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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세월호 수습도 못했는데 터미널 화재라니

    어제 경기 고양시의 대형 다중이용시설인 고양시외버스종합터미널에서 화재가 발생해 최소 6명이 숨지고 수십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지난달 세월호 참사에 고개 숙이며 ‘안전 대한민국’ 건설을 외쳤건만 서울 지하철 2호선 추돌사고에 이어 급기야 또다시 소중한 생명들이 희생당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화재는 어제 오전 9시쯤 터미널 지하 1층 푸드코트 인테리어 공사 중 용접 불꽃이 현장의 가연성 자재에 튀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형 마트와 복합상영관 등이 들어서 있고, 지하철역과도 연결돼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터미널에서 화재의 불씨를 안고 있는 용접 작업이 대낮에 안전 대책없이 버젓이 진행됐다는 게 어처구니없을 따름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이 얼마나 뼛속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불과 40여일 전 우리는 세월호에 타고 있던 어린 학생들을 비롯한 수백명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했다. 아직도 16명의 실종자들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세월호 속에 갇힌 채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채 수습하지도 못했는데 터미널 화재라니, 이제는 정말이지 ‘안전 불감증’이라는 말을 꺼내기도 지친 상황이다. 하루하루 주변에서 어떤 안전사고가 벌어질지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며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 국민들은 절망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후 그토록 무수히 제기했던 우리 안의 또 다른 세월호 문제는 이번 화재로 여실히 입증됐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희생당할 때까지 이런 안전사각지대를 방치할 것인지, 중앙정부나 지자체 할 것 없이 맹성해야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9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세월호 참사를 눈물로 사과하고, ‘안전 대한민국’을 위한 대변혁을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 담화 발표 일주일 만에 인재(人災)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해 또다시 고귀한 생명들이 희생됐다. 박 대통령이 그토록 강력한 의지를 담아 ‘안전 대한민국’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아직 그 절절함이 밑바닥까지 파급되지 않고 있다 하겠다. 우리 사회에 매사 설마 무슨 일이 있겠나 하는, 적당주의가 팽배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한단 말인가. 가뜩이나 개각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직사회의 분위기가 붕 떠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안전 혁신 마스터플랜’을 완성하기 전이라도 안전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즉각 가동해야 한다. 소중한 국민들을 안전사각지대에 더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 [문화 In&Out] 놀이로 만나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

    [문화 In&Out] 놀이로 만나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능청스럽게 다가온 커다란 호랑이가 요구한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떡 한 덩어리였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줄 떡”이라며 완강히 버텨 보지만 바들바들 떨다가 이내 떡 하나를 던져 주고 도망갔다. 그렇게 끊임없이 살금살금 다가오는 호랑이에게 ‘엄마’는 떡을 주고 또 주고, 광주리는 금세 비고 말았다. 그리고 호랑이는 단숨에 ‘엄마’를 꿀꺽 삼켰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할아버지, 할머니 무릎에 안겨 들어 봤을 법한 전래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다. 호랑이가 ‘엄마’를 꿀꺽 삼키는 대목에선 눈을 찔끔 감았을 터다. 그런데 다 커서 어른이 되고 보니 궁금증만 더한다. ‘엄마’의 광주리에 있던 떡은 팥시루떡이었을까, 인절미였을까. 아니면 절편이나 경단이었나. 엄마를 삼킨 호랑이는 다른 동화책 속에 등장하는 호랑이들과 어떻게 달랐을까. 서울 경복궁 내 국립민속박물관이 2016년 3월까지 이어 가는 상설전시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이런 물음에 답을 준다. 2008년의 ‘심청 이야기 속으로’, 2012년의 ‘흥부 이야기 속으로’에 이어 전래동화와 놀이요소를 접목한 세 번째 체험형 전시다. 전시가 눈길을 끄는 것은 단순히 애니메이션과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터치스크린 게임 등이 어우러진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원래 이야기에 저마다의 경험과 상상이 더해져 또 다른 이야기로 탄생하는 옛날이야기의 힘을 유감없이 드러냈다는 데 있다. 전시장 가운데 ‘팝업책’ 모양을 한 놀이공간은 아이들이 상상력을 마음껏 키울 수 있는 체험장이다. 동아줄을 잡고 암벽 타기를 하거나 부엌으로 들어간 호랑이를 혼내 주는 세트장 등이 마련됐다. 민속박물관답게 전통 베갯모에 그려진 호랑이 그림과 효심 깊은 호랑이 등 전래동화에 드러난 다양한 호랑이 이야기까지 접할 수 있다. 할머니 교사 3명은 월·수·금요일마다 하루 네 차례 아이들에게 전래동화를 들려준다. 책을 읽어 줄 수 있는 서재나 호랑이와 관련된 다양한 유물도 곳곳에 배치됐다. 전시는 지금도 주말엔 하루 1000명 가까운 입장객을 모으고 있다. 주인공인 오누이가 엄마가 없는 상황에서 무서움과 두려움의 대상인 호랑이와 맞서 이겨 나가는 이야기 외에 우리 민속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건 덤이다. 입장은 무료.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이영탁 미래와 세상] 세월호 사고와 이건희 회장의 변고

    [이영탁 미래와 세상] 세월호 사고와 이건희 회장의 변고

    세상이 불안하다. 돌아보면 곳곳에 사고 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세월호 사건이 터진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아직도 사고 수습을 다 못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주변에 안전한 곳이 있을까. 이따금씩 어처구니없는 대형 사고를 당하고 나서 반성도 많이 하고 온갖 대책을 세운다. 관련자를 찾아 법에다 국민 정서를 얹어 크게 처벌하고 정부조직을 늘리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고 다짐한다. 결과는 어땠는가. 치솟던 국민 공분은 금방 사라진다. 남는 건 커진 정부조직에다 행정규제이고 얼마 안 가 유사한 사건 사고는 되풀이된다. 세월호 사고를 되돌아보면 회한이 많다. 사고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예방 가능하다는 데 안타까움이 있다. 배가 기울어지는 상황에서도 잘만 대처했다면 지금처럼 많은 희생자를 내지 않았을 거라는 데 더 큰 안타까움이 있다.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안타까움은 서해 훼리호 침몰,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화재 등이 발생했을 때 이제 이러한 대형 참사는 더 이상 없을 거라는 우리의 다짐이 물거품이 돼버린 것이다. 세월호 사고로 온 국민이 슬픔에 빠져있는 와중에 삼성 이건희 회장의 변고가 생겼다. 두 사건은 관련 당사자들의 정신적 해이의 결과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이 회장은 평소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던 분이다. 당연히 옆에 의료전문인력이 여럿 있을 것 아닌가. 이 회장의 건강을 수시로 점검해서 사전적으로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호흡 곤란 또는 심장 정지 상황이 왔을 때에도 지금보다 더 잘할 여지는 없었는가. 누구든 건강상태의 실시간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에 머지않아 병원에서 받는 종합검진이 없어진다고 한다. 이런 세상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게되는 심근경색 현상을 속절없이 마주하게 됐으니 씁쓸한 기분이다. 우리 사회 전체가 무너져 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누가 누굴 탓할 입장도 못된다. 짧은 기간에 만들어진 졸부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우린 그동안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했고, 내실보다 외형이 먼저였으며, 윈윈하는 협력보다 남을 이기는 경쟁에 골몰했다. ‘빨리빨리’와 ‘대충대충’, 그리고 ‘설마’가 오랜 기간 몸에 배어 있다. 그동안 노력과 수고도 많았지만 편법과 불법도 적지 않았다. 그 결과 지금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갖가지 대책 수립과 책임 추궁에 바쁘다. 쏟아 내고 있는 온갖 걸 다해도 미덥지 못하다. 왜일까? 무엇을 보태야 온전한 대책이 될까. 우선 디테일에 충실해야겠다. 성공과 실패의 차이, 안전과 사고의 차이가 거창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데에 있다. 갈수록 디테일이 결과의 차이를 크게 만들 것이다. 100-1이 99가 아니라 0이 될 수도 있는 세상이다. 둘째, 이제 무슨 일이든 즉흥적인 판단이나 위로부터의 지시가 아니라 시스템이나 매뉴얼에 따라 처리하도록 하자. 미래 사회는 소수의 지도자보다 다수의 보통 사람들의 파워가 크다. 전문화되고 복합화된 세상에서는 특정인의 판단에 의존하기보다 사전에 규칙을 만들어 놓고 이를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미래는 더불어 살아가는 따뜻한 세상이다. 따라서 자기의 이익만 추구하던 ‘me first적’ 행태에서 벗어나 ‘we first적’ 사고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연결된 모바일 세상에 공동의 선이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개인의 이익만 추구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사실 이러한 일은 국민의식 수준의 제고와 정신 개조를 동반해야 한다. 따라서 급하게 서둘러 끝낼 일도, 제도나 조직을 고친다고 될 일도 아니다. 사람이 달라지지 않고는 아무 효과가 없다. ‘내 탓이오’ 없이 남을 질책하고 비난하는 모습은 옳지 못하다. 누가 누굴 탓할 것도 없이 이 시대 우리 사회의 지도자부터 뼈아픈 자기반성과 확실히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도록 하자. 그것이 바로 세상이 달라지는 대역사의 시작이요, 세월호와 같은 인재(人災)가 다시는 발붙이지 못하는 확실한 길이 아니겠는가
  • [사설] KBS사태 先 진상규명 後 문책으로 풀어야

    국가기간방송인 KBS의 꼴이 말이 아니다. 청와대의 보도·인사 개입 파문으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길환영 KBS 사장은 어제 노조 조합원들이 출근저지 투쟁을 벌이는 가운데 일부 매체와 가까스로 ‘약식’ 기자 회견을 열었다. 뉴스 제작의 중추인 보도본부 부장단 18명이 지난주 KBS의 정치적 독립성과 공정성 회복을 요구하며 보직 사퇴를 했을 때 이미 이 같은 사태는 예견됐다. 이들이 퇴진운동에 나서게 된 계기는 길 사장이 청와대와 유착해 KBS 보도에 개입했다는 폭로 때문이다.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청와대가 해경에 관한 비판을 자제하라”며 보도국장 등 간부들에게 여러 번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길 사장은 이날 KBS기자협회총회에 참석해 자신의 발언이 왜곡돼 전달됐다며 사퇴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확한 진상은 추후에 밝혀지겠지만 이 같은 난맥상이 불거진 것만으로도 KBS를 ‘국민의 방송’으로 부르기가 민망할 지경이다. 이쯤 됐으면 청와대는 스스로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서라도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다고 분명한 어조로 말해야 옳다. 공식적인 언급을 자제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진정으로 공영방송에 가타부타할 의도가 없었다면 그 근거를 대야 할 것이요, 정상적인 홍보활동 차원을 넘어서는 부적절한 압력이라도 행사했다면 솔직히 과오를 인정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마땅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정부조직 개편안 관련 대국민 담화 때도 “방송장악은 할 의도도 전혀 없고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KBS에 ‘청영방송’(청와대 경영 방송)이든, 노조가 좌지우지하는 뜻의 ‘노영방송’이든 어처구니없는 오명이 따라붙어선 안 될 말이다. 세월호 참사 보도와 관련, 그러잖아도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언론이다. 정부 발표 받아쓰기 행태로 “언론도 공범”이라는 험한 소리까지 듣는다. 이는 물론 KBS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KBS가 과연 공영방송으로서 저널리즘의 기본가치를 지켜나갈 의지가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청와대 또한 모든 게 투명할 수밖에 없는 대명천지에 아직도 방송장악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람의 문제다. 사태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 KBS든 청와대든 관련 책임자들에게 반드시 응분의 조처가 따르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KBS가 명실상부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인지 시험대에 올랐다고 본다.
  • [김병일 사람과 향기] 지식인의 책무를 다시 생각한다

    [김병일 사람과 향기] 지식인의 책무를 다시 생각한다

    세월호 사건의 여파가 우리 사회의 시스템 전반에 대한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알면서든 모르면서든, 그동안 덮고 있던 상처가 곪을 대로 곪은 끝에 터진 것이 세월호 사건일 뿐이라는 진단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 마디로 전혀 의외의 사건이 아니라 이미 충분히 예견되었던, 다만 그 시기만 미정인 상태로 잠복해 있던 일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언론이 앞다투어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심층보도로 옮겨 가고 있는 것도 이러한 문제인식을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대형사고가 날 때마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하이인리 법칙’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1930년대 미국의 한 보험회사 감독관인 하이인리라는 사람이 보험사고의 유형들을 조사하다 발견한 법칙으로, 한 건의 대형사고가 터질 때까지는 비슷한 29회의 경미한 사고들이 먼저 있고, 다시 그 이전에는 300회 이상의 아주 가벼운 징후들이 먼저 발생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하이인리 법칙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공동체가 공유하고 있던 역사적 경험의 산물이다. 달무리가 지면 다음 날 비가 오고 겨울에 남풍이 불면 큰 눈이 온다는 우리 격언도 짧지만 핵심을 찌르는 한국식 하이인리 법칙인 것이다. 동양의 대표적 고전인 ‘주역’에서는 이 문제를 좀 더 깊이 있게 이야기한다. 주역에는 “서리를 밟으니 굳은 얼음이 이를 것이다”는 말이 나온다. 서리는 곧 얼음의 징후라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그런 상태에 이르기 전에 미리미리 방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주역이 “신하가 임금을 죽이고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일은 하루 아침저녁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일이 발생하는 작은 것들이 조금씩 쌓인 결과이다”는 말로 이 구절의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부연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하이인리 법칙이나 주역의 깨우침처럼, 모든 일은 앞선 조짐, 즉 전조(前兆)가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대형사고나 참사를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전조를 미리 알아차리고 대비하는 것이다. 제도를 만들고 조직을 설치하고 의식을 다잡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게 공동체 속에서 누군가 그 전조를 알아차리고 구성원에게 경각심을 끊임없이 일깨우는 일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 역할을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을까? 역시 지도층, 그중에서도 지식인이 아닐까? 전조를 알아차리고 이를 공동체를 향해 발신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전문적 식견과 고도의 판단력, 그리고 깨어 있는 의식이 삼위일체가 돼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식인을 학식이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국한하는 습관이 있다. 하지만 참된 지식인은 단순히 학식이 많은 사람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거기에 덧보태어 냉철한 판단력과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이라야 지식인이다. 굳이 남의 나라에서 사례를 찾을 필요도 없다. 우리 역사 속의 선비가 바로 그런 지식인의 전형적 모델이다. 선비는 전문적 학자이자 보편적 교양인이며, 동시에 자신이 공부한 것을 솔선하여 행동으로 옮긴 실천가였다. 퇴계가 그랬고, 남명이 그랬고, 율곡이 그랬고, 다산이 그랬음을 우리는 안다. 선비를 세상물정도 모르고 책만 읽는 가난한 ‘딸깍발이’로만 이해하는 것은 독립운동의 뿌리인 선비문화를 말살하려 했던 일제 식민사관이 고의적으로 심어놓은 편견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반복되는 대형 안전사고 등 어처구니없는 인재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조짐이 드러날 때 그것을 정확히 인식하고 냉철하게 판단해 더불어 사는 사람들을 위해 경고음을 울리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이것이 시스템을 만들거나 제도를 보완하는 일보다 더 근본적이다. 옛 선비들이 그랬듯이, 건강한 사회는 지식인이 ‘탄광 속의 카나리아’ 역할을 하는 사회다. 환기장치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 탄광에 메탄이나 일산화탄소가 많아지면 먼저 알아채고 울어서 광부들을 도피할 수 있게 했던 그 카나리아 말이다. 한국국학진흥원장
  • “청춘들이여, 자신의 인생에 더 많은 꿈들을 요구하라”

    “청춘들이여, 자신의 인생에 더 많은 꿈들을 요구하라”

    2004년 소설가 김연수(44)가 펴낸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은 문학 독자들의 청춘을 위로하며 25쇄를 찍은 스테디셀러다. 이제 중년에 접어든 그가 한 시절을 공유했던 독자들에게 더 깊어진 눈으로 고른 ‘청춘의 문장들’을 건넨다. 책 출간 10주년을 맞아 새롭게 엮은 ‘청춘의 문장들+’(마음산책)다. 책은 작가가 10년, 우연과 재능, 간절함, 직업, 소설, 불안, 치유 등 10개의 열쇳말을 뽑아 써낸 산문 10편과 금정연 평론가와 나눈 대담으로 묶었다. 고 박완서 작가가 그의 아내로 둔갑(?)한 사연, 인터넷서점 과장으로 일하던 시절 새벽 6시 30분에 출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등 작가의 유년기에서부터 문학청년을 거쳐 직장인 시절의 에피소드들이 흥미진진하게 녹아 있다. 중년의 김연수는 청춘의 김연수가 “‘어처구니없게도’ 인생에서 가장 늙었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한다. “인생에서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갔다고 생각했거든요. (중략) 지금 그때의 제게로 돌아가서 뭔가 얘기해 준다면, 정신 차리라고 하고 싶네요. 네가 얼마나 어린지 아느냐고, 그러니 지금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청춘의 문장들’을 내고 10년이 지나는 동안 김연수는 “매일 저녁이면 내 인생은 다시 태어난 것처럼 환한 등을 내걸 수 있으리라는 걸”, “우리는 떨어지는 꽃잎 앞에서 배워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런 그가 스무 살 청춘들에게 밑줄 그어주는 문장은 “사람들은 각자 자신에 맞는 양의 천연적 아편을 자신 속에 소유하고 있는 법. 이 끊임없이 분비되며 새로워지는 아편을”이라는 보들레르의 시다. “그 아편의 대부분은 스무 살 무렵에 만들어집니다. 자신의 인생에 더 많은 꿈들을 요구하시길. 이뤄지든 안 이뤄지든 더 많은 꿈들을 요구했던 그 시절의 기억이 당신들을 살아가게 만든다는 걸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알게 될 테니.”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사설] 대형 참사 겪고도 시늉뿐인 화재대피 훈련

    세월호 참사의 와중에서도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은 제자리걸음이다. 서울 강남의 고층 빌딩에서 실시된 화재 대피 훈련은 시늉에 그치고, 울산의 산업현장에서는 닷새 동안에 세 차례나 안전사고가 발생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소중한 인명들이 더 희생돼야 하는가. 안전보다 돈을 앞세운 사회 구조와 설마 하는 방심이 또 다른 참사를 부르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한국무역협회와 코엑스가 그저께 강남구 삼성동 트레이드타워에서 실시한 화재 대피훈련은 우리의 안전 불감증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46층에서 가상 화재가 발생한 지 3분이 지나서야 대피안내 방송이 나왔고 위층 사람들이 몰리는 바람에 30여분이 지나서야 대피가 마무리됐다. 게다가 방문객 혼란을 이유로 비상경보음은 작동시키지 않았고, 상주 인원의 75%는 업무를 이유로 훈련에 참가하지 않았다. 허술한 준비와 시민참여 부진으로 안전 매뉴얼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형식적인 훈련으로 어떻게 재난에 대비하겠다는 것인지 답답한 노릇이다. 산업현장의 안전사고도 끊이지 않고 있다. 울산산단에서는 지난 13일 제련공장에서 수증기 폭발로 추정되는 사고가 나는 등 닷새 동안에 3차례의 폭발·질식 사고가 발생해 근로자 1명이 숨지고 1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대형사고가 나기 전에 그와 비슷한 경미한 사고가 29건 일어났고, 그전에 300차례 정도의 징후가 있기 마련이라는 하인리히 법칙은 산업현장의 안전 불감증이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산재 사망자 수가 이라크전쟁 당시 미군 전사자의 4배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화학물질관리법의 하위 법령을 입법예고하면서 화학 사고에 따른 영업정지 대상과 과징금 규모를 기업들 입맛에 맞게 솜방망이 수준으로 대폭 축소, 완화하는 등 기업주의 이익만 옹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개탄할 일이다. 충남 아산의 농지와 수로 위에 지은 7층짜리 오피스텔이 준공을 보름 남짓 앞두고 한쪽으로 20도가량 기울어진 어처구니없는 사고도 경각심을 일깨우긴 마찬가지다. 지난달 정부는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2010년부터 계속 금지한 아파트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허용키로 했다. 건축 당시 구조도면과 안전진단 등을 통해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현장 확인과 검증, 실사를 통해 재검토하는 게 마땅하다. 단 1%의 위험도 감수할 수 없는 게 사람의 생명이고 안전이다. 내가 피해를 당할 수 있고, 내 가족이 희생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우리 안의 안전 불감증을 해소해 나가야 할 때다.
  • [세월호 참사 한달-우린 뭘 잃고 얻었나] 유족 “진상규명 자료 수집중… 아이들 죽음 헛되지 않게 할 것”

    [세월호 참사 한달-우린 뭘 잃고 얻었나] 유족 “진상규명 자료 수집중… 아이들 죽음 헛되지 않게 할 것”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한 지 어느새 한달이다. 어처구니없는 후진국형 ‘인재’(人災)는 국민 모두를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로 만들었다. 세월호 침몰을 무기력하게 TV로 보면서, 지리멸렬한 수색 작업 탓에 한달째 금쪽같은 자식들의 시신조차 못 찾은 실종자 가족들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면서 미안해했다. 진도에서, 경기 안산에서 혹은 거리에서 희생자 가족들의 고통을 함께한 이들에게 지난 한달은 어떤 의미였을까.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2학년 3반 김시연(17)양의 이모부이자 9반 박예지(17)양의 고모부인 김용태(43)씨는 어렵게 유가족들의 근황을 전했다. 김씨는 “시연이와 예지의 부모는 한달째 생업을 중단한 채 안산 화랑유원지 합동분향소에서 다른 유족들과 함께 대책 회의를 하고 있다”면서 “시신을 찾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지금은 침묵하면서 앞으로 진상 규명을 요구할 때 제시할 증거 자료를 수집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이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24일 발인을 치른 시연양은 사고 발생 5일 만에 차디찬 주검으로 발견됐을 당시 한 손에 휴대전화를 꽉 쥐고 있었다. 당시 진도 팽목항에서 딸을 기다리던 가족은 해경에게 휴대전화를 건네받은 뒤 복원했고, 한 방송을 통해 침몰 직전 촬영된 동영상을 공개했다. 김씨는 “아이들이 마지막까지 외부와 연락을 취했던 카카오톡 내역이나 동영상이 충분한 증거가 될 것으로 본다”면서 “유족들이 대한변호사협회 등에 자문해 당국에 법적 책임을 물을 준비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한달 전에 떠나버린 두 조카의 모습을 떠올렸다. 김씨는 “매주 교회도 같이 가고 여름철이면 함께 휴가를 보내는 친자식 같은 조카들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시연이는 사춘기에도 이모부인 나에게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살가운 아이였고 예지는 맞벌이하는 부모를 대신해 항상 동생에게 밥을 해 먹일 정도로 듬직하고 순수한 아이였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혜진(30·여)씨는 투표도 하지 않고 정치에도 별다른 관심이 없던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가 그를 바꿔 놓았다. 지난달 16일 이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카카오스토리’를 통해 교류하게 된 다른 시민들과 화랑유원지 합동분향소 앞에서 세월호 사고에 대한 정부 책임을 묻는 피켓 시위를 시작했다. 이씨는 “안산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단원고 학생들이 어처구니없게 희생된 것을 보며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처음에는 안타까운 마음에 구조·수색 작업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공유하는 정도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대전, 부산 등 지방에 사는 시민들까지 피켓을 들고 서울과 안산으로 온다”고 말했다. 유족들이 KBS 보도국장의 사과를 요구하며 청와대로 향하다가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경찰과 대치했던 지난 9일 이씨도 그곳에 있었다. 이씨는 “부산에서 연차를 내고 비행기를 타고 와 유족들의 움직임에 동참한 아기 엄마도 있었다”면서 “24시간이 넘도록 자리에 한번 앉지 않고 유족들 곁을 지키는 시민들을 정치적 선동꾼으로 몰아가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이씨는 “희생자들의 휴대전화에 있던 동영상들이 복구, 공개될 때마다 당국의 구조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밝혀지고 있다”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목소리가 모여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족들에게 힘을 실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진도 주민 30여명으로 구성된 봉사단체 ‘빵 맹그는 아짐 봉사단’의 회장 김연단(53·여)씨는 세월호가 바닷속으로 가라앉던 지난달 16일 오전 회원들과 빵을 굽고 있었다. 그때 단원고 학생들이 ‘전원 구조’됐다는 뉴스 속보가 떴다. 김씨는 학생들에게 따뜻한 찐빵을 나눠 주려고 진도 실내체육관으로 향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건 도착한 뒤였다. 팽목항에 자원봉사 부스가 채 마련되기도 전에 김씨와 회원들은 실의에 빠진 실종자 가족들에게 김밥과 전복죽을 나눠 주기 시작했다. 20여명의 회원들과 함께 하루 1000명이 먹을 김밥을 싸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팽목항에서 보낸 한달, 김씨의 일상도 달라졌다. 김씨는 “실종자 가족들 옆에서 오랜 시간 함께 있다 보니 그들의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정신적으로 힘겨운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매일 팽목항을 찾던 김씨는 5월 초부터 격일로 봉사를 하고 있는데 집에 있으면 하루 종일 멍한 채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가족들이 차라리 매일 팽목항에 나가라고 권유했을 정도다. 김씨는 “사고가 발생한 진도 지역 주민 대부분은 실종자 가족들의 슬픔을 그대로 느끼고 있다”면서도 “정성을 다해 가족들을 챙겨 드린 덕분에 처음에 우리를 경계했던 가족들이 이제는 ‘고맙다’는 말을 해 줘서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민간 잠수사 임민수(52·가명)씨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 안고 진도에 달려왔다. 마땅히 할 일이고 딱 한명만이라도 구해서 돌아오자는 생각뿐이었다. 수학여행길에 영문도 모르고 변을 당한 아이들은 그의 자식이고 조카였다. 임씨는 “고철업을 하고 있지만 국가적인 재난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면서 “생업도 중요하지만 누구라도 나서서 사고를 수습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 잠수사들의 피로도가 심해지자 민·관·군 합동구조팀이 민간 잠수사를 추가 모집한 이달 초 현장에 투입됐다. 10여년 전 탈북한 아내(46)도 실종자 가족들이 머무는 팽목항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임씨의 아내는 이번에야말로 자신을 받아준 대한민국에 보답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자신의 일상은 멈춘 것이나 다름없지만 사명감만큼은 더 강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나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는 잠수사들의 마음은 한결같다.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라면서 “물살도 거세고 수중 시야도 탁해 위험한 상황이지만 심기일전해서 바다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혹시라도 잠수사들에게 사고가 나면 구조 작업이 지연되는 데다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을 두번 아프게 한다는 생각에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라는 생각으로 임한다고 했다. 진도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진도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안산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파주 광일中 교장 평교사 강등 논란

    스승의 날을 앞두고 사립학교법인이 교장을 평교사로 강등시켜 논란이 되고 있다. 14일 경기도교육청 북부청에 따르면 파주광일중학교 A(60) 교장은 지난해 3월 1일부터 4년 임기의 공모 교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2007년 2월 같은 학교법인 산하 고등학교에서 교장직을 맡았다가 권고사직해 명예회복의 기회로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지난달 28일 학교로부터 갑자기 대기발령 공문을 받았다. 공문에는 발령 사유도 없이 제1교무실에 대기하도록 돼 있었고, 교감이 교장 직무대리로 명시돼 있었다. 지난 2일에는 행정실장으로부터 ‘교장실을 비우라’는 두 번째 공문을 받았다. 어쩔 수 없이 A 교장은 다음 날부터 지정된 교무실로 출근했다. A 교장은 “졸지에 평교사로 강등돼 일반 선생님들과 책상을 마주하니 어처구니없을뿐더러 후배 교사들까지 불편하게 하는 것 같아 너무나 초라한 느낌이 들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다행히 파주교육지원청은 “학교법인 측이 제출한 교원 임면 공문의 양식이 불완전하다”며 서류를 반송시켰다. 학교운영위원회와 총동문회 관계자들은 “교장 선생님을 정당한 이유도 없이 평교사로 강등시키는 것은 학생들 교육에도 좋지 않은 모습”이라며 학교법인의 처사를 비난했다. 이에 대해 서울신문은 반론을 듣고자 학교 측에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를 하지 못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데스크 시각] 나이지리아에도 희망의 노란 리본을/이순녀 국제부장

    [데스크 시각] 나이지리아에도 희망의 노란 리본을/이순녀 국제부장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난 지 어느덧 한 달이 다 돼간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마치 집단 악몽을 꾸는 듯 허우적댔던 시간이 그렇게 속절없이 우리 곁을 지나갔다. 악몽은 깨어나면 끝이지만 차디찬 시신으로 돌아온 희생자와 아직 행방조차 알지 못하는 실종자를 합한 304명의 가족들에겐 지금이 고통의 시작에 불과하기에 다가올 시간이 더 막막하고 두려울지 모른다. 대형 재난이나 사고로 인한 다수의 무고한 희생은 매번 슬프고, 안타깝다. 그런데 이번엔 분노가 안타까움과 슬픔을 압도했다. 백번을 양보해서 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벌어진 선원과 선사, 해경, 정부의 온갖 비리와 부정, 비상식적 행태에는 분노라는 원초적인 감정 말고 달리 표출할 방법이 없다. 어제 아침, 어느 신문이 1면에 보도한 ‘해경이 대응만 제대로 했어도 전원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검찰 관계자의 말이 차라리 거짓이길, 그래야 유족들의 한이 미세먼지만큼이라도 덜어지지 않을까 싶은 심정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가 한마음으로 세월호의 기적을 바라고 있는 동안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도 200여명 학생의 부모들이 밤낮으로 자식의 무사귀환을 기원해 왔다. 세월호 사고가 나기 이틀 전인 지난달 14일,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보코하람에 집단 납치된 보르노주 치복시 여학교의 학생 276명 가운데 일부 탈출 학생을 제외한 200여명의 행방이 아직까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 같은 시기에 벌어진 두 비극적 사건에 대처하는 양국 정부의 행태는 씁쓸하게도 닮은 점이 많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사건 발생 수일이 지날 때까지 정확한 피랍자 수를 몰랐다. 군 당국은 납치 발생 사흘 뒤인 17일 “납치된 100여명 대부분이 풀려나고 실종자는 8명뿐”이라고 했고, 보르노주는 19일 “44명이 탈출했고, 95명이 실종 상태”라고 말하는 등 엉터리 발표를 계속했다. 당국은 수색에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참다못한 학부모들이 직접 외딴 숲을 뒤지러 다녔다. 알고 보니 사건 발생 직후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각국이 구출을 돕겠다고 했지만 굿럭 조너선 대통령이 이를 거절한 것으로 밝혀졌다. 조너선 대통령은 열흘이 지나서야 마지못해 성명을 발표했다. 나이지리아 전역에서 정부의 무성의한 대응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학부모들은 ‘우리 딸들을 구해달라’는 종이를 들고 수도 아부자를 행진했지만 정부의 대응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이달 초 보코하람이 동영상을 통해 자신들의 납치 사실을 시인하며, 여학생들을 노예로 내다 팔겠다고 협박한 것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관심이 급증하면서 그나마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 와중에도 대통령은 피랍자 부모들이 경찰에 협조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대통령의 부인은 납치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고 내년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겨냥한 음모라는 황당한 주장을 했다. 더욱이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정부는 사건 발생 4시간 전에 첩보를 입수하고도 이를 무시한 것으로 드러났으니 누가 누구를 흉볼 처지는 아니지만 믿고 의지할 만한 정부의 모습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대한민국 곳곳에 노란 리본이 넘쳐나고 있는 것처럼 지금 트위터에는 ‘우리의 소녀들을 돌려줘’라는 해시태그(#)를 단 글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소녀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나이지리아에도 희망의 노란 리본을 건네본다. coral@seoul.co.kr
  • [열린세상] 세월호 참사와 6·4 지방선거/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열린세상] 세월호 참사와 6·4 지방선거/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2014년 4월 16일 아침, 우리 모두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대참사 앞에 망연자실해졌다. 미처 피어보지도 못한 어린 학생들이 어른들의 탐욕과 부정,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앞에 스러져갔다. 자리를 지키라는 방송으로 승객들을 선실에 남겨둔 채 선장과 선원들은 침몰하는 배에서 제일 먼저 빠져나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처럼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없는 장면은 없었다. 천인공노할 집단학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들은 분노했다. 자식을 잃은 부모, 부모를 잃은 어린 아이, 학생을 잃은 선생님, 선생님을 잃은 제자들…. 어느 누구도 이 말도 안 되는 상황 앞에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우리 모두는 유가족들에 대해 깊은 위로와 조의를 표했다. 사후처리에 우왕좌왕하는 정부에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이 참사가 발생한 근본적 원인을 찾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모두 처벌하는 데 깊이 공감하고 있다.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의 모든 활동은 국민의 마음처럼 위축됐고 대한민국은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버렸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직전, 정치권은 기초연금과 방송통신법 개정안을 두고 대치하면서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6·4 지방선거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기초단체 공천폐지 문제를 둘러싼 정치권의 지루한 갈등은 결국 안철수 공동대표가 당원과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데 동의함으로써 출구를 찾았다. 새누리당은 일찍부터 기초공천 폐지공약을 지킬 수 없음을 천명하고, 4월 30일까지 모든 공천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었다. 바로 그때, 예기치 못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마치 4차원의 세계에 빠진 것처럼 모든 것이 정지됐다. 공천이나 경선과정은 전면 중지됐고 선거운동도 금지됐다. 생때같은 자식을 찬 바닷물 속에 두고 찾지 못하는 부모들 앞에 정치 과정을 진행할 경우 국민의 지탄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일주일이 넘고 열흘이 지나자 더 이상 정치 과정을 미루기만 할 수는 없었다. 일부에서는 지방선거를 연기하자는 의견도 제시됐지만, 선거 후 이어지는 정치 과정도 있기에 조용한 경선을 표방하면서 6·4 지방선거를 향한 여정은 다시 시작됐다. 그런데 여기서 구태정치가 다시 나타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 이익을 위해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권보다 먼저 세월호를 정치에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 일부 진보적 인사들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지 말았어야 할 이유’라든가 이 참사의 책임을 지고 하야하라는 요구가 그것이다. 지성인이라는 도올 김용옥은 하나부터 열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이니 물러나라고 주장한다. 있어서는 안 될 사고였고, 그 처리과정에서 보여준 행정의 난맥상에 대한 총체적 책임이 대통령에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고 해도 이를 빌미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요, 스스로 이 시대의 지식인임을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세월호 참사를 지난해부터 이어온 대통령 불인정 주장의 근거로 활용하는 것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자기부정이다.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빌려 간접적인 사과를 표명한 것을 사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동의한다고 해도 일반 국민이면 몰라도 정치권 인사가 세월호 참사를 이용해 대통령과 정부를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적어도 우리 사회의 지도층에 속한 인사들이라면 우리 모두가 이 참사에 대해 도의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스스로 반성해 보자. 우리는 그동안 매사에 안전수칙을 지켜 왔는가. 작은 이익을 위해 적당히 일을 처리한 적은 없었나? 조금 빨리 가기 위해 교통 법규를 위반하지는 않았는가. 항공기 안전점검 때문에 출발 시간이 연기됐을 때 제때에 가지 못한다고 항의한 적은 없었는가. 그동안 모든 일을 빨리빨리, 대충대충해 온 것이 세월호 참사의 근본 원인은 아닌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크고 작은 책임이 있다. 지금은 아직 물속에서 찾지 못한 승객들을 하루라도 빨리 가족들 품으로 보내드리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아울러 이 참사의 모든 과정에 대한 정밀 분석과 조사를 통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국가적 비극을 자신들의 작은 정치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악용하는 것을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
  • [안전 업그레이드] (1) 지하철 - 두 번째 깊은 서울 8호선 산성역 가보니

    [안전 업그레이드] (1) 지하철 - 두 번째 깊은 서울 8호선 산성역 가보니

    세월호 사고로 안전에 대한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아야 할 마당에 황금연휴를 앞둔 2일 서울에선 지하철 추돌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마저 덮쳤다. 언제까지나 ‘소 잃고 나서야 외양간 고치는’ 어리석음을 거듭할 순 없다. 국민을 위협하는 대한민국의 총체적인 안전 문제를 부문별로 나눠 점검한다. 서울 지하철 8호선 산성역을 찾았다. 이 역의 심도는 55.4m. 76m에 이르는 부산 만덕역에 이어 우리나라 지하철역 가운데 두 번째로 깊다. 그래서 역 구조가 특이하다. 지하 3층 승강장에서 지하 2층 중간통로까지, 지하 2층 중간통로에서 지하 1층 개찰구까지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돼 있고 그 옆에는 경사로로 끌어올려지는 엘리베이터까지 설치돼 있다. 유럽 산악 지역 관광지에서나 볼 수 있는 형태다. 막상 올라가 보면 지하 3층에서 지하 2층으로, 지하 2층에서 지하 1층으로 1층씩 올라간다는 표시가 너무 단순해 보인다. 역사 자체가 깊다 보니 1층을 이동하는 게 아니라 3~4층 정도는 충분히 올라가는 느낌이다. 에스컬레이터 길이가 하나는 40m, 다른 하나는 30m가 넘다 보니 탑승 시간만 1개 층마다 1~2분 정도 걸린다. 이 때문인지 에스컬레이터 구간에는 손잡이를 잡으라는 안내판이 촘촘히 천장에 달려 있다. 바쁜 사람들은 참지 못하고 성큼성큼 뛰다시피 에스컬레이터 위를 걸어다닌다. 이렇게 올라가서 1번 출구로 나가 보니 5분. 그런데 역 구조를 확인해 보니 방금 올라온 길이 가장 짧은 코스다. 다시 내려가 가장 긴 코스를 가정했다. 승강장 중간에서 출발, 지하 2층 중간통로를 가로질러 3번 출구로 나가 봤다. 이때는 8분이 걸렸다.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했음에도 그렇다. 비상시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작동이 멈췄을 경우 역사 밖으로 탈출하려면 아무리 빨리 달려도 10분에서 15분은 잡아야 할 것 같다. 키 180㎝대 30대 후반 남자의 경우가 이렇다면 노약자들은 어떨까. 지나가던 심연희(64)씨는 “평소 자주 이용하는데 걸어다니는 데만도 10분 이상 걸리는 데다 에스컬레이터 기울기가 급해서 불안한 감이 있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는 승강장에서 벗어나는 데 4분, 역사 밖으로 나가는 데 6분 정도의 시간을 비상대피 기준으로 삼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듯 지하철은 대도시에서 아주 유용한 대중교통 수단이다. 지하철 선로 하나가 6개 차로의 도로 같은 효과를 거둔다는 얘기가 이를 반영한다. 이 때문에 대도시일수록 지하철이 크게 불어나고 지하철은 더 지하로 지하로 파묻히게 된다. 수도권 지역 선거공약으로 자주 거론되는 땅속 깊이 고속 열차를 운행하자는 대심도 급행열차의 심도는 50m 정도 수준이다. 이에 비해 서울 지하철은 1호선은 10m 안팎에 그치지만, 4호선은 16.8m까지 깊어지더니 5~8호선은 22~23m에 이른다. 부산 역시 1호선 13.1m에서 3호선 27.2m로 깊어졌다. 대전은 상가와 대전천 아래를 가로지르다 보니 조금 더 깊어서 20m 수준이다. 대피 시간 기준은 2000년대 들어 만들어졌지만 지금의 지하철은 1990년대 말까지 다 지어졌다. 이 문제는 국회 국정감사, 감사원 감사 등에서 늘 거론되는 문제임에도 예산을 대대적으로 투입하지 않는 이상 뾰족한 수가 없다. 서울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 측은 “지상 역을 빼고 비상대피 기준에서 벗어나는 역이 100개 가운데 34곳인데 여기에 들어가는 시설 개선 공사비용만 해도 모두 688억원 규모”라면서 “사업 우선 순위를 따져 단계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5~8호선을 관리하는 서울도시철도 측 역시 “기본적으로 심도가 깊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 제연차단막 같은 보조시설을 꾸준히 늘려 가고 있다”고 했다. 지상 구간도 마찬가지다. 최근 들어 자기부상열차도 거론되는데 이 역시 예산 규모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금홍섭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대전의 도시철도 2호선은 고가에 자기부상열차 방식으로 만드는데 중앙에 대피로를 만들지 않으면 운행 중 사고가 났을 경우 10~15m 높이의 철로에서 대피할 방법이 없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예산과 공간이 필요한데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열차 문제도 여전하다. 192명이 숨져 지하철 사상 최악의 사건이라 불리는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당시 싼 열차를 써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구지하철 참사 당시 진상조사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박창화 인천대 도시환경공학부 교수는 “그때 수출 열차는 불에 타지 않는 난연제품을 100% 써서 차량 한 칸이 18억원씩 했던 반면, 내수용은 예산 제약 때문에 불에 타는 싸구려 재료를 써서 차량 1대 값이 8억원에 불과했다”면서 “이 문제가 집중 거론되면서 그나마 참사 이후 의자와 바닥 정도에는 난연제품을 쓰는 열차가 등장했지만, 벽체와 천장은 여전히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인력보강 문제도 논란거리다. ‘골든 타임’ 때의 초동대처 문제와 직결돼서다. 대구지하철 참사 당시 역사 근무자가 모니터링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한 차량에서 난 불이 다른 차량으로 옮겨 붙으면서 피해가 더 커졌다. 이번 세월호 사건에서도 선원들의 역량 문제가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도 똑같다. 그럼에도 경영합리화를 이유로 인력을 더 줄이려는 분위기다. 서울도시철도공사노동조합은 기관사 1인 근무, 야간 역사 1인 근무 문제를 꾸준히 비판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가장 최근 생긴 지하철이라 최신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으니 근무자가 줄어도 상관없다는 논리”라면서 “그러나 실제로 운행해 보면 최근에 생긴 지하철일수록 더 지하로 들어가고, 그러다 보니 홀로 어두컴컴한 굴속에서 근무하는 것이어서 근무가 편하기는커녕 더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교통카드 등 자동화로 인해 역사 근무자를 줄인 것 역시 매한가지다. 그러나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는 지난 3월 아예 무인 운전을 도입, 중앙제어센터에만 근무자를 둬 1600억원의 돈을 아끼겠다는 외부 컨설팅 결과를 공개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구 참사 이후 승강장과 역사에 안전장비들만큼은 어느 정도 갖춰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산성역의 경우에도 심도가 깊다는 지적을 의식해서인지 소화기, 비상전화기, 방독면, 터널대피용 비상 사다리 등이 곳곳에 분산배치돼 있다. 경사로 엘리베이터의 경우 사고시 자동으로 승강장 위치로 내려가 대기토록 했다. 각자의 스마트폰에 사고 대응 매뉴얼을 보내 두고 역사별 단독 훈련이나 소방서, 경찰 등과의 합동 훈련도 시행한다. 박 교수는 “세월호 참사가 결국 인재로 판명났듯 관건은 근무자가 얼마나 비상시 행동요령을 숙지한 상태에서 책임감 있게 행동할 수 있느냐다. 이는 평소 교육과 훈련이 결정짓는다”고 말했다. 글 사진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세월호 침몰] 해경 둘러싼 10가지 의혹

    [세월호 침몰] 해경 둘러싼 10가지 의혹

    세월호 침몰 사고의 구조·수색 작업을 총괄하는 해양경찰이 사고 초기부터 총체적인 부실 대응으로 일관했다는 국민들의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사고 직후부터 해경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이른바 ‘골든타임’이 허비됐고, 민간잠수업체 언딘을 먼저 투입하기 위해 해군의 잠수를 막았다는 비난을 받는다. 승객을 버리고 탈출한 선장을 유치장이 아닌 경찰 집에서 재운 사실도 드러났다. 많은 해경들이 구조·수색을 위해 17일째 거친 바다에서 고생하고 있지만 해경의 미심쩍은 행태들이 실종자 가족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다. 연일 쏟아지고 있는 각종 의혹들은 어처구니없는 대형 참사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꼭 풀어야 할 대목이다. 해경을 둘러싼 10가지 의혹에 대해 짚어봤다. 1. 하나마나 관제… 사고 신고접수 때까지 해역 진입 몰라 세월호 침몰 당시 ‘골든타임’(재난 때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유효시간)을 허비한 배경에는 기본적인 관제의무조차 이행하지 않은 전남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가 자리 잡고 있다. 사고 신고가 119와 제주VTS, 해경 상황실 등을 거치면서 시간을 허비했다는 것으로, 해경의 교신 절차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지난달 16일 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한 시간은 오전 8시 48분. 하지만 사고 해역을 관할하는 진도VTS가 신고를 정식으로 접수한 것은 9시 6분이었다. 여객선은 특정 해역에 들어설 때 관할 VTS에 보고하고 관제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합동수사본부가 공개한 진도VTS 교신 녹취록에는 세월호가 진도 해역 진입을 보고했다는 내용이 없다. 당시 세월호가 목적지 관할인 제주VTS에 교신 채널을 맞춰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승무원의 첫 신고도 제주VTS로 접수됐다. 정작 진도VTS는 신고가 접수될 때까지 세월호가 관할 해역에 들어왔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관제사 자격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항만청VTS 관제사는 5급 이상 항해사 자격에 1년 이상 항해 경력이 있어야 하고 퇴직할 때까지 관제 업무만 맡는다. 반면 해경VTS 관제사는 2~3년마다 순환 보직을 하기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2. 민간업체 언딘 우선 투입… 해군·민간잠수사 접근 막아 세월호 실종자 수색 구조작업에 민간업체 ‘언딘마린인더스트리’가 참여하는 과정에도 해경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특히 국방부가 지난달 30일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침몰 사고 이튿날인 지난 17일 오전 해군 특수요원들이 사고 해역에 대기했지만 해경이 ‘언딘이 우선 잠수해야 한다’며 현장 접근을 통제했다”고 밝혀 특혜 논란이 증폭됐다. 국방부는 파문이 커지자 “국회 제출 자료가 잘못 작성됐다”면서 “해경이 잠수 효율성을 위해 잠수부들의 경험 등을 고려해 민·관·군 잠수부들의 잠수 순서를 결정했을 뿐 해군 요원의 잠수를 막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한번 불붙은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앞서 민간 잠수부들도 “해경이 우리의 입수는 통제하면서 언딘과 수색할 수 있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또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이 언딘과 구난 계약을 맺는 과정에도 해경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청해진해운 측은 애초 10년간 거래한 인천의 H 구난업체에 사고 당일인 지난달 16일 오후 전화해 “세월호 침몰 현장에 구조요원과 장비를 급파해 달라”고 구두 요청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 “언딘과 계약을 했다”며 계약을 파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해경이 언딘을 청해진해운에 소개해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3. 당직함 출동에 22분 허비… 해상사고 매뉴얼 있긴 있나 초기 대응이 가장 중요한 해상 사고에서 출동하는 데만 22분이 걸린 해경은 늑장 대응을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지난달 16일 사고 당시 목포 해경 당직함은 출동 준비에만 22분이 걸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오전 8시 58분에 신고를 접수한 해경은 목포항 삼학도 해경 전용 부두에 정박 중인 당직함(513)에 출동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당직함은 출동 명령을 받고도 신고가 접수된 시간으로부터 22분이 지난 9시 20분에야 출동했다. 해경은 “항해 장비를 가동하는 시간과 계류색(배와 배를 묶는 줄)을 걷는 시간, 케이블을 해체하는 시간 등을 고려하면 20분이 결코 오래 걸린 것은 아니다”라는 군색한 변명을 내놓았다. 해경의 보고 체계와 해상사고 대응 매뉴얼도 부실 그 자체로 밝혀졌다. 해상사고가 발생하면 해경청장이 중앙구조본부장을 맡고, 공석 땐 경비안전국장이 맡도록 돼 있다. 인천 송도에 위치한 해경 종합상황실은 해도와 해상도 등 각종 상황판을 갖추고 세월호가 침몰하는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고받았다. 그러나 상황실을 지휘해야 하는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이 헬기를 타고 목포를 향하는 도중 세월호는 완전히 침몰하고 말았다. 해경 지휘부가 해상 수색·구조 경험이 없는 해양대와 경찰대, 고시 출신들로 이뤄져 위기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4. 구조동영상 13일만에 공개 “부실 초동대처 숨기려 했나” 해양경찰청이 세월호 침몰 당시 초기 구조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뒤늦게 공개하면서 각종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해경이 사고 당시 이준석(69) 선장 등 선원들의 탈출 장면 등을 촬영해 놓고도 사고발생 13일 만인 지난달 28일에야 공개했기 때문이다. 동영상은 현장에 출동한 해경 경비함 123정의 한 직원이 개인 휴대전화 카메라로 지난 16일 오전 9시 28분부터 11시 18분까지의 장면을 찍은 총 49컷, 9분 45초 분량이다. 동영상에는 기울어진 선체 모습, 선원 탈출과 해경 구조장면 등 당시 모습이 담겼다. 동영상을 공개한 날은 검경합동수사본부가 해경의 초동대처 부실 여부를 수사하기 위해 전남 목포해경 상황실을 압수수색한 날로 일각에서는 “해경이 이 선장을 감싸려고 한 것 아니냐”, “초동 대처에 있어 불리한 장면을 숨기려 했던 것이 아니냐”는 등의 비판이 일었다. 함께 공개된 사진 7장 중 4장이 동영상에 없는 내용이어서 해경이 불리한 내용을 편집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해경은 동영상을 늦게 공개한 이유에 대해 해당 함정이 연일 해상 수색을 했고, 자체 자료전송시스템이 없어 보관 중이었다고 해명했지만 또 다른 동영상이 있는지와 동영상 편집 의혹 등은 이후 검찰 수사를 통해 풀어야 할 대목이다. 5. 안전관리 산하단체 뒤 봐주고 간부들은 재취업 기회로 검찰 수사 결과 일부 해경 간부들이 산하단체로부터 명절 떡값 등 ‘관리’를 꾸준히 받아온 정황도 포착됐다. 인천지검 해운 비리 특별수사팀은 한국해운조합 인천지부가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작성한 내부 문건 중 ‘명절 선물 내역’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건에는 조합과 함께 여객선 안전관리를 맡는 인천해양경찰서 등의 간부에게 10만~20만원 상당의 상품권이나 선물을 돌릴 계획이 담겨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경이 조선사와 해운사, 민간 구난업체 등이 속한 한국해양구조협회를 과도하게 지원하고 간부들의 재취업 창구로 활용한 사실도 드러났다. 해양경찰청은 지난해 1월 협회 출범 당시 소속 경찰관에게 회원 가입을 권고했다. 수천명에 이르는 해양경찰관이 회원으로 가입했고 연회비 3만원은 개인 봉급에서 공제된다. 본청 간부 상당수는 연회비 30만원인 평생회원으로 가입했다. 해경이 직원 월급을 떼어 매년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억대의 예산을 지원하는 셈이다. 협회는 해경 퇴직 간부의 재취업 공간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최상환 해양경찰청 차장과 김용환 전 남해지방해양경찰청장이 부총재직을 맡고 있고, 경감급 6명도 재취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딘마린인더스트리의 김윤상 대표도 부총재를 맡고 있다. 6. 석연찮은 선장 수사… 사고 초기 해경 직원 자택에 재워 해경이 세월호 사고 수사 초기 선장 이준석(69)씨를 조사한 뒤 직원의 자택에 재운 것으로 드러나 개운찮은 뒷맛을 남겼다. 특히 300여명의 승객을 내버려둔 채 먼저 탈출한 이씨를 일반 수사 대상자와 달리 ‘칙사대접’한 사실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고 첫날인 지난달 16일 오후부터 17일 새벽 전남 목포해경에 소환돼 10여 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해경은 이후 이씨를 한 직원의 아파트로 데려가 잠을 재웠다. 2차 조사를 벌인 17일엔 이미 피의자 신분으로 바뀐 터였다. 수사 관계자는 “이씨가 갈 데도 마땅찮고 기자들이 많아 유치장 대신 개인 집으로 데려갔다”고 말했다. 이후 아파트에 있던 한 기관사가 자살 소동을 벌이는 등 선원의 신병에 대한 밀착 감시와 보호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더라도 수사 관계자가 개인적인 판단으로 이씨를 집으로 데려가 잠을 재운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따라서 윗선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느냐는 의구심을 낳는다. 청해진해운의 계열사 출신 한 간부가 한때 해경 본청의 수사라인에 배치된 점도 이런 의혹을 키웠다. 한 변호사는 “피의자를 집에서 재운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부적절한 처사여서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7. 자체 청해진 수사 했나… 檢 압수수색 전 선사 드나들어 세월호가 침몰 중이던 지난달 16일 오후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 2층 ㈜청해진해운에 해경 관계자들이 진을 쳤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다부진 체격에 사복 차림의 남성 3~4명이 수시로 외부와 연락하며 머물러 있었다. 더러는 “지인의 부인이 그 배에 탔다. 생존자 명단에 있는지 확인해 달라”며 누군가와 통화하기도 했다. 이들은 당일 오후 5시쯤 청해진해운 측 요구로 취재진이 1층 여객터미널 복도로 나간 뒤에도 계속 사무실에 머물렀다. 이튿날 오전 9시쯤에는 정장 차림의 50대 중후반 간부급 경찰관이 일행 1명과 청해진해운의 닫힌 철문을 열고 들어가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검찰은 이날 새벽 청해진해운 사무실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였다. 결국 세월호가 침몰하기도 전에 해경이 청해진해운 본사에 대해 자체 수사를 벌인 것으로 비쳐지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구조 과정이 담긴 화면을 보면 답답하고 화가 날 만큼 느려 터진 해경이 청해진해운을 상대로 한 조치엔 가장 빨랐던 셈”이라며 “그 시간 청해진해운 사무실에서 무엇을 했는지 의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해경청 대변인실 관계자는 “당시 청해진해운에 누가, 왜 나갔는지 모르겠다. 답변할 위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8. 세월호 문서 삭제 의혹… 외부 감사·자료요구 대비했나 해양경찰청이 외부기관의 감사나 자료 요구에 대비해 ‘세월호’ 관련 문서들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는 내부 증언이 나왔다. 하지만 해경청은 역시 부인했다. 2일 제보자에 따르면 해경청은 지난주 초 전국의 일선 해양경찰서에 내부 전산망 문서 제목에서 ‘세월호’라는 글자를 지우라는 구두 지시를 내렸다. 다시 말해 세월호에 관한 검색이 불가능하게 만들려는 시도였다는 것이다. 세월호 안전관리와 지도감독 등에 대한 검찰의 전방위적인 수사가 시작되는 시점이었기에 은폐 의혹이 제기됐다. 해경의 내부 문서 검색은 제목에 있는 단어를 통해 이뤄져 세월호라는 세 글자만 지우면 해당 문서는 검색되지 않는다. 아울러 해경이 일부 문서를 담당자만 열람할 수 있는 보안문서로 분류했다는 의혹도 뒤따랐다. 감사원은 지난 1일부터 해경에 대한 예비조사에 착수했고 국회는 다음주 현안보고를 앞두고 다량의 자료를 요청한 상태다. 따라서 해경 측이 세월호에 대한 감독 소홀 등이 문제될 것을 우려한 끝에 문서 삭제를 시도하지 않았느냐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김송원 인천경실련 사무처장은 “해경은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매지 마라’는 자세로 임해야 불필요한 오해를 막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9. 이해못할 인사 패턴… 이용욱 ‘조함직→ 수사총괄’ 의문 해경에 기술직으로 입문한 이용욱(53·국제협력관) 경무관이 당초 정보수사국장에 임명된 것은 일반적인 인사 패턴과 다르다. 정보 및 해상범죄 수사를 총괄하는 정보수사국장은 대개 행정직이 맡았다. 해경의 직별은 항해, 기관, 행정, 잠수, 조함(造艦) 등으로 구분되는데 이 전 국장은 ‘조함’ 직별 경정으로 특채됐다. 현재 해경의 경무관 이상 간부 14명 가운데 7명이 행정 직별이다. 조함 직별은 이 전 국장이 유일하다. 이 전 국장은 특채 이후 자신의 직별에 맞는 조함기획계장을 잠시 거쳤을 뿐 이후로는 조함직과 관련 없는 업무를 담당해 왔다. 해경 측은 총경(서장급) 이상이 되면 직별 구분이 무의미해져 직별과 상관없는 보직을 맡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이 전 국장은 2004년 총경이 되기 전에 이미 자신의 직별과 관련 없는 해경발전기획단을 거쳤다. 총경 승진 이후에는 전북 군산·전남 여수 해경서장, 동해해양경찰청장을 거쳐 2012년 7월 국장 중에서도 노른자위로 알려진 정보수사국장에 올랐다. 보직 관리가 아주 잘 된 편이다. 때문에 외부 지원설마저 제기되지만, 해경은 본인의 능력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10. 구조예산 부족 타령 헛말… 골프장 건설에 145억 사용 해양경찰청이 예산 부족을 들어 구조장비 도입과 해양사고 대비 훈련일수까지 줄이면서도 골프장 건설에는 145억원을 써 비난을 샀다. 해경은 전남 여수 해양경찰교육원의 함포사격장 부지 40만㎡를 용도변경한 뒤 145억원을 들여 해경 전용 골프장을 세웠다. 때문에 함포사격장은 165㎡의 게임방 규모에 불과한 지하 시뮬레이션 훈련장으로 대체되는 아이러니를 빚었다. 대신 골프장이 버젓이 들어섰다. 지난달 18일로 잡았던 골프장 준공식은 세월호 참사로 열리지 못했다. 해경은 2010년부터 경비함 운항에 필요한 유류비를 제때 지급하지 못해 이듬해로 이월한 뒤 지불해 왔다. 유류비가 부족하자 해경은 지난해 해상종합훈련을 4일에서 2일로 줄였으며 중·대형 함정 운항률을 축소하는 등 ‘유류절약 매뉴얼’까지 시행했다. 전국 241개 해경 출장소 가운데 순찰정·고속보트 등 연안 구조장비를 갖추지 못한 곳이 95개(39%)에 달하고 있다. 특히 세월호 사고 해역을 관할하는 수품출장소와 서거차출장소는 연안 구조장비는 물론 순찰차량조차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정진후(정의당) 의원은 “늘 예산 부족을 탓해온 해경이 뒤로는 골프장 짓기에 여념이 없었던 황당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신호대기 오토바이 들이받고 도주하는 뺑소니범 ‘아찔’

    신호대기 오토바이 들이받고 도주하는 뺑소니범 ‘아찔’

    타이완에서 발생한 아찔한 뺑소니 사고가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1일(현지시각) 타이중(臺中)의 한 교차로에서 승용차가 신호 대기중이던 오토바이 탑승자 2명을 덮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끔찍한 순간은 사고 현장에 있던 차량의 블랙박스에 고스란히 담겼다. 공개된 1분여 분량의 영상을 보면 두 대의 오토바이가 직진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두 명이 탄 또 다른 오토바이가 정지선 앞에 멈춰선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나타난 붉은색 승용차 한 대가 타이어 마찰음을 내며 무서운 속도로 이들 오토바이를 그대로 들이 받는다. 이 충격으로 오토바이에 탑승하고 있던 두 명이 그대로 튕겨져 나가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펼쳐진다. 하지만 사고를 낸 차량 운전자는 길바닥에 쓰러져 고통을 호소하는 피의자들을 내버려두고 달아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다. 하지만 뺑소니 운전자는 얼마가지 못해 경찰에 붙잡혀 현재 조사를 받고 있으며, 아직 정확한 사고 경위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행히 사고를 당한 오토바이 탑승자들은 큰 부상은 입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영상을 접한 누리꾼들은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한 상황이었다며 무책임한 뺑소니 차량 운전자에 대해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질타했다. 영상팀 seoultv@seoul.co.kr
  • [구본영 칼럼] ‘각자도생하는 나라’로는 안 된다

    [구본영 칼럼] ‘각자도생하는 나라’로는 안 된다

    거센 조류 속 진도 앞바다에 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벌써 보름째다. 끝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단 한명의 생존자도 건져내지 못하는 구조작업을 지켜본 국민치고 한없는 무력감을 느끼지 않는 이가 어디 있으랴. 이번 참사로 온 국민은 두 번 절망했다.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 자연재해가 아니라 어처구니없는 인재(人災)임을 확인하면서, 그리고 구조과정에서 무능력한 국가의 모습을 보면서. 둘 다 리더십의 문제다. 지도력을 뜻하는 영어의 리더십은 ‘리더(leader)+십(ship)’이란 두 단어의 복합어다. 배를 지휘하는 선장은 지도력의 대명사인 셈이다. 사고를 내고도 승객을 버린 세월호 선장이나 구조과정에서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 없이 우왕좌왕한 정부에 대해 국민적 원성이 높아진 이유다. 물론 팬티 바람으로 도망친 이준석 선장과 선박직 선원들은 주범으로 단죄받아 마땅하다. 승객들을 물이 차오르는 배에 팽개친 채 제 한 몸부터 빠져나온 행위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 연장선상에서 언론은 앞다퉈 우리에겐 왜 제대로 된 선장이 없느냐고 한탄한다. 민간인 승객만 구조선에 태우고 선원 전원과 함께 희망봉 앞바다에서 산화한 영국의 비컨헤드호 선장을 들먹이면서. 소수의 승객만 구했지만, 배에서 최후를 맞았다는 이유만으로 타이태닉호 스미스 선장도 새삼 영웅시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의인 10명이 없어 유황 불벼락을 맞은 소돔과 고모라일 리는 없다. 세월호에도 가슴까지 물이 차오르는데도 자신의 구명조끼까지 어린 학생들에게 입혀주고 구조에 힘쓴 고 박지영씨나 양대홍 사무장 같은 승조원들이 있었다. 외신들도 이들을 ‘살신성인의 영웅들’로 꼽았다. 따져 보면 우리에게도 책임감 있는 선장인들 없었겠는가. 아덴만의 해적과 목숨을 걸고 싸운 석해균 선장도 있었다. 사실 타이태닉이나 비컨헤드호 선장은 사고를 부른 실패한 선장들이었다. 반면 이순신 장군은 수군과 백성들을 사지에 내모는 해전은 최대한 피하려고 유비무환의 자세로 노심초사한 진정한 리더였다. 하긴 선진국 이탈리아에도 비루한 선장은 있었다. 2012년 지중해에서 여객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가 좌초했을 때 세티노 선장은 승객들보다 먼저 구명정에 탄 뒤 부두에서 택시로 줄행랑을 놓았다. 하지만 당시 이탈리아는 우리와 다른 게 있었다. 선장에게 “배로 돌아가, 이 썩을 놈아”라고 호통을 친 해안경비대장이 있었고, 그래서 인명피해를 최소화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누가 과연 자신 있게 이준석을 돌로 내려칠 것인가. 월봉 270만원짜리 그 비정규직 선장의 뒤에는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세월호를 화물선처럼 활용한 선주가 있다면 말이다. 더군다나 승객의 안전은 아랑곳하지 않고 과적을 일삼은 그 해운사의 배후에는 이를 눈감아주는 해수부 관료 마피아가 있었다지 않은가. 끊임없는 반복 훈련을 강조하는 미국인 해난사고 전문가 인터뷰에 달린 댓글을 보고 스스로를 자책했다. “한국에서 그렇게 했다간 승객들이 왜 시간 낭비하느냐고 항의하며 난리가 난다”라는 지적에 기성세대로서 피기도 전 꽃봉오리 같은 고교생들을 저 차가운 맹골수도에 수장한, ‘안전불감증 사회’의 공범일 수도 있다는 회한이 밀려왔다. 선·후진국을 가르는 것도 결국 머리카락 한 올 차이다. 개개인이 문제가 있더라도 시스템이 똑바로 굴러가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류현진인들 늘 잘 던질 순 없다. 때로 그가 무너지더라도 중간계투·마무리 등 불펜이 체계적으로 받쳐주는 팀은 쉽게 패배하지 않는다. 각자도생(各者圖生)을 권하는 나라는 1인당 소득 3만 달러를 일군들 문명국이라고 할 수 없다. 마침 국가개조론이 거론되고 있다. 개인 윤리를 강조하기에 앞서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국민의식을 내면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대참사를 예방하긴커녕 수습에도 극히 무기력했던 관료조직부터 대수술해야 한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를 나누는 시대구분이 가능하도록 우리 안의 안전불감증, 또 그 안의 성급한 욕심을 확실히 걷어내야 할 시점이다.
  • [데스크 시각] 친애하는 베이커씨에게/김상연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친애하는 베이커씨에게/김상연 정치부 차장

    진심이 담긴 애도의 편지 감사합니다. 편지를 읽으면서 문득 지난해 미국에 있을 때 당신과 나눈 대화의 한 토막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당신은 이렇게 말했죠. “나는 무엇보다 한국이 이룬 경제적 성취를 높이 평가합니다.” 우쭐해진 나는 이렇게 대답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경제적인 측면뿐 아니라 문명적인 측면에서도 한국은 이제 선진국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솔직히 말해 중국은 덩치만 컸지 문명적으로 한국을 쫓아오려면 한참 멀었고, 일본은 이미 쇠락하는 선진국입니다.” 그런데 입에서 씹던 음식이 튀도록 ‘열변’을 토하는 나를 보던 당신의 표정은 왠지 좀 불편해 보였습니다. 입에 발린 소리를 좀처럼 하지 않는 편인 당신은 “어쨌든 나는 한국의 경제적 성취를 높이 평가한다”는 말만 한 차례 더 거듭할 뿐 나의 ‘선진국론’에 맞장구를 치지 않았습니다. 그런 당신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한번 한국에 와서 진면목을 보면 동의하게 될 거다’ 라는 오기를 품었던 것 같습니다. 베이커씨, 지난해 당신에게 내뱉었던 열변을 이 자리에서 정식으로 회수합니다. 당신이 그때 왜 불편한 표정을 지었는지 이제 알게 됐습니다. 한국은 선진국이 아닙니다. 며칠째 CNN 방송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세월호 사고 뉴스가 큼지막하게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제발 당신이 ‘파렴치한 선장과 선원’에 대한 뉴스를 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미국인들은 어린이와 여자를 보호하지 않는 남자를 누구보다 경멸하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제발 당신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선박을 무리하게 개조하고 승선인원도 제대로 기록하지 않은 선박회사’에 대한 기사를 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나는 평소 당신에게 한국은 돈보다 더 지고한 것을 지향하는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자랑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제발 당신이 ‘침몰 사실을 신고하는 탑승객에게 경도와 위도를 묻느라 시간을 허비한 해경’에 대한 뉴스를 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한국을 정말로 ‘미개한 나라’로 볼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베이커씨, 올여름 한국을 여행하겠다는 당신의 계획을 무기한 연기해줄 것을 간곡히 청합니다. 고백컨대, 한국에서 세월호는 바다에만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세월호의 배아(胚芽)’들을 발견하고 놀라는 당신의 얼굴 표정은 상상조차 하기 싫습니다. 나는 당신이 한국에서 길을 건널 때 양보하지 않고 차 앞머리를 들이미는 운전자들을 보고 충격을 받을까 두렵습니다. 나는 당신이 버스에서 내리기도 전에 문을 닫고 출발하려는 한국의 버스 기사를 보고 까무러칠까 두렵습니다. 나는 한국음식을 무척 좋아하는 당신이 한국에서 커피 크림을 넣은 설렁탕처럼 재료를 속인 음식을 먹고 실망할까 두렵습니다. 나는 당신이 금연빌딩 안에서 양복 차림으로 죄의식 없이 담배를 피워대는 한국의 화이트칼라들을 보고 경악할까 두렵습니다. 친애하는 베이커씨, 언제쯤 당신에게 떳떳한 내 나라를 보여줄 수 있을지 솔직히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 그런 날이 영영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기까지 합니다. 한국인은 큰 재앙을 당하고도 너무 빨리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carlos@seoul.co.kr
  • 보드 점프대서 6살 아들 걷어찬 아버지, 훈련방식 논란

    보드 점프대서 6살 아들 걷어찬 아버지, 훈련방식 논란

    자식들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은 모든 부모의 바람이자 희망이다. 하지만 간혹 아이들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며 과욕을 부리는 부모들이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한다. 최근 미국에서 이처럼 아이를 강하게 키우고 싶어 한 아버지의 욕심이 부른 어처구니없는 모습이 포착돼 누리꾼들이 분노했다. 영국 데일리메일 27일자 보도에 따르면 플로리다주 잭슨빌의 한 공원에서 눈살을 찌푸르게 하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스케이트보드(이하 보드) 묘기 연습을 할 수 있는 시설인 점프대 위에 올라간 6살짜리 아이가 두려움에 출발을 못하고 주저하자 그의 아버지 ‘마커스 크로스랜드’가 뒤에서 아이를 발로 찬 것이다. 이 일은 인근에 있던 라이언 스티븐스(13)가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게재하면서 알려졌다. 더 충격적인 것은 점프대에서 떨어진 아이가 놀란 마음에 비명을 지르는 데도 불구하고, 냉정하게 돌아서는 아버지 크로스랜드의 모습이다. 공원의 한 관계자는 이들 부자가 공원에 자주 왔지만 이 같은 행동은 처음 보았으며, 다행히 아이가 점프대에서 떨어졌을 때 부상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두 부자는 요즘도 꾸준히 보드를 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상을 본 누리꾼들은 크로스랜드의 양육방식에 대해 비판하는 많은 의견을 올렸다. 이에 대해 크로스랜드는 “아이의 실력을 늘리는데 더 나은 방법이 있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나는 아이를 밀어서라도 보드 타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변명을 해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영상=Viral World News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오늘의 눈] 무너져버린 ‘기대사회’의 슬픔/황비웅 정치부 기자

    [오늘의 눈] 무너져버린 ‘기대사회’의 슬픔/황비웅 정치부 기자

    ‘할리우드 영화의 첫 대규모 한국 촬영, 경제효과 2조원대, 서울 도심 한복판 전면통제….’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3일까지 보름간 한국 촬영을 마친 할리우드 영화 ‘어벤져스2’. 대중의 호기심과 기대를 자극했던 문구들을 모아봤다. 당시에는 그동안 왜곡됐던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영화에서 긍정적으로 묘사된다는 점에 관심이 일었다. 영화의 예고편 ‘미리보기’보다 더 짜릿한 기대효과를 거둔 것이다.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교의 경제학과 교수인 마이클 달렌은 ‘넥스토피아 미래에 중독된 사람들’이라는 저서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기대사회’라는 말로 정의했다. 기대감을 얼마나 충족시킬 수 있느냐에 인간의 행복이 달려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줄 아는 독자라면 조금은 불편함을 느낄 법도 하다. 2014년 4월 16일 이후에도 대한민국에 기대사회라는 타이틀을 붙일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열흘이 넘도록 자식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경기 안산 단원고 실종학생 부모들의 심정을 눈을 감고 떠올려본다. 기대감은 일찌감치 무력감으로 바뀌고, 이것이 다시 분노로 바뀐 뒤 바야흐로 체념의 단계로 들어선다. “자식의 주검이라도 찾은 부모가 부러운 심정”이라는 한 실종학생 부모의 말은 듣는 것조차 두렵고 마음이 아린다. 국민들 역시 실종자 숫자가 사망자 숫자로 전이돼 가는 과정을 생중계로 지켜보면서 자신의 일처럼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분노와 슬픔이 넘쳐 ‘대리(代理)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에 신음하는 국민들은 자원봉사를 위해 진도체육관으로 달려간다. 안산 합동 분향소에는 이미 16만명이 넘는 국민들이 방문해 눈물을 흘렸다. 노란 리본을 단 슬픈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국민들이 느끼는 좌절과 분노를 극복하자며 언론에서는 정신과 전문의들을 동원해 심리치유 방법들을 소개하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느끼는 분노·불안·우울 증상이 그저 치유해야 할 병적 증세에 불과한 것일까. “1분 1초가 아깝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도 열흘이 넘도록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력과 무책임에 분노하고 무력감에 자책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끝까지 안일한 태도를 벗지 못하고 있다. 실종자 수색 작업의 최적기라는 ‘소조기’였던 23일 바지선 교체작업으로 8시간이나 허비한 탓에 실종자 구조는 뒷전으로 밀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주말엔 진도 앞바다에 야속하게도 풍랑특보가 내려졌다. 100명이 넘는 실종자들이 여전히 바닷속에 잠겨 있는 상황에서 한 술 더 떠 정홍원 국무총리는 27일 ‘나홀로 사의’를 표명하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실종자 가족들과 국민들의 가슴은 또 한번 무너져내렸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두고 “6·25 이후 최대 참사”라고들 한다.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대한민국은 과연 누가 건져줄 것인가. 물거품이 돼버린 기대사회에 대한 희망이 다시 솟을 때까지 우리는 얼마나 더한 고통과 치유의 세월을 견뎌야 할까. stylist@seoul.co.kr
  • ‘수하물 왜 깨지나 했더니!’ 항공사 직원들, 수하물 바닥에 내던지는 모습 포착

    ‘수하물 왜 깨지나 했더니!’ 항공사 직원들, 수하물 바닥에 내던지는 모습 포착

    에어 캐나다 수하물 담당자들이 20피트(약 6미터) 아래로 수하물을 떨어뜨리는 장면이 목격돼 공분을 사고 있다고 뉴욕 데일리뉴스가 21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 17일(현지시각) 토론토 피어슨 국제공항에서 벤쿠버로 떠나는 에어 캐나다 여객기에서 발생했다. 당시 에어 캐나다 소속 직원 2명이 승객들의 수하물을 약 20피트 아래로 떨어트려 옮긴 것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여객기에 탑승해 있던 승객 ‘드웨인 스튜어트’씨가 촬영했고, 해당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며 알려지게 됐다. 벤쿠버에 사는 스튜어트씨는 이륙을 기다리며 자리에 앉아 있다 우연히 이 광경을 보게 돼 촬영한 것. 그는 “우리는 그 광경을 보자 웃음이 나올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며 “그것은 우스꽝스러웠으며, 마치 실제 상황이 아닌 것 같았다”고 CBC 뉴스에서 말했다.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문제의 영상이 100만이 넘는 조회수는 물론 온라인상에 급속도로 퍼지며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에어 캐나다측은 “영상에 녹화된 직원들의 행동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고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어 “고객의 수하물을 직접 손으로 들고 하단으로 옮겨야하는 표준 지시 절차를 어긴 행동이다”면서 “현재 이 일에 대해 조사하고 있으며, 해당 직원 2명은 해고할 방침이다”고 덧붙였다. 사진·영상=TheDStewart99 영상팀 seoultv@seoul.co.kr
  • “누가 봐도 침몰 상황… 뛰어내리면 얼마든지 구조 가능했다”

    “누가 봐도 침몰 상황… 뛰어내리면 얼마든지 구조 가능했다”

    지난 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전남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의 교신을 받고 구조 작업을 위해 가장 먼저 여객선에 접근한 배 두 척이 있었다. 2700t급 연안유조선인 두라에이스호(두라호)와 1500t급 유조선 드라곤에이스11호(드라곤호)다. 이들은 세월호 침몰 당시 모든 교신 내역을 청취했고 침몰 전 과정을 지켜봤다. 두라호 선장 문예식(60)씨와 드라곤호 선장 현완수(57)씨는 21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세월호는 누가 봐도 회복 불능 상태였고 선장이 퇴선(배를 버리고 바다로 뛰어내리는 등 탈출하는 것) 명령만 했어도 승객 대부분이 살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두 선장의 증언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했다. “두라에이스, 진도 연안 VTS입니다. 세월호 육안 확인됩니까.” 16일 오전 9시 6분, 진도 인근 해역을 지나 울산으로 가던 두라호에 긴급 메시지가 전달됐다. 진도 VTS에서 온 교신이었다. 두라호의 우측 전방 2.1마일(3.4㎞)에 400여명이 탄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교신을 접한 두라호는 즉시 속도를 높였다. 10분여 만에 세월호 옆에 접근했다. 문 선장은 “교신을 듣고 우현(배 오른편)을 보니 멀리 침몰하는 배가 보였다”면서 “오전 8시에서 8시 30분 사이 시속 20노트(약 37㎞) 정도로 우리를 앞질러간 배였다”고 회상했다. 문 선장은 사고해역에서 주춤하던 세월호가 다시 두라호와 맞닥뜨릴 수 있다고 판단해 레이더를 주시하고 있던 참이었다. 오전 9시 15분, 드라곤호도 VTS에 구조를 지원하겠다고 말한 뒤 세월호에 전속력으로 접근했다. 오전 9시 21~22분, 세월호 왼편에 다가선 두라호는 곧장 구조활동을 하려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월호 선장이 당연히 퇴선 조치를 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선박 주변에는 어떤 탈출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배는 50도 가까이 기울어져 있었다. 현 선장은 “경험 있는 선장이라면 배가 30도만 기울어도 복원력을 상실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론상 다 나와 있는 얘기”라면서 “퇴선 명령을 당연히 내렸어야 하는데 선장이 머뭇거린 게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문 선장과 현 선장은 모두 “9시 20분이 넘은 시점까지 배의 좌측으로 뛰어내려 얼마든 탈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월호 측은 오전 9시 14분 교신에서 VTS가 “승객 탈출이 가능하냐”고 묻자 “배가 많이 기울어 탈출할 수 없다”고 말했다. VTS 측도 명확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선장이 알아서 판단하라”며 재촉만 했다. 오전 9시 27~28분, 해양경찰청의 구조 헬기가 세월호 상공에 도착했다. 오전 9시 33분 드라곤호가 접근했고 목포해경 진도파출소의 무전을 받은 인근의 소형민간어선 40여척도 세월호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이때까지 바다로 탈출한 승객이 없었던 까닭에 작은 배들만 세월호 옆에 붙어 배 위에서 발만 동동 구르던 승객을 태웠다. 헬기를 통해서도 일부 탑승자들이 구조되기 시작했다. 이준석(69) 선장 등 세월호의 핵심 승무원들도 이때 배를 빠져나갔다. 두라호는 9시 35분 진도 연안 VTS로부터 “구명정, 라이프링(구명튜브) 등을 전부 투하해 세월호 승객이 탈출하면 구조하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탈출자가 없었다. 문 선장은 “당시 모여든 어선 등이 수십 척은 보였다”면서 “배, 헬기 등이 계속 모여드는 상황이어서 뛰어내리기만 하면 구조됐을 텐데 너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사고 원인으로 ‘급선회’(항로를 급히 바꾸는 것)가 꼽히지만, 두 선장은 “급선회할 환경이 전혀 아니었다”고 말했다. 문 선장은 “침몰 지점이 거친 조류로 유명한 맹골수도로 알려졌지만 사실 좁은 맹골수도를 빠져나온 탁 트인 해역”이라면서 “날씨도 좋았고 암초나 레이더에 잡힌 고깃배도 없었기 때문에 갑자기 항로를 틀 이유가 전혀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현 선장은 “조타수의 실수이거나 조타기 이상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해경 구조정과 어선, 헬기 등이 부산하게 구조작업을 벌였지만 세월호는 승객 476명 중 170여명만이 구조된 상황에서 오전 11시 20분 침몰했다. 두라호 등 대형 선박은 소형선과의 충돌 우려 탓에 가장 빨리 접근했지만,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외곽으로 빠져 정오가 넘은 시간까지 비극을 지켜봐야만 했다. 진도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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