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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눈] 인권위의 원동력/박건형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 인권위의 원동력/박건형 사회부 기자

    학자들은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을 인권이 자연성, 평등성, 보편성이라는 기본요건을 갖추기 시작한 계기로 평가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 역사학 교수인 린 헌트는 저서 ‘인권의 발명’에서 “미국의 독립선언 이후 긴 공백기를 거친 인권은 1948년 유엔의 ‘세계인권선언’이 발표된 이후 진정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누구나 당연히 가진다고 생각하는 인권이 실제 보편화된 것은 갓 반세기를 넘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한국의 인권역사는 더 일천하다. 지난 세월 경제개발 논리 속에서 노동자들의 권리가 철저히 무시됐고 군부독재 시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국가권력 앞에서 무참히 억압받고 쓰러졌다. 지금은 활동이 종료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각종 의문사 실상이나 현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지난 4년간 조사해 발표한 민간인 학살, 인권침해, 간첩단 사건 등 과거사 관련사건을 보면 지난 세월 한국에서 인권의 존재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2001년 국가기관으로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의 등장은 그만큼 각별한 의미를 던져 줬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연령제한철폐법, 성차별 금지법 등 인권관련 법제화를 비롯,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수많은 사건의 권고를 통해 인권문제를 환기시켰다. 최근 조직축소, 위원장 중도사퇴, 신임 위원장 자격시비, ICC 의장국 포기, 국제인권단체의 등급 하향조정 권고 등 연일 이어지는 인권위의 수난은 그래서 더 슬프다. 국민의 권리를 찾아주기 앞서 지금 인권위는 스스로를 추스르기도 힘들어 보인다. 인권위에 독립성을 부여하는 것도, 아니면 쥐고 흔드는 것도 국가가 선택할 몫이다. 독립성이 없는 인권위가 과연 존재가치가 있는지는 먼저 곱씹어 봐야 한다. 단순히 어려운 사람을 동정하고 학술적으로 인권의 의미를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맡기기에 인권위는 너무나 무거운 자리다. 인권위의 힘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 박건형 사회부 기자 kitsch@seoul.co.kr
  • 광화문광장 사흘만에 집회… 피켓시위 10명 연행

    광화문광장 사흘만에 집회… 피켓시위 10명 연행

    서울 광화문광장이 개방된 지 사흘 만에 집회 개최를 둘러싸고 경찰과 시민단체 등이 마찰을 빚었다. 경찰은 3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야당·시민단체의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했다며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진보신당 서울시당 김상철 정책국장, 대학생 등 10명을 연행했다. 앞서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광화문광장에서 첫 기자회견을 열고 광화문 광장 조례안을 폐지할 것을 촉구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4일 광화문광장에서 경찰의 연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또다시 열기로 해 향후 광장 내에서 집회 개최를 둘러싼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그동안 기자회견이 구호 제창이나 피케팅 등의 집회 형식으로 변질하면 집시법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밝혀 왔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회경제국장은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면 안 된다는 규정이 어느 법에 명시돼 있는지 궁금하다.”고 지적한 뒤 “경찰의 강경대응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열린세상]우리 곁의 독재시절 망령/박준철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열린세상]우리 곁의 독재시절 망령/박준철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세상은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는다. 법과 제도를 전격적으로 뜯어고쳐도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심지어 체제를 전복시키는 혁명 앞에서도 사회는 종래의 관성을 좀처럼 버리지 않는다. 일상에 뿌리내린 문화적 습성과 오랜 세월 내면화된 의식이 끈질기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민주화 운동은 세상을 꽤나 변모시켰다. 4·19와 5·18 그리고 6·10 항쟁으로 이어진 절규와 몸부림은 독재정권을 역사의 뒤안길로 떠나보냈고 나아가 우리의 정치와 법과 사회를 현격히 개선시켰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세상이 완연히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우리사회에는 암울한 군사독재시절에 득세했던 억압과 저항의 문화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이다. 최근 미디어법을 둘러싸고 여의도에서 벌어진 불미스러운 사태는 이를 여실히 예증한다. 방송을 통해 낱낱이 드러난 현장의 분위기와 의원들의 몸짓을 보자. 흩어진 머리와 구겨진 와이셔츠 차림으로 본회의장에 들어서는 이윤성 국회부의장의 모습에는 특명을 받고 험난한 사선을 넘어온 지휘관의 비장함이 감돈다. 의장석을 에워싸고 진을 친 여당의원들은 선점한 고지를 사수하기 위해 다가올 일전을 기다리는 병사들을 방불케 한다. 그리고 결국 ‘전투’를 강행했다. 금번 사태에 있어 여당이 보여준 정치문화와 정치의식 속에는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 옛 군사정권의 망령이 버젓이 살아 숨쉬고 있다. 민주당의 반응과 대처 역시 시대착오적이다. 이명박 정부는 엄연히 국민이 선택한 정부다. 한나라당 역시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다수당이 되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마치 정통성을 결여한 과거 군사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득실과 명암이 공존하는 한 법안의 통과를 막기 위해 주저없이 단상으로 몸을 날리는 행위는 아무리 보아도 시대적 코드가 맞지 않는다. 인권이 무참히 유린되고 노동이 처절하게 착취되는, 그야말로 모질고 척박한 세상에 살았던 전태일의 비상(飛上)과는 번지수가 전혀 다르다. ‘무도한 이명박 정권과 어떻게 싸워 이길 것인지가 앞으로 모든 의사결정의 길이 될 것’이라는 정세균 대표의 발언 속에는 70~80년대의 전사적 저항문화가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대학은 어떤가. 과거와 비교해 볼 때, 지금의 대학생들은 현저히 탈 정치화되었다. 총학생회의 주된 관심사는 더 이상 ‘촛불’이 아니라 학생들의 복지다. 그들은 대학 정문에 서 있던 공수부대 장갑차와 남영동 공안분실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타는 목마름’을 경험하지 못했다. ‘서울의 봄’은 그들에게 그저 낯선 이야기다. 오늘의 대학생들이 박종철이나 이한열과 정서적 교감을 나누기에는 세월의 간극과 사회의 변화가 너무나 크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군사독재시절의 문화는 대학 캠퍼스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유쾌하고 흥겨운 한마당이 되어야 할 축제에 철 지난 운동권 노래가 여지없이 울려퍼진다. 등록금 동결을 촉구하는 대자보에마저 ‘사수’와 ‘타도’ 같은 용어들이 난무한다.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물리적 행사도 서슴지 않는다. 정의와 자유라는 대의를 위해 그릇된 권력과 맞서 싸우던 극단의 시절에 불가피하게 선택된 저항과 관철의 방식이 여건이 확연히 달라진 지금도 고스란히 답습되고 있는 것이다. 시대에 뒤처진 기성세대의 정치문화가 청년문화에 전이된 형국이다. 내면화된 문화는 변화에 인색하다. 그래서 우리는 문민정부가 안착된 세상에 살면서도 억압적 군사문화의 희생자로 남아 있다. 그러나 삭발과 단식을 결행하고 몸마저 던지고 있는 또 다른 우리는 음습한 지난 시절을 지배했던 극단의 문화를 조장하는 공범자이기도 하다. 문화가 달라져야 진정한 변화가 도래한다. 박준철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 [쌍용차 어디로] 한상균 노조지부장 “협상 결렬 모든 책임 회사 측에”

    한상균 쌍용차 노조지부장은 2일 휴대전화를 통한 기자회견에서 “노사 협상결렬의 모든 책임이 회사 측에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가 양보하지 않는다는 사측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나. -사측의 주장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다. 사측이 제시한 분사 부분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양보한다는 입장이었다. →사태 전반을 정부가 배후조종하고 있다는 설이 있다. -경찰 진압작전을 정부가 지휘했고, 여기에 사측과 용역들도 함께 했다. 경찰 헬기에 사측 직원들이 타고 있는 것도 목격했다. 정부가 적극 개입하고 있다고 본다. →노조도 파산을 원치 않을 텐데 앞으로 전망은. -현재 단전, 단수된 사각지대에서 노동자들이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의 전망을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협상 결렬의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나. -쌍용차는 해고, 구조개선, 자본구조 등이 뒤엉켜 있기 때문에 풀리지 않는 것이다. 이제라도 정부가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 →공권력과 함께 임직원들이 공장 안으로 들어온다면. -사측은 구사대를 모아 우리를 역도(逆徒)라도 되는 듯 치려 하고 있다. 우린 파국을 원하지 않는다. →사측의 전기공급 중단과 도장공장 진입 선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는 탄압과 억압에 굴복 안 한다. 정당하지 않은 탄압이 계속되면 우리는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다. 그러나 회사 측이 정리해고가 아니라 함께 사는 방안을 찾는 의지를 보이면 언제든 대화할 수 있다. 교섭을 포기하지 않는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도시와 산] 전주 모악산

    [도시와 산] 전주 모악산

    모악산(해발 793.5m)은 전북 대부분의 시·군에서 그 웅장한 자태가 바라다보이는 대표적인 ‘평지 돌출산’이다. 모악산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한반도 최대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의 젖줄 역할을 하고 있어 ‘어머니의 산’으로 불린다. 고어인 ‘엄뫼’를 의역해서 모악(母岳)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영험한 기가 뭉쳐 있는 명당으로 알려져 증산교를 비롯한 숱한 신흥종교가 태동했다. 이 산을 중심으로 이상적인 복지사회를 제시하는 불교의 미륵사상이 개화했다. ●온갖 전설 얽힌 무속신앙의 본거지 모악산은 난리를 피할 수 있는 명당으로 널리 알려진 산이다. 각종 무속신앙의 본거지가 됐고, 신흥종교 암자가 난립하기도 했다. 많을 때에는 80여개의 암자가 있었다. 모악산 서쪽 자락 금평저수지 인근에는 증산교 본부가 자리 잡고 있다. 기를 품은 산이다 보니 세상이 혼란하면 사람들이 모여들어 사회개혁을 꿈꿨다. 통일신라 때 억압받던 백제 유민의 고통을 달래준 진표율사, 후백제를 세운 견훤, 조선 중기 ‘천하공물설(천하는 일정한 주인이 없다.)’ 등 혁신적인 사상을 품다 고발당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정여립, 동학혁명의 기치를 내건 전봉준 등 수많은 이들의 혁명정신이 깃든 곳이다. 모악산은 한때 북한 김일성의 시조묘 논란으로 화제가 됐다. 전주 김씨 시조 김태서가 모악산 명당 터에 묘를 써 김일성과 김정일의 운이 발복했다는 설이다. 산이 크고 역사가 깊은 만큼 많은 전설이 얽혀 있다. 정상으로 가는 능선길의 무제봉은 기우제를 올리던 곳이다. 조선시대 가뭄 때마다 전주감사가 산 돼지를 제물로 올리고 주민들은 농악을 울리며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무제봉 왼쪽의 장군봉은 많은 사람이 신성시해왔다. 명당으로 소문나 몰래 묘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이 줄기에 묘를 쓰면 가뭄이 들어 입산금지령까지 내려졌었다. ●접근성 뛰어난 근교산 모악산은 전북 전주시 중인동, 김제시 금산면, 완주군 구이면 등 3개 시·군에 걸쳐 있다. 전주 도심에서 차량으로 15분 안팎이면 도착할 정도로 접근성이 뛰어나다. 직장인들이 출퇴근 전·후에도 다녀올 만큼 시민들의 친숙한 쉼터이자 휴양지다. 이름처럼 언제 누가 찾아와도 어머니처럼 품에 안아주는 정겨운 산이다. 삶의 고단함과 괴로움이 모두 사라지고 새로운 의욕이 용솟음치는 기운을 준다고 한다. 동편 자락에는 전북도립미술관이 있어 건강을 챙기고 문화생활을 즐기려는 이들이 많이 찾는다. 산 주변은 경관이 아름답고 환경이 좋아 전원주택지로 인기가 높다. 완주군 구이면 모악산 자락은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일찍 터를 잡았다. 3.3㎡에 70만~100만원을 호가하지만 매물이 없을 정도다. 남서쪽 자락인 전주시 중인동 일대도 전원주택들이 앞다퉈 들어서고 있다. 전주시가 완산체육공원을 조성해 찾는 시민들이 급증했다. 모악산도립공원 관리사무소 이동훈씨는 “모악산은 산세가 아름답기도 하지만 불교, 증산교, 천주교 등 각종 종교문화가 발달한 특별한 지역”이라며 “탐방객이 연간 100만명에 이를 만큼 전북도민들로부터 사랑받는 호남의 명산”이라고 말했다. ●호남 4경의 아름다운 산 모악산은 봄경치가 아름답다. 모악춘경(母岳春景)은 호남사경(湖南四景) 가운데 제일로 꼽힌다. 4월에 피는 벚꽃과 배롱나무 꽃은 장관이다. 두번째가 변산반도의 하경(夏景)이요, 세번째는 내장산의 단풍, 네번째가 백양사의 설경(雪景)이다. 봄이 아니어도 모악산은 수려한 자태를 자랑한다. 정유재란, 동학농민운동,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큰 나무는 거의 베이거나 불에 탔지만 끈질긴 생명력으로 빠르게 상처를 회복했다. 전북녹색연합 한승우 사무국장은 “모악산은 도시 근교에 있지만 멸종위기 생물들이 서식할 만큼 생물다양성이 풍부하고 생태계가 건강하다.”면서 “전주시의 녹지 핵심공간으로 보호하고 가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산이지만 등산코스는 만만하지 않다. 4개의 등산코스가 모두 2시간30분 이상 소요된다. 가장 인기 좋은 완주군 구이면 주차장~대원사~수왕사~금산사 주차장 코스는 4시간이 걸린다. 구이면 원기리 모악산 들머리에서 고은 시인의 시비를 지나면 왼쪽에 선녀폭포, 사랑바위, 선녀다리를 만난다. 선녀와 나무꾼이 사랑을 속삭이다 노여움을 사 바위로 굳어져 석상이 됐다는 애틋한 전설이 전해오는 곳이다. 20분쯤 오르면 보덕화상의 제자 대원스님이 창건했다는 대원사에 이른다. 증산교 창시자 강일순이 깨달음을 얻은 곳으로 유명하다. 정상에는 방송사 중계탑이 있다. 최근에 옥상을 공개해 산 정상을 도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민원이 다소 가라앉았다. 정상에 서면 사방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경관에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온다. 동으로는 한폭의 수채화 같은 구이 호반이 눈길을 붙잡는다. 서쪽으로는 호남평야가 발아래 펼쳐진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변산반도까지 보인다. 남쪽으로는 멀리 내장산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북으로는 전주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호남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구이, 금평 등 대다수 저수지와 하천은 그 물의 근원을 모악산에 두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관개시설인 벽골제도 젖줄이 모악산에 닿아 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가장 가까운 가족에 대한 ‘가슴 아픈 관찰’

    가족은 과연 우리에게 마음의 평온만을 가져다 주는가. 우리 시대의 현실을 끊임없이 소설로 이야기해온 ‘비판적 리얼리스트’ 소설가 현길언이 이번에는 그 날카로운 시선을 ‘가족’에다 갖다 댔다. ‘나의 집을 떠나며’(문학과지성 펴냄)는 16년 만에 나온 그의 소설집. 지난해 장편소설 ‘열정시대’가 나왔지만, 단편집은 ‘배반의 끝’(1993) 이후 처음이다. 책에 실린 다섯 편의 중·단편은 모든 관계의 시작이자 우리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에 대한 다섯 장면의 ‘가슴 아픈 관찰’이다. ‘관계’ 연작 중 일부를 모은 것이다. 작가는 결코 훈훈하지도 않고 오히려 비참하고 또 억압적인 가족관계를 묵묵히 독자들에게 던져준다. 더구나 그 사이에는 늘 죽음과 병이 함께 버무려져 있어 보는 이를 불편하게 한다. 표제작 ‘나의 집을 떠나며’에서 주인공 ‘인영’은 13살에 엄마가 세상을 떠나자 자신이 아버지와 동생들을 돌보겠다고 다짐을 한다. 야간 학교를 다니고 취업도 결혼도 포기하지만, 이 헌신적 가족애는 오히려 가족들을 옭아매는 뒤틀린 결과를 초래한다. 심지어 인영은 암으로 고통받는 아버지에게 평온을 가져다주기 위해 입과 코를 막아버리기도 한다. ‘안과 밖’도 자신은 평생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결혼이 남편에게는 고통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늙은 여자의 이야기다. ‘우리 빗물이 되어 바다에서 만난다면’은 죽음 직전에 이른 어머니에게까지 개종을 강요하는 신부가 등장한다. 이런 작가가 책을 통해 결국에는 가족애를 이 사회의 해답으로 제시할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극히 메마른 소설의 문체는 그저 장면을 그려 제시할 뿐 그 이상은 없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작가는 오히려 독자들에게 가족과 그를 바탕으로 한 사회 속 관계에 끊임 없는 질문을 던지고 성찰하도록 만든다. 해설을 붙인 문학평론가 이재복은 “작가는 인물들이 가족과 사회 속 중층적 관계를 살아내는 방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면서 “인간 삶의 심층에 있는 진실 문제를 끊임없이 드러내 현재 삶을 반성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기 위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씨줄날줄] 만델라 데이/김성호 논설위원

    아프리칸스어로 분리·격리를 뜻하는 아파르트헤이트. 인종차별, 아파르트헤이트와 관련해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은 씻지 못할 오명의 역사를 갖는다. 17세기 이후 이주한 백인이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비백인(非白人)을 차별해 온 억압, 멸시의 대명사 아파르트헤이트. 1948년 네덜란드계 백인 위주의 국민당 정부수립 후 공식제도로 시작돼 수많은 이들을 사지와 감옥으로 보냈다. 유색인종의 참정권을 막고 다른 인종간 혼인을 금지해 백인 특권 유지와 강화를 밀고갔던 아파르트헤이트. 이 불평등의 체제유지는 1976년 요하네스버그 주변 흑인집단거주지역 소웨토서 터진 폭동으로 큰 변화를 맞기 시작했다. 유색인종의 투쟁이 들불처럼 번졌고 1981년 헌법개정에 이어 10년전 인종차별 철폐의 헌법발효를 끌어냈다. 남아공에서의 인종차별 소멸엔 숱한 이들의 희생이 거름이 됐다. 넬슨 만델라는 가장 널리 알려진 일등공신. 인종차별에 맞서 탄압받던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회원을 7000명에서 10만명으로 늘려 놓았다는 인권변호사 출신이다. 44세때 종신형을 선고받아 27년을 감옥서 보내고 70대 초반 석방된 만델라는 노벨평화상을 받은 이듬해인 1994년 대통령이 됐다. 세상 사람들은 그해를 남아공에서 350년간의 인종차별이 종식된 해로 부른다. 얼마전 만델라의 91번째 생일, 남아공에선 전국적인 자선행사가 하루종일 있었다. 자신의 생일을 어려운 이웃에 봉사하는 ‘나눔의 날’로 해 달라는 만델라의 요청을 정부와 국민들이 받아들인 것이다. 대통령, 여야 의원, 고위공직자들이 불우노인 위문잔치며 거리청소에 나서는가 하면 노숙자들에게 담요를 건네는 등 나눔의 손길이 하루종일 이어졌다는데…. 남아공 정부는 만델라의 생일을 우리 국경일 수준의 ‘만델라 데이’로 공식 지정했다고 한다. ‘갈라진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영웅’ ‘경제 인종차별을 가져온 위인’이란 엇갈린 평을 받는 만델라. ‘아프리카의 정치적 대부’로 불리는 그가 흑백화합과 인종차별 종식을 위해 변함없이 지켰던 통치철학은 ‘관용과 화해’였다고 한다. ‘만델라 데이’, 지정할 만하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는….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新아시아시대-공직파워] 정장식 중앙공무원교육원장 인터뷰

    [新아시아시대-공직파워] 정장식 중앙공무원교육원장 인터뷰

    “신(新)아시아 시대 공직사회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ASEAN) 등 자원부국과의 교류를 더욱 활발히 하고, 공무원들은 창의적인 콘텐츠로 실력을 갖춰야 한다.” 정장식 중앙공무원교육원장은 16일 서울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필수자원 확보를 위해 공직사회가 아시아 국가들과의 교류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우리나라 공무원교육을 총괄 지휘하는 정 원장은 세계 경제의 중심이 미국에서 중국, 인도 등 아시아로 넘어오는 과정을 주시하면서 공무원들이 관련 국가의 행정, 문화, 역사 등에 관심을 가지고 행정 전반의 인적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장 경험을 통한 실용 교육과 글로벌 마인드 강화 훈련이 필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원장은 특히 지금까지 3000여명의 ‘친한파 외국인 공무원’을 길러낸 외국공무원 교육을 ‘소리없는 홍보’로 규정하며 신아시아 시대의 주무대에 올라서는 ‘아세안’ 회원국 공무원에 대한 교육과정을 내년부터 격년에서 매년 운영하는 체계로 바꾸기로 했다. 그는 오는 10월 교육원에서 열리는 아시아 국가들로만 구성된 아시아 지역 유일의 행정발전 모색기구 ‘동부지역 공공행정기구(에로파·EROPA)’ 제22차 총회의 의장직을 수행한다. 정 원장은 “이번 총회가 한국의 녹색성장정책의 국제적 전파는 물론 인적교류 활성화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신아시아 시대를 맞이하는 한국 공직사회의 방향과 공무원이 대처해야 할 자세에 대해 들어봤다. ●말레이시아 요직마다 친한파 공무원 근무 →신아시아 시대의 공직사회는. -미국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의 주도권이 미국, 유럽에서 아시아로 넘어오고 있다. 특히 중국, 인도 등 역사적 저력이 저평가 되는 국가들의 국민적 자부심은 대단하다. 전례 없는 경제위기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모두 경제성장률이 추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직사회는 상호 ‘윈윈’하기 위해 아시아 국가간 자원 외교와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녹색국가 브랜드화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아시아 공무원간 상호 인적 교류도 활발해 질 것이다. →한국 공무원의 위상과 역할 변화도 불가피할 것 같은데. -그렇다. 중국 등에 대해 보는 시각도 달라져야 한다. 중국, 인도 등에서 배울 건 배우고 세무행정, 전자정부 등 알려줄 건 알려줘야 한다. 행정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바뀐 지금 말레이시아 등 후진국에서 우리의 선진 행정을 배우러 온다. 결코 교만해서는 안 된다. 실력을 바탕으로 콘텐츠를 갖춰 당당하지만 겸손하게 대해야 한다. 균형자 역할을 잘해야 한다. →공직사회가 적극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공직자 한 사람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기업은 이해 관계가 우선되지만 공직자는 이해 관계를 넘어 장기적으로 국익에 도움을 줄 수 있다. 1984년부터 매년 1100여명의 공무원을 한국에 보내온 말레이시아의 경우 현재 공직 내 정책을 결정짓는 주요 요직에 친한파 공무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아세안은 교역상대국 가운데 3번째로 규모가 크다. 특히 신아시아 국가들 중에는 브루나이 등 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많다. 앞선 행정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자원을 확보하면 서로가 발전할 수 있다. ●“비영어권, 특히 화교권 교육·협력 강화” →교류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은. -지금까지 아세안 회원국 공무원에 대해 격년으로 운영해오던 ‘아세안 인적자원개발과정’을 내년부터 연례 운영하는 등 아시아국가와의 교류와 협력을 더욱 확대할 예정이다. 외국공무원 교육과정에는 올해부터 ‘저탄소 녹색성장’ 교과목을 개설해 ‘녹색국가’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실전을 방불케 하는 국제협상과정도 지난해부터 운영중이다. 9월 싱가포르 인적자본 고위지도자회의와 10월 교육원에서 500여명의 아시아 10개국 인사담당 공무원과 전문가들이 참석할 ‘동부지역 공공행정기구(에로파 )’ 개최는 인적교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신아시아 시대 공무원이 갖춰야 할 덕목은. -상생과 네트워킹이다. 신아시아 국가들은 열강들에 오랜 시절 억압당하면서 민족의 한이 많다. 평화를 사랑하고 공존하는 상생 관계로 녹색성장시대에 마음에서 우러나는 겸손함으로 외국공무원들을 맞이할 필요가 있다. 통계, 기술 등 해당 분야 외국공무원들과 자주 만나 경험을 공유하고 인간적인 네트워크를 연결해 두는 게 좋다. →공무원 교육에도 변화가 오나. 강조되는 교육과정은. -그동안 미국, 영국 등 영어권 일변도였지만 이제는 중국,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스웨덴 등 비영어권 지역에 대한 교육훈련이 강화될 것이다. 아세안 국가들은 특히 화교권이 강세이기 때문에 중국어를 잘하는 공무원을 육성할 것이다. 특히 신아시아 외교구상에 따라 공무원의 국제정세 인식과 글로벌 마인드를 강화하는 교육에 더욱 집중할 예정이다. 외국공무원교육의 범위와 주제를 다양화하고 외국의 공무원 교육훈련기관과 교류협력도 강화해 아세안 국가들과의 네트워크를 돈독히 할 것이다. ●“보르네오 밀림, 책상 앞에 앉아서는 모른다” →신아시아 시대 공무원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콘텐츠를 갖추고 보다 실용적인 해외훈련을 해야 한다. 몸으로 부딪치고 사람을 사귀어 보고 그 나라의 역사, 문화, 전통를 알려고 노력하고 진정으로 다가서야 한다. 보르네오의 밀림지역에는 가 봐야 알지 책상 앞에 앉아서는 모른다는 얘기다. 싱가포르처럼 정직하고 청렴한 공직자상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공무원에게 당부 하고 싶은 말은. -선진화의 마지막 고비를 글로벌로 극복하는 데 공직자들이 앞장서야 한다. 글로벌 시대에 맞는 창의롭고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공직자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또 민간 분야가 잘 돌아갈 수 있도록 기름칠해 주는 윤활유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외국인들의 대한투자를 늘리고 공직자들은 창의와 글로벌 마인드로 무장하고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또 기본적인 신뢰, 법치가 근본이 되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 공무원은 청렴과 봉사정신을 공직가치의 우선으로 둬야 한다. 공직자가 중심을 잡고 든든하게 법치의 뿌리가 내리도록 해야 한다. 글 사진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민족, 과연 최상위 가치일까

    단일민족 신화에 기반한 한국 민족주의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강한 응집력으로 근대 산업화를 이룬 성장의 원동력인 동시에 ‘우리’와 다른 남을 철저히 차별하고 배제하는 획일성으로 비판받고 있다. 긍정적 요소를 강조하는 쪽은 우파 민족주의, 폐해를 인정하지만 유효성에 더 무게를 두는 쪽은 진보적 민족주의로 구분된다. 근래에는 민족주의를 폐기, 또는 약화하자는 탈민족주의도 민족담론의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권혁범 대전대 정치언론홍보학과 교수는 최근 출간한 ‘민족주의는 죄악인가’(생각의 나무 펴냄)에서 이 세가지 민족주의를 둘러싼 논의를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각각의 담론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 나름의 균형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시도했다. 권 교수는 먼저 단일민족 의식은 근대민족국가 형성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고, 국사와 국어 등 국가 교육을 통해 유포된 상상의 산물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민족을 최상위 가치로 두는 민족주의적 세계관은 생명, 자유, 평화, 환경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무시하거나 배제할 위험성이 크다고 말한다. 이런 측면에서 진보적 민족주의도 퇴행적이고 국수주의적인 민족관에 반대하지만 젠더나 다른 정체성을 가진 하위집단의 문제를 무시하거나 억압하는 한계를 지닌다고 권 교수는 주장한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민족주의의 부정적 영향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민족이라는 현실을 간과할 수 없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또 민족을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보는 단순한 시각을 경계한다. 결론적으로 ‘민족주의는 죄악인가’란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대신 민족이란 범주를 고민하면서 페미니즘, 인권, 환경 등을 축으로 한 세계시민주의로 나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할 것을 강조한다. 한국사를 세계사와의 유기적 관계에서 파악하고, 민족주의가 지배적 담론의 장에서 약화되도록 다른 가치체계, 이를 테면 사회정의론, 세계시민주의 등을 확산해야 한다는 것 등이 권 교수가 제시하는 방책이다. 1만 1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카악~ 괴물이다… 야만성·무질서·무지 속 내면의 야수 환상 속 이미지·쾌락을 불러내는 존재

    카악~ 괴물이다… 야만성·무질서·무지 속 내면의 야수 환상 속 이미지·쾌락을 불러내는 존재

    괴물이 각광받는 시대다. 어린이가 공룡을 좋아하는 것처럼 말이다. 현대인들은 괴물을 쿨(cool)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우주에서 방사선에 노출돼 DNA가 변형된 사람들을 그린 영화 ‘판타스틱 4’나 슈퍼맨의 어린시절을 그린 TV미니시리즈 ‘스몰빌’, 늑대인간과 뱀파이어가 활약하는 영화 ‘반헬싱’과 그 연작 시리즈들이 꾸준히 인기를 모으는 것을 보면 그렇다. 괴물은 비록 외모가 괴기스럽고 혐오스럽지만 자신의 뜻하는 대로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서, 직장 스트레스와 억압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금기의 세상을 상상하고 꿈꾸는지도 모르겠다. ●새달 30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괴물시대’ 서울 서소문동 서울시립미술관이 8월30일까지 ‘괴물시대’라는 제목의 전시를 연다. 괴물(monster)의 서양적 어원을 찾아가면, 라틴어로 ‘가리키다(monstrare)’와 ‘경고하다(monere)’라고 한다. 19세기까지 괴물은 광기, 악덕, 비이성, 위반 등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일탈을 공중 앞에 드러내 경고로 삼아야 하는 사람들을 의미했다고 한다. 이번 서울시립미술관의 괴물시대 전시기획은 공포스러운 그림과 추한 그림, 조각, 사진 등을 통해 시대와 불화할 수밖에 없는 작가들의 예민한 정신세계와 인류와 불화하는 현대사회의 불협화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현대인들이 괴기스러운 것을 발견하면 ‘괴물이다.’라고 손가락질하지만, 그 손가락질이 사실은 자신들을 향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폭력성과 야만성, 무질서, 무지 속에서 내면의 야수, 괴물을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전시장 입구에 위치한 1980년대 민주화 운동과 군부독재의 실상을 그려낸 안창홍의 불사조, 신학철의 ‘한국근대사’ 시리즈, 박불똥의 ‘사령관 각하의 부스럼’ 등은 낯익으면서도 낯선 그림이다. 2009년을 사는 사람들 중에는 1970~80년대 처절한 민주화 운동을 이미 잊은 채 민주화된 세상을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불사조 한 마리가 화살에 맞아 죽어가면서 수백만마리의 불사조를 탄생시키는 안창홍의 1985년작 불사조를 보면, 민주화의 새벽은 1960~70년대의 산업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자각하게 된다. 군부독재 사회에서 부의 축적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보여주는 신학철의 작품도 오랜만에 본다. 가나아트의 이호재 회장이 2002년에 80년대 민중미술 컬렉션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했는데, 그 안에 있던 작품들이다. 당시 기증작품 중에 오치균의 ‘인체’도 들어 있었다. 오 작가가 80년대 말 미국 유학시절에 그린 작품으로, 미국인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고통과 재정적인 궁핍으로 절규하던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오 작가는 현재 한국현대미술에서 가장 잘나가는 작가 중 하나이고, 당시 민중미술계열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기증 작품 목록에 끼어들어갔는지 모르겠다. 이 전시의 세 번째 섹션인 ‘내 안의 괴물’에서 볼 수 있다. 폐타이어로 대형 조각품을 만든 지용호의 ‘재규어5’는 쓰레기를 지속적으로 양산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고통을 공허한 재규어의 눈빛으로 보여준다. 스테인리스로 만든 칼과 나이프도 먹어치우는 탐욕스러운 검은 악어와 아름다운 꽃처럼 보이는 소가죽의 악취를 통해 현대사회를 비판하는 김혜숙의 작업도 인상적이다. 아름다운 크리스털 원형 볼에 오줌을 담아 놓은 장지아의 설치작업 ‘P-tree’는 사회의 금기를 거부하며 새로운 생명을 키우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불결하거나 더러운 것은 오줌이 아니라, 그것을 그렇게 인식하는 인간의 차별화된 마음이 아닐는지. ‘착하고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굉장한 힘을 가진’ 괴물을 그려온 이승애의 아름다운 괴물 벽화와 곤충표본 상자에 모아 놓은 ‘미이라’ 연작도 볼 만하다. 연필만으로 그려 놀라운 표현력을 보여준다. 타투 작가로 잘 알려진 김준의 초기 작품 ‘지옥도’, 한꺼풀만 안으로 들어가면 붉은 살덩이뿐인 인간의 실체와 허위의식에 접근하고자 한 한효석의 ‘감추어져 있어야만 했는데 드러나고만 어떤 것들에 대하여 10’ 등은 충격적일 수 있다. 이 밖에 임영선, 류승환, 이한수, 김남표, 심승욱, 송명진, 호야, 전민수, 이완, 이재현 등 21명의 작가가 전시에 참여했다. 관람료 700원. (02)2124-8941. ●새달 22일까지 사비나미술관 ‘더블 액트’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의 ‘더블액트(Double Act)’ 전시에도 괴물은 존재한다. 눈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은 1층에 전시된 서정국과 김미인의 ‘신종생물’ 시리즈다. 공룡이 빨간 날개를 달고 있는가 하면, 공룡의 얼굴은 사라지고 노란 꽃이 활짝 피어 있다. 황제펭귄에게는 진짜 날개가 달려 있기도 하다. 괴물은 2층에도 있다. 이 괴물은 ‘바나나맛 우유’ 시리즈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중고등학교 책상 위에 작은 트랜스포머들이 있는데, 로봇들과 전투기들이다. 수류탄 형상을 한 바나나맛 우유로 만든 작품들로, 강압적으로 우유를 마시게 했던 초등학교 시절과 몸에 그 우유를 소화할 수 있는 효소가 없어 배앓이를 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김과현(김원화+ 현창민)이 공동작업한 것이다. 작가 박진아와 이재현이 작업한 ‘도킹’과 ‘남자와 소년’ 등의 작업은 구상작품일 때와 경계선만 남겨 놓고 구체성을 없애버린 작품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모호할 때 관객이 느끼게 될 공포는 상상 이상이다. 지하 1층에 전시된 작가 최현주와 이종호의 작업 ‘감각과 지각’에는 인간의 환상 속에 숨어 있는 이미지와 쾌락을 불러내는 괴물이 도사리고 있다. 다름아닌 ‘소파’다. 이 괴물은 유쾌하고 거부할 수 없을 만큼 유혹적이다. 앉고 싶은 욕망에 휩싸이더라도 그러면 안 된다. 작품이기 때문이다. 해외 이주민 노동자들에 대해 고민할 수 있도록 하는 그룹 ‘믹스라이스’ 작업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제 순혈주의의 허위의식을 깰 때가 됐다. 8월22일까지. 관람료:1000원. (02)736-4371.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친일 군인·경찰·예술인 재산도 환수

    10일 친일·반민족행위재산조사위원회는 친일 행위를 한 재산환수 대상자를 확대 선정해 다음달 15일 발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재산환수 대상자는 을사늑약 등 국권 침탈 조약에 관여한 대신과 조선총독부 고위 관계자, 중추원 의원 등 450여명의 일제치하 정부 고위직으로만 한정됐지만 이번에는 친일 활동을 한 군인과 경찰, 예술인 등도 대거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위는 “친일 정도가 중대한 이들을 별도로 선정하는 작업을 진행해 전원위원회 회의를 앞두고 있으며 각계각층의 인사가 포함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사위는 “인물 선정과 규모는 전원위가 결정할 사안”이라면서 “독립운동을 억압한 군인과 경찰, 위안부 모집을 선동·주도한 인물 등 반민족 인사가 주를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레인’

    성공한 페미니스트 작가 아가테는 정계 진출을 위해 고향 도시를 방문한다. 고향의 집을 지키는 여동생 플로랑스는 언니의 방문이 그리 반갑지 않다. 작년에 세상을 떠난 엄마가 언니만 사랑했던 까닭에, 그녀는 어린 시절의 앙금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산다. 아가테의 방문 소식을 접한 다큐멘터리 감독 미셸과 카림은 ‘성공한 여성에 관한 작품’을 만들고자 그녀에게 접근해 승낙을 얻어낸다. 이혼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한 미셸은 유부녀인 플로랑스와 은밀히 사귀고 있고, 아가테 자매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미무나의 아들인 카림은 버릇없고 약아빠진 자매를 달갑지 않게 대한다. 아녜스 자우이와 장 피에르 바크리 부부가 세 번째 작품 ‘레인’으로 한국 관객의 마음을 또 다시 적시려 한다. 두 사람은 이번에도 다양한 인물들의 얼기설기 꼬인 관계를 빌려 현대인의 도덕과 사회구조에 관한 세련된 풍자와 유머를 구사한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씨가 계속될 경우, 어떤 사람은 현실의 불만을 날씨 탓으로 돌리곤 한다. 하지만 날씨에 달리 무슨 죄가 있겠나, 엉뚱한 대상을 원망할 필요는 없다. ‘레인’은 상대방을 향한 불만족과 가슴 속에 묻어둔 답답함의 원인을 인물 간의 관계 짓기에서 찾는다. 문화적 취향과 활동을 한 개인이 속한 사회계급과 연결한다는 점에서 자우이와 바크리의 영화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이론과 무관하지 않다. 더욱이 ‘레인’의 한 장면은 현대사회를 지배계급, 중간계급, 피지배계급으로 나눠 분석한 부르디외의 계급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아가테와 미셸, 카림은 영화를 찍다 비를 피해 농가를 찾는다. 정치인을 꿈꾸는 여자와 그녀에게서 뭔가를 뽑아내려는 두 작자와 농업의 몰락으로 힘겹게 사는 농부가 나란히 앉아 있는 형국을 부르디외가 본다면 미소를 지을지도 모른다. 취향과 문화로 구분지어진 세 계급은 각 계급의 세계관과 정치관을 그대로 드러낼 따름이다. 농부는 정부의 농정 실패를 놓고 분개하지만, 정작 정치인을 꿈꾸는 아가테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지배계급인 아가테에게 화를 입힌 두 감독 역시 마음을 졸이느라 농부의 목소리 앞에서 딴청을 피우기는 마찬가지다. 그대로 계속됐다간 사회의 불평등과 모순이 영영 풀리지 못할 지경이다. 하지만 자우이와 바크리는 자신들의 도구인 영화를 사회적 투쟁 목적으로 사용하는 데까지 나아가진 않는다. 프랑스에서 ‘레인’과 같은 해에 개봉한 걸작 ‘모던 라이프’에도 유사한 농가의 장면이 나온다. 다큐멘터리 감독 레이몽 드파르동이 20여년의 세월을 바쳐 완성한 ‘농부의 기록 3부작’의 마지막 편인 ‘모던 라이프’에서 농부들은 대체로 가난하지만 계급 격차를 덜 느끼고, 신중하나 꾸밈없이 행동하며, 근면하면서 건강한 존재임이 드러난다. ‘레인’에서 그들과 가장 가까운 인물은 미무나다. 권력의 중심에 위치한 아가테가 ‘배려’라는 단어를 어렵사리 기억해내곤 실천하기가 버거웠던 것과 반대로, 성적·인종적·계급적으로 가장 억압받는 존재인 미무나는 충실한 삶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타인에 대한 배려’, 그것이 바로 ‘레인’이 제시하는 알맹이다. 원제 ‘Parlez-moi de la pluie’, 감독 아녜스 자우이, 9일 개봉. 영화평론가
  • [정윤수의 종횡무진] 열정이 폭발하는 경기장

    규율과 반복, 오늘날의 삶을 규정하는 두 요소다. 규율에는 명문화된 법률도 있고 그 사회가 일정하게 합의한 풍습도 있다. 그 어느 것이든 한 개인이 그것을 거역하면 곧 제재를 받는다. 무력한 개인은 그 울타리를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다. 야밤에 차량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 보는 정도일 뿐, 율법과 풍습의 규제 속에서 현대인은 살아 간다.그리고 반복이 있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삶이란, 오늘날에 있어 실로 위험천만한 길이다. 반복의 삶, 그 바깥은 위험하다. 테두리 바깥으로 뛰쳐 나가거나 밀려 나가는 것은 이 사회가 보장하지 않는 방식의 삶으로 내던져지는 것이다. 자의로 선택하든, 타의로 밀려나든 반복의 삶 바깥은 전혀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 반복의 삶을 승인하게 되면 사회는 안전을 약속한다. 개인과 그 가족의 안전한 생활과 예정된 삶은 철두철미한 반복으로 인하여 얻어진다. 출근 길의 엄청난 인파는 어제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오늘의 삶을 반복하기 위하여 앞 사람의 등줄기에 밴 땀 냄새를 맡으며 걷고 또 걷는다. 위험한 자유보다 안전한 반복을 선택한 생존의 행렬이다.물론 우리는 일상 속에서 작은 의미를 찾고자 한다. 사랑을 하고 여행을 하고 예술을 찾는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일상의 관습적 틀을 벗어 나게 하는 묘약들이다. 사랑은 타인의 정신과 육체를 통하여 나를 다시 확인하는 존엄한 일이다. 다만 사랑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속한다. 그리고 여행이 있다. 여행은 작은 ‘나’가 큰 ‘나’, 곧 대자연의 품 속에 스며 드는 일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여행은 개인이 낮은 숨소리로 걸어 가는 일이 된다. 정열의 폭발 같은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예술이 있다. 규율과 반복을 생리적으로 거부해온 예술가의 작품을 보면서 현대의 작은 개인은 예기치 않은 충동을 얻는다. 그러나 이 역시 한 명의 개인이 침대에 누워 책을 읽거나 컴컴한 극장에 들어가 숨 죽이고 스크린을 응시하는 행위가 된다.현대는 이상의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어딘가 부족하고 허전한 시대다. 우리는 좀 더 강력하고 장쾌하며 거대한 스케일 속에서 실로 살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자 한다. 그런데 대전제가 있다. 그 강력하고 장쾌한 것이 결코 개인을 억압하거나 강요된 명령이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수많은 군중이 운집하였지만, 그러나 집단의 일원으로 ‘집합’ 당한 게 아니라 저마다 다양한 개인적 열정으로 한 여름 밤의 꿈을 찾아 즐겁게 모인 열정의 한 순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그럴 만한 곳이 어디에 있을까. 경기장! 그렇다. 바로 그곳이다. 저마다 다양한 사연으로 모였으되 결코 집단의 과잉된 열병으로 추락하지 않는 곳. 수만 명이 모였으되 강요된 집합 명령이 아니라 자발적인 문화적 제의로 찾아든 곳, 경기장은 그런 곳이다. 그런 열정의 품 속에서, 이 습기찬 장마철에 선수들은 숨을 헉헉 몰아 쉬며 뛰고 또 뛴다. 일시적이나마 규율과 반복을 벗어난 공간이 곧 경기장이다. 이곳이야말로 아름답지 아니한가.스포츠 평론가 prague@naver.com
  • “불행히도 현재 상황이 무진(霧津)”

    “불행히도 현재 상황이 무진(霧津)”

    낙후되고 폐쇄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야만적 폭력, 거기 저항하는 이들과 그들을 억압하는 상류층의 교묘한 야합. 공지영의 신작 장편소설 ‘도가니’(창비 펴냄)가 다루는 현실은 어둡기만 하다. ●2년만에 책을 묶어내 ‘즐거운 나의 집’ 이후 2년 만에 책을 묶어냈다. 최근 기자와 만난 공지영은 “소설을 처음 구상했을 때와 마친 지금의 시대상황이 너무 변해 스스로도 놀랐다.”면서 “불행히도 그동안 나라 전체가 무진(霧津)으로 변해간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안개의 도시 ‘무진’은 이번 소설의 배경으로, 소설가 김승옥의 ‘무진기행’에서 따왔다. 그곳에 위치한 청각장애우 학교 ‘자애학원’에서 자행된 장애여성 성폭력 사건이 스토리의 발단. 몇 년 전 광주에서 실제 일어난 일을 모티브로 삼았다. “소설이라는 틀 때문에 사건의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었어요. 실제 현실은 더 참혹했습니다.” 조그만 신문기사를 보고 작품을 쓰기로 했다는 작가는 관련 문서는 물론, 사건 현장인 광주에도 십여 차례 찾아갔다. 그러다 비슷한 일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작가는 여기에 “나는 무쇠처럼 튼튼한 사람인데도 이걸 쓰면서 아팠고 또 쓰고 나서도 계속 아팠다.”고 서글픈 마음을 전했다. 그러면서 “누군가에게 막강한 권한이 주어지고 아무런 감시가 없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광장에 서 있었던 듯한 피로감 느껴 ‘도가니’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포털 ‘다음’에 연재한 것. 누적 조회수 1100만, 회당 댓글이 적게는 100여건, 많은 날은 800여건까지 달렸다. 첫 인터넷연재를 끝낸 소감은 어떨까. “댓글 말고는 신문연재와 다른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6개월간 광장에 서 있었던 듯한 피로감을 느꼈어요. 아직 후유증에 시달려 아무 것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댓글로 전하는 독자들의 바람과 자신이 짜놓은 스토리가 충돌할 때 특히 힘들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유동적인 분량으로 연재하는 등 인터넷 매체의 장점을 살릴 수 있다면 한번 더 해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광장의 피로’를 아직 느끼고 있다는 그는 요즘 꿈처럼 달콤한 휴식을 보내고 있다. 곧 집필에 들어갈 차기작은 1980년대 박종철 치사 사건때 부검을 맡았던 황적준 박사를 중심으로 법의학과 역사의 만남을 다룬 소설이라고 한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공연리뷰]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완벽한 절망으로 닫힐 듯하던 무대는 마지막 순간 실낱 같은 희망의 틈새를 열어 두었다. 성적을 비관해 자살한 모리츠, 낙태수술을 받다 숨진 벤들라의 무덤 앞에서 이 모든 비극의 원인 제공자인 멜키어는 끝내 죽음의 유혹을 떨치고 일어선다. 자신들을 절벽끝으로 몰아붙인 기성 사회와는 다른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노라 다짐하면서. 10대 청소년들의 욕망과 절망을 이토록 과감하고 격정적으로 드러낸 무대가 또 있을까.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누구나 경험했고, 익히 알고 있지만 감히 입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것들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임신과 낙태, 자살, 동성애 등 감추고 싶고, 부정하고 싶은 것일수록 더욱 환한 조명아래 노출시키는 대범함은 이 작품이 왜 도발적이고, 파격적인 뮤지컬로 불리는지를 입증한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명확한 이분법적 대립구조를 바탕으로 한다. 권위와 억압으로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기성 세대와 사춘기의 충동과 열정에 사로잡힌 청소년들. ‘어른도 아이도 아닌 몸’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성에 대한 호기심은 어른들의 무지와 무관심에 의해 왜곡되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의 몫으로 남겨진다. 성애 묘사와 노출신은 예상만큼 충격적이진 않다. 단순히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장면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줄에 매달린 이동 무대에서 불안하게 이뤄지는 벤들라와 멜키어의 성애 장면은 줄타기하듯 위태로운 그들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오히려 교복 품안에서 마이크를 꺼내 세상을 향해 절규하듯 노래를 부르고, 있는 힘껏 발을 구르며 내면의 분노를 날 것 그대로 보여 주는 장면이 기성세대에겐 더 심리적인 충격일 수 있다. 김무열(멜키어)과 조정석(모리츠), 김유영(벤들라) 등 주연 배우들에게선 잠재적 기량이 엿보였지만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하려면 좀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2010년1월1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02)744-4337.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강지원 좋은세상] 새 시대정신, 共存共生이 아닐까

    [강지원 좋은세상] 새 시대정신, 共存共生이 아닐까

    꼴보기 싫은 사람을 마주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그래서 얼굴을 돌리고 피한다. 그냥 피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 꼴들이 사라졌으면 하고 저주하기도 한다. 혼자 남아 독존(獨存)하는 것은 상대와 공존(共存)하는 것이 아니다. 혼자 사는 독생(獨生)은 상대와 함께 사는 공생(共生)이 아니다. 꼴 보기 싫은 사람과 공존하고 공생하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집단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집단을 이루어 만날 만난다면 편하다. 그러나 마음에 맞지 않는 집단과 함께하는 것은 매우 편치 않다. 끼리끼리의 동종(同種)집단이 아니라 이종(異種)집단과도 함께하는 것은 불편할 수 있다. 그 불편함은 개인의 경우보다 집단심리가 작동하는 집단의 경우가 더 클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은 독생할 수 있는 동종세상이 아니다. 저 숲을 보라. 숲에는 키 큰 나무, 키 작은 나무, 꾸불꾸불한 덩굴에 이름 없는 잡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종들이 함께한다. 그것이 숲이다. 그것이 다양성의 세상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상대를 싹쓸이해서 없애려고 해서도 안 되고 사사건건 싸워서도 안 된다. 지금 이 나라는 온통 적개심 천국이다. 좌·우, 보수·진보, 지역, 세대, 노사간에 적개심이 가득하다. 똑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보는 시각이 너무나 다르다. 극에서 극이다. 자기가 하면 로맨스고 상대가 하면 스캔들이다. 언론이 더 심하다. 스스로는 소통을 주장하면서도 ‘삐라신문’, 나팔수 방송 노릇하는 언론이 너무 많다. 이해할 만도 하다. 그동안 역사적 소용돌이가 너무 컸던 탓으로 인성에 끼친 영향이 컸을 것이다. 적개심이 어느 정도 습관화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때는 악(惡)과의 전쟁이었다. 이제는 아니다. 선(善)의 범주안에서는 견해의 다양성이 존재할 뿐이다. 타도해야 할 적군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여당과 야당은 서로 섬멸해야 할 철천지원수인가, 경영주와 노조는 다시 쳐다보지 않을 타도대상인가, 성장과 분배는 아예 조화될 수 없는 극단적 외침일 뿐인가. 아니다. 서로 견해가 다를 뿐 서로 공존공생해야 할 존재들일 뿐인 것이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에 가장 절실한 과제가 있다. 예컨대 일제침략기라면 독립이, 독재탄압시대라면 민주화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독립을 이루고 민주화도 이루었다면 그 다음의 과제는 무엇일까. 지금 이 시대, 이 나라에서 가장 절실한 과제는 공존공생(共存共生)이 아닐까. 허구한 날 패를 갈라 싸우고 치고받고 억압하고 투쟁하는 몰골들을 벗어던지고 이제 한단계 더 성숙한 세상으로 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무조건 모든 일방주의와 투쟁주의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대화의 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한다. 서로 당근과 채찍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합의를 도출해야 하고, 만일 합의도출에 실패하면 그때는 규칙에 정한 바에 따라야 한다. 규칙은 이럴 때 써먹도록 미리 만들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미리미리 억압과 싸움질을 막을 수 있는 좋은 규칙들을 만들어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동안 상호 감정의 앙금이 쌓인 것이 있다면 ‘화해’의 악수도 나누어야 한다. ‘화합’이나 ‘통합’이란 말이 항상 적절한 말은 아니다. 예컨대 여야가 어떻게 모든 일에 화합을 하고 통합을 할 수 있겠는가. ‘상생’까지도 과분하다. 그저 ‘공존공생’할 수 있는 수준이면 일단 훌륭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이 잘 안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결국 ‘내안의 좁쌀 같은 심보’ 때문이 아닐까. 담력을 키워야 하고 마음의 폭을 넓혀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크고 작은 갈등을 극복해 내면 세상은 반드시 더 큰 발전을 내보이지 않을까. 지금 이 나라가 요구하고 있는 과제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 썩은 일방주의와 투쟁주의를 떨쳐 버리고 한발짝 더 성숙해 지는 공존공생의 길을 찾아 나서야 하지 않을까. 강지원 변호사
  • [사설] 전교조, 시국선언 아닌 교육선언하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어제 ‘제2차 시국선언’을 벌여 나가기로 하는 등 강경투쟁 방침을 밝혔다. 전교조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부의 징계 방침에 맞서 40만 교사를 상대로 한 서명운동과 ‘제2차 시국선언’을 하겠다.”고 말했다. 또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전국 16개 시·도 교육감을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한편 안 장관 퇴진 운동도 전개하기로 했다. 교과부는 이에 앞서 시국선언에 참여한 전교조 교사 1만 6000여명 가운데 선언을 주동하거나 적극 가담한 88명을 중징계한 뒤 검찰에 고발하고 나머지 교사들에 대해서도 주의·경고 등 경징계 조치를 내리도록 한 바 있다. 전교조가 지난 18일 발표한 시국선언에는 국정쇄신, 언론·집회 자유 보장, 미디어법 강행 중단, 학생 인권보장 강화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학생의 인권을 지적한 대목이 들어있을 뿐 교사로서 교육다운 교육을 받기 원하는 학생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내용과는 거리가 멀다. 정치교사들의 정치교사들을 위한 정치선언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전교조의 참교육 정신을 잊지 않는 교사라면 ‘시국’을 걱정하기에 앞서 ‘교육’을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학생의 학습권이 침해되고 신성한 교육현장이 정치이념에 물들 수밖에 없는 교사의 시국선언 행위는 자제되어야 한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다. 교육당국 또한 1999년 전교조 합법화 이후 최대 규모의 징계라는 ‘초강수’ 결정을 재고하기 바란다. 전교조는 내일로 예정된 중앙집행위원회를 통해 구체적인 향후 투쟁대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시국선언의 악순환이 교육현장을 얼마나 피멍 들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전교조의 갈 길은 명약관화하다. 이제 시국선언이 아니라 ‘교육선언’을 할 때다.
  • [월드이슈] 이란 전문가 장병옥 교수 “이란시위 지식인 중심… 혁명으로 바뀌기 힘들어”

    [월드이슈] 이란 전문가 장병옥 교수 “이란시위 지식인 중심… 혁명으로 바뀌기 힘들어”

    이란 전문가인 장병옥 한국외국어대학교 이란어과 교수는 23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이란 반정부 시위가 부정선거 의혹에서 출발했지만 전국민이 참여하는 혁명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면서 “국민들이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데다 강경한 진압이 계속되면서 시위가 이내 사그라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 교수와의 일문일답. →이번 시위의 근본적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표면적으로는 부정선거 의혹으로 시작됐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인터넷 문화의 발전으로 볼 수 있다. 트위터와 같은 블로그 문화의 발전으로 소통 기제가 늘어나면서 그간 축적됐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표출할 수 있는 기반이 다져졌다. 특히 테헤란 대학을 중심으로 한 지식인들은 신정(神政)정치가 가지고 있는 억압적 요소에 대한 불만이 있었는데 인터넷이 그 기반을 열어준 셈이다. 또 아마디네자드 정권 아래서 발생한 경제 불황도 지식인들에게 큰 불만으로 다가왔다. →그러면 이란 지식인들이 기존의 신정정치에 대해 도전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나. -일부 서구 언론에서 그런 식으로 보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이는 과장된 분석이다. 대부분의 이란 국민들은 시아파 이슬람 교도다. 시아파 이슬람 교도에게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이슬람 율법에 근거한 ‘신의 대리인’으로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다. 마치 서구의 교황과 같은 존재라고 보면 된다. 신정정치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확대를 요구하는 것이다. →신정정치 아래서 민주주의가 가능한가. 이란 국민들이 반정부 시위를 하는 것은 신정정치 아래에서 민주주의가 불가능하기 때문 아닌가. -일반인들이 많이 오해를 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사실 이란은 이슬람 문화권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발전한 나라 가운데 하나다. 1979년 이란 혁명을 통해 모든 국민에 대한 선거권이 보장됐고 이번에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온 것도 민주주의 발달을 방증하고 있다. 상당수 지식인들도 신정정치 내에서 민주주의가 확대될 수 있다는 믿고 있다. 실제 이란에는 전국 방방곡곡 모스크가 있고 그 모스크의 설교자들을 통해 정치 행위가 이뤄지고 있다. 체계적으로 잘 돌아가고 있다. →지식인들이 불만이 많다고 했는데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에 대한 일반 국민의 인식은 어떤가. -일반 국민들은 큰 불만이 없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안 일단 서민들에게 먹고사는 문제를 잘 해결해 줬다. 특히 하층민일수록 아마디네자드에 대한 신뢰는 상당히 강하다. →결국 이번 반정부 시위가 이란혁명처럼 전환될 가능성은 없다는 얘긴가. -그렇다. 이란혁명의 근본적인 원인은 당시 정권을 잡았던 팔레비 정권의 경제정책으로 인해 빈부격차가 심화됐기 때문이다. 당시 혁명의 주축은 지식인은 물론이고 200만명이 넘는 빈민들이었다. 하지만 이번 시위는 성격이 다르다. →이란 여성 네다 아그하 솔탄의 죽음으로 인해 앞으로 이란 반정부 시위가 격화될 것이라는 서구 언론의 분석이 있다.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보나. -이번 시위가 도시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 진압의 강도가 더욱 강해지고 있는 현실에 비춰볼 때 시위가 이내 사그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특히 바시즈 민병대의 지식인 탄압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란혁명처럼 전 국민적인 궐기가 없다면 시위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씨줄날줄] 하이힐 혁명/오일만 논설위원

    이란 사태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12일 대선 결과에 반발하는 시위가 이제 태풍급으로 확산되는 형국이다. 이 거대한 태풍의 중심에는 이란의 여성들이 자리잡고 있다. 4600만명의 유권자 가운데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이 거리로 나섰다. 1979년 호메이니의 이슬람혁명 이후 30년 간 누적된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했다. 여성 해방이란 화두가 이란 민주주의의 상징이 된 것이다. 검정색 차도르 대신 블랙 반소매 원피스를 입고 검정색 선글라스를 낀 젊은 여성들이 주력이다.개혁파 무사비 후보의 상징색인 녹색깃발을 흔드는 엄마와 딸들의 모습도 자주 목격된다. 젊은 여성들은 10㎝를 넘나드는 하이힐을 신고 페르시안 힙합에 맞춰 춤을 추며 ‘자유와 평등’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서구 언론들은 이러한 민주화 시위를 ‘하이힐 혁명’이라고 부른다. 하이힐 혁명은 하루 아침에 오지 않았다. 30년 간의 ‘내공’이 쌓여 있다. 이란 여성들은 이슬람 혁명 후에도 투표와 경제활동 참여는 허용됐다. 투표는 물론 외출과 운전조차 금지시킨 사우디 아라비아와 대조적이다. 1989년 이슬람 근본주의자인 호메이니 사망 이후 20년 동안 여성들은 보수세력의 견제 속에서 서서히 정치적 발언권을 높여 나갔다. 현재 이란 대학생의 65%를 여성이 점유할 정도다. 1997년 정부가 여성들의 축구 경기 관람을 금지하자 5000여명의 여성들이 월드컵 예선전에 쳐들어 간 ‘풋볼 레볼루션’은 유명한 사건이다. 이번 시위의 한 가운데에는 개혁파 후보, 무사비가 자리잡고 있지만 그의 아내 자흐라 라흐나바르드 역시 ‘스타’로 떠올랐다. ‘이란의 미셸 오바마’로 불리는 그녀는 퍼스트 레이디의 정치 참여를 금기시한 이란 율법에 정면으로 도전했다.그녀는 선거유세 내내 남편의 손을 잡고 “여성들을 억압하는 도덕경찰제를 폐지하고 시민법과 가족법을 개정하라.”고 외쳤다.여성해방의 상징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란은 1906년 입헌혁명과 1951년 석유산업 국유화, 1979년 이슬람 혁명 등 중동 역사의 고비 고비마다 변화를 주도해 왔다. 차도르를 벗어던진 이란의 여성들이 ‘제2의 이란 혁명’은 물론 중동 전체 변화의 기폭제가 될 수 있을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민주당 “靑 안가길 잘했다”

    민주당은 21일 이명박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전날 청와대 회동 결과에 “실망스럽고 한심하다.”고 평가절하했다. 회동을 거부했던 민주당은 “시간 버리며 안 가길 참 잘했다.”고도 했다. 김유정 대변인은 이날 “‘대통령 담화문을 통한 유감표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수용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답변 말고는 청와대가 이렇다 할 반성도, 변화의 자세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면서 “청와대는 여전히 반성도, 사죄도, 대책도 준비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민주당이 이 대통령의 공개 사과와 국정기조 변화 등을 요구한 것에 청와대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셈이다. 민주당은 이 대통령이 방미(訪美)전 언급한 ‘근원적 처방’과 관련해 인적 쇄신책을 부정하면서도 구체적인 대안을 밝히지 않은 점을 ‘소통 부재’의 사례로 꼽았다. 김 대변인은 “(이 대통령이) 인적쇄신은 없다고 일갈했고 근원적 처방이 무엇인지도 대답을 미뤘다. 아프가니스탄 파병문제를 비롯해 잠깐의 만남에서 나눈 얘기들도 청와대와 자유선진당의 말이 서로 다르다.”면서 “도대체 무엇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노영민 대변인은 “(국민과 야당의 요구는)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주도하고 그 과정에서 국민을 억압하고 밀어붙였던 장관 등 참모들을 교체해서 국정운영 기조를 바꾸라는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국면전환용 개각은 하지 않겠다는 말로 국정 쇄신을 바라는 국민 요구를 슬쩍 비켜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참으로 소통의 문제가 있다.”면서 “그렇지 않다면 교묘한 정치적 수사로 말장난을 하고 있지 않은지 모를 일”이라고 꼬집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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