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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투협회장, 김기범·최방길·황영기 ‘3파전’

    금투협회장, 김기범·최방길·황영기 ‘3파전’

    연봉 5억원대의 ‘알짜 자리’로 꼽히는 금융투자협회장 선거가 3파전으로 좁혀졌다. 금융투자협회(금투협회) 회장 후보추천위원회는 14일 후보 응모자 5명에 대한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김기범(59) 전 KDB대우증권 사장, 최방길(64) 전 신한BNP파리바 자산운용사장, 황영기(63) 전 KB금융지주 회장 등 세 사람을 차기 회장 후보로 선정했다고 이날 밝혔다. 유정준 전 한양증권 사장과 황성호 전 우리투자증권 사장은 탈락했다. 164개 회원사들은 오는 20일 임시 총회를 열어 전자 비밀 투표로 차기 회장을 선임한다. 후보추천위는 금투협회 공익이사 3명과 외부인사 2명으로 구성됐다. 김 후보는 메리츠증권 사장과 KDB 대우증권 사장을 거쳤다. 합리적으로 일처리를 한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지만 지난해 7월 임기 8개월을 남기고 대우증권 사장직에서 자진 사퇴한 것이 부담이다. 산은금융지주와의 갈등설이 유력하다. 최 후보는 자산운용사(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출신이다. 증권업협회, 자산운용협회, 선물협회가 합쳐져 2009년 출범한 금투협회에서 자산운용사 출신 회장이 나올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황 후보는 우리금융지주와 KB금융지주 회장을 거친 거물급 금융인이다. 다만 증권업계 이력이 5년 정도에 불과, 20년이 넘는 다른 후보들에 비해 매우 짧다. 다른 업계와 달리 ‘낙하산’ 논란에서 일찌감치 벗어난 금투협회장 선거는 후보의 경력과 공약이 표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투표권의 60%는 164개 회원사가 1사 1표를 행사하며 나머지 40%는 협회비 분담 정도에 따라 가중치가 부여된다. 회원사는 증권사 60개, 자산운용사 86개, 신탁사 11개, 선물사 7개다. 이해관계가 서로 달라 회장 선거는 예측불허다. 20일 총회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상위 득표자 2명에 대한 결선 투표가 진행된다. 3년 전 선거 때도 결선까지 가는 접전 끝에 ‘예상을 깨고’ 박종수 현 회장이 당선됐다. 이번에도 결선투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금투협회장의 연봉은 5억원 수준이다. 박 회장은 2013년 기본급 2억 8170만원과 전년 대비 성과급 2억 5070만원(기본급의 100% 이내)을 더해 5억 3240만원을 받았다. 협회 직원 수는 200명이며 예산은 600억원 정도다. 금융상품 광고 심의 등 자율 규제를 맡고 있다. 장외 채권시장과 장외 주식시장(K-OTC) 관리도 주요 업무다. 자본시장 전반을 관리하는 셈이다.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 [박대통령 신년회견-정치·외교·안보] “주요 수석과 유기적으로 연결” 정무·언론 특보 신설할 듯

    [박대통령 신년회견-정치·외교·안보] “주요 수석과 유기적으로 연결” 정무·언론 특보 신설할 듯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특별보좌관(특보)단 신설 구상을 밝히면서 기구 구성과 역할 등에 관심이 쏠린다. 박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청와대 조직 개편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집권 3년 차에 국정 동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되겠다 하는 생각에서 주요 수석들과 유기적으로 잘 연결이 되면서 또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도록 주요 부문 특보단을 구성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정무장관 또는 특임장관 부활 요구가 꾸준했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이 이를 우회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조직법을 바꾸고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하는 장관직을 늘리기보다는 청와대 조직 관련 시행령만 고치면 되는 특보단 신설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대통령 특보는 박 대통령의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때 생겨났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미국 백악관 특별보좌관제를 본떠 이를 신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이명박 정부 때까지 유지됐으나 ‘작은 청와대’라는 기치를 내건 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없어졌다. 박 대통령이 특보단의 역할과 관련해 국회 및 당·청 간 소통, 정책 협의, 홍보 강화 등을 꼽은 만큼 정무특보와 홍보(언론)특보 등의 신설 가능성이 점쳐진다. 특보는 대통령을 보좌하지만 공식 조직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만큼 업무 관련 활동비만 지원받는 ‘무보수 명예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근 ‘비선 실세’ 논란에서 볼 수 있듯 특보단이 공식 조직과 갈등을 빚거나 측근 인사들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한 ‘위인설관’ 비판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보단이 청와대 외곽에서 활동하는 ‘지원조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주요 정책을 주무르는 청와대 ‘내부조직’의 재배치에도 관심이 쏠린다. 박 대통령이 이날 밝힌 국정 구상의 중심에 ‘경제’가 있는 만큼 이를 중심으로 주요 정책 관련 수석실을 한데 묶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 맥락에서 정책실 신설 얘기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현재 수평 관계인 각 수석실이 국가안보실처럼 수직 관계로 재배치될 여지도 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김영한 민정수석 항명 파문] 靑 인적쇄신론 불 지펴… 朴 신년회견 등 ‘도미노 차질’ 우려

    [김영한 민정수석 항명 파문] 靑 인적쇄신론 불 지펴… 朴 신년회견 등 ‘도미노 차질’ 우려

    청와대 김영한 민정수석의 9일 사의 표명 파문을 계기로 인적 쇄신론에 불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청와대 안팎에서는 인적 쇄신론보다는 조직 개편론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비선실세 국정 개입’ 의혹을 둘러싼 논란의 단초가 됐던 ‘정보 경찰’ 조직 등을 대폭 손질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반면 김기춘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핵심 참모진을 겨냥하고 있던 야당의 인적 쇄신 요구에는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전면적인 인적 쇄신은 그동안 쏟아진 각종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청와대의 기존 입장에 역행하는 행위처럼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수석의 사의 파문으로 인적 쇄신 역시 일정 수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일차적인 관심은 김 비서실장에게 쏠린다. 김 수석의 사의 표명이 항명 사태로 간주되고 있어 김 비서실장의 조직 장악력에 생채기를 냈기 때문이다.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의 거취에도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다만 이들 참모진이 갖고 있는 중량감과 후임자 선임 과정에서 불거질 잡음 가능성 등은 인적 쇄신의 수위와 시기 등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이번 파문이 오는 12일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권 일각에서는 이번 파문으로 박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연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이는 박 대통령의 집권 3년차 국정 구상이 희석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파동에 국정 운영의 발목이 잡히는 모양새가 되는 게 더 우려스러운 대목이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여기에 13일부터 예정된 정부부처 업무보고 등에도 ‘도미노 차질’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의 정면 돌파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같은 맥락에서 박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떤 언급을 내놓을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단순한 사과 차원을 넘어 인적 쇄신이나 조직 개편에 대한 의지나 방안을 제시할 가능성도 있다. 박 대통령의 ‘주말 구상’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아리랑TV 60분 기획진단 ‘업프론트’ 2015년 한반도 외교안보 전망

    아리랑TV 60분 기획진단 ‘업프론트’ 2015년 한반도 외교안보 전망

    아리랑TV(사장 방석호)의 기획진단 프로그램 ‘업프론트(UPFRONT)’가 신년특집 ‘2015 외교안보 전망’을 통해 치열한 외교 경쟁 속의 한국, 2015년 한반도와 동북아의 외교 정세를 전망해본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통일이 현실이 되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 김정은도 남북 간 최고위급 회담 가능성을 제기하며 남북 관계 개선 의지를 표명했다. 이런 와중에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새해 첫 업무로 북한에 고강도 제재를 단행했다. 광복 70주년을 맞는 올해,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한반도의 안보 정세를 이번 ‘업프론트’ 신년특집 ‘2015 외교안보 전망’에서 집중 분석해 본다. 업프론트 스튜디오에는 한국 외교 안보 분야의 권위자 천영우이사장(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전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 국제정치전문가 박인휘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글로벌 이슈 전문가로 류종수대표(지속성장 글로벌 네트워크 대표)가 함께 한다. 2015년 외교안보 전망에 앞서, 지난 2014년 가장 뜨거웠던 외교안보 이슈가 무엇인지에 대해 박인휘 교수는 풀리지 않는 한-일 관계와 북한 인권문제를 말했고 류종수 대표도 북한인권결의안 통과를 꼽았다. 올해 집권 4년차를 맞는 북한 김정은 체제, 안정화에 성공했는지에 대해서 천영우 이사장은 “현 김정은 체제가 안정화에 어느 정도 달성했다.”라는 의견과 함께 “앞으로는 경제 발전에 보다 힘쓸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노력으로 군사적 위협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한-미 양국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연기에 합의한 것에 대해서 천영우 이사장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연기는 창피할 일이며, 현 정부가 큰 그림을 볼 필요가 있다”고 일침했다. 또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국내 배치 문제에 대해서 천영우 이사장은 “한국도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며 미국의 방어체계 도입을 옹호했다. 또한 사드 도입에 따른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에 대해서 박인휘 교수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자주적으로 결정을 내려야하며, 양국의 입장에서 우리 스스로의 노선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서 천영우 이사장도 “중국은 근본적으로 자국방어체계가 우리와 다르며 우리는 우리 국민을 우선순위로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중-일 3국의 연내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에 대해 박인휘 교수는 “우리 정부가 인권이나 환경, 재난 등과 같은 공감대 형성이 보다 쉬운 이슈부터 접근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지난달 재선에 성공한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향후 정책 방향에 대해서 박인휘 교수는 “아베 총리의 우경화 노선이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끝으로 올해 가장 귀추가 주목되는 외교 이슈에 대해서 천영우 이사장은 “올해가 한국과 일본의 국가 수교 50주년인 만큼 앞으로 한-일 관계의 진행 방향에 대한 주목도가 크며, 우리 정부가 대중의 감정에 좌지우지되지 말고 현명한 해결책을 찾기를“ 독려했다. 그리고 류종수 대표는 6자 회담 재개 가능성을 거론하며, 한반도의 비핵화 논의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에 대해 말했다. VCR인터뷰로 전 미국가정보국 부국장을 지낸 토마스 핑가, 스탠퍼드대 특임연구원을 만나 올해 미국의 대북 정책을 비롯한 한반도의 외교 정책에 대한 전망을 들어보고 T.J. 펨펠, U.C. 버클리대 정치학과 교수와 지난해 일본의 외교 전략에 대한 분석과 한일관계 개선 및 안보 협력 증진을 위한 정책 제안을 요청했다. 또 전화연결로 스즈키 유지, 호세이대학 국제정치학 교수와 동북아의 긴장구도와 미국과 일본의 외교 노선 전망을 들어보고 한-중-일 3국의 갈등양상에 대한 대비책을 논했다. 8일 목요일 밤 11시 방송.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1교시 언어이해 - 이은희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1교시 언어이해 - 이은희

    Ⅰ <첫 번째 문제> 다음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그녀는 하루에 세 문제를 만들었다. 월급에 대비해 그만큼이면 적당한 노동량인 것 같았다. 책을 만지면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아주 기뻤다. 읽은 것에 관해 말할 줄 아는 정도의 능력만 있으면 되었다. 한 개의 독해 지문에 세 개의 문제를 만들어 달면 업무가 끝났다. 그녀는 기쁜 마음으로, 오래오래 회사생활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회사였다. 그녀의 동료들은 일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읽거나 읽은 것에 관해 생각하는 일을 귀찮아했다. 한 달에 세 문제를 만들까 말까 하는 정도였으며 문제의 수준도 형편없었다. 그녀의 동료들은 일하는 척으로 일과를 보냈다. 대수롭지 않은 것에 관해 큰 목소리로 토의하며 바쁜 척했다. 읽고 생각하기만 하면 되지만, 적혀 있는 그대로를 읽어내는 능력 자체에 문제 있는 사람들로 보이기도 했다. 한때 그녀는 국문과 대학원생이었다. 지도교수가 갑자기 죽은 뒤에 이상하게도 그녀의 꿈이 사라졌다. 그녀는 학업에 품었던 자신의 꿈이 로스쿨 입시용 문항으로 재생산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있을 때에는 세 시간 만에 세 문제가 만들어지기도 했고, 인고의 노력을 쥐어짜야 할 때에는 아홉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쉽게 만들어지든 오래 걸려 만들어지든 간에 개개의 문제가 전부 걸작이었다. 어떤 때에는 혼자 풀기 아까운 문제가 나오기도 했는데,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동료들 모두에게 그 문제를 자랑하고 당장 풀어보게 만들기도 했다. 동료들은 마지못해 그녀가 낸 문제를 풀어보았으나 답을 맞히지 못했다. 그녀는 동료들이 지닌 지적 능력의 총합을 초월하는 자신의 창의력을 확인한 양 우월감을 느꼈고, 콧대가 우뚝해져서는 도파민의 폭풍에 정신 잃은 채 기뻐했다. 소용돌이 모양으로 생성된 회전은하와 스케이터의 연속 회전 간의 원리적 유사성에 관한 문제를 출제했을 때에는 그만 김연아 선수에게 그 문제를 선물할 뻔했다. 김연아 선수와 접촉할 방법이 있었더라면 그녀는 당장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김연아 선수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금메달리스트의 스케이트 날처럼 날렵한 독해문제를 출제했으니, 한시바삐 문제를 풀어보고, 각운동량보존법칙에 관한 이해를 동원하여 더욱 멋진 연기를 보여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울러 김연아가 그녀보다 훨씬 어린 사람이지만 존경한다는 말을 문제에 실어 전하고 싶었다. 김연아가 팔을 길게 뻗어 회전할 때에 보여주는 느긋한 우아함과, 몸을 움츠렸을 때 운동량이 보존됨에 따라 속도가 높아지면서 생겨나는 간절함은 청년이 생에 대하여 품어야 하는 희망이 어떠한 양상이어야 하는지 물리학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같다고 전달하고 싶었다. 그녀의 대학시절 교수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담아 교수님의 소설로 문학문제를 출제하기도 했다. 헌정 출제의 성격을 완성하기 위해서 교수님의 작품 세계 전반에 대한 이해를 보충하는 <보기>를 달아 심화된 감상을 유도하기도 하였다. 어느 날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후 타인들의 머리에 더듬이가 생겨난 것을 발견한 주인공의 혼란을 다룬 작품에서 ‘사람의 모습이 갑자기 바뀌었을 리 없다’라는 독백에 밑줄을 치고 ㉠을 단 뒤, 그 ㉠에 관해 아주 많이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인간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란 얼마나 허망하고도 희망적인 것인지에 대해 파악하도록 요구하는 문제였다. 그녀는 교수님의 소설과, 자신이 낸 문제를 바라보며 그 희망적인 허망함에 관해 성찰했고, 청년으로서 자신의 무거운 사명을 통감하면서 한 방울의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차곡차곡 쌓인 그녀의 업무량과 비교하여 동료들의 게으름은 크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 동료들은 하루에 세 문제씩 꼬박꼬박 생산해내는 그녀가 미친 기차 같다고 자기들끼리 욕했으며, 방해하기 위해 시끄럽게 굴었다. 그들은 자신의 무능함을 감추기 위해서 촘스키가 글을 참 못 쓴다고 욕을 하거나, 과학 전공자가 아니고서야 과학 문제를 출제하는 것은 위험천만하지 않은가에 관해 토론하거나, 푸코의 저서는 번역이 엉망이어서 출제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비난하거나, 문학문제를 출제하기 위해서는 많은 독서가 바탕이 되어야 하므로 주어진 시간 안에 끝낼 수 없는 불가능한 임무라며 불만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값싼 노동력으로 하루에 세 문제씩을 즐겁게 생산하고 있는 그녀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 같았다. 하루는 그녀의 동료 중 한 인물, 항상 고려청자색 눈빛을 지니고 있는 우애경이 그녀에게 말했다. “나는 약간의 실수 때문에 서울대에 못 갔어요. 그 이후로는 모든 게 잘되지 않았어요. 이런 회사에서 문제 내는 일이나 하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내가 서울대에 가기만 했어도 나는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닌데 말이죠.” 그녀는 우애경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그런 생각이 젊은 시절을 비탄에 빠지도록 만드는 거예요.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지만 실제로 개인에 주어진 잠재력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자신의 잠재력을 직시하고 올바른 전제에서 추론을 시작해야 나의 모습을 검증할 수 있어요. 그것이 스스로를 성찰하는 과학적인 방법입니다.” 그녀는 멋있는 말이라고 생각하며 우애경으로부터 등을 돌린 뒤 다시 문제를 냈다. 모니터를 들여다보다가 이상한 소리가 나서 뒤돌아보니 우애경이 시뻘건 얼굴로 식식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다시 출제에 골몰했다. 출제를 하며 우애경에 관해 생각했다. 우애경은 왜 화가 났을까? 어떤 결과에 이르기까지 원인은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으며 때로는 그것을 먼 원인과 가까운 원인으로 분류하여 한 줄로 세워볼 수 있다. 그녀는 우애경의 화라는 결과를 가져온 원인들을 물리화학적 원인과 심리적 원인으로 구분하고 생각나는 대로 정리를 해보았다. 일단 생리 중일 수도 있다. 배가 고프거나 몸이 피곤하여 스트레스에 취약한 상태일 수도 있다. 이러한 물리적 상태가 저혈당증을 일으키고, 저혈당증은 다시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을 초래하여 뉴런 간 화학·전기신호 작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중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들은 화를 내는 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일 뿐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는 못하므로, 설령 이러한 이유가 작동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오로지 먼 원인일 뿐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녀는 우애경의 분노를 초래한 심리적 원인에 관해 생각해보았다. 가능성과 잠재력의 차이를 검토해보라는 말이 기분 나빴을 수도 있다. 그렇게 느꼈다면 그 이유 중에는 아래와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다. ①가능성과 잠재력의 차이를 검토하기 싫어서, ②가능성과 잠재력에 차이가 있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아서, ③그 말을 하는 사람(즉, 이우리)의 표정이나 말투가 기분 나빠서, ④그 말을 하는 사람(즉, 이우리)이 싫어서, ⑤아니면 모종의 의도가 있었는데 그것을 묵살당해서?(이 지점은 상상의 영역이므로 과학적 추론 불가) 위 내용 중 무엇에 해당하든 그것은 화가 나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기분이 찜찜해졌다. 알 수 없는 뭔가가 엄습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엄습하던 무언가의 실체는 다음날 점심시간부터 분명해졌다. 유난히 칼국수가 늦게 나오는 그 식당에 둘러앉아, 그녀의 동료들은 하염없는 잡담을 시작했다. 그녀는 대화에 참여하지 않기 위해 깍두기를 먹고 있었다. 잡담은 점점 석연찮은 내용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대학 시절 미팅하던 때처럼 남녀가 줄을 지어 앉아 밥을 기다리는 중이라는 데에서 시작한 잡담이 각자들의 출신대학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우애경이 유부장에게 말하기를, 유부장의 동문들과 미팅했던 것이 학창시절 가장 언짢은 일이었다고 했다. 유부장도 자신의 학창시절에 우애경의 동문들과 미팅했던 적이 있지만 유쾌하지 않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티격태격했으나 마주보는 눈빛들은 사실 뭔가를 만끽하는 중인 듯 행복해 보였다. 화제는 갑자기 신촌의 추억을 늘어놓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때껏 잠자코 있던 다른 인물이 배꽃처럼 웃으며 동참하더니 신촌의 추억을 떠들어댔고, 그들의 대화를 끊을 수도 낄 수도 없어서 가만히 듣고 있던 그녀는 칼국수가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끊을 수도 낄 수도 없는 인물로는 그녀 말고도 한 사람이 더 있었는데, 서교동에 있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서울시 서대문구 전체에 관한 추억으로 이야기가 확장되지 않는 한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지 못할 터였다. 서교동의 추억을 지닌 인물이 왠지 모를 경멸 섞인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들킬까 봐 몹시 조심했지만 아무래도 들킨 것 같았다. 그녀가 지닌 신촌의 추억이란 극장 앞에서 시외버스를 기다린 것밖에 없었으므로, 그녀는 혹시나 자신에게 어떤 질문이라도 주어질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월미도나 맥아더장군에 관한 화제가 갑자기 나오는 것은 아닐지, 그러다가 그녀가 졸업한 대학에 관한 화제가 등장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했다. 하지만 때마침 양푼에 가득 담긴 칼국수가 등장해주었고, 대화는 서대문구 창천동 일대에 관한 이야기에서 그친 채 모두 얌전히 칼국수를 먹었다. 그리고 마치 먹는 데에 열중한 것인 양 아무도 그녀에게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날 저녁, 그녀는 회사에 혼자 남아 쓸쓸히 책을 뒤지고 출제를 했다. 김소진의 ‘개흘레꾼’을 다시 읽었고, 학생운동을 하다가 유치장에 갇힌 주인공이, 허름한 차림으로 빵을 사들고 온 아버지를 냉대하는 대목을 발췌하여 문제를 냈다. 개흘레꾼의 주인공은 말했다. ‘아버지는 ㉠테제도, 그렇다고 ㉡안티테제도 아니었다. 나의 아버지는 개흘레꾼이었다.’ ㉠과 ㉡의 의미에 대한 출제를 하다 말고 그녀는 자신의 사원증을 꺼내어 바라보았다. 포토샵으로 다듬은 사진 아래에는 ‘이우리’라는 그녀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녀는 ㉠ 혹은 ㉡에 머물러 자기 자신의 의미가 규정되도록 놓아두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일단 맹렬히 출제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그 결심을 실현하기로 했다. 1. 위 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①주인공은 인천을 싫어한다. ②주인공은 우애경에 대한 반격을 결심했다. ③주인공은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자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④주인공은 ´개흘레꾼´의 주인공에게 자신의 처지를 이입하여 생각하고 있다. ⑤주인공은 자기의 인생이 남들의 인생에 포함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Ⅱ <두 번째 문제> 다음 상황에 대하여 추론한 것으로 옳은 것은. 그녀는 하루에 아홉 문제를 출제하기로 했다. 세 개의 지문을 뽑아 각각 세 개씩의 문제를 다는 데에 온종일이 걸렸다. 그러기를 일주일이면 혼자서 한 벌의 모의고사를 완성할 수 있었다. 모두가 말하길, 그녀는 인간이 아니라 출제 기계라고 했다. 그녀의 유능함에 견주어 우애경은 점점 더 무능해 보였고, 아무나 붙든 채 자기가 수능에서 한 문제만 더 맞았더라면 서울대에 갔을 것이며 이 자리에 있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런 우애경을 보며 그녀는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얼마나 열정적이고 유능한지, 모니터를 향한 거북이처럼 되어버린 자세로 하루에 아홉 문제씩을 생산한 그녀가 얼마나 탁월한 출제자인지를, 시간이 흐르면 그녀의 문제를 풀어본 수많은 학생들이 직접 증언할 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애경이 사고를 쳤다. 오전 열시의 고요한 사무실에서 들려오던 그 소리를 모두가 잊지 못할 것이었다. 처음엔 작게 시작한 그 소리가 점점 커졌고, 일본어이긴 했지만 그게 어떤 상황에서의 무슨 말인지는 누구나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소리는 우애경의 컴퓨터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모두가 우애경을 지켜보는 가운데, 우애경은 붉어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몰려든 사람들 가운데로 숨었다. 우애경 주변의 남자 사원들이 대단히 당황하더니 화면 가득한 살색 움직임들을 어떻게든 없애려 하다가 끝내는 컴퓨터를 두들겨 패듯 꺼버렸다. 우애경은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생글생글 웃으며 나 몰라라 하는 모습이었다. 인터넷 창에 지나가던 배너를 건드렸을 뿐인데 민망한 장면들이 끊임없이 튀어나오더라고 했다. 오히려 당황한 것은 남자 직원들이었는데, 그들은 우애경의 컴퓨터를 복구하느라 오전 업무시간을 다 써야만 했다. “지나가는 배너를 건들기만 했는데도 저 정도로 감염이 될 수 있나요?” 그녀는 동료들에게 물었다. 모두가 못 들은 척 했다. “지나가는 배너는 왜 건드리죠?” 그녀는 우애경을 향해 물었다. “포르노 사이트 광고였나요, 아니면 일반 광고였는데도 그렇게 된 건가요?” 그녀는 궁금한 것이 생기면 못 참는 성격이었다. 우애경은 달팽이관이나 청소골 같은 것이 없기라도 한 양 그녀 쪽은 쳐다보지 않은 채 배실배실 웃고 있었고, 속으로는 민망해 죽겠지만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하고 넘어갈 작정인 것 같았다. 그녀는 우애경과 담소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원래들 업무시간에 포르노 사이트에 들어가시기도 하는 건가요?” 정말로 궁금해서 그런 것인데, 우애경과 동료들은 아주 불쾌한 듯, 마치 포르노 사이트 접속으로 오전 업무를 마비시킨 장본인이 그녀이기라도 한 듯 아래위로 노려보더니 탕비실을 향해 우르르 가 버렸다. 그녀는 모두가 떠나 버린 사무실에 앉아 홀로 출제를 했다. 그녀는 정말로 왕따였다. 그녀는 우애경이 회사를 그만두거나, 적어도 질타를 감당하지 못해 괴로운 회사 생활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우애경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우애경의 성격이 갑자기 능글맞고 넉살 좋게 바뀌었다는 것인데, 우애경은 스스로를 희화화하는 것으로 수치스러운 그 사건을 덮어버렸다. 유부장에게 말하길 “어머, 부장님. 계속 그렇게 야근시키시면 전 또 그 배너 건드려 버릴 거예요” 라고 하거나, 다른 팀 직원에게 말하길 “다들 너무 일만 하면서 침체되어 있기에 내가 야동 바이러스 감염으로 활력소가 되어준 거잖아” 라고도 했다. 우애경은 매일 스스로 그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그동안 몰랐는데, 일본어 공부에 좋은 게 일제 동영상이더군요” 라는 말을 해서 일부 남자 직원들이 즐거워하도록 만들었으며 절묘한 순간에 “일하기 싫은 사람은 내 감염된 컴퓨터를 쓰도록 해” 라는 말을 던져 좌중을 웃기기도 했다. 그러한 일이 반복되자 우애경이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만 남고, 살색 가득하던 컴퓨터 화면에 대한 기억과, 우애경이 업무시간에 포르노를 보는 여자라는 인상은 희미해지고 말았다. 종래엔 유부장이 “앞으로 말 안 듣는 사람 있으면 우애경 씨 컴퓨터를 쓰게 할 거야”라고 농담하기도 했는데 그런 말에 모두 웃게 되기까지는 사건 후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우애경은 변죽 좋아 보이도록 성격이 바뀐 것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유능함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우애경은 아무 문제도 생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 이우리를 향해서 발톱을 세운 채 이우리가 하루에 아홉 개씩 낸 문제를 꼼꼼히 살피고, 거기서 오류를 발견해내는 것을 주요 업무로 삼았다. 각운동량보존법칙과 회전하는 나선 은하에 관한 문제에서는 은하의 나선 팔에 관한 설명 부분이 지나치게 길다고 지적했다. 실제 시험에 비해 한 단락 분량이 더 추가된 것이므로 모의고사에 수록하기에는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지적 때문에 그녀는 우애경과 한 시간을 싸워야 했다. 나선 은하의 나선 팔 부분과 중심부는 각각 산개성단과 구상성단으로서 밀도가 다르다는 점이 은하의 형성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아주 중요한 대목이라는 것을, 따라서 줄일 수도 뺄 수도 없는 부분이라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한참을 다퉜으나 그녀가 진 것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흥분하면 이마에 핏발이 서면서 얼굴이 새빨개지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마치 뭐라도 잘못해서 당황한 사람처럼 보였고, 동료들은 그녀가 곤란해 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그리고 그녀가 중력섭동이라든가 산개성단을 구성하는 중원소에 관해 자기가 공부한 내용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동안 다들 하품을 하고 듣기 싫어했다. 이마에 핏발이 선 이우리가 언성을 높여가며 하는 말들이 알 수 없는 소리라고들 했다. 반면 그에 응수하는 우애경의 논리는 아주 간명한 것이었다. “어찌 됐든 길잖아요. 지문이 너무 길잖아요. 안보여요?” 그녀가 낸 모든 문제에 관해 우애경은 어떻게든 시빗거리를 찾아냈다. 가장 억지를 부렸던 것은 ‘개흘레꾼’이 논란을 불러올 수도 있는 정치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녀는 ‘개흘레꾼’이 한 대학생의 자기 탐구와 심리묘사가 흥미진진한 작품일 뿐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라고 볼 수 없으며, 1990년대 작품이기 때문에 현 시대상황과도 직접 관련이 없다고 대답했다. 우애경은 그에 대해서도 간명하게 말했다.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 자체를 없애야 해요. 경쟁사에서 우리를 불리하게 만들 수 있는 여지를 남기면 안 돼요.” 민주화운동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라는 것과 테제, 안티테제 등의 용어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이 작품에 관해 출제된 문학 문제가 좌파 이념 전파에 기여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난번 사건을 이우리 씨가 잊은 것은 아니겠죠. 이우리 씨가 조심하지 않으면 나라도 나서서 조심할 수밖에 없어요. ‘개흘레꾼’ 문제는 폐기하는 걸로 하죠.” 그녀는 말이 안 나왔다. 혀의 근육 어딘가가 마비되어 버린 것 같았다. 우애경은 마치 그녀의 상관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고 있었다. 지난번 모의고사에서 그녀는 ‘내가 광우병에 걸려 병원 가면 건강보험 민영화로 치료를 못 받고 그냥 죽을 텐데 돈도 없고 땅도 없으니 화장해서 4대강에 뿌려다오’ 라는 안치환의 노래 가사를 문법적 오류가 존재하지 않는 정답의 선택지로 삼아 어법 문제를 출제한 바 있었다. 모의고사 시행 직후 게시판에 이의제기가 올라왔다. 출제자 중 누군가가 현 정권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을 지닌 것 같은데 이는 모의고사의 공정성과 적합성에 대한 의심을 하게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시험을 본 학생이 올린 것처럼 적혀 있었지만 회원가입일이 게시일 당일인데다가 모의고사에 응시한 기록도 없는 회원의 글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출제한 문제에 대한 비방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직접적인 비방이라고 생각했고, 직관적으로 그 글이 우애경의 짓이라고 생각했다. 본래 과학 연구에 있어 최초의 가설 설정이란 직관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녀는 ‘우애경이 자작 이의제기를 게시판에 올린 것이다’라는 가설을 수립한 뒤 그것을 검증해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 유부장은 게시판 사건 때문에 노발대발하였으나 진짜 응시자가 올린 글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며칠 추이를 지켜보자고 하더니 곧 잊어버렸다. 그녀 자신도 잊을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우애경은 잊지 않고 있었고, 모두가 잊지 않기를 바라는 듯 그것에 관해 자주 이야기했다. 그녀가 우애경에게 닦달당하고 있을 때이면 어디선가 유부장도 홀연히 나타났고, ‘그러니까 지문이 길어요, 안 길어요. 그것만 대답해요’ 라든가, ‘데모하다 잡혀가는 학생 이야기가 나와요, 안 나와요. 그것만 대답해요’ 라는 말만을 귀에 담아 들었다. 그리고 사람들 시선을 피해 유부장이 우애경의 등허리를 툭툭 치거나,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기도 했는데, 그럴 때 우애경은 청자색 눈빛으로 유부장을 응대했다. 두 사람은 왠지 서로를 치켜 주는 것을 의무라고 여기는 듯했다. 학창 시절에 서로의 동문들과 미팅한 추억 말고는 별 공통점도 없는데 왜 그러는지는 이해 못 할 일이었다. 유부장은 ‘이우리 성질을 컨트롤할 사람은 우애경 씨 밖에 없어. 우애경 씨만 믿어’ 라고 했다던데, 그런 뒤 두 사람은 함께 칼 퇴근을 했다는 말도 들려왔다. 그녀는 자신이 원했던 바대로, ㉠테제에 의해서나 ㉡안티테제에 의해서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대체 자기 자신은 이 회사의 무엇일까 하는 고민에 길게 빠졌다. 우애경과 싸우느라 흥분해서 문제의 질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아홉 문제를 꼬박꼬박 출제하리라 결심했지만 그걸 못 채우는 날이 늘어갔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모의고사 회차가 거듭되면 훌륭한 문제에 관한 학생들의 칭송이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응시생들이 점점 늘어가는 것이 바로 탁월한 출제 덕분이라고 생각하려 했으나 유부장은 그것이 자기 공이라고 했다. 모의고사의 성공은 곧 마케팅의 성공이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개판으로 문제를 만들어 놓는다 해도 나는 전국 최다 응시생을 끌어모을 수 있어.” 그녀는 학생들이 자신의 학습을 위한 선택을 함부로 할 리가 없으니, 응시생이 늘어간다는 것은 결국 훌륭한 교육물이라는 것을 인정받았다는 말이지 않겠느냐고 했다. 유부장은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우리 회사는 교육을 하는 곳이 아니야.” 그녀는 그렇다면 무얼 하는 회사인 거냐고 반문했다. 유부장은 좌중을 둘러본 뒤 선언했다. “교육 콘텐츠를 파는 곳이야.” 진정 훌륭한 모의고사, 참된 독해력과 사고력 증진의 기회를 제공하는 모의고사 등등을 운운하며 보다 열정적으로 문제를 만들어 이 세상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그녀를, 유부장은 구경하듯 바라보았다. “마케팅 비용이 문항제작비의 이십 배는 돼. 마케팅이 훨씬 어렵고 중요한 거라고. 이우리 씨의 생사 또한 마케팅에 걸려 있는 거야.” 유부장은 벽에 붙은 포스터광고를 가리켰다. ‘명문대 출신 엘리트가 만든 모의고사!’ 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당신을 법조인으로 탄생시켜줄, 업계 최고의 역작’이라는 글씨가 시뻘겋게 붙어 있었다. “응시생들은 절박한 상황이지. 어떻게든 기득권층이 되겠다는 욕심으로 가득해. 욕심으로 눈 먼 애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먹고살 거야.” 그녀는 유부장에게 따지고 들었다. 진정한 법조인이 되기 위해 그 길을 선택한 수많은 청년들이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유부장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진정한 법조인이 되고 싶은 애들이 몇 명이나 되겠어. 있다 할지라도 그놈들은 알아서 혼자 공부해. 나한테 속아 넘어갈 놈들이 아니란 말이다. 사설업체 모의고사 같은 건 안 본다고.” 동료들은 매일 놀고만 있었고, 자신들이 할당량을 채우지 못해도 이우리가 꼬박꼬박 만들어놓은 문제들이 있으니 걱정 없다는 말까지 했다. 이우리는 대체 이 회사에서 무엇인 걸까? 아무래도 자신의 정체가 진짜 출제기계인 것은 아닌지, 그래서 기계처럼 문제만 뽑아내면 이우리가 잘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그녀는 모두가 그렇게 여기는 것만 같아 괴로웠다. 빈 사무실에 앉아 밤늦도록 출제를 하고 있을 때, 대표이사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남아있는 사람은 이우리 씨밖에 없군.” 대표이사는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내가 퇴근하는 척 나가고 나면 모두가 집에 가 버릴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 대표이사는 텅 빈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누가 남아 있나 체크하러 나는 돌아왔지. 역시 이우리 씨 말고는 믿을 사람이 없어.” 대표이사는 무릎이 날깃날깃 닳은 트레이닝복을 그녀에게 자랑했다. “이건 내가 젊었을 적에 입던 옷이야. 나는 긴장을 늦출까 봐, 내가 가장 어렵던 시절의 옷을 버리지 않았어. 오늘 남아있는 직원들에게 이 옷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이우리 씨밖에 못 보게 되었군.” 대표이사는 반짝이는 대머리를 기울여 그녀의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양자역학에 관해 출제를 하고 있었네.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브라운 운동과 러더퍼드의 금박막 실험이라. 흥미로운데. 풀어봐야겠어. 나는 자네가 낸 문제의 팬이야. 힘내라구.” 대표이사는 격려하는 표정으로, 그녀의 등도 아니고 옆구리도 아니고 겨드랑이도 아니고 오른쪽 가슴도 아닌 애매한 어딘가를 톡톡 치고는 떠났다. 팬이라는 말에 기뻐하다 말고 그녀는 모호한 기분에 휩싸였다. 정확히 어디인지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찌 됐든 함부로 만져지면 안 되는 것 같은 부위에 대표이사의 손길이 남아 있었다. 찜찜한 그 부위를 괜히 긁적이며, 그녀는 대표이사가 청년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 입는다는 늘어난 트레이닝복을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 그녀가 자신의 청년기를 떠올리면 어떤 장면을 가장 먼저 생각할까. 그녀는 절박한 마음으로 취업을 모색하던 백수시절을 떠올렸다. 어디든 취직만 된다면 일단은 살 것 같은 마음이었다. 그 시절이 생각난 것 때문에 그녀는 공지영의 ‘부활 무렵’이라는 단편소설로 문학 출제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부활 무렵’에서, 병아리는 알을 뚫고 나가려 안간힘을 쓴다. 사투를 지켜보던 아이들은, 병아리가 살아갈 힘을 얻으려면 스스로 뚫고 나오게끔 놓아두어야 한다고 배웠다 했다. 하지만 주인공인 아이들 엄마는 알 껍질을 조금 뜯어내어 준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하든. 한 번만 살게 해주면 앞으로 어떻게든 사는 거야.” 대표이사의 칭찬에 힘입어 그 소설의 구절이 생각났고, 겨드랑이가 좀 찜찜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멋진 출제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에게 뻔한 미래란 없다. 청년이란 미시세계의 전자처럼 입자이자 파동인 존재이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양자역학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도 존재하니 말이다. 위 상황에 대해 추론한 내용으로 옳은 것은? ①이우리는 대표이사와 자신의 계급 차를 망각하는 우를 범했다. ②부하직원들은 그들의 상사인 유부장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와 같다. ③이우리는 자신의 업무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④대표이사가 이우리의 몸 어딘가를 만진 것은 곧 다른 데도 만질 것이라는 예고이다. ⑤회사의 인물들이 품은 동상이몽은 결국 매한가지로 거대하고도 알 수 없는 것을 지탱하고 있다. Ⅲ <세 번째 문제> 다음 상황에 대하여 파악한 것으로 적절한 것은. 그녀는 하루에 열두 문제를 출제하기로 했다. 대표이사가 그녀를 알아봐 주는 한 유부장이나 우애경이 그녀를 어떻게 괴롭힌들 상관없었다. 하루에 열두 문제라면 한 주 동안 모의고사 2회분이 생산될 양이었고, 우애경이 검토하고 흠을 잡기에도 벅찰 분량이었다. 그녀는 묵묵히 일하다 보면 모두가 자신을 인정할 거라는 생각은 버렸고, 본인이 하루에 열두 문제를 출제하고 있으며 그것은 어떤 것들인지에 관해 누가 듣든 말든 마구 이야기해대기 시작했다. 말을 많이 하느라 점심시간이면 밥을 거의 먹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부석부석 말라갔고, 밥을 씹어 삼킬 힘조차 아껴서, 문제를 내는 데에만 에너지를 썼다. 잠도 거의 자지 않았고 때로는 어차피 돌아와야 하는 것이 귀찮아서 집에 가지 않은 채 밤을 새우곤 했다. 그녀는 자신이 낸 아름다운 문제들과, 자신을 바라보는 우애경의 표정에서 희열을 느꼈다. 열두 문제를 내고 나면 뉴런 다발들이 걸레처럼 비틀어지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우애경을 이겼다고 생각했다. 우애경의 눈 속에서 청자색이 옅어진 것을 본 그녀는 우애경을 때려눕히고, 옥수수처럼 흩어진 이빨을 주워 모아 목걸이를 해 걸기라도 한 것처럼 뿌듯해했다. 어느 날의 점심시간, 그녀는 유부장에게 조언했다. “계란을 많이 드세요.” 유부장은 반찬투정을 했다. “흰자는 괜찮은데 노른자가 메스꺼워서 나는 계란을 안 먹어.” 그녀는 드디어 원인을 찾았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사십년 생애 내내 계란을 멀리 하셨나요?” 유부장은 무심히 말했다 “그랬지. 내가 싫어하는 것 몇 가지가 있지. 계란, 콩. 두부.” 그녀는 식습관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식생활에서 주된 콜린 공급원인 계란과 콩을 멀리하시니, 체내에선 아세틸콜린 합성이 원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것도 사십년째이니 결핍이 심각하리라고 예상되어요. 밤에 잠은 잘 주무시나요.” 유부장은 그녀에게 의학 상담이라도 하는 듯 진지해졌다. “잠은 쉽게 드는데 새벽에 곧 깨서는 전혀 못 자곤 해.” 그녀는 무릎을 탁 쳤다. 아세틸콜린 부족증상과 일치하고 있었다. 그녀는 유부장에게 자신이 출제한 문제를 꼭 풀어보라고 권했다. 치매의 발생과 뇌 내 아세틸콜린의 관계에 대한 문제였다. “요즘 기억력이 많이 떨어지시는 것 같아 유부장님의 뇌 내 아세틸콜린 감소폭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부디 콩을 드세요.” 그녀는 유부장을 보며 말했다. 유부장은 국에서 콩나물을 건져내고 있었다. “난 콩이 싫어.” 그녀는 유부장의 전두엽기능에 이상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도덕 원칙이 대단히 흐려진 상태인 걸로 보아서 전전두엽에 기능이상의 뉴런들이 많이 분포하고, 거기에 아밀로이드 침전물이 생겨나고, 그것 때문에 아세틸콜린 수치가 상당히 낮아지고, 낮아진 아세틸콜린 수치는 다시 전전두엽의 기능이상을 야기하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중인 것 같았다. 유부장은 어느 날, 그녀가 낸 문제들을 일괄 검토하고 싶으니 원본파일로 보내달라고 했다. 그녀는 수백 개의 문제를 유부장에게 주었다. 얼마 후, 이영준이라는 강사가 그 문제들을 묶어 저서를 출간한 것을 알게 되었다. 이영준이 말하길, 잠을 줄여 만들어낸 토끼 같고 알토란 같은 문제들을 수험생에게 바친다고 했다. 그녀는 대체 어떻게 왜, 그녀가 출제한 수많은 문제들이 강사가 출제한 문제로 둔갑하였는지를 알고 싶었다. 유부장은 별로 당황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녀를 훈계했다. “이우리 씨는 이 회사에서 월급 받고 문제를 낸 사람이고, 그 문제를 어디다 어떻게 쓸지는 몰라도 돼. 그건 회사가 결정하는 거야.” 그녀는 주변을 수소문해서 사건 경위를 알아냈다. 이영준 강사는 계약을 해제한 뒤 경쟁사로 옮겨갈 계획을 품고 있었다. 유부장은 인터넷 스타강사인 이영준을 붙들어야 했고, 저서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싱어송라이터인 가수가 사랑받는 것처럼, 직접 출제한 문제로 강의하는 엘리트 미남 강사라면 더욱 사랑받을 터였다. “그건 저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한 거예요.” 그녀는 바쁜 척, 그녀 같은 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척 사무실을 누비는 유부장을 따라다니며 말했다. “저작권에는 두 가지 개념이 있어요. 하나는 저작재산권, 다른 하나는 저작인격권. 저는 이 회사의 직원이므로 제 생산물의 재산권이 이 회사에 귀속되는 것만은 맞습니다. 하지만 저작인격권마저 유부장님이 침해하실 수는 없어요.” 사과받고 싶은 나머지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 인격권을 침해하신 점, 사과 바랍니다.” 하지만 유부장은 들은 척도 않았고, 거래처에 간다며 나가버렸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유부장은 기억력이 심히 나빠진 것 같았다. 그녀가 자신 몫으로 매달 나오는 사원복지비를 전혀 쓰지 않았던 것은 그녀가 왕따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몰랐으니 청구하는 방법을 알 리가 없었다. 하지만 관리팀 김미영 대리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무슨 소리냐며 반문했다. “꼬박꼬박 사원복지비 십 만원씩 쓰셨던데 무슨 소리예요? 유부장님이 이우리 씨 복지비 신청을 대신 해주시던데요? 제가 영수증 다 갖고 있어요.” 관리팀 김미영 대리와 함께 그녀는 그간 자신이 제출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수십 장의 영수증을 살펴보았다. 밤 열한시 삼십분에 강남역 근처에서 맥주를 마셨다든가, 백화점에서 초밥을 먹었다든가, 동반인 1인과 함께 영화를 보고, 어린이용 문구세트를 샀다든가, 향수를 사고, 햄버거세트를 먹었다든가, 디저트카페에서 타르트를 먹은 일 따위가 영수증에 씌어 있었다. 김미영 대리는 씁쓸한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유부장님이 매번 자기 계좌로 금액을 청구하시기에 좀 의아하긴 했어요.” 그녀는 왜 자기 명목의 금액을 유부장이 사용한 것인지 따져 물었다. 유부장은 청각장애가 있기라도 한 양 빤히 보기만 했는데,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인 것처럼도 보여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여러 번 천천히 쉽게 또박또박 말해보기까지 했다. 한참 후에나 유부장은 씩 하고 웃으며 겨우 말했다. “미안, 나는 기억이 나질 않네. 이우리 씨가 무슨 말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어.” 그런 뒤 유부장은 거래처에 간다며 휑하니 나가버렸다. 그녀는 허탈했고, 그리고 진짜로 자신이 뭔가 착각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기까지 했다. 그다음에는 다시 그 이야기를 할 기회가 오지 않았다. 유부장은 며칠 지방 출장을 가 있었고, 유부장이 돌아왔을 때에는 그녀가 모의고사 마감을 해야 해서 미처 싸울 틈이 없었다. 열흘쯤 지난 뒤에 사원복지비 이야기를 꺼내려 하니 마침 유부장이 활짝 웃고, 다정해 보이기도 했기 때문에 차마 그 치사한 일에 대한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저작인격권 침해라는 더 중요한 문제도 있었기 때문에 그것부터 해결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녀는 말했다. “부디 콩을 많이 드시고 착하게 사세요.” 그녀는 밥을 먹는 유부장을 바라보았다. 유부장은 들은 건지 만 건지 콩나물은 건져둔 채 국물만 마셨다. 저작인격권 침해에 관해 유부장은 끝내 이렇게 말했다. “아, 정말 짜증 나게 하네. 이우리 씨, 잘 들어. 월급 매달 제날짜에 받았어, 못 받았어?” 그녀는 월급이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했다. “네가 말하는 그것까지의 대가가 네 월급이야. 알았어?” 유부장은 내친김에 더 뻔뻔해지기로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이영준 강사한테 교재를 넘긴 건 널 위한 일이기도 했어. 이영준이 고객을 끌어모아서 돈 벌어올 거고, 그러면 그 고객들이 네 모의고사에 응시할 거야. 결국 그 이익은 너에게로 돌아갈 거고 말이야. 난 오로지 회사를 위해서 한 일이었다고.” 사과를 받지 못한 그녀는 대표이사를 찾아갔다. 대표이사는 자기 방을 찾아온 그녀를 아주 반가워했고, 대학 시절 미처 말 걸어보지 못했던 추억의 여인을 바라보듯 아련하게 미소 짓고 손수 음료도 내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하소연을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인격권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그녀가 눈물지을 때에는 티슈를 내어주기도 했다. 그녀는 대표이사가 맞장구까지 치면서 자기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에 마음이 좀 풀렸고, 울고 난 뒤에는 정신과 상담을 한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대표이사는 그녀에게 말했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이우리 씨가 그런 마음으로 회사생활을 하고 있었다니 가슴이 아프네. 그동안 몰라주어서 그게 참 미안하다.” 그러나 대표이사는 선량하고 무력한 듯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하지만 회사에는 위계질서가 있는 거야. 사원인 너의 불만을 대표인 내가 직접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면 내가 임명한 중간 관리자인 유부장의 권한을 무시한 게 돼.” 대표이사는 콧물을 닦고 있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천천히 일어나 문을 열어주었다. “생각해 볼 테니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내겐 곧 중요한 회의가 있다.” 그녀는 다 털어놓고 난 뒤의 후련함과, 그러나 결국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으므로 여전히 석연치 않은 기분을 안은 채 자리로 돌아왔다. 컴퓨터 앞에 앉아 그녀는 생각했다. 대표이사가 말한 ‘나중에’는 오늘의 나중인지, 아니면 미래의 다른 어떤 날을 의미하는 것인지? 다른 어느 날이라면 가까운 미래인지 설마 먼 미래를 의미하는 말인지? 그 ‘나중에’가 오늘 저녁을 의미하는 것일까 봐 그녀는 밤 열시가 되도록 앉아 있어 보았다. 그때껏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무얼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 허망한 희망을 품고 아주 천천히 출제를 했다. 어느 순간 등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대표이사였다. “이우리 씨.” 돌아보니 대표이사는 멋쩍은 듯 웃음을 띤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은 등 뒤로 감춘 채였다. 그녀는 순간, 자신의 가슴 속에서 희망이 반짝이는 것을 느꼈다. 대표이사는 씩, 하고 웃었다. 무릎이 허연 트레이닝 복을 입은 채였다. “일단 집에 가긴 갔는데, 이우리 씨가 생각나서 그냥 있을 수가 있어야지.” 대표이사는 혀를 살짝 내밀고 웃었는데, 그런 모습을 처음 봐서 어이가 없었다. 자기가 어렵던 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 젊을 때 타던 찌그러진 소형차를 몰고 왔다고 했다. 이따 한번 구경하지 않겠느냐고 묻는데 표정이 좀 이상해 보였다. 그녀는 대표이사에게도 치매가 시작된 것은 아닌지, 혹시 대표이사도 사십팔년째 콩이나 계란을 배제한 식생활을 하는 건 아닌지 잠시 생각했다. 의아해하며 대표이사를 바라보는 가운데, 대표이사는 새삼 주변을 둘러보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더니 그녀의 턱 앞에 손을 불쑥 내밀었다. 따뜻한 김이 끼쳤다. 손바닥에 커다란 감자 두 알이 놓여 있었다. “야근하느라 배고프지? 이거 먹어.” 대표이사는 그녀의 책상에 감자 두 알을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감자의 온기가 남아있는 손을 그녀의 등 위에 올려놓았다. 아주 짧은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대표이사의 손바닥이 그녀의 7번 경추부터 꼬리뼈까지를 훑어 내려갔다. 그녀는 그 손바닥에서 몸을 떼어냈다. 반사적으로 말이 흘러나왔다. “저는 감자 안 먹습니다. 사장님이나 드세요.”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데 뒤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돌아보았더니 대머리까지 전부 빨개진 대표이사가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감자 준 직원이 이 회사에 있는 줄 알아? 나 아무한테나 이러는 사람 아니야.” 대표이사는 잠시 입을 앙다물더니 다시 말했다. “감자 싫으면 그럼, 초밥 사다줄까? 초밥 먹을래?” 그녀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돌처럼 굳어버린 채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대표이사는 등 뒤에서 식식거리더니, 쿵쿵대는 발걸음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때가 왔다. 흐와스코의 소설에는 격리되어 철교 건설에 투입된 일꾼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건설기간 동안 그들의 모든 일상은 오로지 노동을 위한 것이었으며, 그들의 꿈은 단 한 가지, 건설현장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고대하던 그 마지막 날, 그들이 만든 다리를 떠나며 일꾼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그들은 눈물의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때 나는 그 다리가 이미 추억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앞으로도 그 철교를 건너는 사람들은 그 다리가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을 결코 모를 것이다.’ 그녀는 소설 속의 인물들이 흘린 눈물과 알 수 없이 아파오는 마음에 관해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에 관해 마지막 문제를 내고 싶었지만 그 눈물의 의미를 정확히 표현하는 것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눈물’의 의미와 위 글의 인물들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①그들의 청춘 전부가 바쳐진 다리를 자신의 창작물처럼 여기고 있다. ②가장 본질적인 것까지 쥐어짜 노동했던 일에 관해 슬픔을 느끼고 있다. ③자신들의 청춘과 자신이 만든 다리를 동일시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④박탈당한 청춘에 대한 애착이 말 못할 눈물을 흘리게 만들고 있다. ⑤드디어 노역에서 놓여났다는 기쁨보다 자신을 위해 쓰지 못한 청춘의 의미가 더 크기 때문에 눈물이 흐르고 있다……. 선택지는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⑥피 같고 살 같고 자식처럼 여겼던 대상이 고작 철교였다는 것을 깨달았으므로 그제야 흐르는 눈물이다. ⑦그들의 미래란 두고 온 날들보다 나을 것이 없으리라는 예감 때문에 흐르는 눈물이다. ⑧그들의 청춘이 누군가의 인생 속에서 부품이고 도구였다는 것에 대한 회한의 눈물이다. ⑨가장 중요한 것을 침해당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기억할 수조차 없으므로 흐르는 눈물이다. ⑩정작 울어야 할 자들이 울지 않기 때문에, 대신하여 흘려주는 눈물이다……. 그녀는 알 수 없이 굴러 떨어진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마지막 문제를 버려둔 채 자리를 떠났다. <끝>
  • 초유의 원전자료 유출 사태 “책임지는 사람 없다”

    초유의 원전자료 유출 사태 “책임지는 사람 없다”

    국가 1급 보안시설인 한국수력원자력 내부 자료가 대거 유출되는 등의 사상 초유의 사태 속에서도 정작 이번 사건에 대해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 안일한 정부 대응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원전 가동 중단 등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했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 모습이지만 이번 사태로 향후 유·무형의 국가 피해도 클 것으로 예상돼 책임론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조석 한수원 사장은 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수원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9일 이후 한수원에 대한 사이버 공격 시도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으며 현재도 이런 공격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회사 업무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내부망에 침투하려는 시도”라면서 “그러나 방어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어 실제 원전 운영에는 전혀 영향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지는 사이버 공격 역시 업무망과 원전 제어망이 완전히 분리돼 있어 안전하다는 기존 입장만을 되풀이한 셈이다. 이날 조 사장은 “국민께 심려 끼쳐 죄송하다”며 사과했지만 최근 불거진 책임론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조 사장은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을 져야 하지만, 지금 책임은 상황을 수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태가 마무리되면 책임질 의향이 있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는 “더 드릴 말이 없다. 지나친 확대해석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사실상 자진 사퇴는 불가하다는 뜻을 밝혔다. 조 사장은 그동안 개혁 노력이 해킹 논란에 바래졌다며 책임을 해커에게 돌렸다. 조 사장은 “비열한 범죄자의 공격 시도에 그동안 강도 높은 한수원 공공기관 정상화, 울진 대타협 등 모든 성과가 부정되는 현재 상황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인한 유·무형의 피해는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스스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했던 한국형 원전의 보안망이 뚫린 현재의 모양새는 원전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원전 안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커졌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한편 개인정보범죄 정부합동수사단(단장 이정수 부장)은 악성코드 이메일 5980통이 지난 9일 오전 5시∼오후 3시에 한수원 직원들에게 한꺼번에 발송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이날 밝혔다. 합수단은 “숨겨진 악성코드에는 파일 파괴, 네트워크 패킷 발생(트래픽 유발), 디스크 파괴 기능이 있었다”면서 “범인의 전체 계획을 모르는 상태에서 아직 실패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추가 공격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음을 내비쳤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檢, 임영록 소환… ‘주식 1억 의혹’ 조사

    檢, 임영록 소환… ‘주식 1억 의혹’ 조사

    KB금융의 전산·통신 납품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김후곤)는 23일 임영록(59) 전 KB금융지주 회장을 업무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밤늦게까지 조사했다. 검찰은 통신인프라 고도화사업(IPT)과 인터넷 전자등기 시스템 사업 등 지난해 KB금융이 발주한 전산·통신 사업에서 제기된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임 전 회장을 이날 오전 9시 50분쯤 소환했다. 검찰은 임 전 회장이 KB금융의 인터넷 전자등기 시스템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L사가 선정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 대가로 L사로부터 주식 1억원어치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집중 추궁했다. L사는 임 전 회장과 친분이 있는 고려신용정보 윤의국(65·구속기소) 회장이 주요 주주로 등재돼 있어 검찰은 L사가 두 사람의 친분을 이용해 로비를 벌인 것으로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윤 회장으로부터 “L사가 사업자로 선정되면 L사 주식 1억여원어치를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회장과 고려신용정보는 당시 L사 주식을 각각 6.22%, 4.04%를 갖고 있었다. 앞서 윤 회장은 회사 돈 11억 1000여만원을 빼돌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지난 12일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 돈 가운데 일부가 임 전 회장에게 흘러들어 갔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검찰은 IPT 사업자 선정에서도 임 전 회장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를 조사 중이다. 검찰은 지난해 KB금융지주 회장 선거 때 김재열(45) 전 전무가 임 전 회장과 경쟁한 민병덕 전 국민은행장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IT업체 C사를 사업에서 밀어내려 한 정황을 확인했다. 김 전 전무는 C사의 경쟁업체 M사로부터 6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지난 18일 구속됐다. 검찰은 임 전 회장이 사업자 선정기준이나 배점을 특정 업체에 유리하게 바꾸도록 지시했는지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검찰 관계자는 “아직 신병처리 여부에 대해서는 말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단독] 금융보안원 출범하기도 전에 좌초 위기

    금융보안원 초대 원장 후보로 김영린 금융보안연구원장이 선정되면서 후폭풍이 일고 있다. 반발하는 금융결제원과 코스콤 직원들은 아예 짐까지 싸서 돌아갔다. 내년 2월 출범을 앞두고 시작 전부터 난항이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보안원 초대원장후보추천위원회(추천위)는 지난 22일 김 원장을 최종 후보자로 추천했다. 이 소식에 금융보안원 설립 사전 준비를 위해 사무국에 파견돼 있던 20여명의 금융결제원과 코스콤 직원들은 추천위의 결정에 반대하는 의사 표시로 이날 1명씩만 남고 모두 회사로 돌아갔다. 금융보안원은 올해 초 발생한 대규모 카드사 정보유출 사태를 계기로 금융보안연구원, 금융결제원, 코스콤에 흩어져 있는 정보공유분석센터(ISAC) 업무를 한 곳에 모아 운영하기 위해 설립한 금융보안전담기구다. 금융보안연구원 직원 55명, 금융결제원 62명, 코스콤 39명 등이 자리를 옮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이직 예정이었던 직원들은 “세 기관 중 한 곳에 몸담았던 사람이 초대 원장이 될 경우 이직을 철회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어 출범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결제원과 코스콤 직원들은 김 원장의 추천에 대해 “약속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앞서 직원들은 “세 개 조직의 통합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확보한 중립적인 인사가 선임돼야 한다”면서 “3개 기관 중 한 개 기관 출신 인사는 배제해 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또 최종 후보로 김 원장이 유력하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금융노조와 금융결제원 노조 등은 지난 21일 성명서를 통해 “김 원장은 금감원 감독서비스총괄국장과 거시감독국장을 지낸 만큼 보안업무 전문성도 떨어지는 데다 금융보안연구원 조직을 확대하기 위한 낙하산 인사”라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금감원 퇴직 인사의 재취업 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추천위도 이런 노조의 입장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2월 2일 출범을 앞두고 코스콤과 금융결제원 직원의 무더기 이탈로 업무가 사실상 ‘올스톱’ 상태다. 내년 1월로 예정된 사원 총회조차 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얼마나 많은 인원을 데려올 수 있을지는 김 원장의 리더십에 달린 문제”라며 “한 사람씩 만나 설득하는 일이 있더라도 반쪽 출범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朴경정 문건’ 윗선 추적… 조응천 겨누나

    ‘朴경정 문건’ 윗선 추적… 조응천 겨누나

    ‘정윤회씨 국정개입 문건’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21일 박관천(48·구속) 경정이 허위 문서를 작성하고 반출한 배경 등 범행 동기를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와 관련, 검찰은 조만간 조응천(52)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재소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검찰은 박 경정이 실명을 적시하며 처벌을 요구하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보고서를 꾸며낸 과정에서 윗선의 지시나 배후가 있을 것으로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물론 나홀로 범행으로 판가름 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검찰이 조 전 비서관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박 경정에서 ‘정씨 문건’ 작성을 지시한 직속상관이었고, 최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정씨 및 청와대 측과 대립각을 세운 인물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특히 조 전 비서관을 잇단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번 사건의 의혹을 키운 장본인으로 보고 있다. 박 경정은 ‘박지만 EG 회장 미행’ 보고서에서 정씨의 사주를 받아 오토바이를 타고 박 회장을 미행한 인물로 경기 남양주 한 카페 주인 아들 A(49)씨의 이름을 적었지만, A씨는 정작 오토바이를 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또 문건 유출 관련 청와대 내부 감찰 과정에서 제출한 ‘경위서’에는 유출자로 5명을 거론했지만 이들은 전혀 관련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금만 조사해 보면 드러날 내용이라 경력 21년의 경찰관이 벌인 일치고는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범행 동기에 대한 의혹이 커지는 이유다. 조 전 비서관은 문건 반출을 뒤늦게 알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달 초 언론 인터뷰에서 “정보분실로 가면 각종 정보를 접하니 박지만 EG 회장 관련 업무에서는 나를 계속 챙겨줘야 한다고 했다”면서 “그랬더니 박 경정이 앞으로 자기가 일을 하며 참고하려고 박 회장 관련 자신이 작성했던 문건만 출력해서 들고 나갔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박 경정의 직간접적인 발언도 의미심장하다. 정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박 경정과 통화했더니 ‘위에서 시키는 대로 타이핑한 죄밖에 없다. 윗선에서 밝혀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고 주장했다. 채널A는 박 경정이 체포 직전 “내 입은 ‘자꾸’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 있을 때 조 비서관이 그런 민감한 일들을 다 시켰다. 남자가 그거 못 지키면 안 되는데. 언젠가는 내가 말할 날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조 전 비서관은 최근 페이스북에 “검찰에 출두할 때 ‘가족과 부하 직원들에게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며 “나중에 부끄러운 일을 한 게 드러나면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런 말을 했겠냐”고 의혹을 일축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정윤회 문건 파문] 檢 “朴경정, 미행보고서 작성… 지목된 인물 정윤회 모른다 진술”

    [정윤회 문건 파문] 檢 “朴경정, 미행보고서 작성… 지목된 인물 정윤회 모른다 진술”

    ‘정윤회씨 국정 개입 문건’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정씨의 박지만 EG 회장 미행설과 관련된 보고서가 박관천 경정이 작성한 것으로 17일 확인돼 검찰 수사의 ‘새로운 복병’으로 주목받았지만 이 역시 허위 문건으로 드러나는 양상이다. 앞서 지난 15일 박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오토바이 미행자를 붙잡은 사실도, 자술서를 받은 적도 없다”고 진술해 지난 3월 시사저널 보도로 촉발된 ‘박 회장 미행설’은 사실무근으로 결론날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전날 체포한 박 경정과 박 회장 측근 전씨, 미행설 문건 속에 언급된 미행자 A씨 및 전직경찰 B씨 등 복수의 제보자를 불러 미행설의 진위와 작성 경위 등을 조사했다. 하지만 관련자 대부분이 정씨 및 박 경정과 일면식도 없는 것으로 검찰조사 결과 드러났다. 특히 ‘미행 보고서’에 오토바이로 박 회장을 미행한 것으로 적혀 있는 A씨는 한번도 오토바이를 직접 몰아본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전직경찰 B씨 역시 재직 시절 정보와 무관한 업무를 했던 인물로 밝혀졌다. 검찰 관계자는 “박 회장에게서 박 경정이 작성한 3~4쪽 분량의 ‘미행 보고서’를 제출받았다”면서 “이 보고서는 청와대 등의 공문서 형태가 아니라 ‘A라는 사람이 미행했다고 B라는 사람이 말하더라’는 식으로 쓰여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행 보고서’ 속 인물들을 모두 조사했지만 다들 부인하는 취지로 진술했다”며 “미행설과 미행보고서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박 경정의 추리 소설 수준으로 잠정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 문건은 ‘정씨 문건’이 작성된 올 1월부터 시사저널 보도가 나온 3월 사이에 작성됐을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박 경정은 올 2월 16일 청와대 파견이 해제돼 경찰로 복귀했다. 지인들에게 미행설을 들었던 박 회장은 이 문건을 보고 정씨 측을 자신을 미행하는 세력의 배후로 강하게 의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검찰은 ‘미행설 문건’과 ‘정씨 문건’ 보도 과정의 연관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박 경정이 허구로 판명된 ‘정씨 문건’ 작성자이고 시사저널 보도에서도 미행설을 내사했던 인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두 문건 모두 정씨에게 치명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 이에 따라 검찰은 박 경정 등이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을 견제하기 위해 박 회장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고 언론 보도를 활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박 경정의 직속상관이던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박 경정이 미행 보고서를 썼는지 아는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의혹은 남는다. 박 경정이 왜 미행설을 ‘창작’했는지 등은 여전히 의문이다. 검찰 수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지만 의혹은 이것 말고도 여럿 남아 있다. 청와대 내부 문건을 언론 등에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는 최모(사망), 한모 경위의 범행 동기도 의문점 가운데 하나다. 검찰은 이들이 지난 2월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분실에서 당직을 서던 중 박 경정이 잠시 보관했던 짐에서 문건을 발견해 복사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상명하복의 경찰 조직문화상 직속상관 내정자의 짐을 함부로 뒤지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 경위도 여러 차례 “억울하다”는 말을 남겼다. 지난 15일 JTBC의 한 경위 인터뷰도 논란이다. 한 경위가 지난 8일 민정수석실 관계자와 만나 자백하면 기소하지 않겠다는 제안을 받았다고 직접 인정했다는 게 보도의 요지다. 그러자 한 경위 측 변호사가 “한 경위는 인터뷰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고, JTBC는 다음날 “청와대가 한 경위를 회유했다고 언급한 음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재반박했다. 언론 보도에 강경 대응하던 청와대 측은 이번 건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을 하지 않고 있어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조 전 비서관이 지난 5월 유출 문건을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오모 당시 행정관에게 전달하며 이를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에게 알리라고 한 것도 의혹투성이다. 대통령 일정 관리가 주 업무인 정 비서관이 청와대 내에서 실제로는 민정수석 등보다 더 큰 권한을 갖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세계일보가 문건 유출 사실을 경고하는 창구로 박 회장을 선택한 것도 개운치 않다. 청와대 보안 시스템에 경고음을 울리려 했다면 청와대 공식 루트를 밟아야 했다는 점에서 의문이 남는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카카오 택시’ 내년 서비스… 콜택시시장 급변하나

    다음카카오가 내년 1분기에 콜택시 애플리케이션 ‘카카오 택시’(가칭)를 내놓는다. 미국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 ‘우버’가 국내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불법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3만 7000여명의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는 다음카카오의 새 서비스가 국내 택시 승객들의 이용 패턴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회사는 17일 서울특별시택시운송사업조합, 한국스마트카드와 ‘카카오택시 서비스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카카오택시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서비스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승객과 택시기사를 연결해 주는 방식이다. 우버가 택시기사들을 배제하면서 서울 지역 택시기사들과 갈등을 빚었던 것과는 달리 다음카카오는 택시기사들과 손을 잡는 방법을 택했다. MOU에 따라 255개 택시 회사 연합체인 서울택시조합은 안정적인 기사 회원을 확보하고 지속적인 사용을 유도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승객들은 기존에 전화로 택시를 부르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이 줄어 이득이고, 택시기사들은 승객과 연결 접점이 하나 더 생기면서 수익 창출의 기회가 넓어질 수 있다고 다음카카오 측은 설명했다. 국내 콜택시 앱 시장에는 우버를 비롯해 브라질을 본사로 하는 이지택시 등 글로벌 업체가 진출해 있다. 내년에는 다음카카오뿐만 아니라 SK플래닛이 T맵 기반의 ‘T맵택시’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 같은 열기에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시장은 스마트폰 보급률이 80%에 육박하고 택시 인프라도 튼튼해 매력적이다”고 설명했다. 카카오택시는 택시 기사들의 회원 등록과 호출 확인을 위한 ‘기사용’을 먼저 출시한 뒤, 택시 호출과 배차 확인을 위한 ‘승객용’을 선보일 계획이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업무용 부동산 매입후 1년내 활용 안 하면 환류세 부과 검토

    기업이 업무용 부동산을 사들이고 1년 이내에 활용하지 않으면 ‘기업소득환류세제’상의 투자로 인정받지 못해 세금을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설비를 이용한 해외 투자도 환류세제상 투자에 들어가지 않는다. 14일 새누리당과 정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가 이런 방향으로 환류세제 관련 시행령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환류세제는 기업의 투자와 임금 증가, 배당 등이 당기 소득의 일정액에 미달하면 세율 10%로 과세한다. 기업 투자와 임금 증가를 늘려 가계 소득을 늘리겠다는 것으로 내년부터 3년간 한시적으로 시행된다. 기재부는 환류세제의 목적에 맞게 업무용 부동산만 투자로 인정하기로 하고, 업무용 부동산의 범위와 업무용으로 인정할 수 있는 부동산의 활용 시기 등을 시행령에 담을 계획이다. 부동산의 활용 시기 기준으로 구입 1년 이내가 검토되고 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현행법에 구입 이후 3∼5년 내에 투자 행위가 있으면 업무용으로 간주하는 사례가 있지만 환류세제는 3년 한시 제도여서 구입 1년 이내가 논의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업무용 부동산의 범위로는 공장 등 설비 투자에 필요한 부동산은 포함되지만 나머지 부분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최근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를 10조 5500억원에 매입한 현대기아차그룹 사례가 환류세 부과 대상으로 들어갈지 주목된다. 또 환류세제의 투자에서 해외 투자는 모두 배제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설비나 국내 부품을 이용한 부분에 대해 투자로 인정해 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제도의 실효성 제고를 위해 모든 해외 투자를 제외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영업권과 산업재산권 등 무형자산 매입은 투자로 인정한다는 방침이다. 여당 관계자는 “해외 투자 가운데 자회사에 대한 지분 투자도 많이 이뤄지고 있고 이를 받아 주면 국내 지분투자도 인정해야 하는 등 제도가 복잡해지고 실효성이 떨어진다”면서 “모든 해외 투자를 투자에 포함시키지 않는 게 더 좋다”고 설명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투자 범위와 부동산 취득의 포함 여부 등 구체적인 내용은 시행령에서 정해질 내용이며 결정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세종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단독] [기로에 선 공직사회] 공직사회 제대로 변화하려면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 방지와 공무원연금 축소에 이어 공직의 민간 개방 확대, 비선 실세의 중앙부처 국장급 인사 개입 의혹 등 일련의 상황으로 인해 공직사회가 동요하고 있다. ‘요즘 같아선 공무원으로 일하고 싶지 않다’는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터져나온다. 인사혁신처가 공직사회 활력 제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효과를 가져올지 미지수다. 이와 관련해 일선의 공무원들과 전문가들은 다양한 의견을 내놨다. 우선 공무원들은 야근·휴일 수당 현실화, 성과급 도입, 퇴직금 인상 등 임금체계 개선과 밀어붙이기식 연금 개혁으로 인해 ‘비도덕적 집단’이란 이미지가 굳어진 공직사회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봤다. 중앙부처 과장급 공무원은 10일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에서 이해당사자인 공무원이 배제되고 이에 노조가 반발하면서 정부가 공직사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킨 모양새가 됐다”며 “‘일은 안 하고 연금만 타간다’는 비판을 들으면 힘이 빠진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공무원은 “야근·휴일 수당만이라도 현실화되고 성과급제도를 도입해 일하는 사람이 좀 더 보상받는 분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중앙부처에서 근무하는 한 사무관은 “재직 중엔 자신이 맡은 업무에 대한 전문성 강화 교육, 퇴직 시점에는 관련 분야 전문성을 더욱 강화하거나 다른 분야에서 일할 수 있게 하는 재취업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신상필벌 제도의 내실 있는 운영, 생애주기별 보수·인사 체계를 기반으로 하는 경력개발 및 재교육 강화 등을 공직사회의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는 대안으로 꼽았다. 그러나 공무원연금 개혁에 따른 보상 차원에서 활력 제고 방안을 추진하는 것에는 반대하는 의견도 제시됐다. 오철호 숭실대 행정학과 교수는 “연금 개혁만을 목표로 두고 대안으로 성과급 제도, 퇴직 이후 일자리 마련 등을 도입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채용부터 퇴직까지 생애주기별 보수체계와 인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업무 숙련도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하고 전문성이 뛰어난 공무원은 민간이나 공직의 적합한 자리로 갈 수 있게끔 하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며 “연금 개혁과 성과급 지급, 재취업 경로 마련 등이 파편적으로 논의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남준 행정개혁시민연합 대표는 “부정부패를 저지르거나 정치행위에만 관심 있는 공무원은 발본색원해야 하지만 이들로 인해 전체가 매도되어서는 안 된다”며 포상제도나 공직자윤리법 등 기존 제도를 제대로 운영할 것을 강조했다. 반면 진재구 청주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가 추진하는 공직사회 활력 방안이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보상 차원이라면 의미가 없다”며 “퇴직 이후 노후보장을 위한 연금을 대신해 현재의 직무가치를 반영하는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 등은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관피아 문제 등 공직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두고 공직사회 활력이 떨어졌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라며 “무조건적인 보상은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무원들이 제 역할을 다한 뒤에야 성과급, 보상 및 승진 체계 등을 조정하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서울메트로·도시철도공사 통합 하루 680만명 수송 ‘세계 최대’

    서울메트로(1~4호선)와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가 2016년까지 통합된다. 인위적 구조조정은 없고 노조의 이사회 참여가 보장된다. 하지만 4조 6000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크게 줄일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0년간 양사 체제에 따른 인력·업무 중복과 물품 개별 구매로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면서 “2016년까지 두 기관의 통합을 마무리하겠다”고 10일 밝혔다. 실제 서울메트로의 1개 역당 관리인원은 15명, 선로 1㎞당 관리인원은 65명인 반면, 민간이 운영하는 9호선은 각각 7명, 26명에 불과하다. 통합 지하철 공사의 하루 평균 수송인원은 680만명으로 뉴욕, 파리, 베이징, 도쿄 등을 능가한다. 자산은 12조 8640억원으로 정부 공기업 304곳과 비교할 때 16위에 이른다. 시는 큰 규모를 토대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물품을 공동구매해 비용을 줄이고, 코레일처럼 민자역사 등 부동산 사업에도 뛰어들게 된다. 또 공기업 최초로 근로자 대표가 경영에 참여하는 노동이사제와 경영협의회를 도입한다. 이날 메트로 노조는 통합안의 뜻을 높이 평가했는데, 그 배경으로 꼽힌다. 민영화를 의미하는 지주회사제는 배제되며 흡수합병 또는 신설합병으로 통합이 진행된다. 하지만 걸림돌도 있다. 매킨지는 통합으로 연간 500억원의 비용 절감을 예상했지만 양사의 공동구매를 통한 이윤은 191억원뿐이다. 나머지 309억원은 인위적인 구조조정으로 인한 비용절감이다.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시는 4조 6000억원에 달하는 부채를 줄이는 혁신안을 다각도로 마련해야 한다. 또 신규 채용도 다소 줄어들 수 있다. 만일 노조가 파업하면 전 노선이 멈출 수도 있다. 서울시의 최종 목표는 수도권 지하철 운영 주체를 통합해 ‘수도권교통공사’를 설립하는 것이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한화 직원, 수개월간 ‘靑문건’ 받은 듯… 檢, 찌라시 겨누나

    한화 직원, 수개월간 ‘靑문건’ 받은 듯… 檢, 찌라시 겨누나

    청와대 문건 유출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궤도에 올랐다. 검찰로서는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 문건 속 내용이 사실무근으로 가닥이 잡혀 가자 문건 유출 부분에 ‘화력’을 집중하는 모양새다. 검찰은 9일 문건 유출 혐의로 최모 경위와 한모 경위 등 경찰관 2명을 체포하고, 한화그룹 계열사 직원 A(44)씨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 범위를 넓혀 가고 있다. 전날에는 외부 유출 정황이 뚜렷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 100여건을 청와대로부터 임의제출 형식으로 넘겨받았다. 문제가 된 ‘정윤회 문건’ 외에 다른 문건까지 폭넓게 살펴보겠다는 뜻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설 정보지(찌라시)를 강하게 성토한 점을 감안하면 ‘찌라시’에 대한 대대적 수사로 옮겨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건 유출 수사를 특정 지점, 특정 문건에 한정 짓지 않겠다는 게 검찰의 기본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까지 두 곳의 언론사로 해당 문건이 흘러들어간 것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보도를 했든 안 했든 (문건을 빼돌린 경찰관은) 모두 공무상 기밀누설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최 경위 등이 올해 2월 박관천(48) 경정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분실로 옮겨 놓은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문건들을 복사해 여러 경로를 통해 언론사 등 외부로 유출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작성자가 공직기강비서관실 또는 민정수석실(공직기강)로 돼 있는 ‘VIP 방중 관련 현지 인사 특이 동향’ ‘○○○ 비서관 비위 연루 의혹보고’ 등은 유출 정황이 확인된 문건들이다. 검찰은 올해 이러한 문건에 담긴 내용들이 언론에 보도된 것을 놓고 최 경위 등이 이를 유출했는지, 또 다른 연루자는 없는지 확인할 방침이다. 검찰은 또 한화 직원인 A씨가 최 경위 등으로부터 수개월에 걸쳐 ‘정윤회 문건’을 비롯한 청와대 문건들을 넘겨받은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트북 분석 과정에서 또 다른 문서가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업무 특성상 정보 담당 경찰관과 교류가 잦은 대기업 대관 업무 담당자 전반으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검찰은 A씨 외에 다른 대기업의 대관 업무 담당자들이 경찰 정보관 등과 수시로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는 점을 중시, 이 과정에서 청와대 문건이 대거 유포되지 않았는지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 김춘식 청와대 행정관, 박 경정 3자대질 등을 통해 문건 속 ‘십상시 모임’이 실제로는 없었다고 잠정 결론이 내려진 만큼 검찰의 칼끝이 ‘찌라시’ 시장까지 겨냥할 수도 있다. 문건의 근거가 풍문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관련 소문이 처음 유포된 때부터 확대 재생산되기까지의 과정을 검찰이 파헤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이럴 경우 경찰과 대기업 대관 업무 담당자의 유착 정도나 정보지 생성·유포 과정에서의 대기업 및 증권사의 관여 등이 드러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7일 새누리당 지도부 등과의 오찬에서 비선실세 의혹을 거론하며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이야기들에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건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시진핑 권력 독점에 밀려… ‘2인자’ 리커창도 사퇴설

    시진핑 권력 독점에 밀려… ‘2인자’ 리커창도 사퇴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권력독주 현상이 심화되면서 실질적인 권력 서열 2위인 러커창(李克强) 총리가 임기를 3년가량 앞두고 총리직에서 쫓겨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프랑스 공영 라디오 방송 RFI는 중화권 매체 명경(明鏡) 미디어그룹이 홍콩에서 발행하는 잡지 ‘정경’(政經) 최신호에서 ‘리 총리의 하차설’을 특집 기사로 게재했다고 7일 보도했다. RFI는 명경 미디어그룹 천샤오핑(陳小平) 총편집인과 가진 인터뷰 형식의 기사에서 “리 총리가 취임 20개월도 안 돼 권력 중심부에서 밀려나면서 퇴임설이 나돌고 있다”면서 “건강과 경제 운용 능력에서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리 총리가 격무에 시달리면서 지병인 당뇨병이 악화돼 공식 행사 이외에는 활동이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나빠진 데다 총리 본연의 업무인 경제 운용 능력 면에서도 한계를 보여 사퇴설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천샤오핑은 리 총리 하차설의 핵심 원인은 시진핑의 일인지배 체제 강화와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리 총리는 헌법으로부터 실권을 보장받는 중국 정부인 국무원의 수장이지만 시진핑의 친정 체제가 공고해지면서 그의 밑에서 일하는 일개 ‘직원 나부랭이’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아무리 건강이 좋고 능력이 뛰어나도 총리직을 제대로 수행하기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시 주석 집권 이후 정치와 외교는 국가주석이, 경제와 민생은 총리가 챙기는 투톱 시스템이 와해되고 시 주석에게 권력이 쏠리면서 리 총리는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시 주석은 지난 6월 총리 고유의 경제 관련 최고 직위인 당 중앙재경영도소조 조장 자리를 꿰찼으며 지난해 11월 18기 3중전회(18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에서는 경제 개혁 방안을 마련하는 전 과정을 주도하며 리 총리를 배제시켰다. 12월 현재 시 주석이 정치·경제·군사·외교·사회 등 전 분야에 걸쳐 쓴 최고 책임자 감투만 10개에 달해 집권 초 두 사람의 이름 앞글자를 딴 ‘시·리 투톱 체제’라는 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평이다. 매체는 리 총리가 물러날 경우 전국인민대표대회(국회 격) 상무위원장을 맡는 식으로 명목상 당 서열 2위를 유지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새 총리 후보로 쑨정차이(孫政才) 충칭시 당서기, 왕양(汪洋) 국무원 부총리, 한정(韓正) 상하이시 당서기 등이 거론된다. 천샤오핑은 “ 쑨정차이는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의 사람이고 왕양도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이 이끄는 공청단(共靑團) 출신”이라면서 “시진핑이 측근을 앉히려 마음먹을 경우 한정이 새 총리로 낙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서기는 2007년 시 주석이 상하이 당서기로 일할 때 상하이 시장으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키맨’ 조응천 입 열렸나… 檢, 홍경식 등 靑 윗선 조사 불가피

    ‘키맨’ 조응천 입 열렸나… 檢, 홍경식 등 靑 윗선 조사 불가피

    정윤회씨 국정 개입 문건 의혹과 관련해 5일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키맨’으로 떠올랐다. 그는 문건에 등장하지도 않고 청와대 측 수사 의뢰 대상도 아니었다. 하지만 문건 작성자인 박관천 경정의 상부 보고라인에 있었던 그의 발언이 정씨 및 청와대 측 주장과 충돌하며 의혹을 눈덩이처럼 불렸다. 더 이상 참고인일 수 없는 이유다. 검찰은 조 전 비서관을 상대로 그가 언론 인터뷰에서 “문건의 신빙성이 6할 이상”이라고 주장한 근거를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그는 “(문건) 내용이 실제 모임에 참석해서 그 얘기를 듣지 않았으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세한 것으로, 모임에 참석했던 사람에게서 그 이야기가 나왔다고 보고받았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전날 고소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은 김춘식 청와대 행정관은 “문건에 적힌 식당에 가 본 적이 없다”며 회동 자체를 부인했다. 또 회동 장소로 알려진 서울 강남의 J중식당 사장은 참고인 조사에서 ‘십상시’ 모임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각자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검찰은 국민이 납득할 만한 근거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객관적인 근거로 회합 여부를 파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건 작성 경위에 대한 조사도 강도 높게 진행됐다. 조 전 비서관은 “지난해 말 김기춘 비서실장이 사표를 낸다는 얘기를 듣고 실장이나 수석이 시킨 건지 기억나지 않지만 (지시를 받아) 박 경정에게 알아보라고 지시했다”면서 정상적인 업무 과정이었다고 주장했다. 홍경식 전 민정수석비서관 등 당시 조 전 비서관 윗선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문건 유출 의혹과 관련해 조 전 비서관은 지난 5~6월 민정(수석비서관실)에 올라간 한 문건에 박 경정이 아닌 제3자가 범인으로 지목됐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여전히 ‘제3자 유출설’에 힘을 실어 주는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그 같은 내용을 누구에게 들었는지 집중 추궁했으나 뚜렷한 대답을 이끌어내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박 경정이 청와대 파견 종료 뒤 잠시 짐을 보관했던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분실 등을 압수수색하고 정보1분실 경찰관 두 명을 임의동행해 조사하면서 수사 대상을 박 경정과 그 주변인으로 좁혀 가고 있지만 조사 결과에 따라 청와대 관계자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재만 총무비서관을 포함한 청와대 측근 3인방 등 핵심 관계자의 통화 내용을 자체 확보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도 보인다. 한편 이날 오전 내내 서울 종로구 세계일보 사옥과 서초동 검찰청사 주변에서는 “세계일보 압수수색이 임박했다”는 소문으로 어수선했다. 세계일보는 급박하게 움직였다. 오전 11시 40분께 한 직원은 경비원에게 “엘리베이터를 멈춰라. 셔터를 내리고 대비하라”고 당부했다. 현장의 취재진에게도 “영장이 떨어졌다”고 알렸다. 세계일보는 압수수색을 거부하기로 하고 편집국 기자들을 긴급 소집하는 등 전날 밤부터 영장 집행에 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소동은 검찰 관계자가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한 적도 없다”고 공식 부인하면서 진정됐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를 음해하는 세력이 (소문을) 유포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경제 블로그] 사외이사제 수술… 모범 규준 될까

    금융위원회가 사외이사 제도를 뜯어고치겠다며 지난 20일 발표한 ‘금융사 지배구조 모범 규준’을 놓고 말들이 많습니다. 임기가 1년으로 줄어든 만큼 사외이사들이 자리 보존을 위해 지금보다 더한 ‘거수기’가 될 수도 있고, 당국의 지나친 간섭이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금융 당국은 ‘읍참마속’이라며 “눈물을 머금고 선배(퇴직 관료)들을 쳐낸 것”이라고 항변합니다. 경영, 회계 등 현장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주로 사외이사를 맡도록 ‘장벽’을 쳐 놨으니 실무 지식이 없는 교수, 공무원이 판치는 사외이사 제도의 폐단이 줄어들 것이라고도 자평합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회의에서 “앞으로 나는 뭐 먹고 살아?”라고 농담을 던질 정도였답니다. “인력 풀(pool)이 되겠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당국은 이 제도 덕에 앞으로 ‘퇴직 금융인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인력 구조조정 등 일찍 자리를 떠난 금융권 실무 경험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금융권의 말은 좀 다릅니다. 금융사를 떠난 지 2년이 안 됐거나 해당 금융사에 1억원 이상 거래가 있는 사람은 사외이사가 안 되는데 이런 수십 가지의 결격 사유를 다 따지다 보면 대상자가 많지 않다는 겁니다. 금융사 직원들의 업무량만 폭주할 것이란 자조도 나옵니다. 가뜩이나 ‘은행 혁신성 평가’까지 당국에 내놔야 하는데 이제는 사외이사 추천 사유부터 활동비 내역, 재평가 등의 공시 항목이 산더미 같다고 합니다. 당국은 “그만큼 사외이사들이 망가졌기 때문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물론 사외이사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강화하자는 취지는 좋습니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들어야 합니다. 공시 목록이 대폭 늘면 투명성 제고는 될지 몰라도 개별사의 운영과 관련된 자율성은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독립성을 잃고 정부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지요. 특히 규준에 맞추려고 형식적인 공시를 하다 보면 현실을 왜곡하거나 표면적인 보고만 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사외이사 평가를 할 만한 전문성을 갖춘 외부 기관이 많지 않은 것도 문제입니다. 일감이 몰리면 그 평가기관에 누가 있는지를 놓고 논란이 될 수도 있지요. 또 다른 ‘옥상옥’이 생겼다는 볼멘소리도 나옵니다. 금융위는 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조만간 보완책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이번에는 현장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정말 ‘모범적’인 규준을 만들기 바랍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도 넘은 공공기관 직원 일탈] 일탈, 원천봉쇄하는 사기업

    A대기업에 재직 중인 김모(38) 과장은 지난해 갑자기 그룹 감사실의 호출을 받았다. 감사실 관계자는 옆자리의 직원이 해외 출장 중에 법인카드로 개인적인 쇼핑을 하고 선물비용으로 처리했는데 김 과장이 이를 알고 있었는지 캐물었다. 김 과장은 “혹시나 알고도 보고하지 않았다는 오해를 받을까 봐 며칠을 끙끙 앓았다”면서 “직원은 그 돈을 다 물어내고 지방 지사로 발령이 났고, 곧바로 회사를 관뒀다”고 말했다. 민간기업 관계자들은 공기업 직원들의 일탈 행위에 대해 “정상적인 사기업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부분의 대기업이 재무, 구매, 영업 마케팅 등 이권이나 금전이 오가는 분야에 대해 상시감시 체계를 갖추고 있고 모든 시스템이 전산화돼 개개인의 활동이 투명하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비정상적인 카드 사용이나 직원 외근 패턴을 전문적으로 밝혀내는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직원이 따로 있을 정도다. 인맥, 학맥 등을 감안해 거래처와의 사적인 관계가 있으면 업무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원칙을 세워 놓는 기업도 많다. 인맥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오해를 받을 가능성 자체를 없애는 게 최근의 추세다. 회사 돈으로 유흥업소를 출입하는 등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유용하는 일도 거의 없어졌다. 삼성 계열사 재무부서의 한 관계자는 “비정상적인 업소나 거래처 등은 영수증만 조회해도 곧바로 적발된다”며 “일부 직원끼리 공유하는 새로운 편법이 감사실이나 총무부서에 알려지는 데 1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직원의 비리나 유용, 편법 사건이 발생하면 이름만 거론돼도 조직 내 출세는 힘들어진다는 게 요즘의 인식”이라면서 “남의 일이라고 알고도 모른 척했다가는 나중에 책임을 묻게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의 발달로 사생활 관리도 직장 생활의 중요한 덕목으로 인식된다. 불륜이나 금전 관계 등이 회사 전체에 소문나 주변의 따가운 눈총과 의심을 받게 되는 데는 불과 몇 시간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소문을 낸 사람에 대해서도 철저히 추적해 처벌하는 추세다. 얼마 전 현대차그룹에서는 특정 여직원과 관련된 소문을 카카오톡 등으로 사내에 퍼트린 직원들이 공개적으로 징계를 받기도 했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통영함 비리’사건의 전말과 마녀사냥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통영함 비리’사건의 전말과 마녀사냥

    지난달 말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와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방산비리를 이적행위로 간주한 뒤 사정당국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대검찰청 반부패부를 중심으로 감사원과 국세청, 관세청, 경찰, 군 검찰부와 기무사령부 등 관계 기관의 최정예 수사 인력이 총동원되어 검사장급 간부를 단장으로 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방산비리 합동수사단이 다음 주부터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어서 이번 수사가 1990년대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것처럼 ‘제2의 율곡비리’ 사건으로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방산비리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사정당국의 대대적인 수사까지 이르게 된 데에는 세월호 참사라는 계기가 있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직후 해군은 가용 함정과 구조인력을 총동원해 구조 작업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신형 구조함 통영함이 방산비리에 연루되어 전력화가 지연되고, 이로 인해 구조 현장에 투입되지 못하자, 일부 언론이 ‘방산비리 때문에 구조함이 투입되지 못해 우리 아이들이 죽었다’는 보도를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 보도는 전 국민을 분노케 했고, 여기서 시작된 분노는 실제로 부정을 저지른 실무자들은 물론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애꿎은 사람들까지 마녀사냥의 희생양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세월호 구조 현장에 통영함이 가지 못한 진짜 이유 무려 476명을 태운 여객선이 침몰하고, 300여 명이 넘는 승객이 침몰하는 선체 안에 갇히는 전대미문의 끔찍한 참사가 발생하자 해군은 대북 경계 작전에 투입 중인 전력을 제외한 모든 전력에 총동원령을 내렸다. 구조활동 지휘본부 역할을 담당할 대형 수송함 독도함을 비롯해 구조함은 물론 고속정과 호위함, 구축함 등 전투용 함정까지 사고 해역으로 급파해 생존자 수색 및 구조 활동에 총력을 기울였다. 해군은 시험평가 단계였지만 아직 정식으로 인수하지 않은 통영함 투입도 준비했다. 해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 1차장이 해군참모총장 명의의 공문을 전결해 대우조선해양, 방위사업청 등 관계기관에 통영함을 구조 현장에 즉각 파견할 수 있도록 투입 준비 지시를 전달했고, 방위사업청의 요청으로 해군과 방위사업청, 대우조선해양 3자 간 ‘인수 전 통영함 사용에 관한 합의각서’를 체결했다. 해군이 통영함을 구조 현장에 투입하려 했던 것은 일부 언론 보도처럼 선체고정음탐기(HMS : Hull Mounted Sonar)나 수중무인탐사기(ROV : Remotely Operated Vehicle)를 활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HMS는 수중에 있는 물체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음파탐지기이기 때문에 구조대가 세월호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당시 상황에서는 필요 없는 장비였고, ROV는 사고 해역의 조류가 너무 강하고 시계가 불량해 투입이 불가능한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고 해역에는 4월 21일과 5월 25일 미국 최고의 수중무인탐사업체 비디오레이(Video Ray)가 투입되었으나, 아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철수했을 정도로 사고 해역의 수중 환경은 ROV를 운용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해군이 통영함을 구조 작전에 투입하려 했던 것은 HMS나 ROV 때문이 아니라 챔버(Chamber) 때문이었다. 세월호 생존자 수색 작전은 거센 물살 때문에 장비 대신 사람이 목숨을 걸고 조류와 싸워 가며 선체에 진입해야 하는 작전이었고, 잠수사들은 30~40m까지 잠수해 생존자 수색 및 구조 작업을 벌였다. 바다에서는 수심이 10m 깊어질 때마다 1기압씩 수압이 증가하는데, 이 때문에 잠수사들 체내에서는 높은 압력으로 인해 질소가 몸 밖으로 배출되지 못하고 혈액 속에 녹아들면서 잠수병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깊은 수심에서 급격하게 부상해 수면 위로 올라올 경우 폐 속의 공기가 급속도로 팽창하면서 폐 조직이 파열돼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따라서 잠수사들은 인위적으로 높은 압력 환경이 조성되는 감압 챔버(Hyperbaric chamber)에 들어가 2~5시간씩 감압치료를 받아야 하며, 이러한 치료를 받더라도 24시간 이내에는 다시 잠수하면 안 된다는 것이 미 해군이나 국제다이빙협회, PADI(Professional Association of Diving Instructors)의 강력한 권고 사항이다. 통영함에는 최대 8명이 동시에 감압치료를 받을 수 있는 감압 챔버 시설이 탑재되어 있었고, 이는 3기의 감압 챔버를 갖춘 청해진함이 운용 상 문제가 발생할 경우 예비로 투입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210일 간의 구조 작전 기간 내내 청해진함과 평택함, 다도해함의 감압 챔버 시설은 정상적으로 작동했고, 동시 투입될 수 있는 잠수사의 수가 제한되어 있던 상황에서 감압 챔버의 수는 이미 충분한 상황이었다. 더욱이 통영함이 수행할 수 있는 임무는 이미 현장에 투입되어 있었던 청해진함이 모두 수행하고 있었고, 통영함의 경우에는 아직 시험평가와 승조원 임무수행 훈련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섣부른 투입으로 인해 장비 오작동이나 승조원 과실이 발생할 경우 구조요원들의 생명까지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 하에 해군은 통영함을 구조 현장에 투입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일부 언론은 “HMS와 ROV 문제 때문에 세월호가 구조 작전에 투입되지 못했고, 이 때문에 더 많은 희생자가 생겼다”라고 몰아가고 있다. 이는 7개월 넘게 필사적으로 구조 작전에 매달렸던 해군에게 ‘수고했다’는 격려 대신 더 많은 희생자를 만들었다는 오명을 뒤집어씌우는 것이다. -선체고정음탐기와 수중무인탐사기 논란의 진실 해군이 통영함 인수를 거부했던 가장 큰 이유는 선체고정음탐기(HMS)와 수중무인탐사기(ROV) 때문이었다. 현재까지 나온 언론 보도들은 통영함의 HMS는 미국 하켄코(Hakenko)로부터 납품 받은 제품이 탑재되어 있는데, 소나 성능이 1970년대 건조된 평택함과 같고, 실제 가격은 2억 원인데, 방사청이 납품 받은 가격은 40억 원 수준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평택함은 1968년에 영국에서 건조되어 미 해군이 뷰포트(USS Beaufort)라는 이름으로 운용하다가 1996년 한국해군에 넘겨준 구조함이다. 해군은 당시 평택함을 넘겨 받으면서 평택함의 HMS를 미국 WESMAR가 제작한 WESMAR-3000 신형 소나로 교체했다. 이 소나는 2000년대 초반부터 전력화된 미 해안경비대의 2,000톤급 주력 구조함인 주니퍼(Junifer)급에도 탑재된 신형 소나로 일부 언론에서 보도하고 있는 것처럼 1970년대 수준의 골동품이 아니며, 이번에 문제가 된 통영함의 하켄코(Hakenko) 소나 역시 WESMAR-3000과 동급의 장비이기 때문에 임무 수행이 불가능할 정도의 불량품은 아니다. 다만 고성능의 최신 장비를 요구하는 해군의 작전요구성능(ROC)을 충족하지는 못했을 뿐이고, 선정 및 계약 과정에서 실무진의 비리가 있었을 뿐이다. 2억 원짜리 소나를 20배인 40억 원에 구입했다는 보도 역시 사실과 다르다. 하켄코 소나의 가격은 소나 자체의 가격(Unit cost)는 2억 원이지만, 음파 수신 및 분석기, 수중 음문데이터베이스 및 조작 콘솔과 이를 통영함에 통합하기 위한 체계 통합 비용 등이 포함된 전체 가격(Program cost)이 약 40억 원이었고, 이를 소나 제작사인 하켄코가 통합해 납품하면서 40억 원이라는 바가지를 씌운 것이었다. 각 업체로부터 실제 납품 가격을 조사해 취합한 결과 이 장비들의 전체 가격은 약 17억 3,000만 원이었다. 수중무인탐사기(ROV) 문제의 경우 당초 해군에서 요구한 장비는 고성능 초음파 카메라가 장착된 모델이었다. 수중 탐색과 구조작업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장비였기 때문에 이 장비의 경우 군에서 요구 성능을 제시하면 납품업체에서 성능에 부합하는 장비를 찾아 장착하는 도급 방식으로 확보해야 했지만, 방위사업청 통합사업관리팀은 “납기가 장기간 소요되며 구조함의 성능상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장비이기 때문에 관급으로 확보”한다고 결정해 버렸다. 즉, 어떤 수준의 장비를 탑재할 것인가를 소요군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총괄 부서인 방사청이 결정해 버린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최초 납품된 ROV에는 해군이 요구한 고성능 초음파 카메라가 아닌 상대적으로 저가(低價)인 음파 탐지기가 장착됐고, 해군은 성능 평가 후 인수를 거부했던 것이다. -해군참모총장이 무조선 책임져라? 통영함 비리와 관련해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는 일부 정치인들이 ‘해군참모총장 책임론’을 제기했다. 야권에서는 황기철 해군참모총장이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부장으로 재직하면서 문제가 된 HMS와 ROV를 관급으로 공급하겠다고 결정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면서 황 총장이 형사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주장대로 황기철 해군참모총장이 이번 비리의 몸통일까? 사실관계를 확인해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황 총장은 관급과 도급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도 없었고 그러할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방위사업청은 다른 정부기관과 달리 공정성과 투명성을 위해 사업단계별로 관련 부서의 직능을 분리해 업무를 추진한다. 방위사업법령 제12조와 방위사업관리규정 제16조에 따라 함정사업부장은 △함정분야 사업계획 수립 △함정분야 사업에 대한 국산화 계획의 수립과 업무의 조정・통제 △함정분야의 각종 위원회 운영에 관한 업무 △함정분야의 사업관리를 위한 부내 한시조직의 구성 및 운영 △함정분야 사업에 대한 추진성과 분석 및 차후 사업계획의 반영 등의 업무와 권한을 가지고 있다. 즉, 함정사업부장은 통영함 사업에 대한 진행 경과를 보고 받을 수 있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사업관리 실무를 맡고 있는 '통합사업관리팀의 의사 결정 과정에 개입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문제가 된 HMS와 ROV 납품 비리의 책임은 해당 장비의 평가 결과를 허위로 기재해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로 구속된 최 모 전 중령과 오 모 전 대령에게 있다. 이들은 금품을 받고 업체의 제안서 평가 결과를 위조했고, 사업팀 내 공문서를 변조해 “납기가 장기간 걸리며 구조함의 성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장비이기 때문에 관급으로 조달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통합사업관리팀의 결정을 이끌어내고, 이를 기종결정위원회에 보고해 승인을 얻어냈다. 즉, 조달 방식을 관급으로 바꿔 조달 과정에서 소요군인 해군이 성능 미달 등을 이유로 제동을 걸고 나설 수 있는 여지를 없애버린 것이었다. 황기철 총장은 방위사업법 시행령 제25조의 3의 제4항에 의거, 기종결정위원회 위원장으로서 통합사업관리팀에 있던 범인들이 위・변조한 협상결과와 시험평가결과 보고서를 검토하고 중대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여기에 서명해야 한다. 그러나 함정사업부장 예하에는 10여 개의 사업팀이 존재하고, 당시 황 총장은 함정 16종 및 장비 928종의 획득 사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최 모 전 중령과 오 모 전 대령이 올린 보고서에서 ‘중대한 문제’를 찾아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사업부장이 이러한 중대한 문제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업체와 직접 협상하고, 현장에 나가서 직접 장비를 뜯어보고 운용해보면서 성능을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17억 3,000만 원 규모의 장비를 40억 원에 계약한 것 역시 업체가 제시한 가격이 타당한지를 평가하는 통합사업관리팀과 계약관리본부의 업무 영역으로 함정사업본부장이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감사원 역시 황 총장을 수사했지만 이번 비리에 황 총장이 연루되었다는 근거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고, 오히려 각종 '규정'과 '시스템'으로 인해 의사 결정 과정에 황 총장이 개입할 수 없었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었다. 제복을 입은 군인으로서, 혹은 국가의 녹을 먹는 공무원은 국가와 국민, 공익을 위해 헌신해야 하며, 관직에 있으면서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기 위해 국익과 공익을 저버리는 자, 특히 국가안보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며 사익을 쫓는 자는 이적행위자로서 일벌백계해야 한다. 하지만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주장 또는 보도하며 무분별하고 과도한 처벌을 요구하는 마녀사냥은 자칫 평생 제복을 입고 전선(戰線)에 살며 명예를 먹고 사는 이들의 사기를 꺾고 절망으로 내몰 수 있다.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방산비리 합동수사에서 정치적 의도와 사심이 철저히 배제된 투명하고 공정한 수사를 기대해 본다. 이일우 군사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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