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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崔 환경장관 폭우속 단속 현장 동참

    ◎어제 팔당호 부근 유흥업소 적발실태 점검 崔在旭 환경부 장관이 4일 비가 억수같이 오는 가운데 숙박·접객업소가 밀집한 팔당호 주변을 찾았다. 崔장관의 현지 방문은 지난 1일부터 실시중인 한강환경감시대의 단속을 독려하기 위한 것이다. 崔장관은 청와대 국무회의가 끝난 뒤 郭決鎬 수질보전국장과 함께 팔당호로 향했다. 양수대교 옆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진중리 검문소에서 趙泫九 한강환경감시대장과 합류한 崔장관은 북한강쪽을 둘러봤다. 崔장관은 강변에 업소가 줄지어 늘어선 남양주시 화도읍 금남리와 삼봉리,가평군 청평읍 대성리 일대를 돌면서 한강환경감시대 단속반의 현장단속을 지켜봤다. 업소의 폐수 방류구를 직접 살피고 단속에 입회했다. 이날 단속에서는 崔장관이 둘러본 5개 업소 가운데 허용기준을 초과하는 폐수를 흘려보낸 H·P호텔 등 2곳이 적발됐다.
  • 선관위장 李容勳씨/대법관 趙武濟씨/尹 대법원장 지명·제청

    윤관 대법원장은 4일 오는 12일 임기가 끝나는 崔鍾泳 대법관 후임에 趙武濟 부산지법 원장을 임명 제청했다. 또 崔대법관이 겸임했던 중앙선거관리위원장에는 李容勳 대법관을 지명했다. 趙법원장은 국회동의 절차를 거쳐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며 13일부터 6년 임기의 대법관 업무를 시작한다.李대법관은 관례에 따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들에 의해 제12대 위원장으로 선출될 예정이다. ◎李容勳 선관위장 내정자/민사법계 권위자… 사법개혁 크게 기여 민사법계의 권위자로 명망이 높다. 깊이 있는 심리와 깔끔한 판결문 작성 등으로 후배 법관들이 배석이 되기를 희망할 정도로 신망도 두텁다. 윤관 대법원장 취임 초기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발탁돼 사법제도발전위원회의 주무위원을 맡아 사법 개혁에 크게 이바지했다. 독실한 기독교 장로로 현재 기독법조인들의 모임인 애중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부인 高殷淑 여사(56)와 2남1녀. ▲전남 보성·56세 ▲광주일고·서울법대 ▲고시 15회 ▲대전지법 판사 ▲법원행정처조사국장 ▲광주고법 부장판사 ▲서울지법 서부지원장 ▲법원행정처 차장 ◎趙武濟 대법관 내정자/판공비 일절 안받는 ‘청빈 법관’/재산 7,200만원… 사법부 꼴찌/‘예산 축난다’ 비서관도 안둬 ‘향토법관’ ‘꼴찌법관’이 대법관에 올랐다. 4일 신임 대법관으로 임명제청된 趙武濟 부산지법원장은 64년 사시 4회에 합격한 이래 부산·대구·마산·진주 등 영남지역에서만 근무했다. 趙대법원장은 사법부 고위 법관 103명 가운데 재산 순위가 꼴찌이다. 93년 재산공개 당시 25평짜리 아파트 한 채와 부인 金淵美씨(50) 명의의 예금 1,075만원등 6,434만원을 신고했었다. 지금의 재산도 7,200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무와 생활 곳곳에서는 청빈의 정신이 배어 있다. 부산지법원장 비서실은 비서관 없이 여직원 한 명만이 지키고 있다. “국가예산을 절감해야 한다”면서 아예 비서관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판공비나 전별금을 지금껏 단 한차례도 받지 않았다. 매달 290만원과 120만원씩 나오는 판공비와 재판연구 활동비는 총무과장이 관리한다.직원들의 경조사나 어려운 일에 사용토록 하기 위해서다. ▲경남 진주·57세 ▲진주사범·동아대 ▲사시 4회 ▲부산지법판사 ▲대구고법·부산고법 부장판사 ▲창원지법원장
  • 밀레니엄 버그 해결에 50조원/정보통신진흥協 조사

    컴퓨터의 2,000년(Y2K) 연도표기 인식오류 문제 해결에는 총 49조7,000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작업에 필요한 연 인원은 72만명이다.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형성될 국내시장 규모는 5조2,000억원이다. 총 비용에서 자체해결분 44조5천억원을 뺀 금액이다. 즉 외부 전문업체에 용역을 주어 형성될 시장규모다. 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가 지난 5월25일부터 20일 동안 20개 업종 3,000개 사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해 3일 발표한 결과다. 정부와 공공기관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문제해결에 필요한 금액과 필요 인원 산정에는 추정치가 포함됐다. 업체별로 문제를 자체 해결하겠다는 비율은 89.5%였다. 나머지는 외주 컨설팅을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 삼성그룹(한국경제를 이끌어온 기업)

    ◎“위기는 기회” 삼성의 도전의식 뜨겁다 초유의 국제통화기금(IMF)사태로 대그룹들마저 하루 아침에 공중 분해되는가 하면 미니그룹으로 속속 변신해가고 있다. 서울신문은 흥망의 부침속에서도 꿋꿋하게 생명력을 지키고 있는 기업을 찾아 재조명해보는 건국 50주년 특집 ‘한국경제를 이끌어 온 기업들’을 시리즈로 연재한다. ◎“초일류 만이 생존” 質경영 뿌리내려/“起亞 꼭 인수” 자동차산업 육성 집념 ‘정권은 유한하고 기업은 영원하다’ 믿든 믿지 않든 재계가 철칙삼아 간직해 온 명제다. 그러나 IMF사태로 이 대마불사론(大馬不死論)도 사라졌다. 재계 1위 삼성. 삼성도 문민정부까지만 해도 잘나갔다. 그렇다고 국민의 정부와 척진 사이는 물론 아니다. 삼성이라고 IMF한파가 비켜갈 리 없다. 계열사 대부분이 내수침체와 수출부진으로 고전하고 있다. 작은 청와대로 불렸던 비서실이 구조조정 본부로 40년만에 간판을 바꿔달았고 문민정부때 특혜시비를 일으켜가며 진출했던 자동차도 IMF한파로 휘청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삼성맨들 사이에서는 옛 사가(社歌)가 유행이다. “고난과 시련속에 일어선 우리…” 삼성맨들은 시련이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에서 우리만이 유일하게 갖고 있는 노하우와 기술은 무엇인가. 우리의 사업과 제품들 가운데 진정 세계 일류라고 자신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되나?” 李 회장이 삼성맨들에게 지금도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질(質)경영을 통한 초일류는 李 회장이 93년 신(新)경영을 출범시키며 삼성맨들에게 던진 화두(話頭)다. 초일류는 삼성경영의 알파요 오메가. 모든 것이 ‘초일류’에서 시작돼 ‘초일류’로 끝난다. 李 회장은 93년 6월 프랑크푸르트에서 계열사 사장단을 모아놓고 “나부터 변해야 산다”고 역설했다. 제2창업의 2기 경영을 구획정리한 프랑크푸르트 선언이었다. “처자식만 빼고 다 바꿔보자. 고객의 요구에 혁신적으로 대응하고 사회 요구에 정직하게 책임지는 기업이 초일류기업이다. 앞으론 초일류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다” 95년 4월엔 북경발언으로 파문을 던지기도 했다. “기업은 2류,행정은 3류,정치는 4류…” 이 발언으로 李 회장이 마음고생을 했지만 李 회장은 이 말이 여전히 맞다고 생각한다. 지금 삼성에게 닥친 또 하나의 시련은 자동차. 삼성자동차 역시 IMF한파로 고전하고 있어 기아차 인수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도’아니면 ‘모’의 심정이다. “자동차 한대를 만드는 데는 2만여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자동차 산업은 철강 기계 전자산업 등과 밀접하게 연관된 조립산업이어서 산업간 파급효과가 크다. 자동차 사업진출을 두고 오랫동안 고심했다. 여론의 반대,막대한 투자 등…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하는 우리 경제구조와 자동차 산업수준을 볼 때 누군가는 반드시 새로 참여해서 한차원 높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국가 장래를 위해 시작했던 자동차 사업이 세간에서 정경유착이니,개인적 취미에서 시작한 것이니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켜 당혹스럽기 그지 없었다. 자동차 산업에 대해 많이 공부했고 경영진과 기술진 등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즉흥적으로 시작한 것이 결코 아니다”(李 회장의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삼성의 자동차에 대한 집념은 대단하다. 삼성자동차 부산공장 본관에는 “우리가 왜 자동차 사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글귀가 붙어 있다. 집념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삼성이 기아인수로 위기극복의 계기를 만들어낼 지 주목된다. ◎어떻게 일궈 왔나/밑돈 3만원 삼성상회가 종업원 17만명으로 성장 삼성의 모태(母胎)는 1938년 3월1일에 설립된 삼성상회(三星商會)다. 고(故) 李秉喆 선대회장이 마산에서 정미업과 운수업으로 쌓은 사업수완을 밑천으로 대구시 수동(현 인교동)에 삼성상회를 열었다. 이 것이 오늘날 삼성그룹의 싹이다. 청과류와 건어물을 모아 만주와 북경 등지에 팔고 국수제조업(별표국수)으로 성장가도를 달렸다. 李 회장은 48년 11월 활동무대를 서울로 옮겼다. 상호도 삼성물산공사로 바꿨다. 2년만에 면사수입 등으로 당시 서울의 유명 100사 중 9위에 오르는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그러다 6·25전쟁을 맞았다. 부산에서 삼성물산을 설립,전쟁의 와중에서도 생필품을 들여다 팔았다. 53년엔 제당(製糖)사업에도 뛰어들었다. 1년만에 설비를늘려야 했다. 54년엔 제일모직을 세웠다. 당시 양복지다운 양복지가 없어 ‘마카오 신사’라는 말이 유행했을 때. 영국제 양복 한벌 값이 봉급생활자 석달치 월급(6만환)이던 데 비해 제일모직은 1만2,000환에 팔았다. 삼성은 물산과 제일제당 제일모직 등 3사를 주축으로 급속성장을 계속했다. 李秉喆 회장은 64년 ‘야심작’ 한국비료를 설립한다. 당시 세계 최대의 요소비료 공장(33만). 그러나 한비는 공정률 80%를 보이다 67년 10월에 국가에 헌납된다. 사카린원료로도 사용되는 비료생산원료(OTSA)가 유출됨으로써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비화됐던 것. 삼성은 당시 한비지분을 요구한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하나 어쨌든 이 사건으로 그룹이 존폐위기로 몰려 헌납해야 했다(삼성은 이후 94년 7월 한비공개입찰에 참여,한비를 인수한 뒤 삼성정밀화학으로 개명한다). 80년대 들어서는 첨단산업 투자를 서둘렀다. 반도체에 뛰어든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83년에 발표된 64KD램의 개발성공은 한국의 과학기술이 선진대열에 들어었음을 알린 쾌거였다. 李秉喆 회장은 한국경제사에 큰 발자국을 남기고 87년 11월 19일 타계했다. 88년 李健熙 회장 체제가 출범했다. 94년 세계 최초로 256MD램 반도체 칩을 개발한 데 이어 96년에는 또 다시 세계 최초로 1기가 D램을 개발했다. 순풍에 돛을 단 삼성전자는 95년 2조5,054억원라는 사상 최대의 이익을 냈다. 삼성은 지금 매출·자산 80조에 61개 계열사,16만7,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재계 1위그룹으로 서 있다. ◎인재 제일주의/학력 철폐… 능력주의 지향/첨단시대 개성·창조 강조 한솔 신세계 제일제당 등 위성그룹들을 독립시키고도 부동(不動)의 1위를 지키는 삼성의 저력은 어디서 나올까. 무엇보다 창업자인 ‘거상 李秉喆’의 족적이 워낙 크다 하겠다. 비서실을 통한 특유의 공세적 경영이나 ‘품질은 타협이나 양보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철저한 질(質)경영도 한몫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늘의 삼성이 있기까지는 인재 제일주의가 있었다. 일찍이 최고 경영자가 인재중용에 눈을 떠 삼성은 57년 국내 그룹으로는 처음 신입사원을 공채했다. 宋世昌 전 삼성항공 사장 등 27명이 그들이다. 신입사원들은 입사 1년간 부서배치를 받지 않고 몸으로 때우는 일부터 배웠다. 호텔같으면 주차관리,에버랜드라면 공원 대청소가 신입사원 몫이었다. 李健熙 회장 체제에서는 학력까지 철폐하는 철저한 능력주의를 고집했다. 치밀하고 밀도높은 교육때문에 ‘인재조련’에 비유됐다. “개성시대,창조시대에는 끼있고 개성이 강한 사람의 신바람과 기를 살려야 한다” 삼성이 겨냥하는 인재는 컴퓨터업계의 빌 게이츠나 영화계의 스필버그,패션계의 베르사체와 같은 이른바 골드컬러(Gold Color). 첨단·정보시대에서 기업의 경쟁력은 화이트(White)컬러도,블루(Blue)컬러도 아닌 골드컬러에 달렸다는 게 李 회장의 지론이다. 신(新)인재 상은 박세리에게서 입증됐다. 골프에 대한 李 회장의 각별한 애정 탓도 있지만 삼성은 박세리라는 싹을 찾아내 ‘초일류 벤처기업’으로 키워냈다. 인재를 보는 안목과 초일류를 키워낼 수 있는 노하우의 합작품이었던 것이다. ◎계열사 및 생산제품 ▷전자소그룹◁ ▲삼성전자­반도체, 가전제품, 기타전자제품 ▲삼성전관­LCD, 디스플레이 ▲삼성전기­전자품목 ▲삼성코닝­TV 및 모니터 브라운관용 유리, LCD유리 ▲삼성SDS­시스템통합, 정보통신 ▲한국휴렛팩커드­컴퓨터, 컴퓨터 주변기기 ▲삼성 GE의료기기­MRI, CT, 기타 의료기기 ▷기계소그룹◁ ▲삼성중공업­기계, 조선플랜트, 중장비, 건설 ▲삼성항공­항공기, 카메라 ▲삼성시계­시계 ▷화학소그룹◁ ▲삼성종합화학­에틸렌, 플로틸렌, 부타디엔, 복합수지 ▲삼성정밀화학­메틸아민, DMF, 말로네이트, 화공기기, 환경설비 ▲삼성BP화학­초산, 비닐초산 ▲삼성석유화학­PTA ▷금융소그룹◁ ▲삼성생명­그린행복연금보험, 홈닥터플러스보험, 슈퍼무지개보험, 허니문설계보험 ▲삼성화재­화재보험, 해상보험, 자동차보험, 상해보험, 연금보험, 해외여행자보험 ▲삼성카드­일시불/할부/현금서비스, 카드론(대출), 할부금융, 통신판매, 보험 ▲삼성증권­주식/채권 매매, 증권저축, BMF, RP, CD, 수익증권 ▷자동차소그룹◁ ▲삼성자동차­자동차 생산 및 판매 ▲삼성상용차­상용차 ▷독립회사군◁ ▲삼성물산­무역, 건설, 자동차 판매, 유통, 의류 생산/판매 ▲제일모직­소모사, 방모사, 울, 소보복지, 방모복지, 카펫, 여성/남성의류 ▲삼성에버랜드­리조트개발/운영, 골프장, 운영사업, 빌딩관리, 컨설팅/에너지사업, 식음사업 ▲삼성엔지니어링­석유화학 플랜트, 정유/가스플랜트, 산업공장/환경오염 등의 엔지니어링 ▲신라호텔­서비스, 컨설팅, 레포츠 사업 ▲중앙일보­일간지, 출판 ▲제일기획­광고기획, 제작, 조사, 마케팅, SP, PR, 디스플레이 이벤트, CI ▲에스원­로컬 경비시스템 및 전자 경비 시스템, 감시 시스템 ▲삼성영상사업단­영상, 영화 ▲삼성의료원­서울병원, 강북병원, 마산병원, 생명과학연구소 ▲삼성문화재단­호암미술관, 호암갤러리, 삼성미술관, 삼성어린이 박물관 ▲삼성복지재단­효행상, 어린이집 건립운영, 소년소녀 가장 돕기 ▲삼성경제연구소­연구, 교육 ▲삼성종합기술원­정보처리, 첨단기술개발 ▲삼성라이온즈­프로야구▷기타 유관 기관◁ ▲인력개발원­연수, 교육 ▲삼성경영기술대학­기술교육 ▲삼성패션연구소­패션 디자인 여구 ▲IDS­디자인 교육, 연구 ▲호암재단­호암상, 청년논문상
  • 무용평론가 李丙姙(이세기의 인물탐구:178)

    ◎백조의 나래접고 무대비평 30년/애정어린 패러독스로 무용계 ‘미운오리’/평론 1,000여편… 시들지 않는 필력 자랑/1年 3∼4회 태평양 넘나들며 세계화 앞장 ‘너희 중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했을때 무리 중 아무도 여자에게 돌을 던진 사람은 없었다. 60∼70년대를 거쳐 무용계를 독주하면서 악명을 떨치던 무용평론가 李丙姙. 아마도 그의 이름을 들으면 지금도 손사래를 흔드는 이가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투적으로 사고하지 않고 사물의 핵심을 투철하게 꿰뚫는 이병임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그의 정의를 그리워하는 사람이다. 당시 한국예술분야 중 무용은 가장 뒤떨어진 분야로 치부되어 음악과 무용을 평론하는 원로 박용구씨마저 ‘평론할만한 의욕을 일깨워주는 무용공연이 없어서’ 무용평론에서 손떼게 되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비평에 생소한 무용계와 그와의 사이는 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었으며 그의 평론활동은 시작부터가 우여곡절의 반복이었다. 지난 75년 ‘한국문학’지에 실린 수필에 보면 그는 “나는 무용계의 생태같은것은 전혀 감안하지 않고 젊은 혈기만으로 기성세대에 항거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나의 당돌함은 무용계에 커다란 파문을 던졌다”고 쓰고있다. 예절과 겸허가 없는 그의 패기는 무례로 간주되었으며 종횡무진의 이 맹랑한 문제아 출현에 논리부재의 무용계는 긴장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마침내 전국무용협회 회원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었고 한동안 ‘바위밑에서 영원히 사멸되는듯이’ 보였으나 사나운 파도속에 휩쓸리면서도 끝내 가라앉지 않았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는 저력을 보였다. 그렇다면 그의 어떤 점이 비난받아 마땅한가. ○“창작력 없는 춤에 분노” 예를들어 그는 남들이 숨도 크게 쉬지 못하는 한 원로의 춤을 보고 “지금이 어느 때인데 전통도 제대로 답습하지 못한 저런 춤을 추느냐. 창작력이 없이 추는 춤은 부끄러움에 앞서 분노가 느껴진다”고 비난했다. 지난 74년 문공부가 주최한 한국무용용어 통일위원회에 한 중견 무용인이 위원으로 입회를 희망할때도 ‘실력이 없다’는 이유로 노골적으로 거부하는가하면 국립무용단 창단때는 “왜 기라성같은 스타들이 많은데 권력있는 자가 국립산하에 들어오려고 하느냐”고 한 특정인을 가리켜 몰아붙이기도 했다. 더이상 분노를 참을수 없는 무용계는 ‘곡필(曲筆) 평론가’‘소피스트케이션’을 내용으로한 투서와 전화로 신문사에 그의 평문을 싣지 말것을 종용하기에 이르렀고 이때 한 신문은 “집단이 한 개인을 놓고 매도하는 것은 부당하다. 최근 평론가는 있고 창작이 없는 상황에서 이병임은 그들에게 위협적인 존재일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평론을 쓸때마다 ‘코피가 터지고 옷이 찢어지는’ 만신창이가 되면서도 그는 ‘논쟁은 대화’이며 ‘무용에 대한 애정’임을 매몰차게 강변했다. 협회에 사과하는 선에서 이 사건을 중재하려 했으나 그는 “사실을 말한것뿐이다. 절대로 굽힐수 없다”고 머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다녔다. 온갖 비난의 화살이 빗발치는 속에서 앙칼지게 일어서려는 그의 ‘용기’를 가상히 여긴 碧史 한영숙씨는 “우리 무용계에도 재인(才人)이 있다”고 그를 두둔했고 연극 ‘햄릿’의 연출가이며 예총회장이던 고 이해랑씨는 “날카로운 필봉을 완강하게 견제하려는 세력때문에 그의 카리스마와 패러독스는 계속될수 없었으나 매너리즘에 허덕이던 무용계에 활기와 자극을 준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우리 무용계 才人’ 높이 평가 이병임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서울 종로구 서린동에서 태어나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 상임이사를 지낸 李命九씨와 白世鉉씨의 6남2녀중 둘째. 신교육을 받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학교보다는 연극과 무용공연에 따라다니거나 비를 맞고 거리를 방황하면서 ‘최승희같은 무용가’가 될것을 꿈꾸기도 했다. 이화여대 입학후 김보남 김천흥 한영숙을 사사, 졸업후 부모의 강요로 60년에 결혼, 2년만에 남편과 헤어져 68년 조흥동 개인발표회 무용평을 쓰면서 평단에 데뷔했다. 서울에서만 600여편, 지금까지 1,000여편을 발표하고 있다. 미국에 가서 그는 영국의 무용평론가 리처드 버클이 영국의 유력지 더 타임스에 ‘니진스키 평전’을 기고한 것을 보고 스승인 벽사등 원로무용가의 평전에 손대기 시작했고 지난 88년 LA타임스에 국립무용단 미주공연평을 비롯, ‘한국의 멋’을 기고하기도 했다. 미주 한국무용협회 발족에 이어 85년 미주 예총 창립, 미주 무용단을 이끌고 한국전통문화연구원이 주최하는 고궁 공연에 참가하는가 하면 격년으로 고국의 인간문재인 김천흥 한영숙 이매방 강선영씨와 육완순 김말애 박명숙등을 미국에 초청,공연을 갖기도 한다. 특히 100만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문화단체로 성장한 미주 예총이 있기까지는 ‘언제나 공격적인 이미지’와 ‘마치 투쟁이나 하듯이 굴하지 않는 용기와 진취성’으로 그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우리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역설한 결과다. 그의 대학선배이자 오랜 무용의 동반자인 현대무용가 육완순씨는 “그의 정의감과 무용이 성장할수 있게 뼈아픈 조언을 해온것은 사실”이라고 조언한다. 자녀는 USC에서 연극을 전공한 아들 김정구씨와 UCLA를 나온 화가 딸 유나씨가 있다. ○민주한인사회에 긍지 심어 누가 뭐래도 그는 한때 ‘이병임시대’를 독주한 여류다. 여전히 시들지 않은 가시돋친 장미꽃같은 필력을 지키고있으나 이제는 상대방의 가슴에 못을 박는 비평이 아니라 말속에 뼈를 감춘 담예논도(談藝論道)로 무용계의 발전을 모색하는 문제제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무용과 함께 한평생을 살아왔고 ‘미주 한인사회에 우리 예술의 긍지를 심어준 공로가 지대하다’는 점에서 혼자 외롭게 투쟁하는 그에게 조국이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무용계는 말하게 되었다. 쉴새없이 움직이면서 살아있는 흔적을 그때마다 확고히 남기는 그는 더이상 소피스트케이션이나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다. 우리 무용의 확대와 세계화에 앞장서기 위해 한해에도 서너차례씩 태평양을 넘나들면서 민간 사절의 몫을 해내는 역동적인 메신저로 높이 발돋움하고 있을 뿐이다. □그의 길 1936년 서울 서린동 출생 1958년 이대 체육과 졸업 1958­64년 풍문여고 교사 1968년부터 무용평론 활동 1968­74년 한양대강사및 전임강사·이대대학원강사 1973년 대한무용학회창립,상임이사 1975년 세계무용가회의 참가 1981년 도미 1983년 미주 한국무용협회창립 1985년 미주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미주예총) 창립및 부회장 1985년부터 인간문화재 미주초청 1986년 이병임 자전적 무용공연 1988년 진달래어린이무용단 창단 1989­현재 미주 예총회장 1989년 88올림픽1주년기념 세계 한민족예술제미주예술단 예술감독, MBC주최 이산가족찾기운동예술제 참가 1991·98년 우리춤보존회 회장 1993년 대전엑스포 전야제 참가 1994·98년 LA한인회 자문위원 1997­현재 민주평통 고문 1997년 한국전통문화연구원초청 ‘한국전통문화예술제’ 예술감독 1998년 국립민속박물관공연 참가 LA시장 감사패(87·88·91·92·95년) 서울시 주최 ‘세계를 빛낸 한국인’ 선정(95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감사패(91·92·95·96년) LA시의회의장 감사패(92·94·97년) ‘한국무용교육의 재검토’‘해방30년 한국 현대무용의 정리’‘전통문화의 올바른 정립’등 다수
  • ‘한국적 가치’對 ‘글로벌 가치’/宋一 한국외국어대 교수(기고)

    지난해 태국의 바트화 폭락을 예광탄으로 아시아 경제가 천국에서 지옥으로 추락한 이후 그 원인을 아시아의 내부 모순에서 찾는 주장과 외부적 충격에서 찾는 주장이 팽팽히 이어지고 있다.결국 ‘부패하고 시대착오적인 아시아적 가치냐’,‘폭력적이고 패권 지향적인 글로벌 가치냐’의 논쟁으로 압축된다. 아시아의 내부적 결함에서 원인을 구하는 주장부터 살펴보면,관주도형 성장모델이 가격 메커니즘을 질식시켰다는 ‘성장모델 무용론’을 비롯해 기술의 첨단화에 따라 노동집약형 압축성장의 토양이 사라졌다는 ‘환경변화설’등 다양하다. 특히 ‘유교자본주의 비판론’은 유교적 공동체 가치관이 경쟁원리를 압살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사회제도 결함설’은 비합리적인 사회제도적 관행,특히 정치와 경제 발전간의 괴리가 그 원인이란 설이다.DJ의 ‘민주적 시장경제론’도 이 부류에 접근해 있다. 94년 아시아 성장의 침체를 예언한 폴 크루그만의 ‘생산함수설’은 아시아 성장이 기술 향상을 수반하지 않은 생산요소의 단순 투입증가에 불과하다는분석을 논리로 삼는다.그러나 그는 아시아 경제의 추락은 환란(換亂)에 기인한 것으로 그의 예언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시인한 바 있다. ○亞 경제추락 원인 진단 ‘과잉투자설’은 아시아의 수출주도형 산업구조가 과잉투자와 과당경쟁을 유발,유한한 구미(歐美) 시장을 놓고 자멸했다고 주장한다.그밖에 아시아 성장을 견인해온 일본의 침체가 아시아를 침체시킨다는 ‘일본 침체설’,여기에 중국의 고도성장이 아시아 여타 국가의 잠재력을 잠식했다는 ‘중국위협설’ 등이 가세하고 있다. 아시아 경제의 추락이 글로벌 충격 때문이라는 주장으로는 고유의 국내 시스템과 강요된 글로벌 시스템의 갈등 때문이라는 ‘신패권주의설’이 대표적이다.그리고 월가(街)의 작전세력에 의해 아시아의 아킬레스건(腱)인 금융시장이 차례로 공격당하고 있다는 ‘미국음모설’,달러 전횡의 국제금융 체제의 모순에서 원인을 찾는 ‘통화딜레마설’,외환파동→환율폭락→주가폭락→다국적기업 무혈입성의 수순을 밟는다는 ‘신제국주의설’ 등이 이러한 범주에 속한다. ○설익은 한국적가치 비하 이상의 주장들은 아시아 사태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시각과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개별적으로는 불완전하지만 각종의 설을 종합해 보면 아시아 위기의 총체적 조감이 가능해 보인다.‘나무’와 ‘숲’을 함께 볼 수 있는 IMF 사태의 균형적 해독(解讀)은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자리매김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위기대응 방식을 보면 ‘한국적 가치’에 대한 부정 일변도의 회의주의가 지나치게 만연되고 있으며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이름 아래 자학적 패배주의가 무책임하게 조장된다. 예컨대,미국의 일개 사설 컨설턴트의 설익은 ‘한국적 가치’의 비하(卑下)나 이들의 어설픈 글로벌 훈수가 마치 절대적 가치인 양 여과 없이 보도되면서 여론이 호도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뼈아픈 반성과 체질 전환을 위한 뼈를 깎는 고통은 IMF를 살아가는 국민 모두의 업보이며 부활을 위한 역사의 십자가인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게 된 모든 죄를 우리가 덮어쓰는 것은 사초(史草)를 잘못 기록하는 역사적 과오다. 그동안의 한국의 기적은 서구의 계량적 이론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불가사의한 한국적 에너지였으며,그것은 우리의 역사책 속에서 한번도 꺼진 적이 없는 성역의 불꽃이다.지금도 우리 경제의 속살 깊은 곳에는 온 몸이 썩어도 죽어서 수없이 새 살을 돋아낼 한 알의 밀알같은 ‘한국적 세포’가 생동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 “성추문 회오리 벗어나자”/클린턴 양동작전

    ◎비디오 증언 CCTV 중계로 온갖 풍문 차단/美·日 정상회담 등으로 국내외 지지 높이기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거세게 밀어닥치고 있는 성추문 회오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이다. 국민의 지지도를 유심히 지켜 보아온 클린턴이 한편으로는 정면 돌파작전으로 성추문 공격을 방어하는 한편 다른 쪽로는 적극적으로 국민적 지지를 끌어 올리는 양동작전을 구상하고 있다. 17일 백악관에서 하기로 했던 연방 대배심에 대해 증언이 예정대로 비디오 테이프는 물론 폐쇄회로 TV로도 생중계되도록 했다. 증언이 진행되는 동안 연방 지법 배심원들은 검사를 통해 클린턴 대통령에게 질문할 기회를 갖게 하려는 것이다. 클린턴은 이와 함께 기자들과 만나 17일의 증언에서 ‘정직하게 대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미국 국민들에 대해 모든 것으로 이실직고하여 더이상의 갖가지 풍문을 차단시키고 나아가 양해를 얻어 내겠다는 적극적인 전략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최근 뉴스위크지의 여론조사 등에서 보여주듯 성추문이나 위증이 사실로 밝혀지더라도 탄핵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60%을 웃돌 만큼 압도적이라는 데서 자신감을 얻은 듯 보인다. 클린턴의 정면 돌파의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국내에서의 ‘방어작전’과 함께 대외적으로는 이미지 제고작전을 마련했다. 때마침 일본의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가 전화를 걸어 오자 즉석에서 정상회담을 제의해 약속을 받아냈다. 오부치 총리가 유엔 총회에 참석하는 9월21일 정상회담을 갖기로 했다. 막연히 예정되어 있던 정상회담의 날짜를 확정한 데 이어 일본을 비롯한 최근 아시아 경제위기를 논의할 것이라는 점에서 미국민들의 지대한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국민의 지지여론을 등에 업고 클린턴이 시도하는 성추문 벗어나기 양동작전은 시작부터 절반 이상의 성공을 보장받고 있는 셈이다.
  • 어?/한여름에 소주 불티/불황이 술맛 바꿨나

    ◎작년比 31% 늘어 이례적/맥주외면 값싼독주 선호 홧술엔 소주가 적격? 한여름 소주 판매량이 이상 급증현상을 보이고 있다. 유독 소주만이다. 날씨가 더워지면 맥주 판매가 늘고 소주 판매는 줄어들던 예년과는 딴판이다. 올해엔 오히려 맥주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턱 없이 줄었다. 지난 6월 이후 진로·두산경월 등 10대 업체들의 소주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1.2%나 늘었다. 소주 업체들은 각종 이벤트 행사를 기획하는 등 뜻밖의 호기를 지속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업계에서는 일자리를 잃었거나,잃을까봐 불안해 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소주에 시름을 달래려는 사람이 늘어난 탓으로 분석한다. 이들 외 직장을 가진 사람들도 전보다 소주를 즐겨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질 소득 감소 탓이다.이전에도 소득이 감소하면 소주가 잘 팔렸다.
  • 金正吉 행자부장관 고향 간 까닭은

    ◎‘PK 푸대접론’ 오해 풀고 대통령 방문 앞둔 정지작업 金正吉 행정자치부 장관이 3일 동안의 PK(부산·경남·울산)지역 순방을 마치고 31일 서울로 돌아왔다. 金장관은 사회 및 치안,그리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긴밀한 협력을 책임지고 있는 장관으로서 강도높은 일정을 소화했다.첫 순방지인 울산에서는 29일 상공회의소를 찾아 현대자동차의 정리해고 방침에 따른 노사갈등의 실상을 파악했다.부산으로 자리를 옮긴 30일에는 해운대 여름경찰서의 근무 상황을 점검했다.31일에는 부산진시장을 찾아 재래시장의 소방시설을 확인하는 한편 시장상인들로 부터 경기와 물가동향을 직접 들었다. 또 沈完求 울산시장과 安相英 부산시장,金爀珪 경남지사를 비롯해 각 지역의 기관 및 단체장들을 차례로 만나 지역현황과 건의를 들은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金장관의 이번 PK지역 순방은 그가 이 지역 출신으로는 현정부의 유일한 각료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던 것도 사실이다.실제로 金장관의 참모들은 이번 순방이 8월 초순으로 예정된 金大中 대통령의 이지역 방문을 앞두고 민심을 추스리고,지역정서를 파악해 청와대에 전달하는 정지 작업의 성격이 있다는 것을 감추지 않았다. 이를 반영하듯 金장관은 경제상황이 전국에서 최악을 달리는 데다 정부로부터 홀대받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한 부산에서 구미­포항­울산­부산­창원­거제를 잇는 ‘동남산업벨트’구상을 밝히는 등 지역균형개발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알리는 데 전력투구했다. 신호공단과 가덕도 신항만 건설현장,컨테이너 부두공단을 방문한 것도 정부가 지원을 계속할 것임을 행동으로 보여준 대목이다.사장에서 평기자까지 지역언론인들과 잇따라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는 “IMF긴축예산으로 광주에가도 예산문제로 불평을 하는 상황에서 ‘부산죽이기’니 ‘부산홀대’니 하는 것은 오해”라며 설득하기도 했다. 한편 金장관은 이번 순방에서 3일 동안 줄곳 수행원들과 함께 미니버스를 이용함으로서 지방순시 문화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 연극연출가 孫振策(이세기의 인물탐구:177)

    ◎‘전통의 창조적 파괴’ 마당극 지킴이/“지금 우리의 삶 즐겁게” 마당정신 올곧이/‘서울말뚝이’ ‘오장군…’ 등 숱한 화제작 양산/우리 연극의 세계화 끊임없는 연구·정진 동양철학의 태두로 일컬어지는 도올 김용옥 박사는 연극연출가 孫振策을 향해 ‘항상 공부하는 손진책이 불후의 명작을 만들고야 말 것은 믿어 의심할 바 없다’고 단언해왔다. 한국학과 관련하여 지금까지도 친밀한 교분을 잇고 있는 도올은 지난 86년 손진책이 자신의 극단을 창단할 때 극단 이름‘미추(美醜)’를 지어주었다. 큰 ‘대(大)’위에 양(羊)을 쓰는 미(美)자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양’,추(醜)역시 ‘술병을 놓고 춤춘다’는 ‘제의식과 놀이’의 의미가 함축되어 이름에서부터 흥겨운 마당놀이가 물씬 풍겨나는 분위기다. 창단 선언문에서 손진책은 ‘마당은 인간의 보편성을 전제로 한 우리 고유의 삶의 양식이자 주객이 일체가 되는 영원한 역동성, 인습을 타파하는 새로운 전통’이라고 역설했다. 따라서 미추의 연극정신은 ‘마당정신’이며 ‘마당’이란 시간적으로 ‘지금’,공간적으로는 ‘여기’, 즉 지금 이곳에 살고있는 우리의 삶을 보다 적극적으로 ‘즐겁게’ 유도한다는 의지다. 예를 들어 현대극에다 우리 가락과 몸짓을 집어넣고 고전과 현대, 서양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을 접목하여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닌,인간다운 삶을 엮어내기 위해 전통을 창작적으로 해체하는 작업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명제아래 전통에 바탕을 두지않고는 우리 문화가 세계무대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그는 ‘전통의 창조적 파괴’에 끈질기게 천착해온 셈이다. 그래서 소재도 시대의 아픔을 정면에 내세우면서도 그 바탕에는 언제나 우리의 한맺힌 소리와 흥청의 몸짓이 곁들여진다. 그의 공연양식에 대해 연극계 일각에서는 ‘전통의 왜곡’이라고 공격하는 이들도 있지만 ‘치열한 자기개혁으로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전통’이 그가 고집하는 이상적인 영역이다. ○극단명 ‘미추’,김용옥이 지어 초기엔 극단 산하의 연출부에서 수습시절을 보내다가 73년 원로연출가 허규씨를 만나 극단 민예를창단,다음해 ‘서울 말뚝이’를 첫 연출로 그는 ‘배비장전’‘꼭두각시 놀음’‘한네의 승천’‘허생전’등 일련의 전통극의 현대화로 자신의 연극세계를 확고하게 구축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80년 MBC 후원으로 ‘마당놀이’를 시작했을 때도 멍석을 깔고 탈춤을 추는 복고풍에 그치지 않고 일상적인 삶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 땅 이 광장에서 형식과 고정관념의 틀을 깬 오늘의 춤, 오늘의 문제에 집요하게 파고들어 발전을 모색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지킴이’‘오장군의 발톱’‘신이국기(新二國記)’‘영웅만들기’‘시간의 그림자’‘남사당의 하늘’등이 그 예이며 이러한 민족적 기상을 살린 연극으로 북유럽과 러시아 동남아 미국등 해외무대에 진출, 그때마다 흥행이나 작품성에서 호평을 받았을뿐 아니라 해마다 중요 연극상을 휩쓸기도 했다. ○민족연극 해외서 더 호평 그동안 90여편의 작품을 만들면서 그는 작품의 ‘완성도’에 치중하여 1년에 한 작품만을 고집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신념은 ‘문화는 흐르는 물과도 같아서 들어오는 것을막을 수도 없고 또는 수세적인 자세도 문화발전에 도움이 안된다’는 주의다. 국내는 물론 바깥으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무엇을 내놔야 부끄럽지 않은 경쟁력을 지니면서 이겨낼 수 있을까를 연구하여 연극의 문학성과 해학성, 예술성을 치밀하게 복합시키기도 한다. 관객은 물론 그의 작품을 신뢰하게 되고 그가 연출한 어떤 작품을 보아도 실망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손진책은 언제봐도 변하지 않는 미청년의 모습이다. 천재성을 번뜩이지도 않고 난삽한 논쟁에 휘말리지도 않는다. 조용한 편이지만 자신의 입지를 밝히기위해선 노력과 정열을 아끼지 않고 눈앞의 현실을 직시한다. 경북 영주에서 사업을 하던 孫秉吳씨와 黃鳳漢씨의 8남매중 넷째이자 장남, 위로 누나셋중 큰누나인 손정숙은 서양화가이고 셋째누나인 손봉숙은 한국정치연구소장이다. 서울에서 대광고에 다닐 때는 연극무대가 있는 명동에 드나들었고 한 때는 클래식음악, 다시 그림그리기에 몰두하다가 아서 밀러에 심취하면서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연극의 길로들어섰다. 대학시절에는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전국을 누비면서 남사당의 마지막 꼭두패인 남운용옹을 비롯 동해안 별신굿의 김영달,한국 가면연구회의 이근성씨등 전통연희의 장인들을 만나 봉산탈춤과 양주별산대를 전수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가족은 75년 극단 민예시절에 연출자와 연기자 사이로 만난 金星女와의 사이에 남매. 김성녀는 창과 춤솜씨가 뛰어난 중견배우다. 배고프고 외롭던 연극초창기에 그는 극단 민예의 아현동과 이대앞 대현동 시절을 거쳤고 지난 90년이후 장흥부근인 경기도 양주군 백석에 그의 오랜 염원이던 300석규모의 ‘미추산장’을 개관했다. 아무의 제재도 받지 않는 자신의 연극을 만들면서 연극 워크숍과 공연은 물론 연극학교도 열 계획이다. 그와 예술적 교감을 형성하고 있는 국악작곡가 박범훈은 ‘손진책은 가무악(歌舞樂)이 함께하는 우리 토착예술의 정수를 아는 사람’이며 만약 고향 영주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면 아마도 농토를 지키는 멋진 지킴이가 됐을 거라고 조언한다. ○전통연회 장인들에 전수 그의 연극은 처음부터 뚜렷한 목표가 있었고 그 목표를 향해 줄기차게 질주해 왔으며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해도 일목요연한 발전만으로 모든 파란은 침몰된 상태다. 그가 얼마나 학구파인가는 그가 연습실을 옮길 때마다 가지고 다니던 수천여권의 연극대본과 연극학 한국학 국악 철학관련 서적들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우리 사회에서 연극을 한다는 것은 성직자와 같은 각오없이는 도달할 수 없는 험로(險路)다. 그러나 도올의 단언대로 그는 ‘남사당의 하늘’‘시간의 그림자’같은 주옥편을 탄생시켰고 이제는 사방이 확 트인 자연속에서 불멸(不滅)의 명작을 잉태하기 위한 흥과 정취,긴 신명을 도저하게 펼쳐나가게 될 것이다. ◎그의 길 ▲1947년 경북 영주출생 ▲1970년 서라벌예대 연극과 졸업 ▲1967년 극단 산하 연출부입단 ▲1973년 극단 민예극장 창단동인 ▲1974년 ‘서울말뚝이’ 연출데뷔 ▲1881­현재 마당놀이 ‘허생전’‘‘이춘풍전’등 서울및 지방공연중 ▲1982년 런던로열셰익스피어극단연수 1982­86년 극단민예극장 대표▲1986년 극단 미추창단대표, 국제극예술협회(ITI)한국본부이사 ▲1987년 극단 미추창단기념공연 ‘지킴이’연출, 국악관현악단 지도위원 ▲1989년 ‘심청전’ 유고공연 ▲1990년 ‘아리랑’ 소련순회공연 ▲1992년 태평양국제연극제 참가 ▲1993­현재 LG복지재단주최 전국고교순회 마당극 ‘이춘풍전’등 공연 ▲1994­현재 국제극예술협회한국본부 부회장, ‘심청전’ 미국순회공연 ▲1995년 ‘춘향전’ 미국순회공연 ▲1996년 오늘의 작가전­최인훈 연극제 및 베세토국제연극제 ‘봄이 오면 산에 들에’참가 ▲1997년 세계연극제 국내공식초청작 ‘오장군의 발톱’공연 참가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신인연출상(75년) 한국백상예술대상 작품상(86년) 서울연극제연출상(87년) 예술평론가제정 ‘최우수예술가’선정(87년) 한국백상예술대상 대상·작품상·연출상(88·89·91·93년)
  • 수하르토 하야 이후 印尼/더딘 개혁속도… 머나먼 새시대

    인도네시아가 갖가지 개혁정책으로 새시대를 여느라 안간힘이다. 수하르토 전 대통령이 하야한 때는 지난 5월21일. 32년간 깊숙이 뿌리 내린 철권통치의 청산작업이 쉽지가 않다. 인적 청산작업을 시작으로 갖가지 개혁정책을 펴고 있지만 구체제에서 혜택을 누려온 기득권층의 반발과 집단이기주의가 행보의 발목을 잡고 있다. 게다가 극심한 경제난과 소수 종족들의 분리독립 요구로 국론마저 갈리고 있다. 개혁의 새시대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현주소를 점검해본다. ◎인적청산/수하르토 일가 ‘퇴출’ 불구 기득권층 입김 여전 인도네시아의 개혁은 수하르토 전 대통령 주변 사람들을 역사의 전면에서 퇴출시키는 데서 시작되고 있다. 수하르토의 32년 철권정치를 떠받치고 때로는 선도해온 그들이 개혁시대에는 더 이상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 곳곳에 어두운 그림자를 짙게 드리웠고 국가사회의 발전보다는 집단이나 개인의 이익을 앞세웠다는 비판을 받아온 그들이기도 했다. 하비비 대통령은 최근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사위이기도 한 프라보워 수비안토 중장을 군법회의에 회부할 뜻을 내비쳤다. 32년 철권정치 동안 행방 불명된 14명의 민주 인사들의 실종사건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프라보워 중장은 한때 최정예 부대를 이끌며 수하르토의 철권정치를 뒷받침해준 핵심 인물. 그에 대한 단죄는 잘못된 과거에 대한 인적 청산의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집권 골카르당도 변신을 위한 몸부림을 시도하고 있다. 22일에는 국민협의회(의회) 의원직을 가지고 있는 7명의 수하르토 일가의 의원직을 박탈하기로 했다. 과거 정권과의 단절을 실천하겠다는 것이다. 수하르토의 자녀 6명 중 4명을 비롯해 의붓형제,사촌과 며느리 등이 국민협의회 의원이다. 벌써 지난 11일에 아크바르 탄중 국무장관이 새 총재로 선출되면서 수하르토와의 결별은 감지됐다. 총재 경선에서 수하르토를 등에 업은 에디 수스드라자트 후보를 낙선시키는 ‘작은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새시대를 갈망하는 국민들의 입장에선 인적 청산의 폭과 속도가 미흡하기만 하다. 인권단체인 법률구조협회의 한 실무 책임자는 “집권자의 얼굴만 바뀌었을 뿐 기반(개혁 주체)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어쩌면 하비비 정권의 태생적 한계일지도 모른다. 사실 하비비 대통령과 위란토 국방장관 등 현정부의 주요인사 중 주류는 수하르토의 그늘 밑에서 성장한 인물들이다. 집권당의 신임 사무총장에 군 관계자가 임명되는 등 아직도 군부의 입김은 막강하다. ◎물적청산/수하르토 일가 재산 단계적 환수/긍정평가속 “조금 더 지켜봐야” 수하르토 일가의 재산환수 문제는 인도네시아의 개혁 성공여부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수하르토가 장기 집권하는 동안 그의 가족들이 각종 특혜와 족벌경영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척,국민들의 공분(公憤)을 사고 있는 탓이다. 현재 수하르토 일가의 재산은 국부(國富)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택시회사에서 첨단 정보통신업체에 이르기까지 문어발식 경영으로 끌어 모은 수하르토 일가의 총재산은 무려 460억달러. 인도네시아가 당면한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로부터 지원받게 될 구제금융 403억달러를 웃도는 액수다. 새 정부는 수하르토 일가에 대해 일련의 단계적인 청산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들이 누려오던 은행대출 특혜와 독점 판매권,단독 계약 등 각종 특혜를 없애는 한편 이들이 기업 경영에서 손을 떼게 했다.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당연하다는 인식과 함께 일부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새 정부의 개혁적 조치들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수하르토의 장남 시지트와 차남 밤방이 지분을 갖고 있는 인도네시아 최대 민간은행 BCA가 파산했다. 자카르타시에 있던 3남 후토모 소유의 빌딩 두채는 건축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국유화됐다. 앞으로 수하르토 일가가 경영하는 기업에 대한 정부의 갖가지 특혜가 사라질 것이고 이들 일가의 기업들이 속속 구조조정의 길을 걷게 될 것 같다. ◎풀어야 할 과제/분리독립 요구 등 국론분열 양상/경제회생에 국가역량 결집 필요 개혁을 서두르는 인도네시아 새 정부의 갈 길은 아직 멀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개발 독재가낳은 최악의 경제난에다 소수 종족들의 분립독립 움직임이 개혁의 발걸음을 붙들어 맨다. 최근 경제는 새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극심한 수출 부진에다 무역외 수지마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해 520만명이 찾아와 66억달러의 수입을 올렸던 관광산업마저 바닥을 헤매고 있다. 올 들어서만 물가가 두배 가까이 올랐다. 연말이면 실업자가 전체 인구의 10%인 2,0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날로 가중되는 경제난은 빈곤층을 확대시켜 사회안정 기반마저 위험수준으로 몰아간다. 이달 들어 동(東)자바와 자카르타 교외에서는 폭도들이 중국계 상점과 농장,새우 양식장들을 습격해 강탈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군 당국이 약탈자 무조건 발포령을 내릴 정도로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여기에다 동(東)티모르와 이리안 자야 등에서는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집회와 시위가 끊이질 않는다. 경제발전에 국력을 집결시켜야 할 판에 국론이 분열되고 사회 통합이 훼손되면서 개혁의 불씨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이들 지역의 분리독립 욕구를 효과적으로 제어하지 못한다면 다양한 종교의 400여 종족으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는 자칫 큰 위기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경제난과 소수 종족들의 요구 충족이 당장의 과제인 셈이다. ◎누가 이끄나/하비비­수하르토 대리인… 개혁 이행 한계/위란토­군부 실세… 위로부터의 개혁 주도/라이스­회교지도자… 인적·물적 청산 요구 ■하비비 대통령(61)=당초 수하르토의 충실한 대리인으로 분류되며 개혁에 소극적인 인물로 투영됐다. 그러나 예상보다는 발빠른 개혁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상당히 불식시켰다. △정치범 석방 △노조결성 금지조항 철폐 △정당결성권 허용 △대통령 임기 및 연임 횟수 제한 등 개혁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러나 수하르토의 축재 사실 자체를 공공연히 부인하고 나서면서 개혁 수행능력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위란토 국방부장관(50)=군 총사령관을 겸직하고 있는 군부 실세. 수하르토의 부관을 지내며 충성심을 인정받으며 군 최고실력자가 됐다. 강경 진압을 자제하는 등 지난 5월의 민주화운동에는 묵시적인 동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메가와티 전 민주당 당수 등 야당 인사와도 교분을 맺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에는 과거의 계승과 단절을 적절히 조화시켜 가고 있다. 하비비의 취약한 정치적 기반을 보완해주며 ‘위로부터의 질서 있는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아미엔 라이스(54)=회교단체 무하마디야의 지도자로 반 수하르토의 선봉장. 이슬람교 학생연맹 대표로 지도자 역량을 발휘해 2천800만명의 이슬람 세력을 결집,수하르토 퇴진에 가장 큰 공을 세웠다. 이후 메가와티와 함께 ‘시민평의회’를 구성,수하르토 일가의 재산환수 등 인적,물적 청산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실업자 150만명 넘어섰다/6월 고용동향

    ◎실업률 7%… 30년3개월만에 ‘최악’/해고 1년 미만 129만명… 전체의 85%/20대 실업률 11%·30∼40대 6%·50대 5%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기업과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이 본격화 되면서 실업자가 150만명을 돌파했다. 그러나 주당 18시간 미만 취업자중 추가취업을 원하는 21만4,000명의 불완전 취업자를 더할 경우 실업자는 170만명을 넘어섰다는 지적이다. 23일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동향에 따르면 6월중 실업자는 152만9,000명으로 전달보다 3만7,000명이 증가했다. 지난 해 동기(49만6,000명)보다는 103만3,000명이나 늘었다. 지난 2월(123만5,000명) 사상 처음으로 1백만명을 넘어선뒤 불과 4개월만에 30여만명이 늘어난 셈이다. 실업률은 7.0%(계절조정치 7.7%)로 지난 68년 1·4분기 7.4% 이후 30년3개월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 상반기(1∼6월) 평균 실업률은 6.3%,실업자 133만3,000명이다. ■여성취업자 퇴출이 늘었다=6월 현재 취업자는 2천18만3,000명으로 작년 동기보다 119만5,000명이 감소했다. 감소인력중 여성은 63만1,000명으로 절반을 넘었다. 업종별로는 건설업(47만7,000명)과 제조업(67만2,000명)에서 많이 줄었다. ■전직(前職)실업자가 급증했다=직장을 다니다가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는 142만7,000명으로 전체 실업자의 93.3%나 된다. 이중 해고된 지 1년 미만된 전직 실업자는 129만7,000명으로 84.8%를 차지한다. 기업구조정에 따른 정리해고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증거다. 41.4%(53만7,000명)는 공장의 일거리가 없거나 회사경영이 악화되서 직장을 잃었다. 18.1%(23만5,000명)는 명퇴나 정리해고로 실업자가 됐다. 임시직(33.1%)과 일용직(28.1%)의 정리해고가 두드러졌다. ■불완전 취업자가 증가했다=실업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르바이트,시간제로 일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주당 36시간 미만 취업자는 작년 6월보다 37만명(30%)이 증가했다. 특히 주당 18시간 미만 취업자(불완전취업자)는 48.9%가 늘어난 46만명이나 된다. 이중 46.5%인 21만4,000명은 일자리를 더 갖고 싶어한다. ■젊은층의 실업이 극심하다=20대 실업률은 11.4%로 30대(6.1%)나 40대(6.0%),50대(5.5%)보다 훨씬심각하다. ■부산에는 일자리가 없다=경기침체로 경공업체가 밀집한 부산(9.3%)과 인천(8.6%)은 높은 실업의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 대구 광주도 각각 8.1%로 예외가 아니다.
  • 열악한 근무여건(위기의 경찰:4)

    ◎파출소 하루 보고서 30건 넘어/툭하면 일제단속 동원… 비상근무 이틀에 한번꼴/교통단속도 할당… 순찰시간 실적채우기 급급/벌과금 징수 등 他부처 협조업무도 46종이나 ‘기소중지자 일제단속’‘음주운전 특별단속’‘申昌源 검거를 위한 비상근무’‘여름철 피서지 일제단속’…. 사흘이 멀다하고 내려지는 경찰의 단속업무 리스트다.경찰관들은 1년의 절반을 이런 단속 업무에 매달린다.툭하면 내려지는 일제단속령 때문에 다른 업무는 볼 겨를이 없다. 일선 파출소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업무를 과중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은 ‘서류보고’다.매일 작성해야 하는 문건은 30건이 넘는다.종일 서류와 씨름할 수 밖에 없다.게다가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서 상황실,형사과,방범과에 보고서를 중복 제출해야 한다.매일 수십건씩 내려오는 공문도 처리해야하고 일일조회처리부,방범월보도 써야 한다.청소년지도 상황보고,범죄첩보·정보보고서 등 개인별로 처리해야 하는 보고서도 따로 있다. 느닷없이 ‘무엇 무엇을 파악하라’는 지시가 떨어지기도 한다.그런 날에는 전 직원이 매달린다.각종 행사장 정리나 특별 경비 등에도 2∼3명씩 동원되기 일쑤다. 할당식으로 실적을 채워야 하는 교통위반 단속도 업무를 과중하게 한다.교통질서 단속은 하루 5건,차적조회는 하루 60건,그런 식이다.때문에 직원들은 하루 4시간의 ‘도보순찰’시간 대부분을 교통 단속에 쓴다.관내를 돌아볼 여유는 거의 없다.한 경찰관은 “‘예방 순찰’이라는 본연의 업무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파출소 통폐합으로 근무 반경은 더 넓어졌다.2개 파출소가 통합된 서울 P파출소는 직원수는 2명이 늘었지만 도보순찰 거리가 거의 2배로 길어졌다.그렇다고 순찰차가 더 배치되지도 않았다. 업무 과중을 부채질하는 것은 또 있다.다른 부처에 협조하는 업무다.대표적인 것이 벌과금 징수대행 업무.벌금을 내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내 받아내는 것이다.협조업무는 향토예비군법위반 처리 등 12개 부처에 46종이나 된다.한 직원은 “1주일 새 똑같은 사람에 대해 3번의 소재수사 명령을 받아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걸핏하면 전국적으로내려지는 비상령은 설상가상(雪上加霜)격이다.비상은 거의 이틀에 한번 꼴이다.지금도 申昌源사건으로 전경찰이 비상근무를 하고 있다. 격무에 비하면 활동 수당은 쥐꼬리만하다.외근 직원들에겐 10만∼20만원의 활동비와 시간당 1,000∼3,000원가량의 시간외 수당이 지급되는게 고작이다. 직원들은 공권력에 도전하는 사회 분위기가 가장 ‘열악한’ 근무 여건이라고 말했다.한 파출소장은 “피의자도 경찰에게 큰 소리를 치는 것을 보면 경찰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다”고 한탄했다.
  • 낙선자들 명암/全在姬­거물과 박빙 승부… 신데렐라로

    ◎朴燦鍾­‘정치 고향’서 4위… 정치생명 위기 승리자들의 환호 뒤에는 늘 패배자들의 ‘눈물’이 있기 마련이다. 7·21 재·보궐선거에서도 당선자 7명만이 화려한 조명을 받았지만 많은 낙선자들이 분루(憤淚)를 삼켜야 했다. 광명을에서 막판까지 국민회의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한나라당 全在姬 후보. ‘광명 지킴이’라는 구호로 돌풍을 일으키면서 정치거물을 몰아쳤지만 국민회의의 총공세에 밀려 1천300여표 차이로 ‘승리’를 놓쳤다. 여성과 정치신인이라는 핸디캡을 뚫고 유권자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남긴 만큼 재기도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자민련 朴俊炳 후보는 한나라당 텃밭인 서울 서초갑에서 마지막까지 선전했으나 ‘아까운 2등’에 그쳤다. 사무총장으로서 당의 집중지원을 업고 약진을 거듭,여론조사 결과 ‘당선권’에도 진입했지만 두터운 중산·보수층을 뚫기엔 역부족이었다. 국민신당 朴燦鍾 후보는 정치생명마저 위협받는 처지가 됐다. 13,14대 총선에서 자신을 전국적 인물로 키워 준 ‘정치적 고향’ 서초갑에서 ‘부끄러운 4등’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고비 때마다 철학과 비전없이 자리를 옳겼던 ‘가벼운 처신’이 유권자들의 반감을 샀다는 평이다. 강릉을에서 출사표를 던진 崔珏圭 전 지사는 ‘힘 한번 써보지 못한 채’ 한나라당 趙淳 후보에게 무릎을 끓었다. 자민련의 영입을 거절하면서 배수진을 쳤지만 역부족이었다. 수원팔달의 국민회의 朴旺植 후보는 한나라당 南景弼 후보의 화려한 등장을 위한 ‘제물’이 됐다. 여론조사에서 압승을 예고할 정도도 승리를 자신했지만 밑바닥 표를 훑는 한나라당 南景弼 후보의 ‘두더지 전략’에 손을 들었다.
  • 行自部 2국 5과 감축/국장급 인사 단행

    ◎내무부·총무처 출신 맞교대/주내 과장급 후속인사 행정자치부가 22일 2국 5과를 줄이는 2차 구조개혁에 따른 국장급 인사를 단행했다.산하기관을 포함해 이사관(2급) 7자리와 부이사관(3급) 7자리를 바꾸고,이사관 1명과 부이사관 4명을 대기발령했다. 이번 인사의 핵심은 李萬儀 자치지원국장을 인사복무국과 고시훈련국이 통합된 인사복무국의 국장으로,蔡日炳 인사복무국장을 자치지원국장으로 서로 맞바꾼 것.두 국은 통합 이전 내무부와 총무처의 선임 국이었다는 점에서 두 부처 출신들의 ‘화학적 결합’을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업무가 손에 익을 때 까지는 총무처 출신인 金範鎰 기획관리실장과 내무부 출신인 金興來 차관보가 李萬儀 인사복무국장과 蔡日炳 자치지원국장을 돕게 된다는 것이 石泳哲 차관의 설명이다. 지방재정국과 지방세제국이 통합된 지방재정세제국의 국장에는 丁采隆 지방재정경제국장이 자리를 지켰다.丁榮植 전지방세제국장은 곧 1급인 소청심사위원으로 승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趙基安 고시훈련국장은 중앙공무원교육원 교수부장으로 전보됐다. 복무감사관에 權五龍 중앙공무원교육원 교수부장을 임명한 것은 감사관을 강화하라는 金大中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이번에 보직을 받지 못한 5명 의 국장급은 명예퇴직을 하거나 1년 동안 대기하다 퇴직하는 수순을 밟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행자부는 이번주 안에 과장급 후속인사를 단행할 예정이다.
  • 申明浩 주택은행장/ADB 부총재 피선

    申明浩 한국주택은행장이 아시아개발은행(ADB) 부총재로 선임됐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지난 88년 鄭寅用,93년 李鳳瑞씨에 이어 세번 연속으로 ADB 부총재를 배출하게 됐다. 21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ADB는 이날 이사회를 열어 이달 말 임기가 끝나는 李鳳瑞 부총재의 후임으로 申행장을 5년임기의 부총재로 선임했다. 申 신임부총재의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 시작되지만 국내 업무처리 때문에 8월말이나 9월초 쯤 취임할 것으로 보인다. ◎대외통상업무에 정통 업무능력이 뛰어나고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소탈한 성격의 정통 재무관료 출신 금융인. 과거 재무부 재직시 우리나라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과 관련된 국제업무 등 대외 통상현안을 조용하고 매끄럽게 처리한 자타공인의 국제통. 주택은행장 재직시 자산건전성 제고를 경영의 최우선과제로 추진,행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으며 올해초 금모으기 운동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부인 金相嬉씨(48)와의 사이에 1남2녀. 율산그룹 前 회장 申善浩씨가 친동생. 취미는 등산.
  • 도예가 李秀鍾(이세기의 인물탐구:176)

    ◎無心의 경지 빚는 ‘큰 그릇’/容器의 기능 잃지않으며 흙에의 회귀 담아/전통적 형식보다 개성적 색감·형상 추구/물레질만이 낙… 農心처럼 꾸준한 조형 탐색 영국의 미술평론가 허버트 리드는 ‘한민족의 민족정신과 사회기풍은 흙이라는 표현매체를 통해 나타나기 때문에 한나라의 예술의 세련미를 알기 위해서는 그들의 도기(陶器)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했다. 그릇의 조형탐색에 천착하는 도예가 李秀鍾은 ‘한국이 아무리 찬란한 도자기의 나라라고 할지라도 청자나 백자는 어디까지나 고려· 조선의 것이며 오늘날의 도자기는 용적(用的) 기능과 미적 가치를 동시에 수용하는 순수조형’임을 주장하고 있다. ○도예의 진수 아는 匠人 따라서 그의 그릇은 용기로서의 유용성이 파괴되지 않으면서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흙에대한 원초적 회귀’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담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흙과 불이 가지는 생명력과 가능성을 이해하면서 자연과 인간의 삶이 근본적인 조화를 보일때 비로소 도예의 본질이 파악된다는 것이다. 미술평론가 이재언은 이수종의 이러한 작업내용은 ‘다채로운 흙의 경험에서 얻어진 흙의 예술가다운 결과이며 그는 도예의 진수를 알고 빚는 장인(匠人)’이라고 평한다. 즉흥적이거나 감각적인 흥취뿐만 아니라 흙자체가 지니는 언어적 인자와 조건들을 세밀하게 탐구한 숙고가 그것이다. 더구나 고금과 동서를 넘나드는 개방적 의식과 줄기찬 창작의지는 실용적인 기물과 순수조형 사이를 부드럽게 ‘자유’하면서 분청의 전통적 형식에 머물기보다 개성적인 색감과 형상의 생성으로 그가 추구하려는 작품에 접근해 나간다. 이수종의 작업실은 10여년전까지만 해도 홍대앞에 있는 빌딩 지하에 있었다. 그러나 건물에서 불을 다루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아 과천시 변두리에 야외 작업장을 마련하여 이사했다. 그때부터 아침마다 눈앞에 펼쳐지는 산을 바라보면서 ‘그릇이야말로 한번쯤 도전해볼만한 조형물’이라는 다짐과 함께 ‘산처럼 듬직한 그릇’을 구상할 수 있었다고 돌아본다. 따라서 그의 그릇은 용기가 지닌 고유의 형태미와 표현상의 아름다움을 전제하면서도 담기는 내용에 따라 유(有)나 무(無)에 대한 구실도 달라지는 것이 눈에 띈다.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는 추상공간에다 눈으로 보되 마음속에 와닿는 내면의 든든한 기(器), 당장의 편리함보다는 두고두고 써도 물리지않는 장독대같은 ‘이수종만의 그릇’이 그것이다. 최근의 작품들은 회흑색의 태토(胎土)위에 백토를 분장한 다음 그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도각(陶刻)을 해서 구워낸 ‘거칠고 투박한 흙맛’이 제격이다. 휘돌아가는 물레의 속도감, 그 위에 반응하는 세련된 손맛, 귀얄이나 덤벙기법에 의한 화장의 멋등은 기계화된 현대사회에서 순후한 인간미와 노동의 신선함을 자연스럽게 표현하여 보는이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준다. 이수종은 요령을 부릴 줄 모르는 사람이다. 막가내하(莫可柰何)이며 자기 할일에 대한 집념이 강하다. 그래선지 그의 작업은 곧잘 농부에 비유된다. 흙을 선택해서 물을 주고 습도를 유지시켜 형을 만들고 건조를 기다렸다가 적당한 시기에 가마에 넣고 오랜 시간 소성하는 과정은 농부가 씨를 뿌리고수확을 거두는 마음가짐이다. 그래서 자연에 순응하는 농부의 지혜와 순수성으로 흙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도예가의 정신이 투철하게 살아있다. 그러나 열정적인 창작열과 끊임없는 실험정신 이전에 그는 ‘그저 주물럭거려 본것뿐’이라는 것이며 외형에 서투르게 그려넣은 그림이 추상적 의외성을 산출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전혀 의도적이 아님은 말할것도 없다. ‘나는 그저 빚었을뿐’ ‘타고난 예술적 재능’따윈 없다고 거부한다. ○“나는 그저 빚었을뿐” 이수종의 작품은 ‘한국의 미’를 논할때마다 흔히 등장하는 ‘무심(無心)의 경지라고 할수 있다. 더구나 무기교(無技巧)의 기교로써 형태에 대한 관심이 없는듯이 형태를 빚어내고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없이 그림을 그리면서 도자기의 내면에 잠재된 자연성 유희성 감수성을 끌어낸다. 간혹 평자들은 최근의 그의 작업과정은 흙이라는 물질에 대한 관념을 표명하는 시기, 흙과 불의 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기는 시기, 백자기법인 전승을 바탕으로 조형작업을 시도하는 시기등 작업의 끝없는 모색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이른바 위대한 자연의 계곡에서 부유하는듯한 장인적 기량으로 작가의 대담한 사유(思惟)를 은연중에 보여준다. ○말없고 설명 싫어해 그의 작업은 농부에 비유되고 있으나 실은 순 서울토박이다. 청파동에서 장사를 하던 李範奭씨의 3남3녀중 막내. 지난 6월 성곡미술관이 주관한 ‘한국 전통도예 10걸’에 추대되리만치 우뚝한 명장(名匠)의 위치지만 그의 어린시절은 평범한 소년에 불과했다. 다른 예술가들처럼 장래 무엇이 되겠다는 포부도 없었고 부모의 특별한 기대도 받지 않았다. 부친이 일찍 타계한 탓에 누나와 형들에게 학비를 타쓰는 어려운 청소년기를 보냈고 고3때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미술학원에 다닌것이 도예와 관련된 유일한 근거다. 천성적으로 말 없는데다 설명하기를 싫어해서 여러 논쟁에 끼어들지 않았으나 월간 ‘공간’과 계간미술지등에 ‘현대 도자기의 의미’와 ‘전통도예 기법에 의한 현대도예’등 ‘미적탐구가 아닌, 용기로서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발표한것으로 알고 있다. 주변에서는 ‘재미없는 사람’‘멋없는 사람’으로 소문나 있고 잘 팔리는 작가가 아닌만큼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편도 아니다. 홍대후배인 부인 崔惠子씨는 그런 남편을 이해하여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다. 자녀는 남매. 물레질만이 취미이자 낙이며 온힘을 기울여 그릇을 빚는동안 반드시 좋은 그릇이 탄생하리라는 확신에 차있다. 흙의 따뜻한 체온으로 도자기를 성형하고 신비한 불의 마술을 경험한다는 것은 각박한 현대생활에서 아름다운 들꽃을 발견한 것만큼이나 소박한 기쁨일 것이다. 현대도예에서 가장 충실하게 조형탐색을 일관하는 예술가가 있다면 그가 바로 이수종이며 무기교로 일관하는 ‘이수종 그릇’은 그만이 지닌 투박미와 자연미로 한국 현대도예사에 한획을 긋는 비중있는 족적을 남길것임에 틀림없다. ◎그의 길 ▲1948년 서울출생 ▲1971년 홍익대 공예과졸업 ▲1979년 홍대 산업미술대학원졸업 ▲1981년 첫개인전(서울관훈미술관) 1986-88년 개인전(토갤러리) ▲1990년 개인전(토아트 스페이스), 예술의전당 미술관개관기념전, ‘흙놀이’(토탈미술관),한일교류전(교토) 1991년 도예와 조각의 만남(63갤러리),한국현대도예 유럽순회전 ▲1992년 서남미술관개관기념전, 현대분청 2인전(다도화랑), 독일 슈포트벡셀기획 ‘다른것들과의 만남’ ▲1993년 개인전(서울삼풍갤러리·성담아트갤러리),예술의 전당 개관기념전, 한국현대도예전(미국 샌디에이고) ▲1994년 핀란드및 타이베이 국제도예전, 현대도예30년전(국립현대미술관), 부산개인전(갤러리부산) ▲1995년 개인전(토아트 스페이스·우원화랑),한국현대도예전(한가람미술관), 20세기의 東京전(화랑사계) ▲1996년 서울공예대전, 진로도예 벨기에전, 한국현대도예가회 특별전(토탈미술관), 누드웨어전(신세계현대아트) ▲1997년 개인전(토아트 스페이스), 워커힐미술관초대 ‘흙의 정신전’ ▲1998년 성곡미술관초대 한국도예작가10인전 대만시립미술관, 영국 빅토리아 알버트뮤지엄 국제소형도자 트리엔날레 명예상(90년)
  • 양주 맛보기 힘드네…/상반기 판매 작년 절반

    양주 소비가 소득감소로 지난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1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양주 총 판매량은 147만2,000상자(상자당 700㎖ 6병)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301만3,000상자보다 51.2% 감소했다.종류별로는 프리미엄급 이상 제품의 판매량이 106만상자로 지난해(181만3,000상자)보다 42% 줄었으며 숙성기간 12년 미만인 스탠더드급 양주는 119만9,000상자에서 41만2,000상자로 66% 감소했다. 올해 양주 판매량은 지난해 592만8,000상자에서 280만상자로 감소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양주 판매량 감소는 IMF체제 6개월을 넘기면서 소비자들이 불황을 실감하는 데다 퇴출 기업과 은행의 속출로 실직자가 늘면서 본격적인 소비냉각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최고 낙찰가 배제 배경·문제점

    ◎인수후 경쟁력·고용 수출에 큰 비중/자금조달 어려운 국내업체,외국사보다 불리 기아사태가 발생한 지 만 1년만에 기아·아시아자동차 국제경쟁입찰이 15일 윤곽을 드러냈다.정부와 업계 및 채권은행단 모두 가장 관심을 기울였던 부분은 낙찰자 선정을 위한 평가방식이었다.결국 응찰가만을 따져 인수자를 결정하는 ‘최고 낙찰가제’가 아닌 ‘종합평가 방식’으로 결론이 났다. 업계가 낙찰자 선정기준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것은 기아와 아시아자동차 처리의 투명성 및 공정성과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최고 낙찰가제에 의해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업체에 넘길 경우 추후 특혜시비 등에 휘말릴 여지는 없어진다.반면 응찰가 이외의 비(非)가격 요소를 가미할 경우 평가기법 등에 따라 자칫 자의성(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 산은이 제시한 낙찰자 선정기준별 배점의 경우 가령 ‘인수 이후 10년간 현금흐름(Cash Flow)의 현재가치액’(30%)을 그 예로 들 수 있다.李瑾榮 산은총재는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감가상각비와 판매 관리비,자본지출 등 자금을 감소시킬 요인을 차감한 금액을 일정한 할인률에 의해 현재 가치로 환산한 금액으로 보면 된다”고 했다. 일반인들은 무슨 말인 지,쉽게 이해하기 힘든 얘기다.기아·아시아자동차의 경쟁력 제고 등 장기발전 기여도(15%)나 고용·수출 등 국민경제 기여도(25%) 등의 항목도 사정은 비슷하다. 입찰참여 준비를 하고 있는 한 자동차 업계 실무자는 “비(非)가격 요인의 배점을 70%로 한 것은 다분히 포드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지적했다.국내 자동차 업계는 인수자금 조달 부문에서도 외국업체와의 합작만 용인될 뿐 전환사채(CB) 발행을 포함해 차입은 배제된다.이 점을 들어 심각한 불황을 겪고 있는 국내 업계가 호황으로 지난 해 69억달러의 흑자를 낸 포드자동차에 비해 불리할 수밖에 없다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외환위기를 촉발한 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기아자동차 처리 문제를 매듭짓기 위한 난제는 여전히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 수출 복병(수출 이렇게 풀자:4­1)

    ◎환율 10% 하락땐 수출 41억弗 감소 환율하락으로 수출업계가 비상이다. 1,400원 선에서 안정세를 보여 온 대(對)미달러 환율이 14일 1,200원대로 가라앉았다. 경제체질이 건강해진 데 따른 것이라면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최근의 환율하락은 내수침체와 자금부족으로 투자가 크게 위축된 게 주요인이다. 달러수요가 그만큼 줄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경쟁국의 환율은 오름세여서 환율하락으로 우리제품의 가격경쟁력은 더 떨어지게 됐다. 가뜩이나 불황에 허덕이는 수출업체들도 채산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게 됐다. 환율 하락은 당장 우리 수출상품의 주무기인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려 수출부진을 심화시킨다. 환율하락세가 장기화될 경우 올해 우리 수출과 무역수지 흑자 목표는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수출업체 채산성 악화 산업자원부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환율이 10% 떨어지면 수출은 대략 41억달러가 준다. 반면 수입은 33억달러가 늘어나 무역수지로는 무려 74억달러의 ‘악화효과’가 나타난다. 산자부 崔俊濚 무역정책과장은 “수출품 평균가격이 95년의 60%선으로 떨어진 상황에서도 수출이 부진한데 환율마저 떨어지면 우리 수출은 더 큰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업계의 체감우려는 보다 직접적이다. 당장 환차손이 염려된다. 보통 수출대금을 3∼6개월 뒤에 정산하는 점을 감안하면 앉아서 대략 달러당 300∼400원을 손해보게 돼있다. 지난 2월 1달러를 1,640원으로 계산해 물건을 팔고 6개월이 지난 지금에는 1,300원으로 쳐서 돈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는 기업의 채산성 악화로 연결되고 결국 설비투자와 수입감소로 이어져 기업의 경영난을 가중시키게 된다. ○당장 환차손이 큰 문제 업종별로는 특히 자동차 가전 섬유 등 가격경쟁력을 우위로 해 일본 및 아시아 국가들과 경합을 벌이는 수출제품이 타격이 클 전망이다. 지난해 말과 비교해 최근 원화의 환율은 29% 정도 떨어진 수준. 반면 경쟁국들의 환율은 그동안 대부분 올랐다. 일본 엔화는 7.4%,말레이시아의 링기트화와 대만의 달러는 각각 9.4%와 5.2% 올랐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는 무려 64.7%나 상승했다. 산업연구원은 달러화에 대한 엔화의 환율이 10% 오르면 조선 14.7%,자동차 11.6%,가전제품 11.2%,기계류 8.1%,반도체 7.5%,섬유류 4.3%,철강 3.3%의 수출감소가 나타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원­달러 환율마저 떨어지면 수출감소는 그만큼 가중되는 셈이다. 한국무역협회 趙昇濟 무역조사담당이사는 “주요 경쟁국인 일본과 대만의 화폐가치가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 원화가치만 오른다면 우리 수출경쟁력은 급격히 약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전략 가격서 품질위주로/중기 중심 다품종 소량생산구조로 전환을 한국은행 李柱烈 국제경제실장은 “주요 경쟁국의 환율이 다 오르는 바람에 지난 상반기 원화 환율상승에 따른 수출 이익을 별로 없었다”면서 “현 상황에서 중국 위안화의 환율마저 오르게 되면 우리 수출이 입을 타격은 매우 심각해 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위안貨 환율상승땐 심각 환율 하락은 이처럼 당장의 환차손 뿐아니라 외국 바이어들의 불안심리까지 가중시켜 한국과의 거래를 더 기피하게 만든다. 무역중개상 L씨는 “올해 초 환율이 불안정할때 바이어들이 ‘나중에 보자’며 거래를 기피해 애를 먹었는데 환율이 다시 불안정해져 거래선을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고 걱정했다. 무역협회 趙이사도 “환율이 떨어져도 바이어들은 대부분 환율이 높았을 때의 거래가격을 요구한다”며 “이 때문에 환율하락에도 불구하고 수출업체들은 더욱 수출단가를 낮춰야 하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고 말했다. ○외국 바이어들 불안 가중 그렇다면 우리 수출업체들이 생각하는 적정한 원­달러 환율은 얼마일까. 무역협회가 최근 75개 무역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해 14일 발표한 긴급 설문조사 결과 업체들은 중화학제품의 경우 달러당 1,373원,경공업제품은 1,399원,농산물은 1,360원이라고 답변했다. 그래야 채산성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철강 1,395원,석유화학 1,370원,반도체 1,150원,일반기계 1,360원,가전 1,340원,자동차 1,530원,섬유 1,380원,신발은 1,335원 선이다. ○외환시장 자율에 맡겨 업계에서는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을 촉구하고 있다. 기아자동차 수출팀 관계자는 “환율이 1,000∼1,100원선이 돼도 수출 채산성은 맞지만 내수불황을 만회하려면 1,400∼1,500원선은 돼야 한다”며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희망했다. 하지만 정부의 생각은 좀 다르다. 외환시장 개입은 득보다 실이 더 크다는 판단이다. 재정경제부 金大猷 종합정책과장은 “외환당국이 어떤 수준을 정해 놓고 개입하면 오히려 외환시장 참여자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며 당분간 외환시장 자율에 맡기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인위적인 환율 부양책보다는 자율적인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적정 수준의 환율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취재반 경제과학팀=鄭鍾錫 팀장(반장) 權赫燦 차장 陳璟鎬 朴希駿 朴恩鎬 기자 정치팀=郭太憲 기자 사회팀=李順女 기자 사진팀=金明煥 부장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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