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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미의 노래하기 좋은 계절] 법 안에서 편안한가 - ‘어떤 말씀’과 ‘아, 대한민국’

    [이영미의 노래하기 좋은 계절] 법 안에서 편안한가 - ‘어떤 말씀’과 ‘아, 대한민국’

    70년 전 여름을 상상해 본다. 첫 보통선거로 당선된 제헌의원들이 헌법이란 걸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제헌 헌법이 공포됐다. 이 헌법에 따라 사회를 운용할 실정법들이 만들어졌다. 대중예술을 들여다보면 오랫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법이란 존재가 결코 편하지 않았음을 감지하게 된다. 실정법들이 천부인권과 같은 자연권 등을 인정한 헌법의 정신을 구현하지 않았거나 왜곡한 탓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근대 초기부터 대한민국 탄생 한참 뒤에도 법을 그저 냉혹한 것으로 인식했다.20세기 작품엔 ‘선한 죄인’이 넘쳐난다. 영화 ‘아리랑’의 영진과 연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의 홍도는 강자에게 몰리고 몰리다 광기를 일으켜 살인을 저지른다. ‘검사와 여선생‘의 여선생은 남편 살해 혐의를 뒤집어쓴다. 1960년대 ‘맨발의 청춘’부터 수많은 영화가 법에 의해 쫓기는 ‘어두운 뒷골목의 자식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해 왔다. 대중예술에서 법은 오랫동안 인간의 마음을 돌봐 주지 않는 냉정하고 억압적인 장치로 형상화해 왔다. 법에 앞서 천륜·인륜·진정성을 인정하는 하늘과 왕이 존재하던 전근대와 달리 근대의 법질서에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냉정함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게다가 식민지체제와 독재체제 등 비민주적인 정치가 유지되자 대중들은 법으로 보호받기보다는 통제당하고 억압당한다고 느꼈을 것이다. 심지어 그 법은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억압을 합리화해 주는 장치로 악용되기도 했다. ‘어머님’의 말씀 안 듣고 머리 긴 채로 명동 나갔죠 / 내 머리가 유난히 멋있는지 모두들 나만 쳐다봐 / 바로 그때 이것 참 큰일 났군요 아저씨가 오라고 해요 / 웬일인가 하여 따라갔더니 이발소에 데려가 내 머리 싹둑 / 어머니의 말씀 안 듣고 짧은 치마 입고 명동 나갔죠 / 내 치마가 유난히 멋있는지 모두들 나만 쳐다봐 / 바로 그때 이것 참 큰일 났군요 아저씨가 오라고 해요 / 웬일인가 하여 따라갔더니 그다음엔 말 안 할래요 / 여러분도 이런 봉변당하지 말고 어서 머리 깎으세요 / 여러분도 이런 큰일 당하지 말고 어서 긴 치마 입으세요’ - 쉐그린 ‘어떤 말씀’(1972, 백순진 작사·작곡) 남자의 머리 길이와 여자 치마 길이를 규제하기 위해 ‘경범죄처벌법’을 동원하는 세상에 대해 풍자하는 이 노래는 겉으로는 캠페인인 척하는 포즈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1975년에 금지곡이 됐다. 이 정도로 시작한 장난기는 점점 상승해서 1973년 음반에서는 가사를 ‘작두만 한 가위로 내 머리 싹둑’으로 바꾸고, ‘코털 긴 채로 명동 나갔죠’ 부분까지 덧붙이기에 이르렀으니(실제 콧수염을 기른 가수 이장희는 TV 출연이 금지됐다), 삐딱한 태도를 점점 드러낸 셈이다. 법이 우리를 보호해 주고 있다는 생각을 대중들이 실감하게 된 건 언제쯤일까. 1970년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라고 외쳤듯 약자를 보호할 법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고, 통제와 억압의 법만 체감됐으니 말이다. 이 노래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 저들의 염려와 살뜰한 보살핌 아래 / 벌건 대낮에도 강도들에게 잔인하게 유린당하는 여자들은 말고 / 닭장차에 방패와 쇠몽둥이를 싣고 신출귀몰하는 우리의 백골단과 함께 / 우린 모두 안전하게 살고 있지 않나 / 우린 모두 평화롭게 살고 있지 않나 /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 - 정태춘 ‘아, 대한민국’ 3절(1990, 정태춘 작사·작곡) 대한민국의 헌법이 제정된 뒤 70년이 지난 지금도 ‘법이 공정한가’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의구심을 표한다. 그래도 정태춘 노래에서와 같은 백골단의 시대는 벗어났다. 대중에게 감정으로 호소하는 TV 드라마에서조차 실정법을 위반한 인물은 그의 선함과 무관하게 당연히 법적 처벌이 이루어져야 할 일로 담담히 그려 낸다. 이 수준까지 오는 데 70년이 걸렸다.
  • “손톱 모양으로도 알아내”… 가면 못 벗는 항공사 집회

    “손톱 모양으로도 알아내”… 가면 못 벗는 항공사 집회

    “발령·진급 등 사측 보복 두려워” “항공업 특성상 단체행동권 제약” “스스로 보호”… 노조 불신도 한몫하회탈처럼 웃는 얼굴에 역팔자 콧수염이 그려진 ‘가이포크스’ 가면이 항공사 집회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지난 5월부터 4차례 이어진 대한항공 회장 일가 퇴진 촛불집회와 지난 주말 두 차례의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대란에 따른 경영진 규탄 집회에서 직원들은 가면을 쓰고 총수 일가의 갑질 횡포를 고발했다. 정당한 주장을 하면서도 가면 속에 숨는 이들의 모습에서 감시가 일상화된 항공사의 억압적인 조직 문화와 노조원을 보호하지 못하는 항공 노조의 한계가 드러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만난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은 “사측의 보복이 두렵다”고 입을 모았다. 가면을 쓴 것도 모자라 모자를 푹 눌러 쓴 A씨는 “회사가 직원의 손톱 모양 또는 액세서리만 봐도 누구인지 알아낸다”고 말했다. 승무원 B씨는 “노동조합에 가입만 해도 그룹장이 온갖 회유와 압박을 가했다”면서 “인사상 불이익을 당할지 겁난다”고 했다. 이날 얼굴을 가리지 않은 참가자는 이기준 사무장 등 몇몇 노조 간부뿐이었다. 노조 집회에서 참가자 대부분이 가면을 쓰는 것은 흔치 않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2006년)의 주인공이 쓴 가면 ‘가이포크스’는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때 등장한 이후 10년 만에 항공사 직원들의 집회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는 항공사 직원들은 저항과 익명의 상징인 가이포크스 가면을 선택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항공사 집회는 임금 투쟁이 아니라 경제권력을 쥔 사람에 대한 고발 운동 성격이 강하다”면서 “저항의 메시지를 사회에 전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항공산업이라는 특수성도 가면을 쓰고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2006년 항공업이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되면서 노동자들의 단체 행동권은 크게 제한됐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노조 활동에 적극적인 직원은 승무원들이 기피하는 노선에 배치받는 등 불이익을 받아 왔다”면서 “노동조건이 투명하게 개선되기 전에는 직원들이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요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노동조합에 대한 ‘불신’도 가면 집회를 하는 계기가 됐다. 대한항공 조종사 C씨는 “회사 내에 직원을 지켜주는 조직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면을 쓴다는 것은 그만큼 잃을 게 많기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노동계 관계자는 “비정규직 직원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어떻게 해서라도 노조를 만들려고 하지만, 항공사 직원들은 조직화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시아나의 한 조종사는 “단체 카톡방에서 가면을 쓰지 말고 집회에 나가자는 의견도 있지만 불이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훨씬 크다”면서 “가면을 벗는 그날을 위해 지금과 같은 집회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신철 인천공항 지역지부 정책기획국장은 “항공사 직원들이 다른 노동 집회처럼 자연스럽고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주장할 때까지 다른 노조가 연대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씨줄날줄] ‘코르셋’ vs ‘찐따’ 교복/황수정 논설위원

    [씨줄날줄] ‘코르셋’ vs ‘찐따’ 교복/황수정 논설위원

    4~5월쯤 동네 옷수선점에는 난데없는 ‘007 실랑이 작전’이 벌어진다. 중·고교생 딸을 둔 엄마라면 몸소 겪어 봤거나 십분 공감할 풍경. 아이 몰래 엄마는 교복 치마 길이와 통을 1㎝라도 늘려 달라고 맡기고, 이를 귀신같이 알아차린 아이는 다음날 득달같이 줄인다.여학생 교복이 여론의 입길에 올랐다. 지난 3일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불편한 교복을 수술해서 입는” 학교 현실을 언급하면서 불이 붙었다. 여학생 교복을 개선해 달라는 요구가 연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쌓이고 있다. 여성 인권이 사회 이슈로 크게 부각되면서 여학생 교복이 여론의 중심부로 깊숙이 들어온 셈이다. 학교와 가정에서는 한 번도 꺼진 적 없는 갈등의 불씨가 사실은 교복이다. 맹추위에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여학생들의 짧은 교복 치마는 학부모들에게 원성의 대상인 지 오래다. 엄마들 사이에서 악명 높기는 여름 교복이 더하다. 제대로 팔을 들어 올리지도 못하게 딱 달라붙은 여학생 셔츠와 통 좁은 치마는 ‘감옥’이다. 최근 부산의 한 여중학교에서는 학교의 속옷 규제에 항의하는 집단 시위도 있었다. 상의 아래 입는 속옷을 흰색으로만 통일하라는 교칙에 학생들은 인권침해라고 반발한 것. 셔츠의 품이 넉넉했다면 애초에 논쟁거리가 될 수도 없는 문제였다. 더 짧게, 더 좁게 ‘라인’을 강조하는 대형 교복업체들의 경쟁은 해마다 치열하다. 배꼽을 간신히 덮는 짧고 좁은 상의는 어느 업체할 것 없이 마케팅 포인트다. 최고의 남녀 아이돌 스타들에게 무대 의상처럼 ‘핏’을 살려 입힌 교복 광고는 업계의 공식이 됐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몸에 붙어)좀 불편해도 핏은 ○○○브랜드가 최고”라는 말이 정설로 굳었을 정도. 학교가 공동구매 업체로 지정한 업체의 교복 대신 핏이 예쁜 특정 업체의 것을 비싼 가격에도 사겠다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광고 속 아이돌처럼 미니스커트로 줄여 입는 것은 기본. 무릎 위로 아찔하게 줄여 입는 유행을 혼자 무시했다가는 학교에서 “찐따”로 놀림받기 일쑤다. 현실이 이렇다. 교사들은 “몸에 붙는 스키니 교복이 학생들에게는 일종의 유행 코드다. 일일이 단속하자면 수업을 못 할 지경이어서 손 놓고 있다”고 푸념한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교육부가 일선 교육청으로 “학생 눈높이의 편한 교복을 입히자”고 부랴부랴 주문했다. 다수 교육감은 편한 교복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한발 늦었지 싶다. ‘코르셋 억압’을 견디는 동안 체육복까지 줄여 입는 교복문화가 십대의 체질로 굳어 버린 것 같으니. sjh@seoul.co.kr
  • 민주화 운동 옥죈 ‘위수령’ 68년만에 역사 속으로

    위수령이 제정된 지 6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국방부는 4일 군부 독재 잔재인 위수령 폐지령안을 이날부터 오는 8월 13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입법예고 기간이 끝나면 위수령은 폐지된다. 위수령은 대통령령이기 때문에 국회에서 별도의 의결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위수령은 경찰을 대신해 군부대가 특정 지역에 주둔하면서 치안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군 병력을 동원해 치안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계엄령과 유사하지만, 계엄령은 국회 동의가 필요한 반면 위수령은 임의로 발동할 수 있다. 대통령이 국회 동의를 받지 않고 군 병력을 동원, 시민을 무력으로 진압할 수 있는 법령은 위수령이 유일하다. 국방부 관계자는 “치안질서 유지는 경찰력으로 가능하기에 더이상 대통령령으로 존치 사유가 없어 이를 폐지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수령은 1950년 3월 제정됐고 1965년 4월 한·일협정 체결로 촉발된 학생운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처음 발동됐다. 이후 1971년 제7대 대통령선거 부정 규탄시위와 1979년 부마항쟁을 진압하는 데 활용됐다. 이렇듯 위수령은 시민들의 민주적 집회와 시위를 탄압하는 데 이용돼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도 2016년 겨울 촛불집회 당시 국방부가 위수령을 발동해 무력진압을 계획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일었다. 국방부는 50여명의 관련자를 조사한 결과 군병력 투입 또는 무력 진압을 논의한 자료나 진술이 없었다고 밝혔다. 다만 국방부는 수도방위사령부 컴퓨터 파일 조사 과정에서 촛불집회와 관련된 시위·집회 대비계획 문건(2016년 11월 9일 생산)을 발견했다며 “동 문건에는 대비 개념으로 예비대 증원 및 총기사용 수칙을 포함하고 있어 당시 군이 촛불집회 참가 시민을 작전의 대상으로 했다는 인식을 줄 수 있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논란 끝에 국방부는 지난 3월 한국국방연구원(KIDA) 등의 용역을 거쳐 “위수령은 위헌·위법적이고 시대상황에 맞지 않다”며 위수령을 폐지하기로 최종 방침을 정했다. 국민의 기본권을 억압하는 위수령이 지금까지 존치될 수 있었던 건 그간 국방부가 위수령 폐지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군인권센터는 지난 3월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국방위원회 소속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 직후인 2016년 12월과 이듬해 2월 두 차례에 걸쳐 국방부에 위수령 폐지 의견을 질의했으나 한민구 당시 국방부 장관이 존치 의견으로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탄핵이 인용된 뒤에는 지난해 3월 이 의원실에 ‘위수령 존치 여부에 대해 심층 연구가 필요해 용역을 맡기겠다’고 회신을 보냈다고 한다. 국방부가 정권의 눈치를 봐 왔던 것이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윤수경 기자의 사람, 사랑] 눈치 보지 않고 더위를 피할 권리

    [윤수경 기자의 사람, 사랑] 눈치 보지 않고 더위를 피할 권리

    지난여름 취재차 한 아파트 경비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경비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뜨거운 공기에 숨이 턱 막혔다. 예순이 넘은 경비원은 30도가 넘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6.6㎡(2평) 남짓한 공간에서 작은 선풍기 두 대와 조그마한 창 하나에 의존한 채 고스란히 더위를 견디고 있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경비실의 한쪽에 소형 에어컨이 설치돼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에게 에어컨은 장식품에 불과했다.사정은 이랬다. 아파트 주민 중 일부가 경비실에서 에어컨을 켜는 것을 두고 불만을 제기해 눈치를 살펴 정말 더위를 못 참겠을 때만 에어컨을 켠다는 것이었다. 아파트 경비실은 한여름에 더위에 가장 취약한 곳 중 하나다. 얇은 콘크리트 지붕에 통풍도 잘 안 되기 때문이다. 경비원들이 느끼는 폭염은 불편의 수준이 아니라 고통이다. 최근 아파트 경비실에 주민들이 에어컨을 선물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마냥 훈훈하지만은 않다. 실제 에어컨을 편하게 켤 수 있는 경비원이 얼마나 될까. 경비실에서 사용하는 전기가 공용전기료로 잡히다 보니 관리비 인상을 우려하는 주민의 반발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여름에는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주민이 경비실에 있는 에어컨 플러그를 뽑아 버리는 일도 발생했다. 심지어 경비원들이 에어컨을 트는 것을 두고 주민 간 마찰이 생기다 보니 이를 두고 주민투표까지 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찬성표를 던졌다며 나름의 선행을 베풀었다고 자위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애초 주민의 취지는 투표를 통해 경비원이 주민 눈치를 보지 않고 편하게 에어컨을 켤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하자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투표 자체가 폭력적이다. 의결 결과와 상관없이 가시화된 반대표는 경비원에게 고스란히 심리적 억압일 수밖에 없다. 자택 출입문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비원에게 전지가위를 던지는 일만이 폭력이 아니다. 악의 없는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렇다면 정말 경비실에서 에어컨을 쓰면 관리비가 오르는 걸까. 2평 남짓한 공간에 소형 에어컨을 하루 10~15시간 가동해도 전력 사용량은 100~135㎾h에 불과하다. 서울시 아파트 한 동에 평균 130여 가구가 산다면 가구별로 100원 정도씩만 내면 충당이 가능한 셈이다. 성북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주민 아이디어로 이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했다. 경비실 외벽에 소형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고 에어컨에 들어가는 전력을 자체 충당하도록 한 것이다. 소형 태양광 발전기는 1년에 200㎾h가량 전기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여름내 경비원이 마음껏 에어컨을 틀 수 있다. 경비실 소형 태양광 설치 비용 61만 5000원 중 41만 5000원은 서울시, 10여만원은 성북구의 지원을 받았다. 점점 삶의 무게를 개인 혼자 지기 힘든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여느 때보다 공동체 복구가 필요하다. 남을 위한 세심한 배려와 연대, 박원순 서울시장이 10년 시정의 핵심이라고 꼽은 ‘사회적 우정’이 절실한 때다.
  • 서울시의회, 시민 정치 기본권 제한하는 학교운영위 조례 개정

    서울시의회 서윤기의원(관악2,더불어민주당)이 대표발의 한 학교운영위원(이하 학운위)의 자격 제한 개정 조례가 29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의 골자는 학교운영위원의 자격을 ‘정당의 당원이 아닌 자’로 규정한 현행 조항을 삭제하는 것으로, 그동안 서울시내 학교운영위원 중 정당의 당원이 아닌 자에 한해 입후보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개인의 정치적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었다. 서윤기 의원은 개정조례안을 반대하는 입장에 대해 ‘솥뚜껑’을 보고 ‘자라’라고 외치는 격이라고 말했다. 당원을 정치인이라고 주장하고, 교육을 정치에 예속한다는 주장은 의도적인 왜곡 과장을 넘어 논리적 비약으로 실제 평범한 학부모가 정당의 당원인 사례가 많은데 이런 기본권 제한에는 눈을 감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 서윤기 의원은 현행 조례가 법치주의에 반하는 위법한 조례이기 때문에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31조제4항의 교육의 정치적 중립에 대해 이는 기본권으로서의 교육을 받을 권리와 구별되는 제도적 보장으로서 국가의 입법의지에 의해 그 정도가 구체화된다고 밝힌바 있다. 따라서 현행 초중등교육법 제31조의2가 정당인 배제라는 자격제한을 두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조례로서 학운위의 자격을 제한하게 된다면 이는 헌법과 법률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으로 법치주의와 법치행정의 원리를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덧붙여 서윤기 의원은 조례 개정의 필요성에 대해 지방교육자치의 핵심이 학교자치의 활성화라는 관점에서 학교운영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학운위를 구성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데 학교의 자율성 확대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현행 조례와 같이 상위법령 이외의 제한사항을 규정하게 되면 오히려 학교의 자율성을 억압하고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학교자치의 활성화를 위해서 학운위 구성의 위법사항을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개진하였다. 서윤기 의원은 “본 개정안이 학운위 구성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며 “본 조례의 통과를 통해 학교자치 활성화에 한걸음 더 나아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양심적 병역거부’ 유명인 누구? 무하마드 알리, 그리고 마틴 루터 킹

    ‘양심적 병역거부’ 유명인 누구? 무하마드 알리, 그리고 마틴 루터 킹

    양심적 병역거부에 따른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현행 병역법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28일 나오면서 과거의 대표적인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가들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복싱 전설’ 무하마드 알리는 미국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첫 번째 공인이다. 무슬림인 알리는 1967년 6월 종교적 이유로 베트남 전쟁 징집영장을 거부했다. 그는 “베트콩에게 아무런 원망도 없다. 그들은 나를 ‘니거’라고 부른 적이 없다”며 “베트콩과 싸울 바에는 흑인을 억압하는 세상과 싸우겠다’는 말을 남겼다. 당시 알리는 병역거부로 징역 5년에 벌금 1만 달러를 선고받았다. 나아가 병역거부 선언 논란으로 세계 챔피언 타이틀과 함께 프로 복서 라이선스를 박탈당했다. 또한 베트남전 반대운동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미국 국가안보국의 도청에 시달려야 했다. 알리는 1971년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기 전까지 3년 동안 링에 오르지 못했다. 그 사이 알리는 미국 전역을 돌면서 흑인 인권 운동 연설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러한 알리의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은 흑인 인종차별 철폐 운동을 이끈 마틴 루터 킹 목사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킹 목사는 젊은이들이 양심에 따라 반전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킹 목사는 1967년 4월 ‘왜 미국인들은 베트남 전쟁에 반대해야 하는가’를 밝히는 연설을 통해 “전쟁은 가난한 사람들을 전쟁터로 보내 싸우다 죽게 하는 행위”라면서 “가난한 이들이 잔인하게 조종당하는 현실에 대해 침묵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1940년대 <스포크 육아법>이란 책을 쓴 벤저민 스포크 박사도 대표적인 반전주의자였다. 스포크 박사는 핵무기 개발을 반대하는 운동에 앞장섰고 베트남전 반대 시위에도 참여했다. 1960년대에는 병역 기피자들을 도왔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항소를 통해 무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남편 살해 사형선고’ 수단 소녀, 전세계 ‘조혼 피해’ 청원에 감형

    ‘남편 살해 사형선고’ 수단 소녀, 전세계 ‘조혼 피해’ 청원에 감형

    남편 살해 혐의로 교수형 위기에 처했던 19세 수단 소녀가 전 세계에서 40만명 이상이 제기한 청원으로 사형을 면했다.26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계획적 살인으로 사형이 선고된 누라 후세인(19)에 대해 수단 항소법원이 징역 5년으로 감형하고, 피해자 유족에게 위자료 1만 8700달러(약 2000만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후세인은 지난해 4월 자신보다 16살 많은 남편과 강제적으로 결혼했다. 그녀는 열다섯 살 때 결혼할 뻔했지만 그나마 학교를 졸업하는 18세까지 기다려 달라고 사정해 미뤄진 것이었다. 후세인은 결혼식 후 남편의 접근을 막으며 저항했다. 그러자 남편은 사촌들을 불러 후세인의 팔과 다리를 제압하고 성폭행했다. 이튿날 또다시 성폭행을 당한 후세인은 흉기로 남편을 찌른 후 부모의 신고로 경찰에 검거됐고 지난달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조혼(早婚) 풍습으로 악명이 높은 수단에서 결혼 최소 연령은 10살이다. 유엔 여성위원회와 유럽연합(EU), 국제앰네스티 등이 조혼 악습에 항의하며 ‘수단 정부에 전 세계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신해 그녀의 생명을 살릴 것을 청원한다’는 후세인 구명 성명을 냈다. 배우 에마 왓슨과 미라 소르비노, 슈퍼모델 나오미 캠벨뿐 아니라 줄리아 길라드 전 호주 총리도 소셜 온라인에서 펼쳐진 ‘누라를 위한 정의’(#JusticeForNoura) 캠페인에 동참하며 사형 판결 취소를 촉구했다. 교도소에 수감된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부를 계속할 수 있다면 판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한 후세인은 이제 “만약 사면을 받는다면 법을 공부해 억압받는 다른 이들을 변호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 3월 발간된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 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1200만명의 여자 어린이(만 18세 미만)가 전 세계에서 조혼을 강요당하고 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삼성노조 와해’ 전직 노동부 장관 보좌관 구속…검찰 수사 활력 찾나

    ‘삼성노조 와해’ 전직 노동부 장관 보좌관 구속…검찰 수사 활력 찾나

    억대 금품을 받고 삼성의 노조와해 공작을 자문한 혐의를 받는 전직 노동부 장관 보좌관이 27일 전격 구속됐다. 앞서 구속기소된 최평석 삼성전자서비스 전무에 이어 두 번째로 삼성 측 인물에 대한 신병 확보에 성공하면서 검찰 수사에도 활력이 생길 전망이다.서울중앙지법 허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삼성전자 자문위원인 송모씨에 대한 영장을 발부하면서 “범죄혐의의 대부분이 소명되었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송씨는 2014년 초부터 지난 3월까지 4년 이상 삼성전자와 자문계약을 맺고 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 대응 전략을 짠 혐의를 받고 있다. 송씨는 2004~2006년 김대환 노동부 장관의 정책보좌관으로 일한 바 있다. 송씨는 전날인 26일 법원청사에 출석하면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공작 수립에 개입한 혐의 인정하냐”, “삼성전자와 자문계약을 맺은 것으로 아는데 본사 차원에서 노조 와해 기획한 것 맞나”라는 취재진들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법정 안으로 들어갔다. 올초부터 삼성의 노조 와해 공작 의혹을 수사해온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부장 김성훈)는 송씨가 금속노조 집행부의 동향을 수시로 파악하면서 예상 동향을 분석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또한 송씨는 ‘노조 활동 = 실업’이라는 억압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수 회에 걸쳐 기획 폐업, 노조 주동자 명단 관리를 통한 재취업 방해, 노조 가입 여부에 따른 차별 조치 등 노-노 갈등을 유발하는 등의 전략을 수립하도록 자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삼성전자서비스는 해운대센터 등을 의도적으로 폐업 조치하는 등 와해 공작을 실행해왔다. 당초 검찰이 청구한 영장이 연이어 기각되면서 수사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우려가 나왔으나, 이번 구속을 발판으로 검찰은 다시금 진실 규명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은 삼성전자서비스 내에서 기획폐업 등을 주도하고 실행한 혐의로 최 전무를 재판에 넘긴 상태다. 검찰은 송씨가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삼성전자 경영지원실과 종합상황실 등을 정기적으로 접촉한 정황을 파악하고, 송씨의 계약을 주선한 고위 인사가 누구인지 추궁할 예정이다. 검찰은 또 경찰청 소속 정보담당 간부도 삼성전자서비스 노사 교섭 과정에 개입한 혐의로 수사선상에 올려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삼성노조 와해’ 삼성 측 10번째 영장 청구 결과는?

    삼성노조 와해’ 삼성 측 10번째 영장 청구 결과는?

    노조 와해 자문 혐의 전직 노동부장관 보좌관 실질심사검찰 지금까지 삼성 측 관계자 구속은 단 한 명에 그쳐억대 금품을 받고 삼성의 노조와해 공작을 자문한 혐의를 받는 전직 노동부 장관 보좌관이 26일 구속 전 피의자 신문(영장실질심사)을 받았다. ‘노조 와해’ 관련 삼성 측 인물에 대한 열 번째 영장심사(2차례 재청구 포함)다. 앞서 검찰은 한 명 구속에 그쳤다.서울중앙지법 허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삼성전자 자문위원인 송모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열었다. 송씨는 2014년 초부터 지난 3월까지 4년 이상 삼성전자와 자문계약을 맺고 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 대응 전략을 짠 혐의를 받고 있다. 송씨는 2004~2006년 김대환 노동부 장관의 정책보좌관으로 일한 바 있다. 송씨는 법원청사에 출석하면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공작 수립에 개입한 혐의 인정하냐”, “삼성전자와 자문계약을 맺은 것으로 아는데 본사 차원에서 노조 와해 기획한 것 맞나”라는 취재진들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법정 안으로 들어갔다. 올초부터 삼성의 노조 와해 공작 의혹을 수사해온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부장 김성훈)는 송씨가 금속노조 집행부의 동향을 수시로 파악하면서 예상 동향을 분석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또한 송씨는 ‘노조 활동 = 실업’이라는 억압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수 회에 걸쳐 기획 폐업, 노조 주동자 명단 관리를 통한 재취업 방해, 노조 가입 여부에 따른 차별 조치 등 노-노 갈등을 유발하는 등의 전략을 수립하도록 자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삼성전자서비스는 해운대센터 등을 의도적으로 폐업 조치하는 등 와해 공작을 실행해왔다. 검찰은 송씨가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삼성전자 경영지원실과 종합상황실 등을 정기적으로 접촉한 정황을 파악했다. 검찰은 또 경찰청 소속 정보담당 간부도 삼성전자서비스 노사 교섭 과정에 개입한 혐의로 수사선상에 올려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전설의 여기자, 마지막 인터뷰이는 ‘나’

    전설의 여기자, 마지막 인터뷰이는 ‘나’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오리아나 팔라치 지음/김희정 옮김/행성B/288쪽/2만 2000원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면서 ‘오리아나 팔라치’를 알게 됐다. 인터뷰 관련 수업으로 기억한다. 교수는 파워포인트로 그의 사진을 띄워 놓고, 유명한 인터뷰 몇 개를 사례로 들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을 공격적으로 인터뷰해 “베트남전은 어리석은 전쟁”이라는 자백을 받아낸 일, 이슬람 원리주의자이자 이란 지도자인 아야톨라 호메이니와의 인터뷰에서 여성을 억압하는 상징인 차도르를 벗어 찢어버린 일 등이었다.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은 그의 질문이 너무 공격적이어서 “무례하다”며 뺨을 때리려 했고, 그는 “날 때리면 바로 기사를 쓰겠다”며 맞서기도 했다. 흑백 사진 속 그의 얼굴을 보며 그런 용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궁금했다.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는 전설적인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그가 남긴 각종 미공개 원고를 비롯해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 그리고 그가 했던 말을 모아 자서전 형식으로 구성했다. 오리아나의 어린 시절부터 그가 암으로 죽을 때까지를 그의 입을 빌려 생생하게 엮었다. 1929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난 오리아나는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독재 정권에 항거하는 레지스탕스 부모 아래에서 자랐다. 어린 나이 때부터 독재의 위협과 전쟁의 공포를 겪어야 했다. 어린 시절의 환경이 그를 강하게 만들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열두 살 무렵 오리아나의 아버지가 폭격에 두려워 우는 그의 뺨을 때리고는 “용감한 소녀는 울지 않는다”고 한 일화는 익히 알려졌다. 오리아나는 그 일을 두고 “그날 이후로 난 울지 않았다. 그렇지만, 눈물을 흘리며 우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게 울었다”고 속내를 밝혔다.오리아나는 다른 학생들보다 2년 일찍 학교를 졸업하고 삼촌의 권유로 의대에 들어갔지만, 학비가 부족해 돈을 벌고자 신문기자가 된다. 1967년엔 브루노 삼촌의 권유로 베트남전 종군기자로 참전한다. 첫날 저녁 포화 소리를 듣고서야 그는 전쟁터 한복판에 온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세상의 다른 쪽에서 사람들은 생명이 10개월 남은 환자를 살리려 10분 남은 환자의 심장을 떼어내는 게 정당한가를 묻 는데, 이곳에서는 튼튼한 심장을 가진 젊고 건강한 전 국민의 일생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것이 정당한가를 묻지 않는다”고 말한다. 1968년 멕시코 학생 운동에서 등과 다리에 3발의 총알을 맞고 시체 더미에 버려졌다가 극적으로 살아난 일은 소설을 읽는 느낌마저 든다. 자신의 총상에 관해 서술하는 부분은 시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만약 이 세 군데 흉터가 없었더라면 나는 스스로 끊임없이 불행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태어나고 죽는 것은 무슨 소용이 있는지 여전히 자문했을 것이다”라고 술회한다. 전쟁 취재 이후 오리아나의 펜은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향한다. 그의 인터뷰로 많은 유명 인사가 무장해제당했다. 20세기 중·후반 지구 곳곳을 넘나들며 진행한 인터뷰 하나하나가 큰 반향을 일으켰고 ‘전설의 여기자’란 명칭도 이때 생겨났다. 심지어 “오리아나 팔라치가 인터뷰를 하지 않는 사람은 세계적 인물이 아니다”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특히 그가 인터뷰에 관해 남긴 말은 언론인이라면 곱씹어 봐야 할 부분이다. 그는 “인터뷰를 잘하려면 인터뷰이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빠져들어야 한다”면서 “이 점은 항상 불편했다. 그 안에서 폭력성과 잔인함을 항상 봐 왔다”고 토로했다. 가장 유명한 인터뷰로 거론되는 키신저와의 인터뷰가 이런 사례일 것이다. 그는 키신저를 가리켜 “가장 냉혈한 뱀, 얼음같이 차디찬 남자였다”며 서슴지 않고 독설을 내뱉는다. 연인이었던 그리스 혁명가 알렉산드로스 파나굴리스와의 사랑과 그의 의문사에 관한 법정 증언, 그리고 이를 소재로 한 소설을 쓰는 과정 등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 은둔과 고립, 창작의 고통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출판사 측은 원서에 관해 “그의 저서 대부분을 출간한 리촐리 출판사가 작업한 결과물이어서 의미가 있고 믿음이 간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글과 인터뷰만으로 구성한 책만으론 그의 생애를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를 다룬 평전과 함께 읽을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전설적인 기자의 내면 깊은 곳에서 전해온 목소리가 주는 울림은 크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 하는 물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김초엽 작가의 과학을 펼치다] 위대한 여성과학자는 퀴리부인밖에 모른다고?

    [김초엽 작가의 과학을 펼치다] 위대한 여성과학자는 퀴리부인밖에 모른다고?

    사라진 여성 과학자들/펜드리스 노이스 지음/권예리 옮김/다른/268쪽/1만 4000원어린 시절 집집마다 책장에 꽂혀 있던 어린이용 위인전집을 기억한다. 수많은 남성 정치인들, 과학자들 사이에 여성 위인은 나이팅게일과 ‘퀴리 부인’, 헬렌 켈러 정도가 다였다. 인류의 긴 역사에서 여성에게 재능을 빛낼 기회가 주어진 시기는 극히 짧다지만 정말로 업적을 남긴 여성들이 그렇게 적었을까. 어린 마음에도 궁금했었다. 이 책의 부제는 ‘왜 과학은 여성의 업적을 기억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질문이자 동시에 답이기도 하다. 여성의 업적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있었으나 지워졌다는 이야기다. 지금은 과학기술계에서 지워진 여성의 업적을 재조명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극장가에서도 미 항공우주국(NASA)의 편견에 맞서며 활약했던 흑인 여성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주목받고, 아름다운 여배우로만 소비되었으나 실은 탁월한 발명가이자 과학자였던 헤디 라머가 스크린 위로 오른다. 반쪽뿐인 역사를 온전히 채색하고 되살리는 작업이다. 저자가 청소년들을 위해 집필한 ‘사라진 여성 과학자들’ 역시 그런 흐름 속에서 유의미하게 읽힌다. 펜드리드 노이스는 16세기 말부터 현대까지 세계 곳곳에서 인류 지성의 등불을 밝혔던 여성 과학자들의 삶을 그려 낸다. 최초의 프로그래머 에이다 러브레이스, 핵분열의 원리를 발견한 물리학자 리제 마이트너, 현대 대수학의 기틀을 세운 에미 뇌터…. 수많은 분야에서 성취를 이룬 여성 과학자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의 재능과 열정에 감탄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는 시대의 배제와 억압에 맞서야 했던 흔적들이 남아 있다. 그들은 대학에서 거부당하고, 교수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다. 때로는 명백한 성과조차 지워지곤 했다. 책은 이미 알려진 여성들의 삶과 성취도 재조명한다. 마리 퀴리는 당대 최고의 과학자 중 한 명이었음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회원 신청을 거절당했고, 악의적인 연애 스캔들에 휘말렸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헌신적인 이미지와 ‘등불을 든 백의의 천사’로 각인되어 있지만 그의 진정한 재능이 근거에 기반한 과학적 보건 의료의 기초를 세우는 데에 발휘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나이팅게일의 첫 번째 전기에 붙은 제목은 ‘열정적인 통계학자’였다. 사회가 규정한 여성의 제한된 역할에 만족할 수 없었던 여성 과학자들. 그들이 겪었던 차별은 현재의 여성 과학자들과 이공계로 진입한 여학생들이 겪는 고민과 분명히 맞닿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세계를 조금씩 변화시켰고 지금도 그 변화는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이 제시하는, 반짝이는 호기심과 지성만은 시대가 억압할 수 없었던 여성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이 시대의 청소년과 어른들에게 필요한 이유다.
  • 박마루 서울시의원, ‘울어도 돼요 Just Cry’ 책 출간

    박마루 서울시의원, ‘울어도 돼요 Just Cry’ 책 출간

    “행복하세요?” 갑자기 이런 질문을 받으면 아마 당황스럽거나 한참 고민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삶이 행복과는 거리가 멀게 살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고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사람들의 개성과 문화도 다양해지는 것 같은데 우리는 왜 행복하지 않은 걸까? 저자는 그 원인을 눈물(울음)에서 찾는다. 눈물이 메말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울어야 할 때 울지 않으면 속병이 되고, 그것이 결국 우울증으로까지 발전해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병리 현상은 개인을 넘어 사회로 확산된다. 그와 같은 우울증의 원인이 개인이 아닌 사회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울고 싶을 때 마음 놓고 울 수 있고, 그런 눈물을 기꺼이 인정하는 사회가 되어야만 행복이 비로소 자신과 가까이 있는 진정한 행복 사회가 가능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자신이 경험했던 자살 충동 내지 자살 시도 경험을 토대로 눈물이 없는 개인, 그것을 구조적으로 강제하는 이 사회가 바로 개개인을 우울과 자살로 내몰고 이 사회를 우울한 사회, 생기 잃은 사회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 같은 개인의 경험을 사회화하기 위해 19세 이상 전국 남녀 1,053명을 대상으로 앙케트를 실시했다. 앙케트를 통해 사람들이 얼마나 감정(눈물)이 막혀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그 막힌 감정(울음)이 결국 개인은 물론 사회를 통째로 억압하는 원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그 해결책 역시 눈물, 사회적인 울음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에 있다고 강조한다. 앙케트 조사에서 ‘마지막 울어본 기억’에 대한 연령대별 조사 결과, 전 연령대에서 “기억나지 않는다”는 응답이 주를 이뤘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울음에 인색하다는 걸 보여 준다. 이와 관련해 울고 싶을 때 남의 눈치를 보는지에 대한 조사에서 남자와 여자 모두 ‘그렇다’는 답변이 많았다. 언제 크게 울어봤는지에 관한 설문에서는 남자와 여자 모두 2, 30대에 크게 울어봤다는 공통된 결과가 나왔다. 남자와 여자 모두 군대와 졸업, 취업과 결혼을 비롯한 인생의 전환점에서 울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10대들이 느끼는 고통 또한 무척 다양하고 매우 심각한 현상으로 나타났다. 친구 간의 문제, 시험에 대한 압박감, 부모의 불화, 진로 등 어쩌면 어른들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치고 있을 것 같다는 게 저자의 추론이다. 문제는 이렇게 울고 싶은 일이 많은데 울 수가 없는 사회적 현실이다. “울고 싶을 때 어떻게 하나요?”란 질문에 “친구와 솔직히 대화한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남자 6.7%, 여자 8.8%에 불과했다. 반면, 울고 난 후의 느낌을 묻는 질문엔 대부분 “시원하다”고 응답했는데 이 같은 응답은 모든 연령대에서 높이 나타났고, 특히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었다. 남녀의 우는 횟수와 관련해서는 여자의 경우 1년에 47회인 반면, 남자는 7회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남자가 눈물을 흘리는 횟수가 적은 것이 아니라 눈물을 흘리는 것을 들키는 확률이 적기 때문일 것”이라고 보았다. “일 년에 몇 번 우나요?”에 대한 응답의 전체 수치는 “1~2번 운다”가 65.8%, “3~4번 운다”가 23.7%였다. 이와 관련해 2012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19세 이상 성인의 12.9%가 “최근 일 년 안에 우울증을 경험했다”고 답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美 하원의원들, ‘북미관계 정상화’ 추진하는 트럼프 견제 법안 발의

    美 하원의원들, ‘북미관계 정상화’ 추진하는 트럼프 견제 법안 발의

    미국 하원에 북한의 인권 개선 없이 미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대북제재를 완화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이 최근 상정됐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15일 보도했다. VOA와 브렌던 보일(민주·펜실베이니아) 하원의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보일 의원은 지난 13일(현지시간) 하원에 이런 내용의 법안을 랠프 노먼(공화·사우스캐롤라이나) 의원과 함께 발의했다. 보일 의원실이 공개한 법안 초안은 대통령이 북한 인권 개선 상황에 관한 의회의 승인을 거쳐야 대북제재를 완화·유예·해제할 수 있도록 했다고 VOA는 전했다. 법안은 제재 완화를 위해 ▲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운영을 비롯한 인권유린 행위 중단 ▲ 북한 정권이 주민들을 상대로 저지른 범죄 행위를 공개하고 발견하기 위한 투명한 과정 수립 ▲ 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살해에 대해 가족들에게 공식으로 사과할 것 등 3가지 요건을 제시했다. 보일 의원은 홈페이지에서 “대통령이 비핵화에 대한 협상을 타결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지만,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응하는 데 실패해서는 안 된다”며 “(북한) 정권의 광범위한 억압 장치는 프로세스의 초기부터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곽병찬 칼럼] ‘평화’엔 좌우가 없다

    [곽병찬 칼럼] ‘평화’엔 좌우가 없다

    6·13 지방선거 결과는 흔히 하듯이 여야 또는 보수ㆍ진보의 승패로 재단할 수 없다. 유권자의 선택이 정치적, 이념적 성향 나아가 후보자에 대한 호불호가 아니라 한반도 평화 이슈에 의해 좌우됐기 때문이다. 평화의 염원이 이처럼 유권자들의 무의식 깊이 내면화되고, 정치적 선택으로 표출된 경우는 일찍이 없었다. 자유한국당 후보들이 남북 및 북·미 대화에 사사건건 딴지를 거는 지도부의 지원을 기피한 것이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이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을 앞세우는 것으로 선거운동을 대신한 것은 그 좋은 본보기였다. 선거운동 초반 입만 열면 문 대통령을 비판하던 한국당 후보들은 중반 이후 아예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거나 오히려 문 대통령이 운전자가 된 평화의 여정에 동승하려고 했다. 자유한국당이 ‘제대로 망하는 길’로 들어섰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사건은 이른바 ‘통일대교 점거’였다. 2월 25일 홍준표 대표와 김성태 원내대표, 김무성ㆍ장제원 의원 등 당 지도부는 통일대교를 가로막고,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 참석을 위한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 일행의 남쪽 방문을 막아섰다. 27일에는 통일대교 상행 차선을 막았다. 김 부장 일행은 샛길로 방남하고 또 역주행으로 귀환해야 했다. 그러자 홍, 김 대표는 ‘들어올 때는 개구멍, 나갈 때는 역주행’이라며 대첩이라도 거둔 양 기고만장했다. 그러나 그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한반도 정세를 근본적으로 뒤바꿀 거대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는 것을. 김 부장은 25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북·미 대화를 할 충분한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김 부장은 중재자 혹은 보증인 역할을 문 대통령에게 부탁한 것이었다. 온갖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진 6·12 북·미 정상회담은 그렇게 시작됐고, 회담은 70여년의 적대 청산과 평화 정착의 토대를 마련했다. 정상회담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미국 쪽이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직전 상영한 영상이었다. 메시지는 정중했지만 단호했다. “평화인가 고립인가, 전진인가 후퇴인가, 이제 선택만 남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결단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김 위원장에겐 몹시 불편했겠지만, “그가 흥미롭게 보았고, 공개해도 좋다고 했다”고 트럼프는 전했다. 이 메시지는 그 예리한 촉이 북한이 아니라, 바로 우리 안의 ‘평화가 두려운 집단’에게도 날아드는 것 같아 특별했다. 지난 70여년 ‘전쟁과 적대’를 이용해 권력을 장악하고 패권을 유지해 온 집단 말이다. 그들은 한반도의 분단과 분쟁을 미국 군산복합체의 이익에 이용해 온 자들과 보조를 맞춰 가며, 심지어 북·미 정상회담의 좌절을 기도하기도 했다. ‘나라를 통째로 (북한에) 넘기시겠습니까.’ 4·27 남북 정상회담 직전 한국당이 내건 지방선거 슬로건이었다. 북·미 회담 결과가 나오자 홍 대표는 ‘대한민국 안보가 벼랑 끝에 달렸다’고 호들갑을 떨었고, 그와 동고동락했던 족벌 언론들은 ‘북한의 완승’이라고 깎아내렸다. 불과 5개월 전만 해도 서로 핵 단추 자랑과 함께 핵전쟁 위협을 하며 으르렁대던 두 사람이었다. 70년 적대의 결과인 북핵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은 과연 정상일까. “평화인가 고립인가, 전진인가 후퇴인가.” 회담장의 동영상은 남측에도 선택을 촉구했다. 독일 통일의 밑돌을 놓은 건 사회민주당의 빌리 브란트 총리였지만, 통일의 결실을 이룬 것은 보수적인 기독교민주당의 헬무트 콜 총리였다. 전략적 인내 운운하며 북한이 핵개발에 박차를 가하도록 한 것은 미국 민주당의 오바마 대통령이었지만, 그 해결의 밑돌을 놓은 것은 보수적인 공화당의 트럼프 대통령이다. 김구, 김창숙 등 이 땅의 참보수주의자들은 평화와 통일의 기치를 죽는 순간까지 내려놓지 않았다. 이들을 암살하고 억압한 것은 보수의 가면을 쓴 기회주의 패권주의자, 이승만과 친일파였다. 평화에는 좌우도, 진보ㆍ보수도 없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에 보수ㆍ진보가 따로 있겠나.
  • [In&Out] “예쁘지 않아도 괜찮아”/정일선 대구여성가족재단 대표

    [In&Out] “예쁘지 않아도 괜찮아”/정일선 대구여성가족재단 대표

    펄벅의 소설 ‘대지’에는 전족(纏足)을 하지 않은 큰 발을 평생의 한으로 여겼던 왕룽의 아내 오란의 이야기가 나온다. 오란은 그 당시 미의 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외모였다. 예쁘지 않은 얼굴에 체격 또한 컸으며, 결정적으로 전족을 하지 않은 큰 발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흉년 때문에 어려서 종으로 팔려 오느라 전족할 틈이 없었던 탓이다. 가난한 노총각 왕룽은 황부잣집 노부인이 적선하듯 내어준 여종을 아내로 맞으러 가면서 그저 곰보만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가진다. 하지만 막상 오란을 보게 되자 그녀의 발이 전족이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왕룽은 지혜롭고 생활력 강한 오란 덕분에 몰락한 지주 황부잣집 토지를 사들일 정도로 큰 부를 이루게 되지만 미모의 첩을 들임으로써 오란에게 여성으로서 큰 상처를 안겨 준다. 오란이 자신의 불행의 근원으로 생각했던 전족은 여성의 발을 옭매어 기형적으로 작게 만드는 중국 전통사회의 악습으로 놀랍게도 천 년간이나 이어져 온 중국 미인의 절대 조건이었다. 아무리 가난해도 발 큰 여자를 집안에 들이는 것은 가문의 수치라고 생각했다니 오란이 느꼈을 가슴의 한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여성에게 부여되는 사회적 미의 기준은 사회마다 또 시대마다 다르지만, 형태만 달리할 뿐 결코 그 기준이 사라진 적은 없었다. 화장한 얼굴이 여성의 매너로까지 자리 잡은 우리 사회에서 아침마다 화장과 머리 손질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여성들의 일상이 돼 버렸다. 솜털 보송한 초등학생들까지도 그 여린 피부를 화장으로 덮고 있고, 10대 소녀들은 몸의 라인을 살린 꼭 끼는 교복을 입고 숨도 못 쉴 정도가 돼 버렸다. 여대생들은 시험 기간에도 화장 시간을 확보하느라 새벽잠을 설치고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마스크와 스포츠 모자로 민낯을 가리고서야 학교로 향할 용기가 난다고 고백한다. 예뻐져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날씬한 몸매가 워너비가 되면서 거의 전 연령층의 여성들에게 다이어트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숙제가 돼 버렸다. 이런 한국 여성들이 최근 ‘탈코르셋’을 외치기 시작했다. ‘탈코르셋 운동’은 단지 긴 머리를 자르고 립스틱을 부러뜨리고 화장을 거부하는 표면적인 움직임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전족이나 코르셋처럼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 중심의 사회적 규율과 성차별적 현실에 맞서겠다는 주체적 선언으로 볼 수도 있다. 강남역 사건 이후 사회를 향해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책적으로 이를 반영하려는 체감 속도는 느리기만 하다. 들불처럼 일어났던 미투운동은 이내 이를 반격하는 백래시(backlash)와 마주해야 했고, 페미니스트를 표방한 서울시장 후보는 선거 벽보가 훼손당하는 일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성차별에 맞서는 여성들의 외침이 앞으로도 중단되지는 않을 것 같다. 한번 벗은 코르셋을 다시 입기는 힘들다. 코르셋을 벗은 뒤의 자유를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음을 자각한 여성들은 더이상 이전의 가치관을 수용하지 않는다. 탈코르셋 운동에 동참한 한 유튜버의 말처럼 말이다. “난 예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 [생각나눔] 안 꾸밀 권리 ‘탈코르셋’… 성평등 운동 기폭제 될까

    [생각나눔] 안 꾸밀 권리 ‘탈코르셋’… 성평등 운동 기폭제 될까

    최근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유튜브 등에서 20~30대 여성을 중심으로 ‘탈코르셋 인증’이 유행하고 있다. 긴 머리를 짧게 자르거나 화장품을 버리는 사진을 올리는 식이다. 여성에 대한 고정화된 사회적 시선에서 탈피하겠다는 시도다. 성평등 운동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탈코르셋 운동이란 보정 속옷을 뜻하는 코르셋을 벗어버린다는 의미로, 화장·브래지어 착용 등 여성에게 당연시되던 외모 관리를 줄이는 실천을 뜻한다.최근 화장품을 부순 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 김혜원(21)씨는 7일 “탈코르셋을 인증하니 어떤 사회적 족쇄가 풀리는 기분이 들었고 나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됐다”면서 “내 삶과 시간을 더 즐기게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전했다. 대학생 조소현(21)씨는 “하루에 화장하는 시간을 20분으로 계산하면 1년이면 4일이 넘는 시간”이라면서 “꾸밀 권리뿐만 아니라 꾸미지 않을 권리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닉네임 ‘한국여자’로 활동하는 유튜버 차지원(24)씨의 ‘한국여자의 하루 탈코르셋’ 영상은 24만뷰를 초과했다. 이 영상에서 차씨는 1시간 이상 걸리던 꾸밈 시간을 절반으로 줄인 하루 일과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 준다. 차씨는 “다른 사람의 시선, 남성적 시선에서만 벗어나도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많이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화장법을 알려 주는 영상을 올리던 뷰티 유튜버 ‘우뇌’도 “더이상 메이크업 영상을 올리지 않겠다”며 ‘탈코르셋’을 선언했다. 탈코르셋을 결심하게 되는 순간도 다양하다. 대학생 조씨는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여기저기서 “화장을 하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원치 않는 화장 강요에 분노를 느낀 조씨는 일을 그만두고 말았다. 대학생 고예리(20)씨는 교회에서 만난 여중생들이 자신의 화장에 대해 ‘품평회’를 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탈코르셋 운동을 시작했다. 화장이 여성만의 전유물로 인식되며 어린 여중생들에게까지 대물림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탈코르셋 운동은 남성 중심적 사회 속 차별을 거부하는 여성들의 저항으로 인식된다.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는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의 취지와도 맥이 닿아 있다. 김은실 이화여대 교수는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시장 권력에 대한 젊은이들의 저항이자 남녀 주체의 고정관념에 대한 도전”이라면서 “여자다워야 한다는 억압에 대해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욕구의 표현으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우려의 시선도 만만찮다.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기에는 현실의 벽이 여전히 높다는 지적이 적지 않은 것이다. 안현진 여성환경연대 활동가는 “탈코르셋 운동을 하는 데 있어서 여전히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면서 “직제·복장 규정 등 노동 환경에 대한 문제 제기와 관련 제도의 변화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화장 거부와 짧은 머리 등 단순한 ‘여성의 남성화’만이 탈코르셋의 본질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김종갑 건국대 몸문화연구소장은 “한 가지 여성적 특징만을 놓고 ‘여성적’이라 말하는 것은 과거지향적인 발상”이라면서 “개인 표현의 자유를 가부장제의 한 방향으로 해석하거나 생각의 선택지를 좁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숄 두르고 거리로 나서는 엔딩, 현실 속 ‘미투’처럼 싸움의 시작”

    “숄 두르고 거리로 나서는 엔딩, 현실 속 ‘미투’처럼 싸움의 시작”

    경찰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자가 밤거리를 내달린다. 강간범들을 신고하기 위해 밤새 병원과 경찰서를 전전하지만 피해자인 그는 외려 비난과 폭언, 공격의 대상이 된다. 영화 ‘미녀와 개자식들’(원제: 뷰티 앤 더 독스)은 이렇게 성폭행이란 사건 자체보다 무능과 무책임, 무감각으로 일관하는 폭압적인 관료제가 더 악몽일 수 있음을 고발한다. 끔찍한 시스템을 통과하고 난 여주인공은 흔들리던 마음에서 솟는 내면의 힘을 자각한다. 그가 숄을 목에 두르고 거리로 뛰쳐나가는 마지막 장면이 망토를 두른 할리우드 슈퍼히어로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것은 그래서다. 성폭행 피해자의 2차 가해를 다룬 이 영화로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던 튀니지의 사회파 감독 카우테르 벤 하니아(41)가 아랍영화제 참석차 한국을 찾았다. 최근 칸영화제에 연이어 초청받은 그의 작품 ‘튀니지의 샬라’(2014)와 ‘미녀와 개자식들’(2017)은 튀니지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을 토대로 한다. 하지만 여성 혐오, 성폭력, 성폭력 2차 가해, 여성들을 억압하는 남성 중심의 사회 등 최근 몇 년간 세계적으로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이루고 있는 여성 인권, 페미니즘 이슈를 정면으로 다루며 국경의 경계를 넘어 관객들과 넓은 공감대를 이룬다. ‘미투 운동’을 경험한 국내 관객들에게도 그의 영화는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지난 1일 개막한 아랍영화제에서 그의 영화 상영 및 감독과의 대화 시간은 모두 매진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지난 4일 서울 홍대의 한 호텔에서 만난 벤 하니아 감독은 “지난 주말 한국 관객들의 열정적이고 풍부한 피드백을 받고 정말 행복했다”며 “내 영화가 관객에게 인식의 변화를 심어 주고 삶에 새로운 영감을 줬다는 말을 들으니 감독으로서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미녀와 개자식들’은 실제 2012년 튀니지에서 경찰들에게 성폭행당한 여성이 하룻밤 새 5차례 경찰서를 전전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사건이 알려지고 튀니지에선 거리 시위가 일어났고 범죄를 저지른 경찰은 2년 만에 징역 14년의 처벌을 받게 됐다. 감독은 “절망적인 상황에도 끝까지 굴하지 않았던 실제 피해 여성의 용기에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며 “실제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뿐 아니라 성폭행 피해자를 비난하고 사건에 무감한 경찰, 여성들에 대한 비뚤어진 고정관념과 폭력적 시선을 공고히 하는 평범한 남자들의 언행도 ‘폭력’이자 ‘범죄’라고 생각해 영화 속에서 ‘악의 평범성’을 드러냈다”고 했다. 여주인공이 숄을 목에 두르고 밖으로 뛰쳐나가는 마지막 장면은 망토를 두른 할리우드 슈퍼히어로를 연상시킨다. 이에 대해 감독은 “그렇게 의도한 게 맞다”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미묘하게 암시하려 했던 거니까 말하진 마세요(웃음). 영화 속 미리암은 성폭행 신고를 무마시키려는 관료 사회의 공포스러운 시스템을 경험하고 극복하면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고 내면의 힘을 찾게 돼요. 영화에서는 엔딩이지만 그 마지막 장면이 우리 현실에서는 싸움의 시작인 거죠.” 벤 하니아 감독은 주로 다큐멘터리로 영화를 직조하거나 극영화에 삶과 밀착된 이야기들을 들여보내는 작업을 해 왔다. 차기작에서도 시리아 난민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어떤 가공의 이야기보다 실제 우리 삶의 이야기가 더 놀라울 때가 많아 관객에게 더 많은 영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의 민낯을 보여 주는 게 흑백 논리로 세상을 보려는 이들에게 이면을 보여 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영화 속에서 그는 피해자를 돕는 남성 화자들의 입을 빌려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거듭 전한다. “영화 속 주인공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에 대한 존중을 부정하는 사회와 정의 구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자신의 힘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는 걸 알게 되죠. 분노, 공포, 압박감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갖는 피해자의 감정을 공감하게 될 때 세상의 변화도 이뤄질 거라 믿습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쿵푸팬더’ 감독의 SF 판타지 ‘다키스트 마인드’ 1차 예고편

    ‘쿵푸팬더’ 감독의 SF 판타지 ‘다키스트 마인드’ 1차 예고편

    영화 ‘다키스트 마인드’ 1차 예고편이 공개됐다. ‘다키스트 마인드’는 초능력이 생긴 10대를 감금하고 억압하는 정부에 맞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소녀 ‘루비’가 수용소를 탈출,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자신들의 미래를 되찾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판타지 영화다. 공개된 예고편은 ‘달라진 그들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카피처럼 암담한 현실 속에서 아이들이 새로운 삶을 되찾으러 가는 여정이 담겨 있다. 아이들의 신비로운 힘을 표현한 영상미가 눈길을 끈다. 영화 ‘다키스트 마인드’는 알렉산드라 브래큰의 동명 베스트셀러 3부작 소설을 각색한 것으로 애니메이션 영화 ‘쿵푸 팬더2’, ‘쿵푸팬더3’를 연출한 여인영 감독의 첫 실사 연출작이다. 오는 8월 개봉 예정이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종교·인종·편견 넘어…영화, 여성을 말하다

    종교·인종·편견 넘어…영화, 여성을 말하다

    아랍·여성 영화제 등 특별 섹션 여혐·미투 등 다룬 작품 선보여 ‘허스토리’ ‘마녀’ ‘여중생A’ 등 여성의 서사 내세운 작품들 개봉 최근 세계를 휩쓴 ‘미투 운동’이 사회와 개인의 인식을 바꿔 가는 가운데 영화제, 스크린에서도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기획과 작품들이 잇따르고 있다.올해 7회째를 맞은 아랍영화제(6월 1~6일)는 동시대 아랍 여성들의 목소리를 국내 관객들에게 전한다. 올해 마련한 특별섹션 ‘포커스 2018: 일어서다. 말하다, 외치다’를 통해서다. 특별 섹션에서는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은폐됐던 성폭력 문제와 일상이 된 여성혐오를 다룬 영화들을 앞세운다. 칸국제영화제에 두 차례 초청됐던 튀니지 여성 감독 카우테르 벤 하니아 감독이 내한해 자신의 영화 ‘튀니지의 샬라’(2014), ‘뷰티 앤 더 독스’(2017)를 선보이며 아랍 여성들의 변화와 변화를 위한 움직임을 들려준다. ‘뷰티 앤 더 독스’는 2012년 성폭력 피해 여성이 경찰에게 2차 가해를 당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폭력적인 관료제와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 구조를 예리하게 발가벗긴다. ‘튀니지의 샬라’는 여성들의 옷차림이 불경하다는 이유로 여성의 엉덩이를 면도날로 긋고 달아나는 여성 혐오 범죄자 ‘샬라’의 정체를 감독이 직접 좇는 모큐멘터리다. 박은진 아랍영화제 프로그래머는 “국내에서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혐오에 대한 공포, 남성 중심 사회의 폐해 등이 되풀이되는 만큼 아랍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영화에서 국내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이라며 “한국뿐 아니라 우리와 멀다고 생각했던, 공고하게 여성에 대한 편견이 있는 사회라 생각했던 아랍까지, 전 세계에서 변화의 바람이 있다는 걸 영화를 통해 목도하며 우리의 현실을 포개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간 한국영화계에 역량 있는 여성 영화인들을 발굴하고 소외됐던 여성 영화들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춰 온 국제여성영화제도 올해 20돌을 맞았다. 오는 7일까지 서울 신촌 메가박스에서 열리는 여성영화제의 섹션 ‘쟁점들’에선 미투 운동, 디지털 성폭력, 낙태 등 최근 뜨거운 현안 3가지를 키워드로 정해 이를 성찰할 수 있는 작품들을 내놨다.1944년 소작농이자 한 아이의 엄마인 레시 테일러가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여섯 명의 흑인에게 강간을 당한 뒤 침묵을 요구하는 이들을 고발한 사건을 다룬 ‘레시 테일러의 #미투’, 미투 운동에 대한 즉각적인 응답의 의미로 감상할 수 있는 국내 여성 감독들의 단편 세 편(관찰과 기억, 혀, 모래놀이) 등이 소개된다. 이달 들어 스크린에서도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여성들의 서사’가 유독 강세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전 세계적으로 벌어진 미투 운동과 맞물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뿐 아니라 칸영화제에서도 여성 서사들의 힘을 실어주는 경향이 뚜렷했다”며 “이렇듯 여성 주인공들을 내세우거나 여성 감독들이 연출한 작품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면서 여성 영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과거 전향적인 시도들이 결실을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최초로 배상 판결을 받아낸 관부재판(1992~1998년)을 다룬 ‘허스토리’, 여주인공을 내세운 영화로는 드물게 미스터리 액션을 펼치는 ‘마녀’, 여중생의 성장을 다룬 ‘여중생A’ 등이 관객들을 찾아간다. 지난해 호평을 얻은 ‘아이 캔 스피크’가 위안부 문제를 중반 이후부터 꺼내고 남성 조력자(이제훈)의 도움을 받았다면, ‘허스토리’는 일본 정부와 오롯이 맞선 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와 분투를 전면에 내세웠다.외화에서도 이런 경향은 두드러진다. 백설공주의 모델이 될 만큼 아름다운 외모로 이름을 떨쳤지만 ‘주파수 도약 기술’을 발명해 오늘날 와이파이, 블루투스, 첨단군사기술을 있게 한 헤디 라마의 생을 다룬 ‘밤쉘’이 7일 개봉한다. 자택에 따로 작업실을 둘 만큼 발명에 몰두하며 여성을 외모로만 판단하려는 세상의 편견을 돌파하려 했던 그의 삶 자체가 드라마틱해 다큐멘터리가 극영화처럼 느껴진다. 샌드라 불럭, 케이트 블란쳇, 앤 해서웨이 등 할리우드를 이끄는 여배우 8명을 포진시킨 케이퍼 무비 ‘오션스8’, 여성의 자존감 문제를 유쾌하게 그려낸 코미디 ‘아이 필 프리티’ 등도 여심 공략에 나선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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