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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거 불발」이 교계에 남긴 교훈/정진홍(특별기고)

    ◎종교적 이기주의 벗고 자성계기로/경직된 신앙추구가 맹종·비상식 초래 이른바 휴거의 시한이 지났다.휴거는 일어나지 않았고 우려하던 현상들도 나타나지 않았다.다행한 일이다. 물론 이 사건의 여진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다.특히 휴거의 일어나지 않음을 신비스러운 유예로 설명하든,자신들의 잘못된 예견으로 설명하든,준비되지 못했음에 대한 신의 또 한번의 은총으로 설명하든 그 집단 구성원이 경험했을 허탈과 절망,그리고 그 안에 잠재했을지도 모르는 분노의 정서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따라서 그들의 깊은 상처를 치유해주고 그들의 찢긴긴 가슴을 위로해주는 일이 그들의 가족·친구·이웃 그리고 우리 모두의 새로운 책무가 되고 있다. 사회도 이제는 이 현상 때문에 일었던 긴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그 집단에 대한 질책과 정죄,호기심과 이상스러운 기대를 지니고 혼란스럽게 대응하던 분위기도 차츰 가라앉을 것이고,어쩌면 곧 잊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개개인의 미성숙,사회의 불안,그리고 종교의병리현상에 대한 성찰을 이루지 않으면 안된다는 지극히 당연한,그러나 이 시점에서 더할 수 없이 새삼스러운 과제에 봉착하고 있음을 단단히 유념하지 않으면 안된다.이 사건의 발생원인에 대한 많은 진단들이 유의미한 것들이었다면 이제 그 진단에 대한 처방을 신중하게,그리고 구체적으로 펴야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그 진단들 중에서 개개인의 인성과 관련지어 이 사태를 설명하려는 것은 그것이 집단적인 현상과 아울러 생긴 것임을 간과하는 위험이 있고,사회불안이 원인이라는 원론적인 진단은 책임주체를 모호하게 하는 알리바이 조작의 위험이 있다.그렇기 때문에 차제에 우리가 구체적으로,그리고 현실적으로 관심갖고자 하는 것은 종교계 특히 기독교계의 자성과 새로운 자기개혁의 기대이다. 이를 위하여 다음의 몇가지를 들어 그 기대 내용의 일부를 담아보고자 한다. 우선 신앙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그 가르침 속에 담겨있는 반지성적 분위기를 지적할 수 있다.신비나 초월로 개념화될 수 있는 종교다움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순수한 또는 돈독한 신앙의 강조가 맹목성이나 편집증적인 태도를 부추기지는 않았는가 하는 것을 언급하려는 것이다.양태의 차이는 있지만 그러한 경향성은 기독교의 보수,진보 어느 진영에서도 감지될 수 있는 현상이다.아니,도대체 종교란 늘 그럴 수 있는 위험을 자체 안에 지니고 있음을 자의식으로 지니고 있는가를 묻고 싶은 것이다. 다음으로 교회지상주의적인 태도의 심각성을 지적할 수 있다.물론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를 구분하는 신학의 주장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지만,현실적으로 오늘 우리 사회의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은 교회생활로 등식화되고 있고,신에게 봉헌한다고 하는 것은 그대로 교회를 위한 봉헌과 등가화 하고 있다.이것은 신도들에게 어쩌면 당연한 생활규범일 수도 있다.그러나 그것이 결과적으로 신과 교회의 우선순위를 도치시킨다든지 교회자체의 창조적 혁신을 불가능하게 하는 억압기제가 된다면 문제는 의외로 심각하다. 이밖에도 사랑이라든가 희생이라든가 하는 실천적 덕목이 자기집단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 집단이기주의적인덕목이 되어 있지는 않은가 하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교회간의 경쟁,정통과 이단의 논의,타종교간의 갈등,자기집단의 이해와 관련된 사회문제에의 선택적 반응등은 그러한 문제가 빚는 우려할 만한 조짐들이다. 무릇 종교는 문제정황에서 비롯하는 것이다.그리고 해답의 상징체계로 사회와 문화 안에 현존한다.그러므로 종교는 의미의 원천으로,희망의 출구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그러나 그 과정에서 종교도 예외없이 살을 에는 자기아픔을 견지하지 않으면 안된다.끊임없이 자신을 참회할 수 있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기독교는 그럴 수 있어 인류의 역사 속에서 기독교다움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 보여준 교회의 태도 곧 우리는 그들과는 다르다는 차별화 의도나 인색한 자기성찰이 불식되면서 이른바 휴거이후가 한국기독교의 새로운 태어남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중국/「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삭제/새 당규약 발표

    ◎“타국내정도 일체 불간섭”/경제건설 등 4개 기본원칙 천명/보수세력 경계 촉구/일 통신 보도 【도쿄 연합】 중국의 신화사 통신은 21일 지난 18일 폐막된 중국공산당 제14차 당대회가 채택한 최고 실력자 등소평이 제창하는 중국식 사회주의 이론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종래 규약에 있었던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견지하는 조항을 삭제하고▲ 다른 나라의 내정에는 일체 간섭하지 않을 것 등을 담은 개정 당규약 전문을 발표했다고 일본의 교도(공동)통신이 북경발로 보도했다. 교도 통신에 따르면 새로운 중국 공산당 규약은 우선 『중국은 현재 사회주의의 초보 단계에 있으며 이 단계는 앞으로 1백년간은 계속될 것』이라는 인식을 나타낸 다음 당의 기본 노선으로 『경제 건설을 중심으로 당의 지도와 사회주의 길 등 4개의 기본 원칙과 개혁·개방을 견지한다』는 것을 명기하고 있다. 새 규약은 또 『사상·정치면에서 혼연일체를 유지하는 것을 당 건설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하고 있던 구구약을 고쳐 『프롤레타리아 해방 투쟁은 세계의 피억압 민족의 해방 투쟁과 연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부분을 삭제하는 대신 『사회주의는 각국 인민이 스스로 선택한 자국의 실정에 알맞은 길에 적합하게 함으로써만이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고 말해 자주 노선을 강조했다. 새규약은 특히 당건설과 관련 「일체의 좌와 우의 잘못된 경향에 반대한다」는 구규약의 내용을 「우에의 경계가 필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좌를 방지하는 것」이라고 고쳐 보수파에 대한 비판을 더욱 강화시키는 동시 「중국식 사회주의 이론으로 전당을 통일하여 보수적인 좌세력을 경계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새 전기 「세기와 더불어」를 보고(신고 김일성 자서전연구:1)

    ◎연재를 시작하며/역사의 고비마다 갈이입은 「사상의 옷」/통일 앞두고 그의 정체 정통하게 알아야/52년 40세때 초간후 수없이 개작/이번엔 “이민위천이 좌우명” 주장 김일성은 이번 80회 생일에 「세기와 더불어」란 회고록을 냈다.그가 태어난 1912년 무렵부터 항일유격대를 조직했다는 1932년까지를 2권으로 나누어 회고한 자서전이다. 따라서 이 회고록은 앞으로 1932년부터 해방된 1945년까지,또 해방후 1992년까지를 구분해 합계 십몇권 정도 나올 것이 예상된다.제1권이 3백61페이지이므로 적어도 5천페이지 정도되는 방대한 김일성 일대기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김일성은 여느 공산국가 독재자들과는 달리 자기의 「전기」를 즐겨 출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출판하기만 하면 그것을 국내는 물론 해외에까지 보급하는데도 열심이다. 그는 또 유달리 꺾어지는 해의 생일을 중시하여 이 때 공식전기를 출판한다.이 전기들은 다음과 같이 시대가 내려 올수록 그 분량이 방대하게 되는 특성도 있다. ○62년엔 중공계 숙청 1952년(40세 생일)「김일성장군의 전기」1권 68면.1972년(60세 생일)「김일성동지 작전」1권 8백60페이지.1982년(70세 생일)「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전기」3권 합계 1천5백페이지. 이상을 보면 그가 50세 생일을 맞은 1962년에는 공식전기가 나오지 않았다.52년의 전기가 나온 후 북한에서는 남로당파·소련파·연안파·국내파들이 모두 숙청되었으므로 김일성은 62년에는 중공계 항일빨치산이었던 그와 그 일당만을 「진정한 공산주의자」로 둔갑시키는 「공식전기」를 출판하여야 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일당조차 진정한 공산주의자로 취급하는 아량은 없었다.그는 1967년에는 식민지시대 보천보전투에 참가한 박금철 등을,그리고 69년에 그와 가장 가까운 빨치산시대의 전우인 최광등을 숙청하였다. 이 숙청과정인 1968년 그는 자기만을 진정한 공산주의자로 둔갑시킨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을 출판하였는데 이 두권짜리 책이 또 대폭적으로 내용이 바뀌어 나온 것이 72년 전기인 것이다. 김일성유일독재는 1980년 제6차당대회에서 김일성부자 독재체제로 굳어졌다.김일성자신뿐이 아니라 김정일의 「충성」과 「효성」도 반영된 것이 82년 전기로 된다. 북한에서 김일성의 전기들이 출판되는 이유의 하나는 이것이 그의 우상화작업이기 때문이다.그는 자신의 우상화를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을 얼마든지 은폐하고 왜곡하며 날조한다.그는 해방직후부터 일관되게 그렇게 해왔다.46년 김일성의 기요과장이었던 연안파의 고봉기는 그로부터 이러한 명령을 받은 일이 있었다. 「보고문이나 회의록 같은 건 다 앞으루 역사적 문건으로 남겨야 할 거니까…이제라두 늦지 않았으니…없는 건 만들어 놓구 또 있다 하더라두 기록이 잘못됐거나 한 건…다 고쳐 놓을 필요가 있단 말이요.해방전의 자료들두 그렇지,필요한 것만 남겨두구 필요찮은 건 다 없애치우는게 좋잖을까?」 이와같은 은폐·왜곡·날조 같은 행위는 그의 전기가 새로 나올 때마다 첨가되어 현재의 우상화된 김일성이 생겨 났다.실상을 제쳐두고 허상만 요란하게 선전하는 이러한 우상을 위하여 북한의 당원들과 대중들은 갖은 「충성」을 다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서 김일성의 전기들이 출판되는 또하나의 이유는 그 유일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주민들에게 강요하는 김일성의 사상정신적 억압수단이 바로 「주체사상」과 「혁명전통」이기 때문이다.그의 전기는 혁명전통의 핵심자료로 되어 있다. 1986년 5월31일 김일성은 「조선로동당건설의 역사적경험」이란 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당의 위업을 계승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문제의 하나는 당이 이룩한 혁명전통을 옳게 계승해나가는 것입니다.우리 당이 계승하여야 할 혁명전통은 주체의 혁명전통입니다….혁명전통을 계승하는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혁명전통의 순결성을 보장하는 것입니다.…오직 우리 당이 이룩한 주체의 혁명전통만을 인정하고 그것을 계승발전시켜 나가며 이 밖에는 그 어떤 다른 「전통」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민정신 개조 수단 한때 우리 당안에 기어들었던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은 항일빨치산의 전통만이 혁명전통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느니,혁명전통의 폭을 상하좌우로 넓혀야 한다느니 하면서 우리 당의 혁명전통에 오가잡탕을 섞어 넣으려고 하였습니다.그들이 우리 당의 혁명전통과 인연이 없는 것을 들고 나와 혁명전통과 뒤섞어 놓으려고 한 것은 혁명전통을 거세하고 자기들의 종파적야욕을 실현하기 위한 책동이었습니다.앞으로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흐리게 하거나 말살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허용하지 말아야 하며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대를 이어 순결하게 계승해 나가야 합니다」 여기서 김일성이 「주체의 혁명전통」이니,「혁명전통의 순결성」이니 하고 있는 것은 모두 그의 사상과 그 자신의 행적을 말하고 있다.「주체」란 다른 중공계 항일빨치산이 갖고 있었던 사상은 아니며 「순결성」이란 김일성 이외에는 아무도 지닐 수 없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10년에 한번씩 나오는 김일성의 공식전기란 그의 사상과 행적을 서술한 책이다.따라서 김일성이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대를 이어 순결하게 계승해」나가라고 할 때 그 의미는 이 전기에 실린 자신의 사상과 행적을 철저히 옹호하고 그 내용대로 알아서 행동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공식전기들에 반영된 그의 사상과 행동이란 전기마다 달라서 거기에는 일관성을 찾아보기 어렵다.예를 들어 52년 전기에서의 그의 사상이란 마르크스·레닌주의사상에서도 최악의 사상인 스탈린주의였다.72년 전기의 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자 라는 그가 창시했다는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지도사상인 주체사상」이었다.그런데 82년 전기의 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근본이 다른 사상이 주체사상인 것처럼 되어 있다.김일성은 역사의 고비고비에서 자신의 사상을 바꾸어 나가는데 그것이 그대로 이러한 전기들에 반영되는 것이다. 이번에 나온 「세기와 더불어」도 그 사상은 다시 달라지고 있다.머리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이는 것이다. 「이민위천,인민을 하늘같이 여긴다는 이것이 나의 지론이고 좌우명이었다.인민대중을 혁명과 건설의 주인으로 믿고 그 힘에 의거한데 대한 주체의 원리야말로 내가 가장 숭상하는 정치적 신앙이며…생활의 본령이었다」 그는 이번에는 주체사상을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비교하는 대신 「이민위천」사상을 가져와서 이와 동일시하고 있다.뿐만 아니라 주체의 원리를 자신의 「정치적신앙」이라고까지 하였다. 세계의 마르크스·레닌주의국가들이 붕괴되어 가는 길위에서 그는 이제 사상을 「신앙」으로 바꾸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그는 현재 주체의 원리와 혁명전통으로 북한주민을 세뇌시킨데 만족하지 않고 그들의 세뇌된 사고를 김일성부자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의 차원으로 유도하고 있다.이러한 현실이 김일성의 입으로 나온 것이 앞의 말이 아닌가 싶다. 사상 뿐 아니라 김일성의 행적도 전기마다 다른 것이 얼마든지 있다. 현재 한반도에는 통일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통일은 몇년 후에 현실로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압도적 다수가 내다보는 근미래이다. ○“정치적 신앙” 강조 그런데 한국국민은 지금 김일성이나 김정일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북한체제는 전혀 경험하지 못한채로 지내고 있다.김일성만을 알고 따르는 북한주민과 김일성의 정체를 거의 모르는 한국국민이 다같이 통일을 「열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남북 양측 주민이 서로 상대방의 사상과 행동에 정통하여야 할 것이다.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국민의 책임이 무겁다.한국에서는 국민들이 북한체제와 김일성부자의 정체및 북한주민의 정신상태를 알아야만 그들과 대화를 하여 사상적으로 통일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할 시점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본지에서 시작되는 「세기와 더불어」의 분석비판은 한국국민과 앞으로의 북한주민에게 다같이 김일성과 그 독재체제의 진상을 알리는 공통의 장을 제공하기 위하여 기획되었다. 필자는 1987년에 김일성평전과 그 속편을 출판한 일이 있는데,연구를 시작한 1983년부터 이 무렵까지는 근본자료와 연구서적들이 태부족하였다.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는데 이 어려운 작업에 다시 도전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따라서 필자는 진실을 위해서는 과거의 자신의 학설도 버릴 부문은 대담하게 버릴 작정이다.다만 버릴 때는 일일이 그 이유를 열거하겠다. □주 해 ①「김일성의 비서실장」고봉기의 유서 1989년 천마사간,17면 ②「조선로동당 건설의 력사적경험」김일성,1986년 단행본,조선로동당출판사간(이하 「당간」이라고 함)1백12∼1백13면 ③「세기와 더불어 1」.1992년 4월9일 당간 2면 ④「김일성평전」 「김일성평전 속」,1987년 북한연구소간(이하 평전,혹은 평전(속)이라고 함)
  • 민주세력 승리한 태 선거는 아주모델(해외사설)

    13일 태국 선거에서의 민주적 정당들의 승리는,지난 5월 중순 방콕의 장군들에게 적대적이었던 시위에 희망을 걸고 따랐으며 유혈 억압 앞에서 분노했던 사람들을 기쁘게 했다.사실 여론조사에서는 부패로 평판나쁜 전직 수상이자 군벌의 귀염둥이인 전장군 샤티샤이의 승리가 유망했었다. 정치적으로 군부 세력과 거리를 두려는 정당들이 의석의 51%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수위를 차지한 정당도 그들 가운데 하나인 민주당이다.이 당의 당수인 슈안 리크파이가 총리로 지명될 것이 확실하다.이 결과는 태국은 물론,앞으로 선거운동과 투표를 치러야 하는 이웃나라들에게 더 큰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본받을 모델이 없는 아시아에 정말 본보기가 되었다.아시아 지역에는 최후순간 국민의 심판에 맡겨야 한다는 것을 등한시하는 정부가 많이 남아 있다.아시아 대륙 동부의 5-6개국에서는 오늘날 태국과 같은 식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즉 가속된 경제 개발로 도시 중산층이 형성됐으며 이들은 점점 군부 집권의 권위주의적 통치를 불만스러워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동아시아에서 뚜렷한 사례가 된다.여기서는 수하르토 장군이 4반세기가 넘게 통치하고 있다.심각한 국가 격동기(19 65년 공산주의자 폭동 진압)때 집권하여,가끔은 피의 대가를 치르며,지리적 종족적 문화적인 어려움이 상존하는 이 나라의 국민 단결을 굳게 다졌다.분명히 그에게는 국민의 머리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그러나 가속된 경제 발전은 심각한 정치적 사회적 긴장을 일으키고 있으며 수하르토는 재빨리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좀더 나은 국민 주권의 길로 제법 나아갔다고 하는 나머지 나라들도 조만간 닥칠 미래의 트러블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못하다.「아시아의 네마리 용」이라고 불리는 싱가포르·타이완·한국 그리고 가까운 장래에 중국에 반환될 홍콩이 그렇다. 중국을 거론하자면 이 또한 간단치 않다.올해초부터 시장경제정책(올 가을 전인대에서 아마 공식화될 듯하다)이 새로운 부르주아 계층의 형성을 불가피하게 촉진하면서 재추진되고 있는데 격동없이 잘 나아갈는지 모른다.그 결과가 인권및 중국 시민의 권리라는 것에 전적으로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할 수는 있겠다.
  • 신세대작가 소설에 상반된 평가/이성욱·김욱동씨 평론통해 비판·성찬

    ◎이/“문학적 품격 결여된 단순한 상품”/김/“탈장르의 역동적·창조적 힘지녀” 최근 표절시비 등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신세대작가군의 소설들에 대해 엇갈린 평가가 나와 주목된다. 문학평론가 이성욱씨는 「실천문학」가을호에,김욱동 서강대교수는 「계간문예」가을호에 각각 신세대작가들의 소설에 대한 상반된 분석을 담은 글을 게재했다.이성욱씨는 「실천문학」에 실은 글 「참을 수 없는 최근 소설들의 가벼움」을 통해 이인화 박일문 주인석 등의 신세대작가들을 「포스트모더니즘의 불량수입상」「포스트가의 사생아」라는 식으로 강도높게 비판했다.반면 김욱동씨는 「계간문예」에 실은 글 「한국소설의 돌연변종」에서 이인화 박일문 하재봉 장정일 장석주 하일지등 신세대 작가들을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힘을 지닌 한국소설의 돌연변종』이라고 상찬하고 있다. 또한 신세대작가들의 작품 출간과 관련하여 이씨는 신세대작가들의 작품들이 테크놀로지의 급속한 발전으로 대중의 감수성이 바뀌고 있는 시점에서 상품논리에 따라 생산된 문학적 품격을 갖추지 못한 작품들이라고 분석했다.즉 그들의 작품은 「이노베이션」논리와 마케팅기술에 의해 일정한 상업적 성공을 거둔 명백한 상품일뿐으로 소재주의와 새로움만으로 치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김욱동씨는 포스트모던한 신세대작가들의 작품들이 이데올로기의 쇠퇴에 따른 소련의 해체와 동구권의 몰락하는 상황에서 이데올로기와 같은 텍스트 외적 문제보다는 글쓰기와 같은 텍스트 내적인 문제에 더 관심을 갖게된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다.때문에 많은 작가들은 이제 「문학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인식론적 문제보다는 오히려 「문학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고 있다고 그는 진단했다. 한편 신세대작가 작품들의 공통점으로 이씨는 ▲허무주의·청산주의적 정조 ▲아마추어적인 변혁운동의 기술 ▲80년대 변혁운동에 대한 회의적 시각 ▲비객관적 현실묘사 ▲소재주의 ▲낮은 성취도와 완성도등을 지적한다.이와는 반대로 김씨는 ▲문학작품을 주어진 장르의 굴레에서 해방시킨 장르확산 또는 탈장르현상 ▲예술과 관련된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을 중요시하는 새로운 예술가소설적 특징 ▲억압으로부터 성을 해방시킨데 따른 에로티시즘 글쓰기의 성행등을 꼽아 서로간의 첨예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 하창수 장편 「젊은 날은 없다」(이작가 이작품)

    ◎집단논리와 억압받는 자아 묘사/군대체험 소재로 한 옴니버스 셋째작/반전인물의 군생활 동화과정을 그려 작가 하창수씨(32)가 장편소설 「젊은 날은 없다」를 계간 「작가세계」에 2회에 걸쳐 발표했다. 장편소설 「젊은 날은 없다」는 작가의 군대체험을 바탕으로 한 옴니버스소설의 또 하나의 성과로서 자리잡을 것이 분명하다.그러면서도 소설의 주제와 기법상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 「지금부터 시작인 이야기」등 이전의 소설들과는 일정한 변별점을 지녀 눈길을 끈다.그것은 바로 반전소설 또는 종교소설로서의 「젊은 날은 없다」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이 작품은 전개상 종교소설적 형식을 취하는 한편 작품전체 의미상으로는 반전소설로 귀결된다.그렇다고 이 소설이 이전의 소설과 확연히 다른 형태로 씌어진 것은 아닌 만큼 소재의 협소함에 저항하는 작가 나름의 노력으로 쉽게 이해될 수 있다는 평을 받는다. 이같은 입장에서 작가 하씨는 『군대체험으로 한정된 일련의 소설들을 집필하면서 독자에게 줄지도 모를 식상함을 피했다』고 말한다.이와함께 『각 작품의 독자적 완결성을 확보하기 위해 소설기법이나 문체 뿐만 아니라 소설의 주제까지도 변화를 주고싶다』고 밝혔다.따라서 장편 「젊은 날은 없다」는 앞으로 다양하게 변주돼 나올 하씨의 군대체험 소설의 한 형태를 모범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장편소설 「젊은 날은 없다」는 기독교 이단종파 「여호와의 증인」신자인 청년 강민후의 군대체험을 다룬 작품이다.「여호와의 증인」은 살인을 금하고 전쟁수행 주체인 국가를 부정하기 때문에 그 신자는 군입소와 함께 집총거부와 국기에 대한 경의 표시거부 등을 사유로 군법재판에서 2년 가량의 형을 선고받는다.이같이 예비된 엄청난 고난과 이에 따른 심적인 갈등 때문에 「여호와의 증인」임을 포기하고 군대생활을 해나가던 주인공 강민후가 결국에는 애궂은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고 망연자실한다는 것이 이 소설의 대강의 줄거리이다. 그러나 이 단순한 사건전개 속엔 핍박받는다는 것과 그 고통을 어떻게 감내해야 하는가와 같은 실존적 물음을 바탕에 깔고 전쟁을 받아들이는 가운데 군인이 된다는 의미의 근본적인 성찰이 담겨있다.그리고 획일화된 논리 때문에 본의아니게 젊음이 희생되는 현실에 대한 집요한 추궁이 이뤄지고 있다. 작가는 작중인물의 입을 통해 사람들이 전쟁을 자신들의 생명을 지키는 수단으로 당연시 받아들이며 분단상황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군대의 존재의의가 침해받지 않음을 질타한다.사람들의 사고방식에 거의 선험적으로 자리잡은 이같은 고정관념에 의해 「여호와의 증인」쯤 어떤 고통을 당하든 대부분 눈 한번 깜짝 않는다는 것이 질타의 이유이다.「여호와의 증인」은 구체적인 사례의 하나일 뿐이라는 작가는 「여호와의 증인」자리에 대입될 수도 있는 개인의 자유의지가 한 집단의 획일화된 논거에 의해 거부될 때의 고통을 상정해보라고 권한다.그 개인이 억압적 집단논리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길은 작중의 오일병이나 윤이병처럼 자신의 목숨을 끊거나 자해하는 일 뿐이라고 작가는 경고하는 것이다. 우리사회의 「젊음」이란 단어 속에는 희생제의적인 요소를 깃들이고 있으며 군대라는 조직은 그것을 가장 잘 드러내는 「축소판사회」라는게 작가의 뜻이다.이런 맥락에서 볼때 제목처럼 아예 「젊은날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할지 모른다. 작중화자가 결말부분에 제시하는 「반전」이란 대안은 현실화되기엔 요원한 것이며 오히려 자유의지를 상실한 허무주의적 색채를 짙게 드리운 파국이야말로 우리가 처한 현재의 모습이다.때문에 장편소설 「젊은날은 없다」는 군대라는 통과의례를 거쳐야하는 이 땅의 젊은이들의 음울한 초상화로 읽혀질 수 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하씨는 군대체험을 실존적 차원에서 그려낸 장편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로 91년도 한국일보창작문학상을 받은 주목받는 신예작가.
  • 빛바랜 비동맹운동/나윤도 국제부기자(오늘의 눈)

    반둥에서 자카르타까지 두시간 남짓 거리가 이번 비동맹정상회의를 지켜보면서 왜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는지 알수가 없다. 지난 6일 제10차 비동맹정상회담의 막을 내리며 발표된 「자카르타 메시지」는 지난 40년 가까이 미소양극체제의 첨예한 대립 사이에서 제3세계의 대변자 역할을 해온 비동맹운동 역시 냉전시대와 그 시대적 운명을 함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준다. 냉전체제가 붕괴된 이후의 첫 회의로 1백8개국의 정상이 참가한 이번회의는 비동맹의 새로운 진로 모색이 기대됐으나 참가국들의 첨예한 이해대립으로 보스니아사태·이라크사태등 수많은 당면문제에 대해 공통된 입장정리 하나도 내리지 못한채 분열상만을 노출시키고 말았다. 그러나 자카르타에서 불과 1백㎞도 떨어지지 않은 휴양도시 반둥에서 지난 1955년 개최되었던 아시아·아프리카회의(반둥회의)는 29개국이 참가,▲영토및 주권의 상호존중 ▲상호불가침 ▲내정불간섭 ▲평등·호혜 ▲평화적 공존등 반둥10원칙을 대내외에 선언함으로써 비동맹운동의 신기원을 연 역사적 회의로 평가받아 왔다.네루·티토·나세르등이 주동이된 이 선언은 61년 유고 베오그라드에서의 제1차 비동맹정상회담 개최로 이어졌으며 그후 30년동안 비동맹운동의 이정표가 돼 왔다. 그러나 이번회의는 몇몇 국가들이 유엔 상임이사국들의 「전횡」등 유엔의 비민주적 요소들에 대한 비난의 소리를 냈을뿐 전체적으로는 유엔내에서의 협조강화를 결의하는등 비동맹운동 스스로의 새로운 위상을 찾기보다는 그 한계를 입증하고 마는 결과를 초래했다.결국 식민국가들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내세우며 제3세계국가들의 자립 자존 공영의 연대의식모색이라는 탈이념적 정치운동 성격은 쇠퇴한채 개별국가들의 경제적 실리추구로의 선회라는 변화만 보인 것이다. 이같은 운명을 예측 한듯 이번 회의에는 쿠바의 카스트로·리비아의 카다피·이라크의 후세인등 강경파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단지 회의개최국으로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꿈꾸는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대통령과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총리등 실용주의자들만 목청을 높였을 뿐이다.더욱이 비동맹운동의 지도국이라고 할수 있는 인도와 중국의 경우는 최근 급속히 군비를 증강,인도양과 서태평양에서의 패권장악을 시도하고 있는등 비동맹주의의 본질에서 멀어지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념대립을 바탕으로했던 양극체제가 붕괴됨으로써 존립의미를 상실한 비동맹운동은 소멸되거나 아니면 환골탈태의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할 운명에 처한것이다.
  • 동구민주화의 공신 「자유라디오」(특파원코너)

    ◎폐쇄된 구소 등 공산주의국가에 「자유의 실상」 전해/억류 고르비도 이 방송듣고 정세판단/동구붕괴에 이젠 중·북한으로 눈돌려 동구 붕괴의 원인은 복합적이겠지만 사회주의 국민들이 자유세계의 실상을 몰랐다면 지금도 그들 사회가 지상 낙원이라고 믿어 불가능했으리라는 분석이다.그런 의미에서 독일 뮌헨에서 공산주의국가에 지구촌 소식을 전해온 「라디오 자유유럽」과 「라디오 자유」두 방송국은 동구민주화의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 두 방송국은 동서대결이 해소된 이후에 그 대상이 사라져 이제 마지막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북한 지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두 방송국이 지난 40년간의 경험을 살려 새로운 방향전환의 대상이 되고 있는 극동지역국의 방송국 명칭은 「라디오 자유아시아」이며 방송국 소재지로는 대만과 하와이,캘리포니아중에서 결정하기로 했다. 방송운영책임자인 윌리엄 마슈국장은 최근 『이제 동구에서 전체주의와 독재·억압·검열등이 사라져 과거와는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며 『당초의 방송국 설립목적을 살리기 위해 극동지역 대상 방송을 계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두방송은 세계대전후 동서냉전의 산물로 51년 미중앙정보부가 동구에 자유의 전파십자군을 보내려는 목적에서 공개적으로 설립,운영하다 71년 미국과 독일정부가 운영을 인계했다.현재 1천7백명의 직원이 23개국어로 방송을 하고 있다. 에스토니아가 독립하기 직전 당시 메리외무장관은 『자유방송이 없었더라면 발트3국 민주회복과 동구 민주혁명은 불가능 했을것』이라며 91년 노벨평화상 대상으로 두 방송을 추천했었다.미로스라프 프라하대주교도 체코민주화후 뮌헨 슈테판성당서 감사미사를 올리며 『자유의 목소리는 철의 장막을 거두었다』고 두 방송의 공헌을 치하했다. 소련 비밀경찰(KGB)은 이 방송의 청취를 방해하기 위해 같은 단파로 역방송을 하기도 했으며 81년에는 방송국에 폭탄을 장치,방송요원 8명이 부상하기도 했다.KGB책임자인 오레그 카루진장군은 후에 『사람을 살상하려는 의도는 없었고 단지 독일정부에 충격을 주려고 했던것』이라고 회고했다. 고르바초프전소련대통령도 집권초기에는 미국과 독일에 심리전 방송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으나 지난해 여름 불발 쿠데타로 크림지역서 억류돼 있을때 자유라디오 방송을 청취,정세를 알고 모스크바로 돌아가게 됐다고 실토했었다.그뒤 옐친러시아대통령은 이 방송국 모스크바지국 설치를 승인했다. 소련이 방송대상인 자유라디오와 동구가 대상인 라디오 자유유럽은 이제 부쿠레슈티에서 바르샤바·키예프에 이르기까지 동구의 주요한 도시마다 지국을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은 최근 국제정세가 변했고 연 2억달러가 드는 이 방송국 재정지원을 조만간 중단할 방침이다.이에따라 방송국측은 서구기업중에서 스폰서를 구해 계속 전파를 보내기로 했으며 현재 미국 IBM사와 독일 폴크스바겐사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 아랍권,일제히 미 조치에 반대

    ◎이라크 영토분할 우려… 쿠웨이트선 찬성/「비행금지구역」 설정… 회교권 반응 【런던·니코시아·유엔본부·쿠웨이트시티 외신 종합】 미국등 서방동맹국들이 이라크 남부지역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한 것에 대해 쿠웨이트를 제외한 대부분의 아랍국가들은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이집트는 서방측의 「비행금지구역」 통보에 대해 『이라크에 압력을 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영토와 민족의 통일성을 존중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아므르 무사 이집트 외무장관은 이날 외신기자들과 가진 회견을 통해 『이번 조치가 이라크 영토의 주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일시적인 조치이길 바란다』며 조심스런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요르단의 회교 원리주의자 국회의원들은 부시 대통령의 「비행금지구역」 선포가 『아랍회교도를 억압하고 파괴하려는 목적을 가진 회교권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비난했다. ▲쿠웨이트는 이라크 남부에 내려진 「비행금지구역」작전을 위해 자국내 군사 기지 및 영공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마드르 자셈알 야쿠브 공보장관이 밝혔다. 야쿠브 장관은 쿠웨이트가 아랍국중 유일하게 「비행금지구역」설정을 지지해왔음을 의식한듯 『누구도 이라크의 분할을 기도하지 않고있다』고 강조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6일 이라크의 영토가 분할되는 것에 대해 반대의사를 표명했다고 사우디 라디오 방송이 보도했다. 외교관들은 사우디가 비록 지난해 걸프전 당시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에 참가,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우디 지도자들은 이라크가 서방에 의해 분할되는 것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경계해 왔다고 분석했다.
  • 영원한 광대 추송웅/사후 8년만에 재조명

    ◎연극평론가 안치운씨 「추성웅연구」 출간/연극처럼 살다간 불행한 삶 추적/국내 첫 배우론… 연극인들 환영 「영원한 우리들의 광대」 추송웅.연극배우생활 22년동안 3천3백여회나 무대에 섰던 「빨간 피터」.모노 드라마 라는 분야를 개척하면서 세인들의 기억속에 뚜렷하게 각인돼있는 70∼80년대 우리 연극계의 가장 대표적인 배우.그러면서도 평가 한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불우한 삶을 살다 44세(84년)에 요절한 불행한 연기자. 연극배우로서 그의 삶과 연극을 학문적으로 접근한 「추송웅연구」(가제;도서출판 청하간)가 추씨 사후 8년만에 오는 9월 단행본으로 출간된다. 연극평론가 안치운씨(36)가 연극의 생산당사자이면서도 항상 푸대접을 받아온 배우에 대한 인식변화를 위해 생전에 추씨가 기고했던 글들과 평론가들의 연극평,공연연보및 그의 일기등 2백자 원고지 1천7백∼1천8백장정도분량의 원고와 공연사진등을 모아 책으로 펴내는 것으로 국내에서 발간되는 첫 배우론인 셈이다. 소설가나 극작가들의 삶과 예술을 조명한 책들은 그동안 많이 있었으면서도 유독 연극배우의 그것에 대한 연구는 전무했던 상황에 비춰볼때 안씨의 「추송웅연구」는 우리 연극계에 상당히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책에서 추송웅씨는 『연극이 처음으로 대중에 의해 소비되어지는 시대에 살면서 대중과의 만남에 가장 탁월했던 배우였으며 억압하는 모든 것에 대한 도전의식과 반항의식의 표출인 배우의 광기를 온 몸으로 발산하며 가장 극적인 삶을 살다간 우리시대의 광대』로 평가되고 있다.연출가나 극작가에 비해 예술성이라는 측면에서 한단계 아래로 암암리에 평가를 받아온 우리 연극배우들,그러나 반론 한번 제기해보지 못하고 침묵을 지켜온 이들 가운데 자기 주장을 해왔던 추씨의 존재가 적극적으로 부각되고 있는것이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난 그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항상 뒤처져있었던데다 사시라는 신체적인 결함이 묘한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져 그의 반항적인 기질을 가속화시켰으며 이는 광기의 형태로 그의 내면에 잠재해있다가 무대위에 폭발적으로 쏟아졌던 것』이라고 안씨는 분석한다. 안씨는 그러나 그는 배우로서 실패한 인생을 살다갔다고 본다.『말년에 배우로서의 삶에 대한 반성으로 몸부림치고 있을때 어느 누구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말년의 소외감과 무질서한 생활,「광기」는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며 『특히 자신에만 몰입한 나머지 배우와 사회,나와 타인과의 관계에서 배우로서의 삶을 내다보지 못한 한계를 끝내 극복하지 못한 연극배우였다』며 아쉬워한다. 이 책으로 본격적인 배우론의 첫발을 내디딘 안씨는 올해안에 연출가 10명을 연구한 연출가론도 펴낼 계획이다.그동안 문학적인 접근에 쏠려왔던 연극연구가 이제는 연극의 생산자들인 배우와 연출가들 중심으로 궤도를 수정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안씨는 중앙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연극을 전공했으며 파리 제3대학에서 연극교육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중앙대에 출강하고 있다.
  • 1992년 8월의 일본/이창순 도쿄특파원(특파원수첩)

    일본의 8월은 두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히로시마(광도)하늘에는 매년 8월 「평화의 종소리」가 울려퍼진다.그러나 야스쿠니(정국)신사에서는 군국주의 망령이 부활한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하늘에는 올 8월에도 어김없이 비둘기가 날고 전쟁이 없기를 기원하는 「평화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그것은 원폭피해라는 인류비극의 마지막을 알리는 조종이어야 한다고 일본인들은 말한다. 일본은 원폭피해의 비극성을 늘 강조한다.그들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미국인들에게 죄의식을 강요해 왔다.그러나 자신들의 침략행위에 대한 죄의식에는 눈을 감는다.그러니 히로시마의 평화의 종소리는 야스쿠니신사에서 되살아나는 군국주의 망령들의 무곡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일본을 대표하는 왕궁 근처에 있는 야스쿠니신사는 일본의 과거 군국주의의 상징이다.그곳에는 2차대전 전몰자들과 함께 전범 우두머리 도조 히데키(동조영기)등 7명의 A급 전범 영정이 있다.일본 각료들은 8월15일(종전기념일)을 전후하여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다. 야스쿠니신사참배는 과거 군국주의 지도자들의 아시아 주변 국가 침략행위를 정당화하고 군국주의의 호전성에 대한 동경은 아닌가.그 해답은 나카소네(중증근)전총리의 신사참배 인식에서 찾아진다.85년 8월15일 일총리로서는 최초로 신사를 공식 참배했던 나카소네는 14일자 요미우리(독매)신문에 실린 그의 칼럼에서 『야스쿠니신사참배는 국가전통의 정신적 계속성을 정하는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당시의 공식참배는 주변국가들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며 일본법원도 헌법위반이라고 판결했다.나카소네 전총리는 그러나 자신의 칼럼에서 『공식참배는 위헌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나카소네의 이같은 주장에서 일본의 군국주의적 민족주의의 부활을 느낀다.일본 학습원대의 이반 홀교수(미국인)는 『일본은 군국주의 망령을 단호하게 물리칠 전망이 암울하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군국주의적 민족주의는 다시 부활하고 있다.그 상징은 군사적 해외진출을 합법화한 유엔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안 제정이다.일본의 민족주의는 2차대전이후 억압되어왔다.그러나 일본은 자신에게 새로운 힘이 축적되었다는 사실을 확신하자 시대에 뒤떨어진 배타적 민족주의 의식을 재천명하고 있다. 배타적 민족주의의 부활은 PKO법과 함께 일본의 전후 비군사화 대외정책 원칙이 무너지고 있음을 나타낸다.일본의 비군사적 가치기준이 상실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이제 미국의 인류학자 베네딕트가 말하는 한송이 청초한 「국화꽃」으로 남아있기를 거부하고 있다. 베네딕트는 그의 저서 「국화와 칼」에서 일본은 아름다운 국화꽃과 냉혹한 칼이라는 양극성의 국민성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군사적 영향력으로 재무장한 「위대한 힘」으로 부활하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일본의 첨단기술은 현대기술문명을 창조하고 있다.일본은 거만스럽게도 냉전이후 경제중심의 새로운 국제질서는 「일본의 시대」라고 주장한다.일본은 「위대한 힘」의 창조를 위해 정치·군사대국화를 지향하고 있다.베네딕트가 지적한 「칼」의 속성이 그 실체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다음달 자위대를캄보디아에 파견한다.일본군이 47년만에 아시아대륙에 다시 상륙하게 되는 것이다.일본은 국제평화를 위해 자위대를 파견한다고 말한다.그러나 자위대의 해외파병은 군사적 모험주의의 또 다른 출발이 아닌가하는 불안을 느끼게 한다.그것은 역사적 체험때문이다. 일본은 과거 침략사의 청산을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그들은 외부세계의 비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일본은 과거 침략행위에 대한 진정한 반성없이 이를 그대로 덮어두고 전후시대를 마감하려하고 있다. 일본의 이같은 태도는 아시아 주변국가들을 분노케한다.그러나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존재는 더욱 커지고 아시아국가들의 일본 의존도는 점점 심화되고 있다.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다가온다. 지난 1945년 8월15일은 아시아의 일제지배국가들에게는 환희의 날이었다.우리들 마음속에는 여전히 잔악한 일본 식민지지배의 잔영이 앙금처럼 남아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사회 각부분에서 일본 중독증 현상이 너무 심화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일본에서 맞는 광복절은 우울하다.
  • 세르비아 점령지 이민족 집단추방/독 인권단체 폭로

    ◎크로아인·회교도 7천여명에/페트로바치시선 대량학살도/주내 2만여명 피난 예상 【본·자그레브 로이터 연합】 유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전투중인 세르비아계 무장 세력은 공화국 서부 보산스키 페트로바치시에서 여러 가족을 학살하는 한편 현지 크로아티아인과 회교도 7천여명을 강제 추방하기 시작했다고 독일 인권 단체가 11일 폭로했다. 「억압받는 민족들을 위한 사회」란 명칭의 이 단체는 세르비아 세력이 이민족들에게 도시를 떠나도록 최후통첩한데 이어 지난 10일 하오(현지 시간)부터 추방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단체 관계자들은 현지로부터 『긴급 지원을 호소하는』 전문을 받고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지난 7일 여러 가족이 몰살당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덧붙였다. 한편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도 유고 분쟁이 시작된 이후 한꺼번에 이동하는 규모로는 가장 많은 약 2만명의 보스니아인이 금주안에 크로아티아로 피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이날 밝혔다. 세르비아는 지난 10일 약 5천명의 보스니아인이 재산을 세르비아측에 넘기고 크로아티아로 떠나겠다고 서명한 명단을 공개하면서 서명이 『자발적』으로 이뤄졌음을 주장했다고 판무관실 대변인이 전했다. ◎대유고 무력개입 분쟁확대 가능성/영 군사전문가 주장 한편 유엔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내 구호 물자 수송을 위해 군사력 사용을 강행할 경우 현지 내전이 확대되는 등 파국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영국 군사전문가들이 11일 내다봤다. 세르비아를 주축으로 한 신유고연방측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서방측 상임이사국들이 『모든 필요한 조치를 강구』토록 관련국들에 요청하는 내용의 결의 초안을 마련한 것과 때를 같이해 서방의 군사 개입을 경고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우리가 안보이 결의를 잘 준수하고 있기 때문에 군사 개입이 필요치 않다』고 강조했다. 런던 소재 국제전략연구소(IISS)의 앤드루 던컨 대령은 구호 물자 배급을 위해 무력이 사용될 경우 세르비아측의 무력 대응으로 이어져 결국 서방이 추가 파병하는 사태가 빚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외언내언

    월남전 때의 일이다.당시 월맹은 미국을 정부와 국민과 언론으로 나누어 상대하고 교란시키는 공산당특유의 인민전술전략을 동원해 큰 재미를 본것으로 유명하다.북한공산당의 대남전략도 같다는 생각을 한다.국가와 국민을 분리취급하고 국민중에서도 반체제나 반정부세력만 상대하며 이용하고 있는 것을 본다.◆그런데도 우리는 그 북한과 인민을 하나로 착각하고 행동하는 과오를 범할때가 많지않나 생각한다.그동안 우리가 상대해온 북한은 공산당과 그 간부들이지 인민대중은 아니지 않았는가.더욱이 그 공산당과 간부는 인민대중이 원해서 선택한 당도 사람도 아니다.그들이야말로 북한의 전부도 대표도 아닌 것이다.◆공산권붕괴후 우리는 어려운 처지의 북한을 도와야한다는 주장이 많았다.지금도 그런 분위기인 것이 사실이다.가슴 뭉클케하는 민주애의 발로란 생각도 든다.그러나 여기서도 우리는 북한과 그 인민을 구분못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지않은가.우리가 도와야하는 북한은 인민대중이지 반성할줄 모르는 공산당이나 노멘클라투라(붉은 귀족)라는 이름의 간부들은 분명 아닐 것이다.◆억압속의 인민은 내의도 없이 겨울을 나고 식량부족으로 초근목피를 찾아 산야를 헤맨다는데도 전체예산의 25%를 군사목적에 쓰고있다는 공산당과 그 간부들의 북한이다.80고령의 늘그막까지 젊은 애첩을 두고 딸까지 낳아 호화판 해외쇼핑여행까지 시키고 있다는 김일성주석을 우리가 동정하고 도와야할 이유가 어디있는가.◆얼마전 방일했던 플라토닌 러시아부총리의 말이 생각난다.『북한경제와 김일성체제는 붕괴직전이다.일본이 북한에 배상을 한다면 그것은 김일성체제유지의 캠퍼주사가 될것이다.그냥 버려두는 것이 한반도문제해결(통일)을 빠르게하는 방법이다』위대한 수령의 도덕성이 부패한 자본주의자의 그것만도 못하지않은가.우리가 도와야하는 북한은 그가 아니라 선의의 북한대중임을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 독정부,호네커 처리 고심/망명 16개월만에 러시아서 소환

    ◎장벽탈출자 발포혐의등… 중형 불가피/“동독인상처 건드릴라” 공정재판 강조 에리히 호네커전동독공산당서기장이 소련으로 피신한지 16개월만에 베를린으로 송환돼 감옥에 수감됨으로써 또한차례 공산독재자의 말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8월이면 만 80세가 되는 호네커는 베를린장벽 설계자이며 동구에서 가장 철저한 스탈린주의 신봉자였다는 점에서 통일독일은 어떠한 경우라도 그에 대한 사법처리를 해야만 했다. 우선 그에게는 베를린장벽을 넘다 희생된 49명에 대한 발포명령과 권력남용혐의로 90년 12월 기소돼 있는만큼 이에 대한 재판이 올해안에 시작된다. 그러나 그에 대한 사법처리가 이미 망해버린 동독지도자에 대한 정치적보복이라는 인상을 불식시키기 위해 독일정부는 「깨끗하고 공정한 재판」을 누누히 강조하고 있다. 오는 가을부터 시작돼 올해안에 끝날 것으로 보이는 사법처리에서 호네커는 발포명령뿐만 아니라 집권중 정치적 희생으로 숨진 사람이 3백50명이나 돼 최악의 경우 종신형을 받을수도 있다.그러나 동독체제와 관련,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이 없는데다 얼마전 베를린장벽 탈출자에 대한 사살혐의로 기소된 2명의 동독병사가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만큼 호네커에게도 중형이 내리지는 않으리라는 전망이다. 상당수 동독인들은 호네커의 억압적통치와 발포명령등으로 그를 경멸하고 있으나 한편에서는 노쇠한 그를 재판정에 세워 득이될 것이 있느냐는 여론도 무시할 수 없다. 호네커가 송환되는 공항에서 『호네커는 절대 뉘우치지 않을 사람이니 감옥에서 죽게 내버려둬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치보복을 중지하라』는 시위자도 있어 독일인들의 상반된 갈등을 잘 나타냈다. 독일 정부도 호네커를 재판정에 서게 함으로써 동독인들이 안고있는 깊은 상처를 다시 건드리게 됨으로써 야기될 위험성을 우려하고 있으나 일단 법적인 절차를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원칙이다.이때문에 독일정부는 모든 처리를 베를린법원에 일임한다는 자세이고 재판부는 호네커가 특정 이데올로기의 대표로 법정에 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여론재판이라는 일부비판을 일축했다. 호네커는 심장질환병력이 있으며 90년 기소됐을때도 지병때문에 구속 하룻만에 풀려나 소련군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91년 3월 모스크바로 탈출했다.그후 쿠데타사건등으로 소련이 혼란기에 처해 모스크바에 머무를수 있었으나 러시아정부가 들어서 그를 송환하려하자 지난해 12월11일 칠레대사관으로 피신,그의 신병처리를 둘러싸고 독일·러시아·칠레사이에 외교문제가 된 가운데 북한과 칠레로의 망명설이 끊임없이 나돌다가 독일탈출 16개월,칠레대사관 피신 2백32일만에 송환됐다.
  • 「사치성 불평」에 빠진 한국(사설)

    남들의 한두마디에 번번이 민감할 것은 아니다.그러나 때로는 남들이 나를 훨씬 정확하고 예리하게 간파하여 스스로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악습이나 실수를 찾게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지에 실린 다우존스사 카렌 엘리어트 하우스 부사장의 기고는 우리에게 그런 글이다. 그가 한국을 방문하여 반복해서 들었다고 지적한 말 몇가지는 이런 것이다.『우리나라가 쇠퇴하고 있다』 『우리는 경쟁력을 상실했다』 『우리의 근로윤리가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혼돈상황에 빠져 의기소침해 있다』 『우리에겐 강력한 리더십이 없다』등.이런 말은 사실상 요즈음의 우리가 예사로 던지고 있는 말들이다.나도 해보았고 남들에게서도 얼마든지 들어본 말이다.교수들도 걸핏하면 하고 있고 주부도 시정인도 입버릇처럼 하고있는 말들이다.필자가 정확하게 들춰낸 셈이다. 이런 우려의 말은 같은 시각에 워싱턴을 비롯한 세계 모든 나라의 수도에서도 들을수 있는 말이지만 『서울에서처럼 역설적이고도 근거없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어쨌든」개발도상국들에 모델을 제시했으며 「어쨌든」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면서도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성공적인 전환을 한 나라가 한국이라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그밖에도 한국은 경제자유화를 확대했고 북한과의 대화를 재개하고 중국및 동구 공산권국가들과도 유대를 맺게 되었으며 노동자와 학생들의 데모로 흔들리던 사회가 상당한 정도로 안정되게 구축한 나라인데,그런데도 한국인들이 『너무나』 우울한 기분에 빠져있는 것에 그는 의아해한다. 그의 간파력이 흥미있는 것은,성공보다는 실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미국이 매우 유사하며 두나라가 다같이 회응와 비판에 빠져있다는 현상을 파악하고 있는 점이다.페로와 정주영 현상까지도 같은 것에 대한 논지의 착안은 신선하다.그러나 정작 그의 논지가 지닌 신랄함은 다음에 나타난다.40년동안 억압적인 통치를 받아오면서 한국민을 회의하게 해온 문제는 정통성 문제였고 한국인들이 열성을 바쳐 그 문제를 해결해 왔는데도 『이 위대한 업적을 무시하고잊어버리거나 심지어 경멸하고 있는』것에 그는 강한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그러면서 수년전 독재정권하에서는 경멸받던 『강력한 리더십』과 『법과 질서』를 지금 한국인이 입에 올리는 것을,그는 한국인의 건망증적인 현상으로 풀지않고 『사치한 불평』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정치적 자유를 가진 사람들만이 문제에 대해 불평할 수 있는,그런 사치스러움의 향유라는 것이다. 겨우 며칠 외국인이 스쳐본 인상으로 적은 것에 집착할 일은 아니다.그러나 잠깐 다녀가는 남의 눈에도 선연하게 보일만큼 『이상스런 불평』에 싸여서 7·5%나 성장하는 GNP를 불평하고,지난 5년간 급료가 패증했음에도 인플레율이 6%선에 이른다고 불평하고 있으며 기업인들은 세계적인 확장에도 불구하고 급료수준 및 이자율이 높다고 투덜거리는 우리가 너무도 『이상하다』고 말하는 그의 글속에,진정으로 하고싶은 말은 따로 숨겨져 있는 것같다. 자신들이 이룬 공을 경멸하는 우를 범해가며 「사치한 불평」에만 너무 취해서 뭔가를 그르칠지도 모를 우려를 언중에 감춰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이런 낭비스런 불평의 정체에 대해서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할 것같다.
  • “문학의 위기” 대안모색 활발

    ◎김주연씨 등 「문학정신」「외국문학」통해 새유형 제시/리얼리즘·포스트모더니즘도 침체기/환상문학·관념소설 도입,돌파구 찾기/“외래사조 도입으로 문단혼란 야기”우려도 소련의 해체 등으로 리얼리즘문학이 극도로 위축된 시대.표철논쟁으로 포스트모더니즘문학의 진정성마저 심각히 위협받는 시대.이같은 문학위기의 시대를 극복할 미래의 대안은 무엇인가. 최근 문단일각에서는 문학의 장기침체를 극복하고 다시금 새롭게 문학의 시대를 꽃피울 대안문학의 모색이 활발하다.월간 「문학정신」6윌호에 이어 계간 「외국문학」여름호도 이같은 모색의 성과를 수록하고 있어 주목된다.「문학정신」6월호는 「반리어리즘 작가들」,「외국문학」여름호는 「탈식민주의시대의 글씨기와 책읽기」란 특집을 통해 관념소설·환상문학·탈식민주의문학등 새로운 유형의 문학형태를 소개하고 있다.우리문학에 내포돼왔던 타문학적 요소의 재발견과 첨단 해외문예사조의 수입을 통한 문학의 소생을 지향하는 이같은 시도는 리얼리즘론을 더욱 굳건히 하면서 민족문학의 부활을 꾀하는 창비계열문인들과 이성의 해체를 기정사실로하여 문학의 입지를 다지려는 문지계열문인들의 시도와 함께 현단계 문학의 위기를 타개하려는 공통된 노력의 소산으로 보인다. 그중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안문학을 창출하려는 시도는 우리의 현실과 삶의 방식이 변화되고 있는 만큼 그 달라진 현실을 포착할수 있는 새로운 시각과 인식의 양태를 보유한 문학형태가 필요하다는 믿음에서 비롯됐었다. 문학평론가 이동하씨는 그동안 한국문학에서 마르크스주의적 리얼리즘문학의 영향력과 폐해는 너무 컸으며 그 대안으로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문학 역시 부정적 역기능만을 심각히 드러냈다고 진단했다. 이같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문학평론가 김주연씨는 한국문학에서의 관념소설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한국 소설사는 이미 최인훈에서 이청준·박상륭에 이르는 뛰어난 관념소설의 계보를 갖고있다는 것.그는 활발한 관념소설의 창작이 우리문학의 정신적 영역을 확장해 줄것이라고 말했다. 황병하교수(백제예전 문창과)는 환상문학의 적극 도입을 주장한다.이제하·심상대의 소설에서 환상문학적 요소를 지적한 그는 환상문학이 지나친 리얼리즘의 횡포로 수동적 소비자로 전락한 독자를 생산적 동반자로 끌어올릴수 있다고 말한다.그가 궁극적으로 지향할것을 제시하는 환상문학의 형태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꽃피운 환상적·경이적·마술적·그로테스크 리얼리즘소설과 비슷한 유의 것이다. 문학평론가 김성곤씨는 현재 전세계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문학」의 도입을 주창했다.경제적·문화적 의존과 통제등 제국주의적인 억압구조로부터의 「해방」과 지배이데올로기로부터의 「차이」를 추구하는 신식민지국가들의 저항언술인 탈식민주의문학이 오랜 식민지경험을 갖고 있으며 그 후유증을 앓아온 한국의 경우에도 효과적인 전략이 될수 있다는 것.그는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제국의 지배언술에 의해 성전화된 이야기들이나 텍스트들을 다시 읽고 새로운 시각으로 쓰는 「되받아쓰기」문학을 제안했다.이경순교수(전남대 영문학)도 기존 테미니즘에서 제국주의적 색채를제거하고 유색인종 여성들이 자신들의 문화와 신체에 근거한 글쓰기를 강조하는 탈식민주의 페미니즘문학을 소개했다. 이러한 대안문학의 존재는 꽉막힌 문단현실에 얼마간 숨통을 틔워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그러나 이들의 선례가 외국에 있는 만큼 사대주의적 성격을 떨칠수 없으며 기존 논의의 매듭을 덮어버리려는 또하나의 외래사조로 무분별하게 도입되어 문단을 혼란시켜서는 안된다는게 일부 문단관계자들의 지적이다.
  • 북한위협 있는한 주한미군 유지/민주당 정강정책 대외분야를 보면

    ◎핵확산위반국 강력제재 천명/신국제질서 맞춰 집단안보 촉구 민주당은 14일 채택할 당의 정강정책을 통해 집권이후 추진할 대외정책방향을 제시했다. 민주당이 추구하는 대외정책의 기본인식은 냉전이후시대에 전개되고있는 새로운 국제질서에 미국의 국익을 조화시켜나가고 국내문제와 대외정책간에,그리고 국제사회에서의 지도자로서와 동반자로서의 역할간에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외교정책방향은 ▲군사력의 재편 ▲세계각국의 민주화촉진 ▲군사비의 국내 경제활성화 재원으로의 전환등의 기본원칙에 입각하여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군사력의 재편과 관련,미국의 군사력은 핵무기를 줄여나가되 핵군사력을 보유하고 유럽등의 주둔군을 감축하고 대신 신속배치능력을 강화하며 군사력의 양보다는 질위주로,그리고 정보수집능력을 강화해나간다는 입장이다.또 군사력은 미국의 국익보호에 결정적일 때만 사용돼야하고 냉전이후의 새로운 국제질서 아래서는 집단안보개념에 의거,관계국들이 그 부담을 나눠갖도록 한다는 구도이다. 이같은군사력 재편구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한반도에서 북한의 위협이 존재하는 한 남한에서의 주한미군은 계속 유지되어야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민주당이 4년전 전당대회에서 채택한 정강정책은 주한미군에 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으나 이번에 이를 명시한 것은 해외 미군사력의 감축이라는 기본입장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안보상황에 관한한 새로운 현실인식을 갖고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지역분쟁의 방지와 핵및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차원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기능의 강화는 물론 국제핵확산금지체제를 위반하는 어떤 국가에 대해서도 강력한 국제제재를 가해야한다는 입장을 천명하고있다. 클린턴 자신도 미군의 한국주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있는 것은 물론 북한이나 이라크,이란이 절대 핵국가가 될 수 없도록 미국은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밝히고있다. 한반도문제에 관한 민주당의 이같은 외교정책방향은 지금 부시행정부의 공화당정권의 정책방향과도 거의 일치되고있기 때문에 민주당이 집권을 하더라도 안보적인 측면에서의 한미관계에는 별다른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대외정책방향중 또하나의 중요한 기본축은 세계각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표명과 함께 이의 촉진을 위해 해당국과 미국의 정치적,경제적,군사적 관계를 연계시켜나간다는 것이다. 이는 러시아,발트해연안국,동구제국등 과거 공산국가로부터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는 나라들을 최대한 지원한다는 것은 물론 아프리카,카리브연안국,남미,여타지역국가들도 보다 민주화될 수 있도록 미국이 외교적 압력을 가해나간다는 뜻을 내포하고있다. 특히 지난 70년대 민주당의 카터행정부시절 미국이 인권외교를 강력히 편 것처럼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인권외교를 중시하고있다.이번 정강정책도 남아공화국,쿠바등지에서의 정치적 억압,인종적 편견을 지적하고있고 최근 부시행정부가 강경조치를 취한 하이티난민의 미국유입에 대해 정치적 망명을 인정해야한다고 밝히고있다. 군사비의 삭감을 통해 국내경제회복에 필요한 투자를 해야한다는 정책방향은 한마디로 냉전시대의 국가방위개념으로부터 과감히 탈피,포스트 냉전시대에서는 미국의 국제경쟁력을 하루속히 회복시키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국가안보이자 대외정책이라는 인식이다.
  • 그 놀랍고 뜨거운 권역 순방르포(팽창하는 이슬람:1)

    ◎프롤로그/“제2부흥기” 중앙아에 재응집 바람/탈이념 물결·소몰락으로 압제 벗어나/아제르공등 6개국 회교세력 “뭉치자”/「무주공산」 연고권 노려 이란·터키 외교전 중앙아시아에 거센 이슬람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다. 새로 탄생한 구소련내 회교공화국들은 새로운 구심점을 찾아 연대를 강화하고 있으며 이란·터키등 강국들은 소련의 퇴장으로 「무주공산」이 된 이 지역에서 맹주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과거의 연고권을 내세우며 치열한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서방에선 소련의 몰락이 가져온 일시적 「이념의 진공상태」가 이란식의 반서방 회교원리주의나 범터키 회교주의로 메워질 경우 소위 냉전후의 신세계질서는 예측불허의 위협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섞인 진단 이 대두되고 있다.본사 이기동모스크바특파원이 이란·터키와 구소련 중앙아 공화국들을 찾아 이슬람바람의 실체와 함께 변화하는 사회상들을 취재,시리즈로 보도한다. ○회교사원 수리 한창 중앙아시아의 이슬람세력들이 다시 「사라센의 칼」을 뽑아들고 있다. 예언자마호메트의 깃발아래 새로운 종교 이슬람교가 아라비아사막에 출현한 것은 서기 7세기초.그로부터 1천4백여년만에 당시 주변 3개 대륙으로 마치 「천지개벽하듯」뻗어나가던 바로 그 기세로 코란경전의 봉독소리가 이 일대에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이 기세의 파장은 북아프리카 해안의 모로코에서부터 중앙아 초원지대를 이미 지나고 있다.아프가니스탄에는 13년만에 다시 이슬람깃발이 나부끼기 시작했고 군사쿠데타로 불발에 그치긴 했지만 알제리인들은 지난 1월총선을 통해 이미 회교국 수립의 의지를 내외에 과시했다. 이슬람「제2부흥기」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지각변동의 결정적 계기는 바로 이념대립체제의 붕괴와 소련방의 해체.지난 70년동안 공산 소련의 굴레에 묶여 겉으론 무신론자로 살아야했던 아제르바이잔·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등 6개 신생독립국들의 회교도들이 남쪽 카스피해 너머의 이슬람형제들을 찾아나서면서 부터이다. 아제르바이잔을 제외한 신생 5개국 5천 7백만 주민은 인종적으로는투르크계이며 7백년전 아시아대륙을 휩쓴 몽골인들의 후예로 타지키스탄을 제외하고는 모두 투르크계언어를 쓰고 있다.타지크인들은 이란인이 쓰는 파르시어를 쓴다.앙카라의 한 외교관은 『중앙아시아주민 대부분이 터키에 와서 2주일만 배우면 터키말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고 말했다. 독립한지 불과 반년이 채 안된 지금 알마아타·타슈켄트·사마르칸트·듀산베등 중앙아 각 도시들에서는 폐허가 된 모스크(회교사원) 수리공사가 한창이고 각급학교는 회교교리를 배우는 학생들로 초만원이다. ○미등 서방에 적대적 다시찾은 이들 이슬람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사역할을 맡은 선두주자는 바로 원리주의 회교를 표방하는 이란과 세속주의 회교를 앞세운 터키 두나라이다. 전세계는 이 지각변동의 파장을 우려와 의혹의 눈으로 예의주시하고 있다.서방의 몇몇 미래학자들은 소련제국의 멸망과 함께 앞으로 이슬람 원리주의가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강력한 위협세력이 될 것으로 경고하고 있다.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동서이데올로기 대립이 사라지자세계를 지배할 유일한 이념은 바로 자유민주주의인 것처럼 보였다.그런데 테헤란의 한 서방외교관의 말처럼 『서방인들의 눈에 테러·보복·혁명수출이나 일삼고 시대착오적인 신정일치를 고수하는 이슬람원리주의가 기세를 더하고 있으니』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는 것이다. 서방국 중에서도 특히 이슬람의 부흥에 우려를 가진 나라는 바로 미국.미국의 우려는 바로 이슬람이 갖고있는 반미·반서방 목소리와 기질에 기인한다.이슬람이 「성전」을 외치며 본격적으로 정치세력화한 결정적 계기는 바로 지난 1979년 호메이니옹의 주도로 이룩된 이란혁명이라 할 수 있다.그리고 이란혁명의 주된 구호중 하나가 바로 「대악마」로 지칭된 미국과 서방에 대한 원색적인 적대감이었다.테헤란국제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대로변이나 테헤란시내 관광호텔 로비에는 지금도 「미국을 타도하자」는 대형 플레카드들이 내걸려 있다.이란혁명 직후 과격학생들에 의해 4백44일간 점거당했던 과거 테헤란주재 미국대사관 담벼락에는 「미국에 처절한 패배를 안겨주자」「미국이추구하는 힘은 정글의 법칙」등의 구호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어 미국에 대한 이란인들의 증오가 식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테헤란의 한 언론인은 『이슬람이 서방에 비판적인 것은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불만때문이다.서방제국주의는 이슬람의 전통을 왜곡시키려 했고 이슬람이 열등한 문화라는 인식을 전파시켰다.그들은 이슬람세계에 억압적인 세속정권을 수립했으며 이스라엘 건국을 통해 긴장을 조성했다』고 주장했다. 서방국뿐아니라 이집트·사우디 아라비아·요르단 등 억압적인 민족주의와 왕정을 고수하고 있는 「온건」아랍국들도 코란·종교전통에 바탕둔 회교 원리주의 정치적 바람에 놀라고 있다. 아프간의 무자헤딘 파벌들은 새 국가를 이끌 법률토대를 회교율법 「사리아」에 두기로 합의했다.중앙아 구소련 신생독립국의 회교원리주의자들 또한 아프간의 뒤를 따를 것을 다짐하고 있다.중앙아 지역서 회교부활을 위해 싸우는 타지키스탄 이슬람 복원회의 한 간부는 『우리사회의 모델은 예언자 모하메트가 제시했던 교리이며 모든 것은 알라신이 지시한대로 이루어질 것이며 탈선은 용납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중국 접경지역 영향 중국도 타지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 3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이슬람교도가 태반인 서부 신강자치주등에 이슬람 원리주의·민족주의의 여파가 미칠까 걱정이다. 이란·터키 정부관리들은 하나같이 중앙아 회교형제국들과의 관계개선은 오로지『형제국끼리의 우애와 경제적 도움을 나누기 위한 것일뿐이지 결코 외국인의 목을 자르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며 좀처럼 속마음을 드러내보이려 하지 않았다. 테헤란의 한 몰라(종교지도자)의 말처럼『이슬람은 기독교 못지않게 평등·사랑등 보편적 가치를 신봉하며 증오·보복을 일삼는다는 것은 서방,특히 미국이 퍼뜨린 편견』일지도 모른다. 중앙아 일대에서 일기 시작한 이슬람 바람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그리고 이 바람의 여파는 과연 우려할만한 것인가.
  • 에필로그/나윤도특파원 현지리포트(중남미를 다시본다:14·끝)

    ◎역내협력 강화… 경제·정치결속 움직임/남미공동시장등 본격적 블록화/미도 외채탕감으로 적극적 지원/“민주화·경제발전 동시 추구”… 한국을 「부러운 모델」로 1492년 8월 3일. 스페인을 출발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0주동안의 항해 끝에 카리브해의 한 섬에 도착한 날이다.그로부터 5백주년을 맞는 오늘의 아메리카대륙은 그 「역사적 발견」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서 비롯된 스스로의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발견은 유럽인에게는 인류에 대한 위대한 공헌으로 평가됐으며 콜럼버스 개인은 진보와 개명의 선구자로 추앙받았다.그리고 그같은 유럽의 견해는 그대로 전인류의 견해로 통용돼왔다. ○21세기 대륙으로 그러나 오늘날 아메리카대륙 특히 중남미에서의 해석은 사뭇 다르다.콜럼버스의 도래야말로 아메리카대륙에 경제적 착취와 정치적 지배,문화적 약탈,그리고 개인적·민족적 굴욕을 가져다준 최대의 재앙이었으며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대륙 파괴의 선구자라는 것이다. 즉 억압과 인종차별,노예제,민족절멸,환경황폐화등이루헤아릴수 없는 백인들의 만행 때문에 오늘날 중남미의 비극이 시작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중남미는 종속이론의 시발지가 되었고 해방신학이 나왔으며 관료적 권위주의·민중주의·조합주의등 수많은 현대사회과학의 이론들을 탄생시켰다. 최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됐던 세계환경회의는 비록 그 주제가 환경분야로 한정되기는 했지만 그같은 중남미인들의 주장이 크게 부각된 장이기도 했다.국제질서가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한 냉전체제에서 환경·마약·에이즈문제등을 주의제로한 남북간의 대립관계로 전환되면서 중남미는 21세기의 대륙으로서의 가능성을 새롭게 인식받게된 것이다. ○상실시대 벗어나 「저개발의 정신상태­라틴아메리카 케이스」라는 책의 저자 로렌스 해리슨 교수는 『최근의 경제위기와 동구의 붕괴가 라틴아메리카인들에게 자신들의 현재상태에 대한 자각을 일깨워 주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콜럼버스 이후 5백년을 지내오는 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북아메리카는 엄청난 부와 발전을 이룩한데 반해 스페인·포르투갈의지배를 받았던 중남미는 빈곤과 저개발 상태로 처져있게된데 대한 자성의 소리가 높았던 것이다. 가공할만한 높은 인플레와 지속적인 마이너스 성장,악성 외채로 인한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겪으며 80년대를 이른바 「상실의 시대」로 지내온 중남미 각국은 이같은 뼈아픈 자성을 바탕으로 90년대들어서는 자유시장경제·대외개방경제·자율경제등을 축으로한 재도약의 힘찬 몸짓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자성의 움직임은 특히 중남미인들의 강한 연대의식으로 나타나 역내 블록화가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이에따라 가장 먼저 결실을 맺게된 것은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로 아르헨티나·브라질·파라과이·우루과이등 4개국이 95년 1월1일을 기해 공동시장을 출범시키기로 하는 「아순시온협정」을 체결해놓고 있다. ○단일관세제 창설 또 멕시코·콜롬비아·베네수엘라등 카리브연안3개국(G-3)도 오는 94년 중반부터 상호교역증진및 에너지분야 협력확대등을 겨냥하여 자유무역지대를 설치할 계획으로 있다.이와함께 볼리비아·에콰도르·콜롬비아·페루·베네수엘라등 5개 안데스조약국 역시 92년도부터 자유무역지대설치와 단일관세제도를 창설키로 하고 있다.카리브해국가들도 카리비안공동체(CARICOM)를 결성,오는 94년 공동시장 발족을 꾀하고 있다. 그밖에 2국간의 쌍무협력관계도 활발히 이뤄져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칠레와 아르헨티나,멕시코와 칠레등 양국간 경제통합 또는 자유무역협정 체결등 관계강화가 증가하고 있다. 한편 중남미 경제의 블록화에 있어서 가장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이다.조지 부시 대통령은 90년6월 아메리카대륙의 북쪽끝에서 남쪽끝까지를 뜻하는 『알래스카에서 디에라 델 후에고까지를 하나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범미주공동시장 형성을 촉구하는 이른바 「아메리카 이니셔티브」를 발표한뒤 중남미국가들에 대한 적극적인 외채탕감을 실시해왔다.또한 캐나다·멕시코와 93년 발족을 목표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추진중에 있으며 지난 5월에는 남미진출의 첫케이스로 칠레와 자유무역협정 교섭을 시작했다. 이같이 활발한 각종 협력 움직임은 많은 공통적인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는 중남미를 경제적 결속 뿐아니라 장차 정치적 사회적 결속으로까지 이어갈 가능성도 보이고 있다. ○국영기업 민영화 중남미 각국은 군부독재정권의 경제정책실패로 경제파탄의 상황에까지 처했으나 80년대 말부터 각국이 정치민주화를 통한 인플레억제,국영기업 민영화를 통한 재정적자감소등으로 상당한 극복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또 안정성장의 기틀도 잡아가고 있다.회복된 정치력에 국민들의 신뢰가 쌓인다면 천연자원을 바탕으로한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중남미의 재도약을 점치기에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탈냉전시대의 중남미 각국을 돌아보면서 기자가 느낄수 있었던 것은 개도국 근대화에 있어서의 해묵은 질문인 「정치민주화와 경제발전의 동시 추구 가능성」이었으며 특히 이점에서 한국을 「부러운 모델」로 바라보고 있는 그들의 뜨거운 시선이었다.
  • 문화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나(「6·29」그후 5년)

    ◎“탈이념물결”… 다양한 소재·목소리 분출/등록제실시로 출판사 3천곳 신설붐/월북작가 해금… 「해방공간」문학사 복원/사전검열 폐지따라 공연예술의 자유 만끽/TV방송 공·민영시대로… 지나친 상업주의 경계해야 문화는 자율성과 다양성의 토양위에서 꽃을 피운다.강압적 권위주의 시대에서 민주화·자유화시대로의 길을 연 6·29선언은 바로 기름진 문화의 토양을 제공했다.6·29선언 이후 지난 5년동안 우리 문화는 그동안의 편협성과 경색에서 벗어나 폭넓고 자유로운 창작활동의 꽃을 피웠다.월북작가작품 해금,무용 및 연극대본에 대한 사전심의제도 폐지,출판활성화 조치등이 6·29선언의 정신에 따라 이루어졌고 예술가의 상상력을 억압하던 온갖 금기에서의 해방과 함께 탈이데올로기 현상을 겪으며 우리 문화는 비로소 참된 다양성을 획득해 냈다. ▷문화부기자 방담◁ 김정열차장(부장급) 이헌숙기자(차장급) 윤석규기자 김성호〃 백종국〃 김균미〃 김동선〃 ­6·29선언은 문화·예술계에도 민주화의 바람을 몰고 왔습니다.문학·출판·미술·공연·방송·영화등 각 분야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특히 공연대본에 대한 사전심의 및 출판물납본제도 등을 통해 실질적인 사전검열이 행해져왔던 출판계와 공연예술계에 대한 영향은 대단했습니다. ­88년7월19일에 단행된 월북작가 작품 해금 조치는 그중 가장 뚜렷한 성과였습니다.6·29선언을 뒷받침하기 위한 88년 7·7선언의 후속조치로 나왔던 월북작가작품 해금조치는 박태원 이태준 임화 등 그동안 남한에서 접근과 출판이 용이하지 않았던 1백20여 월북문인들의 8·15이전 작품의 공식출판을 허용하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운동권」 예술성 회귀 ­6·29선언은 20년대 이후 해방에 이르는 한국문학사의 공백을 메워 불구의 문학사를 고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또 문화 각 부문에 만연했던 「정치적 기준」을 「문화적 기준」으로 대체하는 상징적 조치로서 이후 보다 개방적인 문화 흐름을 선도하는 이정표가 되었습니다.운동권 문학에 있어서의 문학성의 강조경향,포스트모더니즘 문학 열기 등도 국제정치환경의 변화와 함께 6·29선언으로 인한 자유화의 진전등 국내상황변화에 크게 힘입은 사례들로 지적될 수 있습니다. ­출판계의 민주화는 먼저 출판사의 폭발적인 증가로 나타났습니다.87년10월이 지나면서 명실상부한 등록제가 된 것입니다.신고만 하면 출판사를 설립할 수 있게 된 거지요.80년이래 허가제의 내용을 갖는 이름뿐인 등록제가 자리를 잡은지 8년만의 일입니다.이를 계기로 6·29선언이 있기 전해인 86년말 2천6백여개에 그쳤던 출판사 수가 87년말 3천4개,88년말 4천3백97개,89년 5천97개로 늘었으며 현재는 2배에 가까운 6천개에 육박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88년12월 문화부는 공연법 시행령을 고쳐 20년동안 표현의 자유 시비를 불러 일으켜온 무용 및 연극대본에 대한 사전심의제도를 폐지했습니다.마침내 공연예술계가 공연소재와 표현방식 등 공연물에 대한 자율성을 실질적으로 확보하게 된 것입니다.이는 공연당사자들이 공연작품에 대한 한계를 미리 설정해 놓고 작품을 구상·준비해 오던 때와 비교해 볼 때 한결 자유롭게 하고 싶은 작업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입니다.작업에 대한 자율성 확보와 함께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책임을 져야하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 비로소 적용될 수 있게 된 셈이지요.이에따라 체제비판적이거나 외설적인 내용 등을 이유로 공연이 금지됐던 「오장군의 발톱」(박조열작)「금지된 장난」(김훈작)「춤추는 인형들」(엄한얼작)등과 같은 작품들이 공연돼 공연의 다양화를 가져왔습니다. ­각 대학의 학생미술운동도 6·29선언을 계기로 활성화됐습니다.또 문예진흥원 등 관계당국은 행정적인 차원에서 과거 「민중미술」을 이끌어온 「현실과 발언」,민중미술협의회 등에 전시지원을 했습니다.6·29선언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요. ○군·빨치산소재 등장 ­영화와 방송분야도 6·29선언의 덕을 톡톡히 누리게 됩니다만 다른 분야에 비해 두드러진 대중성 때문에 표현의 자유가 제약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출판·학술 분야의 민주화는 분명 6·29선언에서 시작되었으나 구소련 및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의 몰락 또는 개방까지기다려야 했습니다.출판사들의 등록이 자유로워졌고 이에따라 각종 출판물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실정법 위반 시비는 당연한 것이기도 했습니다.정치적인 결단인 6·29선언에 따른 입법조치가 아직 완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공연예술계는 자율화의 혜택을 크게 누렸습니다.정부는 제도권 밖의 「민족극」극단의 활동에도 관용을 보였습니다.이에따라 그동안 제도권내에서 유일하게 사회비판적인 내용의 창작극만을 공연해온 극단 연우무대가 설 자리를 잃고 새로운 위상을 모색해야 하는 재미있는 일도 벌어졌습니다.어떻든 공연여부로 화제를 모았던 극단 아리랑의 「아버지의 해방일기」와 「격정만리」등도 무난히 관객들의 앞에 올려졌습니다. ­6·29선언에서 비롯된 문화 전반의 민주화·자율화 분위기는 결국 문화의 다양화에 기여했습니다.문학·방송·미술·공연·출판·학술 등 모든 분야에서 다양한 목소리들이 분출되고 있습니다. ­문학의 경우만 해도 많은 소설가들이 그동안 금기로 되어왔던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김신의 「쫄병시대」,복거일의 「높은 땅 낮은 이야기」,고원정의 「빙벽」등 88년부터 쏟아져 나왔던 군병영을 소재로 한 소설들이 군의 비리까지도 일정부분 소설화했던 현상은 6·29선언 이전과는 확연히 차이나는 것입니다.그리고 분단이나 빨치산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에서 좌익의 시각을 과감하게 수용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이밖에 운동권 문학에서도 문학성을 강조하는 추세로 돌고 있습니다. ­6·29선언 뒤 몇년동안 북한원전과 기행문,마르크스·레닌 원전 등은 출간붐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그 결과 탈이데올로기 현상이 빚어졌고 동유럽 공산국가의 몰락으로 이념서적의 인기가 급락하고 말았습니다. ­90년대 들어 미술분야에서는 「민중작가」가 아닌 일반작가들도 통일문제를 들고나와 나름대로 이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소재로 삼는 대상이 다양해진 것이지요.이에 비해 「민중미술작가」들은 과거에 비해 그림들이 예술적으로 순화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철학적·미학적으로 자기반성하는 자세를 가지면서 과거처럼 급진적이고 지나치게 선동적인 모습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오랫동안 금기로 여겨왔던 사회고발영화와 농도짙은 성애영화가 대거 등장한 것도 이 시기입니다.5공의 비리를 핵심권부에 맞춰 그린 정치소재의 「서울무지개」(감독 김호선)와 성을 소재로 한 「매춘」(감독 유진선)이 대표적인 작품입니다.또 「전쟁과 평화」「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국두」 등 구소련과 중국영화들이 국내극장가에 처음 나붙게 됐습니다.6·29 이후 본격화된 북방정책의 결과이지요. ○특수방송 잇단 설립 ­외형적으로 공영체제가 허물어지는 흐름에서 평화방송 교통방송 불교방송 등 특수방송이 잇따라 설립됐으며 지난해 서울방송 라디오·TV개국으로 공·민영 혼합체제가 구축됐습니다.또 토론프로그램이나 코미디·드라마 등에서 비판금지대상이나 소재의 벽이 허물어져 다양한 프로그램의 제작이 가능해졌습니다. ­통일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민족동질성의 뿌리를 찾아내기 위한 당국의 배려도 이젠 많이 늘어났다고 봅니다.올상반기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북한미술전이 그 한 예입니다.북한의 화가들이 작업한 수많은 원화들을 일반인들이 여과없이 접할 수 있었다는 건 큰 변화가 아닐 수 없죠. ­공산권의 붕괴와 함께 북방과의 문화교류도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종교계의 경우 지나친 북방선교가 문제가 될 정도로 적극적인 북방진출이 이루어졌지요. ­자율화 민주화 과정에서 지나친 상업주의에 의한 문화왜곡등 부작용도 없지 않았습니다.올해들어 방송위원회가 대폭 개정한 방송심의규정은 자율화·민주화의 한계는 과연 무엇일까 하는 점을 생각하게 해줍니다.이번 개정에서 오히려 내용이 강화된 것으로 ▲인권 보호 ▲방송언어의 순화 ▲광고의 국민건강을 위한 규제가 들어 있습니다. ­아무튼 6·29선언은 그 시행과정에서 많은 과제를 노정시켜왔으나 문화의 다양화 작업을 가능케했으며 탈이데올로기에 따른 한민족 문화의 뿌리 찾기등 값진 성과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이같은 변혁은 바로 우리 문화의 총량을 제고하는 귀중한 계기였다는데 아무도 이의를 달 사람은 없습니다. ◎전문가 평가/김윤식 문학평론가/자율성의 참뜻 되새길때 6·29선언이 5공화국에서 6공화국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였음은 모두가 아는 일이다.8개항으로 된 이 선언을 검토해보면 한갓 시국수습안의 일종이었음이 드러난다.이점에서만 보면 그것은 시류적인 성격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문건이다.그러나 좀 자세히 살펴보면 거기에는 국민대단합이라는 커다란 명제가 놓여있다.국민대단합이라는 명제를 내걸었다는 것은 그것이 당시의 제일 중요한 과제였음을 새삼 말해주는 터이다.무엇이 국민대단합을 저해하고 있었던가.8개항의 수습책이 달성되지 않는 한 국민대단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8개항을 수습할 수 있는 기본항이랄까 원칙이란 무엇일까.이렇게 물을 때 우리는 쉽사리 그것이 자율성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사회 각 부문의 자치와 자율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합니다.각 부문별 자치와 자율의 확대는 다양하고 균형있는 사회발전을 이룩하여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믿습니다」라고 말해진 것은 8개 수습항목중 6번째에 해당되는 것이다.그러나 이 항목이 실상 6·29선언의 으뜸 항목임은 일목요연하다. 자율성의 원칙이 모든 문제해결의 기본항을 이룰 때 어떤 사회도 상당한 혼란을 면하기 어렵다.국가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의해 사회적 욕망분출이 조정되던 사회보다 자율성으로 그것을 해결하는 사회가 한층 바람직한 것이라면 그 바람직한 사회의 도래를 위해 상당한 기간의 혼란은 불가피한 법이다.이 원칙이 세계사의 변화라든가 후기 산업정보사회의 급속한 진전과 더불어 5년간을 두고 알게 모르게 실천되었음은 모두가 아는 일이다.이 자율성의 달성이 얼마나 소중한 과제였는가는 6·29선언에서도 지적된 물가안정이라든가 흑자경제 등 5공화국의 치적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위협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음을 보아도 알 수 있는 터이다.6·29선언이 단순한 시국수습책에 멈추지 않는,역사적인 문건으로 평가되는 참뜻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자율성을 기반으로 하는 역사전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야가 문화(문명)쪽이라는 사실은 새삼 강조해둘 필요가 없을까.문화란 개성에 바탕을 두는 것이며 따라서 무정부주의적인 성격으로 규정된다.자율성이 조금도 억압되지 않는 사회만들기야말로 문화의 방향성이라 함은 이를 가리킴이다.이 점에서 6·29선언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 지향성의 표현이었다.기업문화,정치문화,교통문화 등의 표현이 가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그렇다면 새삼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는 이러한 자율성이 후기 산업사회 속에서 얼마나 지켜질 수 있느냐에 있다.그동안의 자율성의 옹호가 문화의 특성을 유감없이 드러내었음이 사실로 인정되지만 동시에 그것에 포위되어 위기를 맞이하고 있음도 사실로 인정되는 터이다.문화창출의 자율성이 문화유통의 자율성(상업주의)에 의해 좌우될 때 문화가 도리어 위협받게 되는 것,이 이율배반 앞에 놓인 것이 자율성을 기반으로 한 6·29선언의 한가지 귀결이다.자율성,그것은 문화쪽에서 보면 해결하기 어려운 일종의 배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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