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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 전 대통령은 역사의 죄인”/장태완 전 수경사령관 인터뷰

    ◎헌법의무 위반… 피의자로 조사 받아야/늦게나마 역사 재정립 이루어져 다행 『12·12당시 대통령이자 군최고통수권자였던 최규하 전대통령은 군사반란을 막지 못한 역사의 죄인이며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일부 정치군인들의 쿠데타를 막지 못한 저 또한 역사의 죄인입니다』 지난달 27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재향군인회총회에 참석했다가 16일 귀국한 장태완 전수경사령관은 이날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우성1차아파트에서 서울신문기자를 단독으로 만나 『이제서야 바로 비뚤어진 역사를 바로잡는 계기가 마련됐다』며 16년동안 억눌렸던 소회를 피력했다. 다음은 장씨와의 일문일답. ­전두환씨가 5공 정통성수호를 외치며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정당성이 전혀 없다.12·12 및 5·18 희생자들에게 진정으로 먼저 사과해야 한다.16년이나 흘렀다고 하지만 국민정서를 모른다고 하는데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최전대통령이 검찰조사를 거부하며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최전대통령과 정승화 전총장 그리고 나는 12·12를 막지 못한 역사의 죄인들이다.헌법에 규정된 국권수호의무를 지키지 못한 최전대통령은 참고인으로서가 아니라 죄인으로서 검찰의 조사를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최전대통령이 12·12를 진압하지 못한데 대해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는 말인가. ▲문관 출신이지만 최전대통령에게는 당시 국군통수권이 있었다.국방장관이 없었다고 하지만 총리공관에서 1㎞쯤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일을 직접 수습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대통령에게는 그런 모든 능력과 권한이 부여돼 있다.군령권행사를 전혀 안했다는 것이 이해가 안간다. ­12·12 당시와 지금 최전대통령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이 있는가. ▲최전대통령은 근본적으로 대통령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그 당시 곧바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었어야 했다. ­장세동 전경호실장과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다는데. ▲장씨는 대위때부터 데리고 있어 인간관계는 좋다.12·12 이후에도 명절때는 가끔 찾아왔다.나도 12·12를 진압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대국민 사과를 하는데 전씨도 희생자들에게 사과해야 하는것 아니냐. ­이번 사건이 어떻게 처리됐으면 하는가. ▲반란죄를 엄정하게 다스림으로써 12·12와 같은 쿠데타가 다시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한다.역사바로세우기가 실제로 이렇게 이루어질지는 몰랐다.늦었지만 불행중 다행으로 생각한다.
  • 중구난방 「특검제」 논의/박찬구 정치부 기자(오늘의 눈)

    피의자 신분인 전두환 전대통령이 5·18문제와 관련,『특별검사제 수용』 운운한 것은 보통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검찰 수사를 받아야 할 처지에 수사주체와 형식 및 절차를 거론한 발상 자체가 지극히 법의 상궤에서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다.어쩌면 전씨는 현정치권과의 타협이나 막후 협상으로 5·18의 멍에를 풀어보려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줄곧 특검제를 고수해 온 야권 관계자들마저 전씨 발언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들이다.「희극적 사태」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기에는 뭔가 개운치 않은 뒷맛이 남는다.전씨가 나름대로 생각해 낸 「묘수」의 언저리에는 법의 논리보다 정치논리가 우선하는 우리 정치풍토의 단면이 엿보인다. 5·18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부 야당이 특검제를 고집하는 시각부터가 그렇다.진상을 규명하고 관련자를 처벌하려는 「본」은 뒷전이고 선명성을 내세우며 정국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말」이 앞선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현정부가 5·18을 「청산」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특검제 도입의 논리는 그럴듯하게 먹혀들 수도 있다.하지만 5·18의 원흉이라고 지목한 전직대통령 2명을 구속수감한 마당에 『특검제없는 특별법은 무의미하다』고 외치는 것은 어쩐지 설득력이 떨어진다.「태도」를 바꾼 검찰을 못 믿겠다면 특별검사의 정치적 투명성과 공정성,효율성은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여당 한 당직자의 『특별검사든 보통검사든 잡아넣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니냐』는 말이 그저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물론 굽은 역사를 바로 펴는 방법과 절차에는 여러가지 이견이 있을 수 있다.다원화된 민주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그런 뜻에서라면 특검제도 논의하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초점은 이러한 원리원칙을 벗어나 있다.법치와 민주의 영역에서 다루어져야 할 특검제가 정치이해와 당리당략의 수단으로 난도질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검제를 정치적인 카드로 이용하면 자칫 역사에 다시한번 오점을 남기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전씨의 난센스나 어리석음만 탓할 일이아니다. 특검제 중구난방은 이제 끝낼 때가 됐다.5·18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규명하는 「본」이 시급한 과제 아닌가.
  • 혈액사고/송정숙 고문(외언내언)

    혈액형이 B형인 환자에게 A형 혈액을 수혈하여 환자가 중태에 빠진 수혈사고가 있었다고 한다.의사와 간호사가 함께 한 실수인 모양이다.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사고다. 혈액이란 생명의 원천이다.제대로 한 수혈에서도 운수 불길하여 몹쓸 병을 얻고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겪는 경우도 있다.대용물질로 만들 수 없는 혈액제제의 경우 원료피에 잠복했던 감염물질 때문에 병을 얻는 경우도 있다.수입 혈액제제로 치료를 하다가 에이즈에 감염될 속수무책의 사고도 있을 수 있다. 이런 이유들로 수혈공포에 빠져있는 것이 오늘의 우리다.그래서 가정에 따라서는 남의 피를 수혈하지 않기 위해 육친의 피로만 수혈을 고집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어떤 종파에서는 생명의 원천인 피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하여 수혈을 거부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이런 극단적인 행동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피에 대한 신념이 이토록 강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예이기는 하다. 생명의 근원인 피를 다루는 것을 주요업무로 하는 것이 병원이다.그런데 그 병원에서,그것도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이런 사고가 생긴 것이 사실이라면 등골이 서늘해지는 일이 아닐수 없다.고도의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처치나 처리과정에서 거의 불가항력적으로 저질러진 의료사고도 아니고 의사와 간호사가 저지른 부주의일 뿐인 이런 사고가 가능한 것이라면 일반사람들이 모르는 가운데 어떤 사고가 저질러지고 있는지 의심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요즈음은 첨단 시설을 갖춘 새로운 병원들이 잇따라 문을 열지만 그래도 여전히 서울대학교 병원은 우리의 대표적인 의료기관이다.세계적인 의료진이 세계수준의 의료행위를 하는 우리의 대표적인 병원이다.그런 병원에서 이런 초보적인 의료사고가 저질러질 수 있는 것이라면 누구를,어느 병원을 마음놓고 찾을 것인가. 이 어처구니없는 사고에 대해 국민의 불안을 해소해주는 책임있는 변명이라도 우선 듣고 싶다.
  • 전씨 단식/여야의 시각/당국의 대응

    ◎여야의 시각­“시민 학살한 장본인이 국민 모독”­신한국당/“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다” 비난­국민회의·민주 12·12군사반란 및 5·17내란,5·18광주학살 혐의로 안양교도소에 수감중인 전두환씨가 「5공 정통성 수호」를 내걸며 단식에 들어가자 여야는 7일 『어처구니 없는 일』『적반하장』등 비난을 퍼부으며 전씨의 자숙과 반성을 촉구했다. ○…신한국당은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민주시민을 학살한 장본인이 이른바 「단식투쟁」을 벌인다는 것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요,정면도전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다만 대구·경북지역등의 묘한 동정 여론을 자극할 우려 때문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표정이었다. 이신범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자신이 고문하고 사건을 조작,감옥에 집어 넣은 양심수들의 단식과 인권유린의 총책임자인 전씨의 단식은 질이 다르다』고 혹평했다.그는 『전씨는 참회가 아니라 자신의 정권찬탈 행위에 대한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 단식을 하는 중대한 착각을 범하고 있다』면서 『전씨는 폭력배 같은 집단난동식 대응을 획책할것이 아니라 12·12하극상과 5·17국헌문란 행위에 대해 책임지는 반성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 ○…국민회의와 민주당은 『전씨가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는 것 같다』고 비난했다.심지어 전씨의 단식을 「정신 못차린 단식」이라고 규정하는 등 극언도 서슴지 않았다.반면 자민련은 『지금은 진상을 밝히는 일이 주요하다』며 『전전대통령이 12·12와 5·18진상을 밝히는 데 협조하도록 정부는 세심한 배려를 하라』며 전씨의 건강을 「염려」하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국민회의 박지원 대변인은 『전씨는 5공의 정통성 수호 운운하기 이전에 헌정을 중단시키고 광주시민을 학살한데 대해 국민앞에 석고대죄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전씨의 행동을 평가절하했다. ○…민주당은 『파쇼 수구집단의 결집과 국민의 동정을 얻어내려는 가소로운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이규택 대변인은 『위선적인 쇼를 즉각 중단하고 국민과 역사의 심판을 겸허히 수용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당국의 대응­주말쯤 건강진단 결과 봐가며 조치­법무부/촉박한 수사일정 차질 빚을까 촉각­검찰 안양교도소 수감 5일째를 맞은 전두환 전대통령의 「항의 단식」이 7일부터 본격화되는 조짐이다. 전씨는 수감 직후인 3일부터 교도소에서 제공하는 관식을 거부하고 우유와 보리차를 번갈아 마시거나 둘중 하나를 챙겨 먹었으나 6일 저녁부터는 우유마저 끊고 보리차만 마시고 있어 사실상 본격적인 단식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법무부와 검찰은 전씨의 단식에 대해 애써 태연해 하면서 아직은 『좀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말을 억지로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강제로 물을 먹일 수는 없다」는 속담을 상기시키고 『현재로서는 건강상 문제가 없다』면서 『단식이 계속되면 주말쯤에나 건강진단 결과를 봐가며 교도소내에서 치료를 받게 하거나 외부병원으로 이송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법무부가 이처럼 전씨의 단식에 손을 놓고 있는 배경에는 『언제까지 버티겠느냐』는 계산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64세(31년생)의 나이로 볼 때 오래버티기 어렵지않겠느냐는 분석이다. 물론 전씨가 비록 평소 운동으로 단련된 강인한 체력을 갖고 있긴 하지만 구속이라는 심리적 충격에다 수감생활까지 겹친 상태이기 때문에 집에서 하는 단식과는 차원이 다르며 시국사범으로 수감됐던 젊은 대학생들의 단식투쟁과도 다르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러나 직접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특별수사본부는 전씨의 단식소식에 적잖이 당황하는 기색이다. 전씨가 단식으로 버틴 뒤 병원으로 실려 가면 그렇잖아도 촉박한 수사 일정에 큰 타격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권의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국민적 동정심을 일으켜 자칫 수사에 어려움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날 전전대통령에 대한 2차 구류신문을 한 김상희 주임검사를 통해 건강상태와 단식 이유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캐묻고 단식을 중단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전공의 수련/김석화 서울대병원·성형외과(굄돌)

    도시의 가을을 끝까지 지켜주던 가로수의 은행잎이 바람에 떨어져 날리고 어김없이 12월이 다가왔다.매서운 겨울 바람은 입시철을 예고하고,전공의 선발시험이 연례행사로 치러진다.6년의 긴 의예과와 의과대학을 마치고,뇌의 작동은 거의 필요없이 척수활동만이 요구된다고 불평하는 1년간의 인턴과정을 마친채 이제야 본인이 원하는 전문의 과정을 시작하는 문턱에서 치열한 선택의 과정이 진행된다.수험생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선택을 하는 입장의 교수나 수련담당 전문의도 모두 긴장하게 된다. 대학에서는 이제까지 시행되었던 교육의 문제점을 파악하는 노력과 함께 개선방향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게 되었고,학생은 새로운 경향의 출제형식에 대비한 노력이 게을렀음을 한탄하면서 분발하지 않을수 없게 되었다.그런데 이 상황에서 아주 흥미로운 반응이 종합병원에서 나왔다.적절한 숫자의 인턴을 확보할 수 없어 병원의 진료에 막대한 지장이 예상된다는 것이다.대형병원에서는 인턴이외에도 많은 숫자의 전공의가 있어 별다른 어려움이 없으리라 생각되지만,중소병원에서 인턴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주었다.이렇게 중요한 인턴의 경우,도시일용노동자에도 못미칠 정도의 형편없는 대우로 혹사당하고 있는 것은 보면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 DIY(doityourself)코너가 대형백화점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노동력에 대한 대가는 많이 제 값을 쳐주고 있다.대형자동차 서비스공장에서나 있었던 공임을 조그만 배터리 집에서도 떳떳이 요구하고 있다.어느 대학병원에서 계산해낸 원가계산에 의하면 현행의 의료보험 수가에서는 터무니 없이 평가되고 있다는 의사의 노동력은 언제나 제값이 매겨지게 될지 모르지만,첫단추가 잘못 채워진 꼴은 이제는 더 이상 보여지지 않기를 바란다.
  • “공원경내서 차 몰다니…”/김길문(발언대)

    우리나라를 외국에서 지칭하기를 동방에 있는 예의바른 나라라고 했다.그런데 최근에 와서 뭔가 잘못돼도 한창 잘못된 것 같다.젊은 세대들의 행동을 보노라면 기가 찰 정도다. 얼마전 일요일을 택해 내가 소속해 있는 서울신문사 깨끗한 산하지키기운동 서울 강동해병환경감시단체의 회원 82명이 강원도 오대산 국립공원을 찾아 자연보호캠페인을 벌인적이 있었다.우리는 『깨끗한 산하를 후손에게 물려 줍시다』라는 홍보전단 3천장을 등산객들에게 배포하며 깨끗한 산을 지키자고 열심히 주지를 시키고 있었다.그런데 난데없는 먼지세례를 받았다.분명 국립공원 경내는 승용차 통행이 금지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하지만 어찌된 영문이지 비포장도로에 먼지를 날리면서 승용차들이 줄줄이 질주하고 있었다.대다수의 등산객들은 노약자와 부녀자 그리고 어린이들이다.이들은 모두 국립공원 매표소 입구의 주차장에 차량을 세워놓고 걸어서 올라가고 있었다. 경내를 일반도로처럼 달리는 승용차의 운전자들을 살펴보니 하나같이 젊은층들이었다.도보로 등산하는사람들이 흙먼지를 뒤집어 쓰며 「먼지공해」에 시달리다 못해 불평들이 터져 나왔다.참다못한 우리 일행이 관리사무소를 찾아가 시정을 요구했었다.그러나 이들의 답변은 더욱 어처구니가 없었다.주차장 면적이 부족해 어쩔수가 없다는 것이다.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측은 주차공간이 부족하면 그 대책을 세워야할 책임이 있음은 당연하다.그리고 얌체 운전자들은 『모든 국민들은 평등하게 맑은 공기를 마실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명심해 주기 바란다.
  • 연말 음주운전(외언내언)

    27일밤 대구에서 술에 만취한 50대 남자가 몰던 베스타승합차가 파출소로 돌진,경찰관 2명이 부상을 당하고,파출소집기가 파손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일어났다.지난 25일 서울에서는 음주운전을 단속해야 할 20대의 의경이 술에 취한 채 관용차를 몰다가 다른 차를 들이받기도 했다.우리 사회의 음주운전이 얼마나 무모하고 보편화되어 있는가를 보여준 단적인 사례들이다. 혈중알코올농도가 0.05%만 넘어도 속도감이나 거리감이 둔해지고 갑작스러운 사태에 대한 적응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따라서 「한두잔 쯤이야」하는 안일한 방심이 엄청난 사고를 부르게 된다.우리사회에서는 음주운전에 대한 죄의식이 거의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당국의 지속적인 단속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음주운전이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서울경찰청이 94년12월1일부터 95년1월31일까지 실시한 「연말연시음주운전특별단속」결과 모두 6천5백93명이 적발돼 그 전해의 같은 기간보다 28.3%나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또 한 여론조사에서는 음주운전의 경험이있다고 응답한 운전자가 자그마치 66%나 됐다. 미국의 경우 사고를 내지 않았다고 해도 음주정도가 심하거나 누범일 때 그자리에서 수갑이 채워지고 재판을 받아야 한다.유죄판결이 나면 구속보다는 1년정도 매일 몇시간씩 공공기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든지 공원에 있는 공중변소를 청소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이런 제재가 훨씬 효과적이라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그러나 단속이나 제재만으로 음주운전의 관행이 고쳐지는 것은 아니다.스스로 깨달아 나쁜 습관을 고쳐가는 것이 바람직하다.술을 마시고 운전석에 앉는 것 자체가 범죄행위라는 자각과 양식을 지녀야 한다. 가뜩이나 술소비가 늘어나고 있는 판에 연말연시의 들뜬 분위기가 지속되면 음주운전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 뻔하다.경찰의 지속적이고 철저한 단속도 필요하지만 「음주운전추방」을 위한 범국민적인 운동이라도 펼쳐졌으면 한다.
  • 정치인들 정신 차려야/황진선 사회부 기자(오늘의 눈)

    「노씨 주내 구속후 병원으로」 5일자 모일간지가 정부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기사의 제목이다.노태우씨를 일단 구속하되 전직대통령이라는 신분과 건강상태를 감안해 구속집행정지처분을 내려 병원에 수감시킨다는 것이 기사의 골자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어느 나라 정부관계자가 수사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번뿐만이 아니다.노씨에 대한 소환이 임박한 즈음부터 정치권에서는 구속할 것이니,불구속할 것이니 하는 소리가 간단없이 흘러나왔다.어느 정치인의 코멘트는 마치 정치권이 검찰수사를 지휘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털어놓고 말해보자.청와대를 비롯한 정치권과 정부의 주요관계자가 노씨 「부정축재」사건 수사의 진행상황을 모른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아마도 다 보고받고 있을 것이다.그러나 그들은 알아도 모른 척해야 한다.그것이 스스로를 위하고 검찰을 돕는 길이다. 지금과 같이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구속·불구속 운운하면 「각본에 의한 짜맞추기수사」라는 의혹을 피할 수 없다.우리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죄가 있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쯤은 다 알고 있다.그것이 자유민주주의국가의 기본원리이기도 하다. 검찰도 정치권이 왜 그런 행태를 보이는지,자신들이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이 자업자득은 아닌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검찰은 지난 88년12월 검찰청법에 총장의 임기를 2년으로 하는 규정을 신설하면서 『검찰총장이 임기동안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소신 있게 검찰권을 행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그러나 그전은 물론 그후에도 검찰이 외풍으로부터 홀로 서려는 노력을 한 예를 찾아보기는 어렵다.적어도 국민의 눈에는 만년 「정치권의 시녀」였을 뿐이다. 안강민 중앙수사부장은 지난 3일 『비자금사건에 대해 수사권도 없는 정치권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바른 처사가 아니다』라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안부장의 말 그대로 검찰은 이 사건을 성역 없이 수사해 검찰권 독립의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그리고 정치권은 이제 정신 좀 차리고 「성역 없는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
  • 동물 내세운 우화소설 눈길

    ◎「대머리 원숭이」­동물만 못한 인간 우매함 질타/「당나귀 그림자에 대한 재판」­정치적 명분의 허망함 꼬집어 시끄러운 세상을 비틀어 보여주는 우화소설 두권이 관심을 끈다.「인터넷에 들어간 대머리 원숭이」(실천문학)와 「당나귀 그림자에 대한 재판」(문학동네)이 그것.유럽 계몽주의의 산물인 이 책들은 인간세상의 위선과 분탕질을 은근한 거리를 두고 비춰봄으로써 더욱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19세기 프랑스 정치풍자만화가인 그랑빌의 「인터넷∼」은 동물과 곤충의 생태를 의인화해 인간사회를 풍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솝우화를 연상시킨다.인간의 박해에 분노,국제회의를 소집한 동물들은 캥거루의 모성애,나이팅게일의 노래,구걸을 하느니 굶어죽는 곤충의 자존심 등 동물왕국의 덕목을 조목조목 내세워 하등동물보다 열등한 인간의 오만함을 공격한다. 18세기 독일 인문주의자 뷔일란트 원작을 레온하르트가 고쳐쓴 「당나귀∼」는 고대 그리스의 한 도시를 배경으로 당나귀 그림자를 둘러싼 재판이 어처구니 없는 국가적 싸움으로 번져가는과정을 그리고 있다.당나귀를 빌릴때 그림자도 포함되느냐를 두고 온 국민이 두파로 갈려 전쟁일보직전까지 치닫는 상황을 통해 지은이는 정치적 명분의 허황됨을 드러낸다. 두권 모두 작가가 직접 그린 삽화로 풍자의 생생함을 더한다.
  • 한­일 기본협정 근본적 재검토를/이철승(기고)

    무라야마(촌산)일본총리와 고노(하야) 일외상의 『한일합방은 합법적인 것이었다』는 망언 파문이 어느 틈엔가 자취를 감추어 이번에도 또 일과성으로 끝나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그러나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거듭되는 망언은 한·일간의 과거와 현재,그리고 미래까지를 규정짓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 만큼은 그냥 넘어가서는 안되겠다. 전후 50년간 일본을 이끌며 냉전체제 미·일 안보조약의 우산 아래서 패전국 일본을 재건해온 주축은 보수우익세력이다.이들은 한국의 보수우익과는 차원이 다르다.한국의 보수우익은 국조 단군의 홍익인간정신과 반공·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추구하지만 일본의 우익은 군국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과거 일본의 자민당 정권 하에서 툭하면 역사를 왜곡하는 망언이 터져나왔던 게 그걸 입증한다.그런데 이번엔 사회당 정권까지 이에 가세하고 나섰다. 일본은 한반도문제에 관한 한 좌·우익이 꾸준히 역할분담을 해왔다.미국의 영향력하에 있을 때 우익,곧 자민당정권은 「반공」을 앞세우며 우리의 경제난을 이용하여 쉽사리 한·일기본협정을 체결했다.그러는 사이 친북적인 사회당은 김일성집단과 연동하여 대한민국을 견제하고 괴롭혔다.이렇듯 이들은 일본의 국익 앞에서는 좌우합작을 이루어 왔다.이를 통해 남북한 양다리 외교를 벌이며 한반도 분단 고정화를 획책해 왔던 것이다.얼마전 일본 우익의 대표주자격인 가네마루와 오자와,그리고 사회당의 다나베가 북한에서 이른바 한·조협정과 보상문제 등의 내용을 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일정치지도자들의 망언은 특정 정치인이나 세력의 차원에서 나온 게 아님을 알 수 있다.그건 일본 전체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은 냉전체제가 허물어져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되고,미국에 대해 「노(NO)」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의 힘이 커지자 패권주의를 추구하고 있다.군국주의하의 대동아공영권 건설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그러지 않고서야 과거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죄하지 않으며 강압적인 한일합방이 합법적인 것이었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할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러한 일본의 본질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그리고 냉정한 자세로 이에 대응해야 한다.그러나 작금의 상황을 보면 그러한 자세와는 거리가 있어 안타깝다.국민이나 정부가 즉흥적으로만 대응할 뿐인 현실이 그렇다. 정치권의 자세도 일본 정치인들과는 사뭇 대조적이다.거듭 지적하지만 일본은 국익 앞에서 여와 야,좌와 우가 따로 없다.그러나 우리의 여야는 외교·안보·통일 등에 있어서도 국익에 대한 신중한 고려없이 사사건건 상호 대립·대결로만 일관해 오고 있다. 한일기본협정은 제2조에서 구조약에 대해 「이미 무효」라는 애매한 뜻으로 표현되는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뿐만 아니라 일본은 태평양전쟁 한인피해자들에 대한 실태조사 한번없이 주인 없는 송장 치루듯 3억달러로 피해보상을 때워 버리고 말았다.박정희정권은 취약한 정통성을 메우는데 급급해 미국을 앞세운 일본의 농간에 놀아났던 것이다.그리고는 7백50만 피해자 중 기껏해야 8천명에 대해서만 1인당 30만원씩의 보상을 했을 뿐이다.따라서 한·일기본협정은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엄밀한 피해자 실태조사가 실시되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최소한 독일과 같은 수준의 과거청산이 이루어져야 한다.그래야만 진정한 의미에서 두나라 사이의 선린 우호관계와 21세기 태평양시대에 동반자로서의 새출발이 가능하다.그렇지 못할 경우 일본은 경제대국이라 하더라도 정치적으로는 국제적 비난을 면치 못하는 절름발이 대국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날 한반도 주변정세를 보면 1백년전 구한말 당시와 흡사하다.붕당과 파벌로 사분오열되고 비자금 등 부패와 타락으로 지리멸렬된 국내정세도 마찬가지다.이러다가 또다시 천추의 한을 남길까 두렵다.궁극적으로 우리는 힘을 키우지 않으면 안된다.우리가 일본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면 망언을 하라고 해도 하지 않을 것이다.그러자면 정치부터 바로 서지 않으면 안된다.
  • 노 전 대통령 대국민 사과 전문

    못난 노태우,외람되게 국민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조차 말로는 다할 수 없이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입니다.국민 여러분의 기대와 뜻을 무참히 저버린 이 사람이 무슨 말씀을 드릴수 있겠습니까. 국민 여러분,지난 며칠동안 얼마나 많은 허탈과 분노를 느끼셨습니까.저를 향한 국민 여러분의 솟구치는 분노와 질책은 당연한 것입니다. 오늘 국민 여러분 앞에 선 것은 저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오로지,국민 여러분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작금의 통치자금 문제에 대한 저의 솔직한 심경을 말씀드리고 사죄를 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구차한 변명처럼 들릴지는 모르겠습니다만,통치자금은 잘못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정치의 오랜 관행이었습니다.저의 재임당시,우리의 정치문화와 선거풍토에서 불가피한 면도 없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관행이라고 해서,또 어쩔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서 그것이 용납될 수 있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이를 과감히 떨쳐 버리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저의 책임입니다.대통령으로 재임하던 5년동안 약 5천억원의 통치자금이 조성되었습니다.주로 기업인들로부터 성금으로 받아 조성된 이 자금은 저의 책임 아래 대부분 정당운영비등 정치활동에 사용되었습니다. 또 일부는 그늘진 곳을 보살피거나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분들을 격려하는데 보태기도 하였습니다.집권당의 총재로서,또 국정의 구석구석을 살펴야 할 대통령으로서 그것을 외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기업인의 성의를 생각해서라도,한 푼도 헛됨없이 써야겠다는 굳은 마음을 가졌습니다.이렇게 쓰고 남은 통치자금은 저의 퇴임 당시,1천7백억원 가량 되었습니다.이처럼 엄청난 액수가 남게 된 것은 주로 대선으로 인한 중립내각의 출범등 당시 정치상황의 변화 때문이었습니다. 평범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갈 사람이 그 많은 돈이 무슨 필요가 있었겠습니까.단 한푼이 남더라도,이를 나라와 사회에 되돌려 주어 유용하게 쓰도록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그러나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으면서도 여러가지 상황으로 기회를 놓치고 만 것입니다.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잘못이었습니다. 통치자금을 조성한 것도 비난받아 마땅할 터인데,이를 국가와 국민을 위해 유용하게 처리하지 못한 것은 더더욱 큰 잘못이었습니다. 이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저에게 있습니다.국민 여러분께서 내리시는 어떠한 심판도 달게 받겠습니다.어떠한 처벌도,어떠한 돌팔매도 기꺼이 감수하겠습니다.필요하다면,당국에 출석하여 조사도 받겠습니다. 다만,바람이 있다면 저의 씻을 수 없는 과오로 인해 저 이외의 어느 누구도 상처받는 일만은 없었으면 하는 것입니다.특히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밤낮없이 눈물겹도록 뛰어다니는 우리 기업인들의 의욕을 꺾는 일만은 없었으면 하는 것이 저의 간절한 마지막 소망입니다. 국민여러분, 우리 대한민국과 국민 여러분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남긴 제가 더 이상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지금 이 순간,전직 대통령이었던 것이 한 없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국민 여러분의 상처받은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드릴 수만 있다면,또 그것이속죄의 길이라면,무슨 일이라도 하겠습니다. 재삼 국민 여러분 앞에 무릎꿇어 깊이 사죄드립니다.
  • 무라야마 총리 망언에 대하여(사설)

    ◎일 「한일합방 늑약」 원인무효 확인하라 유감스런 일이지만 다시 한번 일본은 대단히 교활하고 이기적이며 반성할줄 모르는 속성의 나라임을 실감한다.기회있을 때 마다 과거 일제의 한반도병합과 식민지통치에 대한 유감과 사죄의 뜻을 표시해온 일본이 그 병합조약은 합법적인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다.총리의 국회답변 망언이다.그것이 우리와의 미래지향적 우호협력관계를 강조하는 일본정부의 기본인식이라는 주장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중대한 문제가 아닐수 없다. ○늑약합법이 기본입장 이라니 우리대통령이 심한 불쾌감을 표시하고 정부가 강경대응에 나섰으며 국회가 원천무효의 결의문을 채택했는가 하면 국민과 여론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한일합방조약」이 합법적이라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우리에 대한 민족적 모독이다.일제의 식민지통치는 우리가 원해서 일본이 베풀었다는 논리가 되지 않는가.그리고 그에 의한 극악무도했던 일제통치도 합법적이며 목숨과 재산을 빼앗기고 참을수 없는 고통을 강요 당한 우리애국선열과 일반국민의 저항이 오히려 불법이었다는 주장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일합방조약」이 불법조약임은 아사히신문 사설도 지적했듯이 일본인들 자신이 더 잘 알것이다.조약이 합법적이기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조건은 체결당사자가 자유로운 의사표시를 할수 있는 분위기에서 하자없는 의사표시를 할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약은 자유의사가 기본조건 당시 조약체결권자인 고종황제가 강제로 체결된 「늑약」이라고 지칭했으며 서명날인도 하지않았다는 증거까지 있는 이 조약이 어떻게 합법적일수 있는가.강압에 의한 것임은 무라야마총리 자신도 인정하고 있다.그것을 한·일기본조약 체결당시 표현이 모호하다 해서 합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기만적 궤변이며 설사 그런 해석이 가능하다 해도 그렇게 하지않는 것이 일본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문민정부 출범 이후 우리는 대일관계에 있어 과거사의 포로가 되지않으려 노력해왔다.동시에 미래지향적인 우호협력관계발전을 적극 지향하면서 일본의 호응을 기대해 왔다.그러나 그것이 일방적인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님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호소카와 정부 때를 제외하면 일본정부는 우리의 이같은 노력에 호응하기보다는 역으로 이용하는 인상마저 주었다.무역적자의 누적(금년들어 8월말 현재 1백7억6천만달러 적자로 작년동기비 29억2천만달러 증가)은 방치됐으며 기술이전 문제에도 여전히 무성의한 태도가 일관되었다.특히 과거사문제엔 패전50주년을 기해 채택하려 했던 일제침략전쟁 사죄및 부전결의의 증발에 이은 망언소동으로 우리국민의 감정만 자극했다. ○우리정부 미래지향 보답인가 그리고 마침내 총리의 입을 통해 한일합방조약이 합법적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망언이 다시 나왔으며 일본정부가 30년동안 지켜온 입장이기 때문에 바꿀수 없다는 궤변까지 듣게된 것이다.틀린 것이 있고 그것을 알았으면 당장에 고치고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 도리요 순리일 것이다.서로의 해석에 차이가 있다면 옳은 방향으로 조정해야 하는것 또한 두말할 필요가 없다.그것이 그동안 끊임없이 계속된 일본망언들의 뿌리라면 다시는 양국관계 발전을 가로막지 못하도록 차제에 확실히 뽑아버려야 한다.그렇지 않고는 진정한 미래지향적 한·일 우호협력관계 성립과 발전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차제에 망언의 뿌리제거해야 일본은 언제까지 과거사의 문제로 숙명적인 이웃인 우리와의 관계를 이런식으로 방치할 것인가.갈등이 해소되고 새로운 관계의 발전이 기대될만 하면 과거사문제가 터져나와 발목을 붙잡는 것이 지난 50여년을 이어온 한·일관계의 불행한 전개였다.이같은 전개의 되풀이는 참으로 유감스럽고 한·일 양국국민 모두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백해무익한 일이다.일본 정부는 종전50주년인 금년이 다 가기전에 「합방조약」의 법적인 원인무효를 확실하게 인정하고 말만이 아닌 진심의 사과를 함으로써 이 「과거사의 문제」에 완전한 종지부를 찍어주도록 일본의 양심에 촉구한다.
  • 어정쩡한 외무부 「망언대응」/이도운 정치부 기자(오늘의 눈)

    『한일합방조약은 법적으로 유효하게 처리됐다』는 무라야마 일본 총리의 망언에 대한 우리 외무부 관계자들의 인식과 대응은 적잖이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무라야마 총리의 망언에 대한 법리적,논리적 비판은 계속 깊이있게 들어가다 보면 한일합방조약의 성격이 모호하게 규정된 한일기본조약을 개정하는 문제로까지 다다르게 된다.체결 당시부터 문제를 안고 있는 한일기본조약 때문에,답답하지만 무라야마총리등 일본 고위층의 끊이지 않는 망언들을 잡초 뽑듯 시원스레 해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문제는 무라야마 망언을 자꾸만 「별것 아닌 문제」로 접어두려 하는 외무부 관계자들의 태도다. 일본관계를 맡고 있는 한 당국자는 무라야마 발언 내용이 『지난 65년과 86년에도 이미 나왔던 얘기』라면서 『그 때문에 무라야마 발언이 일본에서는 기사화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그릇된 역사관이지만 이미 기정사실화했으니 거론할 가치가 없다는 논리인 셈이다. 외무부의 항의논평이 무라야마 총리가 참의원 본회의에서 발언한지 닷새나 지난 뒤에야 나왔음은 국민들에게 이미 다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논평문도 『이 조약이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는,매우 소극적인 한 문장으로 돼 있다. 이에 대해 외무부는 『정부까지 흥분하면 한일관계는 파국으로 간다』며 미래지향적으로 앞날의 관계만을 강조하면서 『일본인들은 우리 정부가 약하게 대응하고,국회에서 혼이 나면 날수록 고마워한다』고 말하기도 했다.한일 관계를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일본측 선의에 의존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또 이는 『과거정리 없이는 미래의 발전도 없다』고 분명히 말하는 김영삼 대통령의 인식과도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외무부의 태도가 이런 정도니 일본 외교관이 우리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12일 공노명 외무부장관은 무라야마 발언에 항의하기 위해 야마시타 신타로 일본대사를 불렀다. 야마시타대사는 총리의 발언록 사본을 건네주며 『잘 읽어보면 발언 취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일본은 정치적인 전환기를 맞고 있다.유감스럽게도 그 변화의 방향은 과거의 제국주의 시절을 그리워하는 쪽으로 여겨지기도 한다.일본의 과거 인식에 대한 정부의 보다 진지하고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문화를 모르면 돈도 못번다”/「다국적 기업 실패담」 출간

    ◎김영사,해외출판 「초일류기업의 비즈니스 대실수」 번역/입지·마케팅·번역 등 7개 유형 나눠/포드 트럭 「피에라」 중남미선 「못생긴 늙은이」 의미/독일 맥주 「에쿠」 서아프리카선 대변 의미… 안팔려 미국의 자동차회사 포드는 라틴아메리카에 「피에라」라는 예쁜 이름의 트럭을 풀어놓았다.포드사는 싼값에 성능 좋은 이 트럭의 인기를 자신했지만 실제로는 거의 팔리지 않았다.「피에라」는 그곳 말로 「못생긴 늙은 여자」를 뜻하기 때문이다.독일 맥주회사가 80년대초 서아프리카에서 「에쿠」라는 새 상품을 내놓았을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외국인은 이 맥주를 즐겼지만 현지인은 모두 외면했다.심지어 「에쿠」를 마시는 외국인을 보면 웃기까지 했다.그들에게 「에쿠」란 대변을 의미했다. 세계를 주름잡는 다국적기업이 수출현장에서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모아 분석한 책 「초일류기업의 비즈니스 대실수」(데이비드 릭스 지음)가 최근 나왔다(김영사 출간). 제품의 질이나 유통·광고 등 모든 경영분야에서 빈틈없이 일을 처리하는초일류기업도 가끔은 실수하는 까닭이 무엇일까.지은이는 한마디로 『소비자가 나라마다 달라서』라고 단정한다.곧 문화적 배경에 따라 소비자가 원하는 물건과 구입하는 이유·장소·시기가 각각 다른데 진출하는 기업이 이같은 차이를 미처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 예컨대 자동차타이어를 살 경우 영국사람은 안정성을 먼저 생각하고 미국사람은 내구력과 연료효율을,독일사람은 뛰어난 제동력에 가치를 둔다.그러므로 상품을 만들 때,선전할 때는 국가별로 초점이 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은이는 해외진출기업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를 7가지 유형으로 나눴고,그 가운데 가장 큰 실수는 경제적 손실이 엄청난 생산입지를 잘못 고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이밖에 앞선 예에서 보듯 회사·상품의 이름이 지역정서에 맞지 않거나 마케팅·번역·현지경영·전략 등에서도 뜻밖의 실수가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미국 선더버드대학원 교수가 쓴 이 책은 기업 해외진출의 실패담을 폭넓게 모아 그 원인을 낱낱이 해부한 것으로는 첫번째라고 할 만하다.그동안 나온 비슷한 성격의 책보다 뛰어난 점은 개인이나 한 회사의 체험을 뛰어넘는 풍부한 사례연구에 있다.게다가 사례에 등장하는 기업이 독자에게도 익숙한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이라 더욱 실감있게 읽힌다. 그러나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기업경영과는 상관없이 「아,사람 사는 게 이렇게 다르구나」라는 관점에서 보아도 매우 재미있고 유익하다는 데 있다.문화차이에서 온 실수사례는 거꾸로 각 문화의 특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지은이는 책머리에서 『외국문화의 사소한 점 한가지를 간과함으로써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으며』이를 피하려면 『무엇을 해야만 하고 무엇을 하면 안되는지,그리고 어떤 것은 하면 좋고 어떤 것은 하면 별로 안 좋은지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곧 「문화를 알아야 장사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 멕시코 “한국은 독일 식민지”/외국 교과서 한국 역사 왜곡 사례

    ◎스페인­남한 수도 평양/폴란드­6·25는 북침이다/독일­독도는 일본 땅/캐나다­서울 인구 1백만/일본·베트남등선 상당부분 바로잡혀/민간 학술교류 통한 「바로 알리기」 시급 외국 교과서들이 한국 역사를 왜곡 기술한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으로 드러나 정부 차원의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교육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따르면 우리 역사를 잘못 기술하고 있는 국가는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은 물론이고 유럽·동남아시아·중동 지역 국가와 미국까지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각국의 왜곡 사례등을 통해 실태를 살펴본다. 다른 나라들의 우리 역사 왜곡사례는 주로 한국전쟁에 관한 것에서부터 수십년전 자료를 그대로 인용한 경우가 많다.이밖에 동해를 일본해라고 표기하고있는 예도 많다. 정부는 최근들어 공보처·외무부·교육부가 공동으로 이런 왜곡된 역사 교과성의 내용을 고치는 작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특히 최근에는 과거 적성 국가였던 국가들과의 수교로 외교 통로가 확보되어 교과서 문제를 거론할 수 있게 되었다.교육부는 외국의 교과서를 입수해 고쳐야할 부분을 찾아 시정자료를 만들고 공보처의 한국바로알리기 위원회나 외무부 등이 자료를 보내주고 잘못된 내용을 고치도록 교섭하는 등의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나 어려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어서 단기간에 바로 잡기는 힘들것으로 보인다.교과서를 내는 주체가 외국의 정부가 아니라 민간이면 시정 요구를 하기가 더욱 어렵다. 한명희 교육부 편수국장은 『정부도 노력을 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민간 차원의 학술교류를 통한 한국바로 알리기 사업을 지속적으로 벌이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장은 또 외국에서 한국학이 발전해야 다른 나라들이 한국에 관심을 많이 갖고 올바른 역사를 기술해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지난 82년부터 한국 역사 왜곡이 심각한 것으로 지적되었던 일본의 역사 교과서는 우리 정부와 학자들의 노력으로 상당히 고쳐졌다. 대표적인 것이 안중근 의사의 의거로 범죄시 해왔던 태도를 의병투쟁의 지도자로 바꾸었다.또 관동 대지진을 우발적인 사건으로 기술했던 사례도 고쳐 민족적 편견에 가득찬 유언비어 유포와 조선인과 중국인 학살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이와함께 아예 빠졌던 신사 참배와 창씨 개명,징병제를 새로 포함시켰고 조선 여성 등을 종군위안부로 동원한 내용도 추가했다. ◇미국=미국을 비롯한 다른 외국은 우리 역사를 잘못 쓰고 있는 예가 많다.미국은 한국의 미술 철학,인쇄술 등 세계사에 기여한 문명을 소개하지 않고 있고 오히려 중국과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강조하며 한국은 별로 중요시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특히 한국의 현대사를 냉전체제의 시각에서 기술하고 있다. ◇멕시코=한국을 백인종 지역으로 표시하거나 공산주의 국가에 포함시키는 등의 어처구니 없는 역사 교과서를 내고 있다.또한 서울의 인구를 4백만이 넘지 않는 도시로 표시하고 있고 독일의 식민지라고 쓰고 있다. ◇캐나다=서울은 인구 백만의 도시로 한반도의 가장 큰 농업 지역 중심도시라고 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한국에 관한 내용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한국이 후진국으로 장기간 주변 강대국들의 지배아래 있었던 국가로 묘사하고있다. ◇중국=1932년 4월 김일성의 영도아래 조선인민은 항일유격대를 조직했다.미국은 조선 남부에 지주나 부르주아 계급의 친미세력을 부각시키고 48년 8월 대한민국의 수립을 선포했다.1950년 6월25일 조선전쟁이 일어났다.트루먼 대통령은 성명을 발표하고 미국의 해·공군을 파견하여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 침공할 것을 명령했다.이것이 중국교과서의 한국 역사 내용이다. 최근에는 6·25가 북침이라는 내용을 수정하여 기술하고 있으나 미흡한 형편이다. ◇인도네시아=한일관계 속에서 한국을 취급하고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베트남=분단의 책임을 이승만 대통령과 미국에 전가시키고 국호를 남조선으로 부르고 있다.그러나 베트남의 역사 교과서는 최근 외교 채널을 통한 시정 노력으로 많이 고쳐졌다.최근 발간된 역사 교과서에는 국호를 대한민국 또는 한국으로 표기하고 있고 6·25가 남침이라는 사실을 명기하고 있으며 신흥공업국의 하나라고 쓰고 있다. ◇인도=19세기말 한국이 중국의 속국인 것처럼 묘사되고 있고 청일전쟁 결과 중국이 한국의 독립을 인정한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일본 학계의 연구 결과에 편향되어 한국 역사를 기술했다. ◇독일=한국에 관한 내용이 빈약하며 지리부도에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표기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오늘날 한국 기업의 3분의 1은 국영기업이거나 한국인 소유이고 3분의 1은 미국과 관련된 사람이 소유하고 있으며 3분의 1은 일본 관련자들이 갖고 있다는 엉터리 내용이 교과서에 담겨 있다. ◇스페인=남한의 수도를 평양이라고 하고 있고 한국이 1인당 국민소득 2백50달러 이하의 지역으로 분류돼 있다. ◇러시아=러시아 교과서의 잘못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1910년 이전의 항일의병을 공산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빨치산이다.한반도의 분단 책임은 미국에 있고 한국정부는 꼭두각시 정부이며 북한이 민주적 합법정부이다.72년 남북공동성명은 북한이 주도한 것이다.러시아는 그러나 최근에 펴낸 역사교과서에서는 6·25를 남침으로 수정하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 ◇폴란드=「1950년 6월 25일 남한 정부는 드디어 북조선인민공화국을 공격했다」는 그릇된 사실을 싣고 있다. ◇루마니아=북한은 정식 국호를 쓰고 있으나 한국은 남한으로 표시하고 현재의 모습이 아닌 옛날 모습이 지리교과서에 실려 있다. ◇중동지역=한국에 대한 정확한 인식부족으로 지명과 내용 등에 오류를 범하고 있다.38도선을 휴전선으로 표기하고 있는가 하면 한국을 남한공화국이라고 하고 있다.
  • 아나톨리 도브리닌 회고록 「극비」/요약

    ◎고르비의 경제 이해부적이 소 붕괴 불렀다/브레즈네프의 대미 스타워즈 군비경쟁이 파국 이끌어/체코침공때 서방측 미온적 대응이 아프간 침공을 고무 24년동안 워싱턴 주재 소련대사를 지내며 미·소냉전의 최일선을 지켜봤던 아나톨리 도브리닌 전대사의 회고록 「극비」(InConfidence)가 타임스 북스 출판사에 의해 최근 출판됐다.62년 후르시초프에 의해 임명돼 84년 고르바초프 대통령때까지 주미대사직을 수행한 도브리닌은 이 책에서 자신이 겪은 케네디로부터 레이건에 이르기까지 미국대통령 6명의 소련에 대한 태도 및 정책등을 소개하면서 미·소냉전발생의 동기 및 양국의 오해등에 관해 상세하게 서술했다.그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미와 전쟁 불가능” 시인 62년 워싱턴으로 부임인사차 들렀을때 후르시초프 총리는 나에게 솔직히 털어놓는다며 『미국과의 전쟁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항상 마음에 새겨두어야 한다』고 말했다.그러나 불과 수개월후 그는 쿠바에 공격용 미사일 설치로 미국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가 미국이 눈치채지 못하게 극비리에 쿠바에 미사일을 설치할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운명적인 오산이었다.그 목적은 미국의 모든 도시는 물론 캐나다 국경까지도 미사일의 위협하에 놓이게 하겠다는 것이었다.이로 인해 발생한 양국간의 전쟁위기는 워싱턴과 모스크바 지도자간에 미리 개설해놓은 비밀 대화창구를 가동,해결되었다. 그러나 본국정부가 쿠바정부와의 비밀협상을 나를 속이면서까지 추진해왔다는 사실에 나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결국 쿠바위기는 양국간 군비경쟁 레이스를 자극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그후 양국이 수십조달러씩을 퍼부은 뒤에 소련의 붕괴로 말미암아 93년 미국과 러시아는 겨우 케네디 당시의 수준으로 전략핵무기를 감축하자는 합의에 도달할수 있었다. 소련의 또하나의 오산은 70년대말 고도로 정교한 SS­20 미사일을 서부국경에 배치한 결정이었다.이로인한 서유럽에의 위협은 79년 미국의 퍼싱미사일과 크루즈미사일 배치 결정을 불러와 모스크바를 당황하게 했다.크렘린의 큰 오산으로 미국과의 핵균형을 깨지게 만든 것이다. 또다른 소련의 큰 오산은 아프간 침공이었다.이는 소련 군부에 의해서도 반대가 제기됐던,전략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승산이 없는 작전이었다.브레즈네프 총리는 작전 개시후 얼마 안된 80년 1월 나에게 3­4주면 끝날것이라고 확신에 차서 얘기했다.그러나 아프간 침공은 소련체제 전체를 뒤흔드는 「불명예스러운 실패」만을 남긴 소련판 베트남전쟁이 되고 말았다. ○미국과의 핵균형 깨져 이 침공은 「2차대전 이래 최대의 위협」이라고 허풍만 떨어대던 카터대통령에게는 다음해 대통령선거에서 치명타가 되었고 레이건의 당선에 도움을 주었다.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할수 있었던 것은 68년 체코 침공 당시 서방측의 미온적인 대응에서 고무되었던 것이다.이는 마치 2차대전 발발전 체코에 대한 공격에 영국과 프랑스의 무기력한 대응이 히틀러에게 39년 폴란드침공을 부추기게 한것이나 같은 논리다. ○“3∼4주면 끝날 것” 확신 독일의 통일은 고르바초프의 독단적인 협상에 의해 추진됐다.정치국원들은 한결같이 반대했다.고르바초프는 독일과 함께 유럽전체에 항구적인 평화를 가져올안전보장체제 수립을 추진키로 했는데 독일은 안보체제 수립은 포기하고 통일만을 얻어냈다. 브레즈네프 치하의 수년동안 소련 군산복합체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미국과의 군비경쟁을 유도했으며 급기야 이는 레이건 대통령때에 들어서 「스타 워즈」라는 미국의 대응을 불러왔다.이 스타워즈 경쟁은 마침내 소련을 마지막 파국의 길로 이끌었다. 미국의 대통령 가운데 소련에 대한 이해심이 가장 많았던 사람은 레이건 대통령이었다.그는 특히 두번째 임기에 들어선 후에는 소련과의 「건설적 관계」 수립을 추구했으며 그같은 미국의 태도변화가 고르바초프로 하여금 일련의 개혁을 가능케한 것이었다. 고르바초프는 소련을 붕괴로 이끈 가장 큰 책임이 있다.급격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그의 인식은 옳았다.그러나 그는 너무 빨리 서둘렀다.그의 원천적인 실패는 경제적 문제에 대한 이해와 그들을 다루는 정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것이다.그가 글라스노스트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 열수록 실제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레이건 이해심 가장 많아 나는 63년 쿠바미사일 위기로부터 83년 KAL 007기 피격사건까지 첨예한 냉전의 현장에서 냉전 당사자들간의 메신저 역할을 하며 수많은 오산을 봐왔다.이 책의 목적은 이 세기내에 또다시 어처구니 없는 오산들이 재발되지 않도록 모두에게 경고해두자는데 있다.
  • 1·4후퇴뒤 혼란정국(새로 쓰는 한국현대사:34)

    ◎거창학살­국민방위군 사건 잇달아 발생/이 대통령,국회와 마찰… 대통령 직선 추진 한국전쟁은 1951년 새해가 밝으면서 개전 2년째를 맞았다.미 공군은 설날에도 전폭기 편대들을 전선과 북한지역 깊숙이 발진시켰다.그리고 8백12회의 출격을 설날에 기록했다.전선은 남쪽으로 크게 밀려나 38도선 부근에 와 있었다.중공군의 한국전 개입은 전선이 압록강 한·만국경에 고착될 것으로 기대한 한국민의 희망을 깡그리 앗아갔던 것이다. 정부는 1월3일 임시수도를 부산으로 결정하고 다음날 서울을 비웠다.전해 9·28수복으로 환도했던 정부의 공식 서울 철수를 역사는 1·4후퇴로 기록하고 있다.서울시민 30만명이 피란길에 오른 가운데 5일에는 중공군 선발대가 한강을 건너 영등포까지 진출했다.주문진,홍천,양평,수원을 잇는 제2방어선도 곧 무너졌다.유엔군은 7일 오산을 포기해 버렸다. ○양민희생자 6백명 그 2월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경남 거창에서 양민학살 사건이 일어났다.공비토벌에 나섰던 육군 제11사단 9연대 제3대대가 2월11·12일에 거창군 신원면에서 저지른 이 사건의 희생자는 6백명이나 되었다.이유는 공비와 내통했다는 것이었는 데 일일전과 보고는 주민 희생자수를 1백87명으로 기록했다.국회가 이를 문제시하고 4월7일 현지조사에 나섰다가 공비로 가장한 군의 공격을 받고 철수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졌다.주동자들은 구속되어 군법회의에서 실형을 받았다.그러나 모두 1년안에 풀려났다. 이 사건을 축소 은폐한 국방부 장관 신성모는 5월7일 해임되었다.그의 해임은 불가피한 것이었다.거창 사건말고 새로 불거져나온 국민방위군 사건이 더 크게 작용했다.이 사건은 51년1월 국민방위군 집단후송과 수용과정에서 고개를 들었다.국민방위군 설치법에 따라 제2국민병에 해당하는 17∼40살의 장정들을 방위군에 편입시켜 경북지역 각 교육대에 수용했다.이를 계기로 방위군 고위 간부들이 막대한 돈과 물자를 빼돌렸다.그 부정규모는 당시 화폐 24억원,양곡 5만2천섬에 달했다. 국회는 4월30일 방위군 해산을 결의했다.이에따라 5월12일 방위군이 공식 해산되었으나 장정들의 귀향조치는 3월중순부터 이루어졌다.사건이 확대되고 희생자가 날로 늘어나자 정부는 진상조사에 나서 김윤근 사령관을 구속했다.다른 간부 5명과 함께 군법회의에 회부된 그는 사형선고를 받았다.사형이 선고된 5명의 방위군 간부들에 대해서는 8월13일 대구 근교에서 총살이 집행되었다.숱한 청장년을 헐벗게 하고 굶긴 건국이래 최대의 비리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방위군 간부 5명 총살 1951년의 이 두 사건은 이승만 대통령의 초대 임기 내내 따라붙은 불명예였을 뿐 아니라 정적들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특히 거창사건 주동자 가운데 김종원의 경우 뒷날 경찰총수인 치안국장으로 기용했다는 사실은 이승만 정권의 정치적 도덕성을 문제시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이 사건들은 이기붕을 권력의 주변으로 끌어들인 결과를 가져왔다.이승만 대통령은 그를 신성모 후임의 국방장관으로 임명했던 것이다.이를 단초로 이승만 대통령을 핵으로 한 권력의 인맥이 새롭게 발전할 것이라는 장래를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기붕 기용에 앞서 거창사건의 책임을 물어 조병옥 내무장관,김준연 법무장관의 권고사직을 4월24일과 25일에 전격 수리했다.대통령은 조병옥을 오랫동안 못마땅하게 여겼다.당시 대통령의 업무일지에는 1951년1월 서울에서 내려온 이후 조병옥은 내무부가 있는 대구보다는 부산에 더 많이 머물러 있다고 기록했다.그 이유는 정치적 책략을 동원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그리고 대통령을 찾아오는 일이 없고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게 고작이라는 불만도 곁들였다. 조병옥은 사퇴서를 보내놓고 곧바로 이승만 대통령을 비난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그래서 4월24일자 대통령 업무일지는 「조병옥은 자신의 위치를 어느 정도 굳혔고 대통령에 반대해서 싸울 것」이라는 기록을 남겼다.주한 미국대사 무치오는 조병옥의 사표수리를 이승만 대통령에게 직접 항의했다.이를놓고 이승만 대통령 쪽에서는 미국이 다음 대통령 선거를 좌지우지 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하고 무치오가 새로운 내무장관을 장면과 같은 온건한 인물로 꼽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장면에게는 이미 국무총리직이 수임되어 있었다.장면은 사실상 주미대사로 워싱턴에 더 머물기를 희망했다.그럼에도 이승만은 새해들어 그의 소환을 결심하고 1월5일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이시영 부통령이 5월9일 「시위」에 앉아 소찬을 먹는 격에 지나지 못했기 때문에 물러난다」는 서한을 신익희 국회의장 앞으로 전달했다.이와 더불어 부통령직 사임서를 피란국회에 보냈다.사임서가 국회에서 반려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본인의 고사로 3일후 국회 본회의가 이를 수리했다.국회는 두 차례의 보궐선거끝에 5월16일 김성수를 부통령으로 뽑았다.그 역시 잔여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1952년 정치파동의 와중에 전격 사임해 버렸다. ○개헌 결심…자유당 창당 한반도를 아비규환의 전쟁으로 몰아붙인 그 6월이 또 다가왔다.4월11일 전격해임된 맥아더장군에 이어 리지웨이장군이 이끄는 유엔군은 6월19일 철원,김화,평강으로 이어지는 철의 삼각지대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그러나 중공군은 금성지구 한국군 2군단 전면에서 춘계공세 이래 최대의 공격을 개시했다.공산군은 4월22일 제1차 춘계공세 이후 6월17일까지 21만5천9백명의 병력손실을 입었다.그럼에도 유엔군사령부는 아직 대공세 능력을 상실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이승만은 계속 국회와 부딪쳤다.일반적 여론은 국회가 대통령을 간선으로 선출할 경우 그가 대통령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었다.그래서 헌법개정을 결심했다.8월15일 그의 신당구상은 11월19일 자유당 창당으로 실현되었다.자유당 창당 이전인 10월17일 국무회의는 대통령 직선과 양원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의결하고 11월20일 이를 국회에 제출했다. ◎미 「알렉시스 존슨 파일」/미,한국전중 “기독교도 구출” 논의/전쟁 확산→한반도 포기상황 전제/북한측 박해 밝혀져 인권차원 거론 미국은 한국전쟁이 확산되어 한반도를 포기할 경우 한국민 가운데 기독교인들을 구출하는 문제를 토의한 것으로 밝혀졌다.이는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워싱턴 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에서 입수한 「알렉시스 존슨(Alexis Johnson)파일」을 통해 확인한 것이다. 이같은 기독교인 구출문제에 대한 논의는 1951년 11월2일에 작성한 미 국무성 회의비망록에 들어있다.회의에는 미 국무성 극동국의 러스크,동북 아시아과의 맥 크러킨이 참석했다.이는 미국 장로교인 트류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당시 미국은 다른 종교가 거의 들어오지 않는 기독교 국가였기 때문에 이 문제가 자연스럽게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특히 한국전쟁 이전에 북한 공산권 치하에서 기독교인들이 큰 박해를 입었다는 사실이 유엔군 북진에서 드러나 더욱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한국전쟁 이전 북한의 기독교는 다른 종교에 비해 철저하게 말살되었다.가톨릭의 경우 함경남도 덕원 면속구의 피해는 컸다.1945년 민족해방 이후 1949년 5월9일 이후 수도원은 몰수 당했다.사우어 주교를 비롯한 많은 신부와 수사,수녀들이 고난속에서 순교했음이 밝혀졌다.개신교에서도 많은 순교자를 냈다는 사실이 서방에 전해짐으로써 기독교인들의 구출은 인권 차원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한국민 기독교인 구출은 한국에 살고있는 미국 민간인 철수작전과 더불어 제기되었다.한국전쟁 발발 당시인 1950년 서울은 물론 대전이 예상이외에 빨리 북한군에 점령되어 미국의 민간인들이 포로로 취급받은 데 따른 대비책으로 미 민간인 철수는 심도있게 논의됐다.그러니까 이 비망록을 작성할 당시도 한국에 대한 미국의 방위가 불투명했다는 추론이 나올 수 있다. 알렉시스 존슨은 1930년대 후반 한국에도 살았던 외교관으로 이승만이 미국에 망명해 있던 시절 그와 절친한 관계를 유지했던 인물이다.한때 미 국무성 극동아시아과에서 영향력을 가진 관리로 활약했다.
  • 국민을 우롱한 사기선행(사설)

    부랑자 보호시설을 운영하던 전과 8범의 50대 가짜승려가 10대 소녀를 성추행하는 등 각종 비행이 드러나자 독지가들로부터 받은 후원금 1백여억원을 챙긴채 중국으로 달아난 사건은 국민들로하여금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자선을 빙자한 희대의 사기꾼이 「소쩍새 마을」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아래 미혼모·고아·정박아 등 2백여명을 볼모로 14년동안 사기행각을 벌였다니 우리사회가 이토록 허술한지 기가 찰 노릇이다.우리가 비애감을 느끼는 것은 사기꾼이 사회사업가로 미화되고 양두구육의 행동을 하는데도 한번도 검증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사기꾼이 89년이후 5차례나 TV방송에 출연해 사회의 그늘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돌보고 있는 자기희생의 인간드라마를 털어 놓았을때 많은 국민들은 감동하고 인정이 살아있음을 흐뭇하게 생각하기까지 했다.불교신자를 중심으로 7만여명이 십시일반의 정성으로 한푼한푼 1백20억여원의 후원금을 냈으나 일부만 재활촌의 선전용으로 쓰이고 1백여억원은 사기꾼의 비밀계좌로 들어갔다니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각박하고 이기적인 시대에 살아가는 현대인은 자기 희생적인 인정과 봉사에 메말라 있다.이런 미담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삶의 흐뭇함과 기쁨을 솟구치게 한다.이 때문에 언론은 미담기사를 발굴하기 위해 힘쓰며 이를 비중있게 다룬다.이번 사기극도 이같은 현대인의 심리를 악용한 범죄라고 하겠다.처음 「소쩍새 마을」의 미담이 방송되자 인근 주민들의 항의가 있었으나 방속국들은 사기성 미담을 경쟁적으로 확대재생산해 상처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언론은 앞으로 미담 사례의 보도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도망간 범인의 신병을 빨리 확보하고 처벌해야 하지만 유사한 범행의 재발을 막는 일도 중요하다.관계기관은 사설 복지시설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사기성 시설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
  • 인권불모지 「재활시설」/박찬구 사회부 기자(오늘의 눈)

    「자유」를 향해 주인공이 망망대해에 몸을 던지는 마지막 장면으로 영화 「빠삐용」은 팬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있다. 명배우 스티브 매퀸의 열연도 일품이었지만 바람처럼 「자유」를 갈망하다 마침내 탈출에 성공하는 한 인간의 본능과 용기에 관객들은 공감을 느끼며 눈시울을 붉히고 만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은뒤 감옥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죄수」와 그를 낭떠러지로 둘러싸인 절해의 고도에 가둔 「현실」 사이의 부조리는 그러나 영화속의 한 장면만은 아니었다. 37명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간 경기도여자기술학원 방화참사는 그래서 더욱 서글프다. 유독가스에 질식사한 소녀들의 주검은 마지막 순간까지 굳게 닫힌 출입문과 화장실 쇠창살에 매달린채 그토록 그리던 바깥세계를 향해 있었다. 도대체 우리 사회의 무엇이 10대 소녀들을 그 지경까지 내몰았는가. 물론 치밀한 사전공모와 폭행,방화의 시나리오를 비행소녀들의 철없는 행동쯤으로 덮어버릴 수도 있다.「원생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밤마다 출입문을 잠궈야 했다는학원측의 항변에 어떤 이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러나 관할 경찰에 끊임없이 비인간적인 처우등 학원 내부 생활을 고발하는 투서가 접수됐음에도 무슨 이유에선지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행정관청이 출입문의 외부 자물쇠가 대형 참사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개선책 강구만 지시한채 2년이 넘도록 현장 확인을 하지 않았다는 대목에서는 차라리 말문이 막힌다. 생명을 담보로 한 행정편의주의와 인명경시 풍조,예산횡령과 가혹행위 등 온갖 비리로 둘러싸인 학원에서 달아나려던 소녀들은 끝내 어처구니없는 참사를 맞게 된 것이다. 쉽사리 주변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된 소녀들에게 이 사회는 성의있는 재활프로그램을 마련하기는 커녕 죽음과 자유를 맞바꿀 것을 종용했다는 자조섞인 목소리까지 들려 온다. 적어도 21세기를 앞두고 세계화를 부르짖는 마당에 아직도 「탈출」을 꿈꾸어야 하는 비인간과 비인격의 창살없는 감옥이 남아 있는 현실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기술 배운다더니…” 두딸잃은 모정 통곡/「경기기술학원」 참사현장

    ◎불에 탄 일기장엔 애절한 사연 절절히/사물함속 “생일축하” 꽃다발만 외로이 ○…『이런데인줄 모르고 기술학원이라고 해서 교육시키라고 딸자식들을 맡겼더니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졸지에 두딸 정숙(18)·정아(16)양을 모두 잃은 이모씨(38·상업·서울 광진구 성수동)는 성적이 나빠 고등학교 진학을 못하고 방황하던 딸들을 입교시킨뒤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랬던 소박한 꿈이 어처구니없는 비극으로 끝맺자 믿어지지 않는 표정이었다. 두딸의 장래를 근심하던 이씨는 친구로부터 학원에 대한 얘기를 듣고 미용기술을 배우게 하기위해 지난 봄 두 딸을 학원에 입소시켰다. 『입소전에는 그토록 명랑하던 애들이 점점 얼굴에서 웃음을 잃고 바보처럼 변해갔습니다』 이씨는 아이들이 학원에서 선배들에게 구타와 욕설을 당하며 생활했다는 사실을 두딸이 사망하고 난뒤 이날 비로소 알게 됐다. 이씨는 『언젠가 면회를 갔는데 큰딸 정숙이 오른뺨에 손바닥자국이 나있었다』며 『그 때 이유를 알았더라면…』이라고 말끝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무언가 이상하다 싶어 그때부터 딸들을 두번씩이나 퇴소시키려 했었지만 입소때 쓴 서약서때문에 학원측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이씨는 『지난 20일 둘째딸 생일이었고 오늘이 첫딸 생일인데도 아이들이 경비원이 무서워 면회온 부모에게 생일선물을 얘기하지 못한 것 같다』며 『이곳에서 나갈 수만 있다면 다른 학원을 다니며 착실하게 살겠다는 딸들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며 복받치는 울음을 터뜨렸다. ○…화마가 삼키고 간 2층짜리 기숙사 건물의 2층 복도와 방에는 불을 끄며 뿌린 물이 흥건히 괴어 있고 원생들의 곰인형과 색종이로 접은 종이학 다발,일기장,편지 등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어 사고당시의 참혹함을 짐작케 했다. 또 한원생의 사물함에는 「너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종이리본과 함께 원생이 직접 만든 것으로 보이는 20송이의 장미다발이 주인을 잃고 흩어져 있어 주위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희생자들의 빈소가 차려진 수원 아주대병원,동수원병원,성빈센트병원,수원의료원 영안실에서는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유가족들이 『새사람이 되어 밝은 표정으로 돌아오길 기다렸는데 이게 웬일이냐』며 오열,눈물바다를 이루었다. 전북 김제에서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딸의 생사도 확인하지 못한 채 상경한 이순자씨(53·여)는 딸 배모양(17)의 시신을 붙잡고 『앞길이 구만리 같은데 벌써 가면 어떡하느냐』며 통곡. 한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때와는 달리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곧바로 신원이 확인돼 가족들에게 연락이 됐으나 일부 시신은 잠옷을 입고 자다 변을 당하는 바람에 신원확인이 늦어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기도. ○…원생 가족 70여명은 이날 하오 3시쯤 경찰이 생존한 원생 78명을 격리시킨뒤 가족들과의 면회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항의하며 사고현장앞 4차선도로를 점거하고 10여분동안 연좌 농성. 조카를 찾아온 장기수(53)씨는 『보도를 듣고 새벽 6시30분부터 현장에 나와 조카를 만나려 했으나 당국이 아무런 설명없이 출입을 통제해 만나지 못하고 있다』고 발을 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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