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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잉 선교 차단” vs “역차별” 갈등 빚는 평화법

    “과잉 선교 차단” vs “역차별” 갈등 빚는 평화법

    종교계 일각에서 ‘종교평화법 및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나선 가운데 개신교계가 강하게 반발하며 맞서 논란이 재연될 조짐이다. 특히 불교 시민단체들이 관련기관·단체를 상대로 이 법의 제정 촉구와 관련한 연대운동에 돌입해 귀추가 주목된다. ‘종교평화법 및 차별금지법’은 종교나 성적 소수자, 소수 인종, 경제적 약자에 대한 억압·차별을 금지하고 종교 간 갈등을 해소하자는 차원에서 제정이 추진됐던 사안.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국가들에서 종교·인종·민족 등에 관한 편견과 증오를 범죄로 규정해 처벌하는 ‘차별금지법’이나 ‘증오방지법’과 같은 맥락의 법적 장치로 평가된다. 2012년 불교 조계종을 중심으로 제정을 추진해 당시 몇몇 민주당 의원들이 ‘차별금지법’을 대표발의하기도 했으나 개신교계의 강한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종교계 일각에서 ‘종교평화법 및 차별금지법’ 제정을 다시 촉구하고 나선 것은 최근 불교 성지인 인도 부다가야 마하보디 사원에서 한국의 개신교인들이 찬송을 부르며 기도하는 이른바 ‘땅 밟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실제로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원불교사회개벽교무단 등 4대 종교단체는 지난 17일 한국기독교회관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 법 제정을 촉구하면서 그 같은 내용을 언급했다. 이들은 “최근 벌어지는 일부 종교인들의 그릇된 선교행위는 종교 간 분쟁을 더욱 격화시킬 위험성이 크다”면서 “종교 간 평화와 사회적 소수자·약자에 대한 관용 풍토 조성과 분쟁 방지를 위한 종교평화법및 차별금지법 제정을 적극 추진할 것을 해당기관에 요청한다”고 밝혔다. 인드라망생명공동체, 불교환경연대, 대한불교청년회 등 13개 시민사회단체 연대모임인 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불시넷)도 같은 입장의 성명을 내고 법 제정 운동에 동참하고 나섰다. 불시넷은 “근절되지 않는 ‘땅 밟기’ 선교행위를 강제하는 수단이 필요하다”며 “종교 간 화합과 평화를 위한 가장 기본적 토대가 될 차별금지법 법제화를 국회 등 관계기관에 요구한다”고 밝혔다. 최근 종교계에서 번지고 있는 ‘종교평화법 및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은 단지 선언과 촉구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에서 종전과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법 제정 운동을 종교계 전체로 확산시키면서 관련 기관을 상대로 공략에 나서고 있다.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등 개신교 단체에 회원교회 및 목사들의 지도를 촉구하는 공문을 발송하기도 했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개신교계는 보수성향의 기관과 단체를 중심으로 ‘종교자유 침해’와 ‘정교분리 원칙 위배’를 들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기공협)는 “국가의 공권력으로 헌법이 보장한 선교 또는 포교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종교평화법을 제정하라고 요구함은 더 큰 종교 간 갈등과 많은 문제점을 유발할 수 있음을 망각한 처사”라고 선을 그었다. 이들은 특히 “동성애 행위, 또는 동성혼에 대해 반대하는 행위를 국가가 처벌함으로써 합법화한다면 도리어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 대부분의 인권을 침해하는 역차별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변진흥 사무총장은 “한국 사회에서 종교 간 마찰과 갈등은 엄연히 존재하고 더 심화될 조짐”이라며 “그러나 특정 종교의 교리나 신앙 표현을 억압하는 것처럼 인식될 수 있는 법 제정에 앞서 존중과 배려를 중시하는 가이드라인을 종교계가 먼저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로슈진단 안은억 대표 ‘마이스터 정신’ 한국에 심다

    로슈진단 안은억 대표 ‘마이스터 정신’ 한국에 심다

    그는 최근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CEO로 꼽힌다. 다양한 의료 분야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던 ‘치료’의 자리에 ‘진단’의 가치를 새롭게 이식하는가 하면, 대졸 고학력자가 홍수를 이루는 한국 사회에다 유럽의 융성을 이끌었던 전문직업인 제도인 ‘마이스터 시스템’을 정착시키기 위해 땀을 쏟고 있다. 단순하게 마이스터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목청만 높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회사에 마이스터 육성프로그램을 도입해 미래형 인재를 키우고 있다. ‘입신양명(立身揚名)’ 의식이 강해 ‘대학은 나와야 사람 노릇 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우리의 묵은 의식에 과감하게 혁신의 메스를 들이대는 사람. 바로 한국로슈진단(주) 안은억 대표다. 그를 이해하려면 그의 개인사를 먼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배를 곯지 않기 위해 스위스로 떠난 소년  그는 우리나라가 여전히 궁핍 속에서 활로를 모색하던 1978년에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스위스로 유학을 떠났다. 그 시절에 ‘돈으로 다리를 놓는’ 귀족성 조기유학이 아니라 스위스의 페스탈로치 장학재단이 빈곤국의 고아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유학프로그램에 선발된 것이다. 그는 “한국전쟁 후 이미 폐인이 되다시피 한 아버지는 우리 4남매를 부천의 한 보육원에 맡겼다. 여섯살 나던 해 어머니마저 돌아가신 뒤라 막막하기만 했다”면서 “그런 가운데 먹여주고, 공부까지 시켜 준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그의 삶은 이렇게 반전을 이뤘다.  안은억 대표의 아버지는 해방공간을 살았던 여느 지식인들처럼 열렬한 좌파였다. 좌파에 대한 해석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데, 당시의 좌파 경향은 독립운동사에서도 나타나듯 현실 속 지식인의 뇌리 속에 박힌 뿌리 깊은 항일의식의 발현이기도 했다. 경기도 수원의 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일제 치하에서 성장기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좌파적 성향에 빠져들었고, 한국전쟁이 터지자 인민군에 자원입대했다. 당시 작은 아버지는 국군으로 싸우다 전사했으니, 불행한 역사가 만든 슬픈 가족사로밖에 설명되지 않는 비극이었다. ■비극적 역사가 투영된 가족사  그러나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이명훈이 그랬듯 그도 인민군 생활을 오래 버티지 못하고 탈출했다가 종전 후에 그런 사실이 밝혀져 옥살이를 해야 했다. 연좌의 악폐가 당연시되던 시절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옥살이를 마친 뒤에도 그런 사상범이 겪을 수밖에 없는 ‘배제’와 ‘억압’의 굴레를 견디지 못해 술에 빠져들었다. 그 무렵 어머니를 만나 누이 셋 등 4남매를 두었으나 어머니는 안 대표가 여섯 살 나던 해에 돌아가셨고, 현실에 절망해 술에 빠져 사는 아버지에게는 자식들을 돌볼 여력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그는 여덟살 나던 해에 보육원에 맡겨져 고아 아닌 고아로 살아야 했고, 그의 스위스행은 이렇게 이뤄졌다.  그는 “그 때 내가 스위스행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아마 동네 불량배쯤 되지 않았을까”라며 웃었다. 혈혈단신 스위스로 향한 그가 정착한 곳은 취리히에서 북동쪽으로 100k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샹트 갈렌(St.Gallen)이라는 도시였다. 섬유산업으로 기반을 닦아 스위스에서도 손꼽히는 부유한 도시였다.  스위스에서 그는 새로운 세계와 만났다. 물론 페스탈로치 장학생들이 모두 순탄하게 자신의 삶을 열어간 것은 아니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이 프로그램으로 유학길에 오른 50여명 중 더러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도 있었고, 더러는 마약에 빠져 스스로를 무너뜨린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신산의 역경을 온몸으로 겪어내며 생의 초반을 산 그에게 스위스는 기회의 땅이었다. ■한 세대의 종언 그리고 또다른 시작  그에게 가족, 특히 아버지와의 재회는 삶의 이유였으나, 비운의 역사에 온몸으로 맞섰던 아버지는 그가 스위스로 떠난 뒤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시고 말았다. 누나들은 어린 동생에게 이런 사실조차 알리지 않았고, 그는 고등학교에 다니던 열여덟 살 때에야 뒤늦게 아버지의 운명을 알았다. 그로서는 온갖 어려움을 묵묵히 견디며 살아온 희망의 축 하나가 사라져버린 셈이었다. 이 때 그가 받았을 충격은 상상하고도 남는다. ‘가난한 나라, 불행한 아이’로 살면서도 언젠가는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의지 하나로 버틴 그에게 비록 힘에 부치게 살았지만 아버지의 부재는 곧 희망의 소실 아니었을까.  그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아버지 때문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뒤늦게 아버지와의 이별을 안 그는 다니던 고등학교를 그만 두고 귀국했다. 그러나 그런 귀국이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좌절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다시 스위스로 돌아가 고등학교와 상트 갈렌대를 마쳤으며, 경영학 박사 학위까지 딴 뒤 스위스 회사의 한국지사에 지원해 마침내 금의환향 길에 올랐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또다른 시작이었다. 학연과 지연이 지배하는 고국에서, 가족이라고는 세 누이 뿐이고, 지연은 이미 의미가 없었으며, 학연조차 없는 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은 능력 뿐이었다. 글로벌 기업에서 힘을 기른 그는 2009년 로슈진단에 터를 닦아 생명과학 분야 본부장을 거친 뒤 2012년 드디어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그는 “나는 한국인이지만 한국에서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었다”면서 “그래서 몸담은 조직에서 더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고, 그래서 나는 지금도 나의 유일한 빽그라운드는 내 회사의 직원들 뿐”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가 겪은 성공 체험을 한국에 이식하다  그의 경영철학은 철저하게 소통 지향적이고, 상향식이다. 그것이 조직의 힘이라고 믿고 거기에서 새로운 발상과 에너지를 얻는다. 그런 그가 한국의 변혁을 기대하며 주창한 것이 바로 ‘마이스터 시스템’이었다. 의료 진단 분야에서 진단기기를 보급하는 회사의 목표와 함께 추구하는 그의 마이스터 정신은 많은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착을 시작했고, 그런 이상의 현실화를 목도하면서 그는 고국에서 색다르지만 의미 있는 씨앗 하나를 발아시켜 키우고 있는 것이다. 안은억 대표는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의 유럽 순방에 동행했다. 마이스터 정신의 실천자 자격으로였다. 그가 로슈진단의 수장이 된 이래 경영 측면에서의 성과가 눈부신 것이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마이스터 정신을 보급하면서 얻는 보람도 컸다. “학력 과잉의 한국사회에서 국가적 경쟁력을 기르는 일이 마이스터 정신에 있다”는 믿음을 그는 지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최근 세브란스병원에 아시아 최초로 조직검사용 첨단 샘플트렉킹 시스템인 ‘밴티지’를 설치해 병리 진단의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는 그로서는 경영상의 수익이라는 기업적 지향과 다른 측면에서 한국 사회를 바꾸는 일에 스스로를 던진 셈이다. ■가장 자유롭고 가장 엄격하게  로슈는 현재 연간 매출액이 70조에 이르며, 특히 진단과 바이오의약 분야에서 공고하게 세계 1위를 다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매출 규모가 1700억원을 넘어서 진단 분야에서 단연 톱의 자리에 올라있다. 어느 분야에서든 신뢰가 전제되지 않는 1위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도 역시 신뢰 기반을 존중한다. 그가 더욱 특별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인민군의 아들로 태어나 먼 이국에서 고아로 살아야 했으며, 그래서 고국이 더없이 값지고 귀한 그에게 역사는 그를 살아 숨쉬게 하는 자양분이며, 현실은 반드시 바꾸고 바뤄야 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그는 과거에도 그렇게 살았고, 지금도 그런 눈으로 세상을 주시하며, 앞으로도 그런 지향으로 살아갈 것이다. 이런 그의 진정성은 그를 만나봐야 아는 것이기는 하지만, 만나지 않아도 그를 알 수 있는 방법은 그의 철학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를 통해 자유분방하면서도 자신에게 엄격하고 투철한 ‘열린 사람’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인 것은 가장 한국적인 그의 정신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명제를 확인할 수 있어서다.  심재억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세계의 창] 이·팔 전쟁도 우크라 사태도 100년 전 잉태됐다

    [세계의 창] 이·팔 전쟁도 우크라 사태도 100년 전 잉태됐다

    1914년 7월 28일,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길어야 반년이라던 전쟁이 ‘4년간 36개국 6500만 군인이 참전해 850만명이 죽은’ 총력전이자 참호전으로 변했다. 1차 세계대전이 ‘대(Great) 전쟁’, 혹은 ‘모든 전쟁을 끝낸 전쟁’(the War to end all wars)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가장 큰 변화는 홀대받던 하층노동자와 여성들이 전방 전쟁터와 후방 군수공장에서 흘린 피와 땀의 대가로 ‘신민’(臣民)이 아닌 ‘국민’(國民)으로 거듭났다는 점이다. 그러나 모두에게 제 몫이 돌아갈 수는 없는 법. 제 몫을 챙기지 못한 이들 사이에 불만이 일었고 이는 오늘날 다양한 국제분쟁의 뿌리가 됐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 등이 1차 대전 발발 100주년을 기리며 내놓은 보도를 통해 1차 대전이 남긴 유산을 짚어봤다. 키워드는 4대 제국의 몰락이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1. 중동 분쟁의 뿌리 - 오스만 제국의 몰락 독립을 미끼로 분할통치하는 것은 제국주의의 오랜 수법이다. 영국·프랑스는 독일·오스트리아 편에 가담한 오스만제국을 해체하기 위해 1916년 ‘사이크스 피코 협정’을 맺었다. 오스만제국 내 소수민족의 독립 열망을 부추겨서 제국을 붕괴시킨 뒤 분할통치하자는 것이었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바로 이 임무를 수행하는 영국 첩보원 얘기다. 아랍세계의 크고 작은 종족분쟁이 여기서 출발했다. 요즘 뉴스를 장식하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충돌도 마찬가지다. 1917년 아서 밸푸어 영국 외무장관은 오스만제국의 일부였던 팔레스타인에다 유대인 국가를 허용한다는 발언을 언론에 흘렸다. 아직 참전하지 않은 미국의 지원을 이끌어 내기 위해 미국계 유대인에게 당근을 던져 주자고 판단한 것이다. 사실 이스라엘 건국은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희망사항’ 정도로 치부됐다. 그러나 밸푸어의 발언 이후 현실이 됐다. 반면 오스만제국의 배후를 교란하는 대가로 독립을 약속받은 팔레스타인은 충격에 빠졌다. 양측 대립이 격화되면서 영국은 뒤늦게 “가장 큰 외교적 실수”라고 한탄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이스라엘은 끝까지 건국을 고집했고 1949년 이를 인정받았다. 오랜 분쟁의 시작이었다. 2. 차르가 되고픈 푸틴 - 러시아 제국의 몰락 서구 언론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흔히 차르라 부른다. 음험한 권력자의 이미지 때문만은 아니다. 푸틴의 정책 자체가 러시아제국 시절에 대한 향수를 내포하고 있어서다. 러시아제국 시절과 지금의 국경선을 비교해 볼 때 가장 극명한 차이는 러시아와 유럽 사이의 완충지대다. 북유럽에서 중부유럽에 걸쳐 핀란드, 발틱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등이 배치되어 있다. 특히 중부유럽은 예부터 곡창지대여서 늘 주변국들이 탐내는 대상이었다. 산업화로 발전해 나가던 서유럽국가들의 텃밭이자 유럽 진출을 도모하려는 러시아의 전진기지이기도 했다. 요즘 우크라이나를 사이에 둔 미국과 러시아 간 다툼도 여기에서 기원한다. 18세기 이후 우크라이나 서부는 독일·오스트리아 쪽에, 중부와 동부는 러시아 쪽에 속했다. 1차 대전 때 독립을 시도했으나 곧 소련에 합병됐다. 공산권이 붕괴하자 바로 독립을 이뤄냈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1차 대전 당시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 이후 지금까지 서구의 모든 중부유럽 정책이 러시아를 겨냥하는게 아니냐고 의심한다. 1차 대전 당시의 지정학은 지금도 여전한 셈이다. 3. EU 출범의 씨앗으로 - 대영제국의 몰락 20세기 초 모든 분야에서 미국은 영국을 거의 다 따라잡았다. 그럼에도 식민지, 해군력, 금융시스템으로 무장한 영국은 최강제국의 위엄을 잃지 않았다. 1차 대전은 여기에 결정타를 날렸다. 전쟁 때문에 돈이 부족해진 영국은 1917년 4월 미국의 지원 없이는 3주도 버틸 수 없다며 미국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야 했다. 1차 대전 기간 미국이 연합군에 빌려 준 돈만 해도 모두 71억 달러였다. 1차 대전은 유럽연합(EU)의 씨앗을 뿌려 놓기도 했다. 1919년 파리강화회담 중 프랑스 장교 장 모네는 ‘경제적 통합을 통한 전쟁의 종식’이란 아이디어를 내놨다. 독일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던 연합군은 이를 무시했다. 기회는 몇 차례 더 있었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도, 오스트리아의 백작 리하르트 니콜라우스 폰 쿠덴호프 칼레르기도 ‘변덕스러운 정치 대신 지속적인 경제교류가 평화를 보장한다’고 주장했다. 당대 유럽의 지식인들은 열렬히 지지했으나 일반 대중의 반응은 냉담했다. 2차 대전을 겪고 나서야 유럽인들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경제적 통합을 통한 영구평화의 달성’이란 꿈을 1, 2차 대전에 책임 있는 독일이 이끌고 있다는 게 역사의 아이러니다. 4. 귀족 세계의 종말 -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몰락 1차 대전이 드러낸 구세계의 빛과 그림자는 단연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다. 근대민족국가 설립이라는 열풍을 차단하기 위해 합스부르크 왕가를 정점으로 결성된 귀족 연합체다. 민족의 이익보다 신분의 이익을 앞세운 것이다. 그만큼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성격이 강한 지배체제였다. 근대화 바람을 마냥 피할 수는 없었다. 1914년 산업화에 착수하면서 민족 갈등이 불거져 나왔고 이는 곧 1차 대전의 촉발 원인으로 꼽히는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저격 사건으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전후 제국은 철저히 해체됐다. 땅은 빼앗겼고 나라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로 삼등분됐다. 반면 민족보다 신분을 앞세웠기에 다른 유럽 지역에 비해 유대인 탄압이 덜했고 이 때문에 20세기 초 경제학, 심리학, 철학 등에서 뛰어난 역량을 선보인 유대계 지식인들이 수없이 배출됐다. 나중에 이들이 히틀러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미국은 세계패권뿐 아니라 학문의 패권도 거머쥐게 됐다.
  • 정보사회는 감시사회의 또 다른 이름

    정보사회는 감시사회의 또 다른 이름

    감시사회로의 유혹/데이비드 라이언 지음/이광조 옮김/후마니타스/336쪽/1만 7000원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은 대부분 불편하고, 때론 섬뜩하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개인은 감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도처에 널린 폐쇄회로(CC)TV, 교통카드, 인터넷 쇼핑 등 생활의 거의 모든 것은 ‘감시’와 직결돼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억압이나 통제만으로 해석하지는 않는다. 안전과 사회질서, 편리 등 긍정적인 개념으로도 풀이한다. 감시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사회학자 데이비드 라이언은 “관리와 통제를 위해 커뮤니케이션과 정보기술에 의존하는 모든 사회는 감시사회”라고 정의하면서 사회 변화와 기술 발전에 따라 감시를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정보사회는 감시사회의 다른 이름일 수밖에 없다. 인터넷 쇼핑을 위해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직원임을 확인하는 출입증을 찍고 사무실을 오간다. 교통법규를 위반한 차량을 CCTV로 교차확인해 벌금을 물리는 행태는 정보사회의 일면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경찰국가라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범죄를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여긴다. 감시에 대한 ‘원칙 있는 자각’이 필요하다는 역설을 담은 책이 2001년에 출간한 ‘감시사회:일상 들여다보기’(Surveillance Society: Monitoring Everyday Life)이다. ‘감시사회로의 유혹’은 그 책의 번역본이다. ‘감시’에 관한 그의 저서 가운데 비교적 초기 단계에 놓인 것이지만, 현대에 적용해도 무리가 없다. 저자가 바라본 감시사회는 조지 오웰이 전체주의가 극대화한 사회를 가정하고 쓴 소설 ‘1984’의 팬옵티콘(panopticon·원형감옥)이 아니다. 이동성, 속도, 안전, 소비자 자유를 선호하는 사회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조율하는 중요한 수단으로서 감시가 존재한다. ‘감시 능력의 확장’은 근대성의 한 측면이다. 자본주의와 국민국가는 ‘독립적 개인’을 탄생시켰고, 민주적 질서에 동참시켰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개개인에 대한 정보 축적이 쉬워지면서 통제도 편리해졌다. 감시사회의 부정적 측면은 단순히 사적 공간을 침범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런 정보들이 유출되거나, 사람을 분류하고 필요에 따라 배제하기도 하는 수단이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회에 속해 있는 한 감시 자체를 반대하기보다 사회정의와 개인의 존엄성에 잠재적 위협이 되는지를 놓고 감시를 바라볼 것을 주문하면서 ‘감시 윤리’에 대한 메시지를 던진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잊힌 혁명가 빅토르 세르주의 삶

    잊힌 혁명가 빅토르 세르주의 삶

    한 혁명가의 회고록/빅토르 세르주 지음/정병선 옮김/오월의봄/760쪽/2만 7000원 혁명가들은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낸 대가로 후세에 이름을 남긴다. 그러나 잊힌 혁명가들도 많다. 빅토르 세르주(1890~1947)가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생전에 소설가, 시인, 정치평론가, 저널리스트, 아나키스트 등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수식어는 ‘혁명가’였다. 죽는 날까지 투사로서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세상을 바꾸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신간 ‘한 혁명가의 회고록’은 그 까닭을 ‘국가가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정치적 망명자였다. 그의 부모는 차르 독재에 반대하다가 러시아를 탈출한 망명자였고, 그 와중에 벨기에 브뤼셀에서 세르주를 낳았다. 유년기를 브뤼셀에서 보낸 세르주는 그 뒤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독일, 오스트리아를 전전했고 멕시코에서 궁핍한 말년을 보내다가 사망했다. 그는 이들 나라를 거치면서 늘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때문에 일생의 많은 기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또한 머무르는 나라에서 추방되는 일도 많았다. 다시 말해 국적 없는 혁명가의 신세로 지냈다. 그런 과정에서 그는 항상 글을 썼다. 소설 7권, 시집 2권, 단편집, 일기, 회고록, 평전 등 30여권의 책을 발표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툴라예프 사건’, ‘세기의 한밤중’, ‘감옥에 갇힌 사람들’, ‘정복당한 도시’, ‘우리 권력의 탄생’ 등이 있다. 이 책들이 최근 다시 빛을 보면서 잊힌 혁명가의 삶에 세상이 새삼 주목하고 있는 것. 책은 히틀러가 지배하는 유럽을 벗어나 멕시코로 건너온 뒤 쓴 세르주의 자서전이다.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독일 등을 전전하며 혁명을 일으키려고 애쓴 저자는 책에서 자신의 이야기보다는 그가 살았던 세계에 대해 낱낱이 증언한다. 레닌, 트로츠키, 그람시, 루카치 등 저자가 가까이서 접했던 당대의 혁명 지도자들에 대해서도 상세히 다룬다. 걸출한 혁명가들의 삶을 특유의 소설가적인 시선으로 증언한 덕분에 책읽기의 묘미가 더해졌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기회의 땅 아프리카 혼돈의 땅 돼버린 이유

    기회의 땅 아프리카 혼돈의 땅 돼버린 이유

    아프리카의 운명/마틴 메러디스 지음 이순희 옮김/김광수 감수/휴머니스트/1024쪽/5만 4000원 로마시대 작가이자 행정가였던 플리니우스(61~112년)는 “아프리카에서는 늘 새로운 것이 나온다”고 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따라 아프리카의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다. 21세기에도 아프리카는 여전히 기회의 땅이다. 자원 잠재력과 소비시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해 경제 열강이 눈독을 들인다. 하지만 지난 한 세기 동안 아프리카를 휩쓴 역사는 결코 영화 속 풍경 같지도, 희망이 엿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치욕적이고 잔혹하며 침울하다. 역사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마틴 메러디스는 2006년에 낸 책 ‘아프리카의 운명’(The Fate of Africa, 2006)에서 독립을 향해 나아가던 1950년대부터 반세기 과정을 아우르면서 아프리카의 흥망성쇠를 풍성하게 조감한다. 저자가 1964년부터 15년간 격동기를 체험하고 연구원, 아프리카 특파원 등으로 활동한 경험을 폭넓고 깊이 있게 담았다. 이 책의 한국어판이 최근 출간됐다. 아프리카 각국이 독립 정부를 갖기 이전의 역사는 서문을 통해 충실하게 설명한다. 19세기 말 유럽 열강들이 벌인 아프리카 쟁탈전에서 역사, 문화, 종교에 관계없이 수백개 종족이 엮이면서 1만여개 정치 단위체가 40개 유럽 식민지와 보호령으로 재편됐다. “나이지리아의 통일은 영국의 발명품”이라는 말은 아프리카 국경의 탄생을 극단적으로 설명한다. 세계가 냉전 체제로 들어간 1940년대 후반부터 아프리카 국가들에 독립의 여지가 생겼다. 서구 열강은 아프리카 저항세력이 정치·경제적 불만을 품고 공산주의로 편입될 것을 우려하면서 정치개혁을 시도했다. 1957년 3월, 영국은 ‘모범식민지’였던 골드코스트를 중심으로 독립 정부가 들어섰다. 당시 가나의 독립운동을 이끈 은크루마의 회의인민당이 1956년 총선에서 승리한 뒤 영국 정부는 독립 정부의 출범을 확정했다. 이 즈음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은 “이집트 수에즈 운하 회사의 국유화”를 선언하면서 외세 영향력을 청산했고 연이어 나이지리아, 시에라리온 등 영국 보호령들과 프랑스령 알제리, 벨기에령 콩고 등이 차례차례 독립 정부를 세웠다.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는 와중에 이루어진 독립은 성장 동력이 되기에 충분했다. 1960년대까지 아프리카 경제는 5~6%씩 성장했고, 세계은행 경제학자 앤드루 카마크도 “아프리카 대부분의 지역은 경제적 미래가 매우 밝다”(아프리카 발전 경제학, 1967)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권력은 쉽게 부패했고, 의회민주주의 경험이 적은 아프리카 국민들은 견제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식민 행정관들이 떠난 자리를 차지한 신흥 엘리트들이 온갖 혜택을 떠안았다. “나이지리아가 독립한 첫해는 권력이 이익으로 변하는 광란의 시기”라는 저자의 표현은 나이지리아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잠비아의 기록(1974년)에 따르면 새 권력을 위한 주택 1710채와 하인 숙소 1307채를 건설하는 데 도시 주택예산 77.2%가 소요됐고, 4.7%는 오두막집 9905채 건설에 들어갔다. 1980년대 중반에는 우간다를 중심으로 에이즈의 재앙이 퍼졌고, 장수하는 권력은 폭군이나 독재자가 되면서 아프리카는 암울한 상황이 반복됐다. 1994년 아프리카에서 가장 억압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정권이 넬슨 만델라에 의해 민주적으로 전복됐지만, 비슷한 시기에 르완다에서는 종족 갈등으로 100만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량학살이 일어났다. 저자는 아프리카의 기대와 열망이 스러진 배경과 미래가 비관적인 이유를 역사소설처럼 속도감 있게 풀어내면서, 아프리카의 경제발전 잠재력은 지배 엘리트의 약탈적인 정치와 목적 달성을 위해 폭력을 조장하는 이들의 행동 탓에 번번이 무위로 돌아갔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감수를 한 김광수 교수는 “저자가 아프리카의 미래를 너무 비관적으로 바라본 점은 성급한 판단”이라며 아쉬운 점으로 꼽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아프리카에서 발생하는 정치·경제 문제, 보건 및 생태학적 위기 등이 발생한 이유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덧붙였다.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아프리카를 가까이서 들여다본 저자의 경험이 생동감을 불어넣으면서 아프리카의 현대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데 책은 의미를 갖는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PiFan’ 잠 못 이루는 부천의 밤… “놓치면 후회” 프로그래머 3인의 선택

    ‘PiFan’ 잠 못 이루는 부천의 밤… “놓치면 후회” 프로그래머 3인의 선택

    매년 여름이면 공포와 스릴러, 판타지 등 독특한 장르 영화의 세계로 안내하는 부천판타스틱영화제(PiFan)가 오는 17일 개막한다. 18회째를 맞는 이번 영화제에서는 47개국 210편의 영화가 상영돼 전 세계 장르영화의 흐름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호러 장르의 점유율이 높았던 예년과 달리 ‘사랑, 환상, 모험’을 주제로 좀 더 대중성을 강조한 것이 올해의 특징. 영화 마니아라면 1박 2일간 영화도 보고 캠핑도 즐기는 ‘우중 영화산책’ 이벤트도 챙길 만하다. 무슨 영화를 먼저 볼까 고민하지 마시라. 프로그래머 3인이 올해 PiFan의 경향과 놓치지 말아야 할 영화 7편을 엄선해 귀띔해 준다. 정리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편장완 수석 프로그래머 “정통 스파이 영화에서 웨스턴·좀비 영화까지 판타스틱 축제의 특성을 맘껏 즐겨라” ●잭 스트롱 첩보물의 주인공인 스파이들은 블록버스터 영화의 단골 소재이자 선망의 대상이요, 히어로였다. 그러나 이 영화는 지금까지의 스파이물과는 달리 냉전시대 폴란드의 평범한 장교가 어떻게 자신의 동료들과 국가를 배신하고 스파이(잭 스트롱)가 되어 가는가를 그리고 있다. 평범한 주인공인 쿠클린스키 대령이 소련이라는 절대권력에 맞서는 용기가 긴장감을 자아내고 그가 사랑하는 가족들을 지켜낼 힘조차 없다는 사실이 끊임없는 서스펜스를 자아낸다. 실제로 리샤드 쿠클린스키 대령은 10년간 폴란드에서 CIA 첩보원으로 활동했다. ●데드 스노우2 신나는 좀비 액션영화이기도 하지만 토미 비르콜라 감독은 이 시대에 우리가 맞서야 할 적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묻는다. 최근 유럽에서 신나치들의 인종차별적 범죄행위들이 보고되고 있고, 각국에서 군국주의와 전체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영화는 나치 좀비들과 인간·좀비 연합군들의 전투를 통해 최근의 전체주의 기류에 대해 통쾌하고도 시원한 최후통첩을 날린다. 영화를 보는 순간만은 누구라도 ‘정의는 승리한다’는 순진무구한 믿음으로 마틴과 좀비 연합군을 응원하게 될 것이다. ●쉬 울프 남미의 열정과 매력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파격적인 스릴러 영화. 때론 늑대처럼 공격적이고, 때론 하얀 말처럼 아름답고, 또 한편으로는 양처럼 순수한 다중인격을 지닌 여성 연쇄살인마가 끝없이 남성을 유혹하고 살해하는 것으로 남성 중심 사회에 핏빛 도전장을 던진다. 아르헨티나의 여성감독 타마에 가라테구이의 감각적인 연출과 독특한 스릴러적 세계관이 돋보인다. 영화 속 무채색의 흑백 이미지들은 폭력, 섹스, 다중인격 등이 빚어내는 환상의 세계를 엿보게 한다. ■ 이상호 프로그래머 “북유럽에서 라틴 아메리카까지, 호러영화의 클래식에서 칸영화제의 최신작까지. 시공을 넘나드는 판타지의 향연 속으로 걸어들어갈 것” ●애니멀즈 드림 늑대인간의 저주를 타고난 소녀 마리의 잔혹한 성장기를 그린 영화로 ‘겨울왕국’의 잔혹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마리는 엘사처럼 혼자만의 성으로 떠나는 대신 엄마에 이어 자신마저 해치려 하는 마을 사람들과 핏빛 사투를 펼친다. 하얀 눈밭에 흩뿌려지는 붉은 피는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고, 마을 사람들의 편견과 차별과 억압에 맞서는 소녀 마리의 모습은 황홀하도록 아름답다. 올해 칸영화제 비평가 주간이 선택한 명품 판타지 영화. ●폴터가이스트 한밤중에 갑자기 켜지는 텔레비전, 으스스한 피에로 인형, 아이들에게만 들리는 알 수 없는 목소리…. 이 영화는 오늘날 호러영화의 틀거리가 된 고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브 후퍼와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두 거장의 만남은 동화적 환상과 무서운 악령이 공존하는 한편의 아름다운 호러영화를 탄생시켰다. 2015년 리메이크 버전이 개봉되기 전 대형 스크린으로 오리지널 버전을 즐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 유지선 프로그래머 “에너지 넘치는 동북아의 장르영화 & 정통화법 지키는 동남아의 장르영화 비교감상하기” ●미드나잇 애프터 홍콩의 대표 감독 프루트 챈이 10년 만에 홍콩을 배경으로 한 영화 ‘미드나잇 애프터’로 돌아왔다. 비좁은 도시 홍콩의 몽콕에서 16인승 미니버스에 탄 승객들이 어둠 속 터널을 지나는 순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사라지고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프루트 챈은 영화적 세계를 장르영화의 자장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1997년 7월 1일 홍콩반환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을 환기시킨다. ●선지자의 밤 1990년대 중반 휴거를 외치며 길 잃은 사람들을 구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러 모은 광신도 종교집단의 20년 뒤의 이야기. 결국 아무것도 구원받지 못한 채 오히려 모든 것을 갈취당한 채 살아가고 있는 개인의 이야기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매우 고통스러운 현재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올해 주목할 만한 국산 영화다.
  • “친일파가 아니면 매춘부라 말 못해” “매춘 단어는 위안부에 돈 지출 의미”

    “친일파가 아니면 매춘부라 말 못해” “매춘 단어는 위안부에 돈 지출 의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책 ‘제국의 위안부’가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나 ‘일본군 협력자’로 매도했다며 저자 박유하 세종대 교수를 상대로 낸 도서출판 등 금지 및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의 첫 심리가 9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렸다. 이날 심리에는 신청인 이옥선, 강일출, 박옥선 할머니 등이 참석해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이옥선 할머니는 신청인 진술에서 “부모도 모르게 끌려가 우리가 왜 위안부가 돼야 했는지 너무 억울하다. 60년 만에 중국에서 돌아와 보니 부모, 형제 다 돌아가시고 국적도 없어졌더라”면서 “일본놈들은 아직도 ‘할머니들이 제 발로 돈 벌러 갔다’고 주장하는데 강제로 끌려간 것”이라고 말했다. 심리를 지켜보던 이용수 할머니는 출판사 대표를 향해 “이 같은 책을 내는 것은 친일이나 다름없다”면서 “책을 팔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책을 쓴 박 교수는 심리에 나오지 않고 서면 답변서를 통해 “책은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해 위안부 피해자들을 둘러싼 문제론을 쓴 것”이라면서 “이번 가처분 신청은 표현의 자유에 대해 심각한 억압을 추구한다”고 주장했다. 문제가 된 ‘매춘’이라는 단어 사용에 대해서는 “위안부와 관련해 돈이 지출됐다는 의미에서 가치 중립적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했으며 ‘협력’이라는 단어는 “위안부들에게 강요됐던 봉사를 표현한 것”이라고 밝혔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심리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역사의 산증인이 여기 있는데 (박 교수는) 친일파가 아니라면 감히 매춘부란 말을 입에 담을 수 없다”면서 “일본의 망언을 막지는 못할망정 일본과 같은 논리의 책을 내고 돈을 벌어먹는 사람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라니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다음 심리는 9월 17일 오후 2시에 열릴 예정이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옛 여인에 빠지다(조혜란 지음, 마음산책 펴냄) 춘향에서 향랑까지 고전소설에 등장하는 여성 15명을 다시 불러내 그들의 삶에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투영해 본다. 저자는 전작 ‘옛 소설에 빠지다’로 고전소설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을 귀띔했던 조혜란 이화여대 국문학과 부교수. ‘구운몽’의 백능파, ‘만복사저포기’의 그녀, ‘삼한습유’의 마모 등 고전소설 속 여성 캐릭터 15명을 분석함으로써 욕망, 가부장제, 섹슈얼리티, 버림받은 자에 대한 통찰 등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탐구주제들을 돌아본다. 예컨대 ‘사씨남정기’의 교채란은 남편을 모함하고 정부와 도망치는 악인의 전형으로 묘사됐지만 지금이라면 지극히 욕망에 충실한 여성으로 복권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고전에 매몰된 캐릭터들에게 새로운 의미의 옷을 입히는 과정에서 그 소설들을 정독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면, 그건 ‘덤’이다. 344쪽. 1만 6000원. 진화하는 민주주의(김상준 지음, 문학동네 펴냄) 자생적 민주주의가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이슬람 등 비서구 지역에서는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조명했다. 이를 통해 저자(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는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유럽을 정점으로 발전한 역사의 결과물로만 단정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17세기 유럽 지식인 중에도 중국과 조선을 철학자가 통치하는 선진정치의 모델로 받아들인 이가 있었다는 것. 즉 서구에서 기원해 비서구 지역으로 전파된 것으로 인식된 민주주의는 오랜 고정관념이며 비서구 지역의 문화에서 이미 자생적 민주주의의 토양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결론이다. 주 예산의 40%를 주민 결정에 맡긴 주민자치예산제도를 운영하는 인도 케랄라 주, 빈곤가구 현금지원 정책 ‘보우사 파밀리아’를 실시한 브라질 등이 그 예다. 비서구 지역에서 약진하는 민주주의는 기존 민주주의 체제가 보여주지 못한 활력과 창조성을 내재하고 있으며, 서구 중심을 벗어나 다원 균형 문명으로 발전하는 과정에 주목할 것을 제안한다. 344쪽. 1만 5000원. 세기말 빈(칼 쇼르스케 지음, 김병화 옮김, 글항아리 펴냄)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빈은 한마디로 지성의 용광로였다. 미국의 문화사 연구가인 저자는 세기 말 빈 사회의 다중적인 모습을 조명함으로써 문화의 본질을 들춰보는 방대한 작업을 했다. 당시 빈 사회는 과학과 예술의 양립, 도덕과 탐미주의의 공존 등 이중적 대립구도가 곳곳에 혼재했다. 자아, 기성가치와 질서의 해체가 급속히 진행되던 역사적 무대에 초점을 맞춘 뒤 그 다중적인 면모를 통찰하는 저자의 지적 편력이 책갈피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문학, 건축, 미술, 음악, 심리학 등 당대 유럽지성사를 풍미했던 주역들이 한 무대에서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문화역사를 직조해 나갔는지를 재확인한 저술이다. 사회에 억압된 본능을 회화로 표현한 클림트, 사회적 무기력감을 극복한 코코슈카의 표현주의 회화, 쇤베르크의 현대음악 등이 빈이라는 특정공간을 무대로 복기된다. 그런 작업을 통해 책은 신통하게도 ‘역사’와 ‘오늘’이 얼마나 긴밀히 상호작용하는지를 웅변한다. 576쪽. 3만 1000원. 부모의 권위(요세프 크라우스 지음, 장혜경 옮김, 푸른숲 펴냄) 자녀를 유능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부모가 반드시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육 지침서다. 저자는 독일 김나지움(우리나라의 인문계 고등학교) 교장이자 30년 넘게 독일교사연합 회장을 지낸 교육 전문가. 자기밖에 모르는 응석받이 아이들이 교육현장의 문제가 되고 있는 사실을 발견한 저자는 오랜 관찰과 연구 끝에 그런 아이들 뒤에는 이른바 ‘헬리콥터 부모’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권위적’인 게 아니라 ‘권위 있는’ 부모는 아이를 어떻게 양육하는지, 부모들이 착각하는 자녀교육의 그릇된 진실이 무엇인지를 교육학의 역사, 뇌과학, 사회학 등 연구결과와 유럽 각국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소개한다. 독일의 교육 문제가 우리나라와 너무나 닮은꼴이라는 데 놀라게 되는데, 책의 제언들은 그래서 더 가치 있게 들린다. 권위 있는 부모는 아이를 부족하게 키울 줄 알고, 아이에게 집착하지 않는다는 등의 명쾌한 조언이 이어진다. 192쪽. 1만 2000원.
  • ‘궁금한 이야기 Y’ 성폭행범에게 ‘러브레터’ 150통 보낸 피해자…“사랑했다” 이면의 진실은?

    ‘궁금한 이야기 Y’ 성폭행범에게 ‘러브레터’ 150통 보낸 피해자…“사랑했다” 이면의 진실은?

    ‘궁금한 이야기 Y’ ‘궁금한 이야기 Y’에서 27일 성폭행범에게 150여통의 편지를 보낸 한 여성의 사연이 공개됐다. 지난 10일 서울 고등법원, 수의를 입은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최후의 진술을 했다. 피의자 조씨, 그의 죄목은 미성년자 성폭행이었다. 조씨는 자신보다 27살 어린 여중생 영주(가명, 당시 16세) 양을 수차례 성폭행하고 임신시키고 아이까지 낳게 했다. 하지만 조씨는 성폭행 혐의를 부인하고 단지 영주 양과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제시한 증거는 영주 양이 조씨에게 보낸 150여 통의 편지였다. 조씨는 영주 양과 결혼까지 생각하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키우고 싶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그러나 이날 제작진이 어렵게 만난 영주 양에 따르면 조씨는 영주 양에게 매일 면회를 오고 편지를 쓸 것을 요구했고 그가 사랑의 증거라고 주장하는 150여 통의 편지는 사랑이 아닌, 모두 조씨의 강요와 협박 때문에 쓴 것이었다. 전문가는 150여 통의 편지를 분석해 보면 편지가 ‘조씨가 시킨 일과, 하루 일과, 애정 표현’ 순으로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또 애정표현이 주로 편지 끝부분에 몰려 있는 것과 편지 곳곳에 분량에 대한 내용이 자주 언급되는 것을 주목했다. 이상의 점들을 종합했을 때 이 편지에는 영주 양과 조씨의 사랑 보다는 조씨에게 억압당하고 있던 영주 양의 고통이 담겨 있었다. 제작진이 만난 조씨의 전 부인과 조씨의 지인은 전문가의 주장을 뒷받침 했다. 조씨는 과거에도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를 만들기 위해 유리한 문자나 녹음을 유도했으며 불리한 상황에서는 종교까지 파는 비굴함을 보였다. 또 다른 전문가는 영주 양을 사랑한다고 호소하는 조씨의 행동을 관찰한 결과 ‘사랑한다’고 할 때 눈을 지나치게 깜박이는 것에 주목하며 자신의 행위가 내면적으로는 옳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며 이걸 정당화하기 위해 증거를 남긴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오바마 “이라크반군 타격 준비”… 軍자문단 파견

    오바마 “이라크반군 타격 준비”… 軍자문단 파견

    미국이 이라크에 군사 자문관 300명을 파견하겠다고 발표했다. 앞서 자국민 보호 병력 275명을 파견할 때처럼 전투 목적이 아니라고 강조했지만, 이라크에 들어서는 미군 숫자는 점점 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최대 300명의 군사 자문관을 이라크에 파견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필요하다면 정밀하고 선별적인 군사 행동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이라크 사태 발생 이후 오바마 대통령이 구체적 군사 행동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군사 고문단은 전투 임무가 아닌, 이라크 정부군의 병력 모집·훈련·정보 수집 분석 등을 자문하는 역할을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에도 “미군이 다시 이라크로 돌아가 전투에 투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존 케리 국무장관이 이번 주말 중동과 유럽으로 건너가 이라크 사태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케리 국무장관은 조만간 이라크도 방문해 시아파, 수니파, 쿠르드족 등이 동참하는 거국 내각을 만들라고 누리 알말리키 총리를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알말리키 총리에 대해 “그를 비롯한 이라크 지도자들이 시험대에 서 있다”면서 “이라크의 운명은 종파 간 균형에 달렸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가 알말리키 총리를 대신할 인물을 물색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알말리키 총리의 정치적 라이벌들도 비밀리에 그를 축출하기 위한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P통신은 익명의 시아파 정치인들을 인용해 알말리키 총리를 대체할 인물로 아델 압둘 마흐디 전 부통령, 이야드 알라위 전 총리 등 시아파 출신 정치인들이 거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알말리키 총리는 과도한 수니파 억압 정책과 부정부패로 이번 사태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시아파 정당 다와당의 핵심 인물인 그는 사담 후세인 정권 시절 핍박을 피해 이란과 시리아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그때부터 시아파 국가인 이란, 시리아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지원 덕에 2006년 5월 총리에 올랐지만, 취임하자마자 수니파 반군을 엄중단속하는 데 열중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영자지 걸프 뉴스는 “알말리키 총리는 수니파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했다. 그가 이라크를 파멸시켰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4월 이라크 정부군이 수니파 거점 지역인 하위자를 습격하는 와중에 민간인 53명이 사망하는 ‘하위자 사건’이 발생하면서 민심도 등을 돌렸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세월호 유족들 아픔 딛고 삶의 주인으로 다시 일어서길”

    “세월호 유족들 아픔 딛고 삶의 주인으로 다시 일어서길”

    “때로는 트라우마가 삶을 지혜롭게 사는 방법을 깨닫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고 피해자가 아닌 삶의 주인으로서 다시 일어서야 할 때입니다.” 20일 트라우마 치유를 돕는 국제 비영리 조직 ‘카파시타르 인터내셔널’의 창립자 페트리샤 케인(미국)은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해 한국 국민이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기 어렵겠지만, 이 순간이 내면을 들여다보고 삶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한국비폭력대화(NVC)센터 초청으로 지난 17일 방한한 케인은 “세계 여러 곳에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과 대화를 해 봤지만 세월호 참사처럼 자식 잃은 부모의 고통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냐”면서 “고통을 치유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유가족이 사고의 피해자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나갈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페인어로 ‘힘을 불어넣다’, ‘서로에게 생기를 불어넣다’라는 뜻의 카파시타르는 미국, 아프리카, 유럽, 중동, 아시아 대륙 40여개국에 네트워크를 가진 국제 조직이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르완다, 일본, 미국 등에서 폭력과 재난, 가난, 트라우마 등으로 고통받는 공동체를 위한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케인은 “한국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독재정권의 억압 등으로 오랜 시간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세월호 사고로 국민들 내면에 가라앉아 있던 트라우마가 은연중에 자극을 받아 더 큰 고통을 느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카파시타르가 지향하는 목표는 ‘우리 스스로를 치유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치유하자’는 것”이라면서 “한국 국민이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삶이 나를 또 희생자로 만들었다’는 식의 생각이 아닌 ‘무기력하고 절망스러웠던 예전과는 다르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수록 나라 전체에 활력이 생겨날 것”이라고 조언했다. 글 사진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이라크, 반군 공습 요청… 美 “총리 사임부터 하라”

    수세에 몰린 이라크 정부가 미국에 이슬람 수니파 반군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에 대한 공습을 공식 요청했다. 정치적 선택을 놓고 고심 중인 미국을 ‘압박’한 것인데 실상 미국에선 “당장 공습은 어렵다”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도리어 국가·종파 통합에 실패한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의 퇴진론이 불거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 중인 후슈야르 지바리 이라크 외무장관은 18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이라크 정부는 양국 간 안보협정에 따라 테러단체 ISIL을 공습할 것을 미국에 요청했다”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반군을 지원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에도 “우리의 뜻은 테러행위에 맞선 이라크의 입장을 받아들여 달라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에 미국의 고민도 깊어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해리 리드 민주당 원내대표 등 상·하원 대표들을 만나 이라크 사태를 논의하며 “공습 등에 의회의 인가는 필요하지 않다”는 의중을 전달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지상군 파병을 제외한) 다른 선택지들을 고려하고 있다”며 공습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러나 로이터 등 외신들은 “반군이 민간인과 섞여 생활하는 데다 뚜렷이 구별되는 그들만의 표지가 없다”며 공습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 관리들도 AP통신에 “오인 사격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오바마가 당장은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미 정가에서는 공습보다 ‘이라크 총리 거취’가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인디펜던트는 이날 “미국이 이라크 고위 관료들에게 ‘총리가 사임할 때까지 미국의 군사지원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수니파 억압책으로 종파분쟁을 촉발한 총리의 퇴진 없이 수니파와 시아파 간 중재가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의 영향력으로 그 자리에 앉은 총리가 현재 이란의 수족 노릇을 하는 것도 미움을 산 원인으로 지적된다. 내전 위기 확산으로 세계 경제엔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ISIL이 남쪽으로 진격함에 따라 이라크 내 원유 90%를 차지하는 남부 지역의 석유기업들은 이라크에서 발을 빼고 있고, 일부 지역에선 원유 사재기까지 발생하고 있다. 엑손모빌은 이미 남부 웨스트 쿠르나 유전에서 이라크 국적이 아닌 근로자들을 철수시켰고, BP(브리티시페트롤리엄)는 남부 루마일라 유전의 비필수 인력을 피신시켰다. 또 반군이 이라크 최대 정유공장을 공격해 국제 원유시장의 불안정성도 커져가고 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이라크군 지휘하는 이란… 중동 장악 야심

    이라크군 지휘하는 이란… 중동 장악 야심

    ‘시아파 종주국’ 이란이 이라크 사태에 점점 깊게 개입하고 있다.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의 손에 이라크가 넘어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는 상황이어서 이란의 이라크 지원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벨트’를 구축해 중동의 지배자가 되려는 야심이 어른거린다. 이란의 개입이 중동을 종파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복수의 이라크 정부 관계자는 16일(현지시간) 이란 정예부대 ‘쿠드스’(Quds)의 카셈 술라이마니 사령관이 바그다드에서 이라크군을 돕고 있다고 AP통신에 밝혔다. 이란군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술라이마니는 이라크 정부군과 시아파 민병대의 전투태세를 점검하는 한편, ISIL 격퇴 전략을 짜는 등 사실상 이라크군을 지휘하고 있다. 서방의 협공 속에서도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이끄는 시리아 시아파 정권을 지켰던 쿠드스가 이라크 시아파 정권의 수호자로 나선 것이다. AP에 따르면 술라이마니의 이라크군 지휘는 미국에 사전 통보됐다. 이란의 지원 덕택에 그동안 이라크에서 ‘시아파 독재’를 해온 누리 알말리키 총리도 강경 노선을 고수할 수 있게 됐다. 뉴욕타임스(NYT)는 “알말리키 총리가 수니파와 쿠르드족을 포용하는 범종파적 정부를 꾸리라는 미국의 요구를 무시한 채 시아파 민병대를 모집하는 등 종파분쟁을 더 부채질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란의 ‘적극적 개입’은 미국의 ‘소극적 개입’ 때문에 가능해졌다. 미국은 이라크전 종전 선언과 철군으로 다시 지상군을 투입하기 어려운 처지이지만, 이란은 ISIL과 전쟁을 직접 수행해 전리품으로 이라크를 완전한 ‘시아파 국가’로 만들고 싶어한다. 더욱이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35년 동안 ‘숙적’이었던 미국과 처음으로 이라크에서 ‘ISIL 격퇴’라는 공동의 목표가 생겼다. AP는 “불과 1주일 전만 해도 미국의 목표는 이라크 내 이란 영향력 차단이었다”면서 “ISIL 봉기 때문에 상상할 수 없던 우호 관계가 펼쳐지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미국은 1980년대 수니파였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지원해 이란과 8년 동안 전쟁을 치르게 할 정도도 이란 억제에 온 힘을 쏟았다. 그러나 이란의 ‘시아파 벨트’ 구축은 중동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수니파 국가들을 자극할 게 뻔하다. 당장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날 내각회의를 열고 “이라크 정부가 수니파를 억압하는 종파정책을 편 것이 사태의 원인”이라면서 “이라크 사태에 외국의 개입을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라크 서부와 180㎞에 걸쳐 맞닿아 있는 요르단도 국경 방어 태세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더욱이 미국과 이란이 ISIL의 봉기를 진압한 뒤에는 다시 대립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사태 진압 후 종파를 아우르는 친미정권을 세워 세계 제2의 산유국을 계속 자국의 통제하에 두려 하겠지만 이란은 이라크를 영원한 시아파 국가로 남기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NYT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종파와 국가의 이익을 위한 합종연횡으로 중동 정세가 다시 짜여지고, 시아파와 수니파의 대립이 격해져 제3차 걸프전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 아무리 노력해도 담배 끊기 힘든 이유, 알고보니…

    아무리 노력해도 담배 끊기 힘든 이유, 알고보니…

    몸에 안 좋은 것을 잘 알고 나름 노력해보지만 좀처럼 쉽지 않은 것이 ‘금연’이다. 이와 관련해 담배를 끊기 어려운 이유가 ‘뇌 보상 심리’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최근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연구진은 니코틴 공급량이 줄어든 흡연자들의 뇌 모습을 자기공명영상장치(MRI)로 비교·분석해 심리적 보상 작용이 금연에 밀접한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이 수행한 실험내용은 이렇다. 지난 1년간 적어도 하루에 10개비 이상 담배를 피우는 18~45세 사이 흡연자 44명을 대상으로 먼저 12시간동안 금연하도록 지시했다. 시간이 지난 후, 연구진은 흡연자들에게 카드 맞추기 게임을 진행하도록 했는데 이는 금전적 보상이 제시되는 경기였다. 참고로 이들은 게임 시작 전 실험이 종료되는 2시간 후에 담배를 필 수 있다는 조건을 들은 상황이었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연구진은 자기공명영상장치를 통해 흡연자들의 뇌 활성정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관찰했다. 이후 나타난 결과는 흥미로웠다. 실험 참가자들 중 일부는 휴식시간이 주어졌을 때, 담배를 피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뉘었는데 담배를 피우지 않은 사람들은 MRI 상에서 뇌 활성도가 상당히 높게 관측된 그룹이었다. 이들은 카드 게임에서 얻을 금전적 보상에 민감한 그룹이었다. 반면 카드 게임에서 주어질 금전적 보상에 민감하지 않은 그룹은 계속 담배를 피웠다. 연구를 주도한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심리학과 스티븐 윌슨 교수는 “평소 담배 유혹을 참지 못하는 흡연자는 뇌 심리적 보상 활동에서도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 MRI 상에 나타났다”며 “이 결과는 금연이 두뇌 보상 심리와 상당한 인과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 한다”고 설명했다. 심리학에서 정의하는 보상심리는 정신적으로 억압된 욕구를 다른 형태로 보상받으려는 경향을 뜻한다. 생리작용에서 어느 기관(器官)이 손상되면 다른 기관이 그 작용을 보완하는 것처럼 스스로 자아의식을 높임으로써 상황을 극복하려는 것이다. 그는 “예를 들어, 심리적 보상을 충족시키는 상황을 임의로 연출하는 방식을 금연 치료법에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진=포토리아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동성애 사회에서 HIV감염자 더 소외…그게 가장 힘들어”

    “동성애 사회에서 HIV감염자 더 소외…그게 가장 힘들어”

    “이 정도면 잘 견뎌 온 거니까… 스스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습니다.” 박동민(43·회사원·가명)씨는 지난 3일 서울 종로의 한 술집에서 파티를 열었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 판정을 받은 지 20년 되는 해를 ‘자축’하는 자리이자 ‘2014 퀴어(성소수자)문화축제’의 사전 이벤트였다. 병에 걸린 걸 축하한다는 게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김씨는 담담하게 말했다. “20년 전만 해도 ‘걸리면 죽는 병’이라고 했는데 지금껏 잘 살아왔잖아요. 저와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에게 ‘우리도 건강하고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어요.” 박씨가 겪은 지난 20년은 또래보다 고단했다. 21세 되던 1992년 그는 동성을 만날 때 가슴이 떨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994년 교통사고로 입원한 뒤 HIV에 걸렸다는 사실을 들었다. 당시만 해도 죽는 병으로 알았기 때문에 겁이 났다. 회사를 그만뒀고 긴 방황이 시작됐다. 1998년, 그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HIV 감염 사실과 성 정체성을 ‘커밍아웃’(동성애자임을 주변에 공개적으로 알리는 것)했다. 다행히 박씨의 사연을 들은 동성애 인권단체 등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동성애와 HIV. 하나의 무게도 견디기 어려웠지만 우리 사회의 거대한 두 편견과 싸워야 했다. 박씨는 “가장 힘든 건 동성애자 사회에서조차 HIV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냉대하는 현실이었다”고 회고했다. 몇 해 전 게이들이 가는 술집 주인이 박씨가 마신 컵을 모두 가져다 버리고 그가 앉았던 자리를 표백제로 청소했다는 얘기를 듣고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20여년간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많이 줄어든 듯하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박씨의 생각이다. 그는 “성소수자에 대해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내 주변에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어 “20대에는 살아가기보다 살아남기 급했고 30대에는 상처받기 싫어 도망치기 바빴다”면서 “하지만 이제 아무렇지 않은 척 먼저 다가가 말을 걸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어느 순간부터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아 사진 찍는 걸 주저했는데 이제는 사진도 많이 찍고 연애도 당당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씨를 비롯해 사회적 편견과 싸우는 동성애자들이 주인공인 퀴어문화축제는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7일 서울 신촌 연세로에서 퍼레이드로 막을 연다. 올해로 벌써 15년째다. 서대문구청이 축제를 2주일 앞두고 세월호 참사 추모 분위기를 이유로 들며 퍼레이드 등 축제 승인을 취소했지만 주최 측은 집회 신고를 하고 강행할 예정이다. 동성애 단체 관계자는 “보수 기독교단 등 동성애 혐오 집단이 구청 등에 민원을 내 취소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첫해에는 고작 50여명이 참가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참가자가 늘어 올해엔 2만명가량 모일 것으로 주최 측은 내다봤다. 강명진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장은 “국내 성소수자는 350만~400만명에 이르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벽장 속에 숨어 있다. 1년에 한 번 억압에서 해방돼 자신을 드러내고 걸어 볼 수 있는 때가 퀴어문화축제 기간”이라고 설명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김희리 기자 heeree916@seoul.co.kr
  • [오늘의 눈] ‘나라’ 없는 나라/정서린 문화부 기자

    [오늘의 눈] ‘나라’ 없는 나라/정서린 문화부 기자

    ‘어디 남태평양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섬은 없을까. 국경도 없고 경계도 없고 그리하여 군대나 경찰은 더욱 없는. (중략) 아, 그런 ‘나라’ 없는 나라가 있다면!’ 최근 이시영 시인(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의 새 시집에 담긴 시 ‘‘나라’ 없는 나라’의 구절이다. 지난 4월 말 세월호 참사의 한복판을 통과하고 있을 때라 제목도 내용도 의미심장했다. 어떤 연유로 쓰게 된 시인지 묻자 시인은 일본 오키나와현 요나구니 섬 얘기를 꺼냈다. 요나구니 섬은 일본 최서단 국경이나 타이완과의 거리가 108㎞에 불과하다. 때문에 예부터 물자·유학생·관광 등의 교류가 타이완과 더 활발했다. 하지만 1945년 일본 패전으로 미 군정기를 거쳐 국경이 강화되면서 이는 차단됐다. 최근에는 중국·일본 간 센카쿠 분쟁으로 일본 정부가 자위대 주둔 계획까지 내놓으며 생활권인 타이완과의 괴리, 주민들의 고립과 불편은 더 심화되고 있다. 시인은 그때 생각했다고 한다. ‘국가가 국민들을 진정 위하기보다 되려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여기서 비롯된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단순한 의구심은 세월호 사건을 겪으며 분노의 물음으로 바뀌었다. ‘이게 국가인가.’ 요즘 새로 나온 문학작품들 중에는 ‘불신의 대상, 억압의 주체’로 그려진 정부가 유독 눈에 띈다.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와 이후 33년을 다룬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 인간이 말을 빼앗긴 세상을 그린 정용준의 소설 ‘바벨’에서는 폭력이 된 권력 앞에서 서로 껴안는 약자들의 연대가 빛났다. ‘말이 되지 못한 분노와 슬픔을 표현하는 업’을 지닌 이들인 만큼 세월호 참사 이후 무력감과 절망을 호소하는 작가들도 많았다. 지난 2일 문인 754명은 결국 계파와 세대를 넘어 시국선언을 했다. 선언문에서 이들은 “문학은 본래 세상의 모든 약한 것들을 위한 것이고 세상의 가장 위태로운 경계에 대한 증언”이라고 적시하고 “그래서 오래 기억하고 그치지 않고 분노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참사의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이 국가를 개조하겠다고 나서는 오만과 착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위임받은 권력으로 국가를 참칭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오늘은 이기고 진 쪽의 희비가 갈린 날이다. 선거에만 유능하고 국민들과의 공감 능력에는 무능한 정부, 자신에게 향한 화살을 타인에게 돌려세우는 정부. 그리하여 국민들에게 ‘나라 없는 나라’를 꿈꾸게 하는 정부. 이기고 지는 쪽, 모두가 되풀이해선 안 될 현재이자 걷어내야 할 과제인 것이다. rin@seoul.co.kr
  • [세계의 창] 억압과 통제 그 톈안먼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세계의 창] 억압과 통제 그 톈안먼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1989년 중국 베이징 톈안먼(天安門)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한 ‘6·4 톈안먼’사태가 일어난 지 4일로 25주년이 된다. 그 사이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대국으로 성장했지만 시위대가 요구했던 정치·사회 개혁은 제자리걸음이다. 톈안먼사태의 배경이 된 부정부패 등의 사회문제는 오히려 그때보다 심해졌고 민주 개혁 요구에 대한 당국의 억압과 통제 역시 한층 강화됐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지난 1일 세계 최대 광장이자 베이징의 심장부로 불리는 톈안먼광장을 찾았다. 광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마다 공항 검색대를 방불케 할 정도로 삼엄한 경비가 펼쳐졌다. 수도 베이징에만 10만여명의 보안 요원이 배치돼 최고 수준의 경비·경계령이 발동됐다는 외신 보도가 실감났다. 미국에 서버를 둔 중화권 매체 보쉰은 중국 당국이 최근 군대와 무장경찰, 소방당국에 통지문을 보내 임전 태세 돌입을 지시했으며 이런 상황은 앞으로 2개월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톈안먼사태 묻자 “그 폭동 말하는 거요?”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톈안먼사건을 아느냐”고 묻자 대부분 고개를 저었다. 쓰촨(四川)성에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자오(趙·40)모씨는 “‘톈안먼 폭란(暴亂·폭동)’을 말하는 거냐”고 답했으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 당국은 시위 당시 인민일보 사설을 통해 사건을 ‘반혁명적 폭동’이라고 규정했다가 2004년부터 ‘1989년의 운동 풍파(정치 풍파)’라고 바꿔 부르고 있다. 중·고교 교과서에도 언급되지만 사회주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사건을 제대로 알기가 힘들고 진상을 입에 올리는 것도 여전히 금기다. 중국 대학생들 중 상당수는 인터넷 등을 통해 톈안먼사태를 접했다면서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중국의 정치 기류와 사회 형태가 1980년대와 달리 안정적이고, 젊은이들이 정치 개혁보다 돈 버는 일에 관심을 두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한 중국 전문가는 “톈안먼사태가 일어난 세 가지 원인은 부정부패와 물가 상승 그리고 민주화 요구인데 당국이 ‘부패와의 전쟁’에 총력을 쏟고 있고, 경착륙 우려 속에서도 물가를 억제하면서 민심을 달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당국이 민주 인사들을 잡아들이는 등 통제의 고삐를 조이는 것도 사태에 대한 관심과 재평가 요구를 억누르는 주요 요인이다. ●민주화 요구에 반부패·물가 통제로 입막음 당국은 지난 5월 초 베이징의 한 가정집에서 ‘6·4 톈안먼사태 기념 토론회’를 위해 모인 인권변호사 푸즈창(浦志强) 등 민주 인사 5명을 공공질서 문란 혐의로 체포했다. 타이완 중앙연합신문망에 따르면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 말까지 인권운동가 228명이 당국에 체포됐다. 2일에도 왕젠민(王健民) 등 홍콩에서 활동 중인 반체제 성향의 언론인 2명이 체포됐다고 타이완 자유시보가 전했다. 당국은 톈안먼사태에 대한 추모 활동이 이뤄지지 못하도록 지난달 27일부터 ‘중국판 카카오톡’인 웨이신(微信)을 집중 단속하고 있다. 당시 시위에 참가한 베이징대 출신의 류쑤리(劉蘇里)는 “비록 사람들이 톈안먼사태를 잊은 듯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있지만 중국 사회의 허리 세대는 사건을 잊지 않고 있다. 어떤 임계점을 계기로 침묵하는 이들 다수가 함께 입을 열 날이 올 것임을 공산당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침묵… 언젠가 함께 입 여는 날 올 것” 톈안먼사태로 이어진 당시 학생운동은 개혁파 후야오방(胡耀邦)의 급작스러운 사망이 도화선이 됐다. 1980년부터 총서기를 맡은 후야오방은 정치 개혁을 주장하고 당시 성행하던 학생 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1987년 실각했으며 2년 뒤인 1989년 4월 15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당시 그의 죽음을 기리는 대학생들이 톈안먼광장에서 벌이던 추모 모임이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로 바뀌면서 유혈 사태로 이어졌다. 톈안먼사태는 1989년 4월 15일 후야오방 서거일부터 같은 해 6월 4일 당국의 유혈 진압으로 시위가 끝나기까지의 전 과정을 말한다. 시위는 톈안먼광장은 물론이고 중국 전역 400여개 도시에서 함께 이뤄졌다. 중화권에선 톈안먼사태라는 이름은 시위가 톈안먼에서만 이뤄졌다는 인상을 준다며 ‘89 민주화 운동’으로 불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톈안먼사태와 후야오방의 깊은 인연 때문에 공산당 지도부나 관영 매체가 후야오방을 언급할 때마다 그의 복권과 톈안먼사태 재평가가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기대로 술렁인다. 지난 4월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이 후야오방 생가를 방문했을 때도 이러한 관측이 고조된 바 있다. 사회과학원 출신의 역사학자 장리판(章立凡)은 “후야오방은 중국 공산당 계보에서 개혁과 청렴을 상징하는 최대 자산으로 현 정권은 인민 지지를 높이는 데 그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라면서 “톈안먼사태 재평가는 공산당의 자기 부정이고 재평가를 기점으로 각종 불만 시위와 폭동이 도미노처럼 확산될 수 있어 재평가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문턱 넘을 수 있게 손 내밀고 함께 걸어간 ‘위대한 동행’ 이야기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문턱 넘을 수 있게 손 내밀고 함께 걸어간 ‘위대한 동행’ 이야기

    쇠이유, 문턱이라는 이름의 기적/베르나르 올리비에·다비드 르 브르통·다니엘 마르첼리 지음/임수현 옮김/효형출판/208쪽/1만 3000원 어른에게 억압받고 생존이 절박해진 청소년들에게 사회의 문턱은 무엇보다 높고 완고하다. 그들에게 문턱을 넘어가도록 손을 내민 사람들이 있다. 프랑스의 사회단체 ‘쇠이유’(seuil·문턱)는 함께 길을 걸으며 자유를 향한 문턱을 넘도록 돕는다. 최근 국내 출간된 ‘쇠이유, 문턱이라는 이름의 기적’은 2000년부터 그들이 쌓아온 이야기다. 쇠이유의 시작은 ‘살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60세에 은퇴한 뒤 지독한 우울증에 빠진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이야기다. 삶의 의욕을 잃은 그는 도망치듯 스페인 북부 갈리시아의 콤포스텔라를 향해 몸을 던졌다. 프랑스 파리에서 갈리시아에 이르는 2300㎞를 두 발로 걸으면서 그는 여전히 건재한 자신을 느끼고 낙관적인 생각을 품었다. 삶을 재구성하면서 미래의 계획들을 구체화했다. 그는 “계속해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삶은 아무런 의미도 없음을 깨달았”고 “누구를 위한 일이어야 할까”를 자문했다. 그리고 답을 찾았다. “걷기가 한 절망적인 퇴직자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면, 사회 밖으로 추방된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벨기에 플랑드르의 걷기 프로그램 ‘오이코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2000년 5월 쇠이유를 만들었다. “아무리 심각한 상태의 청소년일지라도 그 자신이 모르는 지성적이고 육체적인 자원들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을 철학으로 삼았다. 문제를 겪는 청소년이 자원봉사자인 동행자와 외국의 한 나라를 선택해 100일 동안 2000㎞를 걷도록 했다. 그 걷기에는 휴대전화나 MP3 기기 없이 오로지 대화만 있었다.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강요 대신 낯선 세상에 부딪히고 적응하는 능력을 안겼다.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는 데 교도소와 몽둥이부터 떠올리는 교육 프로그램과는 확실히 다른 대안이었다. 동행자로 나섰던 안토니 비고와 크리스토프 피크말의 회고에서, 도움이 절실한 청소년이었던 발레리 들릴과 함자 훌리의 이야기에서, 걷기의 참 의미를 엿볼 수 있다. 안토니와 함께한 하메드는 권위와 독재를 혼동하는 아버지에게 억압받았고, 교사를 폭행한 문제아였다. 늘 주눅 들어 있던 하메드는 프랑스 브리앙송에서 이탈리아 카찬차로로 향하는 사이, 악기를 만드는 사람에게서 미소를 배우고 성당 안 무대에서 소박한 원맨쇼를 하며 행복을 느꼈다. 처음 본 바다에서 순수한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여행이 끝날 무렵 그는 감정의 균형을 잡았고, 자신의 의사를 명확하게 전달했다. 물론 걷기에 참여한 아이들이 모두 안정을 찾은 것은 아니다. 다비드는 모범적인 여행을 했지만 두 달 뒤 다시 교도소로 들어갔다. 하지만 다비드는 동행자 크리스토프에게 “이번엔 내가 극복을 못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다음 번엔 꼭 하겠다”는 편지를 보내면서 희망을 안겼다. 쇠이유는 그에게 여전히 튼튼한 울타리인 셈이다. 책은 쇠이유의 활동과 함께 ‘위대한 동행’의 사회·심리적 의미를 전하면서 ‘억압’과 ‘교화’를 오가는 청소년 교육이 어디로 흘러가야 할지 암시한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세계의 창] ‘아랍의 봄’ 밀어내는 시리아·이집트 두 권력자 가상인터뷰

    [세계의 창] ‘아랍의 봄’ 밀어내는 시리아·이집트 두 권력자 가상인터뷰

    2011년 1월 튀니지에서의 재스민 혁명을 시작으로 중동과 북아프리카 독재자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법의 심판대에 세워질 때도 그는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다. 지독한 내전으로 국토가 쪼개지고 지난달까지 16만 2000명이 사망했지만 여전히 시리아를 철권통치하고 있는 바샤르 알아사드(48) 대통령 얘기다. 왕정을 시행하지 않는 아랍권 국가 중 유일하게 2대째 40년 넘도록 독재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다음 달 3일 자신이 당선될 수밖에 없도록 짜여진 대선을 통해 정권을 연장할 예정이다. 그런가 하면 이집트에서는 약 30년 동안 독재를 하던 군인 출신 대통령을 끌어내린 지 3년여 만에 다시 군부 권력자가 대통령이 되려 한다. 이집트 최초의 민주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을 몰아낸 압둘팟타흐 시시(59) 전 국방장관은 26~27일(현지시간) 이틀간 실시되는 대선에서 당선이 확실시된다. ‘아랍의 봄’ 열풍과 국제사회의 민주화 노력에도 독재의 권좌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 두 권력. 미국과 유럽의 주요 외신 기사와 관련 도서 등에 나타난 사실들을 바탕으로 가상 인터뷰를 구성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알라위파·기독교도 날 필요로 해… 전 세계가 하야 원치 않는다” 언젠가 내가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처럼 피투성이로 모랫바닥에 뒹구는 모습을 상상했다면 뭘 몰라도 한참 모르고 있는 것이다. 리비아와 내 나라 시리아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 카다피의 부족 카다파는 세력이 워낙 강해서 카다피가 없어진 지금도 과도 정부군이라는 자들이 쉽사리 건드리지 못할 정도다. 그런데 우리 알라위파는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뒤 처음으로 권력을 잡긴 했지만 고작 200만명뿐이다. 우리나라의 군대와 정치체제를 장악하고 있는 나와 우리 일족이 무너지면 인구의 9%에 불과한 알라위파가 무사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라. 74%에 달하는 수니파의 근본주의자들과 13%의 시아파가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시리아보다 알라위파가 많은 나라는 없다. 시리아 밖에도 갈 곳이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들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 목숨도 내놓을 수 있다. 그뿐이 아니다. 이 나라 인구의 9% 정도에 해당하는 기독교도들도 내가 없으면 한 명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물론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탄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을 보호해 온 내가 건재하는 한, 중동에서 시리아만큼 기독교도가 살기 좋은 나라는 없다. 기독교도들을 심하게 차별하고 박해한 리비아나 이집트에선 이들이 반정부 시위에 가담했다. 그러나 시리아의 기독교도들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처럼 나를 위해서라면 자폭도 주저하지 않는다. 알라위파와 기독교도들에게 알아사드의 시리아가 절실한 만큼 그들은 용맹하다. 카다피가 리비아의 테러리스트들에게 밀리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인지 아는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로 미국과 서방 놈들이 하늘을 장악하면서부터였다. 그런데 왜 내 나라에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지는 누구나 알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럼 러시아와 중국이 왜 지난 3년 동안 내 나라에 개입을 결정하는 안보리 결의안에 4번이나 비토(거부권)를 행사했을까. 푸틴은 나를 버릴 수 없다. 왜냐하면 권위주의적인 그의 세상에서 나는 상징적인 푸틴이고 그래서 그는 내가 지는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어려운가. 푸틴은 내가 패배하는 세계에서는 그도 언젠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게다가 러시아는 방위산업 관련해서 시리아와 총 40억 달러(약 4조 1000억원)어치의 계약을 맺고 있다. 우리는 2009년과 2010년에 러시아 무기를 사는 데 각각 1억 6200만 달러씩을 썼다. 5억 5000만 달러짜리 훈련용 전투기 공급 계약도 맺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러시아는 우리의 타르투스 항을 임대해서 해군을 주둔시키고 있다. 미국이 패권을 휘두르는 세계를 저지하는 것이 지상 목표인 그들에게는 중동에 군항이 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중국이 왜 우리 편을 드는지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다만, 자기네 나라에서 독립을 원하는 티베트와의 문제도 있고 해서 기본적으로 ‘남의 나라 내부의 일에 외국이 간섭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리비아 때도 중국은 기권을 했지 않은가. 그럼 미국은 내가 내려가길 진심으로 원할 것 같은가. 이스라엘은. 이들이 또 하나의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팔레스타인을 바랄 것으로 보이나. 한 번 잘 생각해 보시라. ■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前 국방 “무르시는 경제 살리기에 실패… 국민이 날 지지하는 이유다” 이집트 민중에게 경찰은 민중을 억압하는 권력이지만 군인은 영웅이자 혁명의 수호자로 각인돼 있다. 무바라크가 물러나고 국민투표에 부쳐진 헌법개정안의 찬성률이 77%에 달했던 이유는 그 개정안을 투표에 부친 것이 바로 최고군사위원회였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첫 번째 대통령도 군인이었다. 위대한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은 중령이었던 1952년 혁명을 일으켜 왕정을 폐지하고 이집트아랍공화국을 건설했다. 그 전까지 우리가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았던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자그마치 2300년이다. 기원전부터 계속돼 온 이민족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해 준 것이 군인이었다는 말이다. 나는 지난 3월 군복을 벗기 전까지 평생을 군인으로 살았다. 나의 형제들은 재판관, 공무원이 됐고 사촌은 아라베스크 양식 가구의 세계적인 명인이었던 할아버지에게서 가업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나는 40년 이상을 군 기관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군이 운영하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군관 학교를 나와 장교가 된 것이 23세 때였다. 물론 이집트 국민이 나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이유는 군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국민은 지난해 민중을 수호하는 군인으로서 테러집단의 수괴 무함마드 무르시를 축출한 내가 이 땅에서 무슬림형제단을 뿌리 뽑기를 바라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잘 모르고 있는 부분인데, 이집트에서 무슬림형제단은 테러리스트들이고 우리는 그들에게 사형을 선고한 공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무르시는 2011년 국민이 군과 함께 이뤄낸 혁명의 성과를 가로챘을 뿐 아니라 병든 이 나라의 경제를 살려내는 데 실패했다. 그는 정권을 잡은 뒤에 우리의 피가 그를 뒷받침해 줬다는 사실을 잊은 듯 행동했다. 무르시에 의해 국방장관이 된 나는 숨죽인 채 때를 기다렸다. 결국 그를 권좌에 세웠던 국민은 그에 대항하는 시위를 벌였다. 내가 무르시를 축출한 것은 국민의 부름에 대한 응답이었다. 이집트 국민은 나를 자애로운 아버지로 여긴다. 위대한 나세르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특히 카이로의 거상인 내 배경과 경제적 능력 덕분에 부유층과 지배 계층이 나를 폭넓게 지지한다. 나는 벌써 사막지대의 넓은 땅을 기부했다. 물가가 내려가도록 정부에 주문했고 농경을 위한 수로 정비를 요청했다. 국민은 무르시가 재건에 실패한 나라를 내가 바로 세우고, 다시 전 세계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오게 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나는 그것을 국민에게 약속했다.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미국이다. 내가 대통령이 된 이집트를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미국의 속내를 뚜렷하게 알 수 없다는 점이 더 신경쓰인다. 내 지지자들은 미국이 무슬림형제단을 지원했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내가 무르시를 끌어내린 것을 쿠데타로 규정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무슬림형제단의 지원자로 알려진 앤 페터슨 주카이로 미 대사가 떠난 자리를 빈 채로 두고 있다. 그러나 나는 미국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선거가 끝나면 미국과 유럽은 내 뒤에 이집트 국민이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수백만의 국민이 나에게 투표하고 나면 미국과의 관계는 따뜻해질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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