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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지만씨의 어머니를 생각하면…/송정숙 논설위원(서울칼럼)

    마약사범이 되어 두번째 붙잡힌 박지만씨. 우리에게는 그를 『지만군』으로 부르던 시기가 꽤 길게 있었다. 「입시지옥」의 기초가 되었던 중학입시를 바꿔서 뺑뺑이로 추첨하게 된 것도 「지만군」 때문이고 고교를 평준화하여 전통있는 명문교를 깍아내리고 학군제도를 만들어 배치하게 한것도 「지만군」을 위해서였다고,혐의를 두고 있는 바로 그 장본인이다. 아무리 독재권력을 쥔 통치자라지만 그건 너무 심한 짓이었다고 두고두고 거론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그렇지만 그렇더라도 그 「지만군」이 오늘 이런 모습으로 우리앞에 나타난 일은 가슴이 아프다. 신문이나 영상에 비친 그의 모습은 작고 하얗고 순하고 측은해 보인다. 그런 그릇으로 그의 운명을 감당하라는 건 애당초 무리였을 것같다. 그와 견주어지는 또하나의 젊은이 기억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자유당시절」과 함께 끝난 만송 이기봉의 아들 이강석군이다. 국립대학교 입학을 학생들에 의해 거부당하고 사관학교엔가로 진로를 바꿨던 그는 느닷없이 번들거리는 장화차림으로 말위에높다랗게 올라앉아 서대문 로터리를 철떡철떡 거리며 돌기도 했다. 그런 그의 방자함을 누구도 말릴 수 없었으므로 한쪽에 멈춰선 시내버스에 실린채 적개심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하던 시민도 그때에 얼마든지 있었다. 그럴무렵의 그가 스카이다이빙까지 「즐긴다」는 소문을 듣고,공중에서 제몸을 솟구쳐 던져버리는 스릴까지 탐닉하도록 그의 뒷덜미를 치는 억압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는 기묘한 호기심이 들기도 했었다. 마침내 최후의 절망의 시간이 다가오자 그는 권총을 들어 아비도 쏘고,어미도 쏘고,아우도 쏘고,저자신도 쏘아 「끝내 버리고」 말았다. 흉탄이 어머니를 쏘고,또 흉탄이 아버지를 쓰러뜨리는 것을 성년이 되기 전에 목격한,강하지도 그렇다고 크게 영특하지도 않은 평범한 젊은이 「지만군」이 마침 거기 입벌리고 있는 타락의 소굴과 만났다면 빠져 들기가 퍽 쉬웠을 것이다. 두번째 출두시켰을 때의 그는 직장에서 곧장 온듯 작업복 윗옷 그대로 나타나서 캐묻지 않는 부분까지 순순히 밝히며 수사에 협조를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부끄럽고면목없음을 누누이 되뇌었다고 한다. 그런 대목이 순하고 착하게 자란 성장기를 엿보게 해서 더욱 안쓰럽다. 6살도 채 되기전 유아시절의 그를 청와대에서 본적이 있다. 회견중인 그의 어머니 육영수여사의 접견실 문을 빠꼽히 들여다 보던 그날의 지만군은 가죽잠바 차림이었다. 늦게 뜻을 이뤘다는 뜻으로 「지만」이라 이름붙인 이 외아들을 아버지 대통령은 몹시 익애하여 자신과 똑같은 가죽잠바를 입히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이리 와서 어른들께 인사 드려라』는 어머니 말에 뽀르르 들어와 절을 꼽박꼽박하고 수줍게 뛰어나가 버렸었다. 그자리에서 육여사가 들려준 자녀이야기가 아직도 기억난다. 사내아이는 어차피 「그양반」(박정희대통령)이 알아서 해줄 것이므로 「하라시는 대로」 하겠지만 문제는 위로 두 딸이라고 어머니는 말했었다. 큰딸은 꽤 자랐고,비교적 현명해서 맏이다워 걱정도 안되는데 둘째딸은 영 마음이 안놓인다는 것이었다. 특별한 가정이 되어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며 사는 일을 어린나이에도 너무 혐오하기 때문에 그 마음을 다치지 않고 키울 일이 자신이 없어서 걱정이 깊다는 것이었다. 권력의 정상에서 오만가지 영화를 다 누리며 안되는 일이 없을 가족들에게도 그런 고민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 해주었었다. 3선개헌안이 안팎을 들끓게 하던 무렵,그 어머니에게서 들은 지만군 이야기도 인상에 남아있다. 급사가 접견실로 차와 함께 과일을 내오자 육여사는 생색스럽게 과일부터 권하며 말했다. 『이 사과 드셔 보세요. 이게 「부사」라는 거래요. 우리나라에서 재배에 성공해서 첫 수확한 거라고 맛좀 보라고 재배한 분이 보내왔더군요. 향기가 기가 막히게 진동하죠?…』 시중에는 아직 나오지 않은 귀한 것이라며 거듭 「부사 사과」를 권하던 그는 이런 이야기도 했다. 『…글쎄 우리 지만이가 요새 크느라고 잘 먹어요. 어제는 앉은자리서 이 큰 사과를 한개 다먹고 더달래잖아요. 이번 국민투표서 지면 신당동에 나가 살아야 하는데 청와대서 잔뜩 입만 높아졌으니 네가 이런 사과만 먹을수는 없을텐데 어쩌면 좋으냐고 내가 걱정을 했지요. 그랬더니 어머니 그땐 그때에맞춰 살테니 걱정마세요,그러더라구요…』 말이라도 그렇게 하는 일이 몹시 대견했다던 그 어머니는 오늘의 아들 모습을 보지 못한다. 양지회가 마련한 바자회에서 뚝배기만한 양념절구를 들여다보며 『요런 절구에 깨소금 콩콩 빻아가며 살림좀 한번 재미있게 해 봤으면…』 소원하던 그 어머니와 부사사과쯤 못먹어도 문제 없었을 「신당동살림」을 끝내 이뤄보지 못한 채 그들의 집안은 산산히 부서져 버렸다. 부르봉왕조 최후의 비극의 왕후 마리 앙트와네트를 역사가들은 흔히 오만하고 허영스런 비상한 여주인공으로 말한다. 그러나 실은 그가 평범한 사람의 초상이었을 뿐이라고 스테판츠바이크는 서술하고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저 평범하고 범상한 초상을 지니고 태어난다. 그런 초상으로 격동기의 비범을 감내하는 일을 쉽지가 않다. 비극은 그로부터 얼굴을 내민다. 가장이 정상의 주인공자리에 오를지라도 나머지 가족은 자기 초상에 걸맞는 보통 시민의 체질을 유지할 수 있는 시대라면 이런 비극은 얼굴을 내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지나온 시대는 그렇지 못한 시대였다. 우리 모두다 딛고 온 그 불행한 시대의 징검다리 돌밑에 이강석도 깔렸고 박지만도 깔려서 아직도 신음중이다. 박지만씨가 그 돌을 밀치고 건강한 범인이 되어 우리앞에 나타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알수 없다. 지금 같아서는 희망적이지도 못하다. 그렇다고 누구도 도와줄수도 없다. 그 어머니의 애닯아하는 영혼을 생각하며 그저 가슴이나 아파할 뿐이다.
  • 베이커,왜 모스크바에 가나

    ◎미·소 군축이견 사전조율 행보/「걸프」 불협화 씻고 밀월복원 타진/소의 「연방안 투표」 대응방법이 변수로 걸프전에서 사담 후세인의 결정적 패배를 모면케 하려던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종정안을 백악관이 일축한 후 미소관계에 드리워졌던 구름이 다시 걷히기 시작하고,이에따라 미소 정상회담도 6월말 이전에 개최될 전망이 밝아졌다.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이 14일 중동순방을 마치고 소련측과 수일간의 회담을 갖기 위해 모스크바로 떠나자 미 정부관리들은 『미소 정상회담 「부활」에 장애가 될 요소는 이제 군비통제에 관한 몇개 문제로 좁혀지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물론 모스크바가 오는 17일의 새연방안 국민투표 강행과 관련하여 억압정책을 쓴다면 얘기는 또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탈소독립을 추구하는 발트 3국에 대한 최근 모스크바의 억압정책 완화는 미소관계의 먹구름을 제거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걸프전에서의 연합국의 완벽한 승리와 이에따른 부시 미 대통령의 인기폭발은 워싱턴의 분위기와 자세를 관대하게 만들었다. 걸프전은 부시에게 외교면에서 재량의 여지를 많이 남겼다고 미 관리들은 말한다. 사실 워싱턴과 모스크바는 지금 미결의 군축문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좋은 입장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군축문제에 타협이 이뤄지면 미소 정상회담을 예상보다 훨씬 빨리 봄에 열릴수도 있다. 걸프전이 끝난지 얼마안돼 소련 관리들은 지난 2월 모스크바에서 갖기로 했다가 연기된 미소 정상회담을 5월 중순에 개최하자고 제의했었다. 그러나 워싱턴은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이 제의를 즉각 거부했다. 연합국의 걸프전 승리는 전쟁중 사담 후세인에게 대규모 군사력을 온존시킨 채 쿠웨이트 철수의 길을 열어주려던 고르바초프의 중재노력에 대한 오해의 소지를 크게 줄였다고 미 관리들은 시인했다. 고르바초프의 종전안에 대한 부시의 정중하면서도 단호한 거부는 미국의 보수파들을 「무장해제」시켰다. 그동안 이들은 부시대통령이 소련에 대해 지나치게 동정적이었다고 의구심을 표시하면서 발트 3국에서 소요가 발생한 직후인 2월에 모스크바를 방문하려던 부시의 계획을 맹렬히 비난했었다. 지난 1월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의 독립요구를 모스크바가 무력으로 탄압한데 대한 미국의 분노는 이 지역에서 소련의 검은 베레모부대가 철수한 후 크게 사그라들었다고 미 관리들은 말하고 있다. 부시 미 행정부는 최근 고르바초프와 적군·KGB 사이의 협력관계가 말해주는 고르바초프의 「우경화」 움직임에 대해 우려를 금치않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또 소련에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 보리스 옐친을 따르는 민주주의 세력과 보수 강경파들 사이의 유혈충돌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소련의 억압정책을 빼놓고 생각한다면 미소관계 정상화의 주요장애는 유럽의 재래식 군비를 제한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체결한 동서조약의 해석을 둘러싼 이견이다. 부시행정부는 모스크바가 3개 육군사단을 「해안 방위대」와 「해군 보병」이라고 부르며 CEE(유럽재래식군비조약)의 규제대상에서 제외하려는 해석을 고집하는 한 미소 정상회담의 일자를 확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소련측 해석이 받아들여질 경우 유럽지역에 남겨두게될 전체 소련무기의 5%에 해당하는 약 3천5백대의 탱크,장갑차,대포 등이 조약상의 무기 실링에 포함되지 않는다. 소련주장에 따르면 이 부대들은 11월 조약체결 전에 육군에서 해군으로 전속됐기 때문에 이 조약의 적용 대상에 들지않는다는 것이다. 이 조약은 해군의 감축문제는 다루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전바르샤바조약 회원국을 포함한 다른 조약 체결국들은 소련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모스크바의 주장은 베이커의 말처럼 『신뢰의 심장을 도려내는 것』이기 때문에 워싱턴의 분노를 자아냈다. 부시 행정부는 이 문제가 명확하게 매듭지어질 때까지 재래식군비조약 비준안의 의회 제출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이다. 모스크바가 그런 주장을 하게된 동기가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 일부 전문가들은 군비감축을 반대해온 소련 육군이 조약을 무위로 돌리려는 책략이라고 분석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선 소련의 「막판 끌질」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협상관계자들은 소련 지도부가 이 문제의 해결필요성을 인정하는 신호가 포착되고있다고 밝히면서 소련의 체면을 살려주는 해결방안이 발견될지 모른다고 시사했다. 미소간에는 재래식 군비 논쟁외에 현안의 START(전략무기감축조약) 협상과 관련된 작은 난제들도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START의 서명은 연기된 지난 2월 정상회담의 중심사항이었다. START를 가로막아온 큰 문제들은 이미 해소된 만큼 작은 문제들의 해결엔 신축성을 보이겠다는 것이 워싱턴의 입장이다.
  • 「정보혁명시대」의 지자제 선거/김용운 한양대 대학원장(서울시론)

    ◎타락선거 못막으면 중우정치 전락 오랫동안 중단되어 왔던 지방자치제가 근 30년만에 부활된다. 민주화와 더불어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보다 직접적인 요인은 범인류·세계사의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정보화 현상」에 있다고 하겠다. 인류사에는 정보와 혁명이 이전에도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맞고 있는 것은 두번째 정보혁명이다. 첫번째 정보혁명은 구텐베르크의 활자의 발명이었다. 이로 인한 인쇄술의 발달로 성서가 보급됨으로써 신에 대한 정보를 독점한 사제계급을 무력화 시켰고 마침내 종교혁명을 야기하여 봉건제도의 기반을 흔들어 놓았다. ○“부정근절” 의지 확산중요 두번째 정보혁명은 현대의 「C & C」(Computer and Communication)이다. 하나의 정보가 순식간에 전 세계를 돌아 곧바로 다시 새로운 정보로 증폭,보다 높은 차원의 충격이 계속 생산되어 나온다. 첫번째 정보혁명으로 사제귀족이 보통사람이 되었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제는 누구나가 귀족이고 보통사람인 것이다. 정보전달 수단의 발달은 또한교육의 보편화를 가져왔다. TV·라디오를 통한 방송대학은 더욱 더 앞으로 발전해 간다. 그리하여 누구라도 교육을 받게 된다. 이제는 국민 모두가 철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보화는 긍정적인 면만큼 많은 약점도 있다. 가령 최근 세인을 놀라게 한 수서사건은 정보화시대가 아니었으면 그 충격은 도저히 그 처럼 크게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다. 정보화 시대이기에 나쁜 것,좋은 것이 함께 순식간에 전달된다. 선거에서의 부정에 관한 정보도 단숨에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타락을 가속화시킬 수 있고, 그 반대로 국민 각자가 자각하면 쉽게 공감대를 형성하여 부정한 분위기를 없앨 수도 있다. 정보가 쉽게 일반인에게 전달됨으로써 누구나 쉽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노동조합·학생·시민까지 모든 활동이 정치성을 띠게 된다. 각자의 높은 목소리가 정치의 방향을 결정할 수도 있다. 이는 우리가 갈구했던 민주화가 아닌,일찍이 인류가 체험한 바 없는 대중사회의 출현이라 할 수 있다. 자칫 중우적인 경향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특히 한국민의 체험에는 도시적인 생활이 없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2백50개 정도밖에 안되는 성씨,균질적인 마을이 수천개 있고 중간의 완충지대에 해당하는 건전한 도시가 없이 바로 서울에 이어지는 사회제도를 오래도록 경험해야 왔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지방자치 제도가 쉽게 성숙해질 수도,또는 같은 이유에서 오히려 좌절될 수도 있다. 정보화가 가속화되면 대중화가 무질서로 이어질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그것을 막는 일이 곧 윤리성이 높은 지방문화의 창달이다. 「정보」란 일의 진행에 있어서 그 선택의 폭을 넓히고 길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정보 사회의 특성은 그 선택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정보의 범람에 따른 문화현상의 당양화와 가치관의 다극화에 있다. 이에 맞게 지방차지도 획일화된 도시화 보다는 개성이 강한 지방문화의 창출해 기여해야 마땅하다. ○정치혼란 가중시킬 우려 이러한 시대적 조류에 맞추어 생각할 때 비슷한 지방의회가 각처에 생기는 것이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지방의회는 소위 정치만은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한 의원들의 진출로 지방마다 개성있는 의회를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 세계가 국제화되는 일은 모든 문화·인종 등을 하나로 융합시키는 일이 아니가,국가와 민족마다 스스로의 개성을 살려나가면서 서로 조화되도록 하는 일인 것이다. 데모크라시란 본랜 「대중(데모스)을 지배(크라티아)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질서를 유지하고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을때에만 그 존재의의를 갖는다. 데모크라시의 좌절은 결국 중우의 늪으로 빠지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본 고장인 희랍의 철학자 플라톤은 중우정치를 경계하여 철인 정치를 주정했다. 바보들의 발언권이 커짐으로써 질서를 유지 못하는 경우보다는 철학자들의 정치,청렴하고 투철한 이성을 지닌 사람이 엄하게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국가 번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서는 악마도 이용할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플라톤의 철인정치를 오용한 수많은 독재자가 나왔다. 스탈린,히틀러,최근의 이라크의 후세인도 예외가 아니다. 어찌되었든 우리에게는 단군이래의 풍요로움을 기반으로 삶의 질을 높이는 새로운 지침이 요청된다. 예전의 윤리나 행동강령은 이에 어울리도록 승화되어야 할 것이다. 지방자치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가치는 돈이 아니라 보람이다. 우리가 선거에 돈이 풀리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는 단순히 타락선거라는 상식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이 사회 전체의 문화를 억압하는 폭력적 분위기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지방선거는 권력을 위한 것,즉 중앙 정치권에 대한 영향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방문화의 윤리성이 중앙권력의 가장 큰 제동력이 될 것을 믿고 우리의 희망을 그것에 걸어보는 것이다. 요즘 우리는 정치인의 무력함·무능함을 익히 통감했다. 나라의 미래를 그들에게만 맡길 수는 없으며 오직 건전한 시민정신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지방지치를 통해서도 이 같은 시민 정신이 구현될 것이다. ○참신한 지방문화 창출을 따라서 지방선거의 성격이 중요하며 내일의 국가적 양상에 그대로 반영될 것이 틀림없다. 새로운 시대에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윤리관이 요청된다. 정보화 시대이기에 민주주의가 될 수밖에없고 따라서 정보화 시대에 어울리는 지방자치가 실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기에는 늘 그래온 거처럼 중우정치에 빠지고 돈에 흐를 유혹이 있다. 지난날의 고식적인 사고로 그대로 미래를 추진시킬 수는 결코 없다. 이번 지방선거에는 우리 모두가 민족사적인 사명감으로 일찍이 체험한 바 없는 의식 개혁 속에서 종교혁명을 성취하는 마음으로 임할 것을 바란다.
  • 소 정치·경제 올해 파국 맞는다

    ◎GNP 11% 감소,스탈린시대 회귀 가능성/소 국가계획위,비밀보고서서 지적 【런던 로이터 연합】 소련 국가계획위원회의 한 비밀보고서는 금년을 소련의 파국의 해로 예언하고 소련이 현재 정치적 및 경제적 몰락으로 향하고 있다고 경고했다고 영국의 BBC­TV가 10일 보도했다. BBC 방송은 소련 국가계획위가 작년말에 작성한 비밀보고서를 처음으로 공개한다면서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공동체(EC)에 비밀리에 제출된 이 보고서가 소련의 국민총생산(GNP)이 작년의 3% 하락에 비해 91년에는 11.6%가 하락할 것이라면서 스탈린시대의 기근과 억압을 상기시켰다고 전했다. 이 보고서는 공업생산이 작년의 1.2% 하락에 비해 금년에는 15% 이상 하락할 것이며 농업생산도 5% 하락할 것이라고 예언했으나 작년의 숫자는 밝히지 않았다. 국가계획위의 주요 위원인 야코프 우린슨은 BBC방송과의 회견에서 강력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한 GNP가 16%까지 하락할 것이며 이같은 하락은 걷잡을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제·정치·사회적 몰락」이 올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난 1930년대의 기근과 억압을 다시 겪게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 “미는 대 발트국 외교 강화하라”/브레진스키,미지에 대소정책 기고

    ◎“「대만선례」 따라 각공화국에 민간기관 설치/3국 주미공사관 대사급 격상… 독립 지원을”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은 4일 미국은 소련내 발트해 연안공화국들의 분리독립 움직임을 격려하기 위해 이들 발트공화국들과의 외교를 한층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워싱턴 포스트지에 기고한 「대만식 해결」이란 제목의 글에서 이같이 주장하고 이를 위해 미국은 80년대초 대만문제를 처리했던 것처럼 이들 공화국에 미국을 대표하는 사설기관을 설치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이들 공화국의 주워싱턴 공사관을 대사급으로 승격시키는 외교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고문 요지를 소개한다. 오는 17일은 소련 역사상 중요한 날로 기록될 것이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이날 소련내 15개 공화국에서 연방존속 여부 등 소련의 장래에 관한 전국적 국민투표를 실시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지금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소련의 민족문제를 이 국민투표를 통해 해결하려 하고 있지만 상황은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날의 국민투표는 앞으로 소련의 민족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 같다. 새로 구성된 소연방의 모습이 힘에 의해 구성되느냐 조정에 의해 구성되느냐 하는 것은 앞으로의 소련장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는 또한 세계평화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미국은 이 문제에 보다 큰 관심을 가져야 하며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미국은 모스크바정부가 연방내각 공화국들과 정면충돌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같은 충돌은 소연방의 민족문제를 해결하는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미·소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발트해 공화국들의 독립움직임을 격려하면서도 소련정부와의 충돌은 피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미국은 앞으로 이원적 외교정책을 수행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즉,한편으로 모스크바정부와 정상적·공식적인 외교관계를 지속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민족주의운동이 불붙고 있는 공화국들과 외교관계의 범위를 넓혀가야 한다. 미국은 분리독립 움직임이 일고 있는 소련내 각 공화국들에 자신감을 부여하고 그들이 독립된 실체로서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두가지 현실적인 방법이 있다. 발트해 연안국가인 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공화국의 경우 미국은 1940년 소련의 발트국가 합병이후 이를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 공화국들은 워싱턴에 그들의 공사관을 정상적으로 운영해 올 수 있었다. 때문에 그 첫째방법은 미국이 지금 이들 공화국의 주워싱턴 공사관을 대사급으로 승격시킴으로써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즉,이같은 조치를 통해 이들 국가를 합법적 존재로 인정하는 효과를 거두는 것이다. 둘째는 미국이 이들 공화국에서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을 대표하는 사설기관을 설치하는 것이다. 이는 선례가 있어 불가능하지 않다. 미국은 이미 지난 80년대초 중국을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한 후 대만관계법을 의회에서 통과시켜 대만에 공적인 재정지원을 받는 민간기관을 설치,양국 국민들의 제반문제를 처리토록 했었다. 따라서 미국은 이제 이같은 선례를 발판으로 소련과 공화국에 미 사설기관의 설치를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미국이 명심해야 될 사실은 소련의 민주화는 크렘린당국이 그것을 허용하기 전까지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미국은 어떠한 어려움도 참고 인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련 중앙정부가 각 공화국들의 자치를 부인한다면 그것은 억압을 의미하는 것이며 억압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련은 변할 수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에 미국은 그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야 한다.
  • 또,법정 난투극(사설)

    법정소란 사건이 또 있었다. 4일 열린 전대협 전 의장 송갑석피고인 등과 관련된 국가보안법 위반사건 5차 공판정에서 방청객과 경찰관 사이에서 몸싸움이 벌어져 두번씩이나 재판이 지연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운동권 세력이 법정에 설 경우 법정소란은 으레 따르는 다반사가 되어가고 있다. 특히 송갑석피고인과 관계된 법정은 거의 예외없이 소란으로 점철되고 있어서 지난 1월말 열린 공판때에는 법정소란을 이유로 감치처분이 내려지기도 했다. 2월28일 열린 이른바 사노맹 사건의 공판정에서의 피고인이 참여주사석을 밟고 재판대 위로 뛰어올라가 『노정권 타도』의 구호를 외치다가 교도관에게 끌려내려오기도 했다. 이렇게 잦은 법정소란들에 대해 일반시민이 느끼는 것은,이런 소란들이 단순하게 격정적인 방청인이나 열혈 학생들이 일으킨 우연하고 즉흥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법정을 효과적인 투쟁마당으로 설정하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사회에 타격을 주기로 전략을 세우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계획적으로 집단이 되어 법정 안팎을 점거하고선동적인 구호와 노래,시위들을 짜고 외치는 일을 조직적으로 또 기능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행동들이 날로 대담해져서 마침내는 재판대에까지 뛰어오르는 일을 서슴지않게 되었다. 법정이 이렇게 유린되고 모독되는 것을 우리는 용인할 수가 없다. 국가의 권위와 질서,존재의미까지를 파괴해 버리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민가협 회원들까지 합세하여 날로 극렬해지는 양상을 띠는 일이 우리로서는 더욱 유감스럽다. 소중하고 귀한 자녀와 육친이 불행을 겪고 있고 개인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과 직면하면 그 가족들이 모여 함께 대응한다는 것은 있을 법한 일이다. 그러나 가족들은 당사자들처럼 흥분과 환상에 들떠 과열된 행동을 벌이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시련을 겪는 자녀나 가족을 위해서도 좋은 해결방법이 아니고,그들이 속한 각각의 가족이나 가정을 위해서 온당한 행동이 아니다. 시민의 눈에 비치기에도 아무런 설득력이 없고 정당화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런 행동은 법정에서까지도 합리적인 행동과 논리로 대처할 수 없어서 극단적인 구호와 시위만으로 임한다는 인상을 줄 뿐이다. 어쩌다 한두번이라면 권력을 상대로 불가항력을 느낀 피고의 억압된 감정이 노출된 것이라고 이해도 할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럽게 법정소요가 행동전략의 하나로 굳어져가는 듯한 지경에 이르고 보면 누구도 공감하기가 어렵다. 자녀나 육친들이 불행한 시련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이 「가족」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그런 가족이 극렬하고 폭력적인 행동으로 외면당하는 결과가 초래된다면 끝내는 시련당하는 당사자의 불행만 깊어진다. 그 불행을 가속시키는 쪽으로 부추긴다는 것은 그들을 위하고 돕는 일이 안된다. 가족들만이라도 젊은이들의 병적으로 편향된 시각에 휩쓸려 불행을 가속시키지 말고 마음을 차분히 식히고 주변을 돌아보았으면 한다. 그렇게 하면 분명 잘못 치닫고 있는 자신들의 행적이 얼마나 불행을 부르고 있는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법정소란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승산없는 행동인지도 알게 될 것이다.
  • 국민신뢰 높이게 공보원 증설/공보처,업무보고

    ◎「라디오서울」 3월 「서울방송」에 이관 정부는 국정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신뢰를 높이기 위해 전국 주요도시에 국립공보원을 설치하고 방송구조개편과 관련,KBS의 라디오서울과 제2라디오를 오는 3월과 9월 각각 서울방송과 교육방송에 이관키로 했다. 공보처는 30일 노태우대통령에게 서면으로 제출한 새해업무보고에서 이같이 밝히고 워싱턴에 「한국홍보관」을 설치하는 등 올해의 해외홍보는 대미홍보에 역점을 두기로 했다고 보고했다. 공보처는 또 공보처 소속 기관으로 「홍보연구소」를 설치,여론분석과 각종 홍보자료작성 및 배포 등을 체계화시키는 한편 북한의 인권탄압 및 자유억압사례 등을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할 방침이다. 공보처는 KBS 경영합리화와 관련 라디오서울과 제2라디오의 이관 외에 현재 인구 40만 이상의 시에서만 실시하고 있는 TV시청료 통합공과금제도를 전국 시지역으로 확대키로 하고 신설민방인 서울방송을 오는 3월에는 라디오를,10월에는 TV를 개국토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공보처는 공산권 수교국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를 위해 소련·체코·폴란드 등 3개국에 순회 한국종합홍보관을 운영하고 이들 국가와 중국·유고를 포함한 5개국에 공보관도 파견키로 했다고 덧붙였다.
  • 후세인은 「사막의 대결전」을 노린다/이라크의 걸프전략 분석

    ◎확전을 겨냥,최소 저항으로 지연작전/군사적 패배 감수,정치적 승리가 최종목표 다국적군의 대규모 공습으로 시작된 걸프전쟁은 조속한 시일내에 끝나지 않겠느냐는 전쟁 첫날의 낙관적인 견해와는 달리 발발 5일이 지난 21일 현재 점차 장기전으로 들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다국적군의 엄청난 폭격에도 불구,이라크군은 두차례에 걸쳐 이스라엘에 미사일공격을 퍼부었고 사우디아라비아에도 간간이 미사일공격을 하고 있지만 아직 이라크군의 반격은 「가련하다」고 할만큼 극히 미미한 정도이다. 이라크군은 왜 침묵을 지키고 있는가. 이라크군을 지휘하는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계속되는 다국적군의 대규모 공습에 어떻게 대처하려 하는가. 많은 중동전문가들은 후세인의 전략에 대해 전쟁발발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바뀌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후세인의 전략은 ▲다국적군의 초기공세는 최소한의 저항만으로 견뎌내며 시간을 끈다. 단 이라크군의 핵심전력은 최대한 방공호 등에 은닉해 군전력은 될 수있는 한 손상을 입지 않은채로 유지한다 ▲이스라엘에 대한 도발을 통해 이스라엘을 전쟁에 끌어들인다 ▲다국적군의 공습이 큰 효과를 보지 못해 지상전에 돌입하면 사막지상전을 통해 막대한 인명피해를 유발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후세인이 다국적군의 공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우선 전쟁초기에 다국적군의 예봉을 피하자는 것이다. 후세인이 이처럼 다국적군의 대규모 공습을 계속 받아내고 있는 것은 다국적군의 공습이 주요 군사시설에만 국한될 뿐 민간피해는 내지 않으려 한다는 점도 미리 염두에 둔 것이다. 전투기와 미사일 등 핵심무기만 보존할 수 있다면 공습이 장기간 지속된다해도 얼마든지 전쟁을 치를 수 있으며 민간인 피해가 없으면 없는대로 좋고 민간인 피해가 발생하면 또 이라크 국민들간에 다국적군에 대한 적대감을 증대시키는 동시에 국민들의 결속을 강화시켜 전쟁에의 결의를 다질 수 있다는게 후세인의 계산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 후세인에게 있어 최선의 기대는 다국적군에 참여하고 있는 서방국들에서 반전시위가 걷잡을수 없이 격화되고 결국 이같은 반전시위의 압력에 굴복,다국적군측에서 먼저 휴전을 생각하는 쪽으로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다. 이같은 가정은 물론 후세인의 희망일 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고 생각하는한 후세인은 이를 놓치려들지 않을 것이다. 걸프전쟁에 있어 시간의 흐름이 어느쪽에 유리하게 작용하느냐는 데 대한 판단에 있어서도 다국적군과 후세인은 전혀 다른 것같다. 다국적군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라크군의 전력이 조금씩이라도 계속 약화될 것이기 때문에 결국 시간은 다국적군의 편에 서 있다고 믿고 있지만 후세인은 인명피해의 발생과 함께 자신이 주장해온 「억압받는 아랍민족의 해방」이란 정치적 역할이 점차 인정받게 돼 시간은 이라크측의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게 틀림없다. 이같은 점을 고려해볼 때 후세인은 아직 전쟁으로 인해 조금도 기가 꺾이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여전히 도전적이며 예측할 수 없는 위험한 인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전쟁의 장기화와 중동 전지역으로의 전쟁 확산이라는 후세인의 두가지 기본전략은 앞으로도 계속될게 분명하다. 물론 후세인으로서도 이번 걸프전쟁에서 꼭 군사적 승리를 거두겠다고 생각하는 것같지는 않다. 후세인이 노리는 것은 군사적인 승리가 아니라 아랍을 위해 전세계와 맞섰다는 명분의 획득이며 그에 따른 정치적 승리이다. 과거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대패하고도 아랍의 영웅으로 추앙받은 나세르 전 이집트 대통령의 경우와 같이 후세인 역시 다국적군과의 대결을 통해 아랍의 지도자로서 확고한 위치를 굳힐 수 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라는게 후세인의 생각이다. 따라서 현재 후세인의 생각은 그 시간이 얼마가 되든 버틸 수 있는데까지는 최대한 버티면서 자신의 영웅적인 투쟁을 과시하는게 최우선 목표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후세인은 이같은 투쟁을 더욱 극적인 것으로 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이스라엘을 개입시키려들 것이다. 이스라엘이 개입하고 후세인이 말하는 아랍과 시오니즘의 대결로 국면이 전환되면 후세인은 충분한 정치적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며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후세인은 정치적 승리를 얻은 대가로 군사적 패배를 감수하겠다고 발표하게 될지도 모른다.
  • 페레스트로이카의 과제/조지 캐넌 진단(해외논단)

    ◎“「오도된 평등주의」가 소개혁 막고 있다”/70년 독재로 자유경쟁원리 완전 망각/민족분규는 자율협조로 해결 바람직 소련은 지금 극도의 혼란에 빠져있다. 경제적 혼란도 문제지만 연방체제마저 와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1947년 소련에 대한 봉쇄정책을 주창,세계적 명성을 얻었던 조지 캐넌교수는 이제 「슈퍼 스테이트」,소련의 붕괴를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외교문제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91∼91년 겨울호에 실린 그의 논문을 요약,소개한다. 러시아는 과거 수세기동안 지리·정치적으로 서구문명과 단절돼 있었으며 그만큼 현대화 과정도 뒤졌다. 그러나 18∼19세기에 들어 러시아사회는 이러한 단절을 극복하고 현대화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의욕적인 교육개혁과 농업개혁이 추진됐고 사회전반에 의욕이 엿보였다. 물론 이를 가로막는 체제내 갈등과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절대왕정,의회제도의 부재,민족문제 등 고질적인 문제들이 이 현대화 작업의 장애요소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유혈혁명까지 필요하지는 않았다. 1917년 초에는 의회제도의 토대가 마련됐고 왕정폐지는 무혈로도 가능했다. 1917년 혁명은 이 평화적 변화가능성을 하루 아침에 뒤엎어 버렸다. 19세기말과 20세기초 러시아의 반체제 세력중엔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변화를 반대하는 급진 과격세력이 들어 있었다. 이들은 차르왕정과 러시아 사회를 완전히 파괴시키기를 원했다. 파괴 후의 계획은 극히 모호하고 유토피아적이었다. 이들은 러시아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함으로써 예상외의 호기를 얻었다. 1917년 여름 임시정부는 왕정이 붕괴된 어수선함 속에서 이 전쟁을 계속키로 결정,큰 실수를 저질렀다. 레닌파의 권력장악을 가능케한 것은 2년반에 걸친 전쟁과 1917년초 국내정치의 혼란이었다. 그러면 공산정권 수립이 러시아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레닌은 일차적으로 부르주아 인텔리층을 몰아냈다. 그리고 그후 스탈린은 마르크스주의 인텔리층까지 모조리 제거했다. 이 결과 러시아는 문화적으로 과거와 단절됐고 이 단절은 지금까지 회복되지 않고 있다. 스탈린은 자신의 개인통치에 장애가 되는 지식층과 레닌의 잔재세력을 모두 몰아내기 위해 무자비한 숙청을 단행했다. 1937년과 38년에 이 숙청은 절정에 달했고 수백만명의 무고한 시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사회전체가 히스테리 속으로 빠져들었다. 1940년대에 들어 러시아 국민들은 설상가상으로 숙청보다 더 무서운 2차 대전의 공포를 맞게 된다. 소련은 1941년 6월 정식으로 참전했다. 하지만 이 전쟁은 소련국민들 사이에 외부의 적에 대항하는 원초적 민족주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스탈린은 자신을 이 감정과 교묘히 결합시켰다. 정부와 국민은 힘을 모아 나치에 저항했고 국민들은 정부에 대해 새로운 희망을 가졌다. 전쟁이 끝나면 정부의 통치방법에도 변화가 올 것이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스탈린은 이 변화를 단호히 거부하고 예전의 통치방식을 그대로 고수했다. 무서운 전쟁의 공포에서 살아남은 국민들의 간절한 희망을 스탈린은 철저히 무시했다. 국민들은 엄청난 좌절을 맛보았다. 1953년 스탈린의 사망으로 급격한 체제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지배이념으로서스탈린주의에 대한 조직적인 대안도 반대도 러시아사회엔 존재하지 않았다.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의 잔재세력을 지도부에서 모두 몰아내는데 4년이 걸렸다. 그러나 흐루시초프 자신도 곧이어 밀려나고 말았다. 그후 80년대 중반까지 오면서 소련에는 계속해서 그렇고 그런 지도자들만 번갈아 등장했다. 물론 유리 안드로포프는 예외였다. 고르바초프가 시작한 체제변혁은 이들의 상상 범위를 넘는 것이었다. 전자통신 시대를 맞아 소련내 젊은 지식층들의 체제불만은 점점 더 높아져갔다. 여행과 표현의 자유는 제한돼 있고 경제기술 수준은 19세기 수준에 머물러 국제경쟁력이 크게 떨어져 있었다. 레닌이 물려준 이데올로기로는 더이상 체제유지가 힘들게 됐다. 국민들 가슴속에선 이미 죽어 없어진 이데올로기에 소련 지도자들은 계속 매달려 있었다. 이 체제위기를 감지하고 최후의 일격을 가한 것이 고르바초프였다.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공산주의 이후 러시아의 앞날에는 힘든 3가지의 과제가 놓여있다. 첫째,공산당에 집중돼 있던 권력중심을 선거에의해 선출된 민주정부 체제로 이전하는 것. 둘째,중앙집중적인 경제체제를 자유기업 체제로 전환하는 것. 셋째,지난 3세기동안 지속돼온 다민족체제를 보다 자유로운 관계로 전환시키는 것. 이 3가지 변화들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러시아 국민들의 생활은 분명 크게 도약될 것이다. 그러나 어려움은 상상 밖으로 심각하다. 70여년의 공산독재로 러시아 국민들은 민주통치 원리에 대한 이해를 모두 잊어버렸다. 그 이해수준은 1910년대보다도 더 뒤떨어진다. 경제현실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의 창의적 영역이 철저히 억압당해왔기 때문에 국민들 스스로가 자신을 체제의 한 수동적인 일부분으로 간주한다. 과장된 평등주의가 만연돼 누구도 선두에 나서려 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생활수준을 남보다 앞세우려는 노력을 포기했다. 이러한 고질적인 병폐들로 인해 고르바초프가 추진하는 체제변화는 신속한 진전을 보이기가 상당히 어럽게 돼있다. 이런 태도들을 고치려면 오랫동안 꾸준한 교육적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이를 담당할 마땅한 교사들도 없다.한편 소련방을 구성하고 있는 제민족간 관계 재조정도 필수적이다. 현재 강력한 추세에 있는 민족주의로 인해 지난 세기의 다민족·다언어 제국 유지는 이제 용납이 안된다. 발트해 3국은 분명 독립할 자격이 있고 결국은 독립할 것이다. 그러나 공화국마다 차이가 있어 일괄적으로 단일모델이 제시되기는 힘들다. 현재 소련인구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러시아 공화국의 주권요구에도 상당한 근거가 있다. 러시아 민족은 전통적으로 여타 소수민족에 대한 배타적 감정을 갖고 있다. 그것은 전통·문화·종교에 뿌리박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정이 돼야 한다. 하지만 러시아 공화국까지 주권을 내세우면 소련방의 존재 이유가 의문시된다. 그리고 중앙정부와 연방공화국과의 관계도 깊은 역사적 뿌리가 있어 이것이 갑자기 끊어지면 엄청난 혼란이 불가피하다. 경제적 혼란도 클 것이다. 보다 심각한 것은 연방공화국 몇몇은 서로 전쟁을 일으키거나 공화국내에서 끔찍한 내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현재 연방 수중에 있는 핵무기에 대한 관리책임이 분담됨으로 인해 생겨날 문제도 끔찍하다. 여기에 덧붙여 세계무대에서 강대국으로 막대한 발언권을 행사하던 소련이라는 단일 국가가 갑자기 무대에서 사라진다는 것도 아무래도 불길하다. 현재 소련의 민족문제는 연방과 공화국 모두 양극단만 고집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래선 안된다. 타협이 마련돼야 하고 절제와 인내가 양쪽 모두에게 지켜져야 한다. 완전한 독립도 아니고 과거의 연방체제도 아닌 새로운 관계가 모색돼야 한다. 그것이 소련 자신뿐 아니라 세계의 평화에도 유익하다.
  • 1990년을 보내며(사설)

    20세기를 마감하는 90년대의 첫해가 저문다. 1990년이 서산에 걸려 꼭두서니 빛을 띤다. 해마다 섣달 그믐날이면 느껴오는 일이지만 회고해 볼 때 올해 또한 다사다난한 한해였다. 이승을 사는 사람은 누구나 오늘,세월의 석양앞에서 연륜을 생각하며 숙연한 감상에 젖어든다. 또 지난날을 성찰하는 가운데 새해의 삶에 밑거름으로 삼고자 한다. ○북방외교 성취의 해 1990년의 지구촌은 조종이 울린 마르크시즘이 더 구체적으로 붕괴하는 것을 보여준 해였다. 종주국 소련의 개방·개혁 정책은 국내적 시련 속에서도 꾸준히 추진되었으며 동서독일은 서독이 주축으로 되는 통일과업을 이룩해 냈다. 폴란드의 선거에서는 반공 투사였던 자유노조 지도자 바웬사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며 「유럽의 고도」로 불려오던 알바니아까지 개방·개혁의 물결을 타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흐름과 함께 11월에는 냉전시대를 마감하는 「파리헌장」을 미국·소련 등 전유럽 안보회의 회원 34개국 정상들이 모여서 채택한 바 있다. 이 지구촌의 흐름이 88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하여 급속하게 진행된 것임은 두말할 것이 없다. 또 이러한 흐름과 함께 우리의 북방외교도 그 실을 거두어 공산권이었던 여러 나라들과 수교의 길을 열어 오고 있음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다. 그리고 마침내 소련과의 국교관계를 수립하면서 우리의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새해에는 그 나라의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방문하게 되어 있다. 2차대전 후 대치되어 온 동서 양대 진영의 해빙무드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 페르시아만 사태이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시작된 페르시아만 사태는 1990년의 지구촌이 기억해야 할 가장 불행한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고조된 긴장 속에서 해를 넘기고 있는 터이지만 평화를 상징하는 양의 해인 새해에는 이 긴장상태가 결코 포화의 교차로 이어지지 않고 원만하고 평화롭게 풀리게 될 것을 바라는 마음 간절해진다. ○고조된 통일에의 염원 동서 독일의 통일로써 2차대전 후의 분단국은 한국만으로 남게 되었다. 그래서 통일을 바라는 온 겨레의 마음이 그 어느 해보다 고조된 것이 90년이었다. 그 열망이 베이징 아시안 게임에서는 겨레의 합창으로 메아리진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체육 교류도 있었고 예술 교류도 있었다. 그러나 9월 이후 세 차례 거듭된 남북 총리회담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해를 넘긴다. 아직도 두꺼운 벽을 확인하기만 한 회담이었다고는 해도 그것이 통일을 위한 디딤돌이 되는 것임을 확신하면서 새해를 열고자 하는 것이다. 정치는 여느해와 마찬가지로 국민들에게 실망만을 안겨준 한해였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비대해진 여당은 비만증으로 그 몸을 추스르지 못했고 야당은 40여년동안 앓아온 고질에서 헤어나지 못한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 주었을 뿐이다. 정치인 자신들을 위한 정치인지 국리민복을 생각하는 정치인지 알 수 없게 하는 행태의 연속에 국민들은 심한 배신감을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지자제가 부활된 것은 그런대로의 성과라 할지 모르겠으나 그동안의 성숙하지 못한 우리의 정치 행태에서 볼 때 바람직스럽지 못한 반작용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없는 것은 아니다. 경제도 썩 좋았다고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무역수지의 적자와 함께 경상수지가 적자로 반전되고 있는데 대한 우려를 지울 수 없게 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사회기강은 흐트러질대로 흐트러져 버렸다. 범죄의 연령은 낮아지고 층은 두터워지면서 질은 갈수록 흉포화해가고 있다. 범죄와의 전쟁을 선언하면서 그 소탕에 노력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없어지고 있지는 않다. 그것은 우리사회가 도덕적으로 병들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범죄와의 전쟁 못지 않게 우리의 의식구조를 올바르게 다져 가는 새정신·새마음 운동이 보다 심도있고 실효성 있게 펼쳐져야 할 것을 가르쳐 준 90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민주화는 민주시민 정신으로 광복후 6공이 들어서기까지 우리는 억압된 삶을 살아왔다. 지금이라 해서 만점의 민주화 세상이라고 할 수 없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6·29선언을 기점으로 하여 민주발전에의 대도로 들어섰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그동안 억눌렸던 갖가지 욕구불만이 한꺼번에 터져나오고 있다. 그동안 많이 진정되어 오고 있는 터이지만 올해 또한 그 홍역의 여파에 시달린 과도기적인 한해였다. 이 해를 보내면서 우리 모두가 한번더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은 국민각자의 민주시민 정신 함양이다. 나만 있고 너는 없다는 식의 사고방식으로는 결코 민주사회를 이룩해 낼 수가 없다. 나의 주장은 당당히 하되 내 주장을 전체의 용광로 속에 넣어 용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못할 때 우리 모두가 맛보고 겪는 것은 혼란일 뿐이다. 남을 탓하고 질타하기 전에 먼저 나를 탓하고 나를 질타하는 것이 순서다. 민주사회는 법과 질서를 지키는 기반에서 이루어진다. 그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해서는 안되며 또 그런 만큼 법은 엄정하고 균형있게 집행되어야 한다. 법의 권위가 무너지면 민주사회는 무너진다. 그렇건만 지나온 한해만 되돌이켜 봐도 법 위에 군림하려는 작태가 적지 않았고 법의 권위를 지켜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오욕을 안기기도 했던 것이 아닌가. 일상생활에서 질서의 유지가 중요한 것임은 더 말할 것이 없다. 새해에는 윤리·도덕 재건에의 길을 진지하게 모색해야겠다. 먼저 사회 지도층부터 윤리성·도덕성을 확립할때 우리 사회는 차츰 밝아져가게 될 것이다. 오늘은 우리 모두가 그 밝은 내일을 위해 성찰하는 날이다.
  • 입시해방감을 바른 길로(사설)

    이 무렵의 가장 큰 사회적 이슈인 전기대 입시가 19일로 면접까지 끝났다. 일단 시험을 끝낸 수험생들은 그 무거운 짐을 우선 벗어놓은 것만으로도 날아갈 듯 가벼울 것이다. 그런 청소년이 한꺼번에 70만명 가까이 나오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게다가 이 시기는 곧 이어서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만나게 된다. 종교적 구원의 의식으로보다는 들떠서 즐기는 행사로만 잘못 받아들여진 크리스마스의 잘못된 풍조가 모든 청소년으로 하여금 일탈하기 쉽게 하는 철이다. 비행 젊은이들의 처음 잘못된 기점을 추적해 보면 그 상당수가 이 무렵에 생긴 아주 작은 빌미 때문일 경우가 많다. 그렇잖아도 세 밑에는 강력범이 날뛰고 민생사범이 부쩍 발호하는데 그 중에도 청소년의 범죄가 가장 빈발한다. 단지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강도·폭력행위를 저지르는 청소년이 이 계절에는 압도적으로 많다. 이런 풍조에 전염되기도 하고 희생자가 되기도 하는 피해자가 수두룩 해진다. 이런 비행의 덫에 가장 걸리기 쉬운 층이 입시를 치른 수험생이기도 하다.이런 환경에서 우리의 자녀들을 보호하는 일에 사회와 학교와 가정이 3위일체가 되어 협력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먼저 어른들이 할 일은 스스로 좋은 본을 보이는 일이다. 망년회요 크리스마스 모임이요 하고 들떠 돌아가면 우선 청소년을 관찰하고 이끌어줄 물리적인 시간을 잃게 된다. 또 어른들의 그런 행태를 흉내내고 싶은 충동을 직접 자극하기도 한다. 지옥같은 입시준비 때문에 억압당했던 상태에서 이젠 간신히 벗어난 수험생들은 그 보상심리까지 작용하여 어른 흉내를 내게 된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대개는 법적인 성인연령에 이르게 되기도 하므로 「어른노릇」에 매력을 느낀다. 그것을 제일 가까운 거리에서 다잡아 줄 책임은 첫째로 가정과 부모에게 있다. 학교 또한 청소년을 빗나가지 않게 책임져 줘야 할 의무가 있다. 입시위주의 파행적 교육의 영향으로 정서적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자기 행동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익히지 못한 책임은 학교에도 상당부분 있다. 70만의 수험생이 전기 입학시험을 끝냈다고는 하나 그 중의 60% 이상이 실패의 쓴 잔을 마실 것이므로 후속 해결책을 찾아야 할 일이 남아 있다. 이런 엉거주춤한 상태의 학생들을 선도할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가 맡을 부분도 많다. 한국청소년 선도회 부설 「가출청소년찾기본부」가 출발한 지 한달 만인 지난 중순께까지 1백67명의 청소년들을 부모 곁으로 돌려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들 대부분이 우범지역에서 구출되었고,그 중 많은 청소년이 가정불화나 가정의 어려움이 싫어 「뛰쳐나온 청소년」이었다고 한다. 유흥업소·인신매매조직 따위가 함정을 파고 이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사회 전체가 학교나 가정이 할 일을 공동으로 맡아 감시해 주어야만 이런 사회악은 줄어들 수가 있다. 억압상태에서 풀 수 있는 건전한 기회를 가정과 학교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마련하는 것도 중요한 예방의 방책이다. 모든 노력을 기울여 젊은 순이 잘못되지 않도록 노력하며 새해를 맞을 수 있기를 간절히 빈다.
  • 미,소에 긴급 식량원조 검토/「페만협조」보답… 경제난 타개 지원

    【워싱턴 AP 연합】 미 행정부는 10일 극심한 경제적 곤경에 처한 소련이 올 겨울을 넘길 수 있도록 긴급 식량·의료 원조를 제공하고 무역상의 혜택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중임을 시사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소련의 심각한 경제난을 감안하고 대 이라크 제재에 동참한데 대한 정치적 대가로 대소 최혜무역국 대우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워온 이민자유화법 제정요구를 철회,소련측이 이 법률을 통과시키지 않더라도 무역상 혜택을 제공할 방침인 것으로 말린 피츠워터 백악관 대변인이 밝혔다. 피츠워터 대변인은 소련 당국의 유태인 국외이민 불허 등 억압정책을 이유로 대소 무역을 엄격히 규제해온 잭슨­배닉법(74년)을 무효화하는 것을 검토중이라고 밝히면서 소련측이 이민자유화 정책을 광범히 추진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현재 소련이 처한 경제난과 식량공급난이 매우 극심하며 페르시아만 사태에서도 미국측에 협조해온 사실을 지적했다.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도 미 행정부가 소련에 식량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할 준비를 하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했다.베이커 장관은 미소 전략핵감축협정 마무리협상차 방미중인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이 식량원조를 요청한데 대해 『의료·식량 등 인도목적적 원조에 관한한 백악관측은 지원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추진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한국전 재조명 놓고 미서 「작은 논쟁」(특파원 코너)

    ◎「기록영화」방영 이후 엇갈린 반향/“승자도 패자도 없다”… 평가도 결산도 애매/“미 참전 공산주의 팽창 막아” 긍정시각도 미국 역사에서 한국전은 2차대전과 월남전 사이에 눌려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전에 대한 평가나 결산도 애매하다. 한국전은 승리였나,패배였나. 공산주의에 영웅적으로 맞선 것인가,비극적인 교착상태인가. 미국은 자유의 기수였는가,아니면 냉전게임을 추구한 간섭자였는가. 말하자면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구구하다. 「잊혀진 전쟁」이라고 불리우는 한국전이 끝난지 40년이 지난 지금 미국에서 한국전 평가를 둘러싸고 작은 논쟁이 일고 있다. 논쟁의 발단은 지난주 공영방송인 PBS­TV를 통해 방영된 한국전 기록영화와 이 영화에 나온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한국전 해석,그리고 워싱턴에 세워질 한국전 참전 기념비의 설계 변경 등에서 시작됐다. 하루 2시간씩 3일간 방영된 「한국,알려지지 않은 전쟁」이라는 제목의 PBS 다큐멘터리와 커밍스 교수의 최근 저서는 해방 후 남한에 세워진 정부를 「민주주의의 등대가 아니라 아시아에서 공산주의 팽창을 저지하려고 미 점령군이 세운 반동적인 억압 정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전중 미군 포로에 대한 북한의 학대와 중국의 세뇌교육을 두고두고 비난했지만 이 영화를 시청한 미국인들은 아직도 생생한 월남전의 메아리 속에 한국과 미국의 퇴색한 이미지를 보았을 것이라고 뉴욕 타임스지 일요판은 보도했다. 영국의 런던 테임스 TV와 미 보스턴의 WGBH방송국이 공동 제작한 이 기록 영화는 북한에 2백만명 이상의 사상자를 남긴 남한측의 양민학살과 미군의 융단 폭격 및 네이팜탄 사용을 사진과 증인 회견을 통해 고발하고 있다. 이 영화와 커밍스의 새로운 한국전 해석은 「침략자는 분명히 북한이었다」는 미국인들의 오랜 인식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커밍스는 최근 펴낸 신저 「한국전쟁의 기원 제2부··격류의 굉음(The Roaring Of The Cataract),1947∼1950」에서 1950년 6월25일에 북한이 남한을 침략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이 북한을 패주시키기 위한 싸움에 미국을 끌어들이려고 침략을 도발했던 것인지,아니면 아주 적은 가능성이지만 침략에 맞서 자신을 거의 방위하지 않았는지에 관한 의문은 그냥 남겨 놓고 있다. 미국서 저술상을 탄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제1부)」은 과거 한국에서 금서목록에 올라 있었으며 아직도 학생운동의 바이블로 남아 있다. 커밍스의 주장에 의하면 한국전은 미국의 세계 경찰역 및 대 아시아 군사개입의 시초로서 월남전 개입의 징후를 이때부터 벌써 드러낸 것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한국전을 승리와 패배중 어느쪽으로 분류해야 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면서 『미국인들에게 한국전은 슬픈 수기로 끝났고 전쟁의 추억은 허공속을 떠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전에 대한 커밍스의 이러한 비영웅적 해석은 일부 군인과 정치인,그리고 역사학자들을 격분시키고 있다. 한국전 참전 용사이며 지난 73∼76년 사이에 주한미군 사령관을 역임한 리처드 스틸웰 장군은 『한국전은 미국 역사상 가장 자랑스러운 것임에도 이 영화에선 그걸 알 수가 없다』고 지적하며 『내가 보기에 이건 용감하게싸운 미군의 공적을 훼손하는 반미물』이라고 비난했다. 퇴역장성인 그는 『한국에서 공산주의 저지에 성공함으로써 우리는 봉쇄정책의 개념을 처음부터 올바르게 전개할 수 있었으며 이 때문에 40년 후 전세계적인 공산주의의 멸망이 온 것』이라고 한국전을 평가했다. 그는 또 미국이 한국에 대해 방패를 제공함으로써 한국민들이 오늘의 기적을 만들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논쟁은 이 기록영화의 제작에까지 비화됐다. 커밍스와 런던 테임스 TV의 대본 작가 존 헤리데이는 이 영화를 미 관중용으로 번안할 때 스틸웰 장군등 비판자들의 압력 때문에 일부 내용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틸웰 장군은 자신의 의견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으며 영화는 여전히 편견을 담고 있다고 반박했다. 한국전 연구가로서 커밍스 비판론자인 뉴멕시코 주립대학의 제임스 매트레이 교수는 『많은 신진 역사학자들이 한국전에 대한 전통적 견해를 수정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그러나 커밍스는 미국에 대해 너무 엄격한 반면 북한에 침략 무기를 제공해 준 소련에 대해선 너무 관대하다』고 비판했다. 한국전에 대한 미국인들의 컨센서스는 아직 형성되지 않고 있으며 그것을 후세에 어떻게 전할지에 관한 토론만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예컨대 월남전 참전기념비는 오래전에 세워졌지만 한국전 참전기념비 건립계획은 아직도 이견을 해소하지 못한 상태다. 당초 설계에 따르면 이 조형물의 중심은 성조기를 향해 행진하는 병사 38명의 입상이다. 병사들의 자세와 표정을 통해 한국전이 걸었던 길,즉 초기엔 패하고 나중엔 이기지만 결국 교착 상태에 빠진 것을 묘사하자는 것이 그 의도였다고 설계자의 한 사람인 존 루카스는 설명했다. 그러나 이 설계자들에게 2만달러의 상금을 주었던 건립추진위는 여러차례의 설계 변경 끝에 행진하는 병사들을 전투대형의 병사들로 개조했다. 건립위원회 위원장인 스틸웰 장군은 이 변경이 대부분 장식적이고 비정치적인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설계자 루카스는 전투와 승리를 연상시키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 거듭나는 새마을운동(사설)

    「위대한 시대에는 그것을 창조한 시대정신과 이를 구현한 국민운동이 있었다」 22일에 열린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는 의외의 신선함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는 지나간 시대의 「관제운동」이라는 오욕스런 누명을 쓴 채 한쪽으로 밀쳐져 있는 듯하던 새마을운동의 재발견을 점치게 하는 신선한 자극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노태우 대통령의 연설 속에서 건망증 심한 우리의 의표를 찌르는 작은 충격파를 경험할 수도 있었다. 「맨손으로 일어나 국민소득 5천달러를 넘어선 나라,민주주의의 활기가 넘치는 나라,역사상 가장 훌륭한 올림픽을 치른 나라」 이것이 오늘의 세계사에 비친 한국의 얼굴이다. 이를 이루어온 원동이 「새마을운동」이었음을 대통령의 연설은 일깨워주고 있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 새삼스럽게 「새마을운동」의 기능에 충격과 기대를 느끼는 것은 대통령의 연설에서 받는 감동이거나 새마을지도자대회의 열기에서 전달받은 감전의 충격만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이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작은 충격에도 큰 파동을 느끼는 것이다. 그 집요하던 천년 가난을 물리치고 지난날보다 넉넉하고 편안한 삶을 누리는 것이 오늘의 우리의 삶이다. 「명예혁명」으로 민주화사회도 이룩하여 억압받지 않는 자유도 확보하였다. 이 전진의 발걸음을 늦추지 않는다면 21세기에 들어서기 전에 우리는 국민소득 1만달러를 넘어서는 당당한 선진국 대열에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된다. 변화하는 사회에 능동적으로 적응하여 냉전의 피해를 우리 힘으로 극복하고 통일의 시대를 열어갈 역사에도 우리는 주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결정적이고 중요한 고빗길에서 우리는 건너기 쉽지 않은 함정의 늪과 맞닥뜨려 있기도 한 것이다. 근면의 덕목은 탈색해버렸고 그 때문에 일하는 의욕은 감퇴되었으며 따라서 성장력은 감퇴해가고 있다. 온갖 무절제한 풍조와 집단이기주의만이 날로 기승을 부리고 국민화합과 결속은 무너져가고 있다. 잘못은 모두 남에게 핑계대고 이득은 모두 자기 차지로 삼으려는 아리 행위가 창궐하고 타락한 도덕심으로 불신에 가득찬 사회가 되어간다.이 혼미의 늪을 슬기롭게 건너뛰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지향하는 희망의 대열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다. 새마을지도자대회에서 들려오는 「신선한 소리」에 우리가 민감해지는 것은 자정력이 살아 있는 각성한 청각능력이 그 소리를 흡수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맞고 있는 문제가 우리의 역량의 모자람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삶의 자세가 흐트러진 데 있다는 대통령의 지적에 우리도 동의한다. 그러므로 지금이야말로 우리에게는 지난 시대의 위대한 시대정신이었던 새마을정신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근면과 자조 협동의 정신운동은 역사상 어느때보다도 지금 우리에게 아쉽다. 사회란 인체와 같아서 자생력이 남아 있는 동안에는 스스로의 생명을 위해 필요한 실조된 영양소를 요구한다. 좌절하여 무너져버리지 않기 위해 구원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시대의 국민운동으로 거듭나는 「새마을운동」을 고대한다. 한 차원 승화하여 잘살되 품위있고 인간답게 잘사는 덕목을 실천하는 국민운동으로서의 새마을운동을 간절히 기대한다.
  • 미얀마 군정종식 “산너머 산”(세계의 사회면)

    ◎군사정부의 영구집권기도와 실상을 보면/30년만의 총선서 야당 압승 허사/민정이양 회피… 의회 개원도 봉쇄/국민들은 침묵ㆍ절망감속 저항마저 포기 30년만의 자유총선이 치러진지 5개월이 지나도록 미얀마(구버마)에는 아무런 변화의 조짐도 보이지 않고 있다. 집권 군사혁명 정부는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야당측에 정권을 이양할 준비를 하기는 커녕 의회개원 마저 허용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야당지도자들을 붙잡아 들이고 있다. 야당측도 군사정부를 향해 거듭 대화를 촉구할 뿐 이렇다할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고 대다수 국민들도 민정이양 지연에 대한 불만을 마음속에만 담아둔 채 침묵을 지키고 있는 형편이다. 다만 극소수 학생과 승려들만이 이따금씩 산발적인 민정이양 촉구시위를 벌이다 무자비하게 진압당할 뿐이다. 지난 8월초에는 북구 만달레이시에서 1백여명의 시위대를 향해 진압군이 발포하는 바람에 4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선거이전이나 지금이나 거리 곳곳에 무장군인들이 즐비하게 깔려 있기는 마찬가지다. 미얀마의 민주화는 아직도 요원하기만 한 것이다. 한 양곤(구랑군) 주재 외교관은 『미얀마 국민들 사이에는 절망감과 숙명론이 팽배해 있다. 30년간의 군사통치에 시달린 나머지 이제는 변화를 확신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 88년 9월 전국을 휩쓴 민주화요구시위가 군의 총칼에 의해 무참히 진압되면서 수천명이 학살되는 광경을 지켜봐야 했던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는 미얀마 국민들에게서 또다른 유혈사태로 이어질 적극적인 저항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주장이다. 지난 5월27일 실시된 자유총선에서 야당인 민주국민연맹(NLD)이 4백85개 전체의석 가운데 80%가 넘는 3백96석을 휩쓸어 미얀마에 민주화가 찾아들 것이라는 희망을 불러 일으켰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실현 불가능한 꿈으로 변질되고 있다. 집권 군사정부는 최소한 과반수의석을 차지하는 거대야당이 출현하지 않고 군소정당이 의석을 나눠가질 것으로 예상한 나머지 『선거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바에야 뭐하려고 선거를 실시하겠느냐』고 큰소리 쳤으나 예상밖의 선거결과가 나오자 태도를 돌변,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정권이양의 의사가 없음을 노골화 했다. 군사정부는 ▲언제 끝날지는 모르지만 선거부정에 관한 조사가 마무리 되기전에는 의회를 개원할 수 없으며 ▲의석수에 관계없이 모든 정당이 모여 헌법초안에 만장일치로 합의한 뒤 이 초안을 국민투표에 붙여 찬성을 얻어야만 정권이양이 가능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2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NLD측은 지난 62년 네윈의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에 있었던 구버마 헌법을 다소 수정해 우선 민간정부를 출범시켜야 하며 2년 이상 민정이양을 늦출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NLD측은 지난 7월29일 의원당선자 총회를 갖고 늦어도 9월말까지 의회를 개원하고 정치범을 석방하며 NLD측과 대화를 가지도록 군사정부에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으나 아무런 반응을 얻지 못한 채 거듭 대화를 촉구하고 있다. 군사정부는 오히려 9월초 우 키 마웅 의장직무대행 등 NLD 지도자 6명을 기밀누설혐의로 연행,기소할 움직임이다. 지난 7월19일로 1년 예정의 가택연금시한이 만료된 카리스마적 지도자인 아웅산 수키여사(NLD 사무총장)에 대해서도 가택연금을 해제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권국가법질서회복평의회(SLORC) 의장인 사우 마웅장군은 최근 일본 자민당의원과 면담한 자리에서 수키여사가 해외추방을 감수하기 전에는 가택연금을 해제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지난 30년간 군사정권의 지배를 받는 동안 미얀마는 인권말살은 말할 것도 없고 경제적으로도 아시아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이제 남은 문제는 미얀마 국민들이 이같은 여건에서 얼마나 더 저항없이 오래 버틸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불행하게도 아직까지는 국민들을 침묵하도록 억압하는 군사정권의 기술이 먹혀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 남북교류를 넓혀나가자(사설)

    남북통일축구대회 첫 경기가 11일 하오 평양 5ㆍ1경기장(능라도경기장)에서 열렸다. 남북의 축구대표팀이 친선경기를 갖기는 실로 44년 만의 일이다. 성격은 다르지만 1946년에 열린 「경평축구」가 마지막이었다. 우리 대표단의 고문으로 간 이회택 전 국가대표팀 감독은 10일 밤 북의 아버지 리용진 씨를 만나 40년 동안 쌓인 회포를 풀었다. 뜨거운 한핏줄의 만남들이었다. 민족화합의 소리가 북경아시아경기대회 이후 또 다시 들려오고 있는 것이다. 도쿄에서 수신된 북한 관영 중앙통신은 최용해 북한축구협회장의 말을 빌려 남북통일축구경기가 90년대 통일을 향한 새로운 전환점을 여는 데 중대한 공헌을 하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통일축구를 보면서 그의 말대로 됐으면 좋겠다는 게 우리의 솔직한 심정이다. 이회택 감독은 아버지를 만난 뒤 1천만 이산가족이 자기네 부자처럼 만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이산가족의 마음을 헤아리게 해준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정부는 우리측의 전국체육대회와 이에 해당하는 북측의 종목별 선수권대회를 함께 갖는 「남북 공동체전」(가칭)의 개최를 북한측에 제의키로 했다 한다. 체육지도자 교환,국제경기에서 외국선수단에 대한 정보교환,선수단의 정기적인 교환방문을 통한 전지훈련 등도 제안할 방침이다. 이러한 계획은 북한축구선수단이 오는 23일의 제2차 남북축구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할 때 북한의 김유순 체육지도위원회위원장(장관)에게 전달,경기종목ㆍ참가규모 등을 논의키로 했다. 정부의 방침은 남북축구대회 등 정치성이 배제된 스포츠교류가 남북한의 인적 왕래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북경아시아경기대회에서 남북한은 공동응원과 선수 임원 등을 통한 민족화합과 동질성을 찾기 시작했고 그 결과 통일축구도 큰탈없이 개최하는 등 스포츠 교류의 물꼬를 열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공동체전」이 교류를 넓히는 바람직한 대북 제의라고 평가한다. 스포츠교류는 이념이나 체제가 갈라놓은 장벽을 허물고 친선과 화합을 도모하는 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돼왔다는 점을 역사의 교훈에서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과거사에서 보더라도 「경평축구」는 일제에 억압받던 겨레의 설움을 풀어주고 민족의 하나됨을 다지는 민족의 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서울과 평양에서 번갈이 열리는 남북 통일축구가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때마침 뉴욕에서 열린 남북 영화제에 참석한 남북한 영화인들도 그 잔치를 이국 땅에서 벌일 것이 아니라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개최하고 합작영화도 추진하는 등 영화교류에 적극 나설 것을 다짐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남북 영화제가 민족화해와 조국통일을 향한 디딤돌이 되기를 양측이 함께 희망했다는 것이다. 곧이어 16일부터는 남북 총리 두번째 회담이,18일부터는 「범민족 평화통일 음악회」가 각각 평양에서 열린다. 모두가 가슴설레게 하는 일이다. 이러한 민족잔치를 북측이 평화공세의 일환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우려의 소리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우려가 한낱 기우에 그치기를 바라면서 이를 위해서라도 북측이 앞으로의 남북교류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당부하는 것이다.
  • 새 독일 출범하던 날 이기백특파원 현장르포

    ◎“세계평화 위해 봉사”… 1백만인파 환호/동ㆍ서독인 어깨동무 밤새 거리누벼/“인간의 존엄성 구현하는 국가”선언/“분단위로”… 한국인엔 음식값 절반 할인도 하늘에는 영광,땅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형형색색의 폭죽이 하늘을 수 놓았으며 광장을 가득메운 시민들은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통일ㆍ통일』을 외쳐댔다. 3일 통일을 맞은 독일은 2일부터 4일까지의 통일축제기간 전국이 열광속에서 지낸데 이어 5일 상오 10시 제국의회건물에서 동서독 합동의회를 가짐으로써 새로운 출발을 했다. ○…동서독이 통일을 이루던 3일 0시 베를린시내 브란덴부르크문 주변에서는 이미 초저녁부터 전국에서 몰려든 1백만여명의 인파가 손에 손을 잡고 국가인 「도이칠란트 도이칠란트 위벨 알레스」(독일이여,이세상 모든 것 위에)를 힘차게 불러대는 가운데 제국의회 앞에 설치된 41m 높이의 국기게양대에 새독일의 흑ㆍ적ㆍ황색의 새국기가 게양됐다. 가로ㆍ세로 10m,6m의 대형국기가 올라가자 군중들은 일제히 환호를 했으며 폭죽과 불꽃놀이가 하늘을 수놓아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이날 브란덴부르크문을 중심으로 한 운텐덴린덴가와 프리드리히가에는 동서독에서 몰려든 1백만여명의 인파로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혼잡했으며 통일의 순간에는 군중들의 함성과 폭죽의 초연이 가득했다. ○…이날도 역시 통일 전야인 2일과 마찬가지로 2천여명의 예술가ㆍ음악가ㆍ무용가들이 축제로 곳곳에 마련된 수십군데의 임시무대에서 춤과 음악의 향연을 벌여 시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으며 수백군데의 노상 식당과 주점에는 세계 각국의 각종 음식과 주류들이 선을 보여 축제의 분위기를 더욱 풍성하게 했다. 이들 노상 음식점중에는 베를린에 거주하는 교민 조중식씨가 차린 한국식 포장마차도 있었는데 조씨는 빈대떡ㆍ만두ㆍ불고기ㆍ잡채 등 네가지 음식을 함께 담은 「혼합한국요리」 한 접시를 10마르크씩에 팔고 있었고 간혹 찾아오는 한국인들에게는 『통일을 못이룬 슬픔을 위로한다』는 이유를 달며 반값인 5마르크씩에 제공했다. ○…마리엔교회의 합동통일 예배가 끝난후 3일 상오 11시부터 필하모니에서거행된 통일국가행사에서 자비네 베르그만 폴 전 동독인민의회의장,리타 쥐스무트 연방하원의장,발터 몸퍼 연방상원의장과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대통령은 각각 연설과 기념사를 통해 독일과 유럽의 단합을 촉구. 한편 메지에르 동독 총리도 이날 통일수시간 전에 가진 고별 방송연설에서 『전제정치를 대신해 법과 민주주의,인간의 존엄을 구현하는 국가가 들어선다』고 독일통일의 의의를 선언했다.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서독 대통령은 라이히슈탁 앞의 야외무대에서 거리로 나온 군중들에 행한 연설에서 『우리는 통일유럽에서 세계의 평화를 위해 봉사할 것』이라고 선언. 바이츠제커 대통령은 또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 지도하의 소련과 헝가리,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및 『억압과 독재를 부수고 과감히 떨쳐 일어난』 전 동독 국민들에 감사의 뜻을 표시. ○…헬무트 콜 독일 총리는 4일 통일 독일이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은 분단 45년의 영향을 일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 독일의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이날 의회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콜 총리는 통일 비용이 많이 들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 모든 독일인은 통일의 성공을 보장하기 위해 희생을 치러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적인 독일 통일 이후 동독대표 1백44명이 추가돼 6백63명으로 확대된 의회에서 「독일역사의 밝은 부분」에 있던 서독인들과 공산독재에 고통받던 동독인들 사이의 간격을 메워야만 한다고 전제하면서 『모든 독일인이 문화 경제 사회 등 모든 부문에서 융화되게 만드는 것이 앞으로 가장 큰 과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들에 대한 독일의 충성을 재차 강조하면서도 유럽통화의 단일화 실현속도를 둘러싼 유럽공동체(EC)내의 논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 안보환경 변화와 국군의 위상/건군 42돌 세미나 중계

    ◎“군개방ㆍ민주화로 「국민의 군대」 발돋움”/사회갈등 해소로 정치개입 소지 없애야/국제정세 불확실,「공세적 방어전략」 필요/북한 핵무장 따른 대응수단 선택 신중히 한국국방연구원(원장 황관영)은 27일 건군 42주년을 맞아 「안보환경변화와 국군의 위상 및 과제」라는 주제로 학술토론회를 가졌다. 한국사회과학원 원장 김경원박사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학술토론회에서 연세대 김달중교수는 「안보환경의 변화와 국군의 과제」,유사 온창일 교수는 「군군의 자주화 및 정예화」,상명여대의 조성대교수는 「민군관계와 국군의 사회적 위상」이라는 주제의 논문을 발표했다. 세 논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안보환경의 변화와 국군의 과제(김달중교수)=90년대의 국제정세는 냉전요소와 탈냉전요소,과거와 미래,순기능과 역기능,기회와 위협이 공존 혼재하는 「불확실성」과 「유동성」이 특징적으로 부각되며 국제안보 측면에서도 동서진영의 군사적 대결보다는 협력,봉쇄보다는 개방,절대안보대신에 공동안보,군비경쟁대신에 군비통제로의 전환추세가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우리의 주변 안보환경의 변화내용은 국제적인 차원에서 냉전질서의 변화와 그에 따른 미소의 전략적 이해관계의 조정국면으로서 소련은 「군축」과 「비핵화」라는 대 한반도전략적 접근방식을,미국은 전통적인 「전진기지 방위전략」의 수정국면에 따른 주한 미군 3단계 철수안을 가시화시키고 있다. 이에 따른 한국안보와 국군의 당면과제는 ▲국방정책과 군사전략의 기초인 가상적설정에 대한 장기적 총체적인 접근 ▲포괄적 안보개념의 필요성 ▲대 북한 군사력 균형을 위한 이중적 접근의 필요성 ▲한미 안보협력체제의 변화에 따른 한국방어의 한국화 특히 주한 미군 규모 및 역할조정에 따른 작전지휘권의 환원문제,방위비 분담문제,휴전협정체제를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데 따른 제반정책의 수립,국방관리체제의 전환 등이다. ◇국군의 자주화와 민주화(온창일교수)=국군의 자주화 정예화를 민족의 생존을 위해 통일이 되기전이든 후이든간에 무형적 요소별로 진행되어야 한다. 개인의 체력ㆍ담력ㆍ의지ㆍ전투기술뿐만 아니라조직의 효율성ㆍ생동감ㆍ비경직성ㆍ융통성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요소의 자주화,정예화는 실로 끝이 없다. 통일전의 군사전략개념은 공세적 방어가 적합하며 통일후에도 수세적 방어가 적합하다고 본다.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본보기는 스위스와 스웨덴,그리고 일본의 예를 들 수가 있다. 전쟁지도체제는 위협을 정확히 분석하고 이에 대처해야 할 수단을 적절하게 선정할 능력이 있어야하며 일단 군사적 수단과 방법을 선택하면 군사지휘체제는 신속한 반응을 할 수 있도록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화생무기를 가진 북한이 핵무장도 가능할지 모른다는 현상태에서 이에 대한 독자적인 대응수단을 보유해야할지 미국에 의존해야할지 판단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다. 수세적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는 나라의 거의 대부분이 비핵수단에 주로 의지하고 있다. 자주화의 수준을 결정함에 있어 어떠한 종류,어떠한 수준의 위협을 우리 자위력으로 막고 그 이외의 것에 대한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정해야 한다. ◇민군관계와 국군의 사회적 위상(조성대교수)=한국의 민군관계를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문민우위시대(1948∼61)와 군부우위시대(1961∼87)로 대별할 수 있다. 문민우위시대는 정부수립 이후부터 민주당정권까지로 문민이 군부우위에 존재했고 군은 문민의 통제 감독하에 직업주의에 따른 대외적인 국방업무만을 전담했고 군엘리트의 정치권 참여도 미미했다. 군부우위시대는 5ㆍ16 군사혁명 이후 제5공화국까지의 시기로 군부가 문민의 우위에 존재하며 민을 통제감독한 시기이다. 초기 군부우위체제는 성공적인 경제개발을 통해 긍정적 민군관계를 가졌으나 말기에는 유신체제에 의한 억압적인 장기집권과 10ㆍ26 이후 군부의 재등장으로 부정적 대군의식을 초래했다. 군의 사회발전기여는 순 기능적 역할로는 산업화의 성공적추진,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국가안보체제의 확립 등을 들수 있으며 역기능적 역할로는 민주화의 지체,군의 정치개입과 독재유산,민군간의 위화감 조성 등을 꼽을 수 있다. 바람직한 민군관계를 위해서는 민과 군이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야 하며 민은 군의정치참여요인을 배제하고 비판과 비난을 삼가 군을 궁지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회내에 증폭되는 갈등ㆍ불화ㆍ대립을 해소시키면서 국민공동체 의식과 일체감을 조성해야 한다. 군을 전문화해 전문직업집단으로 양성시키고 군의 정치적 중립화를 제도적인 장치로 보장하며 군을 국민에게 개방하여 군민화합을 꾀하고 군도 합리적인 의사결정에 기초한 민주화를 이룩하는 것이 필요하다.
  • “미국은 십자군이 될 필요없다”/미 보수파,페만개입에“볼멘소리”

    ◎“국익이 우선… 이상주의적 모험은 곤란/분쟁해결에 전세계의 공동대응 마땅” 미국내에서 수주전 거의 만장일치의 지지도를 나타냈던 부시 대통령의 중동정책에 대해 불평의 소리가 일기 시작했다. 특히 과거 미국의 외국사태 개입에 대해 새삼 혐오감을 나타내고 있는 보수파들이 이러한 불평에 앞장서고 있어 시선을 끈다고 워싱턴 포스트지는 보도했다. 현재 부시의 정책에 반대하고 있는 사람은 좌우 양파에서 다같이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의원들의 경우는 보수파라도 위기의 시기엔 대통령 비난을 자제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전 미유엔대사 커크 패트릭이나 컬럼니스트 패트릭 부캐넌과 같이 보수파 견해를 선도해온 정책연구가와 논평가들은 거리낌없이 의문을 표명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미국의 대 중동 군사개입이 장기화되면 부시 대통령도 결국 그의 전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국내에서 거센 비판에 부딪칠 것이라는 점이다. 좌파들의 비판은 이제 시작되고 있는 중이다. 최근 전 법무장관 렘지 클라크를 비롯한 소수의 재향군인들은 「중동개입정책 반대연합」을 결성했다. 중도좌파의 생각을 대변하는 잡지인 「네이션」은 24일자 사설에서 부시 행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잡지는 부시의 대응책을 「노골적인 제국주의적 개입」이라고 지칭하면서 「시작은 요란하지만 흥행에 실패하는 헐리우드의 대작 영화」에 비유했다. 미국의 개입정책에 대해 전통적으로 비판해온 일부 의원들은 『왜 미국은 항상 그런 일을 저질러야 하느냐』고 못마땅해 하면서 『미국은 세계의 경찰이 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근년의 미국 정치에서 대외개입에 대한 좌파의 비난은 단골 메뉴중의 하나였다. 따라서 지금까지 좌파가 중동사태에 대해 비교적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파가 부시의 정책에 대해 반대의 목청을 높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시 정책에 대한 보수파들의 볼멘소리는 소련의 위협이 감소된 세계에서 미국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를 놓고 벌어진 한 대토론회에서 나왔다. 이 보수파 토론회의 근저에 깔려 있던것은 「보수파들은 소극적인 국제주의자」라는 사실이라고 헤리티지 재다의 버튼 파인스 부소장은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우파들은 진보주의자들과 더불어 미국의 세계문제 개입과 군비증강 비판에 앞장섰다. 보수주의자들이 미국의 세계적 역할을 받아들인 것은 미국이 공산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진 이후부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반공의 임무가 끝난 상황이기 때문에 사정이 달라졌다. 공산주의가 죽자 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의 새로운 세계적 역할은 실제적인 국가이익에 바탕을 두어야지 대외 재난을 초래할지 모르는 고상한 이상주의에 바탕을 두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우파에 대한 비판자들이 즐겨 쓰는 용어인 고립주의,즉 반개입주의로 회귀한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이 그룹에 속한다. 레이건 백악관에 재직했던 컬럼니스트 부캐넌은 『말과 공약이 너무 앞서갔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라크로 하여금 쿠웨이트를 토해 내게 하는 것이 미 지상군의 사용을 고려할 만큼 미국의 중요한 이해가 걸린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보수적인 CSIS(전략국제연구센터)의 대외정책 전문가 에드워드 러트와크의 비판은 강도가 더하다. 그는 『미국인들이 그곳에 가서 목숨을 바쳐야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오일 때문이라면 유럽 일본 동아시아 사람들이 가야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또 『알바니아를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이고 반동적이며 절대군주 정권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지켜야할 정치적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잡지 「아메리칸 스펙테이터」의 편집자인 보수주의자 톰 베텔은 『쿠웨이트의 오일이 아랍 전통의상을 걸친 몇몇 토후가 아니라 군복을 입은 독재자의 장악 아래 들어갔다고 해서 왜 미국인들이 분노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부시 정책에 비판적인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또 이스라엘을 비판하면서 아랍 세계와의 돈독한 우호관계를 지지하고 있다. 한편 미국의 대외개입에 통상적으로 반대해온 진보파들은 대부분 강력한 친이스라엘주의자들이어서 이스라엘의 가장 위험한 적인 이라크에 타격을 주는정책을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친이스라엘파 가운데도 커크패트릭 여사 같은 사람은 부시의 개입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녀는 페르시아만에서 갖고 있는 미국의 이해가 단독적인 것이 아니며 다른 나라들과 광범위하게 나눠 갖고 있는 국제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미국은 이들 나라들로부터 실질적인 기여를 끌어내 사태해결의 부담을 나눠 가져야 한다고 그녀는 강조했다. 컬럼니스트 폴 지고트는 보수주의자들이 부시의 페르시아만 사태 개입 명분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보수주의자로서의 부시에 대한 회의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만일 레이건이 이번과 같은 개입정책을 단행했다면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한가지 분명한 것은 보수주의자들이 부시를 불신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 이라크 강경정책의 열렬한 지지자인 잡지 내셔날 리뷰의 편집자 존설리반은 『앞으로 부시의 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느냐가 대외 개입문제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진로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하며 『이번페르시아만 사태가 서방측의 승리로 끝날 경우 신고립주의 성향은 둔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강압수사따른 과세는 무효”/대법원/세무서 상고기각,원심확정

    ◎“교과서주식회사에 72억과세 취소” 대법원 특별3부(주심 박우동대법관)는 28일 고등교과서주식회사(서울 마포구 신수동 448의36)가 마포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법인세 등 부과처분취소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세무서측의 상고를 기각,법인세와 방위세 등 모두 72억여원의 과세처분을 취소토록 한 원심을 최종확정했다. 이번 판결로 지난 84년 시작된 고등교과서주식회사와 세무서간의 세금소송은 원고의 승소로 6년만에 끝났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세무서가 과세자료로 삼은 자술서와 각서 등은 수사기관의 일방적인 강요에 따라 억압적인 상태에서 작성된 것으로 그 내용을 진정한 과세자료로 볼 수 없다』며 『이러한 자료에 기초한 과세처분은 당연무효로 취소돼야 한다』고 밝혔다. 원고인 고등교과서주식회사는 지난 77년2월 이른바 「검인정교과서 조세포탈사건」에 연루돼 1개월여동안에 걸쳐 경찰수사를 받으면서 회사간부들이 강제로 「각분과 주식회사와 원고회사가 71년 12월1일부터 77년 11월30일 사이에 탈세했다」는 내용의 확인서와 진술서 등을 작성,치안본부에 제출하고 국세청이 이를 근거로 특별세무조사를 해 72억여원의 과세처분을 하자 소송을 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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