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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광장] 면피 바이러스 백신 필요하다/박대출 논설위원

    [서울광장] 면피 바이러스 백신 필요하다/박대출 논설위원

    그들은 분노했다. 수년 동안 울부짖었다. 이건 제도권의 몫이었다. 검찰, 경찰, 법원, 교육당국 그리고 언론…. 다들 외면했다. 시민단체, 작가, 영화감독이 대신 나섰다. 소설로, 영화로 만들었다. 열풍이 불었다. 면피(免避) 본능이 꿈틀댄다. 아예 책임 회피 경쟁이다. 판사는 법 조항을 핑계댄다. 검사는 변호사를 탓한다. 하지만 변호사만 제 몫을 했다. 인화학교 교사들의 청각장애 학생 성폭력 사건. 이른바 도가니 사건의 역설이다. 불편하지만 진실이다. 정작 청각장애는 제도권에 있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했다. 닫았던 귀를 이제야 연다. 뒤늦게 흥분한다. 후회하고, 개탄한다. 제2의 도가니를 막겠다고 부산을 떤다. 뒷북치기로 이어진다. 국회에선 법을 만들겠단다. 대법원장은 충격이란다. 법원은 양형기준을 바꾼다. 경찰청장은 재수사를 지시한다. 정부는 위원회를 만든다. 교육청은 학교를 폐쇄한다. 이국철이란 기업인이 연일 폭로하고 있다. 현 정권 실세에게 금품을 줬단다. 청와대는 소설 같은 얘기란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똑같은 말을 했다. 청와대는 권력형 비리와는 다르단다. 개인 비리란다. 권력형 비리와 권력층 비리는 다른가. 한나라당이 놀랐다. 청와대를 압박한다. 그러자 대통령이 나섰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란다. ‘난 도덕적이다.’는 객관적이 아니다. 국민이 인정해야 객관적이다. 당사자에겐 불편하겠지만 그게 진실이다. 검찰은 증거 없다며 팔짱을 꼈다. 교육감에겐 빠르더니, 실세에겐 신중하다. 대통령이 한마디 하자 나선다. 대통령 발언이 증거가 된 꼴이다. 면피엔 금역(禁域)이 없다. 바이러스처럼 퍼졌다. 우면산 재해는 천재(天災)라고 한다. 고물가, 전·월세난에 책임 공유가 없다. 책임 전가(轉嫁)만 있다. 군은 연평도 포격을 맞고도 여전하다. 도가니는 총체적인 분노다. 면피공화국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다. 안철수 바람은 경고다. 무시하면 시스템은 다운된다. 경고가 백신으로 쓰일지도 모른다. 재벌이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했다. 재단과 연관된 또 다른 단체가 있다. 재벌 감시를 하는 곳이다. 재벌이 기부할 데는 널렸다. 하필이면 왜 그 재단에 줬을까. 착한 데 쓰고, 잘봐 달라는 뜻이 아닐까. 이왕 기부할 거, 그곳에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충분히 해볼 만한 의심이다. 기부한 뒤 비판이 줄었다. 의심은 짙어진다. 등기도 안 된 회사가 있다. 대기업 공사를 수주했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간 격이다. 대기업 담당 임원은 회사 대표의 언니 남편이다. 역시 의심은 당연하다. 깨끗하게 썼다고 항변한다. 그러면 일단은 좋은 거다. 재벌 돈을 가난한 이들에 나눴으니 더 좋은 거다. 그게 전부는 아니다. 과정도 따져봐야 한다. 목적이 선(善)이라고, 수단은 묻지도 말라는 건 억지다. 재벌이 의도한 바가 있다면, 착한 기부는 아니다. 그 돈을 착한 데 썼다고, 의도까지 착해지는 건 아니다. 목적도, 수단도 정당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특혜 논란도 마찬가지다. 상식에 기초한 의심들이다. 이를 부정하면 역시 면피 바이러스 감염이다. 경쟁후보가 사퇴했다. 곽노현은 야권 단일후보가 됐다. 교육감에 당선됐다. 사퇴한 이에게 돈을 줬다. 상관관계가 있다. 그런데 선의(善意)라고 한다. 옥중에서도 변함없다. ‘난 착하다.’는 객관적이 아니다. 중국집 배달원이 돈을 줬다. 가난한 이들이 받았다. 상관관계가 없다. ‘난 착하다.’고 할 필요도 없다. “넌 착하다.”고 인정해준다. 자신이 주장하는 선의로는 면피가 안 된다. 그래도 면피하려 들면 역시 감염된 탓일 게다. 정치는 정당의 소임이다. 시민후보가 대신하겠단다. 정치의 위기다. 시민단체는 감시가 소임이다. 그들이 정치를 하면 감시는 누가 하나. 유행어처럼 소는 누가 키우나. 경계를 벗어났다. 책임의 일탈이자, 권한의 일탈이다. 제자리에서, 제 몫을 해야 된다. 이게 면피 바이러스를 막는 내부 백신이다. 허튼짓을 계속하면 도리 없다. 외부 백신이 나설 수밖에. dcpark@seoul.co.kr
  • 전남 광양 vs 경남 하동 ‘재첩 싸움’

    재첩 채취 구역을 둘러싸고 섬진강과 접한 전남 광양과 경남 하동 주민들이 마찰을 빚고 있다. 반면 전남 진도군 고군면과 해남군 송지면 사이에 있는 마로해역 양식어민들의 ‘바다 영토 분쟁’은 17년 만에 극적으로 해결됐다. 광양시는 최근 진월면 월길리와 다압면 원동리 마을 어촌계 어민들이 마을 앞 섬진강에 서식하는 재첩 채취 과정에서 강건너 하동군 광평리 어촌계 어민들이 광양쪽 채취 구역을 침범했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하동 주민들이 20여년을 지켜온 채취 구역을 하루아침에 침범하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며 즉각 이 구역에서 채취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분쟁이 발생한 곳은 1993년 당시 전남과 경남의 도 경계로 새마을양식계 관리구역을 배정받아 재첩 채취를 해 오던 곳이다. 양행호(66) 월길리 어촌계장은 “지난달 중순쯤 광평리 어촌계에서 자신들의 채취구역을 되찾겠다며 광양 쪽 채취 구역을 70여m나 침범하고 부표를 설치해 이에 강력히 항의하고 당일 바로 부표를 철거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강 가운데를 도 경계로 수십년 동안 아무런 마찰 없이 재첩을 잡아왔는데 하동 쪽 어촌계가 사적으로 측량을 한 뒤 자신들의 구역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라고 분개했다. 그러나 하동군 광평리 어민들은 “도 경계로 된 업무구역을 보면 경계구역이 하동군에 불리하게 돼 있다.”며 “시간이 지났지만 측량을 다시 제대로 해 그동안 잃어버린 구역을 되찾을 방침”이라고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삶의 터전과 관련된 분쟁의 골이 깊어진 곳만 있는 건 아니다. 진도군 고군면과 해남군 송지면 양식어민들 간의 김 양식장 분쟁은 17년 만에 극적으로 해결돼 상생의 신호탄을 올렸다. 해남 어민들은 분쟁의 대상이었던 김 양식장 1370㏊에 대해 오는 2020년까지 채취권을 행사하고, 진도군은 신규로 같은 면적(1370㏊)의 면허를 받는 것을 골자로 광주지법 해남지원에서 합의했다. 이로써 면허지 확대와 합법적인 채취가 가능해진 덕에 100억원의 소득이 증대할 것으로 기대된다. 두 지역의 김 양식장 분쟁은 1980년대 초 해남 어민들이 진도 바다로 넘어가 김 양식을 하다가 진도 어민들이 반발하면서 시작, 진도대교 점거 농성 사태까지 벌어지는 바다 영토권 싸움으로 비화됐다. 무안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기고] 간호등급제, 생명 지키는 기본정책/조규숙 대한간호협회 대외협력특별위원장

    [기고] 간호등급제, 생명 지키는 기본정책/조규숙 대한간호협회 대외협력특별위원장

    2011년 한국사회에서 의료소비자의 주권이 강화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들은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특히 질 높은 간호, 안전한 간호를 받아야 하는 당연한 권리를 영문도 모른 채 빼앗기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환자들이 질 높고 안전한 간호를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있다. 바로 1999년부터 도입된 간호등급차등제가 그것이다. 간호등급차등제는 의료기관에서 간호사 수를 얼마나 확보하고 있느냐에 따라 1~7등급으로 구분해 건강보험수가(간호관리료)를 차등지급하는 제도다. 간호사 한 명이 적정한 수의 환자를 맡아 충분한 간호를 제공했을 때 나타나는 성과, 즉 간호등급제 도입에 따른 성과는 국내외 여러 연구결과에서 입증되고 있다. 환자 안전 측면뿐 아니라 환자들의 만족도 조사에서도 높은 결과를 얻었다. 간호사들의 직무만족도 또한 향상됐다. 간호등급제에 참여하고 있는 의료기관은 올 2분기 기준으로 상급종합병원 100%, 종합병원 96%, 병원 22% 수준이다. 문제는 참여률이 매우 저조한 병원급 의료기관이다. 이들 병원을 이용하는 국민들은 아무 이유 없이 국가가 공인하는 ‘면허 간호사’(Registered Nurse)로부터 간호 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으며, 이는 공정사회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특히 일부에서 간호등급차등제가 의료 서비스를 양극화해 국민의 건강권을 박탈시킨다는 억지 주장을 늘어놓고 있다. 의료기관이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간호사를 더 채용하라고 장려하는 제도인 간호등급차등제가 만약 의료 서비스 양극화를 초래했다면 양극화의 한 극단에 있는 의료기관이 제대로 의료 서비스를 수행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에, 국민 건강 측면에서 그 의료기관은 퇴출되어야 마땅하다. 또한 간호등급제 인력기준에서 간호보조인력이 제외된 것이 문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보험인 건강보험은 균등한 기준의 서비스에 대해 합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의료인과 의료인이 아닌 인력을 같은 제도 내에서 보상을 한다는 것은 법적으로나 사회보험제도 입장에서 볼 때 용납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의료법에 의료인이 아닌 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의료 서비스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은 의료행위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만약 의료인이 아닌 자의 서비스에 건강보험이 보상을 한다면, 국민의 건강권 박탈뿐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 또한 파탄날 것이다. 간호등급제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조치이다. 법정간호인력보다 낮게 설정된 현행 간호관리료 기준등급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간호등급제는 최상의 전문인력으로부터 간호 서비스를 받기 원하는 국민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건강권을 보장하려는 필수조치이며, 선진사회가 되는 데 필요한 기본 조건이다. 의료는 노동집약적인 분야이므로 중소병원이 중장기적으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의료인력에 대한 투자가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눈앞의 이익만 좇다가는 국민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편법으로 인력을 활용하고 수익을 올리려는 방식으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 [WHO&WHAT] 무궁무진한 미래 사극 주역들

    [WHO&WHAT] 무궁무진한 미래 사극 주역들

     등장인물이 칼에 찔리거나 물에 빠진다. 거의 매회 생명의 위기를 맞고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장면이 되풀이되지만 보는 사람들은 이미 그가 역경을 극복하고, 죽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심지어 그가 품은 꿈이 어떤 형태로 이뤄지는지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반면 때가 되면 누가 원해도 주인공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다. 비극을 희극으로 바꿀 수도 없고, 삼각관계의 결말도 정해져 있다. 드라마라면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는 ‘시청자의 요청’이나 ‘여론’도 통하지 않는다. 바로 끝이 정해진 드라마 사극의 운명이다.  사실과 허구를 교묘하게 엮어야 한다는 점에서 사극은 줄타기에 가깝다. 김종서와 수양대군이 사실은 사돈이었다는 줄거리로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렸던 드라마 ‘공주의 남자’는 김종서의 손자와 수양대군의 딸이 연인이었다는 몇 줄의 야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그들 가문의 족보로 보면 엄연한 허구다.  이순신 장군을 한산대첩에서 미리 전사시키거나 명성황후가 사실은 살아있다는 식의 무리수만 두지 않는다면 사극은 무한한 상상력이 보장된다. 특히 주인공을 바꾸거나 조금만 틀어본다면 무궁무진한 시나리오를 얻을 수 있다. 역사는 승자의 시각에서 쓰이지만, 사극은 그렇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왕의 여자, 왕이 되지 못하고 스러져간 세자는 물론 아무런 공헌도 남기지 못하고 살다갔다는 기록만 남긴 사람도 얼마든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 사극이다. 수백년간 ‘성춘향과 이몽룡’의 시각에서 쓰인 춘향전이 방자의 시각에서 쓰이기만 해도 얼마나 달라지는지 이미 영화 ‘방자전’을 통해 입증되지 않았는가.  이번주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에서는 미래에 영화나 드라마의 중심이 될 사극의 주인공들을 찾아봤다. 시놉시스를 통해 이미 만들어진 사극에서는 주인공의 주변인, 엑스트라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려졌던 그들의 시각에서 역사를 한번 들여다보자.  드라마나 책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세종의 둘째딸 정의공주는 한글 창제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는 얘기가 그녀의 시가였던 죽산 안씨 문중 문헌에 기록돼 있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들의 공으로만 알고 있는 한글 창제에 조선시대의 공주가 관여했다는 것은 누구나 흥미를 가질 만한 소재다. 정의공주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가 생기지 않는가.  조선왕조 518년간 27명의 왕이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왕이 되지 못한 세자 11명이 있었다. 장자 계승을 토대로 한 유교적 사상이 지배했지만, 정작 맏아들이 왕위를 이은 것은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등 6명에 불과하다. 순종은 요절한 형이 있는 차남이었다. 왕후 자리는 ‘국모’로 불리며 절대 비워서는 안 되는 자리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29년이나 세자의 자리에 있었던 문종은 세자 시절 두 명의 세자빈을 폐위시켰고, 홀로 왕위에 올라 세자빈을 왕후에 추증한 유일한 홀아비 왕이었다. ‘왜’라는 궁금증을 품으면 스토리가 될 소재는 얼마든지 있다. 여기 세 가지의 스토리를 꺼내봤다.    [심양의 왕자들] 청나라 볼모 8년… 소현·효종 형제와 그들 부부의 불운했던 삶  ●주요 등장인물  소현세자 이왕/세자빈 강씨/효종/효종비 인선왕후/인조/인조의 후궁 조소용  ●극적 요소  조선의 세자 27명 중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우유부단한 형 소현세자와 강인했지만 꿈을 이루지 못한 동생 효종 형제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 남편만큼 불행했던 소현세자빈 강씨와 남편보다 더욱 강건했던 인선왕후의 시각에서 풀어간다.  ●시놉시스  스물네 살이 되어서야 세자로 봉해진 소현세자는 결혼 8년 만에 후사를 보지만 불과 몇 달 뒤 병자호란이 터진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의심 많은 아버지 인조는 전쟁 과정에서 신하들에게 책임을 미루는 무책임한 군주의 모습을 보이기 일쑤였고, 세자에게도 항상 짜증 섞인 태도로 일관한다. 삼전도의 굴욕과 함께 세자는 아버지와 대신들의 강권에 의해 “자진해서 적국에 볼모로 가겠다.”고 말해버린 후 울음을 터뜨리는 유약한 모습이었다. 세자 부부는 동생 봉림대군(훗날의 효종) 부부와 함께 볼모살이를 떠난다. 가는 길에 청나라 군대가 조선의 여러 고을을 약탈하고, 백성들을 노비로 끌고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세자는 무력감을, 봉림대군은 분노를 느낀다. 그러나 정작 청나라에 도착한 후 세자는 돌변한다. 이국에서의 고생으로 몸은 무너져 갔지만 조국의 운명을 어깨에 짊어진 세자로서의 책임감은 점차 커져간다. 반면 세자빈은 오랜 타국생활을 겪으면서 조선에서 건너온 물건을 팔아 재산을 모으기 시작한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인조는 아들과 며느리를 불신하고 점점 더 싸늘한 시선을 보내게 된다. 볼모살이 8년 만에 돌아온 세자를 인조는 ‘오랑캐 물이 들었다.’며 만나 보려고도 하지 않았고, 급기야 황제의 하사품이라며 세자가 내민 벼루를 세자의 머리를 향해 집어던졌다. 결국 귀국 두 달 만에 세자는 인조와 애첩인 조소용에 의해 독살당하고 만다. 인조는 예비 국모의 체통을 내팽개친 며느리도 가만두지 않았다. 인조의 수라상에 오른 전복구이에 독이 들었다는 누명을 씌워 세자빈 강씨를 폐위시켜 죽이고 만다.  청나라의 문물에 관심을 두고 배우려고 했던 형과 달리 봉림대군은 오로지 병자호란의 복수에만 관심이 있었다. 형의 죽음 이후 세자에 책봉되어, 효종이 된 봉림대군은 북벌을 위해 궁중 살림을 극도로 긴축했고, 인선왕후 역시 이에 앞장섰다. 인선왕후는 병자호란 당시 피신한 강화도에서 오랑캐에게 잡힐 처지가 되자 자결하려고 했고, 볼모살이 후 돌아와 왕후가 되자 청나라의 첩자 노릇을 하던 김자점과 조소용의 역모를 밝혀내 처단한 여걸이었다. 하지만 효종은 순치제의 등장으로 청나라가 더욱 강해지면서 북벌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죽었고, 인선왕후는 아들 현종이 그 뜻을 이루기를 바랐지만 현종은 그럴 뜻이 없었다. 결국 8년간이나 굴욕의 세월을 보낸 왕가의 형제와 그 부인들은 마지막까지 뜻하는 바를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비운의 주인공들이 되고 만다.    [7일의 행복, 영원한 이별] 7일만에 폐위 단경왕후… 50년 넘도록 중종만을 그리며  ●주요 등장인물  단경왕후 신씨/중종  ●극적 요소  조선왕조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왕후로 단종비 정순왕후와 중종의 첫 번째 부인 단경왕후 신씨를 꼽는 이들이 많다. 왕의 이복동생에서 한순간 왕이 된 남편과, 남편을 왕으로 만든 세력에 의해 아버지를 잃고 왕후 자리를 내놓아야 했던 비운의 여성. 그리고 그녀를 향한 임금의 순애보가 담긴 치마바위 이야기.  ●시놉시스  성종은 왕비였던 윤씨가 연산군을 낳고 폐위된 후 세 번째 왕후로 정현왕후 윤씨를 맞아 진성대군을 낳았다. 진성대군은 12살 때 13세인 신수근의 딸과 결혼했다. 왕이 되지 못하는 대군의 생활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아야 하는 것이었고, 이들 부부 역시 이를 충실하게 지켰다. 특히 연산군이 폭군으로 변하면서 사람들은 진성대군에게 관심을 쏟기 시작했고, 진성대군은 더욱 은인자중했다. 어느 날 밤, 여러 장수와 조정 대신들이 진성대군의 집에 들이닥쳤다. 횃불을 켜 든 이들은 “반정을 일으켰으니, 대군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인 것을 알게 된 대군 부부는 조용히 결과를 기다렸고, 그 결과 하루아침에 왕좌에 올라 중종이 됐다. 왕비가 됐다는 기쁨을 누리고 있던 다음 날 아침, 단경왕후에게 급작스러운 소식이 날아든다. 아버지 신수근이 전날 밤 반정군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신수근의 여동생은 연산군의 비였고, 폐주의 처남인 아버지가 죽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만 했다. 모든 가족들이 반정군에게 죽임을 당하고, 노비로 끌려가는 와중에도 단경왕후는 정신을 추스르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중종이 보위에 오르고 7일이 지나자 반정 공신들은 단경왕후의 폐위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중종과 단경왕후는 보기 드물게 의좋은 부부였지만 칼로 정권을 잡은 반정 공신들 앞에서 그는 무력했다. 결국 단경왕후는 폐위돼 사가로 나가야 했고, 이때 중종은 19세, 왕후는 20세였다. 중종은 새로운 왕비 간택을 1년 가까이 미뤘지만, 신하들의 압박에 장경왕후 윤씨를 새 왕비로 맞았다. 그러나 중종은 항상 인왕산 산자락을 바라보면서 단경왕후를 그렸다. 이를 전해들은 신씨는 인왕산 바위에 자신의 분홍치마를 펼쳐놓고 남편이 자신을 잊지 않기를 바랐다. 10년 후 장경왕후가 원자를 낳고 죽자 일부 대신들이 다시 단경왕후를 불러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반정 공신들의 힘은 여전히 막강했고, 결국 신씨는 잊혀졌다. 고작 7일간의 왕후 생활을 하고 스무 살에 왕궁에서 쫓겨난 단경왕후는 무려 71세까지 50년 넘게 남편만을 그리며 살았다.    [왕궁의 스캔들] 조선 최초 세자 이방석은 여색에 빠지고 세자빈은 불륜을  ●주요 등장인물  이방석/이성계/태종/정도전/세자빈 유씨/이만  ●극적 요소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 국정의 기틀을 잡은 강인한 왕 태종과의 관계에서 희생양이 된 조선 최초의 세자 이방석. 어린 나이에 형에게 목숨을 잃기까지 자신의 의지는 아무것도 없었던 불운한 그와, 조선왕실 최초의 스캔들을 일으킨 세자빈 유씨를 통해 왕실의 비틀어진 모습을 들여다본다.  ●시놉시스  북방의 무인 이성계는 두 번째 부인 강씨(신덕왕후)와의 사이에서 48세에 막내아들을 본다. 방석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 아이는 조선이 개국했을 때 11세였고, 한 달 만에 조선 최초의 세자에 책봉된다. 어머니 신덕왕후와 개국공신들이 장성해 사병을 가진 이방원(태종)과 이방간 등을 경계한 덕분이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장군이 되겠다는 꿈을 꿨던 방석은 본인의 자리를 탐탁지 않아 했다. 총명하지 않은 방석은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고, 어느새 여색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궁궐을 나서 기생집에 가고, 사냥 대신 민간의 가축을 쏘아 죽이는 일도 허다했다. 한편 방석에게는 나이가 한참 많은 세자빈 유씨가 있었다. 어린아이와 결혼해 억지로 궁궐에 끌려온 유씨는 마음 줄 곳을 찾지 못하다가 궁궐의 내시 이만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철없는 망나니 방석보다는 정감 있고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 주는 이만에게 마음이 끌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개국 초기, 궁궐 안팎이 어지러운 상황에서 몰래 불륜을 이어가던 이들의 행동은 결국 태조에게 발각되고, 끝을 맞게 된다. 태조는 이만을 참수하고 세자빈은 폐서인해 사가로 내쫓았다. 조선왕조에 처음으로 기록된 불륜스토리의 결말이었다.  방석을 앞세운 정도전 등 일부 개국공신들은 태조의 장성한 왕자들이 거느린 사병이 거슬리기 시작한다. 결국 정도전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요동 정벌을 기획했고, 왕자들이 사병 차출을 거부하자 관직을 빼앗고 사병까지 몰수했다. 그러나 불과 17일 만에 이방원은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고, 태조에게 세자 폐위를 요구했다. 경각에 달린 방석의 목숨을 살려 주는 조건으로 태조는 영안군(정종)을 세자로 삼았다. 그러나 방석은 대궐 밖으로 나서는 순간 이방원 일가의 칼을 맞고 스러졌다. 임금의 적자였던 방석이 ‘대군’의 위치를 돌려받은 것은 그로부터 270여년이 흐른 숙종 6년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올라, 자유로움을 갈망하던 철부지 세자는 ‘조선왕조의 첫 세자’이자 ‘권력투쟁의 희생양’으로만 남았다. 폐서인된 세자빈 유씨가 그 후 어떻게 살았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조선을 뒤흔든 16인의 왕후들(이수광·다산북스)  왕을 낳은 후궁들(최선경·김영사)  왕이 못된 세자들(함규진·김영사)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박영규·들녘)  정의공주(한소진·해냄출판사)  소현세자(박안식·예담)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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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장보선 D-15] 나경원·박원순 첫 토론… 서로 아킬레스건을 찌르다

    [서울시장보선 D-15] 나경원·박원순 첫 토론… 서로 아킬레스건을 찌르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격돌하는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와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10일 첫 토론 대결을 벌였다. 두 후보는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총무 정병진 한국일보 수석논설위원) 초청 서울시장 후보 토론회에 참석해 정책·자질을 놓고 열띤 공방을 주고받았다. ■ 병역기피 의혹 토론회 시작 전만 해도 연단에서 손을 맞잡고 길을 양보하며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인 두 후보는 그러나 토론 시작과 동시에 날 선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박 후보에 대해서는 병역의혹과 안보의식, 기업의 거액 기부 논란이, 나 후보에 대해서는 사학법 개정 반대 전력 논란과 탤런트 정치인 논란, 무상급식에 대한 견해 등이 도마에 올랐다. 한강 르네상스 사업 등 오세훈 전 시장의 시정에 대해서도 평가가 엇갈렸다. 먼저 박 후보는 작은할아버지의 양손으로 입적돼 6개월 보충역 판정을 받은 게 병역기피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적극 해명했다. 박 후보는 “13세 때 일이었는데 제가 어떻게 알았겠냐.”면서 “일제시대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에 가신 작은할아버지의 제사를 대신 지내도록 입적된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양손 입적이 현행법상 무효라는 한나라당 지적에는 “1987년 양손 입적은 잘못된 것이라는 판례가 나왔는데 오히려 그 이전엔 광범위하게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면서 “이게 60년대 일이다. 시골에서 대가 끊기는 경우가 있으면 양자 가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 사학법·재산 논란 나 후보는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전력에 대해 부인했다. 부친이 사학 재단을 소유해 법 개정을 반대했다는 주장에 대해 “법 개정 당시 객관성을 의심받을까봐 의원총회에서 발언도 하지 않았고 교과위에도 참여하지 않았다.”면서 “당론이 결정된 이후 적극 참여해 사학법 개정에 반대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화 ‘도가니’ 개봉 이후 사학법 등이 한나라당 반대로 개정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렇지 않다.”면서 “개정안은 개방형 이사 참여로 건학 이념이 실현되지 못하고 전교조의 학교 장악 의도가 담겨 있었다.”면서 “개방형 이사와 사회복지법 개정안의 공익이사는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2004년 첫 재산신고 때 18억원이던 재산이 2011년 40억원으로 배 이상 증가한 데 대해선 “새 재산을 취득한 부분은 없고 주택가액 상승, 갖고 있던 건물의 시세차액 때문”이라고 답했다. 후보들은 예민한 지점에 대해서는 교묘하게 피해 가는 언변도 구사했다. 일명 ‘박근혜 효과’(박 전 대표의 선거지원으로 지지도가 올라가는 효과)를 어떻게 전망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나 후보는 “예상은 예상이기 때문에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전제한 뒤 “이번 선거가 자꾸 정치선거로 가는 게 안타깝고 서울시 미래 비전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여당이 박근혜 효과를 위해 복지당론까지 바꿨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중요한 것은 친이·친박이 하나 된 선거대책위가 국민에게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받아쳤다. ■ 정체성·기부금 공방 때론 서슴없는 정공법도 나왔다. 나 후보는 “박 후보가 상임집행위원장을 지낸 참여연대에서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라는 정부 발표를 믿을 수 없다는 서신을 유엔에 보냈다.”면서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라고 믿느냐 안 믿느냐.”고 물었다. 이에 박 후보는 “저는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이라고 믿는다.”면서도 “그러나 정부를 신뢰하지 못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상당수다. 정부가 왜 신뢰를 잃었는지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나 후보는 물러서지 않고 “참여연대 출신 중 캠프에 같이 다니는 분이 있지 않느냐.”고 따졌다. 이에 박 후보는 “제가 참여연대를 떠난 지 10년이 넘었다. 그런 주장은 좀 억지스럽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두 후보는 2009년 용산 철거민 참사를 예로 들며 사회적인 갈등 조정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했다. 박 후보가 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 시절 대기업에서 받은 기부금도 도마에 올랐다. ‘아름다운 재단 모금 액수가 2003년 123억여원으로 1년 사이 6배나 뛰었다. 기업의 다른 목적을 의심해 보지 않았느냐.’는 지적에 박 후보는 “한 푼이라도 허투루 썼다든지 개인 용도로 가져갔다든지 하면 지적할 가치가 있지만 가장 적합한 곳에 쓰면 문제 삼을 바 아니다.”면서 “아름다운 재단은 기부문화의 상징이며 기부문화를 바꿔 놓았다. 목적과 수단 모두 정당했다.”고 강조했다. ■ 서울시 정책 대립 이날 저녁 SBS에서 생중계된 TV 토론회에선 나 후보의 ‘비강남권 재건축 연한(40년) 규제 완화’ 공약이 논쟁거리였다. 재건축 연한을 40년에서 20년으로 축소하겠다는 데 대해 박 후보는 “전·월세난 속에서 엄청난 폭탄발언”이라면서 “투기만 조장하고 결국 뉴타운 사업처럼 되고 말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나 후보는 민간이 주도하는 재건축사업과 공공이 주도하는 뉴타운 사업과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그는 “노원이나 도봉 등 강북권의 지은 지 30년 이상된 아파트에 가 보셨느냐.”고 물은 뒤 “부족한 주차시설, 녹슨 배관 등 주민들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에 지나친 규제를 완화시켜 주자는 취지이고, 재건축 여부는 주민들이 판단토록 하면 된다.”고 응수했다. 서울시 재정건전성 회복, 수중보 철거 등 정책 사안을 둘러싸고도 첨예한 입장 차를 보였다. 나 후보는 한강 수중보 철거와 관련한 박 후보의 말 바꾸기를 문제 삼았고, 박 후보는 공약으로 내걸지도 않은 내용을 가지고 나 후보와 한나라당 지도부가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다고 역공을 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WHO&WHAT] 미래 사극의 주인공을 만나다

    [WHO&WHAT] 미래 사극의 주인공을 만나다

     등장인물이 칼에 찔리거나 물에 빠진다. 거의 매회 생명의 위기를 맞고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장면이 되풀이되지만 보는 사람들은 이미 그가 역경을 극복하고, 죽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심지어 그가 품은 꿈이 어떤 형태로 이뤄지는지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반면 때가 되면 누가 원해도 주인공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다. 비극을 희극으로 바꿀 수도 없고, 삼각관계의 결말도 정해져 있다. 드라마라면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는 ‘시청자의 요청’이나 ‘여론’도 통하지 않는다. 바로 끝이 정해진 드라마 사극의 운명이다.  사실과 허구를 교묘하게 엮어야 한다는 점에서 사극은 줄타기에 가깝다. 김종서와 수양대군이 사실은 사돈이었다는 줄거리로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렸던 드라마 ‘공주의 남자’는 김종서의 손자와 수양대군의 딸이 연인이었다는 몇 줄의 야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그들 가문의 족보로 보면 엄연한 허구다.  이순신 장군을 한산대첩에서 미리 전사시키거나 명성황후가 사실은 살아있다는 식의 무리수만 두지 않는다면 사극은 무한한 상상력이 보장된다. 특히 주인공을 바꾸거나 조금만 틀어본다면 무궁무진한 시나리오를 얻을 수 있다. 역사는 승자의 시각에서 쓰이지만, 사극은 그렇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왕의 여자, 왕이 되지 못하고 스러져간 세자는 물론 아무런 공헌도 남기지 못하고 살다갔다는 기록만 남긴 사람도 얼마든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 사극이다. 수백년간 ‘성춘향과 이몽룡’의 시각에서 쓰인 춘향전이 방자의 시각에서 쓰이기만 해도 얼마나 달라지는지 이미 영화 ‘방자전’을 통해 입증되지 않았는가.  이번주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에서는 미래에 영화나 드라마의 중심이 될 사극의 주인공들을 찾아봤다. 시놉시스를 통해 이미 만들어진 사극에서는 주인공의 주변인, 엑스트라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려졌던 그들의 시각에서 역사를 한번 들여다보자.  드라마나 책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세종의 둘째딸 정의공주는 한글 창제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는 얘기가 그녀의 시가였던 죽산 안씨 문중 문헌에 기록돼 있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들의 공으로만 알고 있는 한글 창제에 조선시대의 공주가 관여했다는 것은 누구나 흥미를 가질 만한 소재다. 정의공주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가 생기지 않는가.  조선왕조 518년간 27명의 왕이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왕이 되지 못한 세자 11명이 있었다. 장자 계승을 토대로 한 유교적 사상이 지배했지만, 정작 맏아들이 왕위를 이은 것은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등 6명에 불과하다. 순종은 요절한 형이 있는 차남이었다. 왕후 자리는 ‘국모’로 불리며 절대 비워서는 안 되는 자리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29년이나 세자의 자리에 있었던 문종은 세자 시절 두 명의 세자빈을 폐위시켰고, 홀로 왕위에 올라 세자빈을 왕후에 추증한 유일한 홀아비 왕이었다. ‘왜’라는 궁금증을 품으면 스토리가 될 소재는 얼마든지 있다. 여기 세 가지의 스토리를 꺼내봤다.    ##심양의 왕자들  ●주요 등장인물  소현세자 이왕/세자빈 강씨/효종/효종비 인선왕후/인조/인조의 후궁 조소용  ●극적 요소  조선의 세자 27명 중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우유부단한 형 소현세자와 강인했지만 꿈을 이루지 못한 동생 효종 형제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 남편만큼 불행했던 소현세자빈 강씨와 남편보다 더욱 강건했던 인선왕후의 시각에서 풀어간다.  ●시놉시스  스물네 살이 되어서야 세자로 봉해진 소현세자는 결혼 8년 만에 후사를 보지만 불과 몇 달 뒤 병자호란이 터진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의심 많은 아버지 인조는 전쟁 과정에서 신하들에게 책임을 미루는 무책임한 군주의 모습을 보이기 일쑤였고, 세자에게도 항상 짜증 섞인 태도로 일관한다. 삼전도의 굴욕과 함께 세자는 아버지와 대신들의 강권에 의해 “자진해서 적국에 볼모로 가겠다.”고 말해버린 후 울음을 터뜨리는 유약한 모습이었다. 세자 부부는 동생 봉림대군(훗날의 효종) 부부와 함께 볼모살이를 떠난다. 가는 길에 청나라 군대가 조선의 여러 고을을 약탈하고, 백성들을 노비로 끌고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세자는 무력감을, 봉림대군은 분노를 느낀다. 그러나 정작 청나라에 도착한 후 세자는 돌변한다. 이국에서의 고생으로 몸은 무너져 갔지만 조국의 운명을 어깨에 짊어진 세자로서의 책임감은 점차 커져간다. 반면 세자빈은 오랜 타국생활을 겪으면서 조선에서 건너온 물건을 팔아 재산을 모으기 시작한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인조는 아들과 며느리를 불신하고 점점 더 싸늘한 시선을 보내게 된다. 볼모살이 8년 만에 돌아온 세자를 인조는 ‘오랑캐 물이 들었다.’며 만나 보려고도 하지 않았고, 급기야 황제의 하사품이라며 세자가 내민 벼루를 세자의 머리를 향해 집어던졌다. 결국 귀국 두 달 만에 세자는 인조와 애첩인 조소용에 의해 독살당하고 만다. 인조는 예비 국모의 체통을 내팽개친 며느리도 가만두지 않았다. 인조의 수라상에 오른 전복구이에 독이 들었다는 누명을 씌워 세자빈 강씨를 폐위시켜 죽이고 만다.  청나라의 문물에 관심을 두고 배우려고 했던 형과 달리 봉림대군은 오로지 병자호란의 복수에만 관심이 있었다. 형의 죽음 이후 세자에 책봉되어, 효종이 된 봉림대군은 북벌을 위해 궁중 살림을 극도로 긴축했고, 인선왕후 역시 이에 앞장섰다. 인선왕후는 병자호란 당시 피신한 강화도에서 오랑캐에게 잡힐 처지가 되자 자결하려고 했고, 볼모살이 후 돌아와 왕후가 되자 청나라의 첩자 노릇을 하던 김자점과 조소용의 역모를 밝혀내 처단한 여걸이었다. 하지만 효종은 순치제의 등장으로 청나라가 더욱 강해지면서 북벌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죽었고, 인선왕후는 아들 현종이 그 뜻을 이루기를 바랐지만 현종은 그럴 뜻이 없었다. 결국 8년간이나 굴욕의 세월을 보낸 왕가의 형제와 그 부인들은 마지막까지 뜻하는 바를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비운의 주인공들이 되고 만다.    ##7일의 행복, 영원한 이별  ●주요 등장인물  단경왕후 신씨/중종  ●극적 요소  조선왕조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왕후로 단종비 정순왕후와 중종의 첫 번째 부인 단경왕후 신씨를 꼽는 이들이 많다. 왕의 이복동생에서 한순간 왕이 된 남편과, 남편을 왕으로 만든 세력에 의해 아버지를 잃고 왕후 자리를 내놓아야 했던 비운의 여성. 그리고 그녀를 향한 임금의 순애보가 담긴 치마바위 이야기.  ●시놉시스  성종은 왕비였던 윤씨가 연산군을 낳고 폐위된 후 세 번째 왕후로 정현왕후 윤씨를 맞아 진성대군을 낳았다. 진성대군은 12살 때 13세인 신수근의 딸과 결혼했다. 왕이 되지 못하는 대군의 생활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아야 하는 것이었고, 이들 부부 역시 이를 충실하게 지켰다. 특히 연산군이 폭군으로 변하면서 사람들은 진성대군에게 관심을 쏟기 시작했고, 진성대군은 더욱 은인자중했다. 어느 날 밤, 여러 장수와 조정 대신들이 진성대군의 집에 들이닥쳤다. 횃불을 켜 든 이들은 “반정을 일으켰으니, 대군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인 것을 알게 된 대군 부부는 조용히 결과를 기다렸고, 그 결과 하루아침에 왕좌에 올라 중종이 됐다. 왕비가 됐다는 기쁨을 누리고 있던 다음 날 아침, 단경왕후에게 급작스러운 소식이 날아든다. 아버지 신수근이 전날 밤 반정군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신수근의 여동생은 연산군의 비였고, 폐주의 처남인 아버지가 죽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만 했다. 모든 가족들이 반정군에게 죽임을 당하고, 노비로 끌려가는 와중에도 단경왕후는 정신을 추스르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중종이 보위에 오르고 7일이 지나자 반정 공신들은 단경왕후의 폐위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중종과 단경왕후는 보기 드물게 의좋은 부부였지만 칼로 정권을 잡은 반정 공신들 앞에서 그는 무력했다. 결국 단경왕후는 폐위돼 사가로 나가야 했고, 이때 중종은 19세, 왕후는 20세였다. 중종은 새로운 왕비 간택을 1년 가까이 미뤘지만, 신하들의 압박에 장경왕후 윤씨를 새 왕비로 맞았다. 그러나 중종은 항상 인왕산 산자락을 바라보면서 단경왕후를 그렸다. 이를 전해들은 신씨는 인왕산 바위에 자신의 분홍치마를 펼쳐놓고 남편이 자신을 잊지 않기를 바랐다. 10년 후 장경왕후가 원자를 낳고 죽자 일부 대신들이 다시 단경왕후를 불러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반정 공신들의 힘은 여전히 막강했고, 결국 신씨는 잊혀졌다. 고작 7일간의 왕후 생활을 하고 스무 살에 왕궁에서 쫓겨난 단경왕후는 무려 71세까지 50년 넘게 남편만을 그리며 살았다.    ##왕궁의 스캔들  ●주요 등장인물  이방석/이성계/태종/정도전/세자빈 유씨/이만  ●극적 요소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 국정의 기틀을 잡은 강인한 왕 태종과의 관계에서 희생양이 된 조선 최초의 세자 이방석. 어린 나이에 형에게 목숨을 잃기까지 자신의 의지는 아무것도 없었던 불운한 그와, 조선왕실 최초의 스캔들을 일으킨 세자빈 유씨를 통해 왕실의 비틀어진 모습을 들여다본다.  ●시놉시스  북방의 무인 이성계는 두 번째 부인 강씨(신덕왕후)와의 사이에서 48세에 막내아들을 본다. 방석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 아이는 조선이 개국했을 때 11세였고, 한 달 만에 조선 최초의 세자에 책봉된다. 어머니 신덕왕후와 개국공신들이 장성해 사병을 가진 이방원(태종)과 이방간 등을 경계한 덕분이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장군이 되겠다는 꿈을 꿨던 방석은 본인의 자리를 탐탁지 않아 했다. 총명하지 않은 방석은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고, 어느새 여색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궁궐을 나서 기생집에 가고, 사냥 대신 민간의 가축을 쏘아 죽이는 일도 허다했다. 한편 방석에게는 나이가 한참 많은 세자빈 유씨가 있었다. 어린아이와 결혼해 억지로 궁궐에 끌려온 유씨는 마음 줄 곳을 찾지 못하다가 궁궐의 내시 이만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철없는 망나니 방석보다는 정감 있고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 주는 이만에게 마음이 끌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개국 초기, 궁궐 안팎이 어지러운 상황에서 몰래 불륜을 이어가던 이들의 행동은 결국 태조에게 발각되고, 끝을 맞게 된다. 태조는 이만을 참수하고 세자빈은 폐서인해 사가로 내쫓았다. 조선왕조에 처음으로 기록된 불륜스토리의 결말이었다.  방석을 앞세운 정도전 등 일부 개국공신들은 태조의 장성한 왕자들이 거느린 사병이 거슬리기 시작한다. 결국 정도전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요동 정벌을 기획했고, 왕자들이 사병 차출을 거부하자 관직을 빼앗고 사병까지 몰수했다. 그러나 불과 17일 만에 이방원은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고, 태조에게 세자 폐위를 요구했다. 경각에 달린 방석의 목숨을 살려 주는 조건으로 태조는 영안군(정종)을 세자로 삼았다. 그러나 방석은 대궐 밖으로 나서는 순간 이방원 일가의 칼을 맞고 스러졌다. 임금의 적자였던 방석이 ‘대군’의 위치를 돌려받은 것은 그로부터 270여년이 흐른 숙종 6년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올라, 자유로움을 갈망하던 철부지 세자는 ‘조선왕조의 첫 세자’이자 ‘권력투쟁의 희생양’으로만 남았다. 폐서인된 세자빈 유씨가 그 후 어떻게 살았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조선을 뒤흔든 16인의 왕후들(이수광·다산북스)  왕을 낳은 후궁들(최선경·김영사)  왕이 못된 세자들(함규진·김영사)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박영규·들녘)  정의공주(한소진·해냄출판사)  소현세자(박안식·예담)
  • [영화프리뷰] ‘스톤’

    [영화프리뷰] ‘스톤’

    산전수전을 다 겪은 가석방 심사관 잭 매버리(로버트 드니로·왼쪽)는 퇴직을 코앞에 두고 마지막으로 스톤(에드워드 노턴·오른쪽)의 가석방 여부를 다룬다. 15년형을 선고받고 8년을 복역했음에도 초점 없는 눈빛과 ‘F 워드’를 쏘아대는 스톤의 언행에 매버리는 불쾌함을 드러낸다. 이쯤 되면 가석방은 물 건너간 상황. 불안함을 느낀 스톤은 아내 루세타(밀라 요보비치)에게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매버리를 구워삶도록 요구한다. 독실한 성공회교 신자인 매버리는 루세타의 접근을 단호하게 뿌리친다. 하지만 어느 순간 허물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존 커랜 감독의 ‘스톤’은 선과 악의 경계가 얼마나 희미한 것인지, 선인과 악인의 구분이 얼마나 쓸데없는 짓인지를 애써 설득하려 든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데다 평생 사법기관에 근무한 매버리는 선한 쪽에 발을 딛고 있다. 하지만 젊은 시절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를 붙잡으려고 잠든 어린 딸을 2층 창밖으로 내던지겠다고 위협했을 만큼 충동적인 인물이다. 매버리가 도덕적으로 파멸하는 과정이 조금은 설득력 있는 까닭은 그의 폭력적인 본성을 영화 초반부에 드러냈기 때문이다. 매버리와 심리전을 펼치는 스톤은 더 복잡한 인물이다. 스톤이 교도소에 들어간 건 친구가 자신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죽이는 걸 방조했기 때문이다. 불을 질러 증거 인멸을 꾀했고, 타오르는 화염을 보면서 황홀함을 느꼈을 만큼 사이코패스다. 그랬던 스톤이 가석방 심사를 받으면서 갑자기 종교에 심취한다. 정말 믿음을 갖게 된 것인지, 매버리를 혼란스럽게 하려는 의도인지는 불분명하다. 캐릭터에 격하게 몰입하는 것으로 유명한 노턴은 눈빛만으로 많은 걸 얘기한다. 독보적인 연기력의 두 배우가 펼치는 심리전으로 흥미를 자아내던 영화는 중반 이후 길을 잃고 헤맨다. 엉성하게 구축된 캐릭터 탓이 크다. 타락하는 매버리와 갱생하는 스톤의 캐릭터를 대조적으로 드러내는데, 작위적인 데다 변화의 진폭도 급격하다. 그나마 영화 초반 단서를 흘렸던 매버리에 비하면 스톤의 변신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요보비치가 연기한 루세타란 캐릭터는 영화 중반까지 팜므파탈적 매력을 드러낼 듯하더니 어느 순간 아예 사라져 버린다. 물이 끓기도 전에 급하게 면을 넣어 억지로 불린 면 요리처럼 영화는 대책 없이 끝난다. 배우들의 중량감을 감안하면 인건비도 안 나올 법한 2200만 달러의 저렴한 제작비로 만들어졌다. 박스오피스모조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북미 개봉에서 벌어들인 흥행 수익은 181만 달러. 전 세계 수익을 합쳐도 947만 달러에 불과했다. 6일 개봉.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서울시장 보궐선거 D-22] 박원순 통합후보 일문일답

    3일 범야권 통합후보로 선출된 무소속 박원순 후보는 “안철수 원장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말로 서울시장 선거 승리를 다짐했다. 기성 정치권의 벽을 허물 새로운 변화의 견인차임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박 후보는 선출 직후 가진 후보수락연설에서 “박원순은 하나부터 열까지 보통시민이 만든 후보”라며 “이제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를 이기고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기염을 토했다. 그러면서 “민주당과 민노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과 함께 서민을 위한 시정을 펼쳐 나가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다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아름다운재단 등에 대한 대기업 기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과거처럼 동원이나 억지, 음해와 흑색선전이 아니라 비전과 정책을 중심으로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소통의 축제로 선거가 자리잡을 것이다. 서울시민과 국민들의 수준을 믿는다. 어떤 네거티브 책동에도 상관하지 않고 내 길을 가겠다. 누구도 비난하거나 인신공격하지 않고 정책과 비전으로 선거를 치르겠다. →민주당에 입당할 것인가. -50%의 지지율을 가진 안철수 원장이 지지율 5%에 불과한 내게 (후보 자리를) 양보하면서 준 언약이 있다고 본다. 늘 가슴에 이를 새기고 선거를 치를 것이다. 민주당 입당 여부는 일단 야당들과 폭넓게 의견을 나눈 뒤 선거후보 등록 때까지 입당 여부를 결정하겠다.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향후 일정은. -시민사회와 함께 공동선거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시장에 당선되면 시정운영협의회를 만들어 시정을 함께 협의해 나가겠다. 정치 감각과 현안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겠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왈가닥들을 선수로 조련한 한동호 감독님… 브라보!”

    차라리 혼을 냈다면 마음이 편했을 것 같다. 한국은 이란과의 9~10위 순위결정전에서 역전패(5-7)당했다. 막판 집중력만 더 살렸다면 우리는 2승까지 할 수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풀죽어 벤치로 들어오는 우리에게 한동호 감독은 인자하게 악수를 건넸다. 저녁에는 특별히 병맥주를 쥐여 주며 “아쉽고 속상했던 것 이 한 잔으로 다 잊고 좋은 기억으로 가자.”고 건배를 외쳤다.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럭비공이 낯설었던 여자럭비팀. 한 감독과 강동호 코치는 멋모르고 날뛰는 ‘왈가닥 여자’들을 ‘럭비선수’로 조련했다. 매일 오전·오후 5~6시간씩 굴리며 혹독하게 다그쳤다. 격한 몸싸움에 인대가 늘어나고 손가락이 삐어도 눈도 끔뻑 안 했다. 식탁에서는 억지로 밥을 먹이고 반찬을 나눠 주며 몸을 키우게 했다. 그러면서도 뒤돌아서서 항상 미안해했다. 운동장에서는 한없이 엄격하지만 뒤에서는 다루기 힘든 여자들을 살뜰하게 챙겨줬다. 운동장에서 ‘버럭’이라도 한 날이면 한 감독은 슬쩍 불러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해 줬다. 강 코치는 럭비의 A부터 Z를 가르쳐 줬고 매일 저녁엔 마트를 오가며 야식까지 챙겼다. 합숙 중 유일한 휴일인 일요일에 회사 야근을 가는 내게 “피곤할 텐데 쉬지도 못하고 고생이네.”라는 따뜻한 문자를 남기기도 했다. 1승으로 첫 걸음을 내디뎠지만 우리팀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언제쯤 능숙하게 걸을지 기약할 수도 없다. 하지만 훌륭한 감독·코치와 선수들의 끈끈한 교감이 있는 한 우리가 꿈꾸는 ‘기적’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푸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6)천재 화가 반 고흐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6)천재 화가 반 고흐

    모난 머리와 튀어나온 광대뼈, 그리고 꾹 다문 입술. 얼핏 봐도 비호감의 외모를 지닌 스물 다섯의 청년 반 고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향한다. 목사가 되고 싶었던 그다. 그의 부친 역시 개신교 목사였으나, 부친은 장남 반 고흐의 꿈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신에게 직접 다가가려는 그의 열망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무시”하는 듯이 격렬한 그의 행동과 신앙이 부친에겐 한없이 위험해 보였던 터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사실 반 고흐에게 치명적으로 결여되었던 것은 목사가 지님직한 권위였다. 교구의 교사나 목사에게는 반 고흐의 옷차림이나 태도가 영 마뜩잖았다. 그러던 중, 반 고흐는 보리나주의 탄광지대에서 임시전도사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거기서 그는 “거칠고 세련되지는 못했으나 허위라고는 없는” 사람들을, “허술한 옷차림으로 그를 판단하지 않는 남자들”과 “자연스럽고 겁없이 마주할 수 있는 여자들”을, “그 자신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는 거기가 바로 신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반 고흐는 위원회로부터 해고당하고 만다. 교구의 규칙을 따르지 않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너무 낮추고, 그들의 비참한 활동에 동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해고의 이유였다(1879년 광부 파업 당시 광부들의 편에 섰다는 것도 중요하게 작동했겠지만). 목사가 되고 싶었던 청년 반 고흐는, 그렇게 교회와 아버지를 옭아맨 소명에서 벗어났고,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1880년. 나이 서른도 되기 전에 오십줄에 들어선 남자처럼 폭삭 늙어버린 이 사내는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동생 테오의 권유도 있었지만, 설교로 전하지 못하는 말씀을 그림으로는 전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품어온 터였다. ‘감자 먹는 사람들’은 19세기에 흔히 그려진, 화가의 시선으로 멀찌감치에서 바라본 ‘민중의 풍경’이 아니라, 가난한 시절 반 고흐 자신의 초상이다.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를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1885년 일기) 감자를 먹는 그 손으로 그들은 땅을 일구고, 감자를 심고, 감자를 거뒀다. 예술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농부처럼 뿌리고, 뿌린 대로 거둘 뿐이다. 농부들의 손처럼 화가의 손이 정직할 수 있다면! 농부들의 정직한 식사만큼이나 그림 또한 정직할 수 있다면!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반 고흐는 1886년 앤트워프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지만, 거기서도 그는 ‘아카데미’의 적이 되었다. 그의 취향, 기질, 그림의 스타일, 그 어느 하나 고상한 아카데미의 예술가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로 반 고흐는 주기적인 신경발작증에 시달리게 된다. ●‘노란집’, 화가공동체의 꿈 동생 테오는 형에게 프랑스 파리행을 권유한다. 당시 모든 예술은 파리로 통했다. 파리는 멋진 댄디들로 북적였고, 순간의 빛을 담은 인상주의 회화가 유행했으며, 새로 단장한 거리는 스펙터클로 넘쳐 흘렀다. 이 모든 것이 반 고흐를 사로잡을 듯했으나, 시시각각 변하는 ‘모던 시티’ 속에서 반 고흐는 기쁨보다는 환멸과 허무를 느꼈다. ‘성공한’ 파리의 인상주의자들은 반 고흐의 세련되지 못한 행동을 용납하지 못했으며, 반 고흐 또한 흥청거리는 파리를, 그곳의 가볍게 살랑거리는 그림들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성공이 끔찍스럽다. 인상파 화가들이 성공해서 축제를 열 수도 있겠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 축제의 다음날이다.” 1888년. 반 고흐는 파리를 떠나 아를로 향한다. 파리에 없던 풍경이 거기 있었다. “대기가 그의 짐들을 벗겨주었고, 그래서 그는 마치 천한 가죽신 대신에 날개에 실려 다니기라도 하는 듯이 움직였다.” 그는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도, 아를의 ‘노란집’은 그의 오랜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화가공동체를 만들자! 반 고흐는 “사람들의 무관심은 내가 값비싼 구두를 신고 신사의 생활을 원한다면 기분이 나쁘겠지만, 나막신을 신고 나갈 거니까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라는 밀레의 말을 가슴에 품어왔다. 계속 그림을 그리면서 살 수만 있다면, 그럴 수 있는 최소한의 생계만 보장된다면 억지로 ‘잘 팔리는’ 그림을 그릴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그럼 화가들이 함께 모여서 그리면 된다. 화가들이 고립되어 있으면 패배하기 마련이라고, 함께 의지하고, 함께 생계를 마련하며 살 수 있는 화가공동체를 만들면 외롭지도 가난하지도 않게 그림을 그리며 살 수 있을 거라고, 아를로 가는 기차에서 반 고흐는 생애 가장 환한 희망을 품었다. 그 때 거기에, 그, 고갱이 왔다. 대단히 현실적이고, 지배하려는 성향이 강했던 고갱은 매사에 지나치게 열정적이고 물음이 많은 반 고흐를 도저히 견디지 못했다. 몇 번의 말다툼과 예기치 못한 자해. 꿈으로 설레던 ‘노란 집’의 행복한 날들은 그렇게 저물었다. 생레미 요양소에서의 날들은 반 고흐의 삶에서 가장 비참했던, 동시에 가장 찬란했던 순간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반 고흐를 미치게 한 것은 그림’이라며 그를 고발했지만, 반 고흐는 ‘그래도 나를 살게 하는 것은 그림뿐’이라는 사실을 절절하게 깨닫는다. 병원의 창문 밖으로 누렇게 익은 벼를 수확하는 농부들을 보며, 반 고흐는 저들처럼 정직하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의지를 다진다. 그림이 광기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과, 그림만이 자신의 광기를 치유해줄 거라고 믿었던 반 고흐. 병원을 나온 후 머물렀던 오베르 쉬아즈의 정신과 의사이자 ‘예술애호가’였던 가셰 박사 역시 마을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가셰와의 다툼 후 집을 뛰쳐나가 권총을 발사했다. 그리고 이틀 후 세상을 떠났다. ●나는 해바라기고, 햇빛이고, 길이다 가난, 외로움, 정신발작, 자살. 드라마틱하다면 드라마틱한 인생이지만, 이런 몇 가지로 반 고흐의 삶을 드라마화하는 것은 대단히 부당하다. 예술가의 삶을 이런 식으로 드라마화하거나 신화화하게 되면, 그의 예술이 갖는 단단함과 특이성을 놓치기 십상이다. 사람들은 ‘불멸’, ‘천재’, ‘광기’ 등의 수식어가 붙는 반 고흐의 화면에서 무턱대고 죽음을 읽으려 하고, 그의 색채와 붓질에서 광기를 끄집어낸다. 하지만 이런 식의 신화화야말로 반 고흐의 삶과 예술을 박제화시켜 버리는 길이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 반 고흐는 해바라기였고, 아를의 햇빛이었으며, 오베르 쉬아즈의 길들이었다. 그는 자신이 그리고 있는 바로 그것이 되기 위해 땅을 기고, 비를 맞고, 종일토록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이런 그에게서 사람들은 광기를 봤지만, 그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광기를 다스렸다. 중요한 건, 그의 광기 자체가 아니라 그가 자신의 광기를 돌파한 그 지점이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반 고흐는 발작이 일어난 순간에는 붓을 들지 않았다.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자가 어떻게 손의 붓질을 통제한단 말인가. 그는 자신의 병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병을 넘어서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꾸준히, 인내심을 가지고서, 흔들림 없이. 바로 이것이, 예술을 예술이게 한다. “위대한 일이란 그저 충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속되는 작은 일들이 하나로 연결되어서 이루어진다. 그림이란 게 뭐냐? 어떻게 해야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까? 그건 우리가 느끼는 것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사이에 서 있는, 보이지 않는 철벽을 뚫는 것과 같다. 아무리 두드려도 부서지지 않는 그 벽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인내심을 갖고 삽질을 해서 그 벽 밑을 파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럴 때 규칙이 없다면, 그런 힘든 일을 어떻게 흔들림 없이 계속 해나갈 수 있겠니?”(1882) 반 고흐를 ‘드라마’로부터 구출해내고, 그의 그림을 광기로부터 해방시키고 나면, 반 고흐의 삶과 예술이 말해주는 진리는 지극히 단순하다. 흔들리고 넘어지더라도, 그것이 길이라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채운 남산강학원 연구원 서울신문, 수유+너머 공동기획
  • ‘무소불위’ 감독·코치… 병드는 체대생들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이지만 이로 인해 태권도 선수 생활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김상은(21·여·가명)씨<서울신문 9월 28일자 9면>. 김씨가 A(33)코치로부터 성추행을 당해도 참고 뒤늦게 경찰에 고소한 사정은 체육계의 고질적 문화 탓이 컸다. ●선수생활 그만두는 이유 30% “감독과의 불화” 엄격한 위계질서, 군대 같은 생활방식, 코치나 교수에게 잘못 보이면 대학생활은커녕 엘리트 선수로 성장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D대 체육학과 박모(28·여)씨는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일반 회사 취업을 택했다. 박씨는 “1명이 잘못했어도 모두가 함께 벌을 받고 선배 말에는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학교 생활 내내 괴롭힘을 당한다.”고 설명했다. 일반 체대생이 아닌 선수 생활을 하는 학생들의 고충은 더 크다. 선수 선발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감독이나 코치의 말을 억지로 들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K대 체육학과 최모(21·여)씨는 “코치가 술자리만 있으면 참석하라고 강요했다. 술자리에 가면 어깨를 끌어안거나 만지기도 했다. 또 자기가 운영하는 학원에 강사로 오라고 강요해 억지로 일하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최씨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코치에게 잘못보였다가는 선수 명단에서 제외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치한테 잘못보여 명단에서 빠진 친구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M대 체육학과 이모(24)씨는 “선수 생활을 그만두는 이유 중의 70%가 부상이고 30%는 감독이나 코치와의 불화다.”라고 말했다. ●또래 코치 “난 성추행코치 아니다… 오해받아 곤란” 한편 김씨의 성추행 가해자인 A 코치가 강사로 재직했던 W대측은 “A 코치가 이미 학교를 떠났고 A 코치과 같은 나이에 비슷한 약력을 가진 박모(33) 코치가 A 코치로 오해받아 곤란해하고 있다. 오해하지 말아달라.”고 밝혔다.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3)별무늬 자국의 비밀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3)별무늬 자국의 비밀

    “김 사장, 우리 집사람이 전화를 통 안 받네. 미안하지만 2층 좀 올라가봐 줘.” 2005년 6월 8일 오전 10시쯤 부산의 한 중국 음식점. 가게 문을 열자 걸려 온 전화의 목소리는 다름 아닌 위층 남자였다. 멀리 출장 나와 있는데 집에서 전화를 안 받는다고 했다. 목소리에 걱정이 가득했다. 중국집은 얼마 전까지 위층에서 운영했던 터라 아래층과 위층 사이에 일종의 ‘개구멍’이 나 있었다. “아주머니. 저 아래층입니다.” 중국집 김씨는 빠끔히 머리를 내밀어 2층 내부를 들여다봤다. 해가 중천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집 안은 어두컴컴했다. 비릿하고 역한 냄새가 밀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김씨는 기절초풍을 했다. 1층으로 굴러떨어지듯 내려와 전화를 찾았다. “여기 ○○반점 2층인데요. 사, 사람이 죽어 있어요.” ●LCV가 찾아낸 피 묻은 신발 자국 감식반이 확인한 시신은 2층 안주인 A(당시 63세)씨였다. 무슨 억하심정이 있었는지 범인은 A씨의 머리와 옆구리 등을 흉기로 24차례나 찔렀다. 목을 조른 흔적도 있었다. 하지만 죽은 뒤엔 그 모습이 참혹했는지 시신 위에 옷가지를 수북이 덮어 두었다. 집 안이 어두운 건 두꺼비집(분전함)이 내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억지로 문을 연 흔적도 없었고, 패물 등 사라진 것도 없었다. 경찰은 면식범의 소행에 무게를 뒀다. 집 안 곳곳에 뿌려진 혈흔들을 볼 때 사망자는 숨이 다하기 전 범인과 꽤 오랫동안 몸싸움을 한 듯했다. 그러나 지문 등 범인의 흔적은 좀체 나오지 않았다. “여기 발자국이 있는데요.” 감식반원이 가리킨 곳에 별 모양의 신발 자국이 보였다. 235~240㎜가량의 운동화 아니면 등산화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여자인가? 아니면 발이 매우 작은 남자인가? 살인 현장에서 혈흔 족적이 발견되면 감식반은 LCV(Leuco Crystal Violet)나 루미놀(Luminol) 등 특수 시약을 쓴다. 범인의 발 크기와 신발 종류 등을 분명하게 알아내려면 육안의 한계를 넘어서는 화학적인 흔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LCV는 혈흔 속의 단백질에 반응한다. 보통 때는 무색의 액체지만 혈흔과 만나면 자주색으로 변한다. 비교적 시약을 만들기가 쉽고 밝은 곳에서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루미놀이나 플루오레세인 등도 이용된다. 피가 있는 자리에 발광 현상을 일으키는 루미놀은 시약을 만들기가 쉽지만 반응이 일시적이고, 주위가 어두워야 하는 단점이 있다. 플루오레세인은 반응의 결과물이 매우 밝고 오래 가지만, 자외선 같은 가변광원을 이용해야 하는 데다 만들기도 비교적 까다롭다. 경찰은 주변 인물들을 차례로 용의선상에 올렸다. A씨의 남편도 예외는 아니었다. 새벽부터 여러 차례 집에 전화를 해 대고, 마치 독촉이라도 하듯 현장에 1층 주인을 가 보라고 한 게 오히려 더 의심을 샀다. 출장이라고 간 곳도 자동차로 고작 100여분 거리. 마음먹기에 따라 범행을 저지르고 도주하는 데 충분했다. 두 번째 용의자는 A씨에게 5000만원을 빚지고 도망간 B(당시 45세)씨. 한때 둘도 없이 친했지만 돈이 걸리면 언제든 독한 마음을 먹을 수도 있는 게 사람이어서 경찰의 용의선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두 명 모두 의심할 여지 없이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마지막 용의자는 피해자에게 5000만원을 빌려 준 남편의 친구 C(당시 66세)씨. C씨는 A씨의 시신이 발견되기 3시간 전인 아침 7시쯤 현관까지 왔다가 안에서 대답이 없어 그냥 돌아왔다고 했다. 역시 친구의 부탁 때문이었다고 했다. 2년 전 아내가 집을 나간 C씨는 본인은 그날 저녁 혼자 잠을 잤다고 했다. ●60대 살인자가 사용한 교묘한 술책 이상한 것은 용의선상에 있는 어느 누구도 235~240㎜의 신발에 맞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사건이 미궁으로 빠져드는 가운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식 결과가 날아왔다. 죽은 A씨의 손톱 밑 혈흔이 C씨의 DNA와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순간의 필사적인 발버둥이 범인의 흔적을 담아낸 셈이었다. 하지만 범인이 도저히 빠져나가지 못할 좀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담당 형사와 C씨 간에 피 말리는 심리전이 이어졌다. 그러기를 10여 시간. 굳게 닫혀 있는 60대 범죄자의 입이 결국 열렸다. “제가 죽였습니다.” C씨가 진술한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남편이 일 때문에 자주 집을 비웠기 때문인지 A씨와 C씨는 자주 왕래를 하다가 각별한 사이가 됐다. 그렇게 4년. 관계가 깊어지면서 A씨는 필요할 때마다 C씨에게 돈을 융통해 썼다. 그러다 둘 사이에 결정적인 갈등이 생겼다. “제가 사정이 급해져서 꿔준 돈을 돌려받으려 하자 A가 냉정하게 돌아서더군요.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매몰차게 거절하는데 정말…, 그런 배신감과 분노가 또 있을까 싶더라고요.” 결국 그는 등산용 장갑을 끼고 칼을 챙겼다. 폐쇄회로(CC) TV에 찍힐 수 있다는 생각에 커다란 등산용 모자를 눌러썼다. 그리고 평소 자기 차에 보관해 두고 있던 A씨의 등산화를 신었다. 현장에 족적이 남을 것을 예상한 술책이었다. 그는 한때 사랑했던 여성에게 스무 번 넘게 분노의 비수를 꽂았다. 사건이 이렇게 마무리되나 싶을 즈음 담당 형사의 새로운 추궁이 이어졌다. 2년 반 전 집을 나갔다는 C씨의 아내(실종 당시 58세)에 대한 수사였다. A씨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담당 형사는 C씨 부인이 단순하게 실종된 게 아니라고 직감했다. 말을 할 때마다 C씨의 이야기는 엇갈렸고, 손과 눈빛이 떨렸다. “부인은 어디에 있나요.” “…” 얼마의 침묵이 지났을까. 그가 입을 열었다. “집요.” “만기가 다가오던데, 보험금 타려고 그간 숨어 지낸 건가요.” “아니요. 몸은 마루에 있고, 머리는 안방 침대 밑 바닥에 있어요.” 그는 2002년 10월 28일 자신의 목공소에서 목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다음 날 집 한켠에 묻었다. 여자가 남편 말에 한마디도 지지 않고, 심지어 무시하기까지 한다는 게 살해 동기였다. 이듬해 초 집 보수공사를 하면서 그는 아내의 시신을 꺼내 머리와 몸통을 분리한 뒤 안방과 현관 마루 쪽에 각각 묻었다. 처음 묻으려던 현관이 비좁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매일 잠을 자던 곳은 아내의 머리가 묻힌 쪽이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첨단의료산업재단 운영비 1년째 공방

    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의 운영비를 놓고 지방자치단체와 정부가 공방을 벌이고 있다. 지자체들은 “국가가 전액 부담키로 해놓고 이제 와서 절반을 지자체에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정부는 “약속한 적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26일 충북도 등에 따르면 첨복단지가 조성되는 충북 오송과 대구에 지난해 말 설립된 이 재단은 정부가 첨복단지 내에 건립하는 신약개발지원센터, 첨단의료기기개발지원센터, 실험동물센터, 임상시험신약생산센터 등 핵심연구시설 4곳을 운영하며, 이 곳의 연구결과물을 산업계와 접목시켜 첨복단지의 활성화를 꾀하는 기관이다. 이사장은 국무총리가 임명하고 각 센터장은 소관 부처 장관이 승인해 정부 기관에 가깝다. 따라서 충북도와 대구시재단 운영비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가 100% 정부 부담이 결정된 적이 없다며 지난해 말 운영비를 정부와 지자체가 50%씩 나눠 부담한다는 방침을 정해 지자체에 통보했다. 이에 해당 지자체들의 반발이 시작돼 1년 가까이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다. 충북도의 경우 기획재정부가 올해 초 4곳의 핵심연구시설 연간 운영비의 50%인 6억원을 요구했지만 현재까지 내지 않고 있다. 도는 내년에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재정부 역시 강경하다. 복지예산과 정혜경 사무관은 “첨복위원회 회의록을 찾아봤지만 100% 정부가 지원한다는 내용은 없었다. 관련법에 ‘첨복단지 연구시설 운영경비는 국가와 지자체가 예산범위 안에서 보조할 수 있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어 50% 부담이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충북도 바이오밸리과 장우성 주무관은 “회의록에 ‘100%’라는 문구는 없지만 ‘운영비는 정부가 부담하고 부지는 지자체가 부담한다.’는 내용이 있는데도 재정부가 억지 주장을 하고 있어 답답하다.”면서 “2018년 이후에는 재단규모가 커져 연간 400억원의 운영비가 필요한데 그때도 지자체에 반을 내라고 하면 정말로 감당할 수 없다.”고 걱정했다. 청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성시경 “음악적 사치 부릴 수 있어 행복”

    성시경 “음악적 사치 부릴 수 있어 행복”

    가을을 닮은 감미로운 목소리의 가수 성시경(32)이 돌아왔다. 군 제대 이후 3년 만에 7집 앨범 ‘처음’을 발표한 그는 타이틀곡 ‘난 좋아’와 ‘오 나의 여신님’ 등을 각종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올려놓으며 그간의 공백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최근 한 음악방송 현장에서 만난 그는 오랜만에 팬들을 만나는 기대와 설렘을 동시에 드러냈다. “앨범을 내기 전까지가 문제였죠. 마치 여자친구에게 선물을 주기 전까지가 무척 설레고 떨리는 것처럼요. 선물을 좋아할지 걱정도 되고요. 하지만 일단 앨범을 내고 나니 홀가분해요.” ●직접 프로듀서… 12곡 중 5곡은 자작곡 성시경이 유난히 홀가분해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는 이미 지난 5월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7집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를 열었다. 진짜 앨범은 4개월이 지나서야 나온 것. “본의 아니게 희대의 사기극이 돼 버렸죠(웃음). 연초에 공연장 대관을 미리 해야 하는데, 5월쯤이면 충분히 새 앨범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거든요. 그런데 감기로 녹음 작업이 늦어지고 콘서트 준비를 하면서 발매가 점점 늦어졌어요. 사람 일이란 게 한치 앞을 못 내다보는 것 같아요.” 그래서 군 제대 후 1년을 훌쩍 넘겨 내놓은 앨범엔 12개의 곡을 정성스럽게 눌러 담았다. 미니앨범이 쏟아지는 요즘 세태 속에서 처음 시작하는 기분으로 만들었다는 그의 정규 앨범엔 성시경만의 변하지 않은 아날로그적 감수성과 서정적인 노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2년간 군 복무로 인해 가수라는 선로를 이탈해야 했다면, 이번 앨범은 성시경이라는 기차를 다시 선로에 복귀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공백이 길었기 때문에 제대로 선로에 얹어놓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음악적으로 억지로 변화를 주기보다는 일단 잘 하던 것을 열심히 하고, 그 다음은 잘 복귀한 이후에 걱정하기로 했다는 성시경. 그는 “사람을 가장 많이 태우는 기차는 아니더라도 괜찮은 기차가 되고 싶다.”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큰 변화는 없지만, 그는 앨범 프로듀서를 직접 맡고 자작곡을 5곡이나 싣는 등 참여도를 높였다. 타이틀곡 ‘난 좋아’는 헤어진 연인에 대한 미련을 노래한 곡으로 성시경이 직접 작곡했다. “쉬는 동안 음악적으로 귀가 더 좋아지고 고급스러워진 것 같아요. 목소리는 늙어도 연기력은 더 풍부해졌죠. ‘난 좋아’는 쉽고 편안한 진행과 가을에 어울릴 만한 편곡으로 대중성을 높인 곡입니다. 제가 쓴 곡이니 안 되면 다른 사람 탓을 할 수도 없게 됐어요(웃음). 사실 가수로서의 감은 어느 정도 회복했는데, 프로듀서 감이 있는지는 이번 앨범이 좋은 시험대가 되겠죠.” ●“많이 태우는 기차보다 괜찮은 기차 되고파” 그는 쉬는 동안 음원 시장의 인기가요 순위를 보면서 음악을 그만둬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했다. 아이돌 그룹의 음악이 득세하는 시장에서 그와 비슷한 음악을 하는 솔로 발라드 가수를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돌 그룹 사이에서 활동을 하려니 마치 홀로 떨어진 섬 같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왜 선배들이 방송 활동을 하기 싫어했는지 이해도 갔고요. 하지만 그들과 경합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물론 아이돌 팬들이 제 앨범을 사면 좋겠지만, 시장이 분명히 분리돼 있으니까요. ” 아직도 스마트폰으로 바꾸지 않고, 트위터도 하지 않는 등 유행에 둔감하다는 그는 “지금 시작하는 가수였다면 아마 활동하기 무척 힘들었을 것”이라면서 웃는다. 하지만 성시경은 이런 시장에서도 유행을 좇지 않은 ‘처음’이나 ‘태양계’ 같은 곡을 발표하는 음악적 ‘사치’를 부릴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얼마 전에는 KBS ‘1박 2일’, SBS ‘강심장’ 등 예능 프로그램에도 얼굴을 비쳤다. “힙합듀오 리쌍의 신보가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은 그들이 좋은 음악을 하는 가수이기도 하지만, 길과 개리가 MBC ‘무한도전’과 SBS ‘런닝맨’에서 활약하면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인 것도 일조를 했다고 봅니다. 좀 씁쓸한 현실이기는 하지만, 예능에 누가 되지 않는다면 억지로 (예능 프로 출연을) 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복귀를 앞두고 날렵한 턱선을 회복한 그는 “팬들에 대한 자세이기도 하고 비주얼적인 면 때문에 체중을 감량했다.”면서 “술을 끊고 식단 조절과 운동을 해서 살을 뺐기 때문에 목소리를 내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가요계의 소문난 주당인 그가 술까지 끊었다니 이번 앨범에 임하는 각오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군 제대 후 첫 복귀 무대로 ‘김광석 추모 콘서트’에 섰던 성시경은 선·후배 간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가수로 꼽힌다. 그는 다소 건방지고 까칠할 것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웬만해선 선배 가수들의 섭외 요청을 거절하지 않는 의리파다. “방송에서 아무리 좋은 모습을 보여도 인터넷에 악플이 달리면 힘이 빠질 때가 있죠. 예전엔 일일이 그게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고 다녔는데, 이제는 일단 친한 주변 사람들에게 잘하자는 주의로 바뀌었어요.” ●‘예능 필수’ 씁쓸하지만 피할 이유도 없죠 그래도 부침이 심한 가요계에서 10년 넘게 장수한 성시경의 저력은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 히트곡 ‘거리에서’로 정상에도 올라보고, 연기에 도전한 적도 있는 그가 가수로서 갖는 또 다른 꿈은 무엇일까. “저 같은 목소리를 가진 가수에 대한 수요가 있는 나라에 태어난 것이 참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전 가수는 무대에서 3분짜리 연극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노래라는 연기를 더 잘하고 싶고, 더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음악으로 많은 분들의 공감을 얻고 싶습니다.” 세태에 흔들리거나 표리부동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자기 색깔을 내는 가수로 인정을 받고 싶다는 성시경. 이 가을, 그의 바람이 이뤄지기를 기대해 본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5) ‘만세전’의 작가 염상섭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5) ‘만세전’의 작가 염상섭

    염상섭(1897~1963)은 널리 알려진 ‘국민작가’다. 염상섭이 ‘국민작가’인 것은 물론 그의 걸출한 문학작품 덕분이지만, 그의 삶이 근대 이후 한국사의 중요한 맥락들과 궤를 같이해 온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철들 무렵 조선은 식민지가 되었고, 그는 한일병탄 2년째인 1912년 일본 유학생활을 시작한다. 1930년대에는 만주로 건너갔다가 해방이 되자 신의주를 거쳐 38선을 간신히 통과해서 서울로 돌아왔고, 이후 종군작가로 한국전쟁을 체험한다. 이처럼 식민지 조선과 제국 일본, 해방과 한국전쟁을 마주했던 염상섭의 삶의 국면들은 100편이 훨씬 넘는 그의 장·단편 소설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가히 문제적 시대를 살아낸 문제적 작가인 셈이다. 그러나 역사와 시대가 문제적이었다고 해서 반드시 문제적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흔히 한국문학사에서 염상섭을 일컬어 ‘리얼리즘의 최고봉’이라 하는데, 이 찬사 속에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생생하게 재현해냈다는 평가가 담겨있다. 그렇다면 염상섭이 바라본 ‘있는 그대로의 사실’은 어떤 것이었을까. ●선망과 자괴 사이에서 일본 유학생 시절, 그는 식민지인이라는 피해자의 입장과 제국 일본을 선망하는 학습자 사이에 놓여 있었다. 이른바 ‘친밀한 적’을 마주해야하는 고통, 즉 일본을 본받고 따라하면서도 그런 자신을 경멸하고 자책하는 이중적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는 당시 일본에 유학한 조선인이라면 누구나 다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염상섭의 경우는 좀 더 특별난 데가 있었다. 그의 유학이 일본군 육군 중위였던 맏형의 보살핌 아래에 있었기 때문이다. 맏형 염창섭은 대한제국 시절, 영친왕이 유학이라는 명분 아래 일본으로 인질처럼 끌려갈 때 그 시종으로 따라갔다. 이후 염창섭은 대한제국의 유학생 신분으로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간다. 하지만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그는 일본군대로 편입하는 길을 선택한다. 곡절 많은 내력이지만, 현실에서 일본군 장교라는 위치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 형 덕분에 염상섭도 사립학교나 학원가를 전전하던 조선유학생들과는 달리 정규 일본 명문중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이후 염상섭은 동아일보 정경부 기자(일본특파원)를 비롯해서 시대일보, 조선일보, 심지어 총독부기관지였던 매일신보, 만주국의 홍보지 역할을 했던 만선일보에서까지 두루두루 일한다. 할 일 없이 이 거리 저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는 가난한 식민지 지식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셈이다. 게다가 염상섭만큼 일본어와 일본문학에 정통한 문인은 없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염상섭에게는 ‘군복자락 콤플렉스’, ‘현해탄 콤플렉스’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일본군 장교인 형은 든든한 버팀목이었지만 부끄러운 존재였고, 조선과 일본 사이의 바다 현해탄을 오가는 것처럼 일본을 선망하다가도 한편으로는 식민지인임을 자각하고 괴로워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 콤플렉스를 잘 보여주는 것이 오사카 독립선언서 사건이다. 염상섭은 2·8독립선언서, 기미독립선언서에 영향을 받아 1919년 3월 18일 오사카에서 단독으로 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 거사를 꾀하다가 체포되어 3개월의 미결수 생활을 겪는다. 이 독립선언문에는 ‘오사카 한국 노동자 일동 대표 염상섭’이라고 쓰여 있다. 그 전해에 병으로 대학을 자퇴했고, 작은 신문사의 기자생활을 하긴 했지만 그가 노동자 대표라기엔 다소 억지스럽다. 게다가 정규 일본 명문 중학을 졸업하고, 귀족자제들이 다니던 게이오 대학 문과에 입학했던 그의 이력을 떠올리면 생뚱맞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노동자를 자처하고 나선 것은 그의 깊은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염상섭의 내면에는 일본 육군장교의 동생, 안온한 일본유학생이라는 자괴감이 늘 존재했고, 그 반작용의 심리로 자신을 노동자대표로 내세우고 싶었던 것이다. ●군복자락으로부터 야차의 길로 식민지 상황에 대해 어떤 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받아들이고 체념했다. 또 어떤 이는 식민지를 벗어나기 위해 일본과 투쟁하는 것만이 최선이라 했다. 어떤 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을 부끄럽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 괴로움으로 현실을 등지거나 스스로 자기 파멸로 내몰아가기도 했다. 물론 자기이익만을 챙기기에 급급한 무리들도 있었다. 이런 가운데 염상섭은 자기 삶을 글쓰기로 옮겨놓음으로써 자괴감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세계와 대면하고자 한다. 염상섭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만세전’(1924)은 자전적 경험이 깊이 투영된 일본 유학생 ‘이인화’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인화’는 답답한 현실에 대해 맹렬하게 발작을 일으킬 정도이면서도 딱히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는 괴로움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기변명과 자기연민, 자조가 뒤범벅인 소설 속 인물. 그런 인물을 그려놓는 일, 바로 글쓰기를 통해 염상섭은 새로운 길을 만난다. 그는 1923년 첫 창작집 ‘견우화’를 발간하면서 자신의 소설쓰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소설이란 것이 인생과 그 종속적 제상을 묘사하는 것인 이상 인간이 어떻게 고민하는가를 그리는 것은 물론이다. 소설에 예술적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것은 연극적·음악적·회화적·조각적 요소를 어떻게 약배하며 약동하도록 그리겠느냐는 문제이지만, 기초적 조건은 역시 사람은 어찌하여, 어떻게, 얼마나 고민하는가, 또는 그 고민이 어떻게 전개되며 어떻게 처리되는가를 묘사함에 있다. (중략) 이러한 의미로 나의 처음 발간하는 단편집에 대하여 야차(夜叉)의 마음을 가진 보살을 의미하는 ‘견우화’라는 표제를 택하였거니와…….” (‘견우화’의 서문) 그에게 소설쓰기는 세련된 기교를 펼쳐 보이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예술적 사명감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내면을 가차 없이 속속들이 살펴보는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오죽하면 첫 단편집을 “야차의 마음을 가진 보살을 의미하는 ‘견우화’”라고 이름 붙였다고 스스로 해명하는 것일까. 혼란스럽고 복잡한 세상 속에서 인간의 내면을 그리는 일은 스스로 야차(악마)가 되기를 자처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야차되기를 선택함으로써 그는 군복자락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었다. 일본 육군장교의 동생이자 독립선언을 하는 식민지 조선인, 총독부 기관지의 정치부장이자 조선인 소설가. 이러한 극단들을 오가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기. 그러한 자신이 속해있는 두 세계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기. 그것이 염상섭의 작가적 출발이자, 글쓰기의 의미였다. 물론 두 눈으로 세계를 똑똑히 본다고 해서 쉽게 해답을 발견할 수는 없다. 오히려 염상섭의 작가적 두 눈은 해답보다는 일상적 삶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삶의 미세한 진실을 바라보고자 했다. 일상 속에서는 아무도 순결하거나 정의롭지 않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은 박쥐 같은 양면성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가족들조차도 핏줄보다는 돈(욕망)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 등. 1930년대 ‘삼대’가 그려낸 풍경은 그러한 삶의 이면에 대한 해부였다. 그래서 염상섭의 작품은 우리가 쉽게 지나치거나, 마치 외눈박이처럼 하나로만 바라보는 것을 온전히 다 보여준다. 해방 이후, 이데올로기의 각축장이 되었던 역사적 현장이나 전쟁 상황에서도 염상섭의 이러한 자세는 계속 이어진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서 1·4후퇴 때까지의 긴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드러낸 ‘취우’(1953)는 전쟁의 극한상황이나 고통을 묘사하기보다는 그 와중에도 노골적으로 돈에 집착하는 인간의 욕망을 그려내고 있다. 이 지점에 이르면, 왜 염상섭이 국민작가로 회자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역사와 삶을 대면하는 방식으로서의 글쓰기. 그리고 단면적인 세계, 양가적인 판단을 넘어서는 복잡다단한 세계를 그려내는 작가. 그의 글쓰기는 현실의 복잡함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두 눈 크게 뜨고 자신과 자신의 삶을 응시하는 것이었다. 자기 삶의 응시가 그로 하여금 글쓰기로 나아가게 했고, 그것이 국민작가 염상섭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일 터이다. 김연숙 남산강학원
  • [사설] 저축銀 대주주 사전인출 철저히 밝혀라

    지난 18일 영업정지를 당한 7개 저축은행에서도 대주주·임직원 및 특수관계인의 사전 예금 인출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도덕적 해이가 또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이 같은 질문을 받고 “그런 인출이 극소수 있었다.”고 밝혔다. 사전 인출 규모는 10억원대로 알려졌지만, 일각에서는 수천억원에 이른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올 1~2월, 8월에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부실 등으로 9개 저축은행에 대해 영업정지가 내려졌을 때도 문제가 됐던 사전 인출이 재연돼 충격적이다. 저축은행 사태의 주범은 누가 뭐래도 대주주 등 경영진이다. 영업정지 처분을 받게 되는 상황을 미리 알면서 자기들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의 돈을 미리 빼돌린 것은 불법행위다. 무엇보다 예금자 보호라는 책임을 방기한 몰염치한 행위다. 이번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어떤 대주주라도 위험 상황에 놓이면 똑같은 행태를 되풀이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주주 사전 인출을 밝혀야 하는 이유다. 물론 대주주의 불법과 전횡을 밝혀내긴 쉽지 않다. 대주주에 대한 조사나 자금 추적은 부실 책임자로 지정된 대주주만 가능하고 배우자나 친인척 등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따라서 영업정지 처분과는 별개로 대주주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돈을 빼돌릴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금융당국은 우선적으로 예금보험공사, 검찰 등과 공조해 영업정지된 저축은행 대주주의 불법 대출 등 배임 행위 등을 밝혀내야 한다. 특히 영업정지된 저축은행 가운데는 대출 규모를 늘려 준다며 중소기업들에 후순위채를 억지로 떠넘긴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데 ‘꺾기 대출’을 위한 후순위채 강매 여부를 조사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대주주 사전 인출 의혹 외에 정상영업을 하는 저축은행 대주주라고 해서 불법 행태가 없을 것으로 판단하면 오산이다. 철저한 현장 확인을 통해 불법영업 행위 등을 미리 찾아내야 제3, 제4의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저축은행권이 전체 금융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3%에 불과하지만 서민금융과 직결된다는 점에서는 가벼이 여길 수 없다. 저축은행이 서민금융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대주주의 도덕적 해이를 차단하고 적격성도 함께 강화해야 한다.
  • 쓰레기 속에서 나온 20억원대 보물 ‘화제’

    쓰레기 속에서 나온 20억원대 보물 ‘화제’

    쓰레기를 뒤지던 실업자가 4000년 전의 것으로 보이는 보물을 발견해 화제가 되고 있다. 불가리아 스비츠토프의 한 농촌에서 42세 남자가 쓰레기 속에 숨어 있던 보물을 발견, 박물관에 기증했다고 외신이 최근 보도했다. 폐품과 고철을 내다팔기 위해 쓰레기를 뒤지다 우연히 눈에 띈 세라믹 단지가 보물단지였다. 온전한 상태의 세라믹 단지 속을 들여다 보자 번쩍이는 게 있었다. 단지에는 금으로 만든 목걸이, 구리로 만든 장신구 등이 들어 있었다. 실업자인 남자는 고철을 챙겨 팔려 쓰레기를 뒤지다 우연히 세라믹 단지를 발견했다. 현지 언론은 “고고학자들이 목걸이와 장신구를 약 4000년 전의 것으로 보고 있다.”며 발견된 보물의 가치는 최소한 200만 달러(약 24억원)으로 평가됐다고 전했다. 남자는 1주일간 보물을 집에 보관하다 지역 박물관에 찾아가 기증했다. 하지만 억지 기증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남자는 보물을 팔아넘기려 밀거래조직과 접촉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첩보를 입수한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횡재를 했지만 자칫 쇠고랑을 차게 될지도 모른다고 잔뜩 겁을 집어먹은 남자는 보물을 들고 박물관을 찾아갔다. 박물관은 “남자가 스스로 보물을 넘긴 만큼 밀매미수 등의 혐의로 남자를 형사고발하진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 검색 디톡스, 첫 증상은 무기력

    검색 디톡스, 첫 증상은 무기력

    2주 동안 인터넷도 전화도 되지 않는 곳에서 산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캐나다의 대학생 JD는 2년 전 로키 산맥의 오두막으로 2주 동안 낚시를 떠나며 여자 친구에게 그 계획을 설명하고 작별 인사도 나눴다. 휴대전화는 깜빡한 채 집에 두고 갔다. 그동안 그의 여자 친구는 “오늘 너에게 몇 번이나 전화한 줄 알아? 나랑 통화하기 싫은 거야?”로 시작해서 “지금 당장 전화해. 이 메일 읽는 대로 당장!” “끝내자는 거야? 그렇더라도 얼굴이나 보고 말해야 할 거 아냐, 이 ××야!”에서 급기야 “이봐, 멍청이! 너 내 친구 알지? 니가 그렇게 질투했던. 그래, 니가 상상하는 것처럼 그 애랑 잤어. 하하하. 어때, 이제 열 좀 받지?”란 메일까지 보낸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웃을 수밖에 없었던 JD는 여자 친구에게 헤어지자고 말한다. ‘아날로그로 살아보기’(크리스토프 코흐 지음, 김정민 옮김, 율리시즈 펴냄)는 독일의 인기 프리랜서 기자가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다 끊고 40일간 살아 낸 기록이다. 이런 실험을 한 사람은 2주간 인터넷을 끊고 살았던 미국의 가수 모비를 비롯해 꽤 있지만 코흐의 책은 참고 문헌까지 달렸을 정도로 전문적이면서도 생생하다. 저자는 인터넷을 하지 않기로 하자 ‘마치 두꺼운 귀마개를 낀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기억하고 있는 번호가 하나뿐이라 전화를 걸 수도 없고, 모든 게 전산화돼 버려 은행 업무를 처리할 수도 없다. 하필이면 소득세 정산도 끝내야 하고 10년 만에 수시로 우체국을 들락거리며 편지와 엽서도 써대야 한다. 직업이 기자인 만큼 정보를 얻고자 구글 검색 대신 신문, 책, 도서관을 이용하려니 화병이 나려고 한다. ‘아날로그’는 요즘 출판계의 유행 가운데 하나인 저자의 직접적인 실험과 체험을 담은 책이다. 특히 기자들이 쓴 체험서가 자주 번역·출간되고 있는데 일단 글이 재미있을 뿐 아니라 시대와 통하는 가치관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코흐는 우리가 밥을 먹으면서도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대는 이유에 대해 심리학자의 말을 빌려 검색이 인간의 뇌를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구글 검색창에 무엇인가 입력하는 순간 뇌에서 ‘행복의 호르몬’ 도파민이 분비된다는 것. 코카인과 같은 마약이 비정상적으로 분비를 촉진하는 도파민은 클릭에 클릭을 거듭하는 순간 뇌에서 뿜어져 나온다. 그가 인터뷰한 미국 워싱턴대 신경과학자 자크 펭크셉은 “인터넷 검색 도중에 발생하는 자극 상태는 우리가 그동안 ‘리비도’라 불러 온 에너지와 유사한 것일 개연성이 높다.”며 “인터넷 검색은 보상을 추구하는 끊임없는 욕구를 만족하게 하기 때문에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코흐는 인터넷을 끊는 실험 초기에 자신이 왜 우울하고 무기력했는지 깨닫게 된다. 매일 아침 컴퓨터에 앉아 30분 이상 의욕과 스트레스를 느끼며 검색창을 10여개씩 열어젖혔던 기자였기에 도파민 부족으로 몸을 일으킬 수 없을 정도로 의욕 상실에 시달렸던 것. 그렇다면 인터넷을 못 한 40일간 좋았던 시간은 없었을까. 저자는 40일간의 아날로그적 금욕 생활에 완전히 빠지진 못했다고 고백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절반쯤 읽다가 “은둔자의 자기 만족적 수다가 지겹고, 자기 관점에서 완전히 화가 난 채로 인류의 나머지 사람들을 대놓고 경멸하는 것도 지친다.”며 던져버린다. 하지만 비치 보이스 레코드판을 듣거나 앨범을 들추며 낙원에 온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어떤 특별한 목적도 없이 혼자서 빈둥거리는 산책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인터넷과 휴대전화에 구속되지 않고 소통하는 법을 조언한다. 우선 자신을 위한 인터넷 이용 시간대를 정해, 예를 들어 저녁 8시부터 아침 8시까지는 위급 상황이 아니라면 인터넷을 쓰지 않기로 한다. 일요일은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보낸다. 또 가족들과 식사할 때는 휴대전화, 스마트폰 등을 식탁 주변에서 치운다. 침실에서도 스마트폰을 치우고 휴가 중에는 가급적 인터넷을 내려놓는다. 저자는 랍비의 말을 떠올린다. “안식일을 반드시 억지로 지켜야 할 의무가 아닌 일종의 선물로 이해하라.” 1만 5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지방자치 20년… 자치회관의 진화

    지방자치 20년… 자치회관의 진화

    지방자치 20년째다. 성인으로 훌쩍 자란 역사 속에 빼놓지 못할 숨겨진 공간이 바로 1999년 행정안전부 시범사업으로 문을 연 자치회관이다. 그 자치회관이 주민과 호흡하고 주민 품으로 한걸음 다가서기 위해 끊임없이 진화해 20돌을 빛내고 있다. 서울시는 22일 주민들 기획으로 지역 공동체사업을 펼치는 자치회관들을 소개했다. 1 주민사업 전진기지로…중구, 족발쿠키 사업 개시 구로구 오류2동 자치회관은 주민이 제공한 유휴공간과 자원을 활용한 ‘엄마의 뷰티공방’ 사업을 내놓았다. 천연 비누 등 수공예 제품 제작·판매 수익금을 복지기금으로 활용하고 전문 소퍼(soaper)도 9명 배출했다. 공방은 지난 7일 문을 열었다. 중구 장충동 자치회관의 ‘착한 돼지, 엔젤피크 족발쿠키 만들기’ 사업은 최근 저작권 등록을 마치고 마을특화공동체사업으로 줄달음치고 있다. 주민들이 족발쿠키란 마을캐릭터를 개발하고 구좌 발행, 시제품 제작, 장충장터 판매, 족발쿠키 체험교실 등을 열어 공동체 화합을 이끌고 있다. 광진구 중곡1동 회관은 인삼·당귀 등 약초모종과 장승·절구 등을 주민들로부터 기증받아 약초정원을 조성하는 한편, 중랑천에 약초밭(300㎡)을 만든 뒤 약초교실을 운영하고 약초비누를 판매하는 등 마을 공동체사업을 시작했다. 중랑구 면목2동 회관의 경우 자체 프로그램 참여자들이 취미·여가활동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다 한지·칠보공예품을 제작·판매하는 마을기업 ‘한지랑 칠보랑’을 세워 주민 일자리 창출에 한몫하고 있다. 2 지역전문가 양성소로…중랑 등 아카데미 개설 서울시는 지난 4월 동남·서북·동북·서남권을 대표하는 성동·서대문·중랑·구로구에 주민자치 아카데미를 개설했다. 지방자치 20년에 걸맞게 자치위원들의 역량을 키우고 의사결정도 하는 핵심리더로 키우자는 취지다. 지난해 특별법 제정에 따라 내년 주민자치회가 출범하는 것에 발맞췄다. 주민자치위원들은 주민자치프로그램을 개설하고 폐강하고 신설하는 등 동장의 역할을 보조하는 업무를 맡는다. 6개월간 교육에 참여한 중랑구 남상중(54·면목5동) 자치위원은 “그동안 받아보지 못한 주민자치 교육이 열려 기분이 좋았는데 강의 내용도 너무 만족한다.”며 “모든 주민자치 위원과 담당공무원의 필수 교육과정으로 제도화되었으면 좋겠다.”고 피력했다. 3 공동체 소통의 장으로…市, 동아리활동 48억지원 자치회관은 소통과 나눔의 자리로도 거듭나고 있다. 시는 재정이 열악한 자치구의 실정을 감안, 올해 5억원을 들여 회관 자투리땅에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독서·놀이방 시설까지 갖춘 커뮤니티 공간을 조성하고 있다. 2014년까지 매년 4곳씩 모두 16개 노후 회관을 리모델링한다. 동아리 등 공동체활동 지원에도 48억원을 쏟아붓는다. 서정협 서울시 행정과장은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주민 곁으로 다가서는 자치회관이 되도록 과감한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국감 자료집 전쟁

    국감 자료집 전쟁

    ‘튀어야 산다’ 지금 국회에서는 사소해 보이지만 매우 치열한 ‘생존’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국정감사 자료집’ 대전이다. 지난 19일 국정감사의 막이 오르자 수백개의 국감 자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이 중 상당수는 공개되지도 못하고 사장되기 일쑤다. 내년 총선, 대선을 앞두고 지역 민심과 당내 공천에서 승기를 잡아야 하는 국회의원들은 18대 국회 마지막인 이번 국감에서 너도나도 ‘정책 이미지’를 알리기 위해 자료집에 온 정성을 들이는 눈물겨운 노력을 펼치고 있다. 형태부터 범상치 않다. 뭉텅이 책자형부터 얼굴을 박아 넣은 보도자료, 독특한 표지와 특이한 제목 등 눈길을 끌기 위한 자료집들이 수두룩하다. 민주당 이낙연 의원실의 정책자료집은 특히 눈에 띈다. 무려 1003쪽에 이르는 두툼한 두께에 의원 사진이 큼직하게 박혔다. 자료집에는 그동안 국감을 통해 준비했던 자료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당장 시각적인 측면에서 다른 의원들의 자료집과 비교가 된다. 일부 의원들은 이 의원실의 자료집을 보고 자신들의 보좌진들에게 “우리는 왜 이렇게 자료집을 내지 못하느냐. 그동안 뭘했느냐.”라고 닥달했다는 후문이다. 통상 자료집은 연구용역을 의뢰해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만들어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달여간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자료를 만든 이 의원실의 보좌진은 “억지로 없는 걸 만들어내는 것보다 해왔던 것을 충실히 묶어보자는 생각으로 했다. 지역에서도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자료집 제작에는 600만원이 들었다. 평균 70~80쪽짜리 책자를 300~400부 만들 때 디자인과 인쇄비로 200만원 정도가 들어가니 3배가량 더 든 셈이다.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도 올해 230쪽을 포함해 4년간 1200쪽에 달하는 정책자료집을 냈다. 소득분배 등 주제별로 보기 좋게 정리했다. 김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보고서 작성에만 6개월이 걸렸다.”면서 “마이크 잡는 시간이 짧아 충분히 문제제기나 대안제시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희철 의원도 주택 분야 국감과 관련해 214쪽 분량의 정책자료집을 발간했다. 김 의원은 “올해 4월부터 정기적으로 국회 보좌진들과 ‘국회의원 김희철의 금요포럼’을 해왔으며 자료집은 그 결과물”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박우순 의원은 표지를 이색적으로 만들었다. 표지 앞면의 제목 부위에 네모 공간을 오려놓고 제목에 ‘대한민국 모든 아기는 ( )를 갖고 태어난다’는 등 이중 표지 디자인으로 궁금증을 유발하게 제작했다. 표지에는 민주당을 상징하는 소나무 그림을 넣었다. 튀는 제목은 필수다. 민주당 김영록 의원은 보도자료에 ‘자해쌀을 아십니까’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크게 걸었다. 자해쌀은 농민들이 정부의 저가방출로 쌀이 팔리지 않아 자신이 생산한 쌀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는 뜻이다. 제목의 내용뿐만 아니라 색깔도 중요하다. 한나라당 김태원 의원은 빨갛고 굵은 헤드라인체 제목에 부제를 파란색으로 달아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런 자료집들은 대개 의원회관에서 밤잠을 설쳐 가며 아이디어를 내고 작업한 보좌진들의 작품이지만 광고회사나 자료집 제작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만들기도 한다. 299명의 의원들은 국감기간 동안 평균 100개 정도의 자료를 낸다. 한 보좌관은 “여의도 주변에 자료집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들이 많은데 부르는 게 값”이라면서 “한 보좌관은 일을 그만두고 나가 인근에서 이 일을 직접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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