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은 그 「자리」에 있다/이재근(서울광장)
군인으로서 더러 열등의식을 느껴본적이 있느냐에 대해 장교 48%,하사관67%,병은 64%가 그렇다고 응답했다.장교의 88%,사병의 71%가 언제나 또는 때때로 군복무에 보람을 느낀다.사병의 경우 학력수준이 높을수록 보람감은 낮아진다.고졸이하는 77%,고졸은 75%,대학중퇴 또는 대학재학자는 68%,대졸이상은 41%만이 보람을 느끼고 있다.어느 사회학자가 설문조사한 우리 군인들의 직업적 자부심의 정도다.몇년전의 조사지만 그만하면 의무병역으로서의 우리 군 장병들의 사기는 유지돼있다고 볼수있다.누가 뭐래도 우리 군은 국방안보의 의무를 다하며 항상 「그 자리」에 서있다.
지난 주초였다.한 사병의 총기난동사건이 있던날 저녁,사고지역과 인접한 다른 부대의 사격장 근무사병인 막내아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총기사건 뉴스에 놀라있던터라 군말없는 안부 닥달에 아이는 『아무런 이상없다』며 태연해했다.역시 그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다.연이어 터진 크고 작은 군관련 사고에 걱정이 태산같지만 그래도 우리 군이 어떤 군대인가.
그간 몇가지 충격적인 사건 사고들을 놓고 군의 기강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무엇이 군을 그같은 무질서한 조직으로 비치게끔 했는지 국민들은 매우 참담한 심정이었던게 사실이다.그것이 혹시 지난 1년여간의 군 개혁작업과 「바로 서기」과정에서 생긴 무사안일속의 기강해이라면 그 또한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그래서 군 책임자를 질책하고 장교와 하사관들의 전반적인 자질을 탓했다.버릇없이 자라 군에 적응치 못하는 이른바 신세대 사병들의 문제점들을 지적했고 군 당국의 냉철한 진단과 처방을 요구하기도 했다.그리고 이윽고는 군내부의 기강과 사기에 영향을 미칠수밖에 없는 바깥사회의 온갖 일그러진 모습들을 돌아보며 자책한 바도 없지 않았다.
일컬어 「지존파」참극에 온보현사건,세금횡령사건과 증인보복 살인사건의 와중에 성수대교 붕괴,관광유람선 침몰사건등 어처구니없는 사건 사고들의 어두운 그림자는 여과없이 그대로 군사회에 젖어들었을 것이다.사고내기 얼마전 바깥사회에 나들이 갔던 범행사병은 가정사정으로 「끼니도 찾아먹지 못한채」마음 상해서 귀대했다.그렇다고 범행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다만 그 무렵의 세태가 또한 어지러웠음을 어른들은 유념할 필요가 있었다는 말이다.
직업군인으로서의 장교와 하사관을 제외한 모든 사병들은 입영전에 이미 성인이었다.모두들 제나름대로 하나의 인격체인 것이다.그런점에서 사병들은 그 개개인이 모두 바깥사회의 반영이다.그들은 대부분 의무복무기간의 군생활을 자신의 가정이나 사회의 연장선으로 생각한다.그래서 엄격하게 말하면 군조직은 그들을 통제할 수는 있어도 흔히 말하듯이 「개조」할수는 없다.촉망받던 동료장교의 주검을 바라보며 『군경력이 1년도 안되는 사병을 가리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라고 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고 한 어느 장교의 말은 신세대 장병들의 행태에 관한한 정확한 표현이었다.
군이 사회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하위체계라고 볼때 군대사회와 그 군사회의 배경 또는 환경으로서의 바깥사회는 직접적으로 연결될수밖에 없다.따라서 상위개념으로서의 일반사회가 건강하고 활기넘치면 하위체계로서의 군의사기와 군기는 확고하게 유지되지 않을수 없다.확실한 것은,요즘의 의무사병들은 영내 생활에서도 그 자신이 결코 바깥사회를 벗어나지 않고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이다.몸은 군에 있으되 마음은 밖에 나가있다.바람직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현실이다.사병들의 이른바 장교길들이기의 잠재의식적 연원은 여기서 찾아질수 있다.이 점을 파악하면 거꾸로 장교들의 사병길들이기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군생활에 불만을 가진 사병이 탄약고에서 수류탄을 꺼내 내무반에 던지려할때 그 사병의 머릿속에 부모가 떠오르면 그는 결국 범행을 저지른다.그러나 소·중대장의 얼굴이 떠오르면 수류탄을 던지지 못한다』어느 예비역장성의 경험담이다.지휘관은 사병과 골육의 정(골육지정)을 나눠야 한다는 교훈이기도 하다.「지휘는 아버지처럼,통솔은 어머니처럼」이라는 지휘 통솔요령이 있다.위로부터의 지휘는 합법적 권위로서 할수있지만 전체로서의 통솔은 인격으로 해야한다는 가르침이다.
그동안의 사건·사고를 위요한 군에 대한 질타와 가편은 이쯤해두자.그리고이제부터 군 조직·제도의 효율화및 경쟁력 제고노력과 함께 사회와 군대민·군관계의 재정립등을 통한 강군육성책을 논의할 때이다.국방안보의 보루로서의 군의 경쟁력은 근본적으로 민·군의 협조체제가 얼마나 자발적이냐에 달려있고 이는 곧 민·군간의 신뢰관계에 의해 좌우된다고 할수있다.민·군관계를 개선하는 이상의 효율적인 군 사기진작책은 달리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