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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환경 아파트’ 몰려온다

    ‘친환경 아파트’ 몰려온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친환경 아파트.’ 21세기 아파트의 모토는 단연 친환경이다. 친환경이란 나와 내 가족이 중심이었던 ‘웰빙’에다 나뿐만 아니라 환경과 이웃의 행복까지 배려하는 ‘로하스(LOHAS:Life 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의 개념이 더해진 것이다.‘더불어 건강하게 꾸준히 잘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주거 환경’이 친환경 아파트가 지향하는 목표다. 친환경 개념을 적용한 아파트는 주변에 비해 높은 시세를 형성하고 있어 브랜드의 핵심 가치로 평가되는 추세다. ●새집증후군 유발물질 얼마나 줄일 수 있나요 ‘건강을 해치지 않는 집’은 아파트의 기본이다. 실내공기질 관리법 시행으로 2004년 5월 이후 사업승인을 받은 100가구 이상 아파트를 짓는 업체는 늦어도 입주 3일 전까지 새집증후군 유발물질 수치를 측정, 시·군·구에 보고하고 아파트 출입구 등에도 이를 게시해야 한다. 이런 단지들은 올해 말부터 입주가 본격화된다. 이 기준을 지키지 못하면 특별한 제재를 받지 않지만 애써 쌓아 올린 브랜드 파워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 업체들은 ▲친환경 자재 사용 ▲베이크 아웃(Bake-Out·아파트 실내 온도를 높여 건자재에 들어있는 유해물질을 새어나오게 한 뒤 통풍을 시켜 나쁜 공기를 집 밖으로 빼내는 방식) ▲환기 등 세 가지 방법을 동원해 실내 공기질 수치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SK건설의 경우 포름알데히드 방출량을 일반 제품의 10분의1로 줄이고 공기 청정 후드, 무독성 수성 접착제를 사용해 주방을 더욱 쾌적하게 만드는 친환경 자재 구성 패키지 적용을 검토 중이다. 소음 제거도 필수다. 동탄신도시 아파트의 경우 층간 소음을 막기 위해 바닥을 두껍게 만들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일반 아파트의 바닥 두께는 15㎝ 남짓이지만 동탄신도시에서는 포스코건설, 금강종합건설 등 많은 업체들이 바닥 두께를 18㎝로 늘렸다.SK건설은 지난해부터 SK케미칼과 공동으로 ‘층간소음 연구동’을 세워 층간소음 제거를 위한 인정바닥구조를 개발 중이다. 보다 깨끗한 공기와 따사로운 채광을 위해 평면 설계도 바뀌고 있다. 주택공사가 판교에서 선보인 전용 25.7평 아파트가 좋은 예다. 안방, 작은방, 거실, 부엌, 주방 등 5개 공간을 앞쪽 발코니 쪽으로 배치한 설계를 내놓았다.GS건설은 주상복합아파트에만 적용되던 강제 배기 시스템을 일반 아파트에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밖에 내년 1월부터 2000가구 이상 공동주택 분양시 소음, 구조, 생활환경, 화재소방 등 항목별로 등급을 표시하는 주택성능등급 표시제가 시행될 예정이어서 메이저 건설사들을 중심으로 친환경 공간 만들기 프로젝트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공원 같은 단지… 운동 공간도 필수 “아이들은 집 앞 개울에서 물놀이를 하고, 어른들은 아침마다 삼림욕을 즐기고, 거실에서는 쾌적한 공기를 마시고…” 실내 환경에 대한 친환경 요소가 마감재의 업그레이드로 이어졌다면 외부환경에 대한 친환경 요소는 조경시설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거듭났다. 지난해부터 입주하기 시작한 새 아파트들을 보면 단지내 주차장을 찾아보기 어렵다. 지상에 주차장이 없다 보니 숲, 연못, 개울, 산책로 등에 초점이 맞춰진 조경 공원들이 자리잡고 있다. 뿐만 아니다. 건강·레저 생활에 대한 소비자 욕구에 맞춰 헬스기구, 골프연습장, 놀이방 등 웰빙을 추구하는 각종 편의시설도 포함된다. 실내와 실외 모두에 자연 요소를 적용해야 진정한 친환경 아파트라는 평이다. 서울 강동구 현대홈타운아파트는 단지내 ‘꽃향기마당’‘물빛마당’‘대숲정원’‘봄빛동산’ 등 주제별로 공원을 조성했는데 꽃향기 마당에는 입주민을 위해 운동시설을 갖췄다. 황토로 만든 산책로, 장미터널, 화훼원 등도 조성돼 있다.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대림 4차 ‘e-편한 세상’은 단지 내에 생태연못과 개울 등을 조성했으며 경기 용인시 보정리 대림 e-편한세상 아파트는 단지 내에 1만평 규모의 숲이 있는데 아파트 부지 매입 때 인근 숲까지 사들여 주민들의 삼림욕장으로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웃과 함께’ 공동체 성격의 로하스 개념 강조 녹지 환경이 풍부하고 좋은 재료로 짓는 것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소통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공간이 공원 단지내 조경의 주요 테마로 자리잡고 있다. 다양한 조경물들을 매개로 이웃과 손쉽게 만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주거 환경이 로하스의 출발점이다. 2008년 준공을 목표로 GS건설이 짓고 있는 여의도자이는 1층을 없애고 대신 5m 높이의 독서실, 명상휴게실, 원기회복실 등이 있는 동별 공동시설인 ‘워커블 커뮤니티(walkable community)’를 도입한다. 생태공원, 퍼팅그린 등도 마련된다. 운동으로 건강을 관리하는 것은 물론 이웃과 자주 만남으로써 육체와 정신이 모두 건강한 주거 생활을 지향하는 게 목표다. 이밖에 단지내 12곳에 운동 코스를 마련했으며, 조경공간이 2000평을 넘는다. 산책로를 조성해 스트레스 해소용 클리닉으로 활용하는 설계도 이제는 보편화됐다. 음이온, 원적외선을 이용한 맥반석, 옥자갈 지압로 등을 설치해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꾸며 이웃간 만남의 장으로 설계하기도 한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지금 경기도에선] 외국기업 투자유치 세계로 뛴다

    [지금 경기도에선] 외국기업 투자유치 세계로 뛴다

    |도쿄 김병철 특파원|경기도의 산업지도가 달라지고 있다. 최근 몇년새 외국의 첨단기업들이 줄줄이 들어오면서 반도체 및 LCD, 자동차 부품산업 클러스터로 변모하고 있다. 경기도는 10∼20년후 먹을거리를 창출한다는 목표로 그동안 98개의 첨단기업을 유치해 134억달러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이같은 규모는 지난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2%에 해당할 정도로 짭짤한 것이다. 특히 외국기업들이 원천기술을 보유한 업체들이어서, 국내 기술이전 및 고용파급 효과가 매우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외 자치단체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는 경기도의 외국 첨단기업유치 성과와 노력을 알아본다. # 돈 되면 어디든 간다 지난 23일 오후 일본 도쿄 중심가에 위치한 오쿠라호텔 2층 연회장. 손학규 경기도지사를 단장으로 하는 경기도투자유치단과 일본 첨단기업간의 투자협약 체결식이 열렸다. “경기도에 투자를 결정한 데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빠른 시일내에 경기도에 뿌리내려 성공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손 지사는 파주 LG필립스 LCD산업단지 인근에 투자를 결정한 교에이프린트기연 고바야시 이사오 사장에게 이같이 약속했다. 손 지사는 그러면서 아주 특별한 손님이라며 한국노총 경기지역본부 이화수 의장을 소개했다. “외국 기업들이 한국에 투자할 때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이 노사문제인데, 산업평화와 노사안정에 협조하겠다는 뜻에서 이 의장과 함께 왔습니다.” 고바야시 사장과 임원들은 손 지사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고바야시 사장은 “경기도가 발벗고 도와준 덕분에 파주에 공장을 순조롭게 설립하게 됐다.”며 “앞으로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데 힘을 쏟겠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LCD관련 생산장비업체인 교에이프린트기연은 450만달러를 투자, 오는 6월 공장을 착공해 12월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경기도 투자유치단은 이어 가시야마공업과 에스펙 등 LCD 생산장비업체와 잇따라 투자유치 협약식을 가졌다. 가시야마공업은 LCD 제조과정에서 발생하는 화학가스 등을 흡인, 저진공 상태로 만드는 ‘드라이 진공펌프’ 기술을 갖고 있다. 오는 11월 안성시에 650만달러를 들여 2000평 규모의 공장을 설립한다. 김명선 도 투자진흥관은 “진공펌프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국산 원자재 공급에 따른 안정적 수급과 물류비용 절감을 꾀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투자유치단은 다음날인 24일에도 반도체 및 액정장비 제조업체인 B회사와 2000만달러의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손 지사는 이 회사 대표에게 “이날 협약은 경기도가 당신네 회사를 주인으로 모신다는 조약”이라며 “앞으로 ‘머슴’이 되겠다는 자세로 충실히 돕겠다.”고 말했다. 투자유치를 위해선 자존심도 필요 없었다. 한 일본 기업인은 손지사를 향해 “도지사가 아니라 영락없는 세일즈맨”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 4년간 100개 기업유치 눈앞 경기도 투자유치단은 일본 방문기간 동안 5개 첨단기업으로부터 모두 3460만달러에 달하는 투자유치를 이끌어냈다. 이로써 경기도는 지난 4년간 98개 업체를 국내에 유치,100개 업체 유치 달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들 업체 가운데 34개는 이미 공장을 설립해 가동중이다.11개 업체는 착공에 들어가고 또 다른 11개 업체는 임대계약을 체결하는 등 전체 60%의 투자이행률을 보이고 있다. 100번째 기업은 다음달 9∼14일 유럽지역 투자유치 활동을 통해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손 지사를 비롯한 투자유치단은 지난 3년 8개월간 19차례에 걸쳐 지구 6바퀴에 해당하는 23만 6660㎞를 달렸다. 해외출장 중에는 투자상담이 차질없이 마무리될 수 있도록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이번에 일본 투자유치 활동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한 직원은 비행기안에서 터진 코피가 멈추지 않아 큰 고생을 하기도 했다. 경기도가 그동안 중점유치한 업체는 해당국에서도 국외로 유출된 바 없는 원천기술을 보유한 업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만큼 국내 기술이전 및 고용파급 효과가 매우 큰 알짜이다. # 세계적 기업의 파급효과 엄청 도는 이같은 외국기업 유치로 8만여개의 직·간접적인 일자리가 생겨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주요 외국기업으로는 세계적인 초음파 의료기기 제조업체인 미국 ‘지멘스 메디컬’,LCD분야의 세계 정상급인 네덜란드 ‘LG필립스 LCD’, 첨단 자동차 부품업체인 미국 ‘델파이’, 세계 굴지의 스테인리스 제조업체인 독일 ‘티센 메탈스’ 등이 있다. 또한 세계최대 TFT-LCD 액정제조사인 독일 ‘머크사’, 포토마스크 생산 세계 최대인 미국 ‘토판포토 마스크사’와 일본 호야사, 세계최고 고휘도 필름기술 보유 미국 ‘3M사’ 등도 주목을 받는 업체들이다. 업종별로는 LCD관련 35개사, 자동차부품 23개사,IT관련 17개사,BT관련 4개사,R&D관련 10개사, 기타 9개 기업이다. 투자국가별로는 일본이 38개, 미국이 37개, 유럽 29개, 기타 4개 기업 등이다. 손 지사는 올 하반기 40개사 15억달러를 추가로 유치해 1만 5000여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계획이다. 황성태 투자진흥관은 “한 예로 자동차부품의 경우 세계 1∼3위 업체가 모두 경기도에 입주해 있다.”며 “국내 자동차들이 해외에서 인정받는 이유도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고 있는 기업들로부터 부품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 품질이 향상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kbchul@seoul.co.kr ■ 기업에 감동 주는 행정서비스 “투자 기업에 특혜를….” 경기도 투자진흥과 직원들은 지난해말 독일 지멘스 오토모티브측으로부터 ‘감사의 떡’을 받은 일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이천에 2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한 지멘스 오토모티브 직원들이 도청을 찾아와 “공장 진입로를 새로 만들어 주고 여러가지 투자 애로사항을 잘 해결해 줘 고맙다.”며 찹쌀떡 2말을 전달한 것이다. 지난 1978년 이천에 자동차 전기장치를 생산하는 공장을 설립한 이 회사는 새로운 공장 신설을 위해 새로운 투자처를 물색하고 있었다. 당시로선 중국 상하이가 유력했다. 도는 지난해 2월 이천공장의 진입로가 4m로 좁아 수출용 컨테이너가 출입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20억원을 투입해 도로를 11m 폭으로 넓혔다. 급기야 이 회사는 이천공장 증설로 투자 방향을 바꾸었다. 경기도의 기업유치 전략은 한마디로 ‘감동’을 주는 행정서비스이다. 그동안 ‘기업하기 좋은 여건 만들기’사업의 일환으로 8개 기업의 진입로를 개설해 주었으며 12개 도로개설 사업을 추진중이다. 외국기업뿐 아니라 국내 기업을 위해서도 진입로를 건설했다. 이들 진입로는 인근 기업체들도 이용하게 돼 수혜기업은 129개에 달했다. 경부고속도로 기흥IC가 조기 이전되는 것도 경기도의 노력 때문이다. 20만명이 입주하는 동탄신도시로 인해 기흥IC를 이용하는 삼성반도체와 협력업체들이 큰 불편을 겪을 것으로 판단되자 경기도는 한국도로공사를 설득해 당초 2010년 이전 계획인 IC를 3년 앞당겨 개통하기로 했다. 경기도는 이밖에도 평택 포승단지내 공장을 확장하려는 일본 스미토모사가 부지를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자, 인근 농심의 부지를 맞교환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손학규 경기도지사는 최근 경제인 초청 포럼에서 “나는 기업에 특혜를 주라고 공무원들에게 지시했다.”며 “이는 기업에 대해 확신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며 나라를 살리자는 충정”이라며 기업에 대한 서비스정신을 강조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풍림산업 이필웅 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풍림산업 이필웅 회장家

    1981년 이후 30위권에 들었던 건설업체 가운데 대주주의 변동 없이 시공능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업체는 풍림, 대림 등 8개뿐이다. 나머지 업체는 주인이 바뀌었거나 30위권 밖으로 밀려났거나 아예 공중분해된 경우도 있을 정도다. 국내 건설산업의 한 획을 긋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기업 보국 신념으로 창업 국내 건설업 20위권으로 성장한 풍림의 뿌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창업 초기부터 다른 기업과 달리 바깥에 기업을 알리기보다는 내실에 충실한 경영을 했기 때문이다. 풍림의 역사를 거슬러 오르면 국내 굴지의 건설사인 대림산업과 뿌리를 같이한다. 대림산업의 창업주이자 사장이었던 이석구(작고) 선대 회장이 1960년 군별 공사 제한을 극복하기 위해 작은 공사를 수주할 수 있는 2군 업체인 풍림산업(전신·전일기업·1954년 설립)을 인수, 오늘날 풍림으로 키웠다. 이석구 창업주는 1939년 20대 후반에 목재상인 ‘부림상회’를 설립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대림산업과 풍림산업의 모태가 됐다. 이석구는 사업이 번창하면서 경기도 시흥(현재 군포 산본)의 지주이자 외삼촌(이규응)으로부터 사업 자금을 빌려쓰는 대신 한 가지 제안을 받는다. 둘째 아들(재준), 즉 외사촌 동생과 함께 사업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부림은 이 때부터 두 사람의 노력으로 나날이 번창했고 해방 후 1947년 상호를 대림산업으로 바꾸면서 건설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다. 이 창업주의 기업 이념은 ‘기업보국(企業報國)’이었다.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채 고통스러워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민족과 나라를 살리는 길은 사업을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기업의 성장을 통해 국가를 살리자는 기업가 정신이 투철했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 창업주는 1962년 과로한 탓에 병세가 악화돼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대림산업의 경영권을 내놓고 투병 생활을 하다가 결국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만다. 이후 대림산업 경영권은 함께 일하던 이재준 사장이 맡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무위·무심경영으로 풍림 육성 이석구 창업주의 기업정신은 맏아들 이필웅(64) 현 풍림산업 회장이 물려받았다. 이 회장은 63년 선대 회장이 경영하던 대림산업에 입사, 경리일을 배우면서 기업인이 된다. 군대를 다녀온 뒤 대림산업에 다시 입사, 영업부에 배치돼 경영수업을 착실히 쌓기 시작했다. 이 때의 경험이 훗날 풍림산업의 최고 경영자로서 자질을 갖추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풍림은 당시 경제개발 붐을 타고 각종 공사를 따내면서 커왔다. 해외공사를 활발히 펼치는 동시에 경영관리와 조직정비를 통해 기업을 현대화하는 데 주력했다. 초기 대림산업의 공사를 하청받는 형태에서 벗어나 어느새 중견건설사로 우뚝 성장했다. 풍림의 제2창업은 이필웅 회장이 대림산업 부사장을 역임한 것을 끝으로 1981년 7월 풍림이 대림으로부터 완전 분리, 독립경영을 하면서 시작됐다. 본래 선대 회장이 창업한 대림산업은 동업자인 이재준 사장에게, 창업주의 맏아들인 이 회장은 계열사로 있던 풍림을 맡게 된 것이다. 이 회장이 풍림산업 경영 일선에 나서면서 그를 중심으로 한 경영체제가 구축되기 시작했다. 경영 쇄신을 단행, 국내외 조직을 개편하고 관리 인원을 줄이는 한편 전문 하도급 업체를 육성하는 등 공사 전문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풍림에도 위기는 찾아왔다.2차 석유파동에 이은 경제불황, 이로 인한 건설수요 급감은 풍림의 수주 신장률을 꺾는 치명타를 입혔다. 수주 경쟁이 치열해져 낙찰률이 떨어졌고, 자금조달 능력 부족으로 민간 공사 및 자체 사업 진출은 더디기만 했다. 해외공사 역시 다른 건설사와 마찬가지로 일감 수주가 어렵고 적정 이윤 확보가 쉽지 않아 무턱대고 진출할 수만은 없는 형편이었다. 결국 1986년 경영 쇄신에 들어간다. 본사 유사 조직을 통폐합하고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경영의 효율성을 올리는 동시에 원가 절감 등으로 허리띠를 졸라맸다. 직접 관리인을 줄이는 대신 협력업체를 키워 공사 전문화를 유도했다. 동시에 교육훈련을 강화하고 우수 인재를 확보하는 등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오늘날의 풍림으로 성장하게 된다.86년 4월에는 강남 테헤란로의 명물 풍림산업 사옥을 준공한다. 풍림빌딩에는 최근까지 특허청이 입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허청 빌딩으로 더 유명했다. 최근에는 이 건물 주변으로 고층 빌딩이 빼곡히 들어서고 복잡해져 찾기 어렵지만 오랫동안 테헤란로의 랜드마크 역할을 했다. 풍림의 성장 동력에는 이 회장의 경영 마인드가 크게 작용했다. 그는 기업을 지혜와 자제심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믿는다. 경영의 리더는 조직이 잘 운영되도록 작용하고, 최대한 순리에 따라야 한다는 철학을 지녔다. 바로 ‘무위(無爲)와 무심(無心)의 경영’이 이 회장의 경영철학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따르는 사람이 많았고, 도전과 성취 욕구가 강한 인재들이 몰려들었고 어려운 시기를 맞아 조직이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힘이 됐다. 이 회장은 현재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 중이며, 동생 이필승(56) 풍림산업 사장과 지난해 승진한 장남 이윤형(35) 상무가 그를 돕고 있다. 이 사장은 83년 3월에 풍림산업 자금부에 입사해 이후 경리·자재·총무·기획실 등을 두루 거쳐 99년 1월 사장으로 취임한 전문 경영인이다. 현재 풍림은 향후 50년을 어떻게 전개해야 할지 새로운 선택의 시점에 서 있다. 우선 풍림은 철저한 수익성 위주의 경영을 통해 안정적 성장기반을 공고히 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기업의 경쟁력 확보는 우수 인재 확보에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핵심 기술 확보 등에 매진하고 있다. 민간 건설 시장 위축, 최저가낙찰제 확대 등으로 공공시장 수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틈새시장 개척에 주력하고 있다. 자체 보유 부동산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개발 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오히려 땅 소유 부담에 따른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따라서 높은 아파트 브랜드 인지도를 내세워 수익성 있는 민간 발주 아파트 공사를 적극 수주할 방침이다. 해외건설은 엑슨 모빌이 발주한 러시아 항만 접안시설 및 부대시설 공사와 쉘이 발주한 가스 파이프라인 가압공사 진출을 계기로 해외사업을 강화할 채비를 갖췄다. ●두꺼운 인맥, 단출한 혼맥 이 창업주는 주변에 많은 사람이 따랐다. 풍림을 거쳐간 이재순, 이면훈, 허필은 사장 등이 창업주와 함께 초창기 대림과 풍림을 키운 전문 경영인들이다. 술은 한 모금도 못했지만 술자리에는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건설업 특성상 술자리도 자주 참석해야 하던 시절이었지만 술 한 모금 못하면서 영업에는 귀재였다고 한다. 공사를 따내기 위해 당시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 등과 선의의 경쟁을 벌이면서 건설업의 과당 경쟁 풍토를 정비하고 건설업 발전을 도모하는 등 국내 건설산업의 기초를 세우는 데 공헌한 인물로 꼽힌다. 또 해야 할 일을 쌓아두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부림상회 시절 주문이 들어오면 이 창업주는 소달구지에 목재를 가득 싣고 직접 배달을 가기도 했다. 소달구지 직접 모는 사장으로 통할 정도로 소탈하고 일에 대해 열정적이었다. 그는 사람 다루기를 잘했던 것 같다. 회사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은 사장이라고 할 정도로 앞에서 뛰었다. 형제가 많지만 가족들이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한정됐다. 풍림산업 경영에 참여하는 가족으로는 이 사장과 장남 이 상무가 전부다. 부지런함은 가족들에게 그대로 물려줬다. 이 회장이나 이 사장이 현장을 자주 찾고 새로운 사업 구상과 투명경영 추구는 사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회장은 지금도 매일 역삼동 사옥으로 아침 일찍 출근해 주요 업무를 직접 챙길 정도다. 이 사장 역시 아침 7시면 출근할 정도로 부지런하다. 이 회장의 집안은 형제 자매가 10명인 대가족이지만 혼맥은 단출하다. 다른 기업과 달리 굳이 정계·재계 집안과 결혼을 고집하지 않았다. 대부분 집안 어른 소개로 평범한 집안과 혼인했다. 주변 사람들은 풍림의 단출한 혼맥을 놓고 한국 건설업계의 초석을 다지며 50년 이상 성장한 회사답지 않게 복잡하지 않다고 말할 정도다. 이 회장의 큰 누이 필선씨는 일반적인 가정의 자녀 임대철씨와 결혼했고, 바로 윗누이 역시 평범한 가정의 권철주씨와 혼인했다. 매부들이 서울 공대 출신으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관련 기업에 근무했을 정도다. 셋째인 이 회장도 중매로 결혼했다. 이영자 여사 역시 평범한 집안이었다. 이 여사는 몇년 전 갑작스럽게 세상을 달리했는데, 임직원들이 모두 아쉬워한다. 임원들을 직접 집으로 불러 떡국을 끓여줄 정도로 자상하고 가정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여사를 사별한 뒤 장현덕(47) 여사와 재혼했다. 이 회장은 자식들 결혼 역시 일상적인 가정의 자녀들과 맺어줬다. 큰딸 정민씨는 이동한씨와 혼인했다. 이동한씨는 일본에서 공부하고 국내에 진출한 일본 기업에 근무하던 중 반 중매 반 연애결혼했다. 국내 굴지의 회사 자녀이지만 결혼식은 조용하게 치렀다. 두 아들 역시 결혼 과정이 평범하고 소리나지 않는다. 큰 아들인 윤형(35)씨는 한양대를 나와 미국 시러큐스대에서 MBA 과정을 밟던 중 알게 된 오유진씨와 연애결혼 했다. 유진씨의 부친은 고려대 교수이다. 작은아들 주형(34)씨는 지난 2001년 말 역시 미국에서 유학 중 만나 사귄 최수현씨와 결혼했는데 사돈 집안은 평범한 가정이다. 이런 풍토는 이 회장의 다른 동생들도 마찬가지다. 이필승 사장은 대학때 사귄 평범한 집안의 딸 강환량씨와 연애결혼에 골인, 가정을 꾸렸다. 나머지 동생들 역시 본인이 원하는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는 등 보기 드물게 단출한 혼맥을 유지하고 있다. chani@seoul.co.kr ■ 젊은 아이디어의 산실 ‘영 보드’ 눈길 풍림산업은 젊은 기업으로 통한다. 군더더기가 없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조직을 재정비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이뤄지도록 변신했기에 가능했다.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기획기능을 강화, 각 부문별 경영전략 모색을 통한 신속한 의사소통과 현장의 소리를 듣기 위해 기획담당 제도와 ‘Young Board(청년경영자회의)를 운영하고 있다. 2001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기획담당 회의는 각 사업부(본부)의 부·차장급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평소 현업을 수행하며 교육을 받거나 정보를 수집하고, 격월 1회 정도 전체 임원회의에서 부문별 시장동향, 부문별 전략 등을 브리핑한다. 이들이 브리핑한 내용은 임원들이 즉시 검토, 경영에 반영하고 있다. 풍림의 청년경영자회는 1987년부터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는데 대리, 과장급 10여명 정도로 구성되며 임기는 2년이다. 이들은 평소 현업을 수행하며 업무 관련 아이디어나 회사경영에 건의할 사항을 준비해 매달 1회 자체회의를 연다. 회의 결과는 사장과 면담을 통해 직접 건의하는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청년경영자들은 차세대 경영자가 되기 위한 경영관련 교육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또 고아원, 장애인시설 등 방문 등 회사의 자원봉사활동을 주도적으로 펴나가고 있다. 이필승 사장은 “기획담당 제도와 영보드회의 활성화로 열린 경영을 추구하고 의사결정이 빠른 경영 풍토를 마련할 수 있었다.”며 “풍림산업이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도 살아남고 지속적으로 성장·발전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칭찬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지난 50여년 오직 한 길, 건설에만 매달려온 풍림산업. 작은 묘목이 모여 울창한 수풀을 이루듯 풍림은 건설업계 20위, 매출액 1조원대의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회사 이름은 목재회사를 시작으로 한 부림상회(富林商會)와 연결된다. 인천 부평역 앞에서 작은 가게를 얻어 문을 연 부림상회는 이후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인 풍림산업과 대림산업으로 발전,‘풍요로운 울창한 숲(豊林)’을 이루고 있다. 초기 기업가들이 다양한 분야로 사업영역을 넓혔던 것과 달리 풍림은 오직 건설 전문기업으로 한 우물만 파고도 그룹 건설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곁눈질하지 않고 건설만 고집하다 보니 회사가 대그룹으로는 성장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몸집 부풀리기에 치중한 기업들이 힘없이 쓰러진 것과 비교해 어려운 경제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다. ■ ‘엄격한 경영수업’ 풍림의 家風 풍림가는 엄격한 경영수업으로 유명하다. 장자 중심으로 경영권을 물려주고, 여자 형제의 경영참여를 허락하지 않는 것도 다른 기업과 다르다. 몸소 뛰고 정도를 고집하는 것이 가풍(家風)이자 사풍(社風)이다. 창업주 본인이 주문받은 물건을 직접 배달하고 현장을 확인한 뒤 작업을 지시할 정도로 부지런했다. 대림산업이 어느 정도 성장했을 때도 일감을 따내기 위해 사람들을 찾아다녔고, 국내외 건설현장을 직접 밟았다. 창업주 자신이 검소하고 한눈 팔지 않았을 뿐 아니라 2세,3세 역시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 회장 역시 대림산업에 입사, 경리 업무부터 배웠다. 이후 각 분야에 근무하면서 경영인의 자질을 키웠다. 특히 풍림산업을 이끌면서 국내외 현장을 누벼 국내 대형 업체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런 경영수업은 3세에게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이 회장은 장남인 이 상무가 보다 체계화된 기업에서 일을 배우도록 하기 위해 바로 풍림에 입사시키지 않고 삼성전자와 대림산업에 밑바닥부터 일을 배우도록 했다. 호랑이가 새끼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 바위 밑으로 떨어뜨리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또 선진 경영기법을 배우도록 미국 시러큐스대로 유학을 보내 MBA 과정을 밟도록 했다. 이후 풍림에 입사한 뒤에도 다양한 업무를 익히도록 하고 있다. 개발사업부에서 경영수업을 받던 이 상무는 지난해 승진하면서 조달본부 담당 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자리는 구매·계약 업무를 총괄하면서 건설업의 모든 과정을 두루두루 꿰뚫어보고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곳이다. 경영이라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고, 최고경영자 역시 쉽게 올라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몸소 깨달으라는 뜻이다. 풍림 관계자는 “지난해 이뤄진 이 상무의 승진도 경영 수업을 착실히 쌓기 위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필승 사장도 조카인 이 상무의 경영수업에 대해 “엄격하게 제대로 경영수업을 받아야 기업을 이끌 수 있고, 탈이 없는 것”이라며 “(엄격한 경영수업이) 풍림의 전통”이라고 말했다. chani@seoul.co.kr
  • [이사람] 線으로 禪그리는 고희청년 박서보

    [이사람] 線으로 禪그리는 고희청년 박서보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추상미술을 이끌어온 박서보(75) 화백.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줄곧 색면 회화로 표현해 온 미니멀리즘의 대가다. 그의 작업은 구도자가 욕망을 끊고 엄격함과 절제로 자신을 다스리는 것과 비슷하다. 한지 위에 볼록하고 가늘게 세운 실오라기 같은 선(線)의 향연이 반복된다. 선(禪)의 세계에 맞닿아 있는 듯하다. 묵상과 명상의 시간이 필요한 현대인들이 애정을 갖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리라. 서울 동교동에 위치한 박 화백의 작업실을 세 차례나 찾았다. 그림이 좋아, 또 그의 매력적인 모습을 만나는 것이 즐거워 이뤄졌던 방문이 인터뷰로 이어졌다. ●손의 흔적을 쌓아가는 작업 처음 만난 박 화백의 느낌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정열의 느낌이 확 풍겨 나와 무척 놀랐다. 지긋한 나이이지만 젊은이 못지않게 색(色)의 기운도 넘치는 정력적인 모습이다.“너무 섹시해요.”라는 말이 툭 튀어나온다. 그는 “에이, 무슨 소리야.”라고 하면서 싫지 않는 듯 환하게 웃는다. 반들반들한 머리에서 풍겨 나오는 다이내믹함,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넘쳐나는 힘…. 솟구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청년 예술가의 모습이 따로 없다.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늘 작업복 차림에 손에는 물감을 묻히고 작업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하루라도 거르는 날이 없다. 그것도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되는 작업이다. 오전 9시에 작업실로 출근, 집에서 싸 온 과일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고, 저녁은 근처 식당에서 먹는다. 미대생 몇 명이 작업실을 들락날락하며 박 화백의 작업을 돕다가 어둠이 내려앉자 퇴근했건만 그의 작업은 계속된다. “곁눈질하지 않고 바보처럼 외길로 50년 넘게 작업을 해왔어요. 휴가도 없어요. 가끔 해외 전시회 갈 때 잠시 쉰다고나 할까요.” 그의 작업은 일견 단순과 반복의 노동처럼 보인다. 한 가지 바탕색을 칠한 뒤 다른 색으로 간격을 맞춰 밭의 고랑을 세우는 듯 선을 입체화시키는 작업이다. 보기에는 단순한 작업 같아도 사전 작업은 철저하다. 색깔의 조화를 시뮬레이션해 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거친다. “무엇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손맛’을 느끼도록 손의 흔적을 쌓아가는 작업이에요.” 따라서 그의 그림을 보노라면 무엇인가를 그렸다기보다 어떤 느낌을 강하게 전달한다. 작가는 자신의 ‘묘법’(描法·일종의 긋기) 시리즈에 대해 “그리지 않고 그린 그림이라고나 할까요.”라고 하면서 “그림은 수신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지요.”라고 말한다. ●디지털 시대 예술가는 일회용처럼 쓰고 버려져 그는 최소한의 것만 표현하는 서구의 미니멀리즘과 다르다고 강조한다. 즉 자기를 비워내는, 부단한 자기 수행을 통해 자연과 합일되는 것을 추구해 왔다고 부연한다. 그는 또 디지털 시대 미술의 어려움을 토로한다.“아날로그 시대에는 표현이라는 이름 아래 캔버스에 자기 것을 마구 쏟아내면 됐거든요. 강력한 이미지로 관람객들을 압도했지요. 지금의 예술가는 일회용 컵처럼 한번 쓰여지고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버려집니다.” 시대를 앞서가던 예술가가 뒤돌아서면 폐기처분 당하는 시기가 바로 요즘의 디지털 시대라는 것.“지금의 작가들에게는 예술에 테크놀로지를 결합하는 작업을 하려면 오히려 아날로그로 돌아가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 시대 예술의 존재에 대해서는 목소리가 높아진다.“21세기 우리 사회는 스트레스로 정신 병동화됩니다. 예술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치유하는 역할을 해야지요.” ●평면예술은 끝나지 않아 요즘 영상·설치예술 등이 아무리 잘나간다고 해도 평면예술은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비·바람을 피하기 위해 지붕 아래 사는 한 평면 예술은 존재합니다. 지붕이 있으면 벽이 있고, 빈 공간에 공포감을 느끼는 우리들은 뭔가를 곁에 두고 즐기려고 합니다. 그것이 그림이지요.” 박 화백의 작품들은 디지털 시대인 요즘에 더 잘 어울린다는 평이다. 휑한 벽에 군더더기 없는 간결함으로 동·서양의 미를 통합한 그의 작품을 걸어 놓으면 철학적 조형미가 살아난다는 것. 요즘 들어 화려한 색채감까지 입혀져 더욱 생명력이 꿈틀댄다는 평가다. 한때 젊었을 때 선배들을 보고 “똥차 좀 비키시오.”라고 했다던 그. 지금은 입장이 바뀌었다. “후배들이 아무리 비키라고 해도 그럴 생각이 없어요. 자신 있으면 추월해 가구려.” ■ 박서보 그는… 박서보 화백은 화단의 멋쟁이로 소문나 있다. 추운 겨울에는 짧은 밍크 재킷에 여우꼬리가 달린 털 모자를 쓰고, 화려한 봄날에는 실크 양복으로 멋을 낸다. 게다가 프라다 크로스백을 가슴에 둘러맨 모습을 보면 원로화가가 아닌 열정 넘치는 젊은 대학생과 다름없다. 홍익대 서양학과 출신의 그는 1956년 26살에 동료 예술가들, 그리고 국전과의 결별을 과감히 선언했다. 기존의 가치·형식을 부정하면서 58년 ‘뜨거운 추상’으로 불린 앵포르멜운동의 기수가 된다.70년대 들어 그 유명한 묘법 시리즈를 선보이며 단색회화로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오랫동안 홍대 미대 교수로 재직해 이른바 우리 화단의 중심축인 홍대 미대 사단의 대부로도 불린다. 수첩에 부인의 신발, 블라우스 사이즈 등이 빼곡히 적혀 있을 정도의 소문난 애처가로 2남 1녀를 뒀다. 자녀 모두 미술을 전공했으며 현재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서울이야기] (43) 푸드뱅크

    [서울이야기] (43) 푸드뱅크

    경제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어려운 사람들이 더욱 늘어났다고 한다.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넘어 2만 달러를 향해 가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민 중 결식아동은 2만 9643명, 노숙자는 3164명에 이르고, 매일 무료급식소를 이용하는 결식노인도 1만 4000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옛날부터 우리는 끼니를 거르는 이웃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는 아름다운 전통을 가지고 있다. 먹거리를 나누는 것은 단순히 남는 음식을 어려운 사람에게 제공하는 것을 넘어 인간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미덕을 실천하는 행위이다. ●푸드뱅크 개인이나 기업들로부터 여유 식품을 무상으로 기탁(후원)받아 음식이 부족해 굶거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식품나눔제도 또는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을 푸드뱅크(Food bank)라고 한다. 푸드뱅크는 1967년 미국에서 자선사업으로 처음 시작되었으며, 현재는 캐나다 프랑스 독일 호주 등 서방 선진국에서 활발하게 실시하고 있고, 아시아권에서는 한국과 필리핀 등에서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개별 사회복지 기관들이 식품을 후원받아 자체 복지사업에 이용해온 적은 있지만 본격적으로 푸드뱅크라는 이름을 달고 사업을 시작한 것은 1998년이다. 1997년 외환위기 발생 이후 보건복지부는 결식계층을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식품 기탁자와 수혜자를 연계하는 전달체계로 푸드뱅크 사업을 구상했다. 1998년 1월 서울 부산 대구 과천 등 4개 지역에서 시범사업을 시작하였고 같은 해 9월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 실시했다. 푸드뱅크 사업이 앞서 발전한 서구사회에서는 주로 민간 자선단체에서 자원봉사 형태로 푸드뱅크를 운영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사회안전망의 하나로 정부가 주도적으로 푸드뱅크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푸드뱅크 운영에 필요한 냉장고, 차량 등 장비와 인건비를 지원해줄 뿐, 실질적인 운영은 민간 복지시설이나 단체에서 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민간중심의 복지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에는 서울시 전역을 총괄하는 광역푸드뱅크 1개와 자치구 단위로 운영되는 34개의 기초푸드뱅크가 있는데, 대부분의 기초푸드뱅크는 사회복지관에서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푸드뱅크는 정부에서 지원받은 냉동탑차를 이용해 기탁 받은 식품을 받아와서 이를 무료급식소, 노숙자 쉼터, 생활시설, 재가복지센터 등의 복지시설과 결식아동, 소년소녀가장, 혼자 사는 노인이나 장애인, 기초생활보장대상자 등에게 나누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푸드뱅크 사업에 대해서 홍보하고 식품 기탁자를 발굴하는 것 또한 푸드뱅크의 역할이다. 2005년 1년간 서울시 푸드뱅크들이 기탁받은 물품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81억 5000만원에 이른다. 이는 푸드뱅크 사업 초기인 1999년 기탁받은 물품이 7억 6000만원 정도였던 것에 비해 10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기탁 가능한 물품은 통조림, 햄류, 빵류, 조미료 등 가공식품은 물론 채소 과일 곡물 생선 고기 등 농수축산물, 그리고 조리된 식품에 이르기까지 제한이 없다.2005년 서울시 푸드뱅크에 기탁된 식품들은 식사대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밥 빵 면류 등 주식류가 38억원어치, 전체의 46.7%로 가장 많았으며, 그 다음으로 과자 과일 음료수 등 간식류가 32.8%(약 27억원), 반찬류가 8.1%(6억 5000만원) 순으로 많았다. 식품 기탁은 개인보다는 주로 식품관련 사업체에서 많이 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2005년 한 해 동안 기탁된 식품의 39%(약 32억원)가 식품 도소매업소에서 기탁받은 것이고, 그 다음으로 식품제조·가공업소가 27.3%, 즉석판매·제조업소가 12.7%로 참여도가 높았다. 반면에 일반 가정에서 기탁한 것은 전체의 0.6%인 5000만원 정도에 불과하였다. 푸드뱅크에 식품을 기탁하려면 전국 어디서나 국번없이 1377을 누르면 가까운 푸드뱅크로 연결해준다. 푸드뱅크에 물품을 기탁하면 법인세법시행령 제19조와 소득세법시행령 제55조에 의해 기탁물품 전액에 대해 100% 손비처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식품을 받고 싶은 경우도 1377로 연결해 신청할 수 있다. ● 민간의 푸드뱅크 사업 1998년 보건복지부에서 푸드뱅크 사업을 시작한 것과 비슷한 시기에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별도의 먹거리 나눔 운동도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조직적인 푸드뱅크 사업을 실시한 민간단체는 성공회 푸드뱅크이다. 성공회 푸드뱅크는 1998년 5월 설립되어 보건복지부로부터 냉동차 4대 및 기사 인건비와 차량 운영비, 사업비를 지원받아 푸드뱅크 사업을 시작했다. 또한 1998년 6월에는 푸드뱅크 운동을 하는 단체들이 모여 ‘사랑의 먹거리나누기 운동본부’를 결성했다. 먹거리나누기 운동본부에 참여한 단체는 부스러기 사랑나눔회, 서울YMCA, 대한 YWCA연합회,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기독교장로회 총회본부, 성공회 푸드뱅크 등 6개 기관이며, 일종의 민간주도형 푸드뱅크의 총괄조직으로 기금이나 기탁물품 개발, 정책개발 등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민간주도형 푸드뱅크 가운데 실질적으로 식품을 기탁받아 배분하는 사업을 하는 곳은 성공회 푸드뱅크뿐이다. 성공회 푸드뱅크는 현재 서울에 남부와 북부 2개 지구 아래 5개 지부(관악, 영등포, 용답, 성북, 용산)가 운영 중이고, 전국적으로는 6개 지구에 30개 지부가 있다. 또한 2003년부터는 노숙자들을 위한 대형급식차 1대도 운영하고 있다. ●푸드마켓 푸드마켓이란 식품 생산업체나 일반 시민으로부터 기탁받은 음식이나 생필품을 일반 슈퍼마켓과 같이 진열해두고 어려운 이웃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만든 상설 무료마켓이다. 푸드뱅크는 운영자가 식품을 일괄적으로 기탁받아 수요자에게 일괄적으로 배분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수요자 입장에서는 원하는 식품을 필요할 때에 제공받기 어렵고, 식품을 수요자에게 일일이 배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푸드마켓은 이러한 푸드뱅크의 한계를 개선한 업그레이드 된 음식나눔 사업이다. 서울시는 2003년 3월 전국에서 최초로 ‘창동 서울푸드마켓’을 시범운영했다. 지하철 4호선 창동역사 입구에 마련된 서울푸드마켓은 해찬들, 삼양식품 등 종합식품업체, 단체급식업체, 그리고 인근의 대형유통업체인 농협 하나로마트 창동센터와 이마트 창동점 등의 협조를 받아 사업을 시작하였다. 이후 2004년 12월에 푸드마켓 2호점인 ‘해누리 푸드마켓’이 양천구에 오픈하였고,2005년 11월에는 서대문구 냉천동에 세번째 ‘정담은 푸드마켓’이 문을 열었다. 현재는 서울에 모두 8개의 푸드마켓이 운영중이다. 서울시는 앞으로 푸드마켓을 점차 늘려 모든 자치구로 확대할 예정이다. 푸드마켓은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가장,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 등 저소득층 가정이 회원제로 이용할 수 있다. 회원으로 등록하려면 푸드마켓을 직접 방문하여야 하는데 저소득층임을 증명할 수 있는 의료급여증과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이용시간은 푸드마켓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용이 가능하고 토요일, 일요일은 휴무이다. 아직은 기탁물품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좀더 많은 회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월 1회 5가지 품목씩으로 이용을 제한하고 있다. 푸드마켓은 기탁물품의 접수, 물품의 포장, 진열, 이용자 안내, 마켓청소에 이르기까지 모든 업무에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하고 있어 기부문화와 자원봉사문화가 함께하는 나눔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후원물품을 내거나 자원봉사 참여를 하려면 푸드마켓에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를 걸면 된다. ●기부문화·자원봉사문화의 확산 푸드뱅크와 푸드마켓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더 많은 식품을 기탁받는 것이 관건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푸드뱅크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외국에서는 다양한 행사를 통해 기탁모금을 한다. 프랑스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수재의연금 모금방송을 하는 것과 같은 형태로 푸드뱅크 기탁모금을 위한 방송을 주기적으로 하고 있고, 연예인과 같은 유명인사들이 참여한 방송 프로그램 및 이벤트를 자주 기획하여 기탁모금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미국의 우체부 협회는 매년 음식배달의 날(Food Drive Day)을 지정하고 이날 우체부들이 각 가정을 돌면서 우편함 옆에 내놓은 기부된 음식들을 모으는 행사를 한다. 또한 미국의 결식아동 지원 단체인 ConAgra Foods Feeding Children Better Foundation은 전국에서 결식아동을 위한 급식소인 Kids Cafes를 운영하고, 아동 결식에 대한 캠페인을 통해 결식아동 문제를 사회 이슈화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푸드뱅크 사업은 기부와 자원봉사라는 시민참여를 기본으로 한다. 푸드뱅크에 식품을 기탁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 연구에 따르면 응답자의 50.9%가 푸드뱅크에 참여함으로써 얻은 것으로 ‘사회에 기여했다는 만족감’을 지적했다. 푸드뱅크는 먹거리라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충족을 통해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또한 다양한 통로를 통해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역공동체 형성에 많은 기여를 하는 사업이다. 푸드뱅크라는 먹거리 나눔을 통해 우리사회의 기부문화, 자원봉사문화가 성숙되기를 기대한다. 김정혜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사회부 선임연구위원
  • [지방선거 D-70] 수도권·텃밭 공방전 관심 집중

    [지방선거 D-70] 수도권·텃밭 공방전 관심 집중

    22일로 5·31지방선거까지 D-70일. 여야는 지방선거가 대선의 전초전이라는 인식 아래 선거채비에 ‘올인’하는 양상이다. 정치권은 인물론이 선거의 향배를 가를 최대 변수로 보면서도 지방권력 심판론이니 참여정부 심판론이니 하면서 기선 잡기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 와중에 전략공천과 상향식 경선이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갖가지 잡음도 쏟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아울러 지역분할구도에 변화가 올지, 여권의 장관 총동원령이 먹혀들지도 지방선거의 관심거리다. 지방선거의 4대 관전포인트를 짚어본다. ‘5·31지방선거’는 꽉 짜여진 지역구도 아래서 치러질 전망이다.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는 한나라당, 호남은 민주당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한나라당이 장악하고 있는 TK·PK 지역에서 다른 정당 후보들이 발붙일 공간이 거의 없어 보인다. 한나라당은 16개 시·도지사 가운데 호남과 충청권 일부를 제외한 11곳에서 승리를 희망하고 있다. ●수도권이 최대 승부처 현재 열린우리당은 전북을 제외하고 어느 지역에서도 절대적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는 상태다. 이 때문에 여권은 ‘지방정권 심판’으로 전체 선거판을 짜면서 참신한 ‘인물론’으로 수도권에서 승부를 건다는 전략이다.‘강금실(서울)-진대제(경기)-강동석 혹은 제3의 인물(인천)’로 이어지는 ‘드림팀’이 핵심 병기다. 드림팀이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맡으면서 전체 지방선거에 활력을 주는 ‘선순환’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김한길 원내대표는 “수도권에서 1승을 올리면 우리가 지지 않은 선거”라고 밝혔다. 높은 인기도를 유지하고 있는 강 전 장관에게 기대가 크다. 반면 한나라당은 서울·경기·인천 등 ‘빅 3지역’에서 싹쓸이한다는 목표다. 한나라당은 “강금실 할아버지가 나와도 어림없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지만 강 전 장관의 ‘인기 파워’를 두려워하는 눈치다. 그러나 본격적인 선거전에 들어가 강 전 장관에 대한 ‘검증’에 착수할 경우 ‘거품’이 빠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를 노리는 맹형규·홍준표 의원이 초반부터 거칠게 경쟁을 하며 이전투구의 양상이 되고 있다. 이에 비해 인천시장·경기지사 선거는 여권에 비해 유력 후보와 정당 지지율이 모두 높은 편이라 비교적 수월한 승부가 가능할 것이란 분석이다. ●사활 건 지역 텃밭 경쟁 민주당은 광주·전남 지역에서 ‘부활’을 노리고 있다. 반면 여당은 고건 전 총리와의 연대로 ‘호남 탈환’을 모색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 되레 민주당은 탈당설이 나도는 강현욱 현 전북지사를 영입, 열린우리당과의 한판 대결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거 때마다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해온 충청권은 국민중심당의 출현으로 새로운 지역구도 흐름이 형성되는 기류다. 국민중심당은 충남지사 선거에 올인 전략을 세웠다. 출마설이 나돌던 이인제 의원이 불출마로 선회했지만 대신 지지율이 높은 이명수 전 행정부지사가 입당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권은 이에 대해 염홍철 대전시장의 재선에 기대를 걸면서 오영교 전 행정자치부 장관(충남)-한범덕 전 정무부지사(충북) 카드로 맞설 구상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자민련 김학원 대표의 입당으로 충청 공략에 시동을 걸고 있다. 울산시장 선거의 변수는 민주노동당이다. 최근 현대차 노조를 등에 업은 민노당 지도부가 버티고 있지만 울산 아성을 구축한 정몽준 의원의 선택과 한나라당의 ‘영남 싹쓸이’ 전략 등에 따라 승부가 갈릴 것이란 전망이다. 오일만 박지연기자 oilman@seoul.co.kr
  • [공직초대석] 국립공원관리공단 산사나이 4인

    [공직초대석] 국립공원관리공단 산사나이 4인

    일년 열두달 가운데 열달을 산중에서 보내는 사나이들이 있다. 이들에게 산은 일터이자 놀이터이기도 한, 삶의 터전이다. 산에 살고 산에 죽는다는 말이 딱 들어맞을 듯싶다. 노고단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지리산 종주 능선 한 가운데쯤 자리잡은 해발 1340m 벽소령 대피소. 국립공원관리공단 소속 우동제(44) 대피소장과 허성(32), 이성우(31), 박종규(27)씨가 근무하고 있다. 마침 산불예방을 위한 통제기간(3월1일∼5월15일)이어서 탐방객의 발길은 끊어진 상태다. 휘이∼잉 불어오는 거센 바람소리만 그득할 뿐이다. 고적감 그 자체. 우 소장은 국립공원관리공단에 근무한 지 20년이 지났다. 한때 가족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가 북한산 국립공원에서도 잠깐 근무했지만 지리산 품으로 되돌아왔다.“드넓은 지리산이 그리워서…”라고 했다. 이성우씨도 비슷하다. 서울 강남의 조경회사에서 근무하다 “산이 좋아서” 이곳 오지생활을 택했다. 허성씨는 산중 생활 2년째, 그리고 막내 박종규씨는 이제 막 보름이 지난 신출내기다. 할 일은 많다. 입산이 통제된 요즘엔 성수기에 대비해 시설물을 보수·점검하는 일에 매달린다. 나무로 지어진 대피소 건물이 비바람에 훼손되지 않도록 화창한 날을 골라 외벽에 기름칠하는 것도 큰 일이다. 탐방객이 쓰는 이불을 빠는 것도 이 즈음이다. 수백채의 이불을 꾸러미로 만들어 놓으면 헬기로 날라 산아래에서 세탁한다. 등산로를 돌며 바람에 날려온 비닐봉투나 담배꽁초 같은 쓰레기 청소 역시 빠지지 않는 일과다. 그래도 요즘엔 쓰레기가 한결 줄었단다. 우 소장은 “탐방문화가 참 많이 좋아졌다.10여년 전만 해도 쓰레기를 줍느라 종일 땅만 보고 걸었을 정도”라고 했다. 성수기엔 몸도 마음도 덩달아 바빠진다. 탐방객 이부자리 정리부터 시작해 실내 청소를 하는 데만 꼬박 3시간 넘게 걸린다. 오후는 고달픈 시간의 연속이다. 밀려드는 탐방객에게 숙소를 배정해 주고, 간이매점에서 이런저런 물품을 팔거나 때때로 벌어지는 탐방객들 사이의 다툼을 중재하기도 한다. 산이 좋아서 선택한 근무지지만 속에서 부글부글 화가 치밀 때도 있다. 과음으로 술 주정을 부리는 탐방객 탓이다. 허성씨 말처럼 “술 마시고 잠도 못자게 하면서 행패를 부릴 때면 멱살이라도 잡고 싶을 정도”지만 그래도 참고 지낼 도리밖엔 없다. 가장 중요한 업무는 조난당한 탐방객을 구조하는 일이다. 구조요청은 해질녘에 가장 많이 들어오는데, 사유도 갖가지다. 발목을 접질렸거나, 하산길에 힘에 부쳐 탈진하는 사례가 많다. 탐방로가 좁아 여럿이 달라붙을 수 있는 들것 사용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몇 시간동안 업은 채로 험한 산길을 내려 갈 수밖에 없다. 무릎이 저리고 땀이 쏙 빠지는 일이지만 보람은 크다. 조난객과 인연을 쌓아가기도 한다. 미혼인 허성씨는 “지난해 구해준 여성으로부터 정기적으로 연락이 온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맥빠지는 ‘구조요청’도 있다.“랜턴이 없다.”거나 “건전지가 다 떨어졌다.”는 사람들이다. 할 수없이 장비를 갖춰 출동하지만,“기본장비도 갖추지 않고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 허탈할 뿐”이다. 우 소장은 “매표소에서 되돌려보내기는 하지만 아무런 장비없이 굽높은 구두를 신고 오는 여성들도 있다.”면서 “지리산은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몰라 전문 산악인도 안심할 수 없는 곳”이라며 철저한 사전준비를 당부했다. 이들이 산아래 가족들을 만날 수 있는 날은 열흘에 이삼일이 고작. 나머지는 고스란히 산에 바쳐진다.“외롭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하나같이 빙그레 웃음만 되돌려보낼 뿐이다. 글 사진 지리산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자장면 원조 ‘공화춘’

    자장면 원조 ‘공화춘’

    한국인들이 하루 700만 그릇을 먹어 치운다는 ‘외식의 왕중왕’ 자장면. 맞춤법을 떠나 ‘짜장면’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자장면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중국이 아닌 우리나라 차이나타운에서 탄생했다. ●첫선 101년만에 근대문화재 등록 자장면을 처음 선보인 중국음식점 ‘공화춘(共和春)’이 태어난지 101년만인 최근 근대문화재로 등록됐다. 인천시 중구 북성동과 선린동 일대 차이나타운에 위치한 공화춘(선린동 38번지)은 1905년 문을 열었다. 차이나타운에서 인천역 방향으로 난 샛길을 내려가다 보면 오른편으로 보이는 2층 건물이다. 일제시대와 6·25전쟁을 거치며 보릿고개를 넘어야 하던 시절에도 중절모 신사와 뾰족구두를 신은 부인은 물론 ‘외식’을 위해 몇달을 벼르고 벼른 서민들까지 설렘으로 문턱을 넘던 곳이다. 자장면을 먹는 순간만큼은 누구나 행복했다. 사람사는 이야기가 면발처럼 길게 이어졌으며, 아이들의 입가는 이내 꺼멓게 물들었다. ●중국인 부두근로자 위해 ‘개발´ 공화춘은 오래전 문을 닫아 지금은 을씨년스러운 모습이지만 안에서는 수많은 군상들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하다. 임오군란 다음해인 1883년 중국은 이 일대 5000평에 청국 조계지를 설정했으며 이후 자연스럽게 음식점들도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하나인 공화춘의 주인은 당시 인천항에서 일하던 중국인 노동자들이 값싸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생각하게 됐다. 궁리 끝에 볶은 춘장(중국 된장)에 국수를 비벼 먹는 자장면을 발명(?)했다. ●1984년 문닫아 건물 비어 있어 자장면의 ‘신기한’ 맛은 곧바로 중국노동자뿐아니라 한국인들을 매료시켜 외식의 대명사로 자리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공화춘은 자장면을 개발한 덕에 중화루, 동흥루 등과 더불어 차이나타운을 대표하는 ‘3대 요릿집’으로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1984년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주인이 화교들의 재산권 행사를 제한한 정부 정책에 불만을 품고 우리나라를 떠났다는 설도 있다. ●관할구청서 사들여 자장면박물관 추진 아무튼 현재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빈 건물로 방치돼 있으며, 중구는 이 건물을 매입해 자장면 박물관을 만들 계획이다. 건물은 화교 2명의 공동소유로 되어 있다. 공화춘은 대지 581㎡, 연면적 846㎡에 화강석을 기초로 한 조적구조로 지붕은 슬레이트로 되어 있다.2층 창호는 목제창이며 1층은 아치형 장식창이다. 특히 눈목자(目) 형태로 앞뒤에 일(一)자형 건물이 있으며 그 사이 공간에 4개의 건물이 연결돼 각 건축물 사이에 중정이 있다. 이런 건축물 형태는 청 조계지 당시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어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영업중단 20여년째를 맞아 이제는 빛바랜 낡은 간판만이 이곳이 자장면의 발상지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4년 전부터 새로운 공화춘 영업 한편 2002년 공화춘에서 차이나타운 중앙통을 통과해 위쪽으로 200여m 떨어진 곳에 새로운 ‘공화춘’이 문을 열어 영업을 하고 있다. 화려한 중국풍의 4층 건물인 이 업소는 옛 공화춘에서 일하던 주방장을 데려왔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검증은 안 되고 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인천 차이나타운은… 인천 차이나타운은 화교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화교는 누구일까? 1882년 임오군란이 발발하자 청조는 한국을 돕는다는 핑계로 3000여명의 군대를 파견했다. 이때 군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40여명의 중국상인들이 함께 들어왔는데, 이들이 한국 화교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군대가 철수한 뒤에도 우리나라에 계속 머물면서 음식업 등 각종 상업활동에 종사해왔다. 인천시 중구 북성동 경인전철 맞은편에 있는 1만 8000평의 차이나타운에는 한때 5000여명의 화교가 거주했으나 박정희 정권 이후 화교의 재산권 행사를 제한하는 정책에 불만을 품고 미국, 동남아 등으로 떠나 현재는 500여명만이 남아 있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화교자본 유치를 통한 차이나타운 활성화 정책이 펼쳐지자 떠났던 화교 2세들이 다시 국내로 들어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인천차이나타운에는 중국음식점 25개와 중국물품점 13개 등 40여개의 업소들이 자리잡고 있다. 아울러 파이러우(큰 대문 모양의 상징물), 삼국지벽화거리, 중국 사찰인 의선당, 한·중문화관, 화교학교 등이 둥지를 틀고 있으며 주변에는 맥아더동상이 있는 자유공원, 개화기 유물거리, 월미도 관광단지 등 볼거리가 많다. 차이나타운 내 25개 음식점 중 22곳은 중국인이, 나머지는 한국인이 운영하고 있다. 이들 업소 대부분은 비록 수타면은 아니지만 자장면 고향답게 2∼3대를 이어온 나름의 비법을 지니고 있다. 업소별 자장면 값은 2000∼3500원.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서울이야기] (42) 여성 경제활동 지원

    [서울이야기] (42) 여성 경제활동 지원

    지난 3월8일은 ‘세계여성의 날’이었다. 이 날은 1908년 미국 뉴욕시에서 노동조건이 열악한 의류공장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이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 자유를 외치며 대규모 집회를 가진 날을 기념한 데서 비롯됐다. 이로부터 약 100년이 지난 현재 대다수의 국가에서 여성은 선거권을 갖게 되었다. 한편 여성의 교육수준이 높아지면서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여성 수가 늘어날 뿐만 아니라 전문, 기술 및 행정관리직에 종사하는 여성들도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와 근로조건이 남성에 비해 여전히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서울여성의 경제활동 참가 현황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00년 48.6%에서 2004년 51.6%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남성 경제활동 참가율 75%에 비하면 아직 낮은 수준이다. 그리고 캐나다와 미국의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 약 60%에 비해서도 낮은 편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는 결혼과 자녀 양육에 큰 영향을 받는다. 서울여성의 경우 20∼24세 여성의 49%,25∼29세 여성의 57.1%가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다 30∼34세가 되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43.5%로 뚝 떨어진다. 이 시기에 직장을 떠난 여성의 대부분은 이후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이 20∼24세 74.9%에서 25∼29세 80.6%로 증가하고,30∼34세에도 80%,35∼39세에도 81.5%를 유지해 거의 변화가 없다. 미국의 경우도 20∼24세 72.9%에서 25∼29세 76.1%로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증가하고,30∼34세의 경우 75.5%,35∼39세 76.1%로 거의 변화가 없다. 고학력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2004년 대졸 이상 여성의 62.6%가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여성 취업자의 전문·기술·행정관리직 종사자 비율이 서울의 경우 2000년 19.9%에서 2004년 21.7%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 근로자의 절반인 47.8%가 임시직 및 일용근로자로 일하고 있으며, 여성임금은 남성의 61.1% 수준이고, 이직률도 여성이 남성보다 30%로 높다. 이것은 여성의 경제활동 여건이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직 열악한 상태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여성이 생계를 주로 책임질 것으로 보이는 여성 가구주의 수는 점차 증가하여,2000년 현재 서울시 가구의 19.5%가 여성 가구주이다(인구주택총조사보고서,2000). 서울의 여성 가구주 수가 증가하고 있으나, 여성 가구주의 가구 소득은 남성 가구주에 비해 매우 낮다. 남성 가구주 중 월평균 가구소득이 100만원 이하인 가구는 13.6%이나, 여성 가구주는 33.4%에 이르고 있다. 남성 가구주 중 월평균 가구소득 200만원 이하인 가구는 37.9%이나, 여성 가구주는 66.7%에 이르고 있다. 반면 남성 가구주 중 월평균 400만원 이상 가구소득은 12.8%를 차지하나, 여성 가구주는 5%에 불과하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욕구와 필요성은 높아지고 있으나, 여성 경제활동 여건이 여전히 열악하고, 여성가구주 소득이 낮다는 점에서 여성 경제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이 절실히 요구된다. ●서울시의 여성 경제활동 지원사업 # 사례 1 김영혜씨는 1년 전, 일반 옷가게에서 구입하기 어려운 빅 사이즈 여성의류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을 개설했다. 김씨는 결혼 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 둘을 낳고 키웠다. 김씨는 아이들이 모두 초등학교에 들어가 한숨을 돌리자, 자신도 뭐라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반상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저렴한 수업료로 여성 평생교육을 지원하는 서울시 여성발전센터가 있다는 정보를 들었다. 여성발전센터에서 김씨가 처음 선택한 강좌는 홈패션 수업이었다. 원래 체격이 좋았던 김씨는 살이 찌면서 자신에게 맞는 옷을 사는 것이 힘들어졌다. 이참에 간단한 옷은 직접 자신이 만들어 입겠다는 의지가 작동했던 것이다. 기술이 좋아지면서, 빅 사이즈를 입는 동네 아줌마들 옷을 만들어 주는 부업도 하게 됐다. 자신이 만든 옷이 의외로 호응이 좋자, 김씨는 이를 본격적으로 사업화하는 것도 좋을 듯했다. 여성발전센터의 창업 설명회에 참가하면서 김씨는 사업경험도 없고 자본도 없는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사업방식은 인터넷을 통한 사업이라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김씨는 여성발전센터에서 인터넷 쇼핑몰 창업을 위해 필요한 홈페이지 제작과 관리교육을 받았다. 최근 늘어나는 주문에 대응하는 방안을 구하기 위해, 남부여성발전센터의 여성기업보육센터를 방문했다. SOHO 창업지원실에서 제안한 대로 여성 두 사람을 공동사업자로 맞이했다. 향후 이 사업을 확대발전하는 데 여성기업창업보육센터가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시에는 여성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5개의 여성발전센터가 광진구, 양천구, 금천구, 노원구, 마포구에 있다. 여성발전센터는 여성 직업훈련강좌 이외에 여성 여가 및 건강생활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한편 무학자를 위한 한글교실, 초등학생 방과후 교실, 실버컴퓨터교실 등 다양한 복지프로그램도 지원하고 있다.2004년 약 2만명의 여성들이 여성발전센터에서 직업교육을 받았으며, 이 중 15.2%인 3000명이 취업을 했다고 한다.(5개 여성발전센터 정보는 http:///womancenter.seoul.go.kr 참고) # 사례 2 최희경씨는 대학을 졸업한 지 3년이 지났다. 그동안 몇 개월씩 임시직으로 일한 것 외에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하지 못하였다. 대졸 여성의 취업률이 늘어나고 있으나, 특별한 기술이 없는 한 여성들에게 취업문은 여전히 좁다. 최씨와 친구들은 ‘결혼은 선택, 취업은 필수’라는 생각을 하는 세대이다. 최씨는 취업보다 창업을 하는 쪽으로 마음을 먹으면서, 인터넷 홈페이지(http:///vocation.or.kr)에서 여성인력개발센터에 대한 정보를 검색했다. 서울시에는 15개의 여성인력개발센터가 있는데, 각 기관별로 특화된 직업훈련사업을 하고 있다. 자신처럼 애완견을 가족처럼 키우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에 착안하여, 애완견 옷 제작 전문가 양성과정에 참여하기로 했다. 최근 개를 좋아하는 친구 2명과 최씨는 애완견 관련 사업을 하기로 하였다. 서울시에서 여성 예비 창업자에게 실비로 사무실과 인터넷 망, 회의실 등의 부대시설을 제공하는 여성기업창업보육센터가 있다는 정보를 구했다. 이곳에서는 세무, 회계, 법률, 특허 등의 자문서비스도 해주고, 비즈니스 상담실과 창업관련 도서 및 자료를 갖춘 자료실도 있다고 한다. 자본도 없고, 처음으로 사업을 시작하고자하는 여성들에게 매우 필요한 지원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 사례 3 이민자씨는 소규모의 중소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여성기업인이다. 내수경기가 나빠지면서 여성기업인의 경우 제품 판로 개척이 더욱 어려워졌다. 이런 와중에 서울시가 수의계약 물품 중 서울시 소재 여성중소기업의 물품구매 비율을 확대하면서, 이씨의 기업도 큰 도움을 받았다. 이씨는 서울시가 저리로 융자 지원하고 있는 중소기업 육성기금을 신청했다. 서울시가 여성기업인 우대 평가기준을 적용하였기 때문에 이씨 기업은 경영안정자금을 융자받을 수 있었다.2004년 서울시 중소기업육성기금을 받은 기업체의 29.4%가 여성기업이며, 전체 지원액의 15.9%가 여성기업에 지원됐다. # 사례 4 박경아씨는 2004년부터 시작된 서울시의 ‘여성일자리갖기 지원프로젝트’사업을 통해 복지시설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여성발전센터와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직업교육과정을 수료한 교육생 가운데 취업의지가 있는 2600명을 선발하여,3개월간 공공기관 사회복지시설 민간단체 민간업체에 배치했다. 1일 6시간, 주 5일 근무조건에 하루 3만원을 받았다. 박씨처럼 3개월 근무 후, 실제 취업으로 이어진 여성은 약 8%라고 한다.2006년 올해에도 서울시는 직업교육을 수료한 여성 희망자 1000명을 대상으로 ‘여성일자리갖기 지원프로젝트’를 4월과 9월에 두 차례 나누어 실시할 예정이다. 근무조건은 하루 8시간 주 5일제 근무로 하루 2만 8000원을 지급할 예정이다. 서울시는 올 9월 중 서울무역전시장에서 구직을 희망하는 여성과 구인을 희망하는 기업체가 만남의 장을 가져, 실질적인 취업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여성일자리 박람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서울시의 여성취업지원사업 및 여성복지에 대한 정보는 서울시 홈페이지(www.seoul.go.kr)로 들어가 분야별 정보에서 여성/청소년으로 들어가면 된다.
  • 장영자씨 항소심서 10년형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 민일영)는 16일 고수익 채권투자를 미끼로 45억여원을 챙기고 200억원대의 구권 화폐 교환을 미끼로 사기 행각을 벌인 혐의로 구속기소된 장영자(62·여)씨의 항소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고수익 채권투자 관련 특경가법상 사기 혐의에는 징역 3년을, 구권화폐 사기 혐의는 징역 7년 등 모두 합쳐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채권투자 사기로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던 남편 이철희씨의 항소는 기각했다. 재판부는 선고 전 장씨에게 “피고인은 사기죄로 복역했다가 가석방이나 형집행정지로 일시적인 자유의 몸이 된 순간에도 사기를 되풀이해 죄질이 극히 무겁다. 그러면서 80평 호화빌라에 6∼7명의 비서를 두고 캐딜락 등 고급 차를 구입해 사용한 것을 보면 피고인에게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올바른 삶을 살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꾸짖었다. 또 “피고인의 나이도 이제 환갑이 넘었다. 언제 다시 나올지 기약하기 어렵지만 복역하며 그동안 쌓인 업(業)을 씻기를 재판장으로서 간곡히 바란다.”고 거듭 당부했다.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인터넷·위성DMB ‘WBC 중계’ 대박

    인터넷·위성DMB ‘WBC 중계’ 대박

    미국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의 한국 대표팀 연승을 업고 인터넷 중계와 위성DMB의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지상파TV보다 인터넷이나 DMB로 경기를 본 사람이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16일 야후코리아에 따르면 WBC 한국 대 일본전 인터넷 중계의 동시 접속자수는 23만명으로 지난 14일 미국전(20만명) 때보다 4만명이나 늘어 인터넷 중계 최대 접속자 수 기록을 경신했다. 미국전 때의 상황을 감안하면, 일본전의 실제 시청자 수도 지상파TV보다 많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전의 경우 야후코리아가 추산한 인터넷중계 시청자수(총 접속자 수의 절반)는 약 160만명. 지상파TV 시청률 조사회사인 TNS미디어코리아가 추산한 이 경기 지상파TV 시청자수 약 140만 7000명보다 많았다. 위성DMB의 일본전 시청률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서비스 사업자인 TU미디어측은 “미국전 시청률인 23.4%보다 많은 30%를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뉴미디어들이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이유는 직장에서도 볼 수 있는 데다 ‘댓글’ 등의 재미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휴대용 미디어인 위성DMB는 직장에서 TV를 보기 어려운 일과 중에도 언제든 접속할 수 있다. 향후 인터넷 중계권 확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야후코리아는 이미 보유한 독일 월드컵 영상 서비스권에다 미국 메이저리그(MLB) 대회 중계권까지 추가 확보해 스포츠 중계를 핵심 콘텐츠로 적극 육성할 계획이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노트북시장 ‘지각변동’ 오나

    노트북시장 ‘지각변동’ 오나

    국내 노트북시장이 심상찮다. 수요 폭발에 맞춰 중국과 일본업체들의 공세가 거세지는 데다 한때 PC시장 점유율 3위를 차지했던 현주컴퓨터가 다시 노트북시장에 뛰어들었다. 프리미엄과 보급형 시장을 가리지 않고 물고 물리는 접전이 예상된다. 여기에 휴대성이 뛰어난 신개념의 모바일PC가 출시되면서 노트북시장의 수요를 상당부분 잠식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올 노트북시장 16% 성장 예상 15일 시장조사기관인 IDC에 따르면 올해 노트북시장 규모는 104만대 수준으로 지난해(89만)보다 16% 늘어날 것으로 점쳐졌다. 또 내년 113만대,2008년 120만대,2009년 125만대 등 연평균 15%가량 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데스크톱의 성장세와 비교하면 놀라운 수치다. 지난해 280만대 규모였던 데스크톱 시장은 2009년 290만대 규모로 전망되고 있다. ●노트북 ‘신(新)삼국지’ 그동안 ‘노크’ 수준에 그쳤던 중국 기업들의 국내시장 공략이 본격화되고 있다.IBM컴퓨터 사업부를 인수한 중국 최대 PC기업인 ‘레노보’는 다음달 노트북 ‘레노보 3000’시리즈를 국내에 처음 선보인다. 레노보는 IBM이 보유했던 국내 AS센터(76개)를 그대로 운영하고 있어 중국업체의 단점으로 지적됐던 전국 애프터서비스(AS)망에 문제가 없다. 이 때문에 국내 중저가형 시장에 상당히 위협적인 존재로 떠오를 전망이다. 또 중국 노트북시장에서 레노보와 1,2위를 다투는 하시도 한국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일본은 국내에 신모델을 속속 출시하며, 프리미엄 노트북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도시바코리아는 기존 중앙처리장치(CPU)보다 처리 속도가 30% 빠른 인텔의 센트리노 ‘듀오 플랫폼’을 탑재한 ‘새틀라이트 A100’을 출시한다. 소니코리아도 ‘블루투스(근거리 무선통신)’ 기능을 설치한 ‘바이오’ 노트북 2종을 선보인다. 국내에선 현주컴퓨터가 시장 재진입을 통해 재기에 나선다. 현주컴퓨터가 출시한 새모델은 3종류, 가격은 100만원 안팎이다. 또 대리점 확충에도 나서 연말까지 800곳으로 늘린다. 국내 시장점유율 1위인 삼성전자는 올 들어 매월 2종 이상의 신모델을 출시하며, 보급형 시장마저 넘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2008년까지 노트북을 ‘글로벌 톱5’ 브랜드로 육성할 방침이다. ●모바일PC가 노트북 위협 ? 손바닥보다 조금 크지만 성능은 일반 컴퓨터와 맞먹는 모바일PC가 노트북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삼성전자의 울트라 모바일PC ‘센스Q1’은 무게가 779g으로 기존 노트북보다 가볍고, 휴대성이 뛰어나다. 공간 제약을 뛰어 넘어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 등 PC의 모든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반면 화면(7인치)이 작아 사무 업무를 보기엔 부적합하다는 지적도 있다. 다음달 출시될 센스Q1이 기존 노트북시장을 나눠 먹느냐, 신규 시장을 창출하느냐에 따라 업계 판도가 요동치기 때문에 업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업계 관계자는 “사무용보다 엔터테인먼트 기기로 이용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면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삼성 관계자는 “가격이 100만원 수준이기 때문에 보급형 노트북시장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지금 고양에선] 숨죽였던 ‘일산의 허파’ 다시 숨쉰다

    [지금 고양에선] 숨죽였던 ‘일산의 허파’ 다시 숨쉰다

    ‘일산 신도시의 허파’가 살아날까.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중산동 일대 고봉산 습지보전 시민운동이 6년간의 지난한 장정을 거쳐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 고층 아파트에 파묻힐 뻔한 3만 3000평의 산자락과 습지가 주민의 환경운동으로 살아나는 성공사례가 될지 주목된다. ●환경과 개발의 접점은 주택공사와 고양시는 지난해 11월 고봉산 습지 보전대책에 합의했다.1만 3000평중 4000평은 고양시가 공공용지로 매입해 습지보존 관련부지로 쓰고, 나머지 9000평은 생태학습장 형태의 쉼터로 주공이 시에 기부채납한다는 내용이다. 고양시는 4000평 매입금 152억원과 주공의 주택사업 손실금 보전차원에서 일산2지구 경의선 풍산역 주변도로 개설비 100억원을 부담한다. 시는 부족한 재정형편을 감안해 152억원은 무이자 장기분할로, 도로개설비는 도지원비 40억원을 받은 후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주공은 택지조성사업이 끝나는 올 연말까지 일시불로 정산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도는 지원의 법적근거와 명분이 없다는 이유로 지원불가를 통보했다가 고양시가 시비를 들여 개설해야 하는 도시계획도로 시설비 40억원을 지원하기로 최근 결정해 타결의 물꼬를 텄다. 주공은 “시가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단독주택 단지로라도 개발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일시불·연불’ 논란에서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주민들은 주공지역본부 앞에서 1인시위를 하며,5월말 지방선거전 최종 타결을 촉구하고 있다. 고봉산 습지보전에 의욕을 보이지 않는 시장출마자들에 대해선 낙천운동을 벌이겠다며 양측을 압박하고 있다. ●고봉산은 작지만 큰 산 고봉산은 해발 208m에 불과하지만 일산에서 가장 높다. 정발산과 함께 고양시의 대표적 도시림이다. 황룡산∼건달산∼풍동∼정발산을 잇는 생태축이며, 풍부한 식생을 갖췄다. 경작지가 변한 습지는 산정상에서 이어지는 주요물길로 일부 훼손된 부분을 복구하면 예전에 서식했던 반딧불이(천연기념물 322호)의 회귀도 가능하다는 전문가 견해도 있다. 그러나 주변은 1980년대 이후 도시화가 급속 진행됐다. 주공이 1999년 해발 70m까지의 산자락을 포함한 일대 25만평에 일산2 택지지구사업을 추진하면서 2000년 4월부터 시민과 환경단체들이 보존을 요구했다. 산자락을 배경으로 C-1블록이 배치됐다. 주공은 국민임대 2700가구, 공공임대 1000여가구와 민간분양 아파트 6000여가구를 계획하면서 경관이 빼어난 C-1블록 밤나무숲과 숲 위쪽 산자락(1만 8000평), 아래쪽 습지에 중대형 아파트 건축을 집중적으로 배치했다. 그러나 환경단체는 C-1블록에 포함된 산자락 1만 8000평과 나머지 1만 5000평(밤나무숲 2000평, 습지 1만 3000평)에 대해 원형보전을 주장했다. 또 습지 아래 근린공원부지 1만 2000평도 원형을 보존한 공원으로 만들라고 요구했다. 이에 주공은 2001년초 산자락 1만 8000평을 경관녹지로 보존하겠다고 밝혔다. 근린공원도 환경단체의 입장을 수용했다. 그러나 습지 2000평만 추가 보존하겠다고 밝혔다. 이때부터 양측의 기나긴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내셔널트러스트에서 단식농성까지 시민단체들은 ‘고봉산 1평 사기’를 통한 내셔널트러스트 캠페인, 환경콘서트, 그림전, 숲 체험교실 운영은 물론 천막농성에 나섰다. 습지보전에 악영향을 줄 310번 도로 이설공사를 막기 위해 정상에 컨테이너를 설치해 가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24시간 농성에 들어갔으며, 급기야 시공사측과 격렬한 충돌도 발생했다.‘고봉산 사수대’가 조직되고 릴레이 단식농성도 이어졌다. 같은해 6월4일 천연기념물 324호인 솔부엉이 한마리가 습지 주변에서 탈진한 채 발견된 것이 반전의 계기가 됐다. 솔부엉이가 인근 아파트의 벽에 부딪힌 것으로 추정돼 큰 반향을 일으켜 보전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지역 국회의원들이 주택공사에 압박을 가했고, 장회익 서울대명예교수 등 환경전문가들이 습지보전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현장 생태보고서를 내는 등 지원했다. 중산고를 비롯한 각급 학교에서도 고봉산 리포트를 과제물로 내 운동에 동참했다. 운동기금 마련을 위해 습지주변 버려진 논에 벼를 심고, 현장에서 잘려나간 주목으로 목걸이도 제작했다.‘고봉산 살리자’는 문구를 적은 손수건·펜던트도 제작했다. 수많은 시민이 성금모금에 동참했다. 고봉산 보전은 올 들어 가닥이 잡혔지만 아직도 진행형이다. 주공은 지난 1월 습지 가운데 공공시설용지 4000평과 물고임이 적은 3000평 등지에 외부토사를 반입해 깔았다. 그러자 대책위측은 토사 회수를 요구중이다. 대책위는 지난달 28일 주택공사 서울지역본부를 방문, 습지훼손 규탄시위를 열고 고양시청과 주공본부앞 1인 시위도 계속하고 있다. 오는 17일엔 호수공원에서 고봉산 사진전을 열고,4월2일엔 나무심기와 습지주변 야생화심기 행사도 갖는다. 또 생태학습장이 들어설 때 환경전문가 등의 자문을 통해 시민들의 의사를 반영할 계획이다. 고양시도 지난해 4월부터 건설기술연구원에 의뢰해 진행중인 시 전역 생태조사에 고봉산 습지를 우선적으로 선정, 구체적 보전방안을 구상중이다. 주민이 고봉산 습지를 지켜낼지 주목된다. 고양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고봉산 생태환경은 ‘고봉산 습지는 지리산보단 못해도 길동생태공원보단 자연적이다.’ 서울시립대 한봉호교수가 2004년 4월 발표한 ‘고봉산습지 환경생태보전 및 생태공원 조성방안’을 보자. 이에 따르면 고봉산 습지엔 산갈나무 군집을 비롯, 밤나무·상수리·신갈나무·산벚나무·진달래 등이 다양한 군락을 이루고 있다. 11만 9000㎡의 산림중 16%인 1만 9000여㎡는 녹지자연도 최상등급인 8등급이다. 황조롱이(천연기념물 323호)와 오색딱따구리·직박구리·굴뚝새·노랑지빠귀·붉은머리오목눈이·노랑턱멧새 등 16종의 새들이 관찰됐다. 양서류인 개구리·산개구리와 잠자리가 말즘·개구리밥·여뀌·물달개비·부들 등 45종의 습지식물 틈에서 산다. 돼지풀·미국가막사리·개망초·서양민들레 등의 귀화식물도 서식하나 도시화지수는 9.7%(10% 미만이면 양호한 자연생태계)이다, 이는 지리산(6.4%)에 비해선 높지만 서울 길동자연생태공원(11%)에 비해 양호하다. 한 교수는 습지내 초본식생을 복원, 개구리연못·수생식물원을 조성하고 성토되어 밭으로 이용되는 습지는 자연경관을 복원해 수생식물원과 논경작 체험원이나 갈대원으로 활용토록 제안했다. 늪지와 물길이 합류하는 지점에 식생을 복원하면 도심숲과 습지의 성공적인 보전사례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고양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포클레인 막은 주민들이 일등 지킴이 도심 주변 산·습지 보전 선례 됐으면” “고봉산엔 산의 정령이 사나 봐요. 고비마다 꺼져가는 고봉산 살리기 불씨를 다시 지피게 도와준 분들을 모아준 것 같아요.” ‘고봉산보전 공동대책위’ 김미영(39) 사무국장은 지난 2000년 당시 6살 외아들을 업고 고봉산 현장을 누비기 시작했다. 농성현장과 지킴이 초소에서 캠페인과 행사를 기획하는 브레인이자 행동대장이었다.2004년 5월 단식땐 11일을 굶고 실신하기까지 했다. “‘우리동네 나무·흙 퍼내지 말라.’며 포클레인 앞을 막아선 시민들이 진정한 주역들이죠. 자비로 생태보고서를 만들어준 한봉호 박사님 등 환경전문가들의 은혜를 잊을 수 없고요. 가장 힘들 때 다친 몸으로 날아와준 솔부엉이도 고맙지요.” “고봉산 보전운동에 뛰어들 때만 해도 습지의 중요성을 잘 몰랐었다.”는 김씨는 “고봉산 보전운동이 개발에 떠밀려 사라지고 훼손되는 전국의 도심주변 산과 내륙습지를 보전하는 선례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155㎝의 단신인 그녀는 “지난 6년간 힘들고 안타까워 수도 없이 울었다.”며 “번역일을 하는 남편의 외조가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부모가 농사짓는 고향 포천에서 한때 농민회일도 보았다.2000년 고양녹색소비자연대 창립멤버로 사무국장을 맡아 소비자상담·생협운동의 활동을 벌였다. 광우병 파동때 국산 건강식품에 수입 우골분이 섞여있다는 조사결과를 내놓아 주목을 받기도 했다. 사무국장직을 최근 내놓고 조만간 공동대표직을 맡을 예정이다. 고양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마니아] 고덕2동 주민자치센터 동호회

    [마니아] 고덕2동 주민자치센터 동호회

    일상속에서 발견하는 자연 ‘민화’ “어머니, 어머니, 이것 좀 보세요.” 아들 율곡이 숨가쁘게 달려옵니다. 풀밭에서 산 채로 잡아온 방아깨비를 어머니에게 보여줍니다. 신사임당은 방아깨비의 뒷다리까지 꼼꼼하게 살펴본 뒤 놓아줍니다.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草蟲圖)’는 소박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는 맛이 있습니다. 자연에 대한 사랑스러운 눈길이 묻어나오기 때문이지요. 신사임당은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그림은 단순히 손재주만으로 그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음을 가다듬은 뒤 그릴 대상을 꼼꼼이 관찰해야 한다. 실체를 파악하지 않으면 생명력이 없는 그림이 나올 뿐이다.” 그래서인지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를 보고 닭이 와서 쪼아댔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현대판 신사임당’들이 민화를 그리고 있는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지난 7일 강동구 고덕2동 주민자치센터 2층의 ‘민화방(民房)’.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민화에 푹 빠진 20여명이 몰려든다. 민화방은 고덕2동 동사무소에서 운영하지만 절반 정도는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온다. 민화방을 이끄는 한국민화작가회 회장 안종혁씨의 개인전 등을 접하고 찾아오는 이들이다. ●취미로 시작… 국내외서 전시회 열어 이날은 민화 경력 19년차인 ‘왕 언니’ 이정순(60)씨가 분위기를 한껏 띄우면서 시작됐다. 전날 저녁 제사 상에 올렸던 인절미를 가져온 것. 대개 이른 시간 집을 나서며 아침을 먹고 오지 않은 터라 인절미에 손이 갔다. 커피를 곁들이면서 이씨는 민화의 매력에 대해 말했다. “민화는 서민들의 생활이 녹아든 과거의 민중 예술이었습니다. 궁중 화원이든, 떠돌이 작가든, 여인네든 민화를 그렸지요. 근대화 과정에서 민화는 무명작가들의 그림이라는 이유로 훼손당했지만 최근 회복되고 있지요.” 중학교 과학교사였던 이씨는 취미삼아 민화를 배웠다가 은퇴한 지금까지도 민화에 빠져 있다. 실력 또한 전문가 수준이다. 지난해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십장생도’ 등의 전시회를 열었으며, 강원 영월의 ‘난고 김삿갓 축제’의 민화 공모전에도 입상하기도 했다. ●일산서 왕복 4시간 걸려 오가기도 민화방의 ‘최고참’ 민춘례(73) 할머니도 거든다. “노인들이 시간을 보낼 게 마땅치 않잖아요. 집에서 잠이 안 오면 민화를 그리면서 잡념을 떨치고 집중할 수 있지요. 수다만 떠는 것은 싫어요. 틈만 나면 이렇게 붙잡고 있답니다.” 이런 열정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민 할머니는 민화방이 열리는 매주 화요일이면 꼬박 2시간 동안 서울을 가로지르는 ‘대각선 행진’을 한다. 집이 일산에 있는 탓이다.“민화방까지 오는 게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민 할머니는 “예전에는 관절이 좋지 않아 오래 걷는 게 힘들 정도였지만 이렇게 움직이니까 힘이 난다.”라고 대답했다. 원래 서예와 사군자를 시작한 민 할머니는 서예전에 갔다가 우연히 안종혁 회장의 작품을 접하고 민화방에 오게 됐다. 회원들은 어느새 자리로 가서 제각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각자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어서 꽃들을 그린 화훼도(花卉圖), 풀과 곤충이 담긴 초충도(草蟲圖), 꽃과 새를 화조도(花鳥圖), 문방사우(文房四友)가 있는 책걸이(冊架) 등 각양각색이었다. 이런 가운데 민화방의 ‘청일점’ 박민수(52·남)씨가 단연 눈에 띄었다. 평일 오전 민화방에 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올 수 있는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현직 경찰인 박씨는 3교대로 근무하기 때문에 근무 시간이 아닐 때 짬을 내서 참석한다고 했다. 박씨는 지난주 밑그림을 그린 산수화를 채색하다가 “근무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에 일찌감치 나서야 한다.”면서 서둘러 민화를 그렸다. ●세월 흐를수록 자연스러운 색감 민화방의 신혜영(50)씨는 지난달 뉴질랜드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현지 예술협회와 한국총영사관 등의 후원을 받아 오클랜드 대학 초청으로 신씨의 작품이 이역만리까지 가게 됐다. 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한 신씨는 미술학도답게 민화의 성격을 분석했다. “민화는 실용예술로 분류되지요. 옛 조상들의 일상 생활의 일부였지요. 방안의 족자, 소반, 병풍 등에 모두 민화가 담겨 있었고, 여인네들이 애장하던 물품이었지요. 민화를 두고 회화인지 아닌지 논쟁을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민화가 우리 삶을 다루는 친근한 그림이라는 것입니다.” 우영숙(42)씨는 민화의 색감에 대한 예찬론을 폈다. “한지에서 물감이 피어나듯 우러나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러운 맛이 더해지지요. 민화는 돌가루·흙을 염색한 분말을 아교에 개어서 쓰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색감이 아름답게 배어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우씨는 민화의 이런 매력에 빠져 올해 명지대 전통공예학과 대학원으로 입학하기까지 했다. 그런가 하면 김숙(49)씨는 신사임당이 즐겨 그린 ‘초화도’만 고집한다. 강아지풀에 오이 줄기가 얽혀 오이가 열려 있는 모습, 달개비꽃과 양귀비꽃 앞에 여치가 뛰어노는 모습, 개구리와 무당벌레가 연못가에서 노는 모습 등 온통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자연의 모습이다. 10개월 된 늦둥이를 포대기에 업고 그림을 그린 ‘신입생’ 김정현(40)씨는 오늘 처음 왔다. 신씨는 초보자들이 가장 많이 그리는 ‘까치 호랑이’ 민화에 정성스레 붓질하면서 “다음 민화방 마실이 벌써부터 기대된다.”고 말했다. 글 사진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안종혁 회장이 말하는 민화 고덕2동 ‘민화방’을 이끌고 있는 안종혁 회장에게 민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마치 대중가요처럼 남을 의식하면 망설여지지만 여흥을 내는 분위기에서는 저명 인사도 대중 가요 한두곡을 불러야 속이 풀리고 일체감을 느끼는 것과도 같지요. 민화야말로 제대로 살아있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화는 궁중민화와 민중민화로 나누어지지만, 이런 점에서는 민화의 본질은 민중민화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민화가 민중에 가까워서인지 때로는 민화의 격을 낮춰 보는 사람들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훈훈한 인정이 넘치며 재주와 기교를 자랑하지 않았고, 그림의 구도·기법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에 상식과 상상을 뛰어 넘는 파격적이고 해학적인 멋스러움이 배어나온다는 점은 민화만이 갖는 매력입니다.” 민화가 서민들의 소망이 녹아나는 매체라는 점도 독특한 매력 중의 하나이다. “민화에는 가슴 속에 품고 있는 감성이 얽혀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순수하고 소박한 소망을 담아 장수, 부귀, 다남, 화합을 상징하는 그림을 그렸고, 이를 곁에 두고 신앙처럼 기원하면서 살았지요. 기복 신앙에서 출발했다고 해야겠지요.” 민화의 소재는 화조(花鳥), 산수(山水), 동물, 인물, 책거리(冊架), 문자 등 다양한데, 각 소재마다 저마다 상징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물고기-다산(多産) ▲호랑이-잡귀를 막아주는 수호신 ▲모란꽃-부귀 ▲연꽃-군자(君子) ▲짝을 이룬 새·동물-부부간의 금실 등이다. 우리 조상들은 딸을 결혼시킬 때 물고기·새·동물 등이 들어간 민화를 혼수품으로 딸려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민화는 고구려 벽화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다 조선 후기에 활발하게 그려졌다. 일제 강점기에는 주춤하다 1970년대 전후로 다시 조명받기 시작해 1990년대 들어 미국·일본을 중심으로 가장 한국적인 작품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시대에 걸맞은 창작품을 만드는 동시에 전승을 위한 재현 작업도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후대들이 자랑할 수 있는 21세기 문화재를 창출해 나가야 하지요. 세계로 펼쳐가는 한류 열풍에 민화가 단단히 한몫을 할 것으로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덕2동의 민화방은 그 밑거름이 될 것이고요.”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인간시대] 인터넷 쇼핑몰 운영… 구슬공예가 백인숙씨

    [인간시대] 인터넷 쇼핑몰 운영… 구슬공예가 백인숙씨

    백인숙(59)씨는 인터넷 쇼핑몰 ‘인비즈(www.inbead.com)’를 아들(32)과 운영하고 있다. 구슬로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을 만드는 ‘구슬 공예’ 마니아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백씨의 사업이 처음부터 순탄한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느 사업자처럼 백씨 역시 위기상황이 있었지만 온라인 쇼핑몰에서 위기의 돌파구를 뚫었다. 환갑을 코앞에 둔 나이도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시와 서울신용보증재단이 공모한 ‘위기 극복 및 자활 성공사례 수기’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했다. 지난 3일 백씨를 만나봤다. ●‘위기 극?珉?성공 수기’ 최우수상 1999년 동네에서 슈퍼마켓을 하고 있던 백씨는 청계천 주변 동화상가에 구슬 가게를 차리게 됐다. 옷에 다는 구슬을 체코에서 수입하던 시숙이 “외상으로라도 물건을 대주겠다.”며 창업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맨주먹으로 시작한 신혼시절에도 도움을 주었던 시숙이기에 이번에는 꼭 성공해서 제대로 보답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지요. 그러나 처음에는 뜻대로 되지만은 않았습니다. 지금이야 ‘구슬공예’가 널리 알려져있지만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분야였어요.” 그러던 중 백씨는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구슬공예’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접했다. 당시만 해도 백씨는 옷을 만드는 도매상을 상대로 의류 부자재를 파는 데 주력했지만 ‘구슬공예’라면 구슬 자체가 하나의 상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노력+배움으로 일군 사업 “새로운 시장을 뚫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구슬을 꿰는 법부터 배웠습니다. 구슬에 대해서 잘 알아야 상품도 더 잘 팔 수 있을 것 아닙니까.”백씨의 배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컴맹’과 다름없었던 백씨는 학원을 다니면서 컴퓨터 사용법도 익혔다. 서투른 솜씨지만 여러 홈페이지에 구슬 공예와 자신의 가게에 대한 글을 올리고, 같은 글을 계속해서 퍼다날랐다. 이런 노력에 보답을 하기라도 하듯 마침 전국에 비즈 공예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백씨의 가게는 옆 가게 주인들이 복도에 나와서 구경할 정도로 붐비게 됐다. “우선 대형 마트의 판매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구슬들이 작아서 도난 방지 장치를 입구에 붙이되 바구니에 사고 싶은 물건들을 담게 해서 일괄적으로 계산하는 것이지요. 영수증에는 물건 수량·단가가 일일이 찍혀나오기 때문에 손님들이 알아보기에도 쉽고, 장사하는 입장에서도 일일이 가격을 말해주는 수고를 덜 수 있었습니다.” ●임대료 인상에 크나 큰 타격 이러는 사이 서너평에 그치던 가게도 열 평 안팎으로 늘었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리겠다고 요구한 것.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장사가 잘되자 처음에는 100만원도 안되는 월세가 600만원으로 치솟은 것이다. 점포주인이 서로 달랐는데 한 점포주인은 아예 가게를 내놓겠다고 말한 것이다. “장사가 아무리 잘 되더라도 임대료를 대기에는 무리였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남편의 건강도 안좋아져서 힘들다는 내색도 하지 못하고…. 그동안 노력했던 것들을 주마등처럼 떠올리면서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생각만 들었지요.” ●드디어 인터넷으로 나서다 결국, 백씨는 2004년 을지로로 가게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입지 조건은 떨어졌지만 면적은 넓으면서도 임대료는 훨씬 쌌다. 인터넷 쇼핑몰도 이 때 시작했다.“아들이 먼저 권유를 했지요. 가게의 입지 조건이 안좋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었다. 동대문 상가에 있을 때보다 매출은 적었지만 임대료 부담이 없어서 마음은 편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포스터를 한 장 봤다. 서울시와 서울신용보증재단에서 청계천 복원 사업과 관련한 자금을 대출해준다는 것이었다. 금리는 담보가 없는데도 서울신용보증재단의 보증으로 연 4.5%였다. 그래서 을지로 가게를 아예 접고 그동안 병행했던 인터넷 쇼핑몰에 전력 투구를 하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하는 사업인만큼 굳이 서울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어머니가 있는 경남 하동으로 이사를 갔다. “지금 남편과 함께 9000평의 밭을 일구면서 고사리를 심고 있지요. 주변의 치매 노인들에게는 공짜로 고사리를 나눠주고 싶습니다. 또 ‘친환경 고사리’도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도시에 판매해볼까 생각중입니다.”백씨의 ‘제2의 인생’은 벌써 시작되고 있었다. 글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사퇴하라” 李총리 53%·崔의원 78%

    ‘3·1절 골프’ 파문을 일으킨 이해찬 국무총리와 ‘여기자 성추행사건’의 장본인인 최연희 의원의 거취를 놓고 정치권이 연일 공방을 벌이면서 여론의 향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가 8일 전국 성인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신뢰수준 95%±3.5%P) 결과, 이 총리 사퇴 여부에 대해 52.8%가 “사퇴해야 한다.”고 응답한 반면 41.6%는 “사퇴할 사안이 아니다.”고 응답했다. 또 최 의원의 의원직 사퇴에 대해선 응답자의 78.3%가 찬성했고,14.8%만이 반대했다. 그러나 3·1절 골프와 성추행 파문이 노무현 대통령과 각 정당의 지지도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적 평가비율은 31.8%로, 이 회사가 지난달 실시한 조사 결과보다 1.6% 포인트 하락한 데 그쳤다.또 열린우리당 지지도는 1.5% 상승한 18.7%, 한나라당 지지도는 0.1% 포인트 떨어진 34.1%로 각각 집계됐다. 이같은 여론을 등에 업고 여야는 이날도 상대방의 ‘아킬레스건’을 강하게 물고늘어졌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확대간부회의에서 “우리 사회에 가부장적 인식과 성을 상품으로 대하려는 태도가 남아 있다.”며 성추행 파문을 에둘러 비판했다. 김두관 최고위원도 “최 의원과 한나라당이 짜고 ‘잠적 정치’,‘위장 탈당’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고 공격했다.이와 관련, 우상호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한나라당은 실종신고를 하든지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하든지, 부산 골프장을 조사하듯 탐문조사를 해서라도 최 의원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라고 권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나라당도 이 총리의 ‘공짜 골프’ 논란 및 부도덕한 인사들과의 관계, 교직원공제회의 Y기업 주가띄우기 의혹,Y기업의 공정위 조사 로비 의혹 등 새로 제기된 의혹들을 지적하며 이 총리의 자진사퇴를 거듭 촉구했다. 특히 청와대가 ‘이 총리 구하기’에 나선 듯한 모양새를 보이자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라며 해임건의안·검찰수사·국정조사 등 모든 카드를 총동원해 이 총리를 ‘퇴출’시키겠다는 강경 입장을 재확인했다. 김재원 기획위원장은 99년 ‘옷로비 사건’을 거론,“이번 사건은 옷로비 사건보다 더 심한 것 같다.”면서 “R모씨라는 사악한 인물의 보호자로 총리가 등장해 훨씬 복잡하며, 파면 팔수록 더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전광삼 황장석기자 hisam@seoul.co.kr
  • [어린이 병원학교] “입원아이들 치료·공부하며 우정 키워요”

    [어린이 병원학교] “입원아이들 치료·공부하며 우정 키워요”

    병마와 싸우는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한 채 입원실 침대에서 하루를 보낸다. 바람을 쐬러 잠시 병실을 빠져 나와도 병원 주변을 맴도는 수준에 그친다. 심신이 허약한 어린이에게 학교 수업은 기대하기 힘들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의 웬만한 소아전문의료센터에는 정규교육과정의 병원 학교가 마련돼 있다. 병원학교 교사들은 장기간 입원한 아이들을 가르친다.1999년 서울대 병원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9개 병원에서 어린이 병원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병동 한쪽에 마련된 놀이방 수준에 불과하지만 점차 제도권내 정규 과정으로 편입될 예정이다. 7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구관 53병동 503호. 오전 11시쯤 링거 거치대를 밀면서 하얀 환자복을 입은 초등학생 또래의 어린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소아과 학생검사실을 개조해 만든 어린이 병원학교에는 어린이 도서와 교육용 비디오 테이프, 장난감 등 어린이 놀이방을 연상케 하는 물품이 빼곡했다. 첫 수업은 종이접기. 교사가 수업 시작을 알리자 일찍 와서 책을 읽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던 아이들이 책상 주위로 몰려들었다. 오늘 수업 내용은 색종이를 접어 종이 인형을 만드는 것. 재잘거리던 10여명의 아이들이 교사가 색종이를 나눠주며 접는 방법을 설명하자 종이접기에 골똘하기 시작했다. 지난주말 입원한 최선희(7)양은 “초등학교 입학식만 치른 뒤 입원했는데 친구가 없어서 병원생활이 무지하게 지루했다.”면서 “어제 동화구연에서 착한 일을 하면 커지는 자동차가 이야기를 들어서 무척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최양 어머니 양혜란(33)씨는 “어린이 병원학교에 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퇴원하기 싫다고 하는 아이들도 종종 있다.”면서 “인원이 적어 교사들이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불러주고 세세하게 가르쳐줘서 호응이 좋다.”고 전했다.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 1개월 넘게 병원에 머무른 박영준(9)군은 병원학교 장기 재학생. 박군은 “병원에서는 학교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어 무척 지루했는데 이곳에서 다양한 것을 배워 재미있다.”고 말했다. 서울숭례초등학교 5학년 배은희(12)양은 “유치원생이나 저학년들이 주로 하는 종이접기를 사실 처음 해봤는데 무척 재미있다.”면서 “병원에서 또래 집단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적은데 병원학교가 친구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종이접기 교사 장경희(53·여)씨는 “아이들 호응이 좋아 다행”이라면서도 “병원학교는 장기 환자를 위해 개설했지만 단기 환자들이 몰려 감염 등의 이유로 장기환자들이 제대로 오지 못하고 있어 아쉽다.”고 털어놨다. 2000년 개교한 신촌 세브란스병원 어린이 병원학교는 입원한 어린이에게 무료로 개방된다. 현재까지 2000여명이 거쳤으며 교사 40여명이 미술치료를 비롯해 일본어, 이야기 나라 등 14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자폐치료전문가를 비롯해 대학생, 각종 봉사회 회원 등이 자원봉사 형태로 교사를 맡고 있다. 재정은 후원·기부금으로 충당한다. 초창기 연세대 간호대학 3·4학년 학생들이 교사를 맡아 6개 과정으로 출발했다. 병원측은 지난 7일 서울시 서부교육청과 공동운영 협약을 맺어 앞으로는 정규학력 인정학교로 운영한다. 병원학교에 출석하면 해당학교에서 출석을 인정해주는 방식이다. 병원학교 교사도 현직 교사를 자원봉사자로 위촉해 수업이 정규 교과와 비슷한 내용으로 편성될 예정이다. 어린이병원 코디네이터 한은숙(46·여)씨는 “지난해 6월부터 골수이식으로 입·퇴원을 반복한 6학년 어린이가 출석 일수를 채울 수 없어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면서 “병원학교 수업이 출석으로 인정되면 아픈 어린이들도 정규교육과정에서 소외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전국에 8곳 운영 올해 8곳 문열어 해마다 3000여명의 학생들이 질병으로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출석일수 부족으로 진학하지 못한 학생은 700여명에 달했다. 교육계 안팎에서는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처럼 어린이 병원학교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어린이 병원학교는 서울대병원과 신촌세브란스병원, 암센터 등 모두 8곳에 설치돼 있다. 이곳에서 350여명이 학교 교육을 받으며 올해 천안 단국대 병원를 비롯해 8개교가 문을 열 예정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2008년까지 32개 병원학교에서 1000여명이 교육을 받도록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3월 특수교육진흥법이 일부 개정돼 ‘심장장애·신장장애·간장애 등 만성질환으로 인한 건강장애’가 특수교육 대상에 포함됐다.3개월 이상 장기간 입원하거나 통원 치료를 하는 학생은 교육지원을 해야 한다. 어린이 학교에 대한 법적인 뒷받침이 일부 마련된 것이다. 병원학교에 참가하면 ‘수업확인증명서’가 발급되고 이를 소속학교에 제출해 수업일수로 인정받는다. 건강장애로 추정되는 학생 3000여명은 대부분이 가정에서 통원치료를 받는다. 입원하지 않았지만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들에게는 순회교육과 사이버 가정학습 서비스, 화상강의시스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상급 학년이나 상급 학교로 진학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서울대 병원학교 학년별 맞춤수업동경대 어린이 병원학교를 모델로 삼은 서울대 어린이 병원학교는 1999년 문을 열었다. 교육학을 전공한 교사 38명 등 1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고 있다. 수업은 국어와 영어, 수학, 음악 등 일선 학교와 다르지 않으며 학년에 따라 맞춤 수업이 이뤄진다.2002년 12월 병원학교는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정식인가를 받았다. 초등학생과 중학생까지 학력인정을 해주고 있다.2004년 교실 한곳을 추가해 현재 2개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국립암센터는 저·고학년 나눠 격일 수업 지난 3일 국립암센터에 문을 연 장기 병원학교는 저학년과 고학년으로 나눠 가르친다. 유치반과 초등학교 1∼2학년을 대상으로 한 개나리반과 3학년 이상의 들국화반이다. 수업은 인근 풍동초등학교에서 파견된 교사 2명이 맡았다. 오전에는 유치반, 오후에는 격일로 개나리반, 들국화반 학생들을 가르친다. 교실은 컴퓨터, 책걸상, 빔 프로젝트 등을 갖췄다. 현재 유치원생 5명과 초등생 9명 등 14명의 어린이가 재학 중이다. ●전남·한양·경상대 병원은 장기입원자 중심 화순 전남대병원에 설치된 병원학교는 각종 암이나 희귀병 등으로 장기입원중인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특수학교이다. 만 3∼18세 1년 이상 입원치료가 필요한 학생들에게 정규 교과과정의 수업을 진행한다. 병원내에 마련된 20여평의 교실에는 일반 교실처럼 책·걸상과 프로젝션TV 등 각종 교육기자재도 설치했다. 또 초등학교와 중·고교 수업이 모두 가능한 1∼2명의 전문 특수교사가 파견된다. 병원측은 혼자서는 정상적인 학교수업이 어려운 학생들을 도와줄 자원봉사자나 간호보조원 등을 지원해주고 있다. 지난해 11월 한양대 병원에 설치된 한양대 병원 어린이학교는 소아암 백혈병 만성 신장질환과 같은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초등생∼중학생까지 출석과 학력을 인정해주며 한양대 봉사동아리 ‘한양어린이학교’ 대학생 자원봉사 교사들과 교육청 자원봉사팀이 수업을 담당을 한다. 한양초등학교와 한양중학교 등과 연계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2004년 개설된 경남 진주시 경상대 병원 어린이 병원도 장기 입원 중인 소아 어린이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운영중이다. 병원 3층에 15평 남짓한 공간을 마련해 장기 입원 중인 소아암과 백혈병 등 소아환자들이 학교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진주 혜광학교 특수교사가 정식 파견돼 초등학교 1∼6학년 과정의 수업을 맡고 있으며 거동이 불편한 소아환자는 교사가 병실로 직접 찾아간다. 병원측은 초등과정 모든 교과서와 참고서 등 교재와 최신형 컴퓨터 5대 등을 마련했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레저+α] 갤럭시,더 리미티드 컬렉션

    제일모직 갤럭시는 편안하면서 자연스러운 라인을 살린 ‘더 리미티드 컬렉션(The Limited Collection)’을 내놓았다. 부드러운 감성과 세련된 멋을 즐기는 패션리더를 타깃으로 한 컬렉션. 접착 심지를 사용하지 않는 비접착 공법으로 사용해 고급 원단의 질감과 광택이 그대로 살아난다. 접착 제품에 비해 부드럽고 가볍다는 점이 장점. 이탈리아의 패턴 전문가인 알도 보넬리를 영입해 날씬한 허리선을 만드는 ‘7드롭(7drop)’ 패턴 체계와 바지의 허벅지 둘레와 밑단을 줄여 다리를 길어 보이게 하는 ‘스타일 업 팬츠’를 도입했다. 또 신축성이 좋은 천연 울소재인 ‘실크 앤드 내추럴 스트레치’를 이용해 착용감이 좋다는 설명.70만∼80만원선.
  • [K리그 D-3] 적으로 만난 ‘아드보 전사들’ 안방 월드컵

    [K리그 D-3] 적으로 만난 ‘아드보 전사들’ 안방 월드컵

    ‘월드컵의 열기를 K-리그로’ 월드컵의 해인 2006시즌 프로축구 K-리그가 ‘아드보카트호’의 전사들이 각팀으로 복귀한 가운데 오는 12일 오후 2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릴 수원-FC서울의 개막전 등 7경기를 시작으로 8개월간의 대장정에 들어간다. 신생팀 경남FC가 가세, 역대 최다인 14개팀이 참가하는 올시즌은 정규리그(186경기)와 컵대회(91경기) 등 모두 277경기를 치른다. 무엇보다 독일월드컵 개막 이전인 전반기는 ‘아드보카트호’ 전사들의 각축전이 뜨거울 전망이고, 후반기 역시 ‘월드컵 특수’의 여파를 탈 것으로 보여 역대 최다 관중을 돌파할지도 주목된다. ●어제는 동지, 이제는 적 ‘월드컵 특수’를 등에 업은 올시즌 K-리그는 어느해보다 활황세를 탈 전망. 특히 월드컵 개막 한 달 남짓을 남겨두고 끝나는 전기리그(3.12∼5.10)는 독일행 티켓과 주전을 움켜쥐기 위한 예비 태극전사들의 치열한 경쟁까지 보태져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지난달 말까지 치러진 40여일 동안의 전지훈련은 ‘적과의 동침’이었을 뿐이다. 이제부터는 팀의 우승과 아드보카트호에서의 생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또 다른 경쟁을 펼쳐야 한다. 딕 아드보카트 축구대표팀감독 역시 “독일월드컵에 가기 위해선 소속팀에서 더 잘 해야 할 것”이라고 선수들의 경쟁을 부추겼다. 전지훈련에서 눈도장을 받았다고 마음을 놓았다가는 큰일날 것이라는 엄포다. 축구팬들의 눈은 즐겁겠지만 당사자들로선 한 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주전경쟁 ‘제2라운드’. 여기에 팀의 우승이라는 과제까지 더해져 ‘두 마리 토끼잡이’나 다름없다. ●티켓·주전경쟁 제2라운드 개막일부터 여기저기에서 난리다. 수원 개막전은 박주영의 ‘창’과 김남일의 ‘방패’ 싸움이다. 지난 앙골라전에서 결승골로 자존심을 회복한 박주영의 기세가 아드보카트호 부동의 미드필더 김남일의 ‘흡입력’을 얼마만큼 무디게 할지가 관건. 포항에서도 전지훈련에서 최절정의 기량을 보인 이동국과 포백수비의 버팀목 최진철의 맞대결이 펼쳐진다.‘공격의 핵‘으로 떠오른 이천수는 안방 울산에서 정경호(광주)와 대결을 벌인다. 이들은 물론 시즌 내내 리그 경기에서 뿐 아니라 대표팀 내에서도 피를 말리는 경쟁을 펼쳐야 한다. ●300만 관중 돌파 이같은 월드컵 전사들의 경쟁과 월드컵 특수는 역대 최다 관중을 유치하는 데도 큰 밑거름이 될 전망. 지난해 ‘박주영 효과’와 ‘이천수 돌풍’ 등으로 287만여명의 역대 한시즌 최다 관중을 축구장으로 끌어들인 프로축구연맹은 올시즌 사상 최초로 300만 관중 돌파를 기대하고 있다. 연맹 관계자는 “전반기에 월드컵 전사들의 경쟁에 불이 붙고, 이후 독일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낼 경우 300만은 충분히 돌파할 것”이라며 낙관했다. 곽영완기자 kwyoung@seoul.co.kr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10) 긍정적 사고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10) 긍정적 사고

    우리는 대개 긍정적 사고를 권력과 돈에 아부하는 사고처럼 생각하는 무의식적 관습에 젖어 있는 것 같다. 더구나 지식인은 비판적 사고를 해야 하는데, 긍정적 사고는 지식인의 비판적 사고와 한 자리에 동거할 수 없는 현실 맹종적 사고로 여기기 다반사다. 그런 사고가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까닭은 우리의 역사적 업이 그렇게 형성되어 왔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부터 나라가 백성을 제대로 두루두루 아껴 보살핀 적이 거의 없이 경제적·안보적 위기에서 버림받았다는 기억이 그런 무의식적 업을 낳게 하였던 것 같다. 지금도 살아남기 위해 수단방법을 안 가리고 악착같이 무슨 수를 강구하려는 우리의 행태도 나라정치와 지도층의 인격을 믿지 못하는 우리의 집단무의식과 깊은 연고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긍정적 사고는 아첨하는 사고와 다르다. 긍정적 사고는 모든 창조적 사고와 사기진작의 원동력이다. 쉽게 말하면 긍정적 사고는 자기의 운명 팔자를 수용하는 사고다. 예컨대 자기의 타고난 운명팔자가 나쁘다고 부모나 타인을 탓하고 비난한다고 자기의 운명이 개선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일생을 불운 속에서 헤매다가 임종을 맞을 뿐이다. 나쁜 운명의 여건을 좋은 것으로 바꾸는 사람은 그 운명을 사실로서 수용하고 거기서부터 인생의 설계를 세워 운명의 장애를 극복한다.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과 수동적으로 당하는 것은 다르다. 수용성과 수동성의 미묘한 차이를 철학적으로 잘 해명한 이가 20세기 프랑스의 저명한 가톨릭 실존철학자인 가브리엘 마르셀이다. 그는 수용성을 수동성과는 달리 자기 내부정리를 통하여 새로운 미래를 창조할 준비가 된 열린 마음의 자세에 비유했다. 열린 마음은 불운에 임해 마음이 내성적으로 안으로만 접히지 않고, 불운의 사실을 새로운 가능성의 소재로 활용하는 것을 일컫는다. 불운이 자기의 마음을 접히게 하느냐, 아니면 새롭게 열게 하느냐 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마음의 활용에 달렸다. 열린 마음은 불운이 자기를 죽이지 않고 오히려 불운에서 ‘너는 좋아지리라.’라고 자기의 마음에 희망의 빛을 예견한다. 그런 예견은 불운을 기회로 활용하는 마음의 자세와 직결된다. 받아들임은 이미 주어진 제약의 굴레를 자유의 발판으로 삼기 위한 적극적 사고를 도입하는 자세이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니체가 말한 운명애(運命愛=amor fati)가 초인적 창조의 원동력이라고 여긴 것은 창조가 자신의 어려웠던 처지를 오히려 지혜로 되돌리는 마음의 활용과 다르지 않음을 말한다. 유신론자 마르셀이나 무신론자 니체가 다 같은 내용을 다르게 진술한 것이겠다. 이처럼 창조적 사고는 긍정적 사고에서 잉태된다. 불운한 운명의 시련은 개인적인 것을 넘어서 한 시공에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공동운명과 연관될 때에, 그 시공의 정신문화적 주제로서 등록된다. 대체로 정신문화의 필요성은 공동운명의 시련이 생기하였을 때에 일어난다. 그 공동운명의 시련은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가난과 질병에 의한 고통이나 전쟁에 의한 죽음이나, 소외나 무상감이나 억압의 부자유나 박탈의 절망감과 같은 것이 실존적으로 비슷하게 느껴지는 경우, 또는 기존의 사상이나 지식으로 새 미래를 헤쳐나갈 자신이 없는 무지의 자각현상이 강렬한 경우에 생긴다. 고통의 느낌이나 무지의 자각은 전혀 다른 두 개의 문제가 아니고, 동일한 문제의 두 측면이다. 왜냐하면 공동운명으로서의 고통의 느낌은 우리 문화가 과거에 스스로 지은 말과 생각과 행동의 습관이 현재완료진행형으로 쌓여 지금까지 작용하고 있는 자승자박의 굴레를 말하고, 무지의 자각은 그 현재완료진행형 상태에 있는 습기(習氣)의 구속을 풀 수 있는 해방의 새 지혜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우리는 마음이 욕망이라고 앞 글에서 늘 말해왔다. 이번에는 그 마음이 습관이라고 말한다. 욕망과 습관은 같은 뜻을 달리 표명한 것이다. 왜냐하면 욕망의 기호가 반복되면 습관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정신문화는 사회생활을 하는 마음의 욕망이 어떤 습기를 이룩한 결과다. 정신문화는 공동운명이고, 이것은 또 공동습기를 뜻한다. 공동습기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도 하고, 고통을 주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에 사람들은 심각하게 생각한다. 이것이 정신문화의 문제의식이다. 그런데 긍정적 사고를 말하면서 왜 고통과 무지를 말하나? 바로 이 고통과 무지가 우리의 것이기에 그것을 공동운명으로서 감수하고 수용한다는 것이다. 운명애는 우리 것이니까 무조건 좋다는 감정적 편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감정적 편애는 자기 자식이므로 무조건 감싸는 지각 없는 부모의 편애와 다르지 않다. 운명애는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부가 된 우리의 업장(業障)을 사실로서 인정함이다. 공동사실로서의 공동업장을 수용하면서 그 업장의 방해가 동시에 지혜의 원동력으로 변용될 수 없겠는가 하고 깊이 사유한다.12세기 고려의 보조국사 지눌이 ‘정혜결사문(定慧結社文)’의 시작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땅으로 넘어진 자는 그 땅을 밟고 다시 일어설 수밖에 없다.’는 구절이 운명애의 정신을 잘 반영하고 있다. 공동운명의 업장이 우리를 넘어뜨리게 하였다면, 우리가 일어서기 위한 지혜가 다른 곳에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현재완료진행형으로 흘러오고 있는 바로 그 공동운명에 깃들어 있다는 것이 긍정적 사고의 의미다. 그런 긍정적 사고에서 우리를 고통과 무지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창조적 사고가 움튼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봐도 자기를 저주하고 학대하는 이에게 우리는 그의 운명팔자가 개선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자기의 공동운명의 역사를 분노에 차서 누구의 탓으로만 돌리는 일도 현명한 지혜의 눈이 아니다. 그렇다고 자기 것을 무조건 최상의 것으로 치켜세우는 자존망대의 국수주의적 행각도 우스꽝스럽다. 뱀의 독 속에 그 독을 치유할 수 있는 해독약이 있다고 한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게 이중적이다. 이것이 사실의 존재론적 법칙이다. 공동운명의 업장 속에 우리를 해방시킬 수 있는 해독제가 있다는 것이 긍정적 사고의 의미다. 나는 16세기 율곡의 성리학에서 이통기국(理通氣局=理가 비록 보편적이나 특수적인 氣의 상황을 떠나서 실존하는 것이 아님)이란 철학적 언표를 아주 좋아한다. 저 언표 속에서 율곡은 주자학의 보편적 이치라도 조선의 역사적·사회적·자연적 상황을 떠나서 추상적으로 실존할 수 없다는 창조적 사고의 원리를 제창했다고 여긴다. 말하자면 주자학의 조선화를 겨냥한 사유가 거기에 배어있다고 생각된다. 주희도 이 이치를 깨치지 못한 데가 있다고 율곡은 그의 친구 성혼에게 호젓이 고백했다. 나는 율곡의 저 언표가 20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메를로-퐁티의 사상과 매우 닮았다고 여긴다. 이 세상의 어떤 진리도 구체적 살(肉)을 떠난 추상적 본질이 성립하지 않으며, 구체적 날짜와 장소를 여읜 무시공(無時空)의 철학적 사유도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이 메를로-퐁티가 ‘의미와 무의미’에서 남긴 말이다. 그런데 율곡이 저 유명한 ‘이통기국’의 언표를 남기고 그에 알맞은 형이상학과 심성론의 원리를 말하고 정책의 면에서 그 시대의 아픔을 혁파할 수 있는 정책방도를 개진했으나, 불행히도 공동운명의 질곡을 희망으로 치환시키는 길을 언명하지 안았다. 우리가 고통과 무지에서 구체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방도를 탐색하기 위하여, 율곡의 저 명제가 한 번도 진지하게 심층적으로 자기화되는 길을 가져보지 못한 것 같다. 그렇게 해 보지 못한 이유도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운명의 업보가 현재완료진행형으로 작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거의 예외없이 우리 고통과 무지의 자각으로부터 학문을 창조하지 못한 채 다만 서양의 인문사회과학은 서양의 이론을 소화하지 않고 소개하고, 동양학 내지 한국학은 옛 고전의 생각을 역시 소개하는 정도로 마감해온 것이 아닌가 자성한다. 이 땅의 인문사회과학은 우리의 풍토병과 아픔을 치유하려는 진단처방보다 ‘…에 관한 연구’로서 ‘호모 스펙탄스’(homo spectans=관람자)나 ‘호모 인트로두첸스’(homo introducens=소개자)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닌지? 그래서 대학의 학문과 현실이 따로따로 헛도는 인상을 주었던 것이 아닌가 자성한다. 나는 자기 것으로 숙성된 학문에 의해 세계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나라가 어떻게 아류의 신세를 면할 수 있는지 모른다. 율곡이 말한 ‘이통기국’은 결국 실사구시(實事求是)와 같겠다. 실사구시는 긍정적 사고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을 아껴야 한다. 진선진미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현실의 구체적 인간들은 다 잡석(雜石)이다.8회의 글에서 왕양명의 말을 인용했다. 예컨대 거리의 사람들이 5%,20%,75%의 금을 지닌 잡석과 같은 성인이라는 것이다. 순금의 금괴는 추상적이고 가상적인 존재일 뿐, 자연적으로는 실존하지 않는다. 옥석혼효(玉石混淆)라 하지 않던가? 모든 인간은 다 자기의 장기를 타고났다. 이것이 자연의 존재양식이 아닌가? 각자의 특장(特長)을 잘 살려서 신바람나게 공동운명을 좋게 바꿔놓게끔 힘을 실어주어야지, 보석을 보지 않고 잡석만 자꾸 캐내려 하면 누가 그 인민재판 앞에서 버틸 수 있겠는가? 우리는 역설적으로 옛 중국의 전국시대 제나라 정승인 맹상군의 삼천식객(三千食客)과 계명구도(鷄鳴狗盜)를 예사롭게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 계명구도하는 식객이 맹상군을 위기에서 구출해 냈다. 사법재판은 어느 나라에나 다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만인이 만인에게 사법재판 하듯이 옥석을 가린다고 따진다면, 옥석이 다 타버리는 옥석구분(玉石俱焚)의 손실을 우리가 아니고 누가 입을 것인가? 서로 나쁜 점을 헐뜯는 사회보다 서로 좋은 점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사회가 더 좋은 양질의 사회생활을 일구고, 우리를 더 행복스럽게 만들리라. 비밀의 열쇠가 우리 안에 있듯이,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공동운명 안에 깃들어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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