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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박물관’ 시리즈 첫권 ‘해학과 익살의 탈’

    해학과 풍자의 한마당인 가면극은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이다.양반을 조롱하고 지배계급의 권위의식을 비판하는 말뚝이의 해학적이고 날카로운 풍자에서 서민들은 ‘현실의 억압’을 잠깐 잊는 자유를 즐겼다.이러한 전통 탈을 볼 수 있는 탈 박물관을 소개한 ‘해학과 익살의 탈’이라는 책이 나왔다.(문예마당 1만4,800원). 이 책은 ‘한국박물관연구회’(회장 정인수)가 펴내는 ‘한국의 박물관’시리즈 첫 작품이다.박물관은 전통문화의 숨결과 우리의 정신이 살아 있는지혜의 보고이다.단순히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옛날의 삶과 문화에서 교훈을 얻고 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배움의 문화공간이다.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전통문화를 외면한다.박물관 시리즈는 말뚝이의 현실 비판처럼 전통문화를 잊어가는 한국 현대인에 대한 비판이라는 역설적 상징성을 담고 있다. 갈촌탈박물관,하회동탈박물관,공주민속극박물관을 소개하는 이 책은 아카데믹한 학술서가 아니라 발로 뛴 현장보고서라 할 수 있다.학문적 깊이 보다는 현장의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 책은 박물관에 전시된 중요 소장품들을 역사적 배경 및 ‘탈춤’ 공연과 연계시켜 설명한다.300여장의 컬러사진을 곁들여 실제로 탈을 보는 것같은문화체험을 할 수 있다. 경남 고성에 있는 갈촌탈박물관(관장 이도열)은 신앙탈을 많이 갖추고 있어 우리 탈의 기원을 엿볼 수 있는 박물관이다.경남 지역의 대표적 탈놀이인‘고성오광대’의 말뚝이·문둥이·비비·초랭이 등 중요 배역의 탈들과 12개 무형문화재에 쓰이는 탈들도 골고루 전시하고 있다. 경북 안동에 있는 하회동탈박물관(관장 김동표)은 우리가 흔히 탈춤이나 민속연극에서 볼 수 있는 예능탈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탈 예술의 극치를보여주고 있는 하회탈은 국보 제121호로 지정될 만큼 뛰어난 예술품이다.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의 방문으로 더욱 유명해진 하회동탈박물관에는 하회탈과 함께 양주별산대·송파산대놀이·봉산탈춤·은율탈춤·강령탈춤·동래야류·통영오광대·북청사자놀음 등의 한국탈의 대부분을 전시하고 있다.2층에 마련된 세계관에서는 30여개국의 다양한탈도 만날 수 있다. 충남 공주에 있는 공주민속극박물관(관장 심우성)은 여러가지 탈 뿐만아니라 꼭두각시 놀음 등에 사용되는 민속인형과 전통놀이에 쓰이는 각종 소도구를 전시하고 있다. ‘한국의 박물관’ 시리즈는 지난 10여년동안 한국박물관연구회 회원들이전국의 박물관을 답사한 결과를 책으로 담아내는 것이다.앞으로 2년동안 20여권을 발간할 예정이다.
  • “5·18은 세계 민주운동의 상징”

    - 金총리 19주년 기념식 참석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는 18일 “정부는 5·18 민주화운동을 광주만의 것이 아니라 자유와 정의를 사랑하는 세계 민주시민들이 우러러 지향해야 할민주주의운동의 상징으로 승화시켜 나가는데 힘을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총리는 광주 망월동 5·18묘역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19주년 기념식에 참석,“5·18 민주화운동은 폭력과 억압으로부터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의로운 시민들의 항쟁이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특히 김총리는 “그동안 우리는 5·18 민주화운동 특별법을 제정하고 5월18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광주시민들의 명예를 회복했지만 아직도 풀어야할 과제가 많다”면서 “정부는 5·18 민주화운동을 우리 민주주의 발전의살아있는 지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해오고 있는 여러분들의노력이 알찬 결실을 볼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지원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 정치권 ‘5·17’‘5·18’재조명 열기

    80년대 민주화의 열기가 17일 여의도에서 재현됐다. 당시 군사독재에 맞서 민주화투쟁에 몸바친 동교동과 상도동계 인사들이 이날 오후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의 이름아래 한자리에 모였다.지난 80년‘5·17 김대중(金大中)내란 음모사건’의 당사자와 가족도 이날 저녁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모임을 갖고 민주화 정신을 되새겼다. 민추협 기념식 민추협기념사업회는 민추협 창립 15주년을 맞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심포지엄 및 기념식을 가졌다. 김상현(金相賢·전민추협 공동의장 권한대행) 김명윤(金命潤·전민추협 부의장)의원은 기념사에서 “민추 승리의 원동력은 다름아닌 하나로 뭉쳤다는데 있다”며 “이는 앞으로도 우리의 값진 교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두김의원은 특히 “길을 달리하고 있더라도 모든 동지가 민추시절 처럼 뜨거운 동지애로 하나가 된다면 민추협은 과거와 현재에 이어 앞으로도 민주발전과 민족통일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정신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며 민주세력의결집을 호소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도 축하 메시지를 통해 “민추협은 지난 84년 자유와인권이 억압당하던 암울했던 시절에 김영삼,김대중이 앞장선 가운데 군사독재체제에 맞서 민주화의 등불을 밝혀들어 85년 2·12총선 선거혁명과 87년 6월 국민 대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이었다”고 회고했다. 고려대 강만길(姜萬吉)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1부 심포지엄에서 토론에서 참석자들은 민추협 정신의 계승과 현 정치상황의 극복 과제를 중심으로 의견을 주고 받았다.2부 기념식에서는 일부 고인이 된 민추협 출신 인사 유가족에게 민주화 공로패가 수여됐다. 행사에는 동교동과 상도동계 인사를 포함,모두 500여명이 참석했다.현역의원으로는 국민회의 안동선(安東善) 한광옥(韓光玉) 한화갑(韓和甲) 이협(李協) 김옥두(金玉斗) 남궁진(南宮鎭) 이윤수(李允洙)의원과 한나라당 신상우(辛相佑) 김덕룡(金德龍) 박관용(朴寬用) 서청원(徐淸源) 김무성(金武星) 박종웅(朴鍾雄)의원 등 20여명이 참석했다.김대통령은 직접 참석하지 않는 대신 축하 메시지를 전해왔다. ‘5·17 내란음모사건’ 재조명 지난 80년‘김대중(金大中)내란음모사건’의 연루자와 그 가족 30여명은 이날 모임에서 내년 사건발생 20주년을 앞두고 기념사업을 개최하는 방안을 논의했다.이날 모임에서 참석자는 사건 관련자의 회고록이나 민주화 운동 관련 사진을 모은 사진집을 출간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한 참석자는 모임 직후 “국민의 정부를 맞아 내란음모사건은 반드시 짚고넘어가야 할 과제”라면서 “사건발생 20주년을 맞아 내란음모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사건의 경위를 재조명하는 기회를 갖기로 했다”고 전했다. 박찬구기자 ckpark@
  • [외언내언] 청소년 노래방

    전세계적으로 가라오케 붐은 거의 폭발적이다. 우리의 노래방은 일본에서들여온 가라오케가 70년대 이후 우리 식으로 변질, 정착되기 시작했다. 가라오케가 술을 마시면서 공개된 장소에서 노래를 부르는 대신 노래방은 폐쇄된 공간에서 노래만 부르는 것이 다르다. 그래서 폐쇄된 노래방 공간은 청소년 비행과 성범죄의 온상으로 곧잘 지탄받기도 했다. 노래방협회에 등록된 노래방은 서울에만 약 6,500여곳. 그러나 그 이상의 숫자로 추정되고 있다. 가정의 달,청소년의 달인 5월을 맞아 규제개혁위는 내달 9일부터 만 18세이상의 청소년들도 보호자 동행 없이 노래방을 출입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대신 청소년이 출입하는 노래방에 대해서는 투명유리를 갖춘 별도의 청소년실을 설치한다는 것이다. 물론 규제나 억압보다 자유가 좋다는 것은 말할것도 없다. 더구나 청소년은 우리 사회의 싱싱한 구성원이다. 독립된 인격체로서 그들의 사생활은 보호돼야 마땅하다. 또한 그들만이 지닌 반짝이는 감수성과 창조성은 후기 산업사회 발전의 가장 중요한 동인(動因)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동안의 경제적인 어려움과 입시, 부모실직 등으로 움츠러들었던젊은 감성이 활짝 피어나는 계기가 된다면 노래방 출입은 얼마든지 환영한다. 노래를 부르는 것은 여가를 즐기고 스트레스를 푸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래방 출입을 허가하는 것이 청소년들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는 좋은일만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담배나 술을 마실수 있는 특정장소로제공되는 것이나 아닐지 걱정스러울 뿐이다. 경찰단속은 인원의 한계가 있고 업주와의 검은 거래의 빌미가 될수도 있다. 단지 기왕 청소년식 노래방이라면 투명하든 불투명하든 페쇄된 공간보다는드넓게 열린 노래광장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투명유리는 눈 가리고 아웅식이다. 현행 4㎡의 1실당 면적등 노래방에 대한 각종 시설 기준도 폐지된다면 노래방 면적은 더 작아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좁고 구석진 곳에서 어떤일이 일어날지는 예측불허다. 적당한 제재는 때로 상대방을 보호하고 든든하게 한다. 청소년도 자신에게 주어진 자율과 참여의 기회를 망치지 말고 이제는 툭 트인 열린 광장에서 떳떳하고 당당하게 그 시대에 맞는 청소년 노래문화를 새로 만들줄 알아야 한다. 노래방이 다시는 청소년 비행의 아지트로 연결되지 않도록 서로가 주의하고 경계하면서 청소년다운 기풍을 유도해야 한다. 그래서 자유를 베푸는 측과 자유를 누리는 쪽의 지혜와 판단이 서로 어우러져 건전한 여가문화로 정착되기를 바란다. 李世基논설위원 sgr@
  • ‘여성장애인‘ 주인공 김진옥씨

    서울여성영화제의 ‘더불어 보기’코너는 이 땅의 여성이 부딪치고 있는 문제를 진솔하게 다뤄 돋보인다.여성장애인(‘여성 장애인 김진옥씨의 결혼이야기’),일자리를 못찾는 30대 고졸 미혼여성(‘그녀의 하루’),가부장제 사회의 희생자인 모녀(‘모녀 참새의 하루’),며느리·아내·어머니 등 1인3역을 강요받는 맞벌이 여성(‘여자가 되는 것은 사자와 사는 일인가’)등을 앵글에 담아 울림이 크다.19일 상영한 김진열 연출의 ‘여성장애인 김진옥씨의 결혼이야기’는 두가지 문제를 동시에 포착,여성 장애인이라는 ‘이중의 소외’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담았다. 자신의 출연작품을 보고 나오던 김진옥씨(42)는 “실물보다 덜 이쁘게 나왔다”고 우스개 소리를 던진뒤 “개인 생활이 타인에게 노출돼 쑥스럽고 창피하기도 하지만 부부싸움 장면 등은 재미있었다”면서 소감을 전했다.작품은김씨가 뇌성마비 중증장애를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결혼,육아의 과정에 적응해 가는 과정을 통해 자기를 사랑하고 삶에 도전하는 진취적 자세를 담고 있다. “비록 40분짜리 다큐지만 이런 작업이 ‘여성 장애인’이라는 두가지 억압에 눌리는 사람들의 생활여건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촬영에 응했습니다”. 김씨는 앞으로 김진열 연출가와 함께 1년에 한두차례 계속 촬영할 계획이다.8개월된 서경이가 사춘기가 되어 장애인 엄마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됐으면 하는 게 바람이다.김씨는 이런 저런 사연과 바람을 21일 재상영뒤 ‘관객과의 만남’시간에 들려주었다. 이종수기자
  • 「오늘 ‘4·19’ 39돌」4·19세대-대학생 좌담

    4·19는 민주와 자유를 열망하는 지식인과 민중들의 힘이 폭발적으로 분출된 혁명이었다.하지만 39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4·19는 ‘미완(未完)의 혁명’으로 남아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정치·사회·문화적 갈등구조와 맞물려4·19정신이 우리 사회에 제대로 구현되지 못해 왔다는 것이다.4·19세대인이영일(李榮一) 국민회의 의원과 한영우(韓永愚) 서울대 인문대학장,고려대대학원 이준복(李準馥·신방과 석사 과정)씨와 연세대 손수진(孫秀眞·여·신방과 4년)씨의 좌담을 통해 4·19의 의미를 되새기고 4·19정신의 완성을위한 과제와 방안을 짚어본다. 이영일 4·19가 우리 정치사에 준 교훈은 4·19를 계기로 주권재민(主權在民)의식이 국민의 가슴 속에 자리잡았다는 사실입니다.또 우리가 미래에 구현해야 할 비전을 민주주의 형태로 완성했다는 것입니다.4·19가 ‘미완의혁명’이라고 불리는 것은 1년 만에 군사정권에 의해 붕괴됐기 때문입니다.4·19 이후 25년 동안 개발독재를 거치면서 4·19는 맥을 추지 못했습니다.국민이 국회의원을 바꿀 힘은 가지게 됐지만 정권을 바꿀 만한 힘은 갖지 못했습니다.그러다가 97년 12월18일 비로소 국민의 손에 의해 정권까지 바꾸게됐습니다.국민의 정부 탄생으로 비로소 4·19의 이념이 구현된 것이지요.그래서 4·19의 지향성이 국민의 정부에서 꽃피웠다고 봅니다. 손수진 ‘4.19세대는 없다’는 주장이 있습니다.4·19세대는 사회적으로영향력 있는 위치를 점하면서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는 지지를 보내지 않았습니다.그래서 4·19세대가 변절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영일 4·19때 반독재투쟁에 앞장섰다는 사실만으로 평생 투사로 살다 죽으라는 논리는 맞지 않습니다.백이(白夷) 숙제(叔齊)처럼 살 수는 없는 것이지요.물론 4.19때 불의에 저항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비판받아 마땅합니다.4·19가 민족 대 반민족의 투쟁이라면 불타협의 투쟁을 계속해야 하겠지요.4·19세대에 대한 평가는 당시 어떤 위치에 있었느냐를 기준으로 이루어져야합니다.4.19때의 활약상을 소개하겠습니다.나는 당시 서울대 문리대 수학과에 다니던 김치호라는 친구와함께 남산합창단 단원이었습니다.종로 5가에서 곤봉을 맞고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문리대 앞 쌍과부집에서 우동을한 그릇 먹은 뒤 그 친구에게 시위하러 다시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그랬더니 그 친구는 도서관에 가방을 가지러 간다고 하면서 경무대로 달려가 죽음을택했습니다.해마다 4·19묘소에 가면 그 친구의 묘에 꼭 들립니다. 한영우 나는 당시 서울대 사학과 4학년으로 후배들을 인솔해 시위를 했습니다.태평로에 있는 옛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할 때 외칠 구호가 없어옆에 있는 조선일보사에서 몇사람이 구수회의를 해 즉석에서 구호를 만든 일이 있습니다. 4·19는 준비된 혁명이 아닙니다.그래서 ‘미완의 혁명’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프랑스혁명은 계몽사상가들이 이념적 토대를 제공했고 지지세력도 있어 폭발적 힘을 발휘했습니다.하지만 4·19는 혁명 뒤에 이념이 만들어져 왔습니다.당시에는 합의된 이념이 없었습니다.막연한 애국심을 가지고 시작된뒤 나중에 학문적이고 이론적으로 다듬어지기 시작했습니다.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당,야당,재야,혁신에 이르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분화됐습니다.군사정권에 협조한 사람도 있고,군사정권에 대항해 옥살이를 한 사람도 있습니다. 4·19는 작게 보면 3·15 부정선거에 대한 저항이 도화선이 됐습니다.그러나 거시적으로 보면 선비들이 개혁의 선두에 나섰던 역사의 전통이 반복된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영일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에 살고 있습니다.4·19때 87달러에 비하면 엄청난 차이가 있지요.시민·사회단체,정당,이익집단,언론 등많은 집단이 더 이상 학생들의 신세를 지지 않고도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학생은 이제 국민의 울분을 대변하는 유일한 집단이 아닙니다.21세기는 정보화시대입니다.정보화에 관한 지식이 가장 중요한 재산입니다.후배 대학생들에게 경쟁력을 갖춘 신지식인으로서 각자 맡은 바 소임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한영우 4·19때 군이 중립을 지켰던 것은 연구 대상입니다.논문에 따르면부정선거와 발포책임자인 최인규 내무부장관 등이 김정렬 국방부 장관에게협력을 요청해 계엄을 선포했는데 국방부 자체가 협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승만(李承晩)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한 것은 미국이었습니다.미국이하야를 요구한 것은 이승만이 서구식 민주주의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승만정권은 한반도를 민주주의 진열장으로 만들려는 미국의 의도에 맞지않았습니다.더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한·미·일 연합방위체제를 구축하려는 구상에 맞지 않았습니다.이승만은 강력한 반일(反日)주의자였기 때문에일본과 손을 잡기를 꺼렸습니다. 이준복 현재 전체 대학사회에는 다양성이 이데올로기로 자리잡고 있습니다.학생운동에 대한 관심과 사회문제에 대한 참여도가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떨어집니다.이같은 변화는 93년 들어,특히 93학번부터 뚜렷합니다.90·91·92학번은 87년 6월항쟁의 경험이 있는 87·88학번이 군 복무 뒤 복학했을 때학교를 같이 다녀 80년대 학번들의 영향력 속에서 80년대의 정서를 지니고있습니다.그러나 93학번부터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합니다.이는 고교생 때부터 약자를 배려하는 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정의감은 정권을 가진 사람에게 억압당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고민입니다.그런데 이른바 ‘왕따’문화가 약자에 대한 배려를 없앴습니다.또 자기 자식만 생각하는 부모세대들의그릇된 생각과 모 재벌의 광고처럼 1등만 강조하는 분위기가 약자에 대한 배려를 약화시켰습니다.지금의 대학사회는 4·19와 70·80년대의 정신을 구현하려는 노력이 부족합니다. 손수진 4·19가 ‘미완의 혁명’이라는 의견에 동의합니다.혁명은 진보세력이 혁명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비로소 혁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4·19는 완성된 혁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지식인은 자기 만족에 빠져 자기들만의 우리에 갇혀 있었으며,민주화와 자립경제를 시급하게 수립해야 한다는 문제를 인식했으면 민중과 함께 제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력을 형성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한영우 4·19를 완전 성공으로도,완전 실패로도 보지 않습니다.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는 뜻입니다.4·19는 미성숙 상태에서 일어났으며 지금도 풀어가는 과정입니다.4·19에 0점을 주는 것은 너무지나칩니다.역사는 단번에 100점으로 갈 수 없습니다.현재는 100점으로 가고 있는데 60∼70점에 도달한 상태입니다.지나치게 허무주의적으로 보면 도그마(dogma)에 빠지게 됩니다.도그마에 빠지면 현실에 입각한 생존논리를 주체적으로 만들지 못하고 외래논리를 도식적으로 적용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이준복 해방 뒤 우리는 친일파와 변절자에 대한 청산 과정을 거치지 못했습니다.좌·우 이념대립이 반공주의로 나타나면서 청산의 문제가 흐지부지됐습니다.4·19 뒤 부정부패와 비리 청산이 다시 문제로 떠올랐지만 장면(張勉) 정부에서 청산이 되지 않았으며,군사정권이 들어선 뒤에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청산의 문제는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손수진 저는 4·19가 부패로 점철된 이승만정권을 물러나게 하고 사회운동이 조직화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합니다.한 교수께서는 4·19등 우리나라의 중요한 사건에서 지식인의 노력이 컸는데 지금의 지식인과 학생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한영우 4·19를 바탕으로 1년 앞으로 닥친 21세기의 우리 모습을 그려 나가야 합니다.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방적 민족주의입니다.우리 정서에 맞는 민주주의를 해야 합니다.신자유주의 경쟁원리도 적당한 수준에서 받아들여야 하지만 민족주의를 도외시해서는 안됩니다. 이준복 언론은 학생운동의 이념성을 걱정합니다.그러나 그 이념성은 4·19를 촉발한 정의감과 다르지 않습니다.다만 이념이 더 선명해졌을 뿐입니다. 저는 학생운동의 이념이 불순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손수진 학생운동은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폐쇄적인 면을 띠고 있습니다.운동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학생운동이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설득력을 잃어가는 이념을 고집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한영우 21세기가 문화의 세기라는 말에 동의합니다.21세기에는 사회과학적 이념보다 전통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 중요합니다.자애(自愛)의식을 기른 뒤 세계와 협력해야 합니다.그리고 전통문화를 정치·경제·사회 등모든 분야를이끄는 견인차로 승화시켜야 합니다.20세기 우리 전통문화를 무너뜨렸던 서양문명과 전통문화를 용해시켜 새 문명을 탄생시켜야 합니다. 이준복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사상적 스펙트럼이 보다 다양화돼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나는 사회주의자”라고 공공연히 언급할 수 있는 분위기가조성돼 있지 못합니다.하지만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을 포괄하지 못하면 4·19는 영원히 진행형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손수진 자라나는 세대들이 통일 후 ‘우리 민족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면 회의가 듭니다.교육을 통해 인도주의와 민족 동질성을 가르치고,통일이 앞으로 실현해야 할 미완의 과제라는 의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리 조현석 김미경기자 hyun68@
  • [리뷰]연우무대 ‘머리통 상해사건’

    극단 연우무대가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는 ‘머리통 상해사건’은 몇가지 점에서 눈길을 끈다. 미용실에서의 일어난 머리 상해사건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억압’의 실체를 드러내려는 발상이 돋보인다.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개인의 작은 진실이 왜곡되어도 좋으냐는 물음이 공감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직접적인 세태 고발이나 풍자가 통했던 ‘연우무대 1세대’ 시절과 달라진 요즘 세태를 극에 반영하려는 노력이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무대 오른켠 뒤쪽에 라이브 밴드를 배치하여 생음악을 연주한 것이나영화의 교차편집 기법을 응용한 장면 등은 연극의 속도감과 현장성을 살리는데 힘이 되었다.희미한 암전(暗轉)으로 어둠속 배우의 움직임을 드러냄으로써 해설자 없이 극이 진행된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아쉬운점도 있다.‘홀로 무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과 ‘그들만의 세상 읽기’를 작품에 투영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일까.기발한 무대장치와 잦은 장면 전환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산만하고 지루하다는 반응이다. 이는 장면 설정이 너무 많아 억압의 실체를 전형화하는데 실패한 탓으로 보인다.그 결과 풍자의 대상이 어디에 있는지 흐릿해지고 주제의 앙상한 뼈와신나는 음악만 남는다.연우무대의 트레이드 마크인 풍자가 약화되고 기법만춤을 추었다면 과장일까.그리고 주인공 민해영(백지원)과 구영해(손기호)의자의식을 보여주는 ‘무늬 남녀’의 배역설정도 진부해 보인다. 이제 갓 걸음마를 시작한 ‘젊은 연우무대’가 온전히 홀로설 것인지는 더지켜봐야 할 듯하다.16일까지.(02)744-7090이종수기자
  • [화제의 책]여성·몸·성/장필화

    전통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을 억압해온 본질적 실체는 무엇일까.여성의 ‘성’의 역할에 대한 전통적 인식과 오늘의 여성이 서 있는 자리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여성의 성이 남성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는 시각은 아직도 유효한 것인가. ‘여성·몸·성’(장필화 지음)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찾기다.이화여대 대학원 여성학 교수인 저자가 지난 10년간 다양한 동기에 의해 써왔던 ‘성’(sexuality)에 관한 글을 모았다.성에 관련한 여성해방론 같은 기본적 담론에서부터 남성 성문화를 중심으로한 한국의 성문화,국회 속기록내 매매춘관련 발언을 통해 본 여성정책 시각,성희롱에 대한 다각적인 이해와 대처방안에 이르기까지 대담하고 세밀한 시각으로 파헤치고 있다. ‘성과 여성’에 대한 여성학자들의 대담한 담론과 체계적인 연구는 지금까지 여성운동의 형태로 활발히 전개돼 왔고,이는 올해초 ‘남녀 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 통과같은 일단의 성과를 거두는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하지만 저자는 남성 뿐만 아니라 여성까지도 아직 남성이 여성보다 우선적인권리를 갖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임을 인정한다.그리고 그러한문제는 여성이나 남성 개개인의 선택이나 가치관의 문제가 아니라,그것을 틀지우고 있는 관념과 제도의 문제라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또하나의 문화 9,500원
  • [사설] 되새기는 復活의미

    부활절 아침이다.특정종교의 축일에 우리가 새삼 주목하는 것은 2000년대를 눈 앞에 둔 지금 이 시점에서 예수 부활이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金東完 총무는 부활절 메시지에서 “부활은 모든 암흑과 억압을 이기고 온 인류에게 자유와 평화,그리고 해방을 선포한 사건”이라고 말했다.일반인들도 예수 부활의 기독교적 의미를 떠나 올해 부활절을 절망을넘어선 희망을 일깨우는 계기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삶의 고비마다 겪는 고통과 좌절에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 설 수 있는 용기와 의지를 20세기의 마지막 부활절을 맞는 이 봄에 다짐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되리라고 본다. 우리는 지금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의 고통과 세기말의 혼란을 함께 겪고있다.경제위기의 어려운 고비는 넘겼다지만 아직도 수많은 실직자들이 실의에 빠져 방황하고 있다.실직자가 아닌 사람들도 오늘이 고달프고 내일이 불안하다.그럼에도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한 구조조정과 개혁 노력은 집단이기주의 때문에 여기저기서 발목 잡힌 상태이다.상호비방과 불법·타락으로 얼룩진 선거,파행국회만을 연출하는 정치권은 국민에게 절망감을 더해줄 뿐이다.물질만능주의와 퇴폐향락 풍조에 따른 도덕성의 타락도 심각하다.더욱 안타까운 것은 북녘의 우리 동포들이 굶주림으로 죽어 가고 있음에도 구호의손길을 내미는 일조차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사회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자본이익의 논리만을 앞세운 신자유주의로 빈부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민족간의 분쟁으로 세계는 다시 분열하고 있다.코소보 사태는 발칸반도를 또다시 세계의 화약고로 불타게 만들어 인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불러오지 않을까하는 염려를 안겨주고 있다. 이런 상황을 우리가 극복하기 위해서는 예수 부활을 우리 자신의 부활로 바꾸어나가야 한다.그 부활은 고난의 십자가를 함께 지는 데서 시작된다.우선1,200만명에 이르는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예수 부활을 입으로만 고백할 것이 아니라 나눔과 섬김,희생의 정신으로 사랑을 행동으로 옮긴다면 어렵고 가난한 이웃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즉남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세상,기쁨 뿐만 아니라 고통까지도 함께 나누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데앞장서야 한다.기독교인이 아니어도 자신의 삶을 한번 되돌아 보고 새로운삶을 준비하고 실천한다면 우리는 희망의 2000년대를 힘차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 [사설] 國保法 대폭 손질해야

    국가보안법을 대대적으로 개정하겠다고 법무장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하고,제네바 유엔 인권위원회에 참석한 외교통상부장관도 국보법 개정을 대외적으로 천명했다.이로써 국보법 개정은 움직일 수 없는 정부의 방침으로 굳어졌고개정작업도 속도가 붙을 것 같다. 정부가 출범 초부터 국보법 개정을 거론해 왔지만 너무 시일을 끈 느낌이다.남북 분단상황과 변하지 않은 북한의 대남 적화전략 그리고 그에 따른 국민 보수층의 정서를 감안해 국보법 개정에 대한 여론형성을 기다렸기 때문일것이다.그러나 시일을 끄는 바람에 유엔 인권위가 국보법으로 인한 인권침해에 대해 두 차례나 시정을 촉구하고 국제사면위가 한국의 인권상황 개선을내걸고 국제적인 캠페인을 벌임으로써 정부의 체면을 구겼다. 국보법을 대대적으로 손질해야 할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국보법은 그동안 국민의 인권침해와 관련해 숱한 논란을 불러 왔다.먼저 포괄적이고 추상적이며 모호한 조항이 많아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또한 역대 독재정권이 정권유지를 위해민주화와 통일에 대한 국민의 의사표시를 국보법을 악용해서 억압해 온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국내적으로 사회 각 부문의 민주화가 진전됐고,세계적으로도 인권이보편적 가치로 존중되는 시대가 됐다.또한 정부 차원에서 북한을 주권을 지닌 국가로 지칭하는 마당이며 빈번한 남북교류는 물론 금강산 유람선이 다니는 상황이다.시대의 진전에 발맞추기 위해서도 국보법은 대폭 손질돼야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은 북한을 ‘협력의 대상’으로 보는 남북교류협력법과 충돌한다.그 결과국가보안법이 엄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북 포용정책이 국민들을 혼란하게 하기도 한다.따라서 북한을 새롭게 규정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견해와 국민 일반의정서가 조화를 이뤄야 할 것이다.국보법을 손질하는 데 있어 북한을 이롭게하는 행위 전반을 처벌하던 법 구조를 ‘우리의 안보를 명백히 해치는 행위’에 한정해 처벌하는 구조로 바꾸자는 주장은 설득력을 지닌다.유엔인권위가 인권규약에 위배된다고 지적하고 있는 ‘찬양·고무죄’ ‘불고지죄’와‘통신·회합죄’ 등은 폐지해야 마땅하고,법 조항의 모호한 용어도 명확히해서 유추·확대해석을 막아야 한다. 정부는 남북환경과 세계의 변화에 발맞춰 국보법을 대폭 손질함으로써 국민의 인권을 한층 더 보장하고 대북 포용정책에도 추진력을 보태기 바란다.
  • [김삼웅칼럼]화해와 용서의 미학

    어느날 자공(子貢)이 “종평생(終平生)할 수 있는 준칙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어떤 말이 있습니까?”묻자 공자는‘기여호(其如乎)하라’고 가르쳤다. “용서하라”는 말이다.기독교의 정신도 ‘사랑과 용서’다. 불교를 비롯해모든 종교의 정신이 표현의 차이일 뿐 ‘사랑과 용서’를 본질로 한다. 3월1일 5·18민중항쟁 부상자와 유족 220여명이 광주항쟁 당시 진압부대인제3공수특전여단을 방문해 ‘화해의 만남’ 행사를 가졌다.이 부대는 광주항쟁때 도청 최종진압을 맡았던 부대다.그때 얼마나 많은 광주시민이 학살됐는지는 잠시 접어두자. 같은 날 전남·경북대생 220명이 상대편 대학에서 1년간 공부하기 위해 입교했다.이번 교류 학생들은 1년간 동일한 학칙을 적용받게 되고 기숙사 무료제공과 등록금 전액 면제혜택을 받게 된다.두 대학 학생들은 “영호남 화합디딤돌 될래요”라고 합창했다. 얼만전 영호남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모여 화합과 친선의 자매결연을 하고 언론사에 TK·PK·MK 등 지역갈등을 조장하는용어를 삼갈 것을 요청했다. 지난달 25일金大中대통령 취임 1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신안군 하의도 생가를 방문한 대구와 충북·강원지역 노인복지대학 노인들이 金대통령의 생가를 복원할 수 있도록 성금모금의 뜻을 밝혔다.노인들은 “하의도를 방문했으나 金대통령의 생가가 복원되지 않아 볼거리가 전혀 없어 실망스러웠다”며 관광객들이 섬을 찾았을 때 생가라도 보고 갈 수 있도록 복원을 위한 작은 정성을 모으기로 했다고 한다. 오는 6월에는 임진왜란 당시 한·일 양국 장군들의 후손 20여명이 서울에서 ‘화해의 만남’을 갖는다.이 행사에는 우리측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15대 후손과 서애(西涯) 유성룡의 14대 후손,일본측에서는 왜군 총지휘관이었던 우키다 히데이어(宇喜多秀家)의 15대 후손과 경남 사천성 전투의 왜장 시마쓰 요시히로(島津修久)의 14대손 등이 참석한다.일본은 지난해 10월8일 金大中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과거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처음으로 문서를 통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 金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햇볕정책을 통해 포용론과 화해정책을 펴고 있다. 금강산 관광길이 열리고 판문점으로 ‘소떼’가 올라갔다.17명의 장기수도석방됐다.玄勝鍾전국무총리가 “나는 일본군 장교였다”는 부끄러운 과거를고백하면서 용서를 빌었다.李會昌한나라당 총재는 ‘상생(相生)의 정치’를제창했다. 화해와 공존의 정치를 의미한다. 한국 근현대사는 국가적으로나 국민에게 겪기 어려운 고통과 시련을 안겨주었다.망국과 분단과 전쟁과 독재와 민주화과정에서 숱한 죽임과 억압,대결과 갈등을 빚었다.이념싸움과 노선투쟁·지역대결과 내부갈등이 그치지 않았다.이런 와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찢기고 갈라지면서 원(怨)과 한(恨)을 남겼는지는 긴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친일파 문제를 비롯해 독재청산,의문사와 각종 의혹사건 등 청산하고 밝히고 정리해야 할 ‘역사의 빚’이산적해 있다.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는 말이 있다.원수는 잊기 어렵지만은혜는 쉽게 잊는다는 말이겠다. 원도 많고 한도 많은 민족이기에 최제우 선생은 일찍이 ‘해원상생(解寃相生)’을 제창했던 것이다.20세기 원한의 매듭을 모두 풀고 새 천년을 맞았으면 한다.더구나 지금은민족의 대시련기다.민족적 시련과 대결을 화해와 용서로 풀고 남북과 동서가 공생하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햇볕정책을 통해 북을 포용하고 지역차별금지법을 제정해 동서가 화합하면서 국난을 극복하고 새 세기,새 천년의 세계무대에 당당하게 나갔으면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해자들,기득권자들이 참회할 것은 참회하고 용서받을 일은 용서받아야 한다.또한 정치인들이 적대의식과 지역감정에서 해방돼 화해와 용서의 선도자가 돼야 한다.“국민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정치”(네루)라고 하지 않던가.전직 위정자들을 포함,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국민에게 위해를 가한 인사들은 이 기회에 참회하면서 국난극복에 동참했으면한다. 물론 인간적 동정이나 용서와 역사적·사회적 평가를 혼동해서는 안될 것이다.또 원칙없는 온정주의로 쉽게 잊고 용서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그렇지만 화해와 용서는 인간의 환치할 수 없는 불변의 가치이고 삶의 미학이 아닐까. 주필 kimsu@
  • 재일교포 인권운동가 徐勝씨“모국방문중 사면·복권돼 기뻐”

    ‘비전향정치범’으로 19년동안 형을 살다 지난 90년 석방됐던 재일교포 국제인권운동가 徐勝씨(54·일본 리츠메이칸대학 법학과교수)가 최근 한국을찾았다.서씨는 지난 71년 동생 俊植씨(인권운동사랑방 대표)와 함께 이른바‘재일교포 학원침투간첩단사건’의 주범으로 체포돼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중 ‘비전향정치범’으로서는 최초로 석방됐다. 그에게 씌워졌던 혐의는 서울대 안에 지하조직을 만들어 군사훈련 반대와박정희 정권의 3선개헌 반대를 배후 조종했다는 것. 조사과정에서 견디기 어려운 고문을 받던 중 ‘살아서는 도저히 고문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고문기술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난로의 석유를온몸에 뿌리고 불을 붙여 분신자살을 기도했다.몇 차례의 수술끝에 겨우 ‘사람모습’을 되찾았지만 “원자탄으로 타들어간 들판처럼 타 문드러진 나의 얼굴”이라는 서씨의 표현처럼 그의 얼굴은 아직도 흉한 모습이다. 이번 그의 방한은 지난 94년 일본에서 나온 옥중기의 한국어 번역판 ‘서승의 옥중 19년’(김경자 옮김,역사비평사)출간이 계기가 됐다.출국 전날인 지난달 27일 서울대 호암관에서 그를 만났다. ▒방한 목적과 소감은. 옥중기 출간을 기념하고 서울대학과 ‘한·일간의 법과 정치제도 비교연구’라는 공동프로젝트를 협의하기 위해 왔다.28일은 내가 출소한 지 꼭 9년째 되는 날인데 한국 체류기간중 3.1절 특사로 나의 사면·복권이 이뤄져 더욱 기쁘다. ▒비전향정치범 출신으로서 이번 비전향장기수 17명의 추가석방을 어떻게 보나. 옥중에서 만났던 ‘선배’들의 석방소식을 듣고 반가워 봉천동 ‘만남의 집’을 찾아가서 만나봤다.이제 늙고 병든 그들에게 남북한 당국의 선처가 있기를 바란다. ▒‘옥중기’는 언제,어떻게 집필했으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94년 일본에서 수술을 받으면서 친구의 권유로 병실에서 오른쪽 손가락 하나로 컴퓨터에 담기 시작했다.옥중에 있을 때 집에 보낸 편지,가족의 면회기록 등을 참고해 옥중생활을 재구성한 것인데 더러 희미한 부분은 출소자들을 인터뷰해서 보충했다. ▒94년 일본에서 ‘옥중기’를 냈을 때의 반응은. 그동안 약 5만부(5쇄)가 판매됐다.독자의 편지만을 모아 다시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석방된 후 뭘 하고 지냈나. 석방직후 일본에서 타이완(臺灣) 정치범 출신 모씨를 만나면서 동아시아의억압받는 민중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97년 타이완에서 개최한 ‘동아시아 냉전과 국가테러리즘’심포지엄과 이듬해 제주도에서 개최한 ‘제주4·3’ 심포지엄은 모두 이같은 취지에서 조직한 것이다.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남북의 분단,중국과 타이완의 분단,일본과 아시아 국가간의 갈등 등 ‘분단문제’를 집중 연구할 계획이다.금년에는 오키나와에서 주한미군범죄를 주제로 제3회 국제심포지엄을 열 계획이다. 서씨는 출소 후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재직하기도 했으며 지난해부터 리츠메이칸(立命館)대학에 재직중이다.
  • 특별기고-환경문제와 위험사회/문석남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

    산업화는 인류의 생활조건을 크게 개선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켜 왔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을 수반한 것도 사실이다.더는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방치할 수 없게끔 세계적인 관심이 고조되면서 1992년 세계 정상들이 국제회의를 소집하여 채택한 것이 이른바 ‘환경과 개발에관한 리우선언’이다. 이 선언의 기본정신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삶을 강조하고,지속 가능한개발을 위해서 환경보호를 개발 과정의 중요한 일부로 간주하며,개발의 권리는 개발과 환경에 대한 현세대와 차세대의 요구를 공평하게 충족할 수 있도록 실현돼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 사회학자 ‘올리히 벡’은 산업사회를 ‘위험사회’로 규정하고,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을 위험사회의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다.환경문제가 심각한 정도에 이르게 되면 인간의 감각체계를 무력화시키고 산업적 진보에 대한 확신과 합의를 붕괴시키며,전체 사회구성원을 공포의 공동체 내에 평준화시킴으로써 일상생활의 건강과 ‘삶의 질’은 물론 전체 사회체계와 기능을 결정적으로 위협하는 상태로 치닫게 된다. 한국의 경우도 환경문제의 심각성은 예외가 아니다.우리들은 이미 광양만화공단지,안산의 시화호,온산지역의 환경오염과 낙동강 폐놀유출사건 등을계기로 환경문제가 곧 생존에 직결된 심각한 사회문제라는 인식을 공유하게됐다.그리고 공기,물,토양 등이 날로 오염되고 있다는 사실도 익히 알고 있다. 산업화 과정에서 성장 위주의 개발독재는 자연환경 보존을 소홀히 했고,국민의 환경의식과 환경운동을 독재적인 방법으로 억압했기 때문에 한국의 생태계 훼손과 환경오염은 산업화 정도가 비슷한 여타의 나라들에 비해서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돼 왔다. 한국 사회도 위험사회로의 진입을 예고하는 여러 형태의 징후군이 표출되고 있다.이러한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정부와 산업체,그리고 국민 모두에게 연대적으로 귀속되지만 정부와 산업체의 책임이 훨씬 더 크다는 점을 지적하지않을 수 없다. 우선 정부 환경정책의 미숙이다.정부에는 환경부가 있지만 환경문제에 관한 중·장기 마스터플랜을 세워 국민의 공감을 살 수 있는일관된 정책을 추진한 적이 거의 없다.오염을 예방하고 제거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근본대책없이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임기응변식의 미봉책으로 대처해온 것이 환경정책의 현주소다. 산업체도 환경문제에 관한 사회적 책임과 기업윤리를 성실히 준수해야 한다.환경정화시설에 투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의 준칙을 무시하고 벌과금으로 대체하는 악습과 감시망을 피해서 오염물질을 불법방출하는 무책임하고비윤리적인 산업체는 국민의 이름으로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환경단체와 시민들이 연대하여 심각한 환경오염 유발업체를 패쇄시킨 선진국 사례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때이다. 시민들도 이제는 스스로 환경오염의 유발자라는 새로운 환경의식으로 거듭나야 한다.정도 차이는 있지만 모든 시민이 환경오염의 유발자임에는 틀림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염 책임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거나 집단이기주의에편승하여 타 지역으로 피해를 전가하려는 왜곡된 환경의식은 공동체의 연대책임으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새로운 밀레니엄이시작되고 21세기의 한국은 환경문제 때문에 발생하는 위험사회의 위협에서 반드시 해방돼야 한다.그리하여 환경이 복지권으로 보장되고 문화적 다양성이 꽃피는 환경친화적 문화국가의 면모를 갖춘 사회상(社會像)이 이룩되기를 기원한다.
  • 국민의식수준과 詩의 관계

    새해를 맞았는데도 사람들 마음이 밝지만은 않은 것 같다.작년 한 해 너무나 고생스러워서 그런 걸까.우리를 강타했던 IMF상황에 대해서는 경제,사회,문화 각 분야의 분석이 이루어졌다.접근방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이우리 사회의 총체적 위기라는 것,그리고 우리나라의 개별적 사안이 아니라전 지구적 차원에서 구조적으로 얽혀 있는 문제라는 인식에는 대체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시야를 넓혀 살펴보면 이 문제는 지금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 노선과 연관되어 있으며,복잡하게 얽혀 있는 탈(脫) 근대이데올로기들의 각축전과도 관계되어 있다.그러나 20세기를 지배했던 민족국가들의 상호경쟁과 냉전이데올로기 대신 어떤 이데올로기가 등장할지 아직은 미지수다.대부분의 서구학자들은 ‘근대가 끝났다’는 명제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근대의 종말은 서구 이야기이지 우리 이야기는 아니다.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근대의 청산’이 아니라 ‘근대의 심화’이다.우리 사회어느 분야도 모순을 드러낼 정도로 심화된 근대적인 합리적 이성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그런 형편에 우리 사회 안에서는 무책임한 서구 추구주의자들에 의하여 무수한 ‘탈근대’ 담론들이 밀어닥쳐 우리 사회가 지금 필요로하는 맥락의 발생을 억압하고 뒤틀었다.이 ‘포스트’ 유령들은 특히 문학계를 비집고 돌아다녔다. 한 나라의 문학은 국민이 확보하고 있는 정신 수준의 지표이다.참된 문학정신은 사회가 지금 무엇을 요청하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우리나라의 순수문학이 지금 우리 사회가 얼렁뚱땅 진도를 떼어먹은 심층 근대성을 발생시키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소설보다도 시 쪽의 성취가 훨씬더 뚜렷해 보인다. 심층 근대성이란 아주 간단히 끊어 말하면 ‘자아의식’,즉 ‘내가 누구인지,내가 무엇을 하는지 아는 의식’으로 구성된다.그런데 그 의식은 현대 철학자들이 누누이 보여준 것처럼 언어를 통해 구성된다.따라서 현대사회에서문학,그 중에서도 ‘시’는 단순한 ‘읽을 거리’나 ‘감상적 오락거리’가아니다.그것은 한 나라 의식의 정수이다.그런 의미에서 한 나라의 최고 수준의 언어는 언제나 치밀한 분석 대상이 되어야 한다. 시 전문 월간지 ‘현대시’의 지난 1월호에는 시인들의 분노에 가득찬 목소리가 실려 있다.시인들은 무관심과 홀대에도 불구하고 물질적 근대성만 쫓아다니느라 부실해진 조국의 정신을 심화시키기 위해서 애쓰고 있다.그러나 대중도,비평가들도 시를 외면하고 있다.시인들은 시가 돈이나 명예가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다.우리 사회가 자신의 부박함을 극복할 수 있는가장 확실한 정신적 인프라 가운데 하나를 내팽개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심화된 근대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앞으로 눈먼 장님처럼 세계의잔칫상의 부스러기나 구걸해 먹게 될 것이다.또 돈을 벌 수 있다한들 이제밀어닥칠 21세기의 문화의 파도 앞에서 어릿어릿 뭐가 뭔지 모르고 헤매는‘문화적 백치’가 될 것이다. 시에 관심을 가지기 바란다.시인들이 고독 속에서 써내고 있는 시 속에 21세기가 선택해야 할 새로운 패러다임이 들어 있다.한국 시인들은 이미 세계적 수준의 시들을 써내고 있다.
  • 金三雄 칼럼-장면박사 출생100년

    “자기의 명성이 자기의 진실보다 더 빛나지 않는 자는 축복이다”―인도시인 타고르의 말을 올해 출생 100주년을 맞는 제2공화국 張勉총리에게 드리는 헌사로 삼으면 어떨까. 격동의 현대사에서 장면박사처럼 잘못 평가된 정치지도자도 흔치 않다. 그가 이끈 야당과 시민 학생에 의해 타도된 독재자나 합법정부를 쿠데타로 전복한 군사독재자가 ‘존경받는 인물’의 상위를 차지하는 반면 인격적이고도덕적인 품성과 자질로써 ‘단군 이래의 자유’와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동시적으로 추진하다 좌절한 민주지도자는 망각되고 있다. 이것은 5·16이래 거듭된 군사쿠데타와 그 아류 정권에 의한 ‘승자의 기록’의 결과이지만, 진실을 탐구하고 가르치는 학자·교사·언론인들에게는 수치스러운 일이다. 한국역사상 최초로 성공한 4월 시민혁명으로 출범한 장면정권은, 프랑스대혁명이 입헌군주주의자와 시민계급, 온건파와 과격파싸움으로 나폴레옹쿠데타를 불러오고, 독일 바이마르 공화정이 ‘지구상에서 가장 자유로운’사회를 구현한다면서 극좌·극우싸움의 혼돈끝에 히틀러 나치스를 맞았듯이, 집권8개월만에 박정희쿠데타로 붕괴되었다. [인간 장면의 인품] 역사상 대부분의 시민혁명이나 개혁이 쿠데타나 반동세력에 의해 좌절된 것처럼 장면정권 역시 5·16쿠데타를 겪게 되고, 이런 과정에서 그는 무능과부패의 상징으로 낙인찍혔으며, 독재자들이 역사인물로 격상되는 가치전도현상이 나타났다. 우리 현대사나 국민정신면에서 대단히 부끄러운 모습이다. 장면박사는 인격적으로 매우 훌륭한 분으로 평가된다. 한없이 온후하고 어진 분으로서 인자하면서도 강직하며 사려깊은 분이었다. 외유내강의 독실한신앙인이고 지식인이었다. 그는 ‘각하’의 호칭보다 ‘장박사’로 불리기를 원했으며 집권 8개월 동안‘단군 이래의 자유’로 불릴만큼 민주주의를 허용했다. 물론 무질서와 정치사회적 혼란이 따르기도 했지만 오랜 억압구조에서 시달리던 국민에게 과도기적 현상이었다. 반민주행위자와 부정축재자의 처단등 4·19혁명과업을 수행하는 데 너무 미온적이었다는 비판도 따른다. 그러나 독재정권에 대한 안티테제로 등장한 정권으로서의 시대적 한계와, 민주정치 제도에서 가장 운영이 어렵고 높은 민도와 양식있는 국회의원들을 전제로 하는 의원내각제에 발이 묶여서 과단성있는 정책을 추진하지 못한 제도적 한계도 따랐다. 여기에 야당의 사사건건 발목잡기와 이상주의적 조급성에 기운 혁신계와 일부 지식인·학생들의 급진적 통일론도 장면정권 좌절의 요인으로 지적된다. [재평가와 교훈찾아야] 장면은 비록 군인들에게 탈권당한 비운의 정치인이지만 그가 한국현대사에남긴 족적은 너무 크다. 무엇보다 제3차 유엔총회 한국수석대표로서 대한민국정부가 한반도 합법정부로 유엔의 승인을 받는데 기여한 일이다. 또 6·25전란 당시 주미대사로서 유엔군 참전을 위해 발휘한 역량도 큰 업적이다. 특히 민주당을 결성하여 이승만정권으로부터 암살 저격까지 받으면서 끝까지 반독재투쟁을 벌인 것이나, 집권기 혼란속에서도 일관되게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고 경제개발계획을 착실히 마련한 것등은 큰 업적이다. 그러나 교과서적 민주주의나 미온적인 시국 대처는 프랑스혁명기와 독일 바이마르공화정 시기처럼 반동세력에게 기회를 주게 되고 결국 역사를 후퇴시킨 행위로서오늘의 김대중정부에도 교훈으로 남는다. 곧 시작될 대한매일의 ‘제2공화국과 장면’연재는 장면박사의 재평가를 통해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잡고 제2공화국 좌절의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자는데 있다.
  • 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17회)-’해방전후사의 인식’

    역사는 늘 권력을 잡은 자의 기록이 되기 쉽다.권력자는 때로 역사를 왜곡해 왔다.그 결과 세계사의 적지 않은 부분이 정직하지 못한 역사로 얼룩져있다.한국의 현대사도 독재권력에 의해 왜곡됐다.그러나 엄혹한 독재상황에서도 민족의 일그러진 역사현실을 극복해 보려는 의식있는 지식인들의 행동은 끊이지 않았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라는 책을 낸 것도 진실을 밝혀 역사의 시계가 제대로 돌아가게 하는데 작은 동력이 되고자 하는 시도였다.송건호 선생 등 12명이 쓴 이 책은 1979년 10월 15일 한길사에서 펴냈다.당시 시대상황에서 이러한 책을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독재권력은 해방후 역사의 진실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했다.그러나 어려운 시대의 어둠을 논리적으로 밝히는 일이 필요했다.올바른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라는 책을 내기로 했다”고 그 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송건호 선생은 ‘8·15의 민족사적 인식’이라는 글에서 분단의 비극을 안타까와 했다.민족의 비극이분단으로부터 왔다고 생각하는 그에게 분단의 현실은 극복의 대상이었다.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남북갈등과 막강한군사력의 대립으로 언제 또 6·25보다 더 파괴적인 동족상잔이 빚어질지 모르는 불안하고 긴장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민주주의는 시련을 겪고 민족의 에너지는 새로운 군사력을 위해 소모 되고 있는 암담한 상황이 이른바 해방된 이 민족의 현실이다”. 그는 친일파가 다시 권력의 전면에 등장하는 부끄러운 현실과 분단을 권력유지에 이용하는 독재권력을 비판했다.“친일파 사대주의자들이 득세하여 애국자를 짓밟고 일신의 영달을 위해 분단의 영구화를 획책하여 민족의 비극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는 또 역사의 주체로서 민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민족의 참된 자주성은 광범한 민중이 주체로서 역사에 참여할 때에만 실현되며 바로 이러한 여건하에서만 민주주의는 꽃피는 것”이라며 대중이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송건호 선생의 글을 비롯한 이 책의 내용 대부분은 해방후 역사현실을 식민사관이나 독재권력의 ‘분단고착화’ 시각으로 보지 않고 분단을 악용하는독재권력,친일파 숙청작업의 좌절 등 해방전후의 역사적 사실과 그 전개과정을 사실적으로 썼다.그것은 현대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으로 역사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일이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세상에 나올 때는 유신독재가 말기현상으로 사회적 긴장과 불안을 고조시키며 비극적 몰락의 길을 재촉하고 있던 상황이었다.책이 나온 다음날 부마사태가 터졌다.유신정권의 억압이 한계상황에 도달한 것이다.불안한 긴장 속에 책은 빠르게 팔려나갔다.열흘만에 초판 5,000부중 4,500부가 팔렸다.사회과학서적이 그것도 500쪽이 넘는 책이 이처럼 폭발적으로 팔린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유신독재가 10월26일 궁정동의 총성으로 비극적인 막을 내리며 이책도 비운을 맞았다.계엄령이 선포되고 모든 출판물이 군의 검열을 받게됐다.당연히 군 당국은 이 책을 판매금지시켰다. 김언호 대표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한다.“79년 10월 28일 문공부로호출됐다.‘당신을 구속해야 하지만 처음이니까 관용을베풀겠소.다시는 이런 책 내지 마시오’라고 계엄사에서 파견된 한 문관이 말했다”. 판매금지 사유는 현실 왜곡·부정이었다.그러나 현실을 왜곡한 것은 책이아니라 독재권력이었다.역사를 제대로 보자는 책을 현실 왜곡·부정이라는억지 이유로 ‘금서’로 규정하는 현실은 일그러진 현대사의 부끄러운 한 단면이었다. 이 책은 80년 ‘서울의 봄’이라는 짧은 민주주의 실험때 판매금지에서 해제됐다.민주주의 실험은 강경 군부의 등장으로 광주민중항쟁이라는 또 하나의 비극의 역사를 만들어냈다.그러나 ‘광주의 비극’과 그 이후의 민주화투쟁은 민주주의라는 찬란한 결실을 맺었다.80년대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이 책은 대학생들이 올바른 역사인식에 눈을 뜨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많은 대학생들이 이 책을 찾았다.베스트셀러가 됐다.80년대 30만부나 팔렸다”고 김언호 대표는 말한다. 한국 현대사에서 1970년대는 민족적 자각이 지식인 사회에서 크게 고양되는 시대였다.깨어있는 지식인들은 한반도의 모든 비극의 근원적 원인은 민족의 분단 때문이라고 인식했다. 분단현실은 남북의 군사대결로 우리 민족의 엄청난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들었다.친일파들은 반공이데올기라는 가면을 쓰고 다시 권력의 핵심으로 복귀했다.친일파와 기회주의자들이 활개치는 현상은 민족의 양심을 파괴하고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왔다.독재권력은 분단을 권력유지에 악용했다.독재로 민주주의는 꽃피지 못했다.의식있는 지식인들은 친일파와 독재권력이 이러한반역사적이고 반민족적인 것을 분단으로 합리화하려 했다고 비판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올바른 역사인식을 확산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책이라고 할수 있다.독재정권은 집권동안 이러한 역사인식을 박제하여 낡은 역사의 창고에 강제로 묻어두려 했다. 그러나 독재권력도 무너지고 그들이 왜곡했던 역사의 진실도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한 때 판매금지됐던 ‘해방전후사의 인식’도 해방전후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데 도움을 주었다. 한 시대를 올바르게 정리해야 그 이후의 역사도 정직하게 씌여진다.정직한역사를 통해 역사의 시계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
  • ‘99문화를 여는 사람-소설가 은희경

    90년대 한국문학의 가장 큰 수확으로 꼽히는 작가 은희경씨(40).두번째 장편소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문학동네)가 7주째 소설부문 베스트셀러1위에 오르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전북 고창출신인 은씨는 95년 등단 이후 3년여 동안 장편소설 ‘새의 선물’과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등 문제작을 잇따라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아 왔다. 그의 소설은 흔히 사랑소설 혹은 연애소설로 읽힌다.‘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의 주제 역시 사랑이다. “혹자는 저를 연애소설 작가라고 합니다.하지만 제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상투성’,그로 인해 초래되는 진정한 인간적 소통의 단절이에요.” 은희경은 흔하디 흔한 사랑의 주제를 기존의 방식과는 사뭇 다른 도전적인방식으로 다룬다.그에게 있어 사랑은 고상하고 감상적이며 가슴 아린 그런것이 아니다.한 사람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순정은 더욱 아니다.‘타인에게 말 걸기’에서 이미 “사랑은 천상의 약속일 뿐”이라고 선언했듯,은희경식 사랑은 어디까지나 사랑의 낭만성을 뒤엎어 버리는 ‘순정의 아이러니’로서의 사랑이다.‘마지막 춤은…’에서 주인공 진희는 세 명의 남자에 동시에 끌리는 자유분방한 사랑을 선보인다. “제가 소설에서 그리는 사랑은배신과 반칙이 횡행하는 무규범의 사랑입니다.이를 통해 이 사회에 통용되는획일화된 가치와 허위의식을 비판해보자는 것이지요.우리 사회의 숱한 억압과 금기에 의해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는 사랑,그 억압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움을 얻는 사랑이 제가 추구하는 사랑의 본모습입니다” 은씨에 의하면 사랑의 가장 커다란 병균은 사랑에 대한 환상이다.그는 사랑에 관한 이 치명적인 환상을 없애기 위해 사랑을 상대로 위악적인 실험을 벌인다.올 안에 펴낼 단편소설집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과 경(輕)장편소설‘꿈속의 나오미’는 모두 그 연장선상에 놓인다. 그는 한때 고등학교 국어교사를 지냈다.그래서인지 그의 소설에는 비문(非文)이 거의 없다.올해는 문장교본이 될만한 단편소설들을 집중적으로 써볼계획이다. [작가 은희경씨는] ●전주여고,숙명여대·연세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95년 중편‘이중주’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제1회 문학동네 소설상,제10회 동서문학상,제22회 이상문학상등 수상
  • 문익환목사 삶의 흔적·문학작품 모은 전집 출간

    문익환 선생의 삶은 거대한 스케일의 대하소설이다.분단과 독재를 배경으로 펼쳐진 장대한 소설의 주인공처럼 살았다. 그는 열정적인 민족주의자였다.통일을 염원하는 뜨거운 민족애는 차가운 냉전의 벽을 넘어 북한을 방문하는 열정으로 나타났다.그는 종교와 이념의 차이를 뛰어넘는 큰 포용력을 가지고 있었다.그러나 독재의 현실이 너무 갑갑했다.그래서 독재권력이라는 거대한 힘에 끝없이 도전했다.민중을 억압하는법을 깨면서 살았다.그러나 어둠의 밤이 영원할 수 없다는 믿음이 있었다.그는 찬란한 역사의 아침을 믿었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의 흔적이 배어있는 작품을 모은 ‘문익환 전집’이 11일 출판된다.‘통일맞이 늦봄 문익환 기념사업회’가 발간하는 그의 작품 하나 하나에는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위해 헌신한 ‘불행한 시대 자유인’의 삶이 현대사의 한 부분으로 담겨 있다.사계출판사는 타계 5주기를 맞아 12권의 전집을 800질 한정본으로 발간한다고 밝혔다. 제1권과 2권은 시인으로서의 문익환 선생을 조명한다.3권부터 5권까지는 통일을 향한집념과 발자취 및 민주화 투쟁 과정을 담고 있다.6권은 수필이다.7권에서 9권까지는 투옥기간에 가족과 지인에게 보낸 옥중서신,그리고 파스요법등 그가 창안한 민중의학으로 꾸며져 있다.10권과 11권은 신학자이며 목사였던 그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12권은 설교문으로 구성돼 있다. 늦봄 문익환은 1918년 북간도 용정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다.시인 윤동주와는 고향에서 초등·중학교를 같이 다녔다.그의 생애에서 윤동주는 언제나 ‘별’이었다.윤동주가 ‘별 헤는 밤’에서 어둠을 뚫고 찾아오는 아침과 조국광복을 믿었듯이 그도 민주주의와 통일시대가 올 것을 믿었다. 윤동주가 마음의 별이었다면 그를 70년대 반독재투쟁에 나서게 한 것은 장준하였다.그는 3권에 실린 ‘역사를 보는 눈’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고백했다.“장준하의 죽음을,아니 그의 마음을,그의 뜻을,그의 나라사랑·겨레사랑을 땅에 묻어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그의 시체를 땅에 묻으면서 저는그의 죽음 앞에 맹세했습니다.“네가 하려다가 못다한 일을 하마.” 그는 신학교후배인 장준하와의 약속대로 반독재투쟁의 한가운데 섰다.그의 활동은 76년 3월1일 명동성당에서 발표한 ‘민주구국선언’으로 하나의 절정을 이루었다.그는 선언문을 기초했다.명동선언은 유신독재에 대한 도전이었다.‘7·4공동성명 이후의 민족문제’라는 글은 절박했던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긴급조치 1호가 발동된 74년 1월을 김지하는 ‘죽음’이라고불렀다.학원의 외침마저 침묵해 버렸다.이 암흑기에 누군가 민족의 진로를염려해서 할 말을 했다는 기록만이라도 남겨야 했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던 그가 새삼스럽게 발견한 것은 분단의 현실이었다.그는 모든 문제의 뿌리는 분단에 있으며 민주화와 민족통일은 다른 과제가아니라 하나라고 인식했다.그리고 통일이 민족문제 해결의 완결편이라고 생각했다.“동학 농민혁명에서부터 70·80년대 인권운동에 이르는 민족의 수난사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던져주는 모든 과제들을 한꺼번에 푸는 일은 통일입니다”라고 ‘역사를 보는 눈’에서 지적했다.통일은 그러나 평화적이고 민족 주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그의 글은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 자주적 통일 제단에 하나의 벽돌을 쌓는다는 생각으로 그는 마침내 분단의벽을 넘었다.1989년 3월25일.문익환이 평양에 도착했다는 소식에 한국뿐만아니라 많은 나라들이 깜짝 놀랐다.그는 88년 그믐날을 명상으로 지샌후 89년첫 새벽에 쓴 ‘잠꼬대 아닌 잠꼬대’라는 시 마지막 줄을 ‘구름처럼 바람처럼 넋으로 가는 거지’라고 끝맺으며 방북의 결의를 다졌다. 그는 김구 선생이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던 기분으로 북한에 왔다고 도착성명에서 밝혔다.그는 북한에서도 “북은 자유를 남은 평등을 향해서 궤도수정해야 한다”는 자신의 지론을 강조했다.그의 논리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문제점을 창조적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앤서니 기든스 교수의 ‘제3의 길’과 맥이 닿아 있다. 통일과 민주화를 위한 투쟁에서 기독교 신앙과 시는 힘의 원천이었다.그는많은 시를 썼다.쉰이 넘어 문단에 데뷔한 그는 “시가 거의 40%를 차지하는구약성서를 번역하다 뒤늦게 시인이 됐다”고 밝혔다.신경림 시인은 작품해제에서 “그의 가장 치열한 시 정신은 민족현실을 아파하는 시,통일을 염원하는 시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문익환은 10여년 동안의 옥중생활 중에도 많은 시와 산문을 썼다.그의 옥중서신은 바깥 세상을 향한 ‘희망의 종이 비행기’였다.그의 글은 쉽고 명료하다. 행동하는 구약 신학자였던 그는 독재권력과 제도권 언론으로부터 많은 탄압과 비난을 받았다.그러나 권력과 제도의 속박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인’의 다양한 삶을 살았다.그래서 그는 ‘생의 예술가’라는 평가를 받았다.李昌淳 cslee@
  • 東亞를 껴안고 통일로 가자-특별기고

    지금은 변혁의 때다.한 해가 지나가는 것이 아니다.한 세기가 지나가고 있 다.아니,한 백년이 아니다.한 천년이 지나가고 있다.산업사회가 새로운 정보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이런 때 우리는 역사의 올곧은 흐름을 적극적으로 운 용하여 총체적 개혁을 이룩할 의지와 비전과 프로그램을 가져야 한다.그렇지 않고서는 21세기 문턱에서 퇴출당하게 될 터이다. 20세기는 탈냉전으로 그 막을 내리고 21세기는 정보화(디지털 혁명)로 그 막을 올리고 있다.세계는 모두 냉전 이후의 21세기로 진입하고 있는데,유독 한반도만 20세기의 부끄러운 유제인 냉전체제에 갇혀 있다.냉전체제를 끊임 없이 재생산해내야만,그들의 기득권을 계속 누릴 수 있다고 믿는 이념적 러 다이트(Luddite)들이 한반도 남과 북에 아직도 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들은 차이를 증오하여 거침없이 차별한다.자기 생각과 다른 사람이나 집 단은 초전박살낼 것처럼 덤빈다.그들에게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의 화해,협 력,관용은 부덕(不德)의 소치일 뿐이다. 21세기 정보화가 요구하는 가치는 개인의창발력과 추진력,조직,경영의 투 명성,인간관계와 집단관계에 있어서 개방성과 관용,그리고 약자들과의 연대 성 등이다. 이같은 가치를 무시하는 개인과 기업과 국가 역시 21세기 역사로부터 퇴출 당하게 될 것이다. 오늘 우리의 현실을 보라.조국은 남북으로 갈라져 서로 불신하고 증오해온 지 반세기를 넘겼다.남쪽은 동과 서로 갈라져 서로 불신과 반목을 해온지 이 미 오래되었다. 동서로,남북으로 갈라서 대결해온 이 부끄러운 우리의 역사를 이제 새로운 세기를 맞는 이 시점에서 반드시 청산해야 한다.어떻게 해야 동서를 껴안고 남북을 화해시킬 수 있을 것인가. 가장 시급한 것은 한반도를 불신과 죽음의 대결장으로 끊임없이 만들어 온 냉전적 패러다임을 과감하게 청산하는일이다.왜 그것이 필요한지 먼저 남북 간의 형편을 보자. 지난 반세기 동안 남북간에는 적대적 상호주의 정책이 줄곧 관철되어 왔다. “이에는 이,눈에는 눈”으로 남북이 서로 병신 만드는 일에 전력을 쏟아왔 다. 북이 남의 눈을 치면,남은 북의 눈을 반격한다.서로 눈을 치고 이를뽑아내 는 냉전적 대결을 거듭해왔다. 그러다가 최근에 와서야 적대적 상호주의 관계가 적대적 공생관계의 모습으 로 악화되고 있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남의 수구냉전 세력과 북의 강경냉전 세력은 겉으로 서로 가장 미워하면서 도,위기국면을 조성하면서 결과적으로 서로의 입지를 강화시켜 주는 일을 해 왔다. 명시적으로는 가장 적대적이면서도,결과적으로는 남북 각 체제 안에서 자기 들의 기득권을 더 강화시켜 온 것이다.이른바 ‘총풍’같은 사건의 깊은 뜻 도 이같은 적대적 공생관계의 시각에서 보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한마디로 비극이다.왜냐하면,남과 북의 수구냉전세력은 역설적으로 기존의 남북간의 냉전 불신과 냉전 대결을 더 악화시키면서 서로 상대방을 안으로 결속시켜 주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역설적으로 이적행위를 해 온 셈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북이 통일을 외치면,남은 즉각 그것을 적화통일로 인식하 게 돼 있고,남이 통일을 외치면 북은 그것을 대번에 흡수통일로 받아들인다. 불신의 비극이다.통일의 소리가 높아질수록,남북간의 불신과 증오심도 함께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 비극에 더하여 남쪽은 그간 동과 서로 갈라졌다.동서 간의 불신과 불화의 근본원인은 지난 날 군사독재체제에서 찾을 수 있다. 필자가 대구에서 보낸 초등학교 시절 경상북도 도지사는 호남분이었다.우리 는 그분을 훌륭한 도지사로 우러러 보았다. 군사독재가 들어서면서,그들의 취약한 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해 짐짓 동과 서를 갈라 서로 미워하게 하는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게다가 군사통치의 기 본틀 역시 냉전체제의 틀이었다.반대세력을 가차없이 차별,억압하거나 포섭 해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동서간의 불신은 더욱 깊어졌다.냉전 대결과 동서 불신 은 군사통치하에서는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었다. 이제는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때다. 개혁이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까닭은 바로 이같은 냉전 패러다임을 관용과 열림과 투명성의 패러다임으로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그래야만 우리는 21세 기에서 세계 중심국가로 뻗어나갈 수 있다. 그런데 이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이 점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반개혁세력이 냉전세력 중심으로 단단히 뭉쳐있으면서,개혁전선을 짐짓 흐 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뿐이랴.개혁은 혁명과 달리 합법적 절차를 존중해야 한다.시간이 걸리고 인내심이 요구된다. 게다가 반개혁세력은 그 조직력에 더하여 그럴듯한 반개혁 논리를 교묘하게 확산시키고 있다.무엇보다 개혁이 어려운 것은 가급적이면 반대 세력도 설 득·포용하면서 개혁을 추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서 개혁 몸통의 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다. 혁명과 달리,개혁이 그토록 어려운 만큼,개혁은 동과 서를 껴안고,남과 북 을 포용하면서 나아가야 한다.그렇게 하려면 개혁이란 새의 날개는 크고 튼 튼해야 한다.그래야만 동과 서,남과 북,남과 여,노(老)와 소(少)를 모두 껴 안을 수 있다. 그런데 날개만 길고 튼튼하면 될까? 독수리 날개에 참새 몸통이라면,그 개혁의 새가 과연 날 수 있을까?날개가 클수록,몸통도 그만큼 크고 튼튼해야 한다. 개혁의 몸통은 무엇인가?개혁의 비전과 철학과 신념을 확실하게 몸으로 체 득한 중심세력을 말한다. 개혁 몸통은 잡다한 인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잡다한 인물은 개혁의 날개로 포용되는 것이지,개혁 몸통이 될 수 없다. 그러기에 물과 기름처럼 서로 유기적 연대를 이뤄낼 수 없는 두 세력간의 동거체제가 몸통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동거는 날개 안에서 이뤄내 야지 몸통 속에서 이뤄질 수 없다. 튼튼한 개혁 몸통이 있을 때,비로소 뚜렷한 개혁 비전이 세워지고,그 비전 에서 합리적인 개혁 프로그램이 다듬어져 나오게 된다. 이 프로그램이 나오면,재능있는 온갖 테크노크라트들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반대세력도 설득하여 프로그램 집행에 참여시켜야 한다. 하지만 어 디까지나 개혁 몸통이 개혁의 중심과 균형과 방향을 올곧게 잡고 나가야 한 다. 새해를 맞아 과연 지금 개혁의 중심이 있는가를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탈냉 전의 역사적 요청에 부응하여,열린 사고,투명한 관리,관용의 지도력을 발휘 하여 동서를 껴안고 남북 화해를 추진할 시스템이 과연 존재하는가? 과연 집권당이 이 몸통의 구실을 해내고 있는가?과연 청와대가그 구실을 해내고 있는가?과연 내각이 이 시스템같이 작동하고 있는가? 개혁의 새는 좌우 양 날개로 날지만,보다 높고 멀리 날려면,좌우의 큰 날개 를 효율적으로 관리해낼 튼튼한 몸통이 있어야 한다. 새해를 맞아 개혁 몸통의 구축을 위해 더욱 매진해야 할 것이다.튼튼한 개 혁 몸통을 가진 새가 길고 큰 날개로 동서를 껴안고 남북 화해와 통일로 저 높은 21세기 하늘을 힘차게 날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 북한 인권의 허상/張淸洙 논설위원(外言內言)

    북한은 흔히 인권감시의 사각지대로 비유된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0일 올해 세계인권선언 50돌을 맞아 인류의 진정한 권리보장이 국제적으로 요구되면서 북한인권에 대한 비판도 거론되고 있다. 지난 4월 국제사면위원회가 북한 인권유린 실태를 강도 높게 비판하는 보고서를 발표했고 50차 유엔인권소위원회도 북한 인권개선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미 국무부가 12월15일 발표한 연례보고서도 북한을 전세계에서 인권상황이 가장 나쁜 국가중에 하나라고 지적했다. 특히 북한인들의 자유정도는 이라크,쿠바,수단과 함께 세계최악이며 191개 조사대상국 가운데 기본적 정치적권리,시민자유,자유언론이 존재하지 않고 시민생활이 억압되는 가장 탄압적인 국가로 꼽았다. 그동안 북한의 인권문제는 정권의 폐쇄성 때문에 국제적 관심밖에서 맴돌았고 정확한 실상이 은폐됐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식량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높아졌고 탈북자들에 의한 북한의 절망적인 인권상황이 고발돼 열악한 북한 인권실태가 공식적으로 밝혀지게 됐다. 북한의 인권실태는 金日成사후 더욱 악화된 가운데 초법적인 살인과 인간 실종이 빈발하고 있으며 고문과 강제수용등 최악의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북한에는 현재 10여개 정치범 수용소에 약 20만명이 정치적 이유로 갇혀 있으며 사법절차를 거치지 않은 처형과 실종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유엔회원국이자 국제인권규약 비준국이면서도 87년이래 10년이 넘도록 인권보고서 제출자체를 거부하는 등 국제적 의무를 저버리다가 97년 8월 국제인권규약에서 탈퇴까지했다. 바로 이같은 북한의 열악한 인권수준으로 말미암아 최근들어 북한내부에서 金正日 체제를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움직임이 드러나고 있으며 반체제 성향을 고조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중요한 과제는 북한이 사회주의 민주화를 통한 인권문제를 개선,주민들의 자유를 신장시키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주민들이 자기가 노력한 만큼 인간적 대우를 받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주는 사회주의 민주화가 북녘땅에서 하루속히 실현돼야 함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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