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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 바빠? 폰 수리 맡겼는데…” 지인 사칭 메신저 피싱 주의보

    “엄마 바빠? 폰 수리 맡겼는데…” 지인 사칭 메신저 피싱 주의보

    “엄마 바빠? 나 폰 액정 나가서 수리 맡겼어. 지금 인터넷 뱅킹 가능해?” 카카오톡 등 모바일 메신저에서 가족이나 지인이라고 속여 피해자에게 돈을 요구하는 메신저 피싱 범죄로 올해 1~4월에만 128억원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128억원 피해… 가족 사칭 일반적 경찰청,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은 서민 경제를 위협하는 메신저 피싱 근절에 협력하기로 했다고 24일 밝혔다. 메신저 피싱 피해는 2018년 216억원(9607건), 2019년 342억원(8306건)으로 증가 추세다. 가족을 사칭하는 범죄 형태가 가장 일반적이며 최근에는 문화상품권 비밀번호를 요구하거나 스마트폰에 ‘팀뷰어’ 등 원격제어 앱을 설치하도록 유도해 개인정보를 탈취하는 새로운 수법도 발생하고 있다. ●앱 설치 차단·전화 확인 후 송금 등 노력을 정부기관들은 피해 예방을 위해 ▲가족, 지인 외에 타인 계좌로 송금하지 말고 ▲출처가 불분명한 이메일, 문자, 인터넷(URL) 주소는 삭제하고 ▲앱 설치를 차단하고 ▲메신저 비밀번호를 정기적으로 바꿀 것을 권장했다. 경찰 관계자는 “긴급하게 돈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해도 실제 가족이나 지인이 맞는지 반드시 전화통화로 확인하고 송금해야 한다”고 말했다. 메신저 피싱에 당했을 때는 즉시 112에 신고하고 공인인증서가 노출된 경우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118 전화신고로 공인인증서 분실 및 긴급 폐기를 요청할 수 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빨갱이 가족이란 낙인 두려워…금정굴 쪽은 쳐다도 안 봤어요”

    “빨갱이 가족이란 낙인 두려워…금정굴 쪽은 쳐다도 안 봤어요”

    “어려서는 내가 금정굴을 하루이틀 걸러 다니면서 무섭지도 않은지 거길(굴 위를) 건너뛰고 그랬지요. 그런데 아버지 죽고 나서 한 20여년 동안 한 번도 가지를 않았어요. 그쪽은 쳐다도 안 보고 얼씬도 안 하고 싶더라고요.”(이병순 금정굴유족회 고문)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일산동 황룡산 자락에 있는 18m 깊이의 수직 폐광 ‘금정굴’. 한때 ‘금구뎅이’라고 불렸던 영광의 기억도, 동네 꼬마들이 폴짝폴짝 뛰놀던 추억도 온데간데없다. 금정굴은 이제 ‘무덤’이다. 1950년 10월 9일부터 25일까지 고양·파주 지역의 민간인 160여명이 ‘빨갱이’로 낙인찍혀 재판 한 번 받지 못하고 학살당한 채 금정굴에 버려졌다. 70년이 지났지만 희생자들은 한 몸 온전히 누일 곳 없이 떠돌이 신세다. 1995년 유족들이 발굴 작업을 벌여 153구 이상의 유해가 세상에 나왔다.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만 76명이다. 유해를 모실 곳이 마땅치 않아 지금까지 납골당만 세 차례 옮겼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금정굴 민간인 학살 사건을 “경찰에 의한 불법적인 집단학살”로 결론 내렸지만, 희생자들의 넋은 위로받지 못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권고했던 평화공원 설립도, 영구적인 유해 안치소 설치도 아직 이뤄지지 못했다. 유족들은 애가 끓는다. 부역 혐의자 가족이라는 낙인이 두려워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금정굴 쪽은 애써 외면했다. 억울한 죽음을 애도할 권리마저 박탈당한 채 살아온 세월이 수십 년이다. 서울신문은 24일 채봉화(74) 금정굴유족회장과 이병순(87) 고문을 만났다. 1950년 10월 9일. 당시 열일곱 소년이었던 이 고문의 뇌리에는 70년 전 모습이 스틸사진처럼 남아 있다. 집 앞에서 두 사람씩 삐삐선(군용통신선)에 묶인 채 이동하는 행렬을 목격했다. 맨 뒤에 아버지 이봉린이 있었다.보리밭 갈다 끌려간 아버지… 유해안치소도 없이 ‘떠돌이 신세’ 한국전쟁이 터지고 3일 만에 수도를 빼앗긴 국군이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한 무렵 이봉린은 능곡국민학교에서 열린 유엔군 환영대회에 나갔다가 치안대에 끌려갔다. 인민군이 마을을 점령한 시기 ‘농촌위원장’을 맡아 공출량을 계산하는 부역을 했다는 이유였다. “우리 아버지가 일산리 구장(區長)을 했었거든. 동네에서 추켜세우는 사람이잖아. 주변에서 ‘형님이 일 봐야지’ 하니까 맡게 된 건데….” 어머니와 7남매는 잡혀간 아비의 끼니 걱정에 매일 번갈아 수십 킬로 걸어 밥을 날랐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경찰서에서 “(부역 혐의자들이) 문산으로 좌익 심사를 받으러 가서 오늘은 밥을 안 받는다”고 했다. 이 고문은 “문산을 가는 줄 알았지 금정굴로 가는 줄 누가 알았겠느냐”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행렬을 몰래 뒤따랐던 다른 희생자 유족을 통해 이 고문 가족은 진실을 알게 됐다. “아이고, 심사가 뭡니까. 그 구뎅이로 가서 다 쏴죽였어요!” 장남이었던 이 고문은 그 길로 작은아버지, 마을 어른들과 함께 사다리와 밧줄을 챙겨 금정굴로 향했다. 시신이라도 수습하자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시신은 찾지 못했고 피투성이가 된 채 금정굴에 떨어져 “살려 달라”고 외치는 한 사람을 구했다. 총알을 빗맞은 덕에 목숨을 건진 동네 주민 이경선이었다. 금정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이씨는 이후 죽을 때까지 고향 땅을 밟지 않았다. 금정굴에서 학살이 처음 벌어진 이날 이봉린을 포함해 46명이 희생됐다.희생자 가족은 공포에 사로잡혀 침묵해야 했다. 그날 밤 이 고문의 집에 들이닥친 경찰은 “시체 가져왔느냐”, “빨갱이 찾으려고 금정굴에 갔다 왔느냐”고 화를 내며 장작 더미며 아궁이 구멍이며 죄다 창으로 쑤셔 댔다. “그날 금정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누가 고발을 했는지 자전거를 탄 태극단 놈들이 서넛 올라오고 있더라고. 길이 엇갈려서 망정이지 거기서 마주쳤다면 우리도 다 죽는 거야. 일곱 사람이 갔었는데…. 그래서 잠자코 살았던 거지.” “이제는 시대가 달라져 말이라도 하지, 예전에는 아버지가 ‘빨갱이’로 돌아가셨다고 어디 가서 말도 못해….” 채 회장은 45년의 세월 동안 아버지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살았다. 아버지 채기동은 보리밭을 갈다가 총을 멘 치안대 3명에게 끌려간 뒤 소식이 끊겼다. 그때 고작 네 살이었던 채 회장은 아버지와의 기억이 없다. 그는 졸지에 과부가 된 어머니와 금쪽같은 외아들을 잃은 할머니의 넋두리로 부친을 기억한다. “우리 엄마가 맨날 그러셨지. 봉화야, 네 아버지 금정구뎅이 가서 죽었다. 남들이 그런다.”채 회장은 금정굴과 가까운 파주에서 평생을 살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고 45년이 지난 1995년에서야 처음으로 금정굴을 찾았다. 뉴스로 유해 발굴 소식을 전해 듣고 동생과 함께 갔다. 채기동은 6년 동안 강제징용을 당했다가 해방 이후 돌아왔다. 채 회장은 “9척 장신에 원체 기운이 장사라 인근에서 아버지를 당해 낼 사람이 없었다더라”고 했다. “총을 멘 치안대가 당신을 찾으니 도망가라”는 말에도 채기동은 “잘못한 것이 없다”며 당당했다. ‘부역자 가족’의 삶은 매 순간 고통으로 점철돼 있었다. 채 회장은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 봇짐 장사를 하려면 도민증이 필요했는데 우리한테는 도민증 허가를 안 내줘서 어머니가 ‘꼼짝없이 죽겠다’며 우셨다”며 “핍박받으면서 세 딸을 키운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난다”고 했다. 채 회장이 끝까지 파주를 떠나지 않은 건 어머니의 유언 때문이다. 채 회장 가족은 시간이 흘러 아버지에게 부역 혐의자라는 누명을 씌운 마을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됐다. 어머니는 “내가 죽어도 넌 반드시 이 동네에 살면서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나 두고 보라”는 말을 남겼다.“신도시 주민들은/발 밑이 저승인 사실은 모른 채/오래전 이 마을을 휩쓸고 간/역병보다도 더 고약한 숙청은 모른 채/두개골 정강뼈 쇄골 잘근잘근 밟으며/황솥밭 샛길을 오갈 뿐이다”(손세실리아, ‘뼈무덤’) 용기를 내 세상에 나온 유족들은 긴 싸움을 했다. 승리도 수차례 맛봤다.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진실 규명을 결정하면서 “최종 책임은 국가에 있고 희생자 상당수는 도피한 부역 혐의자 가족이거나 이와 무관한 지역 주민이었다”고 했다. 2012년에는 국가 배상 소송에서 승소해 “희생자 2억원, 배우자 1억원, 부모·자식 각 5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확정됐다. 수차례 무산됐던 ‘6·25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조례안’도 2018년 고양시의회에서 통과됐다.그럼에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희생자가 제대로 된 위령시설 없이 떠돌고 있고 유족이 겪는 고통도 여전하다. 일부 보훈단체 회원들은 아직도 희생자를 ‘토착 빨갱이’라고 부른다. 보수 정당 시의원은 조례 제정을 반대하며 “(희생자들은) 김일성 앞잡이 노릇을 했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금정굴 현장에 조성될 계획인 평화공원은 “납골시설이 들어오면 집값 떨어진다”는 일부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채 회장은 “지금 희생자들을 임시 안치한 세종추모공원은 너무 멀다. 가까운 곳에 희생자들을 모시고 자주 왔다 갔다 하는 게 유족들의 소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죄도 없이 잡혀가 죽고, 설령 죄가 있다고 해도 재판 한 번 열지 않고 죽은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고문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게 한 전쟁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빨갱이’ 가족이란 낙인 두려워 금정굴 쪽은 쳐다도 안 봤어요”

    “‘빨갱이’ 가족이란 낙인 두려워 금정굴 쪽은 쳐다도 안 봤어요”

    “어려서는 내가 금정굴을 하루이틀 걸러 다니면서 무섭지도 않은지 거길(굴 위를) 건너뛰고 그랬지요. 그런데 아버지 죽고 나서 한 20여년 동안 한 번도 가지를 않았어요. 그쪽은 쳐다도 안 보고 얼씬도 안 하고 싶더라고요.”(이병순 금정굴유족회 고문)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일산동 고봉산 자락에 있는 18m 깊이의 수직 폐광 ‘금정굴’. 한때 ‘금구뎅이’라고 불렸던 영광의 기억도, 동네 꼬마들이 폴짝폴짝 뛰놀던 추억도 온데간데없다. 금정굴은 이제 ‘무덤’이다. 1950년 10월 9일부터 25일까지 고양·파주 지역의 민간인 160여명이 ‘빨갱이’로 낙인찍혀 재판 한 번 받지 못하고 학살당한 채 금정굴에 버려졌다. 70년이 지났지만 희생자들은 한 몸 온전히 누일 곳 없이 떠돌이 신세다. 1995년 유족들이 발굴 작업을 벌여 153구 이상의 유해가 세상에 나왔다.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만 76명이다. 유해를 모실 곳이 마땅치 않아 지금까지 납골당만 세 차례 옮겼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금정굴 민간인 학살 사건을 “경찰에 의한 불법적인 집단학살”로 결론 내렸지만, 희생자들의 넋은 위로받지 못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권고했던 평화공원 설립도, 영구적인 유해 안치소 설치도 아직 이뤄지지 못했다. 유족들은 애가 끓는다. 부역 혐의자 가족이라는 낙인이 두려워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금정굴 쪽은 애써 외면했다. 억울한 죽음을 애도할 권리마저 박탈당한 채 살아온 세월이 수십 년이다. 서울신문은 24일 채봉화(74) 금정굴유족회장과 이병순(87) 고문을 만났다. ●“묶여서 끌려가던 행렬 속 아버지, 금정굴 저승 가는 길이었네” 1950년 10월 9일. 당시 열일곱 소년이었던 이 고문의 뇌리에는 70년 전 모습이 스틸사진처럼 남아 있다. 집 앞에서 두 사람씩 삐삐선(군용통신선)에 묶인 채 이동하는 행렬을 목격했다. 맨 뒤에 아버지 이봉린이 있었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3일 만에 수도를 빼앗긴 국군이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한 무렵 이봉린은 능곡국민학교에서 열린 유엔군 환영대회에 나갔다가 치안대에 끌려갔다. 인민군이 마을을 점령한 시기 ‘농촌위원장’을 맡아 공출량을 계산하는 부역을 했다는 이유였다. “우리 아버지가 일산리 구장(區長)을 했었거든. 동네에서 추켜세우는 사람이잖아. 주변에서 ‘형님이 일 봐야지’ 하니까 맡게 된 건데….” 어머니와 7남매는 잡혀간 아비의 끼니 걱정에 매일 번갈아 수십 킬로 걸어 밥을 날랐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경찰서에서 “(부역 혐의자들이) 문산으로 좌익 심사를 받으러 가서 오늘은 밥을 안 받는다”고 했다. 이 고문은 “문산을 가는 줄 알았지 금정굴로 가는 줄 누가 알았겠느냐”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행렬을 몰래 뒤따랐던 다른 희생자 유족을 통해 이 고문 가족은 진실을 알게 됐다. “아이고, 심사가 뭡니까. 그 구뎅이로 가서 다 쏴죽였어요!” 장남이었던 이 고문은 그 길로 작은아버지, 마을 어른들과 함께 사다리와 밧줄을 챙겨 금정굴로 향했다. 시신이라도 수습하자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시신은 찾지 못했고 피투성이가 된 채 금정굴에 떨어져 “살려 달라”고 외치는 한 사람을 구했다. 총알을 빗맞은 덕에 목숨을 건진 동네 주민 이경선이었다. 금정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이씨는 이후 죽을 때까지 고향 땅을 밟지 않았다. 금정굴에서 학살이 처음 벌어진 이날 이봉린을 포함해 46명이 희생됐다. 희생자 가족은 공포에 사로잡혀 침묵해야 했다. 그날 밤 이 고문의 집에 들이닥친 경찰은 “시체 가져왔느냐”, “빨갱이 찾으려고 금정굴에 갔다 왔느냐”고 화를 내며 장작 더미며 아궁이 구멍이며 죄다 창으로 쑤셔 댔다. “그날 금정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누가 고발을 했는지 자전거를 탄 태극단 놈들이 서넛 올라오고 있더라고. 길이 엇갈려서 망정이지 거기서 마주쳤다면 우리도 다 죽는 거야. 일곱 사람이 갔었는데…. 그래서 잠자코 살았던 거지.”●“유해 발굴’ 뉴스 보고 45년 만에야 금정굴을 찾았어.” “이제는 시대가 달라져 말이라도 하지, 예전에는 아버지가 ‘빨갱이’로 돌아가셨다고 어디 가서 말도 못해….” 채 회장은 45년의 세월 동안 아버지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살았다. 아버지 채기동은 보리밭을 갈다가 총을 멘 치안대 3명에게 끌려간 뒤 소식이 끊겼다. 그때 고작 네 살이었던 채 회장은 아버지와의 기억이 없다. 그는 졸지에 과부가 된 어머니와 금쪽같은 외아들을 잃은 할머니의 넋두리로 부친을 기억한다. “우리 엄마가 맨날 그러셨지. 봉화야, 네 아버지 금정구뎅이 가서 죽었다. 남들이 그런다.” 채 회장은 금정굴과 가까운 파주에서 평생을 살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고 45년이 지난 1995년에서야 처음으로 금정굴을 찾았다. 뉴스로 유해 발굴 소식을 전해 듣고 동생과 함께 갔다. 채기동은 6년 동안 강제징용을 당했다가 해방 이후 돌아왔다. 채 회장은 “9척 장신에 원체 기운이 장사라 인근에서 아버지를 당해 낼 사람이 없었다더라”고 했다. “총을 멘 치안대가 당신을 찾으니 도망가라”는 말에도 채기동은 “잘못한 것이 없다”며 당당했다. ‘부역자 가족’의 삶은 매 순간 고통으로 점철돼 있었다. 채 회장은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 봇짐 장사를 하려면 도민증이 필요했는데 우리한테는 도민증 허가를 안 내줘서 어머니가 ‘꼼짝없이 죽겠다’며 우셨다”며 “핍박받으면서 세 딸을 키운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난다”고 했다. 채 회장이 끝까지 파주를 떠나지 않은 건 어머니의 유언 때문이다. 채 회장 가족은 시간이 흘러 아버지에게 부역 혐의자라는 누명을 씌운 마을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됐다. 어머니는 “내가 죽어도 넌 반드시 이 동네에 살면서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나 두고 보라”는 말을 남겼다.●아직 끝나지 않은 금정굴 사건 “신도시 주민들은/발 밑이 저승인 사실은 모른 채/오래전 이 마을을 휩쓸고 간/역병보다도 더 고약한 숙청은 모른 채/두개골 정강뼈 쇄골 잘근잘근 밟으며/황솥밭 샛길을 오갈 뿐이다”(손세실리아, ‘뼈무덤’) 용기를 내 세상에 나온 유족들은 긴 싸움을 했다. 승리도 수차례 맛봤다.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진실 규명을 결정하면서 “최종 책임은 국가에 있고 희생자 상당수는 도피한 부역 혐의자 가족이거나 이와 무관한 지역 주민이었다”고 했다. 2012년에는 국가 배상 소송에서 승소해 “희생자 2억원, 배우자 1억원, 부모·자식 각 5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확정됐다. 수차례 무산됐던 ‘6·25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조례안’도 2018년 고양시의회에서 통과됐다. 그럼에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희생자가 제대로 된 위령시설 없이 떠돌고 있고 유족이 겪는 고통도 여전하다. 일부 보훈단체 회원들은 아직도 희생자를 ‘토착 빨갱이’라고 부른다. 보수 정당 시의원은 조례 제정을 반대하며 “(희생자들은) 김일성 앞잡이 노릇을 했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금정굴 현장에 조성될 계획인 평화공원은 “납골시설이 들어오면 집값 떨어진다”는 일부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채 회장은 “지금 희생자들을 임시 안치한 세종추모공원은 너무 멀다. 가까운 곳에 희생자들을 모시고 자주 왔다 갔다 하는 게 유족들의 소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죄도 없이 잡혀가 죽고, 설령 죄가 있다고 해도 재판 한 번 열지 않고 죽은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고문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게 한 전쟁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월드피플+] 中 노점상서 반찬파는 엄마 일 돕는 7살 초등 소년 화제

    [월드피플+] 中 노점상서 반찬파는 엄마 일 돕는 7살 초등 소년 화제

    노점상을 운영하는 엄마 곁에서 일손을 돕는 7세 소년이 화제다. 중국 광저우시 도심 거리에서 밑반찬을 조리해 판매하는 엄마를 도와 반찬 포장을 하는 소년의 동영상이 연일 온라인을 통해 공유됐다. 손님들이 주문한 반찬을 봉투에 담아 판매하거나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반찬을 권유하는 등의 모습이 담긴 이 영상은 24일 현재까지 약 360만 회 이상 공유됐다. 현지 유력언론 ‘시나닷컴’ 등을 통해 보도된 7세 아동은 광둥성(广东省) 광저우(广州市) 노점상에서 밑반찬 가게를 운영하는 20대 여성 웡모 씨의 아들 샤오누오 군으로 확인됐다. 올해 7세의 샤오누오 군의 활약은 이 일대 상인들 사이에서도 유명세가 자자하다. 일명 반찬집 ‘보조직원’으로 불리며 손님들을 능숙하게 대하는 그의 솜씨에 대해 이 일대 시장 상인들도 엄지를 치켜들 정도라고 웡 씨는 설명했다. 샤오누오 군이 일손을 돕는 웡 씨 노점상의 주력 상품은 소금에 절인 오리고기다. 웡 씨가 직접 조리해 판매하는 오리 고기는 짭조름하면서도 매콤한 맛으로 단골 고객의 수만 여럿이다. 더욱이 엄마 웡 씨가 밑반찬을 조리하는 매일 늦은 오후 시간대에는 샤오누오 군이 노점상을 찾아오는 고객들에게 직접 반찬을 판매해오고 있다. 샤오누오 군은 가게를 찾은 손님들에게 당일 오전 조리한 각종 반찬 시식을 권하는 등 능숙한 솜씨로 고객들을 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쓰촨성(四川) 출신의 웡 씨는 지난 2014년 광저우 화도구(花都区)로 이주한 뒤 줄곧 이 일대에서 노점상을 운영해왔다. 웡 씨는 아들 샤오누오 군을 임신했을 당시부터 지금까지 약 6년 동안 노점상을 운영하며 생활비를 홀로 마련해왔다. 그는 “샤오누오 군을 임신한 후 만삭이었던 때 시작했던 이 일이 지금까지 이어졌다”면서 “아들은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한 시도 떨어져 있지 않고 함께 엄마 곁을 지켜준 셈”이라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인근 초등학교에 입학한 샤오누오 군은 매일 오후 수업이 끝난 직후 곧장 엄마가 운영하는 노점상으로 하교하고 있다. 웡 씨가 운영하는 노점상은 매일 오후 5시에 문을 열고 같은 날 새벽이 돼서야 문을 닫는다. 웡 씨는 “다른 집 엄마들처럼 아이의 학습을 직접 도와줄 형편이 아니다”면서 “노점상을 운영하는 시간 동안 아이 혼자 집에 남아서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며 시간을 헛되게 보내도록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게 일을 돕지 않더라도 하교한 아들과 최대한 긴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고 덧붙였다. 노점상의 보조직원으로 일하는 샤오누오 군의 교육에 대해서도 웡 씨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아이가 학교에 입학한 이후 매일 제출해야 하는 과제물 많다”면서 “아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지원해 나중에 성인이 된 이후에는 지금보다는 조금 더 편한 일을 하며 살기는 바란다”고 말했다.때문에 하교 후 아들 샤오누오 군의 과제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지도, 검사해오고 있다고 웡 씨는 설명했다. 그는 “다만 아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 많다”면서 “수년 동안 그저 먹고 사는 것이 바빠서 아이에게 신경 쓰지 못한 것이 마음이 아프다. 심지어 아이를 데리고 인근 유원지도 한 번 놀러가지 못했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아들의 미래에 대해 “당당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키우고 싶다”면서 “나보다는 힘들지 않게 살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고 싶다”고 했다. 한편, 최근 온라인에 공유된 영상을 통해 일약 유명인이 된 샤오누오 군은 엄마의 일손을 돕는 것이 즐겁고 보람된 일이라고 밝혔다. 샤오누오 군은 “엄마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어서 다른 집 아이들과 비교해 나는 더욱 행운아라고 생각한다”면서 “특히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 중에는 이미 삼촌, 이모라고 부를 수 있게 된 단골 손님들이 많다. 엄마가 바쁜 시간에는 이 분들에게 직접 새로 무친 반찬을 맛보도록 잘게 잘라주고 소개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엄마 가게에서 바쁜 엄마의 일손을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 작은 성취감도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선 넘는 일요일] “아름다운 밤이에요~” 장미희의 그때 그 모습은?

    [선 넘는 일요일] “아름다운 밤이에요~” 장미희의 그때 그 모습은?

    ‘선데이서울’에 실린 전설적인 스타들의 그때 그 모습.1970년대 정윤희·유지인과 더불어 ‘2세대 新 여배우 트로이카’로 불렸던 장미희의 ‘선데이서울’ 속 과거 모습은 어땠을까?장미희는 1976년 박태원 감독의 <성춘향전>을 통해 20세의 어린 나이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비록 영화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뒀지만, 이듬해인 1977년 장미희가 주연으로 발탁된 <겨울 여자>가 약 5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한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장미희는 유지인·정윤희와 함께 1세대 여배우 트로이카 ‘문희·남정임·윤정희’의 뒤를 잇는 2세대 여배우 트로이카의 시대를 열게 된다. 이후 정윤희와 함께 출연한 <청실홍실>과 <비바람 찬이슬>, <찔레꽃> 등이 연이어 흥행에 성공하면서, 장미희는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에서도 남다른 두각을 보여주게 된다. 1977년 ‘미녀배우 순위’에서는 정윤희의 뒤를 이어 2위의 자리에 오르며 전국민의 사랑을 받는 배우로서 입지를 다지게 된다. 1983년부터는 배창호 감독과의 인연이 시작되어 <적도의 꽃>, 1984년 <깊고 푸른 밤>에서 원숙미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게 된다. 당시 성인영화가 범람하던 시기인터라 장미희도 기존의 풋풋했던 이미지를 탈피하고 성숙미를 선보이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장미희는 1990년 이덕화와 호흡을 맞춘 <불의 나라>로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으며, 1991년 <사의 찬미>를 통해 제12회 청룡영화상, 제2회 춘사대상영화제, 제30회 대종상, 제37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에서 모두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게 되면서 당대 여배우들과 비교해 압도적인 연기력을 입증했다. 특히 제22회 대종상에서는 그 유명한 “아름다운 밤이에요~”라는 유행어까지 탄생시킬 정도로 대중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2000년대에 이르러 영화보다 드라마 활동에 전념하기 시작한 장미희는 2008년 KBS 주말연속극 <엄마가 뿔났다>, 2010년 SBS 특별기획 <인생은 아름다워> 등에서 우아하고 고고한 연기를 펼치며 활약했다. 이때부터 주로 기품있는 사모님풍의 배역을 자주 맡으면서 장미희는 ‘사모님’, ‘귀부인’과 같은 수식어가 붙게 됐다. 2세대 여배우 트로이카 중 현재까지 활발한 연기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장미희의 대표작으로는 <겨울여자>, <육남매>, <장미빛 연인들>, <같이 살래요> 등이 있다. 글 임승범 인턴 seungbeom@seoul.co.kr영상 임승범 인턴 장민주 인턴 goodgood@seoul.co.kr
  • “엄마 급해” 딸 사칭해 송금 요구…메신저피싱 사기 주의

    “엄마 급해” 딸 사칭해 송금 요구…메신저피싱 사기 주의

    “엄마, 지금 뭐해?”, “빨리 좀~ 돈 보내고 바로 알려줘!” 등 가족 또는 지인을 사칭해 송금을 요구하는 ‘메신저 피싱’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24일 방송통신위원회, 경찰청,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유관기관에 따르면, 지난 1~4월 메신저 피싱 피해액은 약 128억 원에 이른다. 사기범들은 액정파손이나 충전단자 파손, 공인인증서 오류 등으로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어 PC로 메시지(카톡 등)를 보낸다고 하면서 접근한 뒤 긴급한 송금, 선배에게 빌린 돈 상환, 대출금 상환, 친구 사정으로 대신 입금 등의 이유로 “지금 당장 급히 돈이 필요하다”며 다급한 상황을 연출한 뒤 거액의 송금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문화상품권 핀번호를 요구하거나, 스마트폰 ‘원격제어 어플’ 설치를 유도하는 새로운 수법도 발생하고 있다. “문화상품권을 구매해야 하는데 카드 문제로 결제가 되지 않으니, 문화상품권 구매 후 핀번호를 보내주면 구매대금을 보내주겠다”고 속이는 방식이다. 스마트폰에 익숙지 않은 피해자에게 원격제어 어플을 설치하게 한 후 해당 휴대폰을 직접 제어하거나 개인정보를 탈취해 온라인 결제로 금전을 편취하는 방식도 성행하고 있다. 중장년층이나 노년층을 타깃으로 신용카드 사진과 비밀번호 전송을 요구한 후 직접 상품권을 구매하는 경우도 있다. 가족, 지인 외에 정부기관이나 기업 등을 사칭하는 경우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경찰청은 올해 말까지 메신저 피싱 등 서민경제 침해사범에 대한 집중단속을 추진한다. 방통위도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 이동통신사업자와 협력해 다음달 초 이동통신 3사 가입자에게 ‘지인을 사칭한 메신저 피싱 주의’ 문자메시지를 발송할 계획이다. 메신저 피싱의 경우 사전 차단이 극히 어렵고 피해가 발생할 경우 사기범 추적도 쉽지 않기 때문에 이용자들이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가족의 계정을 그대로 사용하더라도 급하게 송금을 요구한다면 반드시 전화를 걸어 송금 사실을 추가 확인하는 것이 좋다. 또 가족과 지인 외의 타인 계좌로 송금하지 말고, 출처가 불분명한 이메일과 문자, URL 주소는 삭제해야 한다. 메신저 비밀번호도 정기적으로 변경해 스스로 사기 피해를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메신저 피싱 등으로 피해를 당한 경우 즉시 112에 신고하고, 공인인증서가 노출된 경우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118 ARS(4번→1번)을 통해 공인인증서 분실 및 긴급 폐기를 요청할 수 있다. 피해자의 명의가 도용당한 경우에는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에서 운영하는 명의도용방지서비스(msafer.or.kr)에 접속하여 휴대전화 가입현황 조회 등으로 추가 피해 발생을 예방할 필요도 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유전병 고통 끊어주려” 6세 딸 살해한 비정한 엄마

    “유전병 고통 끊어주려” 6세 딸 살해한 비정한 엄마

    1심서 심신미약 주장 인정 안 돼2심도 징역 25년…항소 기각 계획적으로 6세짜리 딸을 살해한 뒤 “유전병으로 인한 고통을 끊어주려 했다”고 주장한 40대 어머니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중형을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송영승 강상욱 부장판사)는 24일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 된 최모(43) 씨에게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최씨는 지난해 5월15일 오전 11시쯤 인천 서구 소재 자택에서 자신의 딸 A양(6)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한 혐의를 받았다. 최씨는 범행 4시간 뒤 인근 지구대로 찾아가 자수했다. 최씨는 “소화기 계통의 질병을 앓고 있는데, 딸에게 유전이 돼 고통을 받을까봐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또 최씨는 심신미약을 주장하며 정신감정을 받았지만, ‘심신미약에 의한 범행이 아니다’는 결과가 나왔다. 징역 25년을 선고한 1심 판결에 검찰과 최씨 모두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지만, 2심은 원심의 양형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최씨는 범행 몇 시간 뒤 자수했고 자신의 잘못을 뒤늦게나마 뉘우쳤다. 과거 형사처벌 전력이 없고 피해 아동을 위해 3000만원을 공탁한 점은 유리한 정상”이라며 “최씨는 이 사건 범행을 며칠에 걸쳐 계획했고 다른 가족들이 집을 비운 날 딸을 살해했다. 안타깝게도 그날은 A양의 생일 다음 날이었는데, A양은 무슨 이유로 죽임을 당하는지 알지 못한 채 극심한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공포 속에서 숨을 거뒀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또 “최씨는 수사 과정에서 A양이 고통을 받을 거라서 살해했다고 진술했지만, 이를 동기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자신의 어린 딸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를 가지고 범행에 나아간 거로 보인다”고 질타했다. 이어 “주변 환경으로 인해 다소 스트레스를 받았다거나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있다는 점을 참작하더라도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A양의 아버지는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경주 스쿨존 사고 운전자 구속영장 기각…“세 자녀 엄마”

    경주 스쿨존 사고 운전자 구속영장 기각…“세 자녀 엄마”

    “주거 일정하고 증거인멸·도주 우려 없어” 경북 경주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고의성이 의심되는 어린이 교통사고를 일으킨 40대 여성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24일 경주경찰서 등에 따르면 경찰은 감정 결과를 바탕으로 A(41)씨에 대해 개정된 ‘도로교통법 및 특정범죄 가중처벌법(민식이법)’보다 형량이 무거운 특수상해 혐의를 적용했지만 전날 오후 대구지검 경주지청은 사건의 중요성을 고려해 검찰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이렇게 결정했다. 검찰심의위원회는 A씨가 세 자녀의 엄마이고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다고 판단했다. 2018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검찰심의위원회는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에 대해 외부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수사 계속 여부와 공소 제기, 불기소 처분 여부 등을 심의한다. 단, 권고 효력만 있어 검찰이 이 결정을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경찰 관계자는 “빠른 시일 내에 국과수의 결과를 토대로 운전자에 대한 추가 조사를 검토한 후 검찰에 사건을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25일 오후 1시 40분쯤 경주 동천동 놀이터에서 가해자 A씨는 자신의 5살 난 딸을 괴롭힌 후 자전거를 타고 달아나던 B군(9)을 SUV차량으로 약 200m 정도를 쫓아가 추돌했다. 사고로 B군은 다리를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B군 가족은 A씨가 ‘우리 애를 때리고 사과하지 않는다’며 B군을 놀이터에서부터 쫓아 일부러 교통사고를 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사고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 화면이 공개돼 논란이 일자 경주서는 합동수사팀을 꾸려 사건을 조사해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두 차례 현장 검증과 사고 당시 상황을 분석한 결과 고의 사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경찰에 전달했다. 하지만 A씨는 고의성이 없다고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거리두기’ 요청했더니…한 살배기 얼굴에 기침한 백인 여성

    ‘거리두기’ 요청했더니…한 살배기 얼굴에 기침한 백인 여성

    코로나 방역 위해 ‘거리 두기’ 요청하자유모차 탄 아이 얼굴에 대놓고 ‘콜록’히스패닉계 아이 엄마 “인종적 동기”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요청에 발끈한 미국의 한 백인 여성이 한 살배기 아이의 면전에 일부러 기침하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23일(현지시간) USA투데이 등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지난 19일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의 프로즌요거트 체인점 요거트랜드 매장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두고 히스패닉계 아이 엄마와 60대로 추정되는 백인 여성이 말다툼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경찰에 따르면 아이 엄마는 자신의 앞에 줄을 선 백인 여성에게 너무 가까이 붙어있다고 지적하면서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거리 두기를 유지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엄마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 백인 여성은 거리 두기를 해달라는 아이 엄마의 말에 화를 내면서 의도적으로 도발을 했다. 이 여성은 마스크를 벗은 채 유모차에 탄 한 살배기 아이의 얼굴을 향해 2~3차례 기침을 한 뒤 매장을 빠져나갔다. 아이 엄마는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이 “인종적 동기”에서 비롯됐을 것이라면서 “내가 스페인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들은 여성이 거리 두기 문제를 놓고 아들을 괴롭힌 것”이라고 주장했다. 엄마는 “아들이 사건 이후 기침을 했고 열이 약간 있었지만 회복됐다”면서 가슴을 쓸어내린 뒤 자신의 아이가 이번 일로 코로나19에 걸리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달아난 여성을 추적 중이며, 아이에게 폭행을 저지른 혐의로 이 여성을 기소할 방침이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유세미의 인생수업] 혼자여서 좋은 날

    [유세미의 인생수업] 혼자여서 좋은 날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다. 어차피 예견된 실직이었다. 회사는 뜬금없이 젊은피 수혈만이 살길인 양 핑계 댄 지 일 년째였다. 창업주 아들이 전공도 애매한 유학을 마치자마자 임원 자리에 앉더니 나이 많은 직원만 보면 답답증이 일어나는 듯했다. 자기 목숨 부지에 혈안 된 인사팀장과 귀엣말 한번 쑥덕거릴 때마다 동료들이 짐을 싸서 떠났다. 창립 초창기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청춘을 바친 회사. 이곳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웃고 울던 세월이 28년. 김화평 부장의 인생 그 자체인 회사에서 ‘젊게 바꾸고자 가슴 찢어지며 결단한 오너의 뜻’이라는 명분에 어이없이 내쫓긴 꼴이었다. 그동안 왜 퇴직 후를 걱정하지 않았을까만은 늘 일에 쫓겨 그저 띄엄띄엄 걱정했을 뿐이다. ‘다녀 봐야 얼마나 더 다니겠어…. 준비를 해야지….’ 그러나 영업실적에 목을 매고 아파트 대출금에 허덕였다. 커가는 애들에게도 마른 논에 물 들어가듯 돈이 필요한데 그저 딴생각 말고 직장이나 온전히 다니자라고 고개를 흔들었을 뿐이다. 어려운 일은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것이 인생이던가. 퇴직한 후 코가 쑥 빠져 있는 김화평 부장을, 아니 더이상 부장 아닌 중년의 남자를 보며 아내는 자신도 이제 홀로서기를 하고 싶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남편과 두 아들, 김씨네 세 남자 뒷바라지에 바친 인생은 이것으로 충분하다나. 직장도 그만뒀으니 새벽부터 해장국 끓일 일 없고, 다 큰 아이들은 더이상 엄마 손이 필요 없다고 했다. 인생 오십 넘었으나 이제라도 자신의 꿈을 펼쳐 보겠다는 아내는 알고 보니 야심가였다. 아내는 거짓말처럼 미련 없이 짐을 싸더니 친구와 플라워 카페라나 뭐라나 아무튼 동업을 시작한다며 부산으로 떠났다. 바다 위 노을이 가장 애틋하게 보이는 곳에서 커피를 마신다며 그에게 문자를 날리기도 했다. 이혼도 아니고 졸혼은 더더욱 아니며 그저 나이 먹었으니 이젠 쿨하게 따로따로 좀 살아 보자는 이상한 형식의 별거를 일방적으로 당한 셈이다. 철부지 엄마라는 둥, 배신이라는 둥 분개하며 그의 편을 들어줄 거라 기대한 아들들은 엄마가 옆집 마실이라도 간 양 덤덤했다. 큰 녀석은 애써 이직한 회사도 제 마음 같지 않은지 힘들어하고, 둘째는 아직도 취업의 높은 장벽 앞에 절망하고 있었으니 자기 발등 불끄기에 정신없어 보였다. 그는 쌀을 씻으며, 세탁기를 돌리며, 인생이 참 서운하다 생각했다. 부모님에게도 아직 실직 얘기를 못했다. 당신 아들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다 여기는 그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방법을 찾지 못해서이다. 아내가 떠나버렸다는 얘기를 하는 것도 태산처럼 막막하다. 평생 천생연분 그들에게 그저 따로 사노라 실토하는 건 지구가 알고 보니 평평하답니다라는 말과 비슷하게 들리지 싶다. 올해 아흔의 아버지는 지금도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소녀 같다고 미소 짓는다. 체기 있다고 투정부리는 아흔셋 아내의 발을 꼭꼭 주물러 주며 어쩜 발조차 이렇게 귀엽냐고 웃음을 터뜨리는 아버지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폭염이라지만 김화평 부장의 올여름은 서늘하다. 일이 없어 그렇고 아내의 빈자리가 더 그렇다. 쉽지 않겠지만 다시 일을 찾아야 하고 아내의 노을 타령에 답장도 해 줘야 한다. 안간힘을 쓰는 두 아들의 쉽지 않은 도전도 응원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가족 모두 이 풍진세상을 홀로서기 위해 기를 쓰는 중이다. 어차피 인생은 누구나 혼자다. 식물도 분갈이를 하면 한동안 몸살 하듯 우리도 홀로 설 때면 끙끙 앓는 인생 한마디를 겪는다. 그런 때는 혼자여서 그저 좋은 날로 여기면 된다. 그래야 그 한마디가 단단해지도록 오늘 온 마음을 다할 수 있다.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전쟁은 안 된다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전쟁은 안 된다

    한국전쟁 끝자락에 태어났으니 전쟁에 대한 기억이 있을 리 없지만, 전쟁이 남긴 상처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은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1~4반은 남학생반, 5~7반은 여학생반이었다. 학급당 70명이 넘었는데, 오전 수업 끝나고 점심시간이 오면 반 학생 중 절반은 집에 갔다. 중학교 입학시험이 있던 시절이라 진학하지 않는 아이들은 먼저 귀가시키고, 나머지 절반만 학교에 남아서 입시 공부를 오후 늦도록 했다. 그 아이들 대부분은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다시 담임 선생님 댁에 모여서 밤 11시까지 과외수업을 받았다. 새벽별 보며 등교하고 달을 보며 귀가하는, 입시에 찌든 소년기였다. 반에는 전쟁고아 S와 L이 있었다. S는 다부진 표정에 눈빛이 날카로운 아이였고 L은 애늙은이처럼 수더분하게 털털했다. 부모 있는 아이들도 절반이 진학을 포기했으니 고아원 아이들이야 말할 나위가 없었다. 둘 다 오전 수업만 마치고 하교했을 것이다. 그런데 중학교에 진학하고 보니 같은 학교에 S가 다니고 있었다. 워낙 머리가 뛰어나서 혼자 힘으로 입시에 합격했고, 고아원 측에서도 특별한 배려를 해 준 모양이었다. 친한 사이가 아니라 사정은 알 수 없으나 S의 학교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중2 때였다. 어느 날 학교를 파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중앙공원 옆 공터에 사람들이 모여 싸움 구경을 하고 있었다. 남학생 두 명이 교복 차림으로 주먹을 휘두르며 맞붙고 있었다. 고등학생 교복을 입은 덩치 큰 학생이 피투성이가 된 채 흠씬 두들겨 맞고 있었다. 두들겨 패는 학생을 보고 깜짝 놀랐다. S였다. 자기보다 덩치가 훨씬 큰 고등학생을 간단히 때려눕힌 그는 옷을 툭툭 털더니 구경꾼들 사이로 유유히 빠져나갔다. 그의 살기 어린 눈빛이 지금도 생각난다. 그 후론 S의 소식을 알지 못한다. 어려서 들은 얘기지만 전쟁고아 아기들은 주사 맞을 때 울지 않는다고 한다. 떼를 써도 응석을 받아줄 엄마가 없으니 울어도 소용없음을 아는 것이다. 가끔 S가 생각날 때마다 안쓰럽다. 철없는 아둔패기라서 그땐 몰랐지만 나이 먹고 나니 깜냥이 조금이나마 생긴 것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전쟁이 없었다면 고아 될 리 만무했겠고, 그 좋은 머리로 얼마나 큰 성취를 이룰 수 있었을까. 삶을 비극으로 만드는 전쟁만은 피해야 한다. 6·25 발발 70주년이다. 우석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 “아이 꼭 안고 죽은 엄마들… 전쟁 비참함 알리는 게 마지막 임무”

    “아이 꼭 안고 죽은 엄마들… 전쟁 비참함 알리는 게 마지막 임무”

    “전투가 끝나고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는데 오빠가 보이지 않았어. 여기저기 찾아보니 오빠가 헌 옷을 입고 죽어 있었지. 시신을 수습할 겨를도 없이 모래로 대충 덮어 주고 올 수밖에 없었어.”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마포보훈회관에서 만난 여군 참전용사 박순애(83)씨는 처참했던 전투 상황을 설명하던 중 오빠의 죽음을 떠올리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옆에서 박씨의 설명을 듣던 남편 김우춘(83)씨도 “요즘 사람에게 그때의 일을 설명하면 잘 믿지 못한다”며 거들었다. 이들은 한국에 얼마 남지 않은 참전유공자 부부다. 부부는 1951년 봄 황해도 인근에서 활동한 8240부대 ‘구월산 민간인 유격대’ 소속이었다. 박씨는 황해도 인근 곰념섬에서 활약하며 북한군 침투를 저지했다. 김씨는 북한군의 기지를 기습하는 상륙작전에 참여했다. 15살에 참여한 전쟁이란 말 그대로 ‘아픔’이었다. 황해도가 고향인 박씨는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은율군 염천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소년단 회장을 할 정도로 총기가 넘치는 학생이었다. 순탄했던 학교 생활은 전쟁으로 끝이 났다. 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폭격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박씨는 “누군가가 집 대문을 두드려 나가 보니 코가 큰 외국 사람이 서 있었다”며 “어머니가 미군 30명분의 밥을 해 줬던 것이 내가 기억하는 전쟁의 첫 모습”이라고 회상했다. 1·4 후퇴를 앞두고 그는 피란길에 올랐다. 맨발로 나룻배를 타고 도착한 곳은 은율군 인근에 있는 곰념섬이었다. 무사히 피란처에 도착했지만 굶주렸다. 입대하면 굶지 않을 거란 생각에 당시 여대장인 이정숙의 권유로 1951년 봄부터 유격대 활동을 시작했다. 200명 남짓한 유격대의 생활은 열악했다. 허름한 초가집 한방에 40여명이 모여 누웠다. 8~10채의 초가집을 막사로 사용했다. 전염병으로 죽어 나가는 이들이 속출했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북한군 눈을 피해 뭍으로 나가야만 했다. 길목에 설치된 지뢰도 피해야 했다. 박씨는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기 일쑤였고, 미군이 먹다 남긴 닭다리를 먹는 게 그나마 잘 먹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남편 김씨는 서해 최북단에서 활동했다. 연평도·백령도 등 현재의 ‘서해 5도’를 기점으로 황해도 인근 섬인 초도 등을 기습하는 상륙작전에 주로 참여했다. 빗발치는 총알 속에서도 작은 배에서 내려 적진을 향해 뛰었다. 요즘 김씨의 기억은 하루가 다르게 희미해진다. “이젠 드문드문 떠오르는 게 전부야.” 박씨의 임무는 물골을 따라 침투하는 북한군을 막아내는 것이었다. 그는 대원들과 함께 섬 바로 앞 물속에 몸을 숨겼다. 북한군은 총이 물에 젖을까 양팔을 위로 들고 걸어왔는데 그 순간 돌멩이와 몽둥이로 기습했다. 전투의 결말은 늘 비극이었다. 김씨가 목격한 장면은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길가에는 어머니들이 웅크린 자세로 죽어 있었다. 아이를 꼭 안고 죽음을 맞은 것이다. 이들이 숨기 위해 파놓은 굴에는 어머니를 잃은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박씨는 “우리 어머니도 박격포 공격이 시작되면 나와 동생을 끌어안기부터 했다”고 말했다. 전쟁이 끝났지만 곤궁한 삶은 그대로였다. 부부는 황폐화된 전국을 돌아다니며 어려운 생활을 이어 갔다. 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음식을 구걸하기도 했다. 부부는 각자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다가 21살이 되던 해 지인의 소개로 만났다. 김씨는 처음에는 아내가 참전유공자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 우연히 그로부터 전쟁에 참전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도 황해도에서 비슷한 시기 피란을 내려온 같은 실향민이자 전쟁을 같이 치른 전우애로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고 있다. 부부는 코로나19가 오기 전 일주일에 세 번은 함께 청소년을 대상으로 안보교육을 했다. 청소년들이 부부의 얘기에 큰 관심을 가져 주기 때문에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이들은 인터뷰 내내 걱정이 많은 표정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5년 전만 해도 부부 참전용사 5쌍 정도가 모임을 했다”며 “이제는 소식도 다 끊겨 몇 명이 살아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정부는 부부 참전용사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파악하고 있지 않다. 김씨는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우리 부부에겐 이번 6·25 70주년이 마지막 기념일이 될 수도 있어. 80주년을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 젊은 세대에게 전쟁의 비참함을 알려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우리의 마지막 임무야.”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멕시코 갓 태어난 세쌍둥이 코로나19 양성, 감염 경로 깜깜

    멕시코 갓 태어난 세쌍둥이 코로나19 양성, 감염 경로 깜깜

    멕시코에서 갓 태어난 세쌍둥이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간) 산루이스 포토시주의 한 병원에서 미숙아 상태로 세상에 나온 두 아기, 아들과 딸은 안정적인 상태지만 다른 아들은 산소 호흡기를 달고 있다고 영국 BBC가 23일 전했다. 지방 당국은 전례 없는 일이라며 크게 당혹해 하고 있다. 주 건강안전위원회 대변인은 다둥이 출산 때 감염병이 확인된 것은 세계적으로 드문 일이라며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료 전문가들은 임신 중 엄마의 자궁 안에서 감염됐을 것으로 보고 사실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아주 적은 수의 신생아가 출산 후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 보건장관인 모니카 릴리아나 랑겔 마르티네스는 “출생 순간 그네들이 감염됐을 것이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부모는 최근에도 검사를 받았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 당국은 이들이 무증상 감염됐을 수 있다고 봤다. 멕시코는 지난 2월 28일 첫 환자가 보고돼 이날 오후 9시(한국시간) 현재 18만 5000명 이상이 감염돼 2만 2584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 예일대 의대 연구진은 최근 자궁 내 감염 사례를 처음 보고한 바 있다. 일단 감염이 되면 엄마나 아기들 모두 그다지 위험할 수 없지만 조산으로 출생하는 아이일수록 감염될 위험이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바이러스 때문에 유산한다든가 임신 중 아이의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든가 하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예방 차원에서 임신한 여성들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될 위험을 줄일 수 있도록 사회적 접촉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 감염돼도 대다수 임산부는 경미한 증상에 그친 뒤 회복되고 있다. 아이들은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아이를 돌보는 상황이라면 규칙적으로 손을 잘 씻어 당신 손이 닿아 바이러스를 옮길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신경숙, 표절 파문 후 첫 장편 연재… ‘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표절 파문 후 첫 장편 연재… ‘아버지에게 갔었어’

    2015년 표절 파문 이후 지난해 중편소설을 발표하며 활동을 재개한 신경숙(57) 작가가 장편 연재를 시작했다. 도서출판 창비는 신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창작과비평 웹매거진에 화·목요일 주 2회 연재한다고 23일 밝혔다.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엄마의 입원으로 J시의 집에 홀로 남게 된 아버지를 보러 가기 위해 ‘나’가 기차에 오르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J시와 그 안에서 평생을 살아온 아버지의 지나온 삶이 작중 화자인 ‘나’의 글쓰기 문제와 결합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창비는 소설 속 아버지가 한국사회에서 흔히 그려지는 산업화세대의 아버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가부장적 인습이 없는 인물로 그려질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2008년 출간한 장편 ‘엄마를 부탁해’로 밀리언셀러에 올랐던 신 작가가 이번에는 ‘아버지’를 소재로 선택했다. 신 작가는 이날 웹진에 올린 글 ‘연재를 시작하며’에 “당신 뜻대로 되지 않은 힘겨움 앞에 서 계시는 나의 아버지께 이 작품을 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쓴다고 말하고 싶으나 사실은 오그라든 제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적었다. 이어 “저는 슬픔과 모순을 심연에 품고 나아가야 하는 허망하고 불완전한 인간”이라며 “바람에 날려갈 한톨 먼지”라고도 했다.앞서 신 작가는 지난 2015년 6월 단편 ‘전설’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과 유사하다는 표절 의혹이 제기되자 활동을 중단했다. 지난해 5월 계간 ‘창작과비평’에 중편 ‘배에 실린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를 발표하며 활동을 재개한 그는 ‘작품을 발표하며’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표절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당시 “젊은 날 한순간의 방심으로 제 글쓰기에 중대한 실수가 발생했다”며 “모두 저의 잘못이고 불찰”이라고 밝혔다.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오는 가을 연재가 끝나면 퇴고를 거쳐 올해 안에 단행본으로 출간된 예정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열두 살에 데카와 전속 계약, 나는야 ‘바이올린을 든 해리 포터’

    열두 살에 데카와 전속 계약, 나는야 ‘바이올린을 든 해리 포터’

    이렇게 표현하면 어떨지 모르겠다. ‘바이올린을 든 해리 포터’라고, 여느 열두 살처럼 해리 포터, 호빗 시리즈, 게임 앵그리버드에 빠져드는 초등학생이다. 그런데 바이올린 재능은 낭중지추다.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가장 행복하고 자신감에 넘친단다. 22일 영국 BBC에 따르면 호주 멜버른에서 엔지니어 아빠와 회계사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다. 중국계 부모는 악기를 전혀 다룰 줄 모르지만 다섯 살 때 처음 바이올린을 집어든 지 몇주 만에 중국의 우유 광고에 바이올린을 든 채 등장할 정도였다. 열 살 때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예후드 메뉴힌 콩쿠르 주니어 공동 우승하며 최연소 우승 기록을 썼다. 물론 본인은 우승 같은 것은 꿈도 꾸지 않고 오로지 연주하는 것만 신경 썼다고 겸손해 했다. 보통 크기의 절반인 바이올린을 신들린 듯 연주하며 성인 연주자들과 의젓하게 비발디의 사계 가운데 여름을 협연하는 유튜브 동영상은 수백만 회 시청을 자랑한다. 늘 무대 위에 오르기 전에는 긴장하는데 이상하게도 연주를 시작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즐기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특이한 루틴(버릇)이 하나 있다. 무대에 오르기 전 바나나를 까먹으면 이상하게 힘이 솟구치며 마음도 차분해진단다. 올해 클래식 정통 레이블인 데카 레코드와 계약한 최연소 음악가로 이름을 올렸다. 처음 녹음한 싱글 작품은 이탈리아 작곡가 겸 바이올리니스트 안토니오 바치니(Antonio Bazzini 1818~1897년)의 ‘요정의 론도’로 낯설고 많은 테크닉이 요구되는 작품이다. 메뉴힌 콩쿠르 심사위원이었던 막심 벵게로프의 연주를 몇년 전 듣고 홀딱 반했다고 했다. 리가 롤 모델로 삼는 벵게로프가 연주하는 동영상을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지켜봤다. 두 번 만에 녹음을 마쳤는데 그는 자신의 연주에 10점 만점에 9점을 주고 싶다고 했다. 의젓하게도 “개선의 여지가 있으므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매일 학교를 마친 뒤 4시간씩 연습하고 주말에는 조금 더 시간을 쓴다고 했다. 이렇게 전하니 그가 온종일 연주에만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짬만 나면 해리 포터의 마법 세계에 빠져든다며 다음에 영국에 갈 일이 있으면 해리 포터 마법 놀이터를 찾고 싶다고 했다. 그 외에도 할 줄 알고 즐기는 일이 많다고 했다. 수영, 사이클, 달리기 등등. 게임 앵그리버드는 많이는 아니고 조금 즐기는데 “싸움이나 피를 흘리는 게임이 아니라서”라고 설명했다. 다만 마이클 잭슨은 예외이긴 하지만 대체로 팝 음악은 즐겨 듣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배트맨’ ‘슈퍼맨’ ‘스타워즈’ 영화 사운드트랙을 즐겨 듣는 편이라고 했다. 극적이기도 하고, 힘도 있고, 역시 클래식 요소 때문이라고 했다. 이미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와 뉴욕 카네기홀 무대를 비롯해 축제나 여러 공연장에서 연주를 해봤다. 그의 꿈은 “프로 바이올린 독주자가 돼 세계를 여행하며 오케스트라와 함께 신나는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코로나19 탓에 여러 재미있는 일정이 취소되고 있다. 예를 들어 8월에 호주 체임버 페스티벌 무대에서 영국 첼리스트 셰쿠 칸네메이슨과 협연할 예정이었는데 연기됐다. 하지만 리는 낙담할 아이가 아니다. “정말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해요.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테크닉 훈련에 쏟을 수 있고 더 다양한 레퍼토리를 만들 수도 있는 거 잖아요.” 그런데 이 영민한 바이올린 신동은 이 점 하나를 인정하고 들어가긴 한다. “청중이 한 분이라도 계셨으면 좋겠네요.”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제천에서 매주 토요일 버스킹 만나요”

    “제천에서 매주 토요일 버스킹 만나요”

    제천문화재단이 오는 27일부터 매주 토요일 ‘버스킹&버스커’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시민들의 문화적 갈증 해소와 지역 예술인들의 공연욕구 충족을 위해 마련한 이벤트다. 재단은 의림지 솔밭공원, 청전동 야외공연장, 역전시장 등 3곳에서 1주씩 번갈아가며 버스킹 무대를 마련하기로 했다. 재단은 이 행사를 통해 댜양한 공연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첫번째 버스킹은 의림지 솔밭공원에서 오는 27일 오후 5시부터 1시간 동안 펼쳐진다. 첼리스트 엄마와 피아니스트 아들의 하모니 연주 등이 의림지를 찾은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추억을 선사할 예정이다. 버스킹 공연팀은 1인당 12만원의 출연료를 받는다. 1팀당 공연시간은 30분 정도다. 버스킹 참여를 희망하는 예술인은 제천문화재단 홈페이지 또는 제천시청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다른 지역에서 활동중인 예술인도 신청할수 있다. 이번 공연은 제천문화재단 홈페이지 링크(http://www.jccf.or.kr)를 통해 다시 볼 수 있다. 재단 관계자는 “코로나로 피해를 입은 예술인 및 예술단체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코로나로 지친 시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제천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팬티 빨래’ 숙제 낸 교사 검찰 송치...아동복지법 위반 등 혐의 적용

    ‘팬티 빨래’ 숙제 낸 교사 검찰 송치...아동복지법 위반 등 혐의 적용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팬티 세탁 숙제를 내고, 성적으로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한 교사가 검찰에 넘겨졌다. 울산지방경찰청은 22일 울산 모 초등학교 A 교사를 불구속 기소 의견을 검찰에 송치했다. A 교사는 아동복지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받았다. 속옷 빨래 과제를 내주고, 학생들이 올린 과제 사진과 자기소개 사진 등에 ‘섹시한’, ‘이쁜 속옷’ 등 댓글을 단 것이 문제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 경찰은 그동안 A 교사가 학생들에게 음란한 행위를 시킨 것인지, 학생 정서발달에 나쁜 영향을 준 것인지 등을 수사해왔다. 울산시교육청도 A 교사 송치 사실을 최근 통보받았다. 시교육청은 지난달 29일 A 교사에게 품위 유지의 의무 위반으로 최고 징계 수위인 ‘파면’ 처분을 내렸다. A 교사는 논란 이후 자신의 SNS를 통해 사과 뜻을 밝히면서도 자신의 향한 인터넷상 비난 글을 두고 마녀사냥이라며 인터넷 실명제 도입 운동을 전개하고 싶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은 지난달 13일 A 교사를 아동복지법 위반 등으로 고발하기도 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골프스타 미셸 위, 딸 ‘유나’ 출산

    골프스타 미셸 위, 딸 ‘유나’ 출산

    2014년 US여자오픈 골프선수권대회 챔피언 미셸 위(31·미국·한국명 위성미)가 엄마가 됐다. 지난해 8월 미국프로농구(NBA)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사무국 임원 조니 웨스트와 결혼한 위는 21일 소셜 미디어를 통해 딸을 낳은 사실을 전하며 “너를 만나기 위해 나의 일생을 기다려왔다. 엄마와 아빠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너를 사랑하며 너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딸의 이름은 ‘매케나 카말레이 유나’로 지었다.
  • 동네마다 키즈카페·장난감도서관…아이도 엄마도 편한 육아천국 강동

    동네마다 키즈카페·장난감도서관…아이도 엄마도 편한 육아천국 강동

    부모 모임 공간 등 제공해 정보 교환도 권역별로 6곳 추가… 접근성 높이기로서울 강동구의 영유아 복합 커뮤니티 시설인 ‘아이·맘 강동육아시티’ 3, 4호점이 다음달 문을 연다. 기존 성내점, 천호점에 이어 강일점, 천호공원점이 개장하는 것. 키즈카페와 유사한 놀이터부터 장난감 도서관까지 갖춰 부모와 영유아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강동구는 아이·맘 강동육아시티 3호점인 강일점이 다음달 1일 강일푸르내아파트 단지에 문을 연다고 21일 밝혔다. 9일에는 4호점 천호공원점이 천호2동 주민센터에 들어선다. 구는 시설 편의성과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내년까지 아이·맘 강동육아시티 6곳을 권역별로 조성할 계획이다. 구 관계자는 “계획이 완료되면 강동구 어디에서든 다양한 육아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육아 친화도시로 거듭나게 된다”며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자녀 양육에 관련된 모든 것을 한 마을에서 얻을 수 있도록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맘 강동육아시티에서는 영유아가 부모와 마음껏 놀 수 있고, 육아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사설 키즈카페 부럽지 않은 열린놀이터와 아이자람터를 갖췄다. 열린놀이터는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영유아 발달에 맞춘 놀이활동을 지원한다. 부모들이 모일 수 있는 별도 공간도 마련돼 있다. 아이자람터는 영유아와 부모 간 상호작용 촉진을 위한 오감놀이, 신체놀이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천호점과 강일점에는 연령대별 장난감과 도서를 빌려주는 장난감도서관이 들어섰다. 집에서 놀이할 기회를 제공하고, 장난감 구입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취학 전 영유아 자녀를 둔 강동구 주민은 누구나 이용 가능하다. 연회비 2만원으로 1인당 장난감 2점, 도서 3권을 2주간 빌릴 수 있다. 천호점에는 800명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으며, 영유아 성장 발달에 도움이 되는 촉감·역할·퍼즐·블록 등 201종 976점의 장난감이 준비돼 있다. 모든 장난감은 소독을 철저히 한 후 대여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에는 장난감을 집까지 배달해 주는 ‘찾아가는 장난감 도서관 서비스´를 운영하기도 했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운영이 중단됐지만 화~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운영한다. 이정훈 강동구청장은 “다양한 육아 서비스를 지원하는 아이·맘 강동육아시티에서 부모와 영유아의 행복지수가 높아지길 바란다”며 “출산 및 양육 친화 정책을 체계적으로 추진해 아이 키우기 좋은 강동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13세 딸 유인하려는 46세 소아성애자 함정 파 붙잡은 英 엄마

    13세 딸 유인하려는 46세 소아성애자 함정 파 붙잡은 英 엄마

    13세 딸이 40대 소아성애자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고약한 메시지를 주고받은 사실을 알게 된 영국 어머니가 딸인 척 메시지를 보내 경찰이 검거할 수 있게 도왔다. 신변 보호를 위해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이 여성은 지난해 10월 딸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다 딸이 ‘루즈힐 닉’이란 남성과 주고받은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이 남성은 자신이 딸의 “맞춤한” 상대라며 딸에게 “어디까지 가볼 수 있겠느냐”고 치근덕대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딸이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직감했다. 해서 대신 자신이 딸인 척 닉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웨이크필드 출신이라고 밝혔다. 해서 엄마는 그곳에서 만나자고 유인하면서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전화를 걸겠다고 함정을 팠다. 딸인 줄 깜박 속은 닉은 전화번호를 알려주면서 이전의 대화 내용을 모두 삭제해달라고 요구하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부모가 함께 그의 페이스북 계정을 찾아내 신원을 파악했더니 니콜라스 잭슨(46)이란 소아성애 전력자였다. 경찰이 신고를 받고 직장에서 검거했을 때 잭슨의 아이폰 휴대전화를 압수했는데 무려 1000장의 어린이 사진이 저장돼 있었다. 그 중 436장은 이른바 아동 성착취의 결과물로 보이는, 카테고리 A로 분류되는 콘텐트였다.리즈 왕실법원은 지난 19일(현지시간) 세 건의 어린이 성착취 영상을 제작한 혐의와 2016년 같은 혐의로 받은 세 건의 성착취 예방 명령을 위반한 혐의로 유죄를 스스로 인정한 잭슨에게 3년 4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고 야후 뉴스 UK가 다음날 전했다. 그는 이전에도 마약 위반, 형사 손해, 법정 명령 위반 등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과가 있었다. 피고측 변호인인 크리스토퍼 모튼은 피고가 국제적으로 이름 난 산악인이며 암벽등반가지만 우울증과 두려움에 시달려 이따금 이런 범법 행위를 한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이에 대해 로드니 제임스 판사는 “이들 범죄는 희생자가 없는 범죄가 결코 아니다. 이런 종류의 콘텐트를 만들려면 진짜 어린이들을 납치해야 한다”라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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