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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백 년의 질문: ‘진짜 죄인’은 누구인가

    대한민국 백 년의 질문: ‘진짜 죄인’은 누구인가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역에 군악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침내 열차 문이 열리고 이토 히로부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기회를 엿보던 한 사나이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재무장관과 의장대의 환영을 받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그 순간 사나이는 품속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코레아 우라!” (대한독립만세) 사나이의 외침과 함께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총알은 정확히 이토 히로부미의 몸을 관통했다. 이토는 쓰러졌고 주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총을 쏜 사나이는 다시 한번 “코레아 우라!”를 외쳤고, 러시아 헌병대가 그를 제압했다. 그는 순순히 체포되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당당함이 가득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안중근 의사의 의거는 절대 빠질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다. 하지만 이 의거가 갖는 근본적 의미보다 ‘대한제국 의병이 일본 고위 관료를 저격했다’는 사실만 부각되는 점이 아쉽다. 대한제국 의병의 처절한 역사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군대를 동원해 고종황제가 있던 경운궁을 포위했다. 그리고 을사오적을 앞세워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하게 했다.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해 사실상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이 모든 것을 지휘한 인물이 바로 이토 히로부미였다. 을사늑약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을사의병이라고 불린 이 항일 투쟁에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백성이 참여했다. 1907년 일본은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군대를 해산시켰다. 근대식 무기와 군사 전술에 익숙한 해산 군인들이 의병에 합류하면서 의병의 전력은 향상되었고 활동 지역도 넓어졌다. 당시 의병 활동을 정미의병이라고 부른다. 한일 합방을 계획하던 일본은 의병 부대 제거를 위해 대대적인 토벌 작전을 시작했다. 의병으로 의심되는 마을은 포위한 뒤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였다. 그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일제의 토벌 작전으로 한반도 남부의 의병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북부의 의병들은 토벌을 피해 만주와 연해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안중근 의사가 쏜 총알의 의미 당시 의병 부대는 대부분 소규모였고, 정식 군사 훈련을 받은 일본군을 상대하기에는 무기와 보급이 열악한 상태였다. 의병들의 무기는 화승총과 죽창 등 재래식 무기였다. 해산 군인들이 의병에 합류하면서 신식 소총을 확보했지만 그 수가 턱없이 모자랐고 총알도 부족했다. 일본군의 탄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항일 의병 활동도 점차 위축되었다. 심지어 패배주의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그러던 1909년, 하얼빈에서 안 의사가 조선 침략의 원흉이자 최고 사령관인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 소식은 항일 의병들에게 “우리도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고 항일 투쟁 활동에도 다시 불이 붙었다. 나아가 평범한 사람들의 항일 투쟁 의식을 고취해 1919년 3·1 운동과 같은 전국적인 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안타까운 건 당시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살인’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그가 속한 천주교 교단에서는 의병의 무력 투쟁 활동을 폭력으로 간주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 교인은 안중근 의사와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안 의사가 총을 쏘게 만든 ‘진짜 죄인’은 누구일까. 서울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 버스를 타고 남산도서관에 내리면 바로 옆 계단을 통해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안중근 의사라는 위대한 인물을 기리기에는 너무 작은 공간이라는 느낌을 준다. 정문에 있는 안중근 의사의 좌상에 인사하고 안으로 들어서면 그의 출생과 의병 활동, 의거, 순국에 이르는 빛나는 일생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안중근 의사가 여순 감옥에 있을 때 썼다고 전해지는 ‘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라는 글귀도 볼 수 있다. 이곳을 나설 때면 역사적 사실을 넘어, 잊어버린 애국정신과 뜨거운 나라 사랑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 대한민국 백 년의 질문: ‘진짜 죄인’은 누구인가 [한ZOOM]

    대한민국 백 년의 질문: ‘진짜 죄인’은 누구인가 [한ZOOM]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역에 군악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침내 열차 문이 열리고 이토 히로부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기회를 엿보던 한 사나이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재무장관과 의장대의 환영을 받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그 순간 사나이는 품속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코레아 우라!” (대한독립만세) 사나이의 외침과 함께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총알은 정확히 이토 히로부미의 몸을 관통했다. 이토는 쓰러졌고 주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총을 쏜 사나이는 다시 한번 “코레아 우라!”를 외쳤고, 러시아 헌병대가 그를 제압했다. 그는 순순히 체포되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당당함이 가득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안중근 의사의 의거는 절대 빠질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다. 하지만 이 의거가 갖는 근본적 의미보다 ‘대한제국 의병이 일본 고위 관료를 저격했다’는 사실만 부각되는 점이 아쉽다. 대한제국 의병의 처절한 역사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군대를 동원해 고종황제가 있던 경운궁을 포위했다. 그리고 을사오적을 앞세워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하게 했다.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해 사실상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이 모든 것을 지휘한 인물이 바로 이토 히로부미였다. 을사늑약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을사의병이라고 불린 이 항일 투쟁에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백성이 참여했다. 1907년 일본은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군대를 해산시켰다. 근대식 무기와 군사 전술에 익숙한 해산 군인들이 의병에 합류하면서 의병의 전력은 향상되었고 활동 지역도 넓어졌다. 당시 의병 활동을 정미의병이라고 부른다. 한일 합방을 계획하던 일본은 의병 부대 제거를 위해 대대적인 토벌 작전을 시작했다. 의병으로 의심되는 마을은 포위한 뒤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였다. 그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일제의 토벌 작전으로 한반도 남부의 의병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북부의 의병들은 토벌을 피해 만주와 연해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안중근 의사가 쏜 총알의 의미 당시 의병 부대는 대부분 소규모였고, 정식 군사 훈련을 받은 일본군을 상대하기에는 무기와 보급이 열악한 상태였다. 의병들의 무기는 화승총과 죽창 등 재래식 무기였다. 해산 군인들이 의병에 합류하면서 신식 소총을 확보했지만 그 수가 턱없이 모자랐고 총알도 부족했다. 일본군의 탄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항일 의병 활동도 점차 위축되었다. 심지어 패배주의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그러던 1909년, 하얼빈에서 안 의사가 조선 침략의 원흉이자 최고 사령관인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 소식은 항일 의병들에게 “우리도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고 항일 투쟁 활동에도 다시 불이 붙었다. 나아가 평범한 사람들의 항일 투쟁 의식을 고취해 1919년 3·1 운동과 같은 전국적인 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안타까운 건 당시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살인’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그가 속한 천주교 교단에서는 의병의 무력 투쟁 활동을 폭력으로 간주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 교인은 안중근 의사와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안 의사가 총을 쏘게 만든 ‘진짜 죄인’은 누구일까. 서울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 버스를 타고 남산도서관에 내리면 바로 옆 계단을 통해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안중근 의사라는 위대한 인물을 기리기에는 너무 작은 공간이라는 느낌을 준다. 정문에 있는 안중근 의사의 좌상에 인사하고 안으로 들어서면 그의 출생과 의병 활동, 의거, 순국에 이르는 빛나는 일생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안중근 의사가 여순 감옥에 있을 때 썼다고 전해지는 ‘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라는 글귀도 볼 수 있다. 이곳을 나설 때면 역사적 사실을 넘어, 잊어버린 애국정신과 뜨거운 나라 사랑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 아내·자녀 두고…“내 안에 강순” 가슴수술 결심한 트레이너

    아내·자녀 두고…“내 안에 강순” 가슴수술 결심한 트레이너

    해리성 정체감 장애(DID)를 앓고 있는 40대 남성 피트니스 트레이너가 방송에서 안타까운 과거와 성형 계획을 고백했다. 11일 방송된 KBS Joy ‘무엇이든 물어보살’에는 긴 머리 가발과 치마 차림으로 출연한 사연자가 “F44.8 해리 장애로 세 가지 인격을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19년 경력의 남성 인격 ‘오성진’ 어린 시절을 담당하는 30대 여성 인격 ‘강순’ 개인정보 노출에 민감한 ‘관리자’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연자는 “총 인격은 5개 이상이지만 발견된 건 3개”라며 “해외에는 70개 넘는 인격을 가진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성 정체성 장애와 이인증도 함께 겪고 있으며, 남성 호르몬 주사에도 여성 인격이 사라지지 않아 현재 여성 호르몬을 맞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겨울에 가슴과 얼굴 성형 수술을 할 예정”이라며 “예뻐지는 걸 바라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여자로 봐 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그는 “아내와 쌍둥이 자녀가 있으며, 5살 때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성폭행을 당했다. 그 트라우마로 성 정체성 혼란이 왔다”고 과거를 고백했다. 방송에서 서장훈은 가슴 수술로 인한 경제적 부담과 가족 책임을 지적했고, 사연자는 “가족 때문에 사는 거다. 아내는 처음부터 제 곁을 지켜준 사람”이라고 답했다. 그는 “여성 인격으로서 존중받고 싶지만 주요 부위 수술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남성 인격과의 갈등을 언급했다.
  • 죄수복 입고 ‘십자가’에 매달린 트럼프?…“역겹다” 논란에 결국 [포착]

    죄수복 입고 ‘십자가’에 매달린 트럼프?…“역겹다” 논란에 결국 [포착]

    ‘십자가에 매달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조각상이 스위스의 한 갤러리에서 전시될 예정이었으나 논란 끝에 결국 취소됐다. 이러한 결정은 스위스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폭탄’을 맞은 다음 날 내려졌다. 11일(현지시간) 일간 바즐러차이퉁(BaZ)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스위스 갤러리 글라이스 피어(Gleis 4)는 바젤역 내 전시공간 개관 기념으로 다음 달에 트럼프 대통령 조각상을 전시하기로 했으나 취소했다. 갤러리 측은 “바젤역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작품 전시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알려지지 않았다. 논란이 된 조각상은 ‘제이슨 스톰’이라는 이름을 쓰는 영국 출신 작가가 만든 ‘성인 또는 죄인’(Saint or Sinner)이다. 이 조각상은 주황색 죄수복 차림의 트럼프 대통령이 팔다리가 묶인 채 십자가에 매달려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제이슨 스톰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활동하며, 예술사와 사회 비판을 도발적인 방식으로 다룬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이 조각상이 공개되자 일각에서는 “기독교 모독”이라는 논란이 제기됐다. 소셜미디어(SNS) 등에서 신자들은 작품에 대해 “천박하고 종교적 감정을 모독한다”고 지적했다. 취리히대 신학 교수는 해당 갤러리가 ‘논란을 부르는 작품’으로 주목을 끌려고 한다며 “천박하다”고 비판했으며, 오스트리아의 한 주교 역시 조각상에 대해 “역겹다”고 평가했다. 결국 갤러리는 지난 8일 공지를 통해 “이렇게 큰 관심을 받을 줄은 몰랐다”며 “많은 인파와 혼란이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어 바젤역에 작품을 전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특히 전시가 취소되기 전날은 미국이 스위스에 39%의 상호관세율을 적용하기로 결정한 터라 ‘전시 취소가 관세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갤러리는 관세 등 정치적인 문제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갤러리 관계자는 “그런 이유로 전시를 결정하는 건 갤러리로서 모욕적인 일”이라고 답했다. 한편 미국 백악관은 이달 7일부터 스위스산 수입품에 39%의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지난달 31일 발표했다. 미국은 양국 무역관계가 일방적이며 스위스가 무역장벽을 철폐하기 위한 의미 있는 양보를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 우도서 땅콩 아이스크림 먹은 7살…“얼굴 부어올라” 병원 이송

    우도서 땅콩 아이스크림 먹은 7살…“얼굴 부어올라” 병원 이송

    제주 우도에서 땅콩 아이스크림을 먹은 7세 여아가 아나필락시스 의심 증상을 보여 응급처치를 받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12일 제주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지난 10일 오후 2시 6분쯤 제주시 우도면에서 7세 여아 A양이 땅콩 아이스크림을 먹은 뒤 10분 후 목이 아프고 눈 주위가 붓는 증상을 보인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출동한 119구급대는 아나필락시스를 의심해 즉시 근육주사를 투여했고, A양의 상태는 호전됐다. 이후 A양은 도항선을 통해 성산항으로 옮겨져 인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아나필락시스는 면역 체계가 특정 물질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급성 전신 알레르기 반응이다. 땅콩이나 갑각류, 우유 등의 식품이나 약물, 곤충 등에 의해 발생한다. 알레르기 유발 물질 노출 후 몇 분에서 2시간 이내에 나타나며, 치료가 지연되면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응급상황이다. 특히 우도와 같은 도서 지역에서는 응급상황 발생 시 본토로의 이송 시간이 필요해 초기 대응이 더욱 중요하다.
  • 그날의 태극기…기억을 펼치다

    그날의 태극기…기억을 펼치다

    짓밟힌 존엄을 다시 일으켜 세웠던 역사를 기억하고 마음을 모으게 하는 항일 문화유산에 깃든 정신이 광복 80주년을 맞아 전국을 물들인다. 특히 최근 배지로 만들어져 주목받은 ‘서울 진관사 태극기’부터 125년 전 제작돼 이역만리에서 나부꼈을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 소장 태극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인 ‘데니 태극기’까지 다양한 태극기가 다채로운 전시로 찾아온다. ●덕수궁 돈덕전서 만나는 진관사 태극기 먼저 국가유산청은 12일부터 10월 12일까지 서울 덕수궁 돈덕전에서 근대기 항일 독립유산을 통해 광복의 의미를 조명하는 특별전 ‘빛을 담은 항일유산’을 통해 우리나라 사찰에서 최초로 발견된 일제강점기의 태극기인 진관사 태극기를 선보인다. 2009년 5월 26일 진관사 부속 건물인 칠성각을 해체하던 중 발견된 태극기로 일장기 위에 먹을 덧칠해 만들어졌다. 진관사 태극기는 불교계 등 다양한 계층에서 주도한 독립운동의 양상과 강한 항일의지를 보여 주는 보물이다. 진관사 태극기와 더불어 특별전에는 지난해 7월 일본에서 환수한 의병장들의 결사 항전 기록인 ‘한말 의병 관련 문서’, 지난 4월 고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딸인 구혜정씨가 경매를 통해 환수해 온 안중근 의사의 유묵 ‘녹죽’(綠竹), 대한제국 주미공사 이범진의 외교 일기로, 당시의 외교 활동과 영어 사용 용례 및 표기, 서양에 대한 인식 수준 등 다양한 역사적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미사일록’,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국제연맹에 우리 민족의 독립을 요구하기 위해 편찬한 역사서로, 임시정부의 체계적 외교 전략을 보여 주는 ‘한일관계사료집’ 등이 최초 공개된다. ●역사박물관, 佛 소장 태극기 첫 공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태극기, 함께해 온 나날들’ 전시를 통해 태극기와 관련한 자료 200여점을 오는 11월 16일까지 선보인다. 전시품 가운데 기메동양박물관의 태극기는 이번 전시를 통해 국내에서 처음 선봬 눈길을 끈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됐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태극기는 자주 국가로서 대한제국의 의지를 보여 준다. 이 밖에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군함인 광제호에 승선했던 함장 신순성(1878~1944)이 1910년 국권피탈을 하루 앞두고 몰래 숨겨 뒀던 ‘광제호 태극기’, 1996년 전남 장성 백양사 괘불(대형불화) 보관함에서 발견된 ‘백양사 태극기’, 독립운동가들이 중국 상하이에 세운 임시정부의 의회에 걸었던 ‘임시의정원 태극기’ 등이 전시됐다. ●국립중앙박물관 ‘데니 태극기’ 영상도 국립중앙박물관은 10월 12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대한제국실에서 열리는 전시 ‘광복 80주년, 다시 찾은 얼굴들’을 통해 데니 태극기의 실물을 공개한다. 데니 태극기는 고종이 미국인 외교관 오언 데니(1838~ 1900)에게 하사한 태극기로 2021년 보물로 지정됐다. 현재 남아 있는 옛 태극기 가운데 크기가 가장 크며, 초창기 태극기의 형태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 실감 전광판에서는 전시 기간에 맞춰 콘텐츠 ‘데니 태극기’를 상영한다. 서울 중구 신세계스퀘어에서는 오는 15일까지 10분 간격으로 상영되며, 8월 15일 광복절에는 하루 종일 데니 태극기 게양 영상이 상영될 예정이다.
  • 대전 교제살인 피의자는 26세 장재원

    대전 교제살인 피의자는 26세 장재원

    대낮 대전 시내에서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장재원(26)의 신상이 공개됐다. 대전경찰청은 11일 살인 혐의로 구속된 장씨의 이름·나이·얼굴 사진을 경찰청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경찰은 지난 8일 신상정보 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범행의 잔혹성, 피해의 중대성, 피해자 유족의 의견 등을 종합 검토한 결과 공개를 결정했다. 장씨가 이의 신청을 하지 않으면서 이날부터 다음달 10일까지 신상이 공개된다. 장씨는 지난달 29일 낮 12시 8분쯤 대전 서구 괴정동 피해자 A(30대)씨의 주거지 앞 거리에서 흉기로 A씨를 찔러 숨지게 한 뒤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장씨는 수개월 전부터 범행을 계획했다. 사건 다음날 빈소를 찾아 피해자가 사망했는지 확인하는 대담함까지 보였다. 그는 경찰에서 “오토바이 리스 명의 문제로 다투다 무시당해 화가 났고, 죽이기로 결심했다”고 진술했다. 장씨는 범행 당일 피해자 명의 변경 약속일에 맞춰 흉기와 농약을 사들였고 범행 직후 공유차를 타고 도주했다가 하루 만에 긴급 체포됐다.
  • BTS Jin 首次个人粉丝演唱会巡演圆满落幕...外媒齐声赞誉

    BTS Jin 首次个人粉丝演唱会巡演圆满落幕...外媒齐声赞誉

    防弹少年团(BTS)成员 Jin(金硕珍)成功结束了他的首次个人粉丝演唱会巡演“#RUNSEOKJIN_EP.TOUR in U.S.”,在美国创造了 K-pop solo 艺人的新历史。 据其所属经纪公司 Big Hit Music 透露,Jin 于上月 17 日(当地时间)在安纳海姆拉开巡演序幕,随后在达拉斯、坦帕、纽瓦克共四个城市举办了 8 场演唱会,总共吸引了近 9 万名粉丝到场,为 Jin 的巡演狂热欢呼。 此次巡演尤其为 K-pop 歌手留下了具有意义的记录。在安纳海姆的本田中心(Honda Center),Jin 创下了韩国歌手演唱会观众人数最多的记录,而在达拉斯的美国航空中心(American Airlines Center),他成为首位韩国 solo 歌手实现全场售罄的艺人。 “与粉丝沟通,真心传递的艺术家” 海外媒体齐声赞誉 Jin 的演唱会赢得了海外主要媒体的赞誉。美国权威媒体《洛杉矶时报》(Los Angeles Times)称赞 Jin 在本田中心展示了与粉丝沟通的“大师级课程”,并评价这场演唱会“就像一封写给粉丝的特别情书,准备得既有趣又精致”。该媒体还补充说:“Jin 以迷人的方式与粉丝沟通,传递真心。这是粉丝们爱他的原因。” 并分析称 Jin 充分证明了自己作为独立艺术家的魅力,而不仅仅是作为组合成员。 财经杂志《福布斯》(Forbes)也特别关注 Jin 出色的歌唱实力。《福布斯》指出:“Jin 在复杂的高音部分展现了稳定的演唱实力,展示了宽广的音域和高音控制能力”,证明了 Jin 不仅仅是“英俊的脸庞”,更是一位实力派歌手。特别是对于粉丝们跟着唱《Spring Day》韩语歌词的场景,《福布斯》提到:“Jin 停下唱歌,与观众一起呼吸,全身心投入到那个瞬间”,强调这场演唱会注重与观众一起享受的舞台。 “奔跑吧 Jin”世界观扩展... 通过现场和互动俘获粉丝心此次粉丝演唱会的一大特点是将在防弹少年团官方 YouTube 频道的原创内容“奔跑吧 Jin”的世界观在舞台上进行了扩展。Jin 通过屏幕间走出,按下蜂鸣器并高喊“挑战”,以独特的开场方式拉开了演唱会的序幕。无论是跨越抒情和摇滚的丰富现场表演,还是与粉丝们一起进行的游戏和化妆活动,Jin 都展现了他亲切和多面的魅力。 另一方面,成功结束美国巡演的 Jin 将于 5 月 5 日至 6 日在英国 O2 体育馆(The O2 arena)开始他的欧洲巡演。Jin 将成为首位登上这一舞台的韩国 solo 歌手,创造新的记录。 周雅雯 通讯员 주아문 통신원 BTS 진, 첫 팬콘서트 투어 마무리...외신들 일제 극찬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진(김석진)이 첫 솔로 팬콘서트 ‘#런석진.EP.투어 인 유에스(#RUNSEOKJIN_EP.TOUR in U.S)’ 미국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K팝 솔로 아티스트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소속사 빅히트 뮤직에 따르면, 진은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애너하임을 시작으로 댈러스, 탬파, 뉴어크까지 총 4개 도시에서 8회에 걸쳐 팬들과 만났다. 총 9만 명에 달하는 팬들이 공연장을 찾아 진의 투어에 열광했다. 특히 이번 투어는 K팝 가수들에게 의미 있는 기록들을 남겼다. 애너하임 혼다 센터(Honda Center)에서는 역대 한국 가수 공연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으며, 댈러스 아메리칸 에어라인스 센터(American Airlines Center)에서는 한국 솔로 가수 최초로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팬과의 소통, 진심 전하는 아티스트” 해외 언론 극찬 진의 공연은 해외 주요 언론의 찬사로 이어졌다. 미국의 유력 매체 로스앤젤레스 타임스(Los Angeles Times)는 “진은 혼다 센터에서 팬 소통의 ‘마스터 클래스’를 선보였다”고 극찬하며, “팬들에게 보내는 특별한 러브레터처럼 기획된 유쾌하고 세련된 공연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진은 매력적인 방식으로 팬들과 소통하며 진심을 전한다. 이는 팬들이 그를 사랑하는 이유”라고 덧붙이며 진이 그룹 활동을 넘어 독립적인 아티스트로서의 매력을 충분히 입증했다고 분석했다. 경제 전문지 포브스(Forbes) 또한 진의 뛰어난 보컬 실력에 주목했다. 포브스는 “복잡한 고음에서도 안정적인 보컬을 선보이며 넓은 음역과 고음 컨트롤을 보여줬다”며, 진이 ‘잘생긴 얼굴’ 이상의 실력파 보컬리스트임을 증명했다고 전했다. 특히 팬들이 ‘봄날’의 한국어 가사를 따라 부르는 장면에 대해 “진은 노래를 멈추고 관객과 호흡하며 그 순간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고 언급하며, 이번 공연이 관객과 함께 즐기는 데 초점을 맞춘 무대였음을 강조했다. ‘달려라 석진’ 세계관 확장… 라이브와 소통으로 팬심 사로잡아이번 팬콘서트는 방탄소년단 공식 유튜브 채널의 자체 콘텐츠 ‘달려라 석진’의 세계관을 무대 위에서 확장한 것이 특징이다. 진은 스크린 사이로 걸어 나와 버저를 누르며 ”도전“을 외치는 독특한 오프닝으로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발라드와 록을 넘나드는 풍부한 라이브 무대뿐만 아니라, 팬들과 함께하는 게임 및 분장 이벤트 등을 통해 진의 친근하고 다채로운 매력을 선보였다. 한편, 미국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친 진은 오는 5~6일 영국 O2 아레나(The O2 arena)에서 유럽 투어를 시작한다. 진은 한국 솔로 가수 최초로 이 무대에 오르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 BTS Jin 首次个人粉丝演唱会巡演圆满落幕...外媒齐声赞誉

    BTS Jin 首次个人粉丝演唱会巡演圆满落幕...外媒齐声赞誉

    防弹少年团(BTS)成员 Jin(金硕珍)成功结束了他的首次个人粉丝演唱会巡演“#RUNSEOKJIN_EP.TOUR in U.S.”,在美国创造了 K-pop solo 艺人的新历史。 据其所属经纪公司 Big Hit Music 透露,Jin 于上月 17 日(当地时间)在安纳海姆拉开巡演序幕,随后在达拉斯、坦帕、纽瓦克共四个城市举办了 8 场演唱会,总共吸引了近 9 万名粉丝到场,为 Jin 的巡演狂热欢呼。 此次巡演尤其为 K-pop 歌手留下了具有意义的记录。在安纳海姆的本田中心(Honda Center),Jin 创下了韩国歌手演唱会观众人数最多的记录,而在达拉斯的美国航空中心(American Airlines Center),他成为首位韩国 solo 歌手实现全场售罄的艺人。 “与粉丝沟通,真心传递的艺术家” 海外媒体齐声赞誉 Jin 的演唱会赢得了海外主要媒体的赞誉。美国权威媒体《洛杉矶时报》(Los Angeles Times)称赞 Jin 在本田中心展示了与粉丝沟通的“大师级课程”,并评价这场演唱会“就像一封写给粉丝的特别情书,准备得既有趣又精致”。该媒体还补充说:“Jin 以迷人的方式与粉丝沟通,传递真心。这是粉丝们爱他的原因。” 并分析称 Jin 充分证明了自己作为独立艺术家的魅力,而不仅仅是作为组合成员。 财经杂志《福布斯》(Forbes)也特别关注 Jin 出色的歌唱实力。《福布斯》指出:“Jin 在复杂的高音部分展现了稳定的演唱实力,展示了宽广的音域和高音控制能力”,证明了 Jin 不仅仅是“英俊的脸庞”,更是一位实力派歌手。特别是对于粉丝们跟着唱《Spring Day》韩语歌词的场景,《福布斯》提到:“Jin 停下唱歌,与观众一起呼吸,全身心投入到那个瞬间”,强调这场演唱会注重与观众一起享受的舞台。 “奔跑吧 Jin”世界观扩展... 通过现场和互动俘获粉丝心此次粉丝演唱会的一大特点是将在防弹少年团官方 YouTube 频道的原创内容“奔跑吧 Jin”的世界观在舞台上进行了扩展。Jin 通过屏幕间走出,按下蜂鸣器并高喊“挑战”,以独特的开场方式拉开了演唱会的序幕。无论是跨越抒情和摇滚的丰富现场表演,还是与粉丝们一起进行的游戏和化妆活动,Jin 都展现了他亲切和多面的魅力。 另一方面,成功结束美国巡演的 Jin 将于 5 月 5 日至 6 日在英国 O2 体育馆(The O2 arena)开始他的欧洲巡演。Jin 将成为首位登上这一舞台的韩国 solo 歌手,创造新的记录。 周雅雯 通讯员 주아문 통신원 BTS 진, 첫 팬콘서트 투어 마무리...외신들 일제 극찬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진(김석진)이 첫 솔로 팬콘서트 ‘#런석진.EP.투어 인 유에스(#RUNSEOKJIN_EP.TOUR in U.S)’ 미국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K팝 솔로 아티스트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소속사 빅히트 뮤직에 따르면, 진은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애너하임을 시작으로 댈러스, 탬파, 뉴어크까지 총 4개 도시에서 8회에 걸쳐 팬들과 만났다. 총 9만 명에 달하는 팬들이 공연장을 찾아 진의 투어에 열광했다. 특히 이번 투어는 K팝 가수들에게 의미 있는 기록들을 남겼다. 애너하임 혼다 센터(Honda Center)에서는 역대 한국 가수 공연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으며, 댈러스 아메리칸 에어라인스 센터(American Airlines Center)에서는 한국 솔로 가수 최초로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팬과의 소통, 진심 전하는 아티스트” 해외 언론 극찬 진의 공연은 해외 주요 언론의 찬사로 이어졌다. 미국의 유력 매체 로스앤젤레스 타임스(Los Angeles Times)는 “진은 혼다 센터에서 팬 소통의 ‘마스터 클래스’를 선보였다”고 극찬하며, “팬들에게 보내는 특별한 러브레터처럼 기획된 유쾌하고 세련된 공연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진은 매력적인 방식으로 팬들과 소통하며 진심을 전한다. 이는 팬들이 그를 사랑하는 이유”라고 덧붙이며 진이 그룹 활동을 넘어 독립적인 아티스트로서의 매력을 충분히 입증했다고 분석했다. 경제 전문지 포브스(Forbes) 또한 진의 뛰어난 보컬 실력에 주목했다. 포브스는 “복잡한 고음에서도 안정적인 보컬을 선보이며 넓은 음역과 고음 컨트롤을 보여줬다”며, 진이 ‘잘생긴 얼굴’ 이상의 실력파 보컬리스트임을 증명했다고 전했다. 특히 팬들이 ‘봄날’의 한국어 가사를 따라 부르는 장면에 대해 “진은 노래를 멈추고 관객과 호흡하며 그 순간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고 언급하며, 이번 공연이 관객과 함께 즐기는 데 초점을 맞춘 무대였음을 강조했다. ‘달려라 석진’ 세계관 확장… 라이브와 소통으로 팬심 사로잡아이번 팬콘서트는 방탄소년단 공식 유튜브 채널의 자체 콘텐츠 ‘달려라 석진’의 세계관을 무대 위에서 확장한 것이 특징이다. 진은 스크린 사이로 걸어 나와 버저를 누르며 ”도전“을 외치는 독특한 오프닝으로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발라드와 록을 넘나드는 풍부한 라이브 무대뿐만 아니라, 팬들과 함께하는 게임 및 분장 이벤트 등을 통해 진의 친근하고 다채로운 매력을 선보였다. 한편, 미국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친 진은 오는 5~6일 영국 O2 아레나(The O2 arena)에서 유럽 투어를 시작한다. 진은 한국 솔로 가수 최초로 이 무대에 오르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 ‘72억 집+남편 공개’ 손연재 유튜브 채널, 돌연 삭제

    ‘72억 집+남편 공개’ 손연재 유튜브 채널, 돌연 삭제

    최근 유튜버로 변신한 손연재의 유튜브 채널이 돌연 삭제됐다. 11일 전 국가대표 리듬체조 선수 손연재의 유튜브 채널에 접속하면 ‘YouTube 커뮤니티 가이드를 위반했기 때문에 채널이 삭제되었습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표시된다. 손연재는 선수생활 은퇴 후 방송 활동과 개인 사업 등을 해오다 지난 5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육아 브이로그 영상을 공개했다. 손연재는 유튜브를 통해 아들의 얼굴을 최초로 공개했으며, 150만원이 넘는 가격의 유모차를 비롯한 카시트, 아기 의자, 콧물 흡입기 등 육아 아이템을 소개했다. 또 72억원대로 알려진 한남동 단독주택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집을 소개하며 “이 집은 저희 집이 아니라 잠시 머무는 집이고 2, 3년 후에 공사를 해서 이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근에는 ‘최초공개. 날 안 좋아했다고? 손연재가 결혼을 결심하게 된 순간’이라는 제목으로 남편과의 첫만남은 물론, 남편에 대한 서운함 등을 내비쳐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지 3개월 만에 삭제 처리되면서 그 이유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채널 삭제 이유에 대해 손연재 본인이나 소속사 측 입장은 아직 전해지지 않은 상태이며, 삭제가 일시적 조치인지 영구 폐쇄인지 여부도 확인된 바 없다. 한편 손연재는 2022년 9세 연상 금융업 종사자와 결혼해 지난해 2월 득남했다.
  • ‘애증’ 누녜스·아널드 대신 ‘골’ 에키티케·프림퐁…‘굴욕 패’ 리버풀, 이적생 활약에 위안

    ‘애증’ 누녜스·아널드 대신 ‘골’ 에키티케·프림퐁…‘굴욕 패’ 리버풀, 이적생 활약에 위안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디펜딩챔피언 리버풀이 아쉬운 패배에도 다르윈 누녜스(알힐랄), 트렌트 알렉산더아널드(레알 마드리드) 등 논란의 이적생을 대체할 새 얼굴의 활약에 새 시즌 희망가를 불렀다. 리버풀은 11일(한국시간)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끝난 2025 커뮤니티실드 크리스털 펠리스와의 경기에서 2-2 무승부를 거둔 뒤 승부차기에서 2-3으로 졌다. 2024~25시즌에 구단 통산 20번째로 EPL 정상에 오른 리버풀이 크리스털 팰리스를 압도할 거라 예상됐지만 끝까지 접전이었고 결국 이변이 일어났다.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우승팀 크리스털 팰리스는 지난 시즌 리그 12위로 1위 리버풀과 승점 31점 차이였다. 전력이 크게 변화한 리버풀은 새 얼굴들이 연이어 득점했다. 최전방은 위고 에키티케가 책임졌다. 이강인과 함께 파리 생제르맹에서 뛰기도 했던 에키티케는 이날 전반 4분 만에 득점하며 실력을 입증했다. 2022년 5300만 유로(약 858억원)의 이적료로 합류했던 누녜스가 지난 시즌 30경기 5골의 성적을 남기고 올여름 사우디아라비아 리그로 떠난 아쉬움을 달랜 것이다. 에키티케는 페널티박스 바깥에서 중앙으로 드리블한 뒤 오른발로 오른쪽 골대 구석을 찔렀다. 이 과정에서 EPL 최고 이적료(1억 2500만 유로·약 2000억원)로 리버풀에 합류한 플로리안 비르츠와의 원투 패스가 빛났다. 장필리프 마테타의 페널티킥으로 1-1이 된 상황에선 오른 풀백 제레미 프림퐁이 나섰다. 프림퐁은 전반 21분 상대 오른쪽 진영에서 드리블한 뒤 오른발로 크로스를 올렸다. 그런데 공에 회전이 걸리면서 딘 헨더슨의 손을 지나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레버쿠젠(독일)에서 둥지를 옮긴 프림퐁이 이적료 없이 리버풀을 떠난 세계 정상급 풀백 알렉산더아널드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걸 입증한 셈이다. 다만 과제도 명확했다. 리버풀은 이날 후방 뒷공간을 연이어 내주면서 위기를 맞았다. 후반 32분에도 수비진이 이스마일라 사르를 놓쳐 동점 골을 허용했다. 아르네 슬롯 리버풀 감독은 “지난 시즌 리버풀이 강했던 건 1골 정도만 내주는 탄탄한 수비력 덕분이었다”며 “(새 선수들이 수혈되고) 최근 상대에게 기회를 많이 내주진 않지만 실점이 계속되고 있다. 팀이 새 수비진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양 팀 선수단과 관중은 경기 시작 전에 지난달 스페인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리버풀의 디오구 조타와 그의 동생 안드레 실바를 추모했다.
  • “예쁜 게 장점” 40대 여배우를 국경상황 대응 대변인에 임명한 태국 정부

    “예쁜 게 장점” 40대 여배우를 국경상황 대응 대변인에 임명한 태국 정부

    캄보디아와 국경 분쟁으로 교전을 벌이다 닷새 만에 휴전 협정을 한 태국 정부가 “캄보디아의 가짜뉴스에 반격하겠다”며 담당 기관 대변인에 유명 여배우를 임명했다. 지난 8일(현지시간) 태국 일간 네이션, 방콕포스트에 등에 따르면 태국 국방부는 이날 미스 태국 출신 배우 파나다 웡푸디(49)를 태국·캄보디아 국경상황 임시센터 대변인에 임명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나타폰 나르크파닛 태국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은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 임명은 말리 소체아타 캄보디아 국방부 대변인의 모든 발언에 신속하게 대응할 여성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24일부터 닷새간 이어진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 출동 상황에서 말리 대변인은 캄보디아에 유리한 ‘가짜뉴스’를 유포해 국제 사회에 태국의 평판을 손상시키고 캄보디아 지지를 이끌어내는 ‘얼굴’ 역할을 해왔다고 태국 정부는 보고 있다. 나타폰 대행은 그러면서 “적어도 우리는 캄보디아에 비해 한 가지 장점을 갖고 있다고 확신한다. 미스 태국 출신인 파나다 대변인이 (말리 대변인보다) 더 아름답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2000년 미인대회에서 우승한 파나다는 이후 배우, 가수, MC 등으로 활동해왔다. 미국에서 경영학 학사를, 호주에서 국제경영학 석사·경영철학 박사를 취득한 그는 태국 상원 경제·상무·산업위원회 고문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인플루언서와 사회 운동가로서도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파나다는 “국경에서 영토를 지키기 위해 싸운 태국 군인들과 군사 충돌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보고 대변인을 맡기로 수락했다”며 “가짜뉴스가 아닌 ‘정확한 정보’를 태국 대중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달 벌어진 무력 충돌로 태국 측에서는 군인 15명과 민간인 14명이 사망하고 군인 230명과 민간인 53명이 부상했다. 캄보디아 측에서도 비슷한 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 대전 교제살인 26세 장재원…진짜 죽었나 확인까지

    대전 교제살인 26세 장재원…진짜 죽었나 확인까지

    경찰이 대전 서구 괴정동에서 전 연인관계에 있었던 여성을 흉기로 살해한 장재원(26)의 신상정보를 11일 공개했다. 대전경찰청은 지난 8일 신상정보 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장씨에 대한 신상정보 공개 결정을 내렸다. 장씨의 이름과 나이, 얼굴은 이날부터 내달 10일까지 대전경찰청 홈페이지에 게시된다. 심의위원들은 범행의 잔인성과 피해의 중대성, 피해자 유족의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상정보를 공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중대범죄 피의자 등 신상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심의위 결정에 피의자가 이의를 제기할 경우 공개 결정이 나더라도 5일간 유예기간을 둬야 한다. 장씨는 별도의 이의신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장씨는 지난달 29일 낮 12시 8분쯤 서구 괴정동 한 거리에서 전 여자친구 A씨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범행 직후 달아났다가 하루 만에 검거됐다. 체포 직전 음독한 그는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지난 5일 퇴원한 뒤 경찰 조사를 받았다. 그는 “오토바이 리스 명의 문제로 (피해자와) 다툼이 있었고, 날 무시한다고 생각해 화가 나 죽여야겠다고 결심했다”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경찰 조사 결과 범행을 결심한 것은 사건 발생 3∼4개월 전으로, 장씨가 허락도 없이 A씨 명의로 오토바이를 빌렸던 것이 화근이 됐다. 장씨는 범행 도구를 미리 구입한 뒤 A씨와 함께 오토바이 명의를 변경하러 가기로 한 날 A씨를 살해했다. 그는 범행 이튿날 피해자 빈소를 방문하기도 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선 “진짜 죽었는지 확인해보려고 했다”라고 진술했다.
  • 대전 ‘교제 살인’ 피의자 장재원 신상정보 공개

    대전 ‘교제 살인’ 피의자 장재원 신상정보 공개

    길거리에서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대전 ‘교제 살인’ 피의자 장재원(26)의 신상정보가 공개됐다. 대전경찰청은 11일 살인 혐의로 구속된 장 씨의 이름과 나이, 얼굴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경찰은 앞선 지난 8일 신상정보 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범행의 잔인성과 피해의 중대성, 피해자 유족의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상정보 공개를 결정한 바 있다. 장 씨는 지난달 29일 낮 12시 8분쯤 대전 서구 괴정동 주거지 앞 거리에서 B(30대)씨를 흉기로 찌르고 달아났다. B씨는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경찰 조사 결과 장 씨는 수개월 전부터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진짜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범행 다음날 빈소를 찾는 대범함을 보이기도 했다. 장 씨는 경찰에서 “오토바이 리스 명의와 관련해 서로 다툼이 있었다”며 “무시해 화가 나 죽여야겠다고 결심했다”고 진술했다. 잦은 다툼에 피해자 명의로 변경키로 한 날에 맞춰 흉기와 농약 등을 샀고, 범행 직후 빌린 공유차를 타고 도주했다 범행 하루 만에 긴급 체포됐다. 검거 직전 음독해 충북 진천의 한 병원에서 치료받다 지난 4일 대전의 한 대학병원으로 이송된 후 통원 치료가 가능하다는 의료진 소견에 따라 5일 퇴원했다. 경찰은 체포영장을 집행해 조사한 뒤 6일 구속했다.
  • 美 레스토랑에서 ‘비매너’ ‘민폐’ 뭇매…이시영 “불편하셨던 분들께 죄송한 마음”

    美 레스토랑에서 ‘비매너’ ‘민폐’ 뭇매…이시영 “불편하셨던 분들께 죄송한 마음”

    배우 이시영이 미국의 한 레스토랑에서의 ‘비매너’ 행동에 대해 사과했다. 이시영은 지난 10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계정에 아들 정윤 군과 캠핑장에서 축구를 하는 영상과 함께 글을 올렸다. 이시영은 “피드에 사진이나 영상을 업로드할 때 잘못된 건 없는지 항상 확인하는데도 실수를 하는 것 같다”면서 “지난 영상 때문에 불편하셨던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다. 앞으로는 더욱 더 주의하겠다”라고 전했다. 앞서 이시영은 지난 6일 SNS에 뉴욕 롱아일랜드 해변에 위치한 한 레스토랑에서 정윤 군과 식사를 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과 영상을 올렸는데, 이로 인해 비매너 논란에 휩싸였다. 영상 속 정윤 군은 자리에 앉아있지 않고 일어서서 춤을 추는가 하면 다른 테이블을 기웃거리는 등 계속해서 돌아다녔다. 또한 이시영은 사진과 영상을 올리면서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손님들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지 않았다. 화면에 잡힌 손님이 이시영과 아들을 향해 불쾌한 듯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포착돼 이같은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시영은 지난 2017년 결혼해 아들 정윤 군을 낳았으며 올해 초 파경을 맞았다. 이후 지난달에는 혼인 기간 중 보관했던 냉동 배아를 이식해 둘째를 임신했다고 밝혔는데, 전남편의 동의 없이 시험관 시술을 해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이시영은 둘째를 임신한 뒤 정윤 군과 함께 미국에 머물고 있다.
  • “대한독립 만세” 울려 퍼진 서울광장… 태극기 언덕 오르고 광복 되새긴다

    “대한독립 만세” 울려 퍼진 서울광장… 태극기 언덕 오르고 광복 되새긴다

    태극기 공방 등 4곳 스탬프 투어무궁화 페이스 페인팅 등 체험도이시영 등 독립지사 150명 소개 “대한독립 만세!” 지난 9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우렁찬 목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우리 기술력으로 한반도를 달린 첫 열차 ‘해방자호’를 본뜬 독립운동 기록 전시관 ‘광복열차’에서 김영운(72)씨와 시민들이 외친 함성이었다. 이곳은 80년 전 광복절처럼, 81.5㏈을 목표로 독립을 외치며 당시 해방감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김씨는 “어릴 적 광복절이면 ‘독립만세’를 외치고 다녔다”면서 “독립운동가를 들으며 서울의 과거 모습을 보니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10일 서울시에 따르면 광복 80주년을 맞아 시는 오는 16일까지 독립운동 역사와 서울의 변화를 살펴보는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서울광장을 단장했다. 태극기언덕·해방자호·KTX-청룡·태극기공방 등 4곳을 체험하는 ‘인증 여행’(스탬프투어) 종이도 일제강점기 당시 서울의 이름인 경성부에서 서울시로 도착하는 열차의 승차권 모양이다. 무궁화 페이스페인팅 등 체험 행사도 풍성하다. 주말을 맞은 시민들은 직접 태극기로 바람개비를 만들고, 독립에 대한 염원을 형상화한 ‘태극기언덕’에 올라 광복의 의미를 되새겼다. 독립 열사나 일본 순사로 분장한 배우들은 시민들과 참여형 공연을 하며 흥을 돋우기도 했다. 태극기언덕 아래 ‘소원터널’에서 중1·고1 딸과 ‘우리나라 화이팅’이라는 메모를 적어 붙인 한소현(46)씨는 “대한독립만세를 난생 처음 외치고 애국심이 되살아나서 이번 광복절엔 직접 태극기를 게양할 것”이라며 웃었다. 아들 이하준(4)군과 방문한 유슬기(35)씨도 “태극기로 바람개비를 만들며 아들이 역사를 체험하고 있다”고 했다. 곳곳에서 독립을 위해 투신한 이들의 얼굴도 만날 수 있다. 전광판에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핵심 인물인 이시영 선생, 대한광복군으로 활약한 이범석 장군을 비롯해 서울 출신 독립운동가 150명을 소개한다. 서울도서관 ‘꿈새김판’에 걸린 안중근 열사의 ‘단지동맹 혈서 태극기’ 속 태극 문양도 독립운동가의 사진을 조합한 것이다. 태극기를 가슴에 단 손기정 선수가 독립운동가의 응원을 받으며 서울을 뛰는 영상도 인공지능(AI)으로 제작해 상영 중이다. 하예은(10)양은 “광복절은 우리나라가 되살아난 날”이라며 “독립운동가의 얼굴을 보며 감사함을 느낀다”고 했다. 서울시는 ‘해방자호’에 전시된 명단을 비롯해 발굴한 서울 출신 독립유공자의 서훈도 추진 중이다. 현재와 과거 서울을 한장의 사진에 교차한 ‘리포토그래피’ 전시 공간 앞에도 발길이 이어졌다. 일제 강점기 당시 동물원과 케이블카가 설치된 창경궁과 복원된 현재, 판자촌과 현재의 아름다운 야경이 대조적인 청계천, 경복궁을 가리던 조선총독부 등이 눈길을 끈다. ‘광복 8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의 조정국 총감독과 김미라 예술감독은 “어린 세대나 외국인까지 서울광장에서 광복 이후 80년 간의 변화를 한 눈에 확인하고, 선조들의 광복에 대한 염원을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 ‘이모네’ ‘줩듁쿳’… 들춰낼수록 은밀하게 보냈소[편지에 담긴 좌절과 희망을 다시 읽다]

    ‘이모네’ ‘줩듁쿳’… 들춰낼수록 은밀하게 보냈소[편지에 담긴 좌절과 희망을 다시 읽다]

    日, 독립운동 서신 막으려고 감시수감자 편지엔 ‘통과’ 붉은색 도장문맹 日경찰 고려… 영문·한문 편지 임시정부 ‘한글 무전 암호표’ 완성 일제강점기는 검열과 감시의 시대였다. 일제는 독립운동 관련 정보를 전달하거나 저항 의지를 북돋는 서신 왕래를 막기 위해 검열하고 또 감시했다. ‘광야’, ‘청포도’를 쓴 시인으로 유명한 독립운동가 이육사는 1932년 6월 경북 영일군(현 포항시)에 살던 8촌 동생 이상흔에게 보낸 엽서에 이렇게 토로했다. “뜻한 바를 뜻한 대로 표현치 못하는 나의 고뇌여. 짐작이나 하여 주겠지?” 그는 두 달 전 대구를 떠나 홀연히 만주국으로 향한 터였다. 펑톈(현재 선양)에서 의열단의 핵심 윤세주를 만난 이육사가 뜻한 바는 무엇이었을까. 넉 달 뒤 그는 난징으로 갔고, 의열단이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설립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입학해 군사교육을 받았다. 일제의 우편 검열을 염려한 이육사로선 뜻한 바를 제대로 밝힐 수가 없는 사정이 있었던 셈이다. 1929년 ‘교원 공산당 사건’은 일제 경찰이 경성사범학교 학생들의 물건을 검사하다가 발견한 편지가 발단이 됐다. 경남에서 교사로 일하던 일본인 조코 요네타로가 옛 제자 조판출에게 보낸 편지였는데 민족차별 교육을 철폐하고 교직원노동조합을 만들자는 내용이 담겼다. 일본인이면서도 조선총독부를 비판하고 독립운동을 옹호했던 나카니시 이노스케는 검열을 거친 편지를 받았던 일을 회고한 적이 있다. 편지 봉투에 ‘閱’(통과), ‘許可’(허가) 같은 붉은인이 굵직하게 찍혀 있었다. “그가 (구속되고 나서) 70여일 후 발신 및 접견 금지에서 풀려나 그리운 바깥세상을 향해 보낸 첫 발신이 나를 향했던 것 같다. 나는 뭔가 수수께끼를 감추고 있는 듯한 그 서신의 봉투를 뜯었다.” 일본 내 노동운동에도 적극 관여했던 나카니시의 지인이 구속되고 예심을 마칠 때까지 면회는 물론 편지를 주고받는 것까지 모두 금지당했고, 예심 이후 편지 왕래는 가능해졌지만 검열을 받아야 했던 당시 실상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나카니시의 증언처럼 감옥에 갇힌 이들이 남긴 편지에는 붉은색 도장이 선명하다. 가령 독립운동가 이중업이 1920년 출옥을 앞두고 아들에게 보낸 편지엔 검열을 통과했다는 붉은색 ‘檢’(검) 직인이 찍힌 게 선명하다. 마찬가지로 광복회라는 비밀결사를 만들어 총사령을 지낸 박상진이 1918년 ‘친일 부호 처단 사건’으로 투옥된 뒤 공주 감옥에서 동생들에게 보낸 편지 봉투에도 내용을 검열했음을 밝히는 ‘허가’ 직인이 보인다. 감시가 있으면 이를 피하기 위한 대책도 있기 마련이다. 군자금을 담배로 표현하거나, 중국 상하이를 이모네로 지칭하거나, 나비나 꽃 그림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등 다양한 암호와 은어를 사용한 편지가 독립운동가 사이에 등장했다. 이봉창은 일왕 암살을 위해 일본 도쿄에 잠입한 뒤 상하이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편지를 보냈는데, 의거 실행을 “물품이 팔린다”고 표현한 대목이 눈에 띈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서 활동했던 한시대가 1944년 ‘중국 충칭 우편사서함 95’로 보낸 편지 첫머리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경애하는 김구 선생님께 검열을 피하고 빠른 전달을 위해 영문으로 보냅니다.” 1920년 부산경찰서장 사살 지시를 받은 의열단원 박재혁은 중국인 고서적상으로 위장한 뒤 상하이에서 배를 타고 일본 나가사키로 향했다. 원래 계획은 나가사키에서 시모노세키를 거쳐 부산으로 가는 연락선을 타는 것이었지만 나가사키에서 쓰시마섬을 거쳐 부산으로 갈 수 있다는 걸 알고 계획을 바꿨다. 그는 상하이로 편지를 보냈다. 한문으로 된 평범한 안부 편지였다. 그런데 끝부분에 이런 글귀가 눈에 띈다. “熱落仙他地末古 大馬渡路徐看多” 이 글귀는 중국인이나 일본인은 죽었다 깨나도 풀 수가 없다.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으면 “연락선타지말고 대마도로서간다”가 된다. 말 그대로 ‘연락선 타지 말고, 대마도(쓰시마섬)로 간다’는 걸 의열단 동지들에게 알린 셈이다. 21세기 시각으로 보면 ‘이게 무슨 암호 편지인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당시 일본인 경찰들이 대체로 학력 수준이 낮고, 한국어를 할 줄 아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 그들로선 운율까지 맞춘 한문 편지를 보고 중국인이 쓴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걸 역이용한 셈이다. 이 편지를 남기고 부산에 도착한 박재혁은 책을 팔러 간 것처럼 꾸며 부산경찰서장을 만난 뒤 폭탄을 터뜨려 거사에 성공한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체포된 박재혁은 모든 음식을 거부한 채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앞서 그는 편지에 “초가을 서늘한 바람에 몸과 마음이 상쾌하니 아마도 많은 수익이 있을 듯합니다”라며 언급한 ‘수익’ 역시 임무 성공을 뜻하는 암호였다. 박재혁이 “그대 얼굴을 다시 보기를 기약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했던 말은 그렇게 현실이 됐다.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선 암호를 사용해 편지를 주고받곤 했는데, 자음과 모음의 표시를 바꾸는 게 대표적인 방식이었다. 가령 ‘ㅍ’을 ‘ㅈ’으로, ‘ㅗ’는 ‘ㅝ’로 대체하는 건데, 폭발탄이 편지에선 ‘줩듁쿳’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단어가 돼 버린다. 암호 체계는 시간이 갈수록 체계화됐는데 가장 완성된 형태는 일본군에 징병됐다 탈영해 광복군에 합류한 김우전이 완성한 한글 무전 암호표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하던 광복군이 한미 합동 작전을 위해 만든 암호였다. 이 암호는 제작에 도움을 준 미 공군 대위 클래런스 윔스(Weems)의 ‘W’와 김우전의 ‘K’를 붙여 ‘W-K 한글 무전 암호표’로 명명됐다. 이 암호표를 적용해 ‘대한독립만세’를 쓰면 ‘134024300012133400111 4390016153000121741’이 된다.
  • “아들아, 조선을 위한 투사가 돼라”… 피 끓어오르게 한 윤봉길의 편지

    “아들아, 조선을 위한 투사가 돼라”… 피 끓어오르게 한 윤봉길의 편지

    국경을 뛰어넘은 편지히로히토 즉위식 보러 갔던 이봉창한글편지 소지 이유로 유치장 갇혀김규식, 편지·전보·신문사 찾아가유럽 각국에 한국 기사 518회 게재‘조선공산당 사건’ 12명 피고 무죄日변호사 편지 “이것이 나의 의무”치명적인 오해의 편지밀정 조문 간 이회영 부인 오해받아김창숙 ‘절교 편지’에 얼굴 보고 화해김창숙, 옥살이 차남에게 안부 편지해방되고서야 아들 유골 전해 받아3·1운동 가담했던 이미륵 獨 망명편지로 어머니 별세 소식 듣게 돼 편지란 위험한 물건이다. 1928년 히로히토 일왕 즉위식을 보러 갔던 이봉창은 경찰에 끌려가 일주일 동안 유치장에 갇혀 있어야 했다. 이유는 단 하나, 그가 한글 편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충실한 일본 국민이 되려고 노력했던 이봉창은 1932년 1월 일왕을 다시 찾아갔고, 수류탄을 던졌다. 3개월 뒤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일본군에게 폭탄을 투척한 윤봉길은 두 아들에게 이런 편지를 남겼다.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일본의 침략은 군대와 기차 그리고 우체국과 함께 왔다. 전보와 엽서, 편지는 조선 곳곳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수단으로 작동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편지는 독립운동가들에게도 무척이나 유용한 도구였다. 일제가 공들여 구축한 우편통신망이 독립의 대의를 알리는 ‘틈’으로 작용했다. 또한 사람의 피를 끓어오르게 하는 편지를 통해 결의를 북돋을 수도 있었다. 만주에 있는 신흥무관학교 교관 이탁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던 안창호와 편지로 독립군기지 건설 관련 정보를 주고받았고,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의사로 활동했던 이태준은 중국 베이징에 있는 김원봉과 의열단 활동을 의논했다. 편지를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멀리 멕시코 이민자들한테서도 독립성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의 편지 속에 대한독립을 위한 열정, 동지나 가족을 잃은 슬픔과 분노, 좌절과 희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서울신문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들이 주고받았던 편지 가운데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과 사연들을 취합해 그들의 열정과 좌절, 광복과 해방을 향한 염원을 되새겨 봤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프랑스에서 열린 파리강화회의를 통해 한국 문제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김규식은 열정적인 외교 활동을 펼쳤고, 그런 노력 덕분에 1919년 3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유럽 각국 신문에 한국 관련 기사가 518회나 게재될 수 있었다. 당시 한 기록은 김규식의 활동을 이렇게 증언했다. “밤을 새워 가며 편지를 쓰고, 전보를 부치고, 신문사를 찾아다녔다.” 독립운동 무대 자체가 중국과 일본, 미국 등으로 넓어지면서 편지 교류도 국경을 뛰어넘었다. 자연스럽게 대의에 동참하는 외국인들도 늘어났다. 광산기술자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앨버트 테일러는 1919년 3월 7일 영국에 사는 장모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내가 아들을 낳았다는 얘기를 길게 쓰다가 끝부분에 자신의 근황을 무심한 듯 전한다. “미국 AP통신 한국 통신원으로 임명됐습니다. 최근까지도 이 일로 매우 바빠서 먼저는 정부 관료들에게 연락하고 또 최근 사망한 한국의 마지막 왕의 국장에 참석했으며, 그리고 한국의 독립운동을 살피고 그에 관해 기사를 썼습니다.” 테일러가 3·1운동 소식을 전 세계에 알린 수단 역시 편지였다. 테일러는 일본이 설치한 우편 제도를 활용해 3·1운동 상황과 일제의 탄압을 전 세계에 보도했고, 특히 독립선언서를 영어로 번역해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공헌했다. 일제를 비판하고 한국인들을 대변하는 변론 활동에 열성이었던 일본인 변호사 후세 다쓰지는 1927년 10월 ‘조선공산당 사건’을 변호해 12명의 무죄 판결을 끌어냈다. 그는 당시 피고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설사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해도 당신들이 국가 권력의 위법한 검거와 취조에 항의하는 법정 싸움에 협력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안창호는 1927년 지린성에서 일제의 사주를 받은 중국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른 적이 있는데, 그를 구하기 위해 가장 열심히 뛴 사람은 톈진에 있는 난카이대의 설립자인 중국인 장보링이었다. 장보링은 만주 최대 군벌 장쉐량을 비롯해 유력자들에게 많은 친필 편지를 보내 안창호의 신원을 보증하고 “일본의 요구를 수락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한 달이 안 돼 안창호는 석방될 수 있었다. 독립운동가들은 극도로 긴장한 채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일제 경찰은 물론 밀정의 감시를 의식해야 했다. 그런 긴장감이 때론 치명적인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김달하는 중국 베이징에서 독립운동가 행세를 하다가 1925년 ‘다물단’이라는 독립운동단체에 처단된 일제의 밀정이었다. 김달하는 평소 형편이 어려운 독립운동가와 가족들을 도와주며 환심을 샀는데, 그런 사람 중에 이회영의 부인 이은숙도 있었다. 이은숙은 김달하가 죽은 이유도 모른 채 아들 이규창을 데리고 조문을 다녀왔다. 얼마 뒤 우체부가 김창숙이 보낸 편지를 전해 줬다. “우당장(이회영) 내외가 김달하 초종(初終)에 조상을 갔으니 앞으로 절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은숙은 품에 칼을 지니고 김창숙이 묵고 있던 집을 찾아가 격하게 항의했다. 결국 김창숙은 이은숙에게 사과하면서 오해를 풀었다. 얼굴도 보기 싫으니 짧은 편지로 대신하겠다는 김창숙의 분노와 직접 얼굴을 보고 오해를 풀지 않으면 자칫 남편의 생명까지도 위험해질 수 있다고 느낀 이은숙의 위기감이 교차하는 장면이다. 김달하가 처단된 계기는 사실 김창숙의 폭로였다. 김창숙은 김달하가 자신에게 독립운동을 포기하고 귀국하라고 회유했다고 증언했다. 오랫동안 증언 말고는 뚜렷한 물증이 없었다. 하지만 21세기가 돼 결정적 증거가 나왔다. 편지였다. 1998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된 독립운동가 김규흥을 두고 밀정 의혹이 제기된 적이 있다. 1918년부터 2년 동안 조선 주둔 일본군 사령관으로 일했던 우쓰노미야 다로가 생전에 썼던 일기를 유족들이 2007년 공개했는데 김규흥과 여러 차례 만나 정보를 교환했고 돈도 줬다는 언급이 나왔기 때문이다. 우쓰노미야가 김규흥을 이용한 게 아니라 오히려 김규흥이 우쓰노미야를 역이용했다는 반론도 있어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 그것과 별개로 김규흥이 상하이에서 1919년 12월 우쓰노미야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김달하의 행적이 드러났다. 김규흥은 편지에서 “김달하를 중요한 자리에 써서 큰일을 맡게 해야 합니다. 그를 후하게 대하고 환심을 얻어야 합니다. 김달하에게 활동비 3만엔을 주고 저에게도 2만엔을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썼다. 일제강점기는 식민지 백성으로 떨어진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숨 막히는 굴레일 수밖에 없었다. 독립운동으로 인한 망명과 수감 속에서 이별의 슬픔을 전하는 편지가 끊이지 않았다. 경성의전에 다니며 의사를 꿈꾸던 이미륵은 3·1운동에 가담했다가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됐다. 이미륵의 어머니는 38세에 어렵게 얻은 3대 독자가 투옥돼 고문받는 것보단 압록강을 건너 망명하는 게 낫다며 그의 등을 떠밀었다. 이미륵은 상하이를 거쳐 1920년 독일에 정착했다. 얼마 안 돼 고국에서 편지가 도착했다. 이미륵은 편지 내용을 담담하게 적는 것으로 훗날 독일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리는 자전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를 마무리 짓는다. “나는 먼 고향에서 첫 소식을 받았다. 내 맏누님의 편지였다. 지난가을에 어머님이 며칠 동안 앓으시다가 갑자기 별세하셨다는 사연이었다.” 생활비라도 벌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 잠시 귀국한 이은숙은 이듬해인 1928년 남편 이회영의 편지를 받았다. 급한 사정이 생겨 두 딸인 규숙과 현숙을 홍숙경과 홍숙현이란 이름으로 톈진에 있는 부녀구제원(고아원)에 보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규숙은 18세, 현숙은 9세였다. 이은숙은 딸들이 이름까지 바꿔 고아원에 들어갔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아 혼절했다. 1932년 10월 이은숙은 짤막한 편지를 받았다. 지금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데 그곳에서 안정이 되면 편지할 테니 답장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불안해하던 이은숙은 얼마 뒤 딸의 전보를 받았다. “아버님이 다롄 경찰서에서 돌아가셨음. 갈 것인지 통지 바람”이라고 돼 있었다. 그렇게 부부는 영원히 이별했다. 김창숙은 1927년 상하이에서 일제 경찰에 체포돼 14년 형을 받고 복역하다 고문 후유증으로 건강이 극도로 나빠졌다. 결국 1934년 형집행정지로 출옥해 4년이나 요양을 해야 했다. 그런 와중에 독립운동 혐의로 1938년 대구형무소에 갇힌 둘째 아들 찬기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뒤 “오장육부가 터질 듯한” 아픔을 느꼈다. 큰아들 환기가 19세 나이에 고문 후유증으로 죽은 뒤 둘째마저 잃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김창숙은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네 아비는 꿈이나 생시, 먹을 때나 쉴 때 언제고 오직 네가 무사히 돌아올 것만 바라고 있다.” 김찬기는 1941년 출옥한 뒤 그해 중국으로 망명했다. 중국 충칭에 있던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합류했지만 1944년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김창숙은 해방되고 나서야 아들의 사망 소식과 함께 유골을 전해 받았다. 시대가 엄혹하다고 해서 엄숙하고 근엄하고 진지한 편지만 오간 것은 결코 아니었다. 미국 언론인 님 웨일스가 쓴 ‘아리랑’의 실제 주인공으로 유명한 독립운동가 김산은 ‘혁명을 위해 결혼은 포기하겠다’고 함께 맹세했던 김성숙이 “중산대학에 다니는 아름다운 광둥 아가씨”를 만나 “첫사랑이면서 격렬한 연애” 끝에 결혼하자 큰 배신감을 느꼈다. 김성숙은 “네가 아가씨를 알게 된다면 나보다도 훨씬 깊이 빠져들 거야”라고 말했지만 김산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랬던 김산이 몇 년 뒤 사랑에 빠졌다. 김산은 곧바로 상하이로 편지를 보냈다. “나는 당신의 낭만적인 난센스를 모조리 용서합니다. 실은 오늘 밤 나는 어느 사람이 저지른 어떠한 일이라도 용서해 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김 형이 내게 한 말이 맞았어요. 유감스럽게도 너무나 정확했어요.” 김성숙과 두쥔훼이 부부는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일했지만 해방 뒤 김성숙만 귀국하고 두쥔훼이와 세 아들은 중국에 남으면서 생이별하게 됐다. 냉전에 휩쓸리면서 편지를 주고받을 방법조차 없었다. 김성숙은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고국에서 외롭게 세상을 떠났다. 남북 사이 편지 교환도 다를 게 없었다. 영화 ‘고지전’에서는 국군과 인민군 병사들이 전투 와중에도 서로 편의를 봐주며 편지를 몰래 전달해 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휴전협정이 체결되면서 그런 편법조차도 불가능해졌다.
  • 美 25센트 동전에 새겨진 한국계 MZ 인권운동가

    美 25센트 동전에 새겨진 한국계 MZ 인권운동가

    미국에서 한국계 장애인 인권운동가 스테이시 박 밀번(1987~2020·한국 이름 박지혜)의 모습이 새겨진 동전이 11일(현지시간)부터 유통된다. 지난 8일 미 조폐국은 스테이시 박 밀번 쿼터(25센트) 동전을 연방준비은행과 각 주화 단말기로 배송해 11일부터 유통한다고 밝혔다. 이 동전은 미 조폐국의 ‘미국 여성 쿼터 프로그램’ 19번째 디자인이다. 조폐국은 2022년부터 올해까지 여성 선구자들의 업적을 기념해 매년 5개의 쿼터를 발행해 왔다. 이 동전 앞면에는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얼굴이, 뒷면에는 단발머리에 안경을 쓴 채 전동 휠체어에 앉아 연설하는 밀번의 모습이 새겨졌다. 밀번은 1987년 주한미군이었던 아버지 조엘 밀번과 한국인 어머니 진 밀번 사이에서 3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퇴행성 근육 질환을 앓았던 그는 “너는 다른 아이와 다르지 않다”는 부모의 격려를 들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 낙상 사고를 계기로 자신의 몸이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걸 인식했다. 이후 그는 장애인으로서 겪은 불편함과 부당함, 개선해야 할 점 등을 개인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고, 글이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청소년 장애인 인권 운동가로 주목받았다. 스무살이던 2007년 밀번은 노스캐롤라이나 주정부가 공립 고교 교육과정에 장애인 역사를 포함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전국에 이름을 알렸다. 밀스칼리지를 졸업한 그는 캘리포니아주로 이주해 장애인, 유색인종, 성 소수자를 위한 인권 운동에 힘썼다. 2014년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밀번을 지적장애인들을 위한 정책자문위원으로 지명했다. 신장암으로 투병 중이던 밀번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사회적 약자들에게 마스크 등 긴급 의약품·위생용품을 전달하는 데 앞장서다 건강이 악화됐다. 결국 그의 33번째 생일인 그해 5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밀번의 동전은 최소 3억개, 많을 경우 7억개까지 발행될 예정이다. 1970년대 발행된 쿼터가 지금까지 통용되는 것을 보면 미국인들은 앞으로 50년 동안 일상생활에서 밀번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올해 쿼터 디자인에는 밀번 외에도 언론인이자 시민운동가 아이다 웰스(1862~1931), 걸스카우트 창립자 줄리엣 고든 로(1860~1927), 천체 물리학자 베라 루빈(1928~2016), 흑인 최초 프로 테니스 선수 알테어 깁슨(1927~2003) 등이 포함됐다.
  • “미국 동전에 첫 한국계 여성 얼굴”…‘박지혜’ 누구?

    “미국 동전에 첫 한국계 여성 얼굴”…‘박지혜’ 누구?

    미국에서 한국계 미국인 장애인권운동가 스테이시 박 밀번(1987~2020·한국 이름 박지혜)의 얼굴이 새겨진 동전이 11일(현지시간)부터 유통된다. 한국계 인물이 미국 화폐에 등장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0일 미국 연방조폐국은 오는 11일부터 ‘미국 여성 쿼터(25센트) 프로그램’의 19번째 주화로 스테이시 박 밀번을 기념하는 2025년판 쿼터를 발행한다고 밝혔다. 미 재무부 등은 참정권, 시민권, 노예제 폐지, 과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 사회의 발전에 공헌한 여성들을 기리기 위해 2022년부터 4년간 매년 5종의 새로운 뒷면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동전의 뒷면에는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밀번의 모습이 새겨졌다. 단발머리에 안경을 쓴 밀번은 왼손을 목 근처 가슴에 얹고 오른손은 무언가를 설명하는 듯이 앞으로 뻗고 있다. 선천성 근이영양증을 앓았던 밀번은 기관절개술을 받고 튜브 고정장치를 목에 끼고 활동했는데 동전에는 그런 모습도 담겨 있다. 조폐국은 이 디자인이 “진정성 있는 생각의 교환과 연대의 구축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밀번은 ‘장애인 권리 운동(Disability Justice)’의 기반을 다진 인권운동가였다. 3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미국 내 소수자 인권 옹호에 앞장섰다. 1987년 서울에서 주한미군 아버지와 자영업자이던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밀번은 어린 시절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로 이주, 10대 시절부터 장애인 인권 운동에 관심을 갖고 활동을 시작했다. 고교 시절에는 장애 관련 교육과정을 의무화하는 노스캐롤라이나 주법 제정에 핵심 역할을 했으며 주 장애인자립생활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이후 ‘장애 정의 프레임워크’를 공동 설립하고 강연과 저술을 통해 장애·성소수자·유색인종의 권리 신장을 위해 힘썼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2014년 그를 지적장애인위원회 정책자문위원으로 임명했다. 2019년에는 노숙인을 지원하기 위해 ‘장애인 정의문화 클럽’을 결성했고, 코로나19 초기에는 노숙인과 취약계층을 위한 위생·방역 키트를 제작해 배포하기도 했다. 신장암 치료 중에도 열정적으로 활동하던 그는 2020년 5월 19일 수술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서른세번째 생일날이었다. 조폐국은 “밀번은 리더이자 비전가, 문제해결자였으며 장애인의 정의를 위한 맹렬하면서도 연민 어린 활동가였다”면서 “젊음과 목적의식, 헌신으로 빛났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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