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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로정치인」들의 언행(사설)

    한때 이 나라 정치를 주름잡던 거물들의 언행이 갈수록 어지럽다.일선에선 국회의장단 감금과 동료의원 강제동행 같은 「정치만화」를 연출하고 다른 한쪽에선 노장들이 정치판을 흐려놓고 있으니 국민의 정치냉소주의가 널리 퍼질까 심히 걱정스럽다. 정치를 그만두었다면서 정치발언을 계속하고 있는 김대중씨의 최근 행보에는 정치개입을 노골화하고 있다는 해석이 뒤따른다.대통령이 천명하고 국회에서 매듭지은 지방선거의 실시를 무슨 근거에서인지 1백% 안심해서는 안된다고 한 그의 발언은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야당의 지자제 정당공천주장을 편든지 일주일만에 보안법문제 등을 거론하고 정치재개와 관련,묘한 뉘앙스의 말을 했다는 보도는 은퇴인지,복귀인지 또 한번 혼란을 안겨준다.온갖 정치풍상을 보아온 우리국민이 무지해서가 아니라 그의 말과 행동이 선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계은퇴를 선언했으면 정치언동을 안하는 것이 옳고 정치활동을 하겠다면 먼저 재개선언을 하는 것이 도리다.비판과 견제의 틀을 벗어난 장외정치는 기존정치질서를 어지럽히고 책임과 부담은 지지 않는 불공정게임이 된다.그러한 애매한 언행을 계속하는 것은 새삼스런 선언 없이 어물쩍 정치재개를 하려는 의도에서인지는 몰라도 정치도의상 당당하다고는 할 수 없다.김씨는 대통령선거후 국민에게 밝힌 은퇴선언의 변경여부를 확실히 하는 것이 후진에게나 국민에 대해서나 지도자로서의 바른 처신이라 생각한다. 정치이익이 걸린 지방선거를 앞둔 현상이겠지만 소위 원로들이 지역정서를 자극하고 증오를 심화시키는 언동이 부쩍 눈에 띈다.과거 국회의장이나 국무총리,또는 권력실세이던 정치인들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한풀이를 벼르거나,몸담았던 정당과 정당지도자를 매도하는 모습은 보기에 역겹다.「원로」정치지도자라면 국민과 유리된 그런 이기적 정치를 해서는 안될 것이다.
  • 정치 떠난 원로의 정치발언(사설)

    김대중씨의 정치적 발언이 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지자제를 둘러싼 여야의 첨예한 대치로 국회의장이 억류되고 국회가 공전되고 있는 때에 쟁점인 기초단체선거의 정당공천을 옹호함으로써 야당의 편을 들고 나선 것이다.그의 발언자체야 시비할 수 없지만 독특한 위상과 민감한 시기,그리고 내용으로 보아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가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민주당의 당원인 김씨의 야당주장 지원은 얼른 보면 이상할 게 없을지 모른다.그러나 정치일선을 떠나 있는 원로로서 굳이 말을 한다면 싸움을 말리는 것이 도리이지 당파적 주장으로 싸움을 부추기는 형국을 만든 것은 국민의 기대와는 다른 자세다.정당공천문제와는 달리 일체의 대화거부와 감금,납치라는 야당의 과잉행동에는 비판여론이 절대다수다.그럼에도 한마디도 국회정상화 촉구의 말이 없는 그의 발언은 야당을 고무하여 대화론이 고개를 못들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황낙주 국회의장의 말대로 협상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 사실이라면 의회정상화의 길을 낭패스럽게 하는 정치개입이된 셈이다. 김씨가 우리정치의 변수라는 사실은 상식이다.이기택 총재가 말한 바,민주당의 오너격인 그의 말 한마디가 지지세력의 행동지침이 될 만큼 결정적인 무게가 있음을 알면서 무심코 그런 발언을 했을 것 같지는 않다.그러지 않아도 정치권에서는 지방선거의 공천장사논쟁과 야당의 실력저지배후설이 있었다.정치권을 떠나 있어도 그가 지방선거에서 어떤 형태로든 이해당사자임은 부인할 수 없다.따라서 그의 한마디한마디는 자칫하면 이런저런 이야기와 관련지어 오해를 받을 소지가 크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정치권 밖에서 정치싸움을 조장하면 국론분열과 갈등의 사회적 확대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따라서 우리는 결과까지 미리 헤아리는 신중한 언행을 바란다. 정치를 그만두었다면서 너무 자주 정치에 관여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정치권에 부담을 주고 보기에도 좋지 않다.
  • 현대의 사관/김광영 수필가(굄돌)

    현대사회는 계속 발전만 할뿐 과거의 역사보다 퇴보하는 부분은 없는가. 현대는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면에서는 과거의 어느때보다도 풍욜르 누리고 있으나 눈에 보이지않는 정신적인 면에서는 퇴보하는 부분이 없지않다. 그가운데 하나가 선비저어신을 가지고 역사를 기록해왔던 사관제도를 들수 있다. 사관은 국가적인 사건,와으이 말과 행동,백관의 잘잘못,사회상 등을 정화거한 직필로 기록함으로써 후세 사람들에게 언행의 거울이 되도록 하는 일을 담당했던 사람들이다. 12·12사건과 관련햇거 헌법재판소에서 이미 결정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계속 논의되고 있는데 만약에 현대에도 사관이 있어서 격변기의 일들을 상세하게 기록해두었다고 가정해본다면 과거의 역사를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큰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현재 청와대에 통치사료담당관이 있기는 하지만 이조시대의 사관에 비해 그 역할이 중요시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광복된지 50주년이 되는만큼 올바른 역사적 조명이 요청된다. 이제 우리는 지나온 50년의 시기별 구분을하고 또 특정시기에서 주요 정치·외교적 사건별로 나누어 그당시 활동했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인터뷰를 해서 생생한 사료를 모아야한다. 그리고 그 내용을 각종 공문서와 대조해서 정확한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함으로써 후세 사람들의 귀감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현재의 정치 무대에서 활동하는 주인공들에게 오늘 그들의 연출하는 모든 일이 훗날역사가들에게 냉정하게 비판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도록 해야한다. 정치인들이 국민의,국민을 위한 올바른 정치를 하도록 경계심을 줄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 퇴계선생 문집 번역 완료/퇴계학 연구원,전17권으로 완성

    ◎시·임금께 올린 상소문·서간문 등 담아 사단법인 퇴계학연구원(이사장 이용태)이 지난 89년부터 「퇴계선생문집」을 번역,출간작업을 벌여온 「퇴계전서」가 전 17권으로 완역됐다. 「퇴계선생문집」은 퇴계 이황(이황 1501∼1571)선생이 일생 동안 지은 시와 임금에게 올린 소,임금을 대신해 지은 글인 교,제자들과 묻고 답한 편지인 서,다른 사람의 글을 논평하거나 행장을 기린 글인 발·기·표전·행장들을 선생의 사후에 제자들이 집성한 책. 퇴계학연구원은 지난 89년 퇴계학총서 편간위원회를 개설,이가원 원장 주도 아래 「퇴계선생문집」 경자본·경자복간본·의경자본·중간본·교정본 등을 비교 교감해 「퇴계전서」제3책을 낸 것을 시작으로 90년 제4·5책,91년 제1·2·6·7책,92년 제8·9·10책,93년 제11·12책,94년 제13·14·15·16책을 낸데 이어 이번에 제17책 발간으로 마무리짓게 됐다. 이 가운데 제3책은 교,제1·2·12책은 시,4·5·6·7·8·9·13책은 서,제10책은 기·발·표·전,제11책은 축문·제문·행장,최근 발간된 제17책은 퇴계의 언행록으로 구성돼 있다.지난 6년간 한국학 국문학 동양철학 등 한국학 관계자 2백여명이 번역작업에 참여했고 번역한 원고지도 2만7천6백여장에 달한다. 퇴계학연구원은 지난 89년부터 이 번역본을 국내 각 대학·공공도서관 및 공공기관,그리고 세계 36개국 2백여곳에 연구용으로 배포해왔다. 한편 퇴계학연구원은 18일 하오 학술진흥재단빌딩 5층 회의실에서 「퇴계전서」 완역을 기념하는 세미나를 「유학과 현대사회」란 주제로 열었다.
  • 개혁시대 리더/이영희 인하대 교수·법학(신 지도자론:11)

    ◎시대정신 미리 읽고 비전 제시해야/위압 아닌 설득으로 의식변화 유도/환부도려낼땐 난관 있어도 용단을/언행 일치해야 국민신뢰… 인기에 영합해선 안돼 우리는 지금 개혁시대에 살고있다.개혁은 두가지 측면을 갖고 있다.하나는 뒤떨어진 상태를 빨리 극복한다는 차원이며,또 하나는 새로운 미래를 적극적으로 열어 나간다는 의미에서 이다.지금 우리에게는 이 두가지의 개혁이 동시에 요구되고 있다. 개혁시대의 지도자상은 어떤 것일까.지금 이 시대에 있어서 우리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요건과 자질은 무엇일까.구체적 현실과 인물을 도외시한채 단지 이상적 또는 추상적 기준을 제시한다는 것은 다소 부질없는 일로 여겨질 수도 있다.하지만 여기서는 하나의 평가척도를 세워본다는 정도의 생각에서 몇가지의 요건을 말해보기로 한다. 먼저 무엇보다도 개혁지도자는 개혁의 비전과 철학을 분명히 갖추고 있어야 한다.이것은 단지 지금 어떤 개혁이 요구되고 있는가 만이 아니라,개혁이 왜 요구되며,그러한 개혁이 갖는 시대적,역사적 의미가 무엇인지를지도자가 투철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함을 뜻하다.따라서 지도자는 역사적 안목을 가져야 하며,시대정신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이러한 바탕 위에서만이 개혁의 목표와 방향이 제대로 정립될 수 있을 것이며,개혁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여러가지 어려움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서독의 전총리 빌리 브란트가 독일통일의 기초가 된 「동방정책」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은 평화및 긴장완화 정책의 추구만이 동구 사회주의권의 장벽을 뚫을 수 있는 단초라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개혁지도자는 말할 것도 없이 과단성이 있어야 한다.개혁은 무엇보다 용기를 필요로 한다.많은 경우에 있어 그것은 남들이 생각은 하였지만 감히 손대거나 실천하지 못한 내용들이다.따라서 개혁은 때로는 매우 외롭고 힘든 결단이기도 하다.우유부단한 사람,누구에게도 밉게 보이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것저것 모든 것을 다 재는 사람은 개혁을 할 수 없다.그런 점에서는 비교적 단순한 성격의 지도자가 개혁에 더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개혁은 결코 만용적으로 행하여질 수 없는 것이며,용기만이 개혁을 해낼수 있는 것도 물론 아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실천한 공직자 재산공개,금융실명제,부동산 실명제,정부조직개편의 예나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동서냉전과 소련의 정체상태를 타개한 「페레스트로이카」는 「필요악」을 감수하고라도 환부를 도려낼 결단성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셋째로 개혁지도자는 도덕성을 갖추어야 한다.개혁은 진지한 것이어야 하며,인기에 영합하거나 위신적이어서는 곤란하다.그러한 개혁은 곧 들통이 나고 실패하기 마련이다.개혁지도자는 바로 그 개혁의 화신이고,산 준거가 되어야 한다.물론 개혁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도덕성은 윤리적,종교적 지도자에 요구되는 정도의 높은 품격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그것은 적어도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고,재산을 위장하는 것이 아니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필리핀의 막사이사이가 공산주의와 보수 기득권층의 도전을 딛고 대통령에 당선,농지개혁과 관리들의 재산공개등을 추구할 수 있던 힘은돈의 유혹을 물리치도록 호소할수 있는 그 자신의 정직·청렴에서 나왔다. 넷째로 지도자는 설득력을 갖추어야 한다.위압적으로 하는 개혁은 개혁이 아니라 혁명이며,민주시대에 맞지않는 개혁이다.개혁은 스스로 설득력을 가져야 하며 그것이 결여된 개혁은 성공할수 없다.따라서 개혁지도자는 문제를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하며,반대자들의 논리를 제압할 수 있어야 한다.설득은 상대방을 굴복이 아니라 납득시키는 것이며,따라서 그것은 민주적 리더십의 핵심요소이기도 하다. 낫세르와 사다트가 뛰어난 외교수완가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전자는 내정에 실패하고 후자는 성공한 것은 사다트가 「아랍국가」보다는 「이집트 국민」의 복리를 국민들에게 납득시킬수 있었던 데서 연유한다. 끝으로 개혁지도자는 유연성을 갖추어야 한다.개혁은 실패할 수도 있고,돌아가야 할 때도 있고,속도를 늦추어야 할 경우도 있다.개혁은 그 과정에서 미처 예견하지 못한 문제나 걸림돌에 얼마든지 직면할수 있으며,때로는 임기응변적으로 이를 극복하여야 한다.개혁은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이며,시행착오는 개혁의 속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경직된 사고야말로 가장 경계해야할 개혁의 실패요인이다. 국민의 열렬한 성원속에 등장했다가 독선에 빠져 마키아벨리스트의 변종으로 전락,비참한 최후를 맞은 지도자들은 동서고금에 얼마든지 있다. 개혁시대란 역사적으로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한 시대라고 할수 있다.개혁의 성공여부는 우리 역사의 모습을 바꿔놓을 수 있다.개혁은 역사를 크게 단축시킬 수 있고 새로운 역사를 전개시킬 수도 있다.불행히도 우리는 중요한 역사적 전환기에 훌륭한 지도자를 갖지 못하였다.물론 오늘의 시대는 지도자만을 기대하거나 쳐다보아야 할 시대는 아니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개혁시대를 제대로 이끌어갈 리더십이 간절히 소망되고 있는 것은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 해당행위 의원 전대이후 제재/민자 방침

    민자당의 문정수 사무총장은 2일 김종필 의원의 신당 창당 움직임에 소속 의원들이 관여하고 있는 데 대해 『해당행위가 있으면 2월7일 전당대회가 끝난 뒤 제재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총장은 이날 아침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신당이 창당되면 몇사람의 미미한 이탈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며 이들이 해당적인 언행을 하면 제재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히고 『그러나 해당행위에 대해 당이 적극적으로 제재를 가하기 전에 정치인들의 양식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안개속? 민자대표/궁금증만 더해가는 당직 인선

    ◎「실세­얼굴」·「원내­원외」 윤곽 안잡혀/“관심 극대화”… 전대당일 발표 가능성 민자당 대표인선을 두고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상식선」과 「깜짝성」으로 풀이 했다.상식적인 인사를 하되 인사권자 말고는 누구도 그 내용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게 함으로써 오는 7일 전당대회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킨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중진실세들이 어떤 형식으로든 전진배치 되리라는 것 뿐이다.김윤환·이한동·이춘구·최형우의원등 중진들이 당무의 핵심적 위치에 기용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러한 관측은 김영삼대통령의 최근 언행에서 암시되고 있다.김대통령은 대표직을 사퇴,신당창당을 추진하고 있는 김종필의원의 움직임에 극도의 불쾌감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전혀 언급을 않고 있다.실제 행동으로 그들의 시대가 지나갔음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인 것으로 여겨지는 대목이다.따라서 이번 당직개편이 세대교체의 상징적 조치가 될 조짐이다. 결단이 필요한 부분은 실세중의 한 명을 대표로 기용할 것인가이다.최형우의원은 민주계로서 일단 인선대상에서 빠진다.나머지 셋이 각각 대표가 됐을 때의 장단점은 이미 자료로 대통령에게 제출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 실세중진 가운데 한명이 대표가 된다면 나머지 중진들의 당무참여 기회가 사실상 봉쇄된다.차세대 주자중 한명만 앞서 나가게 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실세중진의 대표기용안이 채택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일부 세력의 이탈이라는 비상시국에서 당의 총력체제를 갖추려면 대표에는 세계화 이미지에도 맞고 인품도 있는 「얼굴」을 내세우고 실세들은 다른 요직에 배치하는 게 나을 것으로 여겨진다.아직 황인성·신상우·김종호의원등 원내 실무형의 기용을 배제하기 힘들지만 원외가 유력시 된다. 이와 관련,김대통령은 최근 몇명의 원외 인사들과 접촉하면서 대표로서의 적임여부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원외에도 정원식·김명윤씨등 이미 거론된 인사가 아닌 쪽에서 대상이 물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원외에서 대표가 나온다면 김윤환·이한동·최형우의원등은 전당대회의장,사무총장,정무1장관등 서열 2∼6위의 당직에 배치돼 당을 협의체,위원회제로 이끌게 될 것이다.「원외 대표임명」과 「중진실세의 총력배치」구도는 당의 단합과 활성화를 함께 기할 수 있는 절묘한 배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표지명자 발표시기도 일반의 궁금증을 높이기 위해 막바지까지 갈 것 같다.전당대회 전날인 6일이나 어쩌면 당일인 7일 대회장에서 지명,극적 분위기로 대회열기를 고조시킬 가능성도 있다.
  • 「JP신당」 여전히 불투명/시선 끄는 김종필씨 귀국뒤 행보

    ◎“충청도당” 비난 부담으로 회의적 시각 우세 닷새 동안의 미국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민자당 김종필 전대표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폭발력은 미지수이지만 그가 민자당을 탈당,신당을 만든다면 정계개편의 한 뇌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전대표가 미국에서 한 언행을 보면 탈당한 뒤 신당창당이라는 수순은 일단 굳힌 것으로 보인다.청와대 관계자들이나 민자당 당직자들도 설득이 사실상 어렵다고 판단하는 듯한 분위기다. 김전대표의 탈당 결행은 귀국직후,늦어도 다음달 7일 전당대회전까지는 이루어지리라는 관측이 우세하다.이번 달안에는 그와 관련한 선언이나 기자회견이 있을 수도 있다. 아직 변수는 있다.김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동을 통해 김전대표의 당잔류문제가 극적으로 해결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 회동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김전대표의 태도가 먼저 누그러져야 한다』고 말한다.절충 확률이 낮다면 만날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김전대표가 다음달 전당대회 때까지 민자당을 떠나는 것은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으나 신당창당에 대해서는 관측이 엇갈린다.김전대표가 신당에 생각이 있더라도 마음먹은 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여권 관계자들은 말한다. 우선 여론의 비난이 예상된다.지역당 구도를 청산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뒤엎고 다시 「충청도당」을 만든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김전대표도 그 점을 의식하는 듯 하다.김전대표는 『모든 것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말했다. 빠르면 올 지방자치선거,늦으면 내년 총선의 공천과정을 지켜보면서 여권의 소외세력을 포함해 모양 있는 당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다듬은 눈치다. 「내각제 추진」을 이념으로 내세워 보수적 정치세력을 유인하고 일반 보수중산층에 어필하려는 전략도 짜고 있다.지역당 이미지의 탈색을 위해 대구·경북 출신인사들과 손잡는 방안도 내부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전대표의 일부 측근은 『시간을 늦추면 동정론이 식고 결국 당을 못 만들 것』이라는 불만도 터트린다. ○…학계에서도 김전대표의 신당추진에 회의적 견해가 나오고 있다. 건국대 최한수교수는 25일 정당연구회 주최의 세미나 주제발표를 통해 『김종필씨가 신당을 만든다 해도 기존의 양당구도를 깰 파괴력이 없다』고 전망했다.최교수는 그 이유로 ▲김전대표는 지역감정이 극심했던 지난 87년 대통령선거에서도 충남에서 38%밖에 득표하지 못했고 ▲동조의원 수가 별로 없으며 ▲대구·경북 세력과 연결될 지가 회의적이라는 점을 들었다.
  • 김종필대표 “거취결정 유보”/민자선 당무집행 정지조치 움직임

    민자당의 김종필대표는 17일 다음달 7일 전당대회 때까지 자신의 거취에 대한 결정을 유보하고 당무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민자당 탈당과 신당 창당을 강력히 시사해온 김대표가 이렇게 태도를 바꾼 것은 탈당을 결행했을 때 동조세력 규합이 어렵고 당대표로서 최근의 언행에 대한 비난이 일고 있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김대표는 이날 고위당직자회의에서 당직자들에게 『그동안 당내의 껄끄로운 소리로 인해 불편했으리라 생각한다』면서 『이런 저런 애기를 했으나 전당대회 때까지는 말을 하지 않겠으니 전당대회 준비를 잘해달라』고 말했다. 김대표는 『총재로부터 전당대회를 잘 치러달라는 위임을 받았으므로 대표로서 전당대회를 잘 치르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대표는 또 이날 춘천에서 열린 강원도지부장 경선을 위한 정기대회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정재철도지부장의 불참 건의를 받아들여 일정을 취소했다.
  • 고국서도 홀대… 재일동포 「2중 설움」/도쿄=강석진(특파원코너)

    ◎일 생활 어려운데 서울가도 멸시받아 도쿄와 맞붙어 있는 가와사키시에는 코리아타운이 형성돼 있다.한글 간판은 물론이고 한국 음식과 메뉴도 흔한 이곳에서 간이술집(이자카야)을 하는 K씨는 요즘 속이 꽤나 편치 않다. 일본에서 나서 일본서 자란 그는 한국말은 잘 하지 못하지만 「한국인」임을 잊은 적은 없다.늘 생활에 쫓겨 오다가 지난해에는 큰 맘 먹고 고국을 찾았다.그러나 지금 그는 『두번 다시 안 가겠다』면서 분노하고 있다. 처음 찾은 고국에서 그는 양친이 모두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나서 자랐다는 이유로 『반쪽발이구만』이라는 말을 정면으로 들어야 했다.그리고 한국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온 몸을 훑는 듯이 쳐다보는 눈길을 여러 번 마주치기도 했다.한국말은 못하지만 「반쪽발이」가 어떤 말인지는 익히 알고 있다. 택시운전을 하고 있는 S씨는 『한국인은 거칠다.나쁜 사람이 많다』고 일본말로 외치다시피 격앙되게 내뱉는다.왜 그러냐는 질문에 『나도 한국피가 섞여 있지만 쉽게 싸우고 매너가 없는 한국인이싫다』고 말했다.그는 한국말을 잘 알아듣는 듯했다.이 해프닝을 이곳 한국인에게 얘기하니 대부분은 『운전사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반응들이었지만 재일동포에게 하니 『일본국적을 취득한 동포가 아닐까』라면서 『고국과의 접촉을 통해 설움을 당하거나 나쁜 인상을 받은 동포들이 많다』고 말한다.반응이 사뭇 다른 것이다. 2세인 S씨(여)는 『할아버지 때 경상도에서 서울로 이사하면 손주 때 서울말 쓰지 않느냐』면서 『일본서 자란 동포들이 한국말을 모르거나 서툰 것을 본국인들이 이해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한다.그녀는 『국민으로서도,주민으로서도 투표해 본 적이 없다』면서 쓰게 웃는다.또 고국방문시 재일동포라면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도 많이 듣고 있다고 말한다.대부분의 동포들은 일본사회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데도. 지난해 11월 「일본은 없다」의 일본어판 출판 기념 토론회에 참석한 와세다대 재학생 재일동포 H군은 자신을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아무개입니다』라고 소개하기도 했다.역사의 희생자인 이들 재일동포들은 일본 뿐만아니라 고국에도 뿌리를 내리기 어렵다는데 생각이 미치면 우울하다. 세계화의 목소리가 높다.해외동포들이 할 수 있는 역할도 클 것이다.세계인의 삶을 이해하고 세계가 우리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외동포들에게 비친 한국의 인상이 이런 정도라면 「일부의 거친 언행,일부의 반응」이라고 치부할 수 만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 광복 50년/양국 유학생들이 본 「갈등의 골」 극복 방안

    ◎“세계화시대… 한일 「협력의 폭」 넓히자” 올해는 광복 50주년과 한·일국교정상화 30주년이다. 그동안 한·일간에는 과거사문제등 많은 현안을 두러싼 갈등과 대립이 반복돼 왔다. 그러나 80년대 말부터 과거에만 집착하지 말고 미래지향적 우호관계를 정립하자는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오늘의 한국과 일본및 앞으로의 한·일관계를 일본에 유학하고 있는 한국 학생들과 한국에 와있는 일본 유학생들에게 들어본다. ◎서울의 일본 학생들/「과거사」에 얽매여 대일비난 하는데 당혹감/일은 진정으로 과거청산… 양국우호 힘쓸때 ▲요리타 다케시(33·서울대 보건대학원·교토대 교육심리학과졸)=한국은 일본의 이웃에 있지만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그저 지구상에 있는 하나의 국가라고 처음에 생각했었다. 그러나 한국의 나병실태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관심이 높아졌다. 한국사람들은 정이 깊고 활력과 힘이 있는 것 같다. 한국사람들의 솔직한 표현에서는 인간미를 느낄수 있다. 한국사람들은 또 일본을 감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고 경제·기업관계자들중에는 일본을 배워야 한다며 좋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지난 여름 독립기념관에 갔을때 어린이의 손을 잡고 온 어른들이 일본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것을 보고 한일간에는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절망감까지 느꼈다. ▲고무라 가오리(31·한양대 국악과대학원·한양대 국악과졸)=한국의 판소리,사물놀이,창극등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국악을 공부하고 있다. 한국은 알수 없는 힘을 갖고 있다. 국악속에는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영적인 힘이 있는 것 같다. 한국은 활기찬 나라이며 자신의 주장이 강하고 사소한 일에는 신경을 쓰지않는 대륙기질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인들은 특히 일본에 대한 라이벌의식이 강하며 지고 싶지 않다는 오기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노골적으로 일본을 지나치게 비난 할 때는 속이 상할 때도 있다. 일본은 물론 과거청산을 하여야하지만 한국도 지나치게 과거문제에만 매달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할 경우스스로를 약하게 하고 결국은 지게될지도 모른다. 한국이 보다 강한 나라가 되기위해서는 대범해져야하며 넓은 세계적 시각으로 양국관계를 보아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기우치 아키라(27·서울대 체육교육과 대학원·와세다대 인간과학대졸)=중학교때 재일한국인에 대해 알고부터 한국에 관심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신문·방송등을 통해 한국을 알았고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강한 전통적인 유고국가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실제 한국에 와보고 조금은 실망했다. 어른들에 대한 공경심은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는 약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친절하고 정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음을 느낀다. 같은 사실이라도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지나 히로시마 아세안게임 보도를 볼때 마치 일본과 「전쟁」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일본을 꺾었다는 등 일본과의 대전을 중심으로 쓰고 있었다. 일본에 대한 감정적인식이 강한 것 같다. ▲고가 사토시(31·연세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주오대 사회학과졸)=국민학교 6학년때 옆반에 있던 재일한국인을 친구로 사귄후 한국과 한국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됐다. 한국에 온후 많은 친구도 사귀고 한국문화도 접할수 있어 하루하루가 재미있다. 한국사람들은 개성적이며 친구가 되면 매우 친절하다. 한국은 21세기에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욕을 하는 것들을 보며 거칠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국인들은 또 일상생활에서 많은 일들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으며 자기비판이 조금은 약한것 같다. 물론 일본도 과거문제를 말끔히 청산하지 않은 점이 있으며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양국간의 우호관계가 필요하며 그것이 양국의 이익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가세타니 도모오(32·고려대 사회학과 대학원·고베대 경영학과졸)=백제의 관계가 깊었던 나라현에서 자라며 한국및 중국등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은 처음에 완고한 유교국가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직접와보니 한락가가 있는등 어느면에서는 성에 대해 노골적인 면이 있는 것 같다. 한국인들은 사람을 사귈때 일본사람들과는 달리 거리를 두지않고 지낸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을 어떤 나라라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른것 같다. 하지만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일본은 없다」라는 책을 보고 유감스러웠다. 일본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한 그책은 일본인을 대상으로 썼다면 하나의 좋은 충고가 될수 있으나 한국인이 일본을 이해하는데는 나쁜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물론 일본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과거청산을 하여야하며 개인보상도 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일본에는 과거침략행위에 대해 진심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등 여러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도쿄의 한국 학생들/감정적 일본혐오 벗어나 객관 인식 바람직/문화·경제장점 서로 배워 공동이익 창출을 ▲채원호(33·도쿄대 대학원 행정학과졸)=올해는 한국으로서는 해방 50년,일본으로서는 패전 50년이 되는 해다.일본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아도 이웃한 나라라는 숙명적 관계에 있는 나라다.앞으로 국제화·개방화·지역경제의 블록화등으로 일컬어지는 상황은 양국의 교류 및 협력관계를 더욱 요구할 것이다.과거의 식민통치 경험이 일본의 한국에 관한 지식의 축적을 가져 왔다면 해방후 일본은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빨리 잊고 싶은 망각의 대상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객관적 인식과 객관적 인식에서 비롯돼야 하는 일본연구는 지체될 수 밖에 없었다.그러나 새로운 인식의 틀에서 활발한 일본연구가 필요하며 양국의 정치·경제적 이해가 맞물리는 분야에서는 공동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창조적인 모델이 만들어져야 한다. ▲박종문(31·와세다대 경제학과 대학원·연세대 경영학과졸)=대학시절 민주화를 둘러싼 학생들과 정권의 주장이 맞서고 있을 때 진짜와 가짜가 무엇인가를 탐구하기 위해 유학을 선택했다. 어려서부터 『일본은 경제대국이지만 정신적인 면에서 한국보다 열등한 나라다』라고 배워왔기에 그 말이 사실인 것같은 착각을 느꼈다.7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선진국이고 한국은 개발도상국일 뿐』이라는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일본이 정신적인 면에서 한국에 못미친다는 말은 거짓이다.정신적인 선진성없이 경제의 선진화는 이룩될 수 없다. 물론 한국인으로서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그러나 일본이라는 나라를 다시 한번 생각하고 이해해야 한다.이유없는 반일감정,이유없는 일본 멸시언행은 우리를 영원히 일본과 같은 선진대열에 끼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김기석(34·와세다대 경영학과 대학원·동아대 화공과졸)=일본식 경영법을 만들어 낸 일본의 사회·문화·윤리를 직접 보고 배우고 싶었다.일본은 여러가지 면에서 한국보다 질서가 잘 잡혀 있고 사회가 안정돼 있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 한일관계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감정적으로 한일관계를 보기보다는 이성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역사문제·종군위안부 문제등은 물론 일본이 원인제공을 했지만 처리과정에서는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으로 대응한 면이 없지 않다고 본다. 최근 한국에서는 일본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일본은 없다」라는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다.확실히 일본에도 부정적인 면이 많지만 부정적인 면보다는 아직 보고 배워야 할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이성보다 한국인의 감정에 호소한 이런 책은 일본에 대한 편견을 가져와 일본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될 뿐이다.바람직한 한일우호관계를 위해서는 지도층의 교류보다 최근 활발해진 시민단체등의 상호 교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신경순(27·여·조지대 신문학과 대학원·추계예술대문예창작과졸)=한국은 오랜 역사적 관계에도 불구하고 현대 일본에 대한 연구나 인식이 빈약하다고 느껴진다. 일본에 대한 인상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외국인에 대한 차별등이 엄존한다.지나친 풍요로움에 때론 불편을 겪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의 저력은 막강하다.일본은 외국문화의 흡수력이 대단하며 외래어를 단순하게 일본어화하는 것을 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일본은 또 공공교통수단이 잘 발달돼 있어 시간계산을 잘하면 효율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다.더욱이 정보화·산업화 과정은 과연 경제대국이 될 수 있는 나라라는 점을 깨우쳐 준다.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위해서는 같은 문화권안에 있지만 너무도 다른 문화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보다 적극적으로 인식하는데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양국간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인재육성도 필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을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인 조직·구성의 마련이다. ▲김정준(35·도쿄대 공학부 대학원·서울대 공업화학과졸)=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위해서는 우선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국민의 감정을 부추기는 기사보다는 이성적 보도가 필요하다.반복되는 일본 지도층의 망언에 대해서도 매번 흥분할 것이 아니라 배경과 진원지를 분석해 주면 좋겠다. 양국간에는 직접적인 경험과 교류를 통한 상호이해와 함께 문화교류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김치를 먹고 치마저고리를 입는 분단된 나라」,「스시(생선초밥)와 기모노의 나라」라는 정형화된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도 생활양식 정서를 느낄 수 있는 문학작품·음악·연극등 문화교류가 필요하다.우리 젊은이들이 아무 생각없이 일본문화에 빠져들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그러나 일본에 와서 우리나라의 너무 많은 책들이 일본 책을 그대로 베낀 것을 보고 기성세대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한국은 일본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이 필요하며 국제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감각을 가져 상대방에게 매력있는 파트너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 힐러리는 「잡×」/미국정가 파문 확산

    ◎백악관·민주당 “모욕적인 처사” 격분/깅그리치,CBS에 화살… 진화 부심 뉴트 깅그리치 미국 하원 신임의장(공화)이 대통령부인 힐러리여사를 욕한 사실이 보도되면서 제104회 의회 개원일인 4일부터 미국정가에 적잖은 파문이 일고 있다. 때문에 공화당은 40년만에 의회를 장악했다는 승리감을 만끽하면서 클린턴행정부에 대한 정치적 공세를 펴기에 앞서 때아닌 욕설파문부터 수습해야 할 판국이며 어수선한 분위기는 한동안 갈 전망이다. 깅그리치 의장의 모친인 캐슬린여사(68)는 CBS방송 프로를 위해 펜실베이니아주 도핀 자택서 유명 앵커우먼 코니 정과 가진 회견에서 아들이 힐러리를 「잡X(Bitch)」이라 불렀다고 얘기해버린 것. 루이스 슬로터 민주당의원은 이에 대해 『새로 출범하는 의회를 온통 휘저어놓는 매우 실망스러운 처신』이라면서 즉각적인 사과를 요구했고 힐러리의 대변인 라이자 캐퓨토는 『우리 어른들은 언행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타인에 대한 불경과 무례가 나쁘다는 것을 어린이에게 보여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또 백악관의 한 여성대변인이 깅그리치의 욕설을 「모욕적인 것」이라고 지적하는등 분위기가 격앙되고 있는 가운데 정작 당사자인 힐러리와 클린턴 대통령은 논평을 자제하는 모습. 파문의 장본인인 깅그리치는 취임선서에 앞서 이날 아침 기자회견을 갖고 코니 정을 격렬하게 비난하면서 CBS측의 사과를 요구했다. 깅그리치는 코니 정이 5일 방영예정인 프로를 녹화하면서 자신의 모친에게 『우리끼리만의 이야기』라는 단서를 붙여 힐러리에 대한 험담을 빼내는 데 성공(?)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본인이 아닌 어머니에게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것은 야비한 짓이며 코니는 나의 어머니와 대통령,온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열을 올렸다.
  • 검찰 강압수사/증인에 욕설… 성적 모욕까지/부산국교생 살해사건

    【부산=김정한기자】 부산만덕국교 강주영(8)양 유괴살해사건과 관련,경찰및 검찰이 피의자들의 알리바이를 진술한 참고인들에게 강압수사를 편 것으로 드러났다. 27일 부산변호사회 인권위원회(위원장 조성래변호사)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범인으로 구속기소된 4명의 피고인중 원종성(23)피고인등 3명의 알리바이를 주장했던 참고인들이 경찰에서 고문을 받은데 이어 검찰에 불려와서도 모욕적인 욕설과 함께 머리를 맞는등 강압수사를 당했다는 것이다. 변호사회는 또 검찰이 참고인 자격으로 출두한 10대 여학생까지 학교를 못다니게 하겠다는 협박과 함게 법정증언을 번복할 것을 강요하는등 사건의 실체적 진실 규명보다는 공소유지에 급급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남모(19)피고인이 사건 당일날인 지난 10월10일 타자시험을 치는것을 보았다고 진술한 남양의 급우 이모(19)양은 같은달 28일 부산지검 담당검사실로 불려가 『왜 거짓말을 하느냐.당장 구속하겠다는 협박과 함께 머리와 가슴을 주먹으로 맞고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모욕적인 언행까지 당했다』는 것이다.
  • 사람 평가 자료/김우택 한림대 경제학과 교수(굄돌)

    경제학에서는 현시선호이론(revealed preference theory)이라는 것이 있다.만일 소비자들의 의사결정 행태가 일종의 합리성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그들의 선택이 자신들의 만족(경제학의 용어로는 효용)을 극대화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는 이론이다.소비자들이 한정된 소득을 가지고도 살 수 있는 수많은 재화들 중에서 어떤 특정 재화를 구매했다는 것은 구매라는 행동을 통해 자신의 선호를 밝힌 것이다. 그러니까 현시선호란 구매라는 행동으로 밝힌 자신의 선호이다. 사람들의 진정한 선호를 알기란 매우 어렵다.국민들의 의견을 알아보기 위해 여론조사 기관에서 설문조사라는 것을 많이 하지만 그 조사방법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높은 전문성과 객관성이 요구된다.그래서 경제학자들은 설문조사라는 방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그보다는 실제 행동의 결과로 나타난 자료인 통계자료를 연구자료로 선호한다.말보다는 행동으로 현시된 결과를 연구의 기초로 삼는 경제학자들의 연구방법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구자료로서의 설문조사자료와 통계자료의 차이와 같은 것을 사람 평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사람 평가자료로서 보다 신뢰성있는 자료는 설문조사 자료와 같은 그 사람의 말이나 글이 아니라 통계자료와 같은 행동으로 보여준 진정한 선호체계이다.지금 김영삼 대통령 임기 중반을 맞아 앞으로 한국의 세계화를 이끌어 나갈 새 내각구성을 위한 인선작업이 한창이라는 소식이다.말 잘하고 글 잘 쓰는 사람들 기용했다가 행동으로 보인 그들의 본 모습이 그들의 평소 글이나 말과는 큰 괴리가 있음이 드러났던 집권초기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야 한다.말과 글로써는 사람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으나 사람의 됨됨이는 행동으로만 평가될 수 있다. 언행일치로 능력과 됨됨이를 모두 입증할 수 있는 인재들이 이번 기회에 등용되기를 기대해 본다.
  • 중국외교행태 예측 가능하다/미 CIA비밀보고서/일지연재

    ◎「포커페이스」속에 일정한 원칙 견지/친소관계 적극 활용… 상대 혼란 유도 일본의 산케이신문은 미중앙정보국(CIA)이 67년부터 84년까지 중국의 대미국교섭과정에서 나타난 언행패턴을 철저하게 분석한 「중국 정치교섭의 행동양식」이라는 비밀 보고서를 작성,중국과의 교섭에 나서는 고위관리들이 반드시 읽도록 하는등 대중교섭의 지침서로 활용해왔다면서 25일 보고서의 상세한 내용을 연재하기 시작했다.올해 비밀해제된 이 보고서의 내용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대중교섭에도 참고가 될수 있을 것이다.다음은 산케이신문에 실린 보고서 내용의 요약이다. 서방세계에 중국은 신비하게 비쳐지고 있지만 지금(84년)까지의 교섭기록은 중국의 대외교섭이 일정한 패턴을 갖고 있어 이해하기 쉬우며 놀라울 정도로 예측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정부의 고위관리들은 일관되게 외부세계에 대해 「포커 페이스」를 보이려 하고 있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행동은 판독하기 쉽다. 먼저 두가지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첫째로는 중국의 교섭방법은 독특한 면이 있으면서도 그토록 유니크하지 않다는 점이다.대중교섭에 나섰던 미국의 고위관리들은 중국의 교섭술에는 특징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키신저 전국무장관은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한다든가 「다른 공산국가가 즐겨 쓰는 잔꾀를 기피」하는 것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하지만 객관적으로 중국이 구사하는 회유책과 압력책은 다른 나라의 교섭에서도 보인다. 두번째로는 중국이 언제나 일관되게 목적과 계산에 따라 교섭을 진행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교섭의 통제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점이다.중국은 세밀한 계획을 세워 상대방을 조정하는데 초인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갈피를 못잡는 적도 있다. 중국은 교섭전부터 상대 국가의 유력한 특정 정치가와 개인적인 우호관계를 구축해 그 인물이 「중국의 우인」,「대중교섭시 절충이 뛰어나다」는 평판을 받도록 하고 그 뒤 정부간 교섭시 「우인」을 최대한 이용한다. 중국측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섭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 경우 그 「우인」에게 개인적 우호의단절과 양국관계악화를 시사하면서 죄의식을 느끼도록 하거나 라이벌끼리 경쟁하도록 한다.74년 11월 등소평이 키신저씨의 라이벌인 슐레진저 국방장관을 중국으로 불러들인 것등 유사한 사례가 많다. 반면 소련 중시의 밴스 전국무장관이나 친대만적인 레이 크라인 CIA간부등은 노골적으로 배제시키려 노력한다. 교섭을 시작하면서 상대가 반대하기 어려운 「원칙」을 제안해 합의토록 한 뒤 그 내용을 중국에 유리하게 해석해 「원칙위반」을 주장하면서 압력 재료로 사용하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교섭전술로서는 ▲교섭 초반에는 자국의 주장은 명백히 밝히지 않은 채 상대로 하여금 견해를 표명토록 한다.키신저,카터정권의 브라운 국방장관,밴스 국무장관등이 이런 책략에 빠졌다 ▲결정적인 교섭은 자국이 마련한 장소에서 실시해 시작 시간을 심야로 하는 등 상대방을 동요시키려 한다 ▲자국 진영에 선인과 악인의 역할을 나누어 상대를 혼란시킨다.78년부터 82년까지 대미교섭에서는 화국봉이 강경,등소평이 유연한 자세를 연출했다.
  • 아르헨군정때의 군경활동 찬양/메넴대통령 발언 파문

    ◎고문·납치 인권유린행위 묵인 태도/집권당 일부·야당·재야 비난 화살 카를로스 메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 악명높았던 군과 경찰의 활동을 두둔하는 발언을 해 말썽이 되고 있다. 평소 빈민층을 의식하지 않은 골프예찬론 등 신중치 못한 언행으로 언론과 지식층의 질타를 받아온 메넴 대통령은 지난주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군정시절 좌익게릴라 소탕에 참여했던 군과 경찰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아르헨티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당시 군·경과 게릴라단체 모두가 고문 등 인권유린 행위를 저질렀다』며 고문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같은 그의 발언이 언론에 보도되자 야당과 재야단체들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메넴 자신이 81년부터 참여해온 아르헨티나 인권옹호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메넴을 제명시키기로 했다고 발표했다.야당지도자인 에두아르도 앙헬로스 코르도바 주지사는 『민정수립과 더불어 이미 역사적 평가를 받은 사실에 대해 대통령이 새삼 치하 운운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난했다.심지어 집권당의 일부 의원들조차 매우 유감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일부 언론은 군정시절 고문을 당했다는 메넴 대통령의 주장과 관련,당시 그와 함께 투옥됐던 한 재야인사의 말을 빌어 「대통령은 고문을 당하거나 눈물을 흘린 사실이 없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이에대해 메넴 대통령은 명예훼손으로 해당 언론사를 사법당국에 고발해 버렸다.
  • 고도의 신용사회/박정호(굄돌)

    미국에서 첫 근무할때 겪은 어려움중의 하나는 내가 미국사회에서 신용이 없다는 점이었다.미국생활이 처음이다 보니 당연한 일이지만 크레디트카드가 없어 1백달러짜리 현찰을 내놓으면 점원이 두세번씩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내 얼굴을 쳐다본 기억이 난다.10∼20달러짜리 상품을 사고도 당연히 크레디트카드를 내는 그들의 생활습관으로서야 1백달러짜리 고객은 낯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크레디트카드를 내고 1년쯤 지나서부터는 크레디트카드를 발급해주겠다는 카드회사의 요청이 몇건씩 몰려와서 즐거운 고민도 해야했지만 미국은 확실히 고도의 신용사회라는 인상이었다. 반면 일본에서는 아직도 크레디트카드가 번성하지는 않은 편이며,소액은 역시 현금지불이 선호되고 있다.그러나 일본에서는 크레디트카드 보다도 더 귀중하게 취급되는 신용의 심볼­「고객의 얼굴」이 있다.단골술집에서 손님은 청구액을 보지도 않고 사인을 하고,주인은 바가지 씌우는 일 없이 월말 청구,결제하는 방식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조금 더 발전하면 사인조차 하지않고 손 한번 흔들고 술집을 나서면 그만이다. 어느 전임총리의 단골 술집에서는 그에게 다른 손님의 반값정도 밖에 술값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이유인즉 30년 이상의 단골손님이기 때문이라는 것. 남을 속이면 자신의 신용이 추락하고 이에따라 「나카마 하즈레」(동료에게 따돌림을 받음) 신세가 되면 지역사회에서 발붙일 터전이 없게 된다.일본인들은 이같이 지역사회에서 따돌림 받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으며 따라서 자신의 신용에 흠이 가는 언행은 가급적 절제를 하는 편이다. 미국이 컴퓨터에 의한 평가를 바탕으로한 신용사회라면 일본은 이웃이나 지역사회에 의한 평가가 더욱 중시되는 신용사회라는 인상이다.이제 우리도 전세계 조사대상국 1백67개국중 국가신용도 27위(유러머니지 94년3월 발표)를 보다 상위권으로 올려놓도록 힘을 기울여 나가야 하지 않을까.
  • 인간문화재 만정 이소희(이세기의 인물탐구:62)

    ◎맑고 구성진 목소리 “당대의 명창”/13세때 이화중선 소리에 매료… 송만갑 문화 입문/19세때 「춘향전 전집」 내고 72년 미 카네기홀 공연/“팔순기념무대 열어 사그라진 목소리 펼쳐 보이고파” 「천지 삼겨 사람이 나고,사람 삼겨 글만글저,뜻정자 이별별자 어이허여 내셨던고.뜻 정자를 내셨거든 이별 별자를 없었거나…’ 이는 「춘향가」중 「옥중장탄」이다. 「천지삼겨」는 정정렬 바디로 박녹주이후 만정 김소희만이 꿋꿋한 옛맛을 이어받고 있다. 널리 알려진대로 만정은 국악의 대가이자 우리가 세계에 자랑해 마지않는 인간문화재다. 만정을 둘러싼 찬사는 책한권을 꾸며도 넘칠 것이다. 이대교수이며 국악작곡가인 황병기는 그의 소리를 「가을밤 기러기소리」에 비유했고 음악평론가 서우석은 「낭랑하고 확실하게 뻗어나가는 절세의 명창」,소설가 박경수는 「민족의 한이 담긴 애원성의 절창」으로 표현하고 있다. 과연 만정은 그 음색이 맑고 차가우면서도 그 안에 이른 봄의 매화향기를 머금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더구나 그의 비절한 계면조는 억지 눈물을 강요하는 청승푸념과는 달리 안으로 한을 참아낸 고고한 유열이 깃들여있다. 이는 곧잘 강주 사마의 청삼을 눈물로 적신 「비파행」의 한구절에 비유되어 「옥반에다 크고 작은 구슬을 떨어뜨리듯」 「홀연 은병이 깨지며 물줄기 쏟아져내리듯」 애절한 사연이 굽이굽이 엮어지고 우조 또한 「철갑두른 기마병이 돌격하여 창칼을 부딪치듯」 웅장청원과 기염만장을 토해낸다. 1936년 일본 빅터레코드가 출반(서울음반 복각)한 「춘향전 전집」을 들어보면 열아홉살의 앳된 목이지만 또박또박한 발음이 청순하고 수줍은 느낌을 살려 그의 가락위에서 듣는 이의 흥취가 잦아들고 휘몰아친다. ○동·서편제 나눔은 무리 애원성의 진양조로 인해 만정은 서편제의 일인자로 손꼽히고 있지만 넉넉하면서도 화평한 평조와 경드름 설렁제를 두루 구사하여 어느 한 창제에 그를 못밖는 것은 무리가 아닐수 없다. 명인의 자질은 무엇보다 타고 난 소리와 홍진을 뛰어넘는 격조라면 이를 고루 갖춘 이가 아마도 만정일 것이다. 만정은 무대에서 관중을 압도하는 자태와 인물과 예인으로서의 조건에서 한치의 허점도 찾아볼 수 없다. 「노래를 하다보니 노래가 모두 시라 가사와 창을 올바로 알고 노래부르기 위해」 그는 등불을 돋워놓고 고전을 탐독하고 묵필을 가다듬어 묵정 그윽한 속에 노래의 진수를 아로새겨왔다. 여기에 가야금 거문고와 양금 살풀이춤이 뛰어나 그에게 가야금 가락을 닦아주던 김윤덕은 「만정은 창의 최고이지만 만약 가야금을 했다면 누구도 미치지 못할 명인이 되었을것」을 아쉬워했고 원로국악인 성경린은 「김소희의 춤은 소리보다 뛰어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의 판소리 더늠은 방정하고 단아하다.그리고 단순한 득음이 아닌 심득의 창성으로 관중을 사로잡아 지금까지 그가 공연한 판소리 무대는 흥청거리지 않은 것이 없었다. 공연이 있는 날은 자주 댕기들인 쪽진 머리에 옥비녀,옥색치마로 화사하게 단장하고 쥘부채 하나만으로 만마를 다스리고 천하를 호령한다. 수많은 공연중에서도 지난 84년 동아일보가 주최한 명인명창초대 공연은 그의 판소리의 위력이 얼마나대단한가를 한눈에 증명한 감동의 무대였다. 그날의 청중은 대학생에서 직장인,멀리 지방에서 올라온 촌로에 이르기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을 구름같이 메웠고 객석은 시종 박수와 추임새로 「국창」에 대한 예우를 지켰다. 만정 역시 칠순을 눈앞에 둔 나이와는 상관없이 정확한 발음에 적절한 극적표현 그리고 구성진 수리성과 질감이 풍부한 방울목으로 목을 굴려 공연이 진행되는 2시간을 정교하게 수놓아갔다. ○전 일본 순회공연 가져 특히 「춘향가」중 「오리정 이별」대목은 자진모리 장단을 엇박으로 바꾸면서 원박으로 되돌아가 중모리로 마무리짓는 상성의 극치를 보였다. 이 대목에 이르면 아무리 「소리는 타고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의 소리목에 깃든 공력앞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런 공연은 그의 전성기인 60∼70년대에 미 카네기홀과 링컨센터에서의 기립박수를 꼽을수 있다. 또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초청한 전일본 순회 공연도 한국 국창의 긍지를 마음껏 과시한 역사적 무대의 하나다. 만정은 평소 겸허하고 따사로우나저속하고 부당한 천격을 용납하지 않는다.후학들이 실수로라도 경박한 언행을 저지르면 그 자리에서 엄히 나무라고 자세를 바로잡아준다.그러나 사소한 일에 연연하거나 사적인 인맥으로 사람을 평가하기보다 상대방이 지닌 기량과 미점을 적소에 둘줄 안다. 예를들어 국악계는 계보에 엄격한 편이지만 그는 자신이 키운 성창순을 정권진에게 보내 강산제를 이어받게 했고 신영희를 박초월에게 소개하는등 그 스승의 좋은 대목을 제대로 배울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2년전 동숭아트홀에서 외동딸인 박윤초가 판소리 독창을 열었을때는 딸에게 『너 비위도 좋다.그 소리를 가지고 어떻게 노래하느냐』고 나무라면서도 막상 공연날은 무대에 나와 『아직 미거하나 후진을 키운다는 뜻에서 격려해달라』고 부탁하기를 잊지 않았다.후계자 자리를 딸에게 물려주게 되느냐는 문제도 『제가 잘하면 물려줄 것이요 잘못하면 어쩔수 없다』고 냉정한 면을 지킨다. 만정은 이제 국악계의 어른으로서 국악이 발전되어지는 과정을 그 한가운데서 지켜보는 위치다.지난해 신병으로 협회이사장 자리를 물러나면서 『원래 이사장 자리라는 것은 국악실력보다는 단체를 잘 이끌고 운영할수 있는 실무자가 바람직하다』는 이유로 이성림을 추천했고 이사장 선출로 야기될 마찰을 미연에 방지하는 결단을 보였다. 만정의 어린시절은 모든 「끼」있는 예인의 삶이 그러하듯 모진 가난과 슬픔의 기록이 점철된다. 판소리의 태두인 동리 신재효를 배출한 고창 흥덕에서 출생,부모의 불화로 부친은 타관으로 떠돌고 모친마저 친정으로 가버리자 친척집에 얹혀서 고아처럼 자라났다. ○「천에 하나」 어려운 천재 광주여고보에 들어간 13살 되던해 당대 명창이던 이화중선의 공연을 보고 장래 「소리하는 사람」이 될것을 결심했고 동편제 소리의 대가인 송만갑문하에 입문한지 1년만에 남원명창대회에서 1등,송만갑은 미려청아한 소리를 지닌 어린 소녀를 향해 「천에 하나 나오기 어려운 천재」임을 인정하여 수업료도 받지않고 그의 모든 것을 전수시켰다. 이어서 정정렬에게 「춘향가」를 비롯,화순의 박동실에게 「수궁가」「적벽가」,김계문에게 향제가곡을 사사하고 이승환에게 거문고,강태홍 김윤덕에게 가야금등 금과옥조와도 같은 스승들을 거치면서 국악의 가시밭 길을 무난하게 헤쳐나갔다. 21살에 결혼하여 10년만에 부군을 잃고 3남매를 혼자서 키우면서 속창 속악의 천시속에서 서너명을 앉혀놓고 공연을 한적도 있고 조선창극단 시절에는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내용때문에 왜경에게 붙잡혀 유치장 신세를 진적도 있다. ○소희이름 이모가 지어 조선성악연구회에 드나들던 소녀시절 본명 김순옥을 버리고 이모인 김남수씨가 지어준 「소희」란 이름을 가졌다.아호 「만정」은 「날이 갈수록 잔잔히 이름을 날리라」는 뜻으로 사주를 보는 이가 지어준 것이다. 만정은 지난 25년간 살았던 종로구 화동 골목안의 한옥을 떠나 84년 삼청동 쪽에 위치한 소격동으로 이사하면서 비로소 연탄불갈기에서 벗어났다. 지금도 결혼하지 않은 아들(준석·46·상업)과 둘이 살면서 손님이 오면 손수 문을 따주고 제자를 가르치고 밥짓고 빨래한다. 그만큼 그의 생활은 궁핍이 펼날이 없이 조금이라도 여유가생기면 가난한 제자들을 데려다 가르쳤다.지금은 국악계의 중진이 된 김소연 안향련이 그들이고 영화 「서편제」로 스타가 된 오정해는 8년간 이집에 머물면서 그가 세운 서울국악예고를 나왔다. 찬연한 오늘은 참담한 어제가 있었기에 얻어진 결과일 것이다. 지난 1,2년 병치레로 쇠잔해졌을 망정 그에게선 여전히 「닦은 자의 비어있는듯 차있는(수자 여하이유실)」예술불멸만이 돋보인다. 그리고 모진 시간속에서도 국창의 기개를 잃지않아 『만약 그때까지 살수 있다면 팔순 기념무대에 서서 사그라지면 사그라진대로 나의 목을 숨김없이 펼쳐보이고 싶다』고도 말한다. 한 시대를 주름잡던 화려한 흔적을 감추고 이제 역사의 뒤안길에 서려는 예인의 모습에는 자신을 끝없이 탁마하며 살아온 정제된 아름다움만이 하나의 구둣점처럼 선명하게 찍혀있다. □연보 ▲1917년 전북 고창 출생,본명 김순옥 ▲1930년 흥덕공립보통학교 졸업 ▲1932년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2년 수료 ▲1929∼34년 송만갑에게 「심청가」「흥보가」사사 ▲1936년 일본 빅터 오케이레코드 전속,「춘향전전집」취입 ▲1948년 여성국악동우회 설립 ▲1954년 민속예술학원(서울국악예고 전신)설립 ▲1959년 국악30년 김소희 판소리첫번째 독창회(서울 원각사) ▲1962년 한국국악협회 이사장,파리국제민속예술제 참가이후 해마다 세계 각국순회 공연,신호열씨에게 서예사사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제5호 판소리 기능보유자),뉴욕 아시아학회 초청 미국공연 ▲1967년부터 국전서예부 연3회입선 ▲1969년 일본 요미우리신문주최 요미우리홀 공연,전일본지역 순회 ▲1972년 미국카네기홀서 김소희 판소리독창회,뮌헨올림픽 참가공연 ▲1973년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심청가전집」(5장)출반 ▲1977년 불우이웃을 위한 회갑공연(서울시민회관)「춘향전」완창 출반 ▲1979년 김소희 국악50년 기념공연(세종문회회관),고향 흥덕에「만정 김소희여사 국창기념비」건립 ▲1982년 제1회 한국국악대상 수상,첫민요 발표회(공간사랑),민요전집 출반(성음사),이대 한양대 출강 ▲1984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동아일보주최 「명창 김소희 판소리의 밤 대공연」(세종문화회관 대강당) ▲1988년 서울 올림픽폐막식 공연,「김소희 구음과 민요」출반(성음사) ▲1993년 국악협회 이사장,94「국악의 해」지정기념 국악제 총지휘 ▲1994년 제1회 방일영국악상 및 11월28일 수상기념공연
  • 이붕총리 방한이 남긴것(사설)

    이붕중국총리가 4박5일간의 한국방문을 마치고 4일 돌아갔다.우리는 이총리의 한국방문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외교적 성과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중국은 역시 중국이라는 엄연한 국제현실을 되씹는 계기도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이총리는 4일 제주에서 가진 이한회견에서도 『중국은 국가간 관계에서 이데올로기를 기준으로 삼지않으며 북한과도 한국과도 좋은 관계를 가질수 있음』을 분명히했다. 중국은 이총리의 방한중에도 의도적이었는지 아닌진 몰라도 대한반도정책과 관련해 우리측의 심기를 건드리는 언행을 예사롭게 했다.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문제 같은 예민한 부분에 대해서도 북한편에 서는 서슴없는 언행을 했다.이총리는 이한회견에서도 한걸음 후퇴는 했지만 남한에 대해서는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주문하고 북한에는 남북 당사자원칙에 입각한 문제의 해결을 주문했다. 이러한 중국의 외교행태는 북한의 김정일체제 등장,북·미간 핵타결에 따른 국제환경변화 이후의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확인시켜주는 계기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중국은 두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쫓는 이른바 정경분리외교원칙을 철저히 고수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외교현실은 그동안 우리가 「북방외교」라는 정치적 목적에서 지나치게 아전인수식 대중국외교를 펴오지 않았느냐는 반성을 남긴다.다시 말하면 한국과 중국간의 경제교류가 확대되면 자연스럽게 중국은 남북문제에서 우리편에 서주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경솔한 것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따라서 앞으로의 한·중 경제관계는 「북방외교」의 차원보다는 철저한 경제원칙과 논리에 따라 전개해야 함을 가르쳐주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대통령이 두번씩이나 중국을 공식방문했음에도 중국은 왜 국가원수가 아닌 총리방한에 그치고 있느냐 하는 점에서부터 철저한 정경분리외교에까지 섭섭함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총리의 이번 방한이 남긴 성과도 물론 소홀히 평가돼서는 안될 것이다. 중국이 북·미합의서의 이행을 지지한 대목이나 평화체제 확립문제에 대해서도 북·미간의 평화협정이 아닌 남북 간의 합의를 강조하는 등 당사자 원칙을 강조함으로써 남북대화 재개를 촉구한 점등은 의미가 크다.또 지난3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양국간 산업협력방안을 구체화했고 이번 양국이 체결한 원자력협력협정같은 것은 결코작은 소득이아니다. 아무튼 한반도 안보·통일및 우리 경제 활로 개척 차원에서 지극히 중요한 대중국 외교는 계속 강화해 나가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이총리의 이번 방한은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몽당붓에 다시 먹을 적시며(박갑천칼럼)

    비거서남풍이라는 말이 있다.어느 샌지 모르게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음을 뜻하면서 쓰인다.서남풍은 토박이말로는 늦하늬(바람)또는 늦마라고 한다.뱃사람들만 썼던 것이 아니다.농사 짓는 사람도 쓴 말인데 이제 잊어들 간다.이익의 「성호사설」에 「완한의」(완한의:완은 늦,한의는 한의→하늬)또는 「완마」(완마:완은 늦,마는 마)라 한다고 써놓고 있는 걸 보면 그때도 이 배달말은 쓰였던 것임을 알겠다.달리 또 서늘바람(양풍)이라고도 한다. 이 칼럼이 지난 여름의 어느 더운날 『필자 사정에 의해 당분간 쉰다』는 보일락말락한 「알림」과 함께 늦하늬바람 꼴로 사라져 버렸다.무슨 「사정」이냐는 물음을 지금도 더러 받는다.이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하면서 야불답백이라는 옛사람의 말을 그 대답에 갈음해 드리고자 한다. 어두운 밤에 하얗게 보이는 것은 물이니 밟지 말라는 가르침이었다.그렇건만 흰흙이지 설마 물이랴 싶은 경홀함으로 밟아 버렸던 것이라고나 할까.오만한 자기과신(과신)이 「필자사정」을 만들었다고 해야 할 일이다.그러고서 서늘바람 부는 계절에 이번에는 비래서남풍식으로 되돌아왔다. 저 일두 정여창은 어느날 홀연히 늦하늬 같이 사라진다.그는 지리산으로 들어가 3년동안 오경과 함께 성리학을 연구한 끝에 다시 늦하늬 같이 돌아온다.지절 높은 생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추강 남효온은 돌아가는 정치판에 대한 울분을 이기지 못하여 늦하늬 같이 사라진다.그는 무악산에 올라 목이 터져라 통곡하고서 되돌아온다.안정 신영희의 「사우언행록」에 적혀 내려오는 얘기이다. 오늘에 늦하늬 같이 사라졌던 평범한 시정인은 온축을 위한 것도 그렇다고 무슨 지절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꼼짝 못한채 엎드려 있어야만 했던 40년 직장생활에 눌린 기나 펴본답시고 태평하게 싸돌아다닌 것이 고작이었다.국내로 국외로.그러고서 돈 떨어지고 망건 해진 난봉꾼 탕아가 본가로 돌아오듯 옛자리로 들어선다.조강지처는 역시 따뜻하다.강짜없이 감싸 주는 것이 아닌가. 몇달 쉰 때문일까.잿길 오르던 목탄버스 고장났다가 엔진 시동 다시 거는듯한 얼떨떨함이 있다.경계해야 할 일은 요동시의 어리석음이다.정신을 가다듬어 독자와 함께 세상일을 생각해보는 난으로 엮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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