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속셈 진단/앤드류 맥/호 국립대 평화연 소장
◎“북한 핵개발은 대외 「협상카드」”/대남·대미,교섭때 고삐로 활용 목적/「핵포기」 유도엔 남북군축이 첩경
북한의 핵무기개발은 한국에 대한 재래식 군비경쟁에서의 열세를 극복하려는 시도라고 호주국립대학 평화조사연구소장인 앤드류 맥 교수가 주장했다. 그는 31일 출간된 국제문제 계간지 포린 폴러시 여름호에 게재된 『북한과 폭탄』이라는 기고문에서 북한의 핵개발을 중지시키는 길은 남북한 군축이라고 제안했다. 다음은 이 기고문의 요지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것은 부시 미 행정부내의 폭넓은 공통 인식이다. 미 정부내 논의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여부가 아니라 핵폭탄 보유시기에 모아지고 있다. 그 시기에 대해 펜타곤과 국방정보국(DIA)은 3∼5년이 걸릴 것이라고 믿고 있고,에너지부는 이보다 수년이 더 걸릴 것으로 여기고 있다. 국무부의 견해는 그 중간 시점이다.
90년 2월 IAEA(국제원자력기구) 집행위원회에서 북한은 핵안전협정에 서명하는 조건으로 ▲핵 보유국의 비핵국 위협 배제와 ▲한반도 비핵지대화,즉 한국내미 핵무기 철수를 요구했다. 북한은 특히 미국이 북한에 대해 핵 위협을 가하지 않겠다는 법적 보장의 제공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한국내 핵무기 철수가 미국의 핵위협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는 평양의 판단을 반영하는 것이다.
한국내에 핵무기가 없더라도 미국은 함정 적재 핵무기나 미 본토에서 발사하는 전략핵미사일로 북한을 공격할 수 있다. 북한의 「제국주의 침략자」라고 매도하고 있는 미국으로부터 왜 이런 보장을 받아내려고 하는 것인지 그 이유는 불분명하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입증할 확고한 증거가 없다면 북한이 과연 핵무기 개발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아닌지에 관한 전략적 이유 등을 한번 검토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북한이 핵무기를 제조한다면 왜 중요한 핵시설을 미국의 위성정찰과 군사공격을 피할 수 있는 지하에 건설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둘째,북한은 김일성이 주장한 것처럼 핵무기 생산기술자를 보유하지 않고 있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셋째 의문은,핵무기를 제조할 의도가 있었다면 북한이 왜 IAEA사찰이 뒤따르는 NPT(핵비확산조약)에 서명했느냐는 것이다.
넷째,북한이 핵무기를 제조한다면 그들이 떠들어온 한반도 비핵지대화 제안은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다섯째,북한의 핵무기 계획은 무기체제로서 보다 협상용으로 더 유용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일부 주장에 의하면 영변에 건설중인 재처리시설은 앞으로 남북대화에서 북한의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해 고안된 「가짜」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여섯째,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더라도 잠재력이 훨씬 큰 한국이 뒤쫓아서 핵개발을 할 경우 결과적으로 북한은 득을 볼 게 없다는 점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 거의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리고 북한이 왜 핵무기를 보유하려고 드는지 그 이유에 관한 분석도 거의 없다. 북한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을 겨누고 있는 핵무기는 미국의 대북한 핵공격을 저지할 수 있다.
또한 남북한의 재래식 군비경쟁은 평양의 경제적 열세로 인해 점차 서울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핵무기는 이러한 북한의 딜레머를 적은 돈으로 해결해줄 수 있다. 원자로 가격을 제외할 경우 북한의 핵개발 소요 비용은 총 2억3백만달러 정도로 추정된다. 이는 연간 국방예산의 5%에 해당한다.
비핵국가의 핵무기 보유를 저지하는데 IAEA 안전협정이 중요하다는 주장은 과장된 것이다. 북한이 안전협정에 서명할 경우 IAEA 조사관은 비밀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공장이 아니라 북한이 지정한 시설에 대해서만 조사를 할 수 있다.
비밀 계획이 진행중이라는 의심이 있을 경우 IAEA는 해당시설에 대한 조사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그러한 요구를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또한 영변의 원자로와 재처리공장이 IAEA 안전협정의 전면 감시 아래 놓이더라도 북한은 합법적으로 영변서 플루토늄을 생산,비축할 수 있다. 비축된 플루토늄은 핵무기 제조에 비교적 신속히 이용될 수 있다.
북한의 핵무기를 보유할 경우 한국과 일본에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켜 동북아에 핵무기 경쟁이 벌어질지 모른다.
서울의 일부 안보 전문가들은 영변 원자로에 대한 선제 기습공격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또 일부에선 북한이 95년까지 핵무기를 제조하게 될 경우 한국은 늦어도 93년까지 핵폭탄 제조 계획에 착수,자체 핵 억지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핵 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미국은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미 정책 입안자들은 평양에 대한 안전협정 서명요구의 되풀이만으론 아무것도 달성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워싱턴이 한국내 핵무기 배치여부를 시인도 부인도 않는 시대착오적인 정책을 재검토하고,북한의 핵 야심 포기를 조건으로 한국내 핵무기 철수를 고려한다면 문제해결에 진전이 있을 것이다.
미국의 한국내 핵무기 철수는 북한의 핵 폭탄 제조를 중지시키기 위한 필요조건이 될지 모르나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미국의 핵 철수는 한국으로부터 점증하는 재래식 군비위협에 대한 북한의 두려움을 전혀 불식시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남북한 군비통제의 추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