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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상한 파라다이스’…DMZ의 ‘모순’ 몸으로 형상화

    ‘수상한 파라다이스’…DMZ의 ‘모순’ 몸으로 형상화

    헨리크 구레츠키, 아르보 패르트의 음악이 깔린다. 종교적이면서도 역사적인 현대작곡가들이다. 띄엄띄엄 한 음표씩 천천히 밟아나가는 이들의 음악은 깊은 성당에서 울리는 장엄함과 ‘역사에 생략은 없다.’는 말을 떠올리게 할 법하다. 종교적이고 역사적인 비무장지대(DMZ)를 형상화하는 몸짓을 뒷받침해주기에는 딱이다. 다음 달 5~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무대에 오르는 국립현대무용단의 ‘수상한 파라다이스’ 얘기다. 지난해 8월 창단된 국립현대무용단이 처음으로 선보이는 창작극이다. ‘수상한 파라다이스’라는 제목 자체가 직접적으로 DMZ를 뜻한다. 인간의 손이 금지된 뒤 자연생태의 보고로 떠오른 DMZ지만 휴전상태에서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는지 모른다. 도입부와 마지막은 영화 ‘아비정전’으로 유명해진 맘보음악에 맞춰 무용수들이 흥겹게 춤추는 장면으로 여닫힌다. 그 사이 작품은 크게 7개 부분으로 구성됐다. 진혼, 업보, 순응, 불편한 조화, 전쟁, 연민, 기록의 순서다. 모두 DMZ에서 보고 느낀 것에서 뽑아올린 키워드다. 극 전체를 관통하는 스토리가 있다기보다 DMZ에 대한 이런저런 느낌이 모자이크처럼 교차한다. 때문에 무용수들은 구름, 사슴, 토끼 같은 자연으로 변했다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백병전 장면처럼 이리저리 얽히고설켜 뒹굴기도 한다. 첫 창작 공연이니만큼 조금 밝고 경쾌한 작품이었으면 어땠을까. 홍승엽(49) 예술감독은 “첫 작품이라 뭔가 대단한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면서 “다만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찾다가 DMZ를 떠올렸고, 싸움을 전제로 한 진공상태라는 모순적 상황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현대무용에 대한 선입견과 달리 의외로 작품은 이해하기 쉽다. 한눈에 억압적인 상황에 대한 묘사임을, 뭔가에 맹목적으로 몰두해 있는 사람들을 풍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작품성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대목에서 홍 감독은 울컥했다. “한국의 현대무용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 있어요. 접해보지 않은 이들만 막연하게 서양 현대무용이 나을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게 우리나라 사대주의의 실체입니다.” 한 박자 쉬고 덧붙인다. “제가 발언이 좀 세지요? 하하하.” 오디션으로 선발된 17명의 무용수가 75분간 공연한다. 1만~1만 6000원. (02)3472-142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문화마당] 공포영화가 무서워?/조혜정 중앙대 예술대학원 교수·영화평론가

    [문화마당] 공포영화가 무서워?/조혜정 중앙대 예술대학원 교수·영화평론가

    흔히 공포 영화를 볼 때 소름이 끼치거나 등골이 오싹해지는 경험을 한다고 한다. 이는 나름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고 하는데, 아드레날린이 교감신경을 자극해 흥분하거나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땀이 나고 식으면서 실제로 한기를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아무래도 공포 영화는 여름이 제격이다. 올여름에도 역시 극장가에는 이미 개봉한 ‘고양이: 죽음을 보는 두 개의 눈’ 외에도 ‘기생령’, ‘돈 비 어프레이드: 어둠 속의 속삭임’ 같은 영화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보통 공포 영화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은 귀신이나 유령 같은 초자연적 존재에 대해 황당함이나 두려움을 느끼며, 사이코 살인마가 무차별적으로 살상하고 잔혹한 폭력을 휘두르는 데 불쾌감과 역겨움을 호소한다. 또 사람에 따라서는 시각적, 청각적, 상상적 공포를 정말 견디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에 비해 나는 공포 영화를 즐기는 편이다. 일단 등골이 서늘하고 긴장감으로 심장이 조여 올 때의 그 느낌이 재미있고 짜릿하다. 게다가 공포 영화 속에서 발견하는 공포의 대상과 그 의미를 따져 보는 것도 내게는 흥미로운 작업이다. 진보적 영화학자 로빈 우드는 공포 영화를 가리켜 ‘억압된 것의 귀환’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인간이 의식의 영역에서는 드러내지 않거나 억압했던 것들이 공포 영화라는 틀을 빌려 해방되거나 금기 및 금지의 위반을 통해 분출되는 것이다. 그래서 원귀들은 원(寃)과 한(恨)을 풀기 위해서 돌아오는 것이고, 괴물은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과 오만을 부각시키기 위해 귀환한다. 그러므로 공포 영화에서 ‘억압된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당대 혹은 그 사회 및 공동체의 두려움이나 죄의식이 엿보인다. 한국 공포 영화의 ‘전설’로 불리는 ‘월하의 공동묘지’(권철휘 감독·1967)는 가부장제와 처첩제도 등 한국 가족제도의 모순과 핍박받는 여성을 연결시키며, ‘여고괴담’(박기형 감독·1998)은 입시 위주의 교육과 경쟁 원리가 친구나 사제 관계마저 붕괴시킨 학교의 현실과 당대의 교육제도를 비판한다. ‘4인용 식탁’(이수연 감독·2003)은 모성 신화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가족 연대감의 파괴 등을 서늘하게 조명하며, ‘장화, 홍련’(김지운 감독·2003)은 죄의식의 공포를, ‘고양이’(변승욱 감독·2011)는 유기 동물이 증가하는 현실과 인간의 이기심을 공포의 지형으로 삼고 있다. 공포 영화는 폭력성과 잔혹성을 수단으로 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필귀정의 메시지를 담보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특히 원귀가 등장하는 공포 영화들은 원의 근원이 되는 죄악의 존재를 드러내고, 죄의식을 자극하며, 죄지은 자에 대한 처벌을 통해 해원하는 형태를 띤다. 인간이 완전하지 않은 한 공포란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감정이다. 공포에 반응하는 양상과 지점은 다를지 몰라도 본질적으로는 미지의 것, 인간의 지식과 경험으로 알 수 없는 것,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에 대해 느끼는 낯섦, 그것이 바로 공포가 아닐까. 귀신이나 유령, 좀비나 흡혈귀 같은 초자연적 존재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은 그런 측면에서 출발한다. 그에 비해 사이코패스나 살인마 등이 유발하는 공포는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만행을 저지르는 것에 대한 불가해성과 인간이 ‘괴물’이 돼 나타나는 그 비(非)인간성을 목격하는 데서 오는 충격과 전율이 공포의 실체가 될 것이다. 우리는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종종 괴물을 만나게 된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대학살)는 물론이고 보스니아 내전에서 인종 청소를 한다면서 세르비아계가 저지른 집단 살육과 강간,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후투족이 자행한 학살, 그리고 최근 인종에 대한 혐오 때문에 폭탄 테러와 무차별적으로 총기를 난사한 노르웨이 테러범 브레이비크, 그리고 연쇄 살인범들. 세상은 날이 갈수록 두렵고 충격적인 소식들로 채워진다. 공포 영화가 무섭다고? 노(No). 나는 현실이 더 무섭고 끔찍하다.
  • [열린세상] 잘사는 나라의 조건/문흥술 서울여대 교수·국문과 문학평론가

    [열린세상] 잘사는 나라의 조건/문흥술 서울여대 교수·국문과 문학평론가

    한국 문학에서 소외 계층을 대표하는 두명의 난쟁이가 있다. 1970년대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난쟁이는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에서 억압받다 굴뚝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세월이 흘러 1990년대 최수철의 ‘고래 뱃속에서’의 난쟁이는 진공에서 정상인과 함께 어울려 자유로운 삶을 영위한다. 두 난쟁이를 연속선상에 놓고 보면 한국 사회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성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고래뱃속’ 같은 닫힌 공간이 부자와 빈자, 정상인과 비정상인, 인간과 자연, 남성과 여성의 이항 대립에 기초해 전자가 후자를 억압하는 사회라면, ‘진공’ 같은 열린 공간은 양자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사회이다. 차별과 배제, 억압과 착취 없이 모두 하나가 되는 사회야말로 한국 사회의 올바른 지향점이 아니겠는가. 1970년대 열악한 노동 조건에 항거해 일어난 전태일 분신 사건 이후 한국은 이제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서고 있다. 그런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국제 스포츠 대회 4대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눈부신 성과를 올리고 있다. 더불어 K팝처럼 문화 분야에서도 세계적으로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다. 물론 지금 이러한 성과를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한 사회를 이끌어가는 가치 척도가 편향되어서는 안 된다. 김재영의 소설 ‘코끼리’는 네팔에서 천문학을 전공하다 코리안 드림을 이루기 위해 한국에서 불법 체류 노동자가 된 가족의 고통스러운 삶을 다루고 있다. 그들은 돼지 축사를 개조한 집에 살면서 한국인들로부터 온갖 착취와 멸시를 당한다. 마치 1970년대 전태일이 당한 것처럼. 주인공의 그 비참한 모습에서 독일에 광부로 간 우리의 아버지와 일본 병원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던 우리 어머니의 거친 손과 한숨이 겹쳐지는 것은 왜일까. 한국은 더 이상 원조 받는 나라가 아니다. 원조를 해 줄 만큼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계량화된 지표만으로 잘사는 나라를 판가름하는 것은 지극히 편향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코끼리’에 등장하는 까만 피부를 가진 아들은 백인을 무조건적으로 찬양하는 한국 사회의 속성을 알고 자신의 피부를 탈색하기 위해 표백제로 얼굴을 문지르다 얼굴 껍질이 벗겨진다. 이를 소설적 허구로만 치부할 수 없는 까닭은 현실이 이보다 더 처참하기 때문이다. 서구 제국주의자들은 그들의 부를 창출하기 위해 가난한 한국을 비롯한 식민지 아시아인들을 소나 말과 같은 짐승으로 취급하였다. 전쟁의 폐허 더미에서 한국은 그런 멸시를 극복하기 위해 물질적 가치만을 최우선시하면서 쉬지 않고 달려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의 한국이 한국보다 경제력이 낮은 아시아 노동자들에 대해 서구의 물질 만능주의와 제국주의적 인종 차별 의식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욕하면서 닮는다더니 우리가 꼭 그런 셈이다. 중국의 패권주의와 일본의 역사 왜곡을 보면서 그들이 ‘잘사는’ 나라는 될지언정 ‘존경받는’ 나라는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한국이 ‘잘살면서 존경받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물질적 풍요로움만이 아닌 정신적 풍요로움도 함께 추구해야 한다. 박범신의 ‘나마스테’를 보면 히말라야에서는 모두가 ‘나마스테’라는 인사를 나눈다. 여기에는 인종 차별 의식도, 서구 보편주의도, 제국주의적 우월성도 없다. 모두가 하나라는 인류애. 그것이 ‘나마스테’라는 인사에 담겨 있다. 중국에서 교사를 하던 조선족 어머니가 한국에서 식당일을 하면서 자식이 그리워 눈물짓고 차별 대우에 피눈물을 흘리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이들 모든 소외된 난쟁이들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진공 같은 사회로 나아갈 때 한국은 잘살면서 존경받는 나라가 될 수 있다. 한국에서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 중 대다수가 만신창이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가서 “삼년 겪은 일, 삼십년 동안 악몽으로 남아” 괴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WHO&WHAT] 인류 첫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 베일 속의 그녀 얘기 들어보니

    [WHO&WHAT] 인류 첫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 베일 속의 그녀 얘기 들어보니

    빅토리아 베컴, 패리스 힐턴, 비욘세, 킴 카다시언, 린지 로한…. 결혼과 이혼, 출산 같은 사생활은 물론이고 들고 다니는 가방이나 즐겨 찾는 마사지숍까지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식당에서 사용한 포크나 한입 베어 물은 사과조차 인터넷 경매에 올라올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누리는 그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셀레브러티’(유명인)라고 부른다. 셀레브러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도 존재했다. 프랑스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와 같은 왕실의 여인들이 대표적이다. 미국과 유럽 호사가들의 최대 관심사가 ‘사교계의 여왕들’에 대한 얘기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 과연 실존인물 가운데 역사상 최초의 셀레브러티는 누구였을까. 이 물음에 관한 한 영국의 문학평론가 헤럴드 볼룸의 답에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540년부터 1905년까지 발레 5편, 오페라 45편, 연극 77편으로 만들어진 여성.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왕이자 위대한 왕국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 바로 클레오파트라다. 서울신문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이번 호에서 인류 최초의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를 집중 탐구해 보기로 했다. 역설적이게도 클레오파트라는 어디에나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없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믿고 있던 그의 미모나 업적은 역사책 어느 곳에서도 자세하게 묘사돼 있지 않다. 심지어 그는 변변한 초상화나 조각조차 남기지 않았다. 클레오파트라는 ‘패자’(敗者)였고, 역사는 예나 지금이나 철저히 ‘승자’(勝者)의 시각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많은 고고학자와 미술사학자들이 클레오파트라를 찾기 위해 이집트와 이탈리아를 뒤지고 있다. 트로이의 경국지색 헬레나와 거대한 목마가 등장하는 어릴 적 동화의 실체를 직접 확인해 보고자 했던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 그의 노력으로 트로이 유적이 실제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처럼, 꿈을 좇는 사람들의 소망대로 클레오파트라의 무덤과 기록이 발견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여인과 마주하게 될까. 실존했지만, 아직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만 살고 있는 클레오파트라와 가상 대담을 통해 해답의 실마리를 구해보자. →‘인류 최초의 유명인’으로 불리는 당신과 내가 마주 앉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다. 2000년이 넘게 지난 오늘날에도 당신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결국 내 치세 중에 말아먹은 거나 마찬가지인데, 쑥스럽다. 그런데, 도대체 내가 얼마나 인기가 있다는 건가. →웬만한 상품에는 종류마다 다 당신 이름이 붙어 있다고 봐도 된다. 고급스러운 상품은 물론이고 슬롯머신, 보드게임, 드라이클리닝 세제도 ‘클레오파트라’ 상표가 꽤 유명하다. 벨리댄서들 사이에선 여전히 인기 있는 이름이고. 태양계의 한 소행성에도 ‘216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지중해 오염 감시 프로젝트의 명칭도 당신 이름이다. 중동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담배 상표도 당신 이름과 같다던데. -그런가. 하지만 내 시대에도 클레오파트라는 흔한 이름이었으니 별로 놀랍지는 않다. →뜻밖이다. 원래 왕의 이름은 아무나 못 쓰는 것 아닌가. 예전에 우리 한국에서도 왕의 이름에 쓰는 한자는 백성들은 못 쓰도록 했는데. -그건 이집트 왕조의 전통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내 정확한 이름은 ‘클레오파트라 7세’다. 내 앞에도 이미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을 가진 왕비나 여왕들이 여럿 있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아버지의 영광’이라는 뜻으로 우리 라지드 왕조에서 상당히 인기있는 이름이었다. 라지드 왕조는 혈통을 중시했기 때문에 내 묘비는 ‘엄청나게 많은 왕들로부터 나온 여왕’으로 시작한다. →그 시절에는 왕의 이름에 호칭을 붙이는 게 일반적이었다는데, 당신도 별칭이 있었나. -‘필로파토르’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여인’이라는 뜻이다. 뭐 별칭이라고 해봐야 사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다 거기서 거기다. 일단 부모를 신격화한다. 그래야 그 다음 왕도 역시 신이 되지 않겠나. 그 결과 대부분 ‘필라델페’(형제와 누이를 사랑하는 사람)라거나 ‘테오이 필로파토레스’(아버지를 사랑하는 신들) 같은 식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왕조의 시조답게 ‘소테르’, 구원자라는 영예로운 칭호가 있었다. →지면 관계상 빨리 진행하자. 당신은 이집트인인가. -그렇다. 이집트 여왕인데 당연한 것 아닌가.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한다. 실제로 당신은 그리스인 아닌가. -(당황하며) 음…. 사실 난 그리스인이면서도 이집트인이다.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대왕과 동일한 혈통이다. 굳이 따지자면 마케도니아인이라고 해야겠지. 시조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알렉산더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대왕의 사생아로 알려져 있다. 알렉산더가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세운 알렉산드리아가 우리 왕조의 근거지였다. 어떤 사람은 그래서 우리 왕조를 ‘마케도니아 왕조’로, 나는 ‘마케도니아 공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도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내가 혈통으로는 마케도니아인이고, 문화는 그리스인(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식 교육을 받았는데, 당시 그리스에서는 여성은 교육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왕족이었고, 왕위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예외였다)이라고 해도 난 이집트의 기반 위에서 통치를 했다는 거다. 내가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인을 대표한 것이 아니라, 이집트인 전체를 통솔했기에 난 분명 이집트의 파라오다. →당신은 18세에 13세인 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하면서 여왕이 됐다. 말하자면 근친혼이었는데,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나. -남동생과 결혼하는 것이 뭐가 이상한가. 우리 아버지도, 그 아버지도 모두 여동생과 결혼해 왕이 됐고 여동생들은 여왕이 됐다. ‘신’의 위치에 있는 우리들이 혈통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방법뿐이었다.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탁월한 정치가였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페르시아 왕조에 탄압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복을 멈추지 않았던 로마를 교묘히 이용해 페르시아를 몰아냈다. 처음엔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다만 로마에 너무 많은 돈을 쏟아부은 게 문제였다. 아버지가 줄리어스 시저에게 매년 바친 돈이 거둬들이는 세금보다 많았다. 결국 내가 왕좌에 올랐을 때는 파라오의 창고 따위는 별 의미가 없었다. →당신의 정치는 결국 로마 장군을 상대로 한 미인계 아니었나. -그렇게만 이해하면 곤란하다. 내가 미인계를 쓴 건 정말 마지막 수단이었다. 나와 동생은 친척과 친구, 궁정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상당히 효율적으로 나라를 운영했다. 그러나 이집트는 주변 국가들 입장에서 정말 탐나는 존재였던 것 같다. 오죽하면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가 우리 이집트를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불렀겠나. 당시 인구가 700만명(이중 그리스인이 150만명 정도를 차지했다)이나 됐고 엄청난 양의 곡물을 생산하는 농업국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화롭게 산다고 해서 가만히 내버려둘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이집트가 그다지 풍요롭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는데. -사실 그랬다. 국가는 파피루스나 기름, 발효 음료수 같은 품목들에 대해 독점권을 행사하면서 부를 축적했는데 이미 내 시대에는 이런 체계가 무너져 있었다. 무엇보다 관리들이 장부에다 무조건 ‘가득 차 있음’이라고 기재하는 게 문제였다. 실제로는 텅 비어 있는 곳간이 서류에는 가득 차 있다고 표기되다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결국 이런 문제가 이집트의 발목을 잡았다. 로마와 로마 군단은 점점 다가오는데, 군대를 키울 돈이 없었다. 아버지가 로마를 이집트에 끌어들였다는 이유로 국민들은 나 역시 믿지 않았다. 완전히 내우외환인 상황이었다. →결국 그래서 미인계를 썼다는 얘기 아닌가. -군대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게 뭔가. 로마와 동맹을 맺거나, 로마 장군 한 명을 포섭할 수 있다면 싸우지 않아도 원하는 걸 얻고 이집트를 지킬 수 있지 않겠나. 무엇보다 그 로마 장군 한 명이 시저나 안토니우스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지 않나. →이쯤에서 오늘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해보자. 당신은 트로이의 헬레나와 함께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사람들 머릿속에 박혀 있다. 그런데, 실제 당신의 얼굴은 아는 사람이 없다. 얼굴이 정확하게 나와 있는 초상화나 조각은 한 점도 없고, 찌그러진 동전에 옆 얼굴이 새겨진 게 전부다. 당신 정말 미인 맞나.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뭐랄까 미(美)를 가꾸는 데 많은 공을 들인 건 사실이다. 당나귀를 항상 데리고 다니면서 그 젖을 짜서 목욕도 했고. 내가 자부심 높은 여인이기는 하지만 내가 미인이네 아니네를 평가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내가 모은 정보에 따르면 경국지색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영웅전’으로 유명한 그리스 역사학자 플루타르코스는 당신에 대해 “그의 미모가 사람들이 경탄할 정도로 빼어난 것은 아니었다.”고 썼다. 다만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그의 외모는 논쟁할 때 보여주는 설득력이나 의견을 개진할 때 드러나는 개성과 어우러져 도발적인 매력을 자아냈다.”고 했다. 결국 미모가 아닌 ‘말발’이 당신의 주무기였던 것 아닌가. -내 목소리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현악기의 선율’이라거나 ‘듣기만 해도 즐거운 목소리’라는 평가를 내리기는 했다. 하지만 내 화술은 부단한 노력의 결과다. 난 누구와 말할 때도 통역이 필요 없었다. 에티오피아인, 아프리카 동굴인, 히브리인, 아랍인, 시리아인, 메데스인, 파르티아인과도 그들의 말로 얘기할 수 있었다. 마케도니아어와 그리스어는 기본이었고, 당연히 내가 통치하는 이집트인들의 민간언어도 잘할 수 있었다. 질 높은 교육과 유능한 스승들이 있었지만 결국 난 내 힘으로 ‘지적이고, 교양 높으며, 대화에 능란한 여왕’이 된 거다. →제왕 ‘시저’의 연인이었고,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안토니우스’와 함께 살았지만 지나칠 정도로 당신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자료조차 없는데. 심지어 전기 작가인 마이클 그랜트는 당신을 ‘생존 당시부터 지금까지 줄곧 수많은 허구와 추문에 가려져 있는 존재’라고 표현했다. -결국 내가 방패로 삼았던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에 지면서 모든 것이 사라진 셈이다. 좀 더 강대한 이집트를 만들어, 로마에 대적하고 이겼다면 그들 대신 내 이름이 모든 문서에 기록됐을 텐데 말이다. →당신의 실체를 찾기 위한 학자들의 노력이 드디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무덤 얘기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패배자이기 때문에 변변한 무덤조차 없을 거라고 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당신의 후예인 이집트 정부조차도 타포시리스 마그나에 있는 오시리스 신전의 유적 속에서 곧 당신과 안토니우스의 무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실 신화나 전설은 그대로 남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름다움과 신비로 포장돼 있는 영원한 안식에서 갑자기 깨어나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래도 패배자의 입장에서 철저히 묻힌 ‘나의 이집트’가 세상에 알려진다면 후손들이 좀 더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내가 이집트인인지 아닌지, 미인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말년에 난 ‘필로파트리스’라고 스스로를 칭했다. ‘조국을 사랑하는 왕비’라는 뜻이다. ‘요부’, ‘유혹의 화신’ 같은 불명예스러운 이름도 난 부끄럽지 않다. 모두 내 조국을 위해 한 일이었다는 점을 알아주면 된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내셔널지오그래픽 7월호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마르탱 콜라·임현/ 해냄) 클레오파트라, 파라오의 사랑과 야망(에디트 플라마리옹·지현/ 시공사) 클레오파트라(아델 제라스·이정아/ 맑은가람) 클레오파트라(래티시아 앵그라오·김이정/ 종이비행기)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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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부’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클레오파트라, 조국을 위해...

    ‘요부’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클레오파트라, 조국을 위해...

     빅토리아 베컴, 패리스 힐턴, 비욘세, 킴 카다시언, 린제이 로한...  결혼과 이혼, 출산 같은 사생활은 물론이고 들고 다니는 가방이나 즐겨 찾는 마사지숍까지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식당에서 사용한 포크나 한입 베어 물은 사과조차 인터넷 경매에 올라올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누리는 그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셀레브러티’(유명인)라고 부른다.  셀레브러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도 존재했다. 프랑스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와 같은 왕실의 여인들이 대표적이다. 미국과 유럽 호사가들의 최대 관심사가 ‘사교계의 여왕들’에 대한 얘기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 과연 실존인물 가운데 역사상 최초의 셀레브러티는 누구였을까.  이 물음에 관한 한 영국의 문학평론가 헤럴드 볼룸의 답에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540년부터 1905년까지 발레 5편, 오페라 45편, 연극 77편으로 만들어진 여성.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왕이자 위대한 왕국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 바로 클레오파트라다.  서울신문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이번 호에서 인류 최초의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를 집중 탐구해 보기로 했다.  역설적이게도 클레오파트라는 어디에나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없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믿고 있던 그의 미모나 업적은 역사책 어느 곳에서도 자세하게 묘사돼 있지 않다. 심지어 그는 변변한 초상화나 조각조차 남기지 않았다. 클레오파트라는 ‘패자’(敗者)였고, 역사는 예나 지금이나 철저히 ‘승자’(勝者)의 시각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많은 고고학자와 미술사학자들이 클레오파트라를 찾기 위해 이집트와 이탈리아를 뒤지고 있다. 트로이의 경국지색 헬레나와 거대한 목마가 등장하는 어릴 적 동화의 실체를 직접 확인해 보고자 했던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 그의 노력으로 트로이 유적이 실제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처럼, 꿈을 좇는 사람들의 소망대로 클레오파트라의 무덤과 기록이 발견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여인과 마주하게 될까. 실존했지만, 아직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만 살고 있는 클레오파트라와 가상 대담을 통해 해답의 실마리를 구해보자.  ‘인류 최초의 유명인’으로 불리는 당신과 내가 마주 앉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다. 2000년 넘게 지난 오늘날에도 당신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결국 내 치세 중에 말아먹은 거나 마찬가지인데, 쑥스럽다. 그런데, 도대체 내가 얼마나 인기가 있다는 건가.  웬만한 상품에는 종류마다 다 당신 이름이 붙어있다고 봐도 된다. 고급스런 상품은 물론이고 슬롯머신, 보드게임, 드라이클리닝 세제도 ‘클레오파트라’ 상표가 꽤 유명하다. 밸리댄서들 사이에선 여전히 인기있는 이름이고. 태양계의 한 소행성에도 ‘216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지중해 오염 감시 프로젝트의 명칭도 당신이름이다. 중동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담배 상표도 당신 이름과 같다던데.  -그런가. 하지만 내 시대에도 클레오파트라는 흔한 이름이었으니 별로 놀랍지는 않다.  뜻밖이다. 원래 왕의 이름은 아무나 못 쓰는 것 아닌가. 예전에 우리 한국에서도 왕의 이름에 쓰는 한자는 백성들이 못 쓰도록 했는데.  -그건 이집트 왕조의 전통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내 정확한 이름은 ‘클레오파트라 7세’다. 내 앞에도 이미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을 가진 왕비나 여왕들이 여럿 있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아버지의 영광’이라는 뜻으로 우리 라지드 왕조에서 상당히 인기있는 이름이었다. 라지드 왕조는 혈통을 중시했기 때문에 내 묘비는 ‘엄청나게 많은 왕들로부터 나온 여왕’으로 시작한다.  그 시절에는 왕의 이름에 호칭을 붙이는 게 일반적이었다는데, 당신도 별칭이 있었나.  -‘필로파토르’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여인’이라는 뜻이다. 뭐 별칭이라고 해봐야 사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다 거기서 거기다. 일단 부모를 신격화한다. 그래야 그 다음 왕도 역시 신이 되지 않겠나. 그 결과 대부분 ‘필라델페’(형제와 누이를 사랑하는 사람)’라거나 ‘테오이 필로파토레스’(아버지를 사랑하는 신들)같은 식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왕조의 시조답게 ‘소테르’, 구원자라는 영예로운 칭호가 있었다.  지면 관계상 빨리 진행하자. 당신은 이집트인인가.  -그렇다. 이집트 여왕인데 당연한 것 아닌가.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한다. 실제로 당신은 그리스인 아닌가.  -(당황하며) 음... 사실 난 그리스인이면서도 이집트인이다.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과 동일한 혈통이다. 굳이 따지자면 마케도니아인이라고 해야겠지. 시조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알렉산더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대왕의 사생아로 알려져 있다. 알렉산더가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세운 알렉산드리아가 우리 왕조의 근거지였다. 어떤 사람은 그래서 우리 왕조를 ‘마케도니아 왕조’로, 나는 ‘마케도니아 공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도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내가 혈통으로는 마케도니아인이고, 문화는 그리스인(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식 교육을 받았는데, 당시 그리스에서는 여성은 교육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왕족이었고, 왕위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예외였다.)이라고 해도 난 이집트의 기반 위에서 통치를 했다는 거다. 내가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인을 대표한 것이 아니라, 이집트인 전체를 통솔했기에 난 분명 이집트의 파라오다.  당신은 18세에 13세인 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하면서 여왕이 됐다. 말하자면 근친혼이었는데,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나.  -남동생과 결혼하는 것이 뭐가 이상한가. 우리 아버지도, 그 아버지도 모두 여동생과 결혼해 왕이 됐고 여동생들은 여왕이 됐다. ‘신’의 위치에 있는 우리들이 혈통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방법 뿐이었다.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탁월한 정치가였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페르시아 왕조에 탄압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복을 멈추지 않았던 로마를 교묘히 이용해 페르시아를 몰아냈다. 처음엔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다만 로마에 너무 많은 돈을 쏟아부은 게 문제였다. 아버지가 줄리어스 시저에게 매년 바친 돈이 거둬들이는 세금보다 많았다. 결국 내가 왕좌에 올랐을 때는 파라오의 창고 따위는 별 의미가 없었다.  당신의 정치는 결국 로마 장군을 상대로 한 미인계 아니었나.  -그렇게만 이해하면 곤란하다. 내가 미인계를 쓴 건 정말 마지막 수단이었다. 나와 동생은 친척과 친구, 궁정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상당히 효율적으로 나라를 운영했다. 그러나 이집트는 주변 국가들 입장에서 정말 탐나는 존재였던 것 같다. 오죽하면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가 우리 이집트를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불렀겠나. 당시 인구가 700만명(이중 그리스인이 150만명 정도를 차지했다)이나 됐고 엄청난 양의 곡물을 생산하는 농업국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화롭게 산다고 해서 가만히 내버려둘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이집트가 그다지 풍요롭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는데.  -사실 그랬다. 국가는 파피루스나 기름, 발효 음료수 같은 품목들에 대해 독점권을 행사하면서 부를 축적했는데 이미 내 시대에는 이런 체계가 무너져 있었다. 무엇보다 관리들이 장부에다 무조건 ‘가득 차 있음’이라고 기재하는 게 문제였다. 실제로는 텅 비어있는 곳간이 서류에는 가득차 있다고 표기되다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결국 이런 문제가 이집트의 발목을 잡았다. 로마와 로마 군단은 점점 다가오는데, 군대를 키울 돈이 없었다. 아버지가 로마를 이집트에 끌어들였다는 이유로 국민들은 나 역시 믿지 않았다. 완전히 내우외환인 상황이었다.  결국 그래서 미인계를 썼다는 얘기 아닌가.  -군대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게 뭔가. 로마와 동맹을 맺거나, 로마 장군 한 명을 포섭할 수 있다면 싸우지 않아도 원하는 걸 얻고 이집트를 지킬 수 있지 않겠나. 무엇보다 그 로마 장군 한 명이 시저나 안토니우스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지 않나.  이쯤에서 오늘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해보자. 당신은 트로이의 헬레나와 함께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사람들의 머릿 속에 박혀 있다. 그런데, 실제 당신의 얼굴은 아는 사람이 없다. 얼굴이 정확하게 나와 있는 초상화나 조각은 한 점도 없고, 찌그러진 동전에 옆 얼굴이 새겨진 게 전부다. 당신 정말 미인 맞나.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뭐랄까 미(美)를 가꾸는 데 많은 공을 들인 건 사실이다. 당나귀를 항상 데리고 다니면서 그 젖을 짜서 목욕도 했고. 내가 자부심 높은 여인이기는 하지만 내가 미인이네 아니네를 평가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내가 모은 정보에 따르면 경국지색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영웅전’으로 유명한 그리스 역사학자 플루타르코스는 당신에 대해 “그의 미모가 사람들이 경탄할 정도로 빼어난 것은 아니었다.”고 썼다. 다만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음을 빼앗길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외모는 논쟁할 때 보여주는 설득력이나 의견을 개진할 때 드러나는 개성과 어우러져 도발적인 매력을 자아냈다.”고 했다. 결국 미모가 아닌 ‘말발’이 당신의 주무기였던 것 아닌가.  -내 목소리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현악기의 선율’이라거나 ‘듣기만 해도 즐거운 목소리’라는 평가를 내리기는 했다. 하지만 내 화술은 부단한 노력의 결과다. 난 누구와 말할 때도 통역이 필요 없었다. 에티오피아인, 아프리카 동굴인, 히브리인, 아랍인, 시리아인, 메데스인, 파르티아인과도 그들의 말로 얘기할 수 있었다. 마케도니아어와 그리스어는 기본이었고, 당연히 내가 통치하는 이집트인들의 민간언어도 잘 할 수 있었다. 질 높은 교육과 유능한 스승들이 있었지만 결국 난 내 힘으로 ‘지적이고, 교양 높으며, 대화에 능란한 여왕’이 된 거다.  제왕 ‘시저’의 연인이었고,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안토니우스’와 함께 살았지만 지나칠 정도로 당신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자료조차 없는데. 심지어 전기 작가인 마이클 그랜트는 당신을 ‘생존 당시부터 지금까지 줄곧 수많은 허구와 추문에 가려져 있는 존재’라고 표현했다.  -결국 내가 방패로 삼았던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에 지면서 모든 것이 사라진 셈이다. 좀 더 강대한 이집트를 만들어, 로마에 대적하고 이겼다면 그들 대신 내 이름이 모든 문서에 기록됐을 텐데 말이다.  당신의 실체를 찾기 위한 학자들의 노력이 드디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무덤 얘기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패배자이기 때문에 변변한 무덤조차 없을 거라고 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당신의 후예인 이집트 정부조차도 타포시리스 마그나에 있는 오시리스 신전의 유적 속에서 곧 당신과 안토니우스의 무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실 신화나 전설은 그대로 남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름다움과 신비로 포장돼 있는 영원한 안식에서 갑자기 깨어나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래도 패배자의 입장에서 철저히 묻혀진 ‘나의 이집트’가 세상에 알려진다면 후손들이 좀 더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내가 이집트인인지 아닌지, 미인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말년에 난 ‘필로파트리스’라고 스스로를 칭했다. ‘조국을 사랑하는 왕비’라는 뜻이다. ‘요부’, ‘유혹의 화신’ 같은 불명예스런 이름도 난 부끄럽지 않다. 모두 내 조국을 위해 한 일이었다는 점을 알아주면 된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내셔널지오그래픽 7월호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마르탱 콜라·임현/ 해냄)  클레오파트라, 파라오의 사랑과 야망(에디트 플라마리옹·지현/ 시공사)  클레오파트라(아델 제라스·이정아/ 맑은가람)  클레오파트라(래티시아 앵그라오·김이정/ 종이비행기)
  • [기고] 드디어 열린 유럽시장/고상두 연세대 유럽지역학 교수

    [기고] 드디어 열린 유럽시장/고상두 연세대 유럽지역학 교수

    구한말 서구 열강은 조선과 통상하고자 총과 대포로 문을 열었다. 오늘날 우리는 협상을 무기로 유럽의 문을 열었다. 유럽의 최대 교역국은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한국 등이다. 이 중에서 회원국끼리 똘똘 뭉쳐 성채라는 비난을 받아온 유럽 시장을 가장 먼저 연 나라는 한국이다. 100년 전 불평등 조약으로 개항을 강요당한 우리 선조가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감개무량할까.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이 우여곡절 끝에 7월 1일 발효되었다. 5년 이내에 교역액 기준으로 98.7%의 상품에 대한 관세가 철폐된다. EU는 소형차 유럽시장 점유율이 잠식될 것을 우려하는 이탈리아를 달래고자 협정의 발효를 반년 늦췄다. 한국은 유럽에 70만대의 자동차를 수출하고 유럽은 한국에 3만대를 수출한다. 자동차 부문의 경쟁력 차이를 보여준다. 단일 경제권을 이룩한 유럽에서는 각국의 자재와 부품이 무관세로 국제적 생산라인을 따라 이동하면서 상품이 조립 가공되고 있다. 한국 기업이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수출용 원자재를 조달하면서 관세를 물어야 하고, 부존자원이 빈약하여 타국의 원자재를 많이 썼다고 무관세 적용을 받지 못한다면, 유럽 기업과의 경쟁에서 열위에 서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통합의 차이에서 오는 불이익을 우리가 막은 것이다. 중국이 짧은 기간에 신흥 경제국으로 부상한 것은 세계 경제에 적극적으로 편입하는 개혁·개방 정책 덕분이다. 2001년에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고 나서 중국은 적극적으로 FTA 정책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유럽 시장을 열지 못한다. 톈안먼 사건, 티베트 문제, 인권 억압 등으로 유럽과 불편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자동차와 전자전기제품이 대유럽 주력 수출품으로 한국과 경쟁 관계에 있다. 가격경쟁에서 불리해진 일본이 뒤늦게 유럽과 FTA 협상 개시를 추진하고 있지만, 한국과 협상을 시작하고 나서 5년 만에 문을 연 유럽이 일본에는 더 신중한 태도를 보일 것이다. 개방은 교역 활성화로 국부의 증대를 가져오지만, 산업별 득실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생겨난다. 유럽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산업은 침체하게 된다. 하지만, 약체산업의 쇠퇴를 방관해서는 안 된다. 개방 정책은 관세장벽의 보호를 받아 온 약체산업에 외부 자극을 주어 경쟁력을 높이려는 적극적 산업정책이기 때문이다. 유럽이 강한 농축산물, 의약품, 서비스 분야 등에 대응하는 노력은 다가올 미국, 일본, 중국 등과의 FTA에 대한 대비가 될 것이다. 지난 200년 사이에 교역의 시대정신이 바뀌고 있다. 중상주의 영향을 받아 국내시장을 관세장벽으로 보호하던 시대에서 관세 장벽을 허무는 시대가 되고 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관세가 80% 제거되면서 세계 교역은 급성장했고, 이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가는 큰 이득을 얻었다. 개방이 어렵고 두려운 것은 국가의 보호 장벽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구한말 우리는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하고 대문을 걸고 있으면 안전할 것으로 믿었다. 세계화는 경쟁이 지구적으로 확대되는 역사적 흐름이다. 인간은 역사의 조류를 피할 수는 있지만 거역할 수는 없다. 그리고 역사의 흐름을 피한 대가는 항상 빈곤과 정체였다.
  • 광기, 정말 배척만 할 대상인가

    인간의 광기(狂氣)는 흔히 정상적인 것과는 대칭에 선 비정상과 몰이성의 개념쯤으로 통한다. 우울증과 죽음, 욕망, 폭력, 비판과 같은 광기의 양상은 위험하고 거세돼야 할 가치로 여겨지기 일쑤다. 그래서 이 광기는 정치와 철학, 역사의 범주에선 늘상 배제되고 억압받곤 한다. 그러면 광기는 정말 비정상적이고 배척해야만 할 주제일까. “광기란 역사의 문제이며 이성은 우리를 조용히 혹사시켰다.” 이는 광기를 정상과 비정상의 이분법적 부정의 개념으로 몰아갈 것이 아니라 심층적인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던 미셸 푸코의 유명한 말이다. 푸코는 “화가와 시인들의 기발한 착상은 광기의 완곡한 표현”이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문학과 예술이 근원적으로 인간의 본성과 실체 찾기에 천착하는 행위라고 할 때 그 말은 결코 허튼 망언이 아닐 것이다. 송기정 이화여대 교수(불어불문학)가 낸 ‘광기, 본성인가 마성인가’(이화여대출판부 펴냄)는 광기를 ‘심층적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미셸 푸코의 주장에 아주 근접한 책이다. 문학 측면에서 광기를 풀이한 것이라고 할까. 규격화된 틀에서 탈출하고 법이 정한 금기를 어기려는 ‘삐딱함에 대한 욕망’의 광기가 문학의 영역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조망한 시도가 신선하다. 등장하는 작가는 루소, 디드로, 발자크, 스탕달, 플로베르, 모파상 등의 프랑스 작가들과 박지원, 김동인, 염상섭 등의 한국 작가들이다. 18∼19세기 프랑스 문학과 18세기 및 개화기의 한국 문학 속 광기에 대한 집중 조명인 셈이다. 책을 통해 드러난 이들은 글쓰기를 통해 내면의 광기와 싸우고 거짓의 광기로 위장해 오염되고 타락한 사회를 향해 쓴소리를 토하거나 시대적 절망을 쏟아낸다. 루소의 ‘참회록’에선 박해 망상과 편집증의 흔적이 보이고 모파상의 단편 소설들에선 자아 상실의 공포가 역력하다. 스탕달의 ‘아르망스’는 실어증, 네르발, 염상섭의 글에는 우울증과 죽음의 욕망이 배어 있다. 플로베르의 ‘성 앙투안의 욕망’에선 환각과 욕망이 춤추고 있는 반면 박지원은 이 광기를 사회 비판의 도구로 사용한 흔적이 또렷하다. 작가들에게 돋보기를 들이대고 세밀하게 탐색한 이 책은 단지 광기의 문학적 의미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는 특징을 갖는다. 인간 내면에 숨은 가장 솔직하고도 섬뜩한 마음인 ‘광기’를 빌려 문학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찬찬히 따져 묻고 있는 것이다. 1만 8000원.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아슬아슬’ 임재범, 이번엔 나치복장 논란···“자유 갈망 표시”

    ‘아슬아슬’ 임재범, 이번엔 나치복장 논란···“자유 갈망 표시”

     가수 임재범이 콘서트에서의 나치 복장에 대한 오해를 해명했다.  임재범 측은 28일 “나치를 찬양한다는 일부 소문은 사실과 크게 다르다. 나치 복장을 입고 집어 던지면서 자유를 갈망한다는 메시지를 준 것”이라고 무대 내용을 설명했다.  이어 “나치는 죽었다는 의미의 퍼포먼스였다. 짜여진 기획대로 진행된 것은 아니고 임재범이 즉흥적으로 펼친 것”이라면서 “록의 정신처럼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표현했다.”고 밝혔다.  임재범은 지난 25,26일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단독 콘서트 ‘다시 깨어난 거인’에서 독일 나치 군복을 입고 퍼포먼스를 펼쳤다. 공연 중 3곡의 노래를 부르면서 나치 복장을 입었다. 모자까지 갖춰 입은 임재범은 “프리덤(Freedom)”이라고 크게 외치며 상의를 벗었다.  콘서트 이후 나치 복장에 대한 뒷말이 무성했다. 임재범이 외친 “프리덤”이 ‘하일 히틀러’로 오인 받으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아무리 무대 연출이라지만 히틀러를 찬양하는 나치 복장을 입고 나오나.”라는 의견과 “억압에 대한 저항을 의미할 것”이란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악동’ 룰즈섹 “파티 끝났다”

    악동 해커들의 대담무쌍한 사이버 공격에 지구촌이 패닉 상태에 빠진 가운데 해커집단 룰즈섹이 돌연 ‘광란의 파티’를 중단하겠다고 밝혀 진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조직원 6명… 10시간씩 일했다” 미 상원과 중앙정보국(CIA) 등 각국 정부의 주요 사이트와 기업 등에 연쇄 해킹을 감행해 온 룰즈섹은 25일(현지시간) 스웨덴 파일공유 웹사이트인 ‘TPB’에 “지난 50일간 우리는 기업과 정부 기관, 일반인들을 교란시키고 정보를 노출시켰다.”면서 “단지 우리가 할 수 있기 때문에 한 일들”이라고 자신만만해했다. 그러면서 룰즈섹은 “하지만 우리는 이제 먼 곳으로 항해를 떠난다. ‘즐거운 여행’(bon voyage)이라고 말할 때다.”라며 고별인사를 남겼다. 룰즈섹의 고별인사에는 조직 구성원이 6명이며 이들이 50일간 해킹 캠페인을 계획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전날 룰즈섹 소속 해커임을 자처한 익명의 남성 해커는 AP와의 인터뷰에서 추가 정보를 더 유출하겠다고 위협했다. 이 남성은 “룰즈섹이 뚫은 정부 웹사이트가 더 있으며 앞으로 3주 안에 최소 5기가바이트(GB) 분량의 정보를 유출하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어떤 정보를 빼냈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 해커 역시 룰즈섹의 구성원이 모두 6명이라면서 자신들은 하루에 8~10시간씩 일한다고 전했다. 또 룰즈섹의 해킹 대상은 은행과 정부, 사법기관 등 ‘공동체를 억압하는 이들’이라고 주장하면서 한 사례로, 룰즈섹의 일부 회원은 지난 1월 촉발된 튀니지 재스민 혁명 당시 해커 집단 ‘어노니머스’가 주도한 튀니지 정부 사이트 해킹에도 힘을 보탰다고 전했다. 이 남성은 룰즈섹 해커로 지목되며 지난 21일 영국 에섹스주에서 체포된 19세 남성 라이언 클리어리에 대한 질문에는, 룰즈섹 회원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는 “우리가 사용한 채팅방 IRC를 그가 개설한 것은 맞지만 그 채팅방은 우리의 공식 회합장소가 아니라 팬들이 모이는 곳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英블레어 전 총리 신상도 털어” 주장 한편 클리어리의 변호인은 이날 웨스트민스터 치안판사법원에서 클리어리가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고, 행동이나 관심·활동 분야가 한정돼 있으며 같은 양상을 반복하는 발달 장애의 일종이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도 해커조직의 희생양이 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룰즈섹의 라이벌 해커조직으로 룰즈섹 회원들의 신상을 공개하겠다고 선전포고한 ‘팀포이즌’(TeamPoison)은 24일 밤 블레어 전 총리의 국민보험번호는 물론이고 친구·친척들의 이름과 연락처, 블레어 전 총리가 특별 고문직으로 일할 당시 제출했던 이력서 등을 해킹했다며 트위터에 공개했다. 하지만 블레어 전 총리의 사무실은 다음 날 더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해킹 사실을 부인했다. 사무실 관계자는 “(팀포이즌이 공개한) 정보들은 블레어 전 총리의 개인 컴퓨터는 물론 사무실 시스템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라면서 “이 자료들은 몇년 전 전직 사무실 직원의 개인 이메일 계정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영화프리뷰] ‘악인’

    당신이 생각하는 선과 악의 기준은 무엇이며, 용인할 수 있는 사랑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훌라걸스’, ‘식스티 나인’ 등을 연출한 재일교포 이상일(37) 감독의 신작 ‘악인’은 이에 대해 정면으로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지난해 일본에서 개봉돼 일본아카데미상 5개 부문을 휩쓰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영화는 보험회사 영업사원인 요시노(미쓰시마 히카리)가 살해당하는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부모도, 친구도 없이 할머니 밑에서 외롭게 살아가던 유이치(쓰마부키 사토시)는 채팅 사이트를 통해 만남을 이어 오던 요시노의 뒤를 따라갔다가 의도치 않게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한순간에 살인자로 쫓기는 신세가 된 유이치는 전부터 연락을 주고받던 미쓰요(후카쓰 에리)를 만나 뒤늦게 진실한 감정을 느낀다. 신사복 매장에서 일하면서 집과 직장을 오가는 지루한 일상을 보내다 유이치를 만나 생애 처음 행복을 느낀 미쓰요는 살인범이라고 고백하는 그를 뿌리치지 못하고 함께 도망치게 된다. 영화는 겉으로는 살인범과 금단의 사랑에 빠진 여자의 통속적인 러브 스토리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 인간의 욕망과 본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시도한다. 요시노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을 통해 진정한 악인이란 누구이고, 그들을 악인으로 만든 것은 무엇인지 되묻는다. 요시노가 죽임을 당한 데 원인을 제공했으면서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마스오, 부잣집 아들인 마스오를 좋아하면서 육체노동을 한다고 유이치를 업신여긴 요시노, 딸의 죽음에 괴로워하는 요시노의 아버지, 손자가 살인범으로 몰리자 어찌할 줄 모르는 유이치의 할머니 등 다양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선악이라는 화두에 입체적으로 접근한다. 영화는 마치 한 권의 책을 읽은 것처럼 묵직한 울림을 전해 준다. 원작 소설은 주변의 증언을 통해 유이치를 보여주지만, 영화는 이를 삭제하고 유이치의 시선에 집중했다. 덕분에 슬픔과 외로움, 욕망과 분노가 교차하는 인간의 복잡한 내면 심리를 통찰력 있게 그려냈다. 다만 일본 내 계층 간 갈등과 억압적인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 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어 국내 관객들에게는 다소 이질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배우들의 열연은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린 원동력이다. ‘워터보이즈’,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의 청춘 스타 쓰마부키 사토시는 기존의 밝은 이미지와 상반된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통해 배우로 한 단계 도약했다. ‘일본의 전도연’이라고 불리는 후카쓰 에리도 살인범과 사랑에 빠지는 여주인공 역을 섬세하게 표현해 캐나다 몬트리올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투박하기는 하지만 인물을 강조하는 클로즈업 샷을 자주 사용한 이상일 감독은 극대화된 내면 심리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이 감독은 “인물의 눈동자를 어떻게 보여줄지를 촬영감독과 함께 신경 썼다.”면서 “전반에서는 눈이 보일락 말락 할 정도로 화면이 어두운데 후반으로 가면서 (관객이) 인물을 좀 이해하게 되면 밝게 나온다.”고 설명했다. 일본이 낳은 ‘영화 음악의 거장’ 히사이시 조가 음악을 맡아 작품의 무게감을 더한다. 9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경제 블로그] 박재완 장관 ‘그래도 SNS’

    ‘소셜 네트워크서비스(SNS)에 호되게 당했지만 소통을 위해서라면’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 이후 SNS를 통해 국민과의 소통에 나서고 있다. 본인의 페이스북(facebook.com/j1.bahk)에 취임사를 링크해 올리거나 틈틈이 대·중소기업 동반성장과 SNS에 대한 자신의 견해 등을 피력하는 식이다. 사실 박 장관은 지난 청문회에서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알려진 아들의 고급스포츠카 소유 의혹 때문에 곤욕을 치른 바 있다. 결국 아들이 사촌 형의 것을 빌려탄 것으로 해명이 되긴 했지만, 박 장관은 자신 때문에 가족이 구설수에 오른 것을 괴로워했다고 한다. 그런 박 장관이 지난 2일 재정부 장관으로 취임한 직후부터 활발하게 페이스북을 이용하고 있다. 국민과의 소통이 우선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의 페친(페이스북 친구)은 아직 250명. 하지만 그는 SNS에서는 친구 숫자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자동차 판매왕 조 지라드도 한명의 고객을 대할 때 250명을 대하듯 해 정상에 올랐다고 소개했다. 지라드는 보통 사람들이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초대하는 지인이 평균 250명으로 ‘1명에게 진심으로 대하면 250명에게 입소문이 난다.’는 점에 착안했다는 것이다. 취임식 직후에는 시경(詩經)의 “적게 말하고, 많이 들어라. 나무꾼에게도 물어보라.”는 글귀를 인용해 소통하는 정부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 또 “국민께서는 정부청사가 아니라 현장에 계신다.”면서 재정부 직원들의 활발한 현장방문을 주문하기도 했다. 지난 3일에는 중소기업 제품 전용 백화점인 서울 목동의 ‘행복한 세상 백화점’을 다녀온 뒤 영국의 화가이자 시인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사자와 소를 위한 하나의 법은 억압이다.”라는 글귀를 인용했다. 그는 “사자와 소를 한 우리에 풀어놓고 한 가지 룰을 적용해 경쟁시키면 경쟁은커녕 사자가 소를 금방 잡아먹기 때문에 사자와 소 사이의 좋은 칸막이,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고 무릎을 칠 만한 좋은 칸막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적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동반성장 방안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박 장관이 주로 개인용 노트북 컴퓨터를 통해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지만 일정이 바쁘더라도 A4 용지에 직접 적은 글을 재정부 미디어기획팀에 전달해 최대한 ‘쌍방향 소통’을 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아나키즘’ 운동가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아나키즘’ 운동가

    1200명이나 되는 농노와 드넓은 소작지를 소유한 러시아 귀족의 아들. 황제의 최측근이 될 수 있는 근위학교를 수석 졸업하고도 안락한 궁정 생활 대신 시베리아 장교 지원. 시베리아 지형 탐사를 통해 지리학자로 명성을 얻지만 ‘제국지리학회’ 사무관직 거절. 막대한 상속을 포기하고 혁명운동에 투신. 반체제 운동 주동자로 지목 돼 투옥. 2년 후 탈옥. 그리고 반세기 동안 이어지는 투옥과 추방. 1917년 러시아 혁명 후 귀국. 그러나 볼셰비키의 아나키즘 탄압. 심장질환과 폐렴으로 사망. 10월 혁명 이래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인 장례식…. 이것이 아나키즘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1842~1921)의 간략한 프로필이다. 이 정도면 그를 소재로 드라마 한 편을 찍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크로포트킨은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길 원하지 않았다. 그는 고뇌에 찬 지식인의 자의식을 보여준 적도 없고 혁명 투사의 화약 냄새도 풍기지 않았다. 크로포트킨의 삶에는 골방 대신 시베리아의 벌판과 눈 덮인 스위스의 산들이 있다. 값싼 봉투를 붙이며 격론을 벌이는 이론가가 있다. 그는 비밀경찰들도 아랑곳하지 않고 보란 듯이 유럽을 누비고 다녔다. 유산을 포기할 때도, 되풀이되는 추방과 고된 망명 생활에 관해서도 괴로움을 토로하는 법이 없다. ●지식인 운동가의 교만함이 혁명을 왜곡한다 크로포트킨은 솔직 담백했다. 그의 삶의 모든 것은 공공연하게 말해지고 공공연하게 행해졌다. ‘공공연함’, 이것이야말로 크로포트킨이 혁명가로서 보여준 최고의 미덕이었다. 크로포트킨이 보기에 사회주의 지식인 운동가들은 공공연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들이 농민이나 노동자들보다 더 안다는 교만함. 민중들은 무식해서 복잡한 현실을 제대로 판단할 수도, 설명해도 알아들을 수 없다는 오만함. 그런 운동가들은 현실을 계산하고 전술을 찾았다. 현실이 허락하지 않는다며 침묵하고, 해야 할 일을 미뤘다. 심지어 전술을 위해 황제와 귀족 편에 서서 농민과 노동자의 봉기를 탄압하기도 했다. 지식인 운동가들의 계몽적 태도와 이로 인한 지도부와 민중 사이의 괴리. 이 사이에서 혁명은 왜곡되고 비밀주의로 물들었다. 크로포트킨은 이런 괴리를 거부한다. 현실이 어려운가? 그럼 공공연히 말하라. 그럼 답은 온다. 해야 하는가? 그럼 공공연히 하라. 그럼 된다. 이 간단한 원칙이 그의 삶 전부다. ●아나키스트, 생각한 대로 행동하라 1878년 경 유럽 전역에서 왕에 대한 암살이 네 차례나 시도되었다. 유럽 정부들은 이 음모의 주동자들을 스위스가 숨겨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스위스는 아나키즘 운동의 중심인 쥐라연합에 대한 탄압을 시작했다. 쥐라연합의 많은 지도자들이 추방당하고 망명 생활에 오르게 됐다. 결국 기관지 편집 일이 크로포트킨에게 맡겨졌다. 이제 막 러시아 감옥에서 탈출한 망명자 크로포트킨,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초등학교 중퇴가 학력의 전부인 듀마르트리, 제네바 출신의 내성적인 사나이 헤르치히. 이 세 사람은 1879년 제네바에서 ‘반란자’를 창간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스위스 정부의 탄압은 멈추지 않았다. 정부는 인쇄소에 압력을 넣었다. “정부에서 일을 받지 못하면 살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반란자’를 인쇄해줄 수 없을 겁니다.” 나는 매우 실망하고 제네바로 돌아왔다. 그러나 듀마르트리는 오히려 열정과 희망에 불타 있었다. “간단한 문제입니다. 3개월 동안 신용담보로 인쇄기를 사면 됩니다. 3개월이면 기계 값을 지불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돈이라곤 겨우 200~300프랑밖에 없지 않소?” 나는 반대했다. “돈이란 우스운 겁니다.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우선 기계를 주문해서 다음 호를 내면 돈이 모일 겁니다.”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우리는 기계를 주문했다. 그리고 다음 호를 우리의 ‘쥐라 인쇄소’에서 찍고 우리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팸플릿을 발행했다. 우리 모두가 직접 인쇄했다. 과연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동전과 소액의 은화였지만 어쨌든 돈이 모였다. 활동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돈이 없다. 이것이 크로포트킨이 좌절한 이유였다. 하지만 듀마르트리는 어땠는가. 그는 말한다. 활동을 해야 돈이 생긴다. 그러니 활동을 하자. ‘반란자’는 그렇게 21년간 발행되었다. ‘이론가’ 크로포트킨에게 ‘못 배운 노동자’들은 언제나 배움을 통해 삶의 길을 열어주는 동지였다. 어려움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지식인들이었다. 그들은 어려움을 과도한 비장함으로 포장할 뿐아니라 너무도 쉽게 좌절했다. 노동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단도직입적으로 판단했으며, 꾸밈없고 단순하게 문제를 받아들였다. 혁명가를 자청하는 지식인들이 문제를 분석하고 방법을 모색하는 동안 노동자들은 문제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갔다. 머리와 가슴, 그리고 손 사이에 어떠한 간극도 없음! 크로포트킨은 이 간극을 없애는 것이 혁명의 출발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스스로 그 길을 간다. 막대한 유산 상속, 위로부터의 개혁을 위한 관료로서의 삶, 학계의 권위 있는 지도자로서 얻게 될 명예와 힘. 그는 이 모든 것을 버린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가진 간극 없는 삶을 배우기 위해 그들 속으로 들어간다. 세상을 바꾸려면 자신의 삶부터 바꿔라! 이것이 그가 살아낸 아나키즘이었다. ●레닌에게 물었다 “우리란 누굴 말하는 겁니까?” 러시아 2월 혁명. 크로포트킨은 40년의 망명 생활을 끝내고 러시아로 돌아온다. 이어진 10월 혁명. 레닌을 중심으로 한 볼셰비키는 이 혁명을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로 이어간다.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아나키스트들에 대한 탄압을 시작한다. 그래도 호랑이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법. 레닌은 1919년 크로포트킨을 만난다. 레닌은 크로포트킨의 ‘프랑스혁명사’를 극찬하며, 이 책을 인쇄해 전국에 배포하고 싶다 말한다. 크로포트킨은 그 책을 정부인쇄소가 아닌 소비조합과 같은 곳에서 출판할 조건을 내건다. 레닌, “희망하신다면 그렇게 해드리지요. 우리는 전적으로 편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그러자 크로포트킨, “우리란 누굴 말하는 겁니까? 정부 말인가요?” 허를 찔린 레닌은 대답을 얼버무린다. 레닌은 여전히 혁명을 도달해야 할 무엇으로 보았다. 그렇기에 그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라는 혁명의 중간 단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크로포트킨의 생각은 달랐다. “만물은 서로 돕는다.(상호부조·相互扶助)” 이것은 도달해야 할 이념이 아니라 자연 법칙이고,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역사 속에서 인간의 삶을 일구는 현재적 조건이었다. 제도는 이런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는 것이었다. “그 의도가 아무리 민주적일지라도 지배 기구는 모두 악”이다. 국가를 위시한 온갖 사회적 제도들은 만인을 노예 상태로 묶어 둔다. 레닌이 말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도 결국은 하나의 제도로 새로운 노예 상태를 만들어 낼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제도로 인해 가려진 인간 본성, 그 상호부조의 본성을 되살려내는 것이다. 혁명의 지점은 여기에 있었다. 혁명의 지도자든 농민이든 노동자든 바로 그 자신의 삶에서 이 본성을 찾아내고 구현해야 한다. 때문에 크로포트킨에게 노동자를 ‘위한’ 활동은 없다. 혁명은 누가 누구를 구원하는 문제가 아니다. 구원의 주체와 대상이 따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크로포트킨은 직접 노동자가 ‘되는’ 활동을 했다. 그는 농민과 노동자들로부터 배웠다. 그리고 배운 만큼 글로 써 내려갔다. 배움을 실천하는 삶이 아니라 삶을 배우는 실천. 이 과정을 통해 크로포트킨은 아나키즘 사상의 이론가가 되었다. 크로포트킨이 최후에 쓰고자 했던 책은 ‘윤리학’이었다. 이것은 혁명에 관한 그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크로포트킨의 질문은 ‘노동자들을 위한 세상이 무엇인가?’가 아니었다. 그는 오로지 ‘어떻게 우리는 스스로 노동자가 될 수 있는가?’를 물었다.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자만이 혁명가였다. 폭약 냄새와 무질서, 혹은 대규모 시위로 혁명을 떠올리는 우리들 앞에, 크로포트킨은 이런 혁명가의 초상으로 우뚝 서 있다. 신근영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따로국밥’ 다문화주의 실패 ‘ 섞어찌개’ 혼종성이 답이다

    ‘따로국밥’ 다문화주의 실패 ‘ 섞어찌개’ 혼종성이 답이다

    프랑스 ‘부르카 금지법’(공공장소에서 무슬림 여성의 부르카 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은 퍼주기 복지정책으로 경제가 거덜난 데 따른 우경화 때문인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럽 각국 정상들이 다문화주의의 실패를 인정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 좋다는 다문화주의를 폐기한다니 우경화도 보통 우경화가 아니다. ●“다문화주의는 관용 빙자한 방치” 그런데 이게 그렇게만 볼 문제는 아니다. 유럽 지식인들은 다문화주의를 미국식 인종 차별주의와 비슷하게 여기면서 본디 비판적이었다. 미국의 백인 주류층이 소수 민족에 ‘너희들은 너희들끼리 모여서 잘 살아라.’라고 얘기하는 것을 그럴 듯하게 포장한 것이 다문화주의일 뿐이라는 비판이다. ‘관용을 빙자한 방치’라는 얘기다. 때문에 비판론자들은 오래 전부터 ‘따로국밥’ 격인 미국식 다문화주의의 대안으로 ‘섞어찌개’인 혼종성(hybridity)을 강하게 주장해 왔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다문화주의 실패 선언과 부르카 금지법은 다문화주의에서 혼종성으로 유럽의 정책 기조가 본격 이동하는 징후로도 해석될 수 있다. 쉽게 말해 다문화주의라는 이름으로 이슬람계 이주민들이 도시 외곽 슬럼가에 옹기종기 모여 살게 내버려 둘 것이냐, 아니면 그들에게도 공화국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기 위해 이슬람 테두리를 일정 정도 벗겨내야 하느냐라는 질문이다. 그렇다면 혼종성 자체는 무조건 긍정적인가. 이런 논의에 관심이 있다면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이 오는 3~4일 서울 신촌 이대 LG컨벤션홀에서 여는 국제학술대회 ‘문화 혼종성과 유동적 정체성’(Cultural Hybridity and Migrating Identities)을 지켜볼 만하다. 가장 눈길을 끄는 논문은 클레어 알렉산더 영국 런던정경대 사회학과 교수의 ‘결혼 시장 : 젠더화되는 문화혼종성’이다. 알렉산더 교수는 3년에 걸친 실증연구 결과를 토대로 혼종성 자체는 중립적이라는 주장을 내놓는다. ●“혼종성 형성에도 전통의 힘 작용” ‘부르카 금지법’에 대한 비판은 간단하다. “신사적이고 합리적인 백인 남성이 황색 남성에게서 황색 여성을 구해주는 이미지”로 쓰일 위험성을 부각시킨다. 황색 인종들은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백인 남성이 개입해야 한다는 논리는 백인 남성들에게 ‘문명화 사명’이라는 임무를 지운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식민주의적 발상이다. 그러나 이런 다문화주의적 비판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그렇다고 부르카에 여성 억압적인 요소가 전혀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억압받는 여성들이 스스로 발언할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하나, 또 그렇게 나온 발언은 무조건 긍정적인가라는 것도 문제로 남는다.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혼종성이라는 것도 정치적 역학관계에 따라 왜곡되기 마련이며, 이 왜곡된 혼종성조차 무조건 인정해야 한다는 것은 다문화주의의 잘못을 다시 한번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알렉산더 교수의 지적이다. 알렉산더 교수는 이 지점에서 결혼을 통해 영국으로 이주한 방글라데시 여성들의 다양한 모습을 실제 인터뷰 자료로 드러낸다. 이젠 영국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방글라데시 전통 문화로 되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영어를 못한다거나 바깥에서 나쁜 물이 들어올 수 있다는 이유로 집에 갇히거나 얻어맞는 여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혼종성의 형성에도 기존 전통의 힘이 여전히 작용한다는 얘기다. 이런 실증자료를 바탕으로 알렉산더 교수는 “그동안 혼종성은 종종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개념으로 각광받아 왔지만 혼종성 그 자체는 문화적 차이를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하며, 민족과 문화의 순수성이라는 본질주의적 개념을 강화하기도 하고 해체하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혼종성을 약한 버전과 강한 버전으로 구별하자.”고 제안한다. 약한 혼종성이 “단순히 문화가 뒤섞이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면, 강한 혼종성은 “문화적 만남이 발생시키는 논쟁적인 영역에 집중한다.”는 설명이다. 앞으로 깊게 논의해야 할 대목은 바로 이 강한 혼종성 영역이라는 얘기다. ●‘백색신화’ 로버트 영 기조강연 앞서 학술대회 기조강연은 ‘백색신화’(White Mythologies)라는 저서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후기식민주의자 로버트 영 미국 뉴욕대 비교문화학 석좌교수가 맡는다. 기조강연 주제는 ‘혼종성과 문화 번역의 타자성’(Hybridity and The Otherness of Cultural Translation)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오바마 “이스라엘, 가자지구 돌려줘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국경선은 1967년 당시 경계에 근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국무부 청사에서 가진 중동정책 연설에서 “이스라엘의 안보에 대한 우리의 기여는 변함 없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현상 유지는 지속될 수 없고, 이스라엘은 평화를 진전시키기 위해 과감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1967년 당시 경계란 이스라엘이 그해 6월 제3차 중동전쟁을 통해 동예루살렘, 요르단강 서안, 가자지구 등을 점령하기 이전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결국 이들 영토를 돌려줘야 한다는 얘기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그동안 3차 중동전쟁 이후 새로 구축된 영토를 사실상 인정해 온 과거 정권과 궤를 달리하는 것으로, 향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협상에 미칠 파장이 주목된다. 이어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중동 민주화 시위에 대해 “미국은 이 지역 국민에 대한 폭력과 억압에 반대한다.”면서 “이 지역에서 개혁을 촉진하고 민주주의 전환을 지지하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주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금융안정, 개혁촉진, 글로벌 시장 경쟁과의 접목 등을 바탕으로 할 것”이라면서 최근 독재자가 물러난 튀니지와 이집트에 대한 대규모 경제지원 방침을 밝혔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한국현대사학회 출범…초대 학회장 권희영 교수

    한국현대사학회 출범…초대 학회장 권희영 교수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학술모임인 한국현대사학회가 20일 오후 1시 30분 서울교대 에듀윌센터에서 창립대회를 갖고 공식 출범했다. 초대 학회장에 선임된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창립 대회사에서 “우리가 누리는 물적 풍요와 다원적 시민사회는 그네들(우리 할아버지와 부모 세대)의 피와 땀이 씨앗이 되어 거둔 결실”이라면서 “그럼에도 우리 지식사회의 한국현대사 연구는 이런 성취를 제대로 조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현대사학회는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를 제대로 조명하자는 취지에서 ‘한국의 현대사학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이날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김학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김보정석좌교수는 ‘한국현대사학의 과제’라는 기조강연에서 한국현대사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일차 사료 발굴에 주력 ▲한국현대사에 대한 세계사적 안목에서의 접근 ▲일차 사료에 대한 교차 점검 ▲정치적·이념적 편향으로부터의 역사해석 왜곡에서 벗어나기 등 네 가지를 제시했다. 김명섭 연세대 교수는 ‘한국현대사 인식의 새로운 진보를 위한 성찰’이라는 논문에서 “반공주의라는 인식틀에 맞서서 현대사의 진실에 다가가고자 했던 노력은 역설적으로 ‘반반공’이라는 새로운 인식틀을 만들어냈다.”면서 “냉전시기 반공이 절대적 기준이 된 반공주의가 학문을 억압했다면 도그마가 된 ‘반반공’ 역시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이른바 진보 좌파 진영이 북한의 3대 세습독재나 정치범수용소의 참상에 대해 어떠한 비판도 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김일성에 대한 한국 지성계의 인식적 궤적은 반공주의와 반반공주의를 오가는 롤러코스터를 연상시킨다. 김일성의 항일 무장투쟁 경력을 직시하되 그것이 공산주의에 입각한 것이었다는 점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저자와 차 한잔] 실명소설 ‘명동시대’ 펴낸 안도섭 시인

    [저자와 차 한잔] 실명소설 ‘명동시대’ 펴낸 안도섭 시인

    작가들은 대체로 실명(實名)소설 쓰기를 꺼린다. 자칫 실존 인물의 과대한 평가나 평가 절하의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격랑의 회오리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의 편린들을 담은 문학 작품이 희귀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역사의 엇갈리는 평가와 여전히 진행 중인 그 후유증, 그리고 문학작품으로 평가될 실존 인물들의 입장…. 1958년 조선일보와 평화신문 신춘문예에 나란히 시가 당선돼 등단한 안도섭(78) 시인이 낸 ‘명동시대’(글누림 펴냄)는 그런 점에서 눈길을 끈다. 서울 명동을 배경으로 100명이 넘는 문인, 예술인을 실명으로 등장시켜 해방 전후의 문단 이야기를 담은 첫 소설이란 점에서 문단 안팎의 관심을 적지않게 모으고 있다. “일제의 억압·사슬에서 벗어난 해방, 해방 직후의 좌우 대립, 민족상잔의 6·25전쟁과 분단…. 우리는 세계사적으로도 흔치 않은 결정적 문학 소재들을 태산같이 안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것들을 문학으로 끌어들인 실명의 작품이 드문 것은 비극적인 역사만큼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책 출간에 맞춰 서울신문사 회의실에서 만난 저자 안도섭 시인은 우리 문단·문인들의 태만과 직무유기를 먼저 꼬집었다. “누군가는 실제 겪었던 일을 증언해야 하고 그 증언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서울 명동은 해방정국과 좌우 대립, 전쟁 포화로 인한 폐허 속에서도 숱한 문인들이 모여 사랑을 노래하고 예술을 부르짖었던 문인들의 단골 아지트. ‘명동시대’는 바로 그 문화 특구를 겨냥해 그 속에서 부대끼며 죽고 살았던 문인들의 숨은 이야기를 생생하게 풀어낸다. ‘명동신사’ 박인환, ‘명동백작’ 이봉구 등 당대를 풍미했던 문인·예술인의 공개되지 않은 면모와 열정을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명소설은 허구에 바탕하지만 실존 인물을 그린다는 점에서 팩트(사실)를 크게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지닌다. 그렇다면 저자 안도섭 시인도 그 위험과 부담에서 자유롭지 않았을 터. “직접 교류하고 겪었던 당사자들의 증언을 거듭거듭 확인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있던 자료들을 일일이 발품을 팔아 정리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저자가 ‘명동시대’에서 말하려는 궁극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가파르고 험악한 격동의 시대에 가난한 문인들이 명동을 드나들며 술잔을 기울인 것은 치열한 예술혼의 공감이고 그 끈을 놓을 수 없다는 끈끈한 우정과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저자가 등단한 1950년대 후반만 해도 활동 문인이 넉넉잡아 200명 정도였던 데 비해 지금은 시인만 1만∼2만명에 달할 만큼 수적인 확산을 이루었다는 우리 문단. “양적 팽창이 꼭 질적 저하를 부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명동시대’를 살았던 문인·예술인들의 예술혼과 끈끈한 유대는 쉽사리 찾아볼 수 없다고 봐야지요.” 결국 저자는 사라진 ‘명동시대’가 공간의 실종을 넘어선 정신과 영혼의 쇠퇴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글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오바마 중동플랜] 이집트에 20억弗… 親美 ‘민주정부’ 육성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발표한 새로운 중동정책의 핵심은 민주화된 국가에 대대적인 경제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오바마는 기존의 친미 독재정권에 계속 미련을 둘 것이냐, 아니면 결별하고 새롭게 민주화된 친미 정부 수립을 유도할 것이냐의 고통스러운 저울질 끝에 후자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민주화 이후의 반미정권을 용인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는 없다. ●반미세력 발호 막을 ‘돈풀기’ 본격화 오바마는 연설에서 민주혁명을 달성한 중동 국가들에 수십억 달러의 재정 지원을 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집트에는 20억 달러가 넘는 지원이 이뤄진다. ▲10억 달러의 이집트 채무 탕감 ▲해외민간투자공사(OPIC)를 통한 10억 달러 대출 지원 ▲투자증진을 위한 미·이집트 기업펀드 조성 등이 포함돼 있다. 이 밖에도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등을 통한 재정 지원과 대출을 유도할 방침이며, 공산주의 붕괴 후 동유럽 재건을 위해 활약했던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의 이집트에서의 역할도 내용에 담겨 있다. 미국은 또 ▲차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서 튀니지와 이집트의 경제 안정 및 현대화 논의 ▲중동 지역의 무역투자파트너십 계획(TIPI) 출범 등을 제시했다. 이는 독재자가 사라진 상태에서 경제 재건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정권이 이슬람 급진세력 등 반미 세력에 넘어갈 가능성을 미연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2차 세계대전 직후 경제 황폐화로 공산화 위험이 있었던 유럽에 대폭적인 경제지원을 했던 ‘마셜플랜’의 중동판이라 할 수 있다. 이집트의 연간 경제성장률은 1%에 불과하며, 민주화 이후 오히려 외국 자본이 이탈하는 등 외부의 지원이 없으면 경제적 공황이 도래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시리아 등 反민주정권엔 채찍 반면 오바마는 민주화를 억압하는 정권에는 ‘채찍’을 가하겠다는 투트랙 메시지를 내놓았다. 민주화를 유혈 진압한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겨냥해 직접 제재 방침을 천명한 게 대표적이다. 오바마는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뿐 아니라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에 대해서도 “퇴진함으로써 정정불안을 종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바레인 정부와 반정부 세력에 대해 “바레인 국민의 미래를 위해 실질적인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코파카바나’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 소재 영화들이 대거 선보인다. 그 작품들이 모두 어머니를 중심에 둔 걸 보면 아버지는 영화에서조차 인기 없는 존재인 모양이다. 이미 관객과 만난 민규동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그러하고, 개봉 대기 중인 최익환의 ‘마마’는 (아직 보지 못했으나) 제목에서부터 어머니를 꺼내들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 영화를 대표하는 여배우인 이자벨 위페르와 르네 젤위거가 각각 주연을 맡은 ‘코파카바나’와 ‘마이 원 앤 온리’도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두 영화의 어머니가 익숙한 어머니상과 동떨어진 인물이라는 게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그중 관심을 끄는 건 ‘코파카바나’. 오랜만에 국내에서 개봉하는 위페르의 영화이거니와 그녀가 자신을 모델로 한 사진전(‘이자벨 위페르: 위대한 그녀’) 개최를 기념해 10여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기 때문이다. 바부는 마음이 가는 대로, 발길이 닿는 곳을 찾아 떠돌며 살았다. 그런 탓에 노후를 앞둔 생활 형편은 좋지 않다. 어린 시절엔 엄마를 잘 따랐던 딸 에스메랄다도 언제부턴가 거리를 둔다. 정착해서 보통 사람처럼 살고 싶은 딸의 눈에 엄마가 괴짜이자 창피한 사람으로 비치기 시작했다. 급기야 사귀던 남자와의 결혼을 알리는 자리에서 에스메랄다는 바부에게 큰 상처를 안긴다. 남자 집에서 결혼식을 전부 준비하기로 했다며, 딸은 엄마가 결혼식에 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딸의 결혼식에 당당하게 서려고 바부는 직업 전선에 나선다. 낯선 땅 벨기에에서 낯선 사람들과 지내게 된 그녀는 특유의 성품을 발휘해 성과를 올린다. 여느 인간관계가 그렇듯 가족도 진정한 관계에 이르자면 굴곡의 시간을 통과하기 마련이다. 젊은 딸과 엄마가 티격태격하는 건 영화에서도 흔한 일이다. 김영애와 최강희가 열연한 ‘애자’와 비교해 볼 만하지만, 김혜자와 최진실이 앙상블을 이룬 ‘마요네즈’가 ‘코파카바나’와 더 닮은꼴의 영화다. 두 영화의 장점은 가족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은 데 있다. 구태여 모성본능을 강조하지 않으며, 엄마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애써 과장하지 않는다. 희생하고 억압당하며 살아온 엄마의 해방을 외치는 작품은 더더욱 아니다. 판이한 성품을 지닌 엄마와 딸이 각자 속한 자리에서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 영화는 그 이상을 욕심 내지 않는다. 바부는 끝내 자유로운 정신을 잃지 않고, 에스메랄다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관계를 확인한다. 눈물을 자아내는 가족영화가 식상했다면 ‘코파카바나’를 권한다. 경쾌한 몸짓으로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코파카바나’의 카메라는 배우의 얼굴과 밀착해 움직인다. 영화의 진경은 벨기에의 휴양도시가 아닌 위페르의 표정에서 나온다. 바부가 지닌 아웃사이더의 영혼을 빌려 위페르의 얼굴은 종종 신비한 풍경을 향해 도약한다. 위페르의 지적이고 도도한 연기를 먼저 떠올릴 관객에게 이번 역할은 다소 의외일지 모른다. 기실 그녀는 다양한 연기 변신을 거쳐 온 배우다. 어수룩한 아낙네부터 우아한 상류층 여인까지 그녀가 선보인 인물의 스펙트럼은 폭넓기가 그지없다. ‘코파카바나’를 위페르가 출연한 최고의 영화 중 한 편으로 꼽진 않겠다. 그러나 실제 딸과 함께 모녀를 연기한 그녀가 이번에도 잊지 못할 인물을 창조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오는 26일 개봉. 영화평론가
  • 돈 풀어 ‘親美’ 심는다… 오바마 중동구상 주목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국무부 연설을 통해 민주주의로 전환하는 중동·북아프리카 국가에 대한 대대적인 경제적 지원 약속을 골자로 한 ‘신(新)중동구상’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 같은 구상은 이 지역 친미 독재정권들의 잇단 몰락에 따른 영향력 상실을 타개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종전에는 독재자와의 결탁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앞으로는 경제적 지원으로 미국식 시스템을 주입시킴으로써 국가의 체제와 민심을 친미적으로 변형시키려 하는 대담한 구상이라 할 수 있다. 18일 블룸버그와 유에스에이투데이 등 미 언론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에서 최근 민주혁명이 성공한 튀니지와 이집트에 경제적 지원을 제안함으로써 다른 중동국가에 모델을 제시한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이집트가 미국에 빚진 돈의 3분의1에 해당하는 10억 달러의 빚을 탕감해 주고 새로 10억 달러를 대출해 준다는 것이다. 또 이집트의 민간 투자 활성화를 위해 해외민간투자공사(OPIC)를 통해 20억 달러를 지원하고 6000만 달러 규모의 ‘미국-이집트 기업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다. 아울러 다양한 개발은행들을 통해 이집트와 튀니지에 수십억 달러를 추가 지원해 주기로 했다. 또 이들 국가의 비정부기구(NGO)와 대학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이들 기관이 글로벌화된 경제 정책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국민들의 민주주의 열망을 억압하며 유혈 사태를 부른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등에게는 ‘채찍’을 들 것임을 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예멘과 바레인 등의 독재자들에게는 주의를 환기시키는 발언을 할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백악관은 18일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그의 측근 6명에 대해 자산 동결 등의 경제 제재를 단행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 내용과 관련, “지난 10년간 미국의 초점은 주로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노력과 오사마 빈라덴 추적, 알카에다와의 싸움 등에 맞춰졌다.”면서 “앞으로도 알카에다와의 싸움은 계속되겠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가치를 진전시키는 데 주력한다는 취지의 연설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중동 문제 중 하나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구체적 해결 방안은 포함될 가능성이 낮아 절름발이 중동 구상이 될 것이란 지적도 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보고 듣고 즐기세요] 연극·뮤지컬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다음 달 3일부터 9월 4일까지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19세기 독일 청교도 학교를 배경으로 성에 눈뜨기 시작한 청소년들의 호기심과 불안, 이를 억압하려는 성인들의 권위의식의 대립을 그려냈다. 3만~4만원. (02)744-4334. ●연극 ‘겨울 선인장’ 다음 달 19일까지 서울 혜화동 키작은 소나무 극장. 영화, 연극, TV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고 있는 재일교포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의 작품이다. 소외받고 상처받는 4명의 동성애자 이야기를 유쾌하고 따뜻하게 그려냈다. 2만원. (02)765-8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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