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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계로 본 서울](24)자동차

    현대 사회에서 자동차는 ‘생활필수품’으로 여겨질 만큼 필요한 존재다. 일상 업무에서부터 출·퇴근, 여가활동 등 자동차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다. 자동차는 석유나 가스 등을 연료로 움직이는 바퀴가 네 개인 차를 일컫는다. 때문에 2륜차는 별도로 분류된다. ●자가용 260만·영업용 17만여대 2005년 서울통계에 따르면 서울에는 2004년 말 현재 277만 9841대(2륜차 미포함)의 자동차가 움직인다. 인구가 1028만 7847명인 것과 비교하면 인구 4명당 1대의 자동차가 있는 셈이다. 특히 자동차 대수는 5년 전인 1999년 229만 7726대에서 매년 10만대 가량씩 꾸준하게 늘어나고 있다. 이 가운데는 자가용이 259만 6891대로 가장 많고, 영업용 17만 2509대, 관용차 1만 441대 등이다. 업종별로는 승용차가 216만 2256대, 승합차가 21만 9509대, 화물차가 39만 5441대, 특수차가 2635대 등이다. 오토바이 등 2륜차는 37만 9608대로 관용 4087대를 제외하고 모두 자가용으로 쓰인다. ●관공서 밀집 종로구 관용차, 금천의 29배 구별 자동차 등록 대수는 강남구가 22만 1950대로 가장 많고, 이어 송파 18만 6605대, 서초 16만 932대, 강서 15만 614대, 양천 13만 6190대 등의 순이다. 반면 중구는 5만 947대, 종로구는 6만 4034대로 적었다. 승용차는 강남(21만 2089대), 송파(17만 6408대), 서초(15만 913대)가 많았으나 영업용은 강서(1만 1544대), 구로(1만 1183대), 노원(9382대), 중랑(9303대)이 많았다. 종로구의 경우 정부종합청사 등 관공서가 밀집해 있어 관용차 등록대수가 3055대로 2위인 중구(704대)의 4배, 관용차 등록대수가 가장 적은 금천구 106대의 30배에 이른다. 2륜차는 성북이 2만 3082대로 가장 많고, 이어 동대문 2만 1135대, 중랑 2만 1000대 등의 순이다. ●화물차 한해 3500여만톤 날라 영업용 자동차 가운데 여객용은 8만 2703대로 1년에 23억 8062만 5258명을 수송했다. 시내버스는 8307대로 연간 14억 5697만 7747명을 수송했고, 이어 택시가 7만 2404대로 9억 1015만 991명을 수송했다. 전세차량은 1992대로 1349만 6520명을 수송했다. 화물차의 경우 4만 8348대가 3544만 9900t을 날랐는데 이 가운데 일반 화물차가 1만 2217대 2603만 1980t, 개별 화물차가 1만 2968대 515만 9000t, 용달 물차가 2만 3163대 425만 8920t을 각각 수송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1000개 업체에 창업자금 2000만원씩

    올해부터 영세 자영업자는 영업 실적이 없어도 서울시에서 창업자금은 2000만원, 임차보증금은 5000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또 성공한 자영업자와 예비창업자를 연결해 도움을 주고받도록 창업도우미·멘토링 제도를 시작한다. 서울시는 ‘자영업 종합지원체계’를 구축하고 소상공인지원센터와 서울신용보증재단을 연계해 자영업자에게 교육·컨설팅·자금지원·정보서비스를 제공한다고 18일 밝혔다. 서울시는 창업 때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1000여개 업체를 선발할 계획이다. 총 지원금은 200억원이다. 기존 창업자금은 창업 후 3개월 이상 영업실적을 보여야 지원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창업교육과 컨설팅을 받은 업체는 2000만원까지, 연 4.5%로 대출해준다. 상환조건은 1년거치 4년 균등분할이다. 동일한 조건으로 200개 업체에 점포 임차보증금 5000만원도 지원한다. 총 지원금은 100억원이다. 서울시는 교육도 강화한다. 업종별·야간·체험 창업스쿨을 72회 열어 3220명을 교육한다. 나아가 어려움에 처한 점포 100곳을 선정, 현장 경영진단과 컨설팅을 제공하고 다른 업종으로 전환하도록 돕는다. 서울지역을 500개 상권으로 분류해 점포 현황과 위치, 유동인구, 업종 분포도 등을 조사해 어떤 지역에서 어떤 업종이 유망한지도 알려준다. 지원사업, 교육일정, 자금지원방법, 상권지도, 컨설팅 등 관련 정보를 담을 자영업 종합 포털사이트가 구축된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용인 지리정보 ‘e안에’

    용인시는 인터넷을 통해 용인지역의 지리정보와 도로명 및 건물번호부여 사업을 안내하기 위한 사이트를 개설,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9일 밝혔다. 이 사이트는 용인시 홈페이지(http:///yonginsi.net)에 링크돼 있다. 서비스 대상지역은 기흥구와 수지구 전 지역과 처인구의 동(洞) 지역이다. 처인구의 읍·면 지역은 제3차 도로명 및 건물번호부여사업 완료시점에 맞춰 2008년 상반기에 서비스할 예정이다. 지난 2월1일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용인시 웹 생활지리정보사이트는 주소, 건물명, 새주소, 도로명 등으로 위치 찾기가 가능하며 공공시설과 편의시설 등으로도 검색이 가능하다. 또 도로 토지(공시지가, 용도지역, 용도지구) 건물 등의 상세정보조회도 조회할 수 있다. 부가서비스로 지도에 문자를 입력한 후 출력하거나 본인 또는 타인의 메일로 보낼 수 있다. 이밖에 자영업을 하는 용인시민들을 위해 관내에 있는 자신의 업소의 업소명, 업종분류, 주소, 전화번호 등을 등록 요청도 할 수 있다. 시 관계자는 “미비한 점에 대해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해 웹생활지리정보 사이트 게시판에 의견을 올려주시면 검토해 오류 정정과 상세 정보 추가등록 등을 보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용인시 웹생활지리정보사이트는 용인시지리정보시스템(GIS) 사업의 일환으로 개발된 것으로 방문객이나 새로 이사 온 시민들이 생활지리검색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도로명과 건물번호에 의한 새주소 사업 체계 유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표본 세무조사 업종 기업들 “나 떨고 있니?”

    국세청이 지난 18일부터 매출 300억원 이상 대기업 116개를 대상으로 표본 세무조사에 돌입함에 따라 세무조사 대상 업종으로 지정된 업체들에 ‘비상’이 걸렸다. 업체들은 “우리는 대상이 아닐 것”이라며 세무조사 여부를 부인하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세청이 지목한 업종은 반도체, 전자, 조선, 자동차, 전자상거래, 통신판매, 레저 등이다. 국가보조금·보험금수입·국외투자수익·관세환급금을 누락한 기업, 공사원가를 과대계상한 건설업, 세무조사 이후 신고소득률이 떨어진 기업, 공통경비 임의배분·관계회사 부당지원·특별비용 과다계상 법인 등 광범위한 조사 대상이 거론됐다. 조선업종은 지난해 말 세무조사에서 140억원을 추징당한 대우조선해양을 제외한 대부분 업체들이 대상으로 분류될 수 있지만 부인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우리는 대상이 아닌 것으로 확인했다.”고 말했고 2001년 정기 세무조사를 받은 삼성중공업은 “이번 표본 세무조사와는 무관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STX조선도 “아직 국세청으로부터 아무런 통보를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선업계에서는 국세청이 고질적인 탈루업종으로 명시한 건설업을 병행하고 있는 업체들이 대상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현대차가 지난해 말 1961억원을 추징받아 사실상 대상에서 빠진 자동차업종에서는 기아차,GM대우, 쌍용차, 르노삼성이 후보다. 한국도요타나 BMW코리아 등 규모가 큰 수입차업체도 해당될 수 있다. 기아차는 2002년에 세무조사를 받아 이번 조사를 비껴갈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지난 2002년 출범한 GM대우는 아직 한번도 세무조사를 받지 않았다.GM대우는 출범 이후 계속 적자를 기록, 법인세를 내지 않아도 됐지만 지난해는 흑자를 달성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지난해 적자가 예상된 쌍용차도 2001년 이후 아직 세무조사를 받지 않았다. 쌍용차는 워크아웃 기간인 2002년 3204억원,2003년 3608억원의 세전이익을 내고도 과거 누적 결손금 세무조정 덕분에 법인세를 내지 않았다. 반도체·전자업체들은 “우리는 전혀 아니니까 아예 관심을 끊어달라.”며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A사 관계자는 “무슨 ‘살생부’도 아니고 국세청이 애매하게 업종만 밝혀서 괜히 의심만 나돌게 하고 있다.”며 편치 않은 속내를 내비쳤다. 류길상 김경두기자 ukelvin@seoul.co.kr
  • “정기조사 과학성 높이려 표본조사 도입”

    국세청 한상률 조사국장은 19일 “표본조사의 도입은 현행 정기조사의 과학성을 높이고, 납세자들에게는 탈세 유형을 미리 알려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이제 기업들에 대한 정기 세무조사는 아예 없어지나. -아니다. 오해를 하면 안된다. 정기세무조사는 상당기간 계속된다. 다만,3∼5년 뒤부터는 정기조사 방식은 크게 줄 수밖에 없다. ▶표본조사를 통해 탈루혐의가 드러나면 정기조사를 받고, 또 다음해에 연속해서 세무조사를 받는 기업도 나올 수 있는데. -1년 전에 조사한 기업을 다음해에 또 조사하면 오히려 행정적인 손실이 크다. 세무조사를 한 기업은 통상 3년내에는 다시 조사를 안하는 게 원칙이다. ▶반도체, 전자분야 등 호황업종에 대한 세무조사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큰데. -업종에 포함된다고 전부 세무조사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해당 업종 중에서도 탈루 혐의가 포착된 기업만 조사한다. 업종별·분야별로는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아 반도체 기업은 몇 곳이 조사대상이라는 식으로 나눠서 발표하기는 어렵다. ▶이번 조사가 ‘세수부족’을 메우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세수가 늘 수 있어 (세수 부족에)도움은 되겠지만, 결과론일 뿐이다. 공평세 부과가 1차적인 목표다. 세수가 모자라니까 세무조사를 한다는 식의 접근은 어리석은 방법이다. ▶언론사나 외국계 기업도 들어 있나. -외국계 기업을 따로 분류하지는 않았다. 언론사가 최근 호황업종이나 고질적인 탈루업종에 들어가나? ▶고질적인 탈루 업종과 유형은. -예를 들면 건설업종이다. 토목공사를 하면서 기름값과 관련해 가짜세금계산서를 떼는 식이다. 가령 공사는 여수에서 하면서 기름값 영수증은 대구에서 뗐다면 뭔가 이상한 것 아닌가. 이번 표본조사 등을 통해 예를 들어 토목공사를 할 때 유류비용은 몇 %나 드는지 등을 수치로 만들어, 그 기준의 얼마를 넘으면 조사 대상이라는 식으로 조사방법의 과학화를 꾀할 생각이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대기업 계열사 600곳 내년부터 中企서 제외

    대기업 계열사이면서도 상장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중소기업 적용을 받고 있던 600여 기업들이 내년부터는 중소기업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지식기반 서비스 업종에 속한 병원과 통신판매업 등 300여 업체가 새로 중소기업으로 지정돼 정부로부터 정책자금 지원과 세제혜택 등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중소기업청은 11일 중소기업 범위를 새로 조정한, 이같은 내용의 ‘중소기업기본법 시행령 개정안’을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개정안에 따르면 ▲자산총액이 5000억원 이상인 경우 ▲이들 기업이 지분 30% 이상을 소유한 계열사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속한 기업들은 모두 중소기업 범위에서 빼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상장 또는 코스닥 등록법인 중 자산이 5000억원 이상인 법인 등만 중소기업에서 제외돼 사실상 비상장 대기업이나 재벌 계열사들도 일부 중소기업으로 분류됐다.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교보생명-故신용호 창립자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교보생명-故신용호 창립자家

    “이 사통팔달, 한국 제일의 목에 방황하는 청소년을 위한 멍석을 깔아줍시다. 와서 사람과 만나고, 책과 만나고, 지혜와 만나고, 희망과 만나게 합시다. 이곳에 와서 책을 서서 보려면 서서 보고, 기대서 보려면 기대서 보고, 앉아서 보려면 앉아서 보고, 베껴 가려면 베껴 가고, 반나절 보고 가려면 반나절 보고, 하루종일 보고 싶으면 하루종일 보고, 그리고 다시 제자리에 꽂아 놓고 사지 않아도 되고, 사고 싶으면 사 들고 가도 좋습니다.” 고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는 ‘대산(大山) 신용호’라는 평전에서 당시 세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금싸라기 땅인 종로 1가 1번지 교보빌딩 지하에 교보문고를 세운 일에 대해 이같은 논리로 동의를 이끌어냈다고 밝혔다. 한국의 미래를 모토로 만든 교육보험에도 청소년들의 지적 수준과 나라의 성장은 비례한다는 확신이 담겨 있다. 창업 이념도 국민교육진흥과 민족자본 형성이다. ●독립운동 집안에서 태어난 다섯째 아들 신 창립자는 1917년 8월 전남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 솔안 마을에서 부친 신예범 선생과 모친 유매순 여사의 6남 중 5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며 잦은 옥살이를 하는 바람에 어머니가 가장 노릇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곱살 때는 폐병에 걸려 죽는다는 선고도 받았다. 열살 즈음 병이 나았지만 학교를 가진 못했다. 형편이 어려운 데다 형들이 각종 애국 운동으로 집안을 돌보지 않아 어린 마음에도 그가 살림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낮에는 밭에서 일하는 대신 ‘책속에 길이 있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밤에는 책을 읽었다. 동생의 책은 물론 주변에 보이는 책은 닥치는 대로 가져다 보았다. 겨울엔 잠과 싸우기 위해 방에 불도 때지 않고 책을 읽다 동상에 걸리기 일쑤였다. 당시 ‘천일독서’를 목표로 각종 위인전, 철학서, 고전, 사서를 섭렵했다. 비록 학교 문턱에는 가지 못했지만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독서철학으로 스스로 내실을 다졌다. 함께 교보생명 창업을 도운 막내 동생 신용희(83) 전 회장을 제외하고 다른 형제들은 대부분 애국운동에 몸담았다. 큰형인 고 신용국옹은 일제시대에 항일운동을, 광복 후에는 청년 노동운동을 했다. 그 큰아들인 신동재씨가 2000년까지 교보의 부동산관리 전문 자회사인 교보리얼코의 회장을 지냈다. 둘째 형 고 신용율씨도 항일운동에 몸담았으며, 그의 둘째 아들 신평재(67)씨가 현재 교보생명 교육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한일은행 상무로 재직하다 1991년 제의를 받고 교보생명 사장 등을 역임했다. 셋째 형 신용원옹은 도쿄 음악학교를 졸업한 뒤 항일음악가로 활동하다 납북했다. 넷째 형 고 신용복옹은 일제 당시 조선생명지사장을 지냈다. 막내 동생 신용희 전 회장은 목포상고를 나와 산업은행에서 일하다 한국전쟁 이후 줄곧 신 창립자를 도와 함께 일했다.1967년 교보생명 창립 이후에는 30년간 교보에 몸담으며 부사장, 회장 등을 지냈다. 그의 아들인 신인재(39) 보드웰 인베스트먼트 사장(8%)과 함께 교보생명 지분을 13.25% 갖고 있다. 신 사장은 고 신 창립자로부터 경영권을 승계받은 큰아들 신창재(52) 교보생명 회장으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자신의 길을 고집했다. 신 사장은 최근 이동통신사에 솔루션을 공급하는 코스닥 상장업체 무선인터넷솔루션 회사인 필링크의 대표이사 직함도 얻게 됐다. ●교육열을 사업으로 연결한 기지…교육보험의 탄생 문학가를 꿈꿨지만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사업에 뜻을 세웠다. 약관이 되던 해에 서울로 갔고 이어 1936년 중국에서 양곡 수송 사업을 벌였지만 광복과 함께 10년간 닦은 기반을 버리고 빈손으로 귀국했다.1946년. 귀국후 첫 사업으로 전북 군산에 ‘민주문화사’란 출판사를 냈으나 외상 책값이 회수되지 않아 간판을 내렸다. 그렇게 몇 차례 사업에 실패한 뒤 문득 중국에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논 한 뙈기 없어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강한 교육열이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한국 부모들의 교육열은 무형원자재인 것이다.‘생·로·병·사’중 유일하게 보험이 빠져 있는 ‘생’ 부문에 교육보험을 끼워넣어 상품화하기로 했다. 당시 보험에 대한 인식은 형편 없었다. 일제시대 보험은 수탈 방식이자 보신(保身) 방편이었다. 더욱이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50달러도 미치지 못해 보험에 들 여유가 없었다.1954년 정부가 보험업을 재개시켰으나 기존 생명보험 회사들이 대부분 휴면상태에 있을 만큼 보험업은 쑥대밭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험난해서인지 국민의 80%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때 그의 재기가 번뜩였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찾아가 “담배를 끊고 그 돈으로 보험을 들면 아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다.”고 설득한 것이다. 창업 당시에는 ‘교육보험’이란 이름을 넣지 못했다.1958년 종로1가 60번지 2층짜리 건물에서 직원 46명과 함께 먼저 ‘태양생명보험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교육보험이란 업종상 생명보험으로 분류돼 상호에 교육보험이란 이름을 넣을 수 없었다. 교육열을 자원으로 만든 상품이었고 당시 생명보험에 대한 인식도 열악해 ‘교육보험’이란 이름을 포기하지 않았다.1958년 1월 창업한 뒤 관계 공무원을 끊임없이 설득, 같은 해 7월 상호변경 승인을 얻어 ‘대한교육보험’(현 교보생명)을 출범시켰다. ●슬하 2남2녀의 혼맥 1943년. 중국에서 한창 양곡수송 사업을 크게 벌이던 신 창립자는 당시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급히 귀국했다. 도착해 보니 아버지는 건강한 모습으로 그를 맞아주셨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내일 모레가 네 장가가는 날이다.”는 아버지의 한마디. 결혼을 시키려고 거짓 소식을 보낸 것이다. 당시 남자 26세는 혼기를 놓친 나이였지만 그는 벌인 사업 때문에 아직 결혼할 때가 아니라고 여겼다. 도망칠 마음까지 먹었다고 고백하며 배려를 바랐으나 아버지가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눕는 바람에 결혼식을 치렀다. 부인 유순이(81)씨는 당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2년제 전수학교까지 마친 명문가 출신 규수. 사업에 전력을 쏟느라 가정에 소홀했던 남편을 탓하지 않고 어려운 형편 속에서 묵묵히 2남2녀를 길러냈다. 자녀들의 혼사도 그와 비슷하다. 막내 아들을 제외하고 모두 중매 결혼이다. 명문 대가와의 정략 결혼은 눈에 띄지 않는다. 큰딸 신영애(56)씨는 전 서울대학교 의과대 의학과 마취과학교실 교수 함병문(58)씨와의 사이에 현진(32), 지훈(31), 세훈(25) 등 2남 1녀를 두었다. 신영애씨는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지분 평가로 지난 2004년부터 단번에 350억원대 자산을 보유, 연말마다 언론에서 선정하는 여성 부호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둘째 딸 신경애(54)씨는 법조인에게 시집가 1남1녀를 낳았다. 남편 박용상(61)씨는 서울대 법대에서 박사까지 마친 뒤 사법시험에 합격, 서울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로 활약한 뒤 방송위원회 위원,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국회 공직자윤리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변호사박용상법률사무소를 운영중이다. 박용상씨의 큰형 용설씨는 내외빌딩관리㈜ 대표, 동생 용삼씨는 내외엔지니어링 대표다. 고 신 창립자의 자리를 이어받은 큰 아들 신창재(52) 교보생명 회장은 부인 정혜원(48) 봄빛여성재단 이사장과의 사이에 중하(24)·중현(22)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서울대 의대 교수 출신인 신 회장은 불혹이던 지난 1993년 교보에 발을 들여놓은 뒤 현재 직계 중 유일하게 교보에서 일하고 있다. 정 이사장은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왔다. 막내 신문재(44)씨는 이정숙(44)씨와의 사이에 딸 혜진(18)을 두고 있다. 형제들 중 유일한 연애 결혼이다. 미국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1991년부터 2005년 8월까지 광화문 교보문고내 문구 액세서리 음반 팬시용품 등을 판매하는 400여평 매장의 문보장을 비롯해 전국 6개 교보문보장을 운영해 왔다. 교보문고가 직접 문보장을 운영하기 위해 신씨로부터 지난 8월 문보장 사업권을 회수했다. 현재 새 사업을 구상중이다. ●지독한 완벽주의와 파격 인사 고 신용호 창립자는 지독하다 싶을 만큼 완벽하고 집요하다는 평을 받는다. 땅을 고를 때도 좋은 날, 궂은 날, 비온 다음날 등 두루 살피는 완벽주의자다.77년 명예회장,85년 창립자 등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1990년대 후반까지 신입사원 면접에 직접 들어왔다. 사업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나도 실적이 저조해 본사 부장, 실장, 중역까지 나서 손을 들라고 권하자 그들을 나가게 한 뒤 ‘급료는 후불로 주겠다.’는 광고를 통해 간부 사원을 다시 구한 일화는 아직도 회자된다. 창업 10년 만인 1967년 회장으로 물러난 뒤 2000년 아들 신창재씨가 교보생명 회장에 취임하기까지 33년간 무려 사장이 19번이나 바뀌었다. 평균 수명이 1.7년이었다. 경영 안정을 위해 최고경영진을 쉽게 바꾸지 않는 업계의 관행과는 다른 것이다. 교보의 임원 인사는 상식을 뛰어넘어 기발하고 파격적이란 평이 나오는 이유다. 신창재 회장의 인사 스타일도 재계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2002년 5월 취임한 장형덕 대표이사 사장의 경우 사장직을 폐지하는 형식으로 취임 10개월 만에 퇴임시켰다. 단일 지도체제가 더 효과적이라며 사장을 없애고 대신 부사장 3명을 임명해 집단경영체제로 개편했던 것. 그때부터 ‘대표이사 회장’ 밑에 ‘대표이사 사장’ 없이 ‘대표이사 부사장’ 체제로 가고 있다. 이어 지난 2004년 2월 박성규 부사장을 선임,‘집단경영체제’는 다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맨손으로 생나무를 뚫어라’ 고 신용호 창립자는 ‘죽고 나면 손해’란 보험에 대한 당시 인식을 바꾸는데 초점을 맞춰 교육보험 1호인 ‘진학보험’을 세계 처음 내놓았다. 죽어야 혜택을 주는 게 아니라 부모가 돈을 적립해 자녀가 초·중·고등학교를 진학할 때마다 학자금을 주는 상품이다. 먼저 단체들을 공략했다. 군인 단체 저축성 보험인 일명 ‘화랑계약’을 고안했다. 잦은 군의 이동에 탈락계약이 늘어 성과는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군 이동에도 추적·관리되는 시스템을 도입,1967년 육군과 170억원의 단체 계약을 맺었다. 파죽지세로 해군·한전 등 대형 단체들과 꾸준히 계약하는 개가를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판매 창구도 강화했다. 종로기독청년회관(YMCA)에서 대학생을 모아 보험강좌를 실시한 것을 계기로 대학지부를 설치, 대학생도 판매 채널로 끌어들였다. 지방유지를 직접 찾아다니며 기관장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상품에도 그의 기지가 엿보인다. 암 상품은 그가 처음 개발했다. 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성인병도 하나씩 보험상품으로 만들었다. 보험업계 전산화 발상을 추진한 최초의 인물도 바로 그였다.1974년 학자금 선지급 업무를 처음 전산화했고 “컴퓨터를 모르면 간부가 될 수 없다.”며 전 사원을 상대로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인증제’도 실시했다. 그가 인생을 이야기할 때 전반은 ‘맨손가락으로 생나무를 뚫는 과정’이고 후반은 ‘생나무 뚫는 것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인 과정’이라 비유했다. 인생은 장애의 연속이지만 강한 정신력만 있다면 아무리 높고 힘든 목표라도 달성할 수 있다는 게 그만의 철학이다. 이같은 열성과 집념으로 1958년 당시 6대 생보사 중 막둥이로 태어난 교보생명은 창립 5년 만에 보유계약 56억원으로 업계 3위,1964년엔 보유계약 100억원 돌파로 업계 2위에 오른 뒤 1967년 설립 9년 만에 업계 정상에 섰다.‘맨손가락으로 생나무를 뚫은’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인생의 다른 한 축…교보문고 교육 보험은 대세가 아니었다.80년 들어 경제성장과 함께 늘어나는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는 시절이 오면서 보험만으로 교육비를 해결할 수 없게 됐다. 변하는 고객 욕구에 따라 양로보험, 종합보장생활보험 등 일반 생명보험 상품의 비중이 커졌다. 교육보험만으로 경쟁력이 떨어지자 1995년 ‘교보생명’으로 사명을 바꾸었다. 삼성생명의 약진으로 교보는 1974년부터 업계 1위에서 2위로 밀려났다. 자산이 늘어나면서 관련 계열사도 속속 설립했으나 모두 보험으로 맡긴 고객의 돈을 운용하기 위한 금융 계열사였다. 부동산관리 전문회사인 교보리얼코(1979), 교보증권(1994) 등 총 9개 자회사를 세우면서 교보를 오늘날 35조원 규모의 금융 자본으로 성장시켰다. 그 중 금융과 동떨어진 업종이 하나 있다. 바로 교보문고(1980)다. 교육을 통한 민족부흥을 창업 이념으로 삼고 있는 만큼 따지고 보면 업종의 본질은 같다는 설명이다. 1980년 종로 1가 1번지에 사옥 교보빌딩이 세워지자 그는 지하에 서점 설립을 제안했다. 온갖 연줄을 동원하며 지하아케이드 자리 쟁탈전이 벌어지던 때였다. 간부들은 채산성이 약하다며 서점이 들어서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는 의견을 냈고, 손해가 나면 보험회사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당시 허가관청인 재무부도 반대하고 나섰다. “우리 회사가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다면 이 자리에는 당연히 으리으리한 고급상가를 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 값진 땅에 책방을 크게 열어 청소년과 시민이 자유롭게 이용토록 한다면 그 효과가 어느 정도나 될지 상상해 보시오.” 손해가 나더라도 청소년의 정신역량을 키우는 일인 만큼 자신이 떠맡겠다고 설득했다.1985년에는 일반 독자뿐 아니라 학자들을 위해 80만종의 세계 논문도 공급했다. 지방사옥이 세워질 때마다 학생과 시민들이 교보문고 지점 설치를 요구했을 정도다. 대전, 성남, 대구, 부산, 부천, 강남 등에 속속 지점을 열었다.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를 찾는 고객 수는 일평균 4만 5000여명, 연간 1500만명에 달한다. 삶의 두 축이 교보생명과 교보문고라고 지적했을 정도로 애착도 컸다. 그러나 말년을 맞아 또다시 병마가 찾아 왔다.77세가 되던 1993년. 회사 정기건강 검진에서 간 기능에 석연치 않은 증후가 발견됐다. 담도암이었다. 의사들은 그에게 맛있는 음식 많이 먹고, 기운 있을 때 여행을 다녀오라는 처방을 내렸다. 사형 선고였던 셈이다. 그는 암과 싸우며 여생을 보내느니 살든 죽든 결판을 내겠다고 마음먹고 불가능하다는 담도암 수술을 감행했다. 수술후 그는 중환자실에서 목에 구멍을 뚫고 2개월이나 암흑 속에서 지내야 했다. 중환자실에서 나온 뒤 재활물리치료 반년 만에 골프장에 다시 나갈 수 있었다. 근력운동과 식이요법으로 건강을 유지하면서 90년대 후반까지 업무를 보고받는 등 경영에 관여했다. 그러나 8년 뒤 암이 간으로 전이되면서 몸이 약해졌다. 결국 2003년 9월 19일 오후 6시1분 서울대병원에서 노환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 86세였다. jhj@seoul.co.kr ■ 신창재회장과 정혜원 여사 “내조만 하며 살아온 탓에 사회공헌 사업은 꿈도 꿔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제의로 사회공헌 사업을 시작하게 됐지요. 내조와 아이들 뒷바라지에도 벅차지만 소명으로 여기며 열심히 하고 있어요.” 신창재(52) 교보생명 회장의 부인 정혜원(48)씨는 요즘 사회활동에 바쁘다. 그는 남편과 두 아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해온 전업 주부였다. 남편 신 회장으로부터 사회공헌 사업을 해보라는 제의를 받고 2004년 4월 성매매 피해여성 보호단체를 지원하는 봄빛여성재단을 창립,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순전히 남편 신 회장의 사재로 시작한 사회공헌 사업이다. 서울 종로구 적선동 사무실로 매일 출근하면서도 아이들이 완전히 홀로서기할 때까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며 걱정이 많다. 그는 한사코 취재를 거부했다. 사회 활동은 하고 있지만 언론 대응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화여대 영문과 출신인 그는 소탈하면서도 적극적인 성격으로 책임감이 강하다는 평을 받는다. 중매를 통해 남편을 만났다고 밝혔다. 평범한 집안에서 데려온 며느리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고 신용호 창립자의 수수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는 남편 신 회장이 양복도 맞추러 갈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쁘다고 했다. 실제로 신 회장은 아버지의 유업인 교보문고와 교보생명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 아버지만큼 골프를 좋아하지만 교보로 옮긴 이후 거의 필드에 나가지 못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다. 교보생명은 지난 2000년 5월 신 회장 취임과 함께 ‘질´경쟁을 선언하면서 업계 2위에서 3위로 밀려난 뒤 여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먼저 교보문고는 교보생명이 증자해 전자책 등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는 지식문화 전문회사로 거듭나도록 하겠다는 포부다. 출판업이 사양산업으로 전락하다 보니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교보문고는 현재 부채비율이 416%로 은행으로부터 신규 여신이 어려운 처지다. 교보생명은 기존 주주가 여력이 없어 제3자 배정 방식으로 5000억원을 증자할 계획이다. 다른 생보사보다 상대적으로 지급여력비율(160%)이 낮다. 자기자본 확대가 이유다. 그러나 2대 주주인 자산관리공사가 난색을 표명하고 있어 문제다. 자산관리공사 소유·관리지분(41.26%)의 가치가 희석되지 않는 상태에서 잘 팔릴 수 있도록 협조해야 증자에 동의한다는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업계는 신 회장이 과연 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교보생명의 한 임원은 신 회장에 대해 “아버지를 닮은 완벽주의자”라고 말했다. 경기고, 서울대 의대를 나와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로 살아오다 불혹이던 지난 1993년 아버지 고 신용호 창립자의 뜻에 따라 그간 배운 의학 공부를 포기하고 대산문화재단 이사장으로 교보생명에 발을 들여놓았다.1996년 11월 교보생명 부회장,2000년 5월 교보생명 회장으로 취임한 뒤 변화와 혁신을 기치로 삼고 전력 질주 중이다. 박성규 교보생명 부사장은 “과연 의사 출신이 기업을 어떻게 경영할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를 보면 답이 나온다.”고 전했다. 의사 출신답게 깊은 통찰력과 분석력을 갖춘 데다 책을 많이 읽는 덕분에 멀리, 넓게 보는 안목이 있다고 평가했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양그룹-창업주 故 이양구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양그룹-창업주 故 이양구회장家

    동양은 국내 재벌가(家)에서 최초로 사위가 승계한 그룹이다. 동양 창업주인 고 이양구 회장이 1945년 북에서 혈혈단신으로 월남한데다 이관희(76)여사 사이에 딸만 둘을 둔 것과 무관치 않다. 이 창업주의 차녀인 화경(49)씨가 일찍이 경영에 참여해 현재 오리온 사장직을 맡고 있지만 동양의 ‘경영 대권’은 맏사위인 현재현(56) 동양 회장과 둘째 사위인 담철곤(50) 오리온 회장에게 돌아갔다. 가족 구성원이 단출한 만큼 이 창업주가(家)의 혼맥도는 정·관·재계에 든든하게 뿌리를 내린 국내 여느 재벌가와 달리 단순하다. 또 이 창업주가 딸들의 통혼을 통해 사돈가(家)의 후광을 기대하기보다 자신의 유업을 이어갈 사위들의 ‘사람 됨됨이’를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도 혼맥의 단순함을 더했다. 특히 오리온 담 회장의 집안이 화교 출신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설탕왕·시멘트왕’ 이양구 창업주 동양 창업주인 서남(瑞南) 이양구 회장은 1916년 함경남도 함주군의 작은 농가에서 부친 이교흠(작고)씨와 모친 김성자(작고)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이 25세의 젊은 나이로 병사하면서 서남의 어린 시절은 힘겨운 생활로 점철됐다.15세의 늦은 나이에 보통학교 졸업장을 받은 서남은 상급학교 진학 대신 ‘함흥물산’이라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식료품 도매상에 취직했다. 서남은 훗날 이곳에서 ‘정직과 신용’이라는 상도를 배웠다고 밝혔다. 8년간 악착같이 돈을 모은 서남은 1938년 식품도매상인 ‘대양공사’를 시작으로 6·25전까지 수차례의 회사를 세우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그때마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여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고향에 수십만평의 토지와 1억원에 가까운 거금도 삼팔선과 전쟁으로 잃었다. 그러나 그는 부산에서 설탕도매업을 기반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전시의 특수 경기와 생필품 부족이 거꾸로 그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서남은 부산과 마산, 대구 등에서 이른바 ‘설탕왕’으로 불렸다. 서남은 당시 국내 유일하게 설탕을 생산했던 고 이병철 삼성 회장, 고 조홍제 효성 창업주와 가까운 사이였다. 서남은 1955년 삼성 이 창업주와 풍국제과의 배동환씨 3인의 공동 출자로 동양제당공업주식회사를 설립했으며, 풍국제과의 경영에도 참여해 오늘날 오리온(옛 동양제과)의 기틀을 다졌다. 또 동양제당이 국내 최고의 역사를 지닌 삼척시멘트를 인수하면서 서남은 자연스럽게 시멘트 사업에 진출하게 됐다. 서남은 1957년 삼척시멘트를 동양시멘트공업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 뒤, 노후시설 교체와 증산을 통해 한때 시멘트 왕국을 건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업 경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신규 업체의 대거 진입으로 시멘트가 남아돌았고, 정부의 금융 긴축정책으로 동양은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서남이 훗날 ‘운명의 날’이라고 밝혔던 1971년 9월10일 법원에 회사보전신청을 제출해 세인으로부터 온갖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눈덩이처럼 불어난 사채에도 불구하고 동양은 살아났다. 정부의 사채동결조치가 사실상 동양의 구명줄이었으며, 평상시 쌓아온 정직과 신용도 큰 도움이 됐다. ●운명적인 만남 서남과 이관희 여사의 인연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6·25가 이들을 만나게 하고, 또 헤어지게 만들었지만 결국은 거제도에서 부부의 인연을 맺게 했다. 6·25 발발로 3년 5개월만에 공군 소속으로 귀향한 서남은 모친의 부탁에 이관희씨와 약혼했다. 그의 나이 34세였다. 관희씨는 당시 함흥의 명문인 영생고녀(永生高女)를 나와 교편을 잡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군의 전쟁 개입으로 두 사람은 결혼식도 못올리고 생이별을 하게 됐다. 부산으로 내려온 서남은 가족 소식을 알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다가 뒤늦게 피란선을 타고 월남해 거제도에 머물던 관희씨와 극적으로 만났다. 이 여사는 현재 서남재단 이사장으로 남편의 유업을 기리고 있다. 서남과 이 여사는 슬하에 장녀 혜경(53)씨와 차녀 화경씨 등 2녀를 뒀다. 이화여대 미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혜경씨는 평소 집안끼리 잘 알고 지내던 고 김옥길 이화여대 총장의 중매로 1976년 현재현 회장과 결혼했다. 현 회장은 당시 부산지검 검사로 재직중이었다. 그는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대학 3학년 때 1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혜경씨는 현재 전공을 살려 동양매직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 회장의 집안은 전형적인 선비 가문이다. 고려대 초대 총장을 지내고 ‘유학계의 마지막 거두’로 알려진 고 현상윤 총장이 그의 조부이며, 이화여대 의대 교수를 역임한 고 현인섭씨가 그의 부친이다. 그는 고 현 교수의 3남2녀 가운데 셋째다. 첫째는 고려대 대학원장인 현재천(61)씨이며, 둘째는 현재민(59) KAIST 교수, 장녀는 현재희(51) 세종대 교수, 차녀는 현재란(49) 의사로 현재 이화의원 원장이다. 현 회장과 이 고문은 ‘정담(28·여)-승담(25·남)-경담(23)-행담(18)’ 등 1남3녀를 두고 있다.2세 모두 미국 스탠퍼드대를 다녀 현 회장과 동문이다. 첫째인 정담씨는 스탠퍼드대에서 심리학과 경제학을 복수로 전공한 뒤 지금은 MBA(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장남 승담씨는 컴퓨터 사이언스와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차녀 경담씨는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고 있다. 막내딸 행담씨는 스탠퍼드대 교양학부 1학년에 재학중이다. 서남의 둘째 딸 화경씨는 이화여대 사회학과 출신으로 1980년 뜨거운 열애끝에 담철곤 회장과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담 회장의 선친은 대구에서 한의원을 운영했으며, 타이완 국적으로는 한의원 경영이 쉽지 않아 일찍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화경씨와 담 회장은 슬하에 경선(20)씨와 서원(16·남) 1남1녀를 뒀다. 경선씨는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인문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서원군은 국내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서남가(家)의 혼맥은 이처럼 단순하지만 그나마 현 회장 집안을 통해 정·재계에 인연이 이어진다. 현 회장의 조부인 현상윤 전 총장은 6∼8대 국회의원이었던 김봉환 전 국회법사위 위원장과 사돈지간이다. 김 전 법사위원장은 손경식 CJ 회장과 사돈으로 연결된다. ●잉꼬 부부 이 고문과 현 회장은 중매로 만났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애틋하고 각별하다. 결혼 이후 경영수업을 위해 미국 스탠퍼드대에 홀로 유학한 현 회장은 이 고문에게 자주 편지를 보냈고, 편지 첫 머리에 늘 ‘사랑하는 당신’이라고 적었다. 담 회장과 이 사장은 서로가 첫 사랑이다. 대구에서 서울로 유학온 담 회장은 중학교 3학년 때 이 사장을 같은 반 친구로 처음 만났다. 이 때부터 서로에게 끌린 두 사람은 10년 이상 연애했다. 담 회장이 미국 조지워싱턴대로 유학간 4년이 유일하게 떨어진 시간이었다. 이 때도 두 사람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수백통의 편지를 주고 받았으며, 하루가 멀다하고 비싼 국제전화를 하는 탓에 꾸중도 많이 들었다. 이제는 눈빛만 봐도 서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친구에서 연인, 다시 부부로 인연이 이어지기까지 두 사람은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 오랜 만남을 지속했던 두 사람이었지만 막상 결혼때는 집안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는 후문이다. 담 회장과 이 사장은 국내 재계에서 보기 드문 ‘부부 CEO(최고경영자)’다. 담 회장은 현재 이 사장이 총괄경영을 맡고 있는 오리온의 엔터테인먼트사업 아이디어를 추진한 주역이다. 이 사장은 “나는 다소 감성적인 반면 담 회장은 실용적이어서 상호 보완이 된다.”면서 “시간이 갈수록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져 이제는 이 세상에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시에 더없이 훌륭한 사업 파트너”라고 곧잘 언급한다. ●혹독한 경영 수업 서남은 사위들을 후계자로 키우기 위해 더 철저하게, 더 강하게 경영 수업을 시킨 것으로 유명하다.“내 딸, 내 사위라고 해서 특혜는 없다.”는 것이 서남의 ‘후계자론’이다. 현 회장은 75년 부산지검 검사로 입문한 뒤 결혼과 함께 경영자로 변신했다. 그는 77년 동양시멘트 이사로 재계의 첫 발을 내디뎠고, 초고속 승진을 통해 동양의 후계자로 대내외에 알려졌다. 그러나 후계자의 길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이 창업주는 타계하는 날까지 두 사위와 작은 딸에게 이론과 실전으로 혹독한 경영자 수업을 시켰다. 현 회장은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국제금융을 전공한 이후, 이 창업주로부터 직접 경영수업을 받았다. 낮에는 현장을 같이 누비며 실전과도 같은 수업을 받았고, 밤에는 새벽까지 수십년동안 쌓아온 이 창업주의 경영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이 창업주의 경영수업은 이틀 정도 잠을 안재우는 일이 허다할 정도로 강도가 높았다. 이화경 사장은 동양제과(현 오리온)에서 인턴사원으로 일을 시작했으며, 담철곤 회장도 유학을 마친 후 동양시멘트 구매부 과장으로 입사했다. 이 창업주는 ‘경영자가 되려면 기본부터 충실해야 한다.’며 두 사람 모두 구매부로 발령냈다. 이후 이 사장은 영업부를 제외한 각 부서를 돌며 업무를 익혔다. 특히 마케팅담당 시절엔 획기적이고 신선한 광고로 광고담당자들을 놀라게 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초코파이의 ‘정(情) 시리즈’ 광고다. 그는 입사 26년만에 오리온그룹의 외식과 엔터테인먼트사업을 담당하는 CEO에 올랐다. 이 사장은 최근 경제전문지 포브스코리아가 발표한 한국의 여성부호 50인 가운데 8위(1652억원)에 올랐다. 담 회장도 81년부터 동양제과로 자리를 옮겨 구매부장과 사업, 관리, 영업 상무 등을 거치며 89년 동양제과 CEO에 올랐다. ●동양·오리온의 분가 이 창업주가 1989년 타계한 이후 동양의 경영권은 가족간 협의를 통해 맏사위인 현 회장이 승계했고, 둘째 사위인 담 회장은 동양제과를 맡았다. 현 회장과 담 회장은 13년간 각각 시멘트·금융, 제과·엔터테인먼트 등의 사업영역에서 독자 경영을 해왔다. 이 때문에 사위간에 기업 분할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여기에 동양제과가 영상미디어 분야에 투자와 외자유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30대 기업집단으로 제한을 많이 받아 계열분리가 빨라졌다. 동양제과는 2001년 9월1일 동양에서 분가했다. 동양그룹 32개 계열사 가운데 제과와 엔터테인먼트 계열의 16개사가 떨어져 나간 것이다. 그러나 동양과 오리온(옛 동양제과)은 여전히 그룹 CI(기업이미지)를 함께 사용할 정도로 뿌리에 대한 깊은 유대감을 이어가고 있다. 현 회장은 “동양과 오리온의 분가는 미래 지향적인 경영을 위해서이며, 한 뿌리에서 나온 두 그룹이 한국경제의 거목으로 성장하기 위해 가지를 펼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계열분리 이후 동양은 금융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동양종합금융증권은 증권·종금·투신업을 아우르는 종합금융사로 거듭났으며, 동양생명은 6년 연속 흑자를 내고 있다. 동양은 현재 제조업 6개사, 금융 7개사로 총자산은 15조원 수준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4조 300억원을 기록했다. 오리온그룹은 케이블 방송과 영화 등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집중해 계열사를 26개사로 늘렸다. 지난해 매출액 1조 5300억원을 올렸다. 특히 미디어플렉스의 극장사업체인 메가박스는 전국에 117개 스크린을 확보하며 최고의 영화관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영화투자 배급사인 쇼박스는 ‘말아톤’과 ‘웰컴투 동막골’,‘가문의 위기’ 등을 잇달아 흥행시켜 설립 3년만에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여기에 베니건스를 중심으로 한 외식사업과 편의점 사업체인 바이더웨이 등도 견고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동양·오리온의 대표 CEO 노영인(59) 동양시멘트 사장은 30여년을 시멘트업계에 종사한 산증인이다.98년 동양시멘트 대표이사로 취임한 그는 외환위기 한파를 수출로 돌파했다. 그동안 시멘트 수출은 채산성이 안 맞고, 선진국의 품질검사가 까다로워 시늉만 내왔다. 그러나 노 사장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밀어붙여 99년에는 창사이래 최대 물량인 171만t을 세계 각국으로 수출했다. 덕분에 579억원의 순익을 기록해 기나긴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노 사장은 동양의 실질적인 지주회사인 동양메이저의 대표이사도 겸직하고 있다. 박중진(54) 동양종합금융증권 부회장은 금융업계에선 신사로 통한다. 친근한 말투가 트레이드 마크. 그는 조지워싱턴대 MBA 출신으로 미국 공인회계사(AICPA) 자격증을 갖고 있다. 탄탄한 이론을 바탕으로 동양증권과 동양생명, 동양종금을 거치며 10년이상 실전 금융을 익혔다. 윤여헌(57) 동양생명 사장은 행시 14회 출신으로 건설부와 재무부를 거쳐 95년 동양에 합류했다. 윤 사장은 겉치레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내실형’ 스타일이다. 철저한 손익 위주의 경영을 선호한다. 오리온그룹을 이끄는 전문 경영인으로는 김상우(48) 오리온 대표이사를 꼽을 수 있다. 김 대표는 1987년 오리온(옛 동양제과)에 입사한 이후 줄곧 마케팅 분야를 맡았다. 농심이 장악한 국내 스낵시장에 포카칩과 스윙칩 등을 출시해 오리온의 돌풍을 일으켰다. 오일호(53) 스포츠토토 사장은 1987년 오리온 마케팅부 과장으로 입사해 오리온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004년엔 스포츠토토 사령탑을 맡아 차별화된 마케팅으로 초기 난관을 극복했다. 특히 가라앉은 ‘토토´를 최근 ‘토토 붐´으로 확산시킨 것은 그의 공이 컸다는 평이다. golders@seoul.co.kr ■ 창업주 두딸 이혜경·화경씨 ‘닮은 듯 닮지 않은 두 자매.’ 이혜경(53) 동양매직 고문은 국내 ‘재벌가(家)의 딸’들이 그러하듯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전공(이화여대 미대)을 살려 동양매직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가정에 더 충실한 편이다. 그러면서도 장녀로서 모친인 이관희(서남재단 이사장) 여사를 도와 부친의 뜻을 기리는 서남재단의 이사로서 사회봉사 활동에 적극적이다. 반면 이화경(49) 오리온 사장은 1975년 동양제과(현 오리온) 인턴사원으로 입사해 밑바닥을 두루 거친 뒤 26년만에 오리온 사장에 올랐다. 약력에서 알 수 있듯 이 사장은 그동안 ‘경영자의 길’을 걸어왔다. 언니와는 다르게 ‘바깥 일’을 더 중시한다. 이 때문에 자매를 잘 아는 지인들은 보통 언니를 ‘살림꾼’으로, 동생을 ‘여장부’로 부른다. 이 고문은 소박하면서 다정다감하다. 살림을 손수 챙기며, 요리 실력이 수준급이다. 미술 감각을 살려 실내 장식과 정원 등은 손수 꾸민다. 또 혼자서 곧잘 동대문 시장에 나가 살림 도구나 가족 옷을 산다. 자녀 교육에도 각별한 정성을 쏟는다.1남3녀를 모두 미국의 명문 대학인 스탠퍼드대에 진학시킨 것은 이 고문의 노력과 관심 덕분이다. 이 고문은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한때 사회활동을 극도로 자제했으며, 수년간 미국에 머물며 자녀 뒷바라지를 했다. 현 회장도 틈틈이 아이들의 영어와 수학을 직접 가르쳤다. 막내딸 행담씨가 올해 대학에 들어가면서 이 고문은 건강 관리를 위해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이 사장은 경영인, 아내, 엄마의 ‘1인3역’을 소화하느라 늘 시간에 쫓긴다. 그렇다고 어느 하나 소홀한 법이 없다. 자녀(1남1녀)와 함께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업무 외의 약속은 잡지 않는다. 경영인으로서 이 사장은 어떨까. 호탕하고 도전정신이 강해 부친을 빼닮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월간 현대경영이 2003년 8월 100대 기업 비서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신세대 여비서들이 모시고 싶은 CEO’에 뽑히기도 했다. 그만큼 업무상의 유연함과 직원 배려가 돋보인다는 것이다. 이 사장은 인턴사원으로 출발해 구매부, 조사부, 마케팅부 등 주요 부서를 거쳐 누구보다 현장 분위기와 실무진의 고충을 잘 알고 있다. 오리온의 외식 및 엔터테인먼트 계열사 직원들은 이 사장을 열정적인 CEO로 평가한다. 이 사장이 전담하는 계열사는 온미디어와 미디어플렉스, 외식 사업부문인 롸이즈온 등 3개사. 일주일을 나눠 각각의 회사에 출근한다. 이 사장은 현장 경영을 중시한다. 직원들과 직접 회의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며, 영화사업을 담당하는 CEO로서 때로는 서울 삼성동의 메가박스에서 하루종일 영화를 보기도 한다. 이 사장은 “내가 재밌고, 감동을 받아야 관객들에게 권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golders@seoul.co.kr ■ 두 CEO 경영스타일 비교 ‘외유내강 VS 실용주의’ 사위들이 경영권을 승계하다 보니 현재현(56) 동양 회장과 담철곤(50) 오리온 회장은 곧잘 비교의 대상이 된다. 재계 안팎에선 현 회장을 선 굵은 외유내강형으로, 담 회장을 철저한 실용주의형으로 분류한다. 기업의 성장세로는 담 회장의 오리온이 빠르다.1989년 매출액 1360억원에 불과했던 동양제과(현 오리온)를 지난해 1조 5300억원으로 10배 이상 키운 것은 신규 사업을 진두지휘한 담 회장의 공이 크다. 현 회장은 오리온이 분가한 이후 그룹 구조조정에 매진했다. 금융계열사를 통합, 매각하면서 부채비율을 낮추는 데 주력했다. 이 덕분에 1000%를 웃돌았던 부채비율은 어느 정도 안정궤도에 진입했다. 상대적으로 그룹의 외적 성장은 더디었지만 속은 눈에 띄게 알차졌다. 현 회장은 최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에서 유창한 영어 실력을 과시하며, 재계의 ‘스타 CEO’로 떠올랐다.CEO 서밋 의장으로서 각국 CEO(최고경영자)들과 토론 및 기자회견을 깔끔하게 소화해 화제가 됐다. 그는 이처럼 남들이 멍석을 깔아주지 않는 한 자신의 진면목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외유내강형 CEO로 불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현 회장은 화를 내지 않는다. 늘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다. 그룹 총수가 화를 내서 임직원들의 기를 꺾으면 차후 일 진행이 쉽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대신 원칙에 따라 결정된 내용은 남들이 주저해도 과감하게 추진한다. 현 회장이 경영자로서 평가받은 첫 사업은 1984년 일국증권(현 동양종합금융증권) 인수다. 당시만 해도 증권사는 대형사고와 부실경영의 대명사로 인식됐던 터라 임직원들의 증권사 인수 반대는 만만치 않았다. 그렇지만 현 회장은 자본금 20억원에 지점이 덜렁 하나뿐인 일국증권을 불과 5년만에 10대 증권사로 키워냈다. 이를 계기로 동양은 30년간 지속된 시멘트와 제과 사업에서 탈피해 금융업 중심으로 업종 다변화를 일궈냈다. 현 회장의 취미는 바둑. 중학교 시절 바둑을 배워 고등학교 때는 적수가 없을 정도였고, 대학 때는 교내 대회에서 수차례 우승을 했다. 장수영 9단에 2점으로 버티는 아마 고수다. 현 회장의 고교·대학 동기들은 그를 ‘티없는 친구’로 기억한다.“품성이 맑고 깨끗하며 원만할 뿐 아니라 일처리까지 깔끔하다.”는 것이다. 담철곤 회장은 실용주의자이자 ‘일벌레’라는 평가를 받는다. 요즘도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로 골프를 치지 않는다. 대신 스키 등 다이내믹한 스포츠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냉혹한 스타일도 아니다. 직원들은 잔정이 많은 CEO라고 얘기한다. 한 임원의 설명이다.“부장 시절에 기획안을 제출했다가 담 회장으로부터 ‘이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데 그 다음날 회장으로부터 휴대전화가 왔습니다.‘다시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다’는 내용이었죠. 직원의 기를 꺾지 않으려는 회장의 배려였지요.” 담 회장은 인재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90년대 초반에는 20대 중심의 신규 사업팀을 구성한 뒤 수십억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여러 분야의 사업에 진출해 쓴맛을 많이 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들은 훗날 오리온의 케이블 TV사업과 극장·외식사업 등으로 진출해 현재의 그룹 규모를 갖추는데 일조했다. 담 회장은 위기를 기회로 잘 엮는다. 국내 제과사들이 90년대 안방시장에 안주하며 저성장의 어려움을 겪을 당시, 해외시장을 개척하며 오리온의 고성장을 주도했다.2003년엔 남들이 모두 망했다고 평한 체육복표 사업체 스포츠토토를 인수해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바꿔 놓고 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화물연대 파업 결의] 정부 입장 단호…합의 쉽지않을듯

    화물연대와 덤프연대, 레미콘연대 등 운송사업자들의 동반 파업결정은 유가급등으로 인한 비용부담 증가와 과당경쟁으로 생존위협을 받게 되자, 협상방법을 문제삼아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정부로서는 이미 2003년 화물연대 파업 때 섣불리 요구를 들어줬다가 낭패를 봤던 경험이 있어 불합리한 주장에 대해서는 분명히 선을 긋겠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쟁점사안별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화물연대 핵심 요구사항은 ▲면세유 지급 ▲노동기본권 인정 ▲표준요율제 도입 등으로 압축된다. 이들은 2003년 파업 이후 정부가 유가보조금을 지급해 왔지만 이후 유가급등으로 늘어나는 비용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특정사업자에게만 면세유를 지급할 경우 다른 업종과의 형평성 문제, 세수체계 혼란 등 부작용을 우려, 난색을 표하고 있다. 노동기본권과 표준요율제 도입 역시 마찬가지다. 화물연대는 스스로를 노동자로 분류, 산재보험·단체행동권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운송사업자가 개별 차주로서 사업자 성격이 강해 시장경제 논리상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덤프연대 13일부터 파업에 돌입한 덤프연대는 ▲유가보조금 지급 ▲수급 불균형 해소 ▲과적단속 개선 등이 핵심 요구사항이다. 덤프연대도 유가보조금을 달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는 덤프차량이 건설기계로 공사원가에 반영됐기 때문에 대상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주장이다. 또한 신규진입 억제를 통한 생존권 보호요청에 대해서는 건설기계의 수급 조절은 시장경제 논리에 따라 이뤄지는 상황으로 규제가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덤프연대측은 과적단속은 도로법 개정을 통해 ‘임차인 처벌’과 함께 원도급자, 하도급자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강화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 부분은 타당성이 있다고 여겨 정부에서는 법률 개정과정에서 보완키로 했다. ●레미콘 연대 20일 단계적 파업의사를 밝힌 레미콘연대는 ▲유가보조금 지급 ▲현장대기시간 단축 ▲휴일보장 등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덤프연대에 적용했던 논리를 들어 수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현장대기시간 단축과 휴일보장은 원청업자, 하도급업자와의 협상을 통해 해결하거나 사업자 스스로 결정할 내용이어서 협상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게 정부측 입장이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은행들, 소호대출 선점 경쟁

    은행들, 소호대출 선점 경쟁

    “은행 이미지만을 위해 영세자영업자들을 돕는다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마이크로 크레디트(무담보 소액대출) 사업을 하는 또다른 목적은 소호 대출의 모델을 찾기 위함입니다.” 조흥은행 최동수 행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은행권에서 유일하게 영세자영업자를 상대로 마이크로 크레디트 운동을 벌이는 속내를 이렇게 털어 놨다. 당장은 ‘돈 안되는’ 자선사업처럼 보일지 몰라도 성과가 쌓이면 소호(중소자영업자) 대출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중은행들의 ‘소호시장’ 선점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떼일 염려가 없고, 다달이 높은 이자 수익을 올릴 수 있었던 주택담보대출이 꽁꽁 얼어 붙으면서 소호대출이 대안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행권의 소호대출은 ‘좌충우돌’하는 형국이다. 저마다 시장 선점을 내걸고 있지만 대출 실적은 지난해에 비해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소호 전용 신용평가시스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기계적인 잣대에 의한 평가로 자칫 우량 업체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아직은 좌충우돌 소호대출은 개인대출과 기업대출의 중간 형태로 대부분의 시중은행들은 자영업자들에게 적용할 신용평가 기법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은행은 개인사업자만을 소호로 보고 있고, 어떤 은행은 소규모 법인까지 소호로 분류하는 등 기준조차 모호하다. 외환은행처럼 소호대출 상품을 취급하지 않는 예도 있다. 더욱이 중소자영업자들은 대부분 경기에 민감한 업종에 종사하기 때문에 ‘옥석’을 가리기가 힘들고, 잦은 업종 변경과 휴·폐업으로 연체 관리도 까다롭다. 재무제표를 갖춘 사업자가 드물 뿐만 아니라 재무제표가 업체의 현금 흐름을 정확히 반영하지도 못한다. 은행들의 실적을 보더라도 ‘소호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다. 국민은행의 올 8월 말 현재 개인사업자 대출잔액은 14조 4823억원으로 지난해 8월 말보다 1조 9217억원 줄었다. 우리은행도 같은 기간에 2095억원이 감소했다. 소호대출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부실이 예상되는 대출을 대폭 줄이는 이중적인 전략 때문으로 풀이된다. ●안개속 다중충돌 소호대출 시장이 안개속에 있지만 은행들의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해 4월 은행권에서 처음으로 소호 전용 신용평가모델을 개발한 국민은행은 올 하반기에 이 평가 기법을 대대적으로 업그레이드할 방침이다. 특히 업무협약을 체결한 8500여개의 프랜차이 가맹점을 중심으로 소호대출 마케팅에 전력투구한다는 계획이다. 우리은행은 지난 14일 종전의 개별심사 방식으로 대출 여부를 결정하던 방식과 달리 사전에 대출대상 및 담보조건 등을 정해 일정 자격을 충족할 경우 영업점에서 업체당 2억원까지 지원할 수 있도록 규격화된 소호상품을 내놓았다. 신한은행도 개인 신용대출처럼 신청자의 연소득 등 기본 조건을 입력하면 대출규모 등이 자동으로 나오는 ‘시스템대출’로 가기 위해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하나은행은 300만개에 이르는 BC카드 가맹점을 대상으로 지역 및 업종별 매출액을 분석, 시장을 진단한 뒤 각 사업주별 신용을 등급화하는 시스템을 올 하반기에 구축할 계획이다. ●기계적인 대출심사가 ‘독’이 될 수도 은행들이 소호대출 강화를 위해 전문적인 평가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지만 기계적으로 계량화할 수 없는 소호 사업의 특성 때문에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다. 시중은행 소호대출 담당자는 “오랫동안 거래를 해온 담당 직원이 머릿속으로 예상한 신용등급과 시스템을 통해 나오는 등급이 차이가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제대로 된 재무제표가 없더라도 꽤 우량한 소호 기업이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개인사업자의 입출금 통장거래 규모는 평균 700만원으로 개인의 통장거래 규모보다 7배나 크다.”면서 “내년부터 시작되는 퇴직연금 공략을 위해서라도 소호시장 확보가 시급하지만 아직은 신용평가 시스템이 우량 사업자를 골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우후죽순 찜질방 ‘안전 사각지대’

    웰빙 바람을 타고 최근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찜질방이 안전사고 사각지대로 전락, 대책 마련과 함께 관련 법규 정비 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2일 강원도에 따르면 찜질방은 자유업종으로 분류돼 관할 소방서에 ‘소방방화시설 등 완비증명서’만 제출하면 영업이 가능하다. 더구나 별도의 규제장치가 없는 데다 소방당국에서도 소방방화 시설에 대한 점검만 이뤄지고 있어 사실상 안전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4일 홍천군의 모 숯가마 찜질방에서 문모(49·서울 서초구)씨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해 충격을 주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 문씨의 혈중 일산화탄소 헤모글로빈 농도가 80%로 밝혀졌다. 국과수는 밀폐된 공간에서 혈중 일산화탄소 헤모글로빈 농도가 50%인 상태로 10∼30분 있을 경우 의식을 잃게 돼 문씨의 사망원인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찜질방들이 안전사고에 노출된 채 곳곳에서 성업 중이지만 이에 대한 관리규정이나 대책은 전무하다. 이에 따라 정부가 지난 7월 찜질방을 목욕장업으로 분류, 시설기준이나 영업시간 등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공중위생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해 오는 10월부터 시행 예정이지만 효과적인 관리가 될지는 미지수다. 한편 강원도에는 지난해 말 현재 춘천 10곳과 원주 18곳 등 모두 90곳의 찜질방이 성업 중에 있으며 지난해 11∼12월에 걸친 소방검사 결과 이중 39곳이 소방불량 판정을 받아 시정명령 조치가 내려졌다.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신세계·롯데 ‘명동 혈투’

    신세계·롯데 ‘명동 혈투’

    ‘우리나라 쇼핑1번가인 서울 명동상권에 빅뱅(대폭발)이 일어난다.’ 롯데백화점 본점과 해외 유명브랜드관인 에비뉴엘, 젊은이의 쇼핑명소인 영플라자로 형성한 ‘롯데타운’에 신세계백화점이 본점 신관건물을 재개발해 오는 8월10일 새로 문을 열어 한판 승부를 예고하고 있다. 롯데에는 그동안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던 명동상권에 치밀한 영업전략으로 무장한 신세계가 철저한 준비를 거쳐 도전하는 상황이어서 쇼핑1번지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전망이다. 물론 신세계가 업계 선두주자인 롯데에 ‘위풍당당하게’ 도전장을 냈으나 여전히 조심스러운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본점 신관건물을 오픈하더라도 외형적인 면에서 아직도 열세를 면치 못하는 까닭이다. 신세계 본점 신관은 본관 뒤편의 3500여평에 매장면적 1만 4000평 규모로 오픈한다. 롯데타운은 본점(1만 6800평)과 에비뉴엘(5200평), 영플라자(3000평)로 구성돼 있다. 롯데 본점만으로도 신세계 본점 신관과 오는 8월 신관 오픈과 동시에 리뉴얼 공사에 들어가 새로 문을 열 본점의 ‘클래식관’을 포함한 것과 비슷한 규모이다. 신세계로서는 외형 규모만으로 경쟁을 벌이기에는 아직도 한계가 있는 셈이다. ●신세계 신관건물 재개발 8월10일 오픈 신세계는 이에 따라 영업 면적이라는 ‘하드웨어’보다 매장내 상품기획(MD) 이라는 ‘소프트웨어’의 차별화에 더욱 전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이를 위해 ▲루이뷔통·프라다 등 해외 유명브랜드를 비롯해 ▲랑콤·시슬리·샤넬 등의 화장품 브랜드,▲애티튜드·보티첼리·타임 등 여성브랜드,▲갤럭시·빨질레리 등 남성정장은 물론 의류·스포츠·생활·가전·가구·잡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면서 최고 브랜드를 입점시켜 매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다는 구상이다. 신세계 신관건물은 지하 7층부터 지상 19층으로 지어졌으며, 지하 1층부터 지상 11층까지 백화점 매장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특히 가장 많은 상품구색을 갖춘 와인셀러, 치즈 전문매장 등 폭넓고 깊이 있는 고품격 식품을 선보이는 한편, 도심 백화점으로는 처음으로 문화센터를 설치해 ‘쇼핑과 문화’를 원스톱 서비스함으로써 백화점의 이미지를 극대화한다는 계획이다. 석강 신세계 백화점부문 대표는 “오는 8월 꿈의 백화점인 신세계가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여 더욱 차별화된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강북 상권의 새로운 쇼핑문화를 이끌어가겠다.”고 밝혔다. 롯데의 수성 의지도 확고하다. 할인점 부문에서 열세를 보이는 까닭에 ‘밀리면 끝장’이라는 비장감마저 묻어나온다. 우선 강점을 보이는 ‘하드웨어’부문에 더많은 투자를 해 격차를 벌린다는 구상이다. 본점의 경우 지난해 6월 이후 1000억원을 들여 지하 1층 식품매장과 지상 11∼12층 식당가를 대폭 확장하는 등 대규모 리뉴얼 공사를 진행했다. ‘소프트웨어’부문도 보강했다. 의류부터 패션잡화까지 다양한 아이템 상품을 선보여 선택의 폭을 넓히는 메가숍을 강화했다. 여성캐주얼·남성·잡화까지 다양한 상품군 매장까지 확대돼 모두 31개의 브랜드가 메가숍을 운영하고 있다. 이인원 롯데백화점 사장은 “이번 본점 리뉴얼 과정을 통해 젊은층이 좋아하는 개성 있는 전문숍과 멀티숍(편집매장)이 많이 늘어난 만큼 앞으로는 상품과 서비스 질 향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강화로 승부 무엇보다 두 백화점은 신세계 오픈 1주가 승부를 크게 좌우한다고 보고 이 기간 동안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끌어들이기 위해 화려하고 깜짝 놀랄 만한 여러 가지 이벤트를 진행하는 등 다양한 마케팅전략을 동원할 방침이다. 이 때문에 이벤트에 대한 내용을 ‘톱 시크리트(1급 비밀)’로 분류,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고 있다. 롯데측은 에비뉴엘내 샤넬 매장의 외벽공사가 마감되고 카르티에 매장이 오픈하면 진정한 ‘롯데타운’이 완성된다고 보고, 이때를 중심으로 다양한 기획 이벤트를 벌여 소비자들을 유혹할 예정이다. 롯데 단독 입점 브랜드 및 가을 신상품을 파격가에 제공하는 갖가지 이벤트를 벌이는 것 등이 대표적인 행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공략 대상도 VIP·전계층 차별화 롯데는 본점이 신세계의 주요 공략대상인 만큼 본점 VIP 마케팅을 한층 강화하는 한편, 웰빙 열풍으로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아웃도어 매장을 대폭 확장하는 등 차별화했다. 황범석 롯데 상품총괄팀장은 “신세계의 오픈으로 본점이 주요 타깃이 되는 만큼 본점의 기존 VIP 소비자에게 새로운 서비스를 추가하거나 롯데 단독 입점 브랜드에 대해 대규모 할인·기획 행사를 벌일 방침”이라고 전했다. 신세계측의 도전도 만만찮다. 어떤 일정한 계층을 겨냥한 선택과 집중으로 공략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층부터 경제력이 있는 중장년층까지 서울의 모든 계층을 망라하는 와이드한 영업전략을 구사한다는 계획이다. 젊은층을 위해서는 캐주얼·액세서리 등에 초점을 맞추고, 중장년층에 대해서는 의류와 웰빙 상품에 더 많이 신경을 쓴다는 점을 감안, 보다 과감한 MD전략을 펼친다는 복안이다. 김예철 신세계 마케팅팀 부장은 “강북 지역의 전 계층을 백화점의 유치 목표로 삼되, 그중 경제력이 안정적인 중장년층 소비자들에게는 더욱 신경을 쓰는 마케팅 전략을 구사할 예정”이라면서 “예컨대 식품관의 경우 델리(즉석조리식품)존을 대폭 보강하고, 웰빙 관련 MD도 풍부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제2의 ‘불꽃 승부처’ 해외 유명브랜드관 롯데와 신세계의 또 다른 불꽃튀는 승부처로 꼽히고 있는 곳은 해외 유명브랜드(명품)관이다. 백화점은 무엇보다 ‘이미지’를 먹고사는 업종인 만큼 ‘세계 일류의 브랜드’를 얼마나 많이 다양하게 구색을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승부가 판가름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롯데가 옛 미도파 건물을 1200억원에 사들인 뒤 리모델링을 하면서 외관 및 내부 공사비로 600억원을 더 투자하는 등 모두 1800억원을 쏟아부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신세계가 본점 신관건물을 새로 지어 8월10일 문을 열고, 신관건물의 오픈과 함께 곧바로 본점 리모델링에 들어가 해외 유명브랜드관인 ‘클래식관’을 내년 상반기중 오픈한다는 사실을 롯데측은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얘기다. 모두 5200평 규모인 롯데의 해외 유명브랜드관인 에비뉴엘은 순수 영업면적이 3000평 규모로 루이뷔통·샤넬·구치·페라가모·버버리 등 모두 96개 해외 유명브랜드가 입점돼 있다. 이 덕분에 롯데는 명품관인 에비뉴엘을 비롯해, 본점 17개 브랜드 등 모두 113개의 해외 유명브랜드를 선보여 국내에서 가장 많은 규모의 해외 유명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장성윤 롯데 해외 명품 담당 이사는 “에비뉴엘은 호텔 같은 문화공간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면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다양한 소비자 선호도를 구체적으로 반영한 ‘맞춤 서비스’를 펼쳐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신세계 ‘클래식관’은 아직까지도 베일에 싸여 있다. 지금까지로는 신관건물의 오픈과 동시에 본점의 리모델링에 착수, 내년 상반기에 오픈한다는 큰 구상만이 잡혀 있는 상황이다. 지금까지는 토털패션류인 루이뷔통·샤넬, 보석류에는 카르티에·불가리, 패션잡화류인 구치·페라가모 등을 포함해 모두 70∼80개의 해외 유명브랜드가 들어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이다. 장혜진 신세계백화점 과장은 ”아직까지 본점 리뉴얼에 착수하지도 않은 만큼, 클래식관에 대해 결정된 사항은 별로 없다.”며 “내년 초에 가서야 대충 윤곽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강남 거리 단정해진다

    서울 강남구의 간판 등 옥외광고물 디자인이 5개 형태별로 통일된다. 또 타 자치단체에서도 동일한 규격의 옥외광고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 도시의 표정을 단정하게 바꾸는 데 앞장서고 있다. 서울 강남구(구청장 권문용)는 27일 옥외광고물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국내 최초로 ‘사인디자인시스템’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사인디자인시스템’이란 국제공통의 그림문자인 픽토그램과 문자를 합한 이디어그램을 사용, 세련된 디자인과 건물별 컬러 코디네이션을 체계화·통일화한 것을 말한다. 이를 통해 광고물 제작자나 광고주는 보다 세련되고 편리한 광고물을 제작, 부착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병원이나 약국, 교육관련 분야 등 11개 업종에 227개의 이디어그램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이들 업종의 옥외광고물은 가로, 세로, 돌출, 지주형 등 5가지 형태별로 502개의 다양한 디자인을 갖춰 입맛대로, 분위기에 맞는 다양한 광고물을 선택할 수 있다. 또 건물이나 지역 및 업종 분위기에 맞춰 회색, 빨강, 노랑, 녹색, 파랑, 보라 등 6가지 색을 5단계로 분류, 모두 30가지 컬러의 옥외광고물 90여종을 예시해 놓았다. 다시말해 모든 가능한 옥외광고물의 크기, 모양, 색상 등을 업종에 따라 규격화, 표준화한 셈이다. 구는 앞으로 신규로 옥외간판을 신청하는 주민들에게 이 시스템 활용을 적극 권장해 도심 분위기를 더욱 세련되게 바꾸어 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기존의 간판 등 옥외광고물에 대해서는 파손이나 업종변경 등 교체가 불가피할 경우만 이를 권고할 방침이다. 구는 또 ‘사인디자인시스템(www.sign.gangnam.go.kr)’을 구청 홈페이지에 구축(현재는 www.cunderspace.co.kr), 지역주민뿐 아니라 전국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中小벤처 ‘맞춤형 정책’ 활용하라

    中小벤처 ‘맞춤형 정책’ 활용하라

    IT벤처기업을 운영하던 이모(41) 사장은 최근 주주들에게 회사 문을 닫겠다고 통보했다. 몇년 전부터 개발한 기술(매직메일)이 무료 메일시장 때문에 무용지물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이 사장이 개발한 기술은 메일 내용의 비밀보장 등으로 기술로만 보면 포털업계 등에서 깊은 관심을 가질 만했다. 하지만 미처 시장성을 따지지 못했다. 그는 “무조건 만들기만 하면 돈이 될 것이란 생각뿐 시장 예측은 신경쓰지 않았다.”고 후회했다. 이 사장처럼 IT중소벤처기업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갖가지 정책을 내놓았다. 특히 ‘묻지마 벤처 지원’을 자제하고, 현장 맞춤형 정책을 펴기로 했다. ●현장 자료, 부지런히 활용하라 일방적으로 지원하던 방식을 버리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뒤 수요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지원해주는 정책이다. 형태근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정책국장은 “그동안 업종마다 애로점이 다른데도 무조건 지원만 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포괄적 정책을 펴 효과가 미흡했다.”면서 “데이터를 먼저 구축하고 업종과 기업의 개별적 환경을 고려해 지원하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바꿨다.”고 말했다. 나승식 정통부 IT중소벤처기업종합대책추진반장은 “중소벤처기업은 자사의 기술 수준과 관련한 시장규모 등을 제대로 몰라 사업 모델이 부실한 경우가 많고, 따라서 변화하는 시장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한발 늦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정통부는 IT중소벤처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IT 스머프(SMERP)’를 갖췄다. 과(課)단위의 IT중소벤처기업종합대책추진반을 만들었다. 업종별 전문협의회가 열리고,IT중소벤처기업 현장 지원단도 가동했다. ●전문협의회에서 정보를 준다 분야별 전문협의회를 두고 정부와 기업, 관련 협회가 분기별로 1∼2번 정기모임을 갖는다. 2만 3000여개 기업을 54개 업종으로 분류, 전문협의회를 구성했다. 정책 건의는 정통부의 중소기업정책과도 연계된다. 정통부는 관련 홈페이지(www.itsmerp.or.kr)를 구축, 전문협의회의 논의, 후속조치, 국내외 산업·기술 동향 등을 알려준다. 회원제로 운영돼 이곳에 가입하면 사업비 절감 등 여러면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지난 4월에서는 IT기업들의 일반현황, 재무, 생산, 수출정보 등을 온라인으로 조사한 IT산업 및 기업정보 시스템을 구축했다. 전문협의회는 단순 정책뿐 아니라 벤처캐피털 등 금융권과도 연결시켜 준다. 벤처캐피털의 경우 8900억원 정도의 자금을 조성해 놓았고, 현재 3000억원 정도를 운용 중이다. 정통부,IT벤처기업연합회, 전경련 홈페이지에서 상세한 가이드를 받을 수 있다. 기업 IR도 해준다. ●현장에서 도움 받아라 지난 3월부터 IT중소벤처기업 현장지원단을 운영하고 있다. 정통부, 전문 컨설턴트가 현장을 방문해 자금, 마케팅, 상품전략, 지적재산권 등 경영에 대한 컨설팅을 지원한다. 원하는 기업은 정통부나 IT벤처기업연합회(www.koiva.or.kr)로 신청하면 된다. 이와 함께 전문인력이 부족한 100만 소기업(자영업자)을 대상으로 회계관리, 급여관리 등의 프로그램을 빌려주는 사업도 있다.KT의 비즈메카 등이 그것이며 5개 업체가 제공하고 있다. 기술담보 융자 보증비율을 전체의 60%까지 끌어올려 기술력 있는 기업에 담보없이 수출신용장 등에 근거한 금융지원도 해주고 있다. 기술보증기금에서 보증서를 끊어 신청하면 된다. 정통부, 정보통신연구진흥원 홈페이지를 이용하면 자격, 방법 등을 알 수 있다. 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 은행들, 블루오션전략 ‘올인’

    은행들, 블루오션전략 ‘올인’

    ‘블루오션(Blue Ocean)을 찾아라.’ 은행들의 출혈경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리딩뱅크’를 자처하는 대형은행들이 저마다 특화전략 수립에 고심하고 있다. 비슷한 금융상품을 내놓고 무차별적인 고객 확보 경쟁을 벌이다가는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되면서 차별화된 ‘블루오션’을 찾아 나섰다. ‘레드오션’이 한정된 곳에서 비슷한 먹잇감을 놓고 피튀기는 싸움을 벌이는 전장이라면, 블루오션은 과거에 없던 발상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독주하는 공간이다. ●발상의 전환 전국민의 절반인 2500만명의 고객을 보유한 국민은행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가계대출 점유율이 32.7%로 2위권 은행들과 배 이상의 격차를 유지했다. 그러나 소매금융만으로는 ‘선두 수성’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국민은행은 요즘 기업을 상대로 한 ‘트랜젝션 뱅킹’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트랜젝션 뱅킹은 전통적인 예대마진 수익 구조에서 탈피, 기업자금을 종합관리해주며 수수료 수익을 얻는 것을 뜻한다.2∼3년 안에 수수료 수입 비중을 전체 영업이익의 40%대까지 끌어올릴 계획인 국민은행은 매출 500억원 이상의 중견 대기업에 사이버지점을 설치, 계좌관리와 자금운용 등을 지원하며 새 수익 창출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은행 역시 ‘발상의 전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황영기 행장 등 최고위층이 최근 차별화 전략으로 내세운 것은 여신관리 시스템 강화다. 우리은행은 우선 세계적으로 권위가 있는 미국 금융회사 전문 연수기관인 RMA의 첨단 여신심사기법을 도입했다. 은행내 여신전문가 20명을 선발해 RMA의 심사기법을 전수받도록 했다. 전국 지점장 580여명을 대상으로 7차에 걸친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후 ‘여신사관학교’를 운영해 전 영업점의 여신담당자를 전문가로 키울 계획이다. ●새 시장을 선점하라 엄격한 리스크(위험) 관리로 정평이 난 하나은행도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고 있다. 하나은행은 최근 여신 제한 업종으로 분류했던 숙박·음식·목욕 등 소호(SOHO·자영업자) 대출을 재개했다. 도소매 및 부동산 업종에 부과했던 0.5∼1.5% 수준의 대출 가산금리를 0.5%포인트씩 깎아 주기도 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모든 은행들이 소호 대출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리스크 관리가 제대로 돼 있지 않으면 섣불리 대출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면서 “그동안 축적된 리스크 관리를 바탕으로 소호쪽에서 확실한 우위를 잡겠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의 최대 화두는 ‘백화점 은행’이다. 신한은행은 한 점포에서 펀드 방카슈랑스 카드 증권 등 신한지주 자회사들이 운용하는 모든 상품에 대해 상담하고 구매할 수 있는 ‘BIB(브랜치 인 브랜치)’지점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 은행은 지주회사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상품간 교차판매를 위해 은행중에서는 유일하게 시너지영업추진본부를 운영하고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우리가 백화점 은행에 ‘올인’할 수 있는 것은 직원들의 은행에 대한 높은 충성도와 일사분란한 조직문화가 튼튼하기 때문”이라면서 “갈수록 치열해지는 은행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차별화만이 살 길”이라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큐! 아름다운 노년] ①일하는 실버 영원한 젊음

    [큐! 아름다운 노년] ①일하는 실버 영원한 젊음

    지난 3월15일 오전 서울 노원구 불암산 초입. 숲생태해설사 정문환(66)씨 등 ‘종로시니어클럽’ 회원들의 발걸음은 젊은이와 다름 없었다. 대부분 환갑을 넘겼지만 얼굴에는 생기가 잔뜩 묻어났고, 잎이 떨어진 나무를 바라보는 두눈에도 생기가 넘쳐났다.“일하면 젊어져요.” 산을 내려오던 중 한 여성 회원이 던진 말이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정예 멤버 대부분 문인 숲생태해설사들의 모임인 종로시니어클럽은 모두 59명의 회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날 숲생태학습에는 회장인 정씨를 비롯해 이광희(66), 이일선(62·여), 이윤옥(69·여), 국승윤(57·여), 이춘자(60·여), 정찬영(65·여)씨 등 모두 7명이 참여했다. 꼬박꼬박 얼굴을 비추는 이들이 클럽의 ‘정예 멤버’라고 한다. 멤버 대부분은 문인이다.33년간 경찰생활을 하다 1994년 정년퇴임한 정 회장은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이다. 경기도 이천시청에서 30년간 공직자 생활을 하다 퇴직한 이광희씨는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돌아본 인생’이란 수필집도 냈다. 은행원이었던 이윤옥씨와 미8군에서 30년간 근무한 정찬영(시인)씨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이다. 문인의 마음과 눈으로 나무와 꽃을 바라보고 이를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숲생태해설사로 나선 것은 2001년 6월. 노원구 재현중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불암산에서 처음 실시했다. 숲생태해설사 활동의 효시(嚆矢)였던 셈이다. 정 회장은 “퇴직하고 여러 일을 생각하다가 혜화동 성공회 지성희 신부가 숲생태해설사를 모집한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발걸음을 옮긴 게 이 일을 하게 된 계기였다.”고 말했다. ●일과 함께 건강도 좋아져 회원들은 건강과 삶의 활력을 되찾은 게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털어놨다. 이춘자씨는 “혈압이 높아 약을 먹어도 떨어지지 않았는데 숲생태해설사로 일하면서 혈색도 좋아지고 혈압도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자랑했다. 회원들은 너도나도 젊어졌다고 한목소리다. 이일선씨는 “무릎이 아팠는데 이제는 말끔하게 가셨다.”면서 “좋은 공기 마시고 학생들과 대화할 수 있는 게 즐거움”이라고 미소를 지었다. 일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도 대단하다. 학생들에게 우리의 소중한 자연을 가르친다는 것이 기쁨 중의 기쁨이라고 했다. 국씨는 “자연과 대화할 수 있어 행복하고 생명이 귀중하다는 것을 느낀다.”면서 “작품의 소재로도 많이 활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숲생태해설은 일요일을 제외하고 평일과 토요일 어느날이든 학교에서 일정을 잡아주면 나간다. 오전 10시부터 낮 12시까지 2시간동안 학습이 이뤄진다. 처음에는 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했지만 지금은 초등학교로까지 확대될 만큼 학교에서도 인기있는 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 100회 이상 숲생태해설을 했다. 불암산, 수락산, 북한산, 안산 등 서울시내 산뿐만 아니라 경기도 양평의 풍류산, 축령산 등도 다녀왔다. 현재는 전국적으로 네트워크화돼 전국 각지에서 실시되고 있다. 4월부터 11월까지가 본격적인 시즌이다. 대신 비시즌에는 매주 한 차례 연구모임을 한다. 숲과 풀, 나무 등에 대한 심층연구가 이때 이루어진다. 또 광릉수목원 등에서 펼쳐지는 수목연구도 이들이 거쳐야 할 필수 코스다. ●“보수 좀더 많았으면 좋겠어” 회원들은 너나할 것 없이 노력 만큼 소득이 보장되기를 기대했다. 즐겁게 산에서 내려오던 이들도 ‘얼마를 버느냐.’라는 질문을 받자 표정이 이내 굳어졌다. 정 회장은 “초창기에는 숲생태해설 1회에 4만원을 받았는데 지금은 절반 수준인 2만원에 불과하다.”면서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줬으면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회원들은 우리가 무슨 100만원,200만원을 바라겠느냐면서도 적정한 수입을 요구했다. 월 30만∼40만원을 적정선으로 제시했다. 국씨는 “학생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지 돈 보고는 못 나온다.”고 말했다. 숲생태해설사에 대한 예산은 국비와 시비, 구비 등으로 짜여진다. 그러다 보니 서울시내 일부 구청(종로, 도봉, 서대문, 관악, 강남)은 관내 노인들만을 대상으로 숲생태해설사를 선정, 운영한다. 정 회장은 “숲생태해설사를 하나의 노인직업으로 제도화하고 이에 걸맞은 예산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 “나도 60대” 최선길 도봉구청장 “과부 사정은 과부가 아는 것 아닙니까.” 노인 일자리 창출에 열성을 보이고 있는 이유를 묻자 최선길(66) 서울 도봉구청장은 이렇게 말하며 크게 웃었다. 그는 그러면서도 “단순히 생물학적 나이가 많아 노인 일자리를 만드는 데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업만 바라볼 수 없고 이제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최 구청장은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현 상황을 볼 때 노인문제, 특히 일자리 문제는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면서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될 단계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얼마있으면 고령사회로 접어드는 만큼 노인의 노동력을 활용, 총체적 생산성을 높일 때 국가적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주장도 폈다. 그의 이런 마인드는 도봉구를 노인 일자리 만들기 모델 자치구로 자리매김시켰다. 지난해에는 보건복지부로부터 전국 최우수 노인인력지원기관으로 선정돼 3000만원의 인센티브를 받는 기쁨도 누렸다. 도봉구의 노인일자리 사업은 다양하다. 지난해부터 운영되고 있는 공동세탁장은 노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쌍문1동 경로당 등 3곳에 마련된 공동세탁장에는 모두 45명의 노인들이 세탁일을 하고 있다. 구는 대형세탁기를 지원했고, 노인들은 식당과 여관 등지에서 나오는 수건과 이불 등을 세탁해 주고 월 10만 정도의 용돈을 번다. 최 구청장은 “경로당은 더 이상 고스톱 치는 곳이 아니다.”며 일하는 경로당으로의 개편을 강조했다. 지금까지 65세 이상 노인 68명을 선발해 어린이공원과 마을마당 47곳의 관리를 맡겼다. 집 가까운 곳의 공원에 출근해 시설물 상태를 점검한 뒤 구청에 보고하고 청소를 하는 일이다. 구에서는 이들에게 10만∼16만원의 급료를 지급한다. 또 지난달 18일에는 노인일자리사업 발대식을 갖고 지역환경지킴이로 일한 87명 등 모두 157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최 구청장은 “지자체는 이제 사회적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면서 “노인들에게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과 낚싯대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65세 이상 취업 통계자료도 없어 현재 65세 이상 노인들에 대한 취업률과 보수 등 공식적인 자료는 정부조차 가지고 있지 않을 정도로 취약하다. 경제활동인구에서도 제외돼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노인지원과 유병희 사무관은 3일 “65세에서 74세까지를 취업가능자로 분류하고 있다.”면서 “300여만명 가운데 30% 정도가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일부 연구조사에 나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하는 노인 대부분은 취업이나 개인사업 등 사회적 일자리 차원이 아니라 사실상 평생직업이나 다름없는 농·임·어업에 종사하고 있는 형편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3만 5127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대부분 국비·지방비를 투입한 공익형 일자리다. 환경지킴이, 숲·문화재 해설, 공원관리인 등이다. 올해도 국비와 지방비 425억원을 투입해 3만 5000개의 노인 일자리를 만들 계획이다. 유 사무관은 “65∼74세 노인 중 일자리를 달라고 요구하거나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는 숫자는 30만명 정도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한 일자리 정책이나 사업은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고령자(55∼64세)에 대한 정책은 관심분야다. 조만간 ‘고령자종합대책’을 세워 발표할 계획이다. 2003년 현재 55∼64세 고용률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인 50.8%를 약간 웃도는 57.8%다. 하지만 미국, 일본, 스웨덴 등과 비교하면 낮은 수치다. 고령 취업자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훨씬 많다. 업종별로는 농림어업, 광업 및 부동산, 임대업 등에 취업 비중이 높은 편이다. 전문성을 요하는 통신업, 금융·보험업 등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①-창업주 故정주영회장 일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①-창업주 故정주영회장 일가

    보는 이마다 다르겠지만 현대를 삼성보다 앞세우는 사람들은 현대의 창업 정신을 강조한다. 현대는 남이 일궈놓은 기업을 인수하기보다는 밑바닥에서부터 하나하나 주춧돌을 올렸다. 건설이 그랬고, 자동차가 그랬으며, 중공업이 그랬다.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회장은 이를 평생의 긍지요, 자랑으로 여겼다.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 시절,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끌려가서도 “사정상 어쩔 수 없었던 인천제철만 제외하고는 어느 하나 내 손으로 말뚝을 박고 길을 닦아 시작하지 않은 공장이 없다.”며 기업 강제 통·폐합에 맞섰을 정도였다. 1947년 5월25일 서울 중구 초동의 허름한 자동차 수리공장 한 귀퉁이에 ‘현대토건사’라는 간판을 내건 지 60여년. 삼성보다 10년 가까이 늦은 출발이었지만 현대는 이내 1위 기업으로 우뚝 섰고,‘경영권 다툼’이 일어났던 2000년까지 그 지위는 차돌만큼이나 단단했다. 이때 현대그룹의 자산규모가 87조여원. 계열사 수만 40개가 넘었다. 비록 그룹이 쪼개지면서 외형상의 규모가 작아지고 재계 서열은 떨어졌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전화위복’이라고 입을 모은다. 자동차(현대차그룹), 유통(현대백화점), 해운·제조(현대그룹), 조선(현대중공업), 금융(현대해상·현대기업금융) 등 각자 전문그룹의 길로 나서면서 경쟁력은 더 강화되고 동반 부실의 위험은 현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다른 그룹들이 이제서야 계열분리 등으로 홍역을 앓는 동안 현대의 대표주자들은 세계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 현대산업개발,KCC, 한라, 성우 등 창업주의 형제들이 이끄는 그룹들도 각자 독자영역을 굳혀가고 있다. 언뜻 봐도 느껴질 만큼 현대에 뿌리를 대고 있는 기업들은 유난히 굴뚝업종이 많다. 고용된 인원과 딸린 부품·협력업체가 많다는 얘기다. 국민경제 기여도로 따지면 현대가 여전히 1위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또 한 가지, 현대를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현대정신’이다. 현대에는 일단 해보자며 덤비는 정신, 밀어붙이는 힘이 있다. 때로는 비합리성을 낳기도 하지만 현대맨들은 이를 “맨바닥에서부터 기업을 일군 현대만의 저력”이라고 자부한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이를 “진정한 기업가(起業家) 정신”이라고 불렀다. 제각각 ‘마이 웨이’를 걷고 있는 오늘날의 현대가를 묶는 보이지 않는 끈이기도 하다. ●담(淡)한 혼맥… 후한 연애결혼 다른 재벌가에 비해 현대의 혼맥은 의외로 소박하다. 낭만을 즐겼던 고 정 회장이 자식들의 연애에도 너그러웠던 영향이 가장 크다.‘왕 회장’이라는 별칭으로 더 자주 불렸던 그 자신, 강원도 통천의 평범한 고향처녀(변중석)와 결혼해 평생을 함께했다. 슬하에 9남매(8남1녀)를 두고 동생이 일곱(한명은 어려서 사망)이나 됐지만 눈에 띄는 혼사는 손가락을 꼽는다. 직계가족 중에 굳이 꼽자면 다섯째아들 고 몽헌(MH)씨와 여섯째아들 몽준(MJ)씨를 들 수 있다. 몽헌씨는 신한해운 현영원 회장의 딸 정은씨와, 몽준씨는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막내딸 영명씨와 각각 결혼했다. 오랜 세월 재계를 주름잡았던 현대의 위상에 견줘 혼맥이 조촐한 데는 창업주의 성공과정과도 무관치 않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부두 막노동꾼을 거쳐 대기업 총수에 오른 그는 살아생전 “세상에 공짜란 없다.”며 담(淡)한 마음을 갖자고 입버릇처럼 강조하곤 했다. 권력이나 부(富)를 결코 싫어하지 않았지만 굳이 혼사줄까지 대가며 공짜를 탐할 이유 또한 없었던 것이다. 정략결혼의 흔적이 적은 대신에 유난히 많은 손(孫)과 맞닥뜨리는 게 현대라는 집안이다. 이런 현대가 대(代)를 건너뛰면서 LG, 롯데, 한진, 이건, 비비안 등 내로라하는 그룹들과 사돈을 맺은 점은 흥미롭다. 현대가의 2세들이 ‘몽(夢)’자 돌림이라면 3세들은 딸이 ‘이(伊)’, 아들은 ‘선(宣)’자 돌림을 쓴다.4세는 ‘진’자(딸),‘창’자(아들) 돌림이다. ■ 현대의 핵심축 아들들 ●장남 몽필… 쌍용가와 인연 큰아들 몽필씨는 나이 50도 안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국영 적자기업 인천제철을 인수해 정상화에 여념이 없던 1982년 4월 어느날,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고속도로에서 그가 탄 승용차가 트레일러를 들이받았다. 이 때가 마흔아홉살. 수도여대 출신의 부인 이양자씨와 두 딸 은희·유희씨는 망연자실했다. 몽필씨가 떠난 지 한달 뒤, 정주영 회장은 동서산업 공장장이던 이영복씨를 사장으로 파격 승진시켰다. 이씨는 몽필씨의 처남, 즉 이양자씨의 친동생. 졸지에 가장을 잃은 장남 가족에 대한 배려였다. 하지만 이양자씨마저 91년 위암으로 눈을 감고 말았다. 큰딸 은희씨는 최근 미국에서 귀국했다. 둘째딸 유희씨는 김석원 쌍용양회 명예회장의 장남 지용씨와 결혼해 두 아들(진석·진하)을 두었다. 지용씨는 현재 용평리조트 상무를 맡고 있다. ●2남 몽구… 글로벌 현대차그룹 리더 몽필씨의 죽음으로 사실상 집안의 장남 역할을 도맡아 한 이는 둘째아들 몽구(MK)씨였다. 유희씨가 결혼할 때 부모 역할을 대신 한 사람도 몽구씨 부부였다.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사장 시절,‘갤로퍼 신화’를 만들어낸 그는 기아차마저 인수해 지금의 현대·기아차 그룹을 이끌고 있다.2000년 자동차전문 그룹으로 출범한 지 몇 년도 안돼 그룹을 세계 6위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출범 당시 10개였던 계열사 수는 28개로 불어났다. 그룹의 올해 매출 목표액은 지난해보다 17% 늘어난 85조원.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의 ‘소비자 보고서(컨슈머 리포트)’는 최근 현대차의 뉴쏘나타를 세계에서 가장 결함이 적은 차로 선정했다. 갤로퍼 신화 때부터 MK가 강조해온 ‘품질 경영’의 힘이다. MK는 평범한 집안의 딸 이정화씨와 결혼해 3녀1남을 두었다. 큰딸 성이씨는 저명한 정형외과 의사이자 영훈의료재단을 설립한 고 선호영 박사의 아들 두훈씨와 결혼했다. 둘째딸 명이씨는 정경진 종로학원장의 아들 태영씨와, 셋째딸 윤이씨는 미국 MBA(경영학석사) 출신인 신성재씨와 결혼했다. 둘째사위와 셋째사위는 그룹 계열사인 현대카드·캐피탈 사장, 현대하이스코 사장을 각각 맡고 있다. 막내이자 외아들인 의선씨는 지난 11일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룹내 직함은 현대·기아차기획총괄본부 담당 사장으로 기아차의 기획, 재무, 수출, 연구·개발(R&D) 등 핵심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일찍 결혼해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부인은 정도원 강원산업 부회장의 큰딸 지선씨다. ●3남 몽근… 소리없이 유통명가 키워 셋째아들 몽근씨는 일찌감치 유통을 넘겨받아 현대백화점 그룹을 이끌고 있다.‘빅3’(MK·MH·MJ)에 가려 조명은 덜 받았지만, 묵묵히 외길을 걸으면서 소리없이 유통 명가로 키워낸 주인공이다. 현대백화점, 현대H&S(非 백화점 계열), 현대홈쇼핑 등 주력 계열사를 토대로 지난해 5조 5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문 최고경영자(CEO)들이 소신있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면서도 거의 매일같이 매장을 둘러봐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바로 위 형 몽구씨와는 고등학교(경복고)-대학교(한양대) 동문인 데다 선굵은 외모까지 비슷하다. 옛 현대그룹에서 고문을 지낸 우호식씨의 딸 경숙씨가 부인이다. 두 아들은 각각 부회장, 기획담당 이사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큰아들 지선씨는 고 황산덕 전 법무장관의 손녀인 서림씨와 결혼했다. 둘째아들 교선씨는 자동차부품 전문기업인 대원강업 허재철 부회장의 큰딸 승원씨와 지난해 말 깜짝 결혼식을 올렸다. 교선씨의 결혼식에는 큰아버지인 정몽구 회장을 비롯해 집안 어른들이 대거 참석해 모처럼 우애를 다지기도 했다. 현대가는 한때 딸만 남기고 떠난 몽필씨의 대를 잇기 위해 지선씨를 양자로 입양하는 방안을 의논했었다. 유교식 법도대로라면 바로 아래 동생인 몽구씨의 아들을 입양해야 했으나 의선씨가 외아들인 탓에 지선씨가 선택된 것.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실제 입적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주영 회장의 장례식때 의선씨가 ‘종손’ 자격으로 고인의 영정을 든 것은 이 때문이었다. ●외사위 희영… 천마산스키장 운영, 이건·비비안과 사돈 현대가는 자손이 많은데도 딸은 귀한 편이다. 외동딸 경희씨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재원. 그러나 바깥 활동은 없다. 대신 남편(정희영)이 선진종합㈜ 회장이다. 공교롭게 고 정주영 회장의 여동생 희영씨와 이름이 똑같다.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1965년 현대건설 공채로 입사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입사 동기다. 조선 수주에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 창업주의 눈에 들어 사위가 됐다. 정주영 회장은 딸 경희씨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자 희영씨를 도쿄법인 이사로 발령내 자연스러운 교제를 유도했다고 한다. 이후 희영씨는 조그만 해운회사(선진해운) 하나를 갖고 독립, 장인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천마산 스키장은 오롯이 그가 독립해 만든 회사다. 외아들 재윤씨가 선진종합㈜ 상무다. 두 딸은 각각 이건그룹과 비비안그룹으로 시집갔다. 큰딸 윤미씨의 남편이 이건창호 박승준 상무, 둘째딸 윤선씨의 남편이 비비안 남석우 부회장이다. ●4남 몽우… BNG스틸 통해 부활 넷째아들 몽우씨는 숙명여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미인’ 이행자씨와 연애결혼했다.40대에 현대알루미늄 회장을 맡은 그는 그러나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결국 1990년 4월 45세의 젊은 나이에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겨진 유족을 돌보는 일도 사실상의 장남 몽구씨의 몫이었다. 조카 셋을 모두 현대차그룹의 계열사인 BNG스틸(전 삼미특수강)에 입사시켰다. 큰조카, 즉 몽우씨의 장남인 일선씨는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최근 BNG스틸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일선씨에 이르러 비로소 현대는 내로라하는 재벌가와 사돈관계를 맺는다. 일선씨의 부인은 구자엽 희성전선 부회장의 딸 은희씨다. 구 부회장은 구태회 LG전선 명예회장의 아들이자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조카이다. 일선씨의 동생 문선씨는 김영무 김&장 법무법인 대표변호사의 딸 선희씨와 결혼했다. ●5남 몽헌… 못다 이룬 꿈, 현 회장이 힘찬 날갯짓 ‘비운의 황태자’ 몽헌씨는 1998년 그룹 공동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화려한 비상을 시작했다.1983년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를 설립해 4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으면서 아버지 정주영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끌어냈다.2000년에는 형들을 제치고 그룹 단독 회장에 추대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북 송금’ 사건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던 중,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2003년 8월4일 서울 계동사옥에서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부인 현정은씨가 경영에 뛰어들었다. 급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황망히 그룹을 물려받았지만 사업가 집안의 딸답게 배포와 합리적 리더십으로 1년 만에 그룹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는 현대상선, 올해 첫 흑자를 넘보고 있는 현대아산, 주가 1000시대의 수혜주 현대증권 등을 축으로 재계 10위권 진입(현재 19위)을 눈앞에 두고 있다.2010년까지 매출 20조원을 달성해 10위권에 진입한다는 ‘2010’ 프로젝트를 가동중이다. 현 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이 직접 ‘점지한’ 며느리로도 유명하다. 현 회장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결혼 뒷얘기는 이렇다.“당시 현대상선 회장이던 아버지(현원영)를 따라 선박 명명식차 울산에 내려갔다가 남편을 처음 만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명예회장(정주영)께서 나를 선보러 미리 내려오셨었다. 명예회장께서 중매를 서신 셈이다.” 큰딸 지이씨는 현대상선 재정부 대리로 근무 중이다. 아버지를 잃었을 때 고3 수험생이었던 외아들 영선씨는 졸업후 미국 유학을 준비중이다. ●6남 몽준… 세계1위 현대중공업 ‘건조’ 지금은 정치인의 이미지가 더 강하지만 세계 일류 현대중공업의 뒤에는 기업인 몽준씨가 있다. 형제중에 학벌(서울대-미국 MIT 경영대학원)이 가장 좋아 ‘신문대학’(소학교만 졸업한 정주영 회장은 신문을 통해 지식의 대부분을 얻었다며 자신을 신문대학 출신이라고 소개하곤 했다) 출신인 왕 회장이 유난히 예뻐했다는 몽준씨는 31세에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전격 발탁되면서 집중 조명을 받았다.1988년 금배지를 처음 달면서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시도했다. 경영은 CEO에게 맡기고 자신은 대주주로서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만 내리고 있는 것. 지금도 현대중공업의 어떤 직함도 갖고 있지 않다. 공식 직함은 5선의 국회의원이자 축구협회 회장. 아버지의 뒤를 이어 200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현대중공업의 올해 매출 목표액은 10조원. 웬만한 그룹과 맞먹는다. 부인 김영명씨와는 미국 유학시절에 만나 결혼했다. 큰아들 기선씨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와 올해 학사장교(ROTC)로 임관했다. 이로써 부자(父子)가 ROTC 선후배가 됐다. 두 딸 남이씨와 선이씨는 미국 유학 중이다.‘월드컵 베이비’로 유명한 늦둥이 아들 예선씨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우리나라가 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전을 최종 통과한 것을 기념해 이름을 ‘예선’으로 지었다고 한다. ●7남 몽윤… 현대해상으로 컴백 몽윤씨는 지난해 말 업계 2위의 손해보험회사인 현대해상의 등기이사 겸 이사회 의장으로 돌아왔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지 8년 만의 전격 복귀였다. 방카슈랑스(은행상품과 보험상품의 교차판매) 확대 시행 등 변화하는 금융환경에 맞춰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보이고 있다.1981년 김진형 부국물산 회장의 딸 혜영씨와 연애결혼해 정이양과 경선군을 두었다. ●8남 몽일… 할부금융으로 내실 막내아들인 몽일씨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마친 뒤 현대상사 등에서 근무하다가 2000년 현대기업금융을 차려 독립했다. 기업대출 등을 주로 취급하는 회사다. 권영찬 현대파이낸스 회장의 딸 준희씨와 결혼해 고등학생인 현선(영국 유학중)군과 중학생인 문이양을 두고 있다. ■ 현대의 또 다른 축 형제들 고 정주영 회장의 형제들은 동생이기 이전에 창업 동지요, 사업 동료였다.6·25전쟁 직후 고령교(대구와 거창을 잇는 교량) 복구 공사를 덜컥 떠맡았다가 부도 직전까지 내몰렸을 때, 내남없이 살던 집을 팔아 돈을 내놓은 것도 동생들과 매제였다. 이 때문에 20명이 넘는 대식구가 한 집(돈암동)에 모여 살아야 했지만 누구 한 사람 불평하지 않았다. 지금은 모두 독립해 각자의 그룹을 이끌고 있다. ●옛 영화 꿈꾸는 한라·성우 동아일보 외신부 기자로 활동하던 첫째 동생 인영씨는 1953년 현대건설 전무로 입사하면서 경영에 본격 합류했다.75년 말 중동 진출 때 신중론을 펴 형과 이견을 빚을 때까지 그룹의 초석을 닦았다. 당시 독립해 만든 한라그룹은 한라건설·한라시멘트·한라중공업·만도기계 등을 거느리며 재계 서열 12위로까지 도약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때 자금난이 가중되면서 그룹이 부도나는 시련을 겪었다. 지금은 둘째 아들 몽원씨가 한라건설 회장을 맡아 재기를 꿈꾸고 있다. 큰 아들 몽국씨는 94년 아버지가 동생을 그룹 후계자로 지목하자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한때 배달학원 이사장을 맡았으나 지금은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부인 이광희씨는 배달학원 계열인 한라대 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현대시멘트·성우종합건설·성우리조트·현대종합금속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성우그룹은 둘째 동생 순영씨 일가가 이끌고 있다. 순영씨는 명예회장으로 물러앉고 2세 경영을 정착시켰다. 큰아들 몽선씨가 현대시멘트와 성우종합건설을, 둘째아들 몽석씨가 현대종합금속, 셋째아들 몽훈씨가 성우전자, 넷째아들 몽용씨가 성우오토모티브를 각각 맡고 있다. 몽선씨는 사촌인 정몽윤 현대해상 이사회 의장과 함께 정몽헌 회장의 부검을 임관하기도 했다. ●‘기계박사’가 일군 한국프랜지 자동차부품회사인 한국프랜지공업의 김영주 명예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의 유일한 매제다. 정주영 회장은 ‘이 땅에 태어나서’라는 두 번째 자서전에서 “그가 다가가기만 해도 기계가 저절로 고쳐졌다.”며 매제를 ‘기계박사’라고 불렀다.1946년 정주영 회장이 미 군정에서 불하받은 토지에 ‘현대’(현대자동차공업사)라는 상호를 처음 내걸었을 때, 감격적으로 지켜본 이도 영주씨였다. 두 사람의 인연은 이로부터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기직종이던 운전기사 출신의 영주씨는 황해도 홀동광산에서 역시 운수업을 하던 정주영 회장과 뜻이 맞아 사업을 같이 도모했고, 매제까지 됐다. 부인 정희영씨는 2001년 정주영 회장이 노환으로 세상을 떴을 때 “대통령 한번 못해보고… 우리 오빠 불쌍해서 어쩔거나.”하며 가장 서글프게 울었던 동생이다. 장남 윤수씨가 회사를 물려받아 한국프랜지공업 회장으로 있다. 둘째아들 근수씨는 독립해 울산화학·퍼스텍 등의 계열사를 거느린 후성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윤수씨의 장남 용석씨가 프랜지공업 계열사인 서한산업(자동차부품회사) 대표이사 사장이어서 3세 경영체제를 갖춰 가고 있다. 둘째아들 용범씨는 이름을 용태로 바꿨다. ●‘포니 정’ 부자(父子)의 변신 ‘포니 정’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넷째 동생 세영씨는 외아들 몽규씨와 함께 1999년 3월 현대그룹에서 독립해 건설시장에서 영역을 확실하게 굳혔다. 꼼꼼한 시공과 치밀한 분양으로 현대산업개발을 국내 도급순위 4위 업체로 키워놓았다.‘포니 정’이라는 별명은 1976년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국산 고유모델 자동차 1호 ‘포니’를 만들어낸 데서 붙여졌다. 이같은 열정과 헌신을 인정받아 87년 형에게서 현대그룹 회장직을 물려받기도 했다. 분가한 뒤로는 현대산업개발 경영에만 매달렸다. 몇 년 전 폐암수술을 받았지만 지난해 희수연을 치렀을 만큼 건강을 되찾았다. 회사 경영은 아들 몽규(회장)씨가 책임지고 있다. 지금의 서울 삼성동 사옥은 몽규씨가 직접 지었다.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현대가 맺은 최고위층 사돈도 세영씨 집안에서 나왔다. 큰딸 숙영씨가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장남 경수(서울대 교수)씨와 결혼한 것. ●“아… 신영아”-교통사고 아닌 병으로 요절 다섯째 동생 신영씨는 고 정주영 회장이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동생이다. 서울대를 나와 동아일보 기자로 있다가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함부르크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던 중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 1962년. 처음에 어떤 기자가 교통사고사로 쓰면서 오랜 세월 세상에 잘못 알려졌지만 정확한 사인은 지병이라고 유족은 본지에 밝혔다. 당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잠시도 일에서 떠나본 적이 없는 정주영 회장이 일주일을 손놓았을 만큼 가족의 슬픔은 컸다. 서울대 음대 출신의 첼리스트였던 미망인 제수씨(장정자)에게 현대학원(현대고)을 경영토록 했다. 지금도 현대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장정자씨는 남북이산가족 상봉때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로 남한측 방문단장을 맡았었다. 장홍선 전 극동도시가스 회장의 누나다. 신영씨는 1남1녀를 두었다. 아들 몽혁씨는 32살의 젊은 나이에 현대정유(현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로 취임해 인천정유(구 한화에너지)를 인수하고 오일뱅크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등 두각을 드러냈다. 그러나 외자유치와 함께 2002년 전문경영인에서 물러나 그 해 건축자재 유통회사 ‘에이치애비뉴앤컴퍼니’를 설립해 돌아왔다. 부인 이문희씨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동원 이홍근 선생의 손녀이다. 사업가이자 문화재 수집가였던 동원 선생은 평생 모은 문화재 4941점을 198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딸 일경씨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블룸버그대학 회계학과 교수인 남편 임광수씨와 함께 미국에서 살고 있다. ●‘리틀 정주영’이 이끄는 KCC 막내동생인 상영씨는 ‘불에 타지 않는 바닥재’ 등으로 유명한 자재 전문그룹 KCC를 이끌고 있다. 불도저 같은 추진력과 성격 등이 고 정주영 회장을 가장 많이 닮아 ‘리틀 정주영’으로 불린다. 큰형과 나이 차이가 21살이나 나 아버지처럼 따랐다. 장조카 몽구씨와도 2살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또 다른 조카인 고 정몽헌 회장이 자금난에 몰렸을 때 200억원을 선뜻 내놓았을 만큼 의리도 강하다. 그러나 조카의 죽음 이후 현정은 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이면서 다소 빛이 바랬다. 그룹 경영은 두 아들에게 맡긴 상태다. 큰아들 몽진씨가 대표이사 회장, 둘째아들 몽익씨가 대표이사 부사장이다. 셋째아들 몽열씨는 계열사인 금강종합건설 사장을 맡고 있다.KCC는 몽익씨를 통해 롯데·한진그룹과 사돈으로 연결된다. 몽익씨의 부인 은정씨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외조카(신 회장의 여동생인 정숙씨의 딸)이다. 은정씨의 언니 은영씨는 한진해운 조수호 회장의 부인이다. 몽익씨와 조 회장이 동서지간인 셈이다. ●현대가의 여자들 현대가의 딸이나 며느리들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화여대(정경희-이양자-현정은-김혜영-정유희 등) 출신에 해외유학(김영명-정지선-황서림-허승원 등)까지 다녀온 재원들이 적지 않지만 경영에 참여하거나 대외활동에 나서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다못해 남편을 따라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드물다. 유일한 경영자인 현정은씨도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전업주부’였다. 오너 일가를 가까이서 들여다본 한 관계자는 “지금도 명절 때면 청운동 집(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오랫동안 살던 집)에 몇 대에 걸친 며느리들이 모두 모여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음식을 직접 장만한다.”면서 “옷차림들도 수수하고 인상이 소박해 언뜻 봐서는 재벌가 며느리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한결같이 미인들이다. 어떤 이는 그 이유를 ‘유난히 많은 연애결혼’에서 찾는다. ●그룹분리 가속화시킨 ‘경영권 분쟁’ 2000년 ‘형제간 다툼’은 현대가를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핵분열시킨 결정적 계기였다.99년 12월 마지막 날, 고 정몽헌(MH) 회장쪽 인사로 분류되던 박세용 당시 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이 정몽구(MK) 회장 계열의 현대차 회장으로 전격 발령나면서 시작된 형제간의 경영권 갈등은 그룹 후계자로 MH를 지목한 고 정주영 회장의 육성 테이프가 공개되기까지 석달여에 걸쳐 숨막히게 전개됐다. 효심이 남달랐던 MK는 아버지의 육성이 공개되자 깨끗이 승복하고 자동차 계열사를 이끌고 그룹에서 나왔다. 이 과정에서 아픔도 적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현대의 지배구조를 선진화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는 21일 왕 회장의 4주기에 모처럼 형제들 모두가 함께 제사를 지낼 예정이다. 이날은 공식적으로 가족화합이 됐음을 안팎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현대가에 정통한 소식통은 전했다. hyun@seoul.co.kr ■ 정주영 회장의 ‘빈대론’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은 ‘해당화가 찬란하고 눈(雪)이 많은’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에서 1915년 6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죽어라고 일해도 콩죽을 면할 길이 없는 농군이 진절머리나게 싫고 지겨워”(첫번째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소학교를 졸업한 열네살 무렵부터 줄기차게 가출을 시도했다. 무작정 길을 나서 보기도 하고, 아버지의 소 판 돈을 훔쳐도 봤다. 그러기를 네번째. 열아홉살 마지막 가출에 성공해 인천부두 막노동꾼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 한 푼이 아까워 몸을 기댔던 곳이 노동자 합숙소. 뼈가 으스러지는 중노동으로 누가 떠메고 가도 모를 만큼 고단했지만 좀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빈대들의 공격 때문이었다. 궁리 끝에 밥상 위에 올라가 잠을 잤다. 빈대들의 공격이 잠시 뜸해지는 듯싶었다. 하지만 이내 밥상다리를 타고 기어올라와 온 몸을 물어 뜯었다. 다시 머리를 써야 했다. 무릎을 탁 칠 만한 묘안이 떠올랐다. 밥상다리 네 개를 물 담은 양재기 넷에 하나씩 담근 뒤 그 위에 올라가 잔 것이다. 빈대를 밥상다리로 유도해 양재기 물에 익사시키자는 계략이었다. 쾌재를 부른 것도 이틀여. 빈대들은 또다시 물어뜯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양재기 물을 건넌 것일까.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불을 켜본 젊은 정주영 회장은 기겁을 하고 말았다. 빈대들이 밥상다리 대신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가 사람을 겨냥해 뚝 떨어져 목적 달성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역경에 부딪칠 때마다 정주영 회장은 ‘빈대의 노력’을 떠올렸다.“난관은 극복하라고 있는 것이지, 걸려 넘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든지 “빈대만도 못한 놈”이라는 단골 지청구는 모두 여기서 비롯됐다. 아무것도 없는 백사장(울산 염포리) 사진 한 장 달랑 들고 조선소 투자금액을 유치할 때나,20세기 최대 역사(役事)로 꼽히던 중동 주베일 공사 입찰전에 뛰어들 때나, 직원들이 불가능하다고 도리질칠 때면 “이봐, 해봤어?”라고 불호령을 쳤던 것도 빈대의 집요한 노력을 떠올리면서였다. “자본가가 아니라 부유한 노동자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했던 정주영 회장은 근검과 노력을 평생의 신조로 삼았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평등한 자본금” “한강에 기적은 없다. 성실하고 지혜로운 노동이 있을 뿐” “고선지부지설(苦蟬之不知雪;여름철 서늘한 나무 그늘에 앉아 노래만 하다 겨울이 오기 전에 없어지는 매미는 한겨울 펑펑 쏟아지는 눈을 알 수 없다)” ‘아산 정주영 어록’에 실려있는 그의 유명한 말들이다. hyun@seoul.co.kr ■ ‘현대家 대모’ 변중석 여사 열여섯살에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여섯살 연상의 고향총각 정주영에게 시집온 변중석씨는 현대가의 산 증인이다. 올해로 84세. 젊어서 남편이 사준 재봉틀 하나를 자신 소유의 유일한 재산으로 여기며 한결같은 근검과 후덕함으로 ‘현대가의 여자’라는 상징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고 정주영 회장이 매일 새벽 5시의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동생들과 자식들에게 근검을 가르쳤다면, 변씨는 새벽 3시반부터 손아래 동서·며느리들과 아침 준비를 함께 하면서 “언제나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겸손하라.”고 일렀다. 가혹하리만치 자식 교육에 엄격했던 정주영 회장이 아이들을 자가용으로 등교시키는 며느리들을 보고 “젊었을 때 콩나물 버스에 시달려봐야 나중에 자가용을 샀을 때의 기쁨을 안다.”며 역정을 내자 “손주녀석들 키우는 문제에까지 시아버지가 잔소리를 할 거냐.”며 막아준 이도 변씨였다. 칭찬에 인색했던 정주영 회장도 아내를 가리켜 “늘 통바지 차림에 무뚝뚝하지만 60년을 한결같고 변함이 없어 존경한다.”고 자서전에서 고백했을 정도다.“아내를 보며 현명한 내조는 조용한 내조라는 생각을 굳혔다.”고도 했다. 그러나 자식을 먼저 땅에 묻는 참척의 고통과 여자로서의 마음고생을 거치면서 ‘살아있는 보살’도 탈이 났다. 거동이 불편해 10년 가까이 병원(현대아산병원) 생활을 하고 있다. 사실상 맏며느리인 이정화씨 등 며느리들이 틈날 때마다 병실을 들여다보고 있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제2 모텔 파동’ 오나

    ‘제2 모텔 파동’ 오나

    경기도 일산신도시의 200여평짜리 여성전용 사우나는 최근 영업난을 견디지 못해 문을 닫았다. 지난해 내부 공사 비용으로 대출받은 10억원과 기존 대출금의 연체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것이다. 주인 이모(55)씨는 “몇 개월째 빚을 갚지 못해 할수없이 경매로 넘겨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근처에 대규모 찜질방이 2곳이나 생기면서 손님이 눈에 띄게 줄어 4000원이던 입장료를 3000원으로 내렸지만 손님을 끌기에 역부족이라고 털어놨다. 인근의 불가마사우나도 사정은 비슷하다.2년 전 300여평 규모의 불가마사우나를 개업할 때만 해도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손님들로 북적댔다. 내부의 이발소도 인기가 좋아 권리금만 5000만원을 호가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쯤 인근에 대규모의 호화 불가마사우나가 들어서면서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새 사우나가 생기면서 손님들이 나은 서비스를 찾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목욕탕·사우나, 제2의 모텔파동(?) 이렇듯 최근 들어 서울, 경기도 등 수도권의 재래식 목욕탕과 소규모 사우나·찜질방의 부도가 줄을 잇고 있다. 대규모 현대식 사우나·찜질방이 생겨나면 인근 지역은 거의 쑥대밭이 되고 만다. 그나마 사우나·찜질방 단골손님들의 발길도 경기여파 등으로 갈수록 뜸해지면서 도시가스·인건비 등 경비를 감당하지 못해 내놓는 매물도 쏟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은행권에 비상이 걸렸다. 통상 이들 자영업자에게 담보의 70∼80%를 대출해줬기 때문이다. 현재 은행권은 사우나·찜질방 등 목욕업에 대해서는 대출억제업종으로 분류해 신규 대출이 중단된 상태다. 은행권의 전체 중소기업 대출(중소기업+자영업자) 연체율은 2∼3%대에 머물고 있지만, 목욕업종의 연체율은 무려 10∼15%로 5배가량 높다. 한때 성매매특별법 시행의 직격탄을 맞은 모텔 등 숙박업의 연체율이 5%대임을 감안하면 위험에 훨씬 더 노출돼 있다는 얘기다.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이 지난해 12월 2.2%였으나, 지난 1월에는 2.6%로 오른 것도 이들 업종의 연체율이 갈수록 높아지는 데 크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제2금융권도 골머리 더 심각한 것은 은행권보다 상호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의 목욕업종에 대한 대출 규모가 더 많다는 점이다. 은행권은 선별적으로 대출해준 반면, 상호저축은행은 무분별하게 대출해줘 부실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저축은행 업계 관계자는 “저축은행이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는 데는 숙박·임대·목욕업 등에 대한 대규모 대출이 큰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경기가 호전되고 있다고들 말하지만, 소규모 목욕탕·찜질방·사우나 등 자영업자들의 연체율을 보면 경기 호전 기미를 찾아볼 수 없다.”며 “올들어 이들 업종의 연체율이 더 높아지고 있어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최근 들어 은행권의 대출이 숙박·목욕업에서 부동산저당대출 이 많았기 때문에 이들 업종에 대한 경매가 많아질 것”이라며 “특히 지난해 하반기부터 은행들의 한도 축소로 상호저축은행들이 대출을 많이 해줘 저축은행 부실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금융연구원 김병연 연구위원은 “경기심리는 대기업, 중소기업, 자영업자 등의 순으로 오기 때문에 자영업자들은 여전히 겨울나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이들의 영업난이 경기바닥의 징조인지, 봇물처럼 터지는 문제의 시발인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병철 김미경기자 bcjoo@seoul.co.kr
  • ‘과거분식’ 2년 유예 추곡수매제도 폐지

    이번 임시국회에서는 모두 110건의 법안을 통과시키며 임시국회 사상 최다 법률 처리 기록을 갈아치웠다. 하지만 국보법 폐지안, 과거사법안, 사학법 등은 손도 대지 못했다. 다음은 2일 국회를 통과한 주요 법안 요지. ●증권관련집단소송법(개) 기업의 허위 공시행위가 과거의 분식을 반영·해소할 경우 2년간 집단소송법 적용을 배제하되, 과거 분식으로 계상된 금액을 새로운 분식으로 대체하거나 허위로 가감·수정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새 법을 적용하도록 한다. ●양곡관리법(개)·쌀소득보전기금법(개) 추곡수매제를 사실상 폐지하고 국민식량의 안정적인 확보 차원에서 쌀 600만섬 가량을 시장가격으로 매입하고 판매하는 공공비축제 도입을 골자로 한다. 또한 추곡수매제 폐지에 따라 쌀값이 15%가량 급락해도 가마당 16만 5000원 이상을 보장한다. ●채무자회생 및 파산법 개인 채무자에 대해 파산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채무를 조정, 소액 채무자를 구제한다. ●하도급거래공정화법(개) 중소 하청업체 보호를 위해 용역위탁업을 하도급법 적용대상에 추가하고 하청업체에 비용을 전가하거나 대금을 깎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 ●병역법(개) 병역을 마치지 않은 병역 의무자가 국외여행 허가시 병무청장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귀국보증제도와 이들이 미귀국시 부과하는 과태료제도를 폐지했다. ●선원법(개) 국제기준에 맞는 선원신분증명서 도입과 함께 25t 이상 선박 선원에 적용되던 대상 기준을 20t 이상으로 올렸고, 주 40시간 근무, 쟁의행위 허용 등을 담고 있다. ●독립유공자예우법(개) 독립유공자 중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것으로 확인된 자에 대해 각종 독립유공자 예우를 박탈하는 내용과 해외거주 독립유공자 가족이 국내에 영구 정착할 때 주는 정착금 지급대상을 유족대표 1인에서 가구 수별로 확대한다. ●공중위생관리법(개) 찜질시설 영업을 목욕업종으로 분류하는 내용.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룸살롱서 법인카드 못쓴다”

    “룸살롱서 법인카드 못쓴다”

    한국전력 등 공기업들이 단란주점과 룸살롱 등 유흥업소에서 법인카드 사용을 제한하는 ‘클린카드제’를 잇달아 도입하고 있다. 20일 한국전력 등에 따르면 부패방지위원회가 지난해 말 공기업 제도개선 방안으로 클린카드제를 권고한 이후 한전을 비롯한 발전자회사들이 올해부터 이 제도를 시행키로 했다. 클린카드제는 회사측의 요청에 따라 카드회사가 룸살롱이나 나이트클럽 등 유흥업소로 분류된 특정가맹점에서 법인카드로 결제할 수 없도록 차단하고, 카드결제시 ‘거래 제한 업종’이라는 승인 거부 메시지가 뜨게 된다. 지난 1일부터 한전이 이 제도를 도입한 데 이어 이날 한전의 발전자회사인 한국동서발전도 클린카드제 시행에 들어갔다. 이들 공사가 설정한 거래 제한 업종에는 단란주점·나이트클럽 등 유흥업소와 이발소·안마시술소 등 대인서비스업소, 오락실, 골프연습장, 카지노, 당구장,PC방 등이 포함됐다. 또 한국수력원자력 등 한전의 나머지 발전자회사들도 클린카드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다른 공기업들의 경우 유흥업소에서 법인카드 사용이 잦았던 일부 부서를 중심으로 시행 초기에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등을 우려해 이른바 ‘눈치보기’ 현상도 빚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공사 관계자는 “취지는 좋지만 현재로선 편법결제 등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는 만큼 도입 여부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면서 “불가피하게 유흥업소 결제 필요성이 생길 경우 예외를 두는 등 대비책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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