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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지연의 내가갔다, 하와이] 야생동물 학대 SNS에 자랑?…주민들 분노

    [임지연의 내가갔다, 하와이] 야생동물 학대 SNS에 자랑?…주민들 분노

    목이 잘린 오리 사체 3구가 미국 하와이주 하와이카이의 도로 한복판에서 발견됐다. 잔인하게 훼손된 오리 사체는 머리 부분만 잔인하게 잘려 나간 채 도로를 오가는 사람들이 발견할 쉬운 자리에 방치돼 있었다. 죽은 채 발견된 오리는 이른바 ‘콜로아’로 불리는 하와이 토종 오리다. 주로 하와이카이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의 동물로 학대, 사냥, 생포 등의 행위가 모두 현지법에 저촉되는 행위다. 또, 미국 연방정부 관리동물 리스트에도 올라 있는데, 이를 어기면 연방법에 따라 최대 5만 달러의 벌금과 징역 1년 이하에 처할 수 있다.주민들은 이런 동물 학대 행각에 크게 동요하는 분위기다. 조용했던 마을에 최근 들어 방문객들의 수가 급증하면서 멸종위기 동물에 대한 학대 행각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제기되는 분위기다. 지난 10, 11일 단 2일 동안 하와이주를 방문한 외부 관광객의 수는 무려 1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자에 대한 격리 및 PCR 검사를 면제하는 정책이 시행되면서 하와이를 찾는 방문객의 수가 많이 늘어난 양상이다. 하지만 방문객 급증으로 인해 예기치 못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얼마 전부터 하와이 현지 SNS에서 큰 논란이 된 관광객들에 의한 야생동물 학생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달 초 하와이의 녹색 바다거북과 바다표범 등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을 학대하는 관광객들의 영성이 현지 SNS를 뜨겁게 달궜다.백인 남성 관광객은 물속에서 유영 중인 바다거북에게 접근해 물 밖으로 끌어내려고 시도한 뒤 괴로워하는 바다거북의 모습을 촬영해 온라인상에 공유했다. 또, 한 백인 여성 관광객은 하와이 백사장에 있는 바다표범에 접근해 학대를 시도했으나, 놀라서 몸서리치는 바다표범의 모습을 영상에 담고 박장대소를 하는 등의 모습을 SNS에 게재했다.뿐만 아니라 자신을 하와이 관광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백인 남성은 빅아일랜드의 카마하메하 왕의 동상 위에 올라 기념사진 촬영을 하는 모습을 담아 온라인상에 공유하며 자신을 ‘승리자’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조시 그린 하와이 부지사는 하와이의 알로하 문화와 정신을 훼손하는 외부 관광객들의 불법적인 행위가 걷잡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그는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많은 수의 관광객을 감당하기 어렵게 됐다”면서 “그 누구라도 하와이의 전통문화와 하와이 주민들이 가진 야생 동물을 소중히 하는 정신을 무례하게 훼손할 권리가 없다”고 덧붙였다. 하와이 주정부는 이런 사건이 반복될 경우 이른바 ‘포노(Pono) 서약서’로 불리는 문서에 서명한 이들만 하와이 방문이 가능토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포노’는 하와이 현지 전통언어로 정의로운 행위를 뜻한다. 하와이 방문객이라면 누구나 항공기 착륙 전과 렌터카 사용 시, 호텔 입실 등 총 3차례에 걸쳐 ‘포노 서약서’에 서명토록 요구받을 수 있게 된 셈이다.해당 서약서에는 ‘하와이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야생동물에 대해 먼 곳에서만 감상할 것’, ‘사진 촬영을 목적으로 하는 진입 금지 구역에 대한 무단 침입과 안전을 무릅쓴 모험을 강행하지 않을 것’, ‘내 것이 아닌 것은 훼손하지 않을 것이며 자연 상태 그대로를 존중할 것’, ‘하와이의 알로하 정신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포용 정신을 존중할 것’ 등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하와이 주정부의 움직임이 공개되자 현지 주민들은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하와이주 호놀룰루시 마키키에서 건축업에 종사 중인 주민 테일러 씨는 “더 이른 시일 안에 이런 서약서 제출 의무가 도입되지 않은 점이 안타까울 뿐”이라면서 “아주 오랫동안 매우 필수적으로 필요했던 사안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하와이를 방문하는 외부인들은 하와이에 사는 사람과 동물 모두가 그들을 향해 보내는 포용적인 태도를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기분 좋아”…마비 환자, ‘뇌 임플란트’로 대화능력 회복

    “기분 좋아”…마비 환자, ‘뇌 임플란트’로 대화능력 회복

    뇌졸중으로 말하는 능력을 잃은지 15년 이상 지난 남성에게 ‘뇌 임플란트’를 이식해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캠퍼스(UCSF) 연구진에 따르면 ‘신경보정술’(neuroprosthesis)이라고도 불리는 뇌 임플란트 기술은 현재 단 한 명의 환자에게만 적용됐지만 앞으로 다른 마비 환자들이 의사소통하는데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연구를 주도한 UCSF 신경외과 전문의인 에드워드 장 박사는 성명에서 “우리가 아는 한 이번 성과는 마비로 말할 수 없게 된 사람의 뇌 활동에서 완전한 단어를 직접 해독하는 데 성공한 첫 번째 사례”이라면서 “뇌의 자연스러운 언어능력 체계를 이용해 의사소통 능력을 회복하는 매우 유망한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뇌졸중으로 마비 증상이 생겨 20세의 젊은 나이부터 말할 수 없게 된 남성 환자의 언어 능력을 관장하는 뇌 부위에 다수의 전극을 부착했다. UCSF는 성명을 통해 “남성은 뇌졸중 후유장애로 머리와 목 그리고 팔다리의 움직임이 극도로 제한돼 있지만, 야구 모자에 부착한 포인터로 컴퓨터 화면의 글자를 누르는 방식으로 소통해 왔다”면서 “인지 기능은 손상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컴퓨터 알고리즘을 이용해 현재 30대 후반인 이 남성 뇌의 전기적 활동을 번역하는 동안 이 남성에게 제한된 어휘를 사용하도록 요청했다. 연구진이 기록한 영상에는 남성 앞에 컴퓨터 화면이 배치돼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연구원이 이 화면을 통해 “좋은 아침”(Good morning)이라고 아침 인사를 건네자 몇 초 뒤 화면에는 남성이 “안녕”(Hello)이라고 생각한 것이 문자로 입력됐다. 연구원이 또 “오늘 기분 어때?”(How are you today?)고 질문하자 남성은 잠시 머뭇거리며 “매우 좋다”(I am very good)고 답했다.이에 대해 연구진은 “우리는 이 참가자의 피질 활동에서 나온 문장을 분당 중간값 15.2개 단어로 실시간 해독하며 단어 오류 비율은 중간값으로 25.6%”이라고 설명했다. 이 장치는 결국 익명을 요구한 환자가 “네”, “아니오”, “가족”, “청소”, “간호사” 등의 단어를 포함한 50개의 단어 어휘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줬다. 이는 “아니오, 난 목마르지 않아요”와 같은 완전한 문장으로 확장됐다. 다만 이번 실험에 쓰인 전극은 영구적인 고정 장치가 아니다. 전극은 아직 실험 과정에 있어 두개골의 내부가 아닌 위쪽에 부착한 것으로 연속해서 사용할 수 없는 커다란 장치다. 연구 공동저자인 데이비드 모지스 박사는 “이는 자연적으로 의사 소통을 할 수 없는 사람에게 중요한 기술적 이정표이며 심각한 마비나 언어 장애를 지닌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장 박사도 “이 연구는 시작에 불과하다. 환자는 이 연구에 참여한 최초의 참가자”라면서 “이번 연구에서 처음으로 실험을 통해 뇌 임플란트로 언어 능력을 회복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이어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더 많은 정보를 더 빠르게 기록할 수 있는 데이터 해상도를 갖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알고리즘 측면에서는 뇌에서 나오는 매우 복잡한 신호를 문자가 아니라 실제로 구두로 들을 수 있는 음성 단어로 번역할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 14일자에 실렸다. 사진=UCSF
  • 현대모비스 “소프트웨어 전문 회사로”… 연구개발 역량 강화

    현대모비스 “소프트웨어 전문 회사로”… 연구개발 역량 강화

    현대모비스는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회사의 미래를 결정짓는다는 판단 아래 소프트웨어 전문 회사로의 도약을 선언하고 체질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소프트웨어 직군에 대해 전사 통합 채용을 실시할 뿐만 아니라 산학연계를 통한 선발도 진행한다. 연구원들의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 강화를 위해 총 4단계의 소프트웨어 인증제도를 도입했다. 지난해부터는 비대면에 특화된 소프트웨어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고, 프로그래밍 언어·인공지능·빅데이터에 특화된 50여가지 전문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연구원들이 개발 능력을 뽐낼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경진대회’도 개최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정해진 시간 안에 총 네 가지 컴퓨터 언어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코딩 기술을 활용해 과제를 해결하며 실력을 겨룬다. 한편 현대모비스는 올해 3월 국내 13개 전문 개발사들과 차량용 소프트웨어 국산화 개발을 위한 협력 생태계를 구축했다.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해 현대모비스가 시스템 플랫폼을 제공하면 협력사들이 그 위에 각자 보유한 소프트웨어 기술을 추가해 기술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협력 분야는 자율주행(인식 알고리즘, AI 컴퓨팅), 인포테인먼트(웹 클라우드 서비스, 탑승자별 인식솔루션, 그래픽 솔루션), 플랫폼 표준화 등이다.
  • [금요칼럼] 코로나 시대, 어디선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김보라미 법률사무소 디케 변호사

    [금요칼럼] 코로나 시대, 어디선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김보라미 법률사무소 디케 변호사

    지난 주말 경기도에서 음식점을 하는 친구네 가게를 도와주자며 밥을 먹으러 갔다. 코로나 이후 매상이 줄어 홀에 사람조차 쓸 수 없게 됐다는 말은 들었는데 막상 가 보니 힘들게 일하고 있었다. 밥을 사 먹으면서도 왠지 모를 미안함과, 이제 4단계가 되면 어떻게 이 시기를 잘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 들었다. 일상이 극도로 축소되면서 본래 힘든 영역의 삶은 더 물질적·정신적 결핍을 경험해야만 했다. 통계청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상위 20%에 해당하는 5분위 순자산을 하위 20%에 해당하는 1분위 순자산으로 나눈 값인 순자산 5분위 배율도, 2019년 125.6에서 2020년 166.64배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빈부격차가 극심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예전부터 사회의 각 영역에서 참여의 기회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던 취약계층은,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한 해 코로나 관련 10여건의 긴급성명을, 이례적으로 최영애 위원장 명의로 발표한 바 있다. 모두 소외계층을 돌아보지 못해 발생한 참담한 결과에 대한 것들이었다. 외국인 혐오를 통한 재난대처(2월 5일자 성명), 농인에 대한 코로나 정보접근권과 언어접근권 보장을 방해하는 중요 방송 제작(2월 28일자 성명), 의료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은 폐쇄병동과 장애인 시설에 대한 코호트 격리에 따른 집단감염(3월 3일자 성명), 코로나 해결에 있어서 국적에 따라 차별하는 정책(3월 10일자 성명), 동선 발표에서 사생활 침해를 고려하지 않아 드러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확산(5월 14일자 성명) 등에 대해 긴급하게 성명으로 호소해야만 했다. 코로나가 아니었더라도 드러날 모습이었겠지만, 국가 재난시기에 취약계층에 대한 위험은 더 커지고 깊어졌다. 안정적이고 충분한 수입을 얻지 못하던 사람들은 심각한 생계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소득감소로 노동자들은 이전보다 더욱 열악한 노동으로 내몰리고 있으며, 체감되는 실업률은 심각한 수준이다. 올해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표한 고용보조지표를 따르더라도 청년층의 체감실업률은 약 27%로 집계되기도 했는데 이 수치는 관련 지표 제공이 시작된 201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역시 허술하다. 최근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사건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서울대조차도 노동자의 안전, 업무와 무관한 요구를 해 와 학내 노동자 업무 강도와 근무환경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다. 코로나 시기 급격히 증가한 플랫폼 노동자들에 대한 전통적인 노동권 보장 역시 충분하지 못하다. 또한 지난 한 해 산업재해사고로 숨진 노동자 역시 전년 대비 증가해 882명으로 집계된 바 있고, 주된 원인이 추락과 부딪힘으로 나타나 그 고통을 감히 말하기도 두려운 수준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장 높은 수준인 4단계가 선언된 지금, 우리는 이미 구멍이 난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사람들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정책적 조치를 다해야 한다. 누구든지 가장 어려운 위치까지 내몰려 예상할 수 없는 절망을 경험할 수 있는 시기이다. 한계가 드러난 우리 사회의 안전망을 조여 위험부담 및 불평등을 개인에게 전가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금까지 시민들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이뤄낸 방역의 성과가 다시 시민의 이익으로 돌아가야 하며, 현장에서의 고통을 정확히 이해해 해결을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문제의 해결은 쉽지 않을 것이나, 전염병이 발발한 지 1년이 지났음에도 지금까지 체계적인 대책 대신 여러 정책이 정파적으로 이용되는 점은 갑갑하다. 어디선가 숨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체념하지 않고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 빠른 시일 내에 필요한 조치들이 제안돼야 한다.
  • “유흥업소 백신 우선 접종, ‘제주원정 유흥’ 더 부추길 것”

    “유흥업소 백신 우선 접종, ‘제주원정 유흥’ 더 부추길 것”

    제주도가 이달 말부터 시행하는 백신 자율접종 대상자를 선정하면서 유흥업소 종사자를 1순위 대상자에 포함시키자 제주도의회에서 ‘원정 유흥’을 부추길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15일 열린 제주도의회 보건복지안전위원회에서는 백신 자율접종과 관련한 ‘유흥업소 종사자 1순위’ 검토에 대한 도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홍명환 의원은 “도민들은 고통을 감내하면서 방역수칙을 지키고 있는데, 유흥주점 가서 술 마시는 사람을 우선해서 보호해 주는 것이 맞느냐”고 질타했다.홍 의원은 “유흥업소 종사자를 우선 접종하면 도민들이 방역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겠느냐. 도민들을 납득할 수 있는 기준과 선택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고은실 의원은 “우선접종 대상자는 유흥업소 종사자가 아닌 방역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이 돼야 한다. 장애 아동들이나 심리지원 받는 대상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언어치료실이나 심리치료실 종사자들이 빠졌는데, 사실 이들이 가장 취약지점에 있다. 우선 접종 대상자에 포함될 수 있도록 고려해달라”고 당부했다. 김경학 의원은 “최근 제주지역 유흥업소에 수도권 등 거리두기가 강화된 지역 사람들이 내려와서 종사하고 있고, 그 수가 수백명에 달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다”며 “이들에게 먼저 백신을 접종한들 집합금지 명령이 내려지면 제주를 떠날 사람들이다”라고 지적했다. 양영식 위원장은 “유흥업소 종사자 우선접종은 ‘원정 유흥’을 더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임태봉 제주도 보건복지여성국장은 “제주지역 확진자 1400여명을 데이터화해서 이들이 주로 방문한 곳과 동선 등을 파악했더니 일정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었다”며 “똑 같은 1명을 접종하더라도 도민사회 ‘n차 감염’을 줄일 수 있는 부분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답변했다. 한편 도는 이달들어 유흥업소발 코로나 19 확진자거 속출하자 백신 자율접종 1순위 대상에 공·항만 근무자, 학원강사 등과 함께 유흥시설 종사자를 포함시켰다.
  • 웬 고양이? 웬 전투기? 엘리트 미술에 한 방, 인간 욕망에 한 방

    웬 고양이? 웬 전투기? 엘리트 미술에 한 방, 인간 욕망에 한 방

    미술관에 난데없이 고양이 떼가 나타났다. 미술품이 놓여 있어야 할 좌대를 고양이 다섯 마리가 하나씩 차지한 채 느긋하게 누워 있다. 길이 10m, 높이 6m가 넘는 전투기도 갤러리 한복판에 자리잡았다. 고양이나 전투기나 통상 미술 전시장과는 거리가 먼 조합. 지금 서울 마곡동 코오롱 미술관 스페이스K 서울과 삼청동 갤러리 바라캇컨템포러리에 가면 이런 낯설면서도 흥미로운 광경을 만날 수 있다. 전시 주인공은 라이언 갠더와 피오나 배너.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영국의 개념 미술가들이다. 스페이스K 서울에서 개인전 ‘변화율’을 선보이는 갠더는 일상적인 사물에서 발상과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 내는 작업을 펼쳐 왔다. 같은 사물이라도 어떤 환경과 맥락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스토리텔링에 능하다. 감쪽같은 외양은 물론 심장박동까지 재현한 기계 고양이들을 전시장에 데려온 저의(?)는 작품 제목에 담겨 있다. ‘고양이 스모키가 조각가 조너선 몽크의 <풀 죽은 조각2(2009)>를 만났을 때’처럼 고양이들이 점령한 좌대가 유명 조각가의 작품이 놓였던 좌대라는 점을 일러 줌으로써 일상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세상’인 엘리트 미술에 유쾌한 한 방을 날린다. 갤러리 벽의 구멍에 20파운드짜리 지폐를 구겨 넣은 ‘난 뉴욕에 다시 가지 않을 거야’에서도 미술계의 속물주의에 대한 비판을 엿볼 수 있다.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는 시간성이다. 변화는 시간을 전제로 한다. 보이지 않는 비물질적 요소인 변화와 시간의 개념을 눈 쌓인 의자, 쥐가 갉아먹어 구멍이 뚫린 벽, 과거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 등 다채로운 형태의 작품으로 보여 준다. 작가는 전시장 곳곳에 숨은 그림 찾기처럼 여러 단서들을 감춰 뒀다. 만원권 지폐에 영어 문구를 적은 ‘기록하기엔 너무 모호한 아이디어’, 순은으로 제작한 담배꽁초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같은 작품은 의외의 장소에 놓여 있어 관람객에게 ‘발견의 재미’를 선사한다. 9월 17일까지. 피오나 배너는 바라캇컨템포러리에서 아시아 첫 개인전 ‘프라나야마 타이푼’을 열고 있다. 1990년 중반부터 할리우드 전쟁영화, 포르노 등 특정한 시각 이미지가 전달하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폭력 등 양가적 감정을 드로잉, 조각, 설치,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탐구해 왔다. 1층 전시장 절반을 차지한 거대한 전투기 설치물 ‘팔콘’은 실제로 전투에서 사용하는 눈속임용 전투기다. 고무 재질로 만든 풍선 모형에 공기를 불어 넣어서 적에게 공포감을 주기 위한 미끼 전투기로 활용한다. 공기를 주입하고 뺄 때마다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몸을 부풀렸다가 움츠러드는 전투기의 모습이 권력과 힘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이 전투기는 영상 ‘프라나야마 오르간’에도 등장한다. 전투기 의상을 입은 두 사람이 황량한 바닷가에서 우스꽝스런 몸짓으로 펼치는 제의적인 퍼포먼스는 실제 전투기 모형과 조응하며 성찰을 이끌어 낸다.전시 제목은 고대 인도의 전통 호흡법인 ‘프라나야마’와 자연 재앙인 ‘타이푼’(태풍)을 합성한 것이다. 코로나19로 영국 전역이 봉쇄된 상태에서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작가가 느꼈던 자연의 힘과 인간의 호흡 사이의 충돌을 암시한다. 배너가 작업의 핵심으로 삼고 있는 언어, 출판물과 관련한 작품들도 전시됐다. 여러 서체의 마침표를 고전 회화와 결합한 ‘마침표’ 시리즈, 자동차 백미러에 도서 등록 정보 ISBN을 새긴 거울 조각 출판물 등이 눈길을 끈다. 8월 15일까지.
  • 제자와 茶맹세 아직도 그윽… 민초의 한 머금은 길따라 뚜벅뚜벅

    제자와 茶맹세 아직도 그윽… 민초의 한 머금은 길따라 뚜벅뚜벅

    올봄 영화 ‘자산어보’가 개봉하면서, 손암 정약전과 다산 정약용 형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극중 ‘강진 선생’으로 불리는 다산(류승룡 분)의 학자적, 철학자적 모습이 관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당대 세상을 호령하던 고관대작(형조참의) 자리에 있다가, 머나먼 전남 강진 땅에 유배를 와 묵묵히 학문 연구에 몰두하는 정약용의 인품은 주인공 정약전(설경구 분)의 극중 비중에 견주어도 결코 모자람이 없었다. 대선을 앞둔 최근엔 소설 ‘대통령 정약용’이 눈길을 끌고 있다. 타임슬립을 통해 현대로 온 다산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간다는 유쾌한 상상을 담았다. 대통령 다산이 추진한다는 ‘실학21’의 바탕이 된 1표2서(‘목민심서’·‘흠흠신서’·‘경세유표’)를 저술한 땅, 강진을 다시 돌아보니 그동안 보고 알았던 것보다 많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역사상 한반도 최고의 천재로 꼽히는 다산은 그야말로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였다. 그는 유학자이면서 실학을 주도적으로 연구했으며 행정가이자 정치가, 그리고 법학과 법의학을 두루 전공한 법률가였다. 또한 의학과 지리학, 건축학에 통달한 과학자요, 발명가였다. 게다가 언어학자, 아동 교육자, 걸출한 시인에다 차 전문가, 동서양사를 넘나드는 역사 철학 이론가이기도 했다. 18세기 말 조선은 만사‘다’통이었다. 다산을 거치면 안 될 게 없었다.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의 다빈치처럼. 아, 공교롭게도 다산과 다빈치, 둘 다 이름 첫 자에 ‘다’자가 들어간다. 마침 다빈치도 유배는 아니지만 1516년 고향을 떠나 프랑스 루아르 강가의 앙부아즈 궁에서 살며 ‘모나리자’ 등 역작을 남겼다. 그런 다산이 강진에 내려왔다. 조용한 강진에 유배를 오는 바람에 그의 눈부신 업적이 꽃을 피웠다고 하는 것도 맞겠다. 18년 동안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수많은 저서와 서간, 일화, 대한민국 차문화가 탄생했다. 당시 조선의 유형(流刑)은 명나라의 대명률을 따랐다. 죄의 경중에 맞춰 2000리, 2500리, 3000리 등으로 올려가며 유배를 보내는 거다. 1리가 400m쯤이니 1000리면 한양에서 직선거리로 전남 완도까지도 갈 수 있다. 조선에선 이런 거리가 나올 수 없는 터라 일부러 여러 지역을 거치며 행로를 늘렸다. 세종이 ‘실정에 맞게’ 600, 750, 900리로 조정하기 전까지 1년 가까이 돌고도는 유배길을 떠났다. 유배는 많은 것을 남겼다. 깡시골인 유배지로 한양의 높은 지식과 문화 산업이 수혈됐다. 당쟁이 치열했던 조선 때 이름난 관직자는 대부분 유배를 다녀왔을 만큼 유배는 ‘일상’이었다. 정조는 창덕궁 부용정에 인공 섬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신하들과 시 짓기 내기를 하다가 ‘잠시 쉬는’ 벌칙으로 인공 섬에 유형을 보내기도 했다. 블루마블 게임에서 ‘무인도’ 같은 의미다. 그만큼 유형은 고급 관리를 대상으로 했다는 뜻이다. 시에 능한 다산이 ‘인공 섬’에 유배를 갔는지 알 수는 없지만 다산을 친애하던 정조가 승하한 후, 정말 강진 땅으로 기나긴 유형을 떠나게 됐다. 그나마 강진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축에 속했다. 예나 지금이나 유형을 가기도, 여행하기도 딱 적당한 거리다. 프로야구의 옛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는 2군 구장을 강진에 뒀는데 당시 1군 선수가 2군에 내려가면 “유배간다”고 자조했다. 당시 몇몇 선수들은 강진에서 2군 생활을 경험하며 다산의 후예가 됐다.다산이 처음 도착한 곳이 강진읍의 사의재다. 다산의 인품을 알아본 주막 동문매반가(東門賣飯家) 주모의 호의로 여기서 4년간 생활했다. 다산은 이 주막에 사의재(四宜齋)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생각과 외모, 말, 움직임을 네(四) 가지 덕목으로 삼아 마땅히(宜) 바로잡는 집이란 뜻이다. 다산의 일기에 따르면 1803년 겨울의 일이다. 초가 주막이던 본래 사의재 건물은 사라졌지만 2007년 강진군청은 이를 복원해 한옥체험 숙소, 식당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남도 강진 음식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사의재는 아욱국이 맛있기로 소문났다. 다행히 유배지 주위에 가시나무를 심어 외부인과의 접촉을 막는 ‘위리안치’는 아니었다. ‘강진 선생’ 다산은 고성사 보은산방, 제자 이청의 집 등을 전전하다 47세이던 1808년 봄에 귤동리 초당으로 거처를 옮겼다. 다산의 외가 쪽 집안인 해남 윤씨 윤단과 윤규로의 선처 덕분이었다.(해남 윤씨 윤선도는 무려 25년을 유배지에서 생을 보낸 ‘유배의 왕’이다.) 다산은 산정 초당을 고쳐 다산초당이라 이름 짓고 그곳에서 윤규로의 네 아들과 조카 둘을 가르쳤다. 다산은 18년 유배 기간 중 다산초당에서 약 11년을 머물며 다양한 연구와 저술 활동을 했다. 저서는 ‘목민심서’, ‘경세유표’를 비롯한 500여권에 달한다. 이를 총정리한 ‘여유당전서’는 철학, 법제, 종교, 악경, 의술, 천문, 측량, 건축 등 모든 기초학문과 실용학문을 총망라하고 있다. 애초의 초당은 무너지고 1958년 강진 다산유적보존회가 현재 초당을 다시 지었다. 다만 원래 초당 건물이 아니라 목조 기와건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추사 김정희가 쓴 ‘다산초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초당 뒤 바위에는 다산이 직접 깎은 글자 ‘丁石’(정석)이 새겨져 있으며 앞뜰에는 차를 달였다는 ‘청석’이 있고 한켠에는 ‘약천’이라는 약수터가 있다. 초당 왼쪽에는 작은 연지가 있다. 초당에 관어재(觀魚齋)란 현판이 따로 있는 것으로 봐, 연지에 잉어를 키웠을 것으로 유추된다.초당 뒤 가파른 길은 만덕산 백련사로 이어진다. 꿀럭꿀럭한 산길을 15분 정도 걸으면 동백숲으로 유명한 고찰 백련사로 갈 수 있다. 이 길이 ‘사색의 길’이다. 다산과 백련사 혜장선사의 만남이 이뤄진 길이다. 다산은 차와 바다를 찾아 백련사로 향했고 혜장은 스승과 책을 찾아 초당을 오갔다. 유배 와 제자를 가르치며 산중칩거하던 다산이 다른 철학(불교)을 통해 학식과 견문을 넓힐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당대의 학승 혜장 덕분일 수도 있다. 산중 차향은 그렇게 피어나 학문으로 승화됐다.다산은 강진의 아름다운 산(만덕산, 월출산)과 강(탐진강), 바다(강진만) 등 자연을 사랑했다. 특히 월출산 옥판봉을 바라보는 백운동 원림과 그 인근에서 생산되는 야생차를 각별히 좋아했다. 월출산의 남쪽 월남(베트남이 아니다) 마을에 이르면 다산의 차를 재배했던 다원이 나온다. 전남 최대 가람이었던 월남사지 앞에 차를 재배하며 제다(製茶)해온 다부 이한영 가문의 생가 다향산방과 다원, 전통차문화원이자 시음장이 함께 있다. 이한영의 선조는 다산의 제자인 이시헌이다. 1830년 해배 후 광주(현 경기 남양주)로 올라간 다산은 제자 중 막내인 이시헌에게 편지를 보낸다. “지난번 보내준 차는 잘 받았다. 고맙다. 내 몸이 좋지 않아 오직 떡차(餠茶)만 의지하고 있는데 다시 곡우가 되었으니 차를 또 보내 달라”고 했다. “지난번 보내준 차는 거칠었다. 반드시 세 번 찌고 세 번 말려 곱게 빻아야 한다. 알아들었느냐?”며 나무라기도 했다.‘목민심서’를 집필한 ‘강직한 공직자’ 다산이었지만 제자에게는 단호하게 차를 보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제자와 맺은 다신계(茶信契) 때문이다. 다산이 강진을 떠나더라도, 제자들은 매년 공부한 글과 차를 보내기로 약속했다. 이시헌은 이 약속을 평생 지켰다. 약속은 100년 이상 대를 이어 전해졌고 마지막으로 이를 지킨 사람이 이한영이다. 평생 차를 위해 살아온 그는 일제강점기에 우리 땅에서 난 차가 일본 차로 바뀌어 유통되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우리 고유 상표를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백운옥판차’(白雲玉版茶)로, ‘백운동 옥판봉에서 딴 차’라는 뜻이다. 그는 하마터면 끊어질 뻔한 한국 전통차의 맥을 이었고, 백운옥판차와 금릉월산차는 다시 100여년의 세월을 지나 현 이현정 전통차문화원장에 이르고 있다. 다산이 즐기던 차가 바로 백운옥판차다. 사제 간의 다신계가 정녕 200여년 지속된 셈이다.생가 옆에는 백운동 원림(園林)이 있다. 국내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전통 원림이다. 이곳에도 다산의 흔적이 있다. 다산은 평소에도 백운동 원림을 찾았고 1812년에는 초의선사와 함께 백운동 12경을 방문한 후 각각 그림 같은 풍경에 대한 시(백운동 12승사)를 남겼다. 여기에 초의선사가 그린 그림(백운동도)을 묶은 것이 바로 백운첩이다. 옥판봉, 산다경, 백매오, 홍옥폭, 유상곡수, 창하벽, 정유강, 모란체, 취미선방, 정선대, 운당원 등 백운동 12경이 널리 알려지게 된 일화다.람사르 협약 생태습지로 유명한 남포 습지에도 다산과 관련된 사연이 있다. 강진만과 탐진강 물길이 만나는 남포마을은 제주, 완도 등 섬과 육지의 교역 중심지로 예부터 번성했는데 다산초당 만덕산에서 내려오면 닿는 곳이라 다산의 행차도 잦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남포마을의 옛 이름은 갈대밭이란 뜻의 갈밭마을. “강진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그 포구를 바라볼 수 있었고, 강진만의 색다른 정취는 그 포구에서 우러나오고 있었다.” 조정래의 소설 ‘한강’에 등장하는 문구다. 다산은 이곳에서 탐관오리들이 민초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세리들은 세금을 징세하기 위해 죽은 이와 갓난아이까지 군적(軍籍)에 올리는 백골징포, 황구첨정 등의 횡포를 부렸다. 도저히 군포를 감당할 수 없어 이에 항의하던 한 백성은 “아이를 낳은 내 잘못”이라며 스스로 거세하기에 이르렀다. 다산은 이 안타까운 사연을 ‘애절양’(哀絶陽)이라는 시로 남겼다.‘시아버지는 상복 벗은 지 오래고, 갓난아이는 배냇물도 마르지 않았는데/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 삼대의 이름이 군적에 모두 실렸네/ 억울한 사연 호소하려 해도 관가 문지기는 호랑이 같고/ 이정은 크게 포효하며 외양간 소마저 끌고 갔네/ 남편이 칼 들고 들어간 방에 피가 흥건하고/ 남편은 스스로 아이 낳은 죄를 한탄하네’ ‘애절양’ 시구는 강진만 생태공원을 조망할 수 있는 남포호 전망대에 선명히 적혀 있다. 강진만 생태공원은 3282만㎡(813만평)에 이른다. 자전거와 도보를 이용한 에코 투어 코스가 마련돼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고급 정보와 신문물을 일찍 받아들인 덕인지, 강진에는 특이한 맥주 소비 트렌드가 있다. 인구 3만 5000명 정도의 작은 도시지만 신기하게도 술집마다 미국 맥주 브랜드인 ‘버드와이저’를 팔고 있다. 서울 등 다른 도시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다. 심지어 생맥주 체인점에서도 버드와이저를 주문하면 따로 내올 정도다. 20여년 전 강진에는 주류를 공급하는 회사가 하나밖에 없었다. 당시 이 회사가 상대적으로 고급제품이었던 버드와이저 마케팅을 펼쳤는데, 뜻밖에 이게 먹혀들어 누구나 버드와이저를 즐겨찾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 강진은 전남에서도 주류소비량이 높은 편이라 주류회사들의 주요 마케팅 대상지였다. 이런 시장 상황이 지속되며 버드와이저가 국산 맥주보다 좋다는 이미지를 남겼고 마침내 ‘군민 맥주’로 인정받게 됐다. 싱가포르에서 ‘싱가폴 슬링’을 찾아 마시듯 무더운 여름날 강진에 간다면 시원한 버드와이저 한 잔 마셔 보는 것도 여행의 작은 즐거움이 될 듯하다. 다산이 18년이나 살며 많은 흔적을 남긴 강진 땅. 농가체험숙박 ‘푸소 프로그램’과 역사문화 체험, 청정 생태 여행 1번지로 변모한 이 청잣빛 푸른 땅에 스스로 ‘아름다운 유배’를 떠나보는 것도 역병으로 우울한 이 여름, 참 좋은 선택이 아닐까 한다. 놀고먹기연구소장 demory@naver.com■ 강진 여행 체크리스트 무엇을 볼까 이한영전통차문화원은 이현정 원장의 재미있는 해설을 들으며 백운옥판차 등 다양한 전통차 시음과 차를 구입할 수 있는 곳이다. 월남사지 잔디밭에 앉아 다식을 들며 차 소풍을 즐길 수도 있다. 민화박물관에선 민중의 삶을 그대로 녹인 민화를 통해 조상의 삶과 철학을 엿볼 수 있다. 2층에선 성문화를 표현한 한중일 3국의 춘화를 만날 수 있다.뭘 먹을까 은행나무는 한정식 미향(味鄕) 강진에서도 이름난 한정식집이다. 반찬 그릇 위에 또 그릇이 올라가는 ‘강진한정식이층탑’ 별칭이 있을 정도다. 해물과 고기 등 종류도 다양하지만 음식의 면면이 훌륭해 어느 하나 손이 안 가는 것이 없다. 토종닭과 전복, 문어를 넣고 끓인 회춘탕(해천탕)도 여름철 복달임으로 좋다. 설성식당은 한 상 가득 돼지불고기 백반상을 받는 집이다. 조선 중후기 육군 사령부가 있던 병영면에 돼지불고기 거리가 형성돼 있다. 불맛 가득한 양념 돼지고기는 물론 각종 곁들임 찬만 해도 12가지가 넘는다. 1인 1만원꼴로 값도 저렴하다.
  • 목축이던 주막선 군민맥주 캬~ 다산 걷던 동백숲서 시름 털털

    목축이던 주막선 군민맥주 캬~ 다산 걷던 동백숲서 시름 털털

    올봄 영화 ‘자산어보’가 개봉하면서, 손암 정약전과 다산 정약용 형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극중 ‘강진 선생’으로 불리는 다산(류승룡 분)의 학자적, 철학자적 모습이 관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당대 세상을 호령하던 고관대작(형조참의) 자리에 있다가, 머나먼 전남 강진 땅에 유배를 와 묵묵히 학문 연구에 몰두하는 정약용의 인품은 주인공 정약전(설경구 분)의 극중 비중에 견주어도 결코 모자람이 없었다. 대선을 앞둔 최근엔 소설 ‘대통령 정약용’이 눈길을 끌고 있다. 타임슬립을 통해 현대로 온 다산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간다는 유쾌한 상상을 담았다. 대통령 다산이 추진한다는 ‘실학21’의 바탕이 된 1표2서(‘목민심서’·‘흠흠신서’·‘경세유표’)를 저술한 땅, 강진을 다시 돌아보니 그동안 보고 알았던 것보다 많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역사상 한반도 최고의 천재로 꼽히는 다산은 그야말로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였다. 그는 유학자이면서 실학을 주도적으로 연구했으며 행정가이자 정치가, 그리고 법학과 법의학을 두루 전공한 법률가였다. 또한 의학과 지리학, 건축학에 통달한 과학자요, 발명가였다. 게다가 언어학자, 아동 교육자, 걸출한 시인에다 차 전문가, 동서양사를 넘나드는 역사 철학 이론가이기도 했다. 18세기 말 조선은 만사‘다’통이었다. 다산을 거치면 안 될 게 없었다.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의 다빈치처럼. 아, 공교롭게도 다산과 다빈치, 둘 다 이름 첫 자에 ‘다’자가 들어간다. 마침 다빈치도 유배는 아니지만 1516년 고향을 떠나 프랑스 루아르 강가의 앙부아즈 궁에서 살며 ‘모나리자’ 등 역작을 남겼다. 그런 다산이 강진에 내려왔다. 조용한 강진에 유배를 오는 바람에 그의 눈부신 업적이 꽃을 피웠다고 하는 것도 맞겠다. 18년 동안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수많은 저서와 서간, 일화, 대한민국 차문화가 탄생했다. 당시 조선의 유형(流刑)은 명나라의 대명률을 따랐다. 죄의 경중에 맞춰 2000리, 2500리, 3000리 등으로 올려가며 유배를 보내는 거다. 1리가 400m쯤이니 1000리면 한양에서 직선거리로 전남 완도까지도 갈 수 있다. 조선에선 이런 거리가 나올 수 없는 터라 일부러 여러 지역을 거치며 행로를 늘렸다. 세종이 ‘실정에 맞게’ 600, 750, 900리로 조정하기 전까지 1년 가까이 돌고도는 유배길을 떠났다. 유배는 많은 것을 남겼다. 깡시골인 유배지로 한양의 높은 지식과 문화 산업이 수혈됐다. 당쟁이 치열했던 조선 때 이름난 관직자는 대부분 유배를 다녀왔을 만큼 유배는 ‘일상’이었다. 정조는 창덕궁 부용정에 인공 섬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신하들과 시 짓기 내기를 하다가 ‘잠시 쉬는’ 벌칙으로 인공 섬에 유형을 보내기도 했다. 블루마블 게임에서 ‘무인도’ 같은 의미다. 그만큼 유형은 고급 관리를 대상으로 했다는 뜻이다. 시에 능한 다산이 ‘인공 섬’에 유배를 갔는지 알 수는 없지만 다산을 친애하던 정조가 승하한 후, 정말 강진 땅으로 기나긴 유형을 떠나게 됐다. 그나마 강진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축에 속했다. 예나 지금이나 유형을 가기도, 여행하기도 딱 적당한 거리다. 프로야구의 옛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는 2군 구장을 강진에 뒀는데 당시 1군 선수가 2군에 내려가면 “유배간다”고 자조했다. 당시 몇몇 선수들은 강진에서 2군 생활을 경험하며 다산의 후예가 됐다.다산이 처음 도착한 곳이 강진읍의 사의재다. 다산의 인품을 알아본 주막 동문매반가(東門賣飯家) 주모의 호의로 여기서 4년간 생활했다. 다산은 이 주막에 사의재(四宜齋)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생각과 외모, 말, 움직임을 네(四) 가지 덕목으로 삼아 마땅히(宜) 바로잡는 집이란 뜻이다. 다산의 일기에 따르면 1803년 겨울의 일이다. 초가 주막이던 본래 사의재 건물은 사라졌지만 2007년 강진군청은 이를 복원해 한옥체험 숙소, 식당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남도 강진 음식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사의재는 아욱국이 맛있기로 소문났다. 다행히 유배지 주위에 가시나무를 심어 외부인과의 접촉을 막는 ‘위리안치’는 아니었다. ‘강진 선생’ 다산은 고성사 보은산방, 제자 이청의 집 등을 전전하다 47세이던 1808년 봄에 귤동리 초당으로 거처를 옮겼다. 다산의 외가 쪽 집안인 해남 윤씨 윤단과 윤규로의 선처 덕분이었다.(해남 윤씨 윤선도는 무려 25년을 유배지에서 생을 보낸 ‘유배의 왕’이다.) 다산은 산정 초당을 고쳐 다산초당이라 이름 짓고 그곳에서 윤규로의 네 아들과 조카 둘을 가르쳤다. 다산은 18년 유배 기간 중 다산초당에서 약 11년을 머물며 다양한 연구와 저술 활동을 했다. 저서는 ‘목민심서’, ‘경세유표’를 비롯한 500여권에 달한다. 이를 총정리한 ‘여유당전서’는 철학, 법제, 종교, 악경, 의술, 천문, 측량, 건축 등 모든 기초학문과 실용학문을 총망라하고 있다. 애초의 초당은 무너지고 1958년 강진 다산유적보존회가 현재 초당을 다시 지었다. 다만 원래 초당 건물이 아니라 목조 기와건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추사 김정희가 쓴 ‘다산초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초당 뒤 바위에는 다산이 직접 깎은 글자 ‘丁石’(정석)이 새겨져 있으며 앞뜰에는 차를 달였다는 ‘청석’이 있고 한켠에는 ‘약천’이라는 약수터가 있다. 초당 왼쪽에는 작은 연지가 있다. 초당에 관어재(觀魚齋)란 현판이 따로 있는 것으로 봐, 연지에 잉어를 키웠을 것으로 유추된다.초당 뒤 가파른 길은 만덕산 백련사로 이어진다. 꿀럭꿀럭한 산길을 15분 정도 걸으면 동백숲으로 유명한 고찰 백련사로 갈 수 있다. 이 길이 ‘사색의 길’이다. 다산과 백련사 혜장선사의 만남이 이뤄진 길이다. 다산은 차와 바다를 찾아 백련사로 향했고 혜장은 스승과 책을 찾아 초당을 오갔다. 유배 와 제자를 가르치며 산중칩거하던 다산이 다른 철학(불교)을 통해 학식과 견문을 넓힐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당대의 학승 혜장 덕분일 수도 있다. 산중 차향은 그렇게 피어나 학문으로 승화됐다.다산은 강진의 아름다운 산(만덕산, 월출산)과 강(탐진강), 바다(강진만) 등 자연을 사랑했다. 특히 월출산 옥판봉을 바라보는 백운동 원림과 그 인근에서 생산되는 야생차를 각별히 좋아했다. 월출산의 남쪽 월남(베트남이 아니다) 마을에 이르면 다산의 차를 재배했던 다원이 나온다. 전남 최대 가람이었던 월남사지 앞에 차를 재배하며 제다(製茶)해온 다부 이한영 가문의 생가 다향산방과 다원, 전통차문화원이자 시음장이 함께 있다. 이한영의 선조는 다산의 제자인 이시헌이다. 1830년 해배 후 광주(현 경기 남양주)로 올라간 다산은 제자 중 막내인 이시헌에게 편지를 보낸다. “지난번 보내준 차는 잘 받았다. 고맙다. 내 몸이 좋지 않아 오직 떡차(餠茶)만 의지하고 있는데 다시 곡우가 되었으니 차를 또 보내 달라”고 했다. “지난번 보내준 차는 거칠었다. 반드시 세 번 찌고 세 번 말려 곱게 빻아야 한다. 알아들었느냐?”며 나무라기도 했다.‘목민심서’를 집필한 ‘강직한 공직자’ 다산이었지만 제자에게는 단호하게 차를 보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제자와 맺은 다신계(茶信契) 때문이다. 다산이 강진을 떠나더라도, 제자들은 매년 공부한 글과 차를 보내기로 약속했다. 이시헌은 이 약속을 평생 지켰다. 약속은 100년 이상 대를 이어 전해졌고 마지막으로 이를 지킨 사람이 이한영이다. 평생 차를 위해 살아온 그는 일제강점기에 우리 땅에서 난 차가 일본 차로 바뀌어 유통되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우리 고유 상표를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백운옥판차’(白雲玉版茶)로, ‘백운동 옥판봉에서 딴 차’라는 뜻이다. 그는 하마터면 끊어질 뻔한 한국 전통차의 맥을 이었고, 백운옥판차와 금릉월산차는 다시 100여년의 세월을 지나 현 이현정 전통차문화원장에 이르고 있다. 다산이 즐기던 차가 바로 백운옥판차다. 사제 간의 다신계가 정녕 200여년 지속된 셈이다.생가 옆에는 백운동 원림(園林)이 있다. 국내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전통 원림이다. 이곳에도 다산의 흔적이 있다. 다산은 평소에도 백운동 원림을 찾았고 1812년에는 초의선사와 함께 백운동 12경을 방문한 후 각각 그림 같은 풍경에 대한 시(백운동 12승사)를 남겼다. 여기에 초의선사가 그린 그림(백운동도)을 묶은 것이 바로 백운첩이다. 옥판봉, 산다경, 백매오, 홍옥폭, 유상곡수, 창하벽, 정유강, 모란체, 취미선방, 정선대, 운당원 등 백운동 12경이 널리 알려지게 된 일화다.람사르 협약 생태습지로 유명한 남포 습지에도 다산과 관련된 사연이 있다. 강진만과 탐진강 물길이 만나는 남포마을은 제주, 완도 등 섬과 육지의 교역 중심지로 예부터 번성했는데 다산초당 만덕산에서 내려오면 닿는 곳이라 다산의 행차도 잦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남포마을의 옛 이름은 갈대밭이란 뜻의 갈밭마을. “강진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그 포구를 바라볼 수 있었고, 강진만의 색다른 정취는 그 포구에서 우러나오고 있었다.” 조정래의 소설 ‘한강’에 등장하는 문구다. 다산은 이곳에서 탐관오리들이 민초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세리들은 세금을 징세하기 위해 죽은 이와 갓난아이까지 군적(軍籍)에 올리는 백골징포, 황구첨정 등의 횡포를 부렸다. 도저히 군포를 감당할 수 없어 이에 항의하던 한 백성은 “아이를 낳은 내 잘못”이라며 스스로 거세하기에 이르렀다. 다산은 이 안타까운 사연을 ‘애절양’(哀絶陽)이라는 시로 남겼다.‘시아버지는 상복 벗은 지 오래고, 갓난아이는 배냇물도 마르지 않았는데/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 삼대의 이름이 군적에 모두 실렸네/ 억울한 사연 호소하려 해도 관가 문지기는 호랑이 같고/ 이정은 크게 포효하며 외양간 소마저 끌고 갔네/ 남편이 칼 들고 들어간 방에 피가 흥건하고/ 남편은 스스로 아이 낳은 죄를 한탄하네’ ‘애절양’ 시구는 강진만 생태공원을 조망할 수 있는 남포호 전망대에 선명히 적혀 있다. 강진만 생태공원은 3282만㎡(813만평)에 이른다. 자전거와 도보를 이용한 에코 투어 코스가 마련돼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고급 정보와 신문물을 일찍 받아들인 덕인지, 강진에는 특이한 맥주 소비 트렌드가 있다. 인구 3만 5000명 정도의 작은 도시지만 신기하게도 술집마다 미국 맥주 브랜드인 ‘버드와이저’를 팔고 있다. 서울 등 다른 도시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다. 심지어 생맥주 체인점에서도 버드와이저를 주문하면 따로 내올 정도다. 20여년 전 강진에는 주류를 공급하는 회사가 하나밖에 없었다. 당시 이 회사가 상대적으로 고급제품이었던 버드와이저 마케팅을 펼쳤는데, 뜻밖에 이게 먹혀들어 누구나 버드와이저를 즐겨찾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 강진은 전남에서도 주류소비량이 높은 편이라 주류회사들의 주요 마케팅 대상지였다. 이런 시장 상황이 지속되며 버드와이저가 국산 맥주보다 좋다는 이미지를 남겼고 마침내 ‘군민 맥주’로 인정받게 됐다. 싱가포르에서 ‘싱가폴 슬링’을 찾아 마시듯 무더운 여름날 강진에 간다면 시원한 버드와이저 한 잔 마셔 보는 것도 여행의 작은 즐거움이 될 듯하다. 다산이 18년이나 살며 많은 흔적을 남긴 강진 땅. 농가체험숙박 ‘푸소 프로그램’과 역사문화 체험, 청정 생태 여행 1번지로 변모한 이 청잣빛 푸른 땅에 스스로 ‘아름다운 유배’를 떠나보는 것도 역병으로 우울한 이 여름, 참 좋은 선택이 아닐까 한다. 놀고먹기연구소장 demory@naver.com■ 강진 여행 체크리스트 무엇을 볼까 이한영전통차문화원은 이현정 원장의 재미있는 해설을 들으며 백운옥판차 등 다양한 전통차 시음과 차를 구입할 수 있는 곳이다. 월남사지 잔디밭에 앉아 다식을 들며 차 소풍을 즐길 수도 있다. 민화박물관에선 민중의 삶을 그대로 녹인 민화를 통해 조상의 삶과 철학을 엿볼 수 있다. 2층에선 성문화를 표현한 한중일 3국의 춘화를 만날 수 있다.뭘 먹을까 은행나무는 한정식 미향(味鄕) 강진에서도 이름난 한정식집이다. 반찬 그릇 위에 또 그릇이 올라가는 ‘강진한정식이층탑’ 별칭이 있을 정도다. 해물과 고기 등 종류도 다양하지만 음식의 면면이 훌륭해 어느 하나 손이 안 가는 것이 없다. 토종닭과 전복, 문어를 넣고 끓인 회춘탕(해천탕)도 여름철 복달임으로 좋다. 설성식당은 한 상 가득 돼지불고기 백반상을 받는 집이다. 조선 중후기 육군 사령부가 있던 병영면에 돼지불고기 거리가 형성돼 있다. 불맛 가득한 양념 돼지고기는 물론 각종 곁들임 찬만 해도 12가지가 넘는다. 1인 1만원꼴로 값도 저렴하다.
  • 영진전문대, 미래형자동차 분야 인재 양성에 시동

    영진전문대, 미래형자동차 분야 인재 양성에 시동

    영진전문대가 자동차 전장모듈, 충방전 시스템 제조 전문기업인 디플러스(주)와 주문식교육 및 산학협력 협약을 체결했다. 2000년 설립된 디플러스(주)는 자동차전장 모듈, 충방전 시스템 제조, 반도체·PCB·IT 모듈 관련 Test 장치 설계, 정밀가공 전문기업으로 경기 화성, 구미에 사업장, 베트남 법인 등을 두고 연 매출 190억 원을 올리고 있다. 2022학년도에 신설할 영진전문대 미래자동차전자과는 자동차 산업분야의 급속한 기술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자동차 전장시스템 관련 기술, 자동차의 센서 관련 기술, 커넥티드카를 위한 사물인터넷, 자율주행기술을 위한 컴퓨터비전 및 인공지능 기술, 클라우드 컴퓨팅, 차량용 반도체 등의 이론과 실습 등을 산업현장 중심의 실무를 반영한 교육을 통해 미래 자동차분야의 기술혁신을 주도할 전문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표다. 김재완 미래자동차전자과 교수는 “커넥티드·자율주행 기술 발달에 따른 데이터의 급속한 확대 및 활용은 미래 모빌리티 산업을 변화시키는 중요 드라이버가 될 것이다. 자동차는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등을 뛰어넘는 새로운 플랫폼 디바이스로 부상할 전망으로 전자, IT 등 기술이 70% 이상 차치하며 관련 인력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며 “미래형자동차 관련 프로그래밍 언어, 차량 전장시스템을 설계하기 위한 아두이노와 아트메가 등의 하드웨어 및 자동차 센서 관련 교육, 자율주행차와 세상을 연결시켜줄 사물인터넷과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을 집중적으로 교육, 미래형 자동차 핵심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했다.
  • 전시장에 웬 고양이와 전투기?…엘리트 미술·인간의 욕망을 향한 일침

    전시장에 웬 고양이와 전투기?…엘리트 미술·인간의 욕망을 향한 일침

    미술관에 난데없이 고양이 떼가 나타났다. 미술품이 놓여 있어야 할 좌대를 고양이 다섯 마리가 하나씩 차지한 채 느긋하게 누워 있다. 길이 10m, 높이 6m가 넘는 전투기도 갤러리 한복판에 자리잡았다. 고양이나 전투기나 통상 미술 전시장과는 거리가 먼 조합. 지금 서울 마곡동 코오롱 미술관 스페이스K 서울과 삼청동 갤러리 바라캇컨템포러리에 가면 이런 낯설면서도 흥미로운 광경을 만날 수 있다. 전시 주인공은 라이언 갠더와 피오나 배너.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영국의 개념 미술가들이다. 스페이스K 서울에서 개인전 ‘변화율’을 선보이는 갠더는 일상적인 사물에서 발상과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 내는 작업을 펼쳐 왔다. 같은 사물이라도 어떤 환경과 맥락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스토리텔링에 능하다. 감쪽같은 외양은 물론 심장박동까지 재현한 기계 고양이들을 전시장에 데려온 저의(?)는 작품 제목에 담겨 있다. ‘고양이 스모키가 조각가 조너선 몽크의 <풀 죽은 조각2(2009)>를 만났을 때’처럼 고양이들이 점령한 좌대가 유명 조각가의 작품이 놓였던 좌대라는 점을 일러 줌으로써 일상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세상’인 엘리트 미술에 유쾌한 한 방을 날린다. 갤러리 벽의 구멍에 20파운드짜리 지폐를 구겨 넣은 ‘난 뉴욕에 다시 가지 않을 거야’에서도 미술계의 속물주의에 대한 비판을 엿볼 수 있다.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는 시간성이다. 변화는 시간을 전제로 한다. 보이지 않는 비물질적 요소인 변화와 시간의 개념을 눈 쌓인 의자, 쥐가 갉아먹어 구멍이 뚫린 벽, 과거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 등 다채로운 형태의 작품으로 보여 준다. 작가는 전시장 곳곳에 숨은 그림 찾기처럼 여러 단서들을 감춰 뒀다. 만원권 지폐에 영어 문구를 적은 ‘기록하기엔 너무 모호한 아이디어’, 순은으로 제작한 담배꽁초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같은 작품은 의외의 장소에 놓여 있어 관람객에게 ‘발견의 재미’를 선사한다. 9월 17일까지. 피오나 배너는 바라캇컨템포러리에서 아시아 첫 개인전 ‘프라나야마 타이푼’을 열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할리우드 전쟁영화, 포르노 등 특정한 시각 이미지가 전달하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폭력 등 양가적 감정을 드로잉, 조각, 설치,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탐구해 왔다. 1층 전시장 절반을 차지한 거대한 전투기 설치물 ‘팔콘’은 실제로 전투에서 사용하는 눈속임용 전투기다. 고무 재질로 만든 풍선 모형에 공기를 불어 넣어서 적에게 공포감을 주기 위한 미끼 전투기로 활용한다. 공기를 주입하고 뺄 때마다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몸을 부풀렸다가 움츠러드는 전투기의 모습이 권력과 힘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이 전투기는 영상 ‘프라나야마 오르간’에도 등장한다. 전투기 의상을 입은 두 사람이 황량한 바닷가에서 우스꽝스런 몸짓으로 펼치는 제의적인 퍼포먼스는 실제 전투기 모형과 조응하며 성찰을 이끌어 낸다.전시 제목은 고대 인도의 전통 호흡법인 ‘프라나야마’와 자연 재앙인 ‘타이푼’(태풍)을 합성한 것이다. 코로나19로 영국 전역이 봉쇄된 상태에서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작가가 느꼈던 자연의 힘과 인간의 호흡 사이의 충돌을 암시한다. 배너가 작업의 핵심으로 삼고 있는 언어, 출판물 관련한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여러 서체의 마침표를 고전 회화와 결합한 ‘마침표’ 시리즈, 자동차 백미러에 도서 등록 정보 ISBN을 새긴 거울 조각 출판물 등도 전시됐다. 8월 15일까지.
  • [알아두면 쓸데 있는 건강 정보] 신생아 난청검사도 건보 적용… 출생 1개월 내에 하세요

    Q. 신생아 난청검사, 빨리 할수록 좋다던데. A. 선천성 난청은 생후 6개월 이전에 보청기 착용 등 재활 치료를 시작하면 정상에 가까운 언어·사회성 발달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부모가 알아차리기 쉽지 않아 보통 생후 2세 이후 발견하는 사례가 많은데 이때는 재활 치료 효과가 현저히 떨어집니다. 출생 1개월 이전에 청각 선별검사를 하는 게 중요합니다. Q. 비용은 얼마나 될까요. A. 2018년부터 신생아 난청 선별검사에 건강보험이 적용됐습니다. 외래진료를 통해 신생아 청각 선별검사인 자동화 이음향 방사검사는 4000~9000원만 부담하면 됩니다(건강보험 적용 전에는 5만~10만원). 신생아가 입원 상태에서 검사를 받으면 본인부담금을 완전 면제해 줍니다. Q. 소아 난청 수술의 진료비 부담도 많이 줄었나요. A. 와우(달팽이관)에 문제가 생겨 심각한 난청이 된 경우 하게 되는 인공와우 이식 수술은 비용 부담이 상당했는데 2018년에 건강보험 적용 대상과 범위가 확대됐습니다. 가령 1세 이상 2세 미만의 청력 기준은 기존 90dB에서 70dB로 완화됐으며, 외부 장치를 교체할 때도 양측 시술자 2개로 확대됐습니다.
  • “조선의 비통한 소리 들어라”… 독립운동가 변호한 ‘일본의 쉰들러’

    “조선의 비통한 소리 들어라”… 독립운동가 변호한 ‘일본의 쉰들러’

    독립운동을 도운 공로로 건국훈장을 받은 순수 외국인은 70명이다. 중국인(쑨원, 장제스 등 33명), 미국인(헐버트와 알렌 등 21명), 영국인(베델 등 6명), 캐나다인(스코필드 등 5명) 순으로 많다. 일본인도 2명이 있다. 한 사람은 일본 황태자를 암살하려 했던 박열 의사의 일본인 부인 가네코 후미코(애국장)로 2018년에 받았고 다른 한 사람은 박 의사를 변호했던 후세 다쓰지로 2004년에 받았다. 당시 정부 일각에서는 일본인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반대했지만, 후세의 삶을 알고 나면 그런 생각을 버리게 된다. 일본인으로서 한국인 변호에 앞장섰던 그를 독일 나치 치하에서 죽어가던 유대인들을 도왔던 독일인 쉰들러에 비유해 ‘일본의 쉰들러’라 불러도 과하지 않다.●두 번 투옥, 세 번 변호사 자격 박탈 ‘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죽어야 한다면 민중을 위하여’. 후세의 현창비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후세는 조선인 지원 활동으로 일본 정부와 조선총독부의 미움을 사 두 번 투옥당하고 변호사 자격을 세 번이나 박탈당한 인권변호사, 민중변호사였다. 후세는 재판에서 이렇게 소리쳤다. “조선 민중이 모두 이 재판을 주목합니다. 피고들의 향후 활동에 민족의 운명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재판관은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조선 민중의 비통한 양심의 소리를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독립운동가들은 후세를 ‘우리의 변호사’라고 부르며 존경심을 나타냈다. 후세는 1880년 일본 미야기현 오시카군에서 한 농부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899년 고향을 떠나 도쿄 메이지법률학교에 입학한 후세는 조선인 등 유학생과 교류하며 조선의 상황을 이해하게 됐다. 후세가 조선에 관심을 보인 것은 훨씬 전이었다. 청일전쟁에서 돌아온 일본군 출신 마을 주민에게서 조선인 민간인들에게 닥치는 대로 칼을 휘둘렀던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들었다고 한다. 후세는 일본인에게는 잔인성을, 조선인에게는 연민을 느꼈다.1902년 학교를 졸업한 후세는 고시에 합격, 시보로 부임했다가 넉 달 만에 사직했다. 아이 3명과 동반자살을 기도한 엄마를 살인미수로 기소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후세는 검사의 직무를 ‘늑대와도 같은 일’이라고 비난했다. 후세는 이후 변호사로서 핍박받는 조선인과 노동자·농민 등 사회적 약자를 돕는 길로 들어섰다. 1911년 일본의 조선 강제병합을 비난하고 조선의 독립을 주장하는 ‘조선의 독립운동에 경의를 표함’이라는 글을 발표해 검사국으로 불려가 호된 조사를 받았다. 그가 처음 변호한 조선인은 1919년 도쿄 2·8 독립선언으로 현장에서 검거된 최팔용, 백관수 등 9명이었다. “일본은 체코 독립을 위해 시베리아에까지 군대를 보냈는데 조선민족 독립을 탄압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이런 논리로 재판부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조선인들은 무료로 변론한 후세를 크게 신뢰하게 됐다. 후세는 계속해서 조선인 사건 변호와 구원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다음해 5월 후세는 ‘민중의 변호사’로 변신하겠다는 장문의 ‘자기혁명의 고백’을 선언했다. 입신출세를 거부하고 약자와 더불어 살겠다는 의지 표명이었다. 그러면서 조선인의 이익을 위해 직접 나서겠다고 했다. 후세는 계급투쟁이라는 시대적 사조에도 관심을 가졌다. 1923년 7월 조선을 처음 방문해 강연을 다닌 것은 총독 정치 비판뿐만 아니라 그런 사상적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조선 농민의 생활고에 눈물이 난다” 후세가 일본으로 돌아온 직후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자 일본인들은 조선인 수천 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후세는 죽창을 든 자경단에 쫓기는 조선인 유학생들을 집으로 데려가 숨겨 주고 차를 대접하고는 안심시켰다. 조선인 학살사건을 고발하기 위한 자유법조단의 선두에서 활약했다. ‘피살동포추모회’에서 후세는 이렇게 말했다. “천만 개의 추도의 말을 늘어놓더라도 무념에 가득 찬 그 사람들의 마지막을 추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뒤 조선을 방문했을 때는 만행을 사죄하는 글을 신문사에 보냈다. 1924년에는 의열단원으로 일본 왕궁 이중교에 폭탄을 던진 김지섭 의사를 변론했다. 후세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박열과의 만남이었다. 박열이 1923년 이른바 ‘대역사건’으로 기소된 후 3년여간 그의 무죄를 변론했다. 일본의 국체(國體)를 전면 부정한 후세의 변론은 목숨을 건 법정투쟁이었다. 박열이 법정에서 사모관대를 입을 수 있었던 데도 후세의 노력이 컸다. 옥사한 박열의 부인 가네코 후미코의 유해를 거두어 박열의 고향으로 운구한 것도 후세였다. 또 하나의 업적은 동양척식회사의 전남 나주 농민토지수탈 사건 규탄과 변호였다. 1926년 3월 두 번째로 조선을 방문한 후세는 나주 궁삼면 토지사건을 조사했다. 동양척식회사는 일본 헌병과 경찰의 힘을 빌려 유혈 참극을 벌이며 궁삼면 농민들의 땅을 빼앗았고 농민들은 물리적 저항과 법적 소송으로 맞붙고 있었다. 후세는 농민들의 열정에 감격하고 식민지 농촌 문제의 심각성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후세는 “조선 무산계급 농민의 생활고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소위 식민지정책의 피지배 계급에 대한 압박에 분개할 수밖에 없다”며 절절한 감회를 토로했다. 1927년 조선공산당 활동으로 체포된 권오설·강달영 등이 고문 만행을 폭로하고 고소를 제기할 때 조선으로 건너와 법률 업무를 도와주고 최후변론을 맡았다. 이 밖에도 조선 수해이재민 구원운동, 미에현 조선인 살해사건 변호, 재일 조선인 노동산업 희생자 구원회 결성, 김한경 등의 치안유지법 위반 사건 변호 등의 활동을 했다. 후세는 일본과 조선을 오가면서 조선인들의 인권과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했다.●종전 후 ‘운명의 승리자 박열’ 출간 일본은 그런 후세를 가만두지 않았다. 1932년 법정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했다. 이듬해에는 신문지법, 우편법 위반으로 금고 3개월의 실형을 받았다. 출옥 직후 일본 노농변호사단 사건에 연루돼 징역 2년을 받았고 변호사 등록도 말소당했다. 와중에 후세의 셋째 아들 모리오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검거돼 교토형무소에서 옥사했다. 후세는 종전 후에도 한국인들을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일본 정부의 횡포로부터 재일 한국인의 권리를 획득하려는 투쟁에 힘을 쏟았다. 또 박열이 1945년 출옥한 후에도 관계를 이어 가며 ‘운명의 승리자 박열’을 출간하고 1947년에는 ‘관동대진재 백색테러의 진상’을 기고하는 등 한국인들과 연대 투쟁을 벌였다. 이어 후카가와 사건, 조련(朝連)·민청(民靑) 해산 사건, 도쿄 조선고등학교 사건, 다이토우회관 사건 등 일련의 재판에서 변호인으로 활약했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한국인도 연루된 메이데이 사건과 수이타 사건을 변호하며 죽을 때까지 한국인 관련 사건을 도맡다시피 했다. 후세는 1953년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에는 많은 한국인이 참석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정부는 2004년 후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일본인으로는 최초였다. 일본에서도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후세를 기리고 있고 그의 고향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에는 시민들이 기부금을 모아 기념비를 세웠다. 기념비에는 후세가 조선인 탄압과 학살에 항의하고 변호한 기록이 새겨져 있다. 후세는 일본인이었지만 한국인들과 함께 한국을 위해 일본에 저항했다. 후세가 한복을 입고 활동한 사진이 한 장 남아 있다. 조선인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생각하는 그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사진이다. 이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한국 사람인 당신과 같습니다. 당신의 편입니다.”
  • 덮어둔 식민지 시절 상처… 아메리카 대륙, 치유의 첫발 떼다

    덮어둔 식민지 시절 상처… 아메리카 대륙, 치유의 첫발 떼다

    최근 아메리카 대륙 3개국에선 국가 고위직에 오른 원주민 출신 여성들이 잇따라 화제가 됐다. 캐나다 총독 메리 사이먼(74), 칠레 제헌의회 의장 엘리사 롱콘(58), 미국 내무부 장관 데브 할런드(61)가 그들이다. 이 3명은 각각 자신의 혈통을 자랑스럽게 대변하는 원주민으로서 그 자리에 오른 역사상 최초의 여성이다. 백인 남성 위주의 정치판에서 원주민 여성이 사상 처음으로 한 국가 또는 중앙부처를 대표하게 됐다는 건 사실 그 자체만으로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들의 행보가 더 주목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최근 들어 식민 지배 시절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에게 자행된 아픈 역사가 속속 드러나며 이를 바로잡으려는 시도에 불이 붙었기 때문이다. 소수민족이자 여성으로서 이들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은 험하지만, 곪은 상처를 치유해 주기를 기대하는 열망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첫 원주민 출신 女수장, 부끄러운 역사 손본다 캐나다 154년 역사상 처음으로 총독 자리에 오른 사이먼은 이누이트족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원주민 문화와 유산에 대한 관계를 유지하며 자랐고, 1970년대 라디오 방송을 시작으로 캐나다 국립 이누이트 기관 수장까지 지낸 인물이다. 칠레 마푸체족 출신 롱콘 의장은 오랫동안 언어학을 공부한 학자다. 어릴 때부터 원주민으로서 차별받고, 열악한 가정환경 탓에 교육 기회조차 충분하지 않았다. 하지만 악조건을 모두 견뎌낸 그는 앞으로 의회를 이끌어 칠레의 새 헌법을 쓸 예정이다. 라구나 푸에블로 인디언 부족인 할런드 장관은 뉴멕시코대 로스쿨에서 인디언 법을 전공한 실력파다. 그가 맡은 내무부는 600개 부족과 연방정부의 관계를 감독하는 부처이자 문화유산과 국립공원 등 미 대륙의 4분의1에 해당하는 토지를 담당하는 곳이다. 할런드 역시 임명 당시 미국 연방정부와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의 관계를 복구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식민 지배 시절부터 아메리카 대륙에서 원주민의 터전이 파괴되고 문화가 말살된 역사는 익히 알려져 있지만, 그중에서도 캐나다에서 벌어진 원주민 학살은 최근 아동 유해 대거 발굴과 함께 큰 충격을 안겼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캠루프스의 원주민 기숙학교 부지에서 아동 유해 215구가 집단 매장된 현장이 발견됐고, 몇 주 뒤 남서부 서스캐처원주 기숙학교 부지에서도 표식 없는 무덤 751개가 발견됐다. 18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캐나다 정부는 원주민 어린이 15만명을 강제로 집에서 몰아내고 서양식으로 동화시키기 위해 기숙학교로 보냈다. 가톨릭교회가 주로 운영하던 이곳에서는 성적, 신체적, 정서적 학대와 폭력이 일상이었다. 당시 기숙학교에서 생활하다 살아남은 켄 토머스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끔찍한 공포를 경험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여섯 살 때 차에 실려 집에서 두 시간가량 떨어진 학교로 갔는데, 수녀들은 즉시 그의 땋은 머리를 잘라버렸다. 그뿐 아니었다. 아이들이 원주민 언어를 쓸 때마다 그들은 비누로 입을 박박 문질렀고, 탈출하려다 붙잡힌 한 아이는 발가벗겨진 채 기숙사에 갇혔다. 결국 그 아이는 화장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토머스의 친구들처럼 당시 실종되거나 사망한 아동은 수천명이나 된다. 2008년에야 꾸려진 국가 진실화해위원회에 따르면 이는 명백한 ‘문화적 제노사이드(집단 학살)’로, 전국의 학교에서 사라진 아이들은 4100명 정도로 추정된다. NYT는 “위원회를 이끌었던 원주민 출신 판사는 이 숫자가 1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당국 무관심 속 여성 살해…식민주의 항의 시위 캐나다 원주민 여성들에 대한 무차별 살해와 학대 역시 정부가 이미 공식 인정하고 사죄할 정도로 심각하다. 2014년 캐나다 왕립기마경찰대(RCMP)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1980년부터 2013년까지 실종 또는 살해된 원주민 여성은 1181명이었다(사망 1017명, 실종 164명). 특히 원주민은 전체 여성 인구 중에선 4.3%에 불과하지만, 모든 여성 살인 피해자 중에서 16%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 인종에 대한 편견과 식민지 시대부터 이어진 잘못된 사회구조 탓에 피해가 더 커졌다는 뜻이다. RCMP 보고서는 “인종·성차별적인 편견 탓에 당국에 대한 피해자들의 불신도 컸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실종자를 ‘술주정뱅이’나 ‘파티하느라 집 나간 가출 여성’ 등으로 칭했고, 무관심하게 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수많은 이들이 사라졌고, 이처럼 실종 및 살해된 원주민 여성(MMIW)을 둘러싼 싸움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미국과 칠레의 상황 역시 캐나다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에선 원주민 관련법이 1819년부터 시행돼 이를 계기로 전역에 인디언 기숙학교가 세워졌다. 수십 년에 걸쳐 수많은 원주민 어린이들이 가족에게서 떨어져 강제 수용됐다. 칠레에선 수세기 동안 원주민과 정부가 갈등을 빚어 왔다. 특히 전체 인구 1700만명 중 6%를 차지하는 마푸체족은 최대 원주민 부족으로서 조상 대대로 전해져 온 남부지역 영토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콜럼버스의 날’인 10월 12일엔 유럽 식민주의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려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다. 이날은 1492년 이탈리아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기리려고 지정한 날인데, 대다수 남미 주민들은 당연히 이에 반대하며 원주민 문화를 기념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당시 마푸체족 지도자인 이솔리나 파이얄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에 대한 집단학살의 시작이었다”며 정부가 마푸체족을 장식품으로만 여긴다고 강하게 비난한 바 있다. ●정부 과거사 청산 의지에도 ‘보여주기식’ 불신 갈수록 부끄러운 과거사가 드러나는 이 같은 상황에서 원주민 출신 여성들이 각국 주요 수장에 앉은 것은 정부가 이를 ‘청산’하겠다는 노력을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트뤼도 총리의 경우 2015년 총선 때부터 원주민과의 화해 정책을 내세웠다. 2019년엔 원주민 여성 살해·실종에 관한 조사 결과 최종보고서를 발표하며 “오늘은 캐나다에 불편한 날이지만 중요한 날이기도 하다”며 원주민을 보듬으려 했다. 미국 역시 원주민 기숙학교에 대한 과거 조사에 착수했다. 할런드가 이끄는 내무부는 이번 조사에서 기숙학교 내 사망 규명, 희생자 묘지 보전, 원주민 공동체 지원 등을 추진한다. 이와 관련한 최종 보고서는 내년 4월 발간하는 게 목표다. 할런드는 “공동체의 정신적, 감정적 치유를 위해서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과거의 트라우마를 재조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할런드의 장관 임명 당시 한 원주민 출신 주민은 BBC에 “원주민 교육이나 부족들의 대학, 토지 문제 등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장관도 당사자로서 공감한다는 건 놀라운 일”이라며 “원주민의 목소리가 더 많이 반영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결국 ‘보여주기식’ 치적 쌓기에 지나지 않을 거란 우려도 여전하다. NYT는 “다른 원주민들에게 사이먼의 총독 임명은 감동적인 일이긴 하지만, 여전히 그 이상은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캐나다 원주민 관련 연구기관인 옐로헤드연구소의 라일리 예스노는 “캐나다 정치에서 총독의 역할은 상징적인 것”이라며 “젊은 원주민들과 많은 지도자들은 단순한 상징적 지위뿐 아니라 훨씬 더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실제 캐나다 총독은 의회 개회·정회 선언, 법안에 대한 왕실 인가, 군 최고사령관 등 몇몇 중요한 국가 업무를 맡지만, 공식 국가원수인 영국 여왕을 대리한다는 의미가 가장 크다. 이에 대해 예스노는 “트뤼도 총리가 이번 임명을 원주민과의 아주 큰 화해의 손짓인 것처럼 말하지만, 그에 대해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 계명문화대, 학생과 공감하는 교수법 연수 개최

    계명문화대, 학생과 공감하는 교수법 연수 개최

    계명문화대 교수들이 MZ세대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교수법 연수에 참여했다. 계명문화대는 지난 7일 대학 액티브러닝룸에서 전임교원과 주문식 교육을 위해 대학에 강의를 담당하는 산업체 인사 70여명을 대상으로 “학생과 공감하는 교수법 연수”를 실시했다. 교수학습지원센터에서 주관하는 이번 교수법 연수는 MZ세대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과 코로나19로 인해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줄어 교수들이 수업이나 진로지도를 하면서 종종 학생들과의 공감대 형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이를 해소하기 위해 마련됐다. 연수는 MZ세대의 이해를 주제로 한 특강에 이어 학생들과 공감하기 위한 상대방의 내적 상태 파악하기, 관심기울이기, 맞장구 쳐주기, 시선처리, 얼굴표정 등 비언어적 의사소통에 대한 실습 위주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특히 비대면 수업에 대비해 온라인에서도 언제든지 학생들과 소통, 공감할 수 있도록 마련된 ‘학습자 중심의 강의 콘텐츠 제작과 영상편집 실습’은 참가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이번 교수법 연수를 주관한 송영주 교육혁신원장은 “교육은 교육 주체자의 공감으로부터 시작된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학생들과 소통과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으며 급변하는 교육생태계에 교수자들이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씨줄날줄] 여권지수/이종락 논설위원

    [씨줄날줄] 여권지수/이종락 논설위원

    여권은 국가 간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증해 주는 서류이자 국가가 바라지 않는 사람의 출입국을 통제할 수 있는 규제 수단이다. 여권을 가진 사람은 ‘국적자’가 되는 반면 여권이 없는 사람은 ‘무국적자’가 된다. 이런 점에서 여권은 각국의 파워 지수를 나타내기도 한다. 여권 하나로 드나들 수 있는 나라가 많다는 의미는 그만큼 그 나라의 영향력과 개방성을 해외에서도 공인받았다는 것이다. 각국의 여권 파워를 평가하는 방법으로 여권지수가 곧잘 인용된다. 여권지수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자료를 바탕으로 특정 국가의 여권 소지자가 무비자로 방문하거나 입국 시 비자 발급 등 사실상 무비자로 갈 수 있는 나라가 몇 개국인지 지수화한 것이다. 국제교류 전문업체 헨리앤드파트너스가 최근 발표한 ‘헨리여권지수’에 따르면 한국 여권으로 사전에 비자를 받지 않고 갈 수 있는 나라가 191개국에 달해 글로벌 여권 순위에서 독일과 함께 3위에 올랐다. 일본 여권 소지자는 무비자로 193개국을 방문할 수 있어 2019년, 2020년에 이어 3년 연속 해당 지수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2017년 말 현재 일본의 유효 여권 수는 2976만 5640개로 일본인의 여권 보유율은 약 23.5%에 불과하다. 일본인 4명 중 1명만 여권을 가진 셈이다. 이는 여권 비율이 76%인 영국, 66%인 캐나다, 42%인 미국과 비교해 현저히 낮다. 세계 최강의 여권지수를 나타내고 있음에도 많은 일본인이 해외에 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언어 장벽이 꼽힌다. 일본인의 영어 실력은 결코 높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안심하고 여행할 수 있는 장소가 거의 없다고 여겨 해외여행을 주저한다. 또한 치안 부재를 들어 “해외여행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해외에 나가고 싶어 한다. 지난해 12월 도입된 무착륙 국제관광비행은 6개월간 1만 6000명이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항공사들은 무착륙 비행을 위해 항공기 152편을 띄웠으며, 탑승객들은 면세품을 1인당 평균 142만원어치씩 구입했다. 정부도 ‘트래블 버블’(여행안전권역) 협약을 적극 추진해 사이판에 이어 싱가포르, 대만, 태국, 스페인 등과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언론은 몇 년 전부터 젊은이들이 해외 근무나 해외여행을 꺼리는 이유에 대해 분석 기사를 내놓고 있다. 최근 일본 글로벌 기업들이 세계 무대에서 고전하는 이유 중 하나도 사원들이 해외 근무를 꺼리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외국에서의 전염병 감염 우려도 추가돼 한일 국민 간의 해외여행 선호도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 같다.
  • [부희령의 다초점 렌즈] 어설픈 개인주의자의 고백/소설가

    [부희령의 다초점 렌즈] 어설픈 개인주의자의 고백/소설가

    KBS에서 수행한 세대인식 집중 조사의 결과가 소셜미디어 공간에서 화제였다. 가장 주목을 받은 조사 결과는 ‘기회가 되면 내 것을 나눠 타인을 도울 것이다’라는 문항에 대한 20~34세 남성의 응답이었다. 유독 청년 남성 세대에서 (주관적 계층 의식이) 고소득층으로 갈수록 ‘나눌 것이다’라는 답변이 급격히 하락했다. 그보다 나는 환경 문제와 관련해 ‘환경보다 개발이 중요하다’고 응답한 20~34세 남성이 43.8%나 된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지만. 다른 세대의 남녀보다 현저하게 높은 비율이었다. 여러 전문가가 세대인식 조사의 결과를 분석·비판·해설한 글들을 흥미롭게 읽었다. 그러면서 20~34세이던 청년 시절에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새삼 돌이켜보게 됐다. 내 느낌으로는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몸도 정신도 전혀 다른 사람이다. 청년 시절의 나에게 ‘기회가 되면 내 것을 나눠 타인을 돕겠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했을까? 잘 모르겠다. 그 무렵 나는 타인이나 공동체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극단적 개인주의자였고, 모든 관심은 나 자신에게 쏠려 있었다. 성취는 오직 내 힘으로 이룬 것이고, 실패도 오직 내가 못난 탓이라 여겼다. 인간의 삶이란 비바람 몰아치는 들판을 홀로 걷는 것이고, 선택할 수 있는 생존 방식은 오직 각자도생이라고 믿었다. 자신을 비장한 운명의 주인공 자리에 세워 놓으면 세상이 온통 어두워 보이기 마련이다. 살아오면서 가장 가난하던 시절이었고, 70~80년대의 억압과 훈육으로 얼룩진 학창 시절을 거치면서 그 반동으로 타인을 지옥으로 인식했다고 변명해 본다. 한편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경제 상황은 최악이었으나 다른 조건들은 나쁘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나는 부모의 경제적 도움을 받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알고 보면 개인주의라는 것은 그래도 살 만한 사람들이 장착하는 ‘주의’이다. 관념의 세계에만 존재할 뿐 현실에서는 무의미한 말들이 있다. 이를테면 사람을 ‘써서’ 어떤 일을 한다든가, 일자리를 ‘준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현실에서는 사람을 사용할 수 없으며, 일자리는 누군가가 주는 게 아니라 일이 돼 가며 생기는 것이다. 각자도생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각자나 개인으로 존재해서는 오히려 생존할 수 없다. 신체적으로 분리돼 있다는 외적 조건 때문에 편의상 개인이라고 지칭할 뿐이다. 먹고 입고 이동하고 머무는 것 모두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의 연결망이 작동해야 가능하다. 에베레스트산 정상에서 홀로 가부좌를 틀고 있다고 해도 인간의 언어와 사유를 지속하는 한 완전히 고립된 개인은 불가능하다. 주관적 계층 의식이 저소득층인 50대 여성으로서 ‘기회가 되면 내 것을 나눠 타인을 도울 것이냐’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다. 평생 공동체의 한 구석에서 옹색하게 살아온 어설픈 개인주의자의 고백이다. 지난 세월 좌충우돌하며 깨달은 것은 공동체의 좋은 구성원이 되려면 실수하고 배우고 또 실패하고 학습하는 일을 거듭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바람직한 시민이 되고자 노력하고 싶지 않아도, 타인을 돕기 위해 내 것을 내줄 생각이 전혀 없어도 나누면서 살아갈 도리밖에 없다. 개인주의자로 살 수는 있어도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는 고립된 개인으로 살 수는 없다. 주위를 둘러 보라. 스스로 개인주의자라고 공언하는 이들도 웅성웅성 모여서 무리를 이루려 애쓰고 있음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나누는 태도뿐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마냥 움켜쥐려고 애쓸 것이고, 누군가는 기꺼이 나눌 것이다. 윤리는 의무나 당위가 아니라 인간이 존재하는 방식을 아름답게 하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름답게 살아 보자.
  • [가꾸고 나누고 다듬는 우리말] 좋은 정치의 시작은 쉬운 말/이경우 어문부 전문기자

    [가꾸고 나누고 다듬는 우리말] 좋은 정치의 시작은 쉬운 말/이경우 어문부 전문기자

    <4>정치의 언어 ㉠아무 근거 없는 마타도어. ㉡황당무계한 마타도어마저 나온다. ㉢무턱대고 마타도어를 하면 안 된다. 선거는 전쟁 같은 말들을 내뱉는다. 근거 없는 말로 남을 헐뜯어 명예나 지위를 손상시키는 ‘중상’, 사실을 왜곡하거나 속임수를 써서 남을 해롭게 하는 ‘모략’이 쏟아진다. 뜨거워지면 이 둘을 합친 ‘중상모략’이 판을 친다. 익숙한 풍경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중상모략’에 “여야가 상호 비방과 중상모략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예문이 실려 있을 정도다. 상대를 ‘중상모략’하는 게 ‘마타도어’다. ‘투우사’를 뜻하는 스페인어 ‘마타도르’에서 유래했다. 익숙한 우리말로는 ‘흑색선전’이 있다. ‘모략선전’이라고도 한다. 정치권 일부에선 이런 말들보다 ‘마타도어’를 더 그럴듯하다고 여긴다. 최근 들어 쓰기 시작한 건 아니다. 1960대에도, 70년대에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썼다. 그렇지만 일상으로 들어오진 못했고 낯설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마타도어’란 말이 나오면 무슨 뜻인지 설명해 주는 뉴스도 나온다. 소설 ‘1984’를 쓴 조지 오웰은 이런 글쓰기 원칙도 정했다. ‘대응하는 일상어가 있다면 외래어나 과학용어, 전문용어는 절대 쓰지 않는다.’ 글쓰기라 했지만, 정치의 말하기 원칙이라고 해도 무리 없겠다. ‘컷오프’도 반드시 써야 할 표현은 아니다. “탈락자는 물론 컷오프 순위와 표차”에서 ‘컷오프 순위’는 쉽게 와닿지 않는다. 정치는 말로 하는데, 말이 정치를 어렵게 한다. 참여를 외치면서 동시에 이렇게 막기도 한다. ‘예비경선 순위’라고 하면 금세 이해할 수 있다. “예비경선 후보 8명 가운데 2명을 컷오프한다”에서 ‘컷오프한다’는 ‘탈락시킨다’가 더 좋다. ‘티핑 포인트’는 생소하고 더 어렵다. ‘갑자기 뒤집히는 점’이란 뜻이다. 작은 변화들이 쌓여 가고, 그러다 작은 변화가 하나만 더 일어나도 갑자기 큰 영향을 불러올 수 있는 상태가 된 단계나 순간을 가리킨다. “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티핑 포인트’가 시작된 듯싶다.” 다른 말로 바꿔 쓸 수 없을까. ‘급변점’, ‘전환점’ 같은 말들로 쓰는 이들도 있다. 오픈 프라이머리(예비선거), 마스터플랜(종합계획, 기본계획, 기본설계), 로드맵(이행안, 단계별 이행안), 매니페스토(참공약), 규제 샌드박스(규제유예, 규제유예제도)…. 굳이 외국어에 의미를 담으려는 정치가 있다. 그런다고 새롭지 않다. 쉽고, 편하고, 분명해야 신선하게 다가온다. 좋은 정치의 출발은 쉬운 말에 있다.
  • [부고] 김대기씨 부친상, 강덕균씨 장모상, 류준형씨 장모상

    ■ 김대기(포항CBS 기자)씨 부친상 △ 김흥섭(전 경북 포항대잠초등학교 교장)씨 별세, 김중기(자영업)·김홍기(운수업)·김병기(자영업)·김대기(포항CBS 보도제작국 차장)씨 부친상, 8일 오후 4시, 포항시민장례식장 7호실, 발인 10일. 054-253-4444 ■ 강덕균(전 전남일보 편집국장)씨 장모상 △ 김연옥 씨 별세, 류창수(건우특수건설대표이사·전 대한시설물유지관리협회 광주시회장)·창식(관광통역사)·창훈(제이엠금속 대표이사)·현숙(담양동초등학교 교사)·현정(아이사랑 언어학습상담센터장)씨 모친상, 김인선(광주 남구보건소 방문보건팀장)·김정욱(MJC보석직업전문학교 상담팀장)·박용금(광주 서구청 통합돌봄팀장)씨 시모상, 강덕균(전 전남일보 편집국장)씨 장모상, 8일 오전, 광주 서구 VIP장례식장 101호, 발인 10일 오전 9시 30분. 062-521-4444 ■ 류준형(하이트진로 자문역)씨 장모상 △ 이금환씨 별세, 임춘효·미효(사회복지사)·장훈(자영업)·성효·지훈(기쁨방문요양센터장)·진효(사회복지사)씨 모친상, 류준형(하이트진로 자문역)·박형권(지에스엘 상무)씨 장모상, 8일 오전 10시, 건국대학교병원 장례식장 203호, 발인 10일 오전 11시. 02-2030-7903
  • “60년 전 美페미니즘 문학의 외침, 지금과 다르지 않죠”

    “60년 전 美페미니즘 문학의 외침, 지금과 다르지 않죠”

    섹스턴 ‘밤엔 더 용감하지’ 역자 정은귀영미문학 중심도 엘리엇 같은 男작가섹스턴, 작품에 본인 상처 그대로 담아삶에 밀착된 여성 목소리 소개 나설 것 리치 ‘우리 죽은 자들…’ 옮긴 이주혜2016년 문단 미투 통해 여성서사 갈구‘기획된 작가 ’리치도 생존 위해 애써타인 여성이 가족보다 더 이해할 수도지난해 출간된 두 권의 주목작. 미국의 여성 시인 앤 섹스턴(1928~1974)의 시집 ‘밤엔 더 용감하지’(민음사)와 에이드리언 리치(1929~2012) 산문집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바다출판사)다. ‘제2물결’이라 불리는 페미니즘 논쟁이 첨예했던 1960년대 이후 미국에서 열렬히 활동했던 두 시인의 행보는 그 자체가 ‘문제적’이었다. 아내이자 엄마, 가정의 천사로서 여성의 역할이 요구되던 시절 섹스와 낙태, 우울증, 불륜 등 금기의 소재를 가감 없이 건드린 섹스턴이 한국에 처음 소개됐다. 이성애는 강제됐다고 주장하며 성애의 범위를 심화·확장한 ‘레즈비언 연속체’ 개념을 다룬 리치의 산문이 출간된 것도 처음이었다. 섹스턴의 시집은 정은귀(52) 한국외대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가, 리치의 책은 번역가이자 소설가인 이주혜(50) 작가가 각각 우리말로 옮겼다. 이 작가는 산문집에 나오는 리치와 페미니스트 여성 시인 엘리자베스 비숍이 만난 일화에서부터 출발해 가부장제하에서의 돌봄 노동을 말하는 소설 ‘자두’(창비)를 써서 역자 후기를 대신하기도 했다. 전통적인 여성상과 불화하다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시인(섹스턴)과 세 아들의 엄마로 남편이 권총 자살하고 나서 레즈비언으로 살다 간 페미니즘 사상가(리치). 이들의 삶을 옮긴 또 다른 두 여성을 만나 ‘번역하는 삶’에 대해 들었다.-왜 오늘에 와서 그 시절 미국 여성 시인들이 한국에서 새롭게 조명될까요. 이주혜 전적으로 2015년부터 시작된 ‘페미니즘 리부트’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여성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뭔가 나아진 줄 알았는데 아직 나아지지 않은 걸 그즈음 깨달은 거죠. 문학계에서는 2016년 말부터 문단 내 성폭력에 대한 폭로가 들불처럼 일어났잖아요. 문학 독자들은 2030 여성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데, 더이상 이런 식의 흐름을 용납할 수 없는 거죠. 여성 작가의 여성 서사에 대한 갈구가 당연한 흐름이어서 한국에서도 여성 작가들이 약진해 세계로 뻗어 나갔고요. 한켠에서는 1960~70년대 미국에서 페미니즘 문학이 전성기를 구가했던 시절 여성 시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건 당연하지 않았을까요. 정은귀 지금까지 그 부분이 제대로 들려지지 않았던 거죠. 저는 영미 시를 학교에서 가르치는데, 소위 정전화된 작가들은 다 남성 시인들이에요. 한국에서는 T S 엘리엇,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현대 시사에서 양대 산맥인 것처럼요. 미국에서도 로버트 프로스트가 퓰리처상을 네 번 받을 동안 리치는 한 번도 못 받았고, 앤 섹스턴은 한 번 받았어요. 그만큼 기울어진 지면이었고요. 사실 섹스턴은 제가 3년 이상 원고를 끌어안고 있느라 늦어진 면도 있는데요. 후기를 쓰면서 생각해 보니까 엄청나게 늦었지만 시기적으로는 가장 적절한, 적시의 도착이 아니었나 싶더라고요. 10년 전에 나왔으면 안 읽혔을 거 같아요. 이 ‘적절한 도착’이라는 말이 정말 적절한 거 같아요(웃음). 리치는 남편이 죽고 나서 생계를 책임지려고 나섰는데 교수 자리에 전부 남자 시인들만 있었던 게 불만이었대요. 그래서 자기가 교수가 됐을 때는 의도적으로 여성 문인, 차별받는 위치에 있는 작가들을 더 발굴하려고 했고요. 그때 연구한 작가가 산문집에도 나오는 에밀리 디킨슨, 뮤리얼 루카이저와 제임스 볼드윈(흑인 게이로 차별 타파에 앞장섰던 민권 운동가) 같은 인물이에요. 한국 출판계에도 영향을 미쳐 작년에 루카이저 시집(‘어둠의 속도’, 봄날의책)이 처음 나왔어요. 볼드윈도 다시 나왔고요. 한국의 출판 편집자들도 사실 독자니까 이렇게 연결이 되는 거예요.-두 분이 생각하는 앤 섹스턴과 에이드리언 리치는 어떤 사람인가요. 정 두 사람 다 살고 싶은, 생명에의 의지가 여성으로서 너무 컸던 사람들이죠. 리치가 시인이 되기 위한 훈련을 많이 받은 쪽이라면, 섹스턴은 전혀 트레이닝돼 있지 않았던 인물이고요. 출산 후유증으로 양극성 장애를 앓으면서 치유를 위한 시를 썼어요.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해 물질적으로는 남부럽지 않았지만 항상 사랑이 고팠고, 엄마와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했어요. 그게 또 딸과의 관계로 전이가 됐구요(알코올 중독이었던 섹스턴의 어머니는 딸에게 질투와 비난을 일삼았고, 섹스턴은 자녀들에게 폭력도 서슴지 않았다). 번역하면서 힘들기도 하고 보람됐던 게 섹스턴은 자신의 통증을 시에 고스란히 가져오거든요. 그런 의미에서는 리얼리스트인데요. 아픈 목소리로 꺼끌꺼끌하게 표현해요. 그가 시를 써 나가는 과정 자체가 무너지고 일어나는 일상의 연속이에요. 저 또한 매일 여성으로서 부여받는 여러 역할에서 슬픔에 침잠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싸움을 벌이는데요. 섹스턴처럼 앓으면서 번역을 하는데, 이제서야 섹스턴을 소화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리치 산문집을 번역하면서 ‘정말 인간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했어요(웃음). 리치는 중산층 지식인 가정에서 영재교육을 받은 ‘기획된 작가’거든요.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여성의 삶을 본격적으로 살기 전에는 아버지의 가부장적 인식을 고스란히 답습했던 인물이고요.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들 셋을 내리 낳으면서 삶이 흔들린 거죠. 내가 원한 건 시를 쓰는 것뿐이었는데 그것조차 보장이 안 되는 삶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좌절감, 여성들은 다들 한 번씩 느끼잖아요. 거기서 분열이 시작되는 거죠. 저는 리치를 그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삶의 위치를 찾으려 했던 사람이라고 봐요. 미국의 백인 지식인 여성으로서 미국이 저지른 수많은 세계적 범죄들에 자신의 책임이 있으며, 인종차별, 인권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고 생각한 거죠. 리치는 개인과 사회 사이에는 투과막이 존재하고, 그 사이에서 삼투압 작용이 일어나며 그걸 표현한 것이 시라고 얘길 해요. 생각해 보면 섹스턴도 정치적인 책을 쓰진 않았지만 사실 그 자체로 정치적이에요. 여성의 삶 자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 그게 바로 ‘가장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잖아요. 그래서 리치도 섹스턴에 대해 “두뇌는 가부장적이지만 뼈와 피는 여성의 문제들을 익히 알고 있었던 시인”이라고 말해요. -이들의 글을 한국어로 옮기면서 특별히 신경을 쓴 부분이 있을까요. 정 저는 학생들한테 번역은 시 비평의 처음이자 끝이라는 얘기를 항상 해요. 그러나 비평가로서 과도한 해석은 안 하려고 하고요. 그래서 저는 번역할 때 최대한 윤문을 자제해요. 원문에 모호하게 표현돼 있으면 그 모호함을 살리고, 풀어 쓰기를 안 해요. 이해를 돕기 위해서 (윤문을) 하고 싶기도 하지만, 그 긴장을 끝까지 줄타기하듯 가지고 가죠. 제가 느끼는 원래 시의 목소리 결을 한국어에 담으려는 노력을 최대한 많이 합니다. 이 산문은 문장도 중요하지만 그 글의 전체적인 아이디어를 잘 살리는 게 중요하죠. 이 책 번역하는 데만 5개월 정도 걸렸어요. 제가 했던 작업 중에는 가장 오래 걸렸던 거 같아요. 내용 자체가 어렵기도 했고, 참고해야 할 자료들도 많았고요. 아까 시 번역에서 중요한 게 비평이라고 하셨는데, 산문은 이해죠. 제 선에서 이해가 안 되면 엉뚱하게 독자에게 전달이 되고, 그게 바로 오역이거든요. 특히나 리치의 주요 개념인 레즈비언 연속체,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에 관한 논쟁이 트위터 등에 있어서 이 산문을 기다리는 독자들의 존재가 실체감 있게 다가왔어요. 리치에 관해 번역된 쪽글들이 있었는데, 그것들을 참고하며 그 번역이 갖고 있는 아쉬움을 한 번 더 극복하려고 신경을 썼죠. -여성 번역가로서 여성 문인들의 삶을 옮기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정 역자로서 의식적으로 여성 시인만을 고르거나 하지는 않아요. 시를 너무 좋아하니까 번역을 하다 보면 그 시인의 시와 사랑에 빠지고 최대한 그 목소리로 갈아타는 거죠. 스스로의 경험이 언어화되는 게 시고, 가장 실험적이고 새로운 언어의 옷을 입는 게 시인데요. 남성 시인과 여성 시인의 시는 목소리가 달라요. 남성 시인들이 훨씬 더 초연한 입장에서 수사를 한다면, 여성 시인들의 시는 삶과 밀착된 정도가 다른 거 같아요. 같은 여성으로서 그 삶이 호흡하는 바를 훨씬 더 구체적으로 느끼게 되죠. 연구자·교육자로서 여성 시인들의 시를 많이 읽고 적극적으로 소개하려고도 해요. 이 저는 개인적으로 리치에게 많이 공감을 하는데요. 제가 처음으로 선택한 가족이자 가장 사랑하는 사람(남편)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결혼 생활이더라고요. 남편이 ‘나쁜 놈’이어서가 아니라 착한 사람인데도 태생적인 한계가 있는 게 결혼 제도이고 이성애 제도고요. 리치가 말하는 ‘제도로서의 모성’이 무엇인지를 제 생활에서 깨닫게 된 거죠. 그렇게 제 삶의 돌파구를 찾는 과정이 번역이었고 소설 쓰기였어요. 그래서 여성 작가들의 여성 서사를 읽었을 때 위안을 받고 이해받는다는 느낌이 있어요. ‘자두’에서도 하려고 했던 얘기지만, 정말 나를 이해하는 건 오히려 가족보다도 타인인 여성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번역할 때도 그런 ‘보이지 않는 끈’을 느껴요. 제가 그랬듯이 누군가 이 글을 조금이라도 더 정확하게 읽고 자기 삶에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다 싶어요. 그런 면에서 여성 작가의 여성 서사를 여성 번역자가 그나마 근접하게 틀리지 않고 옮길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작가님은 소설을 쓰고, 정 교수님은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시와 산문을 쓰시죠. 두 분 인생에서 번역이라는 일은 나머지 다른 삶과 어떻게 연계돼 있나요. 이 저에게 번역은 읽기로 시작해서 쓰기로 완성되는 스펙트럼이 긴 작업이거든요. 읽고 해석하고 비평해서 다시 문장으로 쓰는 그 사이클이 익숙해질 때마다 희열을 느끼고요. 그러다 보면 리치와 비숍의 일화처럼 어떤 화소(모티프)들이 저에게 다가와요. 나중에 소설이나 에세이로 발전하는 것들이요. 번역은 제게 일종의 허브 같은 거예요. 읽기에서 쓰기로 가는 긴 과정들 속에 많은 것이 뻗어 나가는. 정 진은영 시인이 제게 “시와 시를 이어 주는 다리”라는 말을 했어요. 저는 시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저는 모든 시를 읽을 때 머릿속에서 매번 한국어와 영어를 가지고 더블플레이를 해요. 두 언어 사이의 한계를 항상 느끼고, 번역한 게 만족스럽지만은 않지만 그 생각에서도 놓여나려고 노력을 해요. 마지막 마침표를 찍고 나면 번역은 번역의 운명이 있다고 생각해요. 번역도 딱 제 나이, 이 시점에서의 읽기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무거운 느낌에서 약간 놓여난다고 할까요. 읽는 경험을 나눔으로 만드는 게 번역이고, 그걸 조금 더 행복하게 하고 싶어요. 어렵지만.
  • 다문화가족 20명 한국어·부모나라 말 실력 겨룬다

    다문화가족 20명 한국어·부모나라 말 실력 겨룬다

    경기도는 오는 10일 오후 1시 경기도인재개발원에서 ‘제12회 전국 다문화가족 말하기대회’ 본선을 개최한다고 8일 밝혔다. 경기도는 결혼이민자와 다문화가족 자녀의 한국어 학습 동기 부여와 글로벌 인재 양성을 위해 ‘전국 다문화가족 말하기대회’를 2009년부터 매년 열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비대면 온라인 경연으로 진행된다. 지난 6월 예선을 거쳐 결혼이민자의 ‘한국어말하기’와 다문화 자녀가 한국어·부모나라언어로 말하는 ‘이중언어말하기’ 등 2개 부문에서 10명씩 총 20명이 본선에 참가한다. 참가자들은 자유 주제 3분 이내로 한국 생활 적응기, 꿈과 미래에 관한 이야기,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 등을 말하게 된다. 부문별 최우수 1명, 우수 2명, 장려 2명, 입상 5명에게 경기도지사 상장이 수여된다. 이날 대회에서는 몽골 출신 다문화인 샌드아티스트 박자야가 ‘이중언어와 또 다른세상’을 주제로 공연하고, 경기아트센터 ‘라온’팀의 현악4중주 오케스트라 연주 등 축하공연이 열린다. 또한 실시간 심사가 집계되는 동안 나만의 ‘미니정원 만들기’ 체험 활동 등 즐길 거리를 준비했다. 최영묵 경기도 가족다문화과장은 “이번 대회가 결혼이민자의 한국어 말하기능력 향상과 다문화가족 자녀의 부모나라언어의 정체성을 세우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며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종식돼 내년 다문화가족 말하기대회는 현장에서 생동감 넘치는 경연으로 펼쳐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회에서는 안성시의 결혼이민자 팜뉴뉴가 ‘아빠 같은 남편’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어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또 시흥시 설동진 학생이 ‘시흥, 내고향 사랑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이중언어 부문 최우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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