1등급을 벗어나지 않았으며 독서에 적합하지 않은 3등급 가정환경에서는 문해력 점수 1등급을 받은 아동은 없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또 연구팀에 따르면 아이의 문해력은 가정에 보유하고 있는 책의 권수는 상관관계가 크지 않지만 부모와 함께 하는 독서활동이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 스스로 독서를 하지 않고 아이들의 독서활동을 돕지 않는다면 독서에 대한 관심은 물론 문해력도 향상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를 이끈 캐나다 앨버타대 심리학과 조지 조지우 교수(특수교육·독서연구)는 “이번 연구는 가정 환경이 아이의 문해력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아이의 독서습관은 가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라며 “자녀가 공부와 책읽기를 어려워하는 것은 1차적으로 부모가 독서활동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연구에 참여한 이노우에 도모히로 홍콩중문대 교수 역시 “아이들 스스로 책에 가까워지는 것은 쉽지 않은 만큼 가정에서 부모들이 더 노력을 하고 독서활동에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나만의 약혼 반지 만들겠다” 5년 헤매 다이아몬드 찾아낸 미 26세 청년

    “나만의 약혼 반지 만들겠다” 5년 헤매 다이아몬드 찾아낸 미 26세 청년

    나만의 약혼 반지에 들어갈 보석 원석을 찾아 헤맨 미국 청년의 5년 집념이 마침내 결실을 거뒀다. 워싱턴주 폴스보 출신인 크리스천 리덴(26)은 이미 반지를 만들기에 충분한 금을 갖고 있었다. 문제는 금들 사이에 자리할 세상 하나 밖에 없는 보석 원석을 찾는 일이었다. 해서 향한 곳이 고향에서 3700㎞ 떨어진 아칸소주 머프리즈버러에 있는 크레이터 오브 다이아몬드 주립공원이다. 1972년 이후 지금까지 이 공원에서 나온 다이아몬드 원석은 3만 3000개 이상이다. 특이하게도 이 공원은 보석 원석을 발견한 관광객들은 자신의 소유로 할 수 있다. 리덴과 친구는 채굴 장비를 설치하고 사흘을 투자한 끝에 귀한 원석을 찾아냈다고 렉싱턴 헤럴드리더가 26일(현지시간) 전했다. 그는 “반짝이는 것을 보자마자 다이아몬드란 것을 알아냈다. 미친 듯이 몸이 떨려왔다. 친구에게 삽에서 집어달라”고 했다고 발견 당시의 기쁨을 돌아봤다. 2.20 캐럿의 옐로 다이아몬드 원석이며 올해 이 공원에서 발견된 것 가운데 가장 큰 것이라고 공원 측은 밝혔다. 공원간부인 드루 에드먼즈는 삼각형 모양에다 “반짝반짝 광채”를 낸다며 안에 광물질이 많이 없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2.20 캐럿의 원석이면 120만원대 가격에 매입할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이 직접 발품을 팔아 찾아낸 다이아몬드 원석의 가치는 그 이상일 것이며 반지 주인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리덴은 원래 계획은 이보다 작은 원석들을 찾으려 했고 한가운데 들어갈 보석은 나중에 사려 했는데 계획을 크게 수정해야 하겠다고 털어놓았다. 에드먼즈는 보도자료를 통해 “다이아몬드 자체도 아름답지만 그 뒷얘기가 가장 좋은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8학년 때부터 리덴은 장래의 아내를 위해 본인이 직접 돌들과 금을 채굴해 특별한 반지를 만들겠다는 꿈을 간직했다고 한다. 이제 그의 꿈이 이뤄지게 됐다”고 함께 기쁨을 나눴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버핏 후계자는 ‘빈틈없는 거래 해결사’ 아벨

    버핏 후계자는 ‘빈틈없는 거래 해결사’ 아벨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왼쪽)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자신의 후계자로 그레그 아벨(오른쪽·59) 부회장을 낙점했다. 버핏 회장이 구순인 터라 이 회사의 후계구도는 오랫동안 세간의 관심을 끌어 왔다. 미 경제매체 CNBC에 따르면 버핏 회장은 3일(현지시간) 인터뷰에서 “만약 오늘 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내일 아침 아벨이 내 업무를 인수할 것이라는 데 이사들이 동의했다”며 아벨 부회장의 승계를 사실상 공식화했다. 찰리 멍거 부회장은 앞서 1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회사가 너무 복잡해서 경영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질문에 “아벨이 버크셔해서웨이의 문화를 지킬 것”이라며 아벨이 최고경영자직을 승계할 것임을 시사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버핏 회장의 후계자로 아벨이 지명된 데 대해 “빈틈없는 거래 해결사”라고 평가했다. 2018년 부회장직에 오른 아벨은 현재 25만명을 고용하고 1500억 달러(약 168조 3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책임지는 버크셔해서웨이의 비보험 부문 자산운용을 총괄하고 있다. 아벨 부회장은 그룹의 철도와 유틸리티(수도·전기·가스), 제조업, 소매업, 자동차 판매업 등을 이끌고 있다. 버크셔해서웨이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아벨은 2020년 기본급(1600만 달러)과 보너스를 합쳐 1900만 달러를 연봉으로 받았다. 1962년 캐나다 앨버타주 에드먼턴에서 태어난 아벨은 하키를 즐기며 평범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캐나다 앨버타대에서 무역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서 회계사로 일하다 칼 에너지로 직장을 옮겼다. 이후 미드아메리칸으로 이름을 바꾼 이 회사가 1999년 버크셔해서웨이에 인수되면서 버핏과 인연을 맺었다. 아벨 부회장은 보험 부문 자산운용 총괄인 아지트 자인(69) 부회장과 줄곧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해 왔다. 버핏 회장은 “만약 아벨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다음은 자인이 오를 것”이라며 다음 순위로 자인 부회장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내비쳤다. 한편 버핏 회장의 아들인 하워드 버핏은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직을 이어받을 전망이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KK 김광현 제대로 긁혔다 시즌 첫 승리·첫 안타·최다 삼진

    KK 김광현 제대로 긁혔다 시즌 첫 승리·첫 안타·최다 삼진

    ‘KK’ 김광현(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 이번 시즌 첫 승을 따내며 최고의 하루를 보냈다. 김광현은 24일(한국시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부시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신시내티 레즈와의 홈경기에 선발등판해 5와3분의2이닝 5피안타(1피홈런) 8탈삼진 무사사구 1실점으로 호투했다. 팀이 5-4로 승리하면서 김광현은 첫 승을 따냈다. 세인트루이스도 2연패에서 탈출했다. 승리만 있던 게 아니다. 김광현이 세운 8탈삼진은 MLB 진출 후 최다 기록이다. 이전에는 지난해 9월 15일 밀워키 브루어스전에서 세운 6개가 최다였다. 이날 던진 85구 중 53구가 스트라이크였을 정도로 컨디션이 좋았다. 게다가 3회말 공격 때는 MLB 데뷔 첫 안타도 때려냈다. 신시내티는 지난해 김광현이 MLB에서 거둔 3승 중 2승을 따낸 팀이다. 첫 승리를 거둔 것도 신시내티전이었고 2승째도 신시내티가 상대였다. 김광현은 MLB에서 거둔 통산 4승 중 3승을 신시내티 상대로 거두며 천적관계를 과시했다. 허리 통증으로 팀 합류가 늦어졌고 지난 18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전에서 3이닝 3실점으로 아쉬운 모습을 보여 생겼던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 이날 최고 시속은 91.5마일(약 147㎞), 평균 시속은 89.3마일(약 144㎞)을 찍었다. 포심패스트볼 45구(53%), 슬라이더 27구(32%), 체인지업 8구(9%), 커브 5구(6%)를 고루 섞어 던졌다. 필라델피아전보다 훨씬 투구 내용이 좋았다. 2회초 2루타, 4회초 연속 안타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우속 타자들을 범타 처리하며 위기를 탈출하는 등 위기관리 능력도 돋보였다. 5회까지 무실점으로 막은 김광현은 6회초 닉 카스테야노스에게 솔로 홈런을 허용하고 무실점 행진을 멈췄다. 불의의 일격을 당했지만 흔들리지 않고 후속 타자를 처리한 뒤 2사에서 마운드를 내려왔다. 3회말에는 선두 타자로 나와 첫 안타도 때렸다. 1볼 2스트라이크에서 빗맞은 타구가 3루 쪽으로 굴렀고 3루수가 재빨리 1루에 송구했지만 김광현의 발이 빨라 내야안타가 됐다. 김광현은 토미 에드먼의 2루 땅볼로 아웃됐지만 세인트루이스 타선은 3회말에만 대거 4점을 추가하며 김광현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美 전 대통령들 왜 콘텐츠 제작자, 초상화가, 소설가로 파격 변신했나

    美 전 대통령들 왜 콘텐츠 제작자, 초상화가, 소설가로 파격 변신했나

    다른 나라 대통령과 총리는 퇴임하면 무엇을 하며 지낼까. 대부분 자기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해 활동하면서 회고록을 집필하고 강연을 하면서 지낸다. 하지만 50~60대 ‘젊은’ 전직 대통령이 늘어나고 이들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역할도 변화해 퇴임 후 활동도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부인 미셸 오바마는 영화와 TV 등의 콘텐츠 제작자로 직접 나서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이어 부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추리소설 작가로 데뷔를 앞두고 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아마추어 초상화가이자 작가로 활동한다. 글과 강연이라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영화와 TV 프로그램 제작, 팟캐스트 진행 등을 통해 사회 변화와 통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모든 좋은 예술은 정치적이라고 했던 작고한 미국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토니 모리슨의 말처럼 이들은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자신들이 지지하는 가치를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미셸 새달부터 아동 요리프로 넷플릭스 방영 8년 동안 대통령으로 재임하고도 퇴임할 때 50대 중반이었던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 은퇴하기에는 너무 젊은 부부가 어떤 길을 모색할지 관심이 집중됐다. 이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오바마 부부는 퇴임 1년 4개월 만인 2018년 5월 오바마재단 설립과는 별개로 영상 콘텐츠 제작사 ‘하이어 그라운드’를 세우고 글로벌 동영상스트리밍업체인 넷플릭스와 자체 제작한 콘텐츠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할리우드를 비롯해 문화예술계 인맥이 워낙 탄탄했지만 그래도 직접 제작사를 세운 것은 의외였다. 전직 대통령 부부로서는 가 보지 않은 길이었다. 오바마 부부는 다큐멘터리뿐 아니라 일반 영화와 TV용 어린이 프로그램도 제작했다. 첫 번째 작품은 미국에 진출한 중국 공장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미국 공장’으로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미국의 장애인 인권법 제정을 이끈 주디 휴먼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크립캠프: 장애는 없다’와 미셸 오바마의 자서전 `비커밍’의 북투어를 다룬 동명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를 제작, 방영했다. 지난 6일 소설가 모신 하미드의 작품 ‘서쪽으로’를 각색한 영화를 비롯해 SF영화 ‘인공위성’, 영국의 에드먼드 힐러리경과 함께 최초로 에베레스트산을 등반한 네팔인 셰르파 텐징 노르게이를 다룬 영화 ‘텐징’, 다큐멘터리 시리즈 ‘위대한 국립공원’ 등 6개 작품의 제작 계획도 발표했다. 3월 16일부터는 미셸이 인형들과 함께 출연해 세계의 음식과 요리법을 소개하는 아동 요리 프로그램 ‘와플과 모찌’도 넥플릭스를 통해 방영된다.오바마 부부는 이 외에도 2019년 6월 세계 최대 음원스트리밍서비스 스포티파이와도 팟캐스트 독점 제작 계획을 체결했다. 지난해 7월부터 미셸 오바마 팟캐스트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지난 22일 오바마 전 대통령이 록가수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팟캐스트 방송도 시작했다. 오바마 부부는 3년 전 하이어 그라운드 설립을 발표하면서 “스토리텔링은 우리에게 감명을 주고 세상을 다르게 보며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여는 힘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며칠 전 새 콘텐츠 제작 계획을 발표할 때도 “다양한 새로운 시각과 위대한 인물들의 스토리를 담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수준 높은 콘텐츠를 직접 제작해 혐오와 갈등이 아닌 사실과 감동적인 서사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클린턴 두 번째 소설 ‘대통령의 딸’ 6월쯤 발간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는 이례적으로 모두 추리소설가로 이름을 올린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먼저 2018년 베스트셀러 작가인 제임스 패터슨과 공동으로 추리소설 ‘대통령이 실종되다’를 발표했다. 전 국무장관인 힐러리 클린턴은 오는 10월 테러에 맞서는 국무장관 이야기를 다룬 추리소설 ‘스테이트 오브 테러’를 친구인 캐나다 추리소설 작가 루이즈 페니와 공동으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미 언론들이 지난 23일 전했다.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그동안 여러 권의 책을 냈지만 소설은 처음이다. 클린턴의 국무장관으로서의 경험과 거기에서 나온 상상력이 페니의 필력, 플롯과 버무려져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관심이 쏠린다. 한편 첫 번째 추리소설이 북미에서만 200만 부 이상 팔리며 베스트셀러 작가에 오른 클린턴 전 대통령은 오는 6월쯤 패터슨과 공동으로 전직 대통령의 딸이 납치되는 상황을 다룬 두 번째 소설 ‘대통령의 딸’을 발표할 예정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와 달리 클린턴 전 장관은 딸 첼시와 함께 지난해 12월 콘텐츠 제작사 ‘히든라이트’를 설립하고 애플TV플러스와 프로그램 제작 및 공급 계획을 체결했다. 클린턴 모녀는 2년 전 같이 펴낸 책 ‘용감한 여성들’을 애플TV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제작할 예정이다. 이들은 “그동안 관심 밖에 있었지만 세상을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들 것”이라고 말해 여성과 소수자들의 스토리를 다룬 다큐와 영화, TV 프로그램을 제작할 계획임을 밝혔다. 히든라이트에는 영국의 버진그룹 회장인 리처드 브랜슨의 아들이자 배우 겸 제작자인 샘 브랜슨이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퇴임후 아마추어 초상화가 겸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7년 직접 그린 퇴역군인들의 초상화와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미술책을 낸 데 이어 지난해 3월 이민자 43명의 초상화와 그들의 삶을 에세이로 쓴 두 번째 책 ‘많은 이민자 중 한 명, 미 이민자들의 초상화’를 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미국 사회에서 가장 민감하고도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인 이민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고 이민자들이 미국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관심을 갖길 바란다고 책 서문에 밝혔다. 부시 전 대통령은 텍사스주 댈러스에 있는 부시 대통령센터에서 초상화 전시회도 개최했다. 2019년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에 맞춰 방한했던 부시 전 대통령은 직접 그린 노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전달하기도 했다. 그는 재임 기간 만났던 세계 주요 지도자들의 초상화도 그리고 있다. 회고록 이외에 2014년에는 부친이자 제41대 대통령인 조지 H W 부시의 자서전을 직접 썼다. 초상화와 책을 통해 미국의 주요 이슈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단임에 그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4년 뒤 재출마 계획을 접지 않고 있다. 미 역사상 처음으로 탄핵을 두 번이나 당한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남겼지만 단단한 지지층을 기반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계속 키워 나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28일 보수정치행동회의 행사 연설 예정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오는 28일 플로리다주에서 열리는 미국 보수진영의 연례행사인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 참석해 연설할 예정이다. 트럼프가 이 자리에서 자신이 ‘사실상 공화당 2024년 대선 후보’라고 선언하고 정말 다시 출마할지는 알 수 없지만, 내년 중간선거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들을 대거 의회에 보내는 식으로 공화당 내 영향력을 유지해 나가려 할 것으로 미 정치전문가들은 본다. 트위터 계정이 영구정지돼 지지층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지만, 손을 놓고만 있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직접 소통의 중요성과 영향력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 폭스뉴스에 배신감을 느꼈던 트럼프가 퇴임 후 직접 언론 매체를 인수해 운영할 가능성이 한때 제기됐던 이유다. 콘텐츠와 이를 확산하는 채널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고, 직접 TV 리얼리티쇼를 진행했던 경험이 있는 트럼프가 오바마나 클린턴처럼 콘텐츠 제작 쪽에도 관심을 가질지 주목된다. 콘텐츠 제작자로 변신한 미국 전직 대통령과 부인의 사례는 퇴임을 앞둔 다른 나라 정상들에게도 선례가 될 수 있다. 오는 9월 17년 만에 물러나는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 대기자 kmkim@seoul.co.kr
  • 네팔 “에베레스트 등정 거짓말 인도인 셋 우리 산 오르지 마”

    네팔 “에베레스트 등정 거짓말 인도인 셋 우리 산 오르지 마”

    인도 출신 산악인 나렌드라 싱 야다브와 시마 라니 고스마니는 2016년 5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86m) 등정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야다브가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촬영했다고 주장한 사진들인데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정상에 오른 이들의 방한복이 얼음이나 더러운 자국으로 얼룩져야 하는데 그의 옷은 너무도 멀쩡했다. 인도 국기는 왼쪽으로 날리는데 뒤쪽의 네팔 국기는 오른쪽으로 날리고 있다. 뒤쪽 산악인의 신발 그림자는 오른쪽으로 드리우는데 야다브의 몸이 드리운 그림자는 왼쪽으로 드리워 있다. 넷째 그가 입은 다운 자켓으로는 에베레스트 정상의 추위를 견뎌낼 수 없으며 헬멧을 쓴 것도 이상하다. 다섯째 산소마스크와 통을 연결하는 선이 보이지 않는다. 인도의 한 산악인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와이파이 산소호흡기가 나온 건가‘라고 비아냥댔다. 마지막 여섯 번째로 고글을 썼는데 앞쪽의 어떤 장면도 반사되지 않는다. 같은 장소에서 촬영했다는 왼쪽 사진의 하늘 색이 완전히 다른 점도 의아했다. 지난해 8월 야다브가 에드먼드 힐러리 경의 에베레스트 초등 때 경보다 먼저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은 셰르파를 기리는 텐징 노르가이 모험상을 인도 대통령으로부터 수상하자 다른 누가 아닌 인도 산악인들이 이의를 제기했다. 텐징 노르가이의 아들도 아버지 명예를 더럽혔다며 강력 반발했다. 이에 따라 네팔 관광부가 조사에 착수, 11일 마침내 이들이 정상에 이르지 못했다는 결론과 함께 거짓말을 한 두 사람과 탐사대 대장 등 셋의 네팔 산 입산을 6년 동안 금지시켰다. 관광부 대변인은 “이들은 사진을 비롯해 정상에 올랐다는 어떤 증거도 내놓지 못했다. 이들은 결코 정상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등반 금지 시점을 2016년 5월로 소급해 실질적 징계 기간은 일년 남짓 밖에 되지 않는다. 네팔 관광부는 두 사람의 이름을 에베레스트 등정 인증 산악인 명단에서 삭제하고, 이들의 등정을 도운 여행업체 세븐 서밋 트렉스(Seven Summit Treks)와 셰르파에 각각 5만 네팔루피(약 47만원)와 1만 네팔루피(약 9만 5000원)의 벌금을 물렸다. 네팔에서 산의 꼭대기에 올랐다는 등정 인증을 받으려면 정상에서 찍은 사진, 베이스캠프에 있는 팀장과 정부 연락담당관이 ‘등정 성공’을 당국에 보고하면 된다. 이런 허술한 검증 때문에 등정을 조작하는 일이 적잖이 벌어진다.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하면 저술이나 자기계발 강사로 나설 수 있어 정상을 밟았다고 거짓 주장을 늘어놓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세 사람이 네팔 정부의 결정에 어떤 반응을 내놓았는지는 전해지지 않았다. 세븐 서밋 트렉스의 밍마 셰르파는 “정부는 옳은 결정을 했고 다른 이들에 경고가 됐다. 그때로 돌아가면 모두가 그들이 정상에 당도했다고 말해 우리는 그렇게 보고한 것이다. 하지만 산악계는 신뢰에 터잡으며 우리는 그것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네팔 관광부는 2016년 8월 에베레스트 등정 사진을 조작한 인도인 경찰관 부부 디네시 라토드와 타라케슈와리 라토드의 인증을 취소하고 10년 동안 등반을 목적으로 네팔에 입국할 수 없도록 했다. 이 부부는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인도 국기를 든 사진을 공개해 등정 인증을 받았지만, 비슷한 시기 산에 오른 산악인들이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서 이들 부부를 보지 못했다고 의심했다. 네팔 관광부는 다른 산악인이 정상에서 찍은 사진에 부부가 자신들의 모습을 합성한 것으로 봤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정상 10m 앞두고 네팔 국가 함께 불러” 겨울철 K2 초등 순간

    “정상 10m 앞두고 네팔 국가 함께 불러” 겨울철 K2 초등 순간

    “우리는 정상을 10m 앞두고 모두 멈춰서 우리 국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함께 정상에 발을 디뎠습니다.” 네팔인 10명으로 구성된 등반팀이 처음으로 겨울철 히말라야 K2(해발 고도 8611m) 등정에 성공해 등반 역사를 새로 쓴 순간의 감격을 영국군 구르카 용병 출신인 니르말 푸르자는 이렇게 돌아봤다. 지난 16일 오후 5시(현지시간) 등정에 성공한 이들은 각기 다른 네 팀의 일원으로 정상 도전에 나섰는데 8000m 이상의 고봉 14좌 가운데 누구도 겨울에 오르지 못했던 마지막 봉우리인 K2를 서구인들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양보하지 않겠다며 한 팀으로 뭉쳤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86m)를 비롯해 14좌 초등의 영광은 늘 서구 등반가들의 차지였다. 선등해 루트를 개척하고 장비를 심고 로프를 까는 궂은 일은 티베트 출신 산악 부족인 셰르파들의 몫이었지만 그들은 철저히 가려졌다. 에베레스트를 초등한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세계 언론의 각광을 받았지만 그보다 앞서 세계 최고봉에 올랐던 텐징 노르가이의 이름이 알려지고 진가가 드러나는 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해서 이날 겨울철 K2 초등에 성공한 네팔 등반대원 10명의 이름은 귀하디 귀하다. 니르말 님스 푸르자, 다와 텐지 셰르파, 밍마 G 다와 템바 셰르파, 펨 치리 셰르파, 밍마 데이비드 셰르파, 밍마 텐지 셰르파, 님스다이 푸르자, 겔제 셰르파, 소나 셰르파 등 아홉 사람의 이름만 전해지고 있다. 나중에 한 이름이 확인되면 추가하겠다. 파키스탄 북부의 중국 국경 지대 카라코람 산군에 자리잡은 K2는 에베레스트에 이어 세상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야만의 산’(savage mountain)으로 불릴 정도로 등정 난도가 높은 봉우리로 꼽힌다. 이 별칭은 1953년 정상 등정에 실패한 미국 산악인이자 인간 유전체 게놈 분석 프로젝트로 노벨상까지 수상한 조지 벨이 남긴 말이었다. 산악인 사이에서는 에베레스트보다 더 등정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8년 8월에는 11명의 산악인이 K2 등정에 나섰다가 눈사태에 목숨을 잃기도 했다. 특히 겨울철 K2는 ‘난공불락’이었다. 정상 부근의 풍속은 시속 200㎞ 이상까지 올라가고 기온은 영하 60도까지 내려가는 등 최악의 상황이 연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블루 아이스’가 산위에서 등반가를 향해 떨어져 치명적인 부상을 입힐 수 있다. 네팔 등반대를 제외하고는 겨울철 K2 등정에서 7650m 이상 오른 사례도 없었다. 네팔 등반대도 지난 11일 정상 공략을 시도하려 했으나 눈폭풍 등 기상 악화로 인해 계획을 수정했다. 카트만두 포스트는 “당시 해발 6760m 지점에 있던 등반대의 캠프2가 강풍에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며 “텐트가 바람에 완전히 찢겨 나갔고 장비마저 분실됐다”고 보도했다. 에베레스트를 24차례나 등정해 세계 최고 기록을 갖고 있는 카미 리타는 AFP 통신에 “수십년 동안 네팔인들은 외국인들이 히말라야 정상에 닿는 일을 도왔지만 우리가 응당 받아야 할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털어놓은 뒤 “오늘 10명의 네팔인들이 K2에서 역사를 새로 쓰고 우리의 용기와 힘을 제대로 보여준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반겼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알피니즘 등정의 멘토이자 영혼의 등반가 더그 스콧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알피니즘 등정의 멘토이자 영혼의 등반가 더그 스콧

    크리스 보닝턴(86)과 함께 영국 산악계를 대표하는 레전드 더그 스콧이 7일(현지시간)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영국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암과 싸워왔는데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칼드벡에 있는 자택에서 이날 아침 편안히 영면했다. 고인은 영국 산악인으로는 처음 에베레스트 정상을 발 아래 뒀고 알파인 스타일로 정상 정복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루트를 찾아 올라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티베트 불교에 심취해 네팔인들을 도운 자선활동으로 더 유명하다. 1975년 스코틀랜드인 친구 두갈 해스턴과 함께 보닝턴 경이 이끄는 등반대에 합류, 어려운 루트로 평가되던 남서 사면을 통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동 튼 직후 마지막 캠프를 떠났지만 해스턴의 산소통이 얼어붙고 가슴까지 눈이 차올라 정상 도전에 어려움을 겪었다. 정상 바로 아래 남쪽 사면 꼭대기에 올라 눈송이를 녹여 목을 축이고 나니 이미 오후 3시 30분이었다. 해스턴은 그곳에서 밤을 보내자고 했지만 그는 올라가자고 밀어붙여 정상에 서니 오후 6시였다. 스콧은 너무 감격해 경관을 담느라 시간을 지체했다. 헤드램프를 켰는데 고장이었다. 너무 캄캄해 하산할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등반하는 데 걸리적 거린다고 다운 상의를 벗어두고 온 상태였다. 밤새 둘은 저체온증과 호흡 곤란에 시달렸지만 동상도 걸리지 않고 동이 틀 때 하산을 다시 시작했다. 그의 체력이나 정신력은 대단했다. 에베레스트에서 죽음의 공포를 이겨낸 지 2년 만에 이번에는 보닝턴 경과 함께 파키스탄 카라코람의 오그레 봉 등정에 나섰다. 등정 후 내려오다 실족, 눈구덩이에 처박혀 두 다리가 모두 부러졌다. 7200m 지점이라 구조대를 기다릴 수도 없었다. 그는 기어서 베이스캠프까지 내려왔다. 세계 등반사에 길이 남을 극적인 생환 스토리였다. 1941년 5월 29일 노팅검에서 경찰관이자 아마추어 영국 헤비급 챔피언 복서 출신의 아버지 조지와 어머니 조이스 슬하로 태어났다. 우연의 일치치곤 놀랍게 열세 번째 생일 날 에드먼드 힐러리 경과 텐징 노르가이가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았다. 그 또래의 영국 등반가들이 그해 힐러리 경의 모험을 담은 다큐를 보고 에베레스트 등정의 꿈을 새긴 반면, 그는 워낙 말썽쟁이 장난꾼이어서 학교를 지겹게만 여겼기 때문에 힐러리의 쾌거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 낙제했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탄광 광원이 되는 길 밖에 없어 보였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 보충수업을 듣고 책 읽는 데 재미를 들여 문법을 가르치는 학교를 마치고 교사 양성 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부활절 스카우트 캠프에 갔다가 등반의 매력에 빠졌다. 자전거로 32㎞를 달려가 바위에 달라붙곤 했다. 엄마의 빨랫줄로 로프를 대신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몸집도 좋고 체력도 대단해 딱이었다. 스무살에 잔 브룩과 결혼해 교편과 등산, 럭비 등을 즐겼다. 친구들과 1963년 차드의 티베스티 산을 올랐고, 2년 뒤 아프가니스탄의 힌두쿠시 산맥을 트럭 타고 돌아다녔다. 그러자 보조 등반인으로 명성이 쌓였고, 돌로미티나 노르웨이 등에서 암벼 등반 실력을 발휘했다.미국 요세미티에도 도전, 미국의 등반 스타 로얄 로빈스와 함께 엘 카피탄을 올라 유럽인 최초의 기록을 썼다. 이때 채워지지 않는 험난한 일에의 도전 정신이 고개를 들어 히말라야를 떠올렸다. 1972년 살퍼드 등반가 돈 윌리엄스가 에베레스트 남서 사면에 도전하는 국제 등반대 합류를 제안해 교직을 그만 두고 참가했지만 등정에 실패했다. 이듬해 보닝턴 경이 가을에 인도 히말라야의 창가방을 오르자고 제안한 것을 받아들인 뒤 에베레스트와 오그레 등정으로 연을 이어갔다. K2에서 동료 닉 에스트코트를 눈사태로 잃는 슬픔을 겪었지만 그는 세계 3위봉 캉첸중가를 오를 때 산소통 없이, 팀원은 넷으로만 꾸리는 알파인 스타일의 전형을 추구했다. 학교 다닐 때 접한 불교 사상에 어느 정도 심취해 있었고, 11세기 티베트인의 위대한 스승 밀라레파의 가르침을 히말라야 등반 때 접했기 때문이었다. 신비 철학자 조지 구르지에프의 영향도 받았다. 여러 차례 강렬한 유체이탈의 경험을 한 뒤라 자신을 구도자로 여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중년이 돼 등반이 어려워지자 짐을 적게, 인원도 적게 꾸려 고산 등반에 나서야 한다고 후배들을 고무시키는 멘토가 됐다. 보닝턴 경이 그를 ‘추장님’이라 부른 이유였다. 알파인 클럽을 발족시켜 회장에 오르고 영적, 윤리적 등반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1989년 커뮤니티 액션 네팔(CAN)이란 자선단체를 만들어 처음에는 관광과 등반을 돕는 이들의 근로 여건을 개선하는 일을 하다 나중에는 지역사회를 돕는 프로젝트에 대규모 모금을 동원했다. 말년에 암으로 힘든 여건에서도 CAN 모금에 앞장섰다. 첫 부인 잔과의 사이에 세 자녀, 두 번째 네팔인 부인과의 사이에 두 아들을 뒀고 세 번째 부인 트리시가 유족으로 남았다. 조금 길지만 니콜라스 오코넬이 생전의 스콧과 나눈 인터뷰 가운데 가장 핵심만 소개한다. 월간 ‘산’에 실린 내용인데 조금만 가다듬었다. Q. 당신은 오늘날의 등반 방향에 관해 실망하고 있는가? A. 나는 등반에 관해 경험보다 이론 학습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그 위험한 효과에 대해 걱정이 된다. 인공 암장의 보급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수많은 등반잡지가 간행되어, 등반에 관한 정보가 빠른 속도로 일반에게 전달된다. 유능한 클라이머가 이룩한 뛰어난 등반 업적을 누구나 오랜 경험 없이도 잠재적으로 성취할 수 있다는 그릇된 믿음이 생겨나고, 그리하여 정신적으로 등반의 장애물을 우습게 생각하는 경향이 생긴다. 그래서 등반에 관한 태도에 변화가 발생한다. 오늘날 등반 실력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8000m급 봉우리를 고속 등반으로 등정하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오늘날 고산에서 추락이나 악천후에 갇혀 사망하는 경우보다, 빠른 기간 내에 성급하게 등정하려고 지칠 때까지, 죽을 둥 살 둥 등반에만 몰두하다가 탈진으로 사망하거나, 폐수종이나 뇌수종 같은 고산병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정상 등정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분별없는 야망의 노예가 되어, 무턱대고 빠른 속도로 덤비기만 하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흔하다. 수년 전 멕시코의 한 산악인이 마칼루의 정상을 밟고, 정신착란을 일으켜 정상 부근의 눈밭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두 명의 폴란드 산악인들이 그 광경을 목격했지만, 그 산악인이 혼자의 힘으로 생존하기를 바라며 산행을 계속했다. 유산소로 등정한 스페인 산악인이 사경을 헤매는 그 멕시코 산악인을 구조했다. 그런데 마칼루를 등정한 두 명의 폴란드 산악인들 중에 한 사람만 생환했다. 생환한 폴란드 산악인은 자신의 파트너의 행방을 모른다고 답변했다. 그가 귀국한 후 가족들, 친척들에게 자신의 파트너의 행방을 모른다고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 그 점이 의문이다. 수년 전 스위스 산악인 마르셀 루에디가 8000m급 14좌의 완등자가 되기 위해 마칼루를 등정하려고 했다. 그는 이 봉우리를 포함해 2개봉만 등정하면 그의 목표가 성취될 입장이었다. 그는 헬기에 편승해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그는 취리히를 출발한 지 일주일도 채 안 되어 마칼루의 정상을 밟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하산 중에 고산병으로 사망했다. 그는 멋진 친구였는데, 등정에 너무 미쳐 날뛰다가 그 지경을 당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전반은 남성, 후반은 여성으로 살다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전반은 남성, 후반은 여성으로 살다

    트랜스젠더 인권운동을 선도한 영국 기자 겸 여행작가 잔 모리스가 지난 20일(현지시간)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대영제국에 관한 기념비적 3부작 ‘팍스 브리태니카’를 내놓은 것을 비롯해 40권 이상의 책을 펴낸 모리스가 웨일스에서 눈을 감았다고 아들 트윔의 성명을 인용해 BBC가전했다. 병사이며 소설가 등의 다채로운 삶을 살었던 그녀는 남성으로 인생 전반을, 여성으로 인생 후반을 산 것으로도 유명하다. 모리스는 40대이던 1972년 성전환 수술을 받고 여자가 되면서 이름을 잔으로 바꿨다. 트윔은 “오늘 아침 11시 40분에 를린(Llyn)의 이스비티 브린 베릴(Ysbyty Bryn Beryl)에서 작가 겸 여행가인 잔 모리스가 가장 위대한 여정에 올랐다. 그녀는 기슭에 평생의 파트너 엘리자베스를 남겨뒀다”고 밝혔다. 엘리자베스는 성 전환 전 그의 아내였는데 다섯 자녀를 낳은 뒤 성 전환 뒤 동성 결합(civil partnership) 형태로 혼인 관계를 계속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자녀 중 한 명은 어릴적 사망했다. 고인은 2016년 동료 여행작가 마이클 팰린과의 인터뷰를 통해 “난 내 인생을 무척 즐겼다. 해서 존경스러울 정도다. 내 생각에 아주 좋고 재미있는 인생이었다. 그리고 난 이 모든 일을 아주 열심히 해냈다”면서 “내 서명을 크고 길게 가져가기 위해 모든 책을 썼다. 내 인생은 자족감으로 가득한 중심 진자 운동이었다”고 돌아봤다. ‘신유럽기행’을 쓰고 2018년 평양 르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던 팰린은 고인이 넌픽션 작가로도 활약하며 많은 이들의 마음에 머물러 온 장소에 대한 이미지와 느낌을 창조해냈다고 돌아봤다. ‘래비린스(Labyrinth)’를 쓴 작가 케이트 모스는 “각별한 여인이었다”고 애도했으며. 동료 작가인 사스남 상게라는 트위터에다 “대단한 인생, 대단한 작가였다”고 아쉬워했다. 기자 캐서린 오도넬은 “공적으로 알려진 인물이 성 전환을 해 나를 비롯한 다른 이들도 혼자가 아니란 사실을 알게 만들었다”고 애도했다. 카디프 북부의 노동당 의원인 안나 맥모린은 “믿을 수 없는 작가이자 개척자이며 역사학자”라고 애도했다. 잔의 베네치아 가이드북은 워낙 일품이어서 더 나은 책이 나오기 힘들다는 평판을 들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 책이 클래식 반열에 올랐다고 했다. 팰린 역시 “내 인생에 가장 영향을 준 책 가운데 하나”라면서 “베네치아를 묘사한 문장들은 내가 마주친 어떤 관습적인 여행 글을 초월했다. 그녀의 영혼과 가슴은 이 책에 있었다. 일종의 불륜 같은 것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내가 마치 베네치아와 연애하는 느낌으로 읽기 시작해 내 평생 그 느낌이 지속됐다. 작가로서 그녀는 호기심과 관찰이 얼마나 중요한지 내게 가르쳐줬다”고 했다.그녀의 소설 ‘하브로부터의 마지막 편지’는 여행 문학의 형태로 쓰인 작품이었다. 고인은 또 1953년 5월 29일 인류의 첫 에베레스트 등정 발자취를 단독 취재해 타임스에 실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에드먼드 힐러리 경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동행하며 정상 도전을 중계하다시피 전했다. 마침 힐러리 경의 정상 등정 일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이 열렸는데 1999년 여왕으로부터 대영제국 훈작사(CBE)를 받았다. 모리스는 1974년 자신의 성전환을 다룬 책 ‘수수께끼(Conundrum)’를 썼는데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카사비앙카의 한 클리닉에서 수술을 받은 과정을 옮겼는데 가디언은 “힘있고 아름답게 쓰인 다큐멘터리”라고 극찬했다. 고인은 2018년 파이낸셜 타임스 인터뷰를 통해 성전환 때문에 집필 생활에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털끝만큼도 아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영향이 미미했다”고 돌아봤다. 나아가 남자로서 더 많은 성취를 이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해외를 여행하지 않으면 웨일스의 그위네드에 있는 집에 머물렀는데 국수주의적인 견해를 강력히 천명했다. 웨일스 음유시인 경연대회인 에이스테드보드(Eisteddfod)는 웨일스의 생활 방식에 대한 그녀의 공헌을 높이 샀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노벨 문학상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노벨 문학상

    문학 하면 우리는 으레 시와 소설을 떠올린다. 당연히 노벨 문학상도 시인, 소설가에게만 수여하는 것인 줄로 알기 일쑤다. 토마스 만(1929), 헤르만 헤세(1946), 오에 겐자부로(1994) 등이 얼른 떠오른다. 2020년 수상자 루이즈 글릭도 미국 시인이다. 2016년 수상자인 밥 딜런은 그의 ‘노래’가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일부 ‘전문 문학인’들이 ‘가수’의 노벨상 수상에 반발하기도 했지만, 서양 문학의 원조 호메로스 역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노래 부른 가수였으니, 반대한 사람들만 협량해 보일 뿐이다. 사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중에는 ‘전문 문학인’ 아닌 인물이 여럿 있다. 예를 들면 영국 총리를 지낸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으로 노벨상(1953)을 받았는데, 이 작품은 물론 역사 저술이다. 독일 역사가 테오도어 몸젠은 ‘로마사’(1902)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이 또한 역사 저술로 분류된다. 어디 역사뿐일까. 독일 관념론 철학자 루돌프 오이켄(1908),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1927),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1950)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노벨 문학상의 선정 범주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영어권 학자 171명이 참여해 집필한 전 18권, 1만 10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케임브리지 영문학사’(1907~1921)에는 셰익스피어, 존 밀턴과 나란히 에드워드 기번(역사학자), 토머스 홉스, 존 로크, 데이비드 흄, 벤담과 공리주의자들(철학자), 에드먼드 버크(정치학자), 애덤 스미스(경제학자) 등에게도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시와 소설만이 문학이 아니란 의미다. 정치학, 철학, 경제학의 위대한 저술도 인류에게 감동을 주는 문학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아마도 이게 글로벌스탠더드일 것이다. ‘한국 문학사’에도 이런 광폭 행보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문학’의 범주가 너무 협소한 건 아닐까. 우리의 협소함이 문학에 국한된 것일까. “의자에 앉아 글귀나 짓는 시인은 대단한 시는 결코 짓지 못할 것입니다. 생각건대 진정한 시인의 내면에는 정치가, 사상가, 입법자, 철학자의 자질이 잠재해 있습니다.” 19세기 영국의 역사가, 사상가인 토머스 칼라일의 ‘시인’에 대한 정의다. 문학에 대한 놀라운 찬사다. 이 찬사에 걸맞게 문학의 꽃은 더 위대하게 피어나야겠다. 우석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 마스코트 인턴 청년, NHL 코치 됐다

    마스코트 인턴 청년, NHL 코치 됐다

    아이스하키에 빠져 관련 학위도 이수한국 대표팀서 활약 후 AHL에 합류“좋은 롤 모델 되도록 최선 다할 것” 아이스하키가 좋아 구단 마스코트 일을 하던 청년이 꿈의 무대로 불리는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구단의 코치가 됐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남자 아이스하키대표팀 비디오 코치로 일했던 샘 킴(35)의 이야기다. NHL 토론토 메이플리프스가 최근 재미교포 샘 킴을 비디오 코치로 영입했다고 캐나다 언론들이 전했다. 샘 킴은 다음 시즌부터 정식 코치로 토론토에 합류하게 됐다. 재미교포인 샘 킴은 7살 때 아이스하키에 빠졌다. 고등학생 때까지 아이스하키 선수로 뛰었지만 선수로서 자신의 한계를 일찍 깨달았다. 샘 킴은 보스턴대 경제학과에 입학해 대학 아이스하키팀에서 자원봉사로 비디오 분석 일을 했다. 그가 NHL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2007년. 뉴욕 아일랜더스 인턴으로 입사한 그는 다음해부터 마스코트로 경기장에 나섰다. 두꺼운 옷과 탈을 쓰고 경기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재롱을 부렸다. 그는 지난 2일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정말 덥고 땀이 많이 났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부모님은 샘 킴에게 당장 그만두라고 성화였지만 아이스하키가 너무 좋았던 그는 링크를 떠날 수 없었다. 이후 샘 킴은 학업과 코치 커리어를 병행했다. 2012년 가을에는 대학원에 진학해 매사추세츠주립대에서 스포츠 매니지먼트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샘 킴은 2016년 4월 백지선 감독의 요청으로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비디오 코치로 합류했다. 석사 학위를 따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백 감독과 연락을 주고받은 것이 계기였다.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기대 이상으로 선전한 데는 비디오 분석을 통해 전력을 극대화했던 샘 킴의 공로를 빼놓을 수 없다. 대표팀 코치를 마치고 샘 킴은 NHL의 하부리그인 AHL 베이커스필드 콘도스(에드먼턴 오일러스 산하)의 비디오 코치로 합류해 두 시즌을 보냈다. 샘 킴의 NHL행에 제이 우드크로프트 베이커스필드 감독은 “우리는 샘이 그의 평생의 꿈인 NHL에서 일할 수 있게 돼서 기쁘다”고 축하의 메시지를 남겼다. 코치로 선임된 이후 샘 킴은 현지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내 일은) 코칭스태프의 삶을 더 편하게 만들고 필요한 모든 비디오 자료를 갖춤으로써 그들이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특히 인종적 다양성 문제가 중요하게 떠오른 NHL에 “이 일에 동참하게 돼 자랑스럽고 (유색인종으로서) 좋은 롤모델이 되고자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이은형의 밀레니얼] 심리적 안전감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

    [이은형의 밀레니얼] 심리적 안전감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

    “밀레니얼이 성장하고 싶어한대서 제가 우리 회사 신입들에게 물어봤어요. 무슨 교육 받고 싶냐고. 아무도 대답을 안 해요. 아니 왜 그런거죠?” “회의 시간에 의견을 말하라고 아무리 독려해도 입을 닫고 있어요. 자기 표현이 강하다는 친구들이 회의 때는 왜 말을 안 할까요?” 조직의 리더들은 밀레니얼과 소통하고 싶어한다. 사실 밀레니얼도 선배들과 소통하고 싶다. 그런데 현실은 서로에게 벽을 느끼고, 대화 노력을 포기한다. 밀레니얼들의 속마음을 보면 이렇다. “사장님이 갑자기 우리를 불러모으더니 무슨 교육 받고 싶냐고 물어요. 표정도 인자하고, 정말 우릴 위해서 하시는 말씀인 건 알겠어요. 하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지난번에 회의 시간에 누가 용감하게 발언했는데요. 그게 팀장님 의견을 반박하는 것처럼 들렸나봐요. 팀장님 표정이 굳더니 몇 주 동안 인사를 안 받아주셨어요. 그 뒤로는 아무도 얘기 안 해요.” 밀레니얼 세대가 아무리 자기 주장이 강하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도 조직의 관행을 무시하지는 못한다. 자신의 발언으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이 조금이라도 있을 것 같으면 입을 다문다.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면 자신을 표현하지 않는다. 수동적으로, 침묵하면서 회사에 다니거나 아니면 회사를 떠난다. 어쩌면 채용단계에서부터 자신의 솔직한 의견보다는 상대방이 듣고 싶은 답변을 준비하는 데 더 익숙할지도 모른다. “최근 S 공대 나온 지원자가 있었는데 채용을 안 했어요. 사실 뽑고 싶었죠. 그런데 우리 회사에 3년 근무하겠다는 거예요. 3년이라니…. 너무 짧잖아요.” 어느 중견 반도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가 채용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밀레니얼의 입장에서 ‘3년 근무하겠다’고 말했다면 진솔하게 자신의 최선을 다하겠다고 표현한 것이다. 밀레니얼에게 3년은 매우 긴 시간이다. 밀레니얼 지원자가 “평생직장으로 생각하겠다”고 말한다면 십중팔구는 상대방이 원하는 답변을 준비했을 뿐이다. 밀레니얼이 자신을 드러내면서 선배들과 소통하고, 실력을 키우고, 회사에 기여하기를 바란다면 먼저 안전하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에이미 에드먼슨 교수가 1999년 제시한 ‘심리적 안전감’은 불확실성이 높고, 리스크가 상존하는 경영환경에서 구성원의 소통을 활성화하는 데 특히 필요하다. 심리적 안전감이란 조직의 구성원이 자신의 아이디어, 우려, 질문, 잘못을 드러냄으로써 벌을 받거나 모욕감을 느낄 가능성이 없다고 믿는 것이다. 에드먼슨 교수팀은 외과의사와 간호사로 구성된 외과수술 의료진 8개 팀을 대상으로 오류를 많이 저지르는 팀이 어떤 팀이며 원인은 무엇인가 분석하고자 했다. 성과가 좋은 팀의 오류가 적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에 임했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였다. 예상과 달리 더 좋은 팀에서 더 많은 오류가 발생했다. 추가적인 관찰과 연구 끝에 에드먼슨 교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오류를 많이 일으킨 팀은 실제로 오류를 많이 일으킨 것이 아니라 오류에 대해 숨김없이 드러내고, 그 오류의 원인을 토론했고, 오류를 개선하는 방법에 대해 모색했다. 그래서 팀이 드러내는 오류의 수만큼 그 팀의 수술 성과는 지속적으로 좋아졌다. 신세대 직장인들의 커리어 엑셀러레이터이자 ‘당신은 더 좋은 회사를 다닐 자격이 있다’의 저자 김나이씨가 자신의 실수 경험담을 소개한 적이 있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 작동시키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하루는 경황이 없어 작동버튼 누르기를 잊어버린 것이다. 상사에게 보고하면서 꾸지람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단다. 상사의 관심은 이 실수가 다시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였다. 사람에 의한 오류인가, 시스템 오류인가 판단해서 적절한 예방책을 찾고 시행했다는 것이다. 심리적 안전감이 ‘좋은 게 좋은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편하고 힘든 것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것이다. 더 좋은 성과를 위해서라면 구성원들이 실수를 드러내고, 예방책을 찾아내고,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 베이루트 폭발 순간 태어난 아기…모성애가 낳은 기적 (영상)

    베이루트 폭발 순간 태어난 아기…모성애가 낳은 기적 (영상)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순간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은 산모와 그런 산모 곁을 끝까지 지킨 의료진이 비극 속에서 기적을 건져냈다. 12일(현지시간) 아랍뉴스는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낸 베이루트 폭발 당시, 폐허가 된 병원에서 태어난 새 생명의 이야기를 전했다. 지난 4일, 엠마뉴엘 네이서는 레바논 베이루트 세인트조지병원에서 곧 태어날 아기와의 만남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남편 에드먼드 네이서도 한껏 기대에 부풀어 분만실 앞을 서성였다. 출산 전 과정을 기록하려 카메라도 손에 꼭 쥐었다. 드디어 엠마뉴엘이 분만실로 들어갔다. 그 순간, 커다란 소음과 함께 폭발이 발생했다. 남편 에드먼드는 “아내와 의료진이 분만실로 들어가고 10초 후 폭발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분만실 유리는 산산조각이나 산모와 의료진을 덮쳤고 의료도구는 사방으로 흩어졌다. 베이루트 항구 창고에 보관돼 있던 질산암모늄 2750t이 한꺼번에 폭발한 순간이었다. 끔찍한 비명이 이어졌다. 병원 안도, 밖도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하지만 아기는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엠마뉴엘은 “아기를 살려야 했다. 엄마인 내가 강해져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고 말했다. 의료진도 숨을 가다듬었다. 분만에 참여한 의사 중 한 명인 스테파니 야코브 박사는 “창 밖을 내다보니 온통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뿐이었다. 어디서 일어난 폭발인지, 폭발이 또 있을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해는 졌는데 전기는 끊겼고 분만실은 난장판이 됐다. 의료장비도 모두 파손된 최악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아기를 살려야 했다. 산모를 복도로 옮긴 의료진은 휴대전화 불빛에 의존해 분만을 이어갔다. 그사이 폭발 충격으로 간호사 한 명이 사망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에드먼드는 “폭발 후 1시간 30분이 지났을 무렵 아들이 태어났다. 폭발 잔해 속에서 태어난 새 생명이고, 어둠 속의 빛”이라고 감격스러워했다. 간호사 1명 등 17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다친 비극 속에서, 끝까지 아기를 포기하지 않은 모성애와 의료진의 사명감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로이터통신은 12일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한 상태로 퇴원해 집으로 돌아갔으며, 아기 이름은 태어난 병원 이름을 따 조지로 정해졌다고 보도했다. 베이루트에서는 4일 항구 창고에 보관돼있던 다량의 질산암모늄이 폭발해 최소 171명이 사망하고 6000여 명이 다쳤다. 30만 명은 이재민 신세가 됐다. 전기와 수도가 끊겼고 의료시설 절반이 파괴됐다. 재산 피해 규모만 150억 달러(약 17조8200억 원)로 추산된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흑인 인권운동의 현장 지나는 존 루이스 운구마차

    흑인 인권운동의 현장 지나는 존 루이스 운구마차

    지난 17일(현지시간) 타계한 흑인 인권운동의 상징 존 루이스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을 실은 운구 마차가 26일 앨라배마주 셀마의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를 마지막으로 건너고 있다. 이 다리는 1965년 고인을 비롯한 흑인 민권운동가들이 흑인 투표권을 요구하는 행진을 벌이다가 백인 경찰에 폭력적인 진압을 당한 ‘피의 일요일’ 사건이 발생한 장소다. 고인을 추모하는 6일간의 장례는 전날부터 시작해 오는 30일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설교하던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침례교회에서 마무리된다. 셀마 UPI 연합뉴스
  • 노벨상 석학 스티글리츠 “세계경제는 ‘예비타이어 없는 자동차‘”

    노벨상 석학 스티글리츠 “세계경제는 ‘예비타이어 없는 자동차‘”

    “위기 회복력 없다는 것 드러내”“장기투자에 힘실리는 등 안목 바뀔 것”세계銀 부총재 “탄탄한 금융망 회복 회의적저성장 심화 땐 고립주의와 보화무역주의 늘어”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세계적 석학 조지프 스티클리츠(77) 미국 컬럼비아대 석좌교수가 “코로나19로 우리가 만든 경제가 ‘예비타이어 없는 자동차’와 다름없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평상시에는 잘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가 생기면 위기 대처를 통해 회복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얘기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26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세계경제연구원-하나은행 국제콘퍼런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경제 패러다임 변화와 금융의 미래’ 기조연설자로 나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직접 방한하지 못하고, 영상 녹화본을 통해 기조연설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시대에는 보다 회복력 있는 경제를 구축해야 할 것“이라며 ”장기투자자의 목소리에 힘을 더 실어주는 등 단기수익보다 장기 안목을 중시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어 “각국은 이번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통해 공동의 문제를 공동으로 협력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됐다“며 ”특히 코로나19 종식과 예방을 위해서는 지식이 매우 중요하기에 백신 관련 특허 풀을 만드는 등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가 가져올 경기 불황은 장기적이고 극심할 것이다. 우리는 대공황에서 회복하는 데 10년이 걸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며 “대공황 당시에는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대응을 못 했지만 이번에는 공조를 필요로 하는 전 세계 문제임을 깨닫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카르멘 라인하트 세계은행 수석부총재 겸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코로나19 이후 세계 자본 흐름이 거의 붕괴했고 교역량도 큰 폭으로 위축돼 상황이 심각하다”면서 “이전 수준의 탄탄한 교역과 금융 네트워크가 회복될지 회의적이다”고 말했다. 라인하트 부총재는 ”현재 각국 중앙은행은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코로나19 사태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1인당 소득은 대단히 심각하게 줄어들고 있다“며 ”특히 저소득 노동자들이 실직 등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영세기업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역사적으로 보면 저성장과 불평등 심화 문제가 나타났을 때 많은 국가가 고립주의적 성향을 보이고 보호무역주의가 늘었다”며 “지금처럼 세계 1·2위 경제 국가가 갈등하는 상태에서는 더욱 문제”라고 지적했다. 에드먼드 펠프스 컬럼비아대 석좌교수는 코로나19 이후 우리 사회가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펠프스 교수는 먼저 코로나19 사태로 각국이 기후변화 문제를 돌아보는 데 소홀해졌다고 지적하며 ”기후변화가 심각해지고 있는데 경제학자들이 아직도 앞으로 10년,20년간 기후변화로 인한 비용 추정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펠프스 교수는 이어 ”코로나19로 인해서 경제활동이 활력을 잃었고 혁신도 큰 타격을 받았다“며 ”자기 창의력을 발휘할 기회가 줄어들면 국가 붕괴나 사회 소요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연합뉴스
  • [데스크 시각] 회색 눈사람/이두걸 사회부 차장

    [데스크 시각] 회색 눈사람/이두걸 사회부 차장

    아마도 40대 중반에 접어든 몇 해 전부터였을 것이다.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진보나 보수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게 된 것이. 정확하게는 진보적이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고, 나의 욕망을 인정하게 됐다는 게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여유가 많지는 않지만 먹고살 정도로는 벌고 있고, 서울 땅덩어리에서 식구와 발 뻗고 살 공간을 갖게 됐다. 20년 전에 기대했던 모습은 결코 아닐지라도, 20년 후에도 후회 없이 떠올릴 모습이 아닐지라도, 이젠 더이상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어찌 됐든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해 두자. 다만 ‘주의’라는 수식어로 스스로를 규정짓는 이들을 바라보는 건 여전히 불편하다. 진보를 자처하는 쪽도 보수를 표방하는 쪽도 모두 포함된다. 이들은 소유의 욕망을 이념이라는 장식물을 통해 대의로 탈바꿈시킨다. 투쟁의 전리품은 결국 돈과 지위로 수렴된다. 양비론으로 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제 사례는 차고 넘친다. 보수 쪽을 먼저 따져 보자. 보수주의의 핵심은 이성의 판단 대신 경험의 축적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급격한 변화보다는 전통과 점진적 개혁을 표방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점진적 개혁이다. 영국 정치학자이자 보수주의의 거두 에드먼드 버크가 “변화를 일으킬 수단이 없는 국가는 국가를 보존할 수단이 없는 것”(‘프랑스혁명에 대한 고찰’)이라고 강조한 건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유신 시절의 유산에 여전히 기대고 있는 미래통합당이, 유튜브와 종편에 똬리를 튼 채 레드 콤플렉스를 부추기는 ‘보수 논객’들이 보수주의의 정의에 부합한다고 여기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남한에는 보수 세력은 있되 보수 이념은 없다”(강정인 서강대 교수)는 오래전 지적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건 우리 사회의 비극이다. 오른쪽 날개가 꺾인 새가 어찌 날 수 있을까. 진보를 내건 정부 여당과 ‘586세대’도 보수 쪽보다 나을 게 전혀 없다. 진보는 변화와 개혁을 통해 사회적 모순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뜻한다. 이때 모순은 정치적 이슈보다도 불평등과 복지 등 사회경제적 문제를 뜻한다. 지금으로 말하면 비정규직과 영세 자영업자, 배달 라이더 등 코로나 사태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이들이다. 그러나 직전 칼럼 ‘총선 이후가 더 두렵다’에서 우려했던 것처럼 4·15 총선 이후 정부 여당의 행보는 이들의 민생보다는 정치적 영향력의 공고화에 방점이 찍혀 있는 모습이다. 이들의 고통을 내 일처럼 여겼다면 추가 추경과 민생 안정 법안을 통과시켜야 할 새 국회에서 위원회 등 ‘땅따먹기’를 위한 아귀다툼에 골몰하는 데 금쪽같은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있는 이들에게는 천국이요, 없는 이들에게는 지옥이다. 부자들은 전 세계적인 유동성 폭발에 따른 금융 및 부동산 시장의 호황의 열매를 따먹는다. 빈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빚에 허덕여 정부와 부자들의 시혜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들의 고통에 아파하지 않고, 이러한 구조를 바꾸려는 노력 없이, ‘조국 수호’만 되뇌며 ‘한때 나보다 우리를 먼저 고민했다’고 떠벌릴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지난 주말 종영한 드라마 ‘화양연화’를 뒤늦게 꼭꼭 씹으며 보고 있다. 시대를 떠나온 이들과, 여전히 남아 있는 이들의 이야기다. 드라마 속에 인용된 문구가 눈에 박혔다. “아프게 사라진 모든 사람은 그를 알던 이들의 마음에 상처와도 같은 작은 빛을 남긴다.” 소설가 최윤이 쓴 ‘회색 눈사람’의 마지막 문장이다. 눈사람을 닦는다고 회색이 흰색으로 될 리 만무하지만, 덜 부끄럽진 않을까 기대해 본다. douzirl@seoul.co.kr
  • 친구가 원수로…가위바위보 내기 져 5억원 빚진 남성의 사연

    친구가 원수로…가위바위보 내기 져 5억원 빚진 남성의 사연

    9년 전 친구와의 가위바위보 내기에서 져서 우리 돈으로 5억 원이 넘는 거액의 빚을 진 남성에 관한 항소심이 캐나다에서 열렸다. 24일(이하 현지시간) CBC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지난 17일 퀘벡 고등법원은 가위바위보 3선승제 내기에서 져 발생한 50만 캐나다달러 이상의 부채는 무효라며 원심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운동선수였던 에드먼드 마크 후퍼는 2011년 1월 같은 운동선수이자 친구였던 미셸 프리모와의 가위바위보 3선승제 내기에서 지는 바람에 51만7000캐나다달러(당시 약 5억7000만원)라는 거액의 빚을 져 공증 계약까지 맺고 자택을 담보로 거액을 대출받아야 했다. 그 후 후퍼는 오랫동안 대출금을 갚던 끝에 2017년 프리모를 대상으로 계약 무효 소송을 냈고 2017년 첫 재판에서 승소해 대출 취소를 승인받았다. 이에 따라 프리모가 항소를 제기했던 것이다. 퀘벡에서는 법률상으로 도박은 우연이 아닌 당사자들의 일부 기술이나 신체적 노력 만이 있어야 하는 활동과 관련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베팅 금액은 과도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있다. 당시 재판에서는 가위바위보가 단순한 운에 의한 게임이 아니라 정확한 상황에서 기술을 필요로 하며 특히 빠른 속도의 관찰력과 전략이 필요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긴 했지만, 내기 금액이 과다해 계약은 무효라는 판결이 나왔었다. 이번 항소심에서도 계약은 역시 무효라는 판결이 내려졌지만, 그 내용은 원심과 사뭇 다르다. 이번에는 가위바위보에 어느 정도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게임의 대부분은 운에 의해 작용하므로 기술과 신체적 노력 만이 있어야 하는 활동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됐다는 것이다. 또한 이번 상급법원에서도 역시 판돈이 과도해 기존 하급법원의 판결을 유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123rf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이종수의 헌법 너머] 그들은 과연 누구를 대표하는가

    [이종수의 헌법 너머] 그들은 과연 누구를 대표하는가

    한바탕 떠들썩했던 잔치가 끝났다. 서로 앞다투어 일꾼이 되겠다고 기껍게 나서니 선거는 어쨌든 좋은 이벤트다. 많이들 내보내고 새 일꾼들을 다시 뽑았으니 이제 제대로 일만 하면 된다. 그런데 일꾼들을 부리는 주인이 누군지가 여전히 궁금하다. 선거유세에서도 지역사업 공약이 대부분이고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고서도 다들 한 목소리로 주민들과 지역의 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니 지역주민들의 대표가 맞겠다. 이렇게 해서 모든 지역이 고루 좋아지면, 벤담의 공리주의가 그렇듯 나라 전체가 발전할 법도 하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내세우는 업적이라는 게 한정된 나라 예산에서 자기 지역구에 예산을 더 많이 따 왔다는 자랑질이 고작이다. 지난 지방선거 때 내걸렸던 공약과 비교해 봐도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러니 이럴 거면 지방선거가 따로 왜 있나 하는 의구심도 든다. 헌법재판소도 여러 번의 국회의원선거구획정사건에서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이지만 지역대표성도 함께 겸하고 있다고 밝혀 왔다. 헌법 제46조 제2항이 이렇다.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 그런데 각자가 생각하는 국익이 다르고, 양심의 생김새도 또한 제각각이니 따지고 보면 별 의미가 없는 조항이다. 이 법조항을 두고서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이고 ‘자유위임원칙’을 근거 짓는다고 이해하고 있다. 그냥 마음대로 하게끔 자유롭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를 뽑아 준 지역 주민들로부터 자유롭다는 게 그것의 본래 의미다. 그래서 소속 정당을 바꾸는 당적 변경에도 불구하고 의원직을 유지하는 논거로 주로 사용돼 왔다. 이와는 달리 독일 기본법 제38조 제1항은 “연방의회의원은 전체 국민의 대표이고, 위임과 지시에 구속되지 않으며, 오로지 양심에 따른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래서 한 명을 뽑는 지역구선거에서 설령 지더라도 해당 후보자가 비례대표로 당선될 수 있는 선거제도를 마련해서 자유위임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처럼 지역구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된다. 이렇듯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라는 관념은 오늘날 보수주의의 원조로 잘 알려져 있는 에드먼드 버크의 유명한 ‘브리스톨 연설’에서 비롯됐다. 여기서 버크는 “나는 브리스톨(지역구)의 대리인이 아니라 영국의 대표”임을 강조했었다. 그런데 당시 18세기 후반의 영국은 지금처럼 보통선거가 아니라 제한선거였고 전체 국민들 가운데 5% 남짓한 극히 일부만이 선거권을 가졌다. 그러니 의회 의원을 지역구민의 대표라고 부르기도 민망하고 또한 극히 일부의 유권자들만을 대표하는 셈이어서 전체 국민의 대표라는 상상적 허구와 당위론적인 요청이 필요했으리라고 미뤄 짐작해 볼 수 있다. 국회의원들로 구성되는 국회가 주권자인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헌법기관인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어느새 개별 국회의원을 독자적인 헌법기관으로도 부르고 있다. 지난 1997년에 헌법재판소가 권한쟁의심판에서 국회의원의 청구적격을 줄곧 부인해 왔던 선례를 바꾸면서(96헌라2사건) 다소 모호하게 언급한 이래로 의원들 스스로도 헌법기관임을 자처하고 있다. 예컨대 법원이 모 의원에게 인터넷상의 부적절한 게시 글에 이행강제금 부과를 결정하자 ‘일개 판사가 어디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을’ 운운하듯이 자신의 높은 지위를 과시하는 빌미가 돼 왔다. “국회의원은 국회 내 부분기관의 지위에서 국회의장을 상대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쯤으로 헌재가 정리했어야 할 사안인데, 어쨌든 이로써 오해의 단초를 남겨 두었다. 이렇듯 우리 정치현실에서 규범과 실제 사이의 괴리가 가장 큰 표현이 국회의원을 두고서 국민의 대표라고 규정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정작 실제로 그들이 대표하는 것은 지역과 소속정당이다. 개별 의원이 소속 정당의 당론에 반대하기로 작정하면 다음번 공천의 포기를 감수해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도 사례가 있었다. 결국 오늘날의 정당제민주주의에서는 사실상 정당들이 제각각 국민을 대표하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당의 역할과 기능이 특히 중요하다. 이번 선거에서 참패한 야당에 마치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처럼 여러 패인이 지적되고 있다. 그 정당이 아쉬워서가 결코 아니라 그만큼 우리 정치의 변화와 정상화를 간절히 바라는 까닭이라고 짐작된다. 부디 새겨듣기를 바란다.
  • 英 의료진 사망 넷 중 셋은 소수인종 출신, 정부 “조사하겠다”

    英 의료진 사망 넷 중 셋은 소수인종 출신, 정부 “조사하겠다”

    희한한 일이다. 10일(이하 현지시간) 보체스터셔주 레디치스 알렉산드라 병원의 간호사 줄리 오마르(52)가 코로나19 증상으로 숨짐으로써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의 코로나19 관련 희생자는 19명으로 늘었다. 그런데 NHS 종사자가 10명 희생될 때까지 모두가 소수 인종 배경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놀라움을 안긴다. 전체적으로는 적어도 14명이 소수 인종 출신으로 보인다. 영국의사협회(BMA)가 왜 이래야 했는지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맷 행콕 보건부 장관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BBC가 전했다. 2011년 인구 조사 결과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소수 인종 배경을 지닌 이들은 14%밖에 되지 않았는데 국립 집중치료 감사 및 연구센터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중환자 3000여명 가운데 34%가 흑인, 아시아계 등 소수 인종 출신이라고 방송은 보도했다. 지난달 25일 수단 혈통으로 가족도 모두 영국에서 살고 있는 아딜 엘타야르(63)가 맨먼저 세상을 떠났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수단에서 일했으며 런던의 세인트 마리, 세인트 조지 병원에서 모두 근무했다. NHS에서 11년을 근무하다 조국으로 돌아가 장기이식 프로그램을 만들고 2015년 영국으로 돌아와 대체 수술의로 헌신했다. 사흘 뒤 역시 수단 혈통인 암게드 엘하우라니는 더비 앤드 버튼 대학병원의 이비인후과 상담의로 일하다 레스터의 글렌필드 병원에서 숨졌다. 런던 동부 호머턴 대학병원 비뇨기과 상담의인 인도계 압둘 마부드 초더리(53) 박사는 존슨 영국 총리에게 개인보호장비(PPE)가 부족하니 지원해달라고 간청하는 편지를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지난 8일 숨을 거뒀다. 같은 날 에드먼드 아데데지(62)도 숨을 거뒀는데 윌트셔주 스윈던의 그레이트 웨스턴 병원 응급과에서 원무 일을 대체직으로 하고 있었다. 1970년대 홍콩에서 런던으로 이주한 앨리스 킷 탁 옹(70)은 중년 때부터 NHS에서 일하기 시작했으며 두 과와 어린이 클리닉 등에서 일하다 지난 7일 스러졌다. 같은 날 레일라니 다이릿(47)은 럭비의 세인트 크로스 병원 근무 중 의심 증상을 보이며 쓰러져 숨졌다. 딸 마리는 천식을 앓고 있던 어머니가 끝까지 이타적이어서 본인보다 다른 이의 안전을 더 염려해 일주일 동안 자가 격리됐다가 호흡 곤란을 일으켰는데 응급의도 소생시키지 못했다. 런던 동부 다게넘의 발렌스 메디컬센터의 셰드 지샨 하이더(79) 박사는 전날 숨졌는데 딸 사미나는 부친이 50년 넘게 남을 돌보는 데 앞장섰다고 추모했다. 아리마 나스린(36)은 병원 청소부로 일하다 지난해에야 간호사 자격을 따 16년 동안 일했던 웨스트미들런드주 왈살 마노 병원에서 근무하다 지난 2일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스트번 지구 종합병원의 약사 푸자 샤르마도 늘 웃음이 많고 주위를 밝게 만드는 재주를 지녔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운명했다. 시리아에서 태어난 파예즈 아야체(76) 박사는 40년 넘게 서포크주 NHS에서 근무하고 은퇴한 뒤 지역 순회 주치의 일마저 한달 전에 그만 뒀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확산되자 전에 진료하던 환자들을 찾아 살피다 감염돼 지난 8일 사망했다고 딸 레일라가 전했다. 조국의 난민을 돕는 기금을 모금하는 데도 앞장 섰다. 카디프에 있는 웨일스 대학병원의 심장전문의 지텐드라 라소드(62)는 25년을 이 병원에서 근무하며 능력이 뛰어난 의사로 손꼽혔는데 지난 6일 집중치료 병상에서 스러져 운명했다. 타밀족 혈통의 안톤 세바스티안필라이 박사는 스리랑카 대학병원에서 의사 수업을 받고 런던 남부 킹스턴 병원에서 노인들 치료를 전담했다. 타밀족 역사에도 관심이 많아 책을 쓰기도 했다. 지난 4일 사망했는데 나이는 70대로만 알려졌다.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조직병리학과 명예교수 사미 쇼우샤(79)도 지난 2일 세상을 떴는데 1978년 이후 런던 해머스미스 앤드 채링 크로스 병원에 있는 영국 암연구소에서 일했다. 알파 사두(68) 박사는 40년 가까이 NHS 산하 런던의 여러 병원에서 일하다 허트퍼드셔주 웰윈에 있는 퀸빅토리아 메모리얼병원에서 파트타임 근무하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돼 지난달 31일 숨졌다. 아들 다니는 가족들의 권유에도 “다른 더 필요한 사람들이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며 한사코 진단 받기를 거부했다면서 영국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의료인들을 교육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고 전했다. 하비브 자이디(76) 박사는 47년여를 리온시에서 외과의사로 일했는데 부인과 네 자녀 모두 의사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달 25일 에섹스주 사우스엔드 병원 응급실에서 생을 마쳤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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