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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앵란
    202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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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선 D-5]권역별 격전지-경기 서남부

    [총선 D-5]권역별 격전지-경기 서남부

    경기 서남부 벨트는 4년 전 17대 총선에서 탄핵 바람과 함께 줄줄이 당선됐던 민주당 현역의원들이 한나라당의 정치신인과 비례대표 의원, 전직의원 등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는 지역이다. 이곳의 선거 결과가 의회 권력의 향배를 상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대 혼전 속에서 후보들은 3일 피투성이의 백병전을 펼쳤다. 아직은 인지도 면에서 걸출하지 않은 민주당 초선의원들이 한나라당 후보들의 공세를 턱밑에서 받아내고 있다. 수원 권선에서 민주당 이기우 후보는 이날 어린이 성추행 사고에 민감한 지역민심을 의식, 자정이 넘도록 민간 방범순찰대 초소를 순회 방문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한나라당 정미경 후보도 새벽 5시부터 자정까지 시장 등을 도는 체력전으로 맞섰다. 성남 수정의 민주당 김태년 후보는 오전 4시30분 새벽기도회 참석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한나라당 신영수 후보는 태평역에서 출근길 시민들에게 인사하는 것으로 거리유세를 시작했다. ●성남 중원·평택갑 전현의원 복수혈전 안산 단원을에서 민주당 제종길 후보는 별망중학교 녹색어머니회 모임을 찾는 등 경쟁자인 한나라당 박순자 후보에 맞서 주부 표심 파고들기에 나섰다. 비례대표인 박순자 후보는 고잔동 등 거리유세로 맞불을 놓았다. 수원 영통의 민주당 김진표 후보는 매탄동 등의 시장과 아파트를 돌며 저인망 유세를 펼쳤다. 방송인 출신의 한나라당 박찬숙 후보는 엄앵란·신성일·임호·이용식씨 등 ‘유명인 협찬’ 유세로 맞섰다. 시흥갑에서 민주당 백원우 후보는 ‘제3경인고속도로’ 건설 촉구 집회에 참석하는 등 지역민심을 파고들었다. 한나라당 함진규 후보는 전직 시흥시의장 등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시흥을의 민주당 조정식 후보는 강금실 선대위원장과 정왕동 등을 돌았고, 한나라당 김왕규 후보는 김덕룡 선대위원장과 중앙동 등을 훑었다. 군포에서 재선의원인 민주당 김부겸 후보는 주민자치센터 노래교실 참석 등 친화력 위주의 유세를 했다. 한나라당 유영하 후보는 박근혜 전 대표가 보내준 유세지원 동영상을 틀면서 광정동 등 무려 40군데를 도는 게릴라식 유세를 불사했다. 4년 전 금배지를 뺏겼던 전직 의원들이 복수를 벼르고 있다. 성남 중원에서 두 차례 국회의원을 지낸 민주당 조성준 후보는 이날 강금실 선대위원장과 합동 유세를 벌였다. 수성에 나선 한나라당 신상진 후보는 은행시장 등 ‘골목 유세’로 대항했다. ●안산 상록을 현역의원 없어 대혼전 평택갑에서는 전직 의원을 지낸 한나라당 원유철 후보가 아침 6시부터 기차역 등에서 “경제 선진화는 여소야대에서는 해낼 수 없다.”면서 지지를 호소했다. 민주당 우제항 후보는 통복동 등을 돌며 “땅부자 내각을 견제해야 한다.”고 맞섰다. 안양 동안갑에서 민주당 이석현 후보는 강금실 선대위원장과 공동유세했다. 반면 노무현 정부의 건교부장관을 역임한 한나라당 최종찬 후보는 노인정 등 바닥을 훑었다. 현역 의원이 없는 안산 상록을은 한나라당, 민주당, 친박연대, 무소속 등의 정치 신인들이 대혼전을 벌이고 있다. 한나라당 이진동 후보는 이날 남경필 경기도당 위원장과 광덕시장 등을 돌았고, 친박연대 홍장표 후보는 차량을 이용해 양상동 등 거리를 훑었다. 김상연 나길회 구동회기자 carlos@seoul.co.kr
  • 할리우드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김기영 감독 ‘하녀’ 복원

    할리우드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김기영 감독 ‘하녀’ 복원

    할리우드의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66) 감독이 김기영 감독의 영화 ‘하녀’(1960) 복원에 나선다. 한국영상자료원 조선희 원장은 12일 기자들과 만나 “스코세이지 감독이 이사장으로 있는 세계영화재단(WCF)과 한국영상자료원이 함께 ‘하녀’를 디지털 복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세계영화재단은 총예산 1억 7600만원 중 1억 2000여만원을 지원한다. 올해 세계영화재단이 복원할 영화는 세 편. 스코세이지 감독은 이 가운데 ‘하녀’를 직접 추천했다. 그는 ‘하녀’ 특유의 분위기와 블랙 유머, 그로테스크함에 매료돼 이사회에서 1시간 동안 복원의 당위성을 설명했다는 후문이다. 현재 완성된 프린트가 남아 있지 않은 ‘하녀’는 8권의 각기 다른 필름을 짜맞춰 복원된다. 복원된 ‘하녀’는 오는 5월 프랑스 칸 영화제 클래식 부문에 출품될 예정이다. 김진규, 엄앵란, 이은심 등이 출연한 영화 ‘하녀’는 한 중산층 가정에 들어온 하녀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가족의 붕괴를 다룬 작품이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청춘영화 대표작 다시 본다

    청춘영화 대표작 다시 본다

    1960∼80년대를 대표하는 청춘영화를 무료로 본다. 한국영상자료원(www.kmdb.or.kr)은 2월 한달간 당대 영화계의 한 계보를 이룬 청춘영화 대표작 6편을 VOD로 보는 기획전 ‘20세기 청춘독본, 청춘의 초상을 만나다’를 연다. 1964년 ‘맨발의 청춘’이 등장하며 근대화 이후 젊은이들의 암울한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대변했던 청춘영화는 신성일, 엄앵란, 문희, 남정임 등의 스타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한국 모더니즘의 수작으로 불리는 이만희 감독의 ‘휴일’(1968년)도 소개된다. 다양한 영상 실험과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의 음악이 돋보이는 ‘태양 닮은 소녀’(1974년),‘바보들의 행진’의 속편 격인 ‘병태와 영자’(1979년), 김기영 감독의 ‘바보사냥’(1984년) 등도 다시 볼 수 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신성일(申星一) 찾는 신성일

    신성일(申星一) 찾는 신성일

    『제2의 신성일을 키우겠다』『「올·뉴·페이스」의 영화를 만들겠다』 『백만장자가 되겠다』새해로 접어들면서 영화계에 꿈틀거리는 벅찬 의욕들. 좀더 풀이하면 감독으로 「데뷔」하는 신성일이 자신의 후계자 물색에 나섰고, 상업감독으로 알려진 정인엽(鄭仁燁)이 「뉴·시네마」운동을 펼치고, 「톱·스타」남궁원(南宮遠)이 신발장사로 돼지꿈을 펼치게 된것. 『연애교실』이란 작품을 가지고 감독으로 「데뷔」하는 신성일은 요즘 마땅한 새얼굴 찾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그가 찾는 신인은 남녀주연급 각 1명씩. 남자는 21~22살가량의 청년(가급적 대학생) 으로 운동신경이 발달된 사람. 미남일 필요는 절대로 없으나 사진발이 잘 받는 개성있는 얼굴일 것. 여자는 천성적으로 생기발랄한 19~20살 처녀.역시 빼어난 미모보다는 개성있는 얼굴 이어야 하고 키가 절대로 1백60cm를 넘지 말 것. 『현역 여배우처럼 축 처진 인상이어서는 안된다』고 강조. 이런 조건을 내걸은 신성일은 각 대학교와 양복점, 양장점, 이발소, 미장원, 목욕탕까지 그가 동원할 수 있는 세포망을 총동원해서 신인 색출작전을 펴고있다. 일단 뽑은 신인은 3년간 자신과 계약하고 『책임지고「스타」로 만들겠다』 는 공약. 감독으로 「데뷔」하는 목적중의 하나가 이 신인배우 양성이라고 신성일은 힘주어 말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뽑아놓기만 하고 한두작품으로 버림받은 배우지망생의 비극을 숱하게 보아왔다』고 말했다. 감독될 생각은 오래전부터 막연히 품어왔다고 한다. 직접적인 계기는 작년 11월 14일 그들의 결혼기념일에 아내 엄앵란(嚴鶯蘭)의 권고가 불을 붙였다. 『이제 자신의 시간을 가져야 할때』라고 말하는 그는 『내 영역은 어디까지나 청춘물의 주역이다. 그런데 지금 나이(34)로는 젊은 연인역도 중년남성역도 어울리지 않는다』 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스타」로서의 인기가 떨어지니까 재빨리 새길을 잡는거라는 일부의 빈정거림에 대해서는 『인기떨어지면 감독 된다고 한다면 감독들이 화낼거』라고 담담한 반응. 지금 출연중인 12개 작품은 평상 편수의 절반도 못되지만 작품수를 줄이는쪽은 오히려 신성일 자신이라는게 정확할 것 같다. 『로맨스 빠빠』(59연도)이후 11년간 그가 해낸 주연영화는 약 4백70편. 감독에의 전업 이란 말을 극히 꺼리는 그지만 출연 작품을 줄이려는 건 자연스런 추세다. 『내가 하고싶었던 발랄한 현대젊은이 상을 이제 내가 뽑은 신인을 시켜 내가 만들어보겠다는 거죠』그는 감독으로서도 자신이 있다는 표정이다. [선데이서울 71년 1월24일호 제4권 3호 통권 제 120호]
  • [안녕하셔요] 첫 딸 낳고 진짜 연기하겠다는 태현실(太賢實)양

    [안녕하셔요] 첫 딸 낳고 진짜 연기하겠다는 태현실(太賢實)양

    68년 10월 결혼과 함께 영화계를 떠났던 태현실(太賢實·30)양이 KBS-TV를 통해 연기자 생활로 되돌아왔다.『우선은 TV에만 나가고 좋은 영화 있으면 영화일도 해낼 생각』. 깡말랐던 체구가 몰라볼만큼 좋아졌는데『연기력도 전보다는 나아졌을거』라고 자신에 차있는 발언이다. ”멋을 아는 시아버지는 언제나 제편이랍니다” 태현실양의 연기생활 복귀가 TV 「드라머」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퍽 재미있는 일이다. KBS-TV「탤런트」1기생이었던 그는 당초부터 TV가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2년전 연기생활을 중단할때의 최후 작품도 역시 TV극, TBC-TV의『부각하』였다. -다시 돌아온 기분은?(이 물음에 태현실은「컴·백」이란 단어가 자신에겐 어울리지 않는다고 이의를 달았다) 『제가 언제 은퇴했나요? 결혼당시엔 심신이 피로해서 출연을 못했을 뿐이지요. 이제 건강도 회복됐고 아기도 많이 자랐으니까 다시 해보는거죠』 아기는 3개월전에 첫돌을 지낸 첫 딸. 이름을 수연(修演)이라 했다. -부군께서는 반대하지 않으셨나요? 『결혼초엔 피차간에 가정생활에만 전념키로 약속을 했어요. 아기를 낳고 살림을 하려니 자연 그렇게 되더군요. 이제는 연기생활을 겸해도 집안일에 지장이 없으니까, 반대할 이유도 없어진거죠. 더구나 시아버님이 제편이거든요?』 태현실양의 부군은 청년실업가 김철환씨(金哲煥·31). 「플래스틱」계통의 공업사 삼도실업(三都實業)의 사장이다. 3남2녀의 맏이. 그러니까 태현실양은 이 김씨 집의 맏며느리. -시아버지께서 퍽 현대적이신가보죠? 『광산업을 하고계신데 해외에 자주 드나드시니까 젊은이들보다 멋을 아셔요』 후암동에 있는 태현실양의 집은 부자2대의 사장집답게 큼직했다. 2백평가량의 대지에 1백평의 일본식 저택. 정원에는 향나무와 등덩굴이 어울려 저택분위기를 한결 돋보이게 했다. -결혼생활은 예상했던것처럼 행복한 것인가요? (태현실양은 잠깐동안의 침묵끝에 입을 열었다) 『별 탈없이 평탄하게 지낼수 있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는거 아녜요?』 -그렇게 행복한건 아니란 말인가요? 『천만에요. 저희들은 서로 오랫동안 교제하다가 결혼한걸요. 결혼전에 서로의 성격을 잘 이해하고 있었어요』 시간적인 여유 충분해 연기에 전념 하겠다고 태현실양의 말대로 그녀는 영화계에「데뷔」한 다음해부터 교제를 시작했다.「데뷔」작『아름다운 수의』가 62연도에 나왔고, 68년 10월에 결혼했으니까 사실이라면 6년간의 연애. 6년간 커다란「스캔들」없이 배우생활을 했던 것도 이「스테디」가 있었기 때문일까? 어쨌든 6년간의「스타」역정에서 그녀는『새드·무비』『가짜여대생』『용서받기 싫다』『길잃은 철새』등 1백50편의 영화를 해냈다.「톱·스타」로 영화계에 군림했던 엄앵란(嚴鶯蘭)양이 결혼하고「스크린」과 멀어질때 태현실은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여배우 판도를 주름잡을수 있었다. 문희(文姬), 고은아(高銀兒), 남정임(南貞妊)의 세 배우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져나오지 않았던들 태현실의 위치는 좀 더 달라졌을게 분명했다. 사실상 68년 결혼할 무렵에 그녀는『도중 하차하는 기분』이라고 자의반, 타의반의 은퇴(?)를 아쉬워했었다. -「스크린」에 대한 그리움 같은건? 『사실상 집에 묻힌 2년동안 잠시도 잊을순 없었어요. 남편이나 가정에 대한 집념과 연기생활에 대한 애착은 전혀 별개의 것임을 깨달았어요』 -가정생활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뜻인가요? 『그보다 항상 무엇인가 답답하고 허전한 것 같았어요. 제가 할 수 있고 몰두할수 있는게 있어야 했어요. 아이가 이만큼 자란 지금은 연기속에 파묻힐 수 있는 여유가 충분히 생길 것 같아요』그러면서 태현실양은 『진짜 연기는 이제부터 할것같다』고 덧붙였다. 처녀「스타」가 흔히 나타내는「여자로서의 행복론」에 그녀는 이미 불안해하지 않아도 좋은 때문일까? 『처녀때는 사실 시집간다는 문제도 연기 못지않게 마음을 불안케 해요. 저는 그런 일이 없으니까 한가지 일은 해치운 셈일까요?』 요즘의 국산영화는 거의가 좋지 않아요 -그동안 영화출연 교섭같은건 받아보지 않았는지? 『왜요, 어떤분이 각본을 가져왔어요. 읽어보니까 마음에 썩 들지 않아요. 좀 좋은 작품이 나오면 해보고 싶어요』 -좋은 작품이란? 『요즘의 국산영화는 거의가 좋지 않은 것같아요. 장난삼아 만드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헐렁할 수가 있어요? 영화의 질이 2년전보다 후퇴한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그녀는 시간이 나는대로 새로 나오는 영화는 반드시 구경했다고 말한다. 재미를 찾기위해서가 아니라 영화와 멀어지지 않으려는 노력에서. 그리고 다시「카메라」앞에 설때를 대비한 공부였다고 다짐한다. 겹치기 출연 절대않고 작품다운 작품 골라서 -연기에 대한 자신은? 『건강이 좋아진 만큼 노력할 여유가 생겼다는 자신이죠』 단 겹치기 출연따위는 절대로 있을 수 없고, 하더라도 1년에 몇편 작품다운 작품에서 연기다운 연기를 하겠다고 못박는다. 『사실 겹치기에 쫓기는 연기자들, 한편으로 생각하면 불쌍해요. 한꺼번에 10여편씩 맡아가지고 밤잠 제대로 못자면서 이곳저곳으로 끌려다니며 중노동하듯 촬영을 하니 연기가 제대로 나올 수 있어요? 시간여유가 없으니까 공부도 못하고 건강은 자꾸 나빠지고』- 겹치기 얘기가 나오자 갑자기 말수가 많아진다. 『그렇게해서 큰 돈버느냐면 그렇지도 못해요. 받는 것은 연수표고 나가는 것은 현금. 그리고 쓰는데가 좀 많아요? 「스타」가 됐다면 몇십명씩 가족을 거느리게 되고 결국「스타」는 돈버는 기계가 되고 말지요』 -체중은 얼마나 늘었는지? 『결혼할때 45「킬로」였는데 지금 54「킬로」예요. 나이먹는 징조일까요?』 그러나 태현실의 얼굴은 2년전보다 훨씬 아름답게 가꾸어져있고 무르익은 여자다운 분위기를 풍겨주고 있었다. [선데이서울 70년 9월 27일호 제3권 39호 통권 제 104호]
  • [일요영화]

    ●울려고 내가 왔던가(EBS 오후 11시) 우리 영화의 고전 멜로를 꼽으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울려고 내가 왔던가’이다. 김화랑 감독의 대표작. 사랑하는 한 남자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도 결국 이별을 하고마는 한 여인의 기구한 운명을 그리고 있다. 영화 제목인 ‘울려고 내가 왔던가’는 얼마전 타계한 가수 고운봉이 불러 큰 사랑을 받았던 가요 ‘선창’의 노랫말에서 따와 화제를 불러 모으기도 했다. 요정에서 일하는 성실은 태현과 사랑하는 사이로 둘의 사랑이 영화를 이끌어 간다. 애인인 태현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는 성실은 어느 날 손님으로 온 윤 사장에게 태현을 소개해 준다. 태현은 윤 사장의 도움으로 공부를 하러 가고 성실은 그런 태현을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한편 윤 사장에게는 옥경이라는 딸이 있는데, 옥경이는 태현에게 사랑을 느끼고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펼친다. 그러던 차에 성실과 윤 사장의 사이를 오해한 태현은 옥경과 결혼을 하고 성실은 태현의 행복을 빌어주는 전형적인 고전 멜로이다. 이 작품이 60년대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극적 재미를 더하기 위해 여러 가지 요소와 장치들을 가졌기 때문. 전쟁으로 인한 부모와의 이별과 재회, 뒷골목 친구와 나누는 남자 주인공의 우정 등이다. 여러 가지 다른 이야기들이 사랑 이야기라는 큰 틀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영화의 완성도를 한층 높였다. 도금봉을 비롯해 김진규, 엄앵란, 최남현, 황해, 황정순 그리고 허장강 등 당대 최고 스타들의 열연을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1960년작.92분. ●무인 곽원갑(OCN 오후 10시) 무도 정무문의 창시자이자 중국을 대표하는 무술인 곽원갑을 영화화한 작품. 이연걸의 마지막 액션물이라고 해서 더 화제가 됐다. 어려서부터 전통 있는 무인가문에서 태어난 곽원갑은 권법서적을 남몰래 연구하여 고수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힘을 악용하여 제자를 다치게 한 상대방 스승을 죽이기에 이른다. 이 때문에 자신의 어머니와 딸이 상대편 스승의 아들에게 죽임을 당하자 심한 충격에 휩싸이며 은둔의 길을 떠난다. 오랜 은둔 생활로 무인의 자질과 참 깨달음을 얻은 그는 고향으로 돌아오는데….2006년작 106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노원구 교양대학 깔보지마 도올 김용옥등 유명인 특강

    ‘구청 교양대학이라고 우습게 봤다간 큰코다칩니다.’ 독특한 강의로 화제를 뿌리는 도올 김용옥이 구청을 찾는다. 서울 노원구(구청장 이노근)는 노원교양대학 강좌의 일환으로 내달 1일 노원구민회관에서 도올 김용옥의 ‘자녀교육과 우리민족의 미래를 위한 특강’을 실시한다고 26일 밝혔다. 구민의 정신건강과 실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해 지난 2004년 7월에 개설된 노원교양대학은 그동안 41회의 강좌가 열렸다. 강사만 해도 배우 엄앵란에서부터 한영실 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연예인 김병조, 소설가 신달자씨 등 유명인사들이 즐비하다. 유명인사의 강의가 이어지면서 한달에 두번 열리는 강좌에는 무려 700여명이 몰린다.참가비는 무료. 자세한 사항은 주민자치과(950-3026)로 문의하면 된다.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60~70년대 ‘국민가수’로 명성 오기택 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60~70년대 ‘국민가수’로 명성 오기택 씨

    아빠가 있다. 늘 곁에서 든든하게 지켜준다. 하지만 어느새 멀어지기 시작했다.1997년 외환위기(IMF)때였다. 고개 숙인 아빠들이 늘어났다. 며칠동안 방황하다 힘없이 돌아오는 아빠들이 많았다. 이무렵 생겨난 동요가 새삼 생각난다. ‘딩동댕 초인종 소리에 얼른 문을 열었더니/그토록 기다리던 아빠가 문 앞에 서 계셨죠/너무나 반가워 웃으며 아빠 하고 불렀는데∼/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시계바늘을 40년 전으로 돌린다.6·25전쟁의 후유증, 배고픔과 가난으로 아빠들은 많은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자식들에게만큼은 가난을, 무지를 물려주지 않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꾹꾹 참고 견뎠다. 한(恨)도 그리 많아 두다리 쭉 펴고 잠을 제대로 자본 날이 얼마였을까. 그런 1966년에, 노래 하나가 툭 튀어 나왔다. ‘이 세상의 부모마음 다같은 마음/아들 딸이 잘 되라고 행복 하라고/마음으로 빌어주는 박영감인데/노랭이라 비웃으며 욕하지 마라/나에게도 아직까지 청춘은 있다/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부라보 부라보 아빠의 인생’ 이 노래는 당시 아빠의 심정을 대변이라도 하듯 전국적으로 급속히 퍼졌다. 이른바 국민가요로 애창됐다. 이심전심, 세월이 지난 IMF때에도 자주 불렸다. 지금도 회갑잔치나 40대 이상의 남성들이 거나하게 술한잔 마시면 단골로 나오는 노래 메뉴 중 하나다. ●해남서 내년부터 ‘오기택 가요제´ 개최 특유의 저음 가수 오기택(64). 분명 한 시대를 풍미했다. 지난 63년이었다. 밤깊은 서울 마포에서 바라본 영등포는 불빛만 아련했다. 은방울자매가 부른 ‘마포종점’의 가사 중 ‘돌아오지 않는 사람 기다린들 무엇하나’처럼 영등포는 먼 곳이었다. 또 있다. 오죽하면 ‘진등포’였을까. 사람마다 장화를 신고 다녀야 할 정도로 늘 땅이 젖어 있었다. 이럴 때 스무살의 젊은 청년 오씨가 불현듯 나타나 ‘영등포의 밤’을 구성지게 불렀다.‘궂은 비 하염없이 쏟아지는 영등포의 밤/내가슴에 안겨오는 사랑의 물결∼/아 영원히 잊지 못할 영등포의 밤이여’ 한자락 쫙 깔린 바리톤 목소리로 가슴을 후벼 팠다. 당시 영등포 사람들은 거의 ‘애국가’처럼 불렀다. 고단한 민초의 삶을 토해냈고 미래의 꿈과 사랑을 위한 이중주였으니….3년 뒤에는 남궁원·엄앵란 주연으로 같은 제목의 영화가 나왔고 노래를 부른 오씨까지 출연하면서 ‘영등포의 밤’은 공전의 히트를 쳤다. 뿐만 아니다. 오씨는 66년도에만 ‘아빠의 청춘’에 이어 ‘고향무정’‘충청도 아줌마’‘마도로스 박’을 연이어 불러 히트치면서 단숨에 국민가수로 떠올랐다.‘구름도 울고 넘는 저 산아래∼’로 시작되는 ‘고향무정’은 타향살이에 지친 많은 사람들에게 진한 향수의 리얼리즘으로 다가갔다. 지금도 명절때 가족끼리 만나면 즐겨 부른다. 또 명사들을 만나 18번이 뭐냐고 물으면 ‘고향무정’을 꼽는 사람이 많다. ‘충청도 아줌마’ 역시 지금의 40대 이상에겐 한두 소절의 가사를 중얼거릴 정도로 친숙해져 있다.‘와도 그만 가도 그만 방랑의 길은 먼데 충청도 아줌마가 한사코 길을 막네∼’ 두번에 걸쳐 10대가수상을 받은 오씨는 그렇게 60∼70년대를 풍미했다. 일본까지 원정갈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그가 녹음한 노래만 무려 1000곡이 넘는다. 지금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모든 부와 영예, 인기를 뒤로 하고 외롭게 혼자 재활치료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작은 아파트에서 노래말처럼 ‘아련한 불빛’과 ‘쓸쓸한 여의도 비행장’을 생각하며 회한에 빠져 있다. 이런 그에게 최근 반가운 소식 두가지가 날아들었다. 첫번째는 전남 해남군에서 내년 10월부터 ‘오기택 가요제’를 개최한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충청도 아줌마’의 노래비가 곧 세워진다는 것. ●바다낚시 갔다 뇌출혈로 죽을 고비 오씨를 만나기 위해 아파트 문을 노크했다. 불편한 다리 때문에 한손으로 벽을 기대며 애써 맞이한다. 오씨는 10년전 6시간의 뇌수술을 받고 깨어나 언어장애와 왼쪽 팔·다리 마비증상이라는 고통을 안고 살아야 했다. 그러니까 1996년 12월30일이었다. 낚시광인 그는 제주 추자도로 혼자 낚시를 떠났다.10일간 낚시할 수 있는 야영 준비물을 챙기고 도착한 곳은 상(上)추자의 ‘염섬’이라는 무인도. 이날 오후 50㎝ 크기의 감성돔 3마리를 기분좋게 낚고 상추자 주민들과 새해 첫날을 맞이할 생각에 들떠 있었다. 내일은 폭풍주의보라는 라디오 뉴스가 흘러나왔다. 철수 준비를 서둘렀다. 하지만 오기로 돼 있던 배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루가 지난 31일에도, 그 이튿날에도 배는 오지 않았다. 휴대전화도 없어 연락할 방법조차 없었다. 1월2일 아침. 폭풍주의보가 해제됐다는 뉴스를 들었다. 배가 곧 오겠지 하며 다시 짐을 꾸렸다. 이때였다. 갑자기 어지러움 증세와 함께 왼쪽 팔·다리의 힘이 쭉 빠지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운이 없게도 바다쪽으로 경사진 낭떠러지 바로 앞이었다. 게다가 솔잎이 바닥에 널려 있어서 조금만 움직여도 미끄러져 바다에 떨어질 판이었다. 겨우 오른손을 뻗어 옆에 있는 소나무 가지를 잡았다. 설상가상, 팔에 힘이 점점 빠졌다. 바지의 허리띠를 겨우 풀어 오른손을 소나무에다 칭칭 감았다. 캄캄한 밤이 됐다. 배가 고프면 솔잎으로 허기를 채웠다. 입술이 덜덜 떨릴 정도로 진눈깨비의 추위까지 엄습했다. 아무 노래나 마구 불러댔다. 부처님과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몸 전체가 꽁꽁 얼었다. 낚싯배가 온 것은 1월3일 오전 10시였다.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극적으로 구출된 오씨는 제주경찰청 헬기로 긴급 후송돼 제주 한라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았다.4일 오후에는 대한항공편으로 서울 성모병원으로 옮겨져 뇌수술을 받았다. “뇌출혈이지요. 평소 혈압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찔했습니다. 해병대에서 고된 훈련을 받았기에 24시간을 버텼다고 생각합니다.” 오씨는 손목의 흉터를 보여준다. 당시 소나무에 감겨진 자국이다. 침이란 침은 다 맞아보고 약이란 약은 다 써봤다고 했다. 독자로 태어나 세살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마저 일찍 작고해 오랫동안 혼자 살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0년동안 재활치료하느라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혼을 안 한 후회도 많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향인 해남에서 먹을 것을 조금씩 보내주는 훈훈한 인정이있었다. 치료비는 잘나가던 시절 벌어놓은 것으로 충당했다. ●날마다 헬스클럽서 걷는 연습 평소 운동으로 단련된 체력과 강한 의지로 언어장애는 약간 극복했지만 노래 부를 정도는 아니다.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하루에 한번 동네 헬스클럽에 가서 힘겹게 걷는 연습을 하며 재활치료를 하고 있다. 매년 그랬듯이 올겨울에도 쑤셔오는 몸 때문에 태국에 가서 요양할 예정이다. “그때 ‘영등포의 밤’을 불러 영등포 지역의 땅값이 많이 올랐습니다. 노래요? 어릴 때부터 잘한다고 했지요. 고복수 선생님이 운영하는 동아예술학원에 들어가면서 가수가 됐습니다.” 오씨에겐 두가지 이력서가 있다. 가수와 골프.80년부터 시작한 골프실력은 88년 제5회 광주CC 챔피언 등 각종 아마추어대회에서 10여차례나 우승을 거머쥐었다. 뭐든지 열심히 해야 한다는 특유의 성미 덕분이다. 나이가 비록 60대 중반이지만 가수로서의 재기의욕도 그만큼 강하다. 노래가 좋아 결혼도 못했다는 그는 잠시 창너머 한강쪽을 바라본다.“정말 아까운 노래들이 많아요. 생전에 팬들에게 보답하는 기회가 꼭 한번 왔으면 좋겠네요.” ■ 오기택이 걸어 온 길 ▲1943년 해남 출생 ▲59년 서울 성동공고 졸업 ▲62년 동아예술학원 2년 수료 ▲61년 제 1회 KBS 주최 직장인 콩쿠르대회 1등입상 ▲63년 ‘영등포의 밤’‘가버린 영아’로 데뷔 ▲65년 해병대 만기제대 ▲67년 제2회 부산문화방송 10대 가수상 수상 ▲75년 한국연예인협회 이사 ▲79년 동협회 가수분과위원장 ▲86∼91년 일간스포츠 초청 연예인 자선골프대회 연속 우승 ▲90년 싱가포르 렉스오픈 아마추어 1위 ▲97년 1월 추자도 인근 무인도에서 낚시 도중 뇌출혈로 쓰러짐 ▲2006년 반야월 가수예술공로상 수상 # 주요 히트곡 ‘아빠의 청춘’‘영등포의 밤’‘고향무정’‘충청도 아줌마’‘찾아온 고향’‘비내리는 판문점’ 등. 현재까지 1000여곡 발표 km@seoul.co.kr
  • 노원구, 배우 엄앵란 초청강연

    ‘행복의 홈런을 날려라.’ 서울 노원구(구청장 이노근)가 12일 오전 10시 구민회관 대강당에서 한국 영화계를 대표했던 배우 엄앵란씨를 초청, 강연회를 개최한다. 강연회는 노원구가 구민 정신건강과 실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주제를 선정해 실시하고 있는 노원교양대학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강연에 나서는 엄앵란씨는 ‘가정 희망 전도사’로 TV프로그램을 통해 걸쭉한 입담으로 가정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강의는 한때 좌절의 시기를 맞기도 했지만 이를 극복한 엄앵란씨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높은 곳에 올라가면 자연히 또 낮아지고 낮아지면 반드시 높아지는 것이 인생이며, 사랑받는 아내, 존경받는 엄마가 되기 위해 여성은 남편의 아내로서 또는 어머니로서 가정을 보듬어야 한다.”는 내용을 들려줄 예정이다.또 청춘 영화에서의 청순한 이미지에서 강인한 한국 여성상을 대표하는 어머니로 자리잡은 엄앵란의 독특한 삶과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자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을 웃음과 감동을 섞어 전달한다.참가비는 무료이며, 문의는 주민자치과 950-3026.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노원구, 배우 엄앵란 초청강연

    ‘행복의 홈런을 날려라.’ 서울 노원구(구청장 이노근)가 12일 오전 10시 구민회관 대강당에서 한국 영화계를 대표했던 배우 엄앵란씨를 초청, 강연회를 개최한다. 강연회는 노원구가 구민 정신건강과 실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주제를 선정해 실시하고 있는 노원교양대학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강연에 나서는 엄앵란씨는 ‘가정 희망 전도사’로 TV프로그램을 통해 걸쭉한 입담으로 가정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강의는 한때 좌절의 시기를 맞기도 했지만 이를 극복한 엄앵란씨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높은 곳에 올라가면 자연히 또 낮아지고 낮아지면 반드시 높아지는 것이 인생이며, 사랑받는 아내, 존경받는 엄마가 되기 위해 여성은 남편의 아내로서 또는 어머니로서 가정을 보듬어야 한다.”는 내용을 들려줄 예정이다.또 청춘 영화에서의 청순한 이미지에서 강인한 한국 여성상을 대표하는 어머니로 자리잡은 엄앵란의 독특한 삶과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자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을 웃음과 감동을 섞어 전달한다.참가비는 무료이며, 문의는 주민자치과 950-3026.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톱·스타 10년 신성일의 영광과 고독

    톱·스타 10년 신성일의 영광과 고독

    10년간 주연작품이 5백편에 육박하고 있다. 국산영화의 3분의1 이상이 신성일(申星一·33)의 것이었다면 신성일아성(申星一牙城)이란 낱말만으로는 모자란다. 5백편 주연이란 기록은 세계 어느 영화사에도 있을 수 없고 앞으로도 있을 것 같지 않다. 한 마디로 60년대의 국산영화는 신성일에 의한, 신성일을 위한 신성일의 것이었다고 할 수 밖에. 10년 겹치기·5백편주연 3천만원 짜리 집도 짓고 영화제작자·연출자는 신성일(申星一)의 「스케줄」에 따라서 촬영 일정을 정한다. 배우가 촬영 「스케줄」에 따르는게 아니고 제작자가 배우의 「스케줄」에 맞춰 촬영계획을 짜는 것이다. 신성일이 한 영화에 주는 시간은 보통 1개월에 하루 정도를 꼽고 있다. 그가 이틀동안 출연해야 한다면 그 영화는 한 달을 더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69년에 내놓은 작품이 개봉된 것만도 이미 50편. 요즘도 『만종(晩鐘)』(신상옥(申相玉)감독)을 비롯해서 15편에 동시 출연 중. 한 때는 최고 33편의 겹치기 기록을 세웠다. 아무리 쉽게 만드는 영화라 해도 초인적인 정력이다. 겹치기 출연의 강행군 속에서 10년을 보내 신성일의 오늘의 느낌은-. 『연애 한번 못한다고 병신이라고 하더군요. 한가지만 바라보고 살았으니까 그 말이 곧 내 생활의 일면을 말해주는 것 같아요』 배우 신성일은 있어도 인간 강신영(姜信泳 본명)은 잃은 것 같다면서 『허무하다』고 덧붙인다. 그가 『로맨스·빠빠』(신상옥감독)로 「스타돔」에 나선게 59년(개봉은 60년). 10년간 나라에 바친 세금만도 5천만원이 넘는다. 68년에 7백20만원을 낸 그는 69년도에도 7백만원을 내어 연예인 중 최고 납세자의 위치를 계속 유지했다. 국가소득을 증대시켰다는 점에서도 신성일은 매우 중요한 인물. 23세 때 병아리 「스타」 신성일은 서울 종로구 계동에서 구화 1만7천환짜리 하숙생활을 했다. 신(申) 「필름」이 내놓은 별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 신성일(申星一)이 그 때 신「필름」에서 받은 월급이 지금돈으로 5천원(구화 5만환). 하숙비 주고 옷 사입고 용돈이 항상 모자랐다. 그러나 3년 뒤엔 가회(嘉會)동에 50만원짜리 전셋집을 얻었고 다음해엔 소격(昭格)동에 1백20만원짜리를 샀다. 지금 살고 있는 이태원(梨泰院) 집은 63년에 7백20만원을 주고 산 것. 2층집을 전면개수해서 건평 1백52평, 싯가 3천만원 짜리 4층 저택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가옥구조의 변천으로 비유해 본 신성일의 경제성장률. 청춘(靑春)영화 「붐」타고 출세길 상대역 돼야 여우(女優)도 햇빛 10년동안 신성일의 상대역이 된 주요 여배우는 지금의 부인 엄앵란(嚴鶯蘭)과 김지미(金芝美), 태현실(太賢實), 김혜정(金惠貞) 그리고 문희(文姬), 고은아(高銀兒), 남정임(南貞任), 윤정희(尹靜姬) 등이다. 이 중 절반이 자의든 타의든 「스크린」과 멀어졌다. 신성일의 상대역이 됐다는 건 곧 「톱·스타」가 됐다는 증거고 상대 역에서 떨어졌다는 건 바로 인기저락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문희, 남정임, 윤정희의 3차전이 벌어지기 시작할 때 세 배우는 신성일과 공연하기 위해 남모를 경쟁을 벌였다. 신성일의 의사에 의해 상대역이 결정된다는 소문도 있었다. 지금 이들 세 여배우가 차지하는 신성일과의 공연 비율은 대충 3대 1 정도, 어쨌든 공평하게 나눠졌다. 5백편에 육박하는 작품이지만 신성일의 위치를 확고히 다져준 건 60년대 상반기의 청춘(靑春)영화 「붐」이었다. 『가정교사』 『맨발의 청춘』 『성난능금』 등 당시 「아카데미」극장 단골의 청춘영화는 신성일의 「포스터」를 그려붙이는 것만으로도 우선 「만원사례」였다. 신성일의 연기개안으로 꼽을 수 있는 작품은 유현목(兪賢穆) 감독의 『아낌없이 주련다』지만 그가 꼽는 대표작은 『안개』 『까치소리』 『날개』 등 문예영화. 청춘 영화에서 올린 「스타」로서의 명성이 문예영화 「붐」에서 완숙의 연기력으로 결실한 셈이다. 「톱·스타」 10년의 신성일이 생각하는 「스타」의 조건은? 그는 『영화적인 「센스」 70%와 30%의 양식』이라고 단정했다. 『해보지 않은 사람은 영화연기가 퍽 안이한줄 알고 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주의를 집중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예민한 관찰력, 적응 능력이 있어야 한다-』 『한국 연예인들이 「스캔들」때문에 기를 못 펴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양식의 문제다. 30%의 양식을 70%로 활용하면 그런 것(스캔들)에 말려들 우려는 없다』 인기있는 날까지 배우로 현역 물러나면 감독생활 『연애 못한다고 감정이 메말랐다는 평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스타돔」에 오르고 정상을 극복한다는게 그리 쉬운줄 아는가?』 주변을 돌아볼 틈도 없이 오직 영화만 알고 살아 온 생활이 오늘의 위치를 갖다준거라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착실히 살았기 때문에 대중이 좋아하고 아껴주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그러나 정상만 바라보고 뛴 생활이 그 자신에게서 사생활을 빼앗아갔다고 후회도 했다. 『전혀 인생을 즐겨보지 못했어요. 위축된 생활, 긴장과 초조감으로 살았을 뿐인 걸요』 그래서 이제는 밤 12시 이후의 촬영은 안하기로 결심했다. 시간이 나면 「무스탕」자가용에 부인 엄앵란을 태우고 경인(京仁)고속도로 「드라이브」를 즐긴다. 70년 부터는 작품을 골라서 출연함으로써 무리한 겹치기를 안할 생각. 『사실 요즘 국산영화는 찍으면서도 의욕을 못 느껴요. 모두 여성취향의 눈물 영화 뿐이라 진력이 나요. 국산영화도 방향을 바꿔야 해요』 -앞으로 10년간은? 『인기가 유지될 때까지 배우를 하겠어요. 배우가 인기에 무관심하다는 건 거짓말이고 언제든 대중이 싫다면 물러서는거죠. 그렇게 되면 감독생활을 해볼 생각입니다. 그동안 여러 감독과 작품 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출연만 할게 아니라 내 마음에 맞는 작품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는 얼마 전 상영된 『아듀·라미』같은 남성적인 영화. 「여자(女子)」행렬의 영화에 진력이 나서 「남자(男子)」용의 영화를 해보고 싶단다. 어쨌든 60년대 「스크린」을 휩쓴 그의 위치는 이제 「스크린」 안에만 제한돼 있진 않다. 연 7백만원 납세자인 그의 집엔 정치, 경제, 문화계 인사들의 출입이 잦고 단순한 「팬」 이상의 교류(交遊)를 즐기고 있다. 신성일이 어느 때쯤 정치가(政治家)가 되겠다고 나설지 전혀 부정만 할 일도 아니다. [선데이서울 69년 12/21 제2권 51호 통권 제 65호]
  • ‘와와쇼’ 찰떡궁합 DJ 배칠수·전영미

    ‘와와쇼’ 찰떡궁합 DJ 배칠수·전영미

    요즘 개그맨은 물론 웬만한 연예인이라면 조금씩 하는 것이 성대모사다. 그래도 성대모사의 지존은 있다.SBS라디오(러브FM·107.7Mhz)의 인기 프로그램 ‘배칠수·전영미의 와와쇼’(매일 낮 12시20분∼2시)를 진행하는 방송인 배칠수와 개그우먼 전영미가 그들이다.2시간 남짓 성대모사로 이뤄진 콩트를 쏟아내는 입담을 들으면, 그들의 성대모사가 타의 추종을 불허함을 느낄 수 있다. 성대모사 커플로 공인된 그들의 라디오 DJ 생활과 재미있는 성대모사 비법을 들어봤다. ●“눈빛만 봐도 알아요” 72년생 동갑내기인 그들의 인연은 2001년쯤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시작됐다.2002년 신설된 와와쇼에서 배칠수는 김학도와 함께 DJ로, 전영미는 게스트로 참여해 성대모사 실력을 뽐내다가 2004년 봄부터 김학도 대신 전영미가 DJ를 맡으면서 성대모사 커플로 자리잡았다. 전영미는 “벌써 6년째 다양한 프로그램을 같이 하다 보니 가족보다 더 친한 사이가 됐다.”면서 “특히 칠수는 국어에 강하고 발음도 정확해 시어머니처럼 잘 챙겨준다.”고 치켜세웠다. 매일 만나 일하다 보니 서로 호칭이 자연스럽게 ‘칠수야’‘영미야’다. 특히 타이틀을 함께 외치거나 곡을 소개할 때, 콩트 애드리브를 할 때 연습을 하지도 않았는데 손발이 너무 잘 맞아 자신들도 놀라는 적이 많다고 했다. 황금시간인 낮시간에 타 방송사 프로그램과 경쟁하기 때문에 긴장도 많이 되지만, 같은 시간대에서 가장 젊은 DJ들인 만큼 비슷한 나이의 청취자들도 끌어들이려고 노력한다고. 성대모사의 달인들답게 시사적인 콩트와 음악을 통해 차별화한 색깔을 만들고 있다. 배칠수는 “나른한 시간인 만큼 귀에 속속 들어오는 재미있는 코너들을 서민적인 시각에서 담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대모사, 끼와 노력 필요 성대모사로 데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배칠수는 노무현·김대중·김영삼 등 대통령은 물론 이회창·이명박·손석희·최양락 등 유명인 20여명을 완벽히 성대모사할 수 있다. 백지연·강금실 성대모사로 유명세를 탄 전영미도 박근혜·전도연·이영애 등 10여명의 성대모사를 선보이고 있다. 와와쇼의 간판 코너인 ‘퀴즈 챔피온’과 ‘고독한 사냥꾼’ 등에서 많게는 20여명까지 등장하는 호화 출연진은 다름 아닌 이들이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한때는 너무 많은 유명인들이 자리를 빛내 자기들끼리 출석을 부르기도 했다. 전영미는 “성대모사는 타고나는 것도 있지만 꾸준히 들으면서 노력해야 한다.”면서 “해보고 안 되는 것은 과감히 버리는데 최근 엄앵란 선생님 성대모사를 시도하다가 포기한 뒤 칠수가 해내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배칠수는 “성대모사는 똑같이 흉내낸다고 되는 게 아니라 90% 이상은 연기력”이라면서 “3∼4년 전에는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연습하고 가다듬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게 연습하면 안 되던 사람도 어느 순간 성대모사가 된다는 것.“손석희씨 성대모사는 안될 줄 알았는테 최양락 선배님이 해보라고 해서 목소리를 CD에 담아 3∼4개월 연습해서 마스터했다.”고 덧붙였다. ●“장수 프로그램 만들터”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코미디를 안한지 2년쯤 됐는데 정통 콩트가 그립기도 해요. 언젠가 다시 도전할 날이 오겠지만 지금은 라디오가 좋아요.”(전영미)“앞으로 무슨 일이 들어와도 영미와 함께 하고 싶어요(웃음). 라디오든 TV든 모든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죠.”(배칠수) 그들은 “청취율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사골 국물 우려내듯 오랫동안 우리 세대 청취자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장수 프로그램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활짝 웃었다. 글 사진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14일 TV 하이라이트]

    ●클로즈 업(YTN 오후 1시20분) 요즘 고유가와 환율하락의 영향을 받아 중소기업들이 특히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소기업의 대내외 여건을 개선하고 지원하는 것은 기업의 양극화 해소는 물론 국민경제의 기반을 튼튼하게 구축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이현재 중소기업청장과 함께 중소기업의 주요 정책현안에 관해 알아본다.   ●살림의 여왕(EBS 오전 11시) 주식, 왠지 하면 손해만 날 것 같다. 하지만 주식도 또 하나의 재테크다. 주식 9년차의 주식베테랑 주부 김해연씨와 함께 그녀의 실패담과 성공담, 그녀만의 주식투자비법을 들어본다. 또 주식을 처음 시작하는 초보자들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관련용어와 올바른 주식 투자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체인지 업!가계부(SBS 오후 7시5분) 서울 강남에서 세탁소를 하는 정현철씨 부부. 매달 600만원 이상 벌지만 여태 9000만원짜리 전셋집에 살고 있다. 지출이 수입보다 많기 때문. 오락실·술집에 들러 한 달 용돈 150만원을 다 써버리는 남편, 결혼 후 한번도 가계부를 써본 적이 없는 아내. 이들의 재테크를 위해 스타 주치의 엄앵란이 나섰다.   ●현장기록 ‘형사’(MBC 오후 6시55분) 훔친 다이아몬드를 팔다가 검거된 박봉대(가명). 조사를 받던 그가 실형을 면해 볼까 하고 내뱉은 “누가 사람을 죽였는데 말이야.”라는 한마디에 강력계 베테랑 이대우 형사는 무언가 있음을 직감하고 봉대를 추궁한다. 스쳐가는 말 한마디가 단서가 되어 해결된 제주도 연쇄살인사건 현장을 찾아가본다.   ●인간극장(KBS2 오후 8시55분) 오랜만에 시장에서 할머니들은 아버지 드릴 간식거리와 찬거리를 사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들은 반나절 동안 적적했을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는다. 맛있는 밥상을 차려 드리는가 하면,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를 위해 운동을 도와드리고 그런 딸들에게 아버지는 구성진 노래를 선물한다.   ●과학 향기(KBS1 밤 12시50분) 이제 월드컵은 그야말로 단순한 축구경기가 아닌 첨단축구경기라고 말한다.2006년 독일 월드컵을 맞아 국민의 축구에 대한 관심이 최절정에 이른 시점에서 축구 안에 숨어 있는 과학을 이해함으로써 관전의 묘미를 높이고 나아가 축구과학의 중요성과 축구의 과학적 발전과 미래를 이야기한다.
  • [여성사학 100년 시대] 이화 120주년·숙명 100주년

    [여성사학 100년 시대] 이화 120주년·숙명 100주년

    한국의 여성 사학계가 올해 큰 경사를 맞고 있다.5월31일 이화여대가 창립 120주년, 이보다 아흐레 빠른 22일 숙명여대가 창립 100주년을 맞는다. 새로운 100주년 시대를 맞아 여성사학의 양대산맥인 이화여대와 숙명여대의 발자취와 동문들의 근황을 살펴본다. 이화·숙명의 인재들은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남다른 족적으로 이끌어 왔다. 각각의 학풍 때문에 사회 진출 방향이나 성격은 다소 달랐지만 여성권익 신장 등 여성계 발전에 대한 두 학교의 기여는 곳곳에서 눈에 띈다. ●한국 여성계의 역사는 이화인의 역사 여성 1호 기록을 보유한 인사는 대부분이 이대 출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최초의 여의사 김정동, 최초 여성 변호사 이태영,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 최초 신문사 여사장 장명수, 최초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효숙, 최초 여성총리 한명숙씨가 모두 이화 출신이다. 정·관계를 들여다 보면 이화의 파워는 더 막강해진다.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김대중 정부까지 장관을 지낸 여성 인사 25명 중 12명이 이대 출신이었다. 신낙균(문화관광부), 지은희(여성부), 송정숙(보건사회부)씨 등이 장관을 지냈고 손봉숙, 이미경, 이계경, 이경숙, 서혜석씨 등 25명이 국회에 입성했다. 드라마 ‘모래시계’로 유명한 방송작가 송지나,CNN서울지국장 손지애, 앵커 김주하, 화가 겸 문인 김점선, 소설가 권지예, 프로골퍼 박지은씨 등 언론·문화·스포츠계에도 이화의 바람은 거세다. 이화여대 신인령 총장은 “이대에서 배운 자신감과 당찬 근성이 사회 곳곳에서도 큰 활약을 보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숙명인,‘현모양처’에서 암탉으로 변신중 숙대는 현모양처를 강조하는 교풍 때문에 그동안 이대에 비해 사회에 진출한 동문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울어라 암탉’이라는 구호처럼 학교 차원에서 동문들의 사회 진출을 적극 돕고 있다. 이경숙 총장은 “지속적인 리더십 교육과 연구활동으로 2020년까지 대한민국 리더의 10%를 양성한다는 목표다.”라고 말했다. 최정희, 박화성 등 1920∼30년대의 대표적인 여류작가,1927년 19세의 나이로 비행사 자격증을 딴 여류비행사 이정희, 무용가 최승희 등은 숙명이 배출한 대표적인 신여성들이다. 정·재계의 숙대 출신 동문들은 한상은 배상면주류연구소 대표, 이행희 ㈜한국코닝, 우성화 티켓링크 대표, 박찬숙·김선미 국회의원 등이 있다. 숙대 동문들은 문화 예술 및 방송 분야에서 특히 두각을 드러낸다. 국내 최초 여성 연출가인 강화자 베세토오페라단 단장, 무용가 홍신자씨가 있고 소설가 신달자·은희경씨, 뮤지컬배우 문희경씨가 숙대 출신이다. 영화배우 엄앵란, 탤런트 전원주, 전문방송MC 이금희, 방송인 이익선, 아나운서 윤현진, 정미선, 쇼호스트 유난희씨도 숙명이 배출한 방송인이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양대사학, 서로를 말하다 “구한말부터 한국의 여성교육을 이끌어온 이화”“역경을 딛고 꽃피운 여성인재의 산실, 숙명” 두 대학 관계자 입에서 나온 상대 학교에 대한 넉넉한 덕담이다. 숙명여대 대외협력처장 김형국(정치외교) 교수는 “이대는 지난 120년간 우리나라 여성교육을 선도해 왔다. 여성사학 중에서 어디가 1등이고 어디가 2등이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면서 “앞으로 두 여성사학이 국내 뿐 아니라 세계 여성교육을 앞장서 이끌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120주년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이화여대 이배용(사학과) 역사관장은 “숙대는 한국 근현대사의 시대적 역경 속에서도 훌륭한 여성인재를 많이 배출해왔다.”고 화답했다. 그는 “21세기 여성시대를 맞아 여성사학의 양대 기둥으로서 협력관계를 통해 함께 성장하고 서로의 지혜와 힘을 모아 여성사학을 이끄는 주도적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소속 학교 자랑도 덕담 못지않았다. 숙대 한정신(교육심리) 대학원장은 숙명의 강점으로 강한 의욕과 이를 능가하는 성과물을 꼽았다.“학교에서 조금만 이끌어주면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이루어내지요. 앞으로 숙명인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 관장은 “규모면에서나 역사적인 면에서나 여성사학 중에서는 우리 이화여대가 단연 최고라고 자부한다. 이화 동문 수는 15만명으로 숙명의 두 배가 넘으며 2005년 사법고시에 52명이 합격하고 최근 3년간 행시 합격자 수가 행정학과 기준으로 남녀공학 대학을 포함, 전국 1위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자랑했다. 이런 보이지 않는 경쟁심리 때문인지 숙명과 이화가 학점·학생 교류 협정을 체결한 것은 지난 1월이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창학기념 자축행사 다채 두 학교는 요즈음 창립기념일을 자축하는 행사준비로 분주하다. 이화여대와 숙명여대는 각각 22일과 30일 창립기념행사를 갖는다. ●이화, 즐겁게 세상을 흔들어라 이화여대는 1886년 선교사 스크랜튼 부인이 자택에서 학생 1인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한국에 세워진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이다. 이화여대는 120주년 대표 기념사업의 하나로 제3세계 및 개발도상국 여성인재를 전액 장학생으로 선발해 교육하는 EGPP(Ewha Global Prtnership Program)를 시작했다.120년 전 외국인 선교사가 1명의 학생으로 출발한 정신을 기리고 이화의 교육역량을 전세계 여성들에게 환원하고자 추진하는 사업이다. 22일부터는 교내 곳곳에서 e미디어 아트페스티벌 프런티어 백남준전을 연다. 26일에는 이화학당 한옥교사가 복원공사를 마치고 살아 있는 역사교육장으로 재탄생한다. 이화 120주년 역사를 담은 전시회를 열고 영상물 상영도 한다. 120주년 기념식은 30일 오전 10시 교내 대강당에서 갖는다.3대 이상 이화 출신 30가족을 찾아 기념패를 전달하고 이화학술상을 시상한다. 이화여대 새 정문도 이날 처음 공개된다.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해 세계로 뻗어가는 이화의 역동적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백년의 숙명, 천년의 빛 숙명여대는 1906년 고종 황제의 계비인 엄씨가 내탕금(황실자금)을 내려 종로구 수송동 한성부 수진방의 72칸 한옥에서 5명의 양반가 딸들을 가르친 것이 그 시작이었다. 한국인이 만든 최초의 민족 여성 교육이었다. 숙명여대는 창학 100주년을 맞아 ‘백년의 숙명, 천년의 빛!’이라는 기념 캐치프레이즈를 제작하고 22일 오후 7시30분 교내 르네상스 플라자 야외무대에서 창학 100주년 기념식을 갖는다. 기념식에서는 기념일 100일 전부터 전국 각지의 동문·재학생·교직원 등의 손을 거쳐 전달된 기념성화가 채화되며, 성화는 100주년 기념 타임캡슐 상단에서 영구히 타오르게 된다. 고건 전 국무총리, 이수빈 삼성생명보험 회장, 권인혁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신인령 이화여대 총장, 어윤대 고려대 총장 등과 학생, 교직원, 동문 1000여명이 참석한다. 기념식에 앞서 오후 3시부터 삼성컨밴션센터에서 미국 밀스칼리지 재닛 L 홈그런 총장,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나가타 도요오미 총장 등 10개국 18개 대학 총장단을 초청,‘글로벌 리더십 포럼’을 개최한다. 100주년 기념주 ‘숙명백년’(2006세트 한정)과 기념우표도 발행한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신상옥 감독 파란만장 일대기 영화로

    지난 11일 타계한 고 신상옥 감독이 15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영결식을 갖고 영면(永眠)에 들었다. 대한민국영화계장(葬)으로 진행된 이날 영결식은 제자인 이장호 감독이 고인의 약력을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해 영화배우 신영균·태현실과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의 추모사, 김동길 교수의 조시(弔詩) 낭독 등으로 이어졌다. 장례집행위원장인 신영균씨는 추모사에서 “큰 별은 결코 지지 않고 우리의 가슴 속에서 영원히 빛난다.”며 “감독님이 계셨기에 한국영화계가 발전할 수 있었다.”고 업적을 기렸다. 영결식에는 영화배우 남궁원 윤양하 이덕화 안성기 엄앵란 고은아, 영화감독 배창호·정지영씨,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등 각계 인사 300여명이 참석했다. 고인은 경기도 안성 천주교 묘원에 안장됐다. 한편 고인의 파란 많은 일생은 할리우드 영화로도 만들어진다.‘반지의 제왕’‘매트릭스’ 등을 만든 할리우드 유명 제작자 베리 오스본 주도로 한·미 공동제작 형태로 진행되고 있으며, 현재 미국에서 시나리오 초고가 나온 상태다. 국내 제작사인 보람영화사 이주익 대표는 “2004년 말 베리 오스본이 먼저 제안해와 고인에게 허락받았다.”며 “탈북 등 영화 외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영화인으로서의 일생 자체를 주목한다기에 허락하는 것이라고 감독이 말씀하셨다.”고 밝혔다. 영화의 스태프는 미국, 배우는 한국에서 각각 동원될 예정이다. 이 대표는 “제작비 규모와 고인의 사생활 부분이 들어갈지의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중동고 연극반 동문 다 모였네

    중동고 연극반 동문 다 모였네

    1960년대 ‘연극 명문고’로 위세를 떨쳤던 중동고 연극반 동문들이 모교 100주년을 기리는 공연 잔치를 연다. 중동고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회는 10∼16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국내 대표적 사실주의 작가이자 27회 졸업생인 김영수(1911∼1977)의 연극 ‘혈맥’을 공연한다. 연출을 맡은 민동원, 예술감독 박상규, 무대감독 기국서를 비롯해 출연배우 모두 연극반 동문이다. 고교나 대학 동문 배우들이 주축이 된 공연은 여러차례 있었지만 작가, 연출, 배우 모두 같은 학교 선후배로 구성된 무대는 이번이 처음이다. 중동고 연극반은 드라마센터 주최 연극경연대회 10년 연속 최우수단체상, 동아방송 주최 방송경연대회 등을 휩쓸며 고교 연극계의 맹주로 떠올랐으나 1971년 갑작스럽게 해체되면서 연극 전통의 맥이 끊겼다. 이번 공연에는 이일웅(54회·KBS)·이승호(59회·실험극장)·김재건(60회·국립극단)·정동환(61회·KBS) 등 당시 전성기를 이끌었던 유명 배우들이 총 출동한다. 성병숙, 김용선, 장설하 등 여배우들에게는 일명 ‘중동 여고생’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연극반은 아니지만 이 학교 출신인 국회의원 김무성, 서명덕 상명대 총장도 깜짝 출연한다. 1948년 초연된 ‘혈맥’은 해방 직후 성북동 변두리를 배경으로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세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1회 전국연극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 희곡상, 연출상 등을 수상했고,1963년 황정순, 최무룡, 엄앵란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호평을 받았다. 개인사업을 하다 30년 만에 연출을 맡은 민동원씨는 “세대간의 갈등, 빈부 격차 문제 등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작품”이라고 소개했다.(02)765-5476.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새 이름에 모여든 유머

    새 이름에 모여든 유머

    한 물건의 이름을 갈 때 현상모집을 하면 엉뚱한「아이디어」들이 수없이 모여 사회명랑화에 큰 도움을 준다.「유머」가 아쉬운 세상에 그것은 한 가닥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상업은행이 보통예금의 이자로 보험에 들게 하는「안심예금」의 이름을 일반에서 공모하여 고치기로 했다. 1월말께 전국의 주요신문에 공고를 냈었다. 당선작 하나의 상금은 자그마치 10만원 정. 공모기간은 2월 한 달 동안. 까다로운 조건이 하나 붙긴 붙어 있었다. 관제엽서에 좋은 이름만 적어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2백자 원고용지로 7장 이상의 설명이 따라야 했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면 전국에서 1천 8백 통의 응모가 있었다. 당선작은 없고 가작 3명에 유감상 1만원씩이 보내졌다.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월남의「정글」속에서 파월용사까지 군사우편을 띄워「아이디어」를 제공, 국외에서 상금을 휩쓸어 가려는 속셈을 보였다. 이러한 것은 파월용사들이 얼마나 여유 있게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가를 말해주는「사이드·스토리」감은 된다. 더욱이 그 병사 -「다낭」지구에 주둔한다는 김태화상병이 보내온 이름이「천하태평예금」이라 상은 관계자들의 배꼽을 쥐게 했다. 포성을 자장가처럼 듣고 있을 일선지대의 군인이 천하태평이라는 낱말을 생각해서 고국에 보냈으니 즐겁지 않을 수 없다. 응모된 이름들 중에서 색다른 것을 골라보면 다음과 같다. 안위(安慰)예금, 너도나예금, 영거(寧居)예금, 노다지예금, 꿀꿀이예금, 화수분예금, 봉황예금, 비둘기예금, 신안(新安)예금, 로터리예금, 해바라기예금, 상은송아지예금, 두꺼비예금, 옹달샘예금, 환생예금(이건 너무 거창하다), 네배예금, 흥부예금(놀부흥부의 흥부다), 개미예금, 원앙예금, 제비예금, 보너스예금, 월상비(月常備)예금, 목돈예금, 삼호(三好)예금, 일석이조예금, 4백%예금, 다목적예금(다목적댐에서 힌트?), 만리성(萬里城)예금, 포퓰러예금, 보배예금, 가보예금, 보구리(寶求利)예금(상당히 욕심스러운 이름이다), 복샘예금, 무궁화예금, 앙코르예금, 풍리(豊利)예금, 부래(富來)예금, 수재비비(壽財備肥)예금, 아폴로예금(아폴로 9호에서 힌트?), 상은예금(공모주에 대한 과잉아부?), 일월(日月)예금, 금실(金實)예금, 디딤돌예금, 엄빠예금(새 낱말이다. 엄마와 아빠가 사이 좋게 예금한다는 뜻에서 새 말을 창조했다), 황소예금, 신안(信安)예금, 일익(日益)예금, 단꿈예금, 명천(明泉)예금, 성주(成柱)예금, 재주(災住)예금, 달나라예금, 계수(桂樹)예금, 단골예금, 오아시스예금, 부부(夫婦)예금, 송죽예금, 노적(露積)예금, 복조리예금, 재치(才致)예금, 귀한(貴韓)예금, 금옥(金玉)예금, 선행(先行)예금, 믿을예금, 공짜예금, 알찬예금, 승공(勝共)예금(저축은 승공에 통한다?), 사슴예금, 배보다큰배꼽예금, 운수(運數)예금, 소소(笑笑)예금, 꿩알예금(꿩먹고 알먹는다는 뜻), 오뚜기예금(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는 뜻), 소복(笑福)예금(소중만복래(笑中萬福來)에 전거(典據)를 대고 게다가『소복소복 모인다』는 우리말의「뉘앙스」도 좋다고). 또 응모자는「소」자와「복(福)」에 얽힌 속담을 인용한다. - 소같이 벌어서 쥐같이 먹으라는 바로 치부의 첩경이라고 해석한다. -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살림살이에 가장 필요한 것이 저축임을 말해준다고 해석. 그러니 은행적금의 이름에는「소」와「복」이 최적이라고 강인색부(强引索附). -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바로 저축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속담이라고 속담에 대한 박람강기(博覽强記)를 과시해 보기도 했다. 1천 8백 명이 응모를 했지만 1천 8백 명이 모두 다른 이름을 추천한 것도 아니었다. 똑 같은 이름이 상당히 많은 사람에 의해 보내졌다. 복지예금이 51명, 보상예금이 19명, 안전예금이 38명, 보험예금이 20명, 보장예금이 14명, 안정예금이 14명, 부리예금이 14명, 오뚜기예금이 22명, 오복예금이 21명이다. 개인응모자만 나온 것은 아니다. 단체응모자도 출현해서 관계자를 감격케 했다. 경남 고성(固城)중학교에서는 학생 1천 2백 명에게 저축심 양양의 교재로 삼아 문제를 내었다. 교직원 50명도 여기에 참가했다. 그 결과, 공제(共濟), 복리(福利), 십자(十字), 복(福), 자성(自成), 복지(福祉), 죽순(竹筍), 안전(安全), 오복(五福)의 9가지 이름이 나왔다. 이것을 국어과와 사회과의 담임선생이 신중히 검토한 다음「오복(五福)」으로 정해서 교사대표 김성화씨의 이름으로 응모해 왔다. 심사결과 복지예금, 안전예금, 오복예금의 3가지가 가작으로 뽑혔다. 이 세 이름을 응모한 사람이 복수(복지 51명, 안전 38명, 오복 31명)여서 3월 중순께 상은 회의실에서 경찰관 입회 하에 요란스러운 추첨을 했다. 제비를 뽑은 사람은「스타」엄앵란양. 행운의 당선으로 상금 1만원을 탄 사람은 복지예금에서는 이명배씨(충남 예산읍 창소리2구), 안전예금에서는 박영찬씨(서울 영등포구 대방동 49의 6), 오복예금에서는 박성주씨(전남 고흥군 봉래면 신금리)의 3씨다. [ 선데이서울 69년 3/30 제2권 13호 통권 제27호 ]
  • 광고「스타」의 얼굴값

    광고「스타」의 얼굴값

      최고 김승호(金勝鎬), 구봉서(具鳳書)의 1백만원 김혜정(金惠貞)의 반라(半裸)는 20만원 연말을 두 달이나 앞두고 내년치「캘린더」가 벌써 선보이기 시작했다. 세모분위기를 돋우며 새해 일정을 안내하는 이「캘린더」는 화려, 사치스런 치장으로 경염(競艶)을 벌이게 마련. 화사한 여배우의 얼굴이 또 한번 분주히 팔려가는「시즌」이다. 「캘린더」에 나오는「스타」는 대개 인기배우 몇 사람, 단골격인 이들「캘린더·스타」들은 여기서도 겹치기에 바쁘다. 그래서 배우「모델」의「캘린더」는 그해 인기「스타」를 결산하는 또 하나의 기록. 인기없는 배우는 하고 싶어도 못하지만 상업사진에 안 나가는「스타」들도 제법 열을 올린다. 4, 5년 전 엄앵란, 최은희, 김지미, 태현실 등이 독점했던「캘린더」판도는 이제 영화계 인기변동을 따라 상당히 수정되었다. 2개월을 1장 단위로 하는 지면에 등장할 수 있는 정원은 고작해서 6명. 이것이 이제 문희, 윤정희, 고은아, 남정임, 김지미, 최은희 등 주연급이 차지하게 됐다. 이번엔 신인배우 여수진(呂秀珍)과 손방원(孫芳園)이 끼이기도 하고. 이들「캘린더·스타」의「모델」료가 작년의 2만원 선에서 4만원 선으로 껑충 뛰었다. 당초 왕복 차비 정도의 사례에서 비롯한 것이 이제는 공정가격이 붙었다. 공정가격이란 뜻은 배우가 모두 같은 요금을 받는다는 뜻은 아니다. 인기에 따라 고하(高下)가 정해져 있다. 최고는 7만원에서 10만원, 최저는 3만원에서 2만원, 김지미는 물론 여기서도 최고의「개런티」고 그 다음이 윤정희·문희·남정임. 이들은「포즈」몇 번 취하고 남의 집 안방에 초상화로 장식되는 요금으로 평균 4만원을 받는다. 「캘린더·스타」와는 달리 돈벌이 목적의 광고「모델」로 애용되는「스타」도 상당히 많다. 이른바 광고「스타」. 전에는 3류배우나 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것이 최근엔 이른바「톱·스타」들도 서슴지 않는다. 이들의 얼굴은 TV의 CM,「포스터」, 광고영화, 신문잡지의 광고란을 장식하는데 가장 많이 이용되는 게 약품광고. 계약기간은 1년으로 대개 계절 따라 4번쯤 사진을 바꾼다. 「광고배우」의 요금도 인기와 정비례한다. 그러나 양측의 친분 여하에 따라 결정되니까「반드시」는 아니다. 인기와 유관하고 세금과 유관하기 때문에 일종의 비밀요금에 속한다.「식욕부진 XX감퇴」에 유효하다는 XX약 광고의 김승호가 1백만원짜리「모델」. 그리고 TV광고로 어떤 상표의 조미료를 선전하는 구봉서가「포스터」인쇄물을 포함하여 1백만원, 전속기간은 1년이다. 광고「모델」, 특히「스타」들이 꺼리는 광고가 약 광고. 그러면서도 사실은 대부분의「톱·스타」가 거의 약 광고에 나가는 것은 그 적지 않은 수입의 매력 때문인 듯하다. 이들의「모델」료는 보통사람의 최소 10배 이상이다. 이들의「모델」료를 들리는 대로 적어 보면 - 신성일 = 50만원, 최남현 = 25만원, 윤정희 = 35만원, 고은아 = 20만원, 남궁원 = 20만원, 신영균 = 50만원. 반라에 가까운 몸으로 풍만한 육체를 과시하면서 신문·잡지 광고란을 장식하는 김혜정도 사실은 20만원에 불과하다는 것. 반면에 약 광고엔 결코 나가지 않는 것으로 체통을 지키는「스타」도 없지 않다. 김지미, 문희, 남정임이 이「케이스」. 일본만 해도「톱·스타」가 광고에 나갈 경우 엄청난「모델」료가 따르지만 그까짓 몇 십 만원에 이용되기는 싫다는 주장이다. 광고를 즐기는 배우들도 자신의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의 광고영화에만 나가지 않는 것으로 보아 결코 탐탁하게 생각지는 않는 것 같다. 한편 광고「포스터」가「스타」의 개인생활을 공교히 이용하여 그 화제에 편승하는 예도 있다. 한창 한국최초의 70「밀리」영화라고 헛소문을 돌린「춘향(春香)」이 제작될 때「XX·크림」은 신인배우 홍세미(鴻世美)를 기용하여「춘향」탄생을 떠들어댔다. 영화사측에서 보면 영화선전도 되고 배우측에서 보면 배우선전도 되는 1거 3득의 효과. 고은아양을 전속계약한 XX제약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홀몸일 때는「예뻐지고 고와지는-」을 선전하는데 이용하다가 임신 소식이 전해지자 재빨리「임신·출산빈혈에는」하고 품목을 바꿔 내세웠다. 한꺼번에 20편 내외의 영화에 출연하는 신성일은「겹친 피로, 부족한 수면」을 극복케 한다는 약을, 중년「스타」김승호는 중년기 XX제를, 그리고 매혹적인 눈 못브에 입을 헤벌린 김혜정은 XX부족, XX감퇴에 유효하다는「XX·뎁보」를 선전하는 사진으로 이용되고 있다. 색쇄(色刷)로 된「포스터」는 그래도「스타」의 미모에 손상을 끼치지 않아 약간의 품위를 지닐 수 있다. 제모제를 선전하는 태현실, 미용제를 맡은 윤정희, 냉장고의 고은아는「캘린더」만큼의 선전효과도 얻을 수 있다. 어차피 휴지로 버려지는 신문광고보다는 훨씬 고급이다. 서울에는 광고주와「스타」사이에서 이들의 다리를 놓는 상업사진사들이 현재 성업 중에 있다. [ 선데이서울 68년 10/27 제1권 제6호 ]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50년 ‘목소리 인생’ 성우 고은정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50년 ‘목소리 인생’ 성우 고은정씨

    ‘목소리의 마술사’가 있다. 반세기 동안 격동의 현대사를 ‘목소리’ 하나로 관통했다. 질곡의 50년 세월속에 가느다란 성대의 떨림으로 감동과 추억의 파노라마를 무수히 연출했다. 타고난 ‘천(千)의 목소리’는 대중들의 가슴을 쥐락펴락했다. 암울했던 1960∼70년대, 라디오의 ‘연속방송극’과 ‘추억의 영화’ 등 무려 1000여편에 출연했다. 엄앵란 문희 남정임 정윤희 등 내로라하는 당대 여배우들의 목소리를 도맡아 ‘얼굴없이’ 많은 인기를 누렸다. 뿐만 아니다.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김영삼 정부에 이르기까지 정치권 주변에서 이꼴저꼴 다 보면서 연설과 다큐멘터리 대역(代役) 등을 해 흥미진진한 야화도 간직하고 있다. ●‘여자의용군 예술대’ 자원입대 고은정(70)씨.1954년 12월 KBS 성우 공채 1기로 출발,50년 ‘목소리 인생’을 걸어왔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해 12월과 올 4월 단막극을 직접 쓰고 출연까지 했다. 최근에는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서울 서초동의 모호텔 정원에서 만났다. 먼저 해마다 6월이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고 고백했다. 다름 아닌 6·25에 참전했던 것.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다며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50년 11월 어느날. 수도여중 3학년 재학 중이었다. 학생들 사이에는 ‘국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고, 금방 통일된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고은정은 친구들과 모여 “서울고와 용산고 학생들도 학도의용군에 뽑혀 북진대열에 합류하는데 우리 여학생이라고 가만히 있으면 되겠느냐.”고 말했다. 결국 며칠 뒤 고은정은 단짝 친구 3명과 함께 여자의용군에 자원입대했다. 훈련막사는 서울 충무로의 일신초등학교(현 극동빌딩 자리). 때마침 한성여고 밴드부와 동덕여고 무용반 학생들도 와 있었다. 가칭 ‘여자의용군 예술대’가 결성됐다. 고은정의 군번은 0995862. 훈련은 주로 아침 일찍 남산을 한바퀴 돌아오는 것이었다. 20일쯤 지나자 외출허가가 떨어졌다. 이때 가족들이 “난리통에 여자가 무슨 군입대냐.”며 귀대하지 말라고 붙잡았다. 그러나 “어떻게 외출나왔다가 안 들어가느냐.”며 귀대했다. 그런데 동료 3분의1가량이 귀대하지 않았다. 남은 예술대원은 20여명. 이튿날 예술대원은 부산으로 떠나기 위해 겨울용 잠바와 담요 한장씩을 들고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수백명의 남자군인 틈에 끼어 무개화차에 막 오르려는 순간이었다. 신성모 국방장관이 나타나 “왜 여자들을 지붕 없는 차에 태우느냐.”고 호통을 쳤다. 할 수 없이 다음날 별도의 트럭을 이용해 인천항을 거쳐 함정(LST)을 타고 3일 만에 부산항에 당도했다.(관련자료에 따르면 50년 9월 여군교육대가 부산에서 결성됐으며, 군부대와 병원 등의 위문을 위해 군악 및 예술대가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군번 0995862 육군 제대 부산에 도착한 예술대원은 영도초등학교의 임시막사에서 지냈다. 며칠 뒤 크리스마스 이브때 고은정은 면회 온 목사의 도움으로 십수권의 책을 장만할 수 있었다. 워낙 책을 좋아한 데다 병원위문을 위해서는 어느정도의 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숙소 앞에 ‘소공녀의 방’이라는 문패를 달았다. 그러던 51년 2월 부대에서 휴가를 다녀오란다. 딱히 갈 곳이 없어 지난번 도움을 받은 목사가 있는 대구로 향했다. 때마침 목사는 제주도의 피란민들을 위해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고은정도 목사와 함께 떠났다. 도착했더니 돌아올 여객선 사정이 여의치 않은 데다 목사의 강력한 권유로 부대복귀를 하지 못했다. 고은정은 관계요로를 통해 이같은 사정을 전한 뒤 그해 2월 제주 오현중에 설치된 피란민학교에서 중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이와 관련, 고씨는 “얼마전 육군에 확인해 보니 군번도 있고 제대처리돼 있었다.”면서 당시 입대했던 친구들을 가끔 만나 추억담을 나눈다고 귀띔했다. # 에피소드 1. 74년 8월14일이었다. 영화 ‘맹물로 가는 자동차’ 더빙을 하느라 밤을 새운 뒤 집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그대로 쓰러졌다. 꿈을 꾸었다. 고 육영수 여사가 청와대로 초청했다. 고씨는 의사 동생과 함께 갔다. 육 여사는 진작 보고 싶었다며 “조국을 위해 고생이 많은데 부탁이 있으면 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고씨는 “서울신문에 다니던 오빠가 필화사건으로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걱정”이라고 했다. 고씨는 육 여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단골로 등장했지만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얼마만큼 잤을까. 일어나 방문을 열어 보니 아이들이 TV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탕탕탕 하는 총소리와 함께 TV 전원이 꺼졌다.8·15기념식장에서 벌어진 ‘영부인 피격사건’이었다. 이후 국립영화제작소에서 만든 육 여사 다큐멘터리에 더욱 많이 출연하게 됐다. 박근혜씨가 영부인 역할을 맡을 때 방송국으로 찾아왔다. 박씨는 “아버지는 고 선생의 목소리가 엄마하고 똑같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런 뒤 연말마다 청와대에서 금시계를 보내왔다. ●대통령 부인들과 자주 만나 # 에피소드 2. 5·16 직후였다. 동아방송에서 ‘천일야화’라는 대담프로그램을 맡고 있었다. 하루는 김종필(JP)씨를 초청했다. 시간이 됐는데도 그가 오지 않아 찾아나섰다. 점퍼차람의 한 사람이 방송실 입구에서 “나를 찾는 겁니까.”하고 말했다. 인사를 하자 JP는 “고 선생은 골라쓰는 단어가 아주 달라요.”라고 했다. 인연이 돼 나중에는 JP자택에서 부인과 자주 만나게 됐다. “80년대 초반 민정당 창당대회 때 권정달씨의 부탁으로 봉두완씨와 사회를 같이 보게 됐지요. 이때부터 본의 아니게 정치 언저리에 맴돌게 된 것 같아요. 여성계 대표라는 명분으로 종종 청와대에서 이순자·김옥숙 여사와 식사도 했지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소영씨는 마침 우리 아들과 초등학교 동기동창이었습니다.” 87년 대선을 일주일 앞둔 때였다. 노태우 후보측에서 63빌딩에서 저녁을 먹자는 연락이 왔다. 갔더니 이종찬씨도 함께 있었다. 노 후보는 목이 꽉 잠겨 있었다. 노씨는 “고 선생, 어떻게 하면 목을 살릴 수 있겠소.”라고 물었다. 이종찬씨는 달걀을 먹어야 한다고 거들었다. 고씨는 “소염제를 먹고 당분간 필담으로 대화할 것”을 주문한 뒤 연설 때 5만,10만 관중을 염두에 두지 말고 오직 자신 앞에 있는 마이크를 상대로 감동을 시킬 것을 권했다. 낮은 톤의 목소리가 오히려 장점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이어 노 후보가 여성정책 아이디어를 달라고 하자 “이제와서 새로운 정책을 내놓은들 먹혀들지 않기 때문에 선거 때까지 애처가라는 소문만 잔뜩 퍼뜨릴 것”을 주문했다. 전직 대통령의 목소리에 대한 평가도 흥미롭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설득력은 있으나 노 전 대통령의 현대적 감각에는 뒤떨어진다고 평가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우 10분 동안 113개의 언어가 틀릴 정도였는데 대통령에 당선돼 ‘우리나라에선 통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단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지만 발음을 비교적 정확하게 하려고 애를 쓰는 편이라고 했다. 고씨는 “스피치는 공인의 덕목 가운데 매우 중요한데 우리나라 지도자들은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 출강에 여전히 방송활동 고씨는 4남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본래 이름은 고흥숙.‘흥’자 돌림이다. 막내동생이 한나라당 국회의원 고흥길(성남시 분당갑)씨. 오빠 고흥욱(72)씨는 청와대 출입을 오래한 기자출신으로 현재 LA에 산다. 얼마전 국제전화를 걸어와 “네가 죽었다는 소문이 났는데 무슨 일이냐.”고 뜬금없이 물어 “아냐, 길은정이 죽은 것을 보고 그러겠지.”하고 대답했단다. 어머니는 5남매를 남겨놓고 30대 나이에 요절했다. 새 장가를 든 아버지도 54년 교통사고로 일찍 명을 달리했다. 새어머니는 5남매를 친자식 이상으로 키웠다. 현재 94세로 분당 아들집에서 산다. 고씨 자신은 59년에 결혼, 이듬해부터 연년생으로 자식 넷을 낳았다. 함께 지내는 둘째딸(44)을 제외하곤 다들 결혼했다. 고씨는 5년 전 유방암 수술을 해 고비를 맞았지만 요즘은 서울예대 장로신학대 출강과 극동방송에서 매일 10분짜리 방송 등을 하며 정열적으로 일하고 있다.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가족사를 쓰고 있어요. 여름방학 때는 밀린 대본을 완성할 예정입니다. 일생을 담은 모노드라마도 무대에 올리고 싶어요.”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 1936년 서울 출생 ▲ 51년 제주 피란민학교에서 수도여자중학 졸업 ▲ 54년 수도여고 졸업, 숙명여대 영문과 재학시절 KBS 성우공채 1기 ▲ 56년 최초 연속방송극 ‘청실홍실’ 성우 ▲ 58년 연속방송극 ‘산너머 바다건너’에서 상하이 여자 ‘미라’역을 맡아 주목받음. ▲ 이후 ‘장희빈’‘고운정 미운정’‘왕비열전’‘대동강은 알고 있다.’‘불꽃의 소리’‘113수사본부’등 드라마와 영화를 합쳐 1000여편 출연. ▲ 77년 드라마 ‘대니할머니’당선으로 방송작가 데뷔. ▲ 97년 고은정언어예술원 개원 ▲ 98년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 2000년 방송위원회 위원, 방송언어특별위원회 위원장 ■ 방송극본 가을에 온 손님, 불모의 수령, 저녁노을, 사랑의 계절, 두고온 언니에게 등. ■ 소설작품 고운정 미운정, 위험한 체험 등. ■ 상훈 국민훈장동백장(2000년)
  • 숫자로 본 여우(女優)의 여체

    숫자로 본 여우(女優)의 여체

    자진신고가 밝힌 비밀의 전부 가슴최대 김혜정(金惠貞)의 40 허리최소 문희(文姬)의 19「인치」 「누드·신」이나「베드·신」이「스크린」의 총아로 등장하면서 배우의 육체조건은 용모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특히 여배우의 경우,「육체파」라는 통칭은 푸짐한 눈요깃거리의 면에서 단연「연기파」배우를 압도하고 있다. 세계적인 배우「마릴린·몬로」가 그랬고「소피아·로렌」「브리지드·바르도」「제인·맨스필드」「안·마그리트」「그로디느·오제」「라겔·웰치」가 그렇다. 이들의 명성은 우선 육체의 전시에서 비롯됐고 용모, 연기는 차라리 부차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신인배우는 우선 가슴둘레는 얼마, 허리둘레,「히프」는 얼마라고 자신의 육체조건을 기억했다가 의무적으로 제시한다. 자신없는 배우는 약간씩의 조작도 사양치 않는다. 당초「카메라」가 여체를 미화시키기 위해 갖가지「트릭」을 이용하고 있는 이상「스크린」속의 여체는 어차피「베일」속의 비밀이다. 다만 아무리「글래머·스타」라는 별명을 가진 배우라도 국내배우의 조건은 구미(歐美)를 못 따른다는 게 사실이다. 배우 자신들이 밝힌 기록에 의하면 한국 여배우 중 신장, 가슴둘레, 허리둘레,「히프」가 가장 크기로는 단연 김혜정이다. 유일의「글래머·스타」로 행세한 그는 170cm의 키에 40-27-40의「킹·사이즈」.「미스·코리어」출신의 손미희자(孫美喜子)가 36-23-36이고 보면 각기 4「인치」초과의 특대형이다. 이 36-23-36의「사이즈」는 어느 틈에 한국미녀의 표준형으로 인식되었는지 웬만큼 자신 있는 배우라면 곧잘 자신도 36-23-36을 부르기 일쑤다. 태현실(太賢實), 전계현(全桂賢), 최지희(崔智姬), 문정숙(文貞淑)이 이 범주에 속한다. 최은희(崔銀姬), 이민자(李民子)는 좀 더 올라서 38-24-38, 지금은「아줌마」로 통하는 엄앵란도「데뷔」당시 이 범주에 속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38-24-38의「사이즈」는 바로 육중한 가슴으로 세계를 떠들썩케 한「소피아·로렌」과 꼭 같다. 세계인기배우 중 가슴둘레가 최대인 것은「제인·맨스필드」의 44.3「인치」, 그 다음이「아니타·에크버그」의 42.5「인치」다. 이「사이즈」는 얼마 전「뉴요크」거리의 화제가 됐던「글래머」여사무원의 43「인치」에 손색이 없지만 그에 도전하여 모여든 군중으로 교통차단의 소동까지 벌였다는「게리·스트츠」(36세)부인의 47-29-38, 또는 19세의「스트리퍼」가 자랑한 50-22-37의 기록엔 훨씬 뒤지고 있다. 신장, 가슴둘레,「히프」의「사이즈」는 곧 잘 인상해 불러도 허리둘레는 줄이려는 게 미녀들의 공통심리인 것 같다. 기록에 의하면 한국 여배우 중 가장 왜소한 허리의 소유자는 문희, 19.5「인치」. 157cm의 신장에「바스트」,「히프」가 각기 35-34다. 그 다음이 전양자(全洋子)의 33-20-33. 김지미(金芝美)(34-22-34), 윤정희(尹靜姬)(35-23-36), 남정임(南貞姙)(35-24-36),의 차례. 제일 굵기로는 신장,「바스트」「히프」가 최대인 김혜정의 27「인치」. 이들 외국의 인기배우에서 보면「나탈리·우드」가 157cm의 키에 32-20-34의「스몰·사이즈」.「진·센트·존」「제인·맨스필드」가 21이고「엘키·솜머」도 22「인치」의 개미 허리를 자랑한다. 물론 배우의 육체「사이즈」는 시간을 따라 증감이 있게 마련이어서 위 숫자들이 반드시 정확하다고는 볼 수 없다. 다만「스타」들은 영화 속에서의「에로티시즘」을 위해 가슴,「히프」는 좀 더 크게 그리고 허리둘레는 좀 더 가늘게 하려고 제 나름대로의 고심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 선데이서울 68년 10/20 제1권 제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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