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유감’/장은수 문학평론가(특별기고)
◎한국작가엔 ‘못오를 나무’인가
이탈리아의 좌파 극작가인 다리오 포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것을 나는 인터넷에서 처음 보았다.그 시간에 나는 노벨 사이트를 접속해 두고 있었고,예정시간보다 10초 뒤에 선정 이유서가 뜨기 시작했다.그동안 예상수상자들에 관한 자료를 모아온 나로서는 다소 의외의 결과였다.전문가들은 V.S.네이폴,주제 사라마고,베이다오,위고 클라우스,얀 크로스 등을 주목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도에 따르면 이 무명(?)작가의 등장을 두고 말이 많은 모양이다.노벨문학상이 결정될 때마다 시비야 늘 있었던 것이지만 이번엔 교황청이 반박하고 나섰다는 점이 이채롭다.‘이탈리아인의 종교적 감정을 모독했다’고 교황이 직접 비난했던 그의 수상소식을 듣고 바티칸당국은 ‘논란대상인 작가를 수상자로 선정한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문학인들이야 작품 보는 취향이 각자 다르니 그렇다고 치고 바티칸이 나선 것은 놀라운 일이다.일개 작가의 동정에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을까.교황청과 마약밀매조직의 관련성을 풍자한 ‘교황과 마녀’같은 작품이 눈에 거슬렸는지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교황청 차원에서 그의 문학을 공식부인한 것은 그리 좋아보이지 않는다.그러한 교황청의 태도는 샐먼 루시디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호메이니를 생각나게 한다.이슬람교를 모독한 작품 ‘악마의 시’를 썼다 하여 루시디는 아직도 이슬람 광신자들의 살해위협 속에 쫓기고 있다.국가권력이나 종교권력이 일일이 예술작품을 통제한 것은 중세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이다.교황청이 한 발짝만 더 나아가게 된다면,그것은 예술의 독자성을 부인하는 일이 될 것이다.
아무튼 매해 쏟아지는 이러한 쑥덕공론을 잠재우려면 스웨덴 한림원은 좀더 엄격하고 공정한 문학적 기준을 가져야 할 것이다.특히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중국,이란 등의 감독들이 주목받는 것과 비교하면 일본을 제외한 다른 아시아 지역의 문학에 대한 그들의 무관심은 얼마쯤은 도가 지나친 부분이 있다.
물론 그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그중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그 나라 작가의 작품들을읽어볼 기회조차 없다는 것이다.일본을 제외하고 자국의 작품을 다른나라 말로 번역 출판하는데 열심인 나라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많은 나라에서 그의 연극을 올린 다리오 포를 두고도 무명(?)작가를 수상자로 선정해 상의 권위를 떨어뜨렸다고 비판받는 상황이니 읽을 작품도 없는 주제에 노벨상 받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을지도 모른다.
한국도 이러한 상황에서 절대로 예외가 아니다.‘언제쯤 노벨문학상을 받게 될까요’라는 물음에 나는 늘 ‘어림없다’고 말한다.노벨문학상은 작품성의 문제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그것은 어느 정도는 해외출판정책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작품에 대한 번역지원금을 주는 등 국가차원의 지원이 있기는 하지만 이문열,박경리 등의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서점문턱을 넘은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정부에서 돈을 대 만든 책들이 고스란히 창고에 쌓여 있다가 폐지 시장으로 팔려나가고 있는 것이다.이런 상황을 탈피하기 위한 획기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고,노벨문학상 수상 운운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