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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킴’ “감독이 팬이 준 편지 뜯어봐…더이상 함께 컬링 불가”

    ‘팀킴’ “감독이 팬이 준 편지 뜯어봐…더이상 함께 컬링 불가”

    경북체육회 여자컬링 ‘팀 킴’이 지도자 가족의 전횡을 추가로 폭로했다. 김은정, 김영미, 김선영, 김경애, 김초희로 이뤄진 ‘팀 킴’ 선수들은 1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개 호소에 나섰다. 경북체육회 컬링팀을 지도하는 김경두 전 대한컬링경기연맹 부회장, 김민정 감독, 장반석 감독의 ‘부당한 처사’를 최근 공개한 데 이어 다시 취재진 앞에 서서 상황 설명에 나선 것이다. 이들의 비판 대상인 김경두 전 부회장과 김민정 감독은 부녀, 김 감독과 장반석 감독은 부부 사이다. 팀의 주장인 김은정은 “그들은 선수들이 성장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교수님이 원하는 정도만 성장하면 그 이후에는 방해하신다. 조직보다 선수들이 더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감독단은 저희가 외부와 연결돼 있거나 더 성장하면 자신들이 우리를 조절할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고등학생일 때부터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면 ‘왜 대화하느냐’라며 궁금해 하셨다. 인터뷰를 막는 것은 물론이고 외부에서 어떤 내용의 편지가 오는지 알고 싶어 한다”며 “우리는 외부와 차단돼서 아무것도 못한다.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것만 듣게 만드는 방법의 하나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은정은 “교수님 가족과 교수님은 우리나라 컬링에 큰 역할을 하고 싶어 하시고 그 위에서 자신 의 뜻대로 컬링을 돌아가게 하고 싶어 하신다. 거기에 선수들을 이용한다”며 “선수의 성장을 막는 이유는 그 단 한 가지다. 모든 게 교수님이 원하시는 사적인 욕심으로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도 예전에는 그들과 가족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올림픽을 지나오면서 답을 찾았다. 결국은 그 가족만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고 덧붙였다. 김선영은 “선수들은 팬들이 준 선물과 편지를 모두 포장이 뜯긴 상태로 받았다”며 “감독이 먼저 편지와 내용물을 보시고 저희에게 준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근본적인 원인은 교수와 가족이 하고 싶은 대로 이끌어가고 싶어서 이렇게 하는 것이라 판단한다”며 “대한민국 컬링이 발전하고 인기가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데 그것보다는 ‘결국 컬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고 말씀하고 싶은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다음은 선수 대표로 김선영이 발표한 호소문 전문- 진정한 가족 스포츠는 서로를 존중하고 충분히 소통하고 최대한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그 가족이라 칭하는 틀 안에서 억압, 폭언, 부당함, 부조리에 불안해 하고 무력감과 좌절감 속에 힘겨운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더 이상 팀킴은 존재할 수 없고 운동을 그만 둬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운동을 계속하고 싶다는 절박함에 용기를 내어 대한체육회, 경상북도, 의성군에 호소문을 낸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감독단에서 반박한 내용을 보면 저희들의 호소문이 전부 거짓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습니다. 선수들이 왜 호소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으시는 감독단의 반박에 대하여 진실을 말씀드리고 저희가 왜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지 다시 한번 말씀드리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먼저 장반석 감독님께서 반박하신 내용 중 어린이집 행사에 사전 동의를 받았다는 주장은 일방적으로 통보하신 것을 사전에 협의했던 것처럼 말씀하신 것입니다. 장 감독님이 유치원 행사 관련하여 말씀하신 5월3일에는 선수들은 전혀 들은 바가 없습니다. 5월 중순경 선수들이 어떤 일인지 김 감독님에게 물어보았으나 김 감독님은 장 감독님 개인적인 일이라 자기는 모른다 하며 대답을 회피하셨습니다. 하루 전날인 5월24일 밤 11시51분 운동회 일정표를 뒤늦게 보내주었지만 아들 운동회니 못하겠다 라고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장 감독님은 김은정 선수 본인이 성화봉송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조직위에 전달하였다 들었습니다. 하지만 김은정 선수는 패럴림픽 성화봉송과 관련하여 아무런 내용도 들은 적 없고 성화봉송 행사 일을 앞두고 행사에 참석하라는 통보를 장 감독님에게 받았습니다. 패럴림픽 행사장 조직위 관계자분께서 은정 선수 섭외가 너무 힘들었고 안오시면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 많았다는 상황을 듣고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습니다. 행사 이후 김민정 감독님은 김경두 교수님의 배려와 노력으로 김은정 선수를 성화봉송 최종주자로 만들었다고 기자에게 인터뷰 하였습니다. 선수들 동의 하에 통장을 개설하였다고 장 감독님이 주장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2015년에 상금통장으로 사용할 통장을 개설한다고 선수들에게 통보만 하였습니다. 사전에 김경두 교수님 명의로 진행할 것이다라는 것은 언급해 준 것이 없었고 선수들에게 동의를 구한 적도 전혀 없었습니다. 장 감독님이 공개한 내역서에 대해서는, 2015년부터 2018년 올림픽 종료 시까지 상금의 입출금에 대해서는 선수들에게 정보를 제공한 적이 없습니다. 2018년 7월에 장 감독님이 직접 작성한 지출내역서에 장비구입내역이라 말씀하시며 서명하라 하셨습니다. 장 감독님이 상금통장 사용의 증거로 제시한 내역서는 전체적인 상금의 사용내역이 아닌, 장비 구입 내역과 소정의 교통비, 식비입니다. 세부적인 사용 내역에 대하여 장 감독님이 일방적인 통보만 하였을 뿐 그 어떤 사전 동의도 없었습니다. 저희는 감사에서 이와 관련하여 통장 사본, 영수증, 잔액의 현황과 세부 사용 내역이 밝혀지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행사 및 기금, 포상금 관련하여 주최 측에서 선수 개인에게 입금해준 격려금은 선수 개인계좌로 모두 입금되었으나 팀이름으로 받은 격려금은 행방을 알 수 없습니다. 장 감독님이 증거로 배포하신 고운사 1200만원도 카톡에서 의견만 물었을 뿐 그 후로 언제, 얼마큼 사용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고운사 외에도, 기사에도 언급이 된 의성군민 기금 또한 행방을 알 수 없습니다. 김은정 선수와 관련해서도 결혼을 하였으니 새로운 스킵을 준비해야 했다고 장 감독님이 주장하였는데 올림픽 이전에도 이미 김은정 선수의 입지를 줄이려 하고 있었고 결혼을 한 후에는 다른 선수들이 이해할 수 없는 포지션 변경에 대한 훈련을 강요하였습니다. 팀을 나누고 숙소까지 떨어뜨려 놓으며 선수들을 분리시켜 놓은 것은 어떻게 설명하실지도 궁금합니다. 저희는 단순 김은정 선수만이 아닌 팀 전체를 분열시키려는 목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결혼 후 임신을 계획한다는 이유로 여자 선수로서 운동을 그만 두어야 하는지도 저희는 의문입니다. 호소문 이외에도, 올림픽 이후에 저희에게 온 팬분들의 선물과 편지는 항상 뜯어진 채로 받았습니다. 팀으로 온 선물들은 이해할 수 있으나, 선수 개인에게 온 선물들과 편지를 다 뜯어서 먼저 감독님이 확인하시고 선수들에게 준 것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올림픽 준비과정과 올림픽 기간 포함 약 3년동안 선수들과 함께한 외국인 코치 피터 갤런트가 제3자의 입장에서 그당시 팀의 상황을 말한 입장문을 첨부하였으니,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감독단에서는 저희의 호소문의 많은 내용중 일부에 대해서만 반박을 하고 있습니다. 정작 중요한 폭언과 억압에 관련한 내용에 대해서는 전면부인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훈련, 팀 사유화 인권에 대해 아무런 말씀이 없으십니다. 저희 선수들은 현재까지 언론에 나온 문제들보다 최초에 호소문에서 밝혔던 팀 사유화, 인권, 훈련적인 부분이 더욱더 세세히 밝혀지고, 근본적인 원인 해결되길 바랍니다. 저희 팀킴은 이번 호소문을 계기로 많은 기자분들과 국민 여러분들께서 저희가 처한 상황을 이해해주시고 용기를 북돋아 주신데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요청드리는 사항은 3가지입니다. 첫째, 저희가 호소문을 작성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호소문에서 밝혔듯이, 저희 팀을 분열시키려고 하는 감독단과는 더 이상 운동을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감사에서 더욱더 철저히 밝혀지기를 바랍니다. 둘째, 컬링을 계속하려면 훈련장이 있어야 합니다. 의성컬링훈련원에서 계속 훈련 할 수 있도록, 훈련원이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선수와,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완벽하게 분리되길 바랍니다. 셋째, 저희 팀을 제대로 훈련시켜주고 이끌어줄 감독단이 필요합니다. 컬링 선수로서 운동을 계속하고,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더 큰 목표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감사를 통해 모든 진실들이 밝혀지기를 바라고, 저희 선수들도 감사에 적극적으로 임하겠습니다. 저희가 용기를 낼 수 있도록 팀킴을 잊지 않고 응원해주시는 국민 여러분과 저희를 지지해주시는 후원사에게 감사드립니다. 다시 한 번 저희의 호소를 들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월드 Zoom in] 印 생체인증 프로젝트 ‘아드하르’, 아시아·아프리카 벤치마킹 바람

    [월드 Zoom in] 印 생체인증 프로젝트 ‘아드하르’, 아시아·아프리카 벤치마킹 바람

    터번·수염으로 얼굴 가려도 식별 뛰어나 印 인구 90%인 12억 2000만명 발급완료 은행거래·취업률↑… 사생활침해 논란도인도의 세계 최대 생체인증 프로젝트인 ‘아드하르’가 아시아·아프리카 국가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호적제도가 없어 빈곤층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던 인도가 아드하르를 통해 경제·사회 기반을 다지면서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이 이를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이다. 필리핀은 아드하르 사업을 진행 중이고 스리랑카와 케냐, 모로코 등에서도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인도 경제지 파이낸셜익스프레스(FE) 등이 12일 전했다. 12자리 개인번호가 담긴 아드하르는 한국의 주민등록번호와 비슷하지만 홍채와 지문, 얼굴 등 생체 정보가 들어간 것이 특징이다. 정부 보조금과 교육, 의료 서비스 등을 받을 때 신분증으로 쓰인다. 터번과 수염으로 얼굴이 덮여 있어도 개인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정밀도도 뛰어나다. 인도 고유신원정보국(UIDAI)에 따르면 9월 기준 13억 4000만 인구 중 90%에 이르는 12억 2000만명이 아드하르를 발급받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인도 정부가 아드하르를 사회복지 시스템의 기반으로 삼고 있을 뿐 아니라 정보기술(IT)산업을 진흥하고 교육과 의료 인프라를 개선하는 혁신 수단으로 삼고 있다고 전했다. 필리핀 정부는 올 4분기부터 생계 지원을 받는 100만여명의 안구와 지문, 안면 등 생체 정보를 수집한다. 2022년까지 필리핀인 1억 6000만명이 영구적 신분번호를 등록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출생 기록이 없는 사람이나 소수민족에도 적용할 방침이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출생 증명서가 없어 취업을 못 하거나 금융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지난 8월 국가 신분증 도입에 관한 이른바 ‘필시스’ 법안을 시행했다. 인도가 아드하르 도입 후 은행 거래가 확연히 늘어난 것처럼 필리핀 역시 필ID를 통해 더 많은 인구를 제도권 금융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FE는 필ID가 인도 아드하르를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필리핀 통계청은 현재 740만여명이 신분이나 출생 관련 공식 기록을 갖지 못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은 고리대금업자나 전당포에 한 달에 20%에 이르는 높은 이자를 물고 현금을 융통해야 한다. 이번 사업 규모는 300억 페소(약 6400억원)에 이른다고 필리핀 통계청은 내다봤다. 리사 그레이스 버세일스 통계청장은 “기업 40여곳이 사업 수행과 관련한 제안서를 제출해 검토했다”고 말했다. 반면 인도에 이어 필리핀 등에서도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빅브러더’처럼 정부가 국민의 사생활을 파악하고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아드하르를 대상으로 인권운동가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인도 대법원은 합헌 판결을 내려 정부의 손을 들어 줬다. 법안에 반대한 의원들은 두테르테 대통령이 반대 세력을 억압하기 위해 생체 정보를 사용할 수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유빙의 숲(이은선 지음, 문학동네 펴냄)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은선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개인의 힘으로는 역부족인 재난이나 사고, 질병으로 극한의 고통에 처한 인물들이 잔혹한 현실을 통과해 어떻게든 살아내는 과정을 그렸다. 작가는 이들이야말로 삶에 대한 가장 지극한 애정을 가진 존재들임을 역설해 보인다. 296쪽. 1만 3000원.레트로토피아(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정일준 옮김, 아르테 펴냄) 유럽 지성의 최고봉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폴란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작. 노학자가 진단한 오늘날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중계되는 타인의 삶과 음모론·가짜뉴스로 인한 불안감에 아무것도 없는 원초적인 세계 ‘자궁’으로 돌아가고만 싶은 시대다. 272쪽, 2만원.사라진 후작(낸시 스프링어 지음, 김진희 옮김, 북레시피 펴냄) 올해로 130살을 맞는 명탐정 셜록 홈스. 그에게 열네살짜리 여동생이 있다면? 갑자기 사라진 엄마를 찾던 에놀라 홈스는 젊은 후작의 납치 사건에 연루돼 홈스 가문 특유의 ‘촉’으로 후작을 찾아나선다. 사회제도에 억압된 여성상에 반기를 든 발칙한 탐정의 좌충우돌 모험기. 260쪽. 1만 3000원.마르크스주의 100단어(미카엘 뢰비·에마뉘엘 르노·제라르 뒤메닐 지음, 배세진 옮김, 두번째테제 펴냄)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방대한 정보들 중 100개를 추려 그 핵심 개념만을 담아 작은 사전 형식으로 엮은 책. 프랑스에서 철학·사회학·역사학·경제학의 권위자로 인정받는 저자 3명이 각각 자신의 전문 분야에 관한 항목들을 작성하고 이를 정리했다. 256쪽. 1만 5000원.땅의 역사 1·2(박종인 지음, 상상출판 펴냄) 27년차 여행전문기자로 활약한 저자가 조선일보에 연재한 인문 기행 코너 ‘땅의 역사’를 책으로 묶었다. 우리 땅 방방곡곡에서 찾은 역사의 여러 흔적 중 고대사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증 내·외상’을 남긴 사건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적었다. 각 336쪽, 352쪽. 각 1만 6000원, 1만 6500원.지금 오는 이 시간(심상옥 지음, 마을 펴냄) 오래 흙을 만져온 도예가이면서 서정시의 끈을 놓지 않았던 시인의 신작 시집. 오랜 도예창작과정에서 터득한 원숙한 예술적 안목을 바탕으로 풍부한 삶의 지혜를 아름다운 문장으로 구현해 냈다. 128쪽. 1만 2000원.
  • [강남순의 낮꿈꾸기] 칸트마저 피할 수 없었던 인식의 사각지대… 당신은 어떤가요

    [강남순의 낮꿈꾸기] 칸트마저 피할 수 없었던 인식의 사각지대… 당신은 어떤가요

    합리적 존재 범주에 여성은 포함 안시켜 흑인의 인종적 열등성 믿어 의심치 않아 한 종류의 차별에 민감성 높다 치더라도 다층적 차별 따른 인식 사각지대 불가피 지속적인 학습 과정 통해 인지 확장 필요대학원 세미나 시간에 한 흑인 학생과 백인 학생 사이에 논쟁이 붙었다. 흑인 학생은 반인종차별을 위한 비정부기구(NGO)에서 활동해 온 인권운동가이다. 백인 학생은 성소수자 인권 문제를 위한 활동을 해 오던 사람이다. 발제 시간에 섹슈앨러티에 대한 주제가 나왔는데, 발제 후 흑인 학생의 코멘트가 논쟁의 발단이다. 흑인 학생은 자신이 이 대학에서 공부하기 시작한 지난 한 학기 동안 ‘섹슈앨러티’와 ‘성소수자’라는 단어를 들은 횟수가 평생 들은 것보다 더 많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발제자에게 ‘당신 같은 백인이 도대체 흑인들이 당해온 인종차별에 대해 무엇을 아는가’라며, ‘성소수자 문제 같은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큰 문제인 양 과장하는 것을 듣는 것이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자 한 백인 학생이 ‘당신은 얼마나 많은 성소수자들이 혐오 때문에 자살을 시도하고 파괴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도대체 아는가?’라며 대응했다. 급기야 이 두 사람은 언성을 높이며 상대방의 인식 한계를 지적하였다. ●인식론적 사각지대에 대한 성찰 필요 누가 개입할 여지도 없이 격한 논쟁을 하게 되었고, 급기야 백인 학생이 ‘더이상 이런 분위기를 참을 수 없다’며 일어서서 책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나는 그 학생의 이름을 부르고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아직 안 끝났다’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가방을 싸던 학생은 나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다시 자리에 앉았고, 나는 예정에 없던 즉흥 강의를 해야 했다. 첫째, 각자가 지니고 있는 ‘인식의 사각지대’의 문제, 그리고 둘째, 다양한 종류의 억압과 차별들의 위계를 설정하는 것이 지닌 다층적 위험성에 관한 것이었다. 인종차별과 같은 한 종류의 차별구조를 잘 안다고 해서, 다른 종류의 차별에 대한 인지가 자동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성 차별, 장애 차별, 계층 차별, 인종 차별, 나이 차별, 종교 차별, 외모 차별 등 현실세계에서 작동되고 있는 다양한 얼굴의 차별들은 각기 독특한 양상을 띠며 매우 복합적인 구조로 형성되고 유지된다.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지극히 표피적인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반드시 학습해야만 한다. 다층적 차별에 대한 복합적인 이해는 지속적인 학습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조금씩 형성되기 때문이다. 논쟁을 하던 두 학생은 격했던 감정을 가라앉히고, 세미나가 끝난 후 서로 악수하며 미안하다는 사과를 나눔으로써 상황은 매듭지어졌다. 그런데 이 두 학생의 경우가 강의실에서만 있는 것인가. 아니다. 곳곳에 있다. 우리는 각기 다른 인식의 사각지대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마누엘 칸트는 코스모폴리턴 사상을 사회정치영역으로 확장하면서 모든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는 ‘목적의 왕국’(Kingdom of Ends)을 설파한 철학자다. 칸트의 코스모폴리터니즘은 세계화 시대에 국경을 넘어서는 세계 정의, 환대, 권리를 상기시킴으로써 세계 평화를 이루기 위한 정치 철학적 토대를 놓은 중요한 공헌을 한다. 그런데 그 위대한 사상을 확산시킨 칸트도 인식의 사각지대를 분명하게 지니고 있었다. 그는 인간됨을 구성하는 ‘합리적 존재’의 범주에 여성을 포함하지 않는다. 또한 그는 인간 지리학(human geography)을 가르치면서 열대지방에서 태어난 흑인의 인종적 열등성을 의심치 않는다. 칸트가 중요한 철학적 공헌을 했다고 해서, 그가 지닌 여성 혐오 사상과 인종차별과 같은 인식의 사각지대의 문제들이 덮여서는 안 된다. 예술, 문학, 철학의 이름으로 또는 종교나 정치의 이름으로 타자에 대한 혐오와 경시를 정당화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가 이러한 인식의 사각지대에 대한 비판적 인식 확장의 역사이기도 한 이유이다. ●차별·혐오에 관한 ‘인지 확장의 역사’에 희망 지난 10월 L 작가가 ‘단풍’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이 글에서 단풍은 ‘저 년’이라는 비하된 ‘여자’로 호명된다. 더 나아가 그 ‘저 년’은 남자를 유혹하는 ‘화냥기’를 지닌 여자로 재호명된다. ‘화냥기’ 있는 ‘저 년’을 ‘절대로 거들떠보지 말’라고 경고한다. 여성 비하는 물론 노골적인 자연 비하까지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글이 전제하는 세계는 남자들의 세계이다. 단풍을 바라보는 주체가 여자이기도 하다는 상식조차 전적으로 배제된 서사이다. 이 글에서 남성은 이 세계에서 ‘발화(speaking)의 주체’로서만이 아니라, ‘보기(seeing)의 주체’이며, ‘쓰기의 주체’로 자연스럽게 호명되고 각인된다. 남성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남성중심적 발화, 보기, 그리고 쓰기 행위를 통해서, 단풍을 ‘화냥기’를 지닌 ‘저 년’이라고 한 표현이 담고 있는 여성 혐오와 자연 비하는 마치 숨 쉴 때 들이마시는 공기처럼 자연화된다. L 작가는 자신이 “여성을 비하할 의도나 남성 우월을 표출한 의도는 추호도 없었다”고 강변한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차별, 폭력, 혐오 행위는 행위주체의 ‘의도성’ 여부에 의해서 그 부당성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시어라고 해서 또는 은유라고 해서 여성, 인종, 장애, 나이, 성적 지향, 특정 종교 등 어떤 특정한 사회적 소수자 그룹에 대한 비하와 혐오를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공적 세계에 발표되는 글들은, 그 장르가 무엇이든 그 글이 담은 가치를 확산하는 정치적 공간이다. 이런 의미에서 공적 세계에서의 글과 말이란 이미 ‘정치적 행위’의 의미를 지닌다. L 작가의 비성찰적 변명과는 달리, 어느 시인은 자신의 시에 대한 비판적 수정작업을 한다. 시집 ‘여수’로 2018년 20회 천상병시문학상 수상자가 된 서효인 시인은, ‘여수’를 출간하면서 과거에 썼던 시에서 여성 혐오적 표현들을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서 ‘공장에 다니는 여공들’이 아니라, ‘공장에 다니는 젊은이들’로, ‘우리 모두 아줌마가 되면’을 ‘우리 모두 학부모가 되면’으로 바꾸었다(그런데 이러한 표현들이 왜 ‘여성혐오적’인가 라는 의문이 든다면, 젠더 문제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다는 신호이다) . ●다층적 혐오 넘어 모든 생명 존중하는 세계로 또한 여성 혐오적 표현이 있는 시들 몇 편은 시집에서 아예 빼기도 했다고 한다. 문학작품이라고 해서 차별과 혐오의 면책 특권 영역이 되는 것이 아님을, 또한 어떠한 종류의 글이든 이러한 비판적인 수정 작업의 대상임을 이 시인은 보여준다. “그때는 몰랐던 여성 혐오가 지금은 보여”서 빼거나 수정하는 비판적 인식 확장 작업은 문학, 종교, 철학, 정치 등 모든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그는 ‘여수’에서 “문학의 이름을 빌려 자행되는 모든 위계와 차별 그리고 폭력에 반대합니다” 로 ‘시인의 말’을 매듭짓는다. 인류의 역사는 차별과 혐오에 관한 ‘인지 확장의 역사’임을 서효인 시인의 수정 시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희망적이다.인류의 역사에서 분야를 막론하고 ‘발화의 주체’(speaking subject)는 남성이었다. 여성은 오직 ‘발화의 객체’(spoken object)로만 존재해 왔다. 사회의 중심부에 있는 이들은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간주하는 주변부인들을 향한 언사가 비하적이든 혐오적인 것이든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어떤 종류의 글이든, ‘좋은’ 글이란 지금을 넘어서는 새로운 세계를 담고 있는 글이다. 그 글이 전하는 새로운 세계가 지금보다 나은 세계라는 것은, 다층적 차별과 혐오, 불평등과 배제를 넘어서서 보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세계, 모든 종류의 생명이 존중되는 세계, 그리고 나이, 계층, 생김새, 성별, 장애 여부, 피부색, 교육 배경, 또는 종교 등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고귀한 생명임을 의식 속에, 그리고 제도 속에 담아내는 세계이다. 글 텍사스 크리스천대,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그림 김혜주 서양화가
  • “택배 노동자 옥죄는 부당 노동행위 끊어라”

    “택배 노동자 옥죄는 부당 노동행위 끊어라”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과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관계자 등이 5일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죽음의 외주화 규탄, 근본 해결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에 대한 억압을 상징하는 쇠사슬을 끊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CJ대한통운 물류센터에서는 지난 석 달간 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한편 노동건강연대 등은 이날 박근태 CJ대한통운 공동대표 등을 지난 8월에 이어 검찰에 또 고발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빼닮은 트럼프 버전의 ‘폭정 3인조’ 등장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빼닮은 트럼프 버전의 ‘폭정 3인조’ 등장

    조지 W. 부시 대통령 집권기인 2002년 이란, 이라크,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칭했던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버전의 새로운 ‘표현’(레토릭)이 나왔다. 일명 ‘폭정 3인조’(Troika of Tyranny)로 대상은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쿠바다. 미 워싱턴포스트,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등은 1일(현지시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마이애미 데이드칼리지 연설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쿠바 3국을 ‘폭정 3인조’로 규정하고, 이들 3국에 대한 미국과의 금 거래를 전면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트럼프 정부의 ‘슈퍼 매파’로 꼽히는 볼턴 보좌관이 연설한 마이애미는 쿠바,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는 여기에서 “폭정 3인조는 이 땅에서 영원히 견디지는 못할 것이다. 모든 억압 정권이나 이데올로기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고 직설적으로 경고했다. 미국은 베네수엘라가 불법적인 금 거래를 통해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의 재정을 충당하는 것으로 의심해 이 같은 제재를 추가했다. 지난 5월 베네수엘라 대선 결과를 엉터리라고 비판하며 금융제재를 개시한 데 이어 지난달 마두로 대통령의 부인과 부통령 등 핵심 지도부의 미국 내 자산을 몰수하는 제재에 이은 3연타다. 부시 정부에서 국무차관을 역임했던 볼턴은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후 본인이 쿠바 등을 추가로 포함시킨 전력이 있다. 볼턴 보좌관이 남미의 대표적인 반미 국가를 ‘폭정 3인조’로 지칭한 건 이들 국가들이 더욱 강력한 미국 제제를 받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는 수사법으로 풀이된다. 과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도 구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칭한 바 있다. 억압적인 지도자로 떠오른 마두로 대통령 뿐 아니라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도 지난해 4선에 성공했지만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수백명의 시위대가 숨져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쿠바의 경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외교 관계가 복원되고 아바나에 미국 대사관이 다시 개설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이후 강경 기조로 돌아섰다. 이번 행정명령에는 쿠바군 등이 소유·통제하는 기업 20여곳도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하지만 유엔에서는 같은날 미국의 대(對)쿠바 경제 봉쇄를 규탄하고 철회를 촉구하는 결의안이 27년 연속 채택됐다. 찬성이 189표로 압도적이었다. 반대는 2표로 미국과 이스라엘이 던졌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억압이 부른 트라우마 중독 사회로 내몰았다

    억압이 부른 트라우마 중독 사회로 내몰았다

    중독의 시대/강수돌·홀거 하이데 지음/개마고원/292쪽/1만 7000원중학교 때 뉴질랜드에 이민 갔던 친구가 성인이 돼 다시 한국에 왔다. 서울에서 1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한 그는 “사람들이 모두 지독하게 일만 한다. 그 스트레스를 술(회식)로 푸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야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말에 그는 웃으며 반박했다. “그래 봤자 집 한 채 사기도 어려워. 그리고 그렇게 성공해서 뭐할 건데?” 그는 그러면서 내게 되물었다. “한국, 한국인은 왜 자신을 망가뜨리는 걸까?” 그가 던진 질문은 10여년 동안 유령처럼 내 머릿속을 떠돌고 있다. 나라는 부유해졌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어렵게 사는 것일까. 강수돌 고려대 교수와 그의 스승인 홀거 하이데 전 브레멘대 교수가 함께 쓴 ‘중독의 시대’는 이 질문에 관한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바로 ‘중독’이라는 개념을 통해서다. 저자들은 한국에서 나타나는 여러 사회 문제가 중독 상태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며 한국을 ‘중독사회’로 규정한다. 여기서 중독사회란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알코올 중독자처럼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은 일·알코올·마약·도박·섹스·게임·스마트폰·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중독에 빠져 있다. 전체 사회구조와 시스템 차원에서도 중독의 특징이 나타난다. 중독이란 인간적 욕구 충족에 실패한 경우 대리만족에 강박적으로 의존하는 병리적 행위를 가리킨다. 대체물이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할수록 더 많이 원하게 된다. 한국이 더 많은 자본을 요구하고, 더 큰 경제 성장을 요구하게 될수록 개인은 더 일해야 한다.저자들은 이런 중독의 원인을 현대사 밑바닥에서 끌어올린다. 책 표지에 ‘대한민국은 포스트 트라우마 중독사회’라고 적힌 것처럼, 현대사에서 겪은 트라우마가 지금의 중독사회를 만들었다는 의미다. 사회가 식민지 억압이나 전쟁, 군사독재, 보릿고개와 같은 죽음에 가까운 경험을 집단적으로 겪으면 집단 트라우마로 이어진다. 식민지 시대를 벗어나자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개발독재로 찢어지게 가난했던 빈곤을 이겨 냈다. 그러나 경제성장에 취한 채 외환위기(IMF)를 맞았다. 레드 콤플렉스, 빈민 콤플렉스, 정리해고 콤플렉스 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신자유주의 물결과 성장의 구호에 파묻혀 제대로 해결되지 못했다. 이런 일들이 결국 사회를 중독으로 내몰았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회를 중독으로 내몬 이들은 누굴까. 저자들은 ‘재벌·국가 복합체’를 든다. 앞서 외환위기 등을 거치는 동안 국가가 재벌을 길들이면서 ‘국가·재벌 복합체’가 생겨났는데, 1980년대 후반부터 1997년 IMF 구제 금융까지 약 10년 동안 권력이 재벌로 이동하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지난해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장충기 삼성 사장 문자메시지는 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저자들은 재벌의 철저한 관리로 정부 고위 관료들이 재벌에 충성을 다하고, 퇴직한 뒤엔 삼성 사외이사로 다시 수억원을 받는 ‘삼성맨’이 된다고 꼬집는다. 정경유착이 심하다는 폭로가 나왔을 때 건강한 조직이라면 공식 사죄를 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쇄신한다. 그러나 중독된 조직은 달리 반응한다. 언론과 학계를 단속하고, 검찰을 동원해 문제 제기자를 색출한다. 세월호 참사를 두고 보인 박근혜 정권의 모습도 유사하지 않았던가. 중독 조직의 전형적인 특성을 보이는 이들은 숨기고 억압하기에만 급급했다. 중독은 내면의 두려움을 회피하거나 억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한다. 저자들은 사회 구성원들이 생존을 위해 억지로 내면의 두려움을 억압하면서 폭력을 행사하는 체제나 강자의 논리에 동일시하는 현상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누군가가 문제점을 지적하면 ‘너무 이상적인 말이다’, ‘너무 먼 이야기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관행이잖아’, ‘난 그저 내 일만 열심히 할 뿐이야’, ‘먹고살려니 어쩔 수 없어’라고 한다. 저자들은 이런 중독 사회를 깨뜨리려면 그저 그런 해법으로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소득주도 성장, 부동산 정책 같은 ‘과감한 조치’ 이전에 아예 사회 체질을 바꿀 ‘과감한 발상 전환’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온 구절은 지금 한국에 가장 필요한 격언일지 모르겠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에게 하나의 세계다. 새로 태어나려는 생명은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걸작 ‘하녀’ 만든 거장 감독, 김기영을 기린다

    걸작 ‘하녀’ 만든 거장 감독, 김기영을 기린다

    독창적이고 파격적인 작품 세계로 주목받은 김기영(1919~1998) 감독의 이름을 딴 헌정관이 생긴다.CGV아트하우스는 오는 15일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 ‘김기영관’을 개관한다고 31일 밝혔다. 우리 영화의 위상을 높인 영화인의 업적을 조명하기 위해 상영관을 헌정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6년 ‘임권택관’(CGV서면)과 ‘안성기관’(CGV압구정), 지난해 ‘박찬욱관’(CGV용산아이파크몰)에 이어 네 번째다. 김 감독은 일찍부터 작가주의적인 개성과 성향을 드러낸 보기 드문 스타일리스트로 꼽힌다. 영화 시나리오부터 음악, 소품, 미술, 포스터까지 자신만의 감각을 덧입혀 그로테스크한 작품 세계를 탄생시켰다. 인간의 본능적이면서 노골적인 욕망과 성적 억압을 중심으로 내면의 숨겨진 악을 드러내는 영화를 주로 선보였다. 대표작으로는 남편과 불륜 관계를 맺은 가정부가 단란한 가정을 파멸시키는 ‘하녀’(1960)를 비롯해 ‘화녀’(1971), ‘충녀’(1972), ‘화녀 82’(1982), ‘육식동물’(1984), ‘육체의 약속’(1975), ‘이어도’(1977),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1978) 등이 있다. 1997년 부산국제영화제 ‘김기영 회고전’을 계기로 젊은 관객들과 외국 영화인들로부터 다시금 주목받았다. 다시 영화를 만들 준비를 하다가 1998년 불의의 화재 사고로 별세했다. ‘김기영관’에는 그의 대표작 중 6편의 아트포스터와 연대기, 영화 평론가들의 헌정사 등이 전시된다. 개관을 기념해 오는 15일부터 28일까지 2주간 김 감독의 대표작들을 모은 ‘김기영 마스터피스 특별전-욕망의 해부학’도 진행된다. 헌정관 수익의 일부는 내년 초 김 감독의 이름으로 한국독립영화에 후원할 예정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KBS 세월호 보도 개입’ 이정현에 검찰, 징역 1년 구형

    ‘KBS 세월호 보도 개입’ 이정현에 검찰, 징역 1년 구형

    세월호 참사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해 보도 방향을 바꿔달라고 요구한 이정현(60·무소속) 의원에게 검찰이 징역 1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3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7단독 오연수 판사 심리로 열린 이 의원의 방송법 위반 혐의 사건 결심 공판에서 “피고인이 청와대 홍보수석이라는 지위에서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해 해경에 대한 비판 보도를 중단하고 변경하라고 요구하는 식으로 편성에 간섭해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침해한 사건으로 사안이 중하다”며 구형 배경을 밝혔다. 검찰은 “그럼에도 피고인은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있다”며 “초범이지만 사건의 중대성과 방송 자유와 독립을 침해한 행위에 대해 엄벌할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 의원은 지난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직후 KBS가 해경 등 정부 대처와 구조 활동의 문제점을 주요 뉴스로 다루자 김시곤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뉴스 편집에서 빼달라”, “다시 녹음해서 만들어 달라”며 편집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을 위해 제정된 방송법 제4조와 제105조는 방송 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침해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이 의원은 결심에 앞서 진행된 피고인신문에서 “당시는 세월호 사고 직후 하나의 생명이라도 구하는 작업에 해경이 몰두하게 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라며 “애걸복걸하는 심정으로 한 것이지, 억압·통제하거나 힘을 쓰겠다는 생각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제로 보도가 그대로 이뤄졌고 후속 보도도 계속된 데다 이후로 문제삼지도 않았던 것을 보면 통제나 압박의 의도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당시 자신이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린 것은 주변의 이야기일 뿐 실체가 없으며, 홍보수석이 대통령의 KBS 사장 임명권에 관여할 수 있지도 않다고 반박했다. 이 의원은 “나는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침해할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다”며 “현 정부든 앞으로 출범할 어떤 정부든, 또 어떤 기관이나 기업이든 사실과 다른 내용이 보도된다면 잘못을 지적하거나 큰 틀에서 공공성에 대한 얘기는 할 수 있는 것이지 그것이 독립성을 해치거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도 주장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이제 편안한 삶 누리길…” 난민 친구 학생들의 감동적인 입장문

    “이제 편안한 삶 누리길…” 난민 친구 학생들의 감동적인 입장문

    같은 학교를 다니는 이란 출신 친구의 난민 지위 인정을 호소했던 학생들이 친구의 난민 인정을 환영하며 입장문을 공개했다. 친구의 마지막 난민 심사 전까지 청와대 국민청원, 집회 등을 통해 마지막까지 도움을 호소했던 학생들이 쓴 ‘이름은 잊혀지고 사건은 기억되어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입장문은 현재 화제가 되고 있다. 앞서 법무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은 난민 심사를 통해 이란 출신의 중학생 A(15)군에 대한 난민 지위를 인정했다고 19일 밝혔다. A군은 7살이던 2010년 아버지지 함께 고향인 이란 테헤란을 떠나 한국에 왔다. 초등학교를 거쳐 현재 서울의 한 중학교를 다니고 있다. A군이 난민 신청을 한 이유는 종교적 박해 가능성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무슬림이라 이슬람 율법에 따라 태어날 때부터 무슬림이었지만, 한국에서 친구들과 성당에 다니다 천주교 신자가 됐다. 아버지도 A군의 영향으로 천주교로 개종했다. 그러나 어느 날 통화 중에 독실한 무슬림인 고모로부터 ‘네가 개종하고도 사람이라 할 수 있느냐’는 얘길 들었고, 그 뒤로 고모와 연락이 끊겼다. 이에 A군은 “고향에 돌아가면 박해당할 수 있다”면서 2016년 난민 신청을 했다. 하지만 ‘박해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난민 인정을 받지 못했다. 이후 행정소송을 내 1심에서 이겼지만 2심에서 패소했다.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심리불속행 기각(2심 판결에 중대한 법령 위반이 없어 더 판단하지 않고 곧바로 기각하는 처분) 판결을 받았다. 이후 지난 5일 열린 난민 인정 재심사가 A군에겐 마지막 기회였다. A군은 이번에도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추방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친구들은 지난 7월부터 ‘제 친구가 공정한 심사를 받아 난민으로 인정받게 해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글을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려 시민들의 동참을 호소했고, 지난 3일에는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A군의 학교 친구들은 A군이 난민 인정을 받은 같은 날 ‘이름은 잊혀지고 사건은 기억되어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내고 축하했다. 입장문을 통해 친구들은 “이제 우리는 우리의 친구가 받았던 상처를 치유하고 일상으로 돌아가 편안한 삶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이란 친구뿐 아니라 그를 돕는 우리 학생들 모두 같은 이유로 잊혀지기를 원합니다”라면서 “다만, 여전히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많은 사람들을 기억했으면 합니다”라고 호소했다. 이어 “이번 일련의 과정은 기억되어야 합니다. 이제 시작인 난민 인권운동의 작은 이정표인 탓에, 팍팍하고 각박한 우리 사회에 던지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위대한 첫 발자국인 탓에, 여전히 세상의 어둠 속에서 빛을 찾고 있는 이름 없는 사람들이 의지할 희망의 한 사례가 되는 탓에”라면서 “우리 친구가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 참으로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습니다”라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아래는 학생들이 낸 입장문 전문. [서울 OO중학교 학생회 입장문] 이름은 잊혀지고 사건은 기억되어야 합니다.이란 친구의 난민 인정을 환영하며 상상해봤으면 합니다. 당신이 태아이고 어머니의 국적을 모른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머니는 한국인일 수도 있고 미국인일 수도 있지만 시리아인이거나 예멘인, 이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난민에 대해 반대하며 추방하자고 말할까요? 다행히 운 좋게도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습니다. 내전도 없고, 정치적·종교적 자유도 억압되지 않는 나라인 대한민국에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난민은 내 문제가 아니라 너희 문제이니 우리 집을 더럽히지 말라’면서 문을 닫아야 하는 걸까요? 이제 우리는 우리의 친구가 받았던 상처를 치유하고 일상으로 돌아가 편안한 삶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이란 친구뿐 아니라 그를 돕는 우리 학생들 모두 같은 이유로 잊혀지기를 원합니다. 다만, 여전히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많은 사람들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그러나 이번 일련의 과정은 기억되어야 합니다. 이제 시작인 난민 인권운동의 작은 이정표인 탓에, 팍팍하고 각박한 우리 사회에 던지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위대한 첫 발자국인 탓에, 여전히 세상의 어둠 속에서 빛을 찾고 있는 이름 없는 사람들이 의지할 희망의 한 사례가 되는 탓에. 우리 친구가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 참으로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특히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조희연 교육감님. 가장 먼저 우리를 찾아와주셨고 우리와 함께 동행하며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7만 교사와 수십만 학생의 수장으로서 우리의 든든한 의지처가 되어주셨습니다. 염수정 추기경님. 수많은 사람을 만나 우리의 사정을 전해주셨습니다. 행동하는 믿음이 무엇인지 참 성직자가 무엇인지 몸으로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분들이 있어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전향적인 난민 인정 결정을 내린 서울출입국청심사관님께도 경의를 표합니다. 이번 결정이 출입국청이 난민 감별사가 아니라 난민 인권의 파수꾼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친구가 의지하는 하느님, 감사합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가짜뉴스’ 대책 논란, 시민단체 “표현의 자유 훼손 말라”

    ‘가짜뉴스’ 대책 논란, 시민단체 “표현의 자유 훼손 말라”

    정부의 ‘가짜뉴스’ 대책에 시민사회가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지 말라”며 반발하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 16일 ’알 권리 교란 허위조작정보 엄정 대처’ 방안을 발표했다. 법무부는 허위조작정보 발생 초기부터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 체계를 구축하고, 언론기관이 아닌데도 보도를 가장한 ‘가짜뉴스’를 유포하는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이에 ‘표현의 자유’ 침해를 우려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이 반발 성명이 잇따르고 있다. 오픈넷은 지난 18일 “정부나 국가권력이 ‘허위’와 ‘진실’을 구분하여 이를 기준으로 표현의 허용 여부를 결정하고 허위 표현자는 색출하여 처벌하겠다는 것은 심각한 반민주적 행태라 아니할 수 없다”며 “국가의 표현물 검열은 반정부적 여론을 차단하고 억압하는 수단으로 남용될 수 있기 때문에 민주국가에서는 금기시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에 의한 정보의 일방적 차단은 오히려 정부의 민주성에 대한 불신과 불필요한 오해를 낳는다”면서 “진실은 권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정보 간의 신뢰성 경쟁을 통해 스스로 그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법무부가 객관적 사실에 대한 의견 표명, 실수에 의한 오보, 근거 없는 의혹 제기 등은 허위조작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지만 우려는 이어졌다.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은 “과연 이런 기준으로 사회적 해악이 분명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다”며 “문제 되는 표현 행위에서 실수(과실)-의도 등의 주관적 요소를 평가하기가 대단히 어려울 것이며, 근거 유무에 대한 판단을 누가, 어떻게 내려야 하는지에 관해서도 큰 논란이 발생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혐오표현 막아야” 110개 시민사회·인권단체로 구성된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지난 17일 성명에서 “법무부의 대책은 방향을 잘못 잡았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짜뉴스’로 말할 수 없게 되는 사람은 성소수자고 난민이고 이주민이고 HIV/AIDS 감염인이고 청소년이다”라면서“이들이 ‘가짜뉴스’의 피해자이며, 이들의 권리가 박탈되는 것이 ‘가짜뉴스’의 핵심 문제다. 정부의 대책은 이 문제를 풀기는커녕 숨겨버렸다”고 강조했다. 이어 “‘허위조작’ 정보들이 과거 간첩을 조작해온 국가를 대신해 소수자들을 공공의 적으로 조작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며 “그런데도 소수자들에게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아무런 자리도 마련되지 않는 것.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도 강조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도 “공권력을 동원해 가짜뉴스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굉장히 민감한 문제를 건드리는 것”이라며 “약자들에 대한 혐오표현들을 방치하면서 가짜뉴스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이 균형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의지가 있다면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교황 첫 방북 가시화… 한반도 ‘항구적 평화체제’ 힘 받는다

    교황 첫 방북 가시화… 한반도 ‘항구적 평화체제’ 힘 받는다

    교황 “형제애로 화해·평화 정착 노력을” 北 비핵화·美 체제보장 약속 ‘공증’ 효과 남·북,북·미 관계 선순환 원동력 될 듯 전문가 “종전선언 앞당기는 환경 조성”문재인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전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북 초청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수락 의사를 밝히면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교황의 방북은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체제안전보장 약속에 대해 세계적인 관심을 환기시키고 ‘공증’하는 효과에, 남북 및 북·미 관계의 선순환을 추동하는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교황의 방북은 최초다. 교황청과 북한의 공식 접촉도 2002년 5월 관계 개선차 교황청 인사들이 방북한 뒤 16년 만이다. 줄곧 한반도 평화 노력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던 교황은 이날도 교황청을 찾은 문 대통령에게 “남북 정상회담의 긍정적 결과를 지지하고 핵무기 없는 한반도를 만들기 위한 남북 지도자들의 용기를 평가한다”며 “형제애를 기반으로 화해와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 달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노력들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전 세계와 함께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방북 성사까지 교황청과 북한은 외교적 협의를 통해 방북 일정을 조율하고, 교황청은 북한 내 종교의 자유나 인권 문제를 검토할 수 있지만, 교황이 직접 의지를 밝혔다는 점에서 방북은 사실상 성사된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의 교황 초대는 삼고초려다. 김일성 주석이 1991년 첫 교황 방북을 추진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반대로 무산됐다. 2000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대 의사를 교황청에 전했다. 하지만 교황청이 북한의 가톨릭 교회 인정, 가톨릭 신부 상주 허용 등을 요구했고 북측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무산됐다. 이에 비해 비핵화의 대가로 경제개발 노선을 택한 김 위원장은 교황이 북한 주민들과 직접 접촉해 오는 변화의 충격을 감수하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또 지난해 대화조차 없던 남북 관계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올해 들어 급격히 진전된 상황에서 교황의 방북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추동력이 될 전망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교황의 방북은 비핵화 협상을 되돌릴 수 없다는, 즉 아무도 판을 깰 수 없다는 것”이라며 “김 위원장 입장에서 일종의 보호판을 가질 수 있고, 부정적 이미지를 순화시킬 수 있다. 문 대통령은북 비핵화를 교황에게 공인받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교황의 방북은 (평양정상회담에서) 남북이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한 것에 대한 증표가 되므로 미국이 종전선언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며 “특히 전 세계에 남북이 긴장이 아닌 평화 상태라는 것을 알려 남북 관계를 촉진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북한을 고립국가에서 정상국가로 변화시키는 촉매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교황의 방문에도 북한이 억압적 종교정책을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선교 활동의 자유는 없어도 교회 활동은 인정하는 중국의 종교 정책 모델을 따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광주 퀴어문화 축제 놓고 찬반 성명전 가열

    오는 21일 성 소수자를 위한 광주지역 첫 ‘퀴어문화축제’를 앞두고 찬반 양측 간에 성명전이 뜨거워지고 있다. 퀴어(queer)는 동성애자·양성애자·성전환자·무성애자성 등 성 소수자를 가리키는 단어다.광주시기독교교단협의회는 18일 기자회견을 갖고 “무력충돌 등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축제 허가를 즉각 취소할 것”을 광주시에 요구했다. 협의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동성애자를 인격체로 존중하고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것 또한 반대하지만, 동성애자들의 축제라는 퀴어축제가 민주성지인 5·18 광장에서 여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5·18 구속부상자회 비상대책위원도 성명을 내고 “신성한 민주성지인 5·18 광주 앞에서 퀴어축제를 한다는 것은 패륜적 행위나 다름없다”며 반발했다. 앞서 일부 광주 시민사회단체 등은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1일 광주에서 처음 열리는 퀴어문화축제를 지지하며, 축제는 평화롭게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1980년 5월 광주는 모두가 함께 평등하게 사는 대동세상을 위해 헌신한 오월 영령이 잠든 곳이자, 지역적으로 억압과 차별을 받아온 소수였다”면서 “차별과 배제의 고통을 아는 광주야말로 모든 소수자를 아우르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어떠한 이유로든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허용돼선 안된다”며 “민주·평화·인권의 선두에 선 광주정신으로 시민들이 성 소수자 인권에 지지와 연대를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혐오문화대응네트워크 등은 21일 오후 1시부터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제1회 광주퀴어문화축제를 진행할 예정이다. 비슷한 시간대 인근에서는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종교·보수단체의 집회가 예정돼 있어 충돌이 우려된다. 한편 경찰은 ‘광주, 무지고로 발光하다’는 슬로건 아래 열리는 이번 축제에 인권단체 관계자 등 총 1000여 명이 참석할 것으로 보고 찬반 양측 충돌에 대비, 20여개 중대 1500여명을 현장에 배치할 예정이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구로 청소년이 만든 아홉 색깔 길놀이 퍼레이드

    구로 청소년이 만든 아홉 색깔 길놀이 퍼레이드

    청소년이 직접 기획하고 참여해 즐기는 축제가 서울 구로구에서 열린다. 구로구는 청소년 관련 행사들을 한자리에 모아 오는 20일 ‘2018 구로 청소년축제’를 개최한다고 16일 밝혔다. 축제는 구로구청 교차로 인근 구로중앙로 일대와 구로중학교 등에서 펼쳐진다. 오후 2시 세계시민을 주제로 한 길놀이 퍼레이드 출정식에서는 다양한 퍼포먼스를 볼 수 있다. 청소년들은 억압, 열정, 평등, 행복, 사랑, 우정, 협동, 이해, 평화 등을 주제로 아홉 개의 대열을 만들고 대열별로 대형 탈을 앞세우고 행진한다. 길놀이 퍼레이드 외에도 차 없는 거리로 변신한 구로중앙로에서는 학부모와 함께하는 구로 온마을 놀이터를 즐길 수 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열리는 놀이터에서는 세계 전통놀이, 전래놀이, 분필놀이 등을 즐길 수 있다. 아울러 구로중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진로와 진학 선택을 돕기 위한 신기술 진로직업 박람회, 학생 과학축전 한마당 행사가 열린다. 행사장에서는 드론 만들기, 로봇코딩, 웹툰 그리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명지대와 동국대, 부천대의 입시 담당자, 진로교사 등이 참여해 진로진학 상담도 받을 수 있다. 학생 과학축전에는 지역의 16개 초·중·고가 참여해 태양광 비즈메이커, 증강현실 만들기, 로켓 발사, 웨어러블 기기를 통한 사물인터넷 체험 등 과학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운영된다. 이 밖에도 청소년들이 학교 밖에서 배우고 익힌 토요체험학교 발표회, 평생학습동아리 한마당 등도 개최된다. 축제는 댄스, 밴드 등 23개 동아리가 모여 주민과 청소년이 함께 즐기는 흥겨운 무대를 만드는 무대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이성 구로구청장은 “많은 청소년과 주민들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직원 성폭행’ 전 한샘 직원 재판 시작… “합의에 의한 성관계” 주장

    ‘직원 성폭행’ 전 한샘 직원 재판 시작… “합의에 의한 성관계” 주장

    회사 여직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직 한샘 교육담당자가 법정에서 강제로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 황병헌) 심리로 16일 열린 박모(31)씨에 대한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박씨의 변호인은 “당시 성관계를 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이를 거부하는 피해자를 폭행해 억압한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 공판준비기일에는 피고인이 법정에 출석하지 않아도 되지만 직접 재판에 나온 박씨도 “변호인의 의견에 동의하느냐”는 재판장의 질문에 “그렇다”고 짧게 답했다. 박씨는 지난해 1월 같은 회사 수습직원인 A(25·여)씨와 술을 마시고 모텔에 데려간 뒤 강제로 성관계를 한 혐의(강간)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A씨는 다른 교육생으로부터 여자화장실에서 몰래카메라로 촬영당하는 피해를 겪고 교육담당자인 박씨에게 도움을 받아 의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오는 30일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을 열고 증거에 대한 의견과 증인신문 계획 등 앞으로의 재판 절차를 논의할 예정이다.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열린세상] ‘아니 그런데’ 화법 유감/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

    [열린세상] ‘아니 그런데’ 화법 유감/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

    나는 항상 이 칼럼난에 무엇을 쓸까 생각하는데 가능하면 시사적인 것을 쓰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사건의 발생이 이 글을 쓰는 때와 맞지 않으면 할 수 없이 주제를 바꾸곤 했다. 예를 들어 지난번 국군의 날 행사 때 어린아이가 나와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라는 노래를 하는 것을 보고 그때 나는 어이가 없어 이에 대해 꼭 쓰고 싶었다.이유는 간단했다. ‘어떻게 한국의 국가 행사에 외국 노래를 부르고 그것도 특정 종교의 성가를 부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미국과 미국 문화에 지나치게 관대하다고 결론을 내리려 했다. 그런데 시간이 벌써 2주 이상 흘렀으니 시의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내가 늘 생각하던 것으로 주제를 바꾸었다. 이 글의 제목을 본 사람들은 조금 의아했을 것이다. ‘아니 그런데’ 화법이라니 말이다. 나도 이 화법의 문제점을 최근에 와서야 발견했다. 우리 한국인들은 상대방과 대화할 때 ‘아니 그런데’라는 말을 먼저 하고 자기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그렇게 한다. 이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은 우리의 대화 문화에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무엇이 문제일까. 이렇게 대화를 시작하면 무조건 상대방의 말을 부정하고 들어가게 된다. 즉 ‘당신은 틀렸다’면서 대화가 진행된다.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무조건 부정부터 하는 것이다. 이러니 한국인들은 당최 대화를 못한다는 말이 나온다. ‘100분 토론’이 아니라 ‘100분 우기기’가 됐다. 남의 말은 안 듣고 자기 말만 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가 꼭 이렇다. 너무 편을 가른다. 특히 정치가 그렇다. 상대 당이 하는 것은 무조건 틀렸고 우리 당이 하는 것은 다 맞는다. 자기들이 여당이었을 때 찬동한 사안을 야당이 되면 반대한다. 왜냐하면 상대 당이 찬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인들만 탓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들은 ‘한국은 정치만 잘되면 발전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모든 문제를 국회의원들에게 돌린다. 그러나 그 국회의원들은 우리가 뽑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국의 사회문화를 따르고 있을 뿐이지 태생부터 모자라거나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사회문화가 바뀌면 그들도 바뀐다. 그래서 국회의원을 탓할 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한국인들은 왜 이런 사회문화를 갖게 됐을까? 나는 그 근본 원인으로 유교와 성리학적 순혈주의를 든다. 특히 성리학이다. 성리학은 ‘리(理)’ 지상주의를 표방하면서 그 외의 모든 것은 틀렸다고 주장한다. 자신들만 진리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순혈이라고 한 것이다. 양명학도 틀렸고 불교도 아니다. 오로지 성리학 하는 우리 집단만이 홀로 정당하다. 조선 때 당쟁이 유독 심했던 이유가 여기서 기인한다. 물론 강한 배타성은 기독교 같은 종교에서도 발견된다. 그들도 유일신을 주장하기 때문에 진리를 독점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기독교에는 용서나 사랑, 더 나아가 보편을 지향하는 개념이 있다. 그들에게는 자기 집단을 넘어서는 보편 공동체 개념이 있다. 이에 비해 유교나 성리학에는 그런 보편 공동체 개념이 없다. 오로지 우리 당, 우리 집안만이 최고라는 ‘우리 중심주의’만 있다. 이런 이유로 나는 항상 이 유교적인 가치관을 바꾸지 않으면 한국 사회는 개선되지 않을 거라고 주장해 왔다. ‘우리’ 당, ‘우리’ 고향, ‘우리’ 학교, ‘우리’ 아들 등 우리만 주장하는 소아적인 생각을 고쳐야 한다. 이렇게 우리만 소중하니 남이 무슨 말을 하든 ‘아니 그런데’라고 하면서 부정부터 하는 것이다. 말만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 곧 상대방을 억압하고 비난한다. 그러니 대화는 날샌 것이 된다. 내 딴에는 이런 것을 고쳐 보겠다고 ‘아니 그런데’ 화법을 사용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기도 했다. ‘아니 그런데’가 아니라 ‘맞아 그런데’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일단 상대방의 말을 긍정하자는 것이다. 여간 노력하지 않으면 다시 ‘아니 그런데’로 돌아가곤 했다. 그만큼 사회문화의 영향이 강한 것인데, 그래도 계속 시도해 보려 한다.
  • 김수환 추기경 서임했던 교황 바오로 6세 등 7명 가톨릭 성인 선포

    김수환 추기경 서임했던 교황 바오로 6세 등 7명 가톨릭 성인 선포

    우리나라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 이탈리아 출신의 교황 바오로 6세가 가톨릭의 성인이 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4일(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시성 미사를 열고 교황 바오로 6세와 엘살바도르의 우파 군사독재에 항거하다 1980년 미사 집전 도중 암살된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등 7명을 가톨릭의 새로운 성인으로 선포했다고 뉴욕타임스 등이 보도했다. 1963년부터 1978년까지 재위한 교황 바오로 6세는 라틴어 미사 폐지 등 가톨릭 교단의 광범위한 개혁을 완수한 교황으로 널리 기억된다. 그는 특히 한국과는 인연이 깊다. 우리나라가 1949년 1월 프랑스 파리의 제3차 유엔총회를 앞두고 유엔 승인을 받기 위해 노력할 당시 교황청 국무원장 서리였던 바오로 6세는 각국 대표들과 막후교섭을 하며 장면 박사가 이끈 한국 대표단을 적극 지원했다. 또 1969년 3월 김수환 추기경을 한국 최초의 추기경으로 서임한 것도 교황 바오로 6세였다. 평소 교황관을 쓰기를 거부할 정도로 검소한 성품의 소유자인 교황 바오로 6세는 역대 교황 가운데 처음으로 다른 기독교 종파 지도자와 만나 교회의 일치를 추진했었다. 다만 재위 당시 낙태와 인공 피임을 금지하는 가톨릭의 원칙을 확립해 서구 사회의 반발을 낳기도 했다. 암살된 지 38년 만에 성인 지위에 오른 로메로 대주교는 1970년대 후반 엘살바도르에서 우파 군사독재에 항거하며 사회적 약자 보호와 정의 구현에 앞장섰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메로 대주교의 시성 계획을 발표하며 “독재 정권의 억압에 맞서 가난한 사람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들 편에 섰던 성직자는 오늘날 가톨릭 교회의 모델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열린세상] 김정은과 ‘대중독재’/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열린세상] 김정은과 ‘대중독재’/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대중독재’는 한국에서 탄생한 개념이다. 임지현(서강대) 교수가 2003년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장일 때 동료 학자들과 20세기 근대 독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용어를 만들고 특징을 규정했다.근대독재는 군주독재나 전체주의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권력자가 폭력과 강제로 민중을 억압하고 지배했다는 흑백논리가 아닌 ‘폭력과 강제는 물의 표면에서 작동하는 현상일 뿐 대중의 동의와 자발적 동원 체제를 만들어 내는 다양하고 정교한 장치들이 물밑에 숨어서 작동한다’고 했다. 대중독재는 나치즘, 파시즘, 스탈린주의, 스페인의 프랑코이즘은 물론 중국의 문화혁명까지 두루 다루고 있지만, 주목적은 박정희 체제의 비판에 있었다. 조희연(현 서울시교육감) 교수가 펴낸 ‘동원된 근대화’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유신 이전까지 박정희 체제의 장기 집권과 그에 대한 폭넓은 대중의 지지와 참여, 근대화와 산업화의 성공을 비판하려면. 박근혜 정부의 몰락으로 지금은 거의 사라져 가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 긍정적 집단기억으로 남아 있는 그의 ‘신화’를 전체주의에 넣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들이 말한 대중독재는 아래로부터의 독재다. 대의민주주의나 의회민주주의가 아닌 대중의 직접 민주주의를 표방한다. 권력의 강압이나 임의적 선택이 아닌 대중의 강제다. 이 때문에 대중의 자발적 지지와 동원의 모습을 띠며, 동의의 정치를 추구하며, 근대화와 산업화의 성공을 통한 대중의 소원과 희망을 반영할 때 더 호소력을 지닌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정희 정권은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라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했고, 대중은 ‘조국 근대화의 기수’란 호칭으로 산업 전사로 동원해 국가경제의 고도성장과 노동자들의 소득 향상을 달성했다. 그 과정에서 노동착취까지 사회적 양보가 받아들여졌다. 도시 노동자들만이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산업화에서 소외됐던 농민들도 ‘잘살아 보자’며 새마을운동에 참여했다. 대중독재에서 이 모두는 자발적 동원이 아닌 강제동원이다. 이를 위해 박정희는 우상화한 개인숭배보다는 대중과 일상을 같이하고, 심지어 인생에 대한 대중의 태도까지 공유했다는 것이다. 대중독재는 무엇보다 유기적 공동체로서 ‘민족’을 강조하며 민족공동체란 소속감이 유지되는 한 체제에 대한 동의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나라처럼 단일 민족국가에서 민족은 국민이고 대중이다. 이 때문에 대중 참여는 곧 국민주권이자 민족주권의 행사이며, 대중의 지지와 자발적 동원이 때론 초법적 권력이 돼 불법을 합법으로 바꾸어 놓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 이 같은 정의와 해석이 타당한가, 아닌가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수많은 독재자를 포함시켰지만, 다분히 박정희 체제의 비판을 겨냥한 대중독재의 그림자가 30년이 지난 지금 북한의 김정은에게 어른거리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북한 인민(대중)은 물론 우리까지 놀라게 만드는 최근 그의 모습은 과거 전체주의에서의 김일성이나 김정일과는 분명 다르다. 북한 주민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에서 북한 주민의 삶에 대한 관심, 남북 정상회담에서의 유연한 행동과 솔직한 표현, ‘민족공동체’를 강조하는 발언까지 모두 ‘대중독재’가 말하는 것들이다. 계산된 전략이든 아니든 그와 북한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우리 국민의 그에 대한 신뢰도가 77.5%까지 치솟았고, 보수층에서조차 72.9%를 기록한 것(MBC 4월 29일 조사)이 말해 준다. 나아가 그의 변신은 북한에서의 그의 권력을 더욱 강화, 안정시켜 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남북 평화와 통일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도 알 수 없다. 한국의 진보사학자들이 규정한 대중독재는 과거 20세기 파시즘이나 박정희 개발독재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북한의 김정은에게만 그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고 말할 수 없다. 의회제를 부정하면서 대중 참여민주주의의 환상을 심어 주고, 대중의 열광과 갈채로 초법적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는 사회주의든 민주주의든, 보수든 진보든 대중독재다.
  • [사설] 한반도 평화 여정의 축복, 교황 방북성사 기대한다

    교황의 사상 첫 방북 여부에 큰 관심이 쏠린다. 평화의 사도이자 중재자인 교황이 북한을 방문한다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큰 힘이 될 것이라는 기대 덕분이다. 청와대는 지난 9일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 순방길에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평양 초청 제의를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해 “평양을 방문하시면 열렬히 환영하겠다”며 적극적인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교황청도 “18일 정오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문 대통령과 개별 면담을 할 예정”이라고 공식화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 보인다. 교황이 개별국을 방문할 때 평화와 선교를 가장 먼저 고려하는데 세계 유일의 분단 지역이자 종교의 자유가 제한된 북한을 방문하는 건 여기에 가장 부합하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반도 평화에도 큰 관심을 보여 왔다. 지난 4·27 1차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부활절 미사에서 “예수의 씨앗이 한반도를 위한 대화의 결실을 맺어 평화를 증진하기를 기도한다”고 축원했다. 앞서 2014년 8월 방한 때는 한반도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선포했다. 교황이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 시노드)로 한창 바쁜 시기에 이번 면담을 이례적으로 오전이 아닌 정오로 잡은 것은 가톨릭 신자인 문 대통령과 충분히 대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준다는 해석도 나온다. 자유한국당 등에서는 ‘북한은 정상 국가’임을 선전하는 김 위원장의 의도에 포섭된 것이 아니냐며 볼멘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이 서구 종교계의 가장 상징적인 인사를 눈앞에서 접하는 순간 종교의 자유를 억압해 온 북한의 폐쇄 정책에 균열이 갈 수밖에 없다. 교황 방북 초청은 이러한 변화를 감수하겠다는 북의 의지 표명인 만큼 우리가 나서서 깎아내릴 일은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쿠바를 방문하는 등 미국과 쿠바가 53년의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정상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마침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11월 중간선거 이후에 열 것”이라며 개최를 구체적으로 가시화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이 성사되면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와 더불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불가역적 단계에 이르렀다는 메시지가 전 세계에 퍼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동시에 우리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어제 시사한 5·24 대북제재 조치 해제 가능성 등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과 협조를 계속해야 한다.
  • 교황 건강·교단 비판… ‘첫 방북’ 변수로

    북한 최악의 인권탄압국 오명도 걸림돌 일각선 “폐쇄된 사회 열리게 하는 효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을 초청한 가운데 교황청이 오는 17일 바티칸에서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미사를 열기로 해 교황의 방북이 실현될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교황의 건강과 함께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에 대한 가톨릭 교단 안팎에서의 논란이 이번 방북을 결정짓는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렉 버크 교황청 대변인은 9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오는 17일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이 집전하는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미사가 열린다”면서 “이 미사에는 문재인 대통령도 참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개별 국가의 평화를 위한 미사가 집전되는 건 드문 일이라 한반도에 대한 교황청의 이례적 관심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버크 대변인은 “교황 성하가 오늘 교황청 경내 행사에 참석한 뒤 발을 헛디뎌 넘어졌지만 무사하다”고 덧붙였다. 82세인 교황은 좌골 신경통으로 주기적으로 물리치료를 받고 있으나 전반적 건강은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교황이 최근 중국 정부의 압력에 굴복해 중국 정부가 내세운 주교 임명안에 합의한 데 이어 세계 최악의 인권 탄압 기록을 가진 북한 평양을 방문하게 될 경우 교단 내부에서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반면 북한 인권 활동가인 지성호씨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북한인권위원회 토론회에서 “북한에서 김정은은 살아 있는 신(神)”이라며 “교황이 신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기도하는 것은 이를 보는 북한 사람들에게 큰 의미를 줄 것”이라고 밝혔다. 그렉 스칼라튜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은 자유아시아방송(RFA)에 “교황 방문은 억압된 국가에 평화·화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폐쇄된 사회를 열리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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