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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책으로 본 性의 역할

    당신은 남성, 아니면 여성이다. 이것은 참인 명제다. 당신이 남성이라면 남성다워야 하고, 여성이라면 여성다워야 한다. 이것은 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명제다. 성(性) 역할 구분의 당위성에 대한 가치 명제로서 사람마다 판단 기준을달리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 역할의 구분에 대한개별적, 혹은 사회적 판단 기준을 어떻게 형성하고 쌓아 왔을까. 【 오리온의 후예 】찰스 버그먼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 ●사냥꾼으로 길러진 남성성 남성, 남성다움, 그리고 여성, 여성다움에 대한 배경을 확인할 수 있는 책들이 나왔다. 동일한 기준과 범위 안에서 이뤄지는 남성, 여성의 비교 연구는 아니지만 함께 살펴보는 것으로 흥미를 배가시킬 수 있다. 강제되어 온 성 역할에 대한 이해를 높일 뿐 아니라 집단 속에서 개인의 역할,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 등으로 인식의 폭이 한껏 확장됨을 확인할 수 있다. ‘오리온의 후예-사냥으로 본 남성의 역사’(찰스 버그먼 지음, 권복규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는 쉼없이 무언가를 뒤쫓고 포획하려 하는 남성성에 주목하고 있다. 남성들의 늘 충족되지 않는 추격의 욕망을 그리스 신화 속 사냥꾼인 오리온의 후예로 비유하고 있다. 특히 신화, 문학, 인류학 속에서는 물론 일상 생활에서 공공연히 드러나고 있는 ‘사냥꾼 본능’의 남성 모습을 드러내며 현대 남성이 겪는 정체성의 위기를 밝힌다. 즉, 무언가를 붙잡아 지배하려는 사냥꾼 본능에 사로잡혀 여성, 짐승, 자연과의 교류 의지를 잃어버린 위기를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남자들은 사냥꾼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면서 “다만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사냥꾼으로 길러지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가족, 자연과의 관계를 상실하면서까지 사회적 지위와 연봉을 사냥하려는 것이 과연 남성다운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또한 남성이 이러한 원초적 욕구로부터 해방되어 남성성만이 아닌 새로운 인간성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대중독재와 여성 】임지현·염운옥 엮음/휴머니스트 펴냄 ●여성의 정치참여는 해방의 수단 반면 ‘대중독재와 여성-동원과 해방의 기로에서’(비교역사문화연구소 기획, 임지현·염운옥 엮음, 휴머니스트 펴냄)는 또 다른 측면에서 ‘대중독재’로 일컫는 파시즘 시대에 사회 참여의 폭을 넓히며 ‘절반의 여성 해방’을 이뤄낸 여성들의 곤혹스러움을 다양하게 조명한다. 7년째 계속되고 있는 ‘대중 독재’에 대한 공동연구 학술서인 만큼 읽기가 그리 녹녹지는 않지만 문제의식은 선명하다. 연구에서는 나치, 러시아 소비에트, 프랑스 비시정권, 중국 문화혁명 시기 등을 20세기 파시즘 시대로 규정하면서도 당시 대중들의 모습을 단순히 희생자만이 아니라 정치적 한 주체로서 지지하고 동의했기에 가능했다는 논리로 접근한다. 즉, 희생자이면서 공범자라는 논리다. 그러나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는 조금 더 미묘하다. 많은 여성들은 파시즘 체제에서 처음으로 사회적 일자리를 갖고, 투표권을 얻었고, 정치에 참여하는 등 여성 해방과 평등의 기반을 얻었다는 것이다. 파시즘을 단순히 여성 억압적인 체제로 보기보단 체제를 개조하려는 정치 목표를 위해 여성 대중을 동원한 ‘젠더 정치’로 보고 있다. 여성은 때로 저항하고 희생당했지만, 주로는 적극적 공범자이자 소극적 동조자 역할을 했다. 17명의 국내외 학자들이 좌파 독재, 우파 독재 시기 여성의 모습들을 조명한다. ‘오리온’ 2만 5000원, ‘대중독재’ 2만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예술위, 시위불참 확인서 철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한국작가회의에 대한 ‘시위 불참 확인서’ 제출 요구를 공식 철회했다. 하지만 문인들의 공분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저항적 글쓰기’를 계속 한다는 입장이다. 10일 작가회의에 따르면 예술위는 오광수 위원장 명의의 8일자 공문에서 “확인서 형식과 일부 내용이 오해와 우려를 불러일으킨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확인서 요청을 철회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확인서는 불법시위에 참여한 단체에 대해 보조금 지원을 제한해야 한다는 정부의 2010년도 예산집행 지침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작가회의는 예술위의 철회와 무관하게 정부 지원금을 거부하는 한편 지난달 20일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정한 ‘문학적 행동’을 이어간다는 입장이다. 도종환 저항의글쓰기실천위원장은 “이번 사태는 궁극적으로 비판적 사유와 창조적 역량을 위축시키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이라면서 “현 정권의 시대착오적 문화정책이 폐지되거나 개선될 때까지 저항의 글쓰기 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총회에서 소속 문인 156명이 서명한 ‘저항의 글쓰기 운동’은 각 분야별 정부 정책의 잘못을 지적·비판하는 글을 발표하고, 이를 블로그 ‘좋은 언어로 세상을 채우자’(blog.daum.net/writers1974)에 모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난 1월 예술위는 문예진흥기금 집행을 앞두고 작가회의에 촛불시위 참여와 관련, “불법 시위에 가담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향후 가담 사실이 확인되면 보조금을 반환하고 일체 책임을 진다.”는 내용의 확인서 제출을 요구해 논란을 일으켰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묵가는 왜 사라졌을까

    묵가는 왜 사라졌을까

    모리 히데키(森秀樹)의 ‘묵공’. 이 만화가 영화 ‘묵공’의 원작이다. 만화는 진(秦)제국 성립 이후 묵가의 급작스러운 소멸에 관한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겸애(兼愛)와 비공(非攻), 의리(義利)를 중심으로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남을 위해 봉사하던 묵가였다. 그러나 전국시대 말기 묵가들은 진나라와 결합해 다른 여섯 국가를 공격하는 데 참여한다. 오랫동안 전쟁을 막기 위해 발전해온 묵가의 전투력이나 기술력이 각 국가를 점령하는 데 요긴한 기술로 활용된다. 전쟁을 막는 대신 전쟁에 참여하고 파괴하는 묵가를 그려낸다. ‘묵공’은 단순한 전투 기계, 전투 수단으로 전락해 전장에 참여하는 묵가들을 보여줌으로써 묵가 스스로가 자유를 포기한 채 제국의 구성원이 되었음을 시사한다. 이제 묵가들은 싸움의 대가를 요구하기 시작한다. 이들에게도 지키고 돌봐야 할 가족, 집, 고향이 생겼다. 이를 위해 다른 이들의 가족과 집, 고향을 서슴없이 파괴한다. “묵적(墨翟·묵자)의 생각은 옳지만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났을 때는 옳지 않다. 후세의 묵자들을 고생시키고 장딴지와 정강이의 털이 닳아 없어지게 행동하도록 하는 데에 지나지 않았다. 천하를 어지럽히는 죄만 많고 천하를 다스리는 공은 적다.” <장자, ‘천하편’> 장자는 묵자의 방식이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극단적으로 억압하기에 묵자의 사유를 일관성 있게 밀고 갈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일까. 말기 묵가들은 그의 가르침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렸다. 이들은 문턱 안쪽의 안락한 공간을 찾아갔다. 전쟁을 막아내며 제국의 형성을 저지하던 힘들이 제국을 확장하는 창과 방패로 바뀌어 버렸다. 말하자면 묵가의 소멸은 외부의 박해 때문이 아니었다. 묵가 스스로가 자신들의 종말을 고한 것이었다.
  • 예술인가 외설인가… 금기 넘은 작품들

    선사시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像)부터 인도의 카마수트라, 그리고 금서의 굴레에 갇혀 있던 20세기 채털리 부인 혹은 21세기 장정일의 거짓말까지…. 금기(禁忌)는 욕망을 부른다. 억압은 폭발적인 창조의 에너지를 잉태한다. 태초의 성애(性愛)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약속했듯 아름다운 몸의 관능과 애욕의 표출은 원천적인 창조적 예술 행위와 직결된다. 그러나 불행히도 관능에 대한 욕망은 2500여년의 세월 동안 동서고금 인류 역사가 새겨놓은 ‘금기 목록 1호’에서 이름을 빼놓지 않았다. 사랑은 아름다움의 뒤를 쫓는다. 또한 존재를 달뜨게 하는 예술 창조의 열정은 사랑을 향해 전폭적인 열정을 쏟아붓게 마련이다. 그 사랑이 금기의 대상으로 몸을 뒤틀었으니 터질 듯한 창조의 욕망은 불을 보듯 뻔하다. ‘예술과 외설’이라는 위태로운 줄타기를 해오던 금기와 억압의 봉인(封印)이 풀렸다. ‘에로티카’(커넥션즈 에디션 엮음, 김은규 옮김, 쌤앤파커스 펴냄)는 전 세계 갤러리와 도서관, 개인의 소장품으로서 오랜 세월 금기로 치부되며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그림, 소묘, 사진 등 미공개 에로티시즘 작품 400여점을 공개한다. 또한 이를 보카치오, 카사노바, D H 로렌스, 헨리 밀러, 오스카 와일드, 파블로 네루다 등의 시, 소설 등 문학 작품과 함께 소개하며 봉인을 활짝 벗겼다. 실제로 외설 시비를 겪으며 금서로 묶였던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나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 ‘남회귀선’ 등은 시대의 억압을 뚫고 이제는 당당히 고전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순수한 혁명과 낭만적인 사랑을 노래하는 와중에 ‘외로운 신사’라는 시편에서 성애의 욕망을, 거침없이 그러나 아름답게 드러낸다. 엮은이는 서문에서 “활력을 고양하는 에로티카와 파괴적인 에로티카의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잔혹하고 폭력성에 중독된 사람이라면 다른 책을 집어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미공개 작품 400여점은 지나치게 노골적이다. 지하철이나 도서관, 회사 등에서 이 책을 읽다가 주변에서 쏟아지는 눈총과 수군거림에 대해서는, 당연히,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3만 5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SBS ‘당돌한 여자’ PD “막장드라마 싫어요“

    SBS ‘당돌한 여자’ PD “막장드라마 싫어요“

    “막장드라마요? 휴먼드라마죠.” SBS 새 아침드라마 ‘당돌한 여자(이하 당돌녀)’ 제작진이 고부간의 갈등을 휴먼스토리로 풀어가는 가슴따뜻한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24일 오후 2시 일산 SBS제작센터 본관 2층 드라마연습실에서 열린 ‘당돌녀’(극본 박예경, 연출 이동훈, 제작 팬엔터테인먼트) 제작발표회에서 이동훈 PD는 “솔직히 말해 현재 드라마 트렌드는 막장이냐 아니냐로 나눌 수 있다.”면서 “‘당돌한 여자’는 막장드라마만이 인기를 끈다는 틀을 과감히 깨고 철저히 막장 컨셉트를 벗어나기 위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이 PD는 “한 여자의 인생을 통해 며느리와 딸 사이에 놓인 벽을 허물고 막장식 구경거리를 벗어나 대안거리까지 찾아보는 게 우리의 기획 의도”라며 “대한민국 여자들이 느끼는 억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론을 ‘당돌한 여자’는 제시해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는 3월1일부터 매일 아침 8시40분 SBS에서 방영되는 ‘당돌녀’는 시누이와 올케 사인인 두 여자가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로 다시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알콩달콩한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다. 한편 ’당돌녀’에는 이유리, 이창훈을 비롯해 서지영, 홍인영, 이중문, 김수미, 김청 등의 연기자들이 대거 출연한다. 서울신문NTN 김진욱 기자 action@seoulntn.com / 사진=강정화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열린세상] 꼽추의 나무심기/강명관 부산대 한문학 교수

    [열린세상] 꼽추의 나무심기/강명관 부산대 한문학 교수

    그는 구루병에 걸려 등이 낙타 등처럼 불쑥 솟아났기에 사람들은 그를 ‘낙타’라고 불렀다. 꼽추라는 의미의 별명이 듣기 싫었을 것인데, 그는 “나를 낙타라고 부른다면, 정말 맞는 말이지.” 하고, 자신을 스스로 낙타라고 일컬었다. 성이 곽(郭)이었기에 ‘곽낙타’가 그의 이름이 되었다. 곽낙타는 직업이 나무 심기였다. 당나라 서울 장안의 부자들은 꽃과 나무를 감상하기 위해, 과실 농사를 짓는 사람은 풍성한 수확을 위해, 곽낙타를 불러 자기 나무를 길러 달라고 부탁하였다. 곽낙타는 요구대로 나무를 심어주기도 하고 옮겨주기도 하였다. 그가 손을 댄 나무는 어느 하나 가릴 것 없이 모두 쑥쑥 자라 화사한 꽃을 피우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었다. 동업자들이 흉내를 내어 보았지만 결코 곽낙타의 경지에는 이를 수 없었다. 어느 날 누군가가 비결을 묻자, 곽낙타의 답인즉 이러하였다. “따로 무슨 비결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무가 타고난 성질대로 길러주는 것일 뿐이지요. 나무의 성질이란, 뿌리는 뻗어나가기를 바라고, 북돋움은 고르게 해주기를 바라고, 흙은 오래된 흙을 바라고, 다져주는 것은 단단히 해주기를 바라지요. 이렇게 해 주었다면, 움직이게 하지 말고, 나무가 죽을까 염려도 하지 말고, 나무를 두고 떠난 뒤 다시 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심을 때는 자식처럼 돌보지만, 그냥 둘 때는 마치 버린 듯이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나무는 천성대로 자라나게 됩니다. 나는 나무가 자라는 것을 해치지 않을 뿐입니다. 달리 무성하게 자라도록 하는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지요. 다른 사람을 보면 내가 하는 것과는 크게 다릅니다. 뿌리는 오그라들고, 흙은 바뀌고, 북돋는 것은 너무 지나치지 않으면 아주 모자랍니다. 또 너무 엉뚱한 경우도 있는데, 지나칠 정도로 나무를 사랑하고, 지나칠 정도로 걱정하여 해가 뜨면 가서 보고, 해가 지면 어루만집니다. 심한 경우, 손톱으로 나무껍질을 긁어 살았는지 말랐는지 확인하고, 뿌리를 흔들어 흙에 단단히 박혀 있는지 살펴봅니다. 나무의 천성은 날이 갈수록 망가지지요. 나무를 사랑한다지만, 사실은 해치는 일이요, 나무를 걱정한다지만, 사실은 원수로 여기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내가 돌본 나무만 못한 것입니다. 내가 달리 무슨 일을 할 수가 있었단 말입니까?” 질문을 던졌던 사람이 곽낙타에게 나무 심는 방법이 혹 관리가 백성을 다스리는 데도 적용될 수 있느냐고 다시 물었다. 곽낙타는 자기 일이 아니라 잘 모르지만, 고향에서 관리들이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보았다며 이렇게 답하였다. “관리들은 명령을 번거롭게 내리는 것을 좋아하는데, 얼핏 보면 백성을 사랑하는 것 같지만, 끝내는 화를 끼쳤지요. 아침저녁으로 관리들이 찾아와 ‘빨리 밭을 갈아라, 곡식을 거두어라, 실을 뽑아라, 베를 짜라, 아이를 사랑하고, 개와 닭을 키워라.’ 하며 북을 울리고 목탁을 쳐서 백성들을 불러댑니다. 힘없는 백성들은 밥숟갈을 던지고 달려가 그들을 위로하기 바쁩니다. 어느 겨를에 농사를 지어 편히 살 수가 있겠습니까? 병들고 게을러질 뿐이지요. 내가 말한 나무 심기와 다를 바 없는 이치지요.” 1200년 전 당나라 문인 유종원(柳宗元·773~819)이 지은 ‘종수곽탁타전(種樹郭?駝傳)’을 풀어쓴 것이다(?駝는 낙타란 뜻이다). 유종원은 곽낙타의 입을 빌려 정치의 도리에 대해 말하고자 한 것 같다. 왜냐하면 질문을 던졌던 사람의 다음 한마디가 마지막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나무 심는 방법을 물어 백성을 기르는 방법을 배웠다.” 1200년 뒤의 나는 ‘종수곽탁타전’에 한마디를 덧붙인다. 이것은 백성들 다스리는 데만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을 억압하지 않고, 천성대로, 소질대로 길러주는 것이 교육이다. 한데 지금 대한민국의 교육이 교육이라 할 수 있겠는가? 최근 과격한 졸업식 뒤풀이를 두고 별별 말이 다 있었다. 하지만 나무라기에 앞서 그 졸업식 뒤풀이를 만들어낸 일그러진 우리의 교육을 먼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최근 과격한 졸업식 뒤풀이를 두고 별별 말이 다 있었다. 하지만 나무라기에 앞서 그 졸업식 뒤풀이를 만들어낸 일그러진 우리의 교육을 먼저 반성해야 할 것이다.
  •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채식주의자

    부모가 싸우는 소리가 들리자 언니 지혜는 동생 영혜의 귀에 덮개를 씌웠다. 어린 동생이 험악한 소리를 듣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언니는 부엌으로 달려가 칼을 숨긴 다음 장독 뒤로 몸을 감췄다. 곧 아빠가 뛰쳐나와 칼을 찾다 부지깽이로 엄마를 때렸다. 어떻게 해도 분이 풀리지 않는 그는 자신을 향해 짓던 멍멍이를 손수 잡아버렸고, 이튿날 밥상엔 개장국이 올라왔다. 평범한(혹은 평범해 보이는) 여자로 자란 자매는 둘 다 평범한 가정주부가 됐다. 어느 날, 꿈에서 깨어나면서 영혜에게 낯선 변화가 일어난다. 일체의 육식을 거부하는가 하면 고기 냄새가 난다며 남편과의 잠자리를 피하는 거다. 보다 못한 가족들이 마련한 자리에서 아버지가 손찌검하며 고기 먹기를 강요하자, 영혜는 칼로 손목을 긋는다. ‘채식주의자’는 야만적인 공간과 짐승의 시간을 참고 버텨야 했던 여자의 죄의식과 도덕적 선택에 관한 영화다. 한 사람 영혜가 아버지의 폭력 아래 지옥을 통과할 동안, 이 땅에선 지배권력이 민중의 목을 죄는 일이 똑같이 벌어졌다. 그러나 누가 죽였는지, 누가 죽었는지, 누가 누구를 억압했는지 밝혀지지 않는 여기는 분명 야수의 땅이다. 꿈에서 지워진 얼굴을 본 영혜는 ‘우리는 인간이 아니었다.’는 진실을 깨닫는다. 알게 모르게 고통과 불면의 밤을 지새웠을 그녀가 무딘 일상에서 벗어나 선택한 ‘육식의 거부’에는 이중의 의미가 있다. 첫째, 짐승의 비릿한 숨결이 서려 있는 우리의 과거를 지우고, 둘째, 땅에 생명의 뿌리를 내리는 순수한 인간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들은 현실의 끈을 놓은 듯 보이는 영혜를 비정상적인 인물로 대하고, 경계를 넘은 그녀가 자기들의 정상적인 영역으로 복귀하기를 원한다. 바꿔 말하면, 동지를 잃은 죄인들이 떠난 자를 되찾아 죄를 다시 공모하려는 형국이다. 그런 이유로, 이야기의 중심엔 영혜가 있으나, 영화는 (가족 및 사회를 대표하는)세 사람-영혜의 남편, 지혜의 남편, 지혜-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현실적이고 이기적인 남자는 넋을 놓은 아내 영혜를 쉬 포기한다. 그리고 지혜의 남편이자 비디오아티스트인 민호는 영혜에게서 아름다움의 에피파니(epiphany·사물이나 본질이 나타나는 순간)를 목격하지만 끝내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 채 떠나게 된다. 두 남자로부터 바통을 이어받는 건 언니 지혜다. 그녀는 평소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데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던’ 사람이다. 트라우마가 밖으로 삐져나와 쓰러진 게 영혜라면, 지혜는 그걸 가슴 속에다 꾹꾹 눌러 담는 인물이다. 동생을 통해 지혜는 외면해왔던 트라우마와 조우한 셈인데, 두 사람의 ‘공포, 분노, 고통’이 만나는 지점에서 강렬한 빛을 발하던 영화는 바로 그 순간 멈춘다. ‘채식주의자’는 고통을 어루만지길 원하면서도 부숴진 꽃송이를 되살리는 건 자기 몫이 아님을 아는 영화다. ‘채식주의자’는 한강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을 각색한 결과물이다. 지독한 비대중성에도 불구하고 여러 장점이 이 영화를 추천하도록 만든다. 자칫 관념적으로 흐를 수 있는 주제를 어렵지 않게 풀어놓았으며, 배우들의 충실한 연기에서도 인물의 본질에 접근하는 데 기울인 정성이 느껴진다. 18일 개봉. 영화평론가
  • [내 전시를 말한다]다양한 일화 통해 만나는 욕망

    [내 전시를 말한다]다양한 일화 통해 만나는 욕망

    “거울아, 거울아?” 동화 속 아름다운 백설공주를 만날 수는 없지만, 아쉬워하지는 마시라. 백설공주의 계모, 왕비는 여기에 있다. 왕비의 내실에 은밀히 걸어둔 거울. 그녀를 한결같이 움직이게 하는(백설공주를 독살시키기까지 하는!) 원동은 그녀 마음속 깊은 곳 두꺼운 벨벳 커튼으로 가리어진 ‘거울’, 즉 왕비 자신의 욕망을 비추고 확인하는 그것이었던 것이다. 널리 알려진 그리스 신화의 나르시스 이야기, 자크 라캉의 욕망 이론에 이르기까지 거울이 오랫동안 인간의 욕망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한 매개물로서 역할해 왔음을 상기하면서, 욕망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동 시대 여러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다가가 보고자 한다. 그들의 거울과 마주해보자. 권민경은 실제 작가 자신의 몸을 찍은 사진 위에 드로잉을 더하여 여성으로서의 ‘몸에 관한 판타지와 욕망’에 대해 들려주며, 김현희는 층층이 쌓아올린 동전(Money Tree)을 통해 욕망의 숲, 자본주의 현시대를 직설적으로 이야기한다. 김여운이 그리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동물들, 기실 그것은 인간 욕망에 의해 본래의 생명력과 가치를 잃고 박스 넘버로 불리는 ‘희생된 박제품’일 뿐이다(모든 캔버스는 견고한 아크릴과 나무박스에 가두어져 있다). 오흥배는 남성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처럼 여성의 성적 상징물로 여겨져 왔던 하이힐을 남성의 욕망으로서가 아닌, ‘현대 여성들의 욕망 표상’으로 읽고 극사실적인 묘사로 캔버스 안에 등장시킨다. 그리고 먹다 만 사탕, 껌 등의 달콤한 것들-타액이 잔뜩 묻은 채이다-을 클로즈업해 명료하고도 감각적인 색채로 화면 가득 담은 김형섭의 사진에는 더욱 원초적이고 즉각적인 욕망이 포착되어 있다. 욕망에 관한 다섯 작가의 이야기를 펼쳐놓은 전시장에서 나는 예상치 못했던, 관람객의 자못 흥미로운 반응들과 만난다. 젊은 작가들이 비추는 욕망의 다양한 일화를 통해, 지양하고 억압해야 하는 욕망의 추한 모습과 맞닥뜨리는 것을 넘어 우리 안 어느 곳인가에 생동하며 때로는 삶의 동인이 되어주기도 하는 욕망의 이면들과 조우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14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 밥(옛 갤러리 쌈지)에서 열리는 ‘거울아, 거울아’전은 번득이는 욕망의 거울, 그 다채로운 표정들과 마주하는 장이 될 것이다. (02)736-09 00. 이지혜 ‘거울아… ’전 기획자
  • “국민독서운동에 모든 초점 맞출 것”

    “국민독서운동에 모든 초점 맞출 것”

    “더 이상 심의·검열 기관이 아닙니다. 좋은 책, 다양한 책이 만들어지고, 독자들이 그 책들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위원회의 주된 역할입니다.” 지난해 8월 취임한 양성우(67)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은 3일 서울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나 올해 위원회 역량을 독서진흥, 출판진흥 업무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양 위원장은 “문화를 다루는 일을 하는 곳이라면 시대 변화를 따라가는 것은 물론, 앞서 나갈 필요도 있다.”면서 “위원회 명칭에서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윤리’라는 표현을 빼는 등 이름 바꾸기를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명칭 변경 추진은 사상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를 억압하는 ‘시대착오적 도구’로 덧씌워진 위원회 이미지를 확 바꾸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간행물‘윤리’위원회는 올해 구시대적 발상이자, 위원회 설립 목적 바깥 업무였던 광고 심의를 폐지하기로 했다. 또한 외국 간행물 수입 관련 제도를 현행 수입추천제에서 신고제로 전환하고, 유해간행물 심의결정 절차도 단축하기로 했다. 양 위원장은 “현재 심의와 관련해서 하는 일도 주로 등급 판정 정도인데, 지나칠 정도의 폭력성과 선정성 일색인 일본의 수입간행물이 주요 대상”이라며 “국내 간행물이 사후 심의, 등급판정을 받은 것은 지난해 딱 한 건 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양 위원장은 “지금까지도 그렇게 바뀌고 있었지만 내가 이곳에 온 이상 독서교육 지원, 좋은 원고 공모 및 출판 지원, 교정시설·다문화가정·소외계층 독서 지원 등 ‘국민독서운동’에 모든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전지현, 중국 영화서 파격 ‘올누드’ 도전

    전지현, 중국 영화서 파격 ‘올누드’ 도전

    배우 전지현이 파격 올누드에 도전한다. 전지현은 당초 중국배우 장쯔이 주연으로 알려졌던 중국영화 ‘설화와 비밀의 부채’에 여주인공으로 낙점됐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전지현이 이번 영화에서 과감한 노출신에 도전한다는 것. 뿐만 아니라 전지현은 전신누드를 비롯해 파격적인 동성애 연기를 펼쳐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영화 ‘설화와 비밀의 부채’는 여성들이 억압 받던 중국 청나라를 배경으로 부채에 비밀문자와 시, 글을 주고받으며 남다른 우정을 나누는 두 여인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 영화의 연출은 홍콩 출신 미국인 웨인 왕 감독이 맡았으며 미국계 중국인 리사 시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했다. 전지현의 소속사 사이더스HQ의 관계자는 “웨인 왕 감독은 영화 ‘엽기적인 그녀’ 때부터 전지현을 관심 있게 지켜보다 몇 번의 러브콜 끝에 이번 작품에서 함께 일하게 됐다.”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영화에는 할리우드 스타 휴 잭맨도 캐스팅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설화와 비밀의 부채’는 지난 2일 첫 촬영을 시작했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김경미 기자 rornfl84@nate.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세대공감] 아버지와 아들의 군대이야기

    [세대공감] 아버지와 아들의 군대이야기

    여자가 술자리에서 싫어하는 이야기의 주제는 ‘군대’이고, 여기에 군대에서 축구시합한 이야기가 곁들여지면 미치고 환장할 만큼 싫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여자들은 듣기 싫어하지만 남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신나서 말하는 게 군대시절 추억이다. 일명 ‘방위’로 불리는 공익근무요원이든, 해병대든 나름의 애환은 모두 갖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군대는 진화했지만 군대가 가진 특성은 쉽게 변하지도 않으며, 변하기도 어렵다. ‘군대 가서 고생해 봐야 한다.’는 아버지와 ‘요즘 누가 군대에 가고 싶어 가느냐.’고 항변하는 아들. 군대에 대한 세대 갈등과 인식의 차이를 들여다본다. ●명령체계 못이기고 사회생활 어찌하려고… 엄석영(56·가명)·엄수철(29·가명)씨 부자는 모두 해병대에서 병역을 마쳤다. 남들은 해병대라며 일견 부러워도 하지만 엄수철씨는 아버지가 군대 이야기만 하면 쥐구멍부터 찾는다. 어렸을 때부터 ‘남자라면 꼭 해병대에 가야 한다.’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들어온 수철씨는 자연스럽게 해병대를 선택했다. 아버지는 흡족해했지만 엄씨에게 군생활은 고통 자체였다. 군의 경직된 수직적 명령체계가 특히 엄씨를 괴롭게 했다. 폭력적인 내무반 분위기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휴가 나와서 괴로워할 때마다 아버지는 늘 “예전에는 입대해서 제대할 때까지 ‘빠따’만 맞았다.”면서 “이걸 이겨내지 못하면 사회생활도 못한다.”고 혀를 찼다. 해병대를 제대한 지금도 엄씨는 전우회에 열심인 아버지의 해병대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다. 엄씨는 “해병대를 나왔다고 이야기할 때 특별히 자랑스럽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면서 “군 제대 후에 오히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게 더욱 괴로워졌다.”고 토로했다. 김광욱(25)씨는 해군군악병이다. 고등학교, 대학교 생활 내내 밴드활동을 하며 드럼을 쳤던 김씨는 음악의 끈을 놓기가 싫어 수소문 끝에 해군군악병에 지원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군악병이 됐다. 군악병이라고 군기가 없거나 편한 것이 절대 아니다. 행사가 있을 때마다 몇 시간씩 이동해 연주하는 건 예사고 평소에도 주눅이 들 만큼 엄격한 규율 속에서 연주 연습을 해야 한다. 김씨는 “악기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항상 긴장하는 건 덤이다.”고 말했다. 휴가를 나와 아버지와 대화를 나눌 때면 말문이 막힌다. 강원도에서 포병대원으로 군복무를 한 아버지 김윤성(58)씨는 “북이나 치라고 군대 보낸 건 아니다.”면서 “북이 무거워 봤자 박격포만 하겠느냐.”고 핀잔을 준다. “다른 친구들은 아버지하고 군대 이야기하면서 더 친해지는 것 같던데 나는 다른 것 같아요. 제대해서 또 밴드를 해야 하는데 아버지라는 산을 한번 더 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캄캄합니다.” ●군대 다녀오니 갈등 풀려 해병대 출신 아버지(이택호·53)를 둔 이상채(29)씨는 육군으로 입대했다. 평소 해병대에서 고생했던 이야기를 무용담 삼아 들려주던 아버지는 실망한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동두천에서 평범하게 복무하던 이씨는 울컥한 마음에 아프가니스탄에 지원해 2003년에 6개월 동안 현지에서 복무했다. 아버지께 뭔가 보여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앞섰던 게 파병 지원의 계기가 됐다. 아프가니스탄 생활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가끔 미군 쪽에서 경보가 울려 대피하는 일도 있었다. 정씨는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해병대보다는 전장에서의 무용담이 더 그럴듯하겠지.’라며 아버지에게 자랑할 생각도 했다. 귀국하고 돌아온 집에서 정씨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아프가니스탄으로 옮긴 후 아버지가 매일 밤 걱정에 잠도 못 주무시고 몸까지 편찮으셨다는 것. 정씨는 “어린 마음에 아버지와 쓸데없는 경쟁을 했다는 생각에 부끄러웠다.”면서 “늠름하게 군대 생활을 하라는 아버지의 뜻을 이제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정환욱(29)씨는 군대에 다녀오기 전까지 통금시간이 오후 11시였다. 해군 대령으로 예편한 정씨의 아버지는 여느 군인 아버지보다 훨씬 엄했다.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어 갑갑한 마음에 크게 싸우기도 했다.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편안한’ 군대를 다녀오고 싶었던 정씨는 행정병을 지원했지만 5군단 특공대로 배치됐다. 시력이 좋지 않아 현역 3급 판정을 받은 정씨가 특공대에 배치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모든 것은 아버지가 꾸민 일이었다. 그러나 제대하고 나서 아버지는 360도 달라졌다. 엄격한 규율을 강요하지 않는 것은 물론 아들에 대한 신뢰가 한껏 높아진 것. 정씨는 “2년간 고생한 것이 아까워 화도 났지만 제대하고 나니 아버지 마음이 이해가 됐다.”면서 “특공대를 다녀온 것이 자랑스럽고, 모두 아버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버지 한 풀어줘 김호황(22)씨의 아버지(김태기·47)는 군대를 가지 못했다. 가난한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하고 학교를 더 다니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장남은 꼭 해병대를 다녀와서 아버지 기를 살려 달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김태기씨는 친척들이 모여 군에서 고생한 이야기를 할 때도 술잔을 비울 뿐 별다른 말을 못할 정도로 심한 ‘군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호황씨는 해병대보다 편한 군대를 가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직접 병무청에 해병대 자원입대서를 제출해 할 수 없이 해병대로 가야 했다. 아버지는 해병대가 된 아들을 무척 자랑스러워한다. 김씨는 “휴가를 나가면 트럭을 몰고 터미널까지 마중 나오신다.”면서 “온 동네 사람들에게 해병대 아들이 휴가 나왔다고 자랑하는 아버지가 사랑스럽다.”고 말했다. 조규민(29)씨는 국방대학교에서 PX병 생활을 했다. 남들이 모두 ‘땡보’라고 무시했지만 아버지 조정환(58)씨만큼은 뛸 듯이 기뻐했다. 아버지가 젊었을 적 동사무소 방위로 근무했기 때문이다. 첫 휴가를 받아 아버지 직장으로 내려간 날, 아버지는 벌떡 뛰어나오며 반겨 주셨다. 아버지는 훈련소 생활을 하면서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를 책상 유리 밑에 끼워 두고 있었다. 훈련소에서 찍은 사진도 함께였다. “무뚝뚝하신 성격 때문에 달리 표현은 안 하시지만 늘 나를 응원해 주고 계셨다는 그 깊은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아버지와 나는 소주를 거하게 마시고 오랫동안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눴지요.”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그들만의 軍서열은… 공익>防産>현역 세대에 따라 군대에 대한 시각도 달라졌다. 아버지 세대에게 군대는 ‘자랑스러운 의무’였지만 요즘 20대에게는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의무’일 뿐이다. 방위라고 깔보던 공익근무요원에 대한 시각도 마찬가지다. 예전 방위는 제대로 군 복무를 하지 않았다. 현역으로 입대하기엔 뭔가 모자란 ‘결격자’로 오해를 받았다. 지금은 편히 군대생활을 한다는 인식이 퍼져 현역 입대자들이 오히려 공익근무요원들을 부러워한다. 해병대에 자진 입대해 2년2개월을 복무한 박석범(31)씨는 “내가 군대 갈 때만 해도 방위는 무시했다.”면서 “방위로 근무하면 취직할 때도 불이익이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시력이 나빠 신체검사에서 2급을 받고 육군에 입대한 천주영(20)씨는 “그럴 수만 있으면 공익근무요원이 최고다.”면서 “훈련도 짧고, 집에서 출퇴근하면서 필요한 공부도 할 수 있으니 최고의 군생활 아니냐.”고 말했다. 방위산업체 근무도 인기다. 방위 산업체에서 군 대체복무를 할 기회가 많은 공대생들이 주로 여기에 해당된다. 현역 군인보다 근무 기간이 1년 더 길지만 돈도 벌고, 훈련도 없어 선망의 대상이 됐다. 박한길(25)씨는 현재 서울 논현동에 있는 한 IT 관련 중소업체에서 군 대체복무를 하고 있다. 군대에 가기 싫어하는 박씨를 부모님은 못마땅해했지만 입대를 계속 미루면서 방위산업체 근무를 준비했다. 박씨는 “억압된 분위기에서 단체생활을 하는 게 생각만 해도 싫었다.”면서 “주변 친구들도 방위산업체 근무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남자 친구를 군에 보낸 여자 친구들의 대응 방식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편지를 쓰거나 통닭 등 먹을 것을 잔뜩 싸가지고 면회 가는 것이 전부였다. 요즘 남자 친구를 군대에 보낸 여자 친구들은 통화도 많이 하고 선물도 자주 보낸다. 이들은 인터넷 카페에 ‘고무신들의 모임’ 등을 만들어 경험을 공유하기도 한다. 대학생 김민정(23·여)씨는 “요즘에는 국방부 홈페이지에서 인터넷 메일도 보낼 수 있다.”면서 “전화도 자주 할 수 있어 남자 친구가 군대에 가도 쓸쓸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도시와 길] 서울 종로

    [도시와 길] 서울 종로

    ‘길에서 길을 묻는다.’는 말이 있다. ‘길’은 단순히 차와 사람이 오고 가는 통로라는 사전적 의미뿐만이 아니다. 사람이 있는 곳에 길이 생기고, 그 길을 중심으로 집과 건물이 생기며 또 그곳에서 도시와 문화가 생긴다. 그래서 길은 도시나 나라의 흥망성쇠와 운명을 같이 한다. 유행을 만들고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길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이 찾지 않아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길도 있다. 서울신문은 ‘신년기획’으로 매주 월요일자에 ‘도시와 길’을 연재한다. ‘도시와 길’은 한국의 도시와 그 도시를 대표하는 길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부침을 겪었는지 살펴보면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역사와 이야기를 담는다. ‘종로로 갈까요~.’ 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 말 그대로 ‘1번지 길’이다. 매년 마지막 날이면 어김없이 수만명의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영하의 강추위에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모두가 외치는 카운트다운과 함께 시작되는 보신각종의 서른 세 번 울림. 텔레비전을 통해서 전국 각지의 사람들도 지켜보는 한 해의 끝과 또 다른 시작. 1953년 이래 오늘날까지 ‘종로(鐘路)’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한 해를 시작하는 거리다. ●서민들 삶의 터전… 추억이 고스란히 종로는 서울은 물론 한국을 대표하는 ‘길’을 떠올릴 때 감히 비교할 만한 상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중에서 이름에 유일하게 길을 담은 곳도 종로구뿐이다. 구로구가 있지만 구로(九老)는 길이 아닌 아홉 명의 노인이 장수한 곳이라는 전설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세종로 138번지 세종로사거리에서 종로6가 78번지 동대문에 이르는 너비 40m, 길이 2.8㎞의 왕복 8차선길인 종로는 수백 년 전부터 언제나 번화가였고, 지금도 그렇다. 세종로 사거리에 자리 잡은 교보문고의 철마다 바뀌는 초대형 간판은 버스를 기다리거나 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종각에서 인사동 초입, 종로3가부터 시작되는 귀금속 거리와 종로5가의 약국거리는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추억이 담겨 있다. 종로3가에서 귀금속점을 운영하는 우정호(60)씨는 “이곳에서 두 아들을 키워서 장가를 보냈다.”면서 “종로는 나에게 삶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종로에 살거나 종로를 즐겨 찾는 사람들도 종로를 생각하는 의미는 특별하다. 종로 토박이로 살아온 김학수(85) 할아버지는 “처음 기억하는 종로와 지금의 종로는 완전히 달라졌지만 서울의 중심이자 가장 번화한 거리라는 점은 여전하다.”고 술회했다. 젊은이들에게도 여전히 종로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종로의 어학원 앞에서 만난 김호연(25·여)씨는 “다른 번화가들은 유행에 따라 모습을 바꾸지만 종로는 고등학교 때나 지금이나 사람을 만날 때 먼저 떠올리게 되는 곳”이라며 “항상 그대로인 것처럼 느껴져 아무리 번화한 밤에도 왠지 모르게 편안하다.”고 전했다. 또한 탑골공원의 어르신들 모습을 얼른 떠올리기만 해도 종로는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편안하게 찾는 곳이다.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상점과 간판이 바뀌고, 건물의 높낮이는 달라졌지만 종로는 그 자체로 역사다. 종로라는 이름은 지금의 종로사거리에 종을 매단 종루(鐘樓)가 세워져 있던 것에서 비롯됐다. 종가(鐘街), 종루가(鐘樓街), 종루십자가(鐘樓十字街)라는 이름도 모두 같은 연유다. 태종 때 시전행랑(오늘날의 상가)이 종로사거리에서 동대문까지 들어선 후 조선 후기로 오면서 상점과 노점들이 길을 잠식하면서 도로폭이 오히려 줄어들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조선말 대한제국 시기에 종로는 ‘최첨단’, ‘신문물’의 거리였다. 1899년 5월에는 전차가 개통됐고, 1900년 4월에는 종로사거리에 처음으로 전기 가로등 3개가 밝혀졌다. 당시 조선을 찾은 러시아인 파츨라프 세로셰프스키는 ‘코레야 1903년 가을’이라는 기록에서 “종로에는 서울에서 가장 좋은 상점과 가게, 시장들이 있다.”고 적었다. 일제강점기의 억압은 종로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1921년부터 일제는 종로를 동대문에서 경희궁 앞까지, 폭을 28m로 좁게 줄였다. 일제가 조선인 상가가 밀집돼 있던 종로를 의도적으로 죽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종로의 번영은 멈추지 않았다. 1931년 종로사거리 북동쪽에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현대식 백화점인 화신백화점이 들어섰고 1932년에는 동아백화점이 문을 열었다. 이를 중심으로 우리 상인들은 지금의 충무로인 ‘혼마치(本)’의 일본인 거리와 각축을 벌이며 상권을 지켜 나갔다. 3·1만세시위운동의 출발과 중심도 종로였고, 일제의 경제침탈에 맞선 우리 민족의 경제자립운동인 조선물산장려운동의 거점도 종로였다. ●‘도심재창조’… 변화의 갈림길에 선 종로 광복 후에도 화신백화점, 신신백화점, 배오개시장의 맥을 이은 광장시장과 동대문종합시장, 세운상가는 종로 상업의 번영을 상징했고 피맛골은 서민들의 애환을 담으며 여러 세대에 걸쳐 사랑받았다. 그러나 1980~90년대에 접어들면서 서울이 급격히 커지자 종로는 번화가의 기능을 다른 곳에 나눠주고 있다. 젊은이들은 백양로로 대표되는 신촌과 대학로를 찾기 시작했고, 유흥가는 강남대로와 영등포로 옮겨 갔다. 오래된 건물과 노점은 서민의 정취를 담는 데 그쳤을 뿐 더 이상 유행을 만들지도 못했고, 따라가는 것도 버거웠다. 피맛골도 세운상가, 청진동 해장국 골목도 변화의 물결을 피해가지 못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새로운 건물과 간판들이 들어섰고, 오랜 세월 종로를 기억해 온 사람들의 ‘개발을 명목으로 역사를 지운다’는 비판이 거세다. 대신 서울시는 종로를 중심으로 한 ‘도심재창조 프로젝트 마스터플랜’을 세웠다. 세운상가 주변을 재정비해 창경궁~종묘~세운상가~퇴계로~남산을 잇는 대규모 녹지축을 조성하고 걷고 싶은 거리로 조성하겠다는 목표다. 종로는 지금 개발과 보존의 논리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변화의 중심인 셈이다. 몇 권의 책으로도 다 담을 수 없는 600년의 세월, 길 자체가 서울시민의 역사인 종로가 앞으로 또 다른 600년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한지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봐야 할 때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시론]지방참정권 일본 변화 리트머스 시험지로/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시론]지방참정권 일본 변화 리트머스 시험지로/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하토야마 정권은 지난 11일 영주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이 법안은 오자와 간사장이 ‘한·일관계를 고려해 정부가 법안을 제출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하토야마 총리도 ‘동 법안이 우애의 원점이다.’라고 말하면서 법안 성립에 의욕을 보이고 있어 이 법안이 성립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법안이 제출되면 이미 지방참정권에 찬성하고 있는 공명당, 사민당, 공산당 등이 찬성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의 여론조사에서도 이 법안 제출에 대해 60%가 찬성하고 있으며, 반대는 29%에 불과했다. 실로 1990년 재일한국인(특별 영주자)이 오사카시 선거관리위원회에 지방참정권을 요구한 지 20년 만에 나타난 일본의 변화다. 지방참정권문제는 ‘한·일강제병합 100년이 된 2010년’에 지금까지 억압당했던 재일동포의 한을 푸는 계기로 볼 수 있어 환영할 일이다. 게다가 일본 정부가 전향적인 태도로 한·일 과거사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크다. 또한 일본이 아시아와의 ‘우애의 정신’으로 거듭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변화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이 성립되기에는 아직 넘어야 할 난관이 많다. 지방참정권 법안이 점차 현실화하면서 반대파들의 저항도 점차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반대이유는 공개적으로는 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을 맡기는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하지만, 속내는 그들의 정치적인 이익에 의한 것이 많다. 우선 민주당 내의 초선과 중견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한 반발이다. 그들은 오자와 간사장이 정부 제출 입법으로 하면서 당의귀속(黨議拘束)을 걸어 개인이 반대를 하기 힘들게 만든 것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예를 들면 해당법안의 주무부처 수장인 하라쿠치 가즈히로 총무상이 대표적이다. 그는 ‘민주주의의 기본과 관련되는 문제는 의원입법으로 해야 한다.’며 총리와 당 간사장이 합의한 사항에 반기를 들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민주당이 오자와 간사장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는 불만의 표출이다. 그리고 연립정권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국민신당 대표인 가메이 시즈카 금융상은 이미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그는 이 법안이 정부제출법안으로 되기 위해서는 각료회의를 통과해야 하는 만큼 그가 각료회의에서 반대를 하면 자신의 영향력도 확대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또한 자민당은 영주 외국인들이 지방의 투표에 참가하게 되면 지방선거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하여 반대하고 있다. 자민당의 속내를 반영하듯 자민당이 우위에 선 지방일수록 반대 의견서를 제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지방참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세력들은 불리한 상황을 뒤집기 위해 민족주의 대 반민족주의의 갈등 양상으로 몰아 가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민단(일본대한민국민단)이 작년 중의원선거에서 민주당을 지원했기 때문이라고 악선전을 한다든지, 중국인 일반영주권자가 늘어나서 결국 중국에 조종당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허무맹랑한 비방으로 보수세력을 자극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의 딜레마가 존재한다. 한국이 적극적으로 지방참정권을 요구할수록 극우세력에 ‘날개를 달아주는 모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지방참정권문제는 하토야마 정권이 얼마나 리더십을 가지고 임하느냐에 달려 있다. 특히 당 최대실력자인 오자와 간사장이 지금의 정치자금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좌우될 수 있다. 이번 국회에서 오자와 간사장의 불법자금문제가 확대되면 그의 정치력은 회복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오자와의 당 장악력이 급속하게 악화되는 동시에 하토야마 정권의 지지율도 하락해 지방참정권의 법안처리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하토야마 정권이 지방참정권 문제를 잘 풀지 못하면 이 정권의 전향적인 정책은 단지 레토릭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이 점을 하토야마 총리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 [주말 데이트]인터넷 이어 블로그 연재 첫 도전 작가 박범신

    [주말 데이트]인터넷 이어 블로그 연재 첫 도전 작가 박범신

    “아주 행복하고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작가가 출판사 또는 매체에 끌려다니는 방식이 아니라 매체를 지배하는 이상적인 연재 방식이죠.” 이제는 당연시되는 인터넷 소설 연재의 첫 문을 열어젖힌 것은 박범신의 장편소설 ‘촐라체’였다. 문단에서 독자와 실시간으로 교감하고 소통하는 글쓰기의 형식 변화를 이뤄낸 것이다. 새로운 실험과 도전으로 다져 놓은 길을 숱한 작가들이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정해진 틀없이 자유로운 글쓰기 그가 다시 한번 형식 실험에 도전했다. 이번에는 포털사이트나 웹진이 아닌 개인 블로그(blog.naver.com/wacho)에 새 장편소설 ‘살인 당나귀’ 연재를 시작한 것. 어느 날은 원고지 30~40장 분량이 올라오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달랑 4~5장 올라오기도 한다. 기존의 소설 연재가 ‘매일, 원고지 10장’이라는 정해진 틀을 갖고서 작가들을 독촉하고 강제했음을 감안하면 자유롭기 그지없는 형식이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64)가 무색하게 짙푸르고도 서늘한 감성이 문단의 원로 반열에 오른 이의 이렇듯 끝없는 도전을 재촉하고 있다. 21일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만난 박범신은 “기존의 연재 메커니즘은 작가를 억압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비록 원고료는 없지만 창작의 흥이 오르면 많이 쓸 수도 있고, 글이 막히면 조금 쉬면서 가다듬을 수도 있다.”고 새로운 형식 실험의 장점을 설명했다. 작가들이 연재했던 작품을 단행본으로 출간할 때 상당 부분을 뜯어고치는 ‘관행 아닌 관행’도 그의 실험을 자극했다. 그 누구보다 신문, 인터넷 등에 많은 연재를 해온 박범신이었기에 작가가 존중받고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연재 형식이 더욱 간절했으리라. ●17년 만의 연애소설 ‘살인 당나귀’ 블로그 연재를 시작한 ‘살인 당나귀’는 그가 17년 만에 다시 도전한 연애 소설이다. ‘대중 문학’의 최고봉에 올랐던 박범신 아닌가. 안팎의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드러나는 현상으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죽음으로 내몰릴 때 드러나는 사랑의 원형적 본능, 그 근원을 그리려 한다.”면서 “순수한 연애 소설을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조금 무거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감이 쉬 안 잡힌다. 그는 덧붙인다. “사랑은 그 갈망만이 영원할 뿐이지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흔한 연애소설은 아닐 거예요. 사랑의 본능이 멸망과 파국에 있음을, 자기 파멸을 향해 터져나오는 욕망과 포악한 관능, 잔혹한 질투심을 그릴 겁니다.” 설정부터 가볍지가 않다. 77세 노인이 17세 소녀를 사랑하는 이야기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70대 노()시인은 자신 안에 꼭꼭 억압됐던 욕망과 질투, 관능 등의 본능을 소녀를 통해 확인한다. 시 외에는 어떠한 잡문도 쓰지 않던 주인공(이적요)은 살인까지 서슴지 않을 정도로 사랑에 대한 갈망을 드러낸다. 프로이트가 얘기했듯 사랑은 에로스(성애)와 타나토스(죽음의 충동)로 이뤄져 있다. 파격적 성애 묘사로 논란이 됐으나 이제는 고전 문학 반열에 오른 ‘롤리타’가 떠오른다. 박범신은 “사회적 금기가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갈망, 관능도 더욱 고통스럽게 타오른다.”면서 “77세의 존경받는 시인과 17세 소녀를 등장시킨 것도 그런 점을 감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재는 3월 말까지 마칠 계획이다. 단순한 형식 실험을 뛰어넘어 사랑의 새로운 개념을 설정하고 싶다는 박범신. 억압된 욕망의 제 얼굴을 되찾아주고 싶다는 그에게서 젊은 작가들과는 또 다른, 무한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가 왜 ‘영원한 청년작가’로 불리는지 알 수 있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2010 신춘문예-평론 당선작]’질문하는 소설, 경험하는 콜라주’-김중혁론

    고대 그리스의 부타데스(Butades of Sicyon) 이야기에서 우리는 그림 그리기의 기원에 관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한 여인이 연인을 사랑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불빛에 비친 연인의 그림자를 따라 벽에 그린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옹기장이였던 여인의 아버지 부타데스가 딸의 그림을 본떠 빚은 점토 형상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고 전해진다. ‘실제 대상-그림자-회화-조소’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 속 일련의 과정에서 우리는 그림 그리기, 나아가 예술적 표현과 관련하여 두 가지 중요한 전제를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예술적 표현은 사적 욕망의 구체화라는 것,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욕망의 대상에 다가가고자 하면 할수록 그 대상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시간의 퇴적 속에서 예술적 표현의 방식이 보다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면서 이제 우리는 시원(始原)의 욕망과 대상을 그저 희미한 화석으로만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사적 영역(oikos)과 공적 영역(polis)의 경계가 깨지면서 발생한 것이 ‘사회’라는 아렌트의 지적대로라면, 이제 우리의 사회는 개인의 욕망조차 자아를 충족시키는 내밀함에서 벗어나 공적 담론의 장 속에서 공익적 측면을 수용하기를 요구한다. 역사의 진행을 개인 욕망의 발현 과정으로 본다면, 욕망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공적인 영역 속에서 욕망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가 중요시된 것이다. 이 속에서 우리의 개인적 욕망은 때로 성적(性的)인 원죄의식에 사로잡히거나, 집단적 도덕성으로 재단되기도 한다. 결국, 계량화가 가능해지고 공적 가치를 따질 수 있는 것만이 우월한 지위를 부여받으면서 순수하고 개인적인 욕망의 발현은 유아기적 망상으로 치부되기에 이른다. 더구나, 매스 미디어의 균질적 정보처리 과정을 거친 다양한 욕망들은 서열화 속에서 재배치된다. 이제 욕망은 비교우위 없는 순수한 발현을 억압당한 채 잘못된 대상에 고착되거나 인터넷의 작은 화면 속에서 일쑤 신경질적으로 해소된다. 마치, 떠나고 없는 연인의 그림자를 향해 말없음을 타박하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말이다. 욕망조차 계열화된 현실에서 소설 행위(쓰기/읽기)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욕망의 실체를 확인하는 데 있다. 다양한 욕망이 부딪치는 공간이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벤야민은 소설이 이야기와 달리, 이전 시대의 경험들과 분리되어서 후대의 경험으로 확장되거나 조언을 포함하지 않는 고립성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한다. 게다가 현대 사회의 소설은 정보가 그랬듯이 상품으로서 자본주의적 유통의 과정으로 포획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결국 소설행위의 의미 역시 정보가 소비되는 방식처럼 한 순간 안에서만 소비되고, 우리의 욕망은 자본주의적 만화경 속에 갇히고 만다. 이 글이 김중혁의 소설(‘펭귄뉴스’(2006), ‘악기들의 도서관’(2008). 두 권의 단편집을 제외한 작품으로는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창작과 비평, 2009년 봄), ‘C1+y=:[8]:’(문학과 사회, 2009년 여름), ‘유리의 도시’(현대문학, 2009년 8월), ‘1F/B1’(문학동네, 2009년 가을) 등이 있다. 단편집에서 작품을 인용할 때에는 작품의 제목과 면수만 밝히기로 한다.)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일관되게 자신의 소설 안에서 무한대의 욕망과 경험들을 반복·중첩시켜 가며 소설 공간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의 소설은 종국에 이르러 개인의 순수한 욕망을 만날 수 있도록 가벼워지고, 이 가벼움은 다시 무한대의 욕망과 경험들을 가로지른다. 김중혁의 이러한 작업은 부타데스 이후 멀어져 가고만 있는 개인의 욕망을 직접 대면케 하는 동시에 소설행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여겨진다. 김중혁 소설의 근저에는 공통 취향을 가진 두 인물들의 반복과 변주가 배치되어 있다. 이 배치가 그의 소설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소설적 긴장감을 형성하는 동시에 공통 취향의 공간은 독자들을 무리없이 공감하게 만든다. 이 두 명의 중심인물들은 때로 쉽게 의기투합하기도 하지만(‘무용지물 박물관’), 결코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거나 협력의 지점을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두 인물들은 만나지도 않거나(‘자동 피아노’), 아니면 아예 한 인물이 다른 인물에게 위해를 가하기도 한다(‘비닐광 시대’). 반면에 이럴 때조차 이들은 서로 여전히 “작고 가냘픈”(‘자동 피아노’, 29쪽) 연결점을 가지고 있는데, 말하자면 두 인물들은 매개물을 통해 가까워진 두 개의 항이 아니라 매개물을 통해 반복되고 변주되는 하나의 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인물들은 ‘여성들의 서사적 비중이 축소된 남성적 유대관계’(신수정)나, ‘전형적인 남성 버디(buddy)소설의 면모’(심진경)로도 파악된다. 하지만 소설적 공간의 의미를 구축하는 이들의 역할에 주목하여 살펴본다면 성구분은 무의미해지고 우리는 다만 반복적 이형태(異形態)가 만들어내는 변화에 동참하게 될 뿐이다. 소설 속에서 상대자로 ‘나’와 같이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영어 이니셜이나 별명으로만 나타나는 경우 이러한 변화는 더욱 두드러지는데, 고유명사를 부여받지 않은 대상은 독립적 역할보다는 ‘나-나’로의 반복과 변화를 이끈다. 가령, ‘나와 B’에서 ‘나’는 ‘B’와 음악으로 인해 ‘핵융합’을 한 것처럼 금방 친해진다. 하지만 실제 이 둘의 관계는 ‘B’에 대한 ‘나’의 일방적인 행위로 시작되고, 전개된다. 음반 가게 점원인 ‘나’가 음반을 훔치려던 ‘B’를 처음 만난 뒤, 몇 번의 이직을 겪는 ‘나’와 무명 기타리스트에서 주목받는 신인 기타리스트가 되는 ‘B’의 사이를 ‘하나로 합쳐’졌다고 보기에 둘 사이는 느슨하다. 음악이라는 공통 취향은 있지만, 근본적으로 ‘B’는 ‘음반을 두 번 정도 듣고 난 다음엔 음반과 거의 똑같이 기타를 연주’(195쪽)하는 전문가이고, ‘나’는 심장에 무리가 가서 아예 전기기타를 배우기도 힘든 인물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두 인물의 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어느 날 나는 동영상을 보다가 내 습관 하나를 발견했다. 나는 화면 속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그를 볼 때마다 왼쪽 엄지로 나머지 왼손 손가락들의 끝을 비비고 있었다. 어머니가 아이의 등을 어루만지듯 매끄러운 손가락 끝을 비비고 있었다. ‘내가 손가락 끝을 비비고 있었네?’라는 생각이 들고 난 다음에도 마찬가지였다. 어째서 그런 행동이 시작됐는지 모르겠다. 대리석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는 그의 손가락 끝을 그리워했던 것일까. 아니면 굳은살 하나 박여 있지 않은 내 손가락 끝이 부끄러웠던 것일까. (…중략…) 한 달 전 기타를 한 대 샀다. 다시 기타를 배우고 싶어졌다. (…중략…) 아직 내 손가락 끝은 너무 무르다. -‘나와 B’, 210~211쪽. 결국, 소설의 마지막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것은 ‘나’ 스스로의 재발견이다. ‘나’는 ‘B’와의 만남으로 인해 이전에는 억압되어 있던 자신 내면의 어떤 지점을 발견하고 다시 이를 통해 내면에 감추어졌던 순수한 욕망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잡게 된다. 갑자기 음악(기타)을 위해 생업을 내팽개치거나 하는 등의 결단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무른 손가락 끝’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이 순간은 우리가 전망을 가지고 억압과 대결을 펼치든, 현실을 비틀어 냉소적 거리를 두든 오히려 단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던 현실적 억압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전망이나 목표는 그 자체로 억압되고 조작된 욕망에 노출되어 뒤틀린 결과물이 될 위험성을 항상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결말이 보여주는 의미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그리거나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출발점과는 구별된다. 이제 우리는 조작된 욕망에서 벗어나 본래의 욕망, 즉 시원(始原)의 욕망을 대면할 수 있게 된다. 김중혁은 이러한 반복과 변주가 주는 새로운 의미의 발견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가 자신의 작업에 붙이는 이름(제목)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첫 번째 소설집 ‘펭귄뉴스’에서 우리는 ‘무용지물/ 박물관’, ‘사백 미터/ 마라톤’이라는 제목을 볼 수 있다.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내기 힘들 것 같은 두 단어가 하나의 단어로 사용되면서 묘한 호기심과 낯섦을 불러일으키는 이런 방식의 명명은 두 번째 소설집 ‘악기들의 도서관’에서 더욱 늘어난다. ‘자동/피아노’, ‘악기들의/도서관’, ‘유리/방패’, ‘무방향/버스’(제목의 /부호는 인용자) 등이 그것이다. 지적한 제목들은 모두 이질적인 두 단어가 A+B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작품을 읽은 뒤 우리는 소설의 내용이 A나 B 어느 한쪽과 관련된 이야기거나, A가 B(혹은 B가 A)를 특별한 방식으로 만드는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소설이 전달하는 의미들은 사실, A∩B를 통해 파생되며 이를 통해 A나 B가 기존의 의미에서 벗어나고 그것들의 공통점에 기반하되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 A‘(또는 B’)가 무한대로 풀려 나오게 되는 것이다. 교집합적 운동이라고 새롭게 불러도 좋을 이와 같은 김중혁의 소설적 전략은, ‘반복(repetition)’과 ‘이접(離接.disjunction)’을 통해 모든 ‘토대’를 집요하게 해체하고자 했던 일련의 운동이 문학적 테두리 안에서 갖는 성과이다. ‘엇박자 D’의 감동적인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는 이 성과를 분명하게 만날 수 있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두 사람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세 사람의 목소리로 바뀌었고, 네 사람, 다섯 사람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합창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합창이라고 하기에는 서로의 음이 맞질 않았다. 박자도 일치하지 않았다. (…중략…) 노래는 아름다웠다. 서로의 음이 달랐지만 잘못 부르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마치 화음 같았다. (…중략…) 22명의 노래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이유는, 아마도 엇박자 D의 리믹스 덕분일 것이다. 22명의 노랫소리를 절묘하게 배치했다. 목소리가 겹치지만 절대 서로의 소리를 해치지 않았다. 노래를 망치지 않았다. -‘엇박자 D’, 280~281쪽. 공연기획자인 ‘나’가 20여년 만에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합창단 친구 ‘엇박자 D’를 만나 같이 공연을 기획하게 된다. 그 공연에서 ‘나’ 몰래 친구가 준비한 앙코르 장면은 소설속의 ‘나’가 그랬듯 예기치 못한 감동을 준다. 공연을 기획한 ‘엇박자 D’는 합창단 시절, 자발적으로 단장까지 맡을 정도로 유일하게 열성적이었던 친구지만 그는 ‘놀라울 정도의 박치이자 음치’(255쪽)여서 실제 공연 때는 선생님에게 립싱크만을 강요당한다. 그러나 ‘엇박자 D’는 결국 노래를 부르고, 공연을 망친 장본인이 된다. 그 뒤 의도적으로 음악을 듣지 않던 ‘엇박자 D’는 전공으로 무성영화를 선택한다. 무성영화를 통해서, 영상과의 필연성에 얽매이지 않는 소리의 자유로움을 깨닫고 위에 언급한 장면을 연출하기까지의 소설적 과정에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엇박자 D’의 의도를 알게 된다. 실상, 음치라는 것은 ‘자신이 알아낸 게 아니고 들어서 아는 것’이며 ‘평생 그렇게 세뇌’(270쪽) 당해서 살아왔다는 것을 말이다. 개인의 욕망이 자유롭게 표현된 것이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억압으로 작용하는 사회적 기준이 음치를 생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억압이 작용하지 않는 시원의 욕망을 만남으로써 주체들이 자유롭게 해방되고 나아가 ‘서로의 소리’를 억압하지 않는 ‘화음’을 꿈꾸는 것, 그것이 바로 김중혁이 보여주는 교집합적 운동의 힘이다. 교집합적 운동 속에서 억압되/하지 않는 욕망을 만날 수 있다면, 역설적으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교집합의 상태 그대로 남아 있기이다. 운동성을 상실한 모든 것은 결국 그 힘을 잃고 다시 계열화 속으로 수렴될 위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 이러한 위험은 계시적인 교훈이나 전망으로 구체화되면서, 문학작품이 운동성을 상실한 채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가라앉아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김중혁은 자신의 소설이 처할 수 있는 이 비극적 운명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여 표준으로 작동하는 모든 것들과 거리를 둠으로써 자신의 전략이 지속적 운동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억압적 현실⇒구체적 전망의 필연성’으로 이어지는 고정적 틀 그 자체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전망이 다시 억압으로 작동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유의 비트(beat)를 억압하기 위한 진압군과 이에 맞선 저항군이 전쟁 중인 현실, 청년 실업자가 넘쳐나는 현실을 각각 배경으로 삼은 ‘펭귄뉴스’와 ‘유리방패’처럼 비교적 억압의 양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에서 이러한 의도는 더욱 잘 드러난다. 이는 억압의 체계에 포획되지 않기 위해 경계하는 작가 스스로의 부단한 노력으로 읽힌다. ‘전쟁 중인 현실→무감각한 나→저항군인 그녀→그녀와의 우연한 만남→그녀를 따라 저항군이 되는 나’로 이어지는 ‘펭귄뉴스’의 이야기 전개는 전형적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끝에서 우리는 다소 의외로 ‘그녀’의 죽음을 확인한다. 전쟁 중인 현실조차 ‘지루하고 재미없’(263쪽)는 ‘나’에게 ‘그녀’는 ‘모든 살갗이 곤두서’(274쪽)게 하는 유일한 자극이었기 때문에 그 의외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게다가 ‘나’는 ‘그녀’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제 곁에 있던 그녀는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비극적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굳이 감상을 말해야 한다면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해야겠군요. 어쨌든 극히, 자연스럽게 그녀는 죽었고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 ‘펭귄뉴스’, 357쪽. ‘비트’를 매개로 ‘나’와 ‘그녀’ 사이에서 이루어진 교집합적 상태는 필연적으로 ‘나’에게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지만, 이것 자체가 지속가능한 운동으로의 전환은 아니다. 교집합적 만남을 통해 변화된 주체는 다른 주체와 거리를 가질 때 비로소 자신의 내면에 자유의 공간 즉, 운동성을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을 생성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그녀’의 죽음 뒤에야 비로소 ‘나’는 그 어디에도 ‘반납’할 수 없는 ‘정말 사적인 비트’(357쪽)를 완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 순간, 그 ‘비트’는 ‘그녀’와 ‘나’만의 매개에서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엇박자 D’의 마지막 장면처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쿵쾅’(358쪽)거릴 수 있는 운동으로 변환한다. 우리는 이와 같이 지속적인 운동성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을 파리의 빌레트 공원(Parc de La Villette)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 공원은 설계단계에서부터 문학·철학·영화 등의 다양한 비건축적 개념을 적극 끌어들인 것으로 유명한데, 이를 통해 오히려 건축의 새로운 발전가능성을 촉발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 공원은, 점·선·면의 세 체계를 따라 설계된 각각의 공간이 한 공간 안에서 중첩되고, 분열되고, 해체되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기능하게 되어 있다. 설계의도에 따르면, 응집력 있는 구조들을 중첩시켰을 때 하나의 초응집적 거대구조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결정될 수 없는 것, 즉 전체성에 반대하는 것이 생겨난다. 결국 이 공간은 반-맥락적인 공간이다. 따라서, 실제 공원 내 기능들의 중첩은 고정된 시설물로서의 기능성과 편의성에서 벗어나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공간을 탄생시킨다. 일상 언어학에서 말하는 관습적인 절차나 효과로서의 ‘맥락(context)’을 파괴하는 이 공간은 2000년대 우리 소설이 새롭게 만들어 낸 소설적 공간, 이른바 ‘무중력 공간’(이광호)과 맞닿아 있다. 2000년대 소설들은 종래의 작품들에서 기피해 온 이질적인 소재나 인물군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면서 지속적으로 이야기 공간에 낯섦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 시기와 비교하여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지점이다. 이 소설들이 만들어 내는 공간 자체가, 중력으로 작용하는 어떠한 억압적 기준 없이 자유로운 방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단절적인 대화나 전통적 서사 구성을 거부하는 듯한 문체, 현실과 이질감 없이 섞여 있는 환상적 비현실 또한 그 결과물이자 원동력임은 물론이다. 김중혁의 소설 역시 이와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 그러나 현실과 냉소적인 거리를 두거나 이질적인 공간을 창조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수많은 현실들과 겹치면서 동시에 거리를 두는 변별성을 통해 보다 많은 욕망들을 해방시킨다. 따라서 비교적 전통 서사에 충실하게 진행되던 김중혁의 소설은 언제나 결말에 이르러 모든 것을 툭툭 털어버리고 ‘마음이 편안해’(‘자동피아노’, 35쪽)지는 경험을 안겨준다. 이때의 ‘가벼움’이 바로 단순한 현실과의 거리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김중혁만의 ‘거리두기’에서 오는 결과이다. 이 ‘거리두기’ 역시, 앞서 언급한 빌레트 공원에서 폴리(folie)라는 인상적인 개념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프랑스어로 광기, 무분별한 짓이나 말, 정열 등의 의미를 가진 폴리는 이 공원의 설계 단계에서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점 체계 속의 폴리는 실제 빨간색 철골 구조물들로 형상화되었는데 공원 내에서 쉽게 눈에 뜨이기 때문에 방향을 찾을 수 있는 기준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워진 이 폴리는 전체 공간을 나누고 분리시키는 동시에 면과 선 체계의 폴리들과는 상호충돌하고 왜곡되어, 애초 설계자의 의도대로 공원전체가 탈통합적인 공간이 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결국 모든 억압에서 벗어난 공간을 만드는 것은 기준점으로서의 ‘나’가 아니라 모든 것들과의 반복과 중첩, 그리고 다시 그것과의 거리두기에서 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M의 옆모습을 보는 순간, 어쩌면 M과 이렇게 버스를 타고 가는 것도 마지막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순간 얘기를 했지만 그사이 M과 나는 어딘가를 지나온 것 같았다. 어떤 갈림길을 지나온 것 같았다. 그는 왼쪽 길을, 나는 오른쪽 길을 선택했고, 발목에 묶여 있던 끈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스르르 풀어져 버린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유리방패’, 180쪽. 위의 장면 속 ‘나’와 ‘M’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지내면서 취업을 위한 면접시험조차 같이 치른다. 심지어 한 명만 뽑는 회사의 면접시험도 ‘막무가내’로 같이 치르는 이 둘은 전형적인 김중혁 소설의 인물들이다. 이들이 면접시험을 위해 준비했던 일종의 퍼포먼스가 우연히 인터넷 신문에 예술적 시도로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순식간에 이들은 면접관으로 불려다니는 유명인사가 된다. 서른 번의 입사시험을 치르는 동안 ‘한때 실패에 중독된 인간들’이었던 주인공들이 ‘실패중독자들을 위로해 주는 입장’(178쪽)이 된 것이다. ‘점수를 받는 사람’에서 ‘점수를 주는 사람’(176쪽)으로바뀌게 된 이 발랄한 치환은 현실의 체계를 뒤엎는 듯 보인다. 자본주의적 서열구조의 확대·재생산 방식으로 작동하는 공개취업의 기준에 함몰되어온 인물들이 그 틀을 자신들의 힘으로 벗어난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본 경우보다 오히려 짧은 시간 내-‘스무 번째였는지 스물한 번째였는지의 면접관 일을 마치고 나올 때’(178쪽)-에 ‘피곤’을 느끼고 만다. 애초부터 이들의 ‘자리바꿈’은 사실 무분별하게 정보를 생산해 내는 매스미디어 시스템이 만들어낸 ‘이벤트’였을 뿐이다. 자신들의 변화가 억압이 작동하는 체계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 그 체계 안에 다시 포획되고 말았음을 느낀 순간, ‘나’는 ‘M’과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소설 속 인물들의 교집합적 운동이 다시 체계 내에 갇히고 말 때, 김중혁의 ‘거리두기’는 이를 벗어나기 위해 지속적인 운동성을 확보한다. 교집합적 반복과 변주, 그리고 거리두기까지 포괄한 김중혁 소설의 운동성은 작가 특유의 소재가 만들어 내는 이야기 공간과 교직(交織)된다. ‘마니아적인 열정과 감수성’(박진), ‘사물들을 해방시키는 수집광’(김형중), ‘등장인물들의 마니아적 취향과 취미를 개성적으로 드러내주는 사물-예술’(심진경) 등으로 평가되는 김중혁의 사물에 대한 애착은 독자들에게 호응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것은 작품 속 소재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수공업적’ 성격이다. 또 하나의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으로 등장한 ‘정보’의 유통은 후대로 전달되는 경험의 가치를 하락시킨다. 따라서 사실이 아닌 이야기에도 진실이 포함되어 있던 시대에서, 진실과 관련 없이 사건만 난무하는 시대로의 변모를 지적한 벤야민의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해 실시간적 확산이 가능한 정보만이 중요시되고, 전생애에 걸쳐 축적된 개인의 경험들이 획득하는 의미와 그 깊이가 외면되는 것이 여전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때, 수많은 경험들이 구전적인 방식으로 축적되어 있는 이야기를 벤야민은 수공업적 형태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이야기의 특성을 빗대서 말한 ‘옹기그릇에 남아있는 손흔적’은 현대사회에서 하나의 가치가 아닌 시스템의 오류로 취급될 뿐이다.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 김중혁은 경험들이 축적되어 있는 동시에 새로운 경험들을 환기시키는 소재들을 사용한다. 마치 벤야민의 ‘이야기’처럼 그의 소재에는 다양한 욕망과 경험들이 공존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다음에서 작가가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론을 먼저 살펴보자. “잠수함 설명하기가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서 제가 집에 있는 잠수함 모형을 하나 가지고 왔어요. 비틀스의 영화 ‘Yellow Submarine’에 등장했던 잠수함이에요. 청취자 여러분들이 이걸 직접 만져볼 수 있다면 좀더 이해가 쉬울 텐데 아쉽네요. 전체적인 모습은 입이 툭 튀어나온, 심술 맞은 물고기 같아요. 심술난 것처럼 입을 삐죽 내밀고 한번 만져보세요. 잠수함 앞모습이 바로 그래요. 그리고 몸통은 비늘을 다 긁어낸 물고기라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미끈하죠. 창문은 왼쪽에 여덟 개, 오른쪽에도 여덟 개가 있어요. 이 창문을 통해서 바닷속 풍경을 보는 거죠. 그리고 꼬리 쪽에는 방향을 조종하는 지느러미 같은 게 달려 있어요. 지느러미 아래쪽에는 잠수함이 앞으로 나갈 수 있게 프로펠러가 두 개 달려 있어요. 프로펠러는 바람개비를 생각하면 될 거예요. 그리고 위쪽에는 네 개의 잠망경이 올라와 있는데요, 잠망경은 잠수함이 물 위로 올라오지 않고도 바깥을 볼 수 있도록 기역자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어요. 굽힐 수 있게 만든 스트로 아세요? 그걸 잠망경 모양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음, 그리고…….” (…중략…) “자, 이제 우리가 잠수함이 한번 돼 볼까요? 제가 자주 하는 놀이인데요. 욕조에 물을 받은 다음 스트로를 물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우리에겐 그 스트로가 잠망경인 셈입니다.” -‘무용지물 박물관’, 33~34쪽. 대상과 직접적 연관없는 “물고기, 바람개비, 스트로” 등을 동원하여 잠수함을 설명하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모든 감각과 경험을 총동원하게 된다. 그리고 이 감각과 경험들 역시 대상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우리에게 ‘잠수함’을 경험적 실체로 인식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 과정에서 대상을 보편화시키는 정의(定義)는 ‘무용지물’이 되고, 나아가 감각 주체가 스스로 대상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은 인식방법은 정보를 처리하는 기술과 달리 “통조림”처럼 압축되지 않고 수많은 감각과 경험들이 중첩되면서 위의 긴 인용문에서처럼 필연적으로 비경제적이 된다. 김중혁이 선택한 소재들의 수공업적 성격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즉, 계열화된 체계 안에서 박제된 상태의 사물이 아니라, 누구나 자유롭게 경험할 수 있는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되는 사물이 바로 작가의 탐구 대상이다. 먼저,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의 지도가 그것이다. 나무를 깎아 만든 이 지도는 에스키모들이 ‘기억과 소리’로 만들고 촉각을 동원하여 ‘상상하는 지도’이다. 일반적인 ‘지도’의 제작과 활용에서 벗어나, 사용자들의 반복적인 경험 안에서 유용한 이 지도는 그 자체로 수공업적 소재라 할 수 있다. 이 지도로 인해 ‘나’는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78쪽)던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억하게 된다. 사물에 축적된 수많은 경험들이 ‘나’와 중첩되어 나만의 경험을 생생하게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사물 역시 갇혀있던 가치판단의 틀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이다. 이와 같은 탐구는 ‘악기들의 도서관’에서 심화되어 나타난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채로 죽는다는 건 억울하다.’(109쪽)는 생각이 든 ‘나’가 우여곡절 끝에 취직하게 된 악기점에서 만든 이 ‘도서관’은 연주가 아니라 ‘그냥 악기 소리만’ 있는 곳이다. 악기는 애초에 인류가 감정표현과 전달의 도구인 신체를 보충하는 보조수단이었다. 여기에 악기를 사용해온 수많은 사용자들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하나의 도구로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악기가 분류되고 체계화되면서 점점 경험의 세계에서 분리되어 전문연주자를 필요로 하기에 이른다. 체계 내로 편입되지 않은 개별적 경험들이 가치를 발현할 수 있는 기회는 이제 차단당한 것이다. 사실상 처음부터 박물관에 전시될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물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시되기 직전까지도 사물들은 오직 사용자들의 경험과 경험사이에서만 존재해 왔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본주의적 체제의 강제성을 보편타당성으로 받아들여 사물들을 분류하고 서열화해 왔던 것이다. 이제 자본주의적 질서로 재편된 박물관 안에서 사물들은 더 이상의 경험을 용납하지 않은 채 개별성을 상실하고, 인간마저 전시물과 같은 운명을 겪게 된다. 김중혁의 수공업적 사물에 대한 탐구는 이와 같은 운명을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다. 이 노력은 ‘박물관’을 ‘무용지물’로 만들면서, 체계에서 소외된 모든 것들을 ‘악기도서관’으로 이끈다. 여기서 우리는 ‘긁거나 할퀴거나 두드리거나 뜯거나 쓰다듬거나 꼬집으면서’(127쪽) 억압되/하지 않는 개별적 경험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처음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지 않냐? 그보다 더 처음으로, 더 처음” -‘유리방패’, 178~179쪽(인용자 재구성). 시원의 욕망을 꿈꾼다는 것은 가능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전도되고 억압된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기억을 통해 더듬어 가는 ‘처음’은 언제나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경계하는 데리다는 기원을 아예 결정 불가능한 것으로 본다. 부타데스의 딸이 기억에 의존하여 그림을 그리던 순간부터 실제 대상은 무시될 수밖에 없고, 차라리 현존(presence)과 부재 사이의 ‘놀이’ 그 자체가 의미를 생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 자본주의는 모든 차이의 진폭과 오류마저 자신의 안으로 포획하는 강력한 보편타당성을 지향하는 체계이다. 자본주의적 금융시스템이 자체 내의 심각한 오류를 드러내고 있는 지금에도 여전히 자본주의적 처방만이 유효하게 거론되는 현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김중혁의 소설은 이 같은 현실 속에서도 모든 욕망들을 중첩시키면서 멈추지 않고 차이들을 생산한다. 그리고 그는 그 전략으로 모든 경험과 욕망들의 ‘흔적(trace)’이 새겨진 사물을 사용한다. ‘자신만의 생각과 리듬’을 가지고 있는 ‘살아 있는 괴물에 가까’운 ‘타자기’(‘회색괴물’), 그 어떤 외부조건에도 얽매이지 않고 연주되는 순간마다 ‘자신의 몸을 통째로’ 빌려주는 ‘투명’한 ‘피아노’(‘자동피아노’), ‘수많은 밑그림 위에다 자신의 그림을 그려나가’고 이것이 다시 ‘또다른 사람의 밑그림’이 되는 작업을 하는 디제이들의 ‘비닐레코드’(‘비닐광시대’)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 사물들이 만들어 내는 차이들이 결국 무한대의 욕망들에 열려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을 통해 우리들은 ‘처음’으로 이끌린다. 작가의 이런 의도는 최근작인 ‘C1+y=:[8]:’에서 ‘보드빈터’라는 공간으로 구체화된다. 정글의 특성을 도시에 연결시켜 보다 쾌적한 도심을 만들고자 하는 도시 연구가 ‘나’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도심을 다니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는 이 공간은 목숨을 걸고 정글을 탐사하면서까지 만들고 싶었던 공간이다. 그러나 이는 목적지로 충족되는 결과물이 아니라 도심 속 길들의 일부분이며, 수많은 익명의 스케이트 보더들이 ‘단 한 번도 신호등을 만나’거나,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도 스케이트 보드를 탈 수 있는 길의 연결일 뿐이다. 이 ‘길’이야말로 도시가 생성되기 이전 개인의 욕망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던 ‘첫 길’이며, 그 ‘처음’은 억압 자체가 무화되고 인류전체의 경험과 개인이 분리되지 않았던 시원의 욕망을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이다. 그 길 위로 부지런하게 걸음걸이를 옮기고 있는 작가의 행보에 시선을 고정시킨 이유는 그의 소설행위가 하나의 답변이 아니라 ‘처음’을 향한 지속적인 질문이 되고자 하기 때문이다. <끝>
  • [한·일 100년 대기획] “큰 고통받은 위안부·강제징용 문제 반드시 털고 가야”

    [한·일 100년 대기획] “큰 고통받은 위안부·강제징용 문제 반드시 털고 가야”

    한완상 전 부총리와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서울신문과의 신년특집 인터뷰에서 “한·일 관계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서로 알고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부총리는 정부 차원에서 청소년 교류를 적극 추진하기를 희망했다. 와다 명예교수는 일왕의 방한 문제에 대해 “방한한다면 방문 자체로 그쳐서는 안 되며 역사적이어야 한다.”면서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순종의 묘에 참배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 전 부총리는 일왕의 방안을 전제로 “100년 전 병탄의 부당성 등 일본의 잘못을 정중하고 솔직히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 고 말했다. 다음은 대담 형식으로 구성한 두 원로의 인터뷰다. │도쿄 박홍기특파원·서울 홍지민·강병철기자│ →한국(일본)에게 일본(한국)은 무엇인가. 한완상 전 부총리 일본은 20세기 초부터 36년간 한국을 식민지로 삼아 억압·수탈·차별한 나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 데다 아시아에 속하면서도 서구 열강에 속해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나라다. 와다 하루키 명예교수 일본과 한국은 무척 깊은 역사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본은 한국을 침략, 식민지화했다. 반성해야만 하는 역사를 갖고 있다.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봐도 한국은 일본에게 대단히 중요한 이웃 나라다. →지난 100년간 한·일 관계는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한 전 부총리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있었다. 1910년 한일병탄이 이뤄졌다. 늑약의 1조는 ‘통치권을 완전히 영구히 일본 황제에게 이양한다.’이다. 519년 조선 왕조가 끝나는 순간이다. 1936년 일본은 내선일체를 외쳤다. 창씨개명, 한글사용 금지 등도 강요했다. 문화와 민족혼마저 빼앗는 통치를 시도했다. 태평양전쟁에 패전한 일본은 승전국인 미국과 함께 한반도의 분단에 간접적인 책임이 있다. 전범국인 일본은 통일된 자유 국가로 남고, 식민지로 질곡의 세월을 겪어야 했던 한반도는 갈라져 있다. 100년을 되돌아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다. 와다 명예교수 단적인 예로 조선은 식민지였기에 일본에 저항하지 못하고 침략전쟁에 말려들었다. 일본이 한국에 저지른 가장 큰 죄다. 1945년 한국은 독립을 맞았지만 일본은 침략과 식민 지배에 사과하지 않았다. 역사 자체를 내동댕이쳤다. 때문에 일본은 그때의 역사를 잊고 살아오게 됐다.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을 맺었는데 그 당시에도 과거의 반성 없이 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한국은 엄청난 노력을 통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일제 강점이 현재 한국인이나 일본인에게 미친 영향은. 한 전 부총리 한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정신적인 상처, 충격을 줬다. 씻기 힘든 수치심과 분노다. 백색(서구) 제국주의의 흐름을 타고 등장한 황색(아시아) 제국주의의 제물이 된 사실에 대한 울분과 함께 민족자주의식이 형성됐다. 해방됐을 때 ‘소련에 속지 말고, 미국을 믿지 말자. 일본이 일어난다. 조선은 조심해라.’라는 민담을 들었다. 백색·황색 제국주의자들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일본을 향한 불신과 거부감이 한국인의 성격 속에 내면화된 것이다. 와다 명예교수 일본은 한국에 대한 병합(와다 명예교수의 표현대로)한 사실을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잊으려 했고, 실제 잊어버렸다. 그런 탓에 일본 젊은이들은 일본이 한국을 지배했었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길 정도다. 반면 한국의 입장에서는 용서할 수도, 잊을 수도 없는 역사다. 상처를 준 사람은 상처를 받은 사람의 고통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또 지나쳐 버리고 싶어 한다. 한국을 병합했다는 사실 자체가 일본의 생활 속에서는 별로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일본인은 분명하게 한국인의 감정을 읽어야 한다. 한 전 부총리 너무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에게 감정적인 대응을 자제하라는 건 정말 잔인한 일이다. 울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가장 큰 고통을 받은 두 부류가 위안부와 강제 노동자다. 합리적으로 털고 가야 한다. 경제적 보상 이전에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잘못했다는 것을 확실하게 시인 받아야 한다. 또 최소한의 경제적 보상도 있어야 한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람직한 미래는 가능한가. 한 전 부총리 가능하다. 19~20세기는 서세(西勢)의시대였다. 19세기는 팍스브리태니카 시대, 20세기는 팍스아메리카나 시대였다. 21세기는 동세(東勢)의 시대다. 동세의 기운을 정보기술(IT) 혁명이 활성화시키고 있다. 줄씨알(네티즌)이 국경을 초월하고 있다.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는 데다 연대 강화도 쉬워졌다. 동세의 기운이 솟구치고 있다. 21세기에 일본과 한국, 중국까지 평화의 중심세력으로 힘을 합칠 수만 있다면 글로벌 이슈, 즉 기후나 테러 등 어떤 문제에서든지 굉장한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한·일간 평화 강화에 반하는 열악한 조건의 존재가 냉전벨트다. 한국 정부의 힘만으로 해체할 수 없다. 미국과 일본의 지원이 필요하다. 북한 경제에 대한 대국적인 지원은 한반도 냉전을 해체하는 출발점이다. 그렇게 되면 남·북, 북·일, 북·미 관계 정상화가 쉬워질 것이다. 한국, 미국, 일본 정부가 함께 한반도 냉전 체제를 확실히 깨 21세기에 세계에서 냉전체제가 종식됐다는 선언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와다 명예교수 미래를 생각하면 일본과 한국은 자국의 테두리만이 아니라 지역적인 공동 번영, 공생을 위해 협력해 나가야만 한다. 동아시아공동체 구축에서도 한국은 중심에 서서 추진자, 대안자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일본도 성심성의껏 힘을 보태는 게 한·일의 미래지향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일본은 섬나라다. 한국은 반도국으로 대륙과 맞닿아 있는 만큼 지리적으로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 중요한 위치에 있다. 과감하게 말하면 한국과의 협력 없이 일본의 미래는 없다. →국제 사회에서 한·일의 경쟁과 협력은 필연적이다. 한 전 부총리 정보기술(IT), 생명공학(BT), 문화 기술(CT) 분야는 일본과 격차가 없다. 서로 협력하며 경쟁할 수 있다. 협력 없는 경쟁은 금물이다. 21세기는 협력을 통한 경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처럼 서로 먹고 먹히던 때로 돌아갈 수 있다. 실제 엇비슷한 수준의 IT, 동물 복제 등에서 강한 BT, 특히 한류로 대변되는 CT는 일본에 자극을 줄 수 있다. 또 제조업, 조선, 자동차 분야 등도 한국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단계에 올라섰다. 와다 명예교수 잘할 수 있는 분야는 서로 이끌고 격려해야 한다. 뒤처진 부분은 서로 배우면서 따라가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서로 돕고 협력하면서 앞으로 나가길 바란다. 달리 말해 모든 것은 한 가지 사안 속에 경쟁, 협력이라는 두 측면이 있다. 어떤 것은 경쟁, 어떤 것은 협력이라는 식으로 이분화할 게 아니다. 조화시키며 동시에 추진해 나가야 한다. 한국의 에너지는 일본을 압도하고 있다.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한·일 양국의 국민들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와다 명예교수 과거 역사에 대해 반성하도록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렸으면 한다. 인내심을 갖고 말이다. 한국의 노력 덕에 일본에도 여러 변화가 가능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흘린 땀에 비해 일본 전체적으로는 크게 변하지 않는 점도 알고 있다. 초조하기도 하고, 불만이 있는 줄도 잘 안다.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한국을 여러 면에서 좋아하는 사람들도 크게 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본인은 과거의 역사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역사는 역사대로 놓아두고 미래로 나갈 수는 없다. 미래를 위해 더더욱 과거 문제를 인식하려고 힘써야 한다. 한 전 부총리 일본은 한반도에서 저지른 부당한 조치들을, 최소한 독일이 연합국에 보여줬던 수준으로 시인했으면 좋겠다. 독일 정부는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에 대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시로 고개를 숙인다. 나치 전범에 대해서는 시효가 없다. 일본이 왜 못하는지 안타깝다. 일본 지식인들의 말처럼 늘 아시아를 넘어 서구를 좇는다면 적어도 독일 수준으로는 가야 한다. 불행한 역사는 청산해야 한다. 양국에는 이를 거부하는 세력이 있다. 한국 쪽에도 식민지는 한국을 근대화시킨 시기라고 긍정하는 일부 지식인·정치인들이 있다. 일본에도 이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우파들이 있다. 친일 세력과 일본의 보수적 민족주의 세력의 냉전적 연대와 연계를 어떻게 성숙하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가가 중요한 과제다. 이런 것을 위해 한·일간 여러 차원에서 교류·협력이 필요하다. 와다 명예교수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뛰어넘는 ‘하토야마 담화’가 발표되기를 희망한다. 무라야마 담화는 침략과 조선지배에 대해 사죄하고 반성하는 내용으로 발표됐다. 담화가 나온 이후 일본 국회에서는 논란이 일었다. 병합을 강제적인 것으로 볼 것인지, 대등한 입장에서 체결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다. 담화로부터 15년이 지났다. 적잖게 훼손됐다. 그러나 식민지화가 왜 일어나게 되었는가 등에 대한 역사연구는 꾸준히 진행됐다. 병합은 한민족의 의지와 상관없이 힘에 의해 강제됐다. 따라서 ‘하토야마 담화’에는 진정한 의미의 역사적 판단을 담아야 한다. 전향적이고 획기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병합 100년은 상징적으로 아주 좋은 계기다. →한·일 양국의 젊은이들이 바른 역사관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한 전 부총리 젊은 세대는 조부모·부모 세대가 이룬 성취, 즉 독립운동, 민주화, 인권운동, 평화운동 등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지는 주요 문제는 좋은 직장과 안정된 삶 등 개인 중심적인 복지다. 어느 나라나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 시대다. 분단의 아픔, 억울함에 대해 체계화되고 설득력 있는 지식을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볼 수 있게 됐으면 한다. 젊은이들은 지식을 획득하는 속도나 양에서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 걸 보면 인터넷 시대에 새로 깨우쳐 줄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와다 명예교수 젊은이들이 옛일에 대해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어느 사회에 있어서든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잊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태평양전쟁을 잊지 않도록 젊은 세대에게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사람들이 역사의 연구, 조사를 계속해야 한다. 역사란 건망증이 심하다. 방치해 두면 잊혀진다. 따라서 자국만이 아닌 넓은 범위에서 지역적 협력을 통해 건망증을 방지해야 한다. 한 전 부총리 일본 젊은이들은 조상들이 제국주의적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10여년 전 중국 창춘(長春)에서 겪은 일인데 일본 청년이 위화관에서 인체실험인 마루타 전시를 보고 기절한 일이 있었다. 자기 조상들의 만행을 믿지 못해서다. 일본 교육이 문제다. 불과 할아버지 세대에 있었던 반인류 범죄인데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서대문 역사박물관에 있는 독립투사의 고문받는 모형을 보고도 충격을 받는다. 양국 청년들이 서로 불행했던 과거 역사를 정확하게 알고 서로 용서해 주는 두 민족 간의 정신적 트라우마(충격)를 극복하는 치유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일 청년들의 교류를 정부 차원에서 적극 추진했으면 한다. 비정부기구(NGO)나 종교단체도 앞장서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왕을 한국에 초청하겠다고 했는데. 한 전 부총리 일왕 초청엔 두 가지 조건이 전제돼야 한다. 100년 전 병탄의 부당성 등 일본의 잘못을 정중하고 솔직히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 그래야 한·일, 북·일 관계 모두에 도움이 된다. 동아시아공동체에도 힘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 일왕의 가계는 한민족의 조상에 닿는다. 종묘에서 경의를 표하고, 특히 100년 전 병탄과 105년 전 늑약 때 가졌던 고종황제, 명성황후, 순종의 아픔 등을 되새기고 참배했으면 한다. 대학생들과 자유로운 간담회를 갖는 것도 좋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일왕 초청은 전적으로 찬성한다. 와다 명예교수 천황은 일본 국민의 상징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전쟁이 끝날 당시 지금의 아키히토 천황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신춘 휘호로 평화를 염원하는 글자를 썼었다. 마음이 깃든 휘호라고 본다. 천황은 히로히토 전 천황이 방문할 수 없었던 중국도 찾았다.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를 방문했다.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단 한국 방문 자체에 그쳐서는 안 된다. 역사적이어야 한다.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순종의 묘에 참배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2010년에 실행된다면 매우 뜻깊을 것이다. 2010년은 100년이라는 역사 속에서 마지막 기회의 해다. →북한과 일본의 국교정상화 문제도 병탄 100년을 맞는 시점에서 중요한 문제다. 한 전 부총리 하토야마 정권이 동아시아공동체를 만들려면 대북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방북 의사가 있다고 했다. 북한 지도자와 허심탄회하게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위한 환경 조성에 앞장섰으면 한다.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하토야마 정권의 노력은 긴요하다. 역사적인 성취를 하려면 대북 관계를 전향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북한과 대화를 통해 두 나라 관계를 개선하면 불가피하게 거쳐야 할 부분이 식민지 청산문제다. 과감한 사죄와 적절한 보상조치를 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1965년 한·일 기본조약보다 훨씬 평가받는 북·일 기본조약이 나오고, 하토야마 정권이 주창하는 동아시아공동체가 구축될 것이다. 하토야마 정권은 동아시아의 비핵화도 강조해야 한다. 동아시아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는 함께 해야 할 과제다. 와다 명예교수 일본과 북한의 국교 정상화는 실현돼야 한다. 일본이 한국을 병합하고 100년이 된 이때 피해를 입은 국가의 반쪽과 아무것도 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커다란 문제다. 어떻게 해서든 국교를 정상화해야 하는 것이 옳다. 교섭을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 불행하게도 북한의 핵개발이 국제적인 이슈가 됐다. 그러나 국교 정상화를 절차적으로 본다면 북한의 핵포기와 국교 정상화 추진을 동시에 진행시켜야 한다. 병합 100년이라는 측면에서 절호의 타이밍이다. 일본은 국교 정상화를 한 뒤 과거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경제협력을 약속할 수 있다. 경제 원조를 갑자기 추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국교정상화 뒤라면 자연스럽다. 그러면 남북대화에도 긍정적인 면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본다. 통일은 필연적인 것이며 머지않은 일이기도 하다. 중요한 전제는 모든 과정이 완전히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전 부총리 북·일 관계에서 한국의 역할은 분명하다. 일본이 6자회담 밖에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를 꺼낼 경우, 북한이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도록 부드럽게 권고할 수 있다고 본다. 또 일본에 대해서도 납치문제가 한반도 평화 정착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6자회담에서 납치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새로운 채널을 가동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 hkpark@seoul.co.kr ●한 前부총리는 1980년대 초까지 저항적 지식인의 대표적 인물이다. 제5공화국이 끝나도록 금서였던 저서 ‘민중과 지식인’은 운동권뿐만 아니라 대학생들의 필독서였다. 사회과학자이면서 교육, 정치, 종교계 등을 넘나들었다. 시민단체인 경실련에도 관여했다. 교수 시절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두 차례 해직과 복직을 거듭한 데다 수형 생활을 하기도 했다. 문민 정부와 국민의 정부 등 2대 정권에서 통일부총리, 교육부총리를 역임했다.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한성대 등 3개 대학의 총장도 지냈다. 최근에는 언론, 논객, 시민과 대화한 내용을 묶으며 YS(김영삼 전 대통령)부터 MB(이명박 대통령)까지 돌아보는 대담집 ‘우아한 패배’를 출간했다. ●와다 하루키는 일본을 대표하는 진보학자이자 한반도 전문가다. 1960년 도쿄대 문학부를 졸업, 66년부터 도쿄대 강단에 섰다. 소련사와 북한 현대사가 전공이다. 1970~80년대 일본 지식인으로서 민주화 운동 때문에 투옥된 김대중·김지하씨 등의 구명운동에 앞장섰다. 1980년 김대중씨 사형 선고와 관련, 교수 신분으로 주일 한국대사관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조만간 러·일전쟁을 중심으로 1875~1904년의 역사를 다룬 저서를 상·하권으로 출판할 계획이다. 그는 “최근 틈나는 대로 대장금, 태왕사신기, 주몽 등 한국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혁명 1991’, ‘역사로서 사회주의’, ‘조선전쟁’ 등 30권 이상의 저서를 집필했다.
  • [월드이슈] 왜 국제 영어채널 신설할까

    세계 각국이 저마다 24시간 국제 영어채널을 신설하거나 강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론학자들에 따르면 다양해진 국가이익을 효과적으로 홍보하고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확보해 자국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는 데 미디어가 대단히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정확하고 진실하고 균형잡힌’ 정보제공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쌓아 장기적으로 국익에 이바지하겠다는 전략적인 판단이라는 것이다. 세계 각국이 국제뉴스를 강화하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특히 가장 피해야 할 것으로 꼽히는 것은 정부 주장만 앵무새처럼 전파하도록 하는 경우라고 한다. 국내 언론 자유를 억압하는 일부 국가들이 국제방송을 하겠다는 것은 결국 대중의 공감과 이해를 얻을 수 없는 일방적인 선전매체가 하나 더 생기는 것에 불과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런 가운데서도 국제뉴스는 ‘고급 담론’을 제시함으로써 국적을 뛰어넘는 공공자산으로서 자리매김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BBC는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뿐 아니라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상황을 알리는 데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독일의 도이체벨레(DW)와 아랍권의 알 자지라는 자체 생산한 영상 자료를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한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열린세상] 오바마 독트린과 한반도/김영호 성신여대 국제정치 교수

    [열린세상] 오바마 독트린과 한반도/김영호 성신여대 국제정치 교수

    오바마 미 대통령의 오슬로 노벨평화상 수상연설은 ‘오바마 독트린’으로 불릴 만큼 자신의 전쟁과 평화관뿐 아니라 세계 평화 실현을 위한 구체적 청사진을 제시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의회 교서, 연설, 해외 기자회견 등을 통해 국제정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독트린을 내놓았다. 유명한 먼로 독트린과 트루먼 독트린은 의회에 보내는 교서 형식으로 발표됐다. 닉슨 독트린은 태평양 상의 섬 괌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구체화됐다. ‘오바마 독트린’은 임기 초반 구체적 업적도 없는 사람이 왜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하느냐고 묻는 회의론자들에게 답하는 형식의 해외 연설에서 제시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연설에서 오바마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책임진 대통령으로서 간디와 킹 목사의 비폭력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우리 생애에 전쟁의 필요성이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주의적 인식 하에 정당하다고 믿는 목적 실현을 위해 군사력의 사용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그가 존경하는 신학자 라인홀트 니부어의 주장을 떠올리게 한다. 니부어는 선(善)과 정의를 추구하기 위해 때로는 전쟁과 무력이라는 악한 수단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국제정치의 비극적 측면을 강조한 기독교 현실주의자였다. 이러한 현실주의적 인식과 함께 오바마는 인권과 사회정의라는 가치의 실현이 세계 평화를 위해 필수불가결하다는 점을 또한 강조하고 있다. 오바마 독트린은 현실주의적 방법을 통해 이상주의적 목적을 추구하겠다는 매우 균형잡힌 시각을 보여준다. 과거처럼 국익 실현과 가치의 추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는 점을 천명한 21세기형 독트린이다. 그는 21세기 세계 평화 실현을 위한 세 가지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 북한과 같이 국제법과 핵 비확산 규범을 어기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국제사회가 공조해 제재를 가하고 지속적인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둘째, 개인의 존엄성과 인권은 문화와 전통의 차이를 불문하고 보편적 천부인권이라는 관점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셋째, 그는 정치적 자유뿐만 아니라 경제적 안정과 기회의 보장이 세계 평화에 긴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오바마는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그 실현을 위한 방식에서는 매우 융통성 있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국제 규범을 어기고 인권을 유린하는 억압체제에 대해서도 적극적 포용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보고 있다. 문화혁명 직후 닉슨의 중국 방문, 교황 요한 바오로2세의 폴란드 방문, 페레스트로이카 수용을 통한 레이건의 대소련 포용정책 등을 오바마는 고립화와 포용, 압력과 인센티브가 잘 배합된 성공한 정책으로서 중국의 개방, 폴란드와 소련의 변화에 기여했다고 보고 있다. 앞으로 미국의 한반도 정책도 오바마 독트린의 틀 안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우선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북핵의 완전 폐기라는 원칙 하에 필요할 경우 북한과 적극 대화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북한이 핵 포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내리지 않을 경우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다. ‘한·미동맹 미래비전’ 선언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노력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슬로 연설에서 아프가니스탄 대테러전쟁은 미국만의 전쟁이 아니라 42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정의를 위한 국제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아프가니스탄에 한국의 군사적·경제적 기여가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오바마 독트린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바탕으로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한·미 공조체제를 구축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면밀한 정책대안을 마련해 나가야 할 때이다. 김영호 성신여대 국제정치 교수
  • “‘토마스와 친구들’ 성차별 요소 많다”

    “‘토마스와 친구들’ 성차별 요소 많다”

    전세계 아이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토마스와 친구들’이 성차별 요소가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캐나다 알버타대학교 정치학과 셔나 윌튼 교수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토마스와 친구들’에 성차별 요소가 많으며 자본에 의한 계급사회를 당연시 여기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분석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토마스와 친구들’은 1940년대 레브 오드리의 소설을 원작으로 영국에서 TV시리즈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다. 2006년 시즌 10까지 제작됐으며 한국을 비롯해 세계 130개국에 수출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영국 텔레그래프의 지난 10일 보도에 따르면 윌튼 교수는 이 애니메이션의 49개 캐릭터 중 여성 캐릭터는 단 8개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나마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도 부수적인 역할이며 승진 지향적인 캐릭터로 그려지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윌튼 교수가 이 애니메이션의 23개 에피소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극중 토마스와 퍼시, 제임스 등 기관차들은 억압받는 하층민으로, 부유한 역장은 상위 권력자로 설정됐다. 그는 이같은 억압 구조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은 이기적인 권력욕으로 그려지며 내용상 처벌을 받기도 한다는 부분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실제로 한 에피소드에서는 경찰관에게 경적을 울린 토마스가 ‘엔진교체’라는 처벌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윌튼 교수는 이같은 분석 결과를 발표하며 ‘토마스와 친구들’이 변화와 비판을 반대하며 여성을 차별하는 구시대의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다고 정리했다. 그러나 윌튼 교수는 “프로그램엔 배려와 대화 등을 중요시 하는 모습도 담겨있다.”며 부정적인 요소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브아걸 소속사 “‘사인’ 폭력성? 의도 안했다”

    브아걸 소속사 “‘사인’ 폭력성? 의도 안했다”

    브라운아이드걸스(Brown Eyed Girls, 이하 ‘브아걸’)의 소속사 측이 후속곡 ‘사인’(Sign)의 뮤직비디오를 둘러싼 ‘폭력성 논란’에 입장을 밝혔다. 지난 30일 공개된 ‘사인’ 뮤직비디오는 공개되자 각 동영상 사이트 차트 1위에 올라섰다. 하지만 주연 배우 류덕환의 강도 높은 액션신과 브아걸의 네 멤버들이 수조 안에 갇혀있는 장면 등에 폭력성 문제가 제기됐다. ◆ “폭력성 아니다. 스토리 전개상 필요한 부분” 이와 관련, 브아걸의 소속사 내가네트원크 엔터테인먼트는 서울신문NTN과 한 전화통화에서 “스토리의 전개상 필요했을 뿐, 폭력성을 의도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사인’의 폭력성 논란은 뮤직비디오 중 액션신이 전체 영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됐다. 일각에서는 수조 안에 갇혀 허우적대는 브아걸의 모습도 상상력을 자극해 섬뜩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브아걸, 환영으로 등장·수조에 갇힌 이유 이에 대해 소속사 측은 “극 중 류덕환이 맞는 장면에서 멤버들이 환영으로 등장하는 것은 곡목 ‘사인’을 표현해내기 위한 하나의 암시”라고 설명했다. 수조에 갇힌 브아걸 멤버들이 류덕환에게 ‘구해달라’는 사인을 보내고, 류덕환이 그들을 구하러 가기까지의 역경을 스토리화 했다는 것. 또 멤버들이 ‘수조’에 갇혀 있는 이유에 대해 “수조 속에 갇힌 모습은 작품 중 악마로 형상화된 류승룡으로부터 억압받고 있는 존재를 나타낸다.”며 “수조를 깨는 행위는 곧 ‘해방’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촬영 중 핵심이 된 ‘수중신’은 브아걸 멤버들이 단 한 컷의 대역도 쓰지 않고 직접 물 속에 잠겨 3시간 이상 촬영해 화제를 모았다. 올해 ‘아브라카다브라’로 걸그룹 선두에 선 브아걸은 ‘사인’의 뮤직비디오 공개 만으로 뜨거운 관심을 모으며 2일 현재 각 온라인 음악 사이트에서 상위권에 올라 있다. 사진 = ‘사인’ 뮤직비디오 캡처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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