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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민주인사 명예회복 이제 시작

    1900년대를 일컬어‘야만과 광기의 시대’라고들 한다.정말 이 땅에도 인간으로서 상상하기 어려운 야만과 광기의 폭력이 자행되었다. 그것도 지배권력에 의해서.일제 36년이 그랬고,미군정이 그랬고,또 정부 수립 이후 역대 위정자들이 그래 왔다. 이들에게는 인류에 대한 호혜평등이나 나라와 겨레의 안위라고는 안중에도없었다.만일 이들에게 아무도 항거하지 못했다면 1900년대의 역사는 그저‘야만과 광기의 시대’로만 규정되었을지 모른다.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들의 억압 속에서 우리 겨레는 신음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는 수많은 항쟁이 있어 왔다.일제시대의 3·1 만세운동을 비롯한 크고 작은 운동들,미군정 시기의 4·3항쟁으로 대표되는 운동들,정부 수립 이후 4·19혁명,유신반대운동,광주민중항쟁,6월항쟁,노동자대투쟁 등.그리고 이런 항쟁 외에도 일제시대부터 의·열사들이 자신의 목숨을 바치며 항거하였고,70년대 이후에도 300여분의 민족민주열사,희생자들이 의·열사들의 전통을 이어 나라와 겨레를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바쳤다. 이 과정에서 지배권력은 더 포악한 야만과 광기의 총칼을 휘둘렀지만 역사는 전진해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1900년대를‘야만과 광기에 맞선 민중들의 투쟁의 시대’라 부르고 싶다.소수를 위한 다수에 대한 착취와 억압이 야만과 광기를 불렀다면이에 대한 항거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함이었다. 우리는 이런 희생을 딛고 지금 세기 말에 서 있다.그런데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렸다.바로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열사·희생자들은 아직도 과거의 역사가 씌워놓은 범법자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있고,안기부 등 국가권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자살이나 사고사로 은폐된 의문의 죽음으로 남아있는데,우리는 모른 체하고 있었다. 열사들의 명예회복과 의문사 진상규명법 제정은 바로 우리 국민이,여야 정치인들과 정부 당국자들이 먼저 나서서 해야 할 일이었다.그러나 그렇지 않았다.그래서 열사들의 부모님들이 420일이 다 되도록 천막농성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000년대를 불과 며칠 앞둔 지금,우리는 이 법의 제정을 통해‘야만과 광기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게 되기를 바란다.이것이 바로 열사들과 국민 모두의 염원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새 천년에는 열사들이 목숨을 바쳐 염원했던 그 어떤 탐욕도 없는‘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게 되게 하기 위해서는 자칫 보상 중심으로 흐를 수 있는 것을 경계하고,열사들의 진정한 명예회복이 이뤄지는 방향으로 시행돼야 할 것이다.의문사 진상규명 과정에서도 가해자들이 저항해 이를 가로막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진상규명을 철저히 이루어내는 일은 다시는 이 땅에 그러한 죽음들이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법 제정도 중요하지만 법 제정 이후 올바로 시행될 수 있도록 더 많은 국민적 관심이 모아져야 할 것이다. 바로 우리 모두가 아름다운 세상에 사는 새 천년으로 만들기 위해서. [김학철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 단체연대회의 집행위원장]
  • [김삼웅 칼럼] 20세기 송별사

    “쓸쓸한 듯이 과거를 돌아보지 말라.그것은 두번 다시 되돌아오지 않으므로 주저하지 말고 현재를 개선하라.그림자 같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라.두려워하지 말고 씩씩하게 용기를 갖고 나아가라.”(H W 롱펠로) 한민족에게 20세기는 영욕과 격변의 시대였다.‘전쟁과 혁명과 쿠데타의 세기’(헤롤드 라스키)이고,‘전쟁과 폭력과 광기로 얼룩진 극단의 시대’(에릭 홉스봄)이고,‘폭력의 세기’(한나 아렌트)였다.망국과 식민지와 해방전쟁과 분단과 동족상쟁과 군사독재와 근대화와 민주화의 영욕과 격변을 두루겪었다. 영광보다는 욕됨이 더 많은 한 세기를 보내면서 우리는 버리고 싶은 20세기의 유산을 짊어지고 새 천년의 문턱을 넘는다.분단과 냉전,지역갈등,집단이기주의,빈부 격차,공리공담과 형식주의,저질정치와 정쟁,지도층의 도덕성 해이,성 타락,언론·지식인들의 허위의식 등‘악의 유산’을 그대로 안고 가파른 2000년대의 고개를 넘는다.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봉건전제국가에서 곧바로 식민체제로 전락하여 20세기 전반기를 민족 말살의 압제 속에서도 민족자존을 지키면서 독립을 쟁취하고,미·소 양대 진영의 이념 전쟁터에서도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군사독재의 억압 속에서도 경제발전을 이루고,동북아에서는 유일하게 평화적 정권교체를 달성하고,국제통화기금(IMF)의 국난을 남 먼저 극복하는 민족의 저력을 보였다. 결코‘간단한’국민이 아니다.지금 세계 도처에는 조선족,고려족,한국인,코리안 등으로 불리는 해외동포 550만명이 고난과 역경을 딛고‘21세기형 한국영토’를 넓히고 있다. 미·중·일·러 4강에 500만 한국인(조선족)이 뿌리박고 사는 나라는 지구상에 우리밖에 없다.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요 세계를향한 값진 자원이다.돌이켜보면 우리가 20세기에 겪은 민족적 시련과 고난은2000년대 웅비를 위한 단련이었는지 모른다. 신은 그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국가)에게 시련을 내린다고 하지 않던가. 한 세기 동안 식민지도 겪고,외국군정도 겪고,공산주의도 겪고,파시즘도 겪고,IMF도 겪은 그런 민족은 지구상에 우리밖에 없다.시련과 고난과 좌절에도굴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선 불사조의 국민이다. 우리 조상들도 그토록극심한 내외 도전에서 민족적 정체성과 독립을 지켜왔다. 우리는 부끄럽고 역겨운 유산을 짊어지고 새 천년의 고지를 넘는다.개인이나 국가나 과거와 완전히 절연하기는 쉽지 않다.문제는 악의 유산과 암적 부위를 잘라내고 건강한 부분을 지키면서 희망의 꿈을 키우는 일이다. 더 이상 냉전적 대결구도에 의한 긴장과 소모전을 지양해야 한다.교류협력의 폭을 넓히면서 상처 입은 한쪽 날개의 아픔을 헤아리는 동포애와 동족의식을 키워야 한다. 그리하여 21세기 초에는 하나의 온전한 국가로서 5대양 6대주를 훨훨 날아야 한다. 한쪽 날개로 날면 얼마나 날겠는가. 더 이상 지역주의 망령에 휘말려서는 안된다. 지역성에 의존하여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려는 정상배들을 거부해야 한다.4월 총선을 앞두고 우려되는 지역주의 대결을 깨어 있는 유권자들이 막아야 한다.20세기 후반기에 생긴 악성종양인 지역주의를 깨지 못하면 화합도,개혁도,통일도 허사가 된다.통일에앞서 지역주의를 극복하자.이를 위하여 화합과 상생의 기풍을 진작하자. ‘20세기 유산’중 여전히 우리를 옭죄는 것은 친일→분단→군사독재로 이어지는 반민족 반통일 반민주세력의 득세이다.이들은 한세기 동안 축적된 인적·물적 힘을 바탕으로 남북화해를 가로막고,개혁의 발목을 잡고,지역화합을훼방한다. 이제 냉전에 감염되지 않고, 지역주의에 오염되지 않고, 부패권에 편입되지않는 양심세력과 젊은 세대가 힘을 모아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 ‘악의 유산’은 콘크리트철벽인데‘양심세력’이 모래알처럼 흩어지면 새 시대의 국운 개척이 불가능하다.무엇보다 양심세력의 결속이 시급하다. “시간의 걸음걸이에는 세 가지가 있다.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현재는화살처럼 날아가고,과거는 영원히 정지하고 있다.”(F 실러·영국 철학자)
  • [대한광장] 聖誕의 의미

    ‘탕자(蕩子)의 비유’는 성서의 여러 비유 중에서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비유다.제몫으로 돌아올 재산을 아버지께 졸라 미리 받아낸 아들은먼곳으로 떠나가 방탕한 생활을 하며 재산을 마구 뿌려대다가 급기야 돈이다 떨어져 알거지가 되고 만다.그러자 그 많던 친구들은 다 떠나가 아무도그를 거들떠보지 않는다.결국 돼지가 먹는 음식으로라도 배를 채워 보려고하였지만 그마저도 거절당하는 비참한 현실 속에서 아들은 결단을 내린다.“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으니 저를 아버지 집의 품꾼으로라도 써주십시오”라고 아버지께 청할 결심을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는비유이다.아들은 아버지 집에 품꾼으로 들어가는 길 말고는 더이상 다른 선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고,재물을 모두 탕진하면서 인간적 품위마저 상실해버린 상태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잃어버린 인간적인 품위를 되찾는 유일한 길이었던 것이다. 성서의 이 비유는 ‘정의’가 무엇인지를 잘 말해주는 비유이다.인간적 품위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그 품위를 되찾기 위한 요청이 정의를 위한 요청이요,또 그것이 수치요 굴욕이라 하더라도 인간됨의 실현을 위해선 반드시 요구되는 기본적 요청이며,인간성을 되찾기 위한 정의의 요청이었던 것이다. 며칠후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이다.거리에는 온갖 현란한 장식과 음악이 축제분위기를 고조시킨다.성탄절은 그리스도교 신자이건아니건 이미 온세상 사람들의 축제가 되어버린 느낌이지만 과연 우리는 성탄절을 큰 기쁨의 축제로 지낼 자격이 있는가하고 반문하고픈 심정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4,000년 동안이나 구세주가 오시기를 애타게 기다렸다고 한다.이스라엘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은 어둠과 고난과 죽음의 결박으로 드리웠던 삶이었고,고통은 끝이 없었다.이집트땅에 노예로 끌려가 채찍질당하고 바빌론의 억압아래 신음하였는가 하면,로마 식민지가되어 착취당했고,헤롯의 폭정에 허덕이며 때론 좌절하고 절망하면서도 그들안에서 싹틀 수 있었던 것은 언젠가는 그런 고통과 착취,억압,폭정의 비인간적 상황에서 벗어날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이었다.강한 절망속에서만 바랄 수 있었던 희망이었고,이 희망이 그들의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반드시 절망에서 구출해야만 한다는 강한 요청과 기도를 가능하게 했고,이러한 요청에 대한 신의 자비로운 응답이 구세주 예수의파견이었다. 예수의 탄생이 인간적 삶을 위해 애처롭게 부르짖는 이스라엘의 정의를 위한 요청에 대한 신의 응답이라고 한다면 성탄절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탕자의 인간적인 품위를 잃어버린 삶을 벗어나기 위한요청이나 이스라엘이 겪어왔던 비인간적 착취와 절망을 뛰어넘게 하는 강한희망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이 정의의 실현을 위한 인간적 요청이었고,예수 탄생이 이 세대에 주는 의미는 참된 인간성의 회복이 아닐까.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가난하기 때문에,병이 들었기 때문에,노인이기 때문에 혹은 여성이기 때문에,사회적 신분이 낮기 때문에 사람을 차별하고,착취하고,무시한다면 성탄은 아무 의미없는 형식적 축제가 되고 말 것이다.탕자가 비록 재산을 날려 빈털터리가 되었지만 인간성은 없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잊으면 안된다.우리주위의 많은 가난한 사람들도 역시 존중받아야할 인간성을 가지고 있을진대 가난 때문에 인간 이하의 삶에 내쳐져서는 안될 것이다. 성탄이 인간성의 회복을 위한 정의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사건이기 때문에성탄절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기뻐하면서 지내는 우리의 자세는 정의를 위한구체적 노력으로 드러나야 할 것이다. 이동익 가톨릭대교수 윤리신학
  • [쉽게 읽기] 역사와 영화

    [마르크 페로 지음] 지난 몇십년 동안 우리는 매우 급속한 변화의 물결을 타며 지내왔다.변화에둔감하면 뒤쳐지고 민감해야만 살아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고 나면 세상은 또 새롭게 변한다.과학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얼마나 놀라운지 우리를지배하던 제국의 권좌를 교체할 정도이다. 지난 수천년간 우리를 지배하던 글의 제국은 20세기 들어 새롭게 영토를 구축한 이미지의 제국에 그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이제 영상문화가 문화의 대세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게 되었다.영화나 텔레비전은 비판자들이 조롱 삼아 부르는 대로 ‘바보들의 스펙터클’이나 ‘바보 상자’가 더 이상 아닌 것이다.이들은 새로운 권력을 형성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역사의 영역에까지 발을 뻗친다.즉 이미지의 제국은 문자와는 다른독특한 방식으로 역사를 해석하고 시대를 증언한다. ‘역사와 영화’는 이런 점에 주목하고 있는 책이다.영화가 단순히 20세기의 신종 대중 예술이 아니라 역사의 주체라는 관점은 역사가들뿐만 아니라일반인들에게도 새로운자극이 되기에 충분하다. 저자인 마르크 페로는 역사가로서 영화감독이 된 희귀한 인물이다.그는 특히 서방 역사가 중에서 최초로 소련 고문서 보관소에 접근할 수 있었던 인물로서 프랑스의 저명한 역사 잡지인 ‘아날 Annales’의 편집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진면목은 영화를 역사의 주체이자 자료로서 연구한 선구자라는데 있다. 이 책은 저자가 풍부한 사례 제시를 통해 영화를 역사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참신한 방법론을 선보이고 있다는 데에 그 장점이 있다.예컨대 에이젠슈테인의 ‘파업’은 1917년 이전의 러시아 프롤레타리아 투쟁을 보여주는대파업들의 요약이며 개요이지만,그의 분석에 따르면 일정 단계에 들어서 있는 산업사회의 ‘모델’이다.그리고 노동자들의 요구,위기,파업,선동,억압등은 이 모델의 구성요소들이며 이 모델은 동시에 사회적 기능성과 자발성그리고 혁명과정의 발전에서 필연성과 비합리성의 조직 등에 관한 문제들도제기한다는 것이다.즉 ‘파업’이라는 픽션을 통해 현실에 대한 성찰을 심화시킴으로써 영화가 역사의중요한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사례들이 이 책 속에는 풍부하게 제시되어 있다.그러므로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나 영화학도들에게는 좋은 자료가 된다.더구나 우리 나라에 잘알려져 있지 않은 구 소련의 영화들이 많이 소개된 것과 유명하지만 비교적소개가 덜 된 영화 장면들이 화보로 꾸며진 것, 그리고 책 뒤에 영화감독 및작품 목록이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도 영화를 좋아하는 일반인들에게는반가운 정보다. 까치글방 펴냄.값 9,000원윤재웅 문학평론가 동국대 강사
  • [굄돌] 세기말 영화

    오늘 개봉하는 정지우 감독의 ‘해피엔드’와 송능한 감독의 ‘세기말’은태초의 카오스 상태처럼 혼돈과 불안으로 뒤덮인 세기말의 성적 타락과 암담한 현실을 끔찍하게 드러내고 있다.세기말 치정극을 표방하는 ‘해피엔드’는 불륜을 저지른 아내를 단죄하는 남편의 완전범죄로 끝난다.그러나 그것이 과연 해피엔드인가? 여러 편의 에피소드가 얽힌 ‘세기말’은 원조교제같은성적 타락과 도덕적 무감각을 보여준다. 또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엔드 오브 데이즈’는 새 천년을 지배하려는 악마와 신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1999년 12월 31일을 시간적 배경으로 한영화는 이외에도 여성 감독 캐더린 비글로우가 랠프 파인즈와 줄리엣 루이스를 캐스팅해서 만든 ‘스트레인지 데이즈’가 있다.세기말 사람들의 불안감이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켜 사회적·인종적 대립을 가져온다는 내용이다. 올해처럼 성담론이 쏟아진 적도 없다.오양 비디오부터 서갑숙의 성고백서까지,그리고 등급보류 파동을 겪었던 ‘노랑머리’‘거짓말’,배우들의 실제성행위로 화제가 된‘폴라 X’.세기말 영화의 공통점은 그 중심에 성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그것은 성이 생명의 탄생에서 죽음까지 삶의 본질과이어져 있으며,억압적 체제에 대항하는 개인의 유일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세기말과 새천년은 시간적으로는 이어지고 있지만 전자가 반성과 성찰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면 후자는 미래적 전망과 꿈에 기울어져 있다.서양의 수직적 시간관에서 비롯된 세기말 현상은,순환적 시간개념인 윤회를 기본 바탕으로 하는 불교적 세계관의 동양에서는 무의미한 것이다.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세기말의 혼돈을 기꺼이 통과하고 싶어 한다.그 통과제의를 거쳐야만 새로운 눈으로 새천년의 태양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그리고 그때는 인간의 삶이 조금 더 행복해 질 것으로 믿고 싶기 때문이다. [하재봉 시인·영화평론가]
  • [매체비평] 정치개혁과 언론

    현대사회의 정치는 언론없이 불가능하다.국민들은 언론을 통해 정치인을 접하고 평가한 후 선거를 통해 선택한다. 정치인들도 언론을 통해야 많은 유권자들에게 자신을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다.따라서 언론의 정치적 기능은 정치인들과 국민을 연결해주는 중개인 역할이다.시민사회가 “언론의 자유”를보장한 주된 이유도 언론이 정치적 중개인 역할을 효율적으로 성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것이다.그러나 언론이 정직하게 정치인과 국민들을 연결해 주지 않고 중간에서 농간을 부리면 민주정치는 위기를 맞게된다. 그것이 바로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지역언론이 억압받아온 우리나라는 서너개의 중앙언론이 정치적 중개인 역할을 독점하고 있다.따라서 정치인 대부분은 자신의출신 지역 주민들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해,그리고 국민 역시 자신이 뽑은 정치인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알기위해,소수의 중앙언론에 의존할 수 밖에없다.정치인과 유권자의 숫자에 비해 정치 언론의 숫자가 적다보니 중개인에불과한 언론이 주인보다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며 횡포를 부린다. 문제는 누구도 그들의 횡포를 막기 힘들다는 것이다.우리나라에서는 부동산중개업을 하든, 조그만 음식점을 차리든, 미장원을 경영하든 간에 일정한 자격증을 갖추도록 요구한다.그런 자격증을 받기 위해 해당분야의 전문교육 뿐만 아니라 최소한 교양교육과 직업 윤리교육도 받아야 한다.그런데 언론인과언론기업에게는 아무런 자격증도,최소한의 직업 윤리교육도 요구할 수 없다. 그랬다간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짓밟는 민주주의의 적으로 낙인 찍히기 십상이다. 그러는 사이 우리나라 언론인 중 일부는 국민과 정치인을 연결하는 중개인이 되기를 포기하고,정치인과 정치인 사이를 오가는 뚜쟁이로 은밀히 전업을했다. 그리고 갖가지 부당내부거래를 통해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고 있다. 그들은 국민의 입장에서 정치인을 감시하고, 합리적인 정책이 집행되도록 여론을 형성하는 언론 본연의 임무에는 관심이 없다.따라서 그들의 정치기사는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정치적 문제는 피하고 눈치로 때려잡거나 몸으로때워서 알수 있는 문제에 매달린다.의혹폭로,여야갈등,당권 경쟁 등 쓰기 쉬우면서도 국민들의 주목을 받을 만한 기사들로 정치면이 메워진다. 국민들에게 정치판은 의원들의 권력암투의 현장,의혹 폭로의 경연장으로 비춰지고, 정치혐오증이 만연해 진다.정작 정치적으로 해결해야할 중요한 국가적 문제들은 정치에서 외면당한다. 이러한 현상은 국민들과 정치인들을 연결하는 중개인 역할을 언론이 제대로 발휘하지 않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결국 언론이 바뀌지 않고서는 정치개혁을 기대할 수 없다. 진정한 민주 정치가실현되려면 무책임한 언론 중개인에 의지하지 않고도 정치인들과 유권자들간에 원활히 정보와 의견을 교류할 수 있는 정치뉴스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시민단체의 활성화, 정보화 사회의 정착, 소규모 지역언론의 육성 등이 바로그것이다. 거대 중앙언론을 통하지 않고도 유권자들이 정치인에 대한 정보를입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땅에 진정한 정치개혁이 가능해질 것이다.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80년 언론통폐합·강제해직 진실은?

    지난 80년 언론통폐합과 1,000여명이 넘는 언론인의 강제해직은 한국 언론계에 어떤 의미를 남겼을까. 최근 ‘권언유착’ 등 언론계의 현 문제점들이 사실상 80년 신군부의 언론통폐합으로부터 시작됐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가운데 MBC는 오는 12일밤 11시30분 ‘이제는 말할 수 있다’프로그램에서 ‘언론통폐합’편을 방송,언론통폐합의 의미 등을 살펴본다.이 프로를 만든 MBC ‘PD수첩’ 출신의 정길화 PD는 그동안 밝혀지지 않은 당시의 여러 상황을 취재해 진실을 규명하는 ‘모험’을 펼친다. 이 프로는 우선 최근 논란이 되었던 ‘휴전선 고엽제 살포’의 경우 지난 80년 우리 언론에 의해 보도될 수 있었음을 알려준다. 80년 4월 25일 합동통신(연합뉴스의 전신)은 당시 AP 뉴스를 받아 이같은 사실을 보도하려 했으나 언론통제지침에 따라 전면 삭제됐다는 것이다.정PD를비롯한 제작진은 당시 뉴스철에서 검열로 삭제된 관련 내용을 찾아냈다. 제작진은 80년 신군부가 언론사 사장들에게 포기각서를 강요하면서 내용의일부를 변조했다는 의혹도 제기한다.이는 당시 CBS의 사장이었던 김관석 목사가 언론대책반원 출신인 김기철씨의 회고기 ‘합수부 사람들과 오리발 각서’에 실린 자신의 포기각서를 본 뒤 “각서가 아닌 의견서라고 썼으며 내필적이 아니다”라고 말한 데 따른 것이다.제작진은 한국문서감정원에 필적감정을 의뢰,제목과 내용이 서로 다른 필적임을 확인받았다. 정PD는 아울러 80년 당시 언론탄압의 기폭제가 됐던 ‘기자협회 주동 검열거부 사건’,80년 6월의 ‘MBC,경향신문 기자 용공조작사건’ 등을 집중취재한다.이밖에 언론통폐합 이후 달라진 언론현실을 심층 분석하면서 아직도 국회에 계류중인 ‘80년 해직언론인배상특별법’에 대한 필요성을 다시 강조한다. 정PD는 “이번에 밝혀진 사례들은 언론통폐합이 언론의 자유를 얼마나 억압해왔는지를 잘 보여준다”면서 “앞으로 실천해야할 언론개혁의 모든 화두들이 80년 언론통폐합에 다 들어있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 [김삼웅칼럼] ‘시대 가치’를 죽이는 사람들

    군 복무중이던 한 장교가 외국의 억압으로부터 어떤 도시(시에나)의 시민들을 해방시켜 주었다.시민들은 그 장교에게 어떻게 보상해야 할지 날마다 모여 의논을 했지만 자기네 힘으로는 어떤 보상을 하더라도 충분하지 않다는결론에 도달했다.심지어 그를 그 도시의 영주로 만든다 하더라도 충분하지않다는 결론이었다.마침내 그들중 한 명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그를 죽여서 우리의 수호성인으로 숭배합시다.” 그래서 시민들은 로마 원로원이 로물루스에게 했던 본보기를 따라서 그대로 행했다. 역사학자 게이가 지적한 역설만은 아니다.인간은 가끔 이렇게 가치전도를일삼는다.앤소니 드 멜로의 우화집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거북이의 장례식’이다. 애완용 거북이를 갖고 있는 소년이 있었는데 어느날 죽은 듯이 연못가에 벌렁 나자빠져 있는 거북이를 보고 매우 상심했다.슬퍼하는 소년을 본 아빠가아들을 위로했다.“울지 말아라.거북이의 장례식을 멋지게 치러주면 되지 않겠니?작은 관을 하나 만들고 그 안은 비단으로 깔아 주자꾸나.장의사도 부르고 거북이의 이름도 새긴 묘비도 세워주자.그리고 향기로운 꽃을 갖고 매일그 무덤을 찾아가자.” 소년은 울음을 그쳤고,장례식 준비에 정신을 빼앗겼다.모든 준비가 완료되자 소년의 아버지,어머니,하녀와 꼬마상주(?)가 거북이의 시체를 가지러 연못으로 엄숙하게 걸어갔다.그런데 찾는 시체는 보이지 않고 갑자기 연못 한가운데 거북이가 솟아오르더니 즐거이 헤엄쳐 다니는것이었다.매우 낙심한 소년은 한동안 그 광경을 보고 있더니 마침내 말했다. “우리,저 거북이를 죽여요.” 소중한 사람을 죽여서 수호성인으로 만들고자 했던 시에나 시민들이나 그이전의 로마 원로원 그리고 화려한 장례준비에 현혹된 소년의 ‘거북이 죽이기’는 소중한 시대적 가치를 죽이면서 몰가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우리는 지금 정치적·사회적으로 혼란을 겪고 있다.그중에서도 가치관의 혼란은 극심하다.청산과 화해의 과정이 없는 ‘동거’에서 나타난 현상이다.독재세력과 민주세력,분단세력과 통일세력,지역주의와 화해주의,수구집단과 개혁집단이첨예하게 대립한다.50년 만의 수평적 정권교체는 이루어졌지만 기득세력과 개혁세력의 교체가 이루어지지 못함으로써 오늘의 사회적 난맥상이 나타난 것이다. 비동시적인 것들이 동시적으로 존재하고 비현실적인 것들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며 과거지향적인 것들이 미래지향성을 거부한다.틈만 나면 매카시 선풍을 일으키려는 정치인이 존재하고 틈만 나면 부패를 일삼는 공직자가 존재하고 틈만 보이면 남북화해를 훼방하고 냉전체제로 회귀하려는 언론이 존재한다. 어떻게 된 국민성인지 친일파 출신 독재자가 가장 인기가 높고 어떻게 된국회인지 시민혁명으로 쫓겨난 반의회주의자의 동상을 국회에 세우겠다고 한다.야당 의원이 현직 대통령을 빨치산으로 몰고 1만달러 수수설 발언으로 벌어진 서경원사건 재수사를 두고 ‘공안’은 죄인취급,‘간첩’은 통일운동가 운운하면서 본말을 전도시켜 용공분위기를 조성한다. 자크 프레베르의 시 ‘나무들’. 더이상 사람들은 여자를 사랑하지 않고 사상이나 논쟁과 결혼해 버렸지 이 무서운 부부의 모습을 보라 거기에는 관념의 일부일처가 있고 관념의 중혼자,관념의 간음자 관념의 이혼자,관념의 치정사건 관념의 전쟁,고정관념과 관념의 규방이 있다네. 한국,이 시대의 비극은 프레베르가 지적한 완고한 ‘관념론자’들의 지배와 횡포에서 비롯된다.이들의 독선과 여론조작이 국민의 분별력을 흐리고 역사의 진보를 가로막는다. 수많은 국민의 희생과 고통을 담보로 얻어진 정권교체가 옷사건 등 몇 가지 사건에 끌려다니면서 개혁과 국민통합을 가로막는다.희망과 기대를 가진 국민에게 무력감을 안겨준다.양식 있는 언론인·지식인이라면 이 사건들의 진실규명과는 별도로 지금 우리는 시에나 시민과 거북이를 죽이고자 하는 소년의 ‘철부지’에 빠져있지 않은지 돌이켜봐야 하겠다. 주필 kimsu@
  • [20세기 문명기행] 10. 이념에서 공동체로

    이념의 세기(世紀)가 저물고 있다.지난 100년 동안 지구촌은 좌우 이념투쟁의 발흥과 조락(凋落)을 응시하며 한세기의 끄트머리까지 달려왔다. 이념적 양극주의의 빈자리에는 민족과 자본,정치적 다원주의 등이 잽싸게들어 앉고 있다.21세기의 여명(黎明)이 다양한 질서의 혼재를 잉태하고 있는 셈이다. ■이념에서 생존으로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석학(碩學)인 움베르토 에코는 “21세기를 앞두고 지구상의 50억 인구가 50억개의 이데올로기적인 여과장치를 갖게 됐다”며 세기말 지구촌의 실상을 풍자했다.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트로츠키가 “만약 태양이 부르조아만을 위해서 타는 것이라면 태양을 꺼버리겠다”고 호언한 점을 상기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20세기가 좌·우대립을 구심력 삼아 굴러간 ‘이념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다양한 공동체의 원심력이 쉴새 없이 작동하는 ‘생존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생존의 논리는 이미 세기말 지구촌 곳곳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화두(話頭)가 민족이다.억압받던 민족들이 옛 소련과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오래 전 일이 아니다.캐나다,우크라이나,영연방 등도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과거 민속학의 용어로만 통하던 작은 민족들이 정치적 담화에서 중요한 용어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스페인계 역사학자 페르난데스 아메스토는 “세기의 길목에서 항상 더 큰 연방속으로 끌어들이는 괴물의 정치가 작은 실체들을 배가시키는아메바의 정치와 공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지역제일주의,자주독립주의,미니 민족주의를 담론으로 삼는 ‘민족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21세기 국제질서의 다양성은 문명사회 주도권 이동방식의 변천도 예고한다. 20세기까지 세계 문명의 주도권은 중국에서 지중해로,다시 유럽에서 대서양을 거쳐 태평양까지 옮기는 등 지역간 이동의 속성이 짙었다.그러나 역사학자들은 “미래의 주도권은 세계적인 엘리트나 수백만 개의 변복조(變複調)모뎀을 통해 특정지역을 벗어나 세계 문화를 만들어내는 몇몇 대가의 손으로넘어갈 지도 모른다”고 내다본다. 20세기의 패러다임이 좌우의 양날개에서 시소게임을 하던 이차방정식이었다면 다음 세기 공동체의 생존 해법은 다양한 변수가 혼재한 고차방정식에 숨어 있다는 분석이다. ■대안의 모색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몰락 직후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자본주의의 승리”라며 ‘역사의 종언(終焉)’을 선언했다.그러나 공산주의의 붕괴가 더욱 활발한 정치철학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반론도 만만찮다.독일의 철학자 카를 오토 아펠이 이념대립을 초월한 지구촌에 다양한 사회적기구와 회의,국제기구를 통한 합리적 담론의 도출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것도같은 맥락이다. 시장주의 경제에 의한 질서의 재편도 지구촌의 경계선을 구획할 주요 기준이다.과거 공산주의 진영에 속했던 헝가리 폴란드 체코의 ‘중부 유럽 모델’이 한 사례다.이들은 지난 10년 동안 민주주의 제도를 정상궤도에 올려 놓으면서 경제의 사유화,증권시장 도입,세계 금융시장 편입을 차례로 마쳤다. 북대서양조약기구에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 가입까지 앞두고 있다. 유럽에서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를 혼합한 ‘제3의 길’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도 주목된다. 한반도는 어떤가.고려대 임혁백(任爀伯)교수의 제안에서 대안의 단초를 얻을 수 있다.그는 “새로운 세기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는 다원적 민주주의,역동적 시장경제,창조적 지식정보국가,협력적 공동체사회,아시아 중추국가 등의 비전을 구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지속적 경제개혁과 평화적 민족통합,문화적 다원주의 등이 구체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찬구기자 ckpark@ * 냉전종식후 민족·종교분쟁 표면화 동서 냉전의 종식은 그동안 재 속에 파묻혀 있던 민족간 분쟁·갈등의 불씨를 지구촌 곳곳에서 타오르게 했다.보스니아,체첸,코소보,쿠르드,동티모로,르완다 사태 등이 20세기 마지막 문턱에서 전세계의 관심을 끈 대표적인 민족 분쟁들이다. 94년 4월 소수민족인 후투족 출신의 부룬디 대통령의 비행기 폭발사고로 촉발된 르완다 사태는 불과 3개월 동안 750만명의 인구 가운데 100만명이 사망하는 보복극이 이어졌다. 4,000여년 동안 국가없이 떠돌던 ‘중동의 집시’ 쿠르드족 문제도 20세기의 화약고다.쿠르드족은 74년 압둘라 오잘란을 중심으로 쿠르드노동당(PKK)을 결성,치열한 반(反)터키 독립투쟁을 벌였다.84년 이후 본격 무장투쟁을전개,3만명 이상의 희생자와 30만명의 난민이 발생해 유럽 전역에 퍼져 나갔다.쿠르드인의 끈질긴 노력에도 불구,아직 독립국가 건설 전망은 그리 밝지않다. 냉전 종식과 소련의 해체는 보스니아 내전과 코소보 사태로 상징되는 ‘발칸의 비극’을 낳았다.보스니아 사태는 유고연방 해체와 이에따른 이슬람·크로아티계 연합세력-세르비아계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으로 3년 8개월동안 20만명의 희생자를 냈다. 이어 98년 2월 알바니아계 강경파인 코소보 해방군(KLA)의 본격적인 무장독립투쟁으로 시작된 코소보 사태도 세르비야계의 알바니아계에 대한 ‘인종청소’로 번지면서 급기야 미국과 나토의 개입으로 번지는 ‘국제전’의 양상으로 번졌다. 체첸사태는 소련 연방 해체에 따른 산물이다.스탈린의 중앙집권화를 부르짖으며 강제이주 정책을 단행,민족 분쟁의 불씨를 키워나갔다.94년 발생한 체첸사태는 현재까지 3만명의 희생자를 내면서 여전히 ‘진행형’이다. 23년간 인도네시아 압제에 신음했던 동티모르의 독립투쟁도 70만명 인구 가운데 20만명이 학살된 인류사의 재앙이었다.최근 유엔평화군의 개입으로 동티모르의 독립이 가시화되었다. 이외에도 필리핀의 모로족,스페인의 바스크족,중국의 티벳족 등 열거하기어려울 정도의 많은 종족·민족·종교 분쟁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여,21세기 지구촌의 화해와 통합의 물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오일만기자 oilman@
  • [기고]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은 그 당시 세계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제도적으로 잘보장된 국가였다.그러나 바이마르공화국의 민주주의는 흔히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로 불려진다.제도로서 민주주의는 잘 갖추어졌으나 독일국민들의 정치의식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바이마르공화국 대다수 국민과 정당은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면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이해관계를 민주적으로 조정하는 기제로 민주주의 제도를 활용하기 보다는 자기이익을 무조건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민주주의 제도를 악용하였다.그 결과,바이마르공화국 말기 세계대공황이 독일을 엄습하자,선동정치에 현혹된 독일국민들은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자유로부터 도피함으로써민주주의제도인 선거를 통해 독재자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를 선택하는 비극적이고 역설적 상황이 초래되었다.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사례가 보여주듯이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는다수의 비민주주의자들이 소수의 민주주의자들을 구축하여 국민복리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독재체재로 귀결될 수 있다.불길하게도 심히 우려할만한 이러한 현상이 우리 사회에서도 재연되고 있다는 점이다. 50여년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한 ‘국민의 정부’는 권위주의를 민주주의로,관치 재벌경제를 지식기반시장경제로,구휼적 차원의 복지를 생산적 복지로,냉전적 남북한관계를 평화·화해·협력적 관계로 전환시키는 등 권위주의적국가발전 패러다임을 민주적 발전양식으로 바꾸어가고 있다.이러한 ‘국민의정부’ 개혁정치는 필연적으로 정치·경제·사회적 이해관계의 변화를 수반한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우리사회 각 분야의 기득권층들은 민주주의 제도를 자기이익 고수수단으로 악용하고 민주세력을 공격하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고,이에 따라 역설적으로 민주주의가 비민주적 적폐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 사회의 위험성은 최근 우리 사회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는 옷로비 의혹사건,언론대책문건 사건 등이 이를 웅변으로 대변해주고 있다고 하겠다.옷로비에 고위관료 부인이 개입되었고 정부가 언론대책문건에 의해 언론대책을 마련했는가에 대한 여부에 대한 논쟁은 이러한 일련의사건들의 형식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사건들이 갖는 시대사적 내용은 40년 가까이 지켜온 권력을 내준후 권력금단 현상에 빠진 특정지역주민 및 정당, 구조조정 압박에 직면한 무소불위의 황제재벌, 사회민주화에 의해 족벌체제가 위협받는 언론재벌 등 개혁저항세력들의 조직적 반격에 있다.더 이상 한국사회의 발전에 순기능을 기대할 수 없는 이들 비민주적 기득권세력은 현재의 민주주의제도를 악용하여민주화세력이 주축이 된 ‘국민의 정부’의 도덕성을 공격함으로써 개혁과민주화를 무력화시키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되돌리려고 하고 있다. 예컨대 이들은 과거 개발독재시대의 뒤안길에서 자행된 고문,가혹행위 등공권력의 인권유린,민주주의 압살행위에는 애써 눈을 감는다.지역감정을 선동하는 장외집회를 부끄럼없이 개최하면서 총풍,세풍사건 등 천인공노할만한사건은 야당 탄압이라는 미명하에 세인의 관심 밖에 있기를 원한다. 과거 야당총재를 용공으로 몰고 갔던 경천동지할 사건은 민주주의와 상관없는 과거지사로 치부한다.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과거 개발독재에 봉사하면서부정부패의 본신이었던 인사들까지도 사이비 민주주의자로 변신,자신들의 얼룩진 과거를 잃어버리고 어이없게도 천사와 같이 흠결없는 도덕성을 ‘국민의 정부’에게 요구한다는 점이다. 민주주의 억압과 인권유린의 선봉에 나섰던 비민주주의자들이 민주주의 제도를 악용하여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면,민주세력들은 이제 방관의 침묵에서 깨어나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결연의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비민주주의자들의 전유물이 되어서 민주주의 파괴수단으로 전락된다면 우리사회의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우리는 바이마르공화국의 몰락에서 반면교사의 교훈을 삼고,그렇지 않을 경우 민주세력에 의한 정권교체도일장춘몽으로 끝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식해야만 한다. [황 병 덕.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중앙일보 인터넷신문‘金대통령 비난’로동신문 인용 보도

    중앙일보사의 자회사인 ‘사이버 중앙’이 제공하는 인터넷신문(www.joins. co.kr/joongangilbo)의 영문판 뉴스(english.joongang.co.kr)에 지난달 22일부터 “북한이 김대중 대통령의 언론정책을 비판했다”는 기사가 실려 언론계를 비롯,네티즌들 사이에 파문이 일고 있다. 중앙일보 영문뉴스팀이 만드는 영문뉴스의 ‘북한’(North Korea)분야에 실려있는 이 기사는 지난 11월 21일자 북한의 ‘로동신문’ 5면에 실린 ‘파쑈광의 유치한 기만극’이라는 개인칼럼 성격의 기사를 요약 형태로 인용,“북한이 21일 어느 정권도 현 정권만큼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주지 않았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을 비난했다”고 전했다. 특히 이 기사는 “남한 정부가 언론에 대해 정부정책 관련 보도를 수정할것을 요구하고,정부에 불복종하는 신문사와 방송국의 반정부적 의견들을 억압하고 있다”는 북한의 주장을 담고 있다. 이는 자사신문을 통해 그동안 ‘언론탄압’을 받아왔다고 외쳐온 중앙일보가 북한의 언론보도를 통해 이같은 주장을 합리화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주고 있다. 이와관련 한 네티즌은 “전세계 사람들이 보는 인터넷신문에 북한의 극단적인 주장을 실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 “평소 ‘언론탄압’에 대한 자신들의 주장을 북한의 주장을 인용해 옹호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부처 한 당국자는 “게재 의도가 불명확할 뿐더러 오해를 살만한내용을 번역해서 실은 것은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라면서 “현재 북한의 매체에 게재된 내용을 그대로 인용,널리 유포하는 행위는 법적 처벌과 제재를받을 수도 있는 사항”이라고 밝혔다. 김미경기자 chaplin7@
  • [연극 리뷰] ‘메디아 왈츠’

    극단 표현과 상상의 ‘메디아 왈츠’는 억압적인 현실에 갇혀 지내는 한 주부와 자신을 옭아맨 굴레를 과감히 벗어던진 신화적 인물 ‘메디아’의 대조적인 삶을 통해 ‘새로운 여성상’의 화두를 던지는 여성연극이다. 유리피데스의 희랍극에 등장하는 메디아는 남편이 자신을 배반하자 남편의새 애인과 아이들을 독살하고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나는 강인한 여성.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이탈리아 작가 다리오 포는 다섯편의 독백으로 구성한 희곡‘여성의 역할’에서 메디아를 새롭게 조명했다.연극 ‘메디아 왈츠’는 다리오 포의 희곡가운데 두 편을 선택해 재구성한 작품. 극은 여자와 메디아의 얘기를 오가면서 희화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동시에 전달한다.전신마비로 누워있는 시동생과 아기를 돌보느라 정신없는여자는 건너편에서 자신을 훔쳐보는 남자,수시로 걸려오는 음란전화,그리고이기적인 사랑에 집착하는 연하의 청년에 둘러싸여 숨막히는 일상을 보낸다. 게다가 자신을 성적 대상으로만 여기는 남편은 여자가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자물쇠를 채워뒀다.여자는 이러한 자신의 처지를 앞집 아주머니에게 수다로 털어놓을뿐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날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한편 메디아는 고통의 굴레를 끊어낸 댓가로 죽음의 위협을 받지만 스스로얻어낸 자유와 해방감에 희열을 느끼며 과거를 회상한다. 연출자 손정우는 “여자가 메디아로 동화되는 과정을 통해 2000년대 우리에게 다가올 진정한 여성상에 대한 비전을 시각화했다”고 말했다.이미지극을지향하는 극단답게 무대를 간략히 세우는 대신 음악과 시각적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었다. 다리오 포의 특기인 익살스런 대사가 주제의 무거움을 많이 덜어냈지만 메디아의 독백은 비장함이 지나쳐 부자연스런 느낌이다.12월19일까지 대학로혜화동1번지.(02)763-6238이순녀기자 coral@
  • 스페인 바스크族“독립 무장투쟁 재개”

    [생세바스티앙 AFP AP 연합] 스페인의 바스크족 독립단체인 ‘바스크 조국과 자유’(ETA)가 28일 14개월간 지속된 휴전을 중단하고 무장투쟁을 재개한다고 선언했다. ETA는 성명을 통해 “평화 노력이 와해되고 있어 무기를 다시 들기로 결정했다.휴전 종료를 선언한 만큼 내달 3일부터는 우리 특공대원들이 언제라도투쟁을 재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휴전 중단 배경과 관련,ETA 지도부는 “스페인과 프랑스는 지난 1년간 바스크주를 점령,지배하면서 억압적인 공격을 해왔다”면서 스페인과 프랑스를강력 비난했다. 앞서 ETA는 지난달말 바스크주 자치권 인정과 405명의 바스크 정치범 전원석방,스페인 무장세력의 전면 철수,강경파 협상대표부 교체등을 요구했으나스페인정부는 이를 거절했다. 이번 휴전 중단 선언은 스페인 총선 4개월을 앞두고 바스크 급진 민족단체들이 선거 불참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회동을 갖기 수주전에 나왔다. ETA는 바스크 독립운동을 위해 폭력 투쟁을 전개한 지난 68년 이후 처음으로 지난해 9월 16일 시한을 명시하지않은 채 휴전을 일방적으로 선언,북아일랜드와 같은 평화과정이 이뤄질 것이라는 희망을 낳게 했다.
  • [대한광장] 禧年과 축제

    새천년이 불과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다.우리나라에서 가장 일찍 일출을 볼수 있다는 울릉도에서의 일출행사가 거창하게 계획되고 있고,영국의 런던에서는 거대한 밀레니엄 돔이 건설되고 있다고 한다.온세계가 새천년을 맞을준비로 술렁이고 있다.새해를 맞는 설레임이 클진대 새천년을 맞는 기쁨과희망이야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세상사람들이 기쁨과 설레임으로 기다리는 새 천년의 의미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좀 색다르다.성서에서 하나님께서는 매 50년마다 이스라엘에게 희년(禧年)을 선포하라는 명령을 내린다.명령의 내용은 그 해를 거룩하게 지내면서 이스라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해방을 선포하는 것이다.빚 때문에 노예가 된 이스라엘 사람들이 풀려나고 가난 때문에 팔린 땅이 제 주인에게 되돌려지는 해이기도 하다.희년이 되면 누구나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그럼으로써 희년은 특별히 가난한 사람,억압받는 사람,절망하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쁨,해방의 해가 되었던 것이다. 올 한해 다가올 새천년이 진정한 희년이 되기위한 여러 준비들 중의 하나로 가톨릭 교회를 비롯한 기독교계에서는 빈국들에 대한 선진국들의 외채탕감운동을 전개했고,지난 6월 열린 선진 7개국 정상회의는 최빈국 36개국에대해서 710억달러의 외채 탕감을 결정하였다고 한다.최빈국들의 부채증가에선진국들도 어느 정도의 책임이라도 없지 않다면 가난한 나라들이 외채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부자 나라들이 없애주는 것도 희년의 정신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새 천년을 앞두고 희년 정신의 실천과 관련된 몇 가지 정책이 눈에 띈다.IMF체제 이후 발생한 일부 경제사범에 대한 대규모 ‘밀레니엄’ 사면이 추진된다는 것이다.IMF체제의 극한적인 경제적 어려움 중에서 발생된 불가피한 부도라든가 생계형 사범에 대한 사면이 신용사회로 진입하고있는 우리사회의 신용질서를 어지럽게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않지만대화합과 해방이라는 더 큰 가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지혜도 모아볼 수있지 않을까? 농·어민들이 안고 있는 7조원이 넘는 채무에 대한 연대보증도 내년 상반기 중에는 사실상 정부가 대신 보증하는 형식으로 바뀐다고 하니 농·어민들이 느끼게 될 해방은 실로 엄청날 것이다.연대보증의 해소 뿐만 아니라 그들이 안고 있는 부채에 대한 과감한 탕감도 이제는 서서히 가시화되면서 실천되어야 되지 않을까? 가난 때문에,정부정책의 잘못 때문에 늘어갈 수밖에 없었던 부채였다면 그들에게는 그 어느 계층보다도 희년의 해방과 기쁨이 더 절실한지도 모르겠다. 희년은 축제의 시기이다.특별히 성서가 말하는 종이나 이주민,노예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제도의 기본이다.신 앞에서는 가난한 사람이나 억압받는 사람들도 부자들이나 권력자들과 똑같은 존엄성을 가지며,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찾을 권리는 당연히 이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하나의 과제이다. 모든 사람에게 희년이 진정한 축제가 되기 위해선 가난한 사람과 소외받는사람,그리고 약한 사람들의 부족함이 채워져야 할 것이며,이를 위해 가진 사람들에게 맡겨진 개인적 및 사회적 책임은 어느 누구보다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축제는 단순히 고통을 잊는다거나 즐거움만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모든 사람이 모두 기뻐하고 행복할 수 있는 축제는 자기가 지고 있는 무거운 짐 때문에 축제의 진정한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짐을 덜어주는 데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새 천년의 첫 해가 기쁨과 희망,참된 해방의 축제가 되기 위해 우선 주위부터 돌아다보자.이 축제를 위해 내가 준비할 것은 무엇인가? 내가 덜어주어야 할 주위의 짐은 무엇인가? 내가 용서하고 화해해야할 것은 어떤 것인가? 이러한 반성과 실천으로 새 천년의 축제 초대를 기다린다. [李東益 가톨릭대 교수·윤리신학]
  • [외언내언] 新 황화론

    황화론(黃禍論)의 생명력은 참으로 끈질기다.황화론은 본시 19세기말 독일의 황제 빌헬름 2세가 주창한 황인종 경계론. 당시 일본의 국력이 급격히 팽창하면서 국제적 발언권이 커지자 일본이 유럽 열강의 아시아 지배에 방해가 된다고 본 그의 황색인종 억압론이다.그런데 이 말이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 경계론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며칠전 미국의 조지 부시 텍사스주 지사가 중국은 미국의 경쟁자이지 동반자가 아니라면서 한국 일본 등 아시아지역 민주국가들과 동맹관계를 강화해중국을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년 미국의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후보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큰 부시 지사의 이 말은 미국내에서조차 논란이 많다.중국을 미국의 경쟁자로 보는 근거가 우선 모호하다. 중국이 최근 수년간 연 9%대의 놀랄만한 경제성장률을 보이고는 있으나 1인당 국민 소득은 아직도 800달러 선에 머물러 있다.중국의 개인당 국내총생산(GDP)수준은 라트비아와 자메이카 사이에 끼인 세계 65위다.이제 겨우 먹을것 문제를 해결한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은 지난 21일 무인 우주선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지난 8월에는미국을 사정권 안에 넣을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 ‘동풍 31’ 발사 실험도 했다. 300만의 군대에 핵도 보유하고 있다.그러나 중국의 이런 기술이나 군사력이얼마나 취약한가를 미국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더구나 미국의 군사력과 비교해서는 게임이 되지 않는다. 중국은 옛소련같이 미국과 맞설 수 있는 국제적 수준의 이념적 리더십도 가지고 있지 않다.90년대 초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은 중국의 대미(對美)정책 지침이 될 16가지 원칙이란 것을 발표했다.이를 토대로 중국은 미국과의갈등을 피하기 위해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 왔고 중국의 이런 정책 방향은 쉽게 바뀔것 같지도 않다. 중국은 인구,국토,문화적 우월성으로 해서 쉽게 세계의 잠재적 위협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중국은 이런 인식을 배경으로 은근히 국제적 거물연해온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중국은 전통적으로 침략적인 나라가 아니다. 그런데 미국이 근거도 없이 중국을 적대시하면 중국은 실제로 세계의 위협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그리고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을 위해 봉쇄정책에협조하리라고 보는것도 국제정치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있는 것이지만,만에 일 그렇게 된다면 동북아는 극도의 혼란에 빠지게 될것이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황화론의 연장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부시의 중국관은 한마디로 위험천만하다. 林春雄 논설위원limcw@
  • [독자의 소리] WTO협상서 농민보호 특단대책 절실

    올해말부터 세계무역기구(WTO) 농산물협상이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다.우리농업은 지난번 우루과이라운드협상 타결로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그럼에도불구,경지면적이 1인당 평균 1㏊인 우리 농민을 180㏊인 미국농민과 같은 조건에서 경쟁을 강요하는 것은 억압이다.또 관세까지도 없애겠다는 협상 태도를 견지하고 있음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우리의 식량자급도는 70년 80.5%,80년 56%,88년에는 39.3% 등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식량자급도 저하를 막기 위해 정부의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식량자급도가 30%이하로 내려가는 나라에 식량수입을 강요하지 않도록 하는조치를 협상에서 제안해야 할 것이다. 식량안보,농민의 생존권 보장,국토보존,홍수조절,환경보전 등을 위해서도농업은 보호돼야 한다.정부의 강한 의지와 협상대표들의 해박한 지식과 협상능력이 우리농업과 농민을 지켜줄 것으로 믿는다.아울러 국내 392개 시민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WTO협상 범국민연대의 활동에도 큰 기대를 건다. 장삼동[경남 울산시 남구 무거동]
  • “새천년 걸맞는 정치체제 필요”

    국민회의 총재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2일 “정치개혁이 이뤄지지 않는 데는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크고,여당의 책임도 크다”고 지적한뒤 “새천년을 맞아 정치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야 하며,지식과 정보,문화창조력에맞는 정치체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이만섭(李萬燮) 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 등 지도부와 원외지구당 위원장 100여명을 청와대로 초청,오찬을 함께하면서 “정치는 여야가 같이 하는 것이므로 야당도 잘해주지 않으면 정치를 할 수 없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특히 김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것은 소수 여당의 한계”라면서 “내년 총선을 통해 반드시 국민의 지지를 얻어 여당의 안정세 확보가 중요하다”고강조했다.또 “여당이 안정되어야 나라가 안정되고 국민생활이 안정된다”며 “총선에서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김대통령은 공천문제에 대해서는 “정확한 여론조사를 통해 선거구민이 가장 원하는 후보를 공천할 것”이라면서 “선거구민의 지지를 받으면 당연히공천한다”고 약속했다. 이어 김대통령은 언론문제에 대해 언급,“국민의 90%는 언론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나 정부가 언론을 억압하거나 탄압해서는 안된다”면서 “나는 언론의 자유를 확고히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과거 언론의 자유가 없는 세상이 얼마나 무섭고 어두운지를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언론이 정상적이고 공정하게 보도하지 않을 경우국민의 권리로,또는 이해당사자로 시정을 요구하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김삼웅 칼럼] 思想界를 살리자

    잡지의 날인 11월1일 정부는 장준하선생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사상계의 공적이 뒤늦게나마 평가받게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이날 저녁 서울인사동 한 음식점에서 미망인 김희숙여사를 비롯한 유족과 안병욱·양호민전 사상계주간 그리고 당시 필진·편집·인쇄·제본 등 ‘사상계 가족’이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이 자리에는 장준하기념사업회(이사장 김진현 문화일보사장)관련 인사들과 지난 여름 장선생이 일본군을 탈출하여 중경 임시정부까지의 6천리 길을 따라 행군한 젊은이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초창기부터 사상계를 이끌었던 80대의 논객들은 아직도 꺼지지 않는 정열로 간고한 시대의 사상계시절을 회고하고, 인쇄비나 제본비를 제대로 받지도못하면서 잡지를 만들었던 ‘업자’들은 장선생의 인품과 각종 비화를 털어놓았다. 그리고 한결같은 소망은 사상계의 복간으로 모아졌다. 그토록 어려웠던 시절에도 젊은이들에게 지성과 역사의식을 심어주고 민족의 갈길을 선도하는 잡지를 만들었는데 지금은 왜 못하느냐는 자성과 질책이 잇따랐다.김여사도 생전에 사상계의 복간을 보았으면 여한이 없겠다는 하소연이었다. 사상계는 척박한 전후세대에게는 그야말로 지성의 복음이요 자유와 정의,인권과 민주주의의 교재였다. 정신적 목마름을 달래주는 한줄기 석간수였다. 이렇게 길러진 ‘사상계 세대’가 4월혁명을 주도하고 이어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이념적 모태가 되었다. 장준하정신 되살려야어느 의미에서 사상계세대는 행복했다. 배고프고 억압받고 등록금이 없고 갈곳이 없는 지극히 불행한 시대였지만 사상계라는 오아시스가 있고 북두칠성이 있고 소크라테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함석헌의 광야에서 왜치는 소리는독재정권을 떨게 하고 장준하의 권두언은 잔재주 피우며 시류에 영합하는 글쟁이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사상계 편집위원들과 기고가들은 당시 지성계를 대표하는 양심이고 논객들이었다.그들의 굽힐줄 모르는 필봉은 역사의 진로를 밝히고 시대를 광정하며 사이비 지식인들을 질타했다.의식있는 젊은이들은 사상계를 옆에끼고 민주주의를 지키고 밤을 새워 토론하면서 열정과순수성으로 뜻을 키우고 심신을 단련시켰다. 그래서 사상계세대는 행복했던 것이다. 사상계 편집위원중 상당수가 군사독재에 훼절하면서 사상계정신이 훼손된것은 두고두고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들 배반의 무리보다는 굽히지 않고 차라리 부서져버린 사주 장준하의 장렬한 최후로 인해 사상계정신은 건재하고 지금 부활이 요구되는 생명력을 갖게 된 것이다. 사상계 복간이 요구되는 이유는 결코 복고취향이나 고인의 위업을 잇자는도덕주의만으로는 부족하다. 양심에 충실하면서 국가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지식인들의 갈증과 정신적 혼돈상태에서 방황하는 젊은 세대에게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개척하는 정론지의 존재가 시대적 요청인 것이다. 오늘 우리 언론계나 지식인 사회를 투시하는 깨어있는 지성이라면 사상계복간이 아니라도 사상계 정신을 잇는 월간지의 창간을 필요로 하는데 공감할 것이다. 시시비비나 역사의 갈길보다 사주의 식성에 맞는 글쓰기, 그런 언론이 여론을 지배하는 사회는 개혁도 발전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본질적 위기는 정확한 민심을 모으고 이를 대변하고 이것을 사회발전의 동력으로 이으는 양심적인 식자그룹과 언론매체가 항상 소수 그룹에 멈추거나 ‘핵분열’을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다른 쪽에서는 엄청난 자본과 인력과 세련된 기교로서 신문시장과 지식시장과 여론시장을 독과점하면서 개혁의 발목을 잡고 지역갈등을 부채질하고 남북화해를 훼방하면서 권력화 되고 있다. 이래서 우리 현대사는 퇴행 아니면 갈지자(之)걸음을 걷고 있는 것이다. 뜻 있는 사람들 모여야 한 중소기업인이 사상계 전권을 CD롬으로 만들어 곧 출시할 계획이다. 조선왕조실록과 창작과 비평에 이어 이번에 사상계를 CD롬에 담은 것이다. 서울 시스템의 이웅근회장이 바로 장본인, 이회장은 ‘인사동 모임’에서 사상계 복간에 힘을 보탤 것을 다짐하고 뜻있는 인사들의 참여를 기대했다. 어려웠던 시대 민족의 양심으로 항상 정도를 걸어온 장준하선생의 기념사업회가 기금문제로 아직 설립단계에서 멈칫거리고 있는 판에 사상계 복간은 쉬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렇지만 사상계정신을 잇는 정론지의 출간은 어느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김삼웅 주필
  • [연극 리뷰] ‘내게 거짓말을 해봐’

    ‘장정일을 위한 변명?’지난 5일부터 홍익대앞 소극장 씨어터제로에서 공연중인 연극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아마 이것이 아닐까 싶다. 원작소설은 판금됐고,영화 ‘거짓말’은 개봉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이 연극은 어찌됐든 ‘도대체 원작이 어떤 내용이길래…’하는 관객들의 호기심을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각색·연출을 맡은 시인 겸 영화평론가 하재봉은 ‘유부남 조각가와 한 여고생의 일탈적 성관계’라는 것 외에는 일반인에게 알려져있지 않은 원작의 내용을 충실히 보여줌으로써 작가 장정일의 의도를 관객들에게 이해시키고자 한다고 했다.실제 그는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이 너무 대중적이고 상업적으로만 접근한데 실망해 연극화를 결심했다”고밝히고 있다. 영화 ‘거짓말’이 두 남녀의 성행위에 초점을 맞춘 반면 연극 ‘내게…’는 38세 조각가 제이의 억압된 의식과 자기모멸에 무게를 두고 있다.여고생 와이에 대한 집착과 탐닉도 그의 이같은 비정상적 내면이 표출되는 과정으로그려진다.초등학교 5학년때 죽은 제이의 아버지는 군인장교 출신으로 항상엄격하게 제이를 가르쳤다.아버지에게서 당한 폭력과 정신적 억압은 평생 그의 삶을 조종했고,이는 사디즘과 마조히즘으로 변형돼 나타난다.연극은 무대를 철창처럼 꾸미고,중앙에 군복입은 아버지를 등장시키는 기법으로 원작의정치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하지만 연극 ‘내게…’가 아무리 영화와의 차별성을 강조한다고 해도 ‘상업성’의 혐의를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연출자는 원작을 각색하면서 직접적인 성행위 장면을 생략하고,와이를 끝까지 처녀로 남아있게 했다.그러나 이러한 ‘자기검열’(연출자의 표현을 빌자면)에도 불구하고 반라의 제이와 와이가 나누는 성적인 대화와 몇가지 동작은 연극 특유의 현실감을고려하면 민망하기 이를데 없다.더욱이 ‘충격적인 생생한 라이브무대’를내세우면서 은근히 ‘벗는 연극’임을 드러내는 홍보문구를 대하면 이같은의구심은 더욱 커진다. 어쨌든 그동안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채 논란만 무성히 나돈 ‘거짓말’에 대한 평가는 이제 연극무대에서나마 관객의 몫으로돌아오게 됐다.12월31일까지.(02)338-9240이순녀기자
  • 金대통령“공산주의 인간본능 어긋나 실패”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5일 “공산주의의 계획경제는 정부가 국민의 의·식·주를 책임진다는 것이나 이제 그 책임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뒤 “북한은 수만에서 수십만명이 굶어죽고 있어 정부가 국민을 통제할 힘을 상실했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한국자유총연맹 전국 회장단 371명을 청와대로 초청,다과를 함께 한 자리에서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간 승패는 이미 끝났다”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또 “북한은 개방할 경우 남한에 흡수당하지 않을까 의심하고 있으나 사실우리도 어려운 상태인데 당장 북한을 흡수해서 어떻게 하겠느냐”고 반문,북한의 개방을 거듭 촉구했다. 특히 김대통령은 “우리가 당장 바라는 것은 독일식 흡수통일이 아니라 북한을 도와 북한의 경제를 재건함으로써 자기 돈으로 식량과 기름을 사고,시장경제를 알게 해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밝히고 “그런 과정에서 통일이 온다”고 말했다. 이어 “공산주의가 전세계적으로 후퇴·좌절한 것은 공산주의의 잘못된 이론 때문”이라면서 “마르크스의 이론은 대단히 정교한 이론이어서 한때 자본주의 경제학자들도 경의를 표시했지만 결과는 모든 경제이론 가운데 가장맞지 않는 이론이 됐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공산주의는 노동자 독재의 이름으로 소수의 당간부가 권력을장악,억압하고 수없는 피의 숙청을 하는 등 자유에 대한 인간의 본능에 반하는 것이어서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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