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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화의 섬 교동도 황금들녁길 걷기 1,000여명 참가해 성황

    평화의 섬 교동도 황금들녁길 걷기 1,000여명 참가해 성황

    인천광역시와 강화군은 실향민의 아픔이 서려 있는 북녘(황해도 연백) 땅이 지척에 보이는 평화와 통일의 섬 교동도에서 “섬과 사람을 잇는 다리, 통일로 가는 길”주제로 걷기 행사를 지난 21일 10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하였다.행정안전부, 통일부, KT와 인천광역시, 강화군, 인천관광공사는 지난 3월 28일 「평화와 통일의 섬 교동도 프로젝트」 업무협약 일환으로 교동도의 문화⁃역사 자원를 널리 알려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 하고자 지역주민과 함께 이번 행사를 준비하였다. 교동도는 북한과 불과 2.6km 떨어져 있어 맑은 날 개성의 송악산이 보이고 전지역이 민간이 출입이 제한된 민통선 청정지역으로 교동도쌀이 밥 맛 좋기로 유명하다. 참가자들은 평화의 다리 교동대교 광장에서 평화와 화합을 염원하는 힘찬 구호와 함께 출발하여 교동도의 황금들녁 해안길 8.4km를 3시간 동안 걸으면서, KT가 구축한 교동도어플과 비콘을 활용해 코스 중간 중간에 교동도의 문화⁃역사 보물(박두성생가, 월선포, 동진포, 교동읍성, 교동향교, 남산포, 망향대 등)찾기 게임도 하고 해안길의 억새와 들길의 이름 모를 잡초를 밟아 가면서 때 묻지 않은 교동도의 자연과 황금색으로 물들어가는 가을 들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특히 완주 후에는 교동도제비집에서 교동도망향가, 교동면농악대 풍물놀이, 교동도사진전, 가상의 평화 다리와 교동신문 만들기, 평화자전거길 체험 등을 지역주민과 함께 함으로서 참가자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었으며, 또한 참가자 전원에게는 완주증과 함께 교동도쌀, 소래습지생태공원 소금 등 푸짐한 기념품도 주었다. 내년에도 인천광역시와 강화군은“평화의 섬 교동도 길 걷기”행사를 더욱 알차고 재미있게 준비하여 참가자에게는 유익하고 좋은 추억을 선사함은 물론 접경지역의 홍보와 경제활성화에도 이바지해 나갈 계획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노랗게, 빨갛게…가을이 깊어갑니다

    노랗게, 빨갛게…가을이 깊어갑니다

    수확을 앞둔 황금빛 들녁, 빨간 단풍, 그리고 하얀 억새까지 깊어가는 가을의 삼색 풍경들을 한 데 모아 소개한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나태주의 풀꽃 편지] 아들아, 잘 가

    [나태주의 풀꽃 편지] 아들아, 잘 가

    올해도 추석 명절을 맞아 고향 집에 다녀왔다. 다른 때와 달리 혼자서 잠시 다녀왔다. 부모님의 연세는 92세. 이제는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없고 거동조차 불편하신 분들이다. 그래서 명절에 모시는 제사를 장자인 내가 모셔오고 두 분은 그저 편안히 명절을 보내시도록 했다.하지만 사정이 아무리 그렇다 해도 부모님께 추석 인사는 드려야 했기에 추석 이틀 전에 고향 집을 방문한 것이다. 공주에서 서천까지 오가는 길. 열여섯 살 고등학교 학창시절부터 시작한 일이니 몇 번이나 이 길을 이렇게 오고 갔던가. 이래저래 고향 집을 찾아갈 때는 마음이 많이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대문간에 들어섰을 때 아버지는 미리 알고 마중 나오셨지만 어머니는 마당으로도 나오지 못하시고 부엌방 문을 열고 밖을 보고만 계셨다. 더욱 하얗게 늙으신 어머니. 하지만 그 얼굴이 환하시다. 좀처럼 오지 않던 큰아들이 집에 온 것이 잠시 좋으셨던가 보다. 늙으셨지만 여전히 고우신 어머니. 연신 그 얼굴이 벙글벙글 그냥 그대로 꽃송이다. 집에 낯선 여인이 한 분 보였다. 언뜻 막내 여동생인가 싶었는데 그동안 바뀐 요양보호사라 했다. 몸집이 퉁퉁하고 얼굴이 유순한 것이 사람이 좋아 보인다. 햇볕에 그을린 얼굴이 건강해 보이고 성격이 명랑하고 활짝 웃는 얼굴이 신뢰가 가는 분이다. 그분은 우리 부모님을 아버지 어머니라고 호칭했다. 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노릇인가! 먼데 사는 자식들이 아무리 많으면 무엇 하나? 더구나 세상일에 바쁘다는 핑계로 고향 집에도 자주 들르지 못하는 나 같은 아들이 무슨 도움이 되나? 바로 이분이 우리 부모님의 친자식보다 더 좋은 자식이지 않는가. 먼데 단 나무보다 가까운 쓴 나무가 낫다는 말이 바로 이를 두고 이르는 말. 겨우 한 시간 반 정도 머물고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공주로 돌아가는 직행버스 시간에 맞춰 미리 와 달라고 부탁했던 택시가 다시 바깥마당에 와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 저 갈게요. 그냥 방안에 계세요.”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에게 권했지만 어머니는 바깥마당까지 나오시겠다고 고집하셨다. 요양보호사가 휠체어를 가지고 왔다. 이 또한 그동안 보지 못했던 물건이다. 바깥마당으로 나왔을 때 나는 재빨리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어 휠체어에 탄 어머니를 사진으로 담았다. 택시에 오르면서 다시 인사를 드렸다. “어머니, 저 갈게요. 그저 마음 편히 계셔요.” 늘 그렇게 하던 이별의 의식이다. 그때 어머니의 입에서 난생처음 들어보는 말이 나왔다. “아들아, 잘 가.” 매우 힘이 없는 목소리. 나는 그 소리에 그만 무너지고 말았다. 어려서부터 집을 떠날 때는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오너라”, 그렇게 하던 인사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저 마음 편히 계셔요”와 “잘 가”로 바뀌었다. 과거의 인사가 재회를 약속하는 인사였다면 오늘의 인사는 이별을 전제로 하는 인사다. 어려서 외할머니 손에 길러진 나는 어머니가 늘 낯설고 서먹했다. 그것을 알기에 어머니는 큰아들인 나한테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계셨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가 이제는 많이 쇠약해지고 조그마해져서 내 앞에 계신다. 거꾸로 이분이 어린아이 같고 내가 어른 같다. 사뭇 매달리는 눈빛으로 나를 보신다. 그러면서 “아들아, 잘 가.” 손을 내저으며 인사하신다. 조금은 냉정하기조차 한 나지만 그 한마디 말씀에는 무방비 상태로 무너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이것이 영이별이 되는 것은 아닌지! 참았음에도 불구하고 눈가에 눈물이 번졌다. 막동리 고향 집에서 서천읍까지는 8㎞. 걸어서 서천중학교를 통학하던 길이다. 모든 풍광이 낯익고 느슨한 곳이다. 그런데 오늘은 도무지 그렇지 않다. 울먹울먹 바라보는 모든 사물들이 어머니다. 길가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 꽃들이 어머니고 억새꽃 갈대꽃이 어머니고 가을볕 받아 혼곤한 들판이 어머니고 마을로 들어가는 꼬불길 하나조차 어머니다. 아, 나는 얼마나 부족한 아들이고 못난 아들인가!
  • 미로처럼 변한 하늘공원… 이번 주말부터 억새축제

    미로처럼 변한 하늘공원… 이번 주말부터 억새축제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자 한글날인 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공원 내 하늘공원을 찾은 나들이객들이 억새꽃 사이를 산책하고 있다. 하늘공원에서는 오는 13일부터 엿새 동안 서울억새축제가 열린다. 평년 가을보다 다소 기온이 높고 쾌청한 날씨를 보인 이날 서울 시내 유원지와 도심 행사장, 고궁 등은 나들이객들로 북적였다. 기상청은 10일 밤늦게 서울, 경기, 강원영서에 비가 오면서 기온이 떨어질 것으로 예보했다. 이호정 전문기자 hojeong@seoul.co.kr
  • 국내 대표 억새꽃 축제 13일 포천 명성산서 개막

    국내 대표 억새꽃 축제 13일 포천 명성산서 개막

    경기 포천시는 ‘제21회 산정호수 명성산 억새꽃 축제’가 13~15일 열린다고 8일 밝혔다.축제가 열리는 해발 923m 명성산은 매년 가을이면 정상 부근 15만㎡ 규모의 억새밭이 장관을 이뤄 해마다 등산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명성산은 궁예가 왕건에게 쫓겨 망국의 한을 통곡했다는 전설이 있으며, 산 자락에 위치한 억새밭은 한국전쟁 당시 포탄을 맡아 민둥산이 된 곳이다. 산정호수 주차장에서 비선폭포와 등룡폭포를 거쳐 1~2시간 가량 오르면 억새 군락지에 도착할 수 있다.포천시는 억새꽃을 보러 방문하는 등산객의 편의를 위해 등산로에 데크 로드·포토존·전망대 등을 설치했다. 축제 기간 산정호수 일대에서는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려 등산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축제 이튿날인 14일에는 산정호수 특설무대가 마련돼 개막식과 축하공연, 불꽃 쇼가 열린다. 15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포천의 대표 먹거리인 막걸리 체험마당과 문화공연이 예정돼 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시소’ 이동우, 근육병 장애 임재신 “눈을 주겠다” 전화에..

    ‘시소’ 이동우, 근육병 장애 임재신 “눈을 주겠다” 전화에..

    재즈 보컬리스트 이동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 ‘시소‘(See-Saw, 감독 고희영)가 이번 추석 특선 영화로 소개됐다. 열흘간 이어지는 긴 연휴에 방송되는 50여편의 영화 중 유일한 다큐멘터리로 이름을 올려 더 눈길을 끈다. 지난해 11월 개봉된 ‘시소’는 보고 싶지만 볼 수 없고 안고 싶지만 안을 수 없는 두 남자의 특별한 여행을 그린다. 서로의 깊은 좌절과 상처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보듬어 가면서 진정한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을 담아냈다. 영화의 주인공은 실제 중도시각장애를 갖게 된 앞만 못 보는 남자 이동우와 근육병 장애로 앞만 보는 남자 임재신이다. 어느 날 이동우에게 눈을 주겠다는 한 남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만나보니 상대는 눈밖에 성한 곳이 없는 근육병 환자였다. 자신에게 마지막 남은 5%로 이동우의 95%를 채워주려던 그의 마음을 통해 이동우는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얻었다고 말한다. 이 후 두 남자는 서로에게 눈이 돼주고 팔다리가 돼주며 제주도 아름다운 자연 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 길 위의 이야기들을 영화는 진솔하고 담백하게 풀어내며 감동을 선사한다. 한없이 펼쳐진 억새밭 바람소리와 바다밑 고요함, 사려니숲의 나무들 그리고 세계에서 두번째로 휠체어 잠수를 시도하는 임재신의 다이빙 장면이 압권이다. 또 이탈리아 영화 감독이 편집을 맡아 보기드문 스토리텔링을 구사하고 있다. ‘시소’는 지난 개봉 시기에 급박한 정치 상황 속 많은 관객을 만나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그러나 아쉬움은 잠시, 여러 기획 상영을 시도하면서 꾸준히 관객을 만나고 있다. 현재 유니세프와 더불어 전국 투어 상영회, 교보문고와는 매월 1회 재즈콘서트가 함께하는 상영회를 계속하고 있으며 오는 22일에는 세종문화회관 세종예술아카데미 소극장에서 ‘에브리데이 월스데이 페스티벌’의 참가작으로 상영될 예정이다. 이번 추석 연휴를 통해 안방극장에도 전할 예정이다. 그동안 누구보다 넘치는 열정으로 재즈 앨범 발매 및 창작, 연극, 공연 등 이전보다 더욱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이동우가 이번 영화를 통해서도 많은 이들에게 삶에 대한 따뜻한 의지와 희망을 전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문화마당] 어른의 무게/강의모 방송작가

    [문화마당] 어른의 무게/강의모 방송작가

    가끔 생각한다. ‘나는 언제부터 어른이었을까.’ 아이와 어른. 분명 상대적인 말이지만, 그 경계는 늘 모호하다. ‘애어른’, ‘어른아이’, ‘어쩌다 어른’ 같은 말이 공감을 얻는 것만 봐도 그렇다. 하여 설과 추석 즈음 원고에 자주 올리던 말이 있다. ‘명절이 더이상 즐겁지 않으면 어른이 된 것이다.’내 기억에도 어린 날의 명절은 들뜸이었고, 차차 따분하고 성가신 느낌으로 변하다가, 폭력처럼 다가오는 두려움의 시간이 되기도 했다. 방송작가로 일하며 덧붙은 명절의 정서는 ‘특집의 압박’이다. 오래전 라디오 다큐멘터리 작업에 집중했던 시절이 있었다. 늘 시사적인 주제를 앞세우던 PD가 따뜻하고 포근한 특집 다큐를 하나 만들어 보자고 했다. 2005년 추석을 앞둔 때였다. 두루 검색을 하고 회의를 한 끝에 젊은 PD 둘을 대동하고 강원도 정선군 남면 무릉리 발구덕 마을이란 곳을 찾아갔다. 억새밭으로 유명한 민둥산 아래 멀찍이 자리 잡은 외딴집 두 채에 70대 중반의 할머니가 한 분씩 살고 계셨다. 밥보다 커피가 좋고 담배를 안주로 술을 드신다는 자칭 ‘과부깡패’ 용 할머니, 민둥산 산지기라 자처하시는 옥 할머니. 두 분의 신산한 삶과 민둥산의 무심한 바람을 잘 버무려 보기로 했다. 옥 할머니가 내어주신 방에 짐을 풀고 마이크를 품은 채 두 분을 졸졸 따라다녔다. 옥 할머니는 9월 초인데도 밤엔 춥다며 뜨끈하게 군불을 지펴 주셨고, 밥상은 된장 한 뚝배기에 싱싱한 배추쌈과 풋고추만 곁들여도 어찌나 달고 맛나던지, 끼니마다 머슴밥을 해치웠다. 밤에는 작은 술상에 다섯이 둘러앉아 두 분의 인생을 안주 삼아 막걸리와 소주잔을 기울였다. 서너 잔이 돌아 거나해지면 음전한 옥 할머니가 먼저 젓가락 장단에 소리 한 자락을 뽑아내셨다. ‘비가 올라나 눈이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드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 주소.’ 이어서 용 할머니가 목청을 돋우셨다. ‘청천에 참매미 소리는 듣기나 좋지 청천과부 한숨 소리는 정말 못 듣겠네. 아리랑 아리랑….’ 옥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정선아리랑이란 것이 가사가 딱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각자의 한을 뽑아내면 되는 거라고, 기억하는 것만 서른 가지쯤 되는데 가사가 다들 끝도 없이 청승스럽다고. 처자식 팽개치고 밖으로만 돌다 세상 떠버린 남편에 대한 원망도, 죽어라 일해 돈 좀 모았더니 부도난 딸네가 다 퍼가고 빚까지 떠안긴 뼈아픈 사연도 아리랑 가락에 다 녹여 버린 지 오래. 이제 와 자식들은 홀어머니의 독거 생활을 걱정하지만 다 비워 낸 삶에 혼자만의 자유와 둘의 우정이 채워지니 세상에 더 바랄 게 없다 하셨다. 노래가 몇 차례 돌고 나자 두 분은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 얕은 천장에 촉수 낮은 알전구가 매달려 그림자가 출렁이는데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슬펐다. 두 어르신의 깊은 삶으로 들어가 함께 노닐었던 그 시간은 내게 너무나 벅찬 선물이었다. 이제 그만 어른아이에서 벗어나 진짜 어른으로 조금 더 깊어지라는 인생의 충고 같기도 했다. 그렇게 할머니들과 이박삼일 듬뿍 정이 들어 돌아올 땐 눈물로 재회를 기약했건만, 원고 쓰면서 전화 몇 번 드린 게 고작. 이후로 안부를 여쭙지 못했다. 그때 동행했던 어린 PD들도 어느새 중년인데, 나는 아직도 어른으로 다 자라지 못했다. 민둥산 억새밭에서 인 바람이 코끝에 느껴진다. 분발해야겠다.
  • [길섶에서] 모르는 꽃/황수정 논설위원

    가을 초입을 촛불처럼 밝히고 섰다 떠나는 꽃이 맥문동이다. 보라색 촛대 모양 꽃의 정체는 몇 년 만에야 알았다. 식물도감을 뒤지리라 마음만 먹고는 번번이 놓쳤다. 해를 묵히고 마음을 곰삭혀 마침내 통성명했던 나의 가을꽃. 공원 모퉁이에 일없이 서서 얼마나 득의에 찬 눈길을 주는지, 맥문동은 잘 안다. 저하고 나만 아는 애틋한 일. 혼자 오래 속 태우다 통성명한 꽃이 또 능소화다. 붉지도 노랗지도 못해 엉거주춤 수줍은 주홍꽃. 오가는 담벼락이 야단스러워지면 저런 요염한 꽃을 누가 내놓았나, 얼굴 본 적 없는 집주인이 다 궁금했다. 이름을 몰라 속정이 먼저 깊었던 꽃, 나의 여름꽃. 휴대전화로 꽃을 찍으면 대번에 이름을 찾아주는 장치가 있다니. 모르는 꽃이 없어졌다는 것은 그리울 일이 없다는 것. 맥문동, 능소화를 기다리지 않는 것. 나의 꽃이 없어지는 것. 억새와 갈대를 분간 못해도 괜찮다. 계절 어느 쯤에 발목이 잠겨야 억새는 만개하고 갈대는 만발하는지. 억새를 들추지 않고서 시월을 기다리기를. 갈대가 궁금해서 가을에 더 바짝 다가서기를. 한 줌 볕도 놓치지 않기를.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울산 산상 음악축제 울주오디세이 23일 개최

    울산 산상 음악축제 울주오디세이 23일 개최

    울산 울주 영남알프스 간월재에서 ‘산바람 신바람 음악축제’가 열린다.울산 울주군은 ‘영남알프스’ 자락 간월재에서 매년 억새의 계절에 열리는 음악축제 ‘울주오디세이’(주제 산바람 신바람)를 오는 23일 개최한다고 20일 밝혔다. 이 행사는 매년 개천절에 열렸지만, 올해는 추석연휴 때문에 앞당겨 제2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와 함께 열린다. 울주오디세이는 2010년 울산의 관광명소인 해발 1000m 간월재 억새평원에서 시작해 올해로 8년째를 맞는다. 산 정상에 그랜드 피아노를 올려 상식을 깨는 연출과 기획으로 주목받았다. 올해 음악회(연출 남궁연)는 케이컬쳐그룹 아양의 한국적 정서를 담은 춤과 노래로 시작을 알린다. 이어 남궁연(드럼)·김성수(베이스)·김진수(기타)·민경훈(건반)·윤서경(아쟁)·이재하(거문고)로 구성된 프로젝트 그룹 ‘jazzband 991Project’의 연주가 가을 바람 소리와 함께 깊이를 더하고, 소리꾼 이봉근과 장서윤이 신명을 돋운다. 울주문화예술회관 관계자는 “전국 최대 산상 음악축제로 매년 새로운 것을 보여주려고 행사를 준비하지만, 아직 서울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 브랜드 이미지를 확고히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가을이 익어갑니다

    가을이 익어갑니다

    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하늘공원의 억새가 파란 하늘 아래 황금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9월에 접어들면서 ‘천고마비’의 계절인 가을이 성큼 다가온 모습이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여성의 발, ‘희망의 가시밭길’ 내딛다

    여성의 발, ‘희망의 가시밭길’ 내딛다

    발 이야기 그리고 또다른 상상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 지음/정희경 옮김/문학동네/432쪽/1만 5500원 불행한 세상에 내던져졌지만 굴하지 않고 진정한 자신을 찾아 곳곳을 헤매는 굳건한 의지. 단단한 의지의 표상인 두 발로 척박한 땅 위에 제 자신을 가누고 꼿꼿이 서 있는 존재. 바로 억새처럼 유연하지만 강인한 여자라는 이름.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가 200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3년간 집필한 작품을 모은 이 소설집에는 생을 향한 여성들의 강렬한 목소리들이 가득하다. 프랑스에서 2000년에 출간한 ‘타오르는 마음’ 이후 11년 만에 펴낸 이 소설집에는 단편 9편과 수필 1편이 담겼다. 작가는 전작 ‘황금 물고기’, ‘사막’, ‘허기의 간주곡’ 등에서 여성 화자를 통해 남성이 지닌 권력 아래 억압받는 여성의 초상을 주로 그려 왔다. 이번 소설집에서도 결핍 속에서 태어나 불행을 겪지만 자신에게 닥친 역경에 불굴의 의지로 맞서는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야망과 교만에 사로잡히고 폭력적이거나 위선적인 남성들에 비해 작가가 바라본 여성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위태로운 모험을 감행하는 의지를 지닌 존재다. 표제작 ‘발 이야기’에서 주인공 유진은 남자친구였던 사뮈엘이 떠난 뒤 그를 그리워하고 힘들어하지만 그와 함께 갔던 장소들을 다시 방문하고 자신의 현실과 똑바로 마주하며 자아를 찾는다. ‘야마 나무’에서 마리는 피의 다이아몬드 때문에 벌어진 전쟁 속에서 병사들로부터 친구 에스메를 구하고 할머니의 영혼이 깃든 나무 속에서 서로 의지하며 시련의 시간을 견딘다. ‘바르사, 아니면 죽음을’에서는 바르셀로나로 가는 여정에서 만난 파투와 시타를 통해 여성 사이의 우정과 연대를 그린다. 작가는 여성들의 사회적인 위상을 증언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내밀한 정서도 파고든다. ‘발 이야기’에서 유진이 임신 후 겪는 신체의 변화와 처음으로 12센티미터짜리 하이힐을 신었을 때의 느낌은 작가 스스로 체험한 듯 정교하다. 작가는 또 프랑스 파리, 아프리카, 모리셔스, 서울과 영국 런던 등 다양한 장소를 배경으로 여성, 난민, 종족 전쟁 등 세계가 겪는 현실적인 문제에 상상을 덧입힌다. ‘아무도 아닌’에서 테러에 희생된 여인의 뱃속 태아의 눈으로 황막한 사막 도시를 묘사하고, ‘우리 거미들의 삶’에서는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소외된 이들의 다층적인 삶을 거미의 눈으로 바라본다. 2007~2008년 작가가 머물렀던 서울의 풍경과 서울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작품 곳곳에서 보는 소소한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한+놀이+낭만’ 웨이브 탄 춘천… 명품공원 도시로 뜬다

    ‘한+놀이+낭만’ 웨이브 탄 춘천… 명품공원 도시로 뜬다

    ‘호수의 고장’ 강원 춘천시가 세계적인 공원도시를 꿈꾸고 있다. 도심의 마지막 금싸라기 땅으로 남은 의암호변 59만㎡의 옛 미군부대 캠프페이지 터를 활용해 명품 도시를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미국 센트럴파크나 프랑스의 라비에트공원처럼 도심의 랜드마크로 자리잡도록 할 방침이다. 낭만과 힐링, 놀이가 어우러진 녹색 허브 공간으로 꾸며 다양한 문화의 열린 공간과 한류 콘텐츠를 접목하겠다는 것이다. 의암호를 중심으로 지척에 레고랜드와 삼악산을 잇는 로프웨이까지 놓이면 수도권 배후 최고의 휴양도시로 거듭날 전망이다. 2005년 미군부대가 옮겨간 뒤 지금까지 12년 동안 부지 활용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며 심사숙고해 왔다. 올 연말이나 내년 초쯤이면 공원종합개발계획이 최종 확정돼 2019년부터는 본격 공사에 들어간다. 토지 매입비를 포함해 3323억여원이 들어가는 대단위 공사다. 캠프페이지 공원화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 것인지 용역 중간보고를 통해 들여다본다.캠프페이지는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도시 중심인 근화동에 들어섰다. 당시 군수품을 공급하는 비행장 활주로 설치를 시작으로 만들어졌다. 캠프페이지는 전쟁 때 공을 세운 미군 페이지 중령을 추모하는 뜻에서 이름 지어졌다. 더구나 이곳은 1983년 5월 5일 중국 민항기가 불시착, 승객과 승무원 송환 문제로 정부 당국자 간 첫 교섭이 이뤄져 한·중 수교의 물꼬를 튼 역사적 무대이기도 하다. 이런 캠프페이지 터는 2005년 미군 철수로 폐쇄된 뒤 10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각종 행정 절차를 밟아 마침내 지난해 부지 매입이 완료되면서 춘천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미군으로부터 국방부가 반환 공여지를 인수하고(2007년), 캠프페이지 터를 관통해 도로를 뚫고(2008년), 부지에 대한 환경오염 정화사업(2012년)도 끝냈다. 부지 활용을 놓고 25개 읍·면·동과 140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시민 대토론회도 세 차례 열며 다양한 의견을 수렴(2011년 6~12월)했다. 터의 환경 위험 요소를 해소한 뒤에는 시민들에게 임시 개방(2013년)하며 여가 공간으로서의 시동도 걸었다. 시민들과 친숙한 공간으로 자리잡도록 하기 위해 넓은 터를 이용해 코스모스와 메밀 등 각종 식물을 심어 꽃밭을 조성하고, 염소·토끼·조랑말을 키우는 농장으로 활용했다. 미군 헬리콥터 격납고는 배드민턴·인공암벽 등이 설치된 체육관으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상설 축제장, 주차장, 영화 촬영장 등 임시 시설물이 조성돼 운영 중이고, 별도의 물놀이 시설도 만들어 여름철 어린이들에게 개방하며 인기다. 헬리콥터 조종사들의 숙소로 쓰이던 곳은 아동복지종합센터로 변신 중이다. 공원 조성에 대한 큰 그림은 도심 속 녹색 허브 공간으로의 생태환경을 우선으로 할 방침이다. 여기에 다양한 문화가 숨 쉬는 열린 공간과 한류 콘텐츠를 접목한 문화를 접목한다는 방침이다. 숲이 우거진 도심 속 공원의 공간을 활용해 한류와 낭만, 힐링, 놀이를 만끽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한류를 위한 공간(한웨이브)은 중국 민항기 불시착을 스토리텔링해 민항기를 전시하고, 케이팝 문화·예술마당을 만들어 중국 관광객들을 끌어들일 작정이다. 남이섬 등 춘천이 주무대였던 드라마 ‘겨울연가’ 등의 향수를 도심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심산이다. 이곳에는 공원의 랜드마크인 ‘미래의 물’ 상징조형물이 세워진다. 도심에서 춘천역 지하를 관통해 중도 레고랜드로 통하는 도로 위에 벽면을 타고 물이 흐르는 개선문 형식의 대형 상징물을 세우고 상부에는 전망대와 레스토랑 등을 둘 예정이다. 외국 관광객들이 즐길 한옥체험전시와 전통 정원인 분재원, 모두가 찾아 즐길 수 있는 열린 공간인 모두락광장 등이 조성된다.자연 속을 걸으며 추억을 만들 수 있는 낭만웨이브도 조성할 예정이다. 억새와 꽃의 군락지를 만들어 산책을 위한 오솔길을 내고, 저류 생태습지 사이로 수변 데크를 만들어 가족과 연인들이 찾아 여유와 낭만을 만끽할 수 있게 된다. 산책로 곳곳에는 각종 야외 조각과 조명 등을 설치해 운치를 더하고, 쉼터와 낭만무대를 설치하게 된다. 예술인들이 머물며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상상레지던스도 컨테이너를 동원해 마련한다. 숲속의 놀이시설인 놀이웨이브에는 향기정원과 숲속놀이시설, 꿈자람정원, 캠프페이지박물관, 비춤연못이 들어선다. 숲속놀이터에는 집라인과 스카이워크, 모노레일 등 다양한 어드벤처 시설이 들어서고, 박물관에는 미군부대 캠프페이지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각종 장비가 놓이게 된다. 이 밖에 건강을 위한 힐링웨이브공간에는 식물원(에코가든)과 숲속전망대, 황토산책길, 테라피, 약초원, 명상의 숲이 만들어진다. 올 연말까지 이 같은 종합개발계획이 확정돼 내년까지 실시설계를 마치고, 2019년부터 본격 개발에 들어갈 전망이다. 공원 조성에만 160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 이미 지급된 토지매입비 1723억원(국비 531억원 포함)까지 합하면 모두 3323억원이 들어가는 대단위 사업이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부지 일부 매각으로 비용을 충당하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부지를 온전하게 공원으로 만들자는 의견이 많아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조현희 춘천시 공영개발사업소 팀장은 “1차 시민공청회를 거치고 2차 보완 용역에 들어갔다”면서 “올 연말이나 내년 초쯤 시민들의 의견을 다시 듣고 시민들의 의지와 뜻을 담아 늦어도 완벽하게 가야 한다는 원칙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춘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장성 ‘황룡강 르네상스’ 사업 탄력… 국비 205억 확보

    전남 장성군이 추진 중인 ‘황룡강 르네상스 프로젝트’ 사업이 국가 공모사업으로 결정돼 탄력을 받게 됐다. 1일 군에 따르면 국토교통부가 최근 전국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하천사업 제안공모’에서 ‘황룡강 르네상스 프로젝트’가 선정돼 국비 205억원을 확보했다. 자연 기능과 지역 발전 전략을 연계한 다양한 하천사업을 발굴하는 계획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광주·전남에서는 유일하게 지정됐다. 군은 황룡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을 한 황룡강을 용머리, 앞발, 몸통, 뒷발, 꼬리 등 5개 구간으로 나눠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광으로 만들 계획이다. 자연재해 대비 치수기능, 생태계 보존 환경기능, 방문객을 위한 친수기능 강화를 주안점으로 삼고 있다. 호안 정비, 자연형 여울보 설치, 식생 복원·물억새 숲·초화단지 조성, 자전거도로 정비, 생태광장 등을 조성해 황룡강을 물과 사람, 자연이 함께하는 생태하천으로 꾸민다는 구상이다. 군은 올해 완료되는 9.3㎞에 이어 이번 국비 확보로 나머지 4.2㎞ 구간도 순조롭게 마무리하게 됐다. 황룡강은 군이 내세운 ‘옐로시티’의 대표적 랜드마크다. 지난해 가을 열린 노란꽃잔치에 70여만명이 찾을 정도로 명소로 발돋움하고 있다. 군은 사계절 내내 노란꽃과 나무가 가득한 자연친화적 도시를 뜻하는 ‘옐로시티’를 조성하기 위해 황룡강과 읍을 중심으로 노란색을 테마로 한 색깔 있는 도시를 조성 중이다. 유두석 장성군수는 “세계의 이름난 도시들이 강을 끼고 관광명소가 된 것처럼 황룡강을 낀 유명한 색채도시로 우뚝 설 것”이라고 밝혔다. 장성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7000년前 선사인과 조선의 선비가 함께 거닐다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7000년前 선사인과 조선의 선비가 함께 거닐다

    울산 울주엔 대곡천이 흐릅니다. 저 유명한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와 천전리 각석(국보 147호) 등을 품은 계곡입니다. 대곡천을 찾는 이들은 대개 몇몇 유적지에만 시선을 주고 돌아가기 일쑤지요. 하지만 묻혀 있을 뿐이지 대곡천은 ‘자체발광’의 경승지였습니다. 세월이 빚은 꽃 같은 풍경들이 가득한 곳이라 할까요. 이리 굽고 저리 휘는 동안 계곡 여기저기에 절경과 역사, 문화를 켜켜이 쌓아 두고 있었습니다.이름하여 ‘반구대 암각화’다. 누구에게든 반구대에 그려진 암각화 정도로 읽힐 법하다. 하지만 실상 반구대와 암각화는 꽤 먼 거리에 떨어져 있다. 그런데도 반구대 암각화라 불린다. 이유가 뭘까. 1971년 암각화가 발견되자 이를 홍보하고 위치를 설명해 줄 랜드마크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에 적합한 곳이 반구대였을 것이고. 그러다 점차 암각화에만 무게가 쏠렸고 반구대는 묻혀 버리고 말았을 터다. 바로 이 탓에 현지에선 대곡리 암각화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제법 많다. 반구대를 품은 대곡천은 울주를 관통해 흐르다 울산 태화강에 합류되는 지천이다. 약 27㎞ 정도 길이에 지질시대 공룡의 발자국 화석과 7000년 전 선사시대 암각화, 불교, 유교 등의 유적들이 빼곡하다. 그야말로 ‘역사의 적층지대’다. 다만 대부분의 유적들이 댐 조성 등으로 수몰됐고, 현재 돌아볼 수 있는 구간은 매우 제한적이다. 대곡천 물길을 따라 가장 위에 천전리 각석, 1㎞ 정도 아래에 암각화 박물관, 다시 1.2㎞ 정도 아래에 반구대 암각화가 늘어서 있다. 집청정, 반구서원, 반구대 등 선사시대 유적과 시기를 달리하는 볼거리들은 암각화 박물관과 반구대 암각화 사이에 산재해 있다. 천전리 각석을 먼저 찾는다. 1970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발견돼 ‘크리스마스의 선물’이란 애칭을 가진 곳이다. 기하학적 문양과 사슴, 사람 등 모두 280여점의 표현물이 그려져 있다. 20여명의 화랑 이름과 신라시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명문 등도 새겨져 있다. 한때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은 2012년의 고교생 낙서까지 포함하면 ‘현대’의 표현물까지 담긴 셈이다. 각석 너머 계곡엔 131개의 공룡 발자국 화석이 있다. 크기가 성인 남자 한 명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거대하다.반구대는 조선시대 지역 최고의 명소였다. 특히 현 대곡박물관부터 반구대에 이르는 대곡천 길은 선비들의 유람 코스였다. 조선 영조 때 울산부사를 지낸 권상일(1679∼1759) 등의 기록을 보면 지금은 사라진 장천사에서 반구대, 집청정, 반구서원까지 둘러보는 길이 선비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지금처럼 반구대가 암각화를 돋보이게 하는 수식어 정도로 치부될 곳이 아니란 얘기다. 대곡천에도 이른바 ‘구곡’(九曲) 문화가 남아 있다. 최남복(1759~1814)의 백련구곡, 송찬규(1838~1910)의 반계구곡 등이 그 예다. 하지만 백련구곡이 있던 대곡천 상류 지역은 대곡댐에 수몰됐고, 반계구곡 역시 일부만 남기고 물에 잠겼다. 구곡 가운데 핵심이 되는 곳은 오곡이다. 구곡 문화의 ‘원조’인 주자 역시 오곡에 무이정사를 짓고 생활과 학문의 터전으로 삼았다. 대곡천에서 오곡으로 꼽히는 곳은 반구대 일대다. 고려 우왕 때 언양에 유배된 정몽주가 즐겨 찾아와 시름을 달래며 시를 지었다고 알려진 곳이다. 정몽주의 호를 따 포은대라고도 불린다. 반구대가 유명해지면서 조선 숙종 38년(1712년)에 현 반구서원이 들어서게 된다. 이듬해엔 최신기(1673∼1737)가 반구대 건너편에 집청정(集淸亭)을 지었다. 푸름을 모은 정자라니, 이름만으로도 청량하다.집청정 앞의 풍경들은 저마다 이름을 갖고 있다. 반구대 뒤 산봉우리는 비래봉, 반구대 바위 절벽 아래 계곡은 옥천동, 계류가 휘돌아 가는 야트막한 언덕은 반구대다. 반구대 앞의 바위는 거북 머리, 양옆에 비죽 튀어나온 바위는 거북의 다리다. 겸재 정선이 그린 산수화 ‘반구’의 실제 배경이 된 곳도 바로 여기다. 정선이 탄복했을 풍경이 그대로 눈앞에서 펼쳐진다. 반구대에서 좀더 길을 줄이면 반구대 암각화다. 멀리서 망원경으로 볼 수밖에 없지만 그마저도 감동이다. 관람대와 암각화 사이엔 대곡천이 흐른다. 대곡천 아래로는 바위 절벽의 뿌리가 길게 이어져 있다. 문화관광해설사 등 현지 관계자에 따르면 2013년 발굴조사 당시 절벽 하부층에서 공룡 발자국 화석 81점이 확인됐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 곧바로 복토됐고, 대곡천 물길로 바뀌면서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암각화에 그려진 표현물의 숫자는 연구자 사이에 차이가 있다. 문화재청 누리집은 200여점이라 적고 있다. 현지 전문가들은 형상을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이 237점 정도, 흐릿한 표현물까지 포함하면 300점 정도가 그려져 있다고 본다. 사슴, 호랑이 등 육지동물과 고래 등 해양동물이 각각 절반을 차지하고, 사람 형상의 그림도 17점 정도나 된다. 전체 그림 가운데 가장 많은 개체는 고래로, 무려 60여점에 이른다고 한다. 고래관광특구인 장생포와 울산 앞바다가 선사시대부터 수많은 고래들이 회유하는 곳이었다는 방증인 셈이다.암각화 앞에 서면 상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일이다. 그래야 7000년의 시간을 넘어 좀더 친근하게 선사인과 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암각화의 그림들은 단순하면서도 재밌다. 왼쪽 가장 위엔 생식기를 곧추 세운 남성이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손을 미간 위에 얹은 모양새가 뭔가 사냥감을 찾는 듯하다. 남자 아래는 고래 그림이다. 저 유명한 ‘새끼 업은 고래’다. 어미 고래가 새끼를 등에 올려 물밖 호흡을 돕는 모습이다. 갓 태어난 새끼는 힘이 달려 자가 호흡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어미가 물밖으로 들어올려 주곤 하는데, 암각화는 바로 이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나 나올 법한 모습을 선사인들이 목격하고 있었다는 게 놀랍다. ‘새끼 업은 고래’는 이미지화돼 슬도 등 유명 관광지에 상징물로 장식돼 있다. 암각화는 볕이 사선으로 드는 오후 3~4시쯤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울주까지 와서 간월재에 오르지 않을 수 없다. 나라 안에서 억새 군락지로 손꼽히는 명소다. 아직은 지난 겨울의 흔적을 벗지 못해 누런 빛의 평원을 이루고 있지만, 그 모습도 생경하고 빼어나다. 간월재에서 간월산 방향으로 조금만 올라도 풍경은 더욱 깊어진다. 산벚꽃, 철쭉 등이 신록과 어우러진 모습이 그야말로 보석처럼 아름답다. 울주는 옹기로 이름 난 곳이다. 우리 전통 옹기의 멋을 만끽할 수 있는 ‘울산옹기축제’가 4~7일 온양읍 인근의 외고산 옹기마을에서 옹기축제추진위원회(052-227-4961) 주최로 열린다. 2년 내리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유망 축제에 오른 내공 깊은 축제다. 가장 큰 볼거리는 장인들이 펼치는 옹기 제작 시연이다. 옹기 제작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축제는 옹기장난촌, 옹기산적촌, 옹기무형유산관 등으로 구성된다. 특히 옹기장난촌과 옹기난장촌은 흙과 물속에서 마음껏 놀 수 있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이다. 축제 기간 동안 옹기 값이 20~50% 정도 할인된다.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2) →맛집 : 울주에서 이름 난 먹거리는 언양 불고기와 짚불 곰장어다. 한데 호불호는 둘 다 퍽 엇갈리는 편이다. 짚불에 통째 구워 내는 곰장어구이가 특히 그렇다. 고소하고 아삭대는 식감이 좋다는 이가 대다수이지만 통째 구운 데다 모양까지 거무튀튀한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다. 다만 미국 알래스카에서 들여온 싱싱한 곰장어를 실제 짚불 위에서 토속적인 방식으로 구워 내는 것만은 분명하다. 통구이가 거북하다면 양념구이로 먹으면 된다. 김양집(239-5539)은 한자리에서 50년 가까이 짚불 곰장어를 팔았다는 집이다. 서생면 신암리 바닷가에 있다. 언양불고기는 갈비구락부(264-4747)가 알려졌다. 언양읍내에 있다. 떡바우횟집(238-3136)은 현지인이 ‘강추’하는 맛집이다. 특히 성게비빔밥이 맛있다. 참돔 뱃살 등 제철 생선회도 맛깔스럽게 낸다. 간절곶 인근 대송리에 있다. 대구왕뽈떼기집(254-9511)은 우연히 발견한 맛집이다. 대구 뽈데기(얼굴, 볼 등을 일컫는 사투리)와 몸통을 섞어 내는데, 양도 푸짐하지만 무엇보다 시원한 국물이 압권이다. 게다가 가격도 5000원으로 착하다. 시쳇말로 ‘가성비’가 좋다. 곤이를 곁들이려면 2000원을 추가하면 된다. 매운탕과 맑은탕 두 종류다. 읍내에 있다. 남창리는 ‘남창국밥’으로 유명한 곳이다. 옹기종기 시장 주변에 국밥집이 몰려 있다. 사일국밥(239-0706)의 소내장국밥이 독특하다. →잘 곳 : 등억리 온천단지에 깔끔한 숙소가 많다. 가격도 ‘착한’ 편이다. 최근 울산역 인근에도 숙박업소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가족 단위 여행객은 간월재 입구의 펜션을 찾는 게 좋겠다.
  • 벚꽃만 꽃이더냐

    벚꽃만 꽃이더냐

    봄꽃들이 한창이다. 매화, 벚꽃 등이 나라 안 여기저기서 흐드러지는 때다. 한데 이름값은 덜해도 곱기로는 뒤지지 않는 봄꽃들도 있다. 참꽃, 산벚꽃처럼 두메에 피어 이름조차 불러 주지 못했던 꽃들이다. 이 봄, 기억해 둘 만한 봄꽃 명소들을 모았다. 절정의 진달래●경남 창녕 화왕산 진달래 모가지 꺾어 봉오리째 떨어지는 꽃은 동백뿐만 아니다. 진달래도 그렇다. 절정에 이른 자태 그대로 낙화한다.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오기가 느껴지는 장면이다. 이 모습 보며 시인은 읊조렸을 것이다. 나는 당신이 가도 울지 않을 것이라고. 심지어 당신 가는 길 위로 자신의 꽃술을 아낌없이 뿌려 주겠다고 말이다. 경남 창녕의 화왕산(757m)은 4월 중순이면 산 전체가 진달래의 영토로 변한다. 화왕산(火旺山)이 아니라 ‘화(花)왕산’으로 써야 옳을 지경이다. 화왕산은 품이 넓다. 진달래와 초원, 억새, 그리고 눈꽃이 계절을 따라 번갈아 흐드러진다. 기암절벽도 옹골차다. 이 특유의 산세 때문에 탐화객뿐 아니라 암릉 산행을 즐기는 이들도 곧잘 찾는다. 진달래 산행은 자하곡 매표소~정상~화왕산성 동문~배바위를 거쳐 원점 회귀하는 게 일반적이다. 거리는 7㎞ 남짓. 산행 시간은 4시간 안팎이다. 기왕 창녕까지 갔으니 ‘지구와 동년배’라는 우포늪까지 돌아보는 게 좋겠다. 천지에 복사꽃●경북 경산 반곡지 복사꽃 벚꽃이 지고 나면 복사꽃이 핀다. 유치환의 시처럼 ‘열여덟 아가씨의 풋마음 같은 새빨간 봉오리’가 인상적인 꽃이다. 복사꽃으로 가장 이름 난 곳은 경북 영덕이다. 지품면, 달산면 일대가 죄다 복사꽃밭이다. 한데 주변과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꼽자면 경북 경산의 반곡지가 단연 앞선다. 분홍빛 복사꽃과 신록으로 물든 왕버드나무가 무릉도원 같은 풍경을 펼쳐 낸다. 바람 없는 아침이면 그 자태가 물 위에 고스란히 반사된다. 자연이 그린 데칼코마니다. 반곡지가 속한 남산면 일대는 경산 최대의 복숭아 산지다. 봄이면 마을 초입의 밤별곡 고개 일대가 온통 연분홍 꽃구름으로 가득 찬다. 마을 뒤편 삼성산엔 트레킹 길도 조성돼 있다. 다만 이른 아침엔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몰려드는 통에 몹시 번잡하다. 차들이 엉키는 경우도 흔하다. 이 시간을 피해 방문하는 것이 좋겠다. 반곡지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에 계정숲이 있다. 이팝나무와 느티나무 등이 우거진 숲 그늘에서 산책하기 좋다. 불타는 참꽃숲●대구 비슬산 참꽃 군락지 ‘대구의 어머니 산’이라 불리는 비슬산(1084m)은 일년에 한 차례 꽃단장을 한다. 4월 하순이면 참꽃이 무리 지어 피어 온 산을 붉게 물들인다. 참꽃은 진달래꽃을 이르는 이름이다. 먹지 못하는 ‘개꽃‘(철쭉)과 달리 먹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참꽃’이라 불린다. 참꽃 군락지는 대견사 위, 그러니까 해발 1000m에 달하는 고위평탄면에 99만㎡(약 30만평) 규모로 펼쳐져 있다. 참꽃들이 절정을 이룰 때면 산 전체가 붉은빛을 띨 만큼 거대한 규모다. 대견사는 개창 연대가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찰이다. 일연 스님이 22년간 주지로 주석하면서 ‘삼국유사’ 집필을 구상한 절집이기도 하다. 비슬산 역시 빼어난 산세로 사철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명산이다. 특히 약 2㎞ 길이의 암괴류(천연기념물 435호)가 일품이다. 암괴류는 둥글거나 각진 바위 덩어리들이 아주 천천히 흘러내리면서 쌓인 것을 일컫는다. ‘반딧불이 전기차’를 타고 오르다 보면 확연히 굽어볼 수 있다. 깊은 산 꽃사태●충남 금산 보곡산골 산벚꽃 산벚꽃들은 개화 시기가 늦다. 길가의 벚꽃들이 질 무렵에야 꽃술을 연다. 충남 금산의 보곡산골이 널리 알려진 산벚꽃 명소다. 국내 최대 규모인 660만㎡(약 200만평)의 산지에 산벚나무들이 빼곡하다. 보곡산골은 합성어다. 금산에서도 오지로 꼽히는 군북면 보광리와 상곡리, 산안리에서 한 글자씩 따 조합했다. 산골마을이다 보니 평균 기온도 타 지역보다 섭씨 4~5도 정도 낮다. 개화 시기 역시 반 박자 늦다. 다른 곳에서 낙화 소식이 들릴 때쯤 보곡산골에선 꽃사태가 펼쳐진다. 한꺼번에 피지도 않는다. 오늘은 여기서 피었다가 내일이면 저기서 진다. 그 덕에 매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세 마을 가운데 가장 이름이 알려진 곳은 산안리다. 마을을 휘휘 도는 임도를 따라 ‘산벚꽃길’을 조성해 뒀다. 거리는 9㎞쯤 된다. 천천히 돌아볼 경우 세 시간 정도 걸린다. 코스 중간중간 ‘보이네요 정자’ ‘산꽃세상 정자’ ‘봄처녀 정자’ 등 쉴 곳도 마련해 놓았다. 신선의 이팝꽃●이팝나무 두른 경남 밀양 위양못 봄이 여름으로 향할 무렵 이팝나무 꽃이 핀다. 대략 5월 중·하순 즈음이 절정이다. 이팝나무는 보통 가로수로 식재되거나, 산간 오지에 저 홀로 자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경남 밀양의 위양못에선 다르다. 고택 완재정과 어우러져 기막힌 절경을 펼쳐 낸다. 위양못은 둘레 166m에 불과한 자그마한 저수지다. 규모는 작아도 축조 시기는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작은 연못 안에 5개의 섬과 휘휘 늘어진 버드나무 등이 어우러져 빼어난 풍경을 그려 낸다. 특히 바람이 없는 아침나절 잔잔한 물 위로 주변 풍경이 모두 담길 때면 신선의 세계를 엿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풍경의 화룡점정은 완재정이다. 못 가운데 섬에 세워진 정자다. 1900년에 안동 권씨 후손들이 지었다고 전한다. 완재정 풍광은 담장 옆에 선 이팝나무꽃이 흰쌀밥처럼 피어나는 이맘때가 가장 아름답다. 이 무렵 전국 내로라하는 사진작가들의 발걸음도 잦아지기 시작한다. 연못 주변으로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매년 쥐불놀이로 산림 2ha 사라진다

    매년 쥐불놀이로 산림 2ha 사라진다

    2009년 2월 9일 오후 6시. 경남 창녕군 화왕산(757m) 정상에서 정월대보름을 맞아 억새 태우기 축제가 열렸다. 그간 액운을 없애고 한 해 무사안녕을 기원하고자 관광객과 안전요원 등 3만명이 모여 있었다. 하지만 행사 시작 10분 만에 갑자기 불어닥친 역풍으로 바짝 마른 억새 전체로 화마(火魔)가 번져 불길이 순식간에 인파를 덮쳤다. 억새밭 18만 5000㎡가 불에 타 7명이 숨지고 81명이 다치는 등 대형 재난 사고로 기록됐다. 국민안전처와 산림청은 이 같은 ‘제2의 화왕산 참사’를 막기 위해 오는 11일 정월대보름을 앞두고 논·밭두렁을 태우다 산불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다양한 특별안전대책을 시행한다고 8일 밝혔다. 안전처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정월대보름에 연평균 5.8건의 산불이 발생해 해마다 산림 2.11ha가 사라졌다. 특히 이번 대보름에는 전국적으로 건조한 날씨가 예상돼 쥐불놀이와 달집태우기 등 야외행사로 인한 산불에 더욱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안전처는 강조했다. 이를 위해 10~12일을 ‘정월대보름 특별경계근무기간’으로 정해 화재 및 안전사고 예방에 직접 나선다. 산림보호법 53조에 따르면 실수로 산불을 내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거나 15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新전원일기] “농촌 마을 주민으로서 더불어 사는 삶… 그 자체로 의미 있죠”

    [新전원일기] “농촌 마을 주민으로서 더불어 사는 삶… 그 자체로 의미 있죠”

    그녀는 제주 한림(翰林)에 산다. 그녀가 사는 집 마당엔 동백나무와 블루베리나무가 있다. 주먹만 한 열매를 단 하귤나무는 뒤란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마루에 앉아 동백꽃과 담장 너머 마을을 한참 쳐다봤다. 육지에서 보지 못한 홑겹의 동백꽃이 바람에 흔들렸다. 공항에서 한림으로 올 때 갤 듯한 날씨는 어느새 흐릿해졌고 제법 바람도 불고 있었다. 5년 전 이선자(37)·윤민상(38) 부부는 이 집에 정착했다. 그녀는 충북 오창과학도시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계획도시답게 오창은 잘 정리되어 있었고 호수가 있는 공원도 있었다. 녹지도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인공적인 그 공간이 그녀에겐 답답했다.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해야 하는 전세살이도 힘들었다. 그녀는 자연과 더 가깝게 살고 싶었다. 그렇다고 꼭 농부가 되겠다는 마음은 아니었다. 귀농학교에 다니면서, 생명평화결사 운동을 하면서 농촌에서 사는 것이 꼭 농부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배웠다. 농촌 마을의 구성원으로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고, 생활 방식을 바꾼다면 적게 벌어도 풍요롭게 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신념을 믿고 제주도로 내려왔다. 하지만 제주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연고도 없고, 큰 자본도 없는 그녀에게 제주는 그저 낯선 땅에 불과했다. 돈벌이는 날품팔이일 뿐이었다.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태풍으로 양철지붕 반쪽이 날아갔다. 어마어마한 제주의 바람을 실감했다. 집안 여기저기서 출몰하는 지네도 낯설고 무서웠다. 기름값이 아까워 세 식구는 방 하나에서 먹고 놀고 잠을 자야만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녀에게 힘들었던 것은 육아였다. 제주로 들어올 때엔 세 식구였지만 이듬해 쌍둥이가 태어났다. 세 명의 아이를 키워야 하는데 육아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바다 저편 섬에 와 있었던 것이다. ●첫해에 흙살림 회원에게서 귤밭 500평 임대 받아 그러던 중 흙살림 제주도지부 회원에게서 500평 규모의 귤밭을 임대받았다. 또 그 집에서 농업 인턴을 하면서 고정 수입도 생겼다. 그 후 그녀는 금악리 마을문고에서 저녁에 문고지기 아르바이트도 하고, 비상근직이지만 ‘제주 식생활 교육네트워크’ 사무국장으로도 일했다. 남편도 마을 정미소로, 콩나물 공장으로 일을 나갔다. 생활비도 벌어야 했지만 육아 시간도 확보해야 했다. 밤 시간과 새벽 시간을 나눠 가며 부부는 일과 육아에 매달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농사는 점점 자리가 잡혀 갔다. 첫해에 500평이던 귤밭은 지난해 6500평으로 늘었다. 그사이 남편 윤씨가 후계농업인 교육을 받고 일부 자금을 융자받아 1000평 규모의 밭도 장만했다. 그녀가 엄마로부터 백과사전 한 질을 선물받은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지구와 우주’를 읽던 밤 광활한 우주에서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때 시작된 우주와 별에 대한 관심은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졌다. 천문 동아리 활동도 하고, 천체에 관한 책도 읽으며 과학자가 되고 싶은 꿈을 키웠다. 그러다 서울대 농대에 들어가 생물학이나 유전학을 배우면서 미시적인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고, 그 신비에 매료됐다. 대학 3학년, 농대 불교동아리 친구들과 인도로 성지순례 배낭 여행을 갔다. 여행 도중 친구가 발을 다쳐서 일주일 정도 한 마을의 스리랑카 절에 머물게 되었다. ‘불가촉천민’(인도의 최하층 신분)들이 사는 아주 가난한 마을이었다. 때아닌 혹한으로 마을에서는 매일 노인과 아이들이 몇 명씩 얼어 죽었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를 사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당장 추위와 배고픔에 죽어 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스펙을 쌓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부질없어 보였다. 범지구적인 차원에서 보면 그런 삶은 어리석고, 한 생명으로써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고민 속에서 농사의 가치를 다시 보게 되었다. ●스물세 살, 불교귀농학교 다니면서 본격 준비 스물세 살, 인드라망 불교귀농학교에 다니면서 본격적인 귀농을 준비했다. 현실적으로 당장 귀농이 어려웠는데 그때 ‘한살림’과 ‘흙살림’을 알게 되었다. 대학교 4학년 2학기 때부터 3일은 학교에 다니고 3일은 청주 흙살림으로 출근했다. 흙살림에서는 친환경 농산물 인증과 친환경 농업 교육, 친환경 농자재 영업관리 등의 일을 했다. 친환경 농산물 인증 일을 하면서 비무장지대(DMZ) 안의 벼농가들로부터 제주도 귤농장까지 전국의 농가들을 돌아다녔다. 현장을 둘러보고 농민들을 인터뷰하고 영농일지와 생산 계획서들을 검토하면서 농대 4년 동안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농업 지식을 쌓았다. 출산과 육아로 그만두기까지 5년 동안 흙살림에서의 경험은 농사를 시작한 제주 살이의 자양분이 되었다. 그녀가 흑보리밭 구경을 제안했다. 밭은 겨울 억새가 둘러싸인 언덕에 있었다. 검은 화산회토 사이로 초록빛 보리싹이 올라와 있었다. 자세히 봐야 보이는 실같이 가느다란 싹이었다. 흑보리 농사를 짓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손 덜 가며 직거래 가능한 작물로 흑보리 골라” “농사와 육아를 같이 하다 보니 이래저래 손이 덜 가면서 직거래를 통해 소득을 높일 수 있는 작물로 4년 전에 고른 것이 흑보리예요. 일반 보리보다 수확이 좀 적긴 하지만 맛이 좋아서 먹어 본 사람들은 거의 매년 재구매를 하거든요.” 2000평이라는 흑보리밭을 보면서 그 크기를 가늠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아파트 평수에만 익숙해 밭이나 논의 크기를 말하면 상상하기 어려웠다. 억새가 시작되는 밭의 끝지점을 보고 있을 때 그녀가 말을 잇는다. “농사라는 게 아주 창의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걸 해 보고 성공시킬 수도 있지만 가장 기본은 주변의 농사를 따라 배우는 거지요. 제주에서도 우리 동네는 양채류와 보리, 콩 농사가 많아요. 반대편 구좌 쪽은 당근과 무를 주로 심고, 대정은 감자와 마늘. 이런 식으로 농사가 나뉘어요. 제주라고 해도 토질이나 기후조건이 서로 많이 다르니까요. 그래서 우리 동네에서 많이 하는 농사를 기준으로 생각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어요. 주변에서는 맥주보리를 많이 심어요. 그런데 맥주보리는 수매값이 너무 싸서 트랙터, 씨, 비료, 수확 비용 이런 거를 따지고 나면 몇 만평 하지 않는 이상 거의 남는 게 없어요. 조금이라도 소득을 높이기 위해 흑보리를 선택하게 된 거죠. 콩이나 보리 농사는 투자 비용이 많이 들지는 않으니까 크게 부담이 없어요. 대신 큰 돈도 못 벌지요.” 감귤농장은 지난해 6500평으로 늘었지만 수확량은 2015년 4000평 때보다도 줄었다. 택배로 보낸 게 1600박스다. 지난해 10월 태풍에 떨어진 것도 많고, 노린재의 피해도 큰 탓이다. 겨우내 귤을 먹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서 천혜향이나 한라봉 같은 다른 품종 귤들도 같이 하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건 시설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 그녀에겐 아직 그럴 여력이 없다. 또 귤시장 자체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같은 국제 무역 체제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을 것 같아 섣부르게 투자하기란 쉽지 않는 일이다. ●“단순 가공·추가 비용 안 드는 귤칩도 택해” ‘요보록소보록’ 상표로 올해 새롭게 시작한 것이 귤칩이다. 귤칩은 품위를 맞추지 못한 귤을 가공해서 만든다. 귤잼, 귤주스, 귤정과도 시도해 봤지만 가공 과정이 복잡하고 병이나 설탕, 포장재 등 추가 비용이 들어서 포기했다. 귤칩은 단순 가공이면서 추가 비용도 들지 않고 직거래하기도 좋다. 8000평 규모의 농사와 흑보리, 콩농사, 귤칩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과 함께 농사를 짓는 다른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두 집은 공식적으로는 아니지만 공동체 형태를 띠고 있다. 일당도 계산하고, 소득도 나눈다. 연매출은 4000만~5000만원에 불과하다. 아직 농사만으로 두 집이 먹고살 만큼 수익이 충분하지 않아서 품을 팔러 가야 한다. 그러나 농사를 매개로 한 공동체적 삶을 실험해 보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귤 수입이 많으면 요보록소보록 농장 이름으로 목돈을 넣어 놓고 모든 영농자금 지출도 일원화하고 각자 기본소득 형태로 급여를 가져가는 실험을 해 보려고 한다. 이번 겨울엔 귤 판매 수익이 생각보다 적어 일단 그 실험은 어렵게 됐다. 기본소득은 귀농귀촌 적응을 위해서도, 농촌에서 안정된 생활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제주 생활이 안정되기까지 고정 수입을 가질 수 있었던 농업 인턴제도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그녀로서는 그런 신념이 더 확고해졌다. 네다섯 명이 함께 농사를 짓는 것이 그녀에게는 여러 가지로 좋은 모양이다. “그게 품앗이든 두레 형태든 함께 해 볼 수 있는 일이 많아요. 좀 더 큰 규모의 농사도 가능하고, 일도 더 재밌게 할 수 있어요. 혼자 땡볕에서 풀 깎고 약 치는 것과 두어 명이 같이 일하는 것은 효율 측면에서 달라요. 심적으로 의지되는 부분도 크고. 그런 면에서 서로 마음에 담아 두는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많이 얘기하고 어떤 일이든 구체적으로 정해 놓으려고 해요. 일을 할 때 그 친구들의 상황과 마음을 배려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어서 좋아요. 그럼으로써 함께하는 사람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으니까요.” 어릴 적 그녀가 되고 싶었던 몇몇 직업에는 분명 농부도 있었다고 한다. 이제 농부가 됐다. 대학 동기 중 농사짓는 사람은 그녀뿐이라고 한다. 친구들이 ‘행복해 보인다, 멋있다’고 말해 주면 우쭐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자신의 자리를 돌아보게도 된다. 다른 직업을 택할 걸 그랬나, 수백 번 생각해 봤다. 그래도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리고 ‘아직은 잘 가고 있어’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농부는 사람보다 자연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농부가 좋은 것은 비록 몸은 고되지만, 마음은 어디 구속되어 있지 않고, 시간의 얽매임도 없고, 무엇보다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거죠.” 한림, 그녀의 집 마당엔 아직도 동백꽃이 피어 있을 것이다. 그녀의 삶은 그 동백 꽃잎을 닮았다. 자신의 신념을 좇아 한 길을 걸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빛깔이다. 순수하고 단단한 시간이 묻어 있다. 홑겹이지만 선명하고 붉다. ■글쓴이 소설가 강진 2007년 ‘현대문학’을 통해 단편소설 ‘건조주의보’로 등단. 소설집 ‘너는, 나의 꽃’, ‘피크’(공저), ‘캣캣캣’(공저) 등.
  • 억새로 만든 희망트리

    억새로 만든 희망트리

    21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공원에 있는 미니억새정원 ‘월드컵공원 겨울이야기’를 찾은 시민들이 하늘공원 억새로 만든 희망트리를 스마트폰으로 찍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서울포토] 아빠와 손잡고 ‘미리 크리스마스’

    [서울포토] 아빠와 손잡고 ‘미리 크리스마스’

    21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공원에 마련된 미니억새정원 ’월드컵공원 겨울이야기’에서 아이와 아빠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新국토기행] 눈꽃에 숨은 장성의 푸름

    [新국토기행] 눈꽃에 숨은 장성의 푸름

    서울에서 내려오면 가장 먼저 만나는 전남의 관문인 장성군은 호남의 중심이다. 전북과는 경계를 이루고 광주시와 접해 있고 사통팔달 도로가 연결돼 있어 어느 곳에서나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예로부터 장성은 ‘산이 둘러 있고 물이 굽이쳐 스스로 하늘을 이뤘다’고 표현하듯 자연이 만들어 낸 빼어난 경관과 수려한 풍광이 으뜸인 고장이다. 호남에서 유일하게 문묘에 배향된 하서 김인후 선생을 기리는 필암서원을 비롯해 고산서원, 봉암서원 등 유서 깊은 문화자원이 곳곳에 남아 있는 문향의 고장으로 알려졌다. 소설 홍길동이 실제 살았다는 아치곡, 동학농민군이 싸웠던 황룡전적지 등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장성은 최근에는 ‘옐로시티’라는 새 이름으로 불린다. 옐로시티는 사계절 내내 노란색 꽃과 나무가 가득하고 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자연친화적 도시를 의미하는 것으로, 장성이 꿈꾸는 미래다. 밝은 노란빛 이미지를 느낄 수 있는 예술적 감성이 가득한, 사계절 활력과 매력이 넘치는 고장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자연의 멋과 문화 그리고 노란색의 감성이 가득한 팔색매력 장성은 찾을수록 푹 빠지는 색다른 매력을 느끼게 한다. 인구는 4만 7000여명이다. >>볼거리 ●피톤치드향 가득한 치유의 숲 축령산 편백림 전북 고창과 경계를 이룬 축령산에는 40~50년생 편백나무와 삼나무 등 사시사철 푸른 상록수림대가 1150㏊에 걸쳐 울창하게 펼쳐져 있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나무들이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건강한 나뭇잎에서 뿜어 나오는 피톤치드는 특유의 향을 풍기며 산을 찾은 이들에게 청량한 기분을 선물한다. 축령산은 전국 최대의 조림 성공지로도 유명하다. 춘원 임종국 선생이 한국전쟁 뒤 폐허가 된 벌거숭이 산에 30년간 사재를 털어 묘목을 심고 물을 주고 가꾸며 편백림을 직접 일궜다. 촘촘히 뿌리 내린 편백나무마다 산을 사랑했던 그의 열정이 느껴진다. 산을 오르다 보면 중턱에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조림 공적비가 세워져 있다. 잠시 쉬면서 임 선생 평생에 걸쳐 보여 준 헌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다. 삼림욕을 즐기기 가장 좋은 곳인 축령산은 2014년 사단법인 생명의 숲 국민운동으로부터 ‘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축령산에는 널찍한 임도가 곳곳으로 뻗어 있어 가벼운 산책이 가능하다. 안내도를 따라 오솔길로 들어서면 더욱 진한 피톤치드향이 온몸을 감싸며 상쾌한 기분을 선사하고 곧게 뻗은 나무들로 편백림이 만들어 내는 이국적 정취에 흠뻑 빠지기도 한다. 천천히 걸으며 삼림욕을 즐기는 데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취향에 따라 숲속에 조성된 데크에 누워 독서나 명상을 즐길 수도 있다. 축령산의 매력을 더 깊게 느껴 보고 싶으면 산림청 ‘장성편백 치유의 숲’에서 운영하는 ‘산림치유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된다. 특히 청소년, 환우, 임산부 등을 위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고 숲 해설가가 함께해 더욱 알차게 숲의 속살을 체험할 수 있다. ●천년의 역사가 숨쉬는 백양사 백암산을 뒤로하고 가인봉과 백학봉 사이 골짜기에 자리잡은 백양사는 백제 무왕 때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명찰로 애기단풍과 비자나무 숲, 고불매 등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장성의 대표 관광지다. 백양사에는 보물인 소요대사부도를 비롯한 극락보전, 대웅전, 사천왕문, 청류암, 관음전 등의 국가 문화재들이 가득하다. 담장에 기대어 있는 고불매와 비자나무 숲과 같은 천연기념물도 볼 수 있다. 이곳은 사계절 내내 멋진 풍경을 만들어 내지만 특히 가을에는 색이 고운 애기단풍이 사찰과 백암산을 물들이기 시작하면 백양사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단풍객들과 추억을 만들려는 연인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백양사로 향하는 길에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백학봉을 배경 삼아 맑은 연못에 비치는 쌍계루와 붉은 단풍이다. 수정처럼 맑은 물이 가을의 풍경을 그대로 담아내고 가을 햇살이 더해지면 환상적인 풍경이 연출돼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최고의 단풍 사진 촬영지로 손꼽는다. 백양사를 품은 백암산은 많은 등산객들이 찾는 명산 중 하나로 사계절 사랑받는다. 특히 전남대수련원에서 오르는 등산길 중간에는 장성 8경 중 하나인 입암산성 일부가 온전히 보존돼 있어 역사의 발자취도 느껴볼 수 있다. 입암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전라도를 지키려는 군사 목적으로 쌓은 성으로 계곡능선을 따라 3.2㎞의 성이 남아 있다. 정연하게 쌓은 성벽이 무너지지 않고 많이 남아 있는 데다 남·북쪽 두문의 흔적까지 있어 웅장했던 성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피와 땀으로 나라를 지키려던 조상들의 숨결이 들리는 듯한 매우 유서 깊은 호국유적지다. 지금은 그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성곽과 윤진의 순의비가 있고, 가을 억새는 장관을 이룬다. ●호수를 품은 숲길, 장성호 호반길 장성호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더위를 씻어 주는 기분 좋은 숲길이다. 호수를 배경으로 울창한 숲이 이어지는 장성호 호반길은 자연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입소문 난 트레킹 명소다. 장성읍내와 넉넉한 들녘 풍경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고즈넉한 숲길로부터 시작되는 호반길은 댐이 만들어지기 오래전, 마을주민들이 오갔던 길이다. 한동안 사람의 발자취가 사라졌지만 최근 자연 그대로의 경치를 간직한 아름다운 길로 다시 주목받는다. 지금은 장성군이 호수를 중심으로 명품 둘레길을 만들기 위해 곳곳에 끊겨 있는 길을 나무 데크로 잇고 쉼터를 만들어 걷기 좋은 길로 다듬고 있다. 숲길 군데군데 쉼터도 만들었다. 모두 호수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다. 힘든 길은 아니지만, 잠깐잠깐 멈춰 서서 풍광을 내려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적을 깨며 호수를 가르는 보트의 자태도 멋스럽다. 장성호 건설로 대를 이어 살아온 고향을 등져야 했던 이들을 위한 수몰문화관이 있어 장성호의 과거도 잠깐 엿볼 수 있다. 또 한국 영화계의 거장이라고 인정받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세계를 만날 수 있는 임권택 시네마테크도 이곳에 있다. 시와 글, 그림과 어록을 주제로 갖가지 조각 작품이 세워진 조각공원도 있어 예술을 즐기며 송골송골 맺힌 땀을 식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 홍길동 테마파크 홍길동의 고장으로도 유명한 장성 황룡면 아곡마을에 ‘홍길동 테마파크’가 넓게 조성돼 있다. 테마파크는 홍길동 생가를 비롯해 산채, 전시장, 야영장 등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홍길동 생가는 자리를 옮겨 원형대로 복원했고 전시관에는 출토된 유물과 홍길동 관련 자료인 영상물, 연구논문, 문학작품 등이 함께 전시돼 있다. 또한 테마파크 곳곳에 아기자기한 조형물과 예쁜 쉼터, 꽃밭이 꾸며져 있고 광장에는 분수대가 있어 한여름 어린아이들의 단골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어린이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는 ‘4D 영상관’은 장성군이 제작한 홍길동 애니메이션 ‘홍길동2084’와 ‘Let’s go 활빈당’을 상시 상영하고 있어 어린이들로 북적인다. 이 밖에도 풋살경기장같이 가볍게 몸을 풀고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넓은 공간이 많아 가족단위 관광객들에게 더욱 큰 사랑을 받는다. 많은 이들이 홍길동 테마파크를 찾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캠핑장이다. 테마파크에 있는 야영장은 텐트를 설치할 수 있는 나무데크가 25개 조성돼 있고 주변에 취사장, 샤워장, 화장실, 매점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최적의 캠핑장으로 손꼽힌다. 기본적인 캠핑시설은 저렴한 가격에 대여가 가능하고 바로 옆에도 오토캠핑장이 있어 개성에 따라 선택해 즐길 수 있다. 바로 옆에는 이 마을에서 태어난 박수량 선생의 청백리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청백당’이라는 한옥펜션이 지어져 고즈넉한 하룻밤을 보내기에도 좋은 곳으로 한번쯤 가족과 함께 머무르기 좋다. ●영화계 거장의 작품 조명한 임권택 시네마테크 장성호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장성이 낳은 영화계 거장인 임권택 감독의 삶과 작품세계를 조명하고 업적을 기리기 위한 ‘임권택 시네마테크’가 들어서 있다. 2014년 개관한 이곳은 상영관과 전시관, 영화 관련 연구 및 커뮤니티를 위한 공간이 있다. 2018년까지는 무료로 개방할 예정이다. 시네마테크가 있는 문화예술공원은 넓게 펼쳐진 장성호를 배경으로 103점의 시·서·화 어록을 새긴 멋진 조각작품이 설치돼 관광객들이 공원을 거닐며 문학적 재미를 느끼도록 해 준다. ●오솔길의 낭만 찾는 캠핑족들의 천국, 남창계곡 입암산 남쪽에 있는 남창계곡은 은선동, 자하동 등 여섯 갈래로 이뤄져 길이가 십여리에 이른다. 계곡마다 크고 작은 폭포와 기암괴석이 늘어서 있는 모습은 마치 선계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온갖 새소리가 그치지 않는 울창한 수목과 산천어의 작은 움직임까지 들여다보이는 수정처럼 맑은 계곡물과 계곡을 따라 지루하지 않게 이어지는 오솔길은 남창계곡이 자랑하는 가장 빼어난 멋이다. 여름철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대표적인 피서지로 인기가 높고 최근에는 맑은 공기를 마시며 캠핑을 즐기려는 레저족의 발길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먹거리 ●단풍나무 수액으로 만든 흑두부 단풍나무 수액으로 만든 전통 손두부가 별미로 꼽힌다. 두부가 들어간 버섯전골과 단풍두부묵 등을 즐길 수 있고, 청국장도 맛이 좋아 백양사를 찾는 이들이 즐겨 찾는다. ●여름엔 꿩 샤부샤부, 겨울엔 꿩 떡국 꿩은 예로부터 기력을 증강시키고 소화기능을 돕고 간 기능을 원활하게 하고 피부의 염증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심이나 등심 같은 부위는 적당한 두께로 썰어 샤부샤부와 육회, 탕수육, 떡국 등으로 먹는다. 여름에는 샤부샤부, 겨울에는 떡국을 즐겨 먹는다. ●얼었다 녹았다 반복해 달달한 장성 곶감 맛이 달기로 유명하다. 품종은 주로 대봉이며 감나무들의 수령이 높아 열매가 크고, 육질이 단단하다. 자연 바람으로 말리는 이곳 곶감은 다른 지역과 달리 빛깔이 그리 곱지 않다. 늦가을부터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 당도가 높다. 특히 절반만 말린 반건시가 부드러워 인기를 끌고 있다. ●자양 강장의 아이콘 메기찜·메기매운탕 강에서 갓 잡은 메기에 온갖 채소를 넣고 끊인 메기매운탕은 향긋하고 비린내도 나지 않아 식욕을 돋워 주는 음식이다. 자연산 메기에 각종 양념으로 맛을 낸 메기찜은 담백하고 향긋해 맛을 아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메기찜은 담백하고 칼칼하며 매콤한 맛은 물론 자양 강장의 효과까지 뛰어나다. ●축령산 경치와 함께 즐기는 한방약오리 축령산 자락에서는 황귀, 녹각, 예덕나무 등 각종 약재를 넣어 끓여 낸 한방약오리를 맛볼 수 있다. 축령산 계곡물에 발을 담글 수 있어 더운 여름날 피서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깔끔하게 나오는 신선한 나물 등 담백한 밑반찬과 함께 오리백숙과 닭백숙, 떡갈비까지 기호대로 골라 먹을 수 있다. 장성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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