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주고 산 ‘엉터리 의학박사’ 검은사슬 확인
‘의학박사=돈박사’라는 소문이 사실로 확인됐다.
전주지검이 지난달 하순부터 전북지역 의대, 치대, 한의대 대학원에 대한 수사를 벌인 결과 이들 대학이 개업의들에게 ‘학위장사’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교수들 가운데는 개업의들에게 수업이나 실험에 참석하지 않는 편의를 봐주고 논문을 대신 써주는 대가로 박사학위 한 편당 500만∼2000여만원씩 받아 1억∼2억원대까지 챙긴 경우도 있었다.
이에 따라 돈을 받고 박사학위를 팔아먹는 의료계의 오랜 관행에 대한 대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개업의들은 돈 주고 산 박사학위를 병원에 내걸고 환자들을 끌어모으는 ‘영업목적’으로 이용해 ‘인명을 무시한 사기행위’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이러한 의료계의 고질적인 관행은 전국적 현상이기 때문에 검찰이 수사를 확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벌집 쑤신 전북의료계
원광대 한의대의 경우 L,H,R 등 5∼6명의 교수들이 집중적으로 박사를 배출했으나 대부분 돈을 받고 학위를 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교수 1인당 적게는 1억원 많게는 2억원이 넘는 금품을 받아 챙기고 엉터리 박사학위를 남발했다.
원광대 의대에서도 박사학위를 취득한 개업의들로부터 억대의 금품을 받아 입금한 통장이 검찰 수사과정에서 발견됐다.
전북대는 의대 C,G교수와 치대 K,B교수가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이들은 수천만원에서 1억원이 넘는 뇌물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우석대 한의대 역시 개업의가 한의대 교수 통장에 입금하면 일부를 다시 생물과 교수에게 넘겨주고 실험을 대신 해준 것으로 밝혀졌다.
논문 심사 참여교수들은 정해진 금액(5만 6000∼7만 6000원)보다 훨씬 많은 30만∼50만원씩의 심사비와 향응을 받고 엉터리 박사학위 논문을 통과시켜준 것으로 나타났다.
전북대의대는 특진비에도 비리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수술에 참여하지 않은 상당수 의사들이 수술한 것처럼 이름을 올려 환자들에게 특진비 바가지를 씌우고 이중 일부를 성과급 형식으로 받아 챙겼다는 것이다.
●요지경 부실논문
내용은 같은데 제목만 다른 ‘쌍둥이 논문’, 비슷한 데이터를 약간 조작한 ‘형제논문’, 이런저런 논문을 짜깁기한 ‘짬뽕논문’이 여기저기서 발견됐다. 엉터리 의학박사 논문은 개업의들의 전공과 무관한 경우가 많았다.
일부 대학은 논문을 양산하는 서울 모대학 교수로부터 박사학위 논문을 사와 다시 개업의들에게 되팔기도 했다. 서울의 교수가 제조회사, 지방대 교수는 대리점 형식이었다.
검찰 수사 결과 박사학위를 받은 대부분의 개업의들은 수업을 받지 않았고 실험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돈만 주면 교수들이 알아서 박사학위 논문을 만들어 주었다. 개업의들은 학위논문을 마치 자신이 연구해 작성한 것처럼 심사위원들 앞에서 연기만 하면 됐다. 이에 따라 검찰 주변에서는 일부 심사위원들이 엉터리 학위주기에 품앗이를 하거나 공모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자정의 계기되나
이번 사건에 연루된 교수들은 개업의들로부터 받은 돈을 실험비, 논문인쇄비, 심사비 등으로 사용했을 뿐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비리 교수와 이들에게 돈을 건넨 개업의들에 대한 사법처리 수위에 고심을 하고 있다.
전북대의대 모 교수는 “신학기가 됐지만 검찰수사 파편이 어디로 튈지 몰라 교수들이 전전긍긍하는 바람에 환자진료와 의대수업에 차질을 빚고 있다.”면서 “박사 배출 숫자가 적은 교수나 특진비로 수사가 확대될 경우 자유로운 교수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학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의료계가 대오각성하고 썩은 관행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의료계의 자정운동이 절실한 시점이다.
정부에서도 개업의가 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휴업하거나 휴직토록 하는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광대 한의대 우원홍 학장은 “검찰에서 많은 교수들을 형사처벌할 경우 학교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라며 “검찰 수사결과를 지켜보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전북대 L교수는 “의료인들이 자신들만의 영역에서 행해온 오랜 비리가 뿌리뽑힐 것인지 여부는 검찰의 수사범위와 처벌수위에 달려 있다.”며 “비리 교수들을 무겁게 처벌해 경종을 울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